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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IN드라마/선덕여왕

선덕여왕 역사왜곡에 자유로울까? 사실은

드라마 선덕여왕 32회에서 진지왕은 삼한일통의 염원이 담기 국사의 기록을 삭제하고, 불살라 버린다. 이에 반대한 이사부와 거칠부가 미실과 결탁을 한것으로 처리를 했다. 이로서 거칠부는 진지왕이 진흥왕의 유업인 삼한일통을 계승할 뜻이 없음을 알게 된다.

거칠부는 이사부와 노리부와 함께 진지왕을 폐위하는데 미실의 뜻에 동의를 한다. 거칠부와 이사부는 삼한일통의 꿈을, 미실은 황후의 꿈을, 문노는 풍월주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한마디로 미실과 거칠부/이사부 문노는 동상이몽을 꿈꾼것이다. 


 선덕여왕을 보다 보면 어디선가 본듯한  데자뷰 같은 내용들이 참으로 많이 나온다. 진지의 분서와 역사의 훼손은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떠올린 글쓴이 만은 아닐 것이다.  비담의 화형식 장면은 김유신이 자신의 누이인 문희를 화형에 처하려는 쑈를 모방한 듯하다. 일식은 조선 세종 때 일관이 일식을 1식경을 틀리게 예측한 것을 모방한 듯 하기도 한다. 월천은 드라마 세종의 장영실이고, 덕만은 조선의 세종이다. 일식을 맞추기위한 과정은 장영실이 명나라에 들어가 책력과 회회력 등 을 가져와 천문을 연구하는데 사용한 기법 그대로다.

화랑을 각인시키는 아막성 전투는 드라마 연개소문의 북한산성 전투를 상기시킨다. 또한, 선덕여왕의 북두칠성의 화신으로 천명과 덕만을 선택한 것도, 김유신이 북두의 화신이란 모티브를 차용하여 김유신이 천명과 덕만을 수호하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게 하는 등이다.

선덕여왕 32회에서 미실과 거칠부가 <국사>의 기록을 두고 다툼을 벌인다. 미실은 지증왕 제1편에 신라의 의미를 나타내는 3가지중 삼한일통을 염원하는 부분을 빼자고 한다. 하지만 거칠부는 미실의 뜻에 동의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진지를 폐위하는데 뜻을 같이한 미실과 거칠부는 진지왕이 훼손한 <국사>의 기록 중 지증왕1편을 다시 만드는데 의견을 달리한다. 미실은 3번째 <삼한일통>의 듯이 담긴 내용은 삭제하자고 하고, 거칠부는 그럴수 없다고 맞선다. 역사란 있는 그대로를 만들어 후대의 모범이 되야하고, 그래야 지증왕의 유지를 받들 수 있다고 반발한 것이다. 하지만, 미실은 귀족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역사왜곡은 당연하다고 주장하고, 이에 반발한다면 재미가 없다고 협박을 한다.

그래서 쌍생이 태어나던 날 거칠부는 미실의 공작이던 우연이던 숨을 거둔다. 이에 문노는 미실이 장인의 죽음에 관여한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이 현상을 보면 이명박 정부들어서 역사교과서의 왜곡현상을 떠올린다. 이것도 일종의 데자뷰이다. 사극은 이처럼 현실세계에 있었던 일을 역사극에 녹아 들게 만드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역사는 왜곡되지 말아야 하고, 아무리 감춘다고 하더라도, 거칠부가 <문자사방진>이나 세필로 역사의 진실을 남겨 놓고, 이들을 추적하는 덕만과 유신같은 이가 있다면, 역사는 다시 바로 숨을 쉴수가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사실 역사는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서 감추려하면 감출수록 스스로 냄새를 내며, 드러내려는 경향이 있다. 항상 덕만과 유신처럼 지증왕 1편 수정본과 지증왕 2편 원본의 인장이 다른점을 이유로 역사를 찾아가듯, 역사에 기록된 미싱링크를 찾아서 역사를 바로 세우려하는 세력이 언제든지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선덕여왕에서 역사는 왜곡되지 말라고 하는 말이, 참으로 어처구니 없게 들리는 경우가 있다. 사기꾼이나 도적도 자신의 자식들에는 최소한 착하게 살라고 한다. 그런데 자신은 착한것과는 거리가 있게 살아간다. <법치>를 주장을 하지만 스스로는 <무치>인 경우고, <민주와자유>를 말하지만 <억압과 통제>에 익숙한 경우처럼 말이다. 물론, 좋게 봐주어서 자신의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아라고 한다는 뜻일 지도 모른다.

