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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17 여성만 알 수 있는 선덕여왕의 비밀 (19)
  2. 2009.08.17 여성만 알 수 있는 선덕여왕의 비밀 (19)

천명(박예진)

그동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만을 토대로 천명과 덕만이 어머니가 다른 이유를 증명하였다.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천명은 덕만과 같은 어머니 일지라도 천명이 나이가 많고, 덕만은 나이가 어린 동생이라고 주장했었다. 이제 천명은 절대로 마야의 소생이 아님을 증명하고, 마지막 가능성을 버릴려고 한다.

일단, 천명의 나이를 정확히는 알수는 없지만, 천명의 아들인 춘추가 603년 생이라는 사실은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천명의 나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천명이 13~15세에 용수(용춘)에게 시집을 가서 603년 춘추를 낳았다면, 천명은 587~589년 생이다.

그럼 천명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살펴 볼 차례이다. 천명의 아버지는 진평왕이다. 진평왕은 13세인 579년 진지왕이 폐위되고, 26대 신라국왕에 등극했다. 그렇다면 진평왕은 567년 생이 된다. 만약, 마야가 천명의 어머니라는 가정하에서 마야의 나이를 유추해 보자,

마야가 진평왕과 같이 등극시나 등국후 바로 왕후가 되었다면, 진평과 나이가 비슷할 것이다. 신라에는 13세 이전에 결혼하는 것 보다 더 빠르게 결혼을 하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는다. 또한, 민며느리제도가 꼭 동옥저만의 풍습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안의 어린 신부를 맞아 키워서 정식 며느리로 삼는 경우가 조선시대까지도 비일비재 했었다. 진위를 알 수 없는 화랑세기에는 12세 풍월주 보리는 13세에 결혼을 했지만, 아내인 보룡(만호/숙태자)는 7살에 시집을 갔다.  또한, 일제시기 여성를 성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기위해서 어린신부들이 일찍이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성만이 알 수 있는 진평/마야와 천명/덕만의 생리학적 접근

그렇다면 마야는 진평왕과 같은 나이로 유추해 보자.


진평,용춘,천명,춘추의 생몰년 비교와 마야,천명,덕만 나이 추정


진평왕은 천명을 19~23살 정도에 낳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시 시대상황으로 보면 조금 늦은 나이때 천명을 낳은  것이다. 그렇다면 천명위로 진평왕에게 몇몇의 자식이 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이제 천명의 주변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 하고, 이전에 추적한대로 덕만의 출생시기는 632년 15~18세에서 정도로 추측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632년 등극과 동시에 대신인 을제에 국정전반을 관할하게 하여, 일종의 을제 섭정기간이 지나고, 634년 선덕왕 2년 음갈문왕과 결혼을 하고, 진평왕이 사용하던 <건복>이란 연호를 <인평>으로 바꾸면서, 진평왕의 유흔통치를 끝내고, 직접통치의 길을 나섰음을 신라에 천명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덕만은 615년(18세등극시)생에서 618년(15세등극시)생 사이가 된다. 

왜 덕만은 어린나이에 왕이 될 수 밖에 없는가? 이와 관련된 기사는 다음 목록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럼 천명과 덕만의 기록을 비교해 보자, 천명은 585~589년생이고, 덕만은 615~618년 생이다. 이들간에 나이차는 최소 27살에서 많게는 34살 차이가 난다.

615년에 덕만의 아버지 진평(567년생)과 어머니 마야는 567년생이니 이들이 덕만을 낳을때 나이는 49~52살이 된다. 아버지 진평으로써도 늦은 나이이기도 하지만, 남자라는 동물은 문지방 넘을 힘만 있다면 얼라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문지방 넘을 힘이 없고,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애를 낳을 수 있다.

