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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MBC 동이는 50부작 중에서 36회가 끝나고 있다. 앞으로 10회를 연장한다고 한다.


그동안 동이는 이리저리 치이고 동이가 상궁인지 나인인지 검사관인지 정체가 불분명하고 궁의 모든 잡일을 하는 무수리 마냥 같은 일의 반복만 하고 있고, 진행은 지지부진 하다.


많은 사람이 최근에 스토리가  정체되고 있다는 원인을 김철호의 낙마에서 찾는 경우도 있지만, 이병훈 사극의 특징은 그때 그때 변경가능한 사극이다.
 
김철호가 아닌 주인공 한효주 동이나 장희빈(이소연)이나 숙종(지진희)가 하차해도 만들어질 수 있는 사극이 이병훈식의 사극이다. 인기가 있으면 계속 같은 일의 반복을 하여 지루하게 만들고 비판적인 말이 나오면 다시 이야기를 진행한다.


최근 등록유초를 두고 천상궁 동이와 장왕비인 장희빈 사이에 치열한 두뇌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두뇌싸움은 보기 힘들다. 최소한 두뇌싸움은 논리싸움과 추리가 있어야 하지만, 이병훈 사극은 이게 두뇌싸움이다라고 결과만 알려줄 뿐이다.



이병훈의 사극을 보고 있노라면 역사에 실존하고 기록이 남아 있는 인물을 다룰 때 역사의 기록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철저하게 무시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동이에서 등장하는 인물중 실존인물은 동이의 숙빈최씨와 숙종,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 장희빈과 장희빈의 동생 장희재 그리고 인현왕후뿐이다.


이 여섯명의 생몰년도는 정확히 기록으로 남아 있고, 명성왕후가 언제 무슨 이유로 죽었는지도 기록에 나와 있다. 인현왕후가 폐서인 된 이유와 언제 그랬는지도 나온다. 또한, 숙빈 최씨가 어떻게 누구와 궁에 들어갔고, 무슨 이유로 숙종의 성은을 입었는지가 명확하다.


하지만, 동이에서는 동이가 장희빈의 도움으로 나인이 되고 상궁이 되었다고 나오며 명성왕후 독살 사건를 파헤치는 것으로 나온다. 아래서 언급을 하겠지만 이때 동이의 나이는 몇살이였을까? 잠시 생각해보기 바란다. 명성왕후가 장희빈의 계략으로 독살되고, 독살배후로 인현왕후로 조작하였고, 인현왕후는 독살사건 때문에 페서인 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동이는 인현왕후가 왕비가 되기 전 부터 인현왕후와 같이 있던 사람이고 왕비가 되자 같이 궁에 들어온 사람이다. 명성왕후는 1683년 음 12월에 숙종의 병환을 치료하고자 밤낮으로 치성을 드리다 겨울비를 맞고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이때 동이의 나이는 몇살이였을까? 동이로 분한 숙빈최씨는 1670년생이다. 각자 알아서 계산들 하시라.

그리고 인현왕후는 명성왕후가 죽은 후 무려 5년이 지난 1688년 장희빈과 숙종 사이에 난 훗날 경종이 되는 균의 세자책봉의 정치적 싸움에 연루되어 1689년 폐서인 된 것이다. 장옥정의 아들 균은 1690년 3살의 나이로 세자책봉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채를 두고 동이의 역사적 고증이 잘못되었다고 하지만, 실은 가채는 부수적인 것이다. 가채를 가지고 등장인물의 성격을 부여할 수는 있다. 가채를 쓴 자는 과시욕이 강한 사람으로 가채를 하지 않고 쪽진 머리를 한 사람은 단아하고 성정이 부드러운 사람이며 과시욕이 없는 사람으로 말이다.

장희빈이 가채를 하지 않고 있다가 가채를 하므로서 장희빈이 성격이 변하는 과정을 그려 낼 수 있었다는 뜻이다. 모든 여인이 가채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동이의 문제는 기존역사 기록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여 역사를 왜곡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사극은 역사의 사건과 기록사이에 빈틈을 매우는 일과 같다. 하지만 이병훈은 단지 역사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는 등장인물 6명조차도 역사기록과 부합하게 만들어 내지 못하고 생몰년도 조차도 싱크로율이 없다.


현재 SBS에서 자이언트라는 70년대 강남개발 과정을 그리는 시대극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이 당시 대통령을 박정희가 아닌 전두환이나 이명박으로 그리고 전두환을 총으로 죽인자가 노무현으로 그렸다면 자이언트를 단순한 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는 자들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이병훈 사극은 엉뚱하다 못해 한심할 지경이다. 최근 등록유초를 가지고 청나라와 조선의 세자책봉에 관한 밀고 당기는 국경분쟁을 다루고 국가의 중대 기록을 팔아넘긴 장희빈 세력이 위기에 몰리고, 이를 기화로 동이가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청나라와 조선 사이에 등록유초를 가지고 세자책봉을 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고 세자책봉과는 전혀 무관하다. 만약, 청나라와 조선 간에 국경문제를 다루고 싶었다면 숙종시대에 있었던 울릉도. 독도문제(1692년 일본인 도해사건부터 1696년 안용복사건)나 백두산정계비(1712년)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개했어야 하지만 당연히 동이에서는 그리지 않고 있다. 동이는 사극의 장르를 벗어난 현대 멜로극이기 때문이다.
 


이병훈 사극을 한마디로 정의를 하면 기록과 무관한 사극을 가장 잘 만든다. 현대의 청학동 사극이나 복식과 흉내만 내는 민속촌 사극에 지나지 않는다. 이병훈 사극는 역사가 살아 움직이지 않고 질식할 정도로 피폐하고 황폐화 시킨다.


동이는 동이의 성장기를 가장한 궁중의 왕비쟁탈전과 동이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 신데렐라인데, 이병훈은 최소한 왕의 어미가 되려면 드라마 동이처럼 온갖 잡일부터 해서 못하는 것이 없는 팔방미인이여야 한다고 숙빈 최씨를 모독하고 이를 합리화 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보면 딱 이다. 한마디로 그랬을지도 모른다거나 그랬을것이다가 아닌 주인공은 그래야만 한다는 주인공 모독사극이다.


최근에 등장하는 드라마 마다 재벌과 일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여성이 재벌가에 시집가는 드라마를 그리는 게 일반적인 흐름이다. 많은 사람은 현실과 전혀 다른 설정에 욕하면서 드라마를 본다.


시청자는 재벌가에 시집가는 주인공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시켜주는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처럼 역사와 전혀 무관한 동이를 보면서 시청자가 숙종의 비가 되는 것 같은 대리만족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역사와 부합되면서도 충분히 시청자를 만족시켜 줄 수 있지만 이병훈은 처음부터 역사는 장식이기 때문에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어쩌면 동이는 이병훈이 만들수 있는 사극의 최극단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면 된다. 촛불이 마지막 불꽃을 태울 때 가장 밝다고 한다. 사람도 죽을 때 반짝하며 화색이 돌아온다고 한다. 사실 이병훈 식의 역사파괴 사극이 인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현 사회에 문제가 많다는 반증이다. 사극은 현 시대를 반영하는 드라마 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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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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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둔필승총 2010.07.22 1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병훈 pd의 사극 정말 심오하고 변화무쌍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2. BlogIcon 이곳간 2010.07.22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왜곡은 많은 장면에서 나오긴 했는 데... 아주 많았군요..

  3. 이 훈 2010.07.26 15: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자기 입맛에 맞게 함부로 다루고 있습니다.
    동이에서 여자 연기자들이 가채를 쓰지않고 나오고 있죠. 여자 연기자들이 가채를 쓰지않고 나오는 이유가,대장금에서 가채를 쓴 여자 연기자들이 고통스러워 했다네요. 무게가 무거우니까,그래도 가채를 쓰야죠.
    하루종일 가채를 쓰고 있는것도 아니고.........
    동이는 이야기 전개가 정말로 부진 합니다.
    재미가 없어졌어.....

