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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어릴적 선생에 대한 기억

이회창은 지난 대선에서 자신은 어린시절 밥을 먹지 못해 , 배고픔을 다래기 위해서 수돗물을 먹고 배고픔을 달랬다고 한다. 이회창의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잘나가던 법원 서기보(?) 였던가? 해방후에는 법관으로 임용(?)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순전히 기억에 의존하는 관계로 이회창의 아버지가 해방후와 전쟁통에 어떤 생활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다들 우물물도 없었던 시절에 이회창이 배고픔에 수돗물을 먹을 수 있는 환경에서 생활했다는 사실이다. 이회창의 어린시절에 수돗물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이란 별로 배고파 본적이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이회창 정도 되는 사람이 배고플 정도였으면 절대 다수는 굶주림에 시달리고 배고파 죽어가는 사람이 많았음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겠다.

글쓴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는 글쓴이의 어릴적 기억에도 배고파 굶주려 수돗물을 먹은 기억이 새롭다. 뛰어 놀다보면 바로 배가 꺼져 수돗가로 달려 간다. 그리고 수돗물을 벌컥 벌컥 마시다 보면 배고픈 것은 다 잊어 버리고 만다. 그당시 대다수(?)의 학생들이 그랬던 것 처럼 글쓴이의 집도 그리 잘난 집이 아닌관계로 재때에 공납금을 낼 처지가 아니였다.

그 시절 글쓴이에게는 기억에 남는 2명의 서로 다른 선생을 담임으로 만난다. 한분은 수업이 끝나고 나면, 혼자서 그림을 그리기 좋아하는 여선생님, 또다른 선생님은 학생들과 놀아 주기를 좋아하는 아주 젊은 남선생님이였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여 선생은 수업시간만 되면 공납금을 내지 않는 아이들을 불러내 매일 회초리를 들고 타작을 주로 하지만, 수업이 끝나고 나면 여선생님의 극히 개인적인 취미(?) 생활을 즐기신다.

하지만 젊은 남선생은 수업시간이나 조.종례시간에 공납금으로 매타작을 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이분은 아마도 교무실에 가서는 교감이나 교장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했을 것이다.

이 젊은 선생과는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교실 환경미화를 할때, 여러 애들과 같이 직접 어항을 만들고, 그 안에 넣을 고기와 수생식물을 같이 채집(수렵)하여 넣는 것이다. 이때 글쓴이도 선생과 같이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 글쓴이의 꼬라지는 참으로 가관이였다. 구멍뚫린 신발에는 비가 오면 빗물이 들어오는 것이 였다. 그날은 비가 와서 마르지 않는 상태에서 길바닥의 물들이 신발로 들어와 축축하게 젖어 버렸다.

이때 이 선생이 글쓴이의 손을 붙잡고 시장안에 있는 신발가게로 끌고가 새로운 운동화를 사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선생마다 참으로 다르구나 했다. 어쩌면 나에게 선생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분일지도 모른다. 무언가 가르치려 한것이 아닌 몸으로 실천하고 보여주는 서로 다른 두 선생에서 존경할 선생은 누가 되어야 할까?

극히 개인적인 일이나 학생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득과 조직에 충실한 보통선생과, 자신에 대한 화갈 미칠것을 뻔히 알면서도 화가 학생에 미치지 않도록 자신의 선에서 정리하고 표를 내지 않는 선생, 사실 나에게 신발을 사준 선생이기 때문에 존경했을 수도 있다. 또다른 선생은 나에게 매로만 인식되고 우아한 고고한척 한 선생이기 때문에 그렇게 존경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과외 포기 확약서

고등학교 때. 가정 형편이 그리 좋지 않던 글쓴이는 실업계학교로 진학을 하였다. 이유는 빨리 사회에 나가 돈을 벌어야 하고, 대학은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서 가면 된다, 부모님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극히 자연스런 동기에 의해서 였다. 대부분의 동기들이 그런 과정을 걸쳤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동기들이 중학교때 머리가 나쁘거나 공부를 못했던 사람은 없었다. 이들은 중학교때 과외라고는 받아본적이 없지만, 대부분 한 학급 70명이상 중 10등이내에 든 친구들이다.그래야 원서를 써주었다. 한마디로 머리하나는 타고난 사람들이였다. 실업계고교는 자격증을 따야한다. 상업계는 부기/주산 등 학원을 다니듯 대다수 다른 학교 학생들은 별도로 자격증반 학원을 다닌다. 하지만 우리 동기나 선배들이 자격증 따기 위해 학원을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없다. 하지만 이들은 몇개의 자격증을 따고 졸업을 했다. 사회는 이들에게 공돌이로 살아가도 살만한 좋은 시스템을 제공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 대다수는 곧바로 또는 재수해서 대학진학을 했다.

어찌되었던 이때 사단이 벌어졌다. 대머리 전두환께서는 과외금지 확약서를 모든 학교에 보냈다. 그리고 선생들은 이를 부모님에게 보내서, 확약서에 서명을 하라는 것이다. 물론, 전두환이 직접 그런 지시를 내렸다고 보지 않는다. 그 밑의 교육부의 훌륭(?)하신 분들이 일처리를 그리 했을 것이다.

어찌 되었던 그 과외포기 확약서가 우리들에게도 배달되었다. 그냥, 부모님에게 이야기해서 도장을 꾹하고 찍어 학교에 제출해도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부모님 몰래 도장을 찍어서 제출하면 그뿐이였을 것이다. 글쓴이가 왜 밝히지 않아도 되는 글쓴이의 학창시절을 이야기 했을까?

실업계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외금지 확약서라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이처럼 우리의 교육계에 종사하는 교육부관계자와 선생들은 개념을 집에 두고 다녔던 것이다. 글쓴이는 이때도 나의 어릴적 학생에 관대하고 자신에 당당한 선생을 떠올렸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선생의 표상이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고등학교때 이를 거부한 교장이나 교감이나 선생이 한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글쓴이는 어릴적 신발을 사준 선생을 떠올리기 보다는 좋은 선생 밑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전교조 시국선언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글쓴이는 전교조의 시국선언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글쓴이가 걸처간 몇몇의 선생으로 부터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들에게는 본을 받고, 영향을 받은 선생이 있다. 아마도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 정도이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다. 극히 예외적으로 많은 선생을 만나 축복받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하는 선생도 반면교사가 될 수 있으니 존경(?)해 줄만 할지도 모른다. 영웅이나 열사만 역사는 기록하지 않고 역적이나 배우지 말아야할 악적도 역사는 기록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던 조직과 자신만의 안위에 순응하는 극히 인간본위의 보호본능이 발동하는 선생과,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공익에 충실한 극히 미약한 몇몇의 시국선언을 하는 선생들일지라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생은 지식을 가르치는 지식장사꾼이 아니라 자신의 향기로 미래를 만들어갈 학생에게 말로,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사람들이 때문이다.

이들 전교조가 가장 대한민국의 가장 기초적인 근간을 이루는 '민주','언론','자유'에 대해서 시국선언을 하게되었다는 현실이 어처구니 없고, 발언을 했다고 잡아가는 질 낮은 민주공화국이지만 말이다.

어쩌면 시국선언을 하는 많은 분들도 극히 이기적이게도 시국선언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살아온 인생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이니 이기적이게도 나서서 부당한 처벌을 받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양심을 저버렸을때의 고통이 육체적, 금전적고통보다 우위에 선자들이다.

전교조를 지지하지 않았다고 해도, 말할 자유를 억압하는 교육부나 이명박을 지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나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생각이 다르다는 것 만으로 그들이 핍박받는 다면 나는 그들의 편에 설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볼테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볼테르가 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권력자로 부터 핍박받는 다면 기꺼이 핍박받는 자의 편에 서 주어야 하지 않을까?

글쓴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뒤에서 글로써 전교조를 지지하는  역할이 전부 일지 모른다.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글쓴이가 <양심의 자유> 침해가 금전/육체적고통보다 우위에 있는 극히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글쓴이는 전교조가 시국선언을 하지 않는 꿈같은 세상을 꿈꾼다. 하지 못하는 세상이 아닌, 할 필요조차도 없는 세상말이다.

현재 편견타파를 주제로 블로거 뷰 뉴스를 발행하는 분들이 계신다. 이글도 그 편견타파의 일환의 글이다.
이글은 전교조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전교조를 지지하던 지지하지 않던 중요한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양심의 자유에 따라 행동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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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flac torrent 2011.12.22 0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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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김보경 2012.01.01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

  3. BlogIcon 유병수 2012.01.07 0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4. BlogIcon cortes de pelo 2012 2012.03.17 1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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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BlogIcon 사만다 2012.04.03 1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해가 안갑니다.

  7. BlogIcon 아리아 2012.04.05 1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에 영어를 하시는 분 계십니까?

  8. BlogIcon Kaitlyn 2012.05.09 0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유대인 음식만 먹습니다.

  9. BlogIcon 엘라 2012.05.11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혼자 내버려 두십시오.

  10.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4: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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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BlogIcon Hairy Pussy 2012.07.21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하고 또다시 애마부인을 찍는다. 작가가 어릴 적 애마부인을 무척 사랑했던 모양이다. 시

  12. BlogIcon Chris 2012.07.30 1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파 굶주려 수돗물을 먹은 기억이 새롭다. 뛰어 놀다보면 바로 배가 꺼져 수돗가로 달려 간다.

  13. BlogIcon 420 million survival meals 2012.11.01 1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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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BlogIcon portable+fencing+panels+for+dogs 2012.11.08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로 무언가일 이 화제를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결코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15. BlogIcon container storage store 2012.12.10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확히 반박할려면 위처럼 일본의 수입조건과 한국의 수입조건이 다르다는 가장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또한, 확율론적으로도 반론을 제기한것도 극히 위함한 발상이고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다.

  16. BlogIcon portable dog fencing 2012.12.25 2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당시 대다수(?)의 학생들이 그랬던 것 처럼 글쓴이의 집도 그리 잘난 집이 아닌관계로 재때에 공납금을 낼 처지가 아니였다.

어릴적 선생에 대한 기억

이회창은 지난 대선에서 자신은 어린시절 밥을 먹지 못해 , 배고픔을 다래기 위해서 수돗물을 먹고 배고픔을 달랬다고 한다. 이회창의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잘나가던 법원 서기보(?) 였던가? 해방후에는 법관으로 임용(?)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순전히 기억에 의존하는 관계로 이회창의 아버지가 해방후와 전쟁통에 어떤 생활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다들 우물물도 없었던 시절에 이회창이 배고픔에 수돗물을 먹을 수 있는 환경에서 생활했다는 사실이다. 이회창의 어린시절에 수돗물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이란 별로 배고파 본적이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이회창 정도 되는 사람이 배고플 정도였으면 절대 다수는 굶주림에 시달리고 배고파 죽어가는 사람이 많았음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겠다.

글쓴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는 글쓴이의 어릴적 기억에도 배고파 굶주려 수돗물을 먹은 기억이 새롭다. 뛰어 놀다보면 바로 배가 꺼져 수돗가로 달려 간다. 그리고 수돗물을 벌컥 벌컥 마시다 보면 배고픈 것은 다 잊어 버리고 만다. 그당시 대다수(?)의 학생들이 그랬던 것 처럼 글쓴이의 집도 그리 잘난 집이 아닌관계로 재때에 공납금을 낼 처지가 아니였다.

