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성골은 있었을까?


드라마 선덕여왕 38회에서 명절 추석맞이 대 바겐세일 떡밥을 무차별적으로 투하 하였다. 견적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무분별하다. 일단 드라마 <선덕여왕>의 리뷰를 작성하면서 무엇이 떡밥들인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혹시 모르는 떡밥이 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문노를 죽인 범인이 밝혀졌다. 비담이 물어본다.  "저 어린 놈<춘추(유승호)>이 문노를 죽이도록 사주했다는 말이냐?" 염종은 춘추가 배후가 아니라고 한다. 전회의 예고 장면은 떡밥이였다. 그러니 시청자들에게 오해를 풀라는 뜻이다. 춘추가 삼한지세를 읽어 본 이유는 자신이 그저 읽어 보라고 했을 뿐이라고 한다. 이유는 염종이 삼한지세의 주인으로 <춘추>를 낙점했기 때문이다.


비담은 염종에게 춘추를 보고 "덜떨어진게 왕족?"이라고 물어본다. 염종은 "덜떨어진건 모르겠는데, 왕족은 맞어, 진지제가 폐위되어 족강이 되지 않았다면 성골은 확실하다"고 한다. 정말? 춘추는 할아버지 "진지(금륜)이 족강이 되어, 성골이 되지 못했을까?

만약, <선덕여왕> 원작자가 <화랑세기>를 <사서>로 믿고 있었다면, 춘추가 족강이 되어 성골이 되지 못했다고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라사의 용가리 통뼈가 무슨 성골.진골인줄 안다. <화랑세기>는 성골.진골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으로 <불교>와 <선도>의 종교적인 분류만이 있을 뿐이다. 진골정통은 <불교>를, 대원신통은 신라고유의 <선도>를 믿는 다는 차이다. 그리고 <골>은 왕족과 귀족 등으로만 구분하고 있을 뿐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살펴봐도 <진지(금륜)>이 폐위되었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이 <족강>이 되어 <진골>이 되었다고 언급이 되어 있지도 않고, 춘추 이전의 왕들과 춘추이후의 왕을 구분하는데 단순히 2분법적으로 나누고 있을 뿐이다.

만약, <춘추>이전의 왕들을 <성골>로 나눴다면, 눌지이후의 왕들은 모두다 <진골>일 수 밖에 없다. 그이유는 눌지이전의 왕은 실성왕이다. 눌지가 고구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실성왕을 폐위시키고, 쿠데타를 성공시켰다.

문제는 눌지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자비왕은 실성왕의 딸인, 눌지왕비의 소생이다. 자비는 곧 폐위된 왕의 외손이 된다. 통설에 따르면, 실성왕녀인 눌지왕비는 <족강>이 되어 <진골>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용춘의 예에 따라 그의 후손인 <자비왕>도 마찬가지로 <진골>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눌지 자신은 성골 진골 그런게 무슨 개뼈다귀냐는 듯이 상관하지 않고, 자비왕(눌지/실성왕녀)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458년 자비 마립간(慈悲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눌지왕의 맏아들로 어머니 김씨는 실성왕의 딸이다. - 자비왕 원년


또한, 진흥왕도 법흥왕의 아들이 아니다. 그러니 성골로서 왕이되지 못했다. 지증왕도 성골로 왕위를 이어 받지는 못했다. 단지 왕족으로서 전왕인 소지(비처)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받았을 뿐이다.

진평왕은 머리가 어떻게 되서 자신의 딸인 천명공주를 폐위된 진지(금륜)의 자식(용수와 용춘)에게 시집을 보냈겠는가? 천명을 족강시키기 위해서? 아니면 전왕의 자식들과 화해할려고?

단순히 성골은 <성조(聖祖>나 <성조(聖朝)>의 다른 말이다. 왕보다 성스러운 존재가 어디에 존재하겠는가? 그런데 갑자기, 왕이나 왕의 자제를 성골 밑의 진골이라고 생각하는 발상자체가 웃기는 것이다. 좀더 정확한 <성골>의 의미는 현재 왕의 피와 살과 뼈를 이어 받는 자이다. 또한, 삼국사기가 인용한 당나라 영호징의 <신라기>에도 <왕족>을 <1골>이고, 귀족을 <2골>이라고 이야기 했다.

당나라 영호징(令狐澄)의 신라기(新羅記)에 말하기를 『그 나라의 왕족은 제1골(第一骨)이라 하고 나머지 귀족은
제2골(第二骨)이라 한다.』- 654년 3월 진덕왕 8년

영호징의 신라기에도 왕족은 제1골인 진골이고, 나머지 귀족들는 제2골일 뿐이다. 성골은 누구냐고? 당연히 현재왕의 뼈를 이어 받는 왕자와 공주들이다.

그러니 당연히 춘추는 진평(백정)이나 선덕(덕만)이나 진덕(승만)의 피와 살을 이어 받지 못했던 왕족으로 왕이 되었다. 그리고 춘추 자신이 <성골>이 된것이다. 문무는 김춘추왕의 뼈를 이어 받았으니 당연히 <성골>로서 왕이 된것이다.   신라사 연구의 가장 커다란 통설의 실패작은 <성골>, <진골>을 구분하는데 있다. 그런데 이런 성골/진골론을 "무슨 귀신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그런건 없다"고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말을 하고 있다.

사실 화랑세기를 위작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의 내면을 보면 개나라 족보때문이 아닌 <성골/진골>를 나눈 그동안의 신라사 연구 성과(?)가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 추후 이와 관련해서는 기회가 된다면 자세하게 포스팅할 예정이다.

비담과 춘추는 어떤 사이?


드라마 <선덕여왕> 상에서 비담과 춘추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용춘과 비담의 가계도


위의 가계도에서 알수 있듯이 비담은 춘추의 작은아버지가 된다. 비담은 춘추가 자신의 조카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춘추는 모르고 있다. 그래서 비담은 당연히 춘추에게 반말을 한다. 하지만, 비담의 정체를 모르는 관계로 "왜 반말하냐"고 반문을 한다. 이에 비담은 난 덕만공주에게도 반말하는 사이라고 얼버무린다.


염종이 용춘대신 춘추를 선택한 이유는?

염종은 삼한지세의 주인을 유신이 아닌 춘추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유는 전왕(진지)의 손이기 때문이다. 그냥 용춘이나 용수에게 주면 간단할 것을 왜 춘추가 되어야 한다고 했을까? 당연히 춘추가 진덕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염종이 춘추를 <삼한지세>의 주인으로 설정한 것이 너무나 드라마 <원작자>의 "작위적인 냄새가 난다"는 뜻이다.

언제 춘추를 키워 왕으로 만들겠는가? 이미 권력의 정점에 있는 용수나 용춘을 밀면 쉬운데 말이다. 염종이 춘추를 조정하기 위해서라는 변명은 좀 아니올시다가 되시겠다. 이에 비담은 염종의 말을 듣고 속으로 그렇다면, 진지왕의 아들인 나 비담이 삼한지세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게 맞다는 듯이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비담의 남발하는 썩소만큼이나 처음에는 산듯한 한 느낌의 염종(엄효섭)의 연기가 너무나 오버스럽고, 작위적이라서 점차 거슬린다. 물론, 나만의 느낌일 뿐이다.

경제는 심리다.

덕만(이요원),알천(이승효),소화(서영희)

미실을 비롯한 보종, 하종 수품 등 귀족들이 매점매석을 통해서 자영농과 소작농 들을 자신들의 노비로 만들기프로젝트를 감행한다. 이에 덕만은 시장조사를 통해서 그 우두머리가 미실임을 알아 낸다.

그런데 시장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동시(東市)>와 <서시(西市)>를 두루 살펴보는 장면이 나온다. 황실의 곡식창고를 열고, 또한, 군량미까지도 풀어버리겠다고 미실을 협박을 한다.현재도 외환이나 금리나 부동산에 개입을 할때, 구두개입부터 한다.

또한, 독과점이 발생했을때 법으로 제재를 가하기도 하지만, 구두개입을 통해서 오버슈팅이 되는 것을 방지를 하고, 급격히 시장이 냉각되었을 때는 구두개입을 통해서 부양책을 펴기도 한다. 경제는 <심리>이기 때문이다.  덕만은 역시 왕이 될 자질이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가 드라마 선덕여왕에 대한 평이다.

동시와 서시가 있었을까?

드라마 원작자는 <동시>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당연히 동시가 있으니 <서시>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하지만, 천만의 만만의 콩떡이 되시겠다.

490년 처음으로 서울에 시장을 열어 사방의 재화를 유통시켰다. - 소지왕 12년
동시전(東市典)은 지증왕 9년(508)에 설치하였다.감독관은 2명이었다. 관등이 나마에서 대나마까지인 자로 임용하였다. 대사(大舍)는 2명이었는데 경덕왕이 주사(主事)로 고쳤으나 후에 다시 대사로 일컬었다. - 삼국사기 잡기

4년(695) 자월(子月)을 정월로 삼았다. 개원(愷元)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겨울 10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중시 원선(元宣)이 늙어서 관직에서 물러났다. 서시(西市)와 남시(南市)의 두 시장을 설치하였다. - 효소왕

흉년기록을 살피고 있는 덕만

동시는 490년 소지왕 12년에 처음 만들어지고, 508년에 <동시>에 관리를 두어 감독케 하였다. 하지만, <서시(西市)>와 남시(南市)는 695년 효소왕 4년에 처음 만들어진다.

그러니 612년 즈음해서 서시(西市)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덕만이 찾은 자료는?

또한, 덕만이 미실과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해답을 얻는다. 미실은 질문을 하고 덕만은 대답을 한다. 그리고 덕만이 답을 찾아 갈수 있도록 인도를 한다. 한마디로 미실은 덕만의 스승이다. 미실에게서 답을 찾을수 있는 힌트를 얻은 덕만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책을 살핀다. 

"이겁니다. 이거였어.. "흉년이 있던 진지제 2년 가을,3년 7월 건복2년, 13년, 28년 흉작이 있던해에 귀족들의 토지와 노비가 증가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미실에 대항할 해법을 찾아 낸다. 시장에는 시장으로 장사에는 장사로 대응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극히 단순하고 심플하게 대응 방법을 찾는다. 사극은 현재의 상황을 사극을 빙자해서 세태풍자를 하는 목적성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원작>의 부실함이 드러난다. 진지왕시기 흉년에 관한 기록은 한줄도 없다. 건복원년은 드라마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비담이 태어났다고 하는 해이다. 이때가 드라마는 진지왕때라고 한다.

하지만, 건복원년은 진평왕 6년에 해당하는 584년이다. 어찌되었던 건복 28년은 611년이다. 611년 흉년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6년(584) 봄 2월에 연호를 건복(建福)으로 바꾸었다. - 진평왕 6년

진평왕 시기 화폐로 철정이 사용되고 있었을까?

철정(덩이쇠)


드라마상 진평왕 시기 화폐의 교역을 여전히 <철정(덩이쇠)>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정이 교역품으로 사용되기는 했지만, 내부적으로 화폐로 사용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특히 철의 사용이 일상화된 612년 진평왕 34년인 시대에 200~400년대의 상고시대에 교역품으로 사용되어진 철정이라니. 그 무거운 철정을 시장의 화폐로 무엇에 쓰겠는가?

그렇다면 당시에는 무엇을 가지고 화폐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었을까? 이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드라마 <선덕여왕>덕분에 글쓰는 양이 늘어난다. 이를 좋다고만 해야 하나?


김춘추(유승호),염종(엄효섭), 보량(박은빈)

설원랑(전노민)의 집에서 춘추(유승호)와 보량(박은빈)의 데이트가 밤새는 줄도 모른다. 춘추는 사람과 이름을 연결시키지 못한다. 한번만 봐도 내용을 꽤뚫는 춘추에게도 약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보량과 춘추의 대화가 의미 심장하다. 춘추는 보량에게 마당에 있는 자가 김인문이냐고 물어본다. 

보량은 이찬 임용지(?)라고 한다. 백제가 가잠성 을 쳤을때 부장군으로 참전하여 승리하여 병부의 재령까지 지냈다고 한다. 지금은 한산주도독을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이찬이 한산주 도독(3~4등위)의 직위를 할 이유가 없다. 이찬은 2등위에 해당하는 고위관리이다. 파진찬(4등위)이라면 모를까?

그리고 김인문은 하슬라주 군주라고 한다. 김인문을 잘 기억해두기 바란다. 김인문(629~694년)은 김춘추와 문희사이에서 장자 법민(문무)의 뒤를 이어 태어난 두번째 아들 이름과 같다.  김인문이 김춘추와 문희가 언제 만나 관계를 하고 법민을 낳았는지를 알려주는 <네비게이터>이다. 김인문이 태어난 629년은 진평왕 51년이다. 덕만이 왕이 되는 632년 이전 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당연히 덕만이 공주일때 춘추와 문희의 매파였다는 뜻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백제가 침입한 가잠성 전투에서 신라가 이겼을까?
611년 겨울 10월에 백제 군사가 가잠성(椵岑城)을 포위하여 100일이나 지속되었다. 현령(縣令) 찬덕(讚德)이 굳게 지켰으나 힘이 다하여 죽고 성은 함락되었다.

기록상 가잠성은 백제의 승리로 결말이 난다. 극에 몰입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고도의 mbc 안티사극 전술이 아니라면,  추석 명절을 기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드라마 선덕여왕 제작진과 원작자나 극본을 쓰는 사람들의 설정이 얼마나 어설픈지 한번이라도 고증을 받을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그동안 고증이 없었다면 정말 큰일이고 고증을 받은 수준이 이모양이라면 고증을 한 전문가를 바꿀 필요성이 있다.

어찌되었던 덕만(이요원)도 어찌하지 못하고, 유신(엄태웅)도 어찌하지 못한, 천둥벌거숭이 김춘추에게도 천적이 존재하게 된다. "귀신도 부릴줄 안다"는 비담(비형랑:형종)이다. 비담의 귀신 수하인 길달은 염종이 아닐까 했는데,  춘추가 비담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니 길달이 춘추가 되는건가?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labyrint 2009.09.30 0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김춘추가 범인이 아니었군요.
    근데, 염종과 비담이 어떻게 손을 잡게 되는지 궁금하군요.
    오늘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2. BlogIcon ageratum 2009.09.30 1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뒤늦게라도 선덕여왕을 보기 사작해야할거 같아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3. BlogIcon 영웅전쟁 2009.09.30 1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로나온 떡밥들....
    천만의 만만의 콩떡이군요 ㅎㅎㅎ
    언제나 진지한 그렇지만 재미있는 역사 사실들
    고맙습니다.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9월 마무리 잘하셔
    멋진 10월 만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4. 2009.09.30 1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공갈기동대 2009.09.30 17: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밀한 분석에 감탄 만발일 뿐 입니다.....

    그리고, 포스팅을 보고 나니 생각나는 건데....

    드라마 속의 철정이라는게......

    과거의 교역수단이었던 "은괴" 같네요?......

  6. BlogIcon 감자꿈 2009.09.30 1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을 무서워하는 춘추의 모습이 정말 재밌었어요.
    제목 보고 웃음이 나왔네요.
    잘 읽고 갑니다. ^^

  7. BlogIcon 朱雀 2009.09.30 2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침엔 정신없어서 이제야 읽고 갑니다. ^^/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8. BlogIcon 아르제크 2009.09.30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변함없는 좋은 분석입니다^_^
    특히나 성골진골과 김춘추 족강 운운에 대해서는 꼭 화랑세기가 아니더라도, 기존 정설이라고 하는 해석이 (갓쉰동님 분석과 동일한 논리에 의해서) 맞지 않는 것 같기 때문에 실제 사학계에서도 재고찰이 필요한 문제죠.

    • BlogIcon 갓쉰동 2009.10.01 0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답은 심플한곳에 있는데.. 너무 심취들을 하더군요.. 기존설을 다 합치면 당시 신라인들은 머리아폈을 것 같아용.. ㅋㅋ

  9. 갓쉰동 최고 2009.10.01 2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왕실은1골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귀족들에해당하는 등급이 2골이었죠.
    이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등장합니다. 현재 진보사학계를 이끌면서 참된 역사교육을 목표로 주류학게와싸운다는 역사교사들이 모인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도 한국사새로보기나 살아있는 한국사교과서를 통해서 등장하엿죠. 그러나 진평왕이 덕만을 즉위시키기위해서 골품제를 정했고 이후 무열왕계가 중앙집권을하는 과정에서 정통성을 확립하기위해서 강화시켰다는 섫이있습니다. 그래서 그이후 왕족은 성골과 진골로 나뉘어지고 귀족들사이에서도 왕족출신의 제1귀족을 진골 2귀족을 6두품등의 형식으로 니누었습니다.
    한마디로 조선시대에 양천제를 시행하였으나 양반들이 특권을 부여하기위해서 반상제를 시행한것과 비슷한것으로 이해하시면 쉬울듯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토요일에 방영하는 kbs역사스페셜을 참조하시고 관련서적을 참조하시면 좋을듯합니다.
    관련서적은 삼국사기는 비록 욕을 먹기는 하지만 가장 대중적인 이병도 진단학회장것을
    삼국유사는 불교관련서적인 만큼 동국대 사학과 이재호님이나 스님들께서 번역하신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화랑세기는 참조자료로만 사용하시는 것을 권하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함께 분석하기를 권합니다. 추천을 하자면 서강대 이종욱총장님이나 국민대사학과 여성구님것을 추천합니다.
    저는 다 소장하고있습니다. 이쪽이 원전해석은 가장 잘 되어있죠.

    • BlogIcon 갓쉰동 2009.10.05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와우 댓글들이 많았군요.. ^___^
      여러 번역서를 보는 것도 잼있지요.. 서로간에 약간의 차이점이 있으니..

  10.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1. BlogIcon Pussy.Org 2012.07.12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자비왕은 실성왕의 딸인, 눌지왕비의 소생이다.

  12. BlogIcon gobet1x2 2012.09.03 1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후의 왕들은 모두다 <진골>일 수 밖에 없다. 그이유는 눌지이전의 왕은 실성왕이다. 눌지가 고구려의 지원을 등에 업

  13. BlogIcon online grammar checker 2012.09.08 2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유의 한가위인 가배를 중국식 작명

  14. BlogIcon bean bags 2012.09.16 05: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손이 된다. 통설에 따르면, 실성왕녀인 눌지왕비는 <족강>이

  15. BlogIcon survival food storage buckets 2012.11.26 2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조금만 오서의 인터뷰나 메일만 확인해도 오서의 거짓말은 그냥 들통나고 만다. 하지만, 한국의 발기자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한 발기자가 글을 쓰면 카피앤패스트 밖에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급수가 높은 발기자들은 위치만 위로 아래로 순서만 바꾸어 조절만 한다. 이들에게 분석기사를 바라는 것은 지구가 멸망하는 날이 되어도 오지 않을 것이다.

  16. BlogIcon water canister filter 2012.12.06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약, <선덕여왕> 원작자가 <화랑세기>를 <사서>로 믿고 있었다면, 춘추가 족강이 되어 성골이 되지 못했다고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라사의 용가리 통뼈가 무슨 성골.진골인줄 안다. <화랑세기>는 성골.진골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17.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조금만 오서의 인터뷰나 메일만 확인해도 오서의 거짓말은 그냥 들통나고 만다. 하지만, 한국의 발기자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한 발기자가 글을 쓰면 카피앤패스트 밖에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급수가 높은 발기자들은 위치만 위로 아래로 순서만 바꾸어 조절만 한다. 이들에게 분석기사를 바라는 것은 지구가 멸망하는 날이 되어도 오지 않을 것이다.

  18. BlogIcon VPN services advantages 2013.01.27 1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기에 시간 때 약 상태, 하지만 다른 사람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당신과 다른 두 명의 서로 다른 개인 됩니다.


성골은 있었을까?


드라마 선덕여왕 38회에서 명절 추석맞이 대 바겐세일 떡밥을 무차별적으로 투하 하였다. 견적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무분별하다. 일단 드라마 <선덕여왕>의 리뷰를 작성하면서 무엇이 떡밥들인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혹시 모르는 떡밥이 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문노를 죽인 범인이 밝혀졌다. 비담이 물어본다.  "저 어린 놈<춘추(유승호)>이 문노를 죽이도록 사주했다는 말이냐?" 염종은 춘추가 배후가 아니라고 한다. 전회의 예고 장면은 떡밥이였다. 그러니 시청자들에게 오해를 풀라는 뜻이다. 춘추가 삼한지세를 읽어 본 이유는 자신이 그저 읽어 보라고 했을 뿐이라고 한다. 이유는 염종이 삼한지세의 주인으로 <춘추>를 낙점했기 때문이다.


비담은 염종에게 춘추를 보고 "덜떨어진게 왕족?"이라고 물어본다. 염종은 "덜떨어진건 모르겠는데, 왕족은 맞어, 진지제가 폐위되어 족강이 되지 않았다면 성골은 확실하다"고 한다. 정말? 춘추는 할아버지 "진지(금륜)이 족강이 되어, 성골이 되지 못했을까?

만약, <선덕여왕> 원작자가 <화랑세기>를 <사서>로 믿고 있었다면, 춘추가 족강이 되어 성골이 되지 못했다고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라사의 용가리 통뼈가 무슨 성골.진골인줄 안다. <화랑세기>는 성골.진골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으로 <불교>와 <선도>의 종교적인 분류만이 있을 뿐이다. 진골정통은 <불교>를, 대원신통은 신라고유의 <선도>를 믿는 다는 차이다. 그리고 <골>은 왕족과 귀족 등으로만 구분하고 있을 뿐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살펴봐도 <진지(금륜)>이 폐위되었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이 <족강>이 되어 <진골>이 되었다고 언급이 되어 있지도 않고, 춘추 이전의 왕들과 춘추이후의 왕을 구분하는데 단순히 2분법적으로 나누고 있을 뿐이다.

만약, <춘추>이전의 왕들을 <성골>로 나눴다면, 눌지이후의 왕들은 모두다 <진골>일 수 밖에 없다. 그이유는 눌지이전의 왕은 실성왕이다. 눌지가 고구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실성왕을 폐위시키고, 쿠데타를 성공시켰다.

