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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이 즉위하고 <성조황고>라 불리운다. 또한, 김유신(엄태웅)이 비담(김남길)의 술수에 속아 <우산국(울릉도)>로 유배를 떠난다. 이때 선덕여왕 덕만(이요원)은 김유신에게 밀서를 주고 서쪽 변경을 염탐하도록 밀명을 내린다.

일단 선덕여왕시기에 우산국(울릉도)를 쓸 수 있는 말인지는 지금 논한다면 글이 길어지니 다음 기회에 논하기로 하자. 다음 포스팅을 본다면 정말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별도로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덕만 "성조황고"를 쓸 수 있을까?

밀서에 다음과 같은 황제의 밀서임을 알리는 단어가 들어간다. 덕만의 수결이 아닌 <성조황고(聖祖皇姑)>의 덕만을 지칭하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이다. 사실 선덕여왕은 죽은 다음에 사용하는 시호 용어이니 선덕여왕 당시에 선덕여왕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안된다.
 


우리는 잠깐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역사를 거슬러 진흥왕 말년의 시기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진흥왕은 자신이 죽을 날이 가까워 오자 자신이 옥새를 맡긴 <새주> 미실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에 자신의 측근이라고 믿었던 설원에게 밀서를 주면서 미실을 차단할것을 주문하지만 설원은 미실의 편에 서서 진흥왕이 미실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반대로 진흥왕을 암살할것을 모의하고, 실천하려 독을 들고 들어간다.


이때 준 밀서가 미실의 손에서 설원의 손으로 넘어간다. 만약, 미실이 설원을 배신한다면 협박 보험용으로 써먹으라고 준다. 이 밀서는 다시 설원에게서 미실의 손을 거처 소화의 손으로 다시  덕만에게 넘어가고, 덕만이 숨겨둔 장소를 비담에게 알려 비담의 손에 들어간다. 비담이 밀서를 공개했을 때는 다음 사진처럼 나온다. 밀서의 형식이 아닌 공문서의 형식을 띄고 있고, 무신년 <간지>와 <옥새>가 명확히 찍혀있다. 

무신년 3월(588년) 진펴왕 10년

무신戊申
588년
신   라 :  진평왕 10년
백   제 :  위덕왕 35년
고구려 :  평원왕 30년

무신년 년도는 고사하고 몇가지 문제가 있으니 미실, 비담 덕만 등은 당연히 의문을 품는게 정상적이다. 옥새를 주관 하는 자는 미실이다. 진흥왕이 미실의 손을 통하지 않고 <옥새>를 찍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미실이 마찬가지로 천신황녀였고 새주인 진평왕때도 옥새는 미실의 수중에 있었다. 하지만 진평왕은 옥새를 미실의 손이 닿지 않는 소화의 손에 숨긴다.

또하나의 극중 논리적 모순은 <간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흥왕은 연호를 사용했다. 무신년은 진흥왕이 죽은 576년보다 12년 후인 588년으로 진평왕 10년이 된다. 그러니 당연히 연호가 우선이다. 옥새도 찍히지 않아야 하고, 단지 수결만이 진흥왕을 상징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비담이 가지고 있는 신라의적 미실척살 밀서는 <위서>이고 조작된 문서라는 뜻이다.

하지만 머리 좋고 귀신도 잡고, 미실을 닮아  꾀돌이인 비담도 알지 못하고, 어릴적 부터 영민한 덕만도 이를 알지 못한다. 또한, 미실, 설원 등 이해당사자들도 밀지가 <조작>되어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2009/11/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진흥왕(이순재) 신라의적 미실(고현정)척살 - 만화보다 못한 미실 죽음 고현정 하차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성조황고 덕만과 천신황녀 미실 누가 더 높을까?

성조황고


밀서에 등장하는 <성조황고>왜 등장하게 되었을까? 정상적인 문서라면 덕만의 이름이 들어가고 <수결>처럼 왕의 싸인이 들어가면 그만이다. 그렇지 않다면 옥쇄를 찍던지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런데 하필 성조황고일까?


이런 질문을 하면 많은 사람들은 황제인 덕만이니 천신황녀보다 성조황고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글을 끝까지 읽어보기 바란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성조황고>를 빗대서 미실을 <천신황녀>라는 직위를 부여한적이 있고, 덕만은 <천신황녀>의 직위를 있을 수 없는 보름날 일식 사건으로 미실로 부터 빼앗아 버린다. 그리고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때 <성조황고>가 된것이다.

문제는 <천신황녀>가 <성조황고> 보다는 높은 지위에 있다. <성조>는 단순히 하늘의 대행자인 성스런 조상을 둔 자란 뜻이고, <천신>은 직접적으로 하늘신이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천신 >> 성조의 뜻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덕만은 공주였을때 천신황녀에서 왕이 되었지만 직급이 내려가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봉착한다는 뜻이다.


또한, <황녀>와 <황고>를 대응하여 황녀<<황고라고 생각한 듯 하다. 하지만, 이는 별차이가 없는 용법에 지나지 않는다. 많이 양보한다면 <황고>는 여인(아줌마)의 급수이고, <황녀>는 시집안간 처녀(아가씨) 급이다. 요즘은 처녀들한테 아줌마 하면 기분이 나쁜것처럼 당시에도 처녀에게 아줌마라는 말을 하면 기분이 나뻤을 것이다. 오히려 아줌마를 <아가씨>라고 불려주면 좋아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드라마 내용상 미실은 <황녀>의 직급을 받을 수 없다. 미실은 미천한 가문의 자손으로 그리고 있는데 어찌 <황녀>일 수 있으며, 시집을 가고 늙은 노구인 미실이 <황녀>가 될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성조>보다 높은 단계인 <천신>의 지위까지 받을 수 있었겠는가?

그냥,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성조황고>를 염두해 두고 미실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서 만든  조어인 <천신황녀>는 만들어 낼수 없는 조어라는 뜻이다. 또한, <황:皇>의 단어는 황제만이 쓸수 있는 단어이다. 어쨌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정체를 알수 없는 단어들이 나오지만 알고보면 웃어버릴 일이 넘쳐난다.

덕만은 왜 성조황고라 불리우게 되었을까?

삼국사기에 의하면 631년 5월 이찬 칠숙과 아찬 석품이 난을 일으키고, 진평왕이 난을 진압한다. 칠숙이 난을 일으키는 이유는 자신이 왕위에 오를줄 알았는데 여자인 덕만이 왕위에 오른다는 사실을 알고, 복불복의 심정으로 난을 일으키려고 모의를 한다. 하지만, 진평왕이 사전에 칠숙이 난을 일으킨다는 정보를 듣고, 난을 조기 진압해 버린다. 역사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칠숙의 난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07/26 -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하지만, 덕만이 왕이 되지만 불평불만 세력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덕만은 난을 진압하고 귀족들에게 자신이 왕이 되는데 복속할것을 요구하게 되고 자신이 진평왕의 뒤를 이를 정통성이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귀족들에게 항복을 요구하고 충성 맹세를 요구한다. 그래서 귀족들은 <성조황고>라는 존호를 올리고 충성서약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성조황고>란 성스런 조상을 둔 여황제가 되는 것이다. 성조황고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8 - [역사이야기] - 이요원보다 남지현 나이때 왕위에 오른 덕만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어쨌든, 덕만이 성스런 황제를 조상으로 두었으니 왕위를 잇는데 정통성이 있다는 뜻이니, 칠숙처럼 불평불만하지 말고 정통성에 시비를 걸지 말라는 뜻이다. 위에서 잠시 <황녀>와 <황고>의 차이를 언급했듯이 <황녀>는 아가씨 급이고, <황고>는 아줌마급이다.

또한, <고(姑)
는 여인을 존칭해서 부르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기서도 덕만이 <처녀>가 아니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일연은 삼국유사 왕력편에 덕만 남편으로 <음갈문왕>이 있었다고 기록한것이다.


결론은 미칭에 불과한 <성조황고>를 밀서에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성조황고는 덕만이 아닌 아랫사람들이 덕만을 부를때 쓸 수 있는 용어이지, 덕만 스스로 사용하는 용어는 아니다. 한마디로 신하들이 "만세 만세 폐하"라고 하는데 황제인 덕만이 스스로 "<만세 만세 폐하>"라고 쓰는 꼴이다. 설령 백배 양보해서 <성조황고>를 사용한다고 해도 <성조황고 덕만>이라고 유신의 밀서에 써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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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라이너스™ 2009.11.28 0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재미있게 보고갑니다.
    벌써 주말입니다. 즐거운 시간되세요^^

  2. 임현철 2009.11.28 0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배우고 가네요.

  3. BlogIcon 영웅전쟁 2009.11.28 0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반쯤 보고 나중에 오지요.
    오늘 블로그님들 모임있어 지금 가야한다는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4. BlogIcon 푸른솔™ 2009.11.28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조황고....
    처음 듣는 말이라서 많이 의아했는데...
    잘 배웠습니다.

  5. BlogIcon 탁발 2009.11.28 0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리뷰만 따로 엮으면 재미있을 듯 하네요.

  6. BlogIcon rinda 2009.11.28 1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스로 성조황고를 쓰니 웃긴 꼴이지요.
    드라마 작가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고 대본을 써야할텐데
    또 아쉬워집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7. BlogIcon labyrint 2009.11.28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조황고가 그런 뜻이 있는 줄 몰랐네요....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8. BlogIcon 레오 ~ 2009.11.28 1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복잡하군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

  9. 갓쉰동최고 2009.11.29 0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스개 소리로 우라나라나 중국은 일본의 천황을 싫어한다죠
    천황이면 조선의 왕보다도 위인것은 당연하고
    황제를 뜻하는 천자 보다도 위이니 말이에요 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1.30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용. .중국인과 한국인들이 불편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현인신이라고 하니.. 다들 자신들이 하늘의 아들이이고 대행자인뎅.. ㅋㅋ

  10. 갓쉰동님 광팬 2009.11.30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 보면 작가들은 한문공부 안하나봅니다^^;;

  11. 은루히 2009.12.02 0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개소문이 드라마로 자주 나오는 것처럼(-아버지에게 들은 얘기
    선덕여왕도 다시 한번 또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선덕여왕 해외로 수출한다던가.....
    뭐 작가 입장에서는 돈이 다 겠지만요

    • BlogIcon 갓쉰동 2009.12.02 0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연개소문을 자주한것 같지는 않아용.. 조금씩 등장해지용. 그리고 너무 텀이 길지용.. 월드컵 주기보다 기니..

      아는 사람 없으니 그나마 난데...상식에 가까운 기본적인건 수정하고 내 보냈음.. 하는 바람만이 있네용.. ㅋㅋ

  12. BlogIcon best emergency sleeping bag 2012.11.01 1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이 마흔일곱의 나이에 등극했다고 기록하고 있네요. 젊은 나이에 성조황고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

  13. BlogIcon dehydrated foods walmart 2012.12.10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이는 한때 꿀벅지라는 말이 자신을 칭찬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꿀벅지라는 말이 가지는 성적인 취향임을 알았을 때 유이는 꿀벅지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이 즉위하고 <성조황고>라 불리운다. 또한, 김유신(엄태웅)이 비담(김남길)의 술수에 속아 <우산국(울릉도)>로 유배를 떠난다. 이때 선덕여왕 덕만(이요원)은 김유신에게 밀서를 주고 서쪽 변경을 염탐하도록 밀명을 내린다.

일단 선덕여왕시기에 우산국(울릉도)를 쓸 수 있는 말인지는 지금 논한다면 글이 길어지니 다음 기회에 논하기로 하자. 다음 포스팅을 본다면 정말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별도로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덕만 "성조황고"를 쓸 수 있을까?

밀서에 다음과 같은 황제의 밀서임을 알리는 단어가 들어간다. 덕만의 수결이 아닌 <성조황고(聖祖皇姑)>의 덕만을 지칭하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이다. 사실 선덕여왕은 죽은 다음에 사용하는 시호 용어이니 선덕여왕 당시에 선덕여왕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안된다.
 


우리는 잠깐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역사를 거슬러 진흥왕 말년의 시기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진흥왕은 자신이 죽을 날이 가까워 오자 자신이 옥새를 맡긴 <새주> 미실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에 자신의 측근이라고 믿었던 설원에게 밀서를 주면서 미실을 차단할것을 주문하지만 설원은 미실의 편에 서서 진흥왕이 미실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반대로 진흥왕을 암살할것을 모의하고, 실천하려 독을 들고 들어간다.


이때 준 밀서가 미실의 손에서 설원의 손으로 넘어간다. 만약, 미실이 설원을 배신한다면 협박 보험용으로 써먹으라고 준다. 이 밀서는 다시 설원에게서 미실의 손을 거처 소화의 손으로 다시  덕만에게 넘어가고, 덕만이 숨겨둔 장소를 비담에게 알려 비담의 손에 들어간다. 비담이 밀서를 공개했을 때는 다음 사진처럼 나온다. 밀서의 형식이 아닌 공문서의 형식을 띄고 있고, 무신년 <간지>와 <옥새>가 명확히 찍혀있다. 

무신년 3월(588년) 진펴왕 10년

무신戊申
588년
신   라 :  진평왕 10년
백   제 :  위덕왕 35년
고구려 :  평원왕 30년

무신년 년도는 고사하고 몇가지 문제가 있으니 미실, 비담 덕만 등은 당연히 의문을 품는게 정상적이다. 옥새를 주관 하는 자는 미실이다. 진흥왕이 미실의 손을 통하지 않고 <옥새>를 찍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미실이 마찬가지로 천신황녀였고 새주인 진평왕때도 옥새는 미실의 수중에 있었다. 하지만 진평왕은 옥새를 미실의 손이 닿지 않는 소화의 손에 숨긴다.

또하나의 극중 논리적 모순은 <간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흥왕은 연호를 사용했다. 무신년은 진흥왕이 죽은 576년보다 12년 후인 588년으로 진평왕 10년이 된다. 그러니 당연히 연호가 우선이다. 옥새도 찍히지 않아야 하고, 단지 수결만이 진흥왕을 상징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비담이 가지고 있는 신라의적 미실척살 밀서는 <위서>이고 조작된 문서라는 뜻이다.

하지만 머리 좋고 귀신도 잡고, 미실을 닮아  꾀돌이인 비담도 알지 못하고, 어릴적 부터 영민한 덕만도 이를 알지 못한다. 또한, 미실, 설원 등 이해당사자들도 밀지가 <조작>되어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2009/11/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진흥왕(이순재) 신라의적 미실(고현정)척살 - 만화보다 못한 미실 죽음 고현정 하차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성조황고 덕만과 천신황녀 미실 누가 더 높을까?

성조황고


밀서에 등장하는 <성조황고>왜 등장하게 되었을까? 정상적인 문서라면 덕만의 이름이 들어가고 <수결>처럼 왕의 싸인이 들어가면 그만이다. 그렇지 않다면 옥쇄를 찍던지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런데 하필 성조황고일까?


이런 질문을 하면 많은 사람들은 황제인 덕만이니 천신황녀보다 성조황고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글을 끝까지 읽어보기 바란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성조황고>를 빗대서 미실을 <천신황녀>라는 직위를 부여한적이 있고, 덕만은 <천신황녀>의 직위를 있을 수 없는 보름날 일식 사건으로 미실로 부터 빼앗아 버린다. 그리고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때 <성조황고>가 된것이다.

문제는 <천신황녀>가 <성조황고> 보다는 높은 지위에 있다. <성조>는 단순히 하늘의 대행자인 성스런 조상을 둔 자란 뜻이고, <천신>은 직접적으로 하늘신이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천신 >> 성조의 뜻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덕만은 공주였을때 천신황녀에서 왕이 되었지만 직급이 내려가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봉착한다는 뜻이다.


또한, <황녀>와 <황고>를 대응하여 황녀<<황고라고 생각한 듯 하다. 하지만, 이는 별차이가 없는 용법에 지나지 않는다. 많이 양보한다면 <황고>는 여인(아줌마)의 급수이고, <황녀>는 시집안간 처녀(아가씨) 급이다. 요즘은 처녀들한테 아줌마 하면 기분이 나쁜것처럼 당시에도 처녀에게 아줌마라는 말을 하면 기분이 나뻤을 것이다. 오히려 아줌마를 <아가씨>라고 불려주면 좋아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드라마 내용상 미실은 <황녀>의 직급을 받을 수 없다. 미실은 미천한 가문의 자손으로 그리고 있는데 어찌 <황녀>일 수 있으며, 시집을 가고 늙은 노구인 미실이 <황녀>가 될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성조>보다 높은 단계인 <천신>의 지위까지 받을 수 있었겠는가?

그냥,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성조황고>를 염두해 두고 미실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서 만든  조어인 <천신황녀>는 만들어 낼수 없는 조어라는 뜻이다. 또한, <황:皇>의 단어는 황제만이 쓸수 있는 단어이다. 어쨌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정체를 알수 없는 단어들이 나오지만 알고보면 웃어버릴 일이 넘쳐난다.

덕만은 왜 성조황고라 불리우게 되었을까?

삼국사기에 의하면 631년 5월 이찬 칠숙과 아찬 석품이 난을 일으키고, 진평왕이 난을 진압한다. 칠숙이 난을 일으키는 이유는 자신이 왕위에 오를줄 알았는데 여자인 덕만이 왕위에 오른다는 사실을 알고, 복불복의 심정으로 난을 일으키려고 모의를 한다. 하지만, 진평왕이 사전에 칠숙이 난을 일으킨다는 정보를 듣고, 난을 조기 진압해 버린다. 역사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칠숙의 난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07/26 -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하지만, 덕만이 왕이 되지만 불평불만 세력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덕만은 난을 진압하고 귀족들에게 자신이 왕이 되는데 복속할것을 요구하게 되고 자신이 진평왕의 뒤를 이를 정통성이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귀족들에게 항복을 요구하고 충성 맹세를 요구한다. 그래서 귀족들은 <성조황고>라는 존호를 올리고 충성서약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성조황고>란 성스런 조상을 둔 여황제가 되는 것이다. 성조황고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8 - [역사이야기] - 이요원보다 남지현 나이때 왕위에 오른 덕만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어쨌든, 덕만이 성스런 황제를 조상으로 두었으니 왕위를 잇는데 정통성이 있다는 뜻이니, 칠숙처럼 불평불만하지 말고 정통성에 시비를 걸지 말라는 뜻이다. 위에서 잠시 <황녀>와 <황고>의 차이를 언급했듯이 <황녀>는 아가씨 급이고, <황고>는 아줌마급이다.

또한, <고(姑)
는 여인을 존칭해서 부르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기서도 덕만이 <처녀>가 아니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일연은 삼국유사 왕력편에 덕만 남편으로 <음갈문왕>이 있었다고 기록한것이다.


결론은 미칭에 불과한 <성조황고>를 밀서에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성조황고는 덕만이 아닌 아랫사람들이 덕만을 부를때 쓸 수 있는 용어이지, 덕만 스스로 사용하는 용어는 아니다. 한마디로 신하들이 "만세 만세 폐하"라고 하는데 황제인 덕만이 스스로 "<만세 만세 폐하>"라고 쓰는 꼴이다. 설령 백배 양보해서 <성조황고>를 사용한다고 해도 <성조황고 덕만>이라고 유신의 밀서에 써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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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라이너스™ 2009.11.28 0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재미있게 보고갑니다.
    벌써 주말입니다. 즐거운 시간되세요^^

  2. 임현철 2009.11.28 0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배우고 가네요.

  3. BlogIcon 영웅전쟁 2009.11.28 0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반쯤 보고 나중에 오지요.
    오늘 블로그님들 모임있어 지금 가야한다는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4. BlogIcon 푸른솔™ 2009.11.28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조황고....
    처음 듣는 말이라서 많이 의아했는데...
    잘 배웠습니다.

  5. BlogIcon 탁발 2009.11.28 0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리뷰만 따로 엮으면 재미있을 듯 하네요.

  6. BlogIcon rinda 2009.11.28 1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스로 성조황고를 쓰니 웃긴 꼴이지요.
    드라마 작가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고 대본을 써야할텐데
    또 아쉬워집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7. BlogIcon labyrint 2009.11.28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조황고가 그런 뜻이 있는 줄 몰랐네요....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8. BlogIcon 레오 ~ 2009.11.28 1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복잡하군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

  9. 갓쉰동최고 2009.11.29 0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스개 소리로 우라나라나 중국은 일본의 천황을 싫어한다죠
    천황이면 조선의 왕보다도 위인것은 당연하고
    황제를 뜻하는 천자 보다도 위이니 말이에요 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1.30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용. .중국인과 한국인들이 불편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현인신이라고 하니.. 다들 자신들이 하늘의 아들이이고 대행자인뎅.. ㅋㅋ

  10. 갓쉰동님 광팬 2009.11.30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 보면 작가들은 한문공부 안하나봅니다^^;;

  11. 은루히 2009.12.02 0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개소문이 드라마로 자주 나오는 것처럼(-아버지에게 들은 얘기
    선덕여왕도 다시 한번 또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선덕여왕 해외로 수출한다던가.....
    뭐 작가 입장에서는 돈이 다 겠지만요

    • BlogIcon 갓쉰동 2009.12.02 0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연개소문을 자주한것 같지는 않아용.. 조금씩 등장해지용. 그리고 너무 텀이 길지용.. 월드컵 주기보다 기니..

      아는 사람 없으니 그나마 난데...상식에 가까운 기본적인건 수정하고 내 보냈음.. 하는 바람만이 있네용.. ㅋㅋ

  12. BlogIcon best emergency sleeping bag 2012.11.01 1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이 마흔일곱의 나이에 등극했다고 기록하고 있네요. 젊은 나이에 성조황고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

  13. BlogIcon dehydrated foods walmart 2012.12.10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이는 한때 꿀벅지라는 말이 자신을 칭찬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꿀벅지라는 말이 가지는 성적인 취향임을 알았을 때 유이는 꿀벅지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드라마 선덕여왕 54회에서 비담이 덕만을 껴안고 자신의 감정을 들어낸다. 하지만 덕만은 비담을 내치며 주절주절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말한다. 요약하면 자신도 왕이지만 여자다, 하지만 왕권을 강화하고 삼국통일(삼한일통)을 위해서 멸사봉공 수처녀로 늙어 죽을 것이라는 뜻이다.

왕권의 강화의 최우선은 후사이고, 왕실인물들이 많아 지는 것이다. 왕실에 후사가 없으면 권력이 흔들린다. 왕실뿐아니고 일반 가정에서도 기본 상식에 속한다. 노처녀(?) 선덕여왕의 생각이기 보다는 극히 개인적인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의 빈곤한 상상력의 산물이고 희망사항일 뿐이다. 

여인인 덕만이 왕이 된다고 해서 왜 여러 남자를 거느리고 성을 문란하게 했냐는 비아냥이고, 덕만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삼국통일 사업에 매진해야 하는데 문란한 성생활로 신라를 위기에 빠트렸다는 비판일 뿐이다.
 

미세한 손떨림으로 덕만을 표현한 이요원



삼국유사에는 <음갈문왕>과 결혼을 했다 하고,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용수.용춘 형제와 을제와 흠반갈문왕 등 최소한 4명이 덕만과 결혼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나온다. 더불어 경주김씨의 족보에는 김인평이란 인물과 ,또다른 창령조씨 족보에는 <조계룡>이란 인물까지 덕만의 부군으로 있었다는 기록들을 볼 수 있다.

또한, 덕만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진덕(승만)은 진평왕의 동생인 국반갈문왕의 딸이지만, 덕만이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을 하여, 진덕은 덕만의 법률적, 법통으로 딸이 되어 자연스럽게 승만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또한, 김인평이나 조계룡의 후손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물론, 조계룡이나 김인평의 후손들이 선덕여왕 사이에 난 후손들인지 아니면 부군으로 있다가, 덕만이 후사가 없자 결혼관계가 끊어지고, 새로운 여인들 사이에 난 후손인지는 알 수 없다. 단, 이들 후손들은 자신들이 덕만과 자신들의 조상인 부군들 사이에 난 후손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전설과 신화에는 역사의 파편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전설에는 덕만(선덕왕)과 사이에난 왕자가 태백산을 유람하다 어여쁜 처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비녀소에 관한 전설도 남겨져 있다. 이를 본다면 덕만에게는 후사가 없었던 것이 아니고, 후사는 있었지만 왕이 되고 싶지 않는 왕자도 있었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아니면, 생물학적 아들은 아니고, 덕만의 무수히 많은 남편들의 아들 중에 하나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덕만의 남자들



역사의 몰이해를 넘어서 후손들을 농락한 작가들

선덕여왕 작가는 역사에 대한 몰이해뿐만 아니고, 만약, 이들 후손들이 선덕여왕을 보고 있다면, 대단한 실례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후손은 족보를 거짓으로 만든 사람이 되니 말이다. 일반 드라마라고 하더라도 지켜야할 금도가 있다.

