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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드라마 선덕여왕이 대만(타이완) 한국드라마 전문채널에서 22일 저녁 10시부터 방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일본의 후지 위성TV로 29일부터 방송이 된다고 합니다. 한국인보다 한국역사를 모르는 대만인이나 일본인들 같은 경우 어쩌면 한국에서 보다는 더 인기가 있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덕만은 "제가 가는 곳이 곧 권력이고 시간은 덕만의 편이다."라고 한다.
반면에 "이중권력이 생기기전에 덕만을 죽여야 한다. 하지만 덕만은 "갈곳이 없다. 그리고 피할 필요도 없고, 미실과 끝장을 보겠다"고 한다. 무엇으로 끝장을 볼까? 덕만에게는 힘도 없고, 사람도 없다. 가지고 있는 힘이란 미실이 모르는 달랑 복야회의 월야 세력뿐이다.

그래서 선택한 내용이 종부세로 중소귀족을 흔들어 놓았던 것을 상기한다. 또한, 화랑들의 순수성에 기대고 있다. 더 나아가 주진에게 은근히 흘리듯이 미실 자신이 황위에 오를것이라고 부축인다. 또한, 언론 형성장소인 시장의 벽보를 이용한다. 시장은 물산만 움직이는 게 아니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가듯히 여론은 시장에서 형성되고 가공되고 증폭된다.
미실과 덕만은 언론을 통해서 명분을 찾으려고 한다. 또한, 중소귀족들에게 빛보다 빠르게 연통을 보낸다. 덕만을 비롯한 화랑들 모두 미실은 대의를 벗어난일이 없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수 있듯이 이렇게 하므로서 미실을 따르거나 자신의 이득이 어느쪽에 있는가 살피는 사람과 명분을 중요시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혼란을 일으키려는 전략이다.

문제는 덕만이 주진에게 미실보다 더 많은 거래를 줄것이라는 발언을 하면서, 미실은 여성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실은 안되고, 덕만은 된다는 식이다. 한마디로 미실과 다른점은 진평왕의 딸이란 무기밖에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추구하는 덕만이 사람을 얻어서 왕이 된것도 아니고 단지, 성골이기 때문에 왕이 될수 밖에 없다는 설정이다.

개연성이 좀 떨어지는게 아닐까? 결국엔 명분은 미실은 안되지만, 주진이 손을 들어줄 수 있는건 세금감면정책에서 보듯이 자신의 이익에 미실과 덕만이 얼마나 도움이 될것인 뿐이다.

차라리 미실이 진평왕의 뒤를 이어서 최초의 여왕이 되었다는 설정이 낫지 않는가? 이름이 다르지 않냐고 반문한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역사서의 한줄도 재대로 반영한 내용이 없다. 단지 이름들만 차용했을 뿐이다. 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이순신이나 을지문덕이나 전두환이나 박정희가 등장하지 않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사실 사극은 현대극이다. 시대를 삼국시대니, 고려시대니, 조선시대를 차용했을 뿐이다. 사극의 목적은 과거로 부터 반면교사를 빙자한 현실비판이다. 하지만 현실은 사극의 목적은 간과한체 세태풍자극이라고 이야기하면 안되고, 정치비판을 하면 안된다.

어쨌든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다 보면 정말 덕만이 신라시대에 왕이 되었을까? 하는 의심까지 하게 된다. 이름이야 초명은 미실이였지만 왕이 된후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자신의 남편인 진평왕의 딸로 입적시키는 방법을 쓰면되고, 이름도 덕만으로 바꾸면 그뿐이다.

어짜피 드라마는 재미를 위한것이지 역사를 배우고자 하는것도 아니고, 다큐를 보자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요즘의 드라마 재미는 얼마나 역사를 왜곡(?)하고  역사의 기록과 부합하지 않는가의 경쟁이지 않는가? 사실 역사를 알아야 왜곡도 한다. 알아야 어느부분이 문제인지 파악을 하고 교묘히 왜곡하고 곡학아세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럴때 그냥 무지하다고 이야기를 하는것이다.

미실이, 정확히는 세종이 주진에게 주려한건 상주지역 1만속의 땅과 대등이다. 덕만은 미실이 황위에 오를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주진은 당연히 세종이 황위에 오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실이 왠 황위? 왜?라는 듯 반문을 한다. 주진에게 세종은 되지만 덕만은 안된다는 여성차별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작가는 스스로 여성이면서 여성이 왕이 된다는 설정이 무리가 따른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먼가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극을 전개하고 무리수를 두고 있다. 또하나는 여성은 왕이 될수는 있지만 동정녀 마리아 처럼 처녀로 늙어 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도대체 어느나라 여왕이 시집도 안가고 처녀로 늙어 죽던가? 그러니 당연히 덕만이 즉위한 이후에도 살아있어야할 남편 을제 대등도 죽여버리지 않는가?

드라마 선덕여왕이 최초의 여왕이 이라는 여현국(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도 남편편력이 장난이 아니였는데 말이다. 주요 등장 인물을 살리고 죽이는데는 합리적인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인과관계는 없다. 그냥 배역에서 죽여버리면 그뿐이다. 내일 당장 주인공 덕만이 죽는다는 설정을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드라마이다.

진평왕 시기 바로 엽집인 왜에는 추고천황이 집권하고 있었다. 그런데 엽집의 일도 모르는 염종과 춘추는 여현국의 일은 어찌 알았을꼬? 총체적인 부실덩어리 일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드라마 선덕여왕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일본에 수출된다면 하품을 내는 대목이 되지않을까 한다. 물론, 일본인들 이라고 자신들의 역사를 잘아는게 아니다.

하지만, 일본에 최소한 여왕이 있었다는 사실은 안다. 삼국지위지동이전에도 나오고 삼국사기에도 나오는 비미호라는 인물이다.
20년(173) 여름 5월에 왜(倭)의 여왕 비미호(卑彌乎)가 사신을 보내와 예방하였다. - 삼국사기 - 아달라 20년

또한 비미호의 뒤를 이어서 비미호의 조카 일대(여)가 왕위을 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비미호가 일본서기에는 신공황후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득실거린다. 그런데 저멀리 여현국(이집트)에서 최초의 여왕을 찾는 드라마를 본다면?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일본에서 신공황후의 존재는 한국에서 덕만의 존재보다도 위에 있다.



사실 천추태후나 덕만이 남장을 하고, 갑옷을 입는 모습은 일본서기의 신공황후의 모습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물론, 잔다르크나 뮬란을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신공은 임신을 한 상태에서 갑옷을 입고, 황금의 땅 신라를 정벌하려 왔다는 전승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토대로 일본에서 임나일본부가 성립한다. 물론, 그 내용을 해석하는데는 사람마다 다른다.

한마디로 일본에 수출할땐 여현국(이집트)이야기를 빼던지, 아니면 자막이나 더빙을 할때 일본실정에 맞게 다시 편집하라는 뜻이다. 한국도 아마추어 전문가들이 많아졌지만,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각분야 오타쿠들이 많다.


어찌되었던 어떻게 주진의 야영지에 비담과 덕만이 침투하였을까? 침입하는 과정도 없다. 그냥 준 전쟁상황인 주진의 막사에 나타난다. 최소한 막사를 지키는 병사의 목이라도 치고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비담의 손에든 칼에 핏자국이라고 뭍혀두던지 말이다. 극중 리얼리티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유신을 구출하기 위한 과정보다는 비담과 덕만이 주진의 막사로 들어가는 과정이 더 흥미롭다.

하지만, 드라마는 뜸금없이 죽은 시체놀이를 하고 있다. 시체놀이는 드라마 어디에서 나온듯한 내용이다. 어디선가 본듯한데 찾아보기는 귀찮다. 혹시 아시는 분이 있으시면 알려주기 바란다. 선덕여왕 드라마 작가나 소설가는 삼국시대 신라의 사극을 만들면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고 있으면서 내용을 안보고 그냥 드라마만 줄창 시청했던 것이다. 귀신도 부릴줄 안다는 비형랑(비담)이 덕만 옆에 있었다는 걸 깜박했다.

소화는 어찌하여 옥새도 몸에 노출해서 가지고 있고, 미실의 중요한 편지도 남들 다 보이는 곳에 노출하고 있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리얼리티를 찾는게 더 어려울 정도이다.

덕만을 잡기위해서 미실은 유신을 풀어준다. 유신이 가는곳에 덕만이 있기때문이다. 미실의 계락대로 칠숙은 덕만이 숨어 있는 암거를 급습한다. 하지만, 칠숙의 군대가 도착하는 동안 주진의 군대처럼 술병(순라병)은 한놈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엔 주진이나 월야는 허수아비 군대를 양성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선봉부대인 주진의 군대를 믿고 난을 일으키는 미실이나 복야를 하겠다고 방방뜬 월야나 덕만은 배포도 좋다고 할 수 있다. 

사극은 현실을 반영한다고 이야기를 했고, 사극은 현실비판이나 세태풍자를 하기 위해서 사극이란 장르를 빌여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이번회의 미실의 난은 지난 박정희의 쿠데타와 전두환이 쿠데타를 아주 절절히 접목을 시켜서 미실의 난을 창조했다. 위수령과 계엄령과 국가임시보위를 만들어서 장면과 최규하를 핍박하는 것이 판박이다. 

진평은 진작에 미실이 왕위를 탐내었다면 덕만을 버릴 필요도 없었고, 천명을 잃어 버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를 한다. 정말 그럴수 있을까? 명분없이 쿠데타를 일으킨 자가 후손을 살려주는 경우는 없다. 진평은 꿈속을 헤매고 있는것이다.

진평은 미실에게 "너는 꿈을 꾸지 않았다. 이제와서 남의 꿈을 뺏았는 것이냐?"라고 묻는다.  하지만 이제 여왕이란 달콤한 꿈이 탐이 난다는 미실. 그리고 진평에게 덕만을 반란의 수괴라고 인정한다는 교지에 옥새를 찍어서 보여준다. 이때 교지에는 반란이 일어난 때가 나온다. 그때는 기유년이다. 위국령에 국가안보상임위를 만드는 때이다. 한마디로 미실이 왕이 되겠다고  미실이 난을 일으킨 때라는 것이다. 

어쩌면 칠숙의난이 일어난 때라고 드라마 제작자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이때 일지 모른다. 이때란 덕만이 왕위를 승계하기 전 이찬 칠숙이 덕만에게 물려주는 진평왕의 뜻을 알고 난을 일으킨 때일것이다. 그렇다면 시기는 631년 봄이 된다. 이제 덕만이 왕으로서 선정을 베풀고, 이룰수 없는 꿈이란, 삼한일통의 초석을 놓는 "망라사방"을 위해서 첫발을 딛는 날도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동안 연장으로 인해서 이야기가 너무 진부하고 스피디가 없다고 투정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건 스피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덕만 여왕을 볼 수가 있다.

칠숙은 문노의 무예 라이벌이다. 무예 라이벌이란 비슷한 시기의 사람이란 뜻이다. 문노는 538년생이다. 그리고 606년 69세로 죽는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춘추의 지령에 의해서 염종의 수하에게 죽는것으로 설정했지만 말이다.

