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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드라마 선덕여왕 52회에서 미실의 난을 진압한 덕만은 신라 27대왕에 오른다. 등극과 함께 용춘을 상대등에 김유신의 아버지 서현을 병부령에 임명한다.

정상적인 선덕여왕의 극중흐름이라면 미실의 난은 병자년 615년에 일어나야 극중 리얼리티가 살아 나는 것이지만, 그동안 드라마 선덕여왕이 아닌 드라마 미실을 찍고 있던 선덕여왕 제작자는 자신들의 주장인 드라마 선덕여왕의 재위기간 17년을 남은 12회로는 덕만의 본모습을 그릴 수 없다는 판단에 미실의 난을 631년에 일어난 칠숙과 석품의 난으로 바꾸어 버렸다. 극중에서 16년의 세월을 압축해서 같은 해에 일어난 일로 극화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미실의 난을 극화 하면서 제작자는 극중 리얼리티를 해치는 우를 범했다. 병자년 615년에 덕만이 중과세안과 화백회의 중망제(다수결)를 만들려 하자 바로 미실이 정변을 일으키고 덕만을 잡으려는 칙령을 발표한다. 이때 미실은 기유년(649년)이라고 발표한다. 그리고 다시 631년 칠숙의 난으로 돌변한다.  

작가의 창작의 자유와 한계 

사실 소설이나 사극이나 드라마나 상관없이 특정한 사건을 배제하고 극을 이끌어가는 것은 작가의 선택사항이다. 이는 작가의 창작의 자유에 해당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비판하거나 비난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그래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지귀설화>나 <미혼모 문희의 불쇼>나 덕만의 지기삼사 중 <모란꽃 병풍>이나 덕만의 예지력 중의 백제군의 게릴라가 독산성에 침입한 것을 알았다는 영묘사 <옥문지 사건>은 나오지 않아도 이를 비판하면 안된다.  

특정한 역사적인 기록의 사건에 대해서 작가가 인용하고 극에 노출을 했다면, 사건의 해석상의 문제는 <창작>의 영역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를 존중해 주어야 하고, <창작의 자유>를 보장해주어야 하는건 불문가지이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견해나 해석이 아닌 <사건>에 기록이 존재한 인물 기초 정보 설정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또한, <사건>의 개연성이 있어야 하고 이를 극에서 충분히 녹여내는 건 작가의 영역에 속한다. 이를 녹여내지 못한다면 비판받아야 하는 건 자명하다.  

그런면에서 미실의 난이 칠숙의 난이 될 수도 있다. 다만 극에 칠숙의 난이 미실의 난이 될 수 있는 충분한 개연성을 확보했는가는 별도의 문제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615년 전후의 사건으로 그리고 있던 극중 시제가 갑자기 631년 칠숙의 난으로 15년을 압축해서 보여주었다면, 덕만이 왕이 되고 유신이나 극중 인물들이 수염을 달고 10년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장치를 마련했어야 한다.  이는 사극이 아닌 일반 드라마에서도 기초상식에 해당한다.  

어찌 되었던, 제목은 선덕여왕이였지만, 실제 제작가가 의도한 대로 미실 중심으로 극이 전개 되므로해서 주인공으로 내세운 덕만은 미실의 그늘에 가리운 존재가 되었으며, <덕치>보다는 <공포정치>로 미실 따라하기에 여념이 없다. 덕만이 왕위에 오르고 죽고 나서 왜 시호가 <선덕>이였는지 알 수 있는 내용은 극중에 없다는 뜻이다.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가 비판 받는 이유