하물며 신라를 재현하겠다는 사극은 기본적인 인물의 개인 신상정보는 왜곡하지 않는게 불문률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너무나 많은 잘못을 극에서 표출하고 있다. 이는 개인적인 창작의 자유와는 하등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고, 드라마의 금기인 극중 리얼리티를 깨트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서로 다른 인물들이라면 덕만은 최소한 7명의 남편들이 있었다는 결론이다. 덕만은 삼국일통을 꿈꾸지도 않았지만, 국가를 위해서, 또는 자신이 결혼을 하면 자신을 배경으로 권력을 탐하려는 자들이 많이 생기고, 부군으로 왕이 되고, 이들간에 싸움이 생겨 신라가 위기에 처할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은 당시 신라는 물론이고, 현실에서도 극히 위험한 발상이 된다.

덕만은 후사를 잇기 위해 철저히 여왕벌처럼 왕으로서 일을 끝까지 다하고 노력했다. 왕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적통을 이을 후손을 보는 일이다. 만약, 덕만이 이를 게을리 했다면 덕만은 왕의 자질이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덕만은 죽을 때 까지도 후사가 없음에 대해서 회한을 남기고 있다.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므로 그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것은 당나라 임금이 나에게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다. - 삼국유사 선덕왕 지기삼사 중 모란꽃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10/1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모란꽃 이야기는 나왔다? 나온다? 사실은
2009/07/23 -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모란씨 서되
2009/07/2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

하지만 드라마 작가에 의해서 덕만은 희화화 되어버렸다. 덕만과 마주칠 수 없는 미실을 등장시켜 덕만을 엿을 먹이더니 이제는 덕만의 치열한 삶까지도 희화화하여 엿을 먹이고 있는 중이다.

또한, 비담 김남길의 부상과 신종플루, 알천 이승효의 신종플루에 이어서 덕만 이요원이 피부병인 대상포진에서 벗어난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가채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신라시대 존재여부가 불투명한 가채를 머리에 이고 연기하는 노고를 하고 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보더라도 신라시대에 가채를 사용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또한, 한반도의 영향을 받고 있던 일본에서 조차도 당시 가채는 발견할 수 없다.

실제 가채가 활발히 사용된때는 조선시대 때 일이다. 오죽하면 조선시대에 가채금지령까지 내려졌겠는가? 설령 가채를 머리에 이고 있었다고 해도 지금 드라마에 나오는 가채만큼 무겁지도 않았다. 배우들의 연기가 아까울 정도로 대본의 완성도는 떨어진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이유는 쪽대본과 당일치기 촬영 때문이다.


누가 유신을 바보로 만드나?

유신과 계백(최원영)이 계백의 막사에서 대화를 한다. 유신은 계백이 보고 있는 지도에서 개문흑(開門黑)을 발견하고, 흙으로 시작하는 자가 대야성의 간자라고 이야기를 한다. 흑치상치라도 나올까 생각한다면 대단한 오해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소엽도에서 사구놀이를 하듯이 아주 재미있게 파자놀이를 하고 있다.

黑이 다른 (개문) 글자에 비해서 반자이다. 초딩보다 못한 유신


하지만, 미실이 대야성에서 멍청한 자살을 한것처럼 또다시 유신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흑(黑)자는 반자이다. 다른 개문의 글짜에 비해서 반쪽이고, 흑자가 가려져 있는 것이다. 글짜가 반이 가려있는지 아닌지를 쉬이 알수 있고 흑(黑)이 부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 초딩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신라의 중망을 얻고 상장군인 유신이 그것도 모르는 무지한 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흑(黑)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당연히 642년에 어쩔수 없이 신라를 배신(?)하고 백제에 귀부한 후 660년 8월 백제가 항복했을 때 사지를 찢기고 죽은 금일(검일)을 말한다. 검(黔)은 黑+今을 합한자이다. 

660년 8월 2일에 주연을 크게 베풀고 장병들을 위로하였다. 왕과 정방(定方) 및 여러 장수들은 대청마루 위에 앉고, 의자왕과 그 아들 융(隆)은 마루 아래 앉혀서 때로 의자왕으로 하여금 술을 따르게 하니 백제의 좌평 등 여러 신하들이 목메어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 날 모척(毛尺)을 붙잡아 목베었다. 모척은 본래 신라 사람으로서 백제에 도망한 자인데, 대야성의 검일(黔日)과 함께 도모하여 성이 함락되도록 했기 때문에 목벤 것이다. 또 검일을 잡아 [죄목을] 세어 말하였다. 네가 대야성에서 모척과 모의하여 백제 군사를 끌어들이고 창고를 불질러 없앰으로써 온 성 안에 식량을 모자라게 하여 싸움에 지도록 하였으니 그 죄가 하나요, 품석(品釋) 부부를 윽박질러 죽였으니 그 죄가 둘이요, 백제와 더불어 본국을 공격하였으니 그것이 세번째 죄이다. 이에 사지를 찢어 그 시체를 강물에 던졌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백제가 신라의 서쪽 40개성을 함락시켰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7월 40성을 빼앗기고, 대야성은 8월에 침공당한다.  대야성 전투는 40개성을 빼앗긴 후의 일이다. 그러니 덕만이 "백제의 전세가 심상치 않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위란지국이라고 해야한다. 한가히 백제가 대야성을 공격한게 한두번도 아니라고 이야기를 한다. 도대체 대야성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도 모르는 덕만의 신하들이다. 대야성은 신라 후방에 있는 성이다. 대야성까지 백제가 한두번도 아니고 여러번 침공했다면 신라는 망해도 벌써 망했을 것이다. "백제와 전쟁입니다. 대야성이 위험합니다"라는 대사가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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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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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rinda 2009.11.25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느끼는 것이지만 역사에 대해 해박하신 듯 합니다.
    제가 보았다면 무심코 그냥 지나쳤을텐데 말이죠ㅎㅎㅎ

    • BlogIcon 갓쉰동 2009.11.26 1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는 않을 겁니당.. 관심분야가 다른거지요.. 린다님은 다른 면에서 잘 보실거라 생각합니당... ㅋㅋ

  3. 손채림 2009.11.25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앗 근데 비담 신종 걸려서 제 친구들줄어요

  4. 유시 아ㅓㅏ 2009.11.25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ㄹ어

  5. 하하하 2009.11.25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계백이나 윤충이나, 백제에서 손꼽는 맹장들이라는데
    김유신이 난동피우는걸 멍때리고 지켜만 보다니.. 왜 제가 답답하던지..
    그러고 보니.. 그 둘이 포옹하는 씬은.. 왜넣엇는지 참..

  6. BlogIcon 감성PD 2009.11.25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포스팅입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역사적인 사실도 많이 알고 가네요~~^^

  7. BlogIcon 걸어서 하늘까지 2009.11.25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가 역사와 많은 차이가 나는 군요. 지금부터라도 좀 더 꼼꼼한 실증을 거친후에
    드라마 제작을 하면 좋겠어요. 선덕여왕 참 재미있게 보고있는데 눈에 걸리는 게 너무 많아지네요~~^^;;

  8. BlogIcon 싱아 2009.11.26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저 부분 보면서 (黑 써있는부분) 참 의아 했는데.. 게다가 저는 개문 이라고 읽지 않고
    문개 라고 읽었습니다. 해방 전 까지는 오른쪽에서 왼쪽 으로 글을 썼던 것으로 알고 있어서요.
    조선시대 만들어진 현판만 보더라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썼지요.

    말씀하신대로 드라마라도 어느정도 선은 지켜야 되는데 , 이젠 판타지로 가는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네요. 뼈대는 있되 , 살은 내맘대로 랄까요..ㅋ

    좋은 포스팅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26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님의 말씀대로 우측 상단에서 아래쪽으로 다름 좌측으로 진행하지요..

      극중에서 대야성의 현판도 그랬고, 편지도 위의 방법대로 진행되어지요..
      단지 대야성 지도에서는 반대로..
      한마디로 자기들 맘대로.. ㅋㅋ

  9. 갓쉰동최고 2009.11.27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ㅋㅋㅋ 미실이 왕이어야 한다니깐요 ㅋㅋㅋㅋㅋ
    대백제 방어의 최후기지임을 설원등은 알고있는데도 말을 못하니 ㅋ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1.27 0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당.. 미실이 이름을 바꾸고 덕만으로 생활했다고 함 간단할 것을 왜 죽이는지 모르겠어용.. ㅋㅋ

  10. BlogIcon 조ㅁㅁ 2010.03.27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우리시조 조계룡 창령조인데 나와있다 ㅎㅎ

  11. BlogIcon 조ㅁㅁ 2010.03.27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우리시조 조계룡 창령조인데 나와있다 ㅎㅎ

  12. 조세빈 2010.05.23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녕조씨 후손입니다^^ 선덕여왕 드라마를 보면서 정말 짜증이 나다못해 어이가 없기까지 했었지요..
    참고로 '김인평'과 '조계룡'은 동일인물 입니다^^ 저희 시조 할아버지이신 '조계룡'은 비사벌가야(창녕)가야의 마지막 왕의 손자로 진흥왕때 조계룡의 아버지가 신라 진골로 편입이 되면서 진흥왕이 왕의 성씨인 김씨를 하사해서 경주 김씨가 됩니다. 그리고 진평왕이 어릴적부터 20살이 될때까지 왕궁에서 자라게해 성인이 된 후 정치에 입문시킵니다. 그리고 진평왕의 맏이 덕만공주가 혼기가 차자 혼인을 시켰는데 덕만공주가 남편의 후원을 얻어 가야계의 지지를 받아 왕이 될 준비를 하지요. 그러는 사이 정치분야에서 가야계의 세력이 커지자 장인인 진평왕이 사위 '김인평'을 서기631년 2월에 비사벌가야 왕손임을 인정하고 원래의 성씨인 조씨로서 복원시키면서 왕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조계룡이라 하사하고 갈문왕에 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진평왕이 붕어하자 선덕여왕은 3년상을 마치고 정식으로 즉위하면서 남편의 본명인 '인평'을 연호로 지정하였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시조 할아버지는 비사벌가야의 더 오래된 왕족이겠지만 조계룡의 아버지가 진흥왕에게서 경주김씨의 성을 하사받았었고 진평왕에게서 조계룡이 성과 이름을 하사받는 형식이 되면서 공식적인 시조가 된 것입니다. 지금도 시조 할아버지 제사때는 시조할머니인 선덕여왕의 제를 함게 올린다고 합니다. 선덕여왕이 죽었을당시 이미 노령이었던 조계룡은 선덕여왕이 붕어한 후 고향인 창녕지역으로 하향하여서 공식적으로 창녕조씨의 시조가 됩니다. 그리고 그 후 당시에는 상당히 장수한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선덕여왕과의 사이에서 5남2녀를 얻었지만 성골이었던 선덕여왕과 진골이었던 조계룡 사이에서는 진골만이 출생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진평왕의 동생 국반갈문왕의 딸로서 선덕여왕의 사촌동생 성골 승만공주가 왕위를 이어 진덕여왕이 됩니다.

    헉헉.. 워낙 역사가 방대하고 길고긴 집안이라서 이정도로 간략하는것도 힘드네요..
    그리고 사족을 단다면 '조계룡'은 태사의 자격으로 왕실 자녀들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일찍 요절한 선덕여왕의 배다른 아우인 왕자의 태사이기도 했고 김춘추의 태사이기도 합니다^^

  13. BlogIcon 웃겨ㅗ 2011.08.05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걍 드라마로 보면되지 따지기는..정통사극도 아니고 월화드라마에 하는거면 대충 허구픽션인걸 알아야지 역사사실에 다 맞춰쓰면 무슨재미로보냐?ㅋㅋㅋ 허참 잘난척하는것도 가지가지네

  14. BlogIcon Pussy Porn 2012.07.14 1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15.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6. BlogIcon emergency sleeping bag 2012.11.01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이 마흔일곱의 나이에 등극했다고 기록하고 있네요. 젊은 나이에 성조황고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

  17. BlogIcon invisible fence rochester ny hours 2012.11.06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

  18. BlogIcon ready store draper 2012.12.10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이는 한때 꿀벅지라는 말이 자신을 칭찬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꿀벅지라는 말이 가지는 성적인 취향임을 알았을 때 유이는 꿀벅지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19. BlogIcon invisible dog fence 2012.12.22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 다른 웹브라우저에서는 마우스 우측버튼과 부가기능(add-ons)등을 이용해 지원하고 있는 기능이기도 한

  20. BlogIcon waterproof matches nz 2013.01.02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의 생각이기 보다는 극히 개인적인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의 빈곤한 상상력의 산물이고 희망사항일 뿐이다.

  21. BlogIcon 알바 추천 2017.12.01 19: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드라마 선덕여왕 54회에서 비담이 덕만을 껴안고 자신의 감정을 들어낸다. 하지만 덕만은 비담을 내치며 주절주절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말한다. 요약하면 자신도 왕이지만 여자다, 하지만 왕권을 강화하고 삼국통일(삼한일통)을 위해서 멸사봉공 수처녀로 늙어 죽을 것이라는 뜻이다.

왕권의 강화의 최우선은 후사이고, 왕실인물들이 많아 지는 것이다. 왕실에 후사가 없으면 권력이 흔들린다. 왕실뿐아니고 일반 가정에서도 기본 상식에 속한다. 노처녀(?) 선덕여왕의 생각이기 보다는 극히 개인적인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의 빈곤한 상상력의 산물이고 희망사항일 뿐이다. 

여인인 덕만이 왕이 된다고 해서 왜 여러 남자를 거느리고 성을 문란하게 했냐는 비아냥이고, 덕만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삼국통일 사업에 매진해야 하는데 문란한 성생활로 신라를 위기에 빠트렸다는 비판일 뿐이다.
 

미세한 손떨림으로 덕만을 표현한 이요원



삼국유사에는 <음갈문왕>과 결혼을 했다 하고,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용수.용춘 형제와 을제와 흠반갈문왕 등 최소한 4명이 덕만과 결혼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나온다. 더불어 경주김씨의 족보에는 김인평이란 인물과 ,또다른 창령조씨 족보에는 <조계룡>이란 인물까지 덕만의 부군으로 있었다는 기록들을 볼 수 있다.

또한, 덕만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진덕(승만)은 진평왕의 동생인 국반갈문왕의 딸이지만, 덕만이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을 하여, 진덕은 덕만의 법률적, 법통으로 딸이 되어 자연스럽게 승만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또한, 김인평이나 조계룡의 후손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물론, 조계룡이나 김인평의 후손들이 선덕여왕 사이에 난 후손들인지 아니면 부군으로 있다가, 덕만이 후사가 없자 결혼관계가 끊어지고, 새로운 여인들 사이에 난 후손인지는 알 수 없다. 단, 이들 후손들은 자신들이 덕만과 자신들의 조상인 부군들 사이에 난 후손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전설과 신화에는 역사의 파편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전설에는 덕만(선덕왕)과 사이에난 왕자가 태백산을 유람하다 어여쁜 처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비녀소에 관한 전설도 남겨져 있다. 이를 본다면 덕만에게는 후사가 없었던 것이 아니고, 후사는 있었지만 왕이 되고 싶지 않는 왕자도 있었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아니면, 생물학적 아들은 아니고, 덕만의 무수히 많은 남편들의 아들 중에 하나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덕만의 남자들



역사의 몰이해를 넘어서 후손들을 농락한 작가들

선덕여왕 작가는 역사에 대한 몰이해뿐만 아니고, 만약, 이들 후손들이 선덕여왕을 보고 있다면, 대단한 실례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후손은 족보를 거짓으로 만든 사람이 되니 말이다. 일반 드라마라고 하더라도 지켜야할 금도가 있다.

하물며 신라를 재현하겠다는 사극은 기본적인 인물의 개인 신상정보는 왜곡하지 않는게 불문률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너무나 많은 잘못을 극에서 표출하고 있다. 이는 개인적인 창작의 자유와는 하등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고, 드라마의 금기인 극중 리얼리티를 깨트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서로 다른 인물들이라면 덕만은 최소한 7명의 남편들이 있었다는 결론이다. 덕만은 삼국일통을 꿈꾸지도 않았지만, 국가를 위해서, 또는 자신이 결혼을 하면 자신을 배경으로 권력을 탐하려는 자들이 많이 생기고, 부군으로 왕이 되고, 이들간에 싸움이 생겨 신라가 위기에 처할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은 당시 신라는 물론이고, 현실에서도 극히 위험한 발상이 된다.

덕만은 후사를 잇기 위해 철저히 여왕벌처럼 왕으로서 일을 끝까지 다하고 노력했다. 왕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적통을 이을 후손을 보는 일이다. 만약, 덕만이 이를 게을리 했다면 덕만은 왕의 자질이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덕만은 죽을 때 까지도 후사가 없음에 대해서 회한을 남기고 있다.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므로 그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것은 당나라 임금이 나에게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다. - 삼국유사 선덕왕 지기삼사 중 모란꽃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10/1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모란꽃 이야기는 나왔다? 나온다? 사실은
2009/07/23 -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모란씨 서되
2009/07/2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

하지만 드라마 작가에 의해서 덕만은 희화화 되어버렸다. 덕만과 마주칠 수 없는 미실을 등장시켜 덕만을 엿을 먹이더니 이제는 덕만의 치열한 삶까지도 희화화하여 엿을 먹이고 있는 중이다.

또한, 비담 김남길의 부상과 신종플루, 알천 이승효의 신종플루에 이어서 덕만 이요원이 피부병인 대상포진에서 벗어난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가채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신라시대 존재여부가 불투명한 가채를 머리에 이고 연기하는 노고를 하고 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보더라도 신라시대에 가채를 사용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또한, 한반도의 영향을 받고 있던 일본에서 조차도 당시 가채는 발견할 수 없다.

실제 가채가 활발히 사용된때는 조선시대 때 일이다. 오죽하면 조선시대에 가채금지령까지 내려졌겠는가? 설령 가채를 머리에 이고 있었다고 해도 지금 드라마에 나오는 가채만큼 무겁지도 않았다. 배우들의 연기가 아까울 정도로 대본의 완성도는 떨어진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이유는 쪽대본과 당일치기 촬영 때문이다.


누가 유신을 바보로 만드나?

유신과 계백(최원영)이 계백의 막사에서 대화를 한다. 유신은 계백이 보고 있는 지도에서 개문흑(開門黑)을 발견하고, 흙으로 시작하는 자가 대야성의 간자라고 이야기를 한다. 흑치상치라도 나올까 생각한다면 대단한 오해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소엽도에서 사구놀이를 하듯이 아주 재미있게 파자놀이를 하고 있다.

黑이 다른 (개문) 글자에 비해서 반자이다. 초딩보다 못한 유신


하지만, 미실이 대야성에서 멍청한 자살을 한것처럼 또다시 유신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흑(黑)자는 반자이다. 다른 개문의 글짜에 비해서 반쪽이고, 흑자가 가려져 있는 것이다. 글짜가 반이 가려있는지 아닌지를 쉬이 알수 있고 흑(黑)이 부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 초딩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신라의 중망을 얻고 상장군인 유신이 그것도 모르는 무지한 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흑(黑)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당연히 642년에 어쩔수 없이 신라를 배신(?)하고 백제에 귀부한 후 660년 8월 백제가 항복했을 때 사지를 찢기고 죽은 금일(검일)을 말한다. 검(黔)은 黑+今을 합한자이다. 

660년 8월 2일에 주연을 크게 베풀고 장병들을 위로하였다. 왕과 정방(定方) 및 여러 장수들은 대청마루 위에 앉고, 의자왕과 그 아들 융(隆)은 마루 아래 앉혀서 때로 의자왕으로 하여금 술을 따르게 하니 백제의 좌평 등 여러 신하들이 목메어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 날 모척(毛尺)을 붙잡아 목베었다. 모척은 본래 신라 사람으로서 백제에 도망한 자인데, 대야성의 검일(黔日)과 함께 도모하여 성이 함락되도록 했기 때문에 목벤 것이다. 또 검일을 잡아 [죄목을] 세어 말하였다. 네가 대야성에서 모척과 모의하여 백제 군사를 끌어들이고 창고를 불질러 없앰으로써 온 성 안에 식량을 모자라게 하여 싸움에 지도록 하였으니 그 죄가 하나요, 품석(品釋) 부부를 윽박질러 죽였으니 그 죄가 둘이요, 백제와 더불어 본국을 공격하였으니 그것이 세번째 죄이다. 이에 사지를 찢어 그 시체를 강물에 던졌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백제가 신라의 서쪽 40개성을 함락시켰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7월 40성을 빼앗기고, 대야성은 8월에 침공당한다.  대야성 전투는 40개성을 빼앗긴 후의 일이다. 그러니 덕만이 "백제의 전세가 심상치 않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위란지국이라고 해야한다. 한가히 백제가 대야성을 공격한게 한두번도 아니라고 이야기를 한다. 도대체 대야성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도 모르는 덕만의 신하들이다. 대야성은 신라 후방에 있는 성이다. 대야성까지 백제가 한두번도 아니고 여러번 침공했다면 신라는 망해도 벌써 망했을 것이다. "백제와 전쟁입니다. 대야성이 위험합니다"라는 대사가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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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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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k 2009.11.25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래도 사회적 분위기가 거기까진 허용치 않아서 일테지요. 덕만을 영웅처럼 그려냈는데 남자가 많은 그런 인물로 만들어 낸다면 이제까지 노력이 물거품처럼 될테니까요. 남자가 여자를 여럿 끼는 것은 봐줄 수 있지만 덕만이 그렇게 되면 요부처럼 인식이 될터이고 아무리 다른 정무를 잘 보았다 하더라도 반감이 들터이니까요.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선덕시절을 다루게 된다면 사실적으로 많이 그려질거라고 봐요. 보는 이들의 부담감(?)^^이 덜 할지도....

    • BlogIcon 갓쉰동 2009.11.26 1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 않을걸요.. 이미 미실의 예도 있고.. 미실을 악역이지만 영웅으로 만들어 버렸잖아용.. ㅋㅋ

  3. BlogIcon rinda 2009.11.25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느끼는 것이지만 역사에 대해 해박하신 듯 합니다.
    제가 보았다면 무심코 그냥 지나쳤을텐데 말이죠ㅎㅎㅎ

    • BlogIcon 갓쉰동 2009.11.26 1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는 않을 겁니당.. 관심분야가 다른거지요.. 린다님은 다른 면에서 잘 보실거라 생각합니당... ㅋㅋ

  4. 손채림 2009.11.25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앗 근데 비담 신종 걸려서 제 친구들줄어요

  5. 유시 아ㅓㅏ 2009.11.25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ㄹ어

  6. 하하하 2009.11.25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계백이나 윤충이나, 백제에서 손꼽는 맹장들이라는데
    김유신이 난동피우는걸 멍때리고 지켜만 보다니.. 왜 제가 답답하던지..
    그러고 보니.. 그 둘이 포옹하는 씬은.. 왜넣엇는지 참..

  7. BlogIcon 감성PD 2009.11.25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포스팅입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역사적인 사실도 많이 알고 가네요~~^^

  8. BlogIcon 걸어서 하늘까지 2009.11.25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가 역사와 많은 차이가 나는 군요. 지금부터라도 좀 더 꼼꼼한 실증을 거친후에
    드라마 제작을 하면 좋겠어요. 선덕여왕 참 재미있게 보고있는데 눈에 걸리는 게 너무 많아지네요~~^^;;

  9. BlogIcon 싱아 2009.11.26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저 부분 보면서 (黑 써있는부분) 참 의아 했는데.. 게다가 저는 개문 이라고 읽지 않고
    문개 라고 읽었습니다. 해방 전 까지는 오른쪽에서 왼쪽 으로 글을 썼던 것으로 알고 있어서요.
    조선시대 만들어진 현판만 보더라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썼지요.

    말씀하신대로 드라마라도 어느정도 선은 지켜야 되는데 , 이젠 판타지로 가는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네요. 뼈대는 있되 , 살은 내맘대로 랄까요..ㅋ

    좋은 포스팅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26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님의 말씀대로 우측 상단에서 아래쪽으로 다름 좌측으로 진행하지요..

