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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조선시대 초기부터 끊임없이 울릉도의 공도 정책을 폅니다.

또한, 조선초 이색 등을 울릉도와 여러 섬 등으로 유배시키려 하지만 신하들의 간언으로 내지의 지방으로 유배를 보냅니다.

조선시대에 울릉도는 너무나도 먼 땅입니다. 군선으로도 하루밤낮을 지나야하는 먼 지방이였고, 세종시대에는 군선이 울릉도를 가다가 난파되어 일본까지 흘러간 기록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금과 군역을 피하려고 들어가지만 세종때에도 끊임없이 들어간 사람들을 다시 육지에 안착하도록 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울릉도에 있는 사람이 거짓으로 왜를 사칭하여 강원도 일대을 약탈하기도 하지만, 대마 도주 종정무가 평도전을 보내 울릉도에 살기를 청하나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대마도주도 이미 울릉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그런데 독도에 관한 기록이 최초로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합니다.
 
 
1417년 태종 17년 8월 왜적이 우산도(于山島)·무릉도(武陵島)에서 도둑질하였다.
 
우산도가 지금의 독도임을 알 수 있는 근거는 세종실록 지리지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산(于山)과 무릉(武陵) 2섬이 현의 정동(正東) 해중(海中)에 있다.【2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울릉도 바로 옆에는 죽도라는 섬이 있습니다만 죽도는 날이 맑던 맑지 않던 잘 보입니다. 하지만 "우산은 날이 맑아야만 바라볼 수 있다"고 한것이지요. 사실 울릉도 바닷가에서는 날씨가 맑아도 독도를 볼 수 없습니다. 울릉도에서 산으로 조금 올라가야만 볼 수 있습니다. 일반인 눈높이에서는 약 48km정도 떨어져야 망망대해 수평선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년말 연시 독도는 모르겠지만 울릉도에서 독도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고 싶다면 다음 2009/12/25 - [이슈] - 일본 독도 집착, 울릉도에서 독도 일출 볼 수 있다. - 성탄절, 연말연시 기사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그러니 당연히 독도의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하더라도 해안가에서는 보이지가 않겠지요. 반대로 독도에서는 울릉도가 성인봉 때문에 잘보입니다. 대마도에서는 부산지역이 잘보이고 부산에서는 대마도가 잘 보이지 않는 것 처럼 말입니다.
 
1417년 태종 17년 왜적이 울릉도와 독도에서 도둑질을 한 다음년인 1418년 세종 1년 대마도 정벌이 일어난 것도 조금 아이러니 한일이긴 합니다.
 
1441년 세종 23년 세종은 함길도 관찰사에게 동해안의 새땅을 찾아보라고 지시를 합니다. 사실 세종 11년부터 끊임없이 요도를 찾습니다.
 
도내(道內)에 새 땅이 있다는 일은 떠들썩하게 전하여진 지가 이미 여러 해가 되었고, 친히 말하는 자도 역시 한둘로 계산할 수 없었으니, 어찌 그 까닭이 없이 그러했겠는가. 생각하건대, 그 실상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을 보내어 찾게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아직도 찾지 못하였다.
 
이 새 땅은 우리 강역(疆域) 안에 있는 것이니 더욱 알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구하기를 성심으로 하면 반드시 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경은 이를 알아서 경내(境內)의 고로인(古老人)과 일을 아는 각 사람 등에게 현상(懸賞)하여 묻기도 하고, 혹은 설명하여 묻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로 계획하여 널리 탐방하여서 아뢰라.”
 
세종이 찾으려 한땅은 요도입니다. 요도를 찾고자한 세종의 의도는
 
내가 이 섬을 찾는 것은 토지를 넓히자는 것이 아니고 또 그 백성을 얻어서 부리자는 것도 아니다. 의뢰할 데 없는 무리가 바다 가운데에 모여 살아서 창고와 식량의 준비가 없으니, 한번 흉년을 만나면 반드시 굶어 죽게 될 것이다. 그것을 누가 구제하겠는가. 도내(道內)에 백성들이 깊이 바다 가운데에 들어가서 고기 낚는 것으로 생업을 하니, 그중에 어찌 그 섬을 친히 본자가 없겠는가. 또 아무 곳에 있는 것을 자세히 아는 자가 없겠는가. 다만 사사로이 간 죄[私往之罪]를 두려워하여 서로 숨기고 비밀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백성의 일을 국가에서 반드시 죄주지 않겠다.

제주도 남단에 있는 파랑도가 상상의 섬인 '이어도'라면, 동해 상상의 섬은 고요한 섬 요도(蓼島)입니다. 세종이 찾고자한 요도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관련기사
2009/12/25 - [이슈] - 일본 독도 집착, 울릉도에서 독도 일출 볼 수 있다. - 성탄절, 연말연시
2009/10/1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원작자 "독도는 일본땅" 주장하나?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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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라이너스™ 2009.12.28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보고갑니다^^
    연말이라 좀 정신이 없어서 오랜만에 찾아뵙네요.
    행복한 한주 되시길 빌어요^^

  3. BlogIcon 박기동 2012.01.02 0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한다

  4. BlogIcon 김용대 2012.01.07 0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빈 수레가 요란하다

  5. BlogIcon 이자벨 2012.04.04 0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크 아웃하고 싶습니다.

  6. BlogIcon 노라 2012.04.06 0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습니다, 그것을 사겠습니다

  7. BlogIcon 노라 2012.05.09 0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습니다, 그것을 사겠습니다

  8. BlogIcon 제비꽃 2012.05.11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에 영어를 하시는 분 계십니까?

  9.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hairy.php 2012.07.21 2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는 글이라고 평가하고 싶네요. 이 글을 통해 김연아 선

  10. BlogIcon dallas roofing repair 2012.08.18 2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반대하는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단지 대선에서 유불리에 의한 정략적인 판단이

  11. BlogIcon Brazzers membership 2012.09.08 0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회사는 당신이 그들에서 전화 카드를 구입하고 전면에 회사의 메시지를 출력합니다있는 전화 카드는 기꺼이 명령을 제공합니다 만드는 요리를 전문으로합니다.

  12. BlogIcon london escort 2012.09.19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원은 아주 좋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으며 긍정적 인 방법으로 우리의 취미를 표현 수 있습니다.

  13. BlogIcon montreal massage parlor 2012.10.03 1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구 온난화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많은 삶의 측면뿐만 아니라 세계를 손상.

  14. BlogIcon bnlug 2012.10.03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 방문자를 동원하더라도 광고를 크릭하지 않는다면 단돈 1원도 수익이 없을 수 있다. 이정도 방문자

  15. BlogIcon veste franklin marshall pas cher 2012.10.24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륭한 읽기 위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싶은 찾기 위해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확실히 그것의 모든 조금을 즐기는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새로운 물건을 체크 아웃하는 당신이

  16. BlogIcon perimeter wireless pet fence reviews 2012.11.14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긴것은 세종대왕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말로 세종 이도를 극찬하기도 한다

  17. BlogIcon mattress cyber monday 2012.11.17 2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 사람들이 김연아가 쇼트에서 2번실수하고, 점프에서 미스가 있고, 프리에서 살코에서 1번 넘어지고

  18. BlogIcon midland weather alert radio wr-100 manual 2012.11.19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든 조금을 즐기는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새로운 물건을 체크 아웃하는

  19. BlogIcon tube tent emergency shelter 2012.12.19 1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가적으로 누가 집회를 주관했는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또한, 집회시간에서도 시위자수가 달라 집니다. 동원이냐 자발적이냐에 따라 해당숫자는 천양지차가 발생합니다.

  20. BlogIcon invisible dog fencing 2012.12.26 2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마 도주 종정무가 평도전을 보내 울릉도에 살기를 청하나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대마도주도 이미 울릉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21. BlogIcon mountainhouseplans.com 2013.01.05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끊임없이 울릉도의 공도 정책을 폅니다.

또한, 조선초 이색 등을 울릉도와 여러 섬 등으로 유배시키려 하지만 신하들의 간언으로 내지의 지방으로 유배를 보냅니다.

조선시대에 울릉도는 너무나도 먼 땅입니다. 군선으로도 하루밤낮을 지나야하는 먼 지방이였고, 세종시대에는 군선이 울릉도를 가다가 난파되어 일본까지 흘러간 기록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금과 군역을 피하려고 들어가지만 세종때에도 끊임없이 들어간 사람들을 다시 육지에 안착하도록 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울릉도에 있는 사람이 거짓으로 왜를 사칭하여 강원도 일대을 약탈하기도 하지만, 대마 도주 종정무가 평도전을 보내 울릉도에 살기를 청하나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대마도주도 이미 울릉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그런데 독도에 관한 기록이 최초로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합니다.
 
