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은 60회를 맞이해서 염종이나 미실의 잔존세력과 귀족의 모의에 의해서 의도하지 않는 난을 일으키는 쪽으로 극이 전개 되고 있다. 비담에게 춘추의 정적들인 미실의 잔존세력을 처내라 한다.
미실이 난을 일으킨후 잔존세력을 키워준건 다름아닌 덕만이였다. 그런데 이제 그 죄과를 비담에 덮어씌우려 한다.
춘추는 자신의 정적인 비담을 자극하면서 덕만이 비담을 버렸다는 암시를 한다. 머리 좋은 비담은 춘추의 허장세에 깜빡 넘어가고 염종이 만든 덫에 걸려 덕만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다. 미실의 난의 촉발은 세종의 시해 소동을 기폭제로 작용한다.
그런데 비담의 난은 춘추의 시해로 시작을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기존의 사극을 카피하는것도 모자라 용수의 시해, 천명의 시해, 세종의 시해 등의 복제와 어머니 미실의 난과 그 아들 비담의 난이라는 자체복제를 하는 드라마도 보기 드물지 않을까 한다.
데자뷰라고 이야기를 하거나 역사는 반복된다는 수사도 아까울 정도이다. 한마디로 작가의 상상력 부재와 시청자 모독행위이다.
어쨌든, 덕만은 고질병에 걸려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한다. 한마디로 비담은 난을 일으키려 하지 않았지만, 어쩔수 없는 외부적인 상황에 끌리여 난을 일으키는 주동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드라마 전개상 덕만은 믿었던 비담이 난을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 충격에 죽지 않을까한다. 비담도 덕만이 준 반지를 보면서 자신이 함정에 빠졌고, 부질없는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극이 종료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또한, 비담은 미실이 자살한 것 처럼 자살을 하던 삼한지세를 지키기 위해서 독살을 하듯이 반란 주동세력을 독살하고 장렬히 퇴장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미실의 난이 전혀 관계가 없는 칠숙의 난으로 포장된것처럼, 염종과 귀족의 난은 오히려 춘추에 의해서 악역 비담의 난으로 포장되는 수순을 밟을듯 하지만, 이는 드라마 작가들이 쪽대본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달라지니 결과를 예단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렇다면 역사에 기록된 비담의 난은 어떻게 기술되고 있을까?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서는 비담의 난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아는것도 재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비담의 난의 명분
비담이 난을 일으키는 명분은 "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였다. 많은 사람들은 당나라의 지령에 의해서 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당의 힘을 빌려야 하는 신라의 귀족들이 명분으로 내세웠다고 생각한다.
당태종이 643년 당나라 사신으로 온 신라사신에게 한 말과 대동소이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이세민은 당나라 왕족을 왕으로 세워 신라를 지배하겠다는 야욕을 비추고 있고, 비담의 난은 자신들 스스로 왕이 되겠다는 것이다.
위 삼국사기 기사의 순서로 보았을 때 비담은 선덕왕이 죽기전 난을 일으켰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확히는 언제 일으켰는지를 알 수 없다.
비담은 언제 난을 일으켰을까?
그렇다면 비담은 언제 난을 일으켰을까?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는 왕이 왕궁에서 방어하고 비담은 명활성에서 농성을 하고 대치 하고 있었다. 공방전이 10일이 지나지 않아도 결말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비담의 난을 최종 진압한 때는 1월 17일이다. 비담의 난을 결정적으로 무찌른 계기는 월성에 떨어진 유성 때문이다. 연을 이용해서 다시 유성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선동전술을 하게 되는데 유성이 떨어진 때는 난을 진압한 하기 바로 전날인 1월 16일 된다.
비담의 난
10일공방전
월성 유성 떨어진날, 연 유성 올린날
난 진압일+알파
1월 17일 공개적인 비담과 연류자 30명 효수
정리하면 1월 17일 비담을 처형한 때를 기준으로 한다면, 비담의 난이 있고, 최소 11일 이상이 걸렸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 비담의 난은 늦어도 1월 7일 전후에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담의 난은 누구를 향한 반란이였을까?
그렇다면 비담은 정말 여왕이 국정을 잘 다스리지 못해서 난을 일으켰을까? 그리고 덕만을 향한 난이였을까? 아니면 진덕(승만)을 향한 난이 였을까? 이는 덕만의 기록을 보면 충분히 승만을 향한 반란이였음을 유추해 볼수 있다.
