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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부상당한 동이는 의주 변상인의 도움으로 살아나 의주로 간다.

동이는 의주에서 한양의 차천수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지만, 변상인의 배달사고로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변상인의 동이에 대한 집착은 동이를 단순히 일을 잘하는 여비로 생각하지 않고 여인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숙종의 명으로 동이를 찾아 나선 차천수와 서용기 종사관은 조선팔도에 동이가 팔려갔을 만한 인신매매 현장을 이 잡듯히 급습하여 동이를 찾아 나선다. 서용기는 동이가 연락한 보부상의 도움으로 동이가 의주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때 동이는 상인이 자신을 억류하려는 것을 알고 도망을 준비한다. 하지만 우연히 의주에서 청나라로 왕자 균의 세자책봉의 고명을 받기위해 길을 나선 장희재와 조우한다.

중전이 된 장옥정은 살아난 동이가 나타나 명성대비의 시해사건의 움직일 수 없을 증거를 들이미는 꿈을 꾼다. 맞은 놈은 발을 뻣고 자지만 때린놈은 발을 뻣고 자지 못한다는 속담인가? 하지만, 현실은 때린놈은 맞은 놈을 기억하지 못한다.

월요일 드라마 동이를 본사람이라면 동이가 가지고 있는 증험은 종이가 구겨져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월요일 예고편에서 장옥정 앞의 동이는 깨끗한 봉투를 흔든다는 것을 알게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예고편은 장옥정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었다.


예고편을 자세히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동이가 살아나서 장옥정을 향해 복수를 하는 것으로 알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월요일 예고편은 낚시라고 하겠다.


숙종은 동이가 행방불명된 동안 점점 동이를 향한 마음이 연민을 넘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숙종을 바라보는 장희빈은 점점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현왕후가 폐서인 된 후 도성과 궁에는 숙종의 첫번째 부인이 되는 인경왕후의 작은아버지 김만중이 쓴 한글 소설 사씨남정기가 퍼져 민심이 흉흉해진다. 장옥정은 사씨남정기가 자신을 향한 목적을 가진 비난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백성들도 조강지처인 착한 사씨가 교활한 사악한 후처 교씨에 의해서 음해되어 소박을 맞은 것을 인현왕후가 폐서인 된것으로 알게 된다.

그래서 재발이 절인 장옥정은 사씨남정기를 금서로 지정을 하고 민가와 궁에 퍼져있는 사씨남정기를 모두 회수하여 불태워 버리라고 한다. 감찰부 나인들은 궁의 민심보다는 중전의 마음이 흉흉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금서 대목은 멀리는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생각하게 하고, 현재로 돌아오면 MB 정권하에서 언론의 자유침해와 국방부의 금서지정이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김만중의 사씨남정기가 숙종과 안현왕후와 장희빈을 모티브로 숙종을 개도하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만들어 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씨남정기는 숙종과 인현왕후, 장옥정(장희빈)과 아들 균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졌다고 알려져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명나라에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을 소설로 극화하였다고 한다. 사씨남정기가 유명하게 된 이유는 장옥정에 의해서 인현왕후가 폐서인 되었다는 현실과 소설을 동일시 하여 인현왕후를 소설속의 주인공으로 착각하과 감정이입을 한것이다.

핍박받는 비련의 주인공이 된 인현왕후를 지지하는 여론이 형성되고 반대로 장옥정은 본처를 없애고 마침내는 남편까지 죽이게 만든 악처가 되어 여론이 악화되어 민심을 잃어 버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장옥정(장희빈)을 남편(숙종)을 잡아 먹는 XX로 그린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역사에서 숙종에게 사씨남정기를 알려준 사람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는 <궁녀>이다. 드라마 동이에서 <궁녀>와 동이를 일체화 시켜서 사씨남정기를 알려준 이는 동이였다는 설정이 될 줄 알았지만, 동이가 의주에 있는 동안 이미 숙종도 사씨남정기를 읽었다는 말을 장옥정의 입을 통해서 시청자들에게 알려버린다. 물론, 장옥정의 말은 정말 숙종이 사씨남정기를 읽었다는 뜻은 아니다. 없어진 사씨남정기를 다시 동이가 숙종에 전달해서 알려지게 되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의주에서 만난 심운택은 한글 사씨남정기를 한문소설로 번역하여 궁중에 유포시켰다는 김춘택의 가상 인물처럼 보인다. 김춘택은 김만중의 형인 김만기의 손자다. 숙종이 사씨남정기를 읽는 과정이 심운택(김춘택)으로 부터 사씨남정기를 전해받은 <동이>가 숙종에게 알려주었다는 설정이 더 극적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사씨남정기와 동이를 연결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끌고 갈까 흥미롭게 지켜보는 입장이였다. 하지만, 드라마 동이는 일련의 과정을 빼버리고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그래서 맥이 빠지고 말았다.

어쨌든, 후에 심운택은 동이를 문(계략과 책략)으로 , 무로써 서용기가, 음지에서 검계를 부활시킨 차천수로 하는 삼위일체의 호위세력으로 그려지지 않았을까 한다. 특히, 심운택은 동이와의 첫만남에서 사기꾼으로 그려진 만큼 장희재의 대항마 역할로 계략에 능한 것을 그려질 것 같다. 장희재와 심운택의 머리싸움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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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1 - [역사이야기] - 김수로 순장 방해했을까? 사실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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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labyrint 2010.06.09 0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춘택을 왜 심운택으로 했을까요?
    원작에도 김춘택으로 나오는데요.
    제가 보기에도 김춘택이 동이에게 사씨남정기를 주었다면 좋을 것네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2. BlogIcon 감자꿈 2010.06.09 1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심운택과 장희재가 보여줄 대결이 기대되네요. ^^

  3. BlogIcon 배리본즈 2010.06.09 1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4. BlogIcon 라이너스™ 2010.06.09 1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5. BlogIcon tvian 2010.06.09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iMBC <동이>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에 해당 포스트가 소개되었습니다.^^
    http://www.imbc.com/broad/tv/drama/dongyi/tvfun/

  6. BlogIcon makeityourrings 2011.11.17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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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BlogIcon makeityourrings 2011.11.17 1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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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BlogIcon Chase 2012.09.23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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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BlogIcon sex toys 2012.10.20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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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BlogIcon Cialis senza ricetta 2012.12.02 2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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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전이 된 장옥정은 살아난 동이가 나타나 명성대비의 시해사건의 움직일 수 없을 증거를 들이미는 꿈을 꾼다. 맞은 놈은 발을 뻣고 자지만 때린놈은 발을 뻣고 자지 못한다는 속담인가? 하지만, 현실은 때린놈은 맞은 놈을 기억하지 못한다.

월요일 드라마 동이를 본사람이라면 동이가 가지고 있는 증험은 종이가 구겨져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월요일 예고편에서 장옥정 앞의 동이는 깨끗한 봉투를 흔든다는 것을 알게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예고편은 장옥정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었다.


예고편을 자세히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동이가 살아나서 장옥정을 향해 복수를 하는 것으로 알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월요일 예고편은 낚시라고 하겠다.


숙종은 동이가 행방불명된 동안 점점 동이를 향한 마음이 연민을 넘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숙종을 바라보는 장희빈은 점점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현왕후가 폐서인 된 후 도성과 궁에는 숙종의 첫번째 부인이 되는 인경왕후의 작은아버지 김만중이 쓴 한글 소설 사씨남정기가 퍼져 민심이 흉흉해진다. 장옥정은 사씨남정기가 자신을 향한 목적을 가진 비난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백성들도 조강지처인 착한 사씨가 교활한 사악한 후처 교씨에 의해서 음해되어 소박을 맞은 것을 인현왕후가 폐서인 된것으로 알게 된다.

그래서 재발이 절인 장옥정은 사씨남정기를 금서로 지정을 하고 민가와 궁에 퍼져있는 사씨남정기를 모두 회수하여 불태워 버리라고 한다. 감찰부 나인들은 궁의 민심보다는 중전의 마음이 흉흉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금서 대목은 멀리는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생각하게 하고, 현재로 돌아오면 MB 정권하에서 언론의 자유침해와 국방부의 금서지정이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김만중의 사씨남정기가 숙종과 안현왕후와 장희빈을 모티브로 숙종을 개도하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만들어 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씨남정기는 숙종과 인현왕후, 장옥정(장희빈)과 아들 균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졌다고 알려져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명나라에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을 소설로 극화하였다고 한다. 사씨남정기가 유명하게 된 이유는 장옥정에 의해서 인현왕후가 폐서인 되었다는 현실과 소설을 동일시 하여 인현왕후를 소설속의 주인공으로 착각하과 감정이입을 한것이다.

핍박받는 비련의 주인공이 된 인현왕후를 지지하는 여론이 형성되고 반대로 장옥정은 본처를 없애고 마침내는 남편까지 죽이게 만든 악처가 되어 여론이 악화되어 민심을 잃어 버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장옥정(장희빈)을 남편(숙종)을 잡아 먹는 XX로 그린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역사에서 숙종에게 사씨남정기를 알려준 사람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는 <궁녀>이다. 드라마 동이에서 <궁녀>와 동이를 일체화 시켜서 사씨남정기를 알려준 이는 동이였다는 설정이 될 줄 알았지만, 동이가 의주에 있는 동안 이미 숙종도 사씨남정기를 읽었다는 말을 장옥정의 입을 통해서 시청자들에게 알려버린다. 물론, 장옥정의 말은 정말 숙종이 사씨남정기를 읽었다는 뜻은 아니다. 없어진 사씨남정기를 다시 동이가 숙종에 전달해서 알려지게 되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의주에서 만난 심운택은 한글 사씨남정기를 한문소설로 번역하여 궁중에 유포시켰다는 김춘택의 가상 인물처럼 보인다. 김춘택은 김만중의 형인 김만기의 손자다. 숙종이 사씨남정기를 읽는 과정이 심운택(김춘택)으로 부터 사씨남정기를 전해받은 <동이>가 숙종에게 알려주었다는 설정이 더 극적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사씨남정기와 동이를 연결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끌고 갈까 흥미롭게 지켜보는 입장이였다. 하지만, 드라마 동이는 일련의 과정을 빼버리고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그래서 맥이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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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1 - [역사이야기] - 김수로 순장 방해했을까?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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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labyrint 2010.06.09 0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춘택을 왜 심운택으로 했을까요?
    원작에도 김춘택으로 나오는데요.
    제가 보기에도 김춘택이 동이에게 사씨남정기를 주었다면 좋을 것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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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감자꿈 2010.06.09 1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심운택과 장희재가 보여줄 대결이 기대되네요. ^^

  3. BlogIcon 배리본즈 2010.06.09 1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4. BlogIcon 라이너스™ 2010.06.09 1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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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BlogIcon tvian 2010.06.09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iMBC <동이>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에 해당 포스트가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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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BlogIcon makeityourrings 2011.11.17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I와 비교하면 지금 우리가 소유 또는 과거에 훨씬 더 많은 아이팟을 운영하고있다 나의 반쪽은 우리를 함께 참여하는 것은 Sansas, iRivers, 시장에서 아이팟 (기본 및 효과), 귀하의 이비자의 랩소디, 많은 다른 사람을 포함하는, 숫자를 카운트 수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열렬한 게이머의 단일 독특한 라인에 진정했습니다. 정확하게 왜? 나는 Zunes은 일반적으로 아르 (일반적으로 조롱과 함께) 당신의 무시받는 작업에 흥미와 함께 잘 설계 방법을 알고 흥분되었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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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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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옥정은 살아난 동이가 나타나 명성대비의 시해사건의 움직일 수 없을 증

  14. BlogIcon Chase 2012.09.23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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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BlogIcon sex toys 2012.10.20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대 일수도 있지요.. 역사를 기반으로 재미를 만들면 더 많은 사람이 보지 않을까함.. ㅋㅋ 왜곡 문제도 없공..

