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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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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mbc 사극 드라마 선덕여왕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수 많은 여인들이 나온다. 현재 고현정이 맡고 있는 미실도 화랑세기에는 중요한 여인중에 하나이다. 역사물을 다루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라면, 사랑, 야망, 권력욕, 천재성을 두루 갖춘 주인공으로 내세울수 있는 최상의 캐릭터다.

하지만 미실 전에 지소, 금진, 옥진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지소는 법흥왕의 딸로서 작은아버지 입종에 시집을 가서 진흥을 낳는다. 하지만 진흥이 왕이 되기 위해서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법흥은 진흥보다는 지소의 두번째 남편인 영실이나, 미진(법흥/벽화)를 후계로 점지 했었다. 하지만, 지소의 반대로 법흥은 진흥을 자신의 후사로 결정할 수 밖에 없었고, 영실도 법흥의 후계가 되지를 못했다. 만약, 영실이 왕이 되었다면, 김씨에서 박씨로 성씨가 교체되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이전 여왕은 있었다. 첫번째는 누구?! 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번편은 금진/옥진 자매중 사다함의 어머니로 유명한, 금진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사다함의 죽음에 관한 비화

(C) MBC 선덕여왕, 사다함(박재정)

금진은 수 없이 많은 남성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지소와 미실과는 다르게 권력욕보다는 색욕이 강한 여성이였다. 사다함의 부장이였던, 무관이 금진과 사통하는 일이 발생한다. 금진과 무관의 관계는 사다함에 들키게 되고, 무관은 월성 담장을 넘어 도망치다 성을 보호하려 만들어놓은 해자(물웅덩이)에 빠져 죽고 만다.

사다함은 무관의 죽음에 비관하여  죽고 만다. 사다함이 죽게 되는 여러 이유 중에는 미실을 사랑하였으나, 미실은 세종에게 시집을 가벼렸다. 그리고 자신의 충직한 부관인 무관이 자신의 어미와 사통하다. 죽음에 이르게 된것이다. 사다함이 어머니의 색욕에 의해서 죽게되는 운명에 처한다. 사다함의 죽음에는 결국 어머니에 의한점이 많다.


금진의 남자들


이전글에서 지소의 남성편력을 상세히 이야기 했지만, 금진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알고 미실의 팜므파탈은 지소나 금진에 비하면 하수에 가깝다.

사실 사다함은 금진의 남편편력에 대해서 증오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미를 어미라 부르지 않던 사다함에게 이사부는 신도의 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에 사다함은 깨달음을 얻어  무관이 죽을 시점에는 어머니의 남성편력에 대해서 달관의 경지에 도달할 때 였다. 무관으로서는 이전 사다함이 어머니의 편력을 미워한 사실을 알고 있던터라 사다함에 들키자 무작정 도망을 치다 죽어버린 것이다.

상상을 해보자.  달이 밝지 않은 월성에서 도망자와 추적자..사다함이 무서워 무작정 도망가는 무관과 오해를 풀어주려던 사다함과, 자신을 죽일 것 같은 사다함.  "도망가지 마라 무관~, 괜찬다 무관", 말은 도망가지 말라고 하지만, 잡히면 죽을 것 같은 무관. 561년 가야정벌에서 가야인을 안심시키고 한번의 진공(공격)으로 가야를 무너트린 사다함의 계략을 잘고 있던 무관으로써는 당연히 오해를 살만 하지 않던가? 

구리지와 결혼을 하기전에는 금진은 법흥의 후비였지만, 법흥과 사이에는 후사를 보지 못했다. 540년 법흥이 죽고 나자. 구리지와 결혼을 하여 토함과 새달 그리고 5세 풍월주 사다함을 낳는다. 

법흥의 아우이며 지소의 남편인 입종을 통해서는 숙흘종을 낳는다. 숙흘종은 만호(지소/이화랑)의 사이에서 만명을 낳고, 만명이 김서현과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후 김유신을 낳는 것이다. 진흥을 통해서는 난성공주를 낳고, 누군지를 알 수 없는 상대에게서 준영을 낳는다. 

금진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남편의 양자인 설성과 관계해서 7세 풍월주인 설원랑을 낳는다.

 입종은 법흥과 같은 해인 540년 죽었다고 화랑세기는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금진의 첫째 아들은 숙흘종이 아닌가 한다. 이들의 순서는 설원랑이 사다함(546년생)보다 3살 어리다고 기록하였으니, 숙흘종(입종), 토함(구리지), 색달(구리지), 사다함(구리지), 설원랑(설성:549년생):(그림에는 548년생으로 나왔지만 오류), 난성(진흥), 준영(?) 이며 금진의 동복 형제자매가 되고, 순서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를 닮아 끈질긴 구리지

구리지는 이름이 현재에 봐도 조금 머시기 한 이름이 아닌가? 너~ 먼가 구리지..한마디로 하면 너 똥냄새 난다는 말이다. 
사실 구리지는 그의 아비인 비량이 법흥의 비였던 벽화(섬신/벽아)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머지 벽화와 화장실에서 관계를 해서 낳은 아들이다. 그래서 이름이 '구린내'를 뜻하는 구리지가 된 것이다. 

구리지는 아버지인 비량의 피를 이어 받아 끈질김이 있었다. 처음 금진이 법흥의 비가 되었을때, 한눈에 반해 사모하는 마음이 깊었다. 그래서 구리지는 '천주사'에서 5년동안을 금진을 자신에게 달라고 빌고, 빌었다. (천주사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그리고 마침 법흥과 입종이 죽자. 금진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구리지가 취한게 아니고 실은 금진이 구리지를 간택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던, 구리지는 "열번찍어 안넘어가는 여자 없다"는 고사를 만들어(?)낸 인물이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요즘도 여성에 대한 허황된 환상에 빠져 열번찍어 보는 경우도 있지만, 한결같이 5년동안 빌고비는 행위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성이지 않을까 한다. 미인을 얻는자는 그만한 대가를 치루게 되는 모양이다. 금진은 구리지에 만족하지 않고, 그후에도  수 없이 많은 남성을 자신의 남자로 만들고, 그로 인해 자식인 사다함까지 죽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으니 말이다. 

 

금진의 후손들

위의 금진의 남자들과 후손들을 보면 금진과 유신과는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금진 할미를 둔 덕만과 유신

금진/입종(법흥/연제) -> 숙흘종/만호(지소/이화랑) ->만명/서현 -> 유신 .
지소/이화랑->만호/동륜[진흥/사도(영실/옥진)] -> 진평/마야 [복승/송화(지소/영실)]-> 천명,덕만,천화

이로써 덕만과 유신은 만호를 할머니로 둔 사이가 된다.

설원랑과 미실의 손녀 사위 유신

또한, 설원랑과 유신은 금진의 자손이 된다. 또한, 설원랑이 준모(모랑/준화)를 통해서 낳은 미모가 미실/세종이 낳은 하종/미모과 결혼하여 영모를 낳는다. 영모는 유신이 풍월주에 오르는 18세가 되기 바로 전에 결혼을 한다. 

그러니 유신은  설원랑의 손녀사위가 되는 것이다. 또한 유신은 미실의 손녀사위가 되기도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미실과 설원랑은 김서현 가문과 척을 진적이 없고, 끈끈한 핏줄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과 전혀 다른 성격의 보종(미실/설원랑)

 

보종

15세 풍월주 유신에 이어서 16세 풍월주에 오르는 이도 설원랑/미실의 아들인 보종이 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보종은 청아하고, 정이 많고,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아는 사람으로 나온다. 보종은 유신이 어려움에 처했을때나 병이 났을때, 치료를 해주는 유신의 주치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드라마처럼 약역전담 처리반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유신공이 병이 나자 공이 문득 몸소 치료하며 “우리 공은 국가의 보배이니 나의 의술을 숨길 수 없습니다” 하였다. 이로써 그가 편작(扁鵲)243)의 학(의학)을 갖추었음을 모두 알게 되었다. - 화랑세기 16세 보종

또하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하종과 보종이 나오고 하종이 보종의 형으로 나오지만, 비슷한 연배로 나온다. 하지만, 실제는 하종은 563~4년생이고 보종은 580(?)년생이다. 유신은 595년생이다. 당시 기준으로 하면 하종은 유신의 할아버지뻘이고, 보종의 아버지 뻘이다. 그리고 11세 풍월주 하종의 딸인 영모가 유신과 결혼을 하니 유신은 하종의 사위가 되는 것이다.

남성 기능 장애자 세종 (댓글로 지적을 받아 삭제 해야 하나 남겨둡니다.)
 

세종

이전글에서 하종은 세종의 자식이 아닌, 미실과 사다함의 자식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하종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다함을 닮았다고 하며, 세종은 미실과는 다르게 하종을 제외하고는 후사가 없다. 세종에게 남성기능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하종은 사다함의 자식이 될 수 밖에 없다.

