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드라마 선덕여왕이 62회 마지막 회를 남겨두고 61회에서 비담이 난을 일으킨다.

이유는 드라마에서 여러 가지 들고 있지만 사이코 염종과 코찌질이 춘추의 되지도 않는 계략 때문에 일국의 상대등이란 자가 덕만이 자신을 봐주지 않는다는  어릿광 때문에 경주 한복판에서 덕만을 몰아내고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 반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드라마 작가의 수준으로는 충분히 비담이 난을 일으킬 만 할지도 모른다.

비담은 "내가 신국의 왕이 되어 덕만 너를 가질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상대등 비담이 드라마 선덕여왕 설정 상 68세가 넘은 덕만을 차지하기 위해서 69세가 넘은 비담이 난을 일으키겠는가? 비담이 난을 일으키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글 말미의 비담관련 기사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늙은 사람들이 사랑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전혀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 것 아닌가?

모든 세상은 남녀 간의 사랑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 다반사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이리스도 따지고 보면 국가에 대한 충성이나 그런 건 눈꼽 만큼도 찾아보기 힘들다. 욕망과 사랑의 충돌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사랑 때문에 배신을 하고, 사랑 때문에 복수에 나선다. 대의도 없고 명분도 없다.

사랑이란 젊었을 때 불타오른 것만이 사랑이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의 구성은 너무나도 허술하기 그지가 없다. 아무리 선덕여왕 작가들이 드라마  시청자를 알로 보고 있고, 드라마는 드라마니 괜찮아 하는 역사는 고사하고 드라마가 갖춰야할 기본적인 개연성과 일관성은 처음부터 무시하는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극이고, 단순히 이쁜 배우들을 보여주면 침을 흘리는 사람들로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극중에서 덕만이 월성에 주둔하고, 유신은 남산의 골짜기에서 놀고 있다는 말을 하고 낭산의 지원군을 보낸다. 이틈을 타고 비담은 낭산 위에 있는 명활성을 점령해 버린다. 그리고 농성전을 버린다. 그리고 미실의 난 때 없애 버리겠다고 하는 화백회의가 난데없이 등장해서 덕만을 왕에서 축출하고 비담을 왕(?)으로 하겠다는 결의를 한다.


하지만, 극중에서 나온 지도를 보면 또한번 웃을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명활성은 낭산 북쪽 평지 위에 있지 않다. 명활성은 지금의 보문단지와 불국사를 넘어가는 토함산에 이르는 길에 있는 산성에 있다. 오죽하면 명활산성이라고 하겠는가? 말은 산성인데 평지성으로 나오는 명활성은 어디인지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고서는 알 수 조차 없다. 명활산성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루비님의 덕만 배신한 비담의 난 근거지 명활산성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비담의 어미로 나오는 미실은 대야성에서 죽는다. 하지만 아들로 나오는 비담은 비담이 난을 일으키는 명활산성으로 나오지만 드라마 대본과 소품으로 본다면 평지성으로 나온다. 사실 미실의 대야성은 평지성에 가깝다. 단지, 평지위에 우뚝 솟은 봉우리에 있고 남쪽은 강을 끼고 있는 절벽으로 이뤄져 있어서 난공불락이였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대야성은 산성위에 있는데 독을 푼다는 한마디에 신국을 지배했다는 미실은 아무 의미도 없이 자살하고 만다.

도대체 드라마 선덕여왕은 작가들이나 제작진 자신만의 상속의 지도를 가지고 물리학의 상식을 반하는 내용이 너무나도 많이 나와서 어떻해 해야 할지모를 정도 이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초등학교 물리 공부도 하지 않고 만화책만 들고 팠나 아니면 요즘은 보기 드물다는 공부 시간에 공부는 하지 않고 운동을 했다는 전설상에 나오는 운동부 출신인가 헛갈릴 때가 있다.

어쨌든 낭산을 끌어들인 이유는 글쓴이가 작가가 아닌 관계로 알 수는 없지만, 덕만이 죽고 낭산에 묻혔다는 기록을 토대로 그냥 집어넣은 듯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인다.

62회 예고편을 보고 있노라면 "월성에 유성이 떨어졌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천연덕 스럽게 덕만이 살아서 지휘를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들은 도대체 한권으로 읽는 삼국사기 한글판이라도 보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의 역사지식으로 대하 62부작 역사 드라마를 써 내려간다.

"월성에  유성이 떨어졌어요"라는 말이 나오려면 이미 덕만은 죽고 10일이 지난 후이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이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이순신 장군의 유언을 패러디 하지 않았거나,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이겼다는 고사를 패러디 하지 않았다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은 보기 드물게 역사와는 110% 불일치 사극이지만 해도 너무한 것이 아닐까 한다.

16년(647) 봄 정월에 비담과 염종(廉宗) 등이 말하기를 “여자 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 하여 반역을 꾀하여 군사를 일으켰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8일에 왕이 죽었다. - 삼국사기


 

대신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이 여자 임금(女主)이 잘 다스리지 못한다 하여 군사를 일으켜 왕을 폐하려 하니 왕은 스스로 왕궁 안에서 방어하였다. 비담 등은 명활성(明活城)에 주둔하고 왕의 군대는 월성(月城)에 머물고 있었다. 공격과 방어가 10일이 지나도 결말이 나지 않았다. - 삼국사기 김유신열전 53세


여기서 "왕은 스스로 왕궁 안에서 방어를 하였다"를 덕만이 왕궁안에서 방어를 하였다고 해석한다면 역사서를 덮어 그냥 선덕여왕 작가들 처럼 술주정 야부리 수준 이야기를 하는게 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나 기록으로 본 비담의 난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12/1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 최후 진압세력은 미실파? - 역사와 반대인 드라마 하지만 근대사와 너무나 유사한 드라마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어짜피 악역 비담이 시청자의 호응에 의해서 악역이 아닌 <사랑 때문에> 모든 걸 목숨을 거는 역할 이였고, 단지 드라마 시청률 때문에 늙지 않고 살아가는 흑발마녀 <미실>과 그에 못지않게 살아가는 덕만과  단지, 김춘추가 유승호라는 이유 때문에 44살이 되도록 콧수염은 고사하고 변성기도 지나지 않는 목소리로 자신의 작은 아버지 비담에게 악담을 하고, 기껏 대사라고는 덕만이나 병풍알천의 추임새춘추도 있으니 말이다.


사실 비담의 난에 개입하고 있는 미실의 남동생인 미생이나 세종과 미실의 아들인 하종은 죽어도 한참 전에 죽은 자들이다. 또한, 주진은 드라마 설정 상 100살이 넘은 고령이고, 14세 풍월주 호재(호림)은 덕만의 어머니인 마야와 형제간이다.

즉 덕만의 외삼촌이 호재(림)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 세력에 복무를 했으면 했지, 비담의 난에 가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역사와 전혀 반대로 그리고 있으니 덕만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해도 누가 머라할 사람도 없고, 비담과 덕만이 결혼을 해서 애를 한 타스를 낳았다고 해도 머라고 할 사람도 없다.

이왕 역사와 무관한 사극이라면 비담이 염종과 귀족세력을 모두 독살 시켜버리고, 덕만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아름답게 포장하여 마무리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라고 하겠다. 드라마에서도 덕만이 자신의 말년을 비담과 보내려는 한 것은 진심이였다고 하지 않던가? 그 누구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과 덕만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비담과 덕만의 비덕라인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이다.

미실의 난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미실이 난을 일으켰으나 똘마니 칠숙이 덤태기를 쓴것처럼 춘추가 왕이 된 후 비담에게 덤태기를 씌웠다고 하면 그뿐이니 비담과 덕만의 사랑이 이뤄지게 하고 해피앤딩으로 만드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어짜피 다 설정이고 드라마인데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겠는가?  


관련기사
2009/12/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아쉬운 라스트 신 그리고 비담의 난 사실은

2009/12/2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김춘추의 외교는 성공했을까?
2009/12/1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 최후 진압세력은 미실파? - 역사와 반대인 드라마 하지만 근대사와 너무나 유사한 드라마
2009/12/1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서국호세존이 비담만 뜻할까?
2009/12/1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오우선 밀약 해독한 김춘추는 일본의 왕진이?
2009/12/1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누가 배우 유승호를 죽이고 있나?
2009/12/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 척살령과 비담 척살령의 공통점과 차이점
2009/12/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은 언제 처음 결혼했을까? - 비담과의 결혼은 사실일까?
2009/12/0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 척살령이 떡밥인 몇가지 이유
2009/12/1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 최후 진압세력은 미실파? - 역사와 반대인 드라마 하지만 근대사와 너무나 유사한 드라마
2009/09/15 - [역사이야기] - 건복원년생 비담과 임술년생 덕만, 사실은
2009/08/3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의난 덕만을 배신했다고? 사실은
2009/08/22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에 나오지 않는 비담의 형제들
2009/08/04 - [역사이야기] - 카리스마 비담(김남길), 미실(고현정)이 버린 아들? 사실은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미스터브랜드 2009.12.22 0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가 기본적으로 허구에 근거한 픽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극만큼은 최소한의 사기에 근거해야 하는데,
    작가 입장에서는 재미와 역사를 둘 다 추구하려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2.23 0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 저야 망가짐 더 잼있기는 합니당.. 하지만 모르는 사람은 사실로 알걸용.. 최소한 10%이상은 그럴겁니당.. ㅋㅋ

  2. ㄹㄹ 2009.12.22 0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랑 거리가 먼건 미실을 그렇게 포장한것부터.. 역사극이 아니라 역사를 모티브로 한 것 뿐이죠.

  3. BlogIcon 레오 ~ 2009.12.22 1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꿈의 이루자 하니 사랑이 걸리적거려 방해가 되는 거죠 ..양손의 떡이라고 해도 될까요 ..

  4. BlogIcon labyrint 2009.12.22 1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 이반님의 글을 보면 웃음이 나오네요.
    이런 들 어떠하리 저런 들 어떠하리.
    갑자기 진덕여왕이 나타나서 비담을 용서해주고 덕만은 은퇴하고...
    둘은 떠나고... 그런 스토리는 어떨지요.
    근데, 진덕여왕이 나타나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군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12.23 0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당. 그런데 비담을 덕만 1미터 앞에다 두고 죽여 버리는군용.. 어짜피 버린몸이 너무 신경을 쓰는듯해용.. ㅋㅋ

  5. BlogIcon 함차가족 2009.12.22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픽션이라고 하기엔..그렇고 논픽션도 아니고..그냥 드라마로 봐야하나요..언급하신대로..전 해피엔딩을 기대했는데..무심코 시청했지만..오늘 결말예고를 보니..아쉽네요

    나눔블로그 커뮤니티 오픈이벤트 개최소식 전해드려요..많은 관심부탁드려요..응모도 하시구요
    나눔 산타로 한주를 보내려합니다..(http://www.nanumbook.com)

  6. BlogIcon 자유여행가 2009.12.22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옇튼 선덕여왕은 안방에서 재미를 줘서 피곤한 하루를 위로해 줘서 좋읍니다.
    어쩌리 전쟁많이 겪고, 외침이 잦은 나라의 역사의 기록은 사실과 멀진데....
    그런 기록과 틀린다고 해서 역사 드라마로가 손색된다고 생각되지 않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12.23 0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드라마는 기록과 기록사이를 왜?라는 의문부호를 해소 시켜주는 역할을 하지요.. 역사드라마는 아닌것 같아용.. 개콘의 한 소재라면 모를깡. ㅋㅋ

  7. 지금더중요한것 2009.12.22 2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제에 어긋난말이지만 잠시만 봐주세요 이글 읽는데 1분도 안걸립니다.. 좀 제발 봐주세요....[간도]도 좀 관심좀 가지죠 12월에 크리스마스 있다고 띵가 띵가 신나게 지나고 12월 31일 지나가는 순간 우리 고구려의 역사가 잠들어있는 우리 한민족의 얼이 숨쉬는 [간도]는 중국 손에 넘어갑니다. 국제 영토법상 영토가 강제성 여부에 상관없이 100년이 지나면 끝입니다. 간도협약 1909년에 맺었습니다. 올해가 지나면 그야말로 다시는 못찾습니다. 독도도 물론 중요하죠. 이명박 대통령 당선 전에 [간도] 되찾기 운동했다는데 지금 뭐하는지 궁금하네요 . 진짜 암담하네요. 뉴스 거리에 있지도 않고. 싸이월드 분들이 좀 들고 일어나줬으면 하는 소망을 하네요 . 그리고 이 글 한번씩만 퍼뜨려 주세요 -퍼옴-

  8.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 2012.07.21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과서를 바탕으로 일관성 있는 주장을 하는 것이 상례이다.

  9. BlogIcon Hugh 2012.08.25 1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 될때까지 말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순시를 하면서 백성들에게 농기

  10. BlogIcon petsafe invisible fence collar 2012.11.23 0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아레스가 퇴장을 건 승부가 없었다면 우루과이는 8강에 만족하고 짐을 싸고 집에 돌아가야만 했다.

    승부차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루과이는 이기고 들어갔고, 가나는 이미 지고 들어가는 승부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62회 마지막 회를 남겨두고 61회에서 비담이 난을 일으킨다.

이유는 드라마에서 여러 가지 들고 있지만 사이코 염종과 코찌질이 춘추의 되지도 않는 계략 때문에 일국의 상대등이란 자가 덕만이 자신을 봐주지 않는다는  어릿광 때문에 경주 한복판에서 덕만을 몰아내고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 반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드라마 작가의 수준으로는 충분히 비담이 난을 일으킬 만 할지도 모른다.

비담은 "내가 신국의 왕이 되어 덕만 너를 가질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상대등 비담이 드라마 선덕여왕 설정 상 68세가 넘은 덕만을 차지하기 위해서 69세가 넘은 비담이 난을 일으키겠는가? 비담이 난을 일으키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글 말미의 비담관련 기사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늙은 사람들이 사랑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전혀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 것 아닌가?

모든 세상은 남녀 간의 사랑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 다반사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이리스도 따지고 보면 국가에 대한 충성이나 그런 건 눈꼽 만큼도 찾아보기 힘들다. 욕망과 사랑의 충돌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사랑 때문에 배신을 하고, 사랑 때문에 복수에 나선다. 대의도 없고 명분도 없다.

사랑이란 젊었을 때 불타오른 것만이 사랑이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의 구성은 너무나도 허술하기 그지가 없다. 아무리 선덕여왕 작가들이 드라마  시청자를 알로 보고 있고, 드라마는 드라마니 괜찮아 하는 역사는 고사하고 드라마가 갖춰야할 기본적인 개연성과 일관성은 처음부터 무시하는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극이고, 단순히 이쁜 배우들을 보여주면 침을 흘리는 사람들로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극중에서 덕만이 월성에 주둔하고, 유신은 남산의 골짜기에서 놀고 있다는 말을 하고 낭산의 지원군을 보낸다. 이틈을 타고 비담은 낭산 위에 있는 명활성을 점령해 버린다. 그리고 농성전을 버린다. 그리고 미실의 난 때 없애 버리겠다고 하는 화백회의가 난데없이 등장해서 덕만을 왕에서 축출하고 비담을 왕(?)으로 하겠다는 결의를 한다.


하지만, 극중에서 나온 지도를 보면 또한번 웃을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명활성은 낭산 북쪽 평지 위에 있지 않다. 명활성은 지금의 보문단지와 불국사를 넘어가는 토함산에 이르는 길에 있는 산성에 있다. 오죽하면 명활산성이라고 하겠는가? 말은 산성인데 평지성으로 나오는 명활성은 어디인지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고서는 알 수 조차 없다. 명활산성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루비님의 덕만 배신한 비담의 난 근거지 명활산성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비담의 어미로 나오는 미실은 대야성에서 죽는다. 하지만 아들로 나오는 비담은 비담이 난을 일으키는 명활산성으로 나오지만 드라마 대본과 소품으로 본다면 평지성으로 나온다. 사실 미실의 대야성은 평지성에 가깝다. 단지, 평지위에 우뚝 솟은 봉우리에 있고 남쪽은 강을 끼고 있는 절벽으로 이뤄져 있어서 난공불락이였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대야성은 산성위에 있는데 독을 푼다는 한마디에 신국을 지배했다는 미실은 아무 의미도 없이 자살하고 만다.

도대체 드라마 선덕여왕은 작가들이나 제작진 자신만의 상속의 지도를 가지고 물리학의 상식을 반하는 내용이 너무나도 많이 나와서 어떻해 해야 할지모를 정도 이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초등학교 물리 공부도 하지 않고 만화책만 들고 팠나 아니면 요즘은 보기 드물다는 공부 시간에 공부는 하지 않고 운동을 했다는 전설상에 나오는 운동부 출신인가 헛갈릴 때가 있다.

어쨌든 낭산을 끌어들인 이유는 글쓴이가 작가가 아닌 관계로 알 수는 없지만, 덕만이 죽고 낭산에 묻혔다는 기록을 토대로 그냥 집어넣은 듯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인다.

62회 예고편을 보고 있노라면 "월성에 유성이 떨어졌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천연덕 스럽게 덕만이 살아서 지휘를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들은 도대체 한권으로 읽는 삼국사기 한글판이라도 보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의 역사지식으로 대하 62부작 역사 드라마를 써 내려간다.

"월성에  유성이 떨어졌어요"라는 말이 나오려면 이미 덕만은 죽고 10일이 지난 후이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이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이순신 장군의 유언을 패러디 하지 않았거나,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이겼다는 고사를 패러디 하지 않았다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은 보기 드물게 역사와는 110% 불일치 사극이지만 해도 너무한 것이 아닐까 한다.

16년(647) 봄 정월에 비담과 염종(廉宗) 등이 말하기를 “여자 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 하여 반역을 꾀하여 군사를 일으켰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8일에 왕이 죽었다. - 삼국사기


 

대신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이 여자 임금(女主)이 잘 다스리지 못한다 하여 군사를 일으켜 왕을 폐하려 하니 왕은 스스로 왕궁 안에서 방어하였다. 비담 등은 명활성(明活城)에 주둔하고 왕의 군대는 월성(月城)에 머물고 있었다. 공격과 방어가 10일이 지나도 결말이 나지 않았다. - 삼국사기 김유신열전 53세


여기서 "왕은 스스로 왕궁 안에서 방어를 하였다"를 덕만이 왕궁안에서 방어를 하였다고 해석한다면 역사서를 덮어 그냥 선덕여왕 작가들 처럼 술주정 야부리 수준 이야기를 하는게 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나 기록으로 본 비담의 난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12/1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 최후 진압세력은 미실파? - 역사와 반대인 드라마 하지만 근대사와 너무나 유사한 드라마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어짜피 악역 비담이 시청자의 호응에 의해서 악역이 아닌 <사랑 때문에> 모든 걸 목숨을 거는 역할 이였고, 단지 드라마 시청률 때문에 늙지 않고 살아가는 흑발마녀 <미실>과 그에 못지않게 살아가는 덕만과  단지, 김춘추가 유승호라는 이유 때문에 44살이 되도록 콧수염은 고사하고 변성기도 지나지 않는 목소리로 자신의 작은 아버지 비담에게 악담을 하고, 기껏 대사라고는 덕만이나 병풍알천의 추임새춘추도 있으니 말이다.


사실 비담의 난에 개입하고 있는 미실의 남동생인 미생이나 세종과 미실의 아들인 하종은 죽어도 한참 전에 죽은 자들이다. 또한, 주진은 드라마 설정 상 100살이 넘은 고령이고, 14세 풍월주 호재(호림)은 덕만의 어머니인 마야와 형제간이다.

즉 덕만의 외삼촌이 호재(림)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 세력에 복무를 했으면 했지, 비담의 난에 가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역사와 전혀 반대로 그리고 있으니 덕만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해도 누가 머라할 사람도 없고, 비담과 덕만이 결혼을 해서 애를 한 타스를 낳았다고 해도 머라고 할 사람도 없다.

이왕 역사와 무관한 사극이라면 비담이 염종과 귀족세력을 모두 독살 시켜버리고, 덕만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아름답게 포장하여 마무리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라고 하겠다. 드라마에서도 덕만이 자신의 말년을 비담과 보내려는 한 것은 진심이였다고 하지 않던가? 그 누구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과 덕만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비담과 덕만의 비덕라인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이다.

미실의 난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미실이 난을 일으켰으나 똘마니 칠숙이 덤태기를 쓴것처럼 춘추가 왕이 된 후 비담에게 덤태기를 씌웠다고 하면 그뿐이니 비담과 덕만의 사랑이 이뤄지게 하고 해피앤딩으로 만드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어짜피 다 설정이고 드라마인데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겠는가?  


관련기사
2009/12/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아쉬운 라스트 신 그리고 비담의 난 사실은

2009/12/2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김춘추의 외교는 성공했을까?
2009/12/1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 최후 진압세력은 미실파? - 역사와 반대인 드라마 하지만 근대사와 너무나 유사한 드라마
2009/12/1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서국호세존이 비담만 뜻할까?
2009/12/1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오우선 밀약 해독한 김춘추는 일본의 왕진이?
2009/12/1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누가 배우 유승호를 죽이고 있나?
2009/12/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 척살령과 비담 척살령의 공통점과 차이점
2009/12/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덕만은 언제 처음 결혼했을까? - 비담과의 결혼은 사실일까?
2009/12/0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 척살령이 떡밥인 몇가지 이유
2009/12/1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 최후 진압세력은 미실파? - 역사와 반대인 드라마 하지만 근대사와 너무나 유사한 드라마
2009/09/15 - [역사이야기] - 건복원년생 비담과 임술년생 덕만, 사실은
2009/08/3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의난 덕만을 배신했다고? 사실은
2009/08/22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에 나오지 않는 비담의 형제들
2009/08/04 - [역사이야기] - 카리스마 비담(김남길), 미실(고현정)이 버린 아들? 사실은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미스터브랜드 2009.12.22 0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가 기본적으로 허구에 근거한 픽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극만큼은 최소한의 사기에 근거해야 하는데,
    작가 입장에서는 재미와 역사를 둘 다 추구하려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2.23 0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 저야 망가짐 더 잼있기는 합니당.. 하지만 모르는 사람은 사실로 알걸용.. 최소한 10%이상은 그럴겁니당.. ㅋㅋ

  2. ㄹㄹ 2009.12.22 0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랑 거리가 먼건 미실을 그렇게 포장한것부터.. 역사극이 아니라 역사를 모티브로 한 것 뿐이죠.

  3. BlogIcon 레오 ~ 2009.12.22 1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꿈의 이루자 하니 사랑이 걸리적거려 방해가 되는 거죠 ..양손의 떡이라고 해도 될까요 ..

  4. BlogIcon labyrint 2009.12.22 1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 이반님의 글을 보면 웃음이 나오네요.
    이런 들 어떠하리 저런 들 어떠하리.
    갑자기 진덕여왕이 나타나서 비담을 용서해주고 덕만은 은퇴하고...
    둘은 떠나고... 그런 스토리는 어떨지요.
    근데, 진덕여왕이 나타나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군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12.23 0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당. 그런데 비담을 덕만 1미터 앞에다 두고 죽여 버리는군용.. 어짜피 버린몸이 너무 신경을 쓰는듯해용.. ㅋㅋ

  5. BlogIcon 함차가족 2009.12.22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픽션이라고 하기엔..그렇고 논픽션도 아니고..그냥 드라마로 봐야하나요..언급하신대로..전 해피엔딩을 기대했는데..무심코 시청했지만..오늘 결말예고를 보니..아쉽네요

    나눔블로그 커뮤니티 오픈이벤트 개최소식 전해드려요..많은 관심부탁드려요..응모도 하시구요
    나눔 산타로 한주를 보내려합니다..(http://www.nanumbook.com)

  6. BlogIcon 자유여행가 2009.12.22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옇튼 선덕여왕은 안방에서 재미를 줘서 피곤한 하루를 위로해 줘서 좋읍니다.
    어쩌리 전쟁많이 겪고, 외침이 잦은 나라의 역사의 기록은 사실과 멀진데....
    그런 기록과 틀린다고 해서 역사 드라마로가 손색된다고 생각되지 않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12.23 0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드라마는 기록과 기록사이를 왜?라는 의문부호를 해소 시켜주는 역할을 하지요.. 역사드라마는 아닌것 같아용.. 개콘의 한 소재라면 모를깡. ㅋㅋ

  7. 지금더중요한것 2009.12.22 2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제에 어긋난말이지만 잠시만 봐주세요 이글 읽는데 1분도 안걸립니다.. 좀 제발 봐주세요....[간도]도 좀 관심좀 가지죠 12월에 크리스마스 있다고 띵가 띵가 신나게 지나고 12월 31일 지나가는 순간 우리 고구려의 역사가 잠들어있는 우리 한민족의 얼이 숨쉬는 [간도]는 중국 손에 넘어갑니다. 국제 영토법상 영토가 강제성 여부에 상관없이 100년이 지나면 끝입니다. 간도협약 1909년에 맺었습니다. 올해가 지나면 그야말로 다시는 못찾습니다. 독도도 물론 중요하죠. 이명박 대통령 당선 전에 [간도] 되찾기 운동했다는데 지금 뭐하는지 궁금하네요 . 진짜 암담하네요. 뉴스 거리에 있지도 않고. 싸이월드 분들이 좀 들고 일어나줬으면 하는 소망을 하네요 . 그리고 이 글 한번씩만 퍼뜨려 주세요 -퍼옴-

  8.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 2012.07.21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과서를 바탕으로 일관성 있는 주장을 하는 것이 상례이다.

