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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미실 척살령은 진흥왕이 사후에 미실이 진흥왕 자신처럼 불교에 귀의하지 않고 정치에 관여를 한다면 척살하라고 설원에게 밀서형식의 척살령을 내린다.


비담의 척살령도 미실의 척살령과 같이 덕만과 결혼한 이후 덕만은 궁을 떠날 것을 생각하고, 만약, 비담이 정치에 관여를 한다면 비담을 척살하라고 춘추에게 밀서를 내린다.


어머니 미실의 척살령과 아들 비담의 척살령은 사후에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마디로 미실과 비담은 왕실에서 버린 받는 다는 설정이고, 이를 간파한 미실이 설원과 모의해서 진흥을 독살하려한다.


진흥은 왕위를 첫째인 동륜태자의 아들인 백정(진평)에게 물려주려 하는 것 처럼, 덕만도 비담과 국혼을 한 이후 왕위를 춘추에게 물려준다는 암시를 맹약서에 담아 두고 있다. 맹약서에 <이궁(離宮)>은 ‘궁을 떠난다’는 뜻이다. 왕이 궁을 떠난다는 뜻은 왕위를 선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선위의 대상은 춘추가 될 것이다. 비담과 국혼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12/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은 언제 처음 결혼했을까? - 비담과의 결혼은 사실일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참고 기사들은 글 말미에 관련기사 목록를 별도로 만들었으니 글을 다 읽고 추천 후 일독을 권함 )


진흥왕은 말년에 영흥사에 들어가 법의를 입고 생활하기도 했고, 진흥왕의 비인 사도비 또한, 진흥왕 사후에 영흥사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었다. 화랑세기에는 미실과 설원과 세종도 영흥사에 들어가 말년을 보냈다고 하였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비구니처럼 살던 미실과 세종과 설원을 역모에 연루시켜 버렸다. 한마디로 이순신이 일본군과 함께 선조를 내몰고 역모를 한다는 설정만큼 어처구니없다.

 

어쨌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척살령과 비담의 척살령 닮은꼴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사이에 차이점은 없을까? 진흥왕은 미실에게 맹약서를 받지 않고 말로 때웠지만, 덕만은 비담을 믿지 못하고, 맹약서를 요구한다. 비담은 덕만의 요구에 순순히 맹약서를 작성하고 정치적 욕망이 아닌 사랑을 택한다. 하지만, 덕만은 비담을 믿지 못하고, 춘추에게 자신의 사후 비담이 정치에 관여를 한다면 죽여 버리라고 요구한다.

 

비담의 척살령과 미실의 척살령에는 공통점만이 있는 건 아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척살령을 보면, 극중에서 오류를 몇 가지 발견할 수 있다. 일단, 미실의 척살령에는 공식 문서의 형식을 띄고 있고, 비담의 척살령은 사문서 형식을 띄고 있다. 만약, 비담이 맹약를 어기고 덕만이 죽고, 정치일선에 복귀할 때, 춘추가 덕만의 척살령을 근거로 비담을 옥죄일 때, 비담은 척살령을 인정하지 않고, 춘추가 조작했다는 혐의를 씌우면 빠져나갈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미실의 척살령은 간지로 무신년을 사용하고 있다. 무신년은 공교롭게도 588년이다. 진흥왕은 576년에 죽었는데, 죽은 후 진흥왕이 설원에게 척살밀명을 줄 수가 없다. 또한, 공문서의 형식을 취한 진흥왕의 미실 척살령은 기본적인 드라마 설정 오류를 범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미실은 옥새를 관장하는 <새주>였다. 그러니 아무리 진흥왕이 왕이라고 하더라도 미실의 손을 거치지 않고 척살령에 옥새를 찍을 수 없다. 한마디로 미실 척살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조문서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의 미실은 위조문서를 비담에 넘겨주고, 자살을 해버린다. 비담은 어머니 미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위조 척살령을 덕만에 건네주지 않고, 마침내 자신이 미실의 버려진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덕만이 비담을 배척하는 모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만큼 미실의 척살령은 비담이 어쩔 수 없이 난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원죄를 제공하는 것이다.  얼마나 미실의 자살이 어처구니 없는 설정인지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을 참조 하기바란다.

2009/11/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진흥왕(이순재) 신라의적 미실(고현정)척살 - 만화보다 못한 미실 죽음 고현정 하차

2009/10/2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기유년 미실의 난과 죽음, 극중 리얼리티 ZERO

진흥왕의 정상적인 미실 척살령이 되려면 옥새는 찍지 않고, 진흥왕의 수결이 되어야 하고, 진흥왕이 죽는 시점인 576년 병신년 간지를 써야한다고 기사를 전송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정상적인 것 같은 문서형식인 것 같은 간지도 맞고, 수결도 있는 비담 척살령을 춘추에 주었다. 하지만, 이 또한 드라마 작가나 제작진의 오류이다.


미실 척살령은 당연히 미실이 옥새를 관장하는 <새주>이니 옥새가 없고 <수결>만 있는 게  정상적이다. 하지만, 덕만은 왕으로 옥새를 관장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위조문서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척살령에 <수결>과 <옥새>가 찍혀 있어야 한다.


또한, 비담의 척살령 칙서에는 <병오년>간지를 사용했다. 병오년은 646년이다. 그러니 극중 시제는 비담이 이찬에서 상대등으로 임명된 646년 11월이 지난 상태라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정상적인 극중 흐름이지만, <년>다음에 <월>이 나와야 하지만 <경신일>로 건너 뛰어 버린다.


요즘으로 치면 2009년 <모월> 12일에 만든 문서라는 뜻이다. 12일은 1년에 12번은 있다. 당연히 언제 만든 문서인지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여전히 공문서가 지켜야할 기본적인 형식을 벗어났다는 뜻이다. 그러니 비담이 춘추가 내민 문서를 근거로 비담을 척살하려한다면 명분이 서지 않고 오히려 춘추가 역풍을 맞는다는 뜻이다. 또한, 간지와 함께 필히 사용해야 하는 게 연호이다. 미실의 척살령에는 <태창>을 써야 하고 비담 척살령은 선덕여왕 연호인 <인평>을 사용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미실의 척살령과 비담의 척살령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해 보았다.


문제는 642년 8월 대야성 전투에서 신라가 대패를 하고 비화군, 이서군, 압량주(경산)까지 밀리는 과정에서 646년 11월까지 시간이 활시위를 떠난 살과 같이 빠르게 지나갔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대야성을 빼앗기고 만 4년 3개월 동안 신라 내에서 4년을 싸웠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극중 어디에서도 4년 동안 싸웠다는 걸 알 수 는 없다. 단지 대야성 함락되고 얼마 되지 않아 이서군(청도)까지 빼앗겼다는 건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손이 오그라드는 전투신만 있는 게 아니다. 한마디로 극중 리얼리티가 또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는 뜻이다. 대야성에서 이서군까지 전투가 얼마나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12/0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의 부자감세 백제 침공을 자초했다.
2009/12/0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 척살령이 떡밥인 몇가지 이유
2009/12/08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낚시 비담 척살령과 덤앤더머 계백과 유신 그리고 황당한 당나라 사신

642년 7월 부터 646년까지는 동아시아에서는 국제전이 벌어지고 있는 시기였다. 신라가 쉽게 서쪽 40여개성을 빼앗긴 이유도 백제와 고구려가 동맹관계에 있어서 당항성을 친다는 전략에 말려들어 군대를 경기도 일원에 증파한 신라의 오판을 백제가 타고들어서 쟁취한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당나라 사신이 와서 고구려 원정에 동원할 청병을 요구하는 것처럼  645년 당 태종 이세민이 고구려를 침략할 때 백제는 당에 전수물자인 금광개 갑옷을 공급하고 향도를 자청하는 척하지만. 실제는 고구려와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신라는 당의 요구에 3만 대군으로 고구려 남쪽국경를 침략한다. 백제의 금광개 갑옷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07/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신라에서 백제 특산물 황칠을 찾는 수나라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신라가 남쪽변경을 치다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할 때 백제는 신라의 서쪽 7개성을 함락시켜 버린다. 고구려가 당나라와 일대 격전을 치를 때 후방에서는 백제와 신라의 전쟁이 있었다는 뜻이다. 고구려가 당군을 무찌른 이유도 후방에서 백제가 신라를 견제했기 때문이다. 신라는 이때 당나라 도와주려다 신라가 위기에 처하게 되는 시기였다. 그러니 당 사신이 함부로 신라를 얍보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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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은 언제 처음 결혼했을까? - 비담과의 결혼은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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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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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2.10 0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 웃긴건 원래 비담을 죽여야하는 건 진덕여왕의 몫인데 말이죠.
    가장 실망했던 점이 진덕여왕을 빼놓은 점입니다.
    저도 원래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고자 하는 사람인데요...
    존재 자체도 불투명한 미실은 집어놓고 정작 선덕여왕 바로 뒤인 진덕여왕을 빼놓고 춘추가 왕이
    될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가 하고 있는 선덕여왕이 참.....
    진덕여왕 출연시키지도 않고 계백을 출연시키고 다른 떡밥을 던질때부터 50회이후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모든 역사서에서 인정하는 진덕여왕응을 빼놓고 허구적이라는 인물은 완전 미화시켜놓으니... 이거 원

  2. BlogIcon 라이너스™ 2009.12.10 0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비교해주셨네요^^
    잘보고갑니다. 좋은하루되세요~

  3. BlogIcon 좋은사람들 2009.12.10 0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리하십니다. 저 문서를 해독하시다니. ~ !!

  4. 임현철 2009.12.10 0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대단하시네요.

  5. BlogIcon 초록누리 2009.12.10 0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한가지 의문은 덕만이 비담에게 맹약서를 요구했나요?
    저는 비담이 자발적으로 써왔다고 생각했거든요.;;
    글과 관련 없는 말이지만 왜 죽이라는 명을 밀서로 남기는지 진흥제나 덕만이나 이햐가 안간다는 것지지용^^*

  6. BlogIcon labyrint 2009.12.10 1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오류가 많네요...
    음... 조금만 신경써도 저 정도는 아닐텐데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7. BlogIcon 뽀글 2009.12.10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이야기는 조금어려워요..ㅠ

  8. BlogIcon 892 2009.12.10 1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어려서 그런거는 잘 모르겟는데 ... 한 두번해봣 나 ???
    또 하구 싶은데 남자 친구가 군대에 가버렷네요 ㅠㅠ. 만.남 원합니다..
    haha10.com
    nunawa.com

  9. Maximin 2009.12.10 1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따위 막말 설정이라면 사실 승만이 덕만과 비담의 딸이라고 해도 납득될기세.
    그다음 비담은 딸과 덕만을 지키기 위해 일부로 반란을 일으킨다음 일부로 유신한테 만땅깨진다음
    간지나게 사망 한다는 같잖은 스토리가 나와도 시청률 올라갈 기세

    이건 뭐, 누구잘못인가.

  10. 2009.12.10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BlogIcon 초하(初夏) 2009.12.10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예 관련 글이 점차 더 전문화되고 있네요... ^&^
    이런 글을 어디서 다 찾아 쓰시는지... 대단하십니다!
    미실만한 연기 보기가 어려워 많이 아쉬운 시청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잘 지내시죠?
    날씨는 꿀꿀하지만, 즐겁고 신나는 오후 보내시길 바랍니다~~ ^&^

  12. 묘운 2009.12.10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이 비담에게 맹약서를 요구한게 아니라 비담 자신이 스스로 써온것이구요.
    비담을 믿지 못해서 춘추에게 비담척살령을 내린것이 아니라 비담을 믿지못하고 둘의 결합에
    불안해하는 춘추를 달래기 위해서, 그리고 후에 만약 비담의 세력이 커져 야망이 보인대도
    비담에 향한 연모때문에 강하게 나가지 못할까봐 지금 미리, 진도(?) 덜나갔을때 손쓴거죠.

