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5~548년 미실 탄생
미실은 아버지 미진부와 묘도사이에 태어났다. 어머니 묘도는 진흥왕비가 되는 사도와 자매간이다. 사도는 7살에 진흥왕의 비가 되었다.
미실의 외할아버지는 영실각간으로 법흥왕이 왕위를 물려줄 생각을 하였던 사람이다.
미실의 동생은 미생으로 550년에 태어났다. 그러니 미실은 550년 이전에 태어나야 한다.
551년 미실은 사다함의 동복아우인 설원랑과 함께 화랑을 이끌고, 진흥왕의 한수침공과 마운령 전투에 참전한다.
설원랑은 545년생인 사다함보다 3살이 어렸다. 그러니 설원랑은 548년생이 된다.
551년 설원랑은 4살이고, 미실은 사다함과 같은 나이라면 6살이 되어, 수천의 군사를 이끌고 마운령 전투에 참전을 하였지만, 수백명도 안되는 군사만을 남겨두고 후퇴할수 밖에 없었다. 이때에 비로소 미실은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고, 덕만이 612년 유신이 풍월주에 오른 직후, 안강성에서 귀족의 매점매석으로 배고픔에 지친 백성들이 난을 일으킨다. 덕만이 안강성의 민란주동자를 직접 죽였을 때 설원랑과 한담을 하면서 덕만도 업그레이드 될것이라고 이야길 한다.
561년 이전 미실은 사다함과 관계를 하기전에 지소태후와 이사부 사이에 태어난 세종과 관계를 한다. 하지만, 지소태후의 미움을 받고 궁에서 쫓겨난다. 궁을 나온 미실은 사다함과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다. 사다함은 대가야가 반란을 일으키자 출전하여 전공을 세운다. 사다함이 돌아 왔을땐 미실은 다시 세종과 사이가 좋아졌고, 지소태후가 세종과 결혼하는 것을 허락한다. 사다함은 닭쫓던 개 지붕처다보듯 헛물만 켠것이다. 미실은 다시 세종 여자가 되어 있었다.
576년 진흥왕은 설원에게 "신라의 적 미실을 척살하고 신라의 정의를 바로 세우라"는 비밀지령을 내린다. 하지만 설원은 진흥을 배신하고 미실의 편에 선다. 미실은 진흥왕을 독살하려 했지만 진흥왕이 자연사를 하는 바람에 독살에 실패를 하였다.
동륜의 장자인 백정(진평원)을 옹립하라는 진흥왕의 유지도 거부하고 유서를 조작한다. 그리고 황후로 만들어준다는 금륜(진지왕)을 옹립한다.
진지는 진흥의 유지인 삼국통일의 꿈을 받을 생각이 없이 세월을 보낸다. 또한, 미실에게 황후가 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후 진흥왕 6년 545년에 만들어진 <국사>에서 "덕업일신 망라사방'을 빼버린다.
진흥왕 6년은 진흥왕 나이 12 살이였다. 하지만, 이순재가 아역배우 빰치게 수염도 기르고 아역을 훌륭히 소화하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아니면 배우 이순재가 12살 영계 진흥왕을 소화할 수 있겠는가? 이순재 개인으로서도 12살 아역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영광스럽지 않을까 한다.
579년 거칠부와 문노는 진흥왕의 유지를 받들지 않는 진지(금륜)에 불만이 많았다. 진지왕과 미실사이에는 형종(비담)이 태어났지만, 황후가 되지 못한 미실은 거칠부와 문노와 동상이몽의 꿈을 같이하여 진지왕를 폐위시켜 버리고 어린 진평(백정)을 왕위에 올린다. 그리고 비담을 버린다. 하지만 이때 문노가 형종을 몰래 키운다. 형종은 579년에 태어났다.
백정이 왕위에 오를 때, 동생인 백반은 진정갈문왕 국반은 진안갈문왕을 삼는다. 하지만, 이들은 극중 내내 어디로 사라졌는지 언급이 없다. 아마도 미실이 죽여버렸을 수도 있다. 아니면 미실의 손아귀에서 손도 쓰지 못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580년 13살 어린 진평왕을 왕위에 옹립하고, 진평의 어린 아내인 마야를 죽이려 한다. 이때 마야는 천명과 덕만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명과 덕만은 신성이 있어서 문노와 소엽도의 도움의 구사일생 위기 탈출을 한다. 그리고 임술년이 되어 쌍둥이를 낳는다.
