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에 모란이 들어온 시기?
덕만의 예지력(도솔천)과 지혜(모란,영묘사 옥문지)를 알 수 있는 3가지의 사건중 첫번째에 해당하는 향기 없는 모란 사건은 언제 일어난 것일까? 일단,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서 그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
첫째는,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붉은빛·자줏빛·흰빛의 세 가지 빛으로 그린 모란[牧丹]과 그 씨 서 되[升]를 보내 온 일이 있었다. 왕은 그림의 꽃을 보더니 말하기를, "이 꽃은 필경 향기가 없을 것이다"하고 씨를 뜰에 심도록 했다.
거기에서 꽃이 피어 떨어질 때까지 과연 왕의 말과 같았다. - 삼국유사 선덕왕(善德王)의 지기삼사(知幾三事)
거기에서 꽃이 피어 떨어질 때까지 과연 왕의 말과 같았다. - 삼국유사 선덕왕(善德王)의 지기삼사(知幾三事)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앞 임금 때 당나라에서 가져온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덕만에게 보였더니, 덕만이 말하였다. “이 꽃은 비록 매우 아름답기는 하나 틀림없이 향기가 없을 것입니다.” 왕이 웃으며 말하기를 “네가 그것을 어찌 아느냐?” 하니, [덕만이] 대답하였다.
꽃을 그렸으나 나비가 없는 까닭에 그것을 알았습니다. 무릇 여자가 뛰어나게 아름다우면 남자들이 따르고, 꽃에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 꽃은 무척 아름다운데도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으니, 이는 향기가 없는 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것을 심으니 과연 말한 바와 같았으니, 미리 알아보는 식견이 이와 같았다.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꽃을 그렸으나 나비가 없는 까닭에 그것을 알았습니다. 무릇 여자가 뛰어나게 아름다우면 남자들이 따르고, 꽃에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 꽃은 무척 아름다운데도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으니, 이는 향기가 없는 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것을 심으니 과연 말한 바와 같았으니, 미리 알아보는 식견이 이와 같았다.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위의 사실로 미루어 시기적으로 당태종(이세민)이 당의 황제에 있을때이고, 덕만이 왕위를 잇기전이 되어야한다. 그렇다면 중첩된 진평왕, 당태종시기의 축약해 보면 모란이 신라에 전파된 시기 알 수 있지 않을까?
당태종은 626년 가을이후 실질적인 황제로 활동을 한다. 진평왕은 632년 정월에 죽고, 덕만이 632년 정월에 왕위를 잇는다. 그렇다면 627년부터 631년 사이의 일이 된다. 이시기에 신라와 당의 왕실간 교섭기사를 뽑아 본다면 다음과 같다.
당 태종과 신라 진평왕 시기 사절단 목록 - 삼국사기
48년(626) 가을 7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당 고조가 주자사(朱子奢)를 보내와, 조칙으로 고구려와 서로 화친하도록 타일렀다.
49년(627) 여름 6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겨울 11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51년(629) 9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53년(631) 가을 7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미녀 두 사람을 바치니, 위징(魏徵)이 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자 황제가 기뻐하며 말하였다.
54년(632) 봄 정월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진평(眞平)이라 하고 한지(漢只)에 장사지냈다. 당 태종이 조칙을 내려 광록대부(光祿大夫)를 추증하고 부의(賻儀)로 200단(段)을 주었다.<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정관(貞觀) 6년(632) 임진 정월에 죽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신당서(新唐書)와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모두 『정관 5년(631) 신묘에 신라 왕 진평이 죽었다.』고 하였으니, 어찌하여 그것이 잘못되었을까?
49년(627) 여름 6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겨울 11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51년(629) 9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53년(631) 가을 7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미녀 두 사람을 바치니, 위징(魏徵)이 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자 황제가 기뻐하며 말하였다.
54년(632) 봄 정월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진평(眞平)이라 하고 한지(漢只)에 장사지냈다. 당 태종이 조칙을 내려 광록대부(光祿大夫)를 추증하고 부의(賻儀)로 200단(段)을 주었다.<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정관(貞觀) 6년(632) 임진 정월에 죽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신당서(新唐書)와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모두 『정관 5년(631) 신묘에 신라 왕 진평이 죽었다.』고 하였으니, 어찌하여 그것이 잘못되었을까?
