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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나오지 않는 진평왕의 아들들에 관한 글이 될겁니다.

칠숙,비담,흥원이 반란을 하는 이유

진위 논란의 한가운데 있는 <화랑세기>에는 진평왕에게는 최소한 4명의 아들들 즉 왕자들이 보인다. 이들 왕자의 후손들 중에 681년 흠돌 반란에 동참이 아닌 주도적으로 정통성 회복을 시도한 인물도 있다. 이때, 김유신과 김흠순 가문도 이에 연루가 되어 역사에서 사라질뻔한 위기를 겪는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김유신이 김미추의 능에 나타나서 쇼를 하는 바람에 위기를 넘기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의 기사가 될 것이다. 

이번 글은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칠숙이 반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송고한 기사의 반란 수괴들 시리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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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집안이 반란에 연루가 되면 해당 집안은 쑥대밭이 될뿐만 아니라, 반란에 연루된 일가친척 구족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반란세력의 집은 허물고, 물을 채워 연못(늪)으로 만들어 버린다.

혹시, 집 주위에 전혀 연못이 있을 자리가 아닌데 연못이 있다면 한번의심을 해보시라. 혹시 연못터에 반란의 수괴가 살았던 적이 있는지? 예전 <처선>에 대한 이야기를 꾸민 사극을 SBS에서 했을 것이다. 반란에 연루가 되지 않았지만, 연산군에 의해서 처선의 집이 연못으로 바뀌었고, 처선의 이름자가 들어간 관청까지 개명을 하는 사례가 있었다. 

드라마 사극 <선덕여왕>에는 반란에 연루된 몇몇이 등장하여 극의 재미를 높이고 있다. 첫번째는 미실의 충실한 충복이며 터미네이터 같은 <칠숙>이다. 칠숙이 반란을 일으킨 631년는 진평왕의 말년이며,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 632년 바로 전해이다. 

칠숙이 반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선택을 하게 만든 이는 진평왕이고, 칠숙은 반란에 실패해서 기록이 망실되어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최근 <선덕여왕>에서 미실과 진지(금륜)사이에 태어나 비련한 어머니 미실에 의해서 버려진 <비담:김남길>이 그동안 알고 있었던 등장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카리스마 넘치게 등장하였다. 비담에 관련된 글은 [역사이야기] - 카리스마 비담, 미실이 버린 아들? 사실은 과 [역사이야기] - 미실 아들, 용춘 동생, 카리스마 비담의 또다른 비밀 를 참조하기 바란다.

역사에 기록된 비담은 반란을 일으키는 647년에 상대등의 직위에 있었다. 하지만 이런 비담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군지 전혀 기록되지 않았다. 단지, 칠숙이나 비담은 신라의 최고위 관료인것으로 미루어 왕실의 최측근 인물임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진평왕의 아내들

그럼 진평왕의 아들이지만,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에서 사라진  인물들을 화랑세기는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 지 살펴보자.  화랑세기에도 <칠숙>이나 <비담>에 관한 기록을 찾아 볼 수는 없다. 단지, 화랑 출신들이 칠숙과 비담의 난을 제압했다는 기록이 있고, 흠돌의 난때에는 김대문 가문이 흠돌의 난을 평정을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기록이고, 흠돌의 세계도 단편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삼국사기,삼국유사,족보 기준 자식들



일단 우리가 알고 있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 관련 족보를 종합해 보면, 진평에게는 마야부인(황후?)와 손씨 승만의 기록만 보인다. 또한, 이들의 후손으로 천명, 덕만, 선화만 있고, 아들은 없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설마, 일국의 왕이 1부1처제를 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자유로운 신라시대에 진평이 달랑 공주 3명만 낳고, 왕통을 이을 후사를 보지 않고, 왕후가 죽고 나서 왕후를 뽑는 행동을 했다는 말은 상식에 반한다.
 
물론, 덕만이 50이 다 되어서 노처녀로 왕위를 이였고,  덕만이 왕에 있을때 춘추와 문희를 엮어 주는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또한, 신파극의 주인공 처럼 김유신이 첫사랑 <천관녀>를 못잊어, 전쟁터를 떠도는 전쟁광이 되고, 춘추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655년 회갑에 자신의 조카와 첫번째 결혼을 하여 원술을 낳았는데, 원술이 유신의 첫번째 아들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된다.

그렇게 믿고 있는 분들이라면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글과 [역사이야기] - 조선 세종, 신라 덕만, 천명의 기록 비교해 보니 을 일독하기를 권한다.

진평왕의 아들을 낳은 여인들

이제 탈도 많은 <화랑세기>에 나타난 진평왕과 그의 정비/후비들과 그들에서 난 자식들을 볼 차례이다. 일단, 진평과 관계를 맺은 인물들을 진평왕을 기준으로 다이아그램을 만들어 봤다.

진평왕과 관계된 처와 자식과 그 후손을 한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들을 낳은 사람은 별도의 표시를 할 것이다.



진평의 여자 중에서 왕후라 추측되는 인물은 마야와 승만이다. 승만은 마야가 죽고, 난 후, 마야의 뒤를 이어서 왕후가 되었다.

삼국유사는 단지, 아들을 얻기 위해서 승만을 왕후로 인명하였다고만 기록되어 있고, 화랑세기는 마야가 죽은 후에 승만이 왕후과 되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아들을 생산한 비들은 승만을 비롯해서 태양, 보량(박은빈)이다. 승만은 아들을 낳았지만, 일찍 죽었다. 승만은 아들이 죽은 이유가 용춘.용수 형제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들 형제를 미워해서, 한때 이들 형제가 지방으로 떠돌았다.

진평의여자와 후손, 원본을 보고 싶으면 크릭

태양은 태원과 흥원 두 아들을 낳는다. 보량은 보로라는 아들을 낳았지만, 승만의 미움을 받아서 양도에 다시 시집을 갔다고 전한다.


그래서 보로는 진평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태양의 자식인 태원과 흥원은 어떨까? 화랑세기는 이들도 태양이 방탕한 생활을 하여 태원과 흥원이 왕위를 이을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진평에게는 마야와 승만 만이 왕후였고, 딸은 달랑 3명만 있었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천만에 만만에 말씀, 진평은 그 누구보다도 아들을 낳기 위해서 정비/후비를 많이 두었고, 이들로 부터 아들 4명을 보았지만, 승만의 자식은 일찍 죽고, 3명의 자식중 흥원의 자식들은 후에 흠돌반란의 수괴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드라마 선덕여왕에는 미실의 딸과 진평왕의 아들이 사라졌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에는 나오지 않지만 진평/미실 사이에는 보화(진평/미실)라는 딸을 두고 있다. 보화도 왕위승계 자격이 충분히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보화의 남편은 구륜(진흥/사도)으로 진흥왕과 사도 사이에 난 정통성골이니 말이다. 이들도 극 속에 나왔더라면 드라마가 더 재밌지 않았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하는 소설 선덕여왕을 극본하였다면, 사실 진평왕의 아들들을 조명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선덕이 어떻게 남자형제들( 보로, 태원, 호원)을 물리치고 왕이 되었는가? 이쪽이 더 스팩터클한 내용이 되었을테 말이다.  "그건 니 생각이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사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실은 진평왕이 왕위를 이은 다음에 세종의 만류로 권력과 왕후가 되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미실이 사후 25~년 이후 인 632년 일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지 않나?

진평 아들과 그 후손


진평이 덕만을 선택한 이유?

재미있는 사실은 기존 통설대로 적통은 성골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마야보다 태양이 더 뼈속까지 성골이다.


덕만의 어미가 되는 마야는 복승/송화의 자식이다. 왕자인 태원.호원의 어미는 태양(진흥/사도)이다. 태양은 진흥/사도의 자식이다. 태양의 가문이 마야(복승/송화)의 가문보다는 더 왕실의 정통성에 부합니다. 마야의 아버지 복승은 상대적으로 태양의 아버지 진흥왕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마야의 어머니 송화(영실/지소)의 부계 영실보다는 태양(진흥/사도)의 부계가 진흥왕이니 마야의 후손보다는 태양의 후손이 왕위승계서열상 앞쪽에 있고, 보로(진평/보량)은 제외하더라도, 태원. 호원이 성골중에 성골이 된다. 그런데 그 많은 성골 왕자를 두고 성골남진이다?

하지만, 정비인 마야의 후손인 덕만이 왕위를 꽤찬다. 덕만은 진평왕과 마야의 적장녀이기 때문이다. 진평은 태양의 아들인 태원,호원보다도, 마야의 딸인 덕만을 선호했을 뿐이다. 덕만이 왕위를 잇는다는 사실을 알고, 이찬 <칠숙>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화랑세기에도 언급이 없는 태원과 칠숙이 모종의 썸씽이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비담이 태원의 자식일 지도 모르겠다. 화랑세기 내에서도 태원과 그의 후손에 관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진평의 "묻지고, 따지지도 않고", 선택한 덕만이기 때문에 덕만이 왕위를 잇는 것이다. 김정일.김일성이 결정하면 끝인것처럼 진평이 결정하면 끝이다. 

이유를 찾자면 아래 덕만 시리즈 글을 참조 하기 바람. 


 비담이 승만(국반/박씨)이 왕위를 잇기전 거창한 명분으로 내세운 <여왕은 더이상 안된다. 당나라도 그랬어요 여왕은 안된다고..>하였지만, 상대등 <비담>이 선덕(덕만) 말년 647년 반란을 일으키는 것도 칠숙의 사례와 본질은 같다.  

또한, 문무왕 사후 흠돌, 흥원, 진공 등이 정통성을 찾겠다고 반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호원(진평/태양)의 아들 흥원은 지금 통설로 하면 성골중에 성골이 된다. 그런데? 성골남진이 되어서 덕만이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면 개가 웃지 않겠는가?

또하나 잼있는 사실은 승만왕후의 성은 손씨이다. 그런데 진평은 손씨의 후손을 통해서 왕위를 잇겠다는 발상을 했었다는 것이다. 성골인 김씨나 박씨나 석씨도 아닌 일개 6부의 후손인 손씨를 통해서 신라의 성골정통을 잇겠다고 생각했겠는가? 기존 신라의 골품제 하에서는 성골>>>진골>>>>>>>>6부씨족>>>>>평민의 순서일텐데 말이다. 한마디로 진평왕이 "성골/진골 웃기고 있네" 하는것 같지 않는가?

죄수의 딜레마 화랑세기

많은 사람들이 <화랑세기>를 믿지 않는 이유중에 하나가. 지금의 관점으로 개족보 같은 혼맥도 있지만, 기존에 알고 있는 역사적인 상식인 성골.진골, 왕실계보, 화랑의 개념을 깨는데 있다. <화랑세기>를 인정한다면, 그동안의 축적된 연구성과물들이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성골.진골이다. 진평왕은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성골이 단절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성골여자인 덕만과 승만이 왕위를 이은 것이다. 화랑세기를 기준으로 한다면, 성골남자는 씨가 마른적도 없고, 성골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고 하니, 기가찰 노릇이 아닌가?

사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조금 꼼꼼하게 살펴보면, 성골은 존재자체도 없고, 성골이라고 하는 말은 당해 왕의 자손을 뜻한다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마야의 적손 왕자가 없고, 승만 왕후를 통해서 난 적자가 없다는 말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니들이 그동안 연구한 성과물들은 다 틀렸어"라고 하지 않는가?

인정하자니 그동안의 성과는 사라지고, 인정하지 않자니 화랑세기의 정교함에 치를 떨어야 하고, 안정하지 않고, 박창화 개인이 지어낸 저술이라고 한다면, 기존 사학계는 개인 박창화 한명보다도 못한 존재로 떨어져 버리고 만다. 그러니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졌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화랑세기를 믿는 자라면 성골/진골은 없다고 해야 한다. 화랑세기에서 성골로 알고 있는 자(왕.왕자.공주)들은 대부분 진골정통의 맥을 가지고 있다. 성골 = 대원신통 = 진골인 것이다. 화랑세기는 믿지만 성골.진골은 있다. 라고 생각한다면 웃기는 일이 아닌가?

화랑세기 신뢰는 글쎄?