현대사에도 그런면이 있다. 5공시절에 국정을 운영하는 기조가 무엇일까? <정의사회구현>이였다. 그런데 쿠데타로 정권을 쟁취한 5공의 전두환이 <정의>를 말할 이유는 하등 없다. 그런데도 뻔뻔하게도 그들은  <정의>을 입에 달고 살아간다.

선덕여왕 원작자들은 역사왜곡에 자유로울까?

그렇다면 선덕여왕의 원작자는 <역사왜곡>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럼없이 말할 만큼 자유로울까?


선덕여왕 32편을 하면서도 선덕여왕은 좋게 봐주어서 대단한 실수를 하였다. <신라>라는 국명이 만들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한번의 역사왜곡을 하였다. 사실 <신라>의 국명은 지증왕 이전에도 몇번 사용되어진 국호이다. 신라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편에 송고할 예정이다. 

이번 글에서는 선덕여왕이 저지른 두가지의 실수 중 누구나 역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옥의티 만을 건들 생각이다. 진흥왕 545년 진흥왕 6년 이사부는 진흥왕에게 나라의 일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주청을 들인다. 이에 진흥왕은 거칠부로 하여금 이전선대의 기록을 정리하여 나라의 역사를 <수찬>하게 한다.

삼국사기 진흥왕 6년 7월 나라의 역사를 수찬하다.

6년(545) 가을 7월에 이찬 이사부(異斯夫)가 아뢰었다. “나라의 역사는 임금과 신하의 선악을 기록하여 포폄(褒貶)을 만대(萬代)에 보이는 것이니, 이를 편찬하지 않으면 후대에 무엇을 보이겠습니까?” 왕이 진실로 그렇다고 여겨 대아찬 거칠부(居柒夫) 등에게 명하여 문사들을 널리 모아 나라의 역사를 수찬케 하였다. - 삼국사기 진흥왕 6년 7월 나라의 역사를 <수찬>하다.

진흥왕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7살에 왕위에 오르고, 삼국유사에 의하면 15세에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대부분 통설은 7살에 왕위에 올랐다고 인정한다. 이유는 진흥왕이 왕위에 오를때 진흥(심맥부)의 모후이며 법흥왕의 딸인 지소가 수렴청정했었다. 또한, 친정을 하는 기준인 진흥 18세로 추측되는 해에 연호를 <개국>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물론, 글쓴이도 통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진흥왕 6년이면 진흥은 12살이 된다. 그렇다면 진흥왕 뒤에 수렴청정한 지소태후가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삼국유사를 따른다고 해도 20살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이순재가 중년의 모습으로 분장을 하고 출연하고 있다. 이를 단순히 옥의티라고 치부하고, 선덕여왕의 제작팀의 실수라고 넘기기에는 그동안 선덕여왕이 보여준 역사왜곡(?)은 너무나도 많다. 매회 몇번의 왜곡은 당연한듯 반복하고 있다. 요즘은 그냥 그러러니 하고 바라보고 있다. 단지, 선덕여왕 원작자들이 원본을 삼고 있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화랑세기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요 라고 글쓸 뿐이다.

정상적인 사극이라면 이순재가 등장해서 국사를 편찬할 것을 지시할 것이 아니라, 비담의 아역을 맡아 천연덕스럽게 동굴속 사람들을 다 독살했다고 말하는 덩치가 작은 15살 박지빈(1995년생) 정도의 아역이 나와서 진흥왕의 12살 배역을 소화했어야 한다.

32회 예고편에서 수나라에 간 춘추는 언제 돌아오는가?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춘추(유승호)가 33~4회에 등장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극의 흐름상 춘추는 33~4회에 등장할 이유가 하등에 없다. 풍월주 비재도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신이 18세인 612년 풍월주에 오른다. 이때 춘추가 등장한다면 603년생인 춘추 나이 10살이 된다. 

17살(93년생)인 유승호가 맡기에는 춘추의 나이와 덩치가 너무나 맞지 않는다. 또한, 최소 12회 연장이 결정된 마당에 너무 일찍 최후의 비밀병기를 빼어드는 것이다. 그냥 낚시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합리적인 드라마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추론이다. 

잼있게도 유신의 아역을 맡은 이현우의 나이가 17살이다. 지금 풍월주 비재에 참여할 적기의 나이때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현우는 유신의 몇살 아역을 한것일까? 36살(74년생) 엄태웅이 유신의 나이 8살이 되는 602년 아막성전투에도 참여하는 선덕여왕에서는 불가능이 없다.

