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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김수로는 석탈해에게 여의를 구하지 못했다고 자책을 한다.

석탈해는 여의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수로의 용기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부조리함을 바꾸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힘없는 자의 외침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공허한 외침이라고 한다. 그러니 잘못된 것을 바꾸려 한다면 힘을 길러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수로나 석탈해나 순장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신라에서 순장이 없어진 때는 500년 대 지증왕 때이다.

공부의신에도 나오는 대사가 사극 김수로에서도 나온다.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사실이니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니였을까한다.

신귀간은 염사치와 함께 조방에게 수로의 정체를 가지고 야철 기술을 알려달라고 협박한다. 하지만, 단야장 조방은 천군을 배반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조방은 수로를 낳은 건 내처와 내가 낳은 것이니 협박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신귀간과 공부을 넘길 때 만든 계약 문서를 가지고 신귀간에 역공을 한다.

조방은 수로에게 쇠불이 가마를 만드는 방법을 전수한다. 그런데 과연 수로는 대장장이 였을까? 많은 사람들은 수로나 석탈해가 야철장의 수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역사에 대한 환상이다.

가야인과 이질적인 수로를 정견부인이 몰라 볼까?

수로의 탄생을 알고 있는 왜인 여자에 의해서 정견부인은 자신의 아들인 수로의 정체를 알게 될까?
 


정견부인은 수로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수로가 태어난 시점과 조방의 자식인 수로가 태어난 시점이 같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정견부인은 자신의 아들인지 모르는 수로를 단순히 이진아시의 경쟁자로 생각하고 견재를 하고 핍박을 한다. 핏줄은 통하고 끌린다는 말은 허언이다. 그리고 사람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것을 쉬이 알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정견은 자신의 아들인 수로를 알아 볼수 없었을까? 최소한 수로는 남방의 가야지역에 있는 사람과 틀린 골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최소한 수로의 얼굴은 기존 가야인보다 하얀피부에 가까워야 하고, 남방인과 다르게 속쌍거풀이 없어야 한다. 눈은 둥굴기 보다는 찌져진 눈이 되야 정상적이다.


또한, 광대뼈가 유난히 튀어 나와 있어야 한다. 코댓가 가야인들 보다는 높게 형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현재도 남방인과 북방인의 차이는 극명하게 들어난다.하물며 당시에는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었을 것은 자명하다.

더한 차별성은 제천금인이라는 흉노족 김융과 정견부인을 닮아 있어서 어릴적 김융의 얼굴이 수로를 통해서 발현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정견부인이 수로를 몰라볼 가능성은 전무해 진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조방의 부인이 수로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믿는것은 어쩔수 없지만, 동네사람들이 이질적으로 생겼을 수로를 단야장 조방과 조방부인의 자식이라고 생각한다는 건 이야기 구조상 맞지를 않다. 재미있는 여담 중에 김수로의 후손 인 김해김씨를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거시기 근처에 점이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속설이 있다.

왜 최인호는 흉노족 제천금인족의 세력이 아닌 정견과 수로 두명만이 구야국에 들어온 것으로 설정을 하였을까? 거기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구별하고 민족의 구성은 삼한의 가야족들이라는 다수인을 설정한 것이 아닐까한다.

거대한 강물에 한바가지 물은 전체 구성원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뿔뿌리 흩어진 흉노족을 받아들이는 민족이동을 시도할 지도 모르겠다.

철을 지배하면 권력자가 될까?


어쨌든, 철을 지배하는 자가 권력을 가진다. 하지만 권력자에 의해서 철이 지배되는 것이다. 대장장이가 권력자가 되지 않는 것과 같이 비행기 만드는 기술자가 하늘을 지배하지 않는 것과 같다. 철이 있기전에 지배자와 피지배가 구분되고 권력은 이미 존재하고 있기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술자는 그저 권력자의 순한 종에 불과하고 이용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가야가 철을 생산할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중앙집권적 권력을 가지지 못한 이유 이기도 하다. 만약, 기존의 통설대로 철을 지배한 자가 권력까지 지배했다면 가야가 삼한을 제일 먼저 통일하였을 것이다.

다음편은 구야국은 수로시대에 있었을까?에 대한 고찰을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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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1 - [역사이야기] - 김수로 순장 방해했을까?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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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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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마른 장작 2010.06.07 0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치밀하시네요. 마치 물만난 고기처럼 필력을.. ^^ 좋은 하루 되세요.

  3. BlogIcon 배리본즈 2010.06.07 08: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는글 잘 읽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4. 2010.06.07 0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BlogIcon 둔필승총 2010.06.07 1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멋진 글 잘 보고 갑니다.
    늘 건승하세요.~~

  6. BlogIcon kue lebaran 2011.08.14 1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그냥 내가 정말 블로그처럼 정말 정말 버전 genious 기사 또는 블로그의 더 많은를 검토 수있는 나중에 돌려 보내 모든 사파리 주위 항목을 책 표시된 사용자 이름 glasscannonz 내부 Jumptag에서 추구를 위해이 사이트를 관찰 게시물!

  7. BlogIcon 고명진 2012.01.01 0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일을 나의 친구를 계속, 이거 정말 끝내 준다

  8. BlogIcon 2012.01.07 0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전체에 서있다면 당신은 파고있어, 당신은 파고를 중지해야합니다

  9. BlogIcon 마야 2012.04.03 1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살 여유가 없습니다.

  10. BlogIcon 가브리엘라 2012.04.05 2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11. BlogIcon 루시 2012.05.08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지내십니까?

  12. BlogIcon Liliana 2012.05.11 0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습니다, 그것을 사겠습니다

  13.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5.31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김수로에서는 어린 김수로가 따돌림을 받았거나 놀림감이 되었다는 장치 조차 없었다.

  14.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wet.php 2012.07.14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 쇠불이 가마를 만드는 방법을 전수한다. 그런데 과연 수로는 대장장이 였

  15.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wet.php 2012.07.14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 쇠불이 가마를 만드는 방법을 전수한다. 그런데 과연 수로는 대장장이 였

  16. BlogIcon Next Generation Pest Control 2012.09.05 0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하면 게임이 되지 않는다. 지원이나 관리는 하지 않고 김연아로 부터 얻은 소득만을 취하는 형태를 보여주고

  17. BlogIcon Next Generation Pest Control 2012.09.05 0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하면 게임이 되지 않는다. 지원이나 관리는 하지 않고 김연아로 부터 얻은 소득만을 취하는 형태를 보여주고

  18. BlogIcon Chase 2012.09.23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르는 수로를 단순히 이진아시의 경쟁자로 생각하고 견재를 하고 핍박을 한다. 핏줄은 통하고 끌린다는 말은 허언이

  19. BlogIcon ready to eat quinoa 2012.11.26 2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강력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형벌로서 하였다. 조선에서는 5개의 중형이 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이 있고, 남자의 성기를 짜르는 궁형이 있고, 아킬레스건 처럼 발뒤꿈치 힘줄을 짤라 버리는 월형(비형)이 있고,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 있고, 머리에 문신을 하는 자자(묵형)이 있다.

  20. BlogIcon Levitra kaufen 2012.12.02 2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ndlich habe ich es auch in Korea geschafft mit meiner Domain kevitra-kaufen.org aufzutreten. 교하면 게임이 되지 않는다. 지원이나 관리는 하지 않고 김연아로 부터 얻은 소득만을 취하는 형태를 보여주고

  21. BlogIcon hand chain saw uk 2012.12.03 2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부의신에도 나오는 대사가 사극 김수로에서도 나온다.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사실이니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니였을까한다.

김수로는 석탈해에게 여의를 구하지 못했다고 자책을 한다.

석탈해는 여의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수로의 용기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부조리함을 바꾸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힘없는 자의 외침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공허한 외침이라고 한다. 그러니 잘못된 것을 바꾸려 한다면 힘을 길러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수로나 석탈해나 순장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신라에서 순장이 없어진 때는 500년 대 지증왕 때이다.

공부의신에도 나오는 대사가 사극 김수로에서도 나온다.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사실이니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니였을까한다.

신귀간은 염사치와 함께 조방에게 수로의 정체를 가지고 야철 기술을 알려달라고 협박한다. 하지만, 단야장 조방은 천군을 배반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조방은 수로를 낳은 건 내처와 내가 낳은 것이니 협박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신귀간과 공부을 넘길 때 만든 계약 문서를 가지고 신귀간에 역공을 한다.

조방은 수로에게 쇠불이 가마를 만드는 방법을 전수한다. 그런데 과연 수로는 대장장이 였을까? 많은 사람들은 수로나 석탈해가 야철장의 수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역사에 대한 환상이다.

가야인과 이질적인 수로를 정견부인이 몰라 볼까?

수로의 탄생을 알고 있는 왜인 여자에 의해서 정견부인은 자신의 아들인 수로의 정체를 알게 될까?
 


정견부인은 수로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수로가 태어난 시점과 조방의 자식인 수로가 태어난 시점이 같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정견부인은 자신의 아들인지 모르는 수로를 단순히 이진아시의 경쟁자로 생각하고 견재를 하고 핍박을 한다. 핏줄은 통하고 끌린다는 말은 허언이다. 그리고 사람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것을 쉬이 알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정견은 자신의 아들인 수로를 알아 볼수 없었을까? 최소한 수로는 남방의 가야지역에 있는 사람과 틀린 골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최소한 수로의 얼굴은 기존 가야인보다 하얀피부에 가까워야 하고, 남방인과 다르게 속쌍거풀이 없어야 한다. 눈은 둥굴기 보다는 찌져진 눈이 되야 정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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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한 차별성은 제천금인이라는 흉노족 김융과 정견부인을 닮아 있어서 어릴적 김융의 얼굴이 수로를 통해서 발현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정견부인이 수로를 몰라볼 가능성은 전무해 진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조방의 부인이 수로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믿는것은 어쩔수 없지만, 동네사람들이 이질적으로 생겼을 수로를 단야장 조방과 조방부인의 자식이라고 생각한다는 건 이야기 구조상 맞지를 않다. 재미있는 여담 중에 김수로의 후손 인 김해김씨를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거시기 근처에 점이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속설이 있다.

왜 최인호는 흉노족 제천금인족의 세력이 아닌 정견과 수로 두명만이 구야국에 들어온 것으로 설정을 하였을까? 거기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구별하고 민족의 구성은 삼한의 가야족들이라는 다수인을 설정한 것이 아닐까한다.

거대한 강물에 한바가지 물은 전체 구성원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뿔뿌리 흩어진 흉노족을 받아들이는 민족이동을 시도할 지도 모르겠다.

철을 지배하면 권력자가 될까?


어쨌든, 철을 지배하는 자가 권력을 가진다. 하지만 권력자에 의해서 철이 지배되는 것이다. 대장장이가 권력자가 되지 않는 것과 같이 비행기 만드는 기술자가 하늘을 지배하지 않는 것과 같다. 철이 있기전에 지배자와 피지배가 구분되고 권력은 이미 존재하고 있기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술자는 그저 권력자의 순한 종에 불과하고 이용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가야가 철을 생산할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중앙집권적 권력을 가지지 못한 이유 이기도 하다. 만약, 기존의 통설대로 철을 지배한 자가 권력까지 지배했다면 가야가 삼한을 제일 먼저 통일하였을 것이다.

다음편은 구야국은 수로시대에 있었을까?에 대한 고찰을 해볼까 한다.
 
관련기사
2010/06/06 - [역사이야기] - 여의의 죽음 김수로는 순장를 안했을까?
2010/06/02 - [역사이야기] - 동이 등 사극 칼 들고다닐까? 차고다닐까? 사실은
2010/06/01 - [역사이야기] - 동이 장희빈에 반기를 들다. 그리고 이병훈 PD의 문제점
2010/05/31 - [역사이야기] - 김수로 순장 방해했을까? 사실은
2010/05/30 - [역사이야기] - 정체를 알 수 없는 사극 김수로에 김수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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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마른 장작 2010.06.07 0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치밀하시네요. 마치 물만난 고기처럼 필력을.. ^^ 좋은 하루 되세요.

  3. BlogIcon 배리본즈 2010.06.07 08: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는글 잘 읽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4. 2010.06.07 0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BlogIcon 둔필승총 2010.06.07 1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멋진 글 잘 보고 갑니다.
    늘 건승하세요.~~

  6. BlogIcon kue lebaran 2011.08.14 1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그냥 내가 정말 블로그처럼 정말 정말 버전 genious 기사 또는 블로그의 더 많은를 검토 수있는 나중에 돌려 보내 모든 사파리 주위 항목을 책 표시된 사용자 이름 glasscannonz 내부 Jumptag에서 추구를 위해이 사이트를 관찰 게시물!

  7. BlogIcon 고명진 2012.01.01 0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일을 나의 친구를 계속, 이거 정말 끝내 준다

  8. BlogIcon 2012.01.07 0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전체에 서있다면 당신은 파고있어, 당신은 파고를 중지해야합니다

  9. BlogIcon 마야 2012.04.03 1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살 여유가 없습니다.

  10. BlogIcon 가브리엘라 2012.04.05 2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11. BlogIcon 루시 2012.05.08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지내십니까?

  12. BlogIcon Liliana 2012.05.11 0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습니다, 그것을 사겠습니다

  13.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5.31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김수로에서는 어린 김수로가 따돌림을 받았거나 놀림감이 되었다는 장치 조차 없었다.

  14.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wet.php 2012.07.14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 쇠불이 가마를 만드는 방법을 전수한다. 그런데 과연 수로는 대장장이 였

  15.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wet.php 2012.07.14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 쇠불이 가마를 만드는 방법을 전수한다. 그런데 과연 수로는 대장장이 였

  16. BlogIcon Next Generation Pest Control 2012.09.05 0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하면 게임이 되지 않는다. 지원이나 관리는 하지 않고 김연아로 부터 얻은 소득만을 취하는 형태를 보여주고

  17. BlogIcon Next Generation Pest Control 2012.09.05 0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하면 게임이 되지 않는다. 지원이나 관리는 하지 않고 김연아로 부터 얻은 소득만을 취하는 형태를 보여주고

  18. BlogIcon Chase 2012.09.23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르는 수로를 단순히 이진아시의 경쟁자로 생각하고 견재를 하고 핍박을 한다. 핏줄은 통하고 끌린다는 말은 허언이

  19. BlogIcon ready to eat quinoa 2012.11.26 2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강력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형벌로서 하였다. 조선에서는 5개의 중형이 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이 있고, 남자의 성기를 짜르는 궁형이 있고, 아킬레스건 처럼 발뒤꿈치 힘줄을 짤라 버리는 월형(비형)이 있고,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 있고, 머리에 문신을 하는 자자(묵형)이 있다.

  20. BlogIcon Levitra kaufen 2012.12.02 2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ndlich habe ich es auch in Korea geschafft mit meiner Domain kevitra-kaufen.org aufzutreten. 교하면 게임이 되지 않는다. 지원이나 관리는 하지 않고 김연아로 부터 얻은 소득만을 취하는 형태를 보여주고

  21. BlogIcon hand chain saw uk 2012.12.03 2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부의신에도 나오는 대사가 사극 김수로에서도 나온다.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사실이니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니였을까한다.

최인호의 소설 <제4의 제국>을 드라마화한 역사드라마 가야의 건국시조 김수로가 처음 방영되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에 대해서 김수로를 어떠한 인물로 그려 나갈것인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극 <김수로>에는 김수로가 없었다.

한마디로 정리를 하면 붕어빵에 붕어 없고, 칼국수에 칼이 없는 것은 맞는것이지만 외형적으로 붕어빵은 붕어모양을 갖추었고, 칼국수는 칼로 만든 국수라고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사극 김수로에는 <팼밀리가 떴다>의 김수로도 없고, 역사의 김수로도 없다.

소설이란 개연성의 허구이다.  장치(기록)과 기록사이에 개연성을 만드는 장치를 만들고 이를 연결하는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극 김수로에는 모든 역사적 기록이나 <가설>들은 김수로로 합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사극 김수로에는 대가야의 건국신화와 김알지로 이어지는 신라의 김씨의 들의 시조설화와 금관가야의 김수로의 건국신화와 김유신묘에 있는 출자신화를 교묘히(?) 섞어 만든 부대찌개나 잡탕류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문제는 김수로를 흉노족의 일족인 김일제의 후손으로 그려버렸다는 것이다. 김일제의 후손을 자처하는 김씨는 신라의 김씨들이지 가야의 김씨들은 아니다.

김수로의 후손이라는 김유신의 묘에는 자신들의 출자를 황제헌원의 자식인 소호금천를 시조로 보고 있다.  

김유신 자신은 시조를 소호금천으로 보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그의 후손들이 만든 지석에 의한 것이지만 소호금천과 문무왕의 묘비에 있는 제천금인인 휴도왕의 아들 김일제의 후손과는 괴리가 있었도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선조들도 인간이 아버지도 없이 또는 아버지 어머니도 없이 알에게 태어났다는 것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뿌리찾기를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 것이다.

김알지는 어디서 왔을까? 김수로는 어디서 왔을까? 고주몽은 어디서 왔을까? 그래서 김해김씨는 소호금천에서 김수로의 출자를 찾았고, 경주김씨인 신라김씨들은 김일제에서 김알지의 출자를 찾았다. 이처럼 이들이 찾은 시조들은 당대 형성된 것이 아닌 후대에 만들어진 조작일 뿐이다. 

신라의 김씨들이 김일제를 시조로 내세운 이유는 중원의 황제에 귀부한 휴도왕의 아들이 한나라 고조에 김씨성을 사성받은 것을 자신들과 연관시켜 자신들이 조상들을 미화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스스로 중원 황제의 영원한 변방의 외신을 자처한 것이다.


반면에 가야의 김씨들은 가야시기에는 김씨성을 사사로이 쓸 수 없었다. 사실 가야시대에 <김씨>라는 성이 있었는지도 불투명하다 오히려 김씨성은 없었다는게 합리적일 것이다. 어쨌든, 신라에 투항한 후 김씨성을 사성을 받아 신김씨가 되고, 이후 신라의 김씨보다 김씨의 연원이 오래 되었다는 황제헌원의 아들 소호금천을 자신들의 시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고구려도 자신의 출자를 황제헌원의 자손인 고양씨에서 찾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국가는 커야하고 자신들의 조상은 남들보다 연원이 오래 되고 족보가 빵빵하여야 한다는 "우리 조상은 <통뼈>였다"는 거대 컴플렉스와 사대 컴플렉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산물일 뿐이다. 그런다고 조상들이 위대해 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조상의 무덤에 침을 뱉는 무도한 무뢰배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조상들이 얼마나 부끄러웠으면 되지도 않는 남의집 족보를 자신의 족보에 채워 넣었겠는가? 한마디로 치열하게 살다간 선조들에 대한 예의는 둘째치고 나는 내 조상들이 부끄러워요라는 자뻑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한국인이던 유대인이던 어떤 사람이던 상관없이 아담의 후손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동아시아의 중심이였던 중원을 지배했었다는 삼황오제의 후손을 자처하는 것은 종교와도 같았고 유행이였다. 이는 안봐도 DVD인것이다.

현재 일본에는 자신들을 예수의 직계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일족도 있다. 이들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이 있다면 웃어주면 그만이다.

무조건 믿는다는 것은 종교이지 과학이고 역사는 아니다. 드라마는 드라마 역사는 역사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역사도 모르고 드라마도 모른다는 고해성사와 같다.

