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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MBC 사극 김수로(지성)에서 김수로의 친어미로 나오는 정견비(배종옥)은 자신이 죽이려한 김수로가 자신이 낳아 배가 난파되었을 때 잃어버린 친자라는 사실을 신녀인 나찰녀(김혜은)으로부터 듣지만 믿지 않았다.


허황욱(서지혜)가 정견비 몸에 있는 문신 모양을 보고, 김수로에게도 정견비의 문신과 같은 문양을 지난 청동 노리개가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석탈해에게 죽이려한 김수로를 살리기 위해서 찾아 나선다.


그리고 아진의선(이덕희)에게 김수로의 어미인 조방처(최수린)이 애를 낳다 사산을 하였을 때 난파된 장소에서 발견된 김수로를 조방처가 낳은 아들로 속이고 키웠다고 알려주며, 천관인 이비가(이효정)도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스 로마신화에는 자신의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결혼을 한 오디프스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처럼 자식이 어머니를 몰라볼 수도 있고, 어미가 자식을 몰라볼 수 도 있다.


드라마 김수로에서 정견비는 김수로를 이진아시(고주원)의 잠재적 경쟁자로 알고 끊임없이 핍박하고 죽이려 하다가, 정견비 자신의 아들이라고 안 이후에는 끔찍하게도 자식사랑을 보여주는 정견비에게서 모성은 본능이 아닌 환경이나 교육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얼마나 시류에 따라 변하는 존재인지를 알게 해주고, 모성이 얼마나 허황된 본성인지를 까발려 주고 있다. 그런 의미로 드라마 김수로에서 얻을 수 있는 메시지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드라마 김수로에서 정견비는 최소한 김수로가 자신의 친자라는 의심을 했어야 하고, 조방처는 김수로가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의심을 했어야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오디프스가 어미를 몰라본 이유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미도 자신의 자식이 자신의 남편과 닮았다는 사실을 최소한 알고는 있었다.


 

드라마 김수로의 설정에서 김수로는 흉노의 제천금인 김일제의 후손인 김융과 정견모주 사이에 김수로가 태어났고, 정견비가 몽골초원에서 후한의 광무제의 공격을 받고, 한반도의 최남단에 해당하는 구야국에 난파되어 들어온 것이다.

 

그러니, 최소한 당시만 해도 구야국 내에서 김수로와 정견모주는 당시의 사람들과는 이질적으로 생겼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만큼 특이하게 생긴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남방계인 필리핀, 인도나 태국이나 베트남여자인 정견모주가 한국에 들어와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았을 때 애들의 모습이 한국인들과 조금은 이질적으로 생긴 것을 쉬이 알 수 있었던 것만큼 당대에는 쉽게 구별이 가능했다는 말이다.

 

특히, 정견모주와 김융 사이에 태어난 김수로라면, 최소한 정견모주와 김융의 모습을 닮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견모주는 김수로를 몰라볼 이유가 하등 없다는 것이고, 조방처 또한, 자신의 지방 사람이나 자신도 닮지 않고 남편인 조방도 닮지 않는 이질적으로 생기고 정견모주와 비슷하게 생긴 김수로를 자신의 자식으로 알았다는 것은 개연성이 없다.

 

물론,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변한인들은 진한인들과 비슷하게 생겼고, 진한인은 진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 부역을 피해서 달아난 피난민들로 마한이 진한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방치했다는 삼국지위지 동이전의 기록을 들어서 북방계 흉노와 비슷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진한인이던, 변한인들이던, 마한인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다수인 지역에 들어와 잡거를 하였으므로 북방계 인들은 남방계의 유전자를 많이 가지고 있던 마한인들과는 확연히 구분이 되어야 한다. 또한, 같은 북방계라고 해도, 흉노족은 부여족인 예족과 고구려족인 맥족과는 충분히 구분이 가능할 만큼 이질적인 골격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이를 증명하는 고대의 고구려인과 백제인과 신라사신의 그림과 토우가 있다. 이들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보인다.


오랫동안 피섞임을 한 현재도 얼굴모양과 골격의 차이를 구분해서 북방계 남방계와 혼합된 형태를 구분할 정도로 차이가 분명하다. 하물며 김수로가 한반도에 들어왔다고 하는 시기에 구분을 못한다는 게 더 이상한 것이다.


김수로는 이질적으로 생긴 모습 때문에 자랄 때부터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았어야 하지만, 드라마 김수로에서는 어린 김수로가 따돌림을 받았거나 놀림감이 되었다는 장치 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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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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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cheap nfl jerseys 2011.11.28 1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육과 환경이 아니라요 드라마를 머리로만 보지 마시고 마음으로 보세요 심리를 조금이라도 공부하셨다면 공감가는 부분도 많을 것이나 머리로만 보고 분석하려 하신다면 어느 드라마도 공감가는 부분이 없겠지요

  3. BlogIcon Moncler Jackets 2011.11.28 16: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굴이 달라 의심은 할 수 있습니다. 정견비도 그리고 김수로도 서로 자식이 어머니가 아닐까 생각하는 부분이 여러차례 나왔는데 못보셨나요?? 그리고 정견비는 김수로를 드디어 자신이 낳은 아들임을 알고 이제야 제대로 모성을 발휘하는 겁니다.

  4. BlogIcon 조용형 2012.01.01 1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5. BlogIcon 천사 2012.01.07 0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의 떡이 커 보인다

  6. BlogIcon 정부 2012.04.06 07: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속이고 있군요.

  7. BlogIcon 카일리 2012.05.11 1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크 아웃하고 싶습니다.

  8. BlogIcon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5.31 1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김수로에서는 어린 김수로가 따돌림을 받았거나 놀림감이 되었다는 장치 조차 없었다.

  9.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hairy.php 2012.07.14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김수로에서 정견비는 최소한 김수로가 자신의 친자라는 의심을 했어야 하

  10.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hairy.php 2012.07.14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김수로에서 정견비는 최소한 김수로가 자신의 친자라는 의심을 했어야 하

  11. nfljerseyswholesaler 2012.07.19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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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nfljerseyswholesaler 2012.07.19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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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BlogIcon Marcus 2012.09.18 2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간 든 생각은 박미희씨 너무 욕심이 많다는 것이였

  14. BlogIcon wireless dog fence large area 2012.11.03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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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BlogIcon emergency food stamps for new orleans 2012.11.04 2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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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BlogIcon wireless shock collars for dogs 2012.11.14 1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버리고 살아나 달아난다. 구산댁은 방울소리를 듣고 찾아가지만 길거리에 떨어진 방울을

  17. BlogIcon mre for sale cheap 2012.11.21 2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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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BlogIcon emergency preparedness supplies vancouver 2012.12.19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라리 성폭행한 성폭력범을 사랑한다는 말을 믿고 싶을 정도이다. 매맞는 아내가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얼척없기는 마찬가지 이지만 말이다

  19. BlogIcon disaster preparedness supplies/food 2013.01.05 2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르헨티나, 브라질중에서 우승할 것이라고 한 펠레의 마법를 스페인과 네델란드는 피했다. 최종 남은 두 국가는 지금 당장 펠레의 입을 봉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지만, 기자들이 펠레를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 같다.

천관은 산자가 죽은자를 대신해서 죽는게 얼마나 나쁜것인지 이야기를 하지만 행동하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한다.

또한, 녹사장도 죽은자를 위해서 산자가 죽는 것은 나쁜것인데 이를 방해한 김수로는 대단한 도령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녹사장은 사람은 죽은사람을 위해서 산사람이 찍소리라도 해보고 죽어야 한다고 한다. 불합리함에 대항한 어린 수로는 지도자로써 자질을 갖춰다는 말을 한다. 

자신이 한일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하는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혹독한 대가를 치뤄야 할것이라고 수로의 어미 정견는 말한다. 

사극 김수로에서 김수로가 여의의 순장에 반하여 여의를 빼돌리고 소도에 침입했지만, 여의는 자신이 소도에서 나가지 않고 버틴다면 2명이 희생되지만 자신이 나간다면 여의 자신 한명만 희생되면 된다고 나가지 못하게 하는 수로를 설득시킨다.


여의는 순장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가족이 노예에서 풀려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스스로 희생한다. 가족을 매개로 한 노예 해방이다. 순장으로 희생되면 가족은 자유롭게 면천이 될 수 있다.


최인호 원작 제4의제국 가야의 사극 김수로는 왜? 순장을 하는데 있어서 순순히 노예들이 순장을 당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풀어주는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다. 순장이 지속된 이유를 노예해방과 연관시키고 있다. 권력이 있다면 노예들은 권력자의 의지에 의해서 좌우된다. 

자신의 재산인 노예를 어떻게 사용하던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인호는 노예가 순장을 순순히 당한 이유를 가족의 면천과 연관시켜서 합리화 시키고 있다. 현재의 주관이 과거에 투영되고 이입된것이다.


만약 수로가 서기 30년대의 사람이라면 수로시대에 순장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여의는 5세기 순장묘를 기반으로 재현된것이다. 


그렇다면 김수로묘로 알려진 묘는 순장이 없었을까? 그런데 아쉽게도 김수로 묘로 알려진 묘에는 순장의 흔적이 있었다. 임진왜란 시기 김수로 묘는 도굴이 되었고, 이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순장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정리하면 수로와 여의를 통해서 역사적 사실인 순장의 폐해를 알려주고자 하였지만, 실제 수로묘에는 순장의 풍습이 남아 있었다. 순장과 김수로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 오히려 가야시대 순장을 퍼트린 원흉이 김수로 일지도 모른다.

사실 순장은 고대국가로 진입하는 초입시기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던 권력자의 묘제방식이였다. 은(상)나라는 50~60 여 명을 순장하였다. 부여, 고구려, 신라, 가야 등에서 순장의 모습이 보인다.


토우의 등장은 순장을 대체하는 방식이다. 만약, 묘에서 토우가 발견된다면 그 지역은 토우 등장 이전에 순장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는 증거자료가 아닐까 한다. 토우는 순장과 박장의 과도기적인 묘제방식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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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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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미스터브랜드 2010.06.06 1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시황의 묘에 있는 그 수많은 병사들의 토우가..실제 군인이었다면 어땠을까요...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2. BlogIcon 도플갱어와파란장미 2010.06.06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게요.. 순장이란 의식은 여러나라에서 보이는 장례죠..

    • BlogIcon 갓쉰동 2010.06.06 1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인간이 인간에 얼마나 잔인해 질수 있는 사례.. 저는 그래서 인간을 동물과 다르게 아름답게 포장하는걸 좋아 하지 않아용..

  3. BlogIcon 감자꿈 2010.06.06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T.T

  4. BlogIcon 달이선생 2010.06.06 1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세를 위한 순장은 드라마처럼 처형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며 고고학적 조사로 보아도 신체가 훼손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약물이나 등등으로 조용히 처리를 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순장이 산 사람을 죽여 매장하는 관습으로 매장자의 사후 내세관에 따른 재산의 축적의 의도도 있으나 당대를 풍미했던 인물에 대한 충정과 사랑에 따른 순사도 있습니다. 순장과 순사가 다른 점은 함께 묻힌 것이 아니라는 점인데 북방유목민 전통에는 부족장이 죽으면 충복들이나 후비들이 순사형식으로 자진하였다고 하고 희망에 한하여 같이 묻어주기도 하였습니다. 순사는 유목민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조선시대 선비들 및 현재도 유명인이 죽으면 따라서 죽는 것도 일종의 순사입니다. 하여간 순장은 비인간적이고 경제적으로 볼 때도 노동력을 감소시키면서 무덤에 많은 공력을 두는 국가적으로 호화사치이자 낭비입니다. 따라서 삼국간의 항쟁이 본격화 되기 시작하고 각 나라들이 중앙집권화가 진척되면서 순장제도도 사라졌으며 기록으로는 신라 지증왕이 순장을 금했다고 하며 이 시기에 우리나라의 각 국가들도 점차적으로 순장 풍습이 없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5. BlogIcon 너돌양 2010.06.06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친구가 지성을 진짜 좋아하는데 지성은 왜 시나리오 보는 눈이 그리 없나고 ㅠㅠ

  6. BlogIcon skagns 2010.06.06 1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의가 죽는 거 보고 어찌나 맘이 아프던지.. ㅎㅎ;;;
    그나저나 역사에서 김수로왕도 순장을 했군요.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구요. ^^

  7. BlogIcon pennpenn 2010.06.07 1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게 드라마와 역사와의 차이점이로군요~
    잘 읽었습니다.

  8. BlogIcon cheap ugg boots 2010.10.09 1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Your article was good, ah, I love it. Hope to have more words for us to read! I wish you all the best! !

