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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이차돈에 대한 고사는 삼국사기 신라 법흥왕14년(527년)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는 과정에서 이차돈의 순교로 인해 신라의 불법이 왕성하고 신라  왕권의 강화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차돈(염촉,염도)의 가계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사기는 성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삼국유사는 <박>씨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고 그이 세계를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를 인용하고 아도비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지만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이나 그 당시까지 전해진 기록을 상고했을 때 박씨라고 기록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단 삼국사기의 기록과 삼국유사의 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삼국사기 본기 신라법흥왕 15년 기사>>

 

15년(528) 불교를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일찍이 눌지왕 때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고구려로부터 일선군(一善郡)에 왔는데, 그 고을 사람 모례(毛禮)가 자기 집 안에 굴을 파고 방을 만들어 있게 하였다. 그때 양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와 의복과 향을 보내주었다. 임금과 신하들이 그 향의 이름과 쓸 바를 몰랐으므로 사람을 보내 향을 가지고 다니며 두루 묻게 하였다. 묵호자가 이를 보고 그 이름을 대면서 말하였다. 이것을 사르면 향기가 나는데, 신성(神聖)에게 정성을 도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신성스러운 것으로는 삼보(三寶)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첫째는 불타(佛陀)요, 둘째는 달마(達摩)이고, 셋째는 승가(僧伽)입니다. 만약 이것을 사르면서 소원을 빌면 반드시 영험(靈驗)이 있을 것입니다. 그 무렵 왕의 딸이 병이 심하였으므로 왕은 묵호자로 하여금 향을 사르고 소원을 말하게 하였더니, 왕의 딸 병이 곧 나았다. 왕이 매우 기뻐하여 음식과 선물을 많이 주었다. 묵호자가 [궁궐에서] 나와 모례를 찾아보고 얻은 물건들을 그에게 주면서 “나는 지금 갈 곳이 있어 작별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하고는 잠시 후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비처왕(毗處王) 때에 이르러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시중드는 이 세 사람과 함께 모례의 집에 또 왔다. 모습이 묵호자와 비슷하였는데 몇 년을 그곳에서 살다가 병(病)도 없이 죽었다. 시중들던 세 사람은 머물러 살면서 경(經)과 율(律)을 강독하였는데 신봉자가 가끔 있었다.

 

이때 와서 왕 또한 불교를 일으키고자 하였으나 뭇 신하들이 믿지 않고 이런 저런 불평을 많이 하였으므로 왕이 난처하였다. 왕의 가까운 신하 이차돈(異次頓) <혹은 처도(處道)라고도 하였다.>이 아뢰었다. “바라건대 하찮은 신(臣)을 목 베어 뭇 사람들의 논의를 진정시키십시오.” 왕이 말하였다. “본래 도(道)를 일으키고자 함인데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자 [이차돈이] 대답하였다. “만약 도가 행해질 수 있다면 신은 비록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이에 왕이 여러 신하들을 불러 의견을 물으니 모두 말하였다. “지금 중들을 보니 깍은 머리에 이상한 옷을 입었고, 말하는 논리가 기이하고 괴상하여 일상적인 도(道)가 아닙니다. 지금 만약 이를 그대로 놓아두면 후회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신 등은 비록 무거운 벌을 받더라도 감히 명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차돈 혼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금 뭇 신하들의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비상(非常)한 사람이 있은 후에야 비상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듣건대 불교가 심오하다고 하니,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뭇 사람들의 말이 견고하여 이를 깨뜨릴 수가 없는데, 유독 너만 다른 말을 하니 양 쪽을 모두 따를 수는 없다.” 드디어 이차돈을 관리에게 넘겨 목을 베게 하니, 이차돈이 죽음에 임하여 말하였다. 나는 불법(佛法)을 위하여 형(刑)을 당하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만약 신령스러움이 있다면 나의 죽음에 반드시 이상한 일이 있을 것이다. 목을 베자 잘린 곳에서 피가 솟구쳤는데 그 색이 우유빛처럼 희었다. 뭇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다시는 불교를 헐뜯지 않았다.<이는 김대문(金大問)의 계림잡전(鷄林雜傳) 기록에 의거하여 쓴 것인데, 한나마(韓奈麻) 김용행(金用行)이 지은 아도화상비(我道和尙碑)의 기록과는 자못 다르다.>

