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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이 즉위하고 <성조황고>라 불리운다. 또한, 김유신(엄태웅)이 비담(김남길)의 술수에 속아 <우산국(울릉도)>로 유배를 떠난다. 이때 선덕여왕 덕만(이요원)은 김유신에게 밀서를 주고 서쪽 변경을 염탐하도록 밀명을 내린다.

일단 선덕여왕시기에 우산국(울릉도)를 쓸 수 있는 말인지는 지금 논한다면 글이 길어지니 다음 기회에 논하기로 하자. 다음 포스팅을 본다면 정말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별도로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덕만 "성조황고"를 쓸 수 있을까?

밀서에 다음과 같은 황제의 밀서임을 알리는 단어가 들어간다. 덕만의 수결이 아닌 <성조황고(聖祖皇姑)>의 덕만을 지칭하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이다. 사실 선덕여왕은 죽은 다음에 사용하는 시호 용어이니 선덕여왕 당시에 선덕여왕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안된다.
 


우리는 잠깐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역사를 거슬러 진흥왕 말년의 시기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진흥왕은 자신이 죽을 날이 가까워 오자 자신이 옥새를 맡긴 <새주> 미실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에 자신의 측근이라고 믿었던 설원에게 밀서를 주면서 미실을 차단할것을 주문하지만 설원은 미실의 편에 서서 진흥왕이 미실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반대로 진흥왕을 암살할것을 모의하고, 실천하려 독을 들고 들어간다.


이때 준 밀서가 미실의 손에서 설원의 손으로 넘어간다. 만약, 미실이 설원을 배신한다면 협박 보험용으로 써먹으라고 준다. 이 밀서는 다시 설원에게서 미실의 손을 거처 소화의 손으로 다시  덕만에게 넘어가고, 덕만이 숨겨둔 장소를 비담에게 알려 비담의 손에 들어간다. 비담이 밀서를 공개했을 때는 다음 사진처럼 나온다. 밀서의 형식이 아닌 공문서의 형식을 띄고 있고, 무신년 <간지>와 <옥새>가 명확히 찍혀있다. 

무신년 3월(588년) 진펴왕 10년

무신戊申
588년
신   라 :  진평왕 10년
백   제 :  위덕왕 35년
고구려 :  평원왕 30년

무신년 년도는 고사하고 몇가지 문제가 있으니 미실, 비담 덕만 등은 당연히 의문을 품는게 정상적이다. 옥새를 주관 하는 자는 미실이다. 진흥왕이 미실의 손을 통하지 않고 <옥새>를 찍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미실이 마찬가지로 천신황녀였고 새주인 진평왕때도 옥새는 미실의 수중에 있었다. 하지만 진평왕은 옥새를 미실의 손이 닿지 않는 소화의 손에 숨긴다.

또하나의 극중 논리적 모순은 <간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흥왕은 연호를 사용했다. 무신년은 진흥왕이 죽은 576년보다 12년 후인 588년으로 진평왕 10년이 된다. 그러니 당연히 연호가 우선이다. 옥새도 찍히지 않아야 하고, 단지 수결만이 진흥왕을 상징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비담이 가지고 있는 신라의적 미실척살 밀서는 <위서>이고 조작된 문서라는 뜻이다.

하지만 머리 좋고 귀신도 잡고, 미실을 닮아  꾀돌이인 비담도 알지 못하고, 어릴적 부터 영민한 덕만도 이를 알지 못한다. 또한, 미실, 설원 등 이해당사자들도 밀지가 <조작>되어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2009/11/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진흥왕(이순재) 신라의적 미실(고현정)척살 - 만화보다 못한 미실 죽음 고현정 하차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성조황고 덕만과 천신황녀 미실 누가 더 높을까?

성조황고


밀서에 등장하는 <성조황고>왜 등장하게 되었을까? 정상적인 문서라면 덕만의 이름이 들어가고 <수결>처럼 왕의 싸인이 들어가면 그만이다. 그렇지 않다면 옥쇄를 찍던지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런데 하필 성조황고일까?


이런 질문을 하면 많은 사람들은 황제인 덕만이니 천신황녀보다 성조황고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글을 끝까지 읽어보기 바란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성조황고>를 빗대서 미실을 <천신황녀>라는 직위를 부여한적이 있고, 덕만은 <천신황녀>의 직위를 있을 수 없는 보름날 일식 사건으로 미실로 부터 빼앗아 버린다. 그리고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때 <성조황고>가 된것이다.

문제는 <천신황녀>가 <성조황고> 보다는 높은 지위에 있다. <성조>는 단순히 하늘의 대행자인 성스런 조상을 둔 자란 뜻이고, <천신>은 직접적으로 하늘신이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천신 >> 성조의 뜻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덕만은 공주였을때 천신황녀에서 왕이 되었지만 직급이 내려가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봉착한다는 뜻이다.


또한, <황녀>와 <황고>를 대응하여 황녀<<황고라고 생각한 듯 하다. 하지만, 이는 별차이가 없는 용법에 지나지 않는다. 많이 양보한다면 <황고>는 여인(아줌마)의 급수이고, <황녀>는 시집안간 처녀(아가씨) 급이다. 요즘은 처녀들한테 아줌마 하면 기분이 나쁜것처럼 당시에도 처녀에게 아줌마라는 말을 하면 기분이 나뻤을 것이다. 오히려 아줌마를 <아가씨>라고 불려주면 좋아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드라마 내용상 미실은 <황녀>의 직급을 받을 수 없다. 미실은 미천한 가문의 자손으로 그리고 있는데 어찌 <황녀>일 수 있으며, 시집을 가고 늙은 노구인 미실이 <황녀>가 될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성조>보다 높은 단계인 <천신>의 지위까지 받을 수 있었겠는가?

그냥,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성조황고>를 염두해 두고 미실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서 만든  조어인 <천신황녀>는 만들어 낼수 없는 조어라는 뜻이다. 또한, <황:皇>의 단어는 황제만이 쓸수 있는 단어이다. 어쨌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정체를 알수 없는 단어들이 나오지만 알고보면 웃어버릴 일이 넘쳐난다.

덕만은 왜 성조황고라 불리우게 되었을까?

삼국사기에 의하면 631년 5월 이찬 칠숙과 아찬 석품이 난을 일으키고, 진평왕이 난을 진압한다. 칠숙이 난을 일으키는 이유는 자신이 왕위에 오를줄 알았는데 여자인 덕만이 왕위에 오른다는 사실을 알고, 복불복의 심정으로 난을 일으키려고 모의를 한다. 하지만, 진평왕이 사전에 칠숙이 난을 일으킨다는 정보를 듣고, 난을 조기 진압해 버린다. 역사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칠숙의 난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07/26 -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하지만, 덕만이 왕이 되지만 불평불만 세력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덕만은 난을 진압하고 귀족들에게 자신이 왕이 되는데 복속할것을 요구하게 되고 자신이 진평왕의 뒤를 이를 정통성이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귀족들에게 항복을 요구하고 충성 맹세를 요구한다. 그래서 귀족들은 <성조황고>라는 존호를 올리고 충성서약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성조황고>란 성스런 조상을 둔 여황제가 되는 것이다. 성조황고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8 - [역사이야기] - 이요원보다 남지현 나이때 왕위에 오른 덕만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어쨌든, 덕만이 성스런 황제를 조상으로 두었으니 왕위를 잇는데 정통성이 있다는 뜻이니, 칠숙처럼 불평불만하지 말고 정통성에 시비를 걸지 말라는 뜻이다. 위에서 잠시 <황녀>와 <황고>의 차이를 언급했듯이 <황녀>는 아가씨 급이고, <황고>는 아줌마급이다.

또한, <고(姑)
는 여인을 존칭해서 부르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기서도 덕만이 <처녀>가 아니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일연은 삼국유사 왕력편에 덕만 남편으로 <음갈문왕>이 있었다고 기록한것이다.


결론은 미칭에 불과한 <성조황고>를 밀서에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성조황고는 덕만이 아닌 아랫사람들이 덕만을 부를때 쓸 수 있는 용어이지, 덕만 스스로 사용하는 용어는 아니다. 한마디로 신하들이 "만세 만세 폐하"라고 하는데 황제인 덕만이 스스로 "<만세 만세 폐하>"라고 쓰는 꼴이다. 설령 백배 양보해서 <성조황고>를 사용한다고 해도 <성조황고 덕만>이라고 유신의 밀서에 써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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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라이너스™ 2009.11.28 0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재미있게 보고갑니다.
    벌써 주말입니다. 즐거운 시간되세요^^

  2. 임현철 2009.11.28 0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배우고 가네요.

  3. BlogIcon 영웅전쟁 2009.11.28 0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반쯤 보고 나중에 오지요.
    오늘 블로그님들 모임있어 지금 가야한다는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4. BlogIcon 푸른솔™ 2009.11.28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조황고....
    처음 듣는 말이라서 많이 의아했는데...
    잘 배웠습니다.

  5. BlogIcon 탁발 2009.11.28 0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리뷰만 따로 엮으면 재미있을 듯 하네요.

  6. BlogIcon rinda 2009.11.28 1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스로 성조황고를 쓰니 웃긴 꼴이지요.
    드라마 작가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고 대본을 써야할텐데
    또 아쉬워집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7. BlogIcon labyrint 2009.11.28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조황고가 그런 뜻이 있는 줄 몰랐네요....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8. BlogIcon 레오 ~ 2009.11.28 1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복잡하군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

  9. 갓쉰동최고 2009.11.29 0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스개 소리로 우라나라나 중국은 일본의 천황을 싫어한다죠
    천황이면 조선의 왕보다도 위인것은 당연하고
    황제를 뜻하는 천자 보다도 위이니 말이에요 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1.30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용. .중국인과 한국인들이 불편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현인신이라고 하니.. 다들 자신들이 하늘의 아들이이고 대행자인뎅.. ㅋㅋ

  10. 갓쉰동님 광팬 2009.11.30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 보면 작가들은 한문공부 안하나봅니다^^;;

  11. 은루히 2009.12.02 0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개소문이 드라마로 자주 나오는 것처럼(-아버지에게 들은 얘기
    선덕여왕도 다시 한번 또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선덕여왕 해외로 수출한다던가.....
    뭐 작가 입장에서는 돈이 다 겠지만요

    • BlogIcon 갓쉰동 2009.12.02 0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연개소문을 자주한것 같지는 않아용.. 조금씩 등장해지용. 그리고 너무 텀이 길지용.. 월드컵 주기보다 기니..

      아는 사람 없으니 그나마 난데...상식에 가까운 기본적인건 수정하고 내 보냈음.. 하는 바람만이 있네용.. ㅋㅋ

  12. BlogIcon best emergency sleeping bag 2012.11.01 1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이 마흔일곱의 나이에 등극했다고 기록하고 있네요. 젊은 나이에 성조황고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

  13. BlogIcon dehydrated foods walmart 2012.12.10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이는 한때 꿀벅지라는 말이 자신을 칭찬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꿀벅지라는 말이 가지는 성적인 취향임을 알았을 때 유이는 꿀벅지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이 즉위하고 <성조황고>라 불리운다. 또한, 김유신(엄태웅)이 비담(김남길)의 술수에 속아 <우산국(울릉도)>로 유배를 떠난다. 이때 선덕여왕 덕만(이요원)은 김유신에게 밀서를 주고 서쪽 변경을 염탐하도록 밀명을 내린다.

일단 선덕여왕시기에 우산국(울릉도)를 쓸 수 있는 말인지는 지금 논한다면 글이 길어지니 다음 기회에 논하기로 하자. 다음 포스팅을 본다면 정말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별도로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덕만 "성조황고"를 쓸 수 있을까?

밀서에 다음과 같은 황제의 밀서임을 알리는 단어가 들어간다. 덕만의 수결이 아닌 <성조황고(聖祖皇姑)>의 덕만을 지칭하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이다. 사실 선덕여왕은 죽은 다음에 사용하는 시호 용어이니 선덕여왕 당시에 선덕여왕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안된다.
 


우리는 잠깐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역사를 거슬러 진흥왕 말년의 시기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진흥왕은 자신이 죽을 날이 가까워 오자 자신이 옥새를 맡긴 <새주> 미실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에 자신의 측근이라고 믿었던 설원에게 밀서를 주면서 미실을 차단할것을 주문하지만 설원은 미실의 편에 서서 진흥왕이 미실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반대로 진흥왕을 암살할것을 모의하고, 실천하려 독을 들고 들어간다.


이때 준 밀서가 미실의 손에서 설원의 손으로 넘어간다. 만약, 미실이 설원을 배신한다면 협박 보험용으로 써먹으라고 준다. 이 밀서는 다시 설원에게서 미실의 손을 거처 소화의 손으로 다시  덕만에게 넘어가고, 덕만이 숨겨둔 장소를 비담에게 알려 비담의 손에 들어간다. 비담이 밀서를 공개했을 때는 다음 사진처럼 나온다. 밀서의 형식이 아닌 공문서의 형식을 띄고 있고, 무신년 <간지>와 <옥새>가 명확히 찍혀있다. 

무신년 3월(588년) 진펴왕 10년

무신戊申
588년
신   라 :  진평왕 10년
백   제 :  위덕왕 35년
고구려 :  평원왕 30년

무신년 년도는 고사하고 몇가지 문제가 있으니 미실, 비담 덕만 등은 당연히 의문을 품는게 정상적이다. 옥새를 주관 하는 자는 미실이다. 진흥왕이 미실의 손을 통하지 않고 <옥새>를 찍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미실이 마찬가지로 천신황녀였고 새주인 진평왕때도 옥새는 미실의 수중에 있었다. 하지만 진평왕은 옥새를 미실의 손이 닿지 않는 소화의 손에 숨긴다.

