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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선덕여왕 31회에서

덕만과 소화의 모자상봉

덕만(이요원)이 만나도 만날수 없었던 소화엄마를 만났다. 이제 소화(서영희)를 죽음에 몰았다는 자책에서 벗어날수 있는 덕만이 복수를 하겠다는 믿음도 사라지는 것인가?


미실은 더이상 이용가치가 없다는 소화를 살려두려고 했지만, 어찌하여 미실(고현정)의 부하들은 소화를 죽이려 하였을까? 미실파의 균열이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미실파는 사다함의 책력을 찾을때 서로 의심하고 미실의 뒤를 캤었다.

칠숙이 진평왕시기에 이찬의 직위를 얻을 수 있었던 배경으로 덕만의 의붓어미인 소화를 살려주었기 때문이라고 설정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덕만의 이름처람 덕이 충만하였기 때문인가? 어째든 칠숙(안길강)이 정계에 진출하는 과정을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해진다.


전면에 등장하는 문노

8세 풍월주 국선 문노(정호빈)579~582

소화는 덕만에게 자신이 험한일을 당할뻔할 때 도움을 준 사람이 문노(정호빈)라고 말한다. 또한, 칠숙은 미실에게 문노가 나타났다고 이야기를 한다. 

비담 또한 문노의 제자라는 사실이 전해진다. 부제인 보종(백도빈)을 풍월주에 오르게하겠다고 미실은 말한다. 또한 칠숙을 통해서 미실파의 화랑의 단결을 모색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유신(엄태웅)에게 자신의 막내아들인 보종(설원랑/미실)을 잘 돌봐줄것을 요구한다. 보종은 579(80)년 생이다. 나이가 유신보다 15여세는 많았다. 하지만 미실의 눈에는 보종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로 보였던 것이다.


원상화가 되어  화랑의 스승이되고 무의 스승이 되도록 한다. 칠숙에게 문노와의 라이벌의식을 자극한다. 이에 칠숙은 자신을 믿어 달라고 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풍월주 위에는 <상선>이란 제도아닌 제도가 있다. 이는 전직 풍월주들의 모임처럼 비상설기구이다. 풍월주제도에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10화랑이 없었던것 처럼 원상화는 없다

문노는 비담의 이야기를 듣고 칠숙의 원상화 즉위(?)식에 참여를 한다. 문노는 국선의 빈자리를 다시 찾으려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31회의 하일라이트는 문노가 칠숙의 원상화 즉위식에서 벌린 무공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국선의 지위에 참여를 하겠다고 선언을 한다.

미실은 진흥왕의 명령으로 화랑의 체계를 세우고, 진지(금륜)을 폐하는데 같이하고, 미실이 자신이 윤궁과 결혼하게 만들어 주었는데 어찌하여 자신과 대립하여 덕만을 빼돌리고, 다시 돌아왔는가? 묻는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문노의 아내는 윤궁이고, 윤궁은 한번 결혼을 한 후 실패하였다. 그래서 미실이 윤궁에게 결혼하도록 부추켰다. 사실은 비보랑이 문노와 윤궁을 연결시켜준 메신저 였다. 윤궁은 우리 역사에도 유명한 거칠부(황종)의 딸이다.
 
거칠부는 임술년에 죽었다?
 

그런데 문노는 미실에게 자신의 장인인 "거칠부가 덕만과 천명인 쌍음이 태어나던날 죽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거칠부의 죽은 배후에 미실이 있는것이 아닌가? 물어본다. 잼있게도 거칠부의 사망년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거칠부의 사망년은 <임술년>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천명과 덕만의 출생일을 <임술년>이라고 주구장창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 문노의 입을 통해서 쌍생이 태어날때 죽은 거칠부는 임술년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임술년 언제 죽었을까? 궁금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2009/07/2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임술년생 덕만과 천명의 나이는 몇살? 기사를 일독하기 바란다. 읽기 귀찮은 사람을 위해서 간략이 요약하면 덕만과 천명은 임술년생이 될 수 없다는 글이다. 드라마상 임술년에 죽었다면 거칠부는 602년에 죽었다는 뜻이 된다. 거칠부가 아무리 장수를 했다고 해도 602년에 죽었겠는가?

진지왕 원년 병신(576)에 거칠부는 상대등이 되어 군사와 국가의 중대한 일을 맡았다가 늙어 집에서 죽으니 향년 78세였다. - 삼국사기 거칠부 열전

삼국사기 거칠부 열전기록에는 78세에 죽은것으로 나온다. 약간의 이설은 있지만 통설에는 502년에 태어나 579년에 죽은 것이 된다. 그렇다면 덕만과 천명은 579년생이란 뜻이 된다. 579년은 <기해>년이다. 덕만은 <임술>년 생인가? <기해>년 생인가? 최소한 극중에서만으로도 정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선덕여왕은 극중 내에서도 중구난방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작가는 정말 대책이 서질 않는다. 

KBS 개그 프로중에 재미있는 코너가 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라 부르니 아버지가 <호부>를 허락하지 않는다. 아들은 심각하게 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게 하냐고 눈물을 글썽인다. 요기까지는 딱 홍길동전이다.

그런데 반전이 숨어있다. 아버지가 이제부터는 어머니라고 부르라고 한다. 자신은 너를 낳고나서 남자로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것이다.

드라마상 어느순간에 덕만은 여왕이 아니고 알고보니 남자라고 해도 할말이 없다. 당시에 잠수함과 핵무기, 미사일이 나오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로 가장 기본적인 것도 도외시 할만큼 황당무개하다. 어쩌면 첨성대안에는 드라곤인 용이 살아 있거나, 태권브이가 숨어있을지 모른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27대 신라왕이 비담이였고, 덕만은 단지 비담의 여인으로 살다고 죽었다고 해도 그냥 그러려니 한다. 문제의 심각성은 선덕여왕 제작팀은 자신들의 입으로 "신라사를 재현했다"고 선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선덕여왕 제작팀은 제작의도와는 다르게 변한 선덕여왕 프로에 "역사적사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최소한 자막처리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어찌되었던 덕만은 백성에게 신권을 돌려주려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왕은 무엇인가? 신라왕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미실에 대한 분노가 왕이 될 수는 있지만, 분노가 왕의 조건이 되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 덕만이 왕이 되는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덕만에게 미실보다 무엇이 나은지 증명하라고 한다. 끝없는 게임속 미션의 연속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덕만이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면서 커가고 있는 성장드라마이다.

끝없는 사랑의 스토커 칠숙 사랑은 이뤄질까?


이뤄질수 없는 사랑 칠숙과 소화

칠숙은 한밤중에 소화를 찾아간다. 하지만 소화는 칠숙을 두려움에 멀리하고 도망친다. 물론, 소화는 칠숙으로 부터 받은 사랑을 잊지를 못한다.

그리고 칠숙이 이야기한 "둘이 산속에 들어가 살자"는 말을 회상하고 칠숙을  찾아나서지만, 칠숙은 어깨를 축 느리고 소화를 놓아주려 한다.


칠숙은 소화곁에 있지 못하고 미실을 따를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이야기한다.

미실을 만나고 온 칠숙를 소화가 찾아온다. 또한, 처음 대면했을때 너무 놀라 그랬다고 이야기를 한다. 칠숙은 소화가 놀란것으로 잊어 버렸던 기억을 다시 찾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칠숙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안타갑다는 듯 이야기한다. 아랫것들의 숙명이라고 말하는듯 한다.

덕만은 칠숙의 원상화에 대해서 자신을 잡으려던 집요함과 무술을 화랑들에게 잘 전수해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화랑들의 발전이 있을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화랑이 잘되겠느냐? 미실?" 하고 묻는 것이다. 덕만은 미실에게 "오래 살라"고 악담을 한 적도 있다.

국선 문노 제자인 비담의 성정

어린비담과 요람속 덕만

소화는 국선 문노에게 제자의 이름이 비담인지 물어본다. 문노는 비담이 어릴적 "비담아 너의 반려자가 될 공주"다 라고 이야기를 한다. 소화는 비담이 진지와 미실사이에 난 아들임을 문노로 부터 들은것 같다.

그래서 소화는 비담과 덕만을 결혼시킬 수 없어서 문노를 피해 사막으로 피신을 한다. 결국은 칠숙도 피하고, 문노도 피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롭고 평화롭게 덕만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한것이다. 터미네이터 칠숙만 아니라면 덕만과 소화는 행복하게 살아가지 않았을까?


문노는 이미 비담이 진지와 미실사이에 낳은 아들임을 알고 있었고, 진지는 미실이 자신의 아들 비담을 버릴것을 알고 문노에게 부탁한것이다. 문노는 비담을 덕만과 결혼을 시키고, 사위왕을 만들어 신라를 접수한후 진흥왕(이순재)의 유지를 받들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소화가 문노에게서 벗어난 이유중에 하나가 비담(진지/미실)의 어미가 미실이고, 그런 비담을 덕만과 혼인을 시킬 생각을 한 문노로 부터 벗어 나는 것이이다.

어린 비담이 죽인 유민들

문노는 소화에게 "그때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문노와 소화의 대화를 들은 비담은 자신과 덕만이 결혼을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비담은 옛일을 회상한다. 그리고 문노가 덕만과 결혼시킬 계획을 철회시킨 이유를 상기한다.  


동굴속에 숨어 있던 유민들을 솥에 독을 타서 죽여버린다. 그런데 어린 비담은 자신이 "다 죽여버렸다"는 사실을 태연히 말한다. 이런 비담을 본 문노는 비담의 성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의 납량극을 보는것 처럼 섬뜩하다.

그런데 왜 문노는 비담에서 무술을 전수 하고, 책략과 계략들과 가야의 암어를 해독하는 방법까지 전수를 했을까? 대부분 무협사극에서는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정상적인 사부는 무공을 폐하고 마는데 말이다. 결국엔 비담이 반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문노가 키웠다는 뜻인가?


새로운 꿈을 꾸는 비담

비담은 "내가 만일 덕만과 결혼할 수 있다면 신라의 왕좌가 내가 될수 있다"는 꿈(반역)을 꾼다.

그런데 과연 비담은 647년 1월 덕만을 향해서 반란을 획책했을까?

하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삼국사기를 자세히 본다면 비담은 덕만을 향해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덕만의 뒤를 이은 진덕(승만)을 향해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비담이 명분으로 내 세운 "여왕은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과거형이 아닌 미래형이다.
비담이 난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2009/08/3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이 덕만을 배신했다고?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풍월주의 지위 계승
 

14세 풍월주 호재(호림) 고윤후역 602~612년까지 풍월주

<선덕여왕>에서는 화랑의 전통에 따라 15세 풍월주를 세우려고 한다. 그런데 비재를 통해서 풍월주를 만들려고 한다고 했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비재를 통해서 풍월주를 세우지는 않는다. 단지 현재의 풍월주의 부제가 다음 풍월주에 오르는 것 뿐이다.

예외가 있다면 유신의 아비인 서현은 12세 보리가 풍월주에 있을 때 처음 부제에 있었다.
하지만, 13세 풍월주가 되는 용춘을 위해서 부제의 지위를 용춘에게 물려준다. 그리고 용춘은 보리의 뒤를 이어 596년 13세 풍월주에 오른다. 그리고 602년 14세 풍월주인 호재(림)은 612년까지 장기집권한다.


14세 풍월주인 호재(림)의 뒤을 이어 15세 풍월주에 오른 이는 유신이다. 그런데 유신이 풍월주에 오른때는 612년 18세가 되던 때이다. 지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재를 주관하는 국선 문노는 8세 풍월주 였는데, 문노는 606년에 죽는다.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식으로 비재를 통해서 풍월주를 세웠다면 보종이 가장 뛰어난 기재라고 말을 하지만, 602년 부터 612년까지 횟수로 11년을 장기집권한 14세 풍월주 호림(호재)가 무공과 기예와 전략전술등이 가장 앞서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호재가 뛰어나다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다. 불쌍한 호재가 되시겠다. 


KBS2에서는 선덕여왕과 같은 시간때에 월화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방영하고 있다. 그런데 선덕여왕은 전설의 고향을 패러디 하고 있는 것인가? 어짜피 전설의 고향은 선덕여왕에 비해서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데 선덕여왕에서까지 납량극을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606년 죽은 문노가 612년 무슨일로 있지도 않는 풍월주 비재를 주관하느냐 말이다. 그럼 미실은 612년에 살아 있었을까? 이와관련해서는 다음에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선덕여왕이 주는 재미는 개그 모드

비재에서 보종과 유신이 다툰다. 각각 지지하는 낭도들이 보종과 유신을 두고 싸운다. 죽방은 "백만 스물하나, 백만 스물둘, 백만 스물셋의 유신"에 대항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는 유명세를 탄 건전지 광고의 <패러디>다. 이처럼 선덕여왕에는 현재의 일을 교묘히 극에 넣어 재미를 추가 한다. 선덕여왕에서 이전에는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의 대화에서 류담의 달인개그를 차용하여 재미를 준적도 있다.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의 대화에서 "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자 류담이 왜 계속 같은 말을 하냐고 그만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러자  죽방 자신은 처음이야기한것이라고 말한다. 류담이 그러자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처음하는거냐? 라고 이야기 한다.  류담은 KBS 개그콘서트 김병만과 함께 달인코너를 하고 있다. 류담이 들은 어디선가 누군가에 들었던 '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말라"는 김병만에게서 귀에 딱지가 붙도록 들은 이야기다. 이를 드라마에 접목을 시킨것이다.

사극은 과거의 극 같지만 알고 보면 현재를 투영해서 과거를 보는 극이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2009/09/0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천추태후 사극의 묘미는 현실풍자 기사를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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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_- 2009.09.08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부분 읽다 말았습니다.
    미실은 소화를 처리하라고 했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은 많이 아시는듯 하나 드라마를 평하시려면 드라마도 똑바로 보셔야지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8 15: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처럼 단순하게 생각하면 처리 죽음으로 생각되는거지요.. 죽이면 파렴치범이 안되는건가요? 대락난감.. 극을 소화할 능력이 안되면 그냥 보셈..

  3. ee 2009.09.08 1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이소화살려주려고한건아닌데요
    잘못보신것같네요
    이용가치가없으니죽이라고..직접말한건아니지만..
    빗대서말한거죠..

