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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2010년 백제 수도인 사비(부여)에서 새로운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기사화 되었다.

그런데 발굴유물 중 목간1점에서 "오석(五石)90근"이란 글자가 보였다.

발견된 목간의 <오석>을 연합뉴스 박태식 기자는 마약조달문서라고 자극적인 기사를 송고하였다.

이를 받아쓴 많은 언론들도 검증절차없이 백제시대 마약조달이라는 자극적인 기사를 남발하여 백제시대에 마약이 성행한 것 처럼 호도되고 있다.

목간 오석의 발견은 삼국시기 백제에서 도교가 성행했다는 고고학적 확증자료로써는 가치가 있는 획기적인 유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문제는 이를 해석하는데 백제가 "마약을 즐겨 복용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는 결론에는 도달할 수 없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동방문화재연구원(원장 김성구)은 부여군이 '사비119 안전센터'를 세울 예정인 부여읍 쌍북리 173-8ㆍ172-5번지 일대 1천35㎡(약 313평)을 발굴조사한 결과 묵으로 쓴 글씨 5글자가 확인되는 백제시대 목간 1점과, 목제 신발 1쌍, 목제 칠기 등을 발굴했다고 13일 말했다.

연구원 김성구 원장은 "육안 판독과 국립부여박물관에 의뢰해 실시한 적외선 촬영 사진 등을 볼 때 묵글씨는 '五石○十斤'(○는 미판독)으로 읽을 수 있으며 그 이하 부분 목간은 떨어져 나갔다"고 말했다.

오석(五石)은 다섯 가지 광물질 약을 섞어 만든 선약(仙藥)이라 해서 오석산(五石散)이라 하며, 혹은 그것을 복용하면 열이 나 차가운 음식만 먹어야 하기 때문에 한식산(漢食散)이라고도 하는 마약 일종이며 도교에서는 약효가 가장 뛰어난 선약 중의 선약으로 쳤으며, 중국에서는 특히 위진남북조시대에 복용이 유행했다.

이번 목간이 기록한 오석산은 무게가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백제사람들 또한 동시대 중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약을 즐겨 복용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발견으로 평가된다. - 연합뉴스

 



도교 교리를 개척한 문헌으로 꼽히는 동진시대 갈홍(葛弘)의 저서 포박자(抱朴子) 중 금단(金丹) 편에서는 구광단(九光丹)이라는 단약을 만드는 재료로 등장하는 오석(五石)에는 독성이 강한 광물질들인 단사(丹砂.황화수은), 웅황(雄黃), 백반(白礬), 증청(曾靑), 자석(磁石)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연합뉴스 백제시대 '마약' 조달 문서 발견

오석은 기사에서도 나온것처럼 단사(주사), 웅황, 백반, 증청, 자석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 광물질은 도교에서 사용되는 오방색을 띄고 있다. 오방과 이에 따른 방위색은 도교에서 자연을 이루는 기본 구성으로 알려져 있다.

좌청룡= 증청, 우백호= 백반, 남주작=단사(주사), 북현무= 자석, 중황=웅황 처럼 각방위의 고유색에 해당하는 광물질을 이용해서 선인이 되는 <선약>을 구하는 것이 도교의 단약제조비법인것이다.


이들 오석에서 나오는 색감 때문에 도교의 단약뿐만 아니고 안료, 도료로써 단청을 칠하는데 사용하거나 그림을 그릴때도 사용된다.

백제 대향로


또한, 이들을 복용한다고 해서 별다른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실질적으로 오석을 태우면 독성물질이 발생한다. 태우지 않는다면 인간에게 별다른 위해를 가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고 마약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지도 못한다.

오석을 태우면 단사(주사)에서 나오는 황화수은이 황과 수은으로 분리되고 검출되어 백색의 단약처럼 자연계에서 보기드문 살아있는 금속인 수은이 만들어 진다. 

하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오석을 태울 때 나오는 황화수은의 수은증기와 황성분은 위독성물질이 되고, 웅황과 황화수은에서 깃든 황성분으로 인해서 마약과 같은 환각증세를 보이고 과도하게 호흡기를 통과하였을 시  끝내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밀폐되지 않는 열린공간에서 오석을 태운다면 마약과 같은 영향은 없다.

단지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는 있다. 생각을 해보라, 오석을 태울때 나오는 황냄새와 연기를 또한, 오석을 태우고 난 후 물처럼 움직이는 은백색 수은을 본다면 놀라지 않을 백성들은 없을것이다. 향로에 오석을 태우는 행위는 통치수단의 일환이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석을 태우고 생성된 수은은 아말감기법으로 금도금을 할때 사용된다. 대부분의 삼국시대 불상은 아말감 기법을 이용한 금동불상이였다. 그러니 단순히 오석만을 가지고 도교와 연결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차라리 백제가 연금술사를 배출했다는 결론에는 도달할 수는 있다.

위의 기사대로라면 오석중에 포함된 웅황을 예로 들어 백제시대에 화약을 제조했다고 해도 할말은 없게 된다. 왜냐하면 웅황은 화약의 재료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또한, 연합뉴스의 기사대로 라면 신라는 마약제조 수출국이 되고 만다. 신라는 당나라에 오석의 하나인 <자석>을 대량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9년(669) 봄 정월에 신혜법사(信惠法師)를 정관대서성(政官大書省)으로 삼았다. 당나라 승려 법안(法安)이 와서 천자의 명을 전하여 자석을 구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9년

이를 두고 당나라가 백제와 신라를 친 이유는 마약을 챙취하기 위한 전쟁이거나 신라가 마약을 제조하기 때문에 당나라가 마약 제조국 백제.신라를 쳤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 비료를 만들때 필수불가결한 물질을 가지고 대량학살무기를 제조한다고 이라크를 침공한것과 별다른 차이도 없다. 

또한, 현대 대한민국에는 향정신성 의약품이 많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마약공화국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석도 백제 당대에는 치료약이나 벽사나 수은을 채취하기 위한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기사라면 수서에 기록된 백제 관련 기록중에서 백제는 도사가 없다는 기록에 반하여 백제시대에 도교가 퍼져 있었을도 있다는 결론만이 도출될뿐 마약제조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또한, 수서의 기록이 맞다면 백제는 수나라 (618년) 이후에 도교가 퍼졌다고 할 수 있다. 수서에서의 도사의 언급은 수나라 시기 도사(도교)가 발달하고 있었는데 수나라와 다르게 백제에는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목간이 발견된 장소는 백제의 최후의 수도인 사비(부여)(538~660년) 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백제 마약조달 문서 발견이란 전혀 역사에 부합하지않는 내용의 기사가 나온것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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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하수 2010.04.13 1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뜬구름 없는 기사네요. 잘 보고 갑니다.

  2. BlogIcon Ellif 2010.04.13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는 글 잘 봤습니다.

  3. a 2010.04.13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연합뉴스 김태식이 신라,조선만 옹호하는 경향이 크지
    언론에서도 유명한 식민사관 옹호자 김태식

  4. BlogIcon 펨께 2010.04.13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이없는 기사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ㅊㅊ

  5. BlogIcon Adish Ninsol 2010.04.13 2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이런기사 한두번인가요.....이젠 놀랍지도 않습니다....

  6. BlogIcon 쿠니미 2010.04.14 0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게 그런거였군요.여기서 이런내막을 몰랐으면 믿을뻔..

  7. BlogIcon 라이너스™ 2010.04.14 1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휴... 좀 어이가 없네요.;;
    잘보고갑니다. 날씨가 살짝 춥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따뜻한 봄날되시길^^

  8. BlogIcon 풀칠아비 2010.04.14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기사가 있었는지도 몰랐지만,
    이 글 읽지 않고 기사를 접했다면, 비판적 시각을 가지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9. BlogIcon RGM-79 2010.04.14 15: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사에서 마치 현대의 마약이 상용된 것처럼 지나치게 쓴 것은 사실이지만
    (기자의 성향상)
    한식산이 마약으로 쓰인 것도 사실입니다.
    위진남북조에서 당까지 많은 이들이 한식산을 복용한 후
    왕희지네 가족들처럼 등이 썩는 증세로 고생하다 죽거나
    몇몇 군주처럼 정신착란으로 살인을 하거나
    죽립7현이 부모가 죽었을 때도 술만 마신(중금속 중독으로 인한 기갈현상) 사례들이 많습니다.

    다만 종교적으로 새로운 삶을 얻기 위해(현실도피) 먹었다는 것이 미묘하게 다르기에
    마치 현대의 마약중독과 같다고 한 것은 잘못이죠.
    맨 마지막에 수서 기록 운운하며 부정한 것은 불교전래 과정과 대조해도
    맞는 얘기가 아닙니다.
    상당히 저변화가 이루어진 이후에야 기록에 부각되어 나오는 패턴입니다.

  10. BlogIcon 레오 ~ 2010.04.14 1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낚시글이 진화해서 이젠 폭탄글이 된건가요 ...마약조달 문서라니 ..충격입니다

  11. BlogIcon 이청용 2011.12.31 1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박 겉 핥기

  12. BlogIcon 김성환 2012.01.07 0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짚신도 짝이 있다

  13. BlogIcon Annabelle 2012.04.04 0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유대인 음식만 먹습니다.

  14. BlogIcon 사바나 2012.04.05 2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15. BlogIcon 애바 2012.05.09 0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채식주의자입니다.


2010년 백제 수도인 사비(부여)에서 새로운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기사화 되었다.

그런데 발굴유물 중 목간1점에서 "오석(五石)90근"이란 글자가 보였다.

발견된 목간의 <오석>을 연합뉴스 박태식 기자는 마약조달문서라고 자극적인 기사를 송고하였다.

이를 받아쓴 많은 언론들도 검증절차없이 백제시대 마약조달이라는 자극적인 기사를 남발하여 백제시대에 마약이 성행한 것 처럼 호도되고 있다.

목간 오석의 발견은 삼국시기 백제에서 도교가 성행했다는 고고학적 확증자료로써는 가치가 있는 획기적인 유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문제는 이를 해석하는데 백제가 "마약을 즐겨 복용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는 결론에는 도달할 수 없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동방문화재연구원(원장 김성구)은 부여군이 '사비119 안전센터'를 세울 예정인 부여읍 쌍북리 173-8ㆍ172-5번지 일대 1천35㎡(약 313평)을 발굴조사한 결과 묵으로 쓴 글씨 5글자가 확인되는 백제시대 목간 1점과, 목제 신발 1쌍, 목제 칠기 등을 발굴했다고 13일 말했다.

연구원 김성구 원장은 "육안 판독과 국립부여박물관에 의뢰해 실시한 적외선 촬영 사진 등을 볼 때 묵글씨는 '五石○十斤'(○는 미판독)으로 읽을 수 있으며 그 이하 부분 목간은 떨어져 나갔다"고 말했다.

오석(五石)은 다섯 가지 광물질 약을 섞어 만든 선약(仙藥)이라 해서 오석산(五石散)이라 하며, 혹은 그것을 복용하면 열이 나 차가운 음식만 먹어야 하기 때문에 한식산(漢食散)이라고도 하는 마약 일종이며 도교에서는 약효가 가장 뛰어난 선약 중의 선약으로 쳤으며, 중국에서는 특히 위진남북조시대에 복용이 유행했다.

이번 목간이 기록한 오석산은 무게가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백제사람들 또한 동시대 중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약을 즐겨 복용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발견으로 평가된다. - 연합뉴스

 



도교 교리를 개척한 문헌으로 꼽히는 동진시대 갈홍(葛弘)의 저서 포박자(抱朴子) 중 금단(金丹) 편에서는 구광단(九光丹)이라는 단약을 만드는 재료로 등장하는 오석(五石)에는 독성이 강한 광물질들인 단사(丹砂.황화수은), 웅황(雄黃), 백반(白礬), 증청(曾靑), 자석(磁石)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연합뉴스 백제시대 '마약' 조달 문서 발견

오석은 기사에서도 나온것처럼 단사(주사), 웅황, 백반, 증청, 자석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 광물질은 도교에서 사용되는 오방색을 띄고 있다. 오방과 이에 따른 방위색은 도교에서 자연을 이루는 기본 구성으로 알려져 있다.

좌청룡= 증청, 우백호= 백반, 남주작=단사(주사), 북현무= 자석, 중황=웅황 처럼 각방위의 고유색에 해당하는 광물질을 이용해서 선인이 되는 <선약>을 구하는 것이 도교의 단약제조비법인것이다.


이들 오석에서 나오는 색감 때문에 도교의 단약뿐만 아니고 안료, 도료로써 단청을 칠하는데 사용하거나 그림을 그릴때도 사용된다.

백제 대향로


또한, 이들을 복용한다고 해서 별다른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실질적으로 오석을 태우면 독성물질이 발생한다. 태우지 않는다면 인간에게 별다른 위해를 가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고 마약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지도 못한다.

오석을 태우면 단사(주사)에서 나오는 황화수은이 황과 수은으로 분리되고 검출되어 백색의 단약처럼 자연계에서 보기드문 살아있는 금속인 수은이 만들어 진다. 

하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오석을 태울 때 나오는 황화수은의 수은증기와 황성분은 위독성물질이 되고, 웅황과 황화수은에서 깃든 황성분으로 인해서 마약과 같은 환각증세를 보이고 과도하게 호흡기를 통과하였을 시  끝내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밀폐되지 않는 열린공간에서 오석을 태운다면 마약과 같은 영향은 없다.

단지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는 있다. 생각을 해보라, 오석을 태울때 나오는 황냄새와 연기를 또한, 오석을 태우고 난 후 물처럼 움직이는 은백색 수은을 본다면 놀라지 않을 백성들은 없을것이다. 향로에 오석을 태우는 행위는 통치수단의 일환이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석을 태우고 생성된 수은은 아말감기법으로 금도금을 할때 사용된다. 대부분의 삼국시대 불상은 아말감 기법을 이용한 금동불상이였다. 그러니 단순히 오석만을 가지고 도교와 연결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차라리 백제가 연금술사를 배출했다는 결론에는 도달할 수는 있다.

위의 기사대로라면 오석중에 포함된 웅황을 예로 들어 백제시대에 화약을 제조했다고 해도 할말은 없게 된다. 왜냐하면 웅황은 화약의 재료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또한, 연합뉴스의 기사대로 라면 신라는 마약제조 수출국이 되고 만다. 신라는 당나라에 오석의 하나인 <자석>을 대량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9년(669) 봄 정월에 신혜법사(信惠法師)를 정관대서성(政官大書省)으로 삼았다. 당나라 승려 법안(法安)이 와서 천자의 명을 전하여 자석을 구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9년

이를 두고 당나라가 백제와 신라를 친 이유는 마약을 챙취하기 위한 전쟁이거나 신라가 마약을 제조하기 때문에 당나라가 마약 제조국 백제.신라를 쳤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 비료를 만들때 필수불가결한 물질을 가지고 대량학살무기를 제조한다고 이라크를 침공한것과 별다른 차이도 없다. 

또한, 현대 대한민국에는 향정신성 의약품이 많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마약공화국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석도 백제 당대에는 치료약이나 벽사나 수은을 채취하기 위한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기사라면 수서에 기록된 백제 관련 기록중에서 백제는 도사가 없다는 기록에 반하여 백제시대에 도교가 퍼져 있었을도 있다는 결론만이 도출될뿐 마약제조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또한, 수서의 기록이 맞다면 백제는 수나라 (618년) 이후에 도교가 퍼졌다고 할 수 있다. 수서에서의 도사의 언급은 수나라 시기 도사(도교)가 발달하고 있었는데 수나라와 다르게 백제에는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목간이 발견된 장소는 백제의 최후의 수도인 사비(부여)(538~660년) 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백제 마약조달 문서 발견이란 전혀 역사에 부합하지않는 내용의 기사가 나온것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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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하수 2010.04.13 1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뜬구름 없는 기사네요. 잘 보고 갑니다.

  2. BlogIcon Ellif 2010.04.13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는 글 잘 봤습니다.

  3. a 2010.04.13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연합뉴스 김태식이 신라,조선만 옹호하는 경향이 크지
    언론에서도 유명한 식민사관 옹호자 김태식

  4. BlogIcon 펨께 2010.04.13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이없는 기사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ㅊㅊ

  5. BlogIcon Adish Ninsol 2010.04.13 2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이런기사 한두번인가요.....이젠 놀랍지도 않습니다....

  6. BlogIcon 쿠니미 2010.04.14 0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게 그런거였군요.여기서 이런내막을 몰랐으면 믿을뻔..

  7. BlogIcon 라이너스™ 2010.04.14 1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휴... 좀 어이가 없네요.;;
    잘보고갑니다. 날씨가 살짝 춥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따뜻한 봄날되시길^^

  8. BlogIcon 풀칠아비 2010.04.14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기사가 있었는지도 몰랐지만,
    이 글 읽지 않고 기사를 접했다면, 비판적 시각을 가지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9. BlogIcon RGM-79 2010.04.14 15: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사에서 마치 현대의 마약이 상용된 것처럼 지나치게 쓴 것은 사실이지만
    (기자의 성향상)
    한식산이 마약으로 쓰인 것도 사실입니다.
    위진남북조에서 당까지 많은 이들이 한식산을 복용한 후
    왕희지네 가족들처럼 등이 썩는 증세로 고생하다 죽거나
    몇몇 군주처럼 정신착란으로 살인을 하거나
    죽립7현이 부모가 죽었을 때도 술만 마신(중금속 중독으로 인한 기갈현상) 사례들이 많습니다.

    다만 종교적으로 새로운 삶을 얻기 위해(현실도피) 먹었다는 것이 미묘하게 다르기에
    마치 현대의 마약중독과 같다고 한 것은 잘못이죠.
    맨 마지막에 수서 기록 운운하며 부정한 것은 불교전래 과정과 대조해도
    맞는 얘기가 아닙니다.
    상당히 저변화가 이루어진 이후에야 기록에 부각되어 나오는 패턴입니다.

