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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조선시대 초기부터 끊임없이 울릉도의 공도 정책을 폅니다.

또한, 조선초 이색 등을 울릉도와 여러 섬 등으로 유배시키려 하지만 신하들의 간언으로 내지의 지방으로 유배를 보냅니다.

조선시대에 울릉도는 너무나도 먼 땅입니다. 군선으로도 하루밤낮을 지나야하는 먼 지방이였고, 세종시대에는 군선이 울릉도를 가다가 난파되어 일본까지 흘러간 기록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금과 군역을 피하려고 들어가지만 세종때에도 끊임없이 들어간 사람들을 다시 육지에 안착하도록 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울릉도에 있는 사람이 거짓으로 왜를 사칭하여 강원도 일대을 약탈하기도 하지만, 대마 도주 종정무가 평도전을 보내 울릉도에 살기를 청하나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대마도주도 이미 울릉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그런데 독도에 관한 기록이 최초로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합니다.
 
 
1417년 태종 17년 8월 왜적이 우산도(于山島)·무릉도(武陵島)에서 도둑질하였다.
 
우산도가 지금의 독도임을 알 수 있는 근거는 세종실록 지리지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산(于山)과 무릉(武陵) 2섬이 현의 정동(正東) 해중(海中)에 있다.【2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울릉도 바로 옆에는 죽도라는 섬이 있습니다만 죽도는 날이 맑던 맑지 않던 잘 보입니다. 하지만 "우산은 날이 맑아야만 바라볼 수 있다"고 한것이지요. 사실 울릉도 바닷가에서는 날씨가 맑아도 독도를 볼 수 없습니다. 울릉도에서 산으로 조금 올라가야만 볼 수 있습니다. 일반인 눈높이에서는 약 48km정도 떨어져야 망망대해 수평선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년말 연시 독도는 모르겠지만 울릉도에서 독도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고 싶다면 다음 2009/12/25 - [이슈] - 일본 독도 집착, 울릉도에서 독도 일출 볼 수 있다. - 성탄절, 연말연시 기사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그러니 당연히 독도의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하더라도 해안가에서는 보이지가 않겠지요. 반대로 독도에서는 울릉도가 성인봉 때문에 잘보입니다. 대마도에서는 부산지역이 잘보이고 부산에서는 대마도가 잘 보이지 않는 것 처럼 말입니다.
 
1417년 태종 17년 왜적이 울릉도와 독도에서 도둑질을 한 다음년인 1418년 세종 1년 대마도 정벌이 일어난 것도 조금 아이러니 한일이긴 합니다.
 
1441년 세종 23년 세종은 함길도 관찰사에게 동해안의 새땅을 찾아보라고 지시를 합니다. 사실 세종 11년부터 끊임없이 요도를 찾습니다.
 
도내(道內)에 새 땅이 있다는 일은 떠들썩하게 전하여진 지가 이미 여러 해가 되었고, 친히 말하는 자도 역시 한둘로 계산할 수 없었으니, 어찌 그 까닭이 없이 그러했겠는가. 생각하건대, 그 실상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을 보내어 찾게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아직도 찾지 못하였다.
 
이 새 땅은 우리 강역(疆域) 안에 있는 것이니 더욱 알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구하기를 성심으로 하면 반드시 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경은 이를 알아서 경내(境內)의 고로인(古老人)과 일을 아는 각 사람 등에게 현상(懸賞)하여 묻기도 하고, 혹은 설명하여 묻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로 계획하여 널리 탐방하여서 아뢰라.”
 
세종이 찾으려 한땅은 요도입니다. 요도를 찾고자한 세종의 의도는
 
내가 이 섬을 찾는 것은 토지를 넓히자는 것이 아니고 또 그 백성을 얻어서 부리자는 것도 아니다. 의뢰할 데 없는 무리가 바다 가운데에 모여 살아서 창고와 식량의 준비가 없으니, 한번 흉년을 만나면 반드시 굶어 죽게 될 것이다. 그것을 누가 구제하겠는가. 도내(道內)에 백성들이 깊이 바다 가운데에 들어가서 고기 낚는 것으로 생업을 하니, 그중에 어찌 그 섬을 친히 본자가 없겠는가. 또 아무 곳에 있는 것을 자세히 아는 자가 없겠는가. 다만 사사로이 간 죄[私往之罪]를 두려워하여 서로 숨기고 비밀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백성의 일을 국가에서 반드시 죄주지 않겠다.

제주도 남단에 있는 파랑도가 상상의 섬인 '이어도'라면, 동해 상상의 섬은 고요한 섬 요도(蓼島)입니다. 세종이 찾고자한 요도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관련기사
2009/12/25 - [이슈] - 일본 독도 집착, 울릉도에서 독도 일출 볼 수 있다. - 성탄절, 연말연시
2009/10/1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원작자 "독도는 일본땅" 주장하나?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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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라이너스™ 2009.12.28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보고갑니다^^
    연말이라 좀 정신이 없어서 오랜만에 찾아뵙네요.
    행복한 한주 되시길 빌어요^^

  3. BlogIcon 박기동 2012.01.02 0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한다

  4. BlogIcon 김용대 2012.01.07 0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빈 수레가 요란하다

  5. BlogIcon 이자벨 2012.04.04 0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크 아웃하고 싶습니다.

  6. BlogIcon 노라 2012.04.06 0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습니다, 그것을 사겠습니다

  7. BlogIcon 노라 2012.05.09 0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습니다, 그것을 사겠습니다

  8. BlogIcon 제비꽃 2012.05.11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에 영어를 하시는 분 계십니까?

  9.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hairy.php 2012.07.21 2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는 글이라고 평가하고 싶네요. 이 글을 통해 김연아 선

  10. BlogIcon dallas roofing repair 2012.08.18 2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반대하는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단지 대선에서 유불리에 의한 정략적인 판단이

  11. BlogIcon Brazzers membership 2012.09.08 0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회사는 당신이 그들에서 전화 카드를 구입하고 전면에 회사의 메시지를 출력합니다있는 전화 카드는 기꺼이 명령을 제공합니다 만드는 요리를 전문으로합니다.

  12. BlogIcon london escort 2012.09.19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원은 아주 좋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으며 긍정적 인 방법으로 우리의 취미를 표현 수 있습니다.

  13. BlogIcon montreal massage parlor 2012.10.03 1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구 온난화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많은 삶의 측면뿐만 아니라 세계를 손상.

  14. BlogIcon bnlug 2012.10.03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 방문자를 동원하더라도 광고를 크릭하지 않는다면 단돈 1원도 수익이 없을 수 있다. 이정도 방문자

  15. BlogIcon veste franklin marshall pas cher 2012.10.24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륭한 읽기 위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싶은 찾기 위해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확실히 그것의 모든 조금을 즐기는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새로운 물건을 체크 아웃하는 당신이

  16. BlogIcon perimeter wireless pet fence reviews 2012.11.14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긴것은 세종대왕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말로 세종 이도를 극찬하기도 한다

  17. BlogIcon mattress cyber monday 2012.11.17 2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 사람들이 김연아가 쇼트에서 2번실수하고, 점프에서 미스가 있고, 프리에서 살코에서 1번 넘어지고

  18. BlogIcon midland weather alert radio wr-100 manual 2012.11.19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든 조금을 즐기는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새로운 물건을 체크 아웃하는

  19. BlogIcon tube tent emergency shelter 2012.12.19 1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가적으로 누가 집회를 주관했는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또한, 집회시간에서도 시위자수가 달라 집니다. 동원이냐 자발적이냐에 따라 해당숫자는 천양지차가 발생합니다.

  20. BlogIcon invisible dog fencing 2012.12.26 2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마 도주 종정무가 평도전을 보내 울릉도에 살기를 청하나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대마도주도 이미 울릉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21. BlogIcon mountainhouseplans.com 2013.01.05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끊임없이 울릉도의 공도 정책을 폅니다.

또한, 조선초 이색 등을 울릉도와 여러 섬 등으로 유배시키려 하지만 신하들의 간언으로 내지의 지방으로 유배를 보냅니다.

조선시대에 울릉도는 너무나도 먼 땅입니다. 군선으로도 하루밤낮을 지나야하는 먼 지방이였고, 세종시대에는 군선이 울릉도를 가다가 난파되어 일본까지 흘러간 기록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금과 군역을 피하려고 들어가지만 세종때에도 끊임없이 들어간 사람들을 다시 육지에 안착하도록 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울릉도에 있는 사람이 거짓으로 왜를 사칭하여 강원도 일대을 약탈하기도 하지만, 대마 도주 종정무가 평도전을 보내 울릉도에 살기를 청하나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대마도주도 이미 울릉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그런데 독도에 관한 기록이 최초로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합니다.
 
 
1417년 태종 17년 8월 왜적이 우산도(于山島)·무릉도(武陵島)에서 도둑질하였다.
 
우산도가 지금의 독도임을 알 수 있는 근거는 세종실록 지리지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산(于山)과 무릉(武陵) 2섬이 현의 정동(正東) 해중(海中)에 있다.【2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울릉도 바로 옆에는 죽도라는 섬이 있습니다만 죽도는 날이 맑던 맑지 않던 잘 보입니다. 하지만 "우산은 날이 맑아야만 바라볼 수 있다"고 한것이지요. 사실 울릉도 바닷가에서는 날씨가 맑아도 독도를 볼 수 없습니다. 울릉도에서 산으로 조금 올라가야만 볼 수 있습니다. 일반인 눈높이에서는 약 48km정도 떨어져야 망망대해 수평선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년말 연시 독도는 모르겠지만 울릉도에서 독도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고 싶다면 다음 2009/12/25 - [이슈] - 일본 독도 집착, 울릉도에서 독도 일출 볼 수 있다. - 성탄절, 연말연시 기사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그러니 당연히 독도의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하더라도 해안가에서는 보이지가 않겠지요. 반대로 독도에서는 울릉도가 성인봉 때문에 잘보입니다. 대마도에서는 부산지역이 잘보이고 부산에서는 대마도가 잘 보이지 않는 것 처럼 말입니다.
 
1417년 태종 17년 왜적이 울릉도와 독도에서 도둑질을 한 다음년인 1418년 세종 1년 대마도 정벌이 일어난 것도 조금 아이러니 한일이긴 합니다.
 
1441년 세종 23년 세종은 함길도 관찰사에게 동해안의 새땅을 찾아보라고 지시를 합니다. 사실 세종 11년부터 끊임없이 요도를 찾습니다.
 
도내(道內)에 새 땅이 있다는 일은 떠들썩하게 전하여진 지가 이미 여러 해가 되었고, 친히 말하는 자도 역시 한둘로 계산할 수 없었으니, 어찌 그 까닭이 없이 그러했겠는가. 생각하건대, 그 실상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을 보내어 찾게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아직도 찾지 못하였다.
 
이 새 땅은 우리 강역(疆域) 안에 있는 것이니 더욱 알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구하기를 성심으로 하면 반드시 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경은 이를 알아서 경내(境內)의 고로인(古老人)과 일을 아는 각 사람 등에게 현상(懸賞)하여 묻기도 하고, 혹은 설명하여 묻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로 계획하여 널리 탐방하여서 아뢰라.”
 
세종이 찾으려 한땅은 요도입니다. 요도를 찾고자한 세종의 의도는
 
내가 이 섬을 찾는 것은 토지를 넓히자는 것이 아니고 또 그 백성을 얻어서 부리자는 것도 아니다. 의뢰할 데 없는 무리가 바다 가운데에 모여 살아서 창고와 식량의 준비가 없으니, 한번 흉년을 만나면 반드시 굶어 죽게 될 것이다. 그것을 누가 구제하겠는가. 도내(道內)에 백성들이 깊이 바다 가운데에 들어가서 고기 낚는 것으로 생업을 하니, 그중에 어찌 그 섬을 친히 본자가 없겠는가. 또 아무 곳에 있는 것을 자세히 아는 자가 없겠는가. 다만 사사로이 간 죄[私往之罪]를 두려워하여 서로 숨기고 비밀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백성의 일을 국가에서 반드시 죄주지 않겠다.

제주도 남단에 있는 파랑도가 상상의 섬인 '이어도'라면, 동해 상상의 섬은 고요한 섬 요도(蓼島)입니다. 세종이 찾고자한 요도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관련기사
2009/12/25 - [이슈] - 일본 독도 집착, 울릉도에서 독도 일출 볼 수 있다. - 성탄절, 연말연시
2009/10/1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원작자 "독도는 일본땅" 주장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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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라이너스™ 2009.12.28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보고갑니다^^
    연말이라 좀 정신이 없어서 오랜만에 찾아뵙네요.
    행복한 한주 되시길 빌어요^^

  3. BlogIcon 박기동 2012.01.02 0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한다

  4. BlogIcon 김용대 2012.01.07 0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빈 수레가 요란하다

  5. BlogIcon 이자벨 2012.04.04 0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크 아웃하고 싶습니다.

  6. BlogIcon 노라 2012.04.06 0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습니다, 그것을 사겠습니다

  7. BlogIcon 노라 2012.05.09 0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습니다, 그것을 사겠습니다

  8. BlogIcon 제비꽃 2012.05.11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에 영어를 하시는 분 계십니까?

  9.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hairy.php 2012.07.21 2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는 글이라고 평가하고 싶네요. 이 글을 통해 김연아 선

  10. BlogIcon dallas roofing repair 2012.08.18 2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반대하는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단지 대선에서 유불리에 의한 정략적인 판단이

  11. BlogIcon Brazzers membership 2012.09.08 0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회사는 당신이 그들에서 전화 카드를 구입하고 전면에 회사의 메시지를 출력합니다있는 전화 카드는 기꺼이 명령을 제공합니다 만드는 요리를 전문으로합니다.

  12. BlogIcon london escort 2012.09.19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원은 아주 좋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으며 긍정적 인 방법으로 우리의 취미를 표현 수 있습니다.

  13. BlogIcon montreal massage parlor 2012.10.03 1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구 온난화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많은 삶의 측면뿐만 아니라 세계를 손상.

  14. BlogIcon bnlug 2012.10.03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 방문자를 동원하더라도 광고를 크릭하지 않는다면 단돈 1원도 수익이 없을 수 있다. 이정도 방문자

  15. BlogIcon veste franklin marshall pas cher 2012.10.24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륭한 읽기 위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싶은 찾기 위해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확실히 그것의 모든 조금을 즐기는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새로운 물건을 체크 아웃하는 당신이

  16. BlogIcon perimeter wireless pet fence reviews 2012.11.14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긴것은 세종대왕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말로 세종 이도를 극찬하기도 한다

  17. BlogIcon mattress cyber monday 2012.11.17 2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 사람들이 김연아가 쇼트에서 2번실수하고, 점프에서 미스가 있고, 프리에서 살코에서 1번 넘어지고

  18. BlogIcon midland weather alert radio wr-100 manual 2012.11.19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든 조금을 즐기는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새로운 물건을 체크 아웃하는

  19. BlogIcon tube tent emergency shelter 2012.12.19 1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가적으로 누가 집회를 주관했는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또한, 집회시간에서도 시위자수가 달라 집니다. 동원이냐 자발적이냐에 따라 해당숫자는 천양지차가 발생합니다.

  20. BlogIcon invisible dog fencing 2012.12.26 2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마 도주 종정무가 평도전을 보내 울릉도에 살기를 청하나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대마도주도 이미 울릉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21. BlogIcon mountainhouseplans.com 2013.01.05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50회로 미실(고현정)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다. 그래서 미실 고현정의 아름다운 하차를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는 듯 하다. 또한, 감춰둔 미실 고현정 하차에 대한 떡밥을 유신 엄태웅을 통해서 흘리고 있다. 유신 엄태웅과 함께 찍은 고현정의 의상을 보았을 때 근.현세 서양 검은색 장례복장이다.

