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대량원군(현종)

KBS 천추태후에서 목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대량원군은 왕욱의 아들이다. 왕욱은 태조 왕건의 아들이다.

그런데 드라마 천추태후에서 경주원군으로 나오는 왕욱의 어머니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조카가 된다.

“지금 왕께서 나라를 나에게 주었으니 이는 큰 것을 주신 것입니다. 바라건대 [왕의] 종실과 혼인을 맺어 장인과 사위의 우호를 영원히 누렸으면 합니다.” [경순왕이] 대답하였다.

나의 큰아버지 잡간(迊干) 억렴(億廉)은 지대야군사(知大耶郡事)인데, 그 딸자식은 덕과 용모 모두 뛰어났으니
이 사람이 아니면 집안 살림을 갖출 수가 없을 것입니다.”
태조가 마침내 그를 아내로 삼아 아들을 낳으니 이가 현종(顯宗)의 아버지로, [후에] 안종(安宗)으로 추봉되었다. 경종(景宗) 헌화대왕(獻和大王) 때 이르러 정승공의 딸을 맞아들여 왕비로 삼고 정승공을 상보령(尙父令)으로 봉하였다.
공은 978년 송(宋)나라 흥국(興國) 4년 무인에 이르러 죽었는데, 시호를 경순(敬順)<또는 효애(孝哀)라고도 하였다.>이라 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경순왕 935년


또한, 경순왕의 딸은 고려 5대왕인 경종의 제1 왕비인 헌숙왕후가 된다. 드라마 상에서는 나오지 않지만,975년 5대 경종(955년생)이 21살에 아버지 4대 목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이때까지 경순왕은 살아 있었다.

 

그러니 만약 경종이 헌숙왕후 사이에서 아들이 있었다면, 935년 신라가 멸망한 후 40년만에 신라왕의 피가 썩인 왕이 태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헌숙왕후는 아들을 생산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경종은 헌애왕후의 오라버니인 6대 성종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채시라가 열연하고 있는 천추태후인 헌애왕후(964년생)는 경종의 3번째 왕후이고, 4번째 왕후는 천추태후의 동생인 헌정왕후는 경종이 죽은 후 경주원군인 왕욱과 사통하여 대량원군(현종)을 낳는다.

고려 8대 현종 계보도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왕욱의 어머니는 경순왕의 백부인 억렴의 딸인 신성왕후이다. 왕욱(왕건/신성)의 아들인 대량원군(왕욱/헌정)은 드라마 천추태후와는 다르게 강조에 의해서 목종이 폐위되고, 1008년 18세에 고려 8대 왕위에 오른 현종이 된다. 이후 고려의 왕들은 현종의 피를 이어 받았으니 실질적으로 신라의 왕통이 고려의 핏속에 녹아 든것이다.

김치양

부계로는 보이지 않던 고려의 왕통이 모계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속에 신라가 숨쉬고 있는 것이다. 신라는 935년에 멸망이 되었지만, 실제는 고려속에서 신라가 살아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백제의 왕가는 고려에 녹아나지 못했다. 후백제의 왕인 견훤의 출자는 신라의 진흥왕의 아들인 구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후백제를 자처한 왕이 신라 왕손의 후손이라니..

만약, 견훤이 진흥왕의 아들인 구륜의 후손이라면, 당연히 왕인 진흥왕부터 세계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견훤은 구륜을 자신의 선조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구륜은 동명이인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사극 천추태후에서는 김치양을 마의태자의 후손으로 후신라를 찾으려는 인물로 설정하였다. 또한, 김치양이 반란을 일으키고, 강조가 반란을 진압하고 김치양과 천추태후의 아들인 황주원군이 여진으로 들어가 완안부의 시조가 되며, 100년후 김치양의 후손인 아골타가 1115년 금을 개국하는 것으로 설정하려는 듯 하다.

