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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끌려갈것인가? 주체적으로 볼것인가?

드라마 선덕여왕이 그동안 최후의 떡밥으로 준비한 춘추(유승호)가 드디어 34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떡밥만으로 끝날것인지, 아니면 최후의 비밀병기의 역할을 해서 여심을 사로잡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준비된 잔치상에 먹거리가 없는 경우도 있으니 지켜보는 도리 밖에 없다.

춘추(유승호)는 대남보에게 말을 타지 못하고, 배멀미와 흔들리는 가마에 멀미가 난다고 한다. 또한, 말을 타지 못한다고 한다. 이에 대남보가 말타기를 가르치려 하지만 바로 내려버리고 만다.

금오산을 넘어선 춘추 일행은 춘추의 꾐에 빠져 여관에서 잠시 쉬어간다. 그런데 쉬고 있던 춘추를 찾아 나선 대남보는 춘추가 사라진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춘추는 죽방과 고도의 뒤에서 뜸금없이 나타나 비재에 관심을 두고 자신이 "내이름 김춘추"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정오 넘어 금오산을 넘어오고 있는 춘추는 비재를 볼 수 있을까? 금오산은 구미와 김천.선산에 걸쳐 있고 현재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이다.


경주까지의 직선 거리는 얼마나 될까? 약 120여km정도 이다. 드라마상 정오가 넘어서 금오산을 넘어선 춘추가 경주 서라벌에서 벌어진 비재를 볼 수 있을까? 술시(밤7~9시)에 벌어진 유신과 비담의 배재를 죽었다 깨어나도 볼 수 없다. 그런데 춘추는 비재를 보고 있다, 말도 타지 못하는 춘추가 어떻게 비재를 볼 수 있었을까? 혹시 춘추는 축지법을 사용한 것인가?

여기서 정말 그렇겠네 하는 분이 있다면 재대로 낚시에 걸려든 것이다. 금오산은 두군데가 있다.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구미와 김천에 있는 금오(金烏)산이고, 또 하나는 경주인근 내남면에 있는 금오산(金鰲山)이다.


구미.선산에 있던 금오산이 금오산이 된 이유는 금오신화를 쓴 김시습과 관련이 있다. 금오산에 오르다 보면 명금폭포가 있다. 그 폭포 옆으로 바위 굴이 하나 있다. 김시습이 그곳에서 금오신화를 작성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그래서 구미와김천에 있던 산이 금오(金烏)산이 된것이다.  김시습이 수도를 하면서 글을 쓸때 황금까마귀가 날아들었다고 해서 금오산, 금오신화라고 했다는 설도 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던 구미에 있는 금오산이나 경주 내남면에 있는 금오산이나 등장하면 안된다. 당항성으로 부터 금오산을 넘어오는 길은 김천을 관통해서 금오산에 도착하는 방법이 있지만, 거리상 경주까지는 반나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또한, 경주 남쪽에 있는 금오산을 예상했다면, 당항성으로 부터 들어오는 입구도 아니고, 금오산을 넘어왔다면 이미 경주에 도착한 것이다. <선덕여왕>에서는 월성(궁성) 북서쪽에 있는 첨성대도 월성(궁성) 동북쪽에 있다고 뻔뻔스레 말을 하니 그냥 그려려니 하시길 바란다.


어찌되었던 중요한것은 금오산이 아니다. 대부분 글이나, 소설이나 드라마를 볼때, 화자가 이끄는데로 끌려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배역을 소화하는 배우들을 욕을 하거나 칭찬을 한다. <선덕여왕>에 금오산이 나와서 화자(작가, 드라마)에 끌려가지 말고, 주체적으로 판단하자라는 의미로 낚시를 던져보았다.


미생이 비웃음을 받은 이유?

미생이 춘추가 말을 못탄다고 하자. 하종과 세종과 설원랑과 미실은 미생을 보면서 웃음을 짓는다. 왜 미생이 말이야기를 하자 미생을 비웃는 것일까?


미생은 경오(庚午)년(550) 생이고 을사(乙巳)년(585)에 화랑의 주가 되었다. 미실이 (미생)공에게 명하여 사다함공을 따르게 하여 낭도가 되었다. 당시 나이가 겨우 12살(561년)이었는데 말에 오를 수 없었다. 미진부공이 쫓아내려 하자, 미실이 말하기를 “어찌 나의 아우를 한번에 내칩니까?” 하였다. 사다함 또한 부득이 받아들였다. 문노가 꾸짖어 “무릇 낭도란 자의 힘이 말에 오를 수 없고, 검을 사용할 수 없다면, 하루아침에 일을 당할 때 어디에 쓸 것인가?” 하였다. 사다함이 용서를 빌며 말하기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우입니다. 얼굴이 아름답고 춤을 잘 추어 또한 여러 사람을 위로할 수 있으니, 이에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문노가 다시 따지지 않았다. 공은 검도를 좋아하지 않았다. 속으로 문노를 꺼려하여 경의를 표하지 않았기에, 사다함이 곤란하게 어려워하였다.

미생은 나이가 12살이 되도록 말을 타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당시의 기준으로 보았을때 말도 타지 못하는 화랑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 미진부에게 집밖으로 내쫓김을 당할 위기에도 처하게 된다. 그러니 당연히 문노는 미생을 가르칠 자질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간신히 사다함의 부탁으로 미생을 받아 들이나 미생은 검도를 좋아 하지 않고, 글과 노래와 춤추는 것으로 즐거움을 주었다.

미실과 미생의 아버지 미진부는 어떤 인물일까? 진흥왕 시기 백제와 고구려를 밀어내고 충주지역. 한강유역과 저 멀리 함경도까지 영토를 확장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8대 장군중에 하나이다. 그러니 미진부로 보았을때 미생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겠는가?

12년 신미(진흥왕 12년: 551)에 왕이 거칠부와 대각찬(大角)(특등위)구진(仇珍), 각찬(1~2등) 비태(比台), 잡찬(3등) 탐지(耽知), 잡찬 비서(非西), 파진찬 노부(奴夫), 파진찬(4등) 서력부(西力夫), 대아찬(5등) 비차부(比次夫) 아찬(6등) 미진부(未珍夫) 등 여덟 장군에게 명하여 백제와 더불어 고구려를 침공하게 하였다. 백제 사람들이 먼저 평양(平壤)을 격파하고 거칠부 등은 승리의 기세를 타서 죽령 바깥, 고현(高峴) 이내의 10군을 취하였다. - 삼국사기 거칠부 열전

유신과 알천 그리고 문노의 비기로 위기를 넘긴 비담

유신과 알천이 치열한 싸움을 하다가 둘이 쓰러진다. 그리고 알천이 일어서고, 유신이 일어선다. 그리고 유신이 소리를 한번 지르자 알천이 쓰러진다.

우리는 여기서 왜 알천이 쓰러졌을까?  하는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그냥 유신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그러할까? 아니면 유신이 7번 넘어져도 일어나는 개구리 왕눈이여서 일까?

우리는 세도가를 보고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날으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위세가 대단하다고 하지만. 유신은 정말 날으는 새도 떨어트리는 이적을 행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날으는 새도 떨어트리는 기세와 위세를 표현한 말이 아닐까 한다. 660년 백제 계백에 발목이 잡힌 후 유신과 소정방의 만남을 상기한다면, 유신이 알천을 소리로 제압한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비담은 보종과의 싸움에서 정석 플레이로는 싸움에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문노의 비기를 사용한다. 비담은 문노로 부터 직접 비기를 배울 수 없었다. 하지만, 비담은 무의 천재이다 ,그래서 문노가 하는 몸짓을 몰래 보고 스스로 깨우친것이다. 하지만 비담의 비기에서 태극권이나 취권의 냄새가 난다.

물론, 원작자는 잃어버린 신라고유의 무술이거나 태견이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노는 5세 사다함으로 부터, 14세 풍월주인 호림까지도 무예를 가르친 스승이다. 그런 문노의 비기를 보고 다들 놀란 표정을 짓는다.

공은 용력이 많고, 격검을 좋아하여 일찍 문노의 문하에 들어갔다. 검소하게 지냈으며  골품으로 뽐내지 않았다. - 화랑세기 14세 풍월주 호림

문노가 늙어서 비기를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죽어서도 612년 비재를 주관하는 문노이니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공은 건복(建福) 23년(606)에 세상을 떠났으며, 나이가 69세였다. 낭주는 이해에 공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선(仙)이 되었다. 공보다 10살이 적었다 - 화랑세기 8세 풍월주 문노

미실은 왜 패한 보종에게 참 잘싸웠다고 이야기를 했을까?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암중모색의 암살이나 감추고 싶은 어두운일은 다 보종이 처리한다. 30여차례 비재에서 패한적이 없을 만큼 천하무적인 보종이 15세 풍월주 비재에 참여하여 비담에 참패를 한다. 보종은 한없이 부끄러워한다.

