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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15세 풍월주를 보종과 유신이 비재를 통해서 결정하려고 한다. 그런데 보종은 화랑세기의 기록에 의하면 유신과 싸우도 않을 뿐만 아니고, 유신의 주치의 역할을 충실히 한 유신의 숨은 일군이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8/0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사실은 유신과 보종 너무나 친한 사이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보종은 설원랑과 미실사이에 태어난다. 보종이 태어나는 일화가 재미 있는데, 미실이 처음 진흥왕의 비이며, 미실의 이모인 사도태후가 진평왕이 13세인 어릴때 왕위에 올랐을때 보명궁주와 미실을 좌우황후로 점지를 한다.

보명이 전왕인 진지의 딸인 석명을 임신하고 있어서 진평을 모실수가 없었다, 이에 미실이 진평과 관계를 하였으나, 어린 진평은 미실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이에 미실은 설원랑과 관계를 하여 480년 보종을 낳는다. 진평왕은 보종을 자신의 아들처럼 키우다 친아버지인 설원랑에게 돌려보낸다.


그런데 보종은 유약하고 마마보이 같아서 어머니 미실의 치마폭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미실은 다 자란 보종이 걱정이 되어, 유신에게 보종을 돌봐줄것을 부탁한다. 그래서 유신의 뒤를 이어 보종이 16세 풍월주에 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잼있게도 보종의 결혼상대자를 보면 진평왕의 딸이 등장한다.

미실은 보종이 다 자랐는데도 여자에 관심이 없는 것을 알고 심히 근심에 쌓여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 8세 풍월주인 문노와 윤궁의 딸인 현강을 며느리로 맞이하게 하였다. 윤궁은 거칠부의 딸이다. 하지만 보종은 현강에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현강을 14세 풍월주인 호재(호림)에게 양보를 한다. 이에 현강은 호림과 관계하여 계화를 낳는다.

신라의 국호가 삼한일통(삼국통일)이 아닌, 김춘추 개인 복수심의 발로

미실은 궁내에 공주들에게 보종을 꼬실것을 명하는데, 보명의 딸인 양명이 보종을 꼬시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보라와 보량을 낳는다.

보라는 춘추와 결혼해서 고타소를 낳고, 고타소는 품석과 결혼하지만, 642년 대야성에서 남편인 품석과 함께 백제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다. 고타소를 너무나 사랑한 춘추는 자신의 딸이 죽자 몇일을 밥도 먹지 않고,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

그리고, 유신과 함께 백제를 무너트리려는 결심을 한다. 이게 신라가 삼한일통을 꿈을 꾸는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드라마 처럼 신라의 의미에서 <덕업신일, 망라사방>하고는 하등의 관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춘추 개인의 복수심이 백제를 무너트리고, 문무가 내침김에 고구려를 무너트리고 삼한일통의 꿈을 꾸게 한것이다. 

신라 국호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2009/09/11 - [역사이야기] - '신라(新羅)', 고구려가 만들어준 이름?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요약을 하자면, 신라의 국호는 지증왕 503년 이전 100년전부터 사용되어진 국호이고, 지증왕은 단순히 사라, 사로, 계림, 신라 등 통일화 되지 않은 국명을 요즘으로 치면 표준화작업을 한 것 뿐이다 는 것이다.

춘추는 보라와 결혼 후 서현의 딸인 문희와 관계를 하여 문무를 임신시킨다. 하지만, 춘추는 이미 아내인 보라(보종/양명)이 고타소를 임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희를 정식부인으로 받아들일 수 가 없었다. 이에 유신은 문희를 경주한 복판에서 세우고 화형을 시키려는 불쇼를 벌린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요약하자면 626~628년 즈음해서 덕만이 공주시절에 김춘추와 문희를 연결시켜준 매파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진평왕의 사위이자 장인인 보종

그렇다면 보명의 딸인 양명은 누구의 소생일까? 보명은 화랑세기에 의하면 진평왕의 아버지인 동륜이 진흥왕의 비인 보명궁주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었다. 그래서 미실의 꼬임에 빠져 572년 보명궁의 담장을 넘다가 보명궁에 있던 개에 물려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서 미실은 원화의 지위를 잃고 궁밖으로 쫓겨난다. 

그런데 이 보명궁주가 진평왕이 왕위에 오른후 사도태후에 의해서 미실과 함께 좌우황후가 된것이다. 그래서 보명이 진평과 관계를 하여 낳은 공주가 양명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마야가 황후로 나오지만 이전에 보명과 미실이 황후로 있었고, 마야는 미실과 보명의 다음 대 황후인 것이다. 그러니 드라마에서처럼 미실이 황후가 될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황후인 미실이 무엇 때문에 황후가 되려고 노력했겠는가? 또한, 미실은 진평과의 사이에서 공주를 낳는다.

어찌되었던, 양명은 보종과 관계하여 보라와 보량(박은빈)을 낳았다. 그리고 보종은 양명과 관계를 하지 않았다. 이에 양명은  용춘의 동모이부인 17세 풍월주 염장(지도/천주)과 관계를 하여 장명을 낳는다. 또한, 모종과 관계하여 양도를 낳는다.

진평의 여자들


또한 보량(보종/양명)은 진평과 관계를 하여 보로전군을 낳는다.  그러니 보종은 진평의 사위이자, 장인이 된다. 또한, 진평으로써도 보종이 양명과 결혼하니 사위가 되면서 보종/양명이 딸인 보량과 관계를 하니 보종이 장인이 된다.

하지만, 자신의 어린아들을 왕위에 올리려한 승만손씨에 의해서 보량은 궁에서 추방된다. 이에 보량은 22세 풍월주 양도(모종/양명)와 결혼한다. 양도와 보량은 어머니가 같은 형제이다. 양도는 처음에 어머니가 같은 누이인 보량과 결혼을 하지 않으려 했으나 어쩔수 없이 보량과 결혼을 한다.

설원랑.보종의 가계도 (원효와 설총도 보인다)


어찌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실(미진/묘도)만이 진흥과 진지와 진평을 모신것이 아니고, 보명궁주(구진/지소태후) 또한 진흥, 진지, 진평의 황비가 되는 것이다. 

최소한 드라마 선덕여왕이 역사서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이어서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았다면 기본적인 팩트는 벗어나면 안된다. 그러고도 거칠부의 입을 통해서 미실에게 <역사왜곡>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면, 원작자 스스로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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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바람나그네 2009.09.14 0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멋진 하루되세요 ^^

  2. BlogIcon 배리본즈 2009.09.14 0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와 내용 상의 차이가 존재하는 듯 하군요.
    자세한 설명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14 16:06  댓글주소  수정/삭제

      항상 존재를 하긴 하는데 좀 심하지요.. 차라리 태왕사신기처럼 환타지사극을 표방했다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당..

  3. 2009.09.14 0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BlogIcon 초록누리 2009.09.14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네요.
    드라마에서 인간관계의 왜곡이 참 심하다는 생각이 들지요?

  5. BlogIcon 털보아찌 2009.09.14 1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극을 재미로 보기도 하지만,
    역사를 알고보면 참으로 복잡하더군요.
    한주동안도 활기차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6. BlogIcon 불탄 2009.09.14 1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어보았습니다.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었어요.
    즐겁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7. BlogIcon 영웅전쟁 2009.09.14 1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먼저 역사를 알고
    사극을 봐야 했었는데 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즈음이군요.
    너무 역사를 몰랐다는....
    물론 갓쉰동님이 항상 바로 잡아주셔
    감사드리지만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멋진 한주 열어가시길 빕니다.

  8. BlogIcon 둥둥 2009.09.14 1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상식 잘보고 갑니다^^
    주말이 지나고 더욱 선선한 날씨가 찾아왔네요
    환절기 감기조심하시구요 활기찬 한주간 보내세요

  9. 허허 2009.09.14 1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건 사람도 아니고 짐승들의 족보같네요

  10. BlogIcon 朱雀 2009.09.14 1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

  11. BlogIcon skagns 2009.09.14 2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대단하신듯...
    그나저나 참... 대단하군요. 족보 그리기가 참 힘든 거 같아요. ㅎㅎ;;;
    잘 보고 갑니다. ^^

  12. secret 2009.09.15 0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량과 진평왕은 진짜로 외손녀와 외할아버지 관계인데요? 그냥 '뻘"이 아닌. 보량- 양명의 친 딸, 양명- 진평왕의 친 딸.

  13. BlogIcon 모노마토 2009.09.15 1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에서 저렇게 많은 사람을 등장 시키려면 제작비가 어마어마 하지 않을까요? 으흐흐

    게다가 저 당시에 저런 혼인(?) 풍습도 지금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겠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따라하지 말자~(?)

    아무튼 요즘 이 블로그 덕분에 선덕여왕 보면서 마누라 한테 유식한 척 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

  14.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15세 풍월주를 보종과 유신이 비재를 통해서 결정하려고 한다. 그런데 보종은 화랑세기의 기록에 의하면 유신과 싸우도 않을 뿐만 아니고, 유신의 주치의 역할을 충실히 한 유신의 숨은 일군이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8/0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사실은 유신과 보종 너무나 친한 사이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보종은 설원랑과 미실사이에 태어난다. 보종이 태어나는 일화가 재미 있는데, 미실이 처음 진흥왕의 비이며, 미실의 이모인 사도태후가 진평왕이 13세인 어릴때 왕위에 올랐을때 보명궁주와 미실을 좌우황후로 점지를 한다.

보명이 전왕인 진지의 딸인 석명을 임신하고 있어서 진평을 모실수가 없었다, 이에 미실이 진평과 관계를 하였으나, 어린 진평은 미실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이에 미실은 설원랑과 관계를 하여 480년 보종을 낳는다. 진평왕은 보종을 자신의 아들처럼 키우다 친아버지인 설원랑에게 돌려보낸다.


그런데 보종은 유약하고 마마보이 같아서 어머니 미실의 치마폭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미실은 다 자란 보종이 걱정이 되어, 유신에게 보종을 돌봐줄것을 부탁한다. 그래서 유신의 뒤를 이어 보종이 16세 풍월주에 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잼있게도 보종의 결혼상대자를 보면 진평왕의 딸이 등장한다.

미실은 보종이 다 자랐는데도 여자에 관심이 없는 것을 알고 심히 근심에 쌓여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 8세 풍월주인 문노와 윤궁의 딸인 현강을 며느리로 맞이하게 하였다. 윤궁은 거칠부의 딸이다. 하지만 보종은 현강에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현강을 14세 풍월주인 호재(호림)에게 양보를 한다. 이에 현강은 호림과 관계하여 계화를 낳는다.

