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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IN드라마/선덕여왕

서프라이즈한 선덕여왕, 의도는?

드라마 선덕여왕을 초반부터 보신분이라면, 진지왕을 폐위할때 미실(고현정)이 비담(김남길)을 안고 있다. 궁궐 바닥에 강보에 쌓인 비담을 내려 놓는 장면을 보셨을 것이다.

진지왕이 폐위된때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579년에 죽었다"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지만, 삼국유사는 <비형랑과 도화녀>의 전설을 인용해 진지왕이 579년 죽고, 2년후 연모하는 유부녀인 도화녀가 미망인이 되자 도화녀를 찾아가 관계를 하고 <비형랑>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비형랑은 582년전후에 태어난 것이 된다.

그런데 현존하는 필사본 화랑세기는 진지왕이 죽지 않고, 사도태후(진흥비)와 미실에 의해서 579년에 폐위되고 4년동안 생존하고 있었으며, 그중에 2년후에 도화녀와 관계하여 비형랑을 낳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비형랑은 용춘을 도와 596년 13대 풍월주가 되는데 혁혁한 공로가 있었다고 한다.

진지왕(임호) 576년~579년 재위

어찌되었던 <선덕여왕>에서는 진지왕 폐위 직전에 비담이 579년에 강보에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았을 때, 579년에 태어났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선덕여왕>에서는 579년 진평왕이 13세의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르고 얼마지나지 않아. 덕만과 천명이 <어출쌍생>으로 마야(윤유선)의 몸에서 태어나지만 <성골남진>의 비밀을 지키고자, 덕만은 진평왕(조민기)에 의해서 버려지고, 소화(서영희)에 의해 길려지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때 소화는 문노의 도움으로 문노가 기르는 비담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문노는 소화에게 비담과 덕만을 결혼시켜, 비담으로 하여금 신라의 왕이 되게 하여야 겠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소화는 음모을 알아차리고, 덕만을 데리고 저멀리 북막으로 떠나, 진평왕의 뜻에 따라, 덕만이 왕족이 아닌 한사람의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 되길 바란다.

이때가 580년 전후가 되는 시기가 된다. 그렇다면 덕만과 천명은 580년에 태어난 것이 된다.

여기까지 비담은 579년생이고, 덕만은 580년 생이 된다.

소화 덕만(젓먹이), 2~3살 비담

천명은 용수의 아들을 임신하지만, 용수가 미실의 계략에 의해서 죽고, 천명은 유복자로 춘추(유승호)를 낳는다. 이때가 삼국사기에 의하면 603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천명은 24살 전후에 춘추를 낳은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덕만도 이때 24살 전후가 된다.


덕만은 어머니 소화가 모래톱에 빠져 죽고, 자신을 죽이려는 칠숙(안길강)의 손을 피해 아버지라고 믿었던 문노를 찾아 신라로 돌아온다. 덕만과 천명은 여래사에 있는 문노를 찾아가는 도중에 처음 대면을 한다. 여래사의 중들은 보종(백도빈)의 수하의 손에 다 죽는다.  하지만, 문노는 태삼(태양을 삼켜라)의 촬영 일정 때문에 <선덕여왕>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덕여왕>제작진은 어쩔수 없이 문노를 비밀스런 인물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이때가 604년 전후가 되고 천명과 덕만은 25살 전후가 된다. 이때 덕만과 천명은 처음으로 어린 유신을 만난다. 이때 595년에 태어난 유신의 나이는 10살이 된다. 

천명에 의해서 유신은 용화낭도와 서라벌에 입성을 한다. 그리고 유신은 성인배역인 엄태웅을 바뀐다. 또한, 어린 배역들이 사라진다. 세월이 흘렀다는 뜻이 될 것이다. 덕만과 유신은 처음으로 전장에 참여는 하는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602년에 벌어진 아막성 전투이다. 이때 덕만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친한 동료였던, 시열이 죽는다. 이를 기회로 가야파인 김서현과 유신은 입지를 강화하고, 유신은 정식으로 화랑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천명은 유신으로 부터 덕만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소엽도를 찾는 과정에서 덕만이 자신과 같은 형제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때 처음으로 천명과 덕만의 출생년도가 <선덕여왕>에서 처음 등장을 한다. 천명과 덕만은 <임술년>생이 된다. 임술년은 당시 진평왕시기에는 602년 밖에 없다. 그러니 천명과 덕만은 602년에 태어난 것이 된다.