또하나의 극중 논리적 모순은 <간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흥왕은 연호를 사용했다. 무신년은 진흥왕이 죽은 576년보다 12년 후인 588년으로 진평왕 10년이 된다. 그러니 당연히 연호가 우선이다. 옥새도 찍히지 않아야 하고, 단지 수결만이 진흥왕을 상징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비담이 가지고 있는 신라의적 미실척살 밀서는 <위서>이고 조작된 문서라는 뜻이다.

하지만 머리 좋고 귀신도 잡고, 미실을 닮아  꾀돌이인 비담도 알지 못하고, 어릴적 부터 영민한 덕만도 이를 알지 못한다. 또한, 미실, 설원 등 이해당사자들도 밀지가 <조작>되어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2009/11/0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49회, 진흥왕(이순재) 신라의적 미실(고현정)척살 - 만화보다 못한 미실 죽음 고현정 하차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성조황고 덕만과 천신황녀 미실 누가 더 높을까?

성조황고


밀서에 등장하는 <성조황고>왜 등장하게 되었을까? 정상적인 문서라면 덕만의 이름이 들어가고 <수결>처럼 왕의 싸인이 들어가면 그만이다. 그렇지 않다면 옥쇄를 찍던지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런데 하필 성조황고일까?


이런 질문을 하면 많은 사람들은 황제인 덕만이니 천신황녀보다 성조황고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글을 끝까지 읽어보기 바란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성조황고>를 빗대서 미실을 <천신황녀>라는 직위를 부여한적이 있고, 덕만은 <천신황녀>의 직위를 있을 수 없는 보름날 일식 사건으로 미실로 부터 빼앗아 버린다. 그리고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때 <성조황고>가 된것이다.

문제는 <천신황녀>가 <성조황고> 보다는 높은 지위에 있다. <성조>는 단순히 하늘의 대행자인 성스런 조상을 둔 자란 뜻이고, <천신>은 직접적으로 하늘신이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천신 >> 성조의 뜻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덕만은 공주였을때 천신황녀에서 왕이 되었지만 직급이 내려가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봉착한다는 뜻이다.


또한, <황녀>와 <황고>를 대응하여 황녀<<황고라고 생각한 듯 하다. 하지만, 이는 별차이가 없는 용법에 지나지 않는다. 많이 양보한다면 <황고>는 여인(아줌마)의 급수이고, <황녀>는 시집안간 처녀(아가씨) 급이다. 요즘은 처녀들한테 아줌마 하면 기분이 나쁜것처럼 당시에도 처녀에게 아줌마라는 말을 하면 기분이 나뻤을 것이다. 오히려 아줌마를 <아가씨>라고 불려주면 좋아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드라마 내용상 미실은 <황녀>의 직급을 받을 수 없다. 미실은 미천한 가문의 자손으로 그리고 있는데 어찌 <황녀>일 수 있으며, 시집을 가고 늙은 노구인 미실이 <황녀>가 될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성조>보다 높은 단계인 <천신>의 지위까지 받을 수 있었겠는가?

그냥,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성조황고>를 염두해 두고 미실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서 만든  조어인 <천신황녀>는 만들어 낼수 없는 조어라는 뜻이다. 또한, <황:皇>의 단어는 황제만이 쓸수 있는 단어이다. 어쨌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정체를 알수 없는 단어들이 나오지만 알고보면 웃어버릴 일이 넘쳐난다.

덕만은 왜 성조황고라 불리우게 되었을까?

삼국사기에 의하면 631년 5월 이찬 칠숙과 아찬 석품이 난을 일으키고, 진평왕이 난을 진압한다. 칠숙이 난을 일으키는 이유는 자신이 왕위에 오를줄 알았는데 여자인 덕만이 왕위에 오른다는 사실을 알고, 복불복의 심정으로 난을 일으키려고 모의를 한다. 하지만, 진평왕이 사전에 칠숙이 난을 일으킨다는 정보를 듣고, 난을 조기 진압해 버린다. 역사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칠숙의 난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2009/07/26 -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하지만, 덕만이 왕이 되지만 불평불만 세력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덕만은 난을 진압하고 귀족들에게 자신이 왕이 되는데 복속할것을 요구하게 되고 자신이 진평왕의 뒤를 이를 정통성이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귀족들에게 항복을 요구하고 충성 맹세를 요구한다. 그래서 귀족들은 <성조황고>라는 존호를 올리고 충성서약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성조황고>란 성스런 조상을 둔 여황제가 되는 것이다. 성조황고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8 - [역사이야기] - 이요원보다 남지현 나이때 왕위에 오른 덕만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어쨌든, 덕만이 성스런 황제를 조상으로 두었으니 왕위를 잇는데 정통성이 있다는 뜻이니, 칠숙처럼 불평불만하지 말고 정통성에 시비를 걸지 말라는 뜻이다. 위에서 잠시 <황녀>와 <황고>의 차이를 언급했듯이 <황녀>는 아가씨 급이고, <황고>는 아줌마급이다.

또한, <고(姑)
는 여인을 존칭해서 부르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기서도 덕만이 <처녀>가 아니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일연은 삼국유사 왕력편에 덕만 남편으로 <음갈문왕>이 있었다고 기록한것이다.


결론은 미칭에 불과한 <성조황고>를 밀서에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성조황고는 덕만이 아닌 아랫사람들이 덕만을 부를때 쓸 수 있는 용어이지, 덕만 스스로 사용하는 용어는 아니다. 한마디로 신하들이 "만세 만세 폐하"라고 하는데 황제인 덕만이 스스로 "<만세 만세 폐하>"라고 쓰는 꼴이다. 설령 백배 양보해서 <성조황고>를 사용한다고 해도 <성조황고 덕만>이라고 유신의 밀서에 써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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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라이너스™ 2009.11.28 0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재미있게 보고갑니다.
    벌써 주말입니다. 즐거운 시간되세요^^

  2. 임현철 2009.11.28 0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배우고 가네요.

  3. BlogIcon 영웅전쟁 2009.11.28 0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반쯤 보고 나중에 오지요.
    오늘 블로그님들 모임있어 지금 가야한다는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4. BlogIcon 푸른솔™ 2009.11.28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조황고....
    처음 듣는 말이라서 많이 의아했는데...
    잘 배웠습니다.

  5. BlogIcon 탁발 2009.11.28 0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리뷰만 따로 엮으면 재미있을 듯 하네요.

  6. BlogIcon rinda 2009.11.28 1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스로 성조황고를 쓰니 웃긴 꼴이지요.
    드라마 작가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고 대본을 써야할텐데
    또 아쉬워집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7. BlogIcon labyrint 2009.11.28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조황고가 그런 뜻이 있는 줄 몰랐네요....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8. BlogIcon 레오 ~ 2009.11.28 1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복잡하군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

  9. 갓쉰동최고 2009.11.29 0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스개 소리로 우라나라나 중국은 일본의 천황을 싫어한다죠
    천황이면 조선의 왕보다도 위인것은 당연하고
    황제를 뜻하는 천자 보다도 위이니 말이에요 ㅋㅋㅋ

    • BlogIcon 갓쉰동 2009.11.30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용. .중국인과 한국인들이 불편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현인신이라고 하니.. 다들 자신들이 하늘의 아들이이고 대행자인뎅.. ㅋㅋ

  10. 갓쉰동님 광팬 2009.11.30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 보면 작가들은 한문공부 안하나봅니다^^;;

  11. 은루히 2009.12.02 0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개소문이 드라마로 자주 나오는 것처럼(-아버지에게 들은 얘기
    선덕여왕도 다시 한번 또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선덕여왕 해외로 수출한다던가.....
    뭐 작가 입장에서는 돈이 다 겠지만요

    • BlogIcon 갓쉰동 2009.12.02 0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연개소문을 자주한것 같지는 않아용.. 조금씩 등장해지용. 그리고 너무 텀이 길지용.. 월드컵 주기보다 기니..

      아는 사람 없으니 그나마 난데...상식에 가까운 기본적인건 수정하고 내 보냈음.. 하는 바람만이 있네용.. ㅋㅋ

  12. BlogIcon best emergency sleeping bag 2012.11.01 1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이 마흔일곱의 나이에 등극했다고 기록하고 있네요. 젊은 나이에 성조황고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

  13. BlogIcon dehydrated foods walmart 2012.12.10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이는 한때 꿀벅지라는 말이 자신을 칭찬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꿀벅지라는 말이 가지는 성적인 취향임을 알았을 때 유이는 꿀벅지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선덕여왕 미실(고현정)과 덕만(이요원)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고대하고 기다리던, 모녀상봉인 마야왕후와 덕만이 만났다. 예고편에는 덕만이 공주의 신분을 알고도, <어출쌍생>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중악으로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극이 흥미진진 접입가경으로 흐르고 있다.


그동안 글쓴이는 덕만과 천명이 어미가 다른 형제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증명하였다.

그런데 덕만이 몇살때 왕위에 올랐는지는 확증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성조황고(聖祖皇姑)때문이였다. 그중에 <황고: 왕의 시어머니 뻘여자 자식이라니>

<성조황고>의 일반적인 해석은 성스런 조상을 둔 임금의 시어머니(姑)라는 뜻이 된다. 설마, 덕만이 진평의 시어머니뻘은 아니지 않는가? 아니면 진평의 나이만큼이라도 되었단 말인가?

아무리 천명과 덕만이 어머니가 다른 자매라고 주장을 하고 증명했지만, 시어머니뻘을 어떻게 해석할까의 의문이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슬퍼하는 천명(박예진)


그래서 덕만이 현재의 30대~40미만 이라면 충분히 시어머니뻘 소리를 들을 수있겠다는 생각이였다. 또한, 당시 신라사회에 일반적으로 이뤄진 조혼의 풍습 때문이였다. 박혁거세도 13세에 왕위를 이였고, 그의 부인 알영도 혁거세와 같은 나이에 왕후가 되었다. 그러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면, 충분히 충분히 시어미(姑)를 쓰기에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기는 것은 선덕왕 즉위원년 인 632년 대신 을제의 국정관장, 634년 3년 기사를 보고, 30대초반 보다는 나이가 어리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들었다.

마야왕후(윤유선)

삼국사기에는 이해(634년) 진평왕이 584년 진평왕 6년 부터 사용한 <건복> 연호를 <인평>으로 바꾸었다.그래서 진평왕이 나이 어린 13세 전후에 왕위를 이었을 것으로 다들 추측하고 있다. 연호를 바꾸는 행위는 진흥왕

진평왕(조민기)

이 7살에 왕위에 오른 후 법흥의 딸이며, 어머니인 지소태후의 수렴청정에서 벗어난  551년 진흥왕 12년, 연호를 <개국>으로 바꾸고 있었다. 551년 이해가 삼국사기의 기록상으로 진흥(심맥종)이 18세가 되는 해이다.


그렇다면, 덕만도 즉위 3년차에 비로소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나이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첫번째 의문이고, 결정적인 의문은 634년 이해에 <삼국유사>에 의하면 작은아버지 국반(진안)갈문왕과 결혼을 하였다는 기록이다. 

기존 통설로는 50세가 넘었을것으로 짐작하는 나이에 첫 결혼이라? 좀 의심스럽지 않는가? 덕만이 나이가 많았다면, 아무리 석녀인 덕만의 결혼한 남편도 있었을 것이고, 덕만보다는 사위왕을 선호한(?) 신라에서 남편을 냅두고, 덕만을 왕위에 오르게 했다?.  50세를 넘어서 자신보다 10살이상 많을 것으로 추측되는 작은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해서 무엇하게?


덕만에게는 즉위 3년인 634년이 그 어느때 보다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시기이다.

또다른 의문을 증폭시키는 사례는 즉위 초년에 행해진 처사 때문이다. 국정을 <대신> 을제에서 의지하고 있다. 진흥왕이 어미니인 지소태후에 의지하고, 진평왕이 모후인 만호태후에게 의지하고 있듯히 말이다.  그리고 독자적인 노선을 펼칠때 연호까지 바꾼다.

그렇다면 덕만은 634년에 몇살이 되는 것일가?

덕만(남지현), 천명(신세경)

아무리 늦춰 잡아도 20대초반 밖에 안되지 않는가? 그래도 걸리는 문제는 <황고>이다.  그래서 도대체 <姑:시어미고>를 당대에는 어떻게 사용하고, 현재 한자를 쓰는 중국에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아니면 또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어사전을 보고, 뒤통수를 크게 한방 먹은 충격을 받고 말았다. 글쓴이가 추측한 덕만은 어릴때 왕위에 올랐다는 것을 너무나도 쉽게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역시 안될땐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성현의 말씀이 또다시 뒤덜미를 잡는 순간이다.  

중국어 사전에서 姑의 활용 예
 [gū]  

시어미-고 부수: 女   총획수: 8

[번체]  부수: 女   총획수: 8

1. [명] 〔~儿〕 고모.

我的大姑到新疆支边去了。 - 우리 고모는 신장의 변경 개발을 지원하러 가셨다.
뜻풀이 검색결과 (1-5 / 총 13개)

고모(姑母)

[名] 1.  [gū mǔ]

고모부(姑母夫)

[名] 1.  [gū fù]

고식(姑息)

[名] 1.  [gū xī]

고종 사촌(姑從四寸)

[名] 1.  [gū biǎo]

내종(內從)

[名] 表兄弟姐妹  [gū biǎo xiōng dì jiě mèi]

 

我的大姑到新疆支边去了。 - 우리 고모는 신장의 변경 개발을 지원하러 가셨다.