신라의 국호가 삼한일통(삼국통일)이 아닌, 김춘추 개인 복수심의 발로

미실은 궁내에 공주들에게 보종을 꼬실것을 명하는데, 보명의 딸인 양명이 보종을 꼬시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보라와 보량을 낳는다.

보라는 춘추와 결혼해서 고타소를 낳고, 고타소는 품석과 결혼하지만, 642년 대야성에서 남편인 품석과 함께 백제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다. 고타소를 너무나 사랑한 춘추는 자신의 딸이 죽자 몇일을 밥도 먹지 않고,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

그리고, 유신과 함께 백제를 무너트리려는 결심을 한다. 이게 신라가 삼한일통을 꿈을 꾸는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드라마 처럼 신라의 의미에서 <덕업신일, 망라사방>하고는 하등의 관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춘추 개인의 복수심이 백제를 무너트리고, 문무가 내침김에 고구려를 무너트리고 삼한일통의 꿈을 꾸게 한것이다. 

신라 국호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2009/09/11 - [역사이야기] - '신라(新羅)', 고구려가 만들어준 이름?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요약을 하자면, 신라의 국호는 지증왕 503년 이전 100년전부터 사용되어진 국호이고, 지증왕은 단순히 사라, 사로, 계림, 신라 등 통일화 되지 않은 국명을 요즘으로 치면 표준화작업을 한 것 뿐이다 는 것이다.

춘추는 보라와 결혼 후 서현의 딸인 문희와 관계를 하여 문무를 임신시킨다. 하지만, 춘추는 이미 아내인 보라(보종/양명)이 고타소를 임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희를 정식부인으로 받아들일 수 가 없었다. 이에 유신은 문희를 경주한 복판에서 세우고 화형을 시키려는 불쇼를 벌린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요약하자면 626~628년 즈음해서 덕만이 공주시절에 김춘추와 문희를 연결시켜준 매파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진평왕의 사위이자 장인인 보종

그렇다면 보명의 딸인 양명은 누구의 소생일까? 보명은 화랑세기에 의하면 진평왕의 아버지인 동륜이 진흥왕의 비인 보명궁주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었다. 그래서 미실의 꼬임에 빠져 572년 보명궁의 담장을 넘다가 보명궁에 있던 개에 물려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서 미실은 원화의 지위를 잃고 궁밖으로 쫓겨난다. 

그런데 이 보명궁주가 진평왕이 왕위에 오른후 사도태후에 의해서 미실과 함께 좌우황후가 된것이다. 그래서 보명이 진평과 관계를 하여 낳은 공주가 양명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마야가 황후로 나오지만 이전에 보명과 미실이 황후로 있었고, 마야는 미실과 보명의 다음 대 황후인 것이다. 그러니 드라마에서처럼 미실이 황후가 될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황후인 미실이 무엇 때문에 황후가 되려고 노력했겠는가? 또한, 미실은 진평과의 사이에서 공주를 낳는다.

어찌되었던, 양명은 보종과 관계하여 보라와 보량(박은빈)을 낳았다. 그리고 보종은 양명과 관계를 하지 않았다. 이에 양명은  용춘의 동모이부인 17세 풍월주 염장(지도/천주)과 관계를 하여 장명을 낳는다. 또한, 모종과 관계하여 양도를 낳는다.

진평의 여자들


또한 보량(보종/양명)은 진평과 관계를 하여 보로전군을 낳는다.  그러니 보종은 진평의 사위이자, 장인이 된다. 또한, 진평으로써도 보종이 양명과 결혼하니 사위가 되면서 보종/양명이 딸인 보량과 관계를 하니 보종이 장인이 된다.

하지만, 자신의 어린아들을 왕위에 올리려한 승만손씨에 의해서 보량은 궁에서 추방된다. 이에 보량은 22세 풍월주 양도(모종/양명)와 결혼한다. 양도와 보량은 어머니가 같은 형제이다. 양도는 처음에 어머니가 같은 누이인 보량과 결혼을 하지 않으려 했으나 어쩔수 없이 보량과 결혼을 한다.

설원랑.보종의 가계도 (원효와 설총도 보인다)


어찌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실(미진/묘도)만이 진흥과 진지와 진평을 모신것이 아니고, 보명궁주(구진/지소태후) 또한 진흥, 진지, 진평의 황비가 되는 것이다. 

최소한 드라마 선덕여왕이 역사서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이어서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았다면 기본적인 팩트는 벗어나면 안된다. 그러고도 거칠부의 입을 통해서 미실에게 <역사왜곡>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면, 원작자 스스로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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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바람나그네 2009.09.14 0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멋진 하루되세요 ^^

  2. BlogIcon 배리본즈 2009.09.14 0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와 내용 상의 차이가 존재하는 듯 하군요.
    자세한 설명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14 16:06  댓글주소  수정/삭제

      항상 존재를 하긴 하는데 좀 심하지요.. 차라리 태왕사신기처럼 환타지사극을 표방했다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당..

  3. 2009.09.14 0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BlogIcon 초록누리 2009.09.14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네요.
    드라마에서 인간관계의 왜곡이 참 심하다는 생각이 들지요?

  5. BlogIcon 털보아찌 2009.09.14 1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극을 재미로 보기도 하지만,
    역사를 알고보면 참으로 복잡하더군요.
    한주동안도 활기차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6. BlogIcon 불탄 2009.09.14 1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어보았습니다.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었어요.
    즐겁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7. BlogIcon 영웅전쟁 2009.09.14 1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먼저 역사를 알고
    사극을 봐야 했었는데 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즈음이군요.
    너무 역사를 몰랐다는....
    물론 갓쉰동님이 항상 바로 잡아주셔
    감사드리지만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멋진 한주 열어가시길 빕니다.

  8. BlogIcon 둥둥 2009.09.14 1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상식 잘보고 갑니다^^
    주말이 지나고 더욱 선선한 날씨가 찾아왔네요
    환절기 감기조심하시구요 활기찬 한주간 보내세요

  9. 허허 2009.09.14 1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건 사람도 아니고 짐승들의 족보같네요

  10. BlogIcon 朱雀 2009.09.14 1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

  11. BlogIcon skagns 2009.09.14 2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대단하신듯...
    그나저나 참... 대단하군요. 족보 그리기가 참 힘든 거 같아요. ㅎㅎ;;;
    잘 보고 갑니다. ^^

  12. secret 2009.09.15 0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량과 진평왕은 진짜로 외손녀와 외할아버지 관계인데요? 그냥 '뻘"이 아닌. 보량- 양명의 친 딸, 양명- 진평왕의 친 딸.

  13. BlogIcon 모노마토 2009.09.15 1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에서 저렇게 많은 사람을 등장 시키려면 제작비가 어마어마 하지 않을까요? 으흐흐

    게다가 저 당시에 저런 혼인(?) 풍습도 지금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겠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따라하지 말자~(?)

    아무튼 요즘 이 블로그 덕분에 선덕여왕 보면서 마누라 한테 유식한 척 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

  14.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예고한 대로 신라의 국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 32편에서 신라의 의미를 시청자에게 죽방(이문식)이 용화낭도들에게 아주 심플하게 해석해 주었다. "화랑으로써 문.무를 겸비한 세력을 키워서 백제와 신라를 그물로 고기를 잡듯이 다 잡아 먹으라"는 뜻이라고 해석해준것이다. 

죽방이 심플하게 시청자에게 알려주고, 트루먼처럼 시청자에게는 실험쥐들인, 덕만은 문노에게 자신이 왕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유신은 15대 풍월주가 되기위해서 마지막 승부와 다름이 없는 두번째 비재인 신라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서로 고분분투를 하고, 이들이 서로 협력하여 신라의 의미를 찾아 나선다. 


선덕여왕은 시청자에게 이미 죽방을 통해서 답을 알려 주었기 때문에 덕만과 유신이 목표에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트루먼쇼를 보듯이 감상하면 된다고 알려준것이다. 선덕여왕이 좀더 극적이라면 유신과 덕만이 비밀을 찾아가는 여정에 실패라는 당연히 있어야할 과정을 거치지 않고, 거칠부가 주어진 미션을 일사천리로 문자사방진과 소엽도를 연결하여 해결한다.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이들에게서는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글은 많은 사람이 이미 답을 알고 있으니 공개를 해서 정말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신라>에 숨은 뜻이 있었는지를 알아 보도록 하자. 결론을 말하면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신라에는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커다란 의미가 없었다.

300

중원고구려비

단지, 신라의 국호 사로의 사라의 음차에 지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증왕 이전에도 너무나도 자주 사용된 국호라는 것이다. 그러니 지증왕의 유지도 없었고, 진흥왕의 유지도 없었다.

삼국사기에도 지증왕은 그동안 자신들이 불러온, 또는 다른 타국인 백제나 고구려나 가야가 불러온 여러국명을 가지고 신하들과 의논해서 정식 국명을 정한 것이다. 요즘 이야기를 한다면 공식 국명표준화 작업을 진행한 정도이다.

우리는 드라마 선덕여왕 덕분에 신라에 빠져있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 본다면, 쉽게 알 수 있다.

고구려가 남긴 두개의 비가 있다. 하나는 광개토태왕비의 "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羅以爲臣民"이고 또하나는 중원고구려비 '신라토내당주'(新羅土內幢主와 신라매금 이다.

이들 두비는 공히 지증왕 이전에 고구려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비이다. 그런데 이들 비에는 <신라(新羅)>가 너무나도 또렷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 지증왕은 사라, 계림, 사로, 신라 중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지고 사용된 국호를 정식으로 사용한것에 불과할 뿐이다. 지증왕에게는 3개의 국호를 두고 선택할때 남들이 이미 인정하고 있는 국호를 사용한다면 그것으로 만족을 하고,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화가의 그림을 감상할때, 각자 알아서 의미를 부여하듯이 <신라>의 국명에서 신(新)은 날로 새로운 것을 신이라고, 라(羅)는 그물처럼 퍼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좋은 뜻이 아닌가 의미 부여를 한것이다. 뉴욕이나 뉴질랜드처럼 말이다. 신라는 새로운(신) 나라(라)를 한자로 음차한 것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고 고구려가 설마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도록 바라기라도 했겠는가? 어쩌면 신라라는 국명은 고구려가 만들어 주지 않았을까?하는 의심이 들기까지 하다. "새롭게 날로 번성하라"는 의미로 말이다.