    그리고 명성왕후가 독살이 되어요?
    꼴갑을 떠네요.
    명성왕후(明成王后)는 그의 아들인 숙종이 심한 병으로 자리에 드러눕자 아들의 쾌유를 빌기위해 어느 무속인의 말에 따라 한 겨울에 우물가에서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숙종의 병이 나을것이라고 하면서.
    그것도 몇차례 씩이나.
    어머니 명성왕후의 희생으로 아들인 숙종은 병에서 쾌유됐지만 명성왕후는 한겨울에 찬물을 여러차례 끼얹은 후유증으로 나이 50도 안돼 사망 합니다.
    이 양반들이 조선왕조실록의 숙종실록도 보지 않았나?
    공부 좀 하고 사극을 만드쇼잉.....

  4. 김민선 2010.08.07 1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역사를 바꾸는것 같습니다. 심지어 가채까지 실망시키네요.

    • BlogIcon 갓쉰동 2010.08.09 0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채는 실망하지 않는데 가채를 쓰지 않겠다고 하는 이유에 저는 저머뮝 했답니다.. ㅋㅋ

    • ? 2010.11.24 1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채로 트집을 잡으려면 의상부터 전부 다 문제겠네요? 철저히 옛날식으로 하면 보는 재미없어서 사극 못봅니다.

  5.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 2012.07.21 2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게는 두뇌싸움은 보기 힘들다. 최소한 두뇌싸움은 논리싸움과 추리가 있어야 하지만, 이병훈 사극은 이게 두뇌싸움이다라고 결과만 알려줄 뿐이다.

  6. BlogIcon Gerardo 2012.08.18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르고 울릉도와 독도를 복속시켰다고 드라마를 설정한다면 어찌될까? 한국드라마

  7. BlogIcon wireless dog fence amazon 2012.11.03 1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독일의 점쟁이 문어는 스페인의 승리를 예언했다고 한다. 독일은 예선에서 점쟁이 문어가 예언한데로 세르비아에 지고 말았다. 점쟁이 문어는 그동안 독일에 위약과도 같은 역할을 하였다.

  8. BlogIcon katadyn pocket water microfilter review 2012.11.04 2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독일의 점쟁이 문어는 스페인의 승리를 예언했다고 한다. 독일은 예선에서 점

  9. BlogIcon perimeter shock collars for dogs 2012.11.14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버리고 살아나 달아난다. 구산댁은 방울소리를 듣고 찾아가지만 길거리에 떨어진 방울을

  10. BlogIcon katadyn base camp water filter specs 2012.11.21 2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아나 달아난다. 구산댁은 방울소리를 듣고 찾아가지만 길거리에 떨어진 방

  11. BlogIcon emergency preparedness supplies for hospitals 2012.12.19 2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라리 성폭행한 성폭력범을 사랑한다는 말을 믿고 싶을 정도이다. 매맞는 아내가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얼척없기는 마찬가지 이지만 말이다

  12. BlogIcon disaster preparedness supplies seattle 2013.01.05 2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르헨티나, 브라질중에서 우승할 것이라고 한 펠레의 마법를 스페인과 네델란드는 피했다. 최종 남은 두 국가는 지금 당장 펠레의 입을 봉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지만, 기자들이 펠레를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 같다.

우리나라 사극을 보면, 칼을 차고 있는 무인을 본적이 없다.

모두다 손에 칼을 들고 있다. 이동을 하던 서 있던 상관없이 말이다.

손에 칼을 들고 있는것은 등장하는 궁중여인이나 귀부인들의 가채만큼이나 일관되어 있다.

이전의 사극모두 마찬가지 이지만, 얼마전 끝났던 SBS 사극 추노를 비롯해서 2010년 현재 방영되고 있는 MBC 토일 주말 드라마 김수로나 MBC 월화드라마 동이나 KBS 김만덕에서도 똑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정말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나 삼국시대에도 무인들은 손에 칼을 들고 다녔을까? 장군이나 병사들이나 오른손에 왼손에 각자 칼을 들고 있다.

칼을 들고 있었다면 대부분 어느 손에 칼을 들고 있어야 할까? 정답은 없다. 단지 오른손 잡이는 왼손에 칼을 들고 있어야 하고, 왼손잡이는 오른쪽에 들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외부의 급박한 상황에서 대처를 하였을 것이다.

사실 칼의 용도는 근거리 백병전에서 사용하는 무기 이니 오른손에 들던 왼손에 들던 사용하기 편한 손에 들었다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그래야 발검(칼빼기)발검하기 좋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김유신이 칼을 왼손에 들고 있는 모습


드라마 동이에서 서종사관과 그의 수하들 모두 손에 칼을 들고 있다. 장희재의 모습을 보고 위의 조선의 그림을 연상하면 안된다. 동영상을 보면 장희재는 단지 손을 뒤짐을 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한때 이순신 장군은 왼손잡이 일까? 아니면 오른손 잡이 일까하는 논쟁이 벌어지고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잘못되었네 그렇지 않네 하는 재미난 논쟁이 있었다.
재미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실은 전혀 쓰잘떼기 없는 논쟁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왼손잡이를 극도로 싫어하는 밥상머리 교육에 의해서 왼손잡이들의 싹이 없어지고 오른손 잡이로 다들 전향아닌 전향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순신 장군이라고 해서 용가리 통뼈가 아니였을 것이니, 출생시 왼손잡이 였더라도 오른손 잡이가 되었을 것이다.


다시 본론에 돌아가서 사극에서 칼을 손에 들고 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된다. 단지 화면빨을 위해서 라는 것 말고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손에 칼을 쥔다는 뜻은 발검할 의지의 표현이고, 상대에 적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극을 보고 있노라면 적이던 같은 편이던 손에 칼을 들고 걸어다니고 있다. 이들이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던 것인가? 만약, 이순신 장군이 적을 향해 적의를 가지고 언제라도 발검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을 형상화 했다면 일반적으로 왼쪽에 들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발검을 할 수 있을 테닌까말이다. 

문제는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동상에서 왜 이순신 장군은 큰칼을 들고 있었는가 하는것이다. 저리 큰칼은 지휘용으로도 적당하지 않는데 말이다. 또한 칼을 땅에 대고 있다는 것은 발검할 의지가 없다는 의사표시와도 같다. 그러니 논쟁은 무의미 해진다. 무거운 칼을 들고 있을려면 자주 사용하던 손에 쥐고 있는게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긴)칼 옆에 차고(두고) 시름에 " 나오는 시구에서 비롯된 허상일 뿐이다. 앉아서 긴칼을 찰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칼을 뺄 수 있는 길이가 되어야 한다. 있다면 다른 방법으로 칼을 차고 있어야 한다.

사실 조선이나 일본은 칼을 들고 다니는 방법이 달랐다. 손에 들고 다닌것은 아니고, 차고 다녔지만 말이다.  패검이라고 허리 춤에 달고(차고) 끼고 다녔을 뿐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무인들은 칼을 손에 들고 다니지 않았다면 어떻게 칼을 가지고 다녔을까? 다음의 자료를 보면 명확하게 시대별 나라별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승마시 칼


동래에서 왜인들과 회합시


위의 두그림에서 보듯이 일상에서 조선 무인들은 칼을 두개의 끈을 이용해서 왼쪽 허리 뒤쪽에 차고 있고, 손잡이가 오른쪽 등뒤 쪽에 위치하고 있다.

반면에 일본은 칼이 왼쪽 허리춤에 허리띠에 끼어 넣고 있으며 칼의 손잡이는 왼쪽 위쪽을 향하고 있어 발검이 보다 빠르게 되어 있다.

아래 그림은 아프라시압 벽화 고구려사신이 있는 사신도의 벽화이다.

오른쪽 고구려 사신은 허리띠와 연결된 두개의 길이가 다른 고리를 이용해서 칼을 허리에 차고 있고, 조선시대와는 다르게 손잡이가 앞쪽을 향하도록 하고 있다.

