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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IN드라마/선덕여왕

선덕여왕, 미실의 난, 고현정 하차로 본 신라는 황금의 엘도라도 였을까?

드라마 선덕여왕 48회에서 당나라 사신이 미실의 반란을 눈치를 채고, 미실에게 황금천관을 내 놓으라고 협박을 한다. 드라마 작가는 황금천관이 어느정도 되는지 감히 아는지 모르겠다. 신라는 황금의 나라이니 충분히 가능할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이글을 끝까지 읽어 보기 바란다. 

당의 황제가 원해서 황금천관을 신라에 원한 건 절대로 아니다. 사신 개인적으로 착폭하거나 출세를 위한 방편이다. 이를 간파한 미실이 당나라 사신이나 되는 놈이 싹수도 없이 협박을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세민을 언급을 해서 자극을 한다. 사신이 사신답지 않기 때문에 이세민을 언급해도 된다는 뜻이다. 만약, 정상적인 사신이라면 당장에 전쟁난다. 아무리 작가의 희망사항을 극으로 만드는 것이지만 개연성과 합리성이라게 극에도 있다.

물론, 이 당시 이세민이 나올 하등의 이유가 없다. 황제 이세민이 나온다는 뜻은 극중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626년 가을 이후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외교전문가 미생은 "당나라가 건국된지 10년도 안되었다"라고 말을 한다.


그러면서 미실은 수나라 "양"씨로 부터 권력을 찬탈한 <국조>인 이세민이 이자리에 오지 않는 한 너 금욕에 눈이 먼 당나라 정사는 이야기 대상이 되지도 않고, 상대가 않는다고 말을 한것이다.

문제는 수로 부터 당나라를 세운 국조는 "이연"이였다. 물론, 이는 작가가 대국에 대한 컴플렉스가 심각한 수준이고, 우리나라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대국에 할말을 하고 "맞짱"떠주는 정치인이 왜 없을까? 하는 자괴감을 극에 녹여서 포퓰리즘을 자극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이전
2009/11/0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 왜 이세민 찾나? 소화 서영희 하차로 본 극중시제? 기사에서 언급을 했다.

당나라 <국조> 이세민을 언급하는 순간 이 드라마는 도대체 "머뮝"하게 되고 드라마 작가는 역사책을 한줄도 읽지 않고, "드라마만 무지 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국제정세를 꿰뚫어 보는 미실이 아닌 우물안 개구리 <미실>과 정치력이라고 제로인 미실을 그려 버리고 만것이다.

드라마 연개소문을 보면 이세민과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당히 자신의 견해를 말하고, 친구사이로 그려지기도 했다. 신채호가 갓쉰동전을 언급하면서  연개소문이 어릴적 당나라에 가지 않았을까하는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글쓴이 "갓쉰동" 닉은 연개소문의 아명에서 따왔다.)

어찌되었던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김유신이 603년 한수전쟁에 참전한것으로 설정한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은 한발 더나아가 <임술년>인 602년에 아막성 전투에 참전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드라마 연개소문 보다 1년 먼저 김유신과 덕만이 참전하는 새로운 기록을 세우는 것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6/2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화랑 신화창조의 성지 아막성, 광개토태왕의 #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문제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과 천명이 <임술년>에 태어났다고 한점이다. 덕만은 태어나자 마자. 사막여행을 하고, 태어나자 마자 아막성 전투에도 참전을 한다. 천명은 <임술년:602년>에 태어나자 마자 결혼을 해서 임신하고 이듬해에 김춘추를 낳는다.

또한, 미실이 당태종 이세민을 언급한 이유도 별다른 이유가 없다.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연개소문이 이세민과 맞장을 떴으니, 신라 신국의 새로운 국조가 되는 미실이라면 이세민과 맞짱을 떠도 되는것 아닌가하는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다.