이때 국사 재편찬을 주장한 문노의 장인인 거칠부도 죽여 버린다. 거칠부는 재주가 좋아서 젊은 시절 진흥왕의 목숨을 구해준 소엽도를 만들고, 소엽도에 이루어 질수 없는 꿈인 삼한일통의 '덕업일신 망라사방' 여덟글자을 남긴다. 거칠부는 죽기전에 소엽도에 비밀이 있다고 진평에게 사방지 놀이로 밀서를 전달한다.
쿠데타에 성공한 미실은 자신의 사람들로 궁을 비롯해서 병부까지 장악을 한다.
임신한 마야는 천명과 덕만 쌍둥이가 태어난다. 진평은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 때문에 왕통이 끊길 것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부인을 위해서 둘째 덕만(인명)을 버린다.
미실은 덕만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다만, 자신의 <천신황녀> 후계자로 삼아 신라를 경영할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문노는 덕만과 소화를 비담이 있는 은신처로 피신을 시킨다.
아장아장 걸을 때 보았던 어린 덕만(인명)을 보고, 한눈에 반해서, 일생일대의 비운의 짝사랑을 시작한다.
문노는 비담과 덕만(인명)의 사주를 보고 이들처럼 환상적인 궁합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평이 아들을 낳을 수 없는 쌍둥이를 낳았으니 비담이 덕만과 결혼하여 사위왕으로 신라의 왕이 되어 진흥왕의 유업인 <삼국통일>을 이룰수 있다는 환상에 빠진다.
비담은 <건복원년> 칠월칠석에 태어났고, 덕만과 천명은 <임술년>에 태어났다. 소화는 비담이 진지왕과 미실의 자식임을 알고, 결혼을 시킬수 없다며, 신라를 떠나 사막으로 피해 살아간다.
비담과 덕만의 사주가 끝내준다면 비담과 천명과의 사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도망간 덕만보다는 천명과 결혼시킬 생각을 해야하는데 용수에게 천명을 빼앗기고 만다.
584년 건복원년 세월은 흘러 진평왕이 성인이 되었다. 이때 연호를 <건복>으로 바꾸고 직접통치를 하지만, 실권은 여전히 미실에게 있었다.
612년, 579년에 태어난 줄 알았던 비담은, 유신이 풍월주가 되던 해에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 수 있는 단서를 문노가 감춰둔 사주단지에서 발견 한다. 그리고 국사 진지왕 마지막 편에서 자신의 흔적을 발견 한다.
너무나 또렸이 건복원년에 진지왕과 미실 사이에 형종이 태어났다는 기록을 보고 자신도 왕의 혈손이니 덕만과 결혼할 수 있다는 꿈을 꾸지만, 덕만은 사랑하는 유신만 쳐다본다.
612년 15대 풍월주 비재로 김유신이 풍월주가 되었을 때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된 비담은 579년생으로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584년생으로 알고 있었을까? 한살이라도 젊은 584년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한다.
588년 무신년 진흥왕은 설원랑에게 죽으면서 "신라의적 미실을 척살하고 신라의 정의를 세우라"고 밀서를 준다. 하지만 설원랑은 미실을 죽이지 않고, 미실의 편에서 진흥왕을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 미실의 난중에 비담의 손에 들어 갔지만, 비담은 덕만에게 사실을 숨긴다. 덕만이 비담을 신뢰하지 않는 모티브로 사용되어 질것 같다.
사실 밀서를 줄때는 옥새를 찍지 않는다. 진흥왕 말년에 드라마상 옥새를 관장하는 자는 미실이였고, 그래서 <새주>라고 불리지 않았던가. 당연히 옥새가 찍히지 않아야 하고 진흥왕의 <수결>이 있어야 한다. 또한, 진흥왕은 576년에 사망한다. 만약, 비담이 숨기지 않았다고 해도, 공개되었다면 다치는건 미실이 아니고 덕만이 된다. 문서위조의 달인을보유한 죽방이 있는 덕만이기 때문이다.