 역사학계의 미스테리중에 하나는 덕만이 몇살에 왕위에 올랐는가?하는 의문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일반적인 통설에 따르면, 덕만은 50세 안팎에 왕위에 올랐다는 설이 다수설이다. 다수설이 항상 오른건 아니다. 어찌되었던 덕만은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천명의 동생이 아니고, 천명의 누이이기 때문에 극중에서 천명과 쌍둥이로 그런것은 역사왜곡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논란이 되고 있는 <화랑세기>를 사서로 인정하여 덕만이 천명의 동생이라는 설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기존 통설과 절충안으로 덕만과 천명을 쌍둥이로 만들어 <어출쌍생>이라는 기발한 장치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덕만이 천명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 동생으로 그려져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화랑세기와 기존 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을 절충했지만, 화랑세기의 기록를 전혀 배제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내용이 덕만에게는 3명의 남편이 있었다는 기록은 철저히 배격하고 있고,  천명이 덕만보다 더 오래 천수를 누렸다는 기록을 버리고 <대남보>의 잘못된 화살에 죽여 버렸다. 이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또한, 극중에 <장치>없이 드라마 갖춰야할 기본적인 상식에 속하는 극중 리얼리티와 개연성의 부재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선덕여왕은 전체적으로 극중 개연성을 만드는데는 총체적으로 실패했다. 고대 신라 경주로 가는 길을 안내하겠다는 네비게이션이 엉뚱하게 제주도나 저 멀리 삼천포 달나라에 가버리고 말았다. 드라마 선덕여왕에 신라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글쓴이가 선덕여왕 작가의 사극을 비판하는 줄 아는 분이 있다. 위에 언급했지만 창작의 자유는 지켜주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건을 해석하는 건 작가의 영역에 속한다. 다만, 극중 장치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갈지자 횡보를 하는 드라마 기초 상식인 극중 리얼리티와 개연성의 부재는 비판의 칼을 드리댄다.

이는 사극이 갖춰야할 기본을 비판하는게 아니고 일반 드라마가 갖춰야 할 기본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니 "역사를 알려면 <다큐>를 보지 왜 드라마를 보냐거나 재미를 위해서 작가가 일부러 그랬다"는 드라마, 역사 둘다 모르고 네티켓도 없는 유아틱한 댓글을 달지 말아 주었음 한다.

그러나 신당서(新唐書)와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모두 『정관 5년(631) 신묘에 신라 왕 진평이 죽었다.』고 하였으니, 어찌하여 그것이 잘못되었을까?

 사실 덕만이 칠숙의 난이 일어나기 전에 왕위에 올랐는지, 칠숙의 난을 진압한 이후에 왕이 되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삼국사기는 <고기>의 기록을 근거로 632년 봄 1월에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되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김부식은 삼국사기에 이설도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삼국사기 딴지맨 일연은 덕만이 인평원년 634년에 정식으로 왕위에 올라 14년간 다스렸다고 전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은 580년생이다. 덕만은 632년에 왕위를 잇는다. 이때 덕만은 53세이다,  90살이 넘은 흑발마녀 미실처럼 덕만도 늙지 않는 묘약을 먹은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드라마 극이 아닌 실제 역사에 기록된 미실의 난으로 압축된 615년에서 631년 사이에 신라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 났을까? 또한, 덕만이 632년에 27대 왕으로 등극하고 10년을 건너뛰고 극중 시제인 640년 사이에는 어떠한 일이 벌어졌을까?  일단, 덕만이 왕이 되었을 때 몇살이였는지 부터 알아 보도록 하자. 
 

성조황고? 어린 덕만은 불쌍하다.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 632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근거로 덕만은 천명보다 나이가 많았을 것이다.라는 설이 통설이다. 하지만, 통설의 잘못된 점이 있다. 일단, 덕만이 천명보다 나이가 많았을 것이란 근거는 춘추가 왕이 될 때의 기록에서부터 비롯된다.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또는 용수(龍樹)라고도 하였다.>의 아들이다.<당서(唐書)에는 진덕의 동생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은 진평왕의 딸이고, 왕비 문명부인(文明夫人)은 각찬(角湌) 서현의 딸이다.

 이기록에는 춘추에 출자에 대한 이설이 있음을 <당서>의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고, 김부식은 <당서>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춘추의 어머니 천명부인은 진평왕의 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왕이 일부일처제라는 환상을 깨면 개안이 된다. 