      극중에서 대야성의 현판도 그랬고, 편지도 위의 방법대로 진행되어지요..
      단지 대야성 지도에서는 반대로..
      한마디로 자기들 맘대로.. ㅋㅋ

  10. 갓쉰동최고 2009.11.27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ㅋㅋㅋ 미실이 왕이어야 한다니깐요 ㅋㅋㅋㅋㅋ
    대백제 방어의 최후기지임을 설원등은 알고있는데도 말을 못하니 ㅋ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1.27 0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당.. 미실이 이름을 바꾸고 덕만으로 생활했다고 함 간단할 것을 왜 죽이는지 모르겠어용.. ㅋㅋ

  11. BlogIcon 조ㅁㅁ 2010.03.27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우리시조 조계룡 창령조인데 나와있다 ㅎㅎ

  12. BlogIcon 조ㅁㅁ 2010.03.27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우리시조 조계룡 창령조인데 나와있다 ㅎㅎ

  13. 조세빈 2010.05.23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녕조씨 후손입니다^^ 선덕여왕 드라마를 보면서 정말 짜증이 나다못해 어이가 없기까지 했었지요..
    참고로 '김인평'과 '조계룡'은 동일인물 입니다^^ 저희 시조 할아버지이신 '조계룡'은 비사벌가야(창녕)가야의 마지막 왕의 손자로 진흥왕때 조계룡의 아버지가 신라 진골로 편입이 되면서 진흥왕이 왕의 성씨인 김씨를 하사해서 경주 김씨가 됩니다. 그리고 진평왕이 어릴적부터 20살이 될때까지 왕궁에서 자라게해 성인이 된 후 정치에 입문시킵니다. 그리고 진평왕의 맏이 덕만공주가 혼기가 차자 혼인을 시켰는데 덕만공주가 남편의 후원을 얻어 가야계의 지지를 받아 왕이 될 준비를 하지요. 그러는 사이 정치분야에서 가야계의 세력이 커지자 장인인 진평왕이 사위 '김인평'을 서기631년 2월에 비사벌가야 왕손임을 인정하고 원래의 성씨인 조씨로서 복원시키면서 왕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조계룡이라 하사하고 갈문왕에 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진평왕이 붕어하자 선덕여왕은 3년상을 마치고 정식으로 즉위하면서 남편의 본명인 '인평'을 연호로 지정하였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시조 할아버지는 비사벌가야의 더 오래된 왕족이겠지만 조계룡의 아버지가 진흥왕에게서 경주김씨의 성을 하사받았었고 진평왕에게서 조계룡이 성과 이름을 하사받는 형식이 되면서 공식적인 시조가 된 것입니다. 지금도 시조 할아버지 제사때는 시조할머니인 선덕여왕의 제를 함게 올린다고 합니다. 선덕여왕이 죽었을당시 이미 노령이었던 조계룡은 선덕여왕이 붕어한 후 고향인 창녕지역으로 하향하여서 공식적으로 창녕조씨의 시조가 됩니다. 그리고 그 후 당시에는 상당히 장수한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선덕여왕과의 사이에서 5남2녀를 얻었지만 성골이었던 선덕여왕과 진골이었던 조계룡 사이에서는 진골만이 출생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진평왕의 동생 국반갈문왕의 딸로서 선덕여왕의 사촌동생 성골 승만공주가 왕위를 이어 진덕여왕이 됩니다.

    헉헉.. 워낙 역사가 방대하고 길고긴 집안이라서 이정도로 간략하는것도 힘드네요..
    그리고 사족을 단다면 '조계룡'은 태사의 자격으로 왕실 자녀들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일찍 요절한 선덕여왕의 배다른 아우인 왕자의 태사이기도 했고 김춘추의 태사이기도 합니다^^

  14. BlogIcon 웃겨ㅗ 2011.08.05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걍 드라마로 보면되지 따지기는..정통사극도 아니고 월화드라마에 하는거면 대충 허구픽션인걸 알아야지 역사사실에 다 맞춰쓰면 무슨재미로보냐?ㅋㅋㅋ 허참 잘난척하는것도 가지가지네

  15. BlogIcon Pussy Porn 2012.07.14 1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16.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7. BlogIcon emergency sleeping bag 2012.11.01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이 마흔일곱의 나이에 등극했다고 기록하고 있네요. 젊은 나이에 성조황고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

  18. BlogIcon invisible fence rochester ny hours 2012.11.06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

  19. BlogIcon ready store draper 2012.12.10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이는 한때 꿀벅지라는 말이 자신을 칭찬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꿀벅지라는 말이 가지는 성적인 취향임을 알았을 때 유이는 꿀벅지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20. BlogIcon invisible dog fence 2012.12.22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 다른 웹브라우저에서는 마우스 우측버튼과 부가기능(add-ons)등을 이용해 지원하고 있는 기능이기도 한

  21. BlogIcon waterproof matches nz 2013.01.02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의 생각이기 보다는 극히 개인적인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의 빈곤한 상상력의 산물이고 희망사항일 뿐이다.

 드라마 전개상 시제는 여전히 풍월주 비재가 있은지 얼마안되는 시점이다. 이를 어찌 알수 있는가하면 춘추가 설원랑의 집을 찾아가 보량을 만나서 보량에게 한가위(가배)선물을 한다. 그런데 가잠성 전투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가잠성 전투는 진평왕 33년 611년 10월부터 100일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가잠성전투가 신라의 승리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가잠성 전투는 신라의 대패로 끝났다. 그래서 40년 신라가 가잠성를 수복하려고 했지만 이때도 대패하고 말았다. 

614년 진평왕 35년 봄에 가뭄이 들었다. 그러니 안강성(비화현)에서 민란이 일어났음직한 때이다.  유신과 결혼한 영모가 임신을 한 시점이기도 하다. 이때 진평왕의 나이는 49살이 된다.

드라마 선덕여왕 40회에서 진평왕이 심장에 이상이 생기자, 덕만으로 하여금 결혼을 하게 하고 사위를 왕으로 삼으려 한다. 
이는 신라가 전통적으로 사위를 왕으로 삼은 것에 기인한다. 그런데 정말 사위가 왕이 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기록상 여왕의 남편을 왕으로 삼았을 수도 있다. 

증거는 서라벌(경주)에 있는 황남대총의 쌍둥이릉으로 확인할 수 있다. 황남대통의 작은 남쪽릉에서는 남성의 부장품이 나오고, 북릉에서는 여성의 부장품이 나왔다.


문제는 북릉에서는 황금관이 나오고, 남릉에서는 금동관이 나왔다. 이로써 북릉에 있는 여성이 남릉의 남성보다는 지위가 높았을 것이라고 누구나 인정한다. 그런데 이 두릉은 덕만이 왕으로 있었던 이전시기의 릉이라는데 있다. 그래서 기록되지 않은 여왕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는 것이다.  신라가 국사를 정립하는 때는 진흥왕 6년인 545년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진흥왕이 젊은 시절에 이사부의 의견을 받아 들여 거칠부가 <국사>를 만든것으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진흥왕은 7살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니 진흥왕 6년이면, 진평왕이 왕위에 오른 15세보다도 나이가 어린 12살이 된다. 이때 실질적은 왕은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태후(법흥/연제)이다. 
 
어찌 되었던, 국사를 만들면서 이전왕의 기록이 소략하거나, 왜곡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다. 어떤이들은 삼국사기의 저자인 김부식이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김부식은 덕만의 기록을 남겨두었을까? 물론, 어쩔수 없이 덕만과 진덕의 기록을 남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구당서와 신당서에 신라에 여인이 왕으로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김부식도 어쩔수 없이 신라에 여왕이 있었다고 기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역사란 한쪽의 일방의 기록만을 참조하지 않는다.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다른 기록을 하였을때 이를 크로스 체킹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합리적인 해석을 하는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대표적인 사위왕은 석탈해(토해)가 있고, 또한명은 김미추가 있다. 하지만, 이들 말고도 수 없이 많은 사위왕들이 있었다. 또한, 기록상 최초의 여왕인 덕만 이후에도 사위로 왕이 된 예가 많다.  진평왕은 전왕의 선례에 따라 사위로 왕위를 이을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진골.성골이 있다고 믿는 일단이 있고, <성골남진>이란 허황된 환상에 빠져 있는 사람은 진평왕이 사위를 볼때 어쩔수 없이 <진골>을 덕만의 짝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성조인 왕의 자식중 아들이 없다는 말이지, 왕의 형제나 조카중 남자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이와 같은 예는 소지(비처)왕이 아들이 없자, 소지왕의 종친인 내물왕의 증손인 지증이 왕위에 오른다. 이처럼 왕에게 아들이 없다면 왕위를 이을 이는 넘친다. 조선도 철종처럼 강화도의 무식한 도령을 왕위에 올리기도 한다. 왕족에 절손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종도 철종의 먼 종친으로 왕위를 계승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조선과 신라는 달랐다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왕을 잇는데는 별다른게 없다. 이미 신라의 예를 들었는데도 조선과 신라는 달랐다고 반론을 제기하지는 말기를 바랄 뿐이다.

어떤이들는 <성골>,<진골>에 집착하여 성골과 진골은 <진흥왕>이후에 정립되었다고 학설을 만들어 낸다. 도대체, 이미 왕족인 <진골>이 있는데, 그 위에 왕을 제외하고 <성골>이 있다는 발상이 스스로에게도 좀 아니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역사학계가 다른 학문도 비슷하지만, <도제>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교수의 학설을 반박할 수 없을 뿐만 아니고, 내부적으로 치열한 논쟁이 없다는 반증일 뿐이다. 만약, 자신의 학파에 반발을 한다면, 그 사람은 학계에서 밥 빌어 먹을 수 없다. 한마디로 학계를 떠나야 한다는 말이다.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도제에 찌든 사람을 대상으로 비판을 가하고 있는것이다. 충분히 그렇지 않게 운영되고 있는 곳도 있을 것이다. 별로 본적은 없지만 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천명으로 부터 물려받은 유신을 사랑하는 덕만은 유신을 두고,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평생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다. 결혼을 한다면 자신이 왕노릇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 <사위왕>을 철저히 심봉하고 있는 선덕여왕 <원작자>의 견해이다.

어찌되었던, 천명이 사랑한 나이 어린 유신을 덕만은 눈물을 머금고 버린다. 그리고 유신이 영모(하종/미모)와 결혼을 하자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며 눈물을 찔끔거린다.   재밌게도 이는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의 천명과 덕만과 용수와 용춘의 이야기를 변형시킨 것이다.


신라에서 여왕이 나오는데 신라의 역사의 흔적으로 부터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고, 드라마에서는 외국에 사례가 없다고 나오지만,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황당한 일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10/0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왕을 놓고 김춘추와 덕만이 대립한다?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이미 당시 왜에서는 여왕천하에 있었다. 신라의 이웃 국가인 왜의 첫 여왕인 추고여왕(593~628), 제명.황극(641~645, 655~661) 사례도 있으니 충분히 고려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왜의 여왕시기는 더 위로 올라간다. 비미호는 여왕으로 한반도와 중국과도 교류를 하였다. 비미호의 조카도 여왕이 되었다. 신공 또한 왕후로써 여왕의 직을 수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0년(173) 여름 5월에 왜(倭)의 여왕 비미호(卑彌乎)가 사신을 보내와 예방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아달라왕


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신라가 진평왕시기 왜에 추고왕(593~628년)재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수가 없다. 드라마에서 등장인물들이 모두 나와서 선례가 없다고 떠드는 말은 수나라에 일찍이 조기 교육을 받아 외교전문가로 크는 춘추까지도 욕보이는 것이다. 또한, 춘추는 642년 고타소가 죽자 왜에 청병을 하러 가기도 한다. 춘추가 왜에 가서 만난  제명왕도 여왕이였다. 그러니 선덕(632~647년)과 제명(641~645년)은 동시대에 여왕으로 있었다는 뜻이다. 재미있게도 제명은 몇년후 다시 왕위에 올라 655~661년까지 왜의 <황극>왕으로 있었다. 제명과 황극은 동일인물이다.

덕만이 결혼할 수 없는 이유? 의외로 간단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을 하자.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삼국유사나 화랑세기는 덕만이 결혼을 하였지만, 자식을 두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덕만의 남편인 을제(신구)

삼국유사의 왕력편에선 덕만이 왕위에 오른 632년이후 3년에 634년에 <음갈문왕>과 결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음갈문왕은 누구일까? 진평왕에게는 두명의 남동생이 있다. 한명은 백반이고, 또 한명은 국반이다. 진덕의 뒤를 이어 왕이된 진덕(승만)의 아버지는 국반이다.

만약, 진평이 덕만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이 없었다면 백반이 왕이 되었을 것이다. 사위왕이 되기전에 말이다. 성골 좋아하는 사람이 보았을 때, 진평왕의 형제인 사람보다 확실한 성골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성골남진>의 논리적 허구는 여기서도 깨지고 마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화랑세기에는 덕만의 남편으로 3명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명은 용춘이고, 두번째가 용수이고, 세번째가 <을제>이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은 용수를 일찌감치 죽여 버렸다. 이유는 덕만과 나이어린 꽃미남(?)유신을 염두해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을제>를 소리소문 없이 드라마에서 낙마를 시켜버렸다.

을제인 신구가 용궁으로 다시 돌아갔는지, 아니면 다른 드라마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유는 유신과 덕만을 연결시키고자 하는 이유 때문일것이다. 또하나는 드라마를 제작하는데 <제작비>의 압박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덕만의 남편이 되는 을제역을 맡은 신구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진흥왕인 이순재만큼이나 출연료가 비싼분이시다. 그러니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자동으로 드라마에서 낙마를 시킬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을제 배역을 맡은 신구가 덕만(이요원)과 결혼하는 꿈을 꾸다가 "결혼할 수 없다"는 대본을 보고 스스로 낙마했을 수도 있다.

나머지 용춘은 왜 그럼 남겨 두고 있는가? 어짜피 용춘은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모습을 본 천명을 죽임으로 해서 이미 덕만의 짝으로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천명이 춘추가 왕이 될때까지 살아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라고 반문한다면  2009/08/11 - [역사이야기] - '천명', 대남보의 독화살에 죽었다?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니, 끈떨어진 용춘 자신의 실질적인 아들인 젖비릿내 나는 10살 짜리 <춘추>(유승호)가 <화백회의>에  난입해 쿠데타를 일으키는데도 오히려 생뚱맞은 시선과 말로 춘추를 나무라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의 원작인 소설 <선덕여왕>의 작가는 여성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덕만과 미실을 중심축에 두고, 요즘 트랜드인 꽃미남(?)남성들을 등장시키는 것으로 남여평등한 사회와 여성주의 사극이 완성된다는 환상을 가진듯하다. 하지만,  이미 공인된 사서인 삼국유사에도 덕만이 결혼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는데도, 원작자의 한계는 여성으로 왕이 되면 결혼을 하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화랑세기>를 원작자가 <사서>라고 확신하고 있다면, 덕만이 왕으로써 최소한 3명(용수,용춘,을제)의  남편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성은 여러 남성들을 남편으로 두면 안되는 것인가? 남자왕은 정비, 후비들을 수없이 두고 있는데 말이다.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이 <비담의 난>까지 극을 전개한다면, 비담의 난을 덕만을 향한 반란이 아닌, 짝사랑하는 덕만을 지키고, 유신에 반대하는 정병으로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진덕(승만)이 왕이 되는 충분한 설명이 될테니 말이다.

어찌되었던 처음부터 용수, 용춘, 을제를 드라마에 등장시키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이들이 등장인물로 설정이 되었다면 기록에 충실해야 해야한다. 이들이 덕만과 혼인관계가 아님을 극중에 충분히 녹여 내야 하는 것이다. 덕만이 성녀마리아도 아니고, 왕이 되기위해서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니 결혼하지 않는다는 수녀처럼, 왕노릇했다는 발상은 드라마적이도 않다. 동정녀 마리아도 결혼해서 수 없이 많은 자식들을 두고 있는데 말이다.

보종은 진평왕의 사위다


진평왕이 사위로서 왕위를 잇게 하려 했다면, 보종이 왕이 되어야 한다. 보종은 진평/보명의 딸인 양명과 결혼한다. 그러니 보종은 진평왕의 사위이다. 춘추는 보종의 딸인 보라와 결혼한다. 그러니 가만히 있어도 보종의 뒤를 이어 사위왕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다고 말들을 하지만, 사극으로나 드라마로나 이처럼 이야기 구조가 허술한 드라마를 본적이 없다.

이제 조씨족보나 삼국유사나 화랑세기에 기록된 덕만의 남편들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끝을 맺으려 한다.

덕만의 남편들..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음편에는 "왜? 선덕여왕에 <선화공주>가 나오지 않는가?"에 대해서 합리적인 해석을 해볼 생각이다. 사실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선화공주가 등장하던 등장하지 않던 극을 전개하는데는 문제가 없다. 단, 선화공주가 등장한다면,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등장인물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 합리적인 이유와 설명이 극에 녹아 나야 한다.

PS. 선덕여왕 덕만으로 활약하는 이요원이 대상포진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선덕여왕에서 하차를 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극의 양대 주인공중에서 실질적인 주인공인 미실 고현정은 연장된 12회중 8회정도만 나오기로 결정하였다고 하네요. 결국에는 덕만이 죽을때 까지 등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등극하기전에 죽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아쉽다면 덕만이 여왕이 되는 과정(길)이 아닌 여왕으로서 신라를 어떻게 경영했는지를 보고 싶은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김정현(하종)이 결혼을 하는군요. 또한, 신녀로 활약한 설매(조명진)도 결혼을 하는 군요.. 두분의 결혼에 축하를 드리는 포스팅을 하여야 할텐데. 하종을 변호하는 기사를 송고할까 합니다. 찌질이 하종 알고보니 엄친아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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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선덕여왕팬이지만~ 2009.10.10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주교인으로서 '동정녀 마리아'께서 결혼해서 수많은 자식을 낳았다는 부분은 참... 물론 비종교/타종교인이기 때문에 쓰실 수도 있지만, 그래도 굳이 선덕여왕을 성모마리아님께 비유할 필요가 있습니까? 수녀님들도 그렇고 그런 식으로 '비하'받을 분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ㅡㅡ; 왜냐하면 평생을 하느님을 모시며 순결하게, 신념과 신앙으로 사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세속에 있는 우리들이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분들이 아닙니다. 혼탁해진 세상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시는지를 알고 계시는지... 그리고 선덕여왕이 스스로 혼인하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어쨌든 자신이 여왕/부군이 된다고 했지 남편을 평생 두지 않고 살겠다는건 아닌것 같은데요. 어차피 드라마는 99%의 허구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인 부분보다는 재미가 더 위주죠.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굳이 넣지 않아도 되는데 넣었다면 왜 그랬을까 하는것도 생각해 보셨더람 좋았을 겁니다..

      이미 선언했지요.. 부군이 되겠다고 하기전에.. 그렇다고 해서.. 죽일 필요성이 없지요.. 요즘은 죽이면 극적이고 드라마 처럼 보이나 봅니당..

  3. BlogIcon 감자꿈 2009.10.10 1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재밌는 글 잘 읽고 갑니다.
    미실이 연장에서 8회까지만 나오는군요.
    무진장 아쉽습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확한것은 아니고 연장에는 동의를 했다고 합니당. 그것도 연장에 따른 출연료는 한푼도 안받고.. 고현정 대단해용.. ㅋㅋ

  4.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2009.10.10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역사스페셜이 아니지 않습니까? ㅋ 그냥 보고 즐기면 될 뿐, 역사랑 틀리다 해도, 드라마로 인해 그 당시 시대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고, 실제 역사에선 어떠했을지에 대한 관심이 올라 간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좋은 효과라고 생각하는데요.

    • Lani☆ 2009.10.10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이분이 친절하게 실제역사가 어떠했는지 써주신거잖아요;;

      갓쉰동님 글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단 드라마 자체로도 최 하급이라는 말씀을 드리고요. 사극으로는 최악이라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해당 하는 책이 존 책이 아니듯이, 시청율이 높다고 존 드라마. 사극은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아동성폭행범이나, 연쇄살인법 등 범죄자들은 아주 좋은 효과를 발휘한겁니다.. 덕분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지요..

      lani/그러게 말입니당.. 누가 드라마를 드라마로 안본다고 한적도 없고, 드라마의 해설부분인뎅.. 난감할 때가. 드라마다 다규를 만들라고 하는 분들을 보면 왜, 선덕여왕이 인기가 있는지 알겠고, 요즘 사회가. 정치가 그런지 알겠어용..

  5. 함바그 2009.10.10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살짜리 춘추가..이건 ;;
    드라마상에서 춘추가 10살로 설정됐단 말씀인가요?

  6.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0.10 1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이유는... 드라마니까요 ㅋㅋㅋ
    역사대로 하면 흥미가 없죠... 허구적인 요소가 들어가야 재미가 있는거죠.
    덕만이 낭도라는 것과 타클라 교역지대에서 컸었다는 건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스토리를
    뽑아낼 수 있는게 "역사 드라마" 아니겠어요.
    글은 잘 읽고 갑니다.
    하지만 항상 역사와 사극인 다르다고 생각하고, 사극이 역사를 왜곡시켰다고 해서
    굳이 욕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네요
    하여튼 잘 봤습니다 ^.^a;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드라마도 선덕여왕처럼 만들지 않지용.. 현대극이라면 막장의 최고봉입니다. 출생의 비밀은고사하고, 죽은자가 돌아다니고, 죽지 않은 자를 죽여버리고, 1살짜리가 얼라를 낳고.. 이런 드라마 보신적있어요?
      사극은 가능하다구요? 사극이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 되용.. ㅋㅋ

  7. BlogIcon 어쩌면 2009.10.10 14: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혼하지 않는다는 여왕이 지킬수 없게되니 다시 을제를 등장시켜 아주늙은 을제를 재등장 시켜 결혼했지만 정치적 남편으로만 보이게 장치(?)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8. 사극은사기 2009.10.10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 절대로 아닙니다. 스스로 기억을 해봐도 어릴 때 본 드라마 허준, 장보고 , 광개토대왕 의 배우들과 내용이 나이들어도 생생히 기억나게 마련입니다. 교과서 내용은 기억에서 1년만 지나도 사라집니다. 그만큼 사극은 역사관 형성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면 일본이 한국침략을 미화하는 드라마도 그냥 드라마로 받아들여야 하고 중국이 한국은 중국의 지방의 한 곳이라고 드라마에서 말하면 그것도 그냥 드라마니까 놔둬야 되나요? 그런 왜곡된 드라마들이 어린 일본,중국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미래의 역사관이 형성되는 데 영향을 미칠거라고 생각해보십시오. 구체적으로 어떤 대목이 아니라 그래 침략할 수도 있지 이런 가벼운 생각이 들게 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선덕여왕에서 여자가 왕이 되는게 무슨 혁명적인 일인듯 하는것과 사람이라면 당연히 성장하면 어울려 결혼하여 가족을 이루어 사는 것까지 안했다고 하면서 억지로 역사를 왜곡하는 것도 우리 문화의 원형을 해치는 것이라고 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당..알고 그런말을 하면 좋겠지만. 모르시는 부들이 꼭 드라마는 드라마다.. 라고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대락난감하겡.. ㅋㅋ

    •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0.11 0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세요. 꼭 드라마는 드라마라는 사람들이 다 역사를 모른다고는 할 수 없죠. 하지만 드라마를 역사대로만 만든다면 말그대로 다큐가 되어버립니다. 사극의 좋은 점은 역사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냥 덜컹 믿어버리는 분도 많지만, 오히려 저게 진짤까하고 제대로 조사하는 분들도 많으시지요. 그런점에서는 사극이 꼭 사기다 나쁘다라고만은 볼 수 없는거 같네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주장하시는대로.... 왜곡된 드라마들이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말하자면 모든 출판물, 드라마 다 그렇겠죠... 내조의 여왕이던지, 너는 내 운명 등등 말도안되는 허구적인 상황을 다 저런게 가능한 것이구나 하고 없습니다. 그러니 모든 드라마에 15세 사인이 붙는거겠죠. (사물을 판단할 수 있는 나이들이 보라고) 물론 역사 드라마다 하니까 믿는게 더 쉽긴 하겠지만, 드라마는 드라마니 다 믿기보다는 스스로 판단해보고 역사책을 읽어보는게 좋다고 생각되네요. 이미 말했던 대로 그냥 그걸 역사다 믿어버리는 분들은 어쩔 수 없는거구요 ㅡㅡa;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댱연히 영향을 미치지요..ㅋㅋㅋ

      저는 사기다 라고 말이 목밖으로 나오려고 하지만, 별로 그런 생각이 없는데용.. 저는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이야기 하는건데요.. 기본팩트왜곡은 문제가 있다.
      인물정보는 지켜줘야 해용..그렇지 않다면 합리적인 이유가 극에 녹아 있어야 하구요.