  9.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5.31 1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김수로에서는 어린 김수로가 따돌림을 받았거나 놀림감이 되었다는 장치 조차 없었다.

천관은 산자가 죽은자를 대신해서 죽는게 얼마나 나쁜것인지 이야기를 하지만 행동하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한다.

또한, 녹사장도 죽은자를 위해서 산자가 죽는 것은 나쁜것인데 이를 방해한 김수로는 대단한 도령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녹사장은 사람은 죽은사람을 위해서 산사람이 찍소리라도 해보고 죽어야 한다고 한다. 불합리함에 대항한 어린 수로는 지도자로써 자질을 갖춰다는 말을 한다. 

자신이 한일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하는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혹독한 대가를 치뤄야 할것이라고 수로의 어미 정견는 말한다. 

사극 김수로에서 김수로가 여의의 순장에 반하여 여의를 빼돌리고 소도에 침입했지만, 여의는 자신이 소도에서 나가지 않고 버틴다면 2명이 희생되지만 자신이 나간다면 여의 자신 한명만 희생되면 된다고 나가지 못하게 하는 수로를 설득시킨다.


여의는 순장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가족이 노예에서 풀려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스스로 희생한다. 가족을 매개로 한 노예 해방이다. 순장으로 희생되면 가족은 자유롭게 면천이 될 수 있다.


최인호 원작 제4의제국 가야의 사극 김수로는 왜? 순장을 하는데 있어서 순순히 노예들이 순장을 당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풀어주는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다. 순장이 지속된 이유를 노예해방과 연관시키고 있다. 권력이 있다면 노예들은 권력자의 의지에 의해서 좌우된다. 

자신의 재산인 노예를 어떻게 사용하던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인호는 노예가 순장을 순순히 당한 이유를 가족의 면천과 연관시켜서 합리화 시키고 있다. 현재의 주관이 과거에 투영되고 이입된것이다.


만약 수로가 서기 30년대의 사람이라면 수로시대에 순장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여의는 5세기 순장묘를 기반으로 재현된것이다. 


그렇다면 김수로묘로 알려진 묘는 순장이 없었을까? 그런데 아쉽게도 김수로 묘로 알려진 묘에는 순장의 흔적이 있었다. 임진왜란 시기 김수로 묘는 도굴이 되었고, 이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순장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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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순장은 고대국가로 진입하는 초입시기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던 권력자의 묘제방식이였다. 은(상)나라는 50~60 여 명을 순장하였다. 부여, 고구려, 신라, 가야 등에서 순장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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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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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미스터브랜드 2010.06.06 1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시황의 묘에 있는 그 수많은 병사들의 토우가..실제 군인이었다면 어땠을까요...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2. BlogIcon 도플갱어와파란장미 2010.06.06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게요.. 순장이란 의식은 여러나라에서 보이는 장례죠..

    • BlogIcon 갓쉰동 2010.06.06 1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인간이 인간에 얼마나 잔인해 질수 있는 사례.. 저는 그래서 인간을 동물과 다르게 아름답게 포장하는걸 좋아 하지 않아용..

  3. BlogIcon 감자꿈 2010.06.06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T.T

  4. BlogIcon 달이선생 2010.06.06 1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세를 위한 순장은 드라마처럼 처형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며 고고학적 조사로 보아도 신체가 훼손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약물이나 등등으로 조용히 처리를 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순장이 산 사람을 죽여 매장하는 관습으로 매장자의 사후 내세관에 따른 재산의 축적의 의도도 있으나 당대를 풍미했던 인물에 대한 충정과 사랑에 따른 순사도 있습니다. 순장과 순사가 다른 점은 함께 묻힌 것이 아니라는 점인데 북방유목민 전통에는 부족장이 죽으면 충복들이나 후비들이 순사형식으로 자진하였다고 하고 희망에 한하여 같이 묻어주기도 하였습니다. 순사는 유목민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조선시대 선비들 및 현재도 유명인이 죽으면 따라서 죽는 것도 일종의 순사입니다. 하여간 순장은 비인간적이고 경제적으로 볼 때도 노동력을 감소시키면서 무덤에 많은 공력을 두는 국가적으로 호화사치이자 낭비입니다. 따라서 삼국간의 항쟁이 본격화 되기 시작하고 각 나라들이 중앙집권화가 진척되면서 순장제도도 사라졌으며 기록으로는 신라 지증왕이 순장을 금했다고 하며 이 시기에 우리나라의 각 국가들도 점차적으로 순장 풍습이 없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5. BlogIcon 너돌양 2010.06.06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친구가 지성을 진짜 좋아하는데 지성은 왜 시나리오 보는 눈이 그리 없나고 ㅠㅠ

  6. BlogIcon skagns 2010.06.06 1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의가 죽는 거 보고 어찌나 맘이 아프던지.. ㅎㅎ;;;
    그나저나 역사에서 김수로왕도 순장을 했군요.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구요. ^^

  7. BlogIcon pennpenn 2010.06.07 1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게 드라마와 역사와의 차이점이로군요~
    잘 읽었습니다.

  8. BlogIcon cheap ugg boots 2010.10.09 1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Your article was good, ah, I love it. Hope to have more words for us to read! I wish you all the best! !

  9.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5.31 1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김수로에서는 어린 김수로가 따돌림을 받았거나 놀림감이 되었다는 장치 조차 없었다.

  10. BlogIcon 최라 2013.04.01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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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으로 잡혀간 소현세자는  송태하(오지호)에게 청을 배워야 하고, 그 길이 청을 이기는 길이라고 한다, 문물을 받아 들여서 세상에 널리 퍼지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실제 드라마 추노에서 소현세자가 말한 청의 문물이라고 하는 것은 명의 문물일 뿐이다. 청나라는 당시 가지고 있는 역량은 극히 미미했다.

청이 화포와 화약를 자체적으로 생산한 건 조선보다도 늦은 시기였다. 청이 가지고 있었던 힘은 빠른 기동력을 바탕으로 한 팔기군으로 대표되는 군사력 뿐이였다.

1644년 청나라가 명나라 수도 북경을 점령하기 전까지는 그저 그런 군사력만 강한 나라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북한이 군사력이 강하다고 해서 문화대국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또한, 현재의 중국이나 수 십년전의 중국을 보고 문화강국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몽골에 의해서 송나라가 망했다고 해서 몽골이 문화강국이라고 말한다면 역사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해 봐야 한다.

새로운 무협사극 추노

어쨌든 추노 3회에서 송태하(오지호)와 이대길(장혁)은 강화도로 가는 길목에서 운명의 한판을 벌린다. 송태하는 정통 무술을 익힌터라 일개 추노군인 이대길를 자신의 적수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 송태하가 익힌 무술은 임진왜란 시기 들여온 명나라 척계광의 <기효신서>를  바탕으로 훈련도감에서 체계화 시킨 <무예제보>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갈대숲 결투장면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송태하와 이대길은 김혜원(이다해)를 두고 숙명적인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와도 같다. 작가나 제작진은 그동안 무협지나 무협만화를 자주 보는 것 같다. 많은 부분에서 무협만화 의 앵글과 많이 겹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무협만화를 보고 있노라면 사극에서 갈대숲에서의 추적신과 결투신은 많이 나온다. 또한, 송태하가 청으로 끌려가는 소현세자를 구하기 위해서 절벽위에서 계곡을 바라보는 신과 계곡으로 부터 내려와 적을 치는 장면은 자주 보던 장면이였다.


이는 드라마 추노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닌 무협만화나 상상속의 무협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을 드라마로 재현하였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한 것이다. 갈대 잎 위를 밟고 경신술을 발휘하는 <초상비>나 <와호장룡>에서 대나무위에서 결투 장면을 볼 날도 멀지 않았다.

최근 외화로 인기를 얻고 있는 3D 애니메이션 영화 <아바타> 같은 경우도 현재의 기술력이 아니였다면 구현하기 어려운 상상속의 장면들이였다. 그런 의미로 추노는 잘만들어진 무협사극을 보는 듯하다.


드라마 추노에서 개그맨 황현희가 사당패의 설화(김하은)를 매음(성매매) 하기 위해서 해의채(옷을 푸는 값)를 흥정 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겠지만, 황현희의 연기는 출연전 기사 거리를 만들기에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재미가 없었을 뿐더러 왜 장면을 집어 넣었나 할만큼 손발이 오글어 드는 장면이였다. 

이대길(장혁)은 최장군(한정수)가 이야기를 하면, 대화 도중에 끊고 "됐고"를 연발한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황정음이 황정남으로 변장하여,  "됐고"를 연발하는 장면이 떠오르게 한다. 패러디 적인 요소가 재미를 배가 시킨다. 

사당패 고구려 벽화에도 보인다.

남사당 애사당인 설화(김하은)은 아이리스의 김태희와 이병헌의 사탕키스에 이은 엽전키스를 선보이며 산듯한 등장을 하였다. 설화는 사당패에서 도망쳐, 추노꾼들인 이대길(장혁), 최장군(한정수), 왕손이(김지석) 패거리에게 옷고름을 풀어줄테니 숨겨달라고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어머니를 찾기 위해서 사당패에서 나왔으니 추노 패거리에 끼어 달라고 이야기를 한다.

대부분 무협에서는 주인공이 여인들로 부터 인기가 있는데 이대길은 언년이(김혜원:이다해)로 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여인을 증오하는 듯하다. 설화로 인해서 이대길이 어떻게 바뀔지 보는 것도 재미요소이지 않을까? 이대길과 김하은의 사랑에 왕손이의 삼각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 보는 것도 재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고구려벽화, 접시돌리기, 장대타기,공놀이


사당패(社.寺黨牌)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사찰을 기반으로 놀이패를 구성하였다. 사당패의 연원은 고구려 시대 벽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래된 것이다. 조선시대는 사당패를 이루는 자들을 재인으로 인정하였지만, 주거지가 일정치 않고, 무리를 이뤄 농상(농사.누에치기)등을 하지 않고, 농민이나 양민을 대상으로 도둑질이나 강도질을 한다고 멸시 하였다.

처음 이들이 모인 장소는 원각사 터를 근거지로 하였고, 동대문 안의 개천(청계천)변을 중심으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을 총칭해서 재백정(才白丁)이라고 했다. 재백정 중 놀이패를 구성한 자들이 사당패였던 것이다.


실제로 사당패는 기방처럼 고정된 장소에서 영업하는 자들이 아니고, 무리를 지어 자신의 재능을 파는 뜨내기들은 아니였다. 

처음 근거지를 확보하여 근거리 이동하여 도적질이나 비럭질로 연명하다, 관가에서 이들을 억압하자 합법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정당한 댓가를 받는 준 양성화의 길을 걷다 차츰 이도 조선이 내세운 농본을 바탕으로 여타의 다른 길은 열어주지 않는 정책으로 사찰로 숨어 들고, 호적만 사찰로 한 뜨내기가 되었다.
 

애사당 설화(김하은)


재능이 없거나 늙은 여사당이나 기생들은 술병과 돗자리를 매고 성매매를 하는 <들병이>가 되지 않았을까? 요즘으로 치면 개인적으로 동에번쩍 서에번쩍 인터넷 성매매를 하는 자들이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한다. 요즘도 인터넷 들병이나 은밀한 성매매를 막기 힘든것 처럼 당시 조선에서도 문제거리를 제공한 골칫거리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조선에서는 사당패의 원류에 해당하는 재백정을 대상으로 별도 특수군대 조직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요즘으로 치면 연예인부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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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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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라이너스™ 2010.01.14 0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노... 시간이 없어서 아직 본적이 없지만
    이웃님들 글을 보면 참 재미있을듯합니다^^

  2. BlogIcon 거위의 꿈 2010.01.14 0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노에 대한 명쾌한 해설
    굳입니다
    신속배달 해설서에 감사 합니다

  3. BlogIcon DJ야루 2010.01.14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한번 봤는데, 진짜 재밌더라구요ㅋㅋㅋㅋ
    어제편 보고 이 포스팅을 보니까 뭔가 더 흥미진진 하네요ㅋㅋㅋㅋ

    내일도 추노 포스팅 올려주세요!ㅋㅋㅋ

  4. BlogIcon 레오 ~ 2010.01.14 1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는 드라마입니다 ..드라마를 보다니 오랜만입니다 ㅎㅎ

  5. BlogIcon 걸어서 하늘까지 2010.01.14 2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너무 오랜만에 방문햇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추노 리뷰 시작하셨네요^^
    재미있겠는데 저는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6. BlogIcon Pussy Tube 2012.07.14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통 무술을 익힌터라 일개 추노군인 이대길를 자신의 적수로 생각하지 않고

  7. BlogIcon Next Generation Pest 2012.09.05 0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티즌의 비난에 마음이 아펐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잊게하는 시원한 골이였고, 16강에 올라가는 교두

  8. BlogIcon Whitley 2012.10.06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해서 상처가 아물더라도 지워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체면을 중요시 하는 조선으로써는 묵형 만큼 커

  9. BlogIcon emergency first aid classes 2012.11.26 2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강력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형벌로서 하였다. 조선에서는 5개의 중형이 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이 있고, 남자의 성기를 짜르는 궁형이 있고, 아킬레스건 처럼 발뒤꿈치 힘줄을 짤라 버리는 월형(비형)이 있고,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 있고, 머리에 문신을 하는 자자(묵형)이 있다.