그 시절 글쓴이에게는 기억에 남는 2명의 서로 다른 선생을 담임으로 만난다. 한분은 수업이 끝나고 나면, 혼자서 그림을 그리기 좋아하는 여선생님, 또다른 선생님은 학생들과 놀아 주기를 좋아하는 아주 젊은 남선생님이였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여 선생은 수업시간만 되면 공납금을 내지 않는 아이들을 불러내 매일 회초리를 들고 타작을 주로 하지만, 수업이 끝나고 나면 여선생님의 극히 개인적인 취미(?) 생활을 즐기신다.

하지만 젊은 남선생은 수업시간이나 조.종례시간에 공납금으로 매타작을 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이분은 아마도 교무실에 가서는 교감이나 교장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했을 것이다.

이 젊은 선생과는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교실 환경미화를 할때, 여러 애들과 같이 직접 어항을 만들고, 그 안에 넣을 고기와 수생식물을 같이 채집(수렵)하여 넣는 것이다. 이때 글쓴이도 선생과 같이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 글쓴이의 꼬라지는 참으로 가관이였다. 구멍뚫린 신발에는 비가 오면 빗물이 들어오는 것이 였다. 그날은 비가 와서 마르지 않는 상태에서 길바닥의 물들이 신발로 들어와 축축하게 젖어 버렸다.

이때 이 선생이 글쓴이의 손을 붙잡고 시장안에 있는 신발가게로 끌고가 새로운 운동화를 사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선생마다 참으로 다르구나 했다. 어쩌면 나에게 선생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분일지도 모른다. 무언가 가르치려 한것이 아닌 몸으로 실천하고 보여주는 서로 다른 두 선생에서 존경할 선생은 누가 되어야 할까?

극히 개인적인 일이나 학생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득과 조직에 충실한 보통선생과, 자신에 대한 화갈 미칠것을 뻔히 알면서도 화가 학생에 미치지 않도록 자신의 선에서 정리하고 표를 내지 않는 선생, 사실 나에게 신발을 사준 선생이기 때문에 존경했을 수도 있다. 또다른 선생은 나에게 매로만 인식되고 우아한 고고한척 한 선생이기 때문에 그렇게 존경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과외 포기 확약서

고등학교 때. 가정 형편이 그리 좋지 않던 글쓴이는 실업계학교로 진학을 하였다. 이유는 빨리 사회에 나가 돈을 벌어야 하고, 대학은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서 가면 된다, 부모님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극히 자연스런 동기에 의해서 였다. 대부분의 동기들이 그런 과정을 걸쳤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동기들이 중학교때 머리가 나쁘거나 공부를 못했던 사람은 없었다. 이들은 중학교때 과외라고는 받아본적이 없지만, 대부분 한 학급 70명이상 중 10등이내에 든 친구들이다.그래야 원서를 써주었다. 한마디로 머리하나는 타고난 사람들이였다. 실업계고교는 자격증을 따야한다. 상업계는 부기/주산 등 학원을 다니듯 대다수 다른 학교 학생들은 별도로 자격증반 학원을 다닌다. 하지만 우리 동기나 선배들이 자격증 따기 위해 학원을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없다. 하지만 이들은 몇개의 자격증을 따고 졸업을 했다. 사회는 이들에게 공돌이로 살아가도 살만한 좋은 시스템을 제공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 대다수는 곧바로 또는 재수해서 대학진학을 했다.

어찌되었던 이때 사단이 벌어졌다. 대머리 전두환께서는 과외금지 확약서를 모든 학교에 보냈다. 그리고 선생들은 이를 부모님에게 보내서, 확약서에 서명을 하라는 것이다. 물론, 전두환이 직접 그런 지시를 내렸다고 보지 않는다. 그 밑의 교육부의 훌륭(?)하신 분들이 일처리를 그리 했을 것이다.

어찌 되었던 그 과외포기 확약서가 우리들에게도 배달되었다. 그냥, 부모님에게 이야기해서 도장을 꾹하고 찍어 학교에 제출해도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부모님 몰래 도장을 찍어서 제출하면 그뿐이였을 것이다. 글쓴이가 왜 밝히지 않아도 되는 글쓴이의 학창시절을 이야기 했을까?

실업계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외금지 확약서라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이처럼 우리의 교육계에 종사하는 교육부관계자와 선생들은 개념을 집에 두고 다녔던 것이다. 글쓴이는 이때도 나의 어릴적 학생에 관대하고 자신에 당당한 선생을 떠올렸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선생의 표상이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고등학교때 이를 거부한 교장이나 교감이나 선생이 한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글쓴이는 어릴적 신발을 사준 선생을 떠올리기 보다는 좋은 선생 밑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전교조 시국선언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글쓴이는 전교조의 시국선언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글쓴이가 걸처간 몇몇의 선생으로 부터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들에게는 본을 받고, 영향을 받은 선생이 있다. 아마도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 정도이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다. 극히 예외적으로 많은 선생을 만나 축복받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하는 선생도 반면교사가 될 수 있으니 존경(?)해 줄만 할지도 모른다. 영웅이나 열사만 역사는 기록하지 않고 역적이나 배우지 말아야할 악적도 역사는 기록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던 조직과 자신만의 안위에 순응하는 극히 인간본위의 보호본능이 발동하는 선생과,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공익에 충실한 극히 미약한 몇몇의 시국선언을 하는 선생들일지라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생은 지식을 가르치는 지식장사꾼이 아니라 자신의 향기로 미래를 만들어갈 학생에게 말로,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사람들이 때문이다.

이들 전교조가 가장 대한민국의 가장 기초적인 근간을 이루는 '민주','언론','자유'에 대해서 시국선언을 하게되었다는 현실이 어처구니 없고, 발언을 했다고 잡아가는 질 낮은 민주공화국이지만 말이다.

어쩌면 시국선언을 하는 많은 분들도 극히 이기적이게도 시국선언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살아온 인생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이니 이기적이게도 나서서 부당한 처벌을 받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양심을 저버렸을때의 고통이 육체적, 금전적고통보다 우위에 선자들이다.

전교조를 지지하지 않았다고 해도, 말할 자유를 억압하는 교육부나 이명박을 지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나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생각이 다르다는 것 만으로 그들이 핍박받는 다면 나는 그들의 편에 설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볼테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볼테르가 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권력자로 부터 핍박받는 다면 기꺼이 핍박받는 자의 편에 서 주어야 하지 않을까?

글쓴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뒤에서 글로써 전교조를 지지하는  역할이 전부 일지 모른다.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글쓴이가 <양심의 자유> 침해가 금전/육체적고통보다 우위에 있는 극히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글쓴이는 전교조가 시국선언을 하지 않는 꿈같은 세상을 꿈꾼다. 하지 못하는 세상이 아닌, 할 필요조차도 없는 세상말이다.

현재 편견타파를 주제로 블로거 뷰 뉴스를 발행하는 분들이 계신다. 이글도 그 편견타파의 일환의 글이다.
이글은 전교조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전교조를 지지하던 지지하지 않던 중요한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양심의 자유에 따라 행동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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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flac torrent 2011.12.22 0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정말 당신이 관심의 분야를 입력하는 방법 뛰어난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완벽하게 매일 깊이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우리에게 이러한 유용한 작품을 공유에 대한 기회를 지불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웹 페이지를 즐겨찾기에 추가하고 대한 검색하면 빠르게 글을 몇 가지 더 검색됩니다.

  2. BlogIcon 김보경 2012.01.01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

  3. BlogIcon 유병수 2012.01.07 0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4. BlogIcon cortes de pelo 2012 2012.03.17 1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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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BlogIcon sunglasses 2012 2012.03.17 17: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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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BlogIcon 사만다 2012.04.03 1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해가 안갑니다.

  7. BlogIcon 아리아 2012.04.05 1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에 영어를 하시는 분 계십니까?

  8. BlogIcon Kaitlyn 2012.05.09 0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유대인 음식만 먹습니다.

  9. BlogIcon 엘라 2012.05.11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혼자 내버려 두십시오.

  10.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4: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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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BlogIcon Hairy Pussy 2012.07.21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하고 또다시 애마부인을 찍는다. 작가가 어릴 적 애마부인을 무척 사랑했던 모양이다. 시

  12. BlogIcon Chris 2012.07.30 1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파 굶주려 수돗물을 먹은 기억이 새롭다. 뛰어 놀다보면 바로 배가 꺼져 수돗가로 달려 간다.

  13. BlogIcon 420 million survival meals 2012.11.01 1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진짜로 무언가일 이 화제를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결코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당신 발표

  14. BlogIcon portable+fencing+panels+for+dogs 2012.11.08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로 무언가일 이 화제를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결코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15. BlogIcon container storage store 2012.12.10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확히 반박할려면 위처럼 일본의 수입조건과 한국의 수입조건이 다르다는 가장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또한, 확율론적으로도 반론을 제기한것도 극히 위함한 발상이고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다.

  16. BlogIcon portable dog fencing 2012.12.25 2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당시 대다수(?)의 학생들이 그랬던 것 처럼 글쓴이의 집도 그리 잘난 집이 아닌관계로 재때에 공납금을 낼 처지가 아니였다.

편견타파 릴레이의 일환으로 영웅전쟁은 왼손잡이 편견에서 벗어나자포스팅 해주셨다. 그래서 글쓴이도 초대하지 않은 식탁에 밥숫가락을 올려놓으려 한다.

 

대부분의 짝배(사우스포우, 왼손잡이, 이반)은 반골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왼손잡이들이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 20%정도라고 한다. 어찌보면 더 많을 것이다. 어릴적 부터 기존질서에 타협하고 기존의 압력에 굴복하여 변절(?)을 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기존질서에 편입되어 있는 동안에는 의지에 상관없이 오른손잡이처럼 행동한다. 그것이 본인스스로 결정한것이 아니고 부모라는 압박체에 의해서 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왼손잡이들이 밥을 먹거나 글을 쓰는 단순한 또는 숙련에 의한 것은 오른손으로 하지만 본능적이거나 감시자들 부터 떨어져 있을 경우 본능의 자연스런 행동을 한다. 예를 들면, 딱지치기, 구슬치기, 못치기, 잣치기, 가위질을 한다거나, 축구를 한다거나, 볼링을 한다거나, 당구를 칠때 등 감시가 없을때 본인스스로의 자유의지를 발현하는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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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나왔으니 하는 이야기인데.. 왼손잡이들을 보면 대다수는 외발잡이 인 경우가 많다. 또한, 외쪽눈이 발달해 있음을 추측 할 수 있다. 사람들이던 어떤 생물이던 좌우대칭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엄밀히 이야기하면 좌우대칭이 되지 않는다. 양쪽이 공히 대칭인 경우 왠지 어색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거울을 중간에 대고 비교를 해보거나 정면사진을 반을 접어 다른 쪽에 놓아보면 아무리 미남/미녀라고 해도 왠지 모른 어색함을 느낄것이다. 연예인 좌우대칭 사진은 약간의 트릭이 있다. 사진을 찍을때 정확히 정중앙을 향해서 포즈를 취하는 경우는 없다. 사진은 빛의 예술인데 그림자 효과가 없다면 입체감 자체가 사라진다. 사진술에 의한 작품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오른쪽눈보다 먼저 왼쪽이 눈이 발달했으니 왼쪽눈에 가까운 왼손이 자연스레 나가지 않았을까 그래서 선천적으로 굳어지는 것이 아닐까하는게 나의 생각이다. 모든 사회가 오른손 위주에서 왜 군대의 열병에서 첫발은 왼발부터 나가도록 했을까?