문제는 눌지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자비왕은 실성왕의 딸인, 눌지왕비의 소생이다. 자비는 곧 폐위된 왕의 외손이 된다. 통설에 따르면, 실성왕녀인 눌지왕비는 <족강>이 되어 <진골>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용춘의 예에 따라 그의 후손인 <자비왕>도 마찬가지로 <진골>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눌지 자신은 성골 진골 그런게 무슨 개뼈다귀냐는 듯이 상관하지 않고, 자비왕(눌지/실성왕녀)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458년 자비 마립간(慈悲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눌지왕의 맏아들로 어머니 김씨는 실성왕의 딸이다. - 자비왕 원년


또한, 진흥왕도 법흥왕의 아들이 아니다. 그러니 성골로서 왕이되지 못했다. 지증왕도 성골로 왕위를 이어 받지는 못했다. 단지 왕족으로서 전왕인 소지(비처)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받았을 뿐이다.

진평왕은 머리가 어떻게 되서 자신의 딸인 천명공주를 폐위된 진지(금륜)의 자식(용수와 용춘)에게 시집을 보냈겠는가? 천명을 족강시키기 위해서? 아니면 전왕의 자식들과 화해할려고?

단순히 성골은 <성조(聖祖>나 <성조(聖朝)>의 다른 말이다. 왕보다 성스러운 존재가 어디에 존재하겠는가? 그런데 갑자기, 왕이나 왕의 자제를 성골 밑의 진골이라고 생각하는 발상자체가 웃기는 것이다. 좀더 정확한 <성골>의 의미는 현재 왕의 피와 살과 뼈를 이어 받는 자이다. 또한, 삼국사기가 인용한 당나라 영호징의 <신라기>에도 <왕족>을 <1골>이고, 귀족을 <2골>이라고 이야기 했다.

당나라 영호징(令狐澄)의 신라기(新羅記)에 말하기를 『그 나라의 왕족은 제1골(第一骨)이라 하고 나머지 귀족은
제2골(第二骨)이라 한다.』- 654년 3월 진덕왕 8년

영호징의 신라기에도 왕족은 제1골인 진골이고, 나머지 귀족들는 제2골일 뿐이다. 성골은 누구냐고? 당연히 현재왕의 뼈를 이어 받는 왕자와 공주들이다.

그러니 당연히 춘추는 진평(백정)이나 선덕(덕만)이나 진덕(승만)의 피와 살을 이어 받지 못했던 왕족으로 왕이 되었다. 그리고 춘추 자신이 <성골>이 된것이다. 문무는 김춘추왕의 뼈를 이어 받았으니 당연히 <성골>로서 왕이 된것이다.   신라사 연구의 가장 커다란 통설의 실패작은 <성골>, <진골>을 구분하는데 있다. 그런데 이런 성골/진골론을 "무슨 귀신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그런건 없다"고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말을 하고 있다.

사실 화랑세기를 위작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의 내면을 보면 개나라 족보때문이 아닌 <성골/진골>를 나눈 그동안의 신라사 연구 성과(?)가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 추후 이와 관련해서는 기회가 된다면 자세하게 포스팅할 예정이다.

비담과 춘추는 어떤 사이?


드라마 <선덕여왕> 상에서 비담과 춘추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용춘과 비담의 가계도


위의 가계도에서 알수 있듯이 비담은 춘추의 작은아버지가 된다. 비담은 춘추가 자신의 조카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춘추는 모르고 있다. 그래서 비담은 당연히 춘추에게 반말을 한다. 하지만, 비담의 정체를 모르는 관계로 "왜 반말하냐"고 반문을 한다. 이에 비담은 난 덕만공주에게도 반말하는 사이라고 얼버무린다.


염종이 용춘대신 춘추를 선택한 이유는?

염종은 삼한지세의 주인을 유신이 아닌 춘추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유는 전왕(진지)의 손이기 때문이다. 그냥 용춘이나 용수에게 주면 간단할 것을 왜 춘추가 되어야 한다고 했을까? 당연히 춘추가 진덕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염종이 춘추를 <삼한지세>의 주인으로 설정한 것이 너무나 드라마 <원작자>의 "작위적인 냄새가 난다"는 뜻이다.

언제 춘추를 키워 왕으로 만들겠는가? 이미 권력의 정점에 있는 용수나 용춘을 밀면 쉬운데 말이다. 염종이 춘추를 조정하기 위해서라는 변명은 좀 아니올시다가 되시겠다. 이에 비담은 염종의 말을 듣고 속으로 그렇다면, 진지왕의 아들인 나 비담이 삼한지세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게 맞다는 듯이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비담의 남발하는 썩소만큼이나 처음에는 산듯한 한 느낌의 염종(엄효섭)의 연기가 너무나 오버스럽고, 작위적이라서 점차 거슬린다. 물론, 나만의 느낌일 뿐이다.

경제는 심리다.

덕만(이요원),알천(이승효),소화(서영희)

미실을 비롯한 보종, 하종 수품 등 귀족들이 매점매석을 통해서 자영농과 소작농 들을 자신들의 노비로 만들기프로젝트를 감행한다. 이에 덕만은 시장조사를 통해서 그 우두머리가 미실임을 알아 낸다.

그런데 시장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동시(東市)>와 <서시(西市)>를 두루 살펴보는 장면이 나온다. 황실의 곡식창고를 열고, 또한, 군량미까지도 풀어버리겠다고 미실을 협박을 한다.현재도 외환이나 금리나 부동산에 개입을 할때, 구두개입부터 한다.

또한, 독과점이 발생했을때 법으로 제재를 가하기도 하지만, 구두개입을 통해서 오버슈팅이 되는 것을 방지를 하고, 급격히 시장이 냉각되었을 때는 구두개입을 통해서 부양책을 펴기도 한다. 경제는 <심리>이기 때문이다.  덕만은 역시 왕이 될 자질이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가 드라마 선덕여왕에 대한 평이다.

동시와 서시가 있었을까?

드라마 원작자는 <동시>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당연히 동시가 있으니 <서시>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하지만, 천만의 만만의 콩떡이 되시겠다.

490년 처음으로 서울에 시장을 열어 사방의 재화를 유통시켰다. - 소지왕 12년
동시전(東市典)은 지증왕 9년(508)에 설치하였다.감독관은 2명이었다. 관등이 나마에서 대나마까지인 자로 임용하였다. 대사(大舍)는 2명이었는데 경덕왕이 주사(主事)로 고쳤으나 후에 다시 대사로 일컬었다. - 삼국사기 잡기

4년(695) 자월(子月)을 정월로 삼았다. 개원(愷元)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겨울 10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중시 원선(元宣)이 늙어서 관직에서 물러났다. 서시(西市)와 남시(南市)의 두 시장을 설치하였다. - 효소왕

흉년기록을 살피고 있는 덕만

동시는 490년 소지왕 12년에 처음 만들어지고, 508년에 <동시>에 관리를 두어 감독케 하였다. 하지만, <서시(西市)>와 남시(南市)는 695년 효소왕 4년에 처음 만들어진다.

그러니 612년 즈음해서 서시(西市)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덕만이 찾은 자료는?

또한, 덕만이 미실과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해답을 얻는다. 미실은 질문을 하고 덕만은 대답을 한다. 그리고 덕만이 답을 찾아 갈수 있도록 인도를 한다. 한마디로 미실은 덕만의 스승이다. 미실에게서 답을 찾을수 있는 힌트를 얻은 덕만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책을 살핀다. 

"이겁니다. 이거였어.. "흉년이 있던 진지제 2년 가을,3년 7월 건복2년, 13년, 28년 흉작이 있던해에 귀족들의 토지와 노비가 증가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미실에 대항할 해법을 찾아 낸다. 시장에는 시장으로 장사에는 장사로 대응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극히 단순하고 심플하게 대응 방법을 찾는다. 사극은 현재의 상황을 사극을 빙자해서 세태풍자를 하는 목적성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원작>의 부실함이 드러난다. 진지왕시기 흉년에 관한 기록은 한줄도 없다. 건복원년은 드라마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비담이 태어났다고 하는 해이다. 이때가 드라마는 진지왕때라고 한다.

하지만, 건복원년은 진평왕 6년에 해당하는 584년이다. 어찌되었던 건복 28년은 611년이다. 611년 흉년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6년(584) 봄 2월에 연호를 건복(建福)으로 바꾸었다. - 진평왕 6년

진평왕 시기 화폐로 철정이 사용되고 있었을까?

철정(덩이쇠)


드라마상 진평왕 시기 화폐의 교역을 여전히 <철정(덩이쇠)>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정이 교역품으로 사용되기는 했지만, 내부적으로 화폐로 사용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특히 철의 사용이 일상화된 612년 진평왕 34년인 시대에 200~400년대의 상고시대에 교역품으로 사용되어진 철정이라니. 그 무거운 철정을 시장의 화폐로 무엇에 쓰겠는가?

그렇다면 당시에는 무엇을 가지고 화폐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었을까? 이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드라마 <선덕여왕>덕분에 글쓰는 양이 늘어난다. 이를 좋다고만 해야 하나?


김춘추(유승호),염종(엄효섭), 보량(박은빈)

설원랑(전노민)의 집에서 춘추(유승호)와 보량(박은빈)의 데이트가 밤새는 줄도 모른다. 춘추는 사람과 이름을 연결시키지 못한다. 한번만 봐도 내용을 꽤뚫는 춘추에게도 약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보량과 춘추의 대화가 의미 심장하다. 춘추는 보량에게 마당에 있는 자가 김인문이냐고 물어본다. 

보량은 이찬 임용지(?)라고 한다. 백제가 가잠성 을 쳤을때 부장군으로 참전하여 승리하여 병부의 재령까지 지냈다고 한다. 지금은 한산주도독을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이찬이 한산주 도독(3~4등위)의 직위를 할 이유가 없다. 이찬은 2등위에 해당하는 고위관리이다. 파진찬(4등위)이라면 모를까?

그리고 김인문은 하슬라주 군주라고 한다. 김인문을 잘 기억해두기 바란다. 김인문(629~694년)은 김춘추와 문희사이에서 장자 법민(문무)의 뒤를 이어 태어난 두번째 아들 이름과 같다.  김인문이 김춘추와 문희가 언제 만나 관계를 하고 법민을 낳았는지를 알려주는 <네비게이터>이다. 김인문이 태어난 629년은 진평왕 51년이다. 덕만이 왕이 되는 632년 이전 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당연히 덕만이 공주일때 춘추와 문희의 매파였다는 뜻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백제가 침입한 가잠성 전투에서 신라가 이겼을까?
611년 겨울 10월에 백제 군사가 가잠성(椵岑城)을 포위하여 100일이나 지속되었다. 현령(縣令) 찬덕(讚德)이 굳게 지켰으나 힘이 다하여 죽고 성은 함락되었다.

기록상 가잠성은 백제의 승리로 결말이 난다. 극에 몰입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고도의 mbc 안티사극 전술이 아니라면,  추석 명절을 기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드라마 선덕여왕 제작진과 원작자나 극본을 쓰는 사람들의 설정이 얼마나 어설픈지 한번이라도 고증을 받을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그동안 고증이 없었다면 정말 큰일이고 고증을 받은 수준이 이모양이라면 고증을 한 전문가를 바꿀 필요성이 있다.

어찌되었던 덕만(이요원)도 어찌하지 못하고, 유신(엄태웅)도 어찌하지 못한, 천둥벌거숭이 김춘추에게도 천적이 존재하게 된다. "귀신도 부릴줄 안다"는 비담(비형랑:형종)이다. 비담의 귀신 수하인 길달은 염종이 아닐까 했는데,  춘추가 비담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니 길달이 춘추가 되는건가?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labyrint 2009.09.30 0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김춘추가 범인이 아니었군요.
    근데, 염종과 비담이 어떻게 손을 잡게 되는지 궁금하군요.
    오늘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2. BlogIcon ageratum 2009.09.30 1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뒤늦게라도 선덕여왕을 보기 사작해야할거 같아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3. BlogIcon 영웅전쟁 2009.09.30 1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로나온 떡밥들....
    천만의 만만의 콩떡이군요 ㅎㅎㅎ
    언제나 진지한 그렇지만 재미있는 역사 사실들
    고맙습니다.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9월 마무리 잘하셔
    멋진 10월 만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4. 2009.09.30 1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공갈기동대 2009.09.30 17: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밀한 분석에 감탄 만발일 뿐 입니다.....

    그리고, 포스팅을 보고 나니 생각나는 건데....

    드라마 속의 철정이라는게......

    과거의 교역수단이었던 "은괴" 같네요?......

  6. BlogIcon 감자꿈 2009.09.30 1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을 무서워하는 춘추의 모습이 정말 재밌었어요.
    제목 보고 웃음이 나왔네요.
    잘 읽고 갑니다. ^^

  7. BlogIcon 朱雀 2009.09.30 2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침엔 정신없어서 이제야 읽고 갑니다. ^^/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8. BlogIcon 아르제크 2009.09.30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변함없는 좋은 분석입니다^_^
    특히나 성골진골과 김춘추 족강 운운에 대해서는 꼭 화랑세기가 아니더라도, 기존 정설이라고 하는 해석이 (갓쉰동님 분석과 동일한 논리에 의해서) 맞지 않는 것 같기 때문에 실제 사학계에서도 재고찰이 필요한 문제죠.

    • BlogIcon 갓쉰동 2009.10.01 0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답은 심플한곳에 있는데.. 너무 심취들을 하더군요.. 기존설을 다 합치면 당시 신라인들은 머리아폈을 것 같아용.. ㅋㅋ

  9. 갓쉰동 최고 2009.10.01 2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왕실은1골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귀족들에해당하는 등급이 2골이었죠.
    이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등장합니다. 현재 진보사학계를 이끌면서 참된 역사교육을 목표로 주류학게와싸운다는 역사교사들이 모인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도 한국사새로보기나 살아있는 한국사교과서를 통해서 등장하엿죠. 그러나 진평왕이 덕만을 즉위시키기위해서 골품제를 정했고 이후 무열왕계가 중앙집권을하는 과정에서 정통성을 확립하기위해서 강화시켰다는 섫이있습니다. 그래서 그이후 왕족은 성골과 진골로 나뉘어지고 귀족들사이에서도 왕족출신의 제1귀족을 진골 2귀족을 6두품등의 형식으로 니누었습니다.
    한마디로 조선시대에 양천제를 시행하였으나 양반들이 특권을 부여하기위해서 반상제를 시행한것과 비슷한것으로 이해하시면 쉬울듯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토요일에 방영하는 kbs역사스페셜을 참조하시고 관련서적을 참조하시면 좋을듯합니다.
    관련서적은 삼국사기는 비록 욕을 먹기는 하지만 가장 대중적인 이병도 진단학회장것을
    삼국유사는 불교관련서적인 만큼 동국대 사학과 이재호님이나 스님들께서 번역하신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화랑세기는 참조자료로만 사용하시는 것을 권하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함께 분석하기를 권합니다. 추천을 하자면 서강대 이종욱총장님이나 국민대사학과 여성구님것을 추천합니다.
    저는 다 소장하고있습니다. 이쪽이 원전해석은 가장 잘 되어있죠.

    • BlogIcon 갓쉰동 2009.10.05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와우 댓글들이 많았군요.. ^___^
      여러 번역서를 보는 것도 잼있지요.. 서로간에 약간의 차이점이 있으니..

  10.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1. BlogIcon Pussy.Org 2012.07.12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자비왕은 실성왕의 딸인, 눌지왕비의 소생이다.

  12. BlogIcon gobet1x2 2012.09.03 1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후의 왕들은 모두다 <진골>일 수 밖에 없다. 그이유는 눌지이전의 왕은 실성왕이다. 눌지가 고구려의 지원을 등에 업

  13. BlogIcon online grammar checker 2012.09.08 2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유의 한가위인 가배를 중국식 작명

  14. BlogIcon bean bags 2012.09.16 05: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손이 된다. 통설에 따르면, 실성왕녀인 눌지왕비는 <족강>이

  15. BlogIcon survival food storage buckets 2012.11.26 2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조금만 오서의 인터뷰나 메일만 확인해도 오서의 거짓말은 그냥 들통나고 만다. 하지만, 한국의 발기자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한 발기자가 글을 쓰면 카피앤패스트 밖에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급수가 높은 발기자들은 위치만 위로 아래로 순서만 바꾸어 조절만 한다. 이들에게 분석기사를 바라는 것은 지구가 멸망하는 날이 되어도 오지 않을 것이다.

  16. BlogIcon water canister filter 2012.12.06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약, <선덕여왕> 원작자가 <화랑세기>를 <사서>로 믿고 있었다면, 춘추가 족강이 되어 성골이 되지 못했다고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라사의 용가리 통뼈가 무슨 성골.진골인줄 안다. <화랑세기>는 성골.진골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17.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조금만 오서의 인터뷰나 메일만 확인해도 오서의 거짓말은 그냥 들통나고 만다. 하지만, 한국의 발기자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한 발기자가 글을 쓰면 카피앤패스트 밖에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급수가 높은 발기자들은 위치만 위로 아래로 순서만 바꾸어 조절만 한다. 이들에게 분석기사를 바라는 것은 지구가 멸망하는 날이 되어도 오지 않을 것이다.

  18. BlogIcon VPN services advantages 2013.01.27 1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기에 시간 때 약 상태, 하지만 다른 사람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당신과 다른 두 명의 서로 다른 개인 됩니다.

첨성대와 격물과 신권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또한, 첨성대는 덕만이 공주시절에는 절대로 완성되지 않아야 한다. 어찌되었던 이와 관련해서 신라사의 배경설명을 먼저 하도록 하겠다.

시대상황과 시간은 작가맘대로 그리고 당시 불교와 신교의 대립?  

용춘은 혁거세가 건국한지 700년이 지났다고 신국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도대체 근거가 있는것일까? 기원전 57년 박혁거세 13세에 6부의 족장들이 추대하여 신라(서라벌)를 건국하고 26대 진평왕 시기의 선덕여왕의 배경이 되는 시기인 610~618년이전이 되니 660여년 된다. 

혁거세의 유명이란 어출쌍생, 성골남진 새겨진 비석이 412년 실성왕 말년 눌지가 반란을 일으킬때 사라진지 200년이 지나서 나왔다고 이야기한적도 있다.

2009년은 기원전 2333년 단군이 조선을 새운 개국 기점인 단기로 따지만 4340여년이지만 우리는 반만년 역사라고 한다. 그러니 딴지를 걸기는 민망해진다. 


용춘은 신권이 700여년동안 황실에 있었지만, 단지, 20여년동안 미실이 차지한 것인데 "다시 신권을 황실로 귀속시키면 되지 않는가?"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알천은 576년 진흥왕 이후 신권이 미실에 넘어갔다고 이야기를 한다. 유신은 528년 법흥왕때 이차돈이 순교한이후로 100년이 지났다고 한다. 최소한 드라마 내에서라도 통일성과 일관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화랑세기는 미실이 화랑 풍월주를 폐하고 원화로 복귀한후 신권을 장악한 때는 572년 이전이다. 572년 진평의 아버지인 동륜이 보명궁에서 개한테 물려 죽는 사건으로 인해서 미실은 원화에서 물러나고 다시 세종에게 풍월주가 넘어가게 된다.

어찌되었던 미실이 정치일선의 전방위에 등장한 때는 진흥왕 말년인 570년대를 즈음해서이고 아무리 늦게 잡아도 본격적으로 나선때는 579년 용춘의 아버지인 진지왕(금륜)을 폐위하는데 선봉에 선 579년이 된다. 


이들중 가장 늦게 잡아도 20여년동안 미실의 천하였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의 시대적 배경은 진평왕 20~25년 사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드라마 시대적 배경은 아무리 늦게 잡아도 600~605년이라는 말이 된다. 이렇게 또 드라마 선덕여왕의 시간 개념이 흔들린다.

603년생인 춘추는 어쩌란 말이냐 도대체 몇살에 수나라로 공부를 하러 간것인가? 당시에도 조기교육이 성행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미국의 시민권을 따러 원정출산을 감행하듯이 수나라의 시민권이라도 따기 위해서 중국행을 결행한것 인가? 하긴 춘추에 의해서 신라는 신라의 풍습과 제도를 버리고, 당의 법률체계와 복식으로 바뀐다,

520년 법흥왕 8년부터 사용하던 복식을 648년 정월에 당의 복식과 의관으로 바꾼다. 또한, 신라는 536년 법흥왕 23년 <건원>을 시작으로 연호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진덕(승만)왕 647년 7월, 634년 선덕왕 3년부터 사용하던 <인평> 연호를 <태화>로 바꾼 이듬해 인 648년 649년 진덕왕 4년인 649년 6월에 당의 연호인 <영휘>로 바꿔 버린다.

528년 이차돈의 순교를 드라마 원작자는 유신의 입을 빌려서 신(神)당을 관할하는 세력과 불(佛)을 숭상하는 세력이 충돌이라고 한다. 법흥이 불교를 공인하고 받아들였지만, 지금도 신당을 관할하는 세력이 불교를 숭상하는 세력보다도 쎄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법흥왕의 이름은 원종이다. 원종은 죽은 후 법흥왕의 시호를 받는다. 법흥의 시호는 불교를 흥하게 했다는 전륜성왕이다. 그의 조카인 심맥부인 진흥왕도 시호가 불교를 진흥했다는 이름이다. 그의 자식들의 이름은 동륜, 금륜(진지), 사륜, 은륜이다. .


또한, 진흥이 죽기전에 승들이 입던 <가사>를 입고 생활을 했고, 진흥왕의 아내인 사도태후는 영흥사에서 비구니로 생활을 하다 614년 죽는다. 또한, 화랑세기에 의하면 세종과 설원랑과 미실은 말년을 사도태후와 같이 영흥사에서 지낸다. 그러니 드라마에서 처럼 불교보다 신교가 더 흥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세종과 설원랑과 미실이 말년에 개종 시킨다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세종과 미실은 <천주사>에서 빌고 빌어 아들을 낳았는데 드라마에서는 매일 투덜거리고, 개차반으로 나오는 하종이다.