  9. BlogIcon Hugh 2012.08.25 1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 될때까지 말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순시를 하면서 백성들에게 농기

  10. BlogIcon petsafe invisible fence collar 2012.11.23 0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아레스가 퇴장을 건 승부가 없었다면 우루과이는 8강에 만족하고 짐을 싸고 집에 돌아가야만 했다.

    승부차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루과이는 이기고 들어갔고, 가나는 이미 지고 들어가는 승부였다.

설원(전노민)은 덕만(이요원)에게 딜을 요구한다. "불가능한 꿈 삼한일통의 대업에 한자락을 하겠습니다. 그러니 비담과 국혼을 하시옵서소" 하지만 덕만은 "진흥제가 많은 공과가 있지만 한가지 과오를 범하셨다. 사람 사람을 믿었던 사람을 미실에게 빼앗겼습니다. 신국에는 미실(고현정)에 충성하는 자들로 남아있습니다." 라면서 거절을 한다.

설원은 미실 사당에 나아가 "보고 싶습니다. 새주"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 출전 한다. 이는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 역모를 한자의 사당을 만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역모자의 흔적은 풀한포기 나지 않도록 연못으로 만들어 버리고, <미실>이라는 이름자가 들어간 <한자>도 남김없이 없애버린다. 다만, 역모자의 이름만 기록에 남을 뿐이다. 역모자를 흠모하는 자는 곧 역모행위에 해당하여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설마 미실이 단종이나 사육신은 아니지 않는가? 한번 꼬인 실타래가 끝끝 내 드라마 선덕여왕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선덕여왕엔 내선일체와 친일파의 논리가 있다.

비담은 월야와 담판 지으려 한다. 그래서 죽방에 밀명을 내린다. 죽방은 밀명을 받고 거북육란의 표시를 하여 월야와 접선을 한다. 거북육란은 선덕여왕 설정 미스중에 하나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 기사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11/18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누란 위기, 귀신잡는 비담 복야회 소탕작전 - 삼서제도 역사와 무관한 사극
2009/11/2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누가 덕만을 능욕하나? 비담일까? - 대야성 함락과 검일
2009/08/2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정말 월야의 복야운동은 사실일까?

김유신과 월야의 대화와 덕만과 월야의 담판에서 일제식민지 시대 내선일체가 떠오른다. 김유신과 덕만의 논리는 친일파의 논리와 하나도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을 얻는것이 어렵다는 것을 덕만이 솔선수범한다고 한다. 그런데 별로 덕만이 월야와 복야회를 얻는 데 보여준 것이 없다. 단지 유신과 가야민을 상대로 협박한 것이 전부이다. 


최소한 김춘추(유승호) 밑으로 들어가는 명분을 만들어 주고 개연성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뜸금없이 김춘추는 가야파를 자신이 접수하겠다고 하고, 덕만은 용인하고, 월야는 그냥 꼬랑지를 내리고 김춘추의 품으로 들어간다. 확실히 미실 고현정의 여파가 크다, 똥을 누다 만것처럼 찝찝함을 안고서 뒷수습은 없고, 그냥 줄행랑 치듯이 종영을 향해서 치닫고 있다.

신라 서라벌에 전령이 도착한다. 그리고 설원이 패했다고 알린다. 부상당한 설원은 비담에서 새주 미실의 마지막 유언을 따르라고 한다. 더 큰뜻을 더 끈 꿈을 키우십시오 사람을 따르는 것은 위험하다. 그렇지 않다면 2인자의 길을 걸어야 할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비담의 손를 잡아보고 죽는다. 참으로 길고 긴 설원(전노민)의 마지막 촬영을 끝으로 짝사랑이 끝나는 순간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참으로 전쟁 쉽게 한다. 전쟁영웅이라는 유신은 서라벌에 승전하는 모습으로 입성한다. 그런데 유신은 천하무적 패한적도 없는 효도르처럼 불패의 전쟁영웅이 되어 있다. 대야성이 무너질때는 CG 몇번으로 대야성이 무너지고, 김서현은 성위 망루에서 손한번 흔들고 부상자의 몸으로 돌아온다. 무패의 유신군을 이끈 설원은 백제의 유군을 이끈 계백에게 힘한번 써보지 못하고 괴멸되다시피 하고 돌아온다.
 


다시한번 바보가 된 유신과 비담

설원에게 비화군(밀양)에서 전쟁이 끝나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백제군은 비자화(창녕), 현재 청도로 비정되는 이서군이 돌파당하고, 급파된 주진의 군대가 대패한다 그리고 백제 2만군대가 압량주(경산)에 도달한다. 말로써 모든 일이 다 이루어 진다. 확실히 선덕여왕에서는 불가능이 없다. 이들 장소를 다음 지도나 구글맵으로 찾아 보는 것도 귀찮을 정도로 날림으로 지나간다.


우리의 유신은 비담에게 산악전을 해야한다고 하면서 금성산이 뚫리면 압량주(경산)가 위험하다고 한다. 문제는 금성산은 압량주(경산)과는 떨어져 있다. 금성산은 대야성(합천)의 서쪽에 있는 산이다. 이미 백제의 수중에 압량주 서쪽이 들어갔는데 대야성 서쪽의 금성산에 들어가 싸우겠다하고, 그래야 압량주가 위기에 처하지 않는다고 한다는 설정은 있을 수 없다. 금성산과 압량주는 가까이하기엔 너무먼 당신이란 뜻이다. 

드라마 상 642년 전쟁상황


또한번, 작가는 전쟁영웅 유신과 삼한지세를 가지고 있는 비담을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들은 재주도 좋다. 배우들을 바보로 만드는데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 배우들을 바보로 만든 예를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11/2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누가 덕만을 능욕하나? 비담일까? - 대야성 함락과 검일
2009/11/2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수출 좋지만 않는 이유?
2009/11/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고현정 미실 최후 자살 죽음장소, 대야성 선택이유? 수노(手弩)는 왜(일본)산 최고?
2009/11/1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50회, 미실 고현정 대야성 독 푼다고 눈물 흘리며 자살미화? - 제작자는 고현정 아름다운 하차 안티?
2009/11/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진흥왕(이순재) 신라의적 미실(고현정)척살 - 만화보다 못한 미실 죽음 고현정 하차

백제 계백의 유군(별동대)의 경로를 살펴보면 이건 인간들이 아니고 귀신들의 움직임이다. 동에번쩍 서에번쩍 하지만 이들보다 더 뛰어난 자들은 보종과 그 수하들이다. 보종과 보종의 수하는 남원에서 부터 서나벌까지 다시 대야성까지 이동을 한다. 특히, 비담의 밀명을 받고 검일을 죽이려 가는 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고 대야성에 도착한다. 보종의 발빠름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12/0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김춘추 유승호 병풍으로 전락한 이유 - 대야성 함락 사실은 을 참조하기 바란다.

어쨌든 삼한일통을 꿈꾸던 신라가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덕만은 무엇으로 삼한일통을 하겠다고 나섰을까? 설원은 무엇때문에 삼한일통의 꿈을 같이 꾸자고 전장에 나아갔을까? 한마디로 스스로 삼한일통을 위해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말로만 삼한일통의 초석을 만든것이다. 오히려 백제가 삼한일통을 할 참이다.

이와 유사한 현대사가 있다.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이승만은 말만 요란하게 북진통일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북한의 남침한방에 저멀리 부산 앞바다에 몸을 던질판이였다. 그리고 덕만이 복야회를 몰살시켜버리겠다고 협박을 하였지만, 이승만은 캄보디아 킬링필드 보다 먼저 자국민을 몰살시켜버렸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신라가 당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듯이 이승만은 미국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어쨌든, 설원은 또한 유신에게 또하나 서찰을 남기고 붉은 투구을 쓴 계백을 조심하고 한다. 그리고 기껏한다는 유언이 유신 너의 정보는 개문흑 처럼 또 틀렸다. 백제의 유군은 하루에 60리가 아닌 70리를 이동하더라 그래서 패할수 밖에 없었다 정도이다.

선덕여왕에 등장한 이순신 = 김유신

붉은 투구를 쓴 계백을 이야기하니 떠오른 장군이 하나가 있다. 임진왜란 시기 활약한 홍의장군 곽재우이다. 왜군은 붉은 옷을 보면 도망치기 바뻤다고 한다. 홍길동 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활약 귀신처럼 신출귀몰했다  또한, 붉은 투구를 떠올리니 치우천왕의 투구가 떠올리게 된다.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나온 고구려의 조의들도 떠오른다. 월야의 복야회는 드라마 대조영의 고구려 유민들의 반당나라 복고구려를 외친 대조영의 데자뷰도 떠오른다. 아무것도 한일 없이 감옥에 갇힌 김유신의 모습은 원균의 모략으로 이순신이 일본과 내통하여 조선의 왕이 된다는 설정과 한치도 다름이 없다. 선조는 이순신을 하옥한다. 하지만 원균은 삼군통제사가 되어 일본과 싸우나 칠천량해전에서 대패를 한다. 그리고 이순신은 백의종군을 하여 12척의 배를 가지고 가지고 일본군을 무찌른다.

선조를 덕만으로 바꾸고, 일본을 복야회와 바꾸고, 원균을 비담으로 바꾸고, 원균의 칠천량 전투는 설원의 있지도 않는 이서군전투로 바꾸어 보자. 드라마 선덕여왕과 위의 설정은 100% 싱크로율을 보여줄것이다. 한마디로 드라마 선덕여왕에 할 수 있는 건 기존 드라마의 빼끼기 수준정도이다. 이제 남은건 12척의 배를 가지고 있는 이순신이 선조에게 "소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한것처럼 소신 유신에게는 월야의 복야회와 계백에 패하고 돌아온 패잔병 유신군이 있습니다라고 하는 순간만 남았다.

그런데, 덕만은 서라벌 코앞에 당도한 2만의 백제군은 관심이 없다. 신라의 흥망의 위기에 덕만은 춘추를 불러서 비담을 암살하도록 밀서를 내린다. 밀서는 진흥왕이 설원에 내린 밀명과 한치도 다름이 없다. 어쩌면 덕만이 준 봉투는 진흥왕이 설원에 내린 붉은 봉투와 같은 것일 것이다. 제작비가 없어 날림으로 대야성에서 압량주까지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백제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말로 때웠지만 봉투만은 재활용을 했을 것이다. 물론, 춘추에게 내린 밀서는 시청자를 꼬실려는 떡밥에 불가하고, 지금처럼 엉뚱한 편집으로 낚시질을 하는 것 뿐이다.

어찌되었던 비담은 덕만을 버리지 않았지만, 덕만은 비담의 뒤통수를 때린다.  덕만의 사람 얻는 방법은 월야와 가야유민을 협박한것처럼 권모술수로 비담의 목을 접수하는 일 뿐이다. 도대체 덕만이 왕으로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한일이 무엇인지 작가나 제작진에 물어보고 싶다. 또한, 춘추는 왜 할일도 없이 덕만 곁에서 얼굴마담으로 있어야 하는 지 말이다. 차라리 병풍들로 전락한 알천을 죽이고, 춘추를 죽이고, 덕만을 죽이는게 배역을 맡은 배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당연히 지금까지 드라마 선덕여왕이 1회 시작부터 초지일관 그랬던 것 처럼 역사와 1%도 일치하는 기록을 찾을 수가 없다. 당연히, 극중 리얼리티나 개연성도 회당 10회 이상 오류투성이였다. 오히려 역사와 일치하는 사건을 찾는게 로또 당첨 확률보다 낮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번 드라마 선덕여왕 56회 이야기도 100% 뻥이다. 일련의 사건들은 작가의 개연성 없는 상상속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글쓴이처럼 역사에 조그만 관심이 있고, 드라마의 리얼리티와 개연성의 속성을 알고 보면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재미있는 코미디도 없다. 한가지 예언을 한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김춘추는 절대로 고구려나 왜나 당나라에 구원을 요청하러 가지 않는다.

이유는 역사와 일치하면 드라마 선덕여왕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한일통은 외세의 힘에 의하지 않고 신라 단독의 힘으로 이뤘다고 해야하고 실제로 삼한일통에 관한 이야기까지 극중에서 전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2009/12/0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위험한 친일파의 논리가 숨어있다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지나가다 2009.12.02 1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금성산의 위치에 대해서요...
    혹시 예전 신라시대의 금성산과 현재 금성산이라 부르는 산이 서로 다를 수도 있지않을까요
    예전의 지명과 현재의 지명과 달라지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리고 춘추를 복야회에 소개 시켜주는 것은
    춘추를 다음 왕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춘추가 복야회를 끌어안게 함으로써
    복야회가 가지고있는 신라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주고
    춘추또한 다음 대의 왕이 될 자로서 든든한 후원군을 얻는 셈이 되겠지요...

  3. BlogIcon labyrint 2009.12.02 1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하... 한찬 웃었네요...
    이반님의 글을 읽고 보니 드라마가 개그처럼 보이네요.
    병사들이 무당파의 축지법을 배운 것일까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4. 미실사당 2009.12.02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집중해서 못보셨군요..
    미실사당 있는게 맞습니다.
    미실의 난은......칠숙과 석품의 난으로 공표하겠다고.......덕만공주가 51회에 말했지요..
    미실의 사람들을 죽이지 않겠다면서......

  5. 에휴.. 2009.12.02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이렇게 역사를 고집하냐..
    선덕여왕도 '드라마' 이다.
    '드라마'가 '픽션'을 기초로 한다는거 중학교때부터 배우는데 참 ..
    그렇게 역사에 걸맞는 사극이 있긴 했니 ???
    그냥 드라마는 드라마 대로 받아들여야지
    선덕여왕이 다큐도 아니고 참 -_-

  6. 작가의상상력 2009.12.02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애초에 미실이라는 사람은 역사에 한줄인가 기록되어진
    거의 기록을 찾아볼수 없는 인물이라 하네요. 상상으로 만들어 냈다는 이야기지요.
    역사를 반영하고자 한다면 미실은 그렇게 비중을 가질수 없는 인물이라는
    소리가 됩니다. 역사를 바로 말하지 않고 있음은 맞지만 드라마라는 특성상
    허구가 분명하고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이야기들이라 생각이 되네요
    드라마가 다큐가 되면 저또한 안그래도 팍팍한 일상에서 이미 알고 있는 역사
    이거나 조금만 알아봐도 뻔히 보이는 이야기를 잘보게 될지는 의문이네요

  7. 드라마일 뿐 2009.12.02 1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말없이 반대합니다...

    낚시...보셔야 알지 않겠어요?이런 식으로 선덕 욕하지 마세요.
    그리고 선덕여왕도 드라마인데 뭘 그렇게 역사를 고집하려고 하세요?(위에 분 말씀처럼)

    어이상실해서 읽고 갑니다//

  8. 이궁.... 2009.12.02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의 사실을 만든게 아니고 재미를 위한 드라마인데.. 너무 깊숙히 생각 하시는거 같습니다.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일뿐...

  9. 어이 없네요 2009.12.02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 말 듣고 예고편 비담 척살 부분 다시 보고 왔습니다.

    낚시라고 하기에는 말을 이어서 계속 하던데요.옷차림,머리,촬영방법 같은 거 하나도 안 변하고 이어서...

    춘추도 그거 듣고 놀랐고요.

    잘 못 들으셨으면 비담 척살 써서 예고편에 비담 척살하라 어떻게 말하는지
    보고 오시길...

  10. 굴비 2009.12.02 15: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보기엔 제작진은 아무 생각없이 드라마를 만들고 있는게 맞습니다. 역사고, 책임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이 그냥 되는대로 분량때우며 시청률 의식하며 마무리 납땜하기에 바쁜것이지요. 60회가 넘어가는 대작인데다 처음부터 중반까지 너무 어긋나고 이지러지고 수습하기가 어렵게 됐으니 본인들도 아주 손발에 땀이 날겁니다.

  11. 굴비2 2009.12.02 16: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재미있는 드라마로 보시면 될 듯.

  12. 그냥 재미로 2009.12.03 0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본다고 해도
    개연성과 논리적인게 있어야 잘 만든 드라마라고 할 수 있죠
    역사적 사실은 제쳐두고라도
    선덕여왕 스스로 만들어낸 세계만 들여다본다 해도 헛점 투성이입니다.
    그리고 드라마를 재미로 보는것처럼
    이 블로그 글도 하나의 정보로만 보시죠 그렇게 열내실 것들 없습니다

  13. 갓쉰동최고 2009.12.03 0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중 오류있네요 드라마에서 덕만은 미실을 대역죄인으로 모는것이 아닌 칠숙과 석품의 반란으로 종결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는 언급을 금지시키지요 결국 미실은 주범이지만 신라의 영웅들중 하나가 되었고 칠숙과 석품은 주동도 하지않고 밑에서 고생만하다가 주동자가 되었죠 팩트와 픽션의 부적절한 결합물이 칠숙 석품의 난이죠

  14. BlogIcon Nehe 2009.12.04 0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댓글도 코메디군요.... 드라마니까 그냥 봐라? 뭘그렇게 따지냐?? 갓쉰동님 뭐 신경쓰지 마시고 계속 포스팅 해주세요~ 백번 만번 양보해서 드라마니까 역사를 밟아 뭉개도 괜찮다고 해도 뭐 드라마스토리 안에서도 무슨 말이 되야지요... 이 작가들은 역사가아니라 자기네들이 앞에 쓴 만들어낸 역사도 무시한다니까요 앞뒤 이야기하는게 달라요

    • BlogIcon 갓쉰동 2009.12.04 2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제생각과 같군요..

      저는 한번도 선덕여왕이 역사와 다르다고 비판한적이 없는뎅.. 님처럼 극의 개연성과 스토리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하는데 이상한 댓글들이 달리더라구용.. ㅋㅋ

  15. 갓만동 2009.12.08 0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시는 분이시군요. 아니면 소심하시거나...
    우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반역자가 아닌건 어떤분이 답을 해주셨구요.
    무엇보다 춘추와 월야 사이에 그렇게 단순하게 협상이 이루어졌겠습니까?
    저처럼 단순한 놈도 척 보면 춘추가 월야에게 김유신의 가문과 자신의 가문과의 국혼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머리 복잡하신 분이 그것까진 왜 생각 못하고 찧고 까부시는지...
    잘 모르시겠으면 이런 엉터리 글들로 사람들 현혹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속빈 강정에 돌 하나 넣으면 무지 시끄러운 법이지요.

  16. 글쎄요 2009.12.08 0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금... 재밌네요...
    이 글 외에도 선덕여왕에 대한 글이 굉장히 많네요
    오랜 시간 투자하여 분석하시고 글을 쓰시는 듯 한데
    왜 그러시는 잘... 모르겠습니다.;;;
    드라마에 대한 어느 정도의 비평은 필요하지만 이 정도는 거의 집착같은데요;;
    아님 작가의 엄청난 안티거나...
    (저도 물론 이 드라마의 개연성에 대해선 정말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맘에 안 들지만
    그러려니 혀만 끌끌 차고 맙니다. 맘에 안 들면 안 보면 그만이니까요)


    근데 (포스팅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챙겨보고 계실 모습을 상상하니... 참 아이러니 하네요

  17. ㄹㄹ 2009.12.23 1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죠.. 드라마인데 왜그렇게 공을 들이냐고 하면, 극의 개연성과 스토리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요...
    실질적으로 자체적인 설정상 정말 이건 말도 안되.. 할만한게 지금 지적된 것과는 오히려 다른 방향이지 않나 싶네요....

    님 자체 오류신건 이해를 못하시니까요.

    현 지형상이나, 역사상 이동과 방어 등의 오류는 찾으면서, 극에서 설정된 "사실" 자체를
    부정하면, 그것은 드라마를 위한 비판이라 볼수 없습니다.

    그 사실에 어떠한 오류가 있어나, 말그대로 "사실 - 모방한 사실성"이라는 것을 인정치 않으시기에 자꾸 역사 오류에서 그 개연성 오류를 파악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치면, 우리나라 조선왕조 오백년, 대장금 등은 하수구에 쳐박힐 드라마입니다.

    이전에 어디 여자 숙수가 있어서 음식을 하며, 어디 집안내자가 정1품 당상관 사랑방에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급기야 술상앞에서 정치 이야기를 했댑니까?

    정말 세밀하게 지적하려면, 정말 사실에 근거해서 역사성 조차도 분석해서 보여주시는게 오류를 줄이는 지름길입니다.

    어짜피 작가가 내민 코드는, 극 "인물설정"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 드라마, 극장르의 오류지요.

    우리나라 극문화의 가장 아쉬운 요소는 대본입니다.
    인형극, 연극, 번역극, 드라마, TV ,영화.. 모두 그렇습니다.

    그러한 것을 비판만 하지 마시고 직접 한번 개연성있게 작업을 하시거나,
    논리적으로 전체를 분석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체력 낭비같습니다...

  18. BlogIcon visit website 2012.07.14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들어간다. 확실히 미실 고현정의 여파가 크다, 똥을 누다 만것처럼 찝찝함을

  19.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종의 관행적인 형태이니 이해하다고 하더라도 타 선수의 점수를 깍는 방법으로 진행되고, 완벽하다고

  20. BlogIcon ready to eat indian food 2012.11.26 2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강력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형벌로서 하였다. 조선에서는 5개의 중형이 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이 있고, 남자의 성기를 짜르는 궁형이 있고, 아킬레스건 처럼 발뒤꿈치 힘줄을 짤라 버리는 월형(비형)이 있고,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 있고, 머리에 문신을 하는 자자(묵형)이 있다.

  21. BlogIcon katadyn mybottle review 2012.12.03 2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은 월야와 담판 지으려 한다. 그래서 죽방에 밀명을 내린다. 죽방은 밀명을 받고 거북육란의 표시를 하여 월야와 접선을 한다. 거북육란은 선덕여왕 설정 미스중에 하나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 기사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설원(전노민)은 덕만(이요원)에게 딜을 요구한다. "불가능한 꿈 삼한일통의 대업에 한자락을 하겠습니다. 그러니 비담과 국혼을 하시옵서소" 하지만 덕만은 "진흥제가 많은 공과가 있지만 한가지 과오를 범하셨다. 사람 사람을 믿었던 사람을 미실에게 빼앗겼습니다. 신국에는 미실(고현정)에 충성하는 자들로 남아있습니다." 라면서 거절을 한다.

설원은 미실 사당에 나아가 "보고 싶습니다. 새주"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 출전 한다. 이는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 역모를 한자의 사당을 만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역모자의 흔적은 풀한포기 나지 않도록 연못으로 만들어 버리고, <미실>이라는 이름자가 들어간 <한자>도 남김없이 없애버린다. 다만, 역모자의 이름만 기록에 남을 뿐이다. 역모자를 흠모하는 자는 곧 역모행위에 해당하여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설마 미실이 단종이나 사육신은 아니지 않는가? 한번 꼬인 실타래가 끝끝 내 드라마 선덕여왕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선덕여왕엔 내선일체와 친일파의 논리가 있다.

비담은 월야와 담판 지으려 한다. 그래서 죽방에 밀명을 내린다. 죽방은 밀명을 받고 거북육란의 표시를 하여 월야와 접선을 한다. 거북육란은 선덕여왕 설정 미스중에 하나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 기사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11/18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누란 위기, 귀신잡는 비담 복야회 소탕작전 - 삼서제도 역사와 무관한 사극
2009/11/2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누가 덕만을 능욕하나? 비담일까? - 대야성 함락과 검일
2009/08/2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정말 월야의 복야운동은 사실일까?

김유신과 월야의 대화와 덕만과 월야의 담판에서 일제식민지 시대 내선일체가 떠오른다. 김유신과 덕만의 논리는 친일파의 논리와 하나도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을 얻는것이 어렵다는 것을 덕만이 솔선수범한다고 한다. 그런데 별로 덕만이 월야와 복야회를 얻는 데 보여준 것이 없다. 단지 유신과 가야민을 상대로 협박한 것이 전부이다. 


최소한 김춘추(유승호) 밑으로 들어가는 명분을 만들어 주고 개연성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뜸금없이 김춘추는 가야파를 자신이 접수하겠다고 하고, 덕만은 용인하고, 월야는 그냥 꼬랑지를 내리고 김춘추의 품으로 들어간다. 확실히 미실 고현정의 여파가 크다, 똥을 누다 만것처럼 찝찝함을 안고서 뒷수습은 없고, 그냥 줄행랑 치듯이 종영을 향해서 치닫고 있다.

신라 서라벌에 전령이 도착한다. 그리고 설원이 패했다고 알린다. 부상당한 설원은 비담에서 새주 미실의 마지막 유언을 따르라고 한다. 더 큰뜻을 더 끈 꿈을 키우십시오 사람을 따르는 것은 위험하다. 그렇지 않다면 2인자의 길을 걸어야 할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비담의 손를 잡아보고 죽는다. 참으로 길고 긴 설원(전노민)의 마지막 촬영을 끝으로 짝사랑이 끝나는 순간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참으로 전쟁 쉽게 한다. 전쟁영웅이라는 유신은 서라벌에 승전하는 모습으로 입성한다. 그런데 유신은 천하무적 패한적도 없는 효도르처럼 불패의 전쟁영웅이 되어 있다. 대야성이 무너질때는 CG 몇번으로 대야성이 무너지고, 김서현은 성위 망루에서 손한번 흔들고 부상자의 몸으로 돌아온다. 무패의 유신군을 이끈 설원은 백제의 유군을 이끈 계백에게 힘한번 써보지 못하고 괴멸되다시피 하고 돌아온다.
 