사실 글쓴이는 화랑세기를 신뢰하는 편은 아니다, 화랑세기를 추적하는 동안 너무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믹스업 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이설이 있음을 주장하는 책이 삼국유사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삼국유사도 맞고, 삼국사기도 맞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고 있다. 또한, 이들을 교묘히 하나로 엮어서 일치 시키고 있다. 이는 화랑세기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후대에 나온 작품이란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화랑세기를 파고 또 파고 들수록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앞에 나온 책이란 화랑세기가  뒤에 나온 <삼국사기>, <삼국유사>을 참조한 듯 한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덕여왕을 비판을 할때가 아니고, 글쓴이가 주장을 하는 글에는 <화랑세기>를 절대로 인용하지 않고, 의문점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이에 필요한 자료를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삼국사절요에서 수집하여, 분석하고 재해석해서 가설을 검증하고, 가설이 합당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던 것이다.  진본을 필사한 화랑세기이던 박창화가 창작한 화랑세기이던 상관없이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많은 영감을 준다. 이정도 파괴력을 가진 책을 보지 못한것 같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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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8.06 0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BlogIcon 아이러니♡ 2009.08.06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공부 열심히 하네요 ㅋㅋ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4. 임현철 2009.08.06 0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쉽지 않은 공부인데 이거 재밌게 봅니다.

  5.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6 1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험치자니까요 ㅎㅎㅎ
    저는 옆에 요약 정리하면서 매일 공부하는데...
    오늘도 요약 정리를 나름대로 하고
    잘 배웠습니다. ㅎㅎㅎ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행복 가득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6. 잽돌이 2009.08.06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화랑세기의 진위여부는 이제 거의 진본 쪽으로 돌아 서고 있습니다.
    문헌비교를 통한 진위여부를 가리는 것도 중요 하지만
    그 고고학적 증거도 중요 하다고 할 수 있지요..
    역사학에 관심이 많으시고 화랑세기에 관심이 많으신것 같은데

    서강대학교 이종욱 교수가 그 전문가 이시고

    각종 고대 신라사에 대한 자료 구하기 쉬울 겁니다

    참고로 화랑세기가 진본 이라는 그 고고학적 증거 두가지만 밝히고 갈께요

    다른 역사서 어디에서도 언급 되지 않았던


    1.경주 월성의 해자가 발견 되었구요

    2.포석정 포석사 의 문양이 세겨진 기와 파편이 발견 되었습니다
    특히 문노가 결혼을 한곳이 포석사 라고 나오는데 그 포석사 라고 사당이라고 분명히
    화랑세기에 나오는 데 우리는 포석정 술마시고 노는 곳으로 알 고 있었습니다.

    이 두가지가.. 분명.. 화랑세기는 진본이라는 결정적 증거라 할 수 있고요

    너무나도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짜맞추기 하는 것 같다라고 하셨는데

    진본이기 때문 입니다.

    ^^

    지금 서울대 노태돈 교수쪽과
    이종욱 교수쪽이.. 엄청난 진위공방을 하고 있는데
    이종욱 교수쪽의 계속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논문 발표를
    하고 있지만 노태돈 교수쪽은 처음엔 대항하는 논리를 내세우다가 요즘은.. 대응을 안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아예 신라사를 다시 써야 할 지경에 이를테니까요

    도서관에 가셔서 화랑세기를 검색 하시면

    약 10~15권 정도의 책들이 있습니다..

    읽어 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8.06 1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몰라서 제가 진위가 으심스럽다고 했을까요? 저는 진위여부에 상관없이 화랑세기는 엄청난 역사학계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봅니다. 최근에 발표된 논문들을 보면 이전과는 다른 화랑세기를 인용한듯하면서, 참고 문헌으로 등록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영향을 미쳤다는 거지요..

      노태돈이 반응을 하지 않는 이유는 만지면 커지기 때문입니다. 주고 받으면 이슈화 되거든요.. ㅋㅋ

      양쪽이 다 들어맞기때문에 진본이다가 아니고, 양쪽을 합쳐 놓았기 때문에 의심스럽다는 겁니다..

  7. 물음표 2009.08.06 1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넘 재미있게 읽고 갑니당.^^....
    수고에 늘 감사 합니다.

    갓쉰동님 글 읽고~~~~~ 선덕여왕 드라마 보면서 남편이랑 아이들한테
    무지 잘난척하며 설명해 주곤 한답니다.ㅎㅎ
    계속 부탁해요...

  8. 잽돌이 2009.08.06 1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결국은 학문적 접근이 아닌..

    파벌싸움의 양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고대사 연구는 여러가지 제한때문에

    한정적 연구일 수 밖에 없는데요

    고고학적 증거 마저 무시한다면

    진짜 연구를 위한 연구지 학문을 위한 연구는 아닌거 같습니다.




    결국 당대에 씌여진 문헌을

    후대에 씌여진 문헌과 비교해 봤을때

    차이가 있어야만 한다 라는 발상과

    그럴리가 없다 라는 전제하에 바라보시는 것 같습니다.

    싸움을 거는게 아니구요.. 그냥 의견을 제시 하는 거예요 오해 마세요~ ^^

    • BlogIcon 갓쉰동 2009.08.06 1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저도 파벌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이종욱이 공개하자 노태돈이 그랫지요. 난 이미 다 봤다. 그런데 가라당..

      연구해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라고 생각함.. 그러지 않다면 화랑세기를 탐독할 이유가 없지요..

      화랑세기는 진위와 상관없이... 아이디어 뱅크 같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재생각을 글로써 표현하는 거지요.. 전대 기록이 후대기록을 보충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그런것이니 양해 해주셈.. 물론, 박창화가 가지도 있던 다른 자료도 제생각에 반영되었다는 것도 있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06 18: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의심하고 회의를 하고 추적을 하다보면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끝을 보겠지요.. 원래 회의주의자가 발견을 하지요.. 단, 회의한다고 해서 처다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될 수 없지만..

  9. 지나가는사람 2009.08.07 0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쭤볼것이 있습니다
    보량이나 태원 등에 대한 다른 남자후손에 대한 이야기가 화랑세기에 어느 풍월주대에 언급이 되어있는지 혹시 자세하게 알려주실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진평왕대에 풍월주에 오른 자들을 대충 살펴보았는데, 잘 찾지못하여 부탁드립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공과 흠돌 풍월주에 언급되어 이고, 양도공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보로는 용춘공 조에도 있음..

  10. 잽돌이 2009.08.07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랑은 견해가 다르시군요

    전대 기록이 후대 기록을 보충 할 수 없다라...

    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창작이 아니라면..

    특히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은 유교적인 관점에서 삼국사기를 썼었는데

    결국 자기 입맛에 맞는 내용만 발췌 했고 해석하고 자기의견을 넣었지요

    즉 고삼국기 원문에서 발췌를 했다면 전대 기록이 더 풍부하니

    후대기록을 보충 하고도 남는 거라고는 생각 하지 않으십니까?

    후대기록이 무조건 전대기록을 보충해서 더 많은 내용이 들어가 있다고는 볼 수 없다는게 저의 사견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역사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군요

    소주나 한잔 하실 까요?

    관심있으시면 메일 주시죠

    donygun@nate.com

    네이트 등록도 대 환영 입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1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견해가 다르다니 별로 다를것도 없는 것 같은데요..

      저는 회의를 하면서 추적하는 중입니다. 아직 결론을 내지 않았거든요.. 의심스럽다와 위서다 진서다는 다른 말인뎅..

      대화는 블로그를 통해서.. ㅋㅋ 죄송합니다.. 꾸벅~~

  11. 잽돌이 2009.08.07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
    칼날을 살짝 피해버리시는 노련함...

    ㅋㅋㅋ

  12. 지나가는사람 2009.08.08 0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번에 알려주신대로 화랑세기를 뒤져보았으나 태원과 호원에 대한 기록은 찾지 못하고, 전군보로에 관한 기록만 찾게 되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님께 질문을 드리고자합니다.
    전군보로는 미실의 손녀인 보량의 아들입니다. 보량의 경우에는 부모가 모두 성골임을 만족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전군또한 성골이라 보기 힘듭니다. 제가 부모가 모두 성골이어야한다고 하는 이유는, 많은 학자들이 설명하듯이 천명과 용수사이에서 낳은 춘추가 성골로 인정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용수 또한 진지왕의 아들이었으나 폐위되었기에 성골에서 멀어져, 그 아들도 성골로 인정받지 못하였습니다. 이토록 성골이 성립되려면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그렇기에 전군보로는 진평의 아들이나, 성골이 아니기에 왕위계승권자로 거론되지 않은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반역에 가담하게되는 태양공주의 아들들은 많은 학자들이 거론하듯이, 태양공주가 방탕하여 진평왕 이외의 많은 남성들과 관계를 맺었기에 그 아비를 확신할수 없어 성골로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마도 그 아비가 진평이외의 다른 남자임을 확신할만큼 정황이 확실하여 배제된것이라 사료됩니다. 아들로는 입적이 되나 성골로는 인정되지 않은 것은, 위에서 언급하듯, 그 조건을 성립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이유입니다. 성골은 그렇기에 그토록 우월한 골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제 의견중 틀린점이나 보충할 말씀이 있으시다면 댓글을 달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3. BlogIcon 갓쉰동 2009.08.08 0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에 앞서 흠돌은 호원공(好元公)의 아들 흥원(興元)을 부제로 삼았다. 애초에 태양공주(太陽公主)가 진평대제를 섬겨 태원(太元)과 호원(好元)을 낳았는데 제(帝)를 닮지 않았다. 공주는 어려서 금륜태자(金輪太子)339)를 섬겼는데 사신(私臣)을 좋아 하였다. 제(帝)를 섬길 때도 역시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양군(태원과 호원)은 통(統)을 얻지 못하였다. 흥원은 제통(帝統)이 자기에게 있다고 혼자 생각하여 조정을 원망하고, 누이를 흠돌의 첩으로 삼아 결탁하였다. - 27세 풍월주 흠돌에 나오는 기사입니다.

    단순히 사신을 좋아 했다고 해서 성골이 될 수 없다면, 지소의 자식들은 한명도 성골이 될수 없지요.. 지소 만큼 사신을 많이 둔 여인도 없거든요.. 사신을 두었기 때문에 골을 얻지 못한것이 아니고, 권력투쟁 싸움에 졌다고 보는게 합당하지요..

    또한, 만호도 사신을 두었습니다.. 그러니 진평 또한 성골이 될 수 없지 않겠어요.. 님의 말처럼 성골의 조건은 까다로운데요.. 지소와 이화랑의 사이에 난 여인이 만호입니다.. 이화랑(위화랑/준실)이니 만호는 성골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는 거지요..

    • 지나가는사람 2009.08.08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아직까지는 공부가 미흡해서 만호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군요. 성골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생각할만한 것은 아닌듯하네요. 공부할거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09 1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용춘의 어머니 지도를 봐도 잼있음.. ㅋㅋ 기록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어서 찾기가 난해하지만요.. ㅋㅋ

  14. BlogIcon 갓쉰동 2009.08.08 06: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장 쉬운 방법은요.. 진평왕의 아들이 아니고, 왕비의 소생이 아니여서 밀렸다가 맞지 않을 까요?
    1. 순위자 왕+왕비 소생
    2. 순위자 왕+후비
    3. 왕의 형제
    4. 왕의 형제의 자식들..

    성골의 다른 말이 성조(祖) 입니다. 왕의 혈통을 이엇다는 거지요.. 왕은 당연히 성스러운거구요..

    성(聖)은 그냥 꾸민말에 지나지 않아요.. 당나라를 신라는 성조(聖朝)라고 불렀지요,, 아마도.. 물론, 신라만 그런것은 아니지만..

  15.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6.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7. BlogIcon click here 2012.07.14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출/섭취되었다고 논증할 수 있다. 이는 더 적은 량으로도 인간광우

  18. BlogIcon Jeziorski 2012.10.01 2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렇지만 이는 정확히 말하면 식습관과 미국의 인구가 이를 막고 있는 것이다. 인구가 많기 때문에 더 많은 환자수가 발

  19. BlogIcon electric fence for dogs lowes 2012.11.03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넌 악플 중에서도 최저인게
    단순히 보지말라는 수준을 넘어
    글쓴이를 드라마 인기에 편승하는 장사꾼으로 매도하면서 아무런 근거도 내세운게 없쟎아.
    말만 부드러우면 그냥 막 까도 인격이 생기나부네?