그러니 이미 불교와 신교는 합일의 단계를 넘어선것이다. 아마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잘못된 캐릭터로 유신은 둘째치고라도 천명을 죽인 대남보와 하종을 따를자가 없다.

하지만, 화랑세기에는 하종은 근검절약하고 겸약하기가 따를자가 없었다고 한다.


공은 검소하고 색을 삼갔으며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윗사람을 공경하여 세종世宗)의 풍모를 크게 가졌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공에게 복종하지 않는 사람도 끝내는 귀부하였다. - 화랑세기 11세 풍월주 하종

대남보에 관해서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위의 기사를 참조 하기 바란다.

문제는 세종은 지소태후(법흥/보도)의 아들이며 진골정통이다. 어려서 부터 불교교육을 뼈속같이 받았다는 말이다. 물론, 미실은 옥진과 묘도로 이어지는 대원신통을 받아서 세종과는 믿는 종교가 달랐다. 진흥의 비인 사도는 영실/옥진의 사이에서 낳았다. 미실의 할머니 옥진은 대원신통이다. 그의 딸들인 미실의 어미인 묘도나 사도는 대원신통인데도 불구하고 왕비가 되었다.

또한, 진지(금륜)의 비이고 용수/용춘의 어미인 지도 또한 대원신통이다. 그런데도 왕실에서 왕비로 받아들인것이다. 신라 왕실은 종교에 대해서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물론, 약간의 트러블은 있었다.


요즘도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자신들과 종교가 다른 사람과의 혼인을 하지 않으려 한다. 또는 결혼상대자를 개종시키려고 노력을 한다. 신라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러니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은 종교의 나눔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왕인 성골들이 대대로 믿은 종교보다 쎈종교가 있나? 덕만이 이 천한 미실아 "감히 성골인 공주의 몸에 손을 데느냐"고 미실에 쏘아 붙혔는데 드라마 작가의 견해라면 성골보다 대원신통인 미실이 더 파워가 있다는 말인데 성골은 좆도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건가?

드라마 원작자는 제사와 정치를 분리하려고 한다. 한마디로 제정일치에서 신정분리가 국가시스템적으로 발전되었다는 환상에 빠져 있는듯 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하지만, 선진국이라고 하는 유럽이나, 미국을 봐도 신정일체에 가깝다.

오히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 있는 대한민국이 역사상 유래를 찾아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물론, 대한민국의 작금의 현실은 고소영으로 대변되기는 한다. 소망교회를 다니면 성골이고, 그저 이명박과 다른 교회를 다니면 진골이 되지만 말이다. (글쓴이는 성골,진골을 믿지 않는다. 통설을 따라가면 그렇다는 말이다) 


덕만은 신정분리 했을까?

덕만은 첨성대를 만드는 것으로 신정.격물을 분리했을까? 천만에 만만의 콩떡이 되시겠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덕만이 등극한 이듬해인 633년 정월 덕만이 직접 신궁에 제사를 지내고, 대사면령을 내린다. 그리고 이해에 첨성대를 쌓기시작한다.

그러니 첨성대와 신정분리와는 상관관계가 없다. 오히려 덕만은 신교와 불교을 합일시키고, 신라를 불국정토로 만들 구상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그럼 불교는 종교가 아닌가? 하긴 불교는 불법 또는 법(法)이라고 했다.

아래의 기록을 봐서 알겠지만, 드라마상 첨성대는 완성되면 안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덕만이 공주시절에 첨성대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2년(633) 봄 정월에 몸소 신궁(神宮)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였으며 여러 주·군(州郡)의 1년간 조세[租調]를 면제해 주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2년 정월

633년 첨성대(瞻星臺)【부성(府城)의 남쪽 모퉁이에 있다. 633년 당나라 태종(太宗) 정관(貞觀) 7년 계사에 신라 선덕 여왕(善德女王)이 쌓은 것이다.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위는 방형(方形)이고, 아래는 원형(圓形)으로 높이가 19척 5촌, 위의 둘레가 21척 6촌, 아래의 둘레가 35척 7촌이다. 그 가운데를 통하게 하여, 사람이 가운데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 경주부

어찌되었던 금륜의 자식인 용수는 <용수보살>을 따라 작명한 것이고, 드라마에서는 진지와 미실 사이에 태어났다는 비담은 <아비달마>의 준말이며, 율종 중에 <비담신률>의 율법이 있었을 정도로 <비담>의 이름은 불교에 심취한 이름이다. 

비담이 난을 일으킬때 상대등에 있었던 것으로 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라는 이미 신국이며 불교국가였고 불과신이 하나로 융합되고 녹아드는 발전한 단계에 있었다.

사찰을 보면 산신각, 삼신각, 칠성각 등 토속신과 융합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덕만의 이름도 불교스럽고, 승만의 이름도 불교스럽지 않는가?


물론,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미실의 계파인 대원신통는 신교를 숭상하고, 진골정통은 불교를 숭상한듯하다. 하지만 불교를 믿는 진골정통 계층이 상위개념이고, 대원신통을 믿는 계층이 하위개념이였다. 이는 대원신통이 신분이 낮아서 일뿐이다. 왜 신분이 낮았는가하면 불교는 왕실과 왕족들이 먼저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왕이 불타라는 왕즉불사상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현신을 믿지 않을 왕들은 없을 것이다.

덕만의 꿈은 신정합일 불국정토

덕만은 제사와 분리하려던 것이 아니였다. 신교와 불교를 융합하는 것이 덕만의 뜻이였고, 덕만은 영묘사, 분황사, 첨성대와 황룡사 9층탑과 사천왕사의 건립으로 불국정토를 신라에 뿌리내리고 구현하려 하였다. 물론, 사천왕사를 건립하지 못하고 미완이 되었지만, 유언으로 사천왕사를 짓도록 했지만, 그의 꿈은 문무왕때에 비로서 완성되었다.  

사실 신라에서 불교를 최초로 받아들인 임금은 김씨계의 첫왕인 김미추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소문국 공주의 후손인 옥모의 후손이 아니면 왕후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소문국은 신라보다 먼저 불교를 공공연히 받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서논란에 있는 화랑세기를 따르지 않더라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살펴보면 이런 정황들이 수없이 나온다. 이에 관한 기사는 추후 포스팅할 예정이다.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happyikiki 2009.09.02 1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늘의 계시.. 미실은 월천대사에 의지했지만..
    월천대사 언제까지 살지도 모르는데....

  3. 김은지 2009.09.02 1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말씀하고 싶으신 내용은 대충
    1. 역사적으로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과
    드라마 상의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이 뒤죽박죽이다.
    2. 선덕여왕은 신교와 불교를 연합하려던 이이다.
    그런 거죠~?
    뭔가 지식의 깊이는 있는 것 같은데 문장들의 앞뒤호응이 맞지 않거나
    전체적인 맥락을 알기가 쉽지 않게 글을 쓰신 것 같네요....'- '
    그래도 그냥 넘어가려다가
    중간에 "성골은 X도 아니라는 말..."이라는 욕설 섞인 표현이 거슬려서
    이것저것 지적하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2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말씀이기는 한데.. 님의 몇줄안되는 글에는 왜이리 문맥이 맞지 않습니까?

      전체적인 맥락을 읽어 달라고 공지에도 썼을 것 같은데..

      님의 깊이를 먼저 탓하는게 어떠신지요..

      저는 글을 쓸때 한번생각한데로 쭉 써내려가는 스타일입니다. 이점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4. 어차피 2009.09.02 1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방송중인 선덕여왕은 다큐가 아니라 판타지물이니까요.

    여장남자로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몇년 넘게 걸리지 않고 버틴다는 것부터 말이 안되는 소리구 말이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2 14:21  댓글주소  수정/삭제

      판타지 물이라고 한다면 그것 제작자와 원작자에 대단한 실례입니다..

      그들은 신라사회를 <재현>했다고 했거든요.. 그리고 그들은 사극을 만든다고 했지.. 판타지를 만든다고 한번도 이야기를 하지않았습니다..

      사극을 사극으로 봐주어야지요..

  5. 푸대접 2009.09.02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은 '극적인 완성도' 면에서는 상당히 훌륭하지만, 아쉽게도 사극으로 보기에는 고증을 완전히 무시하는걸 떠나서, 자기네들 극본 안에서도 앞뒤가 안맞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대부분의 인물설정은 완전히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있고요.

    이걸 '드라마인데 뭐 어떠냐' 식으로 좌시하기만 하는건 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신라시대가 엄청 옛날이고, 현재 우리의 역사의식과 먼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그렇게 따지면 구한말이나 일제시대, 임진왜란 같은 시대의 역사를 일본이 맘데로 왜곡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가 할말이 없어지지요. 교과서에 실은것만 왜곡이고, 일본의 드라마나 소설등의 창작작품에서 벌어지는 왜곡에 대해서 태클을 걸 근거가 없어져요.

    불과 이삼년 전에 미국 교과서에 채택된 일본 소설에 대해 우리가 입에 거품을 물고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해당 소설을 창작작품이지만, 2차대전중 일본을 피해자로 묘사하는 경향이 짙었기 때문인데요. 그 작품 역시 역사적 해석을 떠나 문학으로서의 가치가 높기에 교과서까지 채택된 것일 겁니다. 창작물이라서 문제가 없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바한 걸까요? 중요한건 일관성이죠. 남이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는건 못찹아도 우리가 우리역사 왜곡하는건 그려려니 하는건 너무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덕여왕도 제작진 스스로가 역사적 사료를 근거로 만든 사극이라고 표방하는 만큼, 사실 왜곡이나 설정의 모순같은 것들은 당연히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2 2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많이 아쉽지요.. 정말 좋은 캐릭터인데요.. 미실이란 존재는..
      미실을 들어내지 않고, 억지로 선덕을 주인공으로 세우니 어긋나는게 많은것 같습니다..

      스스로 환타지라 하지 않으니 비판할 수 밖에 없고, 이를 받아 들일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예전 태왕사신기는 비판한 적이 없습니당.. 그들 스스로 환타지 사극이라고 선언을 하고 만들었으니요.. 다만, 아쉽다는 표현은 했었는뎅.. 암튼, 두고 두고 아쉽습니당..

  6. BlogIcon skagns 2009.09.02 1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간과하던 부분을 잘 집어주시네요.
    잘 보고 갑니다. ^^

  7. 뉴웨이브 2009.09.02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좋은 지적을 해주셨네요... 자료 찾으시느라 애깨나 쓰셨겠어요.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려고 하지만 사극이란 특성상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는 갓쉰동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앞으로도 날카로운 지적 기대하겠습니다. 선덕여왕 제작팀, 간담이 서늘하겠어요. ㅎㅎㅎ

  8. BlogIcon 도대체가.... 2009.09.02 1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원작자는 제사와 정치를 분리하려고 한다. 한마디로 제정일치에서 신정분리가 국가시스템적으로 발전되었다는 환상에 빠져 있는듯 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하지만, 선진국이라고 하는 유럽이나, 미국을 봐도 신정일체에 가깝다.

    오히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 있는 대한민국이 역사상 유래를 찾아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물론, 대한민국의 작금의 현실은 고소영으로 대변되기는 한다. 소망교회를 다니면 성골이고, 그저 이명박과 다른 교회를 다니면 진골이 되지만 말이다."

    이 논리는 어디서 나올수 있나?
    넘 색깔이 드러난다..
    제발 정치적으로 놀지 말아라.. 아가야.

    • BlogIcon 갓쉰동 2009.09.02 2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극의 보는 재미를 모르시는 분이군요.. 사극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판할수록 재미가 배가 된답니다.. 저는오히려 님이 이상하게 생각되는데요...

  9. Hiro 2009.09.02 1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알찬 내용으로 쓰시는군요^^ 잘 보고 갑니다.
    선덕여왕.. 잘 보고 있지만, 조금만 따지고 들면 태클 걸 내용이 너무 많아서 아무 생각없이 보고 있습니다.
    드라마로써 재미는 있으니까요.
    하지만 퓨전사극도 아니고, 판타지물도 아닌 사극을 표방한 드라마라면 어느정도 고증을 거친 역사적 사실에 기인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너무 아쉽네요. 신라를 배경으로 그런 드라마가 다시 또 나오면 재미있게 볼 텐데요. ㅎㅎ

    • BlogIcon 갓쉰동 2009.09.02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앞으로 몇년동안은 다루지 못할거라눈.. 그래서 더욱 아쉽지요.. 일단 선점효과라는 것이 있어서요...

  10. 신정일체? 2009.09.02 2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으면서 되새김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신정분리 혹은 신정일치, 그리고 연대기와 각 정설과 사설 간의 차이들... 곱씹어야 할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예컨대, 그야말로 작은 속임수에게 쉽게 미혹하던 당시의 무지한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해 드러내야 할 것과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드러난 것 이면에 드러나지 않는 그것을 꿰뚫는 글을 읽고 싶었습니다. 갓쉰동님이라면 그렇게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11. 그냥 보거라. 2009.09.02 2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보거라.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일 뿐이다.
    드라마가 드라마이기를 버린다면 대본과 국사책과 다를게 뭐가 있겠냐.
    세상의 이치다. 드라마를 못봐줄 정도였다면 보지 말아야 할것이 당연지사.

    • BlogIcon 갓쉰동 2009.09.03 0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보다 잘 보고 있을걸요.. 님은 사극보는 재미를 모르시는군요.. 님 축구나 야구 등 스포츠 볼때 룰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고 보지요? 알고 보면 더 잼있어요..

  12. 짜집기도 정도껏 2009.09.03 0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 이드라만 한숨나온닷.
    억지 논리에..
    억지 사건재생산..
    대체 그 미실의 사기술(술법)들춰내는 것뿐.. 더 뭘바래?

  13. BlogIcon 노영택 2009.09.03 1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치밀한 분석 놀랍습니다.
    드라마가 미치는 영향을 볼 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재미있으면 된다.'는 논리는 어느정도 지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전문적으로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종 미디어, 특히 공중파 드리마를 역사적 사실로 그대로 받아들이기 쉬우니까요.

  14. 2009.12.15 1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5. BlogIcon christmas clothing 2011.11.16 1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일 뿐이다. 재미있으면 된다.'는 논리는 어느정도

  16.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7. BlogIcon check this out 2012.07.14 1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이 진평왕의 맏딸이고, 천명이 두번째 딸이

  18. BlogIcon water preservertm concentrate 2012.11.01 17: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진짜로 무언가일 이 화제를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결코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당신 발표

  19. BlogIcon portable dog fences gates 2012.11.08 17: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탕 많이 먹은거 아빠한테 걸릴까봐 언능 숨기는 모습도

  20. BlogIcon emergency lamps online 2012.12.10 2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확히 반박할려면 위처럼 일본의 수입조건과 한국의 수입조건이 다르다는 가장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또한, 확율론적으로도 반론을 제기한것도 극히 위함한 발상이고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다.

  21. BlogIcon wireless fence for large dogs 2012.12.25 2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신은 528년 법흥왕때 이차돈이 순교한이후로 100년이 지났다고 한다. 최소한 드라마 내에서라도 통일성과 일관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마야는 천명의 죽음에 미실이 관련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미실에게 "혼자서 외로움에 떨고, 가진것을 모두 빼앗기고, 너년의 이름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저주를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미실의 이름이 역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남지 않은 이유가 마야의 저주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실과 덕만은 만다면 안되는 존재이다. 죽은 미실을 덕만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은 귀신 미실을 만나는 방법밖에 없다. 어찌 되었던, 덕만/천명의 대척점에 미실로 설정을 하였으니 어쩔수 없다고 치자.

마야가 미실과 맘먹을 수 있는 군번이였을까? 물론, 마야가 왕후이고, 미실이 일반 궁주이며, 후비라면, 미실의 나이에 상관없이 어린 마야가 저주의 말을 해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미실의 아들인 11세 풍월주 하종(세종/미실)이 "황후님 어찌 그런말씀을 하냐"고 반문하는 이유는 우리 어머니 미실을 마야가 함부로 할 수 없는데 왜 그러냐는 뜻이다. 또한, 미실의 남편인 6세 풍월주 세종(지소/이사부)도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삼국사기에 마야는 복승과 송화의 딸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복승의 출자와 송화의 출자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마야와 천명과 덕만의 관계를 알고 싶다면 2009/08/17 - [역사이야기] - 여성만 알 수 있는 선덕여왕의 비밀 이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복승과 송화의 출자를 이야기 하는데,, 송화는 영실/지소 사이에 태어났다. 

마야의 어미인 송화와 세종은 같은 어미인 지소(법흥/연제)이다. 사사로이는 마야의 외삼촌이 세종이다. 그러니 마야의 외숙모가 미실이 된다. 그러니 하종(세종/미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을 더듬는 것도 이해할 만 하다.


물론, 드라마 원작자가 이를 캣치했을 때라는 단서가 붙지만 말이다. 단순히 하종이 놀란것은 마야가 황후라지만 실권을 쥐고 있는 어머니 미실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느데 왜그러냐는 반응이다.

그럼 마야와 미실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미실은 영실/옥진 사이에 난 묘도가 2세 풍월주인 미진과 결혼해서 낳는다. 묘도의 동생이 진흥왕의 비인 사도(영실/옥진)이다. 

그러니 미실과 이종간이 동륜, 금륜, 은륜, 태양,아양 등이 된다.  동륜의 아들이 진평이고, 진평의 아내가 마야다. 그렇다면, 마야는 미실의 조카인 진평의 아내가 되니. 미실의 조카며느리가 마야인것이다. 또한, 미실은 진흥과도 관계를 하고 있으니, 시할아버지의 아내가 되고, 시아버지 동륜과도 관계를 하였으니 시어머니가 된다. 남편과도 관계를 하고 있으니 진평을 먼저 선점한 이는 미실이니 한낭군을 둔 마야의 언니뻘이 된다.  


마야가 부계로 보던 모계로 보던, 미실을 함부로 대할 사람이 아닌것이다. 물론, 왕후의 빽은 사사로움을 넘는다. 아비의 딸이 왕비가 되면, 아비는 자식에게 예를 갖추는 것이 당연지사 인것이다. 

마야가 왕후이기 때문에 미실에게 함부로 대했다고 생각을 하자. 문제는 드라마 선덕여왕의 모본인 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실은 마야보다 앞서서 이미 왕후였다.

이 해 9월 진평제는 보명과 미실을 좌우후로 삼았다. - 화랑세기 22세 풍월주 양도

화랑세기 22세 풍월주 양도에 의하면 진평왕이 13세에 즉위시 미실은 보명(지소/구진)과 함께, 좌우황후 였다.
마야는 미실이나 보명보다도 직위가 낮은 왕후이거나, 미실이 왕후였을때 궁에 있지도 않았을 것이며, 어머니인 송화의 젖무덤을 파고 있었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늙어가는 미실

잠시 옆길로 세자, 불로장생, 미모를 자랑하던 미실도 천명의 죽음을 계기로 점차 늙어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도 어린 마야보다도 젊어 보인다. 아마도 고현정이 화장품 모델을 오래한 덕분이지 아닐까? 이제 고현정은 다시 화장품 모델로 복귀할 날도 멀지 않았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마야는 절대로 미실에게 저주의 말을 할 수 없는 대상인 것이다.

마야가 인륜과 천륜을 저버리고 사사로이는 외숙모이고, 마야보다 위가 높은 좌우왕후인 미실에게 저주의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덕만과 대척점에 화랑세기의 꽃인 미실을 설정하고, 죽지 않은 천명을 미실이 죽였다고 설정한 소설 <선덕여왕> 때문이다. 마야를 미치게 한것은 천명이 죽었기 때문이 아니다. 허접한 원전인 <소설> 선덕여왕 때문이다.  천명이 죽어서 어미로서 격정적인 연기를한 윤유선과 이에 받아치는 고현정 눈빛과 입가의 자신의 몰락을 예감하는 듯한 연기가 볼만했다. 하지만 윤유선에게는 죄가 없다. 이와 관련된 2009/08/13 - [역사이야기] - 사기.유사.세기 비교해보니 천명 천수를 누렸다?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덕만의 실질적 적은 미실이 아닌 승만후 손씨
 
화랑세기에 의하면 드라마와는 다르게 미실계와 마야계는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오히려 천명과 덕만의 대척점에 서 있는 존재는 승만황후 손씨이다. 승만황후 손씨의 세계가 화랑세기에 조차 보이지 않는 이유가 천명/덕만/용춘/용수/미실계와 대척하다 밀려서 그런 것이다. 631년 칠숙의 난을 평정한것도 미실의 후손들이고,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데 미실의 후손들의 힘이 절대적이였다. 

마야가 죽은후 들어선 승만황후 손씨는 태양비과 보명비와 용수/용춘 등을 축출해 버린다. 그런데 잼있는 것은 승만황후의 성이 <손>씨이다. <손황후>는 6부의 귀족출신이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통설에 따른다면 성골.진골의 아래계급에 속한다. 진평은 기존의 알고 있는 성골하고는 차원이 다른 성골인가? 진골보다 질이 낮은 손씨를 왕후로 삼고 후사를 보고, 그의 자식으로 신라 성골의 왕통을 이으려 하다니 말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손씨에 의해서 성골중에 성골인 태양(진흥/사도)비도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화랑세기는 성골과 진골이 없다고 또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기사는 승만후 손씨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08/12 - [역사이야기] - 천명 죽음, 대남보 천명 쏘고, 선덕여왕 국민 쏘다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삼국유사도 진평왕은  "손씨 승만왕후를 들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반 통설과는 다르게 신라는 성골.진골을 진흥왕으로 분한 이순재가 출연한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보험에 가입시켜준다"는 어떤 보험회사의 카피와도 같이 묻지도 따지지 않았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실은 왕즉 성(聖)인데 누구의 후사가 상관이 있겠는가? 무수리의 몸에서 나도 왕의 피가 흐른다면, 영조처럼 용이되고 성골이 되는 것이다. 백제 무왕도 하찮은 여인의 몸에서 낳지만, 왕이 되었다. 그게 왕의 위대함이고 성스럼이다. 그러니 6부의 손씨의 자식이라도 진평의 피를 이였다면 성골이 되는 것이다.