    • dd 2009.09.08 1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윗분말씀이 맞아요
      게시자분 잘못 알고 있네요
      미실은 소화를 없애라는투로 말했지
      소화를 살려주라고 한적 없습니다
      방송 다시보세요
      미실이 시켜서 죽이려한거죠

    • BlogIcon 갓쉰동 2009.09.08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인질범이냐? 파렴치범인줄 아느냐? 이제 소화의 용도는 없다. 그러니 죽여라는 뜻인것 같아요?

      그냥 냅두라는 뜻입니다.. 어디로 가던 상관없이..

    • 아이고 2009.09.08 2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갓쉰동아
      미실의 표정에 다 드러나 있단 말이다.ㄱ-
      드라마가 괜히 있냐
      살리라는 뜻이면 그냥 장면이 빨리 전환되었겠지만
      표정연기가 괜히 있냔 말이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9 0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당신 같은 아랫것들 생각이고.. 그런데 언제 봤다고 반말이셈..

  4. ㅋㅋ 2009.09.08 1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보면서 다들 역사 타령이실까. 이건 드라마인데.ㅋㅋ 그냥 재밌게들 보세요. 아니면 보지들 마시고 역사스페셜이나 보시면 될듯..보면서 열받아 하실까.ㅋㅋ 웃기당.ㅋ

  5. BlogIcon 안랩맨~ 2009.09.08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안철수연구소블로그지기 안랩맨~입니다.

    마치 역사책을 보는 듯이
    자세히 서술해 놓으신 포스팅이
    압권이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가겠습니다. ^^

  6. 배리굿 2009.09.08 1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재미있는 드라마 칼람입니다..
    유용해요..
    재미도 있고,
    국사공부도 되고..
    해설이 너무 감칠맛이 나요..

  7. 알천랑짱 2009.09.08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단 글 잘읽었습니다. 긴글 쓰신다고 수고하셨네요...^^

    근데 본문글을 보면 필요 이상으로 좀 비딱하게 보신듯한 해석이 있어서 한줄 남깁니다.

    미실의 부하가 소희를 처지하는 문제에서 굳이 미실파의 균열이라기 보단 그냥 지나친 충성이나 우매한 부하들의 지나친 반응 정도로 해석할수도 있지 않을까요?

    또한 드라마상의 덕만의 대사에서도 분명 있었지만 덕만이 미실에게 오래 살아라 라고 얘기한건 악담이라기보단 미실과 대화를 놔누면서 덕만이 많은 깨우침을 얻어서 그런말을 했다고 생각이 듭니다만...

    그리고 한두가지를 보태거나 과장을 했다 해서 드라곤이나 태권브이처럼 100, 200까지 뻥을 칠거다라는 식의 해석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역사를 토대로 한거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재미를 위해 어느정도의 과장은 작가의 권한이라 생각합니다. 하나하나 사실을 따져가면 보는건 오히려 그드라마의 재미를 저해하는 요소는 아닐런지요.

  8. Tkdrldur 2009.09.08 1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너무 횡설수설하네요....

  9. 비상구 2009.09.08 15: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이 미실에게 오래 살라는 "악담"을 했다는 부분에서 뿜었습니다. ^^;;
    그걸 악담으로 이해하시는 분이 드라마에대해서 논하는게 어이없어 댓글 남기고 갑니다.
    아직 진위 여부조차 불분명한 화랑세기를 무슨 전가의 보도처럼 들먹이며 드라마와 빗대는 글은 이제는 자제를 하심이 어떨까 싶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8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님보다 잘 해석할텐뎅..악담을 악담으로 받아들이는 님의 글 읽는 솜씨는 보니.. 님같은 분 때문에 선덕여왕이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당..

    • BlogIcon 갓쉰동 2009.09.08 1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불분명한 화랑세기를 인용한 건 선덕여왕인데요..그것도 모본으로 삼았지요..그리고 신라사를 재현한다고 공공연히 발표하고, 가르치겠다고 했거든요..

      저는 화랑세기 너무나 의심스러워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선덕여왕이 그것을 역사서로 인정하고 만들었는데..그레 맞추어 비판하는거지요.

      그리고 이번글은 딱 삼국사기 열전 한줄을 인용했을 뿐입니다.. 기해년생이냐? 임술년생이냐? 답은 님이 찾으셈.. 물론, 님이 이전에 알고 있었다고 보지는 않지만요..

    • 비상구 2009.09.08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훗..여전히 덕만이 미실에게 오래 살라는 "악담"을 했다고 하시는군요. 드라마 다시보기를 꼭 권장합니다. 덕만이 유신에게 미실에게 오래 살라는 말을 하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구구절절히 말을 해주니까요.

      그리고 기해년생이던 임술년생이던 물론 이전에도 알고 있지 않았고, 앞으로도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같은 고등학교때 배운 알량한 국사지식을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사람에게는 선덕여왕 정도면 사극은 충분한 의미이기 때문이죠.

      그런면에서 선덕여왕이 님의 폭넓고 깊은 역사지식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월화드라마가 아니라 주말 MBC역사스페셜로 방송이 되어야 될 듯 싶네요. ^^;;
      MBC에 한번 건의해보시죠.

    • BlogIcon 갓쉰동 2009.09.09 0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처럼 생각하는 분들 때문에 사극이 중요한겁니다. 알고 보면 상관없지만, 님처럼 모르면서도 드라마를 보고 역사이야기를 한단말이지요..

  10. 김지연 2009.09.08 16: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 미실이 소화가 더이상 필요없다고 보종에게 명을 내렸지요. 알아서 처리하라고..(죽이라는 뜻..)

    • BlogIcon 갓쉰동 2009.09.08 16: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의 해석도 맞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음 대목이 있잖아요.. 인질극이나 하는 파렴치범으로 만들것인가? 이제 소화의 용도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죽여라라고 해석하면 안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이전 미실파 내에서 삐끄덕 거린 내용도 첨가 했잖아요.. 해석은 각자.. 이정도로 하지요.. ^___^

  11. BlogIcon 사회적 책임차원에서... 2009.09.08 16: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을 즐겨보는 시청자로서..
    이제는 제작진들의 변을 들어봐야 할 시기가 왔다고 봅니다.
    그동안 수많은 엇갈림으로 역사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있어 왔지만..
    계속해서 이런식으로 방치되서는 안될 것이며..
    제작진의 기본 제작의도는 살펴볼수 있는 기회는 꼭 있어야 된다고 사료됨.
    왜냐하면 진정한 국민드라마가 되고자 한다면..

    • BlogIcon 갓쉰동 2009.09.08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데 반응을 안하는게 선덕여왕의 특기입니다..

      처음.. 칠성이 8성이 된다는 건 과학적 사실이라고 반론을 제기한 것 같은데..그외는 보지 못했음..

      저야 북두칠성은 자세히 보면 8성이란 사실을 그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덕여왕팀의 손을 들어주었지만요..

  12. 크로버 2009.09.08 1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비담이. 마치... 열강에.... 한비광 같아 보였슴. ㅋㅋㅋㅋ
    어릴적 동굴속 살인 보구 ㅋㅋㅋㅋ 제가 다 죽였어요 ... 아무 꺼리낌없이....
    신지 전사ㅋㅋ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09.09 0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섬뜩하지요.. 저 그릇에 무엇을 담을 건가는.. 문노의 책임도 있겠지요.. 무단한 노력을 했겠지만. ㅋㅋ

  13. 다오라 2009.09.08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의 전개나 주어 생략이나 조사 사용까지.. 친절한 글은 아니었지만 끝까지 읽었습니다.

    사람마다 역사극을 보는 시각이 다르겠죠.
    어떤이는 실제 역사와 너무 다르다며 비판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이는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며 그저 즐기자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같은 드라마를 보고도, 같은 대사를 듣고도 저렇게 다르게 해석할 수 있나, 라는 생각은 드네요.
    미실은 '소화는 더이상 필요없다.' 라며 '시정잡배들 처럼 인질극이나 해야겠냐"라고 하지요.
    살려두고 인질극이나 벌이는 짓은 하지 않겠으니 죽이라는 말이지요.

    그 부분을 두고, 미실이 어떻게 살려두고자 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쫌 의문이 드네요.
    필요없다고 한 것은 살려둘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요.
    만약 살아서 덕만과 만나게 될 경우, 자신이 소화를 데리고 있었다는 것을 덕만이 알게되면 곤란해질테니까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9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별것도 아닌것에 집착들을 하시넹 해석상의 문제를 왜 집착하지요..
      죽일년놈이면 죽이라고 하는뎅. 미실은.. 월천을 죽이라고 하잖아요. 필요없으니..

      그러니 집착하지 마셈.. 윗놈은 처리하라고 하고, 밑엣놈은 알아서 기는게 상례이니.. 밑엣놈은 죽이려했나 보다 하면 되지요..

  14. sloth 2009.09.08 1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글 재미있게 읽었구습니다. ^^

    저 역시 드라마의 설정과 역사적 사실의 차이점을 찾아보는 것이 드라마를 보는 또다른 재미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차이가 제작진과 작가를 비난할 일인지는 모르겠군요. '드라마 선덕여왕'은 '조선왕조실록'같은 정사를 담은 드라마가 아니고 역사스페셜 류의 '역사 다큐멘터리'도 더더욱 아닙니다.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악역인 미실의 존재자체가 위작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드라마는 애초에 미실이 등장하면서부터 역사환타지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미실의 나이와 관련해 그 불합리함을 포스팅을 하실 예정이라고 쓰여있습니다만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지 못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불합치함'을 증명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요?

    그리고 님께서 캡쳐하신 기획의도에는 '신라를 재현했다'고 되어있지. '신라사를 재현했다'고는 되어있지 않습니다만 너무 민감하신 것이 아닌 것은 아닌지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9 0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극과 드라마를 혼동들을 하시넹.. 대략난감.
      판타지 사극을 표방했다면 별생각없습니다. 그저 역사는 이렇다고만 이야기하고 지나갔을 겁니다. 물론, 판타지도 출생일은 지킵니다.. 극중에선.. 죽인담에 살리는 한이 있더라도..

  15. over-_-still 2009.09.08 1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화를 처리하려는 방해한 자가 저자입니다" 한 화랑이 미실에게 당당히 말하는 것으로 보아
    죽이라는 명이 맞습니다 ~ 이걸로 분열이라고 까지 해설할 것이야... 그나저나 글 잘읽고갑니다 재밌었습니다.

  16. 칭찬과비평 2009.09.08 2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체적인 글은 잘 읽었습니다. 장문의글을 올린신 점 칭찬해드리고 싶습니다.

    전체적인 구성이 좀 더 매끄러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문맥이 이리저리 튀어서 글을 읽다가 길을 잃어버리겠더군요.
    좋은 다이아몬드 원석을 잘 다듬으셨다면 최고의 뷔어가 되시리라 믿습니다.

    드라마가 역사를 얼마나 반영하는가는 정답은 없다고봅니다.

    새로운 극의 창작은 작가의 권리라 봅니다. 아쉽다고 지적하신 사전고지는 선덕여왕팀에서 받아들이셔야 할 부분이라고 동감합니다.

    전체적인 선덕여왕의 극 구성은 잘 된 작품이라고 느껴집니다.

    반전이 있고 시청자의 헛점을 파고 드는 점도 괜찮고 현실의 우리 삶을 과거의 역사극을 통해 반영해볼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역사 다큐멘타리였다면 글쓴이의 지적이 더욱 깊이 와닿았을겁니다. 다만, 이 작품이 픽션이 허용되는 드라마라는 점은 오히려 작가의 상상력과 현대 우리 삶과의 연관고리가 더 흥미진지해졌고

    신라시대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테마를 제공한 점에 오히려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건 드라마의 인기와 연관이 있을 겁니다. 잘 보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8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지적은 항상 받는것이니.. 주의를 하겠습니다.. 다만,, 내용이 극과 역사를 비교하는 글이고 비평이 추가된 것임을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선덕여왕은 잘 만들어진 드라마입니다만, 사극으로써는 0점에 가깝습니다..

      소설원작의 부실함이 드라마에 피해를 주고 있지요.. 작품내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는 주인공의 출생도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면 문제가 심각하겠지요.. 그것을 지적하는 글입니다..

  17. ㅈㄷㄱ 2009.09.08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분들이 보시는 글일텐데 님 마음대로 주관적으로해석하시고
    객관적인것처럼 설명하시면 안되죠^^
    미실은 소화를 알아서 처리하라고(죽이라고)한게 맞고요

    오래살라고한것도 앞뒤 내용봐서도 악담은 아닌거같지않나요^^
    분명 덕만은 어쩐지그런생각이들었습니다 라고하면서 진심임을드러냈구요
    미실은 그애를 안아주고싶었다고 했지않나요 근데이게악담인가요ㅋ

    긴글 잘 봤구요 다음에올릴땐 좀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내용을 올려주셨으면 하네요^^

  18. BlogIcon 불탄 2009.09.08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 역시 잘 읽어보았습니다.
    글에는 작가의 몫과 독자의 몫이 있다고 봅니다.
    어찌되었건 읽는 독자에게는 자신이 읽은 글에 대해 취와 사를 적절히 선택해야 할 것 같아요.
    자신의 의견을 글쓴이에게 너무 강요하는 것도 좋아보이지는 않네요.
    댓글들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에 한 줄 써 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9 0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각자 알아서 판단할문제를 왜 왈가 불가하는지 모르겠네요.. 개판으로 만든 선덕여왕원작자에나 할 말을..

  19. BlogIcon 도희* 2009.09.08 2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다음 주에나 볼텐데~ '선덕여왕'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군요..ㅎㅎ
    사실, 홀수 회는 자꾸 못보고 짝수 회와 리뷰들로 내용을 파악하고 있어요..ㅡ.ㅡ;
    굳이 꼬박꼬박 안챙겨봐도 내용이 파악되기도 하고~;

    오늘도~ 재밌게 읽고 가요~^^
    전~ 갓쉰동님 글 읽으면 항상 즐겁습니다..ㅋㅋ

  20. 비담이^^ 2009.09.09 0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은 더이상 이용가치가 없다는 소화를 살려두려고 했지만, 어찌하여 미실(고현정)의 부하들은 소화를 죽이려 하였을까?'라고 하셨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셨죠? 분명 극중에선 미실이 "이젠 내게 소화가 쓸모없으니 처리(!)하세요"라고 했잖아요??

    • 김우원 2009.09.09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이분도 참 객관적인걸 주관적인거라며 토스하시면 어떡하심 . . 댓글 중반부터는 본인도 이제 아셨을듯한데 일부러 그러시는건가 ?