  20. BlogIcon mre heater bomb 2012.11.06 2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사극 <선덕여왕>에는 반란에 연루된 몇몇이 등장하여 극의 재미를 높이고 있다. 첫번째는 미실의 충실한 충복이며 터미네이터 같은 <칠숙>이다. 칠숙이 반란을 일으킨 631년는 진평왕의 말년이며,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 632년 바로 전해이다.

  21. BlogIcon portable dog fence dogs 2012.11.23 0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아레스가 퇴장을 건 승부가 없었다면 우루과이는 8강에 만족하고 짐을 싸고 집에 돌아가야만 했다.

    승부차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루과이는 이기고 들어갔고, 가나는 이미 지고 들어가는 승부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나오지 않는 진평왕의 아들들에 관한 글이 될겁니다.

칠숙,비담,흥원이 반란을 하는 이유

진위 논란의 한가운데 있는 <화랑세기>에는 진평왕에게는 최소한 4명의 아들들 즉 왕자들이 보인다. 이들 왕자의 후손들 중에 681년 흠돌 반란에 동참이 아닌 주도적으로 정통성 회복을 시도한 인물도 있다. 이때, 김유신과 김흠순 가문도 이에 연루가 되어 역사에서 사라질뻔한 위기를 겪는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김유신이 김미추의 능에 나타나서 쇼를 하는 바람에 위기를 넘기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의 기사가 될 것이다. 

이번 글은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칠숙이 반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송고한 기사의 반란 수괴들 시리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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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집안이 반란에 연루가 되면 해당 집안은 쑥대밭이 될뿐만 아니라, 반란에 연루된 일가친척 구족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반란세력의 집은 허물고, 물을 채워 연못(늪)으로 만들어 버린다.

혹시, 집 주위에 전혀 연못이 있을 자리가 아닌데 연못이 있다면 한번의심을 해보시라. 혹시 연못터에 반란의 수괴가 살았던 적이 있는지? 예전 <처선>에 대한 이야기를 꾸민 사극을 SBS에서 했을 것이다. 반란에 연루가 되지 않았지만, 연산군에 의해서 처선의 집이 연못으로 바뀌었고, 처선의 이름자가 들어간 관청까지 개명을 하는 사례가 있었다. 

드라마 사극 <선덕여왕>에는 반란에 연루된 몇몇이 등장하여 극의 재미를 높이고 있다. 첫번째는 미실의 충실한 충복이며 터미네이터 같은 <칠숙>이다. 칠숙이 반란을 일으킨 631년는 진평왕의 말년이며,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 632년 바로 전해이다. 

칠숙이 반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선택을 하게 만든 이는 진평왕이고, 칠숙은 반란에 실패해서 기록이 망실되어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최근 <선덕여왕>에서 미실과 진지(금륜)사이에 태어나 비련한 어머니 미실에 의해서 버려진 <비담:김남길>이 그동안 알고 있었던 등장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카리스마 넘치게 등장하였다. 비담에 관련된 글은 [역사이야기] - 카리스마 비담, 미실이 버린 아들? 사실은 과 [역사이야기] - 미실 아들, 용춘 동생, 카리스마 비담의 또다른 비밀 를 참조하기 바란다.

역사에 기록된 비담은 반란을 일으키는 647년에 상대등의 직위에 있었다. 하지만 이런 비담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군지 전혀 기록되지 않았다. 단지, 칠숙이나 비담은 신라의 최고위 관료인것으로 미루어 왕실의 최측근 인물임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진평왕의 아내들

그럼 진평왕의 아들이지만,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에서 사라진  인물들을 화랑세기는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 지 살펴보자.  화랑세기에도 <칠숙>이나 <비담>에 관한 기록을 찾아 볼 수는 없다. 단지, 화랑 출신들이 칠숙과 비담의 난을 제압했다는 기록이 있고, 흠돌의 난때에는 김대문 가문이 흠돌의 난을 평정을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기록이고, 흠돌의 세계도 단편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삼국사기,삼국유사,족보 기준 자식들



일단 우리가 알고 있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 관련 족보를 종합해 보면, 진평에게는 마야부인(황후?)와 손씨 승만의 기록만 보인다. 또한, 이들의 후손으로 천명, 덕만, 선화만 있고, 아들은 없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설마, 일국의 왕이 1부1처제를 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자유로운 신라시대에 진평이 달랑 공주 3명만 낳고, 왕통을 이을 후사를 보지 않고, 왕후가 죽고 나서 왕후를 뽑는 행동을 했다는 말은 상식에 반한다.
 
물론, 덕만이 50이 다 되어서 노처녀로 왕위를 이였고,  덕만이 왕에 있을때 춘추와 문희를 엮어 주는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또한, 신파극의 주인공 처럼 김유신이 첫사랑 <천관녀>를 못잊어, 전쟁터를 떠도는 전쟁광이 되고, 춘추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655년 회갑에 자신의 조카와 첫번째 결혼을 하여 원술을 낳았는데, 원술이 유신의 첫번째 아들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된다.

그렇게 믿고 있는 분들이라면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글과 [역사이야기] - 조선 세종, 신라 덕만, 천명의 기록 비교해 보니 을 일독하기를 권한다.

진평왕의 아들을 낳은 여인들

이제 탈도 많은 <화랑세기>에 나타난 진평왕과 그의 정비/후비들과 그들에서 난 자식들을 볼 차례이다. 일단, 진평과 관계를 맺은 인물들을 진평왕을 기준으로 다이아그램을 만들어 봤다.

진평왕과 관계된 처와 자식과 그 후손을 한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들을 낳은 사람은 별도의 표시를 할 것이다.



진평의 여자 중에서 왕후라 추측되는 인물은 마야와 승만이다. 승만은 마야가 죽고, 난 후, 마야의 뒤를 이어서 왕후가 되었다.

삼국유사는 단지, 아들을 얻기 위해서 승만을 왕후로 인명하였다고만 기록되어 있고, 화랑세기는 마야가 죽은 후에 승만이 왕후과 되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아들을 생산한 비들은 승만을 비롯해서 태양, 보량(박은빈)이다. 승만은 아들을 낳았지만, 일찍 죽었다. 승만은 아들이 죽은 이유가 용춘.용수 형제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들 형제를 미워해서, 한때 이들 형제가 지방으로 떠돌았다.

진평의여자와 후손, 원본을 보고 싶으면 크릭

태양은 태원과 흥원 두 아들을 낳는다. 보량은 보로라는 아들을 낳았지만, 승만의 미움을 받아서 양도에 다시 시집을 갔다고 전한다.


그래서 보로는 진평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태양의 자식인 태원과 흥원은 어떨까? 화랑세기는 이들도 태양이 방탕한 생활을 하여 태원과 흥원이 왕위를 이을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진평에게는 마야와 승만 만이 왕후였고, 딸은 달랑 3명만 있었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천만에 만만에 말씀, 진평은 그 누구보다도 아들을 낳기 위해서 정비/후비를 많이 두었고, 이들로 부터 아들 4명을 보았지만, 승만의 자식은 일찍 죽고, 3명의 자식중 흥원의 자식들은 후에 흠돌반란의 수괴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드라마 선덕여왕에는 미실의 딸과 진평왕의 아들이 사라졌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에는 나오지 않지만 진평/미실 사이에는 보화(진평/미실)라는 딸을 두고 있다. 보화도 왕위승계 자격이 충분히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보화의 남편은 구륜(진흥/사도)으로 진흥왕과 사도 사이에 난 정통성골이니 말이다. 이들도 극 속에 나왔더라면 드라마가 더 재밌지 않았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하는 소설 선덕여왕을 극본하였다면, 사실 진평왕의 아들들을 조명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선덕이 어떻게 남자형제들( 보로, 태원, 호원)을 물리치고 왕이 되었는가? 이쪽이 더 스팩터클한 내용이 되었을테 말이다.  "그건 니 생각이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사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실은 진평왕이 왕위를 이은 다음에 세종의 만류로 권력과 왕후가 되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미실이 사후 25~년 이후 인 632년 일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지 않나?

진평 아들과 그 후손


진평이 덕만을 선택한 이유?

재미있는 사실은 기존 통설대로 적통은 성골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마야보다 태양이 더 뼈속까지 성골이다.


덕만의 어미가 되는 마야는 복승/송화의 자식이다. 왕자인 태원.호원의 어미는 태양(진흥/사도)이다. 태양은 진흥/사도의 자식이다. 태양의 가문이 마야(복승/송화)의 가문보다는 더 왕실의 정통성에 부합니다. 마야의 아버지 복승은 상대적으로 태양의 아버지 진흥왕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마야의 어머니 송화(영실/지소)의 부계 영실보다는 태양(진흥/사도)의 부계가 진흥왕이니 마야의 후손보다는 태양의 후손이 왕위승계서열상 앞쪽에 있고, 보로(진평/보량)은 제외하더라도, 태원. 호원이 성골중에 성골이 된다. 그런데 그 많은 성골 왕자를 두고 성골남진이다?

하지만, 정비인 마야의 후손인 덕만이 왕위를 꽤찬다. 덕만은 진평왕과 마야의 적장녀이기 때문이다. 진평은 태양의 아들인 태원,호원보다도, 마야의 딸인 덕만을 선호했을 뿐이다. 덕만이 왕위를 잇는다는 사실을 알고, 이찬 <칠숙>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화랑세기에도 언급이 없는 태원과 칠숙이 모종의 썸씽이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비담이 태원의 자식일 지도 모르겠다. 화랑세기 내에서도 태원과 그의 후손에 관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진평의 "묻지고, 따지지도 않고", 선택한 덕만이기 때문에 덕만이 왕위를 잇는 것이다. 김정일.김일성이 결정하면 끝인것처럼 진평이 결정하면 끝이다. 

이유를 찾자면 아래 덕만 시리즈 글을 참조 하기 바람. 


 비담이 승만(국반/박씨)이 왕위를 잇기전 거창한 명분으로 내세운 <여왕은 더이상 안된다. 당나라도 그랬어요 여왕은 안된다고..>하였지만, 상대등 <비담>이 선덕(덕만) 말년 647년 반란을 일으키는 것도 칠숙의 사례와 본질은 같다.  

또한, 문무왕 사후 흠돌, 흥원, 진공 등이 정통성을 찾겠다고 반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호원(진평/태양)의 아들 흥원은 지금 통설로 하면 성골중에 성골이 된다. 그런데? 성골남진이 되어서 덕만이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면 개가 웃지 않겠는가?

또하나 잼있는 사실은 승만왕후의 성은 손씨이다. 그런데 진평은 손씨의 후손을 통해서 왕위를 잇겠다는 발상을 했었다는 것이다. 성골인 김씨나 박씨나 석씨도 아닌 일개 6부의 후손인 손씨를 통해서 신라의 성골정통을 잇겠다고 생각했겠는가? 기존 신라의 골품제 하에서는 성골>>>진골>>>>>>>>6부씨족>>>>>평민의 순서일텐데 말이다. 한마디로 진평왕이 "성골/진골 웃기고 있네" 하는것 같지 않는가?

죄수의 딜레마 화랑세기

많은 사람들이 <화랑세기>를 믿지 않는 이유중에 하나가. 지금의 관점으로 개족보 같은 혼맥도 있지만, 기존에 알고 있는 역사적인 상식인 성골.진골, 왕실계보, 화랑의 개념을 깨는데 있다. <화랑세기>를 인정한다면, 그동안의 축적된 연구성과물들이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성골.진골이다. 진평왕은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성골이 단절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성골여자인 덕만과 승만이 왕위를 이은 것이다. 화랑세기를 기준으로 한다면, 성골남자는 씨가 마른적도 없고, 성골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고 하니, 기가찰 노릇이 아닌가?