大姑를 고모라고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해석을 할때는 큰시어니뻘 나이많은 어머니뻘 츠자 정도이다.
고종 사촌(姑從四寸) : 아버지 자매의 자식들

乡里子乡里样
촌 처녀는 촌티가 난다. 고자는 나이가 작은 여자 즉 처녀

顺得来失嫂意
올케에게 잘 보이면, 형수의 미움을 산다.
  • 관용구, 속담
    守好邻,学好邻,守着尼会参神
    좋은 이웃을 가까이하면 따라 배우고, 비구니가 옆에 있으면 참선(參禪)하는 것을 배운다.
  • 관용구, 속담
    舍不得娘,逮不住和尚
    처녀를 아까워하면 중을 잡지 못한다.

  • 니고 = 비구니, 고랑 = 처녀,고자= 처녀

    위의 사례를 볼때 姑는 그냥 성인 여자 를 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여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정을 일구고 살아갈 그정도 뜻이지 않는가?
     

    姑란 여자를 높여 부른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제 <시어미고:姑>가 가지고 있는 의문도 풀렸다.
    大姑를 고모라고 하듯이 <황고>는 진평왕의 시어미뻘이 되는게 아니라.진평왕의 시어머니뻘이라고 한다면 클날이지 않는가? 진평왕과 마야의 장녀는 진평왕의 시어미뻘이라니, 그러니 왕의 다큰 여식 또는 왕의 여식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조황고:聖祖皇姑>란 성스런 조상을 둔 황제의 딸 : 아들이 있어서 장가를 보낼 나이정도에 있는 것으로 해석해도 30세전후 라는 뜻이 되지만,진평왕의 뒤를 잇기에 핏줄에 하자가 없는 정통성 있는 진평왕의 다 큰(성숙한) 자식 정도이다.<황고>의 황과 대응하여 황제(진평)의 결혼해서 어른 노릇할 정도의 나이인 성인여식이란 뜻이다. 

    진평의 왕비와 후손들


    왜? 덕만이 왕위를 이을때 <성조황고>를 올리게 되었을까?
     

    칠숙(안길강), 소화(서영희)

    진평왕은 적통을 이을 만한 아들은 없었으나, 딸들은 넘치고 넘쳤다는 의미도 된다.또한, 진평왕 말년 631년 에 있었던 이찬 칠숙의 난으로 이를 무마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관련족보들을 살펴본다면, 최소한 진평에게는 천명,?, 선화,덕만,덕만과 같이 마야왕후을 어미로 둔 동복자매 아우들 , 600년 이전 선화가 3번째 딸이라고 했으니 천명과 선화 사이에 둔 딸, 김인평을 남편으로 둔딸, 조계룡을 남편으로 둔딸 등 최소 7명이 그 흔적을 보이고 있다.

    그 많은 딸들 중에 적통을 이을 딸은 마야왕후 사이의 장녀인 정통성이 있는 덕만이라는 뜻이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여자라고 놀리지 말아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훌륭한 전왕의 딸이예요." 유행가 가사 같지 않는가? 그러니 덕만에 이찬 칠숙처럼 딴지(631년 반란)를 거는 행위는 하지 말라는 대국민 선언문이고, 덕만에 대한 국인(왕족과 귀족들)의 <충성서약문>인것이다. 
     

    알천(이승효)


    천명은 이전 왕후의 여식이나 후비의 소생이란 뜻이고, 정통성이 없다는 선언과도 같다. 이전 시리즈글 부터 읽어온 사람은 중복된 말이지만, 천명과 덕만은 같은 돌림자 자체도 없다. 또한, 진평의 딸이며, 진지왕의 아들인 용수.용춘의 남편이지만, 덕만보다 왕위계승에는 후순위가 된다. 자신의 아들인 춘추가 왕위에 오를때도 알천보다도 왕위승계서열에서 밀려 있었다.



    기존의 우리가 일반적인 상식이라고 알고 있었던 덕만과 천명
     

    덕만이 진평왕의 맞이라 했으니 천명은 덕만보다 나이가 어렸을 것이다.

    용춘(도이성)

    천명의 과 용춘(용수)의 아들인  춘추(603년)을 기준으로 덕만은 천명보다 나이가 많이 먹었을 것이다.그래서 <황고>라고 쓴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덕만이 공주시절 모란씨 서되 사건은 그냥 지어낸 이야기다,선덕여왕이 김춘추와 문희를 엮어준것도 여왕시절에 해주었다.

    50

    자연발화(shc)

    대의 늙은 왕인 덕만을 보고, 사랑에 빠질 인간은 없다. 그러니 영묘사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은 덕만과 혜공의 이적과 일체화 시키고, 지귀설화는 이전의 대지도론의 기사를 베낀것이다.분황사에서 발견된 바늘과 가위는 여자의 신물이기 때문에 넣어 놓은 것이다. 더 나아가 50세가 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634년 결혼은 작은아버지의 뒤배를 이용하기 위한 정략적으로 나이 많을 때 한것이고, 연호도 그때 바꾼것이다.출산을 염두한 행위는 결코 아니다.

    이말을 그냥 따라야 하는 것인가? 이야기들이 서로 미심쩍고, 화장실에 가서 똥을 다 눟지 못하고, 중간에 뒤처리도 못하고, 나온 찜찜함이 뭍어 있지 않는가? 

     

    딱한가지만 바꾸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문제.

    정확히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정확히 해석한다면 어머니가 다른 형제인 천명과 덕만이 있다.실제로 천명과 덕만이 같은 모후의 소생이라고 삼국유사와 삼국사기가 한줄이라도 언급한적이 없다.

    천명은 마야부인 이전의 왕후(후비) 소생이다. 그러니 천명은 덕만보다 충분히 나이가 많다. <
    성조황고>는 성스런 조상의 핏줄을 이어 받는 임금의 딸이며 여황을 말한다.

    덕만(이요원)

    성조황고는 우리시대에도 있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 국민교육헌장에 나오는 첫대목이다. 일종의 선언문이지 않는가? 우리들이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나긴했나? 그냥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과정에서 태어난거지 거창하게 역사적 사명을 띠우고 태어 났겠는가? 남.여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관계를 맺었겠는가? 하긴 요즘처럼 줄어드는 애들과 키우기 힘든 환경에서는 역사적인 사명을 감을 가지지 않으면, 애를 낳기가 힘든 시기에 도달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오죽하면 애를 낳는게 애국하는 지름길이라고 하겠는가?

    어찌되었던, <성조황고> 당시 충성서약을 뒤로 하고, 632년 원년 을제의 기사와 634년는 덕만 3년의 기사를 다시 읽어 보자.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을제(신구)

    선덕여왕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선덕여왕 원년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3년(634)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었다. 분황사(芬皇寺)가 완성되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3년

    어떻게 읽히는가? 덕만이 왕위를 잇고, 직접통치를 못하고, 을제에게 의지했구나, 634년 진흥왕이나 진평왕의 사례에 비추어 덕만은 634년에 비로서 연호를 바꾸는 것으로 낭낭18세에 접어 들어구나,덕만은 634년 작은 아버지 국반과 결혼하는 것으로 보았을때 많이 잡아도 18세는 넘지 않았을 것이다. 영묘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덕만이였기에 삼국유사에 기록된 젊은 덕만과 지귀심화도 영묘탑 화재사건과 관련이 있구나. 이게 합리적인 해석이 되는 것이 아닐까?


    위의 다음 view로 송고된 시리즈 기사를 몇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덕만(남지현), 소화(서영희)

    첫째, 덕만은 진평왕과 정비 마야의 장녀다.

    둘째, 천명이 나이는 많지만, 정비인 마야의 소생은 아니다.
    셋째, 천명과 덕만은 이복자매간이다.

    넷째, 천명은 정비인 마야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덕만보다 왕위승계에서 후순위다.
    다섯째, 마야의 후손으로는 덕만 말고도 또다른 자매(들)이 있다.  

    여섯째, 덕만은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했다.
    일곱째, 덕만은 왕위를 오를때, 현재 80년생이며 한국나이 30살인 이요원보다도 어렸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의 아역역할을 한 남지현은 2009년 현재 15세이다.덕만은 실제로 632년에 15~18세 정도에 늦어도 20세 전후에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이제 마지막 걸림돌인 <황고>도 충분히 사례를 들어서 증명하고, 해결하였다. 덕만의 출생의 비밀과 덕만의 기록들을 시리즈로 엮은 것을 끝내려고 한다.그동안 덕만이 어린나이(당시에는 충분한 나이)에 즉위했다는 사실을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을 바탕으로 충분히 증명했다고 본다. ( 드라마 선덕여왕관련 사진의 저작권은 mbc에 있음 )

    다음편에는 선덕왕 원년에 보이는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를 해석해 볼것이다. 단순한 미사어구인가? 아닌가?하는 글이다. 시리즈 글을 읽은 분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이미 충분히 글로써 표현했기 때문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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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역사맨 2009.07.28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기존 학설보다 훨씬 설득력있네여
      공감합니다
      근데 궁금한게 있어여
      즉위때가 10대 중반에서 20대라면
      진평왕과 나이차이가 너무 많이
      나지 않나여? 게다가 김춘추보다도
      어리게 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7.28 14:56  댓글주소  수정/삭제

        579년 진평왕이 왕위에 오른 때는 13세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566년 생인거지요.
        632년에 죽을 때 나이는 77세입니다.. 한갑이 다되어서 얻은 귀한 자식이 되는 겁니다..

        김유신도 61세인 회갑맞이 신부 지조(춘추/문희)을 맞이 하여 많은 자식을 낳지요.. 원술등 원짜 돌림 아들들..

        김유신에 비하면 김진평은 약과 입니다..
        김진평은 60이 한참 넘은 나이에 승만 손씨를 후비로 들이기도 합니다.. 아들보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결국에는 손들고 말지요. 덕만으로..

    3. BlogIcon 초록누리 2009.07.28 14: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요즘 마음 비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저 픽션일뿐이다 이러고 세뇌시켜가면서요...ㅎ 그러고 보니까 색다른 재미도 생기고...

      • BlogIcon 갓쉰동 2009.07.28 1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즐길줄 아시는 군요.. 저는 이미 포기 했어용.. 그저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재미는 있거든요.. ㅋㅋ

        원작이 부실해서 그렇징..

    4. 역사맨 2009.07.28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궁금한게 또 있습니다
      만약 즉위때가 10대중반에서 20세정도라면
      김춘추와 문희를 엮어주는 사건에서
      나이가 너무 어리게 되지 않나여?

    5. ㅎㅎㅎ 2009.07.29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윤유선 님이세요.. 마야왕후역 맡으신분 ㅎㅎ 오타 .ㅎㅎ

    6. 지옥천사 2009.07.31 0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으로, 덕만의 결혼과 관련된 것인데요,

      선덕여왕 이후의 왕이 진덕여왕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진덕여왕의 아비가 국반갈문왕으로 되어있는데,

      미리 선덕여왕이 진덕여왕을 차기 왕으로 점찍어두고 있고,

      이후 이에 대한 정당성 확보차원으로 국반갈문왕을 남편으로 둔 게 아닐까 하네요..

      물론 선덕여왕이 석녀라는 건 저도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성적 욕구(?) 해결 차원에서는

      그 당시 아주 개방적인 성문화였을 거라는 전제하에, '궁녀' 급에 해당하는 남성이 없진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위키디피아에서 선덕여왕에 대한 남편에 대한 언급으로,

      "신라의 규례에 따라 3명의 남편을 두었다."라는 말이 있는데,

      제가 고대사에 대한 끈은 짧아서 신라의 규례까지는 알지 못하고, 이것의 진위 또한 잘 알지 못하지만,

      법칙으로 인해 3명의 남편을 두어야 했다면, 어차피 후사를 두지 못했던 선덕여왕의 당시 사정 상,

      후계자를 든든히 하기 위해서 작은아버지와 결혼할 수 밖에 없었다..라는 추측도 성립하지 않을까요?

    7. 지옥천사 2009.07.31 0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딴지 좀 걸어 볼까요..

      우선, 저 중국어 사전, '신장' 어쩌고 저쩌고 나오는 걸 보아하니 최신 중국어 사전 같은데요,

      무려 1000년보다도 전에 쓰인 단어를, 것도 여러 해석이 가능한 한자어를 현대적 기준으로 보신 건 좀 오류라 봅니다.

      한국어의 '영감'도 현재의 의미로 쓰이기에는 그리 오래된 역사도 아니고,

      섬나라의 '오마에'도 원래는 귀인을 지칭한 단어였지요..

      '고'자에 시어미가 붙어있는 건, 우리나라에 들어올 당시에는 '시어미'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요?

      '지(地)'가 현재는 '땅'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당시 고어인 '땅>따' 에서 따와

      아직까지도 '따 지'라고 하는 것처럼요..

    8. 2009.08.13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13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봉황은 기존의 통설을 따른거지요.. 분석없이..

        덕만이 맏이로 나온건,, 재대로 읽지 않아서 그런것 같습니다. 그것도 통설..

        덕만이 천명의 동생으로 나온것은 화랑세기를 따른 것 같습니다..