설마 한나라를 40여년 동안 책임진 미실이 무신년(588년)이 언제이고, 진흥왕이 죽은 <병신년>을 모르겠는가? 그리고 직접 미실 자신이 설원에게 보관시키고 있었는데 말이다. 또한, 공식문서에 연호도 사용하지 않고 <무신년>이라고 쓸이유도 없다. 576년은 태창 9년에 해당한다. 그런 의미로 비담은 너무나 잘 숨긴것이다. 안그럼 전세는 미실편으로 급격히 바뀌고, 미실이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드라마 <미실>의 주인공 미실 고현정 투혼으로 지금까지 인기를 유지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난을 일으키지만 덕만의 반격으로 경남 합천에 있었던 대야성으로 숨어든다. 덕만은 대야성에 독을 푼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리자. 내부혼란에 빠진 미실 고현정은 난에 실패하고, 미실은 대야성에서 독배를 마시고 아름다운 자살로 생을 마친다. 한마디로 자살미화이다. 고현정의 자살로 마감된 드라마 <미실>은 시즌 2 드라마 <선덕여왕>이 만들어 지는 시점이다.
또다시 선덕여왕 추가연장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주인공인 덕만 이요원과 자신들이 이전에 대본에서 뭘 대사로 썼는지도 모른작가 중 일인인 김영현이 반대하고 있는 입장이지만, mbc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추가연장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드라마 선덕여왕은 드라마 미실이였다. 사실 선덕여왕을 다룰려면 지금까지 한 50회를 다시해야만 정상적인 덕만이 여왕이 되는 준비기간과 여왕으로서 삼국통일의 초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야 애초 제작팀의 기획의도에 맞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쪽대본에, 대본의 부실속에서도 배우들이 부상이 일상화가 된 시점에서 다시 추가 연장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차라리 미드처럼 시즌 1으로 종료를 하고, 숙려기간을 두고, 쪽대본이 아닌 완성된 대본을 바탕으로 역사 전문가들에 감수를 받고, 치밀하게 준비하여 완성도 높은 극을 선보여야 할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1주일 1회방영하는 금요일로 편성을 바꾸어 좀 더 배우들이 연기에 집중하고, 내실을 다지면서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어쨌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온 기록을 바탕으로 미실의 탄생부터 젊은 시절을 시간순으로 재구성하였다. 처음 기획은 미실이 태어나서 난의 실패로 자살하는데 까지를 정리할 생각이였다. 하지만 글이 너무 길어져 버렸다. 그래서 588년 무신년 진흥왕의 칙서까지만 다뤘다. 2부는 다음기회로 넘기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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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의 동생은 미생으로 550년에 태어났다. 그러니 미실은 550년 이전에 태어나야 한다.
551년 미실은 사다함의 동복아우인 설원랑과 함께 화랑을 이끌고, 진흥왕의 한수침공과 마운령 전투에 참전한다.
설원랑은 545년생인 사다함보다 3살이 어렸다. 그러니 설원랑은 548년생이 된다.
12년 신미(진흥왕 12년: 551)에 왕이 거칠부와 대각찬(大角)(특등위)구진(仇珍), 각찬(1~2등) 비태(比台), 잡찬(3등) 탐지(耽知), 잡찬 비서(非西), 파진찬 노부(奴夫), 파진찬(4등) 서력부(西力夫), 대아찬(5등) 비차부(比次夫) 아찬(6등) 미진부(未珍夫) 등 여덟 장군에게 명하여 백제와 더불어 고구려를 침공하게 하였다. 백제 사람들이 먼저 평양(平壤)을 격파하고 거칠부 등은 승리의 기세를 타서 죽령 바깥, 고현(高峴) 이내의 10군을 취하였다. - 삼국사기 거칠부 열전
551년 설원랑은 4살이고, 미실은 사다함과 같은 나이라면 6살이 되어, 수천의 군사를 이끌고 마운령 전투에 참전을 하였지만, 수백명도 안되는 군사만을 남겨두고 후퇴할수 밖에 없었다. 이때에 비로소 미실은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고, 덕만이 612년 유신이 풍월주에 오른 직후, 안강성에서 귀족의 매점매석으로 배고픔에 지친 백성들이 난을 일으킨다. 덕만이 안강성의 민란주동자를 직접 죽였을 때 설원랑과 한담을 하면서 덕만도 업그레이드 될것이라고 이야길 한다.
561년 이전 미실은 사다함과 관계를 하기전에 지소태후와 이사부 사이에 태어난 세종과 관계를 한다. 하지만, 지소태후의 미움을 받고 궁에서 쫓겨난다. 궁을 나온 미실은 사다함과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다. 사다함은 대가야가 반란을 일으키자 출전하여 전공을 세운다. 사다함이 돌아 왔을땐 미실은 다시 세종과 사이가 좋아졌고, 지소태후가 세종과 결혼하는 것을 허락한다. 사다함은 닭쫓던 개 지붕처다보듯 헛물만 켠것이다. 미실은 다시 세종 여자가 되어 있었다.