문제는 <이세민>을 당의 국조로 격상을 시키고 처음 당나라를 세운 자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컨닝을 잡는 방법은 간단하다. 앞선 드라마 연개소문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고 머리 굴린다고 1년전으로 김유신과 덕만을 투입한 것이 증거 이다. 역사공부는 안하고 드라마만 봤다는 반증자료이다. 

 한류의 바람을 타고서 선덕여왕이 대만과 일본과 중국에 팔려나가고 있다.문제는 이들 국가는 한자문화권이다. 물론, 현재 중국은 간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수도 있겠지만, 대만이나 일본은 우리와 같은 당나라 시기에 들어온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련 기사는 2009/10/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이 결혼할수 없는 이유? 남편들이 죽어서.. 참조하기 바란다. 또한, 대장금 처럼 중동이나 이집트에도 수출될 지도 모른다. 이들 국가에 수출이 되었을 때 이들국과와 관련이 있는 역사왜곡문제는 다른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황남대총 황금왕관,황금 관모장식(?)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당나라 사신이 주장한 <황금천관>에 대한 허상을 파헤쳐 볼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은 신라가 황금의 나라로 알고 있고, 황금이 넘처나는 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기본적으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마야나 잉카의 황금 <엘도라도>라면 모르겠지만, 신라는 황금이 풍족하지 못했다. 아주 간단한 증거는 삼국시대에 가장 발달한 세공기술은 <아말감>기법의 금동관이나 금동불상 등 금동제품이다. 한마디로 짝퉁 황금 명품이 아말감 기법이다.

황금천관의 가치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1억불정도 되지 않을까하지만, 기준이 되는 신라의 <관>이 현재의 몇<돈>에 해당하는지는 알 수 없다. 기준척이 정확하게 정립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이니 어쩔 수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귀족들의 <매점매석>편에서 금을 기준으로 <쌀>을 계산한 적이 있다. 물론, 허구이지만 말이다.

신라에 황금이 풍부했다면, 불국토를 꿈꾼 신라에서 황금으로 만들어진 불상들이 우리의 유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저 금동관 금동불상들이다. 물론, 황금색을 선호하고 귀하게 여긴건 주지의 사실이고, 신라는 황금을 사용할 수 있는 계층을 법으로 제한을 하고 있다. 황금과 <은>은 황실에서만 독점적으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금동조차 왕족인 진골은 사용 할 수 없었다.

거기(수레, 마차, 말장식 등) 
진골은, 수레 재목[車材]은 자단(紫檀)·침향(沉香)을 쓰지 못하고, 대모(玳瑁)를 붙일 수 없으며, 또한 감히 금·은·옥으로 장식하지 못하였다.

기용(사용제품)
 
진골은, 금·은 및 금도금한 것을 금하였다.

옥사(가옥)
진골은 금·은·유석·오채(五彩)로 장식하지 않았다

-삼국사기 신라 잡기 -

고고학 발굴에서 황금이나 금동제품이 나왔다면, 해당하는 유물을 사용한자는 왕실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드라마의 매점매석편에서 <금괴>, <은괴>가 나올수가 없다. 당시 신라에서 귀족들이 <금.은,금동제품>을 사용하는 순간, 대역죄에 해당하니 말이다.


경주, 대릉원,황남대총

그렇다면, 황금을 쓸수 없는 진골이나 귀족들은 무엇으로 황금빛을 사용하였을까? 놋그릇으로 알려진 구리와 주석 합금 <유기>나 <황칠>을 사용했다.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사용한 반지나  귀걸이 장신구처럼 청옥, 연옥 등 옥제품 주얼리를 사용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수나라 사신이 들어와 신라 황실에 <황칠>을 요구한다. 덕만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다. 하지만, 수나라 사진은 신라에서 <황칠>을 요구할 수 없다.

<황칠>은 당시 신라지역에는 나오지 않는 백제지역의 특산종이기 때문이다. 신라도 <황칠>은 백제로 부터 수입해서 사용하였다. 수입품 황칠은 경주 대릉원의 쌍릉인 <황남대총>의 유물로도 나온다.