다시한번 바보가 된 유신과 비담

설원에게 비화군(밀양)에서 전쟁이 끝나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백제군은 비자화(창녕), 현재 청도로 비정되는 이서군이 돌파당하고, 급파된 주진의 군대가 대패한다 그리고 백제 2만군대가 압량주(경산)에 도달한다. 말로써 모든 일이 다 이루어 진다. 확실히 선덕여왕에서는 불가능이 없다. 이들 장소를 다음 지도나 구글맵으로 찾아 보는 것도 귀찮을 정도로 날림으로 지나간다.


우리의 유신은 비담에게 산악전을 해야한다고 하면서 금성산이 뚫리면 압량주(경산)가 위험하다고 한다. 문제는 금성산은 압량주(경산)과는 떨어져 있다. 금성산은 대야성(합천)의 서쪽에 있는 산이다. 이미 백제의 수중에 압량주 서쪽이 들어갔는데 대야성 서쪽의 금성산에 들어가 싸우겠다하고, 그래야 압량주가 위기에 처하지 않는다고 한다는 설정은 있을 수 없다. 금성산과 압량주는 가까이하기엔 너무먼 당신이란 뜻이다. 

드라마 상 642년 전쟁상황


또한번, 작가는 전쟁영웅 유신과 삼한지세를 가지고 있는 비담을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들은 재주도 좋다. 배우들을 바보로 만드는데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 배우들을 바보로 만든 예를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11/2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누가 덕만을 능욕하나? 비담일까? - 대야성 함락과 검일
2009/11/2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수출 좋지만 않는 이유?
2009/11/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고현정 미실 최후 자살 죽음장소, 대야성 선택이유? 수노(手弩)는 왜(일본)산 최고?
2009/11/1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50회, 미실 고현정 대야성 독 푼다고 눈물 흘리며 자살미화? - 제작자는 고현정 아름다운 하차 안티?
2009/11/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진흥왕(이순재) 신라의적 미실(고현정)척살 - 만화보다 못한 미실 죽음 고현정 하차

백제 계백의 유군(별동대)의 경로를 살펴보면 이건 인간들이 아니고 귀신들의 움직임이다. 동에번쩍 서에번쩍 하지만 이들보다 더 뛰어난 자들은 보종과 그 수하들이다. 보종과 보종의 수하는 남원에서 부터 서나벌까지 다시 대야성까지 이동을 한다. 특히, 비담의 밀명을 받고 검일을 죽이려 가는 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고 대야성에 도착한다. 보종의 발빠름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12/0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김춘추 유승호 병풍으로 전락한 이유 - 대야성 함락 사실은 을 참조하기 바란다.

어쨌든 삼한일통을 꿈꾸던 신라가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덕만은 무엇으로 삼한일통을 하겠다고 나섰을까? 설원은 무엇때문에 삼한일통의 꿈을 같이 꾸자고 전장에 나아갔을까? 한마디로 스스로 삼한일통을 위해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말로만 삼한일통의 초석을 만든것이다. 오히려 백제가 삼한일통을 할 참이다.

이와 유사한 현대사가 있다.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이승만은 말만 요란하게 북진통일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북한의 남침한방에 저멀리 부산 앞바다에 몸을 던질판이였다. 그리고 덕만이 복야회를 몰살시켜버리겠다고 협박을 하였지만, 이승만은 캄보디아 킬링필드 보다 먼저 자국민을 몰살시켜버렸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신라가 당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듯이 이승만은 미국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어쨌든, 설원은 또한 유신에게 또하나 서찰을 남기고 붉은 투구을 쓴 계백을 조심하고 한다. 그리고 기껏한다는 유언이 유신 너의 정보는 개문흑 처럼 또 틀렸다. 백제의 유군은 하루에 60리가 아닌 70리를 이동하더라 그래서 패할수 밖에 없었다 정도이다.

선덕여왕에 등장한 이순신 = 김유신

붉은 투구를 쓴 계백을 이야기하니 떠오른 장군이 하나가 있다. 임진왜란 시기 활약한 홍의장군 곽재우이다. 왜군은 붉은 옷을 보면 도망치기 바뻤다고 한다. 홍길동 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활약 귀신처럼 신출귀몰했다  또한, 붉은 투구를 떠올리니 치우천왕의 투구가 떠올리게 된다.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나온 고구려의 조의들도 떠오른다. 월야의 복야회는 드라마 대조영의 고구려 유민들의 반당나라 복고구려를 외친 대조영의 데자뷰도 떠오른다. 아무것도 한일 없이 감옥에 갇힌 김유신의 모습은 원균의 모략으로 이순신이 일본과 내통하여 조선의 왕이 된다는 설정과 한치도 다름이 없다. 선조는 이순신을 하옥한다. 하지만 원균은 삼군통제사가 되어 일본과 싸우나 칠천량해전에서 대패를 한다. 그리고 이순신은 백의종군을 하여 12척의 배를 가지고 가지고 일본군을 무찌른다.

선조를 덕만으로 바꾸고, 일본을 복야회와 바꾸고, 원균을 비담으로 바꾸고, 원균의 칠천량 전투는 설원의 있지도 않는 이서군전투로 바꾸어 보자. 드라마 선덕여왕과 위의 설정은 100% 싱크로율을 보여줄것이다. 한마디로 드라마 선덕여왕에 할 수 있는 건 기존 드라마의 빼끼기 수준정도이다. 이제 남은건 12척의 배를 가지고 있는 이순신이 선조에게 "소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한것처럼 소신 유신에게는 월야의 복야회와 계백에 패하고 돌아온 패잔병 유신군이 있습니다라고 하는 순간만 남았다.

그런데, 덕만은 서라벌 코앞에 당도한 2만의 백제군은 관심이 없다. 신라의 흥망의 위기에 덕만은 춘추를 불러서 비담을 암살하도록 밀서를 내린다. 밀서는 진흥왕이 설원에 내린 밀명과 한치도 다름이 없다. 어쩌면 덕만이 준 봉투는 진흥왕이 설원에 내린 붉은 봉투와 같은 것일 것이다. 제작비가 없어 날림으로 대야성에서 압량주까지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백제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말로 때웠지만 봉투만은 재활용을 했을 것이다. 물론, 춘추에게 내린 밀서는 시청자를 꼬실려는 떡밥에 불가하고, 지금처럼 엉뚱한 편집으로 낚시질을 하는 것 뿐이다.

어찌되었던 비담은 덕만을 버리지 않았지만, 덕만은 비담의 뒤통수를 때린다.  덕만의 사람 얻는 방법은 월야와 가야유민을 협박한것처럼 권모술수로 비담의 목을 접수하는 일 뿐이다. 도대체 덕만이 왕으로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한일이 무엇인지 작가나 제작진에 물어보고 싶다. 또한, 춘추는 왜 할일도 없이 덕만 곁에서 얼굴마담으로 있어야 하는 지 말이다. 차라리 병풍들로 전락한 알천을 죽이고, 춘추를 죽이고, 덕만을 죽이는게 배역을 맡은 배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당연히 지금까지 드라마 선덕여왕이 1회 시작부터 초지일관 그랬던 것 처럼 역사와 1%도 일치하는 기록을 찾을 수가 없다. 당연히, 극중 리얼리티나 개연성도 회당 10회 이상 오류투성이였다. 오히려 역사와 일치하는 사건을 찾는게 로또 당첨 확률보다 낮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번 드라마 선덕여왕 56회 이야기도 100% 뻥이다. 일련의 사건들은 작가의 개연성 없는 상상속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글쓴이처럼 역사에 조그만 관심이 있고, 드라마의 리얼리티와 개연성의 속성을 알고 보면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재미있는 코미디도 없다. 한가지 예언을 한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김춘추는 절대로 고구려나 왜나 당나라에 구원을 요청하러 가지 않는다.

이유는 역사와 일치하면 드라마 선덕여왕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한일통은 외세의 힘에 의하지 않고 신라 단독의 힘으로 이뤘다고 해야하고 실제로 삼한일통에 관한 이야기까지 극중에서 전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2009/12/0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위험한 친일파의 논리가 숨어있다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지나가다 2009.12.02 1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금성산의 위치에 대해서요...
    혹시 예전 신라시대의 금성산과 현재 금성산이라 부르는 산이 서로 다를 수도 있지않을까요
    예전의 지명과 현재의 지명과 달라지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리고 춘추를 복야회에 소개 시켜주는 것은
    춘추를 다음 왕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춘추가 복야회를 끌어안게 함으로써
    복야회가 가지고있는 신라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주고
    춘추또한 다음 대의 왕이 될 자로서 든든한 후원군을 얻는 셈이 되겠지요...

  3. BlogIcon labyrint 2009.12.02 1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하... 한찬 웃었네요...
    이반님의 글을 읽고 보니 드라마가 개그처럼 보이네요.
    병사들이 무당파의 축지법을 배운 것일까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4. 미실사당 2009.12.02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집중해서 못보셨군요..
    미실사당 있는게 맞습니다.
    미실의 난은......칠숙과 석품의 난으로 공표하겠다고.......덕만공주가 51회에 말했지요..
    미실의 사람들을 죽이지 않겠다면서......

  5. 에휴.. 2009.12.02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이렇게 역사를 고집하냐..
    선덕여왕도 '드라마' 이다.
    '드라마'가 '픽션'을 기초로 한다는거 중학교때부터 배우는데 참 ..
    그렇게 역사에 걸맞는 사극이 있긴 했니 ???
    그냥 드라마는 드라마 대로 받아들여야지
    선덕여왕이 다큐도 아니고 참 -_-

  6. 작가의상상력 2009.12.02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애초에 미실이라는 사람은 역사에 한줄인가 기록되어진
    거의 기록을 찾아볼수 없는 인물이라 하네요. 상상으로 만들어 냈다는 이야기지요.
    역사를 반영하고자 한다면 미실은 그렇게 비중을 가질수 없는 인물이라는
    소리가 됩니다. 역사를 바로 말하지 않고 있음은 맞지만 드라마라는 특성상
    허구가 분명하고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이야기들이라 생각이 되네요
    드라마가 다큐가 되면 저또한 안그래도 팍팍한 일상에서 이미 알고 있는 역사
    이거나 조금만 알아봐도 뻔히 보이는 이야기를 잘보게 될지는 의문이네요

  7. 드라마일 뿐 2009.12.02 1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말없이 반대합니다...

    낚시...보셔야 알지 않겠어요?이런 식으로 선덕 욕하지 마세요.
    그리고 선덕여왕도 드라마인데 뭘 그렇게 역사를 고집하려고 하세요?(위에 분 말씀처럼)

    어이상실해서 읽고 갑니다//

  8. 이궁.... 2009.12.02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의 사실을 만든게 아니고 재미를 위한 드라마인데.. 너무 깊숙히 생각 하시는거 같습니다.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일뿐...

  9. 어이 없네요 2009.12.02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 말 듣고 예고편 비담 척살 부분 다시 보고 왔습니다.

    낚시라고 하기에는 말을 이어서 계속 하던데요.옷차림,머리,촬영방법 같은 거 하나도 안 변하고 이어서...

    춘추도 그거 듣고 놀랐고요.

    잘 못 들으셨으면 비담 척살 써서 예고편에 비담 척살하라 어떻게 말하는지
    보고 오시길...

  10. 굴비 2009.12.02 15: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보기엔 제작진은 아무 생각없이 드라마를 만들고 있는게 맞습니다. 역사고, 책임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이 그냥 되는대로 분량때우며 시청률 의식하며 마무리 납땜하기에 바쁜것이지요. 60회가 넘어가는 대작인데다 처음부터 중반까지 너무 어긋나고 이지러지고 수습하기가 어렵게 됐으니 본인들도 아주 손발에 땀이 날겁니다.

  11. 굴비2 2009.12.02 16: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재미있는 드라마로 보시면 될 듯.

  12. 그냥 재미로 2009.12.03 0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본다고 해도
    개연성과 논리적인게 있어야 잘 만든 드라마라고 할 수 있죠
    역사적 사실은 제쳐두고라도
    선덕여왕 스스로 만들어낸 세계만 들여다본다 해도 헛점 투성이입니다.
    그리고 드라마를 재미로 보는것처럼
    이 블로그 글도 하나의 정보로만 보시죠 그렇게 열내실 것들 없습니다

  13. 갓쉰동최고 2009.12.03 0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중 오류있네요 드라마에서 덕만은 미실을 대역죄인으로 모는것이 아닌 칠숙과 석품의 반란으로 종결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는 언급을 금지시키지요 결국 미실은 주범이지만 신라의 영웅들중 하나가 되었고 칠숙과 석품은 주동도 하지않고 밑에서 고생만하다가 주동자가 되었죠 팩트와 픽션의 부적절한 결합물이 칠숙 석품의 난이죠

  14. BlogIcon Nehe 2009.12.04 0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댓글도 코메디군요.... 드라마니까 그냥 봐라? 뭘그렇게 따지냐?? 갓쉰동님 뭐 신경쓰지 마시고 계속 포스팅 해주세요~ 백번 만번 양보해서 드라마니까 역사를 밟아 뭉개도 괜찮다고 해도 뭐 드라마스토리 안에서도 무슨 말이 되야지요... 이 작가들은 역사가아니라 자기네들이 앞에 쓴 만들어낸 역사도 무시한다니까요 앞뒤 이야기하는게 달라요

    • BlogIcon 갓쉰동 2009.12.04 2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제생각과 같군요..

      저는 한번도 선덕여왕이 역사와 다르다고 비판한적이 없는뎅.. 님처럼 극의 개연성과 스토리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하는데 이상한 댓글들이 달리더라구용.. ㅋㅋ

  15. 갓만동 2009.12.08 0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시는 분이시군요. 아니면 소심하시거나...
    우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반역자가 아닌건 어떤분이 답을 해주셨구요.
    무엇보다 춘추와 월야 사이에 그렇게 단순하게 협상이 이루어졌겠습니까?
    저처럼 단순한 놈도 척 보면 춘추가 월야에게 김유신의 가문과 자신의 가문과의 국혼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머리 복잡하신 분이 그것까진 왜 생각 못하고 찧고 까부시는지...
    잘 모르시겠으면 이런 엉터리 글들로 사람들 현혹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속빈 강정에 돌 하나 넣으면 무지 시끄러운 법이지요.

  16. 글쎄요 2009.12.08 0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금... 재밌네요...
    이 글 외에도 선덕여왕에 대한 글이 굉장히 많네요
    오랜 시간 투자하여 분석하시고 글을 쓰시는 듯 한데
    왜 그러시는 잘... 모르겠습니다.;;;
    드라마에 대한 어느 정도의 비평은 필요하지만 이 정도는 거의 집착같은데요;;
    아님 작가의 엄청난 안티거나...
    (저도 물론 이 드라마의 개연성에 대해선 정말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맘에 안 들지만
    그러려니 혀만 끌끌 차고 맙니다. 맘에 안 들면 안 보면 그만이니까요)


    근데 (포스팅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챙겨보고 계실 모습을 상상하니... 참 아이러니 하네요

  17. ㄹㄹ 2009.12.23 1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죠.. 드라마인데 왜그렇게 공을 들이냐고 하면, 극의 개연성과 스토리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요...
    실질적으로 자체적인 설정상 정말 이건 말도 안되.. 할만한게 지금 지적된 것과는 오히려 다른 방향이지 않나 싶네요....

    님 자체 오류신건 이해를 못하시니까요.

    현 지형상이나, 역사상 이동과 방어 등의 오류는 찾으면서, 극에서 설정된 "사실" 자체를
    부정하면, 그것은 드라마를 위한 비판이라 볼수 없습니다.

    그 사실에 어떠한 오류가 있어나, 말그대로 "사실 - 모방한 사실성"이라는 것을 인정치 않으시기에 자꾸 역사 오류에서 그 개연성 오류를 파악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치면, 우리나라 조선왕조 오백년, 대장금 등은 하수구에 쳐박힐 드라마입니다.

    이전에 어디 여자 숙수가 있어서 음식을 하며, 어디 집안내자가 정1품 당상관 사랑방에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급기야 술상앞에서 정치 이야기를 했댑니까?

    정말 세밀하게 지적하려면, 정말 사실에 근거해서 역사성 조차도 분석해서 보여주시는게 오류를 줄이는 지름길입니다.

    어짜피 작가가 내민 코드는, 극 "인물설정"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 드라마, 극장르의 오류지요.

    우리나라 극문화의 가장 아쉬운 요소는 대본입니다.
    인형극, 연극, 번역극, 드라마, TV ,영화.. 모두 그렇습니다.

    그러한 것을 비판만 하지 마시고 직접 한번 개연성있게 작업을 하시거나,
    논리적으로 전체를 분석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체력 낭비같습니다...

  18. BlogIcon visit website 2012.07.14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들어간다. 확실히 미실 고현정의 여파가 크다, 똥을 누다 만것처럼 찝찝함을

  19.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종의 관행적인 형태이니 이해하다고 하더라도 타 선수의 점수를 깍는 방법으로 진행되고, 완벽하다고

  20. BlogIcon ready to eat indian food 2012.11.26 2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강력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형벌로서 하였다. 조선에서는 5개의 중형이 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이 있고, 남자의 성기를 짜르는 궁형이 있고, 아킬레스건 처럼 발뒤꿈치 힘줄을 짤라 버리는 월형(비형)이 있고,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 있고, 머리에 문신을 하는 자자(묵형)이 있다.

  21. BlogIcon katadyn mybottle review 2012.12.03 2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은 월야와 담판 지으려 한다. 그래서 죽방에 밀명을 내린다. 죽방은 밀명을 받고 거북육란의 표시를 하여 월야와 접선을 한다. 거북육란은 선덕여왕 설정 미스중에 하나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 기사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드라마 선덕여왕 53회에서는 별다른 에피소드가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대사는 의자에 앉아서 노닥거리는 걸로 소일하고 있다. 54회에는 백제의 계백(최원영)이 등장한다고 한다. 이유는 없다. 계백이 백제 멸망기에 유신과 국운을 걸고 황산벌에서 전투를 하였다는 것 말고, 640년 전 후 계백이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김유신은 너무나 뻔한 스토리인 이순신이 전장에서 전공을 세웠지만 원균의 모략으로 백의종군을 하였듯이 전공을 세운 김유신이 비담의 농간으로 백의종군한다는 드라마 패러디 수준의 이야기를 엮어갈 모양이다. 좋게 말하면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들은 사극을 만들때 역사책은 안보고 기존의 사극드라마 패러디 하기에 급급하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기존 사극 빼끼기 수준의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선덕여왕 즉위 전후 10년사이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알면 한가히 농담따먹기 수준의 사극은 안 봐도 되지 않을까 한다. 내실을 기해달라는 뜻이다.

선덕여왕은 즉위부터 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미실에 의한, 미실을 위한, 미실 만을 위한 드라마 였으니 번외편 선덕여왕에 힘이 실리지 않는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순신의 백의종군?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위 계승권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칠숙은 진평왕이 덕만을 차기 왕위에 올리려는 생각을 간파하고 석품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진평왕은 칠숙의 난을 사전에 감지하여 칠숙의 난을 조기에 진압하였다.


그런데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는 칠숙이 난을 일으킬것이란 사전모의를 17세 풍월주인 염장이 알고, 덕만에게 알렸고, 덕만과 염장이 칠숙과 석품의 난을 진압하는데 혁혁한 공로가 있었다고 전한다. 삼국사기에서 진평왕이 사전에 칠숙의 난이 있음을 감지한건 염장과 덕만의 진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염장은 극중에서 악역인 보종을 업어 키우듯이 하였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염장이 등장할 수 없는 것이다. 악역이 아닌 보종을 악역으로 만들었는데, 그와 가장 가까이 지낸 염장이 덕만의 편이였다는 설정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생과 비슷한 연배인 적대적인 대남보를 미생의 아들로 만드는 설정인데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지만 말이다. 대남보를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진평왕의 말년에 관한 기록은 참으로 애매한 부분이 있다. 김부식은 <고기>의 기록을 토대로 진평왕이 632년 정월에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진평왕의 죽음에는 다른 이설도 있다 당서에는 칠숙의 난이 있은 직후 631년 죽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일연은 삼국사기에 대한 이설을 가장 많이 기록하고 있다. 어찌보면 일연은 삼국사기 딴지맨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일연은 삼국유사 왕력편에 아주 재미 있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덕만에게는 왕위에 오르기전에 남편이 있었고, 남편의 이름은 <음갈문왕>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삼국사기에는 632년 정월 부터 17년간 재위하였지만, 삼국유사는 634년 연호를 인평으로 바꾸고 647년 1월 8일경 비담이 난을 일으키는 바로 전후 덕만이 죽을때까지 14년간 재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진평왕 말년인 625년 전후에 덕만의 어미인 마야황후가 죽고, 계모로 승만황후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승만에 대한 기록은 더이상 발견할 수 없지만, <화랑세기>에는 진평왕 말년에 황후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것을 알 수 있다. 덕만과 비슷한 나이 어린 승만은 아들을 낳고, 승만 자신의 아들로 하여금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을 만들려고 하였지만, 승만의 아들은 알 수 없는 이유에 의해서 죽어 버렸다.

이때, 덕만의 대부였으며, 남편인 용춘과 용수는 승만의 미움을 받아 지방으로 좌천되고 629년 낭비성 전투의 공적으로 서라벌 정치 중심에 발을 내딛는다.

정상적인 드라마라면 칠숙과 미천한 6부 귀족 출신인 손승만과 덕만의 왕위 쟁탈전을 그려야 합리적이다. 또한, 왕족이고 황후였던 미실이 등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진골, 성골의 허구는 6부 귀족 출신인 황후 손씨에 의해서 여지없이 깨지는 만큼 중요인물이다. 어쩌면 미실은 손 승만황후에 비하면 욕심도 없었을 것이다.

아들을 잃은 승만왕후와 왕위 승계에 불만을 품은 이찬 칠숙이 동상이몽이나 내연의 관계를 유지하였을 수도 있다. 631년 이찬 칠숙의 난은 승만왕후와 칠숙의 협력에 의해서 일어나지 않았을까하는 의심을 하게 되는것이다. 칠숙과 관련기사

2009/10/2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의난은 칠숙의난? 사실은
2009/10/2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의난이 칠숙의난이면, 김춘추 문희 결혼은 없다.
2009/07/26 -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가 위서가 아니라고 한다면,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덕만과 545~548년 생인 미실은 같은세대가 아니다. 미실은 614년 사도태후가 죽은 해를 전후에 죽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덕만은 여러 기록의 증거로 610년~615년 전후에 태어났을 것임으로 덕만의 할머니 진흥왕비인 사도태후와 미실은 영흥사에 들어가 비구니로 말년을 보냈다.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숙명적 라이벌로 그려진 덕만과 미실이 조우할 수 있는 때는 꼬꼬마 덕만과 70살 전후 미실이 아주 늙었을 때  잠깐 보지 않았을까 한다. 미실이 언제 죽었는지 알고 싶다면

2009/11/0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고현정 하차로 본 미실 최후 미실의 난, 비담(김남길) 존재감 사라진 진짜 이유?
2009/10/12 - [역사이야기] - 삼국사기, 화랑세기 기록으로 본 선덕여왕 미실(고현정) 언제 하차해야 하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 살펴보면 덕만은 631년 5월 칠숙이 난을 진압한 이후 진평왕을 대신해서 섭정을 하였고, 진평왕이 칠숙의 난 즈음해서 죽고 상중에 왕위에 오르지 않고, 김정일 처럼 유흔 통치를 하며, 일연이 말한대로 634년 정식으로 왕위에 올랐을 수도 있다.

덕만이 왕위에 오르면서 가정 먼저 한일은 대신 을제를 국정전반을 총괄하게하고, 여름 가뭄이 있자 가을 추수철에 사자를 지방에 보내서 굶주린 백성들에게 구휼미를 주고, 혼자 살아갈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진휼하였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대신 을제는 용춘과 더불어 덕만의 남편이 되는 인물이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진평왕의 대등으로 나오는 신구가 했던 인물이다.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여름 5월부터 가물다가 6월에 이르러서야 비가 왔다. 겨울 10월에 사자(使者)를 보내 나라 안의 홀아비와 홀어미, 부모없는 어린 아이와 늙어 자식없는 사람 그리고 혼자 힘으로 살아갈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문하고 진휼하였다.

또한, 삼국유사에 의하면 분황사와 영묘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또한, 세종실록 지리지 경주부에 의하면 이때 선덕여왕 2년 첨성대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첨성대가 612년 이후 바로 만든것으로 나오지만, 632년 즈음에 만들었다는 뜻이고, 공주시절이 아닌 덕만이 왕일때 만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또한, 덕만의 가장 치적은 불사를 하고, 백성들에게 조세를 감면하고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서 진휼한 것을 알 수 있다. 덕만이 죽고 시호가 <선덕>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2009/09/03 - [역사이야기] - 경주 첨성대는 선덕여왕 2년에 세워졌다. - 세종실록 지리지 경주편
2009/09/02 - [역사이야기] - 덕만은 첨성대로 신권을 버렸을까? 사실은


633년에는 신궁에 직접 나아가 제사를 지내고, 죄인들을 사면하고, 주.군의 세금도 면제해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경주에 지진도 있었고, 5월에는 백제가 서쪽 변방을 침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천신황녀의 지위를 버렸다고 했지만, 덕만은 신라 고유의 종교인 신도와 불교를 융합하여 새로운 신라를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해에는 백제가 변방을 침범하였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이 전쟁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하고 군의 주축이 된 서현이나 10화랑들의 활약이 있어야 한다.