  10. BlogIcon real zombie survival kits 2012.12.04 2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현재의 중국이나 수 십년전의 중국을 보고 문화강국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몽골에 의해서 송나라가 망했다고 해서 몽골이 문화강국이라고 말한다면 역사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해 봐야 한다.

  11. BlogIcon Bisex-porno 2013.02.07 0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회의 저변에 흐르는 기류속에 통념상 이혼녀와 간통녀라는 타이틀이 가지는 압박감은 남성보다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심양으로 잡혀간 소현세자는  송태하(오지호)에게 청을 배워야 하고, 그 길이 청을 이기는 길이라고 한다, 문물을 받아 들여서 세상에 널리 퍼지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실제 드라마 추노에서 소현세자가 말한 청의 문물이라고 하는 것은 명의 문물일 뿐이다. 청나라는 당시 가지고 있는 역량은 극히 미미했다.

청이 화포와 화약를 자체적으로 생산한 건 조선보다도 늦은 시기였다. 청이 가지고 있었던 힘은 빠른 기동력을 바탕으로 한 팔기군으로 대표되는 군사력 뿐이였다.

1644년 청나라가 명나라 수도 북경을 점령하기 전까지는 그저 그런 군사력만 강한 나라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북한이 군사력이 강하다고 해서 문화대국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또한, 현재의 중국이나 수 십년전의 중국을 보고 문화강국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몽골에 의해서 송나라가 망했다고 해서 몽골이 문화강국이라고 말한다면 역사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해 봐야 한다.

새로운 무협사극 추노

어쨌든 추노 3회에서 송태하(오지호)와 이대길(장혁)은 강화도로 가는 길목에서 운명의 한판을 벌린다. 송태하는 정통 무술을 익힌터라 일개 추노군인 이대길를 자신의 적수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 송태하가 익힌 무술은 임진왜란 시기 들여온 명나라 척계광의 <기효신서>를  바탕으로 훈련도감에서 체계화 시킨 <무예제보>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갈대숲 결투장면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송태하와 이대길은 김혜원(이다해)를 두고 숙명적인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와도 같다. 작가나 제작진은 그동안 무협지나 무협만화를 자주 보는 것 같다. 많은 부분에서 무협만화 의 앵글과 많이 겹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무협만화를 보고 있노라면 사극에서 갈대숲에서의 추적신과 결투신은 많이 나온다. 또한, 송태하가 청으로 끌려가는 소현세자를 구하기 위해서 절벽위에서 계곡을 바라보는 신과 계곡으로 부터 내려와 적을 치는 장면은 자주 보던 장면이였다.


이는 드라마 추노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닌 무협만화나 상상속의 무협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을 드라마로 재현하였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한 것이다. 갈대 잎 위를 밟고 경신술을 발휘하는 <초상비>나 <와호장룡>에서 대나무위에서 결투 장면을 볼 날도 멀지 않았다.

최근 외화로 인기를 얻고 있는 3D 애니메이션 영화 <아바타> 같은 경우도 현재의 기술력이 아니였다면 구현하기 어려운 상상속의 장면들이였다. 그런 의미로 추노는 잘만들어진 무협사극을 보는 듯하다.


드라마 추노에서 개그맨 황현희가 사당패의 설화(김하은)를 매음(성매매) 하기 위해서 해의채(옷을 푸는 값)를 흥정 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겠지만, 황현희의 연기는 출연전 기사 거리를 만들기에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재미가 없었을 뿐더러 왜 장면을 집어 넣었나 할만큼 손발이 오글어 드는 장면이였다. 

이대길(장혁)은 최장군(한정수)가 이야기를 하면, 대화 도중에 끊고 "됐고"를 연발한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황정음이 황정남으로 변장하여,  "됐고"를 연발하는 장면이 떠오르게 한다. 패러디 적인 요소가 재미를 배가 시킨다. 

사당패 고구려 벽화에도 보인다.

남사당 애사당인 설화(김하은)은 아이리스의 김태희와 이병헌의 사탕키스에 이은 엽전키스를 선보이며 산듯한 등장을 하였다. 설화는 사당패에서 도망쳐, 추노꾼들인 이대길(장혁), 최장군(한정수), 왕손이(김지석) 패거리에게 옷고름을 풀어줄테니 숨겨달라고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어머니를 찾기 위해서 사당패에서 나왔으니 추노 패거리에 끼어 달라고 이야기를 한다.

대부분 무협에서는 주인공이 여인들로 부터 인기가 있는데 이대길은 언년이(김혜원:이다해)로 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여인을 증오하는 듯하다. 설화로 인해서 이대길이 어떻게 바뀔지 보는 것도 재미요소이지 않을까? 이대길과 김하은의 사랑에 왕손이의 삼각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 보는 것도 재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고구려벽화, 접시돌리기, 장대타기,공놀이


사당패(社.寺黨牌)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사찰을 기반으로 놀이패를 구성하였다. 사당패의 연원은 고구려 시대 벽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래된 것이다. 조선시대는 사당패를 이루는 자들을 재인으로 인정하였지만, 주거지가 일정치 않고, 무리를 이뤄 농상(농사.누에치기)등을 하지 않고, 농민이나 양민을 대상으로 도둑질이나 강도질을 한다고 멸시 하였다.

처음 이들이 모인 장소는 원각사 터를 근거지로 하였고, 동대문 안의 개천(청계천)변을 중심으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을 총칭해서 재백정(才白丁)이라고 했다. 재백정 중 놀이패를 구성한 자들이 사당패였던 것이다.


실제로 사당패는 기방처럼 고정된 장소에서 영업하는 자들이 아니고, 무리를 지어 자신의 재능을 파는 뜨내기들은 아니였다. 

처음 근거지를 확보하여 근거리 이동하여 도적질이나 비럭질로 연명하다, 관가에서 이들을 억압하자 합법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정당한 댓가를 받는 준 양성화의 길을 걷다 차츰 이도 조선이 내세운 농본을 바탕으로 여타의 다른 길은 열어주지 않는 정책으로 사찰로 숨어 들고, 호적만 사찰로 한 뜨내기가 되었다.
 

애사당 설화(김하은)


재능이 없거나 늙은 여사당이나 기생들은 술병과 돗자리를 매고 성매매를 하는 <들병이>가 되지 않았을까? 요즘으로 치면 개인적으로 동에번쩍 서에번쩍 인터넷 성매매를 하는 자들이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한다. 요즘도 인터넷 들병이나 은밀한 성매매를 막기 힘든것 처럼 당시 조선에서도 문제거리를 제공한 골칫거리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조선에서는 사당패의 원류에 해당하는 재백정을 대상으로 별도 특수군대 조직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요즘으로 치면 연예인부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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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라이너스™ 2010.01.14 0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노... 시간이 없어서 아직 본적이 없지만
    이웃님들 글을 보면 참 재미있을듯합니다^^

  2. BlogIcon 거위의 꿈 2010.01.14 0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노에 대한 명쾌한 해설
    굳입니다
    신속배달 해설서에 감사 합니다

  3. BlogIcon DJ야루 2010.01.14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한번 봤는데, 진짜 재밌더라구요ㅋㅋㅋㅋ
    어제편 보고 이 포스팅을 보니까 뭔가 더 흥미진진 하네요ㅋㅋㅋㅋ

    내일도 추노 포스팅 올려주세요!ㅋㅋㅋ

  4. BlogIcon 레오 ~ 2010.01.14 1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는 드라마입니다 ..드라마를 보다니 오랜만입니다 ㅎㅎ

  5. BlogIcon 걸어서 하늘까지 2010.01.14 2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너무 오랜만에 방문햇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추노 리뷰 시작하셨네요^^
    재미있겠는데 저는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6. BlogIcon Pussy Tube 2012.07.14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통 무술을 익힌터라 일개 추노군인 이대길를 자신의 적수로 생각하지 않고

  7. BlogIcon Next Generation Pest 2012.09.05 0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티즌의 비난에 마음이 아펐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잊게하는 시원한 골이였고, 16강에 올라가는 교두

  8. BlogIcon Whitley 2012.10.06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해서 상처가 아물더라도 지워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체면을 중요시 하는 조선으로써는 묵형 만큼 커

  9. BlogIcon emergency first aid classes 2012.11.26 2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강력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형벌로서 하였다. 조선에서는 5개의 중형이 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이 있고, 남자의 성기를 짜르는 궁형이 있고, 아킬레스건 처럼 발뒤꿈치 힘줄을 짤라 버리는 월형(비형)이 있고,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 있고, 머리에 문신을 하는 자자(묵형)이 있다.

  10. BlogIcon real zombie survival kits 2012.12.04 2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현재의 중국이나 수 십년전의 중국을 보고 문화강국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몽골에 의해서 송나라가 망했다고 해서 몽골이 문화강국이라고 말한다면 역사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해 봐야 한다.

  11. BlogIcon Bisex-porno 2013.02.07 0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회의 저변에 흐르는 기류속에 통념상 이혼녀와 간통녀라는 타이틀이 가지는 압박감은 남성보다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미실 척살령은 진흥왕이 사후에 미실이 진흥왕 자신처럼 불교에 귀의하지 않고 정치에 관여를 한다면 척살하라고 설원에게 밀서형식의 척살령을 내린다.


비담의 척살령도 미실의 척살령과 같이 덕만과 결혼한 이후 덕만은 궁을 떠날 것을 생각하고, 만약, 비담이 정치에 관여를 한다면 비담을 척살하라고 춘추에게 밀서를 내린다.


어머니 미실의 척살령과 아들 비담의 척살령은 사후에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마디로 미실과 비담은 왕실에서 버린 받는 다는 설정이고, 이를 간파한 미실이 설원과 모의해서 진흥을 독살하려한다.


진흥은 왕위를 첫째인 동륜태자의 아들인 백정(진평)에게 물려주려 하는 것 처럼, 덕만도 비담과 국혼을 한 이후 왕위를 춘추에게 물려준다는 암시를 맹약서에 담아 두고 있다. 맹약서에 <이궁(離宮)>은 ‘궁을 떠난다’는 뜻이다. 왕이 궁을 떠난다는 뜻은 왕위를 선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선위의 대상은 춘추가 될 것이다. 비담과 국혼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12/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은 언제 처음 결혼했을까? - 비담과의 결혼은 사실일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참고 기사들은 글 말미에 관련기사 목록를 별도로 만들었으니 글을 다 읽고 추천 후 일독을 권함 )


진흥왕은 말년에 영흥사에 들어가 법의를 입고 생활하기도 했고, 진흥왕의 비인 사도비 또한, 진흥왕 사후에 영흥사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었다. 화랑세기에는 미실과 설원과 세종도 영흥사에 들어가 말년을 보냈다고 하였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비구니처럼 살던 미실과 세종과 설원을 역모에 연루시켜 버렸다. 한마디로 이순신이 일본군과 함께 선조를 내몰고 역모를 한다는 설정만큼 어처구니없다.

 

어쨌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척살령과 비담의 척살령 닮은꼴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사이에 차이점은 없을까? 진흥왕은 미실에게 맹약서를 받지 않고 말로 때웠지만, 덕만은 비담을 믿지 못하고, 맹약서를 요구한다. 비담은 덕만의 요구에 순순히 맹약서를 작성하고 정치적 욕망이 아닌 사랑을 택한다. 하지만, 덕만은 비담을 믿지 못하고, 춘추에게 자신의 사후 비담이 정치에 관여를 한다면 죽여 버리라고 요구한다.

