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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드라마 선덕여왕이 일식과 월식에 집착하는 이유?

미실은 월천에게 "일식이 있겠습니까?" 묻는다. 하지만 월천은 "세주께 괜한 말을 했다"고 한다. 이는 일식을 맞출 수 없다는 말이고, 덕만이 일식을 맞춘다는 뜻이기도 하다. 덕만이 사막에서 얻은 책력이 월천에 넘어가고 정확히 일식을 맞추는 것을 예비 된것 같다.

mbc 드라마 사극 선덕여왕 26회에서 덕만(이요원)은 미실(고현정)이 신라를 차지한 방법 그대로, 신라를 차지할것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월천이 필요하다. 월천은 천문학자이자, 법사이자, 의사이다.


2009년 8월초에 70년만에 개기일식이 있었다.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일식은 있었을까? 물론, 일식도 없었고, 월식도 없었다. 당시의 일식이 있던 시기를 뽑아 본다면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19년(572)에 사신을 북제(北齊)에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초하루 경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39년(592) 가을 7월 임신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국사기 본기 - 원성왕 3년(787) 봄 2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몸소 신궁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였다. 여름 5월에 금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가을 7월에 누리가 곡식을 해쳤다. 8월 초하루 신사에 일식이 있었다.

진평왕 시기(579~632년)에 일식은 없었다.

왜? 드라마 선덕여왕은 일식과 월식에 집착을 할까? 이유는 <첨성대>를 선덕여왕이 만들었다는 기록때문이다. 하지만, 첨성대를 한번이라도 본사람이라면, 첨성대가 하늘을 관찰하는데 상당히 불편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첨성대는 하늘을 관찰하는게 아닌, 하늘을 비추는 거울이며, 하늘과 통하는 연결 통로로 첨성대가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우물에서 비친 하늘을 본자라면, 첨성대의 용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어찌 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대명력은 월식을 예측하기 쉽고, 위나라의 정광력은 대명력에 비해서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일식을 예측하는데는 정광력이 좋다고 이야기를 한다.

덕만, 유신을 꼬시다
 

비둘기낭 동굴밖 폭포

덕만은 유신에 말한다. "내가 가려고 하는일은 패도이니까?"

패도에서 사람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죽는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유신에 대한 마음만 가지려고하니 유신과 같이 함께하지 못한다고 한다. 함께하면 유신을 장기판의 말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유신과 같이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림으로 보는 덕만의 숨은 장소인 비둘기낭의 동굴과 비경을 보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2012년이 지나면 저 비경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관련 기사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08/12 - [역사이야기] - 천명의 마지막 촬영지, 비둘기낭 동굴 수몰위기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덕만과 소화

덕만과 알천, 비담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월천 일행은 월야의 수중에 넘어가고, 소화는 월천을 지키던 화랑들에 의해서 등에 활을 맞고 쓰러진다. 이후 덕만의 일행이 사라진 월천을 뒤로 하고 화덕사에 도착한다. 여전히 소화(서영희)와 덕만의 만남은 아직 먼것 같다. 소화는 또 다시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에 의해서 살아날 것이다. 칠숙과 더불어 터미네이터 반열에 오른 소화가 되시겠다.  

천명과 덕만의 언니 선화? 천화?

진평은 덕만을 공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마야는 낳자 마자 죽은 3 아들과 쌍둥이 중 천명을 잃어버렸는데, 이제 하나 남은 덕만을 잃어 버리려 하냐고 진평에게 반문하면서 더이상 자식을 잃을 수 없으니 덕만을 지키겠다고 천명한다.

그런데 정말 진평과 마야 사이에는 천명과 덕만 쌍둥이 밖에 없었을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마야가 진평의 즉위년에 황후가 되었다면, 천명은 마야의 소생이 될 가능성이 없다. 그러니 마야가 천명과 덕만의 모후가 될려면 마야는 진평이 성인이 된후 얻은 비가 되어야 한다. 이에 관한 기사는 다음을 참조하길 바란다. 

2009/08/17 - [역사이야기] - 여성만 알 수 있는 선덕여왕의 비밀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천명과 덕만 말고도 이들 위로 언니의 존재가 나온다. 삼국유사에 나온 선화라고 생각한다면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 되시겠다. 화랑세기에서는 진평과 마야 사이에는 3명의 자매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첫째가 천화이고, 둘째가 천명이고, 셋째가 이들보다 나이 차이가 많은 덕만이다.
처음에 용수공은 천화공주(天花公主)를 아내로 맞았는데, 천명공주를 아내로 맞게 되자 천화공주를 (용춘)공에게 주었다. 아들을 낳았는데 일찍 죽었다. 선덕공주(善德公主)를 모시게 되자 제(帝)가 천화공주를 백룡공(白龍公)에게 내려주었다. 선덕공주가 즉위하자 (용춘)공을 지아비로 삼았는데, 공은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물러날 것을 청하였다.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603년)


선덕여왕에서는 천명이 용수의 첫번째 부인으로 나오지만, 천명보다 먼저 천화가 용수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천화는 진평왕의 명령에 의해서 백룡에게 시집을 간다. 처음 왕위를 천명이 뛰어난 자질을 보여서 용수로 하여금 천명과 함께 신라을 이끌도록 하였다. 이에 용수의 부인이였던 천화는 용춘에 시집을 가고, 용춘이 선덕을 모시자 진평이 천화를 백룡에게 시집을 가게 했다고 한다. 천화는 용수-> 용춘 -> 백룡에게 시집을 가지만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고 타의(진평)의 명령에 따라 시집을 가고 있다.

백룡은 삼국사기 본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에 보면, 629년 낭비성 전투에 참전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건복 46년 기축(진평왕 51년: 629) 가을 8월에 왕이 이찬(伊湌) 임말리(任末里), 파진찬(波珍湌) 용춘(龍春).·백룡(白龍), 소판(蘇判) 대인(大因)·서현(舒玄) 등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공격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 629년

백룡의 지위가 용춘과 같은 파진찬(4등위)이다. 삼국사기에 용춘은 대장군으로 나온다. 그러니 백룡도 대장군의 직위에 있었지 않을까 한다.

신라판 서동요, 법흥과 보과

삼국유사에는 천화대신에 선화가 진평의 3번째 딸로 등장한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선화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단지, 화랑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 원화 <남모>를 법흥왕과 백제 보과의 사이에서 난 여식으로 등장한다.
준정이 남모를 시기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만들어 정부인 위화랑을 1세 풍월주로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2세 풍월주가 미실과 미생의 아버지인 미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보과는 법흥왕이 국공(왕자가 아님) 시절에 백제에 왔다가 눈이 맞어, 백제를 버리고 신라로 법흥(원종)을 만나러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고 남모와 4세 풍월주 모랑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버리는 처자들이 많이 보인다. 신라의 여인들은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는 왕후의 자리도 버리고, 사랑하는 지아비를 따른다.

이와 관련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2009/07/09 - [역사이야기] - 화랑세기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도 있다. 를 참조하기 바란다.


영국의 에드워드 왕은 영국의 법에 의해서 과부와 결혼은 용납하지 않자, 왕의 지위를 버리고, 미국의 과부인 심슨부인과 결혼을 하여 왕위를 버린 세기의 결혼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신라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 난다. 시간이 허락하고 성원이 있다면 '사랑을 위해서 자신의 지위를 버린 여인들'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임술년 천명과 덕만이 쌍생으로 태어났다? 

 세종과 하종의 계락으로 "임술년에 황후가 쌍생을 낳았다가 하나의 쌍생을 버렸으니, 마야황후를 폐하라는 벽서(방)가 붙는다.

설화랑은 하종과 세종이 벽서를 붙힌 범인임을 미실의 눈을 보고 알아 차렸다고 이야기를 하며 세주의 통찰력은 진흥대제의 통찰력을 뛰어 넘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궁예의 관심법이 되겠다. "옴마니 반메음"

덕만과 천명이 임술년생이라고 하지만, 당시의 임술년은 덕만과 천명이 태어날 수 없다. 임술년은 진흥왕시기와 진평왕시기에 딱 2번 나온다. 

 542년 진흥왕 3년, 602년 진평왕 24년이다. 

이와 관련된 기사는 다음과 같다. 관심이 있는 분은 아래 기사를 참조 하시길 바란다.

천명과 덕만이 542년 임술년은 절대로 될 수가 없다. 이유는 천명과 덕만의 아비인 진평왕이 태어나기도 전이고, 진평왕의 할아버지인 진흥(심맥종)의 나이가 8살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602년 임술년이 될 수 있는가? 천명과 용수 사이에 낳았다는 춘추가 603년에 태어 난다. 그러니 천명은 2살때 춘추를 낳은 것이다. 기네스에 오른 기록이 5살이다. 그것도 자식이 아닌 쌍둥이 동생으로 의심하고 있다, 어머니가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쌍둥이중 하나가 어머니 뱃속에서 크지를 못하고 다른 쌍둥이의 몸속에서 기생(?)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대가야 복야세력 월야의 비밀

월야(주상욱)

그런데 복야회의 수장 월야는 대가야의 마지막왕인 월광태자의 적손이라고 한다. 월천의 이름도 '<월> 돌림자를 쓰는 것으로 봐서, 월천은 대가야의 왕족 출신인 것 같다.