    • BlogIcon 갓쉰동 2009.09.09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처리해를 몰라서 그랬을것 같아요..단순해서 좋겠어요..

  21. 노랫소리- 2009.09.09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재밌게 읽었네요.
    더불어 댓글까지.

    근데 글쓴이님.
    댓글들에 리플 다는 말투를 보니 점점 기분이 상하게 되네요.
    많은 사람들이 글쓴이의 의견에 아니지 않느냐는 그들의 의견을 얘기하는데
    그에 대한 글쓴이님의 리플들은 더이상 의견이 아니라 시끄럽다, 닥쳐라, 모르면 가만있어라.
    이런 느낌이 다분히 드는군요.

    본인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의 의견도 수용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선덕여왕 31회에서

덕만과 소화의 모자상봉

덕만(이요원)이 만나도 만날수 없었던 소화엄마를 만났다. 이제 소화(서영희)를 죽음에 몰았다는 자책에서 벗어날수 있는 덕만이 복수를 하겠다는 믿음도 사라지는 것인가?


미실은 더이상 이용가치가 없다는 소화를 살려두려고 했지만, 어찌하여 미실(고현정)의 부하들은 소화를 죽이려 하였을까? 미실파의 균열이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미실파는 사다함의 책력을 찾을때 서로 의심하고 미실의 뒤를 캤었다.

칠숙이 진평왕시기에 이찬의 직위를 얻을 수 있었던 배경으로 덕만의 의붓어미인 소화를 살려주었기 때문이라고 설정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덕만의 이름처람 덕이 충만하였기 때문인가? 어째든 칠숙(안길강)이 정계에 진출하는 과정을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해진다.


전면에 등장하는 문노

8세 풍월주 국선 문노(정호빈)579~582

소화는 덕만에게 자신이 험한일을 당할뻔할 때 도움을 준 사람이 문노(정호빈)라고 말한다. 또한, 칠숙은 미실에게 문노가 나타났다고 이야기를 한다. 

비담 또한 문노의 제자라는 사실이 전해진다. 부제인 보종(백도빈)을 풍월주에 오르게하겠다고 미실은 말한다. 또한 칠숙을 통해서 미실파의 화랑의 단결을 모색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유신(엄태웅)에게 자신의 막내아들인 보종(설원랑/미실)을 잘 돌봐줄것을 요구한다. 보종은 579(80)년 생이다. 나이가 유신보다 15여세는 많았다. 하지만 미실의 눈에는 보종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로 보였던 것이다.


원상화가 되어  화랑의 스승이되고 무의 스승이 되도록 한다. 칠숙에게 문노와의 라이벌의식을 자극한다. 이에 칠숙은 자신을 믿어 달라고 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풍월주 위에는 <상선>이란 제도아닌 제도가 있다. 이는 전직 풍월주들의 모임처럼 비상설기구이다. 풍월주제도에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10화랑이 없었던것 처럼 원상화는 없다

문노는 비담의 이야기를 듣고 칠숙의 원상화 즉위(?)식에 참여를 한다. 문노는 국선의 빈자리를 다시 찾으려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31회의 하일라이트는 문노가 칠숙의 원상화 즉위식에서 벌린 무공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국선의 지위에 참여를 하겠다고 선언을 한다.

미실은 진흥왕의 명령으로 화랑의 체계를 세우고, 진지(금륜)을 폐하는데 같이하고, 미실이 자신이 윤궁과 결혼하게 만들어 주었는데 어찌하여 자신과 대립하여 덕만을 빼돌리고, 다시 돌아왔는가? 묻는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문노의 아내는 윤궁이고, 윤궁은 한번 결혼을 한 후 실패하였다. 그래서 미실이 윤궁에게 결혼하도록 부추켰다. 사실은 비보랑이 문노와 윤궁을 연결시켜준 메신저 였다. 윤궁은 우리 역사에도 유명한 거칠부(황종)의 딸이다.
 
거칠부는 임술년에 죽었다?
 

그런데 문노는 미실에게 자신의 장인인 "거칠부가 덕만과 천명인 쌍음이 태어나던날 죽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거칠부의 죽은 배후에 미실이 있는것이 아닌가? 물어본다. 잼있게도 거칠부의 사망년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거칠부의 사망년은 <임술년>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천명과 덕만의 출생일을 <임술년>이라고 주구장창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 문노의 입을 통해서 쌍생이 태어날때 죽은 거칠부는 임술년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임술년 언제 죽었을까? 궁금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2009/07/2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임술년생 덕만과 천명의 나이는 몇살? 기사를 일독하기 바란다. 읽기 귀찮은 사람을 위해서 간략이 요약하면 덕만과 천명은 임술년생이 될 수 없다는 글이다. 드라마상 임술년에 죽었다면 거칠부는 602년에 죽었다는 뜻이 된다. 거칠부가 아무리 장수를 했다고 해도 602년에 죽었겠는가?

진지왕 원년 병신(576)에 거칠부는 상대등이 되어 군사와 국가의 중대한 일을 맡았다가 늙어 집에서 죽으니 향년 78세였다. - 삼국사기 거칠부 열전

삼국사기 거칠부 열전기록에는 78세에 죽은것으로 나온다. 약간의 이설은 있지만 통설에는 502년에 태어나 579년에 죽은 것이 된다. 그렇다면 덕만과 천명은 579년생이란 뜻이 된다. 579년은 <기해>년이다. 덕만은 <임술>년 생인가? <기해>년 생인가? 최소한 극중에서만으로도 정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선덕여왕은 극중 내에서도 중구난방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작가는 정말 대책이 서질 않는다. 

KBS 개그 프로중에 재미있는 코너가 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라 부르니 아버지가 <호부>를 허락하지 않는다. 아들은 심각하게 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게 하냐고 눈물을 글썽인다. 요기까지는 딱 홍길동전이다.

그런데 반전이 숨어있다. 아버지가 이제부터는 어머니라고 부르라고 한다. 자신은 너를 낳고나서 남자로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것이다.

드라마상 어느순간에 덕만은 여왕이 아니고 알고보니 남자라고 해도 할말이 없다. 당시에 잠수함과 핵무기, 미사일이 나오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로 가장 기본적인 것도 도외시 할만큼 황당무개하다. 어쩌면 첨성대안에는 드라곤인 용이 살아 있거나, 태권브이가 숨어있을지 모른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27대 신라왕이 비담이였고, 덕만은 단지 비담의 여인으로 살다고 죽었다고 해도 그냥 그러려니 한다. 문제의 심각성은 선덕여왕 제작팀은 자신들의 입으로 "신라사를 재현했다"고 선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선덕여왕 제작팀은 제작의도와는 다르게 변한 선덕여왕 프로에 "역사적사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최소한 자막처리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어찌되었던 덕만은 백성에게 신권을 돌려주려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왕은 무엇인가? 신라왕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미실에 대한 분노가 왕이 될 수는 있지만, 분노가 왕의 조건이 되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 덕만이 왕이 되는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덕만에게 미실보다 무엇이 나은지 증명하라고 한다. 끝없는 게임속 미션의 연속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덕만이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면서 커가고 있는 성장드라마이다.

끝없는 사랑의 스토커 칠숙 사랑은 이뤄질까?


이뤄질수 없는 사랑 칠숙과 소화

칠숙은 한밤중에 소화를 찾아간다. 하지만 소화는 칠숙을 두려움에 멀리하고 도망친다. 물론, 소화는 칠숙으로 부터 받은 사랑을 잊지를 못한다.

그리고 칠숙이 이야기한 "둘이 산속에 들어가 살자"는 말을 회상하고 칠숙을  찾아나서지만, 칠숙은 어깨를 축 느리고 소화를 놓아주려 한다.


칠숙은 소화곁에 있지 못하고 미실을 따를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이야기한다.

미실을 만나고 온 칠숙를 소화가 찾아온다. 또한, 처음 대면했을때 너무 놀라 그랬다고 이야기를 한다. 칠숙은 소화가 놀란것으로 잊어 버렸던 기억을 다시 찾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칠숙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안타갑다는 듯 이야기한다. 아랫것들의 숙명이라고 말하는듯 한다.

덕만은 칠숙의 원상화에 대해서 자신을 잡으려던 집요함과 무술을 화랑들에게 잘 전수해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화랑들의 발전이 있을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화랑이 잘되겠느냐? 미실?" 하고 묻는 것이다. 덕만은 미실에게 "오래 살라"고 악담을 한 적도 있다.

국선 문노 제자인 비담의 성정

어린비담과 요람속 덕만

소화는 국선 문노에게 제자의 이름이 비담인지 물어본다. 문노는 비담이 어릴적 "비담아 너의 반려자가 될 공주"다 라고 이야기를 한다. 소화는 비담이 진지와 미실사이에 난 아들임을 문노로 부터 들은것 같다.

그래서 소화는 비담과 덕만을 결혼시킬 수 없어서 문노를 피해 사막으로 피신을 한다. 결국은 칠숙도 피하고, 문노도 피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롭고 평화롭게 덕만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한것이다. 터미네이터 칠숙만 아니라면 덕만과 소화는 행복하게 살아가지 않았을까?


문노는 이미 비담이 진지와 미실사이에 낳은 아들임을 알고 있었고, 진지는 미실이 자신의 아들 비담을 버릴것을 알고 문노에게 부탁한것이다. 문노는 비담을 덕만과 결혼을 시키고, 사위왕을 만들어 신라를 접수한후 진흥왕(이순재)의 유지를 받들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소화가 문노에게서 벗어난 이유중에 하나가 비담(진지/미실)의 어미가 미실이고, 그런 비담을 덕만과 혼인을 시킬 생각을 한 문노로 부터 벗어 나는 것이이다.

어린 비담이 죽인 유민들

문노는 소화에게 "그때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문노와 소화의 대화를 들은 비담은 자신과 덕만이 결혼을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비담은 옛일을 회상한다. 그리고 문노가 덕만과 결혼시킬 계획을 철회시킨 이유를 상기한다.  


동굴속에 숨어 있던 유민들을 솥에 독을 타서 죽여버린다. 그런데 어린 비담은 자신이 "다 죽여버렸다"는 사실을 태연히 말한다. 이런 비담을 본 문노는 비담의 성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의 납량극을 보는것 처럼 섬뜩하다.

그런데 왜 문노는 비담에서 무술을 전수 하고, 책략과 계략들과 가야의 암어를 해독하는 방법까지 전수를 했을까? 대부분 무협사극에서는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정상적인 사부는 무공을 폐하고 마는데 말이다. 결국엔 비담이 반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문노가 키웠다는 뜻인가?


새로운 꿈을 꾸는 비담

비담은 "내가 만일 덕만과 결혼할 수 있다면 신라의 왕좌가 내가 될수 있다"는 꿈(반역)을 꾼다.

그런데 과연 비담은 647년 1월 덕만을 향해서 반란을 획책했을까?

하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삼국사기를 자세히 본다면 비담은 덕만을 향해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덕만의 뒤를 이은 진덕(승만)을 향해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비담이 명분으로 내 세운 "여왕은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과거형이 아닌 미래형이다.
비담이 난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2009/08/3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이 덕만을 배신했다고?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풍월주의 지위 계승
 

14세 풍월주 호재(호림) 고윤후역 602~612년까지 풍월주

<선덕여왕>에서는 화랑의 전통에 따라 15세 풍월주를 세우려고 한다. 그런데 비재를 통해서 풍월주를 만들려고 한다고 했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비재를 통해서 풍월주를 세우지는 않는다. 단지 현재의 풍월주의 부제가 다음 풍월주에 오르는 것 뿐이다.

예외가 있다면 유신의 아비인 서현은 12세 보리가 풍월주에 있을 때 처음 부제에 있었다.
하지만, 13세 풍월주가 되는 용춘을 위해서 부제의 지위를 용춘에게 물려준다. 그리고 용춘은 보리의 뒤를 이어 596년 13세 풍월주에 오른다. 그리고 602년 14세 풍월주인 호재(림)은 612년까지 장기집권한다.


14세 풍월주인 호재(림)의 뒤을 이어 15세 풍월주에 오른 이는 유신이다. 그런데 유신이 풍월주에 오른때는 612년 18세가 되던 때이다. 지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재를 주관하는 국선 문노는 8세 풍월주 였는데, 문노는 606년에 죽는다.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식으로 비재를 통해서 풍월주를 세웠다면 보종이 가장 뛰어난 기재라고 말을 하지만, 602년 부터 612년까지 횟수로 11년을 장기집권한 14세 풍월주 호림(호재)가 무공과 기예와 전략전술등이 가장 앞서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호재가 뛰어나다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다. 불쌍한 호재가 되시겠다. 


KBS2에서는 선덕여왕과 같은 시간때에 월화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방영하고 있다. 그런데 선덕여왕은 전설의 고향을 패러디 하고 있는 것인가? 어짜피 전설의 고향은 선덕여왕에 비해서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데 선덕여왕에서까지 납량극을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606년 죽은 문노가 612년 무슨일로 있지도 않는 풍월주 비재를 주관하느냐 말이다. 그럼 미실은 612년에 살아 있었을까? 이와관련해서는 다음에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선덕여왕이 주는 재미는 개그 모드

비재에서 보종과 유신이 다툰다. 각각 지지하는 낭도들이 보종과 유신을 두고 싸운다. 죽방은 "백만 스물하나, 백만 스물둘, 백만 스물셋의 유신"에 대항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는 유명세를 탄 건전지 광고의 <패러디>다. 이처럼 선덕여왕에는 현재의 일을 교묘히 극에 넣어 재미를 추가 한다. 선덕여왕에서 이전에는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의 대화에서 류담의 달인개그를 차용하여 재미를 준적도 있다.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의 대화에서 "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자 류담이 왜 계속 같은 말을 하냐고 그만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러자  죽방 자신은 처음이야기한것이라고 말한다. 류담이 그러자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처음하는거냐? 라고 이야기 한다.  류담은 KBS 개그콘서트 김병만과 함께 달인코너를 하고 있다. 류담이 들은 어디선가 누군가에 들었던 '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말라"는 김병만에게서 귀에 딱지가 붙도록 들은 이야기다. 이를 드라마에 접목을 시킨것이다.