503년 지증왕 4년 겨울 10월 시조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나라 이름을 정하지 않아 사라(斯羅)라고도 하고
혹은 사로(斯盧) 또는 신라(新羅)라고도 칭하였습니다.

신 등의 생각으로는,
신(新)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나(羅)는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이므로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집니다. - 삼국사기 지증왕 4년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소엽도에 거칠부가 새긴 글씨는 德業日新, 網羅四方 이다.

新者 德業日新
羅者 網羅四方之義

미국의 공식 명칭은 미합중국이다. 물론, 이는 한자식 표현이다. 한글로 풀어쓰면 유나이트 업 어메리카이다. 어메리카를 한자를 사용하는 중국과 일본은 영어식 발음을 할 수 없으니 이를 가장 근접한 <미>라는 글짜로 대치를 한다. 그리고 한자를 기록하는데 일본은 <米>를 사용하고 한국과 중국은 <美>를 사용한다. 아름다울<美>는 이미 아메리카의 첫음과 비슷하여  아미리카처럼 들리니 <美>을 사용한것 뿐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아름답다고만 할 수는 없다. 당연히 이름을 붙여줄때는 좋게 붙여주는게 그나라도 좋고, 불러주는 나라도 좋은 것이다. 프랑스를 불란서, 불국(佛國)이라 하고, 네델란드를 <德國>이라고 불러주는 것처럼 말이다. 잉글란드인 영국(英國)으로 불러주어 좋은 의미를 가지는 음과 훈을 가지고 발음도 유사한 것을 찾듯이 말이다.

설마 프랑스가 불국이기 때문에 프랑스 국민들이 불교를 믿어 성불한다고 믿지 않는 것처럼 네델란드가 덕이 있다고 할 수 없고, 영국이 꽃봉우리처럼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지 않는가?


국민 개개인이 일본을 쪽발이라하고, 중국을 뙤국이라고 한다거나, 미국을 양키라라고 은연중에 깔보는 비칭을 사용한다고 해도 공식적으로 비하적으로 상대국의 국명으로 불러준다면 좋아할 국가는 없을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좋은 의미를 부여해서 사용을 하는 것이다.

위에서 잠시 흘리듯 이야기를 했지만 고구려로 보았을때 신라는 그저 신생국에 가까운 나라였고, 자신들에 부속된 국가라고 여겼겠지만, 아무런 의미가 통하지 않는 사로나 사라보다는 한자식 의미가 통하는 미칭을 사용해서 신라(新羅)라고 불러준것 뿐이다.

어쩌면 신라는 고구려가 불려준 국명이 의미도 좋고, 뜻도 좋고, 이미 타국에서 알려진 국명이니 사용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지증왕의 유지나 비밀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냉수리비

일본의 국호는 자국이 정해서 일본(日本)이라고 한것이 아니라 한반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왜>를 바라볼때 해돋는 곳에 있는 곳에 있는 종족을 총칭해서 부르고, 자신들도 해뜨는 곳에 살고 있다는 주체의식이 형성되었다.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에 복속된 관계로 한반도와 단절과 자국내 일체감이 필요했었던 관계로 국가명으로 사용하기에 흡족하여 사용한 것처럼 말이다.


<신라>라는 국명을 지증왕 4년에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소한 신라는 지증왕 이전시기까지는 일상적으로 한자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단계까지 접어들지는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지증왕시기의 비문들을 보더라도 한자를 재대로 읽거나 쓰지 못하는 자가 남이 써준 글을 보고, 그저 그림을 그리듯 비석에 각석을 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여러분들이 한글이나 한자를 처음 배울때를 상기해보기 바란다. 만약, 초등학교때의 일기가 있다면, 찾아보던지, 아니면 초등학교나 한글 배우던때의 글씨를 상기해본다면 쉽게 답이 나올것이고, 또한, 영어를 배울 때 알파벳을 어떻게 썼는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414(?)년경의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와 한참 후대의 500년대 신라비를 비교해 본다면 신라의 문화적인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진흥왕시기 영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박혁거세의 유명이 적힌 비석을 조작하여, 나을신궁에 숨겨두고 떠오른 비석을 보았을때, 역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었다면 신라에 저런 비석을 만들만한 시기는 당대인 진평왕시기 전후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실성왕 때에는 고사하고 진흥왕시기 이전에도 드라마처럼 매끈한 비석을 만들 역량이 되지 못했다.

어찌되었던 신라 지증왕 시기는 농업생산성과, 국가의 통치체계를 정비하고 대외정복사업 등 이전시기와는 다르게 문화적 개명기를 맞았다.  이처럼 지증왕은 신라의 기틀을 만든 것이다. 

 법흥, 진흥기에 불교와 더불어 급격한 발전을 하는 것은 분명해보이며, 진흥왕 때 가야를 완전히 복속시키고, 백제와 고구려의 영토를 잠식시킨 때이니 삼한일통을 꿈 꾸었을 개연성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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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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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바람나그네 2009.09.11 0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

  2. BlogIcon 배리본즈 2009.09.11 0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드라마 볼때 도움되겠네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3. BlogIcon 초록누리 2009.09.11 0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저는 무엇때문에 의미때문에 고민했을까요..정말 퐝당..진즉 좀 올려주시지....
    작가님은 역시 탁월하세요. 드라마 소재로 기가막히게 쓰시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신라 국호 의미에 목매게 만드시다니...ㅎㅎ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11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확실히 낚인거지요.. ㅋㅋ 의미부여는 후대에 했을거라는 거지요.. 기업 CI에도 의미를 부여하잖아요.. 보면 별것도 아닌것 같은뎅.. ㅋㅋ

  4. 2009.09.11 0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근데 말이야 2009.09.11 1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말이야! 갓귄동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 BlogIcon 갓쉰동 2009.09.11 1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말을 해도 좋은데.. 예는 갖추는게 어떠신지요..

      증거는 글에 포함되어 있는뎅.. 주구장창 설명했잖니.. 그러니 글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능력을 키우는게 어떻겠니..

      담부터는 댓글에 "예"가 들어가 있었음 좋겠네요.. 싫으심 말고용..

  6. BlogIcon 영웅전쟁 2009.09.11 1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사실이라는 증거를 대라고 합니다.
    타이머신 타고 다녀 오셔야 할듯...

    오늘도 재미있게 잘 보고 메모도 합니다.
    역시 시공을 초월한 안목에 경탄하면서...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편안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11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증거는 숫하게 들었는데도 증거를 대라니.. ㅋㅋ



      획기적인 설같지 않습니까? ㅋㅋ 신라의 전대 국명을 보면 참 촌시럽기는 하지요.. 물론, 그 당시의 우리나라의 말을 알수 있는 흔적이지만요.. 오히려 저는 사로, 사라, 서라벌 이런 말이 더 좋지만요.. 어찌되었던 신라는 한자로 정재된 국명이 된다는 것이고, 왕이전에 거서한, 마립간 등이 더 정이 가요.. 매금, 미금도 마립을 한자식 표현이거든요..

  7. BlogIcon labyrint 2009.09.11 1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군요...

    저는 사로국이라는 이름을 가장 잘 기억하고 있고 나머지는 별로 기억이 나지 않다가 이제 알게 되었네요.

    근데.... 제가 어제 천추태후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말은 개연성 문제였습니다.

    강조의 행동은 개연성이 있지만... 선덕여왕은 개연성이 없는 장면이 나와서요... 일식이라던가...

    미실이 늙지 않는다던가...

    비담이 휙휙 날아다닌다던가... ㅋㅋ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11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해석상의 합리성..

      비담이 날아다는건 저는 아주 좋아보여용.. 역시 사극의 묘미는 날아다녀야함..ㅋㅋ

      신라가 불사국이기 때문이지 않을까용..ㅋㅋ

  8. kim 2009.09.11 1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을 처음부터 무조건 본방사수 하고 있고 한 10회쯔음 부터인가 자세한 설명이 있는곳을
    찾아 이리저리 헤멨는데, 이곳만한 곳이 없는듯 하더군여~~ 그떄부터 글쓰시는거 잘 읽고 있습니다~

    선덕여왕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떡밥(에피소드)과 편집의 승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암튼 재밌으니~
    신라의 의미에 사실 별게 없는거 였군요.... 다들 이번주에도 한방 먹었다는 ㅋㅋ

    항상 놀라운 식견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이번주 본 것중에 궁금한 것이 있는데, 서라벌과 신라시조에 대해 말하면서 흉노 김일제 설을 쓰는거
    같더군요~ 이에 대해 어케 보시는지?? 그리고 여기서 더 올라가면 전체 김씨의 뿌리를 헌원의 아들인
    소호금천씨에서 찾던데 정말 그럴까요?? 우리는 다 대륙에서 넘어온건지??
    아예 여서 나고 자란 토착은 없었던 걸까염??

    또 다른걸 하나 여쭙자면 예전에 태사기 때메 화제가 되었던 환단고기나 우리 상고사의 문제, 쥬신제국 (수메르 지방부터 중앙아시아였나??) 같은거에 대해선 어케 생각하시는지요??


    그밖에도 일본서기가 환타지 소설이라느둥 여쭤볼게 많지만 오늘은 이만.... 시간되면 좀 알려주세염~~

    좋은 하루 되시구염~

    • BlogIcon 갓쉰동 2009.09.11 2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ㄳ 하게 생각합니당. 도움이 되셨다니.. 추천도 해주심 더욱 ㄳ하지요... 그래야 보다 많은 사람이 읽을 가능성이 있을테닌까요..

      그리고 저는 환단고기류는 신용을 하지 않아용.. 그러나 참으로 잼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마도 환단고기가 만들어진 때를 저는 1930년대로 보고 있거든요.. 잠수함도 나오고,,

      소호금천은 경주김씨와 김해김씨가 공동조상으로 생각하고 있지요. 잼있게도 김부식이나 일연을 이런 말을 신용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저도 김부식이나 일연의 견해에 동의가 되용..

      중국의 문물이 들어오고, 서적류가 들어오면서 기록에서 소호금천과 김일제를 봐서 그들과 연결을 시켰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이게 확립된 시기가 문무왕때 같아요..

      일본서기는 환타지 소설같은 느낌이 많이 있습니다만.. 년도를 빼고 나면 기록이 신뢰할 만한 부분이 많습니당..