  16. BlogIcon Cialis senza ricetta 2012.12.02 2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Cialis senza ricetta in bella italia. :-) !!!ㅋㅋ 왜곡 문제도 없공..

  17. BlogIcon dog allergies symptoms 2013.02.02 2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국은 황제국을 칭한다. 하지만 가야가 황제국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18. BlogIcon jordan 1 2013.04.09 2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의 천사가 되어줄께

MBC 사극 <선덕여왕>은 대부분의 모티브와 등장인물들을 <화랑세기>에 의존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들이 <문노>,<미실>, <하종>,<보종>,<미생>,<세종>과 화랑들이다. 아직까지 화랑세기의 진위논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또한,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화랑세기는 새로운 역사물을 만들 때 소설의 영감을 받기도 한다. 

글쓴이도 또한, 역사를 해석할 때 화랑세기를 참고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빈틈을 찾아 합리적인 해석을 찾기도 한다. 어찌 되었던 <화랑세기>의 위작여부에 상관없이 우리 사학계와 문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화랑세기>를 보기전에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로 미쳐 깨닫지 못했고, 이들 사서로 합리적인 해석이 불가능했던 것이 화랑세기를 읽고 나서 그 미싱링크를 찾아낸 적이 있다.  

미싱링크를 찾은 다음 화랑세기를 보지 않고, 다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다시 읽었을때도 화랑세기가 있고, 없고에 상관없이 합리적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것중에 하나가, <만파식적>에 관한 재해석이다. 글쓴이는 화랑세기의 도움으로 만파식적이 가지고 있던 의문부분을 상당수 해결할 수 있었다.
삼국사기에는 효소왕(이홍, 이공)의 나이를 추측할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신문왕5년 687년 원자가 태어났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효소왕(이홍,이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삼국유사> <만파식적>을 읽다 보면 이해가 되지 않고 미궁속으로 빠진다.

682년 임오(壬午) 5월 초하루(다른 책에는 천수天授 원년元年이라 했으나 잘못)에 해관(海官) 파진찬(波珍飡) 박숙청(朴夙淸)이 아뢰었다.  “동해 속에 있는 작은 산 하나가 물에 떠서 감은사를 향해 오는데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합니다.” 

일연은 <삼국사기>를 읽고 <삼국사기>에서 일부러 빼버린 이야기나 삼국사기가 흘려버린 이야기를 전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유사>를 작성했다. 또한, <삼국사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주석을 달면서 다른 이설도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하고 있다. 

일연은 <삼국유사><만파식적>의 사건이 682년 임오년 5월 또는 천수 원년(690)년때 일어난 사건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한 682년 5월과 690년 5월중 일연은 <만파식적>이야기가 682년 5월에 있었던 일이라고 하고 있다.  이로써 687년 이홍(이공)이라고 추측되는 <원자>를 이홍(효소왕)으로 보고 있지 않음이 확실해 진다.

그렇지 않다면, 682년이면 이홍(이공)이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데 690년이 틀렸다고 확신에 차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682년 이미 이홍(이공)이 생존하고 있었고  <이홍>이 682년에 이미 태자가 되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일연은 <만파식적>을 빌어서 <삼국사기> 신문왕 때의 기록이 잘못되었다고 언급하고 있지도 않다. 이는 후대의 많은 이들이 <원자>가 꼭 맏아들이란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를 읽다 보면 꼭 원자 = 장자가 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원자=맏아들이라고 하지도 않고 있다. 장자 = 원자 일 수 도 있지만, 원자 =/= 장자가 아닌 경우도 많다. 장자는 장자라고 별도로 기록하고 있다. 이를 구별하지 못한 후학들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원자 = 장자 의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버지 문무대왕(文武大王)을 위하여 동해(東海) 가에 감은사(感恩寺)를 세웠다(절 안에 있는 기록에는 이렇게 말했다.  문무왕文武王이 왜병倭兵을 진압하고자 이 절을 처음 창건創建했는데 끝내지 못하고 죽어 바다의 용龍이 되었다.  그 아들 신문왕神文王이 왕위王位에 올라 개요開耀 2년(682)에 공사를 끝냈다.  금당金堂 뜰 아래에 동쪽을 향해서 구멍을 하나 뚫어 두었으니 용龍이 절에 들어와서 돌아다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대개 유언遺言으로 유골遺骨을 간직해 둔 곳은 대왕암大王岩이고, 절 이름은 감은사感恩寺이다.  뒤에 용龍이 나타난 것을 본 곳을 이견대利見臺라고 했다).

 그렇다면, 감은사는 문무왕(661년~681년 7월)때 공사를 시작해서 682년 5월 이전에 완공되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신문왕이 동해쪽의 관리가 보고한 내용을 살피려 감은사에 갔다. 거북모양의 바위섬에서 있는 용으로 부터 <검은옥대>와 대나무를 가지고 오는 도중 이공태자가 성을 지키고 있다가 말을 타고, 신문왕을 맞이 했다는 이야기다. 

이공(효소) = 원자 = 장자 라는 확신을 가지고 <삼국사기>의 기록을 재정립해 보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만파식적>의 이야기가 어느때 발생한 때인지를  추적한다면
 

682년 5월 금성이 달을 침입했다. <만파식적> 1 <삼국유사>
687년 2월 원자가 태어났다. (맏아들 이공이 태어났다)
690년 5월 만파식적  2 <삼국유사>
691년 3월 왕자 이공이 태자가 되다.  5살(만 3살)
692년 봄 대나무가 말랐다. 7월 신문왕이 죽음, 효소(이공)의 나이는 6살(만 4살 몇개월)에 왕위에 올랐다.


<만파식적 1> 일연은 <삼국유사>는 태어나지도 않은 이공(효소)왕을 태자로 등장시켜 690년이 아닌 682년 5월이라고 하고 있다. 일연은 <원자>와 이공은 다른 인물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일연>은 <김흠돌반란사건>을 염두해 두고 <만파식적>을  이야기한것 같다. 반란으로 민심이 어수선한 것을 <만파식적>으로 일시에 해소시켰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일연은 690년의 <만파식적 2>의 이설을 배격하고 있다.

보다 합리적인해석은 이공(효소왕)이 태자였고 이설인 천수원년(690년)설을 따르면 이공이 태자가 되기 전이니 천수년간중 691~693년 사이가 되어야하고, 그런데 신문왕은 692년 7월에 죽음으로  691년 5월 ~692년 5월사이에 있었던 일이 된다.

좀더 그 시기를 줄인다면, <삼국사기> 신문왕 12년 (692년) 봄 기사에 <대나무가 말랐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만파식적>의 대나무와 연결이 되는내용이다.. 봄에 대나무가 말랐을 정도면 봄가뭄이 심했다고 할수 있는데 그렇다면 단순히 봄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심했다라고 기록하면 되었을 것인데도 <대나무가 말랐다>라고만 기록하고 있다.

제14대 유리왕(儒理(禮)王) 때 이서국(伊西國) 사람들이 금성(金城)을 공격해 왔다.  신라에서도 크게 군사를 동원했으나 오랫동안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이상한 군사가 와서 신라군을 도왔는데 그들은 모두 댓잎을 귀에 꽂고 있었다.  이들은 신라 군사와 힘을 합해서 적을 격파했다.  그러나 적군이 물러간 뒤에는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댓잎만이 미추왕의 능 앞에 쌓여 있을 뿐이었다.  그제야 선왕(先王)이 음(陰)으로 도와 나라에 공을 세웠다는 것을 알았다.  이리하여 그 능을 죽현능(竹現陵)이라고 불렀다. - 삼국유사 죽현능

신라에서 대나무의 상징은 김씨계의 첫 왕인 <김미추>를 상징한다. 김미추가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서고국이 경주를 침입할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죽엽군들이 나타나 위기의 신라를 구원한다. 그리고 조사를 해보니 <미추릉>의 주위에 있던 대나무 잎들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죽엽군은 <김미추>가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서 보낸 <음병>이라고 믿었고, 미추릉을 <죽현릉>이라고 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이처럼 대나무는 <신라>에서는 신성시 하는 신물 중에 하나이다. 그러니 692년 봄 <대나무가 말랐다>라는 이야기는 단순한 대나무가 아닌, <김미추릉>에 있던 대나무가 말랐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미추릉에 있던 대나무가 말랐다는 것은 곧 신라를 지탱해주던 김미추계에 이상이 발생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만파식적>에 2개의 대나무가 낮에는 둘로 갈라지고, 밤에는 하나가 되어 바람이 불고, 어둠이 밀려왔다고 했으니, 신라의 변고를 말하고 2개의 세력이 충돌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만파식적>과 <삼국사기>
692년 봄 <대나무가 말랐다>는 신문왕 말년에 신라왕실의 혼란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692년 신문왕 말년 이런 혼란을 <만파식적>으로 잠재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공태자가 6살에 신문왕이 궁을 비운틈에 왕궁을 지키고, 말을 몰아서 왕을 영접하고, 검은옥대에 주렁주렁 달린 옥들이 용이라고 하였다고 하고 있다. 여전히 석연치 않는 부분은 만 4살 조금 넘은 나이에 왕을 대신해서 왕성을 지키고, 신문왕이 모르던 사실을 알려줄 정도의 지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대다수 나이가 어린왕자가 왕위에 오르면 어린왕의 모후가 섭정을 한다. 그리고 섭정을 하는 모후(태후)의 기록이 왕의 기록으로 남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이공태자의 기록도 이공의 모후인 신목(왕후)의 행동이 아닐까?

신목은 요석공주의 소생으로 설총의 누이로 추측되는 인물이다. 설총에게 <검은옥대>와 <만파식적>에 관한 이야기를 미리 듣고 신문왕에 이야기를 했을 수 있지 않을까? 이는 이공이 687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기록을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추측한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신문왕과 <이공>태자에 관한 이야기라면 어찌 될까?

미궁속에 빠지게하는 <원자>== <장자>라는 올가미를 풀어버린다면..

합리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은 687년 2월 태어났다는 <원자>가 이공태자일 필요성도 없고 <원자> = /= <장자> 라면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일연도 <원자>=이공(효소)라고 하지 않았다.

신목이 신문왕비가 되는 나이를 보면 아버지 김흠운이 655년 정월에 사망할 시점을 신목의 출생 한때라고 하더라도 신문왕 즉위년(681년)이면 27세가 된다. 그런데 33살 이상인 687년에 첫번째 원자를 낳았다? 그리고 흥광(성덕왕)을 낳고, 728년 당나라에 숙위하는 김사종을 낳았다?