그런데 미실은 의외로 보종을 찾아가 따스히 안아 주면서 보종아 "참 잘했다. 내아들"이라고 말을 해준다. 의외의 모습이지 않는가? 미실의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표현하고자 한것일까?

아니다. 미실과 보종을 바라보는 설원랑과 칠숙의 측은한듯 하면서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모습을 기억하기 바란다. 보종은 자신의 나약함을 어머니 미실에게 보이지 않고, 미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서 30여차례 비재에서 패한적이 없을 만큼 천하무적이 된것이다.
 
그리고 미실이 시키는 일이라면 지옥이라도 찾아 간다. 대다수의 격투가들에게 질문을 한다면 보종과 같은 역경을 이겨내고 최고수가 되었다고 말을 한다. 어릴적 너무나 약해서 몸을 단련시켰는데 어느덧 최고수가 되었다고 말이다. 이런 보종은 어떤 인물일까 궁금하지 않는가? 

(보종)공의 성품은 청아하였고 문장을 좋아하였고 …정이 많았다. 사람들을 위하여 웃고 울었으며, 온화함과 순량함은 마치 부녀와 같았다. 사람들이 병들어 고통을 받는 것을 보면, 슬프고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마치 자기가 아픈 것 같았다. 새와 짐승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였다. 한 마리의 벌레나 한 포기의 풀도 해친 적이 없었다. 선과 악, 이(利)와 해를 나누지 않았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늘 작은 청려(靑驪)에 걸터앉아 피리를 불며 시가를 지나가면 사람들이 공을 가리켜 ‘진선공자(眞仙公子)’라고 하였다. 얼굴은 관옥과 같았고 손은 마치 하얀 새싹과 같았다. 그림을 잘 그렸는데, 인물과 산수의 절묘함은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호림이 사랑하여 부제로 삼았다. 정이 마치 부부와 같아 스스로 여자가 되어 섬기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 하였다. - 화랑세기 16세 풍월주 보종

현대 의학적 관점으로 보종은 여성호르몬 과다 남성이였다. 또한, 호림을 향한 사랑은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써의 사랑이였다. 요즘 같으면 트랜스잰더이고, 성전환 수술을 단행했을 만한 하지 않은가?

선덕여왕 최대 떡밥 춘추를 뒤로 하고

사실 이번편은 춘추에 대한 기사를 송고할려고 했다. 그러나 글이 너무 늘어져 버렸다. 짧게 쓸려고 했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참으로 재미있는 요소가 너무 많다. 역사를 배우는 자는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

또한, 너무나 다르게 신라를 보여주고 있어서 더욱 흥미롭다. 환타지 사극의 최정점은 <태왕사신기>일 것이다. 하지만, 태왕사신기는 스스로 환타지 사극을 표방하고 있다, 또한, 기록상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들인 기본적인 팩트는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

하지만, 사극을 표방하고, 스스로 불충분한 사료를 바탕으로 "신라를 재현하겠다"는 정통사극을 표방한 <선덕여왕>은 태왕사신기도 시도하지 않은 기본팩트까지도 자의적(?)으로 바꿔 버린다. 최소한  불충분한 사료가 있다면, 그 사료만이라도 충실히 따르고, 미싱링크를 채워갈 생각을 해야한다. 그런게 사극이 갖추어야할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사극의 뼈대가 재대로 선것이다. 그런데, 선덕여왕은 그나마 적은 사료 조차도 쓰레기 통으로 처박아 버린다.

다음 뷰의 문화/연예 카테고리를 보시고, 역사에 관심이 없는 많은 여성 네티즌들은 갓쉰동이 일주일 내내 선덕여왕만을 주제로 지치지도 않고, 지겹도록 매일 장문의 글을 쓰는 것을 이해 하지 못할 것이다. 추천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갓쉰동이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미칠지경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선덕여왕에서 너무나 많은 떡밥을 투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한회 한회를 할때마다 글쓸 재료가 넘쳐난다. 오히려 못한 이야기가 더 많다. 이번편도 마찬가지로 많은 이야기꺼리가 있고, 선덕여왕의 최대 떡밥인 춘추를 다뤄보지도 못하고 글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춘추가 등장한 시간으로 치면 1분도 채 안될것이다. 몇주동안 밑밥만 투여하다 잠깐 춘추를 선보인 <선덕여왕>보다는 갓쉰동은 신의를 지킬것이다. 그러니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예고편. 춘추는 왜?어떻게? 비재에 나타났을까?

술시부터 풍월주 비재 장원전을 한다. 술시면 밤 7~9시에 해당한다. 그런데 춘추는 술시에 벌어진 비담과 유신의 결투를 구경하고 있다. 금오산에서 황금까마귀를 타고 날아서 왔을까? 아니면 축지법을 사용하고 왔을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왔을까? 당연히 말을 타고 왔다. 말을 타지 못한다는 말은 대남보를 속이려는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이유는 다음편으로 넘기도록 하겠다.

힌트는 춘추가 대남보에게 질문을 합니다. "서라벌에서 풍월주 비재가 있다며?" 이말이 함축하고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추천해주시고,  최신글도 일독해주실거죠?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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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skagns 2009.09.16 1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
    즐거운 하루 되세요!

  3. 화랑세기가 2009.09.16 1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역사서에도 저자가 있기에 그가 처한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인물이 선인이 되기도 하고, 악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미 내려오는 역사서조차 그 진위를 알 수 없고,
    저자에 따라 중국찬양론으로 흐를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짜피 역사란 판타지입니다.
    사실적 기술은 있을지라도, 선과 악은 나눌 수 없습니다.

    역사극이 환타지라고 논하며 비평하는 것도 좋지만,
    현대에 이 역사극이 우리나라와 이 드라마를 보는 이웃나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하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이미 현재에 발을 담그고 있고,
    그 현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른 글도 봐주실래요.. 제가 화랑세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쉽게 알수 있을 겁니다..


      선덕여왕은 사극판 트루먼쇼133'선덕여왕', 납량극보다 섬뜩한 비담, 그리고 640선덕여왕, 천추태후 사극의 묘미는 현실풍자146

      다음 최신글 목록에 보면 위 리스트가 있을 겁니다.

      사실 행간을 읽으시면 대부분 현실 비판입니다. 제글. 사극을 빙자한..

  4. BlogIcon 영웅전쟁 2009.09.16 1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춘추 글도 기대가 벌써 되는군요.
    드라마 사극이야 어찌 굴러가든 ㅎㅎㅎ
    글쎄요...
    길어질 수 밖에 없는 글 맥락이라 ㅋ
    호흡이 가쁘긴 하지만 ㅎㅎ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5. 떼르미 2009.09.16 1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내용과는 별 관계없는 사족입니다만, 죄송합니다만, 술시는 19시~21시 아닌가요? 자시와 착각하신 듯? 어제 드라마에서도 오후7시~9시라고 자막에 나온 것 같았는데...

    •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앗 그렇군요.. 그렇다면 더더욱 올수가 없겠네요.. 김춘추가 .. ㅋㅋ 수정해야 겠습니당.. 왜이리 사소한 것에 실수를.. ㄳ 합니다..

  6. 꼬꼬 2009.09.16 1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미실이 보종을 끌어안고 하는 말과 행동이
    꼭 비담에게 하는 것처럼 느껴졌네요...
    비담에게 '잘 싸웠다' '내 아들'아.. 이걸 다른 아들인
    보종을 대신 끌어안고 말하는 것 같았다는..

    •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8: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들인지 아직 모를때이지요.. 비담이..
      보종이 어릴적 부터 미실의 사랑을 받았지만, 보종은 유약했거든요. 그러니 자신을 이기고, 신라 최고의 전투사가 되었으니 그 아니 기쁘겠어요.. 비롯젔지만.. 최선을 다한 보종이 자랑스러웠던 거지요..

  7.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2009.09.16 1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고 재미도 있고..
    선덕여왕 끝난후면 의례히 찾아보게 되네요..ㅎㅎㅎ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8: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의례이 찾아오는 분이 많은뎅. 매일 매일 포스팅 하거든용.. 1일 1포스팅.. 다른 글도 봐주셈.. ㅋㅋ 추천은 필수.. ㅋㅋ

  8. 글쵸 2009.09.16 1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어제 보면서 춘추가 구라 치는구나 싶더군여. 춘추는 얼핏 보기에 대원군 이하응 같은 인물 입니다.
    외극유내극강이죠. 어쩌면 덕만은 춘추를 통하여 왕이란 무엇이고 신라의 왕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배워갈지도 모른다 싶네여. 춘추는 중국에서 왕의 그림자를 마음 속에 간직했다 보이고요. 다른 이야기이지만
    요즘 전개되는 JYP 사태. 개인적으로 그가 백홈 한다면 진영이나 그 주변에 미실급 사람이 있다 보입니다.
    어차피 감싸고 가봤자 사태만 키울 터, 그냥 쫓아보낸 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아 동정론이 우세하면 복귀, 아니면 냅두고. 완전 바둑의 꽃놀이패네여. 여론을 다룰줄 안다 보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럴수도 있는뎅.. 왕을 노리진 않았을 거예용.. 당시에는 춘추는 그저 공주의 자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요..