사극은 과거의 극 같지만 알고 보면 현재를 투영해서 과거를 보는 극이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2009/09/0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천추태후 사극의 묘미는 현실풍자 기사를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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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_- 2009.09.08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부분 읽다 말았습니다.
    미실은 소화를 처리하라고 했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은 많이 아시는듯 하나 드라마를 평하시려면 드라마도 똑바로 보셔야지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8 15: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처럼 단순하게 생각하면 처리 죽음으로 생각되는거지요.. 죽이면 파렴치범이 안되는건가요? 대락난감.. 극을 소화할 능력이 안되면 그냥 보셈..

  3. ee 2009.09.08 1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이소화살려주려고한건아닌데요
    잘못보신것같네요
    이용가치가없으니죽이라고..직접말한건아니지만..
    빗대서말한거죠..

    • dd 2009.09.08 1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윗분말씀이 맞아요
      게시자분 잘못 알고 있네요
      미실은 소화를 없애라는투로 말했지
      소화를 살려주라고 한적 없습니다
      방송 다시보세요
      미실이 시켜서 죽이려한거죠

    • BlogIcon 갓쉰동 2009.09.08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인질범이냐? 파렴치범인줄 아느냐? 이제 소화의 용도는 없다. 그러니 죽여라는 뜻인것 같아요?

      그냥 냅두라는 뜻입니다.. 어디로 가던 상관없이..

    • 아이고 2009.09.08 2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갓쉰동아
      미실의 표정에 다 드러나 있단 말이다.ㄱ-
      드라마가 괜히 있냐
      살리라는 뜻이면 그냥 장면이 빨리 전환되었겠지만
      표정연기가 괜히 있냔 말이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9 0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당신 같은 아랫것들 생각이고.. 그런데 언제 봤다고 반말이셈..

  4. ㅋㅋ 2009.09.08 1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보면서 다들 역사 타령이실까. 이건 드라마인데.ㅋㅋ 그냥 재밌게들 보세요. 아니면 보지들 마시고 역사스페셜이나 보시면 될듯..보면서 열받아 하실까.ㅋㅋ 웃기당.ㅋ

  5. BlogIcon 안랩맨~ 2009.09.08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안철수연구소블로그지기 안랩맨~입니다.

    마치 역사책을 보는 듯이
    자세히 서술해 놓으신 포스팅이
    압권이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가겠습니다. ^^

  6. 배리굿 2009.09.08 1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재미있는 드라마 칼람입니다..
    유용해요..
    재미도 있고,
    국사공부도 되고..
    해설이 너무 감칠맛이 나요..

  7. 알천랑짱 2009.09.08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단 글 잘읽었습니다. 긴글 쓰신다고 수고하셨네요...^^

    근데 본문글을 보면 필요 이상으로 좀 비딱하게 보신듯한 해석이 있어서 한줄 남깁니다.

    미실의 부하가 소희를 처지하는 문제에서 굳이 미실파의 균열이라기 보단 그냥 지나친 충성이나 우매한 부하들의 지나친 반응 정도로 해석할수도 있지 않을까요?

    또한 드라마상의 덕만의 대사에서도 분명 있었지만 덕만이 미실에게 오래 살아라 라고 얘기한건 악담이라기보단 미실과 대화를 놔누면서 덕만이 많은 깨우침을 얻어서 그런말을 했다고 생각이 듭니다만...

    그리고 한두가지를 보태거나 과장을 했다 해서 드라곤이나 태권브이처럼 100, 200까지 뻥을 칠거다라는 식의 해석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역사를 토대로 한거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재미를 위해 어느정도의 과장은 작가의 권한이라 생각합니다. 하나하나 사실을 따져가면 보는건 오히려 그드라마의 재미를 저해하는 요소는 아닐런지요.

  8. Tkdrldur 2009.09.08 1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너무 횡설수설하네요....

  9. 비상구 2009.09.08 15: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이 미실에게 오래 살라는 "악담"을 했다는 부분에서 뿜었습니다. ^^;;
    그걸 악담으로 이해하시는 분이 드라마에대해서 논하는게 어이없어 댓글 남기고 갑니다.
    아직 진위 여부조차 불분명한 화랑세기를 무슨 전가의 보도처럼 들먹이며 드라마와 빗대는 글은 이제는 자제를 하심이 어떨까 싶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8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님보다 잘 해석할텐뎅..악담을 악담으로 받아들이는 님의 글 읽는 솜씨는 보니.. 님같은 분 때문에 선덕여왕이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당..

    • BlogIcon 갓쉰동 2009.09.08 1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불분명한 화랑세기를 인용한 건 선덕여왕인데요..그것도 모본으로 삼았지요..그리고 신라사를 재현한다고 공공연히 발표하고, 가르치겠다고 했거든요..

      저는 화랑세기 너무나 의심스러워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선덕여왕이 그것을 역사서로 인정하고 만들었는데..그레 맞추어 비판하는거지요.

      그리고 이번글은 딱 삼국사기 열전 한줄을 인용했을 뿐입니다.. 기해년생이냐? 임술년생이냐? 답은 님이 찾으셈.. 물론, 님이 이전에 알고 있었다고 보지는 않지만요..

    • 비상구 2009.09.08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훗..여전히 덕만이 미실에게 오래 살라는 "악담"을 했다고 하시는군요. 드라마 다시보기를 꼭 권장합니다. 덕만이 유신에게 미실에게 오래 살라는 말을 하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구구절절히 말을 해주니까요.

      그리고 기해년생이던 임술년생이던 물론 이전에도 알고 있지 않았고, 앞으로도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같은 고등학교때 배운 알량한 국사지식을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사람에게는 선덕여왕 정도면 사극은 충분한 의미이기 때문이죠.

      그런면에서 선덕여왕이 님의 폭넓고 깊은 역사지식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월화드라마가 아니라 주말 MBC역사스페셜로 방송이 되어야 될 듯 싶네요. ^^;;
      MBC에 한번 건의해보시죠.

    • BlogIcon 갓쉰동 2009.09.09 0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처럼 생각하는 분들 때문에 사극이 중요한겁니다. 알고 보면 상관없지만, 님처럼 모르면서도 드라마를 보고 역사이야기를 한단말이지요..

  10. 김지연 2009.09.08 16: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 미실이 소화가 더이상 필요없다고 보종에게 명을 내렸지요. 알아서 처리하라고..(죽이라는 뜻..)

    • BlogIcon 갓쉰동 2009.09.08 16: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의 해석도 맞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음 대목이 있잖아요.. 인질극이나 하는 파렴치범으로 만들것인가? 이제 소화의 용도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죽여라라고 해석하면 안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이전 미실파 내에서 삐끄덕 거린 내용도 첨가 했잖아요.. 해석은 각자.. 이정도로 하지요.. ^___^

  11. BlogIcon 사회적 책임차원에서... 2009.09.08 16: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을 즐겨보는 시청자로서..
    이제는 제작진들의 변을 들어봐야 할 시기가 왔다고 봅니다.
    그동안 수많은 엇갈림으로 역사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있어 왔지만..
    계속해서 이런식으로 방치되서는 안될 것이며..
    제작진의 기본 제작의도는 살펴볼수 있는 기회는 꼭 있어야 된다고 사료됨.
    왜냐하면 진정한 국민드라마가 되고자 한다면..

    • BlogIcon 갓쉰동 2009.09.08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데 반응을 안하는게 선덕여왕의 특기입니다..

      처음.. 칠성이 8성이 된다는 건 과학적 사실이라고 반론을 제기한 것 같은데..그외는 보지 못했음..

      저야 북두칠성은 자세히 보면 8성이란 사실을 그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덕여왕팀의 손을 들어주었지만요..

  12. 크로버 2009.09.08 1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비담이. 마치... 열강에.... 한비광 같아 보였슴. ㅋㅋㅋㅋ
    어릴적 동굴속 살인 보구 ㅋㅋㅋㅋ 제가 다 죽였어요 ... 아무 꺼리낌없이....
    신지 전사ㅋㅋ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09.09 0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섬뜩하지요.. 저 그릇에 무엇을 담을 건가는.. 문노의 책임도 있겠지요.. 무단한 노력을 했겠지만. ㅋㅋ

  13. 다오라 2009.09.08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의 전개나 주어 생략이나 조사 사용까지.. 친절한 글은 아니었지만 끝까지 읽었습니다.

    사람마다 역사극을 보는 시각이 다르겠죠.
    어떤이는 실제 역사와 너무 다르다며 비판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이는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며 그저 즐기자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같은 드라마를 보고도, 같은 대사를 듣고도 저렇게 다르게 해석할 수 있나, 라는 생각은 드네요.
    미실은 '소화는 더이상 필요없다.' 라며 '시정잡배들 처럼 인질극이나 해야겠냐"라고 하지요.
    살려두고 인질극이나 벌이는 짓은 하지 않겠으니 죽이라는 말이지요.

    그 부분을 두고, 미실이 어떻게 살려두고자 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쫌 의문이 드네요.
    필요없다고 한 것은 살려둘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요.
    만약 살아서 덕만과 만나게 될 경우, 자신이 소화를 데리고 있었다는 것을 덕만이 알게되면 곤란해질테니까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9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별것도 아닌것에 집착들을 하시넹 해석상의 문제를 왜 집착하지요..
      죽일년놈이면 죽이라고 하는뎅. 미실은.. 월천을 죽이라고 하잖아요. 필요없으니..

      그러니 집착하지 마셈.. 윗놈은 처리하라고 하고, 밑엣놈은 알아서 기는게 상례이니.. 밑엣놈은 죽이려했나 보다 하면 되지요..

  14. sloth 2009.09.08 1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글 재미있게 읽었구습니다. ^^

    저 역시 드라마의 설정과 역사적 사실의 차이점을 찾아보는 것이 드라마를 보는 또다른 재미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차이가 제작진과 작가를 비난할 일인지는 모르겠군요. '드라마 선덕여왕'은 '조선왕조실록'같은 정사를 담은 드라마가 아니고 역사스페셜 류의 '역사 다큐멘터리'도 더더욱 아닙니다.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악역인 미실의 존재자체가 위작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드라마는 애초에 미실이 등장하면서부터 역사환타지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미실의 나이와 관련해 그 불합리함을 포스팅을 하실 예정이라고 쓰여있습니다만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지 못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불합치함'을 증명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요?

    그리고 님께서 캡쳐하신 기획의도에는 '신라를 재현했다'고 되어있지. '신라사를 재현했다'고는 되어있지 않습니다만 너무 민감하신 것이 아닌 것은 아닌지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9 0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극과 드라마를 혼동들을 하시넹.. 대략난감.
      판타지 사극을 표방했다면 별생각없습니다. 그저 역사는 이렇다고만 이야기하고 지나갔을 겁니다. 물론, 판타지도 출생일은 지킵니다.. 극중에선.. 죽인담에 살리는 한이 있더라도..

  15. over-_-still 2009.09.08 1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화를 처리하려는 방해한 자가 저자입니다" 한 화랑이 미실에게 당당히 말하는 것으로 보아
    죽이라는 명이 맞습니다 ~ 이걸로 분열이라고 까지 해설할 것이야... 그나저나 글 잘읽고갑니다 재밌었습니다.

  16. 칭찬과비평 2009.09.08 2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체적인 글은 잘 읽었습니다. 장문의글을 올린신 점 칭찬해드리고 싶습니다.

    전체적인 구성이 좀 더 매끄러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문맥이 이리저리 튀어서 글을 읽다가 길을 잃어버리겠더군요.
    좋은 다이아몬드 원석을 잘 다듬으셨다면 최고의 뷔어가 되시리라 믿습니다.

    드라마가 역사를 얼마나 반영하는가는 정답은 없다고봅니다.

    새로운 극의 창작은 작가의 권리라 봅니다. 아쉽다고 지적하신 사전고지는 선덕여왕팀에서 받아들이셔야 할 부분이라고 동감합니다.

    전체적인 선덕여왕의 극 구성은 잘 된 작품이라고 느껴집니다.

    반전이 있고 시청자의 헛점을 파고 드는 점도 괜찮고 현실의 우리 삶을 과거의 역사극을 통해 반영해볼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역사 다큐멘타리였다면 글쓴이의 지적이 더욱 깊이 와닿았을겁니다. 다만, 이 작품이 픽션이 허용되는 드라마라는 점은 오히려 작가의 상상력과 현대 우리 삶과의 연관고리가 더 흥미진지해졌고

    신라시대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테마를 제공한 점에 오히려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건 드라마의 인기와 연관이 있을 겁니다. 잘 보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8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지적은 항상 받는것이니.. 주의를 하겠습니다.. 다만,, 내용이 극과 역사를 비교하는 글이고 비평이 추가된 것임을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선덕여왕은 잘 만들어진 드라마입니다만, 사극으로써는 0점에 가깝습니다..

      소설원작의 부실함이 드라마에 피해를 주고 있지요.. 작품내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는 주인공의 출생도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면 문제가 심각하겠지요.. 그것을 지적하는 글입니다..

  17. ㅈㄷㄱ 2009.09.08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분들이 보시는 글일텐데 님 마음대로 주관적으로해석하시고
    객관적인것처럼 설명하시면 안되죠^^
    미실은 소화를 알아서 처리하라고(죽이라고)한게 맞고요

    오래살라고한것도 앞뒤 내용봐서도 악담은 아닌거같지않나요^^
    분명 덕만은 어쩐지그런생각이들었습니다 라고하면서 진심임을드러냈구요
    미실은 그애를 안아주고싶었다고 했지않나요 근데이게악담인가요ㅋ

    긴글 잘 봤구요 다음에올릴땐 좀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내용을 올려주셨으면 하네요^^

  18. BlogIcon 불탄 2009.09.08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 역시 잘 읽어보았습니다.
    글에는 작가의 몫과 독자의 몫이 있다고 봅니다.
    어찌되었건 읽는 독자에게는 자신이 읽은 글에 대해 취와 사를 적절히 선택해야 할 것 같아요.
    자신의 의견을 글쓴이에게 너무 강요하는 것도 좋아보이지는 않네요.
    댓글들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에 한 줄 써 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9 0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각자 알아서 판단할문제를 왜 왈가 불가하는지 모르겠네요.. 개판으로 만든 선덕여왕원작자에나 할 말을..