신라 기마인물상


신라시대 토우 기마인물상을 보더라도 조선시대 기마 인물 그림과 같이 칼을 차고 있지만, 아프라 시압 벽화처럼 왼쪽에 차고 칼 손잡이가 앞쪽을 향해 있다.

그러니 모든 대한민국 사극에서 무인들이 말을 타던 걸어가던 뛰어가던 손에 칼을 들고 있는 것은 단지 화면빨 때문이 아니라면 역사와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구 벨놈이 없나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동네 양아치들이거나 말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조선시대에 칼은 예를 표하는 방법으로 칼을 뒤로 차고 다녔다. 또한, 조선시대 칼은 일반적으로 주병기가 아니라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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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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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감자꿈 2010.06.02 0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극과 함께 돌아온 갓쉰동님의 글이 무척 반갑습니다.
    오늘도 공부 잘 하고 갑니다. ^^

  3. BlogIcon 배리본즈 2010.06.02 0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ㅏ.^^ 즐거운 하루 되세욤.

  4. Aakom 2010.06.02 1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순신 동상의 경우, 임금님 앞에 나설 때엔 칼을 오른손으로 들어야했다고 합니다.

  5. BlogIcon 머 걍 2010.06.02 1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씀을 듣고보니
    평상시에도 칼을 들고 다니는 건 좀 이상하긴 하네요.

  6. 메야 2010.06.02 2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순신 장군의 칼은 어장검 아닌가여..거의 뺄일이 없을걸요...장군의 권위를 상징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7. 보사리 2010.06.03 0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네요^^
    왠지 납득도 가고요. 제 생각에도 조선시대에는 검을 그렇게 많이 이용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무술이라면 모를까,ㅎㅎ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상 검술이 더 화려해보이니, 자꾸 이용하는 게 아닐까요?

  8. 김밥 2010.06.06 0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bs의 추노가 아니고 kbs의 추노에요. 또한 kbs 추노에서는 패검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방송사가 어딘지도 모르고 패검의 유무도 모르시니 추노를 다시 보셔야겠네요.

  9. BlogIcon winter jackets coats 2011.11.16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 kbs의 추노에요. 또한 kbs 추노에서는 패검한 모

  10. 손님000 2011.12.10 0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시대 무장들이 칼 손잡이를 등 뒤로 돌렸던건 예나 장식의 의미는 아닙니다.
    활을 쓰기 불편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위로 올라오는 손잡이를 뒤로 돌린거지요.
    하지만 이런 패용방식은 칼을 뽑기 힘들죠. 그래서 나오는게 띠돈 이라는 겁니다. 띠돈은 칼집과 허리띠(? 혹은 몸에 달리는 부분?)를 연결하는 도구로써 회전이 용이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엔 활 쏘기를 위해 칼 손잡이가 뒤로 가는 방식을 사용하다가 칼을 써야 할 경우가 생기면 쉽게 손잡이를 앞으로 돌릴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장식이란 말도 당시의 현실로 봤을 때 그닦 틀린 말은 아닙니다. 조선조때는 활이 최강의 무기였고 동북아시아에서 상대를 찾을수 없을 정도의 우수성을 보였으니 모든 무관들이 당연히 활을 우선시 했고 그래서 평소엔 활 쏘기에 방해되지 않도록 칼을 패용했으니까요.

  11.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granny.php 2012.07.21 2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도는 근거리 백병전에서 사용하는 무기 이니 오른손에 들던 왼손에 들던 사용하기 편한

  12. BlogIcon Perin 2012.08.25 1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티즌들이 순복음교회를 난타하기에 이르렀고 순복음교회가

  13. BlogIcon Brazzers porn 2012.09.08 0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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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BlogIcon montreal escort agency 2012.10.02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변화는 어떤 방법으로 필요합니다. 우리는 몇 가지 조정 프로세스를 수행해야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변화가 혼란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16. BlogIcon theblogtest 2012.10.03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왕조실록에서 극히 드물게 나온 숙빈최씨의 성장과정을 드라

  17. BlogIcon Polo franklin marshall 2012.10.24 2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 장군의 동상이 잘못되었네 그렇지 않네 하는 재미난 논쟁이 있었다.
    재미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실은 전혀 쓰잘떼기 없는 논쟁이지만 말이다.

  18. BlogIcon wireless pet fences canada 2012.11.14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긴것은 세종대왕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말로 세종 이도를 극찬하기도 한다

  19. BlogIcon emergency water filtration systems home 2012.11.20 1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떤 방법으로 필요합니다. 우리는 몇 가지 조정 프로세스를 수행해야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변화가 혼란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20. BlogIcon katadyn hiker water microfilter 2012.12.19 1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이병훈은 조선왕조실록에서 극히 드물게 나온 숙빈최씨의 성장과정을 드라마화는데는 무난하다고 할 수 있으나, 동이(숙빈최씨)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함을 드러내고 말았다.

  21. BlogIcon emergency survival kits contents 2013.01.05 2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구성으로 이루어 졌다. 하지만, 미션의 내용과 해결하는 방법은 이전 이병훈 사극이 주었던 치밀함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우리나라 사극을 보면, 칼을 차고 있는 무인을 본적이 없다.

모두다 손에 칼을 들고 있다. 이동을 하던 서 있던 상관없이 말이다.

손에 칼을 들고 있는것은 등장하는 궁중여인이나 귀부인들의 가채만큼이나 일관되어 있다.

이전의 사극모두 마찬가지 이지만, 얼마전 끝났던 SBS 사극 추노를 비롯해서 2010년 현재 방영되고 있는 MBC 토일 주말 드라마 김수로나 MBC 월화드라마 동이나 KBS 김만덕에서도 똑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정말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나 삼국시대에도 무인들은 손에 칼을 들고 다녔을까? 장군이나 병사들이나 오른손에 왼손에 각자 칼을 들고 있다.

칼을 들고 있었다면 대부분 어느 손에 칼을 들고 있어야 할까? 정답은 없다. 단지 오른손 잡이는 왼손에 칼을 들고 있어야 하고, 왼손잡이는 오른쪽에 들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외부의 급박한 상황에서 대처를 하였을 것이다.

사실 칼의 용도는 근거리 백병전에서 사용하는 무기 이니 오른손에 들던 왼손에 들던 사용하기 편한 손에 들었다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그래야 발검(칼빼기)발검하기 좋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김유신이 칼을 왼손에 들고 있는 모습


드라마 동이에서 서종사관과 그의 수하들 모두 손에 칼을 들고 있다. 장희재의 모습을 보고 위의 조선의 그림을 연상하면 안된다. 동영상을 보면 장희재는 단지 손을 뒤짐을 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한때 이순신 장군은 왼손잡이 일까? 아니면 오른손 잡이 일까하는 논쟁이 벌어지고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잘못되었네 그렇지 않네 하는 재미난 논쟁이 있었다.
재미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실은 전혀 쓰잘떼기 없는 논쟁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왼손잡이를 극도로 싫어하는 밥상머리 교육에 의해서 왼손잡이들의 싹이 없어지고 오른손 잡이로 다들 전향아닌 전향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순신 장군이라고 해서 용가리 통뼈가 아니였을 것이니, 출생시 왼손잡이 였더라도 오른손 잡이가 되었을 것이다.


다시 본론에 돌아가서 사극에서 칼을 손에 들고 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된다. 단지 화면빨을 위해서 라는 것 말고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손에 칼을 쥔다는 뜻은 발검할 의지의 표현이고, 상대에 적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극을 보고 있노라면 적이던 같은 편이던 손에 칼을 들고 걸어다니고 있다. 이들이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던 것인가? 만약, 이순신 장군이 적을 향해 적의를 가지고 언제라도 발검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을 형상화 했다면 일반적으로 왼쪽에 들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발검을 할 수 있을 테닌까말이다. 