추측컨데 나쁜 말로 하면 기존 질서에 대한 반감.반항이고, 좋은 말로 하면 기존질서에 대한 끝없는 의문과 질문일 수가 있다. 어릴적 부터 자연스레 손이 가는 왼손, 기존 질서와 권력으로 부터 행해지는 질타에 의해서 반감이 서릴수 있다. 스스로 숫가락질을 하게될때 커다란 문화적인 충격을 당하게 된다. 왜 나의 자연스런 바른손으로 밥을 먹으면 먹으면 안되는 것일까? 부모라는 사람은 왜 나의 손을 쳐대고 다른 손으로 먹기를 강요를 할까? 왜? 왜? 이런 의문과 기존 질서에 대한 반발심이 생기고, 반항하여 충돌하고 궁극에는 반항아가 되는것이 아닐까? 오른손의 질서로만 움직이는 세상에서 왜 불편함을 기존 질서체계에 자연스레 편입되어 있는 사람들보다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것은 왼손잡이에게는 자연스런것일 것이다.


한국의 왼손잡이들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양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의 본능의 발현은 왼쪽으로 하고 기존질서에 편입되어 사용하는 것은 오른손을 사용하는 그래서 슬픈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슬픈 이반들이 아이러니 전세계 축구인들이 한국선수들의 최대 강점은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고 감탄했다고 하지 않던가. 한국선수 체력은 월등한데 기술이 부족한다는 상식을깨고,히딩크는도 한국선수들은 기술은 완성되었지만 체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자연스러운것에 편입되어 있는 사람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왠지 모를 불편부당함이 기존 질서를 타파하고자하는 의지와 생각의 발현으로 왼손잡이들이 창조적인 일에 더 많이 복무하게 되는 것이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불편은 창조를 낳는다고 하던가, 고민하는 자들이 많은 것은 또한 철학의 발현이 되는 것이 아닐까한다.


그래서 왼손잡이들이 과학자군에 비율적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포진하게 되고 철학을 하는 쪽에 많은 사람이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아닐까한다. 또한 이들은 정치적으로 진보에 소속되는 경우가 많다. 소수자의 설움을 이미 어릴적 부터 알고 있음으로 소수자에 동류의식을 느끼고 같이하는 하거나 소수자를 대변하게 되는 경우이다. 또한, 최소한 그들과 같이는 못해도 그들을 이해하는 세력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들은 동성애에 대해서도 관대함을 보일 가능성이 많다. 사실 동성애는 환경적인 요소로 인해서 동성애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의지에 상관없이 인간이 만들어질때 이미 동성애의 발현이 될 수 있는 호르몬 이상(?)에 의해서 결정되는 수도 많다. 왼손잡이들이 이럴때 나는 동성애가 아니지만 충분히 동성애자들이 그럴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관대할 수 있지 않을까한다.

오른손잡이들에는 끊임없이 자연스런 기존질서를 깨트리는 존재가 짝배이겠지만, 짝배들에게는 오른손잡이들의 자연스럽지 않은 것에 대한 반발이지 않을까한다. 지금의 정치환경에서는 기존질서를 깨트리는 변절자 짝배(이반)들이 간절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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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6.27 1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BlogIcon 갓쉰동 2009.06.27 1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티스토리니 그렇게 하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양해 해주셔서 ㄳ

  4. BlogIcon 2012.01.02 0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5. BlogIcon 김보경 2012.01.07 0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작품을 계속

  6. BlogIcon 클로이 2012.04.05 1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살 여유가 없습니다.

  7.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4: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인 그래서 진짜로 무언가일 이 화제를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결코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당신 발표 그러나 나와 쉬운 찾아내십시오. 그것은 저를 위해 너무 복잡하고 아주 넓게 보인다. 나는 당신

  8. BlogIcon Mature Pussy 2012.07.21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안 게임 등으로 끝없이 하락할 수도 있다. 그러면 ”김연아 세계 랭킹 끝없는 추락“ 김연아 랭킹

  9. BlogIcon Dopico 2012.07.30 2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면 좌우대칭이 되지 않는다. 양쪽이 공히 대칭인 경우 왠지 어색함을 느끼

  10. BlogIcon Free Brazzers 2012.09.08 0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본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귀하의 비즈니스를 홍보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귀하의 웹 사이트를 방문하고 정보를 즐기거나 상품을 구매하고 싶어 여부를 결정 할 수 있도록 당신은 당신의 웹 사이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11. BlogIcon london escorts 2012.09.19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데이터는 잘 보관해야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12. BlogIcon montreal erotic massage 2012.10.03 1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실을 찾는 것은 때때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결론을하기 전에 많은 데이터를 수집해야합니다.

  13. BlogIcon Hackett 2012.10.24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 읽기 위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싶은 찾기 위해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확실히 그것의 모든 조금을 즐기는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새로운 물건을 체크 아웃하는 당신이

  14. BlogIcon great website names 2012.11.14 1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도 걸릴 및 비즈니스 거래는 모든 비용을 커버하는 데 필요한 몇 생각입니다. 정직하고 현실적이어야합니다. 당신은 더 나은 표현한 이상을 계산합니다.

  15. BlogIcon glenn beck food storage 2012.11.21 15: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 읽기 위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싶은 찾기 위해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확

  16. BlogIcon katadyn vario microfilter 2012.12.19 1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이전 원화제도가 있을때에는 나이어린 소녀가 아닌 농익은 성인 여성을 원화로 세웠을 개연성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창작한 위서가 된다.

  17. BlogIcon dog websites 2012.12.27 1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볼링을 한다거나, 당구를 칠때 등 감시가 없을때 본인스스로의 자유의지를 발현하는 경우이다.

  18. BlogIcon discount food stores 2013.01.05 2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방지에 사사를 받은 강채윤은 이방지의 적통제자로 출상술과 북방의 무예와 투박술까지 고루 익힌 숨은 고수이다.

편견타파 릴레이의 일환으로 영웅전쟁은 왼손잡이 편견에서 벗어나자포스팅 해주셨다. 그래서 글쓴이도 초대하지 않은 식탁에 밥숫가락을 올려놓으려 한다.

 

대부분의 짝배(사우스포우, 왼손잡이, 이반)은 반골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왼손잡이들이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 20%정도라고 한다. 어찌보면 더 많을 것이다. 어릴적 부터 기존질서에 타협하고 기존의 압력에 굴복하여 변절(?)을 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기존질서에 편입되어 있는 동안에는 의지에 상관없이 오른손잡이처럼 행동한다. 그것이 본인스스로 결정한것이 아니고 부모라는 압박체에 의해서 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왼손잡이들이 밥을 먹거나 글을 쓰는 단순한 또는 숙련에 의한 것은 오른손으로 하지만 본능적이거나 감시자들 부터 떨어져 있을 경우 본능의 자연스런 행동을 한다. 예를 들면, 딱지치기, 구슬치기, 못치기, 잣치기, 가위질을 한다거나, 축구를 한다거나, 볼링을 한다거나, 당구를 칠때 등 감시가 없을때 본인스스로의 자유의지를 발현하는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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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나왔으니 하는 이야기인데.. 왼손잡이들을 보면 대다수는 외발잡이 인 경우가 많다. 또한, 외쪽눈이 발달해 있음을 추측 할 수 있다. 사람들이던 어떤 생물이던 좌우대칭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엄밀히 이야기하면 좌우대칭이 되지 않는다. 양쪽이 공히 대칭인 경우 왠지 어색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거울을 중간에 대고 비교를 해보거나 정면사진을 반을 접어 다른 쪽에 놓아보면 아무리 미남/미녀라고 해도 왠지 모른 어색함을 느낄것이다. 연예인 좌우대칭 사진은 약간의 트릭이 있다. 사진을 찍을때 정확히 정중앙을 향해서 포즈를 취하는 경우는 없다. 사진은 빛의 예술인데 그림자 효과가 없다면 입체감 자체가 사라진다. 사진술에 의한 작품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오른쪽눈보다 먼저 왼쪽이 눈이 발달했으니 왼쪽눈에 가까운 왼손이 자연스레 나가지 않았을까 그래서 선천적으로 굳어지는 것이 아닐까하는게 나의 생각이다. 모든 사회가 오른손 위주에서 왜 군대의 열병에서 첫발은 왼발부터 나가도록 했을까?

추측컨데 나쁜 말로 하면 기존 질서에 대한 반감.반항이고, 좋은 말로 하면 기존질서에 대한 끝없는 의문과 질문일 수가 있다. 어릴적 부터 자연스레 손이 가는 왼손, 기존 질서와 권력으로 부터 행해지는 질타에 의해서 반감이 서릴수 있다. 스스로 숫가락질을 하게될때 커다란 문화적인 충격을 당하게 된다. 왜 나의 자연스런 바른손으로 밥을 먹으면 먹으면 안되는 것일까? 부모라는 사람은 왜 나의 손을 쳐대고 다른 손으로 먹기를 강요를 할까? 왜? 왜? 이런 의문과 기존 질서에 대한 반발심이 생기고, 반항하여 충돌하고 궁극에는 반항아가 되는것이 아닐까? 오른손의 질서로만 움직이는 세상에서 왜 불편함을 기존 질서체계에 자연스레 편입되어 있는 사람들보다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것은 왼손잡이에게는 자연스런것일 것이다.


한국의 왼손잡이들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양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의 본능의 발현은 왼쪽으로 하고 기존질서에 편입되어 사용하는 것은 오른손을 사용하는 그래서 슬픈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슬픈 이반들이 아이러니 전세계 축구인들이 한국선수들의 최대 강점은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고 감탄했다고 하지 않던가. 한국선수 체력은 월등한데 기술이 부족한다는 상식을깨고,히딩크는도 한국선수들은 기술은 완성되었지만 체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자연스러운것에 편입되어 있는 사람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왠지 모를 불편부당함이 기존 질서를 타파하고자하는 의지와 생각의 발현으로 왼손잡이들이 창조적인 일에 더 많이 복무하게 되는 것이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불편은 창조를 낳는다고 하던가, 고민하는 자들이 많은 것은 또한 철학의 발현이 되는 것이 아닐까한다.


그래서 왼손잡이들이 과학자군에 비율적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포진하게 되고 철학을 하는 쪽에 많은 사람이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아닐까한다. 또한 이들은 정치적으로 진보에 소속되는 경우가 많다. 소수자의 설움을 이미 어릴적 부터 알고 있음으로 소수자에 동류의식을 느끼고 같이하는 하거나 소수자를 대변하게 되는 경우이다. 또한, 최소한 그들과 같이는 못해도 그들을 이해하는 세력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들은 동성애에 대해서도 관대함을 보일 가능성이 많다. 사실 동성애는 환경적인 요소로 인해서 동성애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의지에 상관없이 인간이 만들어질때 이미 동성애의 발현이 될 수 있는 호르몬 이상(?)에 의해서 결정되는 수도 많다. 왼손잡이들이 이럴때 나는 동성애가 아니지만 충분히 동성애자들이 그럴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관대할 수 있지 않을까한다.