    9. 좋은 시도입니다만 2009.08.17 0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설인지 사실인지 신뢰하기 어려운 화랑세기를 제쳐두면, 덕만은 분명히 천명의 언니입니다. 김춘추가 602년생인데 천명이 아무리 어려도 585년 정도에는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632년에 등극한 덕만의 나이는? 성조황고가 전혀 어색하지 않죠. 아울러 고대 신라어의 '고'가 무엇인지 알려면 현대 중국어에서보다는 현대 한국어에서 '고'가 어떻게 쓰이는지 보면 될 일 아닌가요?

      그럴듯한 추측들이지만 결국 사상누각이 아닌가 합니다. 아울러 삼국사기, 유사의 원본을 보시고 쓰시는지는 알 수 없으나, 왕의 자식이 여럿 있을 때에 굳이 구별이 필요하지 않은 때가 아니면 서로 동복인지 이복인지 언급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랑세기는 기존의 기록과 상충하는 부분이 많은데, 예를 들어 '성골남진'도 있습니다. 주인장께서 여러가지 흥미로운 추측을 하셨지만, 이 모든 것이 현대 중국어의 한자 뜻 = 고대 신라어의 한자 뜻, 그리고 화랑세기=진짜, 삼국유사=믿기 어려움 이라는 것을 가정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화랑세기가 아직 '불명확하다'는 점을 확실히 전제해 두고 추론하면, 위의 일곱 까지 추론 중 어느 하나 남는 것이 없군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7 0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고 진행하고 있는뎅..

        황고는 황제의딸이란 말 밖에 안되요.. 아무리 찾아봐도,..

        왜 할머니라고 하지요.. 신라사회를 알면 님처럼 말은 전혀 하지 않을텐데.. 아쉽군요..

        다른글도 보는 센스를..

    10. 좋은 시도입니다만 2009.08.17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세기 자체는 인용하고 있지 않지만, 다른 몇몇 글들을 봐도 화랑세기를 칭찬하는 등 화랑세기는 이미 사실이라는 가정을 깔고 시작하고 있지요. 삼국사기, 삼국유사만 가지고는 쉰동님과 같은 주장을 할 여지가 도저히 없습니다. 다른 글에서는 조선왕조실록과 비교하면서 말씀하셨는데, 사실 썩 좋은 비교는 아닙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나온 신라 기사들과 비교를 하셨어야 합니다. 화랑세기가 진실이라는 '가정'이 증명되기 이전에 갓쉰동님의 주장은 모두 '가정'에 불과합니다.(신라사회를 알면... 이라고 하셨지만 화랑세기에 나온 부분들이 사실이 아니고, 미실이라는 인물도 지어낸 사람이라면, 쉰동님께서 알고계신 신라사회는 모 역사소설가가 지어낸 상상력의 산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쥬신이 어쩌구 하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쥬신의 출처는 모 만화가의 책일 뿐, 어떠한 사료적인 고증도 없습니다.

      갓쉰동님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상관 없지만, 지금 여기 나온 것들이 '사실'인 것처럼 묘사하시는 것은 환단고기 신봉자들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역사에 대한 혼란을 가져오지 않을지 약간 걱정이 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17 1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떤이는 화랑세기를 왜 인정하지 않느냐고 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님은 왜 화랑세기를 인정하냐고 하는군요..
        저 굉장히 화랑세기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도대체 어떤의도로 썼길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그리도 절묘하게 사이를 오가는지..

        그리고 삼국사기의 기록을 검토해 본적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님은 번역본 말고 원전을 본적이라도 있나요?

        여태까지 미실을 실존인물이라고 확정해서 한마디도 한적이 없는데.. 오히려 화랑세기 너무 정교해서 의심스럽다는 말은 수없이 했습니다만,,

        삼국사기의 기록은 삼국사기와 비교해야 한다고 했는데 절대적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인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님은 글을 님이 보고 싶은 것만 필터링 해서보는 습관이 있는것 같군요..

        아참, 그리고 삼국시대는 똑같은 시대라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도 서로 다른 행태를 보여주는 것이 상례예요..님이 저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 패턴을 보이고, 서로다른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조선은 비교하면 안된다? 삼국시대와 비교해라? 도대체 삼국시대랑 비교를 그렇게 했는데도 왜? 조선과 비교하냐?니 대략 난감하네요..

        제가 삼국시대 자료를 가지고 기존의 설을 비판했으니 님이 삼국시대의 자료를 근거로 아님을 증명해주시는게 먼저 아닐까요? 그래야 제가 반박을 하지요?
        논쟁이나 토론은 이런 방식으로 하는 겁니다.

        님처럼 뜬구름 잡는게 아니고..

    11. BlogIcon 갓쉰동 2009.08.17 1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고'가 현대에만 성인여인들에 쓰인 말이다 이말은 님이 증명하시면 되요.. 제가 할일이 아니고.. 뜸금없이 용례도 밝히지 않고 현대에만 성인여성에 쓰인말이고 과거에는 다르게 썼다니.. 님은 이미, '고'의 용법에 저의 주장에 동의를 하는 겁니다..

      또한, 삼국사기 어디를 살펴봐도 마야가 진평의 아내라는 기록은 있지만, 천명의 어머니라는 기록은 없어요.. 해당 기록을 가져와서 반박을 하시면 됩니다.

    12. BlogIcon 갓쉰동 2009.08.17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은 <성조황고>를 어떻게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님의 해석좀 알려주세요..

    13. 난독증 2009.08.17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 대체 어디에 덕만이 둘째라고 나왔다는거야 ? ㅎㅎ 없는 기록 지어내기 쩌네

      • BlogIcon 갓쉰동 2009.08.17 1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천명이 어디에 둘째라고 나오던가요?
        덕만은 진평왕의 맏이며, 마야의 딸이라는 말은 있는데.

        이게 어찌 천명의 어미가 마야가 된다는 뜻이되지요..

        신라시대가 무슨 1부1처제 인줄 아시나? 신라왕이 1부1처를 했다는 증거좀 내 놓아 보시길 바랍니다.

    14. 난독증 2009.08.17 1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도 않은 1부1처 지어내질 않나 ㅋ 삼국사기 다른 기록 뒤져봐요 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명확하게 계보를 정리 했나 안했나

    15. 난독증 2009.08.17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handic.daum.net/dicha/view_detail.do?q=12-01-24-02

      어이없는 중국어사전보다는 한자 옥편이 훨 나을듯. 어떻게든 어거지로 붙이려고 하지 마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7 2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시어머니
        ㉡고모(姑母)
        ㉢계집, 여자(女子), 부녀(婦女)의 통칭(通稱)

        계집,여자, 부녀의 통칭.. 됐습니까?

        님이 인용한 자전에도 명백히 나와 있잖아요... 안봐서 그럴까봐 그러십니까?

        증거를 제시하라니까 그러시넹.. 천명이 마야의 소생이다를..

        천명이 마야의 소생이며 덕만보다 언니라고 언급한건 현존하는 화랑세기 밖에 없어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천명의 어머니를 언급조차 않하고있다구요..

    16. 난독증 2009.08.17 2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쉰동님은 어떻게 '고'에서 '어린 여자'를 찾아내셨는지 궁금하네요. 천명이 마야의 소생이라고 안나와 있다고 하는데 천명이 덕만보다 언니라는 말 역시 없군요^^

      皇姑(황고) ①'돌아간 시어머니'의 높임말 ②아버지의 고모(姑母).

      이걸 보면 김춘추의 후손들의 고모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 것 같은데 말이죠

      일단 기존 국사학계가 선덕여왕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부터 보고 오셔야 할듯?

      • BlogIcon 갓쉰동 2009.08.17 2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皇姑(황고) ①'돌아간 시어머니'의 높임말 ②아버지의 고모(姑母). 곧 할아버지의 누이
        님이 제시한 겁니다. 이것도 이미 봤어요.. 님처럼 안보고 한게 안니고..

        님의 해석이면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되요..

        그래서 본문에 이야기 놓았잖습니까?

        님처럼 말하는 분이 계실까봐.. 덕만이 진평의시어미뻘이냐고..

        그냥 성숙한 여인, 성인 여인,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라고.. 황고는 그냥 여황..요말입니다. 다른 용법이 없어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7 2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즉위년에 존호를 성조황고를 올리면서 춘추의 고모라고 하는 있겠습니까?

        기존 다수설을 깨자고 글을 쓰는 거지.. 기존 학설을 따를 바에는 왜글을 쓰겠습니까?

      • BlogIcon 갓쉰동 2009.08.17 2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재의 기준으로 하면 어린여자이고, 당대의 기준으로 하면 성인여성이라고 했을텐데요.. 13세 시집가고, 유신의 처인 지조도 15~6세정도인뎅..

        여성인 경우.. 생리하면 성인식을 치르는 것은 아시지요..

        설마 현재의 기준으로 신라를 보고 있는겁니까?

    17. 나그네 2009.10.12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글입니다.
      그런데 이 글 퍼가도 되나요?

    18. 레아 2009.12.07 17: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은 공주시절에 세번이나 결혼했지만 천성적으로 자식을 낳지 못하는 몸이었죠. 게다 남지현의 시절 등극한것은 덕만이 아닌 진평왕이죠.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제위를 했으니까요.

    19. 레아 2009.12.07 1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을제로 하여금 국사를 총괄하게 하였다는 것은 선덕여왕의 나이가 젊지않다는 것을 의미하죠. 만약에 선덕여왕이 젊은 나이였다면 그건 진평왕이 늦게 마야왕후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다는 이야기인데 사실 진평왕이 늦은 나이에 결혼한 사람은 승만왕후이죠. 그리고 선덕여왕이 재우 십년에 죽었는데 그 젊은 나이에 별다른 이유없이 죽었다는게 말도 안되고요.

    20. BlogIcon koc/SALM 2010.01.13 0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 내용이 맞다면 황고 칭호를 젊어서 받은 여자는 "선덕왕"이 유일하다는 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의 측천무후가 "고" 칭호를 자신에 붙인 때가 40대 말이었죠. 자칭인데도 그랬는데, 타칭을 절은 사람에게 붙여준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21.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선덕여왕 미실(고현정)과 덕만(이요원)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고대하고 기다리던, 모녀상봉인 마야왕후와 덕만이 만났다. 예고편에는 덕만이 공주의 신분을 알고도, <어출쌍생>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중악으로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극이 흥미진진 접입가경으로 흐르고 있다.


    그동안 글쓴이는 덕만과 천명이 어미가 다른 형제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증명하였다.

    그런데 덕만이 몇살때 왕위에 올랐는지는 확증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성조황고(聖祖皇姑)때문이였다. 그중에 <황고: 왕의 시어머니 뻘여자 자식이라니>

    <성조황고>의 일반적인 해석은 성스런 조상을 둔 임금의 시어머니(姑)라는 뜻이 된다. 설마, 덕만이 진평의 시어머니뻘은 아니지 않는가? 아니면 진평의 나이만큼이라도 되었단 말인가?

    아무리 천명과 덕만이 어머니가 다른 자매라고 주장을 하고 증명했지만, 시어머니뻘을 어떻게 해석할까의 의문이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슬퍼하는 천명(박예진)


    그래서 덕만이 현재의 30대~40미만 이라면 충분히 시어머니뻘 소리를 들을 수있겠다는 생각이였다. 또한, 당시 신라사회에 일반적으로 이뤄진 조혼의 풍습 때문이였다. 박혁거세도 13세에 왕위를 이였고, 그의 부인 알영도 혁거세와 같은 나이에 왕후가 되었다. 그러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면, 충분히 충분히 시어미(姑)를 쓰기에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기는 것은 선덕왕 즉위원년 인 632년 대신 을제의 국정관장, 634년 3년 기사를 보고, 30대초반 보다는 나이가 어리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들었다.

    마야왕후(윤유선)

    삼국사기에는 이해(634년) 진평왕이 584년 진평왕 6년 부터 사용한 <건복> 연호를 <인평>으로 바꾸었다.그래서 진평왕이 나이 어린 13세 전후에 왕위를 이었을 것으로 다들 추측하고 있다. 연호를 바꾸는 행위는 진흥왕

    진평왕(조민기)

    이 7살에 왕위에 오른 후 법흥의 딸이며, 어머니인 지소태후의 수렴청정에서 벗어난  551년 진흥왕 12년, 연호를 <개국>으로 바꾸고 있었다. 551년 이해가 삼국사기의 기록상으로 진흥(심맥종)이 18세가 되는 해이다.


    그렇다면, 덕만도 즉위 3년차에 비로소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나이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첫번째 의문이고, 결정적인 의문은 634년 이해에 <삼국유사>에 의하면 작은아버지 국반(진안)갈문왕과 결혼을 하였다는 기록이다. 

    기존 통설로는 50세가 넘었을것으로 짐작하는 나이에 첫 결혼이라? 좀 의심스럽지 않는가? 덕만이 나이가 많았다면, 아무리 석녀인 덕만의 결혼한 남편도 있었을 것이고, 덕만보다는 사위왕을 선호한(?) 신라에서 남편을 냅두고, 덕만을 왕위에 오르게 했다?.  50세를 넘어서 자신보다 10살이상 많을 것으로 추측되는 작은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해서 무엇하게?


    덕만에게는 즉위 3년인 634년이 그 어느때 보다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시기이다.

    또다른 의문을 증폭시키는 사례는 즉위 초년에 행해진 처사 때문이다. 국정을 <대신> 을제에서 의지하고 있다. 진흥왕이 어미니인 지소태후에 의지하고, 진평왕이 모후인 만호태후에게 의지하고 있듯히 말이다.  그리고 독자적인 노선을 펼칠때 연호까지 바꾼다.

    그렇다면 덕만은 634년에 몇살이 되는 것일가?