반면에 고려사의 기록으로는 황주원군으로 설정된 인물의 이름은 알려지 있지 않고, 강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예종 10년(1115) 3월조에 보면 이런 기사가 나온다. '이달에 생여진 완안부의 아골타가 황제를 일컫고 국호를 금이라 했다. 혹은 말하기를 ‘옛적 우리 평주(平州) 승(僧) 금준(今俊)이 여진에 도망해 들어가 아지고촌(阿之古村)에 거주했으니 이가 금의 시조다’라고 하며 혹은 말하기를 ‘평주 승 김행(金幸)의 아들 극기(克己)가 처음에 여진의 아지고촌에 들어가 여진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으니 고을(古乙) 태사(太師)라 하고 고을이 활라(活羅) 태사(太師)를 낳고 활라가 아들이 많아 장자를 핵리발(劾里鉢)이라 하고 계자(季子)를 영가(盈歌)라 했는데, 영가가 웅걸(雄傑)이어서 중심(衆心)을 얻었다. 영가가 죽자핵리발의 장자 오아숙(烏雅束)이 위를 이었고 오아속이 졸하매 아우 아골타가 섰다고 한다 -고려세가 예종 10년 1115년

 

금태조 아골타 계보도


1107년(예종 2년)에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이끌고 여진 정벌군의 원수(元帥)가 되어 부원수 오연총(吳延寵)과 17만 대군을 거느리고 여진족을 정벌하여 9성을 쌓고, 재침하는 여진을 평정하여 1108년(예종 3년) 개선하였다. 그때 여진 5천 명을 죽였고, 130명을 생포하였다. -고려세가 예종 3년

여진 사신이 고려에 와서 ‘옛날 우리 태사 영가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조종이 대방(고려)에서 나왔으니 자손에 이르러서도 의리상 귀부함이 마땅하다’고 했고 지금 태사 오아속도 역시 대방을 부모의 나라로 삼나이다. -고려세가 예종 4년 1109년

동여진과 고려와는 수시로 전쟁을 하였지만 흥미롭게도 아골타가 여진을 통합하고, 금을 세운후 고려는 금과는 별다른 전쟁이 없었다. 

 KBS 역사스페셜에서 금의 태조인 완안부 아골타의 선조를 신라의 마의태자의 아들로 연결하려는 듯 하다. 역사스페셜을 시청하는데 도움이 되었음 하는 바람에서 이기사를 송고한다.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해주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09.09.06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BlogIcon 초록누리 2009.09.06 0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어요. 그런데 제가 천추태후를 한번도 못봐서 ㅠ_ㅠ....
    그래도 공부는 열심히 하고 갑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잘 안봅니당.. 천추태후는.. 왠지 정이 안가용.. ㅋㅋ

      다만 오늘(?) 역사스페셜에서 아골타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기사를 송고한 것임..

  3. 드라큘라 백작 2009.09.06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골타 경순왕 자손론에 대해서 저는 부정적으로 봅니다. 물론 신라 왕족이 여진족속 땅으로 들어가서 출세 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하필 왕족일까 하는데서도 의구심이있으며 흔히 있었던 족보 도금 혐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골타가 자신는 이래뵈도 신라 임금의 후손이다. 나는 출생부터가 다르다라고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혈통을 자랑하기 위해서 조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신라 후손인걸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중원을 제패한뒤에 뭔가 신라와 관련한 조치가 있었어야 했으나 그런게 전혀 없거든요 단지 고려에 우리와도 조공책봉관계를 맺자 거부하면 알아서 해라 식의 반응 말고는 없었습니다. 송나라 사람이야 그냥 받아 적은거고 족보는 후대에 추가 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고....

    • 1235 2009.09.06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제한 역사스페셜 한번 봐주세요 ㅎㅎㅎ 우리나라에서도 만주로 간 신라 왕손이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름은 김함보라고 하더군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1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충분히 그럴수 있습니당.. 우리같이 잘 지내봅시다란 뜻이 되니요.. 문젠 금사에도 들어가 있다는것..

      재밌게도 신라도 자신은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고 비명에 기록하고 있다는것.. 이것도 당시대에 완성됩니다.. 문무왕의 비에 그렇게.. 또한, 재당 신라인에 무덤에도.

      저도 님처럼 생각합니다..

    • 백작님이 2009.09.06 1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 모르시네요. 아골타가 금국을 세웠을때 신라는 이미 망하고 고려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신라가 망한뒤 반고려세력이 여진으로 넘어와 (1235님이 말한 김함보입니다) 여진 세력끼리 다툴때 중재를 하여 두각을 보이죠. 아골타는 신라 후손임을 자랑으로 여겨 금사에까지 기록이 된거지요. 오죽하면 신라를 망하게한 고려를 형제의 국, 고려가 부모의 땅에 있다하여 형제라고 생각했습니다.