  9. BlogIcon 결국 2009.10.10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가 여성이어서
    폄하려는 글을 쓴 모양새로만 보이니
    조금 불쌍타

  10. wisi 2009.10.10 1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선화공주는 신라의 공주가 아닌 백제의 호족의 딸이라는 것에 더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에 나왔던 미륵사지 석탑에 나온 문건에 무왕의 왕후는 사택씨라고 했었던 것을 보아도요.) 지금까지 본 신라의 개방적 성풍속으로 보아 "맛동왕자와 밤마다 좋아지내는 공주" 따위의 소문이 별로 남사스러워 보이지도 않고요--; 그당시 풍속을 쫓자면 공주를 쫓아내기 보다는 누군지 알아보아 괜찮으면 결혼시켰을 것 같은데요. ㅎㅎ 선화라는 이름도 별로 신라스럽지 않습니다. (보량, 영모, 미모,천명, 덕만, 승만, 미실 ...그런데 선화... 이상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 때당시 아마 백제어와 신라어는 의사소통이 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심지어 당시에는 다른 민족이었을 가능성도..) 한사람이 다른 국가에 가서 언어적 사회적으로 아무런 배경없이 적응하는 것이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요?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녔어도! 전설은 전설일뿐 오해하지 말자고 외치고 싶네요.

    어디서는 의자왕의 이모가 선덕여왕이라는 (나름 족보를 탐구하신분의 식견!)까지 있는데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설령, 덕만의 동생이 선화였더라도, 의자왕은 선화공주의 자식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둘사이가 몹시 안좋았고, 선화공주가 이룩한 업적(수도를 천도하고자 했고 절을 지었고 기타등등, 나름 활동적이어던 ,무왕의 정치적 동지였던 왕비) 을 의자왕이 모두 뒤집어 엎어, 수도를 옮기는 것도 그만 두었다고 들었습니다.

    어차피 선덕여왕에서 역사적 사실을 찾기에는 너무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무령이 무동같아용.. ㅋㅋ
      의사가 통하지 않아다는 설이 있기는 한데요.. 이미 폐기 처분된것으로 알고 있는데용..

    • 미실존경 2009.10.16 0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알기로는 백제와 신라는 의사소통이 가능했다고 하던데요..

      사실 백제와 신라 뿐 아니라 고구려도 언어가 비슷했다고..

      백제는 고구려 유민이 건국했으니까 고구려와 언어가 비슷했을 것이고

      고구려와 신라의 지리 용어를 연구하신 어떤 분께서 두 나라의 용어가 비슷하다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삼국 사람들은 말이 통했을 것이라고..

    • BlogIcon 갓쉰동 2009.10.16 0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백성의 언어와 지배계급의 언어는 조금 달랐을것 같아용.. 물론, 말은 통했겠지만요.. 제주도 말처럼 이질적이진 않았을 겁니당..

  11. wisi 2009.10.10 1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화공주가 무왕의 정치적 동지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말도 안통하는 이국땅의 왕비로 온 신라의 공주가 그리 할 수 있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틀림없이 선화공주에게는 그녀를 지원해주는 국내세력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약화된 왕권도 강화시킬 수 있었구요.

    그리고 어찌하던 글을 연결시켜 보려는 작가의 고충이 드러나서 어떤 때는 손발이 오그라들 것처럼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4시40분에 일어나야 해서 이걸 보고나면 다음날 체력이 바닥납니다. 그럼에도 보고 있는 것을 보면 참 저도...

    이요원씨가 면역력이 매우 약해져야 걸리는 대상포진에 걸렸다니 큰일이네요. 그거 한번 걸리면 피곤할때마다 재발할텐데... 엄청 아플 텐데...무사히 드라마를 마치기를 기원하고, 끝까지 지금의 힘을 잃지 말고 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역사적 사실이 드러나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어쨌든 뭔가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로서!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왕이전에도 백제와 신라는 혼인관계를 맺습니당..

      잼있는 드라마인건 맞는데. 좀더 신경을 써서 만들었다면 하는 아쉬움이지요.. 열연하는 배우들이 아깝거든요..

      이요원이나 배우들이 아프지 않게 만들수 있는 여건이 성숙이 되었으면 좋겠어용. 너무 날림으로 찍는것 같아서요.. 최소 2주전엔에는 금주 방송분이 끝나 있어야 하는것이 아닌가 해용.. 사전제작은 못할지라도..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

  12. 갓쉰동 최고 2009.10.10 1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글을 잘읽고있습니다만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 학계전체를 비판하신다는 점입니다.
    사실 학게들중 왕초격인 진단학회룰 비롯한 역사관련 학회가 문제가 있는 곳이 많지만 항상 글쓰실 때마다 학계를 비판하시더군요. 사실 님께서 재야학자들이나 다른 전문가들같이 역사에 통달하시고 항상 학게를 접하시는 분이면 모를까 역사에 단순히 관심만 가지신 분이 자기가 연구하고 가정한 감수를 받지않은 자기만의 성과만가지고 일부학게를 꼬집어서 비판하는 것이 아닌 학계자체를 비판하시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글을 읽다보면 가정이 너무 낳은 듯 하기는 합니다.
    그리고 전에 댓들을 달았던 것중에서 역사학도에대한 들을 다시언급해봅니다,
    그러시면 갓쉰동님께서는 얼마나 밥벌이가 좋은학과를 나오시고 얼마나 좋은 직장을 가지셨나요?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0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분 나쁘실수있지만 사람의 적성과 전공을 밥벌이로만 판단하는것 그리고 저또한 역사전공을 꿈꾸는 자로서 상당히 불쾌했기에 올려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학계전체를 비판한적이 없는데용..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아용.. 그런데 왜 밥벌이란 말에 흥분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밥을 벌지 못하면 님은 연구를 못해요. 그 밥을 누군가에서 얻어와야 하는것이구요..
      전공이란 해당 학문을 통해서 수입을 얻는 직업이예용.. 그렇지 않음 취미지요..님은 왜 전공을 꿈꾼다고 하시면서 불쾌해 하는지 알수가 없어용.. 불쾌하게 생각하는건 취미생활이면 가능한 말인데 말이지요.. 난 그 직종으로 밥벌어 먹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돈들여서 연구하고 하겠다.. 아니면 자원봉사를 하겠다.. 이건 취미지요.. 아마추어이구요.. 전 그래서 아마추어예용.. 역사로 밥빌어 먹지 않거든요.

      저는 만약 사학으로 밥을 빌어 먹을 정도라고 인식을 했다면 이미 전공을 사학으로 했을겁니당.. 배고픈 직종인건 다는 이야기 아니에용? 사실을 말하면 발끈할 이유가 없지요..

      문제는 밥을 빌어먹으면서도 아마추어보다도 못한 전공자가 있다는것이 문제라면 문제지요..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전공이라도 해서 꼭 직업으로 삼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전공은 그 학문에대해서 일반 아마추어들보다 좀더 세밀하게 공부하고 좀더 원전을 비롯한 그 학문에대한 자세한 자료를 접하고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직업으로 까지 삼을수 있는 정도가 되었을때 전공했다고 할수있는 듯합니다.
      재야 사학자들 중에서는 역사를 전공하고도 다른 직업을 선택하신분들이 많습니다. 사살 우리사회에서 자기전공대로 직업을 삼는 분들이 적기는 하지요.
      전공은 해당학문을통해서 밥을 버는것이아닌 해당학문을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톹해서 이수하였을때 전공이라고 하는것이 맞는 듯합니다. 꼭 자비를 들어서 연구한다고 해서 취미라고 할수는 없지요. 비록 사회적인 직업은 사학과와 무관하지만 자기가 공부한 학문을 꾸준히 연구하는것은 전공과목을 활용하는 것이죠.
      그리고 학계에 대한 비판은 좋으나 위문장들 중에
      제대로된 학계를 별로 본적이 없다라는 발언은 학계에대해 자세히 알지못하시면서 하시기에 너무 학계를 좋지안게만 보시는 것같아서 드리는것 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님은 존 학계사람들과 교류를 하시길 바랍니다.. 다들 자신들이 존 학파라고 하지요. 학파가 괜히 있는건 아니닌가요..

      그래서 제2전공을 하라고 하는것 아니겠어용.. 전공은 학위를 받는다고 되는게 아닙니당.. 그건 한때 그랬다고 하는거징요.. 학위는 누구나 학점을 이수하면 다 할 수 있어용.. ㅋㅋ 지금은 굉장히 크게 보이실지 모르지만.. 하고 나면 별거 아니라는것을아시게 될겁니당. 요즘은 전공(?)파괴시대에용.. 전문가 시대지용.. 전공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갔어용..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아직 고등학생이고 어떤 학파에 속해있지도 않은데요.
      다만 각 대학별로 학계가 다른데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다보니 학계별 특징을 알고 깨우쳐가는 중에 님은 너무 기존학계를 비판하시기만해서 올려본것입니다. 그리고 님이 아는 만큼은 저도 잘 압니다. 잘못된 전공자보다는 올바른 전문가가 낫다는 것 까지요. 물론 님의 역사에대한 비판적인 시각 연구하려는 자세는 기존의 연구에 안주하는 일부 학자들보다는 낫다고 할수있지만 학계를 비판할 정도의 전문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제말은 전공은 다만 직업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에 드리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제본문에는 어떤 학파에 속해있고 좋다고 한적이 없습니다. 남의 뇌를 스캔하시는듯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님은 존 학계사람들과 교류를 하시길 바랍니다.. 다들 자신들이 존 학파라고 하지요. 학파가 괜히 있는건 아니닌가요..
      ----------------
      오독하셨어용.. 그러니 님의 뇌를 스캔하지 않은거지용.. ㅋㅋ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저는 특정학파의 사람이랑 교류한다고는 하지 않았는데요. 제가 교류를 하는사람들은 거의 대학생들 입니다.
      대학생들은 학파에서 자유롭죠. 심지어 자기 학교의 학파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단정지어서 이야기 하시지는 마시죠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듣기에는 학파놈들이 자기네가 좋다고 떠드는것이나 열심히 들어라라고 비꼬시는것 같은데요.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 전문가나 전공자들과 교류가 없으시다보니 너무 학계나 학파를 겉에서 보이는 것으로만 좋지않게 보시는 경우가 있으신듯합니다. 부디 그 틀을 깨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님 말씀대로 힉계나 학파의 사상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다만 제대로 알지 못하시면서 비판만하시니까 말씀드린것입니다 그럼 존하루

  13. 갓쉰동 최고 2009.10.10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뿐만 아니라 성골제의 경우 진흥왕이후로 성립되었다는 설과 진평왕이 따로 만들었다는 설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좀더 연구를 할필요는 있지만 충분히 가는하다고 봅니다. 특히 진평왕이 특별히 만들었다는 부분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비담의 난의 이유에서 보듯이 선덕여왕의 경우 여인입니다. 물론 여인이 왕못지 않게 권력을 휘두른 적은 많지만 정식으로 왕위를 오른경우는 없습니다.물론 여인이 왕위에 오를수는 있겠지만 귀족들의 반발이 심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평왕이 따로 만들었다는 설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또 그렇게 되면 영토확장이후 왕의 직계자손에 대한 특권을 부여하기위해 진흥왕때 성골제를 시행했다는것도 가능해집니다. 이부분은 님도 긍정적으로 검토하셨는데 갑자기 미친개 마냥 학게를 물어뜯으시니 그리고 꼭 님의 가정이 맞다고 할수는 없는데 계속 맞는것처럼 우기시고 본인만 화랑세기랑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읽으신 것처럼 이야기하시니 난감하네요 ㅠㅠ
    그리고 능이 북릉에 있었다고해서 여왕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문제가 있다고봅니다. 측천이나 여후같이 왕후의 권력이 더 강했을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제대로된 학게의 정보없이 주류학계의 일부만을 보고 학게를 비판하시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읽은값을 하기위해 ㅊㅊ
    이번에는 너무 가정이 많으신듯합니다. 님의 이야기만을 사실로 믿는 사람도 있지요.
    결국에는 사극 작가보다 조굼 똑똑한 선동자가 되실듯
    가정과 사실을 구분해서 써주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존 성골.진골에 문제가 있으니 수정단계잔아요.. 이제 진흥왕때나 진평왕이 만든것이라는 수준으로 격하되고 있는 실정이구요.. 전 그런것 애초부터 없다는 생각하는 것이구요.. 가정이 아니고 가설이지요. 가설검증은 언제든지 받을 준비가 되어 있고, 반론을 제기하시면 재반론을 제기하던지.. 아니면 수용할겁니당..

      비판에 대단히 민감하신것 같아요. 님이 만나는 분들은 비판과 토론을 잘 하지 않는 모양입니당.. 왜 비판하냐는 말을 지속적으로 하시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비판과 토론은 모든 학문연구에 기본인뎅..
      북릉이 여왕릉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한적이 없는뎅.. 제가 설마 공공연한 공개된 공론의 장에서 확정으로 말하겠어용.. 미치지 않고성..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존 골품제에 진흥왕때 영토확장을 하고 법흥왕때의 불교공인을 계기로 왕권을 강화하던 중에 나올수는 잇을 듯합니다. 꼭 진흥왕때 니와서 격하라고 하는 것은 약간의 오류가 있다보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할 수 있어용.. 하지만 왕이 존귀하고 존귀한 존재인데..

      왜 불교와 영토문제를 들어서 성골이 성립했다고 생각하셈.. 영토가 적고 크고의 차이가 아니지요..왕의 존재는..

      왕권강화 문제는 다른 문제지만용.. 성골을 부여잡고 있음 신라사의 연구는 더이상 진전이 없습니당.. 저는 그리 생각해용..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삼국의 경우 영토확장을 통해서 대외로 국력을 뻗치거나
      율령을 반포하거나 국교를 정했을때 일시적으로 왕권이 강화되었습니다. 저는 이런이류로 충분히 연관성이 있을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사실 왕이 귀한 존재인것은 맞습니다만 왕권이 약하면 신권이 강해지지요 그래서 저는 왕실 내부의 직게자손들에게 좀더 권위를 부여하기위해서 성골제를 시행했을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성골제가 신라사의 연구의 진전에 방해가 된다는 것은 나무 님만의 생각인듯합니다. 님이 남의 글만을 읽지 않고 직접 답사를 다니고 고문서를 번역하셨으면 그런 이야기를 하실수 있지만 남의 이야기만을 듣고 연구하셧으면 좀 그렇네요.
      그래도 첫 댓글 달때 부터 재미있게봐서 광고 클릭하구 뷰온 합니당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좀더 크게보셈.. 님은 한계를 지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용.. 답사를 해야한다. 원전을해석해야한다. 물론, 중요하지요. 저도 원전봅니당.. 필요할때는.. 제글 보면 원전을 보지 않음 알수 없는 내용도 있다는것 아실텐데용.. ㅠ.ㅠ.;;;

      저는 님과 대화가 잴 잼있어용..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동.. 싫어한다고 생각하지 마라주셈.. ^____^ 님의 댓글을 항상 기다린답니당.. ^___^

      왕권이 강화되면 왕족의 권위가 추락하고 귀족의 권위가 추락하지요.. 일시적으로는 하지만 왕권강화가 극에 치닫거나.. 일정하게 유지되고 시간이 지나면 왕족과 귀족의 권한이 강화되는 쪽으로 움직여용..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크게 보지 않는 다기 보다는 남의 경우 전문가가 아니신 관심있는 아마추어인데 본인지식에 대한 확신 이 약간 과하시고 다른분들 의견을 너무아닌듯이 평가하시기에 올립니다. 그리고 왕족의 경우 왕의 직계와 방계가 구분되기는 합니다. 저는 성골의 경우 직계들에게만 해당하는 신분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귀족의 범위안에는 왕족이 들어가지요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더군요.
      학문에는 정해진 학설이 없지요. 특히 역사의 경우에는 해석방법에 따라 다른 학설이 나오지요. 그러나 주류학계는 자신들의 학설이 진리인양 선동하고 다니고 일부 학도들도 그것을 신봉하고 다른 학설은 거들떠 보지도 않지요.
      그러나 님과 저도 같은 길수를 저질렀더군요. 님은 본문에서 학계의 주장을 터무니업다고 무조건적인비판을 넘어 비난을 하셨고
      저도 터무니없다 미친개같다 그러고 앗 죄송
      그리고 님은 크게 보지 못하다고 그러시고 사실 어떤 학문이든지 터무니없는 주장이 많죠.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도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다 밑받침으로서 필요하지요.
      님이나 저나 서로 글쓸때 다른 학계라든지 글쓴이들의 주장을 무조건 부정하고 자기 생각을 합리적이라고하며 남을 무조건 비판만하는 습관을 지양하고 다른사람의 학설도 검토하여 의견을 모아가는것을 지향해야할듯합니다.
      어떤 주장이든지 잘만 검토하면 건질게 있거든요
      그리고 의외의 결과를 낳을수도 있고

  14. BlogIcon 펨께 2009.10.11 0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일요일되세요.

  15. hooooooooong 2009.10.11 0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 댓글들이 너무 살벌들 하시네여...ㅜㅜ 이요원씨도 아프다 그러고 연장이네 뭐네 하면서 이랳다저랳다 하고 역사랑 맞지 않네 하면서 작가의 자질에 대해 논란도 많고(대장금까지 쓰신 분인뎁ㅜㅜ).. 근데 솔직히 지금까지 방영된 사극 중에 몇개나 역사에 충실했었나요. 작가분의 의도가 선덕여왕 당시의 역사를 보여주고자 했던거라면 이렇게 짚고 넘어가는 것이 당연하겠죠. 작가 자신이 모티브로 삼은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다 보니까 좀 넣고 빼고, 멜로도 들어가야되서 나이랑 인물을 그에 맞게 수정도 하고.. 뭐 이런 과정이 있지 않았겠어요?ㅜㅜ 이 드라마가 막장사극(?)이다 뭐다 말들이 많지만, 아무튼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시청률도 꽤 높고 이것저것 논란도 되고 하는 거겠죠^^ 일단 배우들의 연기력이 좋고, 스토리도 그닥 부실하지 않으면서 하이라이트부분 콕콕 집고 올라가는 것이 드라마 보는 맛이 있더이다ㅋㅋㅋ 역사스페셜, 역사추적 이런거 찾아 보게도 되고ㅋㅋ 암튼 재밌던뎁~~~~~~~개인적으로 선덕여왕 시청률 40% 넘었으면 좋케씀!!!;;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장금까지 쓴것과는 하등 관계가 없지용.. ㅋㅋ

      저도 시청율 40% 넘었음 좋겠어용.. 배우들의 연기는 죽이는뎅.. 스토리는 막장입니당.. ㅋㅋ

  16. 성이진 2009.10.11 1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님, 정말 연기를 잘하세요!!! 선덕여왕님, 그리고 미실공주님
    짱 멋져요!!!!! 매일매일 보고 있어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덕만공주를 맡은 이요원에 불만을 가진 분들이 계시던데.. 저는 배우들의 연기는 참으로 좋다고 생각해용.. 다만, 비담과 염종의 오버가 너무 자주 눈에 띄는게 아쉽기는 합니당.. ㅋㅋ

  17. 여왕은 왜.. 2009.10.11 2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은 결혼 할 수 없다는 것이 드라마 전제로 깔려 있어서 기분 나쁘네요...
    드라마를 보면서 불쾌했거든요. 무의식중으로 전달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여성은 사회활동을 하면 결혼을 못한다...

    그리고 여왕이 어느 나라에도 전례가 없다고 떠들 때 전 당연히 일본을 얘기할 줄 알았더니 쌩뚱맞게 이집트라니...

  18. BlogIcon Elena* 2009.10.22 0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너무 재미있게 보고있는데, 이런글도 읽으니까 너무 재미있네요.
    저도 덕만이 남편이 너무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본적이 있는데,
    덕만의 남편으로 조계룡이라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조계룡이 본명은 아니고 가야왕자출신으로 진평왕이 조계룡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 하네요.

    그거 보면서 저는 월야가 바로 떠올랐는뎁..
    월야가 가진 군사가 많으니,
    미실의 난을 복야회 군사를 이용해서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다면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 갔더라구요.

    다만, 극에서 월야가 너무 찌질하게 나온다는 것이 걸리지만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진짜 멋있었는데 갈수록 ㅠㅠㅠㅠㅠ)

    용춘공도 꽤 미남이신데 극중 설정이 나이가 많은 설정이라 아쉽네요.

    갠적으로는 월야의 첫등장에 반해버려서,
    어서 예전의 카리스마를 되찾고 덕만의 남자가 되어서
    분량이 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ㅋ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0.22 0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월야에 관한 글도 있는뎅 함 보셈..ㅋㅋ
      월야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군요..

      용춘은 578년생.. 지금 시제는 616년,, 드라마 제작진 기준으로 하면 631년.. 오히려 젊게 나오는데용.. ㅋㅋ

      원래 첫 등장은화려하게 해야 임팩트가 있지용.. 그리고 기다리는 마음.. ㅋㅋ

  19. BlogIcon kue lebaran 2011.08.14 1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재 문서를 선언하고 싶지는 tonishing으로합니다. 기사와 명석 내가이 분야에 대한 권위로 당신은 일어날 수있는 가정 실제로 눈부신입니다. 효과적으로 당신의 선택을 사용하면 나를 안으로 문서를 사용하는 지금까지 최대 유지하기 위해 현재 RSS를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건배와 함께 천 당신의 새로운 uthentic의 작동 계속해야합니다.

  20.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21. BlogIcon Pussy.Org 2012.07.12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들여 거칠부가 <국사>를 만든것으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진흥왕

 드라마 전개상 시제는 여전히 풍월주 비재가 있은지 얼마안되는 시점이다. 이를 어찌 알수 있는가하면 춘추가 설원랑의 집을 찾아가 보량을 만나서 보량에게 한가위(가배)선물을 한다. 그런데 가잠성 전투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가잠성 전투는 진평왕 33년 611년 10월부터 100일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가잠성전투가 신라의 승리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가잠성 전투는 신라의 대패로 끝났다. 그래서 40년 신라가 가잠성를 수복하려고 했지만 이때도 대패하고 말았다. 

614년 진평왕 35년 봄에 가뭄이 들었다. 그러니 안강성(비화현)에서 민란이 일어났음직한 때이다.  유신과 결혼한 영모가 임신을 한 시점이기도 하다. 이때 진평왕의 나이는 49살이 된다.

드라마 선덕여왕 40회에서 진평왕이 심장에 이상이 생기자, 덕만으로 하여금 결혼을 하게 하고 사위를 왕으로 삼으려 한다. 
이는 신라가 전통적으로 사위를 왕으로 삼은 것에 기인한다. 그런데 정말 사위가 왕이 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기록상 여왕의 남편을 왕으로 삼았을 수도 있다. 

증거는 서라벌(경주)에 있는 황남대총의 쌍둥이릉으로 확인할 수 있다. 황남대통의 작은 남쪽릉에서는 남성의 부장품이 나오고, 북릉에서는 여성의 부장품이 나왔다.


문제는 북릉에서는 황금관이 나오고, 남릉에서는 금동관이 나왔다. 이로써 북릉에 있는 여성이 남릉의 남성보다는 지위가 높았을 것이라고 누구나 인정한다. 그런데 이 두릉은 덕만이 왕으로 있었던 이전시기의 릉이라는데 있다. 그래서 기록되지 않은 여왕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는 것이다.  신라가 국사를 정립하는 때는 진흥왕 6년인 545년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진흥왕이 젊은 시절에 이사부의 의견을 받아 들여 거칠부가 <국사>를 만든것으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진흥왕은 7살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니 진흥왕 6년이면, 진평왕이 왕위에 오른 15세보다도 나이가 어린 12살이 된다. 이때 실질적은 왕은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태후(법흥/연제)이다. 
 