  13. BlogIcon JiNi。 2009.12.16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오늘의 글도 예리하십니다.

  14. BlogIcon concessionaria kia 2012.09.10 2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이 문서에서 시간에 몇 가지 흥미로운 지점은 있지만 내가 그들의 마음 중심을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몇몇 유효 기간은하지만 더 이상 조사 때까지 기다 의견이 소요됩니다. 좋은 기사 감사하고 더 싶어요! 피드 버너뿐만 아니라에 추가

미실 척살령은 진흥왕이 사후에 미실이 진흥왕 자신처럼 불교에 귀의하지 않고 정치에 관여를 한다면 척살하라고 설원에게 밀서형식의 척살령을 내린다.


비담의 척살령도 미실의 척살령과 같이 덕만과 결혼한 이후 덕만은 궁을 떠날 것을 생각하고, 만약, 비담이 정치에 관여를 한다면 비담을 척살하라고 춘추에게 밀서를 내린다.


어머니 미실의 척살령과 아들 비담의 척살령은 사후에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마디로 미실과 비담은 왕실에서 버린 받는 다는 설정이고, 이를 간파한 미실이 설원과 모의해서 진흥을 독살하려한다.


진흥은 왕위를 첫째인 동륜태자의 아들인 백정(진평)에게 물려주려 하는 것 처럼, 덕만도 비담과 국혼을 한 이후 왕위를 춘추에게 물려준다는 암시를 맹약서에 담아 두고 있다. 맹약서에 <이궁(離宮)>은 ‘궁을 떠난다’는 뜻이다. 왕이 궁을 떠난다는 뜻은 왕위를 선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선위의 대상은 춘추가 될 것이다. 비담과 국혼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12/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은 언제 처음 결혼했을까? - 비담과의 결혼은 사실일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참고 기사들은 글 말미에 관련기사 목록를 별도로 만들었으니 글을 다 읽고 추천 후 일독을 권함 )


진흥왕은 말년에 영흥사에 들어가 법의를 입고 생활하기도 했고, 진흥왕의 비인 사도비 또한, 진흥왕 사후에 영흥사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었다. 화랑세기에는 미실과 설원과 세종도 영흥사에 들어가 말년을 보냈다고 하였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비구니처럼 살던 미실과 세종과 설원을 역모에 연루시켜 버렸다. 한마디로 이순신이 일본군과 함께 선조를 내몰고 역모를 한다는 설정만큼 어처구니없다.

 

어쨌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척살령과 비담의 척살령 닮은꼴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사이에 차이점은 없을까? 진흥왕은 미실에게 맹약서를 받지 않고 말로 때웠지만, 덕만은 비담을 믿지 못하고, 맹약서를 요구한다. 비담은 덕만의 요구에 순순히 맹약서를 작성하고 정치적 욕망이 아닌 사랑을 택한다. 하지만, 덕만은 비담을 믿지 못하고, 춘추에게 자신의 사후 비담이 정치에 관여를 한다면 죽여 버리라고 요구한다.

 

비담의 척살령과 미실의 척살령에는 공통점만이 있는 건 아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척살령을 보면, 극중에서 오류를 몇 가지 발견할 수 있다. 일단, 미실의 척살령에는 공식 문서의 형식을 띄고 있고, 비담의 척살령은 사문서 형식을 띄고 있다. 만약, 비담이 맹약를 어기고 덕만이 죽고, 정치일선에 복귀할 때, 춘추가 덕만의 척살령을 근거로 비담을 옥죄일 때, 비담은 척살령을 인정하지 않고, 춘추가 조작했다는 혐의를 씌우면 빠져나갈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미실의 척살령은 간지로 무신년을 사용하고 있다. 무신년은 공교롭게도 588년이다. 진흥왕은 576년에 죽었는데, 죽은 후 진흥왕이 설원에게 척살밀명을 줄 수가 없다. 또한, 공문서의 형식을 취한 진흥왕의 미실 척살령은 기본적인 드라마 설정 오류를 범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미실은 옥새를 관장하는 <새주>였다. 그러니 아무리 진흥왕이 왕이라고 하더라도 미실의 손을 거치지 않고 척살령에 옥새를 찍을 수 없다. 한마디로 미실 척살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조문서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의 미실은 위조문서를 비담에 넘겨주고, 자살을 해버린다. 비담은 어머니 미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위조 척살령을 덕만에 건네주지 않고, 마침내 자신이 미실의 버려진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덕만이 비담을 배척하는 모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만큼 미실의 척살령은 비담이 어쩔 수 없이 난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원죄를 제공하는 것이다.  얼마나 미실의 자살이 어처구니 없는 설정인지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을 참조 하기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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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의 정상적인 미실 척살령이 되려면 옥새는 찍지 않고, 진흥왕의 수결이 되어야 하고, 진흥왕이 죽는 시점인 576년 병신년 간지를 써야한다고 기사를 전송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정상적인 것 같은 문서형식인 것 같은 간지도 맞고, 수결도 있는 비담 척살령을 춘추에 주었다. 하지만, 이 또한 드라마 작가나 제작진의 오류이다.


미실 척살령은 당연히 미실이 옥새를 관장하는 <새주>이니 옥새가 없고 <수결>만 있는 게  정상적이다. 하지만, 덕만은 왕으로 옥새를 관장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위조문서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척살령에 <수결>과 <옥새>가 찍혀 있어야 한다.


또한, 비담의 척살령 칙서에는 <병오년>간지를 사용했다. 병오년은 646년이다. 그러니 극중 시제는 비담이 이찬에서 상대등으로 임명된 646년 11월이 지난 상태라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정상적인 극중 흐름이지만, <년>다음에 <월>이 나와야 하지만 <경신일>로 건너 뛰어 버린다.


요즘으로 치면 2009년 <모월> 12일에 만든 문서라는 뜻이다. 12일은 1년에 12번은 있다. 당연히 언제 만든 문서인지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여전히 공문서가 지켜야할 기본적인 형식을 벗어났다는 뜻이다. 그러니 비담이 춘추가 내민 문서를 근거로 비담을 척살하려한다면 명분이 서지 않고 오히려 춘추가 역풍을 맞는다는 뜻이다. 또한, 간지와 함께 필히 사용해야 하는 게 연호이다. 미실의 척살령에는 <태창>을 써야 하고 비담 척살령은 선덕여왕 연호인 <인평>을 사용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미실의 척살령과 비담의 척살령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해 보았다.


문제는 642년 8월 대야성 전투에서 신라가 대패를 하고 비화군, 이서군, 압량주(경산)까지 밀리는 과정에서 646년 11월까지 시간이 활시위를 떠난 살과 같이 빠르게 지나갔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대야성을 빼앗기고 만 4년 3개월 동안 신라 내에서 4년을 싸웠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극중 어디에서도 4년 동안 싸웠다는 걸 알 수 는 없다. 단지 대야성 함락되고 얼마 되지 않아 이서군(청도)까지 빼앗겼다는 건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손이 오그라드는 전투신만 있는 게 아니다. 한마디로 극중 리얼리티가 또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는 뜻이다. 대야성에서 이서군까지 전투가 얼마나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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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년 7월 부터 646년까지는 동아시아에서는 국제전이 벌어지고 있는 시기였다. 신라가 쉽게 서쪽 40여개성을 빼앗긴 이유도 백제와 고구려가 동맹관계에 있어서 당항성을 친다는 전략에 말려들어 군대를 경기도 일원에 증파한 신라의 오판을 백제가 타고들어서 쟁취한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당나라 사신이 와서 고구려 원정에 동원할 청병을 요구하는 것처럼  645년 당 태종 이세민이 고구려를 침략할 때 백제는 당에 전수물자인 금광개 갑옷을 공급하고 향도를 자청하는 척하지만. 실제는 고구려와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신라는 당의 요구에 3만 대군으로 고구려 남쪽국경를 침략한다. 백제의 금광개 갑옷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07/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신라에서 백제 특산물 황칠을 찾는 수나라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신라가 남쪽변경을 치다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할 때 백제는 신라의 서쪽 7개성을 함락시켜 버린다. 고구려가 당나라와 일대 격전을 치를 때 후방에서는 백제와 신라의 전쟁이 있었다는 뜻이다. 고구려가 당군을 무찌른 이유도 후방에서 백제가 신라를 견제했기 때문이다. 신라는 이때 당나라 도와주려다 신라가 위기에 처하게 되는 시기였다. 그러니 당 사신이 함부로 신라를 얍보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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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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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2.10 0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 웃긴건 원래 비담을 죽여야하는 건 진덕여왕의 몫인데 말이죠.
    가장 실망했던 점이 진덕여왕을 빼놓은 점입니다.
    저도 원래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고자 하는 사람인데요...
    존재 자체도 불투명한 미실은 집어놓고 정작 선덕여왕 바로 뒤인 진덕여왕을 빼놓고 춘추가 왕이
    될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가 하고 있는 선덕여왕이 참.....
    진덕여왕 출연시키지도 않고 계백을 출연시키고 다른 떡밥을 던질때부터 50회이후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모든 역사서에서 인정하는 진덕여왕응을 빼놓고 허구적이라는 인물은 완전 미화시켜놓으니... 이거 원

  2. BlogIcon 라이너스™ 2009.12.10 0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비교해주셨네요^^
    잘보고갑니다. 좋은하루되세요~

  3. BlogIcon 좋은사람들 2009.12.10 0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리하십니다. 저 문서를 해독하시다니. ~ !!

  4. 임현철 2009.12.10 0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대단하시네요.

  5. BlogIcon 초록누리 2009.12.10 0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한가지 의문은 덕만이 비담에게 맹약서를 요구했나요?
    저는 비담이 자발적으로 써왔다고 생각했거든요.;;
    글과 관련 없는 말이지만 왜 죽이라는 명을 밀서로 남기는지 진흥제나 덕만이나 이햐가 안간다는 것지지용^^*

  6. BlogIcon labyrint 2009.12.10 1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오류가 많네요...
    음... 조금만 신경써도 저 정도는 아닐텐데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7. BlogIcon 뽀글 2009.12.10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이야기는 조금어려워요..ㅠ

  8. BlogIcon 892 2009.12.10 1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어려서 그런거는 잘 모르겟는데 ... 한 두번해봣 나 ???
    또 하구 싶은데 남자 친구가 군대에 가버렷네요 ㅠㅠ. 만.남 원합니다..
    haha10.com
    nunawa.com

  9. Maximin 2009.12.10 1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따위 막말 설정이라면 사실 승만이 덕만과 비담의 딸이라고 해도 납득될기세.
    그다음 비담은 딸과 덕만을 지키기 위해 일부로 반란을 일으킨다음 일부로 유신한테 만땅깨진다음
    간지나게 사망 한다는 같잖은 스토리가 나와도 시청률 올라갈 기세

    이건 뭐, 누구잘못인가.

  10. 2009.12.10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BlogIcon 초하(初夏) 2009.12.10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예 관련 글이 점차 더 전문화되고 있네요... ^&^
    이런 글을 어디서 다 찾아 쓰시는지... 대단하십니다!
    미실만한 연기 보기가 어려워 많이 아쉬운 시청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잘 지내시죠?
    날씨는 꿀꿀하지만, 즐겁고 신나는 오후 보내시길 바랍니다~~ ^&^

  12. 묘운 2009.12.10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이 비담에게 맹약서를 요구한게 아니라 비담 자신이 스스로 써온것이구요.
    비담을 믿지 못해서 춘추에게 비담척살령을 내린것이 아니라 비담을 믿지못하고 둘의 결합에
    불안해하는 춘추를 달래기 위해서, 그리고 후에 만약 비담의 세력이 커져 야망이 보인대도
    비담에 향한 연모때문에 강하게 나가지 못할까봐 지금 미리, 진도(?) 덜나갔을때 손쓴거죠.

  13. BlogIcon JiNi。 2009.12.16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오늘의 글도 예리하십니다.

  14. BlogIcon concessionaria kia 2012.09.10 2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이 문서에서 시간에 몇 가지 흥미로운 지점은 있지만 내가 그들의 마음 중심을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몇몇 유효 기간은하지만 더 이상 조사 때까지 기다 의견이 소요됩니다. 좋은 기사 감사하고 더 싶어요! 피드 버너뿐만 아니라에 추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과 덕만사이에 국혼이 진행된다.  비담과 덕만의 국혼이 성사되는 이유는 다른 이유가 없다. 비담을 좋아하는 팬들이 비담과 덕만의 사랑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에 의해서다.