  9. BlogIcon 불탄 2009.09.11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역사라는 것은 구전과 기록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니 구전으로 들리는 것이 모두 틀렸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고,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이 모두 옳다고 볼 수는 없는 거지요.
    그래서 역사학자들이 가장 욕을 많이 먹기도 하고, 가장 자기의지에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현대적인 시점에서 명쾌하게 해석해 주신 님의 글을 잘 읽어보았습니다.
    흥미진진한 읽을거리로서 다음 편을 기대해 봅니다.

  10. 하얀찬사 2009.09.11 2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德國은 네덜란드가 아니고 독일의 중국어 표기 입니다. 네덜란드는 荷蘭이라고 하지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11 2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전 덕국을 네델란드로 알고 있었다눈..ㅠ.
      그냥 냅둘께용.. 댓글로 수정을 하셨으니.. ^__^

  11. 하나린 2009.09.11 2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덜란드를 德國이라 하셨는데...
    오타가 났네요. 德國은 덕국이라고, 독일을 뜻하는 말이지요.

    늘 잘보고 있다가 오타를 보게 되어서 덧글 남기고 갑니다...
    건필하시고, 항상 행복하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12 0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타라기 보다는 제가 잘못알고 있었습니당..

      저는 네덜란드를 덕국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물론, 화란도 알고 있었구요..

      위의 댓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냥 냅둘래용. 단순 오타면 고치겠지만,, 지적도 있고 한데, 고치면 댓글들이 뻘춤해질것 같아서요..

  12. 이포 2009.09.13 0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국은 네덜란드가 아니라 독일 아닌가요??
    네덜란드는 화란으로 알고있는데...

  13.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4.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5.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with spigot 2012.11.01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6.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prices 2012.11.06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위해서 마지막 승부와 다름이 없는 두번째 비재인 신라의 의미를

  17. BlogIcon electric dog fence wire 2012.12.22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 기능을 갖춘 스크린 캡쳐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프로그램 없이도 웹페이지를 가장 빠르

  18. BlogIcon eveready heavy duty flashlight 2013.01.02 1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뉴욕이나 뉴질랜드처럼 말이다. 신라는 새로운(신) 나라(라)를 한자로 음차한 것 이하도 아니다.

예고한 대로 신라의 국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 32편에서 신라의 의미를 시청자에게 죽방(이문식)이 용화낭도들에게 아주 심플하게 해석해 주었다. "화랑으로써 문.무를 겸비한 세력을 키워서 백제와 신라를 그물로 고기를 잡듯이 다 잡아 먹으라"는 뜻이라고 해석해준것이다. 

죽방이 심플하게 시청자에게 알려주고, 트루먼처럼 시청자에게는 실험쥐들인, 덕만은 문노에게 자신이 왕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유신은 15대 풍월주가 되기위해서 마지막 승부와 다름이 없는 두번째 비재인 신라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서로 고분분투를 하고, 이들이 서로 협력하여 신라의 의미를 찾아 나선다. 


선덕여왕은 시청자에게 이미 죽방을 통해서 답을 알려 주었기 때문에 덕만과 유신이 목표에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트루먼쇼를 보듯이 감상하면 된다고 알려준것이다. 선덕여왕이 좀더 극적이라면 유신과 덕만이 비밀을 찾아가는 여정에 실패라는 당연히 있어야할 과정을 거치지 않고, 거칠부가 주어진 미션을 일사천리로 문자사방진과 소엽도를 연결하여 해결한다.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이들에게서는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글은 많은 사람이 이미 답을 알고 있으니 공개를 해서 정말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신라>에 숨은 뜻이 있었는지를 알아 보도록 하자. 결론을 말하면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신라에는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커다란 의미가 없었다.

300

중원고구려비

단지, 신라의 국호 사로의 사라의 음차에 지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증왕 이전에도 너무나도 자주 사용된 국호라는 것이다. 그러니 지증왕의 유지도 없었고, 진흥왕의 유지도 없었다.

삼국사기에도 지증왕은 그동안 자신들이 불러온, 또는 다른 타국인 백제나 고구려나 가야가 불러온 여러국명을 가지고 신하들과 의논해서 정식 국명을 정한 것이다. 요즘 이야기를 한다면 공식 국명표준화 작업을 진행한 정도이다.

우리는 드라마 선덕여왕 덕분에 신라에 빠져있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 본다면, 쉽게 알 수 있다.

고구려가 남긴 두개의 비가 있다. 하나는 광개토태왕비의 "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羅以爲臣民"이고 또하나는 중원고구려비 '신라토내당주'(新羅土內幢主와 신라매금 이다.

이들 두비는 공히 지증왕 이전에 고구려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비이다. 그런데 이들 비에는 <신라(新羅)>가 너무나도 또렷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 지증왕은 사라, 계림, 사로, 신라 중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지고 사용된 국호를 정식으로 사용한것에 불과할 뿐이다. 지증왕에게는 3개의 국호를 두고 선택할때 남들이 이미 인정하고 있는 국호를 사용한다면 그것으로 만족을 하고,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화가의 그림을 감상할때, 각자 알아서 의미를 부여하듯이 <신라>의 국명에서 신(新)은 날로 새로운 것을 신이라고, 라(羅)는 그물처럼 퍼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좋은 뜻이 아닌가 의미 부여를 한것이다. 뉴욕이나 뉴질랜드처럼 말이다. 신라는 새로운(신) 나라(라)를 한자로 음차한 것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고 고구려가 설마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도록 바라기라도 했겠는가? 어쩌면 신라라는 국명은 고구려가 만들어 주지 않았을까?하는 의심이 들기까지 하다. "새롭게 날로 번성하라"는 의미로 말이다.

503년 지증왕 4년 겨울 10월 시조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나라 이름을 정하지 않아 사라(斯羅)라고도 하고
혹은 사로(斯盧) 또는 신라(新羅)라고도 칭하였습니다.

신 등의 생각으로는,
신(新)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나(羅)는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이므로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집니다. - 삼국사기 지증왕 4년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소엽도에 거칠부가 새긴 글씨는 德業日新, 網羅四方 이다.

新者 德業日新
羅者 網羅四方之義

미국의 공식 명칭은 미합중국이다. 물론, 이는 한자식 표현이다. 한글로 풀어쓰면 유나이트 업 어메리카이다. 어메리카를 한자를 사용하는 중국과 일본은 영어식 발음을 할 수 없으니 이를 가장 근접한 <미>라는 글짜로 대치를 한다. 그리고 한자를 기록하는데 일본은 <米>를 사용하고 한국과 중국은 <美>를 사용한다. 아름다울<美>는 이미 아메리카의 첫음과 비슷하여  아미리카처럼 들리니 <美>을 사용한것 뿐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아름답다고만 할 수는 없다. 당연히 이름을 붙여줄때는 좋게 붙여주는게 그나라도 좋고, 불러주는 나라도 좋은 것이다. 프랑스를 불란서, 불국(佛國)이라 하고, 네델란드를 <德國>이라고 불러주는 것처럼 말이다. 잉글란드인 영국(英國)으로 불러주어 좋은 의미를 가지는 음과 훈을 가지고 발음도 유사한 것을 찾듯이 말이다.

설마 프랑스가 불국이기 때문에 프랑스 국민들이 불교를 믿어 성불한다고 믿지 않는 것처럼 네델란드가 덕이 있다고 할 수 없고, 영국이 꽃봉우리처럼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지 않는가?


국민 개개인이 일본을 쪽발이라하고, 중국을 뙤국이라고 한다거나, 미국을 양키라라고 은연중에 깔보는 비칭을 사용한다고 해도 공식적으로 비하적으로 상대국의 국명으로 불러준다면 좋아할 국가는 없을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좋은 의미를 부여해서 사용을 하는 것이다.

위에서 잠시 흘리듯 이야기를 했지만 고구려로 보았을때 신라는 그저 신생국에 가까운 나라였고, 자신들에 부속된 국가라고 여겼겠지만, 아무런 의미가 통하지 않는 사로나 사라보다는 한자식 의미가 통하는 미칭을 사용해서 신라(新羅)라고 불러준것 뿐이다.

어쩌면 신라는 고구려가 불려준 국명이 의미도 좋고, 뜻도 좋고, 이미 타국에서 알려진 국명이니 사용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지증왕의 유지나 비밀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냉수리비

일본의 국호는 자국이 정해서 일본(日本)이라고 한것이 아니라 한반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왜>를 바라볼때 해돋는 곳에 있는 곳에 있는 종족을 총칭해서 부르고, 자신들도 해뜨는 곳에 살고 있다는 주체의식이 형성되었다.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에 복속된 관계로 한반도와 단절과 자국내 일체감이 필요했었던 관계로 국가명으로 사용하기에 흡족하여 사용한 것처럼 말이다.


<신라>라는 국명을 지증왕 4년에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소한 신라는 지증왕 이전시기까지는 일상적으로 한자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단계까지 접어들지는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지증왕시기의 비문들을 보더라도 한자를 재대로 읽거나 쓰지 못하는 자가 남이 써준 글을 보고, 그저 그림을 그리듯 비석에 각석을 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여러분들이 한글이나 한자를 처음 배울때를 상기해보기 바란다. 만약, 초등학교때의 일기가 있다면, 찾아보던지, 아니면 초등학교나 한글 배우던때의 글씨를 상기해본다면 쉽게 답이 나올것이고, 또한, 영어를 배울 때 알파벳을 어떻게 썼는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414(?)년경의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와 한참 후대의 500년대 신라비를 비교해 본다면 신라의 문화적인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진흥왕시기 영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박혁거세의 유명이 적힌 비석을 조작하여, 나을신궁에 숨겨두고 떠오른 비석을 보았을때, 역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었다면 신라에 저런 비석을 만들만한 시기는 당대인 진평왕시기 전후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실성왕 때에는 고사하고 진흥왕시기 이전에도 드라마처럼 매끈한 비석을 만들 역량이 되지 못했다.

어찌되었던 신라 지증왕 시기는 농업생산성과, 국가의 통치체계를 정비하고 대외정복사업 등 이전시기와는 다르게 문화적 개명기를 맞았다.  이처럼 지증왕은 신라의 기틀을 만든 것이다. 