      박진영과 재범은 모르겠네용.. 미실급이 있는지.. 없는지.. 어짜피 진영은 욕을 바가지로 먹어도 할말 없는 상황이니..

  9. BlogIcon 에이프릴S 2009.09.16 1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떡밥 선덕여왕 ㅠ_ㅠ 그래도 너무 재밌어서 미치겠네요 ㅋ 한주의 사이클의 중심이 월화드라마가
    되다니... ㅠ_ㅠ..

    •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그러게용.. 한주의 사이클은 토.일이 되어야 하는뎅.. ㅋㅋ 떡밥이 너무 많아용.. ㅠ.ㅠ. 다 한주 내내 먹어도 못먹음..ㅋㅋ

  10. 푸른달 2009.09.16 1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정방 아닌가요?
    소방정이 아니라...

  11. BlogIcon pennpenn 2009.09.16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 부분에 구미 금오산 이야기를 하기에
    뜬금없다고 생각했지만 경주 금오산과 비교했더군요~

    전문적인 분석글 잘 보았습니다.

  12. 스앵 2009.09.16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기요,,

    소방정이 아니고,

    소정방 입니다...

    소방정 ㅋㅋ

  13. BlogIcon 2009.09.16 1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떡밥이 너무 많아서,..... 여기저기 알아보고자 인터넷 돌아다녔다라는...

  14. 2009.09.16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두 미실이 끌어안고 얘기할때 비담에게 한 말인줄 알았는데요..^^

  15. 최대적 2009.09.16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춘추의 행적을 보면 실제로 권모술수에 능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춘추가 유년기를 수나라에서 보냈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인 소통이 있었던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큰 타격을 입은 수나라는 당나라에 패망했으나 신라는 당에도 협력적이며 굴욕적인 외교자세를 보입니다. 실제 백제와의 전투에서 신라는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 이길수 없는 싸움이란걸 알고 있었으므로 당나라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됩니다. 이후 당의 세력을 백제에서 몰아낼때도 실제적으로는 백제세력을 교묘하게 이용하게 됩니다. 실제적으로 자신의 힘보다는 세력간의 균형을 교묘하게 이용하며 적으로 적을 이기는 술수를 이용하여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비정상적인 통일을 이끌어냅니다. 가장 약한 나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신라의 입장으로는 높이 살만한 것이지만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보자면 민족 최대의 적이 되는 일이 벌어진것이지요.

  16. BlogIcon TV FUN 2009.09.16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 님.
    이번에도 글 잘 읽었습니다.

    드라마 내용과 실제 역사를 함께 비교해주셔서
    재미도 있고 공부도 되는... 일석이조라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갓쉰동님...:)

    •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게 봐주시니 언제나 ㄳ 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조금더 빨리 tv펀에 노출이 되었음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만.. tv-fun 나름의 내부 사정이 있겠다 싶습니당..

  17. jhaesea 2009.09.16 17: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춘추가 당항성에서 배를 타고 경주로 올 것이고 그렇다면 금오산을 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당항성에서 배를 타고 오지도 않을 뿐만 아니고, 당항성에서 배를 타고 백제의 근해를 경유해서오더라도.. 울산.토함산쪽으로 와야지용..

      경주 금오산은 남쪽에 있다눈..

  18. 갓쉰동님 광팬 2009.09.16 2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 관심 없는 여성 네티즌이라... 그동안 갓쉰동 님의 글을 쭉 봐왔고 가급적인면 추천과 댓글을 날리던 저로서는 이번 대목은 기분 좋지 않군요.(전 20대 중반의 여성이고 일반 회사원이지만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이 많은 시민입니다.) 저 한줄의 글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 보면 오해를 살 수 있는 글입니다. 언어 표현에 신중을 기해주시길...

    근데 정말 궁금한 점은 선덕여왕에서 주인공들의 나이대가 어떻게 되는 지 궁금합니다. 아직 젊은 덕만의 얼굴과 벌써 청소년이 되버린 조카 춘추의 얼굴과 파파할머니가 되어야 할 미실의 팽팽한 얼굴을 보면 이 드라마 자체가 판타지 드라마로 흐르는게 아닌가 의구심이 드는군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17 0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다수의 여성들은 역사보다는 등장하는 배우인물과 의상과 악세사리에 관심이 많지요.. 오히려 님이 특이한 케이스 입니당.. ㅋㅋ

      다음 주제가 여성사극에 관한 이야기 입니당.. 아마도 실망할지도.. 하지만 밑밥이라고 생각하셈.. 오늘글은 일종의 백신

      언젠가 함 정리를 해볼께용.. 불사와 도인의 나라에 대해서.. ㅋㅋ

  19. BlogIcon 주하아빠~♡ 2009.09.17 0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선덕여왕도 너무 재밌지만...갓쉰동님의 해설도 너무 재밌네요...^^

  20. nightbird 2009.09.17 1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입담이 살아있는 전문적인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쭉 부탁드려요~~

    - 인물들의 의상과 악세사리에는 전혀 관심없는 특이 케이스 삼심대 여성으로부터.ㅋㅋ

  21.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끌려갈것인가? 주체적으로 볼것인가?

드라마 선덕여왕이 그동안 최후의 떡밥으로 준비한 춘추(유승호)가 드디어 34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떡밥만으로 끝날것인지, 아니면 최후의 비밀병기의 역할을 해서 여심을 사로잡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준비된 잔치상에 먹거리가 없는 경우도 있으니 지켜보는 도리 밖에 없다.

춘추(유승호)는 대남보에게 말을 타지 못하고, 배멀미와 흔들리는 가마에 멀미가 난다고 한다. 또한, 말을 타지 못한다고 한다. 이에 대남보가 말타기를 가르치려 하지만 바로 내려버리고 만다.

금오산을 넘어선 춘추 일행은 춘추의 꾐에 빠져 여관에서 잠시 쉬어간다. 그런데 쉬고 있던 춘추를 찾아 나선 대남보는 춘추가 사라진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춘추는 죽방과 고도의 뒤에서 뜸금없이 나타나 비재에 관심을 두고 자신이 "내이름 김춘추"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정오 넘어 금오산을 넘어오고 있는 춘추는 비재를 볼 수 있을까? 금오산은 구미와 김천.선산에 걸쳐 있고 현재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이다.


경주까지의 직선 거리는 얼마나 될까? 약 120여km정도 이다. 드라마상 정오가 넘어서 금오산을 넘어선 춘추가 경주 서라벌에서 벌어진 비재를 볼 수 있을까? 술시(밤7~9시)에 벌어진 유신과 비담의 배재를 죽었다 깨어나도 볼 수 없다. 그런데 춘추는 비재를 보고 있다, 말도 타지 못하는 춘추가 어떻게 비재를 볼 수 있었을까? 혹시 춘추는 축지법을 사용한 것인가?

여기서 정말 그렇겠네 하는 분이 있다면 재대로 낚시에 걸려든 것이다. 금오산은 두군데가 있다.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구미와 김천에 있는 금오(金烏)산이고, 또 하나는 경주인근 내남면에 있는 금오산(金鰲山)이다.


구미.선산에 있던 금오산이 금오산이 된 이유는 금오신화를 쓴 김시습과 관련이 있다. 금오산에 오르다 보면 명금폭포가 있다. 그 폭포 옆으로 바위 굴이 하나 있다. 김시습이 그곳에서 금오신화를 작성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그래서 구미와김천에 있던 산이 금오(金烏)산이 된것이다.  김시습이 수도를 하면서 글을 쓸때 황금까마귀가 날아들었다고 해서 금오산, 금오신화라고 했다는 설도 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던 구미에 있는 금오산이나 경주 내남면에 있는 금오산이나 등장하면 안된다. 당항성으로 부터 금오산을 넘어오는 길은 김천을 관통해서 금오산에 도착하는 방법이 있지만, 거리상 경주까지는 반나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또한, 경주 남쪽에 있는 금오산을 예상했다면, 당항성으로 부터 들어오는 입구도 아니고, 금오산을 넘어왔다면 이미 경주에 도착한 것이다. <선덕여왕>에서는 월성(궁성) 북서쪽에 있는 첨성대도 월성(궁성) 동북쪽에 있다고 뻔뻔스레 말을 하니 그냥 그려려니 하시길 바란다.


어찌되었던 중요한것은 금오산이 아니다. 대부분 글이나, 소설이나 드라마를 볼때, 화자가 이끄는데로 끌려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배역을 소화하는 배우들을 욕을 하거나 칭찬을 한다. <선덕여왕>에 금오산이 나와서 화자(작가, 드라마)에 끌려가지 말고, 주체적으로 판단하자라는 의미로 낚시를 던져보았다.