 

<<삼국유사  원종,염촉(이차돈)>>

 

<신라본기(新羅本紀)>에 보면 법흥대왕(法興大王)이 즉위한 14년(527)에 신하 이차돈(異次頓)이 불법(佛法)을 위해서 자기 몸을 죽이니 곧 소량(蕭梁) 보통(普通) 8년 정미(丁未; 527)에 서천축(西天竺)의 달마대사(達磨大師)가 금릉(金陵)에 온 해다.  이 해에 낭지법사(朗智法師)도 또한 영취산(靈鷲山)에 살면서 법장(法場)을 열었으니 불교의 흥하고 쇠하는 것도 반드시 원근(遠近)에서 한 시기에 서로 감응한다는 것을 이 일로 해서 알 수가 있다 

 

원화(元和) 연간(806~820)에 남간사(南澗寺)의 중 일념(一念)이 촉향분례불결사문(髑香墳禮佛結社文)을 지었는데, 이 사실이 자세히 실려 있으니 그 대략은 이러하다.  예전에 법흥대왕이 자극전(紫極殿)에서 왕위에 올랐을 때에 동쪽 지역을 살펴보고 말했다.  “예전에 한(漢)나라 명제(明帝)가 꿈에 감응되어 불법이 동쪽으로 흘러들어왔다.  내가 왕위에 오른 뒤로 백성들을 위해 복을 닦고 죄를 없앨 곳을 마련하려 한다.”  이에 조신들(향전鄕傳에서는 공목알공工目謁恭 등이라 했다.)은 왕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오직 나라를 다스리는 대의(大義)만을 지켜 절을 세우겠다는 신령스러운 생각에 따르지 않자 대왕은 탄식했다.  “아아!  나는 덕이 없는 사람으로 왕업(王業)을 이어받아 위로는 음양(陰陽)의 조화(造化)가 모자라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즐겨하는 일이 없어서 정사를 닦는 여가에 불교에 마음을 두었으니 그 누가 나의 일을 함께 할 것인가.”  이때 소신(小臣)이 있었는데 성(姓)은 박(朴)이요, 자(子)는 염촉(猒髑; 혹은 이차異次라 하고 또는 이처伊處라고도 하니 방음方音이 다르기 때문이며, 한어漢語로 번역하여 염猒이라 한다.  촉髑·돈頓·도道·도覩·독獨 등은 모두 글쓰는 사람의 편의에 따른 것으로, 곧 조사助辭이다.  이제 위 글자는 번역하고 아래 글자는 번역하지 않았기 때문에  염촉猒髑이라 하고, 또는 염도猒覩 등으로 쓴 것이다)인데, 그의 아버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조부(祖父)는 아진(阿珍) 종(宗)으로 습보(習寶) 갈문왕(葛文王)의 아들이다(신라의 관작官爵은 도합 17등급等級인데 그 넷째를 파진손波珍飡, 또는 아진손阿珍飡이라고도 한다.  종宗은 그 이름이며, 습보習寶도 역시 이름이다.  신라 사람은 추봉追封한 왕을 모두 갈문왕葛文王이라고 했으니 그 까닭은 사신史臣도 역시 자세히 모른다고 했다.