 

비담의 척살령과 미실의 척살령에는 공통점만이 있는 건 아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척살령을 보면, 극중에서 오류를 몇 가지 발견할 수 있다. 일단, 미실의 척살령에는 공식 문서의 형식을 띄고 있고, 비담의 척살령은 사문서 형식을 띄고 있다. 만약, 비담이 맹약를 어기고 덕만이 죽고, 정치일선에 복귀할 때, 춘추가 덕만의 척살령을 근거로 비담을 옥죄일 때, 비담은 척살령을 인정하지 않고, 춘추가 조작했다는 혐의를 씌우면 빠져나갈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미실의 척살령은 간지로 무신년을 사용하고 있다. 무신년은 공교롭게도 588년이다. 진흥왕은 576년에 죽었는데, 죽은 후 진흥왕이 설원에게 척살밀명을 줄 수가 없다. 또한, 공문서의 형식을 취한 진흥왕의 미실 척살령은 기본적인 드라마 설정 오류를 범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미실은 옥새를 관장하는 <새주>였다. 그러니 아무리 진흥왕이 왕이라고 하더라도 미실의 손을 거치지 않고 척살령에 옥새를 찍을 수 없다. 한마디로 미실 척살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조문서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의 미실은 위조문서를 비담에 넘겨주고, 자살을 해버린다. 비담은 어머니 미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위조 척살령을 덕만에 건네주지 않고, 마침내 자신이 미실의 버려진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덕만이 비담을 배척하는 모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만큼 미실의 척살령은 비담이 어쩔 수 없이 난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원죄를 제공하는 것이다.  얼마나 미실의 자살이 어처구니 없는 설정인지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을 참조 하기바란다.

2009/11/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진흥왕(이순재) 신라의적 미실(고현정)척살 - 만화보다 못한 미실 죽음 고현정 하차

2009/10/2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기유년 미실의 난과 죽음, 극중 리얼리티 ZERO

진흥왕의 정상적인 미실 척살령이 되려면 옥새는 찍지 않고, 진흥왕의 수결이 되어야 하고, 진흥왕이 죽는 시점인 576년 병신년 간지를 써야한다고 기사를 전송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정상적인 것 같은 문서형식인 것 같은 간지도 맞고, 수결도 있는 비담 척살령을 춘추에 주었다. 하지만, 이 또한 드라마 작가나 제작진의 오류이다.


미실 척살령은 당연히 미실이 옥새를 관장하는 <새주>이니 옥새가 없고 <수결>만 있는 게  정상적이다. 하지만, 덕만은 왕으로 옥새를 관장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위조문서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척살령에 <수결>과 <옥새>가 찍혀 있어야 한다.


또한, 비담의 척살령 칙서에는 <병오년>간지를 사용했다. 병오년은 646년이다. 그러니 극중 시제는 비담이 이찬에서 상대등으로 임명된 646년 11월이 지난 상태라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정상적인 극중 흐름이지만, <년>다음에 <월>이 나와야 하지만 <경신일>로 건너 뛰어 버린다.


요즘으로 치면 2009년 <모월> 12일에 만든 문서라는 뜻이다. 12일은 1년에 12번은 있다. 당연히 언제 만든 문서인지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여전히 공문서가 지켜야할 기본적인 형식을 벗어났다는 뜻이다. 그러니 비담이 춘추가 내민 문서를 근거로 비담을 척살하려한다면 명분이 서지 않고 오히려 춘추가 역풍을 맞는다는 뜻이다. 또한, 간지와 함께 필히 사용해야 하는 게 연호이다. 미실의 척살령에는 <태창>을 써야 하고 비담 척살령은 선덕여왕 연호인 <인평>을 사용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미실의 척살령과 비담의 척살령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해 보았다.


문제는 642년 8월 대야성 전투에서 신라가 대패를 하고 비화군, 이서군, 압량주(경산)까지 밀리는 과정에서 646년 11월까지 시간이 활시위를 떠난 살과 같이 빠르게 지나갔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대야성을 빼앗기고 만 4년 3개월 동안 신라 내에서 4년을 싸웠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극중 어디에서도 4년 동안 싸웠다는 걸 알 수 는 없다. 단지 대야성 함락되고 얼마 되지 않아 이서군(청도)까지 빼앗겼다는 건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손이 오그라드는 전투신만 있는 게 아니다. 한마디로 극중 리얼리티가 또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는 뜻이다. 대야성에서 이서군까지 전투가 얼마나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12/0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의 부자감세 백제 침공을 자초했다.
2009/12/0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 척살령이 떡밥인 몇가지 이유
2009/12/08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낚시 비담 척살령과 덤앤더머 계백과 유신 그리고 황당한 당나라 사신

642년 7월 부터 646년까지는 동아시아에서는 국제전이 벌어지고 있는 시기였다. 신라가 쉽게 서쪽 40여개성을 빼앗긴 이유도 백제와 고구려가 동맹관계에 있어서 당항성을 친다는 전략에 말려들어 군대를 경기도 일원에 증파한 신라의 오판을 백제가 타고들어서 쟁취한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당나라 사신이 와서 고구려 원정에 동원할 청병을 요구하는 것처럼  645년 당 태종 이세민이 고구려를 침략할 때 백제는 당에 전수물자인 금광개 갑옷을 공급하고 향도를 자청하는 척하지만. 실제는 고구려와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신라는 당의 요구에 3만 대군으로 고구려 남쪽국경를 침략한다. 백제의 금광개 갑옷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07/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신라에서 백제 특산물 황칠을 찾는 수나라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신라가 남쪽변경을 치다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할 때 백제는 신라의 서쪽 7개성을 함락시켜 버린다. 고구려가 당나라와 일대 격전을 치를 때 후방에서는 백제와 신라의 전쟁이 있었다는 뜻이다. 고구려가 당군을 무찌른 이유도 후방에서 백제가 신라를 견제했기 때문이다. 신라는 이때 당나라 도와주려다 신라가 위기에 처하게 되는 시기였다. 그러니 당 사신이 함부로 신라를 얍보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2009/12/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은 언제 처음 결혼했을까? - 비담과의 결혼은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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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기유년 미실의 난과 죽음, 극중 리얼리티 ZERO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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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2.10 0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 웃긴건 원래 비담을 죽여야하는 건 진덕여왕의 몫인데 말이죠.
    가장 실망했던 점이 진덕여왕을 빼놓은 점입니다.
    저도 원래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고자 하는 사람인데요...
    존재 자체도 불투명한 미실은 집어놓고 정작 선덕여왕 바로 뒤인 진덕여왕을 빼놓고 춘추가 왕이
    될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가 하고 있는 선덕여왕이 참.....
    진덕여왕 출연시키지도 않고 계백을 출연시키고 다른 떡밥을 던질때부터 50회이후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모든 역사서에서 인정하는 진덕여왕응을 빼놓고 허구적이라는 인물은 완전 미화시켜놓으니... 이거 원

  2. BlogIcon 라이너스™ 2009.12.10 0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비교해주셨네요^^
    잘보고갑니다. 좋은하루되세요~

  3. BlogIcon 좋은사람들 2009.12.10 0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리하십니다. 저 문서를 해독하시다니. ~ !!

  4. 임현철 2009.12.10 0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대단하시네요.

  5. BlogIcon 초록누리 2009.12.10 0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한가지 의문은 덕만이 비담에게 맹약서를 요구했나요?
    저는 비담이 자발적으로 써왔다고 생각했거든요.;;
    글과 관련 없는 말이지만 왜 죽이라는 명을 밀서로 남기는지 진흥제나 덕만이나 이햐가 안간다는 것지지용^^*

  6. BlogIcon labyrint 2009.12.10 1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오류가 많네요...
    음... 조금만 신경써도 저 정도는 아닐텐데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7. BlogIcon 뽀글 2009.12.10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이야기는 조금어려워요..ㅠ

  8. BlogIcon 892 2009.12.10 1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어려서 그런거는 잘 모르겟는데 ... 한 두번해봣 나 ???
    또 하구 싶은데 남자 친구가 군대에 가버렷네요 ㅠㅠ. 만.남 원합니다..
    haha10.com
    nunawa.com

  9. Maximin 2009.12.10 1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따위 막말 설정이라면 사실 승만이 덕만과 비담의 딸이라고 해도 납득될기세.
    그다음 비담은 딸과 덕만을 지키기 위해 일부로 반란을 일으킨다음 일부로 유신한테 만땅깨진다음
    간지나게 사망 한다는 같잖은 스토리가 나와도 시청률 올라갈 기세

    이건 뭐, 누구잘못인가.

  10. 2009.12.10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BlogIcon 초하(初夏) 2009.12.10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예 관련 글이 점차 더 전문화되고 있네요... ^&^
    이런 글을 어디서 다 찾아 쓰시는지... 대단하십니다!
    미실만한 연기 보기가 어려워 많이 아쉬운 시청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잘 지내시죠?
    날씨는 꿀꿀하지만, 즐겁고 신나는 오후 보내시길 바랍니다~~ ^&^

  12. 묘운 2009.12.10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이 비담에게 맹약서를 요구한게 아니라 비담 자신이 스스로 써온것이구요.
    비담을 믿지 못해서 춘추에게 비담척살령을 내린것이 아니라 비담을 믿지못하고 둘의 결합에
    불안해하는 춘추를 달래기 위해서, 그리고 후에 만약 비담의 세력이 커져 야망이 보인대도
    비담에 향한 연모때문에 강하게 나가지 못할까봐 지금 미리, 진도(?) 덜나갔을때 손쓴거죠.

  13. BlogIcon JiNi。 2009.12.16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오늘의 글도 예리하십니다.

  14. BlogIcon concessionaria kia 2012.09.10 2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이 문서에서 시간에 몇 가지 흥미로운 지점은 있지만 내가 그들의 마음 중심을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몇몇 유효 기간은하지만 더 이상 조사 때까지 기다 의견이 소요됩니다. 좋은 기사 감사하고 더 싶어요! 피드 버너뿐만 아니라에 추가

미실 척살령은 진흥왕이 사후에 미실이 진흥왕 자신처럼 불교에 귀의하지 않고 정치에 관여를 한다면 척살하라고 설원에게 밀서형식의 척살령을 내린다.


비담의 척살령도 미실의 척살령과 같이 덕만과 결혼한 이후 덕만은 궁을 떠날 것을 생각하고, 만약, 비담이 정치에 관여를 한다면 비담을 척살하라고 춘추에게 밀서를 내린다.


어머니 미실의 척살령과 아들 비담의 척살령은 사후에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마디로 미실과 비담은 왕실에서 버린 받는 다는 설정이고, 이를 간파한 미실이 설원과 모의해서 진흥을 독살하려한다.


진흥은 왕위를 첫째인 동륜태자의 아들인 백정(진평)에게 물려주려 하는 것 처럼, 덕만도 비담과 국혼을 한 이후 왕위를 춘추에게 물려준다는 암시를 맹약서에 담아 두고 있다. 맹약서에 <이궁(離宮)>은 ‘궁을 떠난다’는 뜻이다. 왕이 궁을 떠난다는 뜻은 왕위를 선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선위의 대상은 춘추가 될 것이다. 비담과 국혼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12/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은 언제 처음 결혼했을까? - 비담과의 결혼은 사실일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참고 기사들은 글 말미에 관련기사 목록를 별도로 만들었으니 글을 다 읽고 추천 후 일독을 권함 )


진흥왕은 말년에 영흥사에 들어가 법의를 입고 생활하기도 했고, 진흥왕의 비인 사도비 또한, 진흥왕 사후에 영흥사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었다. 화랑세기에는 미실과 설원과 세종도 영흥사에 들어가 말년을 보냈다고 하였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비구니처럼 살던 미실과 세종과 설원을 역모에 연루시켜 버렸다. 한마디로 이순신이 일본군과 함께 선조를 내몰고 역모를 한다는 설정만큼 어처구니없다.

 

어쨌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척살령과 비담의 척살령 닮은꼴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사이에 차이점은 없을까? 진흥왕은 미실에게 맹약서를 받지 않고 말로 때웠지만, 덕만은 비담을 믿지 못하고, 맹약서를 요구한다. 비담은 덕만의 요구에 순순히 맹약서를 작성하고 정치적 욕망이 아닌 사랑을 택한다. 하지만, 덕만은 비담을 믿지 못하고, 춘추에게 자신의 사후 비담이 정치에 관여를 한다면 죽여 버리라고 요구한다.

 

비담의 척살령과 미실의 척살령에는 공통점만이 있는 건 아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척살령을 보면, 극중에서 오류를 몇 가지 발견할 수 있다. 일단, 미실의 척살령에는 공식 문서의 형식을 띄고 있고, 비담의 척살령은 사문서 형식을 띄고 있다. 만약, 비담이 맹약를 어기고 덕만이 죽고, 정치일선에 복귀할 때, 춘추가 덕만의 척살령을 근거로 비담을 옥죄일 때, 비담은 척살령을 인정하지 않고, 춘추가 조작했다는 혐의를 씌우면 빠져나갈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미실의 척살령은 간지로 무신년을 사용하고 있다. 무신년은 공교롭게도 588년이다. 진흥왕은 576년에 죽었는데, 죽은 후 진흥왕이 설원에게 척살밀명을 줄 수가 없다. 또한, 공문서의 형식을 취한 진흥왕의 미실 척살령은 기본적인 드라마 설정 오류를 범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미실은 옥새를 관장하는 <새주>였다. 그러니 아무리 진흥왕이 왕이라고 하더라도 미실의 손을 거치지 않고 척살령에 옥새를 찍을 수 없다. 한마디로 미실 척살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조문서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의 미실은 위조문서를 비담에 넘겨주고, 자살을 해버린다. 비담은 어머니 미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위조 척살령을 덕만에 건네주지 않고, 마침내 자신이 미실의 버려진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덕만이 비담을 배척하는 모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만큼 미실의 척살령은 비담이 어쩔 수 없이 난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원죄를 제공하는 것이다.  얼마나 미실의 자살이 어처구니 없는 설정인지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을 참조 하기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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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정상적인 것 같은 문서형식인 것 같은 간지도 맞고, 수결도 있는 비담 척살령을 춘추에 주었다. 하지만, 이 또한 드라마 작가나 제작진의 오류이다.


