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드라마 선덕여왕 54회에서 비담이 덕만을 껴안고 자신의 감정을 들어낸다. 하지만 덕만은 비담을 내치며 주절주절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말한다. 요약하면 자신도 왕이지만 여자다, 하지만 왕권을 강화하고 삼국통일(삼한일통)을 위해서 멸사봉공 수처녀로 늙어 죽을 것이라는 뜻이다.

왕권의 강화의 최우선은 후사이고, 왕실인물들이 많아 지는 것이다. 왕실에 후사가 없으면 권력이 흔들린다. 왕실뿐아니고 일반 가정에서도 기본 상식에 속한다. 노처녀(?) 선덕여왕의 생각이기 보다는 극히 개인적인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의 빈곤한 상상력의 산물이고 희망사항일 뿐이다. 

여인인 덕만이 왕이 된다고 해서 왜 여러 남자를 거느리고 성을 문란하게 했냐는 비아냥이고, 덕만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삼국통일 사업에 매진해야 하는데 문란한 성생활로 신라를 위기에 빠트렸다는 비판일 뿐이다.
 

미세한 손떨림으로 덕만을 표현한 이요원



삼국유사에는 <음갈문왕>과 결혼을 했다 하고,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용수.용춘 형제와 을제와 흠반갈문왕 등 최소한 4명이 덕만과 결혼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나온다. 더불어 경주김씨의 족보에는 김인평이란 인물과 ,또다른 창령조씨 족보에는 <조계룡>이란 인물까지 덕만의 부군으로 있었다는 기록들을 볼 수 있다.

또한, 덕만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진덕(승만)은 진평왕의 동생인 국반갈문왕의 딸이지만, 덕만이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을 하여, 진덕은 덕만의 법률적, 법통으로 딸이 되어 자연스럽게 승만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또한, 김인평이나 조계룡의 후손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물론, 조계룡이나 김인평의 후손들이 선덕여왕 사이에 난 후손들인지 아니면 부군으로 있다가, 덕만이 후사가 없자 결혼관계가 끊어지고, 새로운 여인들 사이에 난 후손인지는 알 수 없다. 단, 이들 후손들은 자신들이 덕만과 자신들의 조상인 부군들 사이에 난 후손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전설과 신화에는 역사의 파편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전설에는 덕만(선덕왕)과 사이에난 왕자가 태백산을 유람하다 어여쁜 처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비녀소에 관한 전설도 남겨져 있다. 이를 본다면 덕만에게는 후사가 없었던 것이 아니고, 후사는 있었지만 왕이 되고 싶지 않는 왕자도 있었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아니면, 생물학적 아들은 아니고, 덕만의 무수히 많은 남편들의 아들 중에 하나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덕만의 남자들



역사의 몰이해를 넘어서 후손들을 농락한 작가들

선덕여왕 작가는 역사에 대한 몰이해뿐만 아니고, 만약, 이들 후손들이 선덕여왕을 보고 있다면, 대단한 실례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후손은 족보를 거짓으로 만든 사람이 되니 말이다. 일반 드라마라고 하더라도 지켜야할 금도가 있다.

하물며 신라를 재현하겠다는 사극은 기본적인 인물의 개인 신상정보는 왜곡하지 않는게 불문률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너무나 많은 잘못을 극에서 표출하고 있다. 이는 개인적인 창작의 자유와는 하등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고, 드라마의 금기인 극중 리얼리티를 깨트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서로 다른 인물들이라면 덕만은 최소한 7명의 남편들이 있었다는 결론이다. 덕만은 삼국일통을 꿈꾸지도 않았지만, 국가를 위해서, 또는 자신이 결혼을 하면 자신을 배경으로 권력을 탐하려는 자들이 많이 생기고, 부군으로 왕이 되고, 이들간에 싸움이 생겨 신라가 위기에 처할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은 당시 신라는 물론이고, 현실에서도 극히 위험한 발상이 된다.

덕만은 후사를 잇기 위해 철저히 여왕벌처럼 왕으로서 일을 끝까지 다하고 노력했다. 왕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적통을 이을 후손을 보는 일이다. 만약, 덕만이 이를 게을리 했다면 덕만은 왕의 자질이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덕만은 죽을 때 까지도 후사가 없음에 대해서 회한을 남기고 있다.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므로 그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것은 당나라 임금이 나에게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다. - 삼국유사 선덕왕 지기삼사 중 모란꽃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10/1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모란꽃 이야기는 나왔다? 나온다? 사실은
2009/07/23 -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모란씨 서되
2009/07/2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

하지만 드라마 작가에 의해서 덕만은 희화화 되어버렸다. 덕만과 마주칠 수 없는 미실을 등장시켜 덕만을 엿을 먹이더니 이제는 덕만의 치열한 삶까지도 희화화하여 엿을 먹이고 있는 중이다.