사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조금 꼼꼼하게 살펴보면, 성골은 존재자체도 없고, 성골이라고 하는 말은 당해 왕의 자손을 뜻한다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마야의 적손 왕자가 없고, 승만 왕후를 통해서 난 적자가 없다는 말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니들이 그동안 연구한 성과물들은 다 틀렸어"라고 하지 않는가?

인정하자니 그동안의 성과는 사라지고, 인정하지 않자니 화랑세기의 정교함에 치를 떨어야 하고, 안정하지 않고, 박창화 개인이 지어낸 저술이라고 한다면, 기존 사학계는 개인 박창화 한명보다도 못한 존재로 떨어져 버리고 만다. 그러니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졌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화랑세기를 믿는 자라면 성골/진골은 없다고 해야 한다. 화랑세기에서 성골로 알고 있는 자(왕.왕자.공주)들은 대부분 진골정통의 맥을 가지고 있다. 성골 = 대원신통 = 진골인 것이다. 화랑세기는 믿지만 성골.진골은 있다. 라고 생각한다면 웃기는 일이 아닌가?

화랑세기 신뢰는 글쎄?

사실 글쓴이는 화랑세기를 신뢰하는 편은 아니다, 화랑세기를 추적하는 동안 너무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믹스업 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이설이 있음을 주장하는 책이 삼국유사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삼국유사도 맞고, 삼국사기도 맞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고 있다. 또한, 이들을 교묘히 하나로 엮어서 일치 시키고 있다. 이는 화랑세기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후대에 나온 작품이란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화랑세기를 파고 또 파고 들수록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앞에 나온 책이란 화랑세기가  뒤에 나온 <삼국사기>, <삼국유사>을 참조한 듯 한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덕여왕을 비판을 할때가 아니고, 글쓴이가 주장을 하는 글에는 <화랑세기>를 절대로 인용하지 않고, 의문점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이에 필요한 자료를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삼국사절요에서 수집하여, 분석하고 재해석해서 가설을 검증하고, 가설이 합당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던 것이다.  진본을 필사한 화랑세기이던 박창화가 창작한 화랑세기이던 상관없이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많은 영감을 준다. 이정도 파괴력을 가진 책을 보지 못한것 같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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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아이러니♡ 2009.08.06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공부 열심히 하네요 ㅋㅋ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3. 임현철 2009.08.06 0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쉽지 않은 공부인데 이거 재밌게 봅니다.

  4.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6 1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험치자니까요 ㅎㅎㅎ
    저는 옆에 요약 정리하면서 매일 공부하는데...
    오늘도 요약 정리를 나름대로 하고
    잘 배웠습니다. ㅎㅎㅎ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행복 가득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5. 잽돌이 2009.08.06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화랑세기의 진위여부는 이제 거의 진본 쪽으로 돌아 서고 있습니다.
    문헌비교를 통한 진위여부를 가리는 것도 중요 하지만
    그 고고학적 증거도 중요 하다고 할 수 있지요..
    역사학에 관심이 많으시고 화랑세기에 관심이 많으신것 같은데

    서강대학교 이종욱 교수가 그 전문가 이시고

    각종 고대 신라사에 대한 자료 구하기 쉬울 겁니다

    참고로 화랑세기가 진본 이라는 그 고고학적 증거 두가지만 밝히고 갈께요

    다른 역사서 어디에서도 언급 되지 않았던


    1.경주 월성의 해자가 발견 되었구요

    2.포석정 포석사 의 문양이 세겨진 기와 파편이 발견 되었습니다
    특히 문노가 결혼을 한곳이 포석사 라고 나오는데 그 포석사 라고 사당이라고 분명히
    화랑세기에 나오는 데 우리는 포석정 술마시고 노는 곳으로 알 고 있었습니다.

    이 두가지가.. 분명.. 화랑세기는 진본이라는 결정적 증거라 할 수 있고요

    너무나도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짜맞추기 하는 것 같다라고 하셨는데

    진본이기 때문 입니다.

    ^^

    지금 서울대 노태돈 교수쪽과
    이종욱 교수쪽이.. 엄청난 진위공방을 하고 있는데
    이종욱 교수쪽의 계속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논문 발표를
    하고 있지만 노태돈 교수쪽은 처음엔 대항하는 논리를 내세우다가 요즘은.. 대응을 안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아예 신라사를 다시 써야 할 지경에 이를테니까요

    도서관에 가셔서 화랑세기를 검색 하시면

    약 10~15권 정도의 책들이 있습니다..

    읽어 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8.06 1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몰라서 제가 진위가 으심스럽다고 했을까요? 저는 진위여부에 상관없이 화랑세기는 엄청난 역사학계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봅니다. 최근에 발표된 논문들을 보면 이전과는 다른 화랑세기를 인용한듯하면서, 참고 문헌으로 등록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영향을 미쳤다는 거지요..

      노태돈이 반응을 하지 않는 이유는 만지면 커지기 때문입니다. 주고 받으면 이슈화 되거든요.. ㅋㅋ

      양쪽이 다 들어맞기때문에 진본이다가 아니고, 양쪽을 합쳐 놓았기 때문에 의심스럽다는 겁니다..

  6. 물음표 2009.08.06 1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넘 재미있게 읽고 갑니당.^^....
    수고에 늘 감사 합니다.

    갓쉰동님 글 읽고~~~~~ 선덕여왕 드라마 보면서 남편이랑 아이들한테
    무지 잘난척하며 설명해 주곤 한답니다.ㅎㅎ
    계속 부탁해요...

  7. 잽돌이 2009.08.06 1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결국은 학문적 접근이 아닌..

    파벌싸움의 양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고대사 연구는 여러가지 제한때문에

    한정적 연구일 수 밖에 없는데요

    고고학적 증거 마저 무시한다면

    진짜 연구를 위한 연구지 학문을 위한 연구는 아닌거 같습니다.




    결국 당대에 씌여진 문헌을

    후대에 씌여진 문헌과 비교해 봤을때

    차이가 있어야만 한다 라는 발상과

    그럴리가 없다 라는 전제하에 바라보시는 것 같습니다.

    싸움을 거는게 아니구요.. 그냥 의견을 제시 하는 거예요 오해 마세요~ ^^

    • BlogIcon 갓쉰동 2009.08.06 1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저도 파벌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이종욱이 공개하자 노태돈이 그랫지요. 난 이미 다 봤다. 그런데 가라당..

      연구해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라고 생각함.. 그러지 않다면 화랑세기를 탐독할 이유가 없지요..

      화랑세기는 진위와 상관없이... 아이디어 뱅크 같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재생각을 글로써 표현하는 거지요.. 전대 기록이 후대기록을 보충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그런것이니 양해 해주셈.. 물론, 박창화가 가지도 있던 다른 자료도 제생각에 반영되었다는 것도 있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06 18: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의심하고 회의를 하고 추적을 하다보면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끝을 보겠지요.. 원래 회의주의자가 발견을 하지요.. 단, 회의한다고 해서 처다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될 수 없지만..

  8. 지나가는사람 2009.08.07 0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쭤볼것이 있습니다
    보량이나 태원 등에 대한 다른 남자후손에 대한 이야기가 화랑세기에 어느 풍월주대에 언급이 되어있는지 혹시 자세하게 알려주실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진평왕대에 풍월주에 오른 자들을 대충 살펴보았는데, 잘 찾지못하여 부탁드립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공과 흠돌 풍월주에 언급되어 이고, 양도공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보로는 용춘공 조에도 있음..

  9. 잽돌이 2009.08.07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랑은 견해가 다르시군요

    전대 기록이 후대 기록을 보충 할 수 없다라...

    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창작이 아니라면..

    특히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은 유교적인 관점에서 삼국사기를 썼었는데

    결국 자기 입맛에 맞는 내용만 발췌 했고 해석하고 자기의견을 넣었지요

    즉 고삼국기 원문에서 발췌를 했다면 전대 기록이 더 풍부하니

    후대기록을 보충 하고도 남는 거라고는 생각 하지 않으십니까?

    후대기록이 무조건 전대기록을 보충해서 더 많은 내용이 들어가 있다고는 볼 수 없다는게 저의 사견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역사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군요

    소주나 한잔 하실 까요?

    관심있으시면 메일 주시죠

    donygun@nate.com

    네이트 등록도 대 환영 입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1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견해가 다르다니 별로 다를것도 없는 것 같은데요..

      저는 회의를 하면서 추적하는 중입니다. 아직 결론을 내지 않았거든요.. 의심스럽다와 위서다 진서다는 다른 말인뎅..

      대화는 블로그를 통해서.. ㅋㅋ 죄송합니다.. 꾸벅~~

  10. 잽돌이 2009.08.07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
    칼날을 살짝 피해버리시는 노련함...

    ㅋㅋㅋ

  11. 지나가는사람 2009.08.08 0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번에 알려주신대로 화랑세기를 뒤져보았으나 태원과 호원에 대한 기록은 찾지 못하고, 전군보로에 관한 기록만 찾게 되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님께 질문을 드리고자합니다.
    전군보로는 미실의 손녀인 보량의 아들입니다. 보량의 경우에는 부모가 모두 성골임을 만족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전군또한 성골이라 보기 힘듭니다. 제가 부모가 모두 성골이어야한다고 하는 이유는, 많은 학자들이 설명하듯이 천명과 용수사이에서 낳은 춘추가 성골로 인정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용수 또한 진지왕의 아들이었으나 폐위되었기에 성골에서 멀어져, 그 아들도 성골로 인정받지 못하였습니다. 이토록 성골이 성립되려면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그렇기에 전군보로는 진평의 아들이나, 성골이 아니기에 왕위계승권자로 거론되지 않은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반역에 가담하게되는 태양공주의 아들들은 많은 학자들이 거론하듯이, 태양공주가 방탕하여 진평왕 이외의 많은 남성들과 관계를 맺었기에 그 아비를 확신할수 없어 성골로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마도 그 아비가 진평이외의 다른 남자임을 확신할만큼 정황이 확실하여 배제된것이라 사료됩니다. 아들로는 입적이 되나 성골로는 인정되지 않은 것은, 위에서 언급하듯, 그 조건을 성립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이유입니다. 성골은 그렇기에 그토록 우월한 골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제 의견중 틀린점이나 보충할 말씀이 있으시다면 댓글을 달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2. BlogIcon 갓쉰동 2009.08.08 0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에 앞서 흠돌은 호원공(好元公)의 아들 흥원(興元)을 부제로 삼았다. 애초에 태양공주(太陽公主)가 진평대제를 섬겨 태원(太元)과 호원(好元)을 낳았는데 제(帝)를 닮지 않았다. 공주는 어려서 금륜태자(金輪太子)339)를 섬겼는데 사신(私臣)을 좋아 하였다. 제(帝)를 섬길 때도 역시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양군(태원과 호원)은 통(統)을 얻지 못하였다. 흥원은 제통(帝統)이 자기에게 있다고 혼자 생각하여 조정을 원망하고, 누이를 흠돌의 첩으로 삼아 결탁하였다. - 27세 풍월주 흠돌에 나오는 기사입니다.

    단순히 사신을 좋아 했다고 해서 성골이 될 수 없다면, 지소의 자식들은 한명도 성골이 될수 없지요.. 지소 만큼 사신을 많이 둔 여인도 없거든요.. 사신을 두었기 때문에 골을 얻지 못한것이 아니고, 권력투쟁 싸움에 졌다고 보는게 합당하지요..

    또한, 만호도 사신을 두었습니다.. 그러니 진평 또한 성골이 될 수 없지 않겠어요.. 님의 말처럼 성골의 조건은 까다로운데요.. 지소와 이화랑의 사이에 난 여인이 만호입니다.. 이화랑(위화랑/준실)이니 만호는 성골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는 거지요..

    • 지나가는사람 2009.08.08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아직까지는 공부가 미흡해서 만호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군요. 성골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생각할만한 것은 아닌듯하네요. 공부할거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09 1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용춘의 어머니 지도를 봐도 잼있음.. ㅋㅋ 기록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어서 찾기가 난해하지만요.. ㅋㅋ

  13. BlogIcon 갓쉰동 2009.08.08 06: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장 쉬운 방법은요.. 진평왕의 아들이 아니고, 왕비의 소생이 아니여서 밀렸다가 맞지 않을 까요?
    1. 순위자 왕+왕비 소생
    2. 순위자 왕+후비
    3. 왕의 형제
    4. 왕의 형제의 자식들..

