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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드라마 선덕여왕 59회에서 미생은 당나라 사신과 함께 밀약을 맺는다. 하지만 밀약은 함부로 발설하면 안되는 관계로 염종에게 문서작성을 일임한다. 

염종은 자신들만이 사용하는 특별한 암호기술을 발휘해서 오우선에 기록한다. 염종은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데 한번도 걸린 적이 없다고 자랑을 한다.

하지만 덕만에 의해서 빼돌려진 오우선은 수나라에 유학한 춘추에 의해서 들통이 난다.
춘추는 수나라에 있을 때  들었던 이야기대로 오우선에 글을 쓰고 이를 알지못하게 하는 기술이 있고, 밥 김으로 쪄서 비단에 모사를 한다.

사실 위 사실은 역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잘알려진 내용이다. 그래서 선덕여왕의 설정은 웃음을 짖게 한다.

오우선에 먹으로 쓴 글은 보통때는 보이지 않는다. 검은 바탕에 검은 먹으로 쓴 글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니 훈증으로 먹글에 습기를 불어 넣게 되면 먹물이 묻어 나온다. 이를 비단에 찍는다면 글이 새겨진다. 탁본의 일종이라고 보면 된다.

많은 사람들은 인주가 먹지 않는 도장에 입김을 불어서 도장을 찍어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우선에 글을 썼더라도 빛을 비추면 먹으로 쓴 부분과 까마귀 깃털의 색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다만 어떤 글인지를 알 수 없는 정도이다.
 

문제는 염종의 말과 춘추의 말에는 논리적인 모순이 생긴다. 염종은 자신들이 사용한 기법은 지금까지 들킨적이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춘추는 수나라에서 들은 이야기를 근거로 단번에 해독해버린다. 염종이 기법은 수나라에서 쓰일 만큼 널리 알려졌다는 이야기다. 염종의 비밀문서가 그동안 들키지 않았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또한, 비선 조직에서 사용하는 기법이니 김춘추보다는 알천이나 김유신이 알고 있어야 하는게 정상적인 설정이지만, 그동안 드라마에서 김춘추가 한일이 없기 때문에 정확히는 유승호가 한일이 없다는 말이 맞겠지만, 김춘추를 띄어주고자 하는 고육계에 지나지 않고, 김춘추를 띄우다 보니 알천과 김유신은 암호도 해독 못하는 장군이 되어 버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된다.


물론, 김유신은 극중에서 대야성의 간자가 당연히 부수에 지나지 않는 흑(黑)을 두고 고민을 하는 바보장군으로 대야성이 백제에 떨어지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선덕여왕의 <까마귀 깃털>에피소드는 한국사에는 없고, 일본서기에는 나온다. 일본서기 민달 원년인 572년에 고구려는 사신을 통해서 일본에 국서를 보낸다. 하지만, 이를 해독하는 자가 없었어 3일 동안 전전긍긍하였다. 이때 배를 만드는 선부에 소속된 <진이>만이 해독할 수 있었다.

572년 5월 15일 병진 민달 천황은 고구려의 국서를 받고 대신에게 주었다. 여러 시관을 불러 모아 해독시켰다. 여러 사관이 3일이 지나도록 누구 하나 읽을 수가 없었다. 선사의 선조 <왕진이>가 능히 읽고 해석하였다. ... 고구려가 보낸 문서는 까마귀 깃털에 쓰여 있었다. 문자가 깃털의 검은색에 쓰여 있어서 아무도 알아내는 사림이 없었다. <진이>가 밥 김으로 쪄서 부드러운 비단에 올려 글자를 모조리 옮겼다. 조정의 사람들이 모두 다 기이하게 여겼다. - 민달 572년 5월

이때 고구려 사신이 들고온 국서는 민달에 보내는 것이 아니였다. 민달의 아버지 서명만이 알아 먹을 수 있는 비밀 국서였지면, 서명이 죽고 나자 이를 읽어 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고구려 국왕과 서명간에 이미 잘 알려진 비밀문서전달 방법이였지만, 서명의 뒤를 이은 민달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왜 고구려는 왜에 밀서를 보냈을까? 이는 서명 말년의 기사를 보면 유추해 볼 수 있다. 서명이 중병이 들어 572년 4월 죽기 전 3월에 신라에 사신을 보낸다. "왜? 임라가 망한 이유를 알고 싶다"는 것이다. 또한 황태자를 불러 다음과 같이 유언을 한다. "신라를 쳐서 임나를 세워라 옛날처럼 두 나라가 서로 친하면 죽어서도 한이 없을 것이다"

572년 겨울 10월 20일에 전쟁에서 죽은 사졸을 위하여 바깥의 절에서 팔관연회(八關筵會)를 열어 7일만에 마쳤다. - 572년 진흥왕 33년

572년 겨울 전쟁에 죽은 사졸을 위로하는 팔관회에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한다.


밀약내용은 여왕불가에 대해서 조정에서 이야기를 해준다면 당이 고구려를 정벌하는데 3만의 신라군을 파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는 645년 5월 당이 고구려를 칠때 이미 신라는 3만의 대군을 파견한 전력이 있다. 극중 시제는 646년 11월 이찬 비담이 상대등이 된 이후로 되어 있다.

여름 5월 [당] 태종이 몸소 고구려를 정벌하였으므로 왕이 군사 3만 명을 내어 그를 도왔다. 백제가 그 빈틈을 타서 나라 서쪽의 일곱 성을 쳐서 빼앗았다.
겨울 11월에 이찬 비담(毗曇)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
- 삼국사기 선덕왕 14년 645년

어쨌든 선덕여왕의 오우선은 신라의 염종이 사용한 기법도 아니고, 춘추가 수나라에서 배운 기법이 될 수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첫번째 전투신인 아막성 전투에서는 신라군이 그동안 고구려의 상징인 우물정(井)자를 군의 상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글 말미의 관련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고구려 관련 드라마인 연개소문이나 대조영이나 주몽이나 바람의 나라에서 너무나 자주사용 되어진 기법을 차용한 것이다. 그런데 선덕여왕에서 다시 보여주니 얼마나 웃음짓기에 좋은 소재인가?


드라마 선덕여왕은 역사보다는 기존 사극을 패러디하려는 경향이 자주 보인다. 그것도 신라와 전혀 관계가 없는 고구려의 비밀문서 기법을 신라에서 사용하는 어처구니까지 보여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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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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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펨께 2009.12.14 0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덕분에 무식쟁이 공부 잘하고 갑니다.