덕만은 지기삼사 중에서 자신의 죽는 날을 정확히 예측하고 자신의 무덤자리를 낭산에 하라고 유언을 남긴다. 그러니 당연히 자신의 유고시 왕을 승계할 자를 임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비담이 난을 일으키자 마자 궁성에서 진덕이 왕위에 올라 신왕으로 난을 진압한다.
비담이 난을 일으킨 이유는 왕위 승계싸움인 칠숙의난과 유사하다. 모든 난은 대부분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에서 비롯되지만, 형제간에 왕위 쟁탈전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비담도 상대등으로 덕만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수 있다. 하지만, 비담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진덕(승만)이 왕위를 승계하므로 역심을 품었다고 볼수 있다.
반면에 덕만은 자신이 가장 아플때 이찬 비담을 상대등으로 임명하여 권력을 집중시켰다는 점으로 볼때 비담을 믿고 있었고, 유고시 권력이양이나 권력을 차지할 수 있도록 했을수도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덕만이 자신의 유고시 춘추를 염두해 두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춘추는 왕 승계서열 상 존재 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춘추를 자신의 후계로 삼았다면, 김유신이 덕만과 춘추를 배신하고 진덕을 왕으로 옹립했다는 뜻이 된다.
누가 비담의 난을 진압했을까?
더 재미있는 것은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24세 풍월주가 되는 천광이 풍월주로 난을 진압하는데 큰공을 세웠다고 한다.
천광은 유신의 동생인 흠순이 풍월주에 있을때 14세의 나이로 화랑에 입문한다. 흠순은 김춘추를 뒤이어 풍월주가 되었는데, 그때는 631년부터 634년이였다. 그러니 천광은 647년 비담의 난을 진압할때 26~30살이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비담의 난을 일으키는 주체가 미실과 세종의 후손으로 나온다. 하지만,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 주체세력은 다름이 아닌 미실의 후손인 천광이다.
김유신도 미실의 아들인 하종의 딸 영모와 결혼한다. 주체와 객체가 뒤바뀐 보기 드문 예가 된다. 한마디로 임진왜란으로 부터 조선을 지킨건 이순신이 아니고,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고 난을 일으키는 자는 이순신이라는 뜻이다. 근현대사에서 독립군이 역사의 죄인이 되고, 친일 민족반역자가 애국자가 되는 나라에서만 가능한 설정이다.
한마디로 드라마 선덕여왕은 진압군 측을 반란군의 수괴로 만드는 극중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사극사상 기록과 100% 불일치하는 사극으로 전례를 찾기 힘들다. 이를 단지 드라마니 용서가 된다고 한다면 용서 못할 것도 없다. 대한독립군이 불량선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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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는 자신의 정적인 비담을 자극하면서 덕만이 비담을 버렸다는 암시를 한다. 머리 좋은 비담은 춘추의 허장세에 깜빡 넘어가고 염종이 만든 덫에 걸려 덕만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다. 미실의 난의 촉발은 세종의 시해 소동을 기폭제로 작용한다.
그런데 비담의 난은 춘추의 시해로 시작을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기존의 사극을 카피하는것도 모자라 용수의 시해, 천명의 시해, 세종의 시해 등의 복제와 어머니 미실의 난과 그 아들 비담의 난이라는 자체복제를 하는 드라마도 보기 드물지 않을까 한다.
데자뷰라고 이야기를 하거나 역사는 반복된다는 수사도 아까울 정도이다. 한마디로 작가의 상상력 부재와 시청자 모독행위이다.
어쨌든, 덕만은 고질병에 걸려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한다. 한마디로 비담은 난을 일으키려 하지 않았지만, 어쩔수 없는 외부적인 상황에 끌리여 난을 일으키는 주동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드라마 전개상 덕만은 믿었던 비담이 난을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 충격에 죽지 않을까한다. 비담도 덕만이 준 반지를 보면서 자신이 함정에 빠졌고, 부질없는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극이 종료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또한, 비담은 미실이 자살한 것 처럼 자살을 하던 삼한지세를 지키기 위해서 독살을 하듯이 반란 주동세력을 독살하고 장렬히 퇴장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미실의 난이 전혀 관계가 없는 칠숙의 난으로 포장된것처럼, 염종과 귀족의 난은 오히려 춘추에 의해서 악역 비담의 난으로 포장되는 수순을 밟을듯 하지만, 이는 드라마 작가들이 쪽대본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달라지니 결과를 예단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렇다면 역사에 기록된 비담의 난은 어떻게 기술되고 있을까?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서는 비담의 난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아는것도 재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비담의 난의 명분
비담이 난을 일으키는 명분은 "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였다. 많은 사람들은 당나라의 지령에 의해서 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당의 힘을 빌려야 하는 신라의 귀족들이 명분으로 내세웠다고 생각한다.