오른손잡이들에는 끊임없이 자연스런 기존질서를 깨트리는 존재가 짝배이겠지만, 짝배들에게는 오른손잡이들의 자연스럽지 않은 것에 대한 반발이지 않을까한다. 지금의 정치환경에서는 기존질서를 깨트리는 변절자 짝배(이반)들이 간절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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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6.27 1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BlogIcon 갓쉰동 2009.06.27 1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티스토리니 그렇게 하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양해 해주셔서 ㄳ

  4. BlogIcon 2012.01.02 0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5. BlogIcon 김보경 2012.01.07 0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작품을 계속

  6. BlogIcon 클로이 2012.04.05 1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살 여유가 없습니다.

  7.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4: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인 그래서 진짜로 무언가일 이 화제를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결코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당신 발표 그러나 나와 쉬운 찾아내십시오. 그것은 저를 위해 너무 복잡하고 아주 넓게 보인다. 나는 당신

  8. BlogIcon Mature Pussy 2012.07.21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안 게임 등으로 끝없이 하락할 수도 있다. 그러면 ”김연아 세계 랭킹 끝없는 추락“ 김연아 랭킹

  9. BlogIcon Dopico 2012.07.30 2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면 좌우대칭이 되지 않는다. 양쪽이 공히 대칭인 경우 왠지 어색함을 느끼

  10. BlogIcon Free Brazzers 2012.09.08 0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본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귀하의 비즈니스를 홍보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귀하의 웹 사이트를 방문하고 정보를 즐기거나 상품을 구매하고 싶어 여부를 결정 할 수 있도록 당신은 당신의 웹 사이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11. BlogIcon london escorts 2012.09.19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데이터는 잘 보관해야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12. BlogIcon montreal erotic massage 2012.10.03 1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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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BlogIcon glenn beck food storage 2012.11.21 15: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 읽기 위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싶은 찾기 위해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확

  16. BlogIcon katadyn vario microfilter 2012.12.19 1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이전 원화제도가 있을때에는 나이어린 소녀가 아닌 농익은 성인 여성을 원화로 세웠을 개연성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창작한 위서가 된다.

  17. BlogIcon dog websites 2012.12.27 1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볼링을 한다거나, 당구를 칠때 등 감시가 없을때 본인스스로의 자유의지를 발현하는 경우이다.

  18. BlogIcon discount food stores 2013.01.05 2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방지에 사사를 받은 강채윤은 이방지의 적통제자로 출상술과 북방의 무예와 투박술까지 고루 익힌 숨은 고수이다.

화랑을 화랑답게한  신화창조의 성지 아막성 전투

 

 

 

아막성 전투는 신라가 백제의 아막성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 처음부터 아막성은 신라의 성이 였고, 수비군이 신라군, 공격군이 백제군이였다. 하지만 선덕여왕에서는 공격과 방어와 성의 국적도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아막성 전투는 딱 1번 602년에만 벌어진다.

 

이때 가장 활약한 사람은 삼국사기 열전에 등재되어 있는 화랑 귀산과 추항이다.

 

귀산과 추항은 백제의 계략에 넘어가 귀산의 아비와 신라군이  천산 진흙탕 벌에 빠져  몰살위기에 몰렸을 때, 단기 필마로 백제군에 맞서다 장렬히 전사한다. 사기가 살아난 신라군은 백제군을 몰살 시킨다.

 

신라 화랑으로서는 가장 드라마틱한 전투이다. 그래서 선덕여왕에서 첫번째 전투장소로 아막성을 선택했을 지도 모르겠다.

 

화랑을 화랑답게 한, 원광법사 화랑도의 세속오계 중 <임전무퇴>가 실전에 처음 사용된 장소다. 그 후로 줄기차게 화랑은 무모하리 만치 단신공격을 감행한다. 후퇴를 치욕으로 생각하는 시발점이 되었던, 아막성을 선덕여왕 작가진은 가장 극적인 화랑의 성지로  선택한 것이다. 
 

 

 

아막성의 주인공은 10화랑도 아니고, 김유신도, 설원랑도, 김서현도, 포스를 자랑한 알천(이승효)는 더더욱 아니다.

 

아막성 전투의 실제 주인공은 귀산과 추항

 

아막성의 주인공은 덕만이 뻘밭에서 까마귀를 응시하는 덕만 대신에 귀산과 추항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배운 국사에는 <화랑>을 평상시에는 산천을 유람하고, 풍류를 즐기면서 전쟁 시에는 국가를 보위하는 최전선에서 싸우는 전사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신라 27대 진평왕 때 원광법사에 의해서 화랑이 나아갈 바를 계율로 만들어졌다는 <세속오계>를 암기하기도 합니다. 임전무퇴, 살생유택, 사친이효,  사군이충, 교우이신, 등 부모에 효도하고 국가에 충성하고, 신의로 교제하고, 살생을 할 때는 가려하고, 전장에 나가서는 물러남이 없어야 한다. 

 

현재의 사관학교에서도 통용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현재도 사람이 살아가는 규범으로 적절하다 할 만 합니다.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살아진 전우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국가대표 축구대표팀 이름이 화랑인 적도 있습니다.

 

박창화 필사 화랑세기

 

박창화가  일본의 <국내성서고>에서 필사했다는 <화랑세기>가 나타나 우리가 알고 있는 화랑과 전혀 다른 모습의 화랑이  일반 사람과 역사학계에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고, 현재도 화랑세기 위서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인용한 몇 줄이 전부이고, <삼국유사>에 사다암, 관창, 김유신 등의 전사의 이야기가 전부였는데 화랑의 계보와 화랑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 현재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화랑의 모습도 있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화랑들 간의 성적인 문제가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필사본 화랑세기를 <박창화>의 창작품이라고 폄하를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유교적 입장으로 보거나 현재의 기준으로, 화랑들의 모습은 난잡한 난교를 하는 집단이고, 성문란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하지만 역사란 그 당시의 눈으로 보고 접근을 해야지 현재의 기준에 맞지 않다거나  자신이 필요한 것이나 자신의 주장을 뒤 받침하기 위해서 입맛에 따라 취사선택을 한다면 그것은 바른 역사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창화의 소설로만 치부하기에는 신라의 유물에 나타난 성기노출 토우와 성도구와 진골/성골(추후 진골과 성골에 관해서 포스팅할 예정)간의 결혼들이 혼잡해 보이는 것이 많습니다. 만약, 박창화가 창작을 했다면 대단히 위대한 소설가이자 사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필사본이 위작으로 최종 판정이 된다면,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만들어진 수 많은 저작물들이 저작권법에 걸리게 됩니다. 박창화 유족은 저작권료만으로도 여생을 보내는데 지장이 없을 겁니다.

 

화랑이 처음 만들어진 계기는 처음에는 <원화>가 있었는데, 진흥왕 원년(540년)에 준정이  남모공주를 투기하여 죽이자, 법흥왕비인 지소태후가 원화제도를 없애고 그를 따르는 자<낭도>들을 <화랑> 조직으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서동요의 사택기루)

화랑의 우두머리는 풍월주이고 그 밑으로 부제가 있고, 그 아래 3부 화랑과  3부에 속한 화랑과 일반인으로 구성된 수많은 낭도가 있습니다. 이들은 나이가 들면 화랑은 장군이 되기도 하고, 국가기관에서 국사를 보는 사람들이 되기도 하고, 낭도들은 향리로 내려가 그곳의 수령이 되기도 합니다. 현재의 장교나 고등교육기관의 인재 양성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동요, 풍월주 사택기루(오지호)는 선덕여왕, 누구일까? 

 

이병훈 PD가 <서동요>를 처음 만들 때 사택기루 역으로 처음 오지호를 점지했고, 대본연습까지 하였지만, 오지호는 배역을 소화하지 못해 스스로 낙마하고, 대신 류신이 사택기루(김도함)역을 소화 했다.


서동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김사흠 아들 사택기루(김도함)는 어린나이(15~20세미만)에 진평왕에 의해서 <풍월주>가 되었다. 그럼 그 당시 화랑세기에 풍월주가 된 자를 추적하면 누굴 지칭하는지 알 수 있다.

( mbc 황금어장, 오지호 서동요 사택기루 포기 이유설명 )

 

당시 신라왕은 진평왕(579~632)으로 재위기간만 54년이지만, 서동요에서는 서동이 어린나이부터 10여년을 신라의 서라벌에 활동하였으니 서동이 제 30대 백제왕(600년)에 오르기 전이다.

 

그러면 최소한 590년부터 599년 사이에 풍월주에 오른 화랑을 찾아보면 사택기루가 누군지 대략 알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이병훈 PD는 백제의 시각으로 서동요를 만들었고, 선덕여왕에서는 신라의 관점으로 사극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시대적 배경도 서동요나 선덕여왕이나 동일시기입니다.

 

그런데, 이병훈 PD는 사택기루를 풍월주로 내세웠고, 이번 선덕여왕에서는 호림을 내세웠습니다. 일반적으로 역대 풍월주들의 임기가 평균 3년 정도인데  반해, 호림은 풍월주를 10년간 장기 집권한다.

 

호림의 뒤를 이어 612년 김유신이 18세의 나이에 풍월주에 오른다.

 

그렇다면 선덕여왕에서 14대 풍월주 호림(603 ~ 612년) 이전 12대 보리(594 ~ 597)나 13대 김용춘(597 ~ 603)이 사택기루라는 것을 반증한다.

 

보리는 화랑 세속오계로 알려진 원광법사의 동생으로 602년 8월 아막성에서 장렬히 전사한 귀산,추항의 스승이였다. 또한, 보리는 화랑세기를 쓴 김대문의 직계선조가 된다.

 

13대 김용춘은 폐위된 진지왕(576 ~ 579년)의 2자이며, 천명공주(박예진)의 남편이고, 김춘추(태종)의 아버지가 된다. 

 

전쟁 신동? 김유신

 

선덕여왕에서 602년 아막성 전투에서 방년 8세의 김유신(595년생)을 투입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막성이 신라의 성이니, 백제가 아막성을 공격하는 신으로 구성했을 것이다.

 

화랑의 풍월주로 602년 아막성 전투에 참여하는 자는 13대 김용춘이다. 그의 부제로 호림이 출전했을 수도 있다, 단, 신라가 아막성 수비군이였기 때문에, 신라가 백제의 공격을 눈치채고 용춘이 화랑을 이끌고 방어군에 합류했다는 약간의 설정이 필요하다.

 

신라 중앙군들이 아막성 전투에 참여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중앙군과 진평왕의 친정은 603년 가을 고구려 침공 북한산성전투이다. 이때 신라는 대승을 거둔다.  SBS 대하사극 연개소문에서는 9살 김유신이 화랑을 이끌고 참전했다는 설정을 했다. 극작가들은 서로 카피모드 인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병훈은 사극의 최고봉이라는 신봉승에 비해서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 만약, 이병훈 피디가 역사에 어느 정도 정통했다면, 서동요 작가가 사택기루를 풍월주로 내세울 때, 풍월주 보다는 그 밑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3부화랑 중 고위직으로 사택기루를 선택했을 것이다.