    • 아무렇게나 2009.09.08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중국 金나라 시조는 안동 권씨일 것
      금태조 가계도 추적 ‘금조사연구’ 펴낸 금감원 윤명수 수석조사역

      《여진족의 국가로 알려진 금(金•1115∼1234)의 시조가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왔다. 금융감독원 윤명수(51) 수석조사역은 최근 중국의 정통역사서 25사 중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던 ‘금사(金史)’의 주요 내용을 번역한 ‘금사’와 금태조 완안민(아골타)의 가계계승 문제를 추적한 ‘금조사연구’를 함께 펴내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금사에는 금태조가 고려에서 건너온 함보(函普)를 비롯한 3형제의 후손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금을 계승한 청(후금)의 건륭제 때 집필된 ‘흠정만주원류고’에는 금국(金國)의 명칭이 신라왕성 김(金)씨에서 비롯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금과 신라의 연관성을 보여 주는 근거는 또 있다. 청 황실의 만주어 성 ‘아이신줴뤄’ 중 씨족을 가리키는 아이신은 금(金)을 뜻한다. 이는 아이신줴뤄를 한자로 가차한 애신각라(愛新覺羅)에 ‘신라(新羅)를 사랑하고, 기억하자’는 뜻이 담겼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조선시대에 나온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도 금의 시조가 김행(金幸)의 아들 또는 금준(今俊)이라는 설이 기록돼 있다. 김씨는 본디 금씨로 발음됐는데 이(李)씨를 왕조로 한 조선조가 들어서면서 ‘금이 나무를 이긴다(金克木)’는 오행설의 영향으로 금을 김으로 발음했다는 주장에 입각하면 금준은 곧 김준일 수 있다. 이를 근거로 함보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로 고려에 귀순을 거부했던 마의태자이거나 그 후손일 가능성이 오랫동안 제기됐다.

      윤 씨는 이를 추적하던 중 조선 인조 때 문신 김세렴이 남긴 ‘동명해사록’에서 “금나라의 시조는 경순왕의 외손이자 권행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라는 기록을 찾아냈다.

      권행은 본디 경주 김씨로 신라 고창(古昌•경북 안동시)의 수령이었다.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핍박해 자살하게 한 데 분개해 고려를 도와 고창에서 후백제군을 격퇴한 공로로 고려 태조 왕건에게서 권씨를 하사받아 안동 권씨의 시조가 됐다.

      윤 씨는 이를 바탕으로 ‘함보의 신라/고려인 부친=김행=권행’으로 수수께끼가 풀렸다고 주장했다. 권행은 고려통일 이후 아부공신(亞父功臣)에 책록되고, 정1품 태사(太師)의 벼슬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고려가 금나라 수립 전 여진족 추장들에게 관례적으로 내린 관직이 태사였다.

      결론적으로 함보는 경순왕의 사위인 권행의 세 아들 중 한 명이며 마의태자와 신라 부활운동을 펼치다 마의태자가 숨진 뒤 만주로 진입해 여진족의 일부인 완안부족의 추장이 됐다는 것이 윤 씨의 주장이다. 문신 김세렴의 부인이 권행의 맏아들 권인행의 아내와 같은 양천 허씨인 점, 마의태자가 웅거했다는 설악산 권금성이 권장군과 김장군이 쌓은 성이라는 전설, 1011년 여진의 함선 100여 척이 안동 인근 경주 지역에 출몰했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

      그러나 안동 권씨 족보에는 권행의 후손이 권인행 한 명만 등장하는 등 아직도 풀려야 할 의문점은 남아 있다.

      일찍부터 만주사에 관심이 깊어 만주어를 독학했다는 윤 씨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자극을 받아 2004년부터 주말을 도서관에서 보내며 금사의 번역에 매달리는 한편 휴가 때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현지 조사를 했다.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왕씨의 나라라면 금•청은 신라를 계승한 김씨의 나라로 봐야 합니다. 이 때문에 상하이임정의 역사교재였던 ‘신단민사(新檀民史)’나 일제강점기 사학자 신태윤의 ‘배달조선 정사’도 발해-요-금-청의 역사를 우리 역사에 포함시켰던 것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선 중국사에 포함될 수 없는 요-금-청사를 한국사의 방계로 포함시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4. BlogIcon 영웅전쟁 2009.09.06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새 분야 공부하라는 분부이신듯 하군요...
    이미 제 캐파를 넘엇는데 ㅎㅎㅎ
    한번 해보겠습니다.
    재 방송부터 보고 해야겠지요 ㅋ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휴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닙니당.. 그냥 천추태후의 저작자는 김치양의 죽은 아들은사실 죽지 않고 여진으로 들어갔다는 설정이 있었다. 머 그런거지요.. 그냥 보셈.. ㅋㅋ

