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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나오지 않는 진평왕의 아들들에 관한 글이 될겁니다.

칠숙,비담,흥원이 반란을 하는 이유

진위 논란의 한가운데 있는 <화랑세기>에는 진평왕에게는 최소한 4명의 아들들 즉 왕자들이 보인다. 이들 왕자의 후손들 중에 681년 흠돌 반란에 동참이 아닌 주도적으로 정통성 회복을 시도한 인물도 있다. 이때, 김유신과 김흠순 가문도 이에 연루가 되어 역사에서 사라질뻔한 위기를 겪는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김유신이 김미추의 능에 나타나서 쇼를 하는 바람에 위기를 넘기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의 기사가 될 것이다. 

이번 글은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칠숙이 반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송고한 기사의 반란 수괴들 시리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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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집안이 반란에 연루가 되면 해당 집안은 쑥대밭이 될뿐만 아니라, 반란에 연루된 일가친척 구족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반란세력의 집은 허물고, 물을 채워 연못(늪)으로 만들어 버린다.

혹시, 집 주위에 전혀 연못이 있을 자리가 아닌데 연못이 있다면 한번의심을 해보시라. 혹시 연못터에 반란의 수괴가 살았던 적이 있는지? 예전 <처선>에 대한 이야기를 꾸민 사극을 SBS에서 했을 것이다. 반란에 연루가 되지 않았지만, 연산군에 의해서 처선의 집이 연못으로 바뀌었고, 처선의 이름자가 들어간 관청까지 개명을 하는 사례가 있었다. 

드라마 사극 <선덕여왕>에는 반란에 연루된 몇몇이 등장하여 극의 재미를 높이고 있다. 첫번째는 미실의 충실한 충복이며 터미네이터 같은 <칠숙>이다. 칠숙이 반란을 일으킨 631년는 진평왕의 말년이며,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 632년 바로 전해이다. 

칠숙이 반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선택을 하게 만든 이는 진평왕이고, 칠숙은 반란에 실패해서 기록이 망실되어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최근 <선덕여왕>에서 미실과 진지(금륜)사이에 태어나 비련한 어머니 미실에 의해서 버려진 <비담:김남길>이 그동안 알고 있었던 등장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카리스마 넘치게 등장하였다. 비담에 관련된 글은 [역사이야기] - 카리스마 비담, 미실이 버린 아들? 사실은 과 [역사이야기] - 미실 아들, 용춘 동생, 카리스마 비담의 또다른 비밀 를 참조하기 바란다.

역사에 기록된 비담은 반란을 일으키는 647년에 상대등의 직위에 있었다. 하지만 이런 비담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군지 전혀 기록되지 않았다. 단지, 칠숙이나 비담은 신라의 최고위 관료인것으로 미루어 왕실의 최측근 인물임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진평왕의 아내들

그럼 진평왕의 아들이지만,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에서 사라진  인물들을 화랑세기는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 지 살펴보자.  화랑세기에도 <칠숙>이나 <비담>에 관한 기록을 찾아 볼 수는 없다. 단지, 화랑 출신들이 칠숙과 비담의 난을 제압했다는 기록이 있고, 흠돌의 난때에는 김대문 가문이 흠돌의 난을 평정을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기록이고, 흠돌의 세계도 단편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삼국사기,삼국유사,족보 기준 자식들



일단 우리가 알고 있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 관련 족보를 종합해 보면, 진평에게는 마야부인(황후?)와 손씨 승만의 기록만 보인다. 또한, 이들의 후손으로 천명, 덕만, 선화만 있고, 아들은 없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설마, 일국의 왕이 1부1처제를 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자유로운 신라시대에 진평이 달랑 공주 3명만 낳고, 왕통을 이을 후사를 보지 않고, 왕후가 죽고 나서 왕후를 뽑는 행동을 했다는 말은 상식에 반한다.
 
물론, 덕만이 50이 다 되어서 노처녀로 왕위를 이였고,  덕만이 왕에 있을때 춘추와 문희를 엮어 주는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또한, 신파극의 주인공 처럼 김유신이 첫사랑 <천관녀>를 못잊어, 전쟁터를 떠도는 전쟁광이 되고, 춘추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655년 회갑에 자신의 조카와 첫번째 결혼을 하여 원술을 낳았는데, 원술이 유신의 첫번째 아들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된다.

