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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노비 문신은 사실일까?

추노를 보고 있노라면 송태하(오지호)를 비롯한 대부분의 노비들이 이마나 가슴에 노비 문신(묵형)이나 인두로 노비를 뜻하는 <인>을 하고 있다.  

서양의 노비나 노예 처럼 노비를 매매하거나 상속되었던 것은 맞지만, 미국의 노예 드라마에서 가축에게 자신의 소유를 증명하는 가문의 인장으로 만든 인두로 불에 달군 <인>을 하듯이 노비들에게 인을 하지는 않았다.


묵형(문신)은 조선시대에 노비에게 하지 않고, 아주 강력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형벌로서 하였다. 조선에서는 5개의 중형이 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이 있고, 남자의 성기를 짜르는 궁형이 있고, 아킬레스건 처럼 발뒤꿈치 힘줄을 짤라 버리는 월형(비형)이 있고,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 있고, 머리에 문신을 하는 자자(묵형)이 있다.

사극에서 많이 보이는 태형은 장을 치는 형태로 형벌중에서는 낮은 형에 불과했다.


5개의 중형중에서 상위 3위 안에 들어가는 형벌이 대벽(사형), 의형(코베기), 자자(묵형)이다. 코베기(의형)나 문신형(묵형)을 하는 이유는 요즘으로 치면 여론재판으로 낯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하는 형벌이다. 

한마디로 죄인에게 평생 쪽팔리며 살아가라는 형벌이다. 묵형을 자자(刺字)라고 하듯이 묵형을 하는 방법은 이마에 칼로 찌르듯이 글을 쓰고 먹물을 사용해서 상처가 아물더라도 지워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체면을 중요시 하는 조선으로써는 묵형 만큼 커다란 형벌도 없었다. 남자의 생식기인 불알을 잘라버리는 궁형이나 아킬레스 힘줄을 자르는 형벌보다도 높은 형에 해당하였다.

묵형(문신)은 현대판 전자팔찌?

요즘 성범죄를 저지른 자들에서 쪽팔림을 주기 위해서 인터넷에 신원을 공개한다거나, 거주 이전을 할때 관할 경찰에서 보호관찰을 하듯이 집에 "이집은 성범죄가 사는집'처럼 팻말을 놓는다거나, 이동경로를 추적하도록 발목이나 손목에 GPS 수신기를 장착하게 하는 전자팔찌 형벌과는 차원이 다른 형벌인 것이다.


그러니 드라마 <추노>에서 요즘으로 치면 깡패들이 문신을 새기듯이 침으로 뜸을 뜬 다음 먹을 입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옷을 입었을 때 볼 수 없도록 가슴에 묵형(문신)를 만들지도 않았다.  그러니 언년이(이다해)의 오라비가 가슴를 보여주면서 더이상 노비로 살지 않아도 되니 문신을 지울 때 아퍼서 운것이 아니고 기뻐서 울었다고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약간의 오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제중원>에서 백정 출신인 주인공이 길가던 양반의 호패와 물건를 빼앗고 자신을 호패를 빼앗은 인물로 속이는 장면이 나오고, <추노>에서 언년이(김혜원:이다해)의 오라비인 큰놈이(김성환:조재환) 양반의 <호패>를 빼앗고 죽인 다음에 자신의 신분을 위조하는 행위를 한다.  이때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면 자자형에 해당하고 태형 100대에 해당한다.

그래서 조선에서 형벌로 묵형을 하는 형벌에 해당하는 중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자자(묵형/문신)형을 집행하지 않고, 왕들이 감형을 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자자형이나 궁형이나 코를 베어 버리는 형벌들은 태형이나 유배형이나 벌금형과 병행해서 사용하였기 때문에 자자형(묵형)을 제외하고 다른 형벌로 가중해서 처벌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였다.

설령 자자형(묵형)에 처한 자일 경우도 <추노>에서 처럼 송태하(오지호)와 같이 도망하는 노비중에 수적질을 하다 잡혀 공노비 신세가 된후 송태하의 도움으로 도망친 노비도  <노비(奴婢)>라고 하지 않고, 죄명을 기입한다. 예를 들어 성폭행범이면 이마에 <성폭행>이라 하고, 국가재산인 우마를 훔치고 죽였을 경우 단순히 <절도>라고 문신하지 않고, <도우마:盜牛馬>라고 기록해서 재범했을 경우 참고하도록 하였고, 어떠한 중죄를 지었는지를 모두 알 수 있도록 하였다.

관련기사
2010/01/11 - [TV&ETC] - 같은 시대 전혀 다른 이야기 명가와 추노
2010/01/14 - [역사이야기] - 추노 사당패 설화 김하은 엽전키스 아이리스 사탕키스 뛰어넘을까?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임현철 2010.01.13 0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랬군요. 배움이었습니다.

  2. BlogIcon 따뜻한카리스마 2010.01.13 07: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시대에서 있었던 신분의 한, 지독하군요-_-;;;;
    우리 민족의 DNA 뿌리 깊은 곳에 그 한이 숨겨져 있겠죠.

  3. BlogIcon koc/SALM 2010.01.13 0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분의 한? 한국에서 신분 질서는 그렇게 엄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럽에서 농노만 되도 한국의 노비보다 훨씬 제약이 심했습니다.
    조선 시대에 노비에게 문신을 할 정도라면, 아예 국왕이 사유를 물었을 겁니다.
    오히려, 법률적으로 천민이 아니었던, 백정(도살업자)이나 무당, 광대 등에 대한 차별이 더 심한 사회였습니다.
    이런저런 면에서 추노는 과장이 심하죠.

  4. BlogIcon 비단장수왕서방 2010.01.13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 할때 ?
    이렇게 배웠던 조상의 그 빛난 얼에는 저런 무자비한 행위도 포함 되어 있었던 것이었군요
    흔치않은 귀한 자료 자알 보고 갑니다

  5. BlogIcon DJ야루 2010.01.13 0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만약에 이게 지금까지 행해졌다면, 죄를 지고는 부끄러워서 못살았을 것 같네요..
    혹시 무단횡단하다 걸리면 이마에.. "무단횡단" 이렇게 쓰여지는거 아닌지 모르겠네요ㅋㅋㅋㅋㅋ

    죄송합니다 쓸때없는 얘기를....

  6. BlogIcon 탁발 2010.01.13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며칠전 이와 관련한 글을 쓴 것이 있는데, 요점만 말하자면 추노의 자자는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좀 있을 것 같더군요. 자자형의 예외가 있었는데, 그중 여자와 어린이가 포함됩니다.
    그런데 추노에 첫회에 보면 여자와 어린이 모두에게 자자가 있었죠.

  7. BlogIcon 감자꿈 2010.01.13 1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갓쉰동님이십니다.
    새로운 사실을 알았어요. 고맙습니다. ^^

  8. BlogIcon 넷테나 2010.01.13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보면서 궁금했던 점인데 궁금했던 것 보다 더 많은걸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9. BlogIcon 꼬마낙타 2010.01.13 1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추노를 자주 보는 건 아니지만 볼 때마다 궁금했었는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10. BlogIcon 레오 ~ 2010.01.13 1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지른 죄의 무게만큼의 벌의 무게가 지어졌야 합니다 ..묵형이야말로 무거운 벌이군요 -_-"

  11. BlogIcon skagns 2010.01.13 2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야~ 드디어 추노로 갓쉰동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건가요? ^^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구요~!!

  12. 2010.01.15 1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3. 육체언어 2010.01.16 04: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영화 음란서생이 생각나는군요.

    이마에 음란...

  14. BlogIcon 여름지기 2010.03.05 2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에... 그렇군요^^
    역시 드라마는 각본이 되여 있습니다.
    거기다 연출까지 포합되니 외곡되는경우는 다반사같습니다!

  15. BlogIcon Pussy Tube 2012.07.14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라비가 가슴를 보여주면서 더이상 노비로 살지 않아도 되니 문신을 지울 때 아

  16. BlogIcon Whitley 2012.10.06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해서 상처가 아물더라도 지워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체면을 중요시 하는 조선으로써는 묵형 만큼 커

  17. BlogIcon radio am fm portable 2012.11.26 2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강력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형벌로서 하였다. 조선에서는 5개의 중형이 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이 있고, 남자의 성기를 짜르는 궁형이 있고, 아킬레스건 처럼 발뒤꿈치 힘줄을 짤라 버리는 월형(비형)이 있고,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 있고, 머리에 문신을 하는 자자(묵형)이 있다.

  18. BlogIcon discount foodsaver bags 2012.12.04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노를 보고 있노라면 송태하(오지호)를 비롯한 대부분의 노비들이 이마나 가슴에 노비 문신(묵형)이나 인두로 노비를 뜻하는 <인>을 하고 있다.

노비 문신은 사실일까?

추노를 보고 있노라면 송태하(오지호)를 비롯한 대부분의 노비들이 이마나 가슴에 노비 문신(묵형)이나 인두로 노비를 뜻하는 <인>을 하고 있다.  

서양의 노비나 노예 처럼 노비를 매매하거나 상속되었던 것은 맞지만, 미국의 노예 드라마에서 가축에게 자신의 소유를 증명하는 가문의 인장으로 만든 인두로 불에 달군 <인>을 하듯이 노비들에게 인을 하지는 않았다.


묵형(문신)은 조선시대에 노비에게 하지 않고, 아주 강력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형벌로서 하였다. 조선에서는 5개의 중형이 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이 있고, 남자의 성기를 짜르는 궁형이 있고, 아킬레스건 처럼 발뒤꿈치 힘줄을 짤라 버리는 월형(비형)이 있고,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 있고, 머리에 문신을 하는 자자(묵형)이 있다.

사극에서 많이 보이는 태형은 장을 치는 형태로 형벌중에서는 낮은 형에 불과했다.


5개의 중형중에서 상위 3위 안에 들어가는 형벌이 대벽(사형), 의형(코베기), 자자(묵형)이다. 코베기(의형)나 문신형(묵형)을 하는 이유는 요즘으로 치면 여론재판으로 낯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하는 형벌이다. 

한마디로 죄인에게 평생 쪽팔리며 살아가라는 형벌이다. 묵형을 자자(刺字)라고 하듯이 묵형을 하는 방법은 이마에 칼로 찌르듯이 글을 쓰고 먹물을 사용해서 상처가 아물더라도 지워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체면을 중요시 하는 조선으로써는 묵형 만큼 커다란 형벌도 없었다. 남자의 생식기인 불알을 잘라버리는 궁형이나 아킬레스 힘줄을 자르는 형벌보다도 높은 형에 해당하였다.

묵형(문신)은 현대판 전자팔찌?

요즘 성범죄를 저지른 자들에서 쪽팔림을 주기 위해서 인터넷에 신원을 공개한다거나, 거주 이전을 할때 관할 경찰에서 보호관찰을 하듯이 집에 "이집은 성범죄가 사는집'처럼 팻말을 놓는다거나, 이동경로를 추적하도록 발목이나 손목에 GPS 수신기를 장착하게 하는 전자팔찌 형벌과는 차원이 다른 형벌인 것이다.


그러니 드라마 <추노>에서 요즘으로 치면 깡패들이 문신을 새기듯이 침으로 뜸을 뜬 다음 먹을 입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옷을 입었을 때 볼 수 없도록 가슴에 묵형(문신)를 만들지도 않았다.  그러니 언년이(이다해)의 오라비가 가슴를 보여주면서 더이상 노비로 살지 않아도 되니 문신을 지울 때 아퍼서 운것이 아니고 기뻐서 울었다고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약간의 오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제중원>에서 백정 출신인 주인공이 길가던 양반의 호패와 물건를 빼앗고 자신을 호패를 빼앗은 인물로 속이는 장면이 나오고, <추노>에서 언년이(김혜원:이다해)의 오라비인 큰놈이(김성환:조재환) 양반의 <호패>를 빼앗고 죽인 다음에 자신의 신분을 위조하는 행위를 한다.  이때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면 자자형에 해당하고 태형 100대에 해당한다.

그래서 조선에서 형벌로 묵형을 하는 형벌에 해당하는 중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자자(묵형/문신)형을 집행하지 않고, 왕들이 감형을 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자자형이나 궁형이나 코를 베어 버리는 형벌들은 태형이나 유배형이나 벌금형과 병행해서 사용하였기 때문에 자자형(묵형)을 제외하고 다른 형벌로 가중해서 처벌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였다.

설령 자자형(묵형)에 처한 자일 경우도 <추노>에서 처럼 송태하(오지호)와 같이 도망하는 노비중에 수적질을 하다 잡혀 공노비 신세가 된후 송태하의 도움으로 도망친 노비도  <노비(奴婢)>라고 하지 않고, 죄명을 기입한다. 예를 들어 성폭행범이면 이마에 <성폭행>이라 하고, 국가재산인 우마를 훔치고 죽였을 경우 단순히 <절도>라고 문신하지 않고, <도우마:盜牛馬>라고 기록해서 재범했을 경우 참고하도록 하였고, 어떠한 중죄를 지었는지를 모두 알 수 있도록 하였다.

관련기사
2010/01/11 - [TV&ETC] - 같은 시대 전혀 다른 이야기 명가와 추노
2010/01/14 - [역사이야기] - 추노 사당패 설화 김하은 엽전키스 아이리스 사탕키스 뛰어넘을까?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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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임현철 2010.01.13 0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랬군요. 배움이었습니다.

  2. BlogIcon 따뜻한카리스마 2010.01.13 07: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시대에서 있었던 신분의 한, 지독하군요-_-;;;;
    우리 민족의 DNA 뿌리 깊은 곳에 그 한이 숨겨져 있겠죠.

  3. BlogIcon koc/SALM 2010.01.13 0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분의 한? 한국에서 신분 질서는 그렇게 엄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럽에서 농노만 되도 한국의 노비보다 훨씬 제약이 심했습니다.
    조선 시대에 노비에게 문신을 할 정도라면, 아예 국왕이 사유를 물었을 겁니다.
    오히려, 법률적으로 천민이 아니었던, 백정(도살업자)이나 무당, 광대 등에 대한 차별이 더 심한 사회였습니다.
    이런저런 면에서 추노는 과장이 심하죠.

  4. BlogIcon 비단장수왕서방 2010.01.13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 할때 ?
    이렇게 배웠던 조상의 그 빛난 얼에는 저런 무자비한 행위도 포함 되어 있었던 것이었군요
    흔치않은 귀한 자료 자알 보고 갑니다

  5. BlogIcon DJ야루 2010.01.13 0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만약에 이게 지금까지 행해졌다면, 죄를 지고는 부끄러워서 못살았을 것 같네요..
    혹시 무단횡단하다 걸리면 이마에.. "무단횡단" 이렇게 쓰여지는거 아닌지 모르겠네요ㅋㅋㅋㅋㅋ

    죄송합니다 쓸때없는 얘기를....

  6. BlogIcon 탁발 2010.01.13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며칠전 이와 관련한 글을 쓴 것이 있는데, 요점만 말하자면 추노의 자자는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좀 있을 것 같더군요. 자자형의 예외가 있었는데, 그중 여자와 어린이가 포함됩니다.
    그런데 추노에 첫회에 보면 여자와 어린이 모두에게 자자가 있었죠.

  7. BlogIcon 감자꿈 2010.01.13 1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갓쉰동님이십니다.
    새로운 사실을 알았어요. 고맙습니다. ^^

  8. BlogIcon 넷테나 2010.01.13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보면서 궁금했던 점인데 궁금했던 것 보다 더 많은걸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9. BlogIcon 꼬마낙타 2010.01.13 1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추노를 자주 보는 건 아니지만 볼 때마다 궁금했었는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10. BlogIcon 레오 ~ 2010.01.13 1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지른 죄의 무게만큼의 벌의 무게가 지어졌야 합니다 ..묵형이야말로 무거운 벌이군요 -_-"

  11. BlogIcon skagns 2010.01.13 2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야~ 드디어 추노로 갓쉰동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건가요? ^^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구요~!!

  12. 2010.01.15 1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3. 육체언어 2010.01.16 04: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영화 음란서생이 생각나는군요.

    이마에 음란...

  14. BlogIcon 여름지기 2010.03.05 2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에... 그렇군요^^
    역시 드라마는 각본이 되여 있습니다.
    거기다 연출까지 포합되니 외곡되는경우는 다반사같습니다!

  15. BlogIcon Pussy Tube 2012.07.14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라비가 가슴를 보여주면서 더이상 노비로 살지 않아도 되니 문신을 지울 때 아

  16. BlogIcon Whitley 2012.10.06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해서 상처가 아물더라도 지워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체면을 중요시 하는 조선으로써는 묵형 만큼 커

  17. BlogIcon radio am fm portable 2012.11.26 2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강력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형벌로서 하였다. 조선에서는 5개의 중형이 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이 있고, 남자의 성기를 짜르는 궁형이 있고, 아킬레스건 처럼 발뒤꿈치 힘줄을 짤라 버리는 월형(비형)이 있고,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 있고, 머리에 문신을 하는 자자(묵형)이 있다.

  18. BlogIcon discount foodsaver bags 2012.12.04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노를 보고 있노라면 송태하(오지호)를 비롯한 대부분의 노비들이 이마나 가슴에 노비 문신(묵형)이나 인두로 노비를 뜻하는 <인>을 하고 있다.

미실이 유신에게 말을 한다. "우리가문의 영모(티아라 큐리)와 혼인을 하시지요", 영모는 누구인가? 영모는 11세 풍월주 하종(세종/미모)의 딸이다. 하종은 진흥왕의 공주인 은륜과 결혼한다. 그러니 하종은 진흥왕의 부마이다. 영모가 유신과 혼인하는데 별다른 하자가 없는 것이다.

덕만(이요원),미실(고현정)

덕만이 유신을 품을 수 없다는 뜻으로 "성골인 공주는 체면이 있으니 그리는 못하실것이고"라고 미실이 이야기를 한다. 정말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성골인 공주이기 때문에 뭇사내를 품지 못했을까?

진평왕의 어머니인 만호는 4명의 남편이 있었다. 첫번째는 숙태자(진흥/숙명)이고, 두번째는 동륜태자였고, 세번째는 진지(금륜)였고, 네번째는 숙흘종이였다. 그러니 성골 체면때문이 아니고, 성골이기 때문에 남편을 바꾸는게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한마디로 왕과 그의 자제는 무치였던 것이다. 그래서 성골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정말 일반적으로 알려진 만호는 성골이였을까? 만호의 아버지는 이화랑이다. 이화랑은 화랑세기에서도 조차 미천한 가문이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물론, 추후 전군의 대우를 받는다.

그리고 만호의 어머니는 지소태후이다. 기존 통설에 따르는 성골/성골만이 성골이 된다. 하지만 만호는 성골이 아닌 이화랑의 몸에서 태어났다. 그렇다면 당연히 만호는 진골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성골.진골은 후대에 만든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춘추(유승호), 보량(박은빈)

춘추(유승호)는 미생공을 따라, 설원의 집으로 간다. 그리고 보량(박은빈)을 만난다. 보량은 설원의 손녀가 된다. 설원은 보종을 낳고, 보종이 양명공주와 혼인하여 보라와 보량을 낳는다. 그러니 하종은 진흥왕의 딸인 은륜과 결혼하여 진흥왕의 부마가 되고, 보종은 진평왕의 부마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데자뷰가 떠오른다. 춘추가 보희와 문희가 혼인하는 과정에서 보희의 꿈을 싼 문희가 춘추와 야합을 하여 문무(법민)을 잉태한다. 하지만, 보희는 때마침 아프기 때문에 춘추와 관계를 가질 수 없었다. 그에 문희가 보희대신에 춘추와 야합을 하게 된것이다.

