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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최인호의 소설 <제4의 제국>을 드라마화한 역사드라마 가야의 건국시조 김수로가 처음 방영되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에 대해서 김수로를 어떠한 인물로 그려 나갈것인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극 <김수로>에는 김수로가 없었다.

한마디로 정리를 하면 붕어빵에 붕어 없고, 칼국수에 칼이 없는 것은 맞는것이지만 외형적으로 붕어빵은 붕어모양을 갖추었고, 칼국수는 칼로 만든 국수라고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사극 김수로에는 <팼밀리가 떴다>의 김수로도 없고, 역사의 김수로도 없다.

소설이란 개연성의 허구이다.  장치(기록)과 기록사이에 개연성을 만드는 장치를 만들고 이를 연결하는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극 김수로에는 모든 역사적 기록이나 <가설>들은 김수로로 합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사극 김수로에는 대가야의 건국신화와 김알지로 이어지는 신라의 김씨의 들의 시조설화와 금관가야의 김수로의 건국신화와 김유신묘에 있는 출자신화를 교묘히(?) 섞어 만든 부대찌개나 잡탕류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문제는 김수로를 흉노족의 일족인 김일제의 후손으로 그려버렸다는 것이다. 김일제의 후손을 자처하는 김씨는 신라의 김씨들이지 가야의 김씨들은 아니다.

김수로의 후손이라는 김유신의 묘에는 자신들의 출자를 황제헌원의 자식인 소호금천를 시조로 보고 있다.  

김유신 자신은 시조를 소호금천으로 보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그의 후손들이 만든 지석에 의한 것이지만 소호금천과 문무왕의 묘비에 있는 제천금인인 휴도왕의 아들 김일제의 후손과는 괴리가 있었도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선조들도 인간이 아버지도 없이 또는 아버지 어머니도 없이 알에게 태어났다는 것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뿌리찾기를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 것이다.

김알지는 어디서 왔을까? 김수로는 어디서 왔을까? 고주몽은 어디서 왔을까? 그래서 김해김씨는 소호금천에서 김수로의 출자를 찾았고, 경주김씨인 신라김씨들은 김일제에서 김알지의 출자를 찾았다. 이처럼 이들이 찾은 시조들은 당대 형성된 것이 아닌 후대에 만들어진 조작일 뿐이다. 

신라의 김씨들이 김일제를 시조로 내세운 이유는 중원의 황제에 귀부한 휴도왕의 아들이 한나라 고조에 김씨성을 사성받은 것을 자신들과 연관시켜 자신들이 조상들을 미화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스스로 중원 황제의 영원한 변방의 외신을 자처한 것이다.


반면에 가야의 김씨들은 가야시기에는 김씨성을 사사로이 쓸 수 없었다. 사실 가야시대에 <김씨>라는 성이 있었는지도 불투명하다 오히려 김씨성은 없었다는게 합리적일 것이다. 어쨌든, 신라에 투항한 후 김씨성을 사성을 받아 신김씨가 되고, 이후 신라의 김씨보다 김씨의 연원이 오래 되었다는 황제헌원의 아들 소호금천을 자신들의 시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고구려도 자신의 출자를 황제헌원의 자손인 고양씨에서 찾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국가는 커야하고 자신들의 조상은 남들보다 연원이 오래 되고 족보가 빵빵하여야 한다는 "우리 조상은 <통뼈>였다"는 거대 컴플렉스와 사대 컴플렉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산물일 뿐이다. 그런다고 조상들이 위대해 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조상의 무덤에 침을 뱉는 무도한 무뢰배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조상들이 얼마나 부끄러웠으면 되지도 않는 남의집 족보를 자신의 족보에 채워 넣었겠는가? 한마디로 치열하게 살다간 선조들에 대한 예의는 둘째치고 나는 내 조상들이 부끄러워요라는 자뻑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한국인이던 유대인이던 어떤 사람이던 상관없이 아담의 후손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동아시아의 중심이였던 중원을 지배했었다는 삼황오제의 후손을 자처하는 것은 종교와도 같았고 유행이였다. 이는 안봐도 DVD인것이다.

현재 일본에는 자신들을 예수의 직계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일족도 있다. 이들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이 있다면 웃어주면 그만이다.

무조건 믿는다는 것은 종교이지 과학이고 역사는 아니다. 드라마는 드라마 역사는 역사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역사도 모르고 드라마도 모른다는 고해성사와 같다.

어쨌든 MBC 사극 김수로는 또다시 역사왜곡의 한복판에 서 있을 것이고, 성범죄자들 때문에 성범죄 예방이 되어 좋다는 류의 왜곡된 역사로 인해서 역사공부를 다시 하게 되어서 좋은것 아닌가? 라는 사극 김수로 공로론이 나올것이 자명해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위대한 신라의 선덕여왕이나 있지도 않는 <제4의 제국>이라고 주체적인 가야를 표방한 <김수로>나 컴플렉스를 깨기위한 드라마가 아닌 컴플렉스에 찌든 작가들이 스스로 컴플렉스에 빠져들었다는 것을 스스로 알리고 대중에게 컴플렉스에 동참하도록 종용시키는 소설이고 드라마일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드라마는 요원한 것인가?

그냥 사극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지 않고, 따로 공부하지 않고, 믿고 그럴수도 있겠네 고개를 끄덕이는 역사 드라마 만들기가 그렇게 힘든것인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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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미스터브랜드 2010.05.30 0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특히 사극에 있어서는 최소한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2. BlogIcon 빛무리  2010.05.30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갓쉰동님 덕분에 더욱 깊은 지식을 알고 갑니다..^^

  3. 2010.05.30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마른 장작 2010.05.30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수로 아직 시청 시작 못하고 있는데.. 진짜 이것 저것 볼 것 많고. 하하하. 하여튼 사극 김수로에 이런 문제가 있다니. 알고 보겠음^^니다.

  5. BlogIcon 감자꿈 2010.05.30 1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뵙네요.
    김수로와 함께 갓쉰동님 글도 자주 뵐 수 있길 바래요. ^^

  6. 양현 2010.05.31 0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상의 무덤에 침을 뱉는 건 사실상 소호금천이나 고양씨를 자기 조상으로 삼은 저들뿐이 아니죠.
    국민의 100%가 정승판서의 후손인 현대 한국인도 마찬가지.
    따지고 보면 정말 엄청난 아이러니...
    한국인들이 조상을 대단히 모시는 것 같이 굴지만 따지고 보면 정말 세계에서 한국처럼 조상이라는 것을 개취급하고, 자신의 위신을 위한 엑세서리쯤으로 관념화 하는 민족이 또 없다는 거...
    천한 조상이 부끄러워 남의 조상을 가져다가 모시거나 만들어서 모시는, 또 그렇게 해야만 살 수 있었던 사회를 만든 우리 한국민이 참 부끄럽습니다. 조상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그 행태 자체가 조상을 진정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존중한다기 보다 단지 그 "뼈대" 자랑이 도그마화된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의 반증...

    옆나라 일본을 조상도 모르고 뿌리도 없다며 비웃지만 걔네들은 소나무 아래에서 섹스를 해서 태어난 조상, 섬 안에서 섹스를 해서 태어난 조상이라도 (물론 그것도 기모노의 오비가 아무데서나 섹스하기 위한 담요였다는 근거없는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악의적인 날조에 지나지 않지만, 그런건 차치하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연원이 확실한 조상을 가지고 있건만 한국인의 조상은 전부다 가짜.
    일본인이 뿌리 없는 걸 비웃을 시간의 10분의 1이라도 상것이면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는, 조상이 천하면 그 후손도 볼것없이 무조건적인 천시와 멸시를 받는 사회를 부끄러워 하는데 썼으면 아마 한국인의 문화적 품위는 지금보다 많이 올라가지 않았을까...
    천것들은 한날 한시에 자손도 못 남기고 다 휴거를 했는지 다 같이 무릉도원에 갔는지 어째서 현대 한국인 중에 천것들 후손은 단 한명도 없으니 미스테리일뿐...
    투탁, 공명첩, 별보, 위보...
    한국은 정말 민족주의를 버리고 한발짝 떨어져서 들여다 보면 정말 성경에 나오는 "회칠한 무덤"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수가 없는 사회더라구요. 위선과 가식과 거짓, 열등감이 가득한...

  7. 글쎄다 2010.06.01 2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kbs에서 방영된 다큐에서
    고대 무덤 유전자 조사 결과 흉노족과 신라 김씨와 동일 부족임을 확있했다고 하는데?
    대체 무슨 근거로 글쓴이는 다 허위로 몰아가는 것인지?
    증거라고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하고 단지 의견뿐이네

    • 경주김씨는 흉노족후손이맞구요 2010.06.10 2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단 인간은 모든걸 다 알수없고 그 유명한 뉴튼조차 아인슈타인조차 난 바다의 수많은 모래와 조개속에서 흙장난하는 아이일뿐이다라는 말을 했듯이 지금사실도 모르는데 과거를 완전하게 정확히 아는 사람은 한개도 없구요.특히 성씨에 대해선 우리나라는 체면과 권력이 중요한 나라라서 나라가 망할때마다 성이없던 중인들이 족보를 사들이는경우가 많고 특히 김씨들이 권세가 많았으므로 김씨족보를 사는 경우가 많아서 김씨가 이다지도 많아진것이라합니다.민중역사가가 쓴 책에 따르면 경주김씨는 흉노족 (중국이나 아랍에서 건너왔을 가능성)이라고 나오고 김해김씨는 러시아쪽이라고 하던데,,그것도 정확치않아요..그리고 김씨가 다 한조상이 아닙니다.제가 김해김씨인데 김해김씨와 경주김씨(김해김씨외에 모든 김씨는 경주김씨후손에서 갈라짐) 나온 김씨는 엄연히 조상이 다릅니다.문제는 김씨라는 성이 같기때문에 김씨하면 다 한 조상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저희 큰아버지가 몇년전에 다 모인자리에서 앞으론 아마 가야김씨로 성을 바꿀거라고 하시더군요..경주김씨후손들과 헷갈려서..

    • BlogIcon 갓쉰동 2010.06.11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걸 다 알수는 없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잘알지요.. ㅋㅋ 냅두셈.. 저러다 가시겡..

  8. 글쎄다 2010.06.01 2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록이 남기 시작한 7세기 이후에 후손들이 다 조작한거라고?
    신라가 역사기록을 시작한 7세기 훨씬 이전에
    당시 4세기에 신라무덤형태에서 갑자기 출현한 북방기마민족의 적석목곽분 같은 것은 그럼 어떻게 설명할래? 수많은 증거는 다 무시하고 그냥 일방적인 의견뿐이네 ㅉㅉㅉㅉ

  9. 글쎄다 2010.06.01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덤도 그러면 사망 당시에 축조한게 아니라
    과거에 죽었던 사람들 모두를 모아서 7세기 이후에 한꺼번에 동시에 축조한거야? 그런거야?
    다 후손들의 조작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무덤에서 나온 유골을 토대로한 유전자 검사결과가 같은 일족이라는 것에는 어쩔꺼야?

  10. 글쎄다 2010.06.01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야의 무덤에서 출토된
    당시 한반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북방 기마민족의 전형적인 형태의 유물들은 어쩔꺼야?
    이것도 몇세기 뒤에 나중에 후손들이 추가로 집어 넣어놨나?

  11. BlogIcon vibram shoes 2012.05.31 1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김수로에서는 어린 김수로가 따돌림을 받았거나 놀림감이 되었다는 장치 조차 없었다.

  12.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milf.php 2012.07.14 1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은 시조를 소호금천으로 보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그의 후손들이 만든 지석에

  13. BlogIcon Next Gen Services 2012.09.05 0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들고 전자책 선전을 해서 문제를 일으킨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유인촌은 유명한 말을 한다.

  14. BlogIcon Torrie 2012.09.16 2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측이 구동회를 꾀어냈던, 구동회가 김연아 측을 꼬셨던 구동회 부사장이 올댓 스포츠를 세우는데 뒤에서 앞에서 깊숙이

  15. BlogIcon ready to eat popcorn 2012.11.26 2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강력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형벌로서 하였다. 조선에서는 5개의 중형이 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이 있고, 남자의 성기를 짜르는 궁형이 있고, 아킬레스건 처럼 발뒤꿈치 힘줄을 짤라 버리는 월형(비형)이 있고,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 있고, 머리에 문신을 하는 자자(묵형)이 있다.

  16. BlogIcon coleman emergency poncho 2012.12.03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치(기록)과 기록사이에 개연성을 만드는 장치를 만들고 이를 연결하는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극 김수로에는 모든 역사적 기록이나 <가설>들은 김수로로 합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인호의 소설 <제4의 제국>을 드라마화한 역사드라마 가야의 건국시조 김수로가 처음 방영되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에 대해서 김수로를 어떠한 인물로 그려 나갈것인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극 <김수로>에는 김수로가 없었다.

한마디로 정리를 하면 붕어빵에 붕어 없고, 칼국수에 칼이 없는 것은 맞는것이지만 외형적으로 붕어빵은 붕어모양을 갖추었고, 칼국수는 칼로 만든 국수라고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사극 김수로에는 <팼밀리가 떴다>의 김수로도 없고, 역사의 김수로도 없다.

소설이란 개연성의 허구이다.  장치(기록)과 기록사이에 개연성을 만드는 장치를 만들고 이를 연결하는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극 김수로에는 모든 역사적 기록이나 <가설>들은 김수로로 합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사극 김수로에는 대가야의 건국신화와 김알지로 이어지는 신라의 김씨의 들의 시조설화와 금관가야의 김수로의 건국신화와 김유신묘에 있는 출자신화를 교묘히(?) 섞어 만든 부대찌개나 잡탕류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문제는 김수로를 흉노족의 일족인 김일제의 후손으로 그려버렸다는 것이다. 김일제의 후손을 자처하는 김씨는 신라의 김씨들이지 가야의 김씨들은 아니다.

김수로의 후손이라는 김유신의 묘에는 자신들의 출자를 황제헌원의 자식인 소호금천를 시조로 보고 있다.  

김유신 자신은 시조를 소호금천으로 보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그의 후손들이 만든 지석에 의한 것이지만 소호금천과 문무왕의 묘비에 있는 제천금인인 휴도왕의 아들 김일제의 후손과는 괴리가 있었도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선조들도 인간이 아버지도 없이 또는 아버지 어머니도 없이 알에게 태어났다는 것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뿌리찾기를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 것이다.

김알지는 어디서 왔을까? 김수로는 어디서 왔을까? 고주몽은 어디서 왔을까? 그래서 김해김씨는 소호금천에서 김수로의 출자를 찾았고, 경주김씨인 신라김씨들은 김일제에서 김알지의 출자를 찾았다. 이처럼 이들이 찾은 시조들은 당대 형성된 것이 아닌 후대에 만들어진 조작일 뿐이다. 

신라의 김씨들이 김일제를 시조로 내세운 이유는 중원의 황제에 귀부한 휴도왕의 아들이 한나라 고조에 김씨성을 사성받은 것을 자신들과 연관시켜 자신들이 조상들을 미화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스스로 중원 황제의 영원한 변방의 외신을 자처한 것이다.


반면에 가야의 김씨들은 가야시기에는 김씨성을 사사로이 쓸 수 없었다. 사실 가야시대에 <김씨>라는 성이 있었는지도 불투명하다 오히려 김씨성은 없었다는게 합리적일 것이다. 어쨌든, 신라에 투항한 후 김씨성을 사성을 받아 신김씨가 되고, 이후 신라의 김씨보다 김씨의 연원이 오래 되었다는 황제헌원의 아들 소호금천을 자신들의 시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고구려도 자신의 출자를 황제헌원의 자손인 고양씨에서 찾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국가는 커야하고 자신들의 조상은 남들보다 연원이 오래 되고 족보가 빵빵하여야 한다는 "우리 조상은 <통뼈>였다"는 거대 컴플렉스와 사대 컴플렉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산물일 뿐이다. 그런다고 조상들이 위대해 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조상의 무덤에 침을 뱉는 무도한 무뢰배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조상들이 얼마나 부끄러웠으면 되지도 않는 남의집 족보를 자신의 족보에 채워 넣었겠는가? 한마디로 치열하게 살다간 선조들에 대한 예의는 둘째치고 나는 내 조상들이 부끄러워요라는 자뻑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한국인이던 유대인이던 어떤 사람이던 상관없이 아담의 후손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동아시아의 중심이였던 중원을 지배했었다는 삼황오제의 후손을 자처하는 것은 종교와도 같았고 유행이였다. 이는 안봐도 DVD인것이다.

현재 일본에는 자신들을 예수의 직계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일족도 있다. 이들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이 있다면 웃어주면 그만이다.

무조건 믿는다는 것은 종교이지 과학이고 역사는 아니다. 드라마는 드라마 역사는 역사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역사도 모르고 드라마도 모른다는 고해성사와 같다.

어쨌든 MBC 사극 김수로는 또다시 역사왜곡의 한복판에 서 있을 것이고, 성범죄자들 때문에 성범죄 예방이 되어 좋다는 류의 왜곡된 역사로 인해서 역사공부를 다시 하게 되어서 좋은것 아닌가? 라는 사극 김수로 공로론이 나올것이 자명해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위대한 신라의 선덕여왕이나 있지도 않는 <제4의 제국>이라고 주체적인 가야를 표방한 <김수로>나 컴플렉스를 깨기위한 드라마가 아닌 컴플렉스에 찌든 작가들이 스스로 컴플렉스에 빠져들었다는 것을 스스로 알리고 대중에게 컴플렉스에 동참하도록 종용시키는 소설이고 드라마일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드라마는 요원한 것인가?

그냥 사극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지 않고, 따로 공부하지 않고, 믿고 그럴수도 있겠네 고개를 끄덕이는 역사 드라마 만들기가 그렇게 힘든것인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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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미스터브랜드 2010.05.30 0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특히 사극에 있어서는 최소한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2. BlogIcon 빛무리  2010.05.30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갓쉰동님 덕분에 더욱 깊은 지식을 알고 갑니다..^^

  3. 2010.05.30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마른 장작 2010.05.30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수로 아직 시청 시작 못하고 있는데.. 진짜 이것 저것 볼 것 많고. 하하하. 하여튼 사극 김수로에 이런 문제가 있다니. 알고 보겠음^^니다.

  5. BlogIcon 감자꿈 2010.05.30 1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뵙네요.
    김수로와 함께 갓쉰동님 글도 자주 뵐 수 있길 바래요. ^^

  6. 양현 2010.05.31 0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상의 무덤에 침을 뱉는 건 사실상 소호금천이나 고양씨를 자기 조상으로 삼은 저들뿐이 아니죠.
    국민의 100%가 정승판서의 후손인 현대 한국인도 마찬가지.
    따지고 보면 정말 엄청난 아이러니...
    한국인들이 조상을 대단히 모시는 것 같이 굴지만 따지고 보면 정말 세계에서 한국처럼 조상이라는 것을 개취급하고, 자신의 위신을 위한 엑세서리쯤으로 관념화 하는 민족이 또 없다는 거...
    천한 조상이 부끄러워 남의 조상을 가져다가 모시거나 만들어서 모시는, 또 그렇게 해야만 살 수 있었던 사회를 만든 우리 한국민이 참 부끄럽습니다. 조상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그 행태 자체가 조상을 진정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존중한다기 보다 단지 그 "뼈대" 자랑이 도그마화된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의 반증...

    옆나라 일본을 조상도 모르고 뿌리도 없다며 비웃지만 걔네들은 소나무 아래에서 섹스를 해서 태어난 조상, 섬 안에서 섹스를 해서 태어난 조상이라도 (물론 그것도 기모노의 오비가 아무데서나 섹스하기 위한 담요였다는 근거없는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악의적인 날조에 지나지 않지만, 그런건 차치하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연원이 확실한 조상을 가지고 있건만 한국인의 조상은 전부다 가짜.
    일본인이 뿌리 없는 걸 비웃을 시간의 10분의 1이라도 상것이면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는, 조상이 천하면 그 후손도 볼것없이 무조건적인 천시와 멸시를 받는 사회를 부끄러워 하는데 썼으면 아마 한국인의 문화적 품위는 지금보다 많이 올라가지 않았을까...
    천것들은 한날 한시에 자손도 못 남기고 다 휴거를 했는지 다 같이 무릉도원에 갔는지 어째서 현대 한국인 중에 천것들 후손은 단 한명도 없으니 미스테리일뿐...
    투탁, 공명첩, 별보, 위보...
    한국은 정말 민족주의를 버리고 한발짝 떨어져서 들여다 보면 정말 성경에 나오는 "회칠한 무덤"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수가 없는 사회더라구요. 위선과 가식과 거짓, 열등감이 가득한...

  7. 글쎄다 2010.06.01 2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kbs에서 방영된 다큐에서
    고대 무덤 유전자 조사 결과 흉노족과 신라 김씨와 동일 부족임을 확있했다고 하는데?
    대체 무슨 근거로 글쓴이는 다 허위로 몰아가는 것인지?
    증거라고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하고 단지 의견뿐이네

    • 경주김씨는 흉노족후손이맞구요 2010.06.10 2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단 인간은 모든걸 다 알수없고 그 유명한 뉴튼조차 아인슈타인조차 난 바다의 수많은 모래와 조개속에서 흙장난하는 아이일뿐이다라는 말을 했듯이 지금사실도 모르는데 과거를 완전하게 정확히 아는 사람은 한개도 없구요.특히 성씨에 대해선 우리나라는 체면과 권력이 중요한 나라라서 나라가 망할때마다 성이없던 중인들이 족보를 사들이는경우가 많고 특히 김씨들이 권세가 많았으므로 김씨족보를 사는 경우가 많아서 김씨가 이다지도 많아진것이라합니다.민중역사가가 쓴 책에 따르면 경주김씨는 흉노족 (중국이나 아랍에서 건너왔을 가능성)이라고 나오고 김해김씨는 러시아쪽이라고 하던데,,그것도 정확치않아요..그리고 김씨가 다 한조상이 아닙니다.제가 김해김씨인데 김해김씨와 경주김씨(김해김씨외에 모든 김씨는 경주김씨후손에서 갈라짐) 나온 김씨는 엄연히 조상이 다릅니다.문제는 김씨라는 성이 같기때문에 김씨하면 다 한 조상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저희 큰아버지가 몇년전에 다 모인자리에서 앞으론 아마 가야김씨로 성을 바꿀거라고 하시더군요..경주김씨후손들과 헷갈려서..

    • BlogIcon 갓쉰동 2010.06.11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걸 다 알수는 없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잘알지요.. ㅋㅋ 냅두셈.. 저러다 가시겡..

  8. 글쎄다 2010.06.01 2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록이 남기 시작한 7세기 이후에 후손들이 다 조작한거라고?
    신라가 역사기록을 시작한 7세기 훨씬 이전에
    당시 4세기에 신라무덤형태에서 갑자기 출현한 북방기마민족의 적석목곽분 같은 것은 그럼 어떻게 설명할래? 수많은 증거는 다 무시하고 그냥 일방적인 의견뿐이네 ㅉㅉㅉㅉ

  9. 글쎄다 2010.06.01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덤도 그러면 사망 당시에 축조한게 아니라
    과거에 죽었던 사람들 모두를 모아서 7세기 이후에 한꺼번에 동시에 축조한거야? 그런거야?
    다 후손들의 조작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무덤에서 나온 유골을 토대로한 유전자 검사결과가 같은 일족이라는 것에는 어쩔꺼야?