그렇게 믿고 있는 분들이라면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글과 [역사이야기] - 조선 세종, 신라 덕만, 천명의 기록 비교해 보니 을 일독하기를 권한다.

진평왕의 아들을 낳은 여인들

이제 탈도 많은 <화랑세기>에 나타난 진평왕과 그의 정비/후비들과 그들에서 난 자식들을 볼 차례이다. 일단, 진평과 관계를 맺은 인물들을 진평왕을 기준으로 다이아그램을 만들어 봤다.

진평왕과 관계된 처와 자식과 그 후손을 한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들을 낳은 사람은 별도의 표시를 할 것이다.



진평의 여자 중에서 왕후라 추측되는 인물은 마야와 승만이다. 승만은 마야가 죽고, 난 후, 마야의 뒤를 이어서 왕후가 되었다.

삼국유사는 단지, 아들을 얻기 위해서 승만을 왕후로 인명하였다고만 기록되어 있고, 화랑세기는 마야가 죽은 후에 승만이 왕후과 되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아들을 생산한 비들은 승만을 비롯해서 태양, 보량(박은빈)이다. 승만은 아들을 낳았지만, 일찍 죽었다. 승만은 아들이 죽은 이유가 용춘.용수 형제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들 형제를 미워해서, 한때 이들 형제가 지방으로 떠돌았다.

진평의여자와 후손, 원본을 보고 싶으면 크릭

태양은 태원과 흥원 두 아들을 낳는다. 보량은 보로라는 아들을 낳았지만, 승만의 미움을 받아서 양도에 다시 시집을 갔다고 전한다.


그래서 보로는 진평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태양의 자식인 태원과 흥원은 어떨까? 화랑세기는 이들도 태양이 방탕한 생활을 하여 태원과 흥원이 왕위를 이을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진평에게는 마야와 승만 만이 왕후였고, 딸은 달랑 3명만 있었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천만에 만만에 말씀, 진평은 그 누구보다도 아들을 낳기 위해서 정비/후비를 많이 두었고, 이들로 부터 아들 4명을 보았지만, 승만의 자식은 일찍 죽고, 3명의 자식중 흥원의 자식들은 후에 흠돌반란의 수괴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드라마 선덕여왕에는 미실의 딸과 진평왕의 아들이 사라졌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에는 나오지 않지만 진평/미실 사이에는 보화(진평/미실)라는 딸을 두고 있다. 보화도 왕위승계 자격이 충분히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보화의 남편은 구륜(진흥/사도)으로 진흥왕과 사도 사이에 난 정통성골이니 말이다. 이들도 극 속에 나왔더라면 드라마가 더 재밌지 않았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하는 소설 선덕여왕을 극본하였다면, 사실 진평왕의 아들들을 조명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선덕이 어떻게 남자형제들( 보로, 태원, 호원)을 물리치고 왕이 되었는가? 이쪽이 더 스팩터클한 내용이 되었을테 말이다.  "그건 니 생각이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사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실은 진평왕이 왕위를 이은 다음에 세종의 만류로 권력과 왕후가 되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미실이 사후 25~년 이후 인 632년 일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지 않나?

진평 아들과 그 후손


진평이 덕만을 선택한 이유?

재미있는 사실은 기존 통설대로 적통은 성골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마야보다 태양이 더 뼈속까지 성골이다.


덕만의 어미가 되는 마야는 복승/송화의 자식이다. 왕자인 태원.호원의 어미는 태양(진흥/사도)이다. 태양은 진흥/사도의 자식이다. 태양의 가문이 마야(복승/송화)의 가문보다는 더 왕실의 정통성에 부합니다. 마야의 아버지 복승은 상대적으로 태양의 아버지 진흥왕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마야의 어머니 송화(영실/지소)의 부계 영실보다는 태양(진흥/사도)의 부계가 진흥왕이니 마야의 후손보다는 태양의 후손이 왕위승계서열상 앞쪽에 있고, 보로(진평/보량)은 제외하더라도, 태원. 호원이 성골중에 성골이 된다. 그런데 그 많은 성골 왕자를 두고 성골남진이다?