( 세종과 미실사이에는 하종 이외에 옥종이 있었습니다)

금진의 아들인 설원랑 편에서도 언급을 하겠지만 설원랑 가문은 진평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진평의 아들들 중 한명을 생산하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전혀 언급이 되어 있지 않는 왕자들이다. 승만왕후 소생은 일찍 죽고, 나머지 진평왕의 아들인 보로전군 이야기도 나온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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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사자의새벽 2009.08.03 0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정말 선덕여오앙에 대해 이렇게 심도있게 쓴글 처음입니다.
    돈이라도 드리고 싶네요 ㅋ
    갓쉰동님 좋은 한주 되세요!! 글 잘 봤습니다.

  2. BlogIcon 아르테미스♡ 2009.08.03 0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전문 블로거로 임명 합니다~
    ^^

  3.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3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역사전문 블로그로 말씀드리고 싶군요.
    한때 역사선생님이 되실려고 하셨기도 하고...
    잘 공부합니다.
    더불어 좋은글도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이번주도 행복한 한주 되시길 바랍니다.

  4. 희망 2009.08.03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춤법에좀 신경을 쓰시면서 글을 쓰면 좋겠네요.
    전문적이고 역사적인 글이 맞춤법 하나 틀리면서 얼마나 신뢰성을 잃는지 아신다면..

    띄어쓰기나 잘 쓰지 않은 표현을 틀린다면 몰라도
    세발의 피, 거늘이다 는 조금 알아두셔야 할듯 합니다.

  5. BlogIcon agkrihl 2009.08.03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치게 본인의 입맛에 맞추신듯... 내용을 미묘하게 누락하셨네요...

    화랑세기 필사본에 따르면 미실은 세종공과의 사이에서 하종외에 옥종공을 낳았습니다...

    하종공에 대해서도 하종이 사다함을 닮았으나 세종의 아들이라고 못을 밖고 있으며,

    사다함이 금진의 아들이고,

    미실이 금진의 언니인 옥진의 외손녀로 외모가 옥진과 닮아있었다 하니...

    미실의 아들이 사다함을 닮았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6. 뇽자 2009.08.04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너무 좋아 하는데...~~

    이렇게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을 줄이야 .....

    여튼 좋은 글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7.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8. BlogIcon pilot crackers alaska 2012.11.01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9.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 2012.11.05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문 블로거입니다. 내 피드에 가입하여 큰 게시물의 여분의 탐구에에 남아

  10. BlogIcon portable dog fencing camping 2012.12.20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 화랑세기에는 중요한 여인중에 하나이다. 역사물을 다루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라면, 사랑, 야망,

  11. BlogIcon food supplies for restaurants 2012.12.31 1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다함이 어머니의 색욕에 의해서 죽게되는 운명에 처한다. 사다함의 죽음에는 결국 어머니에 의한점이 많다.


200

(C) mbc 사극 드라마 선덕여왕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수 많은 여인들이 나온다. 현재 고현정이 맡고 있는 미실도 화랑세기에는 중요한 여인중에 하나이다. 역사물을 다루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라면, 사랑, 야망, 권력욕, 천재성을 두루 갖춘 주인공으로 내세울수 있는 최상의 캐릭터다.

하지만 미실 전에 지소, 금진, 옥진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지소는 법흥왕의 딸로서 작은아버지 입종에 시집을 가서 진흥을 낳는다. 하지만 진흥이 왕이 되기 위해서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법흥은 진흥보다는 지소의 두번째 남편인 영실이나, 미진(법흥/벽화)를 후계로 점지 했었다. 하지만, 지소의 반대로 법흥은 진흥을 자신의 후사로 결정할 수 밖에 없었고, 영실도 법흥의 후계가 되지를 못했다. 만약, 영실이 왕이 되었다면, 김씨에서 박씨로 성씨가 교체되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이전 여왕은 있었다. 첫번째는 누구?! 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번편은 금진/옥진 자매중 사다함의 어머니로 유명한, 금진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사다함의 죽음에 관한 비화

(C) MBC 선덕여왕, 사다함(박재정)

금진은 수 없이 많은 남성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지소와 미실과는 다르게 권력욕보다는 색욕이 강한 여성이였다. 사다함의 부장이였던, 무관이 금진과 사통하는 일이 발생한다. 금진과 무관의 관계는 사다함에 들키게 되고, 무관은 월성 담장을 넘어 도망치다 성을 보호하려 만들어놓은 해자(물웅덩이)에 빠져 죽고 만다.

사다함은 무관의 죽음에 비관하여  죽고 만다. 사다함이 죽게 되는 여러 이유 중에는 미실을 사랑하였으나, 미실은 세종에게 시집을 가벼렸다. 그리고 자신의 충직한 부관인 무관이 자신의 어미와 사통하다. 죽음에 이르게 된것이다. 사다함이 어머니의 색욕에 의해서 죽게되는 운명에 처한다. 사다함의 죽음에는 결국 어머니에 의한점이 많다.


금진의 남자들


이전글에서 지소의 남성편력을 상세히 이야기 했지만, 금진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알고 미실의 팜므파탈은 지소나 금진에 비하면 하수에 가깝다.

사실 사다함은 금진의 남편편력에 대해서 증오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미를 어미라 부르지 않던 사다함에게 이사부는 신도의 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에 사다함은 깨달음을 얻어  무관이 죽을 시점에는 어머니의 남성편력에 대해서 달관의 경지에 도달할 때 였다. 무관으로서는 이전 사다함이 어머니의 편력을 미워한 사실을 알고 있던터라 사다함에 들키자 무작정 도망을 치다 죽어버린 것이다.

상상을 해보자.  달이 밝지 않은 월성에서 도망자와 추적자..사다함이 무서워 무작정 도망가는 무관과 오해를 풀어주려던 사다함과, 자신을 죽일 것 같은 사다함.  "도망가지 마라 무관~, 괜찬다 무관", 말은 도망가지 말라고 하지만, 잡히면 죽을 것 같은 무관. 561년 가야정벌에서 가야인을 안심시키고 한번의 진공(공격)으로 가야를 무너트린 사다함의 계략을 잘고 있던 무관으로써는 당연히 오해를 살만 하지 않던가? 

구리지와 결혼을 하기전에는 금진은 법흥의 후비였지만, 법흥과 사이에는 후사를 보지 못했다. 540년 법흥이 죽고 나자. 구리지와 결혼을 하여 토함과 새달 그리고 5세 풍월주 사다함을 낳는다. 

법흥의 아우이며 지소의 남편인 입종을 통해서는 숙흘종을 낳는다. 숙흘종은 만호(지소/이화랑)의 사이에서 만명을 낳고, 만명이 김서현과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후 김유신을 낳는 것이다. 진흥을 통해서는 난성공주를 낳고, 누군지를 알 수 없는 상대에게서 준영을 낳는다. 

금진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남편의 양자인 설성과 관계해서 7세 풍월주인 설원랑을 낳는다.

 입종은 법흥과 같은 해인 540년 죽었다고 화랑세기는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금진의 첫째 아들은 숙흘종이 아닌가 한다. 이들의 순서는 설원랑이 사다함(546년생)보다 3살 어리다고 기록하였으니, 숙흘종(입종), 토함(구리지), 색달(구리지), 사다함(구리지), 설원랑(설성:549년생):(그림에는 548년생으로 나왔지만 오류), 난성(진흥), 준영(?) 이며 금진의 동복 형제자매가 되고, 순서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를 닮아 끈질긴 구리지

구리지는 이름이 현재에 봐도 조금 머시기 한 이름이 아닌가? 너~ 먼가 구리지..한마디로 하면 너 똥냄새 난다는 말이다. 
사실 구리지는 그의 아비인 비량이 법흥의 비였던 벽화(섬신/벽아)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머지 벽화와 화장실에서 관계를 해서 낳은 아들이다. 그래서 이름이 '구린내'를 뜻하는 구리지가 된 것이다. 

구리지는 아버지인 비량의 피를 이어 받아 끈질김이 있었다. 처음 금진이 법흥의 비가 되었을때, 한눈에 반해 사모하는 마음이 깊었다. 그래서 구리지는 '천주사'에서 5년동안을 금진을 자신에게 달라고 빌고, 빌었다. (천주사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그리고 마침 법흥과 입종이 죽자. 금진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구리지가 취한게 아니고 실은 금진이 구리지를 간택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던, 구리지는 "열번찍어 안넘어가는 여자 없다"는 고사를 만들어(?)낸 인물이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요즘도 여성에 대한 허황된 환상에 빠져 열번찍어 보는 경우도 있지만, 한결같이 5년동안 빌고비는 행위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성이지 않을까 한다. 미인을 얻는자는 그만한 대가를 치루게 되는 모양이다. 금진은 구리지에 만족하지 않고, 그후에도  수 없이 많은 남성을 자신의 남자로 만들고, 그로 인해 자식인 사다함까지 죽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으니 말이다. 