신라사회에는 13~15세 정도면 결혼하고 15~6세면 자식 한둘은 낳고 있다, 그런데 유독 신목만 당시 조혼이 성행한 신라사회에서 첫결혼은 28세에 한다? 신목이 과부가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상황이거나 신문왕과 이전부터 사실혼 (후비)관계에 있지 않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또한, <삼국유사> 일연은 <만파식적>에서 682년 5월에 있었거나 690년 (천수 원년) 두가지 설을 전하고 있다.

<일연>은 <김흠돌반란사건>을 염두해 두고 <만파식적1>을  이야기한 것 같다. 반란으로 민심이 어수선한 것을 이듬해 5월 수습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682년 5월 태백이 달을 침입했다고 했으니 682년 5월 전해져온 이야기 일 수 있다.

또한, 일연은 왕자와 태자를 혼동해서 소급적용하는 경우가 있고, 김춘추와 김문희와의 관계에서 처럼 선덕공주가 분명한데도 선덕여왕이 춘추와 문희를 연결시켰다고 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 만파식적 1> 682년 5월과 <만파식적 2> 690년 ~ 692년 5월 <만파식적 2>설도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을 보다 합리적으로 해석한다면 687년에 태어난 <원자>를 꼭 <이홍>이라고 볼 필요가 없다. 원자란 꼭 맏아들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일연 또한  687년 <원자>가 태어났음을 알고 서도 690년 <만파식적 2설>  682년 <만파식적 1설> 설>이 맞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일연 또한 원자 = 장자라고 보지 않았을 뿐더러, 원자 = 이공(효소왕)이라고 보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이공(효소왕)은 신문왕이 즉위한 후 682년에 충분히 말을 타고 돌아 다닐수 있고, 왕이 성을 비운사이 성을 지킬정도이며, 왕에게 지혜를 알려줄 정도의 나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늦은 나이라고 해도 10세이상은 되었다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가지 삼국사기도 원자 = 이공(효소)로 보지 않고 있다는 정황 증거가 발견된다. <삼국사기>는 단순히 689년 <왕자 이홍을 태자로 삼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여러 왕자 중 이홍을 태자로 삼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로써 원자가 꼭 이홍(이공)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된다.

삼국사기에서 모든 원자들이 장자인 경우가 없다. 또한, 장자와 원자를 구별해서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원자>==<장자>의 설은 장자가 원자가 될 수도 있지만 꼭 동일하지는 않는 것이다. 정비소생 이거나 후비소생이라도 장자는 될 수 있다. <원자>란 <왕>과 정비인<왕비>의 소생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원자>란 적통을 이어갈 사람으로 해석하거나, 정식왕과 정식 왕비사이에 태어난 첫번째 왕자라고 한다면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
신문왕이 왕이 된후 늙은 신목을 받아 들여 낳은 첫아이가 이공(효소)가 아니라는 또다른 증거가 있다.

<화랑세기>에는 <김흠돌>이 반란을 일으키는 여러 원인중의 하나를
정명태자(신문왕)와 신목사이에 이공(효소왕)이 태어나 태자비였던 흠돌의 딸이 배척되고 흠돌의 권력이 무너질것을 두려웠다고 하고 있다. 좀더 소상히 설명하면,

신목은 김흠운의 딸이다, 655년 아버지 김흠운이 죽자, 춘추(태종)가 손자인 소명태자에 시집을 보내려 했으나 소명태자가 655년 이전 어린 나이에 일찍 죽었다. 그런데 신목은 다른 곳에 시집가지 않고 소명태자의 제사를 주관하는 <소명제주>가 되어 자의왕후가 좋아했다고 한다. 그후 소명궁에 살고 있던 신목은 665년 태자가 된 정명(신문왕)태자와 눈이 맞아 <이공>을 낳았다고 한다.(15세 전후) 이때 자식이 없던 태자비 흠돌녀가 투기를 했다고 한다. 뒷배경이였던 문명태후가 죽은 후 김흠돌은 681년 7월 문무왕이 죽고 난후 8월 8일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반란에 실패해 김흠돌은 죽고, 흠돌녀는 정식 왕비도 되기전에 궁에서 축출 된다. <화랑세기>

이로서  문무에게는 정명(신문왕)의 형으로 추측되는 소명이 661~665년 사이 태자가 되었지만, 결혼을 약속한 소명을 두고 일찍죽었다. 665년 정명이 대신에 태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목은 결혼을 약속한 소명태자가 죽자 소명태자와 영혼결혼식을 하고 소명태자가 살고 있던 소명궁에서 생활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665년 이후 소명의 동생인 정명이 태자가 되자 정명과의 사이에 이공을 낳았다고 하겠다. 

이로써 이공(효소)는 빠르면 665년 이후에 태어났고 늦어도 문명태후가 죽기전에 태어났다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682년 5월 <만파식적 1>이 성립하려면 이공(효소)는 10세 초중반이 됨으로 666~672년생이 되어야 한다.

683년 5월 신목이 신문왕의 정비인 (부인)이 되어 687년 2월에 낳은 첫아들이 <원자>가 되는 것이다.
이를 연표로 작성하면 다음과  같다.

626년 문무(법민) 생
654년 문무(법민) 28세 왕자
655년 1월 문무(법민) 29세 입태자
655년 신목태후 아버지 김흠운 사망 및 신목태후 출생(?)
661년 7월 문무 36세 왕
661년 ~ 665년 소명태자 사망, 신목 소명제주 <화랑세기>
665년 신문(정명) 입태자
666~672년 신문(정명)/신목의 장자 효소(이공) 태어남 <유사><만파식적 1><화랑세기>
666~680년 신문(정명)/신목의 장자 효소(이공) 태어남, <만파식적 2><화랑세기>
681년 7월 문무(법민) 56세 사망
681년 7월 신문(정명) 왕위 계승
681년 8월 김흠돌 반란
682년 5월 만파식적 사건 1 <삼국유사> 효소(이공,이홍) (10세~17세)
683년 5월 신목 신문왕의 부인이 됨
687년 2월 원자 태어남
690년 5월 만파식적 사건 2 <삼국유사>
691년 신문왕 11년 봄 3월 1일에 왕자 이홍(理洪)을 태자로 봉하였다.
692년 7월 신문(정명)왕 죽음
692년 7월 효소(이공,이홍) 왕위계승 (10세~27세), <만파식적 1> 이면 (20세~27세)
700년 6월 이찬 경영 반란
700년 7월 신목태후 사망  <황복사 3층석탑 은합>
702년 7월 성덕(흥광,융기) 신문왕 2자 왕위계승
728년 성덕왕 27년 7월 왕의 동생 김사종(3자~4자) 당나라 숙위

682년 5월 <만파식적 1> 이공(효소왕)은 (10세~17세)전후가 되고, 692년 5월 <만파식적 2> 이공(효소왕)은  (20세~27세)전후가 된다. 그러므로 <삼국유사>의 <만파식적>은 <1><2>에 상관없이 합리적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687년 2월에 태어난 <원자>를 단지 맏아들로 해석해 <원자>==이공(효소왕)이니 이공(효소왕)은 692년 6세에 왕위를 계승했을 것이다. 그러니 <신목>태후가 섭정을 하였을 것이라 추측하였고, 700년 7월에 신목태후가 죽은 줄도 모르고 702년 이공(효소왕)을 대신에 왕위에 오른 동생 흥광(성덕)왕도 692년 죽은 신문왕의 유복자일 가능성이 있으니 11살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신목태후가 섭정하였을 것이라 주장하는 사태까지 발전하였다.

<삼국유사>의 만파식적 이야기를 가공의 이야기 알고 있었으며 단지 690년 설을 추종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화랑세기를 인용하는 많은 사람들도 <원자>를 <이공(효소왕)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를 자신의 틀속에 갇어 놓고 자신의 입맛(가설)에 맞지 않는다 하여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화랑세기> 중 하나 또는 모두가 잘못되었다고 하였다.

좀더 <원자>를 확대 해석한다면 <원자>는 신문왕과 신목의 아들인 태자 이홍(효소왕)의 아들일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 다음 기록을 본다면 이때 원자는 효소왕의 아들이 아닌 효소왕의 동생인 성덕왕일 가능성이 많다.

<삼국사기>에는
702년 성덕왕 즉위년 "신문왕의 둘째 아들이고 효소왕의 친동생이다. 효소왕이 죽고 아들이 없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세웠다."

흥광(성덕왕) 이 687년에 태어난 <원자>라면, 702년 성덕왕은 왕위에 오를때 나이가 16세로 추측 된다.
 

728년 성덕왕 27년(728) 가을 7월에 왕의 아우 김사종(金嗣宗)을 당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바치고 아울러 글을 올려 자제들의 국학(國學) 입학을 청하니, 조칙으로 이를 허락하고 김사종에게 과의(果毅)의 관작을 주고 머물러 숙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하지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화랑세기> 공히 받아 들이거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으로도 충분히 <만파식적>의 시기를 680년이던 690년 이후 이던지 상관없이 이공(효소)가 만파식적에 중추적인 등장인물이 될려면 충분한 나이가 되어야함을 예측할 수 있다.

이로 미루어 이공(효소왕)은 22세~27세에 왕위를 계승하였고, 흥광(성덕) 또한 692년 7월 죽은 신문왕의 유복자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원자>가 흥광(성덕왕)이라면, 655년 이전 출생인 신목은 688년 이면 34살~39살 이상으로 728년에 당나라에 숙위하러간 성덕왕의 동생 김사종은 신문, 신목사이에 태어났던 신문과 다른 후비 사이에 태어났던 688년~693년 사이에 태어나야 한다.

만약, <원자>가 사종이라면 흥광은 신문왕이 왕이 되는 681년 7월 이전 이미 태어났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고, 22세 전후에 왕위에 올랐음을 예측할 수도 있다.

글쓴이는 아직까지 화랑세기를 사서로서 인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화랑세기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보다는 후대에 만들어진 위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이유는 삼국사기와 사국유사의 기록중 한쪽에 손을 들어주는게 아니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사이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고, 삼국사기도 맞고, 삼국유사도 맞다는 류의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이설이 있는데 둘다 맞는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앞서 만들어 졌다는 사서가 후대 사서를 본듯한 내용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만파식적이나 선덕여왕시기 등 화랑세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으로 해석 불가능한 역사적인 미스터리를 해결하는데 충분한 동기부여를 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드라마 선덕여왕은 화랑세기를 재조명 하는 데 커다란 공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화랑세기를 위서로 인정하는 많은 분들은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인해서 위서 화랑세기가 사서로 인정되는게 달갑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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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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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rinda 2009.12.31 0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해박한 역사 지식은 언제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
    만파식적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이런 역사적 사건들이 얽혀있는지는 몰랐는데,
    덕분에 잘 정리하고 갑니다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

  3. BlogIcon 감자꿈 2009.12.31 1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이제 2009년이 오늘로 끝납니다.
    연말이라 바쁘신가요? 포스팅이 없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4. BlogIcon 루비™ 2009.12.31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해는 선덕여왕 드라마로 인해 많이 즐거웠고
    갓쉰동님의 해박하신 포스팅으로 인해 제 식견이 무지 넓어졋던 한해였답니다.
    이제 한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네요..
    2009년 한해 동안 많은 사랑 베풀어주신 것 감사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최고로 멋진 2010년 되세요~~!!