덕만(이요원)

하지만 여성인 어머니 마야의 나이는 여성의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이례적이지 않는가? 더 나아가 덕만이 618년 생이라면 마야의 나이는 52세가 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분명히 덕만는 마야의 소생이라고 했다.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은 마야는 진평왕이 679년 왕위에 있을때 왕후가 아니라는 반증이지 않을까? 물론, 현재 기네스 북에 등재 된 최고령 자연임신과 출산은 59세이다. 현재 의료가 발달된 혜택을 충분히 보고 있는 영국의 사례이다. 한국의 사례는 52세가 최고령 출산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현대 여성의 폐경기는 45~50세 전후로 알려졌다. 과거 신라사회에서도 여성의 폐경기가 44~52세 정도였을까? 마야가 아주 늙은 나이때 덕만을 낳았을 수도 있다. 이는 아주 특별한 케이스가 된다. 차라리 천명이 덕만을 낳았다면 믿겠지만, 마야가 20전후에 천명을 낳고, 49~52세에 덕만을 낳았다고 한다면 한번은 의심해 봐야 한다. 또한, 마야가 18세~19세에 천명을 첫딸로 낳았다라고 생각한다면, 신라의 결혼 풍습을 알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2007년 기준 통계청 자료, 여성 년령대별 합계출산율표


위의 표는 2007년 전국의 가임여성15~49세의 합계출산율을 반영한 것이다. 45~49세 여성은 이처럼 현대의학과 영양이 충분히 공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1.25명의 0.2%만을 담당하고 있다. 그냥 표로 보았을때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이를 그림으로 본다면 어찌될까?

2007년 통계청자료, 여성 연령대별 합계출산율

삼국사기 기록대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여서 "천명은 진평왕의 딸이고, 덕만은 진평왕과 마야의 장녀이다"를  받아 들인다면, 합리적으로 천명은 진평왕 초년에 왕비인지 후비인지 이름을 알 수 없는 비에게서 낳았고, 덕만은 진평왕 초년의 왕비가 죽거나, 늙어서 아들을 낳기 위해서 들은 후비였거나, 정비로 받아들이고 덕만을 낳았다고 보는게 합리적이 해석이 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기록대로 마야의 나이가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진평과 마야의 장녀인 덕만을 615~8년경 낳았다고 보는게 합리적일까요? 아니면 기록되지 않는 천명의 어머니까지도 마야가 되어 588년경 천명을 낳고, 615~8년경인 49~52살 정도에 덕만을 낳아다고 보십니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는 다르게 화랑세기는 "천명과 덕만의 모후를 마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박창화가 1930년대에 창작한 역사소설이 될수 밖에 없는 핵심적인 키가 됩니다. 마야가 천명과 덕만의 모후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생리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하다, 그러니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박창화의 창작 역사소설이다. 라고 결론을 낼 수도 있습니다.

마야(윤유선)

하지만, 여기에는 약간의 트릭이 숨어 있습니다. 마야를 진평왕과 같은 나이로 추측했다는 겁니다. 이 함정에 벗어 난다면 쉽게 생리학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진평은 13세에 왕위에 등극하고 18세 친정체제를 구축하면서 꽃다운 13세 전후의 복승/송화(지소/영실)의 딸, 마야를 왕비로 맞이 했다면 당연히 마야가 더 어렸을 수도 있습니다. 진흥왕은 7살에 왕이 되었는데, 화랑세기에는 진흥비인 사도(기오/흥도) 또한, 7살이였다고 합니다.

그럼 위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49~52세는 가능한 44~47세가 됩니다. 49~52세는 불가능한 나이가 되지만, 물론, 3%의 극히 낮은 분포에 해당합니다만, 44~47세는 생리학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 않습니다. 진평왕이 22살, 마야는 꽃다운 낭낭14~18세 미만에 천명을 낳았고, 44~47세 이전인 615년에 늦둥이 덕만을 낳았다. 그러니 천명은 덕만과 같이 마야의 소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단, 삼국사기의 기록을 부정했을때 라는 단서가 붙습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을 신뢰한다면 덕만과 천명은 이복자매 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천명과 덕만의 모후는 마야' 라는 화랑세기를 불신할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위에서 언급을 했지만, 40대 중반에 덕만을 낳았다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해 9월 진평제는 보명과 미실을 좌우후로 삼았다. - 화랑세기 22세 풍월주 양도