또한, 비담 김남길의 부상과 신종플루, 알천 이승효의 신종플루에 이어서 덕만 이요원이 피부병인 대상포진에서 벗어난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가채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신라시대 존재여부가 불투명한 가채를 머리에 이고 연기하는 노고를 하고 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보더라도 신라시대에 가채를 사용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또한, 한반도의 영향을 받고 있던 일본에서 조차도 당시 가채는 발견할 수 없다.

실제 가채가 활발히 사용된때는 조선시대 때 일이다. 오죽하면 조선시대에 가채금지령까지 내려졌겠는가? 설령 가채를 머리에 이고 있었다고 해도 지금 드라마에 나오는 가채만큼 무겁지도 않았다. 배우들의 연기가 아까울 정도로 대본의 완성도는 떨어진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이유는 쪽대본과 당일치기 촬영 때문이다.


누가 유신을 바보로 만드나?

유신과 계백(최원영)이 계백의 막사에서 대화를 한다. 유신은 계백이 보고 있는 지도에서 개문흑(開門黑)을 발견하고, 흙으로 시작하는 자가 대야성의 간자라고 이야기를 한다. 흑치상치라도 나올까 생각한다면 대단한 오해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소엽도에서 사구놀이를 하듯이 아주 재미있게 파자놀이를 하고 있다.

黑이 다른 (개문) 글자에 비해서 반자이다. 초딩보다 못한 유신


하지만, 미실이 대야성에서 멍청한 자살을 한것처럼 또다시 유신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흑(黑)자는 반자이다. 다른 개문의 글짜에 비해서 반쪽이고, 흑자가 가려져 있는 것이다. 글짜가 반이 가려있는지 아닌지를 쉬이 알수 있고 흑(黑)이 부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 초딩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신라의 중망을 얻고 상장군인 유신이 그것도 모르는 무지한 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흑(黑)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당연히 642년에 어쩔수 없이 신라를 배신(?)하고 백제에 귀부한 후 660년 8월 백제가 항복했을 때 사지를 찢기고 죽은 금일(검일)을 말한다. 검(黔)은 黑+今을 합한자이다. 

660년 8월 2일에 주연을 크게 베풀고 장병들을 위로하였다. 왕과 정방(定方) 및 여러 장수들은 대청마루 위에 앉고, 의자왕과 그 아들 융(隆)은 마루 아래 앉혀서 때로 의자왕으로 하여금 술을 따르게 하니 백제의 좌평 등 여러 신하들이 목메어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 날 모척(毛尺)을 붙잡아 목베었다. 모척은 본래 신라 사람으로서 백제에 도망한 자인데, 대야성의 검일(黔日)과 함께 도모하여 성이 함락되도록 했기 때문에 목벤 것이다. 또 검일을 잡아 [죄목을] 세어 말하였다. 네가 대야성에서 모척과 모의하여 백제 군사를 끌어들이고 창고를 불질러 없앰으로써 온 성 안에 식량을 모자라게 하여 싸움에 지도록 하였으니 그 죄가 하나요, 품석(品釋) 부부를 윽박질러 죽였으니 그 죄가 둘이요, 백제와 더불어 본국을 공격하였으니 그것이 세번째 죄이다. 이에 사지를 찢어 그 시체를 강물에 던졌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백제가 신라의 서쪽 40개성을 함락시켰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7월 40성을 빼앗기고, 대야성은 8월에 침공당한다.  대야성 전투는 40개성을 빼앗긴 후의 일이다. 그러니 덕만이 "백제의 전세가 심상치 않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위란지국이라고 해야한다. 한가히 백제가 대야성을 공격한게 한두번도 아니라고 이야기를 한다. 도대체 대야성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도 모르는 덕만의 신하들이다. 대야성은 신라 후방에 있는 성이다. 대야성까지 백제가 한두번도 아니고 여러번 침공했다면 신라는 망해도 벌써 망했을 것이다. "백제와 전쟁입니다. 대야성이 위험합니다"라는 대사가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최신글
2009/11/2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0살 김춘추 유승호 늙지 않는 이유 있다.