당시에 미실 고현정은 서양도 드나들었나 보다. 덕만이 가지도 않은 타클라마카탄 사막을 드나는 것 만큼 허황되기는 하지만, 덕만은 그나마 극중 개연성이라도 있다. 하지만 미실의 복장은 뜸금이 없다.

어찌되었던 미실의 아름다운 죽음은 처음 기획한 아들 비담(김남길)에 의한 처형에서 자살로 결론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미실은 대야성으로 숨어들었을까? 드라마의 시놉시스와 극의 내용은 있으나 마나한 것이다. 배우의 인기도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50회로 선덕여왕에서 하차하는 고현정은 영화 <여배우들>을 홍보하는데 동분서주 할것 같다.

EBS에서 방송된 어린이 만화를 잠깐 동안 본적이 있다. 애니메이션 태권브이에서 나오는 깡통로봇처럼 생긴 주전자 돈데크만 타임머신로봇이 나와서 시간여행을 하며, 어린이들에게 세계 명작만화나 지리와 역사지식을 전해주는 추억의 만화영화였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돈테크만 타임로봇도 없이 시대를 초월하고, 공간을 넘나드는 신통력을 발휘를 한다. 주전자 로봇 돈테크만은 '돈데기리 기리 돈데기리" 주문이라도 외운다. 만화영화 아기공룡 둘리에서도 시간여행을 할려면 바이올린이라도 켜면서 칸타라삐타  주문을 외운다. 


만화에서도 시간과 공간을 건너뛰기 위해서는 <주문>이란 설정과 <도구>를 사용하고 <이동>하는 전환장면을 사용를 하여 극중 리얼리티를 살린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은 <주문>도 없고, 시간여행 도구도 없고, 이동장면도 없이 시대와 공간을 이동을 한다. 극중 리얼리티 제로인 드라마다.


선덕여왕 배역 연기력 논란에 부쳐

어떤 이들은 이런 선덕여왕 작가의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기 때문에 드라마 선덕여왕이 재미가 있고 인기가 있는것이라고 한다. 글쎄 인기와 드라마 이야기 구조와는 하등 상관관계가 없다. 베스트셀러가 된다고 해서 작품이 뛰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것과 극이 가지는 가치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어떤 사극이 시대를 앞서거니 뒤로 가거니 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지 알수가 없다.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게 보이는 건 그만큼 극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이는 건 극의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배우들의 연기 꼬투리 밖에 없다. 미실역에 김태희를 갖다 놔도 고현정 만큼은 못할 지라도 김태희 "연기력이 늘었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 미실 캐릭터 자체가 배우들에게는 매력적이다. 반면에 덕만역을 고현정이 맡아서 했다고 해서 이요원보다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 한마디로 캐릭터 배역이 50%는 먹고 들어간다 뜻이고
배역이 깡패라는 뜻이다.

어쨌든, 선덕여왕에서 소화가 미실의 은신처에서 훔쳐온 붉은 색 편지봉투에 쓰인 비밀이 밝혀진다. 정상적인 극의 흐름에서 미실이 설원에게 가지고 있으라던 "배신하지 않겠다"는 증표를 미실이 다시 받는 장면도 이야기의 허술함이 뭍어 나오는데, 이 편지를 소화가 신통력이 있게 발견을 하고, 남들 다 보이는 상태로 들고 다니는 설정을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47~48회에서 입을 닦아 버렸다.

49회에서는 소화가 이 편지에 관한 정보를 덕만에게 보고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이를 비담에서 찾아오도록 하는 장면이 예고로 나왔다. 비담으로 하여금 어머니 미실을 척살할수 밖에 없는 명분을 만들어 주고, 고뇌하는 비담을 보여주기 위한 감성모드이다. 문제는 소화가 죽방과 같이 미실의 은신처에서 탈출을 하고 덕만이 있는 산채로 도망쳤을때 이미 손에 진흥왕(이순재)의 유지가 담긴 미실척살명령이 비담도 보고 있었고, 산채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덕만을 만나는 순간 소화는 덕만에게 미실을 한방에 보낼수 있는 파괴력을 지닌 편지를 이야기 하지 않고, 후에 소화가 편지를 성황당 밑에 숨기고 나서 장소만을 공개했다는 설정은 아마추어도 하지 않는 발상이다.


사실 소화가 칠숙의 손에 이끌려 미실의 은신처에 보낼 필요도 없었고, 죽방이 신당에서 촛불이 밝혀진 비밀방을 찾아 나서지 않아도 되었다. 소화가 미실의 은신처에서 자석에 끌리듯 진흥왕의 미실척살명령 밀지를 발견할 개연성 제로에 가까운 스토리라인 0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덕만은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이라는 후반부의 예언을 조작한 적이 있다. 그러니 똑같이 죽방을 시켜서 진흥왕의 미실척살 밀지를 조작하여, 우매한 백성들은 프로파간다(선동.조작)를 하면 되었다. 이게 더 개연성있는 이야기 구조가 된다.

어찌되었던 소화의 편지 내용이 예고편에 공개되었다. 진흥왕이 죽어가던 순간에 설원에게 은밀한 밀명을 내린다. "신라의 적 미실을 척살하여 대의를 정립하라 - 무신년 3월" 진흥왕 (인) 이다. 여기서 또다시 일반인이 알 수 없는 <무신년>이 등장했다.

우리는 이럴때 무신년은 진흥왕 말년인 576년 경으로 알아야 하는게 정상적이다. 이는 임진왜란은 1592년에 일어 났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정유재란은 임진왜란이 있고, 다시 일본이 재침하는 때를 말하는 것 역사에 문외한이라도 쉬이 알수 있다. 만약, 임진왜란이 1950년에 일어났다고 한다면 어찌될까? 또는 임진왜란은 임진년(1592년)이 아닌 병자년에 일어난 청나라와 전쟁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럼 정말 <무신년>은 진흥왕 말년에 해당할까? 그렇게 알았다면 선덕여왕 작가를 너무 높게 본것이다. 선덕여왕 작가는 대한민국의 시청자들이 한자에 약하다는 사실을 쉬이 안다. 실제로 자신들도 모르기 때문에 시청자는 더더욱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신년이던 임술년이던 병자년이던, 건복원년이던, 기유년 미실의 난이던 상관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를 조합해서 한자를 쓸 수 있는 서예가에게 부탁을 하여 소품을 만들 뿐이다. 이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간지>에 불과하다.

그런데 한자를 사용하는 대만이나 한자가 익숙한 일본이라면 어찌될까? 한글을 읽듯이 편지들을 읽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웃어 버릴것이다. 도대체 한국에는 한자를 읽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다는 말인가? 이야기 구조가 허술한 극이 한국에서 인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것이다. 사실 일반 시청자가가 한자를 읽지도 못하고,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드라마 선덕여왕이 재미가 있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위에서 진흥왕의 미실척살 밀지를 차라리 덕만이 조작한 편지라고 해야 극의 흐름을 망치지 않고, 극중 개연성에도 맞고, 극중 리얼리티도 맞는다고 이야기를 했다. 만약, 덕만이 <무신년> 편지를 공개해서 귀족들과 신라 백성에게 덕만 자신이 대의의 있다고 공개했다면, 미실은 딱 한마디만 하면 된다. 덕만이 진흥대제의 위명을 빌어서 거짓된 말을 꾸미고 있다" 이는 역모다.  이렇게 되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덕만대신에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 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럼 천재적인 정치가이고, 외교관인 미실은 어떻게 진흥왕 미실척살 밀지가 조작된 내용임을 알게 되었을까? 이글을 끝까지 읽어보면 쉬이 알수 있다.

신라의 재현? 신라의 재앙

그럼 무신년은 언제인지 살펴보자. 진흥왕 시기에 무신년은 없다. <무신년>이 진흥왕 시기에 없다니 무슨 말이냐 설마 선덕여왕 작가와 제작진들이 이런 허술한 구성을 했을까? 의심하겠지만, 사실이다. 어쩌면 미실을 신라 최초 여왕에 등극시키기 위한 꼼수일지도 모른다. 현재 진행상으로 볼때 미실을 여왕으로 등극시키라는 시청자들의 봇물과 같은 이야기도 있는게 사실이다.

<무신년>은 언제일까?

AD528 무신戊申
신   라 :  법흥왕 15년
백   제 :  성왕 6년
고구려 :  안장왕 10년
AD588 무신戊申
신   라 :  진평왕 10년
백   제 :  위덕왕 35년
고구려 :  평원왕 30년

528년 법흥왕 15년이고, 588년 진평왕 10년이 <무신>년이다. 진흥왕은 귀신이 되어서 진평왕 10년까지 섭정을 하였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아니면 진흥왕이 588년 후에 왕이 되었던지 말이다. 무신년까지 진흥왕이 왕이였다면, 임술년(602년) 천명과 덕만이 태어난 어출쌍생이 맞을 수도 있을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조선시대 드라마 세종대왕을 만들면서 세종대왕은 없었고, 이성계가 1392년부터 1910년 고종이 일본에 국권을 빼앗길 때 까지 왕으로 있었다는 설정만큼 허황된 이야기다. 이런 선덕여왕 드라마 극이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 개인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실은 무신년 588년 진평왕 10년에 만들어진 덕만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하면, 덕만은 왕은 고사하고 미실 대신에 아름다운 종말을 맞이 해야하고 미실 고현정의 마지막 촬영이 아닌 덕만 이요원의 마지막 촬영이 될것이다. 어짜피 미실 고현정이 여왕이 되던, 덕만 이요원이 왕이 되던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관심이 없다. 미실이 덕만으로 이름을 바꾸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진흥왕 미실척살 밀명 <무신년>만 그렇다면 옥의티 정도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온 모든 <간지>는 하나 같이 다 틀렸다. 천명.덕만의 출생년인 602년 <임술년>, 비담의 출생년584년 <건복원년>, 미실의 난인 649년 <기유년>,진지왕(금륜)의 폐위년 579-->건복원년(584년), 신라 거칠부의 국사편찬년 등 역사 기록과 맞는게 하나도 없었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글 말미의 관련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KBS 삼국쥐전이라는 만화영화를 방영하였던 적이 있다. 아주 재밌는 만화영화인데 이 만화는 삼국지를 쥐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이 심상치가 않다. 전세계 유명한 인물들이 총출동한다. 상상력을 발휘할려면 이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KBS 삼국쥐전 배역 설명


드라마 선덕여왕 제작진들의 기획의도가 드라마 최초 <신라의 재현>을 하고 시청자로 하여금 신라를 알아 가게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제작진이나 작가는 신라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선덕여왕은 드라마 사상 최초의 <신라의 재현>은 고사하고, 드라마 사상 최초의 <신라의 재앙>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화랑세기의 기록과 동일한 기사를 찾는게 더 힘들다. 한마디로 이야기 구조가 만화 <삼국쥐전>보다도 못한 드라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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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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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둥이맘오리 2009.11.09 1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이 죽으면.... 전개가 빨라지겟네요....
    조금 지루한 부분이 잇긴 햇는데......
    갓쉰동님 글 잘보고 갑니다.....
    오늘 저녁엔 좀 기대되겟습니다....

  3. BlogIcon 글벌레 2009.11.09 1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devotionnoath.tistory.com/369 그러면 갓쉰동님께서도 위 링크에 제가 쓴 것처럼 끝 맺을 것으로 보시나요 ? 위 링크 글은 제가 바라지 않는 결말인데요 . 왜냐면 저렇게 되면 예쁜 덕만이 주인공이 아니고 비담이 주인공이잖아요 ㅠ ㅜ 그런데 드라마 흐름은 어찌 딱 저리 갈거 같다는 ........

    • BlogIcon 갓쉰동 2009.11.10 0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무도 모르지요.. 그때 마다 극을 바꾸는 현재 상황에선...
      쪽대본의 피해를 보고 있는 중입니당.. ㅋㅋ

  4. BlogIcon 도희. 2009.11.09 1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니 저 어릴 때 돈데크만 진짜 좋아했었습니다.
    읽다가 아는 만화영화가 나와서 혼자 잠시 추억에 잠겼어요..ㅋㅋㅋ

    삼국쥐전~ 캐릭터들 귀여운걸요~ㅎㅎㅎ

  5. 제목이... 2009.11.09 1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화 무시하나요 ㅋㅋㅋㅋㅋㅋ 그런데 글이 전체적으로 왜 이렇게 공감가는 내용인지 저 눈물이 다 날 지경입니다. 오그라드는 손발과 흔들리는 눈동자를 어렵게 붙잡고 드라마를 보고는 있지만 보면 볼수록 실망에 한숨에 허탈함만 늘어날 뿐이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10 0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만화를 왜 무시한다고 그러실깡..ㅋㅋㅋ 선덕여왕 작가를 무시하면 모를깡..
      만화를 높게 치고 있는거지요. 선덕여왕작가보다는.. ㅋㅋ

  6. BlogIcon 윤서아빠세상보기 2009.11.09 1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적으로는 어쟀거나 인기를 끌고 있지만
    신라의 역사를 알린다는 취지를 가졌다면
    이 부분에서는 실패했네요.

  7. BlogIcon skagns 2009.11.09 2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ㅎ 배역이 깡패라는 부분에서 뿜었네요.
    잘 보고 갑니다. 항상 감기 조심하시구 즐거운 하루 되세요!!

  8. 갓쉰동님 광팬 2009.11.09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알기로도 우리나라의 죽음을 상징하는 색은 흰색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 수의도 하얀색이고 귀신들이 입는 옷도 하얀색이구요. 검은색의 옷은 서양 사람들의 상징같은데 아닌가요??? ㅎㅎ 신라사람들은 서양사람들의 복식도 따라할만큼 개방적인 나라였군요. 흠...

    참고로 미실의 캐릭터 자체가 어느 배우를 붙여도 매력적이란 것에는 어느정도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전 고현정씨 팬이라서리 고현정 아닌 미실은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군요~^^

  9. znf 2009.11.09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란 부분을 포기하고 아예 태사기 처럼 환타지를 표방했더라면 좀 나았을 것을 ㅎ

    허나 개의치 않고 재밌게 보는 중이죠 ㅋㅋ
    길거리 불량식품이 않좋은거 알면서도 맛나게 먹는 심리랄까 ㅎㅎ^^

    허나 역사드라마와 실존 인물이었던 선덕여왕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책임이 따라야 하는 법인데 제작진이 막가파로 나간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10 0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태사기는 판타지를 표방하지만 기본적인 골격은 유지합니당.. 재현하겠다는 드라마는 역사적으로 볼게 없지만.. 태사기는 볼게 많다는 아이러니.. 태사기를 목욕시키는 것임.. ㅋㅋ

  10. ㅇㄴㅇ 2009.11.09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간단한 해결법이 있는데....
    역사적사실과 같지 않다라는 글을 드라마 도입부분에 꼭 깔아줘야할 드라마인데...............
    재미는 있지만 볼때마다 아쉽다는........

  11. 부모님은 뭘하죠? 2009.11.09 2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시간이면 집에서 애 혼자 드라마 보는것도 아닐꺼고;;
    다큰어른이면 리얼리티가 아닐껀 다알꺼고

    전 어린 동생에게 항상 이야기해줍니다..
    이 역사 드라마의 모든게 사실은 아니라고
    그리고 인터넷에서본 삼국사기 이야기를 조금씩 이야기해줍니다
    (분명 이것도 100%는 다 아니라고 덧붙이죠)

    지금 드라마 보는 건 아이들뿐만 아니라 함께인데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도록 이끌어줘야할듯하네요

    자기가 할일을 티비에게만 미루지말구요...