  10. 글쎄다 2010.06.01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야의 무덤에서 출토된
    당시 한반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북방 기마민족의 전형적인 형태의 유물들은 어쩔꺼야?
    이것도 몇세기 뒤에 나중에 후손들이 추가로 집어 넣어놨나?

  11. BlogIcon vibram shoes 2012.05.31 1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김수로에서는 어린 김수로가 따돌림을 받았거나 놀림감이 되었다는 장치 조차 없었다.

  12.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milf.php 2012.07.14 1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은 시조를 소호금천으로 보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그의 후손들이 만든 지석에

  13. BlogIcon Next Gen Services 2012.09.05 0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들고 전자책 선전을 해서 문제를 일으킨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유인촌은 유명한 말을 한다.

  14. BlogIcon Torrie 2012.09.16 2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측이 구동회를 꾀어냈던, 구동회가 김연아 측을 꼬셨던 구동회 부사장이 올댓 스포츠를 세우는데 뒤에서 앞에서 깊숙이

  15. BlogIcon ready to eat popcorn 2012.11.26 2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강력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형벌로서 하였다. 조선에서는 5개의 중형이 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이 있고, 남자의 성기를 짜르는 궁형이 있고, 아킬레스건 처럼 발뒤꿈치 힘줄을 짤라 버리는 월형(비형)이 있고,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 있고, 머리에 문신을 하는 자자(묵형)이 있다.

  16. BlogIcon coleman emergency poncho 2012.12.03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치(기록)과 기록사이에 개연성을 만드는 장치를 만들고 이를 연결하는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극 김수로에는 모든 역사적 기록이나 <가설>들은 김수로로 합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선덕여왕에서 김춘추(유승호)의 모습을 보면 40이 넘었는데도 애띤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속 신라인들의 모습은 어떠 했을까?

사실 선덕여왕은 역사 고증과는 하등 상관없는 정체를 알수 없는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드라마 사상 최초로 신라를 재현했다고 선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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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글로 선덕여왕에서 역사와 일치한 부분에 대해서 기사를 쓸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이번 글은 603년생 김춘추 유승호가 40이 넘었는데 수염이 없는 이유를 역사기록과 유물로 유추하고 증명하는 글이 될것이다.

양직공도의 백제사신


위의 그림은 양직공도에 나타난 백제 사신의 모습이다. 백제 사신의 얼굴을 보면 귀티나는 얼굴에 수염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백제인과 고구려는 의복이 비슷하다고 하였다. 그러니 고구려도 이와 비슷한 복장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구려 벽화에서 보듯이 고구려인은 의복에 다양한 문양을 한 의복을 입고 있었다.

국보 91호 금령총 출토 기마인물상


그렇다면 선덕여왕(632~647년)  시절 삼국의 고구려 백제 신라인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이를 알수 있는 방법은 신라의 경우 발견되고 있는 토우로 신라인의 복식를 알 수 있다. 신라인의 대표적인 모습은 기마인물상으로 대략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기마인물상에서 보듯이 신라인의 머리에는 꼬깔모자(변)와 비슷한 모자를 쓰고 있으며 눈은 전형적인 동양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왕회도, 좌측부터 백제,고구려,신라



위의 그림은 당나라 태종 이세민의 시대에 만들어진 <왕회도>로 당나라에 온 사신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은 626년 9월에 아버지 이연을 겁박해서 왕위를 찬탈한후 649년 7월까지 당나라 황제에 있었다.

그러므로 위의 <왕회도>는 626년 9월 ~ 649년 7월까지 24년동안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사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시기 기본적으로 삼국의 의상에는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 삼국 모두 폭이 좁은(?) 소매를 가지고 있다. 다만, 백제나  고구려 사신은 땡땡이 모양이나 문양 수를 놓은 의복을 입고 있고, 신라 사신은 수수한 복장을 하고 있다.

백제 사신의 귀는 일부러 늘린것 처럼 늘어져 있는 부처님의 귀를 하고,고구려 사신은 귀걸이를 하고 있다. 또한 고구려 사신은 조우관처럼 새깃털 장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체롭다. 또한, 백제인과 고구려인은 폭이 넓고 긴 허리띠를 하고 있지만 신라인은 허리띠가 단촐하고 보이지 않는다. 또한, 신라인은 머리를 기른 상태에서 묶지 않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신라인은 백제인이나 고구려인과 다르게 위의 금령총에서 나온 기마인물상과 같이 수염이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고, 금령총의 기마 인물상과 626~649년 사이의 신라 사신은 유사하게 찌져진 눈과 날카로운 코모양 까지 신라사신의 모습이 쌍둥이처럼 닮았다. 

신라의 관복을 알수 있는 기록은 504년 지증왕 5년 여름 4월에 상복(喪服)에 관한 법을 제정하여 반포하고 시행하였다. 또한, 520년 법흥왕 7년  봄 정월에 율령을 반포하고 처음으로 모든 관리의 공복(公服)과 붉은 색, 자주색으로 위계(位階)를 정하였다.

법흥왕 520년부터 진덕왕시기 649년 정월 처음으로 당의 복식을 사용하기 전까지 위의 <왕회도>의 신라 사신의 모습은 신라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신라 사신들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물론, 신라는 직위에 따라 복식의 색이 달랐다. 삼국사기 법흥왕때 복식조에 대나마·나마는 푸른 옷[靑衣]을 입고 있다고 하였으니, 색보정을 해봐야 확실하겠지만,  신라 사신은 대나마나 나마의 직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장회태자묘 벽화 신라사신?


위 그림은 당나라 이세민의 아들 고종과 측천무후의 둘째 아들인 장회태자묘에서 발견된 벽화에 나온 사신이 그동안 신라사신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책부원귀, 북사, 신당서의 기록에서 보듯이 고구려인의 전형적인 조우관을 쓰고 있다.

대신(大臣)은 푸른 비단관[靑羅冠]을 쓰고, 다음은 진홍색 비단[絳羅] 관을 쓰는데, 두 개의 새깃을 꽂고 금은으로 어지러이 테를 두르며, 저고리[衫]는 통소매[筩褎]이고, 바지는 통이 크고, 흰 가죽띠에 누른 가죽신을 신었다

장회태자묘에 나타난 고구려사신은 위의 <왕회도>와는 다르게 젊고 직급이 낮은 자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위의 사신은 왕회도의 신라사신처럼 수염이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프라시압 벽화 고구려사신

마찬가지로 아프라시압 벽화의 2명의 사신도 조우관을 쓴 고구려 사신임을 쉬이 알 수 있다.



위 토우 사진은 당의 복식을 하고 있고,  수염이 없는자와 수염이 있더라도 수염의 형태가 다양하다. 신라에서 뿐만 아니고 삼국은 공히 수염을 기르고 자르는 것으로 개성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당 복식의 토우가 발견된다는 의미는 해당 묘가 649년 이후에 조성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위의 그림은 김춘추의 영정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부분이 없다. 일단, 신라는 649년 부터 김춘추에 의해서 당의 복식으로 바꾸었다. 김춘추가 654년 29대 신라왕에 오를땐 당연히 출(出)자형 금관을 쓸 수가 없다. 또한, 기존 다수학설에 의하면 금관은 출자의 갯수가 많을수록 직위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김춘추는 왕인데도 불구하고 3단 출(出)자에 불과하다.



위의 <왕회도>의 사신이나 토우 등 여러 정황으로 보았을 때 신라나 고구려나 백제에는 현대와 같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10화랑과 김춘추 처럼 개인의 개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면도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가 사극에서 나이가 먹음 수염이 나고 길러야 한다는 <신체발부수지부모>의 환상은 조선시대의 유교적인 산물이지 삼국시대의 산물은 아니라는 뜻이다.

왕회도 신라사신,기마인물상,유승호


드라마 선덕여왕 김춘추 유승호의 모습에서 <기마인물상>이나 <왕회도>의 신라사신이 비슷해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인가? 다음편에서는 왕회도에 등장하는 사신이 누구인지를 알아 볼까 한다. 정확히는 혹시 김춘추가 당나라 사신으로 가면서 왕회도에 등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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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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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DJ야루 2009.11.27 0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이런 교과서에서는 나오지 않는 역사 얘기가 진짜 재밌는거 같아요ㅋㅋㅋㅋ

  3. BlogIcon 임현철 2009.11.27 0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포스팅입니다.

  4. BlogIcon 영웅전쟁 2009.11.27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글은 좀 어렵군요.
    나중에 편한 시간에 차분히 봐야겠습니다.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멋진 하루 엮어 가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27 2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가요? 쉬이 쓸려고 했는뎅. 좀 어렵긴 하지요..
      다음 글은 더 어려운뎅.. 쓰는걸 포기해야 겠군요.. ㅋㅋ

  5. BlogIcon labyrint 2009.11.27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수염이 없네요.
    혹시 환관이 아닐까요?
    아니면 공주? 가 남장한 것은 아닐지요... ㅋㅋ
    트랙백 걸고 갈께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27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럴지도요.. 아님 너무 어린 자들을 보냈는지동.. 암튼. 좀 그렇지요. 다양한 수염들과 현대식 말끔한 신라인.. ㅋㅋ

  6. BlogIcon 푸른솔™ 2009.11.27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 읽어도 재밌습니다.
    제가 아무래도 한국 고대사에 관심이 많다보니...
    오늘 포스팅은 많은 그림으로 인해 더 유익하네요.

  7. BlogIcon 뽀글 2009.11.27 1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과 비슷하긴 한데요^^;; 시대에 따라 옷에도 약간에 변화들이 있군요^^
    잘보고가요.

  8. BlogIcon 정민아빠 2009.11.27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사진과 비슷하네요.
    신기합니다. 혹시 이전에 유승호군이 정말로 살아있었던게 아닌지..

  9. BlogIcon 감자꿈 2009.11.27 1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비슷해 보이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11.27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저도 한참을 생각했음.. 비슷하다는걸..
      실은 대야성 전투가 끝나고 당에 사신으로 갈때 포스팅 할려고 했는뎅 너무 빠른 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공.. 암튼. 실패작입니당.

  10. BlogIcon 루비™ 2009.11.27 2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옷....정말 유승호랑 비슷하네요...ㅎ
    글을 읽고나니 수염이 없다는게 이해가 가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기마인물형토기의 쭉 찢어진 눈...
    너무 매력적이에요.
    일전에 기마인물형토기에 대해서 포스팅한 글 트랙백 걸고 갑니당~

  11. 갓쉰동님 광팬 2009.11.30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사극의 수염을 조금은 다른 의미로 생각합니다. 남자 배역들이 청년기에서 중년으로 넘어갔을때 나이가 들었음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 그나저나 신라사회에서 수염 안기르는게 자연스러운 풍습이었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12.01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쉽지요.. 사극은 시간의 흐름을 수염이나 가채로 해버리거나 비녀를 꼽는것으로 처리함 되니.. ㅋㅋ

      냅.. 머 뭍친 글이긴 하지만.. ㅋㅋ 언젠가 재활용을 해야겠어용.. ㅋㅋ

  12. 천개소문 2009.12.03 1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 연개소문의 옛날이름 그래도 드라마 김춘추는 사기입니다. 솔직히 비담정도 수염은 나야함
    비담,알천,용춘도 사기임 지금쯤 할배 되있어야 하는데...

  13. BlogIcon 동북아역사재단 2010.02.03 1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한중일 동북아시아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 맞추는 연구를 하고, 홍보를 하고 있는
    동북아 역사재단에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14. 냐온 2011.03.05 2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수염을 개성의 하나로 가꾸었다는 예기는 저도 공감합니다.
    가장 좋은 근거가 될수있는게 고구려 벽화중에 무덤주인공이 장막이 늘어진 좌석에 앉아있는게 있는데,
    수염을 잘 보시면, 무슨 톱늬처럼 다듬어 놓은모습을 볼수있어요. 수염을 패션의 하나로 인식해서 개인취향대로 다듬었음을 보여주죠.

  15. BlogIcon concessionaria fiat 2012.04.26 0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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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17.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8.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9. BlogIcon shock collars for dogs good or bad 2012.11.03 1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김유신같은 역사적 인물*만*을 빌려와 허구의 줄거리를 짜도 괜찮다고 보여집니다만 . 그래서 역사적 인물에 맞춰서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에 부합하지 않는 선덕여왕에 이리도 맹비난(비판 포함)을 퍼붓는 이곳 주인장과, 선덕 여왕 작가진은 다시는 사극 집필하지 말라는 악답을 퍼붓는 이곳 방문자가 좀 이해가 안 가서요. 사실 덕만의 출생 자체, 어린시절 서역에서 개고생한 설정부터가 사기인데...

  20. BlogIcon bung wrench substitute 2012.11.05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김유신같은 역사적 인물*만*을 빌려와 허구의 줄거리를 짜도 괜찮다고 보여집니다만 . 그래서 역사적 인물에 맞춰서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

  21. BlogIcon military mre meals 2012.11.15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선덕여왕은 역사 고증과는 하등 상관없는 정체를 알수 없는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드라마 사상 최초로 신라를 재현했다고 선전을 하였다

선덕여왕에서 김춘추(유승호)의 모습을 보면 40이 넘었는데도 애띤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속 신라인들의 모습은 어떠 했을까?

사실 선덕여왕은 역사 고증과는 하등 상관없는 정체를 알수 없는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드라마 사상 최초로 신라를 재현했다고 선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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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글로 선덕여왕에서 역사와 일치한 부분에 대해서 기사를 쓸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이번 글은 603년생 김춘추 유승호가 40이 넘었는데 수염이 없는 이유를 역사기록과 유물로 유추하고 증명하는 글이 될것이다.

양직공도의 백제사신


위의 그림은 양직공도에 나타난 백제 사신의 모습이다. 백제 사신의 얼굴을 보면 귀티나는 얼굴에 수염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백제인과 고구려는 의복이 비슷하다고 하였다. 그러니 고구려도 이와 비슷한 복장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구려 벽화에서 보듯이 고구려인은 의복에 다양한 문양을 한 의복을 입고 있었다.

국보 91호 금령총 출토 기마인물상


그렇다면 선덕여왕(632~647년)  시절 삼국의 고구려 백제 신라인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이를 알수 있는 방법은 신라의 경우 발견되고 있는 토우로 신라인의 복식를 알 수 있다. 신라인의 대표적인 모습은 기마인물상으로 대략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기마인물상에서 보듯이 신라인의 머리에는 꼬깔모자(변)와 비슷한 모자를 쓰고 있으며 눈은 전형적인 동양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왕회도, 좌측부터 백제,고구려,신라



위의 그림은 당나라 태종 이세민의 시대에 만들어진 <왕회도>로 당나라에 온 사신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은 626년 9월에 아버지 이연을 겁박해서 왕위를 찬탈한후 649년 7월까지 당나라 황제에 있었다.

그러므로 위의 <왕회도>는 626년 9월 ~ 649년 7월까지 24년동안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사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시기 기본적으로 삼국의 의상에는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 삼국 모두 폭이 좁은(?) 소매를 가지고 있다. 다만, 백제나  고구려 사신은 땡땡이 모양이나 문양 수를 놓은 의복을 입고 있고, 신라 사신은 수수한 복장을 하고 있다.

백제 사신의 귀는 일부러 늘린것 처럼 늘어져 있는 부처님의 귀를 하고,고구려 사신은 귀걸이를 하고 있다. 또한 고구려 사신은 조우관처럼 새깃털 장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체롭다. 또한, 백제인과 고구려인은 폭이 넓고 긴 허리띠를 하고 있지만 신라인은 허리띠가 단촐하고 보이지 않는다. 또한, 신라인은 머리를 기른 상태에서 묶지 않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신라인은 백제인이나 고구려인과 다르게 위의 금령총에서 나온 기마인물상과 같이 수염이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고, 금령총의 기마 인물상과 626~649년 사이의 신라 사신은 유사하게 찌져진 눈과 날카로운 코모양 까지 신라사신의 모습이 쌍둥이처럼 닮았다. 

신라의 관복을 알수 있는 기록은 504년 지증왕 5년 여름 4월에 상복(喪服)에 관한 법을 제정하여 반포하고 시행하였다. 또한, 520년 법흥왕 7년  봄 정월에 율령을 반포하고 처음으로 모든 관리의 공복(公服)과 붉은 색, 자주색으로 위계(位階)를 정하였다.

법흥왕 520년부터 진덕왕시기 649년 정월 처음으로 당의 복식을 사용하기 전까지 위의 <왕회도>의 신라 사신의 모습은 신라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신라 사신들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물론, 신라는 직위에 따라 복식의 색이 달랐다. 삼국사기 법흥왕때 복식조에 대나마·나마는 푸른 옷[靑衣]을 입고 있다고 하였으니, 색보정을 해봐야 확실하겠지만,  신라 사신은 대나마나 나마의 직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장회태자묘 벽화 신라사신?


위 그림은 당나라 이세민의 아들 고종과 측천무후의 둘째 아들인 장회태자묘에서 발견된 벽화에 나온 사신이 그동안 신라사신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책부원귀, 북사, 신당서의 기록에서 보듯이 고구려인의 전형적인 조우관을 쓰고 있다.

대신(大臣)은 푸른 비단관[靑羅冠]을 쓰고, 다음은 진홍색 비단[絳羅] 관을 쓰는데, 두 개의 새깃을 꽂고 금은으로 어지러이 테를 두르며, 저고리[衫]는 통소매[筩褎]이고, 바지는 통이 크고, 흰 가죽띠에 누른 가죽신을 신었다

장회태자묘에 나타난 고구려사신은 위의 <왕회도>와는 다르게 젊고 직급이 낮은 자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위의 사신은 왕회도의 신라사신처럼 수염이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프라시압 벽화 고구려사신

마찬가지로 아프라시압 벽화의 2명의 사신도 조우관을 쓴 고구려 사신임을 쉬이 알 수 있다.



위 토우 사진은 당의 복식을 하고 있고,  수염이 없는자와 수염이 있더라도 수염의 형태가 다양하다. 신라에서 뿐만 아니고 삼국은 공히 수염을 기르고 자르는 것으로 개성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당 복식의 토우가 발견된다는 의미는 해당 묘가 649년 이후에 조성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위의 그림은 김춘추의 영정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부분이 없다. 일단, 신라는 649년 부터 김춘추에 의해서 당의 복식으로 바꾸었다. 김춘추가 654년 29대 신라왕에 오를땐 당연히 출(出)자형 금관을 쓸 수가 없다. 또한, 기존 다수학설에 의하면 금관은 출자의 갯수가 많을수록 직위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김춘추는 왕인데도 불구하고 3단 출(出)자에 불과하다.



위의 <왕회도>의 사신이나 토우 등 여러 정황으로 보았을 때 신라나 고구려나 백제에는 현대와 같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10화랑과 김춘추 처럼 개인의 개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면도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가 사극에서 나이가 먹음 수염이 나고 길러야 한다는 <신체발부수지부모>의 환상은 조선시대의 유교적인 산물이지 삼국시대의 산물은 아니라는 뜻이다.

왕회도 신라사신,기마인물상,유승호


드라마 선덕여왕 김춘추 유승호의 모습에서 <기마인물상>이나 <왕회도>의 신라사신이 비슷해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인가? 다음편에서는 왕회도에 등장하는 사신이 누구인지를 알아 볼까 한다. 정확히는 혹시 김춘추가 당나라 사신으로 가면서 왕회도에 등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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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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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DJ야루 2009.11.27 0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이런 교과서에서는 나오지 않는 역사 얘기가 진짜 재밌는거 같아요ㅋㅋㅋㅋ

  3. BlogIcon 임현철 2009.11.27 0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포스팅입니다.

  4. BlogIcon 영웅전쟁 2009.11.27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글은 좀 어렵군요.
    나중에 편한 시간에 차분히 봐야겠습니다.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멋진 하루 엮어 가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27 2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가요? 쉬이 쓸려고 했는뎅. 좀 어렵긴 하지요..
      다음 글은 더 어려운뎅.. 쓰는걸 포기해야 겠군요.. ㅋㅋ

  5. BlogIcon labyrint 2009.11.27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수염이 없네요.
    혹시 환관이 아닐까요?
    아니면 공주? 가 남장한 것은 아닐지요... ㅋㅋ
    트랙백 걸고 갈께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27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럴지도요.. 아님 너무 어린 자들을 보냈는지동.. 암튼. 좀 그렇지요. 다양한 수염들과 현대식 말끔한 신라인.. ㅋㅋ

  6. BlogIcon 푸른솔™ 2009.11.27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 읽어도 재밌습니다.
    제가 아무래도 한국 고대사에 관심이 많다보니...
    오늘 포스팅은 많은 그림으로 인해 더 유익하네요.

  7. BlogIcon 뽀글 2009.11.27 1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과 비슷하긴 한데요^^;; 시대에 따라 옷에도 약간에 변화들이 있군요^^
    잘보고가요.

  8. BlogIcon 정민아빠 2009.11.27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사진과 비슷하네요.
    신기합니다. 혹시 이전에 유승호군이 정말로 살아있었던게 아닌지..

  9. BlogIcon 감자꿈 2009.11.27 1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비슷해 보이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11.27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저도 한참을 생각했음.. 비슷하다는걸..
      실은 대야성 전투가 끝나고 당에 사신으로 갈때 포스팅 할려고 했는뎅 너무 빠른 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공.. 암튼. 실패작입니당.

  10. BlogIcon 루비™ 2009.11.27 2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옷....정말 유승호랑 비슷하네요...ㅎ
    글을 읽고나니 수염이 없다는게 이해가 가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기마인물형토기의 쭉 찢어진 눈...
    너무 매력적이에요.
    일전에 기마인물형토기에 대해서 포스팅한 글 트랙백 걸고 갑니당~

  11. 갓쉰동님 광팬 2009.11.30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사극의 수염을 조금은 다른 의미로 생각합니다. 남자 배역들이 청년기에서 중년으로 넘어갔을때 나이가 들었음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 그나저나 신라사회에서 수염 안기르는게 자연스러운 풍습이었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12.01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쉽지요.. 사극은 시간의 흐름을 수염이나 가채로 해버리거나 비녀를 꼽는것으로 처리함 되니.. ㅋㅋ

      냅.. 머 뭍친 글이긴 하지만.. ㅋㅋ 언젠가 재활용을 해야겠어용.. ㅋㅋ

  12. 천개소문 2009.12.03 1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 연개소문의 옛날이름 그래도 드라마 김춘추는 사기입니다. 솔직히 비담정도 수염은 나야함
    비담,알천,용춘도 사기임 지금쯤 할배 되있어야 하는데...

  13. BlogIcon 동북아역사재단 2010.02.03 1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한중일 동북아시아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 맞추는 연구를 하고, 홍보를 하고 있는
    동북아 역사재단에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14. 냐온 2011.03.05 2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수염을 개성의 하나로 가꾸었다는 예기는 저도 공감합니다.
    가장 좋은 근거가 될수있는게 고구려 벽화중에 무덤주인공이 장막이 늘어진 좌석에 앉아있는게 있는데,
    수염을 잘 보시면, 무슨 톱늬처럼 다듬어 놓은모습을 볼수있어요. 수염을 패션의 하나로 인식해서 개인취향대로 다듬었음을 보여주죠.