여기서 가장 기본이 되는 상식을 알 필요가 있다 왕은 1부1처가 아니다. 왕후와 후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기초적인 상식을 항상 상기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춘추의 어머니 천명부인은 진평왕의 딸이라고만 했으니 천명부인의 어머니가 누구인지는 모른다는게 상식이다. 왜냐 하면, 이미 덕만의 어머니가 마야부인인 줄을 알고 있는 김부식이나 일연은 상식에 기반하여 천명부인의 어머니를 마야로 기록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기존 통설은 상식에 반하여 덕만의 기록을 끌어와서 천명도 덕만과 같은 <마야부인>의 소생으로 만들어 버리는 우를 범하고 만다. 삼국사기에는 김춘추가 언제 태어났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진덕왕(眞德王)이 죽자 영휘(永徽) 5년 갑인(甲寅; 654)에 춘추공은 왕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린 지 8년 만인 용삭(龍朔) 원년(元年) 신유(辛酉; 661)에 죽으니 나이 59세였다.- 삼국유사 태종 김춘추공

 인터넷의 잘못된 김춘추의 생년들

 


김춘추가 661년 59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면, 김춘추는 603년생이 된다. 인터넷에 김춘추가 태어난 때를 602년부터 604년까지 다양하게 나온 기록들을 볼 수 있다. 잘못된 역사상식이 드라마 뿐만 아니고 인터넷에서도 횡횡하고 있는 것이다. 신라의 나이계산법은 현재 우리가 계산하는 나이법과 동일한 태어날때 부터 한살을 먹고 들어간다. 그래서 언제 태어났는지 알 수 있는 계산법은
(몰년 혹은 기준년)-나이+1년이 된다. 그러니 당연히 춘추는 661년 - 59세 + 1 = 603년생이 되는 것이다.  

기존통설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김춘추가 603년에 태어났으니, 김춘추의 어머니 천명부인은 대략 13~20세 전후에 춘추를 낳았다고 한다면 584~589년까지 태어났다고 본 것이다. 천명부인은 대략 김진평(백정)이 579년 13(화랑세기)~15세(통설) 어린나이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어린나이에 낳을 수도 있다.  

문제는 위에서 왕가의 기본상식인 초년의 정비의 후손이나? 아니면 후비의 후손이냐는 언급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 하기 바란다. 이 기록은 천명의 출생년을 추측하는데 만 유용하다는 사실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도 말하지 않는 천명과 덕만는 마야의 자식?

 


하지만, 기존 통설은 천명의 어머니와 덕만의 어머니는 같다는 상식에 어긋나는 접근을 시작한다. 천명이 584~589년 사이라면, 덕만이 진평의 장녀라고 했으니 천명보다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는 접근이다. 그래서 덕만은 583~588년 사이에 태어났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설이 합리적인 것 같지만, 여기도 또한번의 통설의 잘못된 접근이 시작된다. 진평왕의 장녀 덕만은 진평왕의 모든 자식들의 장녀일까 하는 문제이다. 

 김춘추가 왕이 되었을 때 정비는 문명(문희)왕비 였다. 그렇다고 해서 불쇼의 미혼모 문희가 김춘추의 첫번째 부인 소생이고 642년 대야성에 죽은 고타소의 생물학적 어머니는 될 수 없다. 법률적 어머니는 될 수 있지만 말이다. 또한, 김유신의 첫번째 아들인 <원술>이 춘추와 문희의 소생인 지소(조)부인의  생물학적 첫번째 아들일 수 있지만, 원술이 화랑세기에 나오는 <영모>의 소생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는 요즘도 자식보다 나이가 어린 부인을 맞이하는 것을 상기한다면 쉬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한 접근법은 진평왕과 마야부인 사이의 장녀가 된다. 그러니 덕만은 천명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지기삼사의 모란꽃 병풍과 모란씨 에피소드 예와 덕만의 왕이 될때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총명하고 민첩하다"는 말은 기존 통설대로 50대의 늙은 노파에게 할 말은 아니다.  

또한, 지귀설화에서 지귀가 아름다운 덕만을 보고 심화가 생겨 몸이 불타 죽었다는 설화가 있는 것으로 보았을때 이 또한 덕만이 팔팔한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는 증거가 된다.  