화랑세기를 읽다 보면 잼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의 대결상황을 보면 종교전쟁을 보는 듯하다는 것이다. 진골정통은 불교를 바탕으로 신라교를 믿고, 대원신통은 신라 고유의 풍월(신교) 종교를 주로 한다는 냄새가 지독히 나고 있다.

현재도 형제 간에도 종교가 다르고, 부부간에도 종교가 다르듯이 신라도 구교인 풍월교와 신(新)교인 불교의 자리다툼에 지나지 않고,  점차 구교인 신(神)교와 불교가 융합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음 기회에 조금씩 분석해서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소설 선덕여왕을 만들려고 하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가 있다면, 선덕여왕의 대척점에 미실을 앞세우지 말고, 승만황후 손씨를 대척점에 놓고, 소설이나 드라마를 제작하여야 한다. 그래야 모본인 화랑세기와 삼국사기,유사에 반하지 않는 것이다.

선덕여왕의 진부한 3총사 모드

어찌되었던, 덕만이 각성을 하고 환골탈태를 하고, 공주임을 천명하고 미실과 대척하여 미실을 미실의 방법으로 끌어 내리고, 신라의 왕이 될것이라고 천명하고, 알천과, 비담과, 유신을 자신의 수하로 만든다. 왜 그런데 꼭 수하나 동생들을 얻는데 3명일까? 아시아는 삼국지의 도원결의를 모티브로 하고, 서양쪽은 삼총사를 모티브로 만든다. 고구려의 추몽의 수하도 3명이고, 유리도 3명의 수하를 두고 있다. 하긴 고스돕을 쳐도 최소 3명이 처야 재미가 있고, 카드를 쳐도 3명이상이 되야 재미가 있다. 그래야 3명에서 각각의 인물에 성격을 부여할 수 있다.

한명은 유신처럼 우직하게, 알천처럼 대의에 충실하게, 한명은 비담처럼 엉뚱하지만, 기지가 있게 말이다. 그럼 머리에 해당하는 재갈량 역할을 할 책사를 구해야 할텐데, 선덕여왕에서는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덕만이 재갈량과 유비의 종합선물세트가 되는 것인가? 어쩌면 가야를 복원하려는 옛왕족으로 등장하는 월야가 되지 않을까? 설지의 모습은 주몽에서 "왕자~~님"의 포스를 발한 구팔모가 되는 것 같다.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09.08.18 0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BlogIcon White Rain 2009.08.18 1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느끼지만 족보가 정말...마야부인의 시할머니이자 시어머니이며 언니이기도 하며 또한 외숙모인 미실은...
    휴---;; 아무리 당시 그런 개념 같은 것이 없다손 하더라도 이건 너무 막나가는데욤? ㅋㅋ 물론 이는 요즘의 관점이고, 그런 막나가는 족보는 당시 중국 및 유럽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ㅠㅠ
    화랑세기로도 이젠 더이상 해석이 불가능한 드라마가 되어 버렸지요. ^^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되세요.

  3.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8.18 1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처음으로 선덕여왕을 봤음에도..
    푹 몰입이 될정도로 잘만들어진 드라마더군요..^^
    덕분에 드라마 보는데 한결 이해가 쉬워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4. BlogIcon labyrint 2009.08.18 1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는 글 잘 봤어요...
    저는 선화공주를 모함한 사람을 손씨 왕후로 생각하고 있는데...
    어떨지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8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만약, 화랑세기를 인용할 예정이라면,.. 승만후는 마야후가 죽은 후에 등장하는게..
      마야후는 629년 낭비성 전투이전에 죽거든요..
      손승만후가 후가 되기전에 비천한(6부귀족) 출신으로 특정한 후를 따라온 인물이였는데, 진평의 눈에 띠어서 후가 되는 것으로 설정하면 어떨까요? 그래야 기존 통설인 진골도 아닌 일반 귀족 출신이 황후까지 오르는 입지전적이 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물론, 미모와 권력욕이 투철한 것으로.. 중국의 무조(측천무후)와 비슷한 성격을 부여한다면..

      덕만과 충분히 쌈이 될것 같아요..
      물론, 저의 생각입니다.
      단지, 선화는 600년 이전 인물이니, 선화를 승만후가 보낼 수는 없겠지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8 1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후비로써 등장이 가능하겠군요.. 629년 전에도.. 이미 629년이면 .왕후로 이미 어린 아들도 있고,. 이 아들을 왕위에 올릴려다. 죽고, 용춘/용수를 외지로 보내 버리거든요.

      덕만이 눈에 가시였을 건 분명해 보입니다. 손승만으로서는..

  5. BlogIcon 영웅전쟁 2009.08.18 1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사람들 가족관계
    그려보면 벽 한장이 부족하군요 ㅎㅎ
    공부도 잘하고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날은 무덥지만 마음만은 시원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6. 지나가다가 2009.08.18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게요... 저도 님의 글들을 눈팅하는 네티즌으로서 승만왕후를 대척점에 스고 미실을 오히려 여왕으로서 등극하는데 스승격인 역할로 했으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솔직히 남자 배역들에 대한 매력으로 보지 출생의 비밀로 사골국 우려먹듯 20회를 훌쩍 넘겨버린 것은 조금 지루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뭔놈의 공주 되기까지 30회를 소요하는지... 궁에서 승만왕후를 대적하는데 조용히 힘을 기르는 역할이었으면 남장여자라는 무리수를 두지 않아도 되고... 괜히 남장여자 설정때문에 하지원의 존재가 거론되는게 무리는 아니에요.

  7. 지나가다가 2009.08.18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하고 승만왕후를 고현정씨처럼 적당히 나이도 들고 카리스마 있는 배우들로 꾸미고 덕만-미실-승만왕후를 쓰리톱으로 했으면 꽤 재밌었을 것 같은데요. 미실은 앞에 언급한것처럼 정치적 스승으로 꾸미고

  8. 지나가다가 2009.08.18 1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면 김유신을 굳이 덕만과 비슷한 연령으로 꾸며서 억지 멜로를 하는 무리수를 좀 덜지 않았을까 싶어요. 드라마를 다시 꾸민다면 알천이나 용춘공을 남자주인공 격으로 올리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네요. 자식뻘(혹은 조카뻘)인 김유신과 로맨스는 재밌게 보면서도 이것은 아닌데 해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0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를 추적하다 보면, 덕만이 유신보다 나이가 어렸을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게 이들의 관계는 맞는것 같음..

      이들이 맞으면 다른 사람 전체가 틀린다는 또다른 아이러니가..ㅋ ㅋ

  9. BlogIcon 초록누리 2009.08.18 15: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앞으로 독수리 오형제가 나타날 것이라고 보고 있답니다..
    오늘은 마음이 아파서..(김대중 전대통령,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웃음은 못날려주고 갑니다.ㅜㅜ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마도 경주 첨성대에서 태권브이가 나올지도..

      예전 바벨2세를 보면 이집트 유적지에서 나오지요.. ㅋㅋ

  10. 짜증나 2009.08.19 1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글들은 그나마 실제 역사와 드라마를 비교할 수 있게 써주시더니, 가끔 좀 핀트를 잘못맞춘 게 아닐까 싶은 부분도 많네요. 특히 이글...
    족보따지고 혈연관계 따지고 하는 건 조선시대나 유교의 잔재라고 생각하는데 삼국시대까지 그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들이댄다고 해도 동부동모 출생이 아닌 이상 적서의 차별과 정식 혼인관계 유무를 따져보면 마야부인보다 촌수는 높다하나 미실이 공경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게다가 마야는 황후니까요.
    화랑세기에 미실을 좌우후로 삼았다고 그게 황후를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황제의 첩에게 내려지는 호일수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미실은 정식 남편이 있는 사람이니 왕의 후궁정도겠지요. 또는 후궁신하?
    시아버지의 첩을 공경하는 며느리는 남자들의 로망인가요?
    드라마는 드라마입니다. 드라마상의 설정이 설령 역사와 다르다면 실제는 이랬다..식의 글은 보는 재미가 있지만, 드라마 전개상 충분히 공감가는 부분이고, 실제로도 색으로 모시든 어떻든 왕의 후궁에게 정궁이 저주를 내렸다고 패륜으로 몰아갈 이유는 없으며, 삼국시대 성문화(왕과 귀족에 국한된 문화?)를 인정한다면 촌수를 따지지 말아야 하고, 촌수를 궂이 따지자면(그러기는 힘들거 같지만) 혼인유무관계를 분명하게 따져줘야하지 않겠습니까?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글도 비교글인데요..

      마야가 제일 황후란 기록은 없는뎅.. 합리적으로 보니 마야는 2번째 세번째 정도예용..

      미실과의 문젠 드라마가 그렇게 말하니.. 드라마가 원전으로 쓰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좌우황후였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그것도 진평이 왕위에 오를때, 보명과 미실을 좌우황후로요.. 그럼 당연히 마야는 그 밑이거나, 보명과 미실의 후발 황후가 되지요..

      촌수를 따져도, 왕실의 위계로 봐도 마야가 미실에게 함부로 못해요.. 물론, 어짜피 마야와 미실이 천명과 덕만이 성인이 였을때 만나지를 못하겠지만요.. ㅋㅋ

  11. BlogIcon gadgeteer 2009.08.20 2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궁금했던 부분을 콕 찝어서 말해 주셨네요.
    역사속에서 알고나니, 더 재밌어 집니다 ㅋㅋ. 좋은 글 앞으로도 기대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21 1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알고 보면 더 잼있지요.. 물론, 아니라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말을 하더라구요.. 드라마는 드라마다.. 알고 말하면 충분히 이해라도 하는뎅.. ㅋㅋ

  12.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3.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4. BlogIcon pilot crackers 2012.11.01 16: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5. BlogIcon portable dog fence 2012.11.05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

  16. BlogIcon wireless dog fencing in alton il 2012.12.20 16: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극화하면서, 미실의 아역을 한 유이처럼 스쳐지나게 만들지 말았음 하는 바람이 있다

  17. BlogIcon katadyn pocket water filter vs combi 2012.12.31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찌 되었던, 덕만/천명의 대척점에 미실로 설정을 하였으니 어쩔수 없다고 치자.

마야는 천명의 죽음에 미실이 관련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미실에게 "혼자서 외로움에 떨고, 가진것을 모두 빼앗기고, 너년의 이름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저주를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미실의 이름이 역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남지 않은 이유가 마야의 저주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실과 덕만은 만다면 안되는 존재이다. 죽은 미실을 덕만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은 귀신 미실을 만나는 방법밖에 없다. 어찌 되었던, 덕만/천명의 대척점에 미실로 설정을 하였으니 어쩔수 없다고 치자.

마야가 미실과 맘먹을 수 있는 군번이였을까? 물론, 마야가 왕후이고, 미실이 일반 궁주이며, 후비라면, 미실의 나이에 상관없이 어린 마야가 저주의 말을 해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미실의 아들인 11세 풍월주 하종(세종/미실)이 "황후님 어찌 그런말씀을 하냐"고 반문하는 이유는 우리 어머니 미실을 마야가 함부로 할 수 없는데 왜 그러냐는 뜻이다. 또한, 미실의 남편인 6세 풍월주 세종(지소/이사부)도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삼국사기에 마야는 복승과 송화의 딸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복승의 출자와 송화의 출자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마야와 천명과 덕만의 관계를 알고 싶다면 2009/08/17 - [역사이야기] - 여성만 알 수 있는 선덕여왕의 비밀 이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복승과 송화의 출자를 이야기 하는데,, 송화는 영실/지소 사이에 태어났다. 

마야의 어미인 송화와 세종은 같은 어미인 지소(법흥/연제)이다. 사사로이는 마야의 외삼촌이 세종이다. 그러니 마야의 외숙모가 미실이 된다. 그러니 하종(세종/미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을 더듬는 것도 이해할 만 하다.


물론, 드라마 원작자가 이를 캣치했을 때라는 단서가 붙지만 말이다. 단순히 하종이 놀란것은 마야가 황후라지만 실권을 쥐고 있는 어머니 미실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느데 왜그러냐는 반응이다.

그럼 마야와 미실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미실은 영실/옥진 사이에 난 묘도가 2세 풍월주인 미진과 결혼해서 낳는다. 묘도의 동생이 진흥왕의 비인 사도(영실/옥진)이다. 

그러니 미실과 이종간이 동륜, 금륜, 은륜, 태양,아양 등이 된다.  동륜의 아들이 진평이고, 진평의 아내가 마야다. 그렇다면, 마야는 미실의 조카인 진평의 아내가 되니. 미실의 조카며느리가 마야인것이다. 또한, 미실은 진흥과도 관계를 하고 있으니, 시할아버지의 아내가 되고, 시아버지 동륜과도 관계를 하였으니 시어머니가 된다. 남편과도 관계를 하고 있으니 진평을 먼저 선점한 이는 미실이니 한낭군을 둔 마야의 언니뻘이 된다.  


마야가 부계로 보던 모계로 보던, 미실을 함부로 대할 사람이 아닌것이다. 물론, 왕후의 빽은 사사로움을 넘는다. 아비의 딸이 왕비가 되면, 아비는 자식에게 예를 갖추는 것이 당연지사 인것이다. 

마야가 왕후이기 때문에 미실에게 함부로 대했다고 생각을 하자. 문제는 드라마 선덕여왕의 모본인 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실은 마야보다 앞서서 이미 왕후였다.

이 해 9월 진평제는 보명과 미실을 좌우후로 삼았다. - 화랑세기 22세 풍월주 양도

화랑세기 22세 풍월주 양도에 의하면 진평왕이 13세에 즉위시 미실은 보명(지소/구진)과 함께, 좌우황후 였다.
마야는 미실이나 보명보다도 직위가 낮은 왕후이거나, 미실이 왕후였을때 궁에 있지도 않았을 것이며, 어머니인 송화의 젖무덤을 파고 있었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늙어가는 미실

잠시 옆길로 세자, 불로장생, 미모를 자랑하던 미실도 천명의 죽음을 계기로 점차 늙어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도 어린 마야보다도 젊어 보인다. 아마도 고현정이 화장품 모델을 오래한 덕분이지 아닐까? 이제 고현정은 다시 화장품 모델로 복귀할 날도 멀지 않았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마야는 절대로 미실에게 저주의 말을 할 수 없는 대상인 것이다.

마야가 인륜과 천륜을 저버리고 사사로이는 외숙모이고, 마야보다 위가 높은 좌우왕후인 미실에게 저주의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덕만과 대척점에 화랑세기의 꽃인 미실을 설정하고, 죽지 않은 천명을 미실이 죽였다고 설정한 소설 <선덕여왕> 때문이다. 마야를 미치게 한것은 천명이 죽었기 때문이 아니다. 허접한 원전인 <소설> 선덕여왕 때문이다.  천명이 죽어서 어미로서 격정적인 연기를한 윤유선과 이에 받아치는 고현정 눈빛과 입가의 자신의 몰락을 예감하는 듯한 연기가 볼만했다. 하지만 윤유선에게는 죄가 없다. 이와 관련된 2009/08/13 - [역사이야기] - 사기.유사.세기 비교해보니 천명 천수를 누렸다?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덕만의 실질적 적은 미실이 아닌 승만후 손씨
 
화랑세기에 의하면 드라마와는 다르게 미실계와 마야계는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오히려 천명과 덕만의 대척점에 서 있는 존재는 승만황후 손씨이다. 승만황후 손씨의 세계가 화랑세기에 조차 보이지 않는 이유가 천명/덕만/용춘/용수/미실계와 대척하다 밀려서 그런 것이다. 631년 칠숙의 난을 평정한것도 미실의 후손들이고,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데 미실의 후손들의 힘이 절대적이였다. 

마야가 죽은후 들어선 승만황후 손씨는 태양비과 보명비와 용수/용춘 등을 축출해 버린다. 그런데 잼있는 것은 승만황후의 성이 <손>씨이다. <손황후>는 6부의 귀족출신이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통설에 따른다면 성골.진골의 아래계급에 속한다. 진평은 기존의 알고 있는 성골하고는 차원이 다른 성골인가? 진골보다 질이 낮은 손씨를 왕후로 삼고 후사를 보고, 그의 자식으로 신라 성골의 왕통을 이으려 하다니 말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손씨에 의해서 성골중에 성골인 태양(진흥/사도)비도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화랑세기는 성골과 진골이 없다고 또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기사는 승만후 손씨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08/12 - [역사이야기] - 천명 죽음, 대남보 천명 쏘고, 선덕여왕 국민 쏘다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삼국유사도 진평왕은  "손씨 승만왕후를 들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반 통설과는 다르게 신라는 성골.진골을 진흥왕으로 분한 이순재가 출연한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보험에 가입시켜준다"는 어떤 보험회사의 카피와도 같이 묻지도 따지지 않았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실은 왕즉 성(聖)인데 누구의 후사가 상관이 있겠는가? 무수리의 몸에서 나도 왕의 피가 흐른다면, 영조처럼 용이되고 성골이 되는 것이다. 백제 무왕도 하찮은 여인의 몸에서 낳지만, 왕이 되었다. 그게 왕의 위대함이고 성스럼이다. 그러니 6부의 손씨의 자식이라도 진평의 피를 이였다면 성골이 되는 것이다.

화랑세기를 읽다 보면 잼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의 대결상황을 보면 종교전쟁을 보는 듯하다는 것이다. 진골정통은 불교를 바탕으로 신라교를 믿고, 대원신통은 신라 고유의 풍월(신교) 종교를 주로 한다는 냄새가 지독히 나고 있다.

현재도 형제 간에도 종교가 다르고, 부부간에도 종교가 다르듯이 신라도 구교인 풍월교와 신(新)교인 불교의 자리다툼에 지나지 않고,  점차 구교인 신(神)교와 불교가 융합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음 기회에 조금씩 분석해서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소설 선덕여왕을 만들려고 하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가 있다면, 선덕여왕의 대척점에 미실을 앞세우지 말고, 승만황후 손씨를 대척점에 놓고, 소설이나 드라마를 제작하여야 한다. 그래야 모본인 화랑세기와 삼국사기,유사에 반하지 않는 것이다.

선덕여왕의 진부한 3총사 모드

어찌되었던, 덕만이 각성을 하고 환골탈태를 하고, 공주임을 천명하고 미실과 대척하여 미실을 미실의 방법으로 끌어 내리고, 신라의 왕이 될것이라고 천명하고, 알천과, 비담과, 유신을 자신의 수하로 만든다. 왜 그런데 꼭 수하나 동생들을 얻는데 3명일까? 아시아는 삼국지의 도원결의를 모티브로 하고, 서양쪽은 삼총사를 모티브로 만든다. 고구려의 추몽의 수하도 3명이고, 유리도 3명의 수하를 두고 있다. 하긴 고스돕을 쳐도 최소 3명이 처야 재미가 있고, 카드를 쳐도 3명이상이 되야 재미가 있다. 그래야 3명에서 각각의 인물에 성격을 부여할 수 있다.

한명은 유신처럼 우직하게, 알천처럼 대의에 충실하게, 한명은 비담처럼 엉뚱하지만, 기지가 있게 말이다. 그럼 머리에 해당하는 재갈량 역할을 할 책사를 구해야 할텐데, 선덕여왕에서는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덕만이 재갈량과 유비의 종합선물세트가 되는 것인가? 어쩌면 가야를 복원하려는 옛왕족으로 등장하는 월야가 되지 않을까? 설지의 모습은 주몽에서 "왕자~~님"의 포스를 발한 구팔모가 되는 것 같다.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09.08.18 0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BlogIcon White Rain 2009.08.18 1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느끼지만 족보가 정말...마야부인의 시할머니이자 시어머니이며 언니이기도 하며 또한 외숙모인 미실은...
    휴---;; 아무리 당시 그런 개념 같은 것이 없다손 하더라도 이건 너무 막나가는데욤? ㅋㅋ 물론 이는 요즘의 관점이고, 그런 막나가는 족보는 당시 중국 및 유럽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ㅠㅠ
    화랑세기로도 이젠 더이상 해석이 불가능한 드라마가 되어 버렸지요. ^^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되세요.

  3.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8.18 1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처음으로 선덕여왕을 봤음에도..
    푹 몰입이 될정도로 잘만들어진 드라마더군요..^^
    덕분에 드라마 보는데 한결 이해가 쉬워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4. BlogIcon labyrint 2009.08.18 1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는 글 잘 봤어요...
    저는 선화공주를 모함한 사람을 손씨 왕후로 생각하고 있는데...
    어떨지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8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만약, 화랑세기를 인용할 예정이라면,.. 승만후는 마야후가 죽은 후에 등장하는게..
      마야후는 629년 낭비성 전투이전에 죽거든요..
      손승만후가 후가 되기전에 비천한(6부귀족) 출신으로 특정한 후를 따라온 인물이였는데, 진평의 눈에 띠어서 후가 되는 것으로 설정하면 어떨까요? 그래야 기존 통설인 진골도 아닌 일반 귀족 출신이 황후까지 오르는 입지전적이 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물론, 미모와 권력욕이 투철한 것으로.. 중국의 무조(측천무후)와 비슷한 성격을 부여한다면..

      덕만과 충분히 쌈이 될것 같아요..
      물론, 저의 생각입니다.
      단지, 선화는 600년 이전 인물이니, 선화를 승만후가 보낼 수는 없겠지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8 1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후비로써 등장이 가능하겠군요.. 629년 전에도.. 이미 629년이면 .왕후로 이미 어린 아들도 있고,. 이 아들을 왕위에 올릴려다. 죽고, 용춘/용수를 외지로 보내 버리거든요.

      덕만이 눈에 가시였을 건 분명해 보입니다. 손승만으로서는..

  5. BlogIcon 영웅전쟁 2009.08.18 1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사람들 가족관계
    그려보면 벽 한장이 부족하군요 ㅎㅎ
    공부도 잘하고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날은 무덥지만 마음만은 시원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6. 지나가다가 2009.08.18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게요... 저도 님의 글들을 눈팅하는 네티즌으로서 승만왕후를 대척점에 스고 미실을 오히려 여왕으로서 등극하는데 스승격인 역할로 했으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솔직히 남자 배역들에 대한 매력으로 보지 출생의 비밀로 사골국 우려먹듯 20회를 훌쩍 넘겨버린 것은 조금 지루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뭔놈의 공주 되기까지 30회를 소요하는지... 궁에서 승만왕후를 대적하는데 조용히 힘을 기르는 역할이었으면 남장여자라는 무리수를 두지 않아도 되고... 괜히 남장여자 설정때문에 하지원의 존재가 거론되는게 무리는 아니에요.