미실의 난이 칠숙의 난이라면, 631년 칠숙은 몇살이 되었을까? 문노라면 94세가 되고, 칠숙도 이와 비슷한 나이가 되지 않았을까?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칠숙이 이때 난을 일으켜서 무엇할까 궁금하기는 하다.

미실은 위국부령이 되는데 진평왕의 제가를 받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세종과 설원랑, 미실이 화백회의의 상부에 놓이게 된다. 이때 왕윤의 아버지는 이에 폐하가 교지를 직접남긴것인지 알고 싶다고 한다. 또한 덕만은 유일한 적손이며 성군이라고 한다. 이말이 미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다.

그래서 보종이 미실의 명으로 왕윤의 아버지를 처단한다. 입바른 소리를 하면 죽여버리겠다는 위협이다.  덕만은 한일 없이 또한명의 사람을 얻었다. 미실이 왕윤의 아버지를 죽이므로 해서, 손도 안대고 코를 풀어 버린것이다. 되는 사람은 된다. 아무리 되려고 하는 사람인 미실은 안된다. 한마디로 덕만에게 왕은 내운명이고 미실에게는 왕은 덕만 니운명이 된것이다.

그리고 미실은 옥좌에 앉아 이야기를 한다. 옥좌는 용상이다. 용상에 앉을 수 있는자는 진평뿐이다. 그런데 미실은 옥좌에 앉자서 귀족 니들이 신국인 신라를 위해서 한일이 무엇이냐고 호통을 친다. 그동안 신라를 지탱해오고 실질적으로 지배해온건 자신 미실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미실이 옥좌에 앉는 순간 이미 자신이 반역을 하였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이는 빈옥좌에 앉는 신은 이미 드라마 천추태후에서 김치양이 써먹은 방법이다.

실지로 신국을 지켜온 미실이니 이제 허수아비 진평왕을 폐위하고 직접통치를 하겠다는 선언이다. 또한 이시간 부로 혈통과 성골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말라고 한다.


미실은 상선인 14세 풍월주 호재의 아버지에게 밀서를 보내고, 덕만도 호재의 아버지에게 밀서를 보낸다.

호재의 아버지는 양주정의 당주다? 어찌 어찌 이런일이 호재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호재는 14세 풍월주이다. 호재가 풍월주가 된이유는 호재의 누이때문이다. 그럼 호재의 누이의 이름은 누구일까? 호재의 누이의 이름은 마야다. 마야라고 하니 덕만의 어미인 마야황후와 같은 이름이 아니냐고 반문할찌 모른다. 동명이인일까? 아니다 호재의 누이는 마야황후가 맞다. 

마야의 아버지는 복승갈문왕이다. 마야의 어머니는 송화다. 송화는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태후와 영실각간의 딸인 송화이다. 복승갈문왕은 비처왕의 손자이다.  비처왕의 손자이고, 마야왕후의 아비인 갈문왕인 복승이 일개 양주정의 당주직에 있고, 5천속도 안되는 땅을 가진 중소귀족이 된것이다. 중소귀족인 호재가 비재를 통해서 14세 풍월주의 지위를 603~612년까지 10년동안 장기 집권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재미가 있지 않는가? 

14세 풍월주호재와 마야황후 가계도


미실은 영실과 옥진의 딸인 묘도와 미진이 결혼해서 낳은 딸이다.  한마디로 미실의 어머니 묘도와 호재.미야의 어머니 송화는 이복자매간이다. 미실과 마야의 관계는 어찌될까 당연히 이종사촌간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떡밥으로 투여한 소화가 미실의 은신처에서 가지고 나온 편지로 인해서 미실과 덕만은 화해 모드로 전환될 것 같다. 그렇다면 미실의 난은 칠숙을 희생양으로 덕만과 미실이 화해를 하는 것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미실의 장렬한 죽음으로 끝을 맺을 것인가? 

도대체 드라마 선덕여왕의 작가는 미실의 난이 일어났다고 생각되는 시기를 어디로 잡는가 궁금했다. 제작진의 말처럼 칠숙의 난을 미실의 난으로 만들려고 하는가?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황망하게도 빗나가고 말았다.

위에서 잠시 미실이 반란을 일으킨 연도를 파악하는 간지를 이야기 했다. 미실이 덕만의 추포령을 내리면서 연도를 기입했다. 기유년이다. 사실 당시에는 기유년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그때가 언제인지 알겠는가? 진평왕은 연호를 사용했다. 연호는 건복이다.  간지란 60년마다 바뀐다. 그러니 기록을 남길려면 당연히 연호를 먼저쓰는게 공식문서로서 합리적이다. 그러니 건복 몇년, 뒤에 간지를 표기하고 추포령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건복연호를 사용할 수 없다. 이유는 기유년의 간지에 있다. 


미실의 난은 기유년 649년 진덕왕 3년

기유년은 언제일까? 미안한 이야기지만, 631년 칠숙의 난도 지나고, 덕만이 죽고, 647년 봄 1월 8일에 비담이 염종과 반란을 일으킨때도 지나고, 649년 진덕왕 3년이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은 진평왕 바로 다음대의 왕이 진덕여왕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미실은 덕만이 죽고 난후에 난을  일으킨다는 설정이고, 죽은 제갈량과 산 사마중달이 싸우는 것 처럼, 죽은 덕만과 산 미실이 싸우는 형국이다. 

단순히 옥의티라고 넘어가기에는 공문 찌라시에 들인 공을 생각해보면 제작자나 작가가 암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드라마 선덕여왕 극중안에서 리얼리티를 찾는게 더 어려운 퍼즐같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장르를 구분하자면 환타지 사극도 아니다. 그렇다고 정통사극도 아니다. 퓨전사극도 아니다. 기본적인 원인과 결과가 있고, 인물들간에  인과관계가 필수인 드라마 형식에도 반한다. 선덕여왕은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황당사극이나 황당 사기극으로 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대사가 무엇일까? 미실이 나는 미실입니다일까? 아니다. "어찌 그런 일이"다. 극중에서 상식에 어긋나거나 황당한일이나 황망한 일이 일어날때 마다. 화랑들이나 등장인물이 입에 달고 사는 대사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하면서 덕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평왕이 계속 집권했거나, 미실이 쿠데타를 성공하고 덕만으로 활동했다는 뜻이지 않을까? 미실이 말한 "공주님 이제 그만 끝내시지요"가 빈말이 아니다. 또한, 선덕여왕에서 주인공이 덕만이 아니고 미실임을 만천하에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를 보고 덕만이 신라의 왕이 되었는지 모를뿐만 아니고, 미실이 쿠데타에 성공을 하고 덕만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을 판이고, 미실이 성전환을 해서 박정희가 되었고, 전두환이 되었다고 해도 믿을 판이다.

또한, 박근혜가 과거로 돌아가서 미실이나 덕만이 되었다고 해도 충분히 이해해주어야 한다. 설마 기유년에 미실이 난을 일으킨다는 설정도 시청율을 높이고, 역사공부를 하기위한 고도의 전략이거나 고육지책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조금만 신경을 쓰면 수정할 수 있는 내용도 드라마 선덕여왕은 국민(백성)들은 진실을 버거워하는 머저리로 보기때문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쩌면 드라마에서 덕만이나 미실은 죽지 않고 이름을 바꾸고 지금까지 당신 옆에 있다고 해도 믿을 판이다. 이미 드라마 선덕여왕은 역사에 무지하면서 역사극을 만들수록 인기가 높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적을 하고 비판을 하면 꼭 댓글로 재미있게 잘보고 있는데 초를 친다는 사람들이 있다. 뭘 재미있게 잘봤는지 모르겠다. 

진실을 알려주면 버거워하며 아무생각 없이 시청하는 사람과 글쓴이 처럼 생각하면서 보는 사람중 누가 재미있게 잘봤겠는가? 전국민 스포츠가 되어 버린 피겨스케이팅을 볼때 룰도 모르면서 김연아의 연기와 아사다마오의 연기를 동일선상에 놓고 피겨를 보는 사람과 룰을 잘알고 보면, 룰을 지키는 김연아의 연기를 보는것과  룰을 지키지 않는 아사다 마오의 연기를 보는 차이이다.


AD649 기유己酉
신   라 :  진덕왕 3년
백   제 :  의자왕 9년
고구려 :  보장왕 8년
정관23년 고종대성효황제 치


이글을 쓰는 목적중에 하나는 드라마 선덕여왕이라는 물속에 버드나우 잎이 띄어 있으니 버드나무 잎을 불어서 버드나무 잎이 입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조심해서 물을 마시고 갈증을 해소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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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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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영웅전쟁 2009.10.28 0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좀 길긴 하지만...
    멋진 포스팅입니다.
    잘 알겟습니다.
    입으로 후후 불어가며
    아무리 목이 타도 천천히 들이키도록 하지요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2. BlogIcon 파아란기쁨 2009.10.28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선덕여왕 내용이 좀 어딘가 모르게...
    긴장감이 떨어져서 잘 안보고 있네요...ㅋ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다 보니 어제 안본 내용의 줄거리를 알수 있겠네요.^^

  3. BlogIcon 머미 2009.10.28 0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은 대체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끌고 가려나 하는 생각으로 봅니다.

    심지어 유신을 구하러 가는 결사대에게 죽방은 비밀통로 이야기도 안 해주더군요.

  4. 무심공주(無心空舟) 2009.10.28 1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극의 난이 아니고 사기극의 난이죠...
    어지럽습니다.

    10.26처럼 건복몇년 추구월 기유일이었을 지도....^^;;
    기유일이 시월의 마지막 날이네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진덕왕언급부분에 전덕왕으로 기재되어있습니다. 수정부탁....
    그리고 중국의 연원에 대한 포스팅도 다시 부탁드립니다.

    매번 감사합니다....건! 필!

    • BlogIcon 갓쉰동 2009.10.29 0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제가 예전에 연개소문을 비판할때 황당사기극이란 말을 처음 사용해서 비판을 했어지용.. 그런데 연개소문을 비판한게 미안할 정도예용.. ㅋㅋ 선덕여왕을 보면.. 이건 드라마의 기초도 안되있어용.. ㅋㅋ

  5. BlogIcon labyrint 2009.10.28 1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유년...
    선덕여왕 제작팀의 또 실수군요.
    아르바이트 생에게 좀 조사시키고 하면 될텐데요...
    국사 전공한...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6. 래빗 2009.10.28 14: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거참 깐깐하고 피곤한 분들이시네 풉

    왜케 비교질을 별루면 보질말어 ~ ~

    드라마가 그냥 드라마지 뭔 공부들을 하면서 보고있어.