  5. BlogIcon 청석 2010.01.01 0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밝아오는 경인년 새해에 더욱 님의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 오길 바라며 더욱 님의 블로 그가 번성하길 기원합니다.
    그동안 저에게 관심 보여준 님 에게 새해 인사드립니다.

  6. BlogIcon 영혼울림 2010.01.01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대단하십니다.
    늘 깊은 지식과 분석 접근력에 감동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7. BlogIcon labyrint 2010.01.02 2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 블로그 대박나시고, 원하시는 소원들이 성취되시길 기원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8. BlogIcon 시림 (詩琳) 2010.01.08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빛....
    태어나
    길 걸었으며
    그 곳에
    내 희망
    나에 꿈 이루었지

    행복은 곁에 있어요
    사랑으로...
    기다림에

  9. BlogIcon 펨께 2010.01.08 1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잘 지내시는지요?
    좋은 주말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10. BlogIcon click here 2012.07.14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듯이 한가하게 주식이야기와 남북정

  11. BlogIcon Brazzers membership 2012.09.08 0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특이한 명함의 아이디어는 관심을 끌 것입니다. 나 같은 경우는 음악 카드 많은 아주 좋은 그리고 어둠 속에서 몇도 빛이 아르 보았다. 기회로 카드를 볼 수와없는 의무 있습니다.

  12. BlogIcon london escort 2012.09.19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녹색 지붕 시도는 매우 큰 수 있습니다. 날씨가 더운 때 그들은 차가운 공기를 제공합니다.

  13. BlogIcon Albert 2012.10.01 2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륙에서 최고 수준의 팀이 진출하는 것이다. 월드컵에 준비를 철저히 하고 상대팀에 대한 분석을 철저히 하였는지와 당일의 컨디션에 따

  14. BlogIcon montreal massage parlor 2012.10.03 1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향은 많은 기업에 대한 모니터링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은 실제로 시장의 수요에 영향을 미칩니다.

  15. BlogIcon theblogtest 2012.10.03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 필요합니다. 우리는 몇 가지 조정 프로세스를 수행해야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변화가 혼란으로

  16. BlogIcon Polo franklin marshall 2012.10.24 2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17. BlogIcon wireless dog fence collars for small dogs 2012.11.14 1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법은 흰색 모자입니다. 이 흰 모자를 구현함으로써 당신은 페이지 순위를 얻을 과정을 따라 이동합니다 않습니다하지만 금지되는에서 당신을 방지입니다.

  18. BlogIcon midland weather alert radio wr-120ez 2012.11.19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

  19. BlogIcon 5 gallon water bottle holder 2012.12.19 1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가적으로 누가 집회를 주관했는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또한, 집회시간에서도 시위자수가 달라 집니다. 동원이냐 자발적이냐에 따라 해당숫자는 천양지차가 발생합니다.

  20. BlogIcon invisible electric dog fence 2012.12.26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화랑세기는 새로운 역사물을 만들 때 소설의 영감을 받기도 한다.

  21. BlogIcon survival radio transceiver 2013.01.05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MBC 사극 <선덕여왕>은 대부분의 모티브와 등장인물들을 <화랑세기>에 의존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들이 <문노>,<미실>, <하종>,<보종>,<미생>,<세종>과 화랑들이다. 아직까지 화랑세기의 진위논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또한,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화랑세기는 새로운 역사물을 만들 때 소설의 영감을 받기도 한다. 

글쓴이도 또한, 역사를 해석할 때 화랑세기를 참고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빈틈을 찾아 합리적인 해석을 찾기도 한다. 어찌 되었던 <화랑세기>의 위작여부에 상관없이 우리 사학계와 문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화랑세기>를 보기전에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로 미쳐 깨닫지 못했고, 이들 사서로 합리적인 해석이 불가능했던 것이 화랑세기를 읽고 나서 그 미싱링크를 찾아낸 적이 있다.  

미싱링크를 찾은 다음 화랑세기를 보지 않고, 다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다시 읽었을때도 화랑세기가 있고, 없고에 상관없이 합리적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것중에 하나가, <만파식적>에 관한 재해석이다. 글쓴이는 화랑세기의 도움으로 만파식적이 가지고 있던 의문부분을 상당수 해결할 수 있었다.
삼국사기에는 효소왕(이홍, 이공)의 나이를 추측할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신문왕5년 687년 원자가 태어났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효소왕(이홍,이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삼국유사> <만파식적>을 읽다 보면 이해가 되지 않고 미궁속으로 빠진다.

682년 임오(壬午) 5월 초하루(다른 책에는 천수天授 원년元年이라 했으나 잘못)에 해관(海官) 파진찬(波珍飡) 박숙청(朴夙淸)이 아뢰었다.  “동해 속에 있는 작은 산 하나가 물에 떠서 감은사를 향해 오는데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합니다.” 

일연은 <삼국사기>를 읽고 <삼국사기>에서 일부러 빼버린 이야기나 삼국사기가 흘려버린 이야기를 전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유사>를 작성했다. 또한, <삼국사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주석을 달면서 다른 이설도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하고 있다. 

일연은 <삼국유사><만파식적>의 사건이 682년 임오년 5월 또는 천수 원년(690)년때 일어난 사건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한 682년 5월과 690년 5월중 일연은 <만파식적>이야기가 682년 5월에 있었던 일이라고 하고 있다.  이로써 687년 이홍(이공)이라고 추측되는 <원자>를 이홍(효소왕)으로 보고 있지 않음이 확실해 진다.

그렇지 않다면, 682년이면 이홍(이공)이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데 690년이 틀렸다고 확신에 차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682년 이미 이홍(이공)이 생존하고 있었고  <이홍>이 682년에 이미 태자가 되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일연은 <만파식적>을 빌어서 <삼국사기> 신문왕 때의 기록이 잘못되었다고 언급하고 있지도 않다. 이는 후대의 많은 이들이 <원자>가 꼭 맏아들이란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를 읽다 보면 꼭 원자 = 장자가 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원자=맏아들이라고 하지도 않고 있다. 장자 = 원자 일 수 도 있지만, 원자 =/= 장자가 아닌 경우도 많다. 장자는 장자라고 별도로 기록하고 있다. 이를 구별하지 못한 후학들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원자 = 장자 의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버지 문무대왕(文武大王)을 위하여 동해(東海) 가에 감은사(感恩寺)를 세웠다(절 안에 있는 기록에는 이렇게 말했다.  문무왕文武王이 왜병倭兵을 진압하고자 이 절을 처음 창건創建했는데 끝내지 못하고 죽어 바다의 용龍이 되었다.  그 아들 신문왕神文王이 왕위王位에 올라 개요開耀 2년(682)에 공사를 끝냈다.  금당金堂 뜰 아래에 동쪽을 향해서 구멍을 하나 뚫어 두었으니 용龍이 절에 들어와서 돌아다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대개 유언遺言으로 유골遺骨을 간직해 둔 곳은 대왕암大王岩이고, 절 이름은 감은사感恩寺이다.  뒤에 용龍이 나타난 것을 본 곳을 이견대利見臺라고 했다).

 그렇다면, 감은사는 문무왕(661년~681년 7월)때 공사를 시작해서 682년 5월 이전에 완공되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신문왕이 동해쪽의 관리가 보고한 내용을 살피려 감은사에 갔다. 거북모양의 바위섬에서 있는 용으로 부터 <검은옥대>와 대나무를 가지고 오는 도중 이공태자가 성을 지키고 있다가 말을 타고, 신문왕을 맞이 했다는 이야기다. 

이공(효소) = 원자 = 장자 라는 확신을 가지고 <삼국사기>의 기록을 재정립해 보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만파식적>의 이야기가 어느때 발생한 때인지를  추적한다면
 

682년 5월 금성이 달을 침입했다. <만파식적> 1 <삼국유사>
687년 2월 원자가 태어났다. (맏아들 이공이 태어났다)
690년 5월 만파식적  2 <삼국유사>
691년 3월 왕자 이공이 태자가 되다.  5살(만 3살)
692년 봄 대나무가 말랐다. 7월 신문왕이 죽음, 효소(이공)의 나이는 6살(만 4살 몇개월)에 왕위에 올랐다.


<만파식적 1> 일연은 <삼국유사>는 태어나지도 않은 이공(효소)왕을 태자로 등장시켜 690년이 아닌 682년 5월이라고 하고 있다. 일연은 <원자>와 이공은 다른 인물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일연>은 <김흠돌반란사건>을 염두해 두고 <만파식적>을  이야기한것 같다. 반란으로 민심이 어수선한 것을 <만파식적>으로 일시에 해소시켰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일연은 690년의 <만파식적 2>의 이설을 배격하고 있다.

보다 합리적인해석은 이공(효소왕)이 태자였고 이설인 천수원년(690년)설을 따르면 이공이 태자가 되기 전이니 천수년간중 691~693년 사이가 되어야하고, 그런데 신문왕은 692년 7월에 죽음으로  691년 5월 ~692년 5월사이에 있었던 일이 된다.

좀더 그 시기를 줄인다면, <삼국사기> 신문왕 12년 (692년) 봄 기사에 <대나무가 말랐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만파식적>의 대나무와 연결이 되는내용이다.. 봄에 대나무가 말랐을 정도면 봄가뭄이 심했다고 할수 있는데 그렇다면 단순히 봄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심했다라고 기록하면 되었을 것인데도 <대나무가 말랐다>라고만 기록하고 있다.

제14대 유리왕(儒理(禮)王) 때 이서국(伊西國) 사람들이 금성(金城)을 공격해 왔다.  신라에서도 크게 군사를 동원했으나 오랫동안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이상한 군사가 와서 신라군을 도왔는데 그들은 모두 댓잎을 귀에 꽂고 있었다.  이들은 신라 군사와 힘을 합해서 적을 격파했다.  그러나 적군이 물러간 뒤에는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댓잎만이 미추왕의 능 앞에 쌓여 있을 뿐이었다.  그제야 선왕(先王)이 음(陰)으로 도와 나라에 공을 세웠다는 것을 알았다.  이리하여 그 능을 죽현능(竹現陵)이라고 불렀다. - 삼국유사 죽현능

신라에서 대나무의 상징은 김씨계의 첫 왕인 <김미추>를 상징한다. 김미추가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서고국이 경주를 침입할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죽엽군들이 나타나 위기의 신라를 구원한다. 그리고 조사를 해보니 <미추릉>의 주위에 있던 대나무 잎들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죽엽군은 <김미추>가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서 보낸 <음병>이라고 믿었고, 미추릉을 <죽현릉>이라고 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이처럼 대나무는 <신라>에서는 신성시 하는 신물 중에 하나이다. 그러니 692년 봄 <대나무가 말랐다>라는 이야기는 단순한 대나무가 아닌, <김미추릉>에 있던 대나무가 말랐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미추릉에 있던 대나무가 말랐다는 것은 곧 신라를 지탱해주던 김미추계에 이상이 발생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만파식적>에 2개의 대나무가 낮에는 둘로 갈라지고, 밤에는 하나가 되어 바람이 불고, 어둠이 밀려왔다고 했으니, 신라의 변고를 말하고 2개의 세력이 충돌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만파식적>과 <삼국사기>
692년 봄 <대나무가 말랐다>는 신문왕 말년에 신라왕실의 혼란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692년 신문왕 말년 이런 혼란을 <만파식적>으로 잠재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공태자가 6살에 신문왕이 궁을 비운틈에 왕궁을 지키고, 말을 몰아서 왕을 영접하고, 검은옥대에 주렁주렁 달린 옥들이 용이라고 하였다고 하고 있다. 여전히 석연치 않는 부분은 만 4살 조금 넘은 나이에 왕을 대신해서 왕성을 지키고, 신문왕이 모르던 사실을 알려줄 정도의 지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대다수 나이가 어린왕자가 왕위에 오르면 어린왕의 모후가 섭정을 한다. 그리고 섭정을 하는 모후(태후)의 기록이 왕의 기록으로 남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이공태자의 기록도 이공의 모후인 신목(왕후)의 행동이 아닐까?