  2. BlogIcon 朱雀 2009.12.14 0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갓쉰동님 때문에 좋은 이야기 많이 듣고 갑니다. ^^

  3. BlogIcon DJ야루 2009.12.14 0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근데 궁금한점이 있는데, 갓쉰동님은 혹시 역사과를 나오셨나요?ㅋㅋㅋ

    정말 글들을 보면 너무나 대단한것 같아요...ㄷㄷㄷ

  4. BlogIcon 레오 ~ 2009.12.14 1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컨닝의 비법의 유래와 같은 글입니다 ..자신만의 문자를 만들어 낙서처럼 적어 놓고 마음껏 컨닝하던
    녀석이 생각나는군요 ^^

  5. BlogIcon 민시오™ 2009.12.14 1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의 세세한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6. BlogIcon 함차가족 2009.12.18 0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심코 지나쳤어요..그냥 옛 선인들의 지예가 대단하다는 정도로..범주를 벗어난 소재를 사용했었군요

드라마 선덕여왕 59회에서 미생은 당나라 사신과 함께 밀약을 맺는다. 하지만 밀약은 함부로 발설하면 안되는 관계로 염종에게 문서작성을 일임한다. 

염종은 자신들만이 사용하는 특별한 암호기술을 발휘해서 오우선에 기록한다. 염종은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데 한번도 걸린 적이 없다고 자랑을 한다.

하지만 덕만에 의해서 빼돌려진 오우선은 수나라에 유학한 춘추에 의해서 들통이 난다.
춘추는 수나라에 있을 때  들었던 이야기대로 오우선에 글을 쓰고 이를 알지못하게 하는 기술이 있고, 밥 김으로 쪄서 비단에 모사를 한다.

사실 위 사실은 역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잘알려진 내용이다. 그래서 선덕여왕의 설정은 웃음을 짖게 한다.

오우선에 먹으로 쓴 글은 보통때는 보이지 않는다. 검은 바탕에 검은 먹으로 쓴 글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니 훈증으로 먹글에 습기를 불어 넣게 되면 먹물이 묻어 나온다. 이를 비단에 찍는다면 글이 새겨진다. 탁본의 일종이라고 보면 된다.

많은 사람들은 인주가 먹지 않는 도장에 입김을 불어서 도장을 찍어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우선에 글을 썼더라도 빛을 비추면 먹으로 쓴 부분과 까마귀 깃털의 색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다만 어떤 글인지를 알 수 없는 정도이다.
 

문제는 염종의 말과 춘추의 말에는 논리적인 모순이 생긴다. 염종은 자신들이 사용한 기법은 지금까지 들킨적이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춘추는 수나라에서 들은 이야기를 근거로 단번에 해독해버린다. 염종이 기법은 수나라에서 쓰일 만큼 널리 알려졌다는 이야기다. 염종의 비밀문서가 그동안 들키지 않았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또한, 비선 조직에서 사용하는 기법이니 김춘추보다는 알천이나 김유신이 알고 있어야 하는게 정상적인 설정이지만, 그동안 드라마에서 김춘추가 한일이 없기 때문에 정확히는 유승호가 한일이 없다는 말이 맞겠지만, 김춘추를 띄어주고자 하는 고육계에 지나지 않고, 김춘추를 띄우다 보니 알천과 김유신은 암호도 해독 못하는 장군이 되어 버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된다.


물론, 김유신은 극중에서 대야성의 간자가 당연히 부수에 지나지 않는 흑(黑)을 두고 고민을 하는 바보장군으로 대야성이 백제에 떨어지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선덕여왕의 <까마귀 깃털>에피소드는 한국사에는 없고, 일본서기에는 나온다. 일본서기 민달 원년인 572년에 고구려는 사신을 통해서 일본에 국서를 보낸다. 하지만, 이를 해독하는 자가 없었어 3일 동안 전전긍긍하였다. 이때 배를 만드는 선부에 소속된 <진이>만이 해독할 수 있었다.

572년 5월 15일 병진 민달 천황은 고구려의 국서를 받고 대신에게 주었다. 여러 시관을 불러 모아 해독시켰다. 여러 사관이 3일이 지나도록 누구 하나 읽을 수가 없었다. 선사의 선조 <왕진이>가 능히 읽고 해석하였다. ... 고구려가 보낸 문서는 까마귀 깃털에 쓰여 있었다. 문자가 깃털의 검은색에 쓰여 있어서 아무도 알아내는 사림이 없었다. <진이>가 밥 김으로 쪄서 부드러운 비단에 올려 글자를 모조리 옮겼다. 조정의 사람들이 모두 다 기이하게 여겼다. - 민달 572년 5월

이때 고구려 사신이 들고온 국서는 민달에 보내는 것이 아니였다. 민달의 아버지 서명만이 알아 먹을 수 있는 비밀 국서였지면, 서명이 죽고 나자 이를 읽어 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고구려 국왕과 서명간에 이미 잘 알려진 비밀문서전달 방법이였지만, 서명의 뒤를 이은 민달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왜 고구려는 왜에 밀서를 보냈을까? 이는 서명 말년의 기사를 보면 유추해 볼 수 있다. 서명이 중병이 들어 572년 4월 죽기 전 3월에 신라에 사신을 보낸다. "왜? 임라가 망한 이유를 알고 싶다"는 것이다. 또한 황태자를 불러 다음과 같이 유언을 한다. "신라를 쳐서 임나를 세워라 옛날처럼 두 나라가 서로 친하면 죽어서도 한이 없을 것이다"

572년 겨울 10월 20일에 전쟁에서 죽은 사졸을 위하여 바깥의 절에서 팔관연회(八關筵會)를 열어 7일만에 마쳤다. - 572년 진흥왕 33년

572년 겨울 전쟁에 죽은 사졸을 위로하는 팔관회에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한다.


밀약내용은 여왕불가에 대해서 조정에서 이야기를 해준다면 당이 고구려를 정벌하는데 3만의 신라군을 파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는 645년 5월 당이 고구려를 칠때 이미 신라는 3만의 대군을 파견한 전력이 있다. 극중 시제는 646년 11월 이찬 비담이 상대등이 된 이후로 되어 있다.

여름 5월 [당] 태종이 몸소 고구려를 정벌하였으므로 왕이 군사 3만 명을 내어 그를 도왔다. 백제가 그 빈틈을 타서 나라 서쪽의 일곱 성을 쳐서 빼앗았다.
겨울 11월에 이찬 비담(毗曇)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
- 삼국사기 선덕왕 14년 645년

어쨌든 선덕여왕의 오우선은 신라의 염종이 사용한 기법도 아니고, 춘추가 수나라에서 배운 기법이 될 수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첫번째 전투신인 아막성 전투에서는 신라군이 그동안 고구려의 상징인 우물정(井)자를 군의 상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글 말미의 관련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고구려 관련 드라마인 연개소문이나 대조영이나 주몽이나 바람의 나라에서 너무나 자주사용 되어진 기법을 차용한 것이다. 그런데 선덕여왕에서 다시 보여주니 얼마나 웃음짓기에 좋은 소재인가?


