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은 서현가문의 장자인 유신을 자신의 아들 하종(11세 풍월주)의 딸 영모(하종/미모: 티아라 큐리 이지현)의 짝으로 생각하고 밀어 붙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정말 미실은 강압적으로 유신의 자신의 손녀사위로 유신을 요구했을까?
또한, 유신은 영모(큐리)를 탐탁찮게 생각했을까?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는 것과 같이 대원신통으로 미실은 신라의 제사를 주관하는 신관의 지위에 있었다. 영모는 할머니 미실과 어머니 미모를 따라 천관직을 계승했다. 물론, 정치적으로 미실은 강력한 파워를 발휘를 한다. 하지만, 서현가문과 비교를 한다면 미실가문은 미천한 가문에 속한다.
천관녀가 영모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비형랑을 아무리 기다려도 <선덕여왕>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실은 이미 비형랑은 등장하고 있다. 비형랑이 곧 비담이고, 형종이다. 비담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캐고 알아낸 이름이 <형종>이다. 이가 곧 비형랑이니 알아 먹으라는 뜻이다. 그런 미실이 곧 <도화녀>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아무리 천관녀를 기다려도 <선덕여왕>에는 나올 수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왜? 김유신의 첫사랑 <천관녀>는 나오지 않는거야?" 하지 마시고, 영모가 천관녀이구나 생각하면 된다.
위의 이전글은 천관녀가 영모일 수 밖에 없는 이유와 정치와 종교에 의해서 만명(임예진)이 <천관녀>인 영모를 멀리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글은 극히 개인적인 원한관계 때문에 만명이 천관녀 영모를 받아 들이지 못한 이유에 관한 글이다.
서현의 어머니는 아양공주이다. 아양공주는 진흥왕과 사도(영실/옥진)사이에 태어난다. 사도는 사사로이는 미실의 이모가 된다. 그러니 아양과 미실은 이종사촌간이 된다. 하지만, 서현(무력/아양공주)은 진흥왕의 외손이다. 또한, 만호태후의 딸인 만명(임예진)은 남편이 되는 서현과 도망한 후 결혼하고 유신을 낳았다.
그러니 유신은 만호태후의 외손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미실이 진흥의 후비이고, 진지의 후비이고, 진평의 비가 되었다고 해도, 서현가문을 만만하게 볼 수는 없다. 물론, 서현가문도 미실을 만만한 상대로 여길 수는 없다. 어찌 되었던, 미실은 마야왕후 이전 진평왕의 물러난 왕후였기 때문이다.
영모의 아버지 하종은 세종/미실 사이에 태어난다. 세종은 지소태후/이사부 사이에 태어났다. 그런데 하종의 정실 부인은 영모의 어머니인 미모(설원랑/준모)가 아니다.
하종의 정실 부인은 진흥왕/사도왕후 사이에 태어난 은륜공주이다. 하종은 진흥왕의 부마가 되는 것이다. 서현의 아버지 무력이 진흥왕의 부마이였듯이 하종도 진흥왕의 부마인 것이다.
하지만 서현가와 세종/미실가는 사사로이는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 서현의 부인인 만명은 만호태후의 사녀이다. 만호태후(이화랑/지소태후)가 숙흘종(입종/금진)과 관계하여 만명을 낳았다.
만호태후는 처음 동륜태자의 비가 되었다 .하지만, 572년 미실의 꼬임에 빠진 동륜은 아버지 진흥의 후비이고, 고모뻘인 보명(구진/지소)궁의 담장을 넘다가 개에게 물려 죽는 일이 발생한다. 이일로 미실은 궁궐밖으로 쫓겨나고, 화랑의 우두머리인 <원화>지위도 잃게 된다. 만호로 보았을때, 동륜이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면, 진흥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을 것이고, 만호 자신은 왕후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첫번째 남편인 동륜태자가 죽자. 어쩔 수 없이 숙흘종(입종/금진)과 결혼을 하고, 만명을 낳은 것이다. (감깐 상식? 만명은 572년 동륜이 보명궁에서 죽은 이후에 태어나야 한다. )
이런 원한을 가지고 있는 만호는, 미실이 탐탁치 않았음에 분명하다. 만명 또한, 어머니 만호태후의 뜻에 따라, 미실을 좋아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유신이 미실의 손녀인 영모와 그렇고 그런사이가 되었는데 좋아할 수가 없고, 어미로써 유신을 말려야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만호는 서현의 어미가 되는 아양공주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서현도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다. 아양은 공주의 신분이였고, 만호는 단지 지소태후의 사녀(지소/이화랑)에 지나지 않아서 만호가 신분상으로 아양을 넘을 수가 없다. 아양은 공주였고, 만호는 서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누이(아양), 올케(만호)사이였다. 고금을 들어서 "올케와 시누이 사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겠는가? 만호태자비와 아양공주도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니였던 것 이다. 사사로이는 만호는 아양의 고모뻘이 된다.