  7. 지나가다가 2009.08.18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하고 승만왕후를 고현정씨처럼 적당히 나이도 들고 카리스마 있는 배우들로 꾸미고 덕만-미실-승만왕후를 쓰리톱으로 했으면 꽤 재밌었을 것 같은데요. 미실은 앞에 언급한것처럼 정치적 스승으로 꾸미고

  8. 지나가다가 2009.08.18 1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면 김유신을 굳이 덕만과 비슷한 연령으로 꾸며서 억지 멜로를 하는 무리수를 좀 덜지 않았을까 싶어요. 드라마를 다시 꾸민다면 알천이나 용춘공을 남자주인공 격으로 올리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네요. 자식뻘(혹은 조카뻘)인 김유신과 로맨스는 재밌게 보면서도 이것은 아닌데 해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0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를 추적하다 보면, 덕만이 유신보다 나이가 어렸을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게 이들의 관계는 맞는것 같음..

      이들이 맞으면 다른 사람 전체가 틀린다는 또다른 아이러니가..ㅋ ㅋ

  9. BlogIcon 초록누리 2009.08.18 15: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앞으로 독수리 오형제가 나타날 것이라고 보고 있답니다..
    오늘은 마음이 아파서..(김대중 전대통령,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웃음은 못날려주고 갑니다.ㅜㅜ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마도 경주 첨성대에서 태권브이가 나올지도..

      예전 바벨2세를 보면 이집트 유적지에서 나오지요.. ㅋㅋ

  10. 짜증나 2009.08.19 1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글들은 그나마 실제 역사와 드라마를 비교할 수 있게 써주시더니, 가끔 좀 핀트를 잘못맞춘 게 아닐까 싶은 부분도 많네요. 특히 이글...
    족보따지고 혈연관계 따지고 하는 건 조선시대나 유교의 잔재라고 생각하는데 삼국시대까지 그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들이댄다고 해도 동부동모 출생이 아닌 이상 적서의 차별과 정식 혼인관계 유무를 따져보면 마야부인보다 촌수는 높다하나 미실이 공경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게다가 마야는 황후니까요.
    화랑세기에 미실을 좌우후로 삼았다고 그게 황후를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황제의 첩에게 내려지는 호일수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미실은 정식 남편이 있는 사람이니 왕의 후궁정도겠지요. 또는 후궁신하?
    시아버지의 첩을 공경하는 며느리는 남자들의 로망인가요?
    드라마는 드라마입니다. 드라마상의 설정이 설령 역사와 다르다면 실제는 이랬다..식의 글은 보는 재미가 있지만, 드라마 전개상 충분히 공감가는 부분이고, 실제로도 색으로 모시든 어떻든 왕의 후궁에게 정궁이 저주를 내렸다고 패륜으로 몰아갈 이유는 없으며, 삼국시대 성문화(왕과 귀족에 국한된 문화?)를 인정한다면 촌수를 따지지 말아야 하고, 촌수를 궂이 따지자면(그러기는 힘들거 같지만) 혼인유무관계를 분명하게 따져줘야하지 않겠습니까?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글도 비교글인데요..

      마야가 제일 황후란 기록은 없는뎅.. 합리적으로 보니 마야는 2번째 세번째 정도예용..

      미실과의 문젠 드라마가 그렇게 말하니.. 드라마가 원전으로 쓰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좌우황후였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그것도 진평이 왕위에 오를때, 보명과 미실을 좌우황후로요.. 그럼 당연히 마야는 그 밑이거나, 보명과 미실의 후발 황후가 되지요..

      촌수를 따져도, 왕실의 위계로 봐도 마야가 미실에게 함부로 못해요.. 물론, 어짜피 마야와 미실이 천명과 덕만이 성인이 였을때 만나지를 못하겠지만요.. ㅋㅋ

  11. BlogIcon gadgeteer 2009.08.20 2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궁금했던 부분을 콕 찝어서 말해 주셨네요.
    역사속에서 알고나니, 더 재밌어 집니다 ㅋㅋ. 좋은 글 앞으로도 기대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21 1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알고 보면 더 잼있지요.. 물론, 아니라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말을 하더라구요.. 드라마는 드라마다.. 알고 말하면 충분히 이해라도 하는뎅.. ㅋㅋ

  12.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3.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4. BlogIcon pilot crackers 2012.11.01 16: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5. BlogIcon portable dog fence 2012.11.05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

  16. BlogIcon wireless dog fencing in alton il 2012.12.20 16: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극화하면서, 미실의 아역을 한 유이처럼 스쳐지나게 만들지 말았음 하는 바람이 있다

  17. BlogIcon katadyn pocket water filter vs combi 2012.12.31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찌 되었던, 덕만/천명의 대척점에 미실로 설정을 하였으니 어쩔수 없다고 치자.


사극 선덕여왕의 극본은 소설 선덕여왕을 원저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mbc 사극 <선덕여왕>제작팀은 국내 최초로 신라시대를 "재현했다"고 공언했다.

소설 선덕여왕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그리고 화랑세기를 근간으로 삼아 소설가의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이들 사서중 하랑세기를 근본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된다. 미실은 그 어떤 사서에서도 등장하지 않고, 유신의 첫번째 아내인 영모 또한, 다른 사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일단 성골남진의 허구를 파헤쳐 보자. 일단 많은 사람들이 성골과 진골이 있다고 믿는 관계로 이에 대한 논의는 추후 자세하게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지만, 계속된 시리즈 기사들을 읽었던 분들이라면, 글쓴이가 성골과 진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알것이다.  일단, 성골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글을 풀어갈 것이다.

<선덕여왕>에서 '성골남진'이란 용어를 차용한 것은 일연의 삼국유사 왕력편에 수록된 선덕여왕에 관련된 기록이다. 선덕여왕이 등극하게 된 이유가 '성골남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덕만이 등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삼국사기는 춘추가 진덕(승만)의 뒤를 이여 등극할때 알천을 왕위에 세우려 했지만, 알천이 거부를 하는 바람에 춘추를 '삼고초려'해서 왕위에 오르게 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상투적인 말이지만, 일국의 왕위에 오르는 행위는 다 처음에 겸양를 보이는게 상례이다. 고려의 왕건도 그랬고, 조선의 이성계도 그리 했다. 알천은 예의(?) 상 거절했다가 뒤통수 맞은 것이다. 예의상 거절 하지 않는다면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에 된통 당하는 수가 있다. 정승화 게엄군 사령관이 전두환에 된통 당한것 처럼 말이다.  알천은 스스로를 알고,  지방으로 낙향하여 이름도 바꾼다. 알천은 소벌도리의 25대(?) 후손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때 '소'씨는 왕도 될만큼 거대한 세력을 꾸리고 있었나 보다. 결과적으로는 춘추의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조금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는 진덕왕 이후에 왕위가 춘추에 넘어갔으므로 이때부터 진골이 왕을 대신하게 했다고 옛기록을 들어서 인용하고 있다. 삼국유사는 한발 더 나아가  춘추가 왕위에 오르는 654년이 아닌 632년에 성골남자의 씨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엄밀이 말해서 이들 두 사서는 다른 말을 하는 것이다. 일연은 632년에 성골의 씨가 말랐다는 것이고, 김부식은 654년에도 성골이 왕위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성골이 남았음직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삼국유사의 632년 성골의 씨가 말라서 덕만이 왕위에 오를수 있었다는데 손을 들어 준것이다.
그런데 선덕여왕이 성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화랑세기>는 성골남진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미안하게도 화랑세기에는 성골, 진골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으로 구분하고 있다. 부차적으로 가야파라는 별도의 계파를 이야기하는데 가야파도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진골정통이 진골이고, 대원신통이 성골로 보이겠지만, 실제는 진골정통이 대원신통보다 높은 지위를 가지는게 화랑세기에서 보여주는 파맥분류법이다.

미실은 대원신통으로 격이 떨어진다하여 진지왕때 왕비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날려 먹었다. 그래서 진지왕을 진흥의 비이며 사사로이는 이모가 되는 사도와 짜고, 진지(금륜)를 폐하고, 동륜의 아들인 백정(진평)을 왕위 올려놓는다. 그런데 사도 역시 대원신통으로 진흥의 비가 되었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르게 화랑세기에서는 진골정통이 성골의 격을 갖추고 있으며, 대원신통이 진골의 격을 갖추고 있는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잼있는 사실은 성골 중에 성골이라는 진흥왕의 비가 대원신통인 진골이란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후손인 동륜, 금륜, 은륜, 월륜, 태양 등이 모두 대원신통이 된다. 진흥왕은 자신의 후계를 대원신통에 넘겨주려 했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진흥은 아마도 성골이 싫어던 모양이다.

아니면 진흥의 어미인 진골정통의 지소가 대원신통(진골)에 왕권을 넘겨 주려는 고도의 술책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첫번째 태자인 동륜의 아내는 만호(지소/이화랑)의 피를 이였다. 그러니 만호는 어머니 지소의 맥을 이어 진골정통이다. 예기치 않게 동륜이 개한테 물려 죽는, 개같은 경우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진골정통이 왕위를 계승 했을 것이다.

더 웃기는 상황은 동륜이 죽고, 금륜이 왕위에 올랐는데, 대원신통인 사도와 미실이 작당을 하고 대원신통인 진지를 몰아 내고 진골정통인 동륜의 아들인 진평(동륜/만호)을 왕위에 다시 올렸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어찌되었던 화랑세기는 성골/진골 별 상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고 있는 <선덕여왕>은 이때 만큼은 화랑세기가 말한 성골/진골은 개한테 주란말을 잊어 버린다. 그리고 삼국유사의 <성골남진>을 경전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왜? 성골남진이 되는가?에 대한 이유를 찾아 내야 한다. 그래서 소설 원작자가 찾아 낸것이 진평왕에게는 자녀가 여자만 있고, 덕만이 왕위에 올랐으니, 덕만과 천명에서 이유를 찾으려고 했다. 또한, 천명과 덕만을 삼국사기는 덕만이 천명의 언니라고 하지만, 화랑세기는 덕만을 천명의 동생으로 기술하고 있으니, 이를 믹스하는 방법을 찾아 내었다. 그래서 이들이 쌍둥이라면, 언니 동생이 헛갈릴 수도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데 까지 미친것이다.

그래서 나온 단어가 쌍둥이라는 설정이 되었다. 그럼 쌍둥이가 탄생이란 조건이 충족되면, 성골남진이 된다.라는 저주의 예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방아쇠효과가 되는 것이다. 쌍둥이가 태어나면, 성골은 끝이다. 물론, 천명과 덕만을 쌍둥이로 설정하는 순간, 덕만은 늙었을때 노처녀로 왕위에 올라야만 된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언니 천명과 동생 덕만을 나이차이가 많은 듯하게 기술하고 있다. 마야가 늦게 얻은 자식처럼 말이다. 

사실 이 단어만 가지고도 백번 천번 반박할 자료가 넘친다. 일례만 하나 든다면 소지(비처)왕이 죽고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비처의 6촌 동생인 지증이 왕위를 이었다. 쌍둥이가 태어나지 않아도 왕의 남자씨는 마른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물론, 쌍둥이가 태어나도 왕의씨가 마를 수는 있다. 문제는 비처의 6촌동생인 지증왕이 성골로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왕의 씨가 마르던 말던 성골은 있는 것이다. 사촌도 아니고 6촌에서 성골을 찾아 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진평왕때는 지증왕처럼 6촌동생 성골남자가 없었을까? 천명과 덕만이 쌍둥이로 태어나는 순간, 그 일족은 남자를 생산하지 못하고, 죽어 자빠지는 저주의 죽음의 바이러스 굿판이 벌어진 것인가? 태어나도 딸들만 양산한 것인가?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덕만을 이어 연속으로 승만이 여성으로 왕위를 계승했으니 말이다.
 

진평의 비들


지금까지 위에서 하는 말들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성골남진을 무너트린다면 원인균인 어출쌍생도 무너지는 것이다.  선덕여왕이 성경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진평왕에게는 마야와 승만을 제외하고도 7명이 후비가 있고, 승만, 보량(박은빈), 태양 이들사이에 최소한 4명의 성골왕자를 두고 있다. 

어릴때 죽은  승만후의 자식을 빼고도, 3명의 장성한 성골 아들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3명이 장성했는지는 검증하지 못했다. 추후 검증할 생각이지만, 진흥이 7살에 왕위에 올랐으니, 나이는 상관이 없을 것이다.


진평의 비와 자손들


한마디로 소설 선덕여왕은 화랑세기를 재대로 읽어본적이 한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진평에게 수없이 많은 비들과 왕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고, 미실과 진평사이에 태어난 보화공주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하니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이란 헛구호를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있지 않는가? 귀에 딱지가 붙을 만큼, 매회마다 최소한 세네번은 들은 것 같다. 

성골은 없냐구?

그렇다면 성골은 없다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성골은 당대 왕의 피를 이은 왕자.공주가 성골인 것이다. 화랑세기를 사실이라고 믿는다면, 또는 화랑세기를 믿지는 않지만, 화랑세기를 원전으로 삼았다면, '어출쌍생 성골남진'이란 상상력은 발휘안했을 것이다. 그럼 진평왕에게는 남자 후손이 없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보랑(보종/양명)사이에는 '보로'란 아들을 두고,태양공주(진흥/사도)사이에는 태원과 홍원을 두고 있다.  

화랑세기는 '성골,진골은 개한테나 주라'고 주구장창이야기를 하는데, <화랑세기>를 당대의 기록이라고 믿는 사람들 다수는 성골.진골은 있다고 주구장창 이야기를 한다. 신라사의 가장 잘못된 연구결과가 성골.진골이 있다는 환상이다. 또하나는 화랑에 관한 환상이였다. 사실 화랑세기는 성골.진골, 화랑의 환상을 깨는 책이다.


일본속담에 "100번 계속 거짓말을 하면, 거짓말도 진실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고, 서양 속담에는 "거짓말도 크게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야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써먹는 대국민 홍보(세뇌)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론을 장악하려는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면, 더 미가 있는게 극이다. 지금까지 쓴글들은 <알보사>, <알보재사>의 일환이다.

인명간에 약간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타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잼있게 읽었다는 분이나, 새로운 해석이라는 분이나, 잘 모르겠지만, 그럴듯하다는 분이나, 나와 생각이 다르지만,  다른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은 글쓴이의 성의를 봐서 글 읽은 값으로 숫자가 써있는 손가락 모양의
view on을 크릭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실 이 글은 그동안 공부한 것을 쏟아 내는 글입니다. 그저 한두시간을 생각하고 쓴글이 아닙니다. 쓰는데 만 몇 시간을 허비해서 쓴글 입니다. 로그인 하지 않고도 추천할 수 있습니다. 댓글도 남겨주시면 더더욱 ㄳ 하겠습니다.. ^___^;;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백두대간 2009.08.06 1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는 또 무슨 죄가 있어서요 ㅎㅎㅎ
    개도 안 물어갈 것 같은데요? ^^

  2. 글쎄요 2009.08.06 1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요 어출쌍생 성골남진
    매회마다 자주나오기는 합니다 .


    역사를 무시하자는건 아니지만
    지금 방영되는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는
    최소 80%는 픽션입니다

    작가라는 사람이 대사를 쓰고
    연기자가 연기를 하고
    시청자가 즐겁게 보면 되는 것을요

    물론 그것을 역사라 여기고 믿는 사람도 있겠지만
    관심을 가지고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며 이러한 관점도 있구나
    라고 느껴주면 되는거죠

    매 사극들이 붐을 일으킬때마다
    원 역사와는 다르다 말하며
    따지고 들면
    드라마는 사실상 드라마가 아니라
    역사다큐가 되어야겠지요

    사실로간다면
    덕만과 을제가 식을올려야하는데
    그건 드라마 상으로는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드라마는 엄연히 픽션이며
    특히나 사극으로 역사공부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진 않겠죠


    님의 글내용은 다 맞는 말씀입니다만

    픽션이 반을 넘는 드라마상에서의
    갈등구조를 일으키며 재미를 불어넣는 소재인
    어출쌍생 성골남진을 개나줘버리라면
    그저 고서도로 충분히 확인할수있는
    역사의 재현으로 밋밋한 드라마가되겠죠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작가는 대사만 쓰는게 아니고, 인과관계도 살핍니당..
      오히려 스텍타클한 드라마가 될수도 있다는 말을 하는건데용..ㅠ.ㅠ.

  3. BlogIcon White Rain 2009.08.06 1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출쌍생 성골남진...이젠 무슨 주문처럼 외울 판이라는..ㅋㅋ
    그나저나 ,
    신라시대의 전통문화를 좀더 전해주었더라면 훨씬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할 터인데 그 점이 아쉬워요.
    적어도 향가 몇 수라도...^^
    아니면 제천의식을 좀더....ㅠㅠ

    쓸데없이 질질 짜는 몇몇 배우들의 단독 컷이나 유신의 수련 장면 말고 말이죠.

    역사 다큐가 아니다는 분도 계시지만, 그 허구 속에서 그 시대만의 문화를 전해줄 수 있다면 더욱 의미있는 드라마이지 않겠어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좀더 치밀한 드라마를 보고 싶은데.. 원작이 부실하면 어쩔수 없지요.. 그래도 잼있어용.. ㅋㅋ

      부실한 원작을 잼있게 만드는것도 제작팀의 능력이지요..

      사실 제작팀이 역사를 알겠습니까? 원작가가 알아야징..
      화면을 어떻게 구성하고 카메라워크는 어떻게 할까. 대사처리와 표정연기는..등을 신경쓰는게 제작팀이 할일이고..

      좀더 치밀한 구성을 하였으면 하는 바람정도지요.. ㅋㅋ

  4. ㅁㅁ 2009.08.06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벌도리의 성은 최씨입니다. 최씨의 시조가 소벌도리죠.

  5.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6 1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좀 헷 갈리는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일단 작성 연대가 달라
    다른 부분이 이해가 가지만
    소설 선덕여왕은 화랑세기를 제대로 읽어본적이
    한번도 없다는 사실이다에 뭔가...
    읽어 봤지만 다른 ... 뭐 그런 뜻 아닌가 하는데...
    아닌가요 ㅎㅎㅎ

    어출쌍생, 성골남진은 완벽하게 이해하고 갑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이니 그렇고 ㅎㅎ)

    그나저나
    개나주라에 ㅠ.ㅠ
    갓쉰동님은 개는 자연에 돌려보내라 하셨는데
    저는 그리도 못합니다.
    이쁜 제 강쥐 당뇨오고 당뇨우울증으로 고생할때
    제 우울증을 치료한 제 딸인데 ㅠ.ㅠ
    뜬금없는 개나주라 ㅠ.ㅠ
    뭔 죄가 있다고 ㅎㅎㅎ
    (오늘은 강쥐 이야기 때문에 머리가
    복잡한 모양입니다. 나중에 다시 공부 ㅎㅎㅎ)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6: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설 원작자가 읽어는 봤는데.. 제대로 못읽었다는 뜻.. ㅋㅋ

      예상 댓글 중에 하나입니당..

      따님께, 심심한 위로를 보내 드립니다.. ㅠㅠ. ㅋㅋ;;;;

      그냥 강쥐는 강쥐이야기로.. ㅋㅋ

  6. 제가알기로는.. 2009.08.06 2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벌도리의 성이 소씨가 아닌걸로 압니다;
    그리고 알천이 소씨의 시조가 된 이유는 지방으로 낙향한뒤에 성을 소씨로 바꿔서라고 알고있습니다만...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씨이면 최씨의 공동 조상이지요..

      알천은 진주로 낙향해서 이름을 '경'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7. BlogIcon elly 2009.08.07 0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천랑은 진주소씨의 시조라고 합니다.
    진주로 낙향하고 성씨를 소씨로 했는지, 원래 소씨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주 소씨의 시조라네요. 이름도 알천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바꾸었는데
    이유가 대를 이을 손자를 보아 너무 기쁜 나머지 평생을 써오던 이름을 버리고 개명까지 하셨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도 성골/진골은 그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냥 골품을 가지고 있는 자들 이라고 두루뭉실하게 표현을 하죠.
    남자나 여자 모두에게 골품을 수여하는데, 남자들은 보통 나라에 큰 업적을 세운 경우 골품을 수여하였고,
    여자들은 대부분이 외국(백제, 고구려, 가야, 부여 등..)에서 국가간의 화친을 위해 보내온 공주들이 왕을 모셔 아이를 많이 낳거나, 그들의 후손(대부분은 딸들)이 왕을 모셔 아이를 많이 낳을경우 주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봐도 성골 진골이라는 단어는 없더라구요. ^^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경으로 바꾸었다고 하네요.. 이유가 며느리가 자식을 못낳았는데 소벌도리가 꿈에 나타나 진주로 가면, 후손을 볼수 있다고 햇다네요.. 그래서 그후 이름을 '경'으로 했다는군요..

      냅.. 신라라도 별다르겠습니까? 왕손이 널리 퍼져야 한다는데는 인간의 말초적 본능이지요.. 자신들을 소수로 고립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거든요..

      냅.. 진골은 수없이 나옴.. 잡기엔.. 본기엔 진덕왕조에 한번 나오지요..

  8. 지나가다 2009.08.07 1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쇄뇌가 아니라 '세뇌'
    몇시간을 허비하셨다는 말은 시간을 헛되이 날리셨다는 뜻이죠?^^

  9. 치즈 2009.08.28 2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마도 이글 쓴분보다는 선덕여왕 작가가 화랑세기를 훨씬 세밀하게 읽었을거에요..
    어떤 3류 작가라도 자료수집은 직업작가가 아닌 일반인들보다 훨씬 치밀하게 하니까요..
    하지만 논픽션이 아닌 팩션을 쓰는 작가는 자기가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사료를 이용할 뿐
    일부러 사료에 치밀하게 들어맞는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글쓴분처럼 이사람은 화랑세기를 제대로 읽지 않았구나! 제대로 읽었으면 역사에 걸맞는 치밀한 스토리가 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분들도 나오는거겠지요..

