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최근 KBS1로 바뀐  미수다(미녀들의 수다)에서 초복 날을 맞이해서 각국의 보양식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중국의 경우는 양뇌를 먹는다고 하고, 홍콩에서는 개구리를 사브사브 식으로 먹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사슴고기를 먹고 다양한 보양식 문화를 소개시켜주고 있다.

또한, 한국의 복날(초복,중복,말복) 보양식뿐만 아니고 일반적으로 먹는 보양식에 대해서 삼계탕과 개고기를 맛나게 먹는 서양인을 조명시키므로 해서 개고기는 한국의 식문화이고 실제 외국인도 개고기를 먹어본다면 맛있을 것이라는 쪽으로 진행을 하였다. 서양인들이 뽑은 한국의 3대 보양식으로는 삼계탕, 김치, 비빔밥이라는 정보도 제공하였다.

이는 각국의 식문화를 간섭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과도 같은 것이다. 여기까지는 일반론적인 접근이니 별다른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중국 산동성에서 양고기 뇌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할때 한국의 출연자들의 반응이다. 어떻게 양의 뇌를 먹을까하는 찡그리는 장면을 목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열심히 개고기는 동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식문화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양고기나 개구리 사브사브, 캐냐의 악어고기에서 야만시하는 것은 처음 미수다에서 의도한 방향이 아닌 것이다.

미수다에 출연한 출연자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음식에 대한 이중성과 편협함이 미수다를 통해서 노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의 식문화를 존중받으려면 남의 식문화도 존중해주어야 한다. 고기에는 등급이 없다.


사실 지구 환경을 헤치고, 자연을 헤치는  대표적인  식문화는 집단 사육을  해서 쇠고기를 먹는 문화이다. 쇠고기 1kg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타고기의 생산과는 현격한 차이로 과도한 에너지를 낭비되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야만적이라고 꼭집어 말한다면 현재 자연을 파괴하면서 쇠고기를 먹는 문화이다.

어쨌든, 같은 국가내에서도 지방마다 개인마다 각각의 식문화는 다르다. 보양식으로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슴고기를 먹는사람, 뱀을 먹는 사람, 토끼고기를 먹는사람, 삼계탕을 먹는 사람, 오리고기를 먹는사람, 지렁이, 굼뱅이, 잉어, 뀌뚜라미, 미꾸라지  등 다양한 먹거리가 존재한다. 그 나라나 토양과 산물과 종교에 따라 먹는 문화가 결정되는 것 뿐이다.

최근 개고기에 대해서 가장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프랑스에 대해서 니들도 1800년대까지만 해도 개고기 엄청 먹었거든이라고 지적하는 책도 출판된적이 있다. 사실 프랑스인의 다수가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야만시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한국인 뿐만 아니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을 넘어서 한국의 보양식 문화의 대표적인 개고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개를 좋아한 한민족


개와 인간의 근친도는 다른 어떠한 동물의 근친도 보다는 가깝다고 합니다. 최근 발굴된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개의 근원은 북동아시아에서 수십만년전 어린 늑대를 키우면서 부터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가졌겠다. 생각합니다. (이것은 단지 개의 관점이 아닌 인간의 관점입니다)

그 늑대에서 파생된 개가 서로 인간에 의해서 길들여 지고 하는 과정에서 수 없이 교합되고 파생되는 과정을 걸쳐서 수천종의 개로 진화 되거나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진화?되어 왔습니다. 저는 진화 되었다고 보는 입장이 아니고 늑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본능을 잃어 버렸으니 퇴화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모양과 성향이 만들어 졌다고 봐야겠지요. 그래서 개가 개답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역사적으로 개를 좋아라 하는 민족이 있습니다. 그것이 공교롭게도 한민족이라고 합니다. 한민족의 범위를 규정하는것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이는 여기서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여의 관제에 보면 개를 관직명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우리 놀이문화였던 윷놀이에도 개가 들어갑니다. 일설에는 윷놀이가 부여의 관직명을 딴 놀이라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김수로 세운 국가는 가야이다. 가야의 연원은 구야에서 찾는다. 구야에서 구(狗)는 말 그대로 개를 말한다.  개를 가이, 개아지, 강아지, 가아지 라고 하는 것을 보면 가야라는 나라들도 국가명을 개를 위주로해서 국가명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극히 드문 사람중에 하나입니다. 실지로 가야에서 신라에 개를 공급하기 했다고 합니다.

그 개가 지금은 얼마 남아 있지 않는 귀신을 쫓는 다는 삽살개 라는 이들도 있습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의 한국의 3세기의 가야지역에 있는 국가 명을 살펴 보면 구야한국, 개야국 등 개를 표현하는 국가명칭을 사용하기도 하니 <개나라>라고 할만 할것 같습니다.

진평왕의 아버지 동륜은 개에게 죽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기본 텍스트가 되고 있는 화랑세기에도 개가 등장합니다. 진평왕의 아버지는 동륜태자인데, 미실궁주의 꾐에 빠져 동륜태자가 보명궁주를 어찌해볼 요량으로 보명궁으로  찾아갑니다. 그런데 보명궁에 살던 개한테 물려 죽고 맙니다.

아마도 신라왕실이나 귀족들이  귀신을 쫓는 개라고 길렀다는 삽삽개이거나 지금은 꼬리가 없어 재수없다고 천시를 받다 멸종위기에 있는 동견, 경주견,땡견,동동개,동개 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개을 먹는 행위는 야만이다

 개를 먹는 행위는 "야만이다"라고 하는데 일부 동의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문화생활이 미숙한 야만이지 개를 먹는 행위자체는 아니지 않을까 합니다. 야만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고 문화마다 다릅니다.

문화는 야만이다 원시라고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습니다. 한쪽의 일방의 이런 주장은 문화에 대한 몰이해로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데서 불거진 것이고, 타문화를 야만시하는 것 자체가 미숙한 문화인식이지 않을까합니다. 저의 생각은 개는 개답게 살권리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많습니다.

 개를 먹는 이유있는 식문화

대체적으로 개고기를 먹는 지역을 살펴보면 중국의 만주지역,남부지역, 한반도, 베트남 등 쌀을 재배하는 농경지역이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뭄이와 먹거리가 떨어진 때에 농사를 지어야 하는 소를 잡아 먹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반대로 목축을 하는 지역에서 남아도는 소나 양을 먹으면 되었으니 가축을 돌보는 개를 잡아 먹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농경문화에는 소가 수십명의 몫을 일꾼역할을 하고 목축문화에서는 개가 수십명의 몫을 하는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개고길 먹는데 보양식이 되었을까하는 건데 춘궁기나 가뭄이나 흉년에 개를 먹어 보니 회복이 빠르다는 것을 먹어서 몸으로 체득한것이겠지요. 산삼을 먹을수도 없고, 밥도 못먹는 그런상황에서 값비싼 것을 사먹을 수도 없는 사람들이 먹었으니 "쌍놈문화"인것은 확실할것 같아요.

다른 것을 사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는 가난한 자들의 식문화이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식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배척되야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극히 일부 양반을 빼고는 개고기로 충족해야만 했으닌 까요. 인간은 감정의 동물인데 자기들이 키우고 먹이고 했던 개나 기타 소나 닭이나 양 등 동물을 잡아 먹는 행위를 할때 과연 마음이 그리 좋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극히 일부의 몬도가네주의자들을 빼곤 말입니다.

 복날에 가장 많이 먹는 먹거리가 개, 양, 닭, 오리,미꾸라지(추어) 였다고 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부족한 단백질공급원이기도 하지만. 체내의 흡수율이 가장 빠른 오메가3로 알려진 불포화지방산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얼마나 흡수력이 빠르면 먹고 난 후 바로 코나 얼굴에 개기름이 낀다고하겠습니까?

어찌되었던 지방이 많으면 인간이 비만이 되지만 불포화 지방산은 인간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요소이지만,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지방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외부에서 공급을 해야한다는 것이지요.

불포화지방산을 평상시에는 식물로부터 공급했지만 먹거리가 떨어지는 여름 한낮의 뙤약볕에는 공급할 것이 개고기나 기타 여러동물 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아마도 가장 배고플때는 개도 먹일것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식문화로 정착이 되었겠지요.

정형외과의사들이 수술한 환자들에게 권하는 것이 개고기, 우족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원기를 회복하는데는 개만한것이 없다는 반증입니다. 2개의 심장을 가졌다는 맨체스터 박지성의 응원가가 오죽하면 개고기송이겠습니까? 개고기를 먹어서 잘뛴다는 생각을 서양인들도 은연중에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요. 박지성은 개고기를 먹지만 첼시 니들은 쥐고기도 먹잖아라는 첼시비아냥 응원곡이지만 말이다.

이것도 못살던 시대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이야기 입니다. 지금은 과도한 영양공급으로 인해 개고기를 먹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것이 누천년동안 입으로 맛으로 전해져 내려온것은 어쩔수가 없습니다. 인정하고 말아야지요. 지금은 오히려 과도한 단백질과 지방의 섭취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비만형으로 바뀌고, 다이어트를 해야할 정도인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재밌는 사실은 보신용으로 알려진 음식 모두가 흡수률이 좋은  불포화지방산이 많고, 고유의 비릿한 노린내가 난다는 겁니다.

 어찌 되었던, 아버지 세대에는 먹었지만, 제 주위만 보더라도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 없습니다. 차츰 그 식문화가 줄어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고 개고기 먹는것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것 또한 사실이 아닐까합니다. 채식을 하자는 문화로 넘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지방과 단백질과 탄수화물, 섬유질 등 한국의 식패턴이 세계인들이 추구해야할 가장 이상적인 식습관을 보였다는 외국의 보고도 있더군요. 하지만, 그안에 개고기는 없습니다. 그냥 예전의 못사는 흔적일 뿐이지요. 그것을 아프게 받아 들일 필요는 있을것 같아요. 

현재의 산업화된 개고기가 예전의 개고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위생적이고 약물로 찌든 개는 더이상 고기로써 가치가 없겠지요. 항생제 등 약범벅 소고기/닭고기/돼지고기를 먹을 사람이 없듯이 개고기(단고기)를 먹을 사람이나 먹지 않을 사람을 위해서 법으로 제도화해서 관리통제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본성을 찾은 호주견 딩고


이 단f락 이후를 쓰기 위해서 위의 잡설을 늘어 놓았습니다. 그럼 개답다는 것은 어떤것일까요? 옛 초원을 누비며 자연을 자유롭게 살아가면서 야성을 회복하는 것이 아닐까요? 개의 목에 목줄을 메고, 개를 기르기 위해서 목젖을 따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고, 보기싫다고 거세를 하고, 땀샘이 없는 개에게 귀찮은 옷을 입히고, 개의 털을 인간의 욕심에 의해서 자르고, 보기 좋으라고 개털이 수북한 종자로 개량(?)하고,  인간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똥개훈련을 시키듯 꼬리를 흔들게 하는것이 개다운 것일까요? 
.

호주가 유럽인에 의해서 발견된 후  양과 소를 방목하면서 양과 개를 돌보는 목동 개들를 같이 사육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부의 개가 인간을 통제와 관리 보호? 속에서 벗어나 야성의 본능을 찾아 들개로 복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인간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오수견이 개가 아니라 호주의 딩고라 불리는 들개가 진정 개다운 것일 겁니다.

인간에 의해서 품종개량이 되는 것을  배제한 호주의 본성을 찾은 딩고처럼 개의 원시성을 회복되는 것이 참다운 개다운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자연으로 돌아간 개가 개다운 것이 아닐까..

개고기 먹는 것을 매도하는 것도 반대하지만, 개고기를 찬양하는 것도 반대합니다. 또한, 개에 대한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몬도가네식 개를 먹는 사람이나 개를 개답게 하지 않고 애완견를 사랑하다고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합니다. 너도 개고기를 찬양한것 아닌가? 물어본다면 그동안의 역사와 있는 사실을 일부러 감정과 감성을 배제하고 무미건조하게 나열했을 뿐입니다. 

개를 애완견으로 또는 반려동물로 가족으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인간보다 더 인간대접을 받고, 일부는 가족처럼 인간에게 너무나 가까이 와버린 개를 놓아 준다는 주장은 현재로서는 개고기를 먹지말자, 먹자라는 주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무책임할것 같기는 하지만. 정말 개를 위한다면, 인간의 의지와 통제와 관리와 보호로 부터 벗어나 개가 개다울 수 있도록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일겁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인간으로 부터 버려진 유기견들이 자연으로 돌아가 치열한 삶을 이여가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 본능을 찾아가는 개는 더이상 개라고 불리지 않겠지요? 늑대개가 될려나요?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0.07.19 0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zzzz 2010.07.19 1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형적인 예수쟁이들의 주장일 뿐.....

  3. d1 2010.07.19 1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용카드결제자금대출

    대상고객 : 신용카드 단기연체 고객 및 카드결제 대금이 부족하신 고객님

    대출한도 : 100만원 - 5,000만원(신용도에 따라 차등적용)

    대출금리 : 최저 연 12%~(실적 및 신용도에 따라 차등적용)

    상환방법 : 자유상환/만기일시상한/ 원리금 균등분할 거치식상환.

    대출기간 : 3개월 ~ 24개월

    대출신청 : http://hploan.co1.kr <- 여기에서 신청하세요

  4.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5. BlogIcon view here 2012.07.14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 발기자들이 은퇴여부를 집요하게 묻는 데에 대한 답변으로 이뤄졌을 겁니다. 일단, 대한민국의 발기자들의 승리로 보입니다.

  6. BlogIcon Angelo 2012.09.23 2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랑프리 시리즈에 참여할 수 있는 쿼터는 3장이 있고, 그중에서 김연

  7. BlogIcon military meals free veterans day 2012.11.01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이 마흔일곱의 나이에 등극했다고 기록하고 있네요. 젊은 나이에 성조황고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

  8. BlogIcon invisible fence wire depth 2012.11.06 1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맛나게 먹는 서양인을 조명시키므로 해서 개고기는 한국의 식문화이고 실제

  9. BlogIcon ready store coupon code 2012 2012.12.10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막연한 올림픽 참피언이, 우리 자식도 투자를 하면 김연아처럼 할수 있을 것 같았지만, 하면 할수록 김연아의 존재가 다가갈수 없는 넘사벽의 존재라는 것을 실감한것이다. 이런 피겨맘이 많아진다면 피겨는 다시 암흑기로 접어들지 모른다.

  10. BlogIcon rechargeable shock collars for dogs 2012.12.22 1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어난 칠숙과 석품의 난으로 바꾸어 버렸다. 극중에서 16년의 세월을 압축해서 같은 해에 일어난 일로 극화해버린

  11. BlogIcon how do i purify water with bleach 2013.01.02 1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까지는 일반론적인 접근이니 별다른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조방은 수로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고, 흉노의 김일제 제천금인의 후손으로 정견의 아들이라고 이비가에게 알려주며 금인을 보여준다.

이비가는 금인을 보고 제천금인의 표식임을 알아본다.

조방의 수로를 자신의 아들로 만든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한다. 조방이나 이비가가 어떻게 제천금인의 표식을 알아 볼 수 있을까?


이비가는 제천금인의 표식을 알아 볼 수 있다.

정견부인은 자신의 몸에 제천금인을 상징하는 문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방은 어떻게 알아보게 되었을까? 정견부인의 몸을 살펴보기라도 한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조방은 제천금인들과 이전에 관련이 있었던 것일까? 삼한의 끝트머리에서 제천금인의 표식을 알아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수로에서 나오지 않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비가는 소도에 들어가 왜? 예언의 북극성을 상징하는 제천금인 정견부인을 통해서 이진아시를 주고, 수로를 주었는지 하늘이 원통하다

수로는 쇠부리 가마에서 수로에게 나 조방의 꿈은 썩지않고, 휘지않고, 부러지지 않는 강철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 수로 너는 꿈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 수로는 자신의 꿈도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꿈과 같다고 이야기를 한다.

수로의 대답에 흡족한 조방은 훌륭한 강철검은 쇠를 두드리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며 시범을 보인다. 그러면서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하게 될지 모르는 유언과 같은 말을 한다. 장인에게 야철기술은 목숨과도 같다. 그러니 누구에게도 함부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야철 기술은 수로 너를 살릴수도 있고 죽일수도 있다. 그러니 너를 살릴 수 있을 때만 비밀을 말하라고 한다.


이비가는 바다가 보이는 고인돌에서 수로를 보고 고인돌에 새겨진 글귀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어본다. 수로는 북극성의 아들이 배를 띄울 것이라고 말을 해준다. 이비가는 어찌알게 되었는지를 물어본다.


수로는 여의일로 소도에 들어갔을 때 금알이 빛나며 글귀가 보이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비가는 하늘의 뜻이 이진아시에 있지 않고 수로에 있다는 것을 알게되지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부정하려 한다.



정견은 천군을 왕에 세우고 이진아시를 구야국의 왕으로 만들 생각에 한나라의 사신을 영접하고 한나라의 비단속에 몰래 구야국의 환두대도를 넣어놓는다. 한나라 사신은 구야국의 환두대도는 국보급이라고 이야길 한다. 구야국의 철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리고 자신들과 거래를 하고 싶다면 천군과 정견을 후견해야 한다는 은연중의 청탁이다.