화랑세기에는 마야가 진평왕 초년의 왕후가 아니였음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진평은 초년에 보명(지소/구진)과 미실(미진부/묘도)을 좌.우 왕후로 했다고 합니다. 마야가 진평의 첫번째 왕후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화랑세기를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겁니다. 화랑세기는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빠지는 마약과도 같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방점을 찍어 두고, 화랑세기의 동부동모 자매간을 가능성으로 열어 두고자 합니다. 어떤것을 선택하던 덕만은 18세미만에 왕위에 올랐다는 불변입니다. 마야는 진평의 첫번째 왕후가 아니였다는 겁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왜 홍시가 홍시맛이 나는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습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봐야 아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천명을 마야의 소생으로 볼것인가 말것인가를 결정하고 삼국사기.유사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느냐 하는 거지요. 만약, 삼국사기를 불신한다면, 최소한 천명, 덕만, 마야의 관계는 화랑세기가 정확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문화.연예 카테고리 다수를 차지 하고 있는 여성들이 그 답을 줄 차례입니다. 어떠십니까?

문제의 핵심은 마야가 진평의 초기 정비라는 가정에 따른 겁니다. 만약, 마야가 진평의 첫번째 왕후가 아니고, 손승만 왕후처럼, 왕자를 생산하기 위해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천명을 낳은 생모 뒤를 이어서 왕후가 되었다면, 천명과 마야, 덕만과 천명의 관계가 아주 자연스럽게 해결이 됩니다. 또한, 천명을 대신해서 덕만이 왕위를 이을수 밖에 없는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합니다.

화랑세기에서 처럼  덕만도 천명의 양보로 진평의 뒤를 이어 27세 신라왕에 올랐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물론, 조선시대 세종이 형들의 양보(?)로 이방원(태종)의 4째 아들로 왕위를 이을 수 있습니다. 왜? 세종이 이방원의 셋째아들이 아니고 넷째 아들이냐?고 반문하는 분들 
2009/07/30 - [역사이야기] - 조선 세종, 신라 덕만, 천명의 기록 비교해 보니  기사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어짜피 천명이 덕만보다 나이가 최소한 27~34살은 많은 진평의 자매간이다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야는 진평의 첫번째 왕후인것 같습니까? 천명과 덕만이 마야의 딸인것 같습니까? 아니면 천명과 덕만이 다른 어머니를 두었던 것 같습니까? 이 세가지 명제가 모두  참이 되기 위한 조건은 여성은 폐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리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마야는 진평의 첫번째 왕후는 아니다'. '천명은 덕만의 나이 많은 언니다'라는 명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으로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봅니다.

다만, '천명과 덕만은 마야의 딸이다'라는 화랑세기의 명제는 불가능하지만 여성의 생리학적으로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만 언급을 하겠습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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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White Rain 2009.08.17 06: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후. 복잡하군요. 나이가^^ 그런데 이걸 어떻게 다 정리하셨어요? 전 그냥 봐도 머리가 아픈데. 존경합니다.

  2. BlogIcon 루스(ruth) 2009.08.17 0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엄청난 분석이신데요. 눈이 띠용~ @_@

  3. BlogIcon 초록누리 2009.08.17 0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복잡하지만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하신 갓쉰동님 덕분에 또 새로 복습하고 갑니다. 블로그 제목은 바꾸셨는데 닉네임은 아직 안바꾸셨나봐요? ^^:;;

    • BlogIcon 갓쉰동 2009.08.17 0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___^
      닉을 한꺼번에 바꿔어 버림 기존 사람들이 모르잖아요.. ㅋㅋ

      이번주내에 다음 메인에 한 두번 올라가면.. 그럴리는 없겠지만,.. ㅋㅋ

  4.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8.17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대단하십니다.. ^^

  5. BlogIcon 아이러니♡ 2009.08.17 0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야 정말 엄청난 글을 올려주셨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6. 2009.08.17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BlogIcon 영웅전쟁 2009.08.17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기를 누설 하셨군요...
    이젠 왠만한 남성도 감 잡게 되었다는 ㅋ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막바지 무더위 잘 넘겨
    건강하게 지내시시는 이번주 되시길 바랍니다.

  8. BlogIcon labyrint 2009.08.17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9. BlogIcon 김명곤 2009.08.17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특한 분석에 한 수 배웁니다.
    갓쉰동보다 이반도 더 맘에 들고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8 0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댓글을 달아 주시고..

