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IN드라마/선덕여왕

선덕여왕, 김춘추의 이율배반적인 보량 납치(보쌈)혼

드라마 선덕여왕 41회차에서 미실은 춘추를 화백회의에 불러들임으로서 춘추와 덕만이 서로 자중지란의 내분이 일어나도록 획책한다. 본격적으로 춘추가 왕이 되려는 의지를 표현하고, 미실을 속였다고 생각한다. 덕만도 유린한다. 하지만 미실의 계략을 눈치챈 덕만은 천명의 아들인 춘추(유승호)와 대립하려 하려 하지 않는다. 만약, 대립하는 날이 온다면, 덕만 스스로 물러나 춘추에게 양보를 하겠다고 선언을 해버린다.

천명의 아들인 춘추는, <골품제>는 중국(수나라)나 고구려나 백제나 서역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없어져야할 미개한 제도라고 공박을 가한다.이에 유신의 아버지인 서현은 신국에는 <신국의 도>가 있다고 반발을 한다.

사실 골품제와 골은 서로 다른체계를 가지고 있다. 피가 우선인것은 서역이던, 수나라던 고구려던 백제던 마찬가지이다. 왕의 자식이 왕위를 승계하는 것은 고금의 진리이고, 왕족은 당대 왕의 자식이 없을 경우 왕위를 계승한다. 또한, 왕족이나 귀족이 권력의 중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건 당연지사이다. 그런데 <젖비릿내>나는 춘추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한것이다.

만약, 춘추가 신국의 도를 이유로 <골품>이 아닌 <근친혼>을 공격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도 대다수의 국가에서 일어난 일이며, 현재도 벌어지는 일이다. 신라의 근친혼에도 규칙이 있다.

동부동모의 자식들은 절대로 결혼을 하지 않는다. 어머니와 자식이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 이부/이모일 경우만 결혼을 하고 삼촌,사촌간에는 어느족속이던지 그 당시에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였다.


그런데 왜 춘추가 골품는 사라져야할 미개한 제도라고 말을 하면서 자신도 왕위을 승계할 수 있다고 나서게 되었을까? 이는 <성골>에 대한 환상때문이다. 성골은 왕족과 왕족이 결혼을 해야만 한다는 환상을 그동안 학계에서 지속적으로 심어 주었다. 그러니 이를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인 <선덕여왕>원작자들이 <왕족>간에 결혼하지 않는 자는 자동으로 <진골>이 되거나, 왕이 폐위가 되면 그의 자식들은 <족강>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왕족>간의 결혼만이 성골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성골의 다른 말은 성조(聖祖.朝)이다. 성스런뼈다귀를 타고난 사람은 유일하게 왕밖에 없다. 그래서 용가리 통뼈라고 하고, 왕을 용으로 비유를 한다. 그리고 왕과 정식 왕비의 몸에서 태어난 왕자와 공주만이 <성골>이 된다. 정식왕비는 누가 될까? 이는 진골(1골)인 왕족이 될 수도 있고, 귀족이 될 수도 있다.

덕만의 모후인 마야는 복승과 송화의 소생이다. 복승은 삼국사기에는 누구의 후손인지를 알 수 없다. 하지만, 논란이 되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비처왕의 후손이다. 하지만, 삼국사기에 의하면, 비처왕은 왕자를 생산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래서 제종 형제인 지증왕이 왕위에 올랐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를 기초로 하면 복승은 <진골>은 될수 있어도 <성골>은 될 수 없다. 그러니 당연히 복승의 딸인 마야 또한, 진골일 수 밖에 없는것이다. 기존 학설을 따른다면 결국에는 성골인 진평왕과 진골인 마야(복승/송화)가 관계를 하여 덕만을 낳았다는 말이 된다. 송화는 지소태후와 영실의 자식이다.

그런데 어찌 덕만이 <성골>이 될 수있다는 말인가?. 이처럼 기존의 어떠한 학설도 덕만이 성골임을 증명할 수 없다. 하지만, 왕과 비의 후손이 성골이라면 어찌될까? 당연히 덕만은 성골이 된다.


