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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드라마 동이에서 인현왕후(박하선)는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하고 뒷방여인으로 전락하였다.

그동안 무수히 드라마화 된 장희빈과 인현왕후에서 가장 존재감 없는 왕비가 아닐까 한다.

숙빈최씨인 동이(한효주)와 장희빈(이소연)의 그늘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엑스트라 취급을 받고있다.


최근 엑스트라로 출연해 네티즌의 관심을 받은 지나치는 궁녀보다도 존재감이 없다.


처음 장옥정은 백부인 당시 거부였던 장현의 뒷배로 궁중 나인으로 들어 왔다. 얼굴이 아름다운 장옥정은 1680년 숙종의 정비였던 인경왕후가 죽은 1680년 숙종의 성은을 입었지만, 숙종의 어미인 명성왕후에 의해서 궁 밖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1681년 인경왕후의 뒤를 이어 15살에 왕비가 된 인현왕후는 장옥정이 임금의 성은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궁 밖 사가에 있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하면서, 모후인 명성왕후에게 장옥정을 궁으로 불러드릴 것을 청한다. 하지만 명성대비는 인현왕후에서 장옥정의 심성이 사악하여 훗날 크게 후회할지 모른다고 경고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전(內殿)이 그 사람을 아직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오. 그 사람이 매우 간사하고 악독하고, 주상이 평일에도 희로(喜怒)의 감정이 느닷없이 일어나시는데, 만약 꾐을 받게 되면 국가의 화가 됨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니, 내전은 후일에도 마땅히 나의 말을 생각해야 할 것이오.”


1683년 12월 숙종의 모후 명성대비가 숙종이 병이 들어 하늘에 구명을 청하다 겨울비에 감기가 걸리고 죽고 만다. 이후 인현왕후는 인조의 비였던 자의대왕대비와 함께 숙종에게 간하여 장옥정을 궁내에 들이게 하였다.


장씨의 교만하고 방자함은 더욱 심해져서 어느 날 임금이 그녀를 희롱하려 하자 장씨가 피해 달아나 내전(內殿)의 앞에 뛰어 들어와, ‘제발 나를 살려주십시오.’라고 하였으니, 대개 내전의 기색을 살피고자 함이었다. 내전이 낯빛을 가다듬고 조용히, ‘너는 마땅히 전교(傳敎)를 잘 받들어야만 하는데, 어찌 감히 이와 같이 할 수가 있는가?’ 하였다.


이후로 내전이 시키는 모든 일에 대해 교만한 태도를 지으며 공손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불러도 순응하지 않는 일까지 있었다. 어느 날 내전이 명하여 종아리를 때리게 하니 더욱 원한과 독을 품었다.


장희빈으로서는 인경왕후가 죽은 후 자신이 왕비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숙종은 장희빈을 왕비로 내세우기 보다는 새로운 왕비인 어린 인현왕후를 왕비로 받아 들였다.


숙종과 자의태왕대비의 총애를 믿고 방자한 장옥정(장희빈)를 제어하지 못한 인현왕후는 숙종에게 후궁을 선발하게 하고 김창국의 딸을 뽑아 후궁으로 삼았지만 김창국의 딸 영빈김씨는 숙종의 총애를 받지 못했다.


인현왕후는 처음 선의로 장희빈을 대했지만, 장희빈은 악의로 인현왕후를 대했다. 장희빈으로 보았을 때 인현왕후는 굴러온 돌에 해당하고, 나이로나 농익은 여인으로서나 나이어린 인현왕후는 게임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숙종과 자의대왕대비의 배경을 믿고 어린 인현왕후를 농락하였고, 분을 참지 못한 인현왕후는 마침내 숙종의 성은을 입은 상궁 장옥정을 회초리로 때리게 된 것이다.


1683년 이때 장희빈의 나이는 25살이었고, 인현왕후는 17살이었다. 숙종의 나이는 23살이었다. 숙종으로 보았을 때 인현왕후는 여인이 아닌 어린애에 불과해 보였고, 장희빈은 여인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장희빈은 자신보다 8살이나 어린 동생 같은 인현왕후에 회초리를 맞고 기분이 좋았을 리가 없다. 회초리 사건은 장희빈과 인현왕후사이에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사건이다.
 


1681년, 인현왕후를 따라 궁에 들어온 동이의 나이는 15살인 인현왕후보다 3살이 어린 12살이었다. 드라마 동이에서처럼 동이가 1683년 명성왕후 죽음을 파헤칠 수도 없었다. 무슨 일을 꾀할 만한 나이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어쨌든, 장희빈은 1686년 숙원이 되고, 1688년 아들 균을 낳고 더욱 방자해져 1689년 인현왕후를 축출하는데 성공한다.

그렇다면 최근 드라마 동이에서서 처럼 등록유초로 나라의 정보를 팔아먹은 장희빈은 사실일까? 아니면 장희빈에게 비슷한 사건이라고 있었을까? 동이에서 이전에 등장한 장희빈과는 다르게 인간적이고, 장희빈의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한다는 장희빈이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가 되어야 했는지는 각자알아서 판단하기 바란다. 그동안 나온 어떠한 드라마보다 최악의 장희빈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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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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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26 1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10.07.27 0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책이 유일한 숙빈최씨에 관한 출생의 비밀코드이지요.. 이를 무시하고 전개를 할수는 없어용.. 충분한 반대적인 입장이 발견되거나 이를 합리적으로해석하지 못하는한..

      장옥정과 숙빈최씨가 피터진이유는 대리전쟁이지요.. ㅋㅋ

  2. 수민 2010.07.26 1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날의 사료와 시대적 사실적 연대가 잘 나타난 매우 객관적이고 비교적 정확한 인물평과 내용을 가진 포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3. BlogIcon 이곳간 2010.07.26 1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 사실을 잊지말고 잘 기억해두어야겠어요.. 드라마는 허구가 대부분이라서 말이죠..

  4. 마른 장작 2010.07.26 2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확실히 사극은 역사와는 다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10.07.27 0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극은 20%의 사실과 80%의 허구라는 이병훈의 말이 떠올라요.. 그런데 문제는 이병훈 사극에는 단 1%도 역사와 부합되지 않는다는것.. ㅋㅋ

  5. BlogIcon 오뚜막 2010.08.03 1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그렇듯이 드라마는 드라마..영화는 영화일뿐^^
    실존했던 인물들과 가상인물들과의 조합과..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서
    단순히 색다른 사극이 나온듯 합니다...너무 이것저것 따지면 스트레스만 증폭..
    글 잘읽었습니다.. ^^ 좋은 하루되세요..

  6. 정은 2010.09.28 15: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게 수 많은 장희빈들을 TV에서 보면서도... 한번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장희빈과 인현왕후가 8살 차이였다는 것과,

    장희빈이 숙종보다 2살 연상이었다는 것.. -ㅁ-!!

    거기다 동이는 12살 때 부터 의문의 죽음 및 각종 사건을 수사하고

    파헤치는 걸 좋아했다니.... 쩝... '_';; 드라마에선 날라다니던데요 아주.

  7.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9.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wet.php 2012.07.14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를 한 유이도 꿀벅지라는 의미를 알았을 때 거부감을 표시하였는데, 하

  10. BlogIcon Chase 2012.09.23 15: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부였던 장현의 뒷배로 궁중 나인으로 들어 왔다. 얼굴이 아름다운 장옥정은 1680년 숙종의 정비였던 인경왕

숙종의 죽은 첫번째 정비였지만 일찍 죽은 인경왕후의 작은 아버지인 김만중의 사씨남정기를 읽고 폐비 민씨인 인현왕후의 일을 후회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장옥정은 만약, 숙종이 그랬다면 먼저 자신에 일을 말하고 의논했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스스로 확신을 주는 주문과도 같다.

그런데 장옥정은 서종사관을 통해서 동이를 찾는다는 말을 전해듣고는 직무실로 찾아간다.