 
1417년 태종 17년 8월 왜적이 우산도(于山島)·무릉도(武陵島)에서 도둑질하였다.
 
우산도가 지금의 독도임을 알 수 있는 근거는 세종실록 지리지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산(于山)과 무릉(武陵) 2섬이 현의 정동(正東) 해중(海中)에 있다.【2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울릉도 바로 옆에는 죽도라는 섬이 있습니다만 죽도는 날이 맑던 맑지 않던 잘 보입니다. 하지만 "우산은 날이 맑아야만 바라볼 수 있다"고 한것이지요. 사실 울릉도 바닷가에서는 날씨가 맑아도 독도를 볼 수 없습니다. 울릉도에서 산으로 조금 올라가야만 볼 수 있습니다. 일반인 눈높이에서는 약 48km정도 떨어져야 망망대해 수평선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년말 연시 독도는 모르겠지만 울릉도에서 독도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고 싶다면 다음 2009/12/25 - [이슈] - 일본 독도 집착, 울릉도에서 독도 일출 볼 수 있다. - 성탄절, 연말연시 기사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그러니 당연히 독도의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하더라도 해안가에서는 보이지가 않겠지요. 반대로 독도에서는 울릉도가 성인봉 때문에 잘보입니다. 대마도에서는 부산지역이 잘보이고 부산에서는 대마도가 잘 보이지 않는 것 처럼 말입니다.
 
1417년 태종 17년 왜적이 울릉도와 독도에서 도둑질을 한 다음년인 1418년 세종 1년 대마도 정벌이 일어난 것도 조금 아이러니 한일이긴 합니다.
 
1441년 세종 23년 세종은 함길도 관찰사에게 동해안의 새땅을 찾아보라고 지시를 합니다. 사실 세종 11년부터 끊임없이 요도를 찾습니다.
 
도내(道內)에 새 땅이 있다는 일은 떠들썩하게 전하여진 지가 이미 여러 해가 되었고, 친히 말하는 자도 역시 한둘로 계산할 수 없었으니, 어찌 그 까닭이 없이 그러했겠는가. 생각하건대, 그 실상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을 보내어 찾게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아직도 찾지 못하였다.
 
이 새 땅은 우리 강역(疆域) 안에 있는 것이니 더욱 알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구하기를 성심으로 하면 반드시 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경은 이를 알아서 경내(境內)의 고로인(古老人)과 일을 아는 각 사람 등에게 현상(懸賞)하여 묻기도 하고, 혹은 설명하여 묻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로 계획하여 널리 탐방하여서 아뢰라.”
 
세종이 찾으려 한땅은 요도입니다. 요도를 찾고자한 세종의 의도는
 
내가 이 섬을 찾는 것은 토지를 넓히자는 것이 아니고 또 그 백성을 얻어서 부리자는 것도 아니다. 의뢰할 데 없는 무리가 바다 가운데에 모여 살아서 창고와 식량의 준비가 없으니, 한번 흉년을 만나면 반드시 굶어 죽게 될 것이다. 그것을 누가 구제하겠는가. 도내(道內)에 백성들이 깊이 바다 가운데에 들어가서 고기 낚는 것으로 생업을 하니, 그중에 어찌 그 섬을 친히 본자가 없겠는가. 또 아무 곳에 있는 것을 자세히 아는 자가 없겠는가. 다만 사사로이 간 죄[私往之罪]를 두려워하여 서로 숨기고 비밀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백성의 일을 국가에서 반드시 죄주지 않겠다.

제주도 남단에 있는 파랑도가 상상의 섬인 '이어도'라면, 동해 상상의 섬은 고요한 섬 요도(蓼島)입니다. 세종이 찾고자한 요도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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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라이너스™ 2009.12.28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보고갑니다^^
    연말이라 좀 정신이 없어서 오랜만에 찾아뵙네요.
    행복한 한주 되시길 빌어요^^

  3. BlogIcon 박기동 2012.01.02 0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한다

  4. BlogIcon 김용대 2012.01.07 0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빈 수레가 요란하다

  5. BlogIcon 이자벨 2012.04.04 0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크 아웃하고 싶습니다.

  6. BlogIcon 노라 2012.04.06 0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습니다, 그것을 사겠습니다

  7. BlogIcon 노라 2012.05.09 0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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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BlogIcon 제비꽃 2012.05.11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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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는 글이라고 평가하고 싶네요. 이 글을 통해 김연아 선

  10. BlogIcon dallas roofing repair 2012.08.18 2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반대하는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단지 대선에서 유불리에 의한 정략적인 판단이

  11. BlogIcon Brazzers membership 2012.09.08 0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회사는 당신이 그들에서 전화 카드를 구입하고 전면에 회사의 메시지를 출력합니다있는 전화 카드는 기꺼이 명령을 제공합니다 만드는 요리를 전문으로합니다.

  12. BlogIcon london escort 2012.09.19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원은 아주 좋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으며 긍정적 인 방법으로 우리의 취미를 표현 수 있습니다.

  13. BlogIcon montreal massage parlor 2012.10.03 1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구 온난화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많은 삶의 측면뿐만 아니라 세계를 손상.

  14. BlogIcon bnlug 2012.10.03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 방문자를 동원하더라도 광고를 크릭하지 않는다면 단돈 1원도 수익이 없을 수 있다. 이정도 방문자

  15. BlogIcon veste franklin marshall pas cher 2012.10.24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륭한 읽기 위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싶은 찾기 위해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확실히 그것의 모든 조금을 즐기는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새로운 물건을 체크 아웃하는 당신이

  16. BlogIcon perimeter wireless pet fence reviews 2012.11.14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긴것은 세종대왕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말로 세종 이도를 극찬하기도 한다

  17. BlogIcon mattress cyber monday 2012.11.17 2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 사람들이 김연아가 쇼트에서 2번실수하고, 점프에서 미스가 있고, 프리에서 살코에서 1번 넘어지고

  18. BlogIcon midland weather alert radio wr-100 manual 2012.11.19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든 조금을 즐기는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새로운 물건을 체크 아웃하는

  19. BlogIcon tube tent emergency shelter 2012.12.19 1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가적으로 누가 집회를 주관했는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또한, 집회시간에서도 시위자수가 달라 집니다. 동원이냐 자발적이냐에 따라 해당숫자는 천양지차가 발생합니다.

  20. BlogIcon invisible dog fencing 2012.12.26 2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마 도주 종정무가 평도전을 보내 울릉도에 살기를 청하나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대마도주도 이미 울릉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21. BlogIcon mountainhouseplans.com 2013.01.05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선덕여왕 원작자 두사람은 무슨생각으로 역사소설을 쓰나?

신라에는 두개의 궁궐이 있었다. 하나는 명활성이고, 하나는 반월성(월성)이다. 이 두성은 때에 따라서 번갈아 궁궐로 사용되였다. 하지만, 진평왕시기에는 반월성(월성)이 궁궐이였다.

647년 1월 8일 덕만이 죽고나서 비담이 반란을 일으킨 장소는 명활성이다. 반란군을 진압하는 정부군의 지휘부는 궁궐인 월성이였다. 이곳에서 진덕(승만)이 10여일을 비담에 시달렸다. 김유신열전에 김유신이 <횃불 연날리기>로 비담의 군대의 사기를 떨어트리기도 했다. 이와관련해서는 2009/08/3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이 덕만을 배신했다고?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예전 보름날에 연을 날릴때 불을 연의 꼬리에 달고 날리는 풍습이 있었다. 액운을 하늘로 다시 보낸다는 뜻이다. 이는 김유신의 연날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유신은 불쇼를 좋아하는 것 같다. 드라마에서 일식이 일어난다고 혹세무민하여 화형당할뻔 하였다. 이의 원형은 김유신이 물묻은 장작위에서 연기를 피워 쇼를 하는것이였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월성 동북쪽 첨성대 공사장 현재 첨성대와 뒤의 돌을 잘 살펴보기 바란다.

첨성대의 공사 위치는 "반월성(궁성) 동북쪽"이라고 한다. 정말 드라마 원작자들인 대장금과 서동요을 만든 김영현과 공동경비구역을 만든 박상연은 대책이 서지를 않는다. 