어쨌든 MBC 사극 김수로는 또다시 역사왜곡의 한복판에 서 있을 것이고, 성범죄자들 때문에 성범죄 예방이 되어 좋다는 류의 왜곡된 역사로 인해서 역사공부를 다시 하게 되어서 좋은것 아닌가? 라는 사극 김수로 공로론이 나올것이 자명해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위대한 신라의 선덕여왕이나 있지도 않는 <제4의 제국>이라고 주체적인 가야를 표방한 <김수로>나 컴플렉스를 깨기위한 드라마가 아닌 컴플렉스에 찌든 작가들이 스스로 컴플렉스에 빠져들었다는 것을 스스로 알리고 대중에게 컴플렉스에 동참하도록 종용시키는 소설이고 드라마일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드라마는 요원한 것인가?

그냥 사극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지 않고, 따로 공부하지 않고, 믿고 그럴수도 있겠네 고개를 끄덕이는 역사 드라마 만들기가 그렇게 힘든것인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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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미스터브랜드 2010.05.30 0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특히 사극에 있어서는 최소한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2. BlogIcon 빛무리  2010.05.30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갓쉰동님 덕분에 더욱 깊은 지식을 알고 갑니다..^^

  3. 2010.05.30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마른 장작 2010.05.30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수로 아직 시청 시작 못하고 있는데.. 진짜 이것 저것 볼 것 많고. 하하하. 하여튼 사극 김수로에 이런 문제가 있다니. 알고 보겠음^^니다.

  5. BlogIcon 감자꿈 2010.05.30 1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뵙네요.
    김수로와 함께 갓쉰동님 글도 자주 뵐 수 있길 바래요. ^^

  6. 양현 2010.05.31 0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상의 무덤에 침을 뱉는 건 사실상 소호금천이나 고양씨를 자기 조상으로 삼은 저들뿐이 아니죠.
    국민의 100%가 정승판서의 후손인 현대 한국인도 마찬가지.
    따지고 보면 정말 엄청난 아이러니...
    한국인들이 조상을 대단히 모시는 것 같이 굴지만 따지고 보면 정말 세계에서 한국처럼 조상이라는 것을 개취급하고, 자신의 위신을 위한 엑세서리쯤으로 관념화 하는 민족이 또 없다는 거...
    천한 조상이 부끄러워 남의 조상을 가져다가 모시거나 만들어서 모시는, 또 그렇게 해야만 살 수 있었던 사회를 만든 우리 한국민이 참 부끄럽습니다. 조상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그 행태 자체가 조상을 진정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존중한다기 보다 단지 그 "뼈대" 자랑이 도그마화된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의 반증...

    옆나라 일본을 조상도 모르고 뿌리도 없다며 비웃지만 걔네들은 소나무 아래에서 섹스를 해서 태어난 조상, 섬 안에서 섹스를 해서 태어난 조상이라도 (물론 그것도 기모노의 오비가 아무데서나 섹스하기 위한 담요였다는 근거없는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악의적인 날조에 지나지 않지만, 그런건 차치하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연원이 확실한 조상을 가지고 있건만 한국인의 조상은 전부다 가짜.
    일본인이 뿌리 없는 걸 비웃을 시간의 10분의 1이라도 상것이면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는, 조상이 천하면 그 후손도 볼것없이 무조건적인 천시와 멸시를 받는 사회를 부끄러워 하는데 썼으면 아마 한국인의 문화적 품위는 지금보다 많이 올라가지 않았을까...
    천것들은 한날 한시에 자손도 못 남기고 다 휴거를 했는지 다 같이 무릉도원에 갔는지 어째서 현대 한국인 중에 천것들 후손은 단 한명도 없으니 미스테리일뿐...
    투탁, 공명첩, 별보, 위보...
    한국은 정말 민족주의를 버리고 한발짝 떨어져서 들여다 보면 정말 성경에 나오는 "회칠한 무덤"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수가 없는 사회더라구요. 위선과 가식과 거짓, 열등감이 가득한...

  7. 글쎄다 2010.06.01 2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kbs에서 방영된 다큐에서
    고대 무덤 유전자 조사 결과 흉노족과 신라 김씨와 동일 부족임을 확있했다고 하는데?
    대체 무슨 근거로 글쓴이는 다 허위로 몰아가는 것인지?
    증거라고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하고 단지 의견뿐이네

    • 경주김씨는 흉노족후손이맞구요 2010.06.10 2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단 인간은 모든걸 다 알수없고 그 유명한 뉴튼조차 아인슈타인조차 난 바다의 수많은 모래와 조개속에서 흙장난하는 아이일뿐이다라는 말을 했듯이 지금사실도 모르는데 과거를 완전하게 정확히 아는 사람은 한개도 없구요.특히 성씨에 대해선 우리나라는 체면과 권력이 중요한 나라라서 나라가 망할때마다 성이없던 중인들이 족보를 사들이는경우가 많고 특히 김씨들이 권세가 많았으므로 김씨족보를 사는 경우가 많아서 김씨가 이다지도 많아진것이라합니다.민중역사가가 쓴 책에 따르면 경주김씨는 흉노족 (중국이나 아랍에서 건너왔을 가능성)이라고 나오고 김해김씨는 러시아쪽이라고 하던데,,그것도 정확치않아요..그리고 김씨가 다 한조상이 아닙니다.제가 김해김씨인데 김해김씨와 경주김씨(김해김씨외에 모든 김씨는 경주김씨후손에서 갈라짐) 나온 김씨는 엄연히 조상이 다릅니다.문제는 김씨라는 성이 같기때문에 김씨하면 다 한 조상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저희 큰아버지가 몇년전에 다 모인자리에서 앞으론 아마 가야김씨로 성을 바꿀거라고 하시더군요..경주김씨후손들과 헷갈려서..

    • BlogIcon 갓쉰동 2010.06.11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걸 다 알수는 없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잘알지요.. ㅋㅋ 냅두셈.. 저러다 가시겡..

  8. 글쎄다 2010.06.01 2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록이 남기 시작한 7세기 이후에 후손들이 다 조작한거라고?
    신라가 역사기록을 시작한 7세기 훨씬 이전에
    당시 4세기에 신라무덤형태에서 갑자기 출현한 북방기마민족의 적석목곽분 같은 것은 그럼 어떻게 설명할래? 수많은 증거는 다 무시하고 그냥 일방적인 의견뿐이네 ㅉㅉㅉㅉ

  9. 글쎄다 2010.06.01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덤도 그러면 사망 당시에 축조한게 아니라
    과거에 죽었던 사람들 모두를 모아서 7세기 이후에 한꺼번에 동시에 축조한거야? 그런거야?
    다 후손들의 조작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무덤에서 나온 유골을 토대로한 유전자 검사결과가 같은 일족이라는 것에는 어쩔꺼야?

  10. 글쎄다 2010.06.01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야의 무덤에서 출토된
    당시 한반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북방 기마민족의 전형적인 형태의 유물들은 어쩔꺼야?
    이것도 몇세기 뒤에 나중에 후손들이 추가로 집어 넣어놨나?

  11. BlogIcon vibram shoes 2012.05.31 1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김수로에서는 어린 김수로가 따돌림을 받았거나 놀림감이 되었다는 장치 조차 없었다.

  12.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milf.php 2012.07.14 1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은 시조를 소호금천으로 보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그의 후손들이 만든 지석에

  13. BlogIcon Next Gen Services 2012.09.05 0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들고 전자책 선전을 해서 문제를 일으킨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유인촌은 유명한 말을 한다.

  14. BlogIcon Torrie 2012.09.16 2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측이 구동회를 꾀어냈던, 구동회가 김연아 측을 꼬셨던 구동회 부사장이 올댓 스포츠를 세우는데 뒤에서 앞에서 깊숙이

  15. BlogIcon ready to eat popcorn 2012.11.26 2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강력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형벌로서 하였다. 조선에서는 5개의 중형이 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이 있고, 남자의 성기를 짜르는 궁형이 있고, 아킬레스건 처럼 발뒤꿈치 힘줄을 짤라 버리는 월형(비형)이 있고,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 있고, 머리에 문신을 하는 자자(묵형)이 있다.

  16. BlogIcon coleman emergency poncho 2012.12.03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치(기록)과 기록사이에 개연성을 만드는 장치를 만들고 이를 연결하는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극 김수로에는 모든 역사적 기록이나 <가설>들은 김수로로 합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인호의 소설 <제4의 제국>을 드라마화한 역사드라마 가야의 건국시조 김수로가 처음 방영되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에 대해서 김수로를 어떠한 인물로 그려 나갈것인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극 <김수로>에는 김수로가 없었다.

한마디로 정리를 하면 붕어빵에 붕어 없고, 칼국수에 칼이 없는 것은 맞는것이지만 외형적으로 붕어빵은 붕어모양을 갖추었고, 칼국수는 칼로 만든 국수라고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사극 김수로에는 <팼밀리가 떴다>의 김수로도 없고, 역사의 김수로도 없다.

소설이란 개연성의 허구이다.  장치(기록)과 기록사이에 개연성을 만드는 장치를 만들고 이를 연결하는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극 김수로에는 모든 역사적 기록이나 <가설>들은 김수로로 합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사극 김수로에는 대가야의 건국신화와 김알지로 이어지는 신라의 김씨의 들의 시조설화와 금관가야의 김수로의 건국신화와 김유신묘에 있는 출자신화를 교묘히(?) 섞어 만든 부대찌개나 잡탕류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문제는 김수로를 흉노족의 일족인 김일제의 후손으로 그려버렸다는 것이다. 김일제의 후손을 자처하는 김씨는 신라의 김씨들이지 가야의 김씨들은 아니다.

김수로의 후손이라는 김유신의 묘에는 자신들의 출자를 황제헌원의 자식인 소호금천를 시조로 보고 있다.  

김유신 자신은 시조를 소호금천으로 보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그의 후손들이 만든 지석에 의한 것이지만 소호금천과 문무왕의 묘비에 있는 제천금인인 휴도왕의 아들 김일제의 후손과는 괴리가 있었도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선조들도 인간이 아버지도 없이 또는 아버지 어머니도 없이 알에게 태어났다는 것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뿌리찾기를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 것이다.

김알지는 어디서 왔을까? 김수로는 어디서 왔을까? 고주몽은 어디서 왔을까? 그래서 김해김씨는 소호금천에서 김수로의 출자를 찾았고, 경주김씨인 신라김씨들은 김일제에서 김알지의 출자를 찾았다. 이처럼 이들이 찾은 시조들은 당대 형성된 것이 아닌 후대에 만들어진 조작일 뿐이다. 

신라의 김씨들이 김일제를 시조로 내세운 이유는 중원의 황제에 귀부한 휴도왕의 아들이 한나라 고조에 김씨성을 사성받은 것을 자신들과 연관시켜 자신들이 조상들을 미화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스스로 중원 황제의 영원한 변방의 외신을 자처한 것이다.


반면에 가야의 김씨들은 가야시기에는 김씨성을 사사로이 쓸 수 없었다. 사실 가야시대에 <김씨>라는 성이 있었는지도 불투명하다 오히려 김씨성은 없었다는게 합리적일 것이다. 어쨌든, 신라에 투항한 후 김씨성을 사성을 받아 신김씨가 되고, 이후 신라의 김씨보다 김씨의 연원이 오래 되었다는 황제헌원의 아들 소호금천을 자신들의 시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고구려도 자신의 출자를 황제헌원의 자손인 고양씨에서 찾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국가는 커야하고 자신들의 조상은 남들보다 연원이 오래 되고 족보가 빵빵하여야 한다는 "우리 조상은 <통뼈>였다"는 거대 컴플렉스와 사대 컴플렉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산물일 뿐이다. 그런다고 조상들이 위대해 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조상의 무덤에 침을 뱉는 무도한 무뢰배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조상들이 얼마나 부끄러웠으면 되지도 않는 남의집 족보를 자신의 족보에 채워 넣었겠는가? 한마디로 치열하게 살다간 선조들에 대한 예의는 둘째치고 나는 내 조상들이 부끄러워요라는 자뻑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한국인이던 유대인이던 어떤 사람이던 상관없이 아담의 후손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동아시아의 중심이였던 중원을 지배했었다는 삼황오제의 후손을 자처하는 것은 종교와도 같았고 유행이였다. 이는 안봐도 DVD인것이다.

현재 일본에는 자신들을 예수의 직계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일족도 있다. 이들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이 있다면 웃어주면 그만이다.

무조건 믿는다는 것은 종교이지 과학이고 역사는 아니다. 드라마는 드라마 역사는 역사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역사도 모르고 드라마도 모른다는 고해성사와 같다.

어쨌든 MBC 사극 김수로는 또다시 역사왜곡의 한복판에 서 있을 것이고, 성범죄자들 때문에 성범죄 예방이 되어 좋다는 류의 왜곡된 역사로 인해서 역사공부를 다시 하게 되어서 좋은것 아닌가? 라는 사극 김수로 공로론이 나올것이 자명해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위대한 신라의 선덕여왕이나 있지도 않는 <제4의 제국>이라고 주체적인 가야를 표방한 <김수로>나 컴플렉스를 깨기위한 드라마가 아닌 컴플렉스에 찌든 작가들이 스스로 컴플렉스에 빠져들었다는 것을 스스로 알리고 대중에게 컴플렉스에 동참하도록 종용시키는 소설이고 드라마일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드라마는 요원한 것인가?

그냥 사극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지 않고, 따로 공부하지 않고, 믿고 그럴수도 있겠네 고개를 끄덕이는 역사 드라마 만들기가 그렇게 힘든것인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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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미스터브랜드 2010.05.30 0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특히 사극에 있어서는 최소한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2. BlogIcon 빛무리  2010.05.30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갓쉰동님 덕분에 더욱 깊은 지식을 알고 갑니다..^^

  3. 2010.05.30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마른 장작 2010.05.30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수로 아직 시청 시작 못하고 있는데.. 진짜 이것 저것 볼 것 많고. 하하하. 하여튼 사극 김수로에 이런 문제가 있다니. 알고 보겠음^^니다.

  5. BlogIcon 감자꿈 2010.05.30 1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뵙네요.
    김수로와 함께 갓쉰동님 글도 자주 뵐 수 있길 바래요. ^^

  6. 양현 2010.05.31 0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상의 무덤에 침을 뱉는 건 사실상 소호금천이나 고양씨를 자기 조상으로 삼은 저들뿐이 아니죠.
    국민의 100%가 정승판서의 후손인 현대 한국인도 마찬가지.
    따지고 보면 정말 엄청난 아이러니...
    한국인들이 조상을 대단히 모시는 것 같이 굴지만 따지고 보면 정말 세계에서 한국처럼 조상이라는 것을 개취급하고, 자신의 위신을 위한 엑세서리쯤으로 관념화 하는 민족이 또 없다는 거...
    천한 조상이 부끄러워 남의 조상을 가져다가 모시거나 만들어서 모시는, 또 그렇게 해야만 살 수 있었던 사회를 만든 우리 한국민이 참 부끄럽습니다. 조상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그 행태 자체가 조상을 진정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존중한다기 보다 단지 그 "뼈대" 자랑이 도그마화된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의 반증...

    옆나라 일본을 조상도 모르고 뿌리도 없다며 비웃지만 걔네들은 소나무 아래에서 섹스를 해서 태어난 조상, 섬 안에서 섹스를 해서 태어난 조상이라도 (물론 그것도 기모노의 오비가 아무데서나 섹스하기 위한 담요였다는 근거없는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악의적인 날조에 지나지 않지만, 그런건 차치하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연원이 확실한 조상을 가지고 있건만 한국인의 조상은 전부다 가짜.
    일본인이 뿌리 없는 걸 비웃을 시간의 10분의 1이라도 상것이면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는, 조상이 천하면 그 후손도 볼것없이 무조건적인 천시와 멸시를 받는 사회를 부끄러워 하는데 썼으면 아마 한국인의 문화적 품위는 지금보다 많이 올라가지 않았을까...
    천것들은 한날 한시에 자손도 못 남기고 다 휴거를 했는지 다 같이 무릉도원에 갔는지 어째서 현대 한국인 중에 천것들 후손은 단 한명도 없으니 미스테리일뿐...
    투탁, 공명첩, 별보, 위보...
    한국은 정말 민족주의를 버리고 한발짝 떨어져서 들여다 보면 정말 성경에 나오는 "회칠한 무덤"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수가 없는 사회더라구요. 위선과 가식과 거짓, 열등감이 가득한...

  7. 글쎄다 2010.06.01 2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kbs에서 방영된 다큐에서
    고대 무덤 유전자 조사 결과 흉노족과 신라 김씨와 동일 부족임을 확있했다고 하는데?
    대체 무슨 근거로 글쓴이는 다 허위로 몰아가는 것인지?
    증거라고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하고 단지 의견뿐이네

    • 경주김씨는 흉노족후손이맞구요 2010.06.10 2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단 인간은 모든걸 다 알수없고 그 유명한 뉴튼조차 아인슈타인조차 난 바다의 수많은 모래와 조개속에서 흙장난하는 아이일뿐이다라는 말을 했듯이 지금사실도 모르는데 과거를 완전하게 정확히 아는 사람은 한개도 없구요.특히 성씨에 대해선 우리나라는 체면과 권력이 중요한 나라라서 나라가 망할때마다 성이없던 중인들이 족보를 사들이는경우가 많고 특히 김씨들이 권세가 많았으므로 김씨족보를 사는 경우가 많아서 김씨가 이다지도 많아진것이라합니다.민중역사가가 쓴 책에 따르면 경주김씨는 흉노족 (중국이나 아랍에서 건너왔을 가능성)이라고 나오고 김해김씨는 러시아쪽이라고 하던데,,그것도 정확치않아요..그리고 김씨가 다 한조상이 아닙니다.제가 김해김씨인데 김해김씨와 경주김씨(김해김씨외에 모든 김씨는 경주김씨후손에서 갈라짐) 나온 김씨는 엄연히 조상이 다릅니다.문제는 김씨라는 성이 같기때문에 김씨하면 다 한 조상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저희 큰아버지가 몇년전에 다 모인자리에서 앞으론 아마 가야김씨로 성을 바꿀거라고 하시더군요..경주김씨후손들과 헷갈려서..

    • BlogIcon 갓쉰동 2010.06.11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걸 다 알수는 없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잘알지요.. ㅋㅋ 냅두셈.. 저러다 가시겡..

  8. 글쎄다 2010.06.01 2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록이 남기 시작한 7세기 이후에 후손들이 다 조작한거라고?
    신라가 역사기록을 시작한 7세기 훨씬 이전에
    당시 4세기에 신라무덤형태에서 갑자기 출현한 북방기마민족의 적석목곽분 같은 것은 그럼 어떻게 설명할래? 수많은 증거는 다 무시하고 그냥 일방적인 의견뿐이네 ㅉㅉㅉㅉ

  9. 글쎄다 2010.06.01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덤도 그러면 사망 당시에 축조한게 아니라
    과거에 죽었던 사람들 모두를 모아서 7세기 이후에 한꺼번에 동시에 축조한거야? 그런거야?
    다 후손들의 조작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무덤에서 나온 유골을 토대로한 유전자 검사결과가 같은 일족이라는 것에는 어쩔꺼야?

  10. 글쎄다 2010.06.01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야의 무덤에서 출토된
    당시 한반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북방 기마민족의 전형적인 형태의 유물들은 어쩔꺼야?
    이것도 몇세기 뒤에 나중에 후손들이 추가로 집어 넣어놨나?

  11. BlogIcon vibram shoes 2012.05.31 1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김수로에서는 어린 김수로가 따돌림을 받았거나 놀림감이 되었다는 장치 조차 없었다.

  12.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milf.php 2012.07.14 1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은 시조를 소호금천으로 보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그의 후손들이 만든 지석에

  13. BlogIcon Next Gen Services 2012.09.05 0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들고 전자책 선전을 해서 문제를 일으킨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유인촌은 유명한 말을 한다.