하지만, 선덕여왕(덕만)의 지기삼사중 첫번째이야기는 당태종때(626년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626년 당나라에 사신을 보낸때는 가을 7월이니 이때는 아직 이세민(태종)이 왕위를 잇기 전이다. 그렇다면 실제 당 태종(이세민)의 치세 이후가 되어야 하니, 627년, 629년, 631년, 632년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진평왕은 632년 정월(1월)에 죽었으므로 덕만의 '모란씨 서되' 사건은 627년, 629년, 631년 중으로 줄어들게 된다.
모란의 특성
한가지 더 고려해야 할 것은 모란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모란꽃은 5월~6월에 10여일 동안 피었다가 9~10월에 열매를 맺는다.
모란씨를 심어 발아하는 데는 약 2년이 걸린다. - 브리태니커백과 모란
모란씨를 심어 발아하는 데는 약 2년이 걸린다. - 브리태니커백과 모란
진평왕이 모란씨를 심어 2년동안 땅속에서 발아과정을 지나 꽃을 보는데, 2년이 걸리므로, 632년 1월 죽은 진평왕이 살아생전 모란꽃을 보기는 요원하게 된다. 그러니 629년 9월과 631년 7월 당으로 간 사신단은 후보군에서 탈락하게 된다.
그렇다면 남는 해는 627년 7월과 11월 뿐이다. 이해에는 이례적으로 2번의 사신단이 당나라에 간다. 당의 정치적 격변기이고 이세민이 연호를 <정관>으로 바뀐 해이니, 사신단이 2번 간것으로 추측된다.
모란과 새 화조도
'꽃중의왕'(화중왕)으로 불리는 모란이 신라에 들어온 때는 진평왕 49년 인 627년 여름 7월, 11월에 당나라에 보낸 사신을 통해서 이다. 그렇다면 이들 중 누가 모란씨와 모란그림을 가지고 신라에 들어 왔을까?
모란이 신라에 들어온 때는 627년 진평왕 49년 11월
모란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시기가 9~10월이니 모란씨를 얻는 10월 이후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모란씨가 들어온 때는 627년 11월 사신단에 의해서다.
우리는 막연히 덕만이 당나라에서 받는 모란 그림을 보고, 모란이 향기가 없다는 말만 하고, 덕만의 지혜에 감복하기만 하였지 모란이 실제 언제 들여 왔는지를 알지 못했다.
이글을 본 사람이라면 모란씨 서되가 들어온 시기는 이제 정확히 627년 11월 당나라에 간 사신단을 통해서 당나라 태종(이세민)이 보내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향기없는 모란은 덕만의 자격지심
모란씨에 사건에 대해서 덕만이 죽기전 한 말이 의미 심장하다.
왕이 죽기 전에 여러 신하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어떻게 해서 모란꽃에 향기가 없고, 개구리 우는 것으로 변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왕이 대답했다.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므로 그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것은 당나라 임금이 나에게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다. - 삼국유사 선덕왕 지기삼사
덕만은 자신을 희롱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세민의 입장에서는 당의 상징꽃인 모란을 신라에 전파하는 목적도 있었고, 또다른 이유가 있다면, 진평왕에게 대를 이를 남자가 없음을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덕만은 죽기전 자신를 "짝이 없는 것을 희롱했다"고 생각한다.
설마 이세민이 신라에만 모란을 주었겠는가? 627년이면 이세민의 당 황제 등극 축하사절단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각국 사신단에 골고루 주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 않을까 한다. 당 이세민은 각국 왕실의 부귀와 번창함을 위해서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주었지만, 받을 당시에는 그저 나비와 벌이 없음으로 향기가 없다는 말을 하였지만 왕위를 잇고 죽을때 까지 후사를 보지 못한 석녀(?)인 덕만의 자격지심이 발동한 발언이지 않을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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