  5. gap4 2009.09.06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저도 봐지만 재미고 흥미롭더군요 ,,후금황제 청나라 1대황제가 예로부터 조선과 금은 형제니,,화친외교를 하자고 했는데,,조선에 무능한 문인들이명나라 사대주의 때문에 반대했지요 그래서 후에 병자호란이란 굴욕적 주종관계가 성립됬지요말이 조금 빛나갔지만 참 안타깝더라구요 북방 고구려 발해 여진 우리하고땔래야 땔수 없는 관계인데 말이죠 ,,참 그때나 지금이나 문인들이 망쳐놨네요꼭 그런건 아니지만 천추태후에서도 문인들이 지살길만 걱정하쟎아요 얼마전 간도땅이 100년이 넘었죠,안타깝읍니다 예전에 북방에 우리 선조때부터 잘만 통치했어도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텐데 말이죠,,두서없이 글이 커졌죠 잘읽었읍니다,,,,,

  6. 갓쉰동님 광팬 2009.09.07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으로 고구려나 발해가 지속되지 못한 것이 이런점에서 좀 아쉽습니다. 금나라 선조가 신라인 후 손 여부를 떠나 이런 것들이 의문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만주가 발해 이후 사라져 버렸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아닐까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7 1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아쉬움의 표현..
      일본의 황족을 찾는이유도 이와 같을 겁니다..

      만약, 중국이 고려와 신라와. 조선의 조상이 자신의후손이란 드라마를 제작한다면 난리가 나겠지요? 그때도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할 네티즌이 몇명이나 될까요? 저는 그게 궁금해요.. 선덕여왕은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하는 사람들 중에서.. ㅋㅋ

  7. ^___^ 2009.09.07 15: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역사스페셜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포탈사이트에서 역사관련해서 찾아보려고 해도 연예가 일색이구.... 에구구... 역사관련 다큐멘터리도 많이 좀 나왔으면하는 바람입니다. 근현대사에서 해방 후 6.25가 끝나고 먹고 살기 바빠서 등한시되었고 북한과의 관계로 반공에만 힘을 쏟아서 고구려를 외면한 채 신라의 김유신만 강조하는 경향도 있었고 사극은 조선시대 처첩간의 애정물이 주를 이루고 중국의 동북아 공정에 힘입어(?) 고구려관련 드라마가 붐을 탔지만 서도 이제는 관심을 갖고 올바른 역사인식이 있었으면합니다. 연예인들 주변 잡기에만 온통 신경쓰고 있어서 씁쓸합니다. 우리 역사에 관해서는 무지할 만큼 모르는게 너무 많습니다.국내에서 반만년 역사를 자랑스레 여기며 목에 힘주고 있지만 세계 속의 역사교과서에서의 한국은 60년대에 머물러 있더군요. 대사관에서는 뭐하는지 싶기도 하구요. 문화 콘텐츠가 널려있는데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간도 문제도 며칠만에 사라져버린듯 하나의 이벤트성 이슈로 끝나버린 것 같기도 하고.... 저는 필력이 딸려서 다른 많은 분들이 좋은 글들 좀 많이 많이 써 주셔서 국민들의 의식이 성숙해지길 바랍니다. 저도 열심히 추천하겠습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9.07 1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전에는 역스광팬이고 닥본사 였는뎅.. 요즘은 잘 안되더군요..

      문화연예 카테고리인데 연예가 주가된것은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수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의 성향상..

      사극은 현시대를 반영하지요. 그래서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고요..

  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9.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0. BlogIcon food storage supplies 2012.11.01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1.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 battery replacement 2012.11.05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 천추태후에서 경주원군으로 나오는 왕욱의 어머니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조카가 된다.

  12. BlogIcon great websites for kids 2012.12.20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함 때문에 쉽게 이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전문 소프트웨어인 포토샵만큼은 아니더라도

  13. BlogIcon mountain house 10 cans sale 2012.12.31 2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니 구륜은 동명이인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대량원군(현종)

KBS 천추태후에서 목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대량원군은 왕욱의 아들이다. 왕욱은 태조 왕건의 아들이다.