미생이 비웃음을 받은 이유?

미생이 춘추가 말을 못탄다고 하자. 하종과 세종과 설원랑과 미실은 미생을 보면서 웃음을 짓는다. 왜 미생이 말이야기를 하자 미생을 비웃는 것일까?


미생은 경오(庚午)년(550) 생이고 을사(乙巳)년(585)에 화랑의 주가 되었다. 미실이 (미생)공에게 명하여 사다함공을 따르게 하여 낭도가 되었다. 당시 나이가 겨우 12살(561년)이었는데 말에 오를 수 없었다. 미진부공이 쫓아내려 하자, 미실이 말하기를 “어찌 나의 아우를 한번에 내칩니까?” 하였다. 사다함 또한 부득이 받아들였다. 문노가 꾸짖어 “무릇 낭도란 자의 힘이 말에 오를 수 없고, 검을 사용할 수 없다면, 하루아침에 일을 당할 때 어디에 쓸 것인가?” 하였다. 사다함이 용서를 빌며 말하기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우입니다. 얼굴이 아름답고 춤을 잘 추어 또한 여러 사람을 위로할 수 있으니, 이에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문노가 다시 따지지 않았다. 공은 검도를 좋아하지 않았다. 속으로 문노를 꺼려하여 경의를 표하지 않았기에, 사다함이 곤란하게 어려워하였다.

미생은 나이가 12살이 되도록 말을 타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당시의 기준으로 보았을때 말도 타지 못하는 화랑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 미진부에게 집밖으로 내쫓김을 당할 위기에도 처하게 된다. 그러니 당연히 문노는 미생을 가르칠 자질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간신히 사다함의 부탁으로 미생을 받아 들이나 미생은 검도를 좋아 하지 않고, 글과 노래와 춤추는 것으로 즐거움을 주었다.

미실과 미생의 아버지 미진부는 어떤 인물일까? 진흥왕 시기 백제와 고구려를 밀어내고 충주지역. 한강유역과 저 멀리 함경도까지 영토를 확장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8대 장군중에 하나이다. 그러니 미진부로 보았을때 미생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겠는가?

12년 신미(진흥왕 12년: 551)에 왕이 거칠부와 대각찬(大角)(특등위)구진(仇珍), 각찬(1~2등) 비태(比台), 잡찬(3등) 탐지(耽知), 잡찬 비서(非西), 파진찬 노부(奴夫), 파진찬(4등) 서력부(西力夫), 대아찬(5등) 비차부(比次夫) 아찬(6등) 미진부(未珍夫) 등 여덟 장군에게 명하여 백제와 더불어 고구려를 침공하게 하였다. 백제 사람들이 먼저 평양(平壤)을 격파하고 거칠부 등은 승리의 기세를 타서 죽령 바깥, 고현(高峴) 이내의 10군을 취하였다. - 삼국사기 거칠부 열전

유신과 알천 그리고 문노의 비기로 위기를 넘긴 비담

유신과 알천이 치열한 싸움을 하다가 둘이 쓰러진다. 그리고 알천이 일어서고, 유신이 일어선다. 그리고 유신이 소리를 한번 지르자 알천이 쓰러진다.

우리는 여기서 왜 알천이 쓰러졌을까?  하는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그냥 유신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그러할까? 아니면 유신이 7번 넘어져도 일어나는 개구리 왕눈이여서 일까?

우리는 세도가를 보고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날으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위세가 대단하다고 하지만. 유신은 정말 날으는 새도 떨어트리는 이적을 행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날으는 새도 떨어트리는 기세와 위세를 표현한 말이 아닐까 한다. 660년 백제 계백에 발목이 잡힌 후 유신과 소정방의 만남을 상기한다면, 유신이 알천을 소리로 제압한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비담은 보종과의 싸움에서 정석 플레이로는 싸움에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문노의 비기를 사용한다. 비담은 문노로 부터 직접 비기를 배울 수 없었다. 하지만, 비담은 무의 천재이다 ,그래서 문노가 하는 몸짓을 몰래 보고 스스로 깨우친것이다. 하지만 비담의 비기에서 태극권이나 취권의 냄새가 난다.

물론, 원작자는 잃어버린 신라고유의 무술이거나 태견이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노는 5세 사다함으로 부터, 14세 풍월주인 호림까지도 무예를 가르친 스승이다. 그런 문노의 비기를 보고 다들 놀란 표정을 짓는다.

공은 용력이 많고, 격검을 좋아하여 일찍 문노의 문하에 들어갔다. 검소하게 지냈으며  골품으로 뽐내지 않았다. - 화랑세기 14세 풍월주 호림

문노가 늙어서 비기를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죽어서도 612년 비재를 주관하는 문노이니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공은 건복(建福) 23년(606)에 세상을 떠났으며, 나이가 69세였다. 낭주는 이해에 공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선(仙)이 되었다. 공보다 10살이 적었다 - 화랑세기 8세 풍월주 문노

미실은 왜 패한 보종에게 참 잘싸웠다고 이야기를 했을까?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암중모색의 암살이나 감추고 싶은 어두운일은 다 보종이 처리한다. 30여차례 비재에서 패한적이 없을 만큼 천하무적인 보종이 15세 풍월주 비재에 참여하여 비담에 참패를 한다. 보종은 한없이 부끄러워한다.

그런데 미실은 의외로 보종을 찾아가 따스히 안아 주면서 보종아 "참 잘했다. 내아들"이라고 말을 해준다. 의외의 모습이지 않는가? 미실의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표현하고자 한것일까?

아니다. 미실과 보종을 바라보는 설원랑과 칠숙의 측은한듯 하면서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모습을 기억하기 바란다. 보종은 자신의 나약함을 어머니 미실에게 보이지 않고, 미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서 30여차례 비재에서 패한적이 없을 만큼 천하무적이 된것이다.
 
그리고 미실이 시키는 일이라면 지옥이라도 찾아 간다. 대다수의 격투가들에게 질문을 한다면 보종과 같은 역경을 이겨내고 최고수가 되었다고 말을 한다. 어릴적 너무나 약해서 몸을 단련시켰는데 어느덧 최고수가 되었다고 말이다. 이런 보종은 어떤 인물일까 궁금하지 않는가? 

(보종)공의 성품은 청아하였고 문장을 좋아하였고 …정이 많았다. 사람들을 위하여 웃고 울었으며, 온화함과 순량함은 마치 부녀와 같았다. 사람들이 병들어 고통을 받는 것을 보면, 슬프고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마치 자기가 아픈 것 같았다. 새와 짐승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였다. 한 마리의 벌레나 한 포기의 풀도 해친 적이 없었다. 선과 악, 이(利)와 해를 나누지 않았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늘 작은 청려(靑驪)에 걸터앉아 피리를 불며 시가를 지나가면 사람들이 공을 가리켜 ‘진선공자(眞仙公子)’라고 하였다. 얼굴은 관옥과 같았고 손은 마치 하얀 새싹과 같았다. 그림을 잘 그렸는데, 인물과 산수의 절묘함은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호림이 사랑하여 부제로 삼았다. 정이 마치 부부와 같아 스스로 여자가 되어 섬기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 하였다. - 화랑세기 16세 풍월주 보종

현대 의학적 관점으로 보종은 여성호르몬 과다 남성이였다. 또한, 호림을 향한 사랑은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써의 사랑이였다. 요즘 같으면 트랜스잰더이고, 성전환 수술을 단행했을 만한 하지 않은가?

선덕여왕 최대 떡밥 춘추를 뒤로 하고

사실 이번편은 춘추에 대한 기사를 송고할려고 했다. 그러나 글이 너무 늘어져 버렸다. 짧게 쓸려고 했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참으로 재미있는 요소가 너무 많다. 역사를 배우는 자는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

또한, 너무나 다르게 신라를 보여주고 있어서 더욱 흥미롭다. 환타지 사극의 최정점은 <태왕사신기>일 것이다. 하지만, 태왕사신기는 스스로 환타지 사극을 표방하고 있다, 또한, 기록상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들인 기본적인 팩트는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

하지만, 사극을 표방하고, 스스로 불충분한 사료를 바탕으로 "신라를 재현하겠다"는 정통사극을 표방한 <선덕여왕>은 태왕사신기도 시도하지 않은 기본팩트까지도 자의적(?)으로 바꿔 버린다. 최소한  불충분한 사료가 있다면, 그 사료만이라도 충실히 따르고, 미싱링크를 채워갈 생각을 해야한다. 그런게 사극이 갖추어야할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사극의 뼈대가 재대로 선것이다. 그런데, 선덕여왕은 그나마 적은 사료 조차도 쓰레기 통으로 처박아 버린다.