    덕만(남지현), 천명(신세경)

    아무리 늦춰 잡아도 20대초반 밖에 안되지 않는가? 그래도 걸리는 문제는 <황고>이다.  그래서 도대체 <姑:시어미고>를 당대에는 어떻게 사용하고, 현재 한자를 쓰는 중국에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아니면 또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어사전을 보고, 뒤통수를 크게 한방 먹은 충격을 받고 말았다. 글쓴이가 추측한 덕만은 어릴때 왕위에 올랐다는 것을 너무나도 쉽게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역시 안될땐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성현의 말씀이 또다시 뒤덜미를 잡는 순간이다.  

    중국어 사전에서 姑의 활용 예
     [gū]  

    시어미-고 부수: 女   총획수: 8

    [번체]  부수: 女   총획수: 8

    1. [명] 〔~儿〕 고모.

    我的大姑到新疆支边去了。 - 우리 고모는 신장의 변경 개발을 지원하러 가셨다.
    뜻풀이 검색결과 (1-5 / 총 13개)

    고모(姑母)

    [名] 1.  [gū mǔ]

    고모부(姑母夫)

    [名] 1.  [gū fù]

    고식(姑息)

    [名] 1.  [gū xī]

    고종 사촌(姑從四寸)

    [名] 1.  [gū biǎo]

    내종(內從)

    [名] 表兄弟姐妹  [gū biǎo xiōng dì jiě mèi]

     

    我的大姑到新疆支边去了。 - 우리 고모는 신장의 변경 개발을 지원하러 가셨다.

    大姑를 고모라고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해석을 할때는 큰시어니뻘 나이많은 어머니뻘 츠자 정도이다.
    고종 사촌(姑從四寸) : 아버지 자매의 자식들

    乡里子乡里样
    촌 처녀는 촌티가 난다. 고자는 나이가 작은 여자 즉 처녀

    顺得来失嫂意
    올케에게 잘 보이면, 형수의 미움을 산다.
  • 관용구, 속담
    守好邻,学好邻,守着尼会参神
    좋은 이웃을 가까이하면 따라 배우고, 비구니가 옆에 있으면 참선(參禪)하는 것을 배운다.
  • 관용구, 속담
    舍不得娘,逮不住和尚
    처녀를 아까워하면 중을 잡지 못한다.

  • 니고 = 비구니, 고랑 = 처녀,고자= 처녀

    위의 사례를 볼때 姑는 그냥 성인 여자 를 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여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정을 일구고 살아갈 그정도 뜻이지 않는가?
     

    姑란 여자를 높여 부른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제 <시어미고:姑>가 가지고 있는 의문도 풀렸다.
    大姑를 고모라고 하듯이 <황고>는 진평왕의 시어미뻘이 되는게 아니라.진평왕의 시어머니뻘이라고 한다면 클날이지 않는가? 진평왕과 마야의 장녀는 진평왕의 시어미뻘이라니, 그러니 왕의 다큰 여식 또는 왕의 여식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조황고:聖祖皇姑>란 성스런 조상을 둔 황제의 딸 : 아들이 있어서 장가를 보낼 나이정도에 있는 것으로 해석해도 30세전후 라는 뜻이 되지만,진평왕의 뒤를 잇기에 핏줄에 하자가 없는 정통성 있는 진평왕의 다 큰(성숙한) 자식 정도이다.<황고>의 황과 대응하여 황제(진평)의 결혼해서 어른 노릇할 정도의 나이인 성인여식이란 뜻이다. 

    진평의 왕비와 후손들


    왜? 덕만이 왕위를 이을때 <성조황고>를 올리게 되었을까?
     

    칠숙(안길강), 소화(서영희)

    진평왕은 적통을 이을 만한 아들은 없었으나, 딸들은 넘치고 넘쳤다는 의미도 된다.또한, 진평왕 말년 631년 에 있었던 이찬 칠숙의 난으로 이를 무마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관련족보들을 살펴본다면, 최소한 진평에게는 천명,?, 선화,덕만,덕만과 같이 마야왕후을 어미로 둔 동복자매 아우들 , 600년 이전 선화가 3번째 딸이라고 했으니 천명과 선화 사이에 둔 딸, 김인평을 남편으로 둔딸, 조계룡을 남편으로 둔딸 등 최소 7명이 그 흔적을 보이고 있다.

    그 많은 딸들 중에 적통을 이을 딸은 마야왕후 사이의 장녀인 정통성이 있는 덕만이라는 뜻이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여자라고 놀리지 말아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훌륭한 전왕의 딸이예요." 유행가 가사 같지 않는가? 그러니 덕만에 이찬 칠숙처럼 딴지(631년 반란)를 거는 행위는 하지 말라는 대국민 선언문이고, 덕만에 대한 국인(왕족과 귀족들)의 <충성서약문>인것이다. 
     

    알천(이승효)


    천명은 이전 왕후의 여식이나 후비의 소생이란 뜻이고, 정통성이 없다는 선언과도 같다. 이전 시리즈글 부터 읽어온 사람은 중복된 말이지만, 천명과 덕만은 같은 돌림자 자체도 없다. 또한, 진평의 딸이며, 진지왕의 아들인 용수.용춘의 남편이지만, 덕만보다 왕위계승에는 후순위가 된다. 자신의 아들인 춘추가 왕위에 오를때도 알천보다도 왕위승계서열에서 밀려 있었다.



    기존의 우리가 일반적인 상식이라고 알고 있었던 덕만과 천명
     

    덕만이 진평왕의 맞이라 했으니 천명은 덕만보다 나이가 어렸을 것이다.

    용춘(도이성)

    천명의 과 용춘(용수)의 아들인  춘추(603년)을 기준으로 덕만은 천명보다 나이가 많이 먹었을 것이다.그래서 <황고>라고 쓴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덕만이 공주시절 모란씨 서되 사건은 그냥 지어낸 이야기다,선덕여왕이 김춘추와 문희를 엮어준것도 여왕시절에 해주었다.

    50

    자연발화(shc)

    대의 늙은 왕인 덕만을 보고, 사랑에 빠질 인간은 없다. 그러니 영묘사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은 덕만과 혜공의 이적과 일체화 시키고, 지귀설화는 이전의 대지도론의 기사를 베낀것이다.분황사에서 발견된 바늘과 가위는 여자의 신물이기 때문에 넣어 놓은 것이다. 더 나아가 50세가 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634년 결혼은 작은아버지의 뒤배를 이용하기 위한 정략적으로 나이 많을 때 한것이고, 연호도 그때 바꾼것이다.출산을 염두한 행위는 결코 아니다.

    이말을 그냥 따라야 하는 것인가? 이야기들이 서로 미심쩍고, 화장실에 가서 똥을 다 눟지 못하고, 중간에 뒤처리도 못하고, 나온 찜찜함이 뭍어 있지 않는가? 

     

    딱한가지만 바꾸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문제.

    정확히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정확히 해석한다면 어머니가 다른 형제인 천명과 덕만이 있다.실제로 천명과 덕만이 같은 모후의 소생이라고 삼국유사와 삼국사기가 한줄이라도 언급한적이 없다.

    천명은 마야부인 이전의 왕후(후비) 소생이다. 그러니 천명은 덕만보다 충분히 나이가 많다. <
    성조황고>는 성스런 조상의 핏줄을 이어 받는 임금의 딸이며 여황을 말한다.

    덕만(이요원)

    성조황고는 우리시대에도 있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 국민교육헌장에 나오는 첫대목이다. 일종의 선언문이지 않는가? 우리들이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나긴했나? 그냥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과정에서 태어난거지 거창하게 역사적 사명을 띠우고 태어 났겠는가? 남.여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관계를 맺었겠는가? 하긴 요즘처럼 줄어드는 애들과 키우기 힘든 환경에서는 역사적인 사명을 감을 가지지 않으면, 애를 낳기가 힘든 시기에 도달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오죽하면 애를 낳는게 애국하는 지름길이라고 하겠는가?

    어찌되었던, <성조황고> 당시 충성서약을 뒤로 하고, 632년 원년 을제의 기사와 634년는 덕만 3년의 기사를 다시 읽어 보자.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을제(신구)

    선덕여왕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선덕여왕 원년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3년(634)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었다. 분황사(芬皇寺)가 완성되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3년

    어떻게 읽히는가? 덕만이 왕위를 잇고, 직접통치를 못하고, 을제에게 의지했구나, 634년 진흥왕이나 진평왕의 사례에 비추어 덕만은 634년에 비로서 연호를 바꾸는 것으로 낭낭18세에 접어 들어구나,덕만은 634년 작은 아버지 국반과 결혼하는 것으로 보았을때 많이 잡아도 18세는 넘지 않았을 것이다. 영묘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덕만이였기에 삼국유사에 기록된 젊은 덕만과 지귀심화도 영묘탑 화재사건과 관련이 있구나. 이게 합리적인 해석이 되는 것이 아닐까?


    위의 다음 view로 송고된 시리즈 기사를 몇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덕만(남지현), 소화(서영희)

    첫째, 덕만은 진평왕과 정비 마야의 장녀다.

    둘째, 천명이 나이는 많지만, 정비인 마야의 소생은 아니다.
    셋째, 천명과 덕만은 이복자매간이다.

    넷째, 천명은 정비인 마야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덕만보다 왕위승계에서 후순위다.
    다섯째, 마야의 후손으로는 덕만 말고도 또다른 자매(들)이 있다.  

    여섯째, 덕만은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했다.
    일곱째, 덕만은 왕위를 오를때, 현재 80년생이며 한국나이 30살인 이요원보다도 어렸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의 아역역할을 한 남지현은 2009년 현재 15세이다.덕만은 실제로 632년에 15~18세 정도에 늦어도 20세 전후에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이제 마지막 걸림돌인 <황고>도 충분히 사례를 들어서 증명하고, 해결하였다. 덕만의 출생의 비밀과 덕만의 기록들을 시리즈로 엮은 것을 끝내려고 한다.그동안 덕만이 어린나이(당시에는 충분한 나이)에 즉위했다는 사실을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을 바탕으로 충분히 증명했다고 본다. ( 드라마 선덕여왕관련 사진의 저작권은 mbc에 있음 )

    다음편에는 선덕왕 원년에 보이는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를 해석해 볼것이다. 단순한 미사어구인가? 아닌가?하는 글이다. 시리즈 글을 읽은 분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이미 충분히 글로써 표현했기 때문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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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역사맨 2009.07.28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기존 학설보다 훨씬 설득력있네여
      공감합니다
      근데 궁금한게 있어여
      즉위때가 10대 중반에서 20대라면
      진평왕과 나이차이가 너무 많이
      나지 않나여? 게다가 김춘추보다도
      어리게 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7.28 14:56  댓글주소  수정/삭제

        579년 진평왕이 왕위에 오른 때는 13세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566년 생인거지요.
        632년에 죽을 때 나이는 77세입니다.. 한갑이 다되어서 얻은 귀한 자식이 되는 겁니다..

        김유신도 61세인 회갑맞이 신부 지조(춘추/문희)을 맞이 하여 많은 자식을 낳지요.. 원술등 원짜 돌림 아들들..

        김유신에 비하면 김진평은 약과 입니다..
        김진평은 60이 한참 넘은 나이에 승만 손씨를 후비로 들이기도 합니다.. 아들보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결국에는 손들고 말지요. 덕만으로..

    3. BlogIcon 초록누리 2009.07.28 14: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요즘 마음 비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저 픽션일뿐이다 이러고 세뇌시켜가면서요...ㅎ 그러고 보니까 색다른 재미도 생기고...

      • BlogIcon 갓쉰동 2009.07.28 1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즐길줄 아시는 군요.. 저는 이미 포기 했어용.. 그저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재미는 있거든요.. ㅋㅋ

        원작이 부실해서 그렇징..

    4. 역사맨 2009.07.28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궁금한게 또 있습니다
      만약 즉위때가 10대중반에서 20세정도라면
      김춘추와 문희를 엮어주는 사건에서
      나이가 너무 어리게 되지 않나여?

    5. ㅎㅎㅎ 2009.07.29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윤유선 님이세요.. 마야왕후역 맡으신분 ㅎㅎ 오타 .ㅎㅎ

    6. 지옥천사 2009.07.31 0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으로, 덕만의 결혼과 관련된 것인데요,

      선덕여왕 이후의 왕이 진덕여왕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진덕여왕의 아비가 국반갈문왕으로 되어있는데,

      미리 선덕여왕이 진덕여왕을 차기 왕으로 점찍어두고 있고,

      이후 이에 대한 정당성 확보차원으로 국반갈문왕을 남편으로 둔 게 아닐까 하네요..

      물론 선덕여왕이 석녀라는 건 저도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성적 욕구(?) 해결 차원에서는

      그 당시 아주 개방적인 성문화였을 거라는 전제하에, '궁녀' 급에 해당하는 남성이 없진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위키디피아에서 선덕여왕에 대한 남편에 대한 언급으로,

      "신라의 규례에 따라 3명의 남편을 두었다."라는 말이 있는데,

      제가 고대사에 대한 끈은 짧아서 신라의 규례까지는 알지 못하고, 이것의 진위 또한 잘 알지 못하지만,

      법칙으로 인해 3명의 남편을 두어야 했다면, 어차피 후사를 두지 못했던 선덕여왕의 당시 사정 상,

      후계자를 든든히 하기 위해서 작은아버지와 결혼할 수 밖에 없었다..라는 추측도 성립하지 않을까요?

    7. 지옥천사 2009.07.31 0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딴지 좀 걸어 볼까요..