  14. BlogIcon Torrie 2012.09.16 2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측이 구동회를 꾀어냈던, 구동회가 김연아 측을 꼬셨던 구동회 부사장이 올댓 스포츠를 세우는데 뒤에서 앞에서 깊숙이

  15. BlogIcon ready to eat popcorn 2012.11.26 2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강력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형벌로서 하였다. 조선에서는 5개의 중형이 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이 있고, 남자의 성기를 짜르는 궁형이 있고, 아킬레스건 처럼 발뒤꿈치 힘줄을 짤라 버리는 월형(비형)이 있고,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 있고, 머리에 문신을 하는 자자(묵형)이 있다.

  16. BlogIcon coleman emergency poncho 2012.12.03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치(기록)과 기록사이에 개연성을 만드는 장치를 만들고 이를 연결하는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극 김수로에는 모든 역사적 기록이나 <가설>들은 김수로로 합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 36회에서는 크게 몇가지 이야기를 동시 다발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티아라의 큐리(이지현)이 드라마 선덕여왕의 김유신(엄태웅)의 첫번째 부인인 영모 배역에 낙점이 되었군요.

첫째. 춘추의 세상 속이기

춘추는 미생이 하자는 대로 모든 것을 다한다. 미생은 춘추를 데리고 유곽에서 나아가 춘추의 여자 보는 눈을 실험한다. 신라판 미인 선발대회이다. 이는 춘추 한 개인을 위한 미인대회이다. 미생은 보종을 통해서 춘추가 보량(박은빈)을 좋아하다는 이야기를 미실에 전한다. 이에 우리의 찌질남 하종은 왜 자신의 딸들에게도 아름다운 미인들이 많은데 왜? 하필 보량이냐고 푸념을 한다. 하지만, 춘추는 도박장에서 비담을 만나서 눈인사를 하는 과정에 이미 미생의 술수를 다 알고 있다고 시청자에게 알려준다.

여기서 하종의 찌질거림은 미실의 속내가 있다는 암시와도 같다. 영모(큐리:이지현)와 유신을 짝으로 만들어 주려는 고도의 술책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종의 입을 통해서 <영모>가 미인임을 암시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영모(이지현)>와 <보라>, <보량>이 얼마나 어여쁜 신인(?) 연기자가 출연하는지 보는것도 재미가 있지 않을까? 여성시청자를 위해서 10화랑, 알천(이승효), 비담(김남길), 김춘추(유승호)를 비밀 병기로 발탁했다면, 남성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해줄 뉴페이스도 필요할 때이지 않을까 한다.

미실은 미생이 춘추는 <보량(박은빈)> 타입이라고 말을 보종의 보고를 받는다. 미실은  "미생이 그렇다면 그런것이다"라고 말을 한다. 미생은 카사노바도 울고갈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실은 미생의 여자를 보는 눈은 정확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춘추의 여자보는 눈을 탓하는 것이다. 이는 시청자에게 조금의 함정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다. 춘추는 미생의 눈을 속이고, 미실의 눈도 속일 정도로 심계가 깊다는 뜻을 내비치는 것이다.

보량은 보종과 양명공주 사이에 태어난다. 양명은 진평과 보명사이에 태어난다.


보량(보종/양명)은 할머니 미실처럼 바람끼가 농후하다. 또한, 진평왕의 후비로 왕자 <보로>을 낳는다. 하지만, 보로는 승만후의 방해와 보량의 바람끼가 합해져 보로는 왕이되지 못한다. 실제로 미실이 신라 왕실을 접수하려 했다면 자신의 증손인 보로(진평/보량)를 통해서 했을 것이다.


물론, 춘추는 보종의 딸과 결혼을 한다. 하지만 <보량>이 아닌 <보라(보종/양명)>와 결혼을 한다.  보라는 춘추와 결혼하여 고타소를 낳는다, 고타소는 남편과 함께 642년 대야주에서 백제군에 의해서 죽는다. 김유신과 다르게 춘추가 백제를 삶킬 궁리를 한것은 자신의 여식의 복수심에 의해서다. 김유신은 이런 춘추를 꼬드겨 <삼한일통>의 대업을 이루고저 한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춘추는 왜? 왜(일본)에 갔을까?" 라는 주제로 송고할 예정이다.

둘째. 유신으로 인한 비담과 문노의 갈등

문노는 자신이 꿈꾸고자 한 꿈을 이뤄줄 사람은 유신으로 낙점을 한다. 그리고, 왕은 덕만이 되어야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운명론에 사로 잡힌다. 그래서 비담이 아닌 <삼한비기>를 유신에 넘겨주려고 한다. 이에 비담은 낙담을 하고, 문노와 헤어질 결심을  굳힌다.


셋째. 유신과 덕만의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

유신은 덕만에게 왕으로서 가야할 길을 가도록 한다. 또한, 그게 덕만이 하고자한 꿈을 이루는 길이라고 한다.

넷째. 유신의 미실에 대한 투항

미실은 유신에게 가야의 복야회를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뜻에 따를 것인가를 종용한다. 
덕만도 유신에게 자신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설지를 선택할 것인가?를 물어본다.

하지만 우리의 에너자이저,
유신은 덕만에게 복야회의 단 한명도 희생시킬수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적국의 1만의 병사나 백성을 희생하더라도 내 백성은 하나라도 다치게 해서는 안되는게 군주의 도리"라고 한다.

이는 요즘의 세태를 정확히 비판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국민 하나가 다친다면, 백배 천배 보복을 감행한다. 자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짓이라도 하는게 국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은 어떠하냐?라는 반문이다. 각자 알아서 판단하시길 바란다.


어찌되었던, 유신은 마음은 덕만에 두고 몸은 미실에 무릎이라도 꿇는다. 이는 한나라 한신의 고사를 생각하면 쉬이 이해할 수 있다. 지금 비록 힘이 미약하지만, 때가 되면 일어서겠다는 생각이다.

미실은 유신을 얻기 위해서 풍월주 비재에 승리한 유신을 또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한다. 복야회의 일원이고, 신라내이 가야인들을 반란를 획책했다는 누명을 씌워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다. 이는 단순히 풍월주를 자신의 아들인 보종에 양보하도록 압박하려는 수단은 아니다. 유신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는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덕만과 유신의 사랑은? 신분의 제약일까? 아니면 나이차이일까?


덕만은 유신이 미실에 끌려갈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알고, 자신의 속내을 유신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유신은 공주는 공주의 길을 가야한다고 한다. 또한, 소화도 덕만에게 "어짜피 마음으로 밖에 못하세요"라며 공주로서의 삶이 있으니 감내하고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이야기를 한다.


소화의 단순한 발언속에는 이런 이야기가 함축하고 있다. 유신은 진골이고, 덕만 공주는 <성골>이니 <이루워 질수 없는 사랑>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성골은 무치인데, 진골이면 어떻고, 성골이면 어떠한가? 소화가 나이를 들어서 유신과 이루워질 수 없는 사랑이며, 바라만 봐도 좋은 사랑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미실을 찾아간 유신은 자신의 몸은 가질 수 있으나 마음을 가질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며, 유신은 "이제 세주 미실의 품으로 들어가겠다"한다. 그런데 미실은 "내가 조금만 젊었어도 너를 직접 내품에 안을텐데"라는 말을 한다. 이는 유신에 향한 말이 아니다. 유신 뒤를 쫓아온 덕만을 자극하기 위한 말이다. 이에 덕만은 사랑하는 유신이 자신의 곁을 떠나는데 여인으로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내가 가질수 없는 사랑은 남이 가져서도 않된다는 한마디로 질투이다.

또한, 미실의  "내가 젊었어도 직접 유신을 품에 안겠다"라는 말은 시청자를 향해서 하는 말이다. 나 미실은 "이런 여자야" 남자를 많이 다뤄본 여자야 그러니 알아서 해.. 라는 뜻이다.

어린 유신을 두고 두여인의 연기가 불꽃을 튀고 있다.

덕만 공주의 왕으로 가는 길과 유신이 가고자한 신하의 길은 넘을수 없는 멀고도 먼 사랑 같이 보인다. 그저 단순히 덕만이 유신을 사랑하는데 무슨 걸림돌이 있겠는가? 반문할 수도 있다. "신분의 벽이 무섭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들 덕만과 유신의 사랑이 신분의 격차 때문에 이뤄질수 없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덕만은 임술년생이다. 임술년은 602년이다. 595년 생인 유신이 덕만보다는 나이가 7살은 많다. 풍월주 비재가 있던 612년에는 덕만은 11살이 된다.

하지만, 드라마상에서는 곧죽어도 덕만이 천명과 같이 580년대 중반의 사람이다. 그러니 덕만이 유신보다는 10여살은 나이가 많은 설정이다. 그런데 드라마를 파고들면 천명과 덕만은 579년에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더한 것은..버려진 덕만이 소화의 손에 의해서 문노를 찾아간다. 이때 문노는 비담과 덕만의 사주를 살핀다. 비담과 덕만의 첫만남을 연출했던 장면이 있다. 이때, 비담은 건복원년(586년)생이라고 말을 하고, 어린 비담과 방금 태어난 덕만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덕만은 587~8년이 생이 된다.

요즘은 능력있는 여자들이 나이어린 남자를 애인이나 남편으로 삼는게 트랜드화 되었다. 물론, 예전에도 꼬마신랑은 있었다. 그러니 신세대의 복고풍 바람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한다. 

이처럼 드라마 <선덕여왕>은 덕만과 천명의 출생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럴때 "천명과 덕만이 언제 태어났다는 말이냐?"라고 반문해주는게 정상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을 보는 사람들중 드라마 스토리가 탄탄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들이 말한 드라마의 스토리의 탄탄함은 주인공이던 주변인들이던 SF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 같다. 선덕여왕을 보면서 많은 사람으로 부터 비판받는 엄태웅을 비롯해서 배우들의 연기에는 흡족하지만, 원작의 부실함에는 어찌 저런 기초도 안된 허접한 황당소설이 다 있을까 혀를 찬다.

어찌되었던, 오래전 미실은 아막성. 속함성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서현과 유신을 가야파로 부터 떼어 놓을 계락으로 <사다함의 매화>를 이용한다. 정확히는 사다함의 매화는 책력이 아니고 월천대사이다. 미실은 월천대사를 이용하여, 월식을 예측하고, <인력구(人力口)>의 파자로 가야(伽倻)파의 맹주인 서현을 미실 자신측으로 돌려 세우고, 하종의 딸인 영모와 결혼시켜려는 계략을 꾸몄다. 하지만, 천명의 죽음으로 실패하고 만다. 그러부터 몇년이 지난 풍월주 비재 후  실패한 영모와의 혼사를 다시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다.

영모(큐리)와 보량, 보라는 누구?


위의 가계도를 보시면 알겠지만, 미실이나 유신이나 설원랑이나 화랑의 시초인 1번째 풍월주 위화랑의 후손들이다.  또한, 설원랑의 후손중에는 원효와 설총도 보인다. 드라마에서는 찌질이 하종이 설원랑을 무시하듯 나오지만, 설원랑은 미모(설원랑/준모)를 하종에 시집보낸다.

그러니 설원랑은 하종의 장인이 된다. 사사로이 장인에게 <선덕여왕> 드라마처럼 막대한다면, 후레자식 취급 받을 것이다. 신라는 괜찮다고? 아무리 개족보처럼 막나가는 듯 보이지만, 신라도 사람사는 세상이다. 왕도 장인에게는 함부로 못한다.

어찌되었던, 미실은 왜 영모를 유신에게 시집을 가도록 강요를 하는 것일까? 단순히 정치적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까? 아니면 정말로 <영모>가 유신의 짝이라고 생각해서 일까?


삼국사기에 의하면 유신의 부인은 춘추의 딸이며, 자신의 누이의 문희(서현/만명)의 딸인 지조(춘추/문희)와 655년에 결혼을 한다. 그리고 유명한 원술을 낳는다. 그렇다면, 유신의 첫번째 부인은 지조일까?

여기서 유신의 나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신은 595년생이다. 지조와 결혼하는 때 61세 회갑이 된다. 춘추가 유신에게 단순히 회갑선물로 자신의 딸인 지조공주를 유신에게 주었을까? 또는 유신은 655년에 결혼한 때가 첫번째 결혼일까?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유신을 너무 모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유신의 첫사랑(?)인 천관녀를 잊지 못해서, 전쟁광으로 전장을 누빈것으로 생각한다면, 신라사회와 유신을 너무나 모른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천관녀가 영모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쓴이는 영모에서 천관녀의 냄새를 맡은 적이 많다.

어찌되었던, 삼국사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원술(유신/지조)말고도 몇명의 유신의 자식들이 등장한다. 물론, 지조와 결혼하기 전이다. 그러니 "유신은 지조와 첫번째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하지만, 통설은, 유신이 655년 첫번째 결혼하는 상대가 자신의 조카인 지조가 되고, 원술이 유신의 장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필사본 화랑세기는, "유신이 지조랑 첫번째 결혼했다고?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또한, 유신은 18세가 되던 즈음에 11세 풍월주 하종의 딸인 영모와 결혼한다.
유신의 자식들 중 <광>자 돌림를 사용하는 자식들은 <영모>의 소생이라고 말을 한다.  여기서도 현존하는 화랑세기 유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던, 또는, 단순히 지조의 자식이라고 생각한 <광>돌림 자식은 <영모>의 소생이고, <원>자 돌림은 <지조>의 소생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 그래서 현존하는 화랑세기를 무시할 수 없다. 또다른, 일단은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위작이라고 말을 하지만, 위작을 주장하는 사람들 조차도 <필사본> 화랑세기의 정교함에는 두손 두발을 다 들어 버렸다. 

현존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역사>소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박창화는 1930년대에 이미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던, 김유신의 첫번째 부인과 그들의 후손을 정확히 구분해서 소설을 쓰고 있다. 지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는 빈틈을 찾아보기 힘들정도의 <역사소설>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은 곳곳에 치명적인 오류가 보인다. 지금까지 36회를 진행하는 동안, 발견된 오류만 100여개는 넘을 것이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오류 리스트를 작성할 것이다.

진정한 승리자는 미실? 서현? 설원랑?

위의 계보도를 보면 보종의 첫번째 부인이 현강이다. 현강은 문노와 윤중(거칠부/?)의 자식이다. 그러니 보종의 장인이 문노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은 두번에 걸쳐 영모와의 혼사를 성사시키려 노력한다. 만약, 미실이 유신을 자신의 집안사람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면 미실은 신라를 접수 할 수 있을까? 사실 드라마 선덕여왕은 <덕만>을 주인공으로 신라의 왕이 되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미실 집안이 어떻게 신라의 왕가를 접수해 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듯 하다.

하지만,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영모를 유신에 소개 시켜준 측은 미실이 아니다. 이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9/22 - [역사이야기] -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하는 미실의 비밀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당연히, 가시기 전에 추천하는 것을 잊지 마시라. 시청률이 배우에게 연기하는 힘이 되지만, 글쓴이에게는 추천이 힘이 된다.)

실제로, 덕만은 왕이 되어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후사를 잇지 못했다. 그러니 절반의 성공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실은 자신의 후손들이 부터 신라를 접수하는데 성공 한다. 사실은 부계로 따진다면 보종, 하종의 승리이고, 보종 아버지인 설원랑의 인간승리이다.


하지만, 진정한 승리자는 김서현 가문이다. 김서현의 딸인 문희는 춘추와 결혼해서 문무를 낳고, 춘추/문희의 후손들이 대대로 신라의 왕이 된다. 물론, 가끔 삐딱선을 타는 왕이 나오기는 하지만 말이다.

 
배우에겐 시청율이, 글쓴이에게는 추천이 힘이 됩니다. 비로그인 추천가능 숫자크릭 ^__^;;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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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나가던 객 2009.09.23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선덕여왕 닥본사 중인데 갓쉰동님 글 넘 잼있게 보고갑니다. 선덕여왕보다 더 잼있네요~.^^

  3. 바씨 2009.09.23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잘봤습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계보도로 정확하게 파악하게 되어어요.
    좋은 하루 되세요.~

  4. 신버미 2009.09.23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었습니다.
    아 그리고 유신과 결혼하는 춘추의 딸의 이름은 지소입니다.
    그리고 보량궁주가 바람기 때문에 보로전군이 왕이 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승만부인이 보량이 아들을 낳자 질투하여 사가로 물러나 살다 양도와 결혼합니다.
    바람기가 많은 진평왕 후궁은 태양공주(진평왕 고모 ㅡㅡ;;)
    진평왕의 아들인 태원과 호원을 낳았지만 태양공주의 바람기 때문에 진평왕의 자식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호원의 후손인 진공과 신공이 반란(흠돌의 난)에 가담하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김서현의 딸인 문명왕후가 문무왕을 낳아서 유신파의 승리였지만 나중에 흠돌의 난으로
    유신의 가야파계열이 몰락하는 계기를 갖고 옵니다.
    참고로 흠돌은 유신과 문명왕후의 조카입니다.
    신라 왕계는 진지왕계인 무열계가 왕비계열은 진골정통이 승리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3 1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량은 바람기도 있었지요. 태양도 마찬가지 이지만, 다분히 승만이 보량과 태양을 축출하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지만요..
      지조라고 합니다..지소라고도 하공.. 대부분 지조부인이라고 표현하지요.. 지소태후(진흥모후)와 헛갈리지 않도록..

    • BlogIcon 갓쉰동 2009.09.23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른 글도 봐주실레요..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뎅.. 역사카테고리의 글입니다... ^___^

      님이 지적하신 글에 많이 공감을 하는 글들을 발견하시게 될겁니당..

  5. 어이없음 2009.09.23 1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삽질을 하시지요~

  6. BlogIcon 보안세상 2009.09.23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을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바쁘다 보니까 보지 못하고 있네요

    맨날 다음 뷰에올라온 포스팅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랠 뿐 ㅠ

  7. 상록수 2009.09.23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족보를 볼 때마다 머리 아프지만...ㅋㅋ
    갓쉰동님 글은 언제나 흥미진진 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8. 2009.09.23 1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3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들켜버렸다. 글을 블로그 에디터에서 바로 그냥 막씁니당.. ㅠ.ㅠ.
      대화를 하듯 쓰다보니 그런 면이 있다고 봅니당..

      습관화 되어서 고치기가 힘드네용.. 한마디로 채팅하듯 글을 쓰거든요..

      충분히 지적가능한 내용이지요.. ^____^

  9. ahnkbae 2009.09.23 16: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휴~~뭘 머리 아프게 그런 걸 따지면서 보나요? 재미없게스리~~어차피 드라마 각본은 역사적으로 딱 맞지 않는 부분인데....드라마는 단지 드라마로써 즐기면서 보자구요....

  10. 노재운 2009.09.23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의 구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많이 유익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11. BlogIcon skagns 2009.09.23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언제봐도 복잡한 가계도입니다. ㅋㅋㅋ

  12. BlogIcon 감자꿈 2009.09.23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 님 덕분에 역사 공부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늘 감사드려요. *^^*

  13. 2009.09.23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4. 갓쉰동님 광팬 2009.09.23 2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 말씀대로 진정한 승자는 김서현의 가문이네요. 그나저나 선덕여왕 요즘 재미가 떨어져 간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히려 덕만이 공주가 되기 전이 재미나고 다음주가 궁금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띄엄띄엄 봅니다. 흡입력 부족한 덕만공주를 보면 배우가 잘못인지 극본이 잘못인지 헷갈리지만(제가 보기엔 둘 다...) 들마 보면 점점 삼천포로 빠지는 기분이 들어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24 0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고려의 최종승자는 신라계이듯이..