이비가는 정견에게 어릴적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하고 떠본다. 하지만 정견은 배가 난파되어 어른들도 살지 못했는데 어찌 피덩이 아이가 살아 있을 수 있겠는가? 반문하며 이제 그 아이에 대한 생각은 잊어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진아시를 구야국의 왕자로 만들것이니 지켜봐 달라고 한다.

한편, 석탈해는 조방이 준 서류를 가지고 공부(쇠가마)를 만들지만, 변변히 실패하고 만다.  석탈해는 쇠를 만드는 방법을 알기위해서 쇠부리 가마를 찾아들어간다. 그러나 조방에 들키고 만다.

탈해는 왜 다른 사람에게는 쉬이 가르쳐 주는 야철기술을 자신에게는 알려주지 않는지 물어보지만, 조방은 석탈해의 눈에 쇠가 있기 때문에 안된다고 말을 한다. 쇠는 사람에 따라 좋을 일에도 쓰이지만 전쟁의 무기로도 쓰인다고 말한다.  탈해가 미래에 수로와 대립하고, 사로국에 건너가 가야와 대립하는 것을 예지하는 것이다.


한나라의 국신사가 국서를 가지고 김해항에 도착한다. 한나라의 국신사를 영접한 구야국에는 왕이 없다고 하지만, 일개 촌장에게 전하의 친서를 보여주겠는가 말한다. 그래서 천군이 이비가에 친서를 전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귀간은 천군은 일개 제사장에 불과한 사람에게 친서를 전할 수 있겠는가? 말한다.

한나라 사신은 구야국에서 신망이 있는 천군이 친서를 받는게 맞다고 한다.

정견은 이비가에게 낙랑국의 친서를 천군이 받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9간들은 내분이 분분하다. 아도간은 신귀간에게 일단 사신을 대하는 예가 아니고 만약 사신을 잘못접대한다면 낙랑국과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일단 친서를 천군이 받도로 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신귀간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안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천군과 구간들이 함께 있는 곳에서 사신이 낙랑국의 친서를 대독하게 한다.


신귀간은 염사치에게 현재 상황에서 천군이 구야국의 왕으로 공인되는 것이 아닌가 불안해 한다. 이에 염사치는 당할 수 없으니 반격을 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시전에서 쇠부리 가마를 만든다는 소문을 퍼트린다.

정견은 신귀간이 야철장을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조방에서 야철장의 관할 전권을 자신이 관장하겠다고 말한다.  신귀간과 염사치의 꾀에 조방은 위기를 맞는다.


탈해는 아진의선에게 쇠를 얻고 천하를 얻고자 한다고 한다. 쇠를 얻지 못한다면 낙랑이나 고구려에 들어가서라도 배우겠다고 말한다. 탈해의 위험한 행동에 아진의선은 조방과 비슷한 야철장이 백제의 새금터(해남)에 있다고 말한다.

정녕 배우고자 한다면 일서를 찾아보도록 한다.  탈해는 여러날을 헤매다 일서를 찾는다. 탈해는 일서가 조방을 두려워 한다는 사실을 알고 투쟁심을 자극한다. 구야국을 향해 소피도 보지 않는다는 일서에게 구야국의 생각이 가득하니 구야국을 잊지 못한것이 아닌가 하면서 조방을 극복하려면 구야국에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사실 구야국을 잊었다면 구야국의 방향도 잊어야 한다. 그런데 일서는 잊었다는 구야국의 방향을 알고 그 방향을 피해서 오줌을 눈다는 것은 그만큼 구야국에 대한 생각이 평상시에도 있었다는 뜻이다.


신귀간의 꿈은 구야국을 넘어 변한을 통합하고 삼한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염사치는 고조선의 옛땅도 차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귀간과 염사치는 일서 장인이 돌와왔으니 구야국은 신귀간에 돌아올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일서는 천신이 점지하는 자만이 쇠를 구할수 있다고 말한다. 

조방은 일서에게 구야국의 대 단야장을 맡아 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일서는 조방에서 스승인 너의 아버지와 똑같은 짓을 대를 이어서 나에게 욕을 보이듯이 다시 하는 구나 라고 말한다. 너희 아버지는 나 일서를 단지 자신의 아들 조방을 담금질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방은 일서의 생각은 오해라고 하며 일서에게 남겼다는 아버지의 유서를 내 놓는다. 하지만 해가 가고 날이 간후 지금에 와서 유언이 무슨상관이 있는가 현재 지금이 중요하고 너 조방에서 너보다 더 뛰어난 단야장이 될것이라고 말한다.

새롭게 투입된 일서와 조방과 신귀간과 탈해와 어떠한 대립을 할까 궁금해진다. 아마도 탈해랑 사로국(신라)로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지만, 일서로 등장한 조상구는 대부분 배역이 임팩트있는 역할로 잠시 등장하고 사라지는 역할이 많은 관계로 어찌될지는 알 수 없다.


MBC 사극 김수로는 첫회 9.8%의 시청율을 시작으로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이전 선덕여왕이나 동이에 비해서 인기가 없다. 그래서인지 정견모주 배역인 배종옥은 시청율 보다는 퀄리티를 강조하기도 했다.

어쨌든 김수로가 시청율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철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도 있지만, 선덕여왕이나 동이처럼 한 주 동안 끌고갈 에피소드가 없다. 선덕여왕이나 동이는 최소 2회에 걸처 에피소드를 만들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밀도(?)있게 그려 나간다. 그리고 다음 에피소드로 건너뛴다.


동이 또한, 선덕여왕처럼 게임의 아이템을 얻어서 성장을 해가듯이 득템을 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리고 새로운 문제를 주고 해결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그러니 같은 드라마를 보는 것 같지만 매회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매회 집중하지 않는다면 에피소드를 이해할 수 없다. 물론, 몇회를 잊는다고 해도 전체 진행에는 지장이 없다. 큰그림속에 에피소드이기 때문이다.

김수로는 단지 쇠부리 이야기만이 긴 호흡으로 그려지고 있고, 겉다리로 수로의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정견의 표독스러운 이야기만 있다. 사극 김수로는 한회를 빼먹는다고 전체이야기를 모르지 않는다. 이미 알려진 자를 주인공으로 할 경우 매회 에피소드가 필요하다. 그래야 눈을 때지 않고 몰입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수로는 매회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아역배우들의 부족한 활약이다. 주인공인 수로나 이진아시와 석탈해의 아역은 보는것 만으로도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단지 순장을 당하는 여의만이 돋보였을 뿐이다. 주인공 아역이 강한 인상을 주면 성인역에 부담감을 주기도 한다.

선덕여왕에서 아역들의 활약 때문에 선덕여왕의 덕만과 천명이 한동안 드라마에 몰입하지 못한 것처럼 동이 또한 아역 천동이 때문에 성인 동이와 괴리감을 보이기 까지 한것 아닌가? 하고 성인 배역의 연기력 논란까지 나오기는 하지만, 일단, 임팩트 있는 아역들의 활약이 없으면, 극에 몰입할 수 없고, 초반 인기몰이를 할 수 없고, 매니아 층을 확보할 수 없다.


가장 커다란 김수로의 문제는 트랜드의 부재이다. 요즘 사극의 트랜드는 여성의 배역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추노>처럼 여성을 위한 드라마와 남성팬을 끌기위한 무협 강조이다. 물론, 김수로에서 정견이 등장해서 좌충우돌 하고 있지만, 이와 대립하는 배역이 없다.

석탈해의 어머니인 아진의선 만이 조금 부각될 뿐이다. 수로의 어머니인 조방의 처의 역할이 없다. 오죽하면 수로의 어미인데도 이름도 없다. 그냥 조방의처다. 정견이 수로를 핍박하면 당연히 수로의 어머니 조방처와 대립과 갈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수로의 등장인물에서 보듯이 조방은 있는데 조방 처의 역할은 없다. 오히려 소도를 지키는 신녀의 역할이 더 부각되기도 했다.


선덕여왕이나 동이, 추노의 경우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 등장 인물이 주인공처럼 그려서 임팩트 있게 등장한다. 추후 병풍이 되는 배역이 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김수로에는 모든 인물이 평면적이고 특별하게 신귀간 태강만이 입체적이다.

또하나, 요즘 사극의 트랜드인 역사극을 만들지만, 철저하게 역사와 무관한 사극이 대세이다. 선덕여왕도 마찬가지이고 동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김수로는 트랜드를 무시하고 역사적인 사실과 연결하려는 시도를 하였지만, 역사와 부합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역사왜곡문제에 자유롭지 못한다.


예를 들어 김수로가 왕이 되기 전에 <김해항, 김해관>에서 김해라는 지명이 있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다. 김해라는 지명은 532년 신라에 복속되고 금관군, 금관소경으로 불리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지명이다.

관련기사
2010/06/08 - [역사이야기] - 동이, 선덕여왕 데자뷰가 있다
2010/06/07 - [역사이야기] - 정견부인 아들 수로 몰라볼 수 있을까?
2010/06/06 - [역사이야기] - 여의의 죽음 김수로는 순장를 안했을까?
2010/06/02 - [역사이야기] - 동이 등 사극 칼 들고다닐까? 차고다닐까? 사실은
2010/05/31 - [역사이야기] - 김수로 순장 방해했을까? 사실은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0.06.14 0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마른장닥 2010.06.14 0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깊이 있는 분석이네요. 정말 대단하심.^^

  3. BlogIcon pennpenn 2010.06.14 0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그런 점이 있군요~

  4. BlogIcon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5.31 18: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김수로에서는 어린 김수로가 따돌림을 받았거나 놀림감이 되었다는 장치 조차 없었다.

조방은 수로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고, 흉노의 김일제 제천금인의 후손으로 정견의 아들이라고 이비가에게 알려주며 금인을 보여준다.

이비가는 금인을 보고 제천금인의 표식임을 알아본다.

조방의 수로를 자신의 아들로 만든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한다. 조방이나 이비가가 어떻게 제천금인의 표식을 알아 볼 수 있을까?


이비가는 제천금인의 표식을 알아 볼 수 있다.

정견부인은 자신의 몸에 제천금인을 상징하는 문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방은 어떻게 알아보게 되었을까? 정견부인의 몸을 살펴보기라도 한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조방은 제천금인들과 이전에 관련이 있었던 것일까? 삼한의 끝트머리에서 제천금인의 표식을 알아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수로에서 나오지 않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비가는 소도에 들어가 왜? 예언의 북극성을 상징하는 제천금인 정견부인을 통해서 이진아시를 주고, 수로를 주었는지 하늘이 원통하다

수로는 쇠부리 가마에서 수로에게 나 조방의 꿈은 썩지않고, 휘지않고, 부러지지 않는 강철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 수로 너는 꿈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 수로는 자신의 꿈도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꿈과 같다고 이야기를 한다.

수로의 대답에 흡족한 조방은 훌륭한 강철검은 쇠를 두드리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며 시범을 보인다. 그러면서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하게 될지 모르는 유언과 같은 말을 한다. 장인에게 야철기술은 목숨과도 같다. 그러니 누구에게도 함부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야철 기술은 수로 너를 살릴수도 있고 죽일수도 있다. 그러니 너를 살릴 수 있을 때만 비밀을 말하라고 한다.


이비가는 바다가 보이는 고인돌에서 수로를 보고 고인돌에 새겨진 글귀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어본다. 수로는 북극성의 아들이 배를 띄울 것이라고 말을 해준다. 이비가는 어찌알게 되었는지를 물어본다.


수로는 여의일로 소도에 들어갔을 때 금알이 빛나며 글귀가 보이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비가는 하늘의 뜻이 이진아시에 있지 않고 수로에 있다는 것을 알게되지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부정하려 한다.



정견은 천군을 왕에 세우고 이진아시를 구야국의 왕으로 만들 생각에 한나라의 사신을 영접하고 한나라의 비단속에 몰래 구야국의 환두대도를 넣어놓는다. 한나라 사신은 구야국의 환두대도는 국보급이라고 이야길 한다. 구야국의 철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리고 자신들과 거래를 하고 싶다면 천군과 정견을 후견해야 한다는 은연중의 청탁이다.


이비가는 정견에게 어릴적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하고 떠본다. 하지만 정견은 배가 난파되어 어른들도 살지 못했는데 어찌 피덩이 아이가 살아 있을 수 있겠는가? 반문하며 이제 그 아이에 대한 생각은 잊어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진아시를 구야국의 왕자로 만들것이니 지켜봐 달라고 한다.

한편, 석탈해는 조방이 준 서류를 가지고 공부(쇠가마)를 만들지만, 변변히 실패하고 만다.  석탈해는 쇠를 만드는 방법을 알기위해서 쇠부리 가마를 찾아들어간다. 그러나 조방에 들키고 만다.

탈해는 왜 다른 사람에게는 쉬이 가르쳐 주는 야철기술을 자신에게는 알려주지 않는지 물어보지만, 조방은 석탈해의 눈에 쇠가 있기 때문에 안된다고 말을 한다. 쇠는 사람에 따라 좋을 일에도 쓰이지만 전쟁의 무기로도 쓰인다고 말한다.  탈해가 미래에 수로와 대립하고, 사로국에 건너가 가야와 대립하는 것을 예지하는 것이다.


한나라의 국신사가 국서를 가지고 김해항에 도착한다. 한나라의 국신사를 영접한 구야국에는 왕이 없다고 하지만, 일개 촌장에게 전하의 친서를 보여주겠는가 말한다. 그래서 천군이 이비가에 친서를 전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귀간은 천군은 일개 제사장에 불과한 사람에게 친서를 전할 수 있겠는가? 말한다.

한나라 사신은 구야국에서 신망이 있는 천군이 친서를 받는게 맞다고 한다.

정견은 이비가에게 낙랑국의 친서를 천군이 받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9간들은 내분이 분분하다. 아도간은 신귀간에게 일단 사신을 대하는 예가 아니고 만약 사신을 잘못접대한다면 낙랑국과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일단 친서를 천군이 받도로 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신귀간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안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천군과 구간들이 함께 있는 곳에서 사신이 낙랑국의 친서를 대독하게 한다.


신귀간은 염사치에게 현재 상황에서 천군이 구야국의 왕으로 공인되는 것이 아닌가 불안해 한다. 이에 염사치는 당할 수 없으니 반격을 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시전에서 쇠부리 가마를 만든다는 소문을 퍼트린다.

정견은 신귀간이 야철장을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조방에서 야철장의 관할 전권을 자신이 관장하겠다고 말한다.  신귀간과 염사치의 꾀에 조방은 위기를 맞는다.


탈해는 아진의선에게 쇠를 얻고 천하를 얻고자 한다고 한다. 쇠를 얻지 못한다면 낙랑이나 고구려에 들어가서라도 배우겠다고 말한다. 탈해의 위험한 행동에 아진의선은 조방과 비슷한 야철장이 백제의 새금터(해남)에 있다고 말한다.

정녕 배우고자 한다면 일서를 찾아보도록 한다.  탈해는 여러날을 헤매다 일서를 찾는다. 탈해는 일서가 조방을 두려워 한다는 사실을 알고 투쟁심을 자극한다. 구야국을 향해 소피도 보지 않는다는 일서에게 구야국의 생각이 가득하니 구야국을 잊지 못한것이 아닌가 하면서 조방을 극복하려면 구야국에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사실 구야국을 잊었다면 구야국의 방향도 잊어야 한다. 그런데 일서는 잊었다는 구야국의 방향을 알고 그 방향을 피해서 오줌을 눈다는 것은 그만큼 구야국에 대한 생각이 평상시에도 있었다는 뜻이다.


신귀간의 꿈은 구야국을 넘어 변한을 통합하고 삼한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염사치는 고조선의 옛땅도 차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귀간과 염사치는 일서 장인이 돌와왔으니 구야국은 신귀간에 돌아올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일서는 천신이 점지하는 자만이 쇠를 구할수 있다고 말한다. 

조방은 일서에게 구야국의 대 단야장을 맡아 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일서는 조방에서 스승인 너의 아버지와 똑같은 짓을 대를 이어서 나에게 욕을 보이듯이 다시 하는 구나 라고 말한다. 너희 아버지는 나 일서를 단지 자신의 아들 조방을 담금질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방은 일서의 생각은 오해라고 하며 일서에게 남겼다는 아버지의 유서를 내 놓는다. 하지만 해가 가고 날이 간후 지금에 와서 유언이 무슨상관이 있는가 현재 지금이 중요하고 너 조방에서 너보다 더 뛰어난 단야장이 될것이라고 말한다.

새롭게 투입된 일서와 조방과 신귀간과 탈해와 어떠한 대립을 할까 궁금해진다. 아마도 탈해랑 사로국(신라)로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지만, 일서로 등장한 조상구는 대부분 배역이 임팩트있는 역할로 잠시 등장하고 사라지는 역할이 많은 관계로 어찌될지는 알 수 없다.