  19. BlogIcon 도희* 2009.09.08 2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다음 주에나 볼텐데~ '선덕여왕'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군요..ㅎㅎ
    사실, 홀수 회는 자꾸 못보고 짝수 회와 리뷰들로 내용을 파악하고 있어요..ㅡ.ㅡ;
    굳이 꼬박꼬박 안챙겨봐도 내용이 파악되기도 하고~;

    오늘도~ 재밌게 읽고 가요~^^
    전~ 갓쉰동님 글 읽으면 항상 즐겁습니다..ㅋㅋ

  20. 비담이^^ 2009.09.09 0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은 더이상 이용가치가 없다는 소화를 살려두려고 했지만, 어찌하여 미실(고현정)의 부하들은 소화를 죽이려 하였을까?'라고 하셨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셨죠? 분명 극중에선 미실이 "이젠 내게 소화가 쓸모없으니 처리(!)하세요"라고 했잖아요??

    • 김우원 2009.09.09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이분도 참 객관적인걸 주관적인거라며 토스하시면 어떡하심 . . 댓글 중반부터는 본인도 이제 아셨을듯한데 일부러 그러시는건가 ?

    • BlogIcon 갓쉰동 2009.09.09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처리해를 몰라서 그랬을것 같아요..단순해서 좋겠어요..

  21. 노랫소리- 2009.09.09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재밌게 읽었네요.
    더불어 댓글까지.

    근데 글쓴이님.
    댓글들에 리플 다는 말투를 보니 점점 기분이 상하게 되네요.
    많은 사람들이 글쓴이의 의견에 아니지 않느냐는 그들의 의견을 얘기하는데
    그에 대한 글쓴이님의 리플들은 더이상 의견이 아니라 시끄럽다, 닥쳐라, 모르면 가만있어라.
    이런 느낌이 다분히 드는군요.

    본인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의 의견도 수용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삼국사기는 덕만을 진평왕의 장녀이며, 마야부인의 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삼국사기의 기록에 대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거나 이설이 있음을 곧잘 지적하던 일연은 진평왕의 장녀이며, 마야부인의 딸이라는데 이의제기하지 않고 있다.


화랑세기의 무서움은 기존 사서의 빈틈을 칼처럼 파고 들고 있다. 그동안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거나, 또는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한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선덕여왕이 덕만에 관한 기록에서도 화랑세기의 위력은 발휘된다.

그런데 뜸금없이 화랑세기는 무슨 소리, 덕만은 진평왕의 딸인것은 분명하고, 마야부인의 딸인것은 맞지만, 천명이 맏이고, 덕만은 천명의 동생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화랑세기도 덕만이 천명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말하지 않고 있다, 화랑세기는 무엇을 근거로 덕만이 천명의 동생이라고 했을까? 그건 화랑세기에 맡기도록 하자. 언젠가는 화랑세기를 심층 분석할 때가 올것이다.


사실 덕만의 기록을 심층분석하고 있는 이유도 현존 화랑세기의 진위논쟁에 뛰어들려는 의도도 어느정도 가지고 있다.
 
글쓴이는 그동안 덕만은 진평왕과 마야부인 사이에 태어났지만, 천명은 마야의 소생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더나아가 덕만이 기존에 알고 있던 늙었을때 왕위에 오르지 않고, 극히 젊은 나이때 즉위했다는  여러 증거를 제시하고, 이를 증명하였다.

또하나, 덕만과 천명이 다른 출자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이전글에서 흘렸다.

덕만이 가지고 있는 남성스런 이름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신라 당시에도 여성은 여성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덕만의 어미인, 마야, 진평의 어미인 만호(이것도 약간의 중성을 넘어 남성성이 보이긴한다.) 지소, 지조, 선혜왕후, 보희,문희 등 그 나름대로 여성성이 보이지만, 뜸금없이 덕만이라니, 덕만이 가지고, 있는 뜻은 결코 나쁜 뜻은 아니다. 덕을 널리 퍼트리고 길게 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전 글 [역사이야기] - 천명이 말한 덕만의 촌(?)스런 이름의 이유 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덕만의 이름이 가지는 남성성

덕만이 천명의 나이어린 이복동생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또 하나 있는데, 진평왕이 아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아들은 없고 딸만 있는 집에서는 여자 아이의 이름에 남자의 이름을 붙혀 다음 출생자가 남자이길 소망하는 이름을 짓기고 한다. 또한, 여자이름 중에 끝순이, '말희', '끝네', '말자'라는 이름은 대부분 아이를 더 이상 낳지 말자는 뜻도 있지만, 여자 아이는 그만 낳자란 뜻을 포함하고, 삼신할미에게 다음은 아들을 점지해달라는 기원이기도 하다.

이름에서도 덕만은 위로 많은 언니들을 두었음직하지 않는가? 덕이 있으라는 뜻도 되겠지만, 태어나자 마자, 왕실에 아들들로 번창할 덕을 빌었음 직한 이름이니 말이다.

 
만약, 덕만이 천명보다 언니라면 진평왕의 첫번째 공주의 이름을 '덕만'이란 남성의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여쁜 공주의 이름에 덕만이라니, 다음에 왕자를 생산을 염원하기 위해서 '덕만'이라고 지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만만의 콩떡이 된다. 진평은 왕이다. 언제든지 왕자를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진평왕 초년에 덕만의 이름을 지었다면 진평왕의 머리가 좀 이상스러운 것이다.

 
덕만의 이름은 진평왕과 왕실의 절실한 적통을 이을 왕자를 바라는 이름이다. 또한, 마야도 제일 왕후는 아닌 것이다.  

덕만과 천명이 이복자매라는 또 다른 증거 (세종과 그의 형 경녕군)

또하나,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려고 한다. 우리가 너무나 잘알고 있는 조선시대 세종에 관한 기록이다. 세종을 우리는 이방원의 3번째 아들로 알고 있다. 그리고 세종이 즉위하게된 배경도 너무나 잘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에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과연 세종은 태종의 3번째 아들일까? 아니라고 한다면 총맞을 것이다. 그런데 세종은 태종(이방원)의 3번째 아들이 아니다.


일단, 세종(이도)을 태종(이방원)의 3째아들로 기록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의 세종즉위 초년 세종이 세계를 기록한 내용을 살펴 보자.

세종 장헌 영문 예무 인성 명효 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
의 휘는 도(祹)요, 자는 원정(元正)이니, 태종 공정 대왕(太宗恭定大王)세째 아들이요, 어머니는 원경 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이다. - 조선왕조 실록 세종


이기록만 있다면, 세종은 태종의 3째 아들 같지 않는가? 그리고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라고 기록하고 있다.

녕군의 휘는 비(裶)이고 자는 정숙(正叔), 시호는 제간(齊簡)이다. 1395년(태조 4) 12월 13일 개성의 정안군(후의 태종)의 사저에서 효빈 김씨의 소생으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관후하며 효성과 우애가 깊었다. - 전주이씨 대동종보 경녕군

드라마 대왕세종을 본 사람은 이방원의 또다른 아들 경녕군이란 이름을 들어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태종의 아들이고, 후비 효빈 김씨 소생이다. 그런데 경녕군은 1397년생 세종(이도)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러니 경녕군은 세종보다 형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어머니는 효빈김씨로 세종과는 다른 후비 효빈 김씨라는 사실 뿐이다. 경녕군과 충녕군은 서로 출신성분 자체가 다르다.


그럼, 태종의 셋째아들은 누구일까? 세종일까? 아니면 경녕군일까? 경녕군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다. 답은 둘째로 알고 있는 효령대군이다. 드라마 세종대왕에서는 경녕군을 효령대군보다 아우(?)로 했었던것 같다. 기억에 의존하는 관계로 틀릴 수도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상식으로는 경녕군이였다.

사실 경녕군은 태종(이방원)의 첫째인 양녕대군(1394년) 다음 1395년에 태어났다. 그러니 1396년 태어난 효령대군 보다도 형이다. 그렇다고 해서 경녕군이 세종이 어미인 원경왕후 민씨는 될 수 없다. 물론, 의붓 큰어미이기는 하다.

그렇다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태종의 3번째 아들 세종(이도:충녕대군)은 잘못된 것일까?  답은 아니다, 세종은 태종의 3번째 아들이 맞다. 이유는 정비인 원경왕후 민씨의 3번째라는 것이고, 적통을 이을 3번째 왕자가 세종(충녕군:이도)이란 뜻이 된다. 왕의 계승서열 3순위인 3번째 왕자라는 것이다. 사사로이는 경녕군이 충녕군(세종)의 형이 되지만, 왕통서열은 존재조차 미미한 후비의 소생이 된다. 물론, 정비인 원경왕후 민씨가 후비가 되거나 폐출되어 폐서인이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왕가의 일은 적자/서자를 확실히 구분하고 있다. 양반, 서얼을 구분하고 있는 것처럼, 서얼은 처주지도 않았다. 특별히 기록하지 않는 한에는 말이다. 또한, 정비의 소생이냐 후비의 소생이냐의 차이에 따라 신분은 하늘과 땅이 되는 것이다. 같은 왕의 아들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한마디로 역사를 연구할때 적자, 서자, 적통를 구별할 줄 모르면 삼천포로 빠진다.  

설마 성골.진골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신라가 조선과는 다르다고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왕위를 잇는데 신라가 조선보다 오히려 더 엄격한 기준이 있었지 않겠는가? 진골도 아니고, 성골임금인데 말이다. 사실 글쓴이는 성골.진골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살피고 살펴봐도 성골은 없었다. 읽으면 읽을 수록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왕족, 귀족의 구분만 읽었다. 

그럼 다시 신라의 선덕왕(덕만)이 왕위에 올랐을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자.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사기 신라 춘추왕 원년

이제 요즘과는 다른 적자/서자, 양반/서얼 등 왕가의 룰이나 양반가의 룰에 따라, 읽어보자.

이름은 덕만이고, 진평왕의 장녀(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이다.
김춘추의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이라고 했다.

삼국사기의 딴지맨인 일연이 삼국사기 선덕왕 즉위년 기사에 딴지를 걸지 않는 이유는 일연도 마야부인의 맏딸로 덕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딴지맨 일연이 삼국사기에 딴지를 걸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삼국유사에 진평왕의 늙으막에 얻은 승만왕후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 일연은 선덕 또한, 진평왕의 말년에  정비는 승만왕후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승만왕후에 아들이 없어 왕통을 이을수 없었기 때문에 덕만이 마야부인의 소생으로 왕통을 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일연은 삼국사기에는 없는 덕만이 나이가 어렸을 것으로 짐작하는 기록을 남겨두고 있다. 덕만의 결혼기사이다.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여왕이 왕위에 있을때 결혼하고 있다니, 덕만이 왕위에 오를때 어렸다는 결정타가 아닌가? 물론, 남자왕처럼 비를 많이 바꾸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누구를 누구로 바꾸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봐서 첫결혼이라고 생각하는게 맞지 않을까 한다.

현존하는 <화랑세기>를 의심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누구도 하지 않은 이야기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이제 예고한 대로 선덕왕이 왕위에 올랐을때 덕만에 대한 평가를 보도록 하자.

위의 문장은 선덕(덕만)이 왕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하자 없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이 문장은 뒤의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내용을 수식하기 위한 내용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덕만과 관련된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예사로 넘기기 어려운 기록이 있다.

성품이 너그럽고,어질다
  영묘사 화재사건을 일으킨 <지귀설화>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 

<김유신의 춘추/문희불쇼>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어찌 되었던,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진짜던 가짜던 상관없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만으로 김유신 감독, 각본, 주연, "김춘추를 내사람으로 " 드라마에서 등장한 덕만이 신라 여왕(632년~647년) 시기에 있었던 일이 아닌 진평왕의 공주시절(628년 이전)에 있었던 일임을 증명하였다. 


총명하다.
<모란꽃,모란씨서되>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민첩하다

200
631년에 진평왕 말년 <칠숙의 난>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아직도 <성조황고>를 들어서 덕만은 나이가 많았을 거야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분이나 "그건 니생각이고"라고 하는 분들은 [역사이야기] - 이요원보다 남지현 나이때 왕위에 오른 덕만 <황고>에 대해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근거를 제시했다. 귀찬으신 분을 위해서 요약하자면, <성조황고>는 성스런 조상을 둔 임금(황제)의 성숙한 여식이란 뜻이다.

너무 어릴때 628년이전 문희와 김춘추를 얶어준 사건이 628년이라면 너무 덕만이 이른시기가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덕만이 632년 왕위에 오르고, 632년 결혼하고, 연호를 바꾸는  것을 근거로 635년 18~20세 전후라면 <모란꽃>, <김유신불쇼> 사건들은 덕만으로서 너무 어릴때 사건이 아닌가 의심할 수 도 있다. 

632년 16세에 왕위를 이었다고 한다면, 627년은 11살때 일이고, 628년이면 12살때 일이다. 현재의 기준으로 좀 어려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모란꽃 사건은 늙은 왕이 아주 어린 공주에나 물어 봄직한 말이 아닌가? 그리고 당시엔 깜짝 놀랄 추리 능력을 보인 덕만을 보고, 진평과 대신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용봉의 자질이 보였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기록이  "
총명하다"는 기록으로 남았다면 어떨가? 또한, 12살이전에 있었던 김유신의 불쇼에서 살려준 문희와 그의 복중 아들 법민은 어떨까? 어리지만 너그러워움의 상징이 아닌가?  지귀심화에서 신분도 미천한 지귀를 위해서 행한 행동들은 "너그러움" 자체이다. 또한, 지귀심화로 소실된 영묘사와 잦은 화재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할때 처리하는데 부적같은 주문을 만들어 백성들을 안정화 시키는 것으로 너그러움과 총명함과 민첩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지귀는 마음에서 불이 일어  
몸을 태우고 화신이 되었네.     
푸른 바다 밖 멀리 흘러갔으니,  
보지도 말고 친하지도 말지어다.  

 志鬼心中火(지귀심중화)    
 燒身變火神(소신변화신)
 流移滄海外(유이창해외)
 不見不相親(불견불상친)


"너그럽고, 어질고, 총명하고, 민첩하다" 라는 말은 선덕왕이 왕위에 오를때, 단순한 미사어구가 아닌 , 덕만은 <성조황고>이니 정통성에 하자도 없을 뿐만 아니고 충분히 왕 노릇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PS. 사실 세종대왕의 기사는 천명과 덕만은 같은 어미의 자식이다.라고 주장하는 혹시 모를 딴지가 들어올 반박문을 위해서 남겨두었습니다만, 이제 노출합니다. 이외에도 연산군과, 광해군의 출자를 비교해 본다면, 왜 적통 적자/서자에 연연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왕실 암투의 시작과 끝은 적자들간에도 있었지만, 서자를 낳을 수 밖에 없는 정비와 후비들 사이에도 있었습니다. 후비가 정비가 되면,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소생들인 왕자나 공주들은 인생의 역전 대박 로또가 되니 말입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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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호.. 2009.07.30 2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보고갑니다. 이복형제라.....