634년 덕만이 왕이 된 3년에는  전왕인 아버지 진평이 사용하던 연호를 <건복>에서 <인평>으로 바꾸고 직접적인 신국의 황제가 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삼국유사 일연은 이해를 기준으로 14년간 치세하였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635년에는 또다시 이찬 수품과 용수 혹은 용춘을 주군에 내려보내 백성들의 살림을 살피고 진휼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알천 이승효가 비담 김남길에 이어서 신종플루에 걸려 집중 격리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이는 이들과 같이 연기한 배우들 또한 위험하다는 뜻이다. 드라마가 산으로 들로 바다로 가버린 점이 있으니 이참에 극중리얼리티나 극의 완성도를 위해서 휴지기를 가지고, 좀 더 완성도 높은 극본을 보기를 바란다.
또한, 알천이나 비담의 예처럼 선덕여왕의 배우들은 한가지 이상 선덕여왕을 찍으면서 병을 얻었을 것이다. 이는 당일치기 쪽대본으로 극을 만드는데 기인한 점이 많다. 그러니 처음 유신보다 20살은 많은 알천이 선덕여왕 극중에 왜 나와야 하는지 조차 잃어버리고, 나침판 없이 항해하듯 하는 것이다.

어쨌든, 미실의 난중에 가장 극에서 비중있게 나와야 하는 비담의 예처럼 알천의 극중 비중이 떨어진 이유가 신종플루 같지는 않다. 선덕여왕에서 미실을 위한 미실 드라마를 찍은 것처럼, 비담의 선덕여왕을 찍고 있다는 것이 알천의 예에서도 금방 들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덕만 시기 가장 화려한 생을 보낸 알천이 병풍이 되다


636년에는 병이 있었지만, 의술과 기도로도 효험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이해에는 선덕여왕의 <지기삼사>의 하나인 옥문곡에 두꺼비가 울어서 백제의 침입을 알고 알천과 필탄을 보내 백제가 독산성에 숨어 있던 백제군을 섬멸한다.

637년에는 알천은 대장군의 반열이 오른다. 대장군은 3.4등위만 누릴수 있는 병과에서는 최고등위에 해당한다. 알천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유신이 대장군이 되기 훨씬 이전에 대장군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실질적으로 덕만의 최측근은 비담 아니고 유신도 아니고 용춘.용수와 알천, 염장 그리고 너무 일찍 조로환자로 만든 을제였다

알천의 전공을 빼앗은 유신과 생각없는 덕만


638년 선덕왕 7년 11월 고구려가 칠중성을 공략할 때 대장군 알천은 군사를 이끌고 가서 칠중성 벌판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때도 유신은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알천 대신 있지도 않은 전쟁에서 승리한 유신이 돌아와서 비담의 정적으로 팽당하는 꼴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비담과 알력싸움을 하는 대상이 있다면 칠중성에서 대승을 하고 돌아온 알천과 비담이 정치쌈을 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그동안 병풍배우로 전락한 알천과 필탄이 활약할 수 있는 토대를 박살내고 왜 알천과 필탄이 드라마에 등장하여야 하는지도 모르게 병풍배우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아무런 활약도 없이 그저 도망가는 왜인의 조총의 유탄에 맞고 죽었다는 것 만큼 어설픈 설정이고, 백전백승의 이순신이 꼬랑지를 내리고 도망다녔다는 것 만큼 황당하다.  왜 드라마 선덕여왕에 알천과 필탄이 극에 나와야 하는지도 모를 정도가 되어 버렸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덕만의 내치는 잘 하였지만, 국방에 관한 외치는 하지 못하고 수세에 몰렸다는 이유로 덕만을 높이 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이미 백제로 부터 핍박을 받고 서쪽 변경을 빼앗기는 곤혹을 치렸었다. 그러니 덕만이 단순히 여인이기 때문에 외침이 많았다는 설은 낭설에 가깝다고 할것이다. 또한, 알천의 예가 보여주듯이 고구려의 침입에 적극적으로 보복전쟁도 수행하고 있다.

왜산 수노?


덕만이 왕이 되고 한일이라고는 비담의 농간에 놀아나 복야회를 치고, 자신의 충신인 유신을 버리는 것 말고 한일이 없다. 사실 복야회가 등장한다면 복야운동을 한 왜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 왜인들이 등장해야 하지만 한명의 왜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복야회나 신라의 미실이나 신라 병사들은 왜국에서 수입한 <수노>를 가지고 열심히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신라의 첨단 무기인 수노를 <왜>에서 수입하는 드라마라는 설정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수노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09/0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당.일본 떨게한 신라 비밀병기?
2009/11/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고현정 미실 최후 자살 죽음장소, 대야성 선택이유? 수노(手弩)는 왜(일본)산 최고?

어찌되었던 덕만이 사람을 얻어 왕이 되고, 신진 세력을 키우는데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없다. 최소한 <대왕세종>처럼 사람을 키우고, 새롭운 선진물물을 받아들이고, 월천으로 대변되는 격물을 어떻게 만들고 하늘을 살폈는지는 보여주어야 하지만 어떠한 노력도 없다. 실제로 덕만은 신진세력을 키우기 위해서 당나라에 우리 신라 귀족가문의 자제를 당신 나라의 대학(?)에서 수업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도 요청도 한다. 진평왕과 덕만시기에는 당나라 유학 전성시대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난에 이어서 642년 대야성 전투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642년 7월 백제는 대대적으로 신라를 침공해서 신라의 서쪽 40개성을 함락시킨다. 다음달 8월에 고구려와 연합해서 당으로 통하는 길목인 당항성을 침공할 기세를 보여준다. 백제의 윤충은 경남 합천 대야성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대야성은 백제의 침공에서 끝물이였다. 대야성이 중요하게 된 이유는 김춘추의 여식인 고타소가 죽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2009/11/2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누가 덕만을 능욕하나? 비담일까?

2009/09/14 - [역사이야기] - 진평왕의 사위이며, 진평.춘추의 장인 보종
2009/11/2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수출 좋지만 않는 이유?
2009/11/1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실제 언제 왕이 되었을까? 50살 전후? 20살 전후? - 삼국사기.유사기록을 토대로 본 통설을 깨자
2009/11/1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극중 난진압후 덕만은 언제 왕위에 올랐을까? 사실은
2009/11/18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누란 위기, 귀신잡는 비담 복야회 소탕작전 - 삼서제도 역사와 무관한 사극
2009/11/1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을 우매한 자살로 이끈 작가들
2009/11/1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상식접근 미실 덕만 왕 자격 있을까? - 고현정 대야성 자살 하차로 본 극중 대야성과 현실 대야성
2009/11/12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추가연장?, 미실 고현정 출생에서 미실의 난 실패 투혼으로 자살 하차 까지 시간순 연표정리 - 1부
2009/11/1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50회, 미실 고현정 대야성 독 푼다고 눈물 흘리며 자살미화? - 제작자는 고현정 아름다운 하차 안티?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1.24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갓쉰동님 저하고 비슷한 생각 두가지를 하셨네요...
    그래도 알천이 진덕여왕때 상대등인데.. 오늘 두 마디 했고요.
    "춘추공께서 오셨습니다." / "폐하.... 인강전에..."

    그리고 이 시점에 계백이 왜 나오는지.....

    저는 원래 드라마는 드라마 / 역사는 역사로 보는 사람이긴한데요.
    진덕여왕을 넣지도 않고 계백을 넣는다는 것이 웃겨서요.
    진덕여왕은 나오야 하는 인물이고, 계백은 나오지 말아야 하는 인물인데....

    하기사 뭐 선덕여왕 제작진측에 역사대로 만들어줄 것을 기대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사극에 바라는 작은 소원이 있다면 그저 최소한 TV 시청에
    "15세 미만 관람불가 (솔까말 이거 누가 지킵니까? ㅋㅋ)" 대신에
    "이 드라마는 역사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극입니다. 실제 역사와는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라는 식의 자막을 까는 편이 더 현명할 듯 싶네요...

    그 점과 관련해서 트랙백하나 걸구가요 ㅋ

  3. BlogIcon 뽀글 2009.11.24 15: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과 드라마는 확실히 차이가 있군요^^;; 저도 책으로 다시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알천에 대해서도 알아볼겸~^^

    • BlogIcon 갓쉰동 2009.11.24 2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많이 차이나지요.. 자신들이 만든 소설하고도 차이가 날걸용.. ㅋㅋ 시청율에 따라 좌우되었으니.. 대본이.. ㅋㅋ

  4. BlogIcon 분홍별장미 2009.11.24 1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요즘 너무 바빠서 미실죽기전편까지만 보았네요..
    한번 몰아서 봐야겠어요 ^^;;;;

  5. BlogIcon 루비™ 2009.11.24 1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와서 선덕여왕 보는게 시들막해졌어요.
    얼토당토 않은 내용이 너무나 많으니..
    아무리 99%를 픽션으로 만들었더라도 너무 심하다 싶어서요.
    하긴...뭐 애초에 덕만과 유신 러브라인 설정한 것 부터가
    드라마가 산으로 갈 운명을 타고 났는지도...
    언제나 도움 되는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6. BlogIcon 옥이 2009.11.24 1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두...요새 산으로 간다는 생각을 합니다...그래서 선덕여왕만 보던 옥이가 이제 선덕여왕 안보려고요...
    미실이 죽은뒤...정말 이상해집니다..
    행복한 저녁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24 2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실때부터도 이상했었음.. 워낙 고현정에 집중이 되서 안보인거지요.. 이제 대들보가 없어졌으니.. 잘보이는 것임.. ㅋㅋ

  7. BlogIcon rinda 2009.11.24 1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로는 알천이 대단한 일을 했군요.
    드라마에서는 그저 꽃미남 중 한 사람일 뿐이니 참;;
    허구가 심하게 많아지니 점점 챙겨볼 생각이 없어집니다ㅎㅎ

  8. BlogIcon 백두 대간 2009.11.24 1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참 할 말이 없네요, 이젠.

  9. BlogIcon shinlucky 2009.11.24 2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픽션은 픽션이고,
    그나저나 이렇게 진짜 사실과 비교해보는게 전 더 재미있습니다. ^_^

  10. BlogIcon 좋은사람들 2009.11.24 2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이 요즘 예전이랑 달라진걸 부쩍 느끼네요.~ 줏대가 없어졌어요~

  11. 갓쉰동님 광팬 2009.11.25 0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순신의 백의종군장면은 비극적이고 처절한데 김유신의 백의종군은 폭소만 나오네요 ㅎㅎ 역사상의 선덕여왕이 드라마에서처럼 치졸하고 생각없고 자기편만 챙기는 작은 그릇의 여인이라면 왜 드라마로 만들었는지 의문이네요. 드라마가 사실이라면 선덕여왕은 우리가 그닥 존경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고 드라마가 거짓이라면 작가는 저승에서 선덕여왕에게 크게 혼날겁니다^^;; 뭐... 작가의 농간 덕분에 미실이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저따위 설정으로나마 알 수 있었지만요...

  12. 사람들의 착각 2009.11.25 0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유신이 활약한 시기는 대야성이 깨진 시기인데.....ㅋㅋ
    다들 착각하고 있더군요.
    대야성함락 전후로 나누어 서현, 용춘. 용수, 알천, 염장, 을제, 필탄이 주요인사였고
    대야성함락후에 유신, 임종, 술종, 호림이 새로 가담했죠.
    그런데 사람들이 선덕여왕치세 처음부터 김유신이 활약하는 줄 알고 있더군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25 1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유신의 활약은 628년 낭비성 전트부터지요.. 이때 김유신의 존재가 부각되기도 하지만, 선덕여왕에선 나오지도 않았음..

  13. 산으로 가다가 2009.11.25 0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은 다시 바다로 가고 있더군요.
    스토리는 둘째치고라도...
    아직도 이요원씨의 발연기는 계속 되더이다.
    여왕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허겁지겁하는 모습이 너무 짜증납니다.
    어쩔줄 몰라서 고민하는 것이 얼굴에 다 나오고...
    카리스마가 전혀 없어요.

    미실의 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최소한 평균치는 해야 할 것 아닙니까?

  14. BlogIcon killerich 2009.11.25 0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저도 드라마봐야겠어요^^..;;
    선덕여왕 아직까지 한번도 안 봤어요..;; 외계인같죠TT

  15. BlogIcon montreal florist 2009.11.25 0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설도 재밌다니깐여

  16. BlogIcon labyrint 2009.11.25 0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가 갑자기 맥이 빠졌어요.
    마치 삼국지에 유비,관우, 장비가 없는 느낌이네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25 1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맥은 안빠지는데요.. 재미있어용..미실이 사라지니 좀더 나을줄 알았는뎅.. 발전이 없더군요.. ㅋㅋ

  17. BlogIcon pennpenn 2009.11.25 0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전문지식에 탄복하고 갑니다.

  18. BlogIcon 하-하 2009.11.25 1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공부 잘 하였습니다.님께서 역사의 잔실을 알려주어 가마사합니다.

  19. BlogIcon 하-하 2009.11.25 1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덕 등장은 시청률 흥미 없을테고, 완전 시청률/흥미땜에 계백 등장시킨것응 좋은데, 어찌 계백 캐릭터를 그리 어리숙하게 맹그러 버렸을까? 기막힌 발상이네.

    • BlogIcon 갓쉰동 2009.11.26 1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당. 춘추를 저리 키우다 진덕이 왕이 될때 어떻게 처리할려고 그러는징.. 그게 좀 궁금하기동.. ㅋㅋ

  20. BlogIcon 스마일맨 민석 2009.11.25 1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아직 못봤는데...
    한번 봐야겠어요 ㅎ

  21. 은루히 2009.12.02 0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요원씨의 연기력도 문제 겠지만
    제일 큰 문제는 제작진 이라고 말하고 싶으나
    그냥 전 닥치고 볼렵니다...(먼산

    • BlogIcon 갓쉰동 2009.12.02 0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 살펴보면 죽은자들 천국입니다.. 산자들보다는.. ㅋㅋ

      이요원은 저는 그정도면 선방했다고 봐용.. 가장 문제는 작가이고 그다음은 감독과 제작자지요..

      저는 개콘 보듯이 봅니당.. 너무 웃겨성.. ㅋㅋ

드라마 선덕여왕 53회에서는 별다른 에피소드가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대사는 의자에 앉아서 노닥거리는 걸로 소일하고 있다. 54회에는 백제의 계백(최원영)이 등장한다고 한다. 이유는 없다. 계백이 백제 멸망기에 유신과 국운을 걸고 황산벌에서 전투를 하였다는 것 말고, 640년 전 후 계백이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김유신은 너무나 뻔한 스토리인 이순신이 전장에서 전공을 세웠지만 원균의 모략으로 백의종군을 하였듯이 전공을 세운 김유신이 비담의 농간으로 백의종군한다는 드라마 패러디 수준의 이야기를 엮어갈 모양이다. 좋게 말하면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들은 사극을 만들때 역사책은 안보고 기존의 사극드라마 패러디 하기에 급급하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기존 사극 빼끼기 수준의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선덕여왕 즉위 전후 10년사이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알면 한가히 농담따먹기 수준의 사극은 안 봐도 되지 않을까 한다. 내실을 기해달라는 뜻이다.

선덕여왕은 즉위부터 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미실에 의한, 미실을 위한, 미실 만을 위한 드라마 였으니 번외편 선덕여왕에 힘이 실리지 않는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순신의 백의종군?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위 계승권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칠숙은 진평왕이 덕만을 차기 왕위에 올리려는 생각을 간파하고 석품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진평왕은 칠숙의 난을 사전에 감지하여 칠숙의 난을 조기에 진압하였다.


그런데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는 칠숙이 난을 일으킬것이란 사전모의를 17세 풍월주인 염장이 알고, 덕만에게 알렸고, 덕만과 염장이 칠숙과 석품의 난을 진압하는데 혁혁한 공로가 있었다고 전한다. 삼국사기에서 진평왕이 사전에 칠숙의 난이 있음을 감지한건 염장과 덕만의 진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염장은 극중에서 악역인 보종을 업어 키우듯이 하였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염장이 등장할 수 없는 것이다. 악역이 아닌 보종을 악역으로 만들었는데, 그와 가장 가까이 지낸 염장이 덕만의 편이였다는 설정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생과 비슷한 연배인 적대적인 대남보를 미생의 아들로 만드는 설정인데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지만 말이다. 대남보를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진평왕의 말년에 관한 기록은 참으로 애매한 부분이 있다. 김부식은 <고기>의 기록을 토대로 진평왕이 632년 정월에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진평왕의 죽음에는 다른 이설도 있다 당서에는 칠숙의 난이 있은 직후 631년 죽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일연은 삼국사기에 대한 이설을 가장 많이 기록하고 있다. 어찌보면 일연은 삼국사기 딴지맨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일연은 삼국유사 왕력편에 아주 재미 있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덕만에게는 왕위에 오르기전에 남편이 있었고, 남편의 이름은 <음갈문왕>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삼국사기에는 632년 정월 부터 17년간 재위하였지만, 삼국유사는 634년 연호를 인평으로 바꾸고 647년 1월 8일경 비담이 난을 일으키는 바로 전후 덕만이 죽을때까지 14년간 재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진평왕 말년인 625년 전후에 덕만의 어미인 마야황후가 죽고, 계모로 승만황후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승만에 대한 기록은 더이상 발견할 수 없지만, <화랑세기>에는 진평왕 말년에 황후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것을 알 수 있다. 덕만과 비슷한 나이 어린 승만은 아들을 낳고, 승만 자신의 아들로 하여금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을 만들려고 하였지만, 승만의 아들은 알 수 없는 이유에 의해서 죽어 버렸다.

이때, 덕만의 대부였으며, 남편인 용춘과 용수는 승만의 미움을 받아 지방으로 좌천되고 629년 낭비성 전투의 공적으로 서라벌 정치 중심에 발을 내딛는다.

정상적인 드라마라면 칠숙과 미천한 6부 귀족 출신인 손승만과 덕만의 왕위 쟁탈전을 그려야 합리적이다. 또한, 왕족이고 황후였던 미실이 등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진골, 성골의 허구는 6부 귀족 출신인 황후 손씨에 의해서 여지없이 깨지는 만큼 중요인물이다. 어쩌면 미실은 손 승만황후에 비하면 욕심도 없었을 것이다.

아들을 잃은 승만왕후와 왕위 승계에 불만을 품은 이찬 칠숙이 동상이몽이나 내연의 관계를 유지하였을 수도 있다. 631년 이찬 칠숙의 난은 승만왕후와 칠숙의 협력에 의해서 일어나지 않았을까하는 의심을 하게 되는것이다. 칠숙과 관련기사

2009/10/2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의난은 칠숙의난? 사실은
2009/10/2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의난이 칠숙의난이면, 김춘추 문희 결혼은 없다.
2009/07/26 -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가 위서가 아니라고 한다면,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덕만과 545~548년 생인 미실은 같은세대가 아니다. 미실은 614년 사도태후가 죽은 해를 전후에 죽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덕만은 여러 기록의 증거로 610년~615년 전후에 태어났을 것임으로 덕만의 할머니 진흥왕비인 사도태후와 미실은 영흥사에 들어가 비구니로 말년을 보냈다.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숙명적 라이벌로 그려진 덕만과 미실이 조우할 수 있는 때는 꼬꼬마 덕만과 70살 전후 미실이 아주 늙었을 때  잠깐 보지 않았을까 한다. 미실이 언제 죽었는지 알고 싶다면

2009/11/0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고현정 하차로 본 미실 최후 미실의 난, 비담(김남길) 존재감 사라진 진짜 이유?
2009/10/12 - [역사이야기] - 삼국사기, 화랑세기 기록으로 본 선덕여왕 미실(고현정) 언제 하차해야 하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 살펴보면 덕만은 631년 5월 칠숙이 난을 진압한 이후 진평왕을 대신해서 섭정을 하였고, 진평왕이 칠숙의 난 즈음해서 죽고 상중에 왕위에 오르지 않고, 김정일 처럼 유흔 통치를 하며, 일연이 말한대로 634년 정식으로 왕위에 올랐을 수도 있다.

덕만이 왕위에 오르면서 가정 먼저 한일은 대신 을제를 국정전반을 총괄하게하고, 여름 가뭄이 있자 가을 추수철에 사자를 지방에 보내서 굶주린 백성들에게 구휼미를 주고, 혼자 살아갈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진휼하였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대신 을제는 용춘과 더불어 덕만의 남편이 되는 인물이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진평왕의 대등으로 나오는 신구가 했던 인물이다.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여름 5월부터 가물다가 6월에 이르러서야 비가 왔다. 겨울 10월에 사자(使者)를 보내 나라 안의 홀아비와 홀어미, 부모없는 어린 아이와 늙어 자식없는 사람 그리고 혼자 힘으로 살아갈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문하고 진휼하였다.

또한, 삼국유사에 의하면 분황사와 영묘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또한, 세종실록 지리지 경주부에 의하면 이때 선덕여왕 2년 첨성대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첨성대가 612년 이후 바로 만든것으로 나오지만, 632년 즈음에 만들었다는 뜻이고, 공주시절이 아닌 덕만이 왕일때 만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또한, 덕만의 가장 치적은 불사를 하고, 백성들에게 조세를 감면하고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서 진휼한 것을 알 수 있다. 덕만이 죽고 시호가 <선덕>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2009/09/03 - [역사이야기] - 경주 첨성대는 선덕여왕 2년에 세워졌다. - 세종실록 지리지 경주편
2009/09/02 - [역사이야기] - 덕만은 첨성대로 신권을 버렸을까? 사실은


633년에는 신궁에 직접 나아가 제사를 지내고, 죄인들을 사면하고, 주.군의 세금도 면제해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경주에 지진도 있었고, 5월에는 백제가 서쪽 변방을 침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천신황녀의 지위를 버렸다고 했지만, 덕만은 신라 고유의 종교인 신도와 불교를 융합하여 새로운 신라를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해에는 백제가 변방을 침범하였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이 전쟁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하고 군의 주축이 된 서현이나 10화랑들의 활약이 있어야 한다.

634년 덕만이 왕이 된 3년에는  전왕인 아버지 진평이 사용하던 연호를 <건복>에서 <인평>으로 바꾸고 직접적인 신국의 황제가 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삼국유사 일연은 이해를 기준으로 14년간 치세하였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635년에는 또다시 이찬 수품과 용수 혹은 용춘을 주군에 내려보내 백성들의 살림을 살피고 진휼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알천 이승효가 비담 김남길에 이어서 신종플루에 걸려 집중 격리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이는 이들과 같이 연기한 배우들 또한 위험하다는 뜻이다. 드라마가 산으로 들로 바다로 가버린 점이 있으니 이참에 극중리얼리티나 극의 완성도를 위해서 휴지기를 가지고, 좀 더 완성도 높은 극본을 보기를 바란다.
또한, 알천이나 비담의 예처럼 선덕여왕의 배우들은 한가지 이상 선덕여왕을 찍으면서 병을 얻었을 것이다. 이는 당일치기 쪽대본으로 극을 만드는데 기인한 점이 많다. 그러니 처음 유신보다 20살은 많은 알천이 선덕여왕 극중에 왜 나와야 하는지 조차 잃어버리고, 나침판 없이 항해하듯 하는 것이다.

어쨌든, 미실의 난중에 가장 극에서 비중있게 나와야 하는 비담의 예처럼 알천의 극중 비중이 떨어진 이유가 신종플루 같지는 않다. 선덕여왕에서 미실을 위한 미실 드라마를 찍은 것처럼, 비담의 선덕여왕을 찍고 있다는 것이 알천의 예에서도 금방 들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덕만 시기 가장 화려한 생을 보낸 알천이 병풍이 되다


636년에는 병이 있었지만, 의술과 기도로도 효험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이해에는 선덕여왕의 <지기삼사>의 하나인 옥문곡에 두꺼비가 울어서 백제의 침입을 알고 알천과 필탄을 보내 백제가 독산성에 숨어 있던 백제군을 섬멸한다.

637년에는 알천은 대장군의 반열이 오른다. 대장군은 3.4등위만 누릴수 있는 병과에서는 최고등위에 해당한다. 알천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유신이 대장군이 되기 훨씬 이전에 대장군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실질적으로 덕만의 최측근은 비담 아니고 유신도 아니고 용춘.용수와 알천, 염장 그리고 너무 일찍 조로환자로 만든 을제였다

알천의 전공을 빼앗은 유신과 생각없는 덕만


638년 선덕왕 7년 11월 고구려가 칠중성을 공략할 때 대장군 알천은 군사를 이끌고 가서 칠중성 벌판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때도 유신은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알천 대신 있지도 않은 전쟁에서 승리한 유신이 돌아와서 비담의 정적으로 팽당하는 꼴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비담과 알력싸움을 하는 대상이 있다면 칠중성에서 대승을 하고 돌아온 알천과 비담이 정치쌈을 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그동안 병풍배우로 전락한 알천과 필탄이 활약할 수 있는 토대를 박살내고 왜 알천과 필탄이 드라마에 등장하여야 하는지도 모르게 병풍배우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아무런 활약도 없이 그저 도망가는 왜인의 조총의 유탄에 맞고 죽었다는 것 만큼 어설픈 설정이고, 백전백승의 이순신이 꼬랑지를 내리고 도망다녔다는 것 만큼 황당하다.  왜 드라마 선덕여왕에 알천과 필탄이 극에 나와야 하는지도 모를 정도가 되어 버렸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덕만의 내치는 잘 하였지만, 국방에 관한 외치는 하지 못하고 수세에 몰렸다는 이유로 덕만을 높이 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이미 백제로 부터 핍박을 받고 서쪽 변경을 빼앗기는 곤혹을 치렸었다. 그러니 덕만이 단순히 여인이기 때문에 외침이 많았다는 설은 낭설에 가깝다고 할것이다. 또한, 알천의 예가 보여주듯이 고구려의 침입에 적극적으로 보복전쟁도 수행하고 있다.