그런데 유신은 보희를 처음에 밀어 넣었지만, 문희가 새치기를 했는데도 별로 문희를 탓하지 않는다. 유신은 보희던 문희던 상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지, 용수가와 서현가를 혼맥으로 혼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춘추가 발을 빼는 듯하자 유신은 불쇼를 준비한다.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를 참조하기 바란다. 우리가 통설로 알고 있었던, 선덕여왕은 등장하지 않고, 덕만공주만이 등장할 것이이다. 이때 유신의 아버지 서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서현은 어디에 간것일까? 지방출장중?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그럴리가 없겠지만, 보량과 춘추를 결혼에 골인시킨다면, 정말 큰일이 난다. 실제는 춘추는 보라궁주와 결혼을 하고 고타소를 낳기 때문이다. "니들은 다 속았어"라는 반전이 숨어있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바는 그동안 <선덕여왕>에서 보여준 원작의 부실함때문에 보량(박은빈)과 김춘추(유승호)가 결혼할 지도 모르겠다.

설원랑 가계도, 보량(박은빈)은 진평왕의 후비였다.


그렇다면 보량은 누구일까? 위의 설원과 보종의 가계도에서 알 수 있듯이 보량은 진평왕의 후비가 되어서 보로전군(왕자)를 낳는다. 하지만, 보량(박은빈)은 승만태후의 눈밖에 나서 쫓겨난다. 그런데 보량은 순순히 물러나 양도와 혼인을 한다. 보량이 사랑하는 사람은 양도였다. 양도는 보량과 같이 양명공주의 소생이다. 보량은 자신의 동생을 사랑하였다. 하지만 양도는 누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진평왕이 양도에게 보량을 받아들이도록 명령한다. 양도는 어쩔수 없이 누이와 혼인을 한다. 보량은 양도가 풍월주가 되자, 화주로 양도를 보필 한다. 또한, 가야파의 낭정인 찰의와도 관계를 가진다. 보량이 춘추와 관계 할 수 있는지는 추후 추적보도할 예정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어찌 되었던 미실은 춘추를 자신의 가문과 혼맥을 만들려고 하는 듯 하다.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은 춘추의 지적능력에 대한 암시를 하고 있다. 마야는 "춘추가 책한권을 주면 한나절을 버티지 못하여 책한권을 떼지도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춘추는 속독법을 깨우치고 있었다. 그래서 한나절이면 책을 다 읽고, 암기력이 뛰어나 익히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한마디로 보면 다 알아 수준이였다는 뜻이다.

먼가 특별한 능력을 부여하고 싶은 선덕여왕 드라마 제작진과 원작자의 노고가 눈물겹다. 이미 난 놈은 출생부터 다르고, 능력도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올라갈 나무는 쳐다도 보지를 말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될놈은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믿기지 않는 속담을 춘추로 부터 재연하고 있는 것이다.

유신이 영모(이지현)과 결혼을 하였다. 하지만 유신은 영모(티아라 큐리)를 소가 닭쳐다 보듯 하였다. 그런데 정말 그랬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유신을 모르는 것이다. 유신과 영모사이에는 수 없이 많은 딸들과,  아들을 두고 있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유신과 영모는 어쩔수 없이 결혼에 골인한것이 아니다. 유신은 만호와 만명의 반대에 미실이 만호에 화해 제스처로 풍월주를 시켜준다. 그러 말미암아 외할머니 만호태후의 허락을 받고, 첫사랑 천관녀와 결혼에 성공한다.


영모와 유신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몇가지 시리즈 기사를 송고한 적이 있다.


요약하자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등장할 수 없는 천관녀가 영모(큐리:이지현)라는 뜻이다. 기록에서 영모가 사라진 이유는 영모의 여식들이 680년 흠돌,진공,흥원의 반란에 깊숙히 개입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유신가문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그리고 유신의 후손들은 신문왕때 따돌림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문왕이 유신의 후손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서현가문은 기사회생한다.

유신이 괜히 죽어서 미추왕의 무덤에 나타난것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기회가 된다면 추후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유신(엄태웅)과 영모(이지현:큐리)

유신과 영모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들이 보인다. 유신은 전장에 나갈때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물의 물맛을 보고 집안의 안위를 살폈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유신의 동생인 흠순은 보리공의 여식인 두 아내 보단과 이단을 너무나 사랑하여 전장터로 나아갈때 꼭 필히 집안에 들어가 안부를 묻고 전장에 나아갔다고 한다.

또한, 유신을 모두다 두려워 하였지만, 흠순만은 자신의 형인 유신을 알고보고 있었다. 타인이 볼때와 가족이 볼때, 유신은 너무나 차이가 많이 나는 인물이였다. 카리스마 있는 인물일지라도 가족에게는 한없이 약해보이는 게 사람이다.

그런데 유신(엄태웅)과 영모(큐리:이지현)의 결혼이 너무 싱겁게 끝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벌려논 잔치상에 먹거리 없다고 드라마 선덕여왕의 선전에 비해서 너무나 미약하다. 이는 이번 사건뿐만 아니고, 요란하게 책력을 말하고, <첨성대>를 짓는다는데 시간만 허비하고, 실제 첨성대를 만드는 과정은 극히 생략을 해버려서 싱겁기가 그지 없었다.

어찌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 37회의 하일라이트는 문노와 비담의 결투 과정에서 벌어진 일 일것이다. 문노가 염종의 수하에 의해서 독침을 맞아 죽고, 비담이 문노를 죽인 범인을 추적하여 염종을 찾아나선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또다시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한 것 같다. 다름이 아닌 염종이다. 염종은 <비담과>이다.

그런데 뜻밖의 춘추를 만나게 된다. 문노의 죽음의 배후에는 춘추가 있었던 것이다. 이럴땐 우리는 정말? 이라고 의문을 해주는게 정상적이다.

우리의 춘추공은 속독도 하시고, 암기력도 천재이시고, 미생도 속이고, 미실도 속이고, 세상을 속이는 지략도 뛰어 나시다, 거기에 계집을 보는 눈에도 일가견이 있다. 612년 이때 춘추공의 나이는 10살로 만 8살이 되시겠다. 요즘 초딩 3년이면 알건 다아는 시기이니 춘추를 무시하면 안된다.


612년 풍월주 비재가 끝나고, 유신이 천관녀 영모와 결혼한 후, 비담과 결투과정에서 문노는 죽었다. 하지만, 문노는 이미 606년 향년 69세의 나이로 아주 편하게 자신의 아내인 윤궁과 하늘에 올라갔다.

비담(김남길), 염종

포석사(鮑石祠)에 화상을 모셨다. 유신이 삼한을 통합하고 나서 공을 사기의 으뜸(宗主)으로 삼았다. 각간(角干)으로 추증(追贈)하고, 신궁(神宮)의 선단(仙壇)에서 대제를 행하였다. 성대하고 지극하도다! 공은 건복(建福) 23년(606)에 세상을 떠났으며, 나이가 69세였다. 낭주는 이해에 공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선(仙)이 되었다. 공보다 10살이 적었다. - 화랑세기 8세 풍월주 문노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형랑은 왜 등장하지 않는거야? 라고 말을 하지말고, 왜? 천관녀는 등장하지 않는거야?라고 말을 하면 안된다. 이미 비형량은 열심히 등장해서 활약하고 계신다. 
 
누구냐고? 당연히 비담이다. 비담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캐는 장면에서 자신의 이름이 <형종>이라는 사실을 시청자에게 알려주었다.

<비>담에서 <비>와 <형>종에서 <형>을 취해서 비담이 <비형>이라고, 새로운 인물을 창조했다고 드라마는 이야기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기록에서는 비형량과 비담은 전혀 다른 인물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링크를 따라 가시기 전에 추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__^;;)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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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갓쉰동 최고 2009.09.30 0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한시대에 금동신발을 비롯한 유물이 발견된것처럼 화랑세기는 아니지만 신라시대의 기록이 발견되길 기다려 봐야겠죠. 서강대 총장인 이종욱학파나 숭실대 이덕일 학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계들은 화랑세기를 쳐주지도 않죠. 특히 욕을 많이 먹기는 하지만 삼국사기를 대중화시킨 전 문부성장관을 지내시고 서울대 진단학회의 거두를 지낸 이병도씨를비롯한 진단학회가 심하죠. (현 국사편찬위원회의 주류학계)
    삼국사기의 경우 신라위주에 유교적 관점이 섞인 책이라서 일부내용이 부실하고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의 부족한부분을 일부 채워주나 불교적 성격이 너무강하죠. 원작 화랑세기나 진짜 필본이 발견되거나 아니면 그 당시 기록을 적은 책이 발견되어서 논란을 잠재워 주었으면 좋겠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30 0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용.. 저는 화랑세기를 진서라고는 보지 않고, 의심스럽게 보고 있습니당.. 읽어볼수록 너무 정교해서용.. 유사와 사기를 교묘히 피해가거든요..

      조선 시대까지도 삼국의 기록이 남아 있는 흔적들이 많이 있습니당. 그런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으니.. 정말 그당시 책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할 것 같아요.. 종이의 수명때문에.. 물론, 사찰이나 공기가 통하지 않는곳에 보관된 자료가 발견된다면 대박인데요.. ㅋㅋ

    • 갓쉰동 최고 2009.09.30 16: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직 고딩이라서 내공이 많이 부족하네요. ㅋㅋㅋㅋ
      그리고 성골 진골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때마다 왕위게승자들이 정통성을 인정받으려고 기존의 골품제위에다 일부러 귀족들과 구분시키려고 성골을 정했다는 이야기를 수업시간이랑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 준비중에 들은적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원래는 반상제 비슷하던 것이 왕족들이 특권을 부여하려고 한계급 더 얹었다는 것이죠

    • 갓쉰동 최고 2009.09.30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처럼 kbs에서 옳은일을 하네요
      성골제에대해서 파헤치네요.
      kbs도 제이야기랑 비슷해서 흐뭇

    • BlogIcon 갓쉰동 2009.10.01 0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내공은 이미 대학이상 수준인데요.. 좋은 성과 있기를.. ^___^
      사실 하나에 집중을 하고 파면 전문가 이상이 될수 있습니당..

    • BlogIcon 갓쉰동 2009.10.01 0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스에서 하나 봅니당.. 설설설을 남발하겠군용.. 균형있게.. 판단은 니들이 해라 정도로.. ㅋㅋ

  3. 갓쉰동 최고 2009.09.30 16: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요즘들어서 서울대이기백 학파를 제외한 성균관대 고려대 동국대등의 反서울대 학파들 사이의 학자들과 서울대내 反이기백학파 학자들을 중심으로 현대사를 비롯해서 기존의 통설을 반박하는 자료들이 많이 나오는 추세라고 하더군요.
    사학과 입학사정관 준비중에 박사학위 준비중인 선배에게 들음
    사실 고대사가 중세사나 근대사보다 자료도적고 사기치기 돟은 학문이죠. 주류가 한번 옳다 그러면 장땡이니 님같은 재야 역사전문가들이나 학자적양심을 가진 사학자들의 진실을 찾는 노력이필요하죠.
    저도 대학 붙으면 선배들하고 답사다니면서 원전을 중심으로 상고사부터 문화 경제사등 다양한 분야에서 포스팅 할 계획 ㅋㅋ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0.01 0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달양님이 이종욱학파같습니당.. 그래도 이종욱학파가 그나마 깨여있기는 함.. 가끔 보면 기존설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모순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4. 갓쉰동 최고 2009.09.30 1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고 대외교류사부분은 정수일교수를 비롯한 재야학자들이 더 유명하더군요. 그쪽 지식은 거기에서 샤샤샥 해옴

    • 갓쉰동 최고 2009.09.30 1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추석울 비롯한 우리명절에 관해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민속학을 전공하는 사람들도 엄두를 못낼정도로 설이 많죠.
      우리가 알고있는 성탄절도 원래는 12월이아니었으나 로마의 역법에의해서 12월로 바뀌었을 정도니 명절과 같은 경우 한가위 추석 중추절같이 애매모호한 경우 정설 외에도 가설들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겠죠.
      주로 글쓰실때 전문가감수는 받고 올리시는지 궁금합니다,
      간혹가다 뷰어들중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시는 분들이 많아서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01 0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재야학자의 글은 참조수준에서 봅니당.. 그냥 원전을 보는 편이 편해요.. 재해석은 정말 아닌게 너무나 많아서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01 0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크리스 마스는 로마의 태양절이란 설도 있으니.. 서로 믹스믹스해서 새로운 문화가 되는 거지요.. 언제 전문가(?)의 감수를 받겠어용.. 저는 전문가를 신뢰하지 않는 편이라서리.. 받고 싶은 생각도 없어용.. 의견교환이라면 모를강.. ㅋㅋ

    • 갓쉰동 최고 2009.10.01 2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문제는 주류학계자체가 문화사보다는 정치사에 목숨을 거는 타입이죠. 고려대나 성균관대 동국대 등의 전문가들은 정말 역사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많죠.
      뉴라이트계열을 제외하고 진단학회의 일부 극우를 제외하면 나머지분들은 양심있는 분들이랍니다.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변경당시 사퇴한 2명의 편찬위원회 편사연구원들을 통해서 알수있죠.

  5. 갓쉰동 최고 2009.09.30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고 화랑세기 역본의 경우 국민대 교수님의 글이 원본을 그대로 해석해 두셔서 자료로서 가치가 있더군요
    이종욱총장님은 주관이 너무 많이 개입되어있으심

    • BlogIcon 갓쉰동 2009.10.01 0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번역본은 이종욱이 최고인것 같은데요..

      이종욱의 생각은 필터링해서 봅니당.. 그건 정말 이종욱 개인의 생각이거든요.. 내생각은 원문번역본을 보고 판단을 하는거지요.. 번역했다고 해서 이종욱 생각을 따를 필요성도 못느끼공..

    • 갓쉰동 최고 2009.10.01 2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국민대 교수의 경우 자기생각을 주입하지 않은채
      순수해석만을 하기때문에 사료연구의 가치가 있어서 번역본에 있어서 최고라고 하는것입니다. 대부분의 연구학자들은 그 분책을 인용하지요

  6. 갓쉰동최고 2009.09.30 2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 뿐만아니라 백제관련 역사에 관해서도 지적할만것이 많지요. 우리가 알고있는 칠지도의 경우에도 원래는 육차모라는 6갈래의 창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창의 일종이었으나 일본서기에의해서 칠지도로 조작되었고 임나일본부설에의한 헌상설로 인해서 이름이 바뀌고 금동대향로논란도 있는등 신라못지않은 문제가 많죠. 고대사는 정말 주류학계만을 믿을수는 없는 듯 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01 0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보가 공개되고.. 있으니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는 힘들겁니당.. 앞으로는.. 정보의 독점이 가져온 피해였지요..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후와 같이.. 다 같이 글을 읽고, 생각할 수 있다면 한자는 무용지물인것처럼요... 문자의 발명은 그런 의미에서 문명/문화의 커다란 변화지요..

  7. 갓쉰동 최고 2009.10.01 2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사 1급은 이미 취득하였고지금은 수험생입니다.ㅋㅋㅋㅋ
    1차원서발표가 ㄷㄷㄷㄷ하더군요

  8. 2009.10.28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첨부터 끝까지 ..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아 몇번을 다시 읽었지만 ㅡㅡ..
    복잡하네요;;;
    어짜피 역사속 현실은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 존재합니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또 그걸 기정사실화 시키는 것도 안 될 일이구요..
    각자 자신의 판단으로 보시는게 좋을 듯 한 것같습니다;;
    예전엔 친인척들끼리의 혼사로 인해..
    지금 현시대와는 개념적 차이가 많이 틀려.. 이해력이 부족해 지는가 봅니다
    어질 어질 하네요 @_@;;;

    • BlogIcon 갓쉰동 2009.10.29 0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어질해용. 처음은 ㅋㅋ 님의 잘못이 아닙니당. ㅋㅋ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는게 맞는데 드라마의 규칙성은지켜야 할 것 같아용.. ㅋㅋ

  9. BlogIcon 간지남 2010.06.07 0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딱히 요즘인기있는 남자쇼핑몰중한곳은 스타일와우 검색하시면 아실거라생각드네여143j

  10. BlogIcon web design quote 2011.11.02 2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 나는 정말 한국어 보여주는의 팬이니까.여배우와 배우 정말 좋은 - 찾고 있습니다. 내가 실수하는 게 아니라면 이들은 그들의 발췌문 생각합니다. 정말 여러분의 게시물을 읽는 즐겼다. 정말 감사합니다.

  11. BlogIcon 아가 2012.01.01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12. BlogIcon 천사 2012.01.07 0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의 떡이 커 보인다

  13. BlogIcon 릴리안 2012.04.03 1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14. BlogIcon 안나 2012.05.08 2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15. BlogIcon 나탈리 2012.05.11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은 오해였습니다.

  16.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7. BlogIcon pilot crackers sale 2012.11.01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8. BlogIcon portable dog fence panels 2012.11.05 15: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

  19. BlogIcon wireless pet fences for small dogs 2012.12.20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 화랑세기에는 중요한 여인중에 하나이다. 역사물을 다루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라면, 사랑, 야망,

  20. BlogIcon zombie apocalypse survival kit walmart 2012.12.31 1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다면 당연히 만호는 진골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성골.진골은 후대에 만든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미실이 유신에게 말을 한다. "우리가문의 영모(티아라 큐리)와 혼인을 하시지요", 영모는 누구인가? 영모는 11세 풍월주 하종(세종/미모)의 딸이다. 하종은 진흥왕의 공주인 은륜과 결혼한다. 그러니 하종은 진흥왕의 부마이다. 영모가 유신과 혼인하는데 별다른 하자가 없는 것이다.

덕만(이요원),미실(고현정)

덕만이 유신을 품을 수 없다는 뜻으로 "성골인 공주는 체면이 있으니 그리는 못하실것이고"라고 미실이 이야기를 한다. 정말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성골인 공주이기 때문에 뭇사내를 품지 못했을까?

진평왕의 어머니인 만호는 4명의 남편이 있었다. 첫번째는 숙태자(진흥/숙명)이고, 두번째는 동륜태자였고, 세번째는 진지(금륜)였고, 네번째는 숙흘종이였다. 그러니 성골 체면때문이 아니고, 성골이기 때문에 남편을 바꾸는게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한마디로 왕과 그의 자제는 무치였던 것이다. 그래서 성골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정말 일반적으로 알려진 만호는 성골이였을까? 만호의 아버지는 이화랑이다. 이화랑은 화랑세기에서도 조차 미천한 가문이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물론, 추후 전군의 대우를 받는다.

그리고 만호의 어머니는 지소태후이다. 기존 통설에 따르는 성골/성골만이 성골이 된다. 하지만 만호는 성골이 아닌 이화랑의 몸에서 태어났다. 그렇다면 당연히 만호는 진골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성골.진골은 후대에 만든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춘추(유승호), 보량(박은빈)

춘추(유승호)는 미생공을 따라, 설원의 집으로 간다. 그리고 보량(박은빈)을 만난다. 보량은 설원의 손녀가 된다. 설원은 보종을 낳고, 보종이 양명공주와 혼인하여 보라와 보량을 낳는다. 그러니 하종은 진흥왕의 딸인 은륜과 결혼하여 진흥왕의 부마가 되고, 보종은 진평왕의 부마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데자뷰가 떠오른다. 춘추가 보희와 문희가 혼인하는 과정에서 보희의 꿈을 싼 문희가 춘추와 야합을 하여 문무(법민)을 잉태한다. 하지만, 보희는 때마침 아프기 때문에 춘추와 관계를 가질 수 없었다. 그에 문희가 보희대신에 춘추와 야합을 하게 된것이다.