더 나아가 덕만은 왕위에 오르고 삼국유사 왕력편에 의하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음갈문왕과 결혼을 한다." 남성과는 다르게 적통을 잇기 위해서 50세의 노파가 결혼할 이유는 하등에 없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들과 제작진은 여자 왕은 결혼하면 안된다는 여성 차별적 사관을 가지고 있고, 신라 당대의 결혼관과도 배치된다. 성처녀로 만든 덕만은 드라마의 재미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 재미를 위해서 세종이 맏아들이라는 설정만큼 생뚱맞다는 뜻이다.

삼국유사에는 자신이 병석에 누어서 언제 죽을지 알고 묘자리를 보는 상황에서 자신이 무자가 된 이유를 구구절절 이야기를 한다. 이는 덕만이 결혼 생활을 했다는 뜻이고 여러 명의 남자가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화룡첨정 성조황고의 허구

 기존 통설을 가장 그럴듯 하게 만들어준 화룡첨정의 마지막은 성조황고(聖祖皇姑)의 허상이다. 황고는 마고, 미고, 니고랑 별차이가 없는 용법이다. 니고(尼姑)는 할머니 중이 아닌 그저 여중인 비구니의 존칭에 지나지 않는다. 성조황고의 정상적이고 자연스런 해석은 성스런 조상(聖祖)을 둔 <여황제(皇姑)>라는 뜻이다. 의역을 하면 진평왕의 뒤를 이은 적통 여황제가 되는 것이다.

 거기에 <할미고, 시어미고>라고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성스런 늙은 여황제나 성스런 황제의 시어미나 시어미 같이 늙은 황제라면 해석상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또한, <고(姑)>는  ㉢계집, 여자(), 부녀()의 통칭() 등 상용적으로 사용하는 용법이 있다.  

기록을 토대로한 덕만은 언제 왕위에 올랐을까?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선덕여왕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선덕여왕 원년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治十四年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634년)에 왕이 되어 14년동안 다스렸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第二十七 善德女王  名德曼.  父眞平王 母 麻耶夫人金氏. 圣骨男尽 故女王立.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治十四年.

3년(634)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었다. 분황사(芬皇寺)가 완성되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3년 

 삼국유사에는 진평왕이 631~32년에 죽고, 덕만이 왕위에 올랐지만, 정식으로 진평왕의 뒤를 이어 승계한 때는 갑오년 (634년) 정식으로 왕위에 올라 14년동안 다스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평이 건복원년 (684년)에 연호를 <건복>으로 바꾸고 직접통치한 것 처럼, 덕만도 634년 연호를 <인평>으로 바꾸고 직접통치를 한것이다. 이 또한, 덕만이 진흥이나 진평이 13세~15세에 어린 나이에 왕위에 이은 것 처럼, 덕만도 나이가 어릴때 왕위에 올랐다는 반증이다.


통설을 겉어 치우고, 삼국.유사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고, 해석한다면, 덕만이 632년 왕위에 오른시기는 절대 20대를 넘길 수가 없다.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는 단 한줄도 인용하지 않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의 기록을 토대로 덕만이 현재의 이요원의 나이가 아닌 어린 덕만역으로 주목을 받았던 남지현만한 나이때 왕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시리즈 글을 기시로 송고했었다.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과 천명은 이복자매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은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역사이야기] - 서녀 천명의 나이 어린 적통 동생 덕만
[역사이야기] - 이요원보다 남지현 나이때 왕위에 오른 덕만
[역사이야기] - 천명이 말한 덕만의 촌(?)스런 이름의 이유
[역사이야기] - 조선 세종, 신라 덕만, 천명의 기록 비교해 보니

 위의 기사들의 결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덕만은 진평왕과 마야의 장녀다.
둘째, 천명이 덕만보다 나이는 많지만, 마야의 소생은 아니다. 또는 마야 이전 황후나 후비의 소생이다.
셋째, 천명과 덕만은 이복자매간이다.
넷째, 천명은 정비인 마야의 후손이 아니였기 때문에 덕만보다 왕위승계에서 후순위다.
그래서 춘추가 왕위에 오를때도 왕위 승계에서 알천보다 후순위였다.
다섯째, 마야의 후손으로는 덕만 말고도 또다른 자매(들)이 있다.  
설령, 덕만과 천명이 같은 마야의 소생일지라도 덕만은 천명보다 나이가 한참 어렸다.
여섯째, 덕만은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했다.
일곱째, 덕만은 왕위를 오를 때, 현재 80년생이며 한국나이 30살인 이요원보다도 어렸다. 