마야가 죽고 뒤를 이어서 왕비가 된이는 <손>씨 성을 사용하는 <승만>이다. 손씨는 기존설에 따른다면, <진골>이거나, 6부의 귀족의 후손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진평은 손씨를 마야의 뒤를 이어 왕후로 받아 들인다.

정식왕후로 받아 들였다는 뜻은 그의 후손으로 왕통을 잇겠다는 진평의 의지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왕의 자식이 성골이 아님 누가 성골이 된다는 말인가? 위의 예에서 알수 있듯이 기존 설에 따른다면 덕만자체도 성골이 될수 없고, 진평왕 자신도 성골이 될 수 없다.


어찌되었던, 춘추는 미실의 자중지란을 노린 계책을 역이용해서  보종(설원랑/미실)의 딸인 보량(보종/양명)을 납치한다. 이때, 설원랑과 보종은 보량을 납치한 범인이, 세종은 아니더라도 하종(세종/미실)일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실파의 중추를 이루는 세종과 설원랑이 자중지란에 빠지게 되어, 보종과 하종이 먹살잡이를 한다. 

하지만, 미실은 미실파가 내분에 쌓이던 말던, 꿀같은 잠을 자고, 미실을 기다리던 비담과 유유자작 유람을 떠나서, 어미로써 비담에서 정을 나눠준다. 이때 미실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회에서는 모든것이 엉망이다. 일단 <성골>의 범위가 엉망일 뿐만아니고, 전례가 없다는 여왕은 진평왕시기 왜(일본)에
추고여왕(593~628)이 존재하고 있다. 좀도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을 일독하기 바란다.
2009/10/0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왕을 놓고 김춘추와 덕만이 대립한다? 사실은 
2009/10/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이 결혼할수 없는 이유? 남편들이 죽어서..

 춘추가 배후세력으로 만들려한 용춘은, 춘추 자신의 실제적인 생물학적 친부인 용춘이다. 하지만 용춘은 춘추에게 함부로 하지 못한다.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는 천명의 실질적인 남편으로 용수가 아닌 용춘을 이야기하고 있고, 2009/09/21 - [역사이야기] - 천명만 알 수 있는 김춘추의 생부(용수?,용춘?) 실질적인 생물학적 아버지가 용춘임을 은연중에 밝히고 있다.


선덕여왕의 시제을 알수 있는 대화가 보량과 춘수사이에서 오간다. 611년 신라는 가잠성을 백제에 빼앗긴다. 이때 유신은 단석산에 올라가 신검을 얻고 바위를 두동강 낸다. 이듬해인 18세인 612년에는 천관녀 영모와 이루워질수 없는사랑을 안타까워하면서 유신이 중악에 들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으로 부터 삼한비기를 전수 받는다. 미실과 만호태후의 화해로 김유신은 첫사랑 영모(천관녀)와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10/0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유신과 영모 결혼, 종교갈등 명절증후군 해소법 있다?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613년 삼국사기에 의하면 이른 봄에 가뭄이 든다. 가뭄이 들면 곡식이 여물지를 않는다. 그래서 귀족들이 매점매석을 한다. 이처럼 안강성(비화현)의 민란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시기는 613년이 됨을 알 수 있다. 이때 덕만은 공포정치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지만, 자신의 양심과 반하는 행동을 한것을 후회한다. 그래서 지병인 손을 지속적으로 떤다.

그렇다면 드라마 전개상 이때  613~4년 쯤인  것으로 추측이 된다. 614년은 신라에서는 의미 있는 해다. 미실과 삼생의 약속을 한 진흥왕비인 사도왕태후가 영흥사에서 83세의 나이로 천수를 누리고 죽기 때문이다.  2009/10/12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고현정) 언제 하차해야 하나? 아마도 이때 미실도 죽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614년 권력이 핵심은, 603년생인 12살의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는 핏덩이에 불가한 춘추가 될 수 없다.  만약, 덕만과 대립하여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려는 핵심이 있다면, 덕만에게 첫사랑 용춘을 빼앗긴 천명이 되어야 한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9/21 - [역사이야기] - 천명만 알 수 있는 김춘추의 생부(용수?,용춘?)  기사를 일독하기 바란다.