8세 풍월주 문노는 대가야의 피를 이어 받았다, 또한, 문노가 풍월주에 오르게 된 이유도 가야파의 지원이 있었기 가능했다.

 복야회의 근거지는 삽량주에 있다고 한다. 유신은 자신의 가문에 주어진 압량주을 가야유민에게 주고, 복야회의 복속과 동맹을 바란다. 이유는 가야파를 등에 지고 덕만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함이다.


비담은 복야회의 포스트 말단 연락책을 잡는다, 그런데 포스트는 죽음으로 비밀을 지키려한다. 하지만 포스트의 품에서 암어(암호)가 적힌 편지를 발견한다. 하지만 비담은 술술 암어 내용을 이야기한다. 복야회의 암어(암호)를 아는 이유는 비담의 스승인 문노(비조/문화)의 외가가 대가야 출신이기 때문이다.

월광태자는 이뇌/비조부(호조/선혜후)의 누이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월광과 문노는 사촌간이 된다. 월광의 아들로 나온 월야는 문노의 조카가 되는 것이다. 

양화는 호조/선혜후의 딸이다. 이뇌와 양화의 딸은 월화공주이다. 월화공주는 진흥에 시집를 가서 천주를 낳는다. 천주는 지도태후(용수.용춘의 어머니)와 결혼하여 586년 17세 풍월주 염장을 낳는다. 이 염장이 덕만을 도와 칠숙의 난을 평정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문노는 561년 이사부와 사다함이 대가야를 정벌할때  문노 자신의 외가를 치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하여 참전을 하지 않았다. 이에 신라인들은 신의가 있다고 하여, 문노를 더욱 존경하였다고 전한다.


어찌되었던 복야회의 대빵의 이름이 월야인 이유가 월화->월광->월야,월천 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월천대사는 월광태자와 형제지간이 되는 건가?

단석산 김유신 바위와 유신의 도박

단석산 김유신바위

유신은 덕만으로 부터 너(유신)를 버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나열한다. 한마디로 나를 따르라는 덕만의 협박이다.


유신은 덕만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가야파를 지키고, 가문의 안위를 만을 생각할 것인가를 고심하면서, 열심히 바위를 치고 있다. 유신이 어릴때부터 바위치기를 한다 이유는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보검을 얻고,  칼로 바위가르기를 보여주기 위한 과정이였다. 그래서 언제나 바위가 갈라질까? 관심있게 지켜봤다. 치고 또치고도 갈라지지 않던 바위가 드디어 갈라졌다. 드디어 김유신 열전과 에 바위가 갈라지는 기적이 선덕여왕 26회에 이뤄진것이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에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이때 김유신의 나이가 17세인 것으로 나온다. 그러니

(c) 정진만 단석산 김유신 바위

595년생인 유신이 17세가 되는 해는 611년이 된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은 시간개념과 공간개념을 상실하고 있기때문에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김유신 바위는 단석산 정상에 있다. 산행을 하거나, 선덕여왕 촬영지 관광코스로 정해보는 것은 어떠할까?  


유신은 서현에게 가문과 가야세력의 모든것을 걸고, 도박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때 복야회 일원은 유신과 서현을 죽이려 한다. 이에 유신은 복야회 일원을 굴복시키고, 복야회의 수장을 만나려고  산채로 들어간다.

서현이 602년 아막성 전쟁에서 참전하여, 설원랑의 계락으로 위기에 처하고 , 부상을 입었을 때, 구원을 받은것은 하늘의 보살핌이 아니라 복야회 장군인 설지의 입을 통해서 복야회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유신은 가야의 유민이 12만이라고 한다. 도대체 어디서 나온 근거인지는 알 수 없다. 선덕여왕의 작가는 생각없이 말을 뱃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선덕여왕의 작가진만 알 수 있지 않을까?

유신은 덕만일행을 포위하고 있는 복야회에게 "내가 선택한 나의 왕이시다. 그러니 복야회 또한, 덕만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한다. 이로서 덕만은 미실과 대적할 수 있는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진부한 운명론

성골남진의 나머지 계시가 밝혀지고 있다. 미실이 무너지고, 덕만이 일어선다는 것이다. 곧 덕만이 왕이 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운명이 정해졌다는 인간의 운명론이 되시겠다. 덕만이 노력을 하던 하지 않던, 왕이 되는 운명인데, 왜 저 멀리 사막까지가게 만들었을까? 그것도 운명인가? 미실에 대적하는 것도 운명이고? 한마디로 '타고난 팔자가 있다'가 있다는 말인데, 소설이 너무 진부하지 않는가?


춘추(유승호)의 아버지에 대한 비밀을 알고 싶으세요? 그럼 이 기사를 일독 해보시길 
2009/08/20 - [역사이야기] - 괴물이 되어버린 춘추(유승호)의 아버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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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우비 2009.08.19 1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굳굳굳 지루하게 읽을 수도 있는 글을

    재밌게 쓰신것 같아요~!

    그냥 봤으면 역사 잘못 알뻔했네요 ...-_-;;;

    너무너무 잘 읽다가 가요~

  3. 능소화 2009.08.19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신라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4. 날아라 2009.08.19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일고 가니다. 앞으로도 계속 부탁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속 할려면 추천이 많아야 하는데.. 너무 추천을 하지 않는군요..

      추천이 없다는 말은 이런글은 쓰지 말라는 뜻이거든요.. ㅋㅋ

  5. BlogIcon haRu™ 2009.08.19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마지막에 운명론에 대한 비판... 아주 좋았습니다.
    제가 주로 사극을 안보는 이유와 같습니다. 특히 사극은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고는 주인공을 개고생 시키죠.
    뭐 이런식으로 재미가 없어질려고 할때 비담의 투입은 정말 극적이였죠. 지금 것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본 적없는 매력적인(그러나 일본 만화등에서는 많이 본...ㅡ,.ㅡㅋ)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다. 운명이런것 없이도 잘 만들텐뎅.. 뭔 원죄론을 받아 들여서 그런가. 너무 난무함...

  6. elly 2009.08.19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문노와 월광은 사촌지간이 아닙니다.
    촌수로 따지자면 조금 더 올라갑니다. :-)
    월광태자의 자손은 아무리 자료를 찾아봐도 자료가 없어요.
    대신 해인사를 처음 창건한 이 중 하나가 월광의 후손이라고 적혀있어서,
    그의 후손이 있다고 짐작만 할 따름입니다.
    월야라는 인물은 소설(혹은 극)을 위해 만든 가공의 인물입니다.
    대신 월광의 누이동생인 월화의 후손인 천주는 화랑세기에 나오는걸 보니 있었던 인물인것 같구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월광의 어미니가 비조부의 누이이고,
      문노의 아버지는 비조부/문화 잖아요.. 그러니 이들은 사촌간이 되지요..

      그냥 드라마가 월광의 적자라고 해서리.. 그렇다면 문노의 조카다 하는거지요.. ㅋ ㅋ 이왕 엮을라면 확실히 엮어라 머 이런 비판이였음..

      저는 월야보다는 천주/월화의 아들인 염장을 월야역으로 했다면 더 잼있지 않았을 까해요.. 머 언젠가는 염장도 덕만의 수중에 떨어지겠지만요..

      서현보다 더 비중이 있는 인물이 천주인뎅.. 기록도 별로 없으니 맘껏 작가의 상상력도 발휘할수 있구요..

      선덕여왕 원작 작가가 너무 공부를 안한 티가 나요.. ㅋㅋ

      인물설정을 할때 자료조사가 기본중에 기본인뎅..

    • BlogIcon elly 2009.08.19 2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ㅋㅋ
      전 문노의 모계, 월광의 부계로 계산을 하다보니
      엄청난 촌수가 나오더라구요. 이제 생각해보니
      이종사촌-외사촌격이 되네요. :-)

      전 우연히 당첨되서 선덕여왕 소설까지 다 읽었는데
      원작가가 공부 안한티가 정말로 많이 나더군요.
      인물 설정 조차도 대충 빌려온게 너무 많이 보여요.
      (선덕여왕이 처녀로 죽었다는 사실까지 포함해서..;;)

    • BlogIcon 갓쉰동 2009.08.20 0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처녀로 죽이는 군요.. 처녀에 대한 환상이라도 있나봅니당..

  7. 흐흐흐 2009.08.25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에 사소한 실수가 보이네요. 별거 아니지만 문맥상 약간의 혼동이 올 수 있어서...
    월야의 사진 옆 글 '가야파를 등지고'가 '가야파를 등에지고'죠???
    맞나요?

    • BlogIcon 이반의꿈 2009.08.25 1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도 읽힐수 있군요.. 저는 등지고를 등에지고로 생각하고 썼는뎅.. 바꿀까 말까 고민했었음. 지적을 하시니 바꿔야 겠네요.. ㅋㅋ

  8. BlogIcon 조용형 2012.01.01 0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팹, 훌륭한 문서입니다

  9. BlogIcon 원숭이 2012.01.07 0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10. BlogIcon 엘리 2012.04.04 0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어디로 데려가십니까?