결론, 덕만은 실제로 632년에 15~18세 정도에 늦어도 20세 전후에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결과적으로 동안인 덕만 이요원이 실제 선덕여왕 덕만역을 해도 되지만, 남지현이 선덕여왕에 등극하기 전후 까지 존재하고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이요원으로 바뀌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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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수출이 부끄러운 이유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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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11.19 1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넷티켓 넷티켓하시는데 님이 네티켓에 좀더 신경을 쓰셔야겠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19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115.20.91.74로 들어 오는 아이피에 대응 하지 않습니당.. 차분히 님들 고장의 속담이 어떻게 변천되었나 부터 알고 오시기 바랍니당.. 그리고 도배는 하지 마셈..

      댓글은 지우지 않지만 의미 없는 도배성 댓글은 삭제하니까요..

  3. BlogIcon 모노마토 2009.11.19 14: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평왕이 52년동안 왕을 하다가 죽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제가 알기론 덕만이 왕이 될때는 거의 할머니였다고 알고있습니다... 20세가 안되서 왕위와 올랐다면 비담의 난이 일어날때는 30대 중반이라는 이야긴데요.......

  4. BlogIcon pennpenn 2009.11.19 15: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심층직인 분석글 잘 읽고 갑니다.

  5. 저도 갓쉰동님 글에 찬성합니다. 2009.11.19 1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폐경기의 여성을 왕이 될리가 없죠.
    후사가 없는 왕은 그 자체로 왕권이 약한데
    왕권이 강력한 진평왕이 부군으로 올릴리가 없습니다.
    어쨋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보더라도 선덕여왕이 할머니란 근거는 존재하지 않죠.

    그리고 갓쉰동님. 저 쓰레기같은 도배글은 삭제해버리시죠.

    • BlogIcon 갓쉰동 2009.11.20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아무리 찾아봐도 선덕여왕이 늙은이란 사실은 없고, 오히려 어린 선덕만 발견하게 된다눈.. ㅋㅋ

      그건 그렇고..저정도는 애교 수준의 댓글이니 냅두는 겁니당.. 잘못알고 있는게 죄는 아니지만 대놓고 이야기할 필요는 없는데.. 암튼 잘못된 지식의 표본정도로 냅둘랍니다. ㅋㅋ
      이제 알았을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인터넷이 좋은점 아니겠어용.. 잘못된 점을 알게된다는 것이..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6. 하얀가루눈ii 2009.11.19 2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재미난 글 잘 읽고 갑니다. 갓쉰동 님 포스트를 즐겨 있는 저로서는 천명, 덕만 이복자매설이 가장 흥미롭네요. (저는 동복자매 설에 좀 더 무게를 두지만요. ㅎㅎ)

    근데 포스팅 된 글을 읽으면 진짜 선덕여왕이 나이 들어서 왕위에 올랐다는게 어불성설이긴 해요. 정말 폐경기의 여성이 왕위에 올라서 후사를 어찌 잇겠다고.. 그리고 지귀설화도 그렇고 그런 걸 보면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긴 하는군요.

    그러면 마야는 아이를 낳고 얼마 안되서 죽은 건가요? 진평왕의 재위기간이 50여년이란 걸 생각해보면, 그리고 마야는 자신의 딸이 왕위에 오르는 걸 못보고 죽었다고 하니..

    하나 더 질문이 있어요.
    신라시대에도 일본의 헤이안 시대, 특히 후지와라 가 섭관 정치기 처럼 왕이 정실부인을 동시에 두 명 이상을 둘 수 있었던 거예요? 고려시대를 보면 가능할 것도 같긴 한데, 어떤 글을 읽으니까 그래도 정실은 하나고, 왕위를 이은 아들들이 추존한 황후도 많다고 해서요. 물론 조선시대는 일부일처제였고 철저히 후궁은 배제되었긴 합니다만...