다음 뷰의 문화/연예 카테고리를 보시고, 역사에 관심이 없는 많은 여성 네티즌들은 갓쉰동이 일주일 내내 선덕여왕만을 주제로 지치지도 않고, 지겹도록 매일 장문의 글을 쓰는 것을 이해 하지 못할 것이다. 추천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갓쉰동이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미칠지경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선덕여왕에서 너무나 많은 떡밥을 투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한회 한회를 할때마다 글쓸 재료가 넘쳐난다. 오히려 못한 이야기가 더 많다. 이번편도 마찬가지로 많은 이야기꺼리가 있고, 선덕여왕의 최대 떡밥인 춘추를 다뤄보지도 못하고 글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춘추가 등장한 시간으로 치면 1분도 채 안될것이다. 몇주동안 밑밥만 투여하다 잠깐 춘추를 선보인 <선덕여왕>보다는 갓쉰동은 신의를 지킬것이다. 그러니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예고편. 춘추는 왜?어떻게? 비재에 나타났을까?

술시부터 풍월주 비재 장원전을 한다. 술시면 밤 7~9시에 해당한다. 그런데 춘추는 술시에 벌어진 비담과 유신의 결투를 구경하고 있다. 금오산에서 황금까마귀를 타고 날아서 왔을까? 아니면 축지법을 사용하고 왔을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왔을까? 당연히 말을 타고 왔다. 말을 타지 못한다는 말은 대남보를 속이려는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이유는 다음편으로 넘기도록 하겠다.

힌트는 춘추가 대남보에게 질문을 합니다. "서라벌에서 풍월주 비재가 있다며?" 이말이 함축하고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추천해주시고,  최신글도 일독해주실거죠?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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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skagns 2009.09.16 1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
    즐거운 하루 되세요!

  3. 화랑세기가 2009.09.16 1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역사서에도 저자가 있기에 그가 처한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인물이 선인이 되기도 하고, 악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미 내려오는 역사서조차 그 진위를 알 수 없고,
    저자에 따라 중국찬양론으로 흐를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짜피 역사란 판타지입니다.
    사실적 기술은 있을지라도, 선과 악은 나눌 수 없습니다.

    역사극이 환타지라고 논하며 비평하는 것도 좋지만,
    현대에 이 역사극이 우리나라와 이 드라마를 보는 이웃나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하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이미 현재에 발을 담그고 있고,
    그 현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른 글도 봐주실래요.. 제가 화랑세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쉽게 알수 있을 겁니다..


      선덕여왕은 사극판 트루먼쇼133'선덕여왕', 납량극보다 섬뜩한 비담, 그리고 640선덕여왕, 천추태후 사극의 묘미는 현실풍자146

      다음 최신글 목록에 보면 위 리스트가 있을 겁니다.

      사실 행간을 읽으시면 대부분 현실 비판입니다. 제글. 사극을 빙자한..

  4. BlogIcon 영웅전쟁 2009.09.16 1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춘추 글도 기대가 벌써 되는군요.
    드라마 사극이야 어찌 굴러가든 ㅎㅎㅎ
    글쎄요...
    길어질 수 밖에 없는 글 맥락이라 ㅋ
    호흡이 가쁘긴 하지만 ㅎㅎ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5. 떼르미 2009.09.16 1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내용과는 별 관계없는 사족입니다만, 죄송합니다만, 술시는 19시~21시 아닌가요? 자시와 착각하신 듯? 어제 드라마에서도 오후7시~9시라고 자막에 나온 것 같았는데...

    •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앗 그렇군요.. 그렇다면 더더욱 올수가 없겠네요.. 김춘추가 .. ㅋㅋ 수정해야 겠습니당.. 왜이리 사소한 것에 실수를.. ㄳ 합니다..

  6. 꼬꼬 2009.09.16 1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미실이 보종을 끌어안고 하는 말과 행동이
    꼭 비담에게 하는 것처럼 느껴졌네요...
    비담에게 '잘 싸웠다' '내 아들'아.. 이걸 다른 아들인
    보종을 대신 끌어안고 말하는 것 같았다는..

    •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8: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들인지 아직 모를때이지요.. 비담이..
      보종이 어릴적 부터 미실의 사랑을 받았지만, 보종은 유약했거든요. 그러니 자신을 이기고, 신라 최고의 전투사가 되었으니 그 아니 기쁘겠어요.. 비롯젔지만.. 최선을 다한 보종이 자랑스러웠던 거지요..

  7.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2009.09.16 1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고 재미도 있고..
    선덕여왕 끝난후면 의례히 찾아보게 되네요..ㅎㅎㅎ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8: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의례이 찾아오는 분이 많은뎅. 매일 매일 포스팅 하거든용.. 1일 1포스팅.. 다른 글도 봐주셈.. ㅋㅋ 추천은 필수.. ㅋㅋ

  8. 글쵸 2009.09.16 1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어제 보면서 춘추가 구라 치는구나 싶더군여. 춘추는 얼핏 보기에 대원군 이하응 같은 인물 입니다.
    외극유내극강이죠. 어쩌면 덕만은 춘추를 통하여 왕이란 무엇이고 신라의 왕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배워갈지도 모른다 싶네여. 춘추는 중국에서 왕의 그림자를 마음 속에 간직했다 보이고요. 다른 이야기이지만
    요즘 전개되는 JYP 사태. 개인적으로 그가 백홈 한다면 진영이나 그 주변에 미실급 사람이 있다 보입니다.
    어차피 감싸고 가봤자 사태만 키울 터, 그냥 쫓아보낸 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아 동정론이 우세하면 복귀, 아니면 냅두고. 완전 바둑의 꽃놀이패네여. 여론을 다룰줄 안다 보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럴수도 있는뎅.. 왕을 노리진 않았을 거예용.. 당시에는 춘추는 그저 공주의 자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요..

      박진영과 재범은 모르겠네용.. 미실급이 있는지.. 없는지.. 어짜피 진영은 욕을 바가지로 먹어도 할말 없는 상황이니..

  9. BlogIcon 에이프릴S 2009.09.16 1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떡밥 선덕여왕 ㅠ_ㅠ 그래도 너무 재밌어서 미치겠네요 ㅋ 한주의 사이클의 중심이 월화드라마가
    되다니... ㅠ_ㅠ..

    •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그러게용.. 한주의 사이클은 토.일이 되어야 하는뎅.. ㅋㅋ 떡밥이 너무 많아용.. ㅠ.ㅠ. 다 한주 내내 먹어도 못먹음..ㅋㅋ

  10. 푸른달 2009.09.16 1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정방 아닌가요?
    소방정이 아니라...

  11. BlogIcon pennpenn 2009.09.16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 부분에 구미 금오산 이야기를 하기에
    뜬금없다고 생각했지만 경주 금오산과 비교했더군요~

    전문적인 분석글 잘 보았습니다.

  12. 스앵 2009.09.16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기요,,

    소방정이 아니고,

    소정방 입니다...

    소방정 ㅋㅋ

  13. BlogIcon 2009.09.16 1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떡밥이 너무 많아서,..... 여기저기 알아보고자 인터넷 돌아다녔다라는...

  14. 2009.09.16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두 미실이 끌어안고 얘기할때 비담에게 한 말인줄 알았는데요..^^

  15. 최대적 2009.09.16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춘추의 행적을 보면 실제로 권모술수에 능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춘추가 유년기를 수나라에서 보냈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인 소통이 있었던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큰 타격을 입은 수나라는 당나라에 패망했으나 신라는 당에도 협력적이며 굴욕적인 외교자세를 보입니다. 실제 백제와의 전투에서 신라는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 이길수 없는 싸움이란걸 알고 있었으므로 당나라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됩니다. 이후 당의 세력을 백제에서 몰아낼때도 실제적으로는 백제세력을 교묘하게 이용하게 됩니다. 실제적으로 자신의 힘보다는 세력간의 균형을 교묘하게 이용하며 적으로 적을 이기는 술수를 이용하여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비정상적인 통일을 이끌어냅니다. 가장 약한 나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신라의 입장으로는 높이 살만한 것이지만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보자면 민족 최대의 적이 되는 일이 벌어진것이지요.

  16. BlogIcon TV FUN 2009.09.16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 님.
    이번에도 글 잘 읽었습니다.

    드라마 내용과 실제 역사를 함께 비교해주셔서
    재미도 있고 공부도 되는... 일석이조라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갓쉰동님...:)

    •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게 봐주시니 언제나 ㄳ 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조금더 빨리 tv펀에 노출이 되었음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만.. tv-fun 나름의 내부 사정이 있겠다 싶습니당..

  17. jhaesea 2009.09.16 17: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춘추가 당항성에서 배를 타고 경주로 올 것이고 그렇다면 금오산을 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당항성에서 배를 타고 오지도 않을 뿐만 아니고, 당항성에서 배를 타고 백제의 근해를 경유해서오더라도.. 울산.토함산쪽으로 와야지용..

