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 55회에서 유신의 허위정보를 받은 비담은 유신의 정보를 캐기위해서 대야성에 보종을 보낸다. 하지만 보종이 갔을때에는 이미 대야성이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은 윤충의 군대에 맞서 장열히 죽여버린다. 사실 서현이 언제 죽었는지는 알수 없다. 서현에 관한 기록은 629년 고구려 낭비성 전투에 나온 이후 기록에서 사라진다. 누구나 알 수 있는 흑(黑) 부수 신라를 구하는자와 결혼하겠다는 덕만? 설원도?
여기서 왜 유신의 허위정보라고 했을까? 유신은 계백의 지도에서 <개문흑>를 보고 한다. 이는 유신의 잘못된 정보에 의해서 신라가 위기에 처하는 것이다. 첩보의 생명은 정확한 정보에 있고, 이를 분석하고 가공해서 최종 정보로써 가치를 가지게 되는것이다. 만약, 아이리스 프로파일러 최승희라면 어떠한 분석을 했을까?
일단 김유신이 본 글짜의 진위를 파악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자도 모르는 유신은 무조건 보고를 하고, 감옥에 칼을 차고 있으면서도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흑(黑)이 들어간 자가 왜 없을까?를 고민하면서 자신은 재대로 보고를 했는데 비담이 정보 분석을 하지 못한다고 남의 탓을 하고 있면서 자신을 믿어 달라고 징징거리며 오늘이 신라 멸망의 그날이라고 예지. 예언을 한다. 예지력은 덕만의 주특기인데 유신이 덕만의 주특기를 빼앗는다.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 덕만에만 관심이 있는 비담은 덕만을 어떻게 하면 꼬실까만을 생각한다. 이들의 쌍끌이 무지랭이들이 신라를 누란위기에 처하게 한다. 한마디로 작가들이 머리나쁜 미실의 피를 이어 받은 비담과 신라의 영웅이 아닌 가진거라곤 붕어.쥐새끼보다도 못한 머리를 가지고 힘 뿐인 장비의 캐릭을 재창조한 에너자이저 유신만이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덕만을 비롯한 신라는 바보들의 왕국이였다. 유신을 바보로 만든 이유를 알고 싶다면 2009/11/2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누가 덕만을 능욕하나? 비담일까? - 대야성 함락과 검일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보종은 유신을 88고속도로를 타고 전북 지리산 골짜기에서 경주 서라벌까지 유신을 압송하고 합천 대야성까지 KTX를 탔는지 3일 동안 수 없이 왔다리 갔다리를 한다. 보종에게는 출장비를 많이 주어야 할 것이다. 요즘도 전북 남원 골짜기 팔랑치에서 경주 서나벌까지 갈려면 몇시간이 걸릴까? 그리고 경주 서라벌에서 경남 합천까지 몇시간이 걸릴까 각자 알아서 계산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물론, 보종은 천마총에 잠자고 있는 천마를 타고 이동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천마총은 보종의 무덤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손오공의 슈퍼보드를 타고 다녔는지도 모른다. 도저히 불가능한 거리를 너무나도 쉬이 움직이고 있다. 선덕여왕에서는 불가능이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고 있노라면 MBC 개그 프로에서 패러디를 한 선덕여왕보다도 질적 수준이 낮은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개그는 개그일뿐이라고 실컷 웃어주면 그뿐이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드라마를 표방하고 있고, 사극의 한 장르를 극화해서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사극을 바라지 않은지는 오래 되었다. 하지만 최소한 드라마로 갖춰야할 극중 리얼리티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마디로 선덕여왕은 산넘고 물을 건너 바다로 하늘로 개념을 안드로메다까지 보내버렸다.
선덕여왕에 대한 리뷰는 이쯤에서 끝내고, 실제 역사적인 기록으로 대야성은 어떠한 과정에서 함락되었는지 아는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대야성은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눈이 펄펄 날리던 겨울에 무너지지 않았다. 추석 전후에 대야성은 무너졌다. 계절이 맞지 않는건 사전제작이 아니니 애교로 봐줄만 하다.