어찌 되었던, 국사를 만들면서 이전왕의 기록이 소략하거나, 왜곡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다. 어떤이들은 삼국사기의 저자인 김부식이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김부식은 덕만의 기록을 남겨두었을까? 물론, 어쩔수 없이 덕만과 진덕의 기록을 남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구당서와 신당서에 신라에 여인이 왕으로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김부식도 어쩔수 없이 신라에 여왕이 있었다고 기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역사란 한쪽의 일방의 기록만을 참조하지 않는다.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다른 기록을 하였을때 이를 크로스 체킹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합리적인 해석을 하는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대표적인 사위왕은 석탈해(토해)가 있고, 또한명은 김미추가 있다. 하지만, 이들 말고도 수 없이 많은 사위왕들이 있었다. 또한, 기록상 최초의 여왕인 덕만 이후에도 사위로 왕이 된 예가 많다.  진평왕은 전왕의 선례에 따라 사위로 왕위를 이을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진골.성골이 있다고 믿는 일단이 있고, <성골남진>이란 허황된 환상에 빠져 있는 사람은 진평왕이 사위를 볼때 어쩔수 없이 <진골>을 덕만의 짝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성조인 왕의 자식중 아들이 없다는 말이지, 왕의 형제나 조카중 남자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이와 같은 예는 소지(비처)왕이 아들이 없자, 소지왕의 종친인 내물왕의 증손인 지증이 왕위에 오른다. 이처럼 왕에게 아들이 없다면 왕위를 이을 이는 넘친다. 조선도 철종처럼 강화도의 무식한 도령을 왕위에 올리기도 한다. 왕족에 절손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종도 철종의 먼 종친으로 왕위를 계승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조선과 신라는 달랐다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왕을 잇는데는 별다른게 없다. 이미 신라의 예를 들었는데도 조선과 신라는 달랐다고 반론을 제기하지는 말기를 바랄 뿐이다.

어떤이들는 <성골>,<진골>에 집착하여 성골과 진골은 <진흥왕>이후에 정립되었다고 학설을 만들어 낸다. 도대체, 이미 왕족인 <진골>이 있는데, 그 위에 왕을 제외하고 <성골>이 있다는 발상이 스스로에게도 좀 아니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역사학계가 다른 학문도 비슷하지만, <도제>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교수의 학설을 반박할 수 없을 뿐만 아니고, 내부적으로 치열한 논쟁이 없다는 반증일 뿐이다. 만약, 자신의 학파에 반발을 한다면, 그 사람은 학계에서 밥 빌어 먹을 수 없다. 한마디로 학계를 떠나야 한다는 말이다.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도제에 찌든 사람을 대상으로 비판을 가하고 있는것이다. 충분히 그렇지 않게 운영되고 있는 곳도 있을 것이다. 별로 본적은 없지만 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천명으로 부터 물려받은 유신을 사랑하는 덕만은 유신을 두고,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평생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다. 결혼을 한다면 자신이 왕노릇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 <사위왕>을 철저히 심봉하고 있는 선덕여왕 <원작자>의 견해이다.

어찌되었던, 천명이 사랑한 나이 어린 유신을 덕만은 눈물을 머금고 버린다. 그리고 유신이 영모(하종/미모)와 결혼을 하자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며 눈물을 찔끔거린다.   재밌게도 이는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의 천명과 덕만과 용수와 용춘의 이야기를 변형시킨 것이다.


신라에서 여왕이 나오는데 신라의 역사의 흔적으로 부터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고, 드라마에서는 외국에 사례가 없다고 나오지만,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황당한 일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10/0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왕을 놓고 김춘추와 덕만이 대립한다?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이미 당시 왜에서는 여왕천하에 있었다. 신라의 이웃 국가인 왜의 첫 여왕인 추고여왕(593~628), 제명.황극(641~645, 655~661) 사례도 있으니 충분히 고려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왜의 여왕시기는 더 위로 올라간다. 비미호는 여왕으로 한반도와 중국과도 교류를 하였다. 비미호의 조카도 여왕이 되었다. 신공 또한 왕후로써 여왕의 직을 수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0년(173) 여름 5월에 왜(倭)의 여왕 비미호(卑彌乎)가 사신을 보내와 예방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아달라왕


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신라가 진평왕시기 왜에 추고왕(593~628년)재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수가 없다. 드라마에서 등장인물들이 모두 나와서 선례가 없다고 떠드는 말은 수나라에 일찍이 조기 교육을 받아 외교전문가로 크는 춘추까지도 욕보이는 것이다. 또한, 춘추는 642년 고타소가 죽자 왜에 청병을 하러 가기도 한다. 춘추가 왜에 가서 만난  제명왕도 여왕이였다. 그러니 선덕(632~647년)과 제명(641~645년)은 동시대에 여왕으로 있었다는 뜻이다. 재미있게도 제명은 몇년후 다시 왕위에 올라 655~661년까지 왜의 <황극>왕으로 있었다. 제명과 황극은 동일인물이다.

덕만이 결혼할 수 없는 이유? 의외로 간단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을 하자.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삼국유사나 화랑세기는 덕만이 결혼을 하였지만, 자식을 두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덕만의 남편인 을제(신구)

삼국유사의 왕력편에선 덕만이 왕위에 오른 632년이후 3년에 634년에 <음갈문왕>과 결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음갈문왕은 누구일까? 진평왕에게는 두명의 남동생이 있다. 한명은 백반이고, 또 한명은 국반이다. 진덕의 뒤를 이어 왕이된 진덕(승만)의 아버지는 국반이다.

만약, 진평이 덕만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이 없었다면 백반이 왕이 되었을 것이다. 사위왕이 되기전에 말이다. 성골 좋아하는 사람이 보았을 때, 진평왕의 형제인 사람보다 확실한 성골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성골남진>의 논리적 허구는 여기서도 깨지고 마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화랑세기에는 덕만의 남편으로 3명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명은 용춘이고, 두번째가 용수이고, 세번째가 <을제>이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은 용수를 일찌감치 죽여 버렸다. 이유는 덕만과 나이어린 꽃미남(?)유신을 염두해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을제>를 소리소문 없이 드라마에서 낙마를 시켜버렸다.

을제인 신구가 용궁으로 다시 돌아갔는지, 아니면 다른 드라마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유는 유신과 덕만을 연결시키고자 하는 이유 때문일것이다. 또하나는 드라마를 제작하는데 <제작비>의 압박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덕만의 남편이 되는 을제역을 맡은 신구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진흥왕인 이순재만큼이나 출연료가 비싼분이시다. 그러니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자동으로 드라마에서 낙마를 시킬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을제 배역을 맡은 신구가 덕만(이요원)과 결혼하는 꿈을 꾸다가 "결혼할 수 없다"는 대본을 보고 스스로 낙마했을 수도 있다.

나머지 용춘은 왜 그럼 남겨 두고 있는가? 어짜피 용춘은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모습을 본 천명을 죽임으로 해서 이미 덕만의 짝으로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천명이 춘추가 왕이 될때까지 살아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라고 반문한다면  2009/08/11 - [역사이야기] - '천명', 대남보의 독화살에 죽었다?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니, 끈떨어진 용춘 자신의 실질적인 아들인 젖비릿내 나는 10살 짜리 <춘추>(유승호)가 <화백회의>에  난입해 쿠데타를 일으키는데도 오히려 생뚱맞은 시선과 말로 춘추를 나무라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의 원작인 소설 <선덕여왕>의 작가는 여성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덕만과 미실을 중심축에 두고, 요즘 트랜드인 꽃미남(?)남성들을 등장시키는 것으로 남여평등한 사회와 여성주의 사극이 완성된다는 환상을 가진듯하다. 하지만,  이미 공인된 사서인 삼국유사에도 덕만이 결혼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는데도, 원작자의 한계는 여성으로 왕이 되면 결혼을 하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화랑세기>를 원작자가 <사서>라고 확신하고 있다면, 덕만이 왕으로써 최소한 3명(용수,용춘,을제)의  남편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성은 여러 남성들을 남편으로 두면 안되는 것인가? 남자왕은 정비, 후비들을 수없이 두고 있는데 말이다.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이 <비담의 난>까지 극을 전개한다면, 비담의 난을 덕만을 향한 반란이 아닌, 짝사랑하는 덕만을 지키고, 유신에 반대하는 정병으로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진덕(승만)이 왕이 되는 충분한 설명이 될테니 말이다.

어찌되었던 처음부터 용수, 용춘, 을제를 드라마에 등장시키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이들이 등장인물로 설정이 되었다면 기록에 충실해야 해야한다. 이들이 덕만과 혼인관계가 아님을 극중에 충분히 녹여 내야 하는 것이다. 덕만이 성녀마리아도 아니고, 왕이 되기위해서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니 결혼하지 않는다는 수녀처럼, 왕노릇했다는 발상은 드라마적이도 않다. 동정녀 마리아도 결혼해서 수 없이 많은 자식들을 두고 있는데 말이다.

보종은 진평왕의 사위다


진평왕이 사위로서 왕위를 잇게 하려 했다면, 보종이 왕이 되어야 한다. 보종은 진평/보명의 딸인 양명과 결혼한다. 그러니 보종은 진평왕의 사위이다. 춘추는 보종의 딸인 보라와 결혼한다. 그러니 가만히 있어도 보종의 뒤를 이어 사위왕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다고 말들을 하지만, 사극으로나 드라마로나 이처럼 이야기 구조가 허술한 드라마를 본적이 없다.

이제 조씨족보나 삼국유사나 화랑세기에 기록된 덕만의 남편들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끝을 맺으려 한다.

덕만의 남편들..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음편에는 "왜? 선덕여왕에 <선화공주>가 나오지 않는가?"에 대해서 합리적인 해석을 해볼 생각이다. 사실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선화공주가 등장하던 등장하지 않던 극을 전개하는데는 문제가 없다. 단, 선화공주가 등장한다면,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등장인물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 합리적인 이유와 설명이 극에 녹아 나야 한다.

PS. 선덕여왕 덕만으로 활약하는 이요원이 대상포진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선덕여왕에서 하차를 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극의 양대 주인공중에서 실질적인 주인공인 미실 고현정은 연장된 12회중 8회정도만 나오기로 결정하였다고 하네요. 결국에는 덕만이 죽을때 까지 등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등극하기전에 죽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아쉽다면 덕만이 여왕이 되는 과정(길)이 아닌 여왕으로서 신라를 어떻게 경영했는지를 보고 싶은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김정현(하종)이 결혼을 하는군요. 또한, 신녀로 활약한 설매(조명진)도 결혼을 하는 군요.. 두분의 결혼에 축하를 드리는 포스팅을 하여야 할텐데. 하종을 변호하는 기사를 송고할까 합니다. 찌질이 하종 알고보니 엄친아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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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선덕여왕팬이지만~ 2009.10.10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주교인으로서 '동정녀 마리아'께서 결혼해서 수많은 자식을 낳았다는 부분은 참... 물론 비종교/타종교인이기 때문에 쓰실 수도 있지만, 그래도 굳이 선덕여왕을 성모마리아님께 비유할 필요가 있습니까? 수녀님들도 그렇고 그런 식으로 '비하'받을 분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ㅡㅡ; 왜냐하면 평생을 하느님을 모시며 순결하게, 신념과 신앙으로 사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세속에 있는 우리들이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분들이 아닙니다. 혼탁해진 세상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시는지를 알고 계시는지... 그리고 선덕여왕이 스스로 혼인하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어쨌든 자신이 여왕/부군이 된다고 했지 남편을 평생 두지 않고 살겠다는건 아닌것 같은데요. 어차피 드라마는 99%의 허구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인 부분보다는 재미가 더 위주죠.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굳이 넣지 않아도 되는데 넣었다면 왜 그랬을까 하는것도 생각해 보셨더람 좋았을 겁니다..

      이미 선언했지요.. 부군이 되겠다고 하기전에.. 그렇다고 해서.. 죽일 필요성이 없지요.. 요즘은 죽이면 극적이고 드라마 처럼 보이나 봅니당..

  3. BlogIcon 감자꿈 2009.10.10 1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재밌는 글 잘 읽고 갑니다.
    미실이 연장에서 8회까지만 나오는군요.
    무진장 아쉽습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확한것은 아니고 연장에는 동의를 했다고 합니당. 그것도 연장에 따른 출연료는 한푼도 안받고.. 고현정 대단해용.. ㅋㅋ

  4.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2009.10.10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역사스페셜이 아니지 않습니까? ㅋ 그냥 보고 즐기면 될 뿐, 역사랑 틀리다 해도, 드라마로 인해 그 당시 시대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고, 실제 역사에선 어떠했을지에 대한 관심이 올라 간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좋은 효과라고 생각하는데요.

    • Lani☆ 2009.10.10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이분이 친절하게 실제역사가 어떠했는지 써주신거잖아요;;

      갓쉰동님 글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단 드라마 자체로도 최 하급이라는 말씀을 드리고요. 사극으로는 최악이라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해당 하는 책이 존 책이 아니듯이, 시청율이 높다고 존 드라마. 사극은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아동성폭행범이나, 연쇄살인법 등 범죄자들은 아주 좋은 효과를 발휘한겁니다.. 덕분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지요..

      lani/그러게 말입니당.. 누가 드라마를 드라마로 안본다고 한적도 없고, 드라마의 해설부분인뎅.. 난감할 때가. 드라마다 다규를 만들라고 하는 분들을 보면 왜, 선덕여왕이 인기가 있는지 알겠고, 요즘 사회가. 정치가 그런지 알겠어용..

  5. 함바그 2009.10.10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살짜리 춘추가..이건 ;;
    드라마상에서 춘추가 10살로 설정됐단 말씀인가요?

  6.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0.10 1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이유는... 드라마니까요 ㅋㅋㅋ
    역사대로 하면 흥미가 없죠... 허구적인 요소가 들어가야 재미가 있는거죠.
    덕만이 낭도라는 것과 타클라 교역지대에서 컸었다는 건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스토리를
    뽑아낼 수 있는게 "역사 드라마" 아니겠어요.
    글은 잘 읽고 갑니다.
    하지만 항상 역사와 사극인 다르다고 생각하고, 사극이 역사를 왜곡시켰다고 해서
    굳이 욕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네요
    하여튼 잘 봤습니다 ^.^a;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드라마도 선덕여왕처럼 만들지 않지용.. 현대극이라면 막장의 최고봉입니다. 출생의 비밀은고사하고, 죽은자가 돌아다니고, 죽지 않은 자를 죽여버리고, 1살짜리가 얼라를 낳고.. 이런 드라마 보신적있어요?
      사극은 가능하다구요? 사극이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 되용.. ㅋㅋ

  7. BlogIcon 어쩌면 2009.10.10 14: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혼하지 않는다는 여왕이 지킬수 없게되니 다시 을제를 등장시켜 아주늙은 을제를 재등장 시켜 결혼했지만 정치적 남편으로만 보이게 장치(?)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8. 사극은사기 2009.10.10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 절대로 아닙니다. 스스로 기억을 해봐도 어릴 때 본 드라마 허준, 장보고 , 광개토대왕 의 배우들과 내용이 나이들어도 생생히 기억나게 마련입니다. 교과서 내용은 기억에서 1년만 지나도 사라집니다. 그만큼 사극은 역사관 형성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면 일본이 한국침략을 미화하는 드라마도 그냥 드라마로 받아들여야 하고 중국이 한국은 중국의 지방의 한 곳이라고 드라마에서 말하면 그것도 그냥 드라마니까 놔둬야 되나요? 그런 왜곡된 드라마들이 어린 일본,중국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미래의 역사관이 형성되는 데 영향을 미칠거라고 생각해보십시오. 구체적으로 어떤 대목이 아니라 그래 침략할 수도 있지 이런 가벼운 생각이 들게 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선덕여왕에서 여자가 왕이 되는게 무슨 혁명적인 일인듯 하는것과 사람이라면 당연히 성장하면 어울려 결혼하여 가족을 이루어 사는 것까지 안했다고 하면서 억지로 역사를 왜곡하는 것도 우리 문화의 원형을 해치는 것이라고 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당..알고 그런말을 하면 좋겠지만. 모르시는 부들이 꼭 드라마는 드라마다.. 라고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대락난감하겡.. ㅋㅋ

    •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0.11 0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세요. 꼭 드라마는 드라마라는 사람들이 다 역사를 모른다고는 할 수 없죠. 하지만 드라마를 역사대로만 만든다면 말그대로 다큐가 되어버립니다. 사극의 좋은 점은 역사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냥 덜컹 믿어버리는 분도 많지만, 오히려 저게 진짤까하고 제대로 조사하는 분들도 많으시지요. 그런점에서는 사극이 꼭 사기다 나쁘다라고만은 볼 수 없는거 같네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주장하시는대로.... 왜곡된 드라마들이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말하자면 모든 출판물, 드라마 다 그렇겠죠... 내조의 여왕이던지, 너는 내 운명 등등 말도안되는 허구적인 상황을 다 저런게 가능한 것이구나 하고 없습니다. 그러니 모든 드라마에 15세 사인이 붙는거겠죠. (사물을 판단할 수 있는 나이들이 보라고) 물론 역사 드라마다 하니까 믿는게 더 쉽긴 하겠지만, 드라마는 드라마니 다 믿기보다는 스스로 판단해보고 역사책을 읽어보는게 좋다고 생각되네요. 이미 말했던 대로 그냥 그걸 역사다 믿어버리는 분들은 어쩔 수 없는거구요 ㅡㅡa;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댱연히 영향을 미치지요..ㅋㅋㅋ

      저는 사기다 라고 말이 목밖으로 나오려고 하지만, 별로 그런 생각이 없는데용.. 저는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이야기 하는건데요.. 기본팩트왜곡은 문제가 있다.
      인물정보는 지켜줘야 해용..그렇지 않다면 합리적인 이유가 극에 녹아 있어야 하구요.

  9. BlogIcon 결국 2009.10.10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가 여성이어서
    폄하려는 글을 쓴 모양새로만 보이니
    조금 불쌍타

  10. wisi 2009.10.10 1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선화공주는 신라의 공주가 아닌 백제의 호족의 딸이라는 것에 더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에 나왔던 미륵사지 석탑에 나온 문건에 무왕의 왕후는 사택씨라고 했었던 것을 보아도요.) 지금까지 본 신라의 개방적 성풍속으로 보아 "맛동왕자와 밤마다 좋아지내는 공주" 따위의 소문이 별로 남사스러워 보이지도 않고요--; 그당시 풍속을 쫓자면 공주를 쫓아내기 보다는 누군지 알아보아 괜찮으면 결혼시켰을 것 같은데요. ㅎㅎ 선화라는 이름도 별로 신라스럽지 않습니다. (보량, 영모, 미모,천명, 덕만, 승만, 미실 ...그런데 선화... 이상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 때당시 아마 백제어와 신라어는 의사소통이 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심지어 당시에는 다른 민족이었을 가능성도..) 한사람이 다른 국가에 가서 언어적 사회적으로 아무런 배경없이 적응하는 것이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요?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녔어도! 전설은 전설일뿐 오해하지 말자고 외치고 싶네요.

    어디서는 의자왕의 이모가 선덕여왕이라는 (나름 족보를 탐구하신분의 식견!)까지 있는데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설령, 덕만의 동생이 선화였더라도, 의자왕은 선화공주의 자식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둘사이가 몹시 안좋았고, 선화공주가 이룩한 업적(수도를 천도하고자 했고 절을 지었고 기타등등, 나름 활동적이어던 ,무왕의 정치적 동지였던 왕비) 을 의자왕이 모두 뒤집어 엎어, 수도를 옮기는 것도 그만 두었다고 들었습니다.

    어차피 선덕여왕에서 역사적 사실을 찾기에는 너무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무령이 무동같아용.. ㅋㅋ
      의사가 통하지 않아다는 설이 있기는 한데요.. 이미 폐기 처분된것으로 알고 있는데용..

    • 미실존경 2009.10.16 0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알기로는 백제와 신라는 의사소통이 가능했다고 하던데요..

      사실 백제와 신라 뿐 아니라 고구려도 언어가 비슷했다고..

      백제는 고구려 유민이 건국했으니까 고구려와 언어가 비슷했을 것이고

      고구려와 신라의 지리 용어를 연구하신 어떤 분께서 두 나라의 용어가 비슷하다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삼국 사람들은 말이 통했을 것이라고..

    • BlogIcon 갓쉰동 2009.10.16 0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백성의 언어와 지배계급의 언어는 조금 달랐을것 같아용.. 물론, 말은 통했겠지만요.. 제주도 말처럼 이질적이진 않았을 겁니당..

  11. wisi 2009.10.10 1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화공주가 무왕의 정치적 동지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말도 안통하는 이국땅의 왕비로 온 신라의 공주가 그리 할 수 있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틀림없이 선화공주에게는 그녀를 지원해주는 국내세력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약화된 왕권도 강화시킬 수 있었구요.

    그리고 어찌하던 글을 연결시켜 보려는 작가의 고충이 드러나서 어떤 때는 손발이 오그라들 것처럼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4시40분에 일어나야 해서 이걸 보고나면 다음날 체력이 바닥납니다. 그럼에도 보고 있는 것을 보면 참 저도...

    이요원씨가 면역력이 매우 약해져야 걸리는 대상포진에 걸렸다니 큰일이네요. 그거 한번 걸리면 피곤할때마다 재발할텐데... 엄청 아플 텐데...무사히 드라마를 마치기를 기원하고, 끝까지 지금의 힘을 잃지 말고 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역사적 사실이 드러나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어쨌든 뭔가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로서!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왕이전에도 백제와 신라는 혼인관계를 맺습니당..

      잼있는 드라마인건 맞는데. 좀더 신경을 써서 만들었다면 하는 아쉬움이지요.. 열연하는 배우들이 아깝거든요..

      이요원이나 배우들이 아프지 않게 만들수 있는 여건이 성숙이 되었으면 좋겠어용. 너무 날림으로 찍는것 같아서요.. 최소 2주전엔에는 금주 방송분이 끝나 있어야 하는것이 아닌가 해용.. 사전제작은 못할지라도..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

  12. 갓쉰동 최고 2009.10.10 1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글을 잘읽고있습니다만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 학계전체를 비판하신다는 점입니다.
    사실 학게들중 왕초격인 진단학회룰 비롯한 역사관련 학회가 문제가 있는 곳이 많지만 항상 글쓰실 때마다 학계를 비판하시더군요. 사실 님께서 재야학자들이나 다른 전문가들같이 역사에 통달하시고 항상 학게를 접하시는 분이면 모를까 역사에 단순히 관심만 가지신 분이 자기가 연구하고 가정한 감수를 받지않은 자기만의 성과만가지고 일부학게를 꼬집어서 비판하는 것이 아닌 학계자체를 비판하시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글을 읽다보면 가정이 너무 낳은 듯 하기는 합니다.
    그리고 전에 댓들을 달았던 것중에서 역사학도에대한 들을 다시언급해봅니다,
    그러시면 갓쉰동님께서는 얼마나 밥벌이가 좋은학과를 나오시고 얼마나 좋은 직장을 가지셨나요?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0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분 나쁘실수있지만 사람의 적성과 전공을 밥벌이로만 판단하는것 그리고 저또한 역사전공을 꿈꾸는 자로서 상당히 불쾌했기에 올려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학계전체를 비판한적이 없는데용..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아용.. 그런데 왜 밥벌이란 말에 흥분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밥을 벌지 못하면 님은 연구를 못해요. 그 밥을 누군가에서 얻어와야 하는것이구요..
      전공이란 해당 학문을 통해서 수입을 얻는 직업이예용.. 그렇지 않음 취미지요..님은 왜 전공을 꿈꾼다고 하시면서 불쾌해 하는지 알수가 없어용.. 불쾌하게 생각하는건 취미생활이면 가능한 말인데 말이지요.. 난 그 직종으로 밥벌어 먹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돈들여서 연구하고 하겠다.. 아니면 자원봉사를 하겠다.. 이건 취미지요.. 아마추어이구요.. 전 그래서 아마추어예용.. 역사로 밥빌어 먹지 않거든요.

      저는 만약 사학으로 밥을 빌어 먹을 정도라고 인식을 했다면 이미 전공을 사학으로 했을겁니당.. 배고픈 직종인건 다는 이야기 아니에용? 사실을 말하면 발끈할 이유가 없지요..

      문제는 밥을 빌어먹으면서도 아마추어보다도 못한 전공자가 있다는것이 문제라면 문제지요..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전공이라도 해서 꼭 직업으로 삼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전공은 그 학문에대해서 일반 아마추어들보다 좀더 세밀하게 공부하고 좀더 원전을 비롯한 그 학문에대한 자세한 자료를 접하고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직업으로 까지 삼을수 있는 정도가 되었을때 전공했다고 할수있는 듯합니다.
      재야 사학자들 중에서는 역사를 전공하고도 다른 직업을 선택하신분들이 많습니다. 사살 우리사회에서 자기전공대로 직업을 삼는 분들이 적기는 하지요.
      전공은 해당학문을통해서 밥을 버는것이아닌 해당학문을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톹해서 이수하였을때 전공이라고 하는것이 맞는 듯합니다. 꼭 자비를 들어서 연구한다고 해서 취미라고 할수는 없지요. 비록 사회적인 직업은 사학과와 무관하지만 자기가 공부한 학문을 꾸준히 연구하는것은 전공과목을 활용하는 것이죠.
      그리고 학계에 대한 비판은 좋으나 위문장들 중에
      제대로된 학계를 별로 본적이 없다라는 발언은 학계에대해 자세히 알지못하시면서 하시기에 너무 학계를 좋지안게만 보시는 것같아서 드리는것 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님은 존 학계사람들과 교류를 하시길 바랍니다.. 다들 자신들이 존 학파라고 하지요. 학파가 괜히 있는건 아니닌가요..