어떻게 이들이 역사소설을 쓰고, 사극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불가사의할 정도이다.

우리나라 역사소설을 쓰는 사람들의 수준이 이리도 낮았다는 말인가? 이들의 글을 보면 다음 사극을 쓰는 사람들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저런식으로 써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기본적인 팩트도 무시를 하고 글을 쓰면 안된다는 것을 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재미가 있는것은 원작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연출을 한 박홍균, 김근홍을 비롯한 제작진과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출연진의 공로이다. 이들의 공로를 빼앗는 존재가 원작의 부실함이다. 그렇다고 해서 피디가 잘못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최소한 고증은 받았어야 한다.

천명의 죽음과 대남보는 이미 엎지러진 물이 되었다. 2009/08/11 - [역사이야기] - '천명', 대남보의 독화살에 죽었다? 사실은 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래서 현재까지 사극 선덕여왕은 인기있는 드라마는 될 수 있지만, 국민사극의 반열에는 올라가지 못할것이다. 제작자는 최소한 기초적인 팩트를 확인하고 대사처리를 해야 할것이다. 지금이라도 원작의 틀을 바꾸지 않고도, 대사를 조금만 바꾼다면 그나마 원작이 훼손한 부분을 상당부분은 바꿀 수가 있다.

대사처리만 잘했어도

대사를 조그만 바꿔도 되는 부분은 아막성과 속함성전투에서도 있었다. 진평왕시기에 아막성과 속함성은 백제가 가지고 있었던 적이 없다. 그런데 드라마는 아막성, 속함성을 백제의 것으로 처리하고 신라가 획득한 것으로 처리를 했다. 사실은 백제가 아막성을 공격하고 신라가 방어를 했었다.

또한가지는 천명과 덕만의 출생일이다. 드라마는 천명과 덕만이 <임술년>생이라고 했다. 임술년은 542년과 602년 밖에 없다. 어디로 비정을 해도 천명과 덕만은 존재할 수가 없다. 542년생으로 한다면 아버지 진평보다 먼저태어 나야하고, 602년에 태어났다면 천명이 한살때 603년생인 춘추를 낳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2009/07/2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임술년생 덕만과 천명의 나이는 몇살?

이뿐만이 아니다. 황당사극의 진수는 "일식은 보름날에 일어난다"는 새로운 학설까지 선덕여왕은 설파하고 있다. 이는 초등학교 교과서까지 수정해야 할판이다. 왜 일식은 보름날에 일어나면 안되는지를 알고 싶다면 2009/08/28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불가능은 없다.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첨성대는 궁성(반월성) 북서쪽에 있었고, 덕만이 왕이 된후 이듬해에 만들었다.
 

도대체 첨성대가 반월성 동북쪽에 있다고 스스럼 없이
말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반월성의 위치가 잘못 비정된 것인가? 위의 다음 지도검색에서도 알수 있듯이 첨성대는 반월성(궁궐) 북쪽 방면에 있다.
동북방면이면 황룡사지쪽이다. 궁 가까이는 추후 동궁되는 안압지쪽이 된다.

언제 첨성대가 안압지나 황룡사쪽에 있었던가? 그 당시에는 첨성대가 궁궐(월성) 동북쪽에 있다가 비형랑이 하루 아침에 북서쪽으로 옮기기라고 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이동한 시기라도 있었던가? 아니면 경주에 첨성대가 두개가 있었다는 말인가?

덕만은 첨성대를 만들자리에서 제를 올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첨성대는 언제 만들어 졌을까? 삼국유사에는 단순히 첨성대를 만들었다고 기록있다. 
 
첨성대(瞻星臺)【부성(府城)의 남쪽 모퉁이에 있다. 633년 당나라 태종(太宗) 정관(貞觀) 7년 계사에 신라 선덕 여왕(善德女王)이 쌓은 것이다.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위는 방형(方形)이고, 아래는 원형(圓形)으로 높이가 19척 5촌, 위의 둘레가 21척 6촌, 아래의 둘레가 35척 7촌이다. 그 가운데를 통하게 하여, 사람이 가운데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 경주부

하지만, 조선시대 세종의 지리지에 경주부에는 633년에 첨성대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첨성대가 덕만이 공주시절인 진평왕시기에 만들어 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2년(633) 봄 정월에 몸소 신궁(神宮)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였으며 여러 주·군(州郡)의 1년간 조세[租調]를 면제해 주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2년 정월

2009/09/02 - [역사이야기] - 덕만은 첨성대로 신권을 버렸을까? 사실은 기사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덕만은 제사와 분리하려던 것이 아니였다는 말이다. 신교와 불교를 융합하는 것이 덕만의 뜻이였고, 덕만은 이를 영묘사, 분황사, 첨성대와 황룡사 9층탑과 사천왕사의 건립으로 불국정토를 신라에 뿌리내리려 하였다. 한마디로 신라의 왕들은 현인신이 되고, 부처가 되고자 했었다.  거기에 덕만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사천왕사는 덕만이 죽기전에는 이룰수 없었고, 문무왕 시기에 비로서 이룰수가 있었다. 다만, 덕만이 자신의 죽은 날짜를 예언하고 도리천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유언을 했다. 도리천을 알 수 없었던 대신들이 물으니 덕만은 낭산에 도리천이 있다고 하였다. 불(佛)경에는 도리천은 사천왕사 위쪽에 있다고 했단다.

선덕여왕 연장 기대와 우려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은 최소 12회 연장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드라마 전체적인 흐름을 깨지 않는 범위에서 드라마 선덕여왕의 제작진은 '첨성대의 위치'와 '공주시절 만들었다'는 두가지의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을 삽입해야하지 않을까한다. 12회 연장을 한다면 총 62부작이다. 시즌1은 천명의 죽음이고, 2부는 덕만의 공주시절의 활약이고, 3부는 왕시대일 것이다. 4부는 왕의 후반부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제 30부가 끝났다. 이는 사극 선덕여왕이 반환점을 돌아가는 시점이다.

공주시절 첨성대를 궁성(반월성) 동북쪽에 만들려고 했지만, 미실의 여론조작과 국민이 반대로 만들지 못하고, 덕만이 즉위한 2년에 꿈에도 그리던 격물과 신정을 분리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래야 합리적이고, 극적인 전개가 될 수 있다.

위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단순히 대사처리만으로도 큰흐름에 지장이 없을 것이고, 환타지, 퓨전 사극이 아닌 "신라를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재현"한다는 제작진의 <제작의도>에 부합하지 않을까 한다.
 
또한 <선덕여왕>제작팀은 "시청자에게 (신라)가 친숙함에도 불구하고, 아는 바는 거의 없다"고 말을 하면서 "화려했던 고대 신라 사회로 안내할 것이다"라고 장담을 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모습은 신라를 재현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고 '고대 신라사회'로 안내하지 못하고, 잘못된 네비게이션이 엉뚱한 길을 안내하듯이 잘못된 고대사회로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선덕여왕 제작팀이 가장 듣기 싫은 소리, "드라마는 드라마로"

 mbc 사극 <선덕여왕>제작팀은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신라사를 재현하고, 안내하겠다는 사극"을 <환타지>, <퓨전>,<SF>드라마로 보자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은 축구를 보던 스포츠를 보던 "골만 넣으면 됐지, 핸드링, 업사이드, 반칙이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사극이란 팩트가 있고, 결과가 있는 역사기록을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재해석으로 풀어가는 과정의 극이다. 거기에 현실정치를 풍자하는 요소가 있다면 금상첨화가 되는 것이다. 물론, 재미는 모든 극의 기본이다. 그렇다고 재미를 위해서 뼈가되는 팩트를 무시하면 안된다. 사극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옥의티. 맨위의 첨성대 공사장 사진 설명에서 공사장의 돌을 잘 살펴보라고 했다. 현재의 첨성대의 돌을 살펴보자. 돌의 크기가 다르지 않나? 또한, 첨성대는 저렇게 다듬은 돌을 사용하지 않았다. 첨성대 내부벽은 다듬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돌이다. 

대부분이 건축물에 사용하는 돌은 조선시대까지도 보이는 면은 다듬지만, 보이지 않는 면은 다듬지 않았다. 성을 쌓거나, 건축물의 주춧돌도 "그랭이" 기법을 사용해서 자연석을 이용해서 틀을 잡았다. 추후 언젠가는 이와 관련해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인데 기회가 될지는 모르겠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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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9.03 0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 올때마다 몰랐던 사실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BlogIcon labyrint 2009.09.03 0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첨성대의 위치가 잘못되었군요...