      경주 금오산은 남쪽에 있다눈..

  18. 갓쉰동님 광팬 2009.09.16 2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 관심 없는 여성 네티즌이라... 그동안 갓쉰동 님의 글을 쭉 봐왔고 가급적인면 추천과 댓글을 날리던 저로서는 이번 대목은 기분 좋지 않군요.(전 20대 중반의 여성이고 일반 회사원이지만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이 많은 시민입니다.) 저 한줄의 글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 보면 오해를 살 수 있는 글입니다. 언어 표현에 신중을 기해주시길...

    근데 정말 궁금한 점은 선덕여왕에서 주인공들의 나이대가 어떻게 되는 지 궁금합니다. 아직 젊은 덕만의 얼굴과 벌써 청소년이 되버린 조카 춘추의 얼굴과 파파할머니가 되어야 할 미실의 팽팽한 얼굴을 보면 이 드라마 자체가 판타지 드라마로 흐르는게 아닌가 의구심이 드는군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17 0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다수의 여성들은 역사보다는 등장하는 배우인물과 의상과 악세사리에 관심이 많지요.. 오히려 님이 특이한 케이스 입니당.. ㅋㅋ

      다음 주제가 여성사극에 관한 이야기 입니당.. 아마도 실망할지도.. 하지만 밑밥이라고 생각하셈.. 오늘글은 일종의 백신

      언젠가 함 정리를 해볼께용.. 불사와 도인의 나라에 대해서.. ㅋㅋ

  19. BlogIcon 주하아빠~♡ 2009.09.17 0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선덕여왕도 너무 재밌지만...갓쉰동님의 해설도 너무 재밌네요...^^

  20. nightbird 2009.09.17 1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입담이 살아있는 전문적인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쭉 부탁드려요~~

    - 인물들의 의상과 악세사리에는 전혀 관심없는 특이 케이스 삼심대 여성으로부터.ㅋㅋ

  21.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천명(박예진)

그동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만을 토대로 천명과 덕만이 어머니가 다른 이유를 증명하였다.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천명은 덕만과 같은 어머니 일지라도 천명이 나이가 많고, 덕만은 나이가 어린 동생이라고 주장했었다. 이제 천명은 절대로 마야의 소생이 아님을 증명하고, 마지막 가능성을 버릴려고 한다.

일단, 천명의 나이를 정확히는 알수는 없지만, 천명의 아들인 춘추가 603년 생이라는 사실은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천명의 나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천명이 13~15세에 용수(용춘)에게 시집을 가서 603년 춘추를 낳았다면, 천명은 587~589년 생이다.

그럼 천명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살펴 볼 차례이다. 천명의 아버지는 진평왕이다. 진평왕은 13세인 579년 진지왕이 폐위되고, 26대 신라국왕에 등극했다. 그렇다면 진평왕은 567년 생이 된다. 만약, 마야가 천명의 어머니라는 가정하에서 마야의 나이를 유추해 보자,

마야가 진평왕과 같이 등극시나 등국후 바로 왕후가 되었다면, 진평과 나이가 비슷할 것이다. 신라에는 13세 이전에 결혼하는 것 보다 더 빠르게 결혼을 하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는다. 또한, 민며느리제도가 꼭 동옥저만의 풍습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안의 어린 신부를 맞아 키워서 정식 며느리로 삼는 경우가 조선시대까지도 비일비재 했었다. 진위를 알 수 없는 화랑세기에는 12세 풍월주 보리는 13세에 결혼을 했지만, 아내인 보룡(만호/숙태자)는 7살에 시집을 갔다.  또한, 일제시기 여성를 성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기위해서 어린신부들이 일찍이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성만이 알 수 있는 진평/마야와 천명/덕만의 생리학적 접근

그렇다면 마야는 진평왕과 같은 나이로 유추해 보자.


진평,용춘,천명,춘추의 생몰년 비교와 마야,천명,덕만 나이 추정


진평왕은 천명을 19~23살 정도에 낳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시 시대상황으로 보면 조금 늦은 나이때 천명을 낳은  것이다. 그렇다면 천명위로 진평왕에게 몇몇의 자식이 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이제 천명의 주변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 하고, 이전에 추적한대로 덕만의 출생시기는 632년 15~18세에서 정도로 추측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632년 등극과 동시에 대신인 을제에 국정전반을 관할하게 하여, 일종의 을제 섭정기간이 지나고, 634년 선덕왕 2년 음갈문왕과 결혼을 하고, 진평왕이 사용하던 <건복>이란 연호를 <인평>으로 바꾸면서, 진평왕의 유흔통치를 끝내고, 직접통치의 길을 나섰음을 신라에 천명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덕만은 615년(18세등극시)생에서 618년(15세등극시)생 사이가 된다. 

왜 덕만은 어린나이에 왕이 될 수 밖에 없는가? 이와 관련된 기사는 다음 목록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럼 천명과 덕만의 기록을 비교해 보자, 천명은 585~589년생이고, 덕만은 615~618년 생이다. 이들간에 나이차는 최소 27살에서 많게는 34살 차이가 난다.

615년에 덕만의 아버지 진평(567년생)과 어머니 마야는 567년생이니 이들이 덕만을 낳을때 나이는 49~52살이 된다. 아버지 진평으로써도 늦은 나이이기도 하지만, 남자라는 동물은 문지방 넘을 힘만 있다면 얼라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문지방 넘을 힘이 없고,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애를 낳을 수 있다.

덕만(이요원)

하지만 여성인 어머니 마야의 나이는 여성의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이례적이지 않는가? 더 나아가 덕만이 618년 생이라면 마야의 나이는 52세가 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분명히 덕만는 마야의 소생이라고 했다.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은 마야는 진평왕이 679년 왕위에 있을때 왕후가 아니라는 반증이지 않을까? 물론, 현재 기네스 북에 등재 된 최고령 자연임신과 출산은 59세이다. 현재 의료가 발달된 혜택을 충분히 보고 있는 영국의 사례이다. 한국의 사례는 52세가 최고령 출산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현대 여성의 폐경기는 45~50세 전후로 알려졌다. 과거 신라사회에서도 여성의 폐경기가 44~52세 정도였을까? 마야가 아주 늙은 나이때 덕만을 낳았을 수도 있다. 이는 아주 특별한 케이스가 된다. 차라리 천명이 덕만을 낳았다면 믿겠지만, 마야가 20전후에 천명을 낳고, 49~52세에 덕만을 낳았다고 한다면 한번은 의심해 봐야 한다. 또한, 마야가 18세~19세에 천명을 첫딸로 낳았다라고 생각한다면, 신라의 결혼 풍습을 알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2007년 기준 통계청 자료, 여성 년령대별 합계출산율표


위의 표는 2007년 전국의 가임여성15~49세의 합계출산율을 반영한 것이다. 45~49세 여성은 이처럼 현대의학과 영양이 충분히 공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1.25명의 0.2%만을 담당하고 있다. 그냥 표로 보았을때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이를 그림으로 본다면 어찌될까?

2007년 통계청자료, 여성 연령대별 합계출산율

삼국사기 기록대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여서 "천명은 진평왕의 딸이고, 덕만은 진평왕과 마야의 장녀이다"를  받아 들인다면, 합리적으로 천명은 진평왕 초년에 왕비인지 후비인지 이름을 알 수 없는 비에게서 낳았고, 덕만은 진평왕 초년의 왕비가 죽거나, 늙어서 아들을 낳기 위해서 들은 후비였거나, 정비로 받아들이고 덕만을 낳았다고 보는게 합리적이 해석이 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기록대로 마야의 나이가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진평과 마야의 장녀인 덕만을 615~8년경 낳았다고 보는게 합리적일까요? 아니면 기록되지 않는 천명의 어머니까지도 마야가 되어 588년경 천명을 낳고, 615~8년경인 49~52살 정도에 덕만을 낳아다고 보십니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는 다르게 화랑세기는 "천명과 덕만의 모후를 마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박창화가 1930년대에 창작한 역사소설이 될수 밖에 없는 핵심적인 키가 됩니다. 마야가 천명과 덕만의 모후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생리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하다, 그러니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박창화의 창작 역사소설이다. 라고 결론을 낼 수도 있습니다.

마야(윤유선)

하지만, 여기에는 약간의 트릭이 숨어 있습니다. 마야를 진평왕과 같은 나이로 추측했다는 겁니다. 이 함정에 벗어 난다면 쉽게 생리학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진평은 13세에 왕위에 등극하고 18세 친정체제를 구축하면서 꽃다운 13세 전후의 복승/송화(지소/영실)의 딸, 마야를 왕비로 맞이 했다면 당연히 마야가 더 어렸을 수도 있습니다. 진흥왕은 7살에 왕이 되었는데, 화랑세기에는 진흥비인 사도(기오/흥도) 또한, 7살이였다고 합니다.