덕만과 비담의 러브라인 요구를 하게 된 이유는 작가들이 드라마 전개를 전혀 역사와 부합되지 않게 전개하고 있으니, 드라마를 보는 아무 생각없는 시청자중 자기들이 좋아하는 배우가 극중에 많이 나오고, 이왕이면 왕과 썸씽이 있는게 좋지 않는가 하는 요구를 시청율에 목맨 작가들와 제작자가 어짜피 버린몸 시청율이나 올려보자는 알팍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와는 무관하지 오래이니, 차라리 덕만과 춘추의 결혼이 더 낫지 않을까 하지만 말이다. 춘추와 덕만은 안된다고? 하다면 드라마 인데 어떻겠는가? 어짜피 드라마 선덕여왕은 환타지 사극도 아니고 퓨젼사극도 아니고, 드라마가 갖춰야 할 개연성이나 스토리 구조는 망가질 때로 망가졌는데 말이다. 현재 드라마는 개그 프로 보다도 못한 상태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실이 떠나고 드라마 선덕여왕의 이야기가 재미가 없어지고, 극중 개연성도 없어졌다고 하지만, 실제는 미실이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할때 부터 선덕여왕은 극으로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덤앤더머의 최고봉은 미실과 설원과 덕만이였다.

오히려 미실이 떠난 상황에서 드라마 선덕여왕이 그나마 개연성도 확보하고 드라마 다워졌지만, 미실이 있을 때 보이지 않던 흠결들이 미실이 떠난 후 개안을 하듯이 흠결들이 부각되었을 뿐이다. 
 
바보들의 행진은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시대의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이 세상과 동떨어진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보들이란 자조적이고 역설적인 표현이였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미실이나 덕만이나 유신이나 모든 배역들이 정말 바보들일 뿐이다. 혹시 배역을 맡은 배우들 까지 역사는 고사하고 기초상식 조차 모르는 바보들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현재 드라마 전개상 덕만 다음대 왕이 진덕인것은 분명한데 진덕역의 승만은 드라마에 등장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덕만 다음대에 춘추가 왕이 된다고 해서 달라질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드라마 상에서 춘추는 나이가 어리니 역사 기록상에서 654년에서 661년까지  29대 신라왕이 되는 것 보다는 647년 부터 왕이 되는게 더 멋스럽지 않겠는가?  또한, 최소한 삼한일통의 기초를 닦을려면 8년 재위보다는 647년부터 재위해서 14년 재위하는게 멋지지 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드라마 인기도 떨어지는데 미실이 자살한줄 알았는데 지리산에 들어가 수행을 한후 돌아오는것으로 설정해서 덕만의 뒤를 이어 미실이 왕이 되고 이름을 승만으로 바꾸었다고 설정하는것이 다시 드라마 선덕여왕의 시청율을 높이는 방법이 아닐가 한다. 여기까지가 드라마 리뷰였다.

덕만은 누구와 결혼했을까?

그렇다면 기록상 선덕여왕은 비담과 결혼을 하였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의 기록상 선덕여왕이 결혼한 상대은 최소한 4명이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죽여 버렸다. 첫번째는 용수이고 두번째는 을제이다. 그리고 당연히 결혼한 용춘은 존재 여부도 불투명하게 만들어 버렸다. 또한, 흠반갈문왕과 결혼한 것으로 나오지만 존재여부가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덕만과 비담이 국혼을 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결혼이 성립되기 전에 덕만이 죽어버리고 닭쫓던 개 지붕처다 보듯이 비담이 사랑하는 덕만을 위해서 난을 일으키는것으로 설정할 수도 있지만, 현재 까지 결혼 상대자 비담이 국혼을 한다면 기록상 비담은 흠반갈문왕이 된다는 뜻이다.
 
삼국유사 왕력편에 의하면 선덕여왕 덕만은 634년 왕위에 오르는 즈음에 이미 결혼 상태에 있었다. 결혼 대상은 <음갈문왕>이였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580년 태어나서 646년 11월까지 67세가 되도록 성처녀로 있다가 늦바람이 나서 어린(?) 44세의 춘추를 놔 두고, 68세 비담과 결혼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삼국유사에서 덕만이 결혼 관계에 있었다는 기록은 덕만이 죽을때 자신의 무덤자리를 도솔천 위에 만들라고 했을때, 신하들이 <지기삼사> 중 황제는 어찌하여 모란에 향기가 없다는 뜻을 알게되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답으로 이세민이 자신이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왕이 죽기 전에 여러 신하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어떻게 해서 모란꽃에 향기가 없고, 개구리 우는 것으로 변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왕이 대답했다.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므로 그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것은 당나라 임금이 나에게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다. - 삼국유사 선덕왕의 지기삼사

그러니 모란꽃이 들어오기 전까지 덕만은 남편(배필)이 없었다는 뜻이 된다. 모란꽃이 들어오고 나서 <음갈문왕> 배필이 생겼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선덕왕 덕만은 언제 <음갈문왕>과 결혼을 하였을까?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의 632년1월부터 647년 1월까지 16년 재위한것과는 다르게 634년 3월부터 647년 1월 8일까지 14년 재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3년(634)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었다.- 삼국사기 선덕 3년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治十四年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634년)에 왕이 되어 14년동안 다스렸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第二十七 善德女王  名德曼.  父眞平王 母 麻耶夫人金氏. 圣骨男尽 故女王立.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治十四年.

선덕여왕(덕만)의 지기삼사중 첫번째이야기는 당태종때(626년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626년 당나라에 사신을 보낸때는 가을 7월이니 이때는 아직 이세민(태종)이 왕위를 잇기 전이다. 그렇다면 실제 당 태종(이세민)의 치세 이후가 되어야 하니, 627년, 629년, 631년, 632년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진평왕은 632년 정월(1월)에 죽었으므로  덕만의 '모란씨 서되' 사건은 627년, 629년, 631년 중으로 줄어들게 된다.

모란의 특성

한가지 더 고려해야 할 것은 모란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모란꽃은 5월~6월에 10여일 동안 피었다가 9~10월에 열매를 맺는다.
모란씨를 심어 발아하는 데는 약 2년이 걸린다. - 브리태니커백과 모란

진평왕이 모란씨를 심어 2년동안 땅속에서 발아과정을 지나 꽃을 보는데, 2년이 걸리므로, 632년 1월 죽은 진평왕이 살아생전 모란꽃을 보기는 요원하게 된다. 그러니 629년 9월과 631년 7월 당으로 간 사신단은 후보군에서 탈락하게 된다. 

그렇다면 남는 해는 627년 7월과 11월 뿐이다. 이해에는 이례적으로 2번의 사신단이 당나라에 간다. 당의 정치적 격변기이고 이세민이 연호를 <정관>으로 바뀐 해이니, 사신단이 2번 간것으로 추측된다.


모란꽃 이야기는 627년 11월 사건 전후에 있었던 일이다. 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모란씨 서되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니 <음갈문왕>과 결혼은 627년 11월 이후부터 634년 사이에 있었던 일이 된다.

만약,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가 위서가 아니라면, 음갈문왕과 결혼시기는 더 줄어 들게 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용춘은 629년 이후에 덕만과 결혼하고, 그후 용춘의 형 용수와 결혼관계에 있지만, 을제가 대신으로 덕만과 결혼한 때는 632년 1월이다. 그러니 음갈문왕과의 결혼은 632년 이후에서 634년 사이가 된다. 만약, 화랑세기의 흠반갈문왕이 <음>갈문왕과 동일인이라면 634년 1월 연호를 인평으로 바꾼해에 결혼한 것이다. 그러니 기존 통설과는 다르게 덕만은 나이가 어릴때 왕위에 올랐다는 또다른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음갈문은 누구일까?

선덕의 뒤를 이어 왕위를 이은자는 승만이다. 승만은 국반갈문왕의 딸이다. 국반갈문왕은  덕만의 아버지 진평왕의 동생이다. 즉 국반갈문왕은 덕만의 작은아버지이고 덕만은 작은아버지와 결혼을 한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덕만이 죽고, 의붓 딸인 승만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비담은 승만이 왕위를 잇는데 불만을 품고 명활성에서 난을 일으키는 것이다.


결론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과 덕만은 결혼에 성공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결혼에 실패한 비담이 난을 일으킨다는 설정이거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궁을 떠나는데 정치에 관여를 해서 맹약서 대로 춘추에 의해서 비담이 죽는 것이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물론, 정상적인 드라마라면 비담의 결혼은 실패해야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정상적인 드라마와는 전혀 다르니 어떻게 진행될지는 작가들의 쪽대본에 달려있을 뿐이다. 다만, 역사와 전혀 다르게 진행될것이란건 그동안 드라마 선덕여왕의 형태로 봐서 알 수는 있다.

어쩌면 시청자들 중에서 비담이 선덕여왕 다음대 왕이 되는 걸로 설정해 달라고 요구하면, 비담의 난이 아닌 염종만의 난으로 마무리 되거나 역사와는 다르게 비담이 난을 성공시켜서 이름을 춘추로 바꿀 지도 모르겠다. 어짜피 드라마인데 상관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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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2.09 0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이쯤에서 쉰동님께 궁금한것이..
    님은 화랑세기가 역사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그냥 하나의 전설이라고 생각하세요?
    걍좀 궁금하네요 ㅎㅎ

  2. BlogIcon 朱雀 2009.12.09 0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오늘도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

  3. BlogIcon 한수지 2009.12.09 0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도표화된 계보도...
    눈에 쏘옥 들어옵니다 ㅎㅎㅎㅎ

  4. BlogIcon DJ야루 2009.12.09 0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의 중간쯤까지... 어 오늘은 역사 공부가 없나? 했는데 역시나 있었네요!!ㅋㅋㅋ

    잘보고 갑니당!

  5. 곰순양 2009.12.09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고 갑니다~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6. BlogIcon labyrint 2009.12.09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이반님의 글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저도 선덕여왕의 남편을 누구로 할까 고민 중에 있습니다... ㅋㅋ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7. BlogIcon 루비™ 2009.12.09 1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과 덕만이 국혼이라니...
    참 갓쉰동님 말처럼 웃기지도 않는 일이지만...
    드라마에서 눈빛이 너무 불쌍한 비담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노려보기함 일삼는 덕만이를 좋아하니..
    더 짜증이 나더군요.(여자 입장에서 봄)
    이왕 작가가 맘대로 지어내는 드라마이니
    승만을 엄청 아름다운 여자로 등장시켜
    비담과 섬씽을 만드는 것도...ㅋㅋ

  8. BlogIcon 윤서아빠세상보기 2009.12.09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어차피 드라만데 상관없지 않을까?
    ㅎㅎㅎ

  9. 재미없어짐 2009.12.09 1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엔 저도 어차피 드라마인데 라고 생각헀는데 저희 엄마나 어린 사촌동생들이 선덕여왕을 보면서 진짜 역사로 착각하는 걸 보면서 아 이래선 안돼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 엄만 선덕여왕이 진짜 상둥이고 비담이 진짜 미실 아들인 줄 압니다)특히나 우리나라는 국영수 위주 교육이라 국사 교육이 상당히 미약한데 드라마가 이렇게 심각하게 왜곡한다면 좀 문제가 되겠죠...그리고 역사왜곡 자체를 떠나서 드라마 자체가 너무 개연성이 없음....그냥 시청률 올릴려고 러브라인 만든듯...갠적으론 더 재미없더라고요...캐릭터 매력도 사라지고 ...도데체 비담은 덕만의 어떤 모습에서 사랑하게 됬는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단지 주인공이라서?