사도와 미실이 공모하여 진지왕(금륜)를 폐위시키고, 만호의 아들인 진평을 왕위에 오르게 한다. 이때, 어느정도 만호와 미실은 앙금을 풀었던 것 같다. 이와 더불어 만호와 아양사이에 역전현상이 벌어진다. 권력의 중심축이 만호태후로 쏠렸다.
미실과 만호처럼 만호와 아양 사이에 사적인 감정과 공적인 감정이 뒤섞여서 579년 진평이 왕위에 오른 이후에도 아양/무력의 자식인 서현을 싫어 했었던 것이다.
만호는 만명이 서현을 만나는데 탐탁치 않았을 뿐만 아니고, 만명을 집에 가두어 버린다. 서현은 갇혀있는 만명을 구출해서 자신의 임지인 만노군으로 토끼고, 유신을 낳고, 서라벌로 돌아온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없다고, 만호도 자식까지 낳은 딸을 용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반대하는 부모를 둔 사랑하는 연인들이 시도하는게 얼라를 임신하는 방법이다.
기존 통설처럼 만호태후가 성골이고, 서현이 진골이기 때문에 서현을 멀리한 것이 아니다. 만호 자신도 성골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만호(지소/이화랑)는 지소태후의 사녀에 불과하고, 통설에 따르면 만호의 아비인 이화랑은 성골축에도 끼지 못했다. 만호 자신의 남편이 되는 숙흘종도 입종/금진의 자식이다. 금진은 위화랑의 여식이다. 금진은 성골.진골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근본도 없는 천한것이 된다. 당연히 만호태후 자신이 성골축에도 못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호는 태자비가 되고, 태후가 되었다.
이들사이에 무슨 만명이 성골이고, 서현이 진골이기 때문에 서현을 멀리 하겠는가? 한마디로 성골,진골로 나누어 서현을 멀리했다거나 가야계이기 때문에 멀리했다는 소리를 하면 개 풀뜯어 먹는 소리하고 있네하면 된다.
어째든, 뒤끝이 없는 만호태후는 서현/만명을 받아들이고 공식적인 외손으로 유신도 받아들인다.
이렇게 만호의 성격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만명이 왜 천관녀 <영모>를 멀리 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만호는 사적인 일에 감정을 이입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듯 보인다. 서현을 사위로 받아 들일수 없는 이유는 단지, 만호 자신이 아양공주와 사이가 나뻐서 일 뿐이다.
그런 만호태후의 성격을 알고 있는 만명으로서는 유신이 만호의 사적인 원수에 가까운 미실집안과 관계를 가진다고 생각하니 이루워질 수 없는 사랑으로 여겼을 것이다. 자신도 어머니 만호를 피해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렸지만, 만명 자신의 아들인 유신이 <영모>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는데 반대 했던 것이다. 자신이나 서현처럼 또다시 변방으로 떠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자 하는 어미는 없다.
그래서 유신에게 "너는 할일 많다"그런데 어찌 사사로이 원수의 집안이고 "<천관녀>에 불과한 <영모>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냐? 썩 정을 끊어라" 라고 한것이다.
사실 <천관녀>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보이지 않고, 이규보의 파한집, 동경잡기, 신동국여지승람에만 보인다.
자신의 집으로 술취해 말을 타고온 유신이 자신과의 정을 끊기 위해서 아무런 죄도 없는 말의 머리를 동강내는 모습을 본 천관녀 영모로써는 유신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천관녀 영모는 유신의 무정함에 노래를 지어 불렀고, 유신은 그 이후 산속으로 들어가 무술 수련에 열중한다.
이때
유신이 대단한 포부를 가지고, 무술 수련을 했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천관녀 영모를 잊지 못해서, 단석산과 중악에 올라가 열심히 바위를 쳤을 것이다. 사랑의 열병을 앓아본 사람은 유신이 왜 산에 올라가 바위치기를 했는지 알 수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아무생각없이 무조건 바위를 치거나, 가문의 선택의 기로에서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바위를 쳤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역사속 비련의 주인공이 될뻔한 <천관녀> 영모는, 할머니 미실이 만호태후에 사과하는 제스쳐를 취하므로 해서, 만호태후의 외손주이고 서현/만명의 자식 유신의 처가 된것이다.