  11. BlogIcon 헤일리 2012.04.06 0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2. BlogIcon 모건 2012.05.08 2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심 없습니다.

  13. BlogIcon 알렉 산드라 2012.05.11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먹었습니다.

  14.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5.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6. BlogIcon Pussy Porn 2012.07.14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17.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8.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for camping 2012.11.01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9.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indoors 2012.11.06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

  20. BlogIcon petsafe wireless dog fence 2012.12.22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이 중요한 주제에 도움이 필요 남녀를 지원하는 당신의 관대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21. BlogIcon 24 stove top 2013.01.02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일식은 있었을까? 물론, 일식도 없었고, 월식도 없었다. 당시의 일식이 있던 시기를 뽑아 본다면 다음과 같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일식과 월식에 집착하는 이유?

미실은 월천에게 "일식이 있겠습니까?" 묻는다. 하지만 월천은 "세주께 괜한 말을 했다"고 한다. 이는 일식을 맞출 수 없다는 말이고, 덕만이 일식을 맞춘다는 뜻이기도 하다. 덕만이 사막에서 얻은 책력이 월천에 넘어가고 정확히 일식을 맞추는 것을 예비 된것 같다.

mbc 드라마 사극 선덕여왕 26회에서 덕만(이요원)은 미실(고현정)이 신라를 차지한 방법 그대로, 신라를 차지할것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월천이 필요하다. 월천은 천문학자이자, 법사이자, 의사이다.


2009년 8월초에 70년만에 개기일식이 있었다.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일식은 있었을까? 물론, 일식도 없었고, 월식도 없었다. 당시의 일식이 있던 시기를 뽑아 본다면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19년(572)에 사신을 북제(北齊)에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초하루 경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39년(592) 가을 7월 임신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국사기 본기 - 원성왕 3년(787) 봄 2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몸소 신궁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였다. 여름 5월에 금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가을 7월에 누리가 곡식을 해쳤다. 8월 초하루 신사에 일식이 있었다.

진평왕 시기(579~632년)에 일식은 없었다.

왜? 드라마 선덕여왕은 일식과 월식에 집착을 할까? 이유는 <첨성대>를 선덕여왕이 만들었다는 기록때문이다. 하지만, 첨성대를 한번이라도 본사람이라면, 첨성대가 하늘을 관찰하는데 상당히 불편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첨성대는 하늘을 관찰하는게 아닌, 하늘을 비추는 거울이며, 하늘과 통하는 연결 통로로 첨성대가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우물에서 비친 하늘을 본자라면, 첨성대의 용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어찌 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대명력은 월식을 예측하기 쉽고, 위나라의 정광력은 대명력에 비해서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일식을 예측하는데는 정광력이 좋다고 이야기를 한다.

덕만, 유신을 꼬시다
 

비둘기낭 동굴밖 폭포

덕만은 유신에 말한다. "내가 가려고 하는일은 패도이니까?"

패도에서 사람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죽는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유신에 대한 마음만 가지려고하니 유신과 같이 함께하지 못한다고 한다. 함께하면 유신을 장기판의 말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유신과 같이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림으로 보는 덕만의 숨은 장소인 비둘기낭의 동굴과 비경을 보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2012년이 지나면 저 비경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관련 기사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08/12 - [역사이야기] - 천명의 마지막 촬영지, 비둘기낭 동굴 수몰위기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덕만과 소화

덕만과 알천, 비담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월천 일행은 월야의 수중에 넘어가고, 소화는 월천을 지키던 화랑들에 의해서 등에 활을 맞고 쓰러진다. 이후 덕만의 일행이 사라진 월천을 뒤로 하고 화덕사에 도착한다. 여전히 소화(서영희)와 덕만의 만남은 아직 먼것 같다. 소화는 또 다시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에 의해서 살아날 것이다. 칠숙과 더불어 터미네이터 반열에 오른 소화가 되시겠다.  

천명과 덕만의 언니 선화? 천화?

진평은 덕만을 공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마야는 낳자 마자 죽은 3 아들과 쌍둥이 중 천명을 잃어버렸는데, 이제 하나 남은 덕만을 잃어 버리려 하냐고 진평에게 반문하면서 더이상 자식을 잃을 수 없으니 덕만을 지키겠다고 천명한다.

그런데 정말 진평과 마야 사이에는 천명과 덕만 쌍둥이 밖에 없었을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마야가 진평의 즉위년에 황후가 되었다면, 천명은 마야의 소생이 될 가능성이 없다. 그러니 마야가 천명과 덕만의 모후가 될려면 마야는 진평이 성인이 된후 얻은 비가 되어야 한다. 이에 관한 기사는 다음을 참조하길 바란다. 

2009/08/17 - [역사이야기] - 여성만 알 수 있는 선덕여왕의 비밀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천명과 덕만 말고도 이들 위로 언니의 존재가 나온다. 삼국유사에 나온 선화라고 생각한다면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 되시겠다. 화랑세기에서는 진평과 마야 사이에는 3명의 자매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첫째가 천화이고, 둘째가 천명이고, 셋째가 이들보다 나이 차이가 많은 덕만이다.
처음에 용수공은 천화공주(天花公主)를 아내로 맞았는데, 천명공주를 아내로 맞게 되자 천화공주를 (용춘)공에게 주었다. 아들을 낳았는데 일찍 죽었다. 선덕공주(善德公主)를 모시게 되자 제(帝)가 천화공주를 백룡공(白龍公)에게 내려주었다. 선덕공주가 즉위하자 (용춘)공을 지아비로 삼았는데, 공은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물러날 것을 청하였다.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603년)


선덕여왕에서는 천명이 용수의 첫번째 부인으로 나오지만, 천명보다 먼저 천화가 용수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천화는 진평왕의 명령에 의해서 백룡에게 시집을 간다. 처음 왕위를 천명이 뛰어난 자질을 보여서 용수로 하여금 천명과 함께 신라을 이끌도록 하였다. 이에 용수의 부인이였던 천화는 용춘에 시집을 가고, 용춘이 선덕을 모시자 진평이 천화를 백룡에게 시집을 가게 했다고 한다. 천화는 용수-> 용춘 -> 백룡에게 시집을 가지만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고 타의(진평)의 명령에 따라 시집을 가고 있다.

백룡은 삼국사기 본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에 보면, 629년 낭비성 전투에 참전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건복 46년 기축(진평왕 51년: 629) 가을 8월에 왕이 이찬(伊湌) 임말리(任末里), 파진찬(波珍湌) 용춘(龍春).·백룡(白龍), 소판(蘇判) 대인(大因)·서현(舒玄) 등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공격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 629년

백룡의 지위가 용춘과 같은 파진찬(4등위)이다. 삼국사기에 용춘은 대장군으로 나온다. 그러니 백룡도 대장군의 직위에 있었지 않을까 한다.

신라판 서동요, 법흥과 보과

삼국유사에는 천화대신에 선화가 진평의 3번째 딸로 등장한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선화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단지, 화랑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 원화 <남모>를 법흥왕과 백제 보과의 사이에서 난 여식으로 등장한다.
준정이 남모를 시기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만들어 정부인 위화랑을 1세 풍월주로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2세 풍월주가 미실과 미생의 아버지인 미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보과는 법흥왕이 국공(왕자가 아님) 시절에 백제에 왔다가 눈이 맞어, 백제를 버리고 신라로 법흥(원종)을 만나러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고 남모와 4세 풍월주 모랑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버리는 처자들이 많이 보인다. 신라의 여인들은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는 왕후의 자리도 버리고, 사랑하는 지아비를 따른다.

이와 관련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2009/07/09 - [역사이야기] - 화랑세기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도 있다. 를 참조하기 바란다.


영국의 에드워드 왕은 영국의 법에 의해서 과부와 결혼은 용납하지 않자, 왕의 지위를 버리고, 미국의 과부인 심슨부인과 결혼을 하여 왕위를 버린 세기의 결혼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신라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 난다. 시간이 허락하고 성원이 있다면 '사랑을 위해서 자신의 지위를 버린 여인들'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임술년 천명과 덕만이 쌍생으로 태어났다? 

 세종과 하종의 계락으로 "임술년에 황후가 쌍생을 낳았다가 하나의 쌍생을 버렸으니, 마야황후를 폐하라는 벽서(방)가 붙는다.

설화랑은 하종과 세종이 벽서를 붙힌 범인임을 미실의 눈을 보고 알아 차렸다고 이야기를 하며 세주의 통찰력은 진흥대제의 통찰력을 뛰어 넘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궁예의 관심법이 되겠다. "옴마니 반메음"

덕만과 천명이 임술년생이라고 하지만, 당시의 임술년은 덕만과 천명이 태어날 수 없다. 임술년은 진흥왕시기와 진평왕시기에 딱 2번 나온다. 

 542년 진흥왕 3년, 602년 진평왕 24년이다. 

이와 관련된 기사는 다음과 같다. 관심이 있는 분은 아래 기사를 참조 하시길 바란다.