  3. 헤윰 2009.07.30 2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해하기 쉽게 정리 하시느라 고생하셨겠어요.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4. 재밌네욤 2009.07.31 0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보았네요~~ 그런데 저도 앞에 계신 '성란'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신라시대의 골품제와 조선시대의 적장자 제도를 같은 기준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두 사회 모두 철저한 신분사회였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골품제와 적장제도를 연결시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것은 조선시대 등장한 적장자의 개념

    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저는 님께서 마지막 부분에 "설마 성골.진골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신라가 조선과는 다르다고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쓰신 부분에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역사를 전공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이렇게 단적으로 이야기를 하실 수 있을런지...

    각기 다른 시대의 신분제도를 이렇게 단편적으로 이어서 생각할 수 있는지 정말 놀랍습니다.

    물론 그 만큼 강력한 신분 사회였다는 점을 부각하고 싶으셨다는 느낌은 듭니다만...

    이러한 유교적인 관례가 뿌리 내린 것은 조선 성종 이후 경국대전 체제가 완성된 때 부터 입니다..

    단적으로 고려시대에는 왕의 후궁 중에 시집갔다 온 과부도 있었답니다..

    조선시대에 이런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겠죠..

    조선 초기의 족보에는 딸의 이름도 들어 있었답니다. 하지만 중기이후에 대전체제가 완성되면서 부터 아들

    을 중심으로 족보가 쓰여지고 있지요...

    •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7: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적서는 비슷하고, 신라가 더 강경했지요..

      이미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것으로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하는데.. 중기 이후다라는 말씀을 하시다니..

      남.여, 적서 차별 등 중기 조선 중기이후에 심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초기 기록을 내 놓은것 아닌가요? 그것도 살펴 보시길..

      왜 하필 조선의 초기기록을 들어서 조선과 신라를 비교했겠는지요..

      이글로 답변이 충분히 되었기를..
      님들은 저의 주장을 더욱 강고하게 하는 보론 성격입니다.. 반론이 아니공..

  5. 흐음... 2009.07.31 0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클이 되겠습니다만.....그냥 왠지 썩 잘 읽혀지는 글은 아니라서....뭔가 말이 맞지 않네요. 제 이해력이 딸리는 것인지....

    "그렇다고 해서 경녕군이 세종이 어미인 원경왕후 민씨는 될 수 없다. 물론, 의붓 큰어미이기는 하다."

    ㅡㅡ> "그렇다고 해서 경녕군이 세종의 어미인 원경왕후 민씨의 아들(혹은 소생)이 될 순 없다. 물론, 그의 의붓 큰어미 이기는 하다." 라고 쓰셔야 말이 될듯 하네요.

    또 " 그러니 일연은 선덕 또한, 진평왕의 말년에 정비는 승만왕후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일연은 선덕 또한" 다음에 왜 진평왕 말년에 정비는 승만왕후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쓰신건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아요. -_-;

  6. 딩가딩가딩 2009.07.31 0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

  7. BlogIcon Blah 2009.07.31 0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 기억이지만 그전 국사선생님 중 한 분이 조선에 유교사상이 들어오기 전까진
    남존여비사상이 조선같지 않았다...고 하셨던 생각이 납니다.
    한 예로 여자가 재가를 하는 건 꿈도 못꾸는 조선시대와는 달리 그전까지만해도
    여자들의 혼인이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고 하시면서요.

    암튼 대단하십니다.
    덕분에 요즘 재밌게 보는 선덕여왕 더욱 재밌게 볼 수 있겠습니다.

  8. 가야진 2009.07.31 0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때는 사실 한 어머니, 한 아버지의 자식이라는 게 사실 의미가 불분명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혼은 허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남녀 모두가 중혼적 성격을 가진 연인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자식도 모계사회인 신라의 골품제에 따라 진골까지는 신분을 부여 받았으니까요.

    여성의 힘에 대한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요즘 천추태후 등에서도 황제가 죽은 후 연인을 두는 모습이 그려지잖아요. 그리고 현재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다수의 역사서에서도 조선의 유고 사상 또한 중기 이후 정착한 것이고 이전의 사회에서는 여권이 힘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보잖아요. 물론 표면적으로는 남성사회로 이어져오긴 했지만, 전쟁이 많은 나라에서 남성의 권력이 사회의 기득이라고 보기에는 힘들다고 생각해요.(내조의 여왕처럼 전쟁에 나간 남성을 대신한 실질적 정치가 아내와 어머니등의 여성이 상당했으니까요.)

    이야기가 약간 옆길로 가긴 했지만, 저는 천명이 마야의 자식이 아니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잉첩들도 순수 혈통인 성골 출신으로만 이루어 져있기는 해도 이미 족강된 후이고, 천명이 후비의 자식이라면 정비의 자식인 덕만과 나이가 비슷한 상황에서 왕위계승자인 아들이 없다고해도 마야소생 이외의 인물이 권력을 가지기는 힘들지 않았을까요?

    신라에서 초혼은 대부분 왕을 제외하고는 여성의 골품이 더 높거나 같은 진골이라 해도 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질 수 있는 여성이 자신보다 낮은 지위를 가진 이와 하는 것이 일반적이 잖아요.


    예전에 어디서 들은 말인지, 읽은 것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제 머리 속에는 성골에서 족강되면 진골의 가장 위 계층이 되고 최근에 족강된 사람이 더 오래전 족강된 사람보다 힘이 있다는 기억이 있거든요.
    이것이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천명이 마야 소생이 아니라면 용수와 천명의 결혼은 불가하지 않았을까요?
    천명의 어머니가 성골이었다해도 용수보다는 더 오래전에 족강되었을테니까요.

    아, 글을 쓰다보니.... 아닐 수도 있겠네요. 천명의 어머니가 용수보다 나이가 어리다면, 저것도 가능하긴 할 것 같아요.

    휴, 요즘 선덕여왕 때문에 도서관에 선덕여왕 관련 책을 다 봐서 역사 공부는 되는데, 드라마 나이 설정이 뒤죽박죽이라 덕분에 제 머리도 뒤죽박죽이예요.

    글이 길어져버렸네요. 암튼, 저는 천명이 후비소생일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글 덕분에 경녕군 이야기는 처음 알게 됬어요. 브라보~!

    •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후비이거나 마야이전 정비라고 했던것 같은뎅..
      족강은 조선이 더 심했지요.. 신라보단

      오르기도 힘들고, 내려가기는 쉽고, 하지만, 조선의 전란이후는 다르지만.. 돈을 주면 언제든지.. 파고 사는게 족이였으니요..

  9. 오타발견!! 2009.07.31 0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께서 쓰신 글인가요? 잘 봤습니다.

    코를 찔찔 흘리며 다니던 어릴 시적부터 역사에 관심이 깊었던 관계로 우연히 지나치다가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도 너무 좋아합니다.ㅎㅎ)


    여러 모로 도움이 많이 됐던 글인 것 같아 잘 보고 갑니다.

    근데, 서론에 나오는 일연의 이야기는, 삼국유사를 지은 그를 말씀하시는게 맞겠죠?


    예를 들면, 진수의 삼국지를 배송지가 주석을 달아서 했던 그런 부류와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어쨌든, "의의를 제기" 라고 쓰셨는데, 의의라는 것은 '말이나 글의 속 뜻' 을 지칭하는 단어인데,

    "이의를 제기" 라고 쓰셔야 할 듯 하네요.ㅎㅎ

    문맥상 '다른 의견이나 주장' 이 들어가야 맞을 듯한 전개네요.ㅎ

    어찌됐든 잘 보고 갑니다.^^ㅎㅎㅎ

    •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군요.. 날려서 쓰는 버릇이 있어서요.. 자주 틀리는 것이였습니다.. 지적 ㄳ 합니다..

      제가 쓴것 맞습니다. 맞고요..

  10. 향수 2009.07.31 06: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조목조목 잘 비교하시면서 쓰셨네요..
    그저 알려진 정도의 역사만 알뿐이었는데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되어 기쁩니다
    앞으로도 이런글 열심히 써주세요..
    부지런히 읽어드릴께요..

  11. 제가 알기로는 2009.07.31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명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미실과 천명 모두 오직 <화랑세기>에만 기록되어 있어 그 둘이 가상의 인물일 확률이 높다고 들었습니다.그런데 또 이런 글을 보니 흥미롭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천명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공히 있는뎅..

      3녀인 천화를 말씀하시는것 아니신지요?

      화랑세기에는 덕만이라고 하지 않고, 왕의 시호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선덕, 천명, 천화.. 조금 냄새가 나지요.. 선화의 다른 이름 같은 천화라..

      흥미로웠다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__^

  12. 재주소녀 2009.07.31 0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렵지만...잼있네요~
    댓글 쓰는거 어려운거 아니네요
    ㅋ 부끄럽지만 처음 써봅니다.

  13. 캐스퍼 2009.07.31 0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어 보았습니다....
    글이 잘 정리 되신다면... 후에...
    "계급사회 변천사"를 쓰세요....
    아직까지....
    삼국시대 이전부터.. 그 이후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 근대화 시대....
    변변한 "계급사회의 변천사"가 없었습니다...
    아주 좋은 책이 될것으로 보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8: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무 어려운 말씀을 저는 그정도는 아닙니당.. 제 밥그릇도 있는뎅.. ㅠ.ㅠ.

      즐기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당.. 고수는 널려 있는게 강호의 세계가 아니겠습니까?

      칭찬은 ㄳ히 받겠습니당.. 염치불구하공..

      물론 추천도 때려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댓글들을 다시는 분들이라면.. ㅋㅋ ^___^;;;

  14. -- 2009.07.31 1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은 잘 읽었습니다만...

    역시 신라의 골품제와 조선의 적서개념을 뒤섞으면 안된다는 댓글 의견에 동의합니다..

    적서개념은 부계를 따르는 것이고

    골품제는 부계와 모계에 모두 적용되는 겁니다..

    두 가지를 같은 원리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부계뿐 아니라 모계혈통도 중시되었기 대문에 지소부인이 힘을 쓸 수 있었던 것이고

    선덕,진덕여왕이 즉위할 수 있었던 것이죠.

    너무 사료를 쉽게 자의적으로 해석하셨네요...

  15. BlogIcon 아르제크 2009.08.30 0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 초기에 왕가의 적서 문제가 엄밀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이성계가 자신의 이모형 이원계가 '서자'라고 몰아 아버지 이자춘의 다루가치 직을 대신 취했기 때문
    (이 때문에 이원계의 자녀들은 이천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성계로부터 이반합니다)
    2. 이방원이 '서모'인(그러나 정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아들인 세자 방석을 '서자'라는 이유로 폐했기 때문
    3. 성리학의 부계일원적 구조를 이제 막 도입하는 시기였기 때문(또 태종 스스로가 성리학자이기도 했고요)

    왕가는 자신의 정통성 확립과 함께 사회변혁에 대한 솔선을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적서 구분에 목을 매단 것입니다.
    실제 여말선초 사회에서 적서의 구분은 심하지 않았고 오히려 애매모호한 측면조차 보입니다.
    그것이 조선에 들어서 세월이 흘러갈수록 점점 적자만을 인정하는 형태로 변해간 것이죠.

    예를 들어 조선 초기의 재상인 하륜은 3대째에 적손의 대가 끊기게 되었는데, 이 같은 사실을 접한 당시에 이러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하륜의 서손을 적손으로 인정해서 과거시험을 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죠. 그런데 논의 결과, 공신 집안 하나를 우대하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고 나라의 법을 확실히 하는 것은 국가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특별 대우는 해줄 수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만일 적서의 구분이 이미 당연하고 엄밀한 것이었다면 이런 논의 자체가 있을 수 없었겠지요.


    꼭 신라까지 갈 것도 없이 고려말만 보더라도, 이모형제(이원계-이성계-이화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 이부형제(이성림-염흥방)와 같은 케이스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관직에 등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조선 중기 이후의 엄밀한 적서차별과 재가녀의 자식에 대한 천대를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신라시대에 성골 진골 구분의 실체가 없었을 거라는 의견에는 저도 삼국사기 삼국유사 좀 읽은 사람으로서 동의합니다만, 갓쉰동님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서도 독자들에게 성골진골을 구분하는 신라라면 적서구분이 있었음이 당연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 어떻게 된 영문인지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30 1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성골/진골을 믿는 사람이라면 단서가 붙은 거지요.. ^___^

      왕은 무치인데 적서의 차별이 있었겠습니까만은,, 공식적인 왕비의 후손이 왕통을 잇는것은 당연한거지요.. 1차 고려를 한다음 다음 수순으로 넘어가지 않겠습니까? 후계의 선택은 왕에 있는 것이고,,적이던 서던 말이지요.. 그러니 적서의 차별이 없었다고 할 수 없지요..

  16. 냠냠냠 2009.09.22 2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초혼이라고해서 나이가 어렸을껏이라고 생각하는건 말 그대로 '짐작'이겠지요.

  17. BlogIcon 천산 2009.10.14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유사왕력보에 기록된 배필이 되는 飮갈문왕이 누구인지 밝힌 것입니다. 그리고 수절이라는 말을 쓰려면 남편이 죽은 후가 되는데, 갓쉰동님은 飮갈문왕이 선덕여왕 시절에 이미 사망한 사람으로 알고 계시네요! 왜 그렇습니까? 님의 주장대로라면, 서기634년에 飮갈문왕을 세웠는데, 언제 사망하였다는 것입니까?

    • BlogIcon 갓쉰동 2009.10.15 08: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수절은 농담이였습니당.. ㅋㅋ
      그러니 음갈문왕이 언제 사망했는지, 아닌지는 제가 알길이 없지용..

  18. 레아 2009.10.22 1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이 젊었을때 즉위를 했다는 것에 대해선 태클을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진평왕은 10대 중반의 나이에 등극을 해서 왕위 계승기간이 자그만치 50여년이 되는데 선덕여왕이 젊은 나이에 등극을 했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선덕여왕이 젊은 나이에 등극을 했다면 그건 진평왕이 임기 말년에 마야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았다는 이야기 이며 더욱이 마야부인도 진평왕과 나이차이가 많이 났을 터이지만 역사서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22 2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덕여왕은 젊었을때 즉위한 것 같아용..
      마야부인이 천명의 어미라는 기록은 없지용.. 반면에 덕만은 마야와 진평의 딸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거든요. ㅋㅋ

  19. BlogIcon soup can storage rack 2012.11.01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며 더욱이 마야부인도 진평왕과 나이차이가 많이 났을 터이지만 역사서 어디에도

  20.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dogs for sale 2012.11.05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명의 동생이라고 했을까? 그건 화랑세기에 맡기도록 하자.