    역사공부 할꺼면 그냥 책보고 인터넷 찾아봐 ~

    극진행이 황당하고 어이없으면 보질 말라고 @

    졸래 고지식한것들 ㅋㅋ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0.29 0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한테 공부하란 예기한적 없거든요. 님은 그냥 사셈.. 말리지 않으니.. ㅋㅋ

      무식이 죄는 아니여도 부끄러움은 가져야지용.. 님처럼 나대지 마시공.. ^___^

  7. BlogIcon 분홍별장미 2009.10.28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월요일은 잼있더니 화요일은 정말 생각보다 아니였습니다 ;;;
    그전부터 사극에서의 역사왜곡은 어느정도 알고있기에 ^^;;
    다만 문제는 역사를 배우고 있는 어린친구들이 선덕여왕이
    사실인냥 생각할까봐 문제겠지요. 물론 역사선생님이 알아서
    해주겠지만 ;;

    • BlogIcon 갓쉰동 2009.10.29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왜곡은 합리적인 해석에서 나오는 거지만. 그렇지 않다면. 문제가 심각해지지용.. ㅋㅋ

      님의 말씀하신대로 어린친구들이 사실인양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다큰 성인이 받아들이고 어린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면 더 심각해지겠지용. 역사선생은 이런데 관심없숩니당. 시간도 없고,, 반면교사로 존 재료가 되겠지만용.. ㅋㅋ

  8. BlogIcon 펨께 2009.10.28 1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갓쉰동님이라는 생각입니다.
    좋은 글입니다.
    알고 넘어가야 할것은 알아야 하는게 당연한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드라마지만...

  9. 오히려 2009.10.28 2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히려
    우리나라사람이 자국에 역사를 모르지요.
    아니 왜곡해도 왜곡 안한양 합리화를 시키고 있지요.

  10. 갓쉰동 최고 2009.10.28 2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작가는 화랑세기를 표방했다고는 하나
    화랑세기에서는 덕만의 라이벌로 두명을 놓죠
    첫째는 용수와 천명부부죠.

    글고 둘째는 마야황후 사후 들어오는 승만황후 모자
    (광해와 인목대비 영창대군모자와 비슷)
    자기네가 배꼈다는 화랑세기조차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고
    너무 미실에게 집착하는 듯 아무레도 진지왕 진평왕등을 손아귀에 놓을 정도로 막강하였다고 기록되는 미실을 내세우면 시청률을 올릴수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듯

    그런데 아사다가 어떤 피겨스케이팅의 룰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죠?
    비유가 잘못 된듯 합니다.

    글고 시청자들은 그냥 드라마 자체를 재미있게 보는것인데 너무 시청자들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는듯
    사실 역사전문가들의 심한 반박과 일반시청자들에대한 무시가 거리감을 낳기는 하였죠.
    꼭 작가를 믿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용인해주는 것이 님이 일일히 조사하지 않은 이상
    공개적인 블로그에서 시청자들을 비난하시는 것은 옳지 않은듯
    비난하시려면 여기에 글올린 분들을 비난하세요 모든 시청자들이 그런듯이 올리시지 말고
    저도 알면서도 그냥 보는 타입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29 0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용수와 천명을 라이벌로 둔적이 없는뎅.. 오독하신것 같습니당. 머 진평왕이 지명을 하니 그렇게 생각될수도 잇겠네용. 덕만의 입장에선..

      시청자를 비난하지 않는뎅.. 꼭집어서 이야기하면 이곳에게 뻘플을 다는 사람입니다만.. ㅋㅋ

      노무현이 이런 말을 한적이 있어용..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이다.
      같은 말로 전문가가 눈을 감고 있는건 전문가가 할일은 아니지용. ㅋㅋ

  11. 바람소리 2009.10.29 1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니가 작가해라

  12. BlogIcon beat™ 2009.10.29 1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글이 +_+/
    전 학교다닐때부터 역사는 별로안친해서 드라마 봐도 사극은 잘안봐지드라구요 ㅎㅎ
    드라마 보면 같이 이야기를 나눌수있을거같은데 잘 안봐지네요 ㅎㅎ ;
    혹시 미드 보시면 미드 포스팅도 해주세요~ 전 히어로즈 보고있답니다~

  13. 그냥 2009.10.29 1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구인 드라마본다고 생각하면 되면 되죠.

    문제는 선덕여왕이란 드라마를 실제 역사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소수 있다는 것이 문제...

    애초에 미실의 난도 없을 뿐더러, 실제 역사에서 미실이란 요부가 있었는지조차 논란이 많은 상황;;

    어쨌든 경계를 확실히 그어주는 이런 포스팅은 아주 적절하다고 사료됩니다.

  14. 사기극이라... 2009.10.30 18: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물론 글쓴이의 지적대로 선덕여왕이란 드라마에 나오는 내용들은 실제 사서상의 기록과는 아주 많이 다릅니다. 이런 드라마로 인해 역사가 왜곡되는 것을 우려하는 심정 역시 공감하며 실제 사서의 기록과는 많이 다르다고 선을 그어주는 이런 글들은 꼭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또한 허술한 전개에 대한 비판 역시 마땅히 옳으시구요...

    다만 사극을 창작의 관점으로 보지 않으시고 역사 재현의 관점에서 보시는 것 또한 이제는 조금 지양되어야 할 바가 아닌지요... 현대의 사극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역사적인 상황과 캐릭터를 바탕으로 만든 픽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황당한 사기극"이라 하심은 사극이라는 장르에 대한 본질을 오해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극을 "역사 재현극"의 관점으로 보게 되면 사극을 기치를 달고 나온 드라마 중 역사 왜곡의 잣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드라마가 몇 편이나 될까요... 물론 1990년대까지는 이른바 "정통 사극"(역사 재현의 관점에서 구성한 사극)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만 이제는 사극에 대해 좀 더 너그러운 관점으로 봐야 하지 않을런지요...

    아 물론 이러한 사극들은 완전한 픽션임을 많이 알려야 하겠지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30 2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픽션임을 알릴 필요조차 없지용.. 리얼리티 제로인뎅..

      기유년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제작진과 작가를 보면 한숨이 나와용.. 머 비슷한 구석이라도 있어야지용. 극중에서 야부리 농담하는 것도 아니공.. ㅋㅋ

  15.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드라마 선덕여왕이 대만(타이완) 한국드라마 전문채널에서 22일 저녁 10시부터 방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일본의 후지 위성TV로 29일부터 방송이 된다고 합니다. 한국인보다 한국역사를 모르는 대만인이나 일본인들 같은 경우 어쩌면 한국에서 보다는 더 인기가 있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덕만은 "제가 가는 곳이 곧 권력이고 시간은 덕만의 편이다."라고 한다.
반면에 "이중권력이 생기기전에 덕만을 죽여야 한다. 하지만 덕만은 "갈곳이 없다. 그리고 피할 필요도 없고, 미실과 끝장을 보겠다"고 한다. 무엇으로 끝장을 볼까? 덕만에게는 힘도 없고, 사람도 없다. 가지고 있는 힘이란 미실이 모르는 달랑 복야회의 월야 세력뿐이다.

그래서 선택한 내용이 종부세로 중소귀족을 흔들어 놓았던 것을 상기한다. 또한, 화랑들의 순수성에 기대고 있다. 더 나아가 주진에게 은근히 흘리듯이 미실 자신이 황위에 오를것이라고 부축인다. 또한, 언론 형성장소인 시장의 벽보를 이용한다. 시장은 물산만 움직이는 게 아니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가듯히 여론은 시장에서 형성되고 가공되고 증폭된다.
미실과 덕만은 언론을 통해서 명분을 찾으려고 한다. 또한, 중소귀족들에게 빛보다 빠르게 연통을 보낸다. 덕만을 비롯한 화랑들 모두 미실은 대의를 벗어난일이 없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수 있듯이 이렇게 하므로서 미실을 따르거나 자신의 이득이 어느쪽에 있는가 살피는 사람과 명분을 중요시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혼란을 일으키려는 전략이다.

문제는 덕만이 주진에게 미실보다 더 많은 거래를 줄것이라는 발언을 하면서, 미실은 여성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실은 안되고, 덕만은 된다는 식이다. 한마디로 미실과 다른점은 진평왕의 딸이란 무기밖에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추구하는 덕만이 사람을 얻어서 왕이 된것도 아니고 단지, 성골이기 때문에 왕이 될수 밖에 없다는 설정이다.

개연성이 좀 떨어지는게 아닐까? 결국엔 명분은 미실은 안되지만, 주진이 손을 들어줄 수 있는건 세금감면정책에서 보듯이 자신의 이익에 미실과 덕만이 얼마나 도움이 될것인 뿐이다.

차라리 미실이 진평왕의 뒤를 이어서 최초의 여왕이 되었다는 설정이 낫지 않는가? 이름이 다르지 않냐고 반문한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역사서의 한줄도 재대로 반영한 내용이 없다. 단지 이름들만 차용했을 뿐이다. 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이순신이나 을지문덕이나 전두환이나 박정희가 등장하지 않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사실 사극은 현대극이다. 시대를 삼국시대니, 고려시대니, 조선시대를 차용했을 뿐이다. 사극의 목적은 과거로 부터 반면교사를 빙자한 현실비판이다. 하지만 현실은 사극의 목적은 간과한체 세태풍자극이라고 이야기하면 안되고, 정치비판을 하면 안된다.

어쨌든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다 보면 정말 덕만이 신라시대에 왕이 되었을까? 하는 의심까지 하게 된다. 이름이야 초명은 미실이였지만 왕이 된후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자신의 남편인 진평왕의 딸로 입적시키는 방법을 쓰면되고, 이름도 덕만으로 바꾸면 그뿐이다.

어짜피 드라마는 재미를 위한것이지 역사를 배우고자 하는것도 아니고, 다큐를 보자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요즘의 드라마 재미는 얼마나 역사를 왜곡(?)하고  역사의 기록과 부합하지 않는가의 경쟁이지 않는가? 사실 역사를 알아야 왜곡도 한다. 알아야 어느부분이 문제인지 파악을 하고 교묘히 왜곡하고 곡학아세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럴때 그냥 무지하다고 이야기를 하는것이다.

미실이, 정확히는 세종이 주진에게 주려한건 상주지역 1만속의 땅과 대등이다. 덕만은 미실이 황위에 오를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주진은 당연히 세종이 황위에 오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실이 왠 황위? 왜?라는 듯 반문을 한다. 주진에게 세종은 되지만 덕만은 안된다는 여성차별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작가는 스스로 여성이면서 여성이 왕이 된다는 설정이 무리가 따른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먼가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극을 전개하고 무리수를 두고 있다. 또하나는 여성은 왕이 될수는 있지만 동정녀 마리아 처럼 처녀로 늙어 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도대체 어느나라 여왕이 시집도 안가고 처녀로 늙어 죽던가? 그러니 당연히 덕만이 즉위한 이후에도 살아있어야할 남편 을제 대등도 죽여버리지 않는가?

드라마 선덕여왕이 최초의 여왕이 이라는 여현국(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도 남편편력이 장난이 아니였는데 말이다. 주요 등장 인물을 살리고 죽이는데는 합리적인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인과관계는 없다. 그냥 배역에서 죽여버리면 그뿐이다. 내일 당장 주인공 덕만이 죽는다는 설정을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드라마이다.

진평왕 시기 바로 엽집인 왜에는 추고천황이 집권하고 있었다. 그런데 엽집의 일도 모르는 염종과 춘추는 여현국의 일은 어찌 알았을꼬? 총체적인 부실덩어리 일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드라마 선덕여왕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일본에 수출된다면 하품을 내는 대목이 되지않을까 한다. 물론, 일본인들 이라고 자신들의 역사를 잘아는게 아니다.