그런데 드라마 천추태후에서 경주원군으로 나오는 왕욱의 어머니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조카가 된다.

“지금 왕께서 나라를 나에게 주었으니 이는 큰 것을 주신 것입니다. 바라건대 [왕의] 종실과 혼인을 맺어 장인과 사위의 우호를 영원히 누렸으면 합니다.” [경순왕이] 대답하였다.

나의 큰아버지 잡간(迊干) 억렴(億廉)은 지대야군사(知大耶郡事)인데, 그 딸자식은 덕과 용모 모두 뛰어났으니
이 사람이 아니면 집안 살림을 갖출 수가 없을 것입니다.”
태조가 마침내 그를 아내로 삼아 아들을 낳으니 이가 현종(顯宗)의 아버지로, [후에] 안종(安宗)으로 추봉되었다. 경종(景宗) 헌화대왕(獻和大王) 때 이르러 정승공의 딸을 맞아들여 왕비로 삼고 정승공을 상보령(尙父令)으로 봉하였다.
공은 978년 송(宋)나라 흥국(興國) 4년 무인에 이르러 죽었는데, 시호를 경순(敬順)<또는 효애(孝哀)라고도 하였다.>이라 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경순왕 935년


또한, 경순왕의 딸은 고려 5대왕인 경종의 제1 왕비인 헌숙왕후가 된다. 드라마 상에서는 나오지 않지만,975년 5대 경종(955년생)이 21살에 아버지 4대 목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이때까지 경순왕은 살아 있었다.

 

그러니 만약 경종이 헌숙왕후 사이에서 아들이 있었다면, 935년 신라가 멸망한 후 40년만에 신라왕의 피가 썩인 왕이 태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헌숙왕후는 아들을 생산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경종은 헌애왕후의 오라버니인 6대 성종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채시라가 열연하고 있는 천추태후인 헌애왕후(964년생)는 경종의 3번째 왕후이고, 4번째 왕후는 천추태후의 동생인 헌정왕후는 경종이 죽은 후 경주원군인 왕욱과 사통하여 대량원군(현종)을 낳는다.

고려 8대 현종 계보도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왕욱의 어머니는 경순왕의 백부인 억렴의 딸인 신성왕후이다. 왕욱(왕건/신성)의 아들인 대량원군(왕욱/헌정)은 드라마 천추태후와는 다르게 강조에 의해서 목종이 폐위되고, 1008년 18세에 고려 8대 왕위에 오른 현종이 된다. 이후 고려의 왕들은 현종의 피를 이어 받았으니 실질적으로 신라의 왕통이 고려의 핏속에 녹아 든것이다.

김치양

부계로는 보이지 않던 고려의 왕통이 모계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속에 신라가 숨쉬고 있는 것이다. 신라는 935년에 멸망이 되었지만, 실제는 고려속에서 신라가 살아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백제의 왕가는 고려에 녹아나지 못했다. 후백제의 왕인 견훤의 출자는 신라의 진흥왕의 아들인 구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후백제를 자처한 왕이 신라 왕손의 후손이라니..

만약, 견훤이 진흥왕의 아들인 구륜의 후손이라면, 당연히 왕인 진흥왕부터 세계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견훤은 구륜을 자신의 선조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구륜은 동명이인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사극 천추태후에서는 김치양을 마의태자의 후손으로 후신라를 찾으려는 인물로 설정하였다. 또한, 김치양이 반란을 일으키고, 강조가 반란을 진압하고 김치양과 천추태후의 아들인 황주원군이 여진으로 들어가 완안부의 시조가 되며, 100년후 김치양의 후손인 아골타가 1115년 금을 개국하는 것으로 설정하려는 듯 하다.