    아이들에게 드라마로인해 재미로 역사에게 다가가면서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올바르게 알수있도록 이끌어주는것도 좋은 방도일듯하네요

    티비가 저래서..
    만화보다 못하니 어쩌니 하는것보다는요^^

    (설마 어른들도 다 믿고 있을리는 없을테니까요)

    만화책만이 전부인걸로 아는 아이들이 아닌것처럼..요즘아이들 티비만을 모두 믿지만은 않는답니다.
    그러니..
    역사재앙으로 만든 드라마니 어쩌니 하지말고
    신라시대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재밌게 풀어낸 이야기를 재밋게 보고
    (드라마답게 - 역사스페셜이 아니죠 ^^)

    올바른 역사는 스.스.로 찾아보는것도 좋을듯하네요..
    쥔장님 글도 좋아요. 저도 찾아보면서 잘못된점 보면서 동생에게 이야기 해줄수 있으니까요
    대신 만화보다 못하니(정말 만화무시하시나요?^^)
    어쩌니란 말은 삼가해주시길.

    • BlogIcon 갓쉰동 2009.11.10 0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문제는 부모도작가도 역사지식이 없다는 겁니당. 님처럼 찾아보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겠어요..

      쉽게 작가가 잘 쓰면 찾아볼 필요도 없는것을..왜 생고생을 합니까..

      극으로써 낙제점이고..사극으로서는 쓰레기통에 들어가야할 거에용.. 인기 있는 이유는 단지 시청자가 무지해서 예용.. 다른것 없음..현대극이람.. 퇴출 1순위였을 겁니다.. 저야 알고 보니 더 잼있지만.. ㅋㅋ

    • 피차일반 2009.11.11 1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시청자 조사 하지 않는 이상, 역사인식 없는 사람이 몇 명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논거로는 쓸 수 없지요. 누군가를 신랄히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다른 사람의 비판으로 배울 생각은 없고 오로지 찬양, 찬양만을 얻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지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12 0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소한 님과 여기 댓글로 무지를 스스럼 없이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알겠어용.. 됬지용..

  12. 아니...... 2009.11.09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가 사실만을 취급한다면
    그건 다큐멘터리의 재현에 불과합니다
    역사적 지식을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은 충분히 많거든요
    드라마는 픽션인데요
    어짜피 허구성을 깔고 가는거죠

  13. BlogIcon montreal florist 2009.11.10 0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참재밌는데, 시간은 실제와 만이 다르군여

  14. tjsdud 2009.11.10 05: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자.. 는 말에 전적 동의합니다만..
    또 이런 사실에 근거한 이의제기에도 동의합니다.

    보는 사람은 본인도 모르게 드라마가 사실인듯 생각하게 될 가능성도 큰데..
    이런 글이라도 있어야.. 드라마일 뿐이라는 것을 다시 인식하게 되겠지요..

    선덕여왕이라는 제목이라는게.. 좀.. 아쉽긴 하지만..
    차라리 역사에 있지 않은 인물을 내세웠다면 좀더 몰입해서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드라마 자체는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더구나 비담.. 참 멋있는데..
    앞으로 악역이 될 것 같아서 좀.. 많이많이 아쉽습니다.

    전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네요..

    역사적인 사실로 보기에는.... 좀... ㅎㅎㅎ

    드라마로 보면서 즐겁게 보고싶습니다만..
    만약 외국으로 진출하게 된다면..
    제목을 바꾸어서 나갔으면 하는 바램이 있긴 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10 06: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드라마로써 막장이란 말인뎅.. 드라마로 보자니.. ㅋㅋ 현대극으로 함 바꿔보셈.. 이미 사극수준을 넘은 사기극이지만.. ㅋ 드라마의 기초도 안된 드라마가 사극의 탈을 쓴겁니당.. ㅋㅋ 이게 용인되는건.. 간간히 댓글로 무식을 티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님은 아니지만..ㅋㅋ

  15. andrew 2009.11.10 0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몬소린지....비평도 적당히 하시지...보기 싫으면 말든가..
    배경이 깡패라구? 그럼 너를 기업 사장자리에 앉히면 잘할거 같냐?? 비 이 영 신...
    나도 선덕여왕의 너무 개연성이 없는 전개를 하고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미행과 우연히 보는 것이 너무 많으니까...글치만 너가 쓴 말처럼 개판은 아닌거 같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10 0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 달 능력이 안되면 달지를 말던가.. 바보 인증하는 것도 아니공.. 세상은 넓고.. 붕어들은 널렸으니 선덕여왕 작가가 미친짓을 하는 겁니당.. 당신같은 무지한 사람들 때문에.. 별 갖잖은 댓글은 왜 다는지 모르겠넹..

  16. BlogIcon 예스비™ 2009.11.10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의 역사는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런지 왠만해선 역사적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데...
    삼국시대의 이야기라서 그럴까요?
    역사 드라마인데... 역사의기본틀은 깨지 말았어야 되는데 말이죠...
    작가가 자료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한 듯 보이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10 1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르면 더 신중해야 되는뎅.. 없는 사료조차 스레기 통에 처 박아 버리는 몰염치라니.. 대단해용.. ㅋㅋ

  17. 그노시스 2009.11.10 1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미실이었다면 그 문서를 냉큼 태워버렸을 듯.
    왜 계속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냥 창작 사극 드라마 한 편 감상하는 셈 치고 보고 있음.
    근데, 삼국쥐전 저런 것도 있었나요. ^^
    기발한 아이디어로 재미있었을 듯 합니다.
    특히 쥐레오파트라 어디서 온거야. ㅋㅋㅎ

  18. BlogIcon 카타리나^^ 2009.11.10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문서를 없애지 않고 가지고 있었던 이유가 있기를 바래봅니다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기를...ㅎㅎㅎ

    근데 캐릭터가 좋았던것은 인정하지만
    거기에 김태희를 붙여도 연기 늘었네.....라는 말이 나온다는건 영...
    전 어떤 캐릭터에도 김태희 연기 늘었네 소리가 안 나올거 같다는 ㅡㅡ;;

    • BlogIcon 갓쉰동 2009.11.10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올걸용.. 김태희식 미실이 될테니용..
      요즘 김태희 연기 늘었다 아니다 이야기 많잖아요.. 아이리스 땜시.. 저야 배우들 연기에는 관심이 없지만. 정말아닌경우를 빼고 나면.. ㅋㅋ
      문서를 가지고 노는 특별한 이유는 계속 낚시를 위해서.. ㅋㅋ 어제도 낚시를 하잖아요.. 비담도 낚고.. ㅋㅋ

  19. 리플은쓰레기 2009.11.12 0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은 좀 잘적으시더니 리플은 쓰레기로 다시네요.
    에혀..

    • BlogIcon 갓쉰동 2009.11.12 0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춤형 서비스 입니다.. 댓글을 잘 달면 답글도 자 달아용.. 님처럼 쓰레기 댓글 달면 그에 맞춰 드립니다.. ㅋㅋ

  20. 미실이 안궁금해 2009.11.17 1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깐따 삐~야~ ...입니다

  21. 생각의차이가세상을바꿔요 2009.11.19 09: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판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뭐든 비판할 것으로 비춰지게 되지만, 반대의 입장이라면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도 좀 더 훈훈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역사의 사실에서 많이 다르지 않게 드라마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입니다. 역사교육용 비디오가 아니지요.

    실제 역사와는 많은 다른 사실들이 있을지라도 드라마로 인해서 신라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그리고 실제 역사의 내용들은 관심만 조금 가지면 인터넷에서 얼마던지 찾아 볼 수 있는 세상입니다. 굳이 국립도서관 같은 데서 찾아 보지 않아도 되는거죠.

    저는 아이들이 셋이 있는데, 아이들이 자명고도 무척이나 좋아했고, 지금도 선덕여왕을 무척 좋아합니다. 두 드라마로 인해서 아이들은 역사에 무척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드라마가 실제 역사와 다른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오히려 그런점을 이용해 아이들이 스스로 역사에 관련된 책을 통해서 올바른 내용을 알아가도록 유도합니다. 아이들은 친구들은 모를지도 모를 실제 내용을 알아간다는 마음이 있기때문일지 몰라도 정말 좋아하고 열심입니다.

    님의 이글을 접하게 된것도 아이들이 진덕여왕이랑 선덕여왕이랑 어떤 관계인지를 물어서 그에 대한 내용을 서핑하다가 찾아오게 된 것이죠. 세상을 굳이 15도 기울여 놓고 들여달 볼 필요는 없을것 같습니다. 본인도 씁쓸하고, 남들도 씁쓸하게 만들죠.

    • BlogIcon 갓쉰동 2009.11.19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적절한 내용이면 저의 블로그에 찾아오지 않아도 되겠지요.. 님의 수고는 제가 글을 쓰는 의도와 일맥상통합니다만..

      님처럼 찾아보는 사람을 위한 글입니다..이런글은 안쓰게 하는게 사극을 만드는 자들이 할일 이지요..

      님과는 다른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게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만약, 님이 찾아보지 않았다면 알수 있겠습니까? ㅋㅋ 50%가 넘는 사람중 찾아보시는 분은 극소수라는 뜻입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50회로 미실(고현정)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다. 그래서 미실 고현정의 아름다운 하차를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는 듯 하다. 또한, 감춰둔 미실 고현정 하차에 대한 떡밥을 유신 엄태웅을 통해서 흘리고 있다. 유신 엄태웅과 함께 찍은 고현정의 의상을 보았을 때 근.현세 서양 검은색 장례복장이다.

당시에 미실 고현정은 서양도 드나들었나 보다. 덕만이 가지도 않은 타클라마카탄 사막을 드나는 것 만큼 허황되기는 하지만, 덕만은 그나마 극중 개연성이라도 있다. 하지만 미실의 복장은 뜸금이 없다.

어찌되었던 미실의 아름다운 죽음은 처음 기획한 아들 비담(김남길)에 의한 처형에서 자살로 결론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미실은 대야성으로 숨어들었을까? 드라마의 시놉시스와 극의 내용은 있으나 마나한 것이다. 배우의 인기도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50회로 선덕여왕에서 하차하는 고현정은 영화 <여배우들>을 홍보하는데 동분서주 할것 같다.

EBS에서 방송된 어린이 만화를 잠깐 동안 본적이 있다. 애니메이션 태권브이에서 나오는 깡통로봇처럼 생긴 주전자 돈데크만 타임머신로봇이 나와서 시간여행을 하며, 어린이들에게 세계 명작만화나 지리와 역사지식을 전해주는 추억의 만화영화였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돈테크만 타임로봇도 없이 시대를 초월하고, 공간을 넘나드는 신통력을 발휘를 한다. 주전자 로봇 돈테크만은 '돈데기리 기리 돈데기리" 주문이라도 외운다. 만화영화 아기공룡 둘리에서도 시간여행을 할려면 바이올린이라도 켜면서 칸타라삐타  주문을 외운다. 


만화에서도 시간과 공간을 건너뛰기 위해서는 <주문>이란 설정과 <도구>를 사용하고 <이동>하는 전환장면을 사용를 하여 극중 리얼리티를 살린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은 <주문>도 없고, 시간여행 도구도 없고, 이동장면도 없이 시대와 공간을 이동을 한다. 극중 리얼리티 제로인 드라마다.


선덕여왕 배역 연기력 논란에 부쳐

어떤 이들은 이런 선덕여왕 작가의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기 때문에 드라마 선덕여왕이 재미가 있고 인기가 있는것이라고 한다. 글쎄 인기와 드라마 이야기 구조와는 하등 상관관계가 없다. 베스트셀러가 된다고 해서 작품이 뛰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것과 극이 가지는 가치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어떤 사극이 시대를 앞서거니 뒤로 가거니 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지 알수가 없다.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게 보이는 건 그만큼 극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이는 건 극의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배우들의 연기 꼬투리 밖에 없다. 미실역에 김태희를 갖다 놔도 고현정 만큼은 못할 지라도 김태희 "연기력이 늘었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 미실 캐릭터 자체가 배우들에게는 매력적이다. 반면에 덕만역을 고현정이 맡아서 했다고 해서 이요원보다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 한마디로 캐릭터 배역이 50%는 먹고 들어간다 뜻이고
배역이 깡패라는 뜻이다.

어쨌든, 선덕여왕에서 소화가 미실의 은신처에서 훔쳐온 붉은 색 편지봉투에 쓰인 비밀이 밝혀진다. 정상적인 극의 흐름에서 미실이 설원에게 가지고 있으라던 "배신하지 않겠다"는 증표를 미실이 다시 받는 장면도 이야기의 허술함이 뭍어 나오는데, 이 편지를 소화가 신통력이 있게 발견을 하고, 남들 다 보이는 상태로 들고 다니는 설정을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47~48회에서 입을 닦아 버렸다.

49회에서는 소화가 이 편지에 관한 정보를 덕만에게 보고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이를 비담에서 찾아오도록 하는 장면이 예고로 나왔다. 비담으로 하여금 어머니 미실을 척살할수 밖에 없는 명분을 만들어 주고, 고뇌하는 비담을 보여주기 위한 감성모드이다. 문제는 소화가 죽방과 같이 미실의 은신처에서 탈출을 하고 덕만이 있는 산채로 도망쳤을때 이미 손에 진흥왕(이순재)의 유지가 담긴 미실척살명령이 비담도 보고 있었고, 산채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덕만을 만나는 순간 소화는 덕만에게 미실을 한방에 보낼수 있는 파괴력을 지닌 편지를 이야기 하지 않고, 후에 소화가 편지를 성황당 밑에 숨기고 나서 장소만을 공개했다는 설정은 아마추어도 하지 않는 발상이다.


사실 소화가 칠숙의 손에 이끌려 미실의 은신처에 보낼 필요도 없었고, 죽방이 신당에서 촛불이 밝혀진 비밀방을 찾아 나서지 않아도 되었다. 소화가 미실의 은신처에서 자석에 끌리듯 진흥왕의 미실척살명령 밀지를 발견할 개연성 제로에 가까운 스토리라인 0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덕만은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이라는 후반부의 예언을 조작한 적이 있다. 그러니 똑같이 죽방을 시켜서 진흥왕의 미실척살 밀지를 조작하여, 우매한 백성들은 프로파간다(선동.조작)를 하면 되었다. 이게 더 개연성있는 이야기 구조가 된다.

어찌되었던 소화의 편지 내용이 예고편에 공개되었다. 진흥왕이 죽어가던 순간에 설원에게 은밀한 밀명을 내린다. "신라의 적 미실을 척살하여 대의를 정립하라 - 무신년 3월" 진흥왕 (인) 이다. 여기서 또다시 일반인이 알 수 없는 <무신년>이 등장했다.

우리는 이럴때 무신년은 진흥왕 말년인 576년 경으로 알아야 하는게 정상적이다. 이는 임진왜란은 1592년에 일어 났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정유재란은 임진왜란이 있고, 다시 일본이 재침하는 때를 말하는 것 역사에 문외한이라도 쉬이 알수 있다. 만약, 임진왜란이 1950년에 일어났다고 한다면 어찌될까? 또는 임진왜란은 임진년(1592년)이 아닌 병자년에 일어난 청나라와 전쟁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럼 정말 <무신년>은 진흥왕 말년에 해당할까? 그렇게 알았다면 선덕여왕 작가를 너무 높게 본것이다. 선덕여왕 작가는 대한민국의 시청자들이 한자에 약하다는 사실을 쉬이 안다. 실제로 자신들도 모르기 때문에 시청자는 더더욱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신년이던 임술년이던 병자년이던, 건복원년이던, 기유년 미실의 난이던 상관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를 조합해서 한자를 쓸 수 있는 서예가에게 부탁을 하여 소품을 만들 뿐이다. 이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간지>에 불과하다.