  15. BlogIcon concessionaria fiat 2012.04.26 0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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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BlogIcon Pussy Porn 2012.07.14 1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17.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8.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9. BlogIcon shock collars for dogs good or bad 2012.11.03 1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김유신같은 역사적 인물*만*을 빌려와 허구의 줄거리를 짜도 괜찮다고 보여집니다만 . 그래서 역사적 인물에 맞춰서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에 부합하지 않는 선덕여왕에 이리도 맹비난(비판 포함)을 퍼붓는 이곳 주인장과, 선덕 여왕 작가진은 다시는 사극 집필하지 말라는 악답을 퍼붓는 이곳 방문자가 좀 이해가 안 가서요. 사실 덕만의 출생 자체, 어린시절 서역에서 개고생한 설정부터가 사기인데...

  20. BlogIcon bung wrench substitute 2012.11.05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김유신같은 역사적 인물*만*을 빌려와 허구의 줄거리를 짜도 괜찮다고 보여집니다만 . 그래서 역사적 인물에 맞춰서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

  21. BlogIcon military mre meals 2012.11.15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선덕여왕은 역사 고증과는 하등 상관없는 정체를 알수 없는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드라마 사상 최초로 신라를 재현했다고 선전을 하였다

드라마 선덕여왕 48회에서 당나라 사신이 미실의 반란을 눈치를 채고, 미실에게 황금천관을 내 놓으라고 협박을 한다. 드라마 작가는 황금천관이 어느정도 되는지 감히 아는지 모르겠다. 신라는 황금의 나라이니 충분히 가능할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이글을 끝까지 읽어 보기 바란다. 

당의 황제가 원해서 황금천관을 신라에 원한 건 절대로 아니다. 사신 개인적으로 착폭하거나 출세를 위한 방편이다. 이를 간파한 미실이 당나라 사신이나 되는 놈이 싹수도 없이 협박을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세민을 언급을 해서 자극을 한다. 사신이 사신답지 않기 때문에 이세민을 언급해도 된다는 뜻이다. 만약, 정상적인 사신이라면 당장에 전쟁난다. 아무리 작가의 희망사항을 극으로 만드는 것이지만 개연성과 합리성이라게 극에도 있다.

물론, 이 당시 이세민이 나올 하등의 이유가 없다. 황제 이세민이 나온다는 뜻은 극중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626년 가을 이후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외교전문가 미생은 "당나라가 건국된지 10년도 안되었다"라고 말을 한다.


그러면서 미실은 수나라 "양"씨로 부터 권력을 찬탈한 <국조>인 이세민이 이자리에 오지 않는 한 너 금욕에 눈이 먼 당나라 정사는 이야기 대상이 되지도 않고, 상대가 않는다고 말을 한것이다.

문제는 수로 부터 당나라를 세운 국조는 "이연"이였다. 물론, 이는 작가가 대국에 대한 컴플렉스가 심각한 수준이고, 우리나라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대국에 할말을 하고 "맞짱"떠주는 정치인이 왜 없을까? 하는 자괴감을 극에 녹여서 포퓰리즘을 자극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이전
2009/11/0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 왜 이세민 찾나? 소화 서영희 하차로 본 극중시제? 기사에서 언급을 했다.

당나라 <국조> 이세민을 언급하는 순간 이 드라마는 도대체 "머뮝"하게 되고 드라마 작가는 역사책을 한줄도 읽지 않고, "드라마만 무지 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국제정세를 꿰뚫어 보는 미실이 아닌 우물안 개구리 <미실>과 정치력이라고 제로인 미실을 그려 버리고 만것이다.

드라마 연개소문을 보면 이세민과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당히 자신의 견해를 말하고, 친구사이로 그려지기도 했다. 신채호가 갓쉰동전을 언급하면서  연개소문이 어릴적 당나라에 가지 않았을까하는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글쓴이 "갓쉰동" 닉은 연개소문의 아명에서 따왔다.)

어찌되었던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김유신이 603년 한수전쟁에 참전한것으로 설정한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은 한발 더나아가 <임술년>인 602년에 아막성 전투에 참전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드라마 연개소문 보다 1년 먼저 김유신과 덕만이 참전하는 새로운 기록을 세우는 것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6/2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화랑 신화창조의 성지 아막성, 광개토태왕의 #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문제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과 천명이 <임술년>에 태어났다고 한점이다. 덕만은 태어나자 마자. 사막여행을 하고, 태어나자 마자 아막성 전투에도 참전을 한다. 천명은 <임술년:602년>에 태어나자 마자 결혼을 해서 임신하고 이듬해에 김춘추를 낳는다.

또한, 미실이 당태종 이세민을 언급한 이유도 별다른 이유가 없다.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연개소문이 이세민과 맞장을 떴으니, 신라 신국의 새로운 국조가 되는 미실이라면 이세민과 맞짱을 떠도 되는것 아닌가하는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다.


문제는 <이세민>을 당의 국조로 격상을 시키고 처음 당나라를 세운 자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컨닝을 잡는 방법은 간단하다. 앞선 드라마 연개소문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고 머리 굴린다고 1년전으로 김유신과 덕만을 투입한 것이 증거 이다. 역사공부는 안하고 드라마만 봤다는 반증자료이다. 

 한류의 바람을 타고서 선덕여왕이 대만과 일본과 중국에 팔려나가고 있다.문제는 이들 국가는 한자문화권이다. 물론, 현재 중국은 간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수도 있겠지만, 대만이나 일본은 우리와 같은 당나라 시기에 들어온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련 기사는 2009/10/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이 결혼할수 없는 이유? 남편들이 죽어서.. 참조하기 바란다. 또한, 대장금 처럼 중동이나 이집트에도 수출될 지도 모른다. 이들 국가에 수출이 되었을 때 이들국과와 관련이 있는 역사왜곡문제는 다른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황남대총 황금왕관,황금 관모장식(?)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당나라 사신이 주장한 <황금천관>에 대한 허상을 파헤쳐 볼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은 신라가 황금의 나라로 알고 있고, 황금이 넘처나는 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기본적으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마야나 잉카의 황금 <엘도라도>라면 모르겠지만, 신라는 황금이 풍족하지 못했다. 아주 간단한 증거는 삼국시대에 가장 발달한 세공기술은 <아말감>기법의 금동관이나 금동불상 등 금동제품이다. 한마디로 짝퉁 황금 명품이 아말감 기법이다.

황금천관의 가치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1억불정도 되지 않을까하지만, 기준이 되는 신라의 <관>이 현재의 몇<돈>에 해당하는지는 알 수 없다. 기준척이 정확하게 정립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이니 어쩔 수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귀족들의 <매점매석>편에서 금을 기준으로 <쌀>을 계산한 적이 있다. 물론, 허구이지만 말이다.

신라에 황금이 풍부했다면, 불국토를 꿈꾼 신라에서 황금으로 만들어진 불상들이 우리의 유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저 금동관 금동불상들이다. 물론, 황금색을 선호하고 귀하게 여긴건 주지의 사실이고, 신라는 황금을 사용할 수 있는 계층을 법으로 제한을 하고 있다. 황금과 <은>은 황실에서만 독점적으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금동조차 왕족인 진골은 사용 할 수 없었다.

거기(수레, 마차, 말장식 등) 
진골은, 수레 재목[車材]은 자단(紫檀)·침향(沉香)을 쓰지 못하고, 대모(玳瑁)를 붙일 수 없으며, 또한 감히 금·은·옥으로 장식하지 못하였다.

기용(사용제품)
 
진골은, 금·은 및 금도금한 것을 금하였다.

옥사(가옥)
진골은 금·은·유석·오채(五彩)로 장식하지 않았다

-삼국사기 신라 잡기 -

고고학 발굴에서 황금이나 금동제품이 나왔다면, 해당하는 유물을 사용한자는 왕실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드라마의 매점매석편에서 <금괴>, <은괴>가 나올수가 없다. 당시 신라에서 귀족들이 <금.은,금동제품>을 사용하는 순간, 대역죄에 해당하니 말이다.


경주, 대릉원,황남대총

그렇다면, 황금을 쓸수 없는 진골이나 귀족들은 무엇으로 황금빛을 사용하였을까? 놋그릇으로 알려진 구리와 주석 합금 <유기>나 <황칠>을 사용했다.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사용한 반지나  귀걸이 장신구처럼 청옥, 연옥 등 옥제품 주얼리를 사용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수나라 사신이 들어와 신라 황실에 <황칠>을 요구한다. 덕만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다. 하지만, 수나라 사진은 신라에서 <황칠>을 요구할 수 없다.

<황칠>은 당시 신라지역에는 나오지 않는 백제지역의 특산종이기 때문이다. 신라도 <황칠>은 백제로 부터 수입해서 사용하였다. 수입품 황칠은 경주 대릉원의 쌍릉인 <황남대총>의 유물로도 나온다.

백제는 당나라에도 황칠을 수출하고 신라에도 수출했던 것이다. 황칠로 만든 <금광개>는 고구려나 당나라의 기마병들이 입고 전투에 임했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신라에서 백제 특산물 황칠을 찾는 수나라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9세기경에 신라를 기록한 중동지역의 지리학자는 신라가 9개의 섬으로 이루어 져 있다고 하며, 그 나라 사람은 병에도 걸리지 않고, 장수를 하며, 개밥그릇이나 목걸이도 <황금>으로 장식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신라를 이상향으로 그렸다. 한번 그나라에 들어간 사람은 고향에 돌아가길 거부하고 눌러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기록한다.

방짜 유기

한마디로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늙지도 않고, 미실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게 그리는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 딱 그 모습의 불국토인 이상향이다. 이 지리학자가 전해들은 <황금의 나라 신라>는 황금과 비슷한 아말감 기법의 금동제품이나 유사품 <유기>나 칠을 하면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황칠>을 본것이다. 그러니 개밥그릇이나 개목걸이가 황금빛으로 빛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이들 유기나 황칠을 한 제품은 세균을 죽이는 소독효과가 있다. 그래서 유기나 황칠 그릇으로 밥이나 물을 먹으면 수인성병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 괜히 옛조상들이 밥그릇이나 차례를 지낼때 제기로 유기를 사용는 것이 아니다.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개의 목걸이에도 황금으로 할만큼 황금이 지천이라면, 왕족인 진골조차 금으로 만든 장식을 못하게 막을 이유가 없다. 한마디로 정리를 한다면 대한민국 여성들이 세계 제일 많이 <다이아몬드> 반지, 목걸이 등 장신구를 좋아하고 애용한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다이아몬드 산지는 될 수 없듯이 황금관과 장식이 나온다고 해서 신라땅이 황금이 많이 나는 산지는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신라에 황금이 귀했다는 반증밖에는 될 수 없다.

결론은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는 "입만 열면 거짓말하고, 숨쉬는것 빼고 다 거짓이 아니냐"는 누구와 닮았다.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는 글마다 오류 투성이 거짓 뿐이다. 누구에게서 진실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 처럼, 이 작가에게서 역사적 사실을 발견하는게 더 힘들다. 더욱 가관인것은 드라마 작가가 역사는 왜곡되어선 안된다고 <거칠부>의 입을 통해서 목숨까지 걸만큼 소중하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자신은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언행일치와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하고 있다. <거짓말>이나 <왜곡>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거짓말과 왜곡은 자신은 알고 있는 상태에서 남을 의도적으로 속이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작가는 단지 <무지>할 뿐이다.

일본의 속담중에 "100번을 말하면 거짓도 진실이 되고 사실이 된다"는 말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독도문제와 일제치하의 만행들이다. 드라마에서 지속적으로 무지를 들어내면 그게 상식이 되고 역사가 되어 버린다. 이를 수정하는 방법은 없다.

있다면, 작품을 만들기 전에 연구를 하든지, 최소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전문가들로 부터 <검증>이나 <감수>정도는 받았어야 한다. 하지만 작가나 제작진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이유는 보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이나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이기도 하다. 2009/11/0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고현정 하차로 본 미실 최후 미실의 난, 비담(김남길) 존재감 사라진 진짜 이유? 관심이 있는 분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오늘도 글이 길어져 버렸네요. 한방울의 오수를 정화할 때 수백배 수천배의 물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한마디의 잘못된 키보드워리 막말 수준의 역사를 수정 하려면 물을 정화하는 것처럼 수 많은 근거를 제시하여야 하기 때문에 길어져 버렸습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통해서 배우는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래도 글로써 정확한 상식을 알아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아마도 이글을 읽은 사람 중에 위에 언급한 사실들을 알았던 사람은 극히 드물겁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볼수 있도록 추천을 많이 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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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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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skagns 2009.11.06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야~ 오늘도 재미난 주제로 다양한 지식을 보고 가네요.
    즐거운 금요일 되시구요!! ^^

  3. 오스왈드 2009.11.06 1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병도 하셔서 그러신데...
    이병도의 영향력은 얼마 없습니다
    이병도 제자들이라 해서 이병도 찬양하지도 않고요..
    성골 진골 문제에서 이병도가 문제가 아니라 성골 진골이 있었다는 기록 자체를 어떻게 부정할 방법 자체가 아직 없으니 그렇지요
    삼국사기에는 분명 있었다고는 나오고
    성골 성조 운운하며 반박할 수있는 자료는 화랑세기인데 전 부정적 신중론자인지라..
    아니 화랑세기 자체가 아직 안 쓰이니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전 성골 진골 해석은 서강대 이종욱 교수님 해석이 올바르다고 봅니다
    근친은 성골 방계는 진골..

    • BlogIcon 갓쉰동 2009.11.06 1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영향력이 없다면 성골진골은 교과서에서 나올수 없지요.. ㅋㅋ

      성골.진골은 해석상의 문제이지요. 제가 "성조"를 이야기한건. 이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내용입니당. 화랑세기가 아닌.. 저는 성조=성골로 보고 있는 입장입니다..

      왕의 자제는 성골이지요.. 단, 정비의 자식들로요..
      화랑세기는 성골.진골 자체가 없지요..

      전, 이종욱교수의 견해야 동의할 수 없어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골을 정의한 이상에는요..

      이종욱은 근친을 성골로 보지 않고, 대궁에 살면 성골로 보았지요.. 대궁을 벗어나면 성골에서 족강된다는 견해와 함께.. ㅋㅋ 근친혼을 비롯해서 성골의 기존 문제는 진평왕의 정비가 되는 손승만왕후의 존재로 깨지는 설들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06 1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비의 자제로 보는 견해는 바꿀수도 있어용.. 실은 정비의 후손이 아닌 자들이 왕이 된 경우가 너무 많이 보이거든요.. ㅋㅋ

  4. 오스왈드 2009.11.06 1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골 진골 문제는 제가 고대사 전문가가 아니어서 잘 모르는 문제이고요
    다만 저는 천명 덕만 문제에 있어 저는 덕만이 언니라고 생각됩니다
    둘 다 정비의 소생이라면 사실 순위를 따지는 것이 의미 없습니다
    그냥 형제 순이요 엄마 순서입니다
    이 문제는 조선 시대로 가면 폐비 신씨-단경왕후-의 복위를 막는 요인이 되기도 했지요
    폐비 신씨가 복위해 왕자를 낳으면 현재의 원자를 제칠 수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저는 덕만보다 천명이 언니라고 생각됩니다
    일단 가장 신빙성 있는 자료인 삼국사기가 언니라 하고 있으며, 삼국유사도 장녀라고 하는 것을 보았으니까요
    천명이 언니라고 나온 기록은 화랑세기가 유일한데..
    화랑세기는 당대의 기록이 아닌 한 세대 정도 뒤의 기록이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천명과 덕만의 순서가 바뀐 것은 김춘추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라 보여집니다
    김춘추의 왕위 계승은 비정상적이었지요
    이를 얼버무리기 위해 자신에게 왕위 계승의 정당성이 있음을 홍보해야 했겠지요
    그래서 천명과 덕만의 순서를 바꾸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원래 천명의 자리였으나 이모 덕만에게 간 겄을 나는 되찾았다..
    김부식은 공식적 왕실 족보 등을 보고 삼국사기를 적었겠고-혹은 삼국사기의 모델이된 구삼국사-
    김대문은 정부가 발표한 것을 믿고 그대로 옮겼으리라 봅니다

    참 그전에 칠숙 석품의 난도 한 번 다루어 주셨으면 합니다
    석품의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아무래도 기획반역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듭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06 2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삼국사기에만 덕만은 진평과 마야의 장녀라고 기록하고 있지요.. 천명은 진평의 딸이라는 구절만 있고, 이럴땐 마야의 딸은 아니라는 해석이 일반적인 역사 상식에 맞지 않을까 합니당.. ㅋㅋ

      김대문 같은 경우는 같은 세대를 살았지용.. 680년경에 화랑세기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게 일반적인 설이고, 이는 자신 천명과 덕만을 어릴때부터 봐왔다는 뜻이 됩니다. 현존 필사본이 진본 화랑세기를 필사한 것이라면, 화랑세기의 기록이 맞을 겁니당. 저야 의심스럽지만요. 화랑세기강.. ㅋㅋ

      칠숙과 석품의 난은 이미 글을 쓴게 있습니당.. 다음주에 정리를 해서 올릴예정입니당.. ㅋㅋ

  5. ECLAT 2009.11.06 2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필사본이긴 하지만 화랑세기에는 마야의 딸이 천명, 덕만, 천화라고 되어 있잖아요. 그리고 천명의 어머니는 마야라고 나와있는 부분도 화랑세기의 오역이라고 봐야 하는건가요?ㅎㅎ 18세 춘추공 세계에 "天明之母曰摩耶者 福勝公女也" 이런 구절이 있더라구요. 천명의 어머니 마야는 복승공의 딸이다. 라구요.

    만약에 마야가 천명을 낳지 않았다면, 천명이 진골정통이라고 알고 있는 것도 잘못된건지...
    물론 그 당시 진골정통이 꼭 마야만 있었던건 아니지만...
    ~명 돌림 때문에 보명궁주의 딸이 아닌가도 생각했습니다만, 보명의 딸이었으면 제대로 어머니에 대해 표기했을 텐데 안한 것도 이상하고... 진짜 춘추가 왕위에 올랐는데 자신의 어머니를 문정태후로 추존하면서 그녀의 세계에 대해서 자세히 안 올린 것도 좀 이상하고.. 만약 그녀의 어머니가 신분이 낮았다면 아무리 장녀라고 해도 진평왕이 그녀의 남편을 부군으로 삼아서 왕위를 물려줄 생각을 안했을 테니까요.
    (제가 잘못안 걸수도 있지만 춘추와 유신이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 중에 하나가 둘다 진골정통인 어머니를 두고 있어서 둘다 진골정통이기 때문에 친해졌다..라는 글을 어디서 본 듯한 기억이 있어서요.;)

    근데 또 덕만이 50이 넘어서 왕위를 물려받았다는 것도 좀 이상하기도 하구요. 그러면 삼서제로 들인 남편들은 다 완전 아저씨, 할아버지 뻘이었던 건가요? 용수와 용춘 둘다 그녀의 사신이었는데 천명의 남편들이기도 했으니까요.

    삼국사기가 정사만을 기록했기 때문에 가장 신빙성 있는 자료이고, 그렇게 생각하면 서장녀가 천명이고, 적장녀가 덕만이란 말을 유추할수도 있습니다만.. 좀 궁금하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06 2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를 논할땐 화랑세기를 인용을 하지 않는 편이거든용. 암튼..님의 말씀처럼 천화, 천명, 덕만 순으로 마야의 딸로 나오기는 합니당. 덕만은 천명보다도 나이가 한참 어린 것으로.. 용봉이 자질이니 하는 뜻은 어린싹이 보인다는 뜻일 겁니당.. 화랑세기에서동..

      결혼을 시키다는 전제는 후사를 보기 위한 전재조건이 있징요.. 그래서 화랑세기던.. 삼국사기던 삼국유사던 덕만은 일반적인 통설에 50대는 될수 없다는 뜻일 겁니다.

      잼있는건 화랑세기에 의하면 14세 풍월주가 되는 호림은 603년 부터 612년 까지 장기 집권을 하는뎅 호림이 풍월주가 된 이유가 누나 마야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당. 풍월주이전 좌우(?)대화랑이 된 596년경에는 마야가 왕후로 있어서 호림이 화랑에서 출세를 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기도 하구요. 그러니 호림과 마야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진평의 첫번째 정비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지요..

      또한, 화랑세기에는 보명과 미실이 진평의 초기 좌우황후였다고 기록하고 있거든용.. 꾸준히 화랑세기는 마야는 지금까지 우리가 통설로 알고 있는 마야는 진평의 초년 왕비 임을 부정하고 있다는 거지용.

      이에 관한 이야기는 역사이야기 전반부를 보시면 꾸준히 제가 덕만은 20초반이나 그 이전에 왕위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글을 보실수있을 겁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만을 통해서..

      님의 말씀 처럼 서장녀 천명이고, 덕만은 천명의 나이어린 동생이며 적장녀라고 저는 생각합니당.. ㅋㅋ

  6. 갓쉰동 최고 2009.11.07 0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고학이나 동서문물교류사부분에서는 신라의 황금의 산지는 아닙니다만 황금문화의 전성기를 구가한나라로 보기는 합니다. 황금자체의 산지는 당연히 아니죠. 그러나 황금문화자체는 발달한 나라로 보기는 합니다. 제가 앞글에서 언급한 것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신라는 황금을마구쓰는 중동국가가 오일을 마구쓰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생산되는 국가가아닌 선진황금문화를 구가한 나라라고는 볼수있습니다.
    제가 앞에서 말한글은 신라를 황금의 나라는 아니지만 황금문화를 구가한 나라로는 정의할수 있고
    그러한 문화사적 교류사적 관점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신라는 황금의 산지가 아닌 귀족문화의 발달과 더불어서 황금을 제련해서 부장품을 만드는 문화가 발달햇다고 할수있죠

    • 갓쉰동 최고 2009.11.07 0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결국 신라 왕실은 황금 독점을 통해서 세련된 황금 제련술을 개발하고 이를 이용해서 자신들을 치장하는 데에만 사용했죠. 문화사를 연구하는 분들게는 아주 중요한 역사적유뮬이 되어버렸지만 말이죠.
      신라의 선진 황금제련술은 결국 왕실의 사치품을 위한 제련이었죠
      우리나라의 토목건축기술이 정권의 권력유지용이 된것처럼

    • BlogIcon 갓쉰동 2009.11.07 0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용.. 독점을 한다는건 그 만큼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귀하기도 하다는 뜻이지요..

      멋진 비유인데용.. 정권의 권력유지장치라.. ㅋㅋ

  7. BlogIcon shinlucky 2009.11.07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드라마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관련글 잘 읽었습니다. ^_^~~

  8. 갓쉰동님 광팬 2009.11.08 1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약 저런 상황이 있었다면 국력과 인구, 영토의 크기가 당나라와 엄청난 차이가 있는 신라의 정치인이 저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네요. 님 말씀대로 사신이 사신답지 않아서 미실이 당당할 수 있었겠지만요. 당나라의 힘을 빌어 신라보다 국력이 강했던 고구려나 백제를 쓰러뜨렸던 신라로서는 말입니다. 그나저나 당나라도 나왔는데 이놈의 드라마는 고구려나 백제에 대한 언급이 왜 이렇게 없을까요? 저 시대는 삼국이 외교전술이나 정복전쟁으로나 엄청난 격변기라고 알고있는데요.