드라마 선덕여왕은 역사보다는 기존 사극을 패러디하려는 경향이 자주 보인다. 그것도 신라와 전혀 관계가 없는 고구려의 비밀문서 기법을 신라에서 사용하는 어처구니까지 보여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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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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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펨께 2009.12.14 0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덕분에 무식쟁이 공부 잘하고 갑니다.

  2. BlogIcon 朱雀 2009.12.14 0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갓쉰동님 때문에 좋은 이야기 많이 듣고 갑니다. ^^

  3. BlogIcon DJ야루 2009.12.14 0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근데 궁금한점이 있는데, 갓쉰동님은 혹시 역사과를 나오셨나요?ㅋㅋㅋ

    정말 글들을 보면 너무나 대단한것 같아요...ㄷㄷㄷ

  4. BlogIcon 레오 ~ 2009.12.14 1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컨닝의 비법의 유래와 같은 글입니다 ..자신만의 문자를 만들어 낙서처럼 적어 놓고 마음껏 컨닝하던
    녀석이 생각나는군요 ^^

  5. BlogIcon 민시오™ 2009.12.14 1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의 세세한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6. BlogIcon 함차가족 2009.12.18 0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심코 지나쳤어요..그냥 옛 선인들의 지예가 대단하다는 정도로..범주를 벗어난 소재를 사용했었군요

드라마 선덕여왕이 일식과 월식에 집착하는 이유?

미실은 월천에게 "일식이 있겠습니까?" 묻는다. 하지만 월천은 "세주께 괜한 말을 했다"고 한다. 이는 일식을 맞출 수 없다는 말이고, 덕만이 일식을 맞춘다는 뜻이기도 하다. 덕만이 사막에서 얻은 책력이 월천에 넘어가고 정확히 일식을 맞추는 것을 예비 된것 같다.

mbc 드라마 사극 선덕여왕 26회에서 덕만(이요원)은 미실(고현정)이 신라를 차지한 방법 그대로, 신라를 차지할것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월천이 필요하다. 월천은 천문학자이자, 법사이자, 의사이다.


2009년 8월초에 70년만에 개기일식이 있었다.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일식은 있었을까? 물론, 일식도 없었고, 월식도 없었다. 당시의 일식이 있던 시기를 뽑아 본다면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19년(572)에 사신을 북제(北齊)에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초하루 경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39년(592) 가을 7월 임신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국사기 본기 - 원성왕 3년(787) 봄 2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몸소 신궁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였다. 여름 5월에 금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가을 7월에 누리가 곡식을 해쳤다. 8월 초하루 신사에 일식이 있었다.

진평왕 시기(579~632년)에 일식은 없었다.

왜? 드라마 선덕여왕은 일식과 월식에 집착을 할까? 이유는 <첨성대>를 선덕여왕이 만들었다는 기록때문이다. 하지만, 첨성대를 한번이라도 본사람이라면, 첨성대가 하늘을 관찰하는데 상당히 불편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첨성대는 하늘을 관찰하는게 아닌, 하늘을 비추는 거울이며, 하늘과 통하는 연결 통로로 첨성대가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우물에서 비친 하늘을 본자라면, 첨성대의 용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어찌 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대명력은 월식을 예측하기 쉽고, 위나라의 정광력은 대명력에 비해서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일식을 예측하는데는 정광력이 좋다고 이야기를 한다.

덕만, 유신을 꼬시다
 

비둘기낭 동굴밖 폭포

덕만은 유신에 말한다. "내가 가려고 하는일은 패도이니까?"

패도에서 사람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죽는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유신에 대한 마음만 가지려고하니 유신과 같이 함께하지 못한다고 한다. 함께하면 유신을 장기판의 말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유신과 같이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림으로 보는 덕만의 숨은 장소인 비둘기낭의 동굴과 비경을 보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2012년이 지나면 저 비경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관련 기사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08/12 - [역사이야기] - 천명의 마지막 촬영지, 비둘기낭 동굴 수몰위기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덕만과 소화

덕만과 알천, 비담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월천 일행은 월야의 수중에 넘어가고, 소화는 월천을 지키던 화랑들에 의해서 등에 활을 맞고 쓰러진다. 이후 덕만의 일행이 사라진 월천을 뒤로 하고 화덕사에 도착한다. 여전히 소화(서영희)와 덕만의 만남은 아직 먼것 같다. 소화는 또 다시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에 의해서 살아날 것이다. 칠숙과 더불어 터미네이터 반열에 오른 소화가 되시겠다.  

천명과 덕만의 언니 선화? 천화?

진평은 덕만을 공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마야는 낳자 마자 죽은 3 아들과 쌍둥이 중 천명을 잃어버렸는데, 이제 하나 남은 덕만을 잃어 버리려 하냐고 진평에게 반문하면서 더이상 자식을 잃을 수 없으니 덕만을 지키겠다고 천명한다.

그런데 정말 진평과 마야 사이에는 천명과 덕만 쌍둥이 밖에 없었을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마야가 진평의 즉위년에 황후가 되었다면, 천명은 마야의 소생이 될 가능성이 없다. 그러니 마야가 천명과 덕만의 모후가 될려면 마야는 진평이 성인이 된후 얻은 비가 되어야 한다. 이에 관한 기사는 다음을 참조하길 바란다. 

2009/08/17 - [역사이야기] - 여성만 알 수 있는 선덕여왕의 비밀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천명과 덕만 말고도 이들 위로 언니의 존재가 나온다. 삼국유사에 나온 선화라고 생각한다면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 되시겠다. 화랑세기에서는 진평과 마야 사이에는 3명의 자매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첫째가 천화이고, 둘째가 천명이고, 셋째가 이들보다 나이 차이가 많은 덕만이다.
처음에 용수공은 천화공주(天花公主)를 아내로 맞았는데, 천명공주를 아내로 맞게 되자 천화공주를 (용춘)공에게 주었다. 아들을 낳았는데 일찍 죽었다. 선덕공주(善德公主)를 모시게 되자 제(帝)가 천화공주를 백룡공(白龍公)에게 내려주었다. 선덕공주가 즉위하자 (용춘)공을 지아비로 삼았는데, 공은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물러날 것을 청하였다.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603년)


선덕여왕에서는 천명이 용수의 첫번째 부인으로 나오지만, 천명보다 먼저 천화가 용수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천화는 진평왕의 명령에 의해서 백룡에게 시집을 간다. 처음 왕위를 천명이 뛰어난 자질을 보여서 용수로 하여금 천명과 함께 신라을 이끌도록 하였다. 이에 용수의 부인이였던 천화는 용춘에 시집을 가고, 용춘이 선덕을 모시자 진평이 천화를 백룡에게 시집을 가게 했다고 한다. 천화는 용수-> 용춘 -> 백룡에게 시집을 가지만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고 타의(진평)의 명령에 따라 시집을 가고 있다.