관련기사
2009/11/24 - [역사이야기] - 산으로간 선덕여왕 실제 즉위 전후 10년 무슨일이 있었을까? - 선덕여왕 최원영(계백) 왜?
2009/11/2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수출 좋지만 않는 이유?
2009/11/1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실제 언제 왕이 되었을까? 50살 전후? 20살 전후? - 삼국사기.유사기록을 토대로 본 통설을 깨자
2009/11/18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누란 위기, 귀신잡는 비담 복야회 소탕작전 - 삼서제도 역사와 무관한 사극
2009/11/1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극중 난진압후 덕만은 언제 왕위에 올랐을까? 사실은
2009/10/12 - [역사이야기] - 삼국사기, 화랑세기 기록으로 본 선덕여왕 미실(고현정) 언제 하차해야 하나?
2009/10/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이 결혼할수 없는 이유? 남편들이 죽어서..
2009/08/0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이전 여왕은 있었다. 첫번째는 누구?!
2009/11/1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을 우매한 자살로 이끈 작가들
2009/11/1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상식접근 미실 덕만 왕 자격 있을까? - 고현정 대야성 자살 하차로 본 극중 대야성과 현실 대야성
2009/11/1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50회, 미실 고현정 대야성 독 푼다고 눈물 흘리며 자살미화? - 제작자는 고현정 아름다운 하차 안티?
2009/11/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고현정 미실 최후 자살 죽음장소, 대야성 선택이유? 수노(手弩)는 왜(일본)산 최고?
2009/09/14 - [역사이야기] - 진평왕의 사위이며, 진평.춘추의 장인 보종
2009/10/09 - [역사이야기] - 원효.설총의 뿌리엔 미실, 설원랑, 보종 있다?
2009/10/2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의난은 칠숙의난? 사실은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BlogIcon k 2009.11.25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래도 사회적 분위기가 거기까진 허용치 않아서 일테지요. 덕만을 영웅처럼 그려냈는데 남자가 많은 그런 인물로 만들어 낸다면 이제까지 노력이 물거품처럼 될테니까요. 남자가 여자를 여럿 끼는 것은 봐줄 수 있지만 덕만이 그렇게 되면 요부처럼 인식이 될터이고 아무리 다른 정무를 잘 보았다 하더라도 반감이 들터이니까요.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선덕시절을 다루게 된다면 사실적으로 많이 그려질거라고 봐요. 보는 이들의 부담감(?)^^이 덜 할지도....

    • BlogIcon 갓쉰동 2009.11.26 1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 않을걸요.. 이미 미실의 예도 있고.. 미실을 악역이지만 영웅으로 만들어 버렸잖아용.. ㅋㅋ

  3. BlogIcon rinda 2009.11.25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느끼는 것이지만 역사에 대해 해박하신 듯 합니다.
    제가 보았다면 무심코 그냥 지나쳤을텐데 말이죠ㅎㅎㅎ

    • BlogIcon 갓쉰동 2009.11.26 1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는 않을 겁니당.. 관심분야가 다른거지요.. 린다님은 다른 면에서 잘 보실거라 생각합니당... ㅋㅋ

  4. 손채림 2009.11.25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앗 근데 비담 신종 걸려서 제 친구들줄어요

  5. 유시 아ㅓㅏ 2009.11.25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ㄹ어

  6. 하하하 2009.11.25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계백이나 윤충이나, 백제에서 손꼽는 맹장들이라는데
    김유신이 난동피우는걸 멍때리고 지켜만 보다니.. 왜 제가 답답하던지..
    그러고 보니.. 그 둘이 포옹하는 씬은.. 왜넣엇는지 참..

  7. BlogIcon 감성PD 2009.11.25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포스팅입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역사적인 사실도 많이 알고 가네요~~^^

  8. BlogIcon 걸어서 하늘까지 2009.11.25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가 역사와 많은 차이가 나는 군요. 지금부터라도 좀 더 꼼꼼한 실증을 거친후에
    드라마 제작을 하면 좋겠어요. 선덕여왕 참 재미있게 보고있는데 눈에 걸리는 게 너무 많아지네요~~^^;;

  9. BlogIcon 싱아 2009.11.26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저 부분 보면서 (黑 써있는부분) 참 의아 했는데.. 게다가 저는 개문 이라고 읽지 않고
    문개 라고 읽었습니다. 해방 전 까지는 오른쪽에서 왼쪽 으로 글을 썼던 것으로 알고 있어서요.
    조선시대 만들어진 현판만 보더라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썼지요.

    말씀하신대로 드라마라도 어느정도 선은 지켜야 되는데 , 이젠 판타지로 가는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네요. 뼈대는 있되 , 살은 내맘대로 랄까요..ㅋ

    좋은 포스팅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26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님의 말씀대로 우측 상단에서 아래쪽으로 다름 좌측으로 진행하지요..