 

사실 이병훈 피디는 역사는 몰이해하지만, 대장금이나 서동요나 선덕여왕 등 히트작으로 보았을 때 작가가 써준 것을 기획하고, 포장하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어 가는데, 특출한 재능과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사극은 살아있는 교재이자 스승

 

아마도 역사를 가르치는 많은 사람들은 이번 선덕여왕으로 인해서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또한, 한동안 역사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 역사책을 멀리 하고 있었다. 사라졌던 역사에 대한 열정의 불티를 다시 살려 손에 잡은 것을 보면, 모든것이 사극 선덕여왕 덕분이다. 어찌되었던 사극은 역사를 이해하고 배우는 살아있는 교재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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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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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또한, 한동안 역사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 역

  4.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dogs and cats 2012.11.05 14: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파워블로거를 꿈꾸는 블로거들이 있다면 그 보다는 차라리 철저히 프로가 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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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BlogIcon annual cost of owning a dog 2012.12.20 1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사적인 이슈들을 다뤘었다. 그러다가 몇몇 메타사이트들을 알게 되었고 다른 블로거들을 알게되면서 환

  7. BlogIcon waterproof matches wholesale 2012.12.31 1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기 필마로 백제군에 맞서다 장렬히 전사한다. 사기가 살아난 신라군은 백제군을 몰살 시킨다.

화랑을 화랑답게한  신화창조의 성지 아막성 전투

 

 

 

아막성 전투는 신라가 백제의 아막성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 처음부터 아막성은 신라의 성이 였고, 수비군이 신라군, 공격군이 백제군이였다. 하지만 선덕여왕에서는 공격과 방어와 성의 국적도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아막성 전투는 딱 1번 602년에만 벌어진다.

 

이때 가장 활약한 사람은 삼국사기 열전에 등재되어 있는 화랑 귀산과 추항이다.

 

귀산과 추항은 백제의 계략에 넘어가 귀산의 아비와 신라군이  천산 진흙탕 벌에 빠져  몰살위기에 몰렸을 때, 단기 필마로 백제군에 맞서다 장렬히 전사한다. 사기가 살아난 신라군은 백제군을 몰살 시킨다.

 

신라 화랑으로서는 가장 드라마틱한 전투이다. 그래서 선덕여왕에서 첫번째 전투장소로 아막성을 선택했을 지도 모르겠다.

 

화랑을 화랑답게 한, 원광법사 화랑도의 세속오계 중 <임전무퇴>가 실전에 처음 사용된 장소다. 그 후로 줄기차게 화랑은 무모하리 만치 단신공격을 감행한다. 후퇴를 치욕으로 생각하는 시발점이 되었던, 아막성을 선덕여왕 작가진은 가장 극적인 화랑의 성지로  선택한 것이다. 
 

 

 

아막성의 주인공은 10화랑도 아니고, 김유신도, 설원랑도, 김서현도, 포스를 자랑한 알천(이승효)는 더더욱 아니다.

 

아막성 전투의 실제 주인공은 귀산과 추항

 

아막성의 주인공은 덕만이 뻘밭에서 까마귀를 응시하는 덕만 대신에 귀산과 추항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배운 국사에는 <화랑>을 평상시에는 산천을 유람하고, 풍류를 즐기면서 전쟁 시에는 국가를 보위하는 최전선에서 싸우는 전사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신라 27대 진평왕 때 원광법사에 의해서 화랑이 나아갈 바를 계율로 만들어졌다는 <세속오계>를 암기하기도 합니다. 임전무퇴, 살생유택, 사친이효,  사군이충, 교우이신, 등 부모에 효도하고 국가에 충성하고, 신의로 교제하고, 살생을 할 때는 가려하고, 전장에 나가서는 물러남이 없어야 한다. 

 

현재의 사관학교에서도 통용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현재도 사람이 살아가는 규범으로 적절하다 할 만 합니다.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살아진 전우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국가대표 축구대표팀 이름이 화랑인 적도 있습니다.

 

박창화 필사 화랑세기

 

박창화가  일본의 <국내성서고>에서 필사했다는 <화랑세기>가 나타나 우리가 알고 있는 화랑과 전혀 다른 모습의 화랑이  일반 사람과 역사학계에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고, 현재도 화랑세기 위서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인용한 몇 줄이 전부이고, <삼국유사>에 사다암, 관창, 김유신 등의 전사의 이야기가 전부였는데 화랑의 계보와 화랑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 현재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화랑의 모습도 있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화랑들 간의 성적인 문제가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필사본 화랑세기를 <박창화>의 창작품이라고 폄하를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유교적 입장으로 보거나 현재의 기준으로, 화랑들의 모습은 난잡한 난교를 하는 집단이고, 성문란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하지만 역사란 그 당시의 눈으로 보고 접근을 해야지 현재의 기준에 맞지 않다거나  자신이 필요한 것이나 자신의 주장을 뒤 받침하기 위해서 입맛에 따라 취사선택을 한다면 그것은 바른 역사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창화의 소설로만 치부하기에는 신라의 유물에 나타난 성기노출 토우와 성도구와 진골/성골(추후 진골과 성골에 관해서 포스팅할 예정)간의 결혼들이 혼잡해 보이는 것이 많습니다. 만약, 박창화가 창작을 했다면 대단히 위대한 소설가이자 사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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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이 처음 만들어진 계기는 처음에는 <원화>가 있었는데, 진흥왕 원년(540년)에 준정이  남모공주를 투기하여 죽이자, 법흥왕비인 지소태후가 원화제도를 없애고 그를 따르는 자<낭도>들을 <화랑> 조직으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서동요의 사택기루)

화랑의 우두머리는 풍월주이고 그 밑으로 부제가 있고, 그 아래 3부 화랑과  3부에 속한 화랑과 일반인으로 구성된 수많은 낭도가 있습니다. 이들은 나이가 들면 화랑은 장군이 되기도 하고, 국가기관에서 국사를 보는 사람들이 되기도 하고, 낭도들은 향리로 내려가 그곳의 수령이 되기도 합니다. 현재의 장교나 고등교육기관의 인재 양성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동요, 풍월주 사택기루(오지호)는 선덕여왕, 누구일까? 

 

이병훈 PD가 <서동요>를 처음 만들 때 사택기루 역으로 처음 오지호를 점지했고, 대본연습까지 하였지만, 오지호는 배역을 소화하지 못해 스스로 낙마하고, 대신 류신이 사택기루(김도함)역을 소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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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최소한 590년부터 599년 사이에 풍월주에 오른 화랑을 찾아보면 사택기루가 누군지 대략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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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배경도 서동요나 선덕여왕이나 동일시기입니다.

 

그런데, 이병훈 PD는 사택기루를 풍월주로 내세웠고, 이번 선덕여왕에서는 호림을 내세웠습니다. 일반적으로 역대 풍월주들의 임기가 평균 3년 정도인데  반해, 호림은 풍월주를 10년간 장기 집권한다.

 

호림의 뒤를 이어 612년 김유신이 18세의 나이에 풍월주에 오른다.

 

그렇다면 선덕여왕에서 14대 풍월주 호림(603 ~ 612년) 이전 12대 보리(594 ~ 597)나 13대 김용춘(597 ~ 603)이 사택기루라는 것을 반증한다.

 

보리는 화랑 세속오계로 알려진 원광법사의 동생으로 602년 8월 아막성에서 장렬히 전사한 귀산,추항의 스승이였다. 또한, 보리는 화랑세기를 쓴 김대문의 직계선조가 된다.

 

13대 김용춘은 폐위된 진지왕(576 ~ 579년)의 2자이며, 천명공주(박예진)의 남편이고, 김춘추(태종)의 아버지가 된다. 

 

전쟁 신동? 김유신

 

선덕여왕에서 602년 아막성 전투에서 방년 8세의 김유신(595년생)을 투입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막성이 신라의 성이니, 백제가 아막성을 공격하는 신으로 구성했을 것이다.

 

화랑의 풍월주로 602년 아막성 전투에 참여하는 자는 13대 김용춘이다. 그의 부제로 호림이 출전했을 수도 있다, 단, 신라가 아막성 수비군이였기 때문에, 신라가 백제의 공격을 눈치채고 용춘이 화랑을 이끌고 방어군에 합류했다는 약간의 설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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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병훈 피디는 역사는 몰이해하지만, 대장금이나 서동요나 선덕여왕 등 히트작으로 보았을 때 작가가 써준 것을 기획하고, 포장하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어 가는데, 특출한 재능과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사극은 살아있는 교재이자 스승

 

아마도 역사를 가르치는 많은 사람들은 이번 선덕여왕으로 인해서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또한, 한동안 역사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 역사책을 멀리 하고 있었다. 사라졌던 역사에 대한 열정의 불티를 다시 살려 손에 잡은 것을 보면, 모든것이 사극 선덕여왕 덕분이다. 어찌되었던 사극은 역사를 이해하고 배우는 살아있는 교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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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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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기 필마로 백제군에 맞서다 장렬히 전사한다. 사기가 살아난 신라군은 백제군을 몰살 시킨다.

선덕여왕 10회에 아막성, 속함성 전투신은 최근에 나타난 사극들중 가장 현장감이 있고 있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첫 전투에 투입된 용화낭도들의 겁먹고 오줌을 지리는 모습은 사실적으로 느껴질 정도 였고, 보는 내내 시간가는줄 몰랐다.

 

물론, 역사에서는 아막성 전투(602년)와 속함성 전투(624년)는 별개의 전투이다.

 

화랑 신화창조의 성지 아막성

 

아막성 전투는 신라가 백제의 아막성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 처음부터 아막성은 신라의 성이 였고, 수비군이 신라군, 공격군이 백제군이였다. 하지만 선덕여왕에서는 공격과 방어와 성의 국적도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아막성 전투는 딱 1번 602년에 벌어진다. 이때 가장 활약한 사람은 삼국사기 열전에도 등재되어 있는 화랑 귀산과 추항이다. 귀산과 추항은 귀산의 아비가 백제의 계략에 빠졌을 때 귀산과 추항이 단기 필마로 백제군에 맞서다 장렬히 전사한다.

 

신라의 화랑으로써는 가장 드라마틱한 전투이다. 그래서 선덕여왕에서 첫번째 전투장소로 아막성을 선택했을 지도 모르겠다.

 

화랑을 화랑답게 한, 원광법사 화랑도의 세속오계 중 <임전무퇴>가 실전에 처음 사용된 장소다. 그 후로 줄기차게 화랑은 무모하리 만치 단신공격을 감행한다. 후퇴를 치욕으로 생각하는 시발점이 되었던, 아막성을 선덕여왕 작가진은 가장 극적인 화랑의 성지로 아막성을 선택한 것이다. 
 

 

 

아막성의 주인공은 10화랑도 아니고, 김유신도, 설원랑도, 김서현도, 포스를 자랑한 알천 이승효는 더더욱 아니다.

 

아막성의 주인공은 덕만이 뻘밭에서 까마귀를 응시하는 덕만 대신에 귀산과 추항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속함성 전투는 이보다 훨씬 뒤인 624년에 벌어진 전투이다.

 

글쓴이가 관심있게 보았던 장면은 김서현의 신라군이 설원랑의 계략에 따라 진을 벗어나면서 잠깐 스치듯 지나간 목책의 문 이였다. 글쓴이는 잠시 백제와 신라의 전투에 왜 고구려군이 나타났나 했다.