  10. BlogIcon 김종민 2009.12.09 15: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막의 결혼이야기라..
    여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선덕여왕....
    ㅎㅎㅎ
    이야기 잘 듣고 갑니다^^

  11. 비담과덕만 2009.12.09 1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라면 상관없다고 보는딩..ㅎㅎ

  12. 푸르미 2009.12.09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과의 국혼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전 드라마 속에서 선덕여왕이 처녀귀신이 되는구나 했습니다.
    ㅋㅋ^^;;
    실제 역사 속에서는 엄연히 결혼을 3번했다 4번했다며 횟수에서 약간의 차는 있었지만 그래도 엄연히
    지아비가 있었는데 말이죠. 제 생각에는 드라마상에서는 아마도 비담과의 국혼도 깨어지고 그대로 처녀로 승하하시는 건 아닐까 싶네요. 역사적인 사실과의 엄청난 이 괴리감... (아님 비담과의 국혼이 깨어지고 비담이 난을 일으키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동안 3-4번의 결혼을 후다닥 하는 건 아니겠지요..ㅎㅎ ^^;;)
    퓨전사극도 좋고 환타지적인 사극도 좋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역사적인 사실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은
    선에서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외에도 수출되는 우리의 역사 사극입니다. 학창시절
    얕은 국사의 지식을 배웠왔던 탓에 드라마에서 펼쳐지는 사극이 실제인듯 느껴지고 그 인물들의 역사적으로 기재된 실제 얘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정말인양 여과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나 자신부터가 그러한데 우리의 역사를 모르는 외국인들이 이 드라마를 본다면 한국의 신라시대에는 처녀가 왕으로 통치한 적도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13. 머레이 2009.12.09 1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은 극전개는 정신줄 놓은지 꽤 되었는지라 언젠가부터 안보는데 다음에 종종 떠있는 님 리뷰를 보면 여전히 선덕 제작진의 병맛쇼는 계속되나 보네요.

  14. 샌드맨 2009.12.09 2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놀라운 글 읽고 공감 백배하고 있습니다. 일찌감치 드라마 중심축에서 밀려난 덕만 그리고 이제 슬슬 지루해진 캐릭터들인 비담, 유신 보다 작가들이 마지막으로 시청률 유지용으로 함부로 막쓰고 있는

    계뱍 장군과 김유신 장군의 투쟁의 역사에 대해서 써주시면 안될까요? 정말 역사에 정통한

    분한테서 황산벌이나 선덕여왕이나 하는 영화, 드라마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있었는지 알고싶어서요..

    늘 건강하세요~

  15. ??? 2009.12.10 1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결혼이랑 선덕여왕이 어린 나이라는 것과 무슨 상관?

  16. 호호 2009.12.12 1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지, 뭘 저렇게 따지는지...

    픽션의 진실성은 사실성과 쌍둥이가 아닙니다.

  17. 지나가다 2009.12.24 0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나 소설을 보고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거나 사실처럼 느끼는 시청자가 아직도 존재한다는게 참 신기하다. 요즘같이 지식구하기가 쉬운 세상에 말이다.
    그럼 신윤복은 여잔가.ㅎㅎㅎ

  18. 지나가다 2009.12.24 0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의 글을 보자면 좀 피곤합니다.
    자신의 역사적 지식이 마치 대한민국민들의 기본 상식인마냥 끊임없이 좌파 특유의 조롱 섞인 비판을 해대니 말입니다.

    님을 만족시키기위해서 앞으로 역사극을 쓰는 작가들은 한 5년간은 역사공부를 하고 역사적 사실에 맞게 극전개하는 집필 과정도 한 5년쯤은해야 되겠군요.
    보아하니 님은 역사학도이거나 혹은 개인적으로 역사에 엄청 관심이 많은 분인거 같은데... 님은 이정도의 역사 지식을 얻는데 어느정도의 시간을 투자하셨나요? 님이 이정도의 지식을 구하는데 걸린 시간과 들인 노력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역사에 맞으면서 극 전개도 논리적이면서 재미까지 갖춘 50부 이상의 사극을 쓰는 것은 님이 들인 노력과 시간을 훨씬 뛰어넘는 것어이야 할겁니다. 작가들도 직업인인데 드라마 하나에 그렇게 목 맬순 없겠죠.
    역사를 공부하려고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님은 역사를 공부하려고 아니면 공부한 역사를 드라마로 복습하려고 선덕여왕을 보셨습니까? 님의 가장 큰 실수는 선덕여왕을 역사이야기라는 카테고리에 넣은겁니다. 드라마라는 카테고리를 만들던가 아니면 선덕여왕을 따로 뽑으셨어야죠. 그러면 드라마가 주가 되고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은 양념정도로 감상문을 쓰셨을테고 그렇다면 이리도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에 목매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아무리 역사드라마라지만 주가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는 아닐텐데 말입니다.

    저도 좌파인데, 지식으로 무장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좌파 특유의 조롱섞인 글을 쓰는 좌파들을 보면 말이죠... 참 기분이 찝찝합니다.

  19. 지나가다 2009.12.24 0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오해하실까봐 덧붙이는데 드라마를 통해서 역사를 공부하려는 자세도 좋습니다. 다만 그것은 동기부여라는 차원이죠. 즉, 드라마를 보니 이런 인물, 이런 사건이 있던데 실제 역사는 어떨까... 하는 것 말입니다. 드라마 자체를 통해서 진실(이라 추정되는 것)을 꼭 얻어내고야 말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님의 역사 지식으로 선덕여왕의 허구성과 비논리를 포스팅하는 것은 아주 좋습니다. 다만, 님의 글들은 작가들과 현장 제작진 그리고 일부 선덕여왕 팬들의 기운이 빠질만큼 지나치게 조롱 섞인 비판이란거죠.

    님의 글들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정서는 이겁니다. "작가 니들 이런 것도 모르냐?풋. 시청자 니들 지금 이게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냐? 그냥 아무 생각없이 보겠지. 풋."

    작가들 어디 무서워서 역사극 쓰겠습니까. 역사극 하나 쓰려다간 강산이 변하겠네요.ㅎㅎㅎ
    모르죠. 62부작 역사극 하나 쓰면 원고료가 50억쯤 된다면야 10년 투자해서 역사적 사실에 맞게 극 논리에 맞게 재밌는 선덕여왕을 썼을지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과 덕만사이에 국혼이 진행된다.  비담과 덕만의 국혼이 성사되는 이유는 다른 이유가 없다. 비담을 좋아하는 팬들이 비담과 덕만의 사랑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에 의해서다.

덕만과 비담의 러브라인 요구를 하게 된 이유는 작가들이 드라마 전개를 전혀 역사와 부합되지 않게 전개하고 있으니, 드라마를 보는 아무 생각없는 시청자중 자기들이 좋아하는 배우가 극중에 많이 나오고, 이왕이면 왕과 썸씽이 있는게 좋지 않는가 하는 요구를 시청율에 목맨 작가들와 제작자가 어짜피 버린몸 시청율이나 올려보자는 알팍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와는 무관하지 오래이니, 차라리 덕만과 춘추의 결혼이 더 낫지 않을까 하지만 말이다. 춘추와 덕만은 안된다고? 하다면 드라마 인데 어떻겠는가? 어짜피 드라마 선덕여왕은 환타지 사극도 아니고 퓨젼사극도 아니고, 드라마가 갖춰야 할 개연성이나 스토리 구조는 망가질 때로 망가졌는데 말이다. 현재 드라마는 개그 프로 보다도 못한 상태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실이 떠나고 드라마 선덕여왕의 이야기가 재미가 없어지고, 극중 개연성도 없어졌다고 하지만, 실제는 미실이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할때 부터 선덕여왕은 극으로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덤앤더머의 최고봉은 미실과 설원과 덕만이였다.

오히려 미실이 떠난 상황에서 드라마 선덕여왕이 그나마 개연성도 확보하고 드라마 다워졌지만, 미실이 있을 때 보이지 않던 흠결들이 미실이 떠난 후 개안을 하듯이 흠결들이 부각되었을 뿐이다. 
 
바보들의 행진은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시대의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이 세상과 동떨어진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보들이란 자조적이고 역설적인 표현이였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미실이나 덕만이나 유신이나 모든 배역들이 정말 바보들일 뿐이다. 혹시 배역을 맡은 배우들 까지 역사는 고사하고 기초상식 조차 모르는 바보들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현재 드라마 전개상 덕만 다음대 왕이 진덕인것은 분명한데 진덕역의 승만은 드라마에 등장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덕만 다음대에 춘추가 왕이 된다고 해서 달라질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드라마 상에서 춘추는 나이가 어리니 역사 기록상에서 654년에서 661년까지  29대 신라왕이 되는 것 보다는 647년 부터 왕이 되는게 더 멋스럽지 않겠는가?  또한, 최소한 삼한일통의 기초를 닦을려면 8년 재위보다는 647년부터 재위해서 14년 재위하는게 멋지지 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드라마 인기도 떨어지는데 미실이 자살한줄 알았는데 지리산에 들어가 수행을 한후 돌아오는것으로 설정해서 덕만의 뒤를 이어 미실이 왕이 되고 이름을 승만으로 바꾸었다고 설정하는것이 다시 드라마 선덕여왕의 시청율을 높이는 방법이 아닐가 한다. 여기까지가 드라마 리뷰였다.

덕만은 누구와 결혼했을까?

그렇다면 기록상 선덕여왕은 비담과 결혼을 하였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의 기록상 선덕여왕이 결혼한 상대은 최소한 4명이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죽여 버렸다. 첫번째는 용수이고 두번째는 을제이다. 그리고 당연히 결혼한 용춘은 존재 여부도 불투명하게 만들어 버렸다. 또한, 흠반갈문왕과 결혼한 것으로 나오지만 존재여부가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덕만과 비담이 국혼을 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결혼이 성립되기 전에 덕만이 죽어버리고 닭쫓던 개 지붕처다 보듯이 비담이 사랑하는 덕만을 위해서 난을 일으키는것으로 설정할 수도 있지만, 현재 까지 결혼 상대자 비담이 국혼을 한다면 기록상 비담은 흠반갈문왕이 된다는 뜻이다.
 
삼국유사 왕력편에 의하면 선덕여왕 덕만은 634년 왕위에 오르는 즈음에 이미 결혼 상태에 있었다. 결혼 대상은 <음갈문왕>이였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580년 태어나서 646년 11월까지 67세가 되도록 성처녀로 있다가 늦바람이 나서 어린(?) 44세의 춘추를 놔 두고, 68세 비담과 결혼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삼국유사에서 덕만이 결혼 관계에 있었다는 기록은 덕만이 죽을때 자신의 무덤자리를 도솔천 위에 만들라고 했을때, 신하들이 <지기삼사> 중 황제는 어찌하여 모란에 향기가 없다는 뜻을 알게되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답으로 이세민이 자신이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왕이 죽기 전에 여러 신하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어떻게 해서 모란꽃에 향기가 없고, 개구리 우는 것으로 변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왕이 대답했다.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므로 그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것은 당나라 임금이 나에게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다. - 삼국유사 선덕왕의 지기삼사

그러니 모란꽃이 들어오기 전까지 덕만은 남편(배필)이 없었다는 뜻이 된다. 모란꽃이 들어오고 나서 <음갈문왕> 배필이 생겼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선덕왕 덕만은 언제 <음갈문왕>과 결혼을 하였을까?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의 632년1월부터 647년 1월까지 16년 재위한것과는 다르게 634년 3월부터 647년 1월 8일까지 14년 재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3년(634)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었다.- 삼국사기 선덕 3년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治十四年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634년)에 왕이 되어 14년동안 다스렸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第二十七 善德女王  名德曼.  父眞平王 母 麻耶夫人金氏. 圣骨男尽 故女王立.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治十四年.

선덕여왕(덕만)의 지기삼사중 첫번째이야기는 당태종때(626년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626년 당나라에 사신을 보낸때는 가을 7월이니 이때는 아직 이세민(태종)이 왕위를 잇기 전이다. 그렇다면 실제 당 태종(이세민)의 치세 이후가 되어야 하니, 627년, 629년, 631년, 632년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진평왕은 632년 정월(1월)에 죽었으므로  덕만의 '모란씨 서되' 사건은 627년, 629년, 631년 중으로 줄어들게 된다.