      극중에서 대야성의 현판도 그랬고, 편지도 위의 방법대로 진행되어지요..
      단지 대야성 지도에서는 반대로..
      한마디로 자기들 맘대로.. ㅋㅋ

  10. 갓쉰동최고 2009.11.27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ㅋㅋㅋ 미실이 왕이어야 한다니깐요 ㅋㅋㅋㅋㅋ
    대백제 방어의 최후기지임을 설원등은 알고있는데도 말을 못하니 ㅋ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1.27 0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당.. 미실이 이름을 바꾸고 덕만으로 생활했다고 함 간단할 것을 왜 죽이는지 모르겠어용.. ㅋㅋ

  11. BlogIcon 조ㅁㅁ 2010.03.27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우리시조 조계룡 창령조인데 나와있다 ㅎㅎ

  12. BlogIcon 조ㅁㅁ 2010.03.27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우리시조 조계룡 창령조인데 나와있다 ㅎㅎ

  13. 조세빈 2010.05.23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녕조씨 후손입니다^^ 선덕여왕 드라마를 보면서 정말 짜증이 나다못해 어이가 없기까지 했었지요..
    참고로 '김인평'과 '조계룡'은 동일인물 입니다^^ 저희 시조 할아버지이신 '조계룡'은 비사벌가야(창녕)가야의 마지막 왕의 손자로 진흥왕때 조계룡의 아버지가 신라 진골로 편입이 되면서 진흥왕이 왕의 성씨인 김씨를 하사해서 경주 김씨가 됩니다. 그리고 진평왕이 어릴적부터 20살이 될때까지 왕궁에서 자라게해 성인이 된 후 정치에 입문시킵니다. 그리고 진평왕의 맏이 덕만공주가 혼기가 차자 혼인을 시켰는데 덕만공주가 남편의 후원을 얻어 가야계의 지지를 받아 왕이 될 준비를 하지요. 그러는 사이 정치분야에서 가야계의 세력이 커지자 장인인 진평왕이 사위 '김인평'을 서기631년 2월에 비사벌가야 왕손임을 인정하고 원래의 성씨인 조씨로서 복원시키면서 왕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조계룡이라 하사하고 갈문왕에 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진평왕이 붕어하자 선덕여왕은 3년상을 마치고 정식으로 즉위하면서 남편의 본명인 '인평'을 연호로 지정하였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시조 할아버지는 비사벌가야의 더 오래된 왕족이겠지만 조계룡의 아버지가 진흥왕에게서 경주김씨의 성을 하사받았었고 진평왕에게서 조계룡이 성과 이름을 하사받는 형식이 되면서 공식적인 시조가 된 것입니다. 지금도 시조 할아버지 제사때는 시조할머니인 선덕여왕의 제를 함게 올린다고 합니다. 선덕여왕이 죽었을당시 이미 노령이었던 조계룡은 선덕여왕이 붕어한 후 고향인 창녕지역으로 하향하여서 공식적으로 창녕조씨의 시조가 됩니다. 그리고 그 후 당시에는 상당히 장수한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선덕여왕과의 사이에서 5남2녀를 얻었지만 성골이었던 선덕여왕과 진골이었던 조계룡 사이에서는 진골만이 출생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진평왕의 동생 국반갈문왕의 딸로서 선덕여왕의 사촌동생 성골 승만공주가 왕위를 이어 진덕여왕이 됩니다.

    헉헉.. 워낙 역사가 방대하고 길고긴 집안이라서 이정도로 간략하는것도 힘드네요..
    그리고 사족을 단다면 '조계룡'은 태사의 자격으로 왕실 자녀들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일찍 요절한 선덕여왕의 배다른 아우인 왕자의 태사이기도 했고 김춘추의 태사이기도 합니다^^

  14. BlogIcon 웃겨ㅗ 2011.08.05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걍 드라마로 보면되지 따지기는..정통사극도 아니고 월화드라마에 하는거면 대충 허구픽션인걸 알아야지 역사사실에 다 맞춰쓰면 무슨재미로보냐?ㅋㅋㅋ 허참 잘난척하는것도 가지가지네

  15. BlogIcon Pussy Porn 2012.07.14 1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16.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7. BlogIcon emergency sleeping bag 2012.11.01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이 마흔일곱의 나이에 등극했다고 기록하고 있네요. 젊은 나이에 성조황고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

  18. BlogIcon invisible fence rochester ny hours 2012.11.06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

  19. BlogIcon ready store draper 2012.12.10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이는 한때 꿀벅지라는 말이 자신을 칭찬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꿀벅지라는 말이 가지는 성적인 취향임을 알았을 때 유이는 꿀벅지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20. BlogIcon invisible dog fence 2012.12.22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 다른 웹브라우저에서는 마우스 우측버튼과 부가기능(add-ons)등을 이용해 지원하고 있는 기능이기도 한