 

현재의 선덕여왕에서 김유신(595년생)이 602년 8살에 용화낭도의 대장으로 나오고, 설원랑 옆에서 종횡무진 활약도 하는데 불가능은 없는 선덕여왕이라면 그리 낯선 출현도 아니다. 충분히 고구려가 백제나 신라의 편에서 싸움을 하거나 백제와 신라가 싸울때, 신라 진흥왕시기 써 먹었던 백제와 고구려가 싸울때 어부지리 한강유역을 점령해버린 전략을 고구려가 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선덕여왕에서 잠수함이나 미사일이나 탱크, 대포가 등장한다고 해도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환(한)단고기를 읽어 본사람은 별로 놀랄일도 아니다, 기원전  수천년전에 이미 잠수함을 만든 위대한 배달족이 아닌가? 수천년뒤 진평왕시대에 나타난다고 놀랄일도 아니다. 충분히 불가능이 없는 선덕여왕이니 말이다.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상징 #, 아막성에 나타난 까닭은?

 

 

 

 

 

 

선덕여왕 10회 20분경에 김서현이 알천부대의 백제의 노병부대와의 전투에 승전소식 나발소리를 듣고, 아막성 공격을 명하는 장면에서 1초 정도 극히 짧은 시간 동안 문이 열리기 전, 선명한  붉은 원안 검은 (#) 이 나타나면서 문이 열리고 군사들이 출전하면서 사라진다.

 

최인호는 백두산 천지를 상징한다는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상징깃발 #

광개토태왕 사후 신라에 주었다는 광개토호태왕호우 #

고구려 최전방 아차산 보루에서 발견되었다는 # 토기

그래서 대한민국 국대축구팀 서포터즈 붉은악마의 상징기가 되었던  #, 

 

 

고구려 광개토의 상징인 # 문양이 602년 아막성 전투의 신라군의 상징깃발로 나타났다.


왜? 신라의 상징으로 # 문양을 사용하였을까? 잠시 생각해보니 머리에 스치듯 지나가는 기억의 파편들이 떠오르고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멍해져 버렸다. 그렇지 신라는 우물(#) 자체가 신성한 곳이라는 것을.. 가끔 기본을 망각할때 느꼈던 허탈감이 밀려 왔다.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는 나정(#)에서 태어났다. 혁거세의 부인인 알영은 알천의 우물(#)에서 닭의 부리 모양의 허물을 벗고, 환골탈태하였다. 그래서 나정에 신궁을 짓고 제사를 지내는 신라, 어찌보면 고구려의 상징이라고 보기보다는 신라 신국의 건국 상징이 #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그만큼 우물(#)은 신라에게는 땔 수 없는 상징이 된다.

 

 

또한, 북두칠성은 국자 모양이다. 은하수의 우물(#)을 퍼올리는 국자. 이 또한, (#)의 상징이 된다. 첨성대의 상단 (#) 모양도 하늘과 통하는 우물을 상징하고 있다. 글쓴이는 첨성대를 별을 관찰하는 용도가 아닌 하늘과 통하는 우물 즉 신라의 나정을 상징화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선덕여왕에서 우물(#)문양이 상징기로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미쳤다. 돼지가 우물에 빠지 듯 삼국사기 곳곳엔 우물에서 용이 하늘로 올랐다는 기사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우물과 용과 북두는 하나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선덕여왕에서 선덕과 천명과 유신은 북두의 정기를 타고난 상징들이 아닌가?

 

(#) 문양을 신라의 상징으로 만든 선덕여왕의 역발상이 참으로 재밌다.


사극으로 인해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가?를 알아가는 과정이니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공부재료가 될 것 같다.  몰랐던 부분이나 잘못알고 있던 부분을, 잠시 잊고 있었던 부분을 알아가는 과정이 기쁠때가 있다.

 

선덕여왕에서 연기자들의 톡톡튀는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지만, 선덕여왕의 다음 행보가 어떻게 전개되어 나타날지 자못 궁금해 진다. 그래서 사극은 나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준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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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유머나라 2009.06.26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현장감이 느껴져요. 오래전 역사적 사실들이..

  2. BlogIcon norco window replacement parts 2012.03.17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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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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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4: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인 그래서 진짜로 무언가일 이 화제를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결코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당신 발표 그러나 나와 쉬운 찾아내십시오. 그것은 저를 위해 너무 복잡하고 아주 넓게 보인다. 나는 당신

선덕여왕 10회에 아막성, 속함성 전투신은 최근에 나타난 사극들중 가장 현장감이 있고 있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첫 전투에 투입된 용화낭도들의 겁먹고 오줌을 지리는 모습은 사실적으로 느껴질 정도 였고, 보는 내내 시간가는줄 몰랐다.

 

물론, 역사에서는 아막성 전투(602년)와 속함성 전투(624년)는 별개의 전투이다.

 

화랑 신화창조의 성지 아막성

 

아막성 전투는 신라가 백제의 아막성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 처음부터 아막성은 신라의 성이 였고, 수비군이 신라군, 공격군이 백제군이였다. 하지만 선덕여왕에서는 공격과 방어와 성의 국적도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아막성 전투는 딱 1번 602년에 벌어진다. 이때 가장 활약한 사람은 삼국사기 열전에도 등재되어 있는 화랑 귀산과 추항이다. 귀산과 추항은 귀산의 아비가 백제의 계략에 빠졌을 때 귀산과 추항이 단기 필마로 백제군에 맞서다 장렬히 전사한다.

 

신라의 화랑으로써는 가장 드라마틱한 전투이다. 그래서 선덕여왕에서 첫번째 전투장소로 아막성을 선택했을 지도 모르겠다.

 

화랑을 화랑답게 한, 원광법사 화랑도의 세속오계 중 <임전무퇴>가 실전에 처음 사용된 장소다. 그 후로 줄기차게 화랑은 무모하리 만치 단신공격을 감행한다. 후퇴를 치욕으로 생각하는 시발점이 되었던, 아막성을 선덕여왕 작가진은 가장 극적인 화랑의 성지로 아막성을 선택한 것이다. 
 

 

 

아막성의 주인공은 10화랑도 아니고, 김유신도, 설원랑도, 김서현도, 포스를 자랑한 알천 이승효는 더더욱 아니다.

 

아막성의 주인공은 덕만이 뻘밭에서 까마귀를 응시하는 덕만 대신에 귀산과 추항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속함성 전투는 이보다 훨씬 뒤인 624년에 벌어진 전투이다.

 

글쓴이가 관심있게 보았던 장면은 김서현의 신라군이 설원랑의 계략에 따라 진을 벗어나면서 잠깐 스치듯 지나간 목책의 문 이였다. 글쓴이는 잠시 백제와 신라의 전투에 왜 고구려군이 나타났나 했다.

 

현재의 선덕여왕에서 김유신(595년생)이 602년 8살에 용화낭도의 대장으로 나오고, 설원랑 옆에서 종횡무진 활약도 하는데 불가능은 없는 선덕여왕이라면 그리 낯선 출현도 아니다. 충분히 고구려가 백제나 신라의 편에서 싸움을 하거나 백제와 신라가 싸울때, 신라 진흥왕시기 써 먹었던 백제와 고구려가 싸울때 어부지리 한강유역을 점령해버린 전략을 고구려가 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선덕여왕에서 잠수함이나 미사일이나 탱크, 대포가 등장한다고 해도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환(한)단고기를 읽어 본사람은 별로 놀랄일도 아니다, 기원전  수천년전에 이미 잠수함을 만든 위대한 배달족이 아닌가? 수천년뒤 진평왕시대에 나타난다고 놀랄일도 아니다. 충분히 불가능이 없는 선덕여왕이니 말이다.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상징 #, 아막성에 나타난 까닭은?

 

 

 

 

 

 

선덕여왕 10회 20분경에 김서현이 알천부대의 백제의 노병부대와의 전투에 승전소식 나발소리를 듣고, 아막성 공격을 명하는 장면에서 1초 정도 극히 짧은 시간 동안 문이 열리기 전, 선명한  붉은 원안 검은 (#) 이 나타나면서 문이 열리고 군사들이 출전하면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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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최전방 아차산 보루에서 발견되었다는 # 토기

그래서 대한민국 국대축구팀 서포터즈 붉은악마의 상징기가 되었던  #, 

 

 

고구려 광개토의 상징인 # 문양이 602년 아막성 전투의 신라군의 상징깃발로 나타났다.


왜? 신라의 상징으로 # 문양을 사용하였을까? 잠시 생각해보니 머리에 스치듯 지나가는 기억의 파편들이 떠오르고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멍해져 버렸다. 그렇지 신라는 우물(#) 자체가 신성한 곳이라는 것을.. 가끔 기본을 망각할때 느꼈던 허탈감이 밀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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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북두칠성은 국자 모양이다. 은하수의 우물(#)을 퍼올리는 국자. 이 또한, (#)의 상징이 된다. 첨성대의 상단 (#) 모양도 하늘과 통하는 우물을 상징하고 있다. 글쓴이는 첨성대를 별을 관찰하는 용도가 아닌 하늘과 통하는 우물 즉 신라의 나정을 상징화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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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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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유머나라 2009.06.26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현장감이 느껴져요. 오래전 역사적 사실들이..

  2. BlogIcon norco window replacement parts 2012.03.17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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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작가들은 삼국사기의 기록을 들어서 용수와 용춘을 동일인물이라고 기술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바로 선덕여왕 작가들은 삼국사기 기록을 근거로 용수와 용춘은 동일인물이 될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상호모순이 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어디를 읽어봐도 용수와 용춘을 동일인물로 기술하지 않고 있다.  선덕여왕작가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용수와 용춘이 다른 인물이어야 한다는 기록을 삼국사기 내용에서 발췌하였다. 그런데 이찬 용수가 내성사신이 된 년도를 일부러 감춰 버렸다. 감추지 않았다면 <환타지 사극>이 아닌 <명품 사극>되는 것일까? 그래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온 용수, 용춘 관련기록들을 모두 년도와 함께 발췌하였다.