어찌 되었던 납치범 춘추는 보량(박은빈)과 초야를 치르고 궁성에 난입하여, 보량과 함께 지낼 전각을 외할아버지인 진평왕에서 요구를 한다. 한마디로 귀엽다고 오냐 오냐 하니 할아버지 수염을 뽑는 행위를 춘추가 한다. 그런데 더 경악할 일이 발생한다.

춘추가 납치한 보량은 어떤 인물일까? 보량은 진평왕과 보명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양명의 소생이다. 보종은 여자에 관심이 없어서 어미니 미실의 애를 태웠다, 이에 보종을 유혹하는 여인에게 후한 상을 주겠다는 미실의 제안을 양명공주(진평/보명)가 보종을 꼬시는데 성공한다. 

보종과 양명은 보량과 보라를 낳는다. 춘추가 납치한 보량은 진평왕의 후비가 된다. 보량은 외할아버지인 진평왕에 시집을 간것이다. 이런 잘못된 <근친혼>인 신국의 도를 <화백회의>에 난입하여 지적한 자가 춘추이다.

보종은 진평왕의 사위이자 장인이다.


어쨌던 보량은 진평왕과 관계를 하여 보로전군을 낳는다. 하지만, 보량은 어머니가 같은 어린 남동생 양도를 사랑하였다. 그래서 진평왕의 허락을 득하고 양도에게 시집을 간다. 여기서 알 수 있는 한가지는 보종은 진평왕의 사위가 됨과 동시에 진평왕의 장인이 된다. 하종이 보량(보종/양명)이 춘추에 시집을 가면, 설원랑과 보종의 권력이 막강해진다고 했지만, 보종은 이미 진평왕의 장인이고 사위이니 권력이 막강해야 하지만, 드라마 전개상 그렇지도 않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보로전군은 유신과 영모사이에 난 딸인 작광과 결혼을 한다.

춘추는 <화백회의>에서 골품은 없어져야할 구시대의 유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할아버지의 후비인 외할머니를 납치하고 관계를 가진 파렴치범일 뿐만아니라, 적반하장으로 진평왕에게 자신의 신접살림까지 차려달라고 이야기를 한것이다. 요즘 시대로 치면 이보다 더 후레자식은 없을 것이다. 당시 신라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다.

보량(박은빈), 춘추(유승호)

실질적으로 춘추가 결혼하는 상대는 보량이 아닌 보라궁주이다. 제작자가 간단히 춘추의 아내가 되는 자를 <보량>이 아닌 <보라>라고 <량>을 <라>로만 대사를 바꾸어도 춘추를 후레자식으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설마, 보라를 보량으로 바꾼 이유가 드라마틱하게 극적으로 구성하기 위해서 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까? 


춘추를 통해서 "<골품>은 없어져야할 구시대의 유물이다"류의 발언이 이상하게도 현재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코미디중에서 "니들은 법치를 해라, 나는 무법을 할련다"는 이명박 정부를 보는 듯하다. <언행불일치>를 보여주므로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하거나, 성폭행을 하므로 해서 성폭행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었으니 성폭행범에게 감사하여야 한다는 말을 하는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김제동도 하차시키고, 손석희도 하차시킨다, 이유는 고비용이란 이유이다. 마찬가지로 선덕여왕이 시청율이란 이유로 기록을 왜곡(?)한다.


그러니 재미를 위해서 <역사>의 기록을 일부러 비틈으로서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해주었다는 말처럼 웃기는 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잼있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드라마니 괜찮아. 만약, 기록대로 했다면 지금처럼 선덕여왕이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면 된것이지"라고 말을 공공연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한국이 독도를 한국자신의 땅임을 망각하지 말라고 지속적으로 독도는 다케시마라고 말을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일본의 극우파에 감사를 표해야 할 것같다. 또한, 자유와 민주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려는 이명박 정부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자유.민주와 언론의 자유의 소중함을  살신성인의 자세로 실천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2009/10/1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잠룡미실은 잠룡비담을 깨우고 있었다. 선덕여왕 41, 42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