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동이 50회에서 인현왕후가 1701년 8월 14일 대낮에 죽었다. 임종을 지켜본 숙종은 인현왕후의 유시와도 같은 숙의를 비로 하여야만 세자 균과 연잉군 둘이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고 말을 듣는다.
하지만, 인현왕후는 숙종의 품에서 죽지 않았다. 인현왕후의 죽음을 지키고 있었던 자들은 인현왕후의 형제들이 지키고 있었을 뿐이다.
인현왕후는 8월 13일 급격히 병세가 나뻐졌고, 어의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하지만, 병세는 약화되고 8월 14일 새벽 축시(1~3시)사이에 지아비 숙종이 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쓸쓸히 죽어갔다.
그런데 왜 동이의 작가 김이영는 인현왕후가 숙종의 품에서 죽는 것으로 그렀을까? 한마디로 정리를 하면 인현왕후를 쓸쓸히 죽게 만든 숙종을 비판하는 듯 하다.
하지만, 그동안 작가는 "숙종은 인현왕후 보다는 희빈 장씨보다도 동이(숙빈최씨)에게 마음이 가 있었다." 고 끊임없이 드라마에서 숙종을 달달하고 따스한 남자로 그렸을 뿐이다. 그런데 왜 그동안 병풍으로 전략시킨 인현의 죽음에서 숙종을 인현의 품속으로 넣어버렸을까?
숙종 27년 1701년 8월 13일 오시(午時) 이후에 중궁의 병환이 크게 위독해졌다. 의약청(議藥廳)에서 합문(閤門) 밖에서 기다리고, 민진후(閔鎭厚) 형제로 하여금 수시로 입시(入侍)할 것을 청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숙종 27년 1701년 8월 14일 축시(丑時)에 왕비 민씨(閔氏)가 창경궁(昌慶宮)의 경춘전(景春殿)에서 승하(昇遐)하였다.
사실 동이 한효주를 살리기 위해서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병풍으로 만들어 버리고 단순하게 만들어 버렸다. 희빈 장씨는 동이에 질투하는 화신으로 그렸고, 인현은 장씨에게도 무력하고 한효주에게도 무력하게 만들어 버려서 한효주의 들러리로 만들어 버린것이다. 한마디로 한효주 한사람을 살리고자 역사도 무시하고, 드라마에서 갖춰야할 개연성도 상실하였다.
어쨌든, 동이에서 인현왕후의 “왕비는 숙의 최씨에게라는” 유언은 지켜지지 않고, 동이(한효주)를 숙의에서 숙빈으로 하는 첩지를 내린다.
그런데 이 또한, 역사와는 하등 상관없는 이야기다. 숙의 최씨는 1699년 10월 단종의 복권을 기념해서 여러 빈과 첩들과 함께 첩지를 받는다.
동이는 희빈 장씨를 찾아가 모든 증거를 넘겨주고 좋았던 감정도 있었는데 좋은 감정을 지니고 살아갈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희빈 장씨는 숙종이 숙의였던 최씨(한효주)를 숙빈으로 하는 첩지를 내리자 장희재가 말한 대로 최씨의 계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드라마와는 다르게 희빈장씨와 숙빈최씨는 처음부터 좋은 감정을 가질수가 없었다. 숙빈최씨는 인현왕후가 15살에 왕비가 될 때부터 최측근으로 숙종에 발탁되었지, 드라마 처럼 희빈장씨의 도움으로 궁궐에 입성하지 않았다.
또한, 희빈장씨는 동의의 말을 믿었다가 숙의였던 최씨가 숙빈이 되자 숙종이 숙빈으로 하여금 왕비로 만드는 명분을 축적하는 계략으로 생각하고 속된말로 확돌아 버려서 동이를 비롯한 연잉군을 몰아낼 궁리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숙의였던 동이가 숙빈이 된때는 인현왕후가 죽은 후가 아니고, 인현왕후가 죽기 2년 전에 단종복위를 기념해서 숙빈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개연성이 없다는 뜻이다.
드라마 동이에서 장희재는 세자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의녀를 감금하였다. 그리고 의녀를 죽이려하다. 내금의 군사들이 들이닥치자 허겁지겁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신분을 알수 있는 작은 비도를 떨어트리고 이를 동이가 장희재의 소행임을 밝힌다. 장희재는 궁궐을 수시로 들어나들며 희빈 장씨에게 숙의 최씨와 연잉군을 몰아낼 궁리를 하도록 한다.
그리고 연잉군을 몰아세우기 위해서 서책보자기 속에 연잉군이 보아서는 안되는 서책을 집어 넣는다. 물론, 자신이 당한 등록유초를 패러디한 것일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장희재는 인현왕후가 죽는 시점에 어디에 있었을까? 미안하게도 장희재는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었다. 드라마 동이에서는 등록유초사건의 책임을 지고 제주도에 유배된 것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역사에서는 등록유초와는 하등 상관없이. 사가에 있던 인현왕후를 복위하는 세력들을 몰아내고 인현왕후를 죽이려다 들키고 유배를 당한다.