하지만, 정비인 마야의 후손인 덕만이 왕위를 꽤찬다. 덕만은 진평왕과 마야의 적장녀이기 때문이다. 진평은 태양의 아들인 태원,호원보다도, 마야의 딸인 덕만을 선호했을 뿐이다. 덕만이 왕위를 잇는다는 사실을 알고, 이찬 <칠숙>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화랑세기에도 언급이 없는 태원과 칠숙이 모종의 썸씽이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비담이 태원의 자식일 지도 모르겠다. 화랑세기 내에서도 태원과 그의 후손에 관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진평의 "묻지고, 따지지도 않고", 선택한 덕만이기 때문에 덕만이 왕위를 잇는 것이다. 김정일.김일성이 결정하면 끝인것처럼 진평이 결정하면 끝이다. 

이유를 찾자면 아래 덕만 시리즈 글을 참조 하기 바람. 


 비담이 승만(국반/박씨)이 왕위를 잇기전 거창한 명분으로 내세운 <여왕은 더이상 안된다. 당나라도 그랬어요 여왕은 안된다고..>하였지만, 상대등 <비담>이 선덕(덕만) 말년 647년 반란을 일으키는 것도 칠숙의 사례와 본질은 같다.  

또한, 문무왕 사후 흠돌, 흥원, 진공 등이 정통성을 찾겠다고 반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호원(진평/태양)의 아들 흥원은 지금 통설로 하면 성골중에 성골이 된다. 그런데? 성골남진이 되어서 덕만이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면 개가 웃지 않겠는가?

또하나 잼있는 사실은 승만왕후의 성은 손씨이다. 그런데 진평은 손씨의 후손을 통해서 왕위를 잇겠다는 발상을 했었다는 것이다. 성골인 김씨나 박씨나 석씨도 아닌 일개 6부의 후손인 손씨를 통해서 신라의 성골정통을 잇겠다고 생각했겠는가? 기존 신라의 골품제 하에서는 성골>>>진골>>>>>>>>6부씨족>>>>>평민의 순서일텐데 말이다. 한마디로 진평왕이 "성골/진골 웃기고 있네" 하는것 같지 않는가?

죄수의 딜레마 화랑세기

많은 사람들이 <화랑세기>를 믿지 않는 이유중에 하나가. 지금의 관점으로 개족보 같은 혼맥도 있지만, 기존에 알고 있는 역사적인 상식인 성골.진골, 왕실계보, 화랑의 개념을 깨는데 있다. <화랑세기>를 인정한다면, 그동안의 축적된 연구성과물들이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성골.진골이다. 진평왕은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성골이 단절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성골여자인 덕만과 승만이 왕위를 이은 것이다. 화랑세기를 기준으로 한다면, 성골남자는 씨가 마른적도 없고, 성골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고 하니, 기가찰 노릇이 아닌가?

사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조금 꼼꼼하게 살펴보면, 성골은 존재자체도 없고, 성골이라고 하는 말은 당해 왕의 자손을 뜻한다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마야의 적손 왕자가 없고, 승만 왕후를 통해서 난 적자가 없다는 말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니들이 그동안 연구한 성과물들은 다 틀렸어"라고 하지 않는가?

인정하자니 그동안의 성과는 사라지고, 인정하지 않자니 화랑세기의 정교함에 치를 떨어야 하고, 안정하지 않고, 박창화 개인이 지어낸 저술이라고 한다면, 기존 사학계는 개인 박창화 한명보다도 못한 존재로 떨어져 버리고 만다. 그러니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졌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화랑세기를 믿는 자라면 성골/진골은 없다고 해야 한다. 화랑세기에서 성골로 알고 있는 자(왕.왕자.공주)들은 대부분 진골정통의 맥을 가지고 있다. 성골 = 대원신통 = 진골인 것이다. 화랑세기는 믿지만 성골.진골은 있다. 라고 생각한다면 웃기는 일이 아닌가?

화랑세기 신뢰는 글쎄?