미실 척살령은 당연히 미실이 옥새를 관장하는 <새주>이니 옥새가 없고 <수결>만 있는 게  정상적이다. 하지만, 덕만은 왕으로 옥새를 관장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위조문서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척살령에 <수결>과 <옥새>가 찍혀 있어야 한다.


또한, 비담의 척살령 칙서에는 <병오년>간지를 사용했다. 병오년은 646년이다. 그러니 극중 시제는 비담이 이찬에서 상대등으로 임명된 646년 11월이 지난 상태라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정상적인 극중 흐름이지만, <년>다음에 <월>이 나와야 하지만 <경신일>로 건너 뛰어 버린다.


요즘으로 치면 2009년 <모월> 12일에 만든 문서라는 뜻이다. 12일은 1년에 12번은 있다. 당연히 언제 만든 문서인지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여전히 공문서가 지켜야할 기본적인 형식을 벗어났다는 뜻이다. 그러니 비담이 춘추가 내민 문서를 근거로 비담을 척살하려한다면 명분이 서지 않고 오히려 춘추가 역풍을 맞는다는 뜻이다. 또한, 간지와 함께 필히 사용해야 하는 게 연호이다. 미실의 척살령에는 <태창>을 써야 하고 비담 척살령은 선덕여왕 연호인 <인평>을 사용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미실의 척살령과 비담의 척살령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해 보았다.


문제는 642년 8월 대야성 전투에서 신라가 대패를 하고 비화군, 이서군, 압량주(경산)까지 밀리는 과정에서 646년 11월까지 시간이 활시위를 떠난 살과 같이 빠르게 지나갔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대야성을 빼앗기고 만 4년 3개월 동안 신라 내에서 4년을 싸웠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극중 어디에서도 4년 동안 싸웠다는 걸 알 수 는 없다. 단지 대야성 함락되고 얼마 되지 않아 이서군(청도)까지 빼앗겼다는 건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손이 오그라드는 전투신만 있는 게 아니다. 한마디로 극중 리얼리티가 또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는 뜻이다. 대야성에서 이서군까지 전투가 얼마나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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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년 7월 부터 646년까지는 동아시아에서는 국제전이 벌어지고 있는 시기였다. 신라가 쉽게 서쪽 40여개성을 빼앗긴 이유도 백제와 고구려가 동맹관계에 있어서 당항성을 친다는 전략에 말려들어 군대를 경기도 일원에 증파한 신라의 오판을 백제가 타고들어서 쟁취한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당나라 사신이 와서 고구려 원정에 동원할 청병을 요구하는 것처럼  645년 당 태종 이세민이 고구려를 침략할 때 백제는 당에 전수물자인 금광개 갑옷을 공급하고 향도를 자청하는 척하지만. 실제는 고구려와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신라는 당의 요구에 3만 대군으로 고구려 남쪽국경를 침략한다. 백제의 금광개 갑옷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07/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신라에서 백제 특산물 황칠을 찾는 수나라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신라가 남쪽변경을 치다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할 때 백제는 신라의 서쪽 7개성을 함락시켜 버린다. 고구려가 당나라와 일대 격전을 치를 때 후방에서는 백제와 신라의 전쟁이 있었다는 뜻이다. 고구려가 당군을 무찌른 이유도 후방에서 백제가 신라를 견제했기 때문이다. 신라는 이때 당나라 도와주려다 신라가 위기에 처하게 되는 시기였다. 그러니 당 사신이 함부로 신라를 얍보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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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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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2.10 0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 웃긴건 원래 비담을 죽여야하는 건 진덕여왕의 몫인데 말이죠.
    가장 실망했던 점이 진덕여왕을 빼놓은 점입니다.
    저도 원래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고자 하는 사람인데요...
    존재 자체도 불투명한 미실은 집어놓고 정작 선덕여왕 바로 뒤인 진덕여왕을 빼놓고 춘추가 왕이
    될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가 하고 있는 선덕여왕이 참.....
    진덕여왕 출연시키지도 않고 계백을 출연시키고 다른 떡밥을 던질때부터 50회이후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모든 역사서에서 인정하는 진덕여왕응을 빼놓고 허구적이라는 인물은 완전 미화시켜놓으니... 이거 원

  2. BlogIcon 라이너스™ 2009.12.10 0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비교해주셨네요^^
    잘보고갑니다. 좋은하루되세요~

  3. BlogIcon 좋은사람들 2009.12.10 0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리하십니다. 저 문서를 해독하시다니. ~ !!

  4. 임현철 2009.12.10 0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대단하시네요.

  5. BlogIcon 초록누리 2009.12.10 0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한가지 의문은 덕만이 비담에게 맹약서를 요구했나요?
    저는 비담이 자발적으로 써왔다고 생각했거든요.;;
    글과 관련 없는 말이지만 왜 죽이라는 명을 밀서로 남기는지 진흥제나 덕만이나 이햐가 안간다는 것지지용^^*

  6. BlogIcon labyrint 2009.12.10 1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오류가 많네요...
    음... 조금만 신경써도 저 정도는 아닐텐데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7. BlogIcon 뽀글 2009.12.10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이야기는 조금어려워요..ㅠ

  8. BlogIcon 892 2009.12.10 1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어려서 그런거는 잘 모르겟는데 ... 한 두번해봣 나 ???
    또 하구 싶은데 남자 친구가 군대에 가버렷네요 ㅠㅠ. 만.남 원합니다..
    haha10.com
    nunawa.com

  9. Maximin 2009.12.10 1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따위 막말 설정이라면 사실 승만이 덕만과 비담의 딸이라고 해도 납득될기세.
    그다음 비담은 딸과 덕만을 지키기 위해 일부로 반란을 일으킨다음 일부로 유신한테 만땅깨진다음
    간지나게 사망 한다는 같잖은 스토리가 나와도 시청률 올라갈 기세

    이건 뭐, 누구잘못인가.

  10. 2009.12.10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BlogIcon 초하(初夏) 2009.12.10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예 관련 글이 점차 더 전문화되고 있네요... ^&^
    이런 글을 어디서 다 찾아 쓰시는지... 대단하십니다!
    미실만한 연기 보기가 어려워 많이 아쉬운 시청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잘 지내시죠?
    날씨는 꿀꿀하지만, 즐겁고 신나는 오후 보내시길 바랍니다~~ ^&^

  12. 묘운 2009.12.10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이 비담에게 맹약서를 요구한게 아니라 비담 자신이 스스로 써온것이구요.
    비담을 믿지 못해서 춘추에게 비담척살령을 내린것이 아니라 비담을 믿지못하고 둘의 결합에
    불안해하는 춘추를 달래기 위해서, 그리고 후에 만약 비담의 세력이 커져 야망이 보인대도
    비담에 향한 연모때문에 강하게 나가지 못할까봐 지금 미리, 진도(?) 덜나갔을때 손쓴거죠.

  13. BlogIcon JiNi。 2009.12.16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오늘의 글도 예리하십니다.

  14. BlogIcon concessionaria kia 2012.09.10 2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이 문서에서 시간에 몇 가지 흥미로운 지점은 있지만 내가 그들의 마음 중심을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몇몇 유효 기간은하지만 더 이상 조사 때까지 기다 의견이 소요됩니다. 좋은 기사 감사하고 더 싶어요! 피드 버너뿐만 아니라에 추가

선덕여왕에서 김춘추(유승호)의 모습을 보면 40이 넘었는데도 애띤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속 신라인들의 모습은 어떠 했을까?

사실 선덕여왕은 역사 고증과는 하등 상관없는 정체를 알수 없는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드라마 사상 최초로 신라를 재현했다고 선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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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글로 선덕여왕에서 역사와 일치한 부분에 대해서 기사를 쓸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이번 글은 603년생 김춘추 유승호가 40이 넘었는데 수염이 없는 이유를 역사기록과 유물로 유추하고 증명하는 글이 될것이다.

양직공도의 백제사신


위의 그림은 양직공도에 나타난 백제 사신의 모습이다. 백제 사신의 얼굴을 보면 귀티나는 얼굴에 수염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백제인과 고구려는 의복이 비슷하다고 하였다. 그러니 고구려도 이와 비슷한 복장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구려 벽화에서 보듯이 고구려인은 의복에 다양한 문양을 한 의복을 입고 있었다.

국보 91호 금령총 출토 기마인물상


그렇다면 선덕여왕(632~647년)  시절 삼국의 고구려 백제 신라인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이를 알수 있는 방법은 신라의 경우 발견되고 있는 토우로 신라인의 복식를 알 수 있다. 신라인의 대표적인 모습은 기마인물상으로 대략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기마인물상에서 보듯이 신라인의 머리에는 꼬깔모자(변)와 비슷한 모자를 쓰고 있으며 눈은 전형적인 동양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왕회도, 좌측부터 백제,고구려,신라



위의 그림은 당나라 태종 이세민의 시대에 만들어진 <왕회도>로 당나라에 온 사신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은 626년 9월에 아버지 이연을 겁박해서 왕위를 찬탈한후 649년 7월까지 당나라 황제에 있었다.

그러므로 위의 <왕회도>는 626년 9월 ~ 649년 7월까지 24년동안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사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시기 기본적으로 삼국의 의상에는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 삼국 모두 폭이 좁은(?) 소매를 가지고 있다. 다만, 백제나  고구려 사신은 땡땡이 모양이나 문양 수를 놓은 의복을 입고 있고, 신라 사신은 수수한 복장을 하고 있다.

백제 사신의 귀는 일부러 늘린것 처럼 늘어져 있는 부처님의 귀를 하고,고구려 사신은 귀걸이를 하고 있다. 또한 고구려 사신은 조우관처럼 새깃털 장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체롭다. 또한, 백제인과 고구려인은 폭이 넓고 긴 허리띠를 하고 있지만 신라인은 허리띠가 단촐하고 보이지 않는다. 또한, 신라인은 머리를 기른 상태에서 묶지 않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신라인은 백제인이나 고구려인과 다르게 위의 금령총에서 나온 기마인물상과 같이 수염이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고, 금령총의 기마 인물상과 626~649년 사이의 신라 사신은 유사하게 찌져진 눈과 날카로운 코모양 까지 신라사신의 모습이 쌍둥이처럼 닮았다. 

신라의 관복을 알수 있는 기록은 504년 지증왕 5년 여름 4월에 상복(喪服)에 관한 법을 제정하여 반포하고 시행하였다. 또한, 520년 법흥왕 7년  봄 정월에 율령을 반포하고 처음으로 모든 관리의 공복(公服)과 붉은 색, 자주색으로 위계(位階)를 정하였다.

법흥왕 520년부터 진덕왕시기 649년 정월 처음으로 당의 복식을 사용하기 전까지 위의 <왕회도>의 신라 사신의 모습은 신라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신라 사신들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물론, 신라는 직위에 따라 복식의 색이 달랐다. 삼국사기 법흥왕때 복식조에 대나마·나마는 푸른 옷[靑衣]을 입고 있다고 하였으니, 색보정을 해봐야 확실하겠지만,  신라 사신은 대나마나 나마의 직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장회태자묘 벽화 신라사신?


위 그림은 당나라 이세민의 아들 고종과 측천무후의 둘째 아들인 장회태자묘에서 발견된 벽화에 나온 사신이 그동안 신라사신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책부원귀, 북사, 신당서의 기록에서 보듯이 고구려인의 전형적인 조우관을 쓰고 있다.

대신(大臣)은 푸른 비단관[靑羅冠]을 쓰고, 다음은 진홍색 비단[絳羅] 관을 쓰는데, 두 개의 새깃을 꽂고 금은으로 어지러이 테를 두르며, 저고리[衫]는 통소매[筩褎]이고, 바지는 통이 크고, 흰 가죽띠에 누른 가죽신을 신었다

장회태자묘에 나타난 고구려사신은 위의 <왕회도>와는 다르게 젊고 직급이 낮은 자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위의 사신은 왕회도의 신라사신처럼 수염이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프라시압 벽화 고구려사신

마찬가지로 아프라시압 벽화의 2명의 사신도 조우관을 쓴 고구려 사신임을 쉬이 알 수 있다.