백룡은 삼국사기 본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에 보면, 629년 낭비성 전투에 참전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건복 46년 기축(진평왕 51년: 629) 가을 8월에 왕이 이찬(伊湌) 임말리(任末里), 파진찬(波珍湌) 용춘(龍春).·백룡(白龍), 소판(蘇判) 대인(大因)·서현(舒玄) 등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공격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 629년

백룡의 지위가 용춘과 같은 파진찬(4등위)이다. 삼국사기에 용춘은 대장군으로 나온다. 그러니 백룡도 대장군의 직위에 있었지 않을까 한다.

신라판 서동요, 법흥과 보과

삼국유사에는 천화대신에 선화가 진평의 3번째 딸로 등장한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선화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단지, 화랑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 원화 <남모>를 법흥왕과 백제 보과의 사이에서 난 여식으로 등장한다.
준정이 남모를 시기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만들어 정부인 위화랑을 1세 풍월주로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2세 풍월주가 미실과 미생의 아버지인 미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보과는 법흥왕이 국공(왕자가 아님) 시절에 백제에 왔다가 눈이 맞어, 백제를 버리고 신라로 법흥(원종)을 만나러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고 남모와 4세 풍월주 모랑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버리는 처자들이 많이 보인다. 신라의 여인들은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는 왕후의 자리도 버리고, 사랑하는 지아비를 따른다.

이와 관련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2009/07/09 - [역사이야기] - 화랑세기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도 있다. 를 참조하기 바란다.


영국의 에드워드 왕은 영국의 법에 의해서 과부와 결혼은 용납하지 않자, 왕의 지위를 버리고, 미국의 과부인 심슨부인과 결혼을 하여 왕위를 버린 세기의 결혼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신라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 난다. 시간이 허락하고 성원이 있다면 '사랑을 위해서 자신의 지위를 버린 여인들'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임술년 천명과 덕만이 쌍생으로 태어났다? 

 세종과 하종의 계락으로 "임술년에 황후가 쌍생을 낳았다가 하나의 쌍생을 버렸으니, 마야황후를 폐하라는 벽서(방)가 붙는다.

설화랑은 하종과 세종이 벽서를 붙힌 범인임을 미실의 눈을 보고 알아 차렸다고 이야기를 하며 세주의 통찰력은 진흥대제의 통찰력을 뛰어 넘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궁예의 관심법이 되겠다. "옴마니 반메음"

덕만과 천명이 임술년생이라고 하지만, 당시의 임술년은 덕만과 천명이 태어날 수 없다. 임술년은 진흥왕시기와 진평왕시기에 딱 2번 나온다. 

 542년 진흥왕 3년, 602년 진평왕 24년이다. 

이와 관련된 기사는 다음과 같다. 관심이 있는 분은 아래 기사를 참조 하시길 바란다.

천명과 덕만이 542년 임술년은 절대로 될 수가 없다. 이유는 천명과 덕만의 아비인 진평왕이 태어나기도 전이고, 진평왕의 할아버지인 진흥(심맥종)의 나이가 8살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602년 임술년이 될 수 있는가? 천명과 용수 사이에 낳았다는 춘추가 603년에 태어 난다. 그러니 천명은 2살때 춘추를 낳은 것이다. 기네스에 오른 기록이 5살이다. 그것도 자식이 아닌 쌍둥이 동생으로 의심하고 있다, 어머니가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쌍둥이중 하나가 어머니 뱃속에서 크지를 못하고 다른 쌍둥이의 몸속에서 기생(?)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대가야 복야세력 월야의 비밀

월야(주상욱)

그런데 복야회의 수장 월야는 대가야의 마지막왕인 월광태자의 적손이라고 한다. 월천의 이름도 '<월> 돌림자를 쓰는 것으로 봐서, 월천은 대가야의 왕족 출신인 것 같다.

8세 풍월주 문노는 대가야의 피를 이어 받았다, 또한, 문노가 풍월주에 오르게 된 이유도 가야파의 지원이 있었기 가능했다.

 복야회의 근거지는 삽량주에 있다고 한다. 유신은 자신의 가문에 주어진 압량주을 가야유민에게 주고, 복야회의 복속과 동맹을 바란다. 이유는 가야파를 등에 지고 덕만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함이다.


비담은 복야회의 포스트 말단 연락책을 잡는다, 그런데 포스트는 죽음으로 비밀을 지키려한다. 하지만 포스트의 품에서 암어(암호)가 적힌 편지를 발견한다. 하지만 비담은 술술 암어 내용을 이야기한다. 복야회의 암어(암호)를 아는 이유는 비담의 스승인 문노(비조/문화)의 외가가 대가야 출신이기 때문이다.

월광태자는 이뇌/비조부(호조/선혜후)의 누이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월광과 문노는 사촌간이 된다. 월광의 아들로 나온 월야는 문노의 조카가 되는 것이다. 

양화는 호조/선혜후의 딸이다. 이뇌와 양화의 딸은 월화공주이다. 월화공주는 진흥에 시집를 가서 천주를 낳는다. 천주는 지도태후(용수.용춘의 어머니)와 결혼하여 586년 17세 풍월주 염장을 낳는다. 이 염장이 덕만을 도와 칠숙의 난을 평정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문노는 561년 이사부와 사다함이 대가야를 정벌할때  문노 자신의 외가를 치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하여 참전을 하지 않았다. 이에 신라인들은 신의가 있다고 하여, 문노를 더욱 존경하였다고 전한다.


어찌되었던 복야회의 대빵의 이름이 월야인 이유가 월화->월광->월야,월천 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월천대사는 월광태자와 형제지간이 되는 건가?

단석산 김유신 바위와 유신의 도박

단석산 김유신바위

유신은 덕만으로 부터 너(유신)를 버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나열한다. 한마디로 나를 따르라는 덕만의 협박이다.