유신과 영모는 수 많은 자식들을 낳는다. 문제는 영모의 자식들이 580년 신문왕 원년 진공.흠돌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었다. 역모에 연루가 되면 구족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기록이 사라진다. 이찬 칠숙과 석품도 631년 반란을 일으키고 기록이 사라졌다. 647년 상대등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키고 기록이 사라졌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진공, 흠돌의 반란사건후, 김유신도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질뻔 하였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기회에 송고할 예정이다. 또한, 유신의 부인이 되는 조카 지조부인(춘추/문희) 때문에 영모의 기록이 공식적으로 사라진것이다.
이처럼 현존하는 화랑세기의 이면에는 천관녀 영모(이지현:큐리)와 유신의 감춰진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유신은 영모(큐리)를 탐탁찮게 생각했을까?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는 것과 같이 대원신통으로 미실은 신라의 제사를 주관하는 신관의 지위에 있었다. 영모는 할머니 미실과 어머니 미모를 따라 천관직을 계승했다. 물론, 정치적으로 미실은 강력한 파워를 발휘를 한다. 하지만, 서현가문과 비교를 한다면 미실가문은 미천한 가문에 속한다.
천관녀가 영모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2009/09/24 - [역사이야기] - 김유신 첫 부인 영모(큐리), 첫사랑 천관녀 향기가 난다
2009/09/23 - [역사이야기] - 미실가문의 김유신 아내 영모(큐리)와 김춘추 처 보량(박은빈), 감춰진 진실
2009/09/23 - [역사이야기] - 미실가문의 김유신 아내 영모(큐리)와 김춘추 처 보량(박은빈), 감춰진 진실
비형랑을 아무리 기다려도 <선덕여왕>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실은 이미 비형랑은 등장하고 있다. 비형랑이 곧 비담이고, 형종이다. 비담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캐고 알아낸 이름이 <형종>이다. 이가 곧 비형랑이니 알아 먹으라는 뜻이다. 그런 미실이 곧 <도화녀>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아무리 천관녀를 기다려도 <선덕여왕>에는 나올 수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왜? 김유신의 첫사랑 <천관녀>는 나오지 않는거야?" 하지 마시고, 영모가 천관녀이구나 생각하면 된다.
위의 이전글은 천관녀가 영모일 수 밖에 없는 이유와 정치와 종교에 의해서 만명(임예진)이 <천관녀>인 영모를 멀리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글은 극히 개인적인 원한관계 때문에 만명이 천관녀 영모를 받아 들이지 못한 이유에 관한 글이다.
미실의 가계
그러니 유신은 만호태후의 외손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미실이 진흥의 후비이고, 진지의 후비이고, 진평의 비가 되었다고 해도, 서현가문을 만만하게 볼 수는 없다. 물론, 서현가문도 미실을 만만한 상대로 여길 수는 없다. 어찌 되었던, 미실은 마야왕후 이전 진평왕의 물러난 왕후였기 때문이다.
영모의 아버지 하종은 세종/미실 사이에 태어난다. 세종은 지소태후/이사부 사이에 태어났다. 그런데 하종의 정실 부인은 영모의 어머니인 미모(설원랑/준모)가 아니다.
연개소문 미실(서갑숙) 천관녀(박시연)
하지만 서현가와 세종/미실가는 사사로이는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 서현의 부인인 만명은 만호태후의 사녀이다. 만호태후(이화랑/지소태후)가 숙흘종(입종/금진)과 관계하여 만명을 낳았다.
만호태후는 처음 동륜태자의 비가 되었다 .하지만, 572년 미실의 꼬임에 빠진 동륜은 아버지 진흥의 후비이고, 고모뻘인 보명(구진/지소)궁의 담장을 넘다가 개에게 물려 죽는 일이 발생한다. 이일로 미실은 궁궐밖으로 쫓겨나고, 화랑의 우두머리인 <원화>지위도 잃게 된다. 만호로 보았을때, 동륜이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면, 진흥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을 것이고, 만호 자신은 왕후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첫번째 남편인 동륜태자가 죽자. 어쩔 수 없이 숙흘종(입종/금진)과 결혼을 하고, 만명을 낳은 것이다. (감깐 상식? 만명은 572년 동륜이 보명궁에서 죽은 이후에 태어나야 한다. )
이런 원한을 가지고 있는 만호는, 미실이 탐탁치 않았음에 분명하다. 만명 또한, 어머니 만호태후의 뜻에 따라, 미실을 좋아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유신이 미실의 손녀인 영모와 그렇고 그런사이가 되었는데 좋아할 수가 없고, 어미로써 유신을 말려야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만호는 서현의 어미가 되는 아양공주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서현도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다. 아양은 공주의 신분이였고, 만호는 단지 지소태후의 사녀(지소/이화랑)에 지나지 않아서 만호가 신분상으로 아양을 넘을 수가 없다. 아양은 공주였고, 만호는 서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누이(아양), 올케(만호)사이였다. 고금을 들어서 "올케와 시누이 사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겠는가? 만호태자비와 아양공주도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니였던 것 이다. 사사로이는 만호는 아양의 고모뻘이 된다.