그럼 위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49~52세는 가능한 44~47세가 됩니다. 49~52세는 불가능한 나이가 되지만, 물론, 3%의 극히 낮은 분포에 해당합니다만, 44~47세는 생리학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 않습니다. 진평왕이 22살, 마야는 꽃다운 낭낭14~18세 미만에 천명을 낳았고, 44~47세 이전인 615년에 늦둥이 덕만을 낳았다. 그러니 천명은 덕만과 같이 마야의 소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단, 삼국사기의 기록을 부정했을때 라는 단서가 붙습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을 신뢰한다면 덕만과 천명은 이복자매 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천명과 덕만의 모후는 마야' 라는 화랑세기를 불신할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위에서 언급을 했지만, 40대 중반에 덕만을 낳았다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해 9월 진평제는 보명과 미실을 좌우후로 삼았다. - 화랑세기 22세 풍월주 양도

화랑세기에는 마야가 진평왕 초년의 왕후가 아니였음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진평은 초년에 보명(지소/구진)과 미실(미진부/묘도)을 좌.우 왕후로 했다고 합니다. 마야가 진평의 첫번째 왕후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화랑세기를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겁니다. 화랑세기는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빠지는 마약과도 같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방점을 찍어 두고, 화랑세기의 동부동모 자매간을 가능성으로 열어 두고자 합니다. 어떤것을 선택하던 덕만은 18세미만에 왕위에 올랐다는 불변입니다. 마야는 진평의 첫번째 왕후가 아니였다는 겁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왜 홍시가 홍시맛이 나는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습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봐야 아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천명을 마야의 소생으로 볼것인가 말것인가를 결정하고 삼국사기.유사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느냐 하는 거지요. 만약, 삼국사기를 불신한다면, 최소한 천명, 덕만, 마야의 관계는 화랑세기가 정확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문화.연예 카테고리 다수를 차지 하고 있는 여성들이 그 답을 줄 차례입니다. 어떠십니까?

문제의 핵심은 마야가 진평의 초기 정비라는 가정에 따른 겁니다. 만약, 마야가 진평의 첫번째 왕후가 아니고, 손승만 왕후처럼, 왕자를 생산하기 위해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천명을 낳은 생모 뒤를 이어서 왕후가 되었다면, 천명과 마야, 덕만과 천명의 관계가 아주 자연스럽게 해결이 됩니다. 또한, 천명을 대신해서 덕만이 왕위를 이을수 밖에 없는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합니다.

화랑세기에서 처럼  덕만도 천명의 양보로 진평의 뒤를 이어 27세 신라왕에 올랐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물론, 조선시대 세종이 형들의 양보(?)로 이방원(태종)의 4째 아들로 왕위를 이을 수 있습니다. 왜? 세종이 이방원의 셋째아들이 아니고 넷째 아들이냐?고 반문하는 분들 
2009/07/30 - [역사이야기] - 조선 세종, 신라 덕만, 천명의 기록 비교해 보니  기사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어짜피 천명이 덕만보다 나이가 최소한 27~34살은 많은 진평의 자매간이다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야는 진평의 첫번째 왕후인것 같습니까? 천명과 덕만이 마야의 딸인것 같습니까? 아니면 천명과 덕만이 다른 어머니를 두었던 것 같습니까? 이 세가지 명제가 모두  참이 되기 위한 조건은 여성은 폐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리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마야는 진평의 첫번째 왕후는 아니다'. '천명은 덕만의 나이 많은 언니다'라는 명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으로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봅니다.

다만, '천명과 덕만은 마야의 딸이다'라는 화랑세기의 명제는 불가능하지만 여성의 생리학적으로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만 언급을 하겠습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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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White Rain 2009.08.17 06: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후. 복잡하군요. 나이가^^ 그런데 이걸 어떻게 다 정리하셨어요? 전 그냥 봐도 머리가 아픈데. 존경합니다.

  2. BlogIcon 루스(ruth) 2009.08.17 0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엄청난 분석이신데요. 눈이 띠용~ @_@

  3. BlogIcon 초록누리 2009.08.17 0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복잡하지만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하신 갓쉰동님 덕분에 또 새로 복습하고 갑니다. 블로그 제목은 바꾸셨는데 닉네임은 아직 안바꾸셨나봐요? ^^:;;

    • BlogIcon 갓쉰동 2009.08.17 0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___^
      닉을 한꺼번에 바꿔어 버림 기존 사람들이 모르잖아요.. ㅋㅋ

      이번주내에 다음 메인에 한 두번 올라가면.. 그럴리는 없겠지만,.. ㅋㅋ

  4.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8.17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대단하십니다.. ^^

  5. BlogIcon 아이러니♡ 2009.08.17 0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야 정말 엄청난 글을 올려주셨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6. 2009.08.17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BlogIcon 영웅전쟁 2009.08.17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기를 누설 하셨군요...
    이젠 왠만한 남성도 감 잡게 되었다는 ㅋ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막바지 무더위 잘 넘겨
    건강하게 지내시시는 이번주 되시길 바랍니다.

  8. BlogIcon labyrint 2009.08.17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9. BlogIcon 김명곤 2009.08.17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특한 분석에 한 수 배웁니다.
    갓쉰동보다 이반도 더 맘에 들고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8 0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댓글을 달아 주시고..

      이반이 좀 부드러운 이미지 같기는 하지요? 숨어 있는 이미지는 전혀 상반되는데요.. ㅋㅋ

  10.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천명(박예진)

그동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만을 토대로 천명과 덕만이 어머니가 다른 이유를 증명하였다.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천명은 덕만과 같은 어머니 일지라도 천명이 나이가 많고, 덕만은 나이가 어린 동생이라고 주장했었다. 이제 천명은 절대로 마야의 소생이 아님을 증명하고, 마지막 가능성을 버릴려고 한다.

일단, 천명의 나이를 정확히는 알수는 없지만, 천명의 아들인 춘추가 603년 생이라는 사실은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천명의 나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천명이 13~15세에 용수(용춘)에게 시집을 가서 603년 춘추를 낳았다면, 천명은 587~589년 생이다.

그럼 천명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살펴 볼 차례이다. 천명의 아버지는 진평왕이다. 진평왕은 13세인 579년 진지왕이 폐위되고, 26대 신라국왕에 등극했다. 그렇다면 진평왕은 567년 생이 된다. 만약, 마야가 천명의 어머니라는 가정하에서 마야의 나이를 유추해 보자,

마야가 진평왕과 같이 등극시나 등국후 바로 왕후가 되었다면, 진평과 나이가 비슷할 것이다. 신라에는 13세 이전에 결혼하는 것 보다 더 빠르게 결혼을 하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는다. 또한, 민며느리제도가 꼭 동옥저만의 풍습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안의 어린 신부를 맞아 키워서 정식 며느리로 삼는 경우가 조선시대까지도 비일비재 했었다. 진위를 알 수 없는 화랑세기에는 12세 풍월주 보리는 13세에 결혼을 했지만, 아내인 보룡(만호/숙태자)는 7살에 시집을 갔다.  또한, 일제시기 여성를 성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기위해서 어린신부들이 일찍이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성만이 알 수 있는 진평/마야와 천명/덕만의 생리학적 접근

그렇다면 마야는 진평왕과 같은 나이로 유추해 보자.


진평,용춘,천명,춘추의 생몰년 비교와 마야,천명,덕만 나이 추정


진평왕은 천명을 19~23살 정도에 낳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시 시대상황으로 보면 조금 늦은 나이때 천명을 낳은  것이다. 그렇다면 천명위로 진평왕에게 몇몇의 자식이 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이제 천명의 주변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 하고, 이전에 추적한대로 덕만의 출생시기는 632년 15~18세에서 정도로 추측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632년 등극과 동시에 대신인 을제에 국정전반을 관할하게 하여, 일종의 을제 섭정기간이 지나고, 634년 선덕왕 2년 음갈문왕과 결혼을 하고, 진평왕이 사용하던 <건복>이란 연호를 <인평>으로 바꾸면서, 진평왕의 유흔통치를 끝내고, 직접통치의 길을 나섰음을 신라에 천명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덕만은 615년(18세등극시)생에서 618년(15세등극시)생 사이가 된다. 

왜 덕만은 어린나이에 왕이 될 수 밖에 없는가? 이와 관련된 기사는 다음 목록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럼 천명과 덕만의 기록을 비교해 보자, 천명은 585~589년생이고, 덕만은 615~618년 생이다. 이들간에 나이차는 최소 27살에서 많게는 34살 차이가 난다.

615년에 덕만의 아버지 진평(567년생)과 어머니 마야는 567년생이니 이들이 덕만을 낳을때 나이는 49~52살이 된다. 아버지 진평으로써도 늦은 나이이기도 하지만, 남자라는 동물은 문지방 넘을 힘만 있다면 얼라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문지방 넘을 힘이 없고,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애를 낳을 수 있다.