위 토우 사진은 당의 복식을 하고 있고,  수염이 없는자와 수염이 있더라도 수염의 형태가 다양하다. 신라에서 뿐만 아니고 삼국은 공히 수염을 기르고 자르는 것으로 개성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당 복식의 토우가 발견된다는 의미는 해당 묘가 649년 이후에 조성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위의 그림은 김춘추의 영정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부분이 없다. 일단, 신라는 649년 부터 김춘추에 의해서 당의 복식으로 바꾸었다. 김춘추가 654년 29대 신라왕에 오를땐 당연히 출(出)자형 금관을 쓸 수가 없다. 또한, 기존 다수학설에 의하면 금관은 출자의 갯수가 많을수록 직위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김춘추는 왕인데도 불구하고 3단 출(出)자에 불과하다.



위의 <왕회도>의 사신이나 토우 등 여러 정황으로 보았을 때 신라나 고구려나 백제에는 현대와 같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10화랑과 김춘추 처럼 개인의 개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면도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가 사극에서 나이가 먹음 수염이 나고 길러야 한다는 <신체발부수지부모>의 환상은 조선시대의 유교적인 산물이지 삼국시대의 산물은 아니라는 뜻이다.

왕회도 신라사신,기마인물상,유승호


드라마 선덕여왕 김춘추 유승호의 모습에서 <기마인물상>이나 <왕회도>의 신라사신이 비슷해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인가? 다음편에서는 왕회도에 등장하는 사신이 누구인지를 알아 볼까 한다. 정확히는 혹시 김춘추가 당나라 사신으로 가면서 왕회도에 등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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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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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DJ야루 2009.11.27 0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이런 교과서에서는 나오지 않는 역사 얘기가 진짜 재밌는거 같아요ㅋㅋㅋㅋ

  3. BlogIcon 임현철 2009.11.27 0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포스팅입니다.

  4. BlogIcon 영웅전쟁 2009.11.27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글은 좀 어렵군요.
    나중에 편한 시간에 차분히 봐야겠습니다.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멋진 하루 엮어 가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27 2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가요? 쉬이 쓸려고 했는뎅. 좀 어렵긴 하지요..
      다음 글은 더 어려운뎅.. 쓰는걸 포기해야 겠군요.. ㅋㅋ

  5. BlogIcon labyrint 2009.11.27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수염이 없네요.
    혹시 환관이 아닐까요?
    아니면 공주? 가 남장한 것은 아닐지요... ㅋㅋ
    트랙백 걸고 갈께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27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럴지도요.. 아님 너무 어린 자들을 보냈는지동.. 암튼. 좀 그렇지요. 다양한 수염들과 현대식 말끔한 신라인.. ㅋㅋ

  6. BlogIcon 푸른솔™ 2009.11.27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 읽어도 재밌습니다.
    제가 아무래도 한국 고대사에 관심이 많다보니...
    오늘 포스팅은 많은 그림으로 인해 더 유익하네요.

  7. BlogIcon 뽀글 2009.11.27 1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과 비슷하긴 한데요^^;; 시대에 따라 옷에도 약간에 변화들이 있군요^^
    잘보고가요.

  8. BlogIcon 정민아빠 2009.11.27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사진과 비슷하네요.
    신기합니다. 혹시 이전에 유승호군이 정말로 살아있었던게 아닌지..

  9. BlogIcon 감자꿈 2009.11.27 1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비슷해 보이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11.27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저도 한참을 생각했음.. 비슷하다는걸..
      실은 대야성 전투가 끝나고 당에 사신으로 갈때 포스팅 할려고 했는뎅 너무 빠른 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공.. 암튼. 실패작입니당.

  10. BlogIcon 루비™ 2009.11.27 2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옷....정말 유승호랑 비슷하네요...ㅎ
    글을 읽고나니 수염이 없다는게 이해가 가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기마인물형토기의 쭉 찢어진 눈...
    너무 매력적이에요.
    일전에 기마인물형토기에 대해서 포스팅한 글 트랙백 걸고 갑니당~

  11. 갓쉰동님 광팬 2009.11.30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사극의 수염을 조금은 다른 의미로 생각합니다. 남자 배역들이 청년기에서 중년으로 넘어갔을때 나이가 들었음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 그나저나 신라사회에서 수염 안기르는게 자연스러운 풍습이었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12.01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쉽지요.. 사극은 시간의 흐름을 수염이나 가채로 해버리거나 비녀를 꼽는것으로 처리함 되니.. ㅋㅋ

      냅.. 머 뭍친 글이긴 하지만.. ㅋㅋ 언젠가 재활용을 해야겠어용.. ㅋㅋ

  12. 천개소문 2009.12.03 1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 연개소문의 옛날이름 그래도 드라마 김춘추는 사기입니다. 솔직히 비담정도 수염은 나야함
    비담,알천,용춘도 사기임 지금쯤 할배 되있어야 하는데...

  13. BlogIcon 동북아역사재단 2010.02.03 1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한중일 동북아시아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 맞추는 연구를 하고, 홍보를 하고 있는
    동북아 역사재단에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14. 냐온 2011.03.05 2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수염을 개성의 하나로 가꾸었다는 예기는 저도 공감합니다.
    가장 좋은 근거가 될수있는게 고구려 벽화중에 무덤주인공이 장막이 늘어진 좌석에 앉아있는게 있는데,
    수염을 잘 보시면, 무슨 톱늬처럼 다듬어 놓은모습을 볼수있어요. 수염을 패션의 하나로 인식해서 개인취향대로 다듬었음을 보여주죠.

  15. BlogIcon concessionaria fiat 2012.04.26 0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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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17.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8.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9. BlogIcon shock collars for dogs good or bad 2012.11.03 1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김유신같은 역사적 인물*만*을 빌려와 허구의 줄거리를 짜도 괜찮다고 보여집니다만 . 그래서 역사적 인물에 맞춰서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에 부합하지 않는 선덕여왕에 이리도 맹비난(비판 포함)을 퍼붓는 이곳 주인장과, 선덕 여왕 작가진은 다시는 사극 집필하지 말라는 악답을 퍼붓는 이곳 방문자가 좀 이해가 안 가서요. 사실 덕만의 출생 자체, 어린시절 서역에서 개고생한 설정부터가 사기인데...

  20. BlogIcon bung wrench substitute 2012.11.05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김유신같은 역사적 인물*만*을 빌려와 허구의 줄거리를 짜도 괜찮다고 보여집니다만 . 그래서 역사적 인물에 맞춰서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

  21. BlogIcon military mre meals 2012.11.15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선덕여왕은 역사 고증과는 하등 상관없는 정체를 알수 없는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드라마 사상 최초로 신라를 재현했다고 선전을 하였다

선덕여왕에서 김춘추(유승호)의 모습을 보면 40이 넘었는데도 애띤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속 신라인들의 모습은 어떠 했을까?

사실 선덕여왕은 역사 고증과는 하등 상관없는 정체를 알수 없는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드라마 사상 최초로 신라를 재현했다고 선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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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글로 선덕여왕에서 역사와 일치한 부분에 대해서 기사를 쓸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이번 글은 603년생 김춘추 유승호가 40이 넘었는데 수염이 없는 이유를 역사기록과 유물로 유추하고 증명하는 글이 될것이다.

양직공도의 백제사신


위의 그림은 양직공도에 나타난 백제 사신의 모습이다. 백제 사신의 얼굴을 보면 귀티나는 얼굴에 수염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백제인과 고구려는 의복이 비슷하다고 하였다. 그러니 고구려도 이와 비슷한 복장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구려 벽화에서 보듯이 고구려인은 의복에 다양한 문양을 한 의복을 입고 있었다.

국보 91호 금령총 출토 기마인물상


그렇다면 선덕여왕(632~647년)  시절 삼국의 고구려 백제 신라인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이를 알수 있는 방법은 신라의 경우 발견되고 있는 토우로 신라인의 복식를 알 수 있다. 신라인의 대표적인 모습은 기마인물상으로 대략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기마인물상에서 보듯이 신라인의 머리에는 꼬깔모자(변)와 비슷한 모자를 쓰고 있으며 눈은 전형적인 동양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왕회도, 좌측부터 백제,고구려,신라



위의 그림은 당나라 태종 이세민의 시대에 만들어진 <왕회도>로 당나라에 온 사신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은 626년 9월에 아버지 이연을 겁박해서 왕위를 찬탈한후 649년 7월까지 당나라 황제에 있었다.

그러므로 위의 <왕회도>는 626년 9월 ~ 649년 7월까지 24년동안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사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시기 기본적으로 삼국의 의상에는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 삼국 모두 폭이 좁은(?) 소매를 가지고 있다. 다만, 백제나  고구려 사신은 땡땡이 모양이나 문양 수를 놓은 의복을 입고 있고, 신라 사신은 수수한 복장을 하고 있다.

백제 사신의 귀는 일부러 늘린것 처럼 늘어져 있는 부처님의 귀를 하고,고구려 사신은 귀걸이를 하고 있다. 또한 고구려 사신은 조우관처럼 새깃털 장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체롭다. 또한, 백제인과 고구려인은 폭이 넓고 긴 허리띠를 하고 있지만 신라인은 허리띠가 단촐하고 보이지 않는다. 또한, 신라인은 머리를 기른 상태에서 묶지 않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신라인은 백제인이나 고구려인과 다르게 위의 금령총에서 나온 기마인물상과 같이 수염이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고, 금령총의 기마 인물상과 626~649년 사이의 신라 사신은 유사하게 찌져진 눈과 날카로운 코모양 까지 신라사신의 모습이 쌍둥이처럼 닮았다. 

신라의 관복을 알수 있는 기록은 504년 지증왕 5년 여름 4월에 상복(喪服)에 관한 법을 제정하여 반포하고 시행하였다. 또한, 520년 법흥왕 7년  봄 정월에 율령을 반포하고 처음으로 모든 관리의 공복(公服)과 붉은 색, 자주색으로 위계(位階)를 정하였다.

법흥왕 520년부터 진덕왕시기 649년 정월 처음으로 당의 복식을 사용하기 전까지 위의 <왕회도>의 신라 사신의 모습은 신라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신라 사신들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물론, 신라는 직위에 따라 복식의 색이 달랐다. 삼국사기 법흥왕때 복식조에 대나마·나마는 푸른 옷[靑衣]을 입고 있다고 하였으니, 색보정을 해봐야 확실하겠지만,  신라 사신은 대나마나 나마의 직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장회태자묘 벽화 신라사신?


위 그림은 당나라 이세민의 아들 고종과 측천무후의 둘째 아들인 장회태자묘에서 발견된 벽화에 나온 사신이 그동안 신라사신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책부원귀, 북사, 신당서의 기록에서 보듯이 고구려인의 전형적인 조우관을 쓰고 있다.

대신(大臣)은 푸른 비단관[靑羅冠]을 쓰고, 다음은 진홍색 비단[絳羅] 관을 쓰는데, 두 개의 새깃을 꽂고 금은으로 어지러이 테를 두르며, 저고리[衫]는 통소매[筩褎]이고, 바지는 통이 크고, 흰 가죽띠에 누른 가죽신을 신었다

장회태자묘에 나타난 고구려사신은 위의 <왕회도>와는 다르게 젊고 직급이 낮은 자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위의 사신은 왕회도의 신라사신처럼 수염이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프라시압 벽화 고구려사신

마찬가지로 아프라시압 벽화의 2명의 사신도 조우관을 쓴 고구려 사신임을 쉬이 알 수 있다.



위 토우 사진은 당의 복식을 하고 있고,  수염이 없는자와 수염이 있더라도 수염의 형태가 다양하다. 신라에서 뿐만 아니고 삼국은 공히 수염을 기르고 자르는 것으로 개성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당 복식의 토우가 발견된다는 의미는 해당 묘가 649년 이후에 조성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위의 그림은 김춘추의 영정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부분이 없다. 일단, 신라는 649년 부터 김춘추에 의해서 당의 복식으로 바꾸었다. 김춘추가 654년 29대 신라왕에 오를땐 당연히 출(出)자형 금관을 쓸 수가 없다. 또한, 기존 다수학설에 의하면 금관은 출자의 갯수가 많을수록 직위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김춘추는 왕인데도 불구하고 3단 출(出)자에 불과하다.