  9. 갓쉰동님 광팬 2009.11.08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건국 10년이면 아직 국조인 이연이 건재하던 때인데 황제도 아닌 황제의 수많은 아들들 중 한명에 불과한 이세민의 이름을 언급한 것도 정말 코메디이네요^^;;

    • 갓쉰동님 광팬 2009.11.08 1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건국 10년도 안되었을 때이면 이세민이 등극했거나 아니면 등극 전에 격변기거나 할텐데 황제가 되었는지 안되었는지 확실치 않은 2대 황제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보니 아주 대~ 단한 존재긴 한가 봅니다. 그리고 수나라 양씨의 권좌를 찬탈한 것은 국조인 당고조 이연이지 당태종 이세민이 아닌데 말입니다. ㅎㅎㅎ

    • BlogIcon 갓쉰동 2009.11.09 0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작가의 수준이 딱 일반인 평균이하 수준의 역사지식임.. 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1.09 0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말이면 다 말이 되는 드라마.. 한계가 없어용.. ㅋㅋ

    • 갓쉰동최고 2009.11.11 0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갓쉰동 광팬님의 말씀도 일리는 있지만 국조라는 언급을 하지않았으면 정치적으로는 이세민이가 사실상 아버지 이연보다 위였습니다. 사실 당나라 세우기 제작 연출 모두 이세민이 한것이지요. 주연도 본인이 하고 싶었으나 세상의 눈도 있고 명분상 아버지에게 맡기는게 낳으니 아버지께 맡긴것이지요. 실제적으로 양씨에게 당나라라는 선물을 얻어오고 이밀등을 제압한 사람은 세민입니다.
      그리고 당왕조 건국후에는 이연조차도 함부로 하지 모하는 권력자가 되고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현무문의 난을 일으켜 황제가 되는 세민입니다.
      작가도 이러한 상징성때문에 세민을 내세우기는 했으나 국조라는 언급 당이라는 국가가 신생국으로 10년이 안되었다는 점은 그를 황제라고 칭하기에는 아직 부족하죠. 차라리 미실의 정보가 많다면 실질적 권력자인 세민이가 오라고 했으면 맞을텐데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11 07: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작가의 아전인수 일뿐이지요.. ㅋㅋ

  10. -_- 2009.11.09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지나가다가 쓴건데 _
    너무 선덕여왕에 대해 비판적이심
    그럴거면 안보면 되는거 아닙니까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인데
    역사사극도 아니고 ~_~

    • BlogIcon 갓쉰동 2009.11.09 1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늘 올린글이나 보시고 말씀하셈.. ㅋㅋ
      드라마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말인뎅.. 드라마로 보자니.. 드라마로 낙제점이고 사극으로 낙제점이란 뜻 입니다.. 그런데 왜보냐구요.. 당연히 잼있어용. 님이 보는 재미와 추가적으로 더 많은 재미요소를 가지고 있거든여.. ㅋㅋ

  11. 무지게 2009.11.12 17: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감사합니다 어떤분이신지 궁굼합니다 그려.. 역사를 많이 아시는 분 ..계속해서 글 부탁합니다

  12. 낭랑 2011.09.19 0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의 발언은 비록 현 당나라 황제가 '이세민'이라는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있지만 '이연과 이세민을 구별하지 않고, 양씨를 축출한 '이씨' 가 수나라 양씨들에게서 찬탈을 한것이다' 라는 폭넓은 시각으로 본다면 별로 문제되지 않을 듯 싶습니다만.. 사실 오늘날 외교 자리에서도 타국의 현직 대통령과 전 대통령을 햇갈려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죠. 미실도 국내일에만 치중해서 대외적인 부분에서 그런 실수를 했다고 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까요?

  13. 기러기깡 2011.09.29 0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라라. 이런 생각 하시는 분 저 말고도 있으셨군요. 드라마에 만연한 환빠기질이 정말 싫습니다.

    진흥대왕이 당나라 총독에게 전쟁 멈춰달라고 보낸 서한 보면 엄청 설설 기지 않나요. 그런데 당나라 황제의 사신에게 왕도 아닌 여자가 저런 말을 하면.... 신라가 당나라랑 동맹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애초에 둘이 수평관계가 아니잖아요.

    보면서 저도 허무했습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주인공은 선, 상대편은 악, 한국 인물만 영웅화 하는 것도 그렇고 애국주의 코드랑 안 맞아서 참 볼때마다 그런 부분이 걸리네요.

  14. BlogIcon 원숭이 2012.01.01 1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15. BlogIcon 2012.01.07 0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전체에 서있다면 당신은 파고있어, 당신은 파고를 중지해야합니다

  16. BlogIcon 페넬로페 2012.04.03 1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17. BlogIcon 한나 2012.05.09 0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습니다, 그것을 사겠습니다

  18. BlogIcon Ashlyn 2012.05.11 0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19. BlogIcon radio am fm online 2012.11.26 2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밴쿠버 올림픽이 끝나고 오서코치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지만 올림픽을 앞둔 1개월전인 2010년 1월말 4대륙 대회 기간중 김연아는 발목부상 중이였다. 발목부상중인 김연아가 빙상연맹과 ISU와 전주시측의 참여 압력에 굴복하여 부상를 치료 못하고 대회에 참여하였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20. BlogIcon dried kidney beans pressure cooker 2012.12.04 2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물론, 이 당시 이세민이 나올 하등의 이유가 없다. 황제 이세민이 나온다는 뜻은 극중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626년 가을 이후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외교전문가 미생은 "당나라가 건국된지 10년도 안되었다"라고 말을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 48회에서 당나라 사신이 미실의 반란을 눈치를 채고, 미실에게 황금천관을 내 놓으라고 협박을 한다. 드라마 작가는 황금천관이 어느정도 되는지 감히 아는지 모르겠다. 신라는 황금의 나라이니 충분히 가능할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이글을 끝까지 읽어 보기 바란다. 

당의 황제가 원해서 황금천관을 신라에 원한 건 절대로 아니다. 사신 개인적으로 착폭하거나 출세를 위한 방편이다. 이를 간파한 미실이 당나라 사신이나 되는 놈이 싹수도 없이 협박을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세민을 언급을 해서 자극을 한다. 사신이 사신답지 않기 때문에 이세민을 언급해도 된다는 뜻이다. 만약, 정상적인 사신이라면 당장에 전쟁난다. 아무리 작가의 희망사항을 극으로 만드는 것이지만 개연성과 합리성이라게 극에도 있다.

물론, 이 당시 이세민이 나올 하등의 이유가 없다. 황제 이세민이 나온다는 뜻은 극중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626년 가을 이후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외교전문가 미생은 "당나라가 건국된지 10년도 안되었다"라고 말을 한다.


그러면서 미실은 수나라 "양"씨로 부터 권력을 찬탈한 <국조>인 이세민이 이자리에 오지 않는 한 너 금욕에 눈이 먼 당나라 정사는 이야기 대상이 되지도 않고, 상대가 않는다고 말을 한것이다.

문제는 수로 부터 당나라를 세운 국조는 "이연"이였다. 물론, 이는 작가가 대국에 대한 컴플렉스가 심각한 수준이고, 우리나라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대국에 할말을 하고 "맞짱"떠주는 정치인이 왜 없을까? 하는 자괴감을 극에 녹여서 포퓰리즘을 자극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이전
2009/11/0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 왜 이세민 찾나? 소화 서영희 하차로 본 극중시제? 기사에서 언급을 했다.

당나라 <국조> 이세민을 언급하는 순간 이 드라마는 도대체 "머뮝"하게 되고 드라마 작가는 역사책을 한줄도 읽지 않고, "드라마만 무지 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국제정세를 꿰뚫어 보는 미실이 아닌 우물안 개구리 <미실>과 정치력이라고 제로인 미실을 그려 버리고 만것이다.

드라마 연개소문을 보면 이세민과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당히 자신의 견해를 말하고, 친구사이로 그려지기도 했다. 신채호가 갓쉰동전을 언급하면서  연개소문이 어릴적 당나라에 가지 않았을까하는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글쓴이 "갓쉰동" 닉은 연개소문의 아명에서 따왔다.)

어찌되었던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김유신이 603년 한수전쟁에 참전한것으로 설정한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은 한발 더나아가 <임술년>인 602년에 아막성 전투에 참전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드라마 연개소문 보다 1년 먼저 김유신과 덕만이 참전하는 새로운 기록을 세우는 것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6/2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화랑 신화창조의 성지 아막성, 광개토태왕의 #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문제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과 천명이 <임술년>에 태어났다고 한점이다. 덕만은 태어나자 마자. 사막여행을 하고, 태어나자 마자 아막성 전투에도 참전을 한다. 천명은 <임술년:602년>에 태어나자 마자 결혼을 해서 임신하고 이듬해에 김춘추를 낳는다.

또한, 미실이 당태종 이세민을 언급한 이유도 별다른 이유가 없다.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연개소문이 이세민과 맞장을 떴으니, 신라 신국의 새로운 국조가 되는 미실이라면 이세민과 맞짱을 떠도 되는것 아닌가하는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다.


문제는 <이세민>을 당의 국조로 격상을 시키고 처음 당나라를 세운 자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컨닝을 잡는 방법은 간단하다. 앞선 드라마 연개소문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고 머리 굴린다고 1년전으로 김유신과 덕만을 투입한 것이 증거 이다. 역사공부는 안하고 드라마만 봤다는 반증자료이다. 

 한류의 바람을 타고서 선덕여왕이 대만과 일본과 중국에 팔려나가고 있다.문제는 이들 국가는 한자문화권이다. 물론, 현재 중국은 간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수도 있겠지만, 대만이나 일본은 우리와 같은 당나라 시기에 들어온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련 기사는 2009/10/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이 결혼할수 없는 이유? 남편들이 죽어서.. 참조하기 바란다. 또한, 대장금 처럼 중동이나 이집트에도 수출될 지도 모른다. 이들 국가에 수출이 되었을 때 이들국과와 관련이 있는 역사왜곡문제는 다른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황남대총 황금왕관,황금 관모장식(?)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당나라 사신이 주장한 <황금천관>에 대한 허상을 파헤쳐 볼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은 신라가 황금의 나라로 알고 있고, 황금이 넘처나는 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기본적으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마야나 잉카의 황금 <엘도라도>라면 모르겠지만, 신라는 황금이 풍족하지 못했다. 아주 간단한 증거는 삼국시대에 가장 발달한 세공기술은 <아말감>기법의 금동관이나 금동불상 등 금동제품이다. 한마디로 짝퉁 황금 명품이 아말감 기법이다.

황금천관의 가치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1억불정도 되지 않을까하지만, 기준이 되는 신라의 <관>이 현재의 몇<돈>에 해당하는지는 알 수 없다. 기준척이 정확하게 정립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이니 어쩔 수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귀족들의 <매점매석>편에서 금을 기준으로 <쌀>을 계산한 적이 있다. 물론, 허구이지만 말이다.

신라에 황금이 풍부했다면, 불국토를 꿈꾼 신라에서 황금으로 만들어진 불상들이 우리의 유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저 금동관 금동불상들이다. 물론, 황금색을 선호하고 귀하게 여긴건 주지의 사실이고, 신라는 황금을 사용할 수 있는 계층을 법으로 제한을 하고 있다. 황금과 <은>은 황실에서만 독점적으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금동조차 왕족인 진골은 사용 할 수 없었다.

거기(수레, 마차, 말장식 등) 
진골은, 수레 재목[車材]은 자단(紫檀)·침향(沉香)을 쓰지 못하고, 대모(玳瑁)를 붙일 수 없으며, 또한 감히 금·은·옥으로 장식하지 못하였다.

기용(사용제품)
 
진골은, 금·은 및 금도금한 것을 금하였다.

옥사(가옥)
진골은 금·은·유석·오채(五彩)로 장식하지 않았다

-삼국사기 신라 잡기 -

고고학 발굴에서 황금이나 금동제품이 나왔다면, 해당하는 유물을 사용한자는 왕실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드라마의 매점매석편에서 <금괴>, <은괴>가 나올수가 없다. 당시 신라에서 귀족들이 <금.은,금동제품>을 사용하는 순간, 대역죄에 해당하니 말이다.


경주, 대릉원,황남대총

그렇다면, 황금을 쓸수 없는 진골이나 귀족들은 무엇으로 황금빛을 사용하였을까? 놋그릇으로 알려진 구리와 주석 합금 <유기>나 <황칠>을 사용했다.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사용한 반지나  귀걸이 장신구처럼 청옥, 연옥 등 옥제품 주얼리를 사용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수나라 사신이 들어와 신라 황실에 <황칠>을 요구한다. 덕만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다. 하지만, 수나라 사진은 신라에서 <황칠>을 요구할 수 없다.

<황칠>은 당시 신라지역에는 나오지 않는 백제지역의 특산종이기 때문이다. 신라도 <황칠>은 백제로 부터 수입해서 사용하였다. 수입품 황칠은 경주 대릉원의 쌍릉인 <황남대총>의 유물로도 나온다.

백제는 당나라에도 황칠을 수출하고 신라에도 수출했던 것이다. 황칠로 만든 <금광개>는 고구려나 당나라의 기마병들이 입고 전투에 임했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신라에서 백제 특산물 황칠을 찾는 수나라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9세기경에 신라를 기록한 중동지역의 지리학자는 신라가 9개의 섬으로 이루어 져 있다고 하며, 그 나라 사람은 병에도 걸리지 않고, 장수를 하며, 개밥그릇이나 목걸이도 <황금>으로 장식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신라를 이상향으로 그렸다. 한번 그나라에 들어간 사람은 고향에 돌아가길 거부하고 눌러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기록한다.

방짜 유기

한마디로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늙지도 않고, 미실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게 그리는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 딱 그 모습의 불국토인 이상향이다. 이 지리학자가 전해들은 <황금의 나라 신라>는 황금과 비슷한 아말감 기법의 금동제품이나 유사품 <유기>나 칠을 하면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황칠>을 본것이다. 그러니 개밥그릇이나 개목걸이가 황금빛으로 빛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이들 유기나 황칠을 한 제품은 세균을 죽이는 소독효과가 있다. 그래서 유기나 황칠 그릇으로 밥이나 물을 먹으면 수인성병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 괜히 옛조상들이 밥그릇이나 차례를 지낼때 제기로 유기를 사용는 것이 아니다.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개의 목걸이에도 황금으로 할만큼 황금이 지천이라면, 왕족인 진골조차 금으로 만든 장식을 못하게 막을 이유가 없다. 한마디로 정리를 한다면 대한민국 여성들이 세계 제일 많이 <다이아몬드> 반지, 목걸이 등 장신구를 좋아하고 애용한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다이아몬드 산지는 될 수 없듯이 황금관과 장식이 나온다고 해서 신라땅이 황금이 많이 나는 산지는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신라에 황금이 귀했다는 반증밖에는 될 수 없다.

결론은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는 "입만 열면 거짓말하고, 숨쉬는것 빼고 다 거짓이 아니냐"는 누구와 닮았다.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는 글마다 오류 투성이 거짓 뿐이다. 누구에게서 진실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 처럼, 이 작가에게서 역사적 사실을 발견하는게 더 힘들다. 더욱 가관인것은 드라마 작가가 역사는 왜곡되어선 안된다고 <거칠부>의 입을 통해서 목숨까지 걸만큼 소중하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자신은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언행일치와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하고 있다. <거짓말>이나 <왜곡>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거짓말과 왜곡은 자신은 알고 있는 상태에서 남을 의도적으로 속이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작가는 단지 <무지>할 뿐이다.

일본의 속담중에 "100번을 말하면 거짓도 진실이 되고 사실이 된다"는 말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독도문제와 일제치하의 만행들이다. 드라마에서 지속적으로 무지를 들어내면 그게 상식이 되고 역사가 되어 버린다. 이를 수정하는 방법은 없다.

있다면, 작품을 만들기 전에 연구를 하든지, 최소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전문가들로 부터 <검증>이나 <감수>정도는 받았어야 한다. 하지만 작가나 제작진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이유는 보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이나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이기도 하다. 2009/11/0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고현정 하차로 본 미실 최후 미실의 난, 비담(김남길) 존재감 사라진 진짜 이유? 관심이 있는 분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오늘도 글이 길어져 버렸네요. 한방울의 오수를 정화할 때 수백배 수천배의 물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한마디의 잘못된 키보드워리 막말 수준의 역사를 수정 하려면 물을 정화하는 것처럼 수 많은 근거를 제시하여야 하기 때문에 길어져 버렸습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통해서 배우는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래도 글로써 정확한 상식을 알아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아마도 이글을 읽은 사람 중에 위에 언급한 사실들을 알았던 사람은 극히 드물겁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볼수 있도록 추천을 많이 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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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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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skagns 2009.11.06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야~ 오늘도 재미난 주제로 다양한 지식을 보고 가네요.
    즐거운 금요일 되시구요!! ^^

  3. 오스왈드 2009.11.06 1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병도 하셔서 그러신데...
    이병도의 영향력은 얼마 없습니다
    이병도 제자들이라 해서 이병도 찬양하지도 않고요..
    성골 진골 문제에서 이병도가 문제가 아니라 성골 진골이 있었다는 기록 자체를 어떻게 부정할 방법 자체가 아직 없으니 그렇지요
    삼국사기에는 분명 있었다고는 나오고
    성골 성조 운운하며 반박할 수있는 자료는 화랑세기인데 전 부정적 신중론자인지라..
    아니 화랑세기 자체가 아직 안 쓰이니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전 성골 진골 해석은 서강대 이종욱 교수님 해석이 올바르다고 봅니다
    근친은 성골 방계는 진골..

    • BlogIcon 갓쉰동 2009.11.06 1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영향력이 없다면 성골진골은 교과서에서 나올수 없지요.. ㅋㅋ

      성골.진골은 해석상의 문제이지요. 제가 "성조"를 이야기한건. 이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내용입니당. 화랑세기가 아닌.. 저는 성조=성골로 보고 있는 입장입니다..

      왕의 자제는 성골이지요.. 단, 정비의 자식들로요..
      화랑세기는 성골.진골 자체가 없지요..

      전, 이종욱교수의 견해야 동의할 수 없어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골을 정의한 이상에는요..

      이종욱은 근친을 성골로 보지 않고, 대궁에 살면 성골로 보았지요.. 대궁을 벗어나면 성골에서 족강된다는 견해와 함께.. ㅋㅋ 근친혼을 비롯해서 성골의 기존 문제는 진평왕의 정비가 되는 손승만왕후의 존재로 깨지는 설들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06 1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비의 자제로 보는 견해는 바꿀수도 있어용.. 실은 정비의 후손이 아닌 자들이 왕이 된 경우가 너무 많이 보이거든요.. ㅋㅋ

  4. 오스왈드 2009.11.06 1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골 진골 문제는 제가 고대사 전문가가 아니어서 잘 모르는 문제이고요
    다만 저는 천명 덕만 문제에 있어 저는 덕만이 언니라고 생각됩니다
    둘 다 정비의 소생이라면 사실 순위를 따지는 것이 의미 없습니다
    그냥 형제 순이요 엄마 순서입니다
    이 문제는 조선 시대로 가면 폐비 신씨-단경왕후-의 복위를 막는 요인이 되기도 했지요
    폐비 신씨가 복위해 왕자를 낳으면 현재의 원자를 제칠 수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저는 덕만보다 천명이 언니라고 생각됩니다
    일단 가장 신빙성 있는 자료인 삼국사기가 언니라 하고 있으며, 삼국유사도 장녀라고 하는 것을 보았으니까요
    천명이 언니라고 나온 기록은 화랑세기가 유일한데..
    화랑세기는 당대의 기록이 아닌 한 세대 정도 뒤의 기록이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천명과 덕만의 순서가 바뀐 것은 김춘추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라 보여집니다
    김춘추의 왕위 계승은 비정상적이었지요
    이를 얼버무리기 위해 자신에게 왕위 계승의 정당성이 있음을 홍보해야 했겠지요
    그래서 천명과 덕만의 순서를 바꾸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원래 천명의 자리였으나 이모 덕만에게 간 겄을 나는 되찾았다..
    김부식은 공식적 왕실 족보 등을 보고 삼국사기를 적었겠고-혹은 삼국사기의 모델이된 구삼국사-
    김대문은 정부가 발표한 것을 믿고 그대로 옮겼으리라 봅니다

    참 그전에 칠숙 석품의 난도 한 번 다루어 주셨으면 합니다
    석품의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아무래도 기획반역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듭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06 2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삼국사기에만 덕만은 진평과 마야의 장녀라고 기록하고 있지요.. 천명은 진평의 딸이라는 구절만 있고, 이럴땐 마야의 딸은 아니라는 해석이 일반적인 역사 상식에 맞지 않을까 합니당.. ㅋㅋ

      김대문 같은 경우는 같은 세대를 살았지용.. 680년경에 화랑세기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게 일반적인 설이고, 이는 자신 천명과 덕만을 어릴때부터 봐왔다는 뜻이 됩니다. 현존 필사본이 진본 화랑세기를 필사한 것이라면, 화랑세기의 기록이 맞을 겁니당. 저야 의심스럽지만요. 화랑세기강.. ㅋㅋ

      칠숙과 석품의 난은 이미 글을 쓴게 있습니당.. 다음주에 정리를 해서 올릴예정입니당.. ㅋㅋ

  5. ECLAT 2009.11.06 2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필사본이긴 하지만 화랑세기에는 마야의 딸이 천명, 덕만, 천화라고 되어 있잖아요. 그리고 천명의 어머니는 마야라고 나와있는 부분도 화랑세기의 오역이라고 봐야 하는건가요?ㅎㅎ 18세 춘추공 세계에 "天明之母曰摩耶者 福勝公女也" 이런 구절이 있더라구요. 천명의 어머니 마야는 복승공의 딸이다. 라구요.

    만약에 마야가 천명을 낳지 않았다면, 천명이 진골정통이라고 알고 있는 것도 잘못된건지...
    물론 그 당시 진골정통이 꼭 마야만 있었던건 아니지만...
    ~명 돌림 때문에 보명궁주의 딸이 아닌가도 생각했습니다만, 보명의 딸이었으면 제대로 어머니에 대해 표기했을 텐데 안한 것도 이상하고... 진짜 춘추가 왕위에 올랐는데 자신의 어머니를 문정태후로 추존하면서 그녀의 세계에 대해서 자세히 안 올린 것도 좀 이상하고.. 만약 그녀의 어머니가 신분이 낮았다면 아무리 장녀라고 해도 진평왕이 그녀의 남편을 부군으로 삼아서 왕위를 물려줄 생각을 안했을 테니까요.
    (제가 잘못안 걸수도 있지만 춘추와 유신이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 중에 하나가 둘다 진골정통인 어머니를 두고 있어서 둘다 진골정통이기 때문에 친해졌다..라는 글을 어디서 본 듯한 기억이 있어서요.;)

    근데 또 덕만이 50이 넘어서 왕위를 물려받았다는 것도 좀 이상하기도 하구요. 그러면 삼서제로 들인 남편들은 다 완전 아저씨, 할아버지 뻘이었던 건가요? 용수와 용춘 둘다 그녀의 사신이었는데 천명의 남편들이기도 했으니까요.