MBC 사극 김수로는 첫회 9.8%의 시청율을 시작으로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이전 선덕여왕이나 동이에 비해서 인기가 없다. 그래서인지 정견모주 배역인 배종옥은 시청율 보다는 퀄리티를 강조하기도 했다.

어쨌든 김수로가 시청율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철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도 있지만, 선덕여왕이나 동이처럼 한 주 동안 끌고갈 에피소드가 없다. 선덕여왕이나 동이는 최소 2회에 걸처 에피소드를 만들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밀도(?)있게 그려 나간다. 그리고 다음 에피소드로 건너뛴다.


동이 또한, 선덕여왕처럼 게임의 아이템을 얻어서 성장을 해가듯이 득템을 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리고 새로운 문제를 주고 해결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그러니 같은 드라마를 보는 것 같지만 매회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매회 집중하지 않는다면 에피소드를 이해할 수 없다. 물론, 몇회를 잊는다고 해도 전체 진행에는 지장이 없다. 큰그림속에 에피소드이기 때문이다.

김수로는 단지 쇠부리 이야기만이 긴 호흡으로 그려지고 있고, 겉다리로 수로의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정견의 표독스러운 이야기만 있다. 사극 김수로는 한회를 빼먹는다고 전체이야기를 모르지 않는다. 이미 알려진 자를 주인공으로 할 경우 매회 에피소드가 필요하다. 그래야 눈을 때지 않고 몰입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수로는 매회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아역배우들의 부족한 활약이다. 주인공인 수로나 이진아시와 석탈해의 아역은 보는것 만으로도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단지 순장을 당하는 여의만이 돋보였을 뿐이다. 주인공 아역이 강한 인상을 주면 성인역에 부담감을 주기도 한다.

선덕여왕에서 아역들의 활약 때문에 선덕여왕의 덕만과 천명이 한동안 드라마에 몰입하지 못한 것처럼 동이 또한 아역 천동이 때문에 성인 동이와 괴리감을 보이기 까지 한것 아닌가? 하고 성인 배역의 연기력 논란까지 나오기는 하지만, 일단, 임팩트 있는 아역들의 활약이 없으면, 극에 몰입할 수 없고, 초반 인기몰이를 할 수 없고, 매니아 층을 확보할 수 없다.


가장 커다란 김수로의 문제는 트랜드의 부재이다. 요즘 사극의 트랜드는 여성의 배역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추노>처럼 여성을 위한 드라마와 남성팬을 끌기위한 무협 강조이다. 물론, 김수로에서 정견이 등장해서 좌충우돌 하고 있지만, 이와 대립하는 배역이 없다.

석탈해의 어머니인 아진의선 만이 조금 부각될 뿐이다. 수로의 어머니인 조방의 처의 역할이 없다. 오죽하면 수로의 어미인데도 이름도 없다. 그냥 조방의처다. 정견이 수로를 핍박하면 당연히 수로의 어머니 조방처와 대립과 갈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수로의 등장인물에서 보듯이 조방은 있는데 조방 처의 역할은 없다. 오히려 소도를 지키는 신녀의 역할이 더 부각되기도 했다.


선덕여왕이나 동이, 추노의 경우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 등장 인물이 주인공처럼 그려서 임팩트 있게 등장한다. 추후 병풍이 되는 배역이 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김수로에는 모든 인물이 평면적이고 특별하게 신귀간 태강만이 입체적이다.

또하나, 요즘 사극의 트랜드인 역사극을 만들지만, 철저하게 역사와 무관한 사극이 대세이다. 선덕여왕도 마찬가지이고 동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김수로는 트랜드를 무시하고 역사적인 사실과 연결하려는 시도를 하였지만, 역사와 부합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역사왜곡문제에 자유롭지 못한다.


예를 들어 김수로가 왕이 되기 전에 <김해항, 김해관>에서 김해라는 지명이 있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다. 김해라는 지명은 532년 신라에 복속되고 금관군, 금관소경으로 불리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지명이다.

관련기사
2010/06/08 - [역사이야기] - 동이, 선덕여왕 데자뷰가 있다
2010/06/07 - [역사이야기] - 정견부인 아들 수로 몰라볼 수 있을까?
2010/06/06 - [역사이야기] - 여의의 죽음 김수로는 순장를 안했을까?
2010/06/02 - [역사이야기] - 동이 등 사극 칼 들고다닐까? 차고다닐까? 사실은
2010/05/31 - [역사이야기] - 김수로 순장 방해했을까? 사실은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0.06.14 0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마른장닥 2010.06.14 0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깊이 있는 분석이네요. 정말 대단하심.^^

  3. BlogIcon pennpenn 2010.06.14 0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그런 점이 있군요~

  4. BlogIcon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5.31 18: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김수로에서는 어린 김수로가 따돌림을 받았거나 놀림감이 되었다는 장치 조차 없었다.

MBC 사극 동이에서 명성왕후가 독살에 의해서 죽었다.

이를 추적하던 인현왕후는 오히려 장희빈(이소연)과 장희재의 계략으로 오히려 명성왕후를 시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폐비가 되어 사가로 물러난다.

서종사관과 인현왕후는 동이에게 진실은 힘앞에 무력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진실은 언젠가는 다시 빛을 발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때를 기다리라고 이야기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대사에서 현실을 투영해 볼 것이다. 모든 권력은 한곳으로 몰려있다. 그러니 힘앞에 사간원이나 사헌부나 힘앞에 굴복하고 있다.

시정잡배들도 말을 하면 경을 칠것이니 말을 조심하라고 이야기를 한다. 말을 잘못하면 검찰이나 경찰에 불려가서 경을 칠지도 모른다. 그러니 모두 입을 봉해야 한다.

현실로 돌아와 보면 요즘 벌어지는 천안함 사건이나, 김제동의 공중파와 Mnet에서의 팽을 보면 쉬이 알 수 있다.

사극이 좋은 점은 이런 부조리함을 사극에서 등장하는 인물에 투영해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각자 느끼는 바는 다르게 다가오겠지만 말이다. 알고 보면 이런면에서 동이는 좌파 드라마 일뿐이다. 하지만, 더 자세히 들어다 보면 부조리함에 굴복하고 성공만 한다면 된다는 우파(?)의 드라마이다. 우파드라마 인 이유는 밑에 간략하게 기술 할 것이다. 우리는 부조리함에 분노를 하지만, 자신의 일이 아니면 방관하거나 자신에게 피해가 갈수 있다는 두려움에 입을 다물고 만다.

그리고 이렇게 자위를 한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한마디로 먹을수 없는 "저 포도는 너무 실거야" 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주며 합리화 하는 것이다. 스로로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반추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봉건시대엔 화무십일홍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아무리 화려한 붉은꽃도 10일을 넘기지 않는다고 말이다.


정승의 개가 죽으면 그 문상객이 성시를 이루고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은 파리를 날리는 이치와 같다.

동이는 희빈장씨에게 진실 앞에 용서를 구하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희빈 장씨는 동이에게 일갈한다. "용서는 힘없는 자가 힘있는 자에게 구하는 것이다". 그러니 동이 너는 나한테 고개를 숙여야 한다.


하지만, 동이 시대인 조선 숙종시기와 현재가 다른점은 권력의 유한성이다. 권력은 시간이 지나면 투표에 의해서 교체되고 심판받게 되어 있다. 민주주의의 강점은 투표에 있지만, 권리이자 의무인 투표를 하고 감시하고 견제 하지 않는다면 우민화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민주주의의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견제하지 않는 권력은 브레이크 없는 미친차에 불과하다.

어쨌든, 동이는 장희빈의 계략으로 궁정의 재정일반을 관할하는 내수사에 배속이 되지만, 내수사의 일지에 의해서 내수사의 비자금이 명성왕후의 독살에 쓰였다는 흔적을 발견하고 추적하게 된다.


그런데 명성왕후는 장희빈의 계략으로 독살이 되었을까? 그리고 이로 인해서 인현왕후는 누명을 쓰고 폐비가 되었을까? 이때 동이는 어떠한 역할을 하게 되었을까?


사실 동이는 드라마 동이에서 처럼 천가 동이가 아니고 최씨이며 인현왕후가 궁에 들어갈때 인현왕후를 따라 시종으로 들어갔다고 알려져 있다.

동이는 어릴적 아버지가 죽고, 동냥질을 하면서 연명하였지만, 인현왕후의 아비가 이를 가엽게 여겨 인현왕후의 말벗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 인현왕후가 1681년 궁궐에 들어간 후 따라서 궁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니 드라마 동이처럼 장희빈에 의해서 궁궐에서 입지를 만들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명성왕후는 1683년 겨울 12월에 숙종이 병이 들어 있을 때 숙종의 쾌차를 빌고자 기도를 드리는 와중에 병이 들어 병사를 하였다. 인현왕후가 폐서인 된 시기는 1689년 5월로 명성왕후의 죽음과는 전혀관계가 없다.

인현왕후의 폐비사건은 1688년 숙원이였던 장희빈(장옥정)이 숙종의 아들 균(후에 경종)을 낳고 왕세자 책봉사건에 서인과 남인의 싸움에 연류되어 남인에 의해서 폐서인 된 것이다. 그러니 드라마 동이처럼 장희빈의 계략도 없었고, 명성왕후의 죽음를 기회로 인현왕후가 폐서인되지도 않았다.

또한, 장옥정은 1683년 12월 42살로 명성왕후가 죽은후 자의대왕대비의 후원에 힘입어 궁으로 들어와 창경궁 취선당에 기거한다. 이때가 장옥정은 희빈이 되지 않았고 단지 숙원이 되었다.

장옥정이 명성왕후의 죽음에 관여할 여력이 없었다는 뜻이다. 단지 음모론적으로 사가로 쫓겨난 이후 명성왕후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음모를 꾸미지 않았을까 하는 드라마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볼만한 여지는 있지 않을까 한다.


이병훈 PD는 MBC 드라마 선덕여왕를 두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너무 많이 알면 오히려 드라마 제작에 제약이 될 때도 있다" 실존 역사와 허구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는 얘기였다.

그는 "미실과 선덕여왕이 살았던 시대는 분명히 다르고, 덕만 공주가 쌍둥이였다는 것도 역사적 허구"라며 "교육적 측면에선 안타까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병훈 사단의 문제점은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역사를 단지 장식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많다. 누구를 위한 재미인지는 모르지만, 재미를 위해서라면 역사는 시궁창에 넣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병훈이 드라마 선덕여왕을 두고 미실과 선덕여왕이 살던 시대는 다르고, 덕만 공주가 쌍둥이였다는 것도 역사적 허구여서 교육적 측면에서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하였다는 것은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관련기사
2010/05/31 - [역사이야기] - 김수로 순장 방해했을까? 사실은
2010/05/30 - [역사이야기] - 정체를 알 수 없는 사극 김수로에 김수로는 없었다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labyrint 2010.06.01 0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사극이 점점 역사를 무시하는 강도가 높아지는거 같아요.
    오랫만에 댓글과 트랙백 남기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2. 2010.06.01 0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10.06.01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최소한 팩트는 지켜주어야 하는뎅..
      아니면 팩트를 바꿀려면 그럴만한 이유(장치)를 만들던징..

  3. BlogIcon 빛날 휘 2010.06.01 0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지 않아도 뷰를 쓰는데 역사적 사실과 픽션인 드라마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는데
    깔끔하게 정리해주시니 앞으로도 좋은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을거 같아요~ ^^

    좋은 글 잘 보구 갑니다 ^^

  4. 동이는 2010.06.01 0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역사 왜곡 수준이죠.

  5. BlogIcon 감자꿈 2010.06.01 1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네요. 아이러니한 말씀은 안 하셨어야 했을 텐데요. ^^;;;

  6. BlueBetty 2010.06.01 1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보지도 않지만 가끔 채널을 고정시켜 보면 너무 재미에 치중해서 일본 만화같더군요. 선덕여왕도 그랬지만 동이도 '너무' 흥미진진해서 짜증나서 못 보겠더라구요. 출생의 비밀에, 악의 화신같은 악역에, 양념같은 조연에.. 제대로 된 역사로는 재미를 만들어낼 자신이 없는 감독 및 작가들의 창의력 부재겠지요. 표현의 자유와 왜곡은 엄연히 다른 것임을 좀 알았으면 하네요.

  7. BlogIcon 최칠수 2010.06.01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종사관의대사는 김제동에게 하고싶은 말이군여......

  8. BlogIcon 너돌양 2010.06.01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저 웃고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9. rmsk 2010.06.01 15: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주인공캐릭터가 매력없는 드라마는 패스.. -.-;

  10. BlogIcon tvian 2010.06.01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iMBC <동이>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에 해당 포스트가 소개되었습니다.^^
    http://www.imbc.com/broad/tv/drama/dongyi/tvfun/

  11. 마른 장작 2010.06.01 1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모른 채 사극을 보면 사극에서 그려지는 이야기가 진짜 역사인 착각할 수 있다는 면이 있죠. 이건 진짜 문제. 현명한 시청자의 시선이 필요.^^

  12. 레비 2010.06.01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현왕후와 명성왕후, 장희빈 세사람이 같이 궁궐에 있던 적은 없었죠. 장희빈은 숙종의 첫번째 부인인 인경왕후 죽기 전에 궐에서 쫓겨나 명성왕후가 죽고 후에 들어오는데 드라마가 이상해요. 어떻게 선덕여왕은 역사적 허구라면서 자기네꺼는 말도 안하는지. 신라시대때야 자료가 많지 않으니 그러려니 작가의 상상이 들어가려니 하겠지만 장희빈은 픽션을 쓰기엔. 옷만 보면 자꾸 이산이 떠올라요^^

  13. 휴... 2010.06.01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장금은 아직도 케이블에서 재방송 해줄때보면 여전히 무한한 감동이 느껴지고 눈물 흘렸던 장면에서 여전히 눈물이나는데 동이는 왜이리 완성도가 떨어지는 거죠? -_-
    색감 자체는 다채로와지고 화려해졌지만 지나치게 현대와 퓨전이 되어있는 듯 하고....
    인물들은 진지함 이면에 가벼운 일상이 아닌 처음부터 개그캐릭터로 사극을 시트콤화 시키는 인물이 과도하게 많은 것 같고....
    동이가 주인공이니 밝고 쾌활한 것 까진 좋으나 어떤때는 지나치게 발칙하고 비 상식적인 행동을 하질 않나.....
    여러모로 실망입니다. 허구로 할려면 기본틀은 따라가면서 가공의 에피소드들만 재밌게 추가하던가요. 허구도 좋으니 제대로 하란 말입니다.

  14. BlogIcon 블루라섹 2010.06.01 2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천★ ◈라식,라섹◈ 인천시력교정술1위 인천에 1대뿐인
    최신레이저장비 알레그레토 400Hz 블루
    10년 무사고!! 정확한검사!! 무통 10분이면 수술 끝!! ☆★현재 수술비 인하 이벤트중!!★☆
    ☞문의☞ www.goodeyelasik.co.kr

  15. 2010.06.01 2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이지만 드라마를 역사로 착각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일이죠.
    우선 인현왕후와 장희빈 둘 중 어느 한쪽이 선이고 악이라고 단정하고 싶지 않은 입장에서
    동이가 동동거리는거 부담스럽습니다.
    절대 선인양요.
    차라리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 살기 위햐서라고 하면 인간적으로 공감이 될거 같아요.
    이 드라마 설정 중에서 유일하게 맘에 드는 인물이 장희빈이었는데 망가져 갈듯하여 아깝네요.

MBC 사극 동이에서 명성왕후가 독살에 의해서 죽었다.

이를 추적하던 인현왕후는 오히려 장희빈(이소연)과 장희재의 계략으로 오히려 명성왕후를 시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폐비가 되어 사가로 물러난다.

서종사관과 인현왕후는 동이에게 진실은 힘앞에 무력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진실은 언젠가는 다시 빛을 발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때를 기다리라고 이야기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대사에서 현실을 투영해 볼 것이다. 모든 권력은 한곳으로 몰려있다. 그러니 힘앞에 사간원이나 사헌부나 힘앞에 굴복하고 있다.

시정잡배들도 말을 하면 경을 칠것이니 말을 조심하라고 이야기를 한다. 말을 잘못하면 검찰이나 경찰에 불려가서 경을 칠지도 모른다. 그러니 모두 입을 봉해야 한다.

현실로 돌아와 보면 요즘 벌어지는 천안함 사건이나, 김제동의 공중파와 Mnet에서의 팽을 보면 쉬이 알 수 있다.

사극이 좋은 점은 이런 부조리함을 사극에서 등장하는 인물에 투영해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각자 느끼는 바는 다르게 다가오겠지만 말이다. 알고 보면 이런면에서 동이는 좌파 드라마 일뿐이다. 하지만, 더 자세히 들어다 보면 부조리함에 굴복하고 성공만 한다면 된다는 우파(?)의 드라마이다. 우파드라마 인 이유는 밑에 간략하게 기술 할 것이다. 우리는 부조리함에 분노를 하지만, 자신의 일이 아니면 방관하거나 자신에게 피해가 갈수 있다는 두려움에 입을 다물고 만다.