 법흥, 진흥기에 불교와 더불어 급격한 발전을 하는 것은 분명해보이며, 진흥왕 때 가야를 완전히 복속시키고, 백제와 고구려의 영토를 잠식시킨 때이니 삼한일통을 꿈 꾸었을 개연성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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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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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바람나그네 2009.09.11 0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

  2. BlogIcon 배리본즈 2009.09.11 0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드라마 볼때 도움되겠네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3. BlogIcon 초록누리 2009.09.11 0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저는 무엇때문에 의미때문에 고민했을까요..정말 퐝당..진즉 좀 올려주시지....
    작가님은 역시 탁월하세요. 드라마 소재로 기가막히게 쓰시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신라 국호 의미에 목매게 만드시다니...ㅎㅎ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11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확실히 낚인거지요.. ㅋㅋ 의미부여는 후대에 했을거라는 거지요.. 기업 CI에도 의미를 부여하잖아요.. 보면 별것도 아닌것 같은뎅.. ㅋㅋ

  4. 2009.09.11 0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근데 말이야 2009.09.11 1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말이야! 갓귄동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 BlogIcon 갓쉰동 2009.09.11 1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말을 해도 좋은데.. 예는 갖추는게 어떠신지요..

      증거는 글에 포함되어 있는뎅.. 주구장창 설명했잖니.. 그러니 글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능력을 키우는게 어떻겠니..

      담부터는 댓글에 "예"가 들어가 있었음 좋겠네요.. 싫으심 말고용..

  6. BlogIcon 영웅전쟁 2009.09.11 1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사실이라는 증거를 대라고 합니다.
    타이머신 타고 다녀 오셔야 할듯...

    오늘도 재미있게 잘 보고 메모도 합니다.
    역시 시공을 초월한 안목에 경탄하면서...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편안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11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증거는 숫하게 들었는데도 증거를 대라니.. ㅋㅋ



      획기적인 설같지 않습니까? ㅋㅋ 신라의 전대 국명을 보면 참 촌시럽기는 하지요.. 물론, 그 당시의 우리나라의 말을 알수 있는 흔적이지만요.. 오히려 저는 사로, 사라, 서라벌 이런 말이 더 좋지만요.. 어찌되었던 신라는 한자로 정재된 국명이 된다는 것이고, 왕이전에 거서한, 마립간 등이 더 정이 가요.. 매금, 미금도 마립을 한자식 표현이거든요..

  7. BlogIcon labyrint 2009.09.11 1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군요...

    저는 사로국이라는 이름을 가장 잘 기억하고 있고 나머지는 별로 기억이 나지 않다가 이제 알게 되었네요.

    근데.... 제가 어제 천추태후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말은 개연성 문제였습니다.

    강조의 행동은 개연성이 있지만... 선덕여왕은 개연성이 없는 장면이 나와서요... 일식이라던가...

    미실이 늙지 않는다던가...

    비담이 휙휙 날아다닌다던가... ㅋㅋ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11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해석상의 합리성..

      비담이 날아다는건 저는 아주 좋아보여용.. 역시 사극의 묘미는 날아다녀야함..ㅋㅋ

      신라가 불사국이기 때문이지 않을까용..ㅋㅋ

  8. kim 2009.09.11 1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을 처음부터 무조건 본방사수 하고 있고 한 10회쯔음 부터인가 자세한 설명이 있는곳을
    찾아 이리저리 헤멨는데, 이곳만한 곳이 없는듯 하더군여~~ 그떄부터 글쓰시는거 잘 읽고 있습니다~

    선덕여왕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떡밥(에피소드)과 편집의 승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암튼 재밌으니~
    신라의 의미에 사실 별게 없는거 였군요.... 다들 이번주에도 한방 먹었다는 ㅋㅋ

    항상 놀라운 식견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이번주 본 것중에 궁금한 것이 있는데, 서라벌과 신라시조에 대해 말하면서 흉노 김일제 설을 쓰는거
    같더군요~ 이에 대해 어케 보시는지?? 그리고 여기서 더 올라가면 전체 김씨의 뿌리를 헌원의 아들인
    소호금천씨에서 찾던데 정말 그럴까요?? 우리는 다 대륙에서 넘어온건지??
    아예 여서 나고 자란 토착은 없었던 걸까염??

    또 다른걸 하나 여쭙자면 예전에 태사기 때메 화제가 되었던 환단고기나 우리 상고사의 문제, 쥬신제국 (수메르 지방부터 중앙아시아였나??) 같은거에 대해선 어케 생각하시는지요??


    그밖에도 일본서기가 환타지 소설이라느둥 여쭤볼게 많지만 오늘은 이만.... 시간되면 좀 알려주세염~~

    좋은 하루 되시구염~

    • BlogIcon 갓쉰동 2009.09.11 2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ㄳ 하게 생각합니당. 도움이 되셨다니.. 추천도 해주심 더욱 ㄳ하지요... 그래야 보다 많은 사람이 읽을 가능성이 있을테닌까요..

      그리고 저는 환단고기류는 신용을 하지 않아용.. 그러나 참으로 잼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마도 환단고기가 만들어진 때를 저는 1930년대로 보고 있거든요.. 잠수함도 나오고,,

      소호금천은 경주김씨와 김해김씨가 공동조상으로 생각하고 있지요. 잼있게도 김부식이나 일연을 이런 말을 신용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저도 김부식이나 일연의 견해에 동의가 되용..

      중국의 문물이 들어오고, 서적류가 들어오면서 기록에서 소호금천과 김일제를 봐서 그들과 연결을 시켰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이게 확립된 시기가 문무왕때 같아요..

      일본서기는 환타지 소설같은 느낌이 많이 있습니다만.. 년도를 빼고 나면 기록이 신뢰할 만한 부분이 많습니당..

  9. BlogIcon 불탄 2009.09.11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역사라는 것은 구전과 기록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니 구전으로 들리는 것이 모두 틀렸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고,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이 모두 옳다고 볼 수는 없는 거지요.
    그래서 역사학자들이 가장 욕을 많이 먹기도 하고, 가장 자기의지에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현대적인 시점에서 명쾌하게 해석해 주신 님의 글을 잘 읽어보았습니다.
    흥미진진한 읽을거리로서 다음 편을 기대해 봅니다.

  10. 하얀찬사 2009.09.11 2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德國은 네덜란드가 아니고 독일의 중국어 표기 입니다. 네덜란드는 荷蘭이라고 하지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11 2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전 덕국을 네델란드로 알고 있었다눈..ㅠ.
      그냥 냅둘께용.. 댓글로 수정을 하셨으니.. ^__^

  11. 하나린 2009.09.11 2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덜란드를 德國이라 하셨는데...
    오타가 났네요. 德國은 덕국이라고, 독일을 뜻하는 말이지요.

    늘 잘보고 있다가 오타를 보게 되어서 덧글 남기고 갑니다...
    건필하시고, 항상 행복하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12 0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타라기 보다는 제가 잘못알고 있었습니당..

      저는 네덜란드를 덕국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물론, 화란도 알고 있었구요..

      위의 댓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냥 냅둘래용. 단순 오타면 고치겠지만,, 지적도 있고 한데, 고치면 댓글들이 뻘춤해질것 같아서요..

  12. 이포 2009.09.13 0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국은 네덜란드가 아니라 독일 아닌가요??
    네덜란드는 화란으로 알고있는데...

  13.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4.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5.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with spigot 2012.11.01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6.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prices 2012.11.06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위해서 마지막 승부와 다름이 없는 두번째 비재인 신라의 의미를

  17. BlogIcon electric dog fence wire 2012.12.22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 기능을 갖춘 스크린 캡쳐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프로그램 없이도 웹페이지를 가장 빠르

  18. BlogIcon eveready heavy duty flashlight 2013.01.02 1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뉴욕이나 뉴질랜드처럼 말이다. 신라는 새로운(신) 나라(라)를 한자로 음차한 것 이하도 아니다.


대량원군(현종)

KBS 천추태후에서 목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대량원군은 왕욱의 아들이다. 왕욱은 태조 왕건의 아들이다.

그런데 드라마 천추태후에서 경주원군으로 나오는 왕욱의 어머니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조카가 된다.

“지금 왕께서 나라를 나에게 주었으니 이는 큰 것을 주신 것입니다. 바라건대 [왕의] 종실과 혼인을 맺어 장인과 사위의 우호를 영원히 누렸으면 합니다.” [경순왕이] 대답하였다.

나의 큰아버지 잡간(迊干) 억렴(億廉)은 지대야군사(知大耶郡事)인데, 그 딸자식은 덕과 용모 모두 뛰어났으니
이 사람이 아니면 집안 살림을 갖출 수가 없을 것입니다.”
태조가 마침내 그를 아내로 삼아 아들을 낳으니 이가 현종(顯宗)의 아버지로, [후에] 안종(安宗)으로 추봉되었다. 경종(景宗) 헌화대왕(獻和大王) 때 이르러 정승공의 딸을 맞아들여 왕비로 삼고 정승공을 상보령(尙父令)으로 봉하였다.
공은 978년 송(宋)나라 흥국(興國) 4년 무인에 이르러 죽었는데, 시호를 경순(敬順)<또는 효애(孝哀)라고도 하였다.>이라 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경순왕 935년


또한, 경순왕의 딸은 고려 5대왕인 경종의 제1 왕비인 헌숙왕후가 된다. 드라마 상에서는 나오지 않지만,975년 5대 경종(955년생)이 21살에 아버지 4대 목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이때까지 경순왕은 살아 있었다.

 

그러니 만약 경종이 헌숙왕후 사이에서 아들이 있었다면, 935년 신라가 멸망한 후 40년만에 신라왕의 피가 썩인 왕이 태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헌숙왕후는 아들을 생산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경종은 헌애왕후의 오라버니인 6대 성종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채시라가 열연하고 있는 천추태후인 헌애왕후(964년생)는 경종의 3번째 왕후이고, 4번째 왕후는 천추태후의 동생인 헌정왕후는 경종이 죽은 후 경주원군인 왕욱과 사통하여 대량원군(현종)을 낳는다.

고려 8대 현종 계보도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왕욱의 어머니는 경순왕의 백부인 억렴의 딸인 신성왕후이다. 왕욱(왕건/신성)의 아들인 대량원군(왕욱/헌정)은 드라마 천추태후와는 다르게 강조에 의해서 목종이 폐위되고, 1008년 18세에 고려 8대 왕위에 오른 현종이 된다. 이후 고려의 왕들은 현종의 피를 이어 받았으니 실질적으로 신라의 왕통이 고려의 핏속에 녹아 든것이다.