    삼국사기가 정사만을 기록했기 때문에 가장 신빙성 있는 자료이고, 그렇게 생각하면 서장녀가 천명이고, 적장녀가 덕만이란 말을 유추할수도 있습니다만.. 좀 궁금하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06 2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를 논할땐 화랑세기를 인용을 하지 않는 편이거든용. 암튼..님의 말씀처럼 천화, 천명, 덕만 순으로 마야의 딸로 나오기는 합니당. 덕만은 천명보다도 나이가 한참 어린 것으로.. 용봉이 자질이니 하는 뜻은 어린싹이 보인다는 뜻일 겁니당.. 화랑세기에서동..

      결혼을 시키다는 전제는 후사를 보기 위한 전재조건이 있징요.. 그래서 화랑세기던.. 삼국사기던 삼국유사던 덕만은 일반적인 통설에 50대는 될수 없다는 뜻일 겁니다.

      잼있는건 화랑세기에 의하면 14세 풍월주가 되는 호림은 603년 부터 612년 까지 장기 집권을 하는뎅 호림이 풍월주가 된 이유가 누나 마야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당. 풍월주이전 좌우(?)대화랑이 된 596년경에는 마야가 왕후로 있어서 호림이 화랑에서 출세를 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기도 하구요. 그러니 호림과 마야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진평의 첫번째 정비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지요..

      또한, 화랑세기에는 보명과 미실이 진평의 초기 좌우황후였다고 기록하고 있거든용.. 꾸준히 화랑세기는 마야는 지금까지 우리가 통설로 알고 있는 마야는 진평의 초년 왕비 임을 부정하고 있다는 거지용.

      이에 관한 이야기는 역사이야기 전반부를 보시면 꾸준히 제가 덕만은 20초반이나 그 이전에 왕위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글을 보실수있을 겁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만을 통해서..

      님의 말씀 처럼 서장녀 천명이고, 덕만은 천명의 나이어린 동생이며 적장녀라고 저는 생각합니당.. ㅋㅋ

  6. 갓쉰동 최고 2009.11.07 0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고학이나 동서문물교류사부분에서는 신라의 황금의 산지는 아닙니다만 황금문화의 전성기를 구가한나라로 보기는 합니다. 황금자체의 산지는 당연히 아니죠. 그러나 황금문화자체는 발달한 나라로 보기는 합니다. 제가 앞글에서 언급한 것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신라는 황금을마구쓰는 중동국가가 오일을 마구쓰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생산되는 국가가아닌 선진황금문화를 구가한 나라라고는 볼수있습니다.
    제가 앞에서 말한글은 신라를 황금의 나라는 아니지만 황금문화를 구가한 나라로는 정의할수 있고
    그러한 문화사적 교류사적 관점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신라는 황금의 산지가 아닌 귀족문화의 발달과 더불어서 황금을 제련해서 부장품을 만드는 문화가 발달햇다고 할수있죠

    • 갓쉰동 최고 2009.11.07 0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결국 신라 왕실은 황금 독점을 통해서 세련된 황금 제련술을 개발하고 이를 이용해서 자신들을 치장하는 데에만 사용했죠. 문화사를 연구하는 분들게는 아주 중요한 역사적유뮬이 되어버렸지만 말이죠.
      신라의 선진 황금제련술은 결국 왕실의 사치품을 위한 제련이었죠
      우리나라의 토목건축기술이 정권의 권력유지용이 된것처럼

    • BlogIcon 갓쉰동 2009.11.07 0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용.. 독점을 한다는건 그 만큼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귀하기도 하다는 뜻이지요..

      멋진 비유인데용.. 정권의 권력유지장치라.. ㅋㅋ

  7. BlogIcon shinlucky 2009.11.07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드라마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관련글 잘 읽었습니다. ^_^~~

  8. 갓쉰동님 광팬 2009.11.08 1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약 저런 상황이 있었다면 국력과 인구, 영토의 크기가 당나라와 엄청난 차이가 있는 신라의 정치인이 저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네요. 님 말씀대로 사신이 사신답지 않아서 미실이 당당할 수 있었겠지만요. 당나라의 힘을 빌어 신라보다 국력이 강했던 고구려나 백제를 쓰러뜨렸던 신라로서는 말입니다. 그나저나 당나라도 나왔는데 이놈의 드라마는 고구려나 백제에 대한 언급이 왜 이렇게 없을까요? 저 시대는 삼국이 외교전술이나 정복전쟁으로나 엄청난 격변기라고 알고있는데요.

  9. 갓쉰동님 광팬 2009.11.08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건국 10년이면 아직 국조인 이연이 건재하던 때인데 황제도 아닌 황제의 수많은 아들들 중 한명에 불과한 이세민의 이름을 언급한 것도 정말 코메디이네요^^;;

    • 갓쉰동님 광팬 2009.11.08 1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건국 10년도 안되었을 때이면 이세민이 등극했거나 아니면 등극 전에 격변기거나 할텐데 황제가 되었는지 안되었는지 확실치 않은 2대 황제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보니 아주 대~ 단한 존재긴 한가 봅니다. 그리고 수나라 양씨의 권좌를 찬탈한 것은 국조인 당고조 이연이지 당태종 이세민이 아닌데 말입니다. ㅎㅎㅎ

    • BlogIcon 갓쉰동 2009.11.09 0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작가의 수준이 딱 일반인 평균이하 수준의 역사지식임.. 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1.09 0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말이면 다 말이 되는 드라마.. 한계가 없어용.. ㅋㅋ

    • 갓쉰동최고 2009.11.11 0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갓쉰동 광팬님의 말씀도 일리는 있지만 국조라는 언급을 하지않았으면 정치적으로는 이세민이가 사실상 아버지 이연보다 위였습니다. 사실 당나라 세우기 제작 연출 모두 이세민이 한것이지요. 주연도 본인이 하고 싶었으나 세상의 눈도 있고 명분상 아버지에게 맡기는게 낳으니 아버지께 맡긴것이지요. 실제적으로 양씨에게 당나라라는 선물을 얻어오고 이밀등을 제압한 사람은 세민입니다.
      그리고 당왕조 건국후에는 이연조차도 함부로 하지 모하는 권력자가 되고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현무문의 난을 일으켜 황제가 되는 세민입니다.
      작가도 이러한 상징성때문에 세민을 내세우기는 했으나 국조라는 언급 당이라는 국가가 신생국으로 10년이 안되었다는 점은 그를 황제라고 칭하기에는 아직 부족하죠. 차라리 미실의 정보가 많다면 실질적 권력자인 세민이가 오라고 했으면 맞을텐데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11 07: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작가의 아전인수 일뿐이지요.. ㅋㅋ

  10. -_- 2009.11.09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지나가다가 쓴건데 _
    너무 선덕여왕에 대해 비판적이심
    그럴거면 안보면 되는거 아닙니까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인데
    역사사극도 아니고 ~_~

    • BlogIcon 갓쉰동 2009.11.09 1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늘 올린글이나 보시고 말씀하셈.. ㅋㅋ
      드라마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말인뎅.. 드라마로 보자니.. 드라마로 낙제점이고 사극으로 낙제점이란 뜻 입니다.. 그런데 왜보냐구요.. 당연히 잼있어용. 님이 보는 재미와 추가적으로 더 많은 재미요소를 가지고 있거든여.. ㅋㅋ

  11. 무지게 2009.11.12 17: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감사합니다 어떤분이신지 궁굼합니다 그려.. 역사를 많이 아시는 분 ..계속해서 글 부탁합니다

  12. 낭랑 2011.09.19 0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의 발언은 비록 현 당나라 황제가 '이세민'이라는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있지만 '이연과 이세민을 구별하지 않고, 양씨를 축출한 '이씨' 가 수나라 양씨들에게서 찬탈을 한것이다' 라는 폭넓은 시각으로 본다면 별로 문제되지 않을 듯 싶습니다만.. 사실 오늘날 외교 자리에서도 타국의 현직 대통령과 전 대통령을 햇갈려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죠. 미실도 국내일에만 치중해서 대외적인 부분에서 그런 실수를 했다고 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까요?

  13. 기러기깡 2011.09.29 0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라라. 이런 생각 하시는 분 저 말고도 있으셨군요. 드라마에 만연한 환빠기질이 정말 싫습니다.

    진흥대왕이 당나라 총독에게 전쟁 멈춰달라고 보낸 서한 보면 엄청 설설 기지 않나요. 그런데 당나라 황제의 사신에게 왕도 아닌 여자가 저런 말을 하면.... 신라가 당나라랑 동맹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애초에 둘이 수평관계가 아니잖아요.

    보면서 저도 허무했습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주인공은 선, 상대편은 악, 한국 인물만 영웅화 하는 것도 그렇고 애국주의 코드랑 안 맞아서 참 볼때마다 그런 부분이 걸리네요.

  14. BlogIcon 원숭이 2012.01.01 1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15. BlogIcon 2012.01.07 0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전체에 서있다면 당신은 파고있어, 당신은 파고를 중지해야합니다

  16. BlogIcon 페넬로페 2012.04.03 1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17. BlogIcon 한나 2012.05.09 0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습니다, 그것을 사겠습니다

  18. BlogIcon Ashlyn 2012.05.11 0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19. BlogIcon radio am fm online 2012.11.26 2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밴쿠버 올림픽이 끝나고 오서코치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지만 올림픽을 앞둔 1개월전인 2010년 1월말 4대륙 대회 기간중 김연아는 발목부상 중이였다. 발목부상중인 김연아가 빙상연맹과 ISU와 전주시측의 참여 압력에 굴복하여 부상를 치료 못하고 대회에 참여하였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20. BlogIcon dried kidney beans pressure cooker 2012.12.04 2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물론, 이 당시 이세민이 나올 하등의 이유가 없다. 황제 이세민이 나온다는 뜻은 극중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626년 가을 이후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외교전문가 미생은 "당나라가 건국된지 10년도 안되었다"라고 말을 한다.

 드라마 전개상 시제는 여전히 풍월주 비재가 있은지 얼마안되는 시점이다. 이를 어찌 알수 있는가하면 춘추가 설원랑의 집을 찾아가 보량을 만나서 보량에게 한가위(가배)선물을 한다. 그런데 가잠성 전투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가잠성 전투는 진평왕 33년 611년 10월부터 100일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가잠성전투가 신라의 승리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가잠성 전투는 신라의 대패로 끝났다. 그래서 40년 신라가 가잠성를 수복하려고 했지만 이때도 대패하고 말았다. 

614년 진평왕 35년 봄에 가뭄이 들었다. 그러니 안강성(비화현)에서 민란이 일어났음직한 때이다.  유신과 결혼한 영모가 임신을 한 시점이기도 하다. 이때 진평왕의 나이는 49살이 된다.

드라마 선덕여왕 40회에서 진평왕이 심장에 이상이 생기자, 덕만으로 하여금 결혼을 하게 하고 사위를 왕으로 삼으려 한다. 
이는 신라가 전통적으로 사위를 왕으로 삼은 것에 기인한다. 그런데 정말 사위가 왕이 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기록상 여왕의 남편을 왕으로 삼았을 수도 있다. 

증거는 서라벌(경주)에 있는 황남대총의 쌍둥이릉으로 확인할 수 있다. 황남대통의 작은 남쪽릉에서는 남성의 부장품이 나오고, 북릉에서는 여성의 부장품이 나왔다.


문제는 북릉에서는 황금관이 나오고, 남릉에서는 금동관이 나왔다. 이로써 북릉에 있는 여성이 남릉의 남성보다는 지위가 높았을 것이라고 누구나 인정한다. 그런데 이 두릉은 덕만이 왕으로 있었던 이전시기의 릉이라는데 있다. 그래서 기록되지 않은 여왕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는 것이다.  신라가 국사를 정립하는 때는 진흥왕 6년인 545년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진흥왕이 젊은 시절에 이사부의 의견을 받아 들여 거칠부가 <국사>를 만든것으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진흥왕은 7살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니 진흥왕 6년이면, 진평왕이 왕위에 오른 15세보다도 나이가 어린 12살이 된다. 이때 실질적은 왕은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태후(법흥/연제)이다. 
 
어찌 되었던, 국사를 만들면서 이전왕의 기록이 소략하거나, 왜곡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다. 어떤이들은 삼국사기의 저자인 김부식이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김부식은 덕만의 기록을 남겨두었을까? 물론, 어쩔수 없이 덕만과 진덕의 기록을 남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구당서와 신당서에 신라에 여인이 왕으로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김부식도 어쩔수 없이 신라에 여왕이 있었다고 기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역사란 한쪽의 일방의 기록만을 참조하지 않는다.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다른 기록을 하였을때 이를 크로스 체킹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합리적인 해석을 하는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대표적인 사위왕은 석탈해(토해)가 있고, 또한명은 김미추가 있다. 하지만, 이들 말고도 수 없이 많은 사위왕들이 있었다. 또한, 기록상 최초의 여왕인 덕만 이후에도 사위로 왕이 된 예가 많다.  진평왕은 전왕의 선례에 따라 사위로 왕위를 이을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진골.성골이 있다고 믿는 일단이 있고, <성골남진>이란 허황된 환상에 빠져 있는 사람은 진평왕이 사위를 볼때 어쩔수 없이 <진골>을 덕만의 짝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성조인 왕의 자식중 아들이 없다는 말이지, 왕의 형제나 조카중 남자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이와 같은 예는 소지(비처)왕이 아들이 없자, 소지왕의 종친인 내물왕의 증손인 지증이 왕위에 오른다. 이처럼 왕에게 아들이 없다면 왕위를 이을 이는 넘친다. 조선도 철종처럼 강화도의 무식한 도령을 왕위에 올리기도 한다. 왕족에 절손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종도 철종의 먼 종친으로 왕위를 계승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조선과 신라는 달랐다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왕을 잇는데는 별다른게 없다. 이미 신라의 예를 들었는데도 조선과 신라는 달랐다고 반론을 제기하지는 말기를 바랄 뿐이다.

어떤이들는 <성골>,<진골>에 집착하여 성골과 진골은 <진흥왕>이후에 정립되었다고 학설을 만들어 낸다. 도대체, 이미 왕족인 <진골>이 있는데, 그 위에 왕을 제외하고 <성골>이 있다는 발상이 스스로에게도 좀 아니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역사학계가 다른 학문도 비슷하지만, <도제>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교수의 학설을 반박할 수 없을 뿐만 아니고, 내부적으로 치열한 논쟁이 없다는 반증일 뿐이다. 만약, 자신의 학파에 반발을 한다면, 그 사람은 학계에서 밥 빌어 먹을 수 없다. 한마디로 학계를 떠나야 한다는 말이다.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도제에 찌든 사람을 대상으로 비판을 가하고 있는것이다. 충분히 그렇지 않게 운영되고 있는 곳도 있을 것이다. 별로 본적은 없지만 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천명으로 부터 물려받은 유신을 사랑하는 덕만은 유신을 두고,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평생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다. 결혼을 한다면 자신이 왕노릇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 <사위왕>을 철저히 심봉하고 있는 선덕여왕 <원작자>의 견해이다.

어찌되었던, 천명이 사랑한 나이 어린 유신을 덕만은 눈물을 머금고 버린다. 그리고 유신이 영모(하종/미모)와 결혼을 하자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며 눈물을 찔끔거린다.   재밌게도 이는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의 천명과 덕만과 용수와 용춘의 이야기를 변형시킨 것이다.


신라에서 여왕이 나오는데 신라의 역사의 흔적으로 부터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고, 드라마에서는 외국에 사례가 없다고 나오지만,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황당한 일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10/0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왕을 놓고 김춘추와 덕만이 대립한다?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이미 당시 왜에서는 여왕천하에 있었다. 신라의 이웃 국가인 왜의 첫 여왕인 추고여왕(593~628), 제명.황극(641~645, 655~661) 사례도 있으니 충분히 고려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왜의 여왕시기는 더 위로 올라간다. 비미호는 여왕으로 한반도와 중국과도 교류를 하였다. 비미호의 조카도 여왕이 되었다. 신공 또한 왕후로써 여왕의 직을 수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0년(173) 여름 5월에 왜(倭)의 여왕 비미호(卑彌乎)가 사신을 보내와 예방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아달라왕


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신라가 진평왕시기 왜에 추고왕(593~628년)재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수가 없다. 드라마에서 등장인물들이 모두 나와서 선례가 없다고 떠드는 말은 수나라에 일찍이 조기 교육을 받아 외교전문가로 크는 춘추까지도 욕보이는 것이다. 또한, 춘추는 642년 고타소가 죽자 왜에 청병을 하러 가기도 한다. 춘추가 왜에 가서 만난  제명왕도 여왕이였다. 그러니 선덕(632~647년)과 제명(641~645년)은 동시대에 여왕으로 있었다는 뜻이다. 재미있게도 제명은 몇년후 다시 왕위에 올라 655~661년까지 왜의 <황극>왕으로 있었다. 제명과 황극은 동일인물이다.

덕만이 결혼할 수 없는 이유? 의외로 간단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을 하자.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삼국유사나 화랑세기는 덕만이 결혼을 하였지만, 자식을 두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덕만의 남편인 을제(신구)

삼국유사의 왕력편에선 덕만이 왕위에 오른 632년이후 3년에 634년에 <음갈문왕>과 결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음갈문왕은 누구일까? 진평왕에게는 두명의 남동생이 있다. 한명은 백반이고, 또 한명은 국반이다. 진덕의 뒤를 이어 왕이된 진덕(승만)의 아버지는 국반이다.

만약, 진평이 덕만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이 없었다면 백반이 왕이 되었을 것이다. 사위왕이 되기전에 말이다. 성골 좋아하는 사람이 보았을 때, 진평왕의 형제인 사람보다 확실한 성골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성골남진>의 논리적 허구는 여기서도 깨지고 마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화랑세기에는 덕만의 남편으로 3명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명은 용춘이고, 두번째가 용수이고, 세번째가 <을제>이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은 용수를 일찌감치 죽여 버렸다. 이유는 덕만과 나이어린 꽃미남(?)유신을 염두해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을제>를 소리소문 없이 드라마에서 낙마를 시켜버렸다.

을제인 신구가 용궁으로 다시 돌아갔는지, 아니면 다른 드라마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유는 유신과 덕만을 연결시키고자 하는 이유 때문일것이다. 또하나는 드라마를 제작하는데 <제작비>의 압박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덕만의 남편이 되는 을제역을 맡은 신구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진흥왕인 이순재만큼이나 출연료가 비싼분이시다. 그러니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자동으로 드라마에서 낙마를 시킬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을제 배역을 맡은 신구가 덕만(이요원)과 결혼하는 꿈을 꾸다가 "결혼할 수 없다"는 대본을 보고 스스로 낙마했을 수도 있다.

나머지 용춘은 왜 그럼 남겨 두고 있는가? 어짜피 용춘은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모습을 본 천명을 죽임으로 해서 이미 덕만의 짝으로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천명이 춘추가 왕이 될때까지 살아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라고 반문한다면  2009/08/11 - [역사이야기] - '천명', 대남보의 독화살에 죽었다?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니, 끈떨어진 용춘 자신의 실질적인 아들인 젖비릿내 나는 10살 짜리 <춘추>(유승호)가 <화백회의>에  난입해 쿠데타를 일으키는데도 오히려 생뚱맞은 시선과 말로 춘추를 나무라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의 원작인 소설 <선덕여왕>의 작가는 여성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덕만과 미실을 중심축에 두고, 요즘 트랜드인 꽃미남(?)남성들을 등장시키는 것으로 남여평등한 사회와 여성주의 사극이 완성된다는 환상을 가진듯하다. 하지만,  이미 공인된 사서인 삼국유사에도 덕만이 결혼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는데도, 원작자의 한계는 여성으로 왕이 되면 결혼을 하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화랑세기>를 원작자가 <사서>라고 확신하고 있다면, 덕만이 왕으로써 최소한 3명(용수,용춘,을제)의  남편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성은 여러 남성들을 남편으로 두면 안되는 것인가? 남자왕은 정비, 후비들을 수없이 두고 있는데 말이다.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이 <비담의 난>까지 극을 전개한다면, 비담의 난을 덕만을 향한 반란이 아닌, 짝사랑하는 덕만을 지키고, 유신에 반대하는 정병으로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진덕(승만)이 왕이 되는 충분한 설명이 될테니 말이다.

어찌되었던 처음부터 용수, 용춘, 을제를 드라마에 등장시키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이들이 등장인물로 설정이 되었다면 기록에 충실해야 해야한다. 이들이 덕만과 혼인관계가 아님을 극중에 충분히 녹여 내야 하는 것이다. 덕만이 성녀마리아도 아니고, 왕이 되기위해서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니 결혼하지 않는다는 수녀처럼, 왕노릇했다는 발상은 드라마적이도 않다. 동정녀 마리아도 결혼해서 수 없이 많은 자식들을 두고 있는데 말이다.

보종은 진평왕의 사위다


진평왕이 사위로서 왕위를 잇게 하려 했다면, 보종이 왕이 되어야 한다. 보종은 진평/보명의 딸인 양명과 결혼한다. 그러니 보종은 진평왕의 사위이다. 춘추는 보종의 딸인 보라와 결혼한다. 그러니 가만히 있어도 보종의 뒤를 이어 사위왕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다고 말들을 하지만, 사극으로나 드라마로나 이처럼 이야기 구조가 허술한 드라마를 본적이 없다.

이제 조씨족보나 삼국유사나 화랑세기에 기록된 덕만의 남편들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끝을 맺으려 한다.

덕만의 남편들..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음편에는 "왜? 선덕여왕에 <선화공주>가 나오지 않는가?"에 대해서 합리적인 해석을 해볼 생각이다. 사실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선화공주가 등장하던 등장하지 않던 극을 전개하는데는 문제가 없다. 단, 선화공주가 등장한다면,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등장인물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 합리적인 이유와 설명이 극에 녹아 나야 한다.

PS. 선덕여왕 덕만으로 활약하는 이요원이 대상포진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선덕여왕에서 하차를 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극의 양대 주인공중에서 실질적인 주인공인 미실 고현정은 연장된 12회중 8회정도만 나오기로 결정하였다고 하네요. 결국에는 덕만이 죽을때 까지 등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등극하기전에 죽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아쉽다면 덕만이 여왕이 되는 과정(길)이 아닌 여왕으로서 신라를 어떻게 경영했는지를 보고 싶은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김정현(하종)이 결혼을 하는군요. 또한, 신녀로 활약한 설매(조명진)도 결혼을 하는 군요.. 두분의 결혼에 축하를 드리는 포스팅을 하여야 할텐데. 하종을 변호하는 기사를 송고할까 합니다. 찌질이 하종 알고보니 엄친아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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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선덕여왕팬이지만~ 2009.10.10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주교인으로서 '동정녀 마리아'께서 결혼해서 수많은 자식을 낳았다는 부분은 참... 물론 비종교/타종교인이기 때문에 쓰실 수도 있지만, 그래도 굳이 선덕여왕을 성모마리아님께 비유할 필요가 있습니까? 수녀님들도 그렇고 그런 식으로 '비하'받을 분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ㅡㅡ; 왜냐하면 평생을 하느님을 모시며 순결하게, 신념과 신앙으로 사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세속에 있는 우리들이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분들이 아닙니다. 혼탁해진 세상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시는지를 알고 계시는지... 그리고 선덕여왕이 스스로 혼인하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어쨌든 자신이 여왕/부군이 된다고 했지 남편을 평생 두지 않고 살겠다는건 아닌것 같은데요. 어차피 드라마는 99%의 허구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인 부분보다는 재미가 더 위주죠.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굳이 넣지 않아도 되는데 넣었다면 왜 그랬을까 하는것도 생각해 보셨더람 좋았을 겁니다..