그런데 유신은 보희를 처음에 밀어 넣었지만, 문희가 새치기를 했는데도 별로 문희를 탓하지 않는다. 유신은 보희던 문희던 상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지, 용수가와 서현가를 혼맥으로 혼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춘추가 발을 빼는 듯하자 유신은 불쇼를 준비한다.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를 참조하기 바란다. 우리가 통설로 알고 있었던, 선덕여왕은 등장하지 않고, 덕만공주만이 등장할 것이이다. 이때 유신의 아버지 서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서현은 어디에 간것일까? 지방출장중?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그럴리가 없겠지만, 보량과 춘추를 결혼에 골인시킨다면, 정말 큰일이 난다. 실제는 춘추는 보라궁주와 결혼을 하고 고타소를 낳기 때문이다. "니들은 다 속았어"라는 반전이 숨어있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바는 그동안 <선덕여왕>에서 보여준 원작의 부실함때문에 보량(박은빈)과 김춘추(유승호)가 결혼할 지도 모르겠다.

설원랑 가계도, 보량(박은빈)은 진평왕의 후비였다.


그렇다면 보량은 누구일까? 위의 설원과 보종의 가계도에서 알 수 있듯이 보량은 진평왕의 후비가 되어서 보로전군(왕자)를 낳는다. 하지만, 보량(박은빈)은 승만태후의 눈밖에 나서 쫓겨난다. 그런데 보량은 순순히 물러나 양도와 혼인을 한다. 보량이 사랑하는 사람은 양도였다. 양도는 보량과 같이 양명공주의 소생이다. 보량은 자신의 동생을 사랑하였다. 하지만 양도는 누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진평왕이 양도에게 보량을 받아들이도록 명령한다. 양도는 어쩔수 없이 누이와 혼인을 한다. 보량은 양도가 풍월주가 되자, 화주로 양도를 보필 한다. 또한, 가야파의 낭정인 찰의와도 관계를 가진다. 보량이 춘추와 관계 할 수 있는지는 추후 추적보도할 예정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어찌 되었던 미실은 춘추를 자신의 가문과 혼맥을 만들려고 하는 듯 하다.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은 춘추의 지적능력에 대한 암시를 하고 있다. 마야는 "춘추가 책한권을 주면 한나절을 버티지 못하여 책한권을 떼지도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춘추는 속독법을 깨우치고 있었다. 그래서 한나절이면 책을 다 읽고, 암기력이 뛰어나 익히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한마디로 보면 다 알아 수준이였다는 뜻이다.

먼가 특별한 능력을 부여하고 싶은 선덕여왕 드라마 제작진과 원작자의 노고가 눈물겹다. 이미 난 놈은 출생부터 다르고, 능력도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올라갈 나무는 쳐다도 보지를 말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될놈은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믿기지 않는 속담을 춘추로 부터 재연하고 있는 것이다.

유신이 영모(이지현)과 결혼을 하였다. 하지만 유신은 영모(티아라 큐리)를 소가 닭쳐다 보듯 하였다. 그런데 정말 그랬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유신을 모르는 것이다. 유신과 영모사이에는 수 없이 많은 딸들과,  아들을 두고 있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유신과 영모는 어쩔수 없이 결혼에 골인한것이 아니다. 유신은 만호와 만명의 반대에 미실이 만호에 화해 제스처로 풍월주를 시켜준다. 그러 말미암아 외할머니 만호태후의 허락을 받고, 첫사랑 천관녀와 결혼에 성공한다.


영모와 유신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몇가지 시리즈 기사를 송고한 적이 있다.


요약하자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등장할 수 없는 천관녀가 영모(큐리:이지현)라는 뜻이다. 기록에서 영모가 사라진 이유는 영모의 여식들이 680년 흠돌,진공,흥원의 반란에 깊숙히 개입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유신가문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그리고 유신의 후손들은 신문왕때 따돌림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문왕이 유신의 후손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서현가문은 기사회생한다.

유신이 괜히 죽어서 미추왕의 무덤에 나타난것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기회가 된다면 추후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유신(엄태웅)과 영모(이지현:큐리)

유신과 영모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들이 보인다. 유신은 전장에 나갈때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물의 물맛을 보고 집안의 안위를 살폈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유신의 동생인 흠순은 보리공의 여식인 두 아내 보단과 이단을 너무나 사랑하여 전장터로 나아갈때 꼭 필히 집안에 들어가 안부를 묻고 전장에 나아갔다고 한다.

또한, 유신을 모두다 두려워 하였지만, 흠순만은 자신의 형인 유신을 알고보고 있었다. 타인이 볼때와 가족이 볼때, 유신은 너무나 차이가 많이 나는 인물이였다. 카리스마 있는 인물일지라도 가족에게는 한없이 약해보이는 게 사람이다.

그런데 유신(엄태웅)과 영모(큐리:이지현)의 결혼이 너무 싱겁게 끝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벌려논 잔치상에 먹거리 없다고 드라마 선덕여왕의 선전에 비해서 너무나 미약하다. 이는 이번 사건뿐만 아니고, 요란하게 책력을 말하고, <첨성대>를 짓는다는데 시간만 허비하고, 실제 첨성대를 만드는 과정은 극히 생략을 해버려서 싱겁기가 그지 없었다.

어찌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 37회의 하일라이트는 문노와 비담의 결투 과정에서 벌어진 일 일것이다. 문노가 염종의 수하에 의해서 독침을 맞아 죽고, 비담이 문노를 죽인 범인을 추적하여 염종을 찾아나선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또다시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한 것 같다. 다름이 아닌 염종이다. 염종은 <비담과>이다.

그런데 뜻밖의 춘추를 만나게 된다. 문노의 죽음의 배후에는 춘추가 있었던 것이다. 이럴땐 우리는 정말? 이라고 의문을 해주는게 정상적이다.

우리의 춘추공은 속독도 하시고, 암기력도 천재이시고, 미생도 속이고, 미실도 속이고, 세상을 속이는 지략도 뛰어 나시다, 거기에 계집을 보는 눈에도 일가견이 있다. 612년 이때 춘추공의 나이는 10살로 만 8살이 되시겠다. 요즘 초딩 3년이면 알건 다아는 시기이니 춘추를 무시하면 안된다.


612년 풍월주 비재가 끝나고, 유신이 천관녀 영모와 결혼한 후, 비담과 결투과정에서 문노는 죽었다. 하지만, 문노는 이미 606년 향년 69세의 나이로 아주 편하게 자신의 아내인 윤궁과 하늘에 올라갔다.

비담(김남길), 염종

포석사(鮑石祠)에 화상을 모셨다. 유신이 삼한을 통합하고 나서 공을 사기의 으뜸(宗主)으로 삼았다. 각간(角干)으로 추증(追贈)하고, 신궁(神宮)의 선단(仙壇)에서 대제를 행하였다. 성대하고 지극하도다! 공은 건복(建福) 23년(606)에 세상을 떠났으며, 나이가 69세였다. 낭주는 이해에 공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선(仙)이 되었다. 공보다 10살이 적었다. - 화랑세기 8세 풍월주 문노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형랑은 왜 등장하지 않는거야? 라고 말을 하지말고, 왜? 천관녀는 등장하지 않는거야?라고 말을 하면 안된다. 이미 비형량은 열심히 등장해서 활약하고 계신다. 
 
누구냐고? 당연히 비담이다. 비담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캐는 장면에서 자신의 이름이 <형종>이라는 사실을 시청자에게 알려주었다.

<비>담에서 <비>와 <형>종에서 <형>을 취해서 비담이 <비형>이라고, 새로운 인물을 창조했다고 드라마는 이야기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기록에서는 비형량과 비담은 전혀 다른 인물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링크를 따라 가시기 전에 추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__^;;)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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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갓쉰동 최고 2009.09.30 0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한시대에 금동신발을 비롯한 유물이 발견된것처럼 화랑세기는 아니지만 신라시대의 기록이 발견되길 기다려 봐야겠죠. 서강대 총장인 이종욱학파나 숭실대 이덕일 학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계들은 화랑세기를 쳐주지도 않죠. 특히 욕을 많이 먹기는 하지만 삼국사기를 대중화시킨 전 문부성장관을 지내시고 서울대 진단학회의 거두를 지낸 이병도씨를비롯한 진단학회가 심하죠. (현 국사편찬위원회의 주류학계)
    삼국사기의 경우 신라위주에 유교적 관점이 섞인 책이라서 일부내용이 부실하고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의 부족한부분을 일부 채워주나 불교적 성격이 너무강하죠. 원작 화랑세기나 진짜 필본이 발견되거나 아니면 그 당시 기록을 적은 책이 발견되어서 논란을 잠재워 주었으면 좋겠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30 0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용.. 저는 화랑세기를 진서라고는 보지 않고, 의심스럽게 보고 있습니당.. 읽어볼수록 너무 정교해서용.. 유사와 사기를 교묘히 피해가거든요..

      조선 시대까지도 삼국의 기록이 남아 있는 흔적들이 많이 있습니당. 그런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으니.. 정말 그당시 책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할 것 같아요.. 종이의 수명때문에.. 물론, 사찰이나 공기가 통하지 않는곳에 보관된 자료가 발견된다면 대박인데요.. ㅋㅋ

    • 갓쉰동 최고 2009.09.30 16: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직 고딩이라서 내공이 많이 부족하네요. ㅋㅋㅋㅋ
      그리고 성골 진골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때마다 왕위게승자들이 정통성을 인정받으려고 기존의 골품제위에다 일부러 귀족들과 구분시키려고 성골을 정했다는 이야기를 수업시간이랑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 준비중에 들은적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원래는 반상제 비슷하던 것이 왕족들이 특권을 부여하려고 한계급 더 얹었다는 것이죠

    • 갓쉰동 최고 2009.09.30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처럼 kbs에서 옳은일을 하네요
      성골제에대해서 파헤치네요.
      kbs도 제이야기랑 비슷해서 흐뭇

    • BlogIcon 갓쉰동 2009.10.01 0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내공은 이미 대학이상 수준인데요.. 좋은 성과 있기를.. ^___^
      사실 하나에 집중을 하고 파면 전문가 이상이 될수 있습니당..

    • BlogIcon 갓쉰동 2009.10.01 0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스에서 하나 봅니당.. 설설설을 남발하겠군용.. 균형있게.. 판단은 니들이 해라 정도로.. ㅋㅋ

  3. 갓쉰동 최고 2009.09.30 16: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요즘들어서 서울대이기백 학파를 제외한 성균관대 고려대 동국대등의 反서울대 학파들 사이의 학자들과 서울대내 反이기백학파 학자들을 중심으로 현대사를 비롯해서 기존의 통설을 반박하는 자료들이 많이 나오는 추세라고 하더군요.
    사학과 입학사정관 준비중에 박사학위 준비중인 선배에게 들음
    사실 고대사가 중세사나 근대사보다 자료도적고 사기치기 돟은 학문이죠. 주류가 한번 옳다 그러면 장땡이니 님같은 재야 역사전문가들이나 학자적양심을 가진 사학자들의 진실을 찾는 노력이필요하죠.
    저도 대학 붙으면 선배들하고 답사다니면서 원전을 중심으로 상고사부터 문화 경제사등 다양한 분야에서 포스팅 할 계획 ㅋㅋ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0.01 0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달양님이 이종욱학파같습니당.. 그래도 이종욱학파가 그나마 깨여있기는 함.. 가끔 보면 기존설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모순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4. 갓쉰동 최고 2009.09.30 1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고 대외교류사부분은 정수일교수를 비롯한 재야학자들이 더 유명하더군요. 그쪽 지식은 거기에서 샤샤샥 해옴

    • 갓쉰동 최고 2009.09.30 1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추석울 비롯한 우리명절에 관해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민속학을 전공하는 사람들도 엄두를 못낼정도로 설이 많죠.
      우리가 알고있는 성탄절도 원래는 12월이아니었으나 로마의 역법에의해서 12월로 바뀌었을 정도니 명절과 같은 경우 한가위 추석 중추절같이 애매모호한 경우 정설 외에도 가설들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겠죠.
      주로 글쓰실때 전문가감수는 받고 올리시는지 궁금합니다,
      간혹가다 뷰어들중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시는 분들이 많아서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01 0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재야학자의 글은 참조수준에서 봅니당.. 그냥 원전을 보는 편이 편해요.. 재해석은 정말 아닌게 너무나 많아서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01 0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크리스 마스는 로마의 태양절이란 설도 있으니.. 서로 믹스믹스해서 새로운 문화가 되는 거지요.. 언제 전문가(?)의 감수를 받겠어용.. 저는 전문가를 신뢰하지 않는 편이라서리.. 받고 싶은 생각도 없어용.. 의견교환이라면 모를강.. ㅋㅋ

    • 갓쉰동 최고 2009.10.01 2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문제는 주류학계자체가 문화사보다는 정치사에 목숨을 거는 타입이죠. 고려대나 성균관대 동국대 등의 전문가들은 정말 역사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많죠.
      뉴라이트계열을 제외하고 진단학회의 일부 극우를 제외하면 나머지분들은 양심있는 분들이랍니다.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변경당시 사퇴한 2명의 편찬위원회 편사연구원들을 통해서 알수있죠.

  5. 갓쉰동 최고 2009.09.30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고 화랑세기 역본의 경우 국민대 교수님의 글이 원본을 그대로 해석해 두셔서 자료로서 가치가 있더군요
    이종욱총장님은 주관이 너무 많이 개입되어있으심

    • BlogIcon 갓쉰동 2009.10.01 0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번역본은 이종욱이 최고인것 같은데요..

      이종욱의 생각은 필터링해서 봅니당.. 그건 정말 이종욱 개인의 생각이거든요.. 내생각은 원문번역본을 보고 판단을 하는거지요.. 번역했다고 해서 이종욱 생각을 따를 필요성도 못느끼공..

    • 갓쉰동 최고 2009.10.01 2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국민대 교수의 경우 자기생각을 주입하지 않은채
      순수해석만을 하기때문에 사료연구의 가치가 있어서 번역본에 있어서 최고라고 하는것입니다. 대부분의 연구학자들은 그 분책을 인용하지요

  6. 갓쉰동최고 2009.09.30 2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 뿐만아니라 백제관련 역사에 관해서도 지적할만것이 많지요. 우리가 알고있는 칠지도의 경우에도 원래는 육차모라는 6갈래의 창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창의 일종이었으나 일본서기에의해서 칠지도로 조작되었고 임나일본부설에의한 헌상설로 인해서 이름이 바뀌고 금동대향로논란도 있는등 신라못지않은 문제가 많죠. 고대사는 정말 주류학계만을 믿을수는 없는 듯 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01 0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보가 공개되고.. 있으니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는 힘들겁니당.. 앞으로는.. 정보의 독점이 가져온 피해였지요..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후와 같이.. 다 같이 글을 읽고, 생각할 수 있다면 한자는 무용지물인것처럼요... 문자의 발명은 그런 의미에서 문명/문화의 커다란 변화지요..

  7. 갓쉰동 최고 2009.10.01 2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사 1급은 이미 취득하였고지금은 수험생입니다.ㅋㅋㅋㅋ
    1차원서발표가 ㄷㄷㄷㄷ하더군요

  8. 2009.10.28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첨부터 끝까지 ..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아 몇번을 다시 읽었지만 ㅡㅡ..
    복잡하네요;;;
    어짜피 역사속 현실은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 존재합니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또 그걸 기정사실화 시키는 것도 안 될 일이구요..
    각자 자신의 판단으로 보시는게 좋을 듯 한 것같습니다;;
    예전엔 친인척들끼리의 혼사로 인해..
    지금 현시대와는 개념적 차이가 많이 틀려.. 이해력이 부족해 지는가 봅니다
    어질 어질 하네요 @_@;;;

    • BlogIcon 갓쉰동 2009.10.29 0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어질해용. 처음은 ㅋㅋ 님의 잘못이 아닙니당. ㅋㅋ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는게 맞는데 드라마의 규칙성은지켜야 할 것 같아용.. ㅋㅋ

  9. BlogIcon 간지남 2010.06.07 0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딱히 요즘인기있는 남자쇼핑몰중한곳은 스타일와우 검색하시면 아실거라생각드네여143j

  10. BlogIcon web design quote 2011.11.02 2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 나는 정말 한국어 보여주는의 팬이니까.여배우와 배우 정말 좋은 - 찾고 있습니다. 내가 실수하는 게 아니라면 이들은 그들의 발췌문 생각합니다. 정말 여러분의 게시물을 읽는 즐겼다. 정말 감사합니다.

  11. BlogIcon 아가 2012.01.01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12. BlogIcon 천사 2012.01.07 0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의 떡이 커 보인다

  13. BlogIcon 릴리안 2012.04.03 1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14. BlogIcon 안나 2012.05.08 2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15. BlogIcon 나탈리 2012.05.11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은 오해였습니다.

  16.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7. BlogIcon pilot crackers sale 2012.11.01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8. BlogIcon portable dog fence panels 2012.11.05 15: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

  19. BlogIcon wireless pet fences for small dogs 2012.12.20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 화랑세기에는 중요한 여인중에 하나이다. 역사물을 다루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라면, 사랑, 야망,

  20. BlogIcon zombie apocalypse survival kit walmart 2012.12.31 1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다면 당연히 만호는 진골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성골.진골은 후대에 만든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은 서현가문의 장자인 유신을 자신의 아들 하종(11세 풍월주)의 딸 영모(하종/미모: 티아라 큐리 이지현)의 짝으로 생각하고 밀어 붙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정말 미실은 강압적으로 유신의 자신의 손녀사위로 유신을 요구했을까?

또한, 유신은 영모(큐리)를 탐탁찮게 생각했을까?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는 것과 같이 대원신통으로 미실은 신라의 제사를 주관하는 신관의 지위에 있었다. 영모는 할머니 미실과 어머니 미모를 따라 천관직을 계승했다. 물론, 정치적으로 미실은 강력한 파워를 발휘를 한다. 하지만, 서현가문과 비교를 한다면 미실가문은 미천한 가문에 속한다. 


천관녀가 영모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비형랑을 아무리 기다려도 <선덕여왕>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실은 이미 비형랑은 등장하고 있다. 비형랑이 곧 비담이고, 형종이다. 비담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캐고 알아낸 이름이 <형종>이다. 이가 곧 비형랑이니 알아 먹으라는 뜻이다. 그런 미실이 곧 <도화녀>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아무리 천관녀를 기다려도 <선덕여왕>에는 나올 수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왜? 김유신의 첫사랑 <천관녀>는 나오지 않는거야?" 하지 마시고, 영모가 천관녀이구나 생각하면 된다.

위의 이전글은 천관녀가 영모일 수 밖에 없는 이유와 정치와 종교에 의해서 만명(임예진)이 <천관녀>인 영모를 멀리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글은 극히 개인적인 원한관계 때문에 만명이 천관녀 영모를 받아 들이지 못한 이유에 관한 글이다.

미실의 가계

서현의 어머니는 아양공주이다. 아양공주는 진흥왕과 사도(영실/옥진)사이에 태어난다. 사도는 사사로이는 미실의 이모가 된다. 그러니 아양과 미실은 이종사촌간이 된다. 하지만, 서현(무력/아양공주)은 진흥왕의 외손이다. 또한, 만호태후의 딸인 만명(임예진)은 남편이 되는 서현과 도망한 후 결혼하고 유신을 낳았다.