하지만, 일본에 최소한 여왕이 있었다는 사실은 안다. 삼국지위지동이전에도 나오고 삼국사기에도 나오는 비미호라는 인물이다.
20년(173) 여름 5월에 왜(倭)의 여왕 비미호(卑彌乎)가 사신을 보내와 예방하였다. - 삼국사기 - 아달라 20년

또한 비미호의 뒤를 이어서 비미호의 조카 일대(여)가 왕위을 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비미호가 일본서기에는 신공황후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득실거린다. 그런데 저멀리 여현국(이집트)에서 최초의 여왕을 찾는 드라마를 본다면?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일본에서 신공황후의 존재는 한국에서 덕만의 존재보다도 위에 있다.



사실 천추태후나 덕만이 남장을 하고, 갑옷을 입는 모습은 일본서기의 신공황후의 모습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물론, 잔다르크나 뮬란을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신공은 임신을 한 상태에서 갑옷을 입고, 황금의 땅 신라를 정벌하려 왔다는 전승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토대로 일본에서 임나일본부가 성립한다. 물론, 그 내용을 해석하는데는 사람마다 다른다.

한마디로 일본에 수출할땐 여현국(이집트)이야기를 빼던지, 아니면 자막이나 더빙을 할때 일본실정에 맞게 다시 편집하라는 뜻이다. 한국도 아마추어 전문가들이 많아졌지만,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각분야 오타쿠들이 많다.


어찌되었던 어떻게 주진의 야영지에 비담과 덕만이 침투하였을까? 침입하는 과정도 없다. 그냥 준 전쟁상황인 주진의 막사에 나타난다. 최소한 막사를 지키는 병사의 목이라도 치고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비담의 손에든 칼에 핏자국이라고 뭍혀두던지 말이다. 극중 리얼리티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유신을 구출하기 위한 과정보다는 비담과 덕만이 주진의 막사로 들어가는 과정이 더 흥미롭다.

하지만, 드라마는 뜸금없이 죽은 시체놀이를 하고 있다. 시체놀이는 드라마 어디에서 나온듯한 내용이다. 어디선가 본듯한데 찾아보기는 귀찮다. 혹시 아시는 분이 있으시면 알려주기 바란다. 선덕여왕 드라마 작가나 소설가는 삼국시대 신라의 사극을 만들면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고 있으면서 내용을 안보고 그냥 드라마만 줄창 시청했던 것이다. 귀신도 부릴줄 안다는 비형랑(비담)이 덕만 옆에 있었다는 걸 깜박했다.

소화는 어찌하여 옥새도 몸에 노출해서 가지고 있고, 미실의 중요한 편지도 남들 다 보이는 곳에 노출하고 있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리얼리티를 찾는게 더 어려울 정도이다.

덕만을 잡기위해서 미실은 유신을 풀어준다. 유신이 가는곳에 덕만이 있기때문이다. 미실의 계락대로 칠숙은 덕만이 숨어 있는 암거를 급습한다. 하지만, 칠숙의 군대가 도착하는 동안 주진의 군대처럼 술병(순라병)은 한놈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엔 주진이나 월야는 허수아비 군대를 양성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선봉부대인 주진의 군대를 믿고 난을 일으키는 미실이나 복야를 하겠다고 방방뜬 월야나 덕만은 배포도 좋다고 할 수 있다. 

사극은 현실을 반영한다고 이야기를 했고, 사극은 현실비판이나 세태풍자를 하기 위해서 사극이란 장르를 빌여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이번회의 미실의 난은 지난 박정희의 쿠데타와 전두환이 쿠데타를 아주 절절히 접목을 시켜서 미실의 난을 창조했다. 위수령과 계엄령과 국가임시보위를 만들어서 장면과 최규하를 핍박하는 것이 판박이다. 

진평은 진작에 미실이 왕위를 탐내었다면 덕만을 버릴 필요도 없었고, 천명을 잃어 버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를 한다. 정말 그럴수 있을까? 명분없이 쿠데타를 일으킨 자가 후손을 살려주는 경우는 없다. 진평은 꿈속을 헤매고 있는것이다.

진평은 미실에게 "너는 꿈을 꾸지 않았다. 이제와서 남의 꿈을 뺏았는 것이냐?"라고 묻는다.  하지만 이제 여왕이란 달콤한 꿈이 탐이 난다는 미실. 그리고 진평에게 덕만을 반란의 수괴라고 인정한다는 교지에 옥새를 찍어서 보여준다. 이때 교지에는 반란이 일어난 때가 나온다. 그때는 기유년이다. 위국령에 국가안보상임위를 만드는 때이다. 한마디로 미실이 왕이 되겠다고  미실이 난을 일으킨 때라는 것이다. 

어쩌면 칠숙의난이 일어난 때라고 드라마 제작자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이때 일지 모른다. 이때란 덕만이 왕위를 승계하기 전 이찬 칠숙이 덕만에게 물려주는 진평왕의 뜻을 알고 난을 일으킨 때일것이다. 그렇다면 시기는 631년 봄이 된다. 이제 덕만이 왕으로서 선정을 베풀고, 이룰수 없는 꿈이란, 삼한일통의 초석을 놓는 "망라사방"을 위해서 첫발을 딛는 날도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동안 연장으로 인해서 이야기가 너무 진부하고 스피디가 없다고 투정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건 스피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덕만 여왕을 볼 수가 있다.

칠숙은 문노의 무예 라이벌이다. 무예 라이벌이란 비슷한 시기의 사람이란 뜻이다. 문노는 538년생이다. 그리고 606년 69세로 죽는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춘추의 지령에 의해서 염종의 수하에게 죽는것으로 설정했지만 말이다.

미실의 난이 칠숙의 난이라면, 631년 칠숙은 몇살이 되었을까? 문노라면 94세가 되고, 칠숙도 이와 비슷한 나이가 되지 않았을까?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칠숙이 이때 난을 일으켜서 무엇할까 궁금하기는 하다.

미실은 위국부령이 되는데 진평왕의 제가를 받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세종과 설원랑, 미실이 화백회의의 상부에 놓이게 된다. 이때 왕윤의 아버지는 이에 폐하가 교지를 직접남긴것인지 알고 싶다고 한다. 또한 덕만은 유일한 적손이며 성군이라고 한다. 이말이 미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다.

그래서 보종이 미실의 명으로 왕윤의 아버지를 처단한다. 입바른 소리를 하면 죽여버리겠다는 위협이다.  덕만은 한일 없이 또한명의 사람을 얻었다. 미실이 왕윤의 아버지를 죽이므로 해서, 손도 안대고 코를 풀어 버린것이다. 되는 사람은 된다. 아무리 되려고 하는 사람인 미실은 안된다. 한마디로 덕만에게 왕은 내운명이고 미실에게는 왕은 덕만 니운명이 된것이다.

그리고 미실은 옥좌에 앉아 이야기를 한다. 옥좌는 용상이다. 용상에 앉을 수 있는자는 진평뿐이다. 그런데 미실은 옥좌에 앉자서 귀족 니들이 신국인 신라를 위해서 한일이 무엇이냐고 호통을 친다. 그동안 신라를 지탱해오고 실질적으로 지배해온건 자신 미실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미실이 옥좌에 앉는 순간 이미 자신이 반역을 하였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이는 빈옥좌에 앉는 신은 이미 드라마 천추태후에서 김치양이 써먹은 방법이다.

실지로 신국을 지켜온 미실이니 이제 허수아비 진평왕을 폐위하고 직접통치를 하겠다는 선언이다. 또한 이시간 부로 혈통과 성골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말라고 한다.


미실은 상선인 14세 풍월주 호재의 아버지에게 밀서를 보내고, 덕만도 호재의 아버지에게 밀서를 보낸다.

호재의 아버지는 양주정의 당주다? 어찌 어찌 이런일이 호재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호재는 14세 풍월주이다. 호재가 풍월주가 된이유는 호재의 누이때문이다. 그럼 호재의 누이의 이름은 누구일까? 호재의 누이의 이름은 마야다. 마야라고 하니 덕만의 어미인 마야황후와 같은 이름이 아니냐고 반문할찌 모른다. 동명이인일까? 아니다 호재의 누이는 마야황후가 맞다. 

마야의 아버지는 복승갈문왕이다. 마야의 어머니는 송화다. 송화는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태후와 영실각간의 딸인 송화이다. 복승갈문왕은 비처왕의 손자이다.  비처왕의 손자이고, 마야왕후의 아비인 갈문왕인 복승이 일개 양주정의 당주직에 있고, 5천속도 안되는 땅을 가진 중소귀족이 된것이다. 중소귀족인 호재가 비재를 통해서 14세 풍월주의 지위를 603~612년까지 10년동안 장기 집권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재미가 있지 않는가? 

14세 풍월주호재와 마야황후 가계도


미실은 영실과 옥진의 딸인 묘도와 미진이 결혼해서 낳은 딸이다.  한마디로 미실의 어머니 묘도와 호재.미야의 어머니 송화는 이복자매간이다. 미실과 마야의 관계는 어찌될까 당연히 이종사촌간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떡밥으로 투여한 소화가 미실의 은신처에서 가지고 나온 편지로 인해서 미실과 덕만은 화해 모드로 전환될 것 같다. 그렇다면 미실의 난은 칠숙을 희생양으로 덕만과 미실이 화해를 하는 것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미실의 장렬한 죽음으로 끝을 맺을 것인가? 

도대체 드라마 선덕여왕의 작가는 미실의 난이 일어났다고 생각되는 시기를 어디로 잡는가 궁금했다. 제작진의 말처럼 칠숙의 난을 미실의 난으로 만들려고 하는가?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황망하게도 빗나가고 말았다.

위에서 잠시 미실이 반란을 일으킨 연도를 파악하는 간지를 이야기 했다. 미실이 덕만의 추포령을 내리면서 연도를 기입했다. 기유년이다. 사실 당시에는 기유년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그때가 언제인지 알겠는가? 진평왕은 연호를 사용했다. 연호는 건복이다.  간지란 60년마다 바뀐다. 그러니 기록을 남길려면 당연히 연호를 먼저쓰는게 공식문서로서 합리적이다. 그러니 건복 몇년, 뒤에 간지를 표기하고 추포령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건복연호를 사용할 수 없다. 이유는 기유년의 간지에 있다. 


미실의 난은 기유년 649년 진덕왕 3년

기유년은 언제일까? 미안한 이야기지만, 631년 칠숙의 난도 지나고, 덕만이 죽고, 647년 봄 1월 8일에 비담이 염종과 반란을 일으킨때도 지나고, 649년 진덕왕 3년이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은 진평왕 바로 다음대의 왕이 진덕여왕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미실은 덕만이 죽고 난후에 난을  일으킨다는 설정이고, 죽은 제갈량과 산 사마중달이 싸우는 것 처럼, 죽은 덕만과 산 미실이 싸우는 형국이다. 