      이미 선언했지요.. 부군이 되겠다고 하기전에.. 그렇다고 해서.. 죽일 필요성이 없지요.. 요즘은 죽이면 극적이고 드라마 처럼 보이나 봅니당..

  3. BlogIcon 감자꿈 2009.10.10 1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재밌는 글 잘 읽고 갑니다.
    미실이 연장에서 8회까지만 나오는군요.
    무진장 아쉽습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확한것은 아니고 연장에는 동의를 했다고 합니당. 그것도 연장에 따른 출연료는 한푼도 안받고.. 고현정 대단해용.. ㅋㅋ

  4.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2009.10.10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역사스페셜이 아니지 않습니까? ㅋ 그냥 보고 즐기면 될 뿐, 역사랑 틀리다 해도, 드라마로 인해 그 당시 시대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고, 실제 역사에선 어떠했을지에 대한 관심이 올라 간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좋은 효과라고 생각하는데요.

    • Lani☆ 2009.10.10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이분이 친절하게 실제역사가 어떠했는지 써주신거잖아요;;

      갓쉰동님 글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단 드라마 자체로도 최 하급이라는 말씀을 드리고요. 사극으로는 최악이라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해당 하는 책이 존 책이 아니듯이, 시청율이 높다고 존 드라마. 사극은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아동성폭행범이나, 연쇄살인법 등 범죄자들은 아주 좋은 효과를 발휘한겁니다.. 덕분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지요..

      lani/그러게 말입니당.. 누가 드라마를 드라마로 안본다고 한적도 없고, 드라마의 해설부분인뎅.. 난감할 때가. 드라마다 다규를 만들라고 하는 분들을 보면 왜, 선덕여왕이 인기가 있는지 알겠고, 요즘 사회가. 정치가 그런지 알겠어용..

  5. 함바그 2009.10.10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살짜리 춘추가..이건 ;;
    드라마상에서 춘추가 10살로 설정됐단 말씀인가요?

  6.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0.10 1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이유는... 드라마니까요 ㅋㅋㅋ
    역사대로 하면 흥미가 없죠... 허구적인 요소가 들어가야 재미가 있는거죠.
    덕만이 낭도라는 것과 타클라 교역지대에서 컸었다는 건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스토리를
    뽑아낼 수 있는게 "역사 드라마" 아니겠어요.
    글은 잘 읽고 갑니다.
    하지만 항상 역사와 사극인 다르다고 생각하고, 사극이 역사를 왜곡시켰다고 해서
    굳이 욕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네요
    하여튼 잘 봤습니다 ^.^a;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드라마도 선덕여왕처럼 만들지 않지용.. 현대극이라면 막장의 최고봉입니다. 출생의 비밀은고사하고, 죽은자가 돌아다니고, 죽지 않은 자를 죽여버리고, 1살짜리가 얼라를 낳고.. 이런 드라마 보신적있어요?
      사극은 가능하다구요? 사극이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 되용.. ㅋㅋ

  7. BlogIcon 어쩌면 2009.10.10 14: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혼하지 않는다는 여왕이 지킬수 없게되니 다시 을제를 등장시켜 아주늙은 을제를 재등장 시켜 결혼했지만 정치적 남편으로만 보이게 장치(?)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8. 사극은사기 2009.10.10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 절대로 아닙니다. 스스로 기억을 해봐도 어릴 때 본 드라마 허준, 장보고 , 광개토대왕 의 배우들과 내용이 나이들어도 생생히 기억나게 마련입니다. 교과서 내용은 기억에서 1년만 지나도 사라집니다. 그만큼 사극은 역사관 형성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면 일본이 한국침략을 미화하는 드라마도 그냥 드라마로 받아들여야 하고 중국이 한국은 중국의 지방의 한 곳이라고 드라마에서 말하면 그것도 그냥 드라마니까 놔둬야 되나요? 그런 왜곡된 드라마들이 어린 일본,중국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미래의 역사관이 형성되는 데 영향을 미칠거라고 생각해보십시오. 구체적으로 어떤 대목이 아니라 그래 침략할 수도 있지 이런 가벼운 생각이 들게 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선덕여왕에서 여자가 왕이 되는게 무슨 혁명적인 일인듯 하는것과 사람이라면 당연히 성장하면 어울려 결혼하여 가족을 이루어 사는 것까지 안했다고 하면서 억지로 역사를 왜곡하는 것도 우리 문화의 원형을 해치는 것이라고 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당..알고 그런말을 하면 좋겠지만. 모르시는 부들이 꼭 드라마는 드라마다.. 라고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대락난감하겡.. ㅋㅋ

    •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0.11 0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세요. 꼭 드라마는 드라마라는 사람들이 다 역사를 모른다고는 할 수 없죠. 하지만 드라마를 역사대로만 만든다면 말그대로 다큐가 되어버립니다. 사극의 좋은 점은 역사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냥 덜컹 믿어버리는 분도 많지만, 오히려 저게 진짤까하고 제대로 조사하는 분들도 많으시지요. 그런점에서는 사극이 꼭 사기다 나쁘다라고만은 볼 수 없는거 같네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주장하시는대로.... 왜곡된 드라마들이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말하자면 모든 출판물, 드라마 다 그렇겠죠... 내조의 여왕이던지, 너는 내 운명 등등 말도안되는 허구적인 상황을 다 저런게 가능한 것이구나 하고 없습니다. 그러니 모든 드라마에 15세 사인이 붙는거겠죠. (사물을 판단할 수 있는 나이들이 보라고) 물론 역사 드라마다 하니까 믿는게 더 쉽긴 하겠지만, 드라마는 드라마니 다 믿기보다는 스스로 판단해보고 역사책을 읽어보는게 좋다고 생각되네요. 이미 말했던 대로 그냥 그걸 역사다 믿어버리는 분들은 어쩔 수 없는거구요 ㅡㅡa;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댱연히 영향을 미치지요..ㅋㅋㅋ

      저는 사기다 라고 말이 목밖으로 나오려고 하지만, 별로 그런 생각이 없는데용.. 저는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이야기 하는건데요.. 기본팩트왜곡은 문제가 있다.
      인물정보는 지켜줘야 해용..그렇지 않다면 합리적인 이유가 극에 녹아 있어야 하구요.

  9. BlogIcon 결국 2009.10.10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가 여성이어서
    폄하려는 글을 쓴 모양새로만 보이니
    조금 불쌍타

  10. wisi 2009.10.10 1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선화공주는 신라의 공주가 아닌 백제의 호족의 딸이라는 것에 더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에 나왔던 미륵사지 석탑에 나온 문건에 무왕의 왕후는 사택씨라고 했었던 것을 보아도요.) 지금까지 본 신라의 개방적 성풍속으로 보아 "맛동왕자와 밤마다 좋아지내는 공주" 따위의 소문이 별로 남사스러워 보이지도 않고요--; 그당시 풍속을 쫓자면 공주를 쫓아내기 보다는 누군지 알아보아 괜찮으면 결혼시켰을 것 같은데요. ㅎㅎ 선화라는 이름도 별로 신라스럽지 않습니다. (보량, 영모, 미모,천명, 덕만, 승만, 미실 ...그런데 선화... 이상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 때당시 아마 백제어와 신라어는 의사소통이 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심지어 당시에는 다른 민족이었을 가능성도..) 한사람이 다른 국가에 가서 언어적 사회적으로 아무런 배경없이 적응하는 것이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요?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녔어도! 전설은 전설일뿐 오해하지 말자고 외치고 싶네요.

    어디서는 의자왕의 이모가 선덕여왕이라는 (나름 족보를 탐구하신분의 식견!)까지 있는데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설령, 덕만의 동생이 선화였더라도, 의자왕은 선화공주의 자식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둘사이가 몹시 안좋았고, 선화공주가 이룩한 업적(수도를 천도하고자 했고 절을 지었고 기타등등, 나름 활동적이어던 ,무왕의 정치적 동지였던 왕비) 을 의자왕이 모두 뒤집어 엎어, 수도를 옮기는 것도 그만 두었다고 들었습니다.

    어차피 선덕여왕에서 역사적 사실을 찾기에는 너무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무령이 무동같아용.. ㅋㅋ
      의사가 통하지 않아다는 설이 있기는 한데요.. 이미 폐기 처분된것으로 알고 있는데용..

    • 미실존경 2009.10.16 0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알기로는 백제와 신라는 의사소통이 가능했다고 하던데요..

      사실 백제와 신라 뿐 아니라 고구려도 언어가 비슷했다고..

      백제는 고구려 유민이 건국했으니까 고구려와 언어가 비슷했을 것이고

      고구려와 신라의 지리 용어를 연구하신 어떤 분께서 두 나라의 용어가 비슷하다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삼국 사람들은 말이 통했을 것이라고..

    • BlogIcon 갓쉰동 2009.10.16 0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백성의 언어와 지배계급의 언어는 조금 달랐을것 같아용.. 물론, 말은 통했겠지만요.. 제주도 말처럼 이질적이진 않았을 겁니당..

  11. wisi 2009.10.10 1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화공주가 무왕의 정치적 동지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말도 안통하는 이국땅의 왕비로 온 신라의 공주가 그리 할 수 있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틀림없이 선화공주에게는 그녀를 지원해주는 국내세력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약화된 왕권도 강화시킬 수 있었구요.

    그리고 어찌하던 글을 연결시켜 보려는 작가의 고충이 드러나서 어떤 때는 손발이 오그라들 것처럼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4시40분에 일어나야 해서 이걸 보고나면 다음날 체력이 바닥납니다. 그럼에도 보고 있는 것을 보면 참 저도...

    이요원씨가 면역력이 매우 약해져야 걸리는 대상포진에 걸렸다니 큰일이네요. 그거 한번 걸리면 피곤할때마다 재발할텐데... 엄청 아플 텐데...무사히 드라마를 마치기를 기원하고, 끝까지 지금의 힘을 잃지 말고 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역사적 사실이 드러나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어쨌든 뭔가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로서!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왕이전에도 백제와 신라는 혼인관계를 맺습니당..

      잼있는 드라마인건 맞는데. 좀더 신경을 써서 만들었다면 하는 아쉬움이지요.. 열연하는 배우들이 아깝거든요..

      이요원이나 배우들이 아프지 않게 만들수 있는 여건이 성숙이 되었으면 좋겠어용. 너무 날림으로 찍는것 같아서요.. 최소 2주전엔에는 금주 방송분이 끝나 있어야 하는것이 아닌가 해용.. 사전제작은 못할지라도..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

  12. 갓쉰동 최고 2009.10.10 1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글을 잘읽고있습니다만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 학계전체를 비판하신다는 점입니다.
    사실 학게들중 왕초격인 진단학회룰 비롯한 역사관련 학회가 문제가 있는 곳이 많지만 항상 글쓰실 때마다 학계를 비판하시더군요. 사실 님께서 재야학자들이나 다른 전문가들같이 역사에 통달하시고 항상 학게를 접하시는 분이면 모를까 역사에 단순히 관심만 가지신 분이 자기가 연구하고 가정한 감수를 받지않은 자기만의 성과만가지고 일부학게를 꼬집어서 비판하는 것이 아닌 학계자체를 비판하시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글을 읽다보면 가정이 너무 낳은 듯 하기는 합니다.
    그리고 전에 댓들을 달았던 것중에서 역사학도에대한 들을 다시언급해봅니다,
    그러시면 갓쉰동님께서는 얼마나 밥벌이가 좋은학과를 나오시고 얼마나 좋은 직장을 가지셨나요?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0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분 나쁘실수있지만 사람의 적성과 전공을 밥벌이로만 판단하는것 그리고 저또한 역사전공을 꿈꾸는 자로서 상당히 불쾌했기에 올려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학계전체를 비판한적이 없는데용..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아용.. 그런데 왜 밥벌이란 말에 흥분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밥을 벌지 못하면 님은 연구를 못해요. 그 밥을 누군가에서 얻어와야 하는것이구요..
      전공이란 해당 학문을 통해서 수입을 얻는 직업이예용.. 그렇지 않음 취미지요..님은 왜 전공을 꿈꾼다고 하시면서 불쾌해 하는지 알수가 없어용.. 불쾌하게 생각하는건 취미생활이면 가능한 말인데 말이지요.. 난 그 직종으로 밥벌어 먹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돈들여서 연구하고 하겠다.. 아니면 자원봉사를 하겠다.. 이건 취미지요.. 아마추어이구요.. 전 그래서 아마추어예용.. 역사로 밥빌어 먹지 않거든요.

      저는 만약 사학으로 밥을 빌어 먹을 정도라고 인식을 했다면 이미 전공을 사학으로 했을겁니당.. 배고픈 직종인건 다는 이야기 아니에용? 사실을 말하면 발끈할 이유가 없지요..

      문제는 밥을 빌어먹으면서도 아마추어보다도 못한 전공자가 있다는것이 문제라면 문제지요..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전공이라도 해서 꼭 직업으로 삼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전공은 그 학문에대해서 일반 아마추어들보다 좀더 세밀하게 공부하고 좀더 원전을 비롯한 그 학문에대한 자세한 자료를 접하고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직업으로 까지 삼을수 있는 정도가 되었을때 전공했다고 할수있는 듯합니다.
      재야 사학자들 중에서는 역사를 전공하고도 다른 직업을 선택하신분들이 많습니다. 사살 우리사회에서 자기전공대로 직업을 삼는 분들이 적기는 하지요.
      전공은 해당학문을통해서 밥을 버는것이아닌 해당학문을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톹해서 이수하였을때 전공이라고 하는것이 맞는 듯합니다. 꼭 자비를 들어서 연구한다고 해서 취미라고 할수는 없지요. 비록 사회적인 직업은 사학과와 무관하지만 자기가 공부한 학문을 꾸준히 연구하는것은 전공과목을 활용하는 것이죠.
      그리고 학계에 대한 비판은 좋으나 위문장들 중에
      제대로된 학계를 별로 본적이 없다라는 발언은 학계에대해 자세히 알지못하시면서 하시기에 너무 학계를 좋지안게만 보시는 것같아서 드리는것 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님은 존 학계사람들과 교류를 하시길 바랍니다.. 다들 자신들이 존 학파라고 하지요. 학파가 괜히 있는건 아니닌가요..

      그래서 제2전공을 하라고 하는것 아니겠어용.. 전공은 학위를 받는다고 되는게 아닙니당.. 그건 한때 그랬다고 하는거징요.. 학위는 누구나 학점을 이수하면 다 할 수 있어용.. ㅋㅋ 지금은 굉장히 크게 보이실지 모르지만.. 하고 나면 별거 아니라는것을아시게 될겁니당. 요즘은 전공(?)파괴시대에용.. 전문가 시대지용.. 전공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갔어용..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아직 고등학생이고 어떤 학파에 속해있지도 않은데요.
      다만 각 대학별로 학계가 다른데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다보니 학계별 특징을 알고 깨우쳐가는 중에 님은 너무 기존학계를 비판하시기만해서 올려본것입니다. 그리고 님이 아는 만큼은 저도 잘 압니다. 잘못된 전공자보다는 올바른 전문가가 낫다는 것 까지요. 물론 님의 역사에대한 비판적인 시각 연구하려는 자세는 기존의 연구에 안주하는 일부 학자들보다는 낫다고 할수있지만 학계를 비판할 정도의 전문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제말은 전공은 다만 직업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에 드리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제본문에는 어떤 학파에 속해있고 좋다고 한적이 없습니다. 남의 뇌를 스캔하시는듯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님은 존 학계사람들과 교류를 하시길 바랍니다.. 다들 자신들이 존 학파라고 하지요. 학파가 괜히 있는건 아니닌가요..
      ----------------
      오독하셨어용.. 그러니 님의 뇌를 스캔하지 않은거지용.. ㅋㅋ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저는 특정학파의 사람이랑 교류한다고는 하지 않았는데요. 제가 교류를 하는사람들은 거의 대학생들 입니다.
      대학생들은 학파에서 자유롭죠. 심지어 자기 학교의 학파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단정지어서 이야기 하시지는 마시죠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듣기에는 학파놈들이 자기네가 좋다고 떠드는것이나 열심히 들어라라고 비꼬시는것 같은데요.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 전문가나 전공자들과 교류가 없으시다보니 너무 학계나 학파를 겉에서 보이는 것으로만 좋지않게 보시는 경우가 있으신듯합니다. 부디 그 틀을 깨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님 말씀대로 힉계나 학파의 사상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다만 제대로 알지 못하시면서 비판만하시니까 말씀드린것입니다 그럼 존하루

  13. 갓쉰동 최고 2009.10.10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뿐만 아니라 성골제의 경우 진흥왕이후로 성립되었다는 설과 진평왕이 따로 만들었다는 설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좀더 연구를 할필요는 있지만 충분히 가는하다고 봅니다. 특히 진평왕이 특별히 만들었다는 부분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비담의 난의 이유에서 보듯이 선덕여왕의 경우 여인입니다. 물론 여인이 왕못지 않게 권력을 휘두른 적은 많지만 정식으로 왕위를 오른경우는 없습니다.물론 여인이 왕위에 오를수는 있겠지만 귀족들의 반발이 심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평왕이 따로 만들었다는 설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또 그렇게 되면 영토확장이후 왕의 직계자손에 대한 특권을 부여하기위해 진흥왕때 성골제를 시행했다는것도 가능해집니다. 이부분은 님도 긍정적으로 검토하셨는데 갑자기 미친개 마냥 학게를 물어뜯으시니 그리고 꼭 님의 가정이 맞다고 할수는 없는데 계속 맞는것처럼 우기시고 본인만 화랑세기랑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읽으신 것처럼 이야기하시니 난감하네요 ㅠㅠ
    그리고 능이 북릉에 있었다고해서 여왕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문제가 있다고봅니다. 측천이나 여후같이 왕후의 권력이 더 강했을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제대로된 학게의 정보없이 주류학계의 일부만을 보고 학게를 비판하시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읽은값을 하기위해 ㅊㅊ
    이번에는 너무 가정이 많으신듯합니다. 님의 이야기만을 사실로 믿는 사람도 있지요.
    결국에는 사극 작가보다 조굼 똑똑한 선동자가 되실듯
    가정과 사실을 구분해서 써주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존 성골.진골에 문제가 있으니 수정단계잔아요.. 이제 진흥왕때나 진평왕이 만든것이라는 수준으로 격하되고 있는 실정이구요.. 전 그런것 애초부터 없다는 생각하는 것이구요.. 가정이 아니고 가설이지요. 가설검증은 언제든지 받을 준비가 되어 있고, 반론을 제기하시면 재반론을 제기하던지.. 아니면 수용할겁니당..

      비판에 대단히 민감하신것 같아요. 님이 만나는 분들은 비판과 토론을 잘 하지 않는 모양입니당.. 왜 비판하냐는 말을 지속적으로 하시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비판과 토론은 모든 학문연구에 기본인뎅..
      북릉이 여왕릉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한적이 없는뎅.. 제가 설마 공공연한 공개된 공론의 장에서 확정으로 말하겠어용.. 미치지 않고성..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존 골품제에 진흥왕때 영토확장을 하고 법흥왕때의 불교공인을 계기로 왕권을 강화하던 중에 나올수는 잇을 듯합니다. 꼭 진흥왕때 니와서 격하라고 하는 것은 약간의 오류가 있다보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할 수 있어용.. 하지만 왕이 존귀하고 존귀한 존재인데..

      왜 불교와 영토문제를 들어서 성골이 성립했다고 생각하셈.. 영토가 적고 크고의 차이가 아니지요..왕의 존재는..

      왕권강화 문제는 다른 문제지만용.. 성골을 부여잡고 있음 신라사의 연구는 더이상 진전이 없습니당.. 저는 그리 생각해용..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삼국의 경우 영토확장을 통해서 대외로 국력을 뻗치거나
      율령을 반포하거나 국교를 정했을때 일시적으로 왕권이 강화되었습니다. 저는 이런이류로 충분히 연관성이 있을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사실 왕이 귀한 존재인것은 맞습니다만 왕권이 약하면 신권이 강해지지요 그래서 저는 왕실 내부의 직게자손들에게 좀더 권위를 부여하기위해서 성골제를 시행했을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성골제가 신라사의 연구의 진전에 방해가 된다는 것은 나무 님만의 생각인듯합니다. 님이 남의 글만을 읽지 않고 직접 답사를 다니고 고문서를 번역하셨으면 그런 이야기를 하실수 있지만 남의 이야기만을 듣고 연구하셧으면 좀 그렇네요.
      그래도 첫 댓글 달때 부터 재미있게봐서 광고 클릭하구 뷰온 합니당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좀더 크게보셈.. 님은 한계를 지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용.. 답사를 해야한다. 원전을해석해야한다. 물론, 중요하지요. 저도 원전봅니당.. 필요할때는.. 제글 보면 원전을 보지 않음 알수 없는 내용도 있다는것 아실텐데용.. ㅠ.ㅠ.;;;

      저는 님과 대화가 잴 잼있어용..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동.. 싫어한다고 생각하지 마라주셈.. ^____^ 님의 댓글을 항상 기다린답니당.. ^___^

      왕권이 강화되면 왕족의 권위가 추락하고 귀족의 권위가 추락하지요.. 일시적으로는 하지만 왕권강화가 극에 치닫거나.. 일정하게 유지되고 시간이 지나면 왕족과 귀족의 권한이 강화되는 쪽으로 움직여용..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크게 보지 않는 다기 보다는 남의 경우 전문가가 아니신 관심있는 아마추어인데 본인지식에 대한 확신 이 약간 과하시고 다른분들 의견을 너무아닌듯이 평가하시기에 올립니다. 그리고 왕족의 경우 왕의 직계와 방계가 구분되기는 합니다. 저는 성골의 경우 직계들에게만 해당하는 신분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귀족의 범위안에는 왕족이 들어가지요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더군요.
      학문에는 정해진 학설이 없지요. 특히 역사의 경우에는 해석방법에 따라 다른 학설이 나오지요. 그러나 주류학계는 자신들의 학설이 진리인양 선동하고 다니고 일부 학도들도 그것을 신봉하고 다른 학설은 거들떠 보지도 않지요.
      그러나 님과 저도 같은 길수를 저질렀더군요. 님은 본문에서 학계의 주장을 터무니업다고 무조건적인비판을 넘어 비난을 하셨고
      저도 터무니없다 미친개같다 그러고 앗 죄송
      그리고 님은 크게 보지 못하다고 그러시고 사실 어떤 학문이든지 터무니없는 주장이 많죠.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도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다 밑받침으로서 필요하지요.
      님이나 저나 서로 글쓸때 다른 학계라든지 글쓴이들의 주장을 무조건 부정하고 자기 생각을 합리적이라고하며 남을 무조건 비판만하는 습관을 지양하고 다른사람의 학설도 검토하여 의견을 모아가는것을 지향해야할듯합니다.
      어떤 주장이든지 잘만 검토하면 건질게 있거든요
      그리고 의외의 결과를 낳을수도 있고

  14. BlogIcon 펨께 2009.10.11 0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일요일되세요.

  15. hooooooooong 2009.10.11 0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 댓글들이 너무 살벌들 하시네여...ㅜㅜ 이요원씨도 아프다 그러고 연장이네 뭐네 하면서 이랳다저랳다 하고 역사랑 맞지 않네 하면서 작가의 자질에 대해 논란도 많고(대장금까지 쓰신 분인뎁ㅜㅜ).. 근데 솔직히 지금까지 방영된 사극 중에 몇개나 역사에 충실했었나요. 작가분의 의도가 선덕여왕 당시의 역사를 보여주고자 했던거라면 이렇게 짚고 넘어가는 것이 당연하겠죠. 작가 자신이 모티브로 삼은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다 보니까 좀 넣고 빼고, 멜로도 들어가야되서 나이랑 인물을 그에 맞게 수정도 하고.. 뭐 이런 과정이 있지 않았겠어요?ㅜㅜ 이 드라마가 막장사극(?)이다 뭐다 말들이 많지만, 아무튼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시청률도 꽤 높고 이것저것 논란도 되고 하는 거겠죠^^ 일단 배우들의 연기력이 좋고, 스토리도 그닥 부실하지 않으면서 하이라이트부분 콕콕 집고 올라가는 것이 드라마 보는 맛이 있더이다ㅋㅋㅋ 역사스페셜, 역사추적 이런거 찾아 보게도 되고ㅋㅋ 암튼 재밌던뎁~~~~~~~개인적으로 선덕여왕 시청률 40% 넘었으면 좋케씀!!!;;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장금까지 쓴것과는 하등 관계가 없지용.. ㅋㅋ

      저도 시청율 40% 넘었음 좋겠어용.. 배우들의 연기는 죽이는뎅.. 스토리는 막장입니당.. ㅋㅋ

  16. 성이진 2009.10.11 1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님, 정말 연기를 잘하세요!!! 선덕여왕님, 그리고 미실공주님
    짱 멋져요!!!!! 매일매일 보고 있어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덕만공주를 맡은 이요원에 불만을 가진 분들이 계시던데.. 저는 배우들의 연기는 참으로 좋다고 생각해용.. 다만, 비담과 염종의 오버가 너무 자주 눈에 띄는게 아쉽기는 합니당.. ㅋㅋ

  17. 여왕은 왜.. 2009.10.11 2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은 결혼 할 수 없다는 것이 드라마 전제로 깔려 있어서 기분 나쁘네요...
    드라마를 보면서 불쾌했거든요. 무의식중으로 전달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여성은 사회활동을 하면 결혼을 못한다...