그러니 유신은 만호태후의 외손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미실이 진흥의 후비이고, 진지의 후비이고, 진평의 비가 되었다고 해도, 서현가문을 만만하게 볼 수는 없다. 물론, 서현가문도 미실을 만만한 상대로 여길 수는 없다. 어찌 되었던, 미실은 마야왕후 이전 진평왕의 물러난 왕후였기 때문이다. 


영모의 아버지 하종은 세종/미실 사이에 태어난다. 세종은 지소태후/이사부 사이에 태어났다. 그런데 하종의 정실 부인은 영모의 어머니인 미모(설원랑/준모)가 아니다.

연개소문 미실(서갑숙) 천관녀(박시연)

하종의 정실 부인은 진흥왕/사도왕후 사이에 태어난 은륜공주이다. 하종은 진흥왕의 부마가 되는 것이다. 서현의 아버지 무력이 진흥왕의 부마이였듯이 하종도 진흥왕의 부마인 것이다.


하지만 서현가와 세종/미실가는 사사로이는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 서현의 부인인 만명은 만호태후의 사녀이다. 만호태후(이화랑/지소태후)가 숙흘종(입종/금진)과 관계하여 만명을 낳았다.

만호태후는 처음 동륜태자의 비가 되었다 .하지만, 572년 미실의  꼬임에 빠진 동륜은 아버지 진흥의 후비이고, 고모뻘인 보명(구진/지소)궁의 담장을 넘다가 개에게 물려 죽는 일이 발생한다. 이일로 미실은 궁궐밖으로 쫓겨나고, 화랑의 우두머리인 <원화>지위도 잃게 된다. 만호로 보았을때, 동륜이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면, 진흥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을 것이고, 만호 자신은 왕후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첫번째 남편인 동륜태자가 죽자. 어쩔 수 없이 숙흘종(입종/금진)과 결혼을 하고, 만명을 낳은 것이다. (감깐 상식? 만명은 572년 동륜이 보명궁에서 죽은 이후에 태어나야 한다. )

이런 원한을 가지고 있는 만호는, 미실이 탐탁치 않았음에 분명하다. 만명 또한, 어머니 만호태후의 뜻에 따라, 미실을 좋아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유신이 미실의 손녀인 영모와 그렇고 그런사이가 되었는데 좋아할 수가 없고, 어미로써 유신을 말려야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만호는 서현의 어미가 되는 아양공주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서현도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다. 아양은 공주의 신분이였고, 만호는 단지 지소태후의 사녀(지소/이화랑)에 지나지 않아서 만호가 신분상으로 아양을 넘을 수가 없다. 아양은 공주였고, 만호는 서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누이(아양), 올케(만호)사이였다. 고금을 들어서 "올케와 시누이 사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겠는가? 만호태자비와 아양공주도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니였던 것 이다. 
사사로이는 만호는 아양의 고모뻘이 된다.


사도와 미실이 공모하여 진지왕(금륜)를 폐위시키고, 만호의 아들인 진평을 왕위에 오르게 한다.  이때, 어느정도 만호와 미실은 앙금을 풀었던 것 같다. 이와 더불어 만호와 아양사이에 역전현상이 벌어진다. 권력의 중심축이 만호태후로 쏠렸다.

미실과 만호처럼 만호와 아양 사이에 사적인 감정과 공적인 감정이 뒤섞여서 579년 진평이 왕위에 오른 이후에도 아양/무력의 자식인 서현을 싫어 했었던 것이다.

만호는 만명이 서현을 만나는데 탐탁치 않았을 뿐만 아니고, 만명을 집에 가두어 버린다. 서현은 갇혀있는 만명을 구출해서 자신의 임지인 만노군으로 토끼고, 유신을 낳고, 서라벌로 돌아온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없다고, 만호도 자식까지 낳은 딸을 용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반대하는 부모를 둔 사랑하는 연인들이 시도하는게 얼라를 임신하는 방법이다. 

기존 통설처럼 만호태후가 성골이고, 서현이 진골이기 때문에 서현을 멀리한 것이 아니다. 만호 자신도 성골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만호(지소/이화랑)는 지소태후의 사녀에 불과하고, 통설에 따르면 만호의 아비인 이화랑은 성골축에도 끼지 못했다. 만호 자신의 남편이 되는 숙흘종도 입종/금진의 자식이다. 금진은 위화랑의 여식이다. 금진은 성골.진골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근본도 없는 천한것이 된다. 당연히 만호태후 자신이 성골축에도 못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호는 태자비가 되고, 태후가 되었다.

이들사이에 무슨 만명이 성골이고, 서현이 진골이기 때문에 서현을 멀리 하겠는가?  한마디로 성골,진골로 나누어 서현을 멀리했다거나 가야계이기 때문에 멀리했다는 소리를 하면 개 풀뜯어 먹는 소리하고 있네하면 된다.

어째든, 뒤끝이 없는 만호태후는 서현/만명을 받아들이고 공식적인 외손으로 유신도 받아들인다.


이렇게 만호의 성격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만명이 왜 천관녀 <영모>를 멀리 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만호는 사적인 일에 감정을 이입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듯 보인다. 서현을 사위로 받아 들일수 없는 이유는 단지, 만호 자신이 아양공주와 사이가 나뻐서 일 뿐이다.

그런 만호태후의 성격을 알고 있는 만명으로서는 유신이 만호의 사적인 원수에 가까운 미실집안과 관계를 가진다고 생각하니 이루워질 수 없는 사랑으로 여겼을 것이다. 자신도 어머니 만호를 피해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렸지만, 만명 자신의 아들인 유신이 <영모>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는데 반대 했던 것이다. 자신이나 서현처럼 또다시 변방으로 떠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자 하는 어미는 없다.

그래서 유신에게 "너는 할일 많다"그런데 어찌 사사로이 원수의 집안이고 "<천관녀>에 불과한 <영모>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냐? 썩 정을 끊어라" 라고 한것이다.


사실 <천관녀>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보이지 않고, 이규보의 파한집, 동경잡기, 신동국여지승람에만 보인다.

자신의 집으로 술취해 말을 타고온 유신이 자신과의 정을 끊기 위해서 아무런 죄도 없는 말의 머리를 동강내는 모습을 본 천관녀 영모로써는 유신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천관녀 영모는 유신의 무정함에 노래를 지어 불렀고, 유신은 그 이후 산속으로 들어가 무술 수련에 열중한다.

이때
유신이 대단한 포부를 가지고, 무술 수련을 했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천관녀 영모를 잊지 못해서, 단석산과 중악에 올라가 열심히 바위를 쳤을 것이다. 사랑의 열병을 앓아본 사람은 유신이 왜 산에 올라가 바위치기를 했는지 알 수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아무생각없이 무조건 바위를 치거나, 가문의 선택의 기로에서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바위를 쳤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역사속 비련의 주인공이 될뻔한 <천관녀> 영모는,  할머니 미실이 만호태후에 사과하는 제스쳐를 취하므로 해서, 만호태후의 외손주이고 서현/만명의 자식 유신의 처가 된것이다.

호림공이 풍월주의 지위를 물려주겠다고 청하였다. 공은 사양을 하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에 15세 풍월주가 되었다. (만호)태후가 하종공의 딸 영모(令毛)를 아내로 맞이하도록 명하여 미실궁주를 위로하려고 하였다. 영모는 곧 유모(柔毛)의 동생이었다. 형제가 모두 선화(仙花)의 아내가 되었다. 그 때 사람들이 영화롭게 여겼다. 곧 건복(建福) 29년 임신년(612)이었다. 공이 풍월주의 위에 올랐다. - 화랑세기 15세 풍월주 유신

유신과 영모는 수 많은 자식들을 낳는다. 문제는 영모의 자식들이 580년 신문왕 원년 진공.흠돌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었다. 역모에 연루가 되면 구족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기록이 사라진다. 이찬 칠숙과 석품도 631년 반란을 일으키고 기록이 사라졌다. 647년 상대등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키고 기록이 사라졌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진공, 흠돌의 반란사건후, 김유신도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질뻔 하였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기회에 송고할 예정이다. 또한, 유신의 부인이 되는 조카 지조부인(춘추/문희) 때문에 영모의 기록이 공식적으로 사라진것이다. 


이처럼 현존하는 화랑세기의 이면에는 천관녀 영모(이지현:큐리)와 유신의 감춰진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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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배리본즈 2009.09.25 0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볼 때 판단하는데 있어 도움될만한 정보군요 잘 보고 갑니다.

  3. 2009.09.25 0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BlogIcon 朱雀 2009.09.25 0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5. BlogIcon labyrint 2009.09.25 0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사서에는 수많은 진실들이 숨어있는데... 최근에 역사학자들이 외면하는 경향이 있지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6. BlogIcon 감자꿈 2009.09.25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관녀에 대한 의문을 싸악 씻고 갑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 2009.09.25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분 글도 역사기록을 토대로 한 추측인데 맹신하지는 마세요. 예전에 동양사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거기서 고대사와 핵심은 얼마나 그럴듯하게 창작하는데 있다고 들었죠.

    • BlogIcon 갓쉰동 2009.09.25 18:2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냥 이런 견해도 있다고 생각해주셈..

    • BlogIcon 갓쉰동 2009.09.25 1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얼마나 그럴사 하게 포장하는가의 문제지요.. 논리적으로..어찌되었던. 아직은 논리적인 오류가 없다고 봅니당..

  7. BlogIcon 영웅전쟁 2009.09.25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저는 갓쉰동님의 글을
    쭉 봐와서 그런가요?
    이미 감 잡고 있었다는 ㅋ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멋진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5 18: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시 영웅님은 눈치가 입신의 경지에.. ㅋㅋ 역시 밑밥을 계속 떨구어서 쉬이 아시는군용..

      그런데 문제는 75%가 새로들어오는 사람이라성.. 25%는 지루할 수도 있을 겁니당.. 감질맛 나게 해성.. ㅋㅋ

  8. 21야영장 2009.09.25 1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당,,,드라마 선덕여왕처럼

    갓쉰동님 글도 기다려진다는...

  9. 메뚜기 2009.09.25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계속 읽으렵니다.
    고맙고요.......

  10. 동글동글 2009.09.25 1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영모가 천관녀이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었는데ㅎㅎㅎ
    흥미롭게 읽었습니다....재밌는글 감사해요.

  11. 2009.09.25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5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석과 흠돌과 신목과 문노와 흠운에 관한 글을 예전에 쓴게 있습니당.. 나중에 좀 정리를 해서 다시 올리겠습니당..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빠른시기에 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당.. 추석이 지난다음이 되지 않을까 합니당.

      보량은 춘추가 미생을 속이기 위한 술수 같은데용.. 저는 그렇게 봤습니당. 만약, 정말 보량을 춘추의 처로 만든다면 대락난감이지요.. ㅋㅋ

  12. 오호라 2009.09.25 1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역사는 재밌어요~~ 진실은 어디에..인 부분들도 있겠지만.. 잘 읽고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5 1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누가 더 합리적이냐의 문제일 뿐입니당.. 그것도 현재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어필할 것인가의 문제구요..

  13. BlogIcon 유리-MyEurope 2009.09.25 2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에는 상관없는글이지만...저 시대 옷...봐도봐도 정말 아름답고 예뻐요~
    저런옷 하나 장만하고 싶네요 ㅋㅋㅋ^^

  14. 고양이 2009.09.26 0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갑순님이 아니라 서갑숙 이어요 ㅋ

    갑자기 갑돌이 여자친구로 만들어버리셨넹

  15. BlogIcon 파아란기쁨 2009.09.26 0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반님은 이런 정보를 어떻게 다 구하시는지 정말 대단하세요...^^

    요즘 선덕여왕을 좋아해서 자주 보고 있는데...

    이반님 정보 보면서 많은 도움 받고 있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16. abgp123 2009.09.26 0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표적인 친일파이자 조선총독부 촉탁이었던
    화랑세기의 저자 박창화가 지하에서
    기뻐 대소할 일이군요!

    화랑세기는 위서로 역사적 가치가 없습니다.
    박창화의 저작물치고 세미포르노 아닌게 없던데
    딱 일본 제국주의 입맛이라니!

  17. 레아 2009.10.18 1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명공주는 성골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갈문왕입종은 지소태후의 남편으로 지소태후의 아버지인 법흥왕의 동생으로 진흥왕의 아버지이고 만명공주의 할아버지인 동시에 만호태후의 아버지이고 만호는 지소태후의 딸이 아닙니다.

  18. 레아 2010.02.13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만명공주는 성골이 아닙니다. 제가 잘못알고 있었어요. 당시 신라는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이라는 모계신분이 있었는데 만명은 어머니인 만호태후를 따라서 진골정통이었죠. 그리고 영모는 천관녀가 아닙니다. 당시 대원신통가문은 궁정에서 치루는 제사보다는 정치에 더 힘을 쓰고 있었고 물론 정치외 신관제사는 어떤면에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긴 하지만 그래도 엄격히 구분되어 관장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천관녀에 대해서 기록 조차도 이견이 분분합니다. 신녀라는 이야기도 있고 혹은 그냥 기생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19. 레아 2010.02.13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논란은 김대문이 지었다는 화랑세기의 원전이 발견이 되면 박창화의 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가려 질텐데 그에 관한 자료도 일본의 서릉부에 있어서 구하기 어렵답니다.

  20.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21.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은 서현가문의 장자인 유신을 자신의 아들 하종(11세 풍월주)의 딸 영모(하종/미모: 티아라 큐리 이지현)의 짝으로 생각하고 밀어 붙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정말 미실은 강압적으로 유신의 자신의 손녀사위로 유신을 요구했을까?

또한, 유신은 영모(큐리)를 탐탁찮게 생각했을까?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는 것과 같이 대원신통으로 미실은 신라의 제사를 주관하는 신관의 지위에 있었다. 영모는 할머니 미실과 어머니 미모를 따라 천관직을 계승했다. 물론, 정치적으로 미실은 강력한 파워를 발휘를 한다. 하지만, 서현가문과 비교를 한다면 미실가문은 미천한 가문에 속한다. 


천관녀가 영모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비형랑을 아무리 기다려도 <선덕여왕>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실은 이미 비형랑은 등장하고 있다. 비형랑이 곧 비담이고, 형종이다. 비담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캐고 알아낸 이름이 <형종>이다. 이가 곧 비형랑이니 알아 먹으라는 뜻이다. 그런 미실이 곧 <도화녀>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아무리 천관녀를 기다려도 <선덕여왕>에는 나올 수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왜? 김유신의 첫사랑 <천관녀>는 나오지 않는거야?" 하지 마시고, 영모가 천관녀이구나 생각하면 된다.

위의 이전글은 천관녀가 영모일 수 밖에 없는 이유와 정치와 종교에 의해서 만명(임예진)이 <천관녀>인 영모를 멀리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글은 극히 개인적인 원한관계 때문에 만명이 천관녀 영모를 받아 들이지 못한 이유에 관한 글이다.

미실의 가계

서현의 어머니는 아양공주이다. 아양공주는 진흥왕과 사도(영실/옥진)사이에 태어난다. 사도는 사사로이는 미실의 이모가 된다. 그러니 아양과 미실은 이종사촌간이 된다. 하지만, 서현(무력/아양공주)은 진흥왕의 외손이다. 또한, 만호태후의 딸인 만명(임예진)은 남편이 되는 서현과 도망한 후 결혼하고 유신을 낳았다.

그러니 유신은 만호태후의 외손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미실이 진흥의 후비이고, 진지의 후비이고, 진평의 비가 되었다고 해도, 서현가문을 만만하게 볼 수는 없다. 물론, 서현가문도 미실을 만만한 상대로 여길 수는 없다. 어찌 되었던, 미실은 마야왕후 이전 진평왕의 물러난 왕후였기 때문이다. 


영모의 아버지 하종은 세종/미실 사이에 태어난다. 세종은 지소태후/이사부 사이에 태어났다. 그런데 하종의 정실 부인은 영모의 어머니인 미모(설원랑/준모)가 아니다.

연개소문 미실(서갑숙) 천관녀(박시연)

하종의 정실 부인은 진흥왕/사도왕후 사이에 태어난 은륜공주이다. 하종은 진흥왕의 부마가 되는 것이다. 서현의 아버지 무력이 진흥왕의 부마이였듯이 하종도 진흥왕의 부마인 것이다.


하지만 서현가와 세종/미실가는 사사로이는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 서현의 부인인 만명은 만호태후의 사녀이다. 만호태후(이화랑/지소태후)가 숙흘종(입종/금진)과 관계하여 만명을 낳았다.

만호태후는 처음 동륜태자의 비가 되었다 .하지만, 572년 미실의  꼬임에 빠진 동륜은 아버지 진흥의 후비이고, 고모뻘인 보명(구진/지소)궁의 담장을 넘다가 개에게 물려 죽는 일이 발생한다. 이일로 미실은 궁궐밖으로 쫓겨나고, 화랑의 우두머리인 <원화>지위도 잃게 된다. 만호로 보았을때, 동륜이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면, 진흥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을 것이고, 만호 자신은 왕후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첫번째 남편인 동륜태자가 죽자. 어쩔 수 없이 숙흘종(입종/금진)과 결혼을 하고, 만명을 낳은 것이다. (감깐 상식? 만명은 572년 동륜이 보명궁에서 죽은 이후에 태어나야 한다. )

이런 원한을 가지고 있는 만호는, 미실이 탐탁치 않았음에 분명하다. 만명 또한, 어머니 만호태후의 뜻에 따라, 미실을 좋아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유신이 미실의 손녀인 영모와 그렇고 그런사이가 되었는데 좋아할 수가 없고, 어미로써 유신을 말려야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만호는 서현의 어미가 되는 아양공주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서현도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다. 아양은 공주의 신분이였고, 만호는 단지 지소태후의 사녀(지소/이화랑)에 지나지 않아서 만호가 신분상으로 아양을 넘을 수가 없다. 아양은 공주였고, 만호는 서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누이(아양), 올케(만호)사이였다. 고금을 들어서 "올케와 시누이 사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겠는가? 만호태자비와 아양공주도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니였던 것 이다. 
사사로이는 만호는 아양의 고모뻘이 된다.


사도와 미실이 공모하여 진지왕(금륜)를 폐위시키고, 만호의 아들인 진평을 왕위에 오르게 한다.  이때, 어느정도 만호와 미실은 앙금을 풀었던 것 같다. 이와 더불어 만호와 아양사이에 역전현상이 벌어진다. 권력의 중심축이 만호태후로 쏠렸다.

미실과 만호처럼 만호와 아양 사이에 사적인 감정과 공적인 감정이 뒤섞여서 579년 진평이 왕위에 오른 이후에도 아양/무력의 자식인 서현을 싫어 했었던 것이다.

만호는 만명이 서현을 만나는데 탐탁치 않았을 뿐만 아니고, 만명을 집에 가두어 버린다. 서현은 갇혀있는 만명을 구출해서 자신의 임지인 만노군으로 토끼고, 유신을 낳고, 서라벌로 돌아온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없다고, 만호도 자식까지 낳은 딸을 용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반대하는 부모를 둔 사랑하는 연인들이 시도하는게 얼라를 임신하는 방법이다. 

기존 통설처럼 만호태후가 성골이고, 서현이 진골이기 때문에 서현을 멀리한 것이 아니다. 만호 자신도 성골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만호(지소/이화랑)는 지소태후의 사녀에 불과하고, 통설에 따르면 만호의 아비인 이화랑은 성골축에도 끼지 못했다. 만호 자신의 남편이 되는 숙흘종도 입종/금진의 자식이다. 금진은 위화랑의 여식이다. 금진은 성골.진골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근본도 없는 천한것이 된다. 당연히 만호태후 자신이 성골축에도 못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호는 태자비가 되고, 태후가 되었다.