문제는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동상에서 왜 이순신 장군은 큰칼을 들고 있었는가 하는것이다. 저리 큰칼은 지휘용으로도 적당하지 않는데 말이다. 또한 칼을 땅에 대고 있다는 것은 발검할 의지가 없다는 의사표시와도 같다. 그러니 논쟁은 무의미 해진다. 무거운 칼을 들고 있을려면 자주 사용하던 손에 쥐고 있는게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긴)칼 옆에 차고(두고) 시름에 " 나오는 시구에서 비롯된 허상일 뿐이다. 앉아서 긴칼을 찰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칼을 뺄 수 있는 길이가 되어야 한다. 있다면 다른 방법으로 칼을 차고 있어야 한다.

사실 조선이나 일본은 칼을 들고 다니는 방법이 달랐다. 손에 들고 다닌것은 아니고, 차고 다녔지만 말이다.  패검이라고 허리 춤에 달고(차고) 끼고 다녔을 뿐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무인들은 칼을 손에 들고 다니지 않았다면 어떻게 칼을 가지고 다녔을까? 다음의 자료를 보면 명확하게 시대별 나라별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승마시 칼


동래에서 왜인들과 회합시


위의 두그림에서 보듯이 일상에서 조선 무인들은 칼을 두개의 끈을 이용해서 왼쪽 허리 뒤쪽에 차고 있고, 손잡이가 오른쪽 등뒤 쪽에 위치하고 있다.

반면에 일본은 칼이 왼쪽 허리춤에 허리띠에 끼어 넣고 있으며 칼의 손잡이는 왼쪽 위쪽을 향하고 있어 발검이 보다 빠르게 되어 있다.

아래 그림은 아프라시압 벽화 고구려사신이 있는 사신도의 벽화이다.

오른쪽 고구려 사신은 허리띠와 연결된 두개의 길이가 다른 고리를 이용해서 칼을 허리에 차고 있고, 조선시대와는 다르게 손잡이가 앞쪽을 향하도록 하고 있다.

신라 기마인물상


신라시대 토우 기마인물상을 보더라도 조선시대 기마 인물 그림과 같이 칼을 차고 있지만, 아프라 시압 벽화처럼 왼쪽에 차고 칼 손잡이가 앞쪽을 향해 있다.

그러니 모든 대한민국 사극에서 무인들이 말을 타던 걸어가던 뛰어가던 손에 칼을 들고 있는 것은 단지 화면빨 때문이 아니라면 역사와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구 벨놈이 없나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동네 양아치들이거나 말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조선시대에 칼은 예를 표하는 방법으로 칼을 뒤로 차고 다녔다. 또한, 조선시대 칼은 일반적으로 주병기가 아니라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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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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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감자꿈 2010.06.02 0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극과 함께 돌아온 갓쉰동님의 글이 무척 반갑습니다.
    오늘도 공부 잘 하고 갑니다. ^^

  3. BlogIcon 배리본즈 2010.06.02 0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ㅏ.^^ 즐거운 하루 되세욤.

  4. Aakom 2010.06.02 1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순신 동상의 경우, 임금님 앞에 나설 때엔 칼을 오른손으로 들어야했다고 합니다.

  5. BlogIcon 머 걍 2010.06.02 1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씀을 듣고보니
    평상시에도 칼을 들고 다니는 건 좀 이상하긴 하네요.

  6. 메야 2010.06.02 2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순신 장군의 칼은 어장검 아닌가여..거의 뺄일이 없을걸요...장군의 권위를 상징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7. 보사리 2010.06.03 0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네요^^
    왠지 납득도 가고요. 제 생각에도 조선시대에는 검을 그렇게 많이 이용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무술이라면 모를까,ㅎㅎ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상 검술이 더 화려해보이니, 자꾸 이용하는 게 아닐까요?

  8. 김밥 2010.06.06 0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bs의 추노가 아니고 kbs의 추노에요. 또한 kbs 추노에서는 패검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방송사가 어딘지도 모르고 패검의 유무도 모르시니 추노를 다시 보셔야겠네요.

  9. BlogIcon winter jackets coats 2011.11.16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 kbs의 추노에요. 또한 kbs 추노에서는 패검한 모

  10. 손님000 2011.12.10 0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시대 무장들이 칼 손잡이를 등 뒤로 돌렸던건 예나 장식의 의미는 아닙니다.
    활을 쓰기 불편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위로 올라오는 손잡이를 뒤로 돌린거지요.
    하지만 이런 패용방식은 칼을 뽑기 힘들죠. 그래서 나오는게 띠돈 이라는 겁니다. 띠돈은 칼집과 허리띠(? 혹은 몸에 달리는 부분?)를 연결하는 도구로써 회전이 용이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엔 활 쏘기를 위해 칼 손잡이가 뒤로 가는 방식을 사용하다가 칼을 써야 할 경우가 생기면 쉽게 손잡이를 앞으로 돌릴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장식이란 말도 당시의 현실로 봤을 때 그닦 틀린 말은 아닙니다. 조선조때는 활이 최강의 무기였고 동북아시아에서 상대를 찾을수 없을 정도의 우수성을 보였으니 모든 무관들이 당연히 활을 우선시 했고 그래서 평소엔 활 쏘기에 방해되지 않도록 칼을 패용했으니까요.

  11.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granny.php 2012.07.21 2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도는 근거리 백병전에서 사용하는 무기 이니 오른손에 들던 왼손에 들던 사용하기 편한

  12. BlogIcon Perin 2012.08.25 1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티즌들이 순복음교회를 난타하기에 이르렀고 순복음교회가

  13. BlogIcon Brazzers porn 2012.09.08 0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종 시간이, 사람들이이 행사에 참여하려는 접근 할 때, 그들은 제품 기부 또는 시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아이디어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아이디어 뒤에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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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BlogIcon montreal escort agency 2012.10.02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변화는 어떤 방법으로 필요합니다. 우리는 몇 가지 조정 프로세스를 수행해야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변화가 혼란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16. BlogIcon theblogtest 2012.10.03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왕조실록에서 극히 드물게 나온 숙빈최씨의 성장과정을 드라

  17. BlogIcon Polo franklin marshall 2012.10.24 2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 장군의 동상이 잘못되었네 그렇지 않네 하는 재미난 논쟁이 있었다.
    재미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실은 전혀 쓰잘떼기 없는 논쟁이지만 말이다.

  18. BlogIcon wireless pet fences canada 2012.11.14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긴것은 세종대왕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말로 세종 이도를 극찬하기도 한다

  19. BlogIcon emergency water filtration systems home 2012.11.20 1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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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BlogIcon katadyn hiker water microfilter 2012.12.19 1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이병훈은 조선왕조실록에서 극히 드물게 나온 숙빈최씨의 성장과정을 드라마화는데는 무난하다고 할 수 있으나, 동이(숙빈최씨)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함을 드러내고 말았다.

  21. BlogIcon emergency survival kits contents 2013.01.05 2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구성으로 이루어 졌다. 하지만, 미션의 내용과 해결하는 방법은 이전 이병훈 사극이 주었던 치밀함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드라마 선덕여왕 54회에서 비담이 덕만을 껴안고 자신의 감정을 들어낸다. 하지만 덕만은 비담을 내치며 주절주절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말한다. 요약하면 자신도 왕이지만 여자다, 하지만 왕권을 강화하고 삼국통일(삼한일통)을 위해서 멸사봉공 수처녀로 늙어 죽을 것이라는 뜻이다.

왕권의 강화의 최우선은 후사이고, 왕실인물들이 많아 지는 것이다. 왕실에 후사가 없으면 권력이 흔들린다. 왕실뿐아니고 일반 가정에서도 기본 상식에 속한다. 노처녀(?) 선덕여왕의 생각이기 보다는 극히 개인적인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의 빈곤한 상상력의 산물이고 희망사항일 뿐이다. 