      우선, 저 중국어 사전, '신장' 어쩌고 저쩌고 나오는 걸 보아하니 최신 중국어 사전 같은데요,

      무려 1000년보다도 전에 쓰인 단어를, 것도 여러 해석이 가능한 한자어를 현대적 기준으로 보신 건 좀 오류라 봅니다.

      한국어의 '영감'도 현재의 의미로 쓰이기에는 그리 오래된 역사도 아니고,

      섬나라의 '오마에'도 원래는 귀인을 지칭한 단어였지요..

      '고'자에 시어미가 붙어있는 건, 우리나라에 들어올 당시에는 '시어미'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요?

      '지(地)'가 현재는 '땅'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당시 고어인 '땅>따' 에서 따와

      아직까지도 '따 지'라고 하는 것처럼요..

    8. 2009.08.13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13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봉황은 기존의 통설을 따른거지요.. 분석없이..

        덕만이 맏이로 나온건,, 재대로 읽지 않아서 그런것 같습니다. 그것도 통설..

        덕만이 천명의 동생으로 나온것은 화랑세기를 따른 것 같습니다..

    9. 좋은 시도입니다만 2009.08.17 0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설인지 사실인지 신뢰하기 어려운 화랑세기를 제쳐두면, 덕만은 분명히 천명의 언니입니다. 김춘추가 602년생인데 천명이 아무리 어려도 585년 정도에는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632년에 등극한 덕만의 나이는? 성조황고가 전혀 어색하지 않죠. 아울러 고대 신라어의 '고'가 무엇인지 알려면 현대 중국어에서보다는 현대 한국어에서 '고'가 어떻게 쓰이는지 보면 될 일 아닌가요?

      그럴듯한 추측들이지만 결국 사상누각이 아닌가 합니다. 아울러 삼국사기, 유사의 원본을 보시고 쓰시는지는 알 수 없으나, 왕의 자식이 여럿 있을 때에 굳이 구별이 필요하지 않은 때가 아니면 서로 동복인지 이복인지 언급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랑세기는 기존의 기록과 상충하는 부분이 많은데, 예를 들어 '성골남진'도 있습니다. 주인장께서 여러가지 흥미로운 추측을 하셨지만, 이 모든 것이 현대 중국어의 한자 뜻 = 고대 신라어의 한자 뜻, 그리고 화랑세기=진짜, 삼국유사=믿기 어려움 이라는 것을 가정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화랑세기가 아직 '불명확하다'는 점을 확실히 전제해 두고 추론하면, 위의 일곱 까지 추론 중 어느 하나 남는 것이 없군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7 0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고 진행하고 있는뎅..

        황고는 황제의딸이란 말 밖에 안되요.. 아무리 찾아봐도,..

        왜 할머니라고 하지요.. 신라사회를 알면 님처럼 말은 전혀 하지 않을텐데.. 아쉽군요..

        다른글도 보는 센스를..

    10. 좋은 시도입니다만 2009.08.17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세기 자체는 인용하고 있지 않지만, 다른 몇몇 글들을 봐도 화랑세기를 칭찬하는 등 화랑세기는 이미 사실이라는 가정을 깔고 시작하고 있지요. 삼국사기, 삼국유사만 가지고는 쉰동님과 같은 주장을 할 여지가 도저히 없습니다. 다른 글에서는 조선왕조실록과 비교하면서 말씀하셨는데, 사실 썩 좋은 비교는 아닙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나온 신라 기사들과 비교를 하셨어야 합니다. 화랑세기가 진실이라는 '가정'이 증명되기 이전에 갓쉰동님의 주장은 모두 '가정'에 불과합니다.(신라사회를 알면... 이라고 하셨지만 화랑세기에 나온 부분들이 사실이 아니고, 미실이라는 인물도 지어낸 사람이라면, 쉰동님께서 알고계신 신라사회는 모 역사소설가가 지어낸 상상력의 산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쥬신이 어쩌구 하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쥬신의 출처는 모 만화가의 책일 뿐, 어떠한 사료적인 고증도 없습니다.

      갓쉰동님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상관 없지만, 지금 여기 나온 것들이 '사실'인 것처럼 묘사하시는 것은 환단고기 신봉자들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역사에 대한 혼란을 가져오지 않을지 약간 걱정이 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17 1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떤이는 화랑세기를 왜 인정하지 않느냐고 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님은 왜 화랑세기를 인정하냐고 하는군요..
        저 굉장히 화랑세기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도대체 어떤의도로 썼길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그리도 절묘하게 사이를 오가는지..

        그리고 삼국사기의 기록을 검토해 본적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님은 번역본 말고 원전을 본적이라도 있나요?

        여태까지 미실을 실존인물이라고 확정해서 한마디도 한적이 없는데.. 오히려 화랑세기 너무 정교해서 의심스럽다는 말은 수없이 했습니다만,,

        삼국사기의 기록은 삼국사기와 비교해야 한다고 했는데 절대적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인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님은 글을 님이 보고 싶은 것만 필터링 해서보는 습관이 있는것 같군요..

        아참, 그리고 삼국시대는 똑같은 시대라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도 서로 다른 행태를 보여주는 것이 상례예요..님이 저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 패턴을 보이고, 서로다른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조선은 비교하면 안된다? 삼국시대와 비교해라? 도대체 삼국시대랑 비교를 그렇게 했는데도 왜? 조선과 비교하냐?니 대략 난감하네요..

        제가 삼국시대 자료를 가지고 기존의 설을 비판했으니 님이 삼국시대의 자료를 근거로 아님을 증명해주시는게 먼저 아닐까요? 그래야 제가 반박을 하지요?
        논쟁이나 토론은 이런 방식으로 하는 겁니다.

        님처럼 뜬구름 잡는게 아니고..

    11. BlogIcon 갓쉰동 2009.08.17 1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고'가 현대에만 성인여인들에 쓰인 말이다 이말은 님이 증명하시면 되요.. 제가 할일이 아니고.. 뜸금없이 용례도 밝히지 않고 현대에만 성인여성에 쓰인말이고 과거에는 다르게 썼다니.. 님은 이미, '고'의 용법에 저의 주장에 동의를 하는 겁니다..

      또한, 삼국사기 어디를 살펴봐도 마야가 진평의 아내라는 기록은 있지만, 천명의 어머니라는 기록은 없어요.. 해당 기록을 가져와서 반박을 하시면 됩니다.

    12. BlogIcon 갓쉰동 2009.08.17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은 <성조황고>를 어떻게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님의 해석좀 알려주세요..

    13. 난독증 2009.08.17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 대체 어디에 덕만이 둘째라고 나왔다는거야 ? ㅎㅎ 없는 기록 지어내기 쩌네

      • BlogIcon 갓쉰동 2009.08.17 1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천명이 어디에 둘째라고 나오던가요?
        덕만은 진평왕의 맏이며, 마야의 딸이라는 말은 있는데.

        이게 어찌 천명의 어미가 마야가 된다는 뜻이되지요..

        신라시대가 무슨 1부1처제 인줄 아시나? 신라왕이 1부1처를 했다는 증거좀 내 놓아 보시길 바랍니다.

    14. 난독증 2009.08.17 1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도 않은 1부1처 지어내질 않나 ㅋ 삼국사기 다른 기록 뒤져봐요 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명확하게 계보를 정리 했나 안했나

    15. 난독증 2009.08.17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handic.daum.net/dicha/view_detail.do?q=12-01-24-02

      어이없는 중국어사전보다는 한자 옥편이 훨 나을듯. 어떻게든 어거지로 붙이려고 하지 마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7 2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시어머니
        ㉡고모(姑母)
        ㉢계집, 여자(女子), 부녀(婦女)의 통칭(通稱)

        계집,여자, 부녀의 통칭.. 됐습니까?

        님이 인용한 자전에도 명백히 나와 있잖아요... 안봐서 그럴까봐 그러십니까?

        증거를 제시하라니까 그러시넹.. 천명이 마야의 소생이다를..

        천명이 마야의 소생이며 덕만보다 언니라고 언급한건 현존하는 화랑세기 밖에 없어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천명의 어머니를 언급조차 않하고있다구요..

    16. 난독증 2009.08.17 2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쉰동님은 어떻게 '고'에서 '어린 여자'를 찾아내셨는지 궁금하네요. 천명이 마야의 소생이라고 안나와 있다고 하는데 천명이 덕만보다 언니라는 말 역시 없군요^^

      皇姑(황고) ①'돌아간 시어머니'의 높임말 ②아버지의 고모(姑母).

      이걸 보면 김춘추의 후손들의 고모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 것 같은데 말이죠

      일단 기존 국사학계가 선덕여왕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부터 보고 오셔야 할듯?

      • BlogIcon 갓쉰동 2009.08.17 2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皇姑(황고) ①'돌아간 시어머니'의 높임말 ②아버지의 고모(姑母). 곧 할아버지의 누이
        님이 제시한 겁니다. 이것도 이미 봤어요.. 님처럼 안보고 한게 안니고..

        님의 해석이면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되요..

        그래서 본문에 이야기 놓았잖습니까?

        님처럼 말하는 분이 계실까봐.. 덕만이 진평의시어미뻘이냐고..

        그냥 성숙한 여인, 성인 여인,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라고.. 황고는 그냥 여황..요말입니다. 다른 용법이 없어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7 2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즉위년에 존호를 성조황고를 올리면서 춘추의 고모라고 하는 있겠습니까?

        기존 다수설을 깨자고 글을 쓰는 거지.. 기존 학설을 따를 바에는 왜글을 쓰겠습니까?

      • BlogIcon 갓쉰동 2009.08.17 2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재의 기준으로 하면 어린여자이고, 당대의 기준으로 하면 성인여성이라고 했을텐데요.. 13세 시집가고, 유신의 처인 지조도 15~6세정도인뎅..

        여성인 경우.. 생리하면 성인식을 치르는 것은 아시지요..

        설마 현재의 기준으로 신라를 보고 있는겁니까?

    17. 나그네 2009.10.12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글입니다.
      그런데 이 글 퍼가도 되나요?

    18. 레아 2009.12.07 17: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은 공주시절에 세번이나 결혼했지만 천성적으로 자식을 낳지 못하는 몸이었죠. 게다 남지현의 시절 등극한것은 덕만이 아닌 진평왕이죠.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제위를 했으니까요.

    19. 레아 2009.12.07 1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을제로 하여금 국사를 총괄하게 하였다는 것은 선덕여왕의 나이가 젊지않다는 것을 의미하죠. 만약에 선덕여왕이 젊은 나이였다면 그건 진평왕이 늦게 마야왕후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다는 이야기인데 사실 진평왕이 늦은 나이에 결혼한 사람은 승만왕후이죠. 그리고 선덕여왕이 재우 십년에 죽었는데 그 젊은 나이에 별다른 이유없이 죽었다는게 말도 안되고요.

    20. BlogIcon koc/SALM 2010.01.13 0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 내용이 맞다면 황고 칭호를 젊어서 받은 여자는 "선덕왕"이 유일하다는 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의 측천무후가 "고" 칭호를 자신에 붙인 때가 40대 말이었죠. 자칭인데도 그랬는데, 타칭을 절은 사람에게 붙여준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21.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글쓴이는 그 동안 다음 아래와 같은 선덕여왕의 공주시절에 있었던 기록을 하나 하나 추척해 들어 갔으며,
    선덕왕의 <지기3사>중 첫번째 '사건인 모란씨 서되'는 진평왕의 노년인 627년 진평왕 49년에 있었던 일이라고, 그 동안 아무도 알지 못했던, 모란이 신라에 수입된 년도와 년을 특정하여 기사로 송고하였다.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또한, <지기삼사>에 얽킨 영묘사 옥문지사건과 영묘사의 창건과정을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에서 소상히 이야기 했으며, 영묘사가 만들어 지는 과정에 영묘사에 화재사건이 발생하여, 삼국사기가 선덕왕 3년 635년에 영묘사가 완성되었다는 기사와 <삼국유사>의 3년 635년에 영묘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이중적인 기록이 나온 배경에는 <지귀요탑>과 <혜공의 이적>과도 관련이 있다고 했다. 영묘사가 1차 완성 시기는 선덕왕 3년이며, 이즈음 일어난 화재사건을 <지귀요탑>이 원인되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에서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선덕여왕이 김춘추와 문희를 연결시켜 준것이 아니라, 덕만이 공주시절 김춘추와 문희의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였으며, <김유신의 불쑈>을 한 시기는 김춘추/문희 사이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의 출생일을 근거로 628년 이전에 벌어진 사건임도 증명하였다.

    그럼 이들 사건들을 연표로 작성해 보자.
     
    627년 11월 모란씨가 당나라로 부터 들어왔다.
    628년 이전 김춘추와 문희를 엮어주어었다.
    628~635년 사이 지귀심화(지귀요탑)에 의해 영묘사에 화재가 발생하여 혜공이 영묘사 사찰 일부를 보호하고, 진화되었다. 


     모란씨 사건과 <지귀심화> 사건들을 살펴 보면, 나이가 어리지 않으면 도저히 일어 날 수 없는 상황이 전개 된다. 대표적으로 <지귀심화>같은 경우 젊은 남자 지귀가 일반적으로 그동안 알고 있는 선덕왕 원년 632년에 45살 이상이 된 여자를 보고, <상사병>에 걸려 마음에 불이 일어나 자연발화(SHC) 상태로 까지 발전할 수 있는가 이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더 나아가 삼국유사에 의하면 영묘사에 화재가 발생한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는 635년 영묘사가 완성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삼국사기를 따른다면 영묘사 화재사건은 635년 이후에 발생한 사건이 된다. 이때 덕만의 나이는 635년 선덕왕 4년으로 48세를 넘어야만 한다. 이는 더더욱 지귀의 화재사건이 성립될 수 없다. 물론, 요즘처럼 나이가 많지만, 젊음을 유지하는 연예인들이 있다. 이들을 보면 팔팔한 청춘에 불을 댕길만한 미모를 지니기도 했다.