16년(647) 봄 정월에 비담과 염종(廉宗) 등이 말하기를 “여자 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 하여 반역을 꾀하여 군사를 일으켰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8일에 왕이 죽었다.
당태종이 643년 당나라 사신으로 온 신라사신에게 한 말과 대동소이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643년 그대 나라는 여자를 임금으로 삼고 있으므로 이웃 나라의 업신여김을 받게 되고, 임금의 도리를 잃어 도둑을 불러들이게 되어 해마다 편안할 때가 없다. 내가 왕족 중의 한 사람을 보내 그대 나라의 왕으로 삼되, 자신이 혼자서는 왕노릇을 할 수 없으니 마땅히 군사를 보내 호위케 하고, 그대 나라가 안정되기를 기다려 그대들 스스로 지키는 일을 맡기려 한다. 이것이 세번째 계책이다 - 삼국사기 선덕왕 12년 643년
이세민은 당나라 왕족을 왕으로 세워 신라를 지배하겠다는 야욕을 비추고 있고, 비담의 난은 자신들 스스로 왕이 되겠다는 것이다.
위 삼국사기 기사의 순서로 보았을 때 비담은 선덕왕이 죽기전 난을 일으켰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확히는 언제 일으켰는지를 알 수 없다.
비담은 언제 난을 일으켰을까?
그렇다면 비담은 언제 난을 일으켰을까?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는 왕이 왕궁에서 방어하고 비담은 명활성에서 농성을 하고 대치 하고 있었다. 공방전이 10일이 지나지 않아도 결말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이 여자 임금(女主)이 잘 다스리지 못한다 하여 군사를 일으켜 왕을 폐하려 하니 왕은 스스로 왕궁 안에서 방어하였다. 비담 등은 명활성(明活城)에 주둔하고 왕의 군대는 월성(月城)에 머물고 있었다. 공격과 방어가 10일이 지나도 결말이 나지 않았다. - 삼국사기 김유신열전 53세
한밤 중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지니 비담 등은 사병들에게 말하였다.
이에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을 붙인 다음 연에 실려 띄워 하늘로 올라가듯이 하고는 다음 날 사람을 시켜 길가는 사람에게 “어제 밤에 떨어진 별이 다시 올라갔다.”는 소문을 퍼뜨려 반란군으로 하여금 의심을 품게 하였다. 그리고 흰말을 잡아 별이 떨어진 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다음과 같이 빌었다
이에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을 붙인 다음 연에 실려 띄워 하늘로 올라가듯이 하고는 다음 날 사람을 시켜 길가는 사람에게 “어제 밤에 떨어진 별이 다시 올라갔다.”는 소문을 퍼뜨려 반란군으로 하여금 의심을 품게 하였다. 그리고 흰말을 잡아 별이 떨어진 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다음과 같이 빌었다
원년(647) 정월 17일에 비담(毗曇)을 목베어 죽였는데, 그에 연루되어 죽은 사람이 30명이었다. 2월에 이찬 알천(閼川)을 상대등으로 삼고 대아찬 수승(守勝)을 우두주(牛頭州) 군주로 삼았다. - 삼국사기
비담의 난을 최종 진압한 때는 1월 17일이다. 비담의 난을 결정적으로 무찌른 계기는 월성에 떨어진 유성 때문이다. 연을 이용해서 다시 유성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선동전술을 하게 되는데 유성이 떨어진 때는 난을 진압한 하기 바로 전날인 1월 16일 된다.
비담의 난
10일공방전
월성 유성 떨어진날, 연 유성 올린날
난 진압일+알파
1월 17일 공개적인 비담과 연류자 30명 효수
정리하면 1월 17일 비담을 처형한 때를 기준으로 한다면, 비담의 난이 있고, 최소 11일 이상이 걸렸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 비담의 난은 늦어도 1월 7일 전후에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담의 난은 누구를 향한 반란이였을까?