왜산 수노?


덕만이 왕이 되고 한일이라고는 비담의 농간에 놀아나 복야회를 치고, 자신의 충신인 유신을 버리는 것 말고 한일이 없다. 사실 복야회가 등장한다면 복야운동을 한 왜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 왜인들이 등장해야 하지만 한명의 왜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복야회나 신라의 미실이나 신라 병사들은 왜국에서 수입한 <수노>를 가지고 열심히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신라의 첨단 무기인 수노를 <왜>에서 수입하는 드라마라는 설정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수노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09/0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당.일본 떨게한 신라 비밀병기?
2009/11/1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고현정 미실 최후 자살 죽음장소, 대야성 선택이유? 수노(手弩)는 왜(일본)산 최고?

어찌되었던 덕만이 사람을 얻어 왕이 되고, 신진 세력을 키우는데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없다. 최소한 <대왕세종>처럼 사람을 키우고, 새롭운 선진물물을 받아들이고, 월천으로 대변되는 격물을 어떻게 만들고 하늘을 살폈는지는 보여주어야 하지만 어떠한 노력도 없다. 실제로 덕만은 신진세력을 키우기 위해서 당나라에 우리 신라 귀족가문의 자제를 당신 나라의 대학(?)에서 수업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도 요청도 한다. 진평왕과 덕만시기에는 당나라 유학 전성시대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난에 이어서 642년 대야성 전투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642년 7월 백제는 대대적으로 신라를 침공해서 신라의 서쪽 40개성을 함락시킨다. 다음달 8월에 고구려와 연합해서 당으로 통하는 길목인 당항성을 침공할 기세를 보여준다. 백제의 윤충은 경남 합천 대야성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대야성은 백제의 침공에서 끝물이였다. 대야성이 중요하게 된 이유는 김춘추의 여식인 고타소가 죽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2009/11/2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누가 덕만을 능욕하나? 비담일까?

2009/09/14 - [역사이야기] - 진평왕의 사위이며, 진평.춘추의 장인 보종
2009/11/20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수출 좋지만 않는 이유?
2009/11/1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실제 언제 왕이 되었을까? 50살 전후? 20살 전후? - 삼국사기.유사기록을 토대로 본 통설을 깨자
2009/11/17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극중 난진압후 덕만은 언제 왕위에 올랐을까? 사실은
2009/11/18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누란 위기, 귀신잡는 비담 복야회 소탕작전 - 삼서제도 역사와 무관한 사극
2009/11/16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을 우매한 자살로 이끈 작가들
2009/11/1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상식접근 미실 덕만 왕 자격 있을까? - 고현정 대야성 자살 하차로 본 극중 대야성과 현실 대야성
2009/11/12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추가연장?, 미실 고현정 출생에서 미실의 난 실패 투혼으로 자살 하차 까지 시간순 연표정리 - 1부
2009/11/1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50회, 미실 고현정 대야성 독 푼다고 눈물 흘리며 자살미화? - 제작자는 고현정 아름다운 하차 안티?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1.24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갓쉰동님 저하고 비슷한 생각 두가지를 하셨네요...
    그래도 알천이 진덕여왕때 상대등인데.. 오늘 두 마디 했고요.
    "춘추공께서 오셨습니다." / "폐하.... 인강전에..."

    그리고 이 시점에 계백이 왜 나오는지.....

    저는 원래 드라마는 드라마 / 역사는 역사로 보는 사람이긴한데요.
    진덕여왕을 넣지도 않고 계백을 넣는다는 것이 웃겨서요.
    진덕여왕은 나오야 하는 인물이고, 계백은 나오지 말아야 하는 인물인데....

    하기사 뭐 선덕여왕 제작진측에 역사대로 만들어줄 것을 기대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사극에 바라는 작은 소원이 있다면 그저 최소한 TV 시청에
    "15세 미만 관람불가 (솔까말 이거 누가 지킵니까? ㅋㅋ)" 대신에
    "이 드라마는 역사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극입니다. 실제 역사와는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라는 식의 자막을 까는 편이 더 현명할 듯 싶네요...

    그 점과 관련해서 트랙백하나 걸구가요 ㅋ

  3. BlogIcon 뽀글 2009.11.24 15: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과 드라마는 확실히 차이가 있군요^^;; 저도 책으로 다시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알천에 대해서도 알아볼겸~^^

    • BlogIcon 갓쉰동 2009.11.24 2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많이 차이나지요.. 자신들이 만든 소설하고도 차이가 날걸용.. ㅋㅋ 시청율에 따라 좌우되었으니.. 대본이.. ㅋㅋ

  4. BlogIcon 분홍별장미 2009.11.24 1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요즘 너무 바빠서 미실죽기전편까지만 보았네요..
    한번 몰아서 봐야겠어요 ^^;;;;

  5. BlogIcon 루비™ 2009.11.24 1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와서 선덕여왕 보는게 시들막해졌어요.
    얼토당토 않은 내용이 너무나 많으니..
    아무리 99%를 픽션으로 만들었더라도 너무 심하다 싶어서요.
    하긴...뭐 애초에 덕만과 유신 러브라인 설정한 것 부터가
    드라마가 산으로 갈 운명을 타고 났는지도...
    언제나 도움 되는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6. BlogIcon 옥이 2009.11.24 1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두...요새 산으로 간다는 생각을 합니다...그래서 선덕여왕만 보던 옥이가 이제 선덕여왕 안보려고요...
    미실이 죽은뒤...정말 이상해집니다..
    행복한 저녁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24 2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실때부터도 이상했었음.. 워낙 고현정에 집중이 되서 안보인거지요.. 이제 대들보가 없어졌으니.. 잘보이는 것임.. ㅋㅋ

  7. BlogIcon rinda 2009.11.24 1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로는 알천이 대단한 일을 했군요.
    드라마에서는 그저 꽃미남 중 한 사람일 뿐이니 참;;
    허구가 심하게 많아지니 점점 챙겨볼 생각이 없어집니다ㅎㅎ

  8. BlogIcon 백두 대간 2009.11.24 1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참 할 말이 없네요, 이젠.

  9. BlogIcon shinlucky 2009.11.24 2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픽션은 픽션이고,
    그나저나 이렇게 진짜 사실과 비교해보는게 전 더 재미있습니다. ^_^

  10. BlogIcon 좋은사람들 2009.11.24 2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이 요즘 예전이랑 달라진걸 부쩍 느끼네요.~ 줏대가 없어졌어요~

  11. 갓쉰동님 광팬 2009.11.25 0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순신의 백의종군장면은 비극적이고 처절한데 김유신의 백의종군은 폭소만 나오네요 ㅎㅎ 역사상의 선덕여왕이 드라마에서처럼 치졸하고 생각없고 자기편만 챙기는 작은 그릇의 여인이라면 왜 드라마로 만들었는지 의문이네요. 드라마가 사실이라면 선덕여왕은 우리가 그닥 존경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고 드라마가 거짓이라면 작가는 저승에서 선덕여왕에게 크게 혼날겁니다^^;; 뭐... 작가의 농간 덕분에 미실이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저따위 설정으로나마 알 수 있었지만요...

  12. 사람들의 착각 2009.11.25 0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유신이 활약한 시기는 대야성이 깨진 시기인데.....ㅋㅋ
    다들 착각하고 있더군요.
    대야성함락 전후로 나누어 서현, 용춘. 용수, 알천, 염장, 을제, 필탄이 주요인사였고
    대야성함락후에 유신, 임종, 술종, 호림이 새로 가담했죠.
    그런데 사람들이 선덕여왕치세 처음부터 김유신이 활약하는 줄 알고 있더군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25 1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유신의 활약은 628년 낭비성 전트부터지요.. 이때 김유신의 존재가 부각되기도 하지만, 선덕여왕에선 나오지도 않았음..

  13. 산으로 가다가 2009.11.25 0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은 다시 바다로 가고 있더군요.
    스토리는 둘째치고라도...
    아직도 이요원씨의 발연기는 계속 되더이다.
    여왕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허겁지겁하는 모습이 너무 짜증납니다.
    어쩔줄 몰라서 고민하는 것이 얼굴에 다 나오고...
    카리스마가 전혀 없어요.

    미실의 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최소한 평균치는 해야 할 것 아닙니까?

  14. BlogIcon killerich 2009.11.25 0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저도 드라마봐야겠어요^^..;;
    선덕여왕 아직까지 한번도 안 봤어요..;; 외계인같죠TT

  15. BlogIcon montreal florist 2009.11.25 0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설도 재밌다니깐여

  16. BlogIcon labyrint 2009.11.25 0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가 갑자기 맥이 빠졌어요.
    마치 삼국지에 유비,관우, 장비가 없는 느낌이네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25 1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맥은 안빠지는데요.. 재미있어용..미실이 사라지니 좀더 나을줄 알았는뎅.. 발전이 없더군요.. ㅋㅋ

  17. BlogIcon pennpenn 2009.11.25 0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전문지식에 탄복하고 갑니다.

  18. BlogIcon 하-하 2009.11.25 1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공부 잘 하였습니다.님께서 역사의 잔실을 알려주어 가마사합니다.

  19. BlogIcon 하-하 2009.11.25 1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덕 등장은 시청률 흥미 없을테고, 완전 시청률/흥미땜에 계백 등장시킨것응 좋은데, 어찌 계백 캐릭터를 그리 어리숙하게 맹그러 버렸을까? 기막힌 발상이네.

    • BlogIcon 갓쉰동 2009.11.26 1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당. 춘추를 저리 키우다 진덕이 왕이 될때 어떻게 처리할려고 그러는징.. 그게 좀 궁금하기동.. ㅋㅋ

  20. BlogIcon 스마일맨 민석 2009.11.25 1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아직 못봤는데...
    한번 봐야겠어요 ㅎ

  21. 은루히 2009.12.02 0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요원씨의 연기력도 문제 겠지만
    제일 큰 문제는 제작진 이라고 말하고 싶으나
    그냥 전 닥치고 볼렵니다...(먼산

    • BlogIcon 갓쉰동 2009.12.02 0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 살펴보면 죽은자들 천국입니다.. 산자들보다는.. ㅋㅋ

      이요원은 저는 그정도면 선방했다고 봐용.. 가장 문제는 작가이고 그다음은 감독과 제작자지요..

      저는 개콘 보듯이 봅니당.. 너무 웃겨성.. ㅋㅋ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세종과 미실의 아들로 나오는 하종은 어리숙하면서도 아버지가 다른 나이어린 보종에 대해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또한, 미실의 정부(?)인 설원랑(전노민)에 대해서는 비호감의 감정을 스스럼 없이 분출하고 있다. 왕인 진평에게나 왕비인 마야에게도 맘에 안들면 치받아 버린다.

김정현이 하종 배역을 맡고 있는데, 어쩜저리 어리숙하고, 찌질하게 연기를 잘하는지 보는 내내 웃음을 짓게 한다.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인물중에서 미워할 수 없는 악역중에 일인이라고 하겠다. 


선덕여왕에서 상천관 서리(송옥숙)이 미실(고현정)이 건낸 사약(?)을 먹고 죽는다. 그 뒤를 이어서 서리의 보조 신녀인 설매가 상천관의 지위를 계승하였다. 설매역을 맡은 조명진이 삼성 야구선수 박한이와 결혼을 예정한것 처럼, 김정현도 약속한 연인과 11월 결혼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김정현이 맡은 하종이 어떤인물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갔도록 하겠다. 하종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와 같이 악인이였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비담은 삼국사기에 647년 1월 염종과 난을 일으킨다. 그래서 비담은 악역으로 나올수 밖에 없다. 문제는 비담이 정말 악인이였을까? 아니면 쿠데타에 실패한 정치인이였을까는 역사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엇갈림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정말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쓰여진 기록"이기때문에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까?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많다. 또한,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아무데나 역사는 승자에 의한 기록이기 때문에 생몰년이나 부모까지 바꾸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해석상의 문제가 아니고 기본 인물정보에 대한 팩트이다. 사건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는 상상력을 발휘할 공간이 있다. 하지만 기본팩트는 바꾸면 안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하종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단지, 논란의 중심에 있는 <화랑세기>에서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하종은 세종과 미실사이에 태어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5세 풍월주 사다함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사다함은 미실을 사랑하였다. 세종 또한 미실을 사랑하였다. 미실은 사다함이 전장에 참전을 할때 송전가를 구구절절 읆어, 전장에 나가는 사다함에 "고무신꺼꾸로 신지 않겠다"고 사다함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미실은 사다함이 대가야에 참전을 할때 세종과 결혼을 해버린다. 전장에 나가 돌아온 사다함은 미실이 세종과 결혼한 사실을 알고 낙담하였다. 사다함은 실연의 아픔과 자신의 부하의 죽음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하지만 사다함은 자신의 다음 풍월주을 자신의 연적인 <세종>에게 물려준다. 


이런 사다함을 위해서 세종과 미실은 천주사에 진심으로 사다함에 공양을 들이고 관계를 가진다. 천주사에 관한 설화는 화랑세기에 여러번 등장을 한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천주사에 대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어찌되었던 천주사에서 관계를 가진후 미실은 564년 하종을 낳는다. 이런 연휴로 하종은 어릴적 부터 <사다함> 화신으로 불리웠다.

애송공주(567년생)는 미실과 진평왕의 아버지 동륜태자 사이에 태어났지만, 진흥은 자신의 자식인줄 알았다. 진흥과 미실사이에는 반야공주, 난야공주가 태어나고 572년 즈음 수종전군이 태어난다.

하종은 어머니 미실이 진흥을 섬기고 아이를 낳을때 마다 직위가 상승하고, 하종의 나이 9살인 572년 태자 동륜이 보명궁의 담을 넘어 개에게 물려 죽기 전에는 <전군>의 지위까지 상승하게 된다.  하종은 진흥왕의 자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흥에 의해서 전군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578년 (하종)공은 15살에 화랑에 들어가 역사를 토함공에게 배웠고, 노래를 이화공에게 배웠고, 검술을 문노에게 배웠고, 춤을 미생공에게 배워 모두 그 정수를 얻었다.

드라마에서는 하종이 안하무인, 무식한 캐릭터 이지만, 하종은 역사를 사다함의 형인 토함에게 배우고, 노래를 이화랑(4세풍월주)에 배우고, 검술을 8세 풍월주인 문노에 배웠다. 또한, 춤을 삼촌인 미생(10세 풍월주)에 배웠다. 그러니 하종은 다방면에 능통한 사람이였다는 것이다.


하종은 미모(설원랑/준모)에 장가를 가서, 유모, 영모, 모종을 낳고, 나중에 사도태후의 명으로 진평의 후비였던 사도의 막내딸인 은륜(진흥/사도)과 결혼하여 하희,월희, 효종을 낳는다. 드라마에서 설원랑에 팅팅거리는 것으로 나오지만, 설원랑은 하종의 장인이다. 장인에 틱틱거리는 사위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은륜과 결혼을 하므로서 진흥왕의 부마가 된다.

화랑세기는 보리공이 하종을 평할때 "지금 세상에 하종같은 효자와 충신은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진평에 틱틱거리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하종이 진평보다도 나이가 어리고, 용춘보다도 나이가 어린것으로 나오지만, 하종은 564년생으로 565년생인 진평(백정)보다 나이가 1살이 많다.

또한, 용춘은 576년생이다. 그러니 용춘보다는 12살이나 많았다. 하종은 용춘의 아버지뻘이였고, 사사로이는 용춘의 아버지 금륜의 막내누이인 은륜과 결혼한 상대이니 용춘의 고모부가 하종이다. 그러니 용춘(576년)이 화백회의에서 하종(564년)이나 미생(550년)에게 막말을 하는 행동은 인륜을 저버린 행동이다.


우리의 찌질이 하종은 은륜의 언니인 태양(진흥/사도)가 유혹하여도 넘어가지 않고, 은륜에 충심으로 대접하였다고 한다. 방탕한 은륜을 자신의 아버지 세종이 미실을 섬기듯이 따스하게 감싼다.

한마디로 무골공자이면서, 공직에 나아가서는 청렴하였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매점매석의 주체로 하종을 집어 넣었지만 하종은 첨렴함의 신표인 청백리같은 이였다.


 공은 검소하고 색을 삼갔으며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윗사람을 공경하여 세종(世宗)의 풍모를 크게 가졌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공에게 복종하지 않는 사람도 끝내는 귀부하였다.

 3년간 재위하다가 보리공에게 양보하며 말하기를 “앞선 풍월주들이 큰 성인이었는데도 오히려 3년간 재위하였는데 내가 어찌 감히 오래 머물겠는가?” 하였다. 보리공이 말하기를 “주형(主兄)은 곧 미실 원화의 아들이다. 어찌 뭇 화랑들과 더불어 같은 예로 하겠습니까?” 하였다. 공이 굳이 사양하였다. 보리공이 이에 풍월주의 자리에 올랐다. 보리공은 곧 나(김대문)의 증조이다. 일찍이 나(김대문)의 아버지(오기공)에게 하종공을 칭찬하여 말하기를 “지금 세상에 이 같은 효자·충신은 없다” 하였다.

대개 미실궁주가 삼조(三朝)를 차례로 섬겼는데, 형제가 핏줄이 달라 움직이면 어려움이 많았다. 은륜공주 또한 골을 믿고 방탕하였다. 공은 한결같이 세종공이 미실을 대접하는 것처럼 하고 불문에 부쳤다. 태양공주는 은륜의 형으로 공과 더불어 가까이 살았는데 공을 유혹함이 심하였으나, 공은 한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공의 청렴과 지킴이 이와 같았다고 한다. - 화랑세기 11세 풍월주 하종

한마디로 표현하면 하종은 요즘 뜨고 있는 <엄친아>의 표본이였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가장 최악질 찌질이 하종으로 변한것이다. 물론, 드라마이니 충분히 설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다음의 예를 들어서 표현하자면 전두환이 민주투사로 나오고, 노무현이나 김대중이 쿠데타를 이르킨다는 설정이나, 세종대왕이 연산군보다 더한 폭군으로 나오고, 이순신이 원균을 넘어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기려는 이완용이나 송병준같은 만고의 역적으로 표현한다면 황당하지 않았을까?

단순히 드라마니 괜찮아? 또는 재미를 위해서는 괜찮아. 다큐가 아니니 괜찮아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드라마에서 김정현이 열연하고 있는 <하종>을 위한 변론으로 마치고자 한다.

글쓴이는 하종을 선덕여왕의 대표찌질이로 표현해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하종>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이 글을 보기 전까지는 김정현이 배역을 맡은 <엄친아> <하종>이 정말 <찌질남>의 대표선수인줄 알았을 것이다. 세종이나 이순신이나 전두환이나 이완용이나 송병준은 드라마를 위해서 인물을 변형시키면 안되고 자신들이 모르고, 잘 알려지지 않은 <하종>은 <찌질남>으로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편협한 생각이 아닐까?

2009/10/12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고현정) 언제 죽어 하차해야 하나?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BlogIcon 감자꿈 2009.10.11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워할 수 없는 악인 하종이죠.
    하는 짓이 초딩 같습니다.
    그래서 귀엽기까지하다는...^^
    화랑세기에선 그런 모습이었군요. ^^

  3. ECLAT 2009.10.11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드라마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캐러였던.ㅋㅋㅋ
    세종과 하종부자. 너무 찌질하게 나오더라구요ㅠ 아버지닮아서 엄친아에 성격좋고 훈남이었는데.
    갓쉰동님게서 이렇게 제대로 잡아주시네요.ㅎㅎ
    화랑세기에서 김대문이 가장 칭찬했다는 세종의 아들인데...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용.. 각자 개인적인 성향이 다르겠지만.. 김대문이 아버지인 오기에게 전해들었다... 김대문의 증조인 보리가 극찬한 인물이라고 하니요.. ㅋㅋ

  4. ..... 2009.10.11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다른 나이어린 보종이 아니라 동복동생 보종 아닌가요?;; 하종과 보종은 같은배에서 태어났습니다....

  5. BlogIcon 아홉살인생 2009.10.11 1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의 마지막 부분은 한 번 생각해 볼만한 문제겠군요.

  6. 공수래 2009.10.11 1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춘(576년)이 화백회의에서 하종(564년)이나 미생(550년)에게 막말을 하는 행동은 인륜을 저버린 행동" 이라는 대목은 좀 그렇네요...용춘은 골품제도로 운영됐던 신라에서 하종이나 미생보다 윗사람이었습니다. 족보를 보시면 알수있습니다. 용춘은 무늬만 진골인 성골입니다. 김춘추보다 더 성골에 가깝죠.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라를 개나라로 만든게 성골.진골이예용.. 골이 높다고 해서. 나이 많은 고모부에 하대하고 욕을 할것이라는 상상은 끔찍한거지요.. 왕도 자신의 장인에게는 하대를 못해용.. ㅋㅋ

  7. BlogIcon 영웅전쟁 2009.10.11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휴일인데 노고를 아끼지 않셨군요...
    연속된 드라마의 잘못된 캐릭터 선정에 대한
    이야기이군요. 엄친아라...
    재미있게
    잘보고 갑니다.
    휴일 잘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인물창조를 하더라도 좀 그럴듯 하게 했음 좋겠다 싶더라구요.. 대남보, 보종, 하종. 정말로 안타까운 인물들인뎅..

  8. 2009.10.11 1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괜찮

  9. 맑은바람 2009.10.11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선 풍월주들이 큰 성인이었는데도 오히려 3년간 재위하였는데 내가 어찌 감히 오래 머물겠는가?”

    ...단순한 겸양의 표현이라고 보기엔 깊은 격조가 있군요.
    드라마에 묻혀 자칫 간과하기 쉬운 실제 역사를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10. 조예린 2009.10.11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이런 글이 올라왔을까?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11. qillip 2009.10.11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오~ 선덕여왕은 안봐도 님글은 꼬박꼬박 찾아본다는....늘 감사....^^;

  12. 갔도록->갖도록 2009.10.11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거같네요 가지다의 준말 갖다

  13. 와웅 2009.10.11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네요!
    놀라운사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밌게보고갑니당!

  14. BlogIcon pennpenn 2009.10.11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 공부 하고 갑니다.
    해박한 역사 지식에 탄복하면서요~

  15. 김정현 2009.10.11 2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나마 저승에 간 하종이는
    1300년뒤 찌질남으로 변모하지만
    그나마 3,40대 중에서도 꽃미남에 속하고
    연기력도 정상급인(인기가 안습이지만...실력이 중요하지요.only 실력!!)
    김정현이 맡아줬다는데 위안 삼아야죠.
    다만 삼국시대 기록 역사가 부실하고
    화랑세기의 진실여부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화랑세기의 인물까지 갖다붙이는데 한계가 많아 많은 픽션과 변형을 붙였다는게
    아쉽죠. 특히나 극문학의 특성상 반동인물이 필요한데
    거기에 미실을 넣는 과정에서 하종까지 왜곡 시킬수 밖에 없다는건 어쩔수 없나보네요.
    다만 화랑세기의 진실여부와 삼국시대의 기록이 좀 더 많이 발굴된다면
    다른 인물로 변모 될 수도 있었을텐데...
    다만 세상을 뜬지 1300년 후에 후손들이 자신을 묘사한걸 본다면
    하종이 생전 진짜로 인간말종이 아닌 이상은
    너무 안타까워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불쌍한 하종...

  16. BlogIcon 루비™ 2009.10.12 1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종에 대한 멋진 글 잘 읽고 갑니다.
    갓쉰동님이 글에서 늘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17. yoo 2009.10.12 1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근거로 이야기를 만들때는 당연히 사실을 근거로 해야한다고 생각됩니다...
    이처럼 완전히 반대의 인물로 묘사하는건 억지스럽고 역사를 왜곡하는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역사를 왜곡할거면 선덕여왕과 그밖의 인물이름을 달리 해야겠지요...

  18. conniewon 2009.10.12 1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놀라운사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해박한 지식에 놀랍고, 부럽습니다.

  19.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0

  20. BlogIcon Mature Pussy 2012.07.12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중에 김영랑의 시처럼 모란이 피기까지는 삼백예순날은 아니더라도

  21.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놀라운사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세종과 미실의 아들로 나오는 하종은 어리숙하면서도 아버지가 다른 나이어린 보종에 대해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또한, 미실의 정부(?)인 설원랑(전노민)에 대해서는 비호감의 감정을 스스럼 없이 분출하고 있다. 왕인 진평에게나 왕비인 마야에게도 맘에 안들면 치받아 버린다.

김정현이 하종 배역을 맡고 있는데, 어쩜저리 어리숙하고, 찌질하게 연기를 잘하는지 보는 내내 웃음을 짓게 한다.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인물중에서 미워할 수 없는 악역중에 일인이라고 하겠다. 