천명과 덕만이 542년 임술년은 절대로 될 수가 없다. 이유는 천명과 덕만의 아비인 진평왕이 태어나기도 전이고, 진평왕의 할아버지인 진흥(심맥종)의 나이가 8살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602년 임술년이 될 수 있는가? 천명과 용수 사이에 낳았다는 춘추가 603년에 태어 난다. 그러니 천명은 2살때 춘추를 낳은 것이다. 기네스에 오른 기록이 5살이다. 그것도 자식이 아닌 쌍둥이 동생으로 의심하고 있다, 어머니가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쌍둥이중 하나가 어머니 뱃속에서 크지를 못하고 다른 쌍둥이의 몸속에서 기생(?)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대가야 복야세력 월야의 비밀

월야(주상욱)

그런데 복야회의 수장 월야는 대가야의 마지막왕인 월광태자의 적손이라고 한다. 월천의 이름도 '<월> 돌림자를 쓰는 것으로 봐서, 월천은 대가야의 왕족 출신인 것 같다.

8세 풍월주 문노는 대가야의 피를 이어 받았다, 또한, 문노가 풍월주에 오르게 된 이유도 가야파의 지원이 있었기 가능했다.

 복야회의 근거지는 삽량주에 있다고 한다. 유신은 자신의 가문에 주어진 압량주을 가야유민에게 주고, 복야회의 복속과 동맹을 바란다. 이유는 가야파를 등에 지고 덕만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함이다.


비담은 복야회의 포스트 말단 연락책을 잡는다, 그런데 포스트는 죽음으로 비밀을 지키려한다. 하지만 포스트의 품에서 암어(암호)가 적힌 편지를 발견한다. 하지만 비담은 술술 암어 내용을 이야기한다. 복야회의 암어(암호)를 아는 이유는 비담의 스승인 문노(비조/문화)의 외가가 대가야 출신이기 때문이다.

월광태자는 이뇌/비조부(호조/선혜후)의 누이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월광과 문노는 사촌간이 된다. 월광의 아들로 나온 월야는 문노의 조카가 되는 것이다. 

양화는 호조/선혜후의 딸이다. 이뇌와 양화의 딸은 월화공주이다. 월화공주는 진흥에 시집를 가서 천주를 낳는다. 천주는 지도태후(용수.용춘의 어머니)와 결혼하여 586년 17세 풍월주 염장을 낳는다. 이 염장이 덕만을 도와 칠숙의 난을 평정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문노는 561년 이사부와 사다함이 대가야를 정벌할때  문노 자신의 외가를 치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하여 참전을 하지 않았다. 이에 신라인들은 신의가 있다고 하여, 문노를 더욱 존경하였다고 전한다.


어찌되었던 복야회의 대빵의 이름이 월야인 이유가 월화->월광->월야,월천 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월천대사는 월광태자와 형제지간이 되는 건가?

단석산 김유신 바위와 유신의 도박

단석산 김유신바위

유신은 덕만으로 부터 너(유신)를 버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나열한다. 한마디로 나를 따르라는 덕만의 협박이다.


유신은 덕만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가야파를 지키고, 가문의 안위를 만을 생각할 것인가를 고심하면서, 열심히 바위를 치고 있다. 유신이 어릴때부터 바위치기를 한다 이유는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보검을 얻고,  칼로 바위가르기를 보여주기 위한 과정이였다. 그래서 언제나 바위가 갈라질까? 관심있게 지켜봤다. 치고 또치고도 갈라지지 않던 바위가 드디어 갈라졌다. 드디어 김유신 열전과 에 바위가 갈라지는 기적이 선덕여왕 26회에 이뤄진것이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에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이때 김유신의 나이가 17세인 것으로 나온다. 그러니

(c) 정진만 단석산 김유신 바위

595년생인 유신이 17세가 되는 해는 611년이 된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은 시간개념과 공간개념을 상실하고 있기때문에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김유신 바위는 단석산 정상에 있다. 산행을 하거나, 선덕여왕 촬영지 관광코스로 정해보는 것은 어떠할까?  


유신은 서현에게 가문과 가야세력의 모든것을 걸고, 도박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때 복야회 일원은 유신과 서현을 죽이려 한다. 이에 유신은 복야회 일원을 굴복시키고, 복야회의 수장을 만나려고  산채로 들어간다.

서현이 602년 아막성 전쟁에서 참전하여, 설원랑의 계락으로 위기에 처하고 , 부상을 입었을 때, 구원을 받은것은 하늘의 보살핌이 아니라 복야회 장군인 설지의 입을 통해서 복야회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유신은 가야의 유민이 12만이라고 한다. 도대체 어디서 나온 근거인지는 알 수 없다. 선덕여왕의 작가는 생각없이 말을 뱃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선덕여왕의 작가진만 알 수 있지 않을까?

유신은 덕만일행을 포위하고 있는 복야회에게 "내가 선택한 나의 왕이시다. 그러니 복야회 또한, 덕만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한다. 이로서 덕만은 미실과 대적할 수 있는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진부한 운명론

성골남진의 나머지 계시가 밝혀지고 있다. 미실이 무너지고, 덕만이 일어선다는 것이다. 곧 덕만이 왕이 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운명이 정해졌다는 인간의 운명론이 되시겠다. 덕만이 노력을 하던 하지 않던, 왕이 되는 운명인데, 왜 저 멀리 사막까지가게 만들었을까? 그것도 운명인가? 미실에 대적하는 것도 운명이고? 한마디로 '타고난 팔자가 있다'가 있다는 말인데, 소설이 너무 진부하지 않는가?


춘추(유승호)의 아버지에 대한 비밀을 알고 싶으세요? 그럼 이 기사를 일독 해보시길 
2009/08/20 - [역사이야기] - 괴물이 되어버린 춘추(유승호)의 아버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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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우비 2009.08.19 1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굳굳굳 지루하게 읽을 수도 있는 글을

    재밌게 쓰신것 같아요~!

    그냥 봤으면 역사 잘못 알뻔했네요 ...-_-;;;

    너무너무 잘 읽다가 가요~

  3. 능소화 2009.08.19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신라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4. 날아라 2009.08.19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일고 가니다. 앞으로도 계속 부탁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속 할려면 추천이 많아야 하는데.. 너무 추천을 하지 않는군요..

      추천이 없다는 말은 이런글은 쓰지 말라는 뜻이거든요.. ㅋㅋ

  5. BlogIcon haRu™ 2009.08.19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마지막에 운명론에 대한 비판... 아주 좋았습니다.
    제가 주로 사극을 안보는 이유와 같습니다. 특히 사극은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고는 주인공을 개고생 시키죠.
    뭐 이런식으로 재미가 없어질려고 할때 비담의 투입은 정말 극적이였죠. 지금 것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본 적없는 매력적인(그러나 일본 만화등에서는 많이 본...ㅡ,.ㅡㅋ)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다. 운명이런것 없이도 잘 만들텐뎅.. 뭔 원죄론을 받아 들여서 그런가. 너무 난무함...

  6. elly 2009.08.19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문노와 월광은 사촌지간이 아닙니다.
    촌수로 따지자면 조금 더 올라갑니다. :-)
    월광태자의 자손은 아무리 자료를 찾아봐도 자료가 없어요.
    대신 해인사를 처음 창건한 이 중 하나가 월광의 후손이라고 적혀있어서,
    그의 후손이 있다고 짐작만 할 따름입니다.
    월야라는 인물은 소설(혹은 극)을 위해 만든 가공의 인물입니다.
    대신 월광의 누이동생인 월화의 후손인 천주는 화랑세기에 나오는걸 보니 있었던 인물인것 같구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월광의 어미니가 비조부의 누이이고,
      문노의 아버지는 비조부/문화 잖아요.. 그러니 이들은 사촌간이 되지요..

      그냥 드라마가 월광의 적자라고 해서리.. 그렇다면 문노의 조카다 하는거지요.. ㅋ ㅋ 이왕 엮을라면 확실히 엮어라 머 이런 비판이였음..

      저는 월야보다는 천주/월화의 아들인 염장을 월야역으로 했다면 더 잼있지 않았을 까해요.. 머 언젠가는 염장도 덕만의 수중에 떨어지겠지만요..

      서현보다 더 비중이 있는 인물이 천주인뎅.. 기록도 별로 없으니 맘껏 작가의 상상력도 발휘할수 있구요..

      선덕여왕 원작 작가가 너무 공부를 안한 티가 나요.. ㅋㅋ

      인물설정을 할때 자료조사가 기본중에 기본인뎅..

    • BlogIcon elly 2009.08.19 2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ㅋㅋ
      전 문노의 모계, 월광의 부계로 계산을 하다보니
      엄청난 촌수가 나오더라구요. 이제 생각해보니
      이종사촌-외사촌격이 되네요. :-)

      전 우연히 당첨되서 선덕여왕 소설까지 다 읽었는데
      원작가가 공부 안한티가 정말로 많이 나더군요.
      인물 설정 조차도 대충 빌려온게 너무 많이 보여요.
      (선덕여왕이 처녀로 죽었다는 사실까지 포함해서..;;)

    • BlogIcon 갓쉰동 2009.08.20 0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처녀로 죽이는 군요.. 처녀에 대한 환상이라도 있나봅니당..

  7. 흐흐흐 2009.08.25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에 사소한 실수가 보이네요. 별거 아니지만 문맥상 약간의 혼동이 올 수 있어서...
    월야의 사진 옆 글 '가야파를 등지고'가 '가야파를 등에지고'죠???
    맞나요?