그리고 이렇게 자위를 한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한마디로 먹을수 없는 "저 포도는 너무 실거야" 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주며 합리화 하는 것이다. 스로로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반추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봉건시대엔 화무십일홍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아무리 화려한 붉은꽃도 10일을 넘기지 않는다고 말이다.


정승의 개가 죽으면 그 문상객이 성시를 이루고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은 파리를 날리는 이치와 같다.

동이는 희빈장씨에게 진실 앞에 용서를 구하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희빈 장씨는 동이에게 일갈한다. "용서는 힘없는 자가 힘있는 자에게 구하는 것이다". 그러니 동이 너는 나한테 고개를 숙여야 한다.


하지만, 동이 시대인 조선 숙종시기와 현재가 다른점은 권력의 유한성이다. 권력은 시간이 지나면 투표에 의해서 교체되고 심판받게 되어 있다. 민주주의의 강점은 투표에 있지만, 권리이자 의무인 투표를 하고 감시하고 견제 하지 않는다면 우민화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민주주의의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견제하지 않는 권력은 브레이크 없는 미친차에 불과하다.

어쨌든, 동이는 장희빈의 계략으로 궁정의 재정일반을 관할하는 내수사에 배속이 되지만, 내수사의 일지에 의해서 내수사의 비자금이 명성왕후의 독살에 쓰였다는 흔적을 발견하고 추적하게 된다.


그런데 명성왕후는 장희빈의 계략으로 독살이 되었을까? 그리고 이로 인해서 인현왕후는 누명을 쓰고 폐비가 되었을까? 이때 동이는 어떠한 역할을 하게 되었을까?


사실 동이는 드라마 동이에서 처럼 천가 동이가 아니고 최씨이며 인현왕후가 궁에 들어갈때 인현왕후를 따라 시종으로 들어갔다고 알려져 있다.

동이는 어릴적 아버지가 죽고, 동냥질을 하면서 연명하였지만, 인현왕후의 아비가 이를 가엽게 여겨 인현왕후의 말벗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 인현왕후가 1681년 궁궐에 들어간 후 따라서 궁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니 드라마 동이처럼 장희빈에 의해서 궁궐에서 입지를 만들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명성왕후는 1683년 겨울 12월에 숙종이 병이 들어 있을 때 숙종의 쾌차를 빌고자 기도를 드리는 와중에 병이 들어 병사를 하였다. 인현왕후가 폐서인 된 시기는 1689년 5월로 명성왕후의 죽음과는 전혀관계가 없다.

인현왕후의 폐비사건은 1688년 숙원이였던 장희빈(장옥정)이 숙종의 아들 균(후에 경종)을 낳고 왕세자 책봉사건에 서인과 남인의 싸움에 연류되어 남인에 의해서 폐서인 된 것이다. 그러니 드라마 동이처럼 장희빈의 계략도 없었고, 명성왕후의 죽음를 기회로 인현왕후가 폐서인되지도 않았다.

또한, 장옥정은 1683년 12월 42살로 명성왕후가 죽은후 자의대왕대비의 후원에 힘입어 궁으로 들어와 창경궁 취선당에 기거한다. 이때가 장옥정은 희빈이 되지 않았고 단지 숙원이 되었다.

장옥정이 명성왕후의 죽음에 관여할 여력이 없었다는 뜻이다. 단지 음모론적으로 사가로 쫓겨난 이후 명성왕후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음모를 꾸미지 않았을까 하는 드라마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볼만한 여지는 있지 않을까 한다.


이병훈 PD는 MBC 드라마 선덕여왕를 두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너무 많이 알면 오히려 드라마 제작에 제약이 될 때도 있다" 실존 역사와 허구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는 얘기였다.

그는 "미실과 선덕여왕이 살았던 시대는 분명히 다르고, 덕만 공주가 쌍둥이였다는 것도 역사적 허구"라며 "교육적 측면에선 안타까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병훈 사단의 문제점은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역사를 단지 장식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많다. 누구를 위한 재미인지는 모르지만, 재미를 위해서라면 역사는 시궁창에 넣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병훈이 드라마 선덕여왕을 두고 미실과 선덕여왕이 살던 시대는 다르고, 덕만 공주가 쌍둥이였다는 것도 역사적 허구여서 교육적 측면에서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하였다는 것은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관련기사
2010/05/31 - [역사이야기] - 김수로 순장 방해했을까? 사실은
2010/05/30 - [역사이야기] - 정체를 알 수 없는 사극 김수로에 김수로는 없었다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labyrint 2010.06.01 0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사극이 점점 역사를 무시하는 강도가 높아지는거 같아요.
    오랫만에 댓글과 트랙백 남기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2. 2010.06.01 0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10.06.01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최소한 팩트는 지켜주어야 하는뎅..
      아니면 팩트를 바꿀려면 그럴만한 이유(장치)를 만들던징..

  3. BlogIcon 빛날 휘 2010.06.01 0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지 않아도 뷰를 쓰는데 역사적 사실과 픽션인 드라마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는데
    깔끔하게 정리해주시니 앞으로도 좋은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을거 같아요~ ^^

    좋은 글 잘 보구 갑니다 ^^

  4. 동이는 2010.06.01 0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역사 왜곡 수준이죠.

  5. BlogIcon 감자꿈 2010.06.01 1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네요. 아이러니한 말씀은 안 하셨어야 했을 텐데요. ^^;;;

  6. BlueBetty 2010.06.01 1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보지도 않지만 가끔 채널을 고정시켜 보면 너무 재미에 치중해서 일본 만화같더군요. 선덕여왕도 그랬지만 동이도 '너무' 흥미진진해서 짜증나서 못 보겠더라구요. 출생의 비밀에, 악의 화신같은 악역에, 양념같은 조연에.. 제대로 된 역사로는 재미를 만들어낼 자신이 없는 감독 및 작가들의 창의력 부재겠지요. 표현의 자유와 왜곡은 엄연히 다른 것임을 좀 알았으면 하네요.

  7. BlogIcon 최칠수 2010.06.01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종사관의대사는 김제동에게 하고싶은 말이군여......

  8. BlogIcon 너돌양 2010.06.01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저 웃고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9. rmsk 2010.06.01 15: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주인공캐릭터가 매력없는 드라마는 패스.. -.-;

  10. BlogIcon tvian 2010.06.01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iMBC <동이>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에 해당 포스트가 소개되었습니다.^^
    http://www.imbc.com/broad/tv/drama/dongyi/tvfun/

  11. 마른 장작 2010.06.01 1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모른 채 사극을 보면 사극에서 그려지는 이야기가 진짜 역사인 착각할 수 있다는 면이 있죠. 이건 진짜 문제. 현명한 시청자의 시선이 필요.^^

  12. 레비 2010.06.01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현왕후와 명성왕후, 장희빈 세사람이 같이 궁궐에 있던 적은 없었죠. 장희빈은 숙종의 첫번째 부인인 인경왕후 죽기 전에 궐에서 쫓겨나 명성왕후가 죽고 후에 들어오는데 드라마가 이상해요. 어떻게 선덕여왕은 역사적 허구라면서 자기네꺼는 말도 안하는지. 신라시대때야 자료가 많지 않으니 그러려니 작가의 상상이 들어가려니 하겠지만 장희빈은 픽션을 쓰기엔. 옷만 보면 자꾸 이산이 떠올라요^^

  13. 휴... 2010.06.01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장금은 아직도 케이블에서 재방송 해줄때보면 여전히 무한한 감동이 느껴지고 눈물 흘렸던 장면에서 여전히 눈물이나는데 동이는 왜이리 완성도가 떨어지는 거죠? -_-
    색감 자체는 다채로와지고 화려해졌지만 지나치게 현대와 퓨전이 되어있는 듯 하고....
    인물들은 진지함 이면에 가벼운 일상이 아닌 처음부터 개그캐릭터로 사극을 시트콤화 시키는 인물이 과도하게 많은 것 같고....
    동이가 주인공이니 밝고 쾌활한 것 까진 좋으나 어떤때는 지나치게 발칙하고 비 상식적인 행동을 하질 않나.....
    여러모로 실망입니다. 허구로 할려면 기본틀은 따라가면서 가공의 에피소드들만 재밌게 추가하던가요. 허구도 좋으니 제대로 하란 말입니다.

  14. BlogIcon 블루라섹 2010.06.01 2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천★ ◈라식,라섹◈ 인천시력교정술1위 인천에 1대뿐인
    최신레이저장비 알레그레토 400Hz 블루
    10년 무사고!! 정확한검사!! 무통 10분이면 수술 끝!! ☆★현재 수술비 인하 이벤트중!!★☆
    ☞문의☞ www.goodeyelasik.co.kr

  15. 2010.06.01 2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이지만 드라마를 역사로 착각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일이죠.
    우선 인현왕후와 장희빈 둘 중 어느 한쪽이 선이고 악이라고 단정하고 싶지 않은 입장에서
    동이가 동동거리는거 부담스럽습니다.
    절대 선인양요.
    차라리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 살기 위햐서라고 하면 인간적으로 공감이 될거 같아요.
    이 드라마 설정 중에서 유일하게 맘에 드는 인물이 장희빈이었는데 망가져 갈듯하여 아깝네요.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들은 덕만에 관한 기록이 없어서 글을 만들기 힘들다고 한다.

사실 선덕여왕 덕만처럼 삼국시대에 가장 많은 기록과 전승을 가지고 있는 왕도 드물다. 그런데 기록이 없어서 극을  만드는데 힘들다고 한다는 말은 별로 동의가 되지 않는다. 

기록이 소락 할수록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하기가 쉽다. 아주 작은 기록만 일치시키면 되고 재해석 하면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고 있노라면 드라마 작가나 제작자의 기획의도에서 사람을 얻어 천하를 얻는다고 하였지만, 드라마에서 덕만이 유신을 보고 많은 사람을 얻었지만 남은 자는 유신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선덕여왕이 얻은 인물은 김유신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선덕여왕은 아무것도 이룬것이 없다는 뜻이다.

물론, 잔챙이 수십명보다는 확실한 월척인 유신을 얻었다면 성공한 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드라마상 선덕여왕은 무능하고 우유부단함의 전형적인 모습니다. 기획의도와 정반대의 왕을 그리고 있다는 말이다. 죽도 밥도 아닌 드라마 선덕여왕이 된 이유야 미실를 주인공으로 그리려는 복선를 가지고 있고, 선호하지 않은 덕만을 드라마로 쓸려니 작가 스스로도 난감했을 수 있다.

더불어 드라마 뿐만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덕만을 무능한 왕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기록들을 분석해보면 덕만은 왕으로써 무능하지 않을 뿐더러 시호가 <선덕>일 만큼 선정을 베풀고 있다.


비담의 난에 가입하는 자들을 보면 주진과 미생과 보종과 하종과 호재와 필탄이 있다. 10화랑 중에서 4명이 반란에 투입되고 있다. 호재는 덕만의 외삼촌이 된다. 호재의 아버지는 복승공이 복승공의 딸인 마야가 덕만의 어머니이다. 그런데 호재는 비담의 난에 가입하는 것으로 나온다.

물론, 당시 비담의 난에 연루되어 죽은 자들은 30여명에 이른다. 그러니 화랑중에서 난에 가담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던, 덕만은 화랑의 수장인 천신황녀였으니 사람관리에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덕만은 드라마 선덕여왕 처럼 무능한 군주였을까? 삼국사기에 의하면 덕만은 <덕>은 있으나 힘이 없는 군주처럼 그려지기는 했고, 김부식은 덕만을 여자가 왕이 되어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당서를 인용해서 이세민이 신라에 여왕이 있으니 업신여김을 받으니 당나라 왕족으로 하여금 신라의 왕으로 삼는다면 군대를 보내 도와주고 안정이 된다면 그때 다시 신라에서 왕을 뽑는게 낫지 않겠는가?라는 신라를 업수히 여기는 말을 듣게 된다.


덕만이 무능하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확대시킨자는 삼국사기의 김부식이다. 김부식은 덕만을 여러가지로 평하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쉬이 알수 있다.

하지만 딴지맨 일연은 덕만이 무능하지 않고 오히려 유능하다는 식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삼국사기 기록만을 검토해본다고 해도 덕만은 무능하지 않고 선정과 외교적인 술수가 능한 군주임을 쉬일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덕만과 관련된 <지기삼사>중에서 <옥문곡>사건은 덕만의 예지능력보다는 신라 깊숙히 백제군이 들어오게 할 만큼 신라는 허약했으니 그는 신라에서 여왕이 있었기 때문에 이웃나라에 업수히 여김의 사례로 인용되기도 한다.

사실 삼국사기를 보고 있노라면 지명 비정에 오류가 많이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지명비정 오류도 있지만 후대에 오류도 많이 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옥문곡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독산성 또한 비슷한 사례이다. 삼국사기에는 독산성이 여러곳에 등장한다.


그렇다면 덕만이 무능해서 백제군이 신라 깊숙히 까지 들어와서 분탕질할 만큼이였는지 삼국사기의 <옥문곡>사건을 분석해보자.


636년 선덕왕 5년 여름 5월에 두꺼비가 궁궐 서쪽 옥문지(玉門池)에 많이 모였다. 왕이 이를 듣고 좌우에 말하였다.

"두꺼비는 성난 눈을 가지고 있으니 이는 병사의 모습이다. 내가 일찍이 듣건대, 서남쪽 변경에 이름이 옥문곡(玉門谷)이라는 땅이 있다고 하니 혹시 이웃나라 군사가 그 안에 숨어 들어온 것은 아닐까?"

이에 장군 알천(閼川)과 필탄(弼呑)에게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가서 찾아보게 하였다. 과연 백제 장군 우소(于召)가 독산성(獨山城)을 습격하려고 무장한 군사 500명을 이끌고 와서 그 곳에 숨어 있었으므로, 알천이 갑자기 쳐서 그들을 모두 죽였다.

여기서 주의 깊에 봐야 하는 대목은 덕만이 궁궐 서쪽 옥문지에 두꺼비가 모여서 울었는데, 서남쪽 변경에 이름이 <옥문곡>이라는 땅이 있으니 그곳에 이웃나라 군사들이 숨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덕만이 말한 옥문곡은 <서남쪽변경>에 있다는 말이다. 변경이란 국경지대를 말한다. 그러니 백제 별동대가 숨어있었다는 옥문곡은 신라 서라벌 중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지 않고, 저멀리 서남쪽 경계에 있다는 뜻이다.

이때의 서남쪽 경계는 어디였을까? 신라가 합천 대야성까지 서쪽변경을 침탈당한 때는 642년 7월이후가 된다. 642년 7월 고구려와 백제는 연합하여 당항성을 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때 신라는 당항성을 지키기 위해서 대당 외교를 강화하고 군대를 이동해서 경계를 한다.

하지만 백제는 당항성을 치기 보다는 경계가 허술해진 서쪽 변경 미후성으로 부터 40여개 성을 빼앗고, 642년 8월 같은해 경남 합천에 있는 대야성을 함락시킨다.


그러니 642년 8월 이전에 있었던 635년 지기삼사 옥문곡과 독산성은 대야성 서쪽과 미후성 서쪽 밖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그동안 통설로 알고 있었던 덕만이 왕이 되자 국력이 쇠하고, 이웃나라로 부터 업수히 여기고 신라 깊숙히 백제의 별동대가 들어올 정도로 국방력이 허술했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춘추가 처음 당항성으로 부터 들어올때 <금오산>에 유하다 대남보를 속이고 서나벌로 입성을 한다. 이때 금오산은 현재 구미와 김천 지역에 있는 금오산이 아닌 경주의 남산 아래쪽에 있는 <금오산>이였다.

그렇다면 왜 신라 궁성과 가까이까지 별동대가 들어올 정도로 신라가 허약했다는 말을 들어야 했을까? 그것은 단지 <독산성(獨山城)>이란 지명 때문이다. 위에서 잠깐 언급을 했지만, 고지명확정 오류 때문이다. 특히 독산성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곳만 최소한 3군데에 이르고 있다.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던 독산성과 백제의 서남변경지대의 독산성 그리고 경주인근에 있었던 독산성으로 볼 수 있다. 

사람도 <동명이인>이 있듯이 독산성도 <동명이지명>이란 뜻이다. 현재도 국내에 같은 지명을 가지고 있는 곳이 무수히 많이 있다. 이들 같은 지명이 있다고 해서 같은 장소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옥문곡과 독산성은 단지 백제와 경계한 독산성일 따름이다.

선덕왕 시기 전쟁기록은 사실 몇건이 되지 않는다. 신라가 수세에 몰린 이유는 고구려와 백제가 연합해서 신라를 압박하였기 때문이다. 신라는 생존을 모색하기 위해서 고구려와 백제의 연합을 깨려고 춘추가 642년 겨울 대 고구려 외교를 하였지만 실패한다. 그리고 춘추는 왜로 들어가 백제와 왜의 연합을 와해할 목적으로 왜로 들어갔지만 백제와 왜 연합을 깨는데도  실패한다.

그후 643년 8월 신라는 당으로 사신을 보내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를 치는데 도와달라는 뜻을 전한다. 이때 외교전은 고구려와 백제가 연합해서 당항성을 칠려는 계획을 무산시킨다.