직무실에 들어간 장희빈은 숙종이 사냥을 떠나서 잡은 사슴가죽으로 만든 꽃신을 보면서. 동이에 애뜻한 마음을 품고 자신에 거짓미소를 지은것에 분노를 한다. 그리고 직무실에서 나오면서 상선에게는 자신이 별일 없이 왔다 갔으니 왕에게 아뢰지 말라고 전언한다. 하지만, 숙종에게 자신을 찾지말라고 했다고 전하는 우리의 상선은 고자질 대마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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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9 - [역사이야기] - 장희빈 재발저리게 한 사씨남정기 하지만 2% 부족?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역사에서 숙종에게 사씨남정기를 알려준 사람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는 <궁녀>이다. 드라마 동이에서 <궁녀>와 동이를 일체화 시켜서 사씨남정기를 알려준 이는 동이였다는 설정이 될 줄 알았지만, 동이가 의주에 있는 동안 이미 숙종도 사씨남정기를 읽었다는 말을 장옥정의 입을 통해서 시청자들에게 알려버린다. 물론, 장옥정의 말은 정말 숙종이 사씨남정기를 읽었다는 뜻은 아니다. 없어진 사씨남정기를 다시 동이가 숙종에 전달해서 알려지게 되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의주에서 만난 심운택은 한글 사씨남정기를 한문소설로 번역하여 궁중에 유포시켰다는 김춘택의 가상 인물처럼 보인다. 김춘택은 김만중의 형인 김만기의 손자다. 숙종이 사씨남정기를 읽는 과정이 심운택(김춘택)으로 부터 사씨남정기를 전해받은 <동이>가 숙종에게 알려주었다는 설정이 더 극적이지 않았을까?


동이에서 역사와 부합하는 사극이 되려는 틈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장옥정이 숙종이 읽었는지 알지 못하고 궁중에서 사라진 사씨남정기를 동이와 심운택이 만들어 전달했다는 설정으로 바뀌길 바라는 희망은 무너져버렸다.

어쨌든, 장옥정은 숙종과 동이와 서종사관 등이 폐비 민씨를 복권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오히려 폐비 민씨에게 사약을 내리도록 하려는 계략을 꾸민다. 그래서 동이 등 서종사관이 대비의 시해사건을 파헤쳐 증험을 찾더라도  배떠난 후가 될것이니 아무 탈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심운택은 동이의 오라버니 동주의 정인인 기생 설희(김혜진)을 만나 장희재가 조선에 해가 되는 일을 할지 모르니 그를 감시하고 희재가 청나라 사신과 무슨 대화를 하는지 알려 달라고 한다. 하지만 설희(김혜진)은 선비에게는 선비의 도리가 있듯이 기생에게는 기생의 도가 있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한마디로 대쪽같은 평양기생과 조선 최고 기생인 개성기생 황진희의 환생을 보는 듯하다. 임팩트 있게 동이에 복귀신고를 하였다. 

한편 심운택은 역관으로 변장을 하고 장희재가 의주에 온 이유를 알기위해서 기방을 잠입한다. 장희재가 온 이유가 세자 균을 청나라로 부터 인정받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엉터리 통역에 화가난 장희재는 심운택을 내친다. 장희재의 집안은 대대로 상인의 집안으로 중국의 물정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고, 청나라를 여행하다 온 사실을 모르고 있다.

동이는 자신의 죽은 오라버니 동주의 연인이였던 설희를 만난다. 설희에게 동이는 심운택이 통역을 한후 비밀을 감추기 위해서 죽이려한다고 말한다. 장희재는 등록유초인 국경수비에 관한 서류를 달라는 청나라 사신의 요구를 받아 의주 부윤에게 압력을 행사해서 넘겨주려 한다. 의주부윤이면 국경수비를 담당하는 직책일 수 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대통령 선거전에 국정원(당시:귀찮다) 흑금성을 통해서 북풍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훗날 한나라당의 북풍공작과 흑금성의 정체는 들키고 만다. 흑금성은 북경으로 도망가 기존에 관리하던 북한과 접촉을 하여 육군 모소장(왜 비실명인지 모르겠다)으로 받은 작계2020 정보를 북한에 넘겨주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사극은 현실을 비판하는 코드를 집어 넣는다. 한마디로 흑금성이나 육군 모소장을 장희재와 등록유초는 넘기려는 부윤과 같이 나라를 팔아넘기려는 못된놈이라고 말하고 하는 것이다.


한편 서종사관과 차천수는 의주 인근 역참에 도착한다. 하지만 역참에는 말이 없다. 역참관리에게 역참에 말이 없다는것이 말이되느냐 송구합게도 말이 없다는 것이 사실이오니 할말이 없다는 말. 말. 말의 할말도 없고, 해줄말도 없다는 쌍팔년도 개그를 보여주고 있다.

동이와 심운택간에 주고받는 개그가 만담의 수준에 도달하였다. 심운택과 장희재의 또한 덤엔더머처럼 개그로 마무리를 한다. 웃음뒤에 칼을 숨기고 있다는 말은 심운택과 장희재의 기방대화신에서 보여주었다고 말할수는 있을 것이다. 개그적인 요소는 극을 맛갈스러게 해주는 소금과도 같다. 하지만, 점점 개그사극으로 변하고 있는것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장희재와 심운택 그리고 어릴적 게둬라와 게둬라의부(정은표), 오태풍(이계인), 태풍처 박씨(이숙), 장옥정의 생모(최란) 장학원의 오태풍의 아들 오호양, 황주식(이희도), 영달(이광식), 감찰부 상궁인 봉상궁, 유상궁(임성민), 애종(강유미) 등은 개그코드를 당담했었다. 주인공 동이도 개그코드에 참여하고 숙종은 처음부터 개그의달인으로 나오고 있다.

사극이라고 심각할 이유는 하등에 없다. 하지만, 가벼운 사극을 지향하다고 해도, 사극에서 과도한 개그는 극의 몰임을 방해하고, 집중도를 떨어트린다. 몸에 해롭다. 목마른 사람에게 한방울의 물이라도 시원한 갈증을 풀어주는 심로수 같지만, 과도하게 물을 마시면 몸에 해로울뿐만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 될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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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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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15 0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BlogIcon 빛무리  2010.06.15 0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도한 코믹요소는 제가 동이를 외면한 일차적 이유가 되었습니다.
    어제는 월드컵 독점중계로 인하여 자이언트가 결방되는 바람에 오랜만에 봤는데
    솔직히 재미없고 몰입 안되더군요.
    등장인물들은 나름대로 절실한데, 제 마음은 그 감정에 따라가지 못하고 멀뚱멀뚱했어요 ㅎㅎ
    개인적으로는 이런 사극, 비추입니다...ㅎㅎㅎ

  3. ㅇㅇㅇㅇㅇ 2010.06.15 0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요.. 심운택과 동이와는 웃음이 나오지만 장희재와 심운택은 살짝 긴장감이 돌던데요..
    그리고 동이는 처음부터 봐야지 감정몰입이 되는 드라마라서요 이정도 시기에 보면 재미없을 거라 느껴집니다. 동이2기가 시작되는 부분이라서요. 그리고 사극에 코믹요소라는건 새로운 시도라고 봅니다. 시청자의 입장에선 그게 어색해 보일 수 도 있겠지만 저는 괜찮다고 봐요. 무조건 무게만 잡는다는건 솔직히 그거야 말로 어색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옛날에 돌아갔던 나라가 지금 똑같이 반복하는거 보면 옛이나 지금이나 사람생각머리는 똑같이 돌아가고 있구나 하고 종종 깨달을 때도 있고요. 현실과 비교되는 정치상황을 반영하는 이 사극, 저는 추천합니다.^^

  4. BlogIcon 카타리나^^ 2010.06.15 0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극과는 이미 안드로메다만큼 떨어져버렸다고 생각해요
    그냥 가상사극일뿐이죠 ㅜㅜ

  5. BlogIcon Tvian 2010.06.15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iMBC <동이>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에 해당 포스트가 소개되었습니다.^^
    http://www.imbc.com/broad/tv/drama/dongyi/tvfun/

  6.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7.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 2012.07.21 2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직무실에서 나오면서 상선에게는 자신이 별일 없이 왔다 갔으니 왕에게 아뢰지 말라고 전언한

  8. BlogIcon Hugh 2012.08.25 1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 될때까지 말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순시를 하면서 백성들에게 농기

  9. BlogIcon Complete Residential Pest Control Solutions 2012.09.05 0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게 됩니다. 이에 유신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와는 다르게 영특한 잔꾀를 내 세웁니다.