여인인 덕만이 왕이 된다고 해서 왜 여러 남자를 거느리고 성을 문란하게 했냐는 비아냥이고, 덕만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삼국통일 사업에 매진해야 하는데 문란한 성생활로 신라를 위기에 빠트렸다는 비판일 뿐이다.
 

미세한 손떨림으로 덕만을 표현한 이요원



삼국유사에는 <음갈문왕>과 결혼을 했다 하고,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용수.용춘 형제와 을제와 흠반갈문왕 등 최소한 4명이 덕만과 결혼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나온다. 더불어 경주김씨의 족보에는 김인평이란 인물과 ,또다른 창령조씨 족보에는 <조계룡>이란 인물까지 덕만의 부군으로 있었다는 기록들을 볼 수 있다.

또한, 덕만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진덕(승만)은 진평왕의 동생인 국반갈문왕의 딸이지만, 덕만이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을 하여, 진덕은 덕만의 법률적, 법통으로 딸이 되어 자연스럽게 승만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또한, 김인평이나 조계룡의 후손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물론, 조계룡이나 김인평의 후손들이 선덕여왕 사이에 난 후손들인지 아니면 부군으로 있다가, 덕만이 후사가 없자 결혼관계가 끊어지고, 새로운 여인들 사이에 난 후손인지는 알 수 없다. 단, 이들 후손들은 자신들이 덕만과 자신들의 조상인 부군들 사이에 난 후손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전설과 신화에는 역사의 파편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전설에는 덕만(선덕왕)과 사이에난 왕자가 태백산을 유람하다 어여쁜 처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비녀소에 관한 전설도 남겨져 있다. 이를 본다면 덕만에게는 후사가 없었던 것이 아니고, 후사는 있었지만 왕이 되고 싶지 않는 왕자도 있었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아니면, 생물학적 아들은 아니고, 덕만의 무수히 많은 남편들의 아들 중에 하나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덕만의 남자들



역사의 몰이해를 넘어서 후손들을 농락한 작가들

선덕여왕 작가는 역사에 대한 몰이해뿐만 아니고, 만약, 이들 후손들이 선덕여왕을 보고 있다면, 대단한 실례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후손은 족보를 거짓으로 만든 사람이 되니 말이다. 일반 드라마라고 하더라도 지켜야할 금도가 있다.

하물며 신라를 재현하겠다는 사극은 기본적인 인물의 개인 신상정보는 왜곡하지 않는게 불문률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너무나 많은 잘못을 극에서 표출하고 있다. 이는 개인적인 창작의 자유와는 하등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고, 드라마의 금기인 극중 리얼리티를 깨트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서로 다른 인물들이라면 덕만은 최소한 7명의 남편들이 있었다는 결론이다. 덕만은 삼국일통을 꿈꾸지도 않았지만, 국가를 위해서, 또는 자신이 결혼을 하면 자신을 배경으로 권력을 탐하려는 자들이 많이 생기고, 부군으로 왕이 되고, 이들간에 싸움이 생겨 신라가 위기에 처할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은 당시 신라는 물론이고, 현실에서도 극히 위험한 발상이 된다.

덕만은 후사를 잇기 위해 철저히 여왕벌처럼 왕으로서 일을 끝까지 다하고 노력했다. 왕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적통을 이을 후손을 보는 일이다. 만약, 덕만이 이를 게을리 했다면 덕만은 왕의 자질이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덕만은 죽을 때 까지도 후사가 없음에 대해서 회한을 남기고 있다.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므로 그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것은 당나라 임금이 나에게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다. - 삼국유사 선덕왕 지기삼사 중 모란꽃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10/1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모란꽃 이야기는 나왔다? 나온다? 사실은
2009/07/23 -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모란씨 서되
2009/07/2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

하지만 드라마 작가에 의해서 덕만은 희화화 되어버렸다. 덕만과 마주칠 수 없는 미실을 등장시켜 덕만을 엿을 먹이더니 이제는 덕만의 치열한 삶까지도 희화화하여 엿을 먹이고 있는 중이다.

또한, 비담 김남길의 부상과 신종플루, 알천 이승효의 신종플루에 이어서 덕만 이요원이 피부병인 대상포진에서 벗어난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가채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신라시대 존재여부가 불투명한 가채를 머리에 이고 연기하는 노고를 하고 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보더라도 신라시대에 가채를 사용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또한, 한반도의 영향을 받고 있던 일본에서 조차도 당시 가채는 발견할 수 없다.

실제 가채가 활발히 사용된때는 조선시대 때 일이다. 오죽하면 조선시대에 가채금지령까지 내려졌겠는가? 설령 가채를 머리에 이고 있었다고 해도 지금 드라마에 나오는 가채만큼 무겁지도 않았다. 배우들의 연기가 아까울 정도로 대본의 완성도는 떨어진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이유는 쪽대본과 당일치기 촬영 때문이다.


누가 유신을 바보로 만드나?

유신과 계백(최원영)이 계백의 막사에서 대화를 한다. 유신은 계백이 보고 있는 지도에서 개문흑(開門黑)을 발견하고, 흙으로 시작하는 자가 대야성의 간자라고 이야기를 한다. 흑치상치라도 나올까 생각한다면 대단한 오해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소엽도에서 사구놀이를 하듯이 아주 재미있게 파자놀이를 하고 있다.

黑이 다른 (개문) 글자에 비해서 반자이다. 초딩보다 못한 유신


하지만, 미실이 대야성에서 멍청한 자살을 한것처럼 또다시 유신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흑(黑)자는 반자이다. 다른 개문의 글짜에 비해서 반쪽이고, 흑자가 가려져 있는 것이다. 글짜가 반이 가려있는지 아닌지를 쉬이 알수 있고 흑(黑)이 부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 초딩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신라의 중망을 얻고 상장군인 유신이 그것도 모르는 무지한 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흑(黑)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당연히 642년에 어쩔수 없이 신라를 배신(?)하고 백제에 귀부한 후 660년 8월 백제가 항복했을 때 사지를 찢기고 죽은 금일(검일)을 말한다. 검(黔)은 黑+今을 합한자이다. 

660년 8월 2일에 주연을 크게 베풀고 장병들을 위로하였다. 왕과 정방(定方) 및 여러 장수들은 대청마루 위에 앉고, 의자왕과 그 아들 융(隆)은 마루 아래 앉혀서 때로 의자왕으로 하여금 술을 따르게 하니 백제의 좌평 등 여러 신하들이 목메어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 날 모척(毛尺)을 붙잡아 목베었다. 모척은 본래 신라 사람으로서 백제에 도망한 자인데, 대야성의 검일(黔日)과 함께 도모하여 성이 함락되도록 했기 때문에 목벤 것이다. 또 검일을 잡아 [죄목을] 세어 말하였다. 네가 대야성에서 모척과 모의하여 백제 군사를 끌어들이고 창고를 불질러 없앰으로써 온 성 안에 식량을 모자라게 하여 싸움에 지도록 하였으니 그 죄가 하나요, 품석(品釋) 부부를 윽박질러 죽였으니 그 죄가 둘이요, 백제와 더불어 본국을 공격하였으니 그것이 세번째 죄이다. 이에 사지를 찢어 그 시체를 강물에 던졌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백제가 신라의 서쪽 40개성을 함락시켰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7월 40성을 빼앗기고, 대야성은 8월에 침공당한다.  대야성 전투는 40개성을 빼앗긴 후의 일이다. 그러니 덕만이 "백제의 전세가 심상치 않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위란지국이라고 해야한다. 한가히 백제가 대야성을 공격한게 한두번도 아니라고 이야기를 한다. 도대체 대야성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도 모르는 덕만의 신하들이다. 대야성은 신라 후방에 있는 성이다. 대야성까지 백제가 한두번도 아니고 여러번 침공했다면 신라는 망해도 벌써 망했을 것이다. "백제와 전쟁입니다. 대야성이 위험합니다"라는 대사가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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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k 2009.11.25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래도 사회적 분위기가 거기까진 허용치 않아서 일테지요. 덕만을 영웅처럼 그려냈는데 남자가 많은 그런 인물로 만들어 낸다면 이제까지 노력이 물거품처럼 될테니까요. 남자가 여자를 여럿 끼는 것은 봐줄 수 있지만 덕만이 그렇게 되면 요부처럼 인식이 될터이고 아무리 다른 정무를 잘 보았다 하더라도 반감이 들터이니까요.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선덕시절을 다루게 된다면 사실적으로 많이 그려질거라고 봐요. 보는 이들의 부담감(?)^^이 덜 할지도....