  21. BlogIcon binary options 2013.02.21 2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욱이 마야부인도 진평왕과 나이차


삼국사기는 덕만을 진평왕의 장녀이며, 마야부인의 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삼국사기의 기록에 대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거나 이설이 있음을 곧잘 지적하던 일연은 진평왕의 장녀이며, 마야부인의 딸이라는데 이의제기하지 않고 있다.


화랑세기의 무서움은 기존 사서의 빈틈을 칼처럼 파고 들고 있다. 그동안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거나, 또는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한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선덕여왕이 덕만에 관한 기록에서도 화랑세기의 위력은 발휘된다.

그런데 뜸금없이 화랑세기는 무슨 소리, 덕만은 진평왕의 딸인것은 분명하고, 마야부인의 딸인것은 맞지만, 천명이 맏이고, 덕만은 천명의 동생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화랑세기도 덕만이 천명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말하지 않고 있다, 화랑세기는 무엇을 근거로 덕만이 천명의 동생이라고 했을까? 그건 화랑세기에 맡기도록 하자. 언젠가는 화랑세기를 심층 분석할 때가 올것이다.


사실 덕만의 기록을 심층분석하고 있는 이유도 현존 화랑세기의 진위논쟁에 뛰어들려는 의도도 어느정도 가지고 있다.
 
글쓴이는 그동안 덕만은 진평왕과 마야부인 사이에 태어났지만, 천명은 마야의 소생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더나아가 덕만이 기존에 알고 있던 늙었을때 왕위에 오르지 않고, 극히 젊은 나이때 즉위했다는  여러 증거를 제시하고, 이를 증명하였다.

또하나, 덕만과 천명이 다른 출자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이전글에서 흘렸다.

덕만이 가지고 있는 남성스런 이름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신라 당시에도 여성은 여성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덕만의 어미인, 마야, 진평의 어미인 만호(이것도 약간의 중성을 넘어 남성성이 보이긴한다.) 지소, 지조, 선혜왕후, 보희,문희 등 그 나름대로 여성성이 보이지만, 뜸금없이 덕만이라니, 덕만이 가지고, 있는 뜻은 결코 나쁜 뜻은 아니다. 덕을 널리 퍼트리고 길게 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전 글 [역사이야기] - 천명이 말한 덕만의 촌(?)스런 이름의 이유 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덕만의 이름이 가지는 남성성

덕만이 천명의 나이어린 이복동생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또 하나 있는데, 진평왕이 아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아들은 없고 딸만 있는 집에서는 여자 아이의 이름에 남자의 이름을 붙혀 다음 출생자가 남자이길 소망하는 이름을 짓기고 한다. 또한, 여자이름 중에 끝순이, '말희', '끝네', '말자'라는 이름은 대부분 아이를 더 이상 낳지 말자는 뜻도 있지만, 여자 아이는 그만 낳자란 뜻을 포함하고, 삼신할미에게 다음은 아들을 점지해달라는 기원이기도 하다.

이름에서도 덕만은 위로 많은 언니들을 두었음직하지 않는가? 덕이 있으라는 뜻도 되겠지만, 태어나자 마자, 왕실에 아들들로 번창할 덕을 빌었음 직한 이름이니 말이다.

 
만약, 덕만이 천명보다 언니라면 진평왕의 첫번째 공주의 이름을 '덕만'이란 남성의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여쁜 공주의 이름에 덕만이라니, 다음에 왕자를 생산을 염원하기 위해서 '덕만'이라고 지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만만의 콩떡이 된다. 진평은 왕이다. 언제든지 왕자를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진평왕 초년에 덕만의 이름을 지었다면 진평왕의 머리가 좀 이상스러운 것이다.

 
덕만의 이름은 진평왕과 왕실의 절실한 적통을 이을 왕자를 바라는 이름이다. 또한, 마야도 제일 왕후는 아닌 것이다.  

덕만과 천명이 이복자매라는 또 다른 증거 (세종과 그의 형 경녕군)

또하나,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려고 한다. 우리가 너무나 잘알고 있는 조선시대 세종에 관한 기록이다. 세종을 우리는 이방원의 3번째 아들로 알고 있다. 그리고 세종이 즉위하게된 배경도 너무나 잘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에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과연 세종은 태종의 3번째 아들일까? 아니라고 한다면 총맞을 것이다. 그런데 세종은 태종(이방원)의 3번째 아들이 아니다.


일단, 세종(이도)을 태종(이방원)의 3째아들로 기록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의 세종즉위 초년 세종이 세계를 기록한 내용을 살펴 보자.

세종 장헌 영문 예무 인성 명효 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
의 휘는 도(祹)요, 자는 원정(元正)이니, 태종 공정 대왕(太宗恭定大王)세째 아들이요, 어머니는 원경 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이다. - 조선왕조 실록 세종


이기록만 있다면, 세종은 태종의 3째 아들 같지 않는가? 그리고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라고 기록하고 있다.

녕군의 휘는 비(裶)이고 자는 정숙(正叔), 시호는 제간(齊簡)이다. 1395년(태조 4) 12월 13일 개성의 정안군(후의 태종)의 사저에서 효빈 김씨의 소생으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관후하며 효성과 우애가 깊었다. - 전주이씨 대동종보 경녕군

드라마 대왕세종을 본 사람은 이방원의 또다른 아들 경녕군이란 이름을 들어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태종의 아들이고, 후비 효빈 김씨 소생이다. 그런데 경녕군은 1397년생 세종(이도)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러니 경녕군은 세종보다 형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어머니는 효빈김씨로 세종과는 다른 후비 효빈 김씨라는 사실 뿐이다. 경녕군과 충녕군은 서로 출신성분 자체가 다르다.


그럼, 태종의 셋째아들은 누구일까? 세종일까? 아니면 경녕군일까? 경녕군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다. 답은 둘째로 알고 있는 효령대군이다. 드라마 세종대왕에서는 경녕군을 효령대군보다 아우(?)로 했었던것 같다. 기억에 의존하는 관계로 틀릴 수도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상식으로는 경녕군이였다.

사실 경녕군은 태종(이방원)의 첫째인 양녕대군(1394년) 다음 1395년에 태어났다. 그러니 1396년 태어난 효령대군 보다도 형이다. 그렇다고 해서 경녕군이 세종이 어미인 원경왕후 민씨는 될 수 없다. 물론, 의붓 큰어미이기는 하다.

그렇다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태종의 3번째 아들 세종(이도:충녕대군)은 잘못된 것일까?  답은 아니다, 세종은 태종의 3번째 아들이 맞다. 이유는 정비인 원경왕후 민씨의 3번째라는 것이고, 적통을 이을 3번째 왕자가 세종(충녕군:이도)이란 뜻이 된다. 왕의 계승서열 3순위인 3번째 왕자라는 것이다. 사사로이는 경녕군이 충녕군(세종)의 형이 되지만, 왕통서열은 존재조차 미미한 후비의 소생이 된다. 물론, 정비인 원경왕후 민씨가 후비가 되거나 폐출되어 폐서인이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왕가의 일은 적자/서자를 확실히 구분하고 있다. 양반, 서얼을 구분하고 있는 것처럼, 서얼은 처주지도 않았다. 특별히 기록하지 않는 한에는 말이다. 또한, 정비의 소생이냐 후비의 소생이냐의 차이에 따라 신분은 하늘과 땅이 되는 것이다. 같은 왕의 아들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한마디로 역사를 연구할때 적자, 서자, 적통를 구별할 줄 모르면 삼천포로 빠진다.  

설마 성골.진골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신라가 조선과는 다르다고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왕위를 잇는데 신라가 조선보다 오히려 더 엄격한 기준이 있었지 않겠는가? 진골도 아니고, 성골임금인데 말이다. 사실 글쓴이는 성골.진골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살피고 살펴봐도 성골은 없었다. 읽으면 읽을 수록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왕족, 귀족의 구분만 읽었다. 

그럼 다시 신라의 선덕왕(덕만)이 왕위에 올랐을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자.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사기 신라 춘추왕 원년

이제 요즘과는 다른 적자/서자, 양반/서얼 등 왕가의 룰이나 양반가의 룰에 따라, 읽어보자.

이름은 덕만이고, 진평왕의 장녀(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이다.
김춘추의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이라고 했다.

삼국사기의 딴지맨인 일연이 삼국사기 선덕왕 즉위년 기사에 딴지를 걸지 않는 이유는 일연도 마야부인의 맏딸로 덕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딴지맨 일연이 삼국사기에 딴지를 걸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삼국유사에 진평왕의 늙으막에 얻은 승만왕후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 일연은 선덕 또한, 진평왕의 말년에  정비는 승만왕후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승만왕후에 아들이 없어 왕통을 이을수 없었기 때문에 덕만이 마야부인의 소생으로 왕통을 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일연은 삼국사기에는 없는 덕만이 나이가 어렸을 것으로 짐작하는 기록을 남겨두고 있다. 덕만의 결혼기사이다.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여왕이 왕위에 있을때 결혼하고 있다니, 덕만이 왕위에 오를때 어렸다는 결정타가 아닌가? 물론, 남자왕처럼 비를 많이 바꾸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누구를 누구로 바꾸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봐서 첫결혼이라고 생각하는게 맞지 않을까 한다.

현존하는 <화랑세기>를 의심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누구도 하지 않은 이야기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이제 예고한 대로 선덕왕이 왕위에 올랐을때 덕만에 대한 평가를 보도록 하자.

위의 문장은 선덕(덕만)이 왕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하자 없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이 문장은 뒤의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내용을 수식하기 위한 내용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덕만과 관련된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예사로 넘기기 어려운 기록이 있다.

성품이 너그럽고,어질다
  영묘사 화재사건을 일으킨 <지귀설화>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 

<김유신의 춘추/문희불쇼>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어찌 되었던,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진짜던 가짜던 상관없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만으로 김유신 감독, 각본, 주연, "김춘추를 내사람으로 " 드라마에서 등장한 덕만이 신라 여왕(632년~647년) 시기에 있었던 일이 아닌 진평왕의 공주시절(628년 이전)에 있었던 일임을 증명하였다. 


총명하다.
<모란꽃,모란씨서되>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민첩하다

200
631년에 진평왕 말년 <칠숙의 난>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아직도 <성조황고>를 들어서 덕만은 나이가 많았을 거야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분이나 "그건 니생각이고"라고 하는 분들은 [역사이야기] - 이요원보다 남지현 나이때 왕위에 오른 덕만 <황고>에 대해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근거를 제시했다. 귀찬으신 분을 위해서 요약하자면, <성조황고>는 성스런 조상을 둔 임금(황제)의 성숙한 여식이란 뜻이다.

너무 어릴때 628년이전 문희와 김춘추를 얶어준 사건이 628년이라면 너무 덕만이 이른시기가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덕만이 632년 왕위에 오르고, 632년 결혼하고, 연호를 바꾸는  것을 근거로 635년 18~20세 전후라면 <모란꽃>, <김유신불쇼> 사건들은 덕만으로서 너무 어릴때 사건이 아닌가 의심할 수 도 있다. 

632년 16세에 왕위를 이었다고 한다면, 627년은 11살때 일이고, 628년이면 12살때 일이다. 현재의 기준으로 좀 어려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모란꽃 사건은 늙은 왕이 아주 어린 공주에나 물어 봄직한 말이 아닌가? 그리고 당시엔 깜짝 놀랄 추리 능력을 보인 덕만을 보고, 진평과 대신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용봉의 자질이 보였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기록이  "
총명하다"는 기록으로 남았다면 어떨가? 또한, 12살이전에 있었던 김유신의 불쇼에서 살려준 문희와 그의 복중 아들 법민은 어떨까? 어리지만 너그러워움의 상징이 아닌가?  지귀심화에서 신분도 미천한 지귀를 위해서 행한 행동들은 "너그러움" 자체이다. 또한, 지귀심화로 소실된 영묘사와 잦은 화재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할때 처리하는데 부적같은 주문을 만들어 백성들을 안정화 시키는 것으로 너그러움과 총명함과 민첩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지귀는 마음에서 불이 일어  
몸을 태우고 화신이 되었네.     
푸른 바다 밖 멀리 흘러갔으니,  
보지도 말고 친하지도 말지어다.  

 志鬼心中火(지귀심중화)    
 燒身變火神(소신변화신)
 流移滄海外(유이창해외)
 不見不相親(불견불상친)


"너그럽고, 어질고, 총명하고, 민첩하다" 라는 말은 선덕왕이 왕위에 오를때, 단순한 미사어구가 아닌 , 덕만은 <성조황고>이니 정통성에 하자도 없을 뿐만 아니고 충분히 왕 노릇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PS. 사실 세종대왕의 기사는 천명과 덕만은 같은 어미의 자식이다.라고 주장하는 혹시 모를 딴지가 들어올 반박문을 위해서 남겨두었습니다만, 이제 노출합니다. 이외에도 연산군과, 광해군의 출자를 비교해 본다면, 왜 적통 적자/서자에 연연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왕실 암투의 시작과 끝은 적자들간에도 있었지만, 서자를 낳을 수 밖에 없는 정비와 후비들 사이에도 있었습니다. 후비가 정비가 되면,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소생들인 왕자나 공주들은 인생의 역전 대박 로또가 되니 말입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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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Renesmee 2009.07.30 2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로워 눈을 떼지 못하고 끝까지 읽고 갑니다 ^.^ 역사를 많이 좋아하지만 그저 겉핥기일뿐이라
    항상 부끄러운데..참 부럽습니다! 저도 다시 공부해보고 싶은 맘이 새록새록 드네요...자주 들리게 될 것
    같습니다. ^ ^

  3. 오호.. 2009.07.30 2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보고갑니다. 이복형제라.....