이들사이에 무슨 만명이 성골이고, 서현이 진골이기 때문에 서현을 멀리 하겠는가?  한마디로 성골,진골로 나누어 서현을 멀리했다거나 가야계이기 때문에 멀리했다는 소리를 하면 개 풀뜯어 먹는 소리하고 있네하면 된다.

어째든, 뒤끝이 없는 만호태후는 서현/만명을 받아들이고 공식적인 외손으로 유신도 받아들인다.


이렇게 만호의 성격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만명이 왜 천관녀 <영모>를 멀리 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만호는 사적인 일에 감정을 이입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듯 보인다. 서현을 사위로 받아 들일수 없는 이유는 단지, 만호 자신이 아양공주와 사이가 나뻐서 일 뿐이다.

그런 만호태후의 성격을 알고 있는 만명으로서는 유신이 만호의 사적인 원수에 가까운 미실집안과 관계를 가진다고 생각하니 이루워질 수 없는 사랑으로 여겼을 것이다. 자신도 어머니 만호를 피해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렸지만, 만명 자신의 아들인 유신이 <영모>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는데 반대 했던 것이다. 자신이나 서현처럼 또다시 변방으로 떠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자 하는 어미는 없다.

그래서 유신에게 "너는 할일 많다"그런데 어찌 사사로이 원수의 집안이고 "<천관녀>에 불과한 <영모>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냐? 썩 정을 끊어라" 라고 한것이다.


사실 <천관녀>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보이지 않고, 이규보의 파한집, 동경잡기, 신동국여지승람에만 보인다.

자신의 집으로 술취해 말을 타고온 유신이 자신과의 정을 끊기 위해서 아무런 죄도 없는 말의 머리를 동강내는 모습을 본 천관녀 영모로써는 유신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천관녀 영모는 유신의 무정함에 노래를 지어 불렀고, 유신은 그 이후 산속으로 들어가 무술 수련에 열중한다.

이때
유신이 대단한 포부를 가지고, 무술 수련을 했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천관녀 영모를 잊지 못해서, 단석산과 중악에 올라가 열심히 바위를 쳤을 것이다. 사랑의 열병을 앓아본 사람은 유신이 왜 산에 올라가 바위치기를 했는지 알 수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아무생각없이 무조건 바위를 치거나, 가문의 선택의 기로에서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바위를 쳤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역사속 비련의 주인공이 될뻔한 <천관녀> 영모는,  할머니 미실이 만호태후에 사과하는 제스쳐를 취하므로 해서, 만호태후의 외손주이고 서현/만명의 자식 유신의 처가 된것이다.

호림공이 풍월주의 지위를 물려주겠다고 청하였다. 공은 사양을 하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에 15세 풍월주가 되었다. (만호)태후가 하종공의 딸 영모(令毛)를 아내로 맞이하도록 명하여 미실궁주를 위로하려고 하였다. 영모는 곧 유모(柔毛)의 동생이었다. 형제가 모두 선화(仙花)의 아내가 되었다. 그 때 사람들이 영화롭게 여겼다. 곧 건복(建福) 29년 임신년(612)이었다. 공이 풍월주의 위에 올랐다. - 화랑세기 15세 풍월주 유신

유신과 영모는 수 많은 자식들을 낳는다. 문제는 영모의 자식들이 580년 신문왕 원년 진공.흠돌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었다. 역모에 연루가 되면 구족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기록이 사라진다. 이찬 칠숙과 석품도 631년 반란을 일으키고 기록이 사라졌다. 647년 상대등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키고 기록이 사라졌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진공, 흠돌의 반란사건후, 김유신도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질뻔 하였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기회에 송고할 예정이다. 또한, 유신의 부인이 되는 조카 지조부인(춘추/문희) 때문에 영모의 기록이 공식적으로 사라진것이다. 


이처럼 현존하는 화랑세기의 이면에는 천관녀 영모(이지현:큐리)와 유신의 감춰진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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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배리본즈 2009.09.25 0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볼 때 판단하는데 있어 도움될만한 정보군요 잘 보고 갑니다.

  3. 2009.09.25 0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BlogIcon 朱雀 2009.09.25 0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5. BlogIcon labyrint 2009.09.25 0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사서에는 수많은 진실들이 숨어있는데... 최근에 역사학자들이 외면하는 경향이 있지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6. BlogIcon 감자꿈 2009.09.25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관녀에 대한 의문을 싸악 씻고 갑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 2009.09.25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분 글도 역사기록을 토대로 한 추측인데 맹신하지는 마세요. 예전에 동양사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거기서 고대사와 핵심은 얼마나 그럴듯하게 창작하는데 있다고 들었죠.

    • BlogIcon 갓쉰동 2009.09.25 18:2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냥 이런 견해도 있다고 생각해주셈..

    • BlogIcon 갓쉰동 2009.09.25 1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얼마나 그럴사 하게 포장하는가의 문제지요.. 논리적으로..어찌되었던. 아직은 논리적인 오류가 없다고 봅니당..

  7. BlogIcon 영웅전쟁 2009.09.25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저는 갓쉰동님의 글을
    쭉 봐와서 그런가요?
    이미 감 잡고 있었다는 ㅋ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멋진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5 18: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시 영웅님은 눈치가 입신의 경지에.. ㅋㅋ 역시 밑밥을 계속 떨구어서 쉬이 아시는군용..

      그런데 문제는 75%가 새로들어오는 사람이라성.. 25%는 지루할 수도 있을 겁니당.. 감질맛 나게 해성.. ㅋㅋ

  8. 21야영장 2009.09.25 1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당,,,드라마 선덕여왕처럼

    갓쉰동님 글도 기다려진다는...

  9. 메뚜기 2009.09.25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계속 읽으렵니다.
    고맙고요.......

  10. 동글동글 2009.09.25 1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영모가 천관녀이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었는데ㅎㅎㅎ
    흥미롭게 읽었습니다....재밌는글 감사해요.

  11. 2009.09.25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5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석과 흠돌과 신목과 문노와 흠운에 관한 글을 예전에 쓴게 있습니당.. 나중에 좀 정리를 해서 다시 올리겠습니당..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빠른시기에 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당.. 추석이 지난다음이 되지 않을까 합니당.

      보량은 춘추가 미생을 속이기 위한 술수 같은데용.. 저는 그렇게 봤습니당. 만약, 정말 보량을 춘추의 처로 만든다면 대락난감이지요.. ㅋㅋ

  12. 오호라 2009.09.25 1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역사는 재밌어요~~ 진실은 어디에..인 부분들도 있겠지만.. 잘 읽고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5 1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누가 더 합리적이냐의 문제일 뿐입니당.. 그것도 현재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어필할 것인가의 문제구요..

  13. BlogIcon 유리-MyEurope 2009.09.25 2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에는 상관없는글이지만...저 시대 옷...봐도봐도 정말 아름답고 예뻐요~
    저런옷 하나 장만하고 싶네요 ㅋㅋㅋ^^

  14. 고양이 2009.09.26 0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갑순님이 아니라 서갑숙 이어요 ㅋ

    갑자기 갑돌이 여자친구로 만들어버리셨넹

  15. BlogIcon 파아란기쁨 2009.09.26 0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반님은 이런 정보를 어떻게 다 구하시는지 정말 대단하세요...^^

    요즘 선덕여왕을 좋아해서 자주 보고 있는데...

    이반님 정보 보면서 많은 도움 받고 있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16. abgp123 2009.09.26 0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표적인 친일파이자 조선총독부 촉탁이었던
    화랑세기의 저자 박창화가 지하에서
    기뻐 대소할 일이군요!

    화랑세기는 위서로 역사적 가치가 없습니다.
    박창화의 저작물치고 세미포르노 아닌게 없던데
    딱 일본 제국주의 입맛이라니!

  17. 레아 2009.10.18 1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명공주는 성골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갈문왕입종은 지소태후의 남편으로 지소태후의 아버지인 법흥왕의 동생으로 진흥왕의 아버지이고 만명공주의 할아버지인 동시에 만호태후의 아버지이고 만호는 지소태후의 딸이 아닙니다.

  18. 레아 2010.02.13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만명공주는 성골이 아닙니다. 제가 잘못알고 있었어요. 당시 신라는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이라는 모계신분이 있었는데 만명은 어머니인 만호태후를 따라서 진골정통이었죠. 그리고 영모는 천관녀가 아닙니다. 당시 대원신통가문은 궁정에서 치루는 제사보다는 정치에 더 힘을 쓰고 있었고 물론 정치외 신관제사는 어떤면에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긴 하지만 그래도 엄격히 구분되어 관장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천관녀에 대해서 기록 조차도 이견이 분분합니다. 신녀라는 이야기도 있고 혹은 그냥 기생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19. 레아 2010.02.13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논란은 김대문이 지었다는 화랑세기의 원전이 발견이 되면 박창화의 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가려 질텐데 그에 관한 자료도 일본의 서릉부에 있어서 구하기 어렵답니다.

  20.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21.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비담 박지빈

드라마 선덕여왕 33회는 15세 풍월주의 비재가 아닌
비담(김남길) 출생의 비밀과 비담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찾아서 미실(고현정)을 만나는데 있다. 또한, 문노(정호빈)가 비담을 덕만(이요원)과 혼인 시켜 신라를 말아먹을 생각을 왜 포기했는지를 알려주는 듯하다.

하지만, 비담으로서는 자신의 어릴적 한때의 철없는 짓으로 인해서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을 받아 들일 수 없다. 비담은 끝없이 어릴적일로 인해서 2가지의 얼굴을 가지게 된것이다. 겉으로는 한없이 멍청하고, 실없이 굴지만 마음속에는 거대한 용광로가 들끓고 있다. 이를 자신의 외적으로 보여주는 실없음으로 커버를 하려고 부단히 노력을 한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한없이 고독한 사람이다.

비담은 문노가 감춰둔 비기를 찾아 자신이 출신을 알아보고저 한다. 자신의 출생을 비밀을 추적하던 비담은 자신의 어릴적 이름이 형종이란 사실과 인명(덕만)과 결혼하게 될 뻔한 사실을 알게 된다. 

덕만을 찾아간 비담의 특유의 허허실실 전법으로 덕만에 꽃을 선물하고, 어릿광대짓을 하면서 자신이 얻고자하는 황실서고에 들어간다. 아마도 자신의 아내가 될지몰랐던 덕만을 상상하고, 꼭 덕만과 결혼하겠다고 결심하고 있었지 않았을까?


비담은 비상한 감각을 지니고 건복1년의 7월 칠석 기록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건복1년의 기록에서 비담 자신이 진지왕과 미실사이에 태어난 비운의 왕자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또한, 설원랑(전노민)도 비담이 만진 책을 한눈에 파악하는 신통력을 발휘한다. 보종(백도빈)이 설원랑을 닮아서 첫번째 비재를 통과한 것인가?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칠부가 지속적으로 나온다. 하지만 거칠부는 579년전후에 죽었다. 죽은 자가 584년 건복1년 진평왕 6년에 나올수가 없다. 사실 606년에 죽은 문노가 612년 풍월주 비재에 나온다는 것도 상식에 맞지는 않는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찾은 기록이 진지왕편임을 정확히 인식하여야 한다. 진평왕의 기록은 당대에 만들어 둘 수 없으니 당연히 진지왕의 기록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건복 1년에 형종(비담)이 미실사이에 태어났다는 기록을 찾는다.


황실서고를 나오는 비담은 미실과 마주친다. 비담은 어머니인 미실을 끊임없이 자극을 한다. 자신을 알아달라는 표현이지 않을까?

그리고 미실은 자신과 닮은 비담을 보고서 상념에 잡힌다. 적대적이긴 하지만, 어머니에게 어릿광같은 투정을 부리듯하는 비담이 낯설지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복 1년에 태어났다는 비담의 이야기는 어떨까? 건복 1년은 584년 진평왕 6년에 해당한다. 삼국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6년(584) 봄 2월에 연호를 건복(建福)으로 바꾸었다.

진평왕은 13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라, 할머니인 사도법주(진흥비)의 수렴청정을 받아야 했고, 어머니인 만호태후의 섭정을 받아야 했다. 이와 중에 줄타기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진지왕(임호)의 비이며 용수. 용춘의 어머니인 지도태후였다. 지도태후는 사도와 만호와 미실의 사이를 오가면서 삶을 모색하게 된다.

584년 진평왕은 18세가 되어 직접통치를 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고, 만호 모후와 사도 할머니와 진지(금륜)전왕의 지도태후사이에서 서서히 자신의 주체적인 일을 하는 시점이 된다. 현존 화랑세기에 의하면 지도태후는 사도태후(진흥비)의 명에 의해서 조카인 진평을 모시기도 한다.

소화, 덕만, 비담, 문노

비담은 584년 이해에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어린시절 2~3살 경에 갓태어난 핏덩이 덕만을 보게 된것이다. 그러니 덕만이 태어난 시점은 586~587년 사이가 되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인 통설에 의한 천명의 출생년에 근접하는 시기이다. 천명은 603년에 춘추를 낳았다. 그러니 15~16세에 용수를 통해서 춘추를 낳았다고 하는데 별탈이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 읽는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은 참으로 역사의 기록에 충실한 사극이 된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들지 않는가? 진지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579년 7월에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삼국유사는 이에 반해서 579년에 죽었지만, 귀신으로 화에서 비형의 어미와 사통을 한후 비형을 낳았다,

그런데 필사본 화랑세기는 진지는 579년에 죽지 않고, 유폐된 2년후 남도의 궁녀와 관계를 하여 비형을 낳았다. 하지만 유폐된 진지는 비형을 보지 못하고 죽은 듯 하다.

579년 이 해에 왕은 폐위되고 죽었는데 그 후 2년 만에 도화랑(桃花郞)의 남편도 또한 죽었다.  10일이 지난 어느 날 밤중에 갑자기 왕은 평시(平時)와 같이 여인의 방에 들어와 말한다.  "네가 옛날에 허락한 말이 있지 않느냐.  지금은 네 남편이 없으니 되겠느냐."  여인이 쉽게 허락하지 않고 부모에게 고하니 부모는 말하기를, "임금의 말씀인데 어떻게 피할 수가 있겠느냐"하고 딸을 왕이 있는 방에 들어가게 했다.  

왕은 7일 동안 머물렀는데 머무는 동안 오색(五色) 구름이 집을 덮었고 향기는 방안에 가득하였다.  7일 뒤에 왕이 갑자기 사라졌으나 여인은 이내 태기가 있었다.  달이 차서 해산하려 하는데 천지가 진동하더니 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이름을 비형(鼻荊)이라고 했다. - 삼국유사 도화녀와 비형랑


지도태후가 태상태후의 명으로 다시 신왕(진평왕)을 섬기자 공은 신왕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이 때문에 왕이 가엾게 여겨 총애하고 대우함이 매우 도타웠다. 자라자 곧 슬퍼하며 문노의 문하에 들어가, 비보랑을 형으로 섬기고 서제인 비형랑(鼻荊郞)과 함께 힘써 낭도를 모았다. 그러자 대중이 따랐고 3파가 모두 추대하고자 하였으므로, 서현랑이 위를 물려주었다고 한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603

여기서 드라마 선덕여왕은 화랑세기의 기록과 삼국유사의 기록을 믹스한다. 비담의 어릴적 이름이 <형종>이다. 비형과 비슷하지 않는가? 어찌보면 드라마 선덕여왕은 비담의 어릴적 이름이 형종이고, 자라서 이름이 비형이고, 컸을 때 이름이 비담이라고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또한, 남도의 여인이 미실이라고 알려주는 듯 하다. 그렇다면 미실의 남편 세종은 진지왕이 폐위된 2년후인 581년에 죽은 것일까? 세종이 죽으면 미실도 죽고 설원랑도 죽는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이들 3인은 같은 해에 미실이 먼저 죽고 따라 죽는다. 아무튼 드라마 선덕여왕은 비담이 비형과 같이 신묘하고 기이한 귀신같이 뛰어난 사람으로 창조하고 싶은 것 같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마야는 천명이 죽을때 미실의 기록이 하나도 남지 않게 하겠다고 저주를 하였다. 그러니 미실의 이름 대신에 남도의 궁녀로 미실을 대치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비담이 647년 1월 8일 덕만이 죽고 난후 반란을 일으킨후 구족이 멸하였지만, 비형이라는 이름으로 남았을 것이라고 인물을 창조한 듯 하다.

용춘(도이성)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비형은 동부이모의 형인 용춘을 풍월주가 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고, 삼국유사는 비형이 15세부터 진평왕에 의해서 길러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비형과 비담과 형종을 엮어서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는데 문제점을 들어낸것이다.


사실 삼국유사의 비형랑의 기록이 필사본 화랑세기에는 용춘의 일로 변형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비형을 단순히 서제 비형으로만 기록하고 용춘이 어릴때 부터 진평으로 부터 길러졌다고 대치한 느낌을 받는다.

어찌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의 비담의 캐릭터 창조의 불행한 사태는 비담(형종)이 건복1년에 태어났다고 한 기록이다. 이때 드라마 상에는 진지는 왕위에 있었다. 그리고 미실의 계략으로 시아버지인 이사부와 문노의 장인인 대신 거칠부, 외삼촌인 노리부, 남편 세종과 문노의 협력으로 진지를 폐위한 것으로 나온다. 이때가 드라마 상으로 579년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비담은 자신의 어미인 미실로 부터 버려지게 그려졌다.

그런데 이제와서 비담이 584년생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의 기록을 비교검토해도 건복1년은 584년 진평왕 6년에 해당하고, 진평왕이 왕으로써 성년인 18세가 되는 때이다.

선덕여왕내에서도 비담의 출생이 왔다리 갔다리 한다. 579년 7월 진지왕이 폐위되기 전에 태어난 비담이 어느 순간에 비형량 처럼 진지가 폐위되고, 2년후 사량부의 너무나 어여뼈서 도화녀로 불리던 여인과 관계하여 비담을 낳았다. 그후 진평왕 6년 584년에 다시 진지가 복위를 하여 비담을 낳았다는 말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진지는 579년에 폐위되지 않고, 584년에 폐위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합당한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진평왕이 아주 어린 나이에 왕위를 오른 것으로 설정하는 것으로 봐서 원작자가 단순히, 기록을 살피지 않고, 기억만으로 타자를 치면서 소설을 썼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끊임없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천명과 덕만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어출쌍생>,<성골남진>이다. 그리고 덕만과 천명은 <임술년>에 태어난다. 33회에서도 비담은 문노가 덕일사에 보관하고 있던, 삼한지지와 여러 자료들과 함께, 덕만의 출생일과 비담의 출생일을 신주단지를 보관하듯이 고히 감추고 있다.

또한, 덕만의 아명이 <인명>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 덕만은 소화가 지어준 이름이고, 실제 진평이 지은이름은 <인명>이란 뜻이다. 그런데 좀 웃기지 않는가? 진평도 마야도 소화도 쌍둥이 인줄 모른 상태에서 천명과 덕만이 아닌 <인명>이라고 이름이 부여되어 있으니 말이다.