    • BlogIcon 갓쉰동 2009.11.26 1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 않을걸요.. 이미 미실의 예도 있고.. 미실을 악역이지만 영웅으로 만들어 버렸잖아용.. ㅋㅋ

  3. BlogIcon rinda 2009.11.25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느끼는 것이지만 역사에 대해 해박하신 듯 합니다.
    제가 보았다면 무심코 그냥 지나쳤을텐데 말이죠ㅎㅎㅎ

    • BlogIcon 갓쉰동 2009.11.26 1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는 않을 겁니당.. 관심분야가 다른거지요.. 린다님은 다른 면에서 잘 보실거라 생각합니당... ㅋㅋ

  4. 손채림 2009.11.25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앗 근데 비담 신종 걸려서 제 친구들줄어요

  5. 유시 아ㅓㅏ 2009.11.25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ㄹ어

  6. 하하하 2009.11.25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계백이나 윤충이나, 백제에서 손꼽는 맹장들이라는데
    김유신이 난동피우는걸 멍때리고 지켜만 보다니.. 왜 제가 답답하던지..
    그러고 보니.. 그 둘이 포옹하는 씬은.. 왜넣엇는지 참..

  7. BlogIcon 감성PD 2009.11.25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포스팅입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역사적인 사실도 많이 알고 가네요~~^^

  8. BlogIcon 걸어서 하늘까지 2009.11.25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가 역사와 많은 차이가 나는 군요. 지금부터라도 좀 더 꼼꼼한 실증을 거친후에
    드라마 제작을 하면 좋겠어요. 선덕여왕 참 재미있게 보고있는데 눈에 걸리는 게 너무 많아지네요~~^^;;

  9. BlogIcon 싱아 2009.11.26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저 부분 보면서 (黑 써있는부분) 참 의아 했는데.. 게다가 저는 개문 이라고 읽지 않고
    문개 라고 읽었습니다. 해방 전 까지는 오른쪽에서 왼쪽 으로 글을 썼던 것으로 알고 있어서요.
    조선시대 만들어진 현판만 보더라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썼지요.

    말씀하신대로 드라마라도 어느정도 선은 지켜야 되는데 , 이젠 판타지로 가는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네요. 뼈대는 있되 , 살은 내맘대로 랄까요..ㅋ

    좋은 포스팅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26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님의 말씀대로 우측 상단에서 아래쪽으로 다름 좌측으로 진행하지요..

      극중에서 대야성의 현판도 그랬고, 편지도 위의 방법대로 진행되어지요..
      단지 대야성 지도에서는 반대로..
      한마디로 자기들 맘대로.. ㅋㅋ

  10. 갓쉰동최고 2009.11.27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ㅋㅋㅋ 미실이 왕이어야 한다니깐요 ㅋㅋㅋㅋㅋ
    대백제 방어의 최후기지임을 설원등은 알고있는데도 말을 못하니 ㅋ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1.27 0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당.. 미실이 이름을 바꾸고 덕만으로 생활했다고 함 간단할 것을 왜 죽이는지 모르겠어용.. ㅋㅋ

  11. BlogIcon 조ㅁㅁ 2010.03.27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우리시조 조계룡 창령조인데 나와있다 ㅎㅎ

  12. BlogIcon 조ㅁㅁ 2010.03.27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우리시조 조계룡 창령조인데 나와있다 ㅎㅎ

  13. 조세빈 2010.05.23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녕조씨 후손입니다^^ 선덕여왕 드라마를 보면서 정말 짜증이 나다못해 어이가 없기까지 했었지요..
    참고로 '김인평'과 '조계룡'은 동일인물 입니다^^ 저희 시조 할아버지이신 '조계룡'은 비사벌가야(창녕)가야의 마지막 왕의 손자로 진흥왕때 조계룡의 아버지가 신라 진골로 편입이 되면서 진흥왕이 왕의 성씨인 김씨를 하사해서 경주 김씨가 됩니다. 그리고 진평왕이 어릴적부터 20살이 될때까지 왕궁에서 자라게해 성인이 된 후 정치에 입문시킵니다. 그리고 진평왕의 맏이 덕만공주가 혼기가 차자 혼인을 시켰는데 덕만공주가 남편의 후원을 얻어 가야계의 지지를 받아 왕이 될 준비를 하지요. 그러는 사이 정치분야에서 가야계의 세력이 커지자 장인인 진평왕이 사위 '김인평'을 서기631년 2월에 비사벌가야 왕손임을 인정하고 원래의 성씨인 조씨로서 복원시키면서 왕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조계룡이라 하사하고 갈문왕에 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진평왕이 붕어하자 선덕여왕은 3년상을 마치고 정식으로 즉위하면서 남편의 본명인 '인평'을 연호로 지정하였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시조 할아버지는 비사벌가야의 더 오래된 왕족이겠지만 조계룡의 아버지가 진흥왕에게서 경주김씨의 성을 하사받았었고 진평왕에게서 조계룡이 성과 이름을 하사받는 형식이 되면서 공식적인 시조가 된 것입니다. 지금도 시조 할아버지 제사때는 시조할머니인 선덕여왕의 제를 함게 올린다고 합니다. 선덕여왕이 죽었을당시 이미 노령이었던 조계룡은 선덕여왕이 붕어한 후 고향인 창녕지역으로 하향하여서 공식적으로 창녕조씨의 시조가 됩니다. 그리고 그 후 당시에는 상당히 장수한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선덕여왕과의 사이에서 5남2녀를 얻었지만 성골이었던 선덕여왕과 진골이었던 조계룡 사이에서는 진골만이 출생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진평왕의 동생 국반갈문왕의 딸로서 선덕여왕의 사촌동생 성골 승만공주가 왕위를 이어 진덕여왕이 됩니다.

    헉헉.. 워낙 역사가 방대하고 길고긴 집안이라서 이정도로 간략하는것도 힘드네요..
    그리고 사족을 단다면 '조계룡'은 태사의 자격으로 왕실 자녀들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일찍 요절한 선덕여왕의 배다른 아우인 왕자의 태사이기도 했고 김춘추의 태사이기도 합니다^^

  14. BlogIcon 웃겨ㅗ 2011.08.05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걍 드라마로 보면되지 따지기는..정통사극도 아니고 월화드라마에 하는거면 대충 허구픽션인걸 알아야지 역사사실에 다 맞춰쓰면 무슨재미로보냐?ㅋㅋㅋ 허참 잘난척하는것도 가지가지네

  15. BlogIcon Pussy Porn 2012.07.14 1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16.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7. BlogIcon emergency sleeping bag 2012.11.01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이 마흔일곱의 나이에 등극했다고 기록하고 있네요. 젊은 나이에 성조황고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

  18. BlogIcon invisible fence rochester ny hours 2012.11.06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

  19. BlogIcon ready store draper 2012.12.10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이는 한때 꿀벅지라는 말이 자신을 칭찬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꿀벅지라는 말이 가지는 성적인 취향임을 알았을 때 유이는 꿀벅지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20. BlogIcon invisible dog fence 2012.12.22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 다른 웹브라우저에서는 마우스 우측버튼과 부가기능(add-ons)등을 이용해 지원하고 있는 기능이기도 한

  21. BlogIcon waterproof matches nz 2013.01.02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의 생각이기 보다는 극히 개인적인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의 빈곤한 상상력의 산물이고 희망사항일 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 54회에서 비담이 덕만을 껴안고 자신의 감정을 들어낸다. 하지만 덕만은 비담을 내치며 주절주절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말한다. 요약하면 자신도 왕이지만 여자다, 하지만 왕권을 강화하고 삼국통일(삼한일통)을 위해서 멸사봉공 수처녀로 늙어 죽을 것이라는 뜻이다.