      이반이 좀 부드러운 이미지 같기는 하지요? 숨어 있는 이미지는 전혀 상반되는데요.. ㅋㅋ

  10.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천명(박예진)

그동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만을 토대로 천명과 덕만이 어머니가 다른 이유를 증명하였다.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천명은 덕만과 같은 어머니 일지라도 천명이 나이가 많고, 덕만은 나이가 어린 동생이라고 주장했었다. 이제 천명은 절대로 마야의 소생이 아님을 증명하고, 마지막 가능성을 버릴려고 한다.

일단, 천명의 나이를 정확히는 알수는 없지만, 천명의 아들인 춘추가 603년 생이라는 사실은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천명의 나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천명이 13~15세에 용수(용춘)에게 시집을 가서 603년 춘추를 낳았다면, 천명은 587~589년 생이다.

그럼 천명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살펴 볼 차례이다. 천명의 아버지는 진평왕이다. 진평왕은 13세인 579년 진지왕이 폐위되고, 26대 신라국왕에 등극했다. 그렇다면 진평왕은 567년 생이 된다. 만약, 마야가 천명의 어머니라는 가정하에서 마야의 나이를 유추해 보자,

마야가 진평왕과 같이 등극시나 등국후 바로 왕후가 되었다면, 진평과 나이가 비슷할 것이다. 신라에는 13세 이전에 결혼하는 것 보다 더 빠르게 결혼을 하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는다. 또한, 민며느리제도가 꼭 동옥저만의 풍습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안의 어린 신부를 맞아 키워서 정식 며느리로 삼는 경우가 조선시대까지도 비일비재 했었다. 진위를 알 수 없는 화랑세기에는 12세 풍월주 보리는 13세에 결혼을 했지만, 아내인 보룡(만호/숙태자)는 7살에 시집을 갔다.  또한, 일제시기 여성를 성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기위해서 어린신부들이 일찍이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성만이 알 수 있는 진평/마야와 천명/덕만의 생리학적 접근

그렇다면 마야는 진평왕과 같은 나이로 유추해 보자.


진평,용춘,천명,춘추의 생몰년 비교와 마야,천명,덕만 나이 추정


진평왕은 천명을 19~23살 정도에 낳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시 시대상황으로 보면 조금 늦은 나이때 천명을 낳은  것이다. 그렇다면 천명위로 진평왕에게 몇몇의 자식이 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이제 천명의 주변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 하고, 이전에 추적한대로 덕만의 출생시기는 632년 15~18세에서 정도로 추측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632년 등극과 동시에 대신인 을제에 국정전반을 관할하게 하여, 일종의 을제 섭정기간이 지나고, 634년 선덕왕 2년 음갈문왕과 결혼을 하고, 진평왕이 사용하던 <건복>이란 연호를 <인평>으로 바꾸면서, 진평왕의 유흔통치를 끝내고, 직접통치의 길을 나섰음을 신라에 천명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덕만은 615년(18세등극시)생에서 618년(15세등극시)생 사이가 된다. 

왜 덕만은 어린나이에 왕이 될 수 밖에 없는가? 이와 관련된 기사는 다음 목록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럼 천명과 덕만의 기록을 비교해 보자, 천명은 585~589년생이고, 덕만은 615~618년 생이다. 이들간에 나이차는 최소 27살에서 많게는 34살 차이가 난다.

615년에 덕만의 아버지 진평(567년생)과 어머니 마야는 567년생이니 이들이 덕만을 낳을때 나이는 49~52살이 된다. 아버지 진평으로써도 늦은 나이이기도 하지만, 남자라는 동물은 문지방 넘을 힘만 있다면 얼라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문지방 넘을 힘이 없고,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애를 낳을 수 있다.