    작가가 뭘 잘못 기억한 것이 아닐지요... ㅋㅋ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4. BlogIcon White Rain 2009.09.03 0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더 세심했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앞으로라도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해요. 정말 대사만 바꿔도 될 일을..

  5. BlogIcon 아이러니♡ 2009.09.03 0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팀이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을 운운하기 전에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하는 바람입니다.
    좋은 글 잘 읽구 가요~!

  6. BlogIcon 朱雀 2009.09.03 0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7. BlogIcon 초록누리 2009.09.03 0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사만 조금 바꿔도 그게 흐름을 아주 바꾸지는 않았을텐데 아쉽네요.
    드라마도 중요하지만 사극인만큼 역사적인 사실이 아주 중요하지요.
    특히 시청률이 높은 사극드라마일수록 역사적 사실과 조금 더 가까우면 혼란도 덜하고 재미도 더했을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도 역사를 공부했던 입장에서 신라사는 사실 많이 모르지만 이건 뭥미? 스러운 것들이 많답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냥 보는거지요.... ㅎㅎ

  8. BlogIcon 칫솔 2009.09.03 0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자체는 이미 역사적 막장 아니겠습니까~
    저는 드라마 끝나면 갓쉰동님 해설보고 기울어진 중심을 되찾는답니다. ^^

  9. 2009.09.03 08: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0. 오호 2009.09.03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건 틀리면 안되는 부분일텐데.. 디비디로 나오면 그부분만 더빙으로라도 고쳤으면..

  11. 작은미소 2009.09.03 1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작자는 왜 사실대로 했으면 더 좋았을것을 .... 일부러 그러하시진 않았겟지요 지금이래도 바로 잡는다면 좋겠지만 드라마 흐름상 다시 돌아가진 못할것이고 다 끝나는날 자막처리 하겠지요.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역사 드라마는 다르지요 재밋게 보고 있는 드라마 인데 약간 기분이 그렇군요 그냥 흘려볼수도 있는 드라마를 이렇게 찝어 주시는님이 참 부럽습니다.
    이렇게 해서 드라마에 더 관심이 있게 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3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금도 늦지는 않았지요.. 오히려 더 극적일것 같아요..
      덕만의 좌절을 보는것도.. 성공일변도 잼없잖아요.. ㅋㅋ

  12. BlogIcon 영웅전쟁 2009.09.03 1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날카로운 비평에 중후한(앗 중후함은 싫어 하신다고 했는데 ㅎㅎㅎ)
    멋이 어루려진 멋진 글입니다.
    사극 작가들 공부 많이 하게 생겼군요 ㅋ
    언제나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13. ㅁㅁ 2009.09.03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월성이 길쭉하니 반월성에서 보는 지점에 따라서, 첨성대는 북쪽, 동북쪽, 서북쪽 모두가 해당된다.
    제매정에서 보는 방향과 석빙고에서 보는 방향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제매정에서 본다면 동북이라고 말할 수 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3 14: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님의 생각이구요..

      동서남북이 언제 님의 서있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던가요?

      그럴때는 좌측 우측, 전방 후방 이라는 표현을 하는거지요..

  14. BlogIcon 에몽Plus 2009.09.03 15: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자세하게 분석해 놓으셨네요....

    대단하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3 2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힘들게 쓰고 효과는 없지요.. 이런글은.. 담부터는 짧게 쓸려구요.. 이글을 나눠도 3개의 별도 포스팅을 할 정이니.. ㅋㅋ

  15. 전반적으로 2009.09.03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옳은 말씀이긴 하나 마지막 부분은 좀 아니네요.
    제가 알기로 선덕여왕 제작진은 인터뷰에서 이 드라마가 정통 사극이 아니라고 밝혔던 것 같은데요.
    역사를 소재로 한 퓨전 드라마라고 들었는데... 약간 오버하신듯.

    그리고 중간에 김유신 이야기를 하시면서 일식이 일어날거라고 하여 화형당할 뻔 했다고 하셨는데...
    드라마에서 그 역할을 한 사람은 비담이었어요. 확인해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3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전 보름날에 연을 날릴때 불을 연의 꼬리에 달고 날리는 풍습이 있었다. 액운을 하늘로 다시 보낸다는 뜻이다. 이는 김유신의 연날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유신은 불쇼를 좋아하는 것 같다. 드라마에서 일식이 일어난다고 혹세무민하여 화형당할뻔 하였다. 이의 원형은 김유신이 물묻은 장작위에서 연기를 피워 쇼를 하는것이였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
      비담이 생략된 겁니다. 언제 유신이 화형을 당했다고 하던가요? 사실 이 대목의 행간을 읽으면 선덕여왕 원작자 참 창의력도 없다는 글인뎅...

      그리고 님같은 분때문에 제작의도까지 펌해주었잖아요..

  16. BlogIcon Nehe 2009.09.04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서운것은 일제를 찬양하는 드라마가 나와도 드라마는 드라마니까 하고 넘어가야 하는것인지... 하는 의문이 드는것입니다. 사료가 모자라는 신라는 더더욱 신중을 기해야하는데요...

  17.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8. BlogIcon time saver cost effective lawn edgings 2012.08.30 2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만으로 후퇴를 할 수도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이처럼 전혀 생뚱맞은 <대화>로 드라마 전체의 극 흐름을 스스

  19. BlogIcon robert noyce 2012.09.06 0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왕이 재미가 있는것은 원작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연출을 한 박홍균, 김근홍을 비롯한 제작진과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출연진의 공로이다.

  20. BlogIcon free online grammar checker 2012.09.08 2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하는 돌은 조선시대까지도 보이는 면은 다듬지만, 보이지

  21. BlogIcon Wellness 2012.09.22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에는 두개의 궁궐이 있었다. 하나는 명활성이고, 하나는 반월성(월성)이다. 이 두성은 때에 따라서

선덕여왕 원작자 두사람은 무슨생각으로 역사소설을 쓰나?

신라에는 두개의 궁궐이 있었다. 하나는 명활성이고, 하나는 반월성(월성)이다. 이 두성은 때에 따라서 번갈아 궁궐로 사용되였다. 하지만, 진평왕시기에는 반월성(월성)이 궁궐이였다.

647년 1월 8일 덕만이 죽고나서 비담이 반란을 일으킨 장소는 명활성이다. 반란군을 진압하는 정부군의 지휘부는 궁궐인 월성이였다. 이곳에서 진덕(승만)이 10여일을 비담에 시달렸다. 김유신열전에 김유신이 <횃불 연날리기>로 비담의 군대의 사기를 떨어트리기도 했다. 이와관련해서는 2009/08/3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이 덕만을 배신했다고?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예전 보름날에 연을 날릴때 불을 연의 꼬리에 달고 날리는 풍습이 있었다. 액운을 하늘로 다시 보낸다는 뜻이다. 이는 김유신의 연날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유신은 불쇼를 좋아하는 것 같다. 드라마에서 일식이 일어난다고 혹세무민하여 화형당할뻔 하였다. 이의 원형은 김유신이 물묻은 장작위에서 연기를 피워 쇼를 하는것이였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월성 동북쪽 첨성대 공사장 현재 첨성대와 뒤의 돌을 잘 살펴보기 바란다.

첨성대의 공사 위치는 "반월성(궁성) 동북쪽"이라고 한다. 정말 드라마 원작자들인 대장금과 서동요을 만든 김영현과 공동경비구역을 만든 박상연은 대책이 서지를 않는다. 

어떻게 이들이 역사소설을 쓰고, 사극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불가사의할 정도이다.

우리나라 역사소설을 쓰는 사람들의 수준이 이리도 낮았다는 말인가? 이들의 글을 보면 다음 사극을 쓰는 사람들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저런식으로 써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기본적인 팩트도 무시를 하고 글을 쓰면 안된다는 것을 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재미가 있는것은 원작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연출을 한 박홍균, 김근홍을 비롯한 제작진과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출연진의 공로이다. 이들의 공로를 빼앗는 존재가 원작의 부실함이다. 그렇다고 해서 피디가 잘못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최소한 고증은 받았어야 한다.