  10. BlogIcon 레오 ~ 2010.04.14 1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낚시글이 진화해서 이젠 폭탄글이 된건가요 ...마약조달 문서라니 ..충격입니다

  11. BlogIcon 이청용 2011.12.31 1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박 겉 핥기

  12. BlogIcon 김성환 2012.01.07 0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짚신도 짝이 있다

  13. BlogIcon Annabelle 2012.04.04 0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유대인 음식만 먹습니다.

  14. BlogIcon 사바나 2012.04.05 2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15. BlogIcon 애바 2012.05.09 0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채식주의자입니다.

MBC 사극 <선덕여왕>은 대부분의 모티브와 등장인물들을 <화랑세기>에 의존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들이 <문노>,<미실>, <하종>,<보종>,<미생>,<세종>과 화랑들이다. 아직까지 화랑세기의 진위논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또한,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화랑세기는 새로운 역사물을 만들 때 소설의 영감을 받기도 한다. 

글쓴이도 또한, 역사를 해석할 때 화랑세기를 참고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빈틈을 찾아 합리적인 해석을 찾기도 한다. 어찌 되었던 <화랑세기>의 위작여부에 상관없이 우리 사학계와 문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화랑세기>를 보기전에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로 미쳐 깨닫지 못했고, 이들 사서로 합리적인 해석이 불가능했던 것이 화랑세기를 읽고 나서 그 미싱링크를 찾아낸 적이 있다.  

미싱링크를 찾은 다음 화랑세기를 보지 않고, 다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다시 읽었을때도 화랑세기가 있고, 없고에 상관없이 합리적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것중에 하나가, <만파식적>에 관한 재해석이다. 글쓴이는 화랑세기의 도움으로 만파식적이 가지고 있던 의문부분을 상당수 해결할 수 있었다.
삼국사기에는 효소왕(이홍, 이공)의 나이를 추측할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신문왕5년 687년 원자가 태어났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효소왕(이홍,이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삼국유사> <만파식적>을 읽다 보면 이해가 되지 않고 미궁속으로 빠진다.

682년 임오(壬午) 5월 초하루(다른 책에는 천수天授 원년元年이라 했으나 잘못)에 해관(海官) 파진찬(波珍飡) 박숙청(朴夙淸)이 아뢰었다.  “동해 속에 있는 작은 산 하나가 물에 떠서 감은사를 향해 오는데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합니다.” 

일연은 <삼국사기>를 읽고 <삼국사기>에서 일부러 빼버린 이야기나 삼국사기가 흘려버린 이야기를 전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유사>를 작성했다. 또한, <삼국사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주석을 달면서 다른 이설도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하고 있다. 

일연은 <삼국유사><만파식적>의 사건이 682년 임오년 5월 또는 천수 원년(690)년때 일어난 사건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한 682년 5월과 690년 5월중 일연은 <만파식적>이야기가 682년 5월에 있었던 일이라고 하고 있다.  이로써 687년 이홍(이공)이라고 추측되는 <원자>를 이홍(효소왕)으로 보고 있지 않음이 확실해 진다.

그렇지 않다면, 682년이면 이홍(이공)이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데 690년이 틀렸다고 확신에 차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682년 이미 이홍(이공)이 생존하고 있었고  <이홍>이 682년에 이미 태자가 되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일연은 <만파식적>을 빌어서 <삼국사기> 신문왕 때의 기록이 잘못되었다고 언급하고 있지도 않다. 이는 후대의 많은 이들이 <원자>가 꼭 맏아들이란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를 읽다 보면 꼭 원자 = 장자가 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원자=맏아들이라고 하지도 않고 있다. 장자 = 원자 일 수 도 있지만, 원자 =/= 장자가 아닌 경우도 많다. 장자는 장자라고 별도로 기록하고 있다. 이를 구별하지 못한 후학들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원자 = 장자 의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버지 문무대왕(文武大王)을 위하여 동해(東海) 가에 감은사(感恩寺)를 세웠다(절 안에 있는 기록에는 이렇게 말했다.  문무왕文武王이 왜병倭兵을 진압하고자 이 절을 처음 창건創建했는데 끝내지 못하고 죽어 바다의 용龍이 되었다.  그 아들 신문왕神文王이 왕위王位에 올라 개요開耀 2년(682)에 공사를 끝냈다.  금당金堂 뜰 아래에 동쪽을 향해서 구멍을 하나 뚫어 두었으니 용龍이 절에 들어와서 돌아다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대개 유언遺言으로 유골遺骨을 간직해 둔 곳은 대왕암大王岩이고, 절 이름은 감은사感恩寺이다.  뒤에 용龍이 나타난 것을 본 곳을 이견대利見臺라고 했다).

 그렇다면, 감은사는 문무왕(661년~681년 7월)때 공사를 시작해서 682년 5월 이전에 완공되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신문왕이 동해쪽의 관리가 보고한 내용을 살피려 감은사에 갔다. 거북모양의 바위섬에서 있는 용으로 부터 <검은옥대>와 대나무를 가지고 오는 도중 이공태자가 성을 지키고 있다가 말을 타고, 신문왕을 맞이 했다는 이야기다. 

이공(효소) = 원자 = 장자 라는 확신을 가지고 <삼국사기>의 기록을 재정립해 보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만파식적>의 이야기가 어느때 발생한 때인지를  추적한다면
 

682년 5월 금성이 달을 침입했다. <만파식적> 1 <삼국유사>
687년 2월 원자가 태어났다. (맏아들 이공이 태어났다)
690년 5월 만파식적  2 <삼국유사>
691년 3월 왕자 이공이 태자가 되다.  5살(만 3살)
692년 봄 대나무가 말랐다. 7월 신문왕이 죽음, 효소(이공)의 나이는 6살(만 4살 몇개월)에 왕위에 올랐다.


<만파식적 1> 일연은 <삼국유사>는 태어나지도 않은 이공(효소)왕을 태자로 등장시켜 690년이 아닌 682년 5월이라고 하고 있다. 일연은 <원자>와 이공은 다른 인물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일연>은 <김흠돌반란사건>을 염두해 두고 <만파식적>을  이야기한것 같다. 반란으로 민심이 어수선한 것을 <만파식적>으로 일시에 해소시켰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일연은 690년의 <만파식적 2>의 이설을 배격하고 있다.

보다 합리적인해석은 이공(효소왕)이 태자였고 이설인 천수원년(690년)설을 따르면 이공이 태자가 되기 전이니 천수년간중 691~693년 사이가 되어야하고, 그런데 신문왕은 692년 7월에 죽음으로  691년 5월 ~692년 5월사이에 있었던 일이 된다.

좀더 그 시기를 줄인다면, <삼국사기> 신문왕 12년 (692년) 봄 기사에 <대나무가 말랐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만파식적>의 대나무와 연결이 되는내용이다.. 봄에 대나무가 말랐을 정도면 봄가뭄이 심했다고 할수 있는데 그렇다면 단순히 봄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심했다라고 기록하면 되었을 것인데도 <대나무가 말랐다>라고만 기록하고 있다.

제14대 유리왕(儒理(禮)王) 때 이서국(伊西國) 사람들이 금성(金城)을 공격해 왔다.  신라에서도 크게 군사를 동원했으나 오랫동안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이상한 군사가 와서 신라군을 도왔는데 그들은 모두 댓잎을 귀에 꽂고 있었다.  이들은 신라 군사와 힘을 합해서 적을 격파했다.  그러나 적군이 물러간 뒤에는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댓잎만이 미추왕의 능 앞에 쌓여 있을 뿐이었다.  그제야 선왕(先王)이 음(陰)으로 도와 나라에 공을 세웠다는 것을 알았다.  이리하여 그 능을 죽현능(竹現陵)이라고 불렀다. - 삼국유사 죽현능

신라에서 대나무의 상징은 김씨계의 첫 왕인 <김미추>를 상징한다. 김미추가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서고국이 경주를 침입할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죽엽군들이 나타나 위기의 신라를 구원한다. 그리고 조사를 해보니 <미추릉>의 주위에 있던 대나무 잎들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죽엽군은 <김미추>가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서 보낸 <음병>이라고 믿었고, 미추릉을 <죽현릉>이라고 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이처럼 대나무는 <신라>에서는 신성시 하는 신물 중에 하나이다. 그러니 692년 봄 <대나무가 말랐다>라는 이야기는 단순한 대나무가 아닌, <김미추릉>에 있던 대나무가 말랐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미추릉에 있던 대나무가 말랐다는 것은 곧 신라를 지탱해주던 김미추계에 이상이 발생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만파식적>에 2개의 대나무가 낮에는 둘로 갈라지고, 밤에는 하나가 되어 바람이 불고, 어둠이 밀려왔다고 했으니, 신라의 변고를 말하고 2개의 세력이 충돌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만파식적>과 <삼국사기>
692년 봄 <대나무가 말랐다>는 신문왕 말년에 신라왕실의 혼란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692년 신문왕 말년 이런 혼란을 <만파식적>으로 잠재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공태자가 6살에 신문왕이 궁을 비운틈에 왕궁을 지키고, 말을 몰아서 왕을 영접하고, 검은옥대에 주렁주렁 달린 옥들이 용이라고 하였다고 하고 있다. 여전히 석연치 않는 부분은 만 4살 조금 넘은 나이에 왕을 대신해서 왕성을 지키고, 신문왕이 모르던 사실을 알려줄 정도의 지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대다수 나이가 어린왕자가 왕위에 오르면 어린왕의 모후가 섭정을 한다. 그리고 섭정을 하는 모후(태후)의 기록이 왕의 기록으로 남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이공태자의 기록도 이공의 모후인 신목(왕후)의 행동이 아닐까?

신목은 요석공주의 소생으로 설총의 누이로 추측되는 인물이다. 설총에게 <검은옥대>와 <만파식적>에 관한 이야기를 미리 듣고 신문왕에 이야기를 했을 수 있지 않을까? 이는 이공이 687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기록을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추측한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신문왕과 <이공>태자에 관한 이야기라면 어찌 될까?

미궁속에 빠지게하는 <원자>== <장자>라는 올가미를 풀어버린다면..

합리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은 687년 2월 태어났다는 <원자>가 이공태자일 필요성도 없고 <원자> = /= <장자> 라면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일연도 <원자>=이공(효소)라고 하지 않았다.

신목이 신문왕비가 되는 나이를 보면 아버지 김흠운이 655년 정월에 사망할 시점을 신목의 출생 한때라고 하더라도 신문왕 즉위년(681년)이면 27세가 된다. 그런데 33살 이상인 687년에 첫번째 원자를 낳았다? 그리고 흥광(성덕왕)을 낳고, 728년 당나라에 숙위하는 김사종을 낳았다?

신라사회에는 13~15세 정도면 결혼하고 15~6세면 자식 한둘은 낳고 있다, 그런데 유독 신목만 당시 조혼이 성행한 신라사회에서 첫결혼은 28세에 한다? 신목이 과부가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상황이거나 신문왕과 이전부터 사실혼 (후비)관계에 있지 않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또한, <삼국유사> 일연은 <만파식적>에서 682년 5월에 있었거나 690년 (천수 원년) 두가지 설을 전하고 있다.

<일연>은 <김흠돌반란사건>을 염두해 두고 <만파식적1>을  이야기한 것 같다. 반란으로 민심이 어수선한 것을 이듬해 5월 수습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682년 5월 태백이 달을 침입했다고 했으니 682년 5월 전해져온 이야기 일 수 있다.

또한, 일연은 왕자와 태자를 혼동해서 소급적용하는 경우가 있고, 김춘추와 김문희와의 관계에서 처럼 선덕공주가 분명한데도 선덕여왕이 춘추와 문희를 연결시켰다고 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 만파식적 1> 682년 5월과 <만파식적 2> 690년 ~ 692년 5월 <만파식적 2>설도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을 보다 합리적으로 해석한다면 687년에 태어난 <원자>를 꼭 <이홍>이라고 볼 필요가 없다. 원자란 꼭 맏아들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일연 또한  687년 <원자>가 태어났음을 알고 서도 690년 <만파식적 2설>  682년 <만파식적 1설> 설>이 맞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일연 또한 원자 = 장자라고 보지 않았을 뿐더러, 원자 = 이공(효소왕)이라고 보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이공(효소왕)은 신문왕이 즉위한 후 682년에 충분히 말을 타고 돌아 다닐수 있고, 왕이 성을 비운사이 성을 지킬정도이며, 왕에게 지혜를 알려줄 정도의 나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늦은 나이라고 해도 10세이상은 되었다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가지 삼국사기도 원자 = 이공(효소)로 보지 않고 있다는 정황 증거가 발견된다. <삼국사기>는 단순히 689년 <왕자 이홍을 태자로 삼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여러 왕자 중 이홍을 태자로 삼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로써 원자가 꼭 이홍(이공)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된다.

삼국사기에서 모든 원자들이 장자인 경우가 없다. 또한, 장자와 원자를 구별해서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원자>==<장자>의 설은 장자가 원자가 될 수도 있지만 꼭 동일하지는 않는 것이다. 정비소생 이거나 후비소생이라도 장자는 될 수 있다. <원자>란 <왕>과 정비인<왕비>의 소생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원자>란 적통을 이어갈 사람으로 해석하거나, 정식왕과 정식 왕비사이에 태어난 첫번째 왕자라고 한다면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
신문왕이 왕이 된후 늙은 신목을 받아 들여 낳은 첫아이가 이공(효소)가 아니라는 또다른 증거가 있다.

<화랑세기>에는 <김흠돌>이 반란을 일으키는 여러 원인중의 하나를
정명태자(신문왕)와 신목사이에 이공(효소왕)이 태어나 태자비였던 흠돌의 딸이 배척되고 흠돌의 권력이 무너질것을 두려웠다고 하고 있다. 좀더 소상히 설명하면,

신목은 김흠운의 딸이다, 655년 아버지 김흠운이 죽자, 춘추(태종)가 손자인 소명태자에 시집을 보내려 했으나 소명태자가 655년 이전 어린 나이에 일찍 죽었다. 그런데 신목은 다른 곳에 시집가지 않고 소명태자의 제사를 주관하는 <소명제주>가 되어 자의왕후가 좋아했다고 한다. 그후 소명궁에 살고 있던 신목은 665년 태자가 된 정명(신문왕)태자와 눈이 맞아 <이공>을 낳았다고 한다.(15세 전후) 이때 자식이 없던 태자비 흠돌녀가 투기를 했다고 한다. 뒷배경이였던 문명태후가 죽은 후 김흠돌은 681년 7월 문무왕이 죽고 난후 8월 8일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반란에 실패해 김흠돌은 죽고, 흠돌녀는 정식 왕비도 되기전에 궁에서 축출 된다. <화랑세기>

이로서  문무에게는 정명(신문왕)의 형으로 추측되는 소명이 661~665년 사이 태자가 되었지만, 결혼을 약속한 소명을 두고 일찍죽었다. 665년 정명이 대신에 태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목은 결혼을 약속한 소명태자가 죽자 소명태자와 영혼결혼식을 하고 소명태자가 살고 있던 소명궁에서 생활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665년 이후 소명의 동생인 정명이 태자가 되자 정명과의 사이에 이공을 낳았다고 하겠다. 

이로써 이공(효소)는 빠르면 665년 이후에 태어났고 늦어도 문명태후가 죽기전에 태어났다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682년 5월 <만파식적 1>이 성립하려면 이공(효소)는 10세 초중반이 됨으로 666~672년생이 되어야 한다.

683년 5월 신목이 신문왕의 정비인 (부인)이 되어 687년 2월에 낳은 첫아들이 <원자>가 되는 것이다.
이를 연표로 작성하면 다음과  같다.

626년 문무(법민) 생
654년 문무(법민) 28세 왕자
655년 1월 문무(법민) 29세 입태자
655년 신목태후 아버지 김흠운 사망 및 신목태후 출생(?)
661년 7월 문무 36세 왕
661년 ~ 665년 소명태자 사망, 신목 소명제주 <화랑세기>
665년 신문(정명) 입태자
666~672년 신문(정명)/신목의 장자 효소(이공) 태어남 <유사><만파식적 1><화랑세기>
666~680년 신문(정명)/신목의 장자 효소(이공) 태어남, <만파식적 2><화랑세기>
681년 7월 문무(법민) 56세 사망
681년 7월 신문(정명) 왕위 계승
681년 8월 김흠돌 반란
682년 5월 만파식적 사건 1 <삼국유사> 효소(이공,이홍) (10세~17세)
683년 5월 신목 신문왕의 부인이 됨
687년 2월 원자 태어남
690년 5월 만파식적 사건 2 <삼국유사>
691년 신문왕 11년 봄 3월 1일에 왕자 이홍(理洪)을 태자로 봉하였다.
692년 7월 신문(정명)왕 죽음
692년 7월 효소(이공,이홍) 왕위계승 (10세~27세), <만파식적 1> 이면 (20세~27세)
700년 6월 이찬 경영 반란
700년 7월 신목태후 사망  <황복사 3층석탑 은합>
702년 7월 성덕(흥광,융기) 신문왕 2자 왕위계승
728년 성덕왕 27년 7월 왕의 동생 김사종(3자~4자) 당나라 숙위

682년 5월 <만파식적 1> 이공(효소왕)은 (10세~17세)전후가 되고, 692년 5월 <만파식적 2> 이공(효소왕)은  (20세~27세)전후가 된다. 그러므로 <삼국유사>의 <만파식적>은 <1><2>에 상관없이 합리적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687년 2월에 태어난 <원자>를 단지 맏아들로 해석해 <원자>==이공(효소왕)이니 이공(효소왕)은 692년 6세에 왕위를 계승했을 것이다. 그러니 <신목>태후가 섭정을 하였을 것이라 추측하였고, 700년 7월에 신목태후가 죽은 줄도 모르고 702년 이공(효소왕)을 대신에 왕위에 오른 동생 흥광(성덕)왕도 692년 죽은 신문왕의 유복자일 가능성이 있으니 11살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신목태후가 섭정하였을 것이라 주장하는 사태까지 발전하였다.

<삼국유사>의 만파식적 이야기를 가공의 이야기 알고 있었으며 단지 690년 설을 추종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화랑세기를 인용하는 많은 사람들도 <원자>를 <이공(효소왕)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를 자신의 틀속에 갇어 놓고 자신의 입맛(가설)에 맞지 않는다 하여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화랑세기> 중 하나 또는 모두가 잘못되었다고 하였다.

