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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IN드라마/선덕여왕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진면목인 색공에 관련된 사항을 밝힐 수 없는 나름의 속사정이 있지만, 그래도 화랑세기에 나온 미실의 성격을 고현정이 잘 묘사한 것 같다.

능숙히 사람을 다루는 경지가 과히 화랑세기에 나타난 미실의 정치적인 면이다. 또한, 예술적이 소양을 '소엽도'를 그리는 행동으로 단순이 색공만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 예술과 정치력, 정치술수 등 이 뛰어남을 나타내 주었다.

화랑세기에는 미실이 정치,색공,술수 뿐만 아니라 글에도 조예가 깊어서 수많은 저술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쟁에 출전하는 사다함에게 사랑의 세레나데와 님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절절한 환송시를 쓰기도 한다.


풍랑가
- 미실
바람이 불(분)다고 하되, 임 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친다고 하되, 임 앞(에) 치지 말고
빨리 빨리 돌아오라, 다시 만나 안고보고
아흐, 임이여, 잡은 손을 차마 물리라뇨.


한마디로 조선의 제일기녀 황진이도 울고갈 절세가인이 아닐 수 없다. 낮에는 요조숙녀, 밤에는 요부가 되는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다.

화랑세기에는 미실이전에 3명의 유명한 여인이 등장한다. 첫째는 덩치의 풍만함이 1세 풍월주의 누나인 벽화이고, 미모는 미실의 할머니인 옥진이요, 색공은 미실의 이모할머니인 금진이다. 더 나아가 이들을 휘어 잡고 있던 법흥왕의 딸이고 진흥의 어머니가 되는 지소태후이다.  

팜므파탈적인 모습을 보여준 미실과 비견되는, 또는 미실을 능가하는 여인들을 살펴볼려고 한다.

미실의 남자들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보는 미실의 남자들


미실은 3황인 진흥과 진지,진평과  왕자 동륜 등  진흥의 손자인 진평왕까지 3대에 걸친 신라 왕들에 멸사봉공(?) 봉사를 하고 있다. 또한,  풍월주인 5세 사다함, 6세 세종, 7세 설원랑과 관계를 가지고, 자신의 동생 미생까지도 관계를 가지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기도 한다. 확실히 다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대략 확인한 사람은 남편 6세 풍월주인 세중을 비롯해서 8명의 남자들이 미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미실과 남편인 세종사이에는 11세 풍월주인 하종을 낳는데, 화랑세기에는 하종의 생김새가 사다함을 빼어 닮았다고 한다. 사실 세종과 미실사이에는 하종을 제외하고 전혀 후사가 없다. 미실은 설원랑을 통해서 보종을 낳고, 다른 수 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하여 자식들을 두고 있는데, 의심스러운 하종을 제외한다면, 전혀 자식이 없는 것이다.

미루어 짐작컨데 세종은 생산력이 없는 씨 없는 수박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끝까지 미실을 지킨 사람은 세종이라고 한다. 그러니 세종의 미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미실 또한, 세종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 시늉까지 했다고 한다.

어찌 되었던, 금진의 아들들인 사다함과 설원랑은 미실과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사다함의 매화(책력)사건으로 서현의 지지세력인 가야파를 월식과 "伽"의 파자인 "人 力 口"로 서현과 벌려 놓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나서 서현부자에 세종/미실의 아들인 11세 하종/미모(설원랑/준모)의 자식인 '영모'를 유신과 결혼시키는 전략을 세운다. 영모는 미실/세종의 아들 하종의 딸이니 미실로써는 유신은 손녀사위가 되는 것이다.

화랑세기에는 유신과 영모에 대한 기록이 소략하다. 단지, 하종의 딸인 영모를 아내로 맞이하고 18세에 영모를 화주로, 유신은 장기 집권한 14세 풍월주 호림를 상선으로 밀어내고 612년 15세 풍월주에 오른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지소태후의 남자들

(c) kbs 사극 천추태후

그런데, 미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미실의 선대에 활약한 여성이 있다. 그는 다름이 아닌 법흥왕의 딸이고, 입종의 아내이며, 진흥왕(심맥부)의 어머니인 지소태후이다.

아버지 법흥이 후계로 점찍은 이는 비대이다. 비대는 법흥과 옥진(위화랑/오도) 사이에 난 아들이다.

지소는 자신의 어린 아들 진흥을 왕위에 오르게 하기 위해서, 비대의 어머니인 옥진의 아버지이고, 자신의 정부인 위화랑에서 압력을 가하고, 법흥의 다른 공주들과 모랑(법흥/보과) 등을 이용해 비대를 끌어 내린다.

법흥과 입종이 죽은 후 자신의 어린아들 진흥(입종/지소)를 왕위에 오르게 했다.

또한, 법흥이 후계자로 내세운 자신의 두번째 남편인 영실을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방해한 정치력이 뛰어난 철의 여인이다. 지금 kbs 사극 채시라가 열연하고 있는 고려의 <천추태후>보다도 앞선,  신라를 여인천하로 만든 실질적인 여왕이다.