단순히 옥의티라고 넘어가기에는 공문 찌라시에 들인 공을 생각해보면 제작자나 작가가 암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드라마 선덕여왕 극중안에서 리얼리티를 찾는게 더 어려운 퍼즐같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장르를 구분하자면 환타지 사극도 아니다. 그렇다고 정통사극도 아니다. 퓨전사극도 아니다. 기본적인 원인과 결과가 있고, 인물들간에  인과관계가 필수인 드라마 형식에도 반한다. 선덕여왕은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황당사극이나 황당 사기극으로 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대사가 무엇일까? 미실이 나는 미실입니다일까? 아니다. "어찌 그런 일이"다. 극중에서 상식에 어긋나거나 황당한일이나 황망한 일이 일어날때 마다. 화랑들이나 등장인물이 입에 달고 사는 대사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하면서 덕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평왕이 계속 집권했거나, 미실이 쿠데타를 성공하고 덕만으로 활동했다는 뜻이지 않을까? 미실이 말한 "공주님 이제 그만 끝내시지요"가 빈말이 아니다. 또한, 선덕여왕에서 주인공이 덕만이 아니고 미실임을 만천하에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를 보고 덕만이 신라의 왕이 되었는지 모를뿐만 아니고, 미실이 쿠데타에 성공을 하고 덕만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을 판이고, 미실이 성전환을 해서 박정희가 되었고, 전두환이 되었다고 해도 믿을 판이다.

또한, 박근혜가 과거로 돌아가서 미실이나 덕만이 되었다고 해도 충분히 이해해주어야 한다. 설마 기유년에 미실이 난을 일으킨다는 설정도 시청율을 높이고, 역사공부를 하기위한 고도의 전략이거나 고육지책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조금만 신경을 쓰면 수정할 수 있는 내용도 드라마 선덕여왕은 국민(백성)들은 진실을 버거워하는 머저리로 보기때문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쩌면 드라마에서 덕만이나 미실은 죽지 않고 이름을 바꾸고 지금까지 당신 옆에 있다고 해도 믿을 판이다. 이미 드라마 선덕여왕은 역사에 무지하면서 역사극을 만들수록 인기가 높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적을 하고 비판을 하면 꼭 댓글로 재미있게 잘보고 있는데 초를 친다는 사람들이 있다. 뭘 재미있게 잘봤는지 모르겠다. 

진실을 알려주면 버거워하며 아무생각 없이 시청하는 사람과 글쓴이 처럼 생각하면서 보는 사람중 누가 재미있게 잘봤겠는가? 전국민 스포츠가 되어 버린 피겨스케이팅을 볼때 룰도 모르면서 김연아의 연기와 아사다마오의 연기를 동일선상에 놓고 피겨를 보는 사람과 룰을 잘알고 보면, 룰을 지키는 김연아의 연기를 보는것과  룰을 지키지 않는 아사다 마오의 연기를 보는 차이이다.


AD649 기유己酉
신   라 :  진덕왕 3년
백   제 :  의자왕 9년
고구려 :  보장왕 8년
정관23년 고종대성효황제 치


이글을 쓰는 목적중에 하나는 드라마 선덕여왕이라는 물속에 버드나우 잎이 띄어 있으니 버드나무 잎을 불어서 버드나무 잎이 입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조심해서 물을 마시고 갈증을 해소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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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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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영웅전쟁 2009.10.28 0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좀 길긴 하지만...
    멋진 포스팅입니다.
    잘 알겟습니다.
    입으로 후후 불어가며
    아무리 목이 타도 천천히 들이키도록 하지요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2. BlogIcon 파아란기쁨 2009.10.28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선덕여왕 내용이 좀 어딘가 모르게...
    긴장감이 떨어져서 잘 안보고 있네요...ㅋ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다 보니 어제 안본 내용의 줄거리를 알수 있겠네요.^^

  3. BlogIcon 머미 2009.10.28 0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은 대체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끌고 가려나 하는 생각으로 봅니다.

    심지어 유신을 구하러 가는 결사대에게 죽방은 비밀통로 이야기도 안 해주더군요.

  4. 무심공주(無心空舟) 2009.10.28 1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극의 난이 아니고 사기극의 난이죠...
    어지럽습니다.

    10.26처럼 건복몇년 추구월 기유일이었을 지도....^^;;
    기유일이 시월의 마지막 날이네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진덕왕언급부분에 전덕왕으로 기재되어있습니다. 수정부탁....
    그리고 중국의 연원에 대한 포스팅도 다시 부탁드립니다.

    매번 감사합니다....건! 필!

    • BlogIcon 갓쉰동 2009.10.29 0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제가 예전에 연개소문을 비판할때 황당사기극이란 말을 처음 사용해서 비판을 했어지용.. 그런데 연개소문을 비판한게 미안할 정도예용.. ㅋㅋ 선덕여왕을 보면.. 이건 드라마의 기초도 안되있어용.. ㅋㅋ

  5. BlogIcon labyrint 2009.10.28 1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유년...
    선덕여왕 제작팀의 또 실수군요.
    아르바이트 생에게 좀 조사시키고 하면 될텐데요...
    국사 전공한...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6. 래빗 2009.10.28 14: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거참 깐깐하고 피곤한 분들이시네 풉

    왜케 비교질을 별루면 보질말어 ~ ~

    드라마가 그냥 드라마지 뭔 공부들을 하면서 보고있어.

    역사공부 할꺼면 그냥 책보고 인터넷 찾아봐 ~

    극진행이 황당하고 어이없으면 보질 말라고 @

    졸래 고지식한것들 ㅋㅋ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0.29 0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한테 공부하란 예기한적 없거든요. 님은 그냥 사셈.. 말리지 않으니.. ㅋㅋ

      무식이 죄는 아니여도 부끄러움은 가져야지용.. 님처럼 나대지 마시공.. ^___^

  7. BlogIcon 분홍별장미 2009.10.28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월요일은 잼있더니 화요일은 정말 생각보다 아니였습니다 ;;;
    그전부터 사극에서의 역사왜곡은 어느정도 알고있기에 ^^;;
    다만 문제는 역사를 배우고 있는 어린친구들이 선덕여왕이
    사실인냥 생각할까봐 문제겠지요. 물론 역사선생님이 알아서
    해주겠지만 ;;

    • BlogIcon 갓쉰동 2009.10.29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왜곡은 합리적인 해석에서 나오는 거지만. 그렇지 않다면. 문제가 심각해지지용.. ㅋㅋ

      님의 말씀하신대로 어린친구들이 사실인양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다큰 성인이 받아들이고 어린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면 더 심각해지겠지용. 역사선생은 이런데 관심없숩니당. 시간도 없고,, 반면교사로 존 재료가 되겠지만용.. ㅋㅋ

  8. BlogIcon 펨께 2009.10.28 1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갓쉰동님이라는 생각입니다.
    좋은 글입니다.
    알고 넘어가야 할것은 알아야 하는게 당연한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드라마지만...

  9. 오히려 2009.10.28 2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히려
    우리나라사람이 자국에 역사를 모르지요.
    아니 왜곡해도 왜곡 안한양 합리화를 시키고 있지요.

  10. 갓쉰동 최고 2009.10.28 2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작가는 화랑세기를 표방했다고는 하나
    화랑세기에서는 덕만의 라이벌로 두명을 놓죠
    첫째는 용수와 천명부부죠.

    글고 둘째는 마야황후 사후 들어오는 승만황후 모자
    (광해와 인목대비 영창대군모자와 비슷)
    자기네가 배꼈다는 화랑세기조차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고
    너무 미실에게 집착하는 듯 아무레도 진지왕 진평왕등을 손아귀에 놓을 정도로 막강하였다고 기록되는 미실을 내세우면 시청률을 올릴수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듯

    그런데 아사다가 어떤 피겨스케이팅의 룰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죠?
    비유가 잘못 된듯 합니다.

    글고 시청자들은 그냥 드라마 자체를 재미있게 보는것인데 너무 시청자들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는듯
    사실 역사전문가들의 심한 반박과 일반시청자들에대한 무시가 거리감을 낳기는 하였죠.
    꼭 작가를 믿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용인해주는 것이 님이 일일히 조사하지 않은 이상
    공개적인 블로그에서 시청자들을 비난하시는 것은 옳지 않은듯
    비난하시려면 여기에 글올린 분들을 비난하세요 모든 시청자들이 그런듯이 올리시지 말고
    저도 알면서도 그냥 보는 타입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29 0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용수와 천명을 라이벌로 둔적이 없는뎅.. 오독하신것 같습니당. 머 진평왕이 지명을 하니 그렇게 생각될수도 잇겠네용. 덕만의 입장에선..

      시청자를 비난하지 않는뎅.. 꼭집어서 이야기하면 이곳에게 뻘플을 다는 사람입니다만.. ㅋㅋ

      노무현이 이런 말을 한적이 있어용..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이다.
      같은 말로 전문가가 눈을 감고 있는건 전문가가 할일은 아니지용. ㅋㅋ

  11. 바람소리 2009.10.29 1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니가 작가해라

  12. BlogIcon beat™ 2009.10.29 1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글이 +_+/
    전 학교다닐때부터 역사는 별로안친해서 드라마 봐도 사극은 잘안봐지드라구요 ㅎㅎ
    드라마 보면 같이 이야기를 나눌수있을거같은데 잘 안봐지네요 ㅎㅎ ;
    혹시 미드 보시면 미드 포스팅도 해주세요~ 전 히어로즈 보고있답니다~

  13. 그냥 2009.10.29 1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구인 드라마본다고 생각하면 되면 되죠.

    문제는 선덕여왕이란 드라마를 실제 역사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소수 있다는 것이 문제...

    애초에 미실의 난도 없을 뿐더러, 실제 역사에서 미실이란 요부가 있었는지조차 논란이 많은 상황;;

    어쨌든 경계를 확실히 그어주는 이런 포스팅은 아주 적절하다고 사료됩니다.

  14. 사기극이라... 2009.10.30 18: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물론 글쓴이의 지적대로 선덕여왕이란 드라마에 나오는 내용들은 실제 사서상의 기록과는 아주 많이 다릅니다. 이런 드라마로 인해 역사가 왜곡되는 것을 우려하는 심정 역시 공감하며 실제 사서의 기록과는 많이 다르다고 선을 그어주는 이런 글들은 꼭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또한 허술한 전개에 대한 비판 역시 마땅히 옳으시구요...

    다만 사극을 창작의 관점으로 보지 않으시고 역사 재현의 관점에서 보시는 것 또한 이제는 조금 지양되어야 할 바가 아닌지요... 현대의 사극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역사적인 상황과 캐릭터를 바탕으로 만든 픽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황당한 사기극"이라 하심은 사극이라는 장르에 대한 본질을 오해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극을 "역사 재현극"의 관점으로 보게 되면 사극을 기치를 달고 나온 드라마 중 역사 왜곡의 잣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드라마가 몇 편이나 될까요... 물론 1990년대까지는 이른바 "정통 사극"(역사 재현의 관점에서 구성한 사극)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만 이제는 사극에 대해 좀 더 너그러운 관점으로 봐야 하지 않을런지요...

    아 물론 이러한 사극들은 완전한 픽션임을 많이 알려야 하겠지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30 2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픽션임을 알릴 필요조차 없지용.. 리얼리티 제로인뎅..

      기유년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제작진과 작가를 보면 한숨이 나와용.. 머 비슷한 구석이라도 있어야지용. 극중에서 야부리 농담하는 것도 아니공.. ㅋㅋ

  15.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대량원군(현종)

KBS 천추태후에서 목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대량원군은 왕욱의 아들이다. 왕욱은 태조 왕건의 아들이다.

그런데 드라마 천추태후에서 경주원군으로 나오는 왕욱의 어머니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조카가 된다.