642년에 7월 백제 무왕의 뒤를 이은 의자왕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신라의 서쪽 국경을 대대적으로 공략하여 40개성을 함락시킨다. 그리고 성왕시기 신라의 진흥왕과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침입한것처럼 이번에는 고구려 영류왕과 연합해서 잃어버린 경기도 일원의 당항성을 회복할 계책을 세운다.
신라는 40개의 성을 잃어버리고, 당항성 일대까지 빼앗긴다면 고립되고 망국의 치욕을 감당할 수 밖에 없었다. 40개성은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백제로 부터 빼앗은 50여개성과 별반 차이도 없다. 백제 최후 멸망시 200여개 성의 1/5에 해당할 만큼 커다란 강역이다.
그래서 신라는 8월 초에 긴급히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백제와 고구려가 연합해서 신라를 없애려 한다고 꼰지르는 한편 서쪽 방어선을 대대적으로 구축하고 전국민 총동원령을 내린다. 한마디로 신라는 대야성에 연연하고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신라방어선이 대야성으로 밀려서 백제와 신라의 최전선 국경에 위치하게 된다. 김춘추의 사위인 품석을 대야주의 도독으로 임명한다. 아마도 품석은 김유신과 비슷한 연배이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또한, 전장을 누비던 장수 였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품석이 자만에 빠져 백제를 무시하고 여자에 취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품석의 죽음은 삼국지의 장비의 죽음을 연상시키면 딱히 부합된다. 장비는 술로 날밤을 까고, 진언하는 부하장수를 구타한후 부하에게 목이 달아나니 말이다.
11년(642) 봄 정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가을 7월에 백제 왕 의자(義慈)가 군사를 크게 일으켜 나라 서쪽 40여 성을 쳐서 빼앗았다. 8월에 또 고구려와 함께 모의하여 당항성을 빼앗아 당나라와 통하는 길을 끊으려 하였으므로 왕이 사신을 보내 [당] 태종에게 위급함을 알렸다. 이 달에 백제 장군 윤충(允忠)이 군사를 이끌고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는데, 도독 이찬 품석(品釋)과 사지(舍知) 죽죽(竹竹)·용석(龍石) 등이 죽었다. - 삼국사기 신라 선덕왕 11년 642년
25년(642) 봄 정월에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왕은 서부(西部) 대인(大人) 연개소문(淵蓋蘇文)에게 명령하여 장성을 쌓는 일을 감독하게 하였다. 겨울 10월에 개소문이 왕을 죽였다. 11월에 태종은 왕이 죽은 것을 듣고, 동산에서 애도의 의식을 거행하고 명령을 내려 물건 300단(段)을 주고, 사신을 보내 절부를 가지고 조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 영류왕 25년 624년
재미있게도 당항성 사건은 신라본기에는 642년에 8월에 있었던 일로 기록하고 있고, 백제본기에는 643년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 좌측(실제), 우측 극중 대야성 유신을 살릴 답이란 김춘추 하지만 병풍? 548년생 설원 606년에 죽음
어쨌든 대야주 도독의 주성인 대야성은 현재 경남 합천의 황강변 북쪽에 있었다. 남쪽은 절애고도이고 북쪽은 평야지대였다. 하지만 대야성주인 품석은 급박한 전시상황에서 검일(黔日)의 아내를 농락하며 신라의 안위는 관심도 없었다. 또한 백제 군대를 오합지졸로 보고 있었다고 할 수 있고, 대야성의 지리적 이득에 자만했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무능한 장수를 누란위기의 신라를 구원할 구원투수로 임명한 것이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김춘추의 사위인 품석이나 김춘추/보라의 딸인 고타소는 나오지 않는다. 이유는 단지 김춘추가 유승호이기 때문이다. 만약, 유승호가 아역이 아닌 성인 배역으로 바뀌었다면 품석과 고타소는 배역을 얻어서 등장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결혼한 덕만을 단지 작가가 덕만은 결혼하면 안된다는 무개념의 설정때문에 노처녀이지만, 미실처럼 늙지 않는 덕만을 사랑하는 비담만 있을 뿐이다. 또한 누나들의 로망인 유승호가 결혼해서 딸을 낳고, 그 딸인 고타소가 결혼해서 대야성에서 죽었다는 설정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춘추 유승호가 642년에 40살이 되었는데도 늙지 않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2009/11/2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0살 김춘추 유승호 늙지 않는 이유? 아내 보량때문 그렇다면 64살 비담 김남길 늙지 않는 이유는?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사실 김춘추는 장녀 고타소가 죽기전까지 삼한일통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단지 자신의 딸인 고타소의 복수를 위해서 동분서주했을 뿐이다. 김춘추의 독기서린 행동이 백제의 의자왕의 뻘짓과 맞물려 백제가 무너지고, 고구려 후방의 완충역활을 한 백제가 무너지고 양동작전에 몰린 고구려는 무너지는 것 뿐이다.