그렇다면 비담은 정말 여왕이 국정을 잘 다스리지 못해서 난을 일으켰을까? 그리고 덕만을 향한 난이였을까? 아니면 진덕(승만)을 향한 난이 였을까? 이는 덕만의 기록을 보면 충분히 승만을 향한 반란이였음을 유추해 볼수 있다.
덕만은 지기삼사 중에서 자신의 죽는 날을 정확히 예측하고 자신의 무덤자리를 낭산에 하라고 유언을 남긴다. 그러니 당연히 자신의 유고시 왕을 승계할 자를 임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비담이 난을 일으키자 마자 궁성에서 진덕이 왕위에 올라 신왕으로 난을 진압한다.
비담이 난을 일으킨 이유는 왕위 승계싸움인 칠숙의난과 유사하다. 모든 난은 대부분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에서 비롯되지만, 형제간에 왕위 쟁탈전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비담도 상대등으로 덕만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수 있다. 하지만, 비담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진덕(승만)이 왕위를 승계하므로 역심을 품었다고 볼수 있다.
반면에 덕만은 자신이 가장 아플때 이찬 비담을 상대등으로 임명하여 권력을 집중시켰다는 점으로 볼때 비담을 믿고 있었고, 유고시 권력이양이나 권력을 차지할 수 있도록 했을수도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덕만이 자신의 유고시 춘추를 염두해 두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춘추는 왕 승계서열 상 존재 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춘추를 자신의 후계로 삼았다면, 김유신이 덕만과 춘추를 배신하고 진덕을 왕으로 옹립했다는 뜻이 된다.
누가 비담의 난을 진압했을까?
더 재미있는 것은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24세 풍월주가 되는 천광이 풍월주로 난을 진압하는데 큰공을 세웠다고 한다.
그 때 국사가 점차 어려워졌다. 공과 여러 낭두들이 낭도를 거느리고 친히 활 쏘고 말달리는 것을 익혔는데, 모인 자들을 선발하여 병부에 보충하였다. 공이 5년간 풍월주의 지위에 있는 사이에 낭정(郎政)은 무사(武事)로 많이 돌아갔다. 선덕제의 병이 몹시 위독해지자,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이 모반을 하였다. 유신공이 신주(新主)를 받들어 전쟁을 독려하였다. 그 때 서울(京師)의 군대가 적어 공이 낭도를 모두 동원하여 먼저 그 진으로 돌격하였다. 비담이 패하여 달아나고 난이 평정되었다. (천광)공은 그 공(功)으로 발탁되어 호성장군(護城將軍)이 되었다. - 화랑세기 24세 풍월주 천광
천광은 유신의 동생인 흠순이 풍월주에 있을때 14세의 나이로 화랑에 입문한다. 흠순은 김춘추를 뒤이어 풍월주가 되었는데, 그때는 631년부터 634년이였다. 그러니 천광은 647년 비담의 난을 진압할때 26~30살이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비담의 난을 일으키는 주체가 미실과 세종의 후손으로 나온다. 하지만,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 주체세력은 다름이 아닌 미실의 후손인 천광이다.
김유신도 미실의 아들인 하종의 딸 영모와 결혼한다. 주체와 객체가 뒤바뀐 보기 드문 예가 된다. 한마디로 임진왜란으로 부터 조선을 지킨건 이순신이 아니고,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고 난을 일으키는 자는 이순신이라는 뜻이다. 근현대사에서 독립군이 역사의 죄인이 되고, 친일 민족반역자가 애국자가 되는 나라에서만 가능한 설정이다.
아버지는 수품(水品) 상대등인데 곧 구륜공(仇輪公)의 아들이다. 구륜공이 반야공주(般若公主)를 아내로 맞아 수품공을 낳았다. 반야의 어머니는 미실궁주(美室宮主)이고 구륜의 어머니는 사도태후인데, 모두 진흥대제가 아버지다. 수품공은 천주공(天柱公)의 딸 천장랑주(天長娘主)를 아내로 맞았으니 곧 지도태후의 사생(私生)이다. 천주공 또한 진흥대제의 아들이다. 세계는 염장공조에 자세하다. - 화랑세기 천광 세계
한마디로 드라마 선덕여왕은 진압군 측을 반란군의 수괴로 만드는 극중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사극사상 기록과 100% 불일치하는 사극으로 전례를 찾기 힘들다. 이를 단지 드라마니 용서가 된다고 한다면 용서 못할 것도 없다. 대한독립군이 불량선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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