모란의 특성

한가지 더 고려해야 할 것은 모란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모란꽃은 5월~6월에 10여일 동안 피었다가 9~10월에 열매를 맺는다.
모란씨를 심어 발아하는 데는 약 2년이 걸린다. - 브리태니커백과 모란

진평왕이 모란씨를 심어 2년동안 땅속에서 발아과정을 지나 꽃을 보는데, 2년이 걸리므로, 632년 1월 죽은 진평왕이 살아생전 모란꽃을 보기는 요원하게 된다. 그러니 629년 9월과 631년 7월 당으로 간 사신단은 후보군에서 탈락하게 된다. 

그렇다면 남는 해는 627년 7월과 11월 뿐이다. 이해에는 이례적으로 2번의 사신단이 당나라에 간다. 당의 정치적 격변기이고 이세민이 연호를 <정관>으로 바뀐 해이니, 사신단이 2번 간것으로 추측된다.


모란꽃 이야기는 627년 11월 사건 전후에 있었던 일이다. 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모란씨 서되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니 <음갈문왕>과 결혼은 627년 11월 이후부터 634년 사이에 있었던 일이 된다.

만약,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가 위서가 아니라면, 음갈문왕과 결혼시기는 더 줄어 들게 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용춘은 629년 이후에 덕만과 결혼하고, 그후 용춘의 형 용수와 결혼관계에 있지만, 을제가 대신으로 덕만과 결혼한 때는 632년 1월이다. 그러니 음갈문왕과의 결혼은 632년 이후에서 634년 사이가 된다. 만약, 화랑세기의 흠반갈문왕이 <음>갈문왕과 동일인이라면 634년 1월 연호를 인평으로 바꾼해에 결혼한 것이다. 그러니 기존 통설과는 다르게 덕만은 나이가 어릴때 왕위에 올랐다는 또다른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음갈문은 누구일까?

선덕의 뒤를 이어 왕위를 이은자는 승만이다. 승만은 국반갈문왕의 딸이다. 국반갈문왕은  덕만의 아버지 진평왕의 동생이다. 즉 국반갈문왕은 덕만의 작은아버지이고 덕만은 작은아버지와 결혼을 한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덕만이 죽고, 의붓 딸인 승만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비담은 승만이 왕위를 잇는데 불만을 품고 명활성에서 난을 일으키는 것이다.


결론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과 덕만은 결혼에 성공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결혼에 실패한 비담이 난을 일으킨다는 설정이거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궁을 떠나는데 정치에 관여를 해서 맹약서 대로 춘추에 의해서 비담이 죽는 것이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물론, 정상적인 드라마라면 비담의 결혼은 실패해야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정상적인 드라마와는 전혀 다르니 어떻게 진행될지는 작가들의 쪽대본에 달려있을 뿐이다. 다만, 역사와 전혀 다르게 진행될것이란건 그동안 드라마 선덕여왕의 형태로 봐서 알 수는 있다.

어쩌면 시청자들 중에서 비담이 선덕여왕 다음대 왕이 되는 걸로 설정해 달라고 요구하면, 비담의 난이 아닌 염종만의 난으로 마무리 되거나 역사와는 다르게 비담이 난을 성공시켜서 이름을 춘추로 바꿀 지도 모르겠다. 어짜피 드라마인데 상관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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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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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2.09 0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이쯤에서 쉰동님께 궁금한것이..
    님은 화랑세기가 역사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그냥 하나의 전설이라고 생각하세요?
    걍좀 궁금하네요 ㅎㅎ

  2. BlogIcon 朱雀 2009.12.09 0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오늘도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

  3. BlogIcon 한수지 2009.12.09 0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도표화된 계보도...
    눈에 쏘옥 들어옵니다 ㅎㅎㅎㅎ

  4. BlogIcon DJ야루 2009.12.09 0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의 중간쯤까지... 어 오늘은 역사 공부가 없나? 했는데 역시나 있었네요!!ㅋㅋㅋ

    잘보고 갑니당!

  5. 곰순양 2009.12.09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고 갑니다~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6. BlogIcon labyrint 2009.12.09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이반님의 글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저도 선덕여왕의 남편을 누구로 할까 고민 중에 있습니다... ㅋㅋ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7. BlogIcon 루비™ 2009.12.09 1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과 덕만이 국혼이라니...
    참 갓쉰동님 말처럼 웃기지도 않는 일이지만...
    드라마에서 눈빛이 너무 불쌍한 비담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노려보기함 일삼는 덕만이를 좋아하니..
    더 짜증이 나더군요.(여자 입장에서 봄)
    이왕 작가가 맘대로 지어내는 드라마이니
    승만을 엄청 아름다운 여자로 등장시켜
    비담과 섬씽을 만드는 것도...ㅋㅋ

  8. BlogIcon 윤서아빠세상보기 2009.12.09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어차피 드라만데 상관없지 않을까?
    ㅎㅎㅎ

  9. 재미없어짐 2009.12.09 1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엔 저도 어차피 드라마인데 라고 생각헀는데 저희 엄마나 어린 사촌동생들이 선덕여왕을 보면서 진짜 역사로 착각하는 걸 보면서 아 이래선 안돼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 엄만 선덕여왕이 진짜 상둥이고 비담이 진짜 미실 아들인 줄 압니다)특히나 우리나라는 국영수 위주 교육이라 국사 교육이 상당히 미약한데 드라마가 이렇게 심각하게 왜곡한다면 좀 문제가 되겠죠...그리고 역사왜곡 자체를 떠나서 드라마 자체가 너무 개연성이 없음....그냥 시청률 올릴려고 러브라인 만든듯...갠적으론 더 재미없더라고요...캐릭터 매력도 사라지고 ...도데체 비담은 덕만의 어떤 모습에서 사랑하게 됬는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단지 주인공이라서?

  10. BlogIcon 김종민 2009.12.09 15: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막의 결혼이야기라..
    여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선덕여왕....
    ㅎㅎㅎ
    이야기 잘 듣고 갑니다^^

  11. 비담과덕만 2009.12.09 1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라면 상관없다고 보는딩..ㅎㅎ

  12. 푸르미 2009.12.09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과의 국혼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전 드라마 속에서 선덕여왕이 처녀귀신이 되는구나 했습니다.
    ㅋㅋ^^;;
    실제 역사 속에서는 엄연히 결혼을 3번했다 4번했다며 횟수에서 약간의 차는 있었지만 그래도 엄연히
    지아비가 있었는데 말이죠. 제 생각에는 드라마상에서는 아마도 비담과의 국혼도 깨어지고 그대로 처녀로 승하하시는 건 아닐까 싶네요. 역사적인 사실과의 엄청난 이 괴리감... (아님 비담과의 국혼이 깨어지고 비담이 난을 일으키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동안 3-4번의 결혼을 후다닥 하는 건 아니겠지요..ㅎㅎ ^^;;)
    퓨전사극도 좋고 환타지적인 사극도 좋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역사적인 사실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은
    선에서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외에도 수출되는 우리의 역사 사극입니다. 학창시절
    얕은 국사의 지식을 배웠왔던 탓에 드라마에서 펼쳐지는 사극이 실제인듯 느껴지고 그 인물들의 역사적으로 기재된 실제 얘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정말인양 여과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나 자신부터가 그러한데 우리의 역사를 모르는 외국인들이 이 드라마를 본다면 한국의 신라시대에는 처녀가 왕으로 통치한 적도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13. 머레이 2009.12.09 1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은 극전개는 정신줄 놓은지 꽤 되었는지라 언젠가부터 안보는데 다음에 종종 떠있는 님 리뷰를 보면 여전히 선덕 제작진의 병맛쇼는 계속되나 보네요.

  14. 샌드맨 2009.12.09 2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놀라운 글 읽고 공감 백배하고 있습니다. 일찌감치 드라마 중심축에서 밀려난 덕만 그리고 이제 슬슬 지루해진 캐릭터들인 비담, 유신 보다 작가들이 마지막으로 시청률 유지용으로 함부로 막쓰고 있는

    계뱍 장군과 김유신 장군의 투쟁의 역사에 대해서 써주시면 안될까요? 정말 역사에 정통한

    분한테서 황산벌이나 선덕여왕이나 하는 영화, 드라마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있었는지 알고싶어서요..

    늘 건강하세요~

  15. ??? 2009.12.10 1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결혼이랑 선덕여왕이 어린 나이라는 것과 무슨 상관?

  16. 호호 2009.12.12 1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지, 뭘 저렇게 따지는지...

    픽션의 진실성은 사실성과 쌍둥이가 아닙니다.

  17. 지나가다 2009.12.24 0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나 소설을 보고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거나 사실처럼 느끼는 시청자가 아직도 존재한다는게 참 신기하다. 요즘같이 지식구하기가 쉬운 세상에 말이다.
    그럼 신윤복은 여잔가.ㅎㅎㅎ

  18. 지나가다 2009.12.24 0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의 글을 보자면 좀 피곤합니다.
    자신의 역사적 지식이 마치 대한민국민들의 기본 상식인마냥 끊임없이 좌파 특유의 조롱 섞인 비판을 해대니 말입니다.

    님을 만족시키기위해서 앞으로 역사극을 쓰는 작가들은 한 5년간은 역사공부를 하고 역사적 사실에 맞게 극전개하는 집필 과정도 한 5년쯤은해야 되겠군요.
    보아하니 님은 역사학도이거나 혹은 개인적으로 역사에 엄청 관심이 많은 분인거 같은데... 님은 이정도의 역사 지식을 얻는데 어느정도의 시간을 투자하셨나요? 님이 이정도의 지식을 구하는데 걸린 시간과 들인 노력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역사에 맞으면서 극 전개도 논리적이면서 재미까지 갖춘 50부 이상의 사극을 쓰는 것은 님이 들인 노력과 시간을 훨씬 뛰어넘는 것어이야 할겁니다. 작가들도 직업인인데 드라마 하나에 그렇게 목 맬순 없겠죠.
    역사를 공부하려고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님은 역사를 공부하려고 아니면 공부한 역사를 드라마로 복습하려고 선덕여왕을 보셨습니까? 님의 가장 큰 실수는 선덕여왕을 역사이야기라는 카테고리에 넣은겁니다. 드라마라는 카테고리를 만들던가 아니면 선덕여왕을 따로 뽑으셨어야죠. 그러면 드라마가 주가 되고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은 양념정도로 감상문을 쓰셨을테고 그렇다면 이리도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에 목매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아무리 역사드라마라지만 주가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는 아닐텐데 말입니다.

    저도 좌파인데, 지식으로 무장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좌파 특유의 조롱섞인 글을 쓰는 좌파들을 보면 말이죠... 참 기분이 찝찝합니다.

  19. 지나가다 2009.12.24 0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오해하실까봐 덧붙이는데 드라마를 통해서 역사를 공부하려는 자세도 좋습니다. 다만 그것은 동기부여라는 차원이죠. 즉, 드라마를 보니 이런 인물, 이런 사건이 있던데 실제 역사는 어떨까... 하는 것 말입니다. 드라마 자체를 통해서 진실(이라 추정되는 것)을 꼭 얻어내고야 말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님의 역사 지식으로 선덕여왕의 허구성과 비논리를 포스팅하는 것은 아주 좋습니다. 다만, 님의 글들은 작가들과 현장 제작진 그리고 일부 선덕여왕 팬들의 기운이 빠질만큼 지나치게 조롱 섞인 비판이란거죠.

    님의 글들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정서는 이겁니다. "작가 니들 이런 것도 모르냐?풋. 시청자 니들 지금 이게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냐? 그냥 아무 생각없이 보겠지. 풋."

    작가들 어디 무서워서 역사극 쓰겠습니까. 역사극 하나 쓰려다간 강산이 변하겠네요.ㅎㅎㅎ
    모르죠. 62부작 역사극 하나 쓰면 원고료가 50억쯤 된다면야 10년 투자해서 역사적 사실에 맞게 극 논리에 맞게 재밌는 선덕여왕을 썼을지도.