    불세출의 잉그리트 버그만이나, 엘리자베스테일러 등은 나이가 일정하게 먹고 나서도 황홀할 정도의 미모를 자랑했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경우 나이를 먹고, 젊은날의 모습을 깡그리 없애 버렸지만 말이다. 이처럼 나이를 먹고 미모를 유지한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어기는 것이다. 요즘처럼 성형기술이 뛰어나 성형을 하거나 보톡스를 맞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래도 달리는 세월을 잡을 수 없는게 자연의 섭리이다.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지껏 덕만이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고, 인정하는 이유는 다음 3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삼국사기의 선덕왕 원년 즉위할때의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다.
    둘째는 신하들이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셋째는 동생이라고 추측되는 천명이 춘추를  603년에 낳았다.

    핵심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라는 것이다. 만약, 천명이 덕만의 동생이 아니고, 언니라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할머니(姑) 덕만이 아닌, 시어미(姑) 정도의 나이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증거를 잡는 과정이 지귀, 모란씨, 영묘사 건축중에 벌어진 화재 사건이다.

    또하나는 천명이 덕만의 언니인지 동생인지 상관없이 왕위를 잇지 못한 이유중에 천명이 진평왕의 정비인 마야부인의 소생이 아니라면 어찌될까? 

      의심스런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다름이 아니라 김춘추가 왕이 될때 그의 가계 내력을 기록한 것이다.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사기 신라 춘추왕 원년
    .
    김춘추의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이라고 했다.

     

    진평 계보도

    우리는 덕만이 진평왕과 마야부인(복승의딸) 사이에 태어났고, 장녀라는 기록을 읽었다. 춘추의 기록을 살피고 우리는 감각적으로, 또는 단순히 천명과 덕만은 형제이겠거니 한다. 그러나 같은 어머니(동복)을 두었을까? 하는 의심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진평왕은 아들이 없다. 그러니 여러 부인들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설령 아들이 있다고 해도 후비를 여럿 두는 것은 왕실의 기본 상식에 속한다. 진평 또한 손씨인 승만을 후비로 두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천명이나 덕만을 마야부인의 소생으로 알고 있을까? 더불어 삼국유사에 나온 선화공주 또한 마야의 소생으로 만들었을까? 이 함정에서 벗어난다면, 어찌 될까?


    진평은 천명의 어머니를 통해서 천명을 낳고, 마야부인을 통해서 덕만을 낳았다. 진평은 적통을 이을 후손을 보기 위해서 여러 부인들을 두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장 일반적인 왕실의 살아가는 방법이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정식 왕후의 소생이 적통을 잇는다. 그리고 그 왕후와의 사이에 난 자식에게 대권이 넘어간다. 왕후가 아닌 후비사이에 태어난 왕자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왕후 사이에 태어난 적통왕자들이 없을 경우에 왕위계승권이 주어진다.

    그러니 천명과 덕만은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열려 있다. 오히려 이복자매간일 가능성이 더 많다. 또한, 천명이 덕만보다 손위언니에 해당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기록 어디를 봐도 천명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단지,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 으로만 나온다. 

     
    진평왕(眞平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백정(白淨)이고 진흥왕의 태자 동륜(銅輪)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만호부인(萬呼夫人)으로 갈문왕 입종(立宗)의 딸이다. 왕비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으로 갈문왕 복승(福勝)의 딸이다. 왕은 태어날 때부터 기이한 용모였고 신체가 장대하고 뜻이 깊고 굳세었으며, 지혜가 밝아 사리에 통달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진평왕

    만약, 마야 또한, 왕후가 아닌 여러 후비 중의 일인 부인일 경우를 설정할 수 있으나, 마야의 아버지는 복승갈문왕이라고 했다.

    <갈문왕>은 왕의 형제나, 왕후의 아버지나 미추나 지증이나 진흥이나 진평이나 춘추 같이 왕의 아들(왕자)로 태어나지 않고 왕이 되었을 때 자신의 아버지를 갈문왕으로 봉한다.

    그러니 마야는 정식왕후에 등극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정식 왕후의 후생인 덕만은 장녀일까? 아닐까? 삼국사기나 일반적인 왕실의 왕위계승과 순위를 정할때 장녀는 공식(정식) 왕후사이에 태어난 사람을 일컸는 경우가 많다. 천명의 어미는 정식왕후 였지만 후에 일찍 죽고 복승의 딸인 마야가 정식왕후가 되었다면, 왕위 승계서열은 현재의 왕후소생이 된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진평왕에게는 정비인 마야부인과 후비인 손씨 승만부인이 있었다. 승만 손씨에는 후사가 없었다고 하니, 천명은 승만의 소생은 아닐것이고, 또 다른 후비의 소생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진평이 죽은 후에 천명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용수.용춘이 생존하고 있었다. 충분히 선대의 선례에 따라서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용수.용춘은 왕위계승권에 없었다. 그러니 천명이 정비인 마야의 후손이 아님이 증명된다.

    신라사회는 대체적으로 사위가 왕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덕만의 경우는 사위가 왕이 되지 않았다. 이는 덕만에게는 남편이 없었거나, 싱글인 상태였거나, 당시 남편이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덕만은 632년 왕위를 이은 634년에 비로서 '음갈문왕'과 결혼을 한다.

    글쓴이는 합리적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사실을 바탕으로 천명과 덕만은 배다른 이복 자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춘추의 어미 천명을 기준으로 동복 자매라는 증거가 없는한 덕만의 나이를 추론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왕실의 상식에 벗어 난다.

    이제 덕만이 진평의 뒤를 이어 왕위를 승계할때 나이는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덕만의 기록들을 지기삼사 중 첫번째인 <모란씨>와 <춘추, 문희 중매>, <지귀요탑>,<영묘사화재> 사건 등을 종합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나이 많은 여왕일 하등의 이유가 없어진다. 

    <성조황고>의 <황고>를 들어서 덕만이 나이가 많지 않았을까 한다면? 현재의 기준으로 한다면 "맞습니다"라고 해줄만 하다. 하지만, 신라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덕만은 충분히 <황고>소리를 듣고도 남을 나이에 왕위를 계승했다.

    우리는 자신보다 나이가 조금 어린 사람에게 농담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내가 만약, 첫사랑에 실패만 하지 않았어도 너만한 아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당시 신라 사회는 첫사랑에 실패할때 결혼하고,20대에는 나이에 자식을 한둘과 30대에는 손자.손녀를 두는게 상식에 속할때이니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초경이 지나면 성인이 되어 "결혼을 시켜야 겠다"하고, 불알에 털나면 "장가가도 되겠네"하는 상식을 지니고 있는 시대와 30대가 넘어도 결혼은 무슨 소리하며,  오히려 노처녀.노총각이라고 놀리면, 시대에 덜떨어진 사람 취급 받는 세대와는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 세대만으로도 10대후반에 결혼하고, 20대 초반.중반에 결혼하면, 만혼이며 노처녀 소리를 들었다. 우리 어머니도 26살 늙은 아버지와  20살에 결혼하셨다. 

    이번에도 글이 늘어지고 길어졌다. 이번 편으로 덕만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늙은 할매로 권력을 잡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결정타가 한 두편이 더 남아 있다.

    다음편 예고는 삼국유사 왕력편에 기록된 덕만의 남편인 '음'갈문왕에 관한 포스팅을 할 것이다.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우리가 알고 있는 덕만의 나이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을 할 것이다.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와는 다르게 미실의 충복 칠숙과 석품이 왕위계승전에 뛰어든 이유를 설명할 것이다. 사실 미실이 죽은 606년에서 미실의 추종자로 설정된 칠숙이 반란을 일으키는 631년과는 너무나 떨어져 있지 않는가? 또하나는 칠숙과 석품의 반란을 진압한 세력이 진평왕으로 나오지만 실제는 덕만이 진압의 중추였을지 모른다는 것을 이야기하려 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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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한가닥 2009.07.25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상에서는 쌍둥이 자매로 나오던데 ..드라마는 약간의 비현실도 존재하니까 ...^^"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비현실성..

        일부러 화랑세기는 인용하지 않았음..

        화랑세기 읽으면 읽을수록 대단한 책 같아요..ㅋㅋ

        천명이 언니다.. 나이차이는나오지 않았지만..

        박창화가 지었다면 대단한 천재같아요..

    2.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5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인 관점...
      보면 볼수록 흥미진진합니다 ㅎㅎㅎ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제가 봐도 흥미진진 하긴합니다..

        IT세상이 된후.. 더 쉽게 연구를할수 있어요..

        검색이 되니..

        예전에는 어떻게 연구를 했을까 생각하니..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심이 우러나와요..

        그래서 단편적인 것도 있겠고 오류가 있을 확율이 있겠지만..

    3. 2009.07.25 1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심전심이 맞을것 같음..

        그래서 베스트 선정은 전적으로 다음측에서 해야 한다고 봐요.. 열린편집자 제도 폐지하고..

        이시간에 올리면 조회수가 안나와요.. 몇번 실험을 해봤지만, 이시간에 다음 편집자가 저랑 코드가 맞지 않는 모양입니다.. ㅠ.ㅠ.

        대부분 아침에 올린글이 저녁이나 되어서 베스트 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ㅠ.ㅠ.

        벌써 3건정도..

        저녁타임에 저랑 코드가 맞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음..

        3교대라면.. 어쩌면.. 잘봐준 분이 베스트관리자 일수도..

      •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5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는 말씀 같아요...
        와인이야기...
        오전 10시에서 12사이 올리면
        냉큼 베스트 오르는데,
        그 이외시간 올리면 잘 안오르다
        다음날 보면 올라가 잇더군요 ㅎㅎㅎ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 다음 편집자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신세가 되었는지.. 난감..

        알아서 기어야 하낭..

        그래서 제가.. 개정된 미디어업 통과를 반대합니다..

        저 같은 경우도 밥과 연관이 없는데도 눈치를 살살보는 것 같은데..

        밥이 걸려있는 기자들은 어떻겠어요.. 현재도 충분히 많이 눈치를 보고 있는데.. 광고주를..

    4. 2009.07.25 1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BlogIcon 아르테미스 2009.07.25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그냥 재밌게 보고 있어요~ㅎㅎ

      갓쉰동님~ 뵐수록 대단한데요~
      어찌 이 어려운 내용들을 ^^;;

      즐겁게 주말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맞고요..

        드라마는 드라마.. 그안에 숨은 1인치를 찾는것도 즐겁지요..

        칭찬에 몸둘바를.. (.. ) ( ..) ( '');;

    6. 역사맨 2009.07.28 0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이복동생일 가능성도 있군여
      제가 천명공주를 백과사전에 검색했었는데
      이렇게 나오더군여
      (신라 진평왕과 마야왕후 김씨의 딸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그녀가 차녀라고 하고 《화랑세기》에는 그녀가 장녀라고 하여 어느 쪽이 맞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선덕여왕과 친자매간임은 분명하다. 그녀 역시 진평왕의 왕위를 계승할 권리가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자매인 덕만이 총명했던 탓에 왕위를 양보해야만 했다)

      그리고 또 여기에서는
      <화랑세기>의 13세(世) 용춘공 기사에서는 선덕공주(덕만공주) 위에 천명공주가 있었다고 알려주고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적자가 없는 진평왕이 처음에는 금륜왕(진지왕)의 아들인 용수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그를 천명공주와 결혼시켰지만, 나중에는 선덕공주가 왕위를 이를 만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판단되자 천명공주에게 지위를 양보하도록 권유했다고 한다.
      출처 : 오마이뉴스

      위에 두글을 봤을때 화랑세기에 천명공주와 용수에게도
      계승권이 있었다는거 아닌가여?
      그렇다면 이복자매일 가능성도 줄어들게 되고?

    7. BlogIcon concessionaria fiat 2012.04.26 0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난 그냥이 게시물에 여기 당신이 가진 위대한 정보에 대한 큰 엄지손가락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더 빨리 귀하의 블로그에 돌아올 것이다.

    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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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글쓴이는 그 동안 다음 아래와 같은 선덕여왕의 공주시절에 있었던 기록을 하나 하나 추척해 들어 갔으며,
    선덕왕의 <지기3사>중 첫번째 '사건인 모란씨 서되'는 진평왕의 노년인 627년 진평왕 49년에 있었던 일이라고, 그 동안 아무도 알지 못했던, 모란이 신라에 수입된 년도와 년을 특정하여 기사로 송고하였다.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또한, <지기삼사>에 얽킨 영묘사 옥문지사건과 영묘사의 창건과정을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에서 소상히 이야기 했으며, 영묘사가 만들어 지는 과정에 영묘사에 화재사건이 발생하여, 삼국사기가 선덕왕 3년 635년에 영묘사가 완성되었다는 기사와 <삼국유사>의 3년 635년에 영묘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이중적인 기록이 나온 배경에는 <지귀요탑>과 <혜공의 이적>과도 관련이 있다고 했다. 영묘사가 1차 완성 시기는 선덕왕 3년이며, 이즈음 일어난 화재사건을 <지귀요탑>이 원인되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에서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선덕여왕이 김춘추와 문희를 연결시켜 준것이 아니라, 덕만이 공주시절 김춘추와 문희의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였으며, <김유신의 불쑈>을 한 시기는 김춘추/문희 사이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의 출생일을 근거로 628년 이전에 벌어진 사건임도 증명하였다.