임술년(602년)생 인명(덕만)과 건복1년(584년) 형종(비담)

소화와 문노의 대화를 엿들은 비담은 비담은 풍월주 비재가 벌어지는 612년 자신의 출생에 대한 비밀을 찾아. 덕일사에서 형종(비담)의 사주와 인명(덕만)의 사주를 발견하고, 비담 자신이 형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 비담은 자신이 "<건복원년> 584년에 태어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비담은 황궁서고에 찾아 들어가, <건복원년> 진지왕의 기록을 살피고, 형종이 진지왕과 미실 사이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에 자신은 왕족이고, 자신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미실>이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것이다. 이에 비담은 미실에 자신을 버린 비정함에 미실을 자극하듯이 어릿광을 부린다. 그리고 비담은 612년 풍월주 비재에 참여하여 유신이 풍월주가 되는데 도움이 되도록 좌충우돌 허허실실 전법으로 자신의 동모형제인 보종을 물리치고, 비재의 결승전에 오르게 된다.


여기까지가 선덕여왕의 주요 배역인 천명과 덕만과 유신과 비담과 춘추의 출생년도를 이야기 했다. 대략 읽어본 사람은 눈치를 챘을 것이다. <선덕여왕>내에서 주요배역들의 출생년도가 극중에서도 흘릴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579년 비담은 진지왕이 폐위된 해에 태어 난다.
580년~581년 사이 진평왕 초년에 마야의 소생으로 덕만과 천명이 태어난다.

천명과 덕만은 <임술년>에 태어 났다고 <선덕여왕>은 공공연히 여러번 자주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임술년은 602년 밖에 없다.

진흥왕(14세) 6년 7월 역사를 기록하게 함.

비담은 <건복원년>에 태어났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의 기록을 <국사>중 진지왕 건복원년편에서 찾아낸다. 건복원년은 584년으로 진평왕 6년이고, 진평왕이 18세가 되는 때이다. 그러니 비담은 진지왕 건복원년을 찾을 수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선덕여왕>에서는 진지왕의 기록에서 건복원년을 찾고 7월기사에서 형종(비담)의 기록을 찾아낸다. 또한, 이때 4월 기사와 5월 기사에 이찬 거칠부에 관한 기록까지 발견하게 된다. 삼국사기나 거칠부 열전에 의하면 거칠부는 579년 즈음에서 죽었음 알 수 있다. 또한, <선덕여왕>에서 문노의 장인인 거칠부가 진평왕 초년에 미실에 의해서 죽은 것으로 나온다.


어찌 되었던, <선덕여왕>에 의하면 비담은 건복원년 584년에 태어난것이고, 천명과 덕만은 <임술년:602년>에 태어난 것이다.

이렇게 되면, 602년에 태어난 천명과 덕만은 595년에 태어난 유신보다도 8살이 어리다. 하지만, 선덕여왕에서는 유신은 덕만과 천명보다 10살 가까이 어린 나이로 나온다.

비담과 덕만의 나이차이는 18살이 된다. 하지만, 덕만과 비담이 처음 대면하는 때 <선덕여왕>에서는 2~3살 비담과 강보에 쌓인 덕만이 있을 뿐이다.

임신(?)한 여아: 배속에 기생쌍둥이를 가지고 태어남.

임술년에 태어난 천명은 용수와 관계를 하여 603년 춘추를 낳는다. 그냥 임술년에 태어난 천명이 603년에 춘추를 낳았다고 하니 이해가 잘 안되는것 같은데,602년에 태어난 천명이 춘추를 낳았다고 하면 쉽게 이해가 될것이다. 신라의 성골은 신성이 있었다.

또한, 이는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요즘도 가끔, 서프라이즈나 세상에 이런일이나 해외토픽으로 간간히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른점이 있다면 태어나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이 선덕여왕과는 다를 뿐이다.