위의 <왕회도>의 사신이나 토우 등 여러 정황으로 보았을 때 신라나 고구려나 백제에는 현대와 같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10화랑과 김춘추 처럼 개인의 개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면도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가 사극에서 나이가 먹음 수염이 나고 길러야 한다는 <신체발부수지부모>의 환상은 조선시대의 유교적인 산물이지 삼국시대의 산물은 아니라는 뜻이다.

왕회도 신라사신,기마인물상,유승호


드라마 선덕여왕 김춘추 유승호의 모습에서 <기마인물상>이나 <왕회도>의 신라사신이 비슷해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인가? 다음편에서는 왕회도에 등장하는 사신이 누구인지를 알아 볼까 한다. 정확히는 혹시 김춘추가 당나라 사신으로 가면서 왕회도에 등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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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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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DJ야루 2009.11.27 0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이런 교과서에서는 나오지 않는 역사 얘기가 진짜 재밌는거 같아요ㅋㅋㅋㅋ

  3. BlogIcon 임현철 2009.11.27 0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포스팅입니다.

  4. BlogIcon 영웅전쟁 2009.11.27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글은 좀 어렵군요.
    나중에 편한 시간에 차분히 봐야겠습니다.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멋진 하루 엮어 가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27 2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가요? 쉬이 쓸려고 했는뎅. 좀 어렵긴 하지요..
      다음 글은 더 어려운뎅.. 쓰는걸 포기해야 겠군요.. ㅋㅋ

  5. BlogIcon labyrint 2009.11.27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수염이 없네요.
    혹시 환관이 아닐까요?
    아니면 공주? 가 남장한 것은 아닐지요... ㅋㅋ
    트랙백 걸고 갈께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27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럴지도요.. 아님 너무 어린 자들을 보냈는지동.. 암튼. 좀 그렇지요. 다양한 수염들과 현대식 말끔한 신라인.. ㅋㅋ

  6. BlogIcon 푸른솔™ 2009.11.27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 읽어도 재밌습니다.
    제가 아무래도 한국 고대사에 관심이 많다보니...
    오늘 포스팅은 많은 그림으로 인해 더 유익하네요.

  7. BlogIcon 뽀글 2009.11.27 1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과 비슷하긴 한데요^^;; 시대에 따라 옷에도 약간에 변화들이 있군요^^
    잘보고가요.

  8. BlogIcon 정민아빠 2009.11.27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사진과 비슷하네요.
    신기합니다. 혹시 이전에 유승호군이 정말로 살아있었던게 아닌지..

  9. BlogIcon 감자꿈 2009.11.27 1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비슷해 보이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11.27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저도 한참을 생각했음.. 비슷하다는걸..
      실은 대야성 전투가 끝나고 당에 사신으로 갈때 포스팅 할려고 했는뎅 너무 빠른 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공.. 암튼. 실패작입니당.

  10. BlogIcon 루비™ 2009.11.27 2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옷....정말 유승호랑 비슷하네요...ㅎ
    글을 읽고나니 수염이 없다는게 이해가 가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기마인물형토기의 쭉 찢어진 눈...
    너무 매력적이에요.
    일전에 기마인물형토기에 대해서 포스팅한 글 트랙백 걸고 갑니당~

  11. 갓쉰동님 광팬 2009.11.30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사극의 수염을 조금은 다른 의미로 생각합니다. 남자 배역들이 청년기에서 중년으로 넘어갔을때 나이가 들었음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 그나저나 신라사회에서 수염 안기르는게 자연스러운 풍습이었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12.01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쉽지요.. 사극은 시간의 흐름을 수염이나 가채로 해버리거나 비녀를 꼽는것으로 처리함 되니.. ㅋㅋ

      냅.. 머 뭍친 글이긴 하지만.. ㅋㅋ 언젠가 재활용을 해야겠어용.. ㅋㅋ

  12. 천개소문 2009.12.03 1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 연개소문의 옛날이름 그래도 드라마 김춘추는 사기입니다. 솔직히 비담정도 수염은 나야함
    비담,알천,용춘도 사기임 지금쯤 할배 되있어야 하는데...

  13. BlogIcon 동북아역사재단 2010.02.03 1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한중일 동북아시아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 맞추는 연구를 하고, 홍보를 하고 있는
    동북아 역사재단에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14. 냐온 2011.03.05 2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수염을 개성의 하나로 가꾸었다는 예기는 저도 공감합니다.
    가장 좋은 근거가 될수있는게 고구려 벽화중에 무덤주인공이 장막이 늘어진 좌석에 앉아있는게 있는데,
    수염을 잘 보시면, 무슨 톱늬처럼 다듬어 놓은모습을 볼수있어요. 수염을 패션의 하나로 인식해서 개인취향대로 다듬었음을 보여주죠.

  15. BlogIcon concessionaria fiat 2012.04.26 0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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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BlogIcon Pussy Porn 2012.07.14 1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17.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8.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9. BlogIcon shock collars for dogs good or bad 2012.11.03 1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김유신같은 역사적 인물*만*을 빌려와 허구의 줄거리를 짜도 괜찮다고 보여집니다만 . 그래서 역사적 인물에 맞춰서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에 부합하지 않는 선덕여왕에 이리도 맹비난(비판 포함)을 퍼붓는 이곳 주인장과, 선덕 여왕 작가진은 다시는 사극 집필하지 말라는 악답을 퍼붓는 이곳 방문자가 좀 이해가 안 가서요. 사실 덕만의 출생 자체, 어린시절 서역에서 개고생한 설정부터가 사기인데...

  20. BlogIcon bung wrench substitute 2012.11.05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김유신같은 역사적 인물*만*을 빌려와 허구의 줄거리를 짜도 괜찮다고 보여집니다만 . 그래서 역사적 인물에 맞춰서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

  21. BlogIcon military mre meals 2012.11.15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선덕여왕은 역사 고증과는 하등 상관없는 정체를 알수 없는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드라마 사상 최초로 신라를 재현했다고 선전을 하였다

드라마 선덕여왕 50회에서 미실이 대야성에서 자결로 죽음으로서 미실을 따르던 칠숙이 드라마 선덕여왕 51회에서 무장해제하려던 장군의 목을 치며, 칠숙의 난이라고 하자, 석품이 아닙니다. 칠숙과 석품의 난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무장해제를 하려던 주진공의 군사를 도륙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칠숙의 난이 일어나는 시간순으로 정리를 하면 다음과 같다.

김유신이 612년 풍월주 비재를 통해서 15대 풍월주에 오른다.
귀족들의 추수철 가뭄으로 궁휼시 매점매석으로 자신들의 배를 불린다.

병자년(615년), 덕만이 매점매석을 군량미를 전용하여 매점매석을 막는다.
덕만이 누진세를 만들자는 제안을 하자, 화백회의는 거부한다. 화백회의를 중망(다수결)로 바꾸려나 실패한다. 미실은 덕만을 탄핵한다.

기유년(649년) 유신이 화백회의 장에 들어가는 것을 기화로 미실은 난을 일으키고, 덕만을 역모혐의로 죽이려한다.

628년 이전, 당나라 사신이 들어온다. 미생은 당나라 건국 10년이 안되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덕만은 연을 이용해서 당나라 사신이 들어오자 <미실>이 역모를 하였다고 삐라를 뿌린다.

626년 가을 이세민이 당의 황제로 등극한다. 미실은 당나라 <국조> 이세민을 언급하면 당나라 사신과 애들 같은 전쟁놀이를 감행한다. 당나라 사신과 담판을 지고 나온 미실을 향해 덕만은 공개적인 재판을 요구한다. 하지만 미실은 화살을 날렸지만, 진흥왕을 살리고, 마야와 문노를 살리고 복중 쌍둥이 덕만과 천명을 살린 소엽도가 다시 화살을 대신 맞아 덕만을 살린다.

미실은 군을 이끌고 대야성에 농성하여 일대 결전을 기획한다. 하지만, 덕만이 대야성에 독을 푼다는 유언비어에 속아 대야성에서 독을 먹고 자결을 한다. 

631년 미실의 난, 칠숙의 난, 석품의 난이 일어나던 시점에 진평(백정)이 죽는다.

631년 덕만은 미실의 난을 칠숙과 석품의 난으로 공표한다. 그리고 칠숙과 석품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그러면 미실의 사람들을 죽일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미실은 국사를 불살랐던 진지를 폐위하고, 진평(백정)을 왕위에 옹립하였다. 이때 미실은 역사는 한줌의 거짓이 없어야 한다는 거칠부도 죽여 버려다. 역사는 필요할 때 언제든지 자의적으로 바꿔도 된다는 면에서 덕만과 미실는 차이가 없다. 결국 칠숙과 석품은 대야성에서 난을 일으켰다는 말이 된다.

난을 진압한 덕만은 미실파들이 가지고 있던, 건복 16년 건복40년에 하사 받은 토지를 몰수한다고 한다. 건복원년은 584년이다. 건복40년이면 623년이 된다. 원년에 태어난 비담은 극중에서 40살이 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덕만도 건복원년 이듬해에 태어났으니 40은 넘었다는 뜻이 된다. 631년 덕만이 왕위에 오른 때를 기준으로 하면, 비담은 48살이고, 덕만은 47살이 된다.

하지만 극중 설정은 진평왕 원년에 비담이 태어난다. 그러니 비담은 579년생이고, 덕만은 580년 생이다. 미실의 난, 칠숙의 난, 석품의 난이 일어난 해는 비담은 51살이고, 덕만은 50살이 된다. 비담과 덕만은 비담이 덕만을 짝사랑 하는 것처럼 이들은 운명 공동체이다. 한명이 태어난 해가 달라지면 다른이도 태어난 해에 따라 달라진다.

덕만과 천명이 <임술년>생이다. <임술년>은 602년이다. 그렇다면 덕만은 난이 일어난 때에 30살이 된다. 비담은 31살이 된다. 미실만 늙지 않고, 덕만도 비담도 유신도 늙지 않는 신국의 사람이다. 천명은 또다른 신성을 타고 나서 태어나자 마자 용수와 결혼하고, 603년, 2살때 춘추를 낳는다. 

다만 603년 태어난 춘추만이 631년이 되도록 11살로 살아, 크지도 않는 영계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진흥이나 을제 처럼 너무 늙어 버리는 조로증 환자가 있는 것처럼, 춘추처럼 자라야 할때 자라지 않는 지로증 환자도 있다. 비정상 환타지 세상이다. 같은 시간대에 살아가는 사람들 마다 각자 고유의 시간만이 흘러간다. 이런 설정이 극의 재미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변태이거나 머리에 총맞은 것이 분명하다.

어쨌든,
덕만은 비담에게 사량부령에 임명을 하고, 수하로 세종과 설원과 미생과 하종과 보종, 염종을 수하로 두고 왕실 감찰대를 만든다. 난을 진압하는데 공이 있던 주진과 유신과 춘추를 견재하기 위한 수단이다.
덕만은 어머니 마야와 어떻게 왕으로서 살아가야할 것인지 걱정을 하지만, 덕만은 잘 할것이라고 다짐한다.

632년 1월 덕만이 27대 신라의 왕으로 등극한다. 유신은 덕만에게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하고, 비담은 아낌없이 덕만의 모든것을 빼앗겠다고 다짐한다.

드라마상 미실의 난은 언제?

드라마상 미실이 난을 일으킨 때는 유신이 18세로 풍월주에 오른 2~3년 이내에 벌어진 일이 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극중에서 늙지도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유신의 풍월주가 되고 미실이 난을 일으키고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 시점까지 극중에서 <시제>가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612년 유신이 풍월주
615년 병자년 중과세안 발표, 미실 덕만 탄핵
647년 기유년 미실이 난을 일으킴
626년 이전 당나라 사신 도착
631년 미실의 난을 일으키다. 대야성으로 들어가 독약먹고 죽음,
631년 진평왕 재위 53년만에 죽음, 칠숙의 난, 석품을 난이라고 명명함
631년 덕만 27대 왕에 등극

드라마를 보신분이라면 미실이 언제 난을 일으키고, 덕만이 언제 왕위에 올랐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덕만은 언제 왕위에 올랐으며, 드라마의 실제 주인공인 고현정이 맡은 미실이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궁금해진다. 이를 알 수 있는사람은 드라마 제작자도 모른데 알고 있다면 천재이지 않을까 한다.

정상적이라면 미실이 난을 일으키지도 않았고, 가장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세력이 미실과 세종가문의 후손들이다. 미실은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 것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만든것 까지는 드라마 작가의 <창작>의 자유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극중 <시제>까지 이리 저리 갈지자 횡보 하는 것은 작가의 <창작의 자유>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


어찌되었던 MBC 제작 관계자에 따르면, 미실이 늙고 추한 미실을 원하지 않는 시청자의 요구때문에 <흑발마녀> 미실은 이해한다고 치자. 주인공 미실이야 남자의 정기를 빼앗아 <흑발마녀>가 되었다면 다른 등장인물도 같은 남녀 구분없이 마인들이니 미실을 두려워 했다는 <설정>이 무너져 버린다.