 

금진의 후손들

위의 금진의 남자들과 후손들을 보면 금진과 유신과는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금진 할미를 둔 덕만과 유신

금진/입종(법흥/연제) -> 숙흘종/만호(지소/이화랑) ->만명/서현 -> 유신 .
지소/이화랑->만호/동륜[진흥/사도(영실/옥진)] -> 진평/마야 [복승/송화(지소/영실)]-> 천명,덕만,천화

이로써 덕만과 유신은 만호를 할머니로 둔 사이가 된다.

설원랑과 미실의 손녀 사위 유신

또한, 설원랑과 유신은 금진의 자손이 된다. 또한, 설원랑이 준모(모랑/준화)를 통해서 낳은 미모가 미실/세종이 낳은 하종/미모과 결혼하여 영모를 낳는다. 영모는 유신이 풍월주에 오르는 18세가 되기 바로 전에 결혼을 한다. 

그러니 유신은  설원랑의 손녀사위가 되는 것이다. 또한 유신은 미실의 손녀사위가 되기도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미실과 설원랑은 김서현 가문과 척을 진적이 없고, 끈끈한 핏줄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과 전혀 다른 성격의 보종(미실/설원랑)

 

보종

15세 풍월주 유신에 이어서 16세 풍월주에 오르는 이도 설원랑/미실의 아들인 보종이 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보종은 청아하고, 정이 많고,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아는 사람으로 나온다. 보종은 유신이 어려움에 처했을때나 병이 났을때, 치료를 해주는 유신의 주치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드라마처럼 약역전담 처리반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유신공이 병이 나자 공이 문득 몸소 치료하며 “우리 공은 국가의 보배이니 나의 의술을 숨길 수 없습니다” 하였다. 이로써 그가 편작(扁鵲)243)의 학(의학)을 갖추었음을 모두 알게 되었다. - 화랑세기 16세 보종

또하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하종과 보종이 나오고 하종이 보종의 형으로 나오지만, 비슷한 연배로 나온다. 하지만, 실제는 하종은 563~4년생이고 보종은 580(?)년생이다. 유신은 595년생이다. 당시 기준으로 하면 하종은 유신의 할아버지뻘이고, 보종의 아버지 뻘이다. 그리고 11세 풍월주 하종의 딸인 영모가 유신과 결혼을 하니 유신은 하종의 사위가 되는 것이다.

남성 기능 장애자 세종 (댓글로 지적을 받아 삭제 해야 하나 남겨둡니다.)
 

세종

이전글에서 하종은 세종의 자식이 아닌, 미실과 사다함의 자식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하종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다함을 닮았다고 하며, 세종은 미실과는 다르게 하종을 제외하고는 후사가 없다. 세종에게 남성기능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하종은 사다함의 자식이 될 수 밖에 없다.

( 세종과 미실사이에는 하종 이외에 옥종이 있었습니다)

금진의 아들인 설원랑 편에서도 언급을 하겠지만 설원랑 가문은 진평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진평의 아들들 중 한명을 생산하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전혀 언급이 되어 있지 않는 왕자들이다. 승만왕후 소생은 일찍 죽고, 나머지 진평왕의 아들인 보로전군 이야기도 나온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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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사자의새벽 2009.08.03 0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정말 선덕여오앙에 대해 이렇게 심도있게 쓴글 처음입니다.
    돈이라도 드리고 싶네요 ㅋ
    갓쉰동님 좋은 한주 되세요!! 글 잘 봤습니다.

  2. BlogIcon 아르테미스♡ 2009.08.03 0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전문 블로거로 임명 합니다~
    ^^

  3.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3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역사전문 블로그로 말씀드리고 싶군요.
    한때 역사선생님이 되실려고 하셨기도 하고...
    잘 공부합니다.
    더불어 좋은글도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이번주도 행복한 한주 되시길 바랍니다.

  4. 희망 2009.08.03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춤법에좀 신경을 쓰시면서 글을 쓰면 좋겠네요.
    전문적이고 역사적인 글이 맞춤법 하나 틀리면서 얼마나 신뢰성을 잃는지 아신다면..

    띄어쓰기나 잘 쓰지 않은 표현을 틀린다면 몰라도
    세발의 피, 거늘이다 는 조금 알아두셔야 할듯 합니다.

  5. BlogIcon agkrihl 2009.08.03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치게 본인의 입맛에 맞추신듯... 내용을 미묘하게 누락하셨네요...

    화랑세기 필사본에 따르면 미실은 세종공과의 사이에서 하종외에 옥종공을 낳았습니다...

    하종공에 대해서도 하종이 사다함을 닮았으나 세종의 아들이라고 못을 밖고 있으며,

    사다함이 금진의 아들이고,

    미실이 금진의 언니인 옥진의 외손녀로 외모가 옥진과 닮아있었다 하니...

    미실의 아들이 사다함을 닮았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6. 뇽자 2009.08.04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너무 좋아 하는데...~~

    이렇게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을 줄이야 .....

    여튼 좋은 글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7.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8. BlogIcon pilot crackers alaska 2012.11.01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9.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 2012.11.05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문 블로거입니다. 내 피드에 가입하여 큰 게시물의 여분의 탐구에에 남아

  10. BlogIcon portable dog fencing camping 2012.12.20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 화랑세기에는 중요한 여인중에 하나이다. 역사물을 다루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라면, 사랑, 야망,

  11. BlogIcon food supplies for restaurants 2012.12.31 1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다함이 어머니의 색욕에 의해서 죽게되는 운명에 처한다. 사다함의 죽음에는 결국 어머니에 의한점이 많다.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글에서 덕만이 왕위에 쉽게 오를 수 있는 배경으로 덕만 선대에 있었던, 지소, 금진, 사도, 미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지소는 법흥의 딸이고, 법흥의 동생인 입종에 시집을 간다. 법흥이 죽고 나자, 7살의 어린 진흥(심맥종)이 왕위에 오르지만, 실질적인 전권을 행사하고,수렴청정을 하는 지소(법흥/보도)라고 했었다.

또한, 지소에게는 입종말고도, 진흥왕비인 사도의 아버지인 영실을 두번째 남편으로 두고 있었다. 이런 기록들은 현존하고 있는 <화랑세기>의 기록들의 단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미실의 선대 여인에 대한 이야기기들이 빠져있다. 미실이 존재하게 된 이유는 지소와 옥진, 금진이 있었기 때문에 미실이 살아갈 수 있었고, 국정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법흥왕(514~540) 말년부터 진평왕(579~632) 초기 10 여년 동안은 여인들이 신라를 지배하고 있었던 듯하다. 햇수로 대략 70~80년이 된다. 그러니 신라의 발전기에 해당하는 기간인  법흥왕 후반기~ 진평왕 초기까지 모두가 여인천하 아래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009년 현재 해방 65년이 지났지만, 일제 강점기 1910~1945년 까지 36년만으로도, 일제의 잔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덕만이 왕위에 오른다는 행위는, 현재로 보아서는 삼국에는 없는 여왕이 등극하다니? 하는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는 파천황적인 상황이지만, 화랑세기로 본다면, 당시 신라사회에서는 당연시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일본서기에 의하면 이미 당시 왜에서는 여왕천하에 있었다. 신라의 이웃 국가인 왜의 첫 여왕인 추고여왕(593~628), 제명.황극(641~645, 655~661) 사례도 있으니 충분히 고려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실을 있게 한 지소는 누구이며, 지소의 남자들은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전글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를 송고하면서 <지소의 남자>들을 개괄적인 다이어그램으로 보여 주었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사람과 사람이 얽키고 설켜 있어서 이들 간에 관계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계보도 또한 복잡하고, 결혼 상대자도 수시로 바뀌어, 남자나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 이를 추적한다는 것이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신들의 혼맥 보다도복잡하다. 그래서 이를 도표나 계보도를 만들어 놓고, 읽지 않는다면, 가계, 혼맥, 인맥, 남.여상열지사 조차 따라가다 보면 흐름을 놓치기 일 수 이다.

더 나아가 화랑세기는 화랑의 전기라고는 하지만, 수 없이 많이 등장하는 여성들로 인해서 지소전기, 금진전기, 사도전기, 미실전기 처럼 여인열전이 되버린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가계도를 정리 할 때, 남성중심의 부계 가계도, 족보을 작성한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남성중심의 가계도를 작성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여성중심의 가계도를 작성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오죽하면 화랑세기에서 조차도 <대원신통>, <진골정통> 등 여성의 신통과 인통을 중요하게 서술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진평왕과 마야의 맏딸인 <덕만>이 다른 누구보다 앞서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올랐는지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덕만이 오르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해서, 신라를 여인천하로 만든 시발점인 지소태후를 추적할 필요성이 있게 되었다.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글은 맛보기 정도 였다.