  10. BlogIcon jetboil flash cooking system 2012.11.26 2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문수 지사의 도정을 트리플 악셀식으로 한다면 속임수 정치를 하겠다는 선언과 같은 것이다. 피겨와 정치가 같은 점은 피겨도 권력이 지배하고 정치도 권력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피겨를 정치스포츠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11. BlogIcon meal ready to eat menunutrition 2012.12.03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이에서 역사와 부합하는 사극이 되려는 틈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장옥정이 숙종이 읽었는지 알지 못하고 궁중에서 사라진 사씨남정기를 동이와 심운택이 만들어 전달했다는 설정으로 바뀌길 바라는 희망은 무너져버렸다.

  12.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게 됩니다. 이에 유신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와는 다르게 영특한 잔꾀를 내 세웁니다.

숙종의 죽은 첫번째 정비였지만 일찍 죽은 인경왕후의 작은 아버지인 김만중의 사씨남정기를 읽고 폐비 민씨인 인현왕후의 일을 후회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장옥정은 만약, 숙종이 그랬다면 먼저 자신에 일을 말하고 의논했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스스로 확신을 주는 주문과도 같다.

그런데 장옥정은 서종사관을 통해서 동이를 찾는다는 말을 전해듣고는 직무실로 찾아간다.

직무실에 들어간 장희빈은 숙종이 사냥을 떠나서 잡은 사슴가죽으로 만든 꽃신을 보면서. 동이에 애뜻한 마음을 품고 자신에 거짓미소를 지은것에 분노를 한다. 그리고 직무실에서 나오면서 상선에게는 자신이 별일 없이 왔다 갔으니 왕에게 아뢰지 말라고 전언한다. 하지만, 숙종에게 자신을 찾지말라고 했다고 전하는 우리의 상선은 고자질 대마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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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9 - [역사이야기] - 장희빈 재발저리게 한 사씨남정기 하지만 2% 부족?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역사에서 숙종에게 사씨남정기를 알려준 사람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는 <궁녀>이다. 드라마 동이에서 <궁녀>와 동이를 일체화 시켜서 사씨남정기를 알려준 이는 동이였다는 설정이 될 줄 알았지만, 동이가 의주에 있는 동안 이미 숙종도 사씨남정기를 읽었다는 말을 장옥정의 입을 통해서 시청자들에게 알려버린다. 물론, 장옥정의 말은 정말 숙종이 사씨남정기를 읽었다는 뜻은 아니다. 없어진 사씨남정기를 다시 동이가 숙종에 전달해서 알려지게 되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의주에서 만난 심운택은 한글 사씨남정기를 한문소설로 번역하여 궁중에 유포시켰다는 김춘택의 가상 인물처럼 보인다. 김춘택은 김만중의 형인 김만기의 손자다. 숙종이 사씨남정기를 읽는 과정이 심운택(김춘택)으로 부터 사씨남정기를 전해받은 <동이>가 숙종에게 알려주었다는 설정이 더 극적이지 않았을까?


동이에서 역사와 부합하는 사극이 되려는 틈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장옥정이 숙종이 읽었는지 알지 못하고 궁중에서 사라진 사씨남정기를 동이와 심운택이 만들어 전달했다는 설정으로 바뀌길 바라는 희망은 무너져버렸다.

어쨌든, 장옥정은 숙종과 동이와 서종사관 등이 폐비 민씨를 복권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오히려 폐비 민씨에게 사약을 내리도록 하려는 계략을 꾸민다. 그래서 동이 등 서종사관이 대비의 시해사건을 파헤쳐 증험을 찾더라도  배떠난 후가 될것이니 아무 탈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심운택은 동이의 오라버니 동주의 정인인 기생 설희(김혜진)을 만나 장희재가 조선에 해가 되는 일을 할지 모르니 그를 감시하고 희재가 청나라 사신과 무슨 대화를 하는지 알려 달라고 한다. 하지만 설희(김혜진)은 선비에게는 선비의 도리가 있듯이 기생에게는 기생의 도가 있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한마디로 대쪽같은 평양기생과 조선 최고 기생인 개성기생 황진희의 환생을 보는 듯하다. 임팩트 있게 동이에 복귀신고를 하였다. 

한편 심운택은 역관으로 변장을 하고 장희재가 의주에 온 이유를 알기위해서 기방을 잠입한다. 장희재가 온 이유가 세자 균을 청나라로 부터 인정받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엉터리 통역에 화가난 장희재는 심운택을 내친다. 장희재의 집안은 대대로 상인의 집안으로 중국의 물정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고, 청나라를 여행하다 온 사실을 모르고 있다.

동이는 자신의 죽은 오라버니 동주의 연인이였던 설희를 만난다. 설희에게 동이는 심운택이 통역을 한후 비밀을 감추기 위해서 죽이려한다고 말한다. 장희재는 등록유초인 국경수비에 관한 서류를 달라는 청나라 사신의 요구를 받아 의주 부윤에게 압력을 행사해서 넘겨주려 한다. 의주부윤이면 국경수비를 담당하는 직책일 수 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대통령 선거전에 국정원(당시:귀찮다) 흑금성을 통해서 북풍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훗날 한나라당의 북풍공작과 흑금성의 정체는 들키고 만다. 흑금성은 북경으로 도망가 기존에 관리하던 북한과 접촉을 하여 육군 모소장(왜 비실명인지 모르겠다)으로 받은 작계2020 정보를 북한에 넘겨주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사극은 현실을 비판하는 코드를 집어 넣는다. 한마디로 흑금성이나 육군 모소장을 장희재와 등록유초는 넘기려는 부윤과 같이 나라를 팔아넘기려는 못된놈이라고 말하고 하는 것이다.


한편 서종사관과 차천수는 의주 인근 역참에 도착한다. 하지만 역참에는 말이 없다. 역참관리에게 역참에 말이 없다는것이 말이되느냐 송구합게도 말이 없다는 것이 사실이오니 할말이 없다는 말. 말. 말의 할말도 없고, 해줄말도 없다는 쌍팔년도 개그를 보여주고 있다.

동이와 심운택간에 주고받는 개그가 만담의 수준에 도달하였다. 심운택과 장희재의 또한 덤엔더머처럼 개그로 마무리를 한다. 웃음뒤에 칼을 숨기고 있다는 말은 심운택과 장희재의 기방대화신에서 보여주었다고 말할수는 있을 것이다. 개그적인 요소는 극을 맛갈스러게 해주는 소금과도 같다. 하지만, 점점 개그사극으로 변하고 있는것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장희재와 심운택 그리고 어릴적 게둬라와 게둬라의부(정은표), 오태풍(이계인), 태풍처 박씨(이숙), 장옥정의 생모(최란) 장학원의 오태풍의 아들 오호양, 황주식(이희도), 영달(이광식), 감찰부 상궁인 봉상궁, 유상궁(임성민), 애종(강유미) 등은 개그코드를 당담했었다. 주인공 동이도 개그코드에 참여하고 숙종은 처음부터 개그의달인으로 나오고 있다.