645년 5월 당나라 이세민이 고구려를 칠때, 신라는 3만의 대군으로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침공한다. 고구려는 남쪽으로 신라의 압박과 서쪽으로 당나라의 공세를 견뎌내야 했다. 이틈을 놓치지 않고 백제는 신라의 변경 7개 성을 공격하여 빼앗아 버린다. 그러니 645년 고구려 대당 전쟁은 당+신라 동맹과 고구려+백제동맹의 국제전이였다는 뜻이다. 이해 11월 이찬 비담은 상대등에 임명된다.

결론적으로 덕만이 왕이 였던 선덕왕 시기는 고구려와 백제동맹을 막기 위해서 대당외교와 대왜외교를 강화하던 시기였다. 그러니 기존에 알고 있던 덕만시기에 수세적인 위치에서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덕만이 여인이기 때문에 잘못한 것이 아니고 대외적인 요인때문이였다는 뜻이다. 그리고 덕만은 고구려 백제동맹 시기를 외교전과 군사력으로 잘 견디어 내었다.

또한, 이시기 첨성대를 만들고, 당으로 유학생과 유학승을 보내 내치 기반을 확립하던 시기였다. 또한, 범 국가적으로 영묘사, 분황사, 황룡사 9층 목탑 등 사찰을 지어 백성의 정신적인 구심점을 마련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동안 알고 있었던 역사적인 상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 않을까 한다.

사실 비담의 난은 칠숙의 난과 유사한 면을 가지고 있다. 칠숙과 비담은 자신들이 최소한 차기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만한 위치에 있었고, 이를 결행했지만 칠숙은 덕만과 진평에 의해서 난이 진압되고, 비담의 난은 유신과 알천, 대아찬 수승 등에 의해서 진압된다.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운이는 24세 풍월주 천광이라고 한다. 천광은 풍월주로서 낭도를 이끌고 최전선에서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 공로로 <호성장군>에 임명되기도 한다. 칠숙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이는 염종과 비슷한 이름를 가진 17세 풍월주 염장이다.

24세 풍월주 천광은 636년 상대등에 오른 수품의 아들이라고 한다.  수품의 아버지는 진흥왕/사도비의 아들인 구륜이다. 구륜이 진흥왕/미실의 딸인 반야와 결혼해서 수품을 낳았다. 그러니 천광의 할머니 반야공주는 미실가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가문이 칠숙의 난을 비롯해서 비담의 난을 일으키는 주체로 나오지만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이들 염장과 천광 풍월주들은 미실과 밀접한 친족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두 난을 진압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드라마 선덕여왕은 정변의 주체를 왜곡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드라마니 괜찮다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최소한 기록과 유사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친일민족 반역자를 친일민족반역자라고 이야기를 해도 명예훼손이라는 말을 하는 세상인데 난을 진압한 세력을 난을 일으킨 세력으로 몰아 세운다면 아마도 미실을 비롯한 미실가문의 후손들은 참으로 억울할 만 하다. 단지 드라마라는 이유만으로 당시 신라 왕실의 입장에서 만고의 충신가문이 역신으로 몰렸고, 덕만을 비롯한 진평왕은 허수아비 왕이 되었으니 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는데, 또는 당시 역사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면 추천을 많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최신기사
2009/12/25 - [이슈] - 크리스마스 년말.년초 울릉도에 가면 독도에서 뜨는 일출 볼수 있다.

관련기사
2009/12/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결말, 아쉬운 비담 10보 라스트 신 그리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덕만과 비담 사실은
2009/12/22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종방영, 비담과 덕만의 사랑이 이뤄지기를
2009/12/2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김춘추의 외교는 성공했을까?
2009/12/1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 최후 진압세력은 미실파? - 역사와 반대인 드라마 하지만 근대사와 너무나 유사한 드라마
2009/12/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 척살령과 비담 척살령의 공통점과 차이점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펨께 2009.12.24 0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긴 크리스마스라 야단들이랍니다.
    갓쉰동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좋은 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

  2. BlogIcon Sun'A 2009.12.24 0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메리 크리스마스~!
    좋은하루 보내세요^^

  3. BlogIcon 털보아찌 2009.12.24 0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 아닐까요?
    갓쉰동님! 오늘도 행복하시구요.
    메리 크리스마스!!

    • BlogIcon 갓쉰동 2009.12.24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드라마이야기보다는 드라마를 통한 역사 이야기지용..

      머 사실 드라마 내에서 널뛰기 설정을 비판하기는 하지만.. ㅋㅋ

  4. BlogIcon 임현철 2009.12.24 0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이브 되세요.

  5. BlogIcon DJ야루 2009.12.24 0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괜히 역사를 혼동할까봐 걱정이 되네요ㅋㅋㅋ

    아무튼간에 갓쉰동님 즐거운 이브 되세용!!

    • BlogIcon 갓쉰동 2009.12.24 1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미 오해하는 사람들 많더라구요.. 인터넷을 보면..
      미실과 덕만이 하면서.. 유신과 춘추가 비담이 어쨌내 하면서 역사 토론 마당에서도 그러니.. ㅋㅋ

  6. BlogIcon 레오 ~ 2009.12.24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화나 영화는 감독의 생각을 담고 있어 아무래도 가감을 할 겁니다
    그래도 실망하지 마시기를 ..
    메리크리스마쓰 되세요 ^^^

  7. BlogIcon 푸른솔™ 2009.12.24 1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튼 갓쉰동님 덕분에 역사공부 많이 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8. BlogIcon ll오잘공ll 2009.12.24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대단하신걸요.저도 학교다닐땐 역사공부좀 햇는데.
    분석까지 해주고 ~ 많이 배우고 갑니다.

  9. 어신려울 2009.12.24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간 어찌 지내셨나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갓 쉰동님
    해피 성탄 되세요.

  10. BlogIcon 감자꿈 2009.12.24 1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글 잘 읽고 갑니다.
    갓쉰동님,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

  11. BlogIcon 빛무리  2009.12.24 1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즐거운 성탄 보내세요^^

  12. BlogIcon 민시오™ 2009.12.24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크림 같이 달콤한 크리스마스되시길 바랍니다^^
    메리크리스마스~~~~

  13. BlogIcon skagns 2009.12.24 1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끝나니까 가장 생각나는 것이 갓쉰동님이더라구요. ㅎㅎ;;;
    그동안 덕분에 선덕여왕을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

  14. 클래식 2009.12.24 2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는 선덕여왕이 여성이기 때문에 폄하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근데 제가 아는 것이 짧아서 거기에 대한 근거는 말씀 못드리네요. ^^;
    선덕여왕 보지는 않았지만 갓쉰동님이 올리신 글 보고 중요한 것을 배우고 갑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네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따뜻한 연말되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2.25 0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여성이기 때문에 오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지요.. 그걸 증폭시킨게 이세민의 발언과 비담의 난이고, 김부식의 결정적인 한방이지요..

  15. BlogIcon 유머나라 2009.12.25 0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해요. 정말 삼국사기를 잘 해석해볼 필요가 있네요.
    대충 짐작으로 누굴 비난하고 할 것 없이.
    대단한 안목이어요.

    • BlogIcon 갓쉰동 2009.12.25 0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대충 해석하면 절대 풀리지 않는 부분이 많아요..

      특히 선덕여왕의 옥문곡이나 김유신 김춘추 문희 덕만의 관계는..

  16. BlogIcon 朱雀 2009.12.25 09: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갓쉰동님 덕분에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다시 알게 됩니다.
    조만간 삼국사기랑 몇개를 좀 봐야 겠어요.
    <선덕여왕>이랑 갓쉰동님 포스트때문에 자꾸 궁금해져서요. ^^
    연말연시 잘 보내세요~갓쉰동님~^^/

    • BlogIcon 갓쉰동 2009.12.28 0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책을 보면 잼있습니다.. 해설서를 보는 것도 잼있지만,, 원전 번역본을 보는게 더 상상력을 자극한다눈.. ㅋㅋ

  17. 2010.07.17 0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은 무능한 여군주라고 정평이나있죠 한때 드라마 연개소문에서도 선덕여왕의 무능함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들은 덕만에 관한 기록이 없어서 글을 만들기 힘들다고 한다.

사실 선덕여왕 덕만처럼 삼국시대에 가장 많은 기록과 전승을 가지고 있는 왕도 드물다. 그런데 기록이 없어서 극을  만드는데 힘들다고 한다는 말은 별로 동의가 되지 않는다. 

기록이 소락 할수록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하기가 쉽다. 아주 작은 기록만 일치시키면 되고 재해석 하면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고 있노라면 드라마 작가나 제작자의 기획의도에서 사람을 얻어 천하를 얻는다고 하였지만, 드라마에서 덕만이 유신을 보고 많은 사람을 얻었지만 남은 자는 유신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선덕여왕이 얻은 인물은 김유신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선덕여왕은 아무것도 이룬것이 없다는 뜻이다.

물론, 잔챙이 수십명보다는 확실한 월척인 유신을 얻었다면 성공한 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드라마상 선덕여왕은 무능하고 우유부단함의 전형적인 모습니다. 기획의도와 정반대의 왕을 그리고 있다는 말이다. 죽도 밥도 아닌 드라마 선덕여왕이 된 이유야 미실를 주인공으로 그리려는 복선를 가지고 있고, 선호하지 않은 덕만을 드라마로 쓸려니 작가 스스로도 난감했을 수 있다.

더불어 드라마 뿐만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덕만을 무능한 왕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기록들을 분석해보면 덕만은 왕으로써 무능하지 않을 뿐더러 시호가 <선덕>일 만큼 선정을 베풀고 있다.


비담의 난에 가입하는 자들을 보면 주진과 미생과 보종과 하종과 호재와 필탄이 있다. 10화랑 중에서 4명이 반란에 투입되고 있다. 호재는 덕만의 외삼촌이 된다. 호재의 아버지는 복승공이 복승공의 딸인 마야가 덕만의 어머니이다. 그런데 호재는 비담의 난에 가입하는 것으로 나온다.

물론, 당시 비담의 난에 연루되어 죽은 자들은 30여명에 이른다. 그러니 화랑중에서 난에 가담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던, 덕만은 화랑의 수장인 천신황녀였으니 사람관리에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덕만은 드라마 선덕여왕 처럼 무능한 군주였을까? 삼국사기에 의하면 덕만은 <덕>은 있으나 힘이 없는 군주처럼 그려지기는 했고, 김부식은 덕만을 여자가 왕이 되어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당서를 인용해서 이세민이 신라에 여왕이 있으니 업신여김을 받으니 당나라 왕족으로 하여금 신라의 왕으로 삼는다면 군대를 보내 도와주고 안정이 된다면 그때 다시 신라에서 왕을 뽑는게 낫지 않겠는가?라는 신라를 업수히 여기는 말을 듣게 된다.


덕만이 무능하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확대시킨자는 삼국사기의 김부식이다. 김부식은 덕만을 여러가지로 평하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쉬이 알수 있다.

하지만 딴지맨 일연은 덕만이 무능하지 않고 오히려 유능하다는 식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삼국사기 기록만을 검토해본다고 해도 덕만은 무능하지 않고 선정과 외교적인 술수가 능한 군주임을 쉬일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덕만과 관련된 <지기삼사>중에서 <옥문곡>사건은 덕만의 예지능력보다는 신라 깊숙히 백제군이 들어오게 할 만큼 신라는 허약했으니 그는 신라에서 여왕이 있었기 때문에 이웃나라에 업수히 여김의 사례로 인용되기도 한다.

사실 삼국사기를 보고 있노라면 지명 비정에 오류가 많이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지명비정 오류도 있지만 후대에 오류도 많이 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옥문곡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독산성 또한 비슷한 사례이다. 삼국사기에는 독산성이 여러곳에 등장한다.


그렇다면 덕만이 무능해서 백제군이 신라 깊숙히 까지 들어와서 분탕질할 만큼이였는지 삼국사기의 <옥문곡>사건을 분석해보자.


636년 선덕왕 5년 여름 5월에 두꺼비가 궁궐 서쪽 옥문지(玉門池)에 많이 모였다. 왕이 이를 듣고 좌우에 말하였다.

"두꺼비는 성난 눈을 가지고 있으니 이는 병사의 모습이다. 내가 일찍이 듣건대, 서남쪽 변경에 이름이 옥문곡(玉門谷)이라는 땅이 있다고 하니 혹시 이웃나라 군사가 그 안에 숨어 들어온 것은 아닐까?"

이에 장군 알천(閼川)과 필탄(弼呑)에게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가서 찾아보게 하였다. 과연 백제 장군 우소(于召)가 독산성(獨山城)을 습격하려고 무장한 군사 500명을 이끌고 와서 그 곳에 숨어 있었으므로, 알천이 갑자기 쳐서 그들을 모두 죽였다.

여기서 주의 깊에 봐야 하는 대목은 덕만이 궁궐 서쪽 옥문지에 두꺼비가 모여서 울었는데, 서남쪽 변경에 이름이 <옥문곡>이라는 땅이 있으니 그곳에 이웃나라 군사들이 숨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덕만이 말한 옥문곡은 <서남쪽변경>에 있다는 말이다. 변경이란 국경지대를 말한다. 그러니 백제 별동대가 숨어있었다는 옥문곡은 신라 서라벌 중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지 않고, 저멀리 서남쪽 경계에 있다는 뜻이다.

이때의 서남쪽 경계는 어디였을까? 신라가 합천 대야성까지 서쪽변경을 침탈당한 때는 642년 7월이후가 된다. 642년 7월 고구려와 백제는 연합하여 당항성을 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때 신라는 당항성을 지키기 위해서 대당 외교를 강화하고 군대를 이동해서 경계를 한다.

하지만 백제는 당항성을 치기 보다는 경계가 허술해진 서쪽 변경 미후성으로 부터 40여개 성을 빼앗고, 642년 8월 같은해 경남 합천에 있는 대야성을 함락시킨다.


그러니 642년 8월 이전에 있었던 635년 지기삼사 옥문곡과 독산성은 대야성 서쪽과 미후성 서쪽 밖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그동안 통설로 알고 있었던 덕만이 왕이 되자 국력이 쇠하고, 이웃나라로 부터 업수히 여기고 신라 깊숙히 백제의 별동대가 들어올 정도로 국방력이 허술했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춘추가 처음 당항성으로 부터 들어올때 <금오산>에 유하다 대남보를 속이고 서나벌로 입성을 한다. 이때 금오산은 현재 구미와 김천 지역에 있는 금오산이 아닌 경주의 남산 아래쪽에 있는 <금오산>이였다.

그렇다면 왜 신라 궁성과 가까이까지 별동대가 들어올 정도로 신라가 허약했다는 말을 들어야 했을까? 그것은 단지 <독산성(獨山城)>이란 지명 때문이다. 위에서 잠깐 언급을 했지만, 고지명확정 오류 때문이다. 특히 독산성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곳만 최소한 3군데에 이르고 있다.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던 독산성과 백제의 서남변경지대의 독산성 그리고 경주인근에 있었던 독산성으로 볼 수 있다. 

사람도 <동명이인>이 있듯이 독산성도 <동명이지명>이란 뜻이다. 현재도 국내에 같은 지명을 가지고 있는 곳이 무수히 많이 있다. 이들 같은 지명이 있다고 해서 같은 장소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옥문곡과 독산성은 단지 백제와 경계한 독산성일 따름이다.

선덕왕 시기 전쟁기록은 사실 몇건이 되지 않는다. 신라가 수세에 몰린 이유는 고구려와 백제가 연합해서 신라를 압박하였기 때문이다. 신라는 생존을 모색하기 위해서 고구려와 백제의 연합을 깨려고 춘추가 642년 겨울 대 고구려 외교를 하였지만 실패한다. 그리고 춘추는 왜로 들어가 백제와 왜의 연합을 와해할 목적으로 왜로 들어갔지만 백제와 왜 연합을 깨는데도  실패한다.

그후 643년 8월 신라는 당으로 사신을 보내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를 치는데 도와달라는 뜻을 전한다. 이때 외교전은 고구려와 백제가 연합해서 당항성을 칠려는 계획을 무산시킨다.

645년 5월 당나라 이세민이 고구려를 칠때, 신라는 3만의 대군으로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침공한다. 고구려는 남쪽으로 신라의 압박과 서쪽으로 당나라의 공세를 견뎌내야 했다. 이틈을 놓치지 않고 백제는 신라의 변경 7개 성을 공격하여 빼앗아 버린다. 그러니 645년 고구려 대당 전쟁은 당+신라 동맹과 고구려+백제동맹의 국제전이였다는 뜻이다. 이해 11월 이찬 비담은 상대등에 임명된다.

결론적으로 덕만이 왕이 였던 선덕왕 시기는 고구려와 백제동맹을 막기 위해서 대당외교와 대왜외교를 강화하던 시기였다. 그러니 기존에 알고 있던 덕만시기에 수세적인 위치에서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덕만이 여인이기 때문에 잘못한 것이 아니고 대외적인 요인때문이였다는 뜻이다. 그리고 덕만은 고구려 백제동맹 시기를 외교전과 군사력으로 잘 견디어 내었다.