“지금 왕께서 나라를 나에게 주었으니 이는 큰 것을 주신 것입니다. 바라건대 [왕의] 종실과 혼인을 맺어 장인과 사위의 우호를 영원히 누렸으면 합니다.” [경순왕이] 대답하였다.

나의 큰아버지 잡간(迊干) 억렴(億廉)은 지대야군사(知大耶郡事)인데, 그 딸자식은 덕과 용모 모두 뛰어났으니
이 사람이 아니면 집안 살림을 갖출 수가 없을 것입니다.”
태조가 마침내 그를 아내로 삼아 아들을 낳으니 이가 현종(顯宗)의 아버지로, [후에] 안종(安宗)으로 추봉되었다. 경종(景宗) 헌화대왕(獻和大王) 때 이르러 정승공의 딸을 맞아들여 왕비로 삼고 정승공을 상보령(尙父令)으로 봉하였다.
공은 978년 송(宋)나라 흥국(興國) 4년 무인에 이르러 죽었는데, 시호를 경순(敬順)<또는 효애(孝哀)라고도 하였다.>이라 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경순왕 935년


또한, 경순왕의 딸은 고려 5대왕인 경종의 제1 왕비인 헌숙왕후가 된다. 드라마 상에서는 나오지 않지만,975년 5대 경종(955년생)이 21살에 아버지 4대 목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이때까지 경순왕은 살아 있었다.

 

그러니 만약 경종이 헌숙왕후 사이에서 아들이 있었다면, 935년 신라가 멸망한 후 40년만에 신라왕의 피가 썩인 왕이 태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헌숙왕후는 아들을 생산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경종은 헌애왕후의 오라버니인 6대 성종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채시라가 열연하고 있는 천추태후인 헌애왕후(964년생)는 경종의 3번째 왕후이고, 4번째 왕후는 천추태후의 동생인 헌정왕후는 경종이 죽은 후 경주원군인 왕욱과 사통하여 대량원군(현종)을 낳는다.

고려 8대 현종 계보도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왕욱의 어머니는 경순왕의 백부인 억렴의 딸인 신성왕후이다. 왕욱(왕건/신성)의 아들인 대량원군(왕욱/헌정)은 드라마 천추태후와는 다르게 강조에 의해서 목종이 폐위되고, 1008년 18세에 고려 8대 왕위에 오른 현종이 된다. 이후 고려의 왕들은 현종의 피를 이어 받았으니 실질적으로 신라의 왕통이 고려의 핏속에 녹아 든것이다.

김치양

부계로는 보이지 않던 고려의 왕통이 모계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속에 신라가 숨쉬고 있는 것이다. 신라는 935년에 멸망이 되었지만, 실제는 고려속에서 신라가 살아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백제의 왕가는 고려에 녹아나지 못했다. 후백제의 왕인 견훤의 출자는 신라의 진흥왕의 아들인 구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후백제를 자처한 왕이 신라 왕손의 후손이라니..

만약, 견훤이 진흥왕의 아들인 구륜의 후손이라면, 당연히 왕인 진흥왕부터 세계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견훤은 구륜을 자신의 선조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구륜은 동명이인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사극 천추태후에서는 김치양을 마의태자의 후손으로 후신라를 찾으려는 인물로 설정하였다. 또한, 김치양이 반란을 일으키고, 강조가 반란을 진압하고 김치양과 천추태후의 아들인 황주원군이 여진으로 들어가 완안부의 시조가 되며, 100년후 김치양의 후손인 아골타가 1115년 금을 개국하는 것으로 설정하려는 듯 하다.

반면에 고려사의 기록으로는 황주원군으로 설정된 인물의 이름은 알려지 있지 않고, 강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예종 10년(1115) 3월조에 보면 이런 기사가 나온다. '이달에 생여진 완안부의 아골타가 황제를 일컫고 국호를 금이라 했다. 혹은 말하기를 ‘옛적 우리 평주(平州) 승(僧) 금준(今俊)이 여진에 도망해 들어가 아지고촌(阿之古村)에 거주했으니 이가 금의 시조다’라고 하며 혹은 말하기를 ‘평주 승 김행(金幸)의 아들 극기(克己)가 처음에 여진의 아지고촌에 들어가 여진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으니 고을(古乙) 태사(太師)라 하고 고을이 활라(活羅) 태사(太師)를 낳고 활라가 아들이 많아 장자를 핵리발(劾里鉢)이라 하고 계자(季子)를 영가(盈歌)라 했는데, 영가가 웅걸(雄傑)이어서 중심(衆心)을 얻었다. 영가가 죽자핵리발의 장자 오아숙(烏雅束)이 위를 이었고 오아속이 졸하매 아우 아골타가 섰다고 한다 -고려세가 예종 10년 1115년

 

금태조 아골타 계보도


1107년(예종 2년)에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이끌고 여진 정벌군의 원수(元帥)가 되어 부원수 오연총(吳延寵)과 17만 대군을 거느리고 여진족을 정벌하여 9성을 쌓고, 재침하는 여진을 평정하여 1108년(예종 3년) 개선하였다. 그때 여진 5천 명을 죽였고, 130명을 생포하였다. -고려세가 예종 3년

여진 사신이 고려에 와서 ‘옛날 우리 태사 영가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조종이 대방(고려)에서 나왔으니 자손에 이르러서도 의리상 귀부함이 마땅하다’고 했고 지금 태사 오아속도 역시 대방을 부모의 나라로 삼나이다. -고려세가 예종 4년 1109년

동여진과 고려와는 수시로 전쟁을 하였지만 흥미롭게도 아골타가 여진을 통합하고, 금을 세운후 고려는 금과는 별다른 전쟁이 없었다. 

 KBS 역사스페셜에서 금의 태조인 완안부 아골타의 선조를 신라의 마의태자의 아들로 연결하려는 듯 하다. 역사스페셜을 시청하는데 도움이 되었음 하는 바람에서 이기사를 송고한다.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해주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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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6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BlogIcon 초록누리 2009.09.06 0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어요. 그런데 제가 천추태후를 한번도 못봐서 ㅠ_ㅠ....
    그래도 공부는 열심히 하고 갑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잘 안봅니당.. 천추태후는.. 왠지 정이 안가용.. ㅋㅋ

      다만 오늘(?) 역사스페셜에서 아골타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기사를 송고한 것임..

  3. 드라큘라 백작 2009.09.06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골타 경순왕 자손론에 대해서 저는 부정적으로 봅니다. 물론 신라 왕족이 여진족속 땅으로 들어가서 출세 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하필 왕족일까 하는데서도 의구심이있으며 흔히 있었던 족보 도금 혐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골타가 자신는 이래뵈도 신라 임금의 후손이다. 나는 출생부터가 다르다라고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혈통을 자랑하기 위해서 조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신라 후손인걸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중원을 제패한뒤에 뭔가 신라와 관련한 조치가 있었어야 했으나 그런게 전혀 없거든요 단지 고려에 우리와도 조공책봉관계를 맺자 거부하면 알아서 해라 식의 반응 말고는 없었습니다. 송나라 사람이야 그냥 받아 적은거고 족보는 후대에 추가 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고....

    • 1235 2009.09.06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제한 역사스페셜 한번 봐주세요 ㅎㅎㅎ 우리나라에서도 만주로 간 신라 왕손이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름은 김함보라고 하더군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1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충분히 그럴수 있습니당.. 우리같이 잘 지내봅시다란 뜻이 되니요.. 문젠 금사에도 들어가 있다는것..

      재밌게도 신라도 자신은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고 비명에 기록하고 있다는것.. 이것도 당시대에 완성됩니다.. 문무왕의 비에 그렇게.. 또한, 재당 신라인에 무덤에도.

      저도 님처럼 생각합니다..

    • 백작님이 2009.09.06 1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 모르시네요. 아골타가 금국을 세웠을때 신라는 이미 망하고 고려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신라가 망한뒤 반고려세력이 여진으로 넘어와 (1235님이 말한 김함보입니다) 여진 세력끼리 다툴때 중재를 하여 두각을 보이죠. 아골타는 신라 후손임을 자랑으로 여겨 금사에까지 기록이 된거지요. 오죽하면 신라를 망하게한 고려를 형제의 국, 고려가 부모의 땅에 있다하여 형제라고 생각했습니다.

    • 아무렇게나 2009.09.08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중국 金나라 시조는 안동 권씨일 것
      금태조 가계도 추적 ‘금조사연구’ 펴낸 금감원 윤명수 수석조사역

      《여진족의 국가로 알려진 금(金•1115∼1234)의 시조가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왔다. 금융감독원 윤명수(51) 수석조사역은 최근 중국의 정통역사서 25사 중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던 ‘금사(金史)’의 주요 내용을 번역한 ‘금사’와 금태조 완안민(아골타)의 가계계승 문제를 추적한 ‘금조사연구’를 함께 펴내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금사에는 금태조가 고려에서 건너온 함보(函普)를 비롯한 3형제의 후손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금을 계승한 청(후금)의 건륭제 때 집필된 ‘흠정만주원류고’에는 금국(金國)의 명칭이 신라왕성 김(金)씨에서 비롯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금과 신라의 연관성을 보여 주는 근거는 또 있다. 청 황실의 만주어 성 ‘아이신줴뤄’ 중 씨족을 가리키는 아이신은 금(金)을 뜻한다. 이는 아이신줴뤄를 한자로 가차한 애신각라(愛新覺羅)에 ‘신라(新羅)를 사랑하고, 기억하자’는 뜻이 담겼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조선시대에 나온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도 금의 시조가 김행(金幸)의 아들 또는 금준(今俊)이라는 설이 기록돼 있다. 김씨는 본디 금씨로 발음됐는데 이(李)씨를 왕조로 한 조선조가 들어서면서 ‘금이 나무를 이긴다(金克木)’는 오행설의 영향으로 금을 김으로 발음했다는 주장에 입각하면 금준은 곧 김준일 수 있다. 이를 근거로 함보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로 고려에 귀순을 거부했던 마의태자이거나 그 후손일 가능성이 오랫동안 제기됐다.

      윤 씨는 이를 추적하던 중 조선 인조 때 문신 김세렴이 남긴 ‘동명해사록’에서 “금나라의 시조는 경순왕의 외손이자 권행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라는 기록을 찾아냈다.

      권행은 본디 경주 김씨로 신라 고창(古昌•경북 안동시)의 수령이었다.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핍박해 자살하게 한 데 분개해 고려를 도와 고창에서 후백제군을 격퇴한 공로로 고려 태조 왕건에게서 권씨를 하사받아 안동 권씨의 시조가 됐다.

      윤 씨는 이를 바탕으로 ‘함보의 신라/고려인 부친=김행=권행’으로 수수께끼가 풀렸다고 주장했다. 권행은 고려통일 이후 아부공신(亞父功臣)에 책록되고, 정1품 태사(太師)의 벼슬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고려가 금나라 수립 전 여진족 추장들에게 관례적으로 내린 관직이 태사였다.