물론, 진평이 소화가 이름은 어떻게 부를까요?라고 물어보는 장면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진평은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소화가 알아서 부르라고 한것 같다. 어찌되었던 덕만의 초명이 <인명>이라는 것이다. 돌림자 천명과 인명에서 <명>자 돌림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형종은 누가 지어준 이름일까? <형종>이 진지와 미실사이에 태어났으니 진지가 만들어준 이름이다. 왜 하필이면 <형종>일까? 당연히 비<형>랑을 엄두해둔 이름이다. 작가는 비형랑이 형종이고 비담이라고 이야기를 한것이다. 그러니 드라마에서 비형랑이 나오기를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마야의 저주로 미실의 기록이 망실되어 도화녀로 된것이니 알아서 생각하라고 이야기를 한것이다.

더 잼있는 이야기는 비담보다 나이가 2세살 어린 덕만이 임술년생이라는 사실이다.

비담 건복1년생, 덕만 임술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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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드라마상 건복 1년생인 비담과  임술년생 덕만를 비교해보자. 일단 <임술년>은 언제인가를 알아야 한다. 자세한 사항은 이전에 송고한
2009/07/2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임술년생 덕만과 천명의 나이는 몇살?을 참조하기 바란다.

요약하자면, 임술년은 542년과 602년이다. 542년은 진흥왕2년으로 9살이 되는 해이니 진평왕의 아버지인 <동륜>도 태어나기 전이고, 진평왕도 태어나기 전이다. 그러니 당연히 602년에 되어야 한다. 또한, 천명은 태어나자 마자 임신을 하고, 603년에 춘추가 태어난 것이다. 또한, 1살때 덕만은 아막성 전투에 참여를 하고, 유신은 8살에 아막성 전투에 참여를 한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덕만과 천명이 유신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것으로 나온다. 말은 덕만.천명이 유신보다 나이가 많다고 하는데 다른쪽에서는 덕만이 유신보다 7살이 적다고 강조를 한다.

이렇게 되면 또다시 드라마상 기년이 흔들려 버린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꾸준히 추리를 하면서 성장하는 <성장드라마>다. 이는 원작자들인 <대장금>, <서동요>의 김영현과 <jsa>의 박상현이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즐겨쓰던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추리소설의 핵심은 추리과정이 디테일하고 치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우선시 하는게 <알리바이>다. 하지만, 소설 <선덕여왕>자체가 전혀 <알리바이>가 성립하지 않고, 부실하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도움이 되었다면 추천을 하시고, 비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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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임현철 2009.09.15 0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배우고 가는군요.

  3. BlogIcon 핑구야 날자 2009.09.15 0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ㄷ조금 길지만 리뷰 잘 일고 갑니다.

  4. 2009.09.15 0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BlogIcon 영웅전쟁 2009.09.15 1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좀 길군요...
    뭐 문맥상 자를 부분이 없기는 하군요.
    여튼 시험 칠 준비가 끝나 있습니다.
    오늘도 요약 정리 잘해
    멋지게 공부했습니다. ㅎㅎㅎ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 되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15 1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좀 길긴 하네요.. 짧게 쓰는 노력을 해야 겠습니당.. 그리고 몇개로 나눠서 포스팅을 할까 합니당. .ㅋㅋ

  6. 2009.09.15 1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15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것 같지는 않는데요.. 저도 님이 지적한 글에 추천한 것으로 기억하거든요.. ㅋㅋ

      물론, 님의 글에도 추천을 했지만.. 각자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명확하면 추천합니당.. ㅋㅋ


      어찌되었던 다음 운영자가 미운털이 박힌것 같아요.. 공평성때문인지.. 대응이 미숙해서 인지는 모르지만..

      암튼, 저의 글이 뒤늦게 베스트에 올랐습니다. 그러니 자책하지 마셈..

      사실 이글은 다음의 문화/연예 카테고리를 지키고 있는 분들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지속적으로 베스트에 올려주고 있는 것을 보면, 다음 관리자도 대단합니당..

  7. 21야영장 2009.09.15 1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 대해서 함 생각하게 하는 글 잘 읽고
    기다려짐니다...근데 어제 드라마 시청하는데
    재미가 반감된다는....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이지만...ㅎㅎ

    • BlogIcon 갓쉰동 2009.09.15 1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가요? 재미가 반감이 된다.. 그럴수 있겠네요..저는 드라마를 보는데 도움이 되라고 한건뎅.. ㅋㅋ

      그래서 글을 봐도 추천이 없군요.. ㅠ.ㅠ. 환상을 깨버리니.. ㅋㅋ

  8. 지나가던역술인 2009.09.15 1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덧붙여, 임술년에는 신묘월이 존재할 수가 없는데, 선덕여왕에서는 덕만&천명의 출생일을 임술년 신묘월 정축일이라고 합니다.

    임o년이나 정o년 의 묘월은 계묘월인데 말이죠.

    • BlogIcon 갓쉰동 2009.09.15 1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너무 쉽게 소설을 쓰는것같다는 생각입니다. 고민도 없고, 생각나는데로 글을 쓴 흔적이 너무 많이 보임..

      인물관계도 정도는 만들어 놓고 글을 써야 하는데..

      설계도 없는 건축물을 보는 것 같아요.. 소설 선덕여왕

  9. 아이레스 2009.09.16 0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쏙쏙 들어오네요~ 쉽게 풀어주셔서~
    선덕여왕은 그냥..소설같아요;;; 비담과 비형을 어떻게 동일인물로 엮을수 있는건지..
    도화녀가 어떻게 미실이 될수 있는거죠??
    미실은 화랑세기 전반에 걸쳐 나오는 인물인데..그걸 굳이 도화녀로 표현할 이유도 없고..
    게다가 미실쪽세력에 의해 폐위된 진지왕이 폐위후에 미실한테 반하고 할리가....
    없잖아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16 0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작자는 그렇게 해서 비담과 비형과 형종을 연결하려는 거지요.

      글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마야가 저주한 대로 미실은 기록에서 망실되었다고..

      하지만, 자신들이 역사서로 인용하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미실의 존재가 너무나 크게 나온다눈..
      원작자가 전혀 나오지 말아야 할 덕만의 시대에 미실과 대치하는 덕만으로 내세울만큼말이지요..

      한마디로 개념을 물말아 먹었다고 할수 밖에요.. 아마도 역대 사극중 최악의 사극 1위일것 같아요.. 재미는 별도로 하고..

  10. 골든레몬 2009.09.16 0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원랑이 비담이 봤던 책을 한눈에 파악한 것은 놓여져 있는 방향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책 옆부분 글자가 다른 책들과 다르게 거꾸로 올려져 있었거든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16 0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설원랑이 달인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실은 원작자을 비판하는 거지만요.. 개연성이 없잖아요.. 먼가 달라졌는지 살피는 흉내라도 내야지 않겠어요? 또한, 비담 처럼 치밀한 성격인 사람은 자신이 만진 책을 쉽게 놓지 않겠지요.. 갑짜기 헐렁이 비담이 되지는 않았겠지요.. 외유내강형의 전형을 보여주기 위한 비담인데요..

  11. BlogIcon koon 2009.09.24 05: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넘유익했어여알아보고싶었는더ㅔ....

  12. 잘읽고 2009.11.10 0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읽고가요 ^^

  13.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4. BlogIcon Granny Pussy 2012.07.21 2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출생을 비밀을 추적하던 비담은 자신의 어릴적 이름이 형종이란 사실과 인명(덕만)과 결혼하게 될 뻔한 사실을 알게 된

  15. BlogIcon Granny Pussy 2012.07.21 2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출생을 비밀을 추적하던 비담은 자신의 어릴적 이름이 형종이란 사실과 인명(덕만)과 결혼하게 될 뻔한 사실을 알게 된

  16. BlogIcon Trisha 2012.08.06 1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 김수현 작가는 양병태의 입을 빌려서 “김연아는

  17. BlogIcon go bet 1x2 2012.09.03 1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출생을 비밀을 추적하던 비담은 자신의 어릴적 이름이 형종이란 사실과

  18. BlogIcon water preserver concentrate review 2012.11.01 17: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진짜로 무언가일 이 화제를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결코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당신 발표

  19. BlogIcon portable dog fences yard 2012.11.08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탕 많이 먹은거 아빠한테 걸릴까봐 언능 숨기는 모습도

  20. BlogIcon container storage yards 2012.12.10 2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확히 반박할려면 위처럼 일본의 수입조건과 한국의 수입조건이 다르다는 가장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또한, 확율론적으로도 반론을 제기한것도 극히 위함한 발상이고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다.

  21. BlogIcon wireless fence for dogs 2012.12.25 2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출생을 비밀을 추적하던 비담은 자신의 어릴적 이름이 형종이란 사실과 인명(덕만)과 결혼하게 될 뻔한 사실을 알게 된다.

비담 박지빈

드라마 선덕여왕 33회는 15세 풍월주의 비재가 아닌
비담(김남길) 출생의 비밀과 비담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찾아서 미실(고현정)을 만나는데 있다. 또한, 문노(정호빈)가 비담을 덕만(이요원)과 혼인 시켜 신라를 말아먹을 생각을 왜 포기했는지를 알려주는 듯하다.

하지만, 비담으로서는 자신의 어릴적 한때의 철없는 짓으로 인해서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을 받아 들일 수 없다. 비담은 끝없이 어릴적일로 인해서 2가지의 얼굴을 가지게 된것이다. 겉으로는 한없이 멍청하고, 실없이 굴지만 마음속에는 거대한 용광로가 들끓고 있다. 이를 자신의 외적으로 보여주는 실없음으로 커버를 하려고 부단히 노력을 한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한없이 고독한 사람이다.

비담은 문노가 감춰둔 비기를 찾아 자신이 출신을 알아보고저 한다. 자신의 출생을 비밀을 추적하던 비담은 자신의 어릴적 이름이 형종이란 사실과 인명(덕만)과 결혼하게 될 뻔한 사실을 알게 된다. 

덕만을 찾아간 비담의 특유의 허허실실 전법으로 덕만에 꽃을 선물하고, 어릿광대짓을 하면서 자신이 얻고자하는 황실서고에 들어간다. 아마도 자신의 아내가 될지몰랐던 덕만을 상상하고, 꼭 덕만과 결혼하겠다고 결심하고 있었지 않았을까?


비담은 비상한 감각을 지니고 건복1년의 7월 칠석 기록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건복1년의 기록에서 비담 자신이 진지왕과 미실사이에 태어난 비운의 왕자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또한, 설원랑(전노민)도 비담이 만진 책을 한눈에 파악하는 신통력을 발휘한다. 보종(백도빈)이 설원랑을 닮아서 첫번째 비재를 통과한 것인가?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칠부가 지속적으로 나온다. 하지만 거칠부는 579년전후에 죽었다. 죽은 자가 584년 건복1년 진평왕 6년에 나올수가 없다. 사실 606년에 죽은 문노가 612년 풍월주 비재에 나온다는 것도 상식에 맞지는 않는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찾은 기록이 진지왕편임을 정확히 인식하여야 한다. 진평왕의 기록은 당대에 만들어 둘 수 없으니 당연히 진지왕의 기록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건복 1년에 형종(비담)이 미실사이에 태어났다는 기록을 찾는다.


황실서고를 나오는 비담은 미실과 마주친다. 비담은 어머니인 미실을 끊임없이 자극을 한다. 자신을 알아달라는 표현이지 않을까?

그리고 미실은 자신과 닮은 비담을 보고서 상념에 잡힌다. 적대적이긴 하지만, 어머니에게 어릿광같은 투정을 부리듯하는 비담이 낯설지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복 1년에 태어났다는 비담의 이야기는 어떨까? 건복 1년은 584년 진평왕 6년에 해당한다. 삼국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6년(584) 봄 2월에 연호를 건복(建福)으로 바꾸었다.

진평왕은 13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라, 할머니인 사도법주(진흥비)의 수렴청정을 받아야 했고, 어머니인 만호태후의 섭정을 받아야 했다. 이와 중에 줄타기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진지왕(임호)의 비이며 용수. 용춘의 어머니인 지도태후였다. 지도태후는 사도와 만호와 미실의 사이를 오가면서 삶을 모색하게 된다.

584년 진평왕은 18세가 되어 직접통치를 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고, 만호 모후와 사도 할머니와 진지(금륜)전왕의 지도태후사이에서 서서히 자신의 주체적인 일을 하는 시점이 된다. 현존 화랑세기에 의하면 지도태후는 사도태후(진흥비)의 명에 의해서 조카인 진평을 모시기도 한다.

소화, 덕만, 비담, 문노

비담은 584년 이해에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어린시절 2~3살 경에 갓태어난 핏덩이 덕만을 보게 된것이다. 그러니 덕만이 태어난 시점은 586~587년 사이가 되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인 통설에 의한 천명의 출생년에 근접하는 시기이다. 천명은 603년에 춘추를 낳았다. 그러니 15~16세에 용수를 통해서 춘추를 낳았다고 하는데 별탈이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 읽는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은 참으로 역사의 기록에 충실한 사극이 된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들지 않는가? 진지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579년 7월에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삼국유사는 이에 반해서 579년에 죽었지만, 귀신으로 화에서 비형의 어미와 사통을 한후 비형을 낳았다,

그런데 필사본 화랑세기는 진지는 579년에 죽지 않고, 유폐된 2년후 남도의 궁녀와 관계를 하여 비형을 낳았다. 하지만 유폐된 진지는 비형을 보지 못하고 죽은 듯 하다.

579년 이 해에 왕은 폐위되고 죽었는데 그 후 2년 만에 도화랑(桃花郞)의 남편도 또한 죽었다.  10일이 지난 어느 날 밤중에 갑자기 왕은 평시(平時)와 같이 여인의 방에 들어와 말한다.  "네가 옛날에 허락한 말이 있지 않느냐.  지금은 네 남편이 없으니 되겠느냐."  여인이 쉽게 허락하지 않고 부모에게 고하니 부모는 말하기를, "임금의 말씀인데 어떻게 피할 수가 있겠느냐"하고 딸을 왕이 있는 방에 들어가게 했다.  

왕은 7일 동안 머물렀는데 머무는 동안 오색(五色) 구름이 집을 덮었고 향기는 방안에 가득하였다.  7일 뒤에 왕이 갑자기 사라졌으나 여인은 이내 태기가 있었다.  달이 차서 해산하려 하는데 천지가 진동하더니 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이름을 비형(鼻荊)이라고 했다. - 삼국유사 도화녀와 비형랑


지도태후가 태상태후의 명으로 다시 신왕(진평왕)을 섬기자 공은 신왕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이 때문에 왕이 가엾게 여겨 총애하고 대우함이 매우 도타웠다. 자라자 곧 슬퍼하며 문노의 문하에 들어가, 비보랑을 형으로 섬기고 서제인 비형랑(鼻荊郞)과 함께 힘써 낭도를 모았다. 그러자 대중이 따랐고 3파가 모두 추대하고자 하였으므로, 서현랑이 위를 물려주었다고 한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603

여기서 드라마 선덕여왕은 화랑세기의 기록과 삼국유사의 기록을 믹스한다. 비담의 어릴적 이름이 <형종>이다. 비형과 비슷하지 않는가? 어찌보면 드라마 선덕여왕은 비담의 어릴적 이름이 형종이고, 자라서 이름이 비형이고, 컸을 때 이름이 비담이라고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또한, 남도의 여인이 미실이라고 알려주는 듯 하다. 그렇다면 미실의 남편 세종은 진지왕이 폐위된 2년후인 581년에 죽은 것일까? 세종이 죽으면 미실도 죽고 설원랑도 죽는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이들 3인은 같은 해에 미실이 먼저 죽고 따라 죽는다. 아무튼 드라마 선덕여왕은 비담이 비형과 같이 신묘하고 기이한 귀신같이 뛰어난 사람으로 창조하고 싶은 것 같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마야는 천명이 죽을때 미실의 기록이 하나도 남지 않게 하겠다고 저주를 하였다. 그러니 미실의 이름 대신에 남도의 궁녀로 미실을 대치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비담이 647년 1월 8일 덕만이 죽고 난후 반란을 일으킨후 구족이 멸하였지만, 비형이라는 이름으로 남았을 것이라고 인물을 창조한 듯 하다.

용춘(도이성)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비형은 동부이모의 형인 용춘을 풍월주가 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고, 삼국유사는 비형이 15세부터 진평왕에 의해서 길러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비형과 비담과 형종을 엮어서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는데 문제점을 들어낸것이다.


사실 삼국유사의 비형랑의 기록이 필사본 화랑세기에는 용춘의 일로 변형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비형을 단순히 서제 비형으로만 기록하고 용춘이 어릴때 부터 진평으로 부터 길러졌다고 대치한 느낌을 받는다.

어찌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의 비담의 캐릭터 창조의 불행한 사태는 비담(형종)이 건복1년에 태어났다고 한 기록이다. 이때 드라마 상에는 진지는 왕위에 있었다. 그리고 미실의 계략으로 시아버지인 이사부와 문노의 장인인 대신 거칠부, 외삼촌인 노리부, 남편 세종과 문노의 협력으로 진지를 폐위한 것으로 나온다. 이때가 드라마 상으로 579년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비담은 자신의 어미인 미실로 부터 버려지게 그려졌다.

그런데 이제와서 비담이 584년생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의 기록을 비교검토해도 건복1년은 584년 진평왕 6년에 해당하고, 진평왕이 왕으로써 성년인 18세가 되는 때이다.

선덕여왕내에서도 비담의 출생이 왔다리 갔다리 한다. 579년 7월 진지왕이 폐위되기 전에 태어난 비담이 어느 순간에 비형량 처럼 진지가 폐위되고, 2년후 사량부의 너무나 어여뼈서 도화녀로 불리던 여인과 관계하여 비담을 낳았다. 그후 진평왕 6년 584년에 다시 진지가 복위를 하여 비담을 낳았다는 말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진지는 579년에 폐위되지 않고, 584년에 폐위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합당한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진평왕이 아주 어린 나이에 왕위를 오른 것으로 설정하는 것으로 봐서 원작자가 단순히, 기록을 살피지 않고, 기억만으로 타자를 치면서 소설을 썼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끊임없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천명과 덕만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어출쌍생>,<성골남진>이다. 그리고 덕만과 천명은 <임술년>에 태어난다. 33회에서도 비담은 문노가 덕일사에 보관하고 있던, 삼한지지와 여러 자료들과 함께, 덕만의 출생일과 비담의 출생일을 신주단지를 보관하듯이 고히 감추고 있다.

또한, 덕만의 아명이 <인명>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 덕만은 소화가 지어준 이름이고, 실제 진평이 지은이름은 <인명>이란 뜻이다. 그런데 좀 웃기지 않는가? 진평도 마야도 소화도 쌍둥이 인줄 모른 상태에서 천명과 덕만이 아닌 <인명>이라고 이름이 부여되어 있으니 말이다.

물론, 진평이 소화가 이름은 어떻게 부를까요?라고 물어보는 장면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진평은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소화가 알아서 부르라고 한것 같다. 어찌되었던 덕만의 초명이 <인명>이라는 것이다. 돌림자 천명과 인명에서 <명>자 돌림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형종은 누가 지어준 이름일까? <형종>이 진지와 미실사이에 태어났으니 진지가 만들어준 이름이다. 왜 하필이면 <형종>일까? 당연히 비<형>랑을 엄두해둔 이름이다. 작가는 비형랑이 형종이고 비담이라고 이야기를 한것이다. 그러니 드라마에서 비형랑이 나오기를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마야의 저주로 미실의 기록이 망실되어 도화녀로 된것이니 알아서 생각하라고 이야기를 한것이다.

더 잼있는 이야기는 비담보다 나이가 2세살 어린 덕만이 임술년생이라는 사실이다.

비담 건복1년생, 덕만 임술년생


350

그렇다면 드라마상 건복 1년생인 비담과  임술년생 덕만를 비교해보자. 일단 <임술년>은 언제인가를 알아야 한다. 자세한 사항은 이전에 송고한
2009/07/2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임술년생 덕만과 천명의 나이는 몇살?을 참조하기 바란다.