    성골의 다른 말이 성조(祖) 입니다. 왕의 혈통을 이엇다는 거지요.. 왕은 당연히 성스러운거구요..

    성(聖)은 그냥 꾸민말에 지나지 않아요.. 당나라를 신라는 성조(聖朝)라고 불렀지요,, 아마도.. 물론, 신라만 그런것은 아니지만..

  14.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5.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6. BlogIcon click here 2012.07.14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출/섭취되었다고 논증할 수 있다. 이는 더 적은 량으로도 인간광우

  17. BlogIcon Jeziorski 2012.10.01 2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렇지만 이는 정확히 말하면 식습관과 미국의 인구가 이를 막고 있는 것이다. 인구가 많기 때문에 더 많은 환자수가 발

  18. BlogIcon electric fence for dogs lowes 2012.11.03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넌 악플 중에서도 최저인게
    단순히 보지말라는 수준을 넘어
    글쓴이를 드라마 인기에 편승하는 장사꾼으로 매도하면서 아무런 근거도 내세운게 없쟎아.
    말만 부드러우면 그냥 막 까도 인격이 생기나부네?

  19. BlogIcon mre heater bomb 2012.11.06 2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사극 <선덕여왕>에는 반란에 연루된 몇몇이 등장하여 극의 재미를 높이고 있다. 첫번째는 미실의 충실한 충복이며 터미네이터 같은 <칠숙>이다. 칠숙이 반란을 일으킨 631년는 진평왕의 말년이며,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 632년 바로 전해이다.

  20. BlogIcon portable dog fence dogs 2012.11.23 0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아레스가 퇴장을 건 승부가 없었다면 우루과이는 8강에 만족하고 짐을 싸고 집에 돌아가야만 했다.

    승부차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루과이는 이기고 들어갔고, 가나는 이미 지고 들어가는 승부였다.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글에서 덕만이 왕위에 쉽게 오를 수 있는 배경으로 덕만 선대에 있었던, 지소, 금진, 사도, 미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지소는 법흥의 딸이고, 법흥의 동생인 입종에 시집을 간다. 법흥이 죽고 나자, 7살의 어린 진흥(심맥종)이 왕위에 오르지만, 실질적인 전권을 행사하고,수렴청정을 하는 지소(법흥/보도)라고 했었다.

또한, 지소에게는 입종말고도, 진흥왕비인 사도의 아버지인 영실을 두번째 남편으로 두고 있었다. 이런 기록들은 현존하고 있는 <화랑세기>의 기록들의 단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미실의 선대 여인에 대한 이야기기들이 빠져있다. 미실이 존재하게 된 이유는 지소와 옥진, 금진이 있었기 때문에 미실이 살아갈 수 있었고, 국정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법흥왕(514~540) 말년부터 진평왕(579~632) 초기 10 여년 동안은 여인들이 신라를 지배하고 있었던 듯하다. 햇수로 대략 70~80년이 된다. 그러니 신라의 발전기에 해당하는 기간인  법흥왕 후반기~ 진평왕 초기까지 모두가 여인천하 아래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009년 현재 해방 65년이 지났지만, 일제 강점기 1910~1945년 까지 36년만으로도, 일제의 잔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덕만이 왕위에 오른다는 행위는, 현재로 보아서는 삼국에는 없는 여왕이 등극하다니? 하는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는 파천황적인 상황이지만, 화랑세기로 본다면, 당시 신라사회에서는 당연시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일본서기에 의하면 이미 당시 왜에서는 여왕천하에 있었다. 신라의 이웃 국가인 왜의 첫 여왕인 추고여왕(593~628), 제명.황극(641~645, 655~661) 사례도 있으니 충분히 고려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실을 있게 한 지소는 누구이며, 지소의 남자들은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전글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를 송고하면서 <지소의 남자>들을 개괄적인 다이어그램으로 보여 주었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사람과 사람이 얽키고 설켜 있어서 이들 간에 관계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계보도 또한 복잡하고, 결혼 상대자도 수시로 바뀌어, 남자나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 이를 추적한다는 것이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신들의 혼맥 보다도복잡하다. 그래서 이를 도표나 계보도를 만들어 놓고, 읽지 않는다면, 가계, 혼맥, 인맥, 남.여상열지사 조차 따라가다 보면 흐름을 놓치기 일 수 이다.

더 나아가 화랑세기는 화랑의 전기라고는 하지만, 수 없이 많이 등장하는 여성들로 인해서 지소전기, 금진전기, 사도전기, 미실전기 처럼 여인열전이 되버린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가계도를 정리 할 때, 남성중심의 부계 가계도, 족보을 작성한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남성중심의 가계도를 작성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여성중심의 가계도를 작성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오죽하면 화랑세기에서 조차도 <대원신통>, <진골정통> 등 여성의 신통과 인통을 중요하게 서술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진평왕과 마야의 맏딸인 <덕만>이 다른 누구보다 앞서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올랐는지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덕만이 오르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해서, 신라를 여인천하로 만든 시발점인 지소태후를 추적할 필요성이 있게 되었다.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글은 맛보기 정도 였다.

이전 글에서 여성 중심으로 그림을 작성하니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막연히 지소의 남자들이 많았구나. 미실도 팜브파탈이라고 하는데, 지소는 미실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부족함이 없구나 할 것이다. 그래서 여성 중심의 가계도를 작성하는 시발점의 맛보기 였고, 첫 여성계보도의 주자로 지소를 선택하게 된것이다.

크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그림을 보면 어떤가? 지소태후의 남자들이 너무나도 많지 않은가? 일국의 왕이나 했음직한 행동이다. 

화랑세기에서 지소를 빼 놓고는 연결이 되는게 하나도 없다. 부계로 찾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인맥과 혼맥과 이유들이 지소를 통해서 개안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소 중심인 모계도를 작성해 보니, 그전까지 단순히 덕만과 유신이 만호 할머니의 자식들이구나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덕만도, 유신도 지소의 후손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화랑세기가 복잡하면서도 재미가 솔솔하다.

실은 예전에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인물 각각의 성별, 생/몰, 부/모, 남편/부인, 관련 남.여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을 기록해 보관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다 완성하지는 못했고, 중간에 데이타가 다 지워져 버렸다. 처음 화랑세기의 인맥을 데이타베이스로 구축하고, 화랑세기를 분석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화랑세기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 였다. 결론을 약간 흘리자면 '현존 화랑세기는 너무나 정교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정도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미싱링크를 절묘하게 믹스해 놓은 거라고 할 정도였다.

어찌되었던, 여러가지 일 때문에 자연히 관심이 화랑세기에서 멀어졌고, 드라마 선덕여왕이 하기전까지 까막게 화랑세기를 추적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드라마 선덕여왕은 나의 기억 심연속에 숨어있던 역사에 대한 열정을 끄집어 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mbc 선덕여왕 제작팀에게 감사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 .

이번 글도 이전의 덕만의 공주시절부터 있었던, 에피소드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하나하나 추적하고, 덕만이 어린시절 왕에 오를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증명하는 시리즈 글이였듯이,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지소를 시작으로 옥진, 금진, 미실 등 여성중심의 계보도 시리즈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전 덕만 시리즈 글을 본사람은 느끼겠지만, 덕만을 추적할때 화랑세기를 인용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유는?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아직까지 역사적인 산물인 김대문의 기록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 것이 통설이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판하거나 할때는 화랑세기와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인용해서 비판을  했었다. 이유는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원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랑세기 원전을 들어서 소설 선덕여왕이 왜곡하고 있는 팩트를 지적했던 것이다.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원전으로 삼지 않았다면, 절대로 화랑세기를 인용하여,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판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는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판하는게 아니였다. 드라마의 원전인 소설 선덕여왕을 비판하는 것이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역사왜곡은 둘째치고라도 재미가 솔솔하다. 좀더 좋은 소설이나 원전을 가지고, 드라마 사극을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글에서는 전편에 이어서 지소 중심 계보도만을 게시하는 것으로 끝을 맺을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글이 너무 늘어지게 되고, 한두시간을 읽어도 모자라는 글이 되기 때문이다. 읽는데 한두시간이면 쓰는데 몇시간이 걸리겠는가? 그러니 당연히 시리즈 글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단 지소의 남편인 입종을 기준으로 계보도를 작성한 것이다. 입종의 기준으로 하면, 지소는 입종의 많은 여인중에 한사람이 된다. 그중 입종과 지소 사이에 진흥(540~576)이 태어난 것 처럼 보인다. 중심은 입종이 되는것이다. 그런데 입종이 중심이 아니고 지소가 중심에 서 있고, 단순히 지소가 여러 남자중 작은아버지 입종을 남편으로 선택한 것 처럼 보인다.


만호(지소/이화랑)는 동륜(진흥/사도)와 결혼해서 진평왕과 그 형제들을 낳았다. 입종과 옥진 사이에 태어난 숙흘종(입종/옥진)과 관계를 맺어, 만명(숙흘종/만호)를 낳았다. 이 만명이 서현과 사랑에 빠져 만노군으로 도피행각을 벌여 유신을 낳은 것이다.
 
전편에 지소의 남자로 입종과 금진 사이에 난 숙흘종과 관계를 맺어 만호를 낳았다고 하였지만, 이는 인맥을 잘못 살핀 것이다. 화랑세기는 삐끗 잘못하면, 삼천포로 빠져 버린다. 지소가 위화랑의 아들인 이화랑(위화랑/준실)과 관계를 맺어 숙흘종을 낳은 것이다.

어찌되었던 남성 중심의 입종이 아닌 여성인 지소를 기준으로 혼맥과 가계도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지소의남편들과 후손들 이미지 크릭시 원본을 볼 수 있음


지소의 10명의 남자 중에서 입종, 이사부, 구진, 영실, 이화랑에게서 후손을 본다.

입종, 이사부 

작은 아버지 입종(지증/연제)에게서는 진흥왕이 태어 났다. 

이사부 사이에는 미실의 남편인 세종과 진흥왕의 첫번째 정비인 숙명을 낳는다. 숙명은 처음 진흥왕에 시집을 갔지만, '어머니가 같은 형제가 된다'하여 진흥왕(지소/입종)이 멀리 하고, 숙명 또한, 진흥과 같은 이유로 진흥을 좋아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하여 숙태자를 낳았다. 숙명은 어머니 지소의 정부인 이화랑과 사랑에 빠져서 도피행각을 벌리고, 원광법사와 12세 풍월주인 보리를 낳는다. 이들의 형태가 서현과 만명의 사랑의 도피를 보는것 같지 않는가? 어찌되었던 보리는 화랑세기를 지은 김대문의 할아버지이다.


영실

아버지 법흥에 의해서 강제적인 결혼을 하였다.
영실과는 송화와 황화를 낳는데, 송화는 복승과 결혼해 진평왕의 비인 마야를 낳는다. 그들의 후손으로 화랑세기는 천명,덕만, 천화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천화가 서동의 아내인 선화의 냄새가 난다.
 

결국 덕만의 계보는 지소/영실->송화/복승-->마야/진평-> 천명, 덕만, 천화이 된다.
부계로는 지소/입종->진흥/사도 ->동륜/만호->진평/마야->덕만 이 된다.
결국 덕만은 모계로 지소에 통하고, 부계로도 지소와 연결이 된다.

영실은 지소 말고도 여러 아내가 있었는데, 그 중에 옥진이 있었다, 옥진은 1세 풍월주인 위화랑(섬신/벽아)의 딸이고, 사다함의 어머니인 금진의 언니가 된다. 영실/옥진은 사도, 노리부, 흥도, 묘도를 낳는다.

사도(영실/옥진)는, 숙명(이사부/지소)이 지소의 정부인 이화랑(위화랑/준실)과 사랑에 빠져 폐위된 이후 진흥비가 되어 동륜, 금륜(진지), 아양을 낳는다. 아양은 유신의 할아버지인 무력과 결혼하여 서현을 낳는다.