    • BlogIcon 이반의꿈 2009.08.25 1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도 읽힐수 있군요.. 저는 등지고를 등에지고로 생각하고 썼는뎅.. 바꿀까 말까 고민했었음. 지적을 하시니 바꿔야 겠네요.. ㅋㅋ

  8. BlogIcon 조용형 2012.01.01 0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팹, 훌륭한 문서입니다

  9. BlogIcon 원숭이 2012.01.07 0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10. BlogIcon 엘리 2012.04.04 0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어디로 데려가십니까?

  11. BlogIcon 헤일리 2012.04.06 0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2. BlogIcon 모건 2012.05.08 2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심 없습니다.

  13. BlogIcon 알렉 산드라 2012.05.11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먹었습니다.

  14.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5.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6. BlogIcon Pussy Porn 2012.07.14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17.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8.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for camping 2012.11.01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9.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indoors 2012.11.06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

  20. BlogIcon petsafe wireless dog fence 2012.12.22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이 중요한 주제에 도움이 필요 남녀를 지원하는 당신의 관대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21. BlogIcon 24 stove top 2013.01.02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일식은 있었을까? 물론, 일식도 없었고, 월식도 없었다. 당시의 일식이 있던 시기를 뽑아 본다면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빌리면, 진평왕에게는 마야와 승만왕후가 있다. 진덕왕의 이름이 승만인데, 신라가 개족보를 가지고 있으니 승만이 왕후로 있다가, 선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덕(승만)왕은 국반갈문왕의 소생으로 박씨부인의 소생이다.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는게 신라사이긴 하지만, 그렇게 믿고 가자,  진평왕의 비 승만왕후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성이 손씨라고 한다.


진평왕에게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덕만과 천명 두명의 여식이 있고, 삼국유사를 포함하더라도 백제 무왕의 비가 되는 선화가 있다. 그래서 총 3명의 기록이 보인다.

하지만, 각 성씨 족보를 보면, 조계룡은 진평왕의 사위라고 기록하고 있고, 경주김씨 족보에는 김인평 또한, 진평왕의 사위라고 한다. 더 나아가 덕만(선덕)의 남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천명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공히 용춘.용수의 남편으로 춘추를 낳았다고 한다. 문제는 용춘과 용수가 같은 사람이냐? 아니면 다른사람이냐 하는 주장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자세히 살피면 용춘과 용수는 다른 사람임을 알 수는 있다. 이런 설왕설래가 있는 용수 용춘을 용수는 형이고, 용춘은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이 현존하는 <화랑세기>이다. 현존 화랑세기는 김대문이 저작했다는 <화랑세기>를 필사한 책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학계에서는 진위 논쟁이 한참이다.

또한, 선덕여왕에 관한 기록도 보이는데, 화랑세기에 의하면,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었던, 덕만이 진평왕의 맏딸이고, 천명이 두번째 딸이라는 기존 상식을 깨버리고, 천명이 덕만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언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글쓴이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  [역사이야기] - 이요원보다 남지현 나이때 왕위에 오른 덕만 글에서 덕만이 천명보다 나이가 많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덕만이 마야의 소생이지만, 천명은 마야의 소생이 아닐 수 있다는 증거로 '덕만'과 '천명'의 이름으로 가능성을 이야기 했다. 또한, '덕만'의 남성적인 이름 때문에 설령 천명과 같이 마야의 소생이라고 할찌라도 천명과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천명의 동생이라고 증명하였다.

 
화랑세기에는 진평왕에게 많은 왕자들이 있다고 한다. 또한, 공주도 천명.덕만은 나오지만, 삼국유사에서 보인 '선화'에 관한 내용은 한마디도 없다. 물론, 화랑세기가 당대의 기록이라면 '선화'에 대해서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선화'에 관한 기록이 없다는 사실은 '선화'가 진평왕의 소생이 아니고 다른 시대에 있었던 이야기가 진평왕과 무왕으로 치환되었을 수 있음을 증명하는 또다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미륵사지의 탑을 해체하는 과정에
서 3탑 중 남아 있는 좌측탑의 사리함에서 발견된 명문에 의하면, 탑을 세우는데 공양한 무왕의 왕후로 '사택'이 왕후라고 나온다. 선화가 나올지 알았는데 백제의 귀족가문인 '사택' 집안의 왕후인 것이다.

그렇다면 삼국유사의 기록이 잘못된 것이고, 화랑세기의 기록이 정확했음을 증명하는 것일까?

물론, 제일 왕후가 '선화'이고, '사택'왕후가 선화가 죽은 다음에 왕후가 되었거나, 아니면 여러 왕후 중에 하나일 가능성이 열려 있기는 하다.


하지만,  미륵사지의 탑에서 나온 명문이 화랑세기를 재조명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것 또한 사실이다. 삼국유사의 일연도 서동과 선화의 이야기를 하면서 마동이 '무강'왕이라고 기록된 옛 기록을 비판하면서 무강왕이 없는데, '무왕'일것이라고 글을 남기고 있었다.

우리가 단순히 상식으로 알고 있었던 무왕과 '선화'의 사랑이야기를 실제 일연은 확신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화랑세기는 무왕와 선화의 사랑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를 법흥왕과 <보과>의 사랑과 원화제도가 폐지되여 화랑이 만들어지는 이야기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글은 이전에도 송고하였지만, 별다른 호흥을 얻지는 못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다듬어서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글쓴이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바탕으로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칠숙>이 반란을 하는 이유가 칠숙 자신이 왕위계승 서열에서 덕만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서 반란을 했다고 이야기를 했다. 또한, 덕만이 진평왕과 마야왕후 사이에서 난 적장녀이기 때문에 나이는 어리지만 여왕에 등극할 수 있었다고, 진평왕의 아들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선덕이 왕위에 오른 이유는  [역사이야기] - 조선 세종, 신라 덕만, 천명의 기록 비교해 보니 기사를 송고하였다.

왕후와 후비와 왕자를 생산한 비, 그리고 공주를 본 후비들


그럼 도대체 화랑세기는 진평왕에게 자식이 몇명이라고 기록하고 있을까? 아마도 우리는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을 뒤엎은 파천황의 기록을 보게 될것이다. 그림은 화랑세기에서 기록된 진평왕의 기록들을 토대로 진평왕의 비들과 진평왕의 왕자와 진평왕의 여식들을 보여줄 것이다.

이전 기사에서 [역사이야기] - 남자 형제들을 물리치고 왕이 된 덕만 에서 아주 간단히, 진평왕의 왕자들을 보여준적이 있다.
 
그림을 봐서 알겠지만 화랑세기는 마야와 승만 말고도 수 없이 많은 후비를 거느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과 적대적으로 나오는 <미실>또한, 진평의 비였고, 미실의 딸 또한, 진평의 비였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이전글에서 위의 그림에서와 같이 진평왕에게는 최소한 4명의 왕자가 있다고 하였다. 덕만은 이들 왕자들을 넘어서 신라 최초의 여왕으로 등극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더 추적하니 이화랑과 숙명의 소생인 화명과 옥명사이에 진평은 아들을 더 두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가 있었다.

특이한 사항은 용춘의 어머니인 지도와 지도의 딸 용명이 진평왕의 비가되었다는 것이다. 미실이 진흥왕, 진지왕(금륜), 진평왕을 섬기고 자식을 보았다면, 미실의 이종사촌이며, 용춘의 어미인 지도태후(기오/흥도)도 미실과 별차이가 없이, 동륜, 금륜(진지), 진흥, 진평을 섬기고, 이들 사이에 자손을 보았다는 사실을 밝혀 내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마야왕후와 다 자란 덕만이 헤어졌다. 눈물없이 불수 없는 모녀상봉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화랑세기에 의하면 덕만이 용봉의 자질을 보일때 즈음에 마야왕후는 죽고,  손씨 승만왕후가 대신했다고 한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은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았지만 기록과 부합하지 않는 내용을 소설로 드라마를 쓰고 있는 것이다.

선덕공주(善德公主)가 점점 자라자 용봉의 자태와 태양의 위용이 왕위를  이을 만 하였다. 그 때는 마야황후가 이미 죽었(崩)고, 왕위를 이을 아들이 달리 없었다. 그러므로 대왕은 (용춘)공을 마음에 두고 (천명)공주에게 그 지위를 양보하도록 권하였다. (천명)공주는 효심으로 순종하였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년~603년

다음 편에서는 화랑세기에서는 덕만이 몇살 즈음에 왕으로 등극한 것으로 보는지 분석할 예정이다. 겉보기는 화랑세기는 덕만이 아주 어릴때 왕위에 오른것 처럼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도대체 몇살정도에 왕위를 이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칠숙의 난을 진압하는데 덕만이 중추적인 역할을 했음을 짐작해 하는 기사가 보인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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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초록누리 2009.08.09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선화공주가요? 정말 이집(진평왕) 족보가 복잡하네요. 역시 예전부터 일부일처제를 법으로 했어야해요. 안지키면 왕이라도 어떻게 했어야 했는데.ㅎㅎㅎ
    오늘 또 공부 열심히 하고가요. 근데 자꾸 이집 계보 생각하면 머리가 어질어질 하답니다. 저희집은 아주 단순하게 저와 우리 남편사이에 1남1녀. 얼마나 쉽고 간단한 가족 관계입니까? 헷갈릴 일도 없구요.ㅎㅎ 좋은 휴일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0 0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달랑 딸 셋만 있다는 집(진평)의 족보입니당. 그런데 이리 복잡하니.. ㅋㅋ

      1부1처제도 좋은점과 나쁜점이 있지요.. ㅋㅋ

  2.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9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계보가 너무 복잡 ㅎㅎㅎ
    나중에 다시보며 정라하겟습니다.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휴일 잘 보내세요.