반면에 고려사의 기록으로는 황주원군으로 설정된 인물의 이름은 알려지 있지 않고, 강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예종 10년(1115) 3월조에 보면 이런 기사가 나온다. '이달에 생여진 완안부의 아골타가 황제를 일컫고 국호를 금이라 했다. 혹은 말하기를 ‘옛적 우리 평주(平州) 승(僧) 금준(今俊)이 여진에 도망해 들어가 아지고촌(阿之古村)에 거주했으니 이가 금의 시조다’라고 하며 혹은 말하기를 ‘평주 승 김행(金幸)의 아들 극기(克己)가 처음에 여진의 아지고촌에 들어가 여진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으니 고을(古乙) 태사(太師)라 하고 고을이 활라(活羅) 태사(太師)를 낳고 활라가 아들이 많아 장자를 핵리발(劾里鉢)이라 하고 계자(季子)를 영가(盈歌)라 했는데, 영가가 웅걸(雄傑)이어서 중심(衆心)을 얻었다. 영가가 죽자핵리발의 장자 오아숙(烏雅束)이 위를 이었고 오아속이 졸하매 아우 아골타가 섰다고 한다 -고려세가 예종 10년 1115년

 

금태조 아골타 계보도


1107년(예종 2년)에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이끌고 여진 정벌군의 원수(元帥)가 되어 부원수 오연총(吳延寵)과 17만 대군을 거느리고 여진족을 정벌하여 9성을 쌓고, 재침하는 여진을 평정하여 1108년(예종 3년) 개선하였다. 그때 여진 5천 명을 죽였고, 130명을 생포하였다. -고려세가 예종 3년

여진 사신이 고려에 와서 ‘옛날 우리 태사 영가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조종이 대방(고려)에서 나왔으니 자손에 이르러서도 의리상 귀부함이 마땅하다’고 했고 지금 태사 오아속도 역시 대방을 부모의 나라로 삼나이다. -고려세가 예종 4년 1109년

동여진과 고려와는 수시로 전쟁을 하였지만 흥미롭게도 아골타가 여진을 통합하고, 금을 세운후 고려는 금과는 별다른 전쟁이 없었다. 

 KBS 역사스페셜에서 금의 태조인 완안부 아골타의 선조를 신라의 마의태자의 아들로 연결하려는 듯 하다. 역사스페셜을 시청하는데 도움이 되었음 하는 바람에서 이기사를 송고한다.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해주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09.09.06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BlogIcon 초록누리 2009.09.06 0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어요. 그런데 제가 천추태후를 한번도 못봐서 ㅠ_ㅠ....
    그래도 공부는 열심히 하고 갑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잘 안봅니당.. 천추태후는.. 왠지 정이 안가용.. ㅋㅋ

      다만 오늘(?) 역사스페셜에서 아골타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기사를 송고한 것임..

  3. 드라큘라 백작 2009.09.06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골타 경순왕 자손론에 대해서 저는 부정적으로 봅니다. 물론 신라 왕족이 여진족속 땅으로 들어가서 출세 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하필 왕족일까 하는데서도 의구심이있으며 흔히 있었던 족보 도금 혐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골타가 자신는 이래뵈도 신라 임금의 후손이다. 나는 출생부터가 다르다라고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혈통을 자랑하기 위해서 조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신라 후손인걸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중원을 제패한뒤에 뭔가 신라와 관련한 조치가 있었어야 했으나 그런게 전혀 없거든요 단지 고려에 우리와도 조공책봉관계를 맺자 거부하면 알아서 해라 식의 반응 말고는 없었습니다. 송나라 사람이야 그냥 받아 적은거고 족보는 후대에 추가 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고....

    • 1235 2009.09.06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제한 역사스페셜 한번 봐주세요 ㅎㅎㅎ 우리나라에서도 만주로 간 신라 왕손이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름은 김함보라고 하더군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1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충분히 그럴수 있습니당.. 우리같이 잘 지내봅시다란 뜻이 되니요.. 문젠 금사에도 들어가 있다는것..

      재밌게도 신라도 자신은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고 비명에 기록하고 있다는것.. 이것도 당시대에 완성됩니다.. 문무왕의 비에 그렇게.. 또한, 재당 신라인에 무덤에도.

      저도 님처럼 생각합니다..

    • 백작님이 2009.09.06 1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 모르시네요. 아골타가 금국을 세웠을때 신라는 이미 망하고 고려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신라가 망한뒤 반고려세력이 여진으로 넘어와 (1235님이 말한 김함보입니다) 여진 세력끼리 다툴때 중재를 하여 두각을 보이죠. 아골타는 신라 후손임을 자랑으로 여겨 금사에까지 기록이 된거지요. 오죽하면 신라를 망하게한 고려를 형제의 국, 고려가 부모의 땅에 있다하여 형제라고 생각했습니다.