사극이라고 심각할 이유는 하등에 없다. 하지만, 가벼운 사극을 지향하다고 해도, 사극에서 과도한 개그는 극의 몰임을 방해하고, 집중도를 떨어트린다. 몸에 해롭다. 목마른 사람에게 한방울의 물이라도 시원한 갈증을 풀어주는 심로수 같지만, 과도하게 물을 마시면 몸에 해로울뿐만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 될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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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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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15 0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BlogIcon 빛무리  2010.06.15 0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도한 코믹요소는 제가 동이를 외면한 일차적 이유가 되었습니다.
    어제는 월드컵 독점중계로 인하여 자이언트가 결방되는 바람에 오랜만에 봤는데
    솔직히 재미없고 몰입 안되더군요.
    등장인물들은 나름대로 절실한데, 제 마음은 그 감정에 따라가지 못하고 멀뚱멀뚱했어요 ㅎㅎ
    개인적으로는 이런 사극, 비추입니다...ㅎㅎㅎ

  3. ㅇㅇㅇㅇㅇ 2010.06.15 0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요.. 심운택과 동이와는 웃음이 나오지만 장희재와 심운택은 살짝 긴장감이 돌던데요..
    그리고 동이는 처음부터 봐야지 감정몰입이 되는 드라마라서요 이정도 시기에 보면 재미없을 거라 느껴집니다. 동이2기가 시작되는 부분이라서요. 그리고 사극에 코믹요소라는건 새로운 시도라고 봅니다. 시청자의 입장에선 그게 어색해 보일 수 도 있겠지만 저는 괜찮다고 봐요. 무조건 무게만 잡는다는건 솔직히 그거야 말로 어색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옛날에 돌아갔던 나라가 지금 똑같이 반복하는거 보면 옛이나 지금이나 사람생각머리는 똑같이 돌아가고 있구나 하고 종종 깨달을 때도 있고요. 현실과 비교되는 정치상황을 반영하는 이 사극, 저는 추천합니다.^^

  4. BlogIcon 카타리나^^ 2010.06.15 0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극과는 이미 안드로메다만큼 떨어져버렸다고 생각해요
    그냥 가상사극일뿐이죠 ㅜㅜ

  5. BlogIcon Tvian 2010.06.15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iMBC <동이>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에 해당 포스트가 소개되었습니다.^^
    http://www.imbc.com/broad/tv/drama/dongyi/tvfun/

  6.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7.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 2012.07.21 2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직무실에서 나오면서 상선에게는 자신이 별일 없이 왔다 갔으니 왕에게 아뢰지 말라고 전언한

  8. BlogIcon Hugh 2012.08.25 1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 될때까지 말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순시를 하면서 백성들에게 농기

  9. BlogIcon Complete Residential Pest Control Solutions 2012.09.05 0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게 됩니다. 이에 유신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와는 다르게 영특한 잔꾀를 내 세웁니다.

  10. BlogIcon jetboil flash cooking system 2012.11.26 2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문수 지사의 도정을 트리플 악셀식으로 한다면 속임수 정치를 하겠다는 선언과 같은 것이다. 피겨와 정치가 같은 점은 피겨도 권력이 지배하고 정치도 권력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피겨를 정치스포츠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11. BlogIcon meal ready to eat menunutrition 2012.12.03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이에서 역사와 부합하는 사극이 되려는 틈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장옥정이 숙종이 읽었는지 알지 못하고 궁중에서 사라진 사씨남정기를 동이와 심운택이 만들어 전달했다는 설정으로 바뀌길 바라는 희망은 무너져버렸다.

  12.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게 됩니다. 이에 유신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와는 다르게 영특한 잔꾀를 내 세웁니다.

숙종은 능행을 떠나고 동이는 내수사에서 증험을 찾으러 잠입한다.

하지만, 장옥정에 의해서 암살 위기에 빠진다.

동이는 장희재가 보낸 자객에게 왼쪽 가슴에 표창을 맞고 피를 흘리며 순행을 떠난 숙종을 찾아 증거를 넘기려 능행한 곳으로 찾아가지만 힘이 다하고 절벽아래로 떨어진다.

숙종은 돌아오는 길에 동이의 외마디 외침을 듣고 연을 멈추게 하지만 이내 자신이 잘못 들었다며 궁으로 돌아온다.

궁에 돌아온 숙종은 동이가 장희빈을 음해하려고 내수사에서 증거를 조작하려 내수사에 잠입하다 당직에 들키자 내수사를 불태우고 도망쳤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리고 동이의 배후에는 서인과 포청 서종사관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서포청의 서종사관을 체포구금한다.

숙종은 서종사관을 불러 동이와 서종사관이 장희빈을 음해해서 뒷조사를 하려는 것인가를 물어본다. 서종사관은 조사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왕대비의 시해 탕약사건에 장희빈이 연루되어 뒤를 조사중에 있고, 동이가 내수사에서 그 증거를 찾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알린다.


숙종은 서종사관에 왜 미리 알리지 않았는가 질책 하지만, 서종사관은 숙종이 희빈 장씨를 너무나 사랑하여 헛부른 증험으로 아뢸수 없었고 동이 또한 숙종에게 말을 할 수 없다고 보고를 한다.


숙종은 동이가 명성대비 탕약 시해 사건에 대해서 하려다만 말이 있다는 것을 회상한다.  그리고 숙종은 희빈장씨가 배후세력임을 알고도 희빈장씨에 대한 일말의 연민을 가지고 찾아간다. 하지만, 장희빈은 숙종에게 자신은 전혀 대비 시해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눈물로 말한다.  그래서 숙종은 대비 시해사건의 배후에 희빈장씨가 있음을 확증한다.

숙종은 내외적으로는 서종사관을 파직시켜 남인과 장희빈의 이목을 돌리고 서종사관으로 하여금 동이를 찾고, 대비 독살 사건을 추적하도록 한다. 서종사관은 남아 있는 부하들에게 포청에서 할일이 있으니 현직을 유지하도록 한다.

차천수는 장희재에 찾아가 동이는 죽지 않았으니 누이인 동이를 찾아 장희재 당신 앞에 돌아오겠다고 협박을 한다.


동이와 숙종의 사랑의 메신저 상선은 숙종이 잡은 사슴으로 만든 당혜(꽃신)을 가지고 직무실로 찾아온다. 숙종은 당혜를 보면서 동이에 대한 자신의 그동안의 생각이 친구가 아닌 한 여인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선덕여왕의 데자뷰 :  소화와 덕만의 안타까운 외침과 환청 


그런데, 동이가 자객의 표창에 맞고 숙종을 찾아가는 장면은 어디서 많이 본 듯 하지 않는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은 민정시찰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을 살리려다 사막에서 죽은 소화의 환청을 듣는다.

그래서 이동을 잠시 멈추고 주춤한다.

이내 죽은 소화의 환청으로만 생각한다. 너무나 소화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마찬가지로 숙종은 당연히 궁에 있어야할 동이의 음성을 듣고 자신이 너무 동이 빠진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절실하게 외치는 소화와 동이가 있는 반면에 무심하게 환청으로 듣는 덕만과 숙종이 있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청자는 안타깝기만 하다.

당혜와 환청은 동이가 친구가 아닌 연인으로 발전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장치가 아닐까 한다.


문제는 동이는 피를 흘리며 널부러져 있고, 숙종은 궁에 돌아가 장희빈의 왕비책봉에 참여 하면서 몇일 보냈는데 동이가 몇일만에 깨어 났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또한, 숙종이 잡은 사슴가죽으로 갓바치가 만든 당혜(꽃가죽신)는 하루만에 만들어 질 수가 없다. 드라마 동이에서 처럼 말리지 않는 생가죽을 신발로 만들면 가죽의 물기가 마를때 발을 옥죄게 되어 중국의 전족처럼 발이 오글어 든다. 사랑의 선물이 아닌 고문의 선물인 것이다. 그래서 옛날 고문의 방법중에 물에 적신 가죽으로 묶어놓은 형벌도 있다.