      저는 잼있던뎅.. 재미 없어 하는 분들이 좀 늘어나긴 하나봐용.. 늘어진다공.. ㅋㅋ

    • nightbird 2009.09.24 0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요원이 너무 흡입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참 매가리없이 한다는 느낌...
      주인공 매력이 없으니 조연들로 버티는 형세랄까.
      늘 아쉬운 부분이지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24 0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점차 중심을 잡아가고 있는것 같던데용.. 선덕여왕은 덕만의 성장드라마잖아요.. 그러니 성장하는 과정으로 봅니당.. 유신동.. 미실같은 경우는 이미 성장이 끝나고 쇠퇴기 정도..

  15. 누리 2009.09.24 0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재밌게 공부를 하고 갑니다~^^
    선덕여왕을 보면서 가끔 이해되지가 않는 것들이 있는데...
    갓쉰동님 덕분에 알게돼네요~ㅎㅎ
    갓쉰동님의 노고에 감동(?)하여 추천을 꾹 누르고 갑니다~

  16. joomin11 2009.09.24 0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내용은 사학을 전공하거나 역사에 관심이 많으면 알수 있는 내용입니다.드라마 내용에대한 이해도를위한 글은 좋지만 물론 필사본 화랑세기가 정교한 면이 없지않아있지요. 그러나 단순히 김유신 가문의 이야기만 가지고는 진위를 논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부 기존의 기록들을 뛰어넘는 내용이 있지만 그에 반해 화랑들에 대한 일부 기록에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적절히 조합한 듯한 내용도 많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문제는 박창화씨가 고대사가 펌훼되던 일제시기에 지어졌다는 점과 일부 내용에서 근대적 어투가 발견되는 점등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학과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요즘 서울대를 비롯한 일부 학계에 뉴라이트를 비롯한 이단학계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님같은 분들이 지식을 얻는 대부분의 내용들은 신뢰못하는 사학자들의 연구자료랍니다. 그리고 역사를 전공한 자와 재야고수간의 기본적인 지식의 깊이는 차이가 없지만 심층적인 부분에서는 원전을 더 많이 접하고 역사만을 연구한 사학자들을 무시할수는 없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언제 기회가 되신다면 성균관대 동아시아 학술원이나 고대 동북아 문제연구소에 방문해 주시지요.
    님과같은 재야 고수들과의 역사를 위한 토른을 한번 하고싶어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
    이번내용은 내용의 질면에서 충분히 연구하고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서 ㅊㅊ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4 0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사학을 전공하거나 역사에 관심이 많으면 알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신뢰하지 않는다고 무시한다고 생각하지 마셈..

      그러니 신뢰하지 못하는 사학자들이 연구자료이기 때문에 무시했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제가 아마도 화랑세기에 대한 언급은 제글 수십군데에 하고 있을 겁니다.. 물론, 님처럼 화랑세기 너무 정교해서 의심스럽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전대(704년즈음)기록이 후대의 기록을 믹스한듯한 모양은 선후관계가 뒤바뀌었다고 보거든요..

      드라마 원작자에 향한 비판은 자신의 사료로 인정한 <화랑세기>조차도 비틀어 버린점입니다.

      퓨전환타지 사극이라고 말을 하면 그건 정말 원작자를 무시하는 발언 같은데요.. 스스로 신라를 알려주겠다는 사람들 보고, 니들은 극이나 만들어 돈이나 벌어라 한다면.. 욕이지요..

      저는 상대가 주장하는 바에 맞추어 비판할 따름입니다.. 제가 화랑세기를 인용한것도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인용하고 있기때문에 화랑세기를 인용해서 사료비판을 하는 거지요.. 만약,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았다면, 선덕여왕에 관한 글에서 저는 화랑세기 인용을 한 줄도 안했을 겁니다.

      학문이 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거지요.. 믿어주어야 하지요? 믿느나면 그냥 수용하면 될텐데 말이지요.. 전공자 믿음이 안가요.. 기존에 내 놓은 연구자료들을 보면.. 이렇게 말하면 모든 연구자를 폄훼하는 것 처럼 보이시겠지만, 이는 오독입니다. 잘못된 사항을 지적하면 전체를 지적한 것 처럼 보이겠지만, 잘못된 부분만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확대해석을 금물입니다...

      님의 신뢰못하는 사학자들의 연구자료라는 말씀에.. 좀 그랫거든요.. 신뢰를 하지 않으니 인용이나 언급도 말라는 뜻처럼 말입니다.

      암튼 이번 내용은 질적으로 연구해볼 대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허접글인데요..
      언제나 기회가 되겠지요.. 재야고수는 넘치고 넘치지요.. 저같은게 무슨 재야고수축에나 끼겠씁니까? 정말 그렇다면 재야고수들 다 죽어야 할겁니당. ㅋㅋ..그저 관심정도 밖에 없습니당..

  17. joomin11 2009.09.24 0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선덕여왕의 경우 태왕사신기 보다는 약간 덜한 퓨전사극정도라고 생각하고 보면 괜찮을 듯 합니다.
    사실 화랑세기가 진위가 가려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인용했다는 것 자체가 사기죠.

  18. joomin11 2009.09.24 0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살 역사드라마의 절반 정도는 재미를 위해 역사를 장난감삼아 갖고노는 것에 불과하죠. 약간 덜한 천추태후부터 봐주기힘든 자명고 선덕여왕까지 사실 저도 배우만아니면 선덕여왕 보지않습니다.
    그리고 님의 글들 중 대부분의 글에는 공감을 표합니다. 그러나 가끔 자만하시는 부분이 있으시더군요.
    대한민국에 역사를 제대로아는 사람은 1%도 되지않는다 등의 내용의 글들 말입니다.
    물론 님이 역사전공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역사에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하시고 비판하시는 자세는 좋지만 사실 님처럼 블로그에 대놓고 지식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역사적 안목이 뛰어나고 지식이 풍부하신 분들도 많고 나아가 역사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답니다. 앞으로는 글쓰실때 조금 겸손하셨으면 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4 0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주민님..역사로 밥을 빌어먹는 사람도 많은 것은 알고 있어요.. 전공도 작가 영역이 있는 겁니당..
      1%도 되지 않는다고 하면,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가요? 꼭 역사를 50%이상 알필요도 없어용.. 바쁜뎅.. 1%도 모르는게 정상입니다.. 그래야 역사로 밥을 빌어먹는 직종도 생기지 않겠어요? 남들 다아느네 그런 직업을 선택한다는건 문제가 심각하지요.. 다른 직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저의 지식을 들어냈다고 보지 않습니다. 밑에 글에도 언급했지만,.. 충분히 겸손하다고 생각하는데 님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봅니당.

      님 제글 몇개나 봤는지 궁금해요.. 정말로...

  19. rrrr 2009.09.28 1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분 나쁘네요. 덕만은 왕이 되어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후사를 잇지 못했다. 그러니 절반의 성공에도 미치지 못한다.

    라뇨? 선덕여왕 무시합니까?

    • BlogIcon 갓쉰동 2009.09.28 1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 기분이 나쁘셈.. 사실을 말함 기분이 나쁨니까.. 미완성을 미완성이라고 하지,, 그럼 성공했다고 할까요?

  20. 별별별별 2009.10.07 2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읽고 있는 박순교님이 지으신 김춘추 외교의 승부사 이 책에는 고타소가 문희의 딸로 나와있습니다.옛날에 불에 기울고 무너질 뻔한 아이' 라는 뜻으로 고타소(古陀炤) 이렇게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08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만약, 문희는 고타소의 어미가 될수 없지용.. 연령대가 잘 맞지 않음..
      문희와 춘추는 627년에 만나서 이즘에 법민을 낳고, 629년에 인문을 낳습니당.. 고타소는 그렇다면 630년생이후가 되어야 한다는 뜻인뎅..

      그렇게 되면 고타소는 644년에 15살이됩니당.. 물론, 고타소가 품석에게 이때 갈수도 있지만, 문제는 품석의 직위가 성주급인뎅 3~4등위에 해당합니다. 이정도 될려면 적어도 40대가 되어야 합니당. 물론, 유신의 사례가 있으니 꼭 안된다고 생각할수는 없겠지만요..

  21.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드라마 선덕여왕 36회에서는 크게 몇가지 이야기를 동시 다발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티아라의 큐리(이지현)이 드라마 선덕여왕의 김유신(엄태웅)의 첫번째 부인인 영모 배역에 낙점이 되었군요.

첫째. 춘추의 세상 속이기

춘추는 미생이 하자는 대로 모든 것을 다한다. 미생은 춘추를 데리고 유곽에서 나아가 춘추의 여자 보는 눈을 실험한다. 신라판 미인 선발대회이다. 이는 춘추 한 개인을 위한 미인대회이다. 미생은 보종을 통해서 춘추가 보량(박은빈)을 좋아하다는 이야기를 미실에 전한다. 이에 우리의 찌질남 하종은 왜 자신의 딸들에게도 아름다운 미인들이 많은데 왜? 하필 보량이냐고 푸념을 한다. 하지만, 춘추는 도박장에서 비담을 만나서 눈인사를 하는 과정에 이미 미생의 술수를 다 알고 있다고 시청자에게 알려준다.

여기서 하종의 찌질거림은 미실의 속내가 있다는 암시와도 같다. 영모(큐리:이지현)와 유신을 짝으로 만들어 주려는 고도의 술책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종의 입을 통해서 <영모>가 미인임을 암시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영모(이지현)>와 <보라>, <보량>이 얼마나 어여쁜 신인(?) 연기자가 출연하는지 보는것도 재미가 있지 않을까? 여성시청자를 위해서 10화랑, 알천(이승효), 비담(김남길), 김춘추(유승호)를 비밀 병기로 발탁했다면, 남성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해줄 뉴페이스도 필요할 때이지 않을까 한다.

미실은 미생이 춘추는 <보량(박은빈)> 타입이라고 말을 보종의 보고를 받는다. 미실은  "미생이 그렇다면 그런것이다"라고 말을 한다. 미생은 카사노바도 울고갈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실은 미생의 여자를 보는 눈은 정확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춘추의 여자보는 눈을 탓하는 것이다. 이는 시청자에게 조금의 함정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다. 춘추는 미생의 눈을 속이고, 미실의 눈도 속일 정도로 심계가 깊다는 뜻을 내비치는 것이다.

보량은 보종과 양명공주 사이에 태어난다. 양명은 진평과 보명사이에 태어난다.


보량(보종/양명)은 할머니 미실처럼 바람끼가 농후하다. 또한, 진평왕의 후비로 왕자 <보로>을 낳는다. 하지만, 보로는 승만후의 방해와 보량의 바람끼가 합해져 보로는 왕이되지 못한다. 실제로 미실이 신라 왕실을 접수하려 했다면 자신의 증손인 보로(진평/보량)를 통해서 했을 것이다.


물론, 춘추는 보종의 딸과 결혼을 한다. 하지만 <보량>이 아닌 <보라(보종/양명)>와 결혼을 한다.  보라는 춘추와 결혼하여 고타소를 낳는다, 고타소는 남편과 함께 642년 대야주에서 백제군에 의해서 죽는다. 김유신과 다르게 춘추가 백제를 삶킬 궁리를 한것은 자신의 여식의 복수심에 의해서다. 김유신은 이런 춘추를 꼬드겨 <삼한일통>의 대업을 이루고저 한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춘추는 왜? 왜(일본)에 갔을까?" 라는 주제로 송고할 예정이다.

둘째. 유신으로 인한 비담과 문노의 갈등

문노는 자신이 꿈꾸고자 한 꿈을 이뤄줄 사람은 유신으로 낙점을 한다. 그리고, 왕은 덕만이 되어야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운명론에 사로 잡힌다. 그래서 비담이 아닌 <삼한비기>를 유신에 넘겨주려고 한다. 이에 비담은 낙담을 하고, 문노와 헤어질 결심을  굳힌다.


셋째. 유신과 덕만의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

유신은 덕만에게 왕으로서 가야할 길을 가도록 한다. 또한, 그게 덕만이 하고자한 꿈을 이루는 길이라고 한다.

넷째. 유신의 미실에 대한 투항

미실은 유신에게 가야의 복야회를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뜻에 따를 것인가를 종용한다. 
덕만도 유신에게 자신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설지를 선택할 것인가?를 물어본다.

하지만 우리의 에너자이저,
유신은 덕만에게 복야회의 단 한명도 희생시킬수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적국의 1만의 병사나 백성을 희생하더라도 내 백성은 하나라도 다치게 해서는 안되는게 군주의 도리"라고 한다.

이는 요즘의 세태를 정확히 비판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국민 하나가 다친다면, 백배 천배 보복을 감행한다. 자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짓이라도 하는게 국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은 어떠하냐?라는 반문이다. 각자 알아서 판단하시길 바란다.


어찌되었던, 유신은 마음은 덕만에 두고 몸은 미실에 무릎이라도 꿇는다. 이는 한나라 한신의 고사를 생각하면 쉬이 이해할 수 있다. 지금 비록 힘이 미약하지만, 때가 되면 일어서겠다는 생각이다.

미실은 유신을 얻기 위해서 풍월주 비재에 승리한 유신을 또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한다. 복야회의 일원이고, 신라내이 가야인들을 반란를 획책했다는 누명을 씌워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다. 이는 단순히 풍월주를 자신의 아들인 보종에 양보하도록 압박하려는 수단은 아니다. 유신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는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덕만과 유신의 사랑은? 신분의 제약일까? 아니면 나이차이일까?


덕만은 유신이 미실에 끌려갈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알고, 자신의 속내을 유신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유신은 공주는 공주의 길을 가야한다고 한다. 또한, 소화도 덕만에게 "어짜피 마음으로 밖에 못하세요"라며 공주로서의 삶이 있으니 감내하고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이야기를 한다.


소화의 단순한 발언속에는 이런 이야기가 함축하고 있다. 유신은 진골이고, 덕만 공주는 <성골>이니 <이루워 질수 없는 사랑>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성골은 무치인데, 진골이면 어떻고, 성골이면 어떠한가? 소화가 나이를 들어서 유신과 이루워질 수 없는 사랑이며, 바라만 봐도 좋은 사랑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미실을 찾아간 유신은 자신의 몸은 가질 수 있으나 마음을 가질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며, 유신은 "이제 세주 미실의 품으로 들어가겠다"한다. 그런데 미실은 "내가 조금만 젊었어도 너를 직접 내품에 안을텐데"라는 말을 한다. 이는 유신에 향한 말이 아니다. 유신 뒤를 쫓아온 덕만을 자극하기 위한 말이다. 이에 덕만은 사랑하는 유신이 자신의 곁을 떠나는데 여인으로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내가 가질수 없는 사랑은 남이 가져서도 않된다는 한마디로 질투이다.

또한, 미실의  "내가 젊었어도 직접 유신을 품에 안겠다"라는 말은 시청자를 향해서 하는 말이다. 나 미실은 "이런 여자야" 남자를 많이 다뤄본 여자야 그러니 알아서 해.. 라는 뜻이다.

어린 유신을 두고 두여인의 연기가 불꽃을 튀고 있다.

덕만 공주의 왕으로 가는 길과 유신이 가고자한 신하의 길은 넘을수 없는 멀고도 먼 사랑 같이 보인다. 그저 단순히 덕만이 유신을 사랑하는데 무슨 걸림돌이 있겠는가? 반문할 수도 있다. "신분의 벽이 무섭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들 덕만과 유신의 사랑이 신분의 격차 때문에 이뤄질수 없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덕만은 임술년생이다. 임술년은 602년이다. 595년 생인 유신이 덕만보다는 나이가 7살은 많다. 풍월주 비재가 있던 612년에는 덕만은 11살이 된다.

하지만, 드라마상에서는 곧죽어도 덕만이 천명과 같이 580년대 중반의 사람이다. 그러니 덕만이 유신보다는 10여살은 나이가 많은 설정이다. 그런데 드라마를 파고들면 천명과 덕만은 579년에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더한 것은..버려진 덕만이 소화의 손에 의해서 문노를 찾아간다. 이때 문노는 비담과 덕만의 사주를 살핀다. 비담과 덕만의 첫만남을 연출했던 장면이 있다. 이때, 비담은 건복원년(586년)생이라고 말을 하고, 어린 비담과 방금 태어난 덕만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덕만은 587~8년이 생이 된다.

요즘은 능력있는 여자들이 나이어린 남자를 애인이나 남편으로 삼는게 트랜드화 되었다. 물론, 예전에도 꼬마신랑은 있었다. 그러니 신세대의 복고풍 바람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한다. 

이처럼 드라마 <선덕여왕>은 덕만과 천명의 출생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럴때 "천명과 덕만이 언제 태어났다는 말이냐?"라고 반문해주는게 정상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을 보는 사람들중 드라마 스토리가 탄탄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들이 말한 드라마의 스토리의 탄탄함은 주인공이던 주변인들이던 SF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 같다. 선덕여왕을 보면서 많은 사람으로 부터 비판받는 엄태웅을 비롯해서 배우들의 연기에는 흡족하지만, 원작의 부실함에는 어찌 저런 기초도 안된 허접한 황당소설이 다 있을까 혀를 찬다.

어찌되었던, 오래전 미실은 아막성. 속함성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서현과 유신을 가야파로 부터 떼어 놓을 계락으로 <사다함의 매화>를 이용한다. 정확히는 사다함의 매화는 책력이 아니고 월천대사이다. 미실은 월천대사를 이용하여, 월식을 예측하고, <인력구(人力口)>의 파자로 가야(伽倻)파의 맹주인 서현을 미실 자신측으로 돌려 세우고, 하종의 딸인 영모와 결혼시켜려는 계략을 꾸몄다. 하지만, 천명의 죽음으로 실패하고 만다. 그러부터 몇년이 지난 풍월주 비재 후  실패한 영모와의 혼사를 다시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다.

영모(큐리)와 보량, 보라는 누구?


위의 가계도를 보시면 알겠지만, 미실이나 유신이나 설원랑이나 화랑의 시초인 1번째 풍월주 위화랑의 후손들이다.  또한, 설원랑의 후손중에는 원효와 설총도 보인다. 드라마에서는 찌질이 하종이 설원랑을 무시하듯 나오지만, 설원랑은 미모(설원랑/준모)를 하종에 시집보낸다.

그러니 설원랑은 하종의 장인이 된다. 사사로이 장인에게 <선덕여왕> 드라마처럼 막대한다면, 후레자식 취급 받을 것이다. 신라는 괜찮다고? 아무리 개족보처럼 막나가는 듯 보이지만, 신라도 사람사는 세상이다. 왕도 장인에게는 함부로 못한다.

어찌되었던, 미실은 왜 영모를 유신에게 시집을 가도록 강요를 하는 것일까? 단순히 정치적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까? 아니면 정말로 <영모>가 유신의 짝이라고 생각해서 일까?


삼국사기에 의하면 유신의 부인은 춘추의 딸이며, 자신의 누이의 문희(서현/만명)의 딸인 지조(춘추/문희)와 655년에 결혼을 한다. 그리고 유명한 원술을 낳는다. 그렇다면, 유신의 첫번째 부인은 지조일까?

여기서 유신의 나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신은 595년생이다. 지조와 결혼하는 때 61세 회갑이 된다. 춘추가 유신에게 단순히 회갑선물로 자신의 딸인 지조공주를 유신에게 주었을까? 또는 유신은 655년에 결혼한 때가 첫번째 결혼일까?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유신을 너무 모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유신의 첫사랑(?)인 천관녀를 잊지 못해서, 전쟁광으로 전장을 누빈것으로 생각한다면, 신라사회와 유신을 너무나 모른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천관녀가 영모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쓴이는 영모에서 천관녀의 냄새를 맡은 적이 많다.