천명의 죽음과 대남보는 이미 엎지러진 물이 되었다. 2009/08/11 - [역사이야기] - '천명', 대남보의 독화살에 죽었다? 사실은 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래서 현재까지 사극 선덕여왕은 인기있는 드라마는 될 수 있지만, 국민사극의 반열에는 올라가지 못할것이다. 제작자는 최소한 기초적인 팩트를 확인하고 대사처리를 해야 할것이다. 지금이라도 원작의 틀을 바꾸지 않고도, 대사를 조금만 바꾼다면 그나마 원작이 훼손한 부분을 상당부분은 바꿀 수가 있다.

대사처리만 잘했어도

대사를 조그만 바꿔도 되는 부분은 아막성과 속함성전투에서도 있었다. 진평왕시기에 아막성과 속함성은 백제가 가지고 있었던 적이 없다. 그런데 드라마는 아막성, 속함성을 백제의 것으로 처리하고 신라가 획득한 것으로 처리를 했다. 사실은 백제가 아막성을 공격하고 신라가 방어를 했었다.

또한가지는 천명과 덕만의 출생일이다. 드라마는 천명과 덕만이 <임술년>생이라고 했다. 임술년은 542년과 602년 밖에 없다. 어디로 비정을 해도 천명과 덕만은 존재할 수가 없다. 542년생으로 한다면 아버지 진평보다 먼저태어 나야하고, 602년에 태어났다면 천명이 한살때 603년생인 춘추를 낳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2009/07/2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임술년생 덕만과 천명의 나이는 몇살?

이뿐만이 아니다. 황당사극의 진수는 "일식은 보름날에 일어난다"는 새로운 학설까지 선덕여왕은 설파하고 있다. 이는 초등학교 교과서까지 수정해야 할판이다. 왜 일식은 보름날에 일어나면 안되는지를 알고 싶다면 2009/08/28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불가능은 없다.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첨성대는 궁성(반월성) 북서쪽에 있었고, 덕만이 왕이 된후 이듬해에 만들었다.
 

도대체 첨성대가 반월성 동북쪽에 있다고 스스럼 없이
말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반월성의 위치가 잘못 비정된 것인가? 위의 다음 지도검색에서도 알수 있듯이 첨성대는 반월성(궁궐) 북쪽 방면에 있다.
동북방면이면 황룡사지쪽이다. 궁 가까이는 추후 동궁되는 안압지쪽이 된다.

언제 첨성대가 안압지나 황룡사쪽에 있었던가? 그 당시에는 첨성대가 궁궐(월성) 동북쪽에 있다가 비형랑이 하루 아침에 북서쪽으로 옮기기라고 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이동한 시기라도 있었던가? 아니면 경주에 첨성대가 두개가 있었다는 말인가?

덕만은 첨성대를 만들자리에서 제를 올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첨성대는 언제 만들어 졌을까? 삼국유사에는 단순히 첨성대를 만들었다고 기록있다. 
 
첨성대(瞻星臺)【부성(府城)의 남쪽 모퉁이에 있다. 633년 당나라 태종(太宗) 정관(貞觀) 7년 계사에 신라 선덕 여왕(善德女王)이 쌓은 것이다.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위는 방형(方形)이고, 아래는 원형(圓形)으로 높이가 19척 5촌, 위의 둘레가 21척 6촌, 아래의 둘레가 35척 7촌이다. 그 가운데를 통하게 하여, 사람이 가운데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 경주부

하지만, 조선시대 세종의 지리지에 경주부에는 633년에 첨성대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첨성대가 덕만이 공주시절인 진평왕시기에 만들어 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2년(633) 봄 정월에 몸소 신궁(神宮)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였으며 여러 주·군(州郡)의 1년간 조세[租調]를 면제해 주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2년 정월

2009/09/02 - [역사이야기] - 덕만은 첨성대로 신권을 버렸을까? 사실은 기사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덕만은 제사와 분리하려던 것이 아니였다는 말이다. 신교와 불교를 융합하는 것이 덕만의 뜻이였고, 덕만은 이를 영묘사, 분황사, 첨성대와 황룡사 9층탑과 사천왕사의 건립으로 불국정토를 신라에 뿌리내리려 하였다. 한마디로 신라의 왕들은 현인신이 되고, 부처가 되고자 했었다.  거기에 덕만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사천왕사는 덕만이 죽기전에는 이룰수 없었고, 문무왕 시기에 비로서 이룰수가 있었다. 다만, 덕만이 자신의 죽은 날짜를 예언하고 도리천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유언을 했다. 도리천을 알 수 없었던 대신들이 물으니 덕만은 낭산에 도리천이 있다고 하였다. 불(佛)경에는 도리천은 사천왕사 위쪽에 있다고 했단다.

선덕여왕 연장 기대와 우려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은 최소 12회 연장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드라마 전체적인 흐름을 깨지 않는 범위에서 드라마 선덕여왕의 제작진은 '첨성대의 위치'와 '공주시절 만들었다'는 두가지의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을 삽입해야하지 않을까한다. 12회 연장을 한다면 총 62부작이다. 시즌1은 천명의 죽음이고, 2부는 덕만의 공주시절의 활약이고, 3부는 왕시대일 것이다. 4부는 왕의 후반부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제 30부가 끝났다. 이는 사극 선덕여왕이 반환점을 돌아가는 시점이다.

공주시절 첨성대를 궁성(반월성) 동북쪽에 만들려고 했지만, 미실의 여론조작과 국민이 반대로 만들지 못하고, 덕만이 즉위한 2년에 꿈에도 그리던 격물과 신정을 분리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래야 합리적이고, 극적인 전개가 될 수 있다.

위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단순히 대사처리만으로도 큰흐름에 지장이 없을 것이고, 환타지, 퓨전 사극이 아닌 "신라를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재현"한다는 제작진의 <제작의도>에 부합하지 않을까 한다.
 
또한 <선덕여왕>제작팀은 "시청자에게 (신라)가 친숙함에도 불구하고, 아는 바는 거의 없다"고 말을 하면서 "화려했던 고대 신라 사회로 안내할 것이다"라고 장담을 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모습은 신라를 재현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고 '고대 신라사회'로 안내하지 못하고, 잘못된 네비게이션이 엉뚱한 길을 안내하듯이 잘못된 고대사회로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선덕여왕 제작팀이 가장 듣기 싫은 소리, "드라마는 드라마로"

 mbc 사극 <선덕여왕>제작팀은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신라사를 재현하고, 안내하겠다는 사극"을 <환타지>, <퓨전>,<SF>드라마로 보자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은 축구를 보던 스포츠를 보던 "골만 넣으면 됐지, 핸드링, 업사이드, 반칙이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사극이란 팩트가 있고, 결과가 있는 역사기록을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재해석으로 풀어가는 과정의 극이다. 거기에 현실정치를 풍자하는 요소가 있다면 금상첨화가 되는 것이다. 물론, 재미는 모든 극의 기본이다. 그렇다고 재미를 위해서 뼈가되는 팩트를 무시하면 안된다. 사극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옥의티. 맨위의 첨성대 공사장 사진 설명에서 공사장의 돌을 잘 살펴보라고 했다. 현재의 첨성대의 돌을 살펴보자. 돌의 크기가 다르지 않나? 또한, 첨성대는 저렇게 다듬은 돌을 사용하지 않았다. 첨성대 내부벽은 다듬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돌이다. 

대부분이 건축물에 사용하는 돌은 조선시대까지도 보이는 면은 다듬지만, 보이지 않는 면은 다듬지 않았다. 성을 쌓거나, 건축물의 주춧돌도 "그랭이" 기법을 사용해서 자연석을 이용해서 틀을 잡았다. 추후 언젠가는 이와 관련해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인데 기회가 될지는 모르겠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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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9.03 0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 올때마다 몰랐던 사실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BlogIcon labyrint 2009.09.03 0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첨성대의 위치가 잘못되었군요...

    작가가 뭘 잘못 기억한 것이 아닐지요... ㅋㅋ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4. BlogIcon White Rain 2009.09.03 0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더 세심했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앞으로라도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해요. 정말 대사만 바꿔도 될 일을..

  5. BlogIcon 아이러니♡ 2009.09.03 0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팀이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을 운운하기 전에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하는 바람입니다.
    좋은 글 잘 읽구 가요~!