덕만(이요원)

하지만 여성인 어머니 마야의 나이는 여성의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이례적이지 않는가? 더 나아가 덕만이 618년 생이라면 마야의 나이는 52세가 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분명히 덕만는 마야의 소생이라고 했다.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은 마야는 진평왕이 679년 왕위에 있을때 왕후가 아니라는 반증이지 않을까? 물론, 현재 기네스 북에 등재 된 최고령 자연임신과 출산은 59세이다. 현재 의료가 발달된 혜택을 충분히 보고 있는 영국의 사례이다. 한국의 사례는 52세가 최고령 출산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현대 여성의 폐경기는 45~50세 전후로 알려졌다. 과거 신라사회에서도 여성의 폐경기가 44~52세 정도였을까? 마야가 아주 늙은 나이때 덕만을 낳았을 수도 있다. 이는 아주 특별한 케이스가 된다. 차라리 천명이 덕만을 낳았다면 믿겠지만, 마야가 20전후에 천명을 낳고, 49~52세에 덕만을 낳았다고 한다면 한번은 의심해 봐야 한다. 또한, 마야가 18세~19세에 천명을 첫딸로 낳았다라고 생각한다면, 신라의 결혼 풍습을 알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2007년 기준 통계청 자료, 여성 년령대별 합계출산율표


위의 표는 2007년 전국의 가임여성15~49세의 합계출산율을 반영한 것이다. 45~49세 여성은 이처럼 현대의학과 영양이 충분히 공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1.25명의 0.2%만을 담당하고 있다. 그냥 표로 보았을때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이를 그림으로 본다면 어찌될까?

2007년 통계청자료, 여성 연령대별 합계출산율

삼국사기 기록대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여서 "천명은 진평왕의 딸이고, 덕만은 진평왕과 마야의 장녀이다"를  받아 들인다면, 합리적으로 천명은 진평왕 초년에 왕비인지 후비인지 이름을 알 수 없는 비에게서 낳았고, 덕만은 진평왕 초년의 왕비가 죽거나, 늙어서 아들을 낳기 위해서 들은 후비였거나, 정비로 받아들이고 덕만을 낳았다고 보는게 합리적이 해석이 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기록대로 마야의 나이가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진평과 마야의 장녀인 덕만을 615~8년경 낳았다고 보는게 합리적일까요? 아니면 기록되지 않는 천명의 어머니까지도 마야가 되어 588년경 천명을 낳고, 615~8년경인 49~52살 정도에 덕만을 낳아다고 보십니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는 다르게 화랑세기는 "천명과 덕만의 모후를 마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박창화가 1930년대에 창작한 역사소설이 될수 밖에 없는 핵심적인 키가 됩니다. 마야가 천명과 덕만의 모후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생리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하다, 그러니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박창화의 창작 역사소설이다. 라고 결론을 낼 수도 있습니다.

마야(윤유선)

하지만, 여기에는 약간의 트릭이 숨어 있습니다. 마야를 진평왕과 같은 나이로 추측했다는 겁니다. 이 함정에 벗어 난다면 쉽게 생리학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진평은 13세에 왕위에 등극하고 18세 친정체제를 구축하면서 꽃다운 13세 전후의 복승/송화(지소/영실)의 딸, 마야를 왕비로 맞이 했다면 당연히 마야가 더 어렸을 수도 있습니다. 진흥왕은 7살에 왕이 되었는데, 화랑세기에는 진흥비인 사도(기오/흥도) 또한, 7살이였다고 합니다.

그럼 위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49~52세는 가능한 44~47세가 됩니다. 49~52세는 불가능한 나이가 되지만, 물론, 3%의 극히 낮은 분포에 해당합니다만, 44~47세는 생리학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 않습니다. 진평왕이 22살, 마야는 꽃다운 낭낭14~18세 미만에 천명을 낳았고, 44~47세 이전인 615년에 늦둥이 덕만을 낳았다. 그러니 천명은 덕만과 같이 마야의 소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단, 삼국사기의 기록을 부정했을때 라는 단서가 붙습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을 신뢰한다면 덕만과 천명은 이복자매 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천명과 덕만의 모후는 마야' 라는 화랑세기를 불신할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위에서 언급을 했지만, 40대 중반에 덕만을 낳았다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해 9월 진평제는 보명과 미실을 좌우후로 삼았다. - 화랑세기 22세 풍월주 양도