또한, 이시기 첨성대를 만들고, 당으로 유학생과 유학승을 보내 내치 기반을 확립하던 시기였다. 또한, 범 국가적으로 영묘사, 분황사, 황룡사 9층 목탑 등 사찰을 지어 백성의 정신적인 구심점을 마련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동안 알고 있었던 역사적인 상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 않을까 한다.

사실 비담의 난은 칠숙의 난과 유사한 면을 가지고 있다. 칠숙과 비담은 자신들이 최소한 차기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만한 위치에 있었고, 이를 결행했지만 칠숙은 덕만과 진평에 의해서 난이 진압되고, 비담의 난은 유신과 알천, 대아찬 수승 등에 의해서 진압된다.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운이는 24세 풍월주 천광이라고 한다. 천광은 풍월주로서 낭도를 이끌고 최전선에서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 공로로 <호성장군>에 임명되기도 한다. 칠숙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이는 염종과 비슷한 이름를 가진 17세 풍월주 염장이다.

24세 풍월주 천광은 636년 상대등에 오른 수품의 아들이라고 한다.  수품의 아버지는 진흥왕/사도비의 아들인 구륜이다. 구륜이 진흥왕/미실의 딸인 반야와 결혼해서 수품을 낳았다. 그러니 천광의 할머니 반야공주는 미실가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가문이 칠숙의 난을 비롯해서 비담의 난을 일으키는 주체로 나오지만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이들 염장과 천광 풍월주들은 미실과 밀접한 친족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두 난을 진압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드라마 선덕여왕은 정변의 주체를 왜곡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드라마니 괜찮다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최소한 기록과 유사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친일민족 반역자를 친일민족반역자라고 이야기를 해도 명예훼손이라는 말을 하는 세상인데 난을 진압한 세력을 난을 일으킨 세력으로 몰아 세운다면 아마도 미실을 비롯한 미실가문의 후손들은 참으로 억울할 만 하다. 단지 드라마라는 이유만으로 당시 신라 왕실의 입장에서 만고의 충신가문이 역신으로 몰렸고, 덕만을 비롯한 진평왕은 허수아비 왕이 되었으니 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는데, 또는 당시 역사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면 추천을 많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최신기사
2009/12/25 - [이슈] - 크리스마스 년말.년초 울릉도에 가면 독도에서 뜨는 일출 볼수 있다.

관련기사
2009/12/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결말, 아쉬운 비담 10보 라스트 신 그리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덕만과 비담 사실은
2009/12/22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종방영, 비담과 덕만의 사랑이 이뤄지기를
2009/12/2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김춘추의 외교는 성공했을까?
2009/12/1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 최후 진압세력은 미실파? - 역사와 반대인 드라마 하지만 근대사와 너무나 유사한 드라마
2009/12/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 척살령과 비담 척살령의 공통점과 차이점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펨께 2009.12.24 0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긴 크리스마스라 야단들이랍니다.
    갓쉰동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좋은 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

  2. BlogIcon Sun'A 2009.12.24 0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메리 크리스마스~!
    좋은하루 보내세요^^

  3. BlogIcon 털보아찌 2009.12.24 0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 아닐까요?
    갓쉰동님! 오늘도 행복하시구요.
    메리 크리스마스!!

    • BlogIcon 갓쉰동 2009.12.24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드라마이야기보다는 드라마를 통한 역사 이야기지용..

      머 사실 드라마 내에서 널뛰기 설정을 비판하기는 하지만.. ㅋㅋ

  4. BlogIcon 임현철 2009.12.24 0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이브 되세요.

  5. BlogIcon DJ야루 2009.12.24 0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괜히 역사를 혼동할까봐 걱정이 되네요ㅋㅋㅋ

    아무튼간에 갓쉰동님 즐거운 이브 되세용!!

    • BlogIcon 갓쉰동 2009.12.24 1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미 오해하는 사람들 많더라구요.. 인터넷을 보면..
      미실과 덕만이 하면서.. 유신과 춘추가 비담이 어쨌내 하면서 역사 토론 마당에서도 그러니.. ㅋㅋ

  6. BlogIcon 레오 ~ 2009.12.24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화나 영화는 감독의 생각을 담고 있어 아무래도 가감을 할 겁니다
    그래도 실망하지 마시기를 ..
    메리크리스마쓰 되세요 ^^^

  7. BlogIcon 푸른솔™ 2009.12.24 1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튼 갓쉰동님 덕분에 역사공부 많이 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8. BlogIcon ll오잘공ll 2009.12.24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대단하신걸요.저도 학교다닐땐 역사공부좀 햇는데.
    분석까지 해주고 ~ 많이 배우고 갑니다.

  9. 어신려울 2009.12.24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간 어찌 지내셨나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갓 쉰동님
    해피 성탄 되세요.

  10. BlogIcon 감자꿈 2009.12.24 1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글 잘 읽고 갑니다.
    갓쉰동님,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

  11. BlogIcon 빛무리  2009.12.24 1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즐거운 성탄 보내세요^^

  12. BlogIcon 민시오™ 2009.12.24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크림 같이 달콤한 크리스마스되시길 바랍니다^^
    메리크리스마스~~~~

  13. BlogIcon skagns 2009.12.24 1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끝나니까 가장 생각나는 것이 갓쉰동님이더라구요. ㅎㅎ;;;
    그동안 덕분에 선덕여왕을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

  14. 클래식 2009.12.24 2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는 선덕여왕이 여성이기 때문에 폄하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근데 제가 아는 것이 짧아서 거기에 대한 근거는 말씀 못드리네요. ^^;
    선덕여왕 보지는 않았지만 갓쉰동님이 올리신 글 보고 중요한 것을 배우고 갑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네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따뜻한 연말되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2.25 0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여성이기 때문에 오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지요.. 그걸 증폭시킨게 이세민의 발언과 비담의 난이고, 김부식의 결정적인 한방이지요..

  15. BlogIcon 유머나라 2009.12.25 0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해요. 정말 삼국사기를 잘 해석해볼 필요가 있네요.
    대충 짐작으로 누굴 비난하고 할 것 없이.
    대단한 안목이어요.

    • BlogIcon 갓쉰동 2009.12.25 0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대충 해석하면 절대 풀리지 않는 부분이 많아요..

      특히 선덕여왕의 옥문곡이나 김유신 김춘추 문희 덕만의 관계는..

  16. BlogIcon 朱雀 2009.12.25 09: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갓쉰동님 덕분에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다시 알게 됩니다.
    조만간 삼국사기랑 몇개를 좀 봐야 겠어요.
    <선덕여왕>이랑 갓쉰동님 포스트때문에 자꾸 궁금해져서요. ^^
    연말연시 잘 보내세요~갓쉰동님~^^/

    • BlogIcon 갓쉰동 2009.12.28 0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책을 보면 잼있습니다.. 해설서를 보는 것도 잼있지만,, 원전 번역본을 보는게 더 상상력을 자극한다눈.. ㅋㅋ

  17. 2010.07.17 0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은 무능한 여군주라고 정평이나있죠 한때 드라마 연개소문에서도 선덕여왕의 무능함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미실 척살령은 진흥왕이 사후에 미실이 진흥왕 자신처럼 불교에 귀의하지 않고 정치에 관여를 한다면 척살하라고 설원에게 밀서형식의 척살령을 내린다.


비담의 척살령도 미실의 척살령과 같이 덕만과 결혼한 이후 덕만은 궁을 떠날 것을 생각하고, 만약, 비담이 정치에 관여를 한다면 비담을 척살하라고 춘추에게 밀서를 내린다.


어머니 미실의 척살령과 아들 비담의 척살령은 사후에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마디로 미실과 비담은 왕실에서 버린 받는 다는 설정이고, 이를 간파한 미실이 설원과 모의해서 진흥을 독살하려한다.


진흥은 왕위를 첫째인 동륜태자의 아들인 백정(진평)에게 물려주려 하는 것 처럼, 덕만도 비담과 국혼을 한 이후 왕위를 춘추에게 물려준다는 암시를 맹약서에 담아 두고 있다. 맹약서에 <이궁(離宮)>은 ‘궁을 떠난다’는 뜻이다. 왕이 궁을 떠난다는 뜻은 왕위를 선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선위의 대상은 춘추가 될 것이다. 비담과 국혼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12/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은 언제 처음 결혼했을까? - 비담과의 결혼은 사실일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참고 기사들은 글 말미에 관련기사 목록를 별도로 만들었으니 글을 다 읽고 추천 후 일독을 권함 )


진흥왕은 말년에 영흥사에 들어가 법의를 입고 생활하기도 했고, 진흥왕의 비인 사도비 또한, 진흥왕 사후에 영흥사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었다. 화랑세기에는 미실과 설원과 세종도 영흥사에 들어가 말년을 보냈다고 하였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비구니처럼 살던 미실과 세종과 설원을 역모에 연루시켜 버렸다. 한마디로 이순신이 일본군과 함께 선조를 내몰고 역모를 한다는 설정만큼 어처구니없다.

 

어쨌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척살령과 비담의 척살령 닮은꼴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사이에 차이점은 없을까? 진흥왕은 미실에게 맹약서를 받지 않고 말로 때웠지만, 덕만은 비담을 믿지 못하고, 맹약서를 요구한다. 비담은 덕만의 요구에 순순히 맹약서를 작성하고 정치적 욕망이 아닌 사랑을 택한다. 하지만, 덕만은 비담을 믿지 못하고, 춘추에게 자신의 사후 비담이 정치에 관여를 한다면 죽여 버리라고 요구한다.

 

비담의 척살령과 미실의 척살령에는 공통점만이 있는 건 아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척살령을 보면, 극중에서 오류를 몇 가지 발견할 수 있다. 일단, 미실의 척살령에는 공식 문서의 형식을 띄고 있고, 비담의 척살령은 사문서 형식을 띄고 있다. 만약, 비담이 맹약를 어기고 덕만이 죽고, 정치일선에 복귀할 때, 춘추가 덕만의 척살령을 근거로 비담을 옥죄일 때, 비담은 척살령을 인정하지 않고, 춘추가 조작했다는 혐의를 씌우면 빠져나갈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미실의 척살령은 간지로 무신년을 사용하고 있다. 무신년은 공교롭게도 588년이다. 진흥왕은 576년에 죽었는데, 죽은 후 진흥왕이 설원에게 척살밀명을 줄 수가 없다. 또한, 공문서의 형식을 취한 진흥왕의 미실 척살령은 기본적인 드라마 설정 오류를 범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미실은 옥새를 관장하는 <새주>였다. 그러니 아무리 진흥왕이 왕이라고 하더라도 미실의 손을 거치지 않고 척살령에 옥새를 찍을 수 없다. 한마디로 미실 척살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조문서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의 미실은 위조문서를 비담에 넘겨주고, 자살을 해버린다. 비담은 어머니 미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위조 척살령을 덕만에 건네주지 않고, 마침내 자신이 미실의 버려진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덕만이 비담을 배척하는 모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만큼 미실의 척살령은 비담이 어쩔 수 없이 난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원죄를 제공하는 것이다.  얼마나 미실의 자살이 어처구니 없는 설정인지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을 참조 하기바란다.

2009/11/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진흥왕(이순재) 신라의적 미실(고현정)척살 - 만화보다 못한 미실 죽음 고현정 하차

2009/10/2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기유년 미실의 난과 죽음, 극중 리얼리티 ZERO

진흥왕의 정상적인 미실 척살령이 되려면 옥새는 찍지 않고, 진흥왕의 수결이 되어야 하고, 진흥왕이 죽는 시점인 576년 병신년 간지를 써야한다고 기사를 전송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정상적인 것 같은 문서형식인 것 같은 간지도 맞고, 수결도 있는 비담 척살령을 춘추에 주었다. 하지만, 이 또한 드라마 작가나 제작진의 오류이다.


미실 척살령은 당연히 미실이 옥새를 관장하는 <새주>이니 옥새가 없고 <수결>만 있는 게  정상적이다. 하지만, 덕만은 왕으로 옥새를 관장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위조문서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척살령에 <수결>과 <옥새>가 찍혀 있어야 한다.


또한, 비담의 척살령 칙서에는 <병오년>간지를 사용했다. 병오년은 646년이다. 그러니 극중 시제는 비담이 이찬에서 상대등으로 임명된 646년 11월이 지난 상태라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정상적인 극중 흐름이지만, <년>다음에 <월>이 나와야 하지만 <경신일>로 건너 뛰어 버린다.


요즘으로 치면 2009년 <모월> 12일에 만든 문서라는 뜻이다. 12일은 1년에 12번은 있다. 당연히 언제 만든 문서인지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여전히 공문서가 지켜야할 기본적인 형식을 벗어났다는 뜻이다. 그러니 비담이 춘추가 내민 문서를 근거로 비담을 척살하려한다면 명분이 서지 않고 오히려 춘추가 역풍을 맞는다는 뜻이다. 또한, 간지와 함께 필히 사용해야 하는 게 연호이다. 미실의 척살령에는 <태창>을 써야 하고 비담 척살령은 선덕여왕 연호인 <인평>을 사용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미실의 척살령과 비담의 척살령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해 보았다.


문제는 642년 8월 대야성 전투에서 신라가 대패를 하고 비화군, 이서군, 압량주(경산)까지 밀리는 과정에서 646년 11월까지 시간이 활시위를 떠난 살과 같이 빠르게 지나갔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대야성을 빼앗기고 만 4년 3개월 동안 신라 내에서 4년을 싸웠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극중 어디에서도 4년 동안 싸웠다는 걸 알 수 는 없다. 단지 대야성 함락되고 얼마 되지 않아 이서군(청도)까지 빼앗겼다는 건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손이 오그라드는 전투신만 있는 게 아니다. 한마디로 극중 리얼리티가 또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는 뜻이다. 대야성에서 이서군까지 전투가 얼마나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12/0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의 부자감세 백제 침공을 자초했다.
2009/12/0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 척살령이 떡밥인 몇가지 이유
2009/12/08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낚시 비담 척살령과 덤앤더머 계백과 유신 그리고 황당한 당나라 사신

642년 7월 부터 646년까지는 동아시아에서는 국제전이 벌어지고 있는 시기였다. 신라가 쉽게 서쪽 40여개성을 빼앗긴 이유도 백제와 고구려가 동맹관계에 있어서 당항성을 친다는 전략에 말려들어 군대를 경기도 일원에 증파한 신라의 오판을 백제가 타고들어서 쟁취한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당나라 사신이 와서 고구려 원정에 동원할 청병을 요구하는 것처럼  645년 당 태종 이세민이 고구려를 침략할 때 백제는 당에 전수물자인 금광개 갑옷을 공급하고 향도를 자청하는 척하지만. 실제는 고구려와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신라는 당의 요구에 3만 대군으로 고구려 남쪽국경를 침략한다. 백제의 금광개 갑옷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07/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신라에서 백제 특산물 황칠을 찾는 수나라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신라가 남쪽변경을 치다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할 때 백제는 신라의 서쪽 7개성을 함락시켜 버린다. 고구려가 당나라와 일대 격전을 치를 때 후방에서는 백제와 신라의 전쟁이 있었다는 뜻이다. 고구려가 당군을 무찌른 이유도 후방에서 백제가 신라를 견제했기 때문이다. 신라는 이때 당나라 도와주려다 신라가 위기에 처하게 되는 시기였다. 그러니 당 사신이 함부로 신라를 얍보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2009/12/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은 언제 처음 결혼했을까? - 비담과의 결혼은 사실일까? 
2009/12/08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낚시 비담 척살령과 덤앤더머 계백과 유신 그리고 황당한 당나라 사신
2009/07/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신라에서 백제 특산물 황칠을 찾는 수나라 
2009/12/0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의 부자감세 백제 침공을 자초했다.
2009/12/0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 척살령이 떡밥인 몇가지 이유
2009/11/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진흥왕(이순재) 신라의적 미실(고현정)척살 - 만화보다 못한 미실 죽음 고현정 하차

2009/10/2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기유년 미실의 난과 죽음, 극중 리얼리티 ZERO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2.10 0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 웃긴건 원래 비담을 죽여야하는 건 진덕여왕의 몫인데 말이죠.
    가장 실망했던 점이 진덕여왕을 빼놓은 점입니다.
    저도 원래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고자 하는 사람인데요...
    존재 자체도 불투명한 미실은 집어놓고 정작 선덕여왕 바로 뒤인 진덕여왕을 빼놓고 춘추가 왕이
    될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가 하고 있는 선덕여왕이 참.....
    진덕여왕 출연시키지도 않고 계백을 출연시키고 다른 떡밥을 던질때부터 50회이후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모든 역사서에서 인정하는 진덕여왕응을 빼놓고 허구적이라는 인물은 완전 미화시켜놓으니... 이거 원

  2. BlogIcon 라이너스™ 2009.12.10 0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비교해주셨네요^^
    잘보고갑니다. 좋은하루되세요~

  3. BlogIcon 좋은사람들 2009.12.10 0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리하십니다. 저 문서를 해독하시다니. ~ !!

  4. 임현철 2009.12.10 0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대단하시네요.