어쨌든, 김춘추의 딸 고타소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뜻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어떠한 설정을 하던 관계없이 김춘추는 어부지리로 신라의 왕이 된다는 설정밖에는 나올 수가 없다. 이미 대야성 전투를 즈음해서 드라마 선덕여왕 제작진은 덕만과 김춘추의 대화에서 유신을 구할자는 김춘추라는 말을 했지만, 그후 김유신을 구하는 어떠한 액션도 없었다.
한마디로 역사기록상 덕만시대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덕만의 가장 믿음직한 알천 이승효를 병풍으로 만들었듯이 김춘추 유승호를 병풍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설정이다. 병풍이 되는 이유는 여러가지 있지만, 배역을 소화하지 못해서 대사를 주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처음부터 덕만은 미실을 띄우기 위한 설정이였으니 어쩔수 없이 나약한 덕만으로 그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초기 임팩트 강한 알천 이승효와 알천에 비해서 임팩트가 없었던 김춘추 유승호는 다르다. 한마디로 드라마 선덕여왕 제작팀은 알천 이승효와 춘추 유승호는 연기를 못한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두 배우는 비담처럼 부상이 있다는 말도 없는데 가장 중요할 때 활약이 미미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알천 이승효는 신종플루에 걸려서 의지에 상관없이 병풍이 되었다는 핑계라도 있다. 하지만, 춘추 유승호는 확실히 사극에 맞지 않으니 버리는 카드로 쓰고 있다는 뜻이다. 유승호 같은 경우 누나부대를 의식해서 어쩔수 없이 드라마 런타임을 잡아먹고 있을 뿐이다. 알천 이승효가 덕만 시대에 얼마나 많은 활동을 했는지 알고 싶다면 2009/11/24 - [역사이야기] - 산으로간 선덕여왕 실제 즉위 전후 10년 무슨일이 있었을까? - 선덕여왕 최원영(계백) 왜?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글쓴이는 배우들의 연기에 관심이 없고, 대본의 치밀성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그동안 드라마 선덕여왕의 제작진이 보여준 형태 분석하고 살펴보았을 때 이야기 하는 것이다.
죽어도 한참전에 죽었어야 할 548년생 설원 전노민은, 642년 95세에 비담을 위해서 스스로 전장에 나아가 유신의 부대를 몰살시키며 죽음에 뛰어 든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설원 전노민은 미실을 간호하다 대신 606년에 죽는다. 615년 전후에 죽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미실보다도 한참전에 죽었어야 한다.
또한, 미생 정웅인도 609년에 죽었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구족이 멸문지화되는 칠숙의 난이 끝났는데도 극중에 등장하고, 642년이 되었는데도 연명을 하는 이유는 단지 이들이 미실파였기 때문뿐만 아니라 연기를 잘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록에 상관없이 생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지금처럼 이승효와 유승호가 연기를 보여준다면, 62회로 종영되기전 몇회 남지도 않았지만, 극중에서 알천과 춘추도 언제 죽여버리거나 하차시킬지 아무도 모른다.
춘추가 진덕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데 어떻게 죽이냐고 물어본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드라마 선덕여왕과 역사 기록과 일치하는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그러니 등장인물을 살리고 죽이는건 제작진의 맘대로라는 뜻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한마디로 연기 서바이벌 게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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