선덕여왕에서 상천관 서리(송옥숙)이 미실(고현정)이 건낸 사약(?)을 먹고 죽는다. 그 뒤를 이어서 서리의 보조 신녀인 설매가 상천관의 지위를 계승하였다. 설매역을 맡은 조명진이 삼성 야구선수 박한이와 결혼을 예정한것 처럼, 김정현도 약속한 연인과 11월 결혼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김정현이 맡은 하종이 어떤인물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갔도록 하겠다. 하종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와 같이 악인이였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비담은 삼국사기에 647년 1월 염종과 난을 일으킨다. 그래서 비담은 악역으로 나올수 밖에 없다. 문제는 비담이 정말 악인이였을까? 아니면 쿠데타에 실패한 정치인이였을까는 역사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엇갈림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정말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쓰여진 기록"이기때문에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까?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많다. 또한,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아무데나 역사는 승자에 의한 기록이기 때문에 생몰년이나 부모까지 바꾸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해석상의 문제가 아니고 기본 인물정보에 대한 팩트이다. 사건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는 상상력을 발휘할 공간이 있다. 하지만 기본팩트는 바꾸면 안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하종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단지, 논란의 중심에 있는 <화랑세기>에서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하종은 세종과 미실사이에 태어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5세 풍월주 사다함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사다함은 미실을 사랑하였다. 세종 또한 미실을 사랑하였다. 미실은 사다함이 전장에 참전을 할때 송전가를 구구절절 읆어, 전장에 나가는 사다함에 "고무신꺼꾸로 신지 않겠다"고 사다함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미실은 사다함이 대가야에 참전을 할때 세종과 결혼을 해버린다. 전장에 나가 돌아온 사다함은 미실이 세종과 결혼한 사실을 알고 낙담하였다. 사다함은 실연의 아픔과 자신의 부하의 죽음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하지만 사다함은 자신의 다음 풍월주을 자신의 연적인 <세종>에게 물려준다. 


이런 사다함을 위해서 세종과 미실은 천주사에 진심으로 사다함에 공양을 들이고 관계를 가진다. 천주사에 관한 설화는 화랑세기에 여러번 등장을 한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천주사에 대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어찌되었던 천주사에서 관계를 가진후 미실은 564년 하종을 낳는다. 이런 연휴로 하종은 어릴적 부터 <사다함> 화신으로 불리웠다.

애송공주(567년생)는 미실과 진평왕의 아버지 동륜태자 사이에 태어났지만, 진흥은 자신의 자식인줄 알았다. 진흥과 미실사이에는 반야공주, 난야공주가 태어나고 572년 즈음 수종전군이 태어난다.

하종은 어머니 미실이 진흥을 섬기고 아이를 낳을때 마다 직위가 상승하고, 하종의 나이 9살인 572년 태자 동륜이 보명궁의 담을 넘어 개에게 물려 죽기 전에는 <전군>의 지위까지 상승하게 된다.  하종은 진흥왕의 자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흥에 의해서 전군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578년 (하종)공은 15살에 화랑에 들어가 역사를 토함공에게 배웠고, 노래를 이화공에게 배웠고, 검술을 문노에게 배웠고, 춤을 미생공에게 배워 모두 그 정수를 얻었다.

드라마에서는 하종이 안하무인, 무식한 캐릭터 이지만, 하종은 역사를 사다함의 형인 토함에게 배우고, 노래를 이화랑(4세풍월주)에 배우고, 검술을 8세 풍월주인 문노에 배웠다. 또한, 춤을 삼촌인 미생(10세 풍월주)에 배웠다. 그러니 하종은 다방면에 능통한 사람이였다는 것이다.


하종은 미모(설원랑/준모)에 장가를 가서, 유모, 영모, 모종을 낳고, 나중에 사도태후의 명으로 진평의 후비였던 사도의 막내딸인 은륜(진흥/사도)과 결혼하여 하희,월희, 효종을 낳는다. 드라마에서 설원랑에 팅팅거리는 것으로 나오지만, 설원랑은 하종의 장인이다. 장인에 틱틱거리는 사위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은륜과 결혼을 하므로서 진흥왕의 부마가 된다.

화랑세기는 보리공이 하종을 평할때 "지금 세상에 하종같은 효자와 충신은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진평에 틱틱거리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하종이 진평보다도 나이가 어리고, 용춘보다도 나이가 어린것으로 나오지만, 하종은 564년생으로 565년생인 진평(백정)보다 나이가 1살이 많다.

또한, 용춘은 576년생이다. 그러니 용춘보다는 12살이나 많았다. 하종은 용춘의 아버지뻘이였고, 사사로이는 용춘의 아버지 금륜의 막내누이인 은륜과 결혼한 상대이니 용춘의 고모부가 하종이다. 그러니 용춘(576년)이 화백회의에서 하종(564년)이나 미생(550년)에게 막말을 하는 행동은 인륜을 저버린 행동이다.


우리의 찌질이 하종은 은륜의 언니인 태양(진흥/사도)가 유혹하여도 넘어가지 않고, 은륜에 충심으로 대접하였다고 한다. 방탕한 은륜을 자신의 아버지 세종이 미실을 섬기듯이 따스하게 감싼다.

한마디로 무골공자이면서, 공직에 나아가서는 청렴하였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매점매석의 주체로 하종을 집어 넣었지만 하종은 첨렴함의 신표인 청백리같은 이였다.


 공은 검소하고 색을 삼갔으며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윗사람을 공경하여 세종(世宗)의 풍모를 크게 가졌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공에게 복종하지 않는 사람도 끝내는 귀부하였다.

 3년간 재위하다가 보리공에게 양보하며 말하기를 “앞선 풍월주들이 큰 성인이었는데도 오히려 3년간 재위하였는데 내가 어찌 감히 오래 머물겠는가?” 하였다. 보리공이 말하기를 “주형(主兄)은 곧 미실 원화의 아들이다. 어찌 뭇 화랑들과 더불어 같은 예로 하겠습니까?” 하였다. 공이 굳이 사양하였다. 보리공이 이에 풍월주의 자리에 올랐다. 보리공은 곧 나(김대문)의 증조이다. 일찍이 나(김대문)의 아버지(오기공)에게 하종공을 칭찬하여 말하기를 “지금 세상에 이 같은 효자·충신은 없다” 하였다.

대개 미실궁주가 삼조(三朝)를 차례로 섬겼는데, 형제가 핏줄이 달라 움직이면 어려움이 많았다. 은륜공주 또한 골을 믿고 방탕하였다. 공은 한결같이 세종공이 미실을 대접하는 것처럼 하고 불문에 부쳤다. 태양공주는 은륜의 형으로 공과 더불어 가까이 살았는데 공을 유혹함이 심하였으나, 공은 한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공의 청렴과 지킴이 이와 같았다고 한다. - 화랑세기 11세 풍월주 하종

한마디로 표현하면 하종은 요즘 뜨고 있는 <엄친아>의 표본이였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가장 최악질 찌질이 하종으로 변한것이다. 물론, 드라마이니 충분히 설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다음의 예를 들어서 표현하자면 전두환이 민주투사로 나오고, 노무현이나 김대중이 쿠데타를 이르킨다는 설정이나, 세종대왕이 연산군보다 더한 폭군으로 나오고, 이순신이 원균을 넘어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기려는 이완용이나 송병준같은 만고의 역적으로 표현한다면 황당하지 않았을까?

단순히 드라마니 괜찮아? 또는 재미를 위해서는 괜찮아. 다큐가 아니니 괜찮아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드라마에서 김정현이 열연하고 있는 <하종>을 위한 변론으로 마치고자 한다.

글쓴이는 하종을 선덕여왕의 대표찌질이로 표현해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하종>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이 글을 보기 전까지는 김정현이 배역을 맡은 <엄친아> <하종>이 정말 <찌질남>의 대표선수인줄 알았을 것이다. 세종이나 이순신이나 전두환이나 이완용이나 송병준은 드라마를 위해서 인물을 변형시키면 안되고 자신들이 모르고, 잘 알려지지 않은 <하종>은 <찌질남>으로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편협한 생각이 아닐까?

2009/10/12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고현정) 언제 죽어 하차해야 하나?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BlogIcon 감자꿈 2009.10.11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워할 수 없는 악인 하종이죠.
    하는 짓이 초딩 같습니다.
    그래서 귀엽기까지하다는...^^
    화랑세기에선 그런 모습이었군요. ^^

  3. ECLAT 2009.10.11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드라마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캐러였던.ㅋㅋㅋ
    세종과 하종부자. 너무 찌질하게 나오더라구요ㅠ 아버지닮아서 엄친아에 성격좋고 훈남이었는데.
    갓쉰동님게서 이렇게 제대로 잡아주시네요.ㅎㅎ
    화랑세기에서 김대문이 가장 칭찬했다는 세종의 아들인데...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용.. 각자 개인적인 성향이 다르겠지만.. 김대문이 아버지인 오기에게 전해들었다... 김대문의 증조인 보리가 극찬한 인물이라고 하니요.. ㅋㅋ

  4. ..... 2009.10.11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다른 나이어린 보종이 아니라 동복동생 보종 아닌가요?;; 하종과 보종은 같은배에서 태어났습니다....

  5. BlogIcon 아홉살인생 2009.10.11 1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의 마지막 부분은 한 번 생각해 볼만한 문제겠군요.

  6. 공수래 2009.10.11 1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춘(576년)이 화백회의에서 하종(564년)이나 미생(550년)에게 막말을 하는 행동은 인륜을 저버린 행동" 이라는 대목은 좀 그렇네요...용춘은 골품제도로 운영됐던 신라에서 하종이나 미생보다 윗사람이었습니다. 족보를 보시면 알수있습니다. 용춘은 무늬만 진골인 성골입니다. 김춘추보다 더 성골에 가깝죠.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라를 개나라로 만든게 성골.진골이예용.. 골이 높다고 해서. 나이 많은 고모부에 하대하고 욕을 할것이라는 상상은 끔찍한거지요.. 왕도 자신의 장인에게는 하대를 못해용.. ㅋㅋ

  7. BlogIcon 영웅전쟁 2009.10.11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휴일인데 노고를 아끼지 않셨군요...
    연속된 드라마의 잘못된 캐릭터 선정에 대한
    이야기이군요. 엄친아라...
    재미있게
    잘보고 갑니다.
    휴일 잘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인물창조를 하더라도 좀 그럴듯 하게 했음 좋겠다 싶더라구요.. 대남보, 보종, 하종. 정말로 안타까운 인물들인뎅..

  8. 2009.10.11 1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괜찮

  9. 맑은바람 2009.10.11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선 풍월주들이 큰 성인이었는데도 오히려 3년간 재위하였는데 내가 어찌 감히 오래 머물겠는가?”

    ...단순한 겸양의 표현이라고 보기엔 깊은 격조가 있군요.
    드라마에 묻혀 자칫 간과하기 쉬운 실제 역사를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10. 조예린 2009.10.11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이런 글이 올라왔을까?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11. qillip 2009.10.11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오~ 선덕여왕은 안봐도 님글은 꼬박꼬박 찾아본다는....늘 감사....^^;

  12. 갔도록->갖도록 2009.10.11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거같네요 가지다의 준말 갖다

  13. 와웅 2009.10.11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네요!
    놀라운사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밌게보고갑니당!

  14. BlogIcon pennpenn 2009.10.11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 공부 하고 갑니다.
    해박한 역사 지식에 탄복하면서요~

  15. 김정현 2009.10.11 2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나마 저승에 간 하종이는
    1300년뒤 찌질남으로 변모하지만
    그나마 3,40대 중에서도 꽃미남에 속하고
    연기력도 정상급인(인기가 안습이지만...실력이 중요하지요.only 실력!!)
    김정현이 맡아줬다는데 위안 삼아야죠.
    다만 삼국시대 기록 역사가 부실하고
    화랑세기의 진실여부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화랑세기의 인물까지 갖다붙이는데 한계가 많아 많은 픽션과 변형을 붙였다는게
    아쉽죠. 특히나 극문학의 특성상 반동인물이 필요한데
    거기에 미실을 넣는 과정에서 하종까지 왜곡 시킬수 밖에 없다는건 어쩔수 없나보네요.
    다만 화랑세기의 진실여부와 삼국시대의 기록이 좀 더 많이 발굴된다면
    다른 인물로 변모 될 수도 있었을텐데...
    다만 세상을 뜬지 1300년 후에 후손들이 자신을 묘사한걸 본다면
    하종이 생전 진짜로 인간말종이 아닌 이상은
    너무 안타까워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불쌍한 하종...

  16. BlogIcon 루비™ 2009.10.12 1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종에 대한 멋진 글 잘 읽고 갑니다.
    갓쉰동님이 글에서 늘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17. yoo 2009.10.12 1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근거로 이야기를 만들때는 당연히 사실을 근거로 해야한다고 생각됩니다...
    이처럼 완전히 반대의 인물로 묘사하는건 억지스럽고 역사를 왜곡하는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역사를 왜곡할거면 선덕여왕과 그밖의 인물이름을 달리 해야겠지요...

  18. conniewon 2009.10.12 1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놀라운사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해박한 지식에 놀랍고, 부럽습니다.

  19.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0

  20. BlogIcon Mature Pussy 2012.07.12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중에 김영랑의 시처럼 모란이 피기까지는 삼백예순날은 아니더라도

  21.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놀라운사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월야의 복야회는 활(弓)이 아닌 노(弩)를 사용하여 수련을 하고 있다. 활은 당김을 손가락으로 하지만, 노는 지금의 총처럼 방아쇠를 통해서 발사를 한다. 이의 이름은 쇠노 또는 쇠뇌라고도 불리운다.
 
쇠노(쇠뇌) 무기의 장점은 일정한 힘에 의해서 일정한 거리와 정확도를 담보한다는 것이다. 또한, 활은 병사들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노>는 아주 간단한 조작법만으로도 노를 능수능란하게 다룰수 있다.

그러므로 쇠뇌(노)를 다루는 자는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거나 생업에 종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활은 평상시에 부단한 연마를 하여야 하고, 개개인의 기량차에 따라서 군대의 역량이 달라진다.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나오는 드라마에서 일명 석궁은 쇠뇌와 비슷한 구조이다. 쇠뇌는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할때 주무기로 사용하던 신무기였다. 하지만 신라의 노는 당나라에서도 탐을 내던 물건이다.

신라의 노는 천보를 날아가지만, 당나라의 노는 그러하지 못했다. 그래서 당나라는 신라의 비밀병기인 쇠뇌기술을 넘겨받고자 했지만 당은 신라의 쇠뇌를 얻을 수가 없었다.

요즘은 개인의 사적이득을 위해서 기업의 일급비밀을 중국이나 대만에 팔아넘기는 사람들이 있다. 또는 일급비밀을 차지하기 위해서 기업의 소유권을 획득하고, 기업비밀이나 특허를 획득한후, 경영권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최근에도 쌍용자동차가 중국의 상하이자동차에 경영권이 넘어갔다가 상하이 자동차가 쌍용자동차의 최고급 기업비밀에 해당하는 디젤하이브리드엔진 개발전반을 빼돌린후 쌍룡자동차를 팽하고, 중국으로 철수 해 버렸다. 

우리나라는 최근 인공위성 발사체에 해당하는 로켓기술을 러시아로 부터 들어와서 나로도에서 발사를 하였지만, 여러가지 이유때문에 발사가 성공하지 못하였다. 로켓기술은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우주개발에도 필요하지만, 대륙간탄도 미사일을 개발하는 원천기술에 해당한다. 그래서 미국은 그동안 한국의 로켓개발을 방해하였다.  

반면 북한은 러시아의 도움과 독자적인 노력으로 로켓기술을 개발하여, 자국에서 인공위성을 발사는 전세계 10대 스페이스클럽에 가입한 국가에 되었다. 미국이 핵무기보다도 북한의 로켓기술에 더 겁을 먹은 이유는 로켓으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전세계 몇나라 중에 북한이 속했기 때문이다. 로켓에 핵무기를 장착하고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면 등골이 오싹하지 않겠는가?

반면에 우리나라는 독자기술을 개발하지 못하고, 러시아로 부터 수입하거나, 공동개발이 무산되어, 일본기업에 다음 대형인공위성 발사만을 위해서 돈을 들이고 있다. 러시아와는  다르게 일본으로부터 기술전수는 하나도 받을 수 없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초기 속함성과 아막성 전투에서도 잠시 나왔다. 이때 뜬것은 알천인 이승효이지만, 쇠뇌를 사용하여 공성전을 벌리고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 30편에서 유신이 덕만의 명으로 복야회를 서라벌로 불러들이려 복야회의 산채로 간다. 이때 복야회의 주무기로 쇠뇌가 등장을 하였다.

삼국사기에는 신라가 보유하고 있는 신무기인 거노(車弩:수레쇠뇌)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669년 겨울에 당나라 사신이 도착하여 조서를 전하고 쇠뇌 기술자 사찬 구진천(仇珍川)과 함께 [당으로] 돌아갔다. [당에서 그에게] 나무 쇠뇌를 만들게 하여 화살을 쏘았는데 30보 나갔다. 황제가 그에게 물었다. “내가 듣기에 너희 나라에서 쇠뇌를 만들어 쏘면 1천 보를 나간다고 하는데, 지금은 겨우 30보밖에 나가지 않으니 어찌된 일이냐?” [구진천이] 대답하였다. “재목이 좋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나무를 가져온다면 그것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에 천자가 사신을 보내 재목을 구하자 곧 대나마 복한(福漢)을 보내 나무를 바쳤다. 다시 만들게 하여 쏘았는데 60보를 나갔다.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신도 역시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아마 바다를 건너는 동안 나무에 습기가 스며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천자는 그가 일부러 제대로 만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무거운 벌로써 위협하였으나 끝내 자기의 재주를 다 드러내지 않았다.

669년이면, 668년 가을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 의해서 고구려가 망하고, 한참 신라와 당이 서로 숨은 마각(?)을 감추고 있을때이다, 당은 호시탐탐 신라를 노리고, 신라는 당의 노림수에 당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한반도를 경영하고 싶다는 동상이몽속에서 겉으로는 화기애애한 사이일때 이다.

그런데 이때 당은 신라에 "신무기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신라의 기술을 빼올려고 하였다. 하지만, 신라는 동맹국인 당의 요구에 쇠뇌전문가인 구진천을 마지 못해 보냈지만, 구진천은 당에게 기술을 전수하지 않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시간만을 보냈다.

이때 신라가 보유한 쇠뇌의 성능은 1천보를 갈 수 있다고 한다. 1천보이면 현재 거리로 약, 1키로에서 1.4Km에 해당한다. 그러니 이때의 쇠뇌는 <선덕여왕>에서 복야회가 사용하던 사람 혼자 발사를 하는 형태가 아니고, 수레에 걸고 쏘는 이동식 로켓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신기전

조선시대 임진왜란시기 이순신이 왜군을 물리친 절대적인 이유중 이순신의 전략도 좋았지만, 기본적으로 조선이 가지고 있는 함포(대포)가 장착된 함선이였고, 왜(일본)은 함포가 없는 함선이였다.

또한, 나중에 왜가 함선에 함포를 장착하였지만, 조선의 함선과 포 등 성능에 차이가 있었고, 함선에서 포를 발사시 함선이 움직이지 않는 안전성과 이동성 등에서 조선을 이길수가 없었다.

조선은 먼거리에서 일본를 공격할 수 있지만, 일본는 조선함선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조선함선에 가까에 온 다음, 조총이나, 활이나 근접전만으로 대항하는 수준이였다. 그러니 전체적인 군사전력에서 조선이 함선 수에 상관없이 앞설 수 있었다. 현재의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 한척이 수십척의 함선을 대적할 수 있는것과 같다.

현대 군전술개념인 먼저기동하고, 먼저보고, 먼저쏘고, 이동하는 전술처럼 신라도 당과의 전쟁에서 먼저보고, 먼저쏘고, 보복폭격을 피할 수 있게 이동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식 140보 사거리 쇠노

신라가 이동식 미사일인 구진천의 쇠뇌(거노:수레노)를 보유하고 있었음으로 당이 신라를 굴복시키려 수십만 대군을 동원하고도 신라를 굴복시킬 수 없었다. 만약, 당시 신라의 구진천이 당의 회유에 넘어가서 신라의 비밀병기의 비급을 팔아넘겼다면, 당은 신라를 손쉽게 접수했을 수도 있다.

731년 여름 4월에 일본국 병선 300척이 바다를 건너 우리의 동쪽 변경을 습격하였으므로 왕이 장수를 시켜 군사를 내어 이를 크게 깨뜨렸다.
가을 9월에 백관에게 명하여 적문(的門)에 모여 수레 쇠뇌[車弩] 쏘는 것을 관람하도록 하였다. - 삼국사기 성덕왕 30년

조선 세종이 신기전을 만들어 전략적 요충지에 보급하여 외세의 침입에 대비하듯이 신라는 이동식 쇠뇌를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아막성을 공략하는데 이동식 쇠뇌(수레노)가 등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캡쳐된 자료가 없어서 올리지를 못한다. 

하지만 신기전처럼 수레위에 쇠뇌를 올린 모습이 아닐까 한다. 당과 신라의 쇠뇌 핵심기술의 차이는 맥궁을 활에 접목한 신라의 쇠뇌와 당의 활을 만드는 방법에 있지 않을까 한다.
 

선덕여왕을 보는데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추천을 해주실거죠?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성은김이요 2009.09.05 1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로 노의 기술은 신라가 3국을 통일하면서 습득한것이구요 드라마에서 나오는건 시기상조인듯, 노라는 무기가 원래 있기는 했으나 신라가 3국을 통일하고 3국의 병참기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개발된 신무기였지요.....아마 노기술은 백제 계통에 있었던걸로 알고있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5 2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내용은 어디에도 없는데요.. 백제가 노가 더 발달했다는 증거를 님은 가지고 계신가요? 삼국공히 가지고 있다면 모르지만..

  3. 여기 댓글을 읽어 보려고 2009.09.05 1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복사해서 한글에 옮겼더니 무려 17 페이지나 되네요.
    멋진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이 계셔서 그나마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나라의 희망입니다.

  4. 갓쉰동님 광팬 2009.09.05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오늘 글이 가장 좋습니다. 지금 이 글은 오늘의 대한민국에도 깊게 생각해 볼수 있는 명제인 것 같아서요. 나로호 실패를 떠올리면서 우리나라도 과학기술에 대해 충분히 대우했으면 좋겠는데 국회의원들 중에 법관 출신들은 많아도 이공계 출신들은 별로 없다는 뉴스를 보면 좀 그렇더군요. 사회적인 대우는 의사나 법관이 높지만 전 개인적으로 우리나라를 먹여살리는 진정한 두뇌는 과학자들의 창조력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우리나라의 최고의 수재들이 의대나 법대를 지망하는 현실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나저나 알천도 자꾸 나오니깐 지겹더군요. 인기가 높아져서 제작진들이 무리수를 써서 분량을 자꾸 늘려주는듯...쇠뇌쓰는 장면에서 반짝 멋있었는데 요즘 인상만 쓰는것 같아 별로 (알천랑 팬분들 어디까지나 제 취향일 뿐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5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가요?
      알천의 존재는 더 부각되어야 하는 존재이고.. 비담의 존재가 너무 부각된것 같아용.. ㅋㅋ

  5. 갓쉰동님 광팬 2009.09.05 1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돌궐이나 고구려같이 신라보다 훨씬 영토도 넓고 인구도 많은 강국을 멸망시킨 당나라가 영토가 조그만 신라를 삼킬 여력이 없었을까 예전에 국사를 배우면서 느낀 궁금증이었는데 오늘 의문이 어느정도는 풀렸네요. 최첨단 기술은 나라의 흥망성쇄를 바꿀만한 대단한 것이라는 것을 갓쉰동님 글을 보며 다시한번 느낍니다. 언젠가 책에서 읽었는데 권총의 존재가 세계의 전쟁사의 획을 바꿔놓았다는 글귀를 보았을때 느끼던 놀라움을 님의 글에서 느꼈습니다.

  6. 소석 2009.09.05 18: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사내용보니 경상도 인물키우는 것같다 ,

    이런 무기를 만든 신라인들이 신라를 임진왜란의 주두지로 내주어 삼천리를 유린하게 하였는지 알수 없다,

    이런 신라인들이 어찌하여 만주땅을 당나라에게 주었는지 그 이유를 알수 없다,

    그 신라의 후예들은 어떠한가,

  7. 을파소 2009.09.05 1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유로운 분위기에 토론은 좋으나 이유불문하고 지역감정 따지고 말두 안되는 소리나 쓰는 사람들이란.....에휴.....

    아무튼 주인장님 포스트 잘 읽고 갑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5 2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ㄳ 합니다..

      다른 글도 보시면 잼있습니당.. 싫으시면 안하셔도 되구요..

      암튼 저도 좀 아쉽네요.. 욕하는 놈이 진다는 것도 모르는 가 봅니다..

  8. zzz 2009.09.05 1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자체도 완전 픽션 드라마 인데 왜이렇게 열을 올리시는지....
    김유신은 선덕여왕 먼 조카인데.... 첫째가 덕만 둘째가 천명(춘추는 친 외조카 맞음) 셋째가 선화공주 인줄 아는데.....

  9. 두가지소원 2009.09.05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가 통일한게 왜 비난받아야 됩니까?

    1500년 전의 신라와 지금의 경상도와 관련지어서 비난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는데, 참 어이없네요.
    이 분들이 주장하는건 대체로 이렇죠.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저 넓은 만주도 우리것"

    이 분들은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를 못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고요,
    신라와 경상도을 관련지어서 떠벌리는 것 자체가 '난 소인배요'라고
    광고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 그런지 말씀드리죠.
    고구려, 백제, 신라 의 삼국시대부터 전제왕권이 성립되어 19세기에
    이르기까지 2000년 간 모든 권력은 왕이라는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 왕의 능력 여하에 따라 왕조의 흥망성쇠가 결정
    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유능한 왕이 나타나면 그 국가는 정치, 문화 전반에 걸쳐 융성기를 맞게
    되고 국력의 신장으로 영토도 최대한으로 늘어나는 전성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하지만, 세습제인 까닭으로 왕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왕의 그릇이 못되는
    자가 왕이 되었을 때 그 국가의 운명은 나락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심한 경우 멸망하게 되겠지요.
    역사가 그걸 증명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수많은 나라가 건국되고 멸망했는데, 300년을 넘게
    지속된 나라가 거의 없습니다.