 

김용행金用行이 지은 아도비阿道碑를 상고해 보면, 사인舍人은 그때 나이 26세였고, 아버지는 길승吉升, 조부는 공한功漢, 증조曾祖는 걸해대왕乞解大王이라 했다 그는 죽백(竹栢)과 같은 바탕에 수경(水鏡)과 같은 뜻을 품었으며, 적선(積善)한 집의 증손(曾孫)으로서 궁내(宮內)의 조아(爪牙)가 되기를 바랐고, 성조(聖朝)의 충신으로서 하청(河淸)에 등시(登侍)할 것을 기대했다. 

 

그때 나이 22세로서 사인(舍人; 신라 관작官爵에 대사大舍·소사小舍 등이 있으니 대개 하사下士의 등급이다)의 직책에 있었는데, 왕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그 심정(心情)을 눈치채고 아뢰었다.  “신이 듣자오니 옛 사람은 천한 사람에게도 계교를 물었다 하오니 신은 큰 죄를 무릅쓰고 아룁니다”하니 사인은 말 한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신하로서의 큰 절개이옵고 임금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백성의 곧은 의리입니다.  거짓으로 말씀을 전했다고 해서 신의 목을 베시면 만민이 굴복하여 감히 왕의 말씀을 어기지 못할 것입니다.”  왕이 말했다.  “살을 베어 저울로 달아서 장차 새 한 마리를 살리려했고 피를 뿌려 목숨을 끊어서 일곱 마리 짐승을 스스로 불쌍히 여겼다.  나의 뜻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인데 어찌 죄 없는 사람을 죽이겠느냐.  너는 비록 공덕을 남기려 하지만 죽음을 피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  사인이 말한다.  “일체(一切)를 버리기 어려운 것은 신명(神命)에 지나지 않으며, 소신이 저녁에 죽어서 불교가 아침에 행해진다면 불일(佛日)은 다시 성행하고 성주(聖主)께서는 길이 편안하실 것입니다.”  왕은 말한다.  “난새와 봉새의 새끼는 어려도 하늘을 뚫을 듯한 마음이 있고 홍곡(鴻鵠)의 새끼는 나면서부터 물결을 깨칠 기세를 품었다 하니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가위 대사(大士)의 행동이라 할 수 있겠다.”  이에 대왕은 일부러 위의(威儀)를 정제하고 동서쪽에는 풍도(風刀)를, 남북 쪽에는 상장(霜仗)을 벌여 놓고 여러 신하를 불러 물었다.  “경(卿)들은 내가 절을 지으려 하는데 일부러 이를 지체시키지 않았느냐.

 

”(향전鄕傳에서는 염촉猒髑이 거짓 왕명王命으로 신하들에게 절을 세우라는 뜻을 전하니 여러 신하들이 와서 간諫하자 왕王은 이것을 염촉猒髑에게 책임지워 노하고 왕명王命을 거짓 전했다 하여 형刑에 처했다고 했다) 

 

