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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돈

덕만은 첨성대로 신권을 버렸을까? 사실은 첨성대와 격물과 신권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또한, 첨성대는 덕만이 공주시절에는 절대로 완성되지 않아야 한다. 어찌되었던 이와 관련해서 신라사의 배경설명을 먼저 하도록 하겠다. 시대상황과 시간은 작가맘대로 그리고 당시 불교와 신교의 대립? 용춘은 혁거세가 건국한지 700년이 지났다고 신국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도대체 근거가 있는것일까? 기원전 57년 박혁거세 13세에 6부의 족장들이 추대하여 신라(서라벌)를 건국하고 26대 진평왕 시기의 선덕여왕의 배경이 되는 시기인 610~618년이전이 되니 660여년 된다. 혁거세의 유명이란 어출쌍생, 성골남진 새겨진 비석이 412년 실성왕 말년 눌지가 반란을 일으킬때 사라진지 200년이 지나서 나왔다고 이야기한적도 있다. 2009년은 기원전 2333년 단군이 조선.. 더보기
화랑세기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도 있다. 법흥왕과 백제 보과공주의 사랑 뒤바뀐 역할모델 선화공주->법흥, 서동->보과공주 백제 30대 법왕의 아들(?) 서동과 신라 27대 진평왕의 3째 딸인 선화공주와의 사랑이야기는 시대적 배경으로 보면 599년부터 600년 사이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의 미담이 될것입니다. 역사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백제와 신라의 왕자 공주의 혼인관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라 법흥왕과 동성왕의 딸인 보과공주와의 사랑이야기 어찌보면 왕자와 공주가 서로 바뀌지만 유사점이 많습니다. 동성왕(493년) 때 신라 이찬 비지의 딸을 왕비를 맞이 하는 결혼동맹을 하여 신라와 유대를 강화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나 비슷한 시기에 신라 지증왕(437~514)의 아들인 원종 법흥왕(23대 : 514~540)이 왕자 시절 백제의 수도인 .. 더보기
화랑세기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도 있다. 법흥왕과 백제 보과공주의 사랑 뒤바뀐 역할모델 선화공주->법흥, 서동->보과공주 백제 30대 법왕의 아들(?) 서동과 신라 27대 진평왕의 3째 딸인 선화공주와의 사랑이야기는 시대적 배경으로 보면 599년부터 600년 사이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의 미담이 될것입니다. 역사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백제와 신라의 왕자 공주의 혼인관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라 법흥왕과 동성왕의 딸인 보과공주와의 사랑이야기 어찌보면 왕자와 공주가 서로 바뀌지만 유사점이 많습니다. 동성왕(493년) 때 신라 이찬 비지의 딸을 왕비를 맞이 하는 결혼동맹을 하여 신라와 유대를 강화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나 비슷한 시기에 신라 지증왕(437~514)의 아들인 원종 법흥왕(23대 : 514~540)이 왕자 시절 백제의 수도인 .. 더보기
이차돈은 김씨일까? 박씨일까? 이차돈에 대한 고사는 삼국사기 신라 법흥왕14년(527년)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는 과정에서 이차돈의 순교로 인해 신라의 불법이 왕성하고 신라 왕권의 강화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차돈(염촉,염도)의 가계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사기는 성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삼국유사는 씨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고 그이 세계를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를 인용하고 아도비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지만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이나 그 당시까지 전해진 기록을 상고했을 때 박씨라고 기록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단 삼국사기의 기록과 삼국유사의 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5년(528) 불교를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일찍이 눌지왕 때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고구려로부터 일선군(一善郡)에 왔는데, 그 고을 사람.. 더보기
이차돈은 김씨일까? 박씨일까? 이차돈에 대한 고사는 삼국사기 신라 법흥왕14년(527년)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는 과정에서 이차돈의 순교로 인해 신라의 불법이 왕성하고 신라 왕권의 강화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차돈(염촉,염도)의 가계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사기는 성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삼국유사는 씨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고 그이 세계를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를 인용하고 아도비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지만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이나 그 당시까지 전해진 기록을 상고했을 때 박씨라고 기록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단 삼국사기의 기록과 삼국유사의 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5년(528) 불교를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일찍이 눌지왕 때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고구려로부터 일선군(一善郡)에 왔는데, 그 고을 사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