좀더 <원자>를 확대 해석한다면 <원자>는 신문왕과 신목의 아들인 태자 이홍(효소왕)의 아들일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 다음 기록을 본다면 이때 원자는 효소왕의 아들이 아닌 효소왕의 동생인 성덕왕일 가능성이 많다.

<삼국사기>에는
702년 성덕왕 즉위년 "신문왕의 둘째 아들이고 효소왕의 친동생이다. 효소왕이 죽고 아들이 없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세웠다."

흥광(성덕왕) 이 687년에 태어난 <원자>라면, 702년 성덕왕은 왕위에 오를때 나이가 16세로 추측 된다.
 

728년 성덕왕 27년(728) 가을 7월에 왕의 아우 김사종(金嗣宗)을 당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바치고 아울러 글을 올려 자제들의 국학(國學) 입학을 청하니, 조칙으로 이를 허락하고 김사종에게 과의(果毅)의 관작을 주고 머물러 숙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하지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화랑세기> 공히 받아 들이거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으로도 충분히 <만파식적>의 시기를 680년이던 690년 이후 이던지 상관없이 이공(효소)가 만파식적에 중추적인 등장인물이 될려면 충분한 나이가 되어야함을 예측할 수 있다.

이로 미루어 이공(효소왕)은 22세~27세에 왕위를 계승하였고, 흥광(성덕) 또한 692년 7월 죽은 신문왕의 유복자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원자>가 흥광(성덕왕)이라면, 655년 이전 출생인 신목은 688년 이면 34살~39살 이상으로 728년에 당나라에 숙위하러간 성덕왕의 동생 김사종은 신문, 신목사이에 태어났던 신문과 다른 후비 사이에 태어났던 688년~693년 사이에 태어나야 한다.

만약, <원자>가 사종이라면 흥광은 신문왕이 왕이 되는 681년 7월 이전 이미 태어났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고, 22세 전후에 왕위에 올랐음을 예측할 수도 있다.

글쓴이는 아직까지 화랑세기를 사서로서 인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화랑세기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보다는 후대에 만들어진 위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이유는 삼국사기와 사국유사의 기록중 한쪽에 손을 들어주는게 아니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사이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고, 삼국사기도 맞고, 삼국유사도 맞다는 류의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이설이 있는데 둘다 맞는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앞서 만들어 졌다는 사서가 후대 사서를 본듯한 내용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만파식적이나 선덕여왕시기 등 화랑세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으로 해석 불가능한 역사적인 미스터리를 해결하는데 충분한 동기부여를 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드라마 선덕여왕은 화랑세기를 재조명 하는 데 커다란 공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화랑세기를 위서로 인정하는 많은 분들은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인해서 위서 화랑세기가 사서로 인정되는게 달갑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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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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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rinda 2009.12.31 0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해박한 역사 지식은 언제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
    만파식적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이런 역사적 사건들이 얽혀있는지는 몰랐는데,
    덕분에 잘 정리하고 갑니다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

  3. BlogIcon 감자꿈 2009.12.31 1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이제 2009년이 오늘로 끝납니다.
    연말이라 바쁘신가요? 포스팅이 없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4. BlogIcon 루비™ 2009.12.31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해는 선덕여왕 드라마로 인해 많이 즐거웠고
    갓쉰동님의 해박하신 포스팅으로 인해 제 식견이 무지 넓어졋던 한해였답니다.
    이제 한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네요..
    2009년 한해 동안 많은 사랑 베풀어주신 것 감사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최고로 멋진 2010년 되세요~~!!

  5. BlogIcon 청석 2010.01.01 0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밝아오는 경인년 새해에 더욱 님의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 오길 바라며 더욱 님의 블로 그가 번성하길 기원합니다.
    그동안 저에게 관심 보여준 님 에게 새해 인사드립니다.

  6. BlogIcon 영혼울림 2010.01.01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대단하십니다.
    늘 깊은 지식과 분석 접근력에 감동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7. BlogIcon labyrint 2010.01.02 2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 블로그 대박나시고, 원하시는 소원들이 성취되시길 기원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8. BlogIcon 시림 (詩琳) 2010.01.08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빛....
    태어나
    길 걸었으며
    그 곳에
    내 희망
    나에 꿈 이루었지

    행복은 곁에 있어요
    사랑으로...
    기다림에

  9. BlogIcon 펨께 2010.01.08 1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잘 지내시는지요?
    좋은 주말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10. BlogIcon click here 2012.07.14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듯이 한가하게 주식이야기와 남북정

  11. BlogIcon Brazzers membership 2012.09.08 0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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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BlogIcon wireless dog fence collars for small dogs 2012.11.14 1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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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BlogIcon 5 gallon water bottle holder 2012.12.19 1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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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BlogIcon invisible electric dog fence 2012.12.26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화랑세기는 새로운 역사물을 만들 때 소설의 영감을 받기도 한다.

  21. BlogIcon survival radio transceiver 2013.01.05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MBC 사극 <선덕여왕>은 대부분의 모티브와 등장인물들을 <화랑세기>에 의존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들이 <문노>,<미실>, <하종>,<보종>,<미생>,<세종>과 화랑들이다. 아직까지 화랑세기의 진위논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또한,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화랑세기는 새로운 역사물을 만들 때 소설의 영감을 받기도 한다. 

글쓴이도 또한, 역사를 해석할 때 화랑세기를 참고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빈틈을 찾아 합리적인 해석을 찾기도 한다. 어찌 되었던 <화랑세기>의 위작여부에 상관없이 우리 사학계와 문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화랑세기>를 보기전에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로 미쳐 깨닫지 못했고, 이들 사서로 합리적인 해석이 불가능했던 것이 화랑세기를 읽고 나서 그 미싱링크를 찾아낸 적이 있다.  

미싱링크를 찾은 다음 화랑세기를 보지 않고, 다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다시 읽었을때도 화랑세기가 있고, 없고에 상관없이 합리적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것중에 하나가, <만파식적>에 관한 재해석이다. 글쓴이는 화랑세기의 도움으로 만파식적이 가지고 있던 의문부분을 상당수 해결할 수 있었다.
삼국사기에는 효소왕(이홍, 이공)의 나이를 추측할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신문왕5년 687년 원자가 태어났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효소왕(이홍,이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삼국유사> <만파식적>을 읽다 보면 이해가 되지 않고 미궁속으로 빠진다.

682년 임오(壬午) 5월 초하루(다른 책에는 천수天授 원년元年이라 했으나 잘못)에 해관(海官) 파진찬(波珍飡) 박숙청(朴夙淸)이 아뢰었다.  “동해 속에 있는 작은 산 하나가 물에 떠서 감은사를 향해 오는데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합니다.” 

일연은 <삼국사기>를 읽고 <삼국사기>에서 일부러 빼버린 이야기나 삼국사기가 흘려버린 이야기를 전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유사>를 작성했다. 또한, <삼국사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주석을 달면서 다른 이설도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하고 있다. 

일연은 <삼국유사><만파식적>의 사건이 682년 임오년 5월 또는 천수 원년(690)년때 일어난 사건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한 682년 5월과 690년 5월중 일연은 <만파식적>이야기가 682년 5월에 있었던 일이라고 하고 있다.  이로써 687년 이홍(이공)이라고 추측되는 <원자>를 이홍(효소왕)으로 보고 있지 않음이 확실해 진다.

그렇지 않다면, 682년이면 이홍(이공)이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데 690년이 틀렸다고 확신에 차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682년 이미 이홍(이공)이 생존하고 있었고  <이홍>이 682년에 이미 태자가 되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일연은 <만파식적>을 빌어서 <삼국사기> 신문왕 때의 기록이 잘못되었다고 언급하고 있지도 않다. 이는 후대의 많은 이들이 <원자>가 꼭 맏아들이란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를 읽다 보면 꼭 원자 = 장자가 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원자=맏아들이라고 하지도 않고 있다. 장자 = 원자 일 수 도 있지만, 원자 =/= 장자가 아닌 경우도 많다. 장자는 장자라고 별도로 기록하고 있다. 이를 구별하지 못한 후학들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원자 = 장자 의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버지 문무대왕(文武大王)을 위하여 동해(東海) 가에 감은사(感恩寺)를 세웠다(절 안에 있는 기록에는 이렇게 말했다.  문무왕文武王이 왜병倭兵을 진압하고자 이 절을 처음 창건創建했는데 끝내지 못하고 죽어 바다의 용龍이 되었다.  그 아들 신문왕神文王이 왕위王位에 올라 개요開耀 2년(682)에 공사를 끝냈다.  금당金堂 뜰 아래에 동쪽을 향해서 구멍을 하나 뚫어 두었으니 용龍이 절에 들어와서 돌아다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대개 유언遺言으로 유골遺骨을 간직해 둔 곳은 대왕암大王岩이고, 절 이름은 감은사感恩寺이다.  뒤에 용龍이 나타난 것을 본 곳을 이견대利見臺라고 했다).

 그렇다면, 감은사는 문무왕(661년~681년 7월)때 공사를 시작해서 682년 5월 이전에 완공되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신문왕이 동해쪽의 관리가 보고한 내용을 살피려 감은사에 갔다. 거북모양의 바위섬에서 있는 용으로 부터 <검은옥대>와 대나무를 가지고 오는 도중 이공태자가 성을 지키고 있다가 말을 타고, 신문왕을 맞이 했다는 이야기다. 

이공(효소) = 원자 = 장자 라는 확신을 가지고 <삼국사기>의 기록을 재정립해 보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만파식적>의 이야기가 어느때 발생한 때인지를  추적한다면
 

682년 5월 금성이 달을 침입했다. <만파식적> 1 <삼국유사>
687년 2월 원자가 태어났다. (맏아들 이공이 태어났다)
690년 5월 만파식적  2 <삼국유사>
691년 3월 왕자 이공이 태자가 되다.  5살(만 3살)
692년 봄 대나무가 말랐다. 7월 신문왕이 죽음, 효소(이공)의 나이는 6살(만 4살 몇개월)에 왕위에 올랐다.


<만파식적 1> 일연은 <삼국유사>는 태어나지도 않은 이공(효소)왕을 태자로 등장시켜 690년이 아닌 682년 5월이라고 하고 있다. 일연은 <원자>와 이공은 다른 인물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일연>은 <김흠돌반란사건>을 염두해 두고 <만파식적>을  이야기한것 같다. 반란으로 민심이 어수선한 것을 <만파식적>으로 일시에 해소시켰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일연은 690년의 <만파식적 2>의 이설을 배격하고 있다.

보다 합리적인해석은 이공(효소왕)이 태자였고 이설인 천수원년(690년)설을 따르면 이공이 태자가 되기 전이니 천수년간중 691~693년 사이가 되어야하고, 그런데 신문왕은 692년 7월에 죽음으로  691년 5월 ~692년 5월사이에 있었던 일이 된다.

좀더 그 시기를 줄인다면, <삼국사기> 신문왕 12년 (692년) 봄 기사에 <대나무가 말랐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만파식적>의 대나무와 연결이 되는내용이다.. 봄에 대나무가 말랐을 정도면 봄가뭄이 심했다고 할수 있는데 그렇다면 단순히 봄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심했다라고 기록하면 되었을 것인데도 <대나무가 말랐다>라고만 기록하고 있다.

제14대 유리왕(儒理(禮)王) 때 이서국(伊西國) 사람들이 금성(金城)을 공격해 왔다.  신라에서도 크게 군사를 동원했으나 오랫동안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이상한 군사가 와서 신라군을 도왔는데 그들은 모두 댓잎을 귀에 꽂고 있었다.  이들은 신라 군사와 힘을 합해서 적을 격파했다.  그러나 적군이 물러간 뒤에는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댓잎만이 미추왕의 능 앞에 쌓여 있을 뿐이었다.  그제야 선왕(先王)이 음(陰)으로 도와 나라에 공을 세웠다는 것을 알았다.  이리하여 그 능을 죽현능(竹現陵)이라고 불렀다. - 삼국유사 죽현능

신라에서 대나무의 상징은 김씨계의 첫 왕인 <김미추>를 상징한다. 김미추가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서고국이 경주를 침입할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죽엽군들이 나타나 위기의 신라를 구원한다. 그리고 조사를 해보니 <미추릉>의 주위에 있던 대나무 잎들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죽엽군은 <김미추>가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서 보낸 <음병>이라고 믿었고, 미추릉을 <죽현릉>이라고 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이처럼 대나무는 <신라>에서는 신성시 하는 신물 중에 하나이다. 그러니 692년 봄 <대나무가 말랐다>라는 이야기는 단순한 대나무가 아닌, <김미추릉>에 있던 대나무가 말랐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미추릉에 있던 대나무가 말랐다는 것은 곧 신라를 지탱해주던 김미추계에 이상이 발생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만파식적>에 2개의 대나무가 낮에는 둘로 갈라지고, 밤에는 하나가 되어 바람이 불고, 어둠이 밀려왔다고 했으니, 신라의 변고를 말하고 2개의 세력이 충돌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만파식적>과 <삼국사기>
692년 봄 <대나무가 말랐다>는 신문왕 말년에 신라왕실의 혼란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692년 신문왕 말년 이런 혼란을 <만파식적>으로 잠재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공태자가 6살에 신문왕이 궁을 비운틈에 왕궁을 지키고, 말을 몰아서 왕을 영접하고, 검은옥대에 주렁주렁 달린 옥들이 용이라고 하였다고 하고 있다. 여전히 석연치 않는 부분은 만 4살 조금 넘은 나이에 왕을 대신해서 왕성을 지키고, 신문왕이 모르던 사실을 알려줄 정도의 지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대다수 나이가 어린왕자가 왕위에 오르면 어린왕의 모후가 섭정을 한다. 그리고 섭정을 하는 모후(태후)의 기록이 왕의 기록으로 남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이공태자의 기록도 이공의 모후인 신목(왕후)의 행동이 아닐까?

신목은 요석공주의 소생으로 설총의 누이로 추측되는 인물이다. 설총에게 <검은옥대>와 <만파식적>에 관한 이야기를 미리 듣고 신문왕에 이야기를 했을 수 있지 않을까? 이는 이공이 687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기록을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추측한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신문왕과 <이공>태자에 관한 이야기라면 어찌 될까?

미궁속에 빠지게하는 <원자>== <장자>라는 올가미를 풀어버린다면..

합리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은 687년 2월 태어났다는 <원자>가 이공태자일 필요성도 없고 <원자> = /= <장자> 라면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일연도 <원자>=이공(효소)라고 하지 않았다.

신목이 신문왕비가 되는 나이를 보면 아버지 김흠운이 655년 정월에 사망할 시점을 신목의 출생 한때라고 하더라도 신문왕 즉위년(681년)이면 27세가 된다. 그런데 33살 이상인 687년에 첫번째 원자를 낳았다? 그리고 흥광(성덕왕)을 낳고, 728년 당나라에 숙위하는 김사종을 낳았다?

신라사회에는 13~15세 정도면 결혼하고 15~6세면 자식 한둘은 낳고 있다, 그런데 유독 신목만 당시 조혼이 성행한 신라사회에서 첫결혼은 28세에 한다? 신목이 과부가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상황이거나 신문왕과 이전부터 사실혼 (후비)관계에 있지 않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또한, <삼국유사> 일연은 <만파식적>에서 682년 5월에 있었거나 690년 (천수 원년) 두가지 설을 전하고 있다.

<일연>은 <김흠돌반란사건>을 염두해 두고 <만파식적1>을  이야기한 것 같다. 반란으로 민심이 어수선한 것을 이듬해 5월 수습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682년 5월 태백이 달을 침입했다고 했으니 682년 5월 전해져온 이야기 일 수 있다.

또한, 일연은 왕자와 태자를 혼동해서 소급적용하는 경우가 있고, 김춘추와 김문희와의 관계에서 처럼 선덕공주가 분명한데도 선덕여왕이 춘추와 문희를 연결시켰다고 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 만파식적 1> 682년 5월과 <만파식적 2> 690년 ~ 692년 5월 <만파식적 2>설도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을 보다 합리적으로 해석한다면 687년에 태어난 <원자>를 꼭 <이홍>이라고 볼 필요가 없다. 원자란 꼭 맏아들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일연 또한  687년 <원자>가 태어났음을 알고 서도 690년 <만파식적 2설>  682년 <만파식적 1설> 설>이 맞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일연 또한 원자 = 장자라고 보지 않았을 뿐더러, 원자 = 이공(효소왕)이라고 보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이공(효소왕)은 신문왕이 즉위한 후 682년에 충분히 말을 타고 돌아 다닐수 있고, 왕이 성을 비운사이 성을 지킬정도이며, 왕에게 지혜를 알려줄 정도의 나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늦은 나이라고 해도 10세이상은 되었다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가지 삼국사기도 원자 = 이공(효소)로 보지 않고 있다는 정황 증거가 발견된다. <삼국사기>는 단순히 689년 <왕자 이홍을 태자로 삼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여러 왕자 중 이홍을 태자로 삼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로써 원자가 꼭 이홍(이공)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된다.

삼국사기에서 모든 원자들이 장자인 경우가 없다. 또한, 장자와 원자를 구별해서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원자>==<장자>의 설은 장자가 원자가 될 수도 있지만 꼭 동일하지는 않는 것이다. 정비소생 이거나 후비소생이라도 장자는 될 수 있다. <원자>란 <왕>과 정비인<왕비>의 소생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원자>란 적통을 이어갈 사람으로 해석하거나, 정식왕과 정식 왕비사이에 태어난 첫번째 왕자라고 한다면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
신문왕이 왕이 된후 늙은 신목을 받아 들여 낳은 첫아이가 이공(효소)가 아니라는 또다른 증거가 있다.