    그리고 여왕이 어느 나라에도 전례가 없다고 떠들 때 전 당연히 일본을 얘기할 줄 알았더니 쌩뚱맞게 이집트라니...

  18. BlogIcon Elena* 2009.10.22 0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너무 재미있게 보고있는데, 이런글도 읽으니까 너무 재미있네요.
    저도 덕만이 남편이 너무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본적이 있는데,
    덕만의 남편으로 조계룡이라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조계룡이 본명은 아니고 가야왕자출신으로 진평왕이 조계룡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 하네요.

    그거 보면서 저는 월야가 바로 떠올랐는뎁..
    월야가 가진 군사가 많으니,
    미실의 난을 복야회 군사를 이용해서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다면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 갔더라구요.

    다만, 극에서 월야가 너무 찌질하게 나온다는 것이 걸리지만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진짜 멋있었는데 갈수록 ㅠㅠㅠㅠㅠ)

    용춘공도 꽤 미남이신데 극중 설정이 나이가 많은 설정이라 아쉽네요.

    갠적으로는 월야의 첫등장에 반해버려서,
    어서 예전의 카리스마를 되찾고 덕만의 남자가 되어서
    분량이 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ㅋ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0.22 0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월야에 관한 글도 있는뎅 함 보셈..ㅋㅋ
      월야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군요..

      용춘은 578년생.. 지금 시제는 616년,, 드라마 제작진 기준으로 하면 631년.. 오히려 젊게 나오는데용.. ㅋㅋ

      원래 첫 등장은화려하게 해야 임팩트가 있지용.. 그리고 기다리는 마음.. ㅋㅋ

  19. BlogIcon kue lebaran 2011.08.14 1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재 문서를 선언하고 싶지는 tonishing으로합니다. 기사와 명석 내가이 분야에 대한 권위로 당신은 일어날 수있는 가정 실제로 눈부신입니다. 효과적으로 당신의 선택을 사용하면 나를 안으로 문서를 사용하는 지금까지 최대 유지하기 위해 현재 RSS를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건배와 함께 천 당신의 새로운 uthentic의 작동 계속해야합니다.

  20.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21. BlogIcon Pussy.Org 2012.07.12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들여 거칠부가 <국사>를 만든것으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진흥왕

 드라마 전개상 시제는 여전히 풍월주 비재가 있은지 얼마안되는 시점이다. 이를 어찌 알수 있는가하면 춘추가 설원랑의 집을 찾아가 보량을 만나서 보량에게 한가위(가배)선물을 한다. 그런데 가잠성 전투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가잠성 전투는 진평왕 33년 611년 10월부터 100일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가잠성전투가 신라의 승리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가잠성 전투는 신라의 대패로 끝났다. 그래서 40년 신라가 가잠성를 수복하려고 했지만 이때도 대패하고 말았다. 

614년 진평왕 35년 봄에 가뭄이 들었다. 그러니 안강성(비화현)에서 민란이 일어났음직한 때이다.  유신과 결혼한 영모가 임신을 한 시점이기도 하다. 이때 진평왕의 나이는 49살이 된다.

드라마 선덕여왕 40회에서 진평왕이 심장에 이상이 생기자, 덕만으로 하여금 결혼을 하게 하고 사위를 왕으로 삼으려 한다. 
이는 신라가 전통적으로 사위를 왕으로 삼은 것에 기인한다. 그런데 정말 사위가 왕이 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기록상 여왕의 남편을 왕으로 삼았을 수도 있다. 

증거는 서라벌(경주)에 있는 황남대총의 쌍둥이릉으로 확인할 수 있다. 황남대통의 작은 남쪽릉에서는 남성의 부장품이 나오고, 북릉에서는 여성의 부장품이 나왔다.


문제는 북릉에서는 황금관이 나오고, 남릉에서는 금동관이 나왔다. 이로써 북릉에 있는 여성이 남릉의 남성보다는 지위가 높았을 것이라고 누구나 인정한다. 그런데 이 두릉은 덕만이 왕으로 있었던 이전시기의 릉이라는데 있다. 그래서 기록되지 않은 여왕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는 것이다.  신라가 국사를 정립하는 때는 진흥왕 6년인 545년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진흥왕이 젊은 시절에 이사부의 의견을 받아 들여 거칠부가 <국사>를 만든것으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진흥왕은 7살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니 진흥왕 6년이면, 진평왕이 왕위에 오른 15세보다도 나이가 어린 12살이 된다. 이때 실질적은 왕은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태후(법흥/연제)이다. 
 
어찌 되었던, 국사를 만들면서 이전왕의 기록이 소략하거나, 왜곡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다. 어떤이들은 삼국사기의 저자인 김부식이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김부식은 덕만의 기록을 남겨두었을까? 물론, 어쩔수 없이 덕만과 진덕의 기록을 남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구당서와 신당서에 신라에 여인이 왕으로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김부식도 어쩔수 없이 신라에 여왕이 있었다고 기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역사란 한쪽의 일방의 기록만을 참조하지 않는다.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다른 기록을 하였을때 이를 크로스 체킹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합리적인 해석을 하는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대표적인 사위왕은 석탈해(토해)가 있고, 또한명은 김미추가 있다. 하지만, 이들 말고도 수 없이 많은 사위왕들이 있었다. 또한, 기록상 최초의 여왕인 덕만 이후에도 사위로 왕이 된 예가 많다.  진평왕은 전왕의 선례에 따라 사위로 왕위를 이을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진골.성골이 있다고 믿는 일단이 있고, <성골남진>이란 허황된 환상에 빠져 있는 사람은 진평왕이 사위를 볼때 어쩔수 없이 <진골>을 덕만의 짝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성조인 왕의 자식중 아들이 없다는 말이지, 왕의 형제나 조카중 남자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이와 같은 예는 소지(비처)왕이 아들이 없자, 소지왕의 종친인 내물왕의 증손인 지증이 왕위에 오른다. 이처럼 왕에게 아들이 없다면 왕위를 이을 이는 넘친다. 조선도 철종처럼 강화도의 무식한 도령을 왕위에 올리기도 한다. 왕족에 절손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종도 철종의 먼 종친으로 왕위를 계승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조선과 신라는 달랐다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왕을 잇는데는 별다른게 없다. 이미 신라의 예를 들었는데도 조선과 신라는 달랐다고 반론을 제기하지는 말기를 바랄 뿐이다.

어떤이들는 <성골>,<진골>에 집착하여 성골과 진골은 <진흥왕>이후에 정립되었다고 학설을 만들어 낸다. 도대체, 이미 왕족인 <진골>이 있는데, 그 위에 왕을 제외하고 <성골>이 있다는 발상이 스스로에게도 좀 아니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역사학계가 다른 학문도 비슷하지만, <도제>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교수의 학설을 반박할 수 없을 뿐만 아니고, 내부적으로 치열한 논쟁이 없다는 반증일 뿐이다. 만약, 자신의 학파에 반발을 한다면, 그 사람은 학계에서 밥 빌어 먹을 수 없다. 한마디로 학계를 떠나야 한다는 말이다.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도제에 찌든 사람을 대상으로 비판을 가하고 있는것이다. 충분히 그렇지 않게 운영되고 있는 곳도 있을 것이다. 별로 본적은 없지만 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천명으로 부터 물려받은 유신을 사랑하는 덕만은 유신을 두고,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평생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다. 결혼을 한다면 자신이 왕노릇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 <사위왕>을 철저히 심봉하고 있는 선덕여왕 <원작자>의 견해이다.

어찌되었던, 천명이 사랑한 나이 어린 유신을 덕만은 눈물을 머금고 버린다. 그리고 유신이 영모(하종/미모)와 결혼을 하자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며 눈물을 찔끔거린다.   재밌게도 이는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의 천명과 덕만과 용수와 용춘의 이야기를 변형시킨 것이다.


신라에서 여왕이 나오는데 신라의 역사의 흔적으로 부터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고, 드라마에서는 외국에 사례가 없다고 나오지만,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황당한 일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10/0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왕을 놓고 김춘추와 덕만이 대립한다?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이미 당시 왜에서는 여왕천하에 있었다. 신라의 이웃 국가인 왜의 첫 여왕인 추고여왕(593~628), 제명.황극(641~645, 655~661) 사례도 있으니 충분히 고려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왜의 여왕시기는 더 위로 올라간다. 비미호는 여왕으로 한반도와 중국과도 교류를 하였다. 비미호의 조카도 여왕이 되었다. 신공 또한 왕후로써 여왕의 직을 수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0년(173) 여름 5월에 왜(倭)의 여왕 비미호(卑彌乎)가 사신을 보내와 예방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아달라왕


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신라가 진평왕시기 왜에 추고왕(593~628년)재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수가 없다. 드라마에서 등장인물들이 모두 나와서 선례가 없다고 떠드는 말은 수나라에 일찍이 조기 교육을 받아 외교전문가로 크는 춘추까지도 욕보이는 것이다. 또한, 춘추는 642년 고타소가 죽자 왜에 청병을 하러 가기도 한다. 춘추가 왜에 가서 만난  제명왕도 여왕이였다. 그러니 선덕(632~647년)과 제명(641~645년)은 동시대에 여왕으로 있었다는 뜻이다. 재미있게도 제명은 몇년후 다시 왕위에 올라 655~661년까지 왜의 <황극>왕으로 있었다. 제명과 황극은 동일인물이다.

덕만이 결혼할 수 없는 이유? 의외로 간단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을 하자.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삼국유사나 화랑세기는 덕만이 결혼을 하였지만, 자식을 두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덕만의 남편인 을제(신구)

삼국유사의 왕력편에선 덕만이 왕위에 오른 632년이후 3년에 634년에 <음갈문왕>과 결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음갈문왕은 누구일까? 진평왕에게는 두명의 남동생이 있다. 한명은 백반이고, 또 한명은 국반이다. 진덕의 뒤를 이어 왕이된 진덕(승만)의 아버지는 국반이다.

만약, 진평이 덕만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이 없었다면 백반이 왕이 되었을 것이다. 사위왕이 되기전에 말이다. 성골 좋아하는 사람이 보았을 때, 진평왕의 형제인 사람보다 확실한 성골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성골남진>의 논리적 허구는 여기서도 깨지고 마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화랑세기에는 덕만의 남편으로 3명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명은 용춘이고, 두번째가 용수이고, 세번째가 <을제>이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은 용수를 일찌감치 죽여 버렸다. 이유는 덕만과 나이어린 꽃미남(?)유신을 염두해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을제>를 소리소문 없이 드라마에서 낙마를 시켜버렸다.

을제인 신구가 용궁으로 다시 돌아갔는지, 아니면 다른 드라마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유는 유신과 덕만을 연결시키고자 하는 이유 때문일것이다. 또하나는 드라마를 제작하는데 <제작비>의 압박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덕만의 남편이 되는 을제역을 맡은 신구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진흥왕인 이순재만큼이나 출연료가 비싼분이시다. 그러니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자동으로 드라마에서 낙마를 시킬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을제 배역을 맡은 신구가 덕만(이요원)과 결혼하는 꿈을 꾸다가 "결혼할 수 없다"는 대본을 보고 스스로 낙마했을 수도 있다.

나머지 용춘은 왜 그럼 남겨 두고 있는가? 어짜피 용춘은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모습을 본 천명을 죽임으로 해서 이미 덕만의 짝으로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천명이 춘추가 왕이 될때까지 살아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라고 반문한다면  2009/08/11 - [역사이야기] - '천명', 대남보의 독화살에 죽었다?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니, 끈떨어진 용춘 자신의 실질적인 아들인 젖비릿내 나는 10살 짜리 <춘추>(유승호)가 <화백회의>에  난입해 쿠데타를 일으키는데도 오히려 생뚱맞은 시선과 말로 춘추를 나무라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의 원작인 소설 <선덕여왕>의 작가는 여성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덕만과 미실을 중심축에 두고, 요즘 트랜드인 꽃미남(?)남성들을 등장시키는 것으로 남여평등한 사회와 여성주의 사극이 완성된다는 환상을 가진듯하다. 하지만,  이미 공인된 사서인 삼국유사에도 덕만이 결혼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는데도, 원작자의 한계는 여성으로 왕이 되면 결혼을 하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화랑세기>를 원작자가 <사서>라고 확신하고 있다면, 덕만이 왕으로써 최소한 3명(용수,용춘,을제)의  남편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성은 여러 남성들을 남편으로 두면 안되는 것인가? 남자왕은 정비, 후비들을 수없이 두고 있는데 말이다.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이 <비담의 난>까지 극을 전개한다면, 비담의 난을 덕만을 향한 반란이 아닌, 짝사랑하는 덕만을 지키고, 유신에 반대하는 정병으로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진덕(승만)이 왕이 되는 충분한 설명이 될테니 말이다.

어찌되었던 처음부터 용수, 용춘, 을제를 드라마에 등장시키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이들이 등장인물로 설정이 되었다면 기록에 충실해야 해야한다. 이들이 덕만과 혼인관계가 아님을 극중에 충분히 녹여 내야 하는 것이다. 덕만이 성녀마리아도 아니고, 왕이 되기위해서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니 결혼하지 않는다는 수녀처럼, 왕노릇했다는 발상은 드라마적이도 않다. 동정녀 마리아도 결혼해서 수 없이 많은 자식들을 두고 있는데 말이다.

보종은 진평왕의 사위다


진평왕이 사위로서 왕위를 잇게 하려 했다면, 보종이 왕이 되어야 한다. 보종은 진평/보명의 딸인 양명과 결혼한다. 그러니 보종은 진평왕의 사위이다. 춘추는 보종의 딸인 보라와 결혼한다. 그러니 가만히 있어도 보종의 뒤를 이어 사위왕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다고 말들을 하지만, 사극으로나 드라마로나 이처럼 이야기 구조가 허술한 드라마를 본적이 없다.

이제 조씨족보나 삼국유사나 화랑세기에 기록된 덕만의 남편들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끝을 맺으려 한다.

덕만의 남편들..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음편에는 "왜? 선덕여왕에 <선화공주>가 나오지 않는가?"에 대해서 합리적인 해석을 해볼 생각이다. 사실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선화공주가 등장하던 등장하지 않던 극을 전개하는데는 문제가 없다. 단, 선화공주가 등장한다면,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등장인물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 합리적인 이유와 설명이 극에 녹아 나야 한다.

PS. 선덕여왕 덕만으로 활약하는 이요원이 대상포진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선덕여왕에서 하차를 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극의 양대 주인공중에서 실질적인 주인공인 미실 고현정은 연장된 12회중 8회정도만 나오기로 결정하였다고 하네요. 결국에는 덕만이 죽을때 까지 등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등극하기전에 죽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아쉽다면 덕만이 여왕이 되는 과정(길)이 아닌 여왕으로서 신라를 어떻게 경영했는지를 보고 싶은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김정현(하종)이 결혼을 하는군요. 또한, 신녀로 활약한 설매(조명진)도 결혼을 하는 군요.. 두분의 결혼에 축하를 드리는 포스팅을 하여야 할텐데. 하종을 변호하는 기사를 송고할까 합니다. 찌질이 하종 알고보니 엄친아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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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선덕여왕팬이지만~ 2009.10.10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주교인으로서 '동정녀 마리아'께서 결혼해서 수많은 자식을 낳았다는 부분은 참... 물론 비종교/타종교인이기 때문에 쓰실 수도 있지만, 그래도 굳이 선덕여왕을 성모마리아님께 비유할 필요가 있습니까? 수녀님들도 그렇고 그런 식으로 '비하'받을 분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ㅡㅡ; 왜냐하면 평생을 하느님을 모시며 순결하게, 신념과 신앙으로 사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세속에 있는 우리들이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분들이 아닙니다. 혼탁해진 세상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시는지를 알고 계시는지... 그리고 선덕여왕이 스스로 혼인하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어쨌든 자신이 여왕/부군이 된다고 했지 남편을 평생 두지 않고 살겠다는건 아닌것 같은데요. 어차피 드라마는 99%의 허구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인 부분보다는 재미가 더 위주죠.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굳이 넣지 않아도 되는데 넣었다면 왜 그랬을까 하는것도 생각해 보셨더람 좋았을 겁니다..

      이미 선언했지요.. 부군이 되겠다고 하기전에.. 그렇다고 해서.. 죽일 필요성이 없지요.. 요즘은 죽이면 극적이고 드라마 처럼 보이나 봅니당..

  3. BlogIcon 감자꿈 2009.10.10 1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재밌는 글 잘 읽고 갑니다.
    미실이 연장에서 8회까지만 나오는군요.
    무진장 아쉽습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확한것은 아니고 연장에는 동의를 했다고 합니당. 그것도 연장에 따른 출연료는 한푼도 안받고.. 고현정 대단해용.. ㅋㅋ

  4.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2009.10.10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역사스페셜이 아니지 않습니까? ㅋ 그냥 보고 즐기면 될 뿐, 역사랑 틀리다 해도, 드라마로 인해 그 당시 시대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고, 실제 역사에선 어떠했을지에 대한 관심이 올라 간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좋은 효과라고 생각하는데요.

    • Lani☆ 2009.10.10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이분이 친절하게 실제역사가 어떠했는지 써주신거잖아요;;

      갓쉰동님 글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단 드라마 자체로도 최 하급이라는 말씀을 드리고요. 사극으로는 최악이라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해당 하는 책이 존 책이 아니듯이, 시청율이 높다고 존 드라마. 사극은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아동성폭행범이나, 연쇄살인법 등 범죄자들은 아주 좋은 효과를 발휘한겁니다.. 덕분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지요..

      lani/그러게 말입니당.. 누가 드라마를 드라마로 안본다고 한적도 없고, 드라마의 해설부분인뎅.. 난감할 때가. 드라마다 다규를 만들라고 하는 분들을 보면 왜, 선덕여왕이 인기가 있는지 알겠고, 요즘 사회가. 정치가 그런지 알겠어용..

  5. 함바그 2009.10.10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살짜리 춘추가..이건 ;;
    드라마상에서 춘추가 10살로 설정됐단 말씀인가요?

  6.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0.10 1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이유는... 드라마니까요 ㅋㅋㅋ
    역사대로 하면 흥미가 없죠... 허구적인 요소가 들어가야 재미가 있는거죠.
    덕만이 낭도라는 것과 타클라 교역지대에서 컸었다는 건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스토리를
    뽑아낼 수 있는게 "역사 드라마" 아니겠어요.
    글은 잘 읽고 갑니다.
    하지만 항상 역사와 사극인 다르다고 생각하고, 사극이 역사를 왜곡시켰다고 해서
    굳이 욕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네요
    하여튼 잘 봤습니다 ^.^a;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드라마도 선덕여왕처럼 만들지 않지용.. 현대극이라면 막장의 최고봉입니다. 출생의 비밀은고사하고, 죽은자가 돌아다니고, 죽지 않은 자를 죽여버리고, 1살짜리가 얼라를 낳고.. 이런 드라마 보신적있어요?
      사극은 가능하다구요? 사극이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 되용.. ㅋㅋ

  7. BlogIcon 어쩌면 2009.10.10 14: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혼하지 않는다는 여왕이 지킬수 없게되니 다시 을제를 등장시켜 아주늙은 을제를 재등장 시켜 결혼했지만 정치적 남편으로만 보이게 장치(?)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8. 사극은사기 2009.10.10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 절대로 아닙니다. 스스로 기억을 해봐도 어릴 때 본 드라마 허준, 장보고 , 광개토대왕 의 배우들과 내용이 나이들어도 생생히 기억나게 마련입니다. 교과서 내용은 기억에서 1년만 지나도 사라집니다. 그만큼 사극은 역사관 형성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면 일본이 한국침략을 미화하는 드라마도 그냥 드라마로 받아들여야 하고 중국이 한국은 중국의 지방의 한 곳이라고 드라마에서 말하면 그것도 그냥 드라마니까 놔둬야 되나요? 그런 왜곡된 드라마들이 어린 일본,중국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미래의 역사관이 형성되는 데 영향을 미칠거라고 생각해보십시오. 구체적으로 어떤 대목이 아니라 그래 침략할 수도 있지 이런 가벼운 생각이 들게 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선덕여왕에서 여자가 왕이 되는게 무슨 혁명적인 일인듯 하는것과 사람이라면 당연히 성장하면 어울려 결혼하여 가족을 이루어 사는 것까지 안했다고 하면서 억지로 역사를 왜곡하는 것도 우리 문화의 원형을 해치는 것이라고 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당..알고 그런말을 하면 좋겠지만. 모르시는 부들이 꼭 드라마는 드라마다.. 라고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대락난감하겡.. ㅋㅋ

    •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0.11 0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세요. 꼭 드라마는 드라마라는 사람들이 다 역사를 모른다고는 할 수 없죠. 하지만 드라마를 역사대로만 만든다면 말그대로 다큐가 되어버립니다. 사극의 좋은 점은 역사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냥 덜컹 믿어버리는 분도 많지만, 오히려 저게 진짤까하고 제대로 조사하는 분들도 많으시지요. 그런점에서는 사극이 꼭 사기다 나쁘다라고만은 볼 수 없는거 같네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주장하시는대로.... 왜곡된 드라마들이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말하자면 모든 출판물, 드라마 다 그렇겠죠... 내조의 여왕이던지, 너는 내 운명 등등 말도안되는 허구적인 상황을 다 저런게 가능한 것이구나 하고 없습니다. 그러니 모든 드라마에 15세 사인이 붙는거겠죠. (사물을 판단할 수 있는 나이들이 보라고) 물론 역사 드라마다 하니까 믿는게 더 쉽긴 하겠지만, 드라마는 드라마니 다 믿기보다는 스스로 판단해보고 역사책을 읽어보는게 좋다고 생각되네요. 이미 말했던 대로 그냥 그걸 역사다 믿어버리는 분들은 어쩔 수 없는거구요 ㅡㅡa;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댱연히 영향을 미치지요..ㅋㅋㅋ

      저는 사기다 라고 말이 목밖으로 나오려고 하지만, 별로 그런 생각이 없는데용.. 저는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이야기 하는건데요.. 기본팩트왜곡은 문제가 있다.
      인물정보는 지켜줘야 해용..그렇지 않다면 합리적인 이유가 극에 녹아 있어야 하구요.