 

진평왕 44년(622) 2월에 이찬 용수(龍樹)를 내성 사신(內省私臣)으로 삼았다. 일찍이 왕 7년에 대궁(大宮), 양궁(梁宮), 사량궁(沙梁宮) 세 곳에 각각 사신(私臣)을 두었는데, 이때 이르러 내성사신 한 사람을 두어 세 궁(宮)의 일을 겸하여 관장하도록 하였다. (삼국사기)

四十四年 春正月 王親幸皇龍寺 二月 以伊湌龍樹爲內省私臣 初王七年
大宮·梁宮·沙梁宮三所 各置私臣 至是置內省私臣一人 兼掌三宮


 

진평왕 51년(629) 가을 8월에 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였다. (삼국사기)


삼국사기 열전 - 김유신 / 35세(629)

"건복 46년 기축(진평왕 51년: 629) 가을 8월에 왕이 이찬(伊湌) 임말리(任末里), 파진찬(波珍湌) 용춘(龍春)·백룡(白龍), 소판(蘇判) 대인(大因)·서현(舒玄) 등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공격하게 하였다. (삼국사기 열전)


 

선덕왕 4년(635) 겨울 10월에 이찬 수품(水品)과 용수(龍樹) <또는 용춘(龍春)이라고도 하였다.>를 보내 주·현을 두루 돌며 위문하였다. (삼국사기)

四年 唐遣使持節 冊命王爲柱國樂浪郡公新羅王 以襲父封 靈廟寺成 冬十月 遣伊湌水品·龍樹 一云龍春 巡撫州縣


645년 (선덕여왕 14) 아비지(阿非知)라고 하는 공장이가 명을 받고 와서 나무와 돌을 재고, 이간(伊干) 용춘(龍春; 혹은 용수龍樹)이 그 역사를 주관하는데 거느리고 일한 소장(小匠)들은 200 명이나 되었다. (삼국유사 - 황룡사 9층탑) 착공


654년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또는 용수(龍樹)라고도 하였다.>의 아들이다.<당서(唐書)에는 진덕의 동생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은 진평왕의 딸이고, 왕비 문명부인(文明夫人)은 각찬(角湌) 서현의 딸이다. (삼국사기)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 생:603 ~ 재위: 654~661)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삼국유사)


 

622년 진평왕 44년(622) 2월에 이찬(2등위) 용수(龍樹) 내성 사신(內省私臣) (삼국사기)

629년 진평왕 51년(629) 가을 8월에 왕이 대장군 용춘(龍春) (삼국사기)

629년 (진평왕 51년: 629) 가을 8월 파진찬(4등위 波珍湌) 용춘(龍春)· (삼국사기 김유신열전)

635년 선덕왕 4년(635) 겨울 10월 이찬 용수(龍樹) <또는 용춘(龍春)> (삼국사기)

645년 (선덕여왕 14) 이간(伊干) 용춘(龍春; 혹은 용수龍樹) (삼국유사 - 황룡사 9층탑) 착공

654년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 즉위년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또는 용수(龍樹)>의 (삼국사기)

654년 태종대왕(太宗大王: 생:603 ~ 재위: 654~661)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 아들(삼국유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김용수와 김용춘이 동일인물 인 듯 하면서도 동일 인물이 아닌  나이차이가 나는 형제나 별개의 인물처럼 묘사되고 있다. 그래서 앞쪽에 기술된 인물명을 기준으로 행적을 정리 해 보았다.


 

용수 

622년 이찬(2등) (삼국사기)

635년 이찬 (삼국사기)

654년 각간(1등), 추봉 (문흥대왕) (삼국유사)


 

용춘

629년 대장군 파진찬(4등위) (삼국사기, 김유신열전)

645년 이찬(이간) 용춘 (삼국유사 황룡사 9층탑)

654년 이찬 진지왕의 아들 용춘, 추봉 문흥대왕 (삼국사기)


용수는 622년 처음 삼국사기에 등장할 때 2등에 해당하는 이찬으로 등장해서 죽기전에는 각간이 되었다가 김춘추가 왕이 된 후 문흥대왕으로 추봉되고 있다. 용수는 635년 이찬을 마지막으로 기록에서 사라지고, 죽기 전 어떤 시기에 각간이 되었다가 김춘추가 왕이 되었을 때 문흥대왕으로 추봉된다. 화랑세기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같이 용수가 각간이 되었고 용춘은 추봉된 갈문왕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용춘은 629년 처음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에 대장군 파진찬(4등위)로 등장해서 654년 이찬(2등위)로 죽고, 김춘추가 왕이 된 후 문흥대왕으로 추봉되고 있다.


이들 둘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공히 문정태후(천명)의 남편으로 나오며, 삼국사기에서 용춘 이던 용수 던 진지왕의 아들로 나오나 삼국유사는 단지 용수, 용춘이 각간으로만 나온다.


만약 이들이 동일인물이라면 622년 2등위였다가 7년 후 직급이 4 등위가 되는 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또한, 삼국사기는 용수, 용춘이 최종적으로 이찬(2등)에서 죽고 있지만 삼국유사는 용수, 용춘이 각간(1등위)으로 죽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신문왕조에 태조대왕, 진지대왕, 문흥대왕, 태종대왕, 문무대왕의 5조묘에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보았을 때 김용수던 김용춘이던 진지왕의 아들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화랑세기>는 용수와 용춘이 서로 다른 사람이며, 이들은 공히 진지왕의 아들들로 기술을 하고 있으며, 천명(문정태후)와 결혼 관계에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화랑세기>의 해석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용수와 용춘은 도대체 같은 사람이야 다른 사람이야 하는 것을 단번에 의문을 풀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화랑세기>에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용수전군은 죽음에 임하여 부인과 자식들을 용춘공에게 부탁하였다.


덕만공주는 즉위하여 용춘을 남편으로 삼았으나, 용춘은 뒤를 이을 자식을 얻지 못하자 스스로 물러나기를 청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세 명의 재상을 두는 제도를 논의하여 흠순과 을제를 부서로 삼았다.


용춘은 평소에 금륜이 여색에 빠져 폐위된 것을 애처롭게 여기는 등 색을 좋아하는 성품이 아니었으며, 공주에게 아첨하는 마음이 없었다. 용춘의 마음이 정해진 것을 안 선덕은 정사를 을제공에게 맡기는 한편, 용춘공에게 물러나 살도록 허락하였다.


용춘공이 이에 천명공주를 아내로 삼고 태종을 아들로 삼았다. 이보다 먼저 용춘은 왕명으로 호명궁에서 지내며 다섯 딸을 낳았으나, 아들이 없었으므로 태종을 아들로 삼았던 것이다. 서자 5명과 서녀18명이 모두 귀하게 외어 세상에 드러났고, 태종이 즉위함에 이르러 갈문왕로 추존되었으니 참으로 성대한 일이다. 성스러운 덕이 하늘과 같고, 땅과 같도다. -화랑세기 풍월주 용춘공


 

똑같은 이유로 화랑세기가 위서가 됨을 의심해도 된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용수와 용춘이 서로 다른 사람이라면, 용수는 최소한 635년 이후까지 생존하고 있었다. 용춘은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황룡사 9층탑을 세우기 시작하는 645년까지 생존하고 있었다.


김춘추는 603년생이니 625년 김춘추 나이 23살 때 김서현의 막내딸인 문희(아이)와 결혼하고, 이듬해 626년 혼수품인 김법민(문무왕)이 태어나고, 635년에 장성한 33살의 나이이며, 나 10살이 되던 해이기도 하다. 이때 (635년) 김용수의 나이는 최소 40대말~50대초.중반에 이른다.


654년 김춘추가 왕에 등극할 때의 나이가 52세 이다. 춘추의 어미인 문정태후(천명)은 60중.후반에 해당한다. 법민(문무왕)의 나이 29살 때 이다.

 

신라를 한국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재현한다고 선덕여왕 자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정말 사상 처음으로 <재현>하는 것일까? 또한 역동적이고 화려했던 고대 신라사회로 안내를 하는 하는 것일까?

현존하는 사서인 삼국유사, 삼국사기에 화랑세기도 현존하는 사서로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화랑세기의 사료를 정확히 인용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미 덕만(선덕여왕)과 천명공주(문정태후)를 쌍둥이로 설정하는 순간, 선덕여왕 작가들의 <신라를 재현>한다는 말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첫단추 부터 잘못 채워서 지금 다시 처음 부터 바로 채우기는 물건너 가버렸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작가들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를 근거로 김용수와 김용춘은 서로 다른 형제이며, 김춘추는 천명이 낳은 김용수의 유복자로 설정하였다.  선덕여왕 작가들은 선덕여왕을 <명품 사극>을 지향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북두칠성이 북두팔성인 이유를 들어서 선덕여왕은 <환타지 사극>이 아니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선덕여왕을 보는 시청자들은 선덕여왕은 <환타지 사극>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청하고 있다. 그래서 왠만한 역사적인 팩트를 왜곡해도 그저 잼있다는듯 보고 있다. 하지만 작가들의 노고에 감사하면서 그들이 지향하는 <재현 사극>  주장에 맞추어서 비판을 가하고자 한다.  사실은 그저 드라마는 그렇지만 역사적인 팩트는 이렇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것이다.

  


김춘추가 용수의 유복자가 될 수 없는 이유

 


 

용수와 용춘이 서로 다른 형제라고 했을 때 삼국사기에 의하며 용수는 635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603년생인 김춘추는 635년 ~ 636년생이 되어야 한다.

 

이는 김춘추의 아들인 김법민(문무)의 출생년도인 626년보다도 늦은 해가 된다. 한마디로 자식보다 늦게 태어난 아들이 되는 것이다. 물론, 터미네이터에서는 미래에서 온 자식이 과거의 아비가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화랑세기에도

용수전군은 죽음에 임하여 부인과 자식들을 용춘공에게 부탁하였다. ..

용춘공은 아들이 없었으므로 태종을 아들로 삼았던 것이다.

라고 하고 있다.

유복자가 아닌 장성한 아들(춘추)과 늙은 아내(천명)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실은 606년에 사망한다. 그런데 김용수는 미실 일파에 의해서 김춘추가 태어나기 603년 한참전에 죽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들어 “용수와 용춘은 다른 사람이다“.를 인정한다고 해도 김용수에 대한 622년, 635년 기록은 어떤 식으로 처리할 것인가? 아마도 미실이 귀신이 되어서 용수에게 원한을 풀었던 것인가?


물론, 삼국유사에는 진지왕이 귀신이 되어서 비형랑을 낳았다고 하고 있다. 반면에 화랑세기는 진지왕이 폐위되고, 궁에 위폐 되어 있는 동안 궁인과 관계를 하여 비형랑을 낳았다고 해석하고 있지만 말이다.



단, 화랑세기에 의하면

태종이 즉위함에 이르러 갈문왕로 추존되었으니 참으로 성대한 일이다.

처럼 용춘은 갈문왕에 추봉된 것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춘추가 32살 때 까지 살아 있었던 친부 용수가 문흥대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찌되었던, 화랑세기나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보더라도 김춘추가 추봉한 문흥대왕은 용수인지 용춘인지는 알 수가 없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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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2012.01.01 0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2. BlogIcon 김용대 2012.01.07 04: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3. BlogIcon 알렉사 2012.04.04 0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4. BlogIcon 클레어 2012.04.05 1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5. BlogIcon 매디슨 2012.05.08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6. BlogIcon 안나 2012.05.11 0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살 여유가 없습니다.

  7.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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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인 그래서 진짜로 무언가일 이 화제를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결코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당신 발표 그러나 나와 쉬운 찾아내십시오. 그것은 저를 위해 너무 복잡하고 아주 넓게 보인다. 나는 당신

 

 

 

선덕여왕 작가들은 삼국사기의 기록을 들어서 용수와 용춘을 동일인물이라고 기술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바로 선덕여왕 작가들은 삼국사기 기록을 근거로 용수와 용춘은 동일인물이 될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상호모순이 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어디를 읽어봐도 용수와 용춘을 동일인물로 기술하지 않고 있다.  선덕여왕작가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용수와 용춘이 다른 인물이어야 한다는 기록을 삼국사기 내용에서 발췌하였다. 그런데 이찬 용수가 내성사신이 된 년도를 일부러 감춰 버렸다. 감추지 않았다면 <환타지 사극>이 아닌 <명품 사극>되는 것일까? 그래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온 용수, 용춘 관련기록들을 모두 년도와 함께 발췌하였다.