왕권의 강화의 최우선은 후사이고, 왕실인물들이 많아 지는 것이다. 왕실에 후사가 없으면 권력이 흔들린다. 왕실뿐아니고 일반 가정에서도 기본 상식에 속한다. 노처녀(?) 선덕여왕의 생각이기 보다는 극히 개인적인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의 빈곤한 상상력의 산물이고 희망사항일 뿐이다. 

여인인 덕만이 왕이 된다고 해서 왜 여러 남자를 거느리고 성을 문란하게 했냐는 비아냥이고, 덕만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삼국통일 사업에 매진해야 하는데 문란한 성생활로 신라를 위기에 빠트렸다는 비판일 뿐이다.
 

미세한 손떨림으로 덕만을 표현한 이요원



삼국유사에는 <음갈문왕>과 결혼을 했다 하고,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용수.용춘 형제와 을제와 흠반갈문왕 등 최소한 4명이 덕만과 결혼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나온다. 더불어 경주김씨의 족보에는 김인평이란 인물과 ,또다른 창령조씨 족보에는 <조계룡>이란 인물까지 덕만의 부군으로 있었다는 기록들을 볼 수 있다.

또한, 덕만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진덕(승만)은 진평왕의 동생인 국반갈문왕의 딸이지만, 덕만이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을 하여, 진덕은 덕만의 법률적, 법통으로 딸이 되어 자연스럽게 승만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또한, 김인평이나 조계룡의 후손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물론, 조계룡이나 김인평의 후손들이 선덕여왕 사이에 난 후손들인지 아니면 부군으로 있다가, 덕만이 후사가 없자 결혼관계가 끊어지고, 새로운 여인들 사이에 난 후손인지는 알 수 없다. 단, 이들 후손들은 자신들이 덕만과 자신들의 조상인 부군들 사이에 난 후손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전설과 신화에는 역사의 파편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전설에는 덕만(선덕왕)과 사이에난 왕자가 태백산을 유람하다 어여쁜 처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비녀소에 관한 전설도 남겨져 있다. 이를 본다면 덕만에게는 후사가 없었던 것이 아니고, 후사는 있었지만 왕이 되고 싶지 않는 왕자도 있었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아니면, 생물학적 아들은 아니고, 덕만의 무수히 많은 남편들의 아들 중에 하나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덕만의 남자들



역사의 몰이해를 넘어서 후손들을 농락한 작가들

선덕여왕 작가는 역사에 대한 몰이해뿐만 아니고, 만약, 이들 후손들이 선덕여왕을 보고 있다면, 대단한 실례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후손은 족보를 거짓으로 만든 사람이 되니 말이다. 일반 드라마라고 하더라도 지켜야할 금도가 있다.

하물며 신라를 재현하겠다는 사극은 기본적인 인물의 개인 신상정보는 왜곡하지 않는게 불문률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너무나 많은 잘못을 극에서 표출하고 있다. 이는 개인적인 창작의 자유와는 하등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고, 드라마의 금기인 극중 리얼리티를 깨트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서로 다른 인물들이라면 덕만은 최소한 7명의 남편들이 있었다는 결론이다. 덕만은 삼국일통을 꿈꾸지도 않았지만, 국가를 위해서, 또는 자신이 결혼을 하면 자신을 배경으로 권력을 탐하려는 자들이 많이 생기고, 부군으로 왕이 되고, 이들간에 싸움이 생겨 신라가 위기에 처할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은 당시 신라는 물론이고, 현실에서도 극히 위험한 발상이 된다.

덕만은 후사를 잇기 위해 철저히 여왕벌처럼 왕으로서 일을 끝까지 다하고 노력했다. 왕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적통을 이을 후손을 보는 일이다. 만약, 덕만이 이를 게을리 했다면 덕만은 왕의 자질이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덕만은 죽을 때 까지도 후사가 없음에 대해서 회한을 남기고 있다.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므로 그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것은 당나라 임금이 나에게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다. - 삼국유사 선덕왕 지기삼사 중 모란꽃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10/1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모란꽃 이야기는 나왔다? 나온다? 사실은
2009/07/23 -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모란씨 서되
2009/07/2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

하지만 드라마 작가에 의해서 덕만은 희화화 되어버렸다. 덕만과 마주칠 수 없는 미실을 등장시켜 덕만을 엿을 먹이더니 이제는 덕만의 치열한 삶까지도 희화화하여 엿을 먹이고 있는 중이다.

또한, 비담 김남길의 부상과 신종플루, 알천 이승효의 신종플루에 이어서 덕만 이요원이 피부병인 대상포진에서 벗어난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가채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신라시대 존재여부가 불투명한 가채를 머리에 이고 연기하는 노고를 하고 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보더라도 신라시대에 가채를 사용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또한, 한반도의 영향을 받고 있던 일본에서 조차도 당시 가채는 발견할 수 없다.

실제 가채가 활발히 사용된때는 조선시대 때 일이다. 오죽하면 조선시대에 가채금지령까지 내려졌겠는가? 설령 가채를 머리에 이고 있었다고 해도 지금 드라마에 나오는 가채만큼 무겁지도 않았다. 배우들의 연기가 아까울 정도로 대본의 완성도는 떨어진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이유는 쪽대본과 당일치기 촬영 때문이다.


누가 유신을 바보로 만드나?

유신과 계백(최원영)이 계백의 막사에서 대화를 한다. 유신은 계백이 보고 있는 지도에서 개문흑(開門黑)을 발견하고, 흙으로 시작하는 자가 대야성의 간자라고 이야기를 한다. 흑치상치라도 나올까 생각한다면 대단한 오해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소엽도에서 사구놀이를 하듯이 아주 재미있게 파자놀이를 하고 있다.

黑이 다른 (개문) 글자에 비해서 반자이다. 초딩보다 못한 유신


하지만, 미실이 대야성에서 멍청한 자살을 한것처럼 또다시 유신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흑(黑)자는 반자이다. 다른 개문의 글짜에 비해서 반쪽이고, 흑자가 가려져 있는 것이다. 글짜가 반이 가려있는지 아닌지를 쉬이 알수 있고 흑(黑)이 부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 초딩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신라의 중망을 얻고 상장군인 유신이 그것도 모르는 무지한 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흑(黑)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당연히 642년에 어쩔수 없이 신라를 배신(?)하고 백제에 귀부한 후 660년 8월 백제가 항복했을 때 사지를 찢기고 죽은 금일(검일)을 말한다. 검(黔)은 黑+今을 합한자이다. 