요약하자면, 임술년은 542년과 602년이다. 542년은 진흥왕2년으로 9살이 되는 해이니 진평왕의 아버지인 <동륜>도 태어나기 전이고, 진평왕도 태어나기 전이다. 그러니 당연히 602년에 되어야 한다. 또한, 천명은 태어나자 마자 임신을 하고, 603년에 춘추가 태어난 것이다. 또한, 1살때 덕만은 아막성 전투에 참여를 하고, 유신은 8살에 아막성 전투에 참여를 한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덕만과 천명이 유신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것으로 나온다. 말은 덕만.천명이 유신보다 나이가 많다고 하는데 다른쪽에서는 덕만이 유신보다 7살이 적다고 강조를 한다.

이렇게 되면 또다시 드라마상 기년이 흔들려 버린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꾸준히 추리를 하면서 성장하는 <성장드라마>다. 이는 원작자들인 <대장금>, <서동요>의 김영현과 <jsa>의 박상현이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즐겨쓰던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추리소설의 핵심은 추리과정이 디테일하고 치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우선시 하는게 <알리바이>다. 하지만, 소설 <선덕여왕>자체가 전혀 <알리바이>가 성립하지 않고, 부실하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도움이 되었다면 추천을 하시고, 비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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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임현철 2009.09.15 0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배우고 가는군요.

  3. BlogIcon 핑구야 날자 2009.09.15 0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ㄷ조금 길지만 리뷰 잘 일고 갑니다.

  4. 2009.09.15 0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BlogIcon 영웅전쟁 2009.09.15 1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좀 길군요...
    뭐 문맥상 자를 부분이 없기는 하군요.
    여튼 시험 칠 준비가 끝나 있습니다.
    오늘도 요약 정리 잘해
    멋지게 공부했습니다. ㅎㅎㅎ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 되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15 1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좀 길긴 하네요.. 짧게 쓰는 노력을 해야 겠습니당.. 그리고 몇개로 나눠서 포스팅을 할까 합니당. .ㅋㅋ

  6. 2009.09.15 1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15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것 같지는 않는데요.. 저도 님이 지적한 글에 추천한 것으로 기억하거든요.. ㅋㅋ

      물론, 님의 글에도 추천을 했지만.. 각자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명확하면 추천합니당.. ㅋㅋ


      어찌되었던 다음 운영자가 미운털이 박힌것 같아요.. 공평성때문인지.. 대응이 미숙해서 인지는 모르지만..

      암튼, 저의 글이 뒤늦게 베스트에 올랐습니다. 그러니 자책하지 마셈..

      사실 이글은 다음의 문화/연예 카테고리를 지키고 있는 분들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지속적으로 베스트에 올려주고 있는 것을 보면, 다음 관리자도 대단합니당..

  7. 21야영장 2009.09.15 1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 대해서 함 생각하게 하는 글 잘 읽고
    기다려짐니다...근데 어제 드라마 시청하는데
    재미가 반감된다는....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이지만...ㅎㅎ

    • BlogIcon 갓쉰동 2009.09.15 1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가요? 재미가 반감이 된다.. 그럴수 있겠네요..저는 드라마를 보는데 도움이 되라고 한건뎅.. ㅋㅋ

      그래서 글을 봐도 추천이 없군요.. ㅠ.ㅠ. 환상을 깨버리니.. ㅋㅋ

  8. 지나가던역술인 2009.09.15 1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덧붙여, 임술년에는 신묘월이 존재할 수가 없는데, 선덕여왕에서는 덕만&천명의 출생일을 임술년 신묘월 정축일이라고 합니다.

    임o년이나 정o년 의 묘월은 계묘월인데 말이죠.

    • BlogIcon 갓쉰동 2009.09.15 1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너무 쉽게 소설을 쓰는것같다는 생각입니다. 고민도 없고, 생각나는데로 글을 쓴 흔적이 너무 많이 보임..

      인물관계도 정도는 만들어 놓고 글을 써야 하는데..

      설계도 없는 건축물을 보는 것 같아요.. 소설 선덕여왕

  9. 아이레스 2009.09.16 0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쏙쏙 들어오네요~ 쉽게 풀어주셔서~
    선덕여왕은 그냥..소설같아요;;; 비담과 비형을 어떻게 동일인물로 엮을수 있는건지..
    도화녀가 어떻게 미실이 될수 있는거죠??
    미실은 화랑세기 전반에 걸쳐 나오는 인물인데..그걸 굳이 도화녀로 표현할 이유도 없고..
    게다가 미실쪽세력에 의해 폐위된 진지왕이 폐위후에 미실한테 반하고 할리가....
    없잖아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16 0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작자는 그렇게 해서 비담과 비형과 형종을 연결하려는 거지요.

      글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마야가 저주한 대로 미실은 기록에서 망실되었다고..

      하지만, 자신들이 역사서로 인용하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미실의 존재가 너무나 크게 나온다눈..
      원작자가 전혀 나오지 말아야 할 덕만의 시대에 미실과 대치하는 덕만으로 내세울만큼말이지요..

      한마디로 개념을 물말아 먹었다고 할수 밖에요.. 아마도 역대 사극중 최악의 사극 1위일것 같아요.. 재미는 별도로 하고..

  10. 골든레몬 2009.09.16 0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원랑이 비담이 봤던 책을 한눈에 파악한 것은 놓여져 있는 방향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책 옆부분 글자가 다른 책들과 다르게 거꾸로 올려져 있었거든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16 0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설원랑이 달인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실은 원작자을 비판하는 거지만요.. 개연성이 없잖아요.. 먼가 달라졌는지 살피는 흉내라도 내야지 않겠어요? 또한, 비담 처럼 치밀한 성격인 사람은 자신이 만진 책을 쉽게 놓지 않겠지요.. 갑짜기 헐렁이 비담이 되지는 않았겠지요.. 외유내강형의 전형을 보여주기 위한 비담인데요..

  11. BlogIcon koon 2009.09.24 05: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넘유익했어여알아보고싶었는더ㅔ....

  12. 잘읽고 2009.11.10 0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읽고가요 ^^

  13.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4. BlogIcon Granny Pussy 2012.07.21 2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출생을 비밀을 추적하던 비담은 자신의 어릴적 이름이 형종이란 사실과 인명(덕만)과 결혼하게 될 뻔한 사실을 알게 된

  15. BlogIcon Granny Pussy 2012.07.21 2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출생을 비밀을 추적하던 비담은 자신의 어릴적 이름이 형종이란 사실과 인명(덕만)과 결혼하게 될 뻔한 사실을 알게 된

  16. BlogIcon Trisha 2012.08.06 1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 김수현 작가는 양병태의 입을 빌려서 “김연아는

  17. BlogIcon go bet 1x2 2012.09.03 1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출생을 비밀을 추적하던 비담은 자신의 어릴적 이름이 형종이란 사실과

  18. BlogIcon water preserver concentrate review 2012.11.01 17: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진짜로 무언가일 이 화제를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결코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당신 발표

  19. BlogIcon portable dog fences yard 2012.11.08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탕 많이 먹은거 아빠한테 걸릴까봐 언능 숨기는 모습도

  20. BlogIcon container storage yards 2012.12.10 2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확히 반박할려면 위처럼 일본의 수입조건과 한국의 수입조건이 다르다는 가장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또한, 확율론적으로도 반론을 제기한것도 극히 위함한 발상이고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다.

  21. BlogIcon wireless fence for dogs 2012.12.25 2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출생을 비밀을 추적하던 비담은 자신의 어릴적 이름이 형종이란 사실과 인명(덕만)과 결혼하게 될 뻔한 사실을 알게 된다.

선덕여왕 원작자 두사람은 무슨생각으로 역사소설을 쓰나?

신라에는 두개의 궁궐이 있었다. 하나는 명활성이고, 하나는 반월성(월성)이다. 이 두성은 때에 따라서 번갈아 궁궐로 사용되였다. 하지만, 진평왕시기에는 반월성(월성)이 궁궐이였다.

647년 1월 8일 덕만이 죽고나서 비담이 반란을 일으킨 장소는 명활성이다. 반란군을 진압하는 정부군의 지휘부는 궁궐인 월성이였다. 이곳에서 진덕(승만)이 10여일을 비담에 시달렸다. 김유신열전에 김유신이 <횃불 연날리기>로 비담의 군대의 사기를 떨어트리기도 했다. 이와관련해서는 2009/08/3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이 덕만을 배신했다고?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예전 보름날에 연을 날릴때 불을 연의 꼬리에 달고 날리는 풍습이 있었다. 액운을 하늘로 다시 보낸다는 뜻이다. 이는 김유신의 연날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유신은 불쇼를 좋아하는 것 같다. 드라마에서 일식이 일어난다고 혹세무민하여 화형당할뻔 하였다. 이의 원형은 김유신이 물묻은 장작위에서 연기를 피워 쇼를 하는것이였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월성 동북쪽 첨성대 공사장 현재 첨성대와 뒤의 돌을 잘 살펴보기 바란다.

첨성대의 공사 위치는 "반월성(궁성) 동북쪽"이라고 한다. 정말 드라마 원작자들인 대장금과 서동요을 만든 김영현과 공동경비구역을 만든 박상연은 대책이 서지를 않는다. 

어떻게 이들이 역사소설을 쓰고, 사극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불가사의할 정도이다.

우리나라 역사소설을 쓰는 사람들의 수준이 이리도 낮았다는 말인가? 이들의 글을 보면 다음 사극을 쓰는 사람들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저런식으로 써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기본적인 팩트도 무시를 하고 글을 쓰면 안된다는 것을 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재미가 있는것은 원작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연출을 한 박홍균, 김근홍을 비롯한 제작진과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출연진의 공로이다. 이들의 공로를 빼앗는 존재가 원작의 부실함이다. 그렇다고 해서 피디가 잘못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최소한 고증은 받았어야 한다.

천명의 죽음과 대남보는 이미 엎지러진 물이 되었다. 2009/08/11 - [역사이야기] - '천명', 대남보의 독화살에 죽었다? 사실은 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래서 현재까지 사극 선덕여왕은 인기있는 드라마는 될 수 있지만, 국민사극의 반열에는 올라가지 못할것이다. 제작자는 최소한 기초적인 팩트를 확인하고 대사처리를 해야 할것이다. 지금이라도 원작의 틀을 바꾸지 않고도, 대사를 조금만 바꾼다면 그나마 원작이 훼손한 부분을 상당부분은 바꿀 수가 있다.

대사처리만 잘했어도

대사를 조그만 바꿔도 되는 부분은 아막성과 속함성전투에서도 있었다. 진평왕시기에 아막성과 속함성은 백제가 가지고 있었던 적이 없다. 그런데 드라마는 아막성, 속함성을 백제의 것으로 처리하고 신라가 획득한 것으로 처리를 했다. 사실은 백제가 아막성을 공격하고 신라가 방어를 했었다.

또한가지는 천명과 덕만의 출생일이다. 드라마는 천명과 덕만이 <임술년>생이라고 했다. 임술년은 542년과 602년 밖에 없다. 어디로 비정을 해도 천명과 덕만은 존재할 수가 없다. 542년생으로 한다면 아버지 진평보다 먼저태어 나야하고, 602년에 태어났다면 천명이 한살때 603년생인 춘추를 낳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2009/07/2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임술년생 덕만과 천명의 나이는 몇살?

이뿐만이 아니다. 황당사극의 진수는 "일식은 보름날에 일어난다"는 새로운 학설까지 선덕여왕은 설파하고 있다. 이는 초등학교 교과서까지 수정해야 할판이다. 왜 일식은 보름날에 일어나면 안되는지를 알고 싶다면 2009/08/28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불가능은 없다.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첨성대는 궁성(반월성) 북서쪽에 있었고, 덕만이 왕이 된후 이듬해에 만들었다.
 

도대체 첨성대가 반월성 동북쪽에 있다고 스스럼 없이
말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반월성의 위치가 잘못 비정된 것인가? 위의 다음 지도검색에서도 알수 있듯이 첨성대는 반월성(궁궐) 북쪽 방면에 있다.
동북방면이면 황룡사지쪽이다. 궁 가까이는 추후 동궁되는 안압지쪽이 된다.

언제 첨성대가 안압지나 황룡사쪽에 있었던가? 그 당시에는 첨성대가 궁궐(월성) 동북쪽에 있다가 비형랑이 하루 아침에 북서쪽으로 옮기기라고 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이동한 시기라도 있었던가? 아니면 경주에 첨성대가 두개가 있었다는 말인가?

덕만은 첨성대를 만들자리에서 제를 올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첨성대는 언제 만들어 졌을까? 삼국유사에는 단순히 첨성대를 만들었다고 기록있다. 
 
첨성대(瞻星臺)【부성(府城)의 남쪽 모퉁이에 있다. 633년 당나라 태종(太宗) 정관(貞觀) 7년 계사에 신라 선덕 여왕(善德女王)이 쌓은 것이다.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위는 방형(方形)이고, 아래는 원형(圓形)으로 높이가 19척 5촌, 위의 둘레가 21척 6촌, 아래의 둘레가 35척 7촌이다. 그 가운데를 통하게 하여, 사람이 가운데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 경주부

하지만, 조선시대 세종의 지리지에 경주부에는 633년에 첨성대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첨성대가 덕만이 공주시절인 진평왕시기에 만들어 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2년(633) 봄 정월에 몸소 신궁(神宮)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였으며 여러 주·군(州郡)의 1년간 조세[租調]를 면제해 주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2년 정월

2009/09/02 - [역사이야기] - 덕만은 첨성대로 신권을 버렸을까? 사실은 기사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덕만은 제사와 분리하려던 것이 아니였다는 말이다. 신교와 불교를 융합하는 것이 덕만의 뜻이였고, 덕만은 이를 영묘사, 분황사, 첨성대와 황룡사 9층탑과 사천왕사의 건립으로 불국정토를 신라에 뿌리내리려 하였다. 한마디로 신라의 왕들은 현인신이 되고, 부처가 되고자 했었다.  거기에 덕만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사천왕사는 덕만이 죽기전에는 이룰수 없었고, 문무왕 시기에 비로서 이룰수가 있었다. 다만, 덕만이 자신의 죽은 날짜를 예언하고 도리천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유언을 했다. 도리천을 알 수 없었던 대신들이 물으니 덕만은 낭산에 도리천이 있다고 하였다. 불(佛)경에는 도리천은 사천왕사 위쪽에 있다고 했단다.

선덕여왕 연장 기대와 우려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은 최소 12회 연장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드라마 전체적인 흐름을 깨지 않는 범위에서 드라마 선덕여왕의 제작진은 '첨성대의 위치'와 '공주시절 만들었다'는 두가지의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을 삽입해야하지 않을까한다. 12회 연장을 한다면 총 62부작이다. 시즌1은 천명의 죽음이고, 2부는 덕만의 공주시절의 활약이고, 3부는 왕시대일 것이다. 4부는 왕의 후반부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제 30부가 끝났다. 이는 사극 선덕여왕이 반환점을 돌아가는 시점이다.

공주시절 첨성대를 궁성(반월성) 동북쪽에 만들려고 했지만, 미실의 여론조작과 국민이 반대로 만들지 못하고, 덕만이 즉위한 2년에 꿈에도 그리던 격물과 신정을 분리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래야 합리적이고, 극적인 전개가 될 수 있다.

위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단순히 대사처리만으로도 큰흐름에 지장이 없을 것이고, 환타지, 퓨전 사극이 아닌 "신라를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재현"한다는 제작진의 <제작의도>에 부합하지 않을까 한다.
 
또한 <선덕여왕>제작팀은 "시청자에게 (신라)가 친숙함에도 불구하고, 아는 바는 거의 없다"고 말을 하면서 "화려했던 고대 신라 사회로 안내할 것이다"라고 장담을 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모습은 신라를 재현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고 '고대 신라사회'로 안내하지 못하고, 잘못된 네비게이션이 엉뚱한 길을 안내하듯이 잘못된 고대사회로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선덕여왕 제작팀이 가장 듣기 싫은 소리, "드라마는 드라마로"

 mbc 사극 <선덕여왕>제작팀은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신라사를 재현하고, 안내하겠다는 사극"을 <환타지>, <퓨전>,<SF>드라마로 보자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은 축구를 보던 스포츠를 보던 "골만 넣으면 됐지, 핸드링, 업사이드, 반칙이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사극이란 팩트가 있고, 결과가 있는 역사기록을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재해석으로 풀어가는 과정의 극이다. 거기에 현실정치를 풍자하는 요소가 있다면 금상첨화가 되는 것이다. 물론, 재미는 모든 극의 기본이다. 그렇다고 재미를 위해서 뼈가되는 팩트를 무시하면 안된다. 사극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옥의티. 맨위의 첨성대 공사장 사진 설명에서 공사장의 돌을 잘 살펴보라고 했다. 현재의 첨성대의 돌을 살펴보자. 돌의 크기가 다르지 않나? 또한, 첨성대는 저렇게 다듬은 돌을 사용하지 않았다. 첨성대 내부벽은 다듬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돌이다. 

대부분이 건축물에 사용하는 돌은 조선시대까지도 보이는 면은 다듬지만, 보이지 않는 면은 다듬지 않았다. 성을 쌓거나, 건축물의 주춧돌도 "그랭이" 기법을 사용해서 자연석을 이용해서 틀을 잡았다. 추후 언젠가는 이와 관련해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인데 기회가 될지는 모르겠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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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9.03 0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 올때마다 몰랐던 사실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BlogIcon labyrint 2009.09.03 0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첨성대의 위치가 잘못되었군요...

    작가가 뭘 잘못 기억한 것이 아닐지요... ㅋㅋ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4. BlogIcon White Rain 2009.09.03 0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더 세심했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앞으로라도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해요. 정말 대사만 바꿔도 될 일을..

  5. BlogIcon 아이러니♡ 2009.09.03 0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팀이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을 운운하기 전에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하는 바람입니다.
    좋은 글 잘 읽구 가요~!

  6. BlogIcon 朱雀 2009.09.03 0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7. BlogIcon 초록누리 2009.09.03 0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사만 조금 바꿔도 그게 흐름을 아주 바꾸지는 않았을텐데 아쉽네요.
    드라마도 중요하지만 사극인만큼 역사적인 사실이 아주 중요하지요.
    특히 시청률이 높은 사극드라마일수록 역사적 사실과 조금 더 가까우면 혼란도 덜하고 재미도 더했을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도 역사를 공부했던 입장에서 신라사는 사실 많이 모르지만 이건 뭥미? 스러운 것들이 많답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냥 보는거지요.... ㅎㅎ

  8. BlogIcon 칫솔 2009.09.03 0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자체는 이미 역사적 막장 아니겠습니까~
    저는 드라마 끝나면 갓쉰동님 해설보고 기울어진 중심을 되찾는답니다. ^^

  9. 2009.09.03 08: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0. 오호 2009.09.03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건 틀리면 안되는 부분일텐데.. 디비디로 나오면 그부분만 더빙으로라도 고쳤으면..