역사에서는 1688년 장희빈은 아들 균을 낳고 원자 책봉에 나서지만 서인의 반대로 이룰수가 없었다. 서인의 반발이 심해지자 남인은 인현왕후를 원자책봉의 반대세력의 우두머리로 몰아세워 폐서인하도록 숙종을 종용한다. 1689년 숙빈최씨(동이)는 인현왕후의 종복으로 인현왕후가 폐서인 되어 궁을 나서 안국동 사가로 떠나자 숙빈최씨는 인현왕후를 위해 기도를 드린다. 이를 본 숙종은 동이의 마음씨에 반해 성은을 내린다.

숙종이 어머니 명성왕후는 현종의 아내로 1683년 12월 5일 창경궁 저승전에서 와병으로 죽는다.

그러니 드라마 동이의 시제는 균이 1살이 넘고 장희빈이 왕비에 책봉되는 시점이니 1689년이후가 된다. 1689년 이때 동이(1670년생)의 나이는 20살이 된다.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가 죽은 1683년에 동이의 나이는 13살에 불과했다.

또한 인현왕후는 1667년생으로 동이보다 3살이 많았다. 장희빈은 1659년생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때 나이는 31살이 된다. 숙종은 장희빈보다 3살이 어린 1661년 생이다. 이 당시에도 요즘처럼 연하가 대세였던 모양이다.

장희빈은 인현왕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동이가 숙종의 총애를 받자 시기와 질투를 하며 동이를 픽박한다.

요즘 사극의 대세는 역사와 무관한 여성주의 사극이다. 이를 가장 잘 이끌어 내는 PD가 이병훈이 아닐까 한다. 이병훈 PD를 비롯한 이병훈 사단의 특징은 역사와는 무관한 사극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병훈은 "역사를 알면 드라마를 만들기 힘들다"는 생각을 뿌리 깊이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삿갓쓰고 도포자락 휘날리고 예쁜 궁인들의 화려한 한복이 난무하고 왕궁이 등장하지만 이름만 빌려쓴 현대인의 사랑놀음과 질투와 시기와 복수를 담고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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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labyrint 2010.06.08 0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 봤어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2. BlogIcon 5342 2010.06.08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타일와우 솔직히 남자옷은 여기만한곳 드문것같더라구여 ^^강추하고싶네여041u

  3. BlogIcon 배리본즈 2010.06.08 1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4. BlogIcon 너돌양 2010.06.08 1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긴 역사 그대로 드라마를 만들면 재미는 좀 떨어지겠다만, 역사왜곡은 항상 꼬리표로

    • BlogIcon 갓쉰동 2010.06.08 1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대 일수도 있지요.. 역사를 기반으로 재미를 만들면 더 많은 사람이 보지 않을까함.. ㅋㅋ 왜곡 문제도 없공..

  5. BlogIcon tvian 2010.06.08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iMBC <동이>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에 해당 포스트가 소개되었습니다.^^
    http://www.imbc.com/broad/tv/drama/dongyi/tvfun/

  6. 2010.06.08 1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8. BlogIcon didos 2012.10.20 2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봐, 거기에 이것은 drupal이 사이트 조깅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블로그 사이트도에도 불구하고 나의 배우자를 drupal 방법을 고용하고 내가 디자인을 찾는 수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특정 디자인을 인수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 기억하세요? 그것은 사랑 수 있습니다.

숙종은 능행을 떠나고 동이는 내수사에서 증험을 찾으러 잠입한다.

하지만, 장옥정에 의해서 암살 위기에 빠진다.

동이는 장희재가 보낸 자객에게 왼쪽 가슴에 표창을 맞고 피를 흘리며 순행을 떠난 숙종을 찾아 증거를 넘기려 능행한 곳으로 찾아가지만 힘이 다하고 절벽아래로 떨어진다.

숙종은 돌아오는 길에 동이의 외마디 외침을 듣고 연을 멈추게 하지만 이내 자신이 잘못 들었다며 궁으로 돌아온다.

궁에 돌아온 숙종은 동이가 장희빈을 음해하려고 내수사에서 증거를 조작하려 내수사에 잠입하다 당직에 들키자 내수사를 불태우고 도망쳤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리고 동이의 배후에는 서인과 포청 서종사관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서포청의 서종사관을 체포구금한다.

숙종은 서종사관을 불러 동이와 서종사관이 장희빈을 음해해서 뒷조사를 하려는 것인가를 물어본다. 서종사관은 조사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왕대비의 시해 탕약사건에 장희빈이 연루되어 뒤를 조사중에 있고, 동이가 내수사에서 그 증거를 찾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알린다.


숙종은 서종사관에 왜 미리 알리지 않았는가 질책 하지만, 서종사관은 숙종이 희빈 장씨를 너무나 사랑하여 헛부른 증험으로 아뢸수 없었고 동이 또한 숙종에게 말을 할 수 없다고 보고를 한다.


숙종은 동이가 명성대비 탕약 시해 사건에 대해서 하려다만 말이 있다는 것을 회상한다.  그리고 숙종은 희빈장씨가 배후세력임을 알고도 희빈장씨에 대한 일말의 연민을 가지고 찾아간다. 하지만, 장희빈은 숙종에게 자신은 전혀 대비 시해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눈물로 말한다.  그래서 숙종은 대비 시해사건의 배후에 희빈장씨가 있음을 확증한다.

숙종은 내외적으로는 서종사관을 파직시켜 남인과 장희빈의 이목을 돌리고 서종사관으로 하여금 동이를 찾고, 대비 독살 사건을 추적하도록 한다. 서종사관은 남아 있는 부하들에게 포청에서 할일이 있으니 현직을 유지하도록 한다.

차천수는 장희재에 찾아가 동이는 죽지 않았으니 누이인 동이를 찾아 장희재 당신 앞에 돌아오겠다고 협박을 한다.


동이와 숙종의 사랑의 메신저 상선은 숙종이 잡은 사슴으로 만든 당혜(꽃신)을 가지고 직무실로 찾아온다. 숙종은 당혜를 보면서 동이에 대한 자신의 그동안의 생각이 친구가 아닌 한 여인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선덕여왕의 데자뷰 :  소화와 덕만의 안타까운 외침과 환청 


그런데, 동이가 자객의 표창에 맞고 숙종을 찾아가는 장면은 어디서 많이 본 듯 하지 않는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은 민정시찰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을 살리려다 사막에서 죽은 소화의 환청을 듣는다.

그래서 이동을 잠시 멈추고 주춤한다.

이내 죽은 소화의 환청으로만 생각한다. 너무나 소화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마찬가지로 숙종은 당연히 궁에 있어야할 동이의 음성을 듣고 자신이 너무 동이 빠진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절실하게 외치는 소화와 동이가 있는 반면에 무심하게 환청으로 듣는 덕만과 숙종이 있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청자는 안타깝기만 하다.

당혜와 환청은 동이가 친구가 아닌 연인으로 발전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장치가 아닐까 한다.


문제는 동이는 피를 흘리며 널부러져 있고, 숙종은 궁에 돌아가 장희빈의 왕비책봉에 참여 하면서 몇일 보냈는데 동이가 몇일만에 깨어 났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또한, 숙종이 잡은 사슴가죽으로 갓바치가 만든 당혜(꽃가죽신)는 하루만에 만들어 질 수가 없다. 드라마 동이에서 처럼 말리지 않는 생가죽을 신발로 만들면 가죽의 물기가 마를때 발을 옥죄게 되어 중국의 전족처럼 발이 오글어 든다. 사랑의 선물이 아닌 고문의 선물인 것이다. 그래서 옛날 고문의 방법중에 물에 적신 가죽으로 묶어놓은 형벌도 있다.