 

진평왕 44년(622) 2월에 이찬 용수(龍樹)를 내성 사신(內省私臣)으로 삼았다. 일찍이 왕 7년에 대궁(大宮), 양궁(梁宮), 사량궁(沙梁宮) 세 곳에 각각 사신(私臣)을 두었는데, 이때 이르러 내성사신 한 사람을 두어 세 궁(宮)의 일을 겸하여 관장하도록 하였다. (삼국사기)

四十四年 春正月 王親幸皇龍寺 二月 以伊湌龍樹爲內省私臣 初王七年
大宮·梁宮·沙梁宮三所 各置私臣 至是置內省私臣一人 兼掌三宮


 

진평왕 51년(629) 가을 8월에 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였다. (삼국사기)


삼국사기 열전 - 김유신 / 35세(629)

"건복 46년 기축(진평왕 51년: 629) 가을 8월에 왕이 이찬(伊湌) 임말리(任末里), 파진찬(波珍湌) 용춘(龍春)·백룡(白龍), 소판(蘇判) 대인(大因)·서현(舒玄) 등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공격하게 하였다. (삼국사기 열전)


 

선덕왕 4년(635) 겨울 10월에 이찬 수품(水品)과 용수(龍樹) <또는 용춘(龍春)이라고도 하였다.>를 보내 주·현을 두루 돌며 위문하였다. (삼국사기)

四年 唐遣使持節 冊命王爲柱國樂浪郡公新羅王 以襲父封 靈廟寺成 冬十月 遣伊湌水品·龍樹 一云龍春 巡撫州縣


645년 (선덕여왕 14) 아비지(阿非知)라고 하는 공장이가 명을 받고 와서 나무와 돌을 재고, 이간(伊干) 용춘(龍春; 혹은 용수龍樹)이 그 역사를 주관하는데 거느리고 일한 소장(小匠)들은 200 명이나 되었다. (삼국유사 - 황룡사 9층탑) 착공


654년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또는 용수(龍樹)라고도 하였다.>의 아들이다.<당서(唐書)에는 진덕의 동생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은 진평왕의 딸이고, 왕비 문명부인(文明夫人)은 각찬(角湌) 서현의 딸이다. (삼국사기)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 생:603 ~ 재위: 654~661)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삼국유사)


 

622년 진평왕 44년(622) 2월에 이찬(2등위) 용수(龍樹) 내성 사신(內省私臣) (삼국사기)

629년 진평왕 51년(629) 가을 8월에 왕이 대장군 용춘(龍春) (삼국사기)

629년 (진평왕 51년: 629) 가을 8월 파진찬(4등위 波珍湌) 용춘(龍春)· (삼국사기 김유신열전)

635년 선덕왕 4년(635) 겨울 10월 이찬 용수(龍樹) <또는 용춘(龍春)> (삼국사기)

645년 (선덕여왕 14) 이간(伊干) 용춘(龍春; 혹은 용수龍樹) (삼국유사 - 황룡사 9층탑) 착공

654년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 즉위년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또는 용수(龍樹)>의 (삼국사기)

654년 태종대왕(太宗大王: 생:603 ~ 재위: 654~661)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 아들(삼국유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김용수와 김용춘이 동일인물 인 듯 하면서도 동일 인물이 아닌  나이차이가 나는 형제나 별개의 인물처럼 묘사되고 있다. 그래서 앞쪽에 기술된 인물명을 기준으로 행적을 정리 해 보았다.


 

용수 

622년 이찬(2등) (삼국사기)

635년 이찬 (삼국사기)

654년 각간(1등), 추봉 (문흥대왕) (삼국유사)


 

용춘

629년 대장군 파진찬(4등위) (삼국사기, 김유신열전)

645년 이찬(이간) 용춘 (삼국유사 황룡사 9층탑)

654년 이찬 진지왕의 아들 용춘, 추봉 문흥대왕 (삼국사기)


용수는 622년 처음 삼국사기에 등장할 때 2등에 해당하는 이찬으로 등장해서 죽기전에는 각간이 되었다가 김춘추가 왕이 된 후 문흥대왕으로 추봉되고 있다. 용수는 635년 이찬을 마지막으로 기록에서 사라지고, 죽기 전 어떤 시기에 각간이 되었다가 김춘추가 왕이 되었을 때 문흥대왕으로 추봉된다. 화랑세기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같이 용수가 각간이 되었고 용춘은 추봉된 갈문왕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용춘은 629년 처음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에 대장군 파진찬(4등위)로 등장해서 654년 이찬(2등위)로 죽고, 김춘추가 왕이 된 후 문흥대왕으로 추봉되고 있다.


이들 둘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공히 문정태후(천명)의 남편으로 나오며, 삼국사기에서 용춘 이던 용수 던 진지왕의 아들로 나오나 삼국유사는 단지 용수, 용춘이 각간으로만 나온다.


만약 이들이 동일인물이라면 622년 2등위였다가 7년 후 직급이 4 등위가 되는 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또한, 삼국사기는 용수, 용춘이 최종적으로 이찬(2등)에서 죽고 있지만 삼국유사는 용수, 용춘이 각간(1등위)으로 죽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신문왕조에 태조대왕, 진지대왕, 문흥대왕, 태종대왕, 문무대왕의 5조묘에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보았을 때 김용수던 김용춘이던 진지왕의 아들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화랑세기>는 용수와 용춘이 서로 다른 사람이며, 이들은 공히 진지왕의 아들들로 기술을 하고 있으며, 천명(문정태후)와 결혼 관계에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화랑세기>의 해석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용수와 용춘은 도대체 같은 사람이야 다른 사람이야 하는 것을 단번에 의문을 풀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화랑세기>에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용수전군은 죽음에 임하여 부인과 자식들을 용춘공에게 부탁하였다.


덕만공주는 즉위하여 용춘을 남편으로 삼았으나, 용춘은 뒤를 이을 자식을 얻지 못하자 스스로 물러나기를 청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세 명의 재상을 두는 제도를 논의하여 흠순과 을제를 부서로 삼았다.


용춘은 평소에 금륜이 여색에 빠져 폐위된 것을 애처롭게 여기는 등 색을 좋아하는 성품이 아니었으며, 공주에게 아첨하는 마음이 없었다. 용춘의 마음이 정해진 것을 안 선덕은 정사를 을제공에게 맡기는 한편, 용춘공에게 물러나 살도록 허락하였다.


용춘공이 이에 천명공주를 아내로 삼고 태종을 아들로 삼았다. 이보다 먼저 용춘은 왕명으로 호명궁에서 지내며 다섯 딸을 낳았으나, 아들이 없었으므로 태종을 아들로 삼았던 것이다. 서자 5명과 서녀18명이 모두 귀하게 외어 세상에 드러났고, 태종이 즉위함에 이르러 갈문왕로 추존되었으니 참으로 성대한 일이다. 성스러운 덕이 하늘과 같고, 땅과 같도다. -화랑세기 풍월주 용춘공


 

똑같은 이유로 화랑세기가 위서가 됨을 의심해도 된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용수와 용춘이 서로 다른 사람이라면, 용수는 최소한 635년 이후까지 생존하고 있었다. 용춘은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황룡사 9층탑을 세우기 시작하는 645년까지 생존하고 있었다.


김춘추는 603년생이니 625년 김춘추 나이 23살 때 김서현의 막내딸인 문희(아이)와 결혼하고, 이듬해 626년 혼수품인 김법민(문무왕)이 태어나고, 635년에 장성한 33살의 나이이며, 나 10살이 되던 해이기도 하다. 이때 (635년) 김용수의 나이는 최소 40대말~50대초.중반에 이른다.


654년 김춘추가 왕에 등극할 때의 나이가 52세 이다. 춘추의 어미인 문정태후(천명)은 60중.후반에 해당한다. 법민(문무왕)의 나이 29살 때 이다.

 

신라를 한국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재현한다고 선덕여왕 자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정말 사상 처음으로 <재현>하는 것일까? 또한 역동적이고 화려했던 고대 신라사회로 안내를 하는 하는 것일까?

현존하는 사서인 삼국유사, 삼국사기에 화랑세기도 현존하는 사서로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화랑세기의 사료를 정확히 인용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미 덕만(선덕여왕)과 천명공주(문정태후)를 쌍둥이로 설정하는 순간, 선덕여왕 작가들의 <신라를 재현>한다는 말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첫단추 부터 잘못 채워서 지금 다시 처음 부터 바로 채우기는 물건너 가버렸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작가들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를 근거로 김용수와 김용춘은 서로 다른 형제이며, 김춘추는 천명이 낳은 김용수의 유복자로 설정하였다.  선덕여왕 작가들은 선덕여왕을 <명품 사극>을 지향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북두칠성이 북두팔성인 이유를 들어서 선덕여왕은 <환타지 사극>이 아니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선덕여왕을 보는 시청자들은 선덕여왕은 <환타지 사극>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청하고 있다. 그래서 왠만한 역사적인 팩트를 왜곡해도 그저 잼있다는듯 보고 있다. 하지만 작가들의 노고에 감사하면서 그들이 지향하는 <재현 사극>  주장에 맞추어서 비판을 가하고자 한다.  사실은 그저 드라마는 그렇지만 역사적인 팩트는 이렇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것이다.

  


김춘추가 용수의 유복자가 될 수 없는 이유

 


 

용수와 용춘이 서로 다른 형제라고 했을 때 삼국사기에 의하며 용수는 635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603년생인 김춘추는 635년 ~ 636년생이 되어야 한다.

 

이는 김춘추의 아들인 김법민(문무)의 출생년도인 626년보다도 늦은 해가 된다. 한마디로 자식보다 늦게 태어난 아들이 되는 것이다. 물론, 터미네이터에서는 미래에서 온 자식이 과거의 아비가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화랑세기에도

용수전군은 죽음에 임하여 부인과 자식들을 용춘공에게 부탁하였다. ..

용춘공은 아들이 없었으므로 태종을 아들로 삼았던 것이다.

라고 하고 있다.

유복자가 아닌 장성한 아들(춘추)과 늙은 아내(천명)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실은 606년에 사망한다. 그런데 김용수는 미실 일파에 의해서 김춘추가 태어나기 603년 한참전에 죽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들어 “용수와 용춘은 다른 사람이다“.를 인정한다고 해도 김용수에 대한 622년, 635년 기록은 어떤 식으로 처리할 것인가? 아마도 미실이 귀신이 되어서 용수에게 원한을 풀었던 것인가?


물론, 삼국유사에는 진지왕이 귀신이 되어서 비형랑을 낳았다고 하고 있다. 반면에 화랑세기는 진지왕이 폐위되고, 궁에 위폐 되어 있는 동안 궁인과 관계를 하여 비형랑을 낳았다고 해석하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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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던, 화랑세기나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보더라도 김춘추가 추봉한 문흥대왕은 용수인지 용춘인지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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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2012.01.01 0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2. BlogIcon 김용대 2012.01.07 04: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3. BlogIcon 알렉사 2012.04.04 0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4. BlogIcon 클레어 2012.04.05 1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5. BlogIcon 매디슨 2012.05.08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6. BlogIcon 안나 2012.05.11 0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살 여유가 없습니다.

  7.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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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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