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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화려한 휴가, 개새끼 삼식이 비위나 맞출것을


 
5월의 광주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얘기만 듣고 있다가 설레이는 마음으로 극장으로 갔다.
일행중 한 명이 늦게 오는 관계로 영화가 막 시작되는 순간에 입장을 하였다. 극장에 들어가지 전부터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마음을 가다듬자고 다짐을 하였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광주의 사투리가 정겹다고 생각을 하면서 마음은 이미 긴장하고 있었다. 5월의 광주는 일상에 젖어있었고 어느 누구도 앞으로 다가올 역사에 길이 남을 광주의 비극을  점치는 사람은 없었다.
 
80년 5월 나는 서울에 있었다. 삼수를 하고도 대학진학에 실패했던 나는 그저 그런 다른 보통의 시골 청년들처럼 서울 한복판 어느 허름한 분식집에서 세상을 배운다는 미명하에 열심히 그릇을 닦고 있었다. 서울은 데모로 많이 시끄러웠고 세상물정을 모르는 나로서는 그저 최루탄 냄새로 고생을 하고 복잡한 도로때문에 그들을 원망했던 기억만이 전부였다. 5월이 한참지난 7월경 5월 그때 목포에서 고생했다는 한 후배를 만나서 광주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듣고 모든것을 신문과 방송에만 의존했던 나의 머리는 설마! 설마라는 말만 되뇌일 뿐 너무 혼란스러워서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뒤로 수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광주의 진상을 알게 되었지만...
 
다시 나는 80년 광주의 전남도청 앞에 있었다. 계엄군이 철수 할 것으로만 알고 애국가를 부르며 승리감에 도취했던 아무런 저항할 준비도 갖지않은 수많은 시민들을 향해 그들은 그들은 무차별한 사격을 해뎄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저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하고자 모든 사력을 다 했다. 맹수의 공격으로 부터 단지 목슴을 구걸하려고 무작정 달리는 초원의 누떼들처럼
 
80년 5월의 광주는 또 그렇게 내 앞에 다가왔다.  절대 꺼내지지 않는 팔이 닿지않는 장롱 밑에 깊숙히 감춰진 동전처럼 내 가슴 깊숙이 숨어 있었는데 나는 왜 다시 토해지지 안은 폐 깊숙이 박혀있는 가래를 토하려 했는가 후회가 되었다.
 
영화는 막바지로 가고 있다. 도청은 계엄군의 총탄에 무참히 짋밥혀지고 그리고 수많은 시민군은 거의가 세상을 하직한다. 임을위한 행진곡은 나의 눈에서 한없는 눈물을 부르고 나는 그저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다만 후회 할 뿐이다. 그냥 일찍 집에 와서 내 사랑하는 개새끼 삼식이 비위나 맟출것을.
오늘도 나는 한잔의 소주와 입맟춤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민주가 무엇인지 다만 민주는 내가 사랑하는 후배의 딸 이름일 뿐이거늘...
 
덧붙임 :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도청에서의 긴박함이 좀 결여된것 같더이다.
밖으로 나오니 모두들 눈주위가 벌겋게 변해있더이다. 또 생각보다는 젊은 관객이 많아서 80년 5월의 광주를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된것 같더이다. 얼마전에 손핵규가 광주 정신을 한시도 잊은적이 없다고 했는데 마음이 많이 씁쓸했습니다. 소주한잔 먹어서 두서가 없습니다.
 
by 남강나루 in 포플( http://www.4ple.co.kr ) 어제의 민주개혁용사들아 다시 뭉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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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를 보고나서  <---  댓글을 달아주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