사실 글쓴이는 화랑세기를 신뢰하는 편은 아니다, 화랑세기를 추적하는 동안 너무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믹스업 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이설이 있음을 주장하는 책이 삼국유사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삼국유사도 맞고, 삼국사기도 맞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고 있다. 또한, 이들을 교묘히 하나로 엮어서 일치 시키고 있다. 이는 화랑세기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후대에 나온 작품이란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화랑세기를 파고 또 파고 들수록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앞에 나온 책이란 화랑세기가  뒤에 나온 <삼국사기>, <삼국유사>을 참조한 듯 한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덕여왕을 비판을 할때가 아니고, 글쓴이가 주장을 하는 글에는 <화랑세기>를 절대로 인용하지 않고, 의문점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이에 필요한 자료를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삼국사절요에서 수집하여, 분석하고 재해석해서 가설을 검증하고, 가설이 합당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던 것이다.  진본을 필사한 화랑세기이던 박창화가 창작한 화랑세기이던 상관없이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많은 영감을 준다. 이정도 파괴력을 가진 책을 보지 못한것 같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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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8.06 0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BlogIcon 아이러니♡ 2009.08.06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공부 열심히 하네요 ㅋㅋ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4. 임현철 2009.08.06 0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쉽지 않은 공부인데 이거 재밌게 봅니다.

  5.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6 1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험치자니까요 ㅎㅎㅎ
    저는 옆에 요약 정리하면서 매일 공부하는데...
    오늘도 요약 정리를 나름대로 하고
    잘 배웠습니다. ㅎㅎㅎ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행복 가득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6. 잽돌이 2009.08.06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화랑세기의 진위여부는 이제 거의 진본 쪽으로 돌아 서고 있습니다.
    문헌비교를 통한 진위여부를 가리는 것도 중요 하지만
    그 고고학적 증거도 중요 하다고 할 수 있지요..
    역사학에 관심이 많으시고 화랑세기에 관심이 많으신것 같은데

    서강대학교 이종욱 교수가 그 전문가 이시고

    각종 고대 신라사에 대한 자료 구하기 쉬울 겁니다

    참고로 화랑세기가 진본 이라는 그 고고학적 증거 두가지만 밝히고 갈께요

    다른 역사서 어디에서도 언급 되지 않았던


    1.경주 월성의 해자가 발견 되었구요

    2.포석정 포석사 의 문양이 세겨진 기와 파편이 발견 되었습니다
    특히 문노가 결혼을 한곳이 포석사 라고 나오는데 그 포석사 라고 사당이라고 분명히
    화랑세기에 나오는 데 우리는 포석정 술마시고 노는 곳으로 알 고 있었습니다.

    이 두가지가.. 분명.. 화랑세기는 진본이라는 결정적 증거라 할 수 있고요

    너무나도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짜맞추기 하는 것 같다라고 하셨는데

    진본이기 때문 입니다.

    ^^

    지금 서울대 노태돈 교수쪽과
    이종욱 교수쪽이.. 엄청난 진위공방을 하고 있는데
    이종욱 교수쪽의 계속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논문 발표를
    하고 있지만 노태돈 교수쪽은 처음엔 대항하는 논리를 내세우다가 요즘은.. 대응을 안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아예 신라사를 다시 써야 할 지경에 이를테니까요

    도서관에 가셔서 화랑세기를 검색 하시면

    약 10~15권 정도의 책들이 있습니다..

    읽어 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8.06 1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몰라서 제가 진위가 으심스럽다고 했을까요? 저는 진위여부에 상관없이 화랑세기는 엄청난 역사학계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봅니다. 최근에 발표된 논문들을 보면 이전과는 다른 화랑세기를 인용한듯하면서, 참고 문헌으로 등록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영향을 미쳤다는 거지요..

      노태돈이 반응을 하지 않는 이유는 만지면 커지기 때문입니다. 주고 받으면 이슈화 되거든요.. ㅋㅋ

      양쪽이 다 들어맞기때문에 진본이다가 아니고, 양쪽을 합쳐 놓았기 때문에 의심스럽다는 겁니다..

  7. 물음표 2009.08.06 1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넘 재미있게 읽고 갑니당.^^....
    수고에 늘 감사 합니다.

    갓쉰동님 글 읽고~~~~~ 선덕여왕 드라마 보면서 남편이랑 아이들한테
    무지 잘난척하며 설명해 주곤 한답니다.ㅎㅎ
    계속 부탁해요...

  8. 잽돌이 2009.08.06 1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결국은 학문적 접근이 아닌..

    파벌싸움의 양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고대사 연구는 여러가지 제한때문에

    한정적 연구일 수 밖에 없는데요

    고고학적 증거 마저 무시한다면

    진짜 연구를 위한 연구지 학문을 위한 연구는 아닌거 같습니다.