    그렇게 보면 마야가 진평왕의 첫번째 정실이 아니고, 화랑세기 기록처럼 보명과 미실이 둘다 황후였다고 하는 게 어찌보면 이해도 됩니다만.. 그러면 용수와 천명을 결혼시켜서 용수전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했다는 마야의 속내는... 이 분 대인배신가요..??ㅎㅎ

    • BlogIcon 갓쉰동 2009.11.20 0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화랑세기에도 동복자매라는 언급은 없었던 같더군요.. 기억이 가물가물..ㅠ.ㅠ.

      진평에게는 덕만이.. 늦동이니 얼마나 귀여웠을가용. 거기에 재기도 발랄하고 민첩하고,, ㅋㅋ

      마야는 어쩌면 대인배 일수동.. ㅋㅋ

  7. BlogIcon 너돌양 2009.11.20 0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선덕여왕 관련 글에는 역사적 근거가 자세히 수록되어있다고 하던데 역시 그렇군요.아무튼 갓쉰동님의 풍부한 역사 지식에 감탄을 합니다

    전 선덕여왕을 보지는 않고. 단지 역사에 조금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선덕여왕의 드라마가 재미있고 배울점이 많은 드라마인건 공감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역사 왜곡은 아닌 것 같네요. 사실 신라시대에 관한 남아있는 기록이 한참 후 고려시대에 기록된 삼국사기,삼국유사뿐이고 화랑세기가 아직 진위여부 논란이 있다고하고 작가 스스로도 이건 허구가 많다고 애초부터 밝혔지만 그래도 아직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초등생들이나 학생들이 보면 머리에 혼란이 오지 않을까 괜히 걱정스럽네요. 머 아주 쓸데없는 걱정이지만요^^

    아무튼 유익하고 알찬 글 잘 보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20 0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디서 그런 소문이 퍼졌나용.. ㅋㅋ

      저는 오히려 역사의 자료가 부족하니 힘써 지켜주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작가는 없으니 내맘대로 인가 봅니당.. 관점의 차이가 명확하지용..

      잘보셨다니 ㄳ 합니당.. ㅋㅋ

  8. 갓쉰동 최고 2009.11.20 0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존 통설에 덕만의 즉위시기가 50세 전후라는 것은 처음 듣네요.
    어린이용 역사책에도 덕만이 젊은시기에 왕위에 오르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덕만의 출생년도가 정확하지가 않죠. 들쭉 날쭉하니 고대사부분은 정말
    진실을 찾기가 어렵네요.
    그리고 화랑세기는 천명을 덕만의 동생으로보고 용춘이 덕만과 결혼을 하였으며
    천명과도 결혼을해서 재부가되었다고하는데
    문제는 이 동생이란 언급은 아마도 적통순위에서 밀려서 된듯합니다.
    그리고 이부분은 선화공주와 더불어서 아직도 학계에서 활발히 논쟁중이구요.
    결국 선덕여왕으로인한 신라사에대한 오해는 기존통설과 학게의 주장보다는
    감수도제대로못받은 드라마 선덕여왕과 OST콘서트에 뮤지컬까지 밀어주는 MBC의
    상업적 정책의 영향인듯합니다.
    삼국사기조차 제대로 이해못하는 애들이 통설은 알겠습니까?

    • 갓쉰동 최고 2009.11.20 0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삼국사기가 아니라 화랑세기였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삼국사기를 볼정도면 드라마가 이정도까지는 아니었을테니
      과대평가할 뻔했군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20 0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수설이라고 하지용.. ㅋㅋ 몇개 안될걸용.. 암튼..

      덕만과 천명의 언니냐 동생이냐는 적통 순위와 상관은 없을 것 같아용.. 단지, 누구와 누구 사이에 난 자식인가에 따라 해당하는 사람들 사이에 순위이지용.. 전체로는 명확하지용.. 동생이 언니가 될수 없고, 언니가 동생이될 수없는 것처럼 용..