유신은 덕만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가야파를 지키고, 가문의 안위를 만을 생각할 것인가를 고심하면서, 열심히 바위를 치고 있다. 유신이 어릴때부터 바위치기를 한다 이유는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보검을 얻고,  칼로 바위가르기를 보여주기 위한 과정이였다. 그래서 언제나 바위가 갈라질까? 관심있게 지켜봤다. 치고 또치고도 갈라지지 않던 바위가 드디어 갈라졌다. 드디어 김유신 열전과 에 바위가 갈라지는 기적이 선덕여왕 26회에 이뤄진것이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에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이때 김유신의 나이가 17세인 것으로 나온다. 그러니

(c) 정진만 단석산 김유신 바위

595년생인 유신이 17세가 되는 해는 611년이 된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은 시간개념과 공간개념을 상실하고 있기때문에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김유신 바위는 단석산 정상에 있다. 산행을 하거나, 선덕여왕 촬영지 관광코스로 정해보는 것은 어떠할까?  


유신은 서현에게 가문과 가야세력의 모든것을 걸고, 도박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때 복야회 일원은 유신과 서현을 죽이려 한다. 이에 유신은 복야회 일원을 굴복시키고, 복야회의 수장을 만나려고  산채로 들어간다.

서현이 602년 아막성 전쟁에서 참전하여, 설원랑의 계락으로 위기에 처하고 , 부상을 입었을 때, 구원을 받은것은 하늘의 보살핌이 아니라 복야회 장군인 설지의 입을 통해서 복야회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유신은 가야의 유민이 12만이라고 한다. 도대체 어디서 나온 근거인지는 알 수 없다. 선덕여왕의 작가는 생각없이 말을 뱃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선덕여왕의 작가진만 알 수 있지 않을까?

유신은 덕만일행을 포위하고 있는 복야회에게 "내가 선택한 나의 왕이시다. 그러니 복야회 또한, 덕만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한다. 이로서 덕만은 미실과 대적할 수 있는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진부한 운명론

성골남진의 나머지 계시가 밝혀지고 있다. 미실이 무너지고, 덕만이 일어선다는 것이다. 곧 덕만이 왕이 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운명이 정해졌다는 인간의 운명론이 되시겠다. 덕만이 노력을 하던 하지 않던, 왕이 되는 운명인데, 왜 저 멀리 사막까지가게 만들었을까? 그것도 운명인가? 미실에 대적하는 것도 운명이고? 한마디로 '타고난 팔자가 있다'가 있다는 말인데, 소설이 너무 진부하지 않는가?


춘추(유승호)의 아버지에 대한 비밀을 알고 싶으세요? 그럼 이 기사를 일독 해보시길 
2009/08/20 - [역사이야기] - 괴물이 되어버린 춘추(유승호)의 아버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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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우비 2009.08.19 1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굳굳굳 지루하게 읽을 수도 있는 글을

    재밌게 쓰신것 같아요~!

    그냥 봤으면 역사 잘못 알뻔했네요 ...-_-;;;

    너무너무 잘 읽다가 가요~

  3. 능소화 2009.08.19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신라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4. 날아라 2009.08.19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일고 가니다. 앞으로도 계속 부탁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속 할려면 추천이 많아야 하는데.. 너무 추천을 하지 않는군요..

      추천이 없다는 말은 이런글은 쓰지 말라는 뜻이거든요.. ㅋㅋ

  5. BlogIcon haRu™ 2009.08.19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마지막에 운명론에 대한 비판... 아주 좋았습니다.
    제가 주로 사극을 안보는 이유와 같습니다. 특히 사극은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고는 주인공을 개고생 시키죠.
    뭐 이런식으로 재미가 없어질려고 할때 비담의 투입은 정말 극적이였죠. 지금 것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본 적없는 매력적인(그러나 일본 만화등에서는 많이 본...ㅡ,.ㅡㅋ)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다. 운명이런것 없이도 잘 만들텐뎅.. 뭔 원죄론을 받아 들여서 그런가. 너무 난무함...

  6. elly 2009.08.19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문노와 월광은 사촌지간이 아닙니다.
    촌수로 따지자면 조금 더 올라갑니다. :-)
    월광태자의 자손은 아무리 자료를 찾아봐도 자료가 없어요.
    대신 해인사를 처음 창건한 이 중 하나가 월광의 후손이라고 적혀있어서,
    그의 후손이 있다고 짐작만 할 따름입니다.
    월야라는 인물은 소설(혹은 극)을 위해 만든 가공의 인물입니다.
    대신 월광의 누이동생인 월화의 후손인 천주는 화랑세기에 나오는걸 보니 있었던 인물인것 같구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월광의 어미니가 비조부의 누이이고,
      문노의 아버지는 비조부/문화 잖아요.. 그러니 이들은 사촌간이 되지요..

      그냥 드라마가 월광의 적자라고 해서리.. 그렇다면 문노의 조카다 하는거지요.. ㅋ ㅋ 이왕 엮을라면 확실히 엮어라 머 이런 비판이였음..

      저는 월야보다는 천주/월화의 아들인 염장을 월야역으로 했다면 더 잼있지 않았을 까해요.. 머 언젠가는 염장도 덕만의 수중에 떨어지겠지만요..

      서현보다 더 비중이 있는 인물이 천주인뎅.. 기록도 별로 없으니 맘껏 작가의 상상력도 발휘할수 있구요..

      선덕여왕 원작 작가가 너무 공부를 안한 티가 나요.. ㅋㅋ

      인물설정을 할때 자료조사가 기본중에 기본인뎅..

    • BlogIcon elly 2009.08.19 2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ㅋㅋ
      전 문노의 모계, 월광의 부계로 계산을 하다보니
      엄청난 촌수가 나오더라구요. 이제 생각해보니
      이종사촌-외사촌격이 되네요. :-)

      전 우연히 당첨되서 선덕여왕 소설까지 다 읽었는데
      원작가가 공부 안한티가 정말로 많이 나더군요.
      인물 설정 조차도 대충 빌려온게 너무 많이 보여요.
      (선덕여왕이 처녀로 죽었다는 사실까지 포함해서..;;)

    • BlogIcon 갓쉰동 2009.08.20 0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처녀로 죽이는 군요.. 처녀에 대한 환상이라도 있나봅니당..

  7. 흐흐흐 2009.08.25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에 사소한 실수가 보이네요. 별거 아니지만 문맥상 약간의 혼동이 올 수 있어서...
    월야의 사진 옆 글 '가야파를 등지고'가 '가야파를 등에지고'죠???
    맞나요?

    • BlogIcon 이반의꿈 2009.08.25 1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도 읽힐수 있군요.. 저는 등지고를 등에지고로 생각하고 썼는뎅.. 바꿀까 말까 고민했었음. 지적을 하시니 바꿔야 겠네요.. ㅋㅋ

  8. BlogIcon 조용형 2012.01.01 0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팹, 훌륭한 문서입니다

  9. BlogIcon 원숭이 2012.01.07 0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10. BlogIcon 엘리 2012.04.04 0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어디로 데려가십니까?