545년 이사부, 노리부, 12살 진흥왕
동륜의 장자인 백정(진평원)을 옹립하라는 진흥왕의 유지도 거부하고 유서를 조작한다. 그리고 황후로 만들어준다는 금륜(진지왕)을 옹립한다.
진지는 진흥의 유지인 삼국통일의 꿈을 받을 생각이 없이 세월을 보낸다. 또한, 미실에게 황후가 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후 진흥왕 6년 545년에 만들어진 <국사>에서 "덕업일신 망라사방'을 빼버린다.
6년(545) 가을 7월에 이찬 이사부(異斯夫)가 아뢰었다. “나라의 역사는 임금과 신하의 선악을 기록하여 포폄(褒貶)을 만대(萬代)에 보이는 것이니, 이를 편찬하지 않으면 후대에 무엇을 보이겠습니까?” 왕이 진실로 그렇다고 여겨 대아찬 거칠부(居柒夫) 등에게 명하여 선비들을 널리 모아 [국사를] 편찬케 하였다. - 삼국사기 진흥왕 6년
진흥왕 6년은 진흥왕 나이 12 살이였다. 하지만, 이순재가 아역배우 빰치게 수염도 기르고 아역을 훌륭히 소화하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아니면 배우 이순재가 12살 영계 진흥왕을 소화할 수 있겠는가? 이순재 개인으로서도 12살 아역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영광스럽지 않을까 한다.
원년(579) 8월에 이찬 노리부(弩里夫)를 상대등으로 삼았다. 친동생 백반(伯飯)을 진정갈문왕(眞正葛文王)으로, 국반(國飯)을 진안갈문왕(眞安葛文王)으로 봉하였다.
백정이 왕위에 오를 때, 동생인 백반은 진정갈문왕 국반은 진안갈문왕을 삼는다. 하지만, 이들은 극중 내내 어디로 사라졌는지 언급이 없다. 아마도 미실이 죽여버렸을 수도 있다. 아니면 미실의 손아귀에서 손도 쓰지 못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580년 13살 어린 진평왕을 왕위에 옹립하고, 진평의 어린 아내인 마야를 죽이려 한다. 이때 마야는 천명과 덕만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명과 덕만은 신성이 있어서 문노와 소엽도의 도움의 구사일생 위기 탈출을 한다. 그리고 임술년이 되어 쌍둥이를 낳는다.
이때 국사 재편찬을 주장한 문노의 장인인 거칠부도 죽여 버린다. 거칠부는 재주가 좋아서 젊은 시절 진흥왕의 목숨을 구해준 소엽도를 만들고, 소엽도에 이루어 질수 없는 꿈인 삼한일통의 '덕업일신 망라사방' 여덟글자을 남긴다. 거칠부는 죽기전에 소엽도에 비밀이 있다고 진평에게 사방지 놀이로 밀서를 전달한다.
임신한 마야는 천명과 덕만 쌍둥이가 태어난다. 진평은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 때문에 왕통이 끊길 것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부인을 위해서 둘째 덕만(인명)을 버린다.
미실은 덕만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다만, 자신의 <천신황녀> 후계자로 삼아 신라를 경영할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문노는 덕만과 소화를 비담이 있는 은신처로 피신을 시킨다.
아장아장 걸을 때 보았던 어린 덕만(인명)을 보고, 한눈에 반해서, 일생일대의 비운의 짝사랑을 시작한다.
문노는 비담과 덕만(인명)의 사주를 보고 이들처럼 환상적인 궁합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평이 아들을 낳을 수 없는 쌍둥이를 낳았으니 비담이 덕만과 결혼하여 사위왕으로 신라의 왕이 되어 진흥왕의 유업인 <삼국통일>을 이룰수 있다는 환상에 빠진다.
비담은 <건복원년> 칠월칠석에 태어났고, 덕만과 천명은 <임술년>에 태어났다. 소화는 비담이 진지왕과 미실의 자식임을 알고, 결혼을 시킬수 없다며, 신라를 떠나 사막으로 피해 살아간다.
비담과 덕만의 사주가 끝내준다면 비담과 천명과의 사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도망간 덕만보다는 천명과 결혼시킬 생각을 해야하는데 용수에게 천명을 빼앗기고 만다.