역사에서는 1688년 장희빈은 아들 균을 낳고 원자 책봉에 나서지만 서인의 반대로 이룰수가 없었다. 서인의 반발이 심해지자 남인은 인현왕후를 원자책봉의 반대세력의 우두머리로 몰아세워 폐서인하도록 숙종을 종용한다. 1689년 숙빈최씨(동이)는 인현왕후의 종복으로 인현왕후가 폐서인 되어 궁을 나서 안국동 사가로 떠나자 숙빈최씨는 인현왕후를 위해 기도를 드린다. 이를 본 숙종은 동이의 마음씨에 반해 성은을 내린다.

숙종이 어머니 명성왕후는 현종의 아내로 1683년 12월 5일 창경궁 저승전에서 와병으로 죽는다.

그러니 드라마 동이의 시제는 균이 1살이 넘고 장희빈이 왕비에 책봉되는 시점이니 1689년이후가 된다. 1689년 이때 동이(1670년생)의 나이는 20살이 된다.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가 죽은 1683년에 동이의 나이는 13살에 불과했다.

또한 인현왕후는 1667년생으로 동이보다 3살이 많았다. 장희빈은 1659년생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때 나이는 31살이 된다. 숙종은 장희빈보다 3살이 어린 1661년 생이다. 이 당시에도 요즘처럼 연하가 대세였던 모양이다.

장희빈은 인현왕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동이가 숙종의 총애를 받자 시기와 질투를 하며 동이를 픽박한다.

요즘 사극의 대세는 역사와 무관한 여성주의 사극이다. 이를 가장 잘 이끌어 내는 PD가 이병훈이 아닐까 한다. 이병훈 PD를 비롯한 이병훈 사단의 특징은 역사와는 무관한 사극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병훈은 "역사를 알면 드라마를 만들기 힘들다"는 생각을 뿌리 깊이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삿갓쓰고 도포자락 휘날리고 예쁜 궁인들의 화려한 한복이 난무하고 왕궁이 등장하지만 이름만 빌려쓴 현대인의 사랑놀음과 질투와 시기와 복수를 담고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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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labyrint 2010.06.08 0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 봤어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2. BlogIcon 5342 2010.06.08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타일와우 솔직히 남자옷은 여기만한곳 드문것같더라구여 ^^강추하고싶네여041u

  3. BlogIcon 배리본즈 2010.06.08 1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4. BlogIcon 너돌양 2010.06.08 1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긴 역사 그대로 드라마를 만들면 재미는 좀 떨어지겠다만, 역사왜곡은 항상 꼬리표로

    • BlogIcon 갓쉰동 2010.06.08 1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대 일수도 있지요.. 역사를 기반으로 재미를 만들면 더 많은 사람이 보지 않을까함.. ㅋㅋ 왜곡 문제도 없공..

  5. BlogIcon tvian 2010.06.08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iMBC <동이>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에 해당 포스트가 소개되었습니다.^^
    http://www.imbc.com/broad/tv/drama/dongyi/tvfun/

  6. 2010.06.08 1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8. BlogIcon didos 2012.10.20 2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봐, 거기에 이것은 drupal이 사이트 조깅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블로그 사이트도에도 불구하고 나의 배우자를 drupal 방법을 고용하고 내가 디자인을 찾는 수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특정 디자인을 인수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 기억하세요? 그것은 사랑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극을 보면, 칼을 차고 있는 무인을 본적이 없다.

모두다 손에 칼을 들고 있다. 이동을 하던 서 있던 상관없이 말이다.

손에 칼을 들고 있는것은 등장하는 궁중여인이나 귀부인들의 가채만큼이나 일관되어 있다.

이전의 사극모두 마찬가지 이지만, 얼마전 끝났던 SBS 사극 추노를 비롯해서 2010년 현재 방영되고 있는 MBC 토일 주말 드라마 김수로나 MBC 월화드라마 동이나 KBS 김만덕에서도 똑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정말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나 삼국시대에도 무인들은 손에 칼을 들고 다녔을까? 장군이나 병사들이나 오른손에 왼손에 각자 칼을 들고 있다.

칼을 들고 있었다면 대부분 어느 손에 칼을 들고 있어야 할까? 정답은 없다. 단지 오른손 잡이는 왼손에 칼을 들고 있어야 하고, 왼손잡이는 오른쪽에 들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외부의 급박한 상황에서 대처를 하였을 것이다.

사실 칼의 용도는 근거리 백병전에서 사용하는 무기 이니 오른손에 들던 왼손에 들던 사용하기 편한 손에 들었다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그래야 발검(칼빼기)발검하기 좋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김유신이 칼을 왼손에 들고 있는 모습


드라마 동이에서 서종사관과 그의 수하들 모두 손에 칼을 들고 있다. 장희재의 모습을 보고 위의 조선의 그림을 연상하면 안된다. 동영상을 보면 장희재는 단지 손을 뒤짐을 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한때 이순신 장군은 왼손잡이 일까? 아니면 오른손 잡이 일까하는 논쟁이 벌어지고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잘못되었네 그렇지 않네 하는 재미난 논쟁이 있었다.
재미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실은 전혀 쓰잘떼기 없는 논쟁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왼손잡이를 극도로 싫어하는 밥상머리 교육에 의해서 왼손잡이들의 싹이 없어지고 오른손 잡이로 다들 전향아닌 전향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순신 장군이라고 해서 용가리 통뼈가 아니였을 것이니, 출생시 왼손잡이 였더라도 오른손 잡이가 되었을 것이다.


다시 본론에 돌아가서 사극에서 칼을 손에 들고 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된다. 단지 화면빨을 위해서 라는 것 말고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손에 칼을 쥔다는 뜻은 발검할 의지의 표현이고, 상대에 적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극을 보고 있노라면 적이던 같은 편이던 손에 칼을 들고 걸어다니고 있다. 이들이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던 것인가? 만약, 이순신 장군이 적을 향해 적의를 가지고 언제라도 발검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을 형상화 했다면 일반적으로 왼쪽에 들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발검을 할 수 있을 테닌까말이다. 

문제는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동상에서 왜 이순신 장군은 큰칼을 들고 있었는가 하는것이다. 저리 큰칼은 지휘용으로도 적당하지 않는데 말이다. 또한 칼을 땅에 대고 있다는 것은 발검할 의지가 없다는 의사표시와도 같다. 그러니 논쟁은 무의미 해진다. 무거운 칼을 들고 있을려면 자주 사용하던 손에 쥐고 있는게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긴)칼 옆에 차고(두고) 시름에 " 나오는 시구에서 비롯된 허상일 뿐이다. 앉아서 긴칼을 찰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칼을 뺄 수 있는 길이가 되어야 한다. 있다면 다른 방법으로 칼을 차고 있어야 한다.

사실 조선이나 일본은 칼을 들고 다니는 방법이 달랐다. 손에 들고 다닌것은 아니고, 차고 다녔지만 말이다.  패검이라고 허리 춤에 달고(차고) 끼고 다녔을 뿐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무인들은 칼을 손에 들고 다니지 않았다면 어떻게 칼을 가지고 다녔을까? 다음의 자료를 보면 명확하게 시대별 나라별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승마시 칼


동래에서 왜인들과 회합시


위의 두그림에서 보듯이 일상에서 조선 무인들은 칼을 두개의 끈을 이용해서 왼쪽 허리 뒤쪽에 차고 있고, 손잡이가 오른쪽 등뒤 쪽에 위치하고 있다.

반면에 일본은 칼이 왼쪽 허리춤에 허리띠에 끼어 넣고 있으며 칼의 손잡이는 왼쪽 위쪽을 향하고 있어 발검이 보다 빠르게 되어 있다.

아래 그림은 아프라시압 벽화 고구려사신이 있는 사신도의 벽화이다.

오른쪽 고구려 사신은 허리띠와 연결된 두개의 길이가 다른 고리를 이용해서 칼을 허리에 차고 있고, 조선시대와는 다르게 손잡이가 앞쪽을 향하도록 하고 있다.