  9. BlogIcon 결국 2009.10.10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가 여성이어서
    폄하려는 글을 쓴 모양새로만 보이니
    조금 불쌍타

  10. wisi 2009.10.10 1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선화공주는 신라의 공주가 아닌 백제의 호족의 딸이라는 것에 더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에 나왔던 미륵사지 석탑에 나온 문건에 무왕의 왕후는 사택씨라고 했었던 것을 보아도요.) 지금까지 본 신라의 개방적 성풍속으로 보아 "맛동왕자와 밤마다 좋아지내는 공주" 따위의 소문이 별로 남사스러워 보이지도 않고요--; 그당시 풍속을 쫓자면 공주를 쫓아내기 보다는 누군지 알아보아 괜찮으면 결혼시켰을 것 같은데요. ㅎㅎ 선화라는 이름도 별로 신라스럽지 않습니다. (보량, 영모, 미모,천명, 덕만, 승만, 미실 ...그런데 선화... 이상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 때당시 아마 백제어와 신라어는 의사소통이 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심지어 당시에는 다른 민족이었을 가능성도..) 한사람이 다른 국가에 가서 언어적 사회적으로 아무런 배경없이 적응하는 것이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요?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녔어도! 전설은 전설일뿐 오해하지 말자고 외치고 싶네요.

    어디서는 의자왕의 이모가 선덕여왕이라는 (나름 족보를 탐구하신분의 식견!)까지 있는데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설령, 덕만의 동생이 선화였더라도, 의자왕은 선화공주의 자식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둘사이가 몹시 안좋았고, 선화공주가 이룩한 업적(수도를 천도하고자 했고 절을 지었고 기타등등, 나름 활동적이어던 ,무왕의 정치적 동지였던 왕비) 을 의자왕이 모두 뒤집어 엎어, 수도를 옮기는 것도 그만 두었다고 들었습니다.

    어차피 선덕여왕에서 역사적 사실을 찾기에는 너무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무령이 무동같아용.. ㅋㅋ
      의사가 통하지 않아다는 설이 있기는 한데요.. 이미 폐기 처분된것으로 알고 있는데용..

    • 미실존경 2009.10.16 0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알기로는 백제와 신라는 의사소통이 가능했다고 하던데요..

      사실 백제와 신라 뿐 아니라 고구려도 언어가 비슷했다고..

      백제는 고구려 유민이 건국했으니까 고구려와 언어가 비슷했을 것이고

      고구려와 신라의 지리 용어를 연구하신 어떤 분께서 두 나라의 용어가 비슷하다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삼국 사람들은 말이 통했을 것이라고..

    • BlogIcon 갓쉰동 2009.10.16 0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백성의 언어와 지배계급의 언어는 조금 달랐을것 같아용.. 물론, 말은 통했겠지만요.. 제주도 말처럼 이질적이진 않았을 겁니당..

  11. wisi 2009.10.10 1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화공주가 무왕의 정치적 동지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말도 안통하는 이국땅의 왕비로 온 신라의 공주가 그리 할 수 있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틀림없이 선화공주에게는 그녀를 지원해주는 국내세력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약화된 왕권도 강화시킬 수 있었구요.

    그리고 어찌하던 글을 연결시켜 보려는 작가의 고충이 드러나서 어떤 때는 손발이 오그라들 것처럼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4시40분에 일어나야 해서 이걸 보고나면 다음날 체력이 바닥납니다. 그럼에도 보고 있는 것을 보면 참 저도...

    이요원씨가 면역력이 매우 약해져야 걸리는 대상포진에 걸렸다니 큰일이네요. 그거 한번 걸리면 피곤할때마다 재발할텐데... 엄청 아플 텐데...무사히 드라마를 마치기를 기원하고, 끝까지 지금의 힘을 잃지 말고 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역사적 사실이 드러나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어쨌든 뭔가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로서!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왕이전에도 백제와 신라는 혼인관계를 맺습니당..

      잼있는 드라마인건 맞는데. 좀더 신경을 써서 만들었다면 하는 아쉬움이지요.. 열연하는 배우들이 아깝거든요..

      이요원이나 배우들이 아프지 않게 만들수 있는 여건이 성숙이 되었으면 좋겠어용. 너무 날림으로 찍는것 같아서요.. 최소 2주전엔에는 금주 방송분이 끝나 있어야 하는것이 아닌가 해용.. 사전제작은 못할지라도..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

  12. 갓쉰동 최고 2009.10.10 1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글을 잘읽고있습니다만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 학계전체를 비판하신다는 점입니다.
    사실 학게들중 왕초격인 진단학회룰 비롯한 역사관련 학회가 문제가 있는 곳이 많지만 항상 글쓰실 때마다 학계를 비판하시더군요. 사실 님께서 재야학자들이나 다른 전문가들같이 역사에 통달하시고 항상 학게를 접하시는 분이면 모를까 역사에 단순히 관심만 가지신 분이 자기가 연구하고 가정한 감수를 받지않은 자기만의 성과만가지고 일부학게를 꼬집어서 비판하는 것이 아닌 학계자체를 비판하시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글을 읽다보면 가정이 너무 낳은 듯 하기는 합니다.
    그리고 전에 댓들을 달았던 것중에서 역사학도에대한 들을 다시언급해봅니다,
    그러시면 갓쉰동님께서는 얼마나 밥벌이가 좋은학과를 나오시고 얼마나 좋은 직장을 가지셨나요?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0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분 나쁘실수있지만 사람의 적성과 전공을 밥벌이로만 판단하는것 그리고 저또한 역사전공을 꿈꾸는 자로서 상당히 불쾌했기에 올려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학계전체를 비판한적이 없는데용..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아용.. 그런데 왜 밥벌이란 말에 흥분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밥을 벌지 못하면 님은 연구를 못해요. 그 밥을 누군가에서 얻어와야 하는것이구요..
      전공이란 해당 학문을 통해서 수입을 얻는 직업이예용.. 그렇지 않음 취미지요..님은 왜 전공을 꿈꾼다고 하시면서 불쾌해 하는지 알수가 없어용.. 불쾌하게 생각하는건 취미생활이면 가능한 말인데 말이지요.. 난 그 직종으로 밥벌어 먹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돈들여서 연구하고 하겠다.. 아니면 자원봉사를 하겠다.. 이건 취미지요.. 아마추어이구요.. 전 그래서 아마추어예용.. 역사로 밥빌어 먹지 않거든요.

      저는 만약 사학으로 밥을 빌어 먹을 정도라고 인식을 했다면 이미 전공을 사학으로 했을겁니당.. 배고픈 직종인건 다는 이야기 아니에용? 사실을 말하면 발끈할 이유가 없지요..

      문제는 밥을 빌어먹으면서도 아마추어보다도 못한 전공자가 있다는것이 문제라면 문제지요..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전공이라도 해서 꼭 직업으로 삼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전공은 그 학문에대해서 일반 아마추어들보다 좀더 세밀하게 공부하고 좀더 원전을 비롯한 그 학문에대한 자세한 자료를 접하고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직업으로 까지 삼을수 있는 정도가 되었을때 전공했다고 할수있는 듯합니다.
      재야 사학자들 중에서는 역사를 전공하고도 다른 직업을 선택하신분들이 많습니다. 사살 우리사회에서 자기전공대로 직업을 삼는 분들이 적기는 하지요.
      전공은 해당학문을통해서 밥을 버는것이아닌 해당학문을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톹해서 이수하였을때 전공이라고 하는것이 맞는 듯합니다. 꼭 자비를 들어서 연구한다고 해서 취미라고 할수는 없지요. 비록 사회적인 직업은 사학과와 무관하지만 자기가 공부한 학문을 꾸준히 연구하는것은 전공과목을 활용하는 것이죠.
      그리고 학계에 대한 비판은 좋으나 위문장들 중에
      제대로된 학계를 별로 본적이 없다라는 발언은 학계에대해 자세히 알지못하시면서 하시기에 너무 학계를 좋지안게만 보시는 것같아서 드리는것 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님은 존 학계사람들과 교류를 하시길 바랍니다.. 다들 자신들이 존 학파라고 하지요. 학파가 괜히 있는건 아니닌가요..

      그래서 제2전공을 하라고 하는것 아니겠어용.. 전공은 학위를 받는다고 되는게 아닙니당.. 그건 한때 그랬다고 하는거징요.. 학위는 누구나 학점을 이수하면 다 할 수 있어용.. ㅋㅋ 지금은 굉장히 크게 보이실지 모르지만.. 하고 나면 별거 아니라는것을아시게 될겁니당. 요즘은 전공(?)파괴시대에용.. 전문가 시대지용.. 전공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갔어용..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아직 고등학생이고 어떤 학파에 속해있지도 않은데요.
      다만 각 대학별로 학계가 다른데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다보니 학계별 특징을 알고 깨우쳐가는 중에 님은 너무 기존학계를 비판하시기만해서 올려본것입니다. 그리고 님이 아는 만큼은 저도 잘 압니다. 잘못된 전공자보다는 올바른 전문가가 낫다는 것 까지요. 물론 님의 역사에대한 비판적인 시각 연구하려는 자세는 기존의 연구에 안주하는 일부 학자들보다는 낫다고 할수있지만 학계를 비판할 정도의 전문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제말은 전공은 다만 직업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에 드리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제본문에는 어떤 학파에 속해있고 좋다고 한적이 없습니다. 남의 뇌를 스캔하시는듯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님은 존 학계사람들과 교류를 하시길 바랍니다.. 다들 자신들이 존 학파라고 하지요. 학파가 괜히 있는건 아니닌가요..
      ----------------
      오독하셨어용.. 그러니 님의 뇌를 스캔하지 않은거지용.. ㅋㅋ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저는 특정학파의 사람이랑 교류한다고는 하지 않았는데요. 제가 교류를 하는사람들은 거의 대학생들 입니다.
      대학생들은 학파에서 자유롭죠. 심지어 자기 학교의 학파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단정지어서 이야기 하시지는 마시죠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듣기에는 학파놈들이 자기네가 좋다고 떠드는것이나 열심히 들어라라고 비꼬시는것 같은데요.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 전문가나 전공자들과 교류가 없으시다보니 너무 학계나 학파를 겉에서 보이는 것으로만 좋지않게 보시는 경우가 있으신듯합니다. 부디 그 틀을 깨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님 말씀대로 힉계나 학파의 사상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다만 제대로 알지 못하시면서 비판만하시니까 말씀드린것입니다 그럼 존하루

  13. 갓쉰동 최고 2009.10.10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뿐만 아니라 성골제의 경우 진흥왕이후로 성립되었다는 설과 진평왕이 따로 만들었다는 설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좀더 연구를 할필요는 있지만 충분히 가는하다고 봅니다. 특히 진평왕이 특별히 만들었다는 부분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비담의 난의 이유에서 보듯이 선덕여왕의 경우 여인입니다. 물론 여인이 왕못지 않게 권력을 휘두른 적은 많지만 정식으로 왕위를 오른경우는 없습니다.물론 여인이 왕위에 오를수는 있겠지만 귀족들의 반발이 심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평왕이 따로 만들었다는 설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또 그렇게 되면 영토확장이후 왕의 직계자손에 대한 특권을 부여하기위해 진흥왕때 성골제를 시행했다는것도 가능해집니다. 이부분은 님도 긍정적으로 검토하셨는데 갑자기 미친개 마냥 학게를 물어뜯으시니 그리고 꼭 님의 가정이 맞다고 할수는 없는데 계속 맞는것처럼 우기시고 본인만 화랑세기랑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읽으신 것처럼 이야기하시니 난감하네요 ㅠㅠ
    그리고 능이 북릉에 있었다고해서 여왕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문제가 있다고봅니다. 측천이나 여후같이 왕후의 권력이 더 강했을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제대로된 학게의 정보없이 주류학계의 일부만을 보고 학게를 비판하시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읽은값을 하기위해 ㅊㅊ
    이번에는 너무 가정이 많으신듯합니다. 님의 이야기만을 사실로 믿는 사람도 있지요.
    결국에는 사극 작가보다 조굼 똑똑한 선동자가 되실듯
    가정과 사실을 구분해서 써주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존 성골.진골에 문제가 있으니 수정단계잔아요.. 이제 진흥왕때나 진평왕이 만든것이라는 수준으로 격하되고 있는 실정이구요.. 전 그런것 애초부터 없다는 생각하는 것이구요.. 가정이 아니고 가설이지요. 가설검증은 언제든지 받을 준비가 되어 있고, 반론을 제기하시면 재반론을 제기하던지.. 아니면 수용할겁니당..

      비판에 대단히 민감하신것 같아요. 님이 만나는 분들은 비판과 토론을 잘 하지 않는 모양입니당.. 왜 비판하냐는 말을 지속적으로 하시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비판과 토론은 모든 학문연구에 기본인뎅..
      북릉이 여왕릉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한적이 없는뎅.. 제가 설마 공공연한 공개된 공론의 장에서 확정으로 말하겠어용.. 미치지 않고성..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존 골품제에 진흥왕때 영토확장을 하고 법흥왕때의 불교공인을 계기로 왕권을 강화하던 중에 나올수는 잇을 듯합니다. 꼭 진흥왕때 니와서 격하라고 하는 것은 약간의 오류가 있다보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할 수 있어용.. 하지만 왕이 존귀하고 존귀한 존재인데..

      왜 불교와 영토문제를 들어서 성골이 성립했다고 생각하셈.. 영토가 적고 크고의 차이가 아니지요..왕의 존재는..

      왕권강화 문제는 다른 문제지만용.. 성골을 부여잡고 있음 신라사의 연구는 더이상 진전이 없습니당.. 저는 그리 생각해용..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삼국의 경우 영토확장을 통해서 대외로 국력을 뻗치거나
      율령을 반포하거나 국교를 정했을때 일시적으로 왕권이 강화되었습니다. 저는 이런이류로 충분히 연관성이 있을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사실 왕이 귀한 존재인것은 맞습니다만 왕권이 약하면 신권이 강해지지요 그래서 저는 왕실 내부의 직게자손들에게 좀더 권위를 부여하기위해서 성골제를 시행했을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성골제가 신라사의 연구의 진전에 방해가 된다는 것은 나무 님만의 생각인듯합니다. 님이 남의 글만을 읽지 않고 직접 답사를 다니고 고문서를 번역하셨으면 그런 이야기를 하실수 있지만 남의 이야기만을 듣고 연구하셧으면 좀 그렇네요.
      그래도 첫 댓글 달때 부터 재미있게봐서 광고 클릭하구 뷰온 합니당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좀더 크게보셈.. 님은 한계를 지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용.. 답사를 해야한다. 원전을해석해야한다. 물론, 중요하지요. 저도 원전봅니당.. 필요할때는.. 제글 보면 원전을 보지 않음 알수 없는 내용도 있다는것 아실텐데용.. ㅠ.ㅠ.;;;

      저는 님과 대화가 잴 잼있어용..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동.. 싫어한다고 생각하지 마라주셈.. ^____^ 님의 댓글을 항상 기다린답니당.. ^___^

      왕권이 강화되면 왕족의 권위가 추락하고 귀족의 권위가 추락하지요.. 일시적으로는 하지만 왕권강화가 극에 치닫거나.. 일정하게 유지되고 시간이 지나면 왕족과 귀족의 권한이 강화되는 쪽으로 움직여용..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크게 보지 않는 다기 보다는 남의 경우 전문가가 아니신 관심있는 아마추어인데 본인지식에 대한 확신 이 약간 과하시고 다른분들 의견을 너무아닌듯이 평가하시기에 올립니다. 그리고 왕족의 경우 왕의 직계와 방계가 구분되기는 합니다. 저는 성골의 경우 직계들에게만 해당하는 신분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귀족의 범위안에는 왕족이 들어가지요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더군요.
      학문에는 정해진 학설이 없지요. 특히 역사의 경우에는 해석방법에 따라 다른 학설이 나오지요. 그러나 주류학계는 자신들의 학설이 진리인양 선동하고 다니고 일부 학도들도 그것을 신봉하고 다른 학설은 거들떠 보지도 않지요.
      그러나 님과 저도 같은 길수를 저질렀더군요. 님은 본문에서 학계의 주장을 터무니업다고 무조건적인비판을 넘어 비난을 하셨고
      저도 터무니없다 미친개같다 그러고 앗 죄송
      그리고 님은 크게 보지 못하다고 그러시고 사실 어떤 학문이든지 터무니없는 주장이 많죠.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도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다 밑받침으로서 필요하지요.
      님이나 저나 서로 글쓸때 다른 학계라든지 글쓴이들의 주장을 무조건 부정하고 자기 생각을 합리적이라고하며 남을 무조건 비판만하는 습관을 지양하고 다른사람의 학설도 검토하여 의견을 모아가는것을 지향해야할듯합니다.
      어떤 주장이든지 잘만 검토하면 건질게 있거든요
      그리고 의외의 결과를 낳을수도 있고

  14. BlogIcon 펨께 2009.10.11 0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일요일되세요.

  15. hooooooooong 2009.10.11 0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 댓글들이 너무 살벌들 하시네여...ㅜㅜ 이요원씨도 아프다 그러고 연장이네 뭐네 하면서 이랳다저랳다 하고 역사랑 맞지 않네 하면서 작가의 자질에 대해 논란도 많고(대장금까지 쓰신 분인뎁ㅜㅜ).. 근데 솔직히 지금까지 방영된 사극 중에 몇개나 역사에 충실했었나요. 작가분의 의도가 선덕여왕 당시의 역사를 보여주고자 했던거라면 이렇게 짚고 넘어가는 것이 당연하겠죠. 작가 자신이 모티브로 삼은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다 보니까 좀 넣고 빼고, 멜로도 들어가야되서 나이랑 인물을 그에 맞게 수정도 하고.. 뭐 이런 과정이 있지 않았겠어요?ㅜㅜ 이 드라마가 막장사극(?)이다 뭐다 말들이 많지만, 아무튼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시청률도 꽤 높고 이것저것 논란도 되고 하는 거겠죠^^ 일단 배우들의 연기력이 좋고, 스토리도 그닥 부실하지 않으면서 하이라이트부분 콕콕 집고 올라가는 것이 드라마 보는 맛이 있더이다ㅋㅋㅋ 역사스페셜, 역사추적 이런거 찾아 보게도 되고ㅋㅋ 암튼 재밌던뎁~~~~~~~개인적으로 선덕여왕 시청률 40% 넘었으면 좋케씀!!!;;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장금까지 쓴것과는 하등 관계가 없지용.. ㅋㅋ

      저도 시청율 40% 넘었음 좋겠어용.. 배우들의 연기는 죽이는뎅.. 스토리는 막장입니당.. ㅋㅋ

  16. 성이진 2009.10.11 1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님, 정말 연기를 잘하세요!!! 선덕여왕님, 그리고 미실공주님
    짱 멋져요!!!!! 매일매일 보고 있어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덕만공주를 맡은 이요원에 불만을 가진 분들이 계시던데.. 저는 배우들의 연기는 참으로 좋다고 생각해용.. 다만, 비담과 염종의 오버가 너무 자주 눈에 띄는게 아쉽기는 합니당.. ㅋㅋ

  17. 여왕은 왜.. 2009.10.11 2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은 결혼 할 수 없다는 것이 드라마 전제로 깔려 있어서 기분 나쁘네요...
    드라마를 보면서 불쾌했거든요. 무의식중으로 전달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여성은 사회활동을 하면 결혼을 못한다...

    그리고 여왕이 어느 나라에도 전례가 없다고 떠들 때 전 당연히 일본을 얘기할 줄 알았더니 쌩뚱맞게 이집트라니...

  18. BlogIcon Elena* 2009.10.22 0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너무 재미있게 보고있는데, 이런글도 읽으니까 너무 재미있네요.
    저도 덕만이 남편이 너무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본적이 있는데,
    덕만의 남편으로 조계룡이라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조계룡이 본명은 아니고 가야왕자출신으로 진평왕이 조계룡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 하네요.

    그거 보면서 저는 월야가 바로 떠올랐는뎁..
    월야가 가진 군사가 많으니,
    미실의 난을 복야회 군사를 이용해서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다면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 갔더라구요.

    다만, 극에서 월야가 너무 찌질하게 나온다는 것이 걸리지만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진짜 멋있었는데 갈수록 ㅠㅠㅠㅠㅠ)

    용춘공도 꽤 미남이신데 극중 설정이 나이가 많은 설정이라 아쉽네요.

    갠적으로는 월야의 첫등장에 반해버려서,
    어서 예전의 카리스마를 되찾고 덕만의 남자가 되어서
    분량이 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ㅋ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0.22 0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월야에 관한 글도 있는뎅 함 보셈..ㅋㅋ
      월야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군요..

      용춘은 578년생.. 지금 시제는 616년,, 드라마 제작진 기준으로 하면 631년.. 오히려 젊게 나오는데용.. ㅋㅋ

      원래 첫 등장은화려하게 해야 임팩트가 있지용.. 그리고 기다리는 마음.. ㅋㅋ

  19. BlogIcon kue lebaran 2011.08.14 1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재 문서를 선언하고 싶지는 tonishing으로합니다. 기사와 명석 내가이 분야에 대한 권위로 당신은 일어날 수있는 가정 실제로 눈부신입니다. 효과적으로 당신의 선택을 사용하면 나를 안으로 문서를 사용하는 지금까지 최대 유지하기 위해 현재 RSS를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건배와 함께 천 당신의 새로운 uthentic의 작동 계속해야합니다.

  20.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21. BlogIcon Pussy.Org 2012.07.12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들여 거칠부가 <국사>를 만든것으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진흥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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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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