그런데 한자를 사용하는 대만이나 한자가 익숙한 일본이라면 어찌될까? 한글을 읽듯이 편지들을 읽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웃어 버릴것이다. 도대체 한국에는 한자를 읽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다는 말인가? 이야기 구조가 허술한 극이 한국에서 인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것이다. 사실 일반 시청자가가 한자를 읽지도 못하고,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드라마 선덕여왕이 재미가 있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위에서 진흥왕의 미실척살 밀지를 차라리 덕만이 조작한 편지라고 해야 극의 흐름을 망치지 않고, 극중 개연성에도 맞고, 극중 리얼리티도 맞는다고 이야기를 했다. 만약, 덕만이 <무신년> 편지를 공개해서 귀족들과 신라 백성에게 덕만 자신이 대의의 있다고 공개했다면, 미실은 딱 한마디만 하면 된다. 덕만이 진흥대제의 위명을 빌어서 거짓된 말을 꾸미고 있다" 이는 역모다.  이렇게 되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덕만대신에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 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럼 천재적인 정치가이고, 외교관인 미실은 어떻게 진흥왕 미실척살 밀지가 조작된 내용임을 알게 되었을까? 이글을 끝까지 읽어보면 쉬이 알수 있다.

신라의 재현? 신라의 재앙

그럼 무신년은 언제인지 살펴보자. 진흥왕 시기에 무신년은 없다. <무신년>이 진흥왕 시기에 없다니 무슨 말이냐 설마 선덕여왕 작가와 제작진들이 이런 허술한 구성을 했을까? 의심하겠지만, 사실이다. 어쩌면 미실을 신라 최초 여왕에 등극시키기 위한 꼼수일지도 모른다. 현재 진행상으로 볼때 미실을 여왕으로 등극시키라는 시청자들의 봇물과 같은 이야기도 있는게 사실이다.

<무신년>은 언제일까?

AD528 무신戊申
신   라 :  법흥왕 15년
백   제 :  성왕 6년
고구려 :  안장왕 10년
AD588 무신戊申
신   라 :  진평왕 10년
백   제 :  위덕왕 35년
고구려 :  평원왕 30년

528년 법흥왕 15년이고, 588년 진평왕 10년이 <무신>년이다. 진흥왕은 귀신이 되어서 진평왕 10년까지 섭정을 하였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아니면 진흥왕이 588년 후에 왕이 되었던지 말이다. 무신년까지 진흥왕이 왕이였다면, 임술년(602년) 천명과 덕만이 태어난 어출쌍생이 맞을 수도 있을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조선시대 드라마 세종대왕을 만들면서 세종대왕은 없었고, 이성계가 1392년부터 1910년 고종이 일본에 국권을 빼앗길 때 까지 왕으로 있었다는 설정만큼 허황된 이야기다. 이런 선덕여왕 드라마 극이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 개인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실은 무신년 588년 진평왕 10년에 만들어진 덕만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하면, 덕만은 왕은 고사하고 미실 대신에 아름다운 종말을 맞이 해야하고 미실 고현정의 마지막 촬영이 아닌 덕만 이요원의 마지막 촬영이 될것이다. 어짜피 미실 고현정이 여왕이 되던, 덕만 이요원이 왕이 되던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관심이 없다. 미실이 덕만으로 이름을 바꾸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진흥왕 미실척살 밀명 <무신년>만 그렇다면 옥의티 정도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온 모든 <간지>는 하나 같이 다 틀렸다. 천명.덕만의 출생년인 602년 <임술년>, 비담의 출생년584년 <건복원년>, 미실의 난인 649년 <기유년>,진지왕(금륜)의 폐위년 579-->건복원년(584년), 신라 거칠부의 국사편찬년 등 역사 기록과 맞는게 하나도 없었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글 말미의 관련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KBS 삼국쥐전이라는 만화영화를 방영하였던 적이 있다. 아주 재밌는 만화영화인데 이 만화는 삼국지를 쥐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이 심상치가 않다. 전세계 유명한 인물들이 총출동한다. 상상력을 발휘할려면 이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KBS 삼국쥐전 배역 설명


드라마 선덕여왕 제작진들의 기획의도가 드라마 최초 <신라의 재현>을 하고 시청자로 하여금 신라를 알아 가게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제작진이나 작가는 신라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선덕여왕은 드라마 사상 최초의 <신라의 재현>은 고사하고, 드라마 사상 최초의 <신라의 재앙>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화랑세기의 기록과 동일한 기사를 찾는게 더 힘들다. 한마디로 이야기 구조가 만화 <삼국쥐전>보다도 못한 드라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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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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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둥이맘오리 2009.11.09 1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이 죽으면.... 전개가 빨라지겟네요....
    조금 지루한 부분이 잇긴 햇는데......
    갓쉰동님 글 잘보고 갑니다.....
    오늘 저녁엔 좀 기대되겟습니다....

  3. BlogIcon 글벌레 2009.11.09 1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devotionnoath.tistory.com/369 그러면 갓쉰동님께서도 위 링크에 제가 쓴 것처럼 끝 맺을 것으로 보시나요 ? 위 링크 글은 제가 바라지 않는 결말인데요 . 왜냐면 저렇게 되면 예쁜 덕만이 주인공이 아니고 비담이 주인공이잖아요 ㅠ ㅜ 그런데 드라마 흐름은 어찌 딱 저리 갈거 같다는 ........

    • BlogIcon 갓쉰동 2009.11.10 0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무도 모르지요.. 그때 마다 극을 바꾸는 현재 상황에선...
      쪽대본의 피해를 보고 있는 중입니당.. ㅋㅋ

  4. BlogIcon 도희. 2009.11.09 1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니 저 어릴 때 돈데크만 진짜 좋아했었습니다.
    읽다가 아는 만화영화가 나와서 혼자 잠시 추억에 잠겼어요..ㅋㅋㅋ

    삼국쥐전~ 캐릭터들 귀여운걸요~ㅎㅎㅎ

  5. 제목이... 2009.11.09 1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화 무시하나요 ㅋㅋㅋㅋㅋㅋ 그런데 글이 전체적으로 왜 이렇게 공감가는 내용인지 저 눈물이 다 날 지경입니다. 오그라드는 손발과 흔들리는 눈동자를 어렵게 붙잡고 드라마를 보고는 있지만 보면 볼수록 실망에 한숨에 허탈함만 늘어날 뿐이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10 0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만화를 왜 무시한다고 그러실깡..ㅋㅋㅋ 선덕여왕 작가를 무시하면 모를깡..
      만화를 높게 치고 있는거지요. 선덕여왕작가보다는.. ㅋㅋ

  6. BlogIcon 윤서아빠세상보기 2009.11.09 1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적으로는 어쟀거나 인기를 끌고 있지만
    신라의 역사를 알린다는 취지를 가졌다면
    이 부분에서는 실패했네요.

  7. BlogIcon skagns 2009.11.09 2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ㅎ 배역이 깡패라는 부분에서 뿜었네요.
    잘 보고 갑니다. 항상 감기 조심하시구 즐거운 하루 되세요!!

  8. 갓쉰동님 광팬 2009.11.09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알기로도 우리나라의 죽음을 상징하는 색은 흰색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 수의도 하얀색이고 귀신들이 입는 옷도 하얀색이구요. 검은색의 옷은 서양 사람들의 상징같은데 아닌가요??? ㅎㅎ 신라사람들은 서양사람들의 복식도 따라할만큼 개방적인 나라였군요. 흠...

    참고로 미실의 캐릭터 자체가 어느 배우를 붙여도 매력적이란 것에는 어느정도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전 고현정씨 팬이라서리 고현정 아닌 미실은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군요~^^

  9. znf 2009.11.09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란 부분을 포기하고 아예 태사기 처럼 환타지를 표방했더라면 좀 나았을 것을 ㅎ

    허나 개의치 않고 재밌게 보는 중이죠 ㅋㅋ
    길거리 불량식품이 않좋은거 알면서도 맛나게 먹는 심리랄까 ㅎㅎ^^

    허나 역사드라마와 실존 인물이었던 선덕여왕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책임이 따라야 하는 법인데 제작진이 막가파로 나간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10 0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태사기는 판타지를 표방하지만 기본적인 골격은 유지합니당.. 재현하겠다는 드라마는 역사적으로 볼게 없지만.. 태사기는 볼게 많다는 아이러니.. 태사기를 목욕시키는 것임.. ㅋㅋ

  10. ㅇㄴㅇ 2009.11.09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간단한 해결법이 있는데....
    역사적사실과 같지 않다라는 글을 드라마 도입부분에 꼭 깔아줘야할 드라마인데...............
    재미는 있지만 볼때마다 아쉽다는........

  11. 부모님은 뭘하죠? 2009.11.09 2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시간이면 집에서 애 혼자 드라마 보는것도 아닐꺼고;;
    다큰어른이면 리얼리티가 아닐껀 다알꺼고

    전 어린 동생에게 항상 이야기해줍니다..
    이 역사 드라마의 모든게 사실은 아니라고
    그리고 인터넷에서본 삼국사기 이야기를 조금씩 이야기해줍니다
    (분명 이것도 100%는 다 아니라고 덧붙이죠)

    지금 드라마 보는 건 아이들뿐만 아니라 함께인데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도록 이끌어줘야할듯하네요

    자기가 할일을 티비에게만 미루지말구요...

    아이들에게 드라마로인해 재미로 역사에게 다가가면서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올바르게 알수있도록 이끌어주는것도 좋은 방도일듯하네요

    티비가 저래서..
    만화보다 못하니 어쩌니 하는것보다는요^^

    (설마 어른들도 다 믿고 있을리는 없을테니까요)

    만화책만이 전부인걸로 아는 아이들이 아닌것처럼..요즘아이들 티비만을 모두 믿지만은 않는답니다.
    그러니..
    역사재앙으로 만든 드라마니 어쩌니 하지말고
    신라시대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재밌게 풀어낸 이야기를 재밋게 보고
    (드라마답게 - 역사스페셜이 아니죠 ^^)

    올바른 역사는 스.스.로 찾아보는것도 좋을듯하네요..
    쥔장님 글도 좋아요. 저도 찾아보면서 잘못된점 보면서 동생에게 이야기 해줄수 있으니까요
    대신 만화보다 못하니(정말 만화무시하시나요?^^)
    어쩌니란 말은 삼가해주시길.

    • BlogIcon 갓쉰동 2009.11.10 0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문제는 부모도작가도 역사지식이 없다는 겁니당. 님처럼 찾아보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겠어요..

      쉽게 작가가 잘 쓰면 찾아볼 필요도 없는것을..왜 생고생을 합니까..

      극으로써 낙제점이고..사극으로서는 쓰레기통에 들어가야할 거에용.. 인기 있는 이유는 단지 시청자가 무지해서 예용.. 다른것 없음..현대극이람.. 퇴출 1순위였을 겁니다.. 저야 알고 보니 더 잼있지만.. ㅋㅋ

    • 피차일반 2009.11.11 1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시청자 조사 하지 않는 이상, 역사인식 없는 사람이 몇 명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논거로는 쓸 수 없지요. 누군가를 신랄히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다른 사람의 비판으로 배울 생각은 없고 오로지 찬양, 찬양만을 얻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지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12 0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소한 님과 여기 댓글로 무지를 스스럼 없이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알겠어용.. 됬지용..

  12. 아니...... 2009.11.09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가 사실만을 취급한다면
    그건 다큐멘터리의 재현에 불과합니다
    역사적 지식을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은 충분히 많거든요
    드라마는 픽션인데요
    어짜피 허구성을 깔고 가는거죠

  13. BlogIcon montreal florist 2009.11.10 0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참재밌는데, 시간은 실제와 만이 다르군여

  14. tjsdud 2009.11.10 05: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자.. 는 말에 전적 동의합니다만..
    또 이런 사실에 근거한 이의제기에도 동의합니다.

    보는 사람은 본인도 모르게 드라마가 사실인듯 생각하게 될 가능성도 큰데..
    이런 글이라도 있어야.. 드라마일 뿐이라는 것을 다시 인식하게 되겠지요..

    선덕여왕이라는 제목이라는게.. 좀.. 아쉽긴 하지만..
    차라리 역사에 있지 않은 인물을 내세웠다면 좀더 몰입해서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드라마 자체는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더구나 비담.. 참 멋있는데..
    앞으로 악역이 될 것 같아서 좀.. 많이많이 아쉽습니다.

    전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네요..

    역사적인 사실로 보기에는.... 좀... ㅎㅎㅎ

    드라마로 보면서 즐겁게 보고싶습니다만..
    만약 외국으로 진출하게 된다면..
    제목을 바꾸어서 나갔으면 하는 바램이 있긴 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10 06: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드라마로써 막장이란 말인뎅.. 드라마로 보자니.. ㅋㅋ 현대극으로 함 바꿔보셈.. 이미 사극수준을 넘은 사기극이지만.. ㅋ 드라마의 기초도 안된 드라마가 사극의 탈을 쓴겁니당.. ㅋㅋ 이게 용인되는건.. 간간히 댓글로 무식을 티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님은 아니지만..ㅋㅋ

  15. andrew 2009.11.10 0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몬소린지....비평도 적당히 하시지...보기 싫으면 말든가..
    배경이 깡패라구? 그럼 너를 기업 사장자리에 앉히면 잘할거 같냐?? 비 이 영 신...
    나도 선덕여왕의 너무 개연성이 없는 전개를 하고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미행과 우연히 보는 것이 너무 많으니까...글치만 너가 쓴 말처럼 개판은 아닌거 같다..

    • BlogIcon 갓쉰동 2009.11.10 0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 달 능력이 안되면 달지를 말던가.. 바보 인증하는 것도 아니공.. 세상은 넓고.. 붕어들은 널렸으니 선덕여왕 작가가 미친짓을 하는 겁니당.. 당신같은 무지한 사람들 때문에.. 별 갖잖은 댓글은 왜 다는지 모르겠넹..

  16. BlogIcon 예스비™ 2009.11.10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의 역사는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런지 왠만해선 역사적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데...
    삼국시대의 이야기라서 그럴까요?
    역사 드라마인데... 역사의기본틀은 깨지 말았어야 되는데 말이죠...
    작가가 자료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한 듯 보이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11.10 1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르면 더 신중해야 되는뎅.. 없는 사료조차 스레기 통에 처 박아 버리는 몰염치라니.. 대단해용.. ㅋㅋ

  17. 그노시스 2009.11.10 1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미실이었다면 그 문서를 냉큼 태워버렸을 듯.
    왜 계속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냥 창작 사극 드라마 한 편 감상하는 셈 치고 보고 있음.
    근데, 삼국쥐전 저런 것도 있었나요. ^^
    기발한 아이디어로 재미있었을 듯 합니다.
    특히 쥐레오파트라 어디서 온거야. ㅋㅋㅎ

  18. BlogIcon 카타리나^^ 2009.11.10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문서를 없애지 않고 가지고 있었던 이유가 있기를 바래봅니다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기를...ㅎㅎㅎ

    근데 캐릭터가 좋았던것은 인정하지만
    거기에 김태희를 붙여도 연기 늘었네.....라는 말이 나온다는건 영...
    전 어떤 캐릭터에도 김태희 연기 늘었네 소리가 안 나올거 같다는 ㅡㅡ;;

    • BlogIcon 갓쉰동 2009.11.10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올걸용.. 김태희식 미실이 될테니용..
      요즘 김태희 연기 늘었다 아니다 이야기 많잖아요.. 아이리스 땜시.. 저야 배우들 연기에는 관심이 없지만. 정말아닌경우를 빼고 나면.. ㅋㅋ
      문서를 가지고 노는 특별한 이유는 계속 낚시를 위해서.. ㅋㅋ 어제도 낚시를 하잖아요.. 비담도 낚고.. ㅋㅋ

  19. 리플은쓰레기 2009.11.12 0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은 좀 잘적으시더니 리플은 쓰레기로 다시네요.
    에혀..