이전 글에서 여성 중심으로 그림을 작성하니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막연히 지소의 남자들이 많았구나. 미실도 팜브파탈이라고 하는데, 지소는 미실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부족함이 없구나 할 것이다. 그래서 여성 중심의 가계도를 작성하는 시발점의 맛보기 였고, 첫 여성계보도의 주자로 지소를 선택하게 된것이다.

크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그림을 보면 어떤가? 지소태후의 남자들이 너무나도 많지 않은가? 일국의 왕이나 했음직한 행동이다. 

화랑세기에서 지소를 빼 놓고는 연결이 되는게 하나도 없다. 부계로 찾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인맥과 혼맥과 이유들이 지소를 통해서 개안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소 중심인 모계도를 작성해 보니, 그전까지 단순히 덕만과 유신이 만호 할머니의 자식들이구나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덕만도, 유신도 지소의 후손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화랑세기가 복잡하면서도 재미가 솔솔하다.

실은 예전에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인물 각각의 성별, 생/몰, 부/모, 남편/부인, 관련 남.여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을 기록해 보관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다 완성하지는 못했고, 중간에 데이타가 다 지워져 버렸다. 처음 화랑세기의 인맥을 데이타베이스로 구축하고, 화랑세기를 분석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화랑세기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 였다. 결론을 약간 흘리자면 '현존 화랑세기는 너무나 정교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정도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미싱링크를 절묘하게 믹스해 놓은 거라고 할 정도였다.

어찌되었던, 여러가지 일 때문에 자연히 관심이 화랑세기에서 멀어졌고, 드라마 선덕여왕이 하기전까지 까막게 화랑세기를 추적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드라마 선덕여왕은 나의 기억 심연속에 숨어있던 역사에 대한 열정을 끄집어 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mbc 선덕여왕 제작팀에게 감사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 .

이번 글도 이전의 덕만의 공주시절부터 있었던, 에피소드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하나하나 추적하고, 덕만이 어린시절 왕에 오를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증명하는 시리즈 글이였듯이,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지소를 시작으로 옥진, 금진, 미실 등 여성중심의 계보도 시리즈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전 덕만 시리즈 글을 본사람은 느끼겠지만, 덕만을 추적할때 화랑세기를 인용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유는?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아직까지 역사적인 산물인 김대문의 기록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 것이 통설이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판하거나 할때는 화랑세기와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인용해서 비판을  했었다. 이유는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원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랑세기 원전을 들어서 소설 선덕여왕이 왜곡하고 있는 팩트를 지적했던 것이다.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원전으로 삼지 않았다면, 절대로 화랑세기를 인용하여,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판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는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판하는게 아니였다. 드라마의 원전인 소설 선덕여왕을 비판하는 것이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역사왜곡은 둘째치고라도 재미가 솔솔하다. 좀더 좋은 소설이나 원전을 가지고, 드라마 사극을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글에서는 전편에 이어서 지소 중심 계보도만을 게시하는 것으로 끝을 맺을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글이 너무 늘어지게 되고, 한두시간을 읽어도 모자라는 글이 되기 때문이다. 읽는데 한두시간이면 쓰는데 몇시간이 걸리겠는가? 그러니 당연히 시리즈 글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단 지소의 남편인 입종을 기준으로 계보도를 작성한 것이다. 입종의 기준으로 하면, 지소는 입종의 많은 여인중에 한사람이 된다. 그중 입종과 지소 사이에 진흥(540~576)이 태어난 것 처럼 보인다. 중심은 입종이 되는것이다. 그런데 입종이 중심이 아니고 지소가 중심에 서 있고, 단순히 지소가 여러 남자중 작은아버지 입종을 남편으로 선택한 것 처럼 보인다.


만호(지소/이화랑)는 동륜(진흥/사도)와 결혼해서 진평왕과 그 형제들을 낳았다. 입종과 옥진 사이에 태어난 숙흘종(입종/옥진)과 관계를 맺어, 만명(숙흘종/만호)를 낳았다. 이 만명이 서현과 사랑에 빠져 만노군으로 도피행각을 벌여 유신을 낳은 것이다.
 
전편에 지소의 남자로 입종과 금진 사이에 난 숙흘종과 관계를 맺어 만호를 낳았다고 하였지만, 이는 인맥을 잘못 살핀 것이다. 화랑세기는 삐끗 잘못하면, 삼천포로 빠져 버린다. 지소가 위화랑의 아들인 이화랑(위화랑/준실)과 관계를 맺어 숙흘종을 낳은 것이다.

어찌되었던 남성 중심의 입종이 아닌 여성인 지소를 기준으로 혼맥과 가계도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지소의남편들과 후손들 이미지 크릭시 원본을 볼 수 있음


지소의 10명의 남자 중에서 입종, 이사부, 구진, 영실, 이화랑에게서 후손을 본다.

입종, 이사부 

작은 아버지 입종(지증/연제)에게서는 진흥왕이 태어 났다. 

이사부 사이에는 미실의 남편인 세종과 진흥왕의 첫번째 정비인 숙명을 낳는다. 숙명은 처음 진흥왕에 시집을 갔지만, '어머니가 같은 형제가 된다'하여 진흥왕(지소/입종)이 멀리 하고, 숙명 또한, 진흥과 같은 이유로 진흥을 좋아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하여 숙태자를 낳았다. 숙명은 어머니 지소의 정부인 이화랑과 사랑에 빠져서 도피행각을 벌리고, 원광법사와 12세 풍월주인 보리를 낳는다. 이들의 형태가 서현과 만명의 사랑의 도피를 보는것 같지 않는가? 어찌되었던 보리는 화랑세기를 지은 김대문의 할아버지이다.


영실

아버지 법흥에 의해서 강제적인 결혼을 하였다.
영실과는 송화와 황화를 낳는데, 송화는 복승과 결혼해 진평왕의 비인 마야를 낳는다. 그들의 후손으로 화랑세기는 천명,덕만, 천화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천화가 서동의 아내인 선화의 냄새가 난다.
 

결국 덕만의 계보는 지소/영실->송화/복승-->마야/진평-> 천명, 덕만, 천화이 된다.
부계로는 지소/입종->진흥/사도 ->동륜/만호->진평/마야->덕만 이 된다.
결국 덕만은 모계로 지소에 통하고, 부계로도 지소와 연결이 된다.

영실은 지소 말고도 여러 아내가 있었는데, 그 중에 옥진이 있었다, 옥진은 1세 풍월주인 위화랑(섬신/벽아)의 딸이고, 사다함의 어머니인 금진의 언니가 된다. 영실/옥진은 사도, 노리부, 흥도, 묘도를 낳는다.

사도(영실/옥진)는, 숙명(이사부/지소)이 지소의 정부인 이화랑(위화랑/준실)과 사랑에 빠져 폐위된 이후 진흥비가 되어 동륜, 금륜(진지), 아양을 낳는다. 아양은 유신의 할아버지인 무력과 결혼하여 서현을 낳는다.

영실과 옥진 사이에 난 흥도는 기오(홍기/선혜)와 결혼해서 금륜(진지)비가 되는 지도를 낳는다. 지도는 금륜사이에 용수와 용춘 형제를 낳고, 진지왕이 죽은 후 진흥/월화 사이에서 난 천주공과 결혼한 후, 16세 보종(설원랑/미실)에 이어 17세 풍월주인 염장, 천장을 낳는다.

이화랑

이화랑과 사이에는 만호를 낳는데. 만호를 자신의 손자인 금륜(진흥/사도)에 시집보낸다.
만호는 지소의 남편의 소생인 숙흘종(입종/금진)과 정을 통하고 만명을 낳는다. 만명은 유신의 아버지인 서현에게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린후 만노군에서 유신을 낳는다. 서현의 어머니인 아양은 (진흥/사도)사이에 태어났다.
그러니 사다함은 모계쪽으로 보면 유신과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위화랑/오도 - >금진/입종->숙흘종/만호(지소/이화랑) -> 만명/서현 -> 유신
부계로는 무력/아양(진흥/사도)->서현/만명[숙흘종(입종/금진)/만호(지소/이화랑)] - >유신

또한, 유신은 지소의 중첩된 직계 후손인 것이다.
지소/입종->진흥/사도->아양/무력->서현/만명[숙흘종(입종/금진)/만호(지소/이화랑)]->만명->유신
할머니 만호는 동륜과 결혼해서 진평의 형제들을 낳았다. 그러니 진평왕과 만명은 동복남매간이 된다.