    결국 당대에 씌여진 문헌을

    후대에 씌여진 문헌과 비교해 봤을때

    차이가 있어야만 한다 라는 발상과

    그럴리가 없다 라는 전제하에 바라보시는 것 같습니다.

    싸움을 거는게 아니구요.. 그냥 의견을 제시 하는 거예요 오해 마세요~ ^^

    • BlogIcon 갓쉰동 2009.08.06 1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저도 파벌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이종욱이 공개하자 노태돈이 그랫지요. 난 이미 다 봤다. 그런데 가라당..

      연구해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라고 생각함.. 그러지 않다면 화랑세기를 탐독할 이유가 없지요..

      화랑세기는 진위와 상관없이... 아이디어 뱅크 같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재생각을 글로써 표현하는 거지요.. 전대 기록이 후대기록을 보충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그런것이니 양해 해주셈.. 물론, 박창화가 가지도 있던 다른 자료도 제생각에 반영되었다는 것도 있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06 18: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의심하고 회의를 하고 추적을 하다보면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끝을 보겠지요.. 원래 회의주의자가 발견을 하지요.. 단, 회의한다고 해서 처다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될 수 없지만..

  9. 지나가는사람 2009.08.07 0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쭤볼것이 있습니다
    보량이나 태원 등에 대한 다른 남자후손에 대한 이야기가 화랑세기에 어느 풍월주대에 언급이 되어있는지 혹시 자세하게 알려주실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진평왕대에 풍월주에 오른 자들을 대충 살펴보았는데, 잘 찾지못하여 부탁드립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공과 흠돌 풍월주에 언급되어 이고, 양도공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보로는 용춘공 조에도 있음..

  10. 잽돌이 2009.08.07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랑은 견해가 다르시군요

    전대 기록이 후대 기록을 보충 할 수 없다라...

    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창작이 아니라면..

    특히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은 유교적인 관점에서 삼국사기를 썼었는데

    결국 자기 입맛에 맞는 내용만 발췌 했고 해석하고 자기의견을 넣었지요

    즉 고삼국기 원문에서 발췌를 했다면 전대 기록이 더 풍부하니

    후대기록을 보충 하고도 남는 거라고는 생각 하지 않으십니까?

    후대기록이 무조건 전대기록을 보충해서 더 많은 내용이 들어가 있다고는 볼 수 없다는게 저의 사견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역사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군요

    소주나 한잔 하실 까요?

    관심있으시면 메일 주시죠

    donygun@nate.com

    네이트 등록도 대 환영 입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1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견해가 다르다니 별로 다를것도 없는 것 같은데요..

      저는 회의를 하면서 추적하는 중입니다. 아직 결론을 내지 않았거든요.. 의심스럽다와 위서다 진서다는 다른 말인뎅..

      대화는 블로그를 통해서.. ㅋㅋ 죄송합니다.. 꾸벅~~

  11. 잽돌이 2009.08.07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
    칼날을 살짝 피해버리시는 노련함...

    ㅋㅋㅋ

  12. 지나가는사람 2009.08.08 0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번에 알려주신대로 화랑세기를 뒤져보았으나 태원과 호원에 대한 기록은 찾지 못하고, 전군보로에 관한 기록만 찾게 되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님께 질문을 드리고자합니다.
    전군보로는 미실의 손녀인 보량의 아들입니다. 보량의 경우에는 부모가 모두 성골임을 만족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전군또한 성골이라 보기 힘듭니다. 제가 부모가 모두 성골이어야한다고 하는 이유는, 많은 학자들이 설명하듯이 천명과 용수사이에서 낳은 춘추가 성골로 인정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용수 또한 진지왕의 아들이었으나 폐위되었기에 성골에서 멀어져, 그 아들도 성골로 인정받지 못하였습니다. 이토록 성골이 성립되려면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그렇기에 전군보로는 진평의 아들이나, 성골이 아니기에 왕위계승권자로 거론되지 않은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반역에 가담하게되는 태양공주의 아들들은 많은 학자들이 거론하듯이, 태양공주가 방탕하여 진평왕 이외의 많은 남성들과 관계를 맺었기에 그 아비를 확신할수 없어 성골로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마도 그 아비가 진평이외의 다른 남자임을 확신할만큼 정황이 확실하여 배제된것이라 사료됩니다. 아들로는 입적이 되나 성골로는 인정되지 않은 것은, 위에서 언급하듯, 그 조건을 성립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이유입니다. 성골은 그렇기에 그토록 우월한 골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제 의견중 틀린점이나 보충할 말씀이 있으시다면 댓글을 달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3. BlogIcon 갓쉰동 2009.08.08 0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에 앞서 흠돌은 호원공(好元公)의 아들 흥원(興元)을 부제로 삼았다. 애초에 태양공주(太陽公主)가 진평대제를 섬겨 태원(太元)과 호원(好元)을 낳았는데 제(帝)를 닮지 않았다. 공주는 어려서 금륜태자(金輪太子)339)를 섬겼는데 사신(私臣)을 좋아 하였다. 제(帝)를 섬길 때도 역시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양군(태원과 호원)은 통(統)을 얻지 못하였다. 흥원은 제통(帝統)이 자기에게 있다고 혼자 생각하여 조정을 원망하고, 누이를 흠돌의 첩으로 삼아 결탁하였다. - 27세 풍월주 흠돌에 나오는 기사입니다.