<화랑세기>에는 <김흠돌>이 반란을 일으키는 여러 원인중의 하나를
정명태자(신문왕)와 신목사이에 이공(효소왕)이 태어나 태자비였던 흠돌의 딸이 배척되고 흠돌의 권력이 무너질것을 두려웠다고 하고 있다. 좀더 소상히 설명하면,

신목은 김흠운의 딸이다, 655년 아버지 김흠운이 죽자, 춘추(태종)가 손자인 소명태자에 시집을 보내려 했으나 소명태자가 655년 이전 어린 나이에 일찍 죽었다. 그런데 신목은 다른 곳에 시집가지 않고 소명태자의 제사를 주관하는 <소명제주>가 되어 자의왕후가 좋아했다고 한다. 그후 소명궁에 살고 있던 신목은 665년 태자가 된 정명(신문왕)태자와 눈이 맞아 <이공>을 낳았다고 한다.(15세 전후) 이때 자식이 없던 태자비 흠돌녀가 투기를 했다고 한다. 뒷배경이였던 문명태후가 죽은 후 김흠돌은 681년 7월 문무왕이 죽고 난후 8월 8일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반란에 실패해 김흠돌은 죽고, 흠돌녀는 정식 왕비도 되기전에 궁에서 축출 된다. <화랑세기>

이로서  문무에게는 정명(신문왕)의 형으로 추측되는 소명이 661~665년 사이 태자가 되었지만, 결혼을 약속한 소명을 두고 일찍죽었다. 665년 정명이 대신에 태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목은 결혼을 약속한 소명태자가 죽자 소명태자와 영혼결혼식을 하고 소명태자가 살고 있던 소명궁에서 생활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665년 이후 소명의 동생인 정명이 태자가 되자 정명과의 사이에 이공을 낳았다고 하겠다. 

이로써 이공(효소)는 빠르면 665년 이후에 태어났고 늦어도 문명태후가 죽기전에 태어났다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682년 5월 <만파식적 1>이 성립하려면 이공(효소)는 10세 초중반이 됨으로 666~672년생이 되어야 한다.

683년 5월 신목이 신문왕의 정비인 (부인)이 되어 687년 2월에 낳은 첫아들이 <원자>가 되는 것이다.
이를 연표로 작성하면 다음과  같다.

626년 문무(법민) 생
654년 문무(법민) 28세 왕자
655년 1월 문무(법민) 29세 입태자
655년 신목태후 아버지 김흠운 사망 및 신목태후 출생(?)
661년 7월 문무 36세 왕
661년 ~ 665년 소명태자 사망, 신목 소명제주 <화랑세기>
665년 신문(정명) 입태자
666~672년 신문(정명)/신목의 장자 효소(이공) 태어남 <유사><만파식적 1><화랑세기>
666~680년 신문(정명)/신목의 장자 효소(이공) 태어남, <만파식적 2><화랑세기>
681년 7월 문무(법민) 56세 사망
681년 7월 신문(정명) 왕위 계승
681년 8월 김흠돌 반란
682년 5월 만파식적 사건 1 <삼국유사> 효소(이공,이홍) (10세~17세)
683년 5월 신목 신문왕의 부인이 됨
687년 2월 원자 태어남
690년 5월 만파식적 사건 2 <삼국유사>
691년 신문왕 11년 봄 3월 1일에 왕자 이홍(理洪)을 태자로 봉하였다.
692년 7월 신문(정명)왕 죽음
692년 7월 효소(이공,이홍) 왕위계승 (10세~27세), <만파식적 1> 이면 (20세~27세)
700년 6월 이찬 경영 반란
700년 7월 신목태후 사망  <황복사 3층석탑 은합>
702년 7월 성덕(흥광,융기) 신문왕 2자 왕위계승
728년 성덕왕 27년 7월 왕의 동생 김사종(3자~4자) 당나라 숙위

682년 5월 <만파식적 1> 이공(효소왕)은 (10세~17세)전후가 되고, 692년 5월 <만파식적 2> 이공(효소왕)은  (20세~27세)전후가 된다. 그러므로 <삼국유사>의 <만파식적>은 <1><2>에 상관없이 합리적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687년 2월에 태어난 <원자>를 단지 맏아들로 해석해 <원자>==이공(효소왕)이니 이공(효소왕)은 692년 6세에 왕위를 계승했을 것이다. 그러니 <신목>태후가 섭정을 하였을 것이라 추측하였고, 700년 7월에 신목태후가 죽은 줄도 모르고 702년 이공(효소왕)을 대신에 왕위에 오른 동생 흥광(성덕)왕도 692년 죽은 신문왕의 유복자일 가능성이 있으니 11살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신목태후가 섭정하였을 것이라 주장하는 사태까지 발전하였다.

<삼국유사>의 만파식적 이야기를 가공의 이야기 알고 있었으며 단지 690년 설을 추종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화랑세기를 인용하는 많은 사람들도 <원자>를 <이공(효소왕)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를 자신의 틀속에 갇어 놓고 자신의 입맛(가설)에 맞지 않는다 하여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화랑세기> 중 하나 또는 모두가 잘못되었다고 하였다.

좀더 <원자>를 확대 해석한다면 <원자>는 신문왕과 신목의 아들인 태자 이홍(효소왕)의 아들일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 다음 기록을 본다면 이때 원자는 효소왕의 아들이 아닌 효소왕의 동생인 성덕왕일 가능성이 많다.

<삼국사기>에는
702년 성덕왕 즉위년 "신문왕의 둘째 아들이고 효소왕의 친동생이다. 효소왕이 죽고 아들이 없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세웠다."

흥광(성덕왕) 이 687년에 태어난 <원자>라면, 702년 성덕왕은 왕위에 오를때 나이가 16세로 추측 된다.
 

728년 성덕왕 27년(728) 가을 7월에 왕의 아우 김사종(金嗣宗)을 당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바치고 아울러 글을 올려 자제들의 국학(國學) 입학을 청하니, 조칙으로 이를 허락하고 김사종에게 과의(果毅)의 관작을 주고 머물러 숙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하지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화랑세기> 공히 받아 들이거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으로도 충분히 <만파식적>의 시기를 680년이던 690년 이후 이던지 상관없이 이공(효소)가 만파식적에 중추적인 등장인물이 될려면 충분한 나이가 되어야함을 예측할 수 있다.

이로 미루어 이공(효소왕)은 22세~27세에 왕위를 계승하였고, 흥광(성덕) 또한 692년 7월 죽은 신문왕의 유복자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원자>가 흥광(성덕왕)이라면, 655년 이전 출생인 신목은 688년 이면 34살~39살 이상으로 728년에 당나라에 숙위하러간 성덕왕의 동생 김사종은 신문, 신목사이에 태어났던 신문과 다른 후비 사이에 태어났던 688년~693년 사이에 태어나야 한다.

만약, <원자>가 사종이라면 흥광은 신문왕이 왕이 되는 681년 7월 이전 이미 태어났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고, 22세 전후에 왕위에 올랐음을 예측할 수도 있다.

글쓴이는 아직까지 화랑세기를 사서로서 인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화랑세기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보다는 후대에 만들어진 위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이유는 삼국사기와 사국유사의 기록중 한쪽에 손을 들어주는게 아니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사이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고, 삼국사기도 맞고, 삼국유사도 맞다는 류의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이설이 있는데 둘다 맞는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앞서 만들어 졌다는 사서가 후대 사서를 본듯한 내용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만파식적이나 선덕여왕시기 등 화랑세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으로 해석 불가능한 역사적인 미스터리를 해결하는데 충분한 동기부여를 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드라마 선덕여왕은 화랑세기를 재조명 하는 데 커다란 공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화랑세기를 위서로 인정하는 많은 분들은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인해서 위서 화랑세기가 사서로 인정되는게 달갑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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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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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rinda 2009.12.31 0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해박한 역사 지식은 언제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
    만파식적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이런 역사적 사건들이 얽혀있는지는 몰랐는데,
    덕분에 잘 정리하고 갑니다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

  3. BlogIcon 감자꿈 2009.12.31 1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이제 2009년이 오늘로 끝납니다.
    연말이라 바쁘신가요? 포스팅이 없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4. BlogIcon 루비™ 2009.12.31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해는 선덕여왕 드라마로 인해 많이 즐거웠고
    갓쉰동님의 해박하신 포스팅으로 인해 제 식견이 무지 넓어졋던 한해였답니다.
    이제 한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네요..
    2009년 한해 동안 많은 사랑 베풀어주신 것 감사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최고로 멋진 2010년 되세요~~!!

  5. BlogIcon 청석 2010.01.01 0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밝아오는 경인년 새해에 더욱 님의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 오길 바라며 더욱 님의 블로 그가 번성하길 기원합니다.
    그동안 저에게 관심 보여준 님 에게 새해 인사드립니다.

  6. BlogIcon 영혼울림 2010.01.01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대단하십니다.
    늘 깊은 지식과 분석 접근력에 감동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7. BlogIcon labyrint 2010.01.02 2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 블로그 대박나시고, 원하시는 소원들이 성취되시길 기원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8. BlogIcon 시림 (詩琳) 2010.01.08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빛....
    태어나
    길 걸었으며
    그 곳에
    내 희망
    나에 꿈 이루었지

    행복은 곁에 있어요
    사랑으로...
    기다림에

  9. BlogIcon 펨께 2010.01.08 1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잘 지내시는지요?
    좋은 주말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10. BlogIcon click here 2012.07.14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듯이 한가하게 주식이야기와 남북정

  11. BlogIcon Brazzers membership 2012.09.08 0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특이한 명함의 아이디어는 관심을 끌 것입니다. 나 같은 경우는 음악 카드 많은 아주 좋은 그리고 어둠 속에서 몇도 빛이 아르 보았다. 기회로 카드를 볼 수와없는 의무 있습니다.

  12. BlogIcon london escort 2012.09.19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녹색 지붕 시도는 매우 큰 수 있습니다. 날씨가 더운 때 그들은 차가운 공기를 제공합니다.

  13. BlogIcon Albert 2012.10.01 2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륙에서 최고 수준의 팀이 진출하는 것이다. 월드컵에 준비를 철저히 하고 상대팀에 대한 분석을 철저히 하였는지와 당일의 컨디션에 따

  14. BlogIcon montreal massage parlor 2012.10.03 1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향은 많은 기업에 대한 모니터링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은 실제로 시장의 수요에 영향을 미칩니다.

  15. BlogIcon theblogtest 2012.10.03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 필요합니다. 우리는 몇 가지 조정 프로세스를 수행해야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변화가 혼란으로

  16. BlogIcon Polo franklin marshall 2012.10.24 2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17. BlogIcon wireless dog fence collars for small dogs 2012.11.14 1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법은 흰색 모자입니다. 이 흰 모자를 구현함으로써 당신은 페이지 순위를 얻을 과정을 따라 이동합니다 않습니다하지만 금지되는에서 당신을 방지입니다.

  18. BlogIcon midland weather alert radio wr-120ez 2012.11.19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

  19. BlogIcon 5 gallon water bottle holder 2012.12.19 1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가적으로 누가 집회를 주관했는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또한, 집회시간에서도 시위자수가 달라 집니다. 동원이냐 자발적이냐에 따라 해당숫자는 천양지차가 발생합니다.

  20. BlogIcon invisible electric dog fence 2012.12.26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화랑세기는 새로운 역사물을 만들 때 소설의 영감을 받기도 한다.

  21. BlogIcon survival radio transceiver 2013.01.05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마지막회 예고편에서 보여주었던, 김유신이 천신에 제사를 지내는 장면이 삭제되었고, 명활산성에 들어가는 비담의 일부 신이 삭제된것과, 김유신이 황산벌 전투에 참전하여 계백과 싸우는 신이 있어야 하는데 사라졌고, 김유신과 소정방의 기싸움이 있었는데 사라졌다.

또한, 덕만이 비담이 찾아오도록 황제를 상징하는 깃발을 세우라는 신 등 많은 사라졌다고 한다.


어쨌든, 마지막 여러신이 짤리고 마지막회를 맞이한  모양이다. 신이란 필요에 따라 짤리고 없애는 건 예사이니 이를 탓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마지막 회는 늘어진 전개로 인해서 비담과 덕만의 마지막장면에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보는 입장이니 없어진 10개의 신이 추가 되었다면, 정말 용두사미의 드라마를 보는 것이 아닐까 할만했다.


드라마 선덕여왕 스페셜에서 마지막 62회 미방영된 10개의 신 중 덕만이 지병이 든 상태에서 덕만과 춘추의 침실신이 들어갔다.

덕만은 춘추에게 "춘추야 너는 너의 시대를 열어야 하니 나서서 정을 맞지 말고, <승만>에게 왕위를 잇게 하고, 후에 자연스레 물흐르듯 춘추 니가 너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알겠느냐?" 춘추왈 "폐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 한 신이 그동안 선덕여왕이 덕만과 천명만이 성골남진으로 남은 유일한 <성골>혈손임을 말한 드라마의 기반을 송두리채 무너트리고 말았다. 덕만과 천명말고 또 다른 성골인 <승만>이 있다는 말이니 말이다.

이미 드라마 시작부터 성골남진이 되어서 성골로써 유일한 덕만과 천명이 죽으니 남은 건 춘추밖에 없다는 식으로 극을 전개하므로서 신라 28대왕인 승만은 이미 허수아비 왕이거나 아니면 덕만의 왕위를 찬탈한 왕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승만은 성골이였을까? 아니면 진골이였을까? 드라마 전개상 춘추가 아무런 이의도 제기도 없이 개구락지가 된 이유는 승만이 진골 춘추보다 높다는 성골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짜피 승만만 죽으면 성골은 남여구분없이 사라진다는 덕만의 예지능력을 믿고 춘추가 순순히 물러선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극의 전개상 승만은 성골이 될 수 없다. 사라진 성골을 뒤를 이어 이미 후계자 수업을 하고 있던 춘추가 아니였던가 말이다.


그러니 승만은 성골이 아닌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된다는 설정이 되어 버린다. 이 얼마나 위대한 승만왕인가 말이다. 차라리 성골로 왕이된 덕만보다는 성골도 아닌 여자로서 왕이 된 승만을 주인공으로 하는게 나을 정도 였다.

한마디로 천하를 얻으려면 사람을 얻어야 한다는 선덕여왕의 선전문구를 무색하게 만드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사람도 얻지 않고, 천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승만이 터득하고 있었거나 덕만의 말한마디로 전혀 관계가 없는 칠숙의 난이 미실의 난이 되었듯이 덕만의 말한마디면 안되는게 없어져 버렸다. 마지막에 와서 승만이 왕이 되고 춘추는 닭쫓던개 지붕쳐다 보는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비담이 난을 일으킨 이유가 극명하게 달라진다는 뜻도 된다. 승만과 유신은 덕만이 아프다는 이유로 난을 일으키자, 비담은 덕만을 지키기 위해서 봉기를 하였지만, 무도한 김유신의 무리에 의해서 진압당하고 오히려 역적으로 몰렸다는 뜻과 같으니 말이다. 


결론은 춘추와 덕만의 침대신은 드라마 선덕여왕 마지막회에 내보내지 않는게 천만 다행이고, 스페셜 비공개 영상을 내 보낸건 마지막회에 사라진 춘추를 찾아주세요라는 말에 춘추의 신을 찍었지만 극의 전개상 빼버렸을 뿐이니 오해하지 마시라는 유승호 어린이 팬들에게 드리는 호소영상이였다.

하지만, 안하무인 춘추를 두번죽이는 꼴이라는 뜻이고, 언제 드라마 선덕여왕이 역사의 기록에 따라 극을 전개했다고 생뚱맞게 춘추야 다음 왕은 승만이 해야 하고 너는 승만의 뒤를 이어 왕이 될것이라는 말 한 마디로 춘추가 그동안 극중에서 보여주었던 천방지축으로 할아버지 진평왕에 대들고, 할아버지의 후비인 보량을 납치해서 혼인을 하고, 왕인 덕만에 대들고, 실질적인 아버지인 용춘에 대들고, 작은아버지 비담에게 대들며, 문노를 죽이도록 사주하고, 대남보를 소리소문없이 죽여버릴 정도인 춘추가 다 죽어가는 덕만의 말에 고분고분 들어서 승만이 왕위를 이었다는 극의 전개가 얼마나 쌩뚱맞는지 알기나 한것인가?

차라리 위의 춘추 시해사건으로 춘추가 오늘내일 하고, 덕만도 오늘내일 하는 과정에서 비담이 난을 일으키고 덕만이 난을 평정했지만, 곧바로 비담의 뒤를 이어서 죽자 어쩔수 없이 승만이 왕위를 잇게 되었다는 설정이 그나마 설득력이 있었지 않았을까?

언제부터 드라마 선덕여왕이 역사적인 기록인 삼국유사, 삼국사기나 논란이 되고 있는 화랑세기를 역사서로 인정하면서도 그에 맞추어 극을 전개하지도 않았으면서 갑자기 역사기록에 맞춘답시고 "춘추야 너는 승만의 뒤에 왕위 되어야 한다."라니 얼척없기 까지 하다.

그냥 춘추가 덕만의 뒤를 이어 왕이 되던, 극중 마지막회 처럼 춘추를 보여주지 않는게 차라리 나았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선덕여왕릉에서 알천과 유신이 조우하고 덕만을 회상하는 신은 더더욱 필요없는 장면이였다.


사실 승만이 왕이 된후 왕자를 생산했거나 왕위를 이을 후계자를 점지했다면 춘추는 왕이 될 수 있었을까? 승만이 왕이 된후에도 춘추는 왕의 승계 서열상 알천의 뒤에 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들과 제작진은 끝끝내 무시하고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여준 덕만의 예지력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지기삼사>가 아니고 승만의 뒤를 이어 춘추가 왕이 될것이라는 말 뿐이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어처구니 없는 황당사극이 된 이유는 드라마 작가들이 정통사극과 퓨전사극의 차이점을 자신들은 모르겠다고 하는 발언에서도 알 수 있다. 역사 기록과 싱크로율 0%인 사극을 가지고 정통사극과 퓨전사극의 차이점을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는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이들 작가들의 다음 사극도 드라마 선덕여왕 처럼 <사극>이 아닌 <사기극>이기 쉽상이다.