신라 기마인물상


신라시대 토우 기마인물상을 보더라도 조선시대 기마 인물 그림과 같이 칼을 차고 있지만, 아프라 시압 벽화처럼 왼쪽에 차고 칼 손잡이가 앞쪽을 향해 있다.

그러니 모든 대한민국 사극에서 무인들이 말을 타던 걸어가던 뛰어가던 손에 칼을 들고 있는 것은 단지 화면빨 때문이 아니라면 역사와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구 벨놈이 없나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동네 양아치들이거나 말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조선시대에 칼은 예를 표하는 방법으로 칼을 뒤로 차고 다녔다. 또한, 조선시대 칼은 일반적으로 주병기가 아니라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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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1 - [역사이야기] - 동이 장희빈에 반기를 들다. 그리고 이병훈 PD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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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1 - [역사이야기] - 김수로 순장 방해했을까? 사실은

오늘은 6.2 지방선거일 투표에 적극 참여하여 권리와 의무를 다합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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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감자꿈 2010.06.02 0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극과 함께 돌아온 갓쉰동님의 글이 무척 반갑습니다.
    오늘도 공부 잘 하고 갑니다. ^^

  3. BlogIcon 배리본즈 2010.06.02 0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ㅏ.^^ 즐거운 하루 되세욤.

  4. Aakom 2010.06.02 1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순신 동상의 경우, 임금님 앞에 나설 때엔 칼을 오른손으로 들어야했다고 합니다.

  5. BlogIcon 머 걍 2010.06.02 1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씀을 듣고보니
    평상시에도 칼을 들고 다니는 건 좀 이상하긴 하네요.

  6. 메야 2010.06.02 2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순신 장군의 칼은 어장검 아닌가여..거의 뺄일이 없을걸요...장군의 권위를 상징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7. 보사리 2010.06.03 0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네요^^
    왠지 납득도 가고요. 제 생각에도 조선시대에는 검을 그렇게 많이 이용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무술이라면 모를까,ㅎㅎ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상 검술이 더 화려해보이니, 자꾸 이용하는 게 아닐까요?

  8. 김밥 2010.06.06 0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bs의 추노가 아니고 kbs의 추노에요. 또한 kbs 추노에서는 패검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방송사가 어딘지도 모르고 패검의 유무도 모르시니 추노를 다시 보셔야겠네요.

  9. BlogIcon winter jackets coats 2011.11.16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 kbs의 추노에요. 또한 kbs 추노에서는 패검한 모

  10. 손님000 2011.12.10 0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시대 무장들이 칼 손잡이를 등 뒤로 돌렸던건 예나 장식의 의미는 아닙니다.
    활을 쓰기 불편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위로 올라오는 손잡이를 뒤로 돌린거지요.
    하지만 이런 패용방식은 칼을 뽑기 힘들죠. 그래서 나오는게 띠돈 이라는 겁니다. 띠돈은 칼집과 허리띠(? 혹은 몸에 달리는 부분?)를 연결하는 도구로써 회전이 용이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엔 활 쏘기를 위해 칼 손잡이가 뒤로 가는 방식을 사용하다가 칼을 써야 할 경우가 생기면 쉽게 손잡이를 앞으로 돌릴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장식이란 말도 당시의 현실로 봤을 때 그닦 틀린 말은 아닙니다. 조선조때는 활이 최강의 무기였고 동북아시아에서 상대를 찾을수 없을 정도의 우수성을 보였으니 모든 무관들이 당연히 활을 우선시 했고 그래서 평소엔 활 쏘기에 방해되지 않도록 칼을 패용했으니까요.

  11.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granny.php 2012.07.21 2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도는 근거리 백병전에서 사용하는 무기 이니 오른손에 들던 왼손에 들던 사용하기 편한

  12. BlogIcon Perin 2012.08.25 1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티즌들이 순복음교회를 난타하기에 이르렀고 순복음교회가

  13. BlogIcon Brazzers porn 2012.09.08 0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종 시간이, 사람들이이 행사에 참여하려는 접근 할 때, 그들은 제품 기부 또는 시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아이디어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아이디어 뒤에 요.

  14. BlogIcon london escort 2012.09.19 1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처 스트레스해야 할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개인의 관심 분야에 따라 달라집니다.

  15. BlogIcon montreal escort agency 2012.10.02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변화는 어떤 방법으로 필요합니다. 우리는 몇 가지 조정 프로세스를 수행해야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변화가 혼란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16. BlogIcon theblogtest 2012.10.03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왕조실록에서 극히 드물게 나온 숙빈최씨의 성장과정을 드라

  17. BlogIcon Polo franklin marshall 2012.10.24 2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 장군의 동상이 잘못되었네 그렇지 않네 하는 재미난 논쟁이 있었다.
    재미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실은 전혀 쓰잘떼기 없는 논쟁이지만 말이다.

  18. BlogIcon wireless pet fences canada 2012.11.14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긴것은 세종대왕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말로 세종 이도를 극찬하기도 한다

  19. BlogIcon emergency water filtration systems home 2012.11.20 1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떤 방법으로 필요합니다. 우리는 몇 가지 조정 프로세스를 수행해야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변화가 혼란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20. BlogIcon katadyn hiker water microfilter 2012.12.19 1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이병훈은 조선왕조실록에서 극히 드물게 나온 숙빈최씨의 성장과정을 드라마화는데는 무난하다고 할 수 있으나, 동이(숙빈최씨)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함을 드러내고 말았다.

  21. BlogIcon emergency survival kits contents 2013.01.05 2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구성으로 이루어 졌다. 하지만, 미션의 내용과 해결하는 방법은 이전 이병훈 사극이 주었던 치밀함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우리나라 사극을 보면, 칼을 차고 있는 무인을 본적이 없다.

모두다 손에 칼을 들고 있다. 이동을 하던 서 있던 상관없이 말이다.

손에 칼을 들고 있는것은 등장하는 궁중여인이나 귀부인들의 가채만큼이나 일관되어 있다.

이전의 사극모두 마찬가지 이지만, 얼마전 끝났던 SBS 사극 추노를 비롯해서 2010년 현재 방영되고 있는 MBC 토일 주말 드라마 김수로나 MBC 월화드라마 동이나 KBS 김만덕에서도 똑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정말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나 삼국시대에도 무인들은 손에 칼을 들고 다녔을까? 장군이나 병사들이나 오른손에 왼손에 각자 칼을 들고 있다.

칼을 들고 있었다면 대부분 어느 손에 칼을 들고 있어야 할까? 정답은 없다. 단지 오른손 잡이는 왼손에 칼을 들고 있어야 하고, 왼손잡이는 오른쪽에 들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외부의 급박한 상황에서 대처를 하였을 것이다.

사실 칼의 용도는 근거리 백병전에서 사용하는 무기 이니 오른손에 들던 왼손에 들던 사용하기 편한 손에 들었다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그래야 발검(칼빼기)발검하기 좋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김유신이 칼을 왼손에 들고 있는 모습


드라마 동이에서 서종사관과 그의 수하들 모두 손에 칼을 들고 있다. 장희재의 모습을 보고 위의 조선의 그림을 연상하면 안된다. 동영상을 보면 장희재는 단지 손을 뒤짐을 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한때 이순신 장군은 왼손잡이 일까? 아니면 오른손 잡이 일까하는 논쟁이 벌어지고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잘못되었네 그렇지 않네 하는 재미난 논쟁이 있었다.
재미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실은 전혀 쓰잘떼기 없는 논쟁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왼손잡이를 극도로 싫어하는 밥상머리 교육에 의해서 왼손잡이들의 싹이 없어지고 오른손 잡이로 다들 전향아닌 전향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순신 장군이라고 해서 용가리 통뼈가 아니였을 것이니, 출생시 왼손잡이 였더라도 오른손 잡이가 되었을 것이다.