김치양

부계로는 보이지 않던 고려의 왕통이 모계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속에 신라가 숨쉬고 있는 것이다. 신라는 935년에 멸망이 되었지만, 실제는 고려속에서 신라가 살아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백제의 왕가는 고려에 녹아나지 못했다. 후백제의 왕인 견훤의 출자는 신라의 진흥왕의 아들인 구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후백제를 자처한 왕이 신라 왕손의 후손이라니..

만약, 견훤이 진흥왕의 아들인 구륜의 후손이라면, 당연히 왕인 진흥왕부터 세계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견훤은 구륜을 자신의 선조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구륜은 동명이인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사극 천추태후에서는 김치양을 마의태자의 후손으로 후신라를 찾으려는 인물로 설정하였다. 또한, 김치양이 반란을 일으키고, 강조가 반란을 진압하고 김치양과 천추태후의 아들인 황주원군이 여진으로 들어가 완안부의 시조가 되며, 100년후 김치양의 후손인 아골타가 1115년 금을 개국하는 것으로 설정하려는 듯 하다.

반면에 고려사의 기록으로는 황주원군으로 설정된 인물의 이름은 알려지 있지 않고, 강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예종 10년(1115) 3월조에 보면 이런 기사가 나온다. '이달에 생여진 완안부의 아골타가 황제를 일컫고 국호를 금이라 했다. 혹은 말하기를 ‘옛적 우리 평주(平州) 승(僧) 금준(今俊)이 여진에 도망해 들어가 아지고촌(阿之古村)에 거주했으니 이가 금의 시조다’라고 하며 혹은 말하기를 ‘평주 승 김행(金幸)의 아들 극기(克己)가 처음에 여진의 아지고촌에 들어가 여진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으니 고을(古乙) 태사(太師)라 하고 고을이 활라(活羅) 태사(太師)를 낳고 활라가 아들이 많아 장자를 핵리발(劾里鉢)이라 하고 계자(季子)를 영가(盈歌)라 했는데, 영가가 웅걸(雄傑)이어서 중심(衆心)을 얻었다. 영가가 죽자핵리발의 장자 오아숙(烏雅束)이 위를 이었고 오아속이 졸하매 아우 아골타가 섰다고 한다 -고려세가 예종 10년 1115년

 

금태조 아골타 계보도


1107년(예종 2년)에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이끌고 여진 정벌군의 원수(元帥)가 되어 부원수 오연총(吳延寵)과 17만 대군을 거느리고 여진족을 정벌하여 9성을 쌓고, 재침하는 여진을 평정하여 1108년(예종 3년) 개선하였다. 그때 여진 5천 명을 죽였고, 130명을 생포하였다. -고려세가 예종 3년

여진 사신이 고려에 와서 ‘옛날 우리 태사 영가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조종이 대방(고려)에서 나왔으니 자손에 이르러서도 의리상 귀부함이 마땅하다’고 했고 지금 태사 오아속도 역시 대방을 부모의 나라로 삼나이다. -고려세가 예종 4년 1109년

동여진과 고려와는 수시로 전쟁을 하였지만 흥미롭게도 아골타가 여진을 통합하고, 금을 세운후 고려는 금과는 별다른 전쟁이 없었다. 

 KBS 역사스페셜에서 금의 태조인 완안부 아골타의 선조를 신라의 마의태자의 아들로 연결하려는 듯 하다. 역사스페셜을 시청하는데 도움이 되었음 하는 바람에서 이기사를 송고한다.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해주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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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6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BlogIcon 초록누리 2009.09.06 0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어요. 그런데 제가 천추태후를 한번도 못봐서 ㅠ_ㅠ....
    그래도 공부는 열심히 하고 갑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잘 안봅니당.. 천추태후는.. 왠지 정이 안가용.. ㅋㅋ

      다만 오늘(?) 역사스페셜에서 아골타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기사를 송고한 것임..

  3. 드라큘라 백작 2009.09.06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골타 경순왕 자손론에 대해서 저는 부정적으로 봅니다. 물론 신라 왕족이 여진족속 땅으로 들어가서 출세 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하필 왕족일까 하는데서도 의구심이있으며 흔히 있었던 족보 도금 혐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골타가 자신는 이래뵈도 신라 임금의 후손이다. 나는 출생부터가 다르다라고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혈통을 자랑하기 위해서 조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신라 후손인걸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중원을 제패한뒤에 뭔가 신라와 관련한 조치가 있었어야 했으나 그런게 전혀 없거든요 단지 고려에 우리와도 조공책봉관계를 맺자 거부하면 알아서 해라 식의 반응 말고는 없었습니다. 송나라 사람이야 그냥 받아 적은거고 족보는 후대에 추가 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고....

    • 1235 2009.09.06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제한 역사스페셜 한번 봐주세요 ㅎㅎㅎ 우리나라에서도 만주로 간 신라 왕손이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름은 김함보라고 하더군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1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충분히 그럴수 있습니당.. 우리같이 잘 지내봅시다란 뜻이 되니요.. 문젠 금사에도 들어가 있다는것..

      재밌게도 신라도 자신은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고 비명에 기록하고 있다는것.. 이것도 당시대에 완성됩니다.. 문무왕의 비에 그렇게.. 또한, 재당 신라인에 무덤에도.

      저도 님처럼 생각합니다..

    • 백작님이 2009.09.06 1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 모르시네요. 아골타가 금국을 세웠을때 신라는 이미 망하고 고려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신라가 망한뒤 반고려세력이 여진으로 넘어와 (1235님이 말한 김함보입니다) 여진 세력끼리 다툴때 중재를 하여 두각을 보이죠. 아골타는 신라 후손임을 자랑으로 여겨 금사에까지 기록이 된거지요. 오죽하면 신라를 망하게한 고려를 형제의 국, 고려가 부모의 땅에 있다하여 형제라고 생각했습니다.

    • 아무렇게나 2009.09.08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중국 金나라 시조는 안동 권씨일 것
      금태조 가계도 추적 ‘금조사연구’ 펴낸 금감원 윤명수 수석조사역

      《여진족의 국가로 알려진 금(金•1115∼1234)의 시조가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왔다. 금융감독원 윤명수(51) 수석조사역은 최근 중국의 정통역사서 25사 중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던 ‘금사(金史)’의 주요 내용을 번역한 ‘금사’와 금태조 완안민(아골타)의 가계계승 문제를 추적한 ‘금조사연구’를 함께 펴내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금사에는 금태조가 고려에서 건너온 함보(函普)를 비롯한 3형제의 후손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금을 계승한 청(후금)의 건륭제 때 집필된 ‘흠정만주원류고’에는 금국(金國)의 명칭이 신라왕성 김(金)씨에서 비롯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금과 신라의 연관성을 보여 주는 근거는 또 있다. 청 황실의 만주어 성 ‘아이신줴뤄’ 중 씨족을 가리키는 아이신은 금(金)을 뜻한다. 이는 아이신줴뤄를 한자로 가차한 애신각라(愛新覺羅)에 ‘신라(新羅)를 사랑하고, 기억하자’는 뜻이 담겼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조선시대에 나온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도 금의 시조가 김행(金幸)의 아들 또는 금준(今俊)이라는 설이 기록돼 있다. 김씨는 본디 금씨로 발음됐는데 이(李)씨를 왕조로 한 조선조가 들어서면서 ‘금이 나무를 이긴다(金克木)’는 오행설의 영향으로 금을 김으로 발음했다는 주장에 입각하면 금준은 곧 김준일 수 있다. 이를 근거로 함보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로 고려에 귀순을 거부했던 마의태자이거나 그 후손일 가능성이 오랫동안 제기됐다.

      윤 씨는 이를 추적하던 중 조선 인조 때 문신 김세렴이 남긴 ‘동명해사록’에서 “금나라의 시조는 경순왕의 외손이자 권행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라는 기록을 찾아냈다.

      권행은 본디 경주 김씨로 신라 고창(古昌•경북 안동시)의 수령이었다.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핍박해 자살하게 한 데 분개해 고려를 도와 고창에서 후백제군을 격퇴한 공로로 고려 태조 왕건에게서 권씨를 하사받아 안동 권씨의 시조가 됐다.

      윤 씨는 이를 바탕으로 ‘함보의 신라/고려인 부친=김행=권행’으로 수수께끼가 풀렸다고 주장했다. 권행은 고려통일 이후 아부공신(亞父功臣)에 책록되고, 정1품 태사(太師)의 벼슬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고려가 금나라 수립 전 여진족 추장들에게 관례적으로 내린 관직이 태사였다.

      결론적으로 함보는 경순왕의 사위인 권행의 세 아들 중 한 명이며 마의태자와 신라 부활운동을 펼치다 마의태자가 숨진 뒤 만주로 진입해 여진족의 일부인 완안부족의 추장이 됐다는 것이 윤 씨의 주장이다. 문신 김세렴의 부인이 권행의 맏아들 권인행의 아내와 같은 양천 허씨인 점, 마의태자가 웅거했다는 설악산 권금성이 권장군과 김장군이 쌓은 성이라는 전설, 1011년 여진의 함선 100여 척이 안동 인근 경주 지역에 출몰했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

      그러나 안동 권씨 족보에는 권행의 후손이 권인행 한 명만 등장하는 등 아직도 풀려야 할 의문점은 남아 있다.

      일찍부터 만주사에 관심이 깊어 만주어를 독학했다는 윤 씨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자극을 받아 2004년부터 주말을 도서관에서 보내며 금사의 번역에 매달리는 한편 휴가 때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현지 조사를 했다.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왕씨의 나라라면 금•청은 신라를 계승한 김씨의 나라로 봐야 합니다. 이 때문에 상하이임정의 역사교재였던 ‘신단민사(新檀民史)’나 일제강점기 사학자 신태윤의 ‘배달조선 정사’도 발해-요-금-청의 역사를 우리 역사에 포함시켰던 것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선 중국사에 포함될 수 없는 요-금-청사를 한국사의 방계로 포함시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4. BlogIcon 영웅전쟁 2009.09.06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새 분야 공부하라는 분부이신듯 하군요...
    이미 제 캐파를 넘엇는데 ㅎㅎㅎ
    한번 해보겠습니다.
    재 방송부터 보고 해야겠지요 ㅋ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휴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닙니당.. 그냥 천추태후의 저작자는 김치양의 죽은 아들은사실 죽지 않고 여진으로 들어갔다는 설정이 있었다. 머 그런거지요.. 그냥 보셈.. ㅋㅋ

  5. gap4 2009.09.06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저도 봐지만 재미고 흥미롭더군요 ,,후금황제 청나라 1대황제가 예로부터 조선과 금은 형제니,,화친외교를 하자고 했는데,,조선에 무능한 문인들이명나라 사대주의 때문에 반대했지요 그래서 후에 병자호란이란 굴욕적 주종관계가 성립됬지요말이 조금 빛나갔지만 참 안타깝더라구요 북방 고구려 발해 여진 우리하고땔래야 땔수 없는 관계인데 말이죠 ,,참 그때나 지금이나 문인들이 망쳐놨네요꼭 그런건 아니지만 천추태후에서도 문인들이 지살길만 걱정하쟎아요 얼마전 간도땅이 100년이 넘었죠,안타깝읍니다 예전에 북방에 우리 선조때부터 잘만 통치했어도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텐데 말이죠,,두서없이 글이 커졌죠 잘읽었읍니다,,,,,

  6. 갓쉰동님 광팬 2009.09.07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으로 고구려나 발해가 지속되지 못한 것이 이런점에서 좀 아쉽습니다. 금나라 선조가 신라인 후 손 여부를 떠나 이런 것들이 의문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만주가 발해 이후 사라져 버렸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아닐까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7 1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아쉬움의 표현..
      일본의 황족을 찾는이유도 이와 같을 겁니다..