한마디로 정리를 하면, 왜 드라마 선덕여왕 스페셜을 방영했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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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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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2.29 1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생각에는요 승만공주를 집어넣으라는 네티즌들의 의견을 그냥 제작진이 알아차린거 같아요.
    그런데 극을 저렇게 만들어 놨으니 넣지도 못하게 되었고.... 그래서 춘추를 핑계로 찍어놓고요..
    춘추하차시키고 저건 그냥 춘추 왜 안나오냐는 답변용으로 마련해놓은것이지요 ㅋㅋ
    제가 제작진을 너무 고단수로 생각했나요? ㅋㅋㅋㅋㅋ

  3. BlogIcon skagns 2009.12.29 15: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벌려 놓은 건 많고 수습은 안되고 암튼... 참 마지막이 아쉬운 것 같아요. ㅜㅜ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구요. ^^

  4. 고구마 2009.12.29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극중에선 덕만이 유일한 성골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항상 '폐하(진평왕)의 유일한 성골'이라고 표현해왔죠. 그동안 블로거에 쓰신 글들은 모두 드라마 선덕여왕이 실제역사와 맞지않다라는 것이었는데, 갑자가 실제성골이었던 승만을 극의 전개상 성골이 아니어야 한다라고 하시니 어이가 없네요. 전부터 느꼈지만 갓쉰동님 글은 실제역사라면서 쓰시는 글들인데, 드라마보다 더 이해가 안되고, 개연성이 떨어져 보입니다. 실제역사가 드라마보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건 아닐테고... 실제역사라면서 갓쉰동님이 중간중간 주관적으로 추측하면서 쓰시는 글들이 문제였었나 싶네요.

  5. BlogIcon 윤서아빠세상보기 2009.12.29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페셜은 못 봤네요
    그러게 춘추장면 보여주었으면
    더 어색할 뻔 했네요 ㅎㅎㅎ

  6. BlogIcon 루비™ 2009.12.30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게요... 없느니만 못한 씬이었어요.
    찍어놓고 못 쓴것이 아쉬웠나...?
    하여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선덕여왕이 이제 끝났군요...
    속이 후련하긴 한데 이제 뭘 보지?
    이제 보는 드라마가 하나도 없으니...

  7. 지나가다 2010.01.01 1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극이 뭔가요?
    전 여기 주인장님처럼 사극에대한 뚜렷한 주관도 없는데다 무식해서 지금 네이버 백과사전 찾아봤습니다.

    사극 [史劇, historical play]

    요약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서 제재(題材)를 빌려 온 희곡 또는 연극.

    본문

    역사극이라고도 한다. 사극이라는 호칭은 희곡의 제재별 분류에 따른 것으로 넓은 뜻으로는 현대극과 대응된다. 그러나 역사소설의 경우처럼 소재(素材)로서의 역사란 창작방법상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수도 흔히 있으므로 현대극과의 구분은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 사극 창작에서 과거에 가탁(假託)하는 방법을 빌려 현대에 날카로운 조사(照射)를 가한 작품이 생산될 수 있는가 하면, 왜곡된 과거에 대한 미화(美化)나 현실도피의 늪으로 타락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제 눈길을 끄는건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서 *제재*를 빌려 왔다는 것과 사극에서의 역사란 소재로서 창작 방법상의 문제에 *지나지 않을* 수도 많아 현극극과의 명확한 구분이 *어렵다*는 부분입니다.

    국어사전 정의입니다.
    제재 題材 [명사]예술 작품이나 학술 연구의 바탕이 되는 재료.
    재료 材料 [명사]2 어떤 일을 하기 위한 거리.


    선덕여왕, 김유신같은 역사적 인물*만*을 빌려와 허구의 줄거리를 짜도 괜찮다고 보여집니다만 . 그래서 역사적 인물에 맞춰서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에 부합하지 않는 선덕여왕에 이리도 맹비난(비판 포함)을 퍼붓는 이곳 주인장과, 선덕 여왕 작가진은 다시는 사극 집필하지 말라는 악답을 퍼붓는 이곳 방문자가 좀 이해가 안 가서요. 사실 덕만의 출생 자체, 어린시절 서역에서 개고생한 설정부터가 사기인데...

    주인장님은 저에게 드라마와 사극이 무엇인지에대해 기초공부부터 다시 하고 오라고 하셨는데
    전 드라마와 사극이 무엇인지에대한 기초공부로 뭘 해야하는지조차 전 모르겠단 말이지요.

    주인장님께서 드라마와 사극이 무엇인지 좀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아니면 최소한 기초공부의 방향에대해서만이라도.


    (질문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사극에대한 시각의 보수성과 사극에대한 정의가 관련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극에대한 시각의 보수성과 정치적 성향과의 관계는요?)

  8. 뿅망치 2010.01.04 0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동감입니다.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 실컷 잘 보구선 왜 끝나고나서 꼬투리...
    그럴거면 역사 사극이나 보시지...

  9. BlogIcon kue lebaran 2011.08.14 1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은 실제로 흥미있다, 당신은 꽤 자격 작가입니다. 우리는 현재 공급하고 현재 인상적인 문서의 큰 부분을 찾아 방향으로 검색을 통해 가입했습니다. 또한, 내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 내부 웹 사이트를 배포했습니다!

  10. BlogIcon 고명진 2012.01.01 0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11. BlogIcon 이청용 2012.01.07 0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12. BlogIcon 브룩클린 2012.04.03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어디로 데려가십니까?

  13. BlogIcon 한나 2012.04.06 0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습니다, 그것을 사겠습니다

  14. BlogIcon Gianna 2012.05.09 0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은 오해였습니다.

  15. BlogIcon 엘리 2012.05.11 05: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에 영어를 하시는 분 계십니까?

  16.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hairy.php 2012.07.21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양이다. 신이란 필요에 따라 짤리고 없애는 건 예사이니 이를 탓할 이유는 없다.

  17. BlogIcon shock collars for dogs 2012.11.03 1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김유신같은 역사적 인물*만*을 빌려와 허구의 줄거리를 짜도 괜찮다고 보여집니다만 . 그래서 역사적 인물에 맞춰서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에 부합하지 않는 선덕여왕에 이리도 맹비난(비판 포함)을 퍼붓는 이곳 주인장과, 선덕 여왕 작가진은 다시는 사극 집필하지 말라는 악답을 퍼붓는 이곳 방문자가 좀 이해가 안 가서요. 사실 덕만의 출생 자체, 어린시절 서역에서 개고생한 설정부터가 사기인데...

  18. BlogIcon shock collars for dogs 2012.11.03 1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김유신같은 역사적 인물*만*을 빌려와 허구의 줄거리를 짜도 괜찮다고 보여집니다만 . 그래서 역사적 인물에 맞춰서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에 부합하지 않는 선덕여왕에 이리도 맹비난(비판 포함)을 퍼붓는 이곳 주인장과, 선덕 여왕 작가진은 다시는 사극 집필하지 말라는 악답을 퍼붓는 이곳 방문자가 좀 이해가 안 가서요. 사실 덕만의 출생 자체, 어린시절 서역에서 개고생한 설정부터가 사기인데...

  19. BlogIcon bung wrench lowes 2012.11.05 1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히려 마지막 회는 늘어진 전개로 인해서 비담과 덕만의 마지막장면에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보는 입장이니 없어진 10개의 신이 추가 되었다면, 정말 용두사미의 드라마를 보는 것이 아닐까 할만했다.

  20.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김유신같은 역사적 인물*만*을 빌려와 허구의 줄거리를 짜도 괜찮다고 보여집니다만 . 그래서 역사적 인물에 맞춰서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에 부합하지 않는 선덕여왕에 이리도 맹비난(비판 포함)을 퍼붓는 이곳 주인장과, 선덕 여왕 작가진은 다시는 사극 집필하지 말라는 악답을 퍼붓는 이곳 방문자가 좀 이해가 안 가서요. 사실 덕만의 출생 자체, 어린시절 서역에서 개고생한 설정부터가 사기인데...

  21. BlogIcon best VPN service 2013.01.24 0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을 보호하고, 비호하고 벤처기업으로 까지 키워주었다. 그리고 피해자인 수지킴을 빨갱이로 몰아 세워 수지킴과 그 유가족에서 피해를 입힌 적이 있다. 이에 참여정부는 장세동과 안전

마지막회 예고편에서 보여주었던, 김유신이 천신에 제사를 지내는 장면이 삭제되었고, 명활산성에 들어가는 비담의 일부 신이 삭제된것과, 김유신이 황산벌 전투에 참전하여 계백과 싸우는 신이 있어야 하는데 사라졌고, 김유신과 소정방의 기싸움이 있었는데 사라졌다.

또한, 덕만이 비담이 찾아오도록 황제를 상징하는 깃발을 세우라는 신 등 많은 사라졌다고 한다.


어쨌든, 마지막 여러신이 짤리고 마지막회를 맞이한  모양이다. 신이란 필요에 따라 짤리고 없애는 건 예사이니 이를 탓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마지막 회는 늘어진 전개로 인해서 비담과 덕만의 마지막장면에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보는 입장이니 없어진 10개의 신이 추가 되었다면, 정말 용두사미의 드라마를 보는 것이 아닐까 할만했다.


드라마 선덕여왕 스페셜에서 마지막 62회 미방영된 10개의 신 중 덕만이 지병이 든 상태에서 덕만과 춘추의 침실신이 들어갔다.

덕만은 춘추에게 "춘추야 너는 너의 시대를 열어야 하니 나서서 정을 맞지 말고, <승만>에게 왕위를 잇게 하고, 후에 자연스레 물흐르듯 춘추 니가 너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알겠느냐?" 춘추왈 "폐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 한 신이 그동안 선덕여왕이 덕만과 천명만이 성골남진으로 남은 유일한 <성골>혈손임을 말한 드라마의 기반을 송두리채 무너트리고 말았다. 덕만과 천명말고 또 다른 성골인 <승만>이 있다는 말이니 말이다.

이미 드라마 시작부터 성골남진이 되어서 성골로써 유일한 덕만과 천명이 죽으니 남은 건 춘추밖에 없다는 식으로 극을 전개하므로서 신라 28대왕인 승만은 이미 허수아비 왕이거나 아니면 덕만의 왕위를 찬탈한 왕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승만은 성골이였을까? 아니면 진골이였을까? 드라마 전개상 춘추가 아무런 이의도 제기도 없이 개구락지가 된 이유는 승만이 진골 춘추보다 높다는 성골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짜피 승만만 죽으면 성골은 남여구분없이 사라진다는 덕만의 예지능력을 믿고 춘추가 순순히 물러선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극의 전개상 승만은 성골이 될 수 없다. 사라진 성골을 뒤를 이어 이미 후계자 수업을 하고 있던 춘추가 아니였던가 말이다.


그러니 승만은 성골이 아닌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된다는 설정이 되어 버린다. 이 얼마나 위대한 승만왕인가 말이다. 차라리 성골로 왕이된 덕만보다는 성골도 아닌 여자로서 왕이 된 승만을 주인공으로 하는게 나을 정도 였다.

한마디로 천하를 얻으려면 사람을 얻어야 한다는 선덕여왕의 선전문구를 무색하게 만드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사람도 얻지 않고, 천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승만이 터득하고 있었거나 덕만의 말한마디로 전혀 관계가 없는 칠숙의 난이 미실의 난이 되었듯이 덕만의 말한마디면 안되는게 없어져 버렸다. 마지막에 와서 승만이 왕이 되고 춘추는 닭쫓던개 지붕쳐다 보는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비담이 난을 일으킨 이유가 극명하게 달라진다는 뜻도 된다. 승만과 유신은 덕만이 아프다는 이유로 난을 일으키자, 비담은 덕만을 지키기 위해서 봉기를 하였지만, 무도한 김유신의 무리에 의해서 진압당하고 오히려 역적으로 몰렸다는 뜻과 같으니 말이다. 


결론은 춘추와 덕만의 침대신은 드라마 선덕여왕 마지막회에 내보내지 않는게 천만 다행이고, 스페셜 비공개 영상을 내 보낸건 마지막회에 사라진 춘추를 찾아주세요라는 말에 춘추의 신을 찍었지만 극의 전개상 빼버렸을 뿐이니 오해하지 마시라는 유승호 어린이 팬들에게 드리는 호소영상이였다.

하지만, 안하무인 춘추를 두번죽이는 꼴이라는 뜻이고, 언제 드라마 선덕여왕이 역사의 기록에 따라 극을 전개했다고 생뚱맞게 춘추야 다음 왕은 승만이 해야 하고 너는 승만의 뒤를 이어 왕이 될것이라는 말 한 마디로 춘추가 그동안 극중에서 보여주었던 천방지축으로 할아버지 진평왕에 대들고, 할아버지의 후비인 보량을 납치해서 혼인을 하고, 왕인 덕만에 대들고, 실질적인 아버지인 용춘에 대들고, 작은아버지 비담에게 대들며, 문노를 죽이도록 사주하고, 대남보를 소리소문없이 죽여버릴 정도인 춘추가 다 죽어가는 덕만의 말에 고분고분 들어서 승만이 왕위를 이었다는 극의 전개가 얼마나 쌩뚱맞는지 알기나 한것인가?

차라리 위의 춘추 시해사건으로 춘추가 오늘내일 하고, 덕만도 오늘내일 하는 과정에서 비담이 난을 일으키고 덕만이 난을 평정했지만, 곧바로 비담의 뒤를 이어서 죽자 어쩔수 없이 승만이 왕위를 잇게 되었다는 설정이 그나마 설득력이 있었지 않았을까?

언제부터 드라마 선덕여왕이 역사적인 기록인 삼국유사, 삼국사기나 논란이 되고 있는 화랑세기를 역사서로 인정하면서도 그에 맞추어 극을 전개하지도 않았으면서 갑자기 역사기록에 맞춘답시고 "춘추야 너는 승만의 뒤에 왕위 되어야 한다."라니 얼척없기 까지 하다.

그냥 춘추가 덕만의 뒤를 이어 왕이 되던, 극중 마지막회 처럼 춘추를 보여주지 않는게 차라리 나았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선덕여왕릉에서 알천과 유신이 조우하고 덕만을 회상하는 신은 더더욱 필요없는 장면이였다.


사실 승만이 왕이 된후 왕자를 생산했거나 왕위를 이을 후계자를 점지했다면 춘추는 왕이 될 수 있었을까? 승만이 왕이 된후에도 춘추는 왕의 승계 서열상 알천의 뒤에 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들과 제작진은 끝끝내 무시하고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여준 덕만의 예지력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지기삼사>가 아니고 승만의 뒤를 이어 춘추가 왕이 될것이라는 말 뿐이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어처구니 없는 황당사극이 된 이유는 드라마 작가들이 정통사극과 퓨전사극의 차이점을 자신들은 모르겠다고 하는 발언에서도 알 수 있다. 역사 기록과 싱크로율 0%인 사극을 가지고 정통사극과 퓨전사극의 차이점을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는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이들 작가들의 다음 사극도 드라마 선덕여왕 처럼 <사극>이 아닌 <사기극>이기 쉽상이다.

한마디로 정리를 하면, 왜 드라마 선덕여왕 스페셜을 방영했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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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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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2.29 1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생각에는요 승만공주를 집어넣으라는 네티즌들의 의견을 그냥 제작진이 알아차린거 같아요.
    그런데 극을 저렇게 만들어 놨으니 넣지도 못하게 되었고.... 그래서 춘추를 핑계로 찍어놓고요..
    춘추하차시키고 저건 그냥 춘추 왜 안나오냐는 답변용으로 마련해놓은것이지요 ㅋㅋ
    제가 제작진을 너무 고단수로 생각했나요? ㅋㅋㅋㅋㅋ

  3. BlogIcon skagns 2009.12.29 15: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벌려 놓은 건 많고 수습은 안되고 암튼... 참 마지막이 아쉬운 것 같아요. ㅜㅜ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구요. ^^

  4. 고구마 2009.12.29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극중에선 덕만이 유일한 성골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항상 '폐하(진평왕)의 유일한 성골'이라고 표현해왔죠. 그동안 블로거에 쓰신 글들은 모두 드라마 선덕여왕이 실제역사와 맞지않다라는 것이었는데, 갑자가 실제성골이었던 승만을 극의 전개상 성골이 아니어야 한다라고 하시니 어이가 없네요. 전부터 느꼈지만 갓쉰동님 글은 실제역사라면서 쓰시는 글들인데, 드라마보다 더 이해가 안되고, 개연성이 떨어져 보입니다. 실제역사가 드라마보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건 아닐테고... 실제역사라면서 갓쉰동님이 중간중간 주관적으로 추측하면서 쓰시는 글들이 문제였었나 싶네요.

  5. BlogIcon 윤서아빠세상보기 2009.12.29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페셜은 못 봤네요
    그러게 춘추장면 보여주었으면
    더 어색할 뻔 했네요 ㅎㅎㅎ

  6. BlogIcon 루비™ 2009.12.30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게요... 없느니만 못한 씬이었어요.
    찍어놓고 못 쓴것이 아쉬웠나...?
    하여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선덕여왕이 이제 끝났군요...
    속이 후련하긴 한데 이제 뭘 보지?
    이제 보는 드라마가 하나도 없으니...

  7. 지나가다 2010.01.01 1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극이 뭔가요?
    전 여기 주인장님처럼 사극에대한 뚜렷한 주관도 없는데다 무식해서 지금 네이버 백과사전 찾아봤습니다.

    사극 [史劇, historical play]

    요약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서 제재(題材)를 빌려 온 희곡 또는 연극.

    본문

    역사극이라고도 한다. 사극이라는 호칭은 희곡의 제재별 분류에 따른 것으로 넓은 뜻으로는 현대극과 대응된다. 그러나 역사소설의 경우처럼 소재(素材)로서의 역사란 창작방법상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수도 흔히 있으므로 현대극과의 구분은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 사극 창작에서 과거에 가탁(假託)하는 방법을 빌려 현대에 날카로운 조사(照射)를 가한 작품이 생산될 수 있는가 하면, 왜곡된 과거에 대한 미화(美化)나 현실도피의 늪으로 타락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제 눈길을 끄는건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서 *제재*를 빌려 왔다는 것과 사극에서의 역사란 소재로서 창작 방법상의 문제에 *지나지 않을* 수도 많아 현극극과의 명확한 구분이 *어렵다*는 부분입니다.