어찌되었던, 삼국사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원술(유신/지조)말고도 몇명의 유신의 자식들이 등장한다. 물론, 지조와 결혼하기 전이다. 그러니 "유신은 지조와 첫번째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하지만, 통설은, 유신이 655년 첫번째 결혼하는 상대가 자신의 조카인 지조가 되고, 원술이 유신의 장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필사본 화랑세기는, "유신이 지조랑 첫번째 결혼했다고?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또한, 유신은 18세가 되던 즈음에 11세 풍월주 하종의 딸인 영모와 결혼한다.
유신의 자식들 중 <광>자 돌림를 사용하는 자식들은 <영모>의 소생이라고 말을 한다.  여기서도 현존하는 화랑세기 유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던, 또는, 단순히 지조의 자식이라고 생각한 <광>돌림 자식은 <영모>의 소생이고, <원>자 돌림은 <지조>의 소생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 그래서 현존하는 화랑세기를 무시할 수 없다. 또다른, 일단은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위작이라고 말을 하지만, 위작을 주장하는 사람들 조차도 <필사본> 화랑세기의 정교함에는 두손 두발을 다 들어 버렸다. 

현존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역사>소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박창화는 1930년대에 이미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던, 김유신의 첫번째 부인과 그들의 후손을 정확히 구분해서 소설을 쓰고 있다. 지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는 빈틈을 찾아보기 힘들정도의 <역사소설>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은 곳곳에 치명적인 오류가 보인다. 지금까지 36회를 진행하는 동안, 발견된 오류만 100여개는 넘을 것이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오류 리스트를 작성할 것이다.

진정한 승리자는 미실? 서현? 설원랑?

위의 계보도를 보면 보종의 첫번째 부인이 현강이다. 현강은 문노와 윤중(거칠부/?)의 자식이다. 그러니 보종의 장인이 문노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은 두번에 걸쳐 영모와의 혼사를 성사시키려 노력한다. 만약, 미실이 유신을 자신의 집안사람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면 미실은 신라를 접수 할 수 있을까? 사실 드라마 선덕여왕은 <덕만>을 주인공으로 신라의 왕이 되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미실 집안이 어떻게 신라의 왕가를 접수해 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듯 하다.

하지만,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영모를 유신에 소개 시켜준 측은 미실이 아니다. 이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9/22 - [역사이야기] -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하는 미실의 비밀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당연히, 가시기 전에 추천하는 것을 잊지 마시라. 시청률이 배우에게 연기하는 힘이 되지만, 글쓴이에게는 추천이 힘이 된다.)

실제로, 덕만은 왕이 되어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후사를 잇지 못했다. 그러니 절반의 성공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실은 자신의 후손들이 부터 신라를 접수하는데 성공 한다. 사실은 부계로 따진다면 보종, 하종의 승리이고, 보종 아버지인 설원랑의 인간승리이다.


하지만, 진정한 승리자는 김서현 가문이다. 김서현의 딸인 문희는 춘추와 결혼해서 문무를 낳고, 춘추/문희의 후손들이 대대로 신라의 왕이 된다. 물론, 가끔 삐딱선을 타는 왕이 나오기는 하지만 말이다.

 
배우에겐 시청율이, 글쓴이에게는 추천이 힘이 됩니다. 비로그인 추천가능 숫자크릭 ^__^;;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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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나가던 객 2009.09.23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선덕여왕 닥본사 중인데 갓쉰동님 글 넘 잼있게 보고갑니다. 선덕여왕보다 더 잼있네요~.^^

  3. 바씨 2009.09.23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잘봤습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계보도로 정확하게 파악하게 되어어요.
    좋은 하루 되세요.~

  4. 신버미 2009.09.23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었습니다.
    아 그리고 유신과 결혼하는 춘추의 딸의 이름은 지소입니다.
    그리고 보량궁주가 바람기 때문에 보로전군이 왕이 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승만부인이 보량이 아들을 낳자 질투하여 사가로 물러나 살다 양도와 결혼합니다.
    바람기가 많은 진평왕 후궁은 태양공주(진평왕 고모 ㅡㅡ;;)
    진평왕의 아들인 태원과 호원을 낳았지만 태양공주의 바람기 때문에 진평왕의 자식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호원의 후손인 진공과 신공이 반란(흠돌의 난)에 가담하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김서현의 딸인 문명왕후가 문무왕을 낳아서 유신파의 승리였지만 나중에 흠돌의 난으로
    유신의 가야파계열이 몰락하는 계기를 갖고 옵니다.
    참고로 흠돌은 유신과 문명왕후의 조카입니다.
    신라 왕계는 진지왕계인 무열계가 왕비계열은 진골정통이 승리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3 1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량은 바람기도 있었지요. 태양도 마찬가지 이지만, 다분히 승만이 보량과 태양을 축출하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지만요..
      지조라고 합니다..지소라고도 하공.. 대부분 지조부인이라고 표현하지요.. 지소태후(진흥모후)와 헛갈리지 않도록..

    • BlogIcon 갓쉰동 2009.09.23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른 글도 봐주실레요..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뎅.. 역사카테고리의 글입니다... ^___^

      님이 지적하신 글에 많이 공감을 하는 글들을 발견하시게 될겁니당..

  5. 어이없음 2009.09.23 1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삽질을 하시지요~

  6. BlogIcon 보안세상 2009.09.23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을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바쁘다 보니까 보지 못하고 있네요

    맨날 다음 뷰에올라온 포스팅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랠 뿐 ㅠ

  7. 상록수 2009.09.23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족보를 볼 때마다 머리 아프지만...ㅋㅋ
    갓쉰동님 글은 언제나 흥미진진 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8. 2009.09.23 1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3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들켜버렸다. 글을 블로그 에디터에서 바로 그냥 막씁니당.. ㅠ.ㅠ.
      대화를 하듯 쓰다보니 그런 면이 있다고 봅니당..

      습관화 되어서 고치기가 힘드네용.. 한마디로 채팅하듯 글을 쓰거든요..

      충분히 지적가능한 내용이지요.. ^____^

  9. ahnkbae 2009.09.23 16: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휴~~뭘 머리 아프게 그런 걸 따지면서 보나요? 재미없게스리~~어차피 드라마 각본은 역사적으로 딱 맞지 않는 부분인데....드라마는 단지 드라마로써 즐기면서 보자구요....

  10. 노재운 2009.09.23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의 구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많이 유익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11. BlogIcon skagns 2009.09.23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언제봐도 복잡한 가계도입니다. ㅋㅋㅋ

  12. BlogIcon 감자꿈 2009.09.23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 님 덕분에 역사 공부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늘 감사드려요. *^^*

  13. 2009.09.23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4. 갓쉰동님 광팬 2009.09.23 2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 말씀대로 진정한 승자는 김서현의 가문이네요. 그나저나 선덕여왕 요즘 재미가 떨어져 간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히려 덕만이 공주가 되기 전이 재미나고 다음주가 궁금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띄엄띄엄 봅니다. 흡입력 부족한 덕만공주를 보면 배우가 잘못인지 극본이 잘못인지 헷갈리지만(제가 보기엔 둘 다...) 들마 보면 점점 삼천포로 빠지는 기분이 들어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24 0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고려의 최종승자는 신라계이듯이..

      저는 잼있던뎅.. 재미 없어 하는 분들이 좀 늘어나긴 하나봐용.. 늘어진다공.. ㅋㅋ

    • nightbird 2009.09.24 0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요원이 너무 흡입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참 매가리없이 한다는 느낌...
      주인공 매력이 없으니 조연들로 버티는 형세랄까.
      늘 아쉬운 부분이지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24 0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점차 중심을 잡아가고 있는것 같던데용.. 선덕여왕은 덕만의 성장드라마잖아요.. 그러니 성장하는 과정으로 봅니당.. 유신동.. 미실같은 경우는 이미 성장이 끝나고 쇠퇴기 정도..

  15. 누리 2009.09.24 0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재밌게 공부를 하고 갑니다~^^
    선덕여왕을 보면서 가끔 이해되지가 않는 것들이 있는데...
    갓쉰동님 덕분에 알게돼네요~ㅎㅎ
    갓쉰동님의 노고에 감동(?)하여 추천을 꾹 누르고 갑니다~

  16. joomin11 2009.09.24 0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내용은 사학을 전공하거나 역사에 관심이 많으면 알수 있는 내용입니다.드라마 내용에대한 이해도를위한 글은 좋지만 물론 필사본 화랑세기가 정교한 면이 없지않아있지요. 그러나 단순히 김유신 가문의 이야기만 가지고는 진위를 논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부 기존의 기록들을 뛰어넘는 내용이 있지만 그에 반해 화랑들에 대한 일부 기록에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적절히 조합한 듯한 내용도 많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문제는 박창화씨가 고대사가 펌훼되던 일제시기에 지어졌다는 점과 일부 내용에서 근대적 어투가 발견되는 점등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학과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요즘 서울대를 비롯한 일부 학계에 뉴라이트를 비롯한 이단학계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님같은 분들이 지식을 얻는 대부분의 내용들은 신뢰못하는 사학자들의 연구자료랍니다. 그리고 역사를 전공한 자와 재야고수간의 기본적인 지식의 깊이는 차이가 없지만 심층적인 부분에서는 원전을 더 많이 접하고 역사만을 연구한 사학자들을 무시할수는 없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언제 기회가 되신다면 성균관대 동아시아 학술원이나 고대 동북아 문제연구소에 방문해 주시지요.
    님과같은 재야 고수들과의 역사를 위한 토른을 한번 하고싶어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
    이번내용은 내용의 질면에서 충분히 연구하고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서 ㅊㅊ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4 0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사학을 전공하거나 역사에 관심이 많으면 알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신뢰하지 않는다고 무시한다고 생각하지 마셈..

      그러니 신뢰하지 못하는 사학자들이 연구자료이기 때문에 무시했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제가 아마도 화랑세기에 대한 언급은 제글 수십군데에 하고 있을 겁니다.. 물론, 님처럼 화랑세기 너무 정교해서 의심스럽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전대(704년즈음)기록이 후대의 기록을 믹스한듯한 모양은 선후관계가 뒤바뀌었다고 보거든요..

      드라마 원작자에 향한 비판은 자신의 사료로 인정한 <화랑세기>조차도 비틀어 버린점입니다.

      퓨전환타지 사극이라고 말을 하면 그건 정말 원작자를 무시하는 발언 같은데요.. 스스로 신라를 알려주겠다는 사람들 보고, 니들은 극이나 만들어 돈이나 벌어라 한다면.. 욕이지요..

      저는 상대가 주장하는 바에 맞추어 비판할 따름입니다.. 제가 화랑세기를 인용한것도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인용하고 있기때문에 화랑세기를 인용해서 사료비판을 하는 거지요.. 만약,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았다면, 선덕여왕에 관한 글에서 저는 화랑세기 인용을 한 줄도 안했을 겁니다.

      학문이 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거지요.. 믿어주어야 하지요? 믿느나면 그냥 수용하면 될텐데 말이지요.. 전공자 믿음이 안가요.. 기존에 내 놓은 연구자료들을 보면.. 이렇게 말하면 모든 연구자를 폄훼하는 것 처럼 보이시겠지만, 이는 오독입니다. 잘못된 사항을 지적하면 전체를 지적한 것 처럼 보이겠지만, 잘못된 부분만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확대해석을 금물입니다...

      님의 신뢰못하는 사학자들의 연구자료라는 말씀에.. 좀 그랫거든요.. 신뢰를 하지 않으니 인용이나 언급도 말라는 뜻처럼 말입니다.

      암튼 이번 내용은 질적으로 연구해볼 대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허접글인데요..
      언제나 기회가 되겠지요.. 재야고수는 넘치고 넘치지요.. 저같은게 무슨 재야고수축에나 끼겠씁니까? 정말 그렇다면 재야고수들 다 죽어야 할겁니당. ㅋㅋ..그저 관심정도 밖에 없습니당..

  17. joomin11 2009.09.24 0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선덕여왕의 경우 태왕사신기 보다는 약간 덜한 퓨전사극정도라고 생각하고 보면 괜찮을 듯 합니다.
    사실 화랑세기가 진위가 가려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인용했다는 것 자체가 사기죠.

  18. joomin11 2009.09.24 0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살 역사드라마의 절반 정도는 재미를 위해 역사를 장난감삼아 갖고노는 것에 불과하죠. 약간 덜한 천추태후부터 봐주기힘든 자명고 선덕여왕까지 사실 저도 배우만아니면 선덕여왕 보지않습니다.
    그리고 님의 글들 중 대부분의 글에는 공감을 표합니다. 그러나 가끔 자만하시는 부분이 있으시더군요.
    대한민국에 역사를 제대로아는 사람은 1%도 되지않는다 등의 내용의 글들 말입니다.
    물론 님이 역사전공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역사에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하시고 비판하시는 자세는 좋지만 사실 님처럼 블로그에 대놓고 지식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역사적 안목이 뛰어나고 지식이 풍부하신 분들도 많고 나아가 역사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답니다. 앞으로는 글쓰실때 조금 겸손하셨으면 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4 0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주민님..역사로 밥을 빌어먹는 사람도 많은 것은 알고 있어요.. 전공도 작가 영역이 있는 겁니당..
      1%도 되지 않는다고 하면,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가요? 꼭 역사를 50%이상 알필요도 없어용.. 바쁜뎅.. 1%도 모르는게 정상입니다.. 그래야 역사로 밥을 빌어먹는 직종도 생기지 않겠어요? 남들 다아느네 그런 직업을 선택한다는건 문제가 심각하지요.. 다른 직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저의 지식을 들어냈다고 보지 않습니다. 밑에 글에도 언급했지만,.. 충분히 겸손하다고 생각하는데 님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봅니당.

      님 제글 몇개나 봤는지 궁금해요.. 정말로...

  19. rrrr 2009.09.28 1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분 나쁘네요. 덕만은 왕이 되어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후사를 잇지 못했다. 그러니 절반의 성공에도 미치지 못한다.

    라뇨? 선덕여왕 무시합니까?

    • BlogIcon 갓쉰동 2009.09.28 1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 기분이 나쁘셈.. 사실을 말함 기분이 나쁨니까.. 미완성을 미완성이라고 하지,, 그럼 성공했다고 할까요?

  20. 별별별별 2009.10.07 2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읽고 있는 박순교님이 지으신 김춘추 외교의 승부사 이 책에는 고타소가 문희의 딸로 나와있습니다.옛날에 불에 기울고 무너질 뻔한 아이' 라는 뜻으로 고타소(古陀炤) 이렇게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08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만약, 문희는 고타소의 어미가 될수 없지용.. 연령대가 잘 맞지 않음..
      문희와 춘추는 627년에 만나서 이즘에 법민을 낳고, 629년에 인문을 낳습니당.. 고타소는 그렇다면 630년생이후가 되어야 한다는 뜻인뎅..

      그렇게 되면 고타소는 644년에 15살이됩니당.. 물론, 고타소가 품석에게 이때 갈수도 있지만, 문제는 품석의 직위가 성주급인뎅 3~4등위에 해당합니다. 이정도 될려면 적어도 40대가 되어야 합니당. 물론, 유신의 사례가 있으니 꼭 안된다고 생각할수는 없겠지만요..

  21.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드라마 선덕여왕은 춘추(유승호)의 아버지를 <화랑세기>의 기록에 따라 <용수>라고 설정을 하고, 용수와 용춘를 서로 다른 인물로 설정하였다. 용수가 형이되고, 용춘이 동생이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용수를 미실의 계략으로 춘추가 태어나기 전에 죽은 것으로 설정하였고, 춘추는 유복자로 태어 났다고 하였다. 하지만,  위 설정이 얼마나 역사의 기록과 부합하며, 원작자가 인용한 <화랑세기>와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지 않는가?

일단,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살펴보면, 기존 역사학계의 통설과는 다르게 용수와 용춘은 동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춘추의 아버지로 기록된, 용수.용춘을 동일인으로 기록하고 있을까? 아니면 다른 이로 기록하고 있을까? 겉보기로는 용수.용춘을 동일인으로 기록하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통설은 용수(용춘) 또는 용춘(용수)로 기록하고 있고, 이들을 동일인으로 취급하고 있다. 하지만, 좀더 신경을 쓰고 본다면, 용수와 용춘은 별도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용수와 용춘의 기록들을 다 뽑아 보자. 그럼 확실히 이들이 동일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622년 진평 44년(622) 봄 정월에 왕이 몸소 황룡사에 거동하였다. 2월에 이찬 용수(龍樹)를 내성 사신(內省私臣)으로 삼았다. - 삼국사기 진평왕 44년

629년 51년(629) 가을 8월에 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였다. - 삼국사기 진평왕 51년

635년 선덕 4년 10월에 이찬 수품(水品)과 용수(龍樹) <또는 용춘(龍春)이라고도 하였다.>를 보내 주·현을 두루 돌며 위문하였다.- 삼국사기 선덕왕 4년

정관(貞觀) 17년 계묘(癸卯; 643) 3월 16일에 자장 돌아와 탑을 세워야한다고 선덕왕에 보고, 이후 이간(伊干) 용춘(龍春; 혹은 용수龍樹)이 그 역사를 주관하는데 거느리고 일한 소장(小匠)들은 200 명이나 되었다. - 삼국유사 황룡사 9층 목탑

654년 3월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또는 용수(龍樹)라고도 하였다.>의 아들이다. - 삼국사기 29대 춘추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 삼국유사 29대 춘추

654년 태종 원년(654) 여름 4월에 왕의 죽은 아버지를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추봉(追封)하고 어머니를 문정태후(文貞太后)로 삼았다 - 삼국사기 춘추 1년 4월

삼국사기는 춘추의 아비로 용춘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고, 삼국유사는 용수를 춘추의 아비라고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로다르게 말을 하니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용수와 용춘을 철저히 분리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용수를 별도로 한번 언급하고 있고, 용춘을 한번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 이들은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통설이 용춘(용수) 또는 용수(용춘)으로 이들을 같은 동일인으로 취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용춘(金龍春)
생몰년 미상. 신라시대 왕족. 일명 용수(龍樹). 진지왕의 아들이며 태종무열왕의 아버지. 어머니는 지도부인(知道夫人) 박씨이고, 부인은 진평왕의 딸인 천명부인(天明夫人) 김씨이다.
아버지 진지왕의 신분은 성골이나, 왕위에 재위한 지 4년 만인 579년에 폐위당하였으며, 용춘의 아들인 김춘추의 신분은 진골로 되어 있다.


통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는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기사로 공주시절에 엮어준것이 아니고, 선덕왕이 덕만공주 시절에 문희와 춘추의 매파가 되었다고 증명하였다. 또한, 모란꽃과 모란씨가 언제 들어온지 아무도 몰라서 하지 않은 이야기를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을 토대로 2009/07/23 -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증명하였다.

위의 용수와 용춘의 기록들을 시간순으로 직위와 이름순으로 도표를 만들어 보았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기록된 용수, 용춘

 

용수가 등장한 때는 삼국사기에 622년 이찬으로 내성사신이 되었다는 기록이다. 용춘은 삼국사기에 629년 8월 고구려 낭비성을 공격할때 파진찬(4급) 대장군으로 참전하는 기록이다.

삼국사기는 용수와 용춘을 별개의 인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635년 1월 주.군을 순시하는 자가 용수인지 용춘인지를 알 수 없다고 하고 있으며, 용춘이 춘추의 아비인것 같은데 용수라고 하는 기록도 있다는 것을 남겨 두었다.