아무리 엄태웅이 연기의 달인이라고 해도 8살 나이부터 18살나이를 소화한다는 건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엄태웅이 극중 녹아나지 못하고 겉돌 수 밖에 없다. 또한, 배우는 자기가 출연하는 배역을 연구한다. 강마에 김명민 같은 이는 극중에 몰입을 위해서 살도 빼고, 극중의 배역의 병에 대해서도 준 전문가 수준으로 연구를 하고 몰입한다. 만약, 엄태웅이 극중 배역인 김유신에 대해서 연구를 했다면 어찌 될까? 겉도는게 오히려 당연하지 않을까?

엄태웅을 비난하기 전에 엄태웅을 고립시킨 원작자와 제작진을 비난해야 하지 않을까한다.

드라마 선덕여왕, 거칠부일까? 미실일까?


하지만, 사극 선덕여왕 원작자나 제작팀에서 "역사는  왜곡해서도 안된다"는 <거칠부과>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지금까지 해온 형태로 봐서는 선덕여왕 원작자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역사왜곡은 당연하다"는 <미실과>에 속한다. 사실 미실과에 속한다고 한것도 굉장한 칭찬에 가깝다.


드라마상 미실은 지증의 유지가 무엇인지를 알고 내용을 바꾸는 <왜곡>을 하였지만, 선덕여왕의 원작자나 제작팀은  스스로 극을 보는 시청자에게 신라로 안내하고 신라를 재현하고 교육할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선전하였다.

그런데 원작자나 제작팀 스스로 무엇이 역사의 기록이고, 무엇이 역사 기록이 아닌지도 분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곡은 진실을 알고 있을때 할 수 있다

사실 "왜곡은 알고 있을 때나 할 수 있다", 또한, 대상자가 알고 있을때에 <역사왜곡>하지 말라, <곡학아세>하지 말라는 말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선덕여왕 원작자나 제작팀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할 수 있는 <역사적 지식>조차 없는 유아기적인 발상 만으로 사극을 만들고, "역사는 왜곡하면 안된다"고 거칠부의 입을 통해서 당위적인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고 난도질을 하고 있다.


사극 선덕여왕을 보는 다수의 시청자는 역사의 기록은 상관하지도 않고, 선덕여왕이 던지는 질문에는 답을 할 생각조차 없다.

그저 미실의 눈빛연기 초반에는 빛을 발하더니 너무나 똑같은 표정연기에 질렸다 던지, 비담의 웃음이나 문노의 무협담을 이야기하기 바쁘다. 딱, 시청자와 선덕여왕 제작팀은 환상의 복식조이다. 선덕여왕 제작팀인 낚시군이 던져주는 떡밥에 취해서 헤어나올 생각도 없다. 춘추(유승호)는 언제 나오며, 왜 우리의 알천랑의 분량이 적은 것이며, 너무 비담을 띄워주는 것 아니냐고 한다.


역사는 역사,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큐나 보라고 한다. 사실 역사를 알고서 드라마는 드라마, 역사와 다큐를 찾으면 귀엽기라도 하지만, 역사도 모르면서, 드라마는 드라마를 외친다. 그렇다고 이들이 사극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느냐면 전혀 그렇지도 않다. 사극의 뼈와 살은 역사적인 기록이다. 이 기록을 바꿀때는 그만한 합당한 설명이 극중에 녹아들어 있어야 한다.

또한 사극을 보면서 현 세태 풍자는 기본에 속한다. 사극을 만드는 목적 중에 커다란 부분이 과거(역사)로 부터 현재를 비판하기 위한 도구로써의 목적성을 가진다. 원작자의 현실인식과 현시대상황이 사극에 녹아들고 투영되는 것이다. 재미적인 요소는 사극의 부차적이며 극에 몰입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사극의 의도와 목적은 도외시한 채 "왜 사극을 보면서 현실 비판을 하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너희는 어느별에서 왔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이다.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이유는 엄마, 아빠, 오빠, 누나, 삼촌 "드라마와 역사는 다르다는데 어떻게 달라?" 라고 물어볼때 "그냥 드라마와 역사는 다른거야"라고 있지도 않은 권위를 내세워 찍어누르기 보다는 "드라마에서는 진흥왕이 늙은 사람으로 나오는데 진흥왕이 어릴때 거칠부가 역사를 편찬했단다" 라고 설명해 줄 정도의 최소한의 역사지식을 갖추길 바랄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