사도와 미실이 공모하여 진지왕(금륜)를 폐위시키고, 만호의 아들인 진평을 왕위에 오르게 한다. 이때, 어느정도 만호와 미실은 앙금을 풀었던 것 같다. 이와 더불어 만호와 아양사이에 역전현상이 벌어진다. 권력의 중심축이 만호태후로 쏠렸다.
미실과 만호처럼 만호와 아양 사이에 사적인 감정과 공적인 감정이 뒤섞여서 579년 진평이 왕위에 오른 이후에도 아양/무력의 자식인 서현을 싫어 했었던 것이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없다고, 만호도 자식까지 낳은 딸을 용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반대하는 부모를 둔 사랑하는 연인들이 시도하는게 얼라를 임신하는 방법이다.
기존 통설처럼 만호태후가 성골이고, 서현이 진골이기 때문에 서현을 멀리한 것이 아니다. 만호 자신도 성골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만호(지소/이화랑)는 지소태후의 사녀에 불과하고, 통설에 따르면 만호의 아비인 이화랑은 성골축에도 끼지 못했다. 만호 자신의 남편이 되는 숙흘종도 입종/금진의 자식이다. 금진은 위화랑의 여식이다. 금진은 성골.진골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근본도 없는 천한것이 된다. 당연히 만호태후 자신이 성골축에도 못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호는 태자비가 되고, 태후가 되었다.
이들사이에 무슨 만명이 성골이고, 서현이 진골이기 때문에 서현을 멀리 하겠는가? 한마디로 성골,진골로 나누어 서현을 멀리했다거나 가야계이기 때문에 멀리했다는 소리를 하면 개 풀뜯어 먹는 소리하고 있네하면 된다.
어째든, 뒤끝이 없는 만호태후는 서현/만명을 받아들이고 공식적인 외손으로 유신도 받아들인다.
이렇게 만호의 성격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만명이 왜 천관녀 <영모>를 멀리 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만호는 사적인 일에 감정을 이입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듯 보인다. 서현을 사위로 받아 들일수 없는 이유는 단지, 만호 자신이 아양공주와 사이가 나뻐서 일 뿐이다.
그런 만호태후의 성격을 알고 있는 만명으로서는 유신이 만호의 사적인 원수에 가까운 미실집안과 관계를 가진다고 생각하니 이루워질 수 없는 사랑으로 여겼을 것이다. 자신도 어머니 만호를 피해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렸지만, 만명 자신의 아들인 유신이 <영모>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는데 반대 했던 것이다. 자신이나 서현처럼 또다시 변방으로 떠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자 하는 어미는 없다.
그래서 유신에게 "너는 할일 많다"그런데 어찌 사사로이 원수의 집안이고 "<천관녀>에 불과한 <영모>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냐? 썩 정을 끊어라" 라고 한것이다.
사실 <천관녀>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보이지 않고, 이규보의 파한집, 동경잡기, 신동국여지승람에만 보인다.
자신의 집으로 술취해 말을 타고온 유신이 자신과의 정을 끊기 위해서 아무런 죄도 없는 말의 머리를 동강내는 모습을 본 천관녀 영모로써는 유신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천관녀 영모는 유신의 무정함에 노래를 지어 불렀고, 유신은 그 이후 산속으로 들어가 무술 수련에 열중한다.
이때
이처럼, 역사속 비련의 주인공이 될뻔한 <천관녀> 영모는, 할머니 미실이 만호태후에 사과하는 제스쳐를 취하므로 해서, 만호태후의 외손주이고 서현/만명의 자식 유신의 처가 된것이다.
호림공이 풍월주의 지위를 물려주겠다고 청하였다. 공은 사양을 하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에 15세 풍월주가 되었다. (만호)태후가 하종공의 딸 영모(令毛)를 아내로 맞이하도록 명하여 미실궁주를 위로하려고 하였다. 영모는 곧 유모(柔毛)의 동생이었다. 형제가 모두 선화(仙花)의 아내가 되었다. 그 때 사람들이 영화롭게 여겼다. 곧 건복(建福) 29년 임신년(612)이었다. 공이 풍월주의 위에 올랐다. - 화랑세기 15세 풍월주 유신
유신과 영모는 수 많은 자식들을 낳는다. 문제는 영모의 자식들이 580년 신문왕 원년 진공.흠돌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었다. 역모에 연루가 되면 구족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기록이 사라진다. 이찬 칠숙과 석품도 631년 반란을 일으키고 기록이 사라졌다. 647년 상대등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키고 기록이 사라졌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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