신목은 요석공주의 소생으로 설총의 누이로 추측되는 인물이다. 설총에게 <검은옥대>와 <만파식적>에 관한 이야기를 미리 듣고 신문왕에 이야기를 했을 수 있지 않을까? 이는 이공이 687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기록을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추측한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신문왕과 <이공>태자에 관한 이야기라면 어찌 될까?

미궁속에 빠지게하는 <원자>== <장자>라는 올가미를 풀어버린다면..

합리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은 687년 2월 태어났다는 <원자>가 이공태자일 필요성도 없고 <원자> = /= <장자> 라면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일연도 <원자>=이공(효소)라고 하지 않았다.

신목이 신문왕비가 되는 나이를 보면 아버지 김흠운이 655년 정월에 사망할 시점을 신목의 출생 한때라고 하더라도 신문왕 즉위년(681년)이면 27세가 된다. 그런데 33살 이상인 687년에 첫번째 원자를 낳았다? 그리고 흥광(성덕왕)을 낳고, 728년 당나라에 숙위하는 김사종을 낳았다?

신라사회에는 13~15세 정도면 결혼하고 15~6세면 자식 한둘은 낳고 있다, 그런데 유독 신목만 당시 조혼이 성행한 신라사회에서 첫결혼은 28세에 한다? 신목이 과부가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상황이거나 신문왕과 이전부터 사실혼 (후비)관계에 있지 않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또한, <삼국유사> 일연은 <만파식적>에서 682년 5월에 있었거나 690년 (천수 원년) 두가지 설을 전하고 있다.

<일연>은 <김흠돌반란사건>을 염두해 두고 <만파식적1>을  이야기한 것 같다. 반란으로 민심이 어수선한 것을 이듬해 5월 수습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682년 5월 태백이 달을 침입했다고 했으니 682년 5월 전해져온 이야기 일 수 있다.

또한, 일연은 왕자와 태자를 혼동해서 소급적용하는 경우가 있고, 김춘추와 김문희와의 관계에서 처럼 선덕공주가 분명한데도 선덕여왕이 춘추와 문희를 연결시켰다고 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 만파식적 1> 682년 5월과 <만파식적 2> 690년 ~ 692년 5월 <만파식적 2>설도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을 보다 합리적으로 해석한다면 687년에 태어난 <원자>를 꼭 <이홍>이라고 볼 필요가 없다. 원자란 꼭 맏아들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일연 또한  687년 <원자>가 태어났음을 알고 서도 690년 <만파식적 2설>  682년 <만파식적 1설> 설>이 맞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일연 또한 원자 = 장자라고 보지 않았을 뿐더러, 원자 = 이공(효소왕)이라고 보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이공(효소왕)은 신문왕이 즉위한 후 682년에 충분히 말을 타고 돌아 다닐수 있고, 왕이 성을 비운사이 성을 지킬정도이며, 왕에게 지혜를 알려줄 정도의 나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늦은 나이라고 해도 10세이상은 되었다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가지 삼국사기도 원자 = 이공(효소)로 보지 않고 있다는 정황 증거가 발견된다. <삼국사기>는 단순히 689년 <왕자 이홍을 태자로 삼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여러 왕자 중 이홍을 태자로 삼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로써 원자가 꼭 이홍(이공)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된다.

삼국사기에서 모든 원자들이 장자인 경우가 없다. 또한, 장자와 원자를 구별해서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원자>==<장자>의 설은 장자가 원자가 될 수도 있지만 꼭 동일하지는 않는 것이다. 정비소생 이거나 후비소생이라도 장자는 될 수 있다. <원자>란 <왕>과 정비인<왕비>의 소생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원자>란 적통을 이어갈 사람으로 해석하거나, 정식왕과 정식 왕비사이에 태어난 첫번째 왕자라고 한다면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
신문왕이 왕이 된후 늙은 신목을 받아 들여 낳은 첫아이가 이공(효소)가 아니라는 또다른 증거가 있다.

<화랑세기>에는 <김흠돌>이 반란을 일으키는 여러 원인중의 하나를
정명태자(신문왕)와 신목사이에 이공(효소왕)이 태어나 태자비였던 흠돌의 딸이 배척되고 흠돌의 권력이 무너질것을 두려웠다고 하고 있다. 좀더 소상히 설명하면,

신목은 김흠운의 딸이다, 655년 아버지 김흠운이 죽자, 춘추(태종)가 손자인 소명태자에 시집을 보내려 했으나 소명태자가 655년 이전 어린 나이에 일찍 죽었다. 그런데 신목은 다른 곳에 시집가지 않고 소명태자의 제사를 주관하는 <소명제주>가 되어 자의왕후가 좋아했다고 한다. 그후 소명궁에 살고 있던 신목은 665년 태자가 된 정명(신문왕)태자와 눈이 맞아 <이공>을 낳았다고 한다.(15세 전후) 이때 자식이 없던 태자비 흠돌녀가 투기를 했다고 한다. 뒷배경이였던 문명태후가 죽은 후 김흠돌은 681년 7월 문무왕이 죽고 난후 8월 8일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반란에 실패해 김흠돌은 죽고, 흠돌녀는 정식 왕비도 되기전에 궁에서 축출 된다. <화랑세기>

이로서  문무에게는 정명(신문왕)의 형으로 추측되는 소명이 661~665년 사이 태자가 되었지만, 결혼을 약속한 소명을 두고 일찍죽었다. 665년 정명이 대신에 태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목은 결혼을 약속한 소명태자가 죽자 소명태자와 영혼결혼식을 하고 소명태자가 살고 있던 소명궁에서 생활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665년 이후 소명의 동생인 정명이 태자가 되자 정명과의 사이에 이공을 낳았다고 하겠다. 

이로써 이공(효소)는 빠르면 665년 이후에 태어났고 늦어도 문명태후가 죽기전에 태어났다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682년 5월 <만파식적 1>이 성립하려면 이공(효소)는 10세 초중반이 됨으로 666~672년생이 되어야 한다.

683년 5월 신목이 신문왕의 정비인 (부인)이 되어 687년 2월에 낳은 첫아들이 <원자>가 되는 것이다.
이를 연표로 작성하면 다음과  같다.

626년 문무(법민) 생
654년 문무(법민) 28세 왕자
655년 1월 문무(법민) 29세 입태자
655년 신목태후 아버지 김흠운 사망 및 신목태후 출생(?)
661년 7월 문무 36세 왕
661년 ~ 665년 소명태자 사망, 신목 소명제주 <화랑세기>
665년 신문(정명) 입태자
666~672년 신문(정명)/신목의 장자 효소(이공) 태어남 <유사><만파식적 1><화랑세기>
666~680년 신문(정명)/신목의 장자 효소(이공) 태어남, <만파식적 2><화랑세기>
681년 7월 문무(법민) 56세 사망
681년 7월 신문(정명) 왕위 계승
681년 8월 김흠돌 반란
682년 5월 만파식적 사건 1 <삼국유사> 효소(이공,이홍) (10세~17세)
683년 5월 신목 신문왕의 부인이 됨
687년 2월 원자 태어남
690년 5월 만파식적 사건 2 <삼국유사>
691년 신문왕 11년 봄 3월 1일에 왕자 이홍(理洪)을 태자로 봉하였다.
692년 7월 신문(정명)왕 죽음
692년 7월 효소(이공,이홍) 왕위계승 (10세~27세), <만파식적 1> 이면 (20세~27세)
700년 6월 이찬 경영 반란
700년 7월 신목태후 사망  <황복사 3층석탑 은합>
702년 7월 성덕(흥광,융기) 신문왕 2자 왕위계승
728년 성덕왕 27년 7월 왕의 동생 김사종(3자~4자) 당나라 숙위

682년 5월 <만파식적 1> 이공(효소왕)은 (10세~17세)전후가 되고, 692년 5월 <만파식적 2> 이공(효소왕)은  (20세~27세)전후가 된다. 그러므로 <삼국유사>의 <만파식적>은 <1><2>에 상관없이 합리적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687년 2월에 태어난 <원자>를 단지 맏아들로 해석해 <원자>==이공(효소왕)이니 이공(효소왕)은 692년 6세에 왕위를 계승했을 것이다. 그러니 <신목>태후가 섭정을 하였을 것이라 추측하였고, 700년 7월에 신목태후가 죽은 줄도 모르고 702년 이공(효소왕)을 대신에 왕위에 오른 동생 흥광(성덕)왕도 692년 죽은 신문왕의 유복자일 가능성이 있으니 11살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신목태후가 섭정하였을 것이라 주장하는 사태까지 발전하였다.

<삼국유사>의 만파식적 이야기를 가공의 이야기 알고 있었으며 단지 690년 설을 추종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화랑세기를 인용하는 많은 사람들도 <원자>를 <이공(효소왕)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를 자신의 틀속에 갇어 놓고 자신의 입맛(가설)에 맞지 않는다 하여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화랑세기> 중 하나 또는 모두가 잘못되었다고 하였다.

좀더 <원자>를 확대 해석한다면 <원자>는 신문왕과 신목의 아들인 태자 이홍(효소왕)의 아들일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 다음 기록을 본다면 이때 원자는 효소왕의 아들이 아닌 효소왕의 동생인 성덕왕일 가능성이 많다.

<삼국사기>에는
702년 성덕왕 즉위년 "신문왕의 둘째 아들이고 효소왕의 친동생이다. 효소왕이 죽고 아들이 없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세웠다."

흥광(성덕왕) 이 687년에 태어난 <원자>라면, 702년 성덕왕은 왕위에 오를때 나이가 16세로 추측 된다.
 

728년 성덕왕 27년(728) 가을 7월에 왕의 아우 김사종(金嗣宗)을 당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바치고 아울러 글을 올려 자제들의 국학(國學) 입학을 청하니, 조칙으로 이를 허락하고 김사종에게 과의(果毅)의 관작을 주고 머물러 숙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하지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화랑세기> 공히 받아 들이거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으로도 충분히 <만파식적>의 시기를 680년이던 690년 이후 이던지 상관없이 이공(효소)가 만파식적에 중추적인 등장인물이 될려면 충분한 나이가 되어야함을 예측할 수 있다.

이로 미루어 이공(효소왕)은 22세~27세에 왕위를 계승하였고, 흥광(성덕) 또한 692년 7월 죽은 신문왕의 유복자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원자>가 흥광(성덕왕)이라면, 655년 이전 출생인 신목은 688년 이면 34살~39살 이상으로 728년에 당나라에 숙위하러간 성덕왕의 동생 김사종은 신문, 신목사이에 태어났던 신문과 다른 후비 사이에 태어났던 688년~693년 사이에 태어나야 한다.