  21. BlogIcon waterproof matches nz 2013.01.02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의 생각이기 보다는 극히 개인적인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의 빈곤한 상상력의 산물이고 희망사항일 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 54회에서 비담이 덕만을 껴안고 자신의 감정을 들어낸다. 하지만 덕만은 비담을 내치며 주절주절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말한다. 요약하면 자신도 왕이지만 여자다, 하지만 왕권을 강화하고 삼국통일(삼한일통)을 위해서 멸사봉공 수처녀로 늙어 죽을 것이라는 뜻이다.

왕권의 강화의 최우선은 후사이고, 왕실인물들이 많아 지는 것이다. 왕실에 후사가 없으면 권력이 흔들린다. 왕실뿐아니고 일반 가정에서도 기본 상식에 속한다. 노처녀(?) 선덕여왕의 생각이기 보다는 극히 개인적인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의 빈곤한 상상력의 산물이고 희망사항일 뿐이다. 

여인인 덕만이 왕이 된다고 해서 왜 여러 남자를 거느리고 성을 문란하게 했냐는 비아냥이고, 덕만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삼국통일 사업에 매진해야 하는데 문란한 성생활로 신라를 위기에 빠트렸다는 비판일 뿐이다.
 

미세한 손떨림으로 덕만을 표현한 이요원



삼국유사에는 <음갈문왕>과 결혼을 했다 하고,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용수.용춘 형제와 을제와 흠반갈문왕 등 최소한 4명이 덕만과 결혼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나온다. 더불어 경주김씨의 족보에는 김인평이란 인물과 ,또다른 창령조씨 족보에는 <조계룡>이란 인물까지 덕만의 부군으로 있었다는 기록들을 볼 수 있다.

또한, 덕만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진덕(승만)은 진평왕의 동생인 국반갈문왕의 딸이지만, 덕만이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을 하여, 진덕은 덕만의 법률적, 법통으로 딸이 되어 자연스럽게 승만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또한, 김인평이나 조계룡의 후손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물론, 조계룡이나 김인평의 후손들이 선덕여왕 사이에 난 후손들인지 아니면 부군으로 있다가, 덕만이 후사가 없자 결혼관계가 끊어지고, 새로운 여인들 사이에 난 후손인지는 알 수 없다. 단, 이들 후손들은 자신들이 덕만과 자신들의 조상인 부군들 사이에 난 후손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전설과 신화에는 역사의 파편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전설에는 덕만(선덕왕)과 사이에난 왕자가 태백산을 유람하다 어여쁜 처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비녀소에 관한 전설도 남겨져 있다. 이를 본다면 덕만에게는 후사가 없었던 것이 아니고, 후사는 있었지만 왕이 되고 싶지 않는 왕자도 있었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아니면, 생물학적 아들은 아니고, 덕만의 무수히 많은 남편들의 아들 중에 하나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덕만의 남자들



역사의 몰이해를 넘어서 후손들을 농락한 작가들

선덕여왕 작가는 역사에 대한 몰이해뿐만 아니고, 만약, 이들 후손들이 선덕여왕을 보고 있다면, 대단한 실례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후손은 족보를 거짓으로 만든 사람이 되니 말이다. 일반 드라마라고 하더라도 지켜야할 금도가 있다.

하물며 신라를 재현하겠다는 사극은 기본적인 인물의 개인 신상정보는 왜곡하지 않는게 불문률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너무나 많은 잘못을 극에서 표출하고 있다. 이는 개인적인 창작의 자유와는 하등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고, 드라마의 금기인 극중 리얼리티를 깨트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서로 다른 인물들이라면 덕만은 최소한 7명의 남편들이 있었다는 결론이다. 덕만은 삼국일통을 꿈꾸지도 않았지만, 국가를 위해서, 또는 자신이 결혼을 하면 자신을 배경으로 권력을 탐하려는 자들이 많이 생기고, 부군으로 왕이 되고, 이들간에 싸움이 생겨 신라가 위기에 처할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은 당시 신라는 물론이고, 현실에서도 극히 위험한 발상이 된다.