  11. BlogIcon 헤일리 2012.04.06 0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2. BlogIcon 모건 2012.05.08 2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심 없습니다.

  13. BlogIcon 알렉 산드라 2012.05.11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먹었습니다.

  14.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5.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6. BlogIcon Pussy Porn 2012.07.14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17.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8.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for camping 2012.11.01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9.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indoors 2012.11.06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

  20. BlogIcon petsafe wireless dog fence 2012.12.22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이 중요한 주제에 도움이 필요 남녀를 지원하는 당신의 관대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21. BlogIcon 24 stove top 2013.01.02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일식은 있었을까? 물론, 일식도 없었고, 월식도 없었다. 당시의 일식이 있던 시기를 뽑아 본다면 다음과 같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일식과 월식에 집착하는 이유?

미실은 월천에게 "일식이 있겠습니까?" 묻는다. 하지만 월천은 "세주께 괜한 말을 했다"고 한다. 이는 일식을 맞출 수 없다는 말이고, 덕만이 일식을 맞춘다는 뜻이기도 하다. 덕만이 사막에서 얻은 책력이 월천에 넘어가고 정확히 일식을 맞추는 것을 예비 된것 같다.

mbc 드라마 사극 선덕여왕 26회에서 덕만(이요원)은 미실(고현정)이 신라를 차지한 방법 그대로, 신라를 차지할것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월천이 필요하다. 월천은 천문학자이자, 법사이자, 의사이다.


2009년 8월초에 70년만에 개기일식이 있었다.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일식은 있었을까? 물론, 일식도 없었고, 월식도 없었다. 당시의 일식이 있던 시기를 뽑아 본다면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19년(572)에 사신을 북제(北齊)에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초하루 경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39년(592) 가을 7월 임신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국사기 본기 - 원성왕 3년(787) 봄 2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몸소 신궁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였다. 여름 5월에 금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가을 7월에 누리가 곡식을 해쳤다. 8월 초하루 신사에 일식이 있었다.

진평왕 시기(579~632년)에 일식은 없었다.

왜? 드라마 선덕여왕은 일식과 월식에 집착을 할까? 이유는 <첨성대>를 선덕여왕이 만들었다는 기록때문이다. 하지만, 첨성대를 한번이라도 본사람이라면, 첨성대가 하늘을 관찰하는데 상당히 불편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첨성대는 하늘을 관찰하는게 아닌, 하늘을 비추는 거울이며, 하늘과 통하는 연결 통로로 첨성대가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우물에서 비친 하늘을 본자라면, 첨성대의 용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어찌 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대명력은 월식을 예측하기 쉽고, 위나라의 정광력은 대명력에 비해서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일식을 예측하는데는 정광력이 좋다고 이야기를 한다.

덕만, 유신을 꼬시다
 

비둘기낭 동굴밖 폭포

덕만은 유신에 말한다. "내가 가려고 하는일은 패도이니까?"

패도에서 사람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죽는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유신에 대한 마음만 가지려고하니 유신과 같이 함께하지 못한다고 한다. 함께하면 유신을 장기판의 말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유신과 같이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림으로 보는 덕만의 숨은 장소인 비둘기낭의 동굴과 비경을 보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2012년이 지나면 저 비경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관련 기사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08/12 - [역사이야기] - 천명의 마지막 촬영지, 비둘기낭 동굴 수몰위기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덕만과 소화

덕만과 알천, 비담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월천 일행은 월야의 수중에 넘어가고, 소화는 월천을 지키던 화랑들에 의해서 등에 활을 맞고 쓰러진다. 이후 덕만의 일행이 사라진 월천을 뒤로 하고 화덕사에 도착한다. 여전히 소화(서영희)와 덕만의 만남은 아직 먼것 같다. 소화는 또 다시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에 의해서 살아날 것이다. 칠숙과 더불어 터미네이터 반열에 오른 소화가 되시겠다.  

천명과 덕만의 언니 선화? 천화?

진평은 덕만을 공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마야는 낳자 마자 죽은 3 아들과 쌍둥이 중 천명을 잃어버렸는데, 이제 하나 남은 덕만을 잃어 버리려 하냐고 진평에게 반문하면서 더이상 자식을 잃을 수 없으니 덕만을 지키겠다고 천명한다.

그런데 정말 진평과 마야 사이에는 천명과 덕만 쌍둥이 밖에 없었을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마야가 진평의 즉위년에 황후가 되었다면, 천명은 마야의 소생이 될 가능성이 없다. 그러니 마야가 천명과 덕만의 모후가 될려면 마야는 진평이 성인이 된후 얻은 비가 되어야 한다. 이에 관한 기사는 다음을 참조하길 바란다. 

2009/08/17 - [역사이야기] - 여성만 알 수 있는 선덕여왕의 비밀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천명과 덕만 말고도 이들 위로 언니의 존재가 나온다. 삼국유사에 나온 선화라고 생각한다면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 되시겠다. 화랑세기에서는 진평과 마야 사이에는 3명의 자매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첫째가 천화이고, 둘째가 천명이고, 셋째가 이들보다 나이 차이가 많은 덕만이다.
처음에 용수공은 천화공주(天花公主)를 아내로 맞았는데, 천명공주를 아내로 맞게 되자 천화공주를 (용춘)공에게 주었다. 아들을 낳았는데 일찍 죽었다. 선덕공주(善德公主)를 모시게 되자 제(帝)가 천화공주를 백룡공(白龍公)에게 내려주었다. 선덕공주가 즉위하자 (용춘)공을 지아비로 삼았는데, 공은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물러날 것을 청하였다.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603년)


선덕여왕에서는 천명이 용수의 첫번째 부인으로 나오지만, 천명보다 먼저 천화가 용수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천화는 진평왕의 명령에 의해서 백룡에게 시집을 간다. 처음 왕위를 천명이 뛰어난 자질을 보여서 용수로 하여금 천명과 함께 신라을 이끌도록 하였다. 이에 용수의 부인이였던 천화는 용춘에 시집을 가고, 용춘이 선덕을 모시자 진평이 천화를 백룡에게 시집을 가게 했다고 한다. 천화는 용수-> 용춘 -> 백룡에게 시집을 가지만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고 타의(진평)의 명령에 따라 시집을 가고 있다.

백룡은 삼국사기 본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에 보면, 629년 낭비성 전투에 참전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건복 46년 기축(진평왕 51년: 629) 가을 8월에 왕이 이찬(伊湌) 임말리(任末里), 파진찬(波珍湌) 용춘(龍春).·백룡(白龍), 소판(蘇判) 대인(大因)·서현(舒玄) 등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공격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 629년

백룡의 지위가 용춘과 같은 파진찬(4등위)이다. 삼국사기에 용춘은 대장군으로 나온다. 그러니 백룡도 대장군의 직위에 있었지 않을까 한다.