영실과 옥진 사이에 난 흥도는 기오(홍기/선혜)와 결혼해서 금륜(진지)비가 되는 지도를 낳는다. 지도는 금륜사이에 용수와 용춘 형제를 낳고, 진지왕이 죽은 후 진흥/월화 사이에서 난 천주공과 결혼한 후, 16세 보종(설원랑/미실)에 이어 17세 풍월주인 염장, 천장을 낳는다.

이화랑

이화랑과 사이에는 만호를 낳는데. 만호를 자신의 손자인 금륜(진흥/사도)에 시집보낸다.
만호는 지소의 남편의 소생인 숙흘종(입종/금진)과 정을 통하고 만명을 낳는다. 만명은 유신의 아버지인 서현에게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린후 만노군에서 유신을 낳는다. 서현의 어머니인 아양은 (진흥/사도)사이에 태어났다.
그러니 사다함은 모계쪽으로 보면 유신과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위화랑/오도 - >금진/입종->숙흘종/만호(지소/이화랑) -> 만명/서현 -> 유신
부계로는 무력/아양(진흥/사도)->서현/만명[숙흘종(입종/금진)/만호(지소/이화랑)] - >유신

또한, 유신은 지소의 중첩된 직계 후손인 것이다.
지소/입종->진흥/사도->아양/무력->서현/만명[숙흘종(입종/금진)/만호(지소/이화랑)]->만명->유신
할머니 만호는 동륜과 결혼해서 진평의 형제들을 낳았다. 그러니 진평왕과 만명은 동복남매간이 된다.

구진

구진은 지소의 침소를 지키는 자였는데, 지소와 관계를 가져 보명궁주를 낳는다. 보명궁주는 별궁에 살았는데, 진평왕의 아버지인 동륜이 태자시절인 572년 미실의 꼬임에 빠져 보명궁의 담을 넘다가 개에게 물려 죽고 만다. 이때 미실은 문책을 받아 궁에서 쫓겨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용수.용춘과 미실 사이를 적대적인 관계로 설정하엿다. 진지왕 폐위시 미실(묘도/미진)과 진흥비인 사도(영실/옥진)의  용수. 용춘의 아버지가 폐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수.용춘은 그 이후에도 왕실에서 중용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춘추가 진골이기 때문에 왕위를 잇는데 힘들었다고 하지만, 용수.용춘이 중용되는 것으로 봐서 신분상에 별다른 하자가 없는 것 같다. 또한, 위에서 진지비인 지도(홍도/기오)가 진지(금륜)이 죽은 후에서 천주공에 시집을 가고, 17세 풍월주인 염장을 낳는 것으로 봤을때 신분상 제약은 없었던 것으로 비쳐진다. 

어찌 되었던 법흥왕 말년부터 덕만에 이르기까지 지소의 후손이 아니면 힘을 쓸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옥진의 후손은 진흥비 사도(옥진/영실)과 지도[흥도(옥진/영실)/기오]가 된다. 

지소의 몸에서 난 숙명(지소/이사부)를 진흥(지소/입종)과 결혼시키고, 어쩔수 없자, 자신의 남편인 영실의 자식인 사도(영실/옥진)을 진흥비에 올린다. 아마도 숙명이 도망간 것은 지소로써는 의도하지 않았던 중대 사건이 아니였을가 한다. 그래서 이에 만족하지 않고, 만호(지소/이화랑)를 자신의 손자인 동륜(진흥/사도)와 결혼을 시키고 있다. 

화랑세기가 말한다. 진골, 성골은 없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영실을 남편으로 두고 있던, 지소 맥과 옥진 맥 간에 대결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화랑세기는 옥진 계열을 대원신통이라하고, 지소 계열을 진골정통이라고 하고 있다. 


(c) 영구아트

화랑세기를 엮어서 성골/진골은 모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부류 들이 있다. 또한, 대원신통은 성골이라하고, 진골정통은 진골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화랑세기를 재대로 읽는다면, 화랑세기에서 진골정통은 현재(김대문 시기)의 진골과 다르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 진골/성골를 구분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실제로 화랑세기 내에 진골은 진저리나게 많이 나오지만, 성골이라는 단 한글자도 없다. 사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읽어도 성골이란 단어는 두군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2,000년 대에 벌어지는 성골/진골 논쟁을 1,300년전 김대문이 화랑세기를 쓰면서 예측이라도 한것 같지 않는가? 


용수.용춘의 처인 천명의 모계는 마야이다. 마야(송화/복승)는 지소의 맥을 이은 송화(지소/영실)의 자식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진골정통이 되는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 진지(금륜)이 폐위되어 성골에서 진골로 족강되었다는 용수.용춘은 진골정통인 천명으로 인해서 복원되어 성골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최소한 그의 자식인 춘추라도 말이다.

진지왕의 비인 지도(옥진/영실->홍도/기오)는 옥진의 맥을 이은 대원신통이다. 그렇다면 용수.용추는 아버지 진지(금륜)의 폐위로 족강되었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게 된다. 용수.용춘은 자신의 아비가 왕이던 아니던 상관없이 폐위에 의한 족강여부에 상관없이 어머니인 지도에 의해서 처음부터 대원신통인것이다.  

또한, 진흥비 사도(옥진/영실)는 옥진의 후손이다. 그렇다면 진흥의 자식들은 이미 태어나자 마자 대원신통으로 결정된다는 이야기 이다. 결국에는 진흥왕의 아들인 동륜, 금륜이 진골이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진골보다 성스런 성골을 그렇게 함부로 내동댕이 칠 수 있는 것 인가? 그런데 아무도 동륜의 아들인 진평은 진골이라고 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이유야 있다. 진골정통인 지소의 딸인 만호(지소/이화랑)가 동륜에 시집을 감으로써 피 씻김을 했다는 것이다. 무슨 진골보다 성스럽고, 알찬성골이 자신들의 잘못된 논리에 의해서 이리 저리 이동을 하던가?

김유신을 대입하면 어찌될까? 김유신은 만명의 자식이다. 만명은 만호의 자식이다. 만호는 지소의 자식이다. 지소는 진골정통이다. 그러므로 김유신은 지소의 맥을 이은 진골정통이 된다. 그럼으로 김유신은 성골이다. 김춘추가 왕위에 오를때 성골이 없어서 진골인 김춘추가 올랐다고 하지만, 성골은 김유신도 있고, 그외 너무나도 많은 성골들이 보인다.


성골과 진골은 그냥 왕가에 편입되면 왕실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왕의 계승권은 전왕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 뿐이고, 없으면, 가까운 왕실사람부터  먼 왕실의 자손이라도 끌어와 왕위에 앉히는 것이다. 어느시대나 어느나라나 일반적인 형태에 불과하다. 신라라고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왕녀에 의해서 진골,성골이 결정된단 말인가? 그냥 진골이 성골이고, 성골이 진골인 것이다.  


어찌되었던 지소의 남편과 지소의 후손들을 지소중심의 모계 혼맥.가계도로 정리를 하였다. 위의 그림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신라 중기 법흥왕 말기과 진흥왕 초기 시기는 남자왕이 아닌 지소여왕의 시대 같아 보이지 않는가? 

지소태후 남편과 자손들 혼맥.계보 만을 올리고, 끝내려고 했는데, 여전히 글이 길어져 버렸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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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현철 2009.08.01 0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활기차고 알찬 8월 되시길...

  2. BlogIcon 미케미케 2009.08.01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성가계도 보다가 쥐쥐 쳤어요. 넘 어려워여 ㅠ
    저에게도 선덕여왕 정보를 몰래(?) 월욜날 선덕여왕 선수치게요 ㅋㅋ

  3. 오타지적 2009.08.01 1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문단

    수렴청청 -> 수렴청정

  4. BlogIcon 아이러니♡ 2009.08.01 1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역사글이라 읽는 도중에 포기했어요 ㅠ.ㅠ
    역사를 이렇게 잘 아는 갓쉰동님이 부럽네요 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08.01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무 어렵게 썼나 봅니당. 쉽게 쓸려고 노력했는뎅. 많은 사람들이 기존 알고 있는 내용을 첨가해 가면서리..

  5. ^^ 2009.08.01 1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 생각은 화랑세기 자체가 일제시대 때 박모씨에 의해 만들어진 판타지인만큼
    선덕여왕도 그냥 판타지라고 생각하고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냥 판타지라고 쳐도
    그 역사적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주인장님의 열정에는 감탄할 수 밖에 없군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01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박모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당.. 아마도 위작이라는 설이 대두되고, 위작으로 확인된다면, 지금까지 박모씨를 인용한 사람은 둘째치고, 인용하지 않았지만 영향을 받으며 논문을 쓴 사람들의 충격은 대단할 것 같습니다.

      물론, 소설가들은 박모씨 유족들간에 저작권 싸움에서 백전백패 할 것이구요..

  6.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1 1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로마시대 신들의 혼맥은 저리가라군요.
    무척 복잡합니다 ㅎㅎㅎ
    성골과 진골 구분에서 한참 봤습니다.
    제가 아는 역사와 차이가 나서 ㅎㅎㅎ
    열정에 감사드리며
    오늘도 많이 공부하고 갑니다.
    8월 한달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01 1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신들이 하는 일은 용서가 된다는 듯이 말이지요..

      성골/진골은 너무나 고착화 되어서 깨지기 힘들겁니다.. 저하나 발버둥 친다고 해서리..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성골은 없거든요.. 김부식도 성골이 있다고 하지않았어요.. 인용만 했징..

  7. 김윤중 2009.08.01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원하게 읽고 갑니다..감사합니다

  8. 남당 2009.08.01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당 박창화가 남긴 문서는 화랑세기 외에도 수십권이 더 있죠. 그중에는 아예 시조 이래의 혈통과 계보만을 상세히 기록한 상장돈장 같은 족보문서도 있구요....대원신통의 조상인 보미궁주는 미사흔을 탈출시키고 신라로 귀화해온 야국(다파나국)의 공주였지요. 성골이란 말은 아마도 후세(고려?)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일듯...소위 태조 왕건의 조상으로 등장하는 성골장군이나 당 황제(숙종?)등의 전설과도 맥이 닿아있는 후대의 허구겠죠.

  9. BlogIcon 유머조아 2009.08.01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흐아.. 가계도 보니 왠지 현기증이...

  10. BlogIcon elly 2009.08.02 0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당 박창화의 문서 중 신라사초를 읽다보면 그 윗대에, 미실이나 선덕여왕 혹은 지소태후보다 훨씬 더 쟁쟁했던 여인들이 나옵니다. 미실이나 선덕여왕은 생각치도 못한 권력을 가진 여인들이었지요. 그 여인들의 모든 것은 유교적 관점에 입각되어 많이 삭제된것 같아요. 대원신통의 조상이 보미공주라면, 진골정통의 조상은 소문국(지금의 의성에 있었다 신라에 흡수된 국가) 묘덕왕의 딸인 운모입니다. 운모의 자식인 옥모로 시작해서 지소태후로, 마야로 그리고 선덕여왕으로 이어진거죠. ^^

    또 우리가 몰랐던게 골품을 수여받는다라는건데요. 화랑세기를 읽든 신라사초를 읽든 어느 정도 나라에 큰 업적을 세우면 골품을 수여받더라구요. 그러니 진골 성골이란 것도 맞는 표현이 아닐 수도 있고, 사회의 계급자체가 인도의 계급처럼 고착되어 상하로의 통행이 안되는게 아니라 덜 고착되어있다고도 볼 수 있더라구요.

    신라의 복잡한 가계도지만 왜 이렇게 끌리는지 모르겠어요..ㅠ

    • BlogIcon 갓쉰동 2009.08.02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끌리는 무언가가 있는건 사실 저도 끌리고 있거든요.. 잼있고, 잼있고, 그렇더라구요.. 발상의 전환도 되고.. 파급력은 역대 최고가 아닐까 합니다.. ㅋㅋ

  11. min 2009.08.05 1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옥진이 대원신통이고 지소가 진골정통아닌가요?