  11. 작은미소 2009.09.03 1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작자는 왜 사실대로 했으면 더 좋았을것을 .... 일부러 그러하시진 않았겟지요 지금이래도 바로 잡는다면 좋겠지만 드라마 흐름상 다시 돌아가진 못할것이고 다 끝나는날 자막처리 하겠지요.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역사 드라마는 다르지요 재밋게 보고 있는 드라마 인데 약간 기분이 그렇군요 그냥 흘려볼수도 있는 드라마를 이렇게 찝어 주시는님이 참 부럽습니다.
    이렇게 해서 드라마에 더 관심이 있게 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3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금도 늦지는 않았지요.. 오히려 더 극적일것 같아요..
      덕만의 좌절을 보는것도.. 성공일변도 잼없잖아요.. ㅋㅋ

  12. BlogIcon 영웅전쟁 2009.09.03 1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날카로운 비평에 중후한(앗 중후함은 싫어 하신다고 했는데 ㅎㅎㅎ)
    멋이 어루려진 멋진 글입니다.
    사극 작가들 공부 많이 하게 생겼군요 ㅋ
    언제나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13. ㅁㅁ 2009.09.03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월성이 길쭉하니 반월성에서 보는 지점에 따라서, 첨성대는 북쪽, 동북쪽, 서북쪽 모두가 해당된다.
    제매정에서 보는 방향과 석빙고에서 보는 방향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제매정에서 본다면 동북이라고 말할 수 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3 14: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님의 생각이구요..

      동서남북이 언제 님의 서있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던가요?

      그럴때는 좌측 우측, 전방 후방 이라는 표현을 하는거지요..

  14. BlogIcon 에몽Plus 2009.09.03 15: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자세하게 분석해 놓으셨네요....

    대단하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3 2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힘들게 쓰고 효과는 없지요.. 이런글은.. 담부터는 짧게 쓸려구요.. 이글을 나눠도 3개의 별도 포스팅을 할 정이니.. ㅋㅋ

  15. 전반적으로 2009.09.03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옳은 말씀이긴 하나 마지막 부분은 좀 아니네요.
    제가 알기로 선덕여왕 제작진은 인터뷰에서 이 드라마가 정통 사극이 아니라고 밝혔던 것 같은데요.
    역사를 소재로 한 퓨전 드라마라고 들었는데... 약간 오버하신듯.

    그리고 중간에 김유신 이야기를 하시면서 일식이 일어날거라고 하여 화형당할 뻔 했다고 하셨는데...
    드라마에서 그 역할을 한 사람은 비담이었어요. 확인해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3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전 보름날에 연을 날릴때 불을 연의 꼬리에 달고 날리는 풍습이 있었다. 액운을 하늘로 다시 보낸다는 뜻이다. 이는 김유신의 연날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유신은 불쇼를 좋아하는 것 같다. 드라마에서 일식이 일어난다고 혹세무민하여 화형당할뻔 하였다. 이의 원형은 김유신이 물묻은 장작위에서 연기를 피워 쇼를 하는것이였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
      비담이 생략된 겁니다. 언제 유신이 화형을 당했다고 하던가요? 사실 이 대목의 행간을 읽으면 선덕여왕 원작자 참 창의력도 없다는 글인뎅...

      그리고 님같은 분때문에 제작의도까지 펌해주었잖아요..

  16. BlogIcon Nehe 2009.09.04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서운것은 일제를 찬양하는 드라마가 나와도 드라마는 드라마니까 하고 넘어가야 하는것인지... 하는 의문이 드는것입니다. 사료가 모자라는 신라는 더더욱 신중을 기해야하는데요...

  17.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8. BlogIcon time saver cost effective lawn edgings 2012.08.30 2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만으로 후퇴를 할 수도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이처럼 전혀 생뚱맞은 <대화>로 드라마 전체의 극 흐름을 스스

  19. BlogIcon robert noyce 2012.09.06 0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왕이 재미가 있는것은 원작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연출을 한 박홍균, 김근홍을 비롯한 제작진과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출연진의 공로이다.

  20. BlogIcon free online grammar checker 2012.09.08 2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하는 돌은 조선시대까지도 보이는 면은 다듬지만, 보이지

  21. BlogIcon Wellness 2012.09.22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에는 두개의 궁궐이 있었다. 하나는 명활성이고, 하나는 반월성(월성)이다. 이 두성은 때에 따라서

선덕여왕 원작자 두사람은 무슨생각으로 역사소설을 쓰나?

신라에는 두개의 궁궐이 있었다. 하나는 명활성이고, 하나는 반월성(월성)이다. 이 두성은 때에 따라서 번갈아 궁궐로 사용되였다. 하지만, 진평왕시기에는 반월성(월성)이 궁궐이였다.

647년 1월 8일 덕만이 죽고나서 비담이 반란을 일으킨 장소는 명활성이다. 반란군을 진압하는 정부군의 지휘부는 궁궐인 월성이였다. 이곳에서 진덕(승만)이 10여일을 비담에 시달렸다. 김유신열전에 김유신이 <횃불 연날리기>로 비담의 군대의 사기를 떨어트리기도 했다. 이와관련해서는 2009/08/3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이 덕만을 배신했다고?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예전 보름날에 연을 날릴때 불을 연의 꼬리에 달고 날리는 풍습이 있었다. 액운을 하늘로 다시 보낸다는 뜻이다. 이는 김유신의 연날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유신은 불쇼를 좋아하는 것 같다. 드라마에서 일식이 일어난다고 혹세무민하여 화형당할뻔 하였다. 이의 원형은 김유신이 물묻은 장작위에서 연기를 피워 쇼를 하는것이였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월성 동북쪽 첨성대 공사장 현재 첨성대와 뒤의 돌을 잘 살펴보기 바란다.

첨성대의 공사 위치는 "반월성(궁성) 동북쪽"이라고 한다. 정말 드라마 원작자들인 대장금과 서동요을 만든 김영현과 공동경비구역을 만든 박상연은 대책이 서지를 않는다. 

어떻게 이들이 역사소설을 쓰고, 사극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불가사의할 정도이다.

우리나라 역사소설을 쓰는 사람들의 수준이 이리도 낮았다는 말인가? 이들의 글을 보면 다음 사극을 쓰는 사람들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저런식으로 써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기본적인 팩트도 무시를 하고 글을 쓰면 안된다는 것을 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재미가 있는것은 원작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연출을 한 박홍균, 김근홍을 비롯한 제작진과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출연진의 공로이다. 이들의 공로를 빼앗는 존재가 원작의 부실함이다. 그렇다고 해서 피디가 잘못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최소한 고증은 받았어야 한다.

천명의 죽음과 대남보는 이미 엎지러진 물이 되었다. 2009/08/11 - [역사이야기] - '천명', 대남보의 독화살에 죽었다? 사실은 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래서 현재까지 사극 선덕여왕은 인기있는 드라마는 될 수 있지만, 국민사극의 반열에는 올라가지 못할것이다. 제작자는 최소한 기초적인 팩트를 확인하고 대사처리를 해야 할것이다. 지금이라도 원작의 틀을 바꾸지 않고도, 대사를 조금만 바꾼다면 그나마 원작이 훼손한 부분을 상당부분은 바꿀 수가 있다.

대사처리만 잘했어도

대사를 조그만 바꿔도 되는 부분은 아막성과 속함성전투에서도 있었다. 진평왕시기에 아막성과 속함성은 백제가 가지고 있었던 적이 없다. 그런데 드라마는 아막성, 속함성을 백제의 것으로 처리하고 신라가 획득한 것으로 처리를 했다. 사실은 백제가 아막성을 공격하고 신라가 방어를 했었다.

또한가지는 천명과 덕만의 출생일이다. 드라마는 천명과 덕만이 <임술년>생이라고 했다. 임술년은 542년과 602년 밖에 없다. 어디로 비정을 해도 천명과 덕만은 존재할 수가 없다. 542년생으로 한다면 아버지 진평보다 먼저태어 나야하고, 602년에 태어났다면 천명이 한살때 603년생인 춘추를 낳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2009/07/2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임술년생 덕만과 천명의 나이는 몇살?

이뿐만이 아니다. 황당사극의 진수는 "일식은 보름날에 일어난다"는 새로운 학설까지 선덕여왕은 설파하고 있다. 이는 초등학교 교과서까지 수정해야 할판이다. 왜 일식은 보름날에 일어나면 안되는지를 알고 싶다면 2009/08/28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불가능은 없다.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첨성대는 궁성(반월성) 북서쪽에 있었고, 덕만이 왕이 된후 이듬해에 만들었다.
 

도대체 첨성대가 반월성 동북쪽에 있다고 스스럼 없이
말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반월성의 위치가 잘못 비정된 것인가? 위의 다음 지도검색에서도 알수 있듯이 첨성대는 반월성(궁궐) 북쪽 방면에 있다.
동북방면이면 황룡사지쪽이다. 궁 가까이는 추후 동궁되는 안압지쪽이 된다.

언제 첨성대가 안압지나 황룡사쪽에 있었던가? 그 당시에는 첨성대가 궁궐(월성) 동북쪽에 있다가 비형랑이 하루 아침에 북서쪽으로 옮기기라고 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이동한 시기라도 있었던가? 아니면 경주에 첨성대가 두개가 있었다는 말인가?

덕만은 첨성대를 만들자리에서 제를 올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첨성대는 언제 만들어 졌을까? 삼국유사에는 단순히 첨성대를 만들었다고 기록있다. 
 
첨성대(瞻星臺)【부성(府城)의 남쪽 모퉁이에 있다. 633년 당나라 태종(太宗) 정관(貞觀) 7년 계사에 신라 선덕 여왕(善德女王)이 쌓은 것이다.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위는 방형(方形)이고, 아래는 원형(圓形)으로 높이가 19척 5촌, 위의 둘레가 21척 6촌, 아래의 둘레가 35척 7촌이다. 그 가운데를 통하게 하여, 사람이 가운데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 경주부

하지만, 조선시대 세종의 지리지에 경주부에는 633년에 첨성대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첨성대가 덕만이 공주시절인 진평왕시기에 만들어 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2년(633) 봄 정월에 몸소 신궁(神宮)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였으며 여러 주·군(州郡)의 1년간 조세[租調]를 면제해 주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2년 정월

2009/09/02 - [역사이야기] - 덕만은 첨성대로 신권을 버렸을까? 사실은 기사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덕만은 제사와 분리하려던 것이 아니였다는 말이다. 신교와 불교를 융합하는 것이 덕만의 뜻이였고, 덕만은 이를 영묘사, 분황사, 첨성대와 황룡사 9층탑과 사천왕사의 건립으로 불국정토를 신라에 뿌리내리려 하였다. 한마디로 신라의 왕들은 현인신이 되고, 부처가 되고자 했었다.  거기에 덕만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사천왕사는 덕만이 죽기전에는 이룰수 없었고, 문무왕 시기에 비로서 이룰수가 있었다. 다만, 덕만이 자신의 죽은 날짜를 예언하고 도리천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유언을 했다. 도리천을 알 수 없었던 대신들이 물으니 덕만은 낭산에 도리천이 있다고 하였다. 불(佛)경에는 도리천은 사천왕사 위쪽에 있다고 했단다.

선덕여왕 연장 기대와 우려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은 최소 12회 연장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드라마 전체적인 흐름을 깨지 않는 범위에서 드라마 선덕여왕의 제작진은 '첨성대의 위치'와 '공주시절 만들었다'는 두가지의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을 삽입해야하지 않을까한다. 12회 연장을 한다면 총 62부작이다. 시즌1은 천명의 죽음이고, 2부는 덕만의 공주시절의 활약이고, 3부는 왕시대일 것이다. 4부는 왕의 후반부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제 30부가 끝났다. 이는 사극 선덕여왕이 반환점을 돌아가는 시점이다.

공주시절 첨성대를 궁성(반월성) 동북쪽에 만들려고 했지만, 미실의 여론조작과 국민이 반대로 만들지 못하고, 덕만이 즉위한 2년에 꿈에도 그리던 격물과 신정을 분리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래야 합리적이고, 극적인 전개가 될 수 있다.

위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단순히 대사처리만으로도 큰흐름에 지장이 없을 것이고, 환타지, 퓨전 사극이 아닌 "신라를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재현"한다는 제작진의 <제작의도>에 부합하지 않을까 한다.
 
또한 <선덕여왕>제작팀은 "시청자에게 (신라)가 친숙함에도 불구하고, 아는 바는 거의 없다"고 말을 하면서 "화려했던 고대 신라 사회로 안내할 것이다"라고 장담을 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모습은 신라를 재현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고 '고대 신라사회'로 안내하지 못하고, 잘못된 네비게이션이 엉뚱한 길을 안내하듯이 잘못된 고대사회로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선덕여왕 제작팀이 가장 듣기 싫은 소리, "드라마는 드라마로"

 mbc 사극 <선덕여왕>제작팀은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신라사를 재현하고, 안내하겠다는 사극"을 <환타지>, <퓨전>,<SF>드라마로 보자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은 축구를 보던 스포츠를 보던 "골만 넣으면 됐지, 핸드링, 업사이드, 반칙이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사극이란 팩트가 있고, 결과가 있는 역사기록을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재해석으로 풀어가는 과정의 극이다. 거기에 현실정치를 풍자하는 요소가 있다면 금상첨화가 되는 것이다. 물론, 재미는 모든 극의 기본이다. 그렇다고 재미를 위해서 뼈가되는 팩트를 무시하면 안된다. 사극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옥의티. 맨위의 첨성대 공사장 사진 설명에서 공사장의 돌을 잘 살펴보라고 했다. 현재의 첨성대의 돌을 살펴보자. 돌의 크기가 다르지 않나? 또한, 첨성대는 저렇게 다듬은 돌을 사용하지 않았다. 첨성대 내부벽은 다듬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돌이다. 

대부분이 건축물에 사용하는 돌은 조선시대까지도 보이는 면은 다듬지만, 보이지 않는 면은 다듬지 않았다. 성을 쌓거나, 건축물의 주춧돌도 "그랭이" 기법을 사용해서 자연석을 이용해서 틀을 잡았다. 추후 언젠가는 이와 관련해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인데 기회가 될지는 모르겠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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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9.03 0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 올때마다 몰랐던 사실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BlogIcon labyrint 2009.09.03 0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첨성대의 위치가 잘못되었군요...

    작가가 뭘 잘못 기억한 것이 아닐지요... ㅋㅋ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4. BlogIcon White Rain 2009.09.03 0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더 세심했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앞으로라도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해요. 정말 대사만 바꿔도 될 일을..

  5. BlogIcon 아이러니♡ 2009.09.03 0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팀이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을 운운하기 전에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하는 바람입니다.
    좋은 글 잘 읽구 가요~!

  6. BlogIcon 朱雀 2009.09.03 0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7. BlogIcon 초록누리 2009.09.03 0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사만 조금 바꿔도 그게 흐름을 아주 바꾸지는 않았을텐데 아쉽네요.
    드라마도 중요하지만 사극인만큼 역사적인 사실이 아주 중요하지요.
    특히 시청률이 높은 사극드라마일수록 역사적 사실과 조금 더 가까우면 혼란도 덜하고 재미도 더했을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도 역사를 공부했던 입장에서 신라사는 사실 많이 모르지만 이건 뭥미? 스러운 것들이 많답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냥 보는거지요.... ㅎㅎ

  8. BlogIcon 칫솔 2009.09.03 0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자체는 이미 역사적 막장 아니겠습니까~
    저는 드라마 끝나면 갓쉰동님 해설보고 기울어진 중심을 되찾는답니다. ^^

  9. 2009.09.03 08: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0. 오호 2009.09.03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건 틀리면 안되는 부분일텐데.. 디비디로 나오면 그부분만 더빙으로라도 고쳤으면..

  11. 작은미소 2009.09.03 1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작자는 왜 사실대로 했으면 더 좋았을것을 .... 일부러 그러하시진 않았겟지요 지금이래도 바로 잡는다면 좋겠지만 드라마 흐름상 다시 돌아가진 못할것이고 다 끝나는날 자막처리 하겠지요.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역사 드라마는 다르지요 재밋게 보고 있는 드라마 인데 약간 기분이 그렇군요 그냥 흘려볼수도 있는 드라마를 이렇게 찝어 주시는님이 참 부럽습니다.
    이렇게 해서 드라마에 더 관심이 있게 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3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금도 늦지는 않았지요.. 오히려 더 극적일것 같아요..
      덕만의 좌절을 보는것도.. 성공일변도 잼없잖아요.. ㅋㅋ

  12. BlogIcon 영웅전쟁 2009.09.03 1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날카로운 비평에 중후한(앗 중후함은 싫어 하신다고 했는데 ㅎㅎㅎ)
    멋이 어루려진 멋진 글입니다.
    사극 작가들 공부 많이 하게 생겼군요 ㅋ
    언제나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13. ㅁㅁ 2009.09.03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월성이 길쭉하니 반월성에서 보는 지점에 따라서, 첨성대는 북쪽, 동북쪽, 서북쪽 모두가 해당된다.
    제매정에서 보는 방향과 석빙고에서 보는 방향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제매정에서 본다면 동북이라고 말할 수 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3 14: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님의 생각이구요..

      동서남북이 언제 님의 서있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던가요?

      그럴때는 좌측 우측, 전방 후방 이라는 표현을 하는거지요..

  14. BlogIcon 에몽Plus 2009.09.03 15: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자세하게 분석해 놓으셨네요....

    대단하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3 2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힘들게 쓰고 효과는 없지요.. 이런글은.. 담부터는 짧게 쓸려구요.. 이글을 나눠도 3개의 별도 포스팅을 할 정이니.. ㅋㅋ

  15. 전반적으로 2009.09.03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옳은 말씀이긴 하나 마지막 부분은 좀 아니네요.
    제가 알기로 선덕여왕 제작진은 인터뷰에서 이 드라마가 정통 사극이 아니라고 밝혔던 것 같은데요.
    역사를 소재로 한 퓨전 드라마라고 들었는데... 약간 오버하신듯.

    그리고 중간에 김유신 이야기를 하시면서 일식이 일어날거라고 하여 화형당할 뻔 했다고 하셨는데...
    드라마에서 그 역할을 한 사람은 비담이었어요. 확인해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3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전 보름날에 연을 날릴때 불을 연의 꼬리에 달고 날리는 풍습이 있었다. 액운을 하늘로 다시 보낸다는 뜻이다. 이는 김유신의 연날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유신은 불쇼를 좋아하는 것 같다. 드라마에서 일식이 일어난다고 혹세무민하여 화형당할뻔 하였다. 이의 원형은 김유신이 물묻은 장작위에서 연기를 피워 쇼를 하는것이였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
      비담이 생략된 겁니다. 언제 유신이 화형을 당했다고 하던가요? 사실 이 대목의 행간을 읽으면 선덕여왕 원작자 참 창의력도 없다는 글인뎅...

      그리고 님같은 분때문에 제작의도까지 펌해주었잖아요..

  16. BlogIcon Nehe 2009.09.04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서운것은 일제를 찬양하는 드라마가 나와도 드라마는 드라마니까 하고 넘어가야 하는것인지... 하는 의문이 드는것입니다. 사료가 모자라는 신라는 더더욱 신중을 기해야하는데요...

  17.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8. BlogIcon time saver cost effective lawn edgings 2012.08.30 2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만으로 후퇴를 할 수도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이처럼 전혀 생뚱맞은 <대화>로 드라마 전체의 극 흐름을 스스

  19. BlogIcon robert noyce 2012.09.06 0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왕이 재미가 있는것은 원작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연출을 한 박홍균, 김근홍을 비롯한 제작진과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출연진의 공로이다.

  20. BlogIcon free online grammar checker 2012.09.08 2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하는 돌은 조선시대까지도 보이는 면은 다듬지만, 보이지

  21. BlogIcon Wellness 2012.09.22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에는 두개의 궁궐이 있었다. 하나는 명활성이고, 하나는 반월성(월성)이다. 이 두성은 때에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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