    • BlogIcon 갓쉰동 2009.11.12 0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춤형 서비스 입니다.. 댓글을 잘 달면 답글도 자 달아용.. 님처럼 쓰레기 댓글 달면 그에 맞춰 드립니다.. ㅋㅋ

  20. 미실이 안궁금해 2009.11.17 1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깐따 삐~야~ ...입니다

  21. 생각의차이가세상을바꿔요 2009.11.19 09: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판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뭐든 비판할 것으로 비춰지게 되지만, 반대의 입장이라면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도 좀 더 훈훈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역사의 사실에서 많이 다르지 않게 드라마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입니다. 역사교육용 비디오가 아니지요.

    실제 역사와는 많은 다른 사실들이 있을지라도 드라마로 인해서 신라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그리고 실제 역사의 내용들은 관심만 조금 가지면 인터넷에서 얼마던지 찾아 볼 수 있는 세상입니다. 굳이 국립도서관 같은 데서 찾아 보지 않아도 되는거죠.

    저는 아이들이 셋이 있는데, 아이들이 자명고도 무척이나 좋아했고, 지금도 선덕여왕을 무척 좋아합니다. 두 드라마로 인해서 아이들은 역사에 무척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드라마가 실제 역사와 다른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오히려 그런점을 이용해 아이들이 스스로 역사에 관련된 책을 통해서 올바른 내용을 알아가도록 유도합니다. 아이들은 친구들은 모를지도 모를 실제 내용을 알아간다는 마음이 있기때문일지 몰라도 정말 좋아하고 열심입니다.

    님의 이글을 접하게 된것도 아이들이 진덕여왕이랑 선덕여왕이랑 어떤 관계인지를 물어서 그에 대한 내용을 서핑하다가 찾아오게 된 것이죠. 세상을 굳이 15도 기울여 놓고 들여달 볼 필요는 없을것 같습니다. 본인도 씁쓸하고, 남들도 씁쓸하게 만들죠.

    • BlogIcon 갓쉰동 2009.11.19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적절한 내용이면 저의 블로그에 찾아오지 않아도 되겠지요.. 님의 수고는 제가 글을 쓰는 의도와 일맥상통합니다만..

      님처럼 찾아보는 사람을 위한 글입니다..이런글은 안쓰게 하는게 사극을 만드는 자들이 할일 이지요..

      님과는 다른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게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만약, 님이 찾아보지 않았다면 알수 있겠습니까? ㅋㅋ 50%가 넘는 사람중 찾아보시는 분은 극소수라는 뜻입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세종과 미실의 아들로 나오는 하종은 어리숙하면서도 아버지가 다른 나이어린 보종에 대해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또한, 미실의 정부(?)인 설원랑(전노민)에 대해서는 비호감의 감정을 스스럼 없이 분출하고 있다. 왕인 진평에게나 왕비인 마야에게도 맘에 안들면 치받아 버린다.

김정현이 하종 배역을 맡고 있는데, 어쩜저리 어리숙하고, 찌질하게 연기를 잘하는지 보는 내내 웃음을 짓게 한다.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인물중에서 미워할 수 없는 악역중에 일인이라고 하겠다. 


선덕여왕에서 상천관 서리(송옥숙)이 미실(고현정)이 건낸 사약(?)을 먹고 죽는다. 그 뒤를 이어서 서리의 보조 신녀인 설매가 상천관의 지위를 계승하였다. 설매역을 맡은 조명진이 삼성 야구선수 박한이와 결혼을 예정한것 처럼, 김정현도 약속한 연인과 11월 결혼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김정현이 맡은 하종이 어떤인물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갔도록 하겠다. 하종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와 같이 악인이였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비담은 삼국사기에 647년 1월 염종과 난을 일으킨다. 그래서 비담은 악역으로 나올수 밖에 없다. 문제는 비담이 정말 악인이였을까? 아니면 쿠데타에 실패한 정치인이였을까는 역사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엇갈림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정말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쓰여진 기록"이기때문에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까?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많다. 또한,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아무데나 역사는 승자에 의한 기록이기 때문에 생몰년이나 부모까지 바꾸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해석상의 문제가 아니고 기본 인물정보에 대한 팩트이다. 사건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는 상상력을 발휘할 공간이 있다. 하지만 기본팩트는 바꾸면 안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하종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단지, 논란의 중심에 있는 <화랑세기>에서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하종은 세종과 미실사이에 태어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5세 풍월주 사다함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사다함은 미실을 사랑하였다. 세종 또한 미실을 사랑하였다. 미실은 사다함이 전장에 참전을 할때 송전가를 구구절절 읆어, 전장에 나가는 사다함에 "고무신꺼꾸로 신지 않겠다"고 사다함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미실은 사다함이 대가야에 참전을 할때 세종과 결혼을 해버린다. 전장에 나가 돌아온 사다함은 미실이 세종과 결혼한 사실을 알고 낙담하였다. 사다함은 실연의 아픔과 자신의 부하의 죽음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하지만 사다함은 자신의 다음 풍월주을 자신의 연적인 <세종>에게 물려준다. 


이런 사다함을 위해서 세종과 미실은 천주사에 진심으로 사다함에 공양을 들이고 관계를 가진다. 천주사에 관한 설화는 화랑세기에 여러번 등장을 한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천주사에 대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어찌되었던 천주사에서 관계를 가진후 미실은 564년 하종을 낳는다. 이런 연휴로 하종은 어릴적 부터 <사다함> 화신으로 불리웠다.

애송공주(567년생)는 미실과 진평왕의 아버지 동륜태자 사이에 태어났지만, 진흥은 자신의 자식인줄 알았다. 진흥과 미실사이에는 반야공주, 난야공주가 태어나고 572년 즈음 수종전군이 태어난다.

하종은 어머니 미실이 진흥을 섬기고 아이를 낳을때 마다 직위가 상승하고, 하종의 나이 9살인 572년 태자 동륜이 보명궁의 담을 넘어 개에게 물려 죽기 전에는 <전군>의 지위까지 상승하게 된다.  하종은 진흥왕의 자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흥에 의해서 전군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578년 (하종)공은 15살에 화랑에 들어가 역사를 토함공에게 배웠고, 노래를 이화공에게 배웠고, 검술을 문노에게 배웠고, 춤을 미생공에게 배워 모두 그 정수를 얻었다.

드라마에서는 하종이 안하무인, 무식한 캐릭터 이지만, 하종은 역사를 사다함의 형인 토함에게 배우고, 노래를 이화랑(4세풍월주)에 배우고, 검술을 8세 풍월주인 문노에 배웠다. 또한, 춤을 삼촌인 미생(10세 풍월주)에 배웠다. 그러니 하종은 다방면에 능통한 사람이였다는 것이다.


하종은 미모(설원랑/준모)에 장가를 가서, 유모, 영모, 모종을 낳고, 나중에 사도태후의 명으로 진평의 후비였던 사도의 막내딸인 은륜(진흥/사도)과 결혼하여 하희,월희, 효종을 낳는다. 드라마에서 설원랑에 팅팅거리는 것으로 나오지만, 설원랑은 하종의 장인이다. 장인에 틱틱거리는 사위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은륜과 결혼을 하므로서 진흥왕의 부마가 된다.

화랑세기는 보리공이 하종을 평할때 "지금 세상에 하종같은 효자와 충신은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진평에 틱틱거리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하종이 진평보다도 나이가 어리고, 용춘보다도 나이가 어린것으로 나오지만, 하종은 564년생으로 565년생인 진평(백정)보다 나이가 1살이 많다.

또한, 용춘은 576년생이다. 그러니 용춘보다는 12살이나 많았다. 하종은 용춘의 아버지뻘이였고, 사사로이는 용춘의 아버지 금륜의 막내누이인 은륜과 결혼한 상대이니 용춘의 고모부가 하종이다. 그러니 용춘(576년)이 화백회의에서 하종(564년)이나 미생(550년)에게 막말을 하는 행동은 인륜을 저버린 행동이다.


우리의 찌질이 하종은 은륜의 언니인 태양(진흥/사도)가 유혹하여도 넘어가지 않고, 은륜에 충심으로 대접하였다고 한다. 방탕한 은륜을 자신의 아버지 세종이 미실을 섬기듯이 따스하게 감싼다.

한마디로 무골공자이면서, 공직에 나아가서는 청렴하였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매점매석의 주체로 하종을 집어 넣었지만 하종은 첨렴함의 신표인 청백리같은 이였다.


 공은 검소하고 색을 삼갔으며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윗사람을 공경하여 세종(世宗)의 풍모를 크게 가졌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공에게 복종하지 않는 사람도 끝내는 귀부하였다.

 3년간 재위하다가 보리공에게 양보하며 말하기를 “앞선 풍월주들이 큰 성인이었는데도 오히려 3년간 재위하였는데 내가 어찌 감히 오래 머물겠는가?” 하였다. 보리공이 말하기를 “주형(主兄)은 곧 미실 원화의 아들이다. 어찌 뭇 화랑들과 더불어 같은 예로 하겠습니까?” 하였다. 공이 굳이 사양하였다. 보리공이 이에 풍월주의 자리에 올랐다. 보리공은 곧 나(김대문)의 증조이다. 일찍이 나(김대문)의 아버지(오기공)에게 하종공을 칭찬하여 말하기를 “지금 세상에 이 같은 효자·충신은 없다” 하였다.

대개 미실궁주가 삼조(三朝)를 차례로 섬겼는데, 형제가 핏줄이 달라 움직이면 어려움이 많았다. 은륜공주 또한 골을 믿고 방탕하였다. 공은 한결같이 세종공이 미실을 대접하는 것처럼 하고 불문에 부쳤다. 태양공주는 은륜의 형으로 공과 더불어 가까이 살았는데 공을 유혹함이 심하였으나, 공은 한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공의 청렴과 지킴이 이와 같았다고 한다. - 화랑세기 11세 풍월주 하종

한마디로 표현하면 하종은 요즘 뜨고 있는 <엄친아>의 표본이였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가장 최악질 찌질이 하종으로 변한것이다. 물론, 드라마이니 충분히 설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다음의 예를 들어서 표현하자면 전두환이 민주투사로 나오고, 노무현이나 김대중이 쿠데타를 이르킨다는 설정이나, 세종대왕이 연산군보다 더한 폭군으로 나오고, 이순신이 원균을 넘어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기려는 이완용이나 송병준같은 만고의 역적으로 표현한다면 황당하지 않았을까?

단순히 드라마니 괜찮아? 또는 재미를 위해서는 괜찮아. 다큐가 아니니 괜찮아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드라마에서 김정현이 열연하고 있는 <하종>을 위한 변론으로 마치고자 한다.

글쓴이는 하종을 선덕여왕의 대표찌질이로 표현해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하종>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이 글을 보기 전까지는 김정현이 배역을 맡은 <엄친아> <하종>이 정말 <찌질남>의 대표선수인줄 알았을 것이다. 세종이나 이순신이나 전두환이나 이완용이나 송병준은 드라마를 위해서 인물을 변형시키면 안되고 자신들이 모르고, 잘 알려지지 않은 <하종>은 <찌질남>으로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편협한 생각이 아닐까?

2009/10/12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고현정) 언제 죽어 하차해야 하나?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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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감자꿈 2009.10.11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워할 수 없는 악인 하종이죠.
    하는 짓이 초딩 같습니다.
    그래서 귀엽기까지하다는...^^
    화랑세기에선 그런 모습이었군요. ^^

  3. ECLAT 2009.10.11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드라마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캐러였던.ㅋㅋㅋ
    세종과 하종부자. 너무 찌질하게 나오더라구요ㅠ 아버지닮아서 엄친아에 성격좋고 훈남이었는데.
    갓쉰동님게서 이렇게 제대로 잡아주시네요.ㅎㅎ
    화랑세기에서 김대문이 가장 칭찬했다는 세종의 아들인데...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용.. 각자 개인적인 성향이 다르겠지만.. 김대문이 아버지인 오기에게 전해들었다... 김대문의 증조인 보리가 극찬한 인물이라고 하니요.. ㅋㅋ

  4. ..... 2009.10.11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다른 나이어린 보종이 아니라 동복동생 보종 아닌가요?;; 하종과 보종은 같은배에서 태어났습니다....

  5. BlogIcon 아홉살인생 2009.10.11 1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의 마지막 부분은 한 번 생각해 볼만한 문제겠군요.

  6. 공수래 2009.10.11 1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춘(576년)이 화백회의에서 하종(564년)이나 미생(550년)에게 막말을 하는 행동은 인륜을 저버린 행동" 이라는 대목은 좀 그렇네요...용춘은 골품제도로 운영됐던 신라에서 하종이나 미생보다 윗사람이었습니다. 족보를 보시면 알수있습니다. 용춘은 무늬만 진골인 성골입니다. 김춘추보다 더 성골에 가깝죠.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라를 개나라로 만든게 성골.진골이예용.. 골이 높다고 해서. 나이 많은 고모부에 하대하고 욕을 할것이라는 상상은 끔찍한거지요.. 왕도 자신의 장인에게는 하대를 못해용.. ㅋㅋ

  7. BlogIcon 영웅전쟁 2009.10.11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휴일인데 노고를 아끼지 않셨군요...
    연속된 드라마의 잘못된 캐릭터 선정에 대한
    이야기이군요. 엄친아라...
    재미있게
    잘보고 갑니다.
    휴일 잘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인물창조를 하더라도 좀 그럴듯 하게 했음 좋겠다 싶더라구요.. 대남보, 보종, 하종. 정말로 안타까운 인물들인뎅..

  8. 2009.10.11 1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괜찮

  9. 맑은바람 2009.10.11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선 풍월주들이 큰 성인이었는데도 오히려 3년간 재위하였는데 내가 어찌 감히 오래 머물겠는가?”

    ...단순한 겸양의 표현이라고 보기엔 깊은 격조가 있군요.
    드라마에 묻혀 자칫 간과하기 쉬운 실제 역사를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10. 조예린 2009.10.11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이런 글이 올라왔을까?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11. qillip 2009.10.11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오~ 선덕여왕은 안봐도 님글은 꼬박꼬박 찾아본다는....늘 감사....^^;

  12. 갔도록->갖도록 2009.10.11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거같네요 가지다의 준말 갖다

  13. 와웅 2009.10.11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네요!
    놀라운사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밌게보고갑니당!

  14. BlogIcon pennpenn 2009.10.11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 공부 하고 갑니다.
    해박한 역사 지식에 탄복하면서요~

  15. 김정현 2009.10.11 2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나마 저승에 간 하종이는
    1300년뒤 찌질남으로 변모하지만
    그나마 3,40대 중에서도 꽃미남에 속하고
    연기력도 정상급인(인기가 안습이지만...실력이 중요하지요.only 실력!!)
    김정현이 맡아줬다는데 위안 삼아야죠.
    다만 삼국시대 기록 역사가 부실하고
    화랑세기의 진실여부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화랑세기의 인물까지 갖다붙이는데 한계가 많아 많은 픽션과 변형을 붙였다는게
    아쉽죠. 특히나 극문학의 특성상 반동인물이 필요한데
    거기에 미실을 넣는 과정에서 하종까지 왜곡 시킬수 밖에 없다는건 어쩔수 없나보네요.
    다만 화랑세기의 진실여부와 삼국시대의 기록이 좀 더 많이 발굴된다면
    다른 인물로 변모 될 수도 있었을텐데...
    다만 세상을 뜬지 1300년 후에 후손들이 자신을 묘사한걸 본다면
    하종이 생전 진짜로 인간말종이 아닌 이상은
    너무 안타까워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불쌍한 하종...