구진

구진은 지소의 침소를 지키는 자였는데, 지소와 관계를 가져 보명궁주를 낳는다. 보명궁주는 별궁에 살았는데, 진평왕의 아버지인 동륜이 태자시절인 572년 미실의 꼬임에 빠져 보명궁의 담을 넘다가 개에게 물려 죽고 만다. 이때 미실은 문책을 받아 궁에서 쫓겨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용수.용춘과 미실 사이를 적대적인 관계로 설정하엿다. 진지왕 폐위시 미실(묘도/미진)과 진흥비인 사도(영실/옥진)의  용수. 용춘의 아버지가 폐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수.용춘은 그 이후에도 왕실에서 중용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춘추가 진골이기 때문에 왕위를 잇는데 힘들었다고 하지만, 용수.용춘이 중용되는 것으로 봐서 신분상에 별다른 하자가 없는 것 같다. 또한, 위에서 진지비인 지도(홍도/기오)가 진지(금륜)이 죽은 후에서 천주공에 시집을 가고, 17세 풍월주인 염장을 낳는 것으로 봤을때 신분상 제약은 없었던 것으로 비쳐진다. 

어찌 되었던 법흥왕 말년부터 덕만에 이르기까지 지소의 후손이 아니면 힘을 쓸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옥진의 후손은 진흥비 사도(옥진/영실)과 지도[흥도(옥진/영실)/기오]가 된다. 

지소의 몸에서 난 숙명(지소/이사부)를 진흥(지소/입종)과 결혼시키고, 어쩔수 없자, 자신의 남편인 영실의 자식인 사도(영실/옥진)을 진흥비에 올린다. 아마도 숙명이 도망간 것은 지소로써는 의도하지 않았던 중대 사건이 아니였을가 한다. 그래서 이에 만족하지 않고, 만호(지소/이화랑)를 자신의 손자인 동륜(진흥/사도)와 결혼을 시키고 있다. 

화랑세기가 말한다. 진골, 성골은 없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영실을 남편으로 두고 있던, 지소 맥과 옥진 맥 간에 대결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화랑세기는 옥진 계열을 대원신통이라하고, 지소 계열을 진골정통이라고 하고 있다. 


(c) 영구아트

화랑세기를 엮어서 성골/진골은 모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부류 들이 있다. 또한, 대원신통은 성골이라하고, 진골정통은 진골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화랑세기를 재대로 읽는다면, 화랑세기에서 진골정통은 현재(김대문 시기)의 진골과 다르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 진골/성골를 구분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실제로 화랑세기 내에 진골은 진저리나게 많이 나오지만, 성골이라는 단 한글자도 없다. 사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읽어도 성골이란 단어는 두군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2,000년 대에 벌어지는 성골/진골 논쟁을 1,300년전 김대문이 화랑세기를 쓰면서 예측이라도 한것 같지 않는가? 


용수.용춘의 처인 천명의 모계는 마야이다. 마야(송화/복승)는 지소의 맥을 이은 송화(지소/영실)의 자식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진골정통이 되는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 진지(금륜)이 폐위되어 성골에서 진골로 족강되었다는 용수.용춘은 진골정통인 천명으로 인해서 복원되어 성골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최소한 그의 자식인 춘추라도 말이다.

진지왕의 비인 지도(옥진/영실->홍도/기오)는 옥진의 맥을 이은 대원신통이다. 그렇다면 용수.용추는 아버지 진지(금륜)의 폐위로 족강되었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게 된다. 용수.용춘은 자신의 아비가 왕이던 아니던 상관없이 폐위에 의한 족강여부에 상관없이 어머니인 지도에 의해서 처음부터 대원신통인것이다.  

또한, 진흥비 사도(옥진/영실)는 옥진의 후손이다. 그렇다면 진흥의 자식들은 이미 태어나자 마자 대원신통으로 결정된다는 이야기 이다. 결국에는 진흥왕의 아들인 동륜, 금륜이 진골이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진골보다 성스런 성골을 그렇게 함부로 내동댕이 칠 수 있는 것 인가? 그런데 아무도 동륜의 아들인 진평은 진골이라고 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이유야 있다. 진골정통인 지소의 딸인 만호(지소/이화랑)가 동륜에 시집을 감으로써 피 씻김을 했다는 것이다. 무슨 진골보다 성스럽고, 알찬성골이 자신들의 잘못된 논리에 의해서 이리 저리 이동을 하던가?

김유신을 대입하면 어찌될까? 김유신은 만명의 자식이다. 만명은 만호의 자식이다. 만호는 지소의 자식이다. 지소는 진골정통이다. 그러므로 김유신은 지소의 맥을 이은 진골정통이 된다. 그럼으로 김유신은 성골이다. 김춘추가 왕위에 오를때 성골이 없어서 진골인 김춘추가 올랐다고 하지만, 성골은 김유신도 있고, 그외 너무나도 많은 성골들이 보인다.


성골과 진골은 그냥 왕가에 편입되면 왕실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왕의 계승권은 전왕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 뿐이고, 없으면, 가까운 왕실사람부터  먼 왕실의 자손이라도 끌어와 왕위에 앉히는 것이다. 어느시대나 어느나라나 일반적인 형태에 불과하다. 신라라고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왕녀에 의해서 진골,성골이 결정된단 말인가? 그냥 진골이 성골이고, 성골이 진골인 것이다.  


어찌되었던 지소의 남편과 지소의 후손들을 지소중심의 모계 혼맥.가계도로 정리를 하였다. 위의 그림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신라 중기 법흥왕 말기과 진흥왕 초기 시기는 남자왕이 아닌 지소여왕의 시대 같아 보이지 않는가? 

지소태후 남편과 자손들 혼맥.계보 만을 올리고, 끝내려고 했는데, 여전히 글이 길어져 버렸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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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현철 2009.08.01 0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활기차고 알찬 8월 되시길...

  2. BlogIcon 미케미케 2009.08.01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성가계도 보다가 쥐쥐 쳤어요. 넘 어려워여 ㅠ
    저에게도 선덕여왕 정보를 몰래(?) 월욜날 선덕여왕 선수치게요 ㅋㅋ

  3. 오타지적 2009.08.01 1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문단

    수렴청청 -> 수렴청정

  4. BlogIcon 아이러니♡ 2009.08.01 1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역사글이라 읽는 도중에 포기했어요 ㅠ.ㅠ
    역사를 이렇게 잘 아는 갓쉰동님이 부럽네요 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08.01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무 어렵게 썼나 봅니당. 쉽게 쓸려고 노력했는뎅. 많은 사람들이 기존 알고 있는 내용을 첨가해 가면서리..

  5. ^^ 2009.08.01 1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 생각은 화랑세기 자체가 일제시대 때 박모씨에 의해 만들어진 판타지인만큼
    선덕여왕도 그냥 판타지라고 생각하고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냥 판타지라고 쳐도
    그 역사적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주인장님의 열정에는 감탄할 수 밖에 없군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01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박모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당.. 아마도 위작이라는 설이 대두되고, 위작으로 확인된다면, 지금까지 박모씨를 인용한 사람은 둘째치고, 인용하지 않았지만 영향을 받으며 논문을 쓴 사람들의 충격은 대단할 것 같습니다.

      물론, 소설가들은 박모씨 유족들간에 저작권 싸움에서 백전백패 할 것이구요..

  6.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1 1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로마시대 신들의 혼맥은 저리가라군요.
    무척 복잡합니다 ㅎㅎㅎ
    성골과 진골 구분에서 한참 봤습니다.
    제가 아는 역사와 차이가 나서 ㅎㅎㅎ
    열정에 감사드리며
    오늘도 많이 공부하고 갑니다.
    8월 한달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01 1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신들이 하는 일은 용서가 된다는 듯이 말이지요..

      성골/진골은 너무나 고착화 되어서 깨지기 힘들겁니다.. 저하나 발버둥 친다고 해서리..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성골은 없거든요.. 김부식도 성골이 있다고 하지않았어요.. 인용만 했징..

  7. 김윤중 2009.08.01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원하게 읽고 갑니다..감사합니다

  8. 남당 2009.08.01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당 박창화가 남긴 문서는 화랑세기 외에도 수십권이 더 있죠. 그중에는 아예 시조 이래의 혈통과 계보만을 상세히 기록한 상장돈장 같은 족보문서도 있구요....대원신통의 조상인 보미궁주는 미사흔을 탈출시키고 신라로 귀화해온 야국(다파나국)의 공주였지요. 성골이란 말은 아마도 후세(고려?)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일듯...소위 태조 왕건의 조상으로 등장하는 성골장군이나 당 황제(숙종?)등의 전설과도 맥이 닿아있는 후대의 허구겠죠.