    자, 가장 중요한 점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고구려가 삼국통일했다면 만주는 우리 땅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역사에는 만약 이라는 건 없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 가정을 가지고 생각을 해 봅시다.

    만주에는 단일 민족이 아닌 여러 민족이 존재했었습니다.
    물론, 고구려가 만주를 지배하고 있을 당시에도 고구려인이 지배층으로
    다른 민족은 피지배층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피지배층이라고는 하지만, 언제든지 뛰어난 지도자가 나타나면 국가를 세우고
    만주를 지배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거란족이 요나라를 세웠고, 그 후에는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웠죠.
    당연히 만주를 지배했고, 중국 북부까지 영역을 넓혔습니다.
    여진족의 후예인 만주족이 또 다시 청나라를 세우고 만주를 넘어 중국 전체를 다스렸
    습니다.
    그 외의 변수도 있었지요. 만주 북쪽의 몽고 지역에서 징기스칸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만주를 손에 넣게 됩니다.
    다시 한번 지도자의 중요성이 여실히 증명되지요.

    이제 답이 나온거 같습니다.
    고구려가 삼국통일해서 지금의 우리 땅이 될려면, 고구려가 만주를 계속 지배한
    채로 1500년 정도를 더 존속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고구려에는 위대한 황제인 광개토대제가 계셨습니다. 고구려에는 그 분 이후로
    자자손손 위대한 지도자가 계속 나와야만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키보드나 치면서 신라를 비난하는 분들은 그동안 대한민국을 위해서 한 일이 뭐가
    있습니까?
    지금의 정치하는 사람이 특정 지역이라고 1500년 전의 신라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작금의 세태를 비난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건 소인배나 하는 짓입니다.
    지금은 민주주의입니다. 얼마든지 유능한 정치가를 우리 힘으로 뽑을 수 있습니다.
    잘못 뽑은 게 있다면 다음의 선거에서 한 표로 당당하게 심판하세요.

  10. uhaha 2009.09.05 1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헐 그렇게 뛰어난 무기가 있었는데 어떻게 백제하고 싸울 땐 그렇게 아둥바둥 했나? 그리고 김유신이 백제 먹으러 가면서 황산벌에서 수천 밖에 안돼는 백제 군사는 왜 금방 물리치지 못했나?

    • 우리나라 역사를 조금만 알아도 이런건 금방 아시는데요. 2009.09.05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백제라고 맥없는 나라였겠습니까.
      그때 계백이 이끄는 병사들은
      수천 밖에 되지 않는다 해도
      이미 목숨을 내놓고 나온 사람들입니다.
      군사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군대와는 싸움을 피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의자왕이 이끌던 백제 군사는 정병이었습니다.
      의자왕이 후에 정치를 멀리하니 그 꼴이 되었지만.
      원래 정병이었던 병사들이 목숨을 내놓고 싸운다면,
      아무리 김유신이라도 물리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임진왜란 때 보십시오.
      이순신 장군이 다시 통제사가 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은 부하들을 데리고 싸우면서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하며
      전투를 독려했습니다.
      그래서 승리하시지 않았습니까.

    • BlogIcon 갓쉰동 2009.09.05 2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만큼 백제가 강했다고는 생각못하시지요?
      균형추가 깨지는 역할이 당인뎅..

  11. BlogIcon 분홍별장미 2009.09.05 1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기 위에 있는 신기전 예전에 덕수궁인가?? 서울시청 앞에 있는거요.. 거기서 본것 같은데...^^;; 제가 서울을 자주 못가서 무슨궁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12. 두꺼비 2009.09.05 2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찬 구진천의 쇠노를 지키기 위한 일화를 읽다보면 오늘날 자신의 영화를 위해 기업과 나라의 첨단기술을 되놈들에 빼돌리려 한 도적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참으로 구데기와 참 인간의 차가 이리 큼을 다시금 깨닫게 하노라..

    • 두꺼비님, 2009.09.05 2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내 개발한 기술 가지고,
      소위 경영자라는 것들은
      돈을 긁어 들여 호의호식하며
      떵떵거리고 살면서
      기술자는 우습게 알고
      대우도 안 해 주면
      그런 생각 안 날까요?!
      경영자들이 부하들을 제대로 대접해 보십시오.

    • BlogIcon 갓쉰동 2009.09.05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쁜 개인도 있지만, 기업이 먼저 잘해야지 않겠어요? 기업의 착취는 용납이 되시나 봅니당.. 노사가 윈윈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이 생산성도 높아요..

  13. BlogIcon Lueld 2009.09.05 2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 저게 고려의 검차의 모티브가 됀건가?

  14. 지나가다2 2009.09.05 2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가 외세를 빌어 억지로 삼국을 통일하지 않았더라면... 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중의 1인

    • BlogIcon 갓쉰동 2009.09.05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라도 고구려 백제 연합군에게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답니다.. 서로 잡아먹을려고 했던거지요..

      그러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땅에 대한 거대컴플렉스가 많은 것 같아요..

      북한이 땅이 넓다고 해서.. 인구가 많은건 아닌뎅.. 머 암튼 그렇다구요..

    • 헬헬 2009.09.05 2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라로써는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을 펼친 것 뿐입니다.
      백제때문에 못살겠다고 김춘추가 연개소문한테 원군요청하러 갔다가 포로로 잡힌걸보더라도 그당시 3국의 합종연횡은 거의 일상다반사였다고 할수 있습니다.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서라도 살아남으려는 의도와 고구려를 치려는 당나라의 의도가 맞아들었고, 그게 성공적으로 작용을 한것 뿐이죠.

      고구려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시기에 한반도 전역을 지배할 정도의 힘이 있었지만 하지 않았고, 백제는 몇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내분으로 힘을 빼버리면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신라가 통일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영원히 3국체제로 갔을지도 모릅니다.
      당나라의 힘을 이용한 신라의 통일을 '최악의 경우'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네요. 그냥 생각해봐도 더 최악의 경우가 수두룩한데 말이죠.
      그리고 요즘 흔히들 최선의 경우라는 '고구려의 통일'은 아마 일어나지 않았을겁니다. 고구려는 한반도 전역을 지배할 의사가 없었으니까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0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헬헬님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요즘 너무 역사 공부들을 안하는데 님은 충분히 많이 하시고 계시군요. 아마도 전쟁사에 관심이 많은분 같군요..

  15. 들림 2009.09.05 2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쇠뇌(석궁)의 장점은 말씀드린것 처럼 숙련이 쉽고 일반 활보다 강합니다. 하지만 단점은 장전시간이 일반 활보다는 느리고 불화살을 쏠수 없죠. 그래도 강한 파괴력을 볼때 쇠뇌는 좋습니다. 어디서 들어봤는데 쇠뇌를 엄청나게 크게 만들어 공성 무기(노포,발리스타)로 쓰는것도 있습니다.^^ 근데 쇠뇌 역사가 이렇게 오래됬는지는 여기서 알게됬네요. 중세시대에 만든줄 알았거든요.ㅎㅎ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0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대부분 그렇게 알고있고, 그런 이유가 서양 중세시대를 다룬 영화때문일겁니다. 그래서 일부러 서양중세이야기를 넣었습니다..

  16. 짜장면 시키신분 2009.09.05 2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폭이 너무 넓은거 아닌가요? 보통 보폭 70센티로 알고 있는데,,, 롱다리, 우사인 볼트도 아니고,,,, 너무 미화한듯 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0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이 말한 보폭의 개념은 맞아요...70~75센티 정도.. 그 당시에는 키가 작았어용..

      그런데 문제는 제가 말한 건 步라는 겁니당..

      보는 첫발을 디디고 다음 발을 디딘거리를 말해요.. 그러니 보폭*2를 하는 겁니다..

      설마 보폭과 보의 개념도 모르고 글을 썼겠습니까?

      그리고 엄청 축소해 놓았지요.. 1키로에서 1.4키로라고.. 이유는 당시의 신장개념이 포함되었고, 그들의 측량술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기도 햇습니다.

      조선시대 정약용이 수원에 지은 화성의 둘레가 4천6백보예용.. 그런데 이 길이가. 약 5키로가 조금 넘어요

      그러니 미화는 아니지요.. 물론, 저는 미화되었다고 봐요. 당시의 거리 개념으로 대략 멀다는 정도의 걸이가 1천보였다고 보고든요..

  17. 신라 의상 2009.09.06 0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 시대 조선시대처럼 머리에 띠를 했나?

    신라시대는 한복도 없었지만.. 옷도 한복과 다르고

    많이 다를껀데.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07:17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복의 원형은 있었지요..

      요즘의 한복은 원형을 잃어 버린의복인데요..

      머리띠는 했는지 안햇는지 모름.. ㅋㅋ

  18. BlogIcon 이철후 2009.09.06 0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연 노가 쓸만할까? 나는 무기의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고 전술사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다. 고대든 중세든 노는 활만큼 자주 나오는 무기이다. 하지만 활에 비해 인기력이 떨어진 이유는 뭘까? 이제 무기사의 마왕께서 파헤쳐 주겠다. 내가 보기엔 노는 강력한 무기이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관통력과 사정거리만 한해서이다. 노는 활과 형식이 다르다. 활은 단순한 무기인데 비하여 노는 복잡하다. 노의 관통력은 대단하다. 노는 320m의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다.(단궁이 100m정도) 그리고 관통력은 중세 체인메일을 충분히 뚫을수 있다. (장궁도 체인메일 뚫을수 있음) 하지만 노의 발사력은 1분당 1발이다. 정말 저조하다. 이에 비해 일본의 조총병은 1분에 2발정도를 발사 할수있고 영국의 장궁병은 1분에 10발이나 발사할수있다. 노는 아무리 숙련이되도 1분당 3발이상을 발사할수없다. (장치가 까다롭기 떄문에)
    또한 활같은 경우는 급각도로 떨어지는 경우에는 체인메일뿐만아니라 체인메일+플레이트 아머까지 관통할수있다. 노는 ㅡ>자로 발사하는데 비해 활은 중력을 이용하여 떨어질때 파괴력은 굉장하다. 어떻게보면 파괴력또한 활이 더 강할수도있다
    사거리 320m의 노와 280m의 장궁병 과연 누가이길까? 장궁병의 대승이다.
    좋은 예가 있다. 서기 1346년에 일어난 프랑스vs영국 즉 백년전쟁중의 한 전투 크레시전투를 예를 들어주겠다 서론을 막론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프랑스의 필리프 6세는 영국의 장궁병에게 맞서기 위하여 노를 썼던 제노바 용병들을 대거 프랑스군에 합류시킨다. 전투시작후 사거리가 좀더긴 노병들의 일제 노를 발사한다. 이에 영국의 몇몇장궁병들은 쓰러진다. 이에 영국 장궁병들도 제노바 노병들이 사거리안에 들어오자 일제사격을 한다. 하지만 연사력이 영국장궁병의 10분의 1밖에 안되는 제노바 용병들은 급각도로 떨어지는 영국의 장궁병대를 막지못한다. 제노바 노병들은 참패를 한다. 필리프6세는 어쩔수없이 프랑스기사단(중세의 기사)들을 대거 투입시킨다. 하지만 영국군의 장궁병들은 사거리에서 압도하여 프랑스의 기사단들이 돌격해오는 도중에 거의 전멸을 시켜버린다.
    숫자가 오히려 더 많았던 프랑스. 개참패한다.
    이것이 활과 노와의 차이점이다. 노는 비록 사거리에서는 활보다 한수위 일지 몰라도 연사력에서는 한참아래였다. 만약 노가 정말 성능이 좋았다면. 몽고 기병대들은 활을 쓰지 않았을것이고 고구려의 장궁병대도 활을 쓰지 않았을것이다. 노는 혁신적인 무기이지만 세계의 판도를 바꿀만한 무기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 이철후
    여담 :또한 이동식 쇠뇌라면 로마에서 먼저 나왔다. 이름 스콜피온 사거리약 400m달하는 공성병기로써 일반활의 화살보다 수십배는 큰 활을 장착했다. 이 스콜피온에 맞으면 자기뿐만아니라 자기의 뒷사람까지 관통을 당하여 한번 발사를 하면 너댓명이 죽어나갔다. 정말 혁신적인 무기이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0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글이긴 한데.. 총과 미사일을 비교하면서 미사일은 근접전에 약하다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장거리 폭격기가 전투에 약하다는 말과 비슷하지요..

  19. 누리 2009.09.06 0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글을 예전에 몇번봤었는데...이제야 댓글을 다는 저를 용서해주세용...ㅠㅠ
    역사는 잘 모르나 사극이 재밌어서 평소 즐겨보는데...역사책에서 불분명한 것들이 너무 많고 저도 배웠고 많은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국사책도 너무 왜곡된것이 많은것같고 그 나마 있는 역사에 관한 문화들도 너무 방치만 하는것 같아서 정말 아쉬워요.지금 방영중인 선덕여왕도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만큼 너무 판타지 적인것 보단 좀 더 사실적으로 방영을 했으면 더 좋을텐데 말이죠. 제 주변에선 삼국통일을 한 신라를 역사적 망신이라며 비난을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고구려나 신라나 백제나 뭐 이유야 어쨌든간에 그들도 적에게 죽임을 당하기 싫어서 서로 칼을 겨우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ㅎ 댓글을 쓰고 나니 뭔가 앞뒤가 안맞는것 같기도 하고...역시 전 글취미가 없어서 그런지라 이상하네요ㅎㅎ 아무튼 갓쉰동님 덕에 이 늦은 새벽 머리속에 또 하나의 지식을 넣으며 갑니다~이제 자주 자주 들려서 공부를 해야겠어요ㅎ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0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셨군요.. 댓글달고 나니 별거 아니지요?

      맞습니당.. 죽기싫어서 또는 노비가 되기 싫어서.. 이런 저런 이유가 있었겠지요..

  20. kskkekr 2009.09.06 1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시대에는 있지도 않은 일본을 ..

    그냥 왜라고 하자

    국가도 없엇다고 보면되는데..

    에휴 한심하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님같은 분이 역사를 모른다는 겁니다..

      왜 임진왜란때 일본은 없다고 하시지요..

      일본의 국명은 이미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후 만들어지는뎅.. 모르면 끼지를 말던지요..아니면 예를 갖추던지요..

  21. 나그네 2009.09.26 0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라리 선덕여왕이 고구려인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왕중에서 다들 삼국통일을 원했지 선덕여왕처럼 동아시아전체를 잡아먹겠다는 야망을 품은 왕은 없다고 생각되구요

    황룡사9층탑을 보듯이 일본, 중화, 말갈, 거란, 여진등등 9개의 국가를 모두 정복하겠다는 야망을 품었죠.

    역사에 대해서 잘모르지만 몽고, 마케도니아, 스페인, 로마등도 조그마한 나라에서 이민족을 복속해서 대제국을 만들었죠.

    즉 그전까지 주변나라에서 핍박이나 전쟁으로 고통받으면서 그러한 환경에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에서 그런 야망을 품은 왕이 나오고 대제국을 만들죠.
    실제로 영토가 커다란 나라는 더이상 정복전쟁을 하지 않고 나라을 유지하는데 신경쓰고 그러한 나라의 왕은 더이상 정복에 대해 신경쓰지 않은 듯 합니다.
    (단 러시아는 제외입니다. 그 이유는 항구가 얼어붙기 때문에 남하을 해야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죠.)

    즉 안정기에 들어선 국가는 더이상 정복전쟁을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합니다. 차라리 내정이나 문화를 키우기에 앞장서죠.

    그런데 주변의 핍박이나 전쟁으로 인해 나라가 불안정한 경우의 국가의 왕은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계속해서 야망을 키우고
    만약 그왕이 시기와 잘맞거나 희대의 전술, 전략이 나오거나 희대의 병기를 등장하면 한번에 국가를 성장시키는 것 같습니다.
    몽고의 테무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로마제국, 스페인의 이사벨라여왕등도 그러한 예이죠.

    그리고 실제로 정복을 하는 왕이 조그만한 국가를 거대한 영토로 만든후 그 왕의 후손이 되는 왕에서 그냥 나라의 유지하는데만 힘쓰죠.
    더이상 영토확장에 신경쓰지 않는 것같더군요.

    신라의 예를 들어본다면 진흥왕, 선덕여왕, 김춘추은 계속 영토확장을 노렸지만 막상 신라가 강성해지자 영토확장을 멈춥니다.
    그 이유는 신라는 고구려, 백제의 위협에 시달렸기 때문에 그 시대의 신라의 왕은 통일의 대한 염원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통일신라의 왕은 주변의 위협이 없기 때문에 영토확장은 생각도 안하죠.

    즉 영토확장의 전제조건중 1번째는 국가가 주변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영토확장을 하고 한번 영토확장을 할때 계속해서 확장을 쉴새없이 해야한다는 마인드의 가진 왕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2번째는 그러한 마인드의 가진 왕이 있는 국가가 시기와 잘맞거나 우수한 인재가 나와서 희대의 전술, 전략이 나오거나 희대의 병기를 등장해야 하는 경우이죠. 정안되면 희대의 전술, 전략이 없더라도 국력으로 밀어붙이는 경우죠.

    선덕여왕은 1번째는 갖추었는데 2번째가 없었죠. 시기가 안맞았고 타국의 압도할 그 어떤 것도 없었고 국력도 딸리고
    하지만 신라의 다른 왕은 오직 고구려, 백제을 정복해서 삼국통일을 생각했지만
    선덕여왕은 삼국통일뿐만 아니라 일본·중화·오월·탁라·응유·말갈·단국·여적·예맥를 모두 정복하겠다는 의지가 있었죠.
    물론 의지로만 끝났습니다. 하지만 부단하게 노력해서 삼국통일의 토대의 세웠죠. 그것도 당나라에 의해 만주가 넘어가버리는 최악의 형태로...

    역사에 가정이 없지만 선덕여왕에게 테무진이나 알렉산더처럼 천운이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봅니다. 워낙 통이 커서 대제국을 만들었겠죠.
    삼국의 어떤 왕도 그런 마인드의 가진 왕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들 언어가 통하는 같은 민족의 국가를 통일시킬 생각을 가졌지 이민족의 국가까지 복속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고 생각되어집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당나라는 외세를 끌어들여서 당나라에 의해 만주가 넘어가버리는 최악의 형태로 삼국통일이 되어버리죠. 그리고 부하에게 배신당해서 자신은 통일도 못해보고 디딤돌역할만 했기 때문이죠.
    참 운도 없는 여왕입니다.

    선덕여왕은 대단한 여왕이기 동시에 짜증나는 존재이기도 하죠. 그 수많은 영토가 날라가게 하는 장본인이기 때문이죠.

월야의 복야회는 활(弓)이 아닌 노(弩)를 사용하여 수련을 하고 있다. 활은 당김을 손가락으로 하지만, 노는 지금의 총처럼 방아쇠를 통해서 발사를 한다. 이의 이름은 쇠노 또는 쇠뇌라고도 불리운다.
 
쇠노(쇠뇌) 무기의 장점은 일정한 힘에 의해서 일정한 거리와 정확도를 담보한다는 것이다. 또한, 활은 병사들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노>는 아주 간단한 조작법만으로도 노를 능수능란하게 다룰수 있다.

그러므로 쇠뇌(노)를 다루는 자는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거나 생업에 종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활은 평상시에 부단한 연마를 하여야 하고, 개개인의 기량차에 따라서 군대의 역량이 달라진다.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나오는 드라마에서 일명 석궁은 쇠뇌와 비슷한 구조이다. 쇠뇌는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할때 주무기로 사용하던 신무기였다. 하지만 신라의 노는 당나라에서도 탐을 내던 물건이다.

신라의 노는 천보를 날아가지만, 당나라의 노는 그러하지 못했다. 그래서 당나라는 신라의 비밀병기인 쇠뇌기술을 넘겨받고자 했지만 당은 신라의 쇠뇌를 얻을 수가 없었다.

요즘은 개인의 사적이득을 위해서 기업의 일급비밀을 중국이나 대만에 팔아넘기는 사람들이 있다. 또는 일급비밀을 차지하기 위해서 기업의 소유권을 획득하고, 기업비밀이나 특허를 획득한후, 경영권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최근에도 쌍용자동차가 중국의 상하이자동차에 경영권이 넘어갔다가 상하이 자동차가 쌍용자동차의 최고급 기업비밀에 해당하는 디젤하이브리드엔진 개발전반을 빼돌린후 쌍룡자동차를 팽하고, 중국으로 철수 해 버렸다. 

우리나라는 최근 인공위성 발사체에 해당하는 로켓기술을 러시아로 부터 들어와서 나로도에서 발사를 하였지만, 여러가지 이유때문에 발사가 성공하지 못하였다. 로켓기술은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우주개발에도 필요하지만, 대륙간탄도 미사일을 개발하는 원천기술에 해당한다. 그래서 미국은 그동안 한국의 로켓개발을 방해하였다.  

반면 북한은 러시아의 도움과 독자적인 노력으로 로켓기술을 개발하여, 자국에서 인공위성을 발사는 전세계 10대 스페이스클럽에 가입한 국가에 되었다. 미국이 핵무기보다도 북한의 로켓기술에 더 겁을 먹은 이유는 로켓으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전세계 몇나라 중에 북한이 속했기 때문이다. 로켓에 핵무기를 장착하고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면 등골이 오싹하지 않겠는가?

반면에 우리나라는 독자기술을 개발하지 못하고, 러시아로 부터 수입하거나, 공동개발이 무산되어, 일본기업에 다음 대형인공위성 발사만을 위해서 돈을 들이고 있다. 러시아와는  다르게 일본으로부터 기술전수는 하나도 받을 수 없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초기 속함성과 아막성 전투에서도 잠시 나왔다. 이때 뜬것은 알천인 이승효이지만, 쇠뇌를 사용하여 공성전을 벌리고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 30편에서 유신이 덕만의 명으로 복야회를 서라벌로 불러들이려 복야회의 산채로 간다. 이때 복야회의 주무기로 쇠뇌가 등장을 하였다.

삼국사기에는 신라가 보유하고 있는 신무기인 거노(車弩:수레쇠뇌)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669년 겨울에 당나라 사신이 도착하여 조서를 전하고 쇠뇌 기술자 사찬 구진천(仇珍川)과 함께 [당으로] 돌아갔다. [당에서 그에게] 나무 쇠뇌를 만들게 하여 화살을 쏘았는데 30보 나갔다. 황제가 그에게 물었다. “내가 듣기에 너희 나라에서 쇠뇌를 만들어 쏘면 1천 보를 나간다고 하는데, 지금은 겨우 30보밖에 나가지 않으니 어찌된 일이냐?” [구진천이] 대답하였다. “재목이 좋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나무를 가져온다면 그것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에 천자가 사신을 보내 재목을 구하자 곧 대나마 복한(福漢)을 보내 나무를 바쳤다. 다시 만들게 하여 쏘았는데 60보를 나갔다.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신도 역시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아마 바다를 건너는 동안 나무에 습기가 스며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천자는 그가 일부러 제대로 만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무거운 벌로써 위협하였으나 끝내 자기의 재주를 다 드러내지 않았다.

669년이면, 668년 가을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 의해서 고구려가 망하고, 한참 신라와 당이 서로 숨은 마각(?)을 감추고 있을때이다, 당은 호시탐탐 신라를 노리고, 신라는 당의 노림수에 당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한반도를 경영하고 싶다는 동상이몽속에서 겉으로는 화기애애한 사이일때 이다.

그런데 이때 당은 신라에 "신무기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신라의 기술을 빼올려고 하였다. 하지만, 신라는 동맹국인 당의 요구에 쇠뇌전문가인 구진천을 마지 못해 보냈지만, 구진천은 당에게 기술을 전수하지 않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시간만을 보냈다.

이때 신라가 보유한 쇠뇌의 성능은 1천보를 갈 수 있다고 한다. 1천보이면 현재 거리로 약, 1키로에서 1.4Km에 해당한다. 그러니 이때의 쇠뇌는 <선덕여왕>에서 복야회가 사용하던 사람 혼자 발사를 하는 형태가 아니고, 수레에 걸고 쏘는 이동식 로켓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신기전

조선시대 임진왜란시기 이순신이 왜군을 물리친 절대적인 이유중 이순신의 전략도 좋았지만, 기본적으로 조선이 가지고 있는 함포(대포)가 장착된 함선이였고, 왜(일본)은 함포가 없는 함선이였다.

또한, 나중에 왜가 함선에 함포를 장착하였지만, 조선의 함선과 포 등 성능에 차이가 있었고, 함선에서 포를 발사시 함선이 움직이지 않는 안전성과 이동성 등에서 조선을 이길수가 없었다.

조선은 먼거리에서 일본를 공격할 수 있지만, 일본는 조선함선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조선함선에 가까에 온 다음, 조총이나, 활이나 근접전만으로 대항하는 수준이였다. 그러니 전체적인 군사전력에서 조선이 함선 수에 상관없이 앞설 수 있었다. 현재의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 한척이 수십척의 함선을 대적할 수 있는것과 같다.