  16. BlogIcon 루비™ 2009.10.12 1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종에 대한 멋진 글 잘 읽고 갑니다.
    갓쉰동님이 글에서 늘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17. yoo 2009.10.12 1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근거로 이야기를 만들때는 당연히 사실을 근거로 해야한다고 생각됩니다...
    이처럼 완전히 반대의 인물로 묘사하는건 억지스럽고 역사를 왜곡하는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역사를 왜곡할거면 선덕여왕과 그밖의 인물이름을 달리 해야겠지요...

  18. conniewon 2009.10.12 1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놀라운사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해박한 지식에 놀랍고, 부럽습니다.

  19.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0

  20. BlogIcon Mature Pussy 2012.07.12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중에 김영랑의 시처럼 모란이 피기까지는 삼백예순날은 아니더라도

  21.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놀라운사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세종과 미실의 아들로 나오는 하종은 어리숙하면서도 아버지가 다른 나이어린 보종에 대해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또한, 미실의 정부(?)인 설원랑(전노민)에 대해서는 비호감의 감정을 스스럼 없이 분출하고 있다. 왕인 진평에게나 왕비인 마야에게도 맘에 안들면 치받아 버린다.

김정현이 하종 배역을 맡고 있는데, 어쩜저리 어리숙하고, 찌질하게 연기를 잘하는지 보는 내내 웃음을 짓게 한다.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인물중에서 미워할 수 없는 악역중에 일인이라고 하겠다. 


선덕여왕에서 상천관 서리(송옥숙)이 미실(고현정)이 건낸 사약(?)을 먹고 죽는다. 그 뒤를 이어서 서리의 보조 신녀인 설매가 상천관의 지위를 계승하였다. 설매역을 맡은 조명진이 삼성 야구선수 박한이와 결혼을 예정한것 처럼, 김정현도 약속한 연인과 11월 결혼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김정현이 맡은 하종이 어떤인물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갔도록 하겠다. 하종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와 같이 악인이였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비담은 삼국사기에 647년 1월 염종과 난을 일으킨다. 그래서 비담은 악역으로 나올수 밖에 없다. 문제는 비담이 정말 악인이였을까? 아니면 쿠데타에 실패한 정치인이였을까는 역사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엇갈림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정말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쓰여진 기록"이기때문에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까?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많다. 또한,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아무데나 역사는 승자에 의한 기록이기 때문에 생몰년이나 부모까지 바꾸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해석상의 문제가 아니고 기본 인물정보에 대한 팩트이다. 사건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는 상상력을 발휘할 공간이 있다. 하지만 기본팩트는 바꾸면 안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하종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단지, 논란의 중심에 있는 <화랑세기>에서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하종은 세종과 미실사이에 태어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5세 풍월주 사다함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사다함은 미실을 사랑하였다. 세종 또한 미실을 사랑하였다. 미실은 사다함이 전장에 참전을 할때 송전가를 구구절절 읆어, 전장에 나가는 사다함에 "고무신꺼꾸로 신지 않겠다"고 사다함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미실은 사다함이 대가야에 참전을 할때 세종과 결혼을 해버린다. 전장에 나가 돌아온 사다함은 미실이 세종과 결혼한 사실을 알고 낙담하였다. 사다함은 실연의 아픔과 자신의 부하의 죽음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하지만 사다함은 자신의 다음 풍월주을 자신의 연적인 <세종>에게 물려준다. 


이런 사다함을 위해서 세종과 미실은 천주사에 진심으로 사다함에 공양을 들이고 관계를 가진다. 천주사에 관한 설화는 화랑세기에 여러번 등장을 한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천주사에 대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어찌되었던 천주사에서 관계를 가진후 미실은 564년 하종을 낳는다. 이런 연휴로 하종은 어릴적 부터 <사다함> 화신으로 불리웠다.

애송공주(567년생)는 미실과 진평왕의 아버지 동륜태자 사이에 태어났지만, 진흥은 자신의 자식인줄 알았다. 진흥과 미실사이에는 반야공주, 난야공주가 태어나고 572년 즈음 수종전군이 태어난다.

하종은 어머니 미실이 진흥을 섬기고 아이를 낳을때 마다 직위가 상승하고, 하종의 나이 9살인 572년 태자 동륜이 보명궁의 담을 넘어 개에게 물려 죽기 전에는 <전군>의 지위까지 상승하게 된다.  하종은 진흥왕의 자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흥에 의해서 전군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578년 (하종)공은 15살에 화랑에 들어가 역사를 토함공에게 배웠고, 노래를 이화공에게 배웠고, 검술을 문노에게 배웠고, 춤을 미생공에게 배워 모두 그 정수를 얻었다.

드라마에서는 하종이 안하무인, 무식한 캐릭터 이지만, 하종은 역사를 사다함의 형인 토함에게 배우고, 노래를 이화랑(4세풍월주)에 배우고, 검술을 8세 풍월주인 문노에 배웠다. 또한, 춤을 삼촌인 미생(10세 풍월주)에 배웠다. 그러니 하종은 다방면에 능통한 사람이였다는 것이다.


하종은 미모(설원랑/준모)에 장가를 가서, 유모, 영모, 모종을 낳고, 나중에 사도태후의 명으로 진평의 후비였던 사도의 막내딸인 은륜(진흥/사도)과 결혼하여 하희,월희, 효종을 낳는다. 드라마에서 설원랑에 팅팅거리는 것으로 나오지만, 설원랑은 하종의 장인이다. 장인에 틱틱거리는 사위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은륜과 결혼을 하므로서 진흥왕의 부마가 된다.

화랑세기는 보리공이 하종을 평할때 "지금 세상에 하종같은 효자와 충신은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진평에 틱틱거리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하종이 진평보다도 나이가 어리고, 용춘보다도 나이가 어린것으로 나오지만, 하종은 564년생으로 565년생인 진평(백정)보다 나이가 1살이 많다.

또한, 용춘은 576년생이다. 그러니 용춘보다는 12살이나 많았다. 하종은 용춘의 아버지뻘이였고, 사사로이는 용춘의 아버지 금륜의 막내누이인 은륜과 결혼한 상대이니 용춘의 고모부가 하종이다. 그러니 용춘(576년)이 화백회의에서 하종(564년)이나 미생(550년)에게 막말을 하는 행동은 인륜을 저버린 행동이다.


우리의 찌질이 하종은 은륜의 언니인 태양(진흥/사도)가 유혹하여도 넘어가지 않고, 은륜에 충심으로 대접하였다고 한다. 방탕한 은륜을 자신의 아버지 세종이 미실을 섬기듯이 따스하게 감싼다.

한마디로 무골공자이면서, 공직에 나아가서는 청렴하였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매점매석의 주체로 하종을 집어 넣었지만 하종은 첨렴함의 신표인 청백리같은 이였다.


 공은 검소하고 색을 삼갔으며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윗사람을 공경하여 세종(世宗)의 풍모를 크게 가졌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공에게 복종하지 않는 사람도 끝내는 귀부하였다.

 3년간 재위하다가 보리공에게 양보하며 말하기를 “앞선 풍월주들이 큰 성인이었는데도 오히려 3년간 재위하였는데 내가 어찌 감히 오래 머물겠는가?” 하였다. 보리공이 말하기를 “주형(主兄)은 곧 미실 원화의 아들이다. 어찌 뭇 화랑들과 더불어 같은 예로 하겠습니까?” 하였다. 공이 굳이 사양하였다. 보리공이 이에 풍월주의 자리에 올랐다. 보리공은 곧 나(김대문)의 증조이다. 일찍이 나(김대문)의 아버지(오기공)에게 하종공을 칭찬하여 말하기를 “지금 세상에 이 같은 효자·충신은 없다” 하였다.

대개 미실궁주가 삼조(三朝)를 차례로 섬겼는데, 형제가 핏줄이 달라 움직이면 어려움이 많았다. 은륜공주 또한 골을 믿고 방탕하였다. 공은 한결같이 세종공이 미실을 대접하는 것처럼 하고 불문에 부쳤다. 태양공주는 은륜의 형으로 공과 더불어 가까이 살았는데 공을 유혹함이 심하였으나, 공은 한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공의 청렴과 지킴이 이와 같았다고 한다. - 화랑세기 11세 풍월주 하종

한마디로 표현하면 하종은 요즘 뜨고 있는 <엄친아>의 표본이였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가장 최악질 찌질이 하종으로 변한것이다. 물론, 드라마이니 충분히 설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다음의 예를 들어서 표현하자면 전두환이 민주투사로 나오고, 노무현이나 김대중이 쿠데타를 이르킨다는 설정이나, 세종대왕이 연산군보다 더한 폭군으로 나오고, 이순신이 원균을 넘어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기려는 이완용이나 송병준같은 만고의 역적으로 표현한다면 황당하지 않았을까?

단순히 드라마니 괜찮아? 또는 재미를 위해서는 괜찮아. 다큐가 아니니 괜찮아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드라마에서 김정현이 열연하고 있는 <하종>을 위한 변론으로 마치고자 한다.

글쓴이는 하종을 선덕여왕의 대표찌질이로 표현해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하종>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이 글을 보기 전까지는 김정현이 배역을 맡은 <엄친아> <하종>이 정말 <찌질남>의 대표선수인줄 알았을 것이다. 세종이나 이순신이나 전두환이나 이완용이나 송병준은 드라마를 위해서 인물을 변형시키면 안되고 자신들이 모르고, 잘 알려지지 않은 <하종>은 <찌질남>으로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편협한 생각이 아닐까?

2009/10/12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고현정) 언제 죽어 하차해야 하나?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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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감자꿈 2009.10.11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워할 수 없는 악인 하종이죠.
    하는 짓이 초딩 같습니다.
    그래서 귀엽기까지하다는...^^
    화랑세기에선 그런 모습이었군요. ^^

  3. ECLAT 2009.10.11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드라마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캐러였던.ㅋㅋㅋ
    세종과 하종부자. 너무 찌질하게 나오더라구요ㅠ 아버지닮아서 엄친아에 성격좋고 훈남이었는데.
    갓쉰동님게서 이렇게 제대로 잡아주시네요.ㅎㅎ
    화랑세기에서 김대문이 가장 칭찬했다는 세종의 아들인데...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용.. 각자 개인적인 성향이 다르겠지만.. 김대문이 아버지인 오기에게 전해들었다... 김대문의 증조인 보리가 극찬한 인물이라고 하니요.. ㅋㅋ

  4. ..... 2009.10.11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다른 나이어린 보종이 아니라 동복동생 보종 아닌가요?;; 하종과 보종은 같은배에서 태어났습니다....

  5. BlogIcon 아홉살인생 2009.10.11 1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의 마지막 부분은 한 번 생각해 볼만한 문제겠군요.

  6. 공수래 2009.10.11 1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춘(576년)이 화백회의에서 하종(564년)이나 미생(550년)에게 막말을 하는 행동은 인륜을 저버린 행동" 이라는 대목은 좀 그렇네요...용춘은 골품제도로 운영됐던 신라에서 하종이나 미생보다 윗사람이었습니다. 족보를 보시면 알수있습니다. 용춘은 무늬만 진골인 성골입니다. 김춘추보다 더 성골에 가깝죠.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라를 개나라로 만든게 성골.진골이예용.. 골이 높다고 해서. 나이 많은 고모부에 하대하고 욕을 할것이라는 상상은 끔찍한거지요.. 왕도 자신의 장인에게는 하대를 못해용.. ㅋㅋ

  7. BlogIcon 영웅전쟁 2009.10.11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휴일인데 노고를 아끼지 않셨군요...
    연속된 드라마의 잘못된 캐릭터 선정에 대한
    이야기이군요. 엄친아라...
    재미있게
    잘보고 갑니다.
    휴일 잘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인물창조를 하더라도 좀 그럴듯 하게 했음 좋겠다 싶더라구요.. 대남보, 보종, 하종. 정말로 안타까운 인물들인뎅..

  8. 2009.10.11 1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괜찮

  9. 맑은바람 2009.10.11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선 풍월주들이 큰 성인이었는데도 오히려 3년간 재위하였는데 내가 어찌 감히 오래 머물겠는가?”

    ...단순한 겸양의 표현이라고 보기엔 깊은 격조가 있군요.
    드라마에 묻혀 자칫 간과하기 쉬운 실제 역사를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10. 조예린 2009.10.11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이런 글이 올라왔을까?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11. qillip 2009.10.11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오~ 선덕여왕은 안봐도 님글은 꼬박꼬박 찾아본다는....늘 감사....^^;

  12. 갔도록->갖도록 2009.10.11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거같네요 가지다의 준말 갖다

  13. 와웅 2009.10.11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네요!
    놀라운사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밌게보고갑니당!

  14. BlogIcon pennpenn 2009.10.11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 공부 하고 갑니다.
    해박한 역사 지식에 탄복하면서요~

  15. 김정현 2009.10.11 2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나마 저승에 간 하종이는
    1300년뒤 찌질남으로 변모하지만
    그나마 3,40대 중에서도 꽃미남에 속하고
    연기력도 정상급인(인기가 안습이지만...실력이 중요하지요.only 실력!!)
    김정현이 맡아줬다는데 위안 삼아야죠.
    다만 삼국시대 기록 역사가 부실하고
    화랑세기의 진실여부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화랑세기의 인물까지 갖다붙이는데 한계가 많아 많은 픽션과 변형을 붙였다는게
    아쉽죠. 특히나 극문학의 특성상 반동인물이 필요한데
    거기에 미실을 넣는 과정에서 하종까지 왜곡 시킬수 밖에 없다는건 어쩔수 없나보네요.
    다만 화랑세기의 진실여부와 삼국시대의 기록이 좀 더 많이 발굴된다면
    다른 인물로 변모 될 수도 있었을텐데...
    다만 세상을 뜬지 1300년 후에 후손들이 자신을 묘사한걸 본다면
    하종이 생전 진짜로 인간말종이 아닌 이상은
    너무 안타까워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불쌍한 하종...

  16. BlogIcon 루비™ 2009.10.12 1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종에 대한 멋진 글 잘 읽고 갑니다.
    갓쉰동님이 글에서 늘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17. yoo 2009.10.12 1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근거로 이야기를 만들때는 당연히 사실을 근거로 해야한다고 생각됩니다...
    이처럼 완전히 반대의 인물로 묘사하는건 억지스럽고 역사를 왜곡하는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역사를 왜곡할거면 선덕여왕과 그밖의 인물이름을 달리 해야겠지요...

  18. conniewon 2009.10.12 1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놀라운사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해박한 지식에 놀랍고, 부럽습니다.

  19.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0

  20. BlogIcon Mature Pussy 2012.07.12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중에 김영랑의 시처럼 모란이 피기까지는 삼백예순날은 아니더라도

  21.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놀라운사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박창화가 필사했다는 김대문의 <화랑세기>는 화랑 풍월주의 계보와 풍월주들의 활약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8대 풍월주인 문노는 화랑의 체계를 세운인물이고, 전쟁에 나아가 무수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문노의 출신은 나물왕의 후손인 비조부의 아들로 대가야국의 외손이다.

 

8세 문노(文弩:538생)는 비조부공(比助夫公) 아들이다. 어머니는 가야국(加耶國) 문화공주(文華公主)인데 문화공주는 야국왕(野國王)이 바친 여자(貢女)라고 한다.

 

공은 건복(建福) 23년(606)에 세상을 떠나니 69세였다. (윤공)낭주는 이 해에 공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선(仙)이 되었다. 공보다 10살이 적었다.

 

하지만, 문노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김흠운열전>에 잠시 모습을 보일 뿐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서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 <화랑세기>에는 화랑의 계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된다. 문노를 빼고 나면 화랑세기 자체가 성립할 수 없도록 되어 있으며 문노의 세계가 잘못되었다면 화랑세기가 위서로 몰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김부식이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인용하고 있는데 <삼국사기>에서 문노가 빠졌다고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필사본 <화랑세기>가 위서임을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김춘추의 사위 김흠운은 문노의 제자?