  3. fhsd 2009.08.09 16: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록만으론 정확한 역사를 추정할뿐이죠.진짜 역사는 따 로 있는게 아닐까 ...
    조선시대 유교가 국가이념으로 채택되기전,조선초기때까지만해도 여자들의 생활은 자유분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신라고려만 보더라도 꽤나 다양한 시각이 보이잖아요.조선초만해도 결혼해도 여자들은 자기친정에 살고 오히려 남자들이 처가살이 많이 했답니다.하도 시집에 안와서 매운시집살이란 퐁조가 생겨나면서 여성들의 지위가 낮아지게 된거라네요.요즘 여아 출생이 작아지면서 오히려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지는 거 처럼 남성들이 기를 못펴고 사는 시대가 온거 같은데 이것과도 여성과의 지위와 연관이 있다고 혼자서 추리해 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10 0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니다.. 추정할 뿐이지요.. 합리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는 때는, 여성이 부족할때.. ㅋㅋ

  4. dlsgus35 2009.08.09 1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은 이름은 덕만이며 진평왕의소생으로 마야부인의소생이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나온다 화랑세기를 별로 본적없지만 삼국유사나삼국사기는 덕만은 진평왕의맏딸이고 나온다 그리고
    물론 선화공주도 진평왕의소생으로 나온다 삼국유사 신라본기엔 덕만공주 천명공주 선화공주 진평왕의
    소생으로 언급하고 있다 진흥왕은 7세 왕위에 등극했다고 전한다 진평왕도 어린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5. BlogIcon White Rain 2009.08.09 1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복잡하고 아리송한 가계도입니다. 지금보면 완전 막장같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였을 수도 있죠. 기록이 사료마다 다르지만 백제 미륵사지탑에서 발견된 명문을 보니 ... 더욱 혼란스러운데요? ㅠㅠ
    어차피 100% 확인할 수 없는 역사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흥미롭게 살펴보는 즐거움 또한 주는군요.

  6. 배꼽마당 2009.10.25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리산 아래 함양군 마천면에는 지금은 폐사지이지만 군자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진평왕이 등극하기전 3년동안 도피하였던 곳이 마천이었고 이곳에서 왕자를 낳았으며 후에 그곳을 왕자를 낳은 곳이라 하여 군자사라는 절을 짓고 이름도 군자사라 하였는데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에 의하면 조선시대 중엽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군자사에서 숙박을 한 기록도 보인다. 군자사의 위치는 현 함양군 마천면 도마마을이며 이곳의 행정구역 명칭도 군자리이다.

  7. BlogIcon 행복지킴이 2011.03.31 1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희 망 /정 보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내 병은 내가 고친다

  8. BlogIcon 행복지킴이 2011.03.31 1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희 망 /정 보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내 병은 내가 고친다

  9.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0. BlogIcon check this out 2012.07.14 1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이 진평왕의 맏딸이고, 천명이 두번째 딸이

  11. BlogIcon pilot crackers nabisco 2012.11.01 1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2. BlogIcon portable dog fence home depot 2012.11.05 15: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고 유용한 정보의 추가를 읽을 다시해야 될 것입니다. 게시물 주셔서 감사합

  13. BlogIcon wireless pet fences reviews 2012.12.20 1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극화하면서, 미실의 아역을 한 유이처럼 스쳐지나게 만들지 말았음 하는 바람이 있다

  14. BlogIcon msr miniworks microfilter 2012.12.31 1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유사를 포함하더라도 백제 무왕의 비가 되는 선화가 있다. 그래서 총 3명의 기록이 보인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빌리면, 진평왕에게는 마야와 승만왕후가 있다. 진덕왕의 이름이 승만인데, 신라가 개족보를 가지고 있으니 승만이 왕후로 있다가, 선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덕(승만)왕은 국반갈문왕의 소생으로 박씨부인의 소생이다.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는게 신라사이긴 하지만, 그렇게 믿고 가자,  진평왕의 비 승만왕후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성이 손씨라고 한다.


진평왕에게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덕만과 천명 두명의 여식이 있고, 삼국유사를 포함하더라도 백제 무왕의 비가 되는 선화가 있다. 그래서 총 3명의 기록이 보인다.

하지만, 각 성씨 족보를 보면, 조계룡은 진평왕의 사위라고 기록하고 있고, 경주김씨 족보에는 김인평 또한, 진평왕의 사위라고 한다. 더 나아가 덕만(선덕)의 남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천명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공히 용춘.용수의 남편으로 춘추를 낳았다고 한다. 문제는 용춘과 용수가 같은 사람이냐? 아니면 다른사람이냐 하는 주장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자세히 살피면 용춘과 용수는 다른 사람임을 알 수는 있다. 이런 설왕설래가 있는 용수 용춘을 용수는 형이고, 용춘은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이 현존하는 <화랑세기>이다. 현존 화랑세기는 김대문이 저작했다는 <화랑세기>를 필사한 책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학계에서는 진위 논쟁이 한참이다.

또한, 선덕여왕에 관한 기록도 보이는데, 화랑세기에 의하면,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었던, 덕만이 진평왕의 맏딸이고, 천명이 두번째 딸이라는 기존 상식을 깨버리고, 천명이 덕만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언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글쓴이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  [역사이야기] - 이요원보다 남지현 나이때 왕위에 오른 덕만 글에서 덕만이 천명보다 나이가 많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덕만이 마야의 소생이지만, 천명은 마야의 소생이 아닐 수 있다는 증거로 '덕만'과 '천명'의 이름으로 가능성을 이야기 했다. 또한, '덕만'의 남성적인 이름 때문에 설령 천명과 같이 마야의 소생이라고 할찌라도 천명과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천명의 동생이라고 증명하였다.

 
화랑세기에는 진평왕에게 많은 왕자들이 있다고 한다. 또한, 공주도 천명.덕만은 나오지만, 삼국유사에서 보인 '선화'에 관한 내용은 한마디도 없다. 물론, 화랑세기가 당대의 기록이라면 '선화'에 대해서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선화'에 관한 기록이 없다는 사실은 '선화'가 진평왕의 소생이 아니고 다른 시대에 있었던 이야기가 진평왕과 무왕으로 치환되었을 수 있음을 증명하는 또다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미륵사지의 탑을 해체하는 과정에
서 3탑 중 남아 있는 좌측탑의 사리함에서 발견된 명문에 의하면, 탑을 세우는데 공양한 무왕의 왕후로 '사택'이 왕후라고 나온다. 선화가 나올지 알았는데 백제의 귀족가문인 '사택' 집안의 왕후인 것이다.

그렇다면 삼국유사의 기록이 잘못된 것이고, 화랑세기의 기록이 정확했음을 증명하는 것일까?

물론, 제일 왕후가 '선화'이고, '사택'왕후가 선화가 죽은 다음에 왕후가 되었거나, 아니면 여러 왕후 중에 하나일 가능성이 열려 있기는 하다.


하지만,  미륵사지의 탑에서 나온 명문이 화랑세기를 재조명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것 또한 사실이다. 삼국유사의 일연도 서동과 선화의 이야기를 하면서 마동이 '무강'왕이라고 기록된 옛 기록을 비판하면서 무강왕이 없는데, '무왕'일것이라고 글을 남기고 있었다.

우리가 단순히 상식으로 알고 있었던 무왕과 '선화'의 사랑이야기를 실제 일연은 확신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화랑세기는 무왕와 선화의 사랑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를 법흥왕과 <보과>의 사랑과 원화제도가 폐지되여 화랑이 만들어지는 이야기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글은 이전에도 송고하였지만, 별다른 호흥을 얻지는 못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다듬어서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글쓴이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바탕으로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칠숙>이 반란을 하는 이유가 칠숙 자신이 왕위계승 서열에서 덕만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서 반란을 했다고 이야기를 했다. 또한, 덕만이 진평왕과 마야왕후 사이에서 난 적장녀이기 때문에 나이는 어리지만 여왕에 등극할 수 있었다고, 진평왕의 아들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선덕이 왕위에 오른 이유는  [역사이야기] - 조선 세종, 신라 덕만, 천명의 기록 비교해 보니 기사를 송고하였다.

왕후와 후비와 왕자를 생산한 비, 그리고 공주를 본 후비들


그럼 도대체 화랑세기는 진평왕에게 자식이 몇명이라고 기록하고 있을까? 아마도 우리는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을 뒤엎은 파천황의 기록을 보게 될것이다. 그림은 화랑세기에서 기록된 진평왕의 기록들을 토대로 진평왕의 비들과 진평왕의 왕자와 진평왕의 여식들을 보여줄 것이다.