만약, <원자>가 사종이라면 흥광은 신문왕이 왕이 되는 681년 7월 이전 이미 태어났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고, 22세 전후에 왕위에 올랐음을 예측할 수도 있다.

글쓴이는 아직까지 화랑세기를 사서로서 인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화랑세기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보다는 후대에 만들어진 위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이유는 삼국사기와 사국유사의 기록중 한쪽에 손을 들어주는게 아니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사이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고, 삼국사기도 맞고, 삼국유사도 맞다는 류의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이설이 있는데 둘다 맞는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앞서 만들어 졌다는 사서가 후대 사서를 본듯한 내용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만파식적이나 선덕여왕시기 등 화랑세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으로 해석 불가능한 역사적인 미스터리를 해결하는데 충분한 동기부여를 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드라마 선덕여왕은 화랑세기를 재조명 하는 데 커다란 공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화랑세기를 위서로 인정하는 많은 분들은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인해서 위서 화랑세기가 사서로 인정되는게 달갑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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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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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rinda 2009.12.31 0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해박한 역사 지식은 언제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
    만파식적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이런 역사적 사건들이 얽혀있는지는 몰랐는데,
    덕분에 잘 정리하고 갑니다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

  3. BlogIcon 감자꿈 2009.12.31 1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이제 2009년이 오늘로 끝납니다.
    연말이라 바쁘신가요? 포스팅이 없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4. BlogIcon 루비™ 2009.12.31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해는 선덕여왕 드라마로 인해 많이 즐거웠고
    갓쉰동님의 해박하신 포스팅으로 인해 제 식견이 무지 넓어졋던 한해였답니다.
    이제 한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네요..
    2009년 한해 동안 많은 사랑 베풀어주신 것 감사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최고로 멋진 2010년 되세요~~!!

  5. BlogIcon 청석 2010.01.01 0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밝아오는 경인년 새해에 더욱 님의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 오길 바라며 더욱 님의 블로 그가 번성하길 기원합니다.
    그동안 저에게 관심 보여준 님 에게 새해 인사드립니다.

  6. BlogIcon 영혼울림 2010.01.01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대단하십니다.
    늘 깊은 지식과 분석 접근력에 감동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7. BlogIcon labyrint 2010.01.02 2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 블로그 대박나시고, 원하시는 소원들이 성취되시길 기원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8. BlogIcon 시림 (詩琳) 2010.01.08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빛....
    태어나
    길 걸었으며
    그 곳에
    내 희망
    나에 꿈 이루었지

    행복은 곁에 있어요
    사랑으로...
    기다림에

  9. BlogIcon 펨께 2010.01.08 1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잘 지내시는지요?
    좋은 주말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10. BlogIcon click here 2012.07.14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듯이 한가하게 주식이야기와 남북정

  11. BlogIcon Brazzers membership 2012.09.08 0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특이한 명함의 아이디어는 관심을 끌 것입니다. 나 같은 경우는 음악 카드 많은 아주 좋은 그리고 어둠 속에서 몇도 빛이 아르 보았다. 기회로 카드를 볼 수와없는 의무 있습니다.

  12. BlogIcon london escort 2012.09.19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녹색 지붕 시도는 매우 큰 수 있습니다. 날씨가 더운 때 그들은 차가운 공기를 제공합니다.

  13. BlogIcon Albert 2012.10.01 2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륙에서 최고 수준의 팀이 진출하는 것이다. 월드컵에 준비를 철저히 하고 상대팀에 대한 분석을 철저히 하였는지와 당일의 컨디션에 따

  14. BlogIcon montreal massage parlor 2012.10.03 1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향은 많은 기업에 대한 모니터링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은 실제로 시장의 수요에 영향을 미칩니다.

  15. BlogIcon theblogtest 2012.10.03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 필요합니다. 우리는 몇 가지 조정 프로세스를 수행해야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변화가 혼란으로

  16. BlogIcon Polo franklin marshall 2012.10.24 2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17. BlogIcon wireless dog fence collars for small dogs 2012.11.14 1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법은 흰색 모자입니다. 이 흰 모자를 구현함으로써 당신은 페이지 순위를 얻을 과정을 따라 이동합니다 않습니다하지만 금지되는에서 당신을 방지입니다.

  18. BlogIcon midland weather alert radio wr-120ez 2012.11.19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

  19. BlogIcon 5 gallon water bottle holder 2012.12.19 1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가적으로 누가 집회를 주관했는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또한, 집회시간에서도 시위자수가 달라 집니다. 동원이냐 자발적이냐에 따라 해당숫자는 천양지차가 발생합니다.

  20. BlogIcon invisible electric dog fence 2012.12.26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화랑세기는 새로운 역사물을 만들 때 소설의 영감을 받기도 한다.

  21. BlogIcon survival radio transceiver 2013.01.05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 43회와 44회는 미실이 난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곳으로 토끼몰이를 하듯 덕만이 압박을 하고, 미실이 드디어 칼을 빼어 들었다. 꿈을 위해서 옥이 깨지듯 찬란히 부저져 버리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미실의 최후와 퇴장이 가까웠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미실역을 맡은 고현정은 48회까지 연장을 합의한 상태이다. 그러니 앞으로 2주이상은 계속 보아야 한다. 미실 고현정의 하차는 미실의 난으로 인한 옥이 찬란히 부서지듯 찬란한 종말을 고하며 하차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알고 있거나 추론하고 있는 덕만이 '미실의 난'으로 명명한 미실이 난이 칠숙의 난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또한, 미실이 난을 일으킨 후에도 오래 동안 생존하고 있었다는 뜻이된다. 다만 합리적인 추론의 결과에서는 그렇다는 뜻이고, 미실의 난을 가지고 작가나 제작팀이 이야기를 길게 끌고 간다면 또다른 상황에 봉착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디로 튈지는 작가와 제작팀이 알아서 할일 이기 때문이다.


그럼 드라마 제작팀이나 선덕여왕 작가는 미실의 난이 언제 일어 났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정답은 드라마에 숨어 있다.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이 일어난 때를 "병자년"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병자년은 언제일까를 찾아보면, 진평왕 몇년에 미실의 난이 일어났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병자년은 진평왕 38년에 해당한다. 이때는 616년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이미 잘알려진 631년 칠숙의 난과 미실의 난을 같은 시기로 보지말아 달라도 분명히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미실의 난이 칠숙의 난이라는 기사들이 난무한다.

선덕여왕에는 미실의 난과 칠숙의 난이 다르다는 증거들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미실의 난은 616년 병자년에 일어 났다.


AD616 병자丙子
신   라 :  진평왕 38년
백   제 :  무왕 17년
고구려 :  영양왕 27년
진평왕 38년(616) 겨울 10월에 백제가 모산성을 공격해 왔다. - 삼국사기 진평왕38년 616년 겨울

둘째. 미실의 난이 일어난 때 풍월주는 김유신이고, 상선은 호재이다. 김유신은 612년에서 615년까지 풍월주를 지낸다. 


셌째. 늙지 않는 미실을 비롯해서, 김유신을 비롯한 10화랑도 늙지 않고 있다.   631년에 일어난 칠숙의 난이 미실의 난이라면, 595년생인 김유신은 37살이 된다. 또한, 김춘추(유승호)는 29살이 된다. 최소한 남성들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수염이 나기 시작한다. 그러니 유신을 비롯한 10화랑의 턱에는 염소수염이던, 덥수룩한 수염이나 멋진 구렛나루가 있어야 한다.

그럼 미실은 이때 몇살일까? 545~8년생으로 추측되는 미실은 상상에 맡기겠다. 날로 먹으려 드는 구독자도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등장하는 미실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비결을 상상해보기 바란다. 왜 미실은 젊음을 유지할까?  현묘한 도의 궁극은 신선이고 늙지 않고 죽지 않는것이다.


진시황이 찾은 불사국이 신라라고 이야기 한다면 할말은 없다.

넷째. 하종은 미실의 치사한 수를 입안한 설원랑의 명으로 <화백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거나, 참석하더라도 늦게 참석하도록 미혼약을 타러 서현을 찾아간다. 하종은 영모(티아라 큐리:이지현)을 만난다. 이때 영모는 임신하고 있다. 하종은 영모에게 야위였구나, 해산달이 언제냐고 물어본다. 영모의 임신은 김유신이 풍월주가 된 후 귀족들이 매점매석이 일어난때 이다. 그런데 아직 해산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매점매석한 때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야 된다.


그외 수 없이 많은 증거들이 미실의 난과 칠숙의 난이 다른 난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미살의 난이 실패하고, 15년후에 칠숙이 난을 일으켰다고 한다면 극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고 스스로의 증거를 없애고 미실의 난 이 칠숙의 난이라고 극중에서 설정한다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극중에서 스스로의 합리성도 무시를 하는 것이다.

현대판으로 이야기를 하면 미실의 난은 1960년 5.16  박정희의 쿠데타로 보면 되고, 박정희의 충복이자 자칭 양자라고 생각한 전두환은 1980년 쿠데타를 일으킨다. 전두환의 쿠데타는 미실의 충복인 631년 칠숙의 난으로 보면 된다. 두 정변이 같은 정변이라고 주장하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요즘 막장 현대극이나 코미디도 하지 앟는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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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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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백두 대간 2009.10.21 1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늙지 않는 미실을 비롯해서 김유신을 비롯한 10화랑은 늙지 않고 있다.
    요거 완전 대박 멘트네요. ㅎㅎㅎ
    요기 읽다가 배꼽 빠지는줄 알았어요.

  2. BlogIcon White Rain 2009.10.21 1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머...이젠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저 역시 드라마 속 세상으로만...ㅋㅋ 역사로 끼워맞춰서 나름 균형을 맞춰보려고도 했지만...솔직히 미실의 난은, 저도 보면서...이건 좀 심하지 않나 했답니다. 해도해도 너무 한다 싶은 마음이랄까요? ㅋㅋ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드라마 속 허구의 세상, 그 자체만으로 바라보며 즐긴답니다. 어쩔 수 없죠.^^ 저녁 맛있게 드세요. 가야를 드라마로 만들 땐..아마 더 심하겠죠? 내년에 방영할 계획이라던데 말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21 1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드라마속 세상이라도 해도 드라마에서의 흐름은 있는거지용.. 그 흐름도 저해한다면.. 심각한 반면교사의 표본이 되지 않을까해용.. ㅋㅋ 습작을 해도 저리함 .F인뎅.. 인기는 최고봉이니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고민들 할것 같습니당.. ㅋㅋ

      가야는 아마 이병훈 피디가 만들지 않나요? 이병훈의 제자들이 선덕여왕을 만들었으니.. 이병훈은 좀 다르리라고 믿지만..

      좀 황당사극 말공, 합리적인 사극을 보고 싶은 심정입니당.. ㅋㅋ

  3. 2009.10.21 1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BlogIcon Shain 2009.10.21 1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평왕이 거의 죽을 듯한 상황으로 후계와 부군을 논의하는 상황이고
    삼국사기와 화랑세기에 기록된 반란 중 명확한 건 칠숙의 난, 비담의 난 두가지니
    작가가 그 두가지를 염두에 두고 묘사하지 않았을까 했네요
    그러나 약간 상세한 부분은 조금 설정했던 모양이군요.
    연대기를 무시한 설정과 모티브
    이미 이 작가분에게 전례가 있지요 아마
    대장금에서 열 몇살에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를 때 즈음 입궁한 우리 장금이가
    진성대군이 중종임금으로 죽을 때 그러니까 무려 39년이 지난 ...
    그 나이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설정 ^^;
    기존 선례에 비춰 역사의 부분부분을 필요할 때 활용하는 방법을 자주 써먹었었다고 간주해버렸네요.