 

그래서 문노와 김흠운의 관계를 규명함으로서 화랑세기의 진위논란에 한발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삼국사기> 김흠운 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흠운(金歆運)은 나밀왕(奈密王)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잡찬 달복(達福)이다. 흠운이 어려서 화랑 문노(文努)의 아래에서 놀았는데 당시의 무리들이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말하자 흠운이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며 격동하여 그와 같이 되려고 하니 동문의 승려 전밀(轉密)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약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영휘(永徽) 6년(무열왕 2: 655) 태종대왕이 백제가 고구려와 더불어 변방을 막자 이를 치고자 하여 군사를 출동할 때에 흠운을 낭당(郎幢) 대감으로 삼았다. 이에 그는 집안에서 자지 않고 비바람을 맞으며, 병졸과 더불어 고락을 함께 하였다. 백제 땅 양산(陽山) 아래에 군영을 설치하여 조천성(助川城)을 공격하고자 하였는데 백제인들이 밤을 틈타서 민첩하게 달려와 새벽녘에 성루를 따라 들어오니 우리 군사가 놀라 엎어지고 자빠져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적들이 혼란을 타서 급하게 공격하니 날으는 화살이 비오듯 모여졌다.


흠운이 말을 비껴타고 창을 잡고 대적하니 대사(大舍) 전지(詮知)가 달래어 말하였다.
“지금 적이 어둠 속에서 일어나 지척을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이니 공이 비록 죽는다고 하여도 알아줄 사람이 없습니다. 하물며 공은 신라의 귀한 신분[貴骨]으로서 대왕의 사위[半子]인데 만약 적군의 손에 죽으면 백제의 자랑하는 바가 될 것이고 우리들의 깊은 수치가 될 것입니다.”


흠운이 말하기를 “대장부가 이미 몸을 나라에 바치겠다고 하였으면 사람이 알아주고 모르고는 한가지이다. 어찌 감히 이름을 구하랴?” 하고는 꿋꿋하게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따르던 자들이 말고삐를 잡고 돌아가기를 권하였으나 흠운이 칼을 뽑아 휘두르며 적과 싸워 몇 사람을 죽이고 그도 죽었다. 이에 대감 예파(穢破)와 소감(少監) 적득(狄得)이 서로 더불어 함께 전사하였다. 보기(步騎) 당주 보용나(寶用那)가 흠운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말하였다.


“그는 귀한 신분에 영화로운 자리에 있어 사람들이 아끼는 바인데도 오히려 절조를 지켜 죽었으니 하물며 나 보용나는 살아 있더라도 별 이익이 되지 않고 죽어도 별 손해가 되지 않는 존재이다.” 드디어 적에게 덤벼들어 서너 명을 죽이고 그도 죽었다. 대왕이 이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였고 흠운과 예파에게는 일길찬, 보용나와 적득에게는 대나마의 관등을 추증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이 [전투상황]을 듣고 양산가를 지어 애도하였다.

 

여기서 김흠운과 문노와의 관계가 조금 의심스런 점이 발견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문노는 법흥왕 25년 538년생이고, 몰년은 진평왕 28년 606년으로 69세에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삼국사기> 김흠운열전에는 김흠운이 어릴적에 화랑 문노의 문하에 있었다하고 655년 정월 고구려, 백제, 말갈 연합군이 신라를 공격하여 30여개 성을 빼았다. 이에 신라는 군을 모집해서 백제의 양산에서 조천성를 공격하다 오히려 백제군에 의해서 신라가 처참히 깨지고 김흠운도 죽은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만약, <화랑세기>의 기록과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라 김흠운이 어릴적 문노의 문하에 있었다고 한다면, 김흠운은 문노가 죽은 606년 이전에 나이가 최소 10~15세 전후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655년 죽었을 때 나이는 60세 전후의 노장이 될 수밖에 없다. 김흠운의 나이때로 보았을 때 595년생인 김유신과 동년배여야 한다. 그런데 김흠운이 움직이는 군대가 <낭당대감>이다. 낭당대감이란 화랑의 무리를 이끄는 총관의 다른 표현이거나 낭당총관의 밑이다. 김흠운의 신분이 나물왕의 8대손이고 달복공의 아들이며 태종대왕의 반자(사위?)라고 했으니 귀한 집 자손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김흠운의 죽은 시점의 나이와 신라의 계급적인 특성으로 보았을때 60대의 노장이 화랑을 이끄는 낭당대감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죽고 난 후 추증된 일벌찬이 신라의 관등으로 7등급에 해당 할 수 없다..  또 한가지 간과하지 못한 것은 화랑이랑 신라귀족 자제들의 집단이므로 문노가 늙어 죽을 때 인 69세(606년)까지 화랑을 이끌었다고 볼 수 없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8대 풍월주인 문노가 582년 비대전군의 아들인 비보랑에 풍월주의 지위를 물려주었다고 하였음으로 문노는 582년 이후 화랑의 계보상 상선이 되었음을 의미하고, 화랑의 지위에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문노의 문하에 있었다는 김흠운의 기록은 문노가 화랑이였을 때 김흠운이 문노의 문하에 있었다고 해석한다면 김흠운의 나이는 655년 80세 이상의 노령이 됨으로 더더욱 <삼국사기>와 <화랑세기>가 충돌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김흠운이 죽은 시점에 화랑을 이끄는 낭당대감이고 죽은 후 일벌찬이 되었다면 655년 나이가 10대 후반에서 20~30세 전후여야 합당하다. 또한 달복공의 또 다른 아들이고 김유신의 사위인 흠돌이 처음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661년 7월 고구려 공격군으로 대장군 김유신과 대당장군 흠돌의 기록을 상기해 볼 때 흠돌과의 나이 차이가 많을 수 없어야 한다.

 

또한, 흠돌은 김유신의 딸인 진광에 장가가서 김유신의 사위가 되는 인물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652년 26대 풍월주 진공의 부제가 되고 657년 27대 풍월주에 오른 인물이다. <화랑세기>와 <삼국사기>에 의하면 김흠운은 흠돌보다는 나이가 적었다고 보아야 합당하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달복공은 김서현의 막내이고 김유신의 막내동생인 정희에 장가를 들어 흠돌을 낳았다고 하였다. 미루어 짐작컨데 김흠운도 정희의 소생일 가능성이 많다.

 

김흠돌은 김유신의 딸인 진광에 장가들고, 김흠운은 <삼국사기>에 655년 당시 대왕(김춘추2년)의 반자(사위?: 반만 자식이라 했으니 사위일 것이다)라고 했으니 김춘추는 문희에 장가를 들기전에 고타소랑을 제외하고도 또 다른 자식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김서현의 3녀인 문희(문명왕후)의 소생인 지조가 김유신의 부인이 되는 시점이 655년 12월 유신의 한갑 때이니 김흠운의 처는 문희의 소생이 될 수 없음이 명확해진다. 김춘추는 542년 대야성에서 딸인 고타소랑과 사위인 품석을 잃고 655년 백제의 양산 조천성 전투에서 또 다른 사위인 김흠운을 잃었다고  하겠다. 2명의 사위를 백제에 잃었으니 김춘추의 속이 어찌 되었을 지는 미루어 짐작하겠다. 그 후 김춘추는 당에 구원병을 청하고 고구려와 백제를 적극 공략한다.

 

어찌 되었던 김흠운에 대해서 <삼국사기>와 <화랑세기>는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지어낸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 들여다 보면 <화랑세기>와 <삼국사기>는 충돌되지 않고 있다고 봐야한다. <화랑세기> 27대 김흠돌 풍월주의 기록에 보면 당시 화랑의 적통이 문노에서 이어져온 가야파가 실권을 잡고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8대 풍월주  문노는 화랑의 세계에서는 가야파의 종주가 되는 인물이다. 또한, 문노파는 무를 숭상하고 전쟁에 나아가 공을 세우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여겼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화랑세기>와 <삼국사기>는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흠운이 어려서 화랑 문노(文努)의 아래에서 놀았는데 당시의 무리들이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말하자 흠운이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며 격동하여 그와 같이 되려고 하니 동문의 승려 전밀(轉密)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약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흠운이 어려서 화랑 문노의 아래에서 놀았는데.. >이부분이 흠운과 문노를 갈라놓은 지점이다. 흠운이 어려서 문노의 문하에 있었다면  <화랑세기>에 기록된 8대 문노는 538년에서 606년 사이에 활동한다면 김흠운이 655년 죽었을 때 나이가 얼마인데..60에서 80대인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화랑세기>가 위서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 버린다. <화랑세기>는  문노에 의해서 씨줄과 날줄이 얼키고 설켜 있으니 <화랑세기>는 박창화의 정교한 창작품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歆運少遊花郞文努之門 時 徒衆言及某戰死 留名至今 歆運慨然流涕 有激勵思齊之貌 同門僧轉密曰 “此人若赴敵 必不還也”

<< 당시의 무리들이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말하자 흠운이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며 격동하여 그와 같이 되려고 하니 동문의 승려 전밀(轉密)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약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당신의 무리들이>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말하자 >

 

문노가 화랑으로 활동하는 시점인 538년부터 ~ 576년~582~606년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노는 대가야의 외손이다. 하지만 이사부와 사다함에 의해서 외가인 대가야가 562년에 망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562년 문노의 나이 25살인 점을 고려해볼 때 사다함과 같이 출전했을 수도 있으나, 화랑세기에 의하면 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어쩌면 대가야가 힘 한번 써 보지도 못하고, 신라에 멸망한 이유는 가야제국들과 신라가 혼맥으로 이뤄져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대가야는 물론, 금관가야도 신라와 혼맥으로 이뤄져 있었다. 삼국지위지 동이전에도 변한과 진한인들이 서로 잡거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마디로 가야국들이 신라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것 같다.


<삼국사기>에도 있지만 사다함과 그 일파들을 말하는 것이고 무를 추종하는 문노의 계파로  전쟁에 나아가 백제와 고구려를 상대로 전쟁을 하고 죽은 수많은 화랑들을 말한다.



당시의 무리란?

 

655년 전 김흠운에 속한 화랑의 무리를 말한다.

 

좀더 들어가면 <화랑세기>에는 652년 김흠돌이 화랑의 부제였을 시점이니 형으로 추정되는 김흠돌에게서 위대한 화랑들에 대해서 들었을 수도 있고, 652년 26대 풍월주였던 김진공의 무리들에게 들었을 수도 있다.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한 것은 <김흠운이 어렸을 때 문노를 따르고> 하였다는 것은 문노가 추구하는 무를 숭상하고 전쟁에 나아가 공을 세우거나 죽는 것을 계승하여 따랐다는 의미 밖에는 없다.


602년 아막성 전투에서 원광법사에 사사받은 취산과 추항이 화랑으로 참전하여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장렬히 전사하였다. 김흠운 싸움에 임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화랑의 세속오계 중 하나인 <임전무퇴>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留名至今" (유명지금) : 지금까지 이름을 남기다.

흠운이 배울 시점까지 이름을 남겼다는 것은 문노와 흠운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는 의미이지 문노에게 직접 사사를 받았다는 의미는 더더욱 될 수 없다. 


해석상의 문제

  

歆運少遊花郞文努之門 時 徒衆言及某戰死

많은 사람들이 위의 내용을 “흠운이 어릴적 화랑 문노의 문하에 있었는데, 당시 따르는 화랑들이 말하길 전쟁에 나아가 전사하였다.”는 식으로 번역을 한다.

하지만, 遊花郞, 文努之門 유화랑(遊花郞)과 문노지문(文努之門) 사이를 끊어 읽어야 한다.


歆運少遊花郞, 文努之門 時 徒衆言及某戰死

흠운은 어릴적 화랑에 있었다. 문노의 화랑 때 전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따르는 무리들이 이야기를 전했다.

 

PS. 문노는 내물왕의 후손인 비조부의 아들로 나온다. 사다함도 내물왕의 6대손인 구리지의 아들이니 7대손이다. 김흠운도 내물왕7대손인 잡찬 달복의 아들인  8대손으로 나온다.

한마디로 내물왕을 빼고는 신라를 말할 수 없고, 세종대왕 만큼이나 자손을 많이도 낳았다.

 

 

여전히 진위를 알 수 없는 화랑세기

 

글쓴이는 문노와 김춘추의 아들이 김흠운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화랑세기의 진위를 살펴보고자 했다. 하지만, 화랑세기와 삼국사기가 충돌될것 같았던 기록들이 여전히 잘 끼워 맞춘것 처럼 빈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찌되었던 신문왕비가 되는 신목왕후가 김흠운의 2녀가 된다는 기록과 <화랑세기>문노와 <삼국사기>와는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문노와 김흠운의 관계로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창조한 위서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김부식이 고의이던 자료의 부족을 느꼈는지 관계없이 문노가 <삼국사기>에 이름만 남긴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자의태후는 681년 8월 <김흠돌의 난>이 있고 나서 군사 지향적인 화랑을 폐기한 것은 분명하다. 그 후 화랑의 형태는 산천 유람하고 선도와 문에 힘쓰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고 역사적 자료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미실과 덕만의 하늘살핌 대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을 죽이기 위해서 터미네이터처럼 따라다니다. 덕만에 의해서 죽은 줄 알았던 칠복이 사신단과 함께 온 상인들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들 사신단은 수나라일까? 당나라 사신단일까? 역사를 종횡무진 필요할때 마다 이동하는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보았을때 알 수 없다가 정답이다.

칠복으로 인해 덕만의 정체가 미실에 보고되니 흥미가 배가 되지 않을까한다.  김유신의 아버지 서현이 아막성 전투에서 살아난 이유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에 의해서 구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 문노를 따르는 무리이거나 덕만이 비를 내리게 해준 가야의 유민이였을 가능성이 있다. 칠복이 돌아 왔으니 문노도 나타날때가 되었다.

 

사다함이 미실에게 전해준 ‘매화’가 ‘책력’이라면, 작가는 당시 신라시대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늘에 제를 올리고, 하늘을 살피는 것은 왕에게는 필수 불가결한 사항이다. 이를 서포터즈 하는 역할이 천관의 역할이다. 미실이 하는 일이 하늘과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역할이니 책력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를 갖추게 해준 이가 사다함이라고 한 것이다. 미실이 신라의 국정에 깊이 개입하는 계기가 진흥이 기후제를 지냈지만 비가 오지 않았다. 미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니 비가 오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덕만이 만노군에서 가야의 유민들에게 잡혀 하늘에 기우제를 지낼 때 잠깐 비춰진 것이 책력이였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 같지 않는가? 드라마 <대왕세종>에서 하늘을 살피는 책력을 만들려고 했다. 이때 보조자료로 사용된 것이 회회력과 칠정산이였다. 책력은 황제(제왕)도였다. 덕만이 가져온 책력이 미실이 받은 책력보다는 우위에 서게 되는 것인가? 아무튼 미실과 덕만의 ‘하늘살핌’ 대결을 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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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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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사용인 2009.07.07 17: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

  2.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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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4: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인 그래서 진짜로 무언가일 이 화제를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결코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당신 발표 그러나 나와 쉬운 찾아내십시오. 그것은 저를 위해 너무 복잡하고 아주 넓게 보인다. 나는 당신

박창화가 필사했다는 김대문의 <화랑세기>는 화랑 풍월주의 계보와 풍월주들의 활약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8대 풍월주인 문노는 화랑의 체계를 세운인물이고, 전쟁에 나아가 무수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문노의 출신은 나물왕의 후손인 비조부의 아들로 대가야국의 외손이다.

 

8세 문노(文弩:538생)는 비조부공(比助夫公) 아들이다. 어머니는 가야국(加耶國) 문화공주(文華公主)인데 문화공주는 야국왕(野國王)이 바친 여자(貢女)라고 한다.