  5. BlogIcon 초록누리 2009.12.10 0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한가지 의문은 덕만이 비담에게 맹약서를 요구했나요?
    저는 비담이 자발적으로 써왔다고 생각했거든요.;;
    글과 관련 없는 말이지만 왜 죽이라는 명을 밀서로 남기는지 진흥제나 덕만이나 이햐가 안간다는 것지지용^^*

  6. BlogIcon labyrint 2009.12.10 1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오류가 많네요...
    음... 조금만 신경써도 저 정도는 아닐텐데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7. BlogIcon 뽀글 2009.12.10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이야기는 조금어려워요..ㅠ

  8. BlogIcon 892 2009.12.10 1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어려서 그런거는 잘 모르겟는데 ... 한 두번해봣 나 ???
    또 하구 싶은데 남자 친구가 군대에 가버렷네요 ㅠㅠ. 만.남 원합니다..
    haha10.com
    nunawa.com

  9. Maximin 2009.12.10 1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따위 막말 설정이라면 사실 승만이 덕만과 비담의 딸이라고 해도 납득될기세.
    그다음 비담은 딸과 덕만을 지키기 위해 일부로 반란을 일으킨다음 일부로 유신한테 만땅깨진다음
    간지나게 사망 한다는 같잖은 스토리가 나와도 시청률 올라갈 기세

    이건 뭐, 누구잘못인가.

  10. 2009.12.10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BlogIcon 초하(初夏) 2009.12.10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예 관련 글이 점차 더 전문화되고 있네요... ^&^
    이런 글을 어디서 다 찾아 쓰시는지... 대단하십니다!
    미실만한 연기 보기가 어려워 많이 아쉬운 시청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잘 지내시죠?
    날씨는 꿀꿀하지만, 즐겁고 신나는 오후 보내시길 바랍니다~~ ^&^

  12. 묘운 2009.12.10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이 비담에게 맹약서를 요구한게 아니라 비담 자신이 스스로 써온것이구요.
    비담을 믿지 못해서 춘추에게 비담척살령을 내린것이 아니라 비담을 믿지못하고 둘의 결합에
    불안해하는 춘추를 달래기 위해서, 그리고 후에 만약 비담의 세력이 커져 야망이 보인대도
    비담에 향한 연모때문에 강하게 나가지 못할까봐 지금 미리, 진도(?) 덜나갔을때 손쓴거죠.

  13. BlogIcon JiNi。 2009.12.16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오늘의 글도 예리하십니다.

  14. BlogIcon concessionaria kia 2012.09.10 2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이 문서에서 시간에 몇 가지 흥미로운 지점은 있지만 내가 그들의 마음 중심을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몇몇 유효 기간은하지만 더 이상 조사 때까지 기다 의견이 소요됩니다. 좋은 기사 감사하고 더 싶어요! 피드 버너뿐만 아니라에 추가

미실 척살령은 진흥왕이 사후에 미실이 진흥왕 자신처럼 불교에 귀의하지 않고 정치에 관여를 한다면 척살하라고 설원에게 밀서형식의 척살령을 내린다.


비담의 척살령도 미실의 척살령과 같이 덕만과 결혼한 이후 덕만은 궁을 떠날 것을 생각하고, 만약, 비담이 정치에 관여를 한다면 비담을 척살하라고 춘추에게 밀서를 내린다.


어머니 미실의 척살령과 아들 비담의 척살령은 사후에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마디로 미실과 비담은 왕실에서 버린 받는 다는 설정이고, 이를 간파한 미실이 설원과 모의해서 진흥을 독살하려한다.


진흥은 왕위를 첫째인 동륜태자의 아들인 백정(진평)에게 물려주려 하는 것 처럼, 덕만도 비담과 국혼을 한 이후 왕위를 춘추에게 물려준다는 암시를 맹약서에 담아 두고 있다. 맹약서에 <이궁(離宮)>은 ‘궁을 떠난다’는 뜻이다. 왕이 궁을 떠난다는 뜻은 왕위를 선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선위의 대상은 춘추가 될 것이다. 비담과 국혼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12/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은 언제 처음 결혼했을까? - 비담과의 결혼은 사실일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참고 기사들은 글 말미에 관련기사 목록를 별도로 만들었으니 글을 다 읽고 추천 후 일독을 권함 )


진흥왕은 말년에 영흥사에 들어가 법의를 입고 생활하기도 했고, 진흥왕의 비인 사도비 또한, 진흥왕 사후에 영흥사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었다. 화랑세기에는 미실과 설원과 세종도 영흥사에 들어가 말년을 보냈다고 하였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비구니처럼 살던 미실과 세종과 설원을 역모에 연루시켜 버렸다. 한마디로 이순신이 일본군과 함께 선조를 내몰고 역모를 한다는 설정만큼 어처구니없다.

 

어쨌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척살령과 비담의 척살령 닮은꼴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사이에 차이점은 없을까? 진흥왕은 미실에게 맹약서를 받지 않고 말로 때웠지만, 덕만은 비담을 믿지 못하고, 맹약서를 요구한다. 비담은 덕만의 요구에 순순히 맹약서를 작성하고 정치적 욕망이 아닌 사랑을 택한다. 하지만, 덕만은 비담을 믿지 못하고, 춘추에게 자신의 사후 비담이 정치에 관여를 한다면 죽여 버리라고 요구한다.

 

비담의 척살령과 미실의 척살령에는 공통점만이 있는 건 아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척살령을 보면, 극중에서 오류를 몇 가지 발견할 수 있다. 일단, 미실의 척살령에는 공식 문서의 형식을 띄고 있고, 비담의 척살령은 사문서 형식을 띄고 있다. 만약, 비담이 맹약를 어기고 덕만이 죽고, 정치일선에 복귀할 때, 춘추가 덕만의 척살령을 근거로 비담을 옥죄일 때, 비담은 척살령을 인정하지 않고, 춘추가 조작했다는 혐의를 씌우면 빠져나갈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미실의 척살령은 간지로 무신년을 사용하고 있다. 무신년은 공교롭게도 588년이다. 진흥왕은 576년에 죽었는데, 죽은 후 진흥왕이 설원에게 척살밀명을 줄 수가 없다. 또한, 공문서의 형식을 취한 진흥왕의 미실 척살령은 기본적인 드라마 설정 오류를 범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미실은 옥새를 관장하는 <새주>였다. 그러니 아무리 진흥왕이 왕이라고 하더라도 미실의 손을 거치지 않고 척살령에 옥새를 찍을 수 없다. 한마디로 미실 척살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조문서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의 미실은 위조문서를 비담에 넘겨주고, 자살을 해버린다. 비담은 어머니 미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위조 척살령을 덕만에 건네주지 않고, 마침내 자신이 미실의 버려진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덕만이 비담을 배척하는 모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만큼 미실의 척살령은 비담이 어쩔 수 없이 난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원죄를 제공하는 것이다.  얼마나 미실의 자살이 어처구니 없는 설정인지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을 참조 하기바란다.

2009/11/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진흥왕(이순재) 신라의적 미실(고현정)척살 - 만화보다 못한 미실 죽음 고현정 하차

2009/10/2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기유년 미실의 난과 죽음, 극중 리얼리티 ZERO

진흥왕의 정상적인 미실 척살령이 되려면 옥새는 찍지 않고, 진흥왕의 수결이 되어야 하고, 진흥왕이 죽는 시점인 576년 병신년 간지를 써야한다고 기사를 전송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정상적인 것 같은 문서형식인 것 같은 간지도 맞고, 수결도 있는 비담 척살령을 춘추에 주었다. 하지만, 이 또한 드라마 작가나 제작진의 오류이다.


미실 척살령은 당연히 미실이 옥새를 관장하는 <새주>이니 옥새가 없고 <수결>만 있는 게  정상적이다. 하지만, 덕만은 왕으로 옥새를 관장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위조문서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척살령에 <수결>과 <옥새>가 찍혀 있어야 한다.


또한, 비담의 척살령 칙서에는 <병오년>간지를 사용했다. 병오년은 646년이다. 그러니 극중 시제는 비담이 이찬에서 상대등으로 임명된 646년 11월이 지난 상태라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정상적인 극중 흐름이지만, <년>다음에 <월>이 나와야 하지만 <경신일>로 건너 뛰어 버린다.


요즘으로 치면 2009년 <모월> 12일에 만든 문서라는 뜻이다. 12일은 1년에 12번은 있다. 당연히 언제 만든 문서인지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여전히 공문서가 지켜야할 기본적인 형식을 벗어났다는 뜻이다. 그러니 비담이 춘추가 내민 문서를 근거로 비담을 척살하려한다면 명분이 서지 않고 오히려 춘추가 역풍을 맞는다는 뜻이다. 또한, 간지와 함께 필히 사용해야 하는 게 연호이다. 미실의 척살령에는 <태창>을 써야 하고 비담 척살령은 선덕여왕 연호인 <인평>을 사용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미실의 척살령과 비담의 척살령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해 보았다.


문제는 642년 8월 대야성 전투에서 신라가 대패를 하고 비화군, 이서군, 압량주(경산)까지 밀리는 과정에서 646년 11월까지 시간이 활시위를 떠난 살과 같이 빠르게 지나갔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대야성을 빼앗기고 만 4년 3개월 동안 신라 내에서 4년을 싸웠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극중 어디에서도 4년 동안 싸웠다는 걸 알 수 는 없다. 단지 대야성 함락되고 얼마 되지 않아 이서군(청도)까지 빼앗겼다는 건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손이 오그라드는 전투신만 있는 게 아니다. 한마디로 극중 리얼리티가 또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는 뜻이다. 대야성에서 이서군까지 전투가 얼마나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12/0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의 부자감세 백제 침공을 자초했다.
2009/12/0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 척살령이 떡밥인 몇가지 이유
2009/12/08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낚시 비담 척살령과 덤앤더머 계백과 유신 그리고 황당한 당나라 사신

642년 7월 부터 646년까지는 동아시아에서는 국제전이 벌어지고 있는 시기였다. 신라가 쉽게 서쪽 40여개성을 빼앗긴 이유도 백제와 고구려가 동맹관계에 있어서 당항성을 친다는 전략에 말려들어 군대를 경기도 일원에 증파한 신라의 오판을 백제가 타고들어서 쟁취한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당나라 사신이 와서 고구려 원정에 동원할 청병을 요구하는 것처럼  645년 당 태종 이세민이 고구려를 침략할 때 백제는 당에 전수물자인 금광개 갑옷을 공급하고 향도를 자청하는 척하지만. 실제는 고구려와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신라는 당의 요구에 3만 대군으로 고구려 남쪽국경를 침략한다. 백제의 금광개 갑옷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07/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신라에서 백제 특산물 황칠을 찾는 수나라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신라가 남쪽변경을 치다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할 때 백제는 신라의 서쪽 7개성을 함락시켜 버린다. 고구려가 당나라와 일대 격전을 치를 때 후방에서는 백제와 신라의 전쟁이 있었다는 뜻이다. 고구려가 당군을 무찌른 이유도 후방에서 백제가 신라를 견제했기 때문이다. 신라는 이때 당나라 도와주려다 신라가 위기에 처하게 되는 시기였다. 그러니 당 사신이 함부로 신라를 얍보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2009/12/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은 언제 처음 결혼했을까? - 비담과의 결혼은 사실일까? 
2009/12/08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낚시 비담 척살령과 덤앤더머 계백과 유신 그리고 황당한 당나라 사신
2009/07/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신라에서 백제 특산물 황칠을 찾는 수나라 
2009/12/0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의 부자감세 백제 침공을 자초했다.
2009/12/0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 척살령이 떡밥인 몇가지 이유
2009/11/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진흥왕(이순재) 신라의적 미실(고현정)척살 - 만화보다 못한 미실 죽음 고현정 하차

2009/10/2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기유년 미실의 난과 죽음, 극중 리얼리티 ZERO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2.10 0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 웃긴건 원래 비담을 죽여야하는 건 진덕여왕의 몫인데 말이죠.
    가장 실망했던 점이 진덕여왕을 빼놓은 점입니다.
    저도 원래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고자 하는 사람인데요...
    존재 자체도 불투명한 미실은 집어놓고 정작 선덕여왕 바로 뒤인 진덕여왕을 빼놓고 춘추가 왕이
    될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가 하고 있는 선덕여왕이 참.....
    진덕여왕 출연시키지도 않고 계백을 출연시키고 다른 떡밥을 던질때부터 50회이후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모든 역사서에서 인정하는 진덕여왕응을 빼놓고 허구적이라는 인물은 완전 미화시켜놓으니... 이거 원

  2. BlogIcon 라이너스™ 2009.12.10 0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비교해주셨네요^^
    잘보고갑니다. 좋은하루되세요~

  3. BlogIcon 좋은사람들 2009.12.10 0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리하십니다. 저 문서를 해독하시다니. ~ !!

  4. 임현철 2009.12.10 0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대단하시네요.

  5. BlogIcon 초록누리 2009.12.10 0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한가지 의문은 덕만이 비담에게 맹약서를 요구했나요?
    저는 비담이 자발적으로 써왔다고 생각했거든요.;;
    글과 관련 없는 말이지만 왜 죽이라는 명을 밀서로 남기는지 진흥제나 덕만이나 이햐가 안간다는 것지지용^^*

  6. BlogIcon labyrint 2009.12.10 1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오류가 많네요...
    음... 조금만 신경써도 저 정도는 아닐텐데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7. BlogIcon 뽀글 2009.12.10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이야기는 조금어려워요..ㅠ

  8. BlogIcon 892 2009.12.10 1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어려서 그런거는 잘 모르겟는데 ... 한 두번해봣 나 ???
    또 하구 싶은데 남자 친구가 군대에 가버렷네요 ㅠㅠ. 만.남 원합니다..
    haha10.com
    nunawa.com

  9. Maximin 2009.12.10 1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따위 막말 설정이라면 사실 승만이 덕만과 비담의 딸이라고 해도 납득될기세.
    그다음 비담은 딸과 덕만을 지키기 위해 일부로 반란을 일으킨다음 일부로 유신한테 만땅깨진다음
    간지나게 사망 한다는 같잖은 스토리가 나와도 시청률 올라갈 기세

    이건 뭐, 누구잘못인가.

  10. 2009.12.10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BlogIcon 초하(初夏) 2009.12.10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예 관련 글이 점차 더 전문화되고 있네요... ^&^
    이런 글을 어디서 다 찾아 쓰시는지... 대단하십니다!
    미실만한 연기 보기가 어려워 많이 아쉬운 시청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잘 지내시죠?
    날씨는 꿀꿀하지만, 즐겁고 신나는 오후 보내시길 바랍니다~~ ^&^

  12. 묘운 2009.12.10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이 비담에게 맹약서를 요구한게 아니라 비담 자신이 스스로 써온것이구요.
    비담을 믿지 못해서 춘추에게 비담척살령을 내린것이 아니라 비담을 믿지못하고 둘의 결합에
    불안해하는 춘추를 달래기 위해서, 그리고 후에 만약 비담의 세력이 커져 야망이 보인대도
    비담에 향한 연모때문에 강하게 나가지 못할까봐 지금 미리, 진도(?) 덜나갔을때 손쓴거죠.

  13. BlogIcon JiNi。 2009.12.16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오늘의 글도 예리하십니다.

  14. BlogIcon concessionaria kia 2012.09.10 2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이 문서에서 시간에 몇 가지 흥미로운 지점은 있지만 내가 그들의 마음 중심을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몇몇 유효 기간은하지만 더 이상 조사 때까지 기다 의견이 소요됩니다. 좋은 기사 감사하고 더 싶어요! 피드 버너뿐만 아니라에 추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과 덕만사이에 국혼이 진행된다.  비담과 덕만의 국혼이 성사되는 이유는 다른 이유가 없다. 비담을 좋아하는 팬들이 비담과 덕만의 사랑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에 의해서다.

덕만과 비담의 러브라인 요구를 하게 된 이유는 작가들이 드라마 전개를 전혀 역사와 부합되지 않게 전개하고 있으니, 드라마를 보는 아무 생각없는 시청자중 자기들이 좋아하는 배우가 극중에 많이 나오고, 이왕이면 왕과 썸씽이 있는게 좋지 않는가 하는 요구를 시청율에 목맨 작가들와 제작자가 어짜피 버린몸 시청율이나 올려보자는 알팍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와는 무관하지 오래이니, 차라리 덕만과 춘추의 결혼이 더 낫지 않을까 하지만 말이다. 춘추와 덕만은 안된다고? 하다면 드라마 인데 어떻겠는가? 어짜피 드라마 선덕여왕은 환타지 사극도 아니고 퓨젼사극도 아니고, 드라마가 갖춰야 할 개연성이나 스토리 구조는 망가질 때로 망가졌는데 말이다. 현재 드라마는 개그 프로 보다도 못한 상태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실이 떠나고 드라마 선덕여왕의 이야기가 재미가 없어지고, 극중 개연성도 없어졌다고 하지만, 실제는 미실이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할때 부터 선덕여왕은 극으로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덤앤더머의 최고봉은 미실과 설원과 덕만이였다.