  6. BlogIcon 朱雀 2009.09.03 0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7. BlogIcon 초록누리 2009.09.03 0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사만 조금 바꿔도 그게 흐름을 아주 바꾸지는 않았을텐데 아쉽네요.
    드라마도 중요하지만 사극인만큼 역사적인 사실이 아주 중요하지요.
    특히 시청률이 높은 사극드라마일수록 역사적 사실과 조금 더 가까우면 혼란도 덜하고 재미도 더했을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도 역사를 공부했던 입장에서 신라사는 사실 많이 모르지만 이건 뭥미? 스러운 것들이 많답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냥 보는거지요.... ㅎㅎ

  8. BlogIcon 칫솔 2009.09.03 0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자체는 이미 역사적 막장 아니겠습니까~
    저는 드라마 끝나면 갓쉰동님 해설보고 기울어진 중심을 되찾는답니다. ^^

  9. 2009.09.03 08: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0. 오호 2009.09.03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건 틀리면 안되는 부분일텐데.. 디비디로 나오면 그부분만 더빙으로라도 고쳤으면..

  11. 작은미소 2009.09.03 1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작자는 왜 사실대로 했으면 더 좋았을것을 .... 일부러 그러하시진 않았겟지요 지금이래도 바로 잡는다면 좋겠지만 드라마 흐름상 다시 돌아가진 못할것이고 다 끝나는날 자막처리 하겠지요.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역사 드라마는 다르지요 재밋게 보고 있는 드라마 인데 약간 기분이 그렇군요 그냥 흘려볼수도 있는 드라마를 이렇게 찝어 주시는님이 참 부럽습니다.
    이렇게 해서 드라마에 더 관심이 있게 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3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금도 늦지는 않았지요.. 오히려 더 극적일것 같아요..
      덕만의 좌절을 보는것도.. 성공일변도 잼없잖아요.. ㅋㅋ

  12. BlogIcon 영웅전쟁 2009.09.03 1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날카로운 비평에 중후한(앗 중후함은 싫어 하신다고 했는데 ㅎㅎㅎ)
    멋이 어루려진 멋진 글입니다.
    사극 작가들 공부 많이 하게 생겼군요 ㅋ
    언제나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13. ㅁㅁ 2009.09.03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월성이 길쭉하니 반월성에서 보는 지점에 따라서, 첨성대는 북쪽, 동북쪽, 서북쪽 모두가 해당된다.
    제매정에서 보는 방향과 석빙고에서 보는 방향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제매정에서 본다면 동북이라고 말할 수 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3 14: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님의 생각이구요..

      동서남북이 언제 님의 서있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던가요?

      그럴때는 좌측 우측, 전방 후방 이라는 표현을 하는거지요..

  14. BlogIcon 에몽Plus 2009.09.03 15: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자세하게 분석해 놓으셨네요....

    대단하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3 2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힘들게 쓰고 효과는 없지요.. 이런글은.. 담부터는 짧게 쓸려구요.. 이글을 나눠도 3개의 별도 포스팅을 할 정이니.. ㅋㅋ

  15. 전반적으로 2009.09.03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옳은 말씀이긴 하나 마지막 부분은 좀 아니네요.
    제가 알기로 선덕여왕 제작진은 인터뷰에서 이 드라마가 정통 사극이 아니라고 밝혔던 것 같은데요.
    역사를 소재로 한 퓨전 드라마라고 들었는데... 약간 오버하신듯.

    그리고 중간에 김유신 이야기를 하시면서 일식이 일어날거라고 하여 화형당할 뻔 했다고 하셨는데...
    드라마에서 그 역할을 한 사람은 비담이었어요. 확인해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3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전 보름날에 연을 날릴때 불을 연의 꼬리에 달고 날리는 풍습이 있었다. 액운을 하늘로 다시 보낸다는 뜻이다. 이는 김유신의 연날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유신은 불쇼를 좋아하는 것 같다. 드라마에서 일식이 일어난다고 혹세무민하여 화형당할뻔 하였다. 이의 원형은 김유신이 물묻은 장작위에서 연기를 피워 쇼를 하는것이였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
      비담이 생략된 겁니다. 언제 유신이 화형을 당했다고 하던가요? 사실 이 대목의 행간을 읽으면 선덕여왕 원작자 참 창의력도 없다는 글인뎅...

      그리고 님같은 분때문에 제작의도까지 펌해주었잖아요..

  16. BlogIcon Nehe 2009.09.04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서운것은 일제를 찬양하는 드라마가 나와도 드라마는 드라마니까 하고 넘어가야 하는것인지... 하는 의문이 드는것입니다. 사료가 모자라는 신라는 더더욱 신중을 기해야하는데요...

  17.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8. BlogIcon time saver cost effective lawn edgings 2012.08.30 2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만으로 후퇴를 할 수도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이처럼 전혀 생뚱맞은 <대화>로 드라마 전체의 극 흐름을 스스

  19. BlogIcon robert noyce 2012.09.06 0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왕이 재미가 있는것은 원작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연출을 한 박홍균, 김근홍을 비롯한 제작진과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출연진의 공로이다.

  20. BlogIcon free online grammar checker 2012.09.08 2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하는 돌은 조선시대까지도 보이는 면은 다듬지만, 보이지

  21. BlogIcon Wellness 2012.09.22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에는 두개의 궁궐이 있었다. 하나는 명활성이고, 하나는 반월성(월성)이다. 이 두성은 때에 따라서

첨성대와 격물과 신권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또한, 첨성대는 덕만이 공주시절에는 절대로 완성되지 않아야 한다. 어찌되었던 이와 관련해서 신라사의 배경설명을 먼저 하도록 하겠다.

시대상황과 시간은 작가맘대로 그리고 당시 불교와 신교의 대립?  

용춘은 혁거세가 건국한지 700년이 지났다고 신국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도대체 근거가 있는것일까? 기원전 57년 박혁거세 13세에 6부의 족장들이 추대하여 신라(서라벌)를 건국하고 26대 진평왕 시기의 선덕여왕의 배경이 되는 시기인 610~618년이전이 되니 660여년 된다. 

혁거세의 유명이란 어출쌍생, 성골남진 새겨진 비석이 412년 실성왕 말년 눌지가 반란을 일으킬때 사라진지 200년이 지나서 나왔다고 이야기한적도 있다.

2009년은 기원전 2333년 단군이 조선을 새운 개국 기점인 단기로 따지만 4340여년이지만 우리는 반만년 역사라고 한다. 그러니 딴지를 걸기는 민망해진다. 


용춘은 신권이 700여년동안 황실에 있었지만, 단지, 20여년동안 미실이 차지한 것인데 "다시 신권을 황실로 귀속시키면 되지 않는가?"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알천은 576년 진흥왕 이후 신권이 미실에 넘어갔다고 이야기를 한다. 유신은 528년 법흥왕때 이차돈이 순교한이후로 100년이 지났다고 한다. 최소한 드라마 내에서라도 통일성과 일관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화랑세기는 미실이 화랑 풍월주를 폐하고 원화로 복귀한후 신권을 장악한 때는 572년 이전이다. 572년 진평의 아버지인 동륜이 보명궁에서 개한테 물려 죽는 사건으로 인해서 미실은 원화에서 물러나고 다시 세종에게 풍월주가 넘어가게 된다.

어찌되었던 미실이 정치일선의 전방위에 등장한 때는 진흥왕 말년인 570년대를 즈음해서이고 아무리 늦게 잡아도 본격적으로 나선때는 579년 용춘의 아버지인 진지왕(금륜)을 폐위하는데 선봉에 선 579년이 된다. 


이들중 가장 늦게 잡아도 20여년동안 미실의 천하였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의 시대적 배경은 진평왕 20~25년 사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드라마 시대적 배경은 아무리 늦게 잡아도 600~605년이라는 말이 된다. 이렇게 또 드라마 선덕여왕의 시간 개념이 흔들린다.

603년생인 춘추는 어쩌란 말이냐 도대체 몇살에 수나라로 공부를 하러 간것인가? 당시에도 조기교육이 성행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미국의 시민권을 따러 원정출산을 감행하듯이 수나라의 시민권이라도 따기 위해서 중국행을 결행한것 인가? 하긴 춘추에 의해서 신라는 신라의 풍습과 제도를 버리고, 당의 법률체계와 복식으로 바뀐다,

520년 법흥왕 8년부터 사용하던 복식을 648년 정월에 당의 복식과 의관으로 바꾼다. 또한, 신라는 536년 법흥왕 23년 <건원>을 시작으로 연호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진덕(승만)왕 647년 7월, 634년 선덕왕 3년부터 사용하던 <인평> 연호를 <태화>로 바꾼 이듬해 인 648년 649년 진덕왕 4년인 649년 6월에 당의 연호인 <영휘>로 바꿔 버린다.