      님의 말씀이 맞아용.. 역사책을 읽지 않고 소설책과 드라마만 본 작가들이 알기나 하겠어용.. ㅋㅋ

  9. 소연이 2009.11.20 0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드라마에서 역사적 감동은 얻을수 있으나, 역사적 사실을 찾는 것은 정말...(음, 요즘은 말 조심을 해야하니까^^;)

    암튼 역사적 사실(?)을 기록을 통해 보여주시니 고맙군요...

    그 시대에 살아보지않은 사람들이 이러쿵 저러쿵 자신이 "읽은" 내용이 진실인 것처럼 떠드는 것이 참 어리석게 보일때도 있죠. 인터넷의 폐해 일까요...

    역사는 정말 어려운 것인가 봅니다. 이럴땐 역사학자들이 참 존경스러워요...

    풍부한 역사적 지식에 감탄합니다...많이 배우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20 0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읽은게 지식이고 진실이 되니.. 그건 정보에 지나지 않지용. 취사선택을 하고 흡수한 이후에나 자신의 것이 되고 지식이 되고 지혜가 되는 거지요.. 소화하지 않는 정보는 그저 쓰레기일 뿐입니당.. ㅋㅋ

  10. zz 2009.11.22 1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 뭐 다 괜찮은데요
    글좀...맞춤법이...

  11. 갓쉰동님 광팬 2009.11.23 2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극에서 여성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나이가 든 모습을 왜 안보여주나 좀 아쉽습니다. 눈 밑을 조금 어둡게 처리하던가 피부색을 탁하게 하던하 해서 나이든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남성들만 수염길고 나이가 드는 것을 보면 여성은 꼭 이쁘기만 해야 하는가 아쉬움이 좀 남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24 1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당. 여성들의 현실적인 꿈을 드라마로 만들어 주는건지도요.. 여성주의 사극이잖아요.. 선덕여왕.. ㅋㅋ

  12. 레아 2009.12.07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조황고라는 것 중에서 고는 옛고자를 말하는데 그것은 할머니나 혹은 중년의 아줌마를 뜻하는 말로 오히려 덕만이 상당이 늦은 나이에 등극했음을 알수있죠.

  13. 레아 2009.12.07 1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리고 소설선덕여왕의 작가는 선덕여왕이 마흔일곱의 나이에 등극했다고 기록하고 있네요. 젊은 나이에 성조황고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안돼긴 하죠.

  14. BlogIcon onlinemovie 2010.10.15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여왕이 마흔일곱의 나이에 등극했다고 기록하고 있네요. 젊은 나이에 성조황고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안돼긴 하죠.

  15. BlogIcon Hairy Pussy 2012.07.12 1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보했는가는 별도의 문제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16. BlogIcon Amos 2012.10.14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여자

  17. BlogIcon military meals for sale 2012.11.01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이 마흔일곱의 나이에 등극했다고 기록하고 있네요. 젊은 나이에 성조황고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

  18. BlogIcon invisible fence wire gauge 2012.11.06 16: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 놀라운 것입니다. 수많은 새로운 브랜드 이름은 다른 가전 제품과 함께

  19. BlogIcon mountain house cans sale free shipping 2012.12.10 2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막연한 올림픽 참피언이, 우리 자식도 투자를 하면 김연아처럼 할수 있을 것 같았지만, 하면 할수록 김연아의 존재가 다가갈수 없는 넘사벽의 존재라는 것을 실감한것이다. 이런 피겨맘이 많아진다면 피겨는 다시 암흑기로 접어들지 모른다.

  20. BlogIcon waterproof shock collars for dogs 2012.12.22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어난 칠숙과 석품의 난으로 바꾸어 버렸다. 극중에서 16년의 세월을 압축해서 같은 해에 일어난 일로 극화해버린

  21. BlogIcon filters water well 2013.01.02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이 왕위에 오르고 죽고 나서 왜 시호가 <선덕>이였는지 알 수 있는 내용은 극중에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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