미실이나 다른 등장인물은 고사하고 덕만도 늙지 않고, 유신을 비롯한 10화랑들도 늙지 않으니 말이다. 신국의 사람들은 늙지 않는다는 뜻이다. 603년생인 춘추는, 631년 이때는 사춘기를 넘어서, 29살 장년이 되었을 텐데 늙지도 않고, 자라지도 않는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 물론, 김유신을 비롯한 10화랑은 612년 낭낭 18세라고 한다면, 631년이면 37살이 된다. 이들은 수염도 나지 않는 햇병아리들이고 신라는 현재와 같이 수염을 말끔이 깍는 것이 유행이였다는 뜻이지 않을까 한다.


드라마 극중 흐름상 615년 병자년 전후에 미실의 난이 있었다고 전개하는게 합리적이다. 극중에서 20년을 건너뛰어 631년에 칠숙의 난이 미실의 난이 될려면 극중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세월을 타고 흘러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덕만은 632년이 아닌 631년에 왕위에 올랐다는 뜻이 되고, 극중 시제의 합리성적인 전개상 병자년인 615년 전후에 왕위에 올랐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위에 언급을 했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뒤죽박죽 역사극이기 때문에 작가도 언제 덕만이 왕위에 올랐는지 알 수 없다.

역사기록에 왜 칠숙이 난을 일으켰는지 알고 싶다면 2009/07/26 -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기사를 읽어보시길 바란다.


그렇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그리고, 논란의 중심에 있지만, 드라마 선덕여왕 제작진이 성경처럼 떠받치고 있는 화랑세기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칠숙의 난을 지음해서 진평왕과 마야왕후의 몰년 이후를 기록에서 뽑아 보았다.

선덕공주(善德公主)가 점점 자라자 용봉의 자태와 태양의 위용이 왕위를 이을 만 하였다.
그 때는 마야황후가 이미 죽었(崩)고 왕위를 이을 아들이 달리 없었다. 그러므로 대왕은 (용춘)공을 마음에 두고 (천명)공주에게 그 지위 를 양보하도록 권하였다. (천명)공주는 효심으로 순종하였다. 이에 지위를 양보하고 출궁(出宮)을 하였다. 

선덕은 공이 능히 자기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여 사신(私臣)이 되기를 청하였다. 대왕이 이에 공에게 공주의 뜻을 받들도록 명하였다. 선덕은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감정이 풍부하였다. 공이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고 굳이 사양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받들게 되었는데 과연 자식이 없어 물러날 것을 청하였다. 대왕은 용수공에게 모시도록 명하였는데 또한 자식이 없었다.
  그 때 승만황후(僧滿皇后)가 … 아들을 낳자, 선덕의 지위를 대신하고자 하였는데 그 아들이 일찍 죽었다. 승만은 (용춘)공의 형제를 미워하였다. 공은 이에 지방으로 나갔다. 고구려에 출정하여 큰 공을 세우게 되자 승진하여 각간(角干)에 봉해졌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드라마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를때는 이미 마야왕후는 죽었다. 그래서 진평왕은 손씨 승만을 황후로 삼았고, 아들을 낳았지만, 일찍 죽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과 덕만이 적대적으로 그리지만 실제는 진평왕의 후황후가 되는 손승만과 덕만과의 왕위 쟁탈전이 된다는 것이다.

드라마처럼 마야가 덕만이 왕위에 오를 때 옆에 있었다면 덕만은 귀신 마야와 대화를 하고 귀신이 옆에 있었다는 납량극이 되고 만다. 물론, 이때까지 천명은 살아있었고, 덕만이 죽고, 진덕이 왕위에 있고, 춘추가 왕위에 오를때도 드라마 선덕여왕의 마야처럼 서 있어야 하지만, 드라마는 <재미?>를 위해서 천명도 죽여버렸다.


용춘이 고구려에 출정하여 큰 공을 세우게 되자 승진하여 각간(角干)에 봉해졌다.
이즈음 고구려와 유일한 전쟁은 신라 진평왕의 명으로 고구려의 낭비성을 공략하는 전쟁 밖에 없다. 낭비성 전쟁은 629년에 있었던 일이다. 김유신은 고구려 낭비성 전쟁을 통해서 처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51년(629) 가을 8월에 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였다. - 삼국사기 진평왕 51년 629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전쟁영웅인 진평왕을 찌질한 머저리 왕 진평왕, 서현과 멍청하고 유약한 용춘은 무인으로써 뛰어난 자들이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진평을 비롯해서 용춘과 서현을 모자란 사람으로 그리고 있지만 알고 보면 실제 진평왕 시기에 실세들이였다. 잘못된 드라마가 얼마나 많은 역사적 인물들을 왜곡(?)하고 있는지 알고 보면 쉬이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성군 세종이 진평으로 그렸거나 이순신을 용춘처럼 그렸다면 난리 칠 사람들 많을 것이다.

신라 진평왕이 왜 전쟁영웅이였는지 알고 싶다면, 다음 2009/09/26 - [역사이야기] - 중국 중추절은 신라 진평왕의 고구려 승전기념일?, 기사와
2009/09/27 - [역사이야기] - 추석, 한가위, 중추절과 차례상의 감춰진 진실찾기 기사를 읽어 보기 바란다.

어찌되었던 631년 칠숙이 난이 일어 났으니 낭비성 전쟁은 드라마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춘추와 문희의 사랑도 나오지 않는다. 더불어 덕만의 지기삼사인 모란꽃 사건은 나오지 않는다. 실은 덕만의 지기삼사중 <모란꽃 사건>은 이미 극중에서 실현이 되었다.

극을 보다 보면 서라벌의 궁성은 물론, 복야회의 산채와 미실이 난을 일으키던 대야성에서도 모란꽃은 만발한다.

모란꽃은 3~5월경에 피는데 눈발이 날리는 드라마 극중에서도 김영랑이 모란이 피기까지는 찬란한 봄을 기다리겠다는 말은 허황된 말이 되고 김영랑은 거짓말을 하게 된것이다. 

모란꽃은 봄을 기다리지 않고 미친 개나리 피듯이 눈내리는 신라 온 국토를 물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631년 여름 5월에 이찬 칠숙(柒宿)과 아찬 석품(石品)이 반란을 꾀하였다. 왕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칠숙을 붙잡아 동시(東市)에서 목베고 아울러 구족(九族)을 멸하였다. 아찬 석품은 도망하여 백제 국경에 이르렀다가 처와 자식을 보고싶은 생각에 낮에는 숨어 있고 밤에는 걸어 총산(叢山)에까지 돌아와, 한 나무꾼을 만나 옷을 벗고 해어진 나무꾼의 옷으로 갈아입고 나무를 지고서 몰래 집에 이르렀다가 잡혀 처형되었다. - 진평왕 53년 631년 5월 칠숙. 석품 반란

54년(632) 봄 정월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진평(眞平)이라 하고 한지(漢只)에 장사지냈다. 당 태종이 조칙을 내려 광록대부(光祿大夫)를 추증하고 부의(賻儀)로 200단(段)을 주었다.<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정관(貞觀) 6년(632) 임진 정월에 죽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신당서(新唐書)와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모두 『정관 5년(631) 신묘에 신라 왕 진평이 죽었다.』고 하였으니, 어찌하여 그것이 잘못되었을까? - 삼국사기 진평왕 54년 정월 진평왕 죽음

칠숙의 난을 진압하고도 1년후에 죽은 진평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난, 칠숙의 난, 석품의 난이 일어나자 시름시름 병이 깊어 난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마자 죽어 버린다. 이도 극의 <재미>를 위해서다.


극의 재미는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고 있을때 잘못된 설정에 웃음을 짓게되고, 개콘보다 재미가 있는건 사실이다. 그런데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위와 같이 <극중시제 불일치> 들을 극의 <재미>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드라마>가 갖춰야할 기본 장치와 개연성도 모를뿐만 아니고 더 나아가 나는 참 역사를 모른다는 자뻑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극은 역사를 알고 보면 재미요소가 최소한 10배 이상 추가 된다. 그리고 역사극이 망가지면 망가질수록 재미가 더 있다.


나머지 덕만은 몇살에 왕위에 올랐을까 등은  글이 길어져서 다음편에 송고할 예정이다. 간략이 이야기하면 덕만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의 아역을 했던 남지현 나이때 왕위에 올랐다는 것을 기록을 토대로 검증할 것이다.

역사를 작가 어떻게 그리던 상관없이 진평왕과 덕만시기 역사의 기록은 어떠했는지 알아보는 것도 재미 있지 않겠는가? 최소한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역사와 드라마 차이를 확실히 알고 가는 것이다. 인터넷이 좋은 점은 공짜라 배우는데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추천을 보면 대략 공짜 좋아하는 사람 비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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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되었다면 추천해 주실거죠? 한가지 부탁하면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서, 드라마니 어때 라는 드라마의 기초도 모르는데 역사까지 무지하고 네티켓까지 모르는 아동틱한 댓글은 사양합니다. 없는 시간내서 답글을 일일히 달아 드리는 글쓴이지만, 초딩보다 못한, 견적이 나오지 않는 댓글은 지우지는 않겠지만, 답글은 달지 않겠습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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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배리본즈 2009.11.17 0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17 0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동안 제가 글을 못써다눈? ㅋㅋ 농담인거 아시지요. 님 댓글의 행간을 읽어 버렸어용.. ㅋㅋ 역시 행간을 잘 읽어용.. 제가.. ^___^

  2.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11.17 0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렇다고 역사를 아는 건 아닙니다.)
    저는 예사로 봤는데, 신라국에 모란이 넘쳤군요.

    날이 차갑습니다. 건강관리 잘 하시고요.^^

  3.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1.17 0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작진도 님 글을 유심히 보나봐요. ㅋㅋ
    내일부터 수염다는 거 같던데... 다 늙는데 미실만 안늙는군요 ㅎㅎㅎ

  4. BlogIcon 영웅전쟁 2009.11.17 1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오늘은 일갈하셨군요...
    위 체리블로그님 말씀처럼 수염도 달고 뭐 하는것으로 봐선
    갓쉰동님 포스팅을 보는듯 합니다. ㅎㅎㅎ
    저도 젊은 처자들 사랑받으러 갈까 합니다.
    혹시 안 늙어갈지도 모르니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5. 무심공주(無心空舟) 2009.11.17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참...
    어제는 정말 김빠지던데요.

    포스팅 첫부분 말미에 100년의 차이가 있어요^^*

    건복원년은 584년이다. 건복40년이면 523년이 된다. 수정부탁드려요.

    항상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6. BlogIcon labyrint 2009.11.17 1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극이 아니라... 무협사극 같아요...
    631년에 칠숙의 난인데... 갑자기 631년에 진평왕이 죽으면 안되지요...
    1년은 어떻게 끌어야 되는데...
    트랙백 걸었습니다.
    아침에 걸고 바빠서 이제서야 신고하네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17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협사극도 나름대로 룰이 있지요.. 이 선덕여왕은 룰도 없어용.. ㅋㅋ 당연히 끌어야 하는데.. 칠숙보다 먼저 죽이는 저 대담함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어용.. ㅋㅋ

  7. 하하하 2009.11.17 16: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죽하면 저희 어머니께서는
    이거 잘하면 비담이 덕만을 잡을지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저는 저사람들이 양심이 있으면 그렇겐 안한다고 했지만 말이죠,,

  8. BlogIcon JiNi。 2009.11.17 2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덕분에 역사는 제대로 알고 가는데 선덕여왕 재미가 너무 없어 졌어요.ㅎㅎ
    선덕여왕, 초기에는 너무 재미 있었는데 드라마가 너무 삼천포로 빠지니 갓쉰동님의 영양가 있는 글이 아니었으면 제 역사 지식이 뻥이 될뻔 했습니다.

  9. seounduk 2009.11.18 2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 님 덕에 요즘 많은 것을 알고 갑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
    선덕여왕에 숨은 옥티들, 선덕여왕에 숨은 비밀? 등을 다 캐내어서...
    전 그렇게 못보겠던데..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

  10. BlogIcon concessionaria fiat 2012.04.26 04: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그냥 말할 수 실제로 인터넷에서 무슨 얘기를 theyre 아는 사람을 찾아 다행이다. 당신은 확실히 빛과 중요한하기 위해 문제를 가지고하는 방법을 알고. 많은 사람이 읽고 이야기의 측면을 이해해야합니다. 난 어차피 당신은 확실히 재능이 있기 때문에 더 인기 개봉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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