      결론적으로 함보는 경순왕의 사위인 권행의 세 아들 중 한 명이며 마의태자와 신라 부활운동을 펼치다 마의태자가 숨진 뒤 만주로 진입해 여진족의 일부인 완안부족의 추장이 됐다는 것이 윤 씨의 주장이다. 문신 김세렴의 부인이 권행의 맏아들 권인행의 아내와 같은 양천 허씨인 점, 마의태자가 웅거했다는 설악산 권금성이 권장군과 김장군이 쌓은 성이라는 전설, 1011년 여진의 함선 100여 척이 안동 인근 경주 지역에 출몰했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

      그러나 안동 권씨 족보에는 권행의 후손이 권인행 한 명만 등장하는 등 아직도 풀려야 할 의문점은 남아 있다.

      일찍부터 만주사에 관심이 깊어 만주어를 독학했다는 윤 씨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자극을 받아 2004년부터 주말을 도서관에서 보내며 금사의 번역에 매달리는 한편 휴가 때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현지 조사를 했다.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왕씨의 나라라면 금•청은 신라를 계승한 김씨의 나라로 봐야 합니다. 이 때문에 상하이임정의 역사교재였던 ‘신단민사(新檀民史)’나 일제강점기 사학자 신태윤의 ‘배달조선 정사’도 발해-요-금-청의 역사를 우리 역사에 포함시켰던 것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선 중국사에 포함될 수 없는 요-금-청사를 한국사의 방계로 포함시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4. BlogIcon 영웅전쟁 2009.09.06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새 분야 공부하라는 분부이신듯 하군요...
    이미 제 캐파를 넘엇는데 ㅎㅎㅎ
    한번 해보겠습니다.
    재 방송부터 보고 해야겠지요 ㅋ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휴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닙니당.. 그냥 천추태후의 저작자는 김치양의 죽은 아들은사실 죽지 않고 여진으로 들어갔다는 설정이 있었다. 머 그런거지요.. 그냥 보셈.. ㅋㅋ

  5. gap4 2009.09.06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저도 봐지만 재미고 흥미롭더군요 ,,후금황제 청나라 1대황제가 예로부터 조선과 금은 형제니,,화친외교를 하자고 했는데,,조선에 무능한 문인들이명나라 사대주의 때문에 반대했지요 그래서 후에 병자호란이란 굴욕적 주종관계가 성립됬지요말이 조금 빛나갔지만 참 안타깝더라구요 북방 고구려 발해 여진 우리하고땔래야 땔수 없는 관계인데 말이죠 ,,참 그때나 지금이나 문인들이 망쳐놨네요꼭 그런건 아니지만 천추태후에서도 문인들이 지살길만 걱정하쟎아요 얼마전 간도땅이 100년이 넘었죠,안타깝읍니다 예전에 북방에 우리 선조때부터 잘만 통치했어도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텐데 말이죠,,두서없이 글이 커졌죠 잘읽었읍니다,,,,,

  6. 갓쉰동님 광팬 2009.09.07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으로 고구려나 발해가 지속되지 못한 것이 이런점에서 좀 아쉽습니다. 금나라 선조가 신라인 후 손 여부를 떠나 이런 것들이 의문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만주가 발해 이후 사라져 버렸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아닐까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7 1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아쉬움의 표현..
      일본의 황족을 찾는이유도 이와 같을 겁니다..

      만약, 중국이 고려와 신라와. 조선의 조상이 자신의후손이란 드라마를 제작한다면 난리가 나겠지요? 그때도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할 네티즌이 몇명이나 될까요? 저는 그게 궁금해요.. 선덕여왕은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하는 사람들 중에서.. ㅋㅋ

  7. ^___^ 2009.09.07 15: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역사스페셜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포탈사이트에서 역사관련해서 찾아보려고 해도 연예가 일색이구.... 에구구... 역사관련 다큐멘터리도 많이 좀 나왔으면하는 바람입니다. 근현대사에서 해방 후 6.25가 끝나고 먹고 살기 바빠서 등한시되었고 북한과의 관계로 반공에만 힘을 쏟아서 고구려를 외면한 채 신라의 김유신만 강조하는 경향도 있었고 사극은 조선시대 처첩간의 애정물이 주를 이루고 중국의 동북아 공정에 힘입어(?) 고구려관련 드라마가 붐을 탔지만 서도 이제는 관심을 갖고 올바른 역사인식이 있었으면합니다. 연예인들 주변 잡기에만 온통 신경쓰고 있어서 씁쓸합니다. 우리 역사에 관해서는 무지할 만큼 모르는게 너무 많습니다.국내에서 반만년 역사를 자랑스레 여기며 목에 힘주고 있지만 세계 속의 역사교과서에서의 한국은 60년대에 머물러 있더군요. 대사관에서는 뭐하는지 싶기도 하구요. 문화 콘텐츠가 널려있는데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간도 문제도 며칠만에 사라져버린듯 하나의 이벤트성 이슈로 끝나버린 것 같기도 하고.... 저는 필력이 딸려서 다른 많은 분들이 좋은 글들 좀 많이 많이 써 주셔서 국민들의 의식이 성숙해지길 바랍니다. 저도 열심히 추천하겠습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9.07 1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전에는 역스광팬이고 닥본사 였는뎅.. 요즘은 잘 안되더군요..

      문화연예 카테고리인데 연예가 주가된것은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수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의 성향상..

      사극은 현시대를 반영하지요. 그래서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고요..

  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9.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0. BlogIcon food storage supplies 2012.11.01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1.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 battery replacement 2012.11.05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 천추태후에서 경주원군으로 나오는 왕욱의 어머니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조카가 된다.

  12. BlogIcon great websites for kids 2012.12.20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함 때문에 쉽게 이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전문 소프트웨어인 포토샵만큼은 아니더라도

  13. BlogIcon mountain house 10 cans sale 2012.12.31 2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니 구륜은 동명이인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대량원군(현종)

KBS 천추태후에서 목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대량원군은 왕욱의 아들이다. 왕욱은 태조 왕건의 아들이다.

그런데 드라마 천추태후에서 경주원군으로 나오는 왕욱의 어머니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조카가 된다.

“지금 왕께서 나라를 나에게 주었으니 이는 큰 것을 주신 것입니다. 바라건대 [왕의] 종실과 혼인을 맺어 장인과 사위의 우호를 영원히 누렸으면 합니다.” [경순왕이] 대답하였다.

나의 큰아버지 잡간(迊干) 억렴(億廉)은 지대야군사(知大耶郡事)인데, 그 딸자식은 덕과 용모 모두 뛰어났으니
이 사람이 아니면 집안 살림을 갖출 수가 없을 것입니다.”
태조가 마침내 그를 아내로 삼아 아들을 낳으니 이가 현종(顯宗)의 아버지로, [후에] 안종(安宗)으로 추봉되었다. 경종(景宗) 헌화대왕(獻和大王) 때 이르러 정승공의 딸을 맞아들여 왕비로 삼고 정승공을 상보령(尙父令)으로 봉하였다.
공은 978년 송(宋)나라 흥국(興國) 4년 무인에 이르러 죽었는데, 시호를 경순(敬順)<또는 효애(孝哀)라고도 하였다.>이라 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경순왕 935년


또한, 경순왕의 딸은 고려 5대왕인 경종의 제1 왕비인 헌숙왕후가 된다. 드라마 상에서는 나오지 않지만,975년 5대 경종(955년생)이 21살에 아버지 4대 목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이때까지 경순왕은 살아 있었다.

 

그러니 만약 경종이 헌숙왕후 사이에서 아들이 있었다면, 935년 신라가 멸망한 후 40년만에 신라왕의 피가 썩인 왕이 태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헌숙왕후는 아들을 생산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경종은 헌애왕후의 오라버니인 6대 성종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채시라가 열연하고 있는 천추태후인 헌애왕후(964년생)는 경종의 3번째 왕후이고, 4번째 왕후는 천추태후의 동생인 헌정왕후는 경종이 죽은 후 경주원군인 왕욱과 사통하여 대량원군(현종)을 낳는다.

고려 8대 현종 계보도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왕욱의 어머니는 경순왕의 백부인 억렴의 딸인 신성왕후이다. 왕욱(왕건/신성)의 아들인 대량원군(왕욱/헌정)은 드라마 천추태후와는 다르게 강조에 의해서 목종이 폐위되고, 1008년 18세에 고려 8대 왕위에 오른 현종이 된다. 이후 고려의 왕들은 현종의 피를 이어 받았으니 실질적으로 신라의 왕통이 고려의 핏속에 녹아 든것이다.

김치양

부계로는 보이지 않던 고려의 왕통이 모계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속에 신라가 숨쉬고 있는 것이다. 신라는 935년에 멸망이 되었지만, 실제는 고려속에서 신라가 살아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백제의 왕가는 고려에 녹아나지 못했다. 후백제의 왕인 견훤의 출자는 신라의 진흥왕의 아들인 구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후백제를 자처한 왕이 신라 왕손의 후손이라니..

만약, 견훤이 진흥왕의 아들인 구륜의 후손이라면, 당연히 왕인 진흥왕부터 세계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견훤은 구륜을 자신의 선조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구륜은 동명이인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사극 천추태후에서는 김치양을 마의태자의 후손으로 후신라를 찾으려는 인물로 설정하였다. 또한, 김치양이 반란을 일으키고, 강조가 반란을 진압하고 김치양과 천추태후의 아들인 황주원군이 여진으로 들어가 완안부의 시조가 되며, 100년후 김치양의 후손인 아골타가 1115년 금을 개국하는 것으로 설정하려는 듯 하다.

반면에 고려사의 기록으로는 황주원군으로 설정된 인물의 이름은 알려지 있지 않고, 강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예종 10년(1115) 3월조에 보면 이런 기사가 나온다. '이달에 생여진 완안부의 아골타가 황제를 일컫고 국호를 금이라 했다. 혹은 말하기를 ‘옛적 우리 평주(平州) 승(僧) 금준(今俊)이 여진에 도망해 들어가 아지고촌(阿之古村)에 거주했으니 이가 금의 시조다’라고 하며 혹은 말하기를 ‘평주 승 김행(金幸)의 아들 극기(克己)가 처음에 여진의 아지고촌에 들어가 여진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으니 고을(古乙) 태사(太師)라 하고 고을이 활라(活羅) 태사(太師)를 낳고 활라가 아들이 많아 장자를 핵리발(劾里鉢)이라 하고 계자(季子)를 영가(盈歌)라 했는데, 영가가 웅걸(雄傑)이어서 중심(衆心)을 얻었다. 영가가 죽자핵리발의 장자 오아숙(烏雅束)이 위를 이었고 오아속이 졸하매 아우 아골타가 섰다고 한다 -고려세가 예종 10년 1115년

 

금태조 아골타 계보도


1107년(예종 2년)에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이끌고 여진 정벌군의 원수(元帥)가 되어 부원수 오연총(吳延寵)과 17만 대군을 거느리고 여진족을 정벌하여 9성을 쌓고, 재침하는 여진을 평정하여 1108년(예종 3년) 개선하였다. 그때 여진 5천 명을 죽였고, 130명을 생포하였다. -고려세가 예종 3년

여진 사신이 고려에 와서 ‘옛날 우리 태사 영가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조종이 대방(고려)에서 나왔으니 자손에 이르러서도 의리상 귀부함이 마땅하다’고 했고 지금 태사 오아속도 역시 대방을 부모의 나라로 삼나이다. -고려세가 예종 4년 1109년

동여진과 고려와는 수시로 전쟁을 하였지만 흥미롭게도 아골타가 여진을 통합하고, 금을 세운후 고려는 금과는 별다른 전쟁이 없었다. 