오히려 미실이 떠난 상황에서 드라마 선덕여왕이 그나마 개연성도 확보하고 드라마 다워졌지만, 미실이 있을 때 보이지 않던 흠결들이 미실이 떠난 후 개안을 하듯이 흠결들이 부각되었을 뿐이다. 
 
바보들의 행진은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시대의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이 세상과 동떨어진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보들이란 자조적이고 역설적인 표현이였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미실이나 덕만이나 유신이나 모든 배역들이 정말 바보들일 뿐이다. 혹시 배역을 맡은 배우들 까지 역사는 고사하고 기초상식 조차 모르는 바보들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현재 드라마 전개상 덕만 다음대 왕이 진덕인것은 분명한데 진덕역의 승만은 드라마에 등장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덕만 다음대에 춘추가 왕이 된다고 해서 달라질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드라마 상에서 춘추는 나이가 어리니 역사 기록상에서 654년에서 661년까지  29대 신라왕이 되는 것 보다는 647년 부터 왕이 되는게 더 멋스럽지 않겠는가?  또한, 최소한 삼한일통의 기초를 닦을려면 8년 재위보다는 647년부터 재위해서 14년 재위하는게 멋지지 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드라마 인기도 떨어지는데 미실이 자살한줄 알았는데 지리산에 들어가 수행을 한후 돌아오는것으로 설정해서 덕만의 뒤를 이어 미실이 왕이 되고 이름을 승만으로 바꾸었다고 설정하는것이 다시 드라마 선덕여왕의 시청율을 높이는 방법이 아닐가 한다. 여기까지가 드라마 리뷰였다.

덕만은 누구와 결혼했을까?

그렇다면 기록상 선덕여왕은 비담과 결혼을 하였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의 기록상 선덕여왕이 결혼한 상대은 최소한 4명이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죽여 버렸다. 첫번째는 용수이고 두번째는 을제이다. 그리고 당연히 결혼한 용춘은 존재 여부도 불투명하게 만들어 버렸다. 또한, 흠반갈문왕과 결혼한 것으로 나오지만 존재여부가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덕만과 비담이 국혼을 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결혼이 성립되기 전에 덕만이 죽어버리고 닭쫓던 개 지붕처다 보듯이 비담이 사랑하는 덕만을 위해서 난을 일으키는것으로 설정할 수도 있지만, 현재 까지 결혼 상대자 비담이 국혼을 한다면 기록상 비담은 흠반갈문왕이 된다는 뜻이다.
 
삼국유사 왕력편에 의하면 선덕여왕 덕만은 634년 왕위에 오르는 즈음에 이미 결혼 상태에 있었다. 결혼 대상은 <음갈문왕>이였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580년 태어나서 646년 11월까지 67세가 되도록 성처녀로 있다가 늦바람이 나서 어린(?) 44세의 춘추를 놔 두고, 68세 비담과 결혼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삼국유사에서 덕만이 결혼 관계에 있었다는 기록은 덕만이 죽을때 자신의 무덤자리를 도솔천 위에 만들라고 했을때, 신하들이 <지기삼사> 중 황제는 어찌하여 모란에 향기가 없다는 뜻을 알게되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답으로 이세민이 자신이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왕이 죽기 전에 여러 신하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어떻게 해서 모란꽃에 향기가 없고, 개구리 우는 것으로 변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왕이 대답했다.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므로 그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것은 당나라 임금이 나에게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다. - 삼국유사 선덕왕의 지기삼사

그러니 모란꽃이 들어오기 전까지 덕만은 남편(배필)이 없었다는 뜻이 된다. 모란꽃이 들어오고 나서 <음갈문왕> 배필이 생겼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선덕왕 덕만은 언제 <음갈문왕>과 결혼을 하였을까?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의 632년1월부터 647년 1월까지 16년 재위한것과는 다르게 634년 3월부터 647년 1월 8일까지 14년 재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3년(634)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었다.- 삼국사기 선덕 3년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治十四年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634년)에 왕이 되어 14년동안 다스렸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第二十七 善德女王  名德曼.  父眞平王 母 麻耶夫人金氏. 圣骨男尽 故女王立.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治十四年.

선덕여왕(덕만)의 지기삼사중 첫번째이야기는 당태종때(626년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626년 당나라에 사신을 보낸때는 가을 7월이니 이때는 아직 이세민(태종)이 왕위를 잇기 전이다. 그렇다면 실제 당 태종(이세민)의 치세 이후가 되어야 하니, 627년, 629년, 631년, 632년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진평왕은 632년 정월(1월)에 죽었으므로  덕만의 '모란씨 서되' 사건은 627년, 629년, 631년 중으로 줄어들게 된다.

모란의 특성

한가지 더 고려해야 할 것은 모란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모란꽃은 5월~6월에 10여일 동안 피었다가 9~10월에 열매를 맺는다.
모란씨를 심어 발아하는 데는 약 2년이 걸린다. - 브리태니커백과 모란

진평왕이 모란씨를 심어 2년동안 땅속에서 발아과정을 지나 꽃을 보는데, 2년이 걸리므로, 632년 1월 죽은 진평왕이 살아생전 모란꽃을 보기는 요원하게 된다. 그러니 629년 9월과 631년 7월 당으로 간 사신단은 후보군에서 탈락하게 된다. 

그렇다면 남는 해는 627년 7월과 11월 뿐이다. 이해에는 이례적으로 2번의 사신단이 당나라에 간다. 당의 정치적 격변기이고 이세민이 연호를 <정관>으로 바뀐 해이니, 사신단이 2번 간것으로 추측된다.


모란꽃 이야기는 627년 11월 사건 전후에 있었던 일이다. 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모란씨 서되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니 <음갈문왕>과 결혼은 627년 11월 이후부터 634년 사이에 있었던 일이 된다.

만약,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가 위서가 아니라면, 음갈문왕과 결혼시기는 더 줄어 들게 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용춘은 629년 이후에 덕만과 결혼하고, 그후 용춘의 형 용수와 결혼관계에 있지만, 을제가 대신으로 덕만과 결혼한 때는 632년 1월이다. 그러니 음갈문왕과의 결혼은 632년 이후에서 634년 사이가 된다. 만약, 화랑세기의 흠반갈문왕이 <음>갈문왕과 동일인이라면 634년 1월 연호를 인평으로 바꾼해에 결혼한 것이다. 그러니 기존 통설과는 다르게 덕만은 나이가 어릴때 왕위에 올랐다는 또다른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음갈문은 누구일까?

선덕의 뒤를 이어 왕위를 이은자는 승만이다. 승만은 국반갈문왕의 딸이다. 국반갈문왕은  덕만의 아버지 진평왕의 동생이다. 즉 국반갈문왕은 덕만의 작은아버지이고 덕만은 작은아버지와 결혼을 한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덕만이 죽고, 의붓 딸인 승만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비담은 승만이 왕위를 잇는데 불만을 품고 명활성에서 난을 일으키는 것이다.


결론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과 덕만은 결혼에 성공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결혼에 실패한 비담이 난을 일으킨다는 설정이거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궁을 떠나는데 정치에 관여를 해서 맹약서 대로 춘추에 의해서 비담이 죽는 것이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물론, 정상적인 드라마라면 비담의 결혼은 실패해야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정상적인 드라마와는 전혀 다르니 어떻게 진행될지는 작가들의 쪽대본에 달려있을 뿐이다. 다만, 역사와 전혀 다르게 진행될것이란건 그동안 드라마 선덕여왕의 형태로 봐서 알 수는 있다.

어쩌면 시청자들 중에서 비담이 선덕여왕 다음대 왕이 되는 걸로 설정해 달라고 요구하면, 비담의 난이 아닌 염종만의 난으로 마무리 되거나 역사와는 다르게 비담이 난을 성공시켜서 이름을 춘추로 바꿀 지도 모르겠다. 어짜피 드라마인데 상관이 없지 않을까?

관련기사
2009/12/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 척살령과 비담 척살령의 공통점과 차이점

2009/12/08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낚시 비담 척살령과 덤앤더머 계백과 유신 그리고 황당한 당나라 사신

2009/07/23 -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모란씨 서되
2009/07/28 - [역사이야기] - 이요원보다 남지현 나이때 왕위에 오른 덕만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2.09 0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이쯤에서 쉰동님께 궁금한것이..
    님은 화랑세기가 역사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그냥 하나의 전설이라고 생각하세요?
    걍좀 궁금하네요 ㅎㅎ

  2. BlogIcon 朱雀 2009.12.09 0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오늘도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

  3. BlogIcon 한수지 2009.12.09 0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도표화된 계보도...
    눈에 쏘옥 들어옵니다 ㅎㅎㅎㅎ

  4. BlogIcon DJ야루 2009.12.09 0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의 중간쯤까지... 어 오늘은 역사 공부가 없나? 했는데 역시나 있었네요!!ㅋㅋㅋ

    잘보고 갑니당!

  5. 곰순양 2009.12.09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고 갑니다~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6. BlogIcon labyrint 2009.12.09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이반님의 글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저도 선덕여왕의 남편을 누구로 할까 고민 중에 있습니다... ㅋㅋ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7. BlogIcon 루비™ 2009.12.09 1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과 덕만이 국혼이라니...
    참 갓쉰동님 말처럼 웃기지도 않는 일이지만...
    드라마에서 눈빛이 너무 불쌍한 비담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노려보기함 일삼는 덕만이를 좋아하니..
    더 짜증이 나더군요.(여자 입장에서 봄)
    이왕 작가가 맘대로 지어내는 드라마이니
    승만을 엄청 아름다운 여자로 등장시켜
    비담과 섬씽을 만드는 것도...ㅋㅋ

  8. BlogIcon 윤서아빠세상보기 2009.12.09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어차피 드라만데 상관없지 않을까?
    ㅎㅎㅎ

  9. 재미없어짐 2009.12.09 1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엔 저도 어차피 드라마인데 라고 생각헀는데 저희 엄마나 어린 사촌동생들이 선덕여왕을 보면서 진짜 역사로 착각하는 걸 보면서 아 이래선 안돼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 엄만 선덕여왕이 진짜 상둥이고 비담이 진짜 미실 아들인 줄 압니다)특히나 우리나라는 국영수 위주 교육이라 국사 교육이 상당히 미약한데 드라마가 이렇게 심각하게 왜곡한다면 좀 문제가 되겠죠...그리고 역사왜곡 자체를 떠나서 드라마 자체가 너무 개연성이 없음....그냥 시청률 올릴려고 러브라인 만든듯...갠적으론 더 재미없더라고요...캐릭터 매력도 사라지고 ...도데체 비담은 덕만의 어떤 모습에서 사랑하게 됬는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단지 주인공이라서?

  10. BlogIcon 김종민 2009.12.09 15: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막의 결혼이야기라..
    여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선덕여왕....
    ㅎㅎㅎ
    이야기 잘 듣고 갑니다^^

  11. 비담과덕만 2009.12.09 1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라면 상관없다고 보는딩..ㅎㅎ

  12. 푸르미 2009.12.09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과의 국혼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전 드라마 속에서 선덕여왕이 처녀귀신이 되는구나 했습니다.
    ㅋㅋ^^;;
    실제 역사 속에서는 엄연히 결혼을 3번했다 4번했다며 횟수에서 약간의 차는 있었지만 그래도 엄연히
    지아비가 있었는데 말이죠. 제 생각에는 드라마상에서는 아마도 비담과의 국혼도 깨어지고 그대로 처녀로 승하하시는 건 아닐까 싶네요. 역사적인 사실과의 엄청난 이 괴리감... (아님 비담과의 국혼이 깨어지고 비담이 난을 일으키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동안 3-4번의 결혼을 후다닥 하는 건 아니겠지요..ㅎㅎ ^^;;)
    퓨전사극도 좋고 환타지적인 사극도 좋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역사적인 사실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은
    선에서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외에도 수출되는 우리의 역사 사극입니다. 학창시절
    얕은 국사의 지식을 배웠왔던 탓에 드라마에서 펼쳐지는 사극이 실제인듯 느껴지고 그 인물들의 역사적으로 기재된 실제 얘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정말인양 여과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나 자신부터가 그러한데 우리의 역사를 모르는 외국인들이 이 드라마를 본다면 한국의 신라시대에는 처녀가 왕으로 통치한 적도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13. 머레이 2009.12.09 1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은 극전개는 정신줄 놓은지 꽤 되었는지라 언젠가부터 안보는데 다음에 종종 떠있는 님 리뷰를 보면 여전히 선덕 제작진의 병맛쇼는 계속되나 보네요.

  14. 샌드맨 2009.12.09 2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놀라운 글 읽고 공감 백배하고 있습니다. 일찌감치 드라마 중심축에서 밀려난 덕만 그리고 이제 슬슬 지루해진 캐릭터들인 비담, 유신 보다 작가들이 마지막으로 시청률 유지용으로 함부로 막쓰고 있는

    계뱍 장군과 김유신 장군의 투쟁의 역사에 대해서 써주시면 안될까요? 정말 역사에 정통한

    분한테서 황산벌이나 선덕여왕이나 하는 영화, 드라마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있었는지 알고싶어서요..

    늘 건강하세요~

  15. ??? 2009.12.10 1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결혼이랑 선덕여왕이 어린 나이라는 것과 무슨 상관?

  16. 호호 2009.12.12 1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지, 뭘 저렇게 따지는지...

    픽션의 진실성은 사실성과 쌍둥이가 아닙니다.

  17. 지나가다 2009.12.24 0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나 소설을 보고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거나 사실처럼 느끼는 시청자가 아직도 존재한다는게 참 신기하다. 요즘같이 지식구하기가 쉬운 세상에 말이다.
    그럼 신윤복은 여잔가.ㅎㅎㅎ

  18. 지나가다 2009.12.24 0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의 글을 보자면 좀 피곤합니다.
    자신의 역사적 지식이 마치 대한민국민들의 기본 상식인마냥 끊임없이 좌파 특유의 조롱 섞인 비판을 해대니 말입니다.

    님을 만족시키기위해서 앞으로 역사극을 쓰는 작가들은 한 5년간은 역사공부를 하고 역사적 사실에 맞게 극전개하는 집필 과정도 한 5년쯤은해야 되겠군요.
    보아하니 님은 역사학도이거나 혹은 개인적으로 역사에 엄청 관심이 많은 분인거 같은데... 님은 이정도의 역사 지식을 얻는데 어느정도의 시간을 투자하셨나요? 님이 이정도의 지식을 구하는데 걸린 시간과 들인 노력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역사에 맞으면서 극 전개도 논리적이면서 재미까지 갖춘 50부 이상의 사극을 쓰는 것은 님이 들인 노력과 시간을 훨씬 뛰어넘는 것어이야 할겁니다. 작가들도 직업인인데 드라마 하나에 그렇게 목 맬순 없겠죠.
    역사를 공부하려고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님은 역사를 공부하려고 아니면 공부한 역사를 드라마로 복습하려고 선덕여왕을 보셨습니까? 님의 가장 큰 실수는 선덕여왕을 역사이야기라는 카테고리에 넣은겁니다. 드라마라는 카테고리를 만들던가 아니면 선덕여왕을 따로 뽑으셨어야죠. 그러면 드라마가 주가 되고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은 양념정도로 감상문을 쓰셨을테고 그렇다면 이리도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에 목매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아무리 역사드라마라지만 주가 역사(적 사실이라 추정되는 것)는 아닐텐데 말입니다.

    저도 좌파인데, 지식으로 무장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좌파 특유의 조롱섞인 글을 쓰는 좌파들을 보면 말이죠... 참 기분이 찝찝합니다.

  19. 지나가다 2009.12.24 0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오해하실까봐 덧붙이는데 드라마를 통해서 역사를 공부하려는 자세도 좋습니다. 다만 그것은 동기부여라는 차원이죠. 즉, 드라마를 보니 이런 인물, 이런 사건이 있던데 실제 역사는 어떨까... 하는 것 말입니다. 드라마 자체를 통해서 진실(이라 추정되는 것)을 꼭 얻어내고야 말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님의 역사 지식으로 선덕여왕의 허구성과 비논리를 포스팅하는 것은 아주 좋습니다. 다만, 님의 글들은 작가들과 현장 제작진 그리고 일부 선덕여왕 팬들의 기운이 빠질만큼 지나치게 조롱 섞인 비판이란거죠.

    님의 글들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정서는 이겁니다. "작가 니들 이런 것도 모르냐?풋. 시청자 니들 지금 이게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냐? 그냥 아무 생각없이 보겠지. 풋."

    작가들 어디 무서워서 역사극 쓰겠습니까. 역사극 하나 쓰려다간 강산이 변하겠네요.ㅎㅎㅎ
    모르죠. 62부작 역사극 하나 쓰면 원고료가 50억쯤 된다면야 10년 투자해서 역사적 사실에 맞게 극 논리에 맞게 재밌는 선덕여왕을 썼을지도.

블로그 이미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
갓쉰동
10-16 08:42
Yesterday58
Today6
Total977,327

글 보관함

최근에 올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