  12. BlogIcon gadgeteer 2009.08.06 2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정말 글 잘 일고 갑니다. 소설 읽는것 처럼 재미있었고 단백했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13.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09.23 18: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삼 선덕여왕 재방송을 보다가 접속했습니다.
    미실의 실존에 대해 찾다보니 갓쉰동님의 블로그로 와 졌네요.

    참 복잡한 족보입니다.
    모두가 엮여져 있으니 - ;;

  14. 은 루히 2009.11.25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렇게 복잡해서야 원 -_-;;
    그냥 혈통에는 얽매이지 않는게 좋겠군요;

  15. 루미네요~ 2009.12.08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쓴분의 글을 읽고 나니 지금의 조선시대 유교사상으로 인해 여성의 지위가 낮아진것이 안타깝게 느껴지네요~~

  16. BlogIcon winter jacket coat 2011.11.16 2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고 나니 지금의 조선시대 유교사

  17. BlogIcon Trey 2011.11.21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게시물을 읽고이 게시물을 많은 유용한 정보를 가지고. 그것은 매우 유익한 물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여기 와서 싶습니다. 게시 이런 종류의 계속해야합니다.

  1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글에서 덕만이 왕위에 쉽게 오를 수 있는 배경으로 덕만 선대에 있었던, 지소, 금진, 사도, 미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지소는 법흥의 딸이고, 법흥의 동생인 입종에 시집을 간다. 법흥이 죽고 나자, 7살의 어린 진흥(심맥종)이 왕위에 오르지만, 실질적인 전권을 행사하고,수렴청정을 하는 지소(법흥/보도)라고 했었다.

또한, 지소에게는 입종말고도, 진흥왕비인 사도의 아버지인 영실을 두번째 남편으로 두고 있었다. 이런 기록들은 현존하고 있는 <화랑세기>의 기록들의 단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미실의 선대 여인에 대한 이야기기들이 빠져있다. 미실이 존재하게 된 이유는 지소와 옥진, 금진이 있었기 때문에 미실이 살아갈 수 있었고, 국정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법흥왕(514~540) 말년부터 진평왕(579~632) 초기 10 여년 동안은 여인들이 신라를 지배하고 있었던 듯하다. 햇수로 대략 70~80년이 된다. 그러니 신라의 발전기에 해당하는 기간인  법흥왕 후반기~ 진평왕 초기까지 모두가 여인천하 아래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009년 현재 해방 65년이 지났지만, 일제 강점기 1910~1945년 까지 36년만으로도, 일제의 잔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덕만이 왕위에 오른다는 행위는, 현재로 보아서는 삼국에는 없는 여왕이 등극하다니? 하는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는 파천황적인 상황이지만, 화랑세기로 본다면, 당시 신라사회에서는 당연시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일본서기에 의하면 이미 당시 왜에서는 여왕천하에 있었다. 신라의 이웃 국가인 왜의 첫 여왕인 추고여왕(593~628), 제명.황극(641~645, 655~661) 사례도 있으니 충분히 고려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실을 있게 한 지소는 누구이며, 지소의 남자들은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전글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를 송고하면서 <지소의 남자>들을 개괄적인 다이어그램으로 보여 주었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사람과 사람이 얽키고 설켜 있어서 이들 간에 관계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계보도 또한 복잡하고, 결혼 상대자도 수시로 바뀌어, 남자나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 이를 추적한다는 것이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신들의 혼맥 보다도복잡하다. 그래서 이를 도표나 계보도를 만들어 놓고, 읽지 않는다면, 가계, 혼맥, 인맥, 남.여상열지사 조차 따라가다 보면 흐름을 놓치기 일 수 이다.

더 나아가 화랑세기는 화랑의 전기라고는 하지만, 수 없이 많이 등장하는 여성들로 인해서 지소전기, 금진전기, 사도전기, 미실전기 처럼 여인열전이 되버린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가계도를 정리 할 때, 남성중심의 부계 가계도, 족보을 작성한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남성중심의 가계도를 작성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여성중심의 가계도를 작성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오죽하면 화랑세기에서 조차도 <대원신통>, <진골정통> 등 여성의 신통과 인통을 중요하게 서술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진평왕과 마야의 맏딸인 <덕만>이 다른 누구보다 앞서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올랐는지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덕만이 오르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해서, 신라를 여인천하로 만든 시발점인 지소태후를 추적할 필요성이 있게 되었다.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글은 맛보기 정도 였다.

이전 글에서 여성 중심으로 그림을 작성하니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막연히 지소의 남자들이 많았구나. 미실도 팜브파탈이라고 하는데, 지소는 미실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부족함이 없구나 할 것이다. 그래서 여성 중심의 가계도를 작성하는 시발점의 맛보기 였고, 첫 여성계보도의 주자로 지소를 선택하게 된것이다.

크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그림을 보면 어떤가? 지소태후의 남자들이 너무나도 많지 않은가? 일국의 왕이나 했음직한 행동이다. 

화랑세기에서 지소를 빼 놓고는 연결이 되는게 하나도 없다. 부계로 찾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인맥과 혼맥과 이유들이 지소를 통해서 개안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소 중심인 모계도를 작성해 보니, 그전까지 단순히 덕만과 유신이 만호 할머니의 자식들이구나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덕만도, 유신도 지소의 후손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화랑세기가 복잡하면서도 재미가 솔솔하다.

실은 예전에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인물 각각의 성별, 생/몰, 부/모, 남편/부인, 관련 남.여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을 기록해 보관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다 완성하지는 못했고, 중간에 데이타가 다 지워져 버렸다. 처음 화랑세기의 인맥을 데이타베이스로 구축하고, 화랑세기를 분석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화랑세기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 였다. 결론을 약간 흘리자면 '현존 화랑세기는 너무나 정교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정도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미싱링크를 절묘하게 믹스해 놓은 거라고 할 정도였다.

어찌되었던, 여러가지 일 때문에 자연히 관심이 화랑세기에서 멀어졌고, 드라마 선덕여왕이 하기전까지 까막게 화랑세기를 추적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드라마 선덕여왕은 나의 기억 심연속에 숨어있던 역사에 대한 열정을 끄집어 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mbc 선덕여왕 제작팀에게 감사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 .

이번 글도 이전의 덕만의 공주시절부터 있었던, 에피소드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하나하나 추적하고, 덕만이 어린시절 왕에 오를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증명하는 시리즈 글이였듯이,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지소를 시작으로 옥진, 금진, 미실 등 여성중심의 계보도 시리즈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전 덕만 시리즈 글을 본사람은 느끼겠지만, 덕만을 추적할때 화랑세기를 인용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유는?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아직까지 역사적인 산물인 김대문의 기록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 것이 통설이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판하거나 할때는 화랑세기와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인용해서 비판을  했었다. 이유는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원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랑세기 원전을 들어서 소설 선덕여왕이 왜곡하고 있는 팩트를 지적했던 것이다.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원전으로 삼지 않았다면, 절대로 화랑세기를 인용하여,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판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는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판하는게 아니였다. 드라마의 원전인 소설 선덕여왕을 비판하는 것이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역사왜곡은 둘째치고라도 재미가 솔솔하다. 좀더 좋은 소설이나 원전을 가지고, 드라마 사극을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글에서는 전편에 이어서 지소 중심 계보도만을 게시하는 것으로 끝을 맺을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글이 너무 늘어지게 되고, 한두시간을 읽어도 모자라는 글이 되기 때문이다. 읽는데 한두시간이면 쓰는데 몇시간이 걸리겠는가? 그러니 당연히 시리즈 글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단 지소의 남편인 입종을 기준으로 계보도를 작성한 것이다. 입종의 기준으로 하면, 지소는 입종의 많은 여인중에 한사람이 된다. 그중 입종과 지소 사이에 진흥(540~576)이 태어난 것 처럼 보인다. 중심은 입종이 되는것이다. 그런데 입종이 중심이 아니고 지소가 중심에 서 있고, 단순히 지소가 여러 남자중 작은아버지 입종을 남편으로 선택한 것 처럼 보인다.


만호(지소/이화랑)는 동륜(진흥/사도)와 결혼해서 진평왕과 그 형제들을 낳았다. 입종과 옥진 사이에 태어난 숙흘종(입종/옥진)과 관계를 맺어, 만명(숙흘종/만호)를 낳았다. 이 만명이 서현과 사랑에 빠져 만노군으로 도피행각을 벌여 유신을 낳은 것이다.
 
전편에 지소의 남자로 입종과 금진 사이에 난 숙흘종과 관계를 맺어 만호를 낳았다고 하였지만, 이는 인맥을 잘못 살핀 것이다. 화랑세기는 삐끗 잘못하면, 삼천포로 빠져 버린다. 지소가 위화랑의 아들인 이화랑(위화랑/준실)과 관계를 맺어 숙흘종을 낳은 것이다.

어찌되었던 남성 중심의 입종이 아닌 여성인 지소를 기준으로 혼맥과 가계도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지소의남편들과 후손들 이미지 크릭시 원본을 볼 수 있음


지소의 10명의 남자 중에서 입종, 이사부, 구진, 영실, 이화랑에게서 후손을 본다.

입종, 이사부 

작은 아버지 입종(지증/연제)에게서는 진흥왕이 태어 났다. 

이사부 사이에는 미실의 남편인 세종과 진흥왕의 첫번째 정비인 숙명을 낳는다. 숙명은 처음 진흥왕에 시집을 갔지만, '어머니가 같은 형제가 된다'하여 진흥왕(지소/입종)이 멀리 하고, 숙명 또한, 진흥과 같은 이유로 진흥을 좋아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하여 숙태자를 낳았다. 숙명은 어머니 지소의 정부인 이화랑과 사랑에 빠져서 도피행각을 벌리고, 원광법사와 12세 풍월주인 보리를 낳는다. 이들의 형태가 서현과 만명의 사랑의 도피를 보는것 같지 않는가? 어찌되었던 보리는 화랑세기를 지은 김대문의 할아버지이다.


영실

아버지 법흥에 의해서 강제적인 결혼을 하였다.
영실과는 송화와 황화를 낳는데, 송화는 복승과 결혼해 진평왕의 비인 마야를 낳는다. 그들의 후손으로 화랑세기는 천명,덕만, 천화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천화가 서동의 아내인 선화의 냄새가 난다.
 

결국 덕만의 계보는 지소/영실->송화/복승-->마야/진평-> 천명, 덕만, 천화이 된다.
부계로는 지소/입종->진흥/사도 ->동륜/만호->진평/마야->덕만 이 된다.
결국 덕만은 모계로 지소에 통하고, 부계로도 지소와 연결이 된다.

영실은 지소 말고도 여러 아내가 있었는데, 그 중에 옥진이 있었다, 옥진은 1세 풍월주인 위화랑(섬신/벽아)의 딸이고, 사다함의 어머니인 금진의 언니가 된다. 영실/옥진은 사도, 노리부, 흥도, 묘도를 낳는다.

사도(영실/옥진)는, 숙명(이사부/지소)이 지소의 정부인 이화랑(위화랑/준실)과 사랑에 빠져 폐위된 이후 진흥비가 되어 동륜, 금륜(진지), 아양을 낳는다. 아양은 유신의 할아버지인 무력과 결혼하여 서현을 낳는다.

영실과 옥진 사이에 난 흥도는 기오(홍기/선혜)와 결혼해서 금륜(진지)비가 되는 지도를 낳는다. 지도는 금륜사이에 용수와 용춘 형제를 낳고, 진지왕이 죽은 후 진흥/월화 사이에서 난 천주공과 결혼한 후, 16세 보종(설원랑/미실)에 이어 17세 풍월주인 염장, 천장을 낳는다.

이화랑

이화랑과 사이에는 만호를 낳는데. 만호를 자신의 손자인 금륜(진흥/사도)에 시집보낸다.
만호는 지소의 남편의 소생인 숙흘종(입종/금진)과 정을 통하고 만명을 낳는다. 만명은 유신의 아버지인 서현에게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린후 만노군에서 유신을 낳는다. 서현의 어머니인 아양은 (진흥/사도)사이에 태어났다.
그러니 사다함은 모계쪽으로 보면 유신과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위화랑/오도 - >금진/입종->숙흘종/만호(지소/이화랑) -> 만명/서현 -> 유신
부계로는 무력/아양(진흥/사도)->서현/만명[숙흘종(입종/금진)/만호(지소/이화랑)] - >유신

또한, 유신은 지소의 중첩된 직계 후손인 것이다.
지소/입종->진흥/사도->아양/무력->서현/만명[숙흘종(입종/금진)/만호(지소/이화랑)]->만명->유신
할머니 만호는 동륜과 결혼해서 진평의 형제들을 낳았다. 그러니 진평왕과 만명은 동복남매간이 된다.