용수는 이찬(2등)급이고 용춘은 629년에 파진찬(4등)위에 해당한다고 기록한 것이다. 용수와 용춘이 동일 인물이라면 2 등위 이찬이 7년 6개월 후에 4등위 파진찬이 되었다는 뜻인데 이는 국무총리가 장군이 되어서 전장에 참여하는 꼴이 된다. 또는 장군이 계급이 강등되어 일개 사병으로 참전하는 꼴이다. 이순신 처럼 백의종군을 할려면 충분히 그만한 기록이 있어야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용수를 602~3년 즈음, 미실의 계략으로 용수가 죽은 것으로 설정했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아무리 빨리 죽었다고 해도, 622년까지 용수는 생존하고 있었다. 또한, 천명은 춘추가 왕이 될때에도 굳건히 살아 있었다.

어찌되었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용수와 용춘을 철저히 분리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기존 통설은 서로 다른 자를 하나의 인물로 만들어 괴물을 만들어 버린것이다. 

<화랑세기>는 용춘이 어떻게 629년 낭비성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기록이 있다. 마야의 뒤를 이어 황후가 된 손승만이 아들을 낳았지만, 일찍 죽는 일이 생겼다. 하지만, 승만황후는 왕자가 일찍 죽은 이유가 용수.용춘 형제라고 의심을 한다. 그리고 용수.용춘을 지방으로 축출해 버린다. 이후 용춘은 고구려 낭비성 원정군에 합류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승만왕후도 무시하지 못할 권력을 쥐고 서라벌로 금의환향한다.

만약,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704년경 김대문이 저작한 것이 아니라면, 박창화는 현재 괴물이된 키메라 용수.춘을 만든 이들보다 역사적 안목과 역량이 몇수는 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춘추의 아버지는 누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하나하나 살펴본다면 위에서 언급한것 처럼 용수와 용춘은 철저히 다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단지, 춘추의 아버지가 용수인가? 용춘인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화랑세기에는 용수의 나이와 용춘의 생몰년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춘추의 아버지는 용춘의 형인 용수이며, 용수가 죽고나서 형수인 천명을 아내로 맞이하고, 춘추를 자식으로 입양한다.

생부는 용수이지만, 어머니 천명이 작은 아버지 용춘에 시집을 가서, 자동으로 춘추는 법적으로 용춘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화랑세기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서 춘추의 아버지를 용수라고 하는 것도 당연하고, 용춘이라고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한다.

용춘의 아들이 된 춘추

최근 총리지명을 받은 정운찬은 형제가 있었다. 하지만, 아들이 없는 큰아버지의 아들로 입적을 한다. 그래서 정운찬은 독자로 군대를 면제받게 된다. 또한, 정운찬의 동생도 독자로 군대를 면제 받게 된다. 예전에 주로 군대를 면제받는 방법으로 많이 사용하던 편법이다.

물론, 정운찬이 정말 군대를 면제받기 위해서 <양자입적>이라는 편법을 동원했는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운찬이 일반적으로 20대 초반이면 다 가는 군대를 가지 않고, 뒤 늦게 큰아버지의 아들로 호적을 옮기고, 더 나아가 나이가 30세가 넘어서 군대를 면제 받는 것으로 보았을 때, 정운찬은 국방의 의무를 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는 것을 쉬이 알수는 있다.
이런 자들이 나라를 걱정하고, 공직에 올라가 세금을 낭비하며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발상은 어패가 있다. 단순히 자신의 부귀와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서 <국가봉사>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국가에 봉사할 생각이 있다면, 국무총리직을 사양하는게 정운찬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국가에 대한 봉사이다.

어찌되었던, 
양자를 들여서 가문의 종통을 잇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  아버지에게는 삼형제가 있었는데, 가장 큰 아버지는 딸을 하나만, 낳고 일찍 돌아 가셨다. 두번째 큰아버지는 외아들을 두었다. 그런데, 막내인 아버지는 아들이 둘이 있었다. 그래서 막내인 아버지는 큰아들을 자신의 큰형님의 양자로 입적시키고, 족보도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큰아버지가 죽고 한참후에 막내인 아버지는 장가를 가서 아들 둘을 낳았다. 그러니 입양된 큰아버지의 아들은 생물학적으로는 도저히 큰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없다. 기록이 제일 큰아버지의 기록만 남았다면, 입양된 큰아버지의 아들은 생물학적으로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아들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이 불신되는 이유도 초기기록이 불분명한 이유도 있지만, 법통을 이은 아들과 생물학적인 부자관계 혼동해서 읽다보면 그런 불신하는 경우가 많다. 생물학적 아버지만을 찾다보면 역사의 기록을 불신할 수 밖에 없어져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이산>을 봐서 알겠지만, 정조(이서진)의 아버지는 사도태자라고 한다. 하지만, 정조가 왕이 되기전까지는 생부는 사도일지 모르지만, 종통과 법통은 사도의 형에게 있었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면서, 자신의 생부도 사도이고, 종통과 법통도 사도에게 있다고 천명한다.

천명만이 알 수 있는 춘추의 생부. 그러나


삼국사기의 기록을 토대로 살펴본다면, 춘추는 603년 생이다.

622년 용수는 이찬(2등위)이였다. 그러니 나이가 적지 않았다. 629년 용춘은 파진찬으로 4등위에 해당한다. 이들 용수. 용춘 형제는 나이 차이가 있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용춘은 576년생 즈음이다. 용춘이 춘추를 낳았다면, 28살에 춘추를 낳은 것이다. 용수가 낳았다면 이보다는 많은 30대에 낳은 것이 된다.

통설로 천명은 15세 전후에 춘추를 낳았다고 보는게 일반적이다. 진평왕13세가 되는 579년에 태어 났다고 해도 천명은 602년에 24살이다.

용수. 용춘이 당시의 신라 사회의 통념으로 보았을때  굉장히 늦은 나이에 <춘추>를 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용수.용춘 누가 되었던 상관없이 용수. 용춘은 천명과 첫 결혼이 아님을 쉬이 알 수 있다. 화랑세기는 용수.용춘이 이미 결혼을 하고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기도 하다.


어찌되었던 춘추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물론, 기록을 남겼지만, 망실되었을 수도 있고, 정확히 천명이 누구와 관계를 하여 춘추를 낳았는지 당대부터 설왕설래 하였을 수도 있다.


신화나 설화를 보더라도, 어머니는 알아도 아버지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몽의 아버지는 해모수라고 하지만, 알길이 없다. 단지 주몽의 어머니는 유화부인임을 알 수 있다. 예수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어머니인 마리아이다.

그러니 춘추의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춘추의 어머니는 천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를 화랑세기는 춘추의 생부는 용수이고, 양부가 용춘이다. 용춘이 양부가 된 이유는 진평왕이 용춘으로 하여금 천명을 아내로 삼아서 왕위를 잇게 하기 위해서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빠져 나갈 구멍을 하나 만들어 놓았다. 낮엔 용수의 처인 천명이 밤에는 용춘의 처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슬쩍 흘리고 있다. 이쯤되면 천명자신도 춘추의 진짜 아버지가 용수인지 용춘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하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춘추의 아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그렇지만, 춘추는 나이 많은 용수보다는 상대적으로 젊고, 천명과 관계를 많이 가진 용춘이 진짜 아버지 였을 것이다. 춘추와 용춘의 이름에서도 <춘>자를 쓰는 용춘이 생물학적인 아버지의 냄새가 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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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서은영 2009.09.21 15: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궁금합니다. 김춘추의 아버지가 누구인지요... 가르쳐 주세요ㅗ.~~!

    선덕여왕 재미 있게 보고 있어요....

  3. BlogIcon 불탄 2009.09.21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가 내렸던 월요일이에요.
    지금도 잠시 멈추고는 있지만 언제 쏟아질 지 모를 분위기를 담고 있네요.
    남은 오후시간 마무리 잘하시고, 이번주는 더욱 활기차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4. 2009.09.21 1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세기는 다르지만 이 드라마는 선덕여왕 소설로 만든 드라마인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찾아서 봐봤자 어차피 소용없는짓..

    • BlogIcon 갓쉰동 2009.09.22 0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설의 모본이 화랑세기이고 삼국유사와 삼국사이지요.. 그러니 문제라고 하는 겁니당.. 소설은 그안에서 있음직한 이야기지요..

  5. BlogIcon 감사하리 2009.09.21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명공주는 진평왕의 첫째딸이다 / 용춘공의 용수전공과 결혼했는데 / 천명공주가 사랑한 사람은 용충공이다 / 용수전공이 죽으면서 천명공주와 용수공의 아들 춘추공을 부탁하여 결합하였다 용춘공은 뒤에 선덕여왕이 등극하자 용춘공을 올아비로 선택하엿는데 용춘공은 벼슬에 뜻이 없어 말하기를 아들이 없ㅎ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물러가서 살았다 이에 선덕여왕은 을제공을 총사로 임명하였다 / 이것이 화랑세기의 내용이다

  6. 2009.09.21 2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잘보았습니다 김춘추 아버지가 누구인지 궁굼합니다 글로보면 용수아들갓고 용춘은 양아버지같은데 확신응없습니다 좋은자료주셔서 감사합니다 늘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22 0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로 보면 용수인지 용춘인지 모른다이고, 문제가되는 화랑세기는 용수라고 단정을 하지만,
      용춘이 될수도 있다고 기술하고있지요.

      저의 생각은 용춘이지 않을까합니다.. 여러 정황들이..

  7. BlogIcon 둥둥 2009.09.21 2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읽었던 책에는 용춘이라는 인물과 천명, 덕만 공주가 삼각관계로 나오더군요
    천명은 용수와 결혼하고도 용춘과 정을 통해 춘추를 낳게 되구요..
    용춘과 용수라는 인물들도 진지왕의 자식들로 왕권에 도전한 인물들로 나오던데
    드라마에서는 비중이 거의 없어서 조금은 아쉬워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22 0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천명과 덕만이 삼각관계로 설정한 이유는 천명과 덕만이 나이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통설에 따른것같습니당. 용수와 용춘이 다른 인물이라고 한 것은 화랑세기를 따른것 같구요.

      용수와 용춘이 왕위를 도전할 만한 역량이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당.. 복위하기 위한 생각은있었을 것 같기는 합니당.

  8. 갓쉰동님 광팬 2009.09.21 2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것들을 보면 신라는 다른 삼국보다는 모계의 냄새가 강한 것 같네요.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이 군주가 되고 아들이 아닌 사위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흔한 일이었던 것, 화랑제도 초기에 화랑의 우두머리가 여성이었던 점, 미실같은 거물 여성정치가 비교적 많이 등장했던 것을 보면 그렇네요. 뭐... 오늘도 글 잘봤습니다^^

  9. joomin11 2009.09.22 0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이 정말 역사에대해 얼마나 전문가적인 지식을 갖추셨고 사학계에 몸을 담고 계신지 아니면 그냥 역사연구를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고대사는 학자들이나 사학과 조차도 파헤치기 가장 어렵고 어물쩍넘어가는 부분이지요.. 우선 화랑세기의 위서논란과같이 자료가 부족한경우가 많을뿐더러 그나마 정통한 서적인 삼국사기는 신라위주로 애곡이 되어있고 삼국유사가 야사등을 잘 결합하고 여러서적을 망라한 부분인 만큼 가치는 있으나 앞의 서적들이 부족한 면이 많고 화랑세기의 경우 대조조차가 불가하니 아주 완벽한 서적이라고는 할수 없지요. 물론 고대사는 기존 사학계의 입장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의견 피력 뿐만이 아닌 블로거를 통해서 본인의 의견을 검증도 받지않고 기존의 사학계를 비판하시는 것은 옳지않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고대사는 누가 옳다고 할수없거든요. 부디 사학계의 이단아인 이덕일 교수같은 고대사를 이용한 사기꾼은 되지 마시길 그래도 충분히 논의될수있는 의견이고 선덕여왕드라마의 왜곡을 콕콕 짚어주시는 부분은 추천 꾹 드립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2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료가 부족하니 있는 부족한 자료라도 재대로 쓰자는 글입니당.. ㅋㅋ

      없으니 망가트려야 한다가 아니고,, 없는 자료이니 소중하게 여기자는 거지요..

      그리고 저 이덕일 싫어해요.. ㅋㅋ

  10. 2009.09.22 0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2009.09.22 0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2. 두번째입니다. 2009.09.23 1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의 글에 글을 남기네요.
    님은 그나마 남아있는 삼국 역사서를 들고 같이 비교를 하면서
    역사를 꿰뚫어보시려고 하네요.
    정말 재밌고, 이성적인 관찰법이라고 생각됩니다.

    단지 재미로 이렇게 비교해가면서 과거를 추리해보는 것에는 적극찬성입니다.
    하지만, 역시 삼국시대가 아닌 훨씬 뒤 세대에 만들어진 책들로
    과거를 정확하게 추론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거 같습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후대에 쓰여진 역사서일수록
    저자의 의도가 다분히 섞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후대에서는 큰 줄거리의 역사는 이해하되,
    그 역사서에 얽혀 소소한 이론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경계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는 선덕여왕 드라마를 보면서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복식이 왜 당나라 복장이냐?
    한글을 쓰지 않고 중국한자를 쓴다.
    결국 한국은 중국 짝퉁에 지나지 않는다.

    이게 중국인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역사를 찢어발기고 부끄러워하는 동안,
    타국에서는 우리의 역사를 비웃고 멸시합니다.

    믿지 못할 삼국 역사서로 우리드라마 우리 역사를 비웃기보다는
    오히려, 저 드라마로
    우리나라를 발아래로 생각하는 나라들에게
    우리나라 인물과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초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화강국이야말로 총알없이 다른 나라를 포섭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니까요.
    님의 정교한 글들을 보면서
    님의 주제가 좀더 미래를 위해 발전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내봅니다.^^

    또한, 저는 이 드라마가 단지 신라만을 띄우기 위한 드라마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삼한일통.
    현대에 있어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가 또하나의 일통을 이루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강대해져갑니다.
    미국은 오히려 힘이 위축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불황중이지만, 부자가 망해도 삼년은 간다고 합니다.
    그 활화산 한가운데 위치한 분단국가 한국...남한이던 북한이던
    일통....통일이야말로 살길이다, 라는 게 지금 이 드라마의 속내입니다.

    저는 그렇게 봤습니다.

    현대에 살기에, 드라마는 옛 옷을 입고 과거의 풍경을 보여주지만,
    결국 현대에서 만들기에
    우리의 차가운 현실을 반영해줍니다.

    님처럼 이성적이고 역량있는 역사가라면, 좀 더 큰 틀에서 드라마를 평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글을 남겨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3 1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작자의 의도는 있습니당. 그 안에서 합리성을 찾는 거지요.. 역사학중에서 문헌사학의 그런것 아니겠어용..

      믿지 못할 역사라니 어떤것을 말하는지요?
      비웃는다고 없는사실을 만들어 사극으로 넣어야 할까요?

      그렇다면 한글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삼국시대에..
      당복식은 잘못된거지요.. 사실.. 고구려식 복장이면 모를깡..

      진덕왕 3년이전에 당복식은 의복의 고증을 못한거지요..

      문화의 우수성은 있는 그대로를 바로 알리는 겁니당.. 남에게 역사왜곡하고 동북공정한다고 할것이 아니고 우리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극은 현대극입니다. 극단적으로 말을 하면..
      현실을 역사라는 거울로 투영해서 보여주는 것이거든요..

      재글 대부분이 사극의 원작을 비판하고, 사극을 비판하는 것 같지만 전혀 아닙니다. 사극을 비판하는게 아니고,, 원작자의 허구에 찬 거짓말을 비판하는데 할양되어 있을 뿐만 아니고, 현실과 세태 비판이니 현실과 잘 쾌를 같이해서 보면 더 사극이 잼있다는 내용이 주류입니당..

      자주오셔서 글 많이 읽어 주시고 추천도 많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___^

      존댓글 ㄳ합니다.. ^____^

  13. Yuna 2009.10.13 1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글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흥미롭게 역사공부 잘하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14. BlogIcon 김용재 2009.10.14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시원한 분석평입니다.

    정말 궁금했었는데 말이죠. ㅎㅎ

    드라마에서도 용춘공과 춘추가 별로 부자처럼 붙어있지도 않은 것이

    아예 안친한 것처럼 신하와 왕족의 관계로만 설정되어 보이는 것이 이상했었습니다. ^^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

  15. 프러스 2009.10.16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재미있다고 표현하는게 맞는건지 모르겠는데..
    재미있네요..

  16.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7.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los angeles 2012.11.01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8.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uk 2012.11.06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니면 다른 이로 기록하고 있을까? 겉보기로는 용수.용춘을 동일인으로 기록하

  19.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20. BlogIcon above ground electric dog fence 2012.12.22 1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 기능을 갖춘 스크린 캡쳐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프로그램 없이도 웹페이지를 가장 빠르

  21. BlogIcon best food survival kits 2013.01.02 16: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들을 동일인으로 취급하고 있다. 하지만, 좀더 신경을 쓰고 본다면, 용수와 용춘은 별도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춘추(유승호)의 아버지를 <화랑세기>의 기록에 따라 <용수>라고 설정을 하고, 용수와 용춘를 서로 다른 인물로 설정하였다. 용수가 형이되고, 용춘이 동생이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용수를 미실의 계략으로 춘추가 태어나기 전에 죽은 것으로 설정하였고, 춘추는 유복자로 태어 났다고 하였다. 하지만,  위 설정이 얼마나 역사의 기록과 부합하며, 원작자가 인용한 <화랑세기>와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지 않는가?

일단,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살펴보면, 기존 역사학계의 통설과는 다르게 용수와 용춘은 동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춘추의 아버지로 기록된, 용수.용춘을 동일인으로 기록하고 있을까? 아니면 다른 이로 기록하고 있을까? 겉보기로는 용수.용춘을 동일인으로 기록하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통설은 용수(용춘) 또는 용춘(용수)로 기록하고 있고, 이들을 동일인으로 취급하고 있다. 하지만, 좀더 신경을 쓰고 본다면, 용수와 용춘은 별도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용수와 용춘의 기록들을 다 뽑아 보자. 그럼 확실히 이들이 동일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622년 진평 44년(622) 봄 정월에 왕이 몸소 황룡사에 거동하였다. 2월에 이찬 용수(龍樹)를 내성 사신(內省私臣)으로 삼았다. - 삼국사기 진평왕 44년

629년 51년(629) 가을 8월에 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였다. - 삼국사기 진평왕 51년

635년 선덕 4년 10월에 이찬 수품(水品)과 용수(龍樹) <또는 용춘(龍春)이라고도 하였다.>를 보내 주·현을 두루 돌며 위문하였다.- 삼국사기 선덕왕 4년

정관(貞觀) 17년 계묘(癸卯; 643) 3월 16일에 자장 돌아와 탑을 세워야한다고 선덕왕에 보고, 이후 이간(伊干) 용춘(龍春; 혹은 용수龍樹)이 그 역사를 주관하는데 거느리고 일한 소장(小匠)들은 200 명이나 되었다. - 삼국유사 황룡사 9층 목탑

654년 3월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또는 용수(龍樹)라고도 하였다.>의 아들이다. - 삼국사기 29대 춘추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 삼국유사 29대 춘추

654년 태종 원년(654) 여름 4월에 왕의 죽은 아버지를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추봉(追封)하고 어머니를 문정태후(文貞太后)로 삼았다 - 삼국사기 춘추 1년 4월

삼국사기는 춘추의 아비로 용춘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고, 삼국유사는 용수를 춘추의 아비라고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로다르게 말을 하니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용수와 용춘을 철저히 분리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용수를 별도로 한번 언급하고 있고, 용춘을 한번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 이들은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통설이 용춘(용수) 또는 용수(용춘)으로 이들을 같은 동일인으로 취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용춘(金龍春)
생몰년 미상. 신라시대 왕족. 일명 용수(龍樹). 진지왕의 아들이며 태종무열왕의 아버지. 어머니는 지도부인(知道夫人) 박씨이고, 부인은 진평왕의 딸인 천명부인(天明夫人) 김씨이다.
아버지 진지왕의 신분은 성골이나, 왕위에 재위한 지 4년 만인 579년에 폐위당하였으며, 용춘의 아들인 김춘추의 신분은 진골로 되어 있다.