    • 아무렇게나 2009.09.08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중국 金나라 시조는 안동 권씨일 것
      금태조 가계도 추적 ‘금조사연구’ 펴낸 금감원 윤명수 수석조사역

      《여진족의 국가로 알려진 금(金•1115∼1234)의 시조가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왔다. 금융감독원 윤명수(51) 수석조사역은 최근 중국의 정통역사서 25사 중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던 ‘금사(金史)’의 주요 내용을 번역한 ‘금사’와 금태조 완안민(아골타)의 가계계승 문제를 추적한 ‘금조사연구’를 함께 펴내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금사에는 금태조가 고려에서 건너온 함보(函普)를 비롯한 3형제의 후손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금을 계승한 청(후금)의 건륭제 때 집필된 ‘흠정만주원류고’에는 금국(金國)의 명칭이 신라왕성 김(金)씨에서 비롯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금과 신라의 연관성을 보여 주는 근거는 또 있다. 청 황실의 만주어 성 ‘아이신줴뤄’ 중 씨족을 가리키는 아이신은 금(金)을 뜻한다. 이는 아이신줴뤄를 한자로 가차한 애신각라(愛新覺羅)에 ‘신라(新羅)를 사랑하고, 기억하자’는 뜻이 담겼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조선시대에 나온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도 금의 시조가 김행(金幸)의 아들 또는 금준(今俊)이라는 설이 기록돼 있다. 김씨는 본디 금씨로 발음됐는데 이(李)씨를 왕조로 한 조선조가 들어서면서 ‘금이 나무를 이긴다(金克木)’는 오행설의 영향으로 금을 김으로 발음했다는 주장에 입각하면 금준은 곧 김준일 수 있다. 이를 근거로 함보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로 고려에 귀순을 거부했던 마의태자이거나 그 후손일 가능성이 오랫동안 제기됐다.

      윤 씨는 이를 추적하던 중 조선 인조 때 문신 김세렴이 남긴 ‘동명해사록’에서 “금나라의 시조는 경순왕의 외손이자 권행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라는 기록을 찾아냈다.

      권행은 본디 경주 김씨로 신라 고창(古昌•경북 안동시)의 수령이었다.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핍박해 자살하게 한 데 분개해 고려를 도와 고창에서 후백제군을 격퇴한 공로로 고려 태조 왕건에게서 권씨를 하사받아 안동 권씨의 시조가 됐다.

      윤 씨는 이를 바탕으로 ‘함보의 신라/고려인 부친=김행=권행’으로 수수께끼가 풀렸다고 주장했다. 권행은 고려통일 이후 아부공신(亞父功臣)에 책록되고, 정1품 태사(太師)의 벼슬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고려가 금나라 수립 전 여진족 추장들에게 관례적으로 내린 관직이 태사였다.

      결론적으로 함보는 경순왕의 사위인 권행의 세 아들 중 한 명이며 마의태자와 신라 부활운동을 펼치다 마의태자가 숨진 뒤 만주로 진입해 여진족의 일부인 완안부족의 추장이 됐다는 것이 윤 씨의 주장이다. 문신 김세렴의 부인이 권행의 맏아들 권인행의 아내와 같은 양천 허씨인 점, 마의태자가 웅거했다는 설악산 권금성이 권장군과 김장군이 쌓은 성이라는 전설, 1011년 여진의 함선 100여 척이 안동 인근 경주 지역에 출몰했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

      그러나 안동 권씨 족보에는 권행의 후손이 권인행 한 명만 등장하는 등 아직도 풀려야 할 의문점은 남아 있다.

      일찍부터 만주사에 관심이 깊어 만주어를 독학했다는 윤 씨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자극을 받아 2004년부터 주말을 도서관에서 보내며 금사의 번역에 매달리는 한편 휴가 때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현지 조사를 했다.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왕씨의 나라라면 금•청은 신라를 계승한 김씨의 나라로 봐야 합니다. 이 때문에 상하이임정의 역사교재였던 ‘신단민사(新檀民史)’나 일제강점기 사학자 신태윤의 ‘배달조선 정사’도 발해-요-금-청의 역사를 우리 역사에 포함시켰던 것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선 중국사에 포함될 수 없는 요-금-청사를 한국사의 방계로 포함시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4. BlogIcon 영웅전쟁 2009.09.06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새 분야 공부하라는 분부이신듯 하군요...
    이미 제 캐파를 넘엇는데 ㅎㅎㅎ
    한번 해보겠습니다.
    재 방송부터 보고 해야겠지요 ㅋ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휴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닙니당.. 그냥 천추태후의 저작자는 김치양의 죽은 아들은사실 죽지 않고 여진으로 들어갔다는 설정이 있었다. 머 그런거지요.. 그냥 보셈.. ㅋㅋ