    물론 이 글은 '선덕여왕의 이러한 부분은 허구이고 실제 사료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정도를 알려주는 글로는 아주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사에 가장 가까우나 사대주의적 사관에 치우친 삼국사기, 설화나 민담을 대거 차용하는 삼국유사, 진위면에 있어서 많은 시비가 가리는 화랑세기 이 세가지 사료 모두 세부적인면에서 부족함이 존재하기에 원사료라 해서 언제나 진실을 알려주는것은 아니라는것을 알고 있는 선에서 여기에 또다른 허구를 섞은 선덕여왕을 즐기는 태도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좋은 분문 내용 중에서 작가운운하는부분만은 퇴고해보심이 어떨지요..

    • BlogIcon 이반의꿈 2009.08.28 2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작가가 저보다 많이 봤을거라는데 동의가 안되는데요..
      작가는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용..

      자료조사도 부실하고.. 그 작은 사료조차 분석을 못햇다면.. 문제가 있지 않겠어요?

  10. ? 2009.10.28 0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원신통이 진골정통보다 아래라는 말은 이해가 잘 가지 않네요. 대원신통에서도 왕비를 많이 배출했는데...

    • BlogIcon 갓쉰동 2009.10.29 0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왕비를 배출했다고 성골이 되지는 않지요. 왕비와 왕비의 아비는 몰라동 일반 통설에 의함그렇구요..

      저의 견해는 당대왕과 그의 자제와 후손만이 성골로 보는 입장이라서용..

  11.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사극 선덕여왕의 극본은 소설 선덕여왕을 원저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mbc 사극 <선덕여왕>제작팀은 국내 최초로 신라시대를 "재현했다"고 공언했다.

소설 선덕여왕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그리고 화랑세기를 근간으로 삼아 소설가의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이들 사서중 하랑세기를 근본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된다. 미실은 그 어떤 사서에서도 등장하지 않고, 유신의 첫번째 아내인 영모 또한, 다른 사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일단 성골남진의 허구를 파헤쳐 보자. 일단 많은 사람들이 성골과 진골이 있다고 믿는 관계로 이에 대한 논의는 추후 자세하게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지만, 계속된 시리즈 기사들을 읽었던 분들이라면, 글쓴이가 성골과 진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알것이다.  일단, 성골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글을 풀어갈 것이다.

<선덕여왕>에서 '성골남진'이란 용어를 차용한 것은 일연의 삼국유사 왕력편에 수록된 선덕여왕에 관련된 기록이다. 선덕여왕이 등극하게 된 이유가 '성골남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덕만이 등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삼국사기는 춘추가 진덕(승만)의 뒤를 이여 등극할때 알천을 왕위에 세우려 했지만, 알천이 거부를 하는 바람에 춘추를 '삼고초려'해서 왕위에 오르게 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상투적인 말이지만, 일국의 왕위에 오르는 행위는 다 처음에 겸양를 보이는게 상례이다. 고려의 왕건도 그랬고, 조선의 이성계도 그리 했다. 알천은 예의(?) 상 거절했다가 뒤통수 맞은 것이다. 예의상 거절 하지 않는다면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에 된통 당하는 수가 있다. 정승화 게엄군 사령관이 전두환에 된통 당한것 처럼 말이다.  알천은 스스로를 알고,  지방으로 낙향하여 이름도 바꾼다. 알천은 소벌도리의 25대(?) 후손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때 '소'씨는 왕도 될만큼 거대한 세력을 꾸리고 있었나 보다. 결과적으로는 춘추의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조금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는 진덕왕 이후에 왕위가 춘추에 넘어갔으므로 이때부터 진골이 왕을 대신하게 했다고 옛기록을 들어서 인용하고 있다. 삼국유사는 한발 더 나아가  춘추가 왕위에 오르는 654년이 아닌 632년에 성골남자의 씨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엄밀이 말해서 이들 두 사서는 다른 말을 하는 것이다. 일연은 632년에 성골의 씨가 말랐다는 것이고, 김부식은 654년에도 성골이 왕위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성골이 남았음직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삼국유사의 632년 성골의 씨가 말라서 덕만이 왕위에 오를수 있었다는데 손을 들어 준것이다.
그런데 선덕여왕이 성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화랑세기>는 성골남진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미안하게도 화랑세기에는 성골, 진골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으로 구분하고 있다. 부차적으로 가야파라는 별도의 계파를 이야기하는데 가야파도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진골정통이 진골이고, 대원신통이 성골로 보이겠지만, 실제는 진골정통이 대원신통보다 높은 지위를 가지는게 화랑세기에서 보여주는 파맥분류법이다.

미실은 대원신통으로 격이 떨어진다하여 진지왕때 왕비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날려 먹었다. 그래서 진지왕을 진흥의 비이며 사사로이는 이모가 되는 사도와 짜고, 진지(금륜)를 폐하고, 동륜의 아들인 백정(진평)을 왕위 올려놓는다. 그런데 사도 역시 대원신통으로 진흥의 비가 되었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르게 화랑세기에서는 진골정통이 성골의 격을 갖추고 있으며, 대원신통이 진골의 격을 갖추고 있는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잼있는 사실은 성골 중에 성골이라는 진흥왕의 비가 대원신통인 진골이란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후손인 동륜, 금륜, 은륜, 월륜, 태양 등이 모두 대원신통이 된다. 진흥왕은 자신의 후계를 대원신통에 넘겨주려 했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진흥은 아마도 성골이 싫어던 모양이다.

아니면 진흥의 어미인 진골정통의 지소가 대원신통(진골)에 왕권을 넘겨 주려는 고도의 술책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첫번째 태자인 동륜의 아내는 만호(지소/이화랑)의 피를 이였다. 그러니 만호는 어머니 지소의 맥을 이어 진골정통이다. 예기치 않게 동륜이 개한테 물려 죽는, 개같은 경우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진골정통이 왕위를 계승 했을 것이다.

더 웃기는 상황은 동륜이 죽고, 금륜이 왕위에 올랐는데, 대원신통인 사도와 미실이 작당을 하고 대원신통인 진지를 몰아 내고 진골정통인 동륜의 아들인 진평(동륜/만호)을 왕위에 다시 올렸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어찌되었던 화랑세기는 성골/진골 별 상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고 있는 <선덕여왕>은 이때 만큼은 화랑세기가 말한 성골/진골은 개한테 주란말을 잊어 버린다. 그리고 삼국유사의 <성골남진>을 경전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왜? 성골남진이 되는가?에 대한 이유를 찾아 내야 한다. 그래서 소설 원작자가 찾아 낸것이 진평왕에게는 자녀가 여자만 있고, 덕만이 왕위에 올랐으니, 덕만과 천명에서 이유를 찾으려고 했다. 또한, 천명과 덕만을 삼국사기는 덕만이 천명의 언니라고 하지만, 화랑세기는 덕만을 천명의 동생으로 기술하고 있으니, 이를 믹스하는 방법을 찾아 내었다. 그래서 이들이 쌍둥이라면, 언니 동생이 헛갈릴 수도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데 까지 미친것이다.

그래서 나온 단어가 쌍둥이라는 설정이 되었다. 그럼 쌍둥이가 탄생이란 조건이 충족되면, 성골남진이 된다.라는 저주의 예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방아쇠효과가 되는 것이다. 쌍둥이가 태어나면, 성골은 끝이다. 물론, 천명과 덕만을 쌍둥이로 설정하는 순간, 덕만은 늙었을때 노처녀로 왕위에 올라야만 된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언니 천명과 동생 덕만을 나이차이가 많은 듯하게 기술하고 있다. 마야가 늦게 얻은 자식처럼 말이다. 

사실 이 단어만 가지고도 백번 천번 반박할 자료가 넘친다. 일례만 하나 든다면 소지(비처)왕이 죽고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비처의 6촌 동생인 지증이 왕위를 이었다. 쌍둥이가 태어나지 않아도 왕의 남자씨는 마른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물론, 쌍둥이가 태어나도 왕의씨가 마를 수는 있다. 문제는 비처의 6촌동생인 지증왕이 성골로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왕의 씨가 마르던 말던 성골은 있는 것이다. 사촌도 아니고 6촌에서 성골을 찾아 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진평왕때는 지증왕처럼 6촌동생 성골남자가 없었을까? 천명과 덕만이 쌍둥이로 태어나는 순간, 그 일족은 남자를 생산하지 못하고, 죽어 자빠지는 저주의 죽음의 바이러스 굿판이 벌어진 것인가? 태어나도 딸들만 양산한 것인가?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덕만을 이어 연속으로 승만이 여성으로 왕위를 계승했으니 말이다.
 

진평의 비들


지금까지 위에서 하는 말들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성골남진을 무너트린다면 원인균인 어출쌍생도 무너지는 것이다.  선덕여왕이 성경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진평왕에게는 마야와 승만을 제외하고도 7명이 후비가 있고, 승만, 보량(박은빈), 태양 이들사이에 최소한 4명의 성골왕자를 두고 있다. 

어릴때 죽은  승만후의 자식을 빼고도, 3명의 장성한 성골 아들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3명이 장성했는지는 검증하지 못했다. 추후 검증할 생각이지만, 진흥이 7살에 왕위에 올랐으니, 나이는 상관이 없을 것이다.


진평의 비와 자손들


한마디로 소설 선덕여왕은 화랑세기를 재대로 읽어본적이 한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진평에게 수없이 많은 비들과 왕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고, 미실과 진평사이에 태어난 보화공주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하니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이란 헛구호를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있지 않는가? 귀에 딱지가 붙을 만큼, 매회마다 최소한 세네번은 들은 것 같다. 

성골은 없냐구?

그렇다면 성골은 없다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성골은 당대 왕의 피를 이은 왕자.공주가 성골인 것이다. 화랑세기를 사실이라고 믿는다면, 또는 화랑세기를 믿지는 않지만, 화랑세기를 원전으로 삼았다면, '어출쌍생 성골남진'이란 상상력은 발휘안했을 것이다. 그럼 진평왕에게는 남자 후손이 없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보랑(보종/양명)사이에는 '보로'란 아들을 두고,태양공주(진흥/사도)사이에는 태원과 홍원을 두고 있다.  

화랑세기는 '성골,진골은 개한테나 주라'고 주구장창이야기를 하는데, <화랑세기>를 당대의 기록이라고 믿는 사람들 다수는 성골.진골은 있다고 주구장창 이야기를 한다. 신라사의 가장 잘못된 연구결과가 성골.진골이 있다는 환상이다. 또하나는 화랑에 관한 환상이였다. 사실 화랑세기는 성골.진골, 화랑의 환상을 깨는 책이다.


일본속담에 "100번 계속 거짓말을 하면, 거짓말도 진실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고, 서양 속담에는 "거짓말도 크게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야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써먹는 대국민 홍보(세뇌)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론을 장악하려는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면, 더 미가 있는게 극이다. 지금까지 쓴글들은 <알보사>, <알보재사>의 일환이다.

인명간에 약간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타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잼있게 읽었다는 분이나, 새로운 해석이라는 분이나, 잘 모르겠지만, 그럴듯하다는 분이나, 나와 생각이 다르지만,  다른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은 글쓴이의 성의를 봐서 글 읽은 값으로 숫자가 써있는 손가락 모양의
view on을 크릭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실 이 글은 그동안 공부한 것을 쏟아 내는 글입니다. 그저 한두시간을 생각하고 쓴글이 아닙니다. 쓰는데 만 몇 시간을 허비해서 쓴글 입니다. 로그인 하지 않고도 추천할 수 있습니다. 댓글도 남겨주시면 더더욱 ㄳ 하겠습니다.. ^___^;;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백두대간 2009.08.06 1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는 또 무슨 죄가 있어서요 ㅎㅎㅎ
    개도 안 물어갈 것 같은데요? ^^

  2. 글쎄요 2009.08.06 1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요 어출쌍생 성골남진
    매회마다 자주나오기는 합니다 .


    역사를 무시하자는건 아니지만
    지금 방영되는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는
    최소 80%는 픽션입니다

    작가라는 사람이 대사를 쓰고
    연기자가 연기를 하고
    시청자가 즐겁게 보면 되는 것을요

    물론 그것을 역사라 여기고 믿는 사람도 있겠지만
    관심을 가지고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며 이러한 관점도 있구나
    라고 느껴주면 되는거죠

    매 사극들이 붐을 일으킬때마다
    원 역사와는 다르다 말하며
    따지고 들면
    드라마는 사실상 드라마가 아니라
    역사다큐가 되어야겠지요

    사실로간다면
    덕만과 을제가 식을올려야하는데
    그건 드라마 상으로는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드라마는 엄연히 픽션이며
    특히나 사극으로 역사공부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진 않겠죠


    님의 글내용은 다 맞는 말씀입니다만

    픽션이 반을 넘는 드라마상에서의
    갈등구조를 일으키며 재미를 불어넣는 소재인
    어출쌍생 성골남진을 개나줘버리라면
    그저 고서도로 충분히 확인할수있는
    역사의 재현으로 밋밋한 드라마가되겠죠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작가는 대사만 쓰는게 아니고, 인과관계도 살핍니당..
      오히려 스텍타클한 드라마가 될수도 있다는 말을 하는건데용..ㅠ.ㅠ.

  3. BlogIcon White Rain 2009.08.06 1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출쌍생 성골남진...이젠 무슨 주문처럼 외울 판이라는..ㅋㅋ
    그나저나 ,
    신라시대의 전통문화를 좀더 전해주었더라면 훨씬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할 터인데 그 점이 아쉬워요.
    적어도 향가 몇 수라도...^^
    아니면 제천의식을 좀더....ㅠㅠ

    쓸데없이 질질 짜는 몇몇 배우들의 단독 컷이나 유신의 수련 장면 말고 말이죠.

    역사 다큐가 아니다는 분도 계시지만, 그 허구 속에서 그 시대만의 문화를 전해줄 수 있다면 더욱 의미있는 드라마이지 않겠어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좀더 치밀한 드라마를 보고 싶은데.. 원작이 부실하면 어쩔수 없지요.. 그래도 잼있어용.. ㅋㅋ

      부실한 원작을 잼있게 만드는것도 제작팀의 능력이지요..

      사실 제작팀이 역사를 알겠습니까? 원작가가 알아야징..
      화면을 어떻게 구성하고 카메라워크는 어떻게 할까. 대사처리와 표정연기는..등을 신경쓰는게 제작팀이 할일이고..

      좀더 치밀한 구성을 하였으면 하는 바람정도지요.. ㅋㅋ

  4. ㅁㅁ 2009.08.06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벌도리의 성은 최씨입니다. 최씨의 시조가 소벌도리죠.

  5.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6 1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좀 헷 갈리는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일단 작성 연대가 달라
    다른 부분이 이해가 가지만
    소설 선덕여왕은 화랑세기를 제대로 읽어본적이
    한번도 없다는 사실이다에 뭔가...
    읽어 봤지만 다른 ... 뭐 그런 뜻 아닌가 하는데...
    아닌가요 ㅎㅎㅎ

    어출쌍생, 성골남진은 완벽하게 이해하고 갑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이니 그렇고 ㅎㅎ)

    그나저나
    개나주라에 ㅠ.ㅠ
    갓쉰동님은 개는 자연에 돌려보내라 하셨는데
    저는 그리도 못합니다.
    이쁜 제 강쥐 당뇨오고 당뇨우울증으로 고생할때
    제 우울증을 치료한 제 딸인데 ㅠ.ㅠ
    뜬금없는 개나주라 ㅠ.ㅠ
    뭔 죄가 있다고 ㅎㅎㅎ
    (오늘은 강쥐 이야기 때문에 머리가
    복잡한 모양입니다. 나중에 다시 공부 ㅎㅎㅎ)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6: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설 원작자가 읽어는 봤는데.. 제대로 못읽었다는 뜻.. ㅋㅋ

      예상 댓글 중에 하나입니당..

      따님께, 심심한 위로를 보내 드립니다.. ㅠㅠ. ㅋㅋ;;;;

      그냥 강쥐는 강쥐이야기로.. ㅋㅋ

  6. 제가알기로는.. 2009.08.06 2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벌도리의 성이 소씨가 아닌걸로 압니다;
    그리고 알천이 소씨의 시조가 된 이유는 지방으로 낙향한뒤에 성을 소씨로 바꿔서라고 알고있습니다만...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씨이면 최씨의 공동 조상이지요..

      알천은 진주로 낙향해서 이름을 '경'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7. BlogIcon elly 2009.08.07 0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천랑은 진주소씨의 시조라고 합니다.
    진주로 낙향하고 성씨를 소씨로 했는지, 원래 소씨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주 소씨의 시조라네요. 이름도 알천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바꾸었는데
    이유가 대를 이을 손자를 보아 너무 기쁜 나머지 평생을 써오던 이름을 버리고 개명까지 하셨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도 성골/진골은 그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냥 골품을 가지고 있는 자들 이라고 두루뭉실하게 표현을 하죠.
    남자나 여자 모두에게 골품을 수여하는데, 남자들은 보통 나라에 큰 업적을 세운 경우 골품을 수여하였고,
    여자들은 대부분이 외국(백제, 고구려, 가야, 부여 등..)에서 국가간의 화친을 위해 보내온 공주들이 왕을 모셔 아이를 많이 낳거나, 그들의 후손(대부분은 딸들)이 왕을 모셔 아이를 많이 낳을경우 주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봐도 성골 진골이라는 단어는 없더라구요. ^^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경으로 바꾸었다고 하네요.. 이유가 며느리가 자식을 못낳았는데 소벌도리가 꿈에 나타나 진주로 가면, 후손을 볼수 있다고 햇다네요.. 그래서 그후 이름을 '경'으로 했다는군요..

      냅.. 신라라도 별다르겠습니까? 왕손이 널리 퍼져야 한다는데는 인간의 말초적 본능이지요.. 자신들을 소수로 고립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거든요..

      냅.. 진골은 수없이 나옴.. 잡기엔.. 본기엔 진덕왕조에 한번 나오지요..

  8. 지나가다 2009.08.07 1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쇄뇌가 아니라 '세뇌'
    몇시간을 허비하셨다는 말은 시간을 헛되이 날리셨다는 뜻이죠?^^

  9. 치즈 2009.08.28 2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마도 이글 쓴분보다는 선덕여왕 작가가 화랑세기를 훨씬 세밀하게 읽었을거에요..
    어떤 3류 작가라도 자료수집은 직업작가가 아닌 일반인들보다 훨씬 치밀하게 하니까요..
    하지만 논픽션이 아닌 팩션을 쓰는 작가는 자기가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사료를 이용할 뿐
    일부러 사료에 치밀하게 들어맞는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글쓴분처럼 이사람은 화랑세기를 제대로 읽지 않았구나! 제대로 읽었으면 역사에 걸맞는 치밀한 스토리가 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분들도 나오는거겠지요..

    물론 이 글은 '선덕여왕의 이러한 부분은 허구이고 실제 사료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정도를 알려주는 글로는 아주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사에 가장 가까우나 사대주의적 사관에 치우친 삼국사기, 설화나 민담을 대거 차용하는 삼국유사, 진위면에 있어서 많은 시비가 가리는 화랑세기 이 세가지 사료 모두 세부적인면에서 부족함이 존재하기에 원사료라 해서 언제나 진실을 알려주는것은 아니라는것을 알고 있는 선에서 여기에 또다른 허구를 섞은 선덕여왕을 즐기는 태도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좋은 분문 내용 중에서 작가운운하는부분만은 퇴고해보심이 어떨지요..

    • BlogIcon 이반의꿈 2009.08.28 2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작가가 저보다 많이 봤을거라는데 동의가 안되는데요..
      작가는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용..

      자료조사도 부실하고.. 그 작은 사료조차 분석을 못햇다면.. 문제가 있지 않겠어요?

  10. ? 2009.10.28 0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원신통이 진골정통보다 아래라는 말은 이해가 잘 가지 않네요. 대원신통에서도 왕비를 많이 배출했는데...

    • BlogIcon 갓쉰동 2009.10.29 0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왕비를 배출했다고 성골이 되지는 않지요. 왕비와 왕비의 아비는 몰라동 일반 통설에 의함그렇구요..

      저의 견해는 당대왕과 그의 자제와 후손만이 성골로 보는 입장이라서용..

  11.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글에서 덕만이 왕위에 쉽게 오를 수 있는 배경으로 덕만 선대에 있었던, 지소, 금진, 사도, 미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지소는 법흥의 딸이고, 법흥의 동생인 입종에 시집을 간다. 법흥이 죽고 나자, 7살의 어린 진흥(심맥종)이 왕위에 오르지만, 실질적인 전권을 행사하고,수렴청정을 하는 지소(법흥/보도)라고 했었다.

또한, 지소에게는 입종말고도, 진흥왕비인 사도의 아버지인 영실을 두번째 남편으로 두고 있었다. 이런 기록들은 현존하고 있는 <화랑세기>의 기록들의 단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미실의 선대 여인에 대한 이야기기들이 빠져있다. 미실이 존재하게 된 이유는 지소와 옥진, 금진이 있었기 때문에 미실이 살아갈 수 있었고, 국정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법흥왕(514~540) 말년부터 진평왕(579~632) 초기 10 여년 동안은 여인들이 신라를 지배하고 있었던 듯하다. 햇수로 대략 70~80년이 된다. 그러니 신라의 발전기에 해당하는 기간인  법흥왕 후반기~ 진평왕 초기까지 모두가 여인천하 아래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009년 현재 해방 65년이 지났지만, 일제 강점기 1910~1945년 까지 36년만으로도, 일제의 잔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덕만이 왕위에 오른다는 행위는, 현재로 보아서는 삼국에는 없는 여왕이 등극하다니? 하는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는 파천황적인 상황이지만, 화랑세기로 본다면, 당시 신라사회에서는 당연시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일본서기에 의하면 이미 당시 왜에서는 여왕천하에 있었다. 신라의 이웃 국가인 왜의 첫 여왕인 추고여왕(593~628), 제명.황극(641~645, 655~661) 사례도 있으니 충분히 고려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실을 있게 한 지소는 누구이며, 지소의 남자들은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전글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를 송고하면서 <지소의 남자>들을 개괄적인 다이어그램으로 보여 주었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사람과 사람이 얽키고 설켜 있어서 이들 간에 관계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계보도 또한 복잡하고, 결혼 상대자도 수시로 바뀌어, 남자나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 이를 추적한다는 것이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신들의 혼맥 보다도복잡하다. 그래서 이를 도표나 계보도를 만들어 놓고, 읽지 않는다면, 가계, 혼맥, 인맥, 남.여상열지사 조차 따라가다 보면 흐름을 놓치기 일 수 이다.