덕만은 후사를 잇기 위해 철저히 여왕벌처럼 왕으로서 일을 끝까지 다하고 노력했다. 왕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적통을 이을 후손을 보는 일이다. 만약, 덕만이 이를 게을리 했다면 덕만은 왕의 자질이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덕만은 죽을 때 까지도 후사가 없음에 대해서 회한을 남기고 있다.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므로 그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것은 당나라 임금이 나에게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다. - 삼국유사 선덕왕 지기삼사 중 모란꽃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10/1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모란꽃 이야기는 나왔다? 나온다? 사실은
2009/07/23 -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모란씨 서되
2009/07/2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

하지만 드라마 작가에 의해서 덕만은 희화화 되어버렸다. 덕만과 마주칠 수 없는 미실을 등장시켜 덕만을 엿을 먹이더니 이제는 덕만의 치열한 삶까지도 희화화하여 엿을 먹이고 있는 중이다.

또한, 비담 김남길의 부상과 신종플루, 알천 이승효의 신종플루에 이어서 덕만 이요원이 피부병인 대상포진에서 벗어난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가채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신라시대 존재여부가 불투명한 가채를 머리에 이고 연기하는 노고를 하고 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보더라도 신라시대에 가채를 사용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또한, 한반도의 영향을 받고 있던 일본에서 조차도 당시 가채는 발견할 수 없다.

실제 가채가 활발히 사용된때는 조선시대 때 일이다. 오죽하면 조선시대에 가채금지령까지 내려졌겠는가? 설령 가채를 머리에 이고 있었다고 해도 지금 드라마에 나오는 가채만큼 무겁지도 않았다. 배우들의 연기가 아까울 정도로 대본의 완성도는 떨어진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이유는 쪽대본과 당일치기 촬영 때문이다.


누가 유신을 바보로 만드나?

유신과 계백(최원영)이 계백의 막사에서 대화를 한다. 유신은 계백이 보고 있는 지도에서 개문흑(開門黑)을 발견하고, 흙으로 시작하는 자가 대야성의 간자라고 이야기를 한다. 흑치상치라도 나올까 생각한다면 대단한 오해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소엽도에서 사구놀이를 하듯이 아주 재미있게 파자놀이를 하고 있다.

黑이 다른 (개문) 글자에 비해서 반자이다. 초딩보다 못한 유신


하지만, 미실이 대야성에서 멍청한 자살을 한것처럼 또다시 유신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흑(黑)자는 반자이다. 다른 개문의 글짜에 비해서 반쪽이고, 흑자가 가려져 있는 것이다. 글짜가 반이 가려있는지 아닌지를 쉬이 알수 있고 흑(黑)이 부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 초딩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신라의 중망을 얻고 상장군인 유신이 그것도 모르는 무지한 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흑(黑)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당연히 642년에 어쩔수 없이 신라를 배신(?)하고 백제에 귀부한 후 660년 8월 백제가 항복했을 때 사지를 찢기고 죽은 금일(검일)을 말한다. 검(黔)은 黑+今을 합한자이다. 

660년 8월 2일에 주연을 크게 베풀고 장병들을 위로하였다. 왕과 정방(定方) 및 여러 장수들은 대청마루 위에 앉고, 의자왕과 그 아들 융(隆)은 마루 아래 앉혀서 때로 의자왕으로 하여금 술을 따르게 하니 백제의 좌평 등 여러 신하들이 목메어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 날 모척(毛尺)을 붙잡아 목베었다. 모척은 본래 신라 사람으로서 백제에 도망한 자인데, 대야성의 검일(黔日)과 함께 도모하여 성이 함락되도록 했기 때문에 목벤 것이다. 또 검일을 잡아 [죄목을] 세어 말하였다. 네가 대야성에서 모척과 모의하여 백제 군사를 끌어들이고 창고를 불질러 없앰으로써 온 성 안에 식량을 모자라게 하여 싸움에 지도록 하였으니 그 죄가 하나요, 품석(品釋) 부부를 윽박질러 죽였으니 그 죄가 둘이요, 백제와 더불어 본국을 공격하였으니 그것이 세번째 죄이다. 이에 사지를 찢어 그 시체를 강물에 던졌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백제가 신라의 서쪽 40개성을 함락시켰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7월 40성을 빼앗기고, 대야성은 8월에 침공당한다.  대야성 전투는 40개성을 빼앗긴 후의 일이다. 그러니 덕만이 "백제의 전세가 심상치 않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위란지국이라고 해야한다. 한가히 백제가 대야성을 공격한게 한두번도 아니라고 이야기를 한다. 도대체 대야성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도 모르는 덕만의 신하들이다. 대야성은 신라 후방에 있는 성이다. 대야성까지 백제가 한두번도 아니고 여러번 침공했다면 신라는 망해도 벌써 망했을 것이다. "백제와 전쟁입니다. 대야성이 위험합니다"라는 대사가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최신글
2009/11/2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0살 김춘추 유승호 늙지 않는 이유 있다.