이에 여러 신하들이 벌벌 떨고 두려워하여 황망스레 맹세하고 손으로 동쪽과 서쪽을 가리키니 왕은 사인을 불러 꾸짖었다.  사인은 얼굴빛이 변하여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대왕이 크게 노하여 이를 베어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니 유사(有司)는 그를 묶어 관아(官衙)로 데리고 갔다.  사인은 맹세를 했다.  옥리(獄吏)가 그의 목을 베자, 흰 젖이 한 길이나 솟아올랐으며(향전鄕傳에는 이렇게 말했다.  사인舍人이 맹세하기를, “대성법왕大聖法王께서 불교를 일으키려 하시므로 내가 신명身命을 돌아보지 않고 세상 인연을 버리니 하늘에서는 상서를 내려 두루 백성들에게 보여 주십시오”했다.  이에 그의 머리는 날아가 금강산金剛山 마루에 떨어졌다고 한다), 하늘은 사방이 어두워 저녁의 빛을 감추고 땅이 진동하고 비가 뚝뚝 떨어졌다.  임금은 슬퍼하여 눈물이 곤룡포(袞龍袍)를 적시고 재상들은 근심하여 진땀이 선면(蟬冕)에까지 흘렀다.  감천(甘泉)이 갑자기 말라서 물고기와 자라가 다투어 뛰고 곧은 나무가 저절로 부러져서 원숭이들이 떼지어 울었다.  춘궁(春宮)에서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놀던 동무들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서로 돌아보고 월정(月庭)에서 소매를 마주하던 친구들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이별을 애석해 하여 관(棺)을 쳐다보고 우는 소리는 마치 부모를 잃은 것과 같았다.  그들은 모두 말했다.  “개자추(介子推)가 다리의 살을 벤 일도 염촉(猒髑)의 고절(苦節)에 비할 수 없으며, 홍연(弘演)이 배를 가른 일도 어찌 그의 장열(壯烈)함에 비할 수 있으랴.  이것은 곧 대왕의 신력(信力)을 붙들어서 아도(阿道)의 본심을 성취시킨 것이니 참으로 성자(聖者)로다.”  드디어 북산(北山) 서쪽 고개(곧 금강산金剛山이다.  전傳에는, 머리가 날아가서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그곳에 장사지냈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것을 말하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인가)에 장사지냈다.  나인(內人)들은 이를 슬퍼하여 좋은 땅을 가려서 절을 세우고 이름을 자추사(刺楸寺)라고 했다.  이로부터 집집마다 부처를 받들면 반드시 대대로 영화를 얻게 되고, 사람마다 불도(佛道)를 행하면 이내 불교의 이익을 얻게 되었다 ... 생략...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이차돈에 관한  출전을  김대문이 지은 <계림잡전>을 인용하고 있고 <아도화상비>와 다르고 계림잡전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출전을

 

<삼국사기>의 기록인 <계림잡전>

남간사(南澗寺)의 중 일념(一念)이 촉향분례불결사문(髑香墳禮佛結社文)

<향전>

김용행金用行이 지은 아도비阿道碑

<승전>

 

등은 인용하고 있다.

이름 이차돈, 이처, 염촉, 염도 등이고

나이는 22세와 26세의 2가지 설이 있는데 일연은 <22세>설을 따르고 있으며,

세계는 <아도비>과 일념의 <촉향분례불결사문>의 것을 모두 기록하고 있다. 

이차돈의 성이 “<박>씨이고 <염촉>이 자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기록을 추적하다 보면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다.

 

조부(祖父)는 아진(阿珍) 종(宗)으로 습보(習寶) 갈문왕(葛文王)의 아들이다(신라의 관작官爵은 도합 17등급等級인데 그 넷째를 파진손波珍飡, 또는 아진손阿珍飡이라고도 한다.  종宗은 그 이름이며, 습보習寶도 역시 이름이다.

 

김용행金用行이 지은 아도비阿道碑를 상고해 보면, 사인舍人은 그때 나이 26세였고, 아버지는 길승吉升, 조부는 공한功漢, 증조曾祖는 걸해대왕乞解大王이라 했다

 

일념 <촉향분례불결사문>

이차돈 -> ? -> 아진종 -> 습보갈문왕

 

김용행 아도비 :

 

이차돈->길승->공한->걸해대왕

 

향어를 쓴 최치원은 제왕연대력을 쓸 때 거서한, 차차웅, 이사금 등을 버리고 썼다고 김부식은 이야기하고 있고, 김대문 또한 향어를 버리고 한(漢)어 식으로 바꾼 경우가 많다.  <아도비>와 <촉향분례>을 공히 따르면 아진종=공한이고 습보가 걸해대왕 임을 알 수 있다. 아버지는 아도비의 길승일 가능성이 많다. 

걸해대왕은 삼국사기에는 어떠한 기록도 없고 갈문왕으로 추봉된 습보일 것이다.