화랑세기에는 마야가 진평왕 초년의 왕후가 아니였음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진평은 초년에 보명(지소/구진)과 미실(미진부/묘도)을 좌.우 왕후로 했다고 합니다. 마야가 진평의 첫번째 왕후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화랑세기를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겁니다. 화랑세기는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빠지는 마약과도 같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방점을 찍어 두고, 화랑세기의 동부동모 자매간을 가능성으로 열어 두고자 합니다. 어떤것을 선택하던 덕만은 18세미만에 왕위에 올랐다는 불변입니다. 마야는 진평의 첫번째 왕후가 아니였다는 겁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왜 홍시가 홍시맛이 나는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습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봐야 아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천명을 마야의 소생으로 볼것인가 말것인가를 결정하고 삼국사기.유사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느냐 하는 거지요. 만약, 삼국사기를 불신한다면, 최소한 천명, 덕만, 마야의 관계는 화랑세기가 정확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문화.연예 카테고리 다수를 차지 하고 있는 여성들이 그 답을 줄 차례입니다. 어떠십니까?

문제의 핵심은 마야가 진평의 초기 정비라는 가정에 따른 겁니다. 만약, 마야가 진평의 첫번째 왕후가 아니고, 손승만 왕후처럼, 왕자를 생산하기 위해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천명을 낳은 생모 뒤를 이어서 왕후가 되었다면, 천명과 마야, 덕만과 천명의 관계가 아주 자연스럽게 해결이 됩니다. 또한, 천명을 대신해서 덕만이 왕위를 이을수 밖에 없는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합니다.

화랑세기에서 처럼  덕만도 천명의 양보로 진평의 뒤를 이어 27세 신라왕에 올랐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물론, 조선시대 세종이 형들의 양보(?)로 이방원(태종)의 4째 아들로 왕위를 이을 수 있습니다. 왜? 세종이 이방원의 셋째아들이 아니고 넷째 아들이냐?고 반문하는 분들 
2009/07/30 - [역사이야기] - 조선 세종, 신라 덕만, 천명의 기록 비교해 보니  기사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어짜피 천명이 덕만보다 나이가 최소한 27~34살은 많은 진평의 자매간이다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야는 진평의 첫번째 왕후인것 같습니까? 천명과 덕만이 마야의 딸인것 같습니까? 아니면 천명과 덕만이 다른 어머니를 두었던 것 같습니까? 이 세가지 명제가 모두  참이 되기 위한 조건은 여성은 폐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리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마야는 진평의 첫번째 왕후는 아니다'. '천명은 덕만의 나이 많은 언니다'라는 명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으로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봅니다.

다만, '천명과 덕만은 마야의 딸이다'라는 화랑세기의 명제는 불가능하지만 여성의 생리학적으로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만 언급을 하겠습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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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White Rain 2009.08.17 06: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후. 복잡하군요. 나이가^^ 그런데 이걸 어떻게 다 정리하셨어요? 전 그냥 봐도 머리가 아픈데. 존경합니다.

  2. BlogIcon 루스(ruth) 2009.08.17 0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엄청난 분석이신데요. 눈이 띠용~ @_@

  3. BlogIcon 초록누리 2009.08.17 0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복잡하지만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하신 갓쉰동님 덕분에 또 새로 복습하고 갑니다. 블로그 제목은 바꾸셨는데 닉네임은 아직 안바꾸셨나봐요? ^^:;;

    • BlogIcon 갓쉰동 2009.08.17 0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___^
      닉을 한꺼번에 바꿔어 버림 기존 사람들이 모르잖아요.. ㅋㅋ

      이번주내에 다음 메인에 한 두번 올라가면.. 그럴리는 없겠지만,.. ㅋㅋ

  4.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8.17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대단하십니다.. ^^

  5. BlogIcon 아이러니♡ 2009.08.17 0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야 정말 엄청난 글을 올려주셨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6. 2009.08.17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BlogIcon 영웅전쟁 2009.08.17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기를 누설 하셨군요...
    이젠 왠만한 남성도 감 잡게 되었다는 ㅋ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막바지 무더위 잘 넘겨
    건강하게 지내시시는 이번주 되시길 바랍니다.

  8. BlogIcon labyrint 2009.08.17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9. BlogIcon 김명곤 2009.08.17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특한 분석에 한 수 배웁니다.
    갓쉰동보다 이반도 더 맘에 들고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8 0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댓글을 달아 주시고..

      이반이 좀 부드러운 이미지 같기는 하지요? 숨어 있는 이미지는 전혀 상반되는데요.. ㅋㅋ

  10.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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