관련기사
2009/11/24 - [역사이야기] - 산으로간 선덕여왕 실제 즉위 전후 10년 무슨일이 있었을까? - 선덕여왕 최원영(계백) 왜?
2009/11/2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수출 좋지만 않는 이유?
2009/11/1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실제 언제 왕이 되었을까? 50살 전후? 20살 전후? - 삼국사기.유사기록을 토대로 본 통설을 깨자
2009/11/18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누란 위기, 귀신잡는 비담 복야회 소탕작전 - 삼서제도 역사와 무관한 사극
2009/11/1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극중 난진압후 덕만은 언제 왕위에 올랐을까? 사실은
2009/10/12 - [역사이야기] - 삼국사기, 화랑세기 기록으로 본 선덕여왕 미실(고현정) 언제 하차해야 하나?
2009/10/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이 결혼할수 없는 이유? 남편들이 죽어서..
2009/08/0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이전 여왕은 있었다. 첫번째는 누구?!
2009/11/1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을 우매한 자살로 이끈 작가들
2009/11/1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상식접근 미실 덕만 왕 자격 있을까? - 고현정 대야성 자살 하차로 본 극중 대야성과 현실 대야성
2009/11/1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50회, 미실 고현정 대야성 독 푼다고 눈물 흘리며 자살미화? - 제작자는 고현정 아름다운 하차 안티?
2009/11/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고현정 미실 최후 자살 죽음장소, 대야성 선택이유? 수노(手弩)는 왜(일본)산 최고?
2009/09/14 - [역사이야기] - 진평왕의 사위이며, 진평.춘추의 장인 보종
2009/10/09 - [역사이야기] - 원효.설총의 뿌리엔 미실, 설원랑, 보종 있다?
2009/10/2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의난은 칠숙의난? 사실은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BlogIcon rinda 2009.11.25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느끼는 것이지만 역사에 대해 해박하신 듯 합니다.
    제가 보았다면 무심코 그냥 지나쳤을텐데 말이죠ㅎㅎㅎ

    • BlogIcon 갓쉰동 2009.11.26 1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는 않을 겁니당.. 관심분야가 다른거지요.. 린다님은 다른 면에서 잘 보실거라 생각합니당... ㅋㅋ

  3. 손채림 2009.11.25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앗 근데 비담 신종 걸려서 제 친구들줄어요

  4. 유시 아ㅓㅏ 2009.11.25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ㄹ어

  5. 하하하 2009.11.25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계백이나 윤충이나, 백제에서 손꼽는 맹장들이라는데
    김유신이 난동피우는걸 멍때리고 지켜만 보다니.. 왜 제가 답답하던지..
    그러고 보니.. 그 둘이 포옹하는 씬은.. 왜넣엇는지 참..

  6. BlogIcon 감성PD 2009.11.25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포스팅입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역사적인 사실도 많이 알고 가네요~~^^

  7. BlogIcon 걸어서 하늘까지 2009.11.25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가 역사와 많은 차이가 나는 군요. 지금부터라도 좀 더 꼼꼼한 실증을 거친후에
    드라마 제작을 하면 좋겠어요. 선덕여왕 참 재미있게 보고있는데 눈에 걸리는 게 너무 많아지네요~~^^;;

  8. BlogIcon 싱아 2009.11.26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저 부분 보면서 (黑 써있는부분) 참 의아 했는데.. 게다가 저는 개문 이라고 읽지 않고
    문개 라고 읽었습니다. 해방 전 까지는 오른쪽에서 왼쪽 으로 글을 썼던 것으로 알고 있어서요.
    조선시대 만들어진 현판만 보더라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썼지요.

    말씀하신대로 드라마라도 어느정도 선은 지켜야 되는데 , 이젠 판타지로 가는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네요. 뼈대는 있되 , 살은 내맘대로 랄까요..ㅋ

    좋은 포스팅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26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님의 말씀대로 우측 상단에서 아래쪽으로 다름 좌측으로 진행하지요..