 

습보의 가계는 지증왕의 아버지로 소지왕이 아들이 없음으로 지증왕(500~514)이 대신 왕위에 오르는데 이에 습보를 갈문왕에 봉했을 것이고, 그 이후 걸해대왕이라고 했을 것이다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성(姓)은 김씨이고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이다. <지도로(智度路) 혹은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하였다.> 나물왕의 증손으로 습보갈문왕(習寶葛文王)의 아들이고 소지왕(炤知王)의 재종 동생이다. 어머니는 김씨 조생부인(鳥生夫人)으로 눌지왕의 딸이다. 왕비는 박씨 연제부인(延帝夫人)으로 이찬 등흔(登欣)의 딸이다.

.

 

법흥왕(法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원종(原宗)이다. <책부원귀(冊府元龜)에는, 성은 모(募)이고 이름은 진(秦)이라 하였다.> 지증왕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연제부인(延帝夫人)이고 왕비는 박씨 보도부인(保刀夫人)이다

지증의 가계를 보면  아버지 습보는 내물왕의 손이라 하였으니.

 


이차돈의 세계는

 

내물왕 -> 기보(?) -> 습보(걸해) ->아진종(공한) -> 길승 -> 이차돈(염촉) 의 순서가 된다.

 

법흥왕의 계보는

내물왕 -> 기보(?) -> 습보(걸해) -> 지증왕 -> 법흥왕 -> 입종갈문왕 -> 진흥왕이 된다.

 

이차돈과 법흥왕는 아주 가까운 인척관계가 된다. 법흥왕으로 보면 조카가 되고, 이차돈으로는 법흥왕이 6촌 당숙이 되는 것이다.

 

이사부(태종)의 가계는

아진종 -> 이사부(태종) 이니 이차돈과 이사부는 3촌 관계가 된다.

그러므로 이차돈은 ‘박씨‘가 될 수 없고 ’김씨‘이다. 


어떤 이는 이차돈과 이사부는 ‘이씨’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mbc 월.화 대하 사극 <선덕여왕>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미실과 세종과 하종이 등장한다. 미실은 이사부의 며느리가 되는 것이고, 세종은 그의 아들이다. 지소(법흥/보도)는 작은아버지 입종사이에 진흥을 낳고, 아버지 뻘인 이사부(태종)사이에 6대 풍월주인 세종을 낳았다. 드라마에서는 하종과 김유신이 적대적인 관계로 나오나 실제는 11대 풍월주 하종의 딸인 영모가 김유신에 시집을 가 김유신은 하종의 사위가 된다. 김유신은 세종과 미실의 손녀사위가 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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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balloons 2011.12.19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 나는 당신의 포스트를 읽었다. 모두 좋은 기사 및 진짜로 그것이라고 관심을 끄는. 나의 책갈피에를 제외하고 그것을 지키십시오. 몫을 위한 좋은 포스트 그리고 감사

  2. BlogIcon 고명진 2012.01.01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일을 나의 친구를 계속, 이거 정말 끝내 준다

  3. BlogIcon 고명진 2012.01.07 0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4. BlogIcon 정부 2012.04.04 0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혼자 내버려 두십시오.

  5. BlogIcon 마야 2012.04.05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살 여유가 없습니다.

  6. BlogIcon 엘리스 2012.05.08 1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죄송합니다.

  7. BlogIcon 카일리 2012.05.10 2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크 아웃하고 싶습니다.

  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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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4: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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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for sale 2012.11.01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1.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2012.11.06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있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를 인용하고 아도비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지만

  12. BlogIcon volcano stove costco 2012.12.10 2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도비>와 <촉향분례>을 공히 따르면 아진종=공한이고 습보가 걸해대왕 임을 알 수 있다. 아버지는 아도비의 길승일 가능성이 많다.

  13. BlogIcon wireless dog fence for small dogs 2012.12.22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이 중요한 주제에 도움이 필요 남녀를 지원하는 당신의 관대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14. BlogIcon can you freeze cooked scrambled eggs 2013.01.01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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