      그래서 제2전공을 하라고 하는것 아니겠어용.. 전공은 학위를 받는다고 되는게 아닙니당.. 그건 한때 그랬다고 하는거징요.. 학위는 누구나 학점을 이수하면 다 할 수 있어용.. ㅋㅋ 지금은 굉장히 크게 보이실지 모르지만.. 하고 나면 별거 아니라는것을아시게 될겁니당. 요즘은 전공(?)파괴시대에용.. 전문가 시대지용.. 전공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갔어용..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아직 고등학생이고 어떤 학파에 속해있지도 않은데요.
      다만 각 대학별로 학계가 다른데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다보니 학계별 특징을 알고 깨우쳐가는 중에 님은 너무 기존학계를 비판하시기만해서 올려본것입니다. 그리고 님이 아는 만큼은 저도 잘 압니다. 잘못된 전공자보다는 올바른 전문가가 낫다는 것 까지요. 물론 님의 역사에대한 비판적인 시각 연구하려는 자세는 기존의 연구에 안주하는 일부 학자들보다는 낫다고 할수있지만 학계를 비판할 정도의 전문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제말은 전공은 다만 직업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에 드리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제본문에는 어떤 학파에 속해있고 좋다고 한적이 없습니다. 남의 뇌를 스캔하시는듯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님은 존 학계사람들과 교류를 하시길 바랍니다.. 다들 자신들이 존 학파라고 하지요. 학파가 괜히 있는건 아니닌가요..
      ----------------
      오독하셨어용.. 그러니 님의 뇌를 스캔하지 않은거지용.. ㅋㅋ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저는 특정학파의 사람이랑 교류한다고는 하지 않았는데요. 제가 교류를 하는사람들은 거의 대학생들 입니다.
      대학생들은 학파에서 자유롭죠. 심지어 자기 학교의 학파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단정지어서 이야기 하시지는 마시죠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듣기에는 학파놈들이 자기네가 좋다고 떠드는것이나 열심히 들어라라고 비꼬시는것 같은데요.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 전문가나 전공자들과 교류가 없으시다보니 너무 학계나 학파를 겉에서 보이는 것으로만 좋지않게 보시는 경우가 있으신듯합니다. 부디 그 틀을 깨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님 말씀대로 힉계나 학파의 사상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다만 제대로 알지 못하시면서 비판만하시니까 말씀드린것입니다 그럼 존하루

  13. 갓쉰동 최고 2009.10.10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뿐만 아니라 성골제의 경우 진흥왕이후로 성립되었다는 설과 진평왕이 따로 만들었다는 설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좀더 연구를 할필요는 있지만 충분히 가는하다고 봅니다. 특히 진평왕이 특별히 만들었다는 부분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비담의 난의 이유에서 보듯이 선덕여왕의 경우 여인입니다. 물론 여인이 왕못지 않게 권력을 휘두른 적은 많지만 정식으로 왕위를 오른경우는 없습니다.물론 여인이 왕위에 오를수는 있겠지만 귀족들의 반발이 심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평왕이 따로 만들었다는 설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또 그렇게 되면 영토확장이후 왕의 직계자손에 대한 특권을 부여하기위해 진흥왕때 성골제를 시행했다는것도 가능해집니다. 이부분은 님도 긍정적으로 검토하셨는데 갑자기 미친개 마냥 학게를 물어뜯으시니 그리고 꼭 님의 가정이 맞다고 할수는 없는데 계속 맞는것처럼 우기시고 본인만 화랑세기랑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읽으신 것처럼 이야기하시니 난감하네요 ㅠㅠ
    그리고 능이 북릉에 있었다고해서 여왕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문제가 있다고봅니다. 측천이나 여후같이 왕후의 권력이 더 강했을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제대로된 학게의 정보없이 주류학계의 일부만을 보고 학게를 비판하시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읽은값을 하기위해 ㅊㅊ
    이번에는 너무 가정이 많으신듯합니다. 님의 이야기만을 사실로 믿는 사람도 있지요.
    결국에는 사극 작가보다 조굼 똑똑한 선동자가 되실듯
    가정과 사실을 구분해서 써주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존 성골.진골에 문제가 있으니 수정단계잔아요.. 이제 진흥왕때나 진평왕이 만든것이라는 수준으로 격하되고 있는 실정이구요.. 전 그런것 애초부터 없다는 생각하는 것이구요.. 가정이 아니고 가설이지요. 가설검증은 언제든지 받을 준비가 되어 있고, 반론을 제기하시면 재반론을 제기하던지.. 아니면 수용할겁니당..

      비판에 대단히 민감하신것 같아요. 님이 만나는 분들은 비판과 토론을 잘 하지 않는 모양입니당.. 왜 비판하냐는 말을 지속적으로 하시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비판과 토론은 모든 학문연구에 기본인뎅..
      북릉이 여왕릉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한적이 없는뎅.. 제가 설마 공공연한 공개된 공론의 장에서 확정으로 말하겠어용.. 미치지 않고성..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존 골품제에 진흥왕때 영토확장을 하고 법흥왕때의 불교공인을 계기로 왕권을 강화하던 중에 나올수는 잇을 듯합니다. 꼭 진흥왕때 니와서 격하라고 하는 것은 약간의 오류가 있다보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할 수 있어용.. 하지만 왕이 존귀하고 존귀한 존재인데..

      왜 불교와 영토문제를 들어서 성골이 성립했다고 생각하셈.. 영토가 적고 크고의 차이가 아니지요..왕의 존재는..

      왕권강화 문제는 다른 문제지만용.. 성골을 부여잡고 있음 신라사의 연구는 더이상 진전이 없습니당.. 저는 그리 생각해용..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삼국의 경우 영토확장을 통해서 대외로 국력을 뻗치거나
      율령을 반포하거나 국교를 정했을때 일시적으로 왕권이 강화되었습니다. 저는 이런이류로 충분히 연관성이 있을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사실 왕이 귀한 존재인것은 맞습니다만 왕권이 약하면 신권이 강해지지요 그래서 저는 왕실 내부의 직게자손들에게 좀더 권위를 부여하기위해서 성골제를 시행했을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성골제가 신라사의 연구의 진전에 방해가 된다는 것은 나무 님만의 생각인듯합니다. 님이 남의 글만을 읽지 않고 직접 답사를 다니고 고문서를 번역하셨으면 그런 이야기를 하실수 있지만 남의 이야기만을 듣고 연구하셧으면 좀 그렇네요.
      그래도 첫 댓글 달때 부터 재미있게봐서 광고 클릭하구 뷰온 합니당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좀더 크게보셈.. 님은 한계를 지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용.. 답사를 해야한다. 원전을해석해야한다. 물론, 중요하지요. 저도 원전봅니당.. 필요할때는.. 제글 보면 원전을 보지 않음 알수 없는 내용도 있다는것 아실텐데용.. ㅠ.ㅠ.;;;

      저는 님과 대화가 잴 잼있어용..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동.. 싫어한다고 생각하지 마라주셈.. ^____^ 님의 댓글을 항상 기다린답니당.. ^___^

      왕권이 강화되면 왕족의 권위가 추락하고 귀족의 권위가 추락하지요.. 일시적으로는 하지만 왕권강화가 극에 치닫거나.. 일정하게 유지되고 시간이 지나면 왕족과 귀족의 권한이 강화되는 쪽으로 움직여용..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크게 보지 않는 다기 보다는 남의 경우 전문가가 아니신 관심있는 아마추어인데 본인지식에 대한 확신 이 약간 과하시고 다른분들 의견을 너무아닌듯이 평가하시기에 올립니다. 그리고 왕족의 경우 왕의 직계와 방계가 구분되기는 합니다. 저는 성골의 경우 직계들에게만 해당하는 신분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귀족의 범위안에는 왕족이 들어가지요

    •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11 1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더군요.
      학문에는 정해진 학설이 없지요. 특히 역사의 경우에는 해석방법에 따라 다른 학설이 나오지요. 그러나 주류학계는 자신들의 학설이 진리인양 선동하고 다니고 일부 학도들도 그것을 신봉하고 다른 학설은 거들떠 보지도 않지요.
      그러나 님과 저도 같은 길수를 저질렀더군요. 님은 본문에서 학계의 주장을 터무니업다고 무조건적인비판을 넘어 비난을 하셨고
      저도 터무니없다 미친개같다 그러고 앗 죄송
      그리고 님은 크게 보지 못하다고 그러시고 사실 어떤 학문이든지 터무니없는 주장이 많죠.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도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다 밑받침으로서 필요하지요.
      님이나 저나 서로 글쓸때 다른 학계라든지 글쓴이들의 주장을 무조건 부정하고 자기 생각을 합리적이라고하며 남을 무조건 비판만하는 습관을 지양하고 다른사람의 학설도 검토하여 의견을 모아가는것을 지향해야할듯합니다.
      어떤 주장이든지 잘만 검토하면 건질게 있거든요
      그리고 의외의 결과를 낳을수도 있고

  14. BlogIcon 펨께 2009.10.11 0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일요일되세요.

  15. hooooooooong 2009.10.11 0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 댓글들이 너무 살벌들 하시네여...ㅜㅜ 이요원씨도 아프다 그러고 연장이네 뭐네 하면서 이랳다저랳다 하고 역사랑 맞지 않네 하면서 작가의 자질에 대해 논란도 많고(대장금까지 쓰신 분인뎁ㅜㅜ).. 근데 솔직히 지금까지 방영된 사극 중에 몇개나 역사에 충실했었나요. 작가분의 의도가 선덕여왕 당시의 역사를 보여주고자 했던거라면 이렇게 짚고 넘어가는 것이 당연하겠죠. 작가 자신이 모티브로 삼은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다 보니까 좀 넣고 빼고, 멜로도 들어가야되서 나이랑 인물을 그에 맞게 수정도 하고.. 뭐 이런 과정이 있지 않았겠어요?ㅜㅜ 이 드라마가 막장사극(?)이다 뭐다 말들이 많지만, 아무튼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시청률도 꽤 높고 이것저것 논란도 되고 하는 거겠죠^^ 일단 배우들의 연기력이 좋고, 스토리도 그닥 부실하지 않으면서 하이라이트부분 콕콕 집고 올라가는 것이 드라마 보는 맛이 있더이다ㅋㅋㅋ 역사스페셜, 역사추적 이런거 찾아 보게도 되고ㅋㅋ 암튼 재밌던뎁~~~~~~~개인적으로 선덕여왕 시청률 40% 넘었으면 좋케씀!!!;;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장금까지 쓴것과는 하등 관계가 없지용.. ㅋㅋ

      저도 시청율 40% 넘었음 좋겠어용.. 배우들의 연기는 죽이는뎅.. 스토리는 막장입니당.. ㅋㅋ

  16. 성이진 2009.10.11 1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님, 정말 연기를 잘하세요!!! 선덕여왕님, 그리고 미실공주님
    짱 멋져요!!!!! 매일매일 보고 있어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덕만공주를 맡은 이요원에 불만을 가진 분들이 계시던데.. 저는 배우들의 연기는 참으로 좋다고 생각해용.. 다만, 비담과 염종의 오버가 너무 자주 눈에 띄는게 아쉽기는 합니당.. ㅋㅋ

  17. 여왕은 왜.. 2009.10.11 2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은 결혼 할 수 없다는 것이 드라마 전제로 깔려 있어서 기분 나쁘네요...
    드라마를 보면서 불쾌했거든요. 무의식중으로 전달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여성은 사회활동을 하면 결혼을 못한다...

    그리고 여왕이 어느 나라에도 전례가 없다고 떠들 때 전 당연히 일본을 얘기할 줄 알았더니 쌩뚱맞게 이집트라니...

  18. BlogIcon Elena* 2009.10.22 0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너무 재미있게 보고있는데, 이런글도 읽으니까 너무 재미있네요.
    저도 덕만이 남편이 너무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본적이 있는데,
    덕만의 남편으로 조계룡이라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조계룡이 본명은 아니고 가야왕자출신으로 진평왕이 조계룡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 하네요.

    그거 보면서 저는 월야가 바로 떠올랐는뎁..
    월야가 가진 군사가 많으니,
    미실의 난을 복야회 군사를 이용해서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다면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 갔더라구요.

    다만, 극에서 월야가 너무 찌질하게 나온다는 것이 걸리지만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진짜 멋있었는데 갈수록 ㅠㅠㅠㅠㅠ)

    용춘공도 꽤 미남이신데 극중 설정이 나이가 많은 설정이라 아쉽네요.

    갠적으로는 월야의 첫등장에 반해버려서,
    어서 예전의 카리스마를 되찾고 덕만의 남자가 되어서
    분량이 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ㅋ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0.22 0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월야에 관한 글도 있는뎅 함 보셈..ㅋㅋ
      월야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군요..

      용춘은 578년생.. 지금 시제는 616년,, 드라마 제작진 기준으로 하면 631년.. 오히려 젊게 나오는데용.. ㅋㅋ

      원래 첫 등장은화려하게 해야 임팩트가 있지용.. 그리고 기다리는 마음.. ㅋㅋ

  19. BlogIcon kue lebaran 2011.08.14 1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재 문서를 선언하고 싶지는 tonishing으로합니다. 기사와 명석 내가이 분야에 대한 권위로 당신은 일어날 수있는 가정 실제로 눈부신입니다. 효과적으로 당신의 선택을 사용하면 나를 안으로 문서를 사용하는 지금까지 최대 유지하기 위해 현재 RSS를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건배와 함께 천 당신의 새로운 uthentic의 작동 계속해야합니다.

  20.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21. BlogIcon Pussy.Org 2012.07.12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들여 거칠부가 <국사>를 만든것으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진흥왕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지껏 덕만이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고, 인정하는 이유는 다음 3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삼국사기의 선덕왕 원년 즉위할때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다.
둘째는 신하들이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셋째는 동생이라고 추측되는 천명이 춘추를  603년에 낳았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미실(고현정과 덕만(이요원)

핵심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라는 것이다. 만약, 천명이 덕만의 동생이 아니고, 언니라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할머니(姑) 덕만이 아닌, 시어미(姑) 정도의 나이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증거를 잡는 과정이 지귀, 모란씨, 영묘사 건축중에 벌어진 화재 사건이다.

또하나는 천명이 덕만의 언니인지 동생인지 상관없이 왕위를 잇지 못한 이유중에 천명이 진평왕의 정비인 마야부인의 소생이 아니라면 어찌될까? 

  의심스런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다름이 아니라 김춘추가 왕이 될때 그의 가계 내력을 기록한 것이다.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사기 신라 춘추왕 원년
.
김춘추의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이라고 했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마야부인(윤유선)

우리는 덕만이 진평왕과 마야부인(복승의딸) 사이에 태어났고, 장녀라는 기록을 읽었다. 춘추의 기록을 살피고 우리는 감각적으로, 또는 단순히 천명과 덕만은 형제이겠거니 한다. 그러나 같은 어머니(동복)을 두었을까? 하는 의심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진평왕은 아들이 없다. 그러니 여러 부인들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설령 아들이 있다고 해도 후비를 여럿 두는 것은 왕실의 기본 상식에 속한다. 


진평 또한 손씨인 승만을 후비로 두었다. 하지만 손씨 승만에게서 후손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마야의 장녀인 덕만이 왕위를 이였다.

(c)mbc 사극 선덕여왕 천명


그런데 왜? 우리는 천명이나 덕만을 마야부인의 소생으로 알고 있을까? 더불어 삼국유사에 나온 선화공주 또한 마야의 소생으로 만들었을까? 이 함정에서 벗어난다면, 어찌 될까?


진평은 천명의 어머니를 통해서 천명을 낳고, 마야부인을 통해서 덕만을 낳았다. 진평은 적통을 이을 후손을 보기 위해서 여러 부인들을 두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장 일반적인 왕실의 살아가는 방법이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정식 왕후의 소생이 적통을 잇는다. 그리고 그 왕후와의 사이에 난 자식에게 대권이 넘어간다. 왕후가 아닌 후비사이에 태어난 왕자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왕후 사이에 태어난 적통왕자들이 없을 경우에 왕위계승권이 주어진다. 

그러니 천명과 덕만은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열려 있다. 오히려 이복자매간일 가능성이 더 많다. 또한, 천명이 덕만보다 손위언니에 해당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기록 어디를 봐도 천명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단지,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 으로만 나온다. 그렇다면 천명의 어머니는? 누구인가? 마야인가? 만약, 마야라면, 그의 이름을 삼국사기는 기록하였을 것이다. 삼국사기를 작성할때 천명부인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 없을 수는 있다. 하지만 단순히 진평왕의 딸로만 기록하고 있고, 덕만은 같은 천명과 같은 아버지인 진평왕을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 어미니의 출자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결론은 덕만과 천명은 같은 어머니가 아닌 이복자매라는  것을 삼국사기는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덕만은 적통을 이은 왕후의 손이고, 천명은 마야왕후의 후손이 아니라는 말이다. 

천명과 덕만의 이름으로도 천명과 덕만은 계통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진흥왕 시기 이후, 그들의 자손간에는 돌림자를 쓰고 있다. 진흥의 아들 동륜, 금륜 식이고, 금륜(진지왕)의 아들인 용수, 용춘 식이다. 동륜의 아들인 백정(진평), 백반, 국반 식으로 '백'과 '반'의 돌림자 흐름이 있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덕만(이요원), 천명(박예진)

(c) mbc 사극 선덕여왕, 덕만(이요원)

오히려 천명과는 다르게 덕만과 같은 돌림자를 쓰는 사람은 진평(백정)의 동복 동생이며, 덕만의 작은 아버지인  국반의 딸인  승만이다. 덕만과 승만는 같은 돌림자인 '만'자를 공유하고 있다. 


한마디로 천명은 후비의 자식이고, 덕만은 정비의 자식이란 이야기다, 그러니 적통을 이어 받은 덕만은 마야의 장녀가 될수 있지만, 천명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마야의 장녀는 될 수 없다. 

덕만이 왕위를 이을때, 덕만은 진평의 장녀이며, 어머니는 마야라고 했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진평왕(조민기)

그렇다면 진평과 마야 사이에는 덕만 말고도 또다른 덕만보다 손아래인 몇명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공주를 더 두었음을 가늠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증거는 창녕조씨의 시조인 조계룡이 진평왕의 사위였다는 전승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명, 덕만, 선화 말고도 또다른 공주가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만약, 조계룡이 덕만의 남편이였다면, 기록에 덕만의 남편으로 기록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사위로만 기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덕만은 후손을 남길 수 없는 석녀였는데, 조계룡이 남편있다면, 후손이 있을수 없다. 물론, 남편이 되었다가 남편의 지위에서 물러난 다음 새로운 츠자와 결혼을 해서 후손을 볼수는 있지만 말이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용춘(도이성)

하지만 진평은 왕자가 없었기 때문에 승만왕후를 또 들인다. 하지만, 승만으로 부터도 아들을 얻을 수 없었다.


이를 미루어 진평은 왕위를 이을 수 있는 남자(왕자)를 생산하기 위해서, 수 없이 왕후를 바꾸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첫번째는 잘 봐주면 천명의 어머니로 부터, 다음은 마야부인으로, 마지막은 손씨 승만까지 최소한 3번은 왕후를 바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가지, 천명의 적통을 이은 왕후의 소생이 아니라는 증거는 진평왕의 사후, 천명이 왕위에 오르거나 용수,용춘 이 사위왕으로나 천명/(용수,용춘)의 아들인 603년 생 장성한(30살) 춘추가 632년에 등극해야 한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알천(이승효)

하지만 선덕을 지나 진덕을 지나, 천명/(용수,용춘)의 아들인 춘추는 54세인 654년에 비로서 왕위를 잇는 것이다. 그것도 우선권이 있는 알천의 양보에 의해서 말이다.


이제 충분히 천명과 덕만은 배가 다른 형제라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기존 학설을 깨는데는 많은 시간과 노고가 필요하다. 그래서 글이 늘어지고 늘어질 수 밖에 없다.

사실 삼국유사 왕력편의 기사 한줄이면, 덕만이 천명과 다른 출자를 가지고 있고, 덕만이 나이가 어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덕만이 결혼한 때는 공교롭게 왕위에 있을때 이다. 인평 갑오년 (634)년 선덕왕 3년 왕의 남편은 음갈문왕이다.

이때 결혼하는 덕만이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환상이다. 이런 환상이 심어지게 된 이유는 단지, '천명과 덕만이 마야의 소생'이라는 기존 학설을 무심결에 따르기 때문이다. 


남편을 여럿 바꾼다고 하더라도 덕만이 후손을 볼 수 있는 나이때가 되어야 한다. 왕통을 이을 후사를 볼 수 없으면, 여왕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겟는가? 그러니 덕만은 아무리 나이가 많고, 기록은 안되어 있지만 무수히 많은 남편을 바꾸었다고 해도 634년에는 생물학적으로 40대를 넘길 수가 없다.

또하나, 덕만이 나이가 어렸을 것으로 짐작하는 이유는 수 없이 많은 덕만의 공주시절 행적을 뒤로 하고, 634년에 연호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3년(634)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었다. 분황사(芬皇寺)가 완성되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3년

634년 덕만(선덕)왕 3년에 연호도 바꾸고, 시집도 간다. 신라시대에 처자들은 대부분 초경이 지나는 13세이상이면 결혼을 시작한다. 기존의 학설대로 한다면 덕만은 결혼도 하지않는 노처녀로 왕위를 이였다는 말이 되니 있을 수 없다.

즉위년이 한참지나고, 전왕의 연호를 바꾼때는 대부분 어린왕이 성인임을 선포하고, 친정체제를 구축할때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634년 선덕왕 3년은 이를 가름하는 기준년이 되는 것이다.  덕만은 이때에도 늦은 결혼이였지 모른다. 늦게 되는 이유는 진평왕 시기에 있었던 칠숙의 난을 평정하고, 내치를 다지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을제(신구)


선덕여왕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선덕여왕 원년

삼국사기에 의해도 덕만이 왕위에 오른 후 제일 먼저 한일은 대신인 을제로 하여금 국정전반을 관장하게 하고 있다. 화랑세기는 을제를 덕만의 남편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어찌 되었던, 삼국사기의 기록으로는 덕만이 아직 국정을 운영할 어떠한 기반도 없었다는 이야기 이기도 하고, 어렸다는 정황증거가 된다.


단한가지 삼국사기를 잘못 해석해서 덕만에 대해서 꼬이고 꼬인것이다.

그 한가지가 천명은 진평왕의 딸이다.라는 구절이다. 장녀라는 구절도 없고, 차녀라는 구절도 없다. 그냥 진평왕의 딸이란 한줄로 덕만이 천명의 언니가 되고, 천명이 마야의 딸이되고, 덕만의 나이가 왕위에 오를때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고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진평왕의 비와 자식과 사위


그러니 "천명의 언니는 덕만이다"  학설을 따르게 된다면, 덕만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가 해결이 안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잘 관찰만 한다면, 덕만은 결코 천명보다 나이가 많을 이유가 전혀 없다. 천명은 정비의 소생이 아니구나, 덕만과는 배다른 자매간이구나, 마야의 딸은 덕만 말고도 또 있구나 등이다. 통설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  기존 학설을 깨기 위해서 위서논쟁이 휘말린 화랑세기를 한줄도 인용하지 않고, 덕만은 나이가 어린 공주였다는 것을 증명했다.

다음과 같이 덕만과 관련된 기록을 탐사하면서, 글쓴이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덕만과 천명 관련 기록들을 토대로 덕만과 천명 사이를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첫째, 덕만은 진평왕과 정비 마야의 장녀다.
둘째, 천명이 나이는 많지만, 정비인 마야의 소생은 아니다.
셋째, 천명과 덕만은 이복자매간이다.

넷째, 천명은 정비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덕만보다 왕위승계에서 후순위다.
다섯째, 마야의 후손으로는 덕만 말고도 또다른 자매(들)이 있다.  