528년 이차돈의 순교를 드라마 원작자는 유신의 입을 빌려서 신(神)당을 관할하는 세력과 불(佛)을 숭상하는 세력이 충돌이라고 한다. 법흥이 불교를 공인하고 받아들였지만, 지금도 신당을 관할하는 세력이 불교를 숭상하는 세력보다도 쎄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법흥왕의 이름은 원종이다. 원종은 죽은 후 법흥왕의 시호를 받는다. 법흥의 시호는 불교를 흥하게 했다는 전륜성왕이다. 그의 조카인 심맥부인 진흥왕도 시호가 불교를 진흥했다는 이름이다. 그의 자식들의 이름은 동륜, 금륜(진지), 사륜, 은륜이다. .


또한, 진흥이 죽기전에 승들이 입던 <가사>를 입고 생활을 했고, 진흥왕의 아내인 사도태후는 영흥사에서 비구니로 생활을 하다 614년 죽는다. 또한, 화랑세기에 의하면 세종과 설원랑과 미실은 말년을 사도태후와 같이 영흥사에서 지낸다. 그러니 드라마에서 처럼 불교보다 신교가 더 흥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세종과 설원랑과 미실이 말년에 개종 시킨다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세종과 미실은 <천주사>에서 빌고 빌어 아들을 낳았는데 드라마에서는 매일 투덜거리고, 개차반으로 나오는 하종이다.

그러니 이미 불교와 신교는 합일의 단계를 넘어선것이다. 아마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잘못된 캐릭터로 유신은 둘째치고라도 천명을 죽인 대남보와 하종을 따를자가 없다.

하지만, 화랑세기에는 하종은 근검절약하고 겸약하기가 따를자가 없었다고 한다.


공은 검소하고 색을 삼갔으며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윗사람을 공경하여 세종世宗)의 풍모를 크게 가졌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공에게 복종하지 않는 사람도 끝내는 귀부하였다. - 화랑세기 11세 풍월주 하종

대남보에 관해서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위의 기사를 참조 하기 바란다.

문제는 세종은 지소태후(법흥/보도)의 아들이며 진골정통이다. 어려서 부터 불교교육을 뼈속같이 받았다는 말이다. 물론, 미실은 옥진과 묘도로 이어지는 대원신통을 받아서 세종과는 믿는 종교가 달랐다. 진흥의 비인 사도는 영실/옥진의 사이에서 낳았다. 미실의 할머니 옥진은 대원신통이다. 그의 딸들인 미실의 어미인 묘도나 사도는 대원신통인데도 불구하고 왕비가 되었다.

또한, 진지(금륜)의 비이고 용수/용춘의 어미인 지도 또한 대원신통이다. 그런데도 왕실에서 왕비로 받아들인것이다. 신라 왕실은 종교에 대해서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물론, 약간의 트러블은 있었다.


요즘도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자신들과 종교가 다른 사람과의 혼인을 하지 않으려 한다. 또는 결혼상대자를 개종시키려고 노력을 한다. 신라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러니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은 종교의 나눔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왕인 성골들이 대대로 믿은 종교보다 쎈종교가 있나? 덕만이 이 천한 미실아 "감히 성골인 공주의 몸에 손을 데느냐"고 미실에 쏘아 붙혔는데 드라마 작가의 견해라면 성골보다 대원신통인 미실이 더 파워가 있다는 말인데 성골은 좆도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건가?

드라마 원작자는 제사와 정치를 분리하려고 한다. 한마디로 제정일치에서 신정분리가 국가시스템적으로 발전되었다는 환상에 빠져 있는듯 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하지만, 선진국이라고 하는 유럽이나, 미국을 봐도 신정일체에 가깝다.

오히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 있는 대한민국이 역사상 유래를 찾아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물론, 대한민국의 작금의 현실은 고소영으로 대변되기는 한다. 소망교회를 다니면 성골이고, 그저 이명박과 다른 교회를 다니면 진골이 되지만 말이다. (글쓴이는 성골,진골을 믿지 않는다. 통설을 따라가면 그렇다는 말이다) 


덕만은 신정분리 했을까?

덕만은 첨성대를 만드는 것으로 신정.격물을 분리했을까? 천만에 만만의 콩떡이 되시겠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덕만이 등극한 이듬해인 633년 정월 덕만이 직접 신궁에 제사를 지내고, 대사면령을 내린다. 그리고 이해에 첨성대를 쌓기시작한다.

그러니 첨성대와 신정분리와는 상관관계가 없다. 오히려 덕만은 신교와 불교을 합일시키고, 신라를 불국정토로 만들 구상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그럼 불교는 종교가 아닌가? 하긴 불교는 불법 또는 법(法)이라고 했다.

아래의 기록을 봐서 알겠지만, 드라마상 첨성대는 완성되면 안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덕만이 공주시절에 첨성대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2년(633) 봄 정월에 몸소 신궁(神宮)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였으며 여러 주·군(州郡)의 1년간 조세[租調]를 면제해 주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2년 정월

633년 첨성대(瞻星臺)【부성(府城)의 남쪽 모퉁이에 있다. 633년 당나라 태종(太宗) 정관(貞觀) 7년 계사에 신라 선덕 여왕(善德女王)이 쌓은 것이다.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위는 방형(方形)이고, 아래는 원형(圓形)으로 높이가 19척 5촌, 위의 둘레가 21척 6촌, 아래의 둘레가 35척 7촌이다. 그 가운데를 통하게 하여, 사람이 가운데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 경주부

어찌되었던 금륜의 자식인 용수는 <용수보살>을 따라 작명한 것이고, 드라마에서는 진지와 미실 사이에 태어났다는 비담은 <아비달마>의 준말이며, 율종 중에 <비담신률>의 율법이 있었을 정도로 <비담>의 이름은 불교에 심취한 이름이다. 

비담이 난을 일으킬때 상대등에 있었던 것으로 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라는 이미 신국이며 불교국가였고 불과신이 하나로 융합되고 녹아드는 발전한 단계에 있었다.

사찰을 보면 산신각, 삼신각, 칠성각 등 토속신과 융합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덕만의 이름도 불교스럽고, 승만의 이름도 불교스럽지 않는가?


물론,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미실의 계파인 대원신통는 신교를 숭상하고, 진골정통은 불교를 숭상한듯하다. 하지만 불교를 믿는 진골정통 계층이 상위개념이고, 대원신통을 믿는 계층이 하위개념이였다. 이는 대원신통이 신분이 낮아서 일뿐이다. 왜 신분이 낮았는가하면 불교는 왕실과 왕족들이 먼저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왕이 불타라는 왕즉불사상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현신을 믿지 않을 왕들은 없을 것이다.

덕만의 꿈은 신정합일 불국정토

덕만은 제사와 분리하려던 것이 아니였다. 신교와 불교를 융합하는 것이 덕만의 뜻이였고, 덕만은 영묘사, 분황사, 첨성대와 황룡사 9층탑과 사천왕사의 건립으로 불국정토를 신라에 뿌리내리고 구현하려 하였다. 물론, 사천왕사를 건립하지 못하고 미완이 되었지만, 유언으로 사천왕사를 짓도록 했지만, 그의 꿈은 문무왕때에 비로서 완성되었다.  

사실 신라에서 불교를 최초로 받아들인 임금은 김씨계의 첫왕인 김미추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소문국 공주의 후손인 옥모의 후손이 아니면 왕후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소문국은 신라보다 먼저 불교를 공공연히 받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서논란에 있는 화랑세기를 따르지 않더라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살펴보면 이런 정황들이 수없이 나온다. 이에 관한 기사는 추후 포스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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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appyikiki 2009.09.02 1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늘의 계시.. 미실은 월천대사에 의지했지만..
    월천대사 언제까지 살지도 모르는데....

  3. 김은지 2009.09.02 1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말씀하고 싶으신 내용은 대충
    1. 역사적으로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과
    드라마 상의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이 뒤죽박죽이다.
    2. 선덕여왕은 신교와 불교를 연합하려던 이이다.
    그런 거죠~?
    뭔가 지식의 깊이는 있는 것 같은데 문장들의 앞뒤호응이 맞지 않거나
    전체적인 맥락을 알기가 쉽지 않게 글을 쓰신 것 같네요....'- '
    그래도 그냥 넘어가려다가
    중간에 "성골은 X도 아니라는 말..."이라는 욕설 섞인 표현이 거슬려서
    이것저것 지적하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2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말씀이기는 한데.. 님의 몇줄안되는 글에는 왜이리 문맥이 맞지 않습니까?