  5. BlogIcon 윤서아빠세상보기 2009.10.21 2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드라마속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만
    갓쉰동님의 지적이 계속 잡아주시네요

  6. BlogIcon 펨께 2009.10.21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의 난, 박정희의 쿠데타와의 비교 역시 갓쉰동님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22 0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럼 머합니강.. 다음 관리자에 찍혀가고 있는뎅.. ㅠ.ㅠ.;;
      확실히 내부에서 쌈이 있는것 같아용.. 제글을 두공.. ㅋㅋ

  7. 리치왕 2009.10.21 2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실제 역사의 기록과 비교하여 보면 미실의 난이 칠숙의 난이 되는 것은 언급하신대로 극 스토리의 합리성을 무시하는 설정이 되겠지요. 하지만 요즘의 선덕여왕의 전개를 보면 '충분히 그런 설정을 하고도 남을 만한 작가진'을 갖추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한마디로 '실제역사적 사실의 무시'를 전제로 한 스토리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실제 역사에서 천명공주는 요절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덕만공주의 언니가 아니라 동생이였지요.
    - 덕만이 왕위에 오를 당시에는 그와 대등한 세력을 갖춘 정적이 없었고 덕만이 이미 왕실과 귀족사회의 실권을 장악한 상태에서 수월하게 왕위에 오른 것으로 보이는데 극에서는 중국 인근의 사막에서 유소년기를 보낸 것으로 나오지요.

    드라마 선덕여왕이 사극의 탈을 쓴 현실 세계의 풍자와 비판이라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다만, 극의 스토리 전개에 아쉬운 점은 덕만의 입궁이후 귀족세력과 싸우며 무너진 왕권을 확립하려는 덕만과 기득권을 사수하려는 미실과의 정치적 암투에 전혀 긴장감이 없고, 사실상 정치적 암투라고 부를만한 이렇다할 사건 자체가 없었다고 보는것이 맞을 정도로 맥빠진 대결이라는 점이군요.

    스토리의 전개는 개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왕도 자기 입맛에 따라 바꿀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자 미실의 덕만에 대한 대응은 마치 이전 우리나라 사극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조선왕조의 후궁 정도의 포스밖에는 느껴지지가 않고, 병권을 장악하고 있는 병부령을 수족처럼 부리는 정적을 상대로 한 덕만 추종파들의 행동양식이 참으로 대담하기 그지없을 뿐더러 상식적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도 없을 만한 도발행위들을 서슴없이 하는 스토리 전개는 참으로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도데체 왕실이 미실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22 0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이건 드라마 수준도 안되용. 배우들의 연기로 먹고 사는 느낌이 들어용.. 콘텐츠의 부실..

  8. BlogIcon labyrint 2009.10.22 1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의 난 = 칠숙의 난 이 분명해요.
    미실이 칠숙에게 "나를 원망하느냐?" 뭐... 그런 식의 질문을 했을 때부터 짐작했어요...
    반란이 실패해도 칠숙을 희생양으로 해서 목숨을 구할 방법을 만든 것이 아닐까요?
    게다가 칠숙이 석품에게 세종을 찌르라 시켰으니...
    칠숙, 석품의 난이 맞습니다... ㅋㅋ
    아니라면 작가들이 오락가락 하는거지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9. 마음 2009.10.22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억지스런 현실세계풍자가 말이 많은 이유겠죠. 역사적 소재를 불러와 너무 끼워맞추기식의 전개로 일관하니 어이가 없을뿐입니다. 대장금처럼 차라리 사극의 외피를 두른 판타지극으로 설정했담 몰라도 미실을 제외하곤 역사서에 공히 기록된 인물들 그것도 유명한 인물들을 끌어와서 한다는 얘기가 허무맹랑이니 원.

  10. BlogIcon 영웅전쟁 2009.10.23 1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늦게 올리시고
    전체 포맷도 바꾸시고...
    많이 노력하시는게 보이나 봅니다.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언제나 좋은 나날 되시길 바랍니다.

  11.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2. BlogIcon tony 2012.11.20 1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맷도 바꾸시고...
    많이 노력하시는게 보이나 봅니다. ㅎㅎㅎ
    잘보고 갑 <a title="tony" href="https://www.google.com/">tony</a>

드라마 선덕여왕 43회와 44회는 미실이 난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곳으로 토끼몰이를 하듯 덕만이 압박을 하고, 미실이 드디어 칼을 빼어 들었다. 꿈을 위해서 옥이 깨지듯 찬란히 부저져 버리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미실의 최후와 퇴장이 가까웠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미실역을 맡은 고현정은 48회까지 연장을 합의한 상태이다. 그러니 앞으로 2주이상은 계속 보아야 한다. 미실 고현정의 하차는 미실의 난으로 인한 옥이 찬란히 부서지듯 찬란한 종말을 고하며 하차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알고 있거나 추론하고 있는 덕만이 '미실의 난'으로 명명한 미실이 난이 칠숙의 난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또한, 미실이 난을 일으킨 후에도 오래 동안 생존하고 있었다는 뜻이된다. 다만 합리적인 추론의 결과에서는 그렇다는 뜻이고, 미실의 난을 가지고 작가나 제작팀이 이야기를 길게 끌고 간다면 또다른 상황에 봉착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디로 튈지는 작가와 제작팀이 알아서 할일 이기 때문이다.


그럼 드라마 제작팀이나 선덕여왕 작가는 미실의 난이 언제 일어 났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정답은 드라마에 숨어 있다.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이 일어난 때를 "병자년"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병자년은 언제일까를 찾아보면, 진평왕 몇년에 미실의 난이 일어났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병자년은 진평왕 38년에 해당한다. 이때는 616년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이미 잘알려진 631년 칠숙의 난과 미실의 난을 같은 시기로 보지말아 달라도 분명히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미실의 난이 칠숙의 난이라는 기사들이 난무한다.

선덕여왕에는 미실의 난과 칠숙의 난이 다르다는 증거들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미실의 난은 616년 병자년에 일어 났다.


AD616 병자丙子
신   라 :  진평왕 38년
백   제 :  무왕 17년
고구려 :  영양왕 27년
진평왕 38년(616) 겨울 10월에 백제가 모산성을 공격해 왔다. - 삼국사기 진평왕38년 616년 겨울

둘째. 미실의 난이 일어난 때 풍월주는 김유신이고, 상선은 호재이다. 김유신은 612년에서 615년까지 풍월주를 지낸다. 


셌째. 늙지 않는 미실을 비롯해서, 김유신을 비롯한 10화랑도 늙지 않고 있다.   631년에 일어난 칠숙의 난이 미실의 난이라면, 595년생인 김유신은 37살이 된다. 또한, 김춘추(유승호)는 29살이 된다. 최소한 남성들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수염이 나기 시작한다. 그러니 유신을 비롯한 10화랑의 턱에는 염소수염이던, 덥수룩한 수염이나 멋진 구렛나루가 있어야 한다.

그럼 미실은 이때 몇살일까? 545~8년생으로 추측되는 미실은 상상에 맡기겠다. 날로 먹으려 드는 구독자도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등장하는 미실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비결을 상상해보기 바란다. 왜 미실은 젊음을 유지할까?  현묘한 도의 궁극은 신선이고 늙지 않고 죽지 않는것이다.


진시황이 찾은 불사국이 신라라고 이야기 한다면 할말은 없다.

넷째. 하종은 미실의 치사한 수를 입안한 설원랑의 명으로 <화백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거나, 참석하더라도 늦게 참석하도록 미혼약을 타러 서현을 찾아간다. 하종은 영모(티아라 큐리:이지현)을 만난다. 이때 영모는 임신하고 있다. 하종은 영모에게 야위였구나, 해산달이 언제냐고 물어본다. 영모의 임신은 김유신이 풍월주가 된 후 귀족들이 매점매석이 일어난때 이다. 그런데 아직 해산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매점매석한 때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야 된다.


그외 수 없이 많은 증거들이 미실의 난과 칠숙의 난이 다른 난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미살의 난이 실패하고, 15년후에 칠숙이 난을 일으켰다고 한다면 극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고 스스로의 증거를 없애고 미실의 난 이 칠숙의 난이라고 극중에서 설정한다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극중에서 스스로의 합리성도 무시를 하는 것이다.

현대판으로 이야기를 하면 미실의 난은 1960년 5.16  박정희의 쿠데타로 보면 되고, 박정희의 충복이자 자칭 양자라고 생각한 전두환은 1980년 쿠데타를 일으킨다. 전두환의 쿠데타는 미실의 충복인 631년 칠숙의 난으로 보면 된다. 두 정변이 같은 정변이라고 주장하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요즘 막장 현대극이나 코미디도 하지 앟는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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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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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백두 대간 2009.10.21 1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늙지 않는 미실을 비롯해서 김유신을 비롯한 10화랑은 늙지 않고 있다.
    요거 완전 대박 멘트네요. ㅎㅎㅎ
    요기 읽다가 배꼽 빠지는줄 알았어요.

  2. BlogIcon White Rain 2009.10.21 1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머...이젠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저 역시 드라마 속 세상으로만...ㅋㅋ 역사로 끼워맞춰서 나름 균형을 맞춰보려고도 했지만...솔직히 미실의 난은, 저도 보면서...이건 좀 심하지 않나 했답니다. 해도해도 너무 한다 싶은 마음이랄까요? ㅋㅋ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드라마 속 허구의 세상, 그 자체만으로 바라보며 즐긴답니다. 어쩔 수 없죠.^^ 저녁 맛있게 드세요. 가야를 드라마로 만들 땐..아마 더 심하겠죠? 내년에 방영할 계획이라던데 말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21 1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드라마속 세상이라도 해도 드라마에서의 흐름은 있는거지용.. 그 흐름도 저해한다면.. 심각한 반면교사의 표본이 되지 않을까해용.. ㅋㅋ 습작을 해도 저리함 .F인뎅.. 인기는 최고봉이니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고민들 할것 같습니당.. ㅋㅋ

      가야는 아마 이병훈 피디가 만들지 않나요? 이병훈의 제자들이 선덕여왕을 만들었으니.. 이병훈은 좀 다르리라고 믿지만..

      좀 황당사극 말공, 합리적인 사극을 보고 싶은 심정입니당.. ㅋㅋ

  3. 2009.10.21 1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BlogIcon Shain 2009.10.21 1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평왕이 거의 죽을 듯한 상황으로 후계와 부군을 논의하는 상황이고
    삼국사기와 화랑세기에 기록된 반란 중 명확한 건 칠숙의 난, 비담의 난 두가지니
    작가가 그 두가지를 염두에 두고 묘사하지 않았을까 했네요
    그러나 약간 상세한 부분은 조금 설정했던 모양이군요.
    연대기를 무시한 설정과 모티브
    이미 이 작가분에게 전례가 있지요 아마
    대장금에서 열 몇살에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를 때 즈음 입궁한 우리 장금이가
    진성대군이 중종임금으로 죽을 때 그러니까 무려 39년이 지난 ...
    그 나이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설정 ^^;
    기존 선례에 비춰 역사의 부분부분을 필요할 때 활용하는 방법을 자주 써먹었었다고 간주해버렸네요.