백제는 당나라에도 황칠을 수출하고 신라에도 수출했던 것이다. 황칠로 만든 <금광개>는 고구려나 당나라의 기마병들이 입고 전투에 임했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신라에서 백제 특산물 황칠을 찾는 수나라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9세기경에 신라를 기록한 중동지역의 지리학자는 신라가 9개의 섬으로 이루어 져 있다고 하며, 그 나라 사람은 병에도 걸리지 않고, 장수를 하며, 개밥그릇이나 목걸이도 <황금>으로 장식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신라를 이상향으로 그렸다. 한번 그나라에 들어간 사람은 고향에 돌아가길 거부하고 눌러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기록한다.

방짜 유기

한마디로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늙지도 않고, 미실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게 그리는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 딱 그 모습의 불국토인 이상향이다. 이 지리학자가 전해들은 <황금의 나라 신라>는 황금과 비슷한 아말감 기법의 금동제품이나 유사품 <유기>나 칠을 하면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황칠>을 본것이다. 그러니 개밥그릇이나 개목걸이가 황금빛으로 빛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이들 유기나 황칠을 한 제품은 세균을 죽이는 소독효과가 있다. 그래서 유기나 황칠 그릇으로 밥이나 물을 먹으면 수인성병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 괜히 옛조상들이 밥그릇이나 차례를 지낼때 제기로 유기를 사용는 것이 아니다.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개의 목걸이에도 황금으로 할만큼 황금이 지천이라면, 왕족인 진골조차 금으로 만든 장식을 못하게 막을 이유가 없다. 한마디로 정리를 한다면 대한민국 여성들이 세계 제일 많이 <다이아몬드> 반지, 목걸이 등 장신구를 좋아하고 애용한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다이아몬드 산지는 될 수 없듯이 황금관과 장식이 나온다고 해서 신라땅이 황금이 많이 나는 산지는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신라에 황금이 귀했다는 반증밖에는 될 수 없다.

결론은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는 "입만 열면 거짓말하고, 숨쉬는것 빼고 다 거짓이 아니냐"는 누구와 닮았다.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는 글마다 오류 투성이 거짓 뿐이다. 누구에게서 진실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 처럼, 이 작가에게서 역사적 사실을 발견하는게 더 힘들다. 더욱 가관인것은 드라마 작가가 역사는 왜곡되어선 안된다고 <거칠부>의 입을 통해서 목숨까지 걸만큼 소중하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자신은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언행일치와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하고 있다. <거짓말>이나 <왜곡>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거짓말과 왜곡은 자신은 알고 있는 상태에서 남을 의도적으로 속이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작가는 단지 <무지>할 뿐이다.

일본의 속담중에 "100번을 말하면 거짓도 진실이 되고 사실이 된다"는 말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독도문제와 일제치하의 만행들이다. 드라마에서 지속적으로 무지를 들어내면 그게 상식이 되고 역사가 되어 버린다. 이를 수정하는 방법은 없다.

있다면, 작품을 만들기 전에 연구를 하든지, 최소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전문가들로 부터 <검증>이나 <감수>정도는 받았어야 한다. 하지만 작가나 제작진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이유는 보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이나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이기도 하다. 2009/11/0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고현정 하차로 본 미실 최후 미실의 난, 비담(김남길) 존재감 사라진 진짜 이유? 관심이 있는 분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오늘도 글이 길어져 버렸네요. 한방울의 오수를 정화할 때 수백배 수천배의 물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한마디의 잘못된 키보드워리 막말 수준의 역사를 수정 하려면 물을 정화하는 것처럼 수 많은 근거를 제시하여야 하기 때문에 길어져 버렸습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통해서 배우는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래도 글로써 정확한 상식을 알아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아마도 이글을 읽은 사람 중에 위에 언급한 사실들을 알았던 사람은 극히 드물겁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볼수 있도록 추천을 많이 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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