이전 기사에서 [역사이야기] - 남자 형제들을 물리치고 왕이 된 덕만 에서 아주 간단히, 진평왕의 왕자들을 보여준적이 있다.
 
그림을 봐서 알겠지만 화랑세기는 마야와 승만 말고도 수 없이 많은 후비를 거느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과 적대적으로 나오는 <미실>또한, 진평의 비였고, 미실의 딸 또한, 진평의 비였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이전글에서 위의 그림에서와 같이 진평왕에게는 최소한 4명의 왕자가 있다고 하였다. 덕만은 이들 왕자들을 넘어서 신라 최초의 여왕으로 등극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더 추적하니 이화랑과 숙명의 소생인 화명과 옥명사이에 진평은 아들을 더 두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가 있었다.

특이한 사항은 용춘의 어머니인 지도와 지도의 딸 용명이 진평왕의 비가되었다는 것이다. 미실이 진흥왕, 진지왕(금륜), 진평왕을 섬기고 자식을 보았다면, 미실의 이종사촌이며, 용춘의 어미인 지도태후(기오/흥도)도 미실과 별차이가 없이, 동륜, 금륜(진지), 진흥, 진평을 섬기고, 이들 사이에 자손을 보았다는 사실을 밝혀 내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마야왕후와 다 자란 덕만이 헤어졌다. 눈물없이 불수 없는 모녀상봉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화랑세기에 의하면 덕만이 용봉의 자질을 보일때 즈음에 마야왕후는 죽고,  손씨 승만왕후가 대신했다고 한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은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았지만 기록과 부합하지 않는 내용을 소설로 드라마를 쓰고 있는 것이다.

선덕공주(善德公主)가 점점 자라자 용봉의 자태와 태양의 위용이 왕위를  이을 만 하였다. 그 때는 마야황후가 이미 죽었(崩)고, 왕위를 이을 아들이 달리 없었다. 그러므로 대왕은 (용춘)공을 마음에 두고 (천명)공주에게 그 지위를 양보하도록 권하였다. (천명)공주는 효심으로 순종하였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년~603년

다음 편에서는 화랑세기에서는 덕만이 몇살 즈음에 왕으로 등극한 것으로 보는지 분석할 예정이다. 겉보기는 화랑세기는 덕만이 아주 어릴때 왕위에 오른것 처럼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도대체 몇살정도에 왕위를 이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칠숙의 난을 진압하는데 덕만이 중추적인 역할을 했음을 짐작해 하는 기사가 보인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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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초록누리 2009.08.09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선화공주가요? 정말 이집(진평왕) 족보가 복잡하네요. 역시 예전부터 일부일처제를 법으로 했어야해요. 안지키면 왕이라도 어떻게 했어야 했는데.ㅎㅎㅎ
    오늘 또 공부 열심히 하고가요. 근데 자꾸 이집 계보 생각하면 머리가 어질어질 하답니다. 저희집은 아주 단순하게 저와 우리 남편사이에 1남1녀. 얼마나 쉽고 간단한 가족 관계입니까? 헷갈릴 일도 없구요.ㅎㅎ 좋은 휴일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0 0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달랑 딸 셋만 있다는 집(진평)의 족보입니당. 그런데 이리 복잡하니.. ㅋㅋ

      1부1처제도 좋은점과 나쁜점이 있지요.. ㅋㅋ

  2.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9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계보가 너무 복잡 ㅎㅎㅎ
    나중에 다시보며 정라하겟습니다.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휴일 잘 보내세요.

  3. fhsd 2009.08.09 16: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록만으론 정확한 역사를 추정할뿐이죠.진짜 역사는 따 로 있는게 아닐까 ...
    조선시대 유교가 국가이념으로 채택되기전,조선초기때까지만해도 여자들의 생활은 자유분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신라고려만 보더라도 꽤나 다양한 시각이 보이잖아요.조선초만해도 결혼해도 여자들은 자기친정에 살고 오히려 남자들이 처가살이 많이 했답니다.하도 시집에 안와서 매운시집살이란 퐁조가 생겨나면서 여성들의 지위가 낮아지게 된거라네요.요즘 여아 출생이 작아지면서 오히려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지는 거 처럼 남성들이 기를 못펴고 사는 시대가 온거 같은데 이것과도 여성과의 지위와 연관이 있다고 혼자서 추리해 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10 0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니다.. 추정할 뿐이지요.. 합리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는 때는, 여성이 부족할때.. ㅋㅋ

  4. dlsgus35 2009.08.09 1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은 이름은 덕만이며 진평왕의소생으로 마야부인의소생이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나온다 화랑세기를 별로 본적없지만 삼국유사나삼국사기는 덕만은 진평왕의맏딸이고 나온다 그리고
    물론 선화공주도 진평왕의소생으로 나온다 삼국유사 신라본기엔 덕만공주 천명공주 선화공주 진평왕의
    소생으로 언급하고 있다 진흥왕은 7세 왕위에 등극했다고 전한다 진평왕도 어린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5. BlogIcon White Rain 2009.08.09 1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복잡하고 아리송한 가계도입니다. 지금보면 완전 막장같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였을 수도 있죠. 기록이 사료마다 다르지만 백제 미륵사지탑에서 발견된 명문을 보니 ... 더욱 혼란스러운데요? ㅠㅠ
    어차피 100% 확인할 수 없는 역사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흥미롭게 살펴보는 즐거움 또한 주는군요.

  6. 배꼽마당 2009.10.25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리산 아래 함양군 마천면에는 지금은 폐사지이지만 군자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진평왕이 등극하기전 3년동안 도피하였던 곳이 마천이었고 이곳에서 왕자를 낳았으며 후에 그곳을 왕자를 낳은 곳이라 하여 군자사라는 절을 짓고 이름도 군자사라 하였는데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에 의하면 조선시대 중엽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군자사에서 숙박을 한 기록도 보인다. 군자사의 위치는 현 함양군 마천면 도마마을이며 이곳의 행정구역 명칭도 군자리이다.

  7. BlogIcon 행복지킴이 2011.03.31 1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희 망 /정 보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내 병은 내가 고친다

  8. BlogIcon 행복지킴이 2011.03.31 1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희 망 /정 보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내 병은 내가 고친다

  9.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0. BlogIcon check this out 2012.07.14 1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이 진평왕의 맏딸이고, 천명이 두번째 딸이

  11. BlogIcon pilot crackers nabisco 2012.11.01 1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2. BlogIcon portable dog fence home depot 2012.11.05 15: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고 유용한 정보의 추가를 읽을 다시해야 될 것입니다. 게시물 주셔서 감사합

  13. BlogIcon wireless pet fences reviews 2012.12.20 1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극화하면서, 미실의 아역을 한 유이처럼 스쳐지나게 만들지 말았음 하는 바람이 있다

  14. BlogIcon msr miniworks microfilter 2012.12.31 1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유사를 포함하더라도 백제 무왕의 비가 되는 선화가 있다. 그래서 총 3명의 기록이 보인다.

법흥왕과 백제 보과공주의 사랑
뒤바뀐 역할모델 선화공주->법흥, 서동->보과공주

 

백제 30대 법왕의 아들(?) 서동과  신라 27대 진평왕의 3째 딸인 선화공주와의 사랑이야기는 시대적 배경으로 보면 599년부터 600년 사이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의 미담이 될것입니다. 

 

역사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백제와 신라의 왕자 공주의 혼인관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라 법흥왕과 동성왕의 딸인 보과공주와의 사랑이야기 어찌보면 왕자와 공주가 서로 바뀌지만 유사점이 많습니다.

 

동성왕(493년) 때 신라 이찬 비지의 딸을 왕비를 맞이 하는 결혼동맹을 하여 신라와 유대를 강화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나 비슷한 시기에 신라 지증왕(437~514)의 아들인 원종 법흥왕(23대 : 514~540)이 왕자 시절 백제의 수도인 사비를 암행 하였던지, 사신으로 갔던지 알 수는 없으나 백제 동성왕(24대 : 479~501)딸  보과공주와 사랑에 빠지고, 법흥왕(원종)이 신라로 귀국한 후 백제의 보과공주가 신라로 도망가 남모를 낳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여기까지 읽으면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랑 비슷하네라고 느끼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그래서 모티브의 유사성때문에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창작한 위서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기도 합니다.  

 

어찌되었던 이들의 유사성을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증왕->법흥왕(원종)->진흥왕(조카)->진지->진평(진지와는 사촌형제간)->선화공주

동성왕->보과공주->무령왕->성왕->위덕왕->혜왕->법왕->무왕(서동)


보과공주는 백제 동성왕과 신라 이찬 비지(미사흔의 후손)의 딸 사이에 태어났을 개연성도 있습니다.

500년대와 600년대의 100년정도의 차이가 나고 왕자와 공주가 역할이 바뀌어 있지만. 모티브는 유사하고 왕들의 행동이 유사함을 볼 수 있으니  재미 있지 않은 가요?

우리가 알고 있는 서동과 선화이냐기는에 관한 고사는 어쩌면, 법흥과 백제의 보과공주의 사랑을 모티브로 생겨났을 수도 있습니다.

 

지소(법흥/보도) 가 없었다면?