더 나아가 화랑세기는 화랑의 전기라고는 하지만, 수 없이 많이 등장하는 여성들로 인해서 지소전기, 금진전기, 사도전기, 미실전기 처럼 여인열전이 되버린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가계도를 정리 할 때, 남성중심의 부계 가계도, 족보을 작성한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남성중심의 가계도를 작성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여성중심의 가계도를 작성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오죽하면 화랑세기에서 조차도 <대원신통>, <진골정통> 등 여성의 신통과 인통을 중요하게 서술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진평왕과 마야의 맏딸인 <덕만>이 다른 누구보다 앞서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올랐는지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덕만이 오르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해서, 신라를 여인천하로 만든 시발점인 지소태후를 추적할 필요성이 있게 되었다.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글은 맛보기 정도 였다.

이전 글에서 여성 중심으로 그림을 작성하니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막연히 지소의 남자들이 많았구나. 미실도 팜브파탈이라고 하는데, 지소는 미실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부족함이 없구나 할 것이다. 그래서 여성 중심의 가계도를 작성하는 시발점의 맛보기 였고, 첫 여성계보도의 주자로 지소를 선택하게 된것이다.

크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그림을 보면 어떤가? 지소태후의 남자들이 너무나도 많지 않은가? 일국의 왕이나 했음직한 행동이다. 

화랑세기에서 지소를 빼 놓고는 연결이 되는게 하나도 없다. 부계로 찾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인맥과 혼맥과 이유들이 지소를 통해서 개안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소 중심인 모계도를 작성해 보니, 그전까지 단순히 덕만과 유신이 만호 할머니의 자식들이구나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덕만도, 유신도 지소의 후손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화랑세기가 복잡하면서도 재미가 솔솔하다.

실은 예전에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인물 각각의 성별, 생/몰, 부/모, 남편/부인, 관련 남.여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을 기록해 보관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다 완성하지는 못했고, 중간에 데이타가 다 지워져 버렸다. 처음 화랑세기의 인맥을 데이타베이스로 구축하고, 화랑세기를 분석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화랑세기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 였다. 결론을 약간 흘리자면 '현존 화랑세기는 너무나 정교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정도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미싱링크를 절묘하게 믹스해 놓은 거라고 할 정도였다.

어찌되었던, 여러가지 일 때문에 자연히 관심이 화랑세기에서 멀어졌고, 드라마 선덕여왕이 하기전까지 까막게 화랑세기를 추적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드라마 선덕여왕은 나의 기억 심연속에 숨어있던 역사에 대한 열정을 끄집어 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mbc 선덕여왕 제작팀에게 감사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 .

이번 글도 이전의 덕만의 공주시절부터 있었던, 에피소드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하나하나 추적하고, 덕만이 어린시절 왕에 오를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증명하는 시리즈 글이였듯이,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지소를 시작으로 옥진, 금진, 미실 등 여성중심의 계보도 시리즈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전 덕만 시리즈 글을 본사람은 느끼겠지만, 덕만을 추적할때 화랑세기를 인용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유는?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아직까지 역사적인 산물인 김대문의 기록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 것이 통설이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판하거나 할때는 화랑세기와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인용해서 비판을  했었다. 이유는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원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랑세기 원전을 들어서 소설 선덕여왕이 왜곡하고 있는 팩트를 지적했던 것이다.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원전으로 삼지 않았다면, 절대로 화랑세기를 인용하여,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판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는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판하는게 아니였다. 드라마의 원전인 소설 선덕여왕을 비판하는 것이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역사왜곡은 둘째치고라도 재미가 솔솔하다. 좀더 좋은 소설이나 원전을 가지고, 드라마 사극을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글에서는 전편에 이어서 지소 중심 계보도만을 게시하는 것으로 끝을 맺을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글이 너무 늘어지게 되고, 한두시간을 읽어도 모자라는 글이 되기 때문이다. 읽는데 한두시간이면 쓰는데 몇시간이 걸리겠는가? 그러니 당연히 시리즈 글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단 지소의 남편인 입종을 기준으로 계보도를 작성한 것이다. 입종의 기준으로 하면, 지소는 입종의 많은 여인중에 한사람이 된다. 그중 입종과 지소 사이에 진흥(540~576)이 태어난 것 처럼 보인다. 중심은 입종이 되는것이다. 그런데 입종이 중심이 아니고 지소가 중심에 서 있고, 단순히 지소가 여러 남자중 작은아버지 입종을 남편으로 선택한 것 처럼 보인다.


만호(지소/이화랑)는 동륜(진흥/사도)와 결혼해서 진평왕과 그 형제들을 낳았다. 입종과 옥진 사이에 태어난 숙흘종(입종/옥진)과 관계를 맺어, 만명(숙흘종/만호)를 낳았다. 이 만명이 서현과 사랑에 빠져 만노군으로 도피행각을 벌여 유신을 낳은 것이다.
 
전편에 지소의 남자로 입종과 금진 사이에 난 숙흘종과 관계를 맺어 만호를 낳았다고 하였지만, 이는 인맥을 잘못 살핀 것이다. 화랑세기는 삐끗 잘못하면, 삼천포로 빠져 버린다. 지소가 위화랑의 아들인 이화랑(위화랑/준실)과 관계를 맺어 숙흘종을 낳은 것이다.

어찌되었던 남성 중심의 입종이 아닌 여성인 지소를 기준으로 혼맥과 가계도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지소의남편들과 후손들 이미지 크릭시 원본을 볼 수 있음


지소의 10명의 남자 중에서 입종, 이사부, 구진, 영실, 이화랑에게서 후손을 본다.

입종, 이사부 

작은 아버지 입종(지증/연제)에게서는 진흥왕이 태어 났다. 

이사부 사이에는 미실의 남편인 세종과 진흥왕의 첫번째 정비인 숙명을 낳는다. 숙명은 처음 진흥왕에 시집을 갔지만, '어머니가 같은 형제가 된다'하여 진흥왕(지소/입종)이 멀리 하고, 숙명 또한, 진흥과 같은 이유로 진흥을 좋아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하여 숙태자를 낳았다. 숙명은 어머니 지소의 정부인 이화랑과 사랑에 빠져서 도피행각을 벌리고, 원광법사와 12세 풍월주인 보리를 낳는다. 이들의 형태가 서현과 만명의 사랑의 도피를 보는것 같지 않는가? 어찌되었던 보리는 화랑세기를 지은 김대문의 할아버지이다.


영실

아버지 법흥에 의해서 강제적인 결혼을 하였다.
영실과는 송화와 황화를 낳는데, 송화는 복승과 결혼해 진평왕의 비인 마야를 낳는다. 그들의 후손으로 화랑세기는 천명,덕만, 천화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천화가 서동의 아내인 선화의 냄새가 난다.
 

결국 덕만의 계보는 지소/영실->송화/복승-->마야/진평-> 천명, 덕만, 천화이 된다.
부계로는 지소/입종->진흥/사도 ->동륜/만호->진평/마야->덕만 이 된다.
결국 덕만은 모계로 지소에 통하고, 부계로도 지소와 연결이 된다.

영실은 지소 말고도 여러 아내가 있었는데, 그 중에 옥진이 있었다, 옥진은 1세 풍월주인 위화랑(섬신/벽아)의 딸이고, 사다함의 어머니인 금진의 언니가 된다. 영실/옥진은 사도, 노리부, 흥도, 묘도를 낳는다.

사도(영실/옥진)는, 숙명(이사부/지소)이 지소의 정부인 이화랑(위화랑/준실)과 사랑에 빠져 폐위된 이후 진흥비가 되어 동륜, 금륜(진지), 아양을 낳는다. 아양은 유신의 할아버지인 무력과 결혼하여 서현을 낳는다.

영실과 옥진 사이에 난 흥도는 기오(홍기/선혜)와 결혼해서 금륜(진지)비가 되는 지도를 낳는다. 지도는 금륜사이에 용수와 용춘 형제를 낳고, 진지왕이 죽은 후 진흥/월화 사이에서 난 천주공과 결혼한 후, 16세 보종(설원랑/미실)에 이어 17세 풍월주인 염장, 천장을 낳는다.

이화랑

이화랑과 사이에는 만호를 낳는데. 만호를 자신의 손자인 금륜(진흥/사도)에 시집보낸다.
만호는 지소의 남편의 소생인 숙흘종(입종/금진)과 정을 통하고 만명을 낳는다. 만명은 유신의 아버지인 서현에게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린후 만노군에서 유신을 낳는다. 서현의 어머니인 아양은 (진흥/사도)사이에 태어났다.
그러니 사다함은 모계쪽으로 보면 유신과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위화랑/오도 - >금진/입종->숙흘종/만호(지소/이화랑) -> 만명/서현 -> 유신
부계로는 무력/아양(진흥/사도)->서현/만명[숙흘종(입종/금진)/만호(지소/이화랑)] - >유신

또한, 유신은 지소의 중첩된 직계 후손인 것이다.
지소/입종->진흥/사도->아양/무력->서현/만명[숙흘종(입종/금진)/만호(지소/이화랑)]->만명->유신
할머니 만호는 동륜과 결혼해서 진평의 형제들을 낳았다. 그러니 진평왕과 만명은 동복남매간이 된다.

구진

구진은 지소의 침소를 지키는 자였는데, 지소와 관계를 가져 보명궁주를 낳는다. 보명궁주는 별궁에 살았는데, 진평왕의 아버지인 동륜이 태자시절인 572년 미실의 꼬임에 빠져 보명궁의 담을 넘다가 개에게 물려 죽고 만다. 이때 미실은 문책을 받아 궁에서 쫓겨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용수.용춘과 미실 사이를 적대적인 관계로 설정하엿다. 진지왕 폐위시 미실(묘도/미진)과 진흥비인 사도(영실/옥진)의  용수. 용춘의 아버지가 폐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수.용춘은 그 이후에도 왕실에서 중용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춘추가 진골이기 때문에 왕위를 잇는데 힘들었다고 하지만, 용수.용춘이 중용되는 것으로 봐서 신분상에 별다른 하자가 없는 것 같다. 또한, 위에서 진지비인 지도(홍도/기오)가 진지(금륜)이 죽은 후에서 천주공에 시집을 가고, 17세 풍월주인 염장을 낳는 것으로 봤을때 신분상 제약은 없었던 것으로 비쳐진다. 

어찌 되었던 법흥왕 말년부터 덕만에 이르기까지 지소의 후손이 아니면 힘을 쓸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옥진의 후손은 진흥비 사도(옥진/영실)과 지도[흥도(옥진/영실)/기오]가 된다. 

지소의 몸에서 난 숙명(지소/이사부)를 진흥(지소/입종)과 결혼시키고, 어쩔수 없자, 자신의 남편인 영실의 자식인 사도(영실/옥진)을 진흥비에 올린다. 아마도 숙명이 도망간 것은 지소로써는 의도하지 않았던 중대 사건이 아니였을가 한다. 그래서 이에 만족하지 않고, 만호(지소/이화랑)를 자신의 손자인 동륜(진흥/사도)와 결혼을 시키고 있다. 

화랑세기가 말한다. 진골, 성골은 없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영실을 남편으로 두고 있던, 지소 맥과 옥진 맥 간에 대결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화랑세기는 옥진 계열을 대원신통이라하고, 지소 계열을 진골정통이라고 하고 있다. 


(c) 영구아트

화랑세기를 엮어서 성골/진골은 모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부류 들이 있다. 또한, 대원신통은 성골이라하고, 진골정통은 진골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화랑세기를 재대로 읽는다면, 화랑세기에서 진골정통은 현재(김대문 시기)의 진골과 다르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 진골/성골를 구분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실제로 화랑세기 내에 진골은 진저리나게 많이 나오지만, 성골이라는 단 한글자도 없다. 사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읽어도 성골이란 단어는 두군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2,000년 대에 벌어지는 성골/진골 논쟁을 1,300년전 김대문이 화랑세기를 쓰면서 예측이라도 한것 같지 않는가? 


용수.용춘의 처인 천명의 모계는 마야이다. 마야(송화/복승)는 지소의 맥을 이은 송화(지소/영실)의 자식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진골정통이 되는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 진지(금륜)이 폐위되어 성골에서 진골로 족강되었다는 용수.용춘은 진골정통인 천명으로 인해서 복원되어 성골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최소한 그의 자식인 춘추라도 말이다.

진지왕의 비인 지도(옥진/영실->홍도/기오)는 옥진의 맥을 이은 대원신통이다. 그렇다면 용수.용추는 아버지 진지(금륜)의 폐위로 족강되었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게 된다. 용수.용춘은 자신의 아비가 왕이던 아니던 상관없이 폐위에 의한 족강여부에 상관없이 어머니인 지도에 의해서 처음부터 대원신통인것이다.  

또한, 진흥비 사도(옥진/영실)는 옥진의 후손이다. 그렇다면 진흥의 자식들은 이미 태어나자 마자 대원신통으로 결정된다는 이야기 이다. 결국에는 진흥왕의 아들인 동륜, 금륜이 진골이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진골보다 성스런 성골을 그렇게 함부로 내동댕이 칠 수 있는 것 인가? 그런데 아무도 동륜의 아들인 진평은 진골이라고 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이유야 있다. 진골정통인 지소의 딸인 만호(지소/이화랑)가 동륜에 시집을 감으로써 피 씻김을 했다는 것이다. 무슨 진골보다 성스럽고, 알찬성골이 자신들의 잘못된 논리에 의해서 이리 저리 이동을 하던가?

김유신을 대입하면 어찌될까? 김유신은 만명의 자식이다. 만명은 만호의 자식이다. 만호는 지소의 자식이다. 지소는 진골정통이다. 그러므로 김유신은 지소의 맥을 이은 진골정통이 된다. 그럼으로 김유신은 성골이다. 김춘추가 왕위에 오를때 성골이 없어서 진골인 김춘추가 올랐다고 하지만, 성골은 김유신도 있고, 그외 너무나도 많은 성골들이 보인다.


성골과 진골은 그냥 왕가에 편입되면 왕실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왕의 계승권은 전왕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 뿐이고, 없으면, 가까운 왕실사람부터  먼 왕실의 자손이라도 끌어와 왕위에 앉히는 것이다. 어느시대나 어느나라나 일반적인 형태에 불과하다. 신라라고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왕녀에 의해서 진골,성골이 결정된단 말인가? 그냥 진골이 성골이고, 성골이 진골인 것이다.  


어찌되었던 지소의 남편과 지소의 후손들을 지소중심의 모계 혼맥.가계도로 정리를 하였다. 위의 그림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신라 중기 법흥왕 말기과 진흥왕 초기 시기는 남자왕이 아닌 지소여왕의 시대 같아 보이지 않는가? 

지소태후 남편과 자손들 혼맥.계보 만을 올리고, 끝내려고 했는데, 여전히 글이 길어져 버렸다.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임현철 2009.08.01 0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활기차고 알찬 8월 되시길...

  2. BlogIcon 미케미케 2009.08.01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성가계도 보다가 쥐쥐 쳤어요. 넘 어려워여 ㅠ
    저에게도 선덕여왕 정보를 몰래(?) 월욜날 선덕여왕 선수치게요 ㅋㅋ

  3. 오타지적 2009.08.01 1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문단

    수렴청청 -> 수렴청정

  4. BlogIcon 아이러니♡ 2009.08.01 1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역사글이라 읽는 도중에 포기했어요 ㅠ.ㅠ
    역사를 이렇게 잘 아는 갓쉰동님이 부럽네요 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08.01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무 어렵게 썼나 봅니당. 쉽게 쓸려고 노력했는뎅. 많은 사람들이 기존 알고 있는 내용을 첨가해 가면서리..

  5. ^^ 2009.08.01 1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 생각은 화랑세기 자체가 일제시대 때 박모씨에 의해 만들어진 판타지인만큼
    선덕여왕도 그냥 판타지라고 생각하고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냥 판타지라고 쳐도
    그 역사적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주인장님의 열정에는 감탄할 수 밖에 없군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01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박모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당.. 아마도 위작이라는 설이 대두되고, 위작으로 확인된다면, 지금까지 박모씨를 인용한 사람은 둘째치고, 인용하지 않았지만 영향을 받으며 논문을 쓴 사람들의 충격은 대단할 것 같습니다.

      물론, 소설가들은 박모씨 유족들간에 저작권 싸움에서 백전백패 할 것이구요..

  6.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1 1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로마시대 신들의 혼맥은 저리가라군요.
    무척 복잡합니다 ㅎㅎㅎ
    성골과 진골 구분에서 한참 봤습니다.
    제가 아는 역사와 차이가 나서 ㅎㅎㅎ
    열정에 감사드리며
    오늘도 많이 공부하고 갑니다.
    8월 한달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01 1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신들이 하는 일은 용서가 된다는 듯이 말이지요..

      성골/진골은 너무나 고착화 되어서 깨지기 힘들겁니다.. 저하나 발버둥 친다고 해서리..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성골은 없거든요.. 김부식도 성골이 있다고 하지않았어요.. 인용만 했징..

  7. 김윤중 2009.08.01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원하게 읽고 갑니다..감사합니다

  8. 남당 2009.08.01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당 박창화가 남긴 문서는 화랑세기 외에도 수십권이 더 있죠. 그중에는 아예 시조 이래의 혈통과 계보만을 상세히 기록한 상장돈장 같은 족보문서도 있구요....대원신통의 조상인 보미궁주는 미사흔을 탈출시키고 신라로 귀화해온 야국(다파나국)의 공주였지요. 성골이란 말은 아마도 후세(고려?)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일듯...소위 태조 왕건의 조상으로 등장하는 성골장군이나 당 황제(숙종?)등의 전설과도 맥이 닿아있는 후대의 허구겠죠.

  9. BlogIcon 유머조아 2009.08.01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흐아.. 가계도 보니 왠지 현기증이...

  10. BlogIcon elly 2009.08.02 0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당 박창화의 문서 중 신라사초를 읽다보면 그 윗대에, 미실이나 선덕여왕 혹은 지소태후보다 훨씬 더 쟁쟁했던 여인들이 나옵니다. 미실이나 선덕여왕은 생각치도 못한 권력을 가진 여인들이었지요. 그 여인들의 모든 것은 유교적 관점에 입각되어 많이 삭제된것 같아요. 대원신통의 조상이 보미공주라면, 진골정통의 조상은 소문국(지금의 의성에 있었다 신라에 흡수된 국가) 묘덕왕의 딸인 운모입니다. 운모의 자식인 옥모로 시작해서 지소태후로, 마야로 그리고 선덕여왕으로 이어진거죠. ^^

    또 우리가 몰랐던게 골품을 수여받는다라는건데요. 화랑세기를 읽든 신라사초를 읽든 어느 정도 나라에 큰 업적을 세우면 골품을 수여받더라구요. 그러니 진골 성골이란 것도 맞는 표현이 아닐 수도 있고, 사회의 계급자체가 인도의 계급처럼 고착되어 상하로의 통행이 안되는게 아니라 덜 고착되어있다고도 볼 수 있더라구요.

    신라의 복잡한 가계도지만 왜 이렇게 끌리는지 모르겠어요..ㅠ

    • BlogIcon 갓쉰동 2009.08.02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끌리는 무언가가 있는건 사실 저도 끌리고 있거든요.. 잼있고, 잼있고, 그렇더라구요.. 발상의 전환도 되고.. 파급력은 역대 최고가 아닐까 합니다.. ㅋㅋ

  11. min 2009.08.05 1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옥진이 대원신통이고 지소가 진골정통아닌가요?

  12. BlogIcon gadgeteer 2009.08.06 2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정말 글 잘 일고 갑니다. 소설 읽는것 처럼 재미있었고 단백했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13.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09.23 18: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삼 선덕여왕 재방송을 보다가 접속했습니다.
    미실의 실존에 대해 찾다보니 갓쉰동님의 블로그로 와 졌네요.

    참 복잡한 족보입니다.
    모두가 엮여져 있으니 - ;;

  14. 은 루히 2009.11.25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렇게 복잡해서야 원 -_-;;
    그냥 혈통에는 얽매이지 않는게 좋겠군요;

  15. 루미네요~ 2009.12.08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쓴분의 글을 읽고 나니 지금의 조선시대 유교사상으로 인해 여성의 지위가 낮아진것이 안타깝게 느껴지네요~~

  16. BlogIcon winter jacket coat 2011.11.16 2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고 나니 지금의 조선시대 유교사

  17. BlogIcon Trey 2011.11.21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게시물을 읽고이 게시물을 많은 유용한 정보를 가지고. 그것은 매우 유익한 물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여기 와서 싶습니다. 게시 이런 종류의 계속해야합니다.

  1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글에서 덕만이 왕위에 쉽게 오를 수 있는 배경으로 덕만 선대에 있었던, 지소, 금진, 사도, 미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지소는 법흥의 딸이고, 법흥의 동생인 입종에 시집을 간다. 법흥이 죽고 나자, 7살의 어린 진흥(심맥종)이 왕위에 오르지만, 실질적인 전권을 행사하고,수렴청정을 하는 지소(법흥/보도)라고 했었다.