드라마 동이에서처럼 동이가 인현왕후가 죽은 2개월 후에 희빈장씨를 찾아가 세자와 연잉군이 서로 잘 지낼 수 있는 것만이 소원이라는 듯 모든 증거물을 희빈장씨에 건네 주었을까?
하지만, 인현왕후가 죽은 1개월 조금 넘은 시점인 9월 29일에 숙종은 인현왕후 죽음에 대해서 인정전에서 친히 국문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드라마 동이에서는 인현왕후가 죽기바로전날 인형의 화형식을 처음한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는 인현왕후가 죽기 한참전 2월이전부터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증오하는 행사를 취선당 서쪽에 신당을 세우고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드라마 동이처럼 동이가 인현왕후가 죽기 전날 인형을 태우는 장소를 감각적으로 느끼고, 동이처럼 어미를 닮아서 모든일을 다하는 연잉군이 탄 인형을 발견할수도 없다는 뜻이다.
팩트가 사라진 사극을 무어라 불러야 하나?
사극이란 팩트(사건)과 팩트사이에 관련된 인물들이 어떻게 사건에 연루되고 팩트(사건)에 도달했을까 하는 개연성있는 알리바이를 만드는 과정이다. 하지만, 동이의 작가 김이영은 동이에서 등장하는 주요인물인 숙종과 명성왕후와 장희빈과 인현왕후와 드라마의 주인공인 동이(숙빈최씨)에 대한 자료조사 조차도 하지 않고, 단순히 인물만 빌려서 역사에 있는 사극이 아닌, 좋게 말해서 상상력의 환타지 드라마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는 역사는 한줄도 읽지 않는 작가가 역사는 이래야만 한다고 자신만의 환상에 빠져서 왜곡 날조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뿐만 아니고 전세계를 통틀어 김이영처럼 날로 먹는 작가도 없을 것이다.
사극을 만드는데 절대 필요한 선결작업인 인물분석과 자료조사를 하지 않고도 인기 사극 작가로 통할 수 있으니 말이다. 김이영 같은 작가가 인기를 얻는 다는 현실은 그동안 역사교육을 등한시하고 과정을 무시하는 현 세태를 반영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김이영를 만든이는 다름 아닌 역사에 무지한 시청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이들은 역사는 망가트려야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변태들일 뿐이다.
팩트를 지키고도 충분히 재미있게 드라마를 만들어 시청자로 하여금 공감을 하도록 만들어 가는 게 사극을 만드는 작가가 할 일이지, 자료조사도 없이 지멋대로 역사를 농단하는 것을 작가의 자유와 장착의 자유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팩트를 무시하고 지좃대로 사극을 만드는 건 창작의 자유와는 하등 상관도 없을 뿐더러 재미를 반감시킬 뿐이다.
사실 사극은 역사에는 관심이 있거나 관심이 없지만, 책으로 접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역사에 이런 사실도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작가는 이런 관점을 가지고 접근을 했다는 점을 알려주는 것을 가장 커다란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누가 희빈장씨를 고변했을까?
어쨌든 숙종은 인현왕후가 8월 14일 죽은 후 9월 24일 저녁 인현왕후를 생각하며 비망기를 남긴다.
밤에 임금이 비망기(備忘記)를 내려 이르기를,
“대행 왕비(大行王妃)가 병에 걸린 2년 동안에 희빈(禧嬪) 장씨(張氏)는 비단 한번도 기거(起居) 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궁전(中宮殿)’이라고 하지도 않고 반드시 ‘민씨(閔氏)’라고 일컬었으며, 또 말하기를, ‘민씨는 실로 요사스러운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취선당(就善堂)의 서쪽에다 몰래 신당(神堂)을 설치하고, 매양 2, 3인의 비복(婢僕)들과 더불어 사람들을 물리치고 기도(祈禱)하되, 지극히 빈틈없이 일을 꾸몄다. 이것을 참을 수가 있다면 무엇인들 참지 못하겠는가? 제주(濟州)에 유배(流配)시킨 죄인 장희재(張希載)를 먼저 처형하여 빨리 나라의 형벌을 바로잡도록 하라.”하였다.
이보다 앞서 대행 왕비(大行王妃)가 병들어 누워 있을 때에 민진후(閔鎭厚) 형제가 입시(入侍)하니, 왕비가 하교(下敎)하기를, “갑술년(1694년) 에 복위(復位)한 뒤 조정의 의논이 세자(世子)의 사친(私親)을 봉공(俸供)하는 등의 절목(節目)을 운위하면서, ‘마땅히 여러 빈어(嬪御 들과는 구별(區別)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때부터 궁중(宮中)의 사람들이 모두 다 다 희빈에게로 기울어졌다.