신라판 서동요, 법흥과 보과

삼국유사에는 천화대신에 선화가 진평의 3번째 딸로 등장한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선화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단지, 화랑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 원화 <남모>를 법흥왕과 백제 보과의 사이에서 난 여식으로 등장한다.
준정이 남모를 시기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만들어 정부인 위화랑을 1세 풍월주로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2세 풍월주가 미실과 미생의 아버지인 미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보과는 법흥왕이 국공(왕자가 아님) 시절에 백제에 왔다가 눈이 맞어, 백제를 버리고 신라로 법흥(원종)을 만나러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고 남모와 4세 풍월주 모랑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버리는 처자들이 많이 보인다. 신라의 여인들은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는 왕후의 자리도 버리고, 사랑하는 지아비를 따른다.

이와 관련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2009/07/09 - [역사이야기] - 화랑세기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도 있다. 를 참조하기 바란다.


영국의 에드워드 왕은 영국의 법에 의해서 과부와 결혼은 용납하지 않자, 왕의 지위를 버리고, 미국의 과부인 심슨부인과 결혼을 하여 왕위를 버린 세기의 결혼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신라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 난다. 시간이 허락하고 성원이 있다면 '사랑을 위해서 자신의 지위를 버린 여인들'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임술년 천명과 덕만이 쌍생으로 태어났다? 

 세종과 하종의 계락으로 "임술년에 황후가 쌍생을 낳았다가 하나의 쌍생을 버렸으니, 마야황후를 폐하라는 벽서(방)가 붙는다.

설화랑은 하종과 세종이 벽서를 붙힌 범인임을 미실의 눈을 보고 알아 차렸다고 이야기를 하며 세주의 통찰력은 진흥대제의 통찰력을 뛰어 넘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궁예의 관심법이 되겠다. "옴마니 반메음"

덕만과 천명이 임술년생이라고 하지만, 당시의 임술년은 덕만과 천명이 태어날 수 없다. 임술년은 진흥왕시기와 진평왕시기에 딱 2번 나온다. 

 542년 진흥왕 3년, 602년 진평왕 24년이다. 

이와 관련된 기사는 다음과 같다. 관심이 있는 분은 아래 기사를 참조 하시길 바란다.

천명과 덕만이 542년 임술년은 절대로 될 수가 없다. 이유는 천명과 덕만의 아비인 진평왕이 태어나기도 전이고, 진평왕의 할아버지인 진흥(심맥종)의 나이가 8살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602년 임술년이 될 수 있는가? 천명과 용수 사이에 낳았다는 춘추가 603년에 태어 난다. 그러니 천명은 2살때 춘추를 낳은 것이다. 기네스에 오른 기록이 5살이다. 그것도 자식이 아닌 쌍둥이 동생으로 의심하고 있다, 어머니가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쌍둥이중 하나가 어머니 뱃속에서 크지를 못하고 다른 쌍둥이의 몸속에서 기생(?)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대가야 복야세력 월야의 비밀

월야(주상욱)

그런데 복야회의 수장 월야는 대가야의 마지막왕인 월광태자의 적손이라고 한다. 월천의 이름도 '<월> 돌림자를 쓰는 것으로 봐서, 월천은 대가야의 왕족 출신인 것 같다.

8세 풍월주 문노는 대가야의 피를 이어 받았다, 또한, 문노가 풍월주에 오르게 된 이유도 가야파의 지원이 있었기 가능했다.

 복야회의 근거지는 삽량주에 있다고 한다. 유신은 자신의 가문에 주어진 압량주을 가야유민에게 주고, 복야회의 복속과 동맹을 바란다. 이유는 가야파를 등에 지고 덕만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함이다.


비담은 복야회의 포스트 말단 연락책을 잡는다, 그런데 포스트는 죽음으로 비밀을 지키려한다. 하지만 포스트의 품에서 암어(암호)가 적힌 편지를 발견한다. 하지만 비담은 술술 암어 내용을 이야기한다. 복야회의 암어(암호)를 아는 이유는 비담의 스승인 문노(비조/문화)의 외가가 대가야 출신이기 때문이다.

월광태자는 이뇌/비조부(호조/선혜후)의 누이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월광과 문노는 사촌간이 된다. 월광의 아들로 나온 월야는 문노의 조카가 되는 것이다. 

양화는 호조/선혜후의 딸이다. 이뇌와 양화의 딸은 월화공주이다. 월화공주는 진흥에 시집를 가서 천주를 낳는다. 천주는 지도태후(용수.용춘의 어머니)와 결혼하여 586년 17세 풍월주 염장을 낳는다. 이 염장이 덕만을 도와 칠숙의 난을 평정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문노는 561년 이사부와 사다함이 대가야를 정벌할때  문노 자신의 외가를 치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하여 참전을 하지 않았다. 이에 신라인들은 신의가 있다고 하여, 문노를 더욱 존경하였다고 전한다.


어찌되었던 복야회의 대빵의 이름이 월야인 이유가 월화->월광->월야,월천 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월천대사는 월광태자와 형제지간이 되는 건가?

단석산 김유신 바위와 유신의 도박

단석산 김유신바위

유신은 덕만으로 부터 너(유신)를 버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나열한다. 한마디로 나를 따르라는 덕만의 협박이다.


유신은 덕만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가야파를 지키고, 가문의 안위를 만을 생각할 것인가를 고심하면서, 열심히 바위를 치고 있다. 유신이 어릴때부터 바위치기를 한다 이유는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보검을 얻고,  칼로 바위가르기를 보여주기 위한 과정이였다. 그래서 언제나 바위가 갈라질까? 관심있게 지켜봤다. 치고 또치고도 갈라지지 않던 바위가 드디어 갈라졌다. 드디어 김유신 열전과 에 바위가 갈라지는 기적이 선덕여왕 26회에 이뤄진것이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에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이때 김유신의 나이가 17세인 것으로 나온다. 그러니

(c) 정진만 단석산 김유신 바위

595년생인 유신이 17세가 되는 해는 611년이 된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은 시간개념과 공간개념을 상실하고 있기때문에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김유신 바위는 단석산 정상에 있다. 산행을 하거나, 선덕여왕 촬영지 관광코스로 정해보는 것은 어떠할까?  


유신은 서현에게 가문과 가야세력의 모든것을 걸고, 도박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때 복야회 일원은 유신과 서현을 죽이려 한다. 이에 유신은 복야회 일원을 굴복시키고, 복야회의 수장을 만나려고  산채로 들어간다.