구진

구진은 지소의 침소를 지키는 자였는데, 지소와 관계를 가져 보명궁주를 낳는다. 보명궁주는 별궁에 살았는데, 진평왕의 아버지인 동륜이 태자시절인 572년 미실의 꼬임에 빠져 보명궁의 담을 넘다가 개에게 물려 죽고 만다. 이때 미실은 문책을 받아 궁에서 쫓겨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용수.용춘과 미실 사이를 적대적인 관계로 설정하엿다. 진지왕 폐위시 미실(묘도/미진)과 진흥비인 사도(영실/옥진)의  용수. 용춘의 아버지가 폐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수.용춘은 그 이후에도 왕실에서 중용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춘추가 진골이기 때문에 왕위를 잇는데 힘들었다고 하지만, 용수.용춘이 중용되는 것으로 봐서 신분상에 별다른 하자가 없는 것 같다. 또한, 위에서 진지비인 지도(홍도/기오)가 진지(금륜)이 죽은 후에서 천주공에 시집을 가고, 17세 풍월주인 염장을 낳는 것으로 봤을때 신분상 제약은 없었던 것으로 비쳐진다. 

어찌 되었던 법흥왕 말년부터 덕만에 이르기까지 지소의 후손이 아니면 힘을 쓸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옥진의 후손은 진흥비 사도(옥진/영실)과 지도[흥도(옥진/영실)/기오]가 된다. 

지소의 몸에서 난 숙명(지소/이사부)를 진흥(지소/입종)과 결혼시키고, 어쩔수 없자, 자신의 남편인 영실의 자식인 사도(영실/옥진)을 진흥비에 올린다. 아마도 숙명이 도망간 것은 지소로써는 의도하지 않았던 중대 사건이 아니였을가 한다. 그래서 이에 만족하지 않고, 만호(지소/이화랑)를 자신의 손자인 동륜(진흥/사도)와 결혼을 시키고 있다. 

화랑세기가 말한다. 진골, 성골은 없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영실을 남편으로 두고 있던, 지소 맥과 옥진 맥 간에 대결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화랑세기는 옥진 계열을 대원신통이라하고, 지소 계열을 진골정통이라고 하고 있다. 


(c) 영구아트

화랑세기를 엮어서 성골/진골은 모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부류 들이 있다. 또한, 대원신통은 성골이라하고, 진골정통은 진골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화랑세기를 재대로 읽는다면, 화랑세기에서 진골정통은 현재(김대문 시기)의 진골과 다르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 진골/성골를 구분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실제로 화랑세기 내에 진골은 진저리나게 많이 나오지만, 성골이라는 단 한글자도 없다. 사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읽어도 성골이란 단어는 두군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2,000년 대에 벌어지는 성골/진골 논쟁을 1,300년전 김대문이 화랑세기를 쓰면서 예측이라도 한것 같지 않는가? 


용수.용춘의 처인 천명의 모계는 마야이다. 마야(송화/복승)는 지소의 맥을 이은 송화(지소/영실)의 자식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진골정통이 되는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 진지(금륜)이 폐위되어 성골에서 진골로 족강되었다는 용수.용춘은 진골정통인 천명으로 인해서 복원되어 성골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최소한 그의 자식인 춘추라도 말이다.

진지왕의 비인 지도(옥진/영실->홍도/기오)는 옥진의 맥을 이은 대원신통이다. 그렇다면 용수.용추는 아버지 진지(금륜)의 폐위로 족강되었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게 된다. 용수.용춘은 자신의 아비가 왕이던 아니던 상관없이 폐위에 의한 족강여부에 상관없이 어머니인 지도에 의해서 처음부터 대원신통인것이다.  

또한, 진흥비 사도(옥진/영실)는 옥진의 후손이다. 그렇다면 진흥의 자식들은 이미 태어나자 마자 대원신통으로 결정된다는 이야기 이다. 결국에는 진흥왕의 아들인 동륜, 금륜이 진골이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진골보다 성스런 성골을 그렇게 함부로 내동댕이 칠 수 있는 것 인가? 그런데 아무도 동륜의 아들인 진평은 진골이라고 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이유야 있다. 진골정통인 지소의 딸인 만호(지소/이화랑)가 동륜에 시집을 감으로써 피 씻김을 했다는 것이다. 무슨 진골보다 성스럽고, 알찬성골이 자신들의 잘못된 논리에 의해서 이리 저리 이동을 하던가?

김유신을 대입하면 어찌될까? 김유신은 만명의 자식이다. 만명은 만호의 자식이다. 만호는 지소의 자식이다. 지소는 진골정통이다. 그러므로 김유신은 지소의 맥을 이은 진골정통이 된다. 그럼으로 김유신은 성골이다. 김춘추가 왕위에 오를때 성골이 없어서 진골인 김춘추가 올랐다고 하지만, 성골은 김유신도 있고, 그외 너무나도 많은 성골들이 보인다.


성골과 진골은 그냥 왕가에 편입되면 왕실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왕의 계승권은 전왕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 뿐이고, 없으면, 가까운 왕실사람부터  먼 왕실의 자손이라도 끌어와 왕위에 앉히는 것이다. 어느시대나 어느나라나 일반적인 형태에 불과하다. 신라라고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왕녀에 의해서 진골,성골이 결정된단 말인가? 그냥 진골이 성골이고, 성골이 진골인 것이다.  


어찌되었던 지소의 남편과 지소의 후손들을 지소중심의 모계 혼맥.가계도로 정리를 하였다. 위의 그림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신라 중기 법흥왕 말기과 진흥왕 초기 시기는 남자왕이 아닌 지소여왕의 시대 같아 보이지 않는가? 

지소태후 남편과 자손들 혼맥.계보 만을 올리고, 끝내려고 했는데, 여전히 글이 길어져 버렸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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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현철 2009.08.01 0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활기차고 알찬 8월 되시길...

  2. BlogIcon 미케미케 2009.08.01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성가계도 보다가 쥐쥐 쳤어요. 넘 어려워여 ㅠ
    저에게도 선덕여왕 정보를 몰래(?) 월욜날 선덕여왕 선수치게요 ㅋㅋ

  3. 오타지적 2009.08.01 1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문단

    수렴청청 -> 수렴청정

  4. BlogIcon 아이러니♡ 2009.08.01 1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역사글이라 읽는 도중에 포기했어요 ㅠ.ㅠ
    역사를 이렇게 잘 아는 갓쉰동님이 부럽네요 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08.01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무 어렵게 썼나 봅니당. 쉽게 쓸려고 노력했는뎅. 많은 사람들이 기존 알고 있는 내용을 첨가해 가면서리..

  5. ^^ 2009.08.01 1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 생각은 화랑세기 자체가 일제시대 때 박모씨에 의해 만들어진 판타지인만큼
    선덕여왕도 그냥 판타지라고 생각하고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냥 판타지라고 쳐도
    그 역사적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주인장님의 열정에는 감탄할 수 밖에 없군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01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박모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당.. 아마도 위작이라는 설이 대두되고, 위작으로 확인된다면, 지금까지 박모씨를 인용한 사람은 둘째치고, 인용하지 않았지만 영향을 받으며 논문을 쓴 사람들의 충격은 대단할 것 같습니다.

      물론, 소설가들은 박모씨 유족들간에 저작권 싸움에서 백전백패 할 것이구요..

  6.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1 1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로마시대 신들의 혼맥은 저리가라군요.
    무척 복잡합니다 ㅎㅎㅎ
    성골과 진골 구분에서 한참 봤습니다.
    제가 아는 역사와 차이가 나서 ㅎㅎㅎ
    열정에 감사드리며
    오늘도 많이 공부하고 갑니다.
    8월 한달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01 1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신들이 하는 일은 용서가 된다는 듯이 말이지요..

      성골/진골은 너무나 고착화 되어서 깨지기 힘들겁니다.. 저하나 발버둥 친다고 해서리..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성골은 없거든요.. 김부식도 성골이 있다고 하지않았어요.. 인용만 했징..

  7. 김윤중 2009.08.01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원하게 읽고 갑니다..감사합니다

  8. 남당 2009.08.01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당 박창화가 남긴 문서는 화랑세기 외에도 수십권이 더 있죠. 그중에는 아예 시조 이래의 혈통과 계보만을 상세히 기록한 상장돈장 같은 족보문서도 있구요....대원신통의 조상인 보미궁주는 미사흔을 탈출시키고 신라로 귀화해온 야국(다파나국)의 공주였지요. 성골이란 말은 아마도 후세(고려?)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일듯...소위 태조 왕건의 조상으로 등장하는 성골장군이나 당 황제(숙종?)등의 전설과도 맥이 닿아있는 후대의 허구겠죠.

  9. BlogIcon 유머조아 2009.08.01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흐아.. 가계도 보니 왠지 현기증이...

  10. BlogIcon elly 2009.08.02 0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당 박창화의 문서 중 신라사초를 읽다보면 그 윗대에, 미실이나 선덕여왕 혹은 지소태후보다 훨씬 더 쟁쟁했던 여인들이 나옵니다. 미실이나 선덕여왕은 생각치도 못한 권력을 가진 여인들이었지요. 그 여인들의 모든 것은 유교적 관점에 입각되어 많이 삭제된것 같아요. 대원신통의 조상이 보미공주라면, 진골정통의 조상은 소문국(지금의 의성에 있었다 신라에 흡수된 국가) 묘덕왕의 딸인 운모입니다. 운모의 자식인 옥모로 시작해서 지소태후로, 마야로 그리고 선덕여왕으로 이어진거죠. ^^

    또 우리가 몰랐던게 골품을 수여받는다라는건데요. 화랑세기를 읽든 신라사초를 읽든 어느 정도 나라에 큰 업적을 세우면 골품을 수여받더라구요. 그러니 진골 성골이란 것도 맞는 표현이 아닐 수도 있고, 사회의 계급자체가 인도의 계급처럼 고착되어 상하로의 통행이 안되는게 아니라 덜 고착되어있다고도 볼 수 있더라구요.

    신라의 복잡한 가계도지만 왜 이렇게 끌리는지 모르겠어요..ㅠ

    • BlogIcon 갓쉰동 2009.08.02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끌리는 무언가가 있는건 사실 저도 끌리고 있거든요.. 잼있고, 잼있고, 그렇더라구요.. 발상의 전환도 되고.. 파급력은 역대 최고가 아닐까 합니다.. ㅋㅋ

  11. min 2009.08.05 1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옥진이 대원신통이고 지소가 진골정통아닌가요?

  12. BlogIcon gadgeteer 2009.08.06 2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정말 글 잘 일고 갑니다. 소설 읽는것 처럼 재미있었고 단백했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13.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09.23 18: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삼 선덕여왕 재방송을 보다가 접속했습니다.
    미실의 실존에 대해 찾다보니 갓쉰동님의 블로그로 와 졌네요.

    참 복잡한 족보입니다.
    모두가 엮여져 있으니 - ;;

  14. 은 루히 2009.11.25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렇게 복잡해서야 원 -_-;;
    그냥 혈통에는 얽매이지 않는게 좋겠군요;

  15. 루미네요~ 2009.12.08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쓴분의 글을 읽고 나니 지금의 조선시대 유교사상으로 인해 여성의 지위가 낮아진것이 안타깝게 느껴지네요~~

  16. BlogIcon winter jacket coat 2011.11.16 2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고 나니 지금의 조선시대 유교사

  17. BlogIcon Trey 2011.11.21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게시물을 읽고이 게시물을 많은 유용한 정보를 가지고. 그것은 매우 유익한 물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여기 와서 싶습니다. 게시 이런 종류의 계속해야합니다.

  1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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