궁중(宮中)의 구법(舊法)에 의한다면 빈어에 속한 시녀(侍女)들은 감히 대내(大內) 근처에 드나들 수가 없는데, 희빈에 속한 것들이 항상 나의 침전(寢殿)에 왕래하였으며, 심지어 창(窓)에 구멍을 뚫고 안을 엿보는 짓을 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침전의 시녀들이 감히 꾸짖어 금하지 못하였으니, 일이 너무나도 한심했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다. 지금 나의 병 증세가 지극히 이상한데,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반드시 빌미[崇]가 있다.’고 한다. 궁인(宮人) 시영(時英)이란 자에게 의심스러운 자취가 많이 있고, 또한 겉으로 드러난 사건도 없지 아니하였으나, 어떤 사람이 주상께 감히 고(告)하여 주상으로 하여금 이것을 알게 하겠는가? 다만 나는 갖은 고초(苦楚)를 받았으나, 지금 병이 난 두해 사이에 소원(所願)은 오직 빨리 죽는 데 있으나, 여전히 다시 더하기도 하고 덜하기도 하여 이처럼 병이 낫지 아니하니, 괴롭다.”하고, 이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때에 이르러 무고(巫蠱)의 사건이 과연 발각되니, 외간(外間)에서는 혹 전하기를, “숙빈(淑嬪) 최씨(崔氏)가 평상시에 왕비가 베푼 은혜를 추모(追慕)하여, 통곡(痛哭)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임금에게 몰래 고(告)하였다.” 하였다.
“제주(濟州)에 유배(流配)시킨 죄인 장희재(張希載)를 먼저 처형하여 빨리 나라의 형벌을 바로잡도록 하라.”
숙종의 비망록에서도 보이듯이 인현왕후가 죽은 시점에 장희재는 드라마 동이에서 처럼 궁성에 있을수 없는 존재일 뿐이다.
드라마 동이에서 숙의 최씨는 무고의 증거가 되는 불탄인형과 인현왕후의 패를 희빈장씨에 주고 사건을 무마시키려 했다고 나오지만, 무고사건의 전말을 전한 이는 인현왕후에 은혜를 입은 숙빈최씨가 숙종에게 베게밑 송사이던 아니던 상관없이 희빈장씨를 잡기위해서 숙종에게 고했다고 전하고 있다.
희빈장씨를 사사토록 원인을 제공한 이는 숙빈최씨의 고변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것이다.
사실 숙종이 희빈장씨가 인현왕후가 병들어 있던 수년 동안 한번도 병문안이나 당연히 해야 할 문안인사도 없다는 것을 어찌 알게 되었을까? 평상시 숙종이 희빈의 인현왕후에 대한 패악질을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제재를 하지 못했다면 무능한 임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하지만, 인의 장막에 가로 막혀 있는 숙종이 알 수는 없는 것이다. 드라마 동이에서 임금의 가장 측근이고 비서실장이며 동이를 숙종과 엮으려는 중매쟁이 상선도 허수아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거나, 오히려 희빈장씨에 매수된 자였을 것이 명확하지 않을까 한다.
드라마 동이는 한효주(동이)를 위한 한효주(동이)에 의한, 한효주(동이)만을 위한 드라마이기 때문에 한없이 자애한 한효주가 되는 것이다. 한명을 살리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악역과 병풍을 만들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숙빈최씨는 드라마로서 매력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작가의 과도한 동이사랑으로 인해서 매력이 반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한효주를 살리고자 하는 작가나 이병훈의 의도와는 다르게 한효주도 죽고, 동이도 죽어 버리고 말았다.
왜 극의 옥의티가 극의 중심을 이끄는 동인이 되어야 하나?
사실 글쓴이는 사극 리뷰를 하고 싶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자격도 되지 않는 총리후보자나 장관후보자들을 청문회에 올려서 자질검증을 하기도 전에 도덕성을 질타할수 밖에 없는 것처럼 동이에서도 리뷰를 하기전에 예선에도 통과하면 안되는 쪽대본을 살펴봐야 하는 안타깝고 짜증나는 심정인것이다.
기본적인 팩트는 작가가 자료조사로 이미 검증을 하고, 연출진에서 검증이 끝난 후가 되어야 마땅한 일이다. 옥의티에서나 볼수 있는 장면을 본방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동인으로 꾸준히 이끌고 있다는 것은 극을 보는 시청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예선통과도 되지 않는 사극에서 동이와 희빈장씨가 어떠할까? 동이와 숙종이 어떠하네, 인현왕후와 숙종의 관계가 어떻네, 연인군과 세자의 형제애가 어떻네 하는 것은 배부른 짓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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