문제는 춘추는 용수의 자식이 아닌 진평과 마야의 3쌍둥이중에 천명과 덕만이 먼저 태어나고, 춘추는 1년 뒤에 누이인 천명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것 뿐이다. 그러니 춘추는 진골로 왕이 된것이 아닌 성골인 진평왕의 피를 이어받어서 태어난 것이 아닐까한다.

612년, 15세 화랑 풍월주를 뽑는 비재가 벌어지는데, 덕만(이요원)은 11살이고, 유신(엄태웅)은 18살이고, 춘추(유승호)는 10살이 된다. 또한, 비담(김남길)은 29살이 된다.


612년 10살 춘추(유승호)

어쩌면 <선덕여왕>에서는 우리가 모르는 극적인 반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놀라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선덕여왕>은 그동안 꾸준히 조금씩 시청자를 깜짝짬짝 놀라게 하였다.

또한, 선덕여왕에서는 과학적 상식을 깨고 불가능한 <보름날> <일식>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리고 잘못된 사실에 지적을 하여도 네티즌들은 오히려 면박을 주기 일 수 였다. 

왜 드라마를 보는데 방해하냐는 것이고, 단지,  선덕여왕이 <드라마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이런 사실이 드라마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언론은 10년, 20년으로 후퇴를 하고, 기무사가 민간을 사찰을 해도, 국정원이 음모론을 남발하여도, 통일부가 DDos의 공격을 북한의 공작이라고 해도, 북한이 댐의 물을 방출해도 북한의 의도적인 수공도발이라고 거짓말을 해도 그러려니 한다. 아주 거짓말이 일상화가 되어버렸다.

또한, 이명박 정부들어서 임명하는 관료들은 하나같이 다주택에, 논문중복게재에, 군문제에, 위장전입에, 땅투기, 부동산 투기, 탈법을 하던 의당 받아 들인다. 이들은 공적인 자리에는 심사대상에 올려 놓아서도 안되는 자들이다. 사전에 필터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격심사에 걸려져야할 기본인 도덕성은 필요가 없다.

능력이라면 비도덕도 능력이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개차반으로 살아도 고급 관료가 될 수 있다는 능력은 보여주었다. 단지 그들이 능력이 있지도 않는데 능력이 있다고 "말만하면 다 이루어지고" 용서가 된다.

마찬가지로 선덕여왕도 무엇을 하던 용서가 되는 무치인 시청율 <성골>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니 미실이 나중에 덕만으로 이름을 바꾸고, 632년 꿈에 그리던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되었다고 한다고 해서 탓할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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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고현정), 비담(김남길)

미실이 알고 보니 선덕(덕만)이였다"는 그래도 그동안 선덕여왕이 보여주었던 서프라이즈한 모습보다는 개연성도 있고 합리적이다. 시청율을 위해서라면 덕만(이요원)보다 인기 있는 미실(고현정)이 왕이 되는게, 당연히 성골인 <덕만>이 왕이 되는것 보다는 현대인의 시각으로 재해석 한다면 미실이 입지전적인 인물로 더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일본서기>를 읽다보면 몇몇의 왕들은 "신하들과 이름을 바꾸었다"는 기록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사실 이름을 바꾼게 아닌 "왕통이 바뀌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지만, 어찌되었던 신하의 이름을 왕들이 사용한다. 

어쩌면 <선덕여왕> 제작진이나 원작자가 드라마 곳곳에 오류를 의도적으로 흘렸을지도 모른다. 미실을 덕만으로 만들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말이다. 또한, 사극은 "당시의 현세태를 풍자한다"고 했다. 어쩌면 <선덕여왕>은 현세태를 자신의 극중 인물의 흔들리는 출생과 불가능한 <일식>을 통해서 현재의 가치기준이 흔들리는 도덕성에 비댓고, 속이는것도 능력이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 주였다. 또한, 이들에게는 충분한 이유와 의도가 있다고 믿어주는 지지자들과 네티즌들도 있다.

이처럼 제작진과 원작진,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현실비판을 하는 <선덕여왕>은 국민사극의 반열에 올라야 하지 않을까 한다. 작가가 역사의 기록을 바꾸고, 극중에서도 스토리가 흔들린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데도 의도가 있다고 한다. 만약, 작가나 원작자에게 고도의 의도가 있다면, 현실비판을 위한 자기희생정신 말고는 발견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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