통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는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기사로 공주시절에 엮어준것이 아니고, 선덕왕이 덕만공주 시절에 문희와 춘추의 매파가 되었다고 증명하였다. 또한, 모란꽃과 모란씨가 언제 들어온지 아무도 몰라서 하지 않은 이야기를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을 토대로 2009/07/23 -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증명하였다.

위의 용수와 용춘의 기록들을 시간순으로 직위와 이름순으로 도표를 만들어 보았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기록된 용수, 용춘

 

용수가 등장한 때는 삼국사기에 622년 이찬으로 내성사신이 되었다는 기록이다. 용춘은 삼국사기에 629년 8월 고구려 낭비성을 공격할때 파진찬(4급) 대장군으로 참전하는 기록이다.

삼국사기는 용수와 용춘을 별개의 인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635년 1월 주.군을 순시하는 자가 용수인지 용춘인지를 알 수 없다고 하고 있으며, 용춘이 춘추의 아비인것 같은데 용수라고 하는 기록도 있다는 것을 남겨 두었다.


용수는 이찬(2등)급이고 용춘은 629년에 파진찬(4등)위에 해당한다고 기록한 것이다. 용수와 용춘이 동일 인물이라면 2 등위 이찬이 7년 6개월 후에 4등위 파진찬이 되었다는 뜻인데 이는 국무총리가 장군이 되어서 전장에 참여하는 꼴이 된다. 또는 장군이 계급이 강등되어 일개 사병으로 참전하는 꼴이다. 이순신 처럼 백의종군을 할려면 충분히 그만한 기록이 있어야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용수를 602~3년 즈음, 미실의 계략으로 용수가 죽은 것으로 설정했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아무리 빨리 죽었다고 해도, 622년까지 용수는 생존하고 있었다. 또한, 천명은 춘추가 왕이 될때에도 굳건히 살아 있었다.

어찌되었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용수와 용춘을 철저히 분리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기존 통설은 서로 다른 자를 하나의 인물로 만들어 괴물을 만들어 버린것이다. 

<화랑세기>는 용춘이 어떻게 629년 낭비성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기록이 있다. 마야의 뒤를 이어 황후가 된 손승만이 아들을 낳았지만, 일찍 죽는 일이 생겼다. 하지만, 승만황후는 왕자가 일찍 죽은 이유가 용수.용춘 형제라고 의심을 한다. 그리고 용수.용춘을 지방으로 축출해 버린다. 이후 용춘은 고구려 낭비성 원정군에 합류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승만왕후도 무시하지 못할 권력을 쥐고 서라벌로 금의환향한다.

만약,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704년경 김대문이 저작한 것이 아니라면, 박창화는 현재 괴물이된 키메라 용수.춘을 만든 이들보다 역사적 안목과 역량이 몇수는 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춘추의 아버지는 누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하나하나 살펴본다면 위에서 언급한것 처럼 용수와 용춘은 철저히 다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단지, 춘추의 아버지가 용수인가? 용춘인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화랑세기에는 용수의 나이와 용춘의 생몰년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춘추의 아버지는 용춘의 형인 용수이며, 용수가 죽고나서 형수인 천명을 아내로 맞이하고, 춘추를 자식으로 입양한다.

생부는 용수이지만, 어머니 천명이 작은 아버지 용춘에 시집을 가서, 자동으로 춘추는 법적으로 용춘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화랑세기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서 춘추의 아버지를 용수라고 하는 것도 당연하고, 용춘이라고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한다.

용춘의 아들이 된 춘추

최근 총리지명을 받은 정운찬은 형제가 있었다. 하지만, 아들이 없는 큰아버지의 아들로 입적을 한다. 그래서 정운찬은 독자로 군대를 면제받게 된다. 또한, 정운찬의 동생도 독자로 군대를 면제 받게 된다. 예전에 주로 군대를 면제받는 방법으로 많이 사용하던 편법이다.

물론, 정운찬이 정말 군대를 면제받기 위해서 <양자입적>이라는 편법을 동원했는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운찬이 일반적으로 20대 초반이면 다 가는 군대를 가지 않고, 뒤 늦게 큰아버지의 아들로 호적을 옮기고, 더 나아가 나이가 30세가 넘어서 군대를 면제 받는 것으로 보았을 때, 정운찬은 국방의 의무를 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는 것을 쉬이 알수는 있다.
이런 자들이 나라를 걱정하고, 공직에 올라가 세금을 낭비하며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발상은 어패가 있다. 단순히 자신의 부귀와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서 <국가봉사>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국가에 봉사할 생각이 있다면, 국무총리직을 사양하는게 정운찬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국가에 대한 봉사이다.

어찌되었던, 
양자를 들여서 가문의 종통을 잇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  아버지에게는 삼형제가 있었는데, 가장 큰 아버지는 딸을 하나만, 낳고 일찍 돌아 가셨다. 두번째 큰아버지는 외아들을 두었다. 그런데, 막내인 아버지는 아들이 둘이 있었다. 그래서 막내인 아버지는 큰아들을 자신의 큰형님의 양자로 입적시키고, 족보도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큰아버지가 죽고 한참후에 막내인 아버지는 장가를 가서 아들 둘을 낳았다. 그러니 입양된 큰아버지의 아들은 생물학적으로는 도저히 큰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없다. 기록이 제일 큰아버지의 기록만 남았다면, 입양된 큰아버지의 아들은 생물학적으로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아들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이 불신되는 이유도 초기기록이 불분명한 이유도 있지만, 법통을 이은 아들과 생물학적인 부자관계 혼동해서 읽다보면 그런 불신하는 경우가 많다. 생물학적 아버지만을 찾다보면 역사의 기록을 불신할 수 밖에 없어져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이산>을 봐서 알겠지만, 정조(이서진)의 아버지는 사도태자라고 한다. 하지만, 정조가 왕이 되기전까지는 생부는 사도일지 모르지만, 종통과 법통은 사도의 형에게 있었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면서, 자신의 생부도 사도이고, 종통과 법통도 사도에게 있다고 천명한다.

천명만이 알 수 있는 춘추의 생부. 그러나


삼국사기의 기록을 토대로 살펴본다면, 춘추는 603년 생이다.

622년 용수는 이찬(2등위)이였다. 그러니 나이가 적지 않았다. 629년 용춘은 파진찬으로 4등위에 해당한다. 이들 용수. 용춘 형제는 나이 차이가 있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용춘은 576년생 즈음이다. 용춘이 춘추를 낳았다면, 28살에 춘추를 낳은 것이다. 용수가 낳았다면 이보다는 많은 30대에 낳은 것이 된다.

통설로 천명은 15세 전후에 춘추를 낳았다고 보는게 일반적이다. 진평왕13세가 되는 579년에 태어 났다고 해도 천명은 602년에 24살이다.

용수. 용춘이 당시의 신라 사회의 통념으로 보았을때  굉장히 늦은 나이에 <춘추>를 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용수.용춘 누가 되었던 상관없이 용수. 용춘은 천명과 첫 결혼이 아님을 쉬이 알 수 있다. 화랑세기는 용수.용춘이 이미 결혼을 하고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기도 하다.


어찌되었던 춘추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물론, 기록을 남겼지만, 망실되었을 수도 있고, 정확히 천명이 누구와 관계를 하여 춘추를 낳았는지 당대부터 설왕설래 하였을 수도 있다.


신화나 설화를 보더라도, 어머니는 알아도 아버지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몽의 아버지는 해모수라고 하지만, 알길이 없다. 단지 주몽의 어머니는 유화부인임을 알 수 있다. 예수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어머니인 마리아이다.

그러니 춘추의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춘추의 어머니는 천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를 화랑세기는 춘추의 생부는 용수이고, 양부가 용춘이다. 용춘이 양부가 된 이유는 진평왕이 용춘으로 하여금 천명을 아내로 삼아서 왕위를 잇게 하기 위해서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빠져 나갈 구멍을 하나 만들어 놓았다. 낮엔 용수의 처인 천명이 밤에는 용춘의 처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슬쩍 흘리고 있다. 이쯤되면 천명자신도 춘추의 진짜 아버지가 용수인지 용춘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하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춘추의 아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그렇지만, 춘추는 나이 많은 용수보다는 상대적으로 젊고, 천명과 관계를 많이 가진 용춘이 진짜 아버지 였을 것이다. 춘추와 용춘의 이름에서도 <춘>자를 쓰는 용춘이 생물학적인 아버지의 냄새가 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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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서은영 2009.09.21 15: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궁금합니다. 김춘추의 아버지가 누구인지요... 가르쳐 주세요ㅗ.~~!

    선덕여왕 재미 있게 보고 있어요....

  3. BlogIcon 불탄 2009.09.21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가 내렸던 월요일이에요.
    지금도 잠시 멈추고는 있지만 언제 쏟아질 지 모를 분위기를 담고 있네요.
    남은 오후시간 마무리 잘하시고, 이번주는 더욱 활기차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4. 2009.09.21 1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세기는 다르지만 이 드라마는 선덕여왕 소설로 만든 드라마인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찾아서 봐봤자 어차피 소용없는짓..

    • BlogIcon 갓쉰동 2009.09.22 0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설의 모본이 화랑세기이고 삼국유사와 삼국사이지요.. 그러니 문제라고 하는 겁니당.. 소설은 그안에서 있음직한 이야기지요..

  5. BlogIcon 감사하리 2009.09.21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명공주는 진평왕의 첫째딸이다 / 용춘공의 용수전공과 결혼했는데 / 천명공주가 사랑한 사람은 용충공이다 / 용수전공이 죽으면서 천명공주와 용수공의 아들 춘추공을 부탁하여 결합하였다 용춘공은 뒤에 선덕여왕이 등극하자 용춘공을 올아비로 선택하엿는데 용춘공은 벼슬에 뜻이 없어 말하기를 아들이 없ㅎ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물러가서 살았다 이에 선덕여왕은 을제공을 총사로 임명하였다 / 이것이 화랑세기의 내용이다

  6. 2009.09.21 2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잘보았습니다 김춘추 아버지가 누구인지 궁굼합니다 글로보면 용수아들갓고 용춘은 양아버지같은데 확신응없습니다 좋은자료주셔서 감사합니다 늘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22 0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로 보면 용수인지 용춘인지 모른다이고, 문제가되는 화랑세기는 용수라고 단정을 하지만,
      용춘이 될수도 있다고 기술하고있지요.

      저의 생각은 용춘이지 않을까합니다.. 여러 정황들이..

  7. BlogIcon 둥둥 2009.09.21 2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읽었던 책에는 용춘이라는 인물과 천명, 덕만 공주가 삼각관계로 나오더군요
    천명은 용수와 결혼하고도 용춘과 정을 통해 춘추를 낳게 되구요..
    용춘과 용수라는 인물들도 진지왕의 자식들로 왕권에 도전한 인물들로 나오던데
    드라마에서는 비중이 거의 없어서 조금은 아쉬워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22 0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천명과 덕만이 삼각관계로 설정한 이유는 천명과 덕만이 나이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통설에 따른것같습니당. 용수와 용춘이 다른 인물이라고 한 것은 화랑세기를 따른것 같구요.

      용수와 용춘이 왕위를 도전할 만한 역량이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당.. 복위하기 위한 생각은있었을 것 같기는 합니당.

  8. 갓쉰동님 광팬 2009.09.21 2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것들을 보면 신라는 다른 삼국보다는 모계의 냄새가 강한 것 같네요.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이 군주가 되고 아들이 아닌 사위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흔한 일이었던 것, 화랑제도 초기에 화랑의 우두머리가 여성이었던 점, 미실같은 거물 여성정치가 비교적 많이 등장했던 것을 보면 그렇네요. 뭐... 오늘도 글 잘봤습니다^^

  9. joomin11 2009.09.22 0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이 정말 역사에대해 얼마나 전문가적인 지식을 갖추셨고 사학계에 몸을 담고 계신지 아니면 그냥 역사연구를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고대사는 학자들이나 사학과 조차도 파헤치기 가장 어렵고 어물쩍넘어가는 부분이지요.. 우선 화랑세기의 위서논란과같이 자료가 부족한경우가 많을뿐더러 그나마 정통한 서적인 삼국사기는 신라위주로 애곡이 되어있고 삼국유사가 야사등을 잘 결합하고 여러서적을 망라한 부분인 만큼 가치는 있으나 앞의 서적들이 부족한 면이 많고 화랑세기의 경우 대조조차가 불가하니 아주 완벽한 서적이라고는 할수 없지요. 물론 고대사는 기존 사학계의 입장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의견 피력 뿐만이 아닌 블로거를 통해서 본인의 의견을 검증도 받지않고 기존의 사학계를 비판하시는 것은 옳지않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고대사는 누가 옳다고 할수없거든요. 부디 사학계의 이단아인 이덕일 교수같은 고대사를 이용한 사기꾼은 되지 마시길 그래도 충분히 논의될수있는 의견이고 선덕여왕드라마의 왜곡을 콕콕 짚어주시는 부분은 추천 꾹 드립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2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료가 부족하니 있는 부족한 자료라도 재대로 쓰자는 글입니당.. ㅋㅋ

      없으니 망가트려야 한다가 아니고,, 없는 자료이니 소중하게 여기자는 거지요..

      그리고 저 이덕일 싫어해요.. ㅋㅋ

  10. 2009.09.22 0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2009.09.22 0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2. 두번째입니다. 2009.09.23 1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의 글에 글을 남기네요.
    님은 그나마 남아있는 삼국 역사서를 들고 같이 비교를 하면서
    역사를 꿰뚫어보시려고 하네요.
    정말 재밌고, 이성적인 관찰법이라고 생각됩니다.

    단지 재미로 이렇게 비교해가면서 과거를 추리해보는 것에는 적극찬성입니다.
    하지만, 역시 삼국시대가 아닌 훨씬 뒤 세대에 만들어진 책들로
    과거를 정확하게 추론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거 같습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후대에 쓰여진 역사서일수록
    저자의 의도가 다분히 섞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후대에서는 큰 줄거리의 역사는 이해하되,
    그 역사서에 얽혀 소소한 이론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경계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는 선덕여왕 드라마를 보면서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복식이 왜 당나라 복장이냐?
    한글을 쓰지 않고 중국한자를 쓴다.
    결국 한국은 중국 짝퉁에 지나지 않는다.

    이게 중국인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역사를 찢어발기고 부끄러워하는 동안,
    타국에서는 우리의 역사를 비웃고 멸시합니다.

    믿지 못할 삼국 역사서로 우리드라마 우리 역사를 비웃기보다는
    오히려, 저 드라마로
    우리나라를 발아래로 생각하는 나라들에게
    우리나라 인물과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초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화강국이야말로 총알없이 다른 나라를 포섭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니까요.
    님의 정교한 글들을 보면서
    님의 주제가 좀더 미래를 위해 발전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내봅니다.^^

    또한, 저는 이 드라마가 단지 신라만을 띄우기 위한 드라마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삼한일통.
    현대에 있어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가 또하나의 일통을 이루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강대해져갑니다.
    미국은 오히려 힘이 위축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불황중이지만, 부자가 망해도 삼년은 간다고 합니다.
    그 활화산 한가운데 위치한 분단국가 한국...남한이던 북한이던
    일통....통일이야말로 살길이다, 라는 게 지금 이 드라마의 속내입니다.

    저는 그렇게 봤습니다.

    현대에 살기에, 드라마는 옛 옷을 입고 과거의 풍경을 보여주지만,
    결국 현대에서 만들기에
    우리의 차가운 현실을 반영해줍니다.

    님처럼 이성적이고 역량있는 역사가라면, 좀 더 큰 틀에서 드라마를 평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글을 남겨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3 1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작자의 의도는 있습니당. 그 안에서 합리성을 찾는 거지요.. 역사학중에서 문헌사학의 그런것 아니겠어용..

      믿지 못할 역사라니 어떤것을 말하는지요?
      비웃는다고 없는사실을 만들어 사극으로 넣어야 할까요?

      그렇다면 한글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삼국시대에..
      당복식은 잘못된거지요.. 사실.. 고구려식 복장이면 모를깡..

      진덕왕 3년이전에 당복식은 의복의 고증을 못한거지요..

      문화의 우수성은 있는 그대로를 바로 알리는 겁니당.. 남에게 역사왜곡하고 동북공정한다고 할것이 아니고 우리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극은 현대극입니다. 극단적으로 말을 하면..
      현실을 역사라는 거울로 투영해서 보여주는 것이거든요..

      재글 대부분이 사극의 원작을 비판하고, 사극을 비판하는 것 같지만 전혀 아닙니다. 사극을 비판하는게 아니고,, 원작자의 허구에 찬 거짓말을 비판하는데 할양되어 있을 뿐만 아니고, 현실과 세태 비판이니 현실과 잘 쾌를 같이해서 보면 더 사극이 잼있다는 내용이 주류입니당..

      자주오셔서 글 많이 읽어 주시고 추천도 많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___^

      존댓글 ㄳ합니다.. ^____^

  13. Yuna 2009.10.13 1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글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흥미롭게 역사공부 잘하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14. BlogIcon 김용재 2009.10.14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시원한 분석평입니다.

    정말 궁금했었는데 말이죠. ㅎㅎ

    드라마에서도 용춘공과 춘추가 별로 부자처럼 붙어있지도 않은 것이

    아예 안친한 것처럼 신하와 왕족의 관계로만 설정되어 보이는 것이 이상했었습니다. ^^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

  15. 프러스 2009.10.16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재미있다고 표현하는게 맞는건지 모르겠는데..
    재미있네요..

  16.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7.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los angeles 2012.11.01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8.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uk 2012.11.06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니면 다른 이로 기록하고 있을까? 겉보기로는 용수.용춘을 동일인으로 기록하

  19.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20. BlogIcon above ground electric dog fence 2012.12.22 1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 기능을 갖춘 스크린 캡쳐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프로그램 없이도 웹페이지를 가장 빠르

  21. BlogIcon best food survival kits 2013.01.02 16: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들을 동일인으로 취급하고 있다. 하지만, 좀더 신경을 쓰고 본다면, 용수와 용춘은 별도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미실의 남자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대놓고 드러내지 않지만, 은연중에 미실이 수많은 남자를 거르렸음직한 장면을 종종 보여 주고 있다. 이에 대해서 미실의 남자에 관한 기사를 송고 했었다.
2009/07/31 -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관심이 계신분은 일독을 해보시길 바란다.


어찌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현존 화랑세기를 읽다 보면 처음에는 "머 이런 개족보가 다 있나"한다, 하지만 요즘의 개들의 족보도 사실 화랑세기의 기록된 신라의 성생활에 비하면 건전해 보이기 까지 한다. 그런데 겉보기는 분명이 개족보 보다도 못한것 같지만, 심도 있게 파고 들면, 의외의 상황을 대면하게 된다.

한 일단은 자유로운 성을 누리고 있지만, 또 다른 일단은 정조와 절개를 목숨만큼이나 귀히 여긴다.