  4. 헤윰 2009.07.30 2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해하기 쉽게 정리 하시느라 고생하셨겠어요.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5. 재밌네욤 2009.07.31 0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보았네요~~ 그런데 저도 앞에 계신 '성란'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신라시대의 골품제와 조선시대의 적장자 제도를 같은 기준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두 사회 모두 철저한 신분사회였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골품제와 적장제도를 연결시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것은 조선시대 등장한 적장자의 개념

    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저는 님께서 마지막 부분에 "설마 성골.진골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신라가 조선과는 다르다고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쓰신 부분에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역사를 전공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이렇게 단적으로 이야기를 하실 수 있을런지...

    각기 다른 시대의 신분제도를 이렇게 단편적으로 이어서 생각할 수 있는지 정말 놀랍습니다.

    물론 그 만큼 강력한 신분 사회였다는 점을 부각하고 싶으셨다는 느낌은 듭니다만...

    이러한 유교적인 관례가 뿌리 내린 것은 조선 성종 이후 경국대전 체제가 완성된 때 부터 입니다..

    단적으로 고려시대에는 왕의 후궁 중에 시집갔다 온 과부도 있었답니다..

    조선시대에 이런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겠죠..

    조선 초기의 족보에는 딸의 이름도 들어 있었답니다. 하지만 중기이후에 대전체제가 완성되면서 부터 아들

    을 중심으로 족보가 쓰여지고 있지요...

    •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7: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적서는 비슷하고, 신라가 더 강경했지요..

      이미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것으로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하는데.. 중기 이후다라는 말씀을 하시다니..

      남.여, 적서 차별 등 중기 조선 중기이후에 심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초기 기록을 내 놓은것 아닌가요? 그것도 살펴 보시길..

      왜 하필 조선의 초기기록을 들어서 조선과 신라를 비교했겠는지요..

      이글로 답변이 충분히 되었기를..
      님들은 저의 주장을 더욱 강고하게 하는 보론 성격입니다.. 반론이 아니공..

  6. 흐음... 2009.07.31 0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클이 되겠습니다만.....그냥 왠지 썩 잘 읽혀지는 글은 아니라서....뭔가 말이 맞지 않네요. 제 이해력이 딸리는 것인지....

    "그렇다고 해서 경녕군이 세종이 어미인 원경왕후 민씨는 될 수 없다. 물론, 의붓 큰어미이기는 하다."

    ㅡㅡ> "그렇다고 해서 경녕군이 세종의 어미인 원경왕후 민씨의 아들(혹은 소생)이 될 순 없다. 물론, 그의 의붓 큰어미 이기는 하다." 라고 쓰셔야 말이 될듯 하네요.

    또 " 그러니 일연은 선덕 또한, 진평왕의 말년에 정비는 승만왕후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일연은 선덕 또한" 다음에 왜 진평왕 말년에 정비는 승만왕후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쓰신건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아요. -_-;

  7. 딩가딩가딩 2009.07.31 0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

  8. BlogIcon Blah 2009.07.31 0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 기억이지만 그전 국사선생님 중 한 분이 조선에 유교사상이 들어오기 전까진
    남존여비사상이 조선같지 않았다...고 하셨던 생각이 납니다.
    한 예로 여자가 재가를 하는 건 꿈도 못꾸는 조선시대와는 달리 그전까지만해도
    여자들의 혼인이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고 하시면서요.

    암튼 대단하십니다.
    덕분에 요즘 재밌게 보는 선덕여왕 더욱 재밌게 볼 수 있겠습니다.

  9. 가야진 2009.07.31 0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때는 사실 한 어머니, 한 아버지의 자식이라는 게 사실 의미가 불분명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혼은 허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남녀 모두가 중혼적 성격을 가진 연인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자식도 모계사회인 신라의 골품제에 따라 진골까지는 신분을 부여 받았으니까요.

    여성의 힘에 대한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요즘 천추태후 등에서도 황제가 죽은 후 연인을 두는 모습이 그려지잖아요. 그리고 현재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다수의 역사서에서도 조선의 유고 사상 또한 중기 이후 정착한 것이고 이전의 사회에서는 여권이 힘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보잖아요. 물론 표면적으로는 남성사회로 이어져오긴 했지만, 전쟁이 많은 나라에서 남성의 권력이 사회의 기득이라고 보기에는 힘들다고 생각해요.(내조의 여왕처럼 전쟁에 나간 남성을 대신한 실질적 정치가 아내와 어머니등의 여성이 상당했으니까요.)

    이야기가 약간 옆길로 가긴 했지만, 저는 천명이 마야의 자식이 아니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잉첩들도 순수 혈통인 성골 출신으로만 이루어 져있기는 해도 이미 족강된 후이고, 천명이 후비의 자식이라면 정비의 자식인 덕만과 나이가 비슷한 상황에서 왕위계승자인 아들이 없다고해도 마야소생 이외의 인물이 권력을 가지기는 힘들지 않았을까요?

    신라에서 초혼은 대부분 왕을 제외하고는 여성의 골품이 더 높거나 같은 진골이라 해도 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질 수 있는 여성이 자신보다 낮은 지위를 가진 이와 하는 것이 일반적이 잖아요.


    예전에 어디서 들은 말인지, 읽은 것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제 머리 속에는 성골에서 족강되면 진골의 가장 위 계층이 되고 최근에 족강된 사람이 더 오래전 족강된 사람보다 힘이 있다는 기억이 있거든요.
    이것이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천명이 마야 소생이 아니라면 용수와 천명의 결혼은 불가하지 않았을까요?
    천명의 어머니가 성골이었다해도 용수보다는 더 오래전에 족강되었을테니까요.

    아, 글을 쓰다보니.... 아닐 수도 있겠네요. 천명의 어머니가 용수보다 나이가 어리다면, 저것도 가능하긴 할 것 같아요.

    휴, 요즘 선덕여왕 때문에 도서관에 선덕여왕 관련 책을 다 봐서 역사 공부는 되는데, 드라마 나이 설정이 뒤죽박죽이라 덕분에 제 머리도 뒤죽박죽이예요.

    글이 길어져버렸네요. 암튼, 저는 천명이 후비소생일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글 덕분에 경녕군 이야기는 처음 알게 됬어요. 브라보~!

    •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후비이거나 마야이전 정비라고 했던것 같은뎅..
      족강은 조선이 더 심했지요.. 신라보단

      오르기도 힘들고, 내려가기는 쉽고, 하지만, 조선의 전란이후는 다르지만.. 돈을 주면 언제든지.. 파고 사는게 족이였으니요..

  10. 오타발견!! 2009.07.31 0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께서 쓰신 글인가요? 잘 봤습니다.

    코를 찔찔 흘리며 다니던 어릴 시적부터 역사에 관심이 깊었던 관계로 우연히 지나치다가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도 너무 좋아합니다.ㅎㅎ)


    여러 모로 도움이 많이 됐던 글인 것 같아 잘 보고 갑니다.

    근데, 서론에 나오는 일연의 이야기는, 삼국유사를 지은 그를 말씀하시는게 맞겠죠?


    예를 들면, 진수의 삼국지를 배송지가 주석을 달아서 했던 그런 부류와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어쨌든, "의의를 제기" 라고 쓰셨는데, 의의라는 것은 '말이나 글의 속 뜻' 을 지칭하는 단어인데,

    "이의를 제기" 라고 쓰셔야 할 듯 하네요.ㅎㅎ

    문맥상 '다른 의견이나 주장' 이 들어가야 맞을 듯한 전개네요.ㅎ

    어찌됐든 잘 보고 갑니다.^^ㅎㅎㅎ

    •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군요.. 날려서 쓰는 버릇이 있어서요.. 자주 틀리는 것이였습니다.. 지적 ㄳ 합니다..

      제가 쓴것 맞습니다. 맞고요..

  11. 향수 2009.07.31 06: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조목조목 잘 비교하시면서 쓰셨네요..
    그저 알려진 정도의 역사만 알뿐이었는데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되어 기쁩니다
    앞으로도 이런글 열심히 써주세요..
    부지런히 읽어드릴께요..

  12. 제가 알기로는 2009.07.31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명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미실과 천명 모두 오직 <화랑세기>에만 기록되어 있어 그 둘이 가상의 인물일 확률이 높다고 들었습니다.그런데 또 이런 글을 보니 흥미롭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천명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공히 있는뎅..

      3녀인 천화를 말씀하시는것 아니신지요?

      화랑세기에는 덕만이라고 하지 않고, 왕의 시호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선덕, 천명, 천화.. 조금 냄새가 나지요.. 선화의 다른 이름 같은 천화라..

      흥미로웠다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__^

  13. 재주소녀 2009.07.31 0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렵지만...잼있네요~
    댓글 쓰는거 어려운거 아니네요
    ㅋ 부끄럽지만 처음 써봅니다.

  14. 캐스퍼 2009.07.31 0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어 보았습니다....
    글이 잘 정리 되신다면... 후에...
    "계급사회 변천사"를 쓰세요....
    아직까지....
    삼국시대 이전부터.. 그 이후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 근대화 시대....
    변변한 "계급사회의 변천사"가 없었습니다...
    아주 좋은 책이 될것으로 보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8: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무 어려운 말씀을 저는 그정도는 아닙니당.. 제 밥그릇도 있는뎅.. ㅠ.ㅠ.

      즐기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당.. 고수는 널려 있는게 강호의 세계가 아니겠습니까?

      칭찬은 ㄳ히 받겠습니당.. 염치불구하공..

      물론 추천도 때려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댓글들을 다시는 분들이라면.. ㅋㅋ ^___^;;;

  15. -- 2009.07.31 1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은 잘 읽었습니다만...

    역시 신라의 골품제와 조선의 적서개념을 뒤섞으면 안된다는 댓글 의견에 동의합니다..

    적서개념은 부계를 따르는 것이고

    골품제는 부계와 모계에 모두 적용되는 겁니다..

    두 가지를 같은 원리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부계뿐 아니라 모계혈통도 중시되었기 대문에 지소부인이 힘을 쓸 수 있었던 것이고

    선덕,진덕여왕이 즉위할 수 있었던 것이죠.

    너무 사료를 쉽게 자의적으로 해석하셨네요...

  16. BlogIcon 아르제크 2009.08.30 0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 초기에 왕가의 적서 문제가 엄밀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이성계가 자신의 이모형 이원계가 '서자'라고 몰아 아버지 이자춘의 다루가치 직을 대신 취했기 때문
    (이 때문에 이원계의 자녀들은 이천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성계로부터 이반합니다)
    2. 이방원이 '서모'인(그러나 정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아들인 세자 방석을 '서자'라는 이유로 폐했기 때문
    3. 성리학의 부계일원적 구조를 이제 막 도입하는 시기였기 때문(또 태종 스스로가 성리학자이기도 했고요)

    왕가는 자신의 정통성 확립과 함께 사회변혁에 대한 솔선을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적서 구분에 목을 매단 것입니다.
    실제 여말선초 사회에서 적서의 구분은 심하지 않았고 오히려 애매모호한 측면조차 보입니다.
    그것이 조선에 들어서 세월이 흘러갈수록 점점 적자만을 인정하는 형태로 변해간 것이죠.

    예를 들어 조선 초기의 재상인 하륜은 3대째에 적손의 대가 끊기게 되었는데, 이 같은 사실을 접한 당시에 이러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하륜의 서손을 적손으로 인정해서 과거시험을 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죠. 그런데 논의 결과, 공신 집안 하나를 우대하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고 나라의 법을 확실히 하는 것은 국가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특별 대우는 해줄 수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만일 적서의 구분이 이미 당연하고 엄밀한 것이었다면 이런 논의 자체가 있을 수 없었겠지요.


    꼭 신라까지 갈 것도 없이 고려말만 보더라도, 이모형제(이원계-이성계-이화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 이부형제(이성림-염흥방)와 같은 케이스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관직에 등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조선 중기 이후의 엄밀한 적서차별과 재가녀의 자식에 대한 천대를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신라시대에 성골 진골 구분의 실체가 없었을 거라는 의견에는 저도 삼국사기 삼국유사 좀 읽은 사람으로서 동의합니다만, 갓쉰동님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서도 독자들에게 성골진골을 구분하는 신라라면 적서구분이 있었음이 당연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 어떻게 된 영문인지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30 1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성골/진골을 믿는 사람이라면 단서가 붙은 거지요.. ^___^

      왕은 무치인데 적서의 차별이 있었겠습니까만은,, 공식적인 왕비의 후손이 왕통을 잇는것은 당연한거지요.. 1차 고려를 한다음 다음 수순으로 넘어가지 않겠습니까? 후계의 선택은 왕에 있는 것이고,,적이던 서던 말이지요.. 그러니 적서의 차별이 없었다고 할 수 없지요..

  17. 냠냠냠 2009.09.22 2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초혼이라고해서 나이가 어렸을껏이라고 생각하는건 말 그대로 '짐작'이겠지요.

  18. BlogIcon 천산 2009.10.14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유사왕력보에 기록된 배필이 되는 飮갈문왕이 누구인지 밝힌 것입니다. 그리고 수절이라는 말을 쓰려면 남편이 죽은 후가 되는데, 갓쉰동님은 飮갈문왕이 선덕여왕 시절에 이미 사망한 사람으로 알고 계시네요! 왜 그렇습니까? 님의 주장대로라면, 서기634년에 飮갈문왕을 세웠는데, 언제 사망하였다는 것입니까?

    • BlogIcon 갓쉰동 2009.10.15 08: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수절은 농담이였습니당.. ㅋㅋ
      그러니 음갈문왕이 언제 사망했는지, 아닌지는 제가 알길이 없지용..

  19. 레아 2009.10.22 1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이 젊었을때 즉위를 했다는 것에 대해선 태클을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진평왕은 10대 중반의 나이에 등극을 해서 왕위 계승기간이 자그만치 50여년이 되는데 선덕여왕이 젊은 나이에 등극을 했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선덕여왕이 젊은 나이에 등극을 했다면 그건 진평왕이 임기 말년에 마야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았다는 이야기 이며 더욱이 마야부인도 진평왕과 나이차이가 많이 났을 터이지만 역사서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22 2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덕여왕은 젊었을때 즉위한 것 같아용..
      마야부인이 천명의 어미라는 기록은 없지용.. 반면에 덕만은 마야와 진평의 딸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거든요. ㅋㅋ

  20. BlogIcon soup can storage rack 2012.11.01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며 더욱이 마야부인도 진평왕과 나이차이가 많이 났을 터이지만 역사서 어디에도

  21.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dogs for sale 2012.11.05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명의 동생이라고 했을까? 그건 화랑세기에 맡기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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