 

법흥왕의 형제인 입종갈문왕의 아들 진흥왕(24대 : 540~579)  7세의 나이로 왕위를 승계하니 남모공주는 진흥왕(심맥종)와의 손위 사촌이 됩니다. 준정이 남모공주를 시기하여 죽여 북천의 개울 바위에 숨겼으나 이를 발견한 사람들에 의해서 준정과 그의 일당이 처벌을 받고 원화제도가 폐지되고 화랑제도가 시행되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이 당시 권력은 법흥왕의 딸이며, 입종의 아내인 지소태후에 의해서 수렴청정하던 시기이고, 진흥왕은 재위12년(552년) 후에 개원으로 연호를 바꾼 후 직접 통치를 하게 됩니다.

법흥/보과공주의 사이에는 남모와, 3대 풍월주인 모랑을 낳습니다. 모랑은 미실의 아버지인 미진부에 이어 3대 풍월주에 오릅니다. 

진흥왕 왕이 성인이 되기 전에 신라의 왕은 실질적으로 지소태후(법흥/보도)였습니다. 선덕여왕(덕만)이 쉽게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지소태후라는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만약, 지소태후가 없었다면, 법흥/보과의 아들인 모랑이 입종/지소의 아들인 진흥왕 대신에 왕위에 올랐을 수도 있습니다.  백제의 외손인 모랑이 왕위를 법흥에 이어 왕위를 계승했다면 삼국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각자 상상해보시길 바랍니다.



서동이 동쪽 서라벌에 간 이유는 ?

서동이 경주에 가서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를 만나게 되는 연결고리가 보과공주와 그의 아들인 모랑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불사에 힘을쓴 법흥(원종)과 무왕(서동)

 

다음은 이차돈이 순교할 즈음 주고 받던 이야기 입니다.


 

“지금 중들을 보니 깍은 머리에 이상한 옷을 입었고, 말하는 논리가 기이하고 괴상하여 일상적인 도(道)가 아닙니다. 지금 만약 이를 그대로 놓아두면 후회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신 등은 비록 무거운 벌을 받더라도 감히 명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 528년 삼국사기  법흥왕 15년

 

이미 신라에는 국가가 공인을 하지 않았지만 불교를 믿고 있는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나옴니다.

무왕인 서동은 미륵사(왕흥사) 등 불사에 힘을 기울였듯이, 법흥왕 또한 신라에서 불교를 공인하고, 불사에 힘을 썼습니다. 법흥왕이 신라에서 불교를 공인하고, 불사를 시작하는 계기도 이미 불교가 활성화된 백제에서 건너온 보과공주의 숨은 공이 아닐까 합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왕실내에서는 이미 암암리에 불교를 믿었던 흔적이 있습니다. 천주사와 비처왕 시기 거문고 사건에 중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바는 신라는 528년 불교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때는 이미 널리 퍼진 불교를 왕실차원에서 공인하는 절차에 불과합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읽다 보면 김씨들은 미추왕 때 부터 불교에 심취했었고, 신라에서 가장 일찍 불교를 접한 집단이지 않을까 합니다. 실질적으로 왕실차원에서 불교를 들여온 이는 내물왕의 아들인 복호가 고구려에 인질로 있다가  돌아온 이후 시기이지 않을까 합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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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아가 2012.01.01 2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짚신도 짝이 있다

  3. BlogIcon 김성환 2012.01.07 0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짚신도 짝이 있다

  4. BlogIcon 마야 2012.05.09 0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혼자 내버려 두십시오.

  5. BlogIcon 애디슨 2012.05.11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6.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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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랑이전 원화제도가 있을때에는 나이어린 소녀가 아닌 농익은 성인 여성을 원화로 세웠을 개연성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창작한 위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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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알고 있는 서동과 선화이냐기는에 관한 고사는 어쩌면, 법흥과 백제의 보과공주의 사랑을 모티브로 생겨났을 수도 있습니다.

  19. BlogIcon storing food underground 2013.01.05 2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니 동성왕녀은 아닐것이라는 암시를 했었습니다.

법흥왕과 백제 보과공주의 사랑
뒤바뀐 역할모델 선화공주->법흥, 서동->보과공주

 

백제 30대 법왕의 아들(?) 서동과  신라 27대 진평왕의 3째 딸인 선화공주와의 사랑이야기는 시대적 배경으로 보면 599년부터 600년 사이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의 미담이 될것입니다. 

 

역사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백제와 신라의 왕자 공주의 혼인관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라 법흥왕과 동성왕의 딸인 보과공주와의 사랑이야기 어찌보면 왕자와 공주가 서로 바뀌지만 유사점이 많습니다.

 

동성왕(493년) 때 신라 이찬 비지의 딸을 왕비를 맞이 하는 결혼동맹을 하여 신라와 유대를 강화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나 비슷한 시기에 신라 지증왕(437~514)의 아들인 원종 법흥왕(23대 : 514~540)이 왕자 시절 백제의 수도인 사비를 암행 하였던지, 사신으로 갔던지 알 수는 없으나 백제 동성왕(24대 : 479~501)딸  보과공주와 사랑에 빠지고, 법흥왕(원종)이 신라로 귀국한 후 백제의 보과공주가 신라로 도망가 남모를 낳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여기까지 읽으면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랑 비슷하네라고 느끼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그래서 모티브의 유사성때문에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창작한 위서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기도 합니다.  

 

어찌되었던 이들의 유사성을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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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왕->보과공주->무령왕->성왕->위덕왕->혜왕->법왕->무왕(서동)


보과공주는 백제 동성왕과 신라 이찬 비지(미사흔의 후손)의 딸 사이에 태어났을 개연성도 있습니다.

500년대와 600년대의 100년정도의 차이가 나고 왕자와 공주가 역할이 바뀌어 있지만. 모티브는 유사하고 왕들의 행동이 유사함을 볼 수 있으니  재미 있지 않은 가요?

우리가 알고 있는 서동과 선화이냐기는에 관한 고사는 어쩌면, 법흥과 백제의 보과공주의 사랑을 모티브로 생겨났을 수도 있습니다.

 

지소(법흥/보도) 가 없었다면?

 

법흥왕의 형제인 입종갈문왕의 아들 진흥왕(24대 : 540~579)  7세의 나이로 왕위를 승계하니 남모공주는 진흥왕(심맥종)와의 손위 사촌이 됩니다. 준정이 남모공주를 시기하여 죽여 북천의 개울 바위에 숨겼으나 이를 발견한 사람들에 의해서 준정과 그의 일당이 처벌을 받고 원화제도가 폐지되고 화랑제도가 시행되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이 당시 권력은 법흥왕의 딸이며, 입종의 아내인 지소태후에 의해서 수렴청정하던 시기이고, 진흥왕은 재위12년(552년) 후에 개원으로 연호를 바꾼 후 직접 통치를 하게 됩니다.

법흥/보과공주의 사이에는 남모와, 3대 풍월주인 모랑을 낳습니다. 모랑은 미실의 아버지인 미진부에 이어 3대 풍월주에 오릅니다. 

진흥왕 왕이 성인이 되기 전에 신라의 왕은 실질적으로 지소태후(법흥/보도)였습니다. 선덕여왕(덕만)이 쉽게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지소태후라는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만약, 지소태후가 없었다면, 법흥/보과의 아들인 모랑이 입종/지소의 아들인 진흥왕 대신에 왕위에 올랐을 수도 있습니다.  백제의 외손인 모랑이 왕위를 법흥에 이어 왕위를 계승했다면 삼국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각자 상상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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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이 경주에 가서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를 만나게 되는 연결고리가 보과공주와 그의 아들인 모랑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불사에 힘을쓴 법흥(원종)과 무왕(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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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신라에는 국가가 공인을 하지 않았지만 불교를 믿고 있는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나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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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바는 신라는 528년 불교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때는 이미 널리 퍼진 불교를 왕실차원에서 공인하는 절차에 불과합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읽다 보면 김씨들은 미추왕 때 부터 불교에 심취했었고, 신라에서 가장 일찍 불교를 접한 집단이지 않을까 합니다. 실질적으로 왕실차원에서 불교를 들여온 이는 내물왕의 아들인 복호가 고구려에 인질로 있다가  돌아온 이후 시기이지 않을까 합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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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아가 2012.01.01 2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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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BlogIcon 김성환 2012.01.07 0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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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BlogIcon 애디슨 2012.05.11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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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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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BlogIcon mountain house pro pak 2012.11.20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웹 사이트를 만드는 비용이 훨씬 저렴하고 거의 모든 사업은해야합니다. 사람들

  17. BlogIcon solar powered radio and flashlight 2012.12.19 1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이전 원화제도가 있을때에는 나이어린 소녀가 아닌 농익은 성인 여성을 원화로 세웠을 개연성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창작한 위서가 된다.

  18. BlogIcon portable dog fences dogs 2012.12.27 1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가 알고 있는 서동과 선화이냐기는에 관한 고사는 어쩌면, 법흥과 백제의 보과공주의 사랑을 모티브로 생겨났을 수도 있습니다.

  19. BlogIcon storing food underground 2013.01.05 2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니 동성왕녀은 아닐것이라는 암시를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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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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