  5. BlogIcon 윤서아빠세상보기 2009.10.21 2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드라마속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만
    갓쉰동님의 지적이 계속 잡아주시네요

  6. BlogIcon 펨께 2009.10.21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의 난, 박정희의 쿠데타와의 비교 역시 갓쉰동님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22 0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럼 머합니강.. 다음 관리자에 찍혀가고 있는뎅.. ㅠ.ㅠ.;;
      확실히 내부에서 쌈이 있는것 같아용.. 제글을 두공.. ㅋㅋ

  7. 리치왕 2009.10.21 2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실제 역사의 기록과 비교하여 보면 미실의 난이 칠숙의 난이 되는 것은 언급하신대로 극 스토리의 합리성을 무시하는 설정이 되겠지요. 하지만 요즘의 선덕여왕의 전개를 보면 '충분히 그런 설정을 하고도 남을 만한 작가진'을 갖추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한마디로 '실제역사적 사실의 무시'를 전제로 한 스토리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실제 역사에서 천명공주는 요절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덕만공주의 언니가 아니라 동생이였지요.
    - 덕만이 왕위에 오를 당시에는 그와 대등한 세력을 갖춘 정적이 없었고 덕만이 이미 왕실과 귀족사회의 실권을 장악한 상태에서 수월하게 왕위에 오른 것으로 보이는데 극에서는 중국 인근의 사막에서 유소년기를 보낸 것으로 나오지요.

    드라마 선덕여왕이 사극의 탈을 쓴 현실 세계의 풍자와 비판이라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다만, 극의 스토리 전개에 아쉬운 점은 덕만의 입궁이후 귀족세력과 싸우며 무너진 왕권을 확립하려는 덕만과 기득권을 사수하려는 미실과의 정치적 암투에 전혀 긴장감이 없고, 사실상 정치적 암투라고 부를만한 이렇다할 사건 자체가 없었다고 보는것이 맞을 정도로 맥빠진 대결이라는 점이군요.

    스토리의 전개는 개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왕도 자기 입맛에 따라 바꿀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자 미실의 덕만에 대한 대응은 마치 이전 우리나라 사극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조선왕조의 후궁 정도의 포스밖에는 느껴지지가 않고, 병권을 장악하고 있는 병부령을 수족처럼 부리는 정적을 상대로 한 덕만 추종파들의 행동양식이 참으로 대담하기 그지없을 뿐더러 상식적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도 없을 만한 도발행위들을 서슴없이 하는 스토리 전개는 참으로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도데체 왕실이 미실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10.22 0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이건 드라마 수준도 안되용. 배우들의 연기로 먹고 사는 느낌이 들어용.. 콘텐츠의 부실..

  8. BlogIcon labyrint 2009.10.22 1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의 난 = 칠숙의 난 이 분명해요.
    미실이 칠숙에게 "나를 원망하느냐?" 뭐... 그런 식의 질문을 했을 때부터 짐작했어요...
    반란이 실패해도 칠숙을 희생양으로 해서 목숨을 구할 방법을 만든 것이 아닐까요?
    게다가 칠숙이 석품에게 세종을 찌르라 시켰으니...
    칠숙, 석품의 난이 맞습니다... ㅋㅋ
    아니라면 작가들이 오락가락 하는거지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9. 마음 2009.10.22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억지스런 현실세계풍자가 말이 많은 이유겠죠. 역사적 소재를 불러와 너무 끼워맞추기식의 전개로 일관하니 어이가 없을뿐입니다. 대장금처럼 차라리 사극의 외피를 두른 판타지극으로 설정했담 몰라도 미실을 제외하곤 역사서에 공히 기록된 인물들 그것도 유명한 인물들을 끌어와서 한다는 얘기가 허무맹랑이니 원.

  10. BlogIcon 영웅전쟁 2009.10.23 1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늦게 올리시고
    전체 포맷도 바꾸시고...
    많이 노력하시는게 보이나 봅니다.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언제나 좋은 나날 되시길 바랍니다.

  11.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2. BlogIcon tony 2012.11.20 1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맷도 바꾸시고...
    많이 노력하시는게 보이나 봅니다. ㅎㅎㅎ
    잘보고 갑 <a title="tony" href="https://www.google.com/">tony</a>

독도는 삼국시대 신라 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므로 해서 부속도서인 독도까지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울릉도 원주민의 생각과는 다르게 어찌되었던 신라의 땅이 되고, 신라가 고려에 복속이 됨으로서 울릉도와 독도 또한 고려의 영토가 되었다.  이런 전차로 조선을 이어 대한민국이 될때 까지 울릉도와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이다. 그래서 일본이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땅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신라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지 않았다면 어찌될까? 또는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켰다는 기록을 없었다면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미 잘 알려진 일이고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에 반하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이미 잘알려진'이란 단서가 붙는다. 만약, 많은 사람이 독도에 대한 논란이 없어서 독도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른다면 어찌될까?


그리고 어떤 역사 드라마가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기록을 했다면, 많은 사람들이 공분을 할까? 무슨 소리냐? 독도가 일본땅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한발 더나아가 울릉도와 독도가 당시에 왜의 고유한 영토였다. 이사부는 왜군을 무찌르고 신라에 편입시켰다.라는 설정을 하였다면 어찌될까?

아무리 드라마나 역사드라마라고 할지라도 작가는 매국노나 친일파라고 불리우기에 하등 지장이 없을 것이다. 지하에서 이사부가 울던 말던, 드라마는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인데 이를 용인해야 한다. 재미를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것 아닌가? 재미가 있어야 드라마를 보고,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될거라고 수순히 말할 사람이 몇명이 될것인이며, 이에 동조할 사람이 몇명이나 될것인가?


그렇다면 좀더 발전을 시켜보도록 하자. 울릉도와 독도는 신라의 이사부가 복속시켰다. 하지만, 왜가 이사부를 무찌르고 울릉도와 독도를 복속시켰다고 드라마를 설정한다면 어찌될까? 한국드라마니 괞찮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일본 드라마니 괜찮아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역사왜곡이라고 이야기를 할까? 드라마를 통해서 군국주의를 확산하는 고도의 전략이라고 할까?

하지만, 글쓴이는 충분히 작가의 상상력을 존중해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울릉도와 독도는 스스로 국가를 형성하고 있다가, 신라에 복속되고 난 후에 한국의 고유의 영토로 편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그렇게 만든다면 "짜식들 배가 아파도 한참을 아프구나" 했을 것이다.

이제 선덕여왕이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주장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최고의 전투신으로 아막성과 속함성 전투를 들것이다. 그후에 전투신이 없어서 아쉽기는 하다. 더이상 전투신이 없는 이유는 제작비의 압박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덕만(이요원)과 유신(엄태웅), 알천(이승효)과 10화랑이 화랑답게 만든 전투가 아막성 전투였다.

지금까지 드라마로 본 전투신중에서 최고라고 할 정도로 전투에 참여하는 군인들의 전투에 참여하여 두려움에 떠는 심리적인 묘사와 전투장면이 압권이였다. 관련기사 2009/06/2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화랑 신화창조의 성지 아막성, 광개토태왕의 #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아막성과 속함성을 백제의 것이다. 미실(고현정)은 백제의 아막성과 속함성을 빼앗기 위한 전략과 김서현을 진평왕으로 부터 멀어지게 하거나 최대 죽일계책을 만든다.

하지만, 아막성과 속함성은 빼앗는데는 성공했지만, 서현을 몰락시키려던 계략은 실패하고 오히려 서현이 아막성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서라벌로 입성하여 진골에 다시 편입하게 된다.


하지만, 아막성과 속함성은 백제의 땅이 아니고, 신라의 땅이였다. 백제 무왕은 신라의 아막성을 빼앗기 위해서 대군을 출동시킨다. 하지만, 아막성에서 이들을 무찌르고 잘 방어를 한다. 속함성도 신라의 성이였다. 아막성과 속함성은 백제의 성이 아니였다는 뜻이다.

여러분이 독도는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므로 부속도서인 독도도 한국의 땅이 된것은 잘 알고 있지만, 아막성과 속함성은 누구의 땅인지도 몰랐을 뿐만 아니고, 이들 성이 백제의 성이였겠거니 했을 것이다.

24년(602) 가을 8월에 백제가 아막성(阿莫城)을 공격해 왔으므로 왕이 장수와 사졸로 하여금 맞서 싸우게 하여 크게 쳐부수었으나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이 전사하였다. - 삼국사기 진평왕 24년 602년
25년(624) 겨울 10월에 신라의 속함성(速含城), 앵잠성(櫻岑城), 기잠성(岐岑城), 봉잠성(烽岑城), 기현성(旗懸城), 용책성(冗柵城) 등 여섯 성을 공격하여 빼앗았다. - 삼국사기 백제 무왕 25년

속함성이 백제에 귀속된 때는 624년이다. 그전에는 신라의 땅이라는 소리다. 이제 아막성과 속함성은 신라의  땅이란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또하나의 사례가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온다.

한가위전에 김춘추는 설원랑의 집으로 찾아가 보량에게 비단과 귀걸이를 선물한다. 그런데 이때 춘추는 설원랑의 집으로 뇌물을 받치려온 자가 누군지 보량에게 물어본다.

이때 보량은 춘추에게 몇번을 설명했는데 춘추씨는 까마귀 고기나 꿩고기를 쳐 잡수셨는지 알아 먹지 못한다고 구박을 하면서, 저놈은 가잠성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현재 북한산주의 도독으로 있는 놈이라고 말한다. 

가잠성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면 가잠성은 백제의 성일 것이다. 또는 백제가 신라의 가잠성을 침입했지만, 한산주 도독이 된 자가 백제를 무찔렀을 것이다.

33년(611) 겨울 10월에 백제 군사가 가잠성(椵岑城)을 포위하여 100일이나 지속되었다. 현령(縣令) 찬덕(讚德)이 굳게 지켰으나 힘이 다하여 죽고 성은 함락되었다. - 삼국사기 진평왕 33년 611년

하지만 가잠성은 신라의 성이였는데 백제가 침입하였지만 대패를 하고  가잠성을 백제에 빼앗기고 만다. 이런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승진할려면 어찌해야 할까?

춘추가 보량을 보쌈해서 납치혼을 하자, 추후 춘추가 왕이 되었을때 설원랑 가문이 왕의 외척이 되어 세종자신보다 더한 권력을 가지게 되거나, 세종 자신이 왕이 되는데 걸림돌이 춘추나 설원랑이 될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설원랑을 제거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상주>당의 성주인 <주진>에게 밀서를 보내고 자신에 동조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당시 상주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 상주라는 지명이 있는데 상주가 없다고 이야기를 하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상주당은 존재할 수 없다. 이는 조선시대에 제주로 죄인을 유배보내는 것처럼, 신라에서 제주로 죄인을 유배보낸다는 설정이랑 별반 다르지 않다.

"상주(尙州)는, 첨해왕 때에 사벌국(沙伐國)을 빼앗아 주(州)로 삼은 것이었다.법흥왕 11년(524