여섯째, 덕만은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했다
.
일곱째, 덕만은 왕위를 오를때 현재 이요원만큼 어렸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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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름따라 2009.07.27 0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몇 시간을 읽었는데 끝내는 다 읽지 못했군요...ㅡ.ㅡ;;;
    첨부터 읽어야 하다 보니 양이 장난이 아닙니다....
    아침에 일어 나서 나머지를 다 읽어야 할 듯~~~
    님의 글을 읽고 화랑세기를 읽으면 훨씬 재미가 있을 듯합니다^^*
    들마를 통해 역사를 공부 하고 싶어 지고
    이렇게 좋은 글을 접하게 되고
    한마디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아침에 다시 찬찬히 잘~~~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 BlogIcon 아르테미스 2009.07.27 07: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대단하세용~
    ^^;;

    오늘은 브레이크 댄스 부탁합니당~
    꼭요! ㅎㅎ

  3. 2009.07.27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BlogIcon 용짱 2009.07.27 1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오!!!!! 역시 갓쉰동님은 짱이이에요.

    이걸 보고 나니 전 선덕여왕 글은 올리기가 싫어져요. 이건 머 부끄러워서...


    근데 왜 춤을 안추세요 ㅡㅡ^ 동영상 ㄱㄱ슁!!! ㅋㅋㅋㅋㅋ

  5.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7 1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중에 오죠 ㅎㅎ
    이번주도 홧~팅

  6. BlogIcon 산골 2009.07.27 2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간절한 마음으로..추천 했습니다. ^ ^;

  7. 역사매니아 2009.07.28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에서부터 계속 잘 보고 있습니다.
    몰랐던 비밀을 아는느낌?ㅋ
    기존 학설이라는게 어떻게 나온건지
    너무 쉽게 덕만이 천명보다
    나이가 많다고 한거군여
    그렇다면 드라마는 이런걸 알고
    배우를 캐스팅한걸까여?ㅋ

    • BlogIcon 갓쉰동 2009.07.28 1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혀 아닌줄 압니다.. ㅋㅋ 캐스팅에 덕만보다 늙어 보인 유신(엄태웅)을 선발한것 역사에 부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극의 나이는 별도로 하고.. ㅋㅋ

  8. ㅋㅋ 2009.07.28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글 진짜 좋아합니다ㅋ
    제가 화랑세기를 사서 보려고 하는데
    이런 글처럼 원래의 학설을 뒤집는
    이런 해석이 들어간 책이 있나여?

  9. 동감 2009.07.30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춘추가 왕이 될 때 성골남자가 더이상 없어서 진골이 왕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죠. 그런데 천명이 마야부인의 딸이면 도무지 말이 안되는 이야기죠. 아무리 폐위되었어도 용춘은 진지왕의 아들이고 김춘추는 딱! 성골인데요. 왕위계승서열도 선덕, 진덕, 그리고 누군가의 양보... 이런식으로 밀린다는게 납득이 안되어서 여러가지 학설이 있었죠. 천명이 서녀라면 그 부분도 매우 말이 되네요. ^^

  10. 2009.08.03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ㅡㅡ; 2009.08.07 0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란....

    다수가 동의한다고 정설이 되는 것은 아니죠.....!!!

    다만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는 설 일뿐....

    역사에서 만큼은 다수의 생각이 맞다 소수의 생각이 맞다 하는...

    그런 흑백논리는 없는것이라 생각 합니다...

    물론 갓쉰동님 말씀이 다수설이 정설이다라는 말은 없었지만....

    역사를 알고자 한다는 사람이라면....

    열린생각 늘 가지고 생각 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싶고요...



    마지막으로 갓쉰동님 글 잘 읽고 추천 눌러봅니다...

    나름 납득이 가는 글이었습니다....




    언능 타임머신이라는 녀석이 개발된다면 좋겠는데 하는 SF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는....

    ^^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다수와는 상관이 없지요..

      그래서 다수설이 잘못되엇다는 주장을 많이 하고 있는데용..

      덕만공주시절 엮어준.. 춘추와 문희,
      공주시절 모란씨 사건, 아무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했구요..
      솔거에 관한 다수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고,

      덕만이 다수설인 50대 근처에 왕위에 오르지 않고, 젊은 영계(욕먹을랑 여성분들은 어떤의도로 썼는지 알거라고 믿습니당. 그냥 이해해주셈) 시절에 왕위에 올랐다고 했는데용.

      역사는 끊임없는 대화의 산실이지요.. ㅋㅋ

  12. 여왕 2009.08.29 1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명이 서녀라서 덕만이 왕이 되었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이 내용과 상관없이

    천명이 용춘을 좋아한다고 어머니께 고백했는데 잘못 알아들어서 용수와 결혼시켰단 이야기에서

    어머니는 마야부인이라 생각했는데 아닌게 되는군요.


    용춘이 선덕여왕의 남편이 되는 것은 나이가 비슷할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용춘의 나이가 훨씬 많겠군요.

  13.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4. BlogIcon mountain house mre 2012.11.01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5.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s for small dogs 2012.11.05 1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

  16. BlogIcon portable dog fencing panels 2012.12.20 1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함 때문에 쉽게 이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전문 소프트웨어인 포토샵만큼은 아니더라도

  17. BlogIcon micro filtering or orbital depots 2012.12.31 2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니라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할머니(姑) 덕만이 아닌, 시어미(姑) 정도의 나이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지껏 덕만이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고, 인정하는 이유는 다음 3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삼국사기의 선덕왕 원년 즉위할때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다.
둘째는 신하들이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셋째는 동생이라고 추측되는 천명이 춘추를  603년에 낳았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미실(고현정과 덕만(이요원)

핵심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라는 것이다. 만약, 천명이 덕만의 동생이 아니고, 언니라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할머니(姑) 덕만이 아닌, 시어미(姑) 정도의 나이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증거를 잡는 과정이 지귀, 모란씨, 영묘사 건축중에 벌어진 화재 사건이다.

또하나는 천명이 덕만의 언니인지 동생인지 상관없이 왕위를 잇지 못한 이유중에 천명이 진평왕의 정비인 마야부인의 소생이 아니라면 어찌될까? 

  의심스런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다름이 아니라 김춘추가 왕이 될때 그의 가계 내력을 기록한 것이다.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사기 신라 춘추왕 원년
.
김춘추의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이라고 했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마야부인(윤유선)

우리는 덕만이 진평왕과 마야부인(복승의딸) 사이에 태어났고, 장녀라는 기록을 읽었다. 춘추의 기록을 살피고 우리는 감각적으로, 또는 단순히 천명과 덕만은 형제이겠거니 한다. 그러나 같은 어머니(동복)을 두었을까? 하는 의심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진평왕은 아들이 없다. 그러니 여러 부인들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설령 아들이 있다고 해도 후비를 여럿 두는 것은 왕실의 기본 상식에 속한다. 


진평 또한 손씨인 승만을 후비로 두었다. 하지만 손씨 승만에게서 후손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마야의 장녀인 덕만이 왕위를 이였다.

(c)mbc 사극 선덕여왕 천명


그런데 왜? 우리는 천명이나 덕만을 마야부인의 소생으로 알고 있을까? 더불어 삼국유사에 나온 선화공주 또한 마야의 소생으로 만들었을까? 이 함정에서 벗어난다면, 어찌 될까?


진평은 천명의 어머니를 통해서 천명을 낳고, 마야부인을 통해서 덕만을 낳았다. 진평은 적통을 이을 후손을 보기 위해서 여러 부인들을 두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장 일반적인 왕실의 살아가는 방법이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정식 왕후의 소생이 적통을 잇는다. 그리고 그 왕후와의 사이에 난 자식에게 대권이 넘어간다. 왕후가 아닌 후비사이에 태어난 왕자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왕후 사이에 태어난 적통왕자들이 없을 경우에 왕위계승권이 주어진다. 

그러니 천명과 덕만은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열려 있다. 오히려 이복자매간일 가능성이 더 많다. 또한, 천명이 덕만보다 손위언니에 해당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기록 어디를 봐도 천명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단지,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 으로만 나온다. 그렇다면 천명의 어머니는? 누구인가? 마야인가? 만약, 마야라면, 그의 이름을 삼국사기는 기록하였을 것이다. 삼국사기를 작성할때 천명부인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 없을 수는 있다. 하지만 단순히 진평왕의 딸로만 기록하고 있고, 덕만은 같은 천명과 같은 아버지인 진평왕을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 어미니의 출자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결론은 덕만과 천명은 같은 어머니가 아닌 이복자매라는  것을 삼국사기는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덕만은 적통을 이은 왕후의 손이고, 천명은 마야왕후의 후손이 아니라는 말이다. 

천명과 덕만의 이름으로도 천명과 덕만은 계통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진흥왕 시기 이후, 그들의 자손간에는 돌림자를 쓰고 있다. 진흥의 아들 동륜, 금륜 식이고, 금륜(진지왕)의 아들인 용수, 용춘 식이다. 동륜의 아들인 백정(진평), 백반, 국반 식으로 '백'과 '반'의 돌림자 흐름이 있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덕만(이요원), 천명(박예진)

(c) mbc 사극 선덕여왕, 덕만(이요원)

오히려 천명과는 다르게 덕만과 같은 돌림자를 쓰는 사람은 진평(백정)의 동복 동생이며, 덕만의 작은 아버지인  국반의 딸인  승만이다. 덕만과 승만는 같은 돌림자인 '만'자를 공유하고 있다. 


한마디로 천명은 후비의 자식이고, 덕만은 정비의 자식이란 이야기다, 그러니 적통을 이어 받은 덕만은 마야의 장녀가 될수 있지만, 천명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마야의 장녀는 될 수 없다. 

덕만이 왕위를 이을때, 덕만은 진평의 장녀이며, 어머니는 마야라고 했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진평왕(조민기)

그렇다면 진평과 마야 사이에는 덕만 말고도 또다른 덕만보다 손아래인 몇명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공주를 더 두었음을 가늠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증거는 창녕조씨의 시조인 조계룡이 진평왕의 사위였다는 전승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명, 덕만, 선화 말고도 또다른 공주가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만약, 조계룡이 덕만의 남편이였다면, 기록에 덕만의 남편으로 기록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사위로만 기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덕만은 후손을 남길 수 없는 석녀였는데, 조계룡이 남편있다면, 후손이 있을수 없다. 물론, 남편이 되었다가 남편의 지위에서 물러난 다음 새로운 츠자와 결혼을 해서 후손을 볼수는 있지만 말이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용춘(도이성)

하지만 진평은 왕자가 없었기 때문에 승만왕후를 또 들인다. 하지만, 승만으로 부터도 아들을 얻을 수 없었다.


이를 미루어 진평은 왕위를 이을 수 있는 남자(왕자)를 생산하기 위해서, 수 없이 왕후를 바꾸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첫번째는 잘 봐주면 천명의 어머니로 부터, 다음은 마야부인으로, 마지막은 손씨 승만까지 최소한 3번은 왕후를 바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가지, 천명의 적통을 이은 왕후의 소생이 아니라는 증거는 진평왕의 사후, 천명이 왕위에 오르거나 용수,용춘 이 사위왕으로나 천명/(용수,용춘)의 아들인 603년 생 장성한(30살) 춘추가 632년에 등극해야 한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알천(이승효)

하지만 선덕을 지나 진덕을 지나, 천명/(용수,용춘)의 아들인 춘추는 54세인 654년에 비로서 왕위를 잇는 것이다. 그것도 우선권이 있는 알천의 양보에 의해서 말이다.


이제 충분히 천명과 덕만은 배가 다른 형제라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기존 학설을 깨는데는 많은 시간과 노고가 필요하다. 그래서 글이 늘어지고 늘어질 수 밖에 없다.

사실 삼국유사 왕력편의 기사 한줄이면, 덕만이 천명과 다른 출자를 가지고 있고, 덕만이 나이가 어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덕만이 결혼한 때는 공교롭게 왕위에 있을때 이다. 인평 갑오년 (634)년 선덕왕 3년 왕의 남편은 음갈문왕이다.

이때 결혼하는 덕만이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환상이다. 이런 환상이 심어지게 된 이유는 단지, '천명과 덕만이 마야의 소생'이라는 기존 학설을 무심결에 따르기 때문이다. 


남편을 여럿 바꾼다고 하더라도 덕만이 후손을 볼 수 있는 나이때가 되어야 한다. 왕통을 이을 후사를 볼 수 없으면, 여왕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겟는가? 그러니 덕만은 아무리 나이가 많고, 기록은 안되어 있지만 무수히 많은 남편을 바꾸었다고 해도 634년에는 생물학적으로 40대를 넘길 수가 없다.

또하나, 덕만이 나이가 어렸을 것으로 짐작하는 이유는 수 없이 많은 덕만의 공주시절 행적을 뒤로 하고, 634년에 연호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3년(634)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었다. 분황사(芬皇寺)가 완성되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3년

634년 덕만(선덕)왕 3년에 연호도 바꾸고, 시집도 간다. 신라시대에 처자들은 대부분 초경이 지나는 13세이상이면 결혼을 시작한다. 기존의 학설대로 한다면 덕만은 결혼도 하지않는 노처녀로 왕위를 이였다는 말이 되니 있을 수 없다.

즉위년이 한참지나고, 전왕의 연호를 바꾼때는 대부분 어린왕이 성인임을 선포하고, 친정체제를 구축할때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634년 선덕왕 3년은 이를 가름하는 기준년이 되는 것이다.  덕만은 이때에도 늦은 결혼이였지 모른다. 늦게 되는 이유는 진평왕 시기에 있었던 칠숙의 난을 평정하고, 내치를 다지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을제(신구)


선덕여왕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선덕여왕 원년

삼국사기에 의해도 덕만이 왕위에 오른 후 제일 먼저 한일은 대신인 을제로 하여금 국정전반을 관장하게 하고 있다. 화랑세기는 을제를 덕만의 남편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어찌 되었던, 삼국사기의 기록으로는 덕만이 아직 국정을 운영할 어떠한 기반도 없었다는 이야기 이기도 하고, 어렸다는 정황증거가 된다.


단한가지 삼국사기를 잘못 해석해서 덕만에 대해서 꼬이고 꼬인것이다.

그 한가지가 천명은 진평왕의 딸이다.라는 구절이다. 장녀라는 구절도 없고, 차녀라는 구절도 없다. 그냥 진평왕의 딸이란 한줄로 덕만이 천명의 언니가 되고, 천명이 마야의 딸이되고, 덕만의 나이가 왕위에 오를때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고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진평왕의 비와 자식과 사위


그러니 "천명의 언니는 덕만이다"  학설을 따르게 된다면, 덕만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가 해결이 안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잘 관찰만 한다면, 덕만은 결코 천명보다 나이가 많을 이유가 전혀 없다. 천명은 정비의 소생이 아니구나, 덕만과는 배다른 자매간이구나, 마야의 딸은 덕만 말고도 또 있구나 등이다. 통설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  기존 학설을 깨기 위해서 위서논쟁이 휘말린 화랑세기를 한줄도 인용하지 않고, 덕만은 나이가 어린 공주였다는 것을 증명했다.

다음과 같이 덕만과 관련된 기록을 탐사하면서, 글쓴이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덕만과 천명 관련 기록들을 토대로 덕만과 천명 사이를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첫째, 덕만은 진평왕과 정비 마야의 장녀다.
둘째, 천명이 나이는 많지만, 정비인 마야의 소생은 아니다.
셋째, 천명과 덕만은 이복자매간이다.

넷째, 천명은 정비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덕만보다 왕위승계에서 후순위다.
다섯째, 마야의 후손으로는 덕만 말고도 또다른 자매(들)이 있다.  

여섯째, 덕만은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했다
.
일곱째, 덕만은 왕위를 오를때 현재 이요원만큼 어렸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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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름따라 2009.07.27 0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몇 시간을 읽었는데 끝내는 다 읽지 못했군요...ㅡ.ㅡ;;;
    첨부터 읽어야 하다 보니 양이 장난이 아닙니다....
    아침에 일어 나서 나머지를 다 읽어야 할 듯~~~
    님의 글을 읽고 화랑세기를 읽으면 훨씬 재미가 있을 듯합니다^^*
    들마를 통해 역사를 공부 하고 싶어 지고
    이렇게 좋은 글을 접하게 되고
    한마디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아침에 다시 찬찬히 잘~~~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 BlogIcon 아르테미스 2009.07.27 07: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대단하세용~
    ^^;;

    오늘은 브레이크 댄스 부탁합니당~
    꼭요! ㅎㅎ

  3. 2009.07.27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BlogIcon 용짱 2009.07.27 1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오!!!!! 역시 갓쉰동님은 짱이이에요.

    이걸 보고 나니 전 선덕여왕 글은 올리기가 싫어져요. 이건 머 부끄러워서...


    근데 왜 춤을 안추세요 ㅡㅡ^ 동영상 ㄱㄱ슁!!! ㅋㅋㅋㅋㅋ

  5.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7 1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중에 오죠 ㅎㅎ
    이번주도 홧~팅

  6. BlogIcon 산골 2009.07.27 2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간절한 마음으로..추천 했습니다. ^ ^;

  7. 역사매니아 2009.07.28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에서부터 계속 잘 보고 있습니다.
    몰랐던 비밀을 아는느낌?ㅋ
    기존 학설이라는게 어떻게 나온건지
    너무 쉽게 덕만이 천명보다
    나이가 많다고 한거군여
    그렇다면 드라마는 이런걸 알고
    배우를 캐스팅한걸까여?ㅋ

    • BlogIcon 갓쉰동 2009.07.28 1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혀 아닌줄 압니다.. ㅋㅋ 캐스팅에 덕만보다 늙어 보인 유신(엄태웅)을 선발한것 역사에 부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극의 나이는 별도로 하고.. ㅋㅋ

  8. ㅋㅋ 2009.07.28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글 진짜 좋아합니다ㅋ
    제가 화랑세기를 사서 보려고 하는데
    이런 글처럼 원래의 학설을 뒤집는
    이런 해석이 들어간 책이 있나여?

  9. 동감 2009.07.30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춘추가 왕이 될 때 성골남자가 더이상 없어서 진골이 왕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죠. 그런데 천명이 마야부인의 딸이면 도무지 말이 안되는 이야기죠. 아무리 폐위되었어도 용춘은 진지왕의 아들이고 김춘추는 딱! 성골인데요. 왕위계승서열도 선덕, 진덕, 그리고 누군가의 양보... 이런식으로 밀린다는게 납득이 안되어서 여러가지 학설이 있었죠. 천명이 서녀라면 그 부분도 매우 말이 되네요. ^^

  10. 2009.08.03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ㅡㅡ; 2009.08.07 0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란....

    다수가 동의한다고 정설이 되는 것은 아니죠.....!!!

    다만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는 설 일뿐....

    역사에서 만큼은 다수의 생각이 맞다 소수의 생각이 맞다 하는...

    그런 흑백논리는 없는것이라 생각 합니다...

    물론 갓쉰동님 말씀이 다수설이 정설이다라는 말은 없었지만....

    역사를 알고자 한다는 사람이라면....

    열린생각 늘 가지고 생각 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싶고요...



    마지막으로 갓쉰동님 글 잘 읽고 추천 눌러봅니다...

    나름 납득이 가는 글이었습니다....




    언능 타임머신이라는 녀석이 개발된다면 좋겠는데 하는 SF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는....

    ^^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다수와는 상관이 없지요..

      그래서 다수설이 잘못되엇다는 주장을 많이 하고 있는데용..

      덕만공주시절 엮어준.. 춘추와 문희,
      공주시절 모란씨 사건, 아무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했구요..
      솔거에 관한 다수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고,

      덕만이 다수설인 50대 근처에 왕위에 오르지 않고, 젊은 영계(욕먹을랑 여성분들은 어떤의도로 썼는지 알거라고 믿습니당. 그냥 이해해주셈) 시절에 왕위에 올랐다고 했는데용.

      역사는 끊임없는 대화의 산실이지요.. ㅋㅋ

  12. 여왕 2009.08.29 1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명이 서녀라서 덕만이 왕이 되었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이 내용과 상관없이

    천명이 용춘을 좋아한다고 어머니께 고백했는데 잘못 알아들어서 용수와 결혼시켰단 이야기에서

    어머니는 마야부인이라 생각했는데 아닌게 되는군요.


    용춘이 선덕여왕의 남편이 되는 것은 나이가 비슷할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용춘의 나이가 훨씬 많겠군요.

  13.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4. BlogIcon mountain house mre 2012.11.01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5.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s for small dogs 2012.11.05 1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

  16. BlogIcon portable dog fencing panels 2012.12.20 1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함 때문에 쉽게 이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전문 소프트웨어인 포토샵만큼은 아니더라도

  17. BlogIcon micro filtering or orbital depots 2012.12.31 2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니라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할머니(姑) 덕만이 아닌, 시어미(姑) 정도의 나이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18. BlogIcon binary options 2013.02.21 2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 될까? 그렇다면 할asd머니(姑) 덕만이 아닌, 시어미(姑) 정도의 나이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예고한데로 오늘은 덕만의 남편인 <음갈문왕>을 통해서 덕만이 왕이 될수 밖에 없는 이유와 덕만이 젊어서 왕위를 이었고, 진평왕이 죽는 과정에서 벌어진 칠숙과 석품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까 한다.


王之匹飮葛文王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으로 삼을 생각이다. 삼국유사 왕력편에는 덕만이 결혼했음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온다. 글쓴이는 이 결정적인 증거를 놓아두고, 일부러 아래와 같은 시리즈 기사들을 송고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덕만과 천명은 진평왕의 친자매이긴 하지만, 덕만은 마야왕후의 소생이고, 진평은 정비 마야의 후생이 아닌 마야 이전의 왕후의 소생이거나 또다른 후비의 소생일 것이다. 그러니 왕위계승우선권에 정비후생인 덕만이 우선권이 있었고, 덕만이 진평왕의 <장녀>로 <삼국사기>에 기록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일단, 인평 갑오년은 언제 해당할까? 인평 갑오년은 선덕왕 3년 634년에 해당한다.

3년(634)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었다. 분황사(芬皇寺)가 완성되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3년


삼국사기와 덕만과 관련될 사건들을 아무 생각 없이 삼국사기를 읽는 다면 이때의 선덕왕의 나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최소 48살이 된다. 그런데, 삼국유사 왕력편에 기록된 덕만이 왕으로 있고 난 3년차에 자신의 남편을 선택함을 알 수 있다.  

(c) mbc, 선덕여왕중 덕만과 천명

여왕벌이 배필을 맞이한 때가 여자로 치면 갱년기 다지난 48세이상에 남편을 얻어서 무엇에 쓰겠는가? 물론, 이때도 덕만의 후사를 잇고, 왕통을 계승할 후손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인구통계 조사중 하나인 여성가임인구당 조사를 할때, 나 가임여성 1인당 총출산율을 산출할때 연령대는 15세에서 45세로  설정한다. 요즘도 45세 이상 여성이 가임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신라시대 덕만이 이때 남편이 결혼을 했다고 한다. 물론, 첫 공식적인 남편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삼국의 시대에는 극히 나이가 어린 여자나이 13세 정도에는 첫 대다수 월경이 지나고, 이때 부터 성인 대접을 하며, 결혼을 한다. 멀리 갈것도 없이, 요즘 동남아나 아프리가에 원시 부족을 가보자 이들은 월경이 지나면 결혼을 시켜버린다. 하물며 덕만이 나이가 50에 가까운 나이에 첫 남편을 맞이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을 깨는 행위이다. 신라의 박혁거세나 알영은 공히 13세에 왕이 되고, 왕비가 되었다.

634년에 들어서 진평왕때 사용하던 연호를 왜 바꾸었을까?  대부분 나이어린 왕이 등극하고, 수렴청정이나 대리청청을 끝내고 성인이 되어 자신이 스스로 통치할 경우 연호를 바꾼다. 또는 나라의 구습을 혁신하고, 일신우일신 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에 의해서 도 바꾸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연호를 바꾼다는 행위는 기본적인 시간감각을 새로 셋팅하는 작업에 해당하는 것 만치 어려운 일이다.


진평왕의 계보도

덕만의 경우는 특별하게 진평왕때 사용한 연호를 자신의 임기3년차에 바꾸고, 공식적인 남편도 생겼다.


덕만이 선택한 '음'갈문왕은 덕만이 충분히 임신이 가능한 나이때 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후사를 보고 후손을 통해서 왕위를 물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음갈문왕은 나이가 덕만보다는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때 덕만의 나이는 몇살 정도가 되어야 할까? 30대 중후반을 넘기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여기까지 이르게 되면 덕만이 진평왕의 장녀라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잘못된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전 글에서 왕후의 소생만을 중심으로 카운트를 한다면 덕만은 충분히 공식적인 <장녀> 된다.