 

공은 건복(建福) 23년(606)에 세상을 떠나니 69세였다. (윤공)낭주는 이 해에 공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선(仙)이 되었다. 공보다 10살이 적었다.

 

하지만, 문노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김흠운열전>에 잠시 모습을 보일 뿐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서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 <화랑세기>에는 화랑의 계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된다. 문노를 빼고 나면 화랑세기 자체가 성립할 수 없도록 되어 있으며 문노의 세계가 잘못되었다면 화랑세기가 위서로 몰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김부식이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인용하고 있는데 <삼국사기>에서 문노가 빠졌다고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필사본 <화랑세기>가 위서임을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김춘추의 사위 김흠운은 문노의 제자?

 

그래서 문노와 김흠운의 관계를 규명함으로서 화랑세기의 진위논란에 한발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삼국사기> 김흠운 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흠운(金歆運)은 나밀왕(奈密王)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잡찬 달복(達福)이다. 흠운이 어려서 화랑 문노(文努)의 아래에서 놀았는데 당시의 무리들이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말하자 흠운이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며 격동하여 그와 같이 되려고 하니 동문의 승려 전밀(轉密)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약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영휘(永徽) 6년(무열왕 2: 655) 태종대왕이 백제가 고구려와 더불어 변방을 막자 이를 치고자 하여 군사를 출동할 때에 흠운을 낭당(郎幢) 대감으로 삼았다. 이에 그는 집안에서 자지 않고 비바람을 맞으며, 병졸과 더불어 고락을 함께 하였다. 백제 땅 양산(陽山) 아래에 군영을 설치하여 조천성(助川城)을 공격하고자 하였는데 백제인들이 밤을 틈타서 민첩하게 달려와 새벽녘에 성루를 따라 들어오니 우리 군사가 놀라 엎어지고 자빠져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적들이 혼란을 타서 급하게 공격하니 날으는 화살이 비오듯 모여졌다.


흠운이 말을 비껴타고 창을 잡고 대적하니 대사(大舍) 전지(詮知)가 달래어 말하였다.
“지금 적이 어둠 속에서 일어나 지척을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이니 공이 비록 죽는다고 하여도 알아줄 사람이 없습니다. 하물며 공은 신라의 귀한 신분[貴骨]으로서 대왕의 사위[半子]인데 만약 적군의 손에 죽으면 백제의 자랑하는 바가 될 것이고 우리들의 깊은 수치가 될 것입니다.”


흠운이 말하기를 “대장부가 이미 몸을 나라에 바치겠다고 하였으면 사람이 알아주고 모르고는 한가지이다. 어찌 감히 이름을 구하랴?” 하고는 꿋꿋하게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따르던 자들이 말고삐를 잡고 돌아가기를 권하였으나 흠운이 칼을 뽑아 휘두르며 적과 싸워 몇 사람을 죽이고 그도 죽었다. 이에 대감 예파(穢破)와 소감(少監) 적득(狄得)이 서로 더불어 함께 전사하였다. 보기(步騎) 당주 보용나(寶用那)가 흠운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말하였다.


“그는 귀한 신분에 영화로운 자리에 있어 사람들이 아끼는 바인데도 오히려 절조를 지켜 죽었으니 하물며 나 보용나는 살아 있더라도 별 이익이 되지 않고 죽어도 별 손해가 되지 않는 존재이다.” 드디어 적에게 덤벼들어 서너 명을 죽이고 그도 죽었다. 대왕이 이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였고 흠운과 예파에게는 일길찬, 보용나와 적득에게는 대나마의 관등을 추증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이 [전투상황]을 듣고 양산가를 지어 애도하였다.

 

여기서 김흠운과 문노와의 관계가 조금 의심스런 점이 발견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문노는 법흥왕 25년 538년생이고, 몰년은 진평왕 28년 606년으로 69세에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삼국사기> 김흠운열전에는 김흠운이 어릴적에 화랑 문노의 문하에 있었다하고 655년 정월 고구려, 백제, 말갈 연합군이 신라를 공격하여 30여개 성을 빼았다. 이에 신라는 군을 모집해서 백제의 양산에서 조천성를 공격하다 오히려 백제군에 의해서 신라가 처참히 깨지고 김흠운도 죽은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만약, <화랑세기>의 기록과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라 김흠운이 어릴적 문노의 문하에 있었다고 한다면, 김흠운은 문노가 죽은 606년 이전에 나이가 최소 10~15세 전후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655년 죽었을 때 나이는 60세 전후의 노장이 될 수밖에 없다. 김흠운의 나이때로 보았을 때 595년생인 김유신과 동년배여야 한다. 그런데 김흠운이 움직이는 군대가 <낭당대감>이다. 낭당대감이란 화랑의 무리를 이끄는 총관의 다른 표현이거나 낭당총관의 밑이다. 김흠운의 신분이 나물왕의 8대손이고 달복공의 아들이며 태종대왕의 반자(사위?)라고 했으니 귀한 집 자손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김흠운의 죽은 시점의 나이와 신라의 계급적인 특성으로 보았을때 60대의 노장이 화랑을 이끄는 낭당대감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죽고 난 후 추증된 일벌찬이 신라의 관등으로 7등급에 해당 할 수 없다..  또 한가지 간과하지 못한 것은 화랑이랑 신라귀족 자제들의 집단이므로 문노가 늙어 죽을 때 인 69세(606년)까지 화랑을 이끌었다고 볼 수 없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8대 풍월주인 문노가 582년 비대전군의 아들인 비보랑에 풍월주의 지위를 물려주었다고 하였음으로 문노는 582년 이후 화랑의 계보상 상선이 되었음을 의미하고, 화랑의 지위에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문노의 문하에 있었다는 김흠운의 기록은 문노가 화랑이였을 때 김흠운이 문노의 문하에 있었다고 해석한다면 김흠운의 나이는 655년 80세 이상의 노령이 됨으로 더더욱 <삼국사기>와 <화랑세기>가 충돌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김흠운이 죽은 시점에 화랑을 이끄는 낭당대감이고 죽은 후 일벌찬이 되었다면 655년 나이가 10대 후반에서 20~30세 전후여야 합당하다. 또한 달복공의 또 다른 아들이고 김유신의 사위인 흠돌이 처음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661년 7월 고구려 공격군으로 대장군 김유신과 대당장군 흠돌의 기록을 상기해 볼 때 흠돌과의 나이 차이가 많을 수 없어야 한다.

 

또한, 흠돌은 김유신의 딸인 진광에 장가가서 김유신의 사위가 되는 인물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652년 26대 풍월주 진공의 부제가 되고 657년 27대 풍월주에 오른 인물이다. <화랑세기>와 <삼국사기>에 의하면 김흠운은 흠돌보다는 나이가 적었다고 보아야 합당하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달복공은 김서현의 막내이고 김유신의 막내동생인 정희에 장가를 들어 흠돌을 낳았다고 하였다. 미루어 짐작컨데 김흠운도 정희의 소생일 가능성이 많다.

 

김흠돌은 김유신의 딸인 진광에 장가들고, 김흠운은 <삼국사기>에 655년 당시 대왕(김춘추2년)의 반자(사위?: 반만 자식이라 했으니 사위일 것이다)라고 했으니 김춘추는 문희에 장가를 들기전에 고타소랑을 제외하고도 또 다른 자식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김서현의 3녀인 문희(문명왕후)의 소생인 지조가 김유신의 부인이 되는 시점이 655년 12월 유신의 한갑 때이니 김흠운의 처는 문희의 소생이 될 수 없음이 명확해진다. 김춘추는 542년 대야성에서 딸인 고타소랑과 사위인 품석을 잃고 655년 백제의 양산 조천성 전투에서 또 다른 사위인 김흠운을 잃었다고  하겠다. 2명의 사위를 백제에 잃었으니 김춘추의 속이 어찌 되었을 지는 미루어 짐작하겠다. 그 후 김춘추는 당에 구원병을 청하고 고구려와 백제를 적극 공략한다.

 

어찌 되었던 김흠운에 대해서 <삼국사기>와 <화랑세기>는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지어낸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 들여다 보면 <화랑세기>와 <삼국사기>는 충돌되지 않고 있다고 봐야한다. <화랑세기> 27대 김흠돌 풍월주의 기록에 보면 당시 화랑의 적통이 문노에서 이어져온 가야파가 실권을 잡고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8대 풍월주  문노는 화랑의 세계에서는 가야파의 종주가 되는 인물이다. 또한, 문노파는 무를 숭상하고 전쟁에 나아가 공을 세우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여겼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화랑세기>와 <삼국사기>는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흠운이 어려서 화랑 문노(文努)의 아래에서 놀았는데 당시의 무리들이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말하자 흠운이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며 격동하여 그와 같이 되려고 하니 동문의 승려 전밀(轉密)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약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흠운이 어려서 화랑 문노의 아래에서 놀았는데.. >이부분이 흠운과 문노를 갈라놓은 지점이다. 흠운이 어려서 문노의 문하에 있었다면  <화랑세기>에 기록된 8대 문노는 538년에서 606년 사이에 활동한다면 김흠운이 655년 죽었을 때 나이가 얼마인데..60에서 80대인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화랑세기>가 위서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 버린다. <화랑세기>는  문노에 의해서 씨줄과 날줄이 얼키고 설켜 있으니 <화랑세기>는 박창화의 정교한 창작품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歆運少遊花郞文努之門 時 徒衆言及某戰死 留名至今 歆運慨然流涕 有激勵思齊之貌 同門僧轉密曰 “此人若赴敵 必不還也”

<< 당시의 무리들이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말하자 흠운이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며 격동하여 그와 같이 되려고 하니 동문의 승려 전밀(轉密)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약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당신의 무리들이>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말하자 >

 

문노가 화랑으로 활동하는 시점인 538년부터 ~ 576년~582~606년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노는 대가야의 외손이다. 하지만 이사부와 사다함에 의해서 외가인 대가야가 562년에 망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562년 문노의 나이 25살인 점을 고려해볼 때 사다함과 같이 출전했을 수도 있으나, 화랑세기에 의하면 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어쩌면 대가야가 힘 한번 써 보지도 못하고, 신라에 멸망한 이유는 가야제국들과 신라가 혼맥으로 이뤄져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대가야는 물론, 금관가야도 신라와 혼맥으로 이뤄져 있었다. 삼국지위지 동이전에도 변한과 진한인들이 서로 잡거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마디로 가야국들이 신라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것 같다.


<삼국사기>에도 있지만 사다함과 그 일파들을 말하는 것이고 무를 추종하는 문노의 계파로  전쟁에 나아가 백제와 고구려를 상대로 전쟁을 하고 죽은 수많은 화랑들을 말한다.



당시의 무리란?

 

655년 전 김흠운에 속한 화랑의 무리를 말한다.

 

좀더 들어가면 <화랑세기>에는 652년 김흠돌이 화랑의 부제였을 시점이니 형으로 추정되는 김흠돌에게서 위대한 화랑들에 대해서 들었을 수도 있고, 652년 26대 풍월주였던 김진공의 무리들에게 들었을 수도 있다.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한 것은 <김흠운이 어렸을 때 문노를 따르고> 하였다는 것은 문노가 추구하는 무를 숭상하고 전쟁에 나아가 공을 세우거나 죽는 것을 계승하여 따랐다는 의미 밖에는 없다.


602년 아막성 전투에서 원광법사에 사사받은 취산과 추항이 화랑으로 참전하여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장렬히 전사하였다. 김흠운 싸움에 임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화랑의 세속오계 중 하나인 <임전무퇴>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留名至今" (유명지금) : 지금까지 이름을 남기다.

흠운이 배울 시점까지 이름을 남겼다는 것은 문노와 흠운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는 의미이지 문노에게 직접 사사를 받았다는 의미는 더더욱 될 수 없다. 


해석상의 문제

  

歆運少遊花郞文努之門 時 徒衆言及某戰死

많은 사람들이 위의 내용을 “흠운이 어릴적 화랑 문노의 문하에 있었는데, 당시 따르는 화랑들이 말하길 전쟁에 나아가 전사하였다.”는 식으로 번역을 한다.

하지만, 遊花郞, 文努之門 유화랑(遊花郞)과 문노지문(文努之門) 사이를 끊어 읽어야 한다.


歆運少遊花郞, 文努之門 時 徒衆言及某戰死

흠운은 어릴적 화랑에 있었다. 문노의 화랑 때 전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따르는 무리들이 이야기를 전했다.

 

PS. 문노는 내물왕의 후손인 비조부의 아들로 나온다. 사다함도 내물왕의 6대손인 구리지의 아들이니 7대손이다. 김흠운도 내물왕7대손인 잡찬 달복의 아들인  8대손으로 나온다.

한마디로 내물왕을 빼고는 신라를 말할 수 없고, 세종대왕 만큼이나 자손을 많이도 낳았다.

 

 

여전히 진위를 알 수 없는 화랑세기

 

글쓴이는 문노와 김춘추의 아들이 김흠운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화랑세기의 진위를 살펴보고자 했다. 하지만, 화랑세기와 삼국사기가 충돌될것 같았던 기록들이 여전히 잘 끼워 맞춘것 처럼 빈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찌되었던 신문왕비가 되는 신목왕후가 김흠운의 2녀가 된다는 기록과 <화랑세기>문노와 <삼국사기>와는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문노와 김흠운의 관계로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창조한 위서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김부식이 고의이던 자료의 부족을 느꼈는지 관계없이 문노가 <삼국사기>에 이름만 남긴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자의태후는 681년 8월 <김흠돌의 난>이 있고 나서 군사 지향적인 화랑을 폐기한 것은 분명하다. 그 후 화랑의 형태는 산천 유람하고 선도와 문에 힘쓰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고 역사적 자료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미실과 덕만의 하늘살핌 대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을 죽이기 위해서 터미네이터처럼 따라다니다. 덕만에 의해서 죽은 줄 알았던 칠복이 사신단과 함께 온 상인들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들 사신단은 수나라일까? 당나라 사신단일까? 역사를 종횡무진 필요할때 마다 이동하는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보았을때 알 수 없다가 정답이다.

칠복으로 인해 덕만의 정체가 미실에 보고되니 흥미가 배가 되지 않을까한다.  김유신의 아버지 서현이 아막성 전투에서 살아난 이유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에 의해서 구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 문노를 따르는 무리이거나 덕만이 비를 내리게 해준 가야의 유민이였을 가능성이 있다. 칠복이 돌아 왔으니 문노도 나타날때가 되었다.

 

사다함이 미실에게 전해준 ‘매화’가 ‘책력’이라면, 작가는 당시 신라시대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늘에 제를 올리고, 하늘을 살피는 것은 왕에게는 필수 불가결한 사항이다. 이를 서포터즈 하는 역할이 천관의 역할이다. 미실이 하는 일이 하늘과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역할이니 책력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를 갖추게 해준 이가 사다함이라고 한 것이다. 미실이 신라의 국정에 깊이 개입하는 계기가 진흥이 기후제를 지냈지만 비가 오지 않았다. 미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니 비가 오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덕만이 만노군에서 가야의 유민들에게 잡혀 하늘에 기우제를 지낼 때 잠깐 비춰진 것이 책력이였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 같지 않는가? 드라마 <대왕세종>에서 하늘을 살피는 책력을 만들려고 했다. 이때 보조자료로 사용된 것이 회회력과 칠정산이였다. 책력은 황제(제왕)도였다. 덕만이 가져온 책력이 미실이 받은 책력보다는 우위에 서게 되는 것인가? 아무튼 미실과 덕만의 ‘하늘살핌’ 대결을 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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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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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사용인 2009.07.07 17: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

  2.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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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4: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인 그래서 진짜로 무언가일 이 화제를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결코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당신 발표 그러나 나와 쉬운 찾아내십시오. 그것은 저를 위해 너무 복잡하고 아주 넓게 보인다. 나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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