660년 8월 2일에 주연을 크게 베풀고 장병들을 위로하였다. 왕과 정방(定方) 및 여러 장수들은 대청마루 위에 앉고, 의자왕과 그 아들 융(隆)은 마루 아래 앉혀서 때로 의자왕으로 하여금 술을 따르게 하니 백제의 좌평 등 여러 신하들이 목메어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 날 모척(毛尺)을 붙잡아 목베었다. 모척은 본래 신라 사람으로서 백제에 도망한 자인데, 대야성의 검일(黔日)과 함께 도모하여 성이 함락되도록 했기 때문에 목벤 것이다. 또 검일을 잡아 [죄목을] 세어 말하였다. 네가 대야성에서 모척과 모의하여 백제 군사를 끌어들이고 창고를 불질러 없앰으로써 온 성 안에 식량을 모자라게 하여 싸움에 지도록 하였으니 그 죄가 하나요, 품석(品釋) 부부를 윽박질러 죽였으니 그 죄가 둘이요, 백제와 더불어 본국을 공격하였으니 그것이 세번째 죄이다. 이에 사지를 찢어 그 시체를 강물에 던졌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백제가 신라의 서쪽 40개성을 함락시켰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7월 40성을 빼앗기고, 대야성은 8월에 침공당한다.  대야성 전투는 40개성을 빼앗긴 후의 일이다. 그러니 덕만이 "백제의 전세가 심상치 않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위란지국이라고 해야한다. 한가히 백제가 대야성을 공격한게 한두번도 아니라고 이야기를 한다. 도대체 대야성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도 모르는 덕만의 신하들이다. 대야성은 신라 후방에 있는 성이다. 대야성까지 백제가 한두번도 아니고 여러번 침공했다면 신라는 망해도 벌써 망했을 것이다. "백제와 전쟁입니다. 대야성이 위험합니다"라는 대사가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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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rinda 2009.11.25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느끼는 것이지만 역사에 대해 해박하신 듯 합니다.
    제가 보았다면 무심코 그냥 지나쳤을텐데 말이죠ㅎㅎㅎ

    • BlogIcon 갓쉰동 2009.11.26 1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는 않을 겁니당.. 관심분야가 다른거지요.. 린다님은 다른 면에서 잘 보실거라 생각합니당... ㅋㅋ

  3. 손채림 2009.11.25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앗 근데 비담 신종 걸려서 제 친구들줄어요

  4. 유시 아ㅓㅏ 2009.11.25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ㄹ어

  5. 하하하 2009.11.25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계백이나 윤충이나, 백제에서 손꼽는 맹장들이라는데
    김유신이 난동피우는걸 멍때리고 지켜만 보다니.. 왜 제가 답답하던지..
    그러고 보니.. 그 둘이 포옹하는 씬은.. 왜넣엇는지 참..

  6. BlogIcon 감성PD 2009.11.25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포스팅입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역사적인 사실도 많이 알고 가네요~~^^

  7. BlogIcon 걸어서 하늘까지 2009.11.25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가 역사와 많은 차이가 나는 군요. 지금부터라도 좀 더 꼼꼼한 실증을 거친후에
    드라마 제작을 하면 좋겠어요. 선덕여왕 참 재미있게 보고있는데 눈에 걸리는 게 너무 많아지네요~~^^;;

  8. BlogIcon 싱아 2009.11.26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저 부분 보면서 (黑 써있는부분) 참 의아 했는데.. 게다가 저는 개문 이라고 읽지 않고
    문개 라고 읽었습니다. 해방 전 까지는 오른쪽에서 왼쪽 으로 글을 썼던 것으로 알고 있어서요.
    조선시대 만들어진 현판만 보더라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썼지요.

    말씀하신대로 드라마라도 어느정도 선은 지켜야 되는데 , 이젠 판타지로 가는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네요. 뼈대는 있되 , 살은 내맘대로 랄까요..ㅋ

    좋은 포스팅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26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님의 말씀대로 우측 상단에서 아래쪽으로 다름 좌측으로 진행하지요..

      극중에서 대야성의 현판도 그랬고, 편지도 위의 방법대로 진행되어지요..
      단지 대야성 지도에서는 반대로..
      한마디로 자기들 맘대로.. ㅋㅋ

  9. 갓쉰동최고 2009.11.27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ㅋㅋㅋ 미실이 왕이어야 한다니깐요 ㅋㅋㅋㅋㅋ
    대백제 방어의 최후기지임을 설원등은 알고있는데도 말을 못하니 ㅋ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1.27 0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당.. 미실이 이름을 바꾸고 덕만으로 생활했다고 함 간단할 것을 왜 죽이는지 모르겠어용.. ㅋㅋ

  10. BlogIcon 조ㅁㅁ 2010.03.27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우리시조 조계룡 창령조인데 나와있다 ㅎㅎ

  11. BlogIcon 조ㅁㅁ 2010.03.27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우리시조 조계룡 창령조인데 나와있다 ㅎㅎ

  12. 조세빈 2010.05.23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녕조씨 후손입니다^^ 선덕여왕 드라마를 보면서 정말 짜증이 나다못해 어이가 없기까지 했었지요..
    참고로 '김인평'과 '조계룡'은 동일인물 입니다^^ 저희 시조 할아버지이신 '조계룡'은 비사벌가야(창녕)가야의 마지막 왕의 손자로 진흥왕때 조계룡의 아버지가 신라 진골로 편입이 되면서 진흥왕이 왕의 성씨인 김씨를 하사해서 경주 김씨가 됩니다. 그리고 진평왕이 어릴적부터 20살이 될때까지 왕궁에서 자라게해 성인이 된 후 정치에 입문시킵니다. 그리고 진평왕의 맏이 덕만공주가 혼기가 차자 혼인을 시켰는데 덕만공주가 남편의 후원을 얻어 가야계의 지지를 받아 왕이 될 준비를 하지요. 그러는 사이 정치분야에서 가야계의 세력이 커지자 장인인 진평왕이 사위 '김인평'을 서기631년 2월에 비사벌가야 왕손임을 인정하고 원래의 성씨인 조씨로서 복원시키면서 왕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조계룡이라 하사하고 갈문왕에 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진평왕이 붕어하자 선덕여왕은 3년상을 마치고 정식으로 즉위하면서 남편의 본명인 '인평'을 연호로 지정하였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시조 할아버지는 비사벌가야의 더 오래된 왕족이겠지만 조계룡의 아버지가 진흥왕에게서 경주김씨의 성을 하사받았었고 진평왕에게서 조계룡이 성과 이름을 하사받는 형식이 되면서 공식적인 시조가 된 것입니다. 지금도 시조 할아버지 제사때는 시조할머니인 선덕여왕의 제를 함게 올린다고 합니다. 선덕여왕이 죽었을당시 이미 노령이었던 조계룡은 선덕여왕이 붕어한 후 고향인 창녕지역으로 하향하여서 공식적으로 창녕조씨의 시조가 됩니다. 그리고 그 후 당시에는 상당히 장수한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선덕여왕과의 사이에서 5남2녀를 얻었지만 성골이었던 선덕여왕과 진골이었던 조계룡 사이에서는 진골만이 출생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진평왕의 동생 국반갈문왕의 딸로서 선덕여왕의 사촌동생 성골 승만공주가 왕위를 이어 진덕여왕이 됩니다.

    헉헉.. 워낙 역사가 방대하고 길고긴 집안이라서 이정도로 간략하는것도 힘드네요..
    그리고 사족을 단다면 '조계룡'은 태사의 자격으로 왕실 자녀들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일찍 요절한 선덕여왕의 배다른 아우인 왕자의 태사이기도 했고 김춘추의 태사이기도 합니다^^

  13. BlogIcon 웃겨ㅗ 2011.08.05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걍 드라마로 보면되지 따지기는..정통사극도 아니고 월화드라마에 하는거면 대충 허구픽션인걸 알아야지 역사사실에 다 맞춰쓰면 무슨재미로보냐?ㅋㅋㅋ 허참 잘난척하는것도 가지가지네

  14. BlogIcon Pussy Porn 2012.07.14 1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15.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6. BlogIcon emergency sleeping bag 2012.11.01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이 마흔일곱의 나이에 등극했다고 기록하고 있네요. 젊은 나이에 성조황고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

  17. BlogIcon invisible fence rochester ny hours 2012.11.06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

  18. BlogIcon ready store draper 2012.12.10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이는 한때 꿀벅지라는 말이 자신을 칭찬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꿀벅지라는 말이 가지는 성적인 취향임을 알았을 때 유이는 꿀벅지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19. BlogIcon invisible dog fence 2012.12.22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 다른 웹브라우저에서는 마우스 우측버튼과 부가기능(add-ons)등을 이용해 지원하고 있는 기능이기도 한

  20. BlogIcon waterproof matches nz 2013.01.02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의 생각이기 보다는 극히 개인적인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의 빈곤한 상상력의 산물이고 희망사항일 뿐이다.

  21. BlogIcon 알바 추천 2017.12.01 19: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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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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