정절을 지키기 위해 우물에 몸을 던진 용수첩

지금부터 정절을 지키기 위해서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려던 용춘의 첩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용춘의 첩의 아버지는 화랑의 낭두로 풍월주인 용춘에 충성을 다 하였다. 용춘의 첩도 용춘의 첩이 되기 전에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화랑의 뒤바라지를 하는 유화가 될 수 있었다.

사해에서의 휴식장면

하지만, 용춘첩은 유화가 된다면, 용춘을 섬길 수 없다 하여, 유화가 되는 길을 거부하였다. 이에 풍월주인 용춘(596~603년)은
처음에 용춘첩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용춘첩은 차리리 유화가 되느니 죽음을 선택하겠다며 우물에 몸을 던졌다.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사랑을 위해서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린 것이다.


하지만, 용춘첩은 죽지를 못하고 구원받게 되었다. '죽으려 하면 살것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라는 이순신 장군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하다. 몸을 던져 우물에 투신을 하였지만, 죽고자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우물에서 떠올라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바닷물보다 더 짜서 맨몸으로 누어서 휴식을 취할수 있는 사해같이 짠 우물물은 아닐 것이다.

만약, 용춘첩이 살고자 발버둥을 쳤더라면 우물속에서 죽었을 것이다. 용춘첩은 우물속에서 하늘을 보며, 이승에서 못다 이룬 용춘에 대한 사랑으로 눈물을 흘리며, 저승에서 인연이 되어 용춘과 사랑을 이루게 해달라고 부처님과 하늘에 기원했을 지도 모른다.


물위에 드는 남자

어찌 되었던 용춘첩은 우물에 빠져서도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어쩌면 김유신이 문희를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불쇼'를 하는 것처럼, 용춘첩이 대국민 '물쇼'를 했을 수도 있다. 김유신의 불쇼는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용춘첩을 우물에서 구한
낭두들이 13세 풍월주 용춘에게 용춘첩을 받아들이기를 부탁하였다. 용춘은 어쩔 수 없이 용춘첩을 받아 들인다. 용춘첩과에 사이에서 용산과 용석 두 아들을 낳고, 딸로는 용태를 낳았다. 용태는 춘추를 섬겨 인태 각간을 낳았다. 용춘은 첩에 몸에서 난 자신의 딸 용태를 양자인지 친자 인지 모르는 춘추와 결혼시켰음을 알 수 있다. 춘추에게는 용춘은 아버지이자 장인이 된다. 용춘이 춘추의 아버지인지 작은아버지 인지를 알고 싶다면 2009/08/20 - [역사이야기] - 괴물이 되어버린 춘추(유승호)의 아버지 기사를 참고 하길 바란다. 
  

기록과 너무나 다른 사극 선덕여왕

대남보(류상욱)

용춘의 첩의 아버지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생의 벽여명의 자식중 한명으로 나온 대남보이다. 그러니 대남보는 용춘의 여자인 천명을 죽이므로 해서 자신의 딸이 용춘의 정처가 될 수 있다고 상상한 것일까? 물론, 대남보는 덕만을 죽이기 위해서 화살을 날렸지만, 덕만인줄 알았던 여자가 천명공주이고 이에 의도하지 않게 천명이 죽어서 수나라로 춘추를 모셔오는 역할을 한다. 

드라마에선 나오지 않지만 대남보는 아마도 자신의 외손녀인 용태를 춘추와 엮어 주려 하는 의도 있었는 지도 모른다. 그래야 용춘과 척을 지지도 않고, 자신의 사위인 용춘과 대씨녀가 잘되는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춘추의 어미 천명을 죽인자는 <대남보>다. 춘추는 어머니를 죽인 원수의 손녀와 결혼해서 인태 각간을 낳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아무리 드라마 지만 너무 얼척 없지 않는가?

용춘첩은 용춘의 충복 대남보의 딸

하지만, 화랑세기는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대남보는 용춘의 충복이고 미생과는 척을 지고 있었다. 대남보는 재산가 였지만, 자신의 전재산을 용춘을 호위하는 무사를 양성하고, 용춘을 지키는데 탕진하였다.

천명(박예진)

그래서 자신의 아들 딸들은 끼니를 때우지 못하고, 삼을 엮어서 장사로 근근히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았다. 대남보가 용춘을 지키는데 혈안이 된 이유는 용춘을 죽이려는 세력이 있었다는 반증이 될것이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세력은 아니다. 미실세력의 일원인 미생의 딸 매생은 용춘에 시집을 가서 용귀를 낳았다.  정적들간에 정략적인 결혼이 성행하니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될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 

하지만, 미실과 설원랑의 후손들은 춘추가 알천을 밀어내고 왕이 되는데 적극적으로 후원한 배후세력이 였다.

 대남보에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미 송고한 두편의 기사를 참조 하기 바란다.


만약,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창작품이 아니라면, 선덕여왕의 원작자는 대남보와 그의 후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극을 만들때는 좀더 치밀하게 분석해야 하고, 기본 팩트는 논란이 있지 않는 이상 바꾸면 안된다. 역사소설이나, 사극은 팩트와 팩트를 연결하는 인과관계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꾸고 풀어가는 것이다.

다음 기사에서는 화랑세기에 기록된 또다른 정절녀를 소개하려고 한다. 한마디로 하면, 화랑세기에 기록된 여인열전 시리즈가 되지 않을까 한다. 용춘첩의 예에서 보듯이 화랑세기에는 난삽한 성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 시대에도 귀감이 될만한 이야기도 곳곳에 숨어 있다. 이름하여 숨어있는 일인치 찾기라고 할 수 있다. 약간의 서비스를 하자면, 드라마상 비담과도 관련이 있고, 용수. 용춘과도 관련이 있다. 사실 예고를 하지 않는다면,  써야할 소재가 너무 많아 취사선택이 쉽지 않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약속을 하는 것이다.

물론, 호흥(추천)이 없으면, 다음편을 쓰지 않을 수도 있다. 호흥이 없는데 글을 쓰는 것 처럼 낭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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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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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아이러니♡ 2009.08.21 06: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은 역사랑 맞는 부분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네요.
    하지만 드라마이니 뭐라 할 수는 없죠..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8.21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충분히 그런 면이 많아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 선점의 효과거든요.. 선덕여왕을 해렸으니 당분간 미실과 선덕여왕에 관한 드라마는 볼수가 없게 되어 버렸잔아요.. 그래서 처음 만들때 잘 만들어야함..

  2. BlogIcon White Rain 2009.08.21 07: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호응해 줬습니다. 다음 편 기대할게요. 드라마와는 별개로 색다른 흥미를 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21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음편은 글쎄용.. ㅋㅋ 봐서용.. 하지 말라는데 자꾸하는것도 보는사람도 고역이고 쓰는 사람도 고역이지요..

  3.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8.21 0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글을 접하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지만 볼수록
    이야기를 풀어나가시는 내용이 저와 딱 맞는데요? ^^

  4. 임현철 2009.08.21 0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 좋았는데 아쉽네요.
    이반으로도 뵐게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21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갓쉰동은 한 8년쓴것 같습니다.. 온라인에서 갓쉰동의 저작권으 저한테 있을지도.. 물론, 이반도 그러지만요.. ㅋㅋ

  5. 2009.08.21 0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21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벌써 주말이 다가오다니 시간이 참 빠르네요..

      밤이 되면, 벌써 컴컴해지는것이.. 가을로 접어 들었어요..

  6. BlogIcon 영웅전쟁 2009.08.21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응이 없으면
    다음편 없다니요???????????
    저 처럼 갓쉰동 매니아들을 무시하시나요???????????
    스토크 할겁니다 ㅋㅋㅋㅋ
    아니면 저도 우물에 몸을 던질 수 있다는 ㅎㅎㅎ
    정절녀 열심히 기다리고 있을테니
    포스팅 해주시길 ....
    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즐겁고 편안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21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호흥이 없으면.. 흥이 안나거든요.. 사실.. ㅋㅋ

      매니아가 많은 것도 좋지만 보다 많은 사람이 알고 드라마를 보는게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해서 투정을 하는 거지요..

      사실 눈팅과 싸워서 성공한 경우가 없거든요..

      손가락이 워낙 천금과 같아요.. 그들은.. ㅋㅋ

    • aaa 2009.08.25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속
      '호흥'이라 하심은 일부러 그러시는건가요??

    • BlogIcon 이반의꿈 2009.08.25 1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속 추천하면 됩니당.. ㅋㅋ

  7. BlogIcon labyrint 2009.08.21 1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춘, 용수 정말 헷갈리네요... ㅋㅋ

    용춘의 아내처럼 쇼하는 경우가 있을거예요...

    가끔은 쇼를 했는데... 빠져 죽은 경우도 있겠지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21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용수용춘이 헛갈릴때가

      가장 많이 헛갈리는 사람이 의외로 알천과 월천이라눈..
      염종과 염장이 그렇구요.. ㅠ.ㅠ.

      지소, 지조, 사도, 지도 이들도 헛갈리공..

  8. BlogIcon 초록누리 2009.08.21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은 너무 이름이 비슷비슷해서...

  9. BlogIcon 대한민국 황대장 2009.08.21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보고 시험 문제 틀렸다는 놈 있으면 갓쉰동님 블로그를 알려줘야 겠네요 ㅋㅋㅋ
    역사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잘 봤습니다 ^^

  10. BlogIcon 펨께 2009.08.21 2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보고 갑니다.

  11.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미실의 남자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대놓고 드러내지 않지만, 은연중에 미실이 수많은 남자를 거르렸음직한 장면을 종종 보여 주고 있다. 이에 대해서 미실의 남자에 관한 기사를 송고 했었다.
2009/07/31 -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관심이 계신분은 일독을 해보시길 바란다.


어찌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현존 화랑세기를 읽다 보면 처음에는 "머 이런 개족보가 다 있나"한다, 하지만 요즘의 개들의 족보도 사실 화랑세기의 기록된 신라의 성생활에 비하면 건전해 보이기 까지 한다. 그런데 겉보기는 분명이 개족보 보다도 못한것 같지만, 심도 있게 파고 들면, 의외의 상황을 대면하게 된다.

한 일단은 자유로운 성을 누리고 있지만, 또 다른 일단은 정조와 절개를 목숨만큼이나 귀히 여긴다.

정절을 지키기 위해 우물에 몸을 던진 용수첩

지금부터 정절을 지키기 위해서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려던 용춘의 첩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용춘의 첩의 아버지는 화랑의 낭두로 풍월주인 용춘에 충성을 다 하였다. 용춘의 첩도 용춘의 첩이 되기 전에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화랑의 뒤바라지를 하는 유화가 될 수 있었다.

사해에서의 휴식장면

하지만, 용춘첩은 유화가 된다면, 용춘을 섬길 수 없다 하여, 유화가 되는 길을 거부하였다. 이에 풍월주인 용춘(596~603년)은
처음에 용춘첩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용춘첩은 차리리 유화가 되느니 죽음을 선택하겠다며 우물에 몸을 던졌다.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사랑을 위해서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린 것이다.


하지만, 용춘첩은 죽지를 못하고 구원받게 되었다. '죽으려 하면 살것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라는 이순신 장군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하다. 몸을 던져 우물에 투신을 하였지만, 죽고자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우물에서 떠올라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바닷물보다 더 짜서 맨몸으로 누어서 휴식을 취할수 있는 사해같이 짠 우물물은 아닐 것이다.

만약, 용춘첩이 살고자 발버둥을 쳤더라면 우물속에서 죽었을 것이다. 용춘첩은 우물속에서 하늘을 보며, 이승에서 못다 이룬 용춘에 대한 사랑으로 눈물을 흘리며, 저승에서 인연이 되어 용춘과 사랑을 이루게 해달라고 부처님과 하늘에 기원했을 지도 모른다.


물위에 드는 남자

어찌 되었던 용춘첩은 우물에 빠져서도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어쩌면 김유신이 문희를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불쇼'를 하는 것처럼, 용춘첩이 대국민 '물쇼'를 했을 수도 있다. 김유신의 불쇼는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용춘첩을 우물에서 구한
낭두들이 13세 풍월주 용춘에게 용춘첩을 받아들이기를 부탁하였다. 용춘은 어쩔 수 없이 용춘첩을 받아 들인다. 용춘첩과에 사이에서 용산과 용석 두 아들을 낳고, 딸로는 용태를 낳았다. 용태는 춘추를 섬겨 인태 각간을 낳았다. 용춘은 첩에 몸에서 난 자신의 딸 용태를 양자인지 친자 인지 모르는 춘추와 결혼시켰음을 알 수 있다. 춘추에게는 용춘은 아버지이자 장인이 된다. 용춘이 춘추의 아버지인지 작은아버지 인지를 알고 싶다면 2009/08/20 - [역사이야기] - 괴물이 되어버린 춘추(유승호)의 아버지 기사를 참고 하길 바란다. 
  

기록과 너무나 다른 사극 선덕여왕

대남보(류상욱)

용춘의 첩의 아버지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생의 벽여명의 자식중 한명으로 나온 대남보이다. 그러니 대남보는 용춘의 여자인 천명을 죽이므로 해서 자신의 딸이 용춘의 정처가 될 수 있다고 상상한 것일까? 물론, 대남보는 덕만을 죽이기 위해서 화살을 날렸지만, 덕만인줄 알았던 여자가 천명공주이고 이에 의도하지 않게 천명이 죽어서 수나라로 춘추를 모셔오는 역할을 한다. 

드라마에선 나오지 않지만 대남보는 아마도 자신의 외손녀인 용태를 춘추와 엮어 주려 하는 의도 있었는 지도 모른다. 그래야 용춘과 척을 지지도 않고, 자신의 사위인 용춘과 대씨녀가 잘되는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춘추의 어미 천명을 죽인자는 <대남보>다. 춘추는 어머니를 죽인 원수의 손녀와 결혼해서 인태 각간을 낳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아무리 드라마 지만 너무 얼척 없지 않는가?

용춘첩은 용춘의 충복 대남보의 딸

하지만, 화랑세기는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대남보는 용춘의 충복이고 미생과는 척을 지고 있었다. 대남보는 재산가 였지만, 자신의 전재산을 용춘을 호위하는 무사를 양성하고, 용춘을 지키는데 탕진하였다.

천명(박예진)

그래서 자신의 아들 딸들은 끼니를 때우지 못하고, 삼을 엮어서 장사로 근근히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았다. 대남보가 용춘을 지키는데 혈안이 된 이유는 용춘을 죽이려는 세력이 있었다는 반증이 될것이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세력은 아니다. 미실세력의 일원인 미생의 딸 매생은 용춘에 시집을 가서 용귀를 낳았다.  정적들간에 정략적인 결혼이 성행하니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될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 

하지만, 미실과 설원랑의 후손들은 춘추가 알천을 밀어내고 왕이 되는데 적극적으로 후원한 배후세력이 였다.

 대남보에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미 송고한 두편의 기사를 참조 하기 바란다.


만약,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창작품이 아니라면, 선덕여왕의 원작자는 대남보와 그의 후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극을 만들때는 좀더 치밀하게 분석해야 하고, 기본 팩트는 논란이 있지 않는 이상 바꾸면 안된다. 역사소설이나, 사극은 팩트와 팩트를 연결하는 인과관계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꾸고 풀어가는 것이다.

다음 기사에서는 화랑세기에 기록된 또다른 정절녀를 소개하려고 한다. 한마디로 하면, 화랑세기에 기록된 여인열전 시리즈가 되지 않을까 한다. 용춘첩의 예에서 보듯이 화랑세기에는 난삽한 성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 시대에도 귀감이 될만한 이야기도 곳곳에 숨어 있다. 이름하여 숨어있는 일인치 찾기라고 할 수 있다. 약간의 서비스를 하자면, 드라마상 비담과도 관련이 있고, 용수. 용춘과도 관련이 있다. 사실 예고를 하지 않는다면,  써야할 소재가 너무 많아 취사선택이 쉽지 않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약속을 하는 것이다.

물론, 호흥(추천)이 없으면, 다음편을 쓰지 않을 수도 있다. 호흥이 없는데 글을 쓰는 것 처럼 낭비는 없다.
 
글이 도움이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추천과 다음 글도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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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아이러니♡ 2009.08.21 06: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은 역사랑 맞는 부분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네요.
    하지만 드라마이니 뭐라 할 수는 없죠..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8.21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충분히 그런 면이 많아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 선점의 효과거든요.. 선덕여왕을 해렸으니 당분간 미실과 선덕여왕에 관한 드라마는 볼수가 없게 되어 버렸잔아요.. 그래서 처음 만들때 잘 만들어야함..

  2. BlogIcon White Rain 2009.08.21 07: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호응해 줬습니다. 다음 편 기대할게요. 드라마와는 별개로 색다른 흥미를 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21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음편은 글쎄용.. ㅋㅋ 봐서용.. 하지 말라는데 자꾸하는것도 보는사람도 고역이고 쓰는 사람도 고역이지요..

  3.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8.21 0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글을 접하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지만 볼수록
    이야기를 풀어나가시는 내용이 저와 딱 맞는데요? ^^

  4. 임현철 2009.08.21 0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 좋았는데 아쉽네요.
    이반으로도 뵐게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21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갓쉰동은 한 8년쓴것 같습니다.. 온라인에서 갓쉰동의 저작권으 저한테 있을지도.. 물론, 이반도 그러지만요.. ㅋㅋ

  5. 2009.08.21 0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21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벌써 주말이 다가오다니 시간이 참 빠르네요..

      밤이 되면, 벌써 컴컴해지는것이.. 가을로 접어 들었어요..

  6. BlogIcon 영웅전쟁 2009.08.21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응이 없으면
    다음편 없다니요???????????
    저 처럼 갓쉰동 매니아들을 무시하시나요???????????
    스토크 할겁니다 ㅋㅋㅋㅋ
    아니면 저도 우물에 몸을 던질 수 있다는 ㅎㅎㅎ
    정절녀 열심히 기다리고 있을테니
    포스팅 해주시길 ....
    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즐겁고 편안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21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호흥이 없으면.. 흥이 안나거든요.. 사실.. ㅋㅋ

      매니아가 많은 것도 좋지만 보다 많은 사람이 알고 드라마를 보는게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해서 투정을 하는 거지요..

      사실 눈팅과 싸워서 성공한 경우가 없거든요..

      손가락이 워낙 천금과 같아요.. 그들은.. ㅋㅋ

    • aaa 2009.08.25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속
      '호흥'이라 하심은 일부러 그러시는건가요??

    • BlogIcon 이반의꿈 2009.08.25 1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속 추천하면 됩니당.. ㅋㅋ

  7. BlogIcon labyrint 2009.08.21 1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춘, 용수 정말 헷갈리네요... ㅋㅋ

    용춘의 아내처럼 쇼하는 경우가 있을거예요...

    가끔은 쇼를 했는데... 빠져 죽은 경우도 있겠지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21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용수용춘이 헛갈릴때가

      가장 많이 헛갈리는 사람이 의외로 알천과 월천이라눈..
      염종과 염장이 그렇구요.. ㅠ.ㅠ.

      지소, 지조, 사도, 지도 이들도 헛갈리공..

  8. BlogIcon 초록누리 2009.08.21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은 너무 이름이 비슷비슷해서...

  9. BlogIcon 대한민국 황대장 2009.08.21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보고 시험 문제 틀렸다는 놈 있으면 갓쉰동님 블로그를 알려줘야 겠네요 ㅋㅋㅋ
    역사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잘 봤습니다 ^^

  10. BlogIcon 펨께 2009.08.21 2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보고 갑니다.

  11.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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