서현이 602년 아막성 전쟁에서 참전하여, 설원랑의 계락으로 위기에 처하고 , 부상을 입었을 때, 구원을 받은것은 하늘의 보살핌이 아니라 복야회 장군인 설지의 입을 통해서 복야회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유신은 가야의 유민이 12만이라고 한다. 도대체 어디서 나온 근거인지는 알 수 없다. 선덕여왕의 작가는 생각없이 말을 뱃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선덕여왕의 작가진만 알 수 있지 않을까?

유신은 덕만일행을 포위하고 있는 복야회에게 "내가 선택한 나의 왕이시다. 그러니 복야회 또한, 덕만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한다. 이로서 덕만은 미실과 대적할 수 있는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진부한 운명론

성골남진의 나머지 계시가 밝혀지고 있다. 미실이 무너지고, 덕만이 일어선다는 것이다. 곧 덕만이 왕이 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운명이 정해졌다는 인간의 운명론이 되시겠다. 덕만이 노력을 하던 하지 않던, 왕이 되는 운명인데, 왜 저 멀리 사막까지가게 만들었을까? 그것도 운명인가? 미실에 대적하는 것도 운명이고? 한마디로 '타고난 팔자가 있다'가 있다는 말인데, 소설이 너무 진부하지 않는가?


춘추(유승호)의 아버지에 대한 비밀을 알고 싶으세요? 그럼 이 기사를 일독 해보시길 
2009/08/20 - [역사이야기] - 괴물이 되어버린 춘추(유승호)의 아버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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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우비 2009.08.19 1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굳굳굳 지루하게 읽을 수도 있는 글을

    재밌게 쓰신것 같아요~!

    그냥 봤으면 역사 잘못 알뻔했네요 ...-_-;;;

    너무너무 잘 읽다가 가요~

  3. 능소화 2009.08.19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신라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4. 날아라 2009.08.19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일고 가니다. 앞으로도 계속 부탁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속 할려면 추천이 많아야 하는데.. 너무 추천을 하지 않는군요..

      추천이 없다는 말은 이런글은 쓰지 말라는 뜻이거든요.. ㅋㅋ

  5. BlogIcon haRu™ 2009.08.19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마지막에 운명론에 대한 비판... 아주 좋았습니다.
    제가 주로 사극을 안보는 이유와 같습니다. 특히 사극은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고는 주인공을 개고생 시키죠.
    뭐 이런식으로 재미가 없어질려고 할때 비담의 투입은 정말 극적이였죠. 지금 것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본 적없는 매력적인(그러나 일본 만화등에서는 많이 본...ㅡ,.ㅡㅋ)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다. 운명이런것 없이도 잘 만들텐뎅.. 뭔 원죄론을 받아 들여서 그런가. 너무 난무함...

  6. elly 2009.08.19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문노와 월광은 사촌지간이 아닙니다.
    촌수로 따지자면 조금 더 올라갑니다. :-)
    월광태자의 자손은 아무리 자료를 찾아봐도 자료가 없어요.
    대신 해인사를 처음 창건한 이 중 하나가 월광의 후손이라고 적혀있어서,
    그의 후손이 있다고 짐작만 할 따름입니다.
    월야라는 인물은 소설(혹은 극)을 위해 만든 가공의 인물입니다.
    대신 월광의 누이동생인 월화의 후손인 천주는 화랑세기에 나오는걸 보니 있었던 인물인것 같구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월광의 어미니가 비조부의 누이이고,
      문노의 아버지는 비조부/문화 잖아요.. 그러니 이들은 사촌간이 되지요..

      그냥 드라마가 월광의 적자라고 해서리.. 그렇다면 문노의 조카다 하는거지요.. ㅋ ㅋ 이왕 엮을라면 확실히 엮어라 머 이런 비판이였음..

      저는 월야보다는 천주/월화의 아들인 염장을 월야역으로 했다면 더 잼있지 않았을 까해요.. 머 언젠가는 염장도 덕만의 수중에 떨어지겠지만요..

      서현보다 더 비중이 있는 인물이 천주인뎅.. 기록도 별로 없으니 맘껏 작가의 상상력도 발휘할수 있구요..

      선덕여왕 원작 작가가 너무 공부를 안한 티가 나요.. ㅋㅋ

      인물설정을 할때 자료조사가 기본중에 기본인뎅..

    • BlogIcon elly 2009.08.19 2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ㅋㅋ
      전 문노의 모계, 월광의 부계로 계산을 하다보니
      엄청난 촌수가 나오더라구요. 이제 생각해보니
      이종사촌-외사촌격이 되네요. :-)

      전 우연히 당첨되서 선덕여왕 소설까지 다 읽었는데
      원작가가 공부 안한티가 정말로 많이 나더군요.
      인물 설정 조차도 대충 빌려온게 너무 많이 보여요.
      (선덕여왕이 처녀로 죽었다는 사실까지 포함해서..;;)

    • BlogIcon 갓쉰동 2009.08.20 0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처녀로 죽이는 군요.. 처녀에 대한 환상이라도 있나봅니당..

  7. 흐흐흐 2009.08.25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에 사소한 실수가 보이네요. 별거 아니지만 문맥상 약간의 혼동이 올 수 있어서...
    월야의 사진 옆 글 '가야파를 등지고'가 '가야파를 등에지고'죠???
    맞나요?

    • BlogIcon 이반의꿈 2009.08.25 1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도 읽힐수 있군요.. 저는 등지고를 등에지고로 생각하고 썼는뎅.. 바꿀까 말까 고민했었음. 지적을 하시니 바꿔야 겠네요.. ㅋㅋ

  8. BlogIcon 조용형 2012.01.01 0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팹, 훌륭한 문서입니다

  9. BlogIcon 원숭이 2012.01.07 0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10. BlogIcon 엘리 2012.04.04 0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어디로 데려가십니까?

  11. BlogIcon 헤일리 2012.04.06 0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2. BlogIcon 모건 2012.05.08 2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심 없습니다.

  13. BlogIcon 알렉 산드라 2012.05.11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먹었습니다.

  14.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5.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6. BlogIcon Pussy Porn 2012.07.14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17.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8.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for camping 2012.11.01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9.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indoors 2012.11.06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

  20. BlogIcon petsafe wireless dog fence 2012.12.22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이 중요한 주제에 도움이 필요 남녀를 지원하는 당신의 관대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21. BlogIcon 24 stove top 2013.01.02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일식은 있었을까? 물론, 일식도 없었고, 월식도 없었다. 당시의 일식이 있던 시기를 뽑아 본다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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