      극중에서 대야성의 현판도 그랬고, 편지도 위의 방법대로 진행되어지요..
      단지 대야성 지도에서는 반대로..
      한마디로 자기들 맘대로.. ㅋㅋ

  9. 갓쉰동최고 2009.11.27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ㅋㅋㅋ 미실이 왕이어야 한다니깐요 ㅋㅋㅋㅋㅋ
    대백제 방어의 최후기지임을 설원등은 알고있는데도 말을 못하니 ㅋ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1.27 0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당.. 미실이 이름을 바꾸고 덕만으로 생활했다고 함 간단할 것을 왜 죽이는지 모르겠어용.. ㅋㅋ

  10. BlogIcon 조ㅁㅁ 2010.03.27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우리시조 조계룡 창령조인데 나와있다 ㅎㅎ

  11. BlogIcon 조ㅁㅁ 2010.03.27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우리시조 조계룡 창령조인데 나와있다 ㅎㅎ

  12. 조세빈 2010.05.23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녕조씨 후손입니다^^ 선덕여왕 드라마를 보면서 정말 짜증이 나다못해 어이가 없기까지 했었지요..
    참고로 '김인평'과 '조계룡'은 동일인물 입니다^^ 저희 시조 할아버지이신 '조계룡'은 비사벌가야(창녕)가야의 마지막 왕의 손자로 진흥왕때 조계룡의 아버지가 신라 진골로 편입이 되면서 진흥왕이 왕의 성씨인 김씨를 하사해서 경주 김씨가 됩니다. 그리고 진평왕이 어릴적부터 20살이 될때까지 왕궁에서 자라게해 성인이 된 후 정치에 입문시킵니다. 그리고 진평왕의 맏이 덕만공주가 혼기가 차자 혼인을 시켰는데 덕만공주가 남편의 후원을 얻어 가야계의 지지를 받아 왕이 될 준비를 하지요. 그러는 사이 정치분야에서 가야계의 세력이 커지자 장인인 진평왕이 사위 '김인평'을 서기631년 2월에 비사벌가야 왕손임을 인정하고 원래의 성씨인 조씨로서 복원시키면서 왕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조계룡이라 하사하고 갈문왕에 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진평왕이 붕어하자 선덕여왕은 3년상을 마치고 정식으로 즉위하면서 남편의 본명인 '인평'을 연호로 지정하였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시조 할아버지는 비사벌가야의 더 오래된 왕족이겠지만 조계룡의 아버지가 진흥왕에게서 경주김씨의 성을 하사받았었고 진평왕에게서 조계룡이 성과 이름을 하사받는 형식이 되면서 공식적인 시조가 된 것입니다. 지금도 시조 할아버지 제사때는 시조할머니인 선덕여왕의 제를 함게 올린다고 합니다. 선덕여왕이 죽었을당시 이미 노령이었던 조계룡은 선덕여왕이 붕어한 후 고향인 창녕지역으로 하향하여서 공식적으로 창녕조씨의 시조가 됩니다. 그리고 그 후 당시에는 상당히 장수한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선덕여왕과의 사이에서 5남2녀를 얻었지만 성골이었던 선덕여왕과 진골이었던 조계룡 사이에서는 진골만이 출생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진평왕의 동생 국반갈문왕의 딸로서 선덕여왕의 사촌동생 성골 승만공주가 왕위를 이어 진덕여왕이 됩니다.

    헉헉.. 워낙 역사가 방대하고 길고긴 집안이라서 이정도로 간략하는것도 힘드네요..
    그리고 사족을 단다면 '조계룡'은 태사의 자격으로 왕실 자녀들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일찍 요절한 선덕여왕의 배다른 아우인 왕자의 태사이기도 했고 김춘추의 태사이기도 합니다^^

  13. BlogIcon 웃겨ㅗ 2011.08.05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걍 드라마로 보면되지 따지기는..정통사극도 아니고 월화드라마에 하는거면 대충 허구픽션인걸 알아야지 역사사실에 다 맞춰쓰면 무슨재미로보냐?ㅋㅋㅋ 허참 잘난척하는것도 가지가지네

  14. BlogIcon Pussy Porn 2012.07.14 1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15.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6. BlogIcon emergency sleeping bag 2012.11.01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이 마흔일곱의 나이에 등극했다고 기록하고 있네요. 젊은 나이에 성조황고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

  17. BlogIcon invisible fence rochester ny hours 2012.11.06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

  18. BlogIcon ready store draper 2012.12.10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이는 한때 꿀벅지라는 말이 자신을 칭찬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꿀벅지라는 말이 가지는 성적인 취향임을 알았을 때 유이는 꿀벅지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19. BlogIcon invisible dog fence 2012.12.22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 다른 웹브라우저에서는 마우스 우측버튼과 부가기능(add-ons)등을 이용해 지원하고 있는 기능이기도 한

  20. BlogIcon waterproof matches nz 2013.01.02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의 생각이기 보다는 극히 개인적인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의 빈곤한 상상력의 산물이고 희망사항일 뿐이다.

  21. BlogIcon 알바 추천 2017.12.01 19: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이전버튼 1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
갓쉰동
10-26 22:30
Yesterday14
Today13
Total977,544

글 보관함

최근에 올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