  9. BlogIcon 유머조아 2009.08.01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흐아.. 가계도 보니 왠지 현기증이...

  10. BlogIcon elly 2009.08.02 0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당 박창화의 문서 중 신라사초를 읽다보면 그 윗대에, 미실이나 선덕여왕 혹은 지소태후보다 훨씬 더 쟁쟁했던 여인들이 나옵니다. 미실이나 선덕여왕은 생각치도 못한 권력을 가진 여인들이었지요. 그 여인들의 모든 것은 유교적 관점에 입각되어 많이 삭제된것 같아요. 대원신통의 조상이 보미공주라면, 진골정통의 조상은 소문국(지금의 의성에 있었다 신라에 흡수된 국가) 묘덕왕의 딸인 운모입니다. 운모의 자식인 옥모로 시작해서 지소태후로, 마야로 그리고 선덕여왕으로 이어진거죠. ^^

    또 우리가 몰랐던게 골품을 수여받는다라는건데요. 화랑세기를 읽든 신라사초를 읽든 어느 정도 나라에 큰 업적을 세우면 골품을 수여받더라구요. 그러니 진골 성골이란 것도 맞는 표현이 아닐 수도 있고, 사회의 계급자체가 인도의 계급처럼 고착되어 상하로의 통행이 안되는게 아니라 덜 고착되어있다고도 볼 수 있더라구요.

    신라의 복잡한 가계도지만 왜 이렇게 끌리는지 모르겠어요..ㅠ

    • BlogIcon 갓쉰동 2009.08.02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끌리는 무언가가 있는건 사실 저도 끌리고 있거든요.. 잼있고, 잼있고, 그렇더라구요.. 발상의 전환도 되고.. 파급력은 역대 최고가 아닐까 합니다.. ㅋㅋ

  11. min 2009.08.05 1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옥진이 대원신통이고 지소가 진골정통아닌가요?

  12. BlogIcon gadgeteer 2009.08.06 2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정말 글 잘 일고 갑니다. 소설 읽는것 처럼 재미있었고 단백했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13.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09.23 18: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삼 선덕여왕 재방송을 보다가 접속했습니다.
    미실의 실존에 대해 찾다보니 갓쉰동님의 블로그로 와 졌네요.

    참 복잡한 족보입니다.
    모두가 엮여져 있으니 - ;;

  14. 은 루히 2009.11.25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렇게 복잡해서야 원 -_-;;
    그냥 혈통에는 얽매이지 않는게 좋겠군요;

  15. 루미네요~ 2009.12.08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쓴분의 글을 읽고 나니 지금의 조선시대 유교사상으로 인해 여성의 지위가 낮아진것이 안타깝게 느껴지네요~~

  16. BlogIcon winter jacket coat 2011.11.16 2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고 나니 지금의 조선시대 유교사

  17. BlogIcon Trey 2011.11.21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게시물을 읽고이 게시물을 많은 유용한 정보를 가지고. 그것은 매우 유익한 물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여기 와서 싶습니다. 게시 이런 종류의 계속해야합니다.

  1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글에서 덕만이 왕위에 쉽게 오를 수 있는 배경으로 덕만 선대에 있었던, 지소, 금진, 사도, 미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지소는 법흥의 딸이고, 법흥의 동생인 입종에 시집을 간다. 법흥이 죽고 나자, 7살의 어린 진흥(심맥종)이 왕위에 오르지만, 실질적인 전권을 행사하고,수렴청정을 하는 지소(법흥/보도)라고 했었다.

또한, 지소에게는 입종말고도, 진흥왕비인 사도의 아버지인 영실을 두번째 남편으로 두고 있었다. 이런 기록들은 현존하고 있는 <화랑세기>의 기록들의 단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미실의 선대 여인에 대한 이야기기들이 빠져있다. 미실이 존재하게 된 이유는 지소와 옥진, 금진이 있었기 때문에 미실이 살아갈 수 있었고, 국정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법흥왕(514~540) 말년부터 진평왕(579~632) 초기 10 여년 동안은 여인들이 신라를 지배하고 있었던 듯하다. 햇수로 대략 70~80년이 된다. 그러니 신라의 발전기에 해당하는 기간인  법흥왕 후반기~ 진평왕 초기까지 모두가 여인천하 아래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009년 현재 해방 65년이 지났지만, 일제 강점기 1910~1945년 까지 36년만으로도, 일제의 잔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덕만이 왕위에 오른다는 행위는, 현재로 보아서는 삼국에는 없는 여왕이 등극하다니? 하는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는 파천황적인 상황이지만, 화랑세기로 본다면, 당시 신라사회에서는 당연시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일본서기에 의하면 이미 당시 왜에서는 여왕천하에 있었다. 신라의 이웃 국가인 왜의 첫 여왕인 추고여왕(593~628), 제명.황극(641~645, 655~661) 사례도 있으니 충분히 고려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실을 있게 한 지소는 누구이며, 지소의 남자들은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전글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를 송고하면서 <지소의 남자>들을 개괄적인 다이어그램으로 보여 주었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사람과 사람이 얽키고 설켜 있어서 이들 간에 관계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계보도 또한 복잡하고, 결혼 상대자도 수시로 바뀌어, 남자나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 이를 추적한다는 것이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신들의 혼맥 보다도복잡하다. 그래서 이를 도표나 계보도를 만들어 놓고, 읽지 않는다면, 가계, 혼맥, 인맥, 남.여상열지사 조차 따라가다 보면 흐름을 놓치기 일 수 이다.

더 나아가 화랑세기는 화랑의 전기라고는 하지만, 수 없이 많이 등장하는 여성들로 인해서 지소전기, 금진전기, 사도전기, 미실전기 처럼 여인열전이 되버린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가계도를 정리 할 때, 남성중심의 부계 가계도, 족보을 작성한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남성중심의 가계도를 작성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여성중심의 가계도를 작성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오죽하면 화랑세기에서 조차도 <대원신통>, <진골정통> 등 여성의 신통과 인통을 중요하게 서술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진평왕과 마야의 맏딸인 <덕만>이 다른 누구보다 앞서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올랐는지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덕만이 오르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해서, 신라를 여인천하로 만든 시발점인 지소태후를 추적할 필요성이 있게 되었다.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글은 맛보기 정도 였다.

이전 글에서 여성 중심으로 그림을 작성하니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막연히 지소의 남자들이 많았구나. 미실도 팜브파탈이라고 하는데, 지소는 미실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부족함이 없구나 할 것이다. 그래서 여성 중심의 가계도를 작성하는 시발점의 맛보기 였고, 첫 여성계보도의 주자로 지소를 선택하게 된것이다.

크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그림을 보면 어떤가? 지소태후의 남자들이 너무나도 많지 않은가? 일국의 왕이나 했음직한 행동이다. 

화랑세기에서 지소를 빼 놓고는 연결이 되는게 하나도 없다. 부계로 찾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인맥과 혼맥과 이유들이 지소를 통해서 개안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소 중심인 모계도를 작성해 보니, 그전까지 단순히 덕만과 유신이 만호 할머니의 자식들이구나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덕만도, 유신도 지소의 후손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화랑세기가 복잡하면서도 재미가 솔솔하다.

실은 예전에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인물 각각의 성별, 생/몰, 부/모, 남편/부인, 관련 남.여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을 기록해 보관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다 완성하지는 못했고, 중간에 데이타가 다 지워져 버렸다. 처음 화랑세기의 인맥을 데이타베이스로 구축하고, 화랑세기를 분석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화랑세기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 였다. 결론을 약간 흘리자면 '현존 화랑세기는 너무나 정교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정도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미싱링크를 절묘하게 믹스해 놓은 거라고 할 정도였다.

어찌되었던, 여러가지 일 때문에 자연히 관심이 화랑세기에서 멀어졌고, 드라마 선덕여왕이 하기전까지 까막게 화랑세기를 추적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드라마 선덕여왕은 나의 기억 심연속에 숨어있던 역사에 대한 열정을 끄집어 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mbc 선덕여왕 제작팀에게 감사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 .