    그럼 이들 사건들을 연표로 작성해 보자.
     
    627년 11월 모란씨가 당나라로 부터 들어왔다.
    628년 이전 김춘추와 문희를 엮어주어었다.
    628~635년 사이 지귀심화(지귀요탑)에 의해 영묘사에 화재가 발생하여 혜공이 영묘사 사찰 일부를 보호하고, 진화되었다. 


     모란씨 사건과 <지귀심화> 사건들을 살펴 보면, 나이가 어리지 않으면 도저히 일어 날 수 없는 상황이 전개 된다. 대표적으로 <지귀심화>같은 경우 젊은 남자 지귀가 일반적으로 그동안 알고 있는 선덕왕 원년 632년에 45살 이상이 된 여자를 보고, <상사병>에 걸려 마음에 불이 일어나 자연발화(SHC) 상태로 까지 발전할 수 있는가 이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더 나아가 삼국유사에 의하면 영묘사에 화재가 발생한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는 635년 영묘사가 완성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삼국사기를 따른다면 영묘사 화재사건은 635년 이후에 발생한 사건이 된다. 이때 덕만의 나이는 635년 선덕왕 4년으로 48세를 넘어야만 한다. 이는 더더욱 지귀의 화재사건이 성립될 수 없다. 물론, 요즘처럼 나이가 많지만, 젊음을 유지하는 연예인들이 있다. 이들을 보면 팔팔한 청춘에 불을 댕길만한 미모를 지니기도 했다.

    불세출의 잉그리트 버그만이나, 엘리자베스테일러 등은 나이가 일정하게 먹고 나서도 황홀할 정도의 미모를 자랑했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경우 나이를 먹고, 젊은날의 모습을 깡그리 없애 버렸지만 말이다. 이처럼 나이를 먹고 미모를 유지한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어기는 것이다. 요즘처럼 성형기술이 뛰어나 성형을 하거나 보톡스를 맞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래도 달리는 세월을 잡을 수 없는게 자연의 섭리이다.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지껏 덕만이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고, 인정하는 이유는 다음 3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삼국사기의 선덕왕 원년 즉위할때의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다.
    둘째는 신하들이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셋째는 동생이라고 추측되는 천명이 춘추를  603년에 낳았다.

    핵심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라는 것이다. 만약, 천명이 덕만의 동생이 아니고, 언니라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할머니(姑) 덕만이 아닌, 시어미(姑) 정도의 나이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증거를 잡는 과정이 지귀, 모란씨, 영묘사 건축중에 벌어진 화재 사건이다.

    또하나는 천명이 덕만의 언니인지 동생인지 상관없이 왕위를 잇지 못한 이유중에 천명이 진평왕의 정비인 마야부인의 소생이 아니라면 어찌될까? 

      의심스런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다름이 아니라 김춘추가 왕이 될때 그의 가계 내력을 기록한 것이다.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사기 신라 춘추왕 원년
    .
    김춘추의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이라고 했다.

     

    진평 계보도

    우리는 덕만이 진평왕과 마야부인(복승의딸) 사이에 태어났고, 장녀라는 기록을 읽었다. 춘추의 기록을 살피고 우리는 감각적으로, 또는 단순히 천명과 덕만은 형제이겠거니 한다. 그러나 같은 어머니(동복)을 두었을까? 하는 의심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진평왕은 아들이 없다. 그러니 여러 부인들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설령 아들이 있다고 해도 후비를 여럿 두는 것은 왕실의 기본 상식에 속한다. 진평 또한 손씨인 승만을 후비로 두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천명이나 덕만을 마야부인의 소생으로 알고 있을까? 더불어 삼국유사에 나온 선화공주 또한 마야의 소생으로 만들었을까? 이 함정에서 벗어난다면, 어찌 될까?


    진평은 천명의 어머니를 통해서 천명을 낳고, 마야부인을 통해서 덕만을 낳았다. 진평은 적통을 이을 후손을 보기 위해서 여러 부인들을 두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장 일반적인 왕실의 살아가는 방법이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정식 왕후의 소생이 적통을 잇는다. 그리고 그 왕후와의 사이에 난 자식에게 대권이 넘어간다. 왕후가 아닌 후비사이에 태어난 왕자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왕후 사이에 태어난 적통왕자들이 없을 경우에 왕위계승권이 주어진다.

    그러니 천명과 덕만은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열려 있다. 오히려 이복자매간일 가능성이 더 많다. 또한, 천명이 덕만보다 손위언니에 해당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기록 어디를 봐도 천명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단지,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 으로만 나온다. 

     
    진평왕(眞平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백정(白淨)이고 진흥왕의 태자 동륜(銅輪)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만호부인(萬呼夫人)으로 갈문왕 입종(立宗)의 딸이다. 왕비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으로 갈문왕 복승(福勝)의 딸이다. 왕은 태어날 때부터 기이한 용모였고 신체가 장대하고 뜻이 깊고 굳세었으며, 지혜가 밝아 사리에 통달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진평왕

    만약, 마야 또한, 왕후가 아닌 여러 후비 중의 일인 부인일 경우를 설정할 수 있으나, 마야의 아버지는 복승갈문왕이라고 했다.

    <갈문왕>은 왕의 형제나, 왕후의 아버지나 미추나 지증이나 진흥이나 진평이나 춘추 같이 왕의 아들(왕자)로 태어나지 않고 왕이 되었을 때 자신의 아버지를 갈문왕으로 봉한다.

    그러니 마야는 정식왕후에 등극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정식 왕후의 후생인 덕만은 장녀일까? 아닐까? 삼국사기나 일반적인 왕실의 왕위계승과 순위를 정할때 장녀는 공식(정식) 왕후사이에 태어난 사람을 일컸는 경우가 많다. 천명의 어미는 정식왕후 였지만 후에 일찍 죽고 복승의 딸인 마야가 정식왕후가 되었다면, 왕위 승계서열은 현재의 왕후소생이 된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진평왕에게는 정비인 마야부인과 후비인 손씨 승만부인이 있었다. 승만 손씨에는 후사가 없었다고 하니, 천명은 승만의 소생은 아닐것이고, 또 다른 후비의 소생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진평이 죽은 후에 천명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용수.용춘이 생존하고 있었다. 충분히 선대의 선례에 따라서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용수.용춘은 왕위계승권에 없었다. 그러니 천명이 정비인 마야의 후손이 아님이 증명된다.

    신라사회는 대체적으로 사위가 왕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덕만의 경우는 사위가 왕이 되지 않았다. 이는 덕만에게는 남편이 없었거나, 싱글인 상태였거나, 당시 남편이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덕만은 632년 왕위를 이은 634년에 비로서 '음갈문왕'과 결혼을 한다.

    글쓴이는 합리적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사실을 바탕으로 천명과 덕만은 배다른 이복 자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춘추의 어미 천명을 기준으로 동복 자매라는 증거가 없는한 덕만의 나이를 추론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왕실의 상식에 벗어 난다.

    이제 덕만이 진평의 뒤를 이어 왕위를 승계할때 나이는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덕만의 기록들을 지기삼사 중 첫번째인 <모란씨>와 <춘추, 문희 중매>, <지귀요탑>,<영묘사화재> 사건 등을 종합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나이 많은 여왕일 하등의 이유가 없어진다. 

    <성조황고>의 <황고>를 들어서 덕만이 나이가 많지 않았을까 한다면? 현재의 기준으로 한다면 "맞습니다"라고 해줄만 하다. 하지만, 신라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덕만은 충분히 <황고>소리를 듣고도 남을 나이에 왕위를 계승했다.

    우리는 자신보다 나이가 조금 어린 사람에게 농담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내가 만약, 첫사랑에 실패만 하지 않았어도 너만한 아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당시 신라 사회는 첫사랑에 실패할때 결혼하고,20대에는 나이에 자식을 한둘과 30대에는 손자.손녀를 두는게 상식에 속할때이니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초경이 지나면 성인이 되어 "결혼을 시켜야 겠다"하고, 불알에 털나면 "장가가도 되겠네"하는 상식을 지니고 있는 시대와 30대가 넘어도 결혼은 무슨 소리하며,  오히려 노처녀.노총각이라고 놀리면, 시대에 덜떨어진 사람 취급 받는 세대와는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 세대만으로도 10대후반에 결혼하고, 20대 초반.중반에 결혼하면, 만혼이며 노처녀 소리를 들었다. 우리 어머니도 26살 늙은 아버지와  20살에 결혼하셨다. 

    이번에도 글이 늘어지고 길어졌다. 이번 편으로 덕만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늙은 할매로 권력을 잡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결정타가 한 두편이 더 남아 있다.

    다음편 예고는 삼국유사 왕력편에 기록된 덕만의 남편인 '음'갈문왕에 관한 포스팅을 할 것이다.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우리가 알고 있는 덕만의 나이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을 할 것이다.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와는 다르게 미실의 충복 칠숙과 석품이 왕위계승전에 뛰어든 이유를 설명할 것이다. 사실 미실이 죽은 606년에서 미실의 추종자로 설정된 칠숙이 반란을 일으키는 631년과는 너무나 떨어져 있지 않는가? 또하나는 칠숙과 석품의 반란을 진압한 세력이 진평왕으로 나오지만 실제는 덕만이 진압의 중추였을지 모른다는 것을 이야기하려 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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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한가닥 2009.07.25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상에서는 쌍둥이 자매로 나오던데 ..드라마는 약간의 비현실도 존재하니까 ...^^"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비현실성..

        일부러 화랑세기는 인용하지 않았음..

        화랑세기 읽으면 읽을수록 대단한 책 같아요..ㅋㅋ

        천명이 언니다.. 나이차이는나오지 않았지만..

        박창화가 지었다면 대단한 천재같아요..

    2.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5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인 관점...
      보면 볼수록 흥미진진합니다 ㅎㅎㅎ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제가 봐도 흥미진진 하긴합니다..

        IT세상이 된후.. 더 쉽게 연구를할수 있어요..

        검색이 되니..

        예전에는 어떻게 연구를 했을까 생각하니..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심이 우러나와요..

        그래서 단편적인 것도 있겠고 오류가 있을 확율이 있겠지만..

    3. 2009.07.25 1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심전심이 맞을것 같음..

        그래서 베스트 선정은 전적으로 다음측에서 해야 한다고 봐요.. 열린편집자 제도 폐지하고..

        이시간에 올리면 조회수가 안나와요.. 몇번 실험을 해봤지만, 이시간에 다음 편집자가 저랑 코드가 맞지 않는 모양입니다.. ㅠ.ㅠ.

        대부분 아침에 올린글이 저녁이나 되어서 베스트 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ㅠ.ㅠ.

        벌써 3건정도..

        저녁타임에 저랑 코드가 맞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음..

        3교대라면.. 어쩌면.. 잘봐준 분이 베스트관리자 일수도..

      •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5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는 말씀 같아요...
        와인이야기...
        오전 10시에서 12사이 올리면
        냉큼 베스트 오르는데,
        그 이외시간 올리면 잘 안오르다
        다음날 보면 올라가 잇더군요 ㅎㅎㅎ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 다음 편집자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신세가 되었는지.. 난감..

        알아서 기어야 하낭..

        그래서 제가.. 개정된 미디어업 통과를 반대합니다..

        저 같은 경우도 밥과 연관이 없는데도 눈치를 살살보는 것 같은데..

        밥이 걸려있는 기자들은 어떻겠어요.. 현재도 충분히 많이 눈치를 보고 있는데.. 광고주를..

    4. 2009.07.25 1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BlogIcon 아르테미스 2009.07.25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그냥 재밌게 보고 있어요~ㅎㅎ

      갓쉰동님~ 뵐수록 대단한데요~
      어찌 이 어려운 내용들을 ^^;;

      즐겁게 주말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맞고요..

        드라마는 드라마.. 그안에 숨은 1인치를 찾는것도 즐겁지요..

        칭찬에 몸둘바를.. (.. ) ( ..) ( '');;

    6. 역사맨 2009.07.28 0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이복동생일 가능성도 있군여
      제가 천명공주를 백과사전에 검색했었는데
      이렇게 나오더군여
      (신라 진평왕과 마야왕후 김씨의 딸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그녀가 차녀라고 하고 《화랑세기》에는 그녀가 장녀라고 하여 어느 쪽이 맞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선덕여왕과 친자매간임은 분명하다. 그녀 역시 진평왕의 왕위를 계승할 권리가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자매인 덕만이 총명했던 탓에 왕위를 양보해야만 했다)

      그리고 또 여기에서는
      <화랑세기>의 13세(世) 용춘공 기사에서는 선덕공주(덕만공주) 위에 천명공주가 있었다고 알려주고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적자가 없는 진평왕이 처음에는 금륜왕(진지왕)의 아들인 용수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그를 천명공주와 결혼시켰지만, 나중에는 선덕공주가 왕위를 이를 만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판단되자 천명공주에게 지위를 양보하도록 권유했다고 한다.
      출처 : 오마이뉴스

      위에 두글을 봤을때 화랑세기에 천명공주와 용수에게도
      계승권이 있었다는거 아닌가여?
      그렇다면 이복자매일 가능성도 줄어들게 되고?

    7. BlogIcon concessionaria fiat 2012.04.26 0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난 그냥이 게시물에 여기 당신이 가진 위대한 정보에 대한 큰 엄지손가락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더 빨리 귀하의 블로그에 돌아올 것이다.

    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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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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