다시 본론에 돌아가서 사극에서 칼을 손에 들고 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된다. 단지 화면빨을 위해서 라는 것 말고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손에 칼을 쥔다는 뜻은 발검할 의지의 표현이고, 상대에 적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극을 보고 있노라면 적이던 같은 편이던 손에 칼을 들고 걸어다니고 있다. 이들이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던 것인가? 만약, 이순신 장군이 적을 향해 적의를 가지고 언제라도 발검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을 형상화 했다면 일반적으로 왼쪽에 들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발검을 할 수 있을 테닌까말이다. 

문제는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동상에서 왜 이순신 장군은 큰칼을 들고 있었는가 하는것이다. 저리 큰칼은 지휘용으로도 적당하지 않는데 말이다. 또한 칼을 땅에 대고 있다는 것은 발검할 의지가 없다는 의사표시와도 같다. 그러니 논쟁은 무의미 해진다. 무거운 칼을 들고 있을려면 자주 사용하던 손에 쥐고 있는게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긴)칼 옆에 차고(두고) 시름에 " 나오는 시구에서 비롯된 허상일 뿐이다. 앉아서 긴칼을 찰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칼을 뺄 수 있는 길이가 되어야 한다. 있다면 다른 방법으로 칼을 차고 있어야 한다.

사실 조선이나 일본은 칼을 들고 다니는 방법이 달랐다. 손에 들고 다닌것은 아니고, 차고 다녔지만 말이다.  패검이라고 허리 춤에 달고(차고) 끼고 다녔을 뿐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무인들은 칼을 손에 들고 다니지 않았다면 어떻게 칼을 가지고 다녔을까? 다음의 자료를 보면 명확하게 시대별 나라별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승마시 칼


동래에서 왜인들과 회합시


위의 두그림에서 보듯이 일상에서 조선 무인들은 칼을 두개의 끈을 이용해서 왼쪽 허리 뒤쪽에 차고 있고, 손잡이가 오른쪽 등뒤 쪽에 위치하고 있다.

반면에 일본은 칼이 왼쪽 허리춤에 허리띠에 끼어 넣고 있으며 칼의 손잡이는 왼쪽 위쪽을 향하고 있어 발검이 보다 빠르게 되어 있다.

아래 그림은 아프라시압 벽화 고구려사신이 있는 사신도의 벽화이다.

오른쪽 고구려 사신은 허리띠와 연결된 두개의 길이가 다른 고리를 이용해서 칼을 허리에 차고 있고, 조선시대와는 다르게 손잡이가 앞쪽을 향하도록 하고 있다.

신라 기마인물상


신라시대 토우 기마인물상을 보더라도 조선시대 기마 인물 그림과 같이 칼을 차고 있지만, 아프라 시압 벽화처럼 왼쪽에 차고 칼 손잡이가 앞쪽을 향해 있다.

그러니 모든 대한민국 사극에서 무인들이 말을 타던 걸어가던 뛰어가던 손에 칼을 들고 있는 것은 단지 화면빨 때문이 아니라면 역사와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구 벨놈이 없나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동네 양아치들이거나 말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조선시대에 칼은 예를 표하는 방법으로 칼을 뒤로 차고 다녔다. 또한, 조선시대 칼은 일반적으로 주병기가 아니라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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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1 - [역사이야기] - 김수로 순장 방해했을까? 사실은

오늘은 6.2 지방선거일 투표에 적극 참여하여 권리와 의무를 다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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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감자꿈 2010.06.02 0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극과 함께 돌아온 갓쉰동님의 글이 무척 반갑습니다.
    오늘도 공부 잘 하고 갑니다. ^^

  3. BlogIcon 배리본즈 2010.06.02 0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ㅏ.^^ 즐거운 하루 되세욤.

  4. Aakom 2010.06.02 1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순신 동상의 경우, 임금님 앞에 나설 때엔 칼을 오른손으로 들어야했다고 합니다.

  5. BlogIcon 머 걍 2010.06.02 1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씀을 듣고보니
    평상시에도 칼을 들고 다니는 건 좀 이상하긴 하네요.

  6. 메야 2010.06.02 2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순신 장군의 칼은 어장검 아닌가여..거의 뺄일이 없을걸요...장군의 권위를 상징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7. 보사리 2010.06.03 0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네요^^
    왠지 납득도 가고요. 제 생각에도 조선시대에는 검을 그렇게 많이 이용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무술이라면 모를까,ㅎㅎ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상 검술이 더 화려해보이니, 자꾸 이용하는 게 아닐까요?

  8. 김밥 2010.06.06 0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bs의 추노가 아니고 kbs의 추노에요. 또한 kbs 추노에서는 패검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방송사가 어딘지도 모르고 패검의 유무도 모르시니 추노를 다시 보셔야겠네요.

  9. BlogIcon winter jackets coats 2011.11.16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 kbs의 추노에요. 또한 kbs 추노에서는 패검한 모

  10. 손님000 2011.12.10 0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시대 무장들이 칼 손잡이를 등 뒤로 돌렸던건 예나 장식의 의미는 아닙니다.
    활을 쓰기 불편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위로 올라오는 손잡이를 뒤로 돌린거지요.
    하지만 이런 패용방식은 칼을 뽑기 힘들죠. 그래서 나오는게 띠돈 이라는 겁니다. 띠돈은 칼집과 허리띠(? 혹은 몸에 달리는 부분?)를 연결하는 도구로써 회전이 용이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엔 활 쏘기를 위해 칼 손잡이가 뒤로 가는 방식을 사용하다가 칼을 써야 할 경우가 생기면 쉽게 손잡이를 앞으로 돌릴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장식이란 말도 당시의 현실로 봤을 때 그닦 틀린 말은 아닙니다. 조선조때는 활이 최강의 무기였고 동북아시아에서 상대를 찾을수 없을 정도의 우수성을 보였으니 모든 무관들이 당연히 활을 우선시 했고 그래서 평소엔 활 쏘기에 방해되지 않도록 칼을 패용했으니까요.

  11.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granny.php 2012.07.21 2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도는 근거리 백병전에서 사용하는 무기 이니 오른손에 들던 왼손에 들던 사용하기 편한

  12. BlogIcon Perin 2012.08.25 1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티즌들이 순복음교회를 난타하기에 이르렀고 순복음교회가

  13. BlogIcon Brazzers porn 2012.09.08 0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종 시간이, 사람들이이 행사에 참여하려는 접근 할 때, 그들은 제품 기부 또는 시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아이디어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아이디어 뒤에 요.

  14. BlogIcon london escort 2012.09.19 1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처 스트레스해야 할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개인의 관심 분야에 따라 달라집니다.

  15. BlogIcon montreal escort agency 2012.10.02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변화는 어떤 방법으로 필요합니다. 우리는 몇 가지 조정 프로세스를 수행해야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변화가 혼란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16. BlogIcon theblogtest 2012.10.03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왕조실록에서 극히 드물게 나온 숙빈최씨의 성장과정을 드라

  17. BlogIcon Polo franklin marshall 2012.10.24 2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 장군의 동상이 잘못되었네 그렇지 않네 하는 재미난 논쟁이 있었다.
    재미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실은 전혀 쓰잘떼기 없는 논쟁이지만 말이다.

  18. BlogIcon wireless pet fences canada 2012.11.14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긴것은 세종대왕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말로 세종 이도를 극찬하기도 한다

  19. BlogIcon emergency water filtration systems home 2012.11.20 1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떤 방법으로 필요합니다. 우리는 몇 가지 조정 프로세스를 수행해야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변화가 혼란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20. BlogIcon katadyn hiker water microfilter 2012.12.19 1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이병훈은 조선왕조실록에서 극히 드물게 나온 숙빈최씨의 성장과정을 드라마화는데는 무난하다고 할 수 있으나, 동이(숙빈최씨)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함을 드러내고 말았다.

  21. BlogIcon emergency survival kits contents 2013.01.05 2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구성으로 이루어 졌다. 하지만, 미션의 내용과 해결하는 방법은 이전 이병훈 사극이 주었던 치밀함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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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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