이번 글도 이전의 덕만의 공주시절부터 있었던, 에피소드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하나하나 추적하고, 덕만이 어린시절 왕에 오를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증명하는 시리즈 글이였듯이,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지소를 시작으로 옥진, 금진, 미실 등 여성중심의 계보도 시리즈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전 덕만 시리즈 글을 본사람은 느끼겠지만, 덕만을 추적할때 화랑세기를 인용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유는?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아직까지 역사적인 산물인 김대문의 기록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 것이 통설이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판하거나 할때는 화랑세기와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인용해서 비판을  했었다. 이유는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원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랑세기 원전을 들어서 소설 선덕여왕이 왜곡하고 있는 팩트를 지적했던 것이다.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원전으로 삼지 않았다면, 절대로 화랑세기를 인용하여,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판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는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판하는게 아니였다. 드라마의 원전인 소설 선덕여왕을 비판하는 것이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역사왜곡은 둘째치고라도 재미가 솔솔하다. 좀더 좋은 소설이나 원전을 가지고, 드라마 사극을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글에서는 전편에 이어서 지소 중심 계보도만을 게시하는 것으로 끝을 맺을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글이 너무 늘어지게 되고, 한두시간을 읽어도 모자라는 글이 되기 때문이다. 읽는데 한두시간이면 쓰는데 몇시간이 걸리겠는가? 그러니 당연히 시리즈 글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단 지소의 남편인 입종을 기준으로 계보도를 작성한 것이다. 입종의 기준으로 하면, 지소는 입종의 많은 여인중에 한사람이 된다. 그중 입종과 지소 사이에 진흥(540~576)이 태어난 것 처럼 보인다. 중심은 입종이 되는것이다. 그런데 입종이 중심이 아니고 지소가 중심에 서 있고, 단순히 지소가 여러 남자중 작은아버지 입종을 남편으로 선택한 것 처럼 보인다.


만호(지소/이화랑)는 동륜(진흥/사도)와 결혼해서 진평왕과 그 형제들을 낳았다. 입종과 옥진 사이에 태어난 숙흘종(입종/옥진)과 관계를 맺어, 만명(숙흘종/만호)를 낳았다. 이 만명이 서현과 사랑에 빠져 만노군으로 도피행각을 벌여 유신을 낳은 것이다.
 
전편에 지소의 남자로 입종과 금진 사이에 난 숙흘종과 관계를 맺어 만호를 낳았다고 하였지만, 이는 인맥을 잘못 살핀 것이다. 화랑세기는 삐끗 잘못하면, 삼천포로 빠져 버린다. 지소가 위화랑의 아들인 이화랑(위화랑/준실)과 관계를 맺어 숙흘종을 낳은 것이다.

어찌되었던 남성 중심의 입종이 아닌 여성인 지소를 기준으로 혼맥과 가계도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지소의남편들과 후손들 이미지 크릭시 원본을 볼 수 있음


지소의 10명의 남자 중에서 입종, 이사부, 구진, 영실, 이화랑에게서 후손을 본다.

입종, 이사부 

작은 아버지 입종(지증/연제)에게서는 진흥왕이 태어 났다. 

이사부 사이에는 미실의 남편인 세종과 진흥왕의 첫번째 정비인 숙명을 낳는다. 숙명은 처음 진흥왕에 시집을 갔지만, '어머니가 같은 형제가 된다'하여 진흥왕(지소/입종)이 멀리 하고, 숙명 또한, 진흥과 같은 이유로 진흥을 좋아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하여 숙태자를 낳았다. 숙명은 어머니 지소의 정부인 이화랑과 사랑에 빠져서 도피행각을 벌리고, 원광법사와 12세 풍월주인 보리를 낳는다. 이들의 형태가 서현과 만명의 사랑의 도피를 보는것 같지 않는가? 어찌되었던 보리는 화랑세기를 지은 김대문의 할아버지이다.


영실

아버지 법흥에 의해서 강제적인 결혼을 하였다.
영실과는 송화와 황화를 낳는데, 송화는 복승과 결혼해 진평왕의 비인 마야를 낳는다. 그들의 후손으로 화랑세기는 천명,덕만, 천화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천화가 서동의 아내인 선화의 냄새가 난다.
 

결국 덕만의 계보는 지소/영실->송화/복승-->마야/진평-> 천명, 덕만, 천화이 된다.
부계로는 지소/입종->진흥/사도 ->동륜/만호->진평/마야->덕만 이 된다.
결국 덕만은 모계로 지소에 통하고, 부계로도 지소와 연결이 된다.

영실은 지소 말고도 여러 아내가 있었는데, 그 중에 옥진이 있었다, 옥진은 1세 풍월주인 위화랑(섬신/벽아)의 딸이고, 사다함의 어머니인 금진의 언니가 된다. 영실/옥진은 사도, 노리부, 흥도, 묘도를 낳는다.

사도(영실/옥진)는, 숙명(이사부/지소)이 지소의 정부인 이화랑(위화랑/준실)과 사랑에 빠져 폐위된 이후 진흥비가 되어 동륜, 금륜(진지), 아양을 낳는다. 아양은 유신의 할아버지인 무력과 결혼하여 서현을 낳는다.

영실과 옥진 사이에 난 흥도는 기오(홍기/선혜)와 결혼해서 금륜(진지)비가 되는 지도를 낳는다. 지도는 금륜사이에 용수와 용춘 형제를 낳고, 진지왕이 죽은 후 진흥/월화 사이에서 난 천주공과 결혼한 후, 16세 보종(설원랑/미실)에 이어 17세 풍월주인 염장, 천장을 낳는다.

이화랑

이화랑과 사이에는 만호를 낳는데. 만호를 자신의 손자인 금륜(진흥/사도)에 시집보낸다.
만호는 지소의 남편의 소생인 숙흘종(입종/금진)과 정을 통하고 만명을 낳는다. 만명은 유신의 아버지인 서현에게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린후 만노군에서 유신을 낳는다. 서현의 어머니인 아양은 (진흥/사도)사이에 태어났다.
그러니 사다함은 모계쪽으로 보면 유신과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위화랑/오도 - >금진/입종->숙흘종/만호(지소/이화랑) -> 만명/서현 -> 유신
부계로는 무력/아양(진흥/사도)->서현/만명[숙흘종(입종/금진)/만호(지소/이화랑)] - >유신

또한, 유신은 지소의 중첩된 직계 후손인 것이다.
지소/입종->진흥/사도->아양/무력->서현/만명[숙흘종(입종/금진)/만호(지소/이화랑)]->만명->유신
할머니 만호는 동륜과 결혼해서 진평의 형제들을 낳았다. 그러니 진평왕과 만명은 동복남매간이 된다.

구진

구진은 지소의 침소를 지키는 자였는데, 지소와 관계를 가져 보명궁주를 낳는다. 보명궁주는 별궁에 살았는데, 진평왕의 아버지인 동륜이 태자시절인 572년 미실의 꼬임에 빠져 보명궁의 담을 넘다가 개에게 물려 죽고 만다. 이때 미실은 문책을 받아 궁에서 쫓겨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용수.용춘과 미실 사이를 적대적인 관계로 설정하엿다. 진지왕 폐위시 미실(묘도/미진)과 진흥비인 사도(영실/옥진)의  용수. 용춘의 아버지가 폐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수.용춘은 그 이후에도 왕실에서 중용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춘추가 진골이기 때문에 왕위를 잇는데 힘들었다고 하지만, 용수.용춘이 중용되는 것으로 봐서 신분상에 별다른 하자가 없는 것 같다. 또한, 위에서 진지비인 지도(홍도/기오)가 진지(금륜)이 죽은 후에서 천주공에 시집을 가고, 17세 풍월주인 염장을 낳는 것으로 봤을때 신분상 제약은 없었던 것으로 비쳐진다. 

어찌 되었던 법흥왕 말년부터 덕만에 이르기까지 지소의 후손이 아니면 힘을 쓸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옥진의 후손은 진흥비 사도(옥진/영실)과 지도[흥도(옥진/영실)/기오]가 된다. 

지소의 몸에서 난 숙명(지소/이사부)를 진흥(지소/입종)과 결혼시키고, 어쩔수 없자, 자신의 남편인 영실의 자식인 사도(영실/옥진)을 진흥비에 올린다. 아마도 숙명이 도망간 것은 지소로써는 의도하지 않았던 중대 사건이 아니였을가 한다. 그래서 이에 만족하지 않고, 만호(지소/이화랑)를 자신의 손자인 동륜(진흥/사도)와 결혼을 시키고 있다. 

화랑세기가 말한다. 진골, 성골은 없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영실을 남편으로 두고 있던, 지소 맥과 옥진 맥 간에 대결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화랑세기는 옥진 계열을 대원신통이라하고, 지소 계열을 진골정통이라고 하고 있다. 


(c) 영구아트

화랑세기를 엮어서 성골/진골은 모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부류 들이 있다. 또한, 대원신통은 성골이라하고, 진골정통은 진골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화랑세기를 재대로 읽는다면, 화랑세기에서 진골정통은 현재(김대문 시기)의 진골과 다르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 진골/성골를 구분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실제로 화랑세기 내에 진골은 진저리나게 많이 나오지만, 성골이라는 단 한글자도 없다. 사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읽어도 성골이란 단어는 두군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2,000년 대에 벌어지는 성골/진골 논쟁을 1,300년전 김대문이 화랑세기를 쓰면서 예측이라도 한것 같지 않는가? 