계백의 붉은투구 이야기는 너무나 뻔한 스토리이다. 왜 투구로 얼굴을 가렸을까? 얼굴을 가린데 이유가 있다. 당연히 백제 유군(게릴라)부대는 계백(최원영)이 이끈다. 하지만 계백이 보이지 않는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할 수 있는 건 손오공의 머리카락처럼 수 없이 많은 계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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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2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엔 이순신도 나온다. 또다시 바보가 되어버린 유신과 비담, 비담 척살령은 낚시 에서 임진왜란때 의병인 홍의장군 곽재우를 패러디 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아마도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나 주몽에서도 써먹던 방법이다.  한마디로 식상하다는 뜻이다.

드라마 아이리스가 저작권 위반으로 소설 '후지산은 태양이 뜨지 않는다'의 작가 박철주에 고소된 상태이다. 마찬가지로 드라마 선덕여왕은 드라마 연개소문이나 태왕사신기나 대조영, 주몽에서 걸고 넘어지면 걸릴곳이 태반이다. 


57회를 보았을때 드라마 선덕여왕 56회 예고편에서 나온 비담의 척살령은 떡밥이였음이 증명되었다.

또한가지 단서는 맹약서의 내용이다. 맹약서에는 비담의 직위를 <대등>도 아닌 <상대등>의 직위였다.
비담이 상대등의 직위에 오른때는 646년이였다.

646년 선덕왕 15년 겨울 11월에 이찬 비담(毗曇)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그러니 642년 전쟁이 마무리 되고, 신라가 백제로 부터 빼앗긴 땅을 찾아야 하고, 전쟁에 피폐해진 백성들도 진휼해야한다. 그리고 646년까지 시간이 흘러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단 1회만에 전쟁도 하고 수 없이 많은 일들을 건너뛰고 646년으로 시간여행을 하듯이 이동한다는 뜻이 된다. 덕만이 죽기 최소한 1년전이나 비담이 난을 일으키는 647년 1월이란 설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57회에는 나올 수 없는 이야기가 되고 56회 비담척살 예고편은 시청자를 낚는 떡밥이란 뜻이다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2009/12/0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 척살령이 떡밥인 몇가지 이유 기사에서 충분히 이야기를 했다. 관심이 있는 분을 일독하기 바란다.

덤앤더머 계백과 유신 누가 누가 더 바보일까?

드라마 선덕여왕 57회의 하일라이트는 아무래도 비담과 덕만의 사랑이야기 일것이다. 또하나, 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나쁘고, 가진거라고는 아집과 고집에 우직함만 있는 상장군 유신이 계백의 전술에 혼비백산해서 기껏 내 놓은 전술이 늪지 같지 않은 늪으로 붉은 투구군대를 유인해서 접시물보다도 못한 물에서 달린 말발굽에 뭍은 흙으로 붉은 투구 장수가 한명이 아니고 두명이란 사실을 알아 낸다는 내용이다.


얼마나 황당한 설정인지는 군대의 복장을 보면 쉬이 알수 있다. 군대란 통일된 조직력을 나타내고, 아군과 적군을 식별하기 위해서 군복을 맞춘다. 또한, 장군들도 자신의 나라의 고유복장을 하고 있다. 붉은투구 장군이 두번 나온다면 그냥 두놈이 날뛰고 있다고 보면 되는데, 신라의 명장이라는 설원을 비롯해서 김유신까지, 귀신잡은 해병를 본것도 아닌데, 귀신을 본것처럼 허둥대기에 바쁘다. 최소한 백제군이 신라군 복장을 하고 야습을 한다면 모르겠다. 차라리 편집에서 계백이나 짝퉁 계백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음 하는 바람이 있을 정도였다.

백제의 계백군도 마찬가지로 전쟁터에 왜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허술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계백은 신라의 압량주의 신라 본영을 치기 위해서 야습을 한다. 그런데 신라의  본영에 술병(경비병)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비어 있는 군영임을 간파해야 한다. 반대로 유신은 부하를 너무나 끔찍히도 아끼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허수아비라도 세워두었어야 한다. 하지만, 본영에 들어가  상장군이 있을거라 생각되는 막사에 천연덕스럽게 갈구리를 걸고, 막사를 뒤집어 본후에 신라군의 매복을 눈치채다 불화살 꼬치가 된후 알아챈다. 왜 계백을 등장시키고, 신라 삼한일통의 명장인 유신이 나와야 하는지도 모를 만큼 어설프다는 뜻이다.


642년에 비로소 압량주 군주가된 김유신이 드라마에서 어릴때 압량주 군주가 설정이다. 김유신이 압량주의 군주로 설정이 되어 있고, 가야 유민들이 압량주에 대부분 있다는 설정이고, 월야의 복야회의 근거지가 압량주라면 가야유민들이 자신들의 유리한 지형을 이용해서 백제군을 암습하거나 게릴라 전을 벌려야 하는데 오히려 꺼꾸로 백제 계백이 자신들의 안방처럼 게릴라전을 벌리고 있는 황당함이 있다.

유신이 얼마나 영악한지는 삼국사기 김유신 관련 기록 몇개만 읽어 봐도 알 수 있다. 오죽하면, 김유신을 <천관>의 현신이라고 했을 것이며, 고구려의 점쟁이의 현신이라고 까지 했겠는가? 유신은 천문과 지리에 능통했다기록은 단석산에서 천관으로 부터 <보검>을 얻고, 드라마상 문노로 부터 <삼한지세>를 비담이 얻는 설정이지만, 실제 역사는 18세에 <천문><지리>와 병서를 귀인으로 얻는 것으로 나올만큼 신출귀몰했다는 자가 유신이다. 

또한, 김유신은 덕만을 이용해서 춘추의 비겁함을 신라 서라벌의 모든 사람들에게 쪽팔림을 주고, 자신의 동생 문희를 춘추에게 넘겼을 정도로 영악하였다. 유신에 대한 영악함을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일독하기 바란다. (가시기전에 추천은 필수)

알고 보면 꾀돌이 여우 유신

그렇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온것 처럼 유신이 계책을 써서 백제군을 함정에 빠트려 깨부순적이 없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648년 진덕왕 2년 그때 유신은 압량주 군주(軍主)로 있었는데 마치 군사에 뜻이 없는 것처럼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놀며 몇 달을 보내니, 주(州)의 사람들이 유신을 용렬한 장수라고 생각하여 헐뜯어 말하기를 “뭇 사람이 편안하게 지낸 지가 오래되어 남는 힘이 있어 한번 전투를 해봄직한 데 장군이 용렬하고 게으르니 어찌할 것인가.” 하였다.
유신이 이 말을 듣고 백성을 한 번 쓸 수 있음을 알고는 대왕에게 고하였다.
“이제 민심을 살펴보니 전쟁을 치룰 수 있습니다. 청컨대 백제를 쳐서 대량주 전쟁에 대한 보복을 합시다!”
왕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건드렸다가 위험을 당하면 장차 어떻게 하겠소?” 하니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전쟁의 승부는 대소에 달린 것이 아니고 인심이 어떤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紂)에게는 수많은 백성이 있었으나 마음과 덕이 떠나서 주(周)나라의 10명의 신하가 마음과 덕을 합친 것만 같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백성은 뜻을 같이하여 생사를 함께 할 수 있는데 저 백제는 두려워할 바가 못됩니다.”
- 삼국사기 진덕왕 2년 열전 김유신

648년 8월 도살성(道薩城) 아래에 진을 쳐서 말을 쉬게 하고 군사를 잘 먹여 다시 공격을 시도하였다. 그때 물새가 동쪽으로 날아 유신의 군막을 지나가니 장군과 병사들이 보고 불길한 징조라고 말하였다. 유신이 이는 족히 괴이하게 여길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고 무리에게 일렀다.
“금일 반드시 백제인이 간첩으로 오는 자가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짐짓 모르는 체하고 검문하지 말라!”
그리고는 군중에 전령을 돌렸다.
“성을 굳게 지키고 움직이지 말라! 내일 원군이 옴을 기다려 결전을 하겠다!”
간첩이 이를 듣고 돌아가 은상에게 보고하니 은상 등이 군대가 증원되는 줄 알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유신 등이 일시에 용감히 공격하여 크게 이겼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비담은 삼한지세를 춘추가 삼한지세를 주구령을 만들어 노는 것도 아니고, 화장실에서 똥딱는데 사용할 것도 아니면서 스승 문노를 죽여서라도 얻을려고 했는지 궁금해진다. 비담이 삼한지세를 이용한 꼴을 못봤으니 말이다.  예고편에서 비담이 <삼한지세>를 유신에게 넘겨주는 장면이 나온다. 알고 보니 유신를 가르친 도사는 비담이란 설정이 되시겠다.

유신은 비담의 난이 있었던 647년에는 유성이 떨어지는 흉조를 길조로 바꾸고 이듬해 648년에는 철새가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는 흉조를 보고 자신의 길조로 바꿀만큼 영악하였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유신의 그런 행적을 기대하기는 요원하다. 볼수 있는건 100만 스물둘 스물셋의 에너자이저 건전지 만 보일뿐이다. 

연에 대한 고사는 미실이 난을 일으킬때 써먹은 방법이므로 드라마상 비담의 꾀에 해당하는 연을 다시 비담에 사용하는 설정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정상적인 드라마 아닌 관계로 비담의 꾀에 비담이 넘어갔다는 류의 이상한 스토리를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시청자는 눈뜬 장님으로 알고 있고, 자기들 스스로 도취되어서 시청자를 자신들과 비슷한 머리를 가졌거나 자신들이 말만 하면 다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멍청이들로 알고 있으니 충분히 연을 날릴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동안 드라마 선덕여왕이 보여준 역사와는 무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관계로 없다는데 힘을 실어줄 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 57회 예고편에서 또한번 국혼 이야기가 나온다. 이 또한 떡밥일 가능성이 많다. 그동안 <국혼> 떡밥은 양치기 소년의 <늑대가 왔어요>만큼 난발하였으니 말이다. 

드라마 설정상 덕만은 580년 생이고 비담은 579년 생이다. 642년 대야성 전투가 있고, 646년 이찬 비담이 상대등에 오른 시기는 646년 11월이다. 이때 이들의 나이를 생각해 보자, 67세 덕만과 68세 비담이 너무나 사랑해서 난을 일으킨다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된다.

물론, 늙었다고 사랑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어쨌든 비담의 난이 일어나기 몇일 남지 않았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덕만이 선덕여왕에서 하차한다는 뜻이다.

646년 선덕왕 15년 겨울 11월에 이찬 비담(毗曇)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황당한 당나라 사신

한가지 재미있는 상황은 당나라의 사신이 와서 여왕임을 조롱하는 설정이 나온다. 드라마에서 미실이 담판을 지었던 바로 그 사신이다.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같은 직급에서 노는 사신이면 머리는 상당히 나쁜 사신인건 분명해 보인다. 어쨌든 미실과 덕만을 비교체험하라는 뜻인듯 한데, 드라마상 15년전의 사신이 똑같이 나오는 것도 황망한데, 당시 신라, 백제, 고구려, 당의 상황을 보았을때, 당나라가 645년 고구려 안시성에서 대패를 하고 쫓겨난후 646년 청병을 하는 장면이 되어야 한다.


645년 선덕왕 14년 3월에 황룡사탑을 창건하였는데, 이는 자장(慈藏)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여름 5월 [당] 태종이 몸소 고구려를 정벌하였으므로 왕이 군사 3만 명을 내어 그를 도왔다. 백제가 그 빈틈을 타서 나라 서쪽의 일곱 성을 쳐서 빼앗았다. - 삼국사기  신라 선덕왕 14년

또한, 이미 645년에 당나라의 요구에 3만의 대군을 파병한 전력이 있고 그로 말미암아 신라는 서쪽 7개 성을 백제에 빼았긴 아픔도 맛보았다. 이미 미실의 난을 진압하고 덕만이 황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본 당나라 사신이 까마귀 고기를 먹지 않고선 청병사로 구걸외교를 하러온 당 사신이 신라 여자황제를 겁박하는 설정을 한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한다.