    단순히 사신을 좋아 했다고 해서 성골이 될 수 없다면, 지소의 자식들은 한명도 성골이 될수 없지요.. 지소 만큼 사신을 많이 둔 여인도 없거든요.. 사신을 두었기 때문에 골을 얻지 못한것이 아니고, 권력투쟁 싸움에 졌다고 보는게 합당하지요..

    또한, 만호도 사신을 두었습니다.. 그러니 진평 또한 성골이 될 수 없지 않겠어요.. 님의 말처럼 성골의 조건은 까다로운데요.. 지소와 이화랑의 사이에 난 여인이 만호입니다.. 이화랑(위화랑/준실)이니 만호는 성골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는 거지요..

    • 지나가는사람 2009.08.08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아직까지는 공부가 미흡해서 만호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군요. 성골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생각할만한 것은 아닌듯하네요. 공부할거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09 1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용춘의 어머니 지도를 봐도 잼있음.. ㅋㅋ 기록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어서 찾기가 난해하지만요.. ㅋㅋ

  14. BlogIcon 갓쉰동 2009.08.08 06: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장 쉬운 방법은요.. 진평왕의 아들이 아니고, 왕비의 소생이 아니여서 밀렸다가 맞지 않을 까요?
    1. 순위자 왕+왕비 소생
    2. 순위자 왕+후비
    3. 왕의 형제
    4. 왕의 형제의 자식들..

    성골의 다른 말이 성조(祖) 입니다. 왕의 혈통을 이엇다는 거지요.. 왕은 당연히 성스러운거구요..

    성(聖)은 그냥 꾸민말에 지나지 않아요.. 당나라를 신라는 성조(聖朝)라고 불렀지요,, 아마도.. 물론, 신라만 그런것은 아니지만..

  15.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6.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7. BlogIcon click here 2012.07.14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출/섭취되었다고 논증할 수 있다. 이는 더 적은 량으로도 인간광우

  18. BlogIcon Jeziorski 2012.10.01 2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렇지만 이는 정확히 말하면 식습관과 미국의 인구가 이를 막고 있는 것이다. 인구가 많기 때문에 더 많은 환자수가 발

  19. BlogIcon electric fence for dogs lowes 2012.11.03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넌 악플 중에서도 최저인게
    단순히 보지말라는 수준을 넘어
    글쓴이를 드라마 인기에 편승하는 장사꾼으로 매도하면서 아무런 근거도 내세운게 없쟎아.
    말만 부드러우면 그냥 막 까도 인격이 생기나부네?

  20. BlogIcon mre heater bomb 2012.11.06 2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사극 <선덕여왕>에는 반란에 연루된 몇몇이 등장하여 극의 재미를 높이고 있다. 첫번째는 미실의 충실한 충복이며 터미네이터 같은 <칠숙>이다. 칠숙이 반란을 일으킨 631년는 진평왕의 말년이며,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 632년 바로 전해이다.

  21. BlogIcon portable dog fence dogs 2012.11.23 0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아레스가 퇴장을 건 승부가 없었다면 우루과이는 8강에 만족하고 짐을 싸고 집에 돌아가야만 했다.

    승부차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루과이는 이기고 들어갔고, 가나는 이미 지고 들어가는 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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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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