      전체적인 맥락을 읽어 달라고 공지에도 썼을 것 같은데..

      님의 깊이를 먼저 탓하는게 어떠신지요..

      저는 글을 쓸때 한번생각한데로 쭉 써내려가는 스타일입니다. 이점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4. 어차피 2009.09.02 1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방송중인 선덕여왕은 다큐가 아니라 판타지물이니까요.

    여장남자로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몇년 넘게 걸리지 않고 버틴다는 것부터 말이 안되는 소리구 말이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02 14:21  댓글주소  수정/삭제

      판타지 물이라고 한다면 그것 제작자와 원작자에 대단한 실례입니다..

      그들은 신라사회를 <재현>했다고 했거든요.. 그리고 그들은 사극을 만든다고 했지.. 판타지를 만든다고 한번도 이야기를 하지않았습니다..

      사극을 사극으로 봐주어야지요..

  5. 푸대접 2009.09.02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은 '극적인 완성도' 면에서는 상당히 훌륭하지만, 아쉽게도 사극으로 보기에는 고증을 완전히 무시하는걸 떠나서, 자기네들 극본 안에서도 앞뒤가 안맞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대부분의 인물설정은 완전히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있고요.

    이걸 '드라마인데 뭐 어떠냐' 식으로 좌시하기만 하는건 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신라시대가 엄청 옛날이고, 현재 우리의 역사의식과 먼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그렇게 따지면 구한말이나 일제시대, 임진왜란 같은 시대의 역사를 일본이 맘데로 왜곡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가 할말이 없어지지요. 교과서에 실은것만 왜곡이고, 일본의 드라마나 소설등의 창작작품에서 벌어지는 왜곡에 대해서 태클을 걸 근거가 없어져요.

    불과 이삼년 전에 미국 교과서에 채택된 일본 소설에 대해 우리가 입에 거품을 물고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해당 소설을 창작작품이지만, 2차대전중 일본을 피해자로 묘사하는 경향이 짙었기 때문인데요. 그 작품 역시 역사적 해석을 떠나 문학으로서의 가치가 높기에 교과서까지 채택된 것일 겁니다. 창작물이라서 문제가 없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바한 걸까요? 중요한건 일관성이죠. 남이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는건 못찹아도 우리가 우리역사 왜곡하는건 그려려니 하는건 너무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덕여왕도 제작진 스스로가 역사적 사료를 근거로 만든 사극이라고 표방하는 만큼, 사실 왜곡이나 설정의 모순같은 것들은 당연히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02 2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많이 아쉽지요.. 정말 좋은 캐릭터인데요.. 미실이란 존재는..
      미실을 들어내지 않고, 억지로 선덕을 주인공으로 세우니 어긋나는게 많은것 같습니다..

      스스로 환타지라 하지 않으니 비판할 수 밖에 없고, 이를 받아 들일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예전 태왕사신기는 비판한 적이 없습니당.. 그들 스스로 환타지 사극이라고 선언을 하고 만들었으니요.. 다만, 아쉽다는 표현은 했었는뎅.. 암튼, 두고 두고 아쉽습니당..

  6. BlogIcon skagns 2009.09.02 1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간과하던 부분을 잘 집어주시네요.
    잘 보고 갑니다. ^^

  7. 뉴웨이브 2009.09.02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좋은 지적을 해주셨네요... 자료 찾으시느라 애깨나 쓰셨겠어요.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려고 하지만 사극이란 특성상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는 갓쉰동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앞으로도 날카로운 지적 기대하겠습니다. 선덕여왕 제작팀, 간담이 서늘하겠어요. ㅎㅎㅎ

  8. BlogIcon 도대체가.... 2009.09.02 1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원작자는 제사와 정치를 분리하려고 한다. 한마디로 제정일치에서 신정분리가 국가시스템적으로 발전되었다는 환상에 빠져 있는듯 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하지만, 선진국이라고 하는 유럽이나, 미국을 봐도 신정일체에 가깝다.

    오히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 있는 대한민국이 역사상 유래를 찾아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물론, 대한민국의 작금의 현실은 고소영으로 대변되기는 한다. 소망교회를 다니면 성골이고, 그저 이명박과 다른 교회를 다니면 진골이 되지만 말이다."

    이 논리는 어디서 나올수 있나?
    넘 색깔이 드러난다..
    제발 정치적으로 놀지 말아라.. 아가야.

    • BlogIcon 갓쉰동 2009.09.02 2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극의 보는 재미를 모르시는 분이군요.. 사극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판할수록 재미가 배가 된답니다.. 저는오히려 님이 이상하게 생각되는데요...

  9. Hiro 2009.09.02 1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알찬 내용으로 쓰시는군요^^ 잘 보고 갑니다.
    선덕여왕.. 잘 보고 있지만, 조금만 따지고 들면 태클 걸 내용이 너무 많아서 아무 생각없이 보고 있습니다.
    드라마로써 재미는 있으니까요.
    하지만 퓨전사극도 아니고, 판타지물도 아닌 사극을 표방한 드라마라면 어느정도 고증을 거친 역사적 사실에 기인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너무 아쉽네요. 신라를 배경으로 그런 드라마가 다시 또 나오면 재미있게 볼 텐데요. ㅎㅎ

    • BlogIcon 갓쉰동 2009.09.02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앞으로 몇년동안은 다루지 못할거라눈.. 그래서 더욱 아쉽지요.. 일단 선점효과라는 것이 있어서요...

  10. 신정일체? 2009.09.02 2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으면서 되새김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신정분리 혹은 신정일치, 그리고 연대기와 각 정설과 사설 간의 차이들... 곱씹어야 할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예컨대, 그야말로 작은 속임수에게 쉽게 미혹하던 당시의 무지한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해 드러내야 할 것과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드러난 것 이면에 드러나지 않는 그것을 꿰뚫는 글을 읽고 싶었습니다. 갓쉰동님이라면 그렇게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11. 그냥 보거라. 2009.09.02 2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보거라.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일 뿐이다.
    드라마가 드라마이기를 버린다면 대본과 국사책과 다를게 뭐가 있겠냐.
    세상의 이치다. 드라마를 못봐줄 정도였다면 보지 말아야 할것이 당연지사.

    • BlogIcon 갓쉰동 2009.09.03 0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보다 잘 보고 있을걸요.. 님은 사극보는 재미를 모르시는군요.. 님 축구나 야구 등 스포츠 볼때 룰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고 보지요? 알고 보면 더 잼있어요..

  12. 짜집기도 정도껏 2009.09.03 0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 이드라만 한숨나온닷.
    억지 논리에..
    억지 사건재생산..
    대체 그 미실의 사기술(술법)들춰내는 것뿐.. 더 뭘바래?

  13. BlogIcon 노영택 2009.09.03 1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치밀한 분석 놀랍습니다.
    드라마가 미치는 영향을 볼 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재미있으면 된다.'는 논리는 어느정도 지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전문적으로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종 미디어, 특히 공중파 드리마를 역사적 사실로 그대로 받아들이기 쉬우니까요.

  14. 2009.12.15 1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5. BlogIcon christmas clothing 2011.11.16 1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일 뿐이다. 재미있으면 된다.'는 논리는 어느정도

  16.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7. BlogIcon check this out 2012.07.14 1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이 진평왕의 맏딸이고, 천명이 두번째 딸이

  18. BlogIcon water preservertm concentrate 2012.11.01 17: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진짜로 무언가일 이 화제를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결코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당신 발표

  19. BlogIcon portable dog fences gates 2012.11.08 17: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탕 많이 먹은거 아빠한테 걸릴까봐 언능 숨기는 모습도

  20. BlogIcon emergency lamps online 2012.12.10 2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확히 반박할려면 위처럼 일본의 수입조건과 한국의 수입조건이 다르다는 가장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또한, 확율론적으로도 반론을 제기한것도 극히 위함한 발상이고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다.

  21. BlogIcon wireless fence for large dogs 2012.12.25 2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신은 528년 법흥왕때 이차돈이 순교한이후로 100년이 지났다고 한다. 최소한 드라마 내에서라도 통일성과 일관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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