    국어사전 정의입니다.
    제재 題材 [명사]예술 작품이나 학술 연구의 바탕이 되는 재료.
    재료 材料 [명사]2 어떤 일을 하기 위한 거리.


    선덕여왕, 김유신같은 역사적 인물*만*을 빌려와 허구의 줄거리를 짜도 괜찮다고 보여집니다만 . 그래서 역사적 인물에 맞춰서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에 부합하지 않는 선덕여왕에 이리도 맹비난(비판 포함)을 퍼붓는 이곳 주인장과, 선덕 여왕 작가진은 다시는 사극 집필하지 말라는 악답을 퍼붓는 이곳 방문자가 좀 이해가 안 가서요. 사실 덕만의 출생 자체, 어린시절 서역에서 개고생한 설정부터가 사기인데...

    주인장님은 저에게 드라마와 사극이 무엇인지에대해 기초공부부터 다시 하고 오라고 하셨는데
    전 드라마와 사극이 무엇인지에대한 기초공부로 뭘 해야하는지조차 전 모르겠단 말이지요.

    주인장님께서 드라마와 사극이 무엇인지 좀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아니면 최소한 기초공부의 방향에대해서만이라도.


    (질문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사극에대한 시각의 보수성과 사극에대한 정의가 관련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극에대한 시각의 보수성과 정치적 성향과의 관계는요?)

  8. 뿅망치 2010.01.04 0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동감입니다.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 실컷 잘 보구선 왜 끝나고나서 꼬투리...
    그럴거면 역사 사극이나 보시지...

  9. BlogIcon kue lebaran 2011.08.14 1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은 실제로 흥미있다, 당신은 꽤 자격 작가입니다. 우리는 현재 공급하고 현재 인상적인 문서의 큰 부분을 찾아 방향으로 검색을 통해 가입했습니다. 또한, 내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 내부 웹 사이트를 배포했습니다!

  10. BlogIcon 고명진 2012.01.01 0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11. BlogIcon 이청용 2012.01.07 0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12. BlogIcon 브룩클린 2012.04.03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어디로 데려가십니까?

  13. BlogIcon 한나 2012.04.06 0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습니다, 그것을 사겠습니다

  14. BlogIcon Gianna 2012.05.09 0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은 오해였습니다.

  15. BlogIcon 엘리 2012.05.11 05: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에 영어를 하시는 분 계십니까?

  16.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hairy.php 2012.07.21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양이다. 신이란 필요에 따라 짤리고 없애는 건 예사이니 이를 탓할 이유는 없다.

  17. BlogIcon shock collars for dogs 2012.11.03 1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김유신같은 역사적 인물*만*을 빌려와 허구의 줄거리를 짜도 괜찮다고 보여집니다만 . 그래서 역사적 인물에 맞춰서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에 부합하지 않는 선덕여왕에 이리도 맹비난(비판 포함)을 퍼붓는 이곳 주인장과, 선덕 여왕 작가진은 다시는 사극 집필하지 말라는 악답을 퍼붓는 이곳 방문자가 좀 이해가 안 가서요. 사실 덕만의 출생 자체, 어린시절 서역에서 개고생한 설정부터가 사기인데...

  18. BlogIcon shock collars for dogs 2012.11.03 1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김유신같은 역사적 인물*만*을 빌려와 허구의 줄거리를 짜도 괜찮다고 보여집니다만 . 그래서 역사적 인물에 맞춰서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에 부합하지 않는 선덕여왕에 이리도 맹비난(비판 포함)을 퍼붓는 이곳 주인장과, 선덕 여왕 작가진은 다시는 사극 집필하지 말라는 악답을 퍼붓는 이곳 방문자가 좀 이해가 안 가서요. 사실 덕만의 출생 자체, 어린시절 서역에서 개고생한 설정부터가 사기인데...

  19. BlogIcon bung wrench lowes 2012.11.05 1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히려 마지막 회는 늘어진 전개로 인해서 비담과 덕만의 마지막장면에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보는 입장이니 없어진 10개의 신이 추가 되었다면, 정말 용두사미의 드라마를 보는 것이 아닐까 할만했다.

  20.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김유신같은 역사적 인물*만*을 빌려와 허구의 줄거리를 짜도 괜찮다고 보여집니다만 . 그래서 역사적 인물에 맞춰서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에 부합하지 않는 선덕여왕에 이리도 맹비난(비판 포함)을 퍼붓는 이곳 주인장과, 선덕 여왕 작가진은 다시는 사극 집필하지 말라는 악답을 퍼붓는 이곳 방문자가 좀 이해가 안 가서요. 사실 덕만의 출생 자체, 어린시절 서역에서 개고생한 설정부터가 사기인데...

  21. BlogIcon best VPN service 2013.01.24 0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을 보호하고, 비호하고 벤처기업으로 까지 키워주었다. 그리고 피해자인 수지킴을 빨갱이로 몰아 세워 수지킴과 그 유가족에서 피해를 입힌 적이 있다. 이에 참여정부는 장세동과 안전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들은 덕만에 관한 기록이 없어서 글을 만들기 힘들다고 한다.

사실 선덕여왕 덕만처럼 삼국시대에 가장 많은 기록과 전승을 가지고 있는 왕도 드물다. 그런데 기록이 없어서 극을  만드는데 힘들다고 한다는 말은 별로 동의가 되지 않는다. 

기록이 소락 할수록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하기가 쉽다. 아주 작은 기록만 일치시키면 되고 재해석 하면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고 있노라면 드라마 작가나 제작자의 기획의도에서 사람을 얻어 천하를 얻는다고 하였지만, 드라마에서 덕만이 유신을 보고 많은 사람을 얻었지만 남은 자는 유신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선덕여왕이 얻은 인물은 김유신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선덕여왕은 아무것도 이룬것이 없다는 뜻이다.

물론, 잔챙이 수십명보다는 확실한 월척인 유신을 얻었다면 성공한 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드라마상 선덕여왕은 무능하고 우유부단함의 전형적인 모습니다. 기획의도와 정반대의 왕을 그리고 있다는 말이다. 죽도 밥도 아닌 드라마 선덕여왕이 된 이유야 미실를 주인공으로 그리려는 복선를 가지고 있고, 선호하지 않은 덕만을 드라마로 쓸려니 작가 스스로도 난감했을 수 있다.

더불어 드라마 뿐만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덕만을 무능한 왕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기록들을 분석해보면 덕만은 왕으로써 무능하지 않을 뿐더러 시호가 <선덕>일 만큼 선정을 베풀고 있다.


비담의 난에 가입하는 자들을 보면 주진과 미생과 보종과 하종과 호재와 필탄이 있다. 10화랑 중에서 4명이 반란에 투입되고 있다. 호재는 덕만의 외삼촌이 된다. 호재의 아버지는 복승공이 복승공의 딸인 마야가 덕만의 어머니이다. 그런데 호재는 비담의 난에 가입하는 것으로 나온다.

물론, 당시 비담의 난에 연루되어 죽은 자들은 30여명에 이른다. 그러니 화랑중에서 난에 가담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던, 덕만은 화랑의 수장인 천신황녀였으니 사람관리에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덕만은 드라마 선덕여왕 처럼 무능한 군주였을까? 삼국사기에 의하면 덕만은 <덕>은 있으나 힘이 없는 군주처럼 그려지기는 했고, 김부식은 덕만을 여자가 왕이 되어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당서를 인용해서 이세민이 신라에 여왕이 있으니 업신여김을 받으니 당나라 왕족으로 하여금 신라의 왕으로 삼는다면 군대를 보내 도와주고 안정이 된다면 그때 다시 신라에서 왕을 뽑는게 낫지 않겠는가?라는 신라를 업수히 여기는 말을 듣게 된다.


덕만이 무능하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확대시킨자는 삼국사기의 김부식이다. 김부식은 덕만을 여러가지로 평하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쉬이 알수 있다.

하지만 딴지맨 일연은 덕만이 무능하지 않고 오히려 유능하다는 식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삼국사기 기록만을 검토해본다고 해도 덕만은 무능하지 않고 선정과 외교적인 술수가 능한 군주임을 쉬일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덕만과 관련된 <지기삼사>중에서 <옥문곡>사건은 덕만의 예지능력보다는 신라 깊숙히 백제군이 들어오게 할 만큼 신라는 허약했으니 그는 신라에서 여왕이 있었기 때문에 이웃나라에 업수히 여김의 사례로 인용되기도 한다.

사실 삼국사기를 보고 있노라면 지명 비정에 오류가 많이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지명비정 오류도 있지만 후대에 오류도 많이 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옥문곡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독산성 또한 비슷한 사례이다. 삼국사기에는 독산성이 여러곳에 등장한다.


그렇다면 덕만이 무능해서 백제군이 신라 깊숙히 까지 들어와서 분탕질할 만큼이였는지 삼국사기의 <옥문곡>사건을 분석해보자.


636년 선덕왕 5년 여름 5월에 두꺼비가 궁궐 서쪽 옥문지(玉門池)에 많이 모였다. 왕이 이를 듣고 좌우에 말하였다.

"두꺼비는 성난 눈을 가지고 있으니 이는 병사의 모습이다. 내가 일찍이 듣건대, 서남쪽 변경에 이름이 옥문곡(玉門谷)이라는 땅이 있다고 하니 혹시 이웃나라 군사가 그 안에 숨어 들어온 것은 아닐까?"

이에 장군 알천(閼川)과 필탄(弼呑)에게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가서 찾아보게 하였다. 과연 백제 장군 우소(于召)가 독산성(獨山城)을 습격하려고 무장한 군사 500명을 이끌고 와서 그 곳에 숨어 있었으므로, 알천이 갑자기 쳐서 그들을 모두 죽였다.

여기서 주의 깊에 봐야 하는 대목은 덕만이 궁궐 서쪽 옥문지에 두꺼비가 모여서 울었는데, 서남쪽 변경에 이름이 <옥문곡>이라는 땅이 있으니 그곳에 이웃나라 군사들이 숨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덕만이 말한 옥문곡은 <서남쪽변경>에 있다는 말이다. 변경이란 국경지대를 말한다. 그러니 백제 별동대가 숨어있었다는 옥문곡은 신라 서라벌 중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지 않고, 저멀리 서남쪽 경계에 있다는 뜻이다.

이때의 서남쪽 경계는 어디였을까? 신라가 합천 대야성까지 서쪽변경을 침탈당한 때는 642년 7월이후가 된다. 642년 7월 고구려와 백제는 연합하여 당항성을 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때 신라는 당항성을 지키기 위해서 대당 외교를 강화하고 군대를 이동해서 경계를 한다.

하지만 백제는 당항성을 치기 보다는 경계가 허술해진 서쪽 변경 미후성으로 부터 40여개 성을 빼앗고, 642년 8월 같은해 경남 합천에 있는 대야성을 함락시킨다.


그러니 642년 8월 이전에 있었던 635년 지기삼사 옥문곡과 독산성은 대야성 서쪽과 미후성 서쪽 밖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그동안 통설로 알고 있었던 덕만이 왕이 되자 국력이 쇠하고, 이웃나라로 부터 업수히 여기고 신라 깊숙히 백제의 별동대가 들어올 정도로 국방력이 허술했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춘추가 처음 당항성으로 부터 들어올때 <금오산>에 유하다 대남보를 속이고 서나벌로 입성을 한다. 이때 금오산은 현재 구미와 김천 지역에 있는 금오산이 아닌 경주의 남산 아래쪽에 있는 <금오산>이였다.

그렇다면 왜 신라 궁성과 가까이까지 별동대가 들어올 정도로 신라가 허약했다는 말을 들어야 했을까? 그것은 단지 <독산성(獨山城)>이란 지명 때문이다. 위에서 잠깐 언급을 했지만, 고지명확정 오류 때문이다. 특히 독산성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곳만 최소한 3군데에 이르고 있다.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던 독산성과 백제의 서남변경지대의 독산성 그리고 경주인근에 있었던 독산성으로 볼 수 있다. 

사람도 <동명이인>이 있듯이 독산성도 <동명이지명>이란 뜻이다. 현재도 국내에 같은 지명을 가지고 있는 곳이 무수히 많이 있다. 이들 같은 지명이 있다고 해서 같은 장소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옥문곡과 독산성은 단지 백제와 경계한 독산성일 따름이다.

선덕왕 시기 전쟁기록은 사실 몇건이 되지 않는다. 신라가 수세에 몰린 이유는 고구려와 백제가 연합해서 신라를 압박하였기 때문이다. 신라는 생존을 모색하기 위해서 고구려와 백제의 연합을 깨려고 춘추가 642년 겨울 대 고구려 외교를 하였지만 실패한다. 그리고 춘추는 왜로 들어가 백제와 왜의 연합을 와해할 목적으로 왜로 들어갔지만 백제와 왜 연합을 깨는데도  실패한다.

그후 643년 8월 신라는 당으로 사신을 보내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를 치는데 도와달라는 뜻을 전한다. 이때 외교전은 고구려와 백제가 연합해서 당항성을 칠려는 계획을 무산시킨다.

645년 5월 당나라 이세민이 고구려를 칠때, 신라는 3만의 대군으로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침공한다. 고구려는 남쪽으로 신라의 압박과 서쪽으로 당나라의 공세를 견뎌내야 했다. 이틈을 놓치지 않고 백제는 신라의 변경 7개 성을 공격하여 빼앗아 버린다. 그러니 645년 고구려 대당 전쟁은 당+신라 동맹과 고구려+백제동맹의 국제전이였다는 뜻이다. 이해 11월 이찬 비담은 상대등에 임명된다.

결론적으로 덕만이 왕이 였던 선덕왕 시기는 고구려와 백제동맹을 막기 위해서 대당외교와 대왜외교를 강화하던 시기였다. 그러니 기존에 알고 있던 덕만시기에 수세적인 위치에서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덕만이 여인이기 때문에 잘못한 것이 아니고 대외적인 요인때문이였다는 뜻이다. 그리고 덕만은 고구려 백제동맹 시기를 외교전과 군사력으로 잘 견디어 내었다.

또한, 이시기 첨성대를 만들고, 당으로 유학생과 유학승을 보내 내치 기반을 확립하던 시기였다. 또한, 범 국가적으로 영묘사, 분황사, 황룡사 9층 목탑 등 사찰을 지어 백성의 정신적인 구심점을 마련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동안 알고 있었던 역사적인 상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 않을까 한다.

사실 비담의 난은 칠숙의 난과 유사한 면을 가지고 있다. 칠숙과 비담은 자신들이 최소한 차기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만한 위치에 있었고, 이를 결행했지만 칠숙은 덕만과 진평에 의해서 난이 진압되고, 비담의 난은 유신과 알천, 대아찬 수승 등에 의해서 진압된다.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운이는 24세 풍월주 천광이라고 한다. 천광은 풍월주로서 낭도를 이끌고 최전선에서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 공로로 <호성장군>에 임명되기도 한다. 칠숙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이는 염종과 비슷한 이름를 가진 17세 풍월주 염장이다.

24세 풍월주 천광은 636년 상대등에 오른 수품의 아들이라고 한다.  수품의 아버지는 진흥왕/사도비의 아들인 구륜이다. 구륜이 진흥왕/미실의 딸인 반야와 결혼해서 수품을 낳았다. 그러니 천광의 할머니 반야공주는 미실가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가문이 칠숙의 난을 비롯해서 비담의 난을 일으키는 주체로 나오지만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이들 염장과 천광 풍월주들은 미실과 밀접한 친족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두 난을 진압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드라마 선덕여왕은 정변의 주체를 왜곡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드라마니 괜찮다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최소한 기록과 유사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친일민족 반역자를 친일민족반역자라고 이야기를 해도 명예훼손이라는 말을 하는 세상인데 난을 진압한 세력을 난을 일으킨 세력으로 몰아 세운다면 아마도 미실을 비롯한 미실가문의 후손들은 참으로 억울할 만 하다. 단지 드라마라는 이유만으로 당시 신라 왕실의 입장에서 만고의 충신가문이 역신으로 몰렸고, 덕만을 비롯한 진평왕은 허수아비 왕이 되었으니 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는데, 또는 당시 역사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면 추천을 많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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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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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펨께 2009.12.24 0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긴 크리스마스라 야단들이랍니다.
    갓쉰동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좋은 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

  2. BlogIcon Sun'A 2009.12.24 0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메리 크리스마스~!
    좋은하루 보내세요^^

  3. BlogIcon 털보아찌 2009.12.24 0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 아닐까요?
    갓쉰동님! 오늘도 행복하시구요.
    메리 크리스마스!!

    • BlogIcon 갓쉰동 2009.12.24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드라마이야기보다는 드라마를 통한 역사 이야기지용..

      머 사실 드라마 내에서 널뛰기 설정을 비판하기는 하지만.. ㅋㅋ

  4. BlogIcon 임현철 2009.12.24 0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이브 되세요.

  5. BlogIcon DJ야루 2009.12.24 0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괜히 역사를 혼동할까봐 걱정이 되네요ㅋㅋㅋ

    아무튼간에 갓쉰동님 즐거운 이브 되세용!!

    • BlogIcon 갓쉰동 2009.12.24 1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미 오해하는 사람들 많더라구요.. 인터넷을 보면..
      미실과 덕만이 하면서.. 유신과 춘추가 비담이 어쨌내 하면서 역사 토론 마당에서도 그러니.. ㅋㅋ

  6. BlogIcon 레오 ~ 2009.12.24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화나 영화는 감독의 생각을 담고 있어 아무래도 가감을 할 겁니다
    그래도 실망하지 마시기를 ..
    메리크리스마쓰 되세요 ^^^

  7. BlogIcon 푸른솔™ 2009.12.24 1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튼 갓쉰동님 덕분에 역사공부 많이 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8. BlogIcon ll오잘공ll 2009.12.24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대단하신걸요.저도 학교다닐땐 역사공부좀 햇는데.
    분석까지 해주고 ~ 많이 배우고 갑니다.

  9. 어신려울 2009.12.24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간 어찌 지내셨나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갓 쉰동님
    해피 성탄 되세요.