      만약, 중국이 고려와 신라와. 조선의 조상이 자신의후손이란 드라마를 제작한다면 난리가 나겠지요? 그때도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할 네티즌이 몇명이나 될까요? 저는 그게 궁금해요.. 선덕여왕은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하는 사람들 중에서.. ㅋㅋ

  7. ^___^ 2009.09.07 15: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역사스페셜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포탈사이트에서 역사관련해서 찾아보려고 해도 연예가 일색이구.... 에구구... 역사관련 다큐멘터리도 많이 좀 나왔으면하는 바람입니다. 근현대사에서 해방 후 6.25가 끝나고 먹고 살기 바빠서 등한시되었고 북한과의 관계로 반공에만 힘을 쏟아서 고구려를 외면한 채 신라의 김유신만 강조하는 경향도 있었고 사극은 조선시대 처첩간의 애정물이 주를 이루고 중국의 동북아 공정에 힘입어(?) 고구려관련 드라마가 붐을 탔지만 서도 이제는 관심을 갖고 올바른 역사인식이 있었으면합니다. 연예인들 주변 잡기에만 온통 신경쓰고 있어서 씁쓸합니다. 우리 역사에 관해서는 무지할 만큼 모르는게 너무 많습니다.국내에서 반만년 역사를 자랑스레 여기며 목에 힘주고 있지만 세계 속의 역사교과서에서의 한국은 60년대에 머물러 있더군요. 대사관에서는 뭐하는지 싶기도 하구요. 문화 콘텐츠가 널려있는데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간도 문제도 며칠만에 사라져버린듯 하나의 이벤트성 이슈로 끝나버린 것 같기도 하고.... 저는 필력이 딸려서 다른 많은 분들이 좋은 글들 좀 많이 많이 써 주셔서 국민들의 의식이 성숙해지길 바랍니다. 저도 열심히 추천하겠습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9.07 1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전에는 역스광팬이고 닥본사 였는뎅.. 요즘은 잘 안되더군요..

      문화연예 카테고리인데 연예가 주가된것은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수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의 성향상..

      사극은 현시대를 반영하지요. 그래서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고요..

  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9.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0. BlogIcon food storage supplies 2012.11.01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1.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 battery replacement 2012.11.05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 천추태후에서 경주원군으로 나오는 왕욱의 어머니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조카가 된다.

  12. BlogIcon great websites for kids 2012.12.20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함 때문에 쉽게 이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전문 소프트웨어인 포토샵만큼은 아니더라도

  13. BlogIcon mountain house 10 cans sale 2012.12.31 2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니 구륜은 동명이인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대량원군(현종)

KBS 천추태후에서 목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대량원군은 왕욱의 아들이다. 왕욱은 태조 왕건의 아들이다.

그런데 드라마 천추태후에서 경주원군으로 나오는 왕욱의 어머니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조카가 된다.

“지금 왕께서 나라를 나에게 주었으니 이는 큰 것을 주신 것입니다. 바라건대 [왕의] 종실과 혼인을 맺어 장인과 사위의 우호를 영원히 누렸으면 합니다.” [경순왕이] 대답하였다.

나의 큰아버지 잡간(迊干) 억렴(億廉)은 지대야군사(知大耶郡事)인데, 그 딸자식은 덕과 용모 모두 뛰어났으니
이 사람이 아니면 집안 살림을 갖출 수가 없을 것입니다.”
태조가 마침내 그를 아내로 삼아 아들을 낳으니 이가 현종(顯宗)의 아버지로, [후에] 안종(安宗)으로 추봉되었다. 경종(景宗) 헌화대왕(獻和大王) 때 이르러 정승공의 딸을 맞아들여 왕비로 삼고 정승공을 상보령(尙父令)으로 봉하였다.
공은 978년 송(宋)나라 흥국(興國) 4년 무인에 이르러 죽었는데, 시호를 경순(敬順)<또는 효애(孝哀)라고도 하였다.>이라 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경순왕 935년


또한, 경순왕의 딸은 고려 5대왕인 경종의 제1 왕비인 헌숙왕후가 된다. 드라마 상에서는 나오지 않지만,975년 5대 경종(955년생)이 21살에 아버지 4대 목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이때까지 경순왕은 살아 있었다.

 

그러니 만약 경종이 헌숙왕후 사이에서 아들이 있었다면, 935년 신라가 멸망한 후 40년만에 신라왕의 피가 썩인 왕이 태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헌숙왕후는 아들을 생산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경종은 헌애왕후의 오라버니인 6대 성종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채시라가 열연하고 있는 천추태후인 헌애왕후(964년생)는 경종의 3번째 왕후이고, 4번째 왕후는 천추태후의 동생인 헌정왕후는 경종이 죽은 후 경주원군인 왕욱과 사통하여 대량원군(현종)을 낳는다.

고려 8대 현종 계보도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왕욱의 어머니는 경순왕의 백부인 억렴의 딸인 신성왕후이다. 왕욱(왕건/신성)의 아들인 대량원군(왕욱/헌정)은 드라마 천추태후와는 다르게 강조에 의해서 목종이 폐위되고, 1008년 18세에 고려 8대 왕위에 오른 현종이 된다. 이후 고려의 왕들은 현종의 피를 이어 받았으니 실질적으로 신라의 왕통이 고려의 핏속에 녹아 든것이다.

김치양

부계로는 보이지 않던 고려의 왕통이 모계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속에 신라가 숨쉬고 있는 것이다. 신라는 935년에 멸망이 되었지만, 실제는 고려속에서 신라가 살아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백제의 왕가는 고려에 녹아나지 못했다. 후백제의 왕인 견훤의 출자는 신라의 진흥왕의 아들인 구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후백제를 자처한 왕이 신라 왕손의 후손이라니..

만약, 견훤이 진흥왕의 아들인 구륜의 후손이라면, 당연히 왕인 진흥왕부터 세계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견훤은 구륜을 자신의 선조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구륜은 동명이인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사극 천추태후에서는 김치양을 마의태자의 후손으로 후신라를 찾으려는 인물로 설정하였다. 또한, 김치양이 반란을 일으키고, 강조가 반란을 진압하고 김치양과 천추태후의 아들인 황주원군이 여진으로 들어가 완안부의 시조가 되며, 100년후 김치양의 후손인 아골타가 1115년 금을 개국하는 것으로 설정하려는 듯 하다.

반면에 고려사의 기록으로는 황주원군으로 설정된 인물의 이름은 알려지 있지 않고, 강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예종 10년(1115) 3월조에 보면 이런 기사가 나온다. '이달에 생여진 완안부의 아골타가 황제를 일컫고 국호를 금이라 했다. 혹은 말하기를 ‘옛적 우리 평주(平州) 승(僧) 금준(今俊)이 여진에 도망해 들어가 아지고촌(阿之古村)에 거주했으니 이가 금의 시조다’라고 하며 혹은 말하기를 ‘평주 승 김행(金幸)의 아들 극기(克己)가 처음에 여진의 아지고촌에 들어가 여진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으니 고을(古乙) 태사(太師)라 하고 고을이 활라(活羅) 태사(太師)를 낳고 활라가 아들이 많아 장자를 핵리발(劾里鉢)이라 하고 계자(季子)를 영가(盈歌)라 했는데, 영가가 웅걸(雄傑)이어서 중심(衆心)을 얻었다. 영가가 죽자핵리발의 장자 오아숙(烏雅束)이 위를 이었고 오아속이 졸하매 아우 아골타가 섰다고 한다 -고려세가 예종 10년 1115년

 

금태조 아골타 계보도


1107년(예종 2년)에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이끌고 여진 정벌군의 원수(元帥)가 되어 부원수 오연총(吳延寵)과 17만 대군을 거느리고 여진족을 정벌하여 9성을 쌓고, 재침하는 여진을 평정하여 1108년(예종 3년) 개선하였다. 그때 여진 5천 명을 죽였고, 130명을 생포하였다. -고려세가 예종 3년

여진 사신이 고려에 와서 ‘옛날 우리 태사 영가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조종이 대방(고려)에서 나왔으니 자손에 이르러서도 의리상 귀부함이 마땅하다’고 했고 지금 태사 오아속도 역시 대방을 부모의 나라로 삼나이다. -고려세가 예종 4년 1109년

동여진과 고려와는 수시로 전쟁을 하였지만 흥미롭게도 아골타가 여진을 통합하고, 금을 세운후 고려는 금과는 별다른 전쟁이 없었다. 

 KBS 역사스페셜에서 금의 태조인 완안부 아골타의 선조를 신라의 마의태자의 아들로 연결하려는 듯 하다. 역사스페셜을 시청하는데 도움이 되었음 하는 바람에서 이기사를 송고한다.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해주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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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6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BlogIcon 초록누리 2009.09.06 0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어요. 그런데 제가 천추태후를 한번도 못봐서 ㅠ_ㅠ....
    그래도 공부는 열심히 하고 갑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잘 안봅니당.. 천추태후는.. 왠지 정이 안가용.. ㅋㅋ

      다만 오늘(?) 역사스페셜에서 아골타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기사를 송고한 것임..