  5. gap4 2009.09.06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저도 봐지만 재미고 흥미롭더군요 ,,후금황제 청나라 1대황제가 예로부터 조선과 금은 형제니,,화친외교를 하자고 했는데,,조선에 무능한 문인들이명나라 사대주의 때문에 반대했지요 그래서 후에 병자호란이란 굴욕적 주종관계가 성립됬지요말이 조금 빛나갔지만 참 안타깝더라구요 북방 고구려 발해 여진 우리하고땔래야 땔수 없는 관계인데 말이죠 ,,참 그때나 지금이나 문인들이 망쳐놨네요꼭 그런건 아니지만 천추태후에서도 문인들이 지살길만 걱정하쟎아요 얼마전 간도땅이 100년이 넘었죠,안타깝읍니다 예전에 북방에 우리 선조때부터 잘만 통치했어도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텐데 말이죠,,두서없이 글이 커졌죠 잘읽었읍니다,,,,,

  6. 갓쉰동님 광팬 2009.09.07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으로 고구려나 발해가 지속되지 못한 것이 이런점에서 좀 아쉽습니다. 금나라 선조가 신라인 후 손 여부를 떠나 이런 것들이 의문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만주가 발해 이후 사라져 버렸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아닐까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7 1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아쉬움의 표현..
      일본의 황족을 찾는이유도 이와 같을 겁니다..

      만약, 중국이 고려와 신라와. 조선의 조상이 자신의후손이란 드라마를 제작한다면 난리가 나겠지요? 그때도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할 네티즌이 몇명이나 될까요? 저는 그게 궁금해요.. 선덕여왕은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하는 사람들 중에서.. ㅋㅋ

  7. ^___^ 2009.09.07 15: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역사스페셜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포탈사이트에서 역사관련해서 찾아보려고 해도 연예가 일색이구.... 에구구... 역사관련 다큐멘터리도 많이 좀 나왔으면하는 바람입니다. 근현대사에서 해방 후 6.25가 끝나고 먹고 살기 바빠서 등한시되었고 북한과의 관계로 반공에만 힘을 쏟아서 고구려를 외면한 채 신라의 김유신만 강조하는 경향도 있었고 사극은 조선시대 처첩간의 애정물이 주를 이루고 중국의 동북아 공정에 힘입어(?) 고구려관련 드라마가 붐을 탔지만 서도 이제는 관심을 갖고 올바른 역사인식이 있었으면합니다. 연예인들 주변 잡기에만 온통 신경쓰고 있어서 씁쓸합니다. 우리 역사에 관해서는 무지할 만큼 모르는게 너무 많습니다.국내에서 반만년 역사를 자랑스레 여기며 목에 힘주고 있지만 세계 속의 역사교과서에서의 한국은 60년대에 머물러 있더군요. 대사관에서는 뭐하는지 싶기도 하구요. 문화 콘텐츠가 널려있는데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간도 문제도 며칠만에 사라져버린듯 하나의 이벤트성 이슈로 끝나버린 것 같기도 하고.... 저는 필력이 딸려서 다른 많은 분들이 좋은 글들 좀 많이 많이 써 주셔서 국민들의 의식이 성숙해지길 바랍니다. 저도 열심히 추천하겠습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9.07 1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전에는 역스광팬이고 닥본사 였는뎅.. 요즘은 잘 안되더군요..

      문화연예 카테고리인데 연예가 주가된것은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수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의 성향상..

      사극은 현시대를 반영하지요. 그래서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고요..

  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9.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0. BlogIcon food storage supplies 2012.11.01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1.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 battery replacement 2012.11.05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 천추태후에서 경주원군으로 나오는 왕욱의 어머니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조카가 된다.

  12. BlogIcon great websites for kids 2012.12.20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함 때문에 쉽게 이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전문 소프트웨어인 포토샵만큼은 아니더라도

  13. BlogIcon mountain house 10 cans sale 2012.12.31 2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니 구륜은 동명이인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이전버튼 1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
갓쉰동
12-01 05:16
Yesterday21
Today1
Total978,081

글 보관함

최근에 올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