용수.용춘의 처인 천명의 모계는 마야이다. 마야(송화/복승)는 지소의 맥을 이은 송화(지소/영실)의 자식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진골정통이 되는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 진지(금륜)이 폐위되어 성골에서 진골로 족강되었다는 용수.용춘은 진골정통인 천명으로 인해서 복원되어 성골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최소한 그의 자식인 춘추라도 말이다.

진지왕의 비인 지도(옥진/영실->홍도/기오)는 옥진의 맥을 이은 대원신통이다. 그렇다면 용수.용추는 아버지 진지(금륜)의 폐위로 족강되었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게 된다. 용수.용춘은 자신의 아비가 왕이던 아니던 상관없이 폐위에 의한 족강여부에 상관없이 어머니인 지도에 의해서 처음부터 대원신통인것이다.  

또한, 진흥비 사도(옥진/영실)는 옥진의 후손이다. 그렇다면 진흥의 자식들은 이미 태어나자 마자 대원신통으로 결정된다는 이야기 이다. 결국에는 진흥왕의 아들인 동륜, 금륜이 진골이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진골보다 성스런 성골을 그렇게 함부로 내동댕이 칠 수 있는 것 인가? 그런데 아무도 동륜의 아들인 진평은 진골이라고 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이유야 있다. 진골정통인 지소의 딸인 만호(지소/이화랑)가 동륜에 시집을 감으로써 피 씻김을 했다는 것이다. 무슨 진골보다 성스럽고, 알찬성골이 자신들의 잘못된 논리에 의해서 이리 저리 이동을 하던가?

김유신을 대입하면 어찌될까? 김유신은 만명의 자식이다. 만명은 만호의 자식이다. 만호는 지소의 자식이다. 지소는 진골정통이다. 그러므로 김유신은 지소의 맥을 이은 진골정통이 된다. 그럼으로 김유신은 성골이다. 김춘추가 왕위에 오를때 성골이 없어서 진골인 김춘추가 올랐다고 하지만, 성골은 김유신도 있고, 그외 너무나도 많은 성골들이 보인다.


성골과 진골은 그냥 왕가에 편입되면 왕실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왕의 계승권은 전왕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 뿐이고, 없으면, 가까운 왕실사람부터  먼 왕실의 자손이라도 끌어와 왕위에 앉히는 것이다. 어느시대나 어느나라나 일반적인 형태에 불과하다. 신라라고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왕녀에 의해서 진골,성골이 결정된단 말인가? 그냥 진골이 성골이고, 성골이 진골인 것이다.  


어찌되었던 지소의 남편과 지소의 후손들을 지소중심의 모계 혼맥.가계도로 정리를 하였다. 위의 그림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신라 중기 법흥왕 말기과 진흥왕 초기 시기는 남자왕이 아닌 지소여왕의 시대 같아 보이지 않는가? 

지소태후 남편과 자손들 혼맥.계보 만을 올리고, 끝내려고 했는데, 여전히 글이 길어져 버렸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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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현철 2009.08.01 0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활기차고 알찬 8월 되시길...

  2. BlogIcon 미케미케 2009.08.01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성가계도 보다가 쥐쥐 쳤어요. 넘 어려워여 ㅠ
    저에게도 선덕여왕 정보를 몰래(?) 월욜날 선덕여왕 선수치게요 ㅋㅋ

  3. 오타지적 2009.08.01 1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문단

    수렴청청 -> 수렴청정

  4. BlogIcon 아이러니♡ 2009.08.01 1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역사글이라 읽는 도중에 포기했어요 ㅠ.ㅠ
    역사를 이렇게 잘 아는 갓쉰동님이 부럽네요 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08.01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무 어렵게 썼나 봅니당. 쉽게 쓸려고 노력했는뎅. 많은 사람들이 기존 알고 있는 내용을 첨가해 가면서리..

  5. ^^ 2009.08.01 1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 생각은 화랑세기 자체가 일제시대 때 박모씨에 의해 만들어진 판타지인만큼
    선덕여왕도 그냥 판타지라고 생각하고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냥 판타지라고 쳐도
    그 역사적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주인장님의 열정에는 감탄할 수 밖에 없군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01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박모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당.. 아마도 위작이라는 설이 대두되고, 위작으로 확인된다면, 지금까지 박모씨를 인용한 사람은 둘째치고, 인용하지 않았지만 영향을 받으며 논문을 쓴 사람들의 충격은 대단할 것 같습니다.

      물론, 소설가들은 박모씨 유족들간에 저작권 싸움에서 백전백패 할 것이구요..

  6.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1 1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로마시대 신들의 혼맥은 저리가라군요.
    무척 복잡합니다 ㅎㅎㅎ
    성골과 진골 구분에서 한참 봤습니다.
    제가 아는 역사와 차이가 나서 ㅎㅎㅎ
    열정에 감사드리며
    오늘도 많이 공부하고 갑니다.
    8월 한달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01 1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신들이 하는 일은 용서가 된다는 듯이 말이지요..

      성골/진골은 너무나 고착화 되어서 깨지기 힘들겁니다.. 저하나 발버둥 친다고 해서리..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성골은 없거든요.. 김부식도 성골이 있다고 하지않았어요.. 인용만 했징..

  7. 김윤중 2009.08.01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원하게 읽고 갑니다..감사합니다

  8. 남당 2009.08.01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당 박창화가 남긴 문서는 화랑세기 외에도 수십권이 더 있죠. 그중에는 아예 시조 이래의 혈통과 계보만을 상세히 기록한 상장돈장 같은 족보문서도 있구요....대원신통의 조상인 보미궁주는 미사흔을 탈출시키고 신라로 귀화해온 야국(다파나국)의 공주였지요. 성골이란 말은 아마도 후세(고려?)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일듯...소위 태조 왕건의 조상으로 등장하는 성골장군이나 당 황제(숙종?)등의 전설과도 맥이 닿아있는 후대의 허구겠죠.

  9. BlogIcon 유머조아 2009.08.01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흐아.. 가계도 보니 왠지 현기증이...

  10. BlogIcon elly 2009.08.02 0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당 박창화의 문서 중 신라사초를 읽다보면 그 윗대에, 미실이나 선덕여왕 혹은 지소태후보다 훨씬 더 쟁쟁했던 여인들이 나옵니다. 미실이나 선덕여왕은 생각치도 못한 권력을 가진 여인들이었지요. 그 여인들의 모든 것은 유교적 관점에 입각되어 많이 삭제된것 같아요. 대원신통의 조상이 보미공주라면, 진골정통의 조상은 소문국(지금의 의성에 있었다 신라에 흡수된 국가) 묘덕왕의 딸인 운모입니다. 운모의 자식인 옥모로 시작해서 지소태후로, 마야로 그리고 선덕여왕으로 이어진거죠. ^^

    또 우리가 몰랐던게 골품을 수여받는다라는건데요. 화랑세기를 읽든 신라사초를 읽든 어느 정도 나라에 큰 업적을 세우면 골품을 수여받더라구요. 그러니 진골 성골이란 것도 맞는 표현이 아닐 수도 있고, 사회의 계급자체가 인도의 계급처럼 고착되어 상하로의 통행이 안되는게 아니라 덜 고착되어있다고도 볼 수 있더라구요.

    신라의 복잡한 가계도지만 왜 이렇게 끌리는지 모르겠어요..ㅠ

    • BlogIcon 갓쉰동 2009.08.02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끌리는 무언가가 있는건 사실 저도 끌리고 있거든요.. 잼있고, 잼있고, 그렇더라구요.. 발상의 전환도 되고.. 파급력은 역대 최고가 아닐까 합니다.. ㅋㅋ

  11. min 2009.08.05 1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옥진이 대원신통이고 지소가 진골정통아닌가요?

  12. BlogIcon gadgeteer 2009.08.06 2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정말 글 잘 일고 갑니다. 소설 읽는것 처럼 재미있었고 단백했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13.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09.23 18: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삼 선덕여왕 재방송을 보다가 접속했습니다.
    미실의 실존에 대해 찾다보니 갓쉰동님의 블로그로 와 졌네요.

    참 복잡한 족보입니다.
    모두가 엮여져 있으니 - ;;

  14. 은 루히 2009.11.25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렇게 복잡해서야 원 -_-;;
    그냥 혈통에는 얽매이지 않는게 좋겠군요;

  15. 루미네요~ 2009.12.08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쓴분의 글을 읽고 나니 지금의 조선시대 유교사상으로 인해 여성의 지위가 낮아진것이 안타깝게 느껴지네요~~

  16. BlogIcon winter jacket coat 2011.11.16 2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고 나니 지금의 조선시대 유교사

  17. BlogIcon Trey 2011.11.21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게시물을 읽고이 게시물을 많은 유용한 정보를 가지고. 그것은 매우 유익한 물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여기 와서 싶습니다. 게시 이런 종류의 계속해야합니다.

  1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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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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