  3. 드라큘라 백작 2009.09.06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골타 경순왕 자손론에 대해서 저는 부정적으로 봅니다. 물론 신라 왕족이 여진족속 땅으로 들어가서 출세 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하필 왕족일까 하는데서도 의구심이있으며 흔히 있었던 족보 도금 혐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골타가 자신는 이래뵈도 신라 임금의 후손이다. 나는 출생부터가 다르다라고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혈통을 자랑하기 위해서 조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신라 후손인걸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중원을 제패한뒤에 뭔가 신라와 관련한 조치가 있었어야 했으나 그런게 전혀 없거든요 단지 고려에 우리와도 조공책봉관계를 맺자 거부하면 알아서 해라 식의 반응 말고는 없었습니다. 송나라 사람이야 그냥 받아 적은거고 족보는 후대에 추가 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고....

    • 1235 2009.09.06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제한 역사스페셜 한번 봐주세요 ㅎㅎㅎ 우리나라에서도 만주로 간 신라 왕손이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름은 김함보라고 하더군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1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충분히 그럴수 있습니당.. 우리같이 잘 지내봅시다란 뜻이 되니요.. 문젠 금사에도 들어가 있다는것..

      재밌게도 신라도 자신은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고 비명에 기록하고 있다는것.. 이것도 당시대에 완성됩니다.. 문무왕의 비에 그렇게.. 또한, 재당 신라인에 무덤에도.

      저도 님처럼 생각합니다..

    • 백작님이 2009.09.06 1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 모르시네요. 아골타가 금국을 세웠을때 신라는 이미 망하고 고려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신라가 망한뒤 반고려세력이 여진으로 넘어와 (1235님이 말한 김함보입니다) 여진 세력끼리 다툴때 중재를 하여 두각을 보이죠. 아골타는 신라 후손임을 자랑으로 여겨 금사에까지 기록이 된거지요. 오죽하면 신라를 망하게한 고려를 형제의 국, 고려가 부모의 땅에 있다하여 형제라고 생각했습니다.

    • 아무렇게나 2009.09.08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중국 金나라 시조는 안동 권씨일 것
      금태조 가계도 추적 ‘금조사연구’ 펴낸 금감원 윤명수 수석조사역

      《여진족의 국가로 알려진 금(金•1115∼1234)의 시조가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왔다. 금융감독원 윤명수(51) 수석조사역은 최근 중국의 정통역사서 25사 중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던 ‘금사(金史)’의 주요 내용을 번역한 ‘금사’와 금태조 완안민(아골타)의 가계계승 문제를 추적한 ‘금조사연구’를 함께 펴내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금사에는 금태조가 고려에서 건너온 함보(函普)를 비롯한 3형제의 후손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금을 계승한 청(후금)의 건륭제 때 집필된 ‘흠정만주원류고’에는 금국(金國)의 명칭이 신라왕성 김(金)씨에서 비롯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금과 신라의 연관성을 보여 주는 근거는 또 있다. 청 황실의 만주어 성 ‘아이신줴뤄’ 중 씨족을 가리키는 아이신은 금(金)을 뜻한다. 이는 아이신줴뤄를 한자로 가차한 애신각라(愛新覺羅)에 ‘신라(新羅)를 사랑하고, 기억하자’는 뜻이 담겼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조선시대에 나온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도 금의 시조가 김행(金幸)의 아들 또는 금준(今俊)이라는 설이 기록돼 있다. 김씨는 본디 금씨로 발음됐는데 이(李)씨를 왕조로 한 조선조가 들어서면서 ‘금이 나무를 이긴다(金克木)’는 오행설의 영향으로 금을 김으로 발음했다는 주장에 입각하면 금준은 곧 김준일 수 있다. 이를 근거로 함보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로 고려에 귀순을 거부했던 마의태자이거나 그 후손일 가능성이 오랫동안 제기됐다.

      윤 씨는 이를 추적하던 중 조선 인조 때 문신 김세렴이 남긴 ‘동명해사록’에서 “금나라의 시조는 경순왕의 외손이자 권행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라는 기록을 찾아냈다.

      권행은 본디 경주 김씨로 신라 고창(古昌•경북 안동시)의 수령이었다.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핍박해 자살하게 한 데 분개해 고려를 도와 고창에서 후백제군을 격퇴한 공로로 고려 태조 왕건에게서 권씨를 하사받아 안동 권씨의 시조가 됐다.

      윤 씨는 이를 바탕으로 ‘함보의 신라/고려인 부친=김행=권행’으로 수수께끼가 풀렸다고 주장했다. 권행은 고려통일 이후 아부공신(亞父功臣)에 책록되고, 정1품 태사(太師)의 벼슬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고려가 금나라 수립 전 여진족 추장들에게 관례적으로 내린 관직이 태사였다.

      결론적으로 함보는 경순왕의 사위인 권행의 세 아들 중 한 명이며 마의태자와 신라 부활운동을 펼치다 마의태자가 숨진 뒤 만주로 진입해 여진족의 일부인 완안부족의 추장이 됐다는 것이 윤 씨의 주장이다. 문신 김세렴의 부인이 권행의 맏아들 권인행의 아내와 같은 양천 허씨인 점, 마의태자가 웅거했다는 설악산 권금성이 권장군과 김장군이 쌓은 성이라는 전설, 1011년 여진의 함선 100여 척이 안동 인근 경주 지역에 출몰했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

      그러나 안동 권씨 족보에는 권행의 후손이 권인행 한 명만 등장하는 등 아직도 풀려야 할 의문점은 남아 있다.

      일찍부터 만주사에 관심이 깊어 만주어를 독학했다는 윤 씨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자극을 받아 2004년부터 주말을 도서관에서 보내며 금사의 번역에 매달리는 한편 휴가 때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현지 조사를 했다.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왕씨의 나라라면 금•청은 신라를 계승한 김씨의 나라로 봐야 합니다. 이 때문에 상하이임정의 역사교재였던 ‘신단민사(新檀民史)’나 일제강점기 사학자 신태윤의 ‘배달조선 정사’도 발해-요-금-청의 역사를 우리 역사에 포함시켰던 것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선 중국사에 포함될 수 없는 요-금-청사를 한국사의 방계로 포함시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4. BlogIcon 영웅전쟁 2009.09.06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새 분야 공부하라는 분부이신듯 하군요...
    이미 제 캐파를 넘엇는데 ㅎㅎㅎ
    한번 해보겠습니다.
    재 방송부터 보고 해야겠지요 ㅋ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휴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6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닙니당.. 그냥 천추태후의 저작자는 김치양의 죽은 아들은사실 죽지 않고 여진으로 들어갔다는 설정이 있었다. 머 그런거지요.. 그냥 보셈.. ㅋㅋ

  5. gap4 2009.09.06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저도 봐지만 재미고 흥미롭더군요 ,,후금황제 청나라 1대황제가 예로부터 조선과 금은 형제니,,화친외교를 하자고 했는데,,조선에 무능한 문인들이명나라 사대주의 때문에 반대했지요 그래서 후에 병자호란이란 굴욕적 주종관계가 성립됬지요말이 조금 빛나갔지만 참 안타깝더라구요 북방 고구려 발해 여진 우리하고땔래야 땔수 없는 관계인데 말이죠 ,,참 그때나 지금이나 문인들이 망쳐놨네요꼭 그런건 아니지만 천추태후에서도 문인들이 지살길만 걱정하쟎아요 얼마전 간도땅이 100년이 넘었죠,안타깝읍니다 예전에 북방에 우리 선조때부터 잘만 통치했어도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텐데 말이죠,,두서없이 글이 커졌죠 잘읽었읍니다,,,,,

  6. 갓쉰동님 광팬 2009.09.07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으로 고구려나 발해가 지속되지 못한 것이 이런점에서 좀 아쉽습니다. 금나라 선조가 신라인 후 손 여부를 떠나 이런 것들이 의문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만주가 발해 이후 사라져 버렸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아닐까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7 1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아쉬움의 표현..
      일본의 황족을 찾는이유도 이와 같을 겁니다..

      만약, 중국이 고려와 신라와. 조선의 조상이 자신의후손이란 드라마를 제작한다면 난리가 나겠지요? 그때도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할 네티즌이 몇명이나 될까요? 저는 그게 궁금해요.. 선덕여왕은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하는 사람들 중에서.. ㅋㅋ

  7. ^___^ 2009.09.07 15: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역사스페셜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포탈사이트에서 역사관련해서 찾아보려고 해도 연예가 일색이구.... 에구구... 역사관련 다큐멘터리도 많이 좀 나왔으면하는 바람입니다. 근현대사에서 해방 후 6.25가 끝나고 먹고 살기 바빠서 등한시되었고 북한과의 관계로 반공에만 힘을 쏟아서 고구려를 외면한 채 신라의 김유신만 강조하는 경향도 있었고 사극은 조선시대 처첩간의 애정물이 주를 이루고 중국의 동북아 공정에 힘입어(?) 고구려관련 드라마가 붐을 탔지만 서도 이제는 관심을 갖고 올바른 역사인식이 있었으면합니다. 연예인들 주변 잡기에만 온통 신경쓰고 있어서 씁쓸합니다. 우리 역사에 관해서는 무지할 만큼 모르는게 너무 많습니다.국내에서 반만년 역사를 자랑스레 여기며 목에 힘주고 있지만 세계 속의 역사교과서에서의 한국은 60년대에 머물러 있더군요. 대사관에서는 뭐하는지 싶기도 하구요. 문화 콘텐츠가 널려있는데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간도 문제도 며칠만에 사라져버린듯 하나의 이벤트성 이슈로 끝나버린 것 같기도 하고.... 저는 필력이 딸려서 다른 많은 분들이 좋은 글들 좀 많이 많이 써 주셔서 국민들의 의식이 성숙해지길 바랍니다. 저도 열심히 추천하겠습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9.07 1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전에는 역스광팬이고 닥본사 였는뎅.. 요즘은 잘 안되더군요..

      문화연예 카테고리인데 연예가 주가된것은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수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의 성향상..

      사극은 현시대를 반영하지요. 그래서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고요..

  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9.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0. BlogIcon food storage supplies 2012.11.01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1.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 battery replacement 2012.11.05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 천추태후에서 경주원군으로 나오는 왕욱의 어머니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조카가 된다.

  12. BlogIcon great websites for kids 2012.12.20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함 때문에 쉽게 이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전문 소프트웨어인 포토샵만큼은 아니더라도

  13. BlogIcon mountain house 10 cans sale 2012.12.31 2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니 구륜은 동명이인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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