 KBS 역사스페셜에서 금의 태조인 완안부 아골타의 선조를 신라의 마의태자의 아들로 연결하려는 듯 하다. 역사스페셜을 시청하는데 도움이 되었음 하는 바람에서 이기사를 송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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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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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6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BlogIcon 초록누리 2009.09.06 0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어요. 그런데 제가 천추태후를 한번도 못봐서 ㅠ_ㅠ....
    그래도 공부는 열심히 하고 갑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잘 안봅니당.. 천추태후는.. 왠지 정이 안가용.. ㅋㅋ

      다만 오늘(?) 역사스페셜에서 아골타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기사를 송고한 것임..

  3. 드라큘라 백작 2009.09.06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골타 경순왕 자손론에 대해서 저는 부정적으로 봅니다. 물론 신라 왕족이 여진족속 땅으로 들어가서 출세 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하필 왕족일까 하는데서도 의구심이있으며 흔히 있었던 족보 도금 혐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골타가 자신는 이래뵈도 신라 임금의 후손이다. 나는 출생부터가 다르다라고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혈통을 자랑하기 위해서 조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신라 후손인걸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중원을 제패한뒤에 뭔가 신라와 관련한 조치가 있었어야 했으나 그런게 전혀 없거든요 단지 고려에 우리와도 조공책봉관계를 맺자 거부하면 알아서 해라 식의 반응 말고는 없었습니다. 송나라 사람이야 그냥 받아 적은거고 족보는 후대에 추가 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고....

    • 1235 2009.09.06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제한 역사스페셜 한번 봐주세요 ㅎㅎㅎ 우리나라에서도 만주로 간 신라 왕손이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름은 김함보라고 하더군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1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충분히 그럴수 있습니당.. 우리같이 잘 지내봅시다란 뜻이 되니요.. 문젠 금사에도 들어가 있다는것..

      재밌게도 신라도 자신은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고 비명에 기록하고 있다는것.. 이것도 당시대에 완성됩니다.. 문무왕의 비에 그렇게.. 또한, 재당 신라인에 무덤에도.

      저도 님처럼 생각합니다..

    • 백작님이 2009.09.06 1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 모르시네요. 아골타가 금국을 세웠을때 신라는 이미 망하고 고려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신라가 망한뒤 반고려세력이 여진으로 넘어와 (1235님이 말한 김함보입니다) 여진 세력끼리 다툴때 중재를 하여 두각을 보이죠. 아골타는 신라 후손임을 자랑으로 여겨 금사에까지 기록이 된거지요. 오죽하면 신라를 망하게한 고려를 형제의 국, 고려가 부모의 땅에 있다하여 형제라고 생각했습니다.

    • 아무렇게나 2009.09.08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중국 金나라 시조는 안동 권씨일 것
      금태조 가계도 추적 ‘금조사연구’ 펴낸 금감원 윤명수 수석조사역

      《여진족의 국가로 알려진 금(金•1115∼1234)의 시조가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왔다. 금융감독원 윤명수(51) 수석조사역은 최근 중국의 정통역사서 25사 중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던 ‘금사(金史)’의 주요 내용을 번역한 ‘금사’와 금태조 완안민(아골타)의 가계계승 문제를 추적한 ‘금조사연구’를 함께 펴내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금사에는 금태조가 고려에서 건너온 함보(函普)를 비롯한 3형제의 후손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금을 계승한 청(후금)의 건륭제 때 집필된 ‘흠정만주원류고’에는 금국(金國)의 명칭이 신라왕성 김(金)씨에서 비롯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금과 신라의 연관성을 보여 주는 근거는 또 있다. 청 황실의 만주어 성 ‘아이신줴뤄’ 중 씨족을 가리키는 아이신은 금(金)을 뜻한다. 이는 아이신줴뤄를 한자로 가차한 애신각라(愛新覺羅)에 ‘신라(新羅)를 사랑하고, 기억하자’는 뜻이 담겼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조선시대에 나온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도 금의 시조가 김행(金幸)의 아들 또는 금준(今俊)이라는 설이 기록돼 있다. 김씨는 본디 금씨로 발음됐는데 이(李)씨를 왕조로 한 조선조가 들어서면서 ‘금이 나무를 이긴다(金克木)’는 오행설의 영향으로 금을 김으로 발음했다는 주장에 입각하면 금준은 곧 김준일 수 있다. 이를 근거로 함보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로 고려에 귀순을 거부했던 마의태자이거나 그 후손일 가능성이 오랫동안 제기됐다.

      윤 씨는 이를 추적하던 중 조선 인조 때 문신 김세렴이 남긴 ‘동명해사록’에서 “금나라의 시조는 경순왕의 외손이자 권행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라는 기록을 찾아냈다.

      권행은 본디 경주 김씨로 신라 고창(古昌•경북 안동시)의 수령이었다.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핍박해 자살하게 한 데 분개해 고려를 도와 고창에서 후백제군을 격퇴한 공로로 고려 태조 왕건에게서 권씨를 하사받아 안동 권씨의 시조가 됐다.

      윤 씨는 이를 바탕으로 ‘함보의 신라/고려인 부친=김행=권행’으로 수수께끼가 풀렸다고 주장했다. 권행은 고려통일 이후 아부공신(亞父功臣)에 책록되고, 정1품 태사(太師)의 벼슬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고려가 금나라 수립 전 여진족 추장들에게 관례적으로 내린 관직이 태사였다.

      결론적으로 함보는 경순왕의 사위인 권행의 세 아들 중 한 명이며 마의태자와 신라 부활운동을 펼치다 마의태자가 숨진 뒤 만주로 진입해 여진족의 일부인 완안부족의 추장이 됐다는 것이 윤 씨의 주장이다. 문신 김세렴의 부인이 권행의 맏아들 권인행의 아내와 같은 양천 허씨인 점, 마의태자가 웅거했다는 설악산 권금성이 권장군과 김장군이 쌓은 성이라는 전설, 1011년 여진의 함선 100여 척이 안동 인근 경주 지역에 출몰했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

      그러나 안동 권씨 족보에는 권행의 후손이 권인행 한 명만 등장하는 등 아직도 풀려야 할 의문점은 남아 있다.

      일찍부터 만주사에 관심이 깊어 만주어를 독학했다는 윤 씨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자극을 받아 2004년부터 주말을 도서관에서 보내며 금사의 번역에 매달리는 한편 휴가 때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현지 조사를 했다.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왕씨의 나라라면 금•청은 신라를 계승한 김씨의 나라로 봐야 합니다. 이 때문에 상하이임정의 역사교재였던 ‘신단민사(新檀民史)’나 일제강점기 사학자 신태윤의 ‘배달조선 정사’도 발해-요-금-청의 역사를 우리 역사에 포함시켰던 것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선 중국사에 포함될 수 없는 요-금-청사를 한국사의 방계로 포함시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4. BlogIcon 영웅전쟁 2009.09.06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새 분야 공부하라는 분부이신듯 하군요...
    이미 제 캐파를 넘엇는데 ㅎㅎㅎ
    한번 해보겠습니다.
    재 방송부터 보고 해야겠지요 ㅋ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휴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닙니당.. 그냥 천추태후의 저작자는 김치양의 죽은 아들은사실 죽지 않고 여진으로 들어갔다는 설정이 있었다. 머 그런거지요.. 그냥 보셈.. ㅋㅋ

  5. gap4 2009.09.06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저도 봐지만 재미고 흥미롭더군요 ,,후금황제 청나라 1대황제가 예로부터 조선과 금은 형제니,,화친외교를 하자고 했는데,,조선에 무능한 문인들이명나라 사대주의 때문에 반대했지요 그래서 후에 병자호란이란 굴욕적 주종관계가 성립됬지요말이 조금 빛나갔지만 참 안타깝더라구요 북방 고구려 발해 여진 우리하고땔래야 땔수 없는 관계인데 말이죠 ,,참 그때나 지금이나 문인들이 망쳐놨네요꼭 그런건 아니지만 천추태후에서도 문인들이 지살길만 걱정하쟎아요 얼마전 간도땅이 100년이 넘었죠,안타깝읍니다 예전에 북방에 우리 선조때부터 잘만 통치했어도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텐데 말이죠,,두서없이 글이 커졌죠 잘읽었읍니다,,,,,

  6. 갓쉰동님 광팬 2009.09.07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으로 고구려나 발해가 지속되지 못한 것이 이런점에서 좀 아쉽습니다. 금나라 선조가 신라인 후 손 여부를 떠나 이런 것들이 의문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만주가 발해 이후 사라져 버렸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아닐까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7 1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아쉬움의 표현..
      일본의 황족을 찾는이유도 이와 같을 겁니다..

      만약, 중국이 고려와 신라와. 조선의 조상이 자신의후손이란 드라마를 제작한다면 난리가 나겠지요? 그때도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할 네티즌이 몇명이나 될까요? 저는 그게 궁금해요.. 선덕여왕은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하는 사람들 중에서.. ㅋㅋ

  7. ^___^ 2009.09.07 15: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역사스페셜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포탈사이트에서 역사관련해서 찾아보려고 해도 연예가 일색이구.... 에구구... 역사관련 다큐멘터리도 많이 좀 나왔으면하는 바람입니다. 근현대사에서 해방 후 6.25가 끝나고 먹고 살기 바빠서 등한시되었고 북한과의 관계로 반공에만 힘을 쏟아서 고구려를 외면한 채 신라의 김유신만 강조하는 경향도 있었고 사극은 조선시대 처첩간의 애정물이 주를 이루고 중국의 동북아 공정에 힘입어(?) 고구려관련 드라마가 붐을 탔지만 서도 이제는 관심을 갖고 올바른 역사인식이 있었으면합니다. 연예인들 주변 잡기에만 온통 신경쓰고 있어서 씁쓸합니다. 우리 역사에 관해서는 무지할 만큼 모르는게 너무 많습니다.국내에서 반만년 역사를 자랑스레 여기며 목에 힘주고 있지만 세계 속의 역사교과서에서의 한국은 60년대에 머물러 있더군요. 대사관에서는 뭐하는지 싶기도 하구요. 문화 콘텐츠가 널려있는데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간도 문제도 며칠만에 사라져버린듯 하나의 이벤트성 이슈로 끝나버린 것 같기도 하고.... 저는 필력이 딸려서 다른 많은 분들이 좋은 글들 좀 많이 많이 써 주셔서 국민들의 의식이 성숙해지길 바랍니다. 저도 열심히 추천하겠습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9.07 1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전에는 역스광팬이고 닥본사 였는뎅.. 요즘은 잘 안되더군요..

      문화연예 카테고리인데 연예가 주가된것은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수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의 성향상..

      사극은 현시대를 반영하지요. 그래서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고요..

  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9.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0. BlogIcon food storage supplies 2012.11.01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1.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 battery replacement 2012.11.05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 천추태후에서 경주원군으로 나오는 왕욱의 어머니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조카가 된다.

  12. BlogIcon great websites for kids 2012.12.20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함 때문에 쉽게 이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전문 소프트웨어인 포토샵만큼은 아니더라도

  13. BlogIcon mountain house 10 cans sale 2012.12.31 2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니 구륜은 동명이인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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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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