덕만(이요원)

하지만 여성인 어머니 마야의 나이는 여성의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이례적이지 않는가? 더 나아가 덕만이 618년 생이라면 마야의 나이는 52세가 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분명히 덕만는 마야의 소생이라고 했다.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은 마야는 진평왕이 679년 왕위에 있을때 왕후가 아니라는 반증이지 않을까? 물론, 현재 기네스 북에 등재 된 최고령 자연임신과 출산은 59세이다. 현재 의료가 발달된 혜택을 충분히 보고 있는 영국의 사례이다. 한국의 사례는 52세가 최고령 출산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현대 여성의 폐경기는 45~50세 전후로 알려졌다. 과거 신라사회에서도 여성의 폐경기가 44~52세 정도였을까? 마야가 아주 늙은 나이때 덕만을 낳았을 수도 있다. 이는 아주 특별한 케이스가 된다. 차라리 천명이 덕만을 낳았다면 믿겠지만, 마야가 20전후에 천명을 낳고, 49~52세에 덕만을 낳았다고 한다면 한번은 의심해 봐야 한다. 또한, 마야가 18세~19세에 천명을 첫딸로 낳았다라고 생각한다면, 신라의 결혼 풍습을 알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2007년 기준 통계청 자료, 여성 년령대별 합계출산율표


위의 표는 2007년 전국의 가임여성15~49세의 합계출산율을 반영한 것이다. 45~49세 여성은 이처럼 현대의학과 영양이 충분히 공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1.25명의 0.2%만을 담당하고 있다. 그냥 표로 보았을때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이를 그림으로 본다면 어찌될까?

2007년 통계청자료, 여성 연령대별 합계출산율

삼국사기 기록대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여서 "천명은 진평왕의 딸이고, 덕만은 진평왕과 마야의 장녀이다"를  받아 들인다면, 합리적으로 천명은 진평왕 초년에 왕비인지 후비인지 이름을 알 수 없는 비에게서 낳았고, 덕만은 진평왕 초년의 왕비가 죽거나, 늙어서 아들을 낳기 위해서 들은 후비였거나, 정비로 받아들이고 덕만을 낳았다고 보는게 합리적이 해석이 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기록대로 마야의 나이가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진평과 마야의 장녀인 덕만을 615~8년경 낳았다고 보는게 합리적일까요? 아니면 기록되지 않는 천명의 어머니까지도 마야가 되어 588년경 천명을 낳고, 615~8년경인 49~52살 정도에 덕만을 낳아다고 보십니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는 다르게 화랑세기는 "천명과 덕만의 모후를 마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박창화가 1930년대에 창작한 역사소설이 될수 밖에 없는 핵심적인 키가 됩니다. 마야가 천명과 덕만의 모후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생리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하다, 그러니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박창화의 창작 역사소설이다. 라고 결론을 낼 수도 있습니다.

마야(윤유선)

하지만, 여기에는 약간의 트릭이 숨어 있습니다. 마야를 진평왕과 같은 나이로 추측했다는 겁니다. 이 함정에 벗어 난다면 쉽게 생리학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진평은 13세에 왕위에 등극하고 18세 친정체제를 구축하면서 꽃다운 13세 전후의 복승/송화(지소/영실)의 딸, 마야를 왕비로 맞이 했다면 당연히 마야가 더 어렸을 수도 있습니다. 진흥왕은 7살에 왕이 되었는데, 화랑세기에는 진흥비인 사도(기오/흥도) 또한, 7살이였다고 합니다.

그럼 위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49~52세는 가능한 44~47세가 됩니다. 49~52세는 불가능한 나이가 되지만, 물론, 3%의 극히 낮은 분포에 해당합니다만, 44~47세는 생리학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 않습니다. 진평왕이 22살, 마야는 꽃다운 낭낭14~18세 미만에 천명을 낳았고, 44~47세 이전인 615년에 늦둥이 덕만을 낳았다. 그러니 천명은 덕만과 같이 마야의 소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단, 삼국사기의 기록을 부정했을때 라는 단서가 붙습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을 신뢰한다면 덕만과 천명은 이복자매 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천명과 덕만의 모후는 마야' 라는 화랑세기를 불신할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위에서 언급을 했지만, 40대 중반에 덕만을 낳았다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해 9월 진평제는 보명과 미실을 좌우후로 삼았다. - 화랑세기 22세 풍월주 양도

화랑세기에는 마야가 진평왕 초년의 왕후가 아니였음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진평은 초년에 보명(지소/구진)과 미실(미진부/묘도)을 좌.우 왕후로 했다고 합니다. 마야가 진평의 첫번째 왕후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화랑세기를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겁니다. 화랑세기는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빠지는 마약과도 같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방점을 찍어 두고, 화랑세기의 동부동모 자매간을 가능성으로 열어 두고자 합니다. 어떤것을 선택하던 덕만은 18세미만에 왕위에 올랐다는 불변입니다. 마야는 진평의 첫번째 왕후가 아니였다는 겁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왜 홍시가 홍시맛이 나는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습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봐야 아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천명을 마야의 소생으로 볼것인가 말것인가를 결정하고 삼국사기.유사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느냐 하는 거지요. 만약, 삼국사기를 불신한다면, 최소한 천명, 덕만, 마야의 관계는 화랑세기가 정확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문화.연예 카테고리 다수를 차지 하고 있는 여성들이 그 답을 줄 차례입니다. 어떠십니까?

문제의 핵심은 마야가 진평의 초기 정비라는 가정에 따른 겁니다. 만약, 마야가 진평의 첫번째 왕후가 아니고, 손승만 왕후처럼, 왕자를 생산하기 위해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천명을 낳은 생모 뒤를 이어서 왕후가 되었다면, 천명과 마야, 덕만과 천명의 관계가 아주 자연스럽게 해결이 됩니다. 또한, 천명을 대신해서 덕만이 왕위를 이을수 밖에 없는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합니다.

화랑세기에서 처럼  덕만도 천명의 양보로 진평의 뒤를 이어 27세 신라왕에 올랐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물론, 조선시대 세종이 형들의 양보(?)로 이방원(태종)의 4째 아들로 왕위를 이을 수 있습니다. 왜? 세종이 이방원의 셋째아들이 아니고 넷째 아들이냐?고 반문하는 분들 
2009/07/30 - [역사이야기] - 조선 세종, 신라 덕만, 천명의 기록 비교해 보니  기사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어짜피 천명이 덕만보다 나이가 최소한 27~34살은 많은 진평의 자매간이다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야는 진평의 첫번째 왕후인것 같습니까? 천명과 덕만이 마야의 딸인것 같습니까? 아니면 천명과 덕만이 다른 어머니를 두었던 것 같습니까? 이 세가지 명제가 모두  참이 되기 위한 조건은 여성은 폐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리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마야는 진평의 첫번째 왕후는 아니다'. '천명은 덕만의 나이 많은 언니다'라는 명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으로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봅니다.

다만, '천명과 덕만은 마야의 딸이다'라는 화랑세기의 명제는 불가능하지만 여성의 생리학적으로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만 언급을 하겠습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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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White Rain 2009.08.17 06: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후. 복잡하군요. 나이가^^ 그런데 이걸 어떻게 다 정리하셨어요? 전 그냥 봐도 머리가 아픈데. 존경합니다.

  2. BlogIcon 루스(ruth) 2009.08.17 0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엄청난 분석이신데요. 눈이 띠용~ @_@

  3. BlogIcon 초록누리 2009.08.17 0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복잡하지만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하신 갓쉰동님 덕분에 또 새로 복습하고 갑니다. 블로그 제목은 바꾸셨는데 닉네임은 아직 안바꾸셨나봐요? ^^:;;

    • BlogIcon 갓쉰동 2009.08.17 0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___^
      닉을 한꺼번에 바꿔어 버림 기존 사람들이 모르잖아요.. ㅋㅋ

      이번주내에 다음 메인에 한 두번 올라가면.. 그럴리는 없겠지만,.. ㅋㅋ

  4.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8.17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대단하십니다.. ^^

  5. BlogIcon 아이러니♡ 2009.08.17 0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야 정말 엄청난 글을 올려주셨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6. 2009.08.17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BlogIcon 영웅전쟁 2009.08.17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기를 누설 하셨군요...
    이젠 왠만한 남성도 감 잡게 되었다는 ㅋ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막바지 무더위 잘 넘겨
    건강하게 지내시시는 이번주 되시길 바랍니다.

  8. BlogIcon labyrint 2009.08.17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9. BlogIcon 김명곤 2009.08.17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특한 분석에 한 수 배웁니다.
    갓쉰동보다 이반도 더 맘에 들고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8 0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댓글을 달아 주시고..

      이반이 좀 부드러운 이미지 같기는 하지요? 숨어 있는 이미지는 전혀 상반되는데요.. ㅋㅋ

  10.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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