584년 건복원년 세월은 흘러 진평왕이 성인이 되었다. 이때 연호를 <건복>으로 바꾸고 직접통치를 하지만, 실권은 여전히 미실에게 있었다.
너무나 또렸이 건복원년에 진지왕과 미실 사이에 형종이 태어났다는 기록을 보고 자신도 왕의 혈손이니 덕만과 결혼할 수 있다는 꿈을 꾸지만, 덕만은 사랑하는 유신만 쳐다본다.
612년 15대 풍월주 비재로 김유신이 풍월주가 되었을 때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된 비담은 579년생으로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584년생으로 알고 있었을까? 한살이라도 젊은 584년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한다.
무신년, 588년
사실 밀서를 줄때는 옥새를 찍지 않는다. 진흥왕 말년에 드라마상 옥새를 관장하는 자는 미실이였고, 그래서 <새주>라고 불리지 않았던가. 당연히 옥새가 찍히지 않아야 하고 진흥왕의 <수결>이 있어야 한다. 또한, 진흥왕은 576년에 사망한다. 만약, 비담이 숨기지 않았다고 해도, 공개되었다면 다치는건 미실이 아니고 덕만이 된다. 문서위조의 달인을보유한 죽방이 있는 덕만이기 때문이다.
설마 한나라를 40여년 동안 책임진 미실이 무신년(588년)이 언제이고, 진흥왕이 죽은 <병신년>을 모르겠는가? 그리고 직접 미실 자신이 설원에게 보관시키고 있었는데 말이다. 또한, 공식문서에 연호도 사용하지 않고 <무신년>이라고 쓸이유도 없다. 576년은 태창 9년에 해당한다. 그런 의미로 비담은 너무나 잘 숨긴것이다. 안그럼 전세는 미실편으로 급격히 바뀌고, 미실이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드라마 <미실>의 주인공 미실 고현정 투혼으로 지금까지 인기를 유지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난을 일으키지만 덕만의 반격으로 경남 합천에 있었던 대야성으로 숨어든다. 덕만은 대야성에 독을 푼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리자. 내부혼란에 빠진 미실 고현정은 난에 실패하고, 미실은 대야성에서 독배를 마시고 아름다운 자살로 생을 마친다. 한마디로 자살미화이다. 고현정의 자살로 마감된 드라마 <미실>은 시즌 2 드라마 <선덕여왕>이 만들어 지는 시점이다.
또다시 선덕여왕 추가연장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주인공인 덕만 이요원과 자신들이 이전에 대본에서 뭘 대사로 썼는지도 모른작가 중 일인인 김영현이 반대하고 있는 입장이지만, mbc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추가연장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드라마 선덕여왕은 드라마 미실이였다. 사실 선덕여왕을 다룰려면 지금까지 한 50회를 다시해야만 정상적인 덕만이 여왕이 되는 준비기간과 여왕으로서 삼국통일의 초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야 애초 제작팀의 기획의도에 맞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쪽대본에, 대본의 부실속에서도 배우들이 부상이 일상화가 된 시점에서 다시 추가 연장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차라리 미드처럼 시즌 1으로 종료를 하고, 숙려기간을 두고, 쪽대본이 아닌 완성된 대본을 바탕으로 역사 전문가들에 감수를 받고, 치밀하게 준비하여 완성도 높은 극을 선보여야 할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1주일 1회방영하는 금요일로 편성을 바꾸어 좀 더 배우들이 연기에 집중하고, 내실을 다지면서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어쨌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온 기록을 바탕으로 미실의 탄생부터 젊은 시절을 시간순으로 재구성하였다. 처음 기획은 미실이 태어나서 난의 실패로 자살하는데 까지를 정리할 생각이였다. 하지만 글이 너무 길어져 버렸다. 그래서 588년 무신년 진흥왕의 칙서까지만 다뤘다. 2부는 다음기회로 넘기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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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50회, 미실 고현정 대야성 독 푼다고 눈물 흘리며 자살미화? - 제작자는 고현정 아름다운 하차 안티?
2009/11/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고현정 미실 최후 자살 죽음장소, 대야성 선택이유? 수노(手弩)는 왜(일본)산 최고?
2009/11/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진흥왕(이순재) 신라의적 미실(고현정)척살 - 만화보다 못한 미실 죽음 고현정 하차
2009/11/0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의 난, 고현정 하차로 본 신라는 황금의 엘도라도 였을까?
2009/11/0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고현정 하차 기념, 미실 마지막촬영, 현대극으로 본 덕만 출생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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