  10. BlogIcon 감자꿈 2009.12.24 1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글 잘 읽고 갑니다.
    갓쉰동님,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

  11. BlogIcon 빛무리  2009.12.24 1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즐거운 성탄 보내세요^^

  12. BlogIcon 민시오™ 2009.12.24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크림 같이 달콤한 크리스마스되시길 바랍니다^^
    메리크리스마스~~~~

  13. BlogIcon skagns 2009.12.24 1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끝나니까 가장 생각나는 것이 갓쉰동님이더라구요. ㅎㅎ;;;
    그동안 덕분에 선덕여왕을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

  14. 클래식 2009.12.24 2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는 선덕여왕이 여성이기 때문에 폄하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근데 제가 아는 것이 짧아서 거기에 대한 근거는 말씀 못드리네요. ^^;
    선덕여왕 보지는 않았지만 갓쉰동님이 올리신 글 보고 중요한 것을 배우고 갑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네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따뜻한 연말되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2.25 0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여성이기 때문에 오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지요.. 그걸 증폭시킨게 이세민의 발언과 비담의 난이고, 김부식의 결정적인 한방이지요..

  15. BlogIcon 유머나라 2009.12.25 0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해요. 정말 삼국사기를 잘 해석해볼 필요가 있네요.
    대충 짐작으로 누굴 비난하고 할 것 없이.
    대단한 안목이어요.

    • BlogIcon 갓쉰동 2009.12.25 0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대충 해석하면 절대 풀리지 않는 부분이 많아요..

      특히 선덕여왕의 옥문곡이나 김유신 김춘추 문희 덕만의 관계는..

  16. BlogIcon 朱雀 2009.12.25 09: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갓쉰동님 덕분에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다시 알게 됩니다.
    조만간 삼국사기랑 몇개를 좀 봐야 겠어요.
    <선덕여왕>이랑 갓쉰동님 포스트때문에 자꾸 궁금해져서요. ^^
    연말연시 잘 보내세요~갓쉰동님~^^/

    • BlogIcon 갓쉰동 2009.12.28 0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책을 보면 잼있습니다.. 해설서를 보는 것도 잼있지만,, 원전 번역본을 보는게 더 상상력을 자극한다눈.. ㅋㅋ

  17. 2010.07.17 0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은 무능한 여군주라고 정평이나있죠 한때 드라마 연개소문에서도 선덕여왕의 무능함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들은 덕만에 관한 기록이 없어서 글을 만들기 힘들다고 한다.

사실 선덕여왕 덕만처럼 삼국시대에 가장 많은 기록과 전승을 가지고 있는 왕도 드물다. 그런데 기록이 없어서 극을  만드는데 힘들다고 한다는 말은 별로 동의가 되지 않는다. 

기록이 소락 할수록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하기가 쉽다. 아주 작은 기록만 일치시키면 되고 재해석 하면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고 있노라면 드라마 작가나 제작자의 기획의도에서 사람을 얻어 천하를 얻는다고 하였지만, 드라마에서 덕만이 유신을 보고 많은 사람을 얻었지만 남은 자는 유신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선덕여왕이 얻은 인물은 김유신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선덕여왕은 아무것도 이룬것이 없다는 뜻이다.

물론, 잔챙이 수십명보다는 확실한 월척인 유신을 얻었다면 성공한 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드라마상 선덕여왕은 무능하고 우유부단함의 전형적인 모습니다. 기획의도와 정반대의 왕을 그리고 있다는 말이다. 죽도 밥도 아닌 드라마 선덕여왕이 된 이유야 미실를 주인공으로 그리려는 복선를 가지고 있고, 선호하지 않은 덕만을 드라마로 쓸려니 작가 스스로도 난감했을 수 있다.

더불어 드라마 뿐만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덕만을 무능한 왕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기록들을 분석해보면 덕만은 왕으로써 무능하지 않을 뿐더러 시호가 <선덕>일 만큼 선정을 베풀고 있다.


비담의 난에 가입하는 자들을 보면 주진과 미생과 보종과 하종과 호재와 필탄이 있다. 10화랑 중에서 4명이 반란에 투입되고 있다. 호재는 덕만의 외삼촌이 된다. 호재의 아버지는 복승공이 복승공의 딸인 마야가 덕만의 어머니이다. 그런데 호재는 비담의 난에 가입하는 것으로 나온다.

물론, 당시 비담의 난에 연루되어 죽은 자들은 30여명에 이른다. 그러니 화랑중에서 난에 가담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던, 덕만은 화랑의 수장인 천신황녀였으니 사람관리에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덕만은 드라마 선덕여왕 처럼 무능한 군주였을까? 삼국사기에 의하면 덕만은 <덕>은 있으나 힘이 없는 군주처럼 그려지기는 했고, 김부식은 덕만을 여자가 왕이 되어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당서를 인용해서 이세민이 신라에 여왕이 있으니 업신여김을 받으니 당나라 왕족으로 하여금 신라의 왕으로 삼는다면 군대를 보내 도와주고 안정이 된다면 그때 다시 신라에서 왕을 뽑는게 낫지 않겠는가?라는 신라를 업수히 여기는 말을 듣게 된다.


덕만이 무능하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확대시킨자는 삼국사기의 김부식이다. 김부식은 덕만을 여러가지로 평하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쉬이 알수 있다.

하지만 딴지맨 일연은 덕만이 무능하지 않고 오히려 유능하다는 식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삼국사기 기록만을 검토해본다고 해도 덕만은 무능하지 않고 선정과 외교적인 술수가 능한 군주임을 쉬일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덕만과 관련된 <지기삼사>중에서 <옥문곡>사건은 덕만의 예지능력보다는 신라 깊숙히 백제군이 들어오게 할 만큼 신라는 허약했으니 그는 신라에서 여왕이 있었기 때문에 이웃나라에 업수히 여김의 사례로 인용되기도 한다.

사실 삼국사기를 보고 있노라면 지명 비정에 오류가 많이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지명비정 오류도 있지만 후대에 오류도 많이 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옥문곡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독산성 또한 비슷한 사례이다. 삼국사기에는 독산성이 여러곳에 등장한다.


그렇다면 덕만이 무능해서 백제군이 신라 깊숙히 까지 들어와서 분탕질할 만큼이였는지 삼국사기의 <옥문곡>사건을 분석해보자.


636년 선덕왕 5년 여름 5월에 두꺼비가 궁궐 서쪽 옥문지(玉門池)에 많이 모였다. 왕이 이를 듣고 좌우에 말하였다.

"두꺼비는 성난 눈을 가지고 있으니 이는 병사의 모습이다. 내가 일찍이 듣건대, 서남쪽 변경에 이름이 옥문곡(玉門谷)이라는 땅이 있다고 하니 혹시 이웃나라 군사가 그 안에 숨어 들어온 것은 아닐까?"

이에 장군 알천(閼川)과 필탄(弼呑)에게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가서 찾아보게 하였다. 과연 백제 장군 우소(于召)가 독산성(獨山城)을 습격하려고 무장한 군사 500명을 이끌고 와서 그 곳에 숨어 있었으므로, 알천이 갑자기 쳐서 그들을 모두 죽였다.

여기서 주의 깊에 봐야 하는 대목은 덕만이 궁궐 서쪽 옥문지에 두꺼비가 모여서 울었는데, 서남쪽 변경에 이름이 <옥문곡>이라는 땅이 있으니 그곳에 이웃나라 군사들이 숨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덕만이 말한 옥문곡은 <서남쪽변경>에 있다는 말이다. 변경이란 국경지대를 말한다. 그러니 백제 별동대가 숨어있었다는 옥문곡은 신라 서라벌 중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지 않고, 저멀리 서남쪽 경계에 있다는 뜻이다.

이때의 서남쪽 경계는 어디였을까? 신라가 합천 대야성까지 서쪽변경을 침탈당한 때는 642년 7월이후가 된다. 642년 7월 고구려와 백제는 연합하여 당항성을 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때 신라는 당항성을 지키기 위해서 대당 외교를 강화하고 군대를 이동해서 경계를 한다.

하지만 백제는 당항성을 치기 보다는 경계가 허술해진 서쪽 변경 미후성으로 부터 40여개 성을 빼앗고, 642년 8월 같은해 경남 합천에 있는 대야성을 함락시킨다.


그러니 642년 8월 이전에 있었던 635년 지기삼사 옥문곡과 독산성은 대야성 서쪽과 미후성 서쪽 밖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그동안 통설로 알고 있었던 덕만이 왕이 되자 국력이 쇠하고, 이웃나라로 부터 업수히 여기고 신라 깊숙히 백제의 별동대가 들어올 정도로 국방력이 허술했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춘추가 처음 당항성으로 부터 들어올때 <금오산>에 유하다 대남보를 속이고 서나벌로 입성을 한다. 이때 금오산은 현재 구미와 김천 지역에 있는 금오산이 아닌 경주의 남산 아래쪽에 있는 <금오산>이였다.

그렇다면 왜 신라 궁성과 가까이까지 별동대가 들어올 정도로 신라가 허약했다는 말을 들어야 했을까? 그것은 단지 <독산성(獨山城)>이란 지명 때문이다. 위에서 잠깐 언급을 했지만, 고지명확정 오류 때문이다. 특히 독산성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곳만 최소한 3군데에 이르고 있다.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던 독산성과 백제의 서남변경지대의 독산성 그리고 경주인근에 있었던 독산성으로 볼 수 있다. 

사람도 <동명이인>이 있듯이 독산성도 <동명이지명>이란 뜻이다. 현재도 국내에 같은 지명을 가지고 있는 곳이 무수히 많이 있다. 이들 같은 지명이 있다고 해서 같은 장소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옥문곡과 독산성은 단지 백제와 경계한 독산성일 따름이다.

선덕왕 시기 전쟁기록은 사실 몇건이 되지 않는다. 신라가 수세에 몰린 이유는 고구려와 백제가 연합해서 신라를 압박하였기 때문이다. 신라는 생존을 모색하기 위해서 고구려와 백제의 연합을 깨려고 춘추가 642년 겨울 대 고구려 외교를 하였지만 실패한다. 그리고 춘추는 왜로 들어가 백제와 왜의 연합을 와해할 목적으로 왜로 들어갔지만 백제와 왜 연합을 깨는데도  실패한다.

그후 643년 8월 신라는 당으로 사신을 보내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를 치는데 도와달라는 뜻을 전한다. 이때 외교전은 고구려와 백제가 연합해서 당항성을 칠려는 계획을 무산시킨다.

645년 5월 당나라 이세민이 고구려를 칠때, 신라는 3만의 대군으로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침공한다. 고구려는 남쪽으로 신라의 압박과 서쪽으로 당나라의 공세를 견뎌내야 했다. 이틈을 놓치지 않고 백제는 신라의 변경 7개 성을 공격하여 빼앗아 버린다. 그러니 645년 고구려 대당 전쟁은 당+신라 동맹과 고구려+백제동맹의 국제전이였다는 뜻이다. 이해 11월 이찬 비담은 상대등에 임명된다.

결론적으로 덕만이 왕이 였던 선덕왕 시기는 고구려와 백제동맹을 막기 위해서 대당외교와 대왜외교를 강화하던 시기였다. 그러니 기존에 알고 있던 덕만시기에 수세적인 위치에서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덕만이 여인이기 때문에 잘못한 것이 아니고 대외적인 요인때문이였다는 뜻이다. 그리고 덕만은 고구려 백제동맹 시기를 외교전과 군사력으로 잘 견디어 내었다.

또한, 이시기 첨성대를 만들고, 당으로 유학생과 유학승을 보내 내치 기반을 확립하던 시기였다. 또한, 범 국가적으로 영묘사, 분황사, 황룡사 9층 목탑 등 사찰을 지어 백성의 정신적인 구심점을 마련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동안 알고 있었던 역사적인 상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 않을까 한다.

사실 비담의 난은 칠숙의 난과 유사한 면을 가지고 있다. 칠숙과 비담은 자신들이 최소한 차기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만한 위치에 있었고, 이를 결행했지만 칠숙은 덕만과 진평에 의해서 난이 진압되고, 비담의 난은 유신과 알천, 대아찬 수승 등에 의해서 진압된다.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운이는 24세 풍월주 천광이라고 한다. 천광은 풍월주로서 낭도를 이끌고 최전선에서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 공로로 <호성장군>에 임명되기도 한다. 칠숙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이는 염종과 비슷한 이름를 가진 17세 풍월주 염장이다.

24세 풍월주 천광은 636년 상대등에 오른 수품의 아들이라고 한다.  수품의 아버지는 진흥왕/사도비의 아들인 구륜이다. 구륜이 진흥왕/미실의 딸인 반야와 결혼해서 수품을 낳았다. 그러니 천광의 할머니 반야공주는 미실가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가문이 칠숙의 난을 비롯해서 비담의 난을 일으키는 주체로 나오지만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이들 염장과 천광 풍월주들은 미실과 밀접한 친족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두 난을 진압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드라마 선덕여왕은 정변의 주체를 왜곡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드라마니 괜찮다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최소한 기록과 유사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친일민족 반역자를 친일민족반역자라고 이야기를 해도 명예훼손이라는 말을 하는 세상인데 난을 진압한 세력을 난을 일으킨 세력으로 몰아 세운다면 아마도 미실을 비롯한 미실가문의 후손들은 참으로 억울할 만 하다. 단지 드라마라는 이유만으로 당시 신라 왕실의 입장에서 만고의 충신가문이 역신으로 몰렸고, 덕만을 비롯한 진평왕은 허수아비 왕이 되었으니 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는데, 또는 당시 역사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면 추천을 많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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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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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펨께 2009.12.24 0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긴 크리스마스라 야단들이랍니다.
    갓쉰동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좋은 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

  2. BlogIcon Sun'A 2009.12.24 0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메리 크리스마스~!
    좋은하루 보내세요^^

  3. BlogIcon 털보아찌 2009.12.24 0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 아닐까요?
    갓쉰동님! 오늘도 행복하시구요.
    메리 크리스마스!!

    • BlogIcon 갓쉰동 2009.12.24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드라마이야기보다는 드라마를 통한 역사 이야기지용..

      머 사실 드라마 내에서 널뛰기 설정을 비판하기는 하지만.. ㅋㅋ

  4. BlogIcon 임현철 2009.12.24 0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이브 되세요.

  5. BlogIcon DJ야루 2009.12.24 0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괜히 역사를 혼동할까봐 걱정이 되네요ㅋㅋㅋ

    아무튼간에 갓쉰동님 즐거운 이브 되세용!!

    • BlogIcon 갓쉰동 2009.12.24 1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미 오해하는 사람들 많더라구요.. 인터넷을 보면..
      미실과 덕만이 하면서.. 유신과 춘추가 비담이 어쨌내 하면서 역사 토론 마당에서도 그러니.. ㅋㅋ

  6. BlogIcon 레오 ~ 2009.12.24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화나 영화는 감독의 생각을 담고 있어 아무래도 가감을 할 겁니다
    그래도 실망하지 마시기를 ..
    메리크리스마쓰 되세요 ^^^

  7. BlogIcon 푸른솔™ 2009.12.24 1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튼 갓쉰동님 덕분에 역사공부 많이 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8. BlogIcon ll오잘공ll 2009.12.24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대단하신걸요.저도 학교다닐땐 역사공부좀 햇는데.
    분석까지 해주고 ~ 많이 배우고 갑니다.

  9. 어신려울 2009.12.24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간 어찌 지내셨나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갓 쉰동님
    해피 성탄 되세요.

  10. BlogIcon 감자꿈 2009.12.24 1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글 잘 읽고 갑니다.
    갓쉰동님,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

  11. BlogIcon 빛무리  2009.12.24 1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즐거운 성탄 보내세요^^

  12. BlogIcon 민시오™ 2009.12.24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크림 같이 달콤한 크리스마스되시길 바랍니다^^
    메리크리스마스~~~~

  13. BlogIcon skagns 2009.12.24 1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끝나니까 가장 생각나는 것이 갓쉰동님이더라구요. ㅎㅎ;;;
    그동안 덕분에 선덕여왕을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

  14. 클래식 2009.12.24 2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는 선덕여왕이 여성이기 때문에 폄하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근데 제가 아는 것이 짧아서 거기에 대한 근거는 말씀 못드리네요. ^^;
    선덕여왕 보지는 않았지만 갓쉰동님이 올리신 글 보고 중요한 것을 배우고 갑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네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따뜻한 연말되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2.25 0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여성이기 때문에 오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지요.. 그걸 증폭시킨게 이세민의 발언과 비담의 난이고, 김부식의 결정적인 한방이지요..

  15. BlogIcon 유머나라 2009.12.25 0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해요. 정말 삼국사기를 잘 해석해볼 필요가 있네요.
    대충 짐작으로 누굴 비난하고 할 것 없이.
    대단한 안목이어요.

    • BlogIcon 갓쉰동 2009.12.25 0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대충 해석하면 절대 풀리지 않는 부분이 많아요..

      특히 선덕여왕의 옥문곡이나 김유신 김춘추 문희 덕만의 관계는..

  16. BlogIcon 朱雀 2009.12.25 09: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갓쉰동님 덕분에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다시 알게 됩니다.
    조만간 삼국사기랑 몇개를 좀 봐야 겠어요.
    <선덕여왕>이랑 갓쉰동님 포스트때문에 자꾸 궁금해져서요. ^^
    연말연시 잘 보내세요~갓쉰동님~^^/

    • BlogIcon 갓쉰동 2009.12.28 0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책을 보면 잼있습니다.. 해설서를 보는 것도 잼있지만,, 원전 번역본을 보는게 더 상상력을 자극한다눈.. ㅋㅋ

  17. 2010.07.17 0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은 무능한 여군주라고 정평이나있죠 한때 드라마 연개소문에서도 선덕여왕의 무능함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마지막 회 결말을 보고 있노라면 비담의 70보, 30보 마지막 10보 만으로도 덕만을 향한 마음을 읽을 수가 있다. 

내 딛는 한발 한발이 피가 흐르고 살이 애이는 듯 한 아픔 하지만 다가갈 수록 더욱 날아오는 화살과 칼날들 더군다나 아무 생각없이 바라만 보고 있는 덕만 그녀가 야속하게도 느껴진다.