현대 군전술개념인 먼저기동하고, 먼저보고, 먼저쏘고, 이동하는 전술처럼 신라도 당과의 전쟁에서 먼저보고, 먼저쏘고, 보복폭격을 피할 수 있게 이동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식 140보 사거리 쇠노

신라가 이동식 미사일인 구진천의 쇠뇌(거노:수레노)를 보유하고 있었음으로 당이 신라를 굴복시키려 수십만 대군을 동원하고도 신라를 굴복시킬 수 없었다. 만약, 당시 신라의 구진천이 당의 회유에 넘어가서 신라의 비밀병기의 비급을 팔아넘겼다면, 당은 신라를 손쉽게 접수했을 수도 있다.

731년 여름 4월에 일본국 병선 300척이 바다를 건너 우리의 동쪽 변경을 습격하였으므로 왕이 장수를 시켜 군사를 내어 이를 크게 깨뜨렸다.
가을 9월에 백관에게 명하여 적문(的門)에 모여 수레 쇠뇌[車弩] 쏘는 것을 관람하도록 하였다. - 삼국사기 성덕왕 30년

조선 세종이 신기전을 만들어 전략적 요충지에 보급하여 외세의 침입에 대비하듯이 신라는 이동식 쇠뇌를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아막성을 공략하는데 이동식 쇠뇌(수레노)가 등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캡쳐된 자료가 없어서 올리지를 못한다. 

하지만 신기전처럼 수레위에 쇠뇌를 올린 모습이 아닐까 한다. 당과 신라의 쇠뇌 핵심기술의 차이는 맥궁을 활에 접목한 신라의 쇠뇌와 당의 활을 만드는 방법에 있지 않을까 한다.
 

선덕여왕을 보는데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추천을 해주실거죠?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성은김이요 2009.09.05 1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로 노의 기술은 신라가 3국을 통일하면서 습득한것이구요 드라마에서 나오는건 시기상조인듯, 노라는 무기가 원래 있기는 했으나 신라가 3국을 통일하고 3국의 병참기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개발된 신무기였지요.....아마 노기술은 백제 계통에 있었던걸로 알고있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5 2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내용은 어디에도 없는데요.. 백제가 노가 더 발달했다는 증거를 님은 가지고 계신가요? 삼국공히 가지고 있다면 모르지만..

  3. 여기 댓글을 읽어 보려고 2009.09.05 1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복사해서 한글에 옮겼더니 무려 17 페이지나 되네요.
    멋진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이 계셔서 그나마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나라의 희망입니다.

  4. 갓쉰동님 광팬 2009.09.05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오늘 글이 가장 좋습니다. 지금 이 글은 오늘의 대한민국에도 깊게 생각해 볼수 있는 명제인 것 같아서요. 나로호 실패를 떠올리면서 우리나라도 과학기술에 대해 충분히 대우했으면 좋겠는데 국회의원들 중에 법관 출신들은 많아도 이공계 출신들은 별로 없다는 뉴스를 보면 좀 그렇더군요. 사회적인 대우는 의사나 법관이 높지만 전 개인적으로 우리나라를 먹여살리는 진정한 두뇌는 과학자들의 창조력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우리나라의 최고의 수재들이 의대나 법대를 지망하는 현실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나저나 알천도 자꾸 나오니깐 지겹더군요. 인기가 높아져서 제작진들이 무리수를 써서 분량을 자꾸 늘려주는듯...쇠뇌쓰는 장면에서 반짝 멋있었는데 요즘 인상만 쓰는것 같아 별로 (알천랑 팬분들 어디까지나 제 취향일 뿐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5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가요?
      알천의 존재는 더 부각되어야 하는 존재이고.. 비담의 존재가 너무 부각된것 같아용.. ㅋㅋ

  5. 갓쉰동님 광팬 2009.09.05 1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돌궐이나 고구려같이 신라보다 훨씬 영토도 넓고 인구도 많은 강국을 멸망시킨 당나라가 영토가 조그만 신라를 삼킬 여력이 없었을까 예전에 국사를 배우면서 느낀 궁금증이었는데 오늘 의문이 어느정도는 풀렸네요. 최첨단 기술은 나라의 흥망성쇄를 바꿀만한 대단한 것이라는 것을 갓쉰동님 글을 보며 다시한번 느낍니다. 언젠가 책에서 읽었는데 권총의 존재가 세계의 전쟁사의 획을 바꿔놓았다는 글귀를 보았을때 느끼던 놀라움을 님의 글에서 느꼈습니다.

  6. 소석 2009.09.05 18: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사내용보니 경상도 인물키우는 것같다 ,

    이런 무기를 만든 신라인들이 신라를 임진왜란의 주두지로 내주어 삼천리를 유린하게 하였는지 알수 없다,

    이런 신라인들이 어찌하여 만주땅을 당나라에게 주었는지 그 이유를 알수 없다,

    그 신라의 후예들은 어떠한가,

  7. 을파소 2009.09.05 1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유로운 분위기에 토론은 좋으나 이유불문하고 지역감정 따지고 말두 안되는 소리나 쓰는 사람들이란.....에휴.....

    아무튼 주인장님 포스트 잘 읽고 갑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5 2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ㄳ 합니다..

      다른 글도 보시면 잼있습니당.. 싫으시면 안하셔도 되구요..

      암튼 저도 좀 아쉽네요.. 욕하는 놈이 진다는 것도 모르는 가 봅니다..

  8. zzz 2009.09.05 1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자체도 완전 픽션 드라마 인데 왜이렇게 열을 올리시는지....
    김유신은 선덕여왕 먼 조카인데.... 첫째가 덕만 둘째가 천명(춘추는 친 외조카 맞음) 셋째가 선화공주 인줄 아는데.....

  9. 두가지소원 2009.09.05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가 통일한게 왜 비난받아야 됩니까?

    1500년 전의 신라와 지금의 경상도와 관련지어서 비난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는데, 참 어이없네요.
    이 분들이 주장하는건 대체로 이렇죠.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저 넓은 만주도 우리것"

    이 분들은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를 못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고요,
    신라와 경상도을 관련지어서 떠벌리는 것 자체가 '난 소인배요'라고
    광고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 그런지 말씀드리죠.
    고구려, 백제, 신라 의 삼국시대부터 전제왕권이 성립되어 19세기에
    이르기까지 2000년 간 모든 권력은 왕이라는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 왕의 능력 여하에 따라 왕조의 흥망성쇠가 결정
    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유능한 왕이 나타나면 그 국가는 정치, 문화 전반에 걸쳐 융성기를 맞게
    되고 국력의 신장으로 영토도 최대한으로 늘어나는 전성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하지만, 세습제인 까닭으로 왕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왕의 그릇이 못되는
    자가 왕이 되었을 때 그 국가의 운명은 나락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심한 경우 멸망하게 되겠지요.
    역사가 그걸 증명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수많은 나라가 건국되고 멸망했는데, 300년을 넘게
    지속된 나라가 거의 없습니다.

    자, 가장 중요한 점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고구려가 삼국통일했다면 만주는 우리 땅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역사에는 만약 이라는 건 없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 가정을 가지고 생각을 해 봅시다.

    만주에는 단일 민족이 아닌 여러 민족이 존재했었습니다.
    물론, 고구려가 만주를 지배하고 있을 당시에도 고구려인이 지배층으로
    다른 민족은 피지배층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피지배층이라고는 하지만, 언제든지 뛰어난 지도자가 나타나면 국가를 세우고
    만주를 지배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거란족이 요나라를 세웠고, 그 후에는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웠죠.
    당연히 만주를 지배했고, 중국 북부까지 영역을 넓혔습니다.
    여진족의 후예인 만주족이 또 다시 청나라를 세우고 만주를 넘어 중국 전체를 다스렸
    습니다.
    그 외의 변수도 있었지요. 만주 북쪽의 몽고 지역에서 징기스칸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만주를 손에 넣게 됩니다.
    다시 한번 지도자의 중요성이 여실히 증명되지요.

    이제 답이 나온거 같습니다.
    고구려가 삼국통일해서 지금의 우리 땅이 될려면, 고구려가 만주를 계속 지배한
    채로 1500년 정도를 더 존속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고구려에는 위대한 황제인 광개토대제가 계셨습니다. 고구려에는 그 분 이후로
    자자손손 위대한 지도자가 계속 나와야만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키보드나 치면서 신라를 비난하는 분들은 그동안 대한민국을 위해서 한 일이 뭐가
    있습니까?
    지금의 정치하는 사람이 특정 지역이라고 1500년 전의 신라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작금의 세태를 비난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건 소인배나 하는 짓입니다.
    지금은 민주주의입니다. 얼마든지 유능한 정치가를 우리 힘으로 뽑을 수 있습니다.
    잘못 뽑은 게 있다면 다음의 선거에서 한 표로 당당하게 심판하세요.

  10. uhaha 2009.09.05 1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헐 그렇게 뛰어난 무기가 있었는데 어떻게 백제하고 싸울 땐 그렇게 아둥바둥 했나? 그리고 김유신이 백제 먹으러 가면서 황산벌에서 수천 밖에 안돼는 백제 군사는 왜 금방 물리치지 못했나?

    • 우리나라 역사를 조금만 알아도 이런건 금방 아시는데요. 2009.09.05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백제라고 맥없는 나라였겠습니까.
      그때 계백이 이끄는 병사들은
      수천 밖에 되지 않는다 해도
      이미 목숨을 내놓고 나온 사람들입니다.
      군사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군대와는 싸움을 피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의자왕이 이끌던 백제 군사는 정병이었습니다.
      의자왕이 후에 정치를 멀리하니 그 꼴이 되었지만.
      원래 정병이었던 병사들이 목숨을 내놓고 싸운다면,
      아무리 김유신이라도 물리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임진왜란 때 보십시오.
      이순신 장군이 다시 통제사가 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은 부하들을 데리고 싸우면서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하며
      전투를 독려했습니다.
      그래서 승리하시지 않았습니까.

    • BlogIcon 갓쉰동 2009.09.05 2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만큼 백제가 강했다고는 생각못하시지요?
      균형추가 깨지는 역할이 당인뎅..

  11. BlogIcon 분홍별장미 2009.09.05 1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기 위에 있는 신기전 예전에 덕수궁인가?? 서울시청 앞에 있는거요.. 거기서 본것 같은데...^^;; 제가 서울을 자주 못가서 무슨궁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12. 두꺼비 2009.09.05 2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찬 구진천의 쇠노를 지키기 위한 일화를 읽다보면 오늘날 자신의 영화를 위해 기업과 나라의 첨단기술을 되놈들에 빼돌리려 한 도적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참으로 구데기와 참 인간의 차가 이리 큼을 다시금 깨닫게 하노라..

    • 두꺼비님, 2009.09.05 2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내 개발한 기술 가지고,
      소위 경영자라는 것들은
      돈을 긁어 들여 호의호식하며
      떵떵거리고 살면서
      기술자는 우습게 알고
      대우도 안 해 주면
      그런 생각 안 날까요?!
      경영자들이 부하들을 제대로 대접해 보십시오.

    • BlogIcon 갓쉰동 2009.09.05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쁜 개인도 있지만, 기업이 먼저 잘해야지 않겠어요? 기업의 착취는 용납이 되시나 봅니당.. 노사가 윈윈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이 생산성도 높아요..

  13. BlogIcon Lueld 2009.09.05 2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 저게 고려의 검차의 모티브가 됀건가?

  14. 지나가다2 2009.09.05 2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가 외세를 빌어 억지로 삼국을 통일하지 않았더라면... 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중의 1인

    • BlogIcon 갓쉰동 2009.09.05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라도 고구려 백제 연합군에게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답니다.. 서로 잡아먹을려고 했던거지요..

      그러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땅에 대한 거대컴플렉스가 많은 것 같아요..

      북한이 땅이 넓다고 해서.. 인구가 많은건 아닌뎅.. 머 암튼 그렇다구요..

    • 헬헬 2009.09.05 2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라로써는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을 펼친 것 뿐입니다.
      백제때문에 못살겠다고 김춘추가 연개소문한테 원군요청하러 갔다가 포로로 잡힌걸보더라도 그당시 3국의 합종연횡은 거의 일상다반사였다고 할수 있습니다.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서라도 살아남으려는 의도와 고구려를 치려는 당나라의 의도가 맞아들었고, 그게 성공적으로 작용을 한것 뿐이죠.

      고구려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시기에 한반도 전역을 지배할 정도의 힘이 있었지만 하지 않았고, 백제는 몇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내분으로 힘을 빼버리면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신라가 통일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영원히 3국체제로 갔을지도 모릅니다.
      당나라의 힘을 이용한 신라의 통일을 '최악의 경우'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네요. 그냥 생각해봐도 더 최악의 경우가 수두룩한데 말이죠.
      그리고 요즘 흔히들 최선의 경우라는 '고구려의 통일'은 아마 일어나지 않았을겁니다. 고구려는 한반도 전역을 지배할 의사가 없었으니까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0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헬헬님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요즘 너무 역사 공부들을 안하는데 님은 충분히 많이 하시고 계시군요. 아마도 전쟁사에 관심이 많은분 같군요..

  15. 들림 2009.09.05 2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쇠뇌(석궁)의 장점은 말씀드린것 처럼 숙련이 쉽고 일반 활보다 강합니다. 하지만 단점은 장전시간이 일반 활보다는 느리고 불화살을 쏠수 없죠. 그래도 강한 파괴력을 볼때 쇠뇌는 좋습니다. 어디서 들어봤는데 쇠뇌를 엄청나게 크게 만들어 공성 무기(노포,발리스타)로 쓰는것도 있습니다.^^ 근데 쇠뇌 역사가 이렇게 오래됬는지는 여기서 알게됬네요. 중세시대에 만든줄 알았거든요.ㅎㅎ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0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대부분 그렇게 알고있고, 그런 이유가 서양 중세시대를 다룬 영화때문일겁니다. 그래서 일부러 서양중세이야기를 넣었습니다..

  16. 짜장면 시키신분 2009.09.05 2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폭이 너무 넓은거 아닌가요? 보통 보폭 70센티로 알고 있는데,,, 롱다리, 우사인 볼트도 아니고,,,, 너무 미화한듯 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0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이 말한 보폭의 개념은 맞아요...70~75센티 정도.. 그 당시에는 키가 작았어용..

      그런데 문제는 제가 말한 건 步라는 겁니당..

      보는 첫발을 디디고 다음 발을 디딘거리를 말해요.. 그러니 보폭*2를 하는 겁니다..

      설마 보폭과 보의 개념도 모르고 글을 썼겠습니까?

      그리고 엄청 축소해 놓았지요.. 1키로에서 1.4키로라고.. 이유는 당시의 신장개념이 포함되었고, 그들의 측량술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기도 햇습니다.

      조선시대 정약용이 수원에 지은 화성의 둘레가 4천6백보예용.. 그런데 이 길이가. 약 5키로가 조금 넘어요

      그러니 미화는 아니지요.. 물론, 저는 미화되었다고 봐요. 당시의 거리 개념으로 대략 멀다는 정도의 걸이가 1천보였다고 보고든요..

  17. 신라 의상 2009.09.06 0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 시대 조선시대처럼 머리에 띠를 했나?

    신라시대는 한복도 없었지만.. 옷도 한복과 다르고

    많이 다를껀데.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07:17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복의 원형은 있었지요..

      요즘의 한복은 원형을 잃어 버린의복인데요..

      머리띠는 했는지 안햇는지 모름.. ㅋㅋ

  18. BlogIcon 이철후 2009.09.06 0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연 노가 쓸만할까? 나는 무기의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고 전술사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다. 고대든 중세든 노는 활만큼 자주 나오는 무기이다. 하지만 활에 비해 인기력이 떨어진 이유는 뭘까? 이제 무기사의 마왕께서 파헤쳐 주겠다. 내가 보기엔 노는 강력한 무기이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관통력과 사정거리만 한해서이다. 노는 활과 형식이 다르다. 활은 단순한 무기인데 비하여 노는 복잡하다. 노의 관통력은 대단하다. 노는 320m의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다.(단궁이 100m정도) 그리고 관통력은 중세 체인메일을 충분히 뚫을수 있다. (장궁도 체인메일 뚫을수 있음) 하지만 노의 발사력은 1분당 1발이다. 정말 저조하다. 이에 비해 일본의 조총병은 1분에 2발정도를 발사 할수있고 영국의 장궁병은 1분에 10발이나 발사할수있다. 노는 아무리 숙련이되도 1분당 3발이상을 발사할수없다. (장치가 까다롭기 떄문에)
    또한 활같은 경우는 급각도로 떨어지는 경우에는 체인메일뿐만아니라 체인메일+플레이트 아머까지 관통할수있다. 노는 ㅡ>자로 발사하는데 비해 활은 중력을 이용하여 떨어질때 파괴력은 굉장하다. 어떻게보면 파괴력또한 활이 더 강할수도있다
    사거리 320m의 노와 280m의 장궁병 과연 누가이길까? 장궁병의 대승이다.
    좋은 예가 있다. 서기 1346년에 일어난 프랑스vs영국 즉 백년전쟁중의 한 전투 크레시전투를 예를 들어주겠다 서론을 막론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프랑스의 필리프 6세는 영국의 장궁병에게 맞서기 위하여 노를 썼던 제노바 용병들을 대거 프랑스군에 합류시킨다. 전투시작후 사거리가 좀더긴 노병들의 일제 노를 발사한다. 이에 영국의 몇몇장궁병들은 쓰러진다. 이에 영국 장궁병들도 제노바 노병들이 사거리안에 들어오자 일제사격을 한다. 하지만 연사력이 영국장궁병의 10분의 1밖에 안되는 제노바 용병들은 급각도로 떨어지는 영국의 장궁병대를 막지못한다. 제노바 노병들은 참패를 한다. 필리프6세는 어쩔수없이 프랑스기사단(중세의 기사)들을 대거 투입시킨다. 하지만 영국군의 장궁병들은 사거리에서 압도하여 프랑스의 기사단들이 돌격해오는 도중에 거의 전멸을 시켜버린다.
    숫자가 오히려 더 많았던 프랑스. 개참패한다.
    이것이 활과 노와의 차이점이다. 노는 비록 사거리에서는 활보다 한수위 일지 몰라도 연사력에서는 한참아래였다. 만약 노가 정말 성능이 좋았다면. 몽고 기병대들은 활을 쓰지 않았을것이고 고구려의 장궁병대도 활을 쓰지 않았을것이다. 노는 혁신적인 무기이지만 세계의 판도를 바꿀만한 무기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 이철후
    여담 :또한 이동식 쇠뇌라면 로마에서 먼저 나왔다. 이름 스콜피온 사거리약 400m달하는 공성병기로써 일반활의 화살보다 수십배는 큰 활을 장착했다. 이 스콜피온에 맞으면 자기뿐만아니라 자기의 뒷사람까지 관통을 당하여 한번 발사를 하면 너댓명이 죽어나갔다. 정말 혁신적인 무기이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0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글이긴 한데.. 총과 미사일을 비교하면서 미사일은 근접전에 약하다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장거리 폭격기가 전투에 약하다는 말과 비슷하지요..

  19. 누리 2009.09.06 0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글을 예전에 몇번봤었는데...이제야 댓글을 다는 저를 용서해주세용...ㅠㅠ
    역사는 잘 모르나 사극이 재밌어서 평소 즐겨보는데...역사책에서 불분명한 것들이 너무 많고 저도 배웠고 많은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국사책도 너무 왜곡된것이 많은것같고 그 나마 있는 역사에 관한 문화들도 너무 방치만 하는것 같아서 정말 아쉬워요.지금 방영중인 선덕여왕도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만큼 너무 판타지 적인것 보단 좀 더 사실적으로 방영을 했으면 더 좋을텐데 말이죠. 제 주변에선 삼국통일을 한 신라를 역사적 망신이라며 비난을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고구려나 신라나 백제나 뭐 이유야 어쨌든간에 그들도 적에게 죽임을 당하기 싫어서 서로 칼을 겨우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ㅎ 댓글을 쓰고 나니 뭔가 앞뒤가 안맞는것 같기도 하고...역시 전 글취미가 없어서 그런지라 이상하네요ㅎㅎ 아무튼 갓쉰동님 덕에 이 늦은 새벽 머리속에 또 하나의 지식을 넣으며 갑니다~이제 자주 자주 들려서 공부를 해야겠어요ㅎ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0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셨군요.. 댓글달고 나니 별거 아니지요?

      맞습니당.. 죽기싫어서 또는 노비가 되기 싫어서.. 이런 저런 이유가 있었겠지요..

  20. kskkekr 2009.09.06 1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시대에는 있지도 않은 일본을 ..

    그냥 왜라고 하자

    국가도 없엇다고 보면되는데..

    에휴 한심하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님같은 분이 역사를 모른다는 겁니다..

      왜 임진왜란때 일본은 없다고 하시지요..

      일본의 국명은 이미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후 만들어지는뎅.. 모르면 끼지를 말던지요..아니면 예를 갖추던지요..

  21. 나그네 2009.09.26 0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라리 선덕여왕이 고구려인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왕중에서 다들 삼국통일을 원했지 선덕여왕처럼 동아시아전체를 잡아먹겠다는 야망을 품은 왕은 없다고 생각되구요

    황룡사9층탑을 보듯이 일본, 중화, 말갈, 거란, 여진등등 9개의 국가를 모두 정복하겠다는 야망을 품었죠.

    역사에 대해서 잘모르지만 몽고, 마케도니아, 스페인, 로마등도 조그마한 나라에서 이민족을 복속해서 대제국을 만들었죠.

    즉 그전까지 주변나라에서 핍박이나 전쟁으로 고통받으면서 그러한 환경에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에서 그런 야망을 품은 왕이 나오고 대제국을 만들죠.
    실제로 영토가 커다란 나라는 더이상 정복전쟁을 하지 않고 나라을 유지하는데 신경쓰고 그러한 나라의 왕은 더이상 정복에 대해 신경쓰지 않은 듯 합니다.
    (단 러시아는 제외입니다. 그 이유는 항구가 얼어붙기 때문에 남하을 해야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죠.)

    즉 안정기에 들어선 국가는 더이상 정복전쟁을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합니다. 차라리 내정이나 문화를 키우기에 앞장서죠.

    그런데 주변의 핍박이나 전쟁으로 인해 나라가 불안정한 경우의 국가의 왕은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계속해서 야망을 키우고
    만약 그왕이 시기와 잘맞거나 희대의 전술, 전략이 나오거나 희대의 병기를 등장하면 한번에 국가를 성장시키는 것 같습니다.
    몽고의 테무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로마제국, 스페인의 이사벨라여왕등도 그러한 예이죠.

    그리고 실제로 정복을 하는 왕이 조그만한 국가를 거대한 영토로 만든후 그 왕의 후손이 되는 왕에서 그냥 나라의 유지하는데만 힘쓰죠.
    더이상 영토확장에 신경쓰지 않는 것같더군요.

    신라의 예를 들어본다면 진흥왕, 선덕여왕, 김춘추은 계속 영토확장을 노렸지만 막상 신라가 강성해지자 영토확장을 멈춥니다.
    그 이유는 신라는 고구려, 백제의 위협에 시달렸기 때문에 그 시대의 신라의 왕은 통일의 대한 염원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통일신라의 왕은 주변의 위협이 없기 때문에 영토확장은 생각도 안하죠.

    즉 영토확장의 전제조건중 1번째는 국가가 주변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영토확장을 하고 한번 영토확장을 할때 계속해서 확장을 쉴새없이 해야한다는 마인드의 가진 왕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2번째는 그러한 마인드의 가진 왕이 있는 국가가 시기와 잘맞거나 우수한 인재가 나와서 희대의 전술, 전략이 나오거나 희대의 병기를 등장해야 하는 경우이죠. 정안되면 희대의 전술, 전략이 없더라도 국력으로 밀어붙이는 경우죠.

    선덕여왕은 1번째는 갖추었는데 2번째가 없었죠. 시기가 안맞았고 타국의 압도할 그 어떤 것도 없었고 국력도 딸리고
    하지만 신라의 다른 왕은 오직 고구려, 백제을 정복해서 삼국통일을 생각했지만
    선덕여왕은 삼국통일뿐만 아니라 일본·중화·오월·탁라·응유·말갈·단국·여적·예맥를 모두 정복하겠다는 의지가 있었죠.
    물론 의지로만 끝났습니다. 하지만 부단하게 노력해서 삼국통일의 토대의 세웠죠. 그것도 당나라에 의해 만주가 넘어가버리는 최악의 형태로...

    역사에 가정이 없지만 선덕여왕에게 테무진이나 알렉산더처럼 천운이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봅니다. 워낙 통이 커서 대제국을 만들었겠죠.
    삼국의 어떤 왕도 그런 마인드의 가진 왕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들 언어가 통하는 같은 민족의 국가를 통일시킬 생각을 가졌지 이민족의 국가까지 복속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고 생각되어집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당나라는 외세를 끌어들여서 당나라에 의해 만주가 넘어가버리는 최악의 형태로 삼국통일이 되어버리죠. 그리고 부하에게 배신당해서 자신은 통일도 못해보고 디딤돌역할만 했기 때문이죠.
    참 운도 없는 여왕입니다.

    선덕여왕은 대단한 여왕이기 동시에 짜증나는 존재이기도 하죠. 그 수많은 영토가 날라가게 하는 장본인이기 때문이죠.

이전버튼 1 2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
갓쉰동
10-18 07:17
Yesterday23
Today4
Total977,383

글 보관함

최근에 올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