그렇다면 덕만의 남편 <음갈문왕>은 누구일까? 글쓴이는 덕만의 작은아버지이고 진덕왕의 아버지인 국반갈문왕으로  본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 있지만, 음(飮)자와 반(飯)자는 식각의 오탈자일 가능성이 높기때문이고, 결정적으로 덕만의 말년(647년) 반란이 있고,그 여파로 덕만이 죽은 뒤 국반갈문왕의 딸인 승만(진덕)이 별탈없이 왕위를 승계하었기 때문이다.

원년(579) 8월에 이찬 노리부(弩里夫)를 상대등으로 삼았다. 친동생 백반(伯飯)을 진정갈문왕(眞正葛文王)으로, 국반(國飯)을 진안갈문왕(眞安葛文王)으로 봉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진평왕 원년


진덕왕(眞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승만(勝曼)이고 진평왕의 친동생 국반갈문왕(國飯葛文王)의 딸이다. 어머니는 박씨(朴氏) 월명부인(月明夫人)이다. 승만은 생김새가 풍만하고 아름다웠으며, 키가 일곱 자였고 손을 내려뜨리면 무릎 아래까지 닿았다. - 삼국사기 신라 진덕왕 원년

덕만의 뒤를 이은 승만은 덕만의 의붓 딸이자, 고종사촌간이다. 이는 신라왕실에는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이니 덕만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고, 덕만이 백반을 남편으로 삼은 이유도 후사를 볼려하는 심사도 있었지만, 왕실의 가장 큰어른인 국반갈문왕인 작은아버지의 뒷배경을 염두해 두지 않으면 않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 나아가 계승서열상 승만을 자신의 자식으로 두어 왕위를 계승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또하나의 증거로 천명과 다르게 승만과 덕만의 공통점은 <만>자 돌림을 쓰고 있다. 그러니 천명과 덕만은 같은 왕후의 소생이 될 수 없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하겠다. 또한, 덕만은 죽은후 선덕이고, 승만은 즉은후 진덕이다. 이처럼 <덕>자 돌림의 시호를 받는다. 그러하니 덕만이 634년에 결혼한 남편은 자신의 작은아버지인 국반(진안)갈문왕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백반을 공식 남편으로 부른 이유는 창녕조씨의 족보에 처음 "이씨였던 조계룡이 진평왕의 사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경주김씨 중에 "김인평이 덕만의 남편이였다"는 기록을 염두해 둔것이다.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하기 전에 최소한 1번 이상은 결혼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김인평의 이름을 살펴볼짝시면 <인평>이다. 인평은 덕만이 연호로 사용된 <인평:仁平>과 동일하다. 일반적으로 왕의 이름자를 피하는게 상례이다. 그런데 연호와 같은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은 의심스런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인평이란 이름을 사용하다. 연호를 사용하는 즈음 이름을 바꾸었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  

덕만, 선덕여왕의 결혼관계도

어찌 되었던 백반과 결혼전에 남편이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덕만 3년 634년에 연호와 남편을 세웠다는 기록으로 덕만이 왕위를 이은 때 나이는 10대중반이일 수 밖에 없어진다. 어찌 되었던 덕만이 연호를 바꾼 시기에 독자노선을 걷는 낭낭18세가 되었던 20세가 되었던, 덕만과 관련한 삼국유사, 삼국사기의 기록들을 살펴볼때 덕만은 왕위에 오를때 아주 많이 봐주어서 30을 갖넘었거나 10대후반에서 20대 초반 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글쓴이의 결론이다. 그래야 삼국사기기록과 삼국유사의 기록들이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역사와 다른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미스 캐스팅같은 유신과 덕만의 비정상적인 나이를 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나이를 배재한 역할로 따진다면, 역사와 부합할 지도 모른다. 역사에서 덕만은 유신보다 한참 나이가 어리고, 춘추보다도 어렸을 지도 모른다.


634년 덕만의 결혼상대자가 백반(진정)갈문왕과 국반(진안)갈문왕 작은아버지들 중에서 국반(진안)갈문왕 일 수 밖에 없는 수 많은 증거를 앞선 기사와 이번 기사에서 언급했지만 보다 확실한 증거를 또하나 제시할 예정이다. 

기존 잘못된 정설을 깨는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도 글이 늘어져 버렸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충복으로 나오고, 뒤늦게 소화에게서 사랑을 느끼면 미실에서 벗어나려는 터미네이터 칠숙과 석품의 난을 통해서 이를 증명할 것이다. 또한, 칠숙과 석품이 난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이유에 대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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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5 2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이 유신 아니 김춘추보다 더 어렸을 지도 모르는군요...
    매일 기다려야 하는군요 ㅎㅎㅎ
    칠숙과 석품이 난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이유에
    대해서를 계속 포스팅 해주니 ㅎㅎㅎ
    고맙습니다.
    오늘도 많이 배우고 깨우치고 갑니다.
    편안한 저녁 되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2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속 칠숙과 석품의 난을 쓸려고 하는데..

      진도가 안나가네요.. 덕만이 하도 미스테리한 존재라서리.. ㅋㅋ

  2. 2009.07.25 2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애독자 2009.07.26 1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글을 재밌게 읽고 있는 독자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근데 이번 글을 아무리 읽어봐도 잘 이해가 안가서 질문드립니다.
    선덕여왕 - 덕만이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는 근거가 잘 이해가 안갑니다.
    글에보면 근거가 분명히 나와있지 않고 단순히 가임나이로 추정하신듯 해서요..
    선덕여왕이 즉위때 몇살이었는지...
    학계의 통설과 갓쉰동님의 견해를 다시한번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딴지?를 거는 듯한 댓글을 날려서 죄송하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4. BlogIcon 최낙길 2009.07.26 1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은 진평왕의 둘째딸로 진지왕때 출생한 것으로 사료된다 진평왕의 부는 진흥왕 첫째 왕자 동륜태자의 아들이다
    삼국유사 왕력편에 음갈문왕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는 진평왕이 왕이되기전에 이미 그녀는 출생했다는 것을 의미하면 음갈문왕 즉 남편이 있었다는 것이 말하는 것이다 / 또한 모구로 표시하엿는데 모구란 무엇인가 50이상의 늙은 나이을 말한다 / 진평 무려 53년을 통치하다 모반의 충격으로 인하여 진평왕이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선뎍여왕이 왕위를 계승 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것이다 선덕여왕의 출생년도를 579년으로 본다면 왕위에 오른춘추는 53세가 된다

  5. 재밌네요 2009.07.26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위에 댓글단 애독자분 말처럼요...저도 이해가 안되네요
    덕만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는 것은 진평왕의 재위기간만 놓고 보더라도
    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진평왕이 대략 52년정도 재위했고, 드라마에서도 그무렵에 덕만을 낳은 것으로
    나오는데요 그렇게 따지면 대략 덕만이 재위한 나이가 50대 초반이라는 설정이
    맞는게 아닐까요?
    물론 진평왕이 재위 후 2~30년이 지난후 덕만을 얻을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정실 부인인 마야 부인과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덕만이 어린나이에 재위했다는 것은 다소 억측이 아닌가 싶네요..^^;;

  6. 잘봤습니다 2009.07.26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역사다큐를 보니까 거기서도 여러가지 주변사실을 통해 선덕여왕은 50초반 정도에 즉위했을거라고 말을하더군요..

  7. 그랑께 2009.07.30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계룡의 원래 성씨를 차치하고서 다시 살펴본다면, "曺"는 우리말로 즉 당시 신라말로 "마실"이다. 마실은 마을이나 관청을 가리키는 말이다. "曺"는 마실 조, 음갈문왕의 "飮"은 마실 음! 여기서 너무나 비슷한 발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실 조, 마실 음! 단지 발음의 억양이 다를 뿐이다. 음갈문왕이 "曺"갈문왕이란 말인가?

    조계룡의 후손은 엄연히 지금까지 살고 있다. 바로 창녕 조씨이다. 화왕산에는 용지가 있다. 창녕조씨 시조 탄생지라고 전해 온다.

    족보상에는 조계룡의 부인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진평왕의 딸인 천명과 선화는 그 남편이 확연히 기록되어 있고 실제 인물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덕만공주의 남편 즉 선덕여왕의 남편은 삼국유사에 의하면 음갈문왕. 경주김씨 족보에 의하면 김인평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계룡이 진평왕의 사위라는 기록은 창녕조씨 족보, 경주이씨족보, 경주김씨 족보상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8. BlogIcon hera 2009.08.07 1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서 덕만은 유신보다 한참 나이가 어리고, 춘추보다도 어렸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건 좀 아닌거 가튼데 ^^

    김춘추가 29대 왕이고 덕만이 27대 왕이구요, 유신이 춘추의 딸(지소부인) 과 혼인했는데 어찌 덕만이 김유신, 김춘추 보다 나이가 어린지 ^^;;

    제 생각엔 덕만 > 유신 > 춘추 이 순서가 아닌가 싶은데요;

  9. BlogIcon 카타리나^^ 2009.08.21 2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혼했다는것도 처음 알았네요 ㅡㅡ;;
    그렇군요...

  10. 레아 2009.10.18 1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게 아니며 덕만이 진평왕을 대신해 섭정을 한것을 왕위에 오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9 2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평왕은 죽었는데 무슨 섭정을 합니깡..유흔통치라면 모를깡.. 그렇다고 해도.. 죽음 다음대 임금이 되는거지용.. ㅋㅋ

  11.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2. BlogIcon food storage supplies denver 2012.11.01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3. BlogIcon cost of owning a dog vs cat 2012.11.05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비후생인 덕만이 우선권이 있었고, 덕만이 진평왕의 <장녀>로 <삼국사기>에 기록

  14.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5. BlogIcon 72 hour kits for kids 2012.12.10 2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아무리 미국이 광우병내성을 지니고 있더라도 유전적 결함으로 자연발생적으로 발견되어야 하는 광우병소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도축되기전에 소멸되었거나 도축과정에 은폐되거나 검역과정에 통과되어 전세계 식탁에 올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16. BlogIcon great web site designs 2010 2012.12.22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꾸 침대위로 올라가서 먹으려고 하는 바람에.. 내 앞발을 빌려주었다. 흠.. 근데 다른 강아지들은 등뼈 주면 살살 갈아

  17. BlogIcon emergency preparedness kits victoria bc 2012.12.31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부러 아래와 같은 시리즈 기사들을 송고했던 것이다.

  18. BlogIcon emergency preparedness kits victoria bc 2012.12.31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부러 아래와 같은 시리즈 기사들을 송고했던 것이다.

예고한데로 오늘은 덕만의 남편인 <음갈문왕>을 통해서 덕만이 왕이 될수 밖에 없는 이유와 덕만이 젊어서 왕위를 이었고, 진평왕이 죽는 과정에서 벌어진 칠숙과 석품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까 한다.


王之匹飮葛文王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으로 삼을 생각이다. 삼국유사 왕력편에는 덕만이 결혼했음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온다. 글쓴이는 이 결정적인 증거를 놓아두고, 일부러 아래와 같은 시리즈 기사들을 송고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덕만과 천명은 진평왕의 친자매이긴 하지만, 덕만은 마야왕후의 소생이고, 진평은 정비 마야의 후생이 아닌 마야 이전의 왕후의 소생이거나 또다른 후비의 소생일 것이다. 그러니 왕위계승우선권에 정비후생인 덕만이 우선권이 있었고, 덕만이 진평왕의 <장녀>로 <삼국사기>에 기록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일단, 인평 갑오년은 언제 해당할까? 인평 갑오년은 선덕왕 3년 634년에 해당한다.

3년(634)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었다. 분황사(芬皇寺)가 완성되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3년


삼국사기와 덕만과 관련될 사건들을 아무 생각 없이 삼국사기를 읽는 다면 이때의 선덕왕의 나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최소 48살이 된다. 그런데, 삼국유사 왕력편에 기록된 덕만이 왕으로 있고 난 3년차에 자신의 남편을 선택함을 알 수 있다.  

(c) mbc, 선덕여왕중 덕만과 천명

여왕벌이 배필을 맞이한 때가 여자로 치면 갱년기 다지난 48세이상에 남편을 얻어서 무엇에 쓰겠는가? 물론, 이때도 덕만의 후사를 잇고, 왕통을 계승할 후손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인구통계 조사중 하나인 여성가임인구당 조사를 할때, 나 가임여성 1인당 총출산율을 산출할때 연령대는 15세에서 45세로  설정한다. 요즘도 45세 이상 여성이 가임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신라시대 덕만이 이때 남편이 결혼을 했다고 한다. 물론, 첫 공식적인 남편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삼국의 시대에는 극히 나이가 어린 여자나이 13세 정도에는 첫 대다수 월경이 지나고, 이때 부터 성인 대접을 하며, 결혼을 한다. 멀리 갈것도 없이, 요즘 동남아나 아프리가에 원시 부족을 가보자 이들은 월경이 지나면 결혼을 시켜버린다. 하물며 덕만이 나이가 50에 가까운 나이에 첫 남편을 맞이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을 깨는 행위이다. 신라의 박혁거세나 알영은 공히 13세에 왕이 되고, 왕비가 되었다.

634년에 들어서 진평왕때 사용하던 연호를 왜 바꾸었을까?  대부분 나이어린 왕이 등극하고, 수렴청정이나 대리청청을 끝내고 성인이 되어 자신이 스스로 통치할 경우 연호를 바꾼다. 또는 나라의 구습을 혁신하고, 일신우일신 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에 의해서 도 바꾸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연호를 바꾼다는 행위는 기본적인 시간감각을 새로 셋팅하는 작업에 해당하는 것 만치 어려운 일이다.


진평왕의 계보도

덕만의 경우는 특별하게 진평왕때 사용한 연호를 자신의 임기3년차에 바꾸고, 공식적인 남편도 생겼다.


덕만이 선택한 '음'갈문왕은 덕만이 충분히 임신이 가능한 나이때 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후사를 보고 후손을 통해서 왕위를 물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음갈문왕은 나이가 덕만보다는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때 덕만의 나이는 몇살 정도가 되어야 할까? 30대 중후반을 넘기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여기까지 이르게 되면 덕만이 진평왕의 장녀라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잘못된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전 글에서 왕후의 소생만을 중심으로 카운트를 한다면 덕만은 충분히 공식적인 <장녀> 된다.


그렇다면 덕만의 남편 <음갈문왕>은 누구일까? 글쓴이는 덕만의 작은아버지이고 진덕왕의 아버지인 국반갈문왕으로  본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 있지만, 음(飮)자와 반(飯)자는 식각의 오탈자일 가능성이 높기때문이고, 결정적으로 덕만의 말년(647년) 반란이 있고,그 여파로 덕만이 죽은 뒤 국반갈문왕의 딸인 승만(진덕)이 별탈없이 왕위를 승계하었기 때문이다.

원년(579) 8월에 이찬 노리부(弩里夫)를 상대등으로 삼았다. 친동생 백반(伯飯)을 진정갈문왕(眞正葛文王)으로, 국반(國飯)을 진안갈문왕(眞安葛文王)으로 봉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진평왕 원년


진덕왕(眞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승만(勝曼)이고 진평왕의 친동생 국반갈문왕(國飯葛文王)의 딸이다. 어머니는 박씨(朴氏) 월명부인(月明夫人)이다. 승만은 생김새가 풍만하고 아름다웠으며, 키가 일곱 자였고 손을 내려뜨리면 무릎 아래까지 닿았다. - 삼국사기 신라 진덕왕 원년

덕만의 뒤를 이은 승만은 덕만의 의붓 딸이자, 고종사촌간이다. 이는 신라왕실에는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이니 덕만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고, 덕만이 백반을 남편으로 삼은 이유도 후사를 볼려하는 심사도 있었지만, 왕실의 가장 큰어른인 국반갈문왕인 작은아버지의 뒷배경을 염두해 두지 않으면 않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 나아가 계승서열상 승만을 자신의 자식으로 두어 왕위를 계승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또하나의 증거로 천명과 다르게 승만과 덕만의 공통점은 <만>자 돌림을 쓰고 있다. 그러니 천명과 덕만은 같은 왕후의 소생이 될 수 없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하겠다. 또한, 덕만은 죽은후 선덕이고, 승만은 즉은후 진덕이다. 이처럼 <덕>자 돌림의 시호를 받는다. 그러하니 덕만이 634년에 결혼한 남편은 자신의 작은아버지인 국반(진안)갈문왕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백반을 공식 남편으로 부른 이유는 창녕조씨의 족보에 처음 "이씨였던 조계룡이 진평왕의 사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경주김씨 중에 "김인평이 덕만의 남편이였다"는 기록을 염두해 둔것이다.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하기 전에 최소한 1번 이상은 결혼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김인평의 이름을 살펴볼짝시면 <인평>이다. 인평은 덕만이 연호로 사용된 <인평:仁平>과 동일하다. 일반적으로 왕의 이름자를 피하는게 상례이다. 그런데 연호와 같은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은 의심스런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인평이란 이름을 사용하다. 연호를 사용하는 즈음 이름을 바꾸었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  

덕만, 선덕여왕의 결혼관계도

어찌 되었던 백반과 결혼전에 남편이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덕만 3년 634년에 연호와 남편을 세웠다는 기록으로 덕만이 왕위를 이은 때 나이는 10대중반이일 수 밖에 없어진다. 어찌 되었던 덕만이 연호를 바꾼 시기에 독자노선을 걷는 낭낭18세가 되었던 20세가 되었던, 덕만과 관련한 삼국유사, 삼국사기의 기록들을 살펴볼때 덕만은 왕위에 오를때 아주 많이 봐주어서 30을 갖넘었거나 10대후반에서 20대 초반 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글쓴이의 결론이다. 그래야 삼국사기기록과 삼국유사의 기록들이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역사와 다른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미스 캐스팅같은 유신과 덕만의 비정상적인 나이를 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나이를 배재한 역할로 따진다면, 역사와 부합할 지도 모른다. 역사에서 덕만은 유신보다 한참 나이가 어리고, 춘추보다도 어렸을 지도 모른다.


634년 덕만의 결혼상대자가 백반(진정)갈문왕과 국반(진안)갈문왕 작은아버지들 중에서 국반(진안)갈문왕 일 수 밖에 없는 수 많은 증거를 앞선 기사와 이번 기사에서 언급했지만 보다 확실한 증거를 또하나 제시할 예정이다. 

기존 잘못된 정설을 깨는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도 글이 늘어져 버렸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충복으로 나오고, 뒤늦게 소화에게서 사랑을 느끼면 미실에서 벗어나려는 터미네이터 칠숙과 석품의 난을 통해서 이를 증명할 것이다. 또한, 칠숙과 석품이 난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이유에 대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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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5 2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이 유신 아니 김춘추보다 더 어렸을 지도 모르는군요...
    매일 기다려야 하는군요 ㅎㅎㅎ
    칠숙과 석품이 난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이유에
    대해서를 계속 포스팅 해주니 ㅎㅎㅎ
    고맙습니다.
    오늘도 많이 배우고 깨우치고 갑니다.
    편안한 저녁 되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2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속 칠숙과 석품의 난을 쓸려고 하는데..

      진도가 안나가네요.. 덕만이 하도 미스테리한 존재라서리.. ㅋㅋ

  2. 2009.07.25 2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애독자 2009.07.26 1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글을 재밌게 읽고 있는 독자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근데 이번 글을 아무리 읽어봐도 잘 이해가 안가서 질문드립니다.
    선덕여왕 - 덕만이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는 근거가 잘 이해가 안갑니다.
    글에보면 근거가 분명히 나와있지 않고 단순히 가임나이로 추정하신듯 해서요..
    선덕여왕이 즉위때 몇살이었는지...
    학계의 통설과 갓쉰동님의 견해를 다시한번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딴지?를 거는 듯한 댓글을 날려서 죄송하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4. BlogIcon 최낙길 2009.07.26 1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은 진평왕의 둘째딸로 진지왕때 출생한 것으로 사료된다 진평왕의 부는 진흥왕 첫째 왕자 동륜태자의 아들이다
    삼국유사 왕력편에 음갈문왕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는 진평왕이 왕이되기전에 이미 그녀는 출생했다는 것을 의미하면 음갈문왕 즉 남편이 있었다는 것이 말하는 것이다 / 또한 모구로 표시하엿는데 모구란 무엇인가 50이상의 늙은 나이을 말한다 / 진평 무려 53년을 통치하다 모반의 충격으로 인하여 진평왕이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선뎍여왕이 왕위를 계승 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것이다 선덕여왕의 출생년도를 579년으로 본다면 왕위에 오른춘추는 53세가 된다

  5. 재밌네요 2009.07.26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위에 댓글단 애독자분 말처럼요...저도 이해가 안되네요
    덕만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는 것은 진평왕의 재위기간만 놓고 보더라도
    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진평왕이 대략 52년정도 재위했고, 드라마에서도 그무렵에 덕만을 낳은 것으로
    나오는데요 그렇게 따지면 대략 덕만이 재위한 나이가 50대 초반이라는 설정이
    맞는게 아닐까요?
    물론 진평왕이 재위 후 2~30년이 지난후 덕만을 얻을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정실 부인인 마야 부인과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덕만이 어린나이에 재위했다는 것은 다소 억측이 아닌가 싶네요..^^;;

  6. 잘봤습니다 2009.07.26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역사다큐를 보니까 거기서도 여러가지 주변사실을 통해 선덕여왕은 50초반 정도에 즉위했을거라고 말을하더군요..

  7. 그랑께 2009.07.30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계룡의 원래 성씨를 차치하고서 다시 살펴본다면, "曺"는 우리말로 즉 당시 신라말로 "마실"이다. 마실은 마을이나 관청을 가리키는 말이다. "曺"는 마실 조, 음갈문왕의 "飮"은 마실 음! 여기서 너무나 비슷한 발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실 조, 마실 음! 단지 발음의 억양이 다를 뿐이다. 음갈문왕이 "曺"갈문왕이란 말인가?

    조계룡의 후손은 엄연히 지금까지 살고 있다. 바로 창녕 조씨이다. 화왕산에는 용지가 있다. 창녕조씨 시조 탄생지라고 전해 온다.

    족보상에는 조계룡의 부인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진평왕의 딸인 천명과 선화는 그 남편이 확연히 기록되어 있고 실제 인물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덕만공주의 남편 즉 선덕여왕의 남편은 삼국유사에 의하면 음갈문왕. 경주김씨 족보에 의하면 김인평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계룡이 진평왕의 사위라는 기록은 창녕조씨 족보, 경주이씨족보, 경주김씨 족보상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8. BlogIcon hera 2009.08.07 1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서 덕만은 유신보다 한참 나이가 어리고, 춘추보다도 어렸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건 좀 아닌거 가튼데 ^^

    김춘추가 29대 왕이고 덕만이 27대 왕이구요, 유신이 춘추의 딸(지소부인) 과 혼인했는데 어찌 덕만이 김유신, 김춘추 보다 나이가 어린지 ^^;;

    제 생각엔 덕만 > 유신 > 춘추 이 순서가 아닌가 싶은데요;

  9. BlogIcon 카타리나^^ 2009.08.21 2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혼했다는것도 처음 알았네요 ㅡㅡ;;
    그렇군요...

  10. 레아 2009.10.18 1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게 아니며 덕만이 진평왕을 대신해 섭정을 한것을 왕위에 오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19 2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평왕은 죽었는데 무슨 섭정을 합니깡..유흔통치라면 모를깡.. 그렇다고 해도.. 죽음 다음대 임금이 되는거지용.. ㅋㅋ

  11.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2. BlogIcon food storage supplies denver 2012.11.01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3. BlogIcon cost of owning a dog vs cat 2012.11.05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비후생인 덕만이 우선권이 있었고, 덕만이 진평왕의 <장녀>로 <삼국사기>에 기록

  14.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5. BlogIcon 72 hour kits for kids 2012.12.10 2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아무리 미국이 광우병내성을 지니고 있더라도 유전적 결함으로 자연발생적으로 발견되어야 하는 광우병소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도축되기전에 소멸되었거나 도축과정에 은폐되거나 검역과정에 통과되어 전세계 식탁에 올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16. BlogIcon great web site designs 2010 2012.12.22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꾸 침대위로 올라가서 먹으려고 하는 바람에.. 내 앞발을 빌려주었다. 흠.. 근데 다른 강아지들은 등뼈 주면 살살 갈아

  17. BlogIcon emergency preparedness kits victoria bc 2012.12.31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부러 아래와 같은 시리즈 기사들을 송고했던 것이다.

  18. BlogIcon emergency preparedness kits victoria bc 2012.12.31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부러 아래와 같은 시리즈 기사들을 송고했던 것이다.

  19. BlogIcon nike air max baratas 2013.04.14 0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에 대한 내 마음을 이 세상에 펼친다면 따스한 봄햇살만큼이나 이땅위에 가득할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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