더 웃기는 상황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당 사신이 와서 한 이야기는 이미 642년 8월 대야성이 함락되고, 643년 9월 백제.고구려 군이 연합해서 당항진을 공격할 것이 구원병을 보내달라는 신라 사신의 말에 당 황제인 이세민이 3가지 계책 중 마지막 계책으로 내 놓은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643년 9월
첫째, 요동을 치면 고구려나 백제가 신라를 치지 못할 것이다.불라 불라 
둘째, 위장된 당군 깃발과 군복을 줄것이다. 불라 불라
셋째, 그대 나라는 여자를 임금으로 삼고 있으므로 이웃 나라의 업신여김을 받게 되고, 임금의 도리를 잃어 도둑을 불러들이게 되어 해마다 편안할 때가 없다. 내가 왕족 중의 한 사람을 보내 그대 나라의 왕으로 삼되, 자신이 혼자서는 왕노릇을 할 수 없으니 마땅히 군사를 보내 호위케 하고, 그대 나라가 안정되기를 기다려 그대들 스스로 지키는 일을 맡기려 한다. - 삼국사기 선덕 12년

이미 이찬 비담을 상대등으로 임명했다는 말은 극중 시제가 646년 11월이란 뜻이다. 그런데 643년 9월 당나라 사신으로 간 신라사신에게 이세민이 한 말이 646년 다시 신라에 당나라 사신이 와서 동어반복을 하고 있으니 웃기지 않는가? 덕만이 당사신을 하옥하고 당과 국교를 단절하고 화가 날만도 하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면 뒤죽박죽 신라사가 되겠다. 그래서 선덕여왕이 재미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알고 보면 이보다 더 웃긴 개그 프로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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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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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칸타타~ 2009.12.08 0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이 후반부로 갈수록 더 이상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쉽습니다.

  2. BlogIcon 라이너스™ 2009.12.08 0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약간 옆으로 새는 감이 있는듯해요.
    몰입도가 떨어지는듯.^^;

  3.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2.08 0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도 아시겠지만 2인 1일은 솔직히 삼국지에서도 나올만큼 중국에서 우려먹던 캐캐먹은
    병법아닙니까...?
    유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수십년을 전장에서 보냈다는 백전백승이라는 설원이 어찌 그러한 간사한
    계락하나 간파못했다니....
    계속 멋있는 캐릭터였는데 어제 보니 완전 설원 바보였던 듯 ㅡㅡa;
    전쟁 한번 나가본적 없는 시청자도 아는 계략을 수십년간 전장에서 지냈다는 장군이 모르니
    이 얼마나 어이없는일이 ㅡㅡa;

    차라리 그냥 너무나 기동력이 잘 준비도니 부대라 그 기동력을 느리게 한다는
    천추태후의 전차 계획이나 말의 다리를 찍어내는 계책이 더 멋있어 보였을 정도입니다.

    쩝... 잘 읽고 가요

  4. BlogIcon DJ야루 2009.12.08 0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편은 정말 실망이었요...ㅠ

  5. 머미 2009.12.08 0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맨 다리로 말탄 유신을 앞질러 가 사로잡는 보종의 초능력도 있는데 일거구십리가 뭐 대단하단 말입니까.^^

  6. BlogIcon pennpenn 2009.12.08 0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전투장면도 천추태후때는 벅진감이 있었는데
    이번은 만화 같았어요~

  7. 시청자 2009.12.08 0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타령으로 긴잠감을 흐리게 하다니....사랑타령은 이제 그만 신물이 날려고 하네...

  8. BlogIcon 불쌍한작가 2009.12.08 1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들이 미리 연장을 준비할리는 없죠. 시청율이 높으니 연장을 고집하다보니 극이 점점 엉망으로 흘러가는듯합니다. 아이리스가 러브신,키스신으로 시청율을 끌어올렸듯이 선덕여왕도 비담과 러브신(?)으로 시청율을 노리는 얄팍한 수가 뻔히 보이더군요.

    62회가 끝이니 다행이지, 70회까지 연장이었다면 선덕여왕과 비담의 "조청키스"도 볼뻔했습니다.

    왕권=신권 이었던 시대에 대체 대역죄인을 몇번을 살려주는지 ㅉㅉ 극대로 였다면 미실일가 참수, 비담 참수(아들이니), 유신일가족 참수, 가야민 참수(또는 노예) 까지 극인물중 70~80%는 참수형감인데 모두 감싸고 넘어가주죠. 왕이 스스로 반역죄를 인정해서 넘어가주는 세상이란건가요 ㅎㅎ 대역죄인의 9족을 멸하는 이유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줌으로서 반역을 막겠다는 의미인데 어이가 없더군요.

    여기에 이요원의 형편없는 연기력까지 합세하니 도저히 못봐주겠더군요. 51회까진 봤는데 그이후론 안보고 있습니다.

  9. BlogIcon labyrint 2009.12.08 1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라리 계백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을 뻔 했네요... ㅋㅋ
    근데, 이반님의 글을 보니 작가가 전쟁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10. LUSY 2009.12.08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잘쓰셨어요~마음에확와닫네요.!!
    잘보고갑니다~
    정말나중에라도 드라마에서 분명김유신에대한 사극은
    나올텐데 그때는 어떻게될렌지..

  11. BlogIcon 꼬마낙타 2009.12.08 1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의 영향력이 너무 컸던 것일까요??

    미실이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선덕여왕을 안 보고 있습니다. ㅎㅎ

    선덕여왕이 사실과 많이 다르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ㅎㅎ

  12. BlogIcon 윤서아빠세상보기 2009.12.08 15: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계백도 백제와 신라의 전투설정도
    붉은투구도 모두 꽝이네요 ㅎㅎㅎ

  13. BlogIcon cartoon wholesale 2011.05.06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움이 되셨다니 기뻐요^^

  14. BlogIcon cartoon wholesale 2011.05.06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움이 되셨다니 기뻐요^^

  15. BlogIcon concessionaria fiat 2012.04.26 0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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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의 붉은투구 이야기는 너무나 뻔한 스토리이다. 왜 투구로 얼굴을 가렸을까? 얼굴을 가린데 이유가 있다. 당연히 백제 유군(게릴라)부대는 계백(최원영)이 이끈다. 하지만 계백이 보이지 않는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할 수 있는 건 손오공의 머리카락처럼 수 없이 많은 계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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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2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엔 이순신도 나온다. 또다시 바보가 되어버린 유신과 비담, 비담 척살령은 낚시 에서 임진왜란때 의병인 홍의장군 곽재우를 패러디 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아마도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나 주몽에서도 써먹던 방법이다.  한마디로 식상하다는 뜻이다.

드라마 아이리스가 저작권 위반으로 소설 '후지산은 태양이 뜨지 않는다'의 작가 박철주에 고소된 상태이다. 마찬가지로 드라마 선덕여왕은 드라마 연개소문이나 태왕사신기나 대조영, 주몽에서 걸고 넘어지면 걸릴곳이 태반이다. 


57회를 보았을때 드라마 선덕여왕 56회 예고편에서 나온 비담의 척살령은 떡밥이였음이 증명되었다.

또한가지 단서는 맹약서의 내용이다. 맹약서에는 비담의 직위를 <대등>도 아닌 <상대등>의 직위였다.
비담이 상대등의 직위에 오른때는 646년이였다.

646년 선덕왕 15년 겨울 11월에 이찬 비담(毗曇)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그러니 642년 전쟁이 마무리 되고, 신라가 백제로 부터 빼앗긴 땅을 찾아야 하고, 전쟁에 피폐해진 백성들도 진휼해야한다. 그리고 646년까지 시간이 흘러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단 1회만에 전쟁도 하고 수 없이 많은 일들을 건너뛰고 646년으로 시간여행을 하듯이 이동한다는 뜻이 된다. 덕만이 죽기 최소한 1년전이나 비담이 난을 일으키는 647년 1월이란 설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57회에는 나올 수 없는 이야기가 되고 56회 비담척살 예고편은 시청자를 낚는 떡밥이란 뜻이다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2009/12/0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 척살령이 떡밥인 몇가지 이유 기사에서 충분히 이야기를 했다. 관심이 있는 분을 일독하기 바란다.

덤앤더머 계백과 유신 누가 누가 더 바보일까?

드라마 선덕여왕 57회의 하일라이트는 아무래도 비담과 덕만의 사랑이야기 일것이다. 또하나, 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나쁘고, 가진거라고는 아집과 고집에 우직함만 있는 상장군 유신이 계백의 전술에 혼비백산해서 기껏 내 놓은 전술이 늪지 같지 않은 늪으로 붉은 투구군대를 유인해서 접시물보다도 못한 물에서 달린 말발굽에 뭍은 흙으로 붉은 투구 장수가 한명이 아니고 두명이란 사실을 알아 낸다는 내용이다.


얼마나 황당한 설정인지는 군대의 복장을 보면 쉬이 알수 있다. 군대란 통일된 조직력을 나타내고, 아군과 적군을 식별하기 위해서 군복을 맞춘다. 또한, 장군들도 자신의 나라의 고유복장을 하고 있다. 붉은투구 장군이 두번 나온다면 그냥 두놈이 날뛰고 있다고 보면 되는데, 신라의 명장이라는 설원을 비롯해서 김유신까지, 귀신잡은 해병를 본것도 아닌데, 귀신을 본것처럼 허둥대기에 바쁘다. 최소한 백제군이 신라군 복장을 하고 야습을 한다면 모르겠다. 차라리 편집에서 계백이나 짝퉁 계백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음 하는 바람이 있을 정도였다.

백제의 계백군도 마찬가지로 전쟁터에 왜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허술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계백은 신라의 압량주의 신라 본영을 치기 위해서 야습을 한다. 그런데 신라의  본영에 술병(경비병)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비어 있는 군영임을 간파해야 한다. 반대로 유신은 부하를 너무나 끔찍히도 아끼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허수아비라도 세워두었어야 한다. 하지만, 본영에 들어가  상장군이 있을거라 생각되는 막사에 천연덕스럽게 갈구리를 걸고, 막사를 뒤집어 본후에 신라군의 매복을 눈치채다 불화살 꼬치가 된후 알아챈다. 왜 계백을 등장시키고, 신라 삼한일통의 명장인 유신이 나와야 하는지도 모를 만큼 어설프다는 뜻이다.


642년에 비로소 압량주 군주가된 김유신이 드라마에서 어릴때 압량주 군주가 설정이다. 김유신이 압량주의 군주로 설정이 되어 있고, 가야 유민들이 압량주에 대부분 있다는 설정이고, 월야의 복야회의 근거지가 압량주라면 가야유민들이 자신들의 유리한 지형을 이용해서 백제군을 암습하거나 게릴라 전을 벌려야 하는데 오히려 꺼꾸로 백제 계백이 자신들의 안방처럼 게릴라전을 벌리고 있는 황당함이 있다.

유신이 얼마나 영악한지는 삼국사기 김유신 관련 기록 몇개만 읽어 봐도 알 수 있다. 오죽하면, 김유신을 <천관>의 현신이라고 했을 것이며, 고구려의 점쟁이의 현신이라고 까지 했겠는가? 유신은 천문과 지리에 능통했다기록은 단석산에서 천관으로 부터 <보검>을 얻고, 드라마상 문노로 부터 <삼한지세>를 비담이 얻는 설정이지만, 실제 역사는 18세에 <천문><지리>와 병서를 귀인으로 얻는 것으로 나올만큼 신출귀몰했다는 자가 유신이다. 

