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화가 필사했다는 김대문의 <화랑세기>는 화랑 풍월주의 계보와 풍월주들의 활약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8대 풍월주인 문노는 화랑의 체계를 세운인물이고, 전쟁에 나아가 무수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문노의 출신은 나물왕의 후손인 비조부의 아들로 대가야국의 외손이다.
8세 문노(文弩:538생)는 비조부공(比助夫公) 아들이다. 어머니는 가야국(加耶國) 문화공주(文華公主)인데 문화공주는 야국왕(野國王)이 바친 여자(貢女)라고 한다.
공은 건복(建福) 23년(606)에 세상을 떠나니 69세였다. (윤공)낭주는 이 해에 공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선(仙)이 되었다. 공보다 10살이 적었다.
김유신은 (595년생)으로 606년 문노가 69세에 사망하는 시점에 11살의 나이가 된다. 그런데 선덕여왕에서는 천명과 덕만이 쌍둥이 자매이며, 진평왕(재위: 579녀~632년)이 왕위에 오른 직후에 태어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렇다면 천명(춘추:602년생)과 덕만(선덕여왕)은 580년생이 되는 것이다. 김유신이 태어나는 595년에는 나이가 16살이 된다. 물론, 유신과 덕만(선덕)과 천명이 문노를 만나기 위해서 여래사를 찾는 해는 603년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덕만과 유신이 처음 만난 시점이 김춘추가 태어난 후 1년 전후이다. 그렇다면 덕만과 유신이 처음 만난 년도 또한 603년 춘추의 나이 2 살 정도이고, 유신의 나이 9살 때 가 된다. (현재로 이야기하면 김유신은 초딩 2년~3년의 저학년이였다는 이야기다)
603년 이때 천명과 덕만의 나이는 몇 살이 되었을까? 24살이 되시겠다.
그런데 천명과 덕만의 역할은 아역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고 있고, 천명과 덕만의 나이가 유신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처럼 묘사되고 있다.
왜 이처럼 아주 기본적인 간단한 팩트를 무시하는 사극을 만들어서 현실성이 없도록 만드는 것일까? 물론, 선덕여왕은 박혁거세의 탄생석이 빛을 발하는 내용을 첫회에 내보내서 이미 환타스틱 사극의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렇더라도 기본적인 인물간의 관계는 왜곡하면 안된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넘어가서 덕만과 천명은 서로 다른 이유로 문노를 만나고저 한다. 그런데 여래사에서 사라진 문노를 만나기도 전에 용화낭도와 함께 경주로 입궁한다. 그리고 문노를 찾는 것을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덕만과 천명은 나이가 먹어 아역에서 덕만(이요원), 천명(박예진) 성인역으로 바뀌었다. 또한, 이에 맞추어 김유신도 성인인 엄태웅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김유신이 화랑의 최고위인 풍월주에 오른 시점이 15살 때 이다.
그렇다면 이때는 609년이 되는 것이다. 이때 덕만의 나이는 몇 살일까? 30살이 되시겠다.
자 이제 덕만과 천명은 문노를 만나야하는 미션을 수행을 하여야 하지만, 문노는 606년에 죽고 없다. 하지만 사극 선덕여왕에서는 문노를 만나게 될 것이다. 또한, 김유신이 산에 들어가 수행할 때 만난 도인이 문노로 분하여 나타나게 될 것이 자명하다.
왜 선덕여왕의 작가는 천명과 덕만을 쌍둥이로 설정하였을까? 그로 인해서 모든 인물설정을 흩틀어 버린것일까? 유신은 북두의 화신으로 태어난 사람이다. 이를 모티브로 덕만이 칠성의 별로 만들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야 유신이 선덕을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런데 왜 천명과 덕만을 쌍둥이로 설정하여 그 왜곡을 심화 시켜버렸다.
그냥 단순히 덕만을 천명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으로 해도 충분했을 것이고, 북두의 별을 살리고 싶다면 김유신과 한날 한시에 태어난 것으로 설정한다면 보다 더 친숙하고 밀도있는 덕만과 김유신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어디를 봐도 덕만(선덕)의 나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는데 말이다. 단지, 춘추 출생년(602년)을 기반으로 한 어미인 천명의 나이와 덕만의 나이를 유추해 볼 수 있기는 하다. 덕만은 기록에 따라 진평의 첫째나 천명의 동생으로 나오기는 한다. 어찌 되었던 천명은 최소 김유신보다 7~8세 정도 많은 나이가 된다.
덕만을 천명의 나이 어린 동생으로 설정한다면 충분히 김유신과 비슷한 연배로 설정할 수는 있다. 이래야 보다 합리적인 사극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렇더라도 문노가 김유신을 만나기는 힘들것이다. 차라리 김유신이 어릴적에 문노에 사사를 받았다는 설정을 하였다면 보다 현실성이 있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현재의 사극 선덕여왕으로는 이 또한 황당 시츄에이션이 되고 말았다.
왜 우리는 좀더 치밀하고 엄밀하며 시줄과 날줄이 잘 짜여진 사극을 볼 수 없는 것일까? 이는 사극 <선덕여왕> 작가가 역사에 대한 공부가 부족함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고, 이를 기획한 PD 또한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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