그럴수록 더 가까이 가서 부르고 싶은 이름 "덕만아~" 하지만 덕만은 비담에게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당신이 되어 가고 있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 이광조
아아~~
당신은 당신은 누구시길래
내마음 깊은 곳에 외로움 심으셨나요
그냥 스쳐 지나갈 바람이라면

모르는 타인들처럼 아무말 말고 가세요
잊으려하면 할수록
그리움이 더욱 더 하겠지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당신~~을
난 난 잊을테요
 
그냥 스쳐지나갈 바람이라면
모르는 타인들처럼 아무말 말고 가세요
잊으려하면 할수록
그리움이 더욱 더 하겠지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당신~~을
난 난 잊을테요

그래도 죽음의 그림자가 짖게 드리운 자신이 왕이 아니 한 남자의 여자이고 싶었고, 죽을때 자신을 위해서 울어주는 단한사람이길 바랬다. 하지만, 염종과 자신의 조카인 춘추의 꽴에 빠진 비담이 야속하기만 하다. 누구도 믿지 않았을때 믿어준 나를 배신한 비담이 용서가 되지 않았다. 이들 비담과 덕만에게는 사랑해서는 안될게 너무나 많이 있었고,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 놓여 있었다.


보이지 않는 사랑 - 신승훈

사랑해선 안될께 너무 많아 그래서 더욱 슬퍼지는 것 같아 그중에서 가장 슬픈건 날 사랑하지 않는 그대 내곁에 있어 달라는  말하지 않았지 하지만 떠날 필요 없잖아 보이지 않게 사랑 할꺼야 너무 슬퍼 눈물 보이지만 어제는 사랑을 오늘은 이별을 미소짖는 얼굴로 울고 있었지 하지만 나 이렇게 슬프게 우는건 내일 이면 찾아올 그리움 때문 일꺼야


그래도 비담은 자신이 마지막 해주고 싶었던 말이 있었지만, 자신의 정적이며 벗이라고 생각한 유신과 알천의 칼에 덧없이 떨어지는 잎새처럼 마지막 숨을 몰아 세웠다. 저 멀리 보이는 그녀가 오늘따라 무척이나 예뻐 보였지만, 점점 시야에서 멀어지는 마지막 한줄기 생명줄에 의지해서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듣는 유신은 말을 해주지 않고 야속하게 비밀로 묻어 두려는 한다.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 - 이상우
저기 보이는 노란찻집 오늘은 그녈 세번째 만나는 날
마음은 그곳을 달려가고 있지만 가슴이 떨려오네

새로산 구두가 어색해 자꾸 쇼원도에 날 비춰봐도
멀쓱한 내 모습이 더 못마땅한 그녀를 만나는 곳100m 전

장미꽃 한송이를 안겨줄까 무슨말을 어떻게 할까?
머리속에 가득한 그녀 모습이 조금씩 내게 다가오는것 같아

하늘에 구름이 솜사탕이 아닐까 어디 한번 뛰어올라
볼까 오늘은 그녀에게 고백해야지 용기를 내야지

벌써 날 기다리진 않을까 아직 15분이나 남아있는데.
어젯밤에 맞춰논 내 시계바늘이 잠든게 아닐까?

살살 넘겨빗는 머리가 바람에 날려 흩어지진 않을까?
오늘따라 이길이 더 멀어보이네 그녀를 만나는 곳
100m전..

장미꽃 한송이를 안겨줄까 무슨말을 어떻게 할까?
머리속에 가득한 그녀 모습이 조금씩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아

하늘에 구름이 솜사탕이 아닐까 어디 한번 뛰어올라
볼까 오늘은 그녀에게 고백해야지 용기를 내야지



김상배의 몇미터 앞에다 두고 노래처럼 비담은 말 한마디 끝내 붙일 수 없이 쓰러져 버린다.

몇미터 앞에다 두고 - 김상배

사랑했던 그 사람을 몇미터 앞에다 두고
나는나는 말한마디 끝내 붙일 수 없었다
마주 앉은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냥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그 사람을 바로
몇미터 앞에다 두고
그리웠던 그 사람을 몇미터 앞에다 두고
하고싶은 말한마디 끝내 붙일 수 없었다
마주 앉은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행복해하는 웃음소리에 나는 그냥
돌아설수 밖에 없었다 그 사람을 바로
몇미터 앞에다 두고
그사람을 바로

덕만으로써는  자신을 주기려한 원수의 자식인 비담이 반가울리 없었지만, 그래서 점차 싹트는 사랑을 어찌할 수 없었다. 비담도 어찌되었던 자신의 어머니인 미실을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고,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단순히 덕만을 정치적인 결합만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덕만은 왕으로써 자신과 결혼하는 대상이 사랑하는 비담에 의해서가 아닌 비호세력들에게 권력이 분점되는 것을 아쉬워 하였다.


점점 - 브라운 아이즈

점점 더 멀어지나봐 웃고 있는 날 봐
때론 며칠씩 편하게 지내
점점 널 잊는것 같아 먼일처럼

점점 넌 떠나가나봐 하루는 미치고
다음 날이면 괜찮아졌어
다만 슬픔에 익숙해질 뿐인걸

점점 어쩌다 또 생각나
너를 그릴때가 오면 숨막히게 지쳐
애서 참아낼 수 있겠지
그렇게 널 버려 내 아픔도 점점

점점 넌 멀어지나봐 그게 편해지나봐 그게 편해지나봐
너의 얼굴도 생각도 안나
점점 너를 버릴 것 같아 나 어느새

점점 어쩌다 또 생각나
너를 그릴 때가 오면 숨막히게 지쳐
애써 참아낼 수 있겠지
그렇게 널 버려 내 아픔도 점점

어쩌다 또 생각나 또 생각나
너를 그릴때가 오면 숨막히게 지쳐
애써 참아낼 수 있겠지
그렇게 널 버려
Long goodbye no away you know
이젠 낯선 목소리에 너를 부르는걸
시간이 나를 다 버리고
내 슬픔도 이제 멀어져가 점점


비담은 구창모의 희나리의 죄인처럼 그대 곁에 가지 못하게 하는 정적들과 무심히 눈물만 흘리는 덕만이 있을 뿐이다. 숨이 멈춰지는 그 순간에도 그녀가 다가올 수 있지나 않는지 아니면 잠시라고 그만 하라는 말을 해주기를 바랬지만, 덕만은 아무 말없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비담의 힘없이 떨군 손은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비담의 마음을 표현해주고 있다.

구창모 - 희나리

사랑함에 세심했던 나의 마음이 그렇게도 그대에겐 구속이었소

믿지못해 그런것이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헤어지는 이유가 됐오

내게 무슨 마음에 병이 있는것처럼 느낄만큼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그대 왜려 나를 점점 믿지못하고 왠지 나를 그런 쪽에 가깝게 했오

나의 잘못이라면 그대를 위한 내 마음의 전부를 준 것뿐인데

죄인처럼 그대곁에 가지 못하고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지금에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나의 마음은 퇴색하기 싫어하는 희나리 같소


어쩌면 비담은 무대에서 내려 와야하는 광대이고 그녀 덕만은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이승철의 마지막 콘서트와 같지 않았을까?

마지막 콘서트 - 이승철

지금 슬픈 내모습은  무대뒤 한소녀           
    애써 눈물참으며 바라보고 있네           
   무대뒤에 그소녀는  작은의자에 앉아
           
두손 곱게 모으고  바라보며 듣네         
나의 얘기를 오우워    
소녀는 나를 알기에 더더욱 슬퍼지네
           
노래는 점점 흐르고  소녀는 울음 참지못해          
   밖으로 나가버리고  노랜 끝이 났지만           
 이젠 부르지 않으리 예  이슬픈 노래@
          
   밖으로 나가버리고  노랜 끝이 났지만           
 이젠 부르지 않으리 예 이슬픈 노래@
          
  나나나나 나나 나나  나나 나나 나나나


비담과 마지막을 보내려 했던 덕만은 남은 유신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다. "기억나십니까? 어릴적 저와 함께 신국을 떠나 멀리 도망가려던 때를.. 지금 우리 떠나 갈까요?" 덕만의 사랑은 집요한 비담과 누구라도 상관없는 안식처가 필요했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비담을 바라보는 덕만의 테마곡은 어떤곡이 어울릴까?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 이승철

*소리내지마 우리 사랑이 날아가버려
움직이지마 우리 사랑이 약해지잖아

얘기하지마 우리 사랑을 누가 듣잖아
다가오지마 우리 사랑이 멀어지잖아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나는 너를 보고 있잖아
그러나 자꾸 눈물이 나서 널 볼 수가 없어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우린 아직 이별이 뭔지 몰라

*반복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우린 아직 이별이 먼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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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윤서아빠세상보기 2009.12.23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전을 생각했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12.23 14: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그리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멀아지나봐.. 김상배의 몇미터 앞에다 두고가 떠오르더라구요.. ㅋㅋ

  2.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드라마 선덕여왕의 마지막 회 결말을 보고 있노라면 비담의 70보, 30보 마지막 10보 만으로도 덕만을 향한 마음을 읽을 수가 있다. 

내 딛는 한발 한발이 피가 흐르고 살이 애이는 듯 한 아픔 하지만 다가갈 수록 더욱 날아오는 화살과 칼날들 더군다나 아무 생각없이 바라만 보고 있는 덕만 그녀가 야속하게도 느껴진다.

그럴수록 더 가까이 가서 부르고 싶은 이름 "덕만아~" 하지만 덕만은 비담에게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당신이 되어 가고 있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 이광조
아아~~
당신은 당신은 누구시길래
내마음 깊은 곳에 외로움 심으셨나요
그냥 스쳐 지나갈 바람이라면

모르는 타인들처럼 아무말 말고 가세요
잊으려하면 할수록
그리움이 더욱 더 하겠지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당신~~을
난 난 잊을테요
 
그냥 스쳐지나갈 바람이라면
모르는 타인들처럼 아무말 말고 가세요
잊으려하면 할수록
그리움이 더욱 더 하겠지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당신~~을
난 난 잊을테요

그래도 죽음의 그림자가 짖게 드리운 자신이 왕이 아니 한 남자의 여자이고 싶었고, 죽을때 자신을 위해서 울어주는 단한사람이길 바랬다. 하지만, 염종과 자신의 조카인 춘추의 꽴에 빠진 비담이 야속하기만 하다. 누구도 믿지 않았을때 믿어준 나를 배신한 비담이 용서가 되지 않았다. 이들 비담과 덕만에게는 사랑해서는 안될게 너무나 많이 있었고,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 놓여 있었다.


보이지 않는 사랑 - 신승훈

사랑해선 안될께 너무 많아 그래서 더욱 슬퍼지는 것 같아 그중에서 가장 슬픈건 날 사랑하지 않는 그대 내곁에 있어 달라는  말하지 않았지 하지만 떠날 필요 없잖아 보이지 않게 사랑 할꺼야 너무 슬퍼 눈물 보이지만 어제는 사랑을 오늘은 이별을 미소짖는 얼굴로 울고 있었지 하지만 나 이렇게 슬프게 우는건 내일 이면 찾아올 그리움 때문 일꺼야


그래도 비담은 자신이 마지막 해주고 싶었던 말이 있었지만, 자신의 정적이며 벗이라고 생각한 유신과 알천의 칼에 덧없이 떨어지는 잎새처럼 마지막 숨을 몰아 세웠다. 저 멀리 보이는 그녀가 오늘따라 무척이나 예뻐 보였지만, 점점 시야에서 멀어지는 마지막 한줄기 생명줄에 의지해서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듣는 유신은 말을 해주지 않고 야속하게 비밀로 묻어 두려는 한다.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 - 이상우
저기 보이는 노란찻집 오늘은 그녈 세번째 만나는 날
마음은 그곳을 달려가고 있지만 가슴이 떨려오네

새로산 구두가 어색해 자꾸 쇼원도에 날 비춰봐도
멀쓱한 내 모습이 더 못마땅한 그녀를 만나는 곳100m 전

장미꽃 한송이를 안겨줄까 무슨말을 어떻게 할까?
머리속에 가득한 그녀 모습이 조금씩 내게 다가오는것 같아

하늘에 구름이 솜사탕이 아닐까 어디 한번 뛰어올라
볼까 오늘은 그녀에게 고백해야지 용기를 내야지

벌써 날 기다리진 않을까 아직 15분이나 남아있는데.
어젯밤에 맞춰논 내 시계바늘이 잠든게 아닐까?

살살 넘겨빗는 머리가 바람에 날려 흩어지진 않을까?
오늘따라 이길이 더 멀어보이네 그녀를 만나는 곳
100m전..

장미꽃 한송이를 안겨줄까 무슨말을 어떻게 할까?
머리속에 가득한 그녀 모습이 조금씩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아

하늘에 구름이 솜사탕이 아닐까 어디 한번 뛰어올라
볼까 오늘은 그녀에게 고백해야지 용기를 내야지



김상배의 몇미터 앞에다 두고 노래처럼 비담은 말 한마디 끝내 붙일 수 없이 쓰러져 버린다.

몇미터 앞에다 두고 - 김상배

사랑했던 그 사람을 몇미터 앞에다 두고
나는나는 말한마디 끝내 붙일 수 없었다
마주 앉은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냥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그 사람을 바로
몇미터 앞에다 두고
그리웠던 그 사람을 몇미터 앞에다 두고
하고싶은 말한마디 끝내 붙일 수 없었다
마주 앉은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행복해하는 웃음소리에 나는 그냥
돌아설수 밖에 없었다 그 사람을 바로
몇미터 앞에다 두고
그사람을 바로

덕만으로써는  자신을 주기려한 원수의 자식인 비담이 반가울리 없었지만, 그래서 점차 싹트는 사랑을 어찌할 수 없었다. 비담도 어찌되었던 자신의 어머니인 미실을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고,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단순히 덕만을 정치적인 결합만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덕만은 왕으로써 자신과 결혼하는 대상이 사랑하는 비담에 의해서가 아닌 비호세력들에게 권력이 분점되는 것을 아쉬워 하였다.


점점 - 브라운 아이즈

점점 더 멀어지나봐 웃고 있는 날 봐
때론 며칠씩 편하게 지내
점점 널 잊는것 같아 먼일처럼

점점 넌 떠나가나봐 하루는 미치고
다음 날이면 괜찮아졌어
다만 슬픔에 익숙해질 뿐인걸

점점 어쩌다 또 생각나
너를 그릴때가 오면 숨막히게 지쳐
애서 참아낼 수 있겠지
그렇게 널 버려 내 아픔도 점점

점점 넌 멀어지나봐 그게 편해지나봐 그게 편해지나봐
너의 얼굴도 생각도 안나
점점 너를 버릴 것 같아 나 어느새

점점 어쩌다 또 생각나
너를 그릴 때가 오면 숨막히게 지쳐
애써 참아낼 수 있겠지
그렇게 널 버려 내 아픔도 점점

어쩌다 또 생각나 또 생각나
너를 그릴때가 오면 숨막히게 지쳐
애써 참아낼 수 있겠지
그렇게 널 버려
Long goodbye no away you know
이젠 낯선 목소리에 너를 부르는걸
시간이 나를 다 버리고
내 슬픔도 이제 멀어져가 점점


비담은 구창모의 희나리의 죄인처럼 그대 곁에 가지 못하게 하는 정적들과 무심히 눈물만 흘리는 덕만이 있을 뿐이다. 숨이 멈춰지는 그 순간에도 그녀가 다가올 수 있지나 않는지 아니면 잠시라고 그만 하라는 말을 해주기를 바랬지만, 덕만은 아무 말없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비담의 힘없이 떨군 손은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비담의 마음을 표현해주고 있다.

구창모 - 희나리

사랑함에 세심했던 나의 마음이 그렇게도 그대에겐 구속이었소

믿지못해 그런것이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헤어지는 이유가 됐오

내게 무슨 마음에 병이 있는것처럼 느낄만큼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그대 왜려 나를 점점 믿지못하고 왠지 나를 그런 쪽에 가깝게 했오

나의 잘못이라면 그대를 위한 내 마음의 전부를 준 것뿐인데

죄인처럼 그대곁에 가지 못하고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지금에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나의 마음은 퇴색하기 싫어하는 희나리 같소


어쩌면 비담은 무대에서 내려 와야하는 광대이고 그녀 덕만은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이승철의 마지막 콘서트와 같지 않았을까?

마지막 콘서트 - 이승철

지금 슬픈 내모습은  무대뒤 한소녀           
    애써 눈물참으며 바라보고 있네           
   무대뒤에 그소녀는  작은의자에 앉아
           
두손 곱게 모으고  바라보며 듣네         
나의 얘기를 오우워    
소녀는 나를 알기에 더더욱 슬퍼지네
           
노래는 점점 흐르고  소녀는 울음 참지못해          
   밖으로 나가버리고  노랜 끝이 났지만           
 이젠 부르지 않으리 예  이슬픈 노래@
          
   밖으로 나가버리고  노랜 끝이 났지만           
 이젠 부르지 않으리 예 이슬픈 노래@
          
  나나나나 나나 나나  나나 나나 나나나


비담과 마지막을 보내려 했던 덕만은 남은 유신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다. "기억나십니까? 어릴적 저와 함께 신국을 떠나 멀리 도망가려던 때를.. 지금 우리 떠나 갈까요?" 덕만의 사랑은 집요한 비담과 누구라도 상관없는 안식처가 필요했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비담을 바라보는 덕만의 테마곡은 어떤곡이 어울릴까?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 이승철

*소리내지마 우리 사랑이 날아가버려
움직이지마 우리 사랑이 약해지잖아

얘기하지마 우리 사랑을 누가 듣잖아
다가오지마 우리 사랑이 멀어지잖아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나는 너를 보고 있잖아
그러나 자꾸 눈물이 나서 널 볼 수가 없어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우린 아직 이별이 뭔지 몰라

*반복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우린 아직 이별이 먼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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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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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윤서아빠세상보기 2009.12.23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전을 생각했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12.23 14: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그리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멀아지나봐.. 김상배의 몇미터 앞에다 두고가 떠오르더라구요.. ㅋㅋ

  2.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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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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