7세에 왕위에 오른 후 진흥왕이 했다고 알려진 전반기 대부분 사건들은 지소에 의해서 결정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소태후의 남자들



지소태후는 화랑 풍월주를 만들면서 1세 위화랑으로 시작해서, 2세 미진부는 아시공의 아들로 법흥/벽화사이에 태어난 삼엽공주가 어머니가 된다. 그러니 자신의 조카가 된다. 또한, 3세 모랑은 법흥/보과 사이에 태어난 남모의 동생이다. 남모가 준정에 의해서 죽고, 모랑이 옥진의 딸인 묘도와 결혼해서 미실을 낳는다. 지소는 법흥왕과 보과사이에 태어난 3세 모랑과도 관계를 맺으니 자신의 동생과 관계를 가진것을 알 수 있다. 4세 이화랑은 1세 위화랑의 아들이다.

이처럼 1세 풍월주에서 4세 풍월주까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들 면면을 보면 사적으로 자신의 동생이고, 동생의 남편이고, 조카고, 아버지 법흥의 비인 형제와 관계를 가지고, 그의 아들을 통해서 자식을 낳기도 한다.


진흥말년부터 진평왕 초기까지가 미실의 시대였다면, 법흥왕 때 후기부터 진흥왕 중기까지는 지소태후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너무나 잘알려진 유신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 속의 서현의 아내는 만명이다. 만명은 동륜의 아내인 만호태후의 소생이다.  만호태후는 아버지 숙흘종/지소태후의 사이에 태어났다. 

이를 간략히 정리를 하면 다음과 같다.

입종/금진(위화랑/오도) -> 숙흘종/지소 -> 만호/? - > 만명/서현 -> 유신

<미실의 남자편>에서 미실은 자신의 손녀인 영모를 유신과 결혼시킨다고 했다. 이를 간략히 정리하면, 
이사부/지소->세종/미실->하종/미모(설화랑/준모)->영모

김유신이나 영모는 지소의 후손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미실이 서현을 쫓아내려고 음모를 꾸미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서현이나 유신이 껌씹는듯한 표정을 짓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뒤를 이어 16세 풍월주에 오르는 이는 보종이다. 보종은 설원랑의 아들이다. 보종은 사사로이는 유신의 처삼촌이 된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이사부(태종)를 통해서 미실의 남편인 세종을 낳는다. 그리고 사다함과 세종이 같이 사랑한 미실을 세종과 결혼 시켜 미실을 자신의 며느리로 만들어 버린다. 또한, 자신의 아들인 진흥왕의 아내인 사도의 아버지인 영실과도 관계를 하여 딸을 두기도 한다. 

이처럼 지소태후는 미실이 활동한 바로 전왕 단계에 신라는 미실이 국정에 깊숙히 개입된 것 보다도 더 깊숙이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 그러니 진평왕의 딸인 덕만이 왕이 되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다. 왕은 있었으되, 신라를 움직이는 힘은 지소->사도(진흥비)-> 미실로 넘어온 전력이 있고, 진지왕(금륜)을 몰아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것도 진흥비인 사도비와 미실이니,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드린 신라귀족 사회라면, 덕만의 왕위 계승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금진의 남자들 
 


사다함어미니 금진의 남자들


지소태후와 동시대에 사다함의 어머니인 금진이란 여인이 있다. 색공으로는 금진을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로 수 많은 남자들을 거닐고 있다. 사다함은 처음에 어머니 금진이, 남자들이 많은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어머니를 멀리 했다고 한다. 금진은 미실의 작은 할머니가 된다. 그래봐야 나이차이는 30년 안팍이겠지만 말이다.  미실의 어머니 묘도는 옥진의 딸이다. 옥진의 동생은 금진이다. 이들은 모두 1세 위화랑이 오도를 통해서 낳은 딸들이다.

어찌 되었던 금진이 처음 법흥비가 되어 관계를 가진다. 540년 법흥왕이 죽고, 나서 금진을 끔찍히 사랑한  법흥/옥진(위화랑/오도)의 소생인 비대공의 아들인 구리지와 관계를 맺어 토함, 색달, 사다함을 낳는다. 금진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설성을 통해서 설원랑을 낳는다. 그러니 지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설원랑은 사다함의 동생인 것이다.

또한, 금진은 입종과 관계하여 숙흘종을 낳는다. 숙흘종은 지소태후와 사이에서 만호를 낳고, 만호는 동륜과 사이에 진평왕과 그의 형제를 낳고, 사사로이 낳은 딸인 만명이 서현과 결혼을 하여 유신을 낳았다.  그러니 지소태후와 금진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해서 신라를 여인천하를 구축하는데 커다란 역활을 한다.

지소와 금진이 세우고, 사도와 미실이 구축하고, 만호 다듬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위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지소와 금진이 여인천하의 시대의 서막을 열고, 미실과 진흥비인 사도가 확실한 여인천하를 구축하고, 진평왕 초년에 진평왕의 모후인 만호태후가 섭정을 한다.

이를 바탕으로 몇십년후 덕만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신라에서 덕만의 바로 윗대는 여인이 국정 깊숙히 관여하는 것에 관대 했을 뿐만 아니라, 왕실과 귀족 전체가 지소/금진/사도/미실/만호 등과 피로써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덕만의 어미인 마야의 출자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다. 단지 갈문왕 복승의 딸로 되어 있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마야의 세계를 밝히고 있다.
입종/지소->송화/복승->마야/진평->천명,덕만,천화

그러니 칠숙과 석품같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진평왕의 뒤를 이어서 덕만이 왕이 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을 것이다.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어쩌면 덕만이 왕이 되는데 문제가 될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책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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