또한, 지소에게는 입종말고도, 진흥왕비인 사도의 아버지인 영실을 두번째 남편으로 두고 있었다. 이런 기록들은 현존하고 있는 <화랑세기>의 기록들의 단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미실의 선대 여인에 대한 이야기기들이 빠져있다. 미실이 존재하게 된 이유는 지소와 옥진, 금진이 있었기 때문에 미실이 살아갈 수 있었고, 국정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법흥왕(514~540) 말년부터 진평왕(579~632) 초기 10 여년 동안은 여인들이 신라를 지배하고 있었던 듯하다. 햇수로 대략 70~80년이 된다. 그러니 신라의 발전기에 해당하는 기간인  법흥왕 후반기~ 진평왕 초기까지 모두가 여인천하 아래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009년 현재 해방 65년이 지났지만, 일제 강점기 1910~1945년 까지 36년만으로도, 일제의 잔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덕만이 왕위에 오른다는 행위는, 현재로 보아서는 삼국에는 없는 여왕이 등극하다니? 하는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는 파천황적인 상황이지만, 화랑세기로 본다면, 당시 신라사회에서는 당연시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일본서기에 의하면 이미 당시 왜에서는 여왕천하에 있었다. 신라의 이웃 국가인 왜의 첫 여왕인 추고여왕(593~628), 제명.황극(641~645, 655~661) 사례도 있으니 충분히 고려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실을 있게 한 지소는 누구이며, 지소의 남자들은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전글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를 송고하면서 <지소의 남자>들을 개괄적인 다이어그램으로 보여 주었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사람과 사람이 얽키고 설켜 있어서 이들 간에 관계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계보도 또한 복잡하고, 결혼 상대자도 수시로 바뀌어, 남자나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 이를 추적한다는 것이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신들의 혼맥 보다도복잡하다. 그래서 이를 도표나 계보도를 만들어 놓고, 읽지 않는다면, 가계, 혼맥, 인맥, 남.여상열지사 조차 따라가다 보면 흐름을 놓치기 일 수 이다.

더 나아가 화랑세기는 화랑의 전기라고는 하지만, 수 없이 많이 등장하는 여성들로 인해서 지소전기, 금진전기, 사도전기, 미실전기 처럼 여인열전이 되버린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가계도를 정리 할 때, 남성중심의 부계 가계도, 족보을 작성한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남성중심의 가계도를 작성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여성중심의 가계도를 작성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오죽하면 화랑세기에서 조차도 <대원신통>, <진골정통> 등 여성의 신통과 인통을 중요하게 서술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진평왕과 마야의 맏딸인 <덕만>이 다른 누구보다 앞서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올랐는지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덕만이 오르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해서, 신라를 여인천하로 만든 시발점인 지소태후를 추적할 필요성이 있게 되었다.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글은 맛보기 정도 였다.

이전 글에서 여성 중심으로 그림을 작성하니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막연히 지소의 남자들이 많았구나. 미실도 팜브파탈이라고 하는데, 지소는 미실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부족함이 없구나 할 것이다. 그래서 여성 중심의 가계도를 작성하는 시발점의 맛보기 였고, 첫 여성계보도의 주자로 지소를 선택하게 된것이다.

크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그림을 보면 어떤가? 지소태후의 남자들이 너무나도 많지 않은가? 일국의 왕이나 했음직한 행동이다. 

화랑세기에서 지소를 빼 놓고는 연결이 되는게 하나도 없다. 부계로 찾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인맥과 혼맥과 이유들이 지소를 통해서 개안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소 중심인 모계도를 작성해 보니, 그전까지 단순히 덕만과 유신이 만호 할머니의 자식들이구나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덕만도, 유신도 지소의 후손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화랑세기가 복잡하면서도 재미가 솔솔하다.

실은 예전에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인물 각각의 성별, 생/몰, 부/모, 남편/부인, 관련 남.여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을 기록해 보관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다 완성하지는 못했고, 중간에 데이타가 다 지워져 버렸다. 처음 화랑세기의 인맥을 데이타베이스로 구축하고, 화랑세기를 분석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화랑세기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 였다. 결론을 약간 흘리자면 '현존 화랑세기는 너무나 정교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정도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미싱링크를 절묘하게 믹스해 놓은 거라고 할 정도였다.

어찌되었던, 여러가지 일 때문에 자연히 관심이 화랑세기에서 멀어졌고, 드라마 선덕여왕이 하기전까지 까막게 화랑세기를 추적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드라마 선덕여왕은 나의 기억 심연속에 숨어있던 역사에 대한 열정을 끄집어 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mbc 선덕여왕 제작팀에게 감사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 .

이번 글도 이전의 덕만의 공주시절부터 있었던, 에피소드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하나하나 추적하고, 덕만이 어린시절 왕에 오를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증명하는 시리즈 글이였듯이,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지소를 시작으로 옥진, 금진, 미실 등 여성중심의 계보도 시리즈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전 덕만 시리즈 글을 본사람은 느끼겠지만, 덕만을 추적할때 화랑세기를 인용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유는?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아직까지 역사적인 산물인 김대문의 기록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 것이 통설이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판하거나 할때는 화랑세기와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인용해서 비판을  했었다. 이유는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원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랑세기 원전을 들어서 소설 선덕여왕이 왜곡하고 있는 팩트를 지적했던 것이다.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원전으로 삼지 않았다면, 절대로 화랑세기를 인용하여,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판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는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판하는게 아니였다. 드라마의 원전인 소설 선덕여왕을 비판하는 것이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역사왜곡은 둘째치고라도 재미가 솔솔하다. 좀더 좋은 소설이나 원전을 가지고, 드라마 사극을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글에서는 전편에 이어서 지소 중심 계보도만을 게시하는 것으로 끝을 맺을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글이 너무 늘어지게 되고, 한두시간을 읽어도 모자라는 글이 되기 때문이다. 읽는데 한두시간이면 쓰는데 몇시간이 걸리겠는가? 그러니 당연히 시리즈 글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단 지소의 남편인 입종을 기준으로 계보도를 작성한 것이다. 입종의 기준으로 하면, 지소는 입종의 많은 여인중에 한사람이 된다. 그중 입종과 지소 사이에 진흥(540~576)이 태어난 것 처럼 보인다. 중심은 입종이 되는것이다. 그런데 입종이 중심이 아니고 지소가 중심에 서 있고, 단순히 지소가 여러 남자중 작은아버지 입종을 남편으로 선택한 것 처럼 보인다.


만호(지소/이화랑)는 동륜(진흥/사도)와 결혼해서 진평왕과 그 형제들을 낳았다. 입종과 옥진 사이에 태어난 숙흘종(입종/옥진)과 관계를 맺어, 만명(숙흘종/만호)를 낳았다. 이 만명이 서현과 사랑에 빠져 만노군으로 도피행각을 벌여 유신을 낳은 것이다.
 
전편에 지소의 남자로 입종과 금진 사이에 난 숙흘종과 관계를 맺어 만호를 낳았다고 하였지만, 이는 인맥을 잘못 살핀 것이다. 화랑세기는 삐끗 잘못하면, 삼천포로 빠져 버린다. 지소가 위화랑의 아들인 이화랑(위화랑/준실)과 관계를 맺어 숙흘종을 낳은 것이다.

어찌되었던 남성 중심의 입종이 아닌 여성인 지소를 기준으로 혼맥과 가계도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지소의남편들과 후손들 이미지 크릭시 원본을 볼 수 있음


지소의 10명의 남자 중에서 입종, 이사부, 구진, 영실, 이화랑에게서 후손을 본다.

입종, 이사부 

작은 아버지 입종(지증/연제)에게서는 진흥왕이 태어 났다. 

이사부 사이에는 미실의 남편인 세종과 진흥왕의 첫번째 정비인 숙명을 낳는다. 숙명은 처음 진흥왕에 시집을 갔지만, '어머니가 같은 형제가 된다'하여 진흥왕(지소/입종)이 멀리 하고, 숙명 또한, 진흥과 같은 이유로 진흥을 좋아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하여 숙태자를 낳았다. 숙명은 어머니 지소의 정부인 이화랑과 사랑에 빠져서 도피행각을 벌리고, 원광법사와 12세 풍월주인 보리를 낳는다. 이들의 형태가 서현과 만명의 사랑의 도피를 보는것 같지 않는가? 어찌되었던 보리는 화랑세기를 지은 김대문의 할아버지이다.


영실

아버지 법흥에 의해서 강제적인 결혼을 하였다.
영실과는 송화와 황화를 낳는데, 송화는 복승과 결혼해 진평왕의 비인 마야를 낳는다. 그들의 후손으로 화랑세기는 천명,덕만, 천화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천화가 서동의 아내인 선화의 냄새가 난다.
 

결국 덕만의 계보는 지소/영실->송화/복승-->마야/진평-> 천명, 덕만, 천화이 된다.
부계로는 지소/입종->진흥/사도 ->동륜/만호->진평/마야->덕만 이 된다.
결국 덕만은 모계로 지소에 통하고, 부계로도 지소와 연결이 된다.

영실은 지소 말고도 여러 아내가 있었는데, 그 중에 옥진이 있었다, 옥진은 1세 풍월주인 위화랑(섬신/벽아)의 딸이고, 사다함의 어머니인 금진의 언니가 된다. 영실/옥진은 사도, 노리부, 흥도, 묘도를 낳는다.

사도(영실/옥진)는, 숙명(이사부/지소)이 지소의 정부인 이화랑(위화랑/준실)과 사랑에 빠져 폐위된 이후 진흥비가 되어 동륜, 금륜(진지), 아양을 낳는다. 아양은 유신의 할아버지인 무력과 결혼하여 서현을 낳는다.

영실과 옥진 사이에 난 흥도는 기오(홍기/선혜)와 결혼해서 금륜(진지)비가 되는 지도를 낳는다. 지도는 금륜사이에 용수와 용춘 형제를 낳고, 진지왕이 죽은 후 진흥/월화 사이에서 난 천주공과 결혼한 후, 16세 보종(설원랑/미실)에 이어 17세 풍월주인 염장, 천장을 낳는다.

이화랑

이화랑과 사이에는 만호를 낳는데. 만호를 자신의 손자인 금륜(진흥/사도)에 시집보낸다.
만호는 지소의 남편의 소생인 숙흘종(입종/금진)과 정을 통하고 만명을 낳는다. 만명은 유신의 아버지인 서현에게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린후 만노군에서 유신을 낳는다. 서현의 어머니인 아양은 (진흥/사도)사이에 태어났다.
그러니 사다함은 모계쪽으로 보면 유신과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위화랑/오도 - >금진/입종->숙흘종/만호(지소/이화랑) -> 만명/서현 -> 유신
부계로는 무력/아양(진흥/사도)->서현/만명[숙흘종(입종/금진)/만호(지소/이화랑)] - >유신

또한, 유신은 지소의 중첩된 직계 후손인 것이다.
지소/입종->진흥/사도->아양/무력->서현/만명[숙흘종(입종/금진)/만호(지소/이화랑)]->만명->유신
할머니 만호는 동륜과 결혼해서 진평의 형제들을 낳았다. 그러니 진평왕과 만명은 동복남매간이 된다.

구진

구진은 지소의 침소를 지키는 자였는데, 지소와 관계를 가져 보명궁주를 낳는다. 보명궁주는 별궁에 살았는데, 진평왕의 아버지인 동륜이 태자시절인 572년 미실의 꼬임에 빠져 보명궁의 담을 넘다가 개에게 물려 죽고 만다. 이때 미실은 문책을 받아 궁에서 쫓겨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용수.용춘과 미실 사이를 적대적인 관계로 설정하엿다. 진지왕 폐위시 미실(묘도/미진)과 진흥비인 사도(영실/옥진)의  용수. 용춘의 아버지가 폐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수.용춘은 그 이후에도 왕실에서 중용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춘추가 진골이기 때문에 왕위를 잇는데 힘들었다고 하지만, 용수.용춘이 중용되는 것으로 봐서 신분상에 별다른 하자가 없는 것 같다. 또한, 위에서 진지비인 지도(홍도/기오)가 진지(금륜)이 죽은 후에서 천주공에 시집을 가고, 17세 풍월주인 염장을 낳는 것으로 봤을때 신분상 제약은 없었던 것으로 비쳐진다. 

어찌 되었던 법흥왕 말년부터 덕만에 이르기까지 지소의 후손이 아니면 힘을 쓸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옥진의 후손은 진흥비 사도(옥진/영실)과 지도[흥도(옥진/영실)/기오]가 된다. 

지소의 몸에서 난 숙명(지소/이사부)를 진흥(지소/입종)과 결혼시키고, 어쩔수 없자, 자신의 남편인 영실의 자식인 사도(영실/옥진)을 진흥비에 올린다. 아마도 숙명이 도망간 것은 지소로써는 의도하지 않았던 중대 사건이 아니였을가 한다. 그래서 이에 만족하지 않고, 만호(지소/이화랑)를 자신의 손자인 동륜(진흥/사도)와 결혼을 시키고 있다. 

화랑세기가 말한다. 진골, 성골은 없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영실을 남편으로 두고 있던, 지소 맥과 옥진 맥 간에 대결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화랑세기는 옥진 계열을 대원신통이라하고, 지소 계열을 진골정통이라고 하고 있다. 


(c) 영구아트

화랑세기를 엮어서 성골/진골은 모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부류 들이 있다. 또한, 대원신통은 성골이라하고, 진골정통은 진골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화랑세기를 재대로 읽는다면, 화랑세기에서 진골정통은 현재(김대문 시기)의 진골과 다르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 진골/성골를 구분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실제로 화랑세기 내에 진골은 진저리나게 많이 나오지만, 성골이라는 단 한글자도 없다. 사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읽어도 성골이란 단어는 두군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2,000년 대에 벌어지는 성골/진골 논쟁을 1,300년전 김대문이 화랑세기를 쓰면서 예측이라도 한것 같지 않는가? 


용수.용춘의 처인 천명의 모계는 마야이다. 마야(송화/복승)는 지소의 맥을 이은 송화(지소/영실)의 자식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진골정통이 되는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 진지(금륜)이 폐위되어 성골에서 진골로 족강되었다는 용수.용춘은 진골정통인 천명으로 인해서 복원되어 성골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최소한 그의 자식인 춘추라도 말이다.

진지왕의 비인 지도(옥진/영실->홍도/기오)는 옥진의 맥을 이은 대원신통이다. 그렇다면 용수.용추는 아버지 진지(금륜)의 폐위로 족강되었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게 된다. 용수.용춘은 자신의 아비가 왕이던 아니던 상관없이 폐위에 의한 족강여부에 상관없이 어머니인 지도에 의해서 처음부터 대원신통인것이다.  

또한, 진흥비 사도(옥진/영실)는 옥진의 후손이다. 그렇다면 진흥의 자식들은 이미 태어나자 마자 대원신통으로 결정된다는 이야기 이다. 결국에는 진흥왕의 아들인 동륜, 금륜이 진골이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진골보다 성스런 성골을 그렇게 함부로 내동댕이 칠 수 있는 것 인가? 그런데 아무도 동륜의 아들인 진평은 진골이라고 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이유야 있다. 진골정통인 지소의 딸인 만호(지소/이화랑)가 동륜에 시집을 감으로써 피 씻김을 했다는 것이다. 무슨 진골보다 성스럽고, 알찬성골이 자신들의 잘못된 논리에 의해서 이리 저리 이동을 하던가?

김유신을 대입하면 어찌될까? 김유신은 만명의 자식이다. 만명은 만호의 자식이다. 만호는 지소의 자식이다. 지소는 진골정통이다. 그러므로 김유신은 지소의 맥을 이은 진골정통이 된다. 그럼으로 김유신은 성골이다. 김춘추가 왕위에 오를때 성골이 없어서 진골인 김춘추가 올랐다고 하지만, 성골은 김유신도 있고, 그외 너무나도 많은 성골들이 보인다.


성골과 진골은 그냥 왕가에 편입되면 왕실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왕의 계승권은 전왕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 뿐이고, 없으면, 가까운 왕실사람부터  먼 왕실의 자손이라도 끌어와 왕위에 앉히는 것이다. 어느시대나 어느나라나 일반적인 형태에 불과하다. 신라라고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왕녀에 의해서 진골,성골이 결정된단 말인가? 그냥 진골이 성골이고, 성골이 진골인 것이다.  


어찌되었던 지소의 남편과 지소의 후손들을 지소중심의 모계 혼맥.가계도로 정리를 하였다. 위의 그림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신라 중기 법흥왕 말기과 진흥왕 초기 시기는 남자왕이 아닌 지소여왕의 시대 같아 보이지 않는가? 

지소태후 남편과 자손들 혼맥.계보 만을 올리고, 끝내려고 했는데, 여전히 글이 길어져 버렸다.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임현철 2009.08.01 0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활기차고 알찬 8월 되시길...

  2. BlogIcon 미케미케 2009.08.01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성가계도 보다가 쥐쥐 쳤어요. 넘 어려워여 ㅠ
    저에게도 선덕여왕 정보를 몰래(?) 월욜날 선덕여왕 선수치게요 ㅋㅋ

  3. 오타지적 2009.08.01 1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문단

    수렴청청 -> 수렴청정

  4. BlogIcon 아이러니♡ 2009.08.01 1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역사글이라 읽는 도중에 포기했어요 ㅠ.ㅠ
    역사를 이렇게 잘 아는 갓쉰동님이 부럽네요 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08.01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무 어렵게 썼나 봅니당. 쉽게 쓸려고 노력했는뎅. 많은 사람들이 기존 알고 있는 내용을 첨가해 가면서리..

  5. ^^ 2009.08.01 1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 생각은 화랑세기 자체가 일제시대 때 박모씨에 의해 만들어진 판타지인만큼
    선덕여왕도 그냥 판타지라고 생각하고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냥 판타지라고 쳐도
    그 역사적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주인장님의 열정에는 감탄할 수 밖에 없군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01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박모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당.. 아마도 위작이라는 설이 대두되고, 위작으로 확인된다면, 지금까지 박모씨를 인용한 사람은 둘째치고, 인용하지 않았지만 영향을 받으며 논문을 쓴 사람들의 충격은 대단할 것 같습니다.

      물론, 소설가들은 박모씨 유족들간에 저작권 싸움에서 백전백패 할 것이구요..

  6.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1 1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로마시대 신들의 혼맥은 저리가라군요.
    무척 복잡합니다 ㅎㅎㅎ
    성골과 진골 구분에서 한참 봤습니다.
    제가 아는 역사와 차이가 나서 ㅎㅎㅎ
    열정에 감사드리며
    오늘도 많이 공부하고 갑니다.
    8월 한달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01 1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신들이 하는 일은 용서가 된다는 듯이 말이지요..

      성골/진골은 너무나 고착화 되어서 깨지기 힘들겁니다.. 저하나 발버둥 친다고 해서리..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성골은 없거든요.. 김부식도 성골이 있다고 하지않았어요.. 인용만 했징..

  7. 김윤중 2009.08.01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원하게 읽고 갑니다..감사합니다

  8. 남당 2009.08.01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당 박창화가 남긴 문서는 화랑세기 외에도 수십권이 더 있죠. 그중에는 아예 시조 이래의 혈통과 계보만을 상세히 기록한 상장돈장 같은 족보문서도 있구요....대원신통의 조상인 보미궁주는 미사흔을 탈출시키고 신라로 귀화해온 야국(다파나국)의 공주였지요. 성골이란 말은 아마도 후세(고려?)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일듯...소위 태조 왕건의 조상으로 등장하는 성골장군이나 당 황제(숙종?)등의 전설과도 맥이 닿아있는 후대의 허구겠죠.

  9. BlogIcon 유머조아 2009.08.01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흐아.. 가계도 보니 왠지 현기증이...

  10. BlogIcon elly 2009.08.02 0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당 박창화의 문서 중 신라사초를 읽다보면 그 윗대에, 미실이나 선덕여왕 혹은 지소태후보다 훨씬 더 쟁쟁했던 여인들이 나옵니다. 미실이나 선덕여왕은 생각치도 못한 권력을 가진 여인들이었지요. 그 여인들의 모든 것은 유교적 관점에 입각되어 많이 삭제된것 같아요. 대원신통의 조상이 보미공주라면, 진골정통의 조상은 소문국(지금의 의성에 있었다 신라에 흡수된 국가) 묘덕왕의 딸인 운모입니다. 운모의 자식인 옥모로 시작해서 지소태후로, 마야로 그리고 선덕여왕으로 이어진거죠. ^^

    또 우리가 몰랐던게 골품을 수여받는다라는건데요. 화랑세기를 읽든 신라사초를 읽든 어느 정도 나라에 큰 업적을 세우면 골품을 수여받더라구요. 그러니 진골 성골이란 것도 맞는 표현이 아닐 수도 있고, 사회의 계급자체가 인도의 계급처럼 고착되어 상하로의 통행이 안되는게 아니라 덜 고착되어있다고도 볼 수 있더라구요.

    신라의 복잡한 가계도지만 왜 이렇게 끌리는지 모르겠어요..ㅠ

    • BlogIcon 갓쉰동 2009.08.02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끌리는 무언가가 있는건 사실 저도 끌리고 있거든요.. 잼있고, 잼있고, 그렇더라구요.. 발상의 전환도 되고.. 파급력은 역대 최고가 아닐까 합니다.. ㅋㅋ

  11. min 2009.08.05 1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옥진이 대원신통이고 지소가 진골정통아닌가요?

  12. BlogIcon gadgeteer 2009.08.06 2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정말 글 잘 일고 갑니다. 소설 읽는것 처럼 재미있었고 단백했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13.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09.23 18: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삼 선덕여왕 재방송을 보다가 접속했습니다.
    미실의 실존에 대해 찾다보니 갓쉰동님의 블로그로 와 졌네요.

    참 복잡한 족보입니다.
    모두가 엮여져 있으니 - ;;

  14. 은 루히 2009.11.25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렇게 복잡해서야 원 -_-;;
    그냥 혈통에는 얽매이지 않는게 좋겠군요;

  15. 루미네요~ 2009.12.08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쓴분의 글을 읽고 나니 지금의 조선시대 유교사상으로 인해 여성의 지위가 낮아진것이 안타깝게 느껴지네요~~

  16. BlogIcon winter jacket coat 2011.11.16 2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고 나니 지금의 조선시대 유교사

  17. BlogIcon Trey 2011.11.21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게시물을 읽고이 게시물을 많은 유용한 정보를 가지고. 그것은 매우 유익한 물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여기 와서 싶습니다. 게시 이런 종류의 계속해야합니다.

  1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이전버튼 1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
갓쉰동
10-18 07:17
Yesterday23
Today4
Total977,383

글 보관함

최근에 올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