또한, 김유신은 덕만을 이용해서 춘추의 비겁함을 신라 서라벌의 모든 사람들에게 쪽팔림을 주고, 자신의 동생 문희를 춘추에게 넘겼을 정도로 영악하였다. 유신에 대한 영악함을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일독하기 바란다. (가시기전에 추천은 필수)

알고 보면 꾀돌이 여우 유신

그렇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온것 처럼 유신이 계책을 써서 백제군을 함정에 빠트려 깨부순적이 없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648년 진덕왕 2년 그때 유신은 압량주 군주(軍主)로 있었는데 마치 군사에 뜻이 없는 것처럼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놀며 몇 달을 보내니, 주(州)의 사람들이 유신을 용렬한 장수라고 생각하여 헐뜯어 말하기를 “뭇 사람이 편안하게 지낸 지가 오래되어 남는 힘이 있어 한번 전투를 해봄직한 데 장군이 용렬하고 게으르니 어찌할 것인가.” 하였다.
유신이 이 말을 듣고 백성을 한 번 쓸 수 있음을 알고는 대왕에게 고하였다.
“이제 민심을 살펴보니 전쟁을 치룰 수 있습니다. 청컨대 백제를 쳐서 대량주 전쟁에 대한 보복을 합시다!”
왕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건드렸다가 위험을 당하면 장차 어떻게 하겠소?” 하니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전쟁의 승부는 대소에 달린 것이 아니고 인심이 어떤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紂)에게는 수많은 백성이 있었으나 마음과 덕이 떠나서 주(周)나라의 10명의 신하가 마음과 덕을 합친 것만 같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백성은 뜻을 같이하여 생사를 함께 할 수 있는데 저 백제는 두려워할 바가 못됩니다.”
- 삼국사기 진덕왕 2년 열전 김유신

648년 8월 도살성(道薩城) 아래에 진을 쳐서 말을 쉬게 하고 군사를 잘 먹여 다시 공격을 시도하였다. 그때 물새가 동쪽으로 날아 유신의 군막을 지나가니 장군과 병사들이 보고 불길한 징조라고 말하였다. 유신이 이는 족히 괴이하게 여길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고 무리에게 일렀다.
“금일 반드시 백제인이 간첩으로 오는 자가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짐짓 모르는 체하고 검문하지 말라!”
그리고는 군중에 전령을 돌렸다.
“성을 굳게 지키고 움직이지 말라! 내일 원군이 옴을 기다려 결전을 하겠다!”
간첩이 이를 듣고 돌아가 은상에게 보고하니 은상 등이 군대가 증원되는 줄 알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유신 등이 일시에 용감히 공격하여 크게 이겼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비담은 삼한지세를 춘추가 삼한지세를 주구령을 만들어 노는 것도 아니고, 화장실에서 똥딱는데 사용할 것도 아니면서 스승 문노를 죽여서라도 얻을려고 했는지 궁금해진다. 비담이 삼한지세를 이용한 꼴을 못봤으니 말이다.  예고편에서 비담이 <삼한지세>를 유신에게 넘겨주는 장면이 나온다. 알고 보니 유신를 가르친 도사는 비담이란 설정이 되시겠다.

유신은 비담의 난이 있었던 647년에는 유성이 떨어지는 흉조를 길조로 바꾸고 이듬해 648년에는 철새가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는 흉조를 보고 자신의 길조로 바꿀만큼 영악하였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유신의 그런 행적을 기대하기는 요원하다. 볼수 있는건 100만 스물둘 스물셋의 에너자이저 건전지 만 보일뿐이다. 

연에 대한 고사는 미실이 난을 일으킬때 써먹은 방법이므로 드라마상 비담의 꾀에 해당하는 연을 다시 비담에 사용하는 설정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정상적인 드라마 아닌 관계로 비담의 꾀에 비담이 넘어갔다는 류의 이상한 스토리를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시청자는 눈뜬 장님으로 알고 있고, 자기들 스스로 도취되어서 시청자를 자신들과 비슷한 머리를 가졌거나 자신들이 말만 하면 다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멍청이들로 알고 있으니 충분히 연을 날릴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동안 드라마 선덕여왕이 보여준 역사와는 무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관계로 없다는데 힘을 실어줄 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 57회 예고편에서 또한번 국혼 이야기가 나온다. 이 또한 떡밥일 가능성이 많다. 그동안 <국혼> 떡밥은 양치기 소년의 <늑대가 왔어요>만큼 난발하였으니 말이다. 

드라마 설정상 덕만은 580년 생이고 비담은 579년 생이다. 642년 대야성 전투가 있고, 646년 이찬 비담이 상대등에 오른 시기는 646년 11월이다. 이때 이들의 나이를 생각해 보자, 67세 덕만과 68세 비담이 너무나 사랑해서 난을 일으킨다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된다.

물론, 늙었다고 사랑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어쨌든 비담의 난이 일어나기 몇일 남지 않았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덕만이 선덕여왕에서 하차한다는 뜻이다.

646년 선덕왕 15년 겨울 11월에 이찬 비담(毗曇)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황당한 당나라 사신

한가지 재미있는 상황은 당나라의 사신이 와서 여왕임을 조롱하는 설정이 나온다. 드라마에서 미실이 담판을 지었던 바로 그 사신이다.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같은 직급에서 노는 사신이면 머리는 상당히 나쁜 사신인건 분명해 보인다. 어쨌든 미실과 덕만을 비교체험하라는 뜻인듯 한데, 드라마상 15년전의 사신이 똑같이 나오는 것도 황망한데, 당시 신라, 백제, 고구려, 당의 상황을 보았을때, 당나라가 645년 고구려 안시성에서 대패를 하고 쫓겨난후 646년 청병을 하는 장면이 되어야 한다.


645년 선덕왕 14년 3월에 황룡사탑을 창건하였는데, 이는 자장(慈藏)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여름 5월 [당] 태종이 몸소 고구려를 정벌하였으므로 왕이 군사 3만 명을 내어 그를 도왔다. 백제가 그 빈틈을 타서 나라 서쪽의 일곱 성을 쳐서 빼앗았다. - 삼국사기  신라 선덕왕 14년

또한, 이미 645년에 당나라의 요구에 3만의 대군을 파병한 전력이 있고 그로 말미암아 신라는 서쪽 7개 성을 백제에 빼았긴 아픔도 맛보았다. 이미 미실의 난을 진압하고 덕만이 황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본 당나라 사신이 까마귀 고기를 먹지 않고선 청병사로 구걸외교를 하러온 당 사신이 신라 여자황제를 겁박하는 설정을 한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한다.


더 웃기는 상황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당 사신이 와서 한 이야기는 이미 642년 8월 대야성이 함락되고, 643년 9월 백제.고구려 군이 연합해서 당항진을 공격할 것이 구원병을 보내달라는 신라 사신의 말에 당 황제인 이세민이 3가지 계책 중 마지막 계책으로 내 놓은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643년 9월
첫째, 요동을 치면 고구려나 백제가 신라를 치지 못할 것이다.불라 불라 
둘째, 위장된 당군 깃발과 군복을 줄것이다. 불라 불라
셋째, 그대 나라는 여자를 임금으로 삼고 있으므로 이웃 나라의 업신여김을 받게 되고, 임금의 도리를 잃어 도둑을 불러들이게 되어 해마다 편안할 때가 없다. 내가 왕족 중의 한 사람을 보내 그대 나라의 왕으로 삼되, 자신이 혼자서는 왕노릇을 할 수 없으니 마땅히 군사를 보내 호위케 하고, 그대 나라가 안정되기를 기다려 그대들 스스로 지키는 일을 맡기려 한다. - 삼국사기 선덕 12년

이미 이찬 비담을 상대등으로 임명했다는 말은 극중 시제가 646년 11월이란 뜻이다. 그런데 643년 9월 당나라 사신으로 간 신라사신에게 이세민이 한 말이 646년 다시 신라에 당나라 사신이 와서 동어반복을 하고 있으니 웃기지 않는가? 덕만이 당사신을 하옥하고 당과 국교를 단절하고 화가 날만도 하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면 뒤죽박죽 신라사가 되겠다. 그래서 선덕여왕이 재미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알고 보면 이보다 더 웃긴 개그 프로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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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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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칸타타~ 2009.12.08 0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이 후반부로 갈수록 더 이상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쉽습니다.

  2. BlogIcon 라이너스™ 2009.12.08 0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약간 옆으로 새는 감이 있는듯해요.
    몰입도가 떨어지는듯.^^;

  3.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2.08 0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도 아시겠지만 2인 1일은 솔직히 삼국지에서도 나올만큼 중국에서 우려먹던 캐캐먹은
    병법아닙니까...?
    유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수십년을 전장에서 보냈다는 백전백승이라는 설원이 어찌 그러한 간사한
    계락하나 간파못했다니....
    계속 멋있는 캐릭터였는데 어제 보니 완전 설원 바보였던 듯 ㅡㅡa;
    전쟁 한번 나가본적 없는 시청자도 아는 계략을 수십년간 전장에서 지냈다는 장군이 모르니
    이 얼마나 어이없는일이 ㅡㅡa;

    차라리 그냥 너무나 기동력이 잘 준비도니 부대라 그 기동력을 느리게 한다는
    천추태후의 전차 계획이나 말의 다리를 찍어내는 계책이 더 멋있어 보였을 정도입니다.

    쩝... 잘 읽고 가요

  4. BlogIcon DJ야루 2009.12.08 0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편은 정말 실망이었요...ㅠ

  5. 머미 2009.12.08 0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맨 다리로 말탄 유신을 앞질러 가 사로잡는 보종의 초능력도 있는데 일거구십리가 뭐 대단하단 말입니까.^^

  6. BlogIcon pennpenn 2009.12.08 0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전투장면도 천추태후때는 벅진감이 있었는데
    이번은 만화 같았어요~

  7. 시청자 2009.12.08 0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타령으로 긴잠감을 흐리게 하다니....사랑타령은 이제 그만 신물이 날려고 하네...

  8. BlogIcon 불쌍한작가 2009.12.08 1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들이 미리 연장을 준비할리는 없죠. 시청율이 높으니 연장을 고집하다보니 극이 점점 엉망으로 흘러가는듯합니다. 아이리스가 러브신,키스신으로 시청율을 끌어올렸듯이 선덕여왕도 비담과 러브신(?)으로 시청율을 노리는 얄팍한 수가 뻔히 보이더군요.

    62회가 끝이니 다행이지, 70회까지 연장이었다면 선덕여왕과 비담의 "조청키스"도 볼뻔했습니다.

    왕권=신권 이었던 시대에 대체 대역죄인을 몇번을 살려주는지 ㅉㅉ 극대로 였다면 미실일가 참수, 비담 참수(아들이니), 유신일가족 참수, 가야민 참수(또는 노예) 까지 극인물중 70~80%는 참수형감인데 모두 감싸고 넘어가주죠. 왕이 스스로 반역죄를 인정해서 넘어가주는 세상이란건가요 ㅎㅎ 대역죄인의 9족을 멸하는 이유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줌으로서 반역을 막겠다는 의미인데 어이가 없더군요.

    여기에 이요원의 형편없는 연기력까지 합세하니 도저히 못봐주겠더군요. 51회까진 봤는데 그이후론 안보고 있습니다.

  9. BlogIcon labyrint 2009.12.08 1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라리 계백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을 뻔 했네요... ㅋㅋ
    근데, 이반님의 글을 보니 작가가 전쟁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10. LUSY 2009.12.08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잘쓰셨어요~마음에확와닫네요.!!
    잘보고갑니다~
    정말나중에라도 드라마에서 분명김유신에대한 사극은
    나올텐데 그때는 어떻게될렌지..

  11. BlogIcon 꼬마낙타 2009.12.08 1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의 영향력이 너무 컸던 것일까요??

    미실이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선덕여왕을 안 보고 있습니다. ㅎㅎ

    선덕여왕이 사실과 많이 다르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ㅎㅎ

  12. BlogIcon 윤서아빠세상보기 2009.12.08 15: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계백도 백제와 신라의 전투설정도
    붉은투구도 모두 꽝이네요 ㅎㅎㅎ

  13. BlogIcon cartoon wholesale 2011.05.06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움이 되셨다니 기뻐요^^

  14. BlogIcon cartoon wholesale 2011.05.06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움이 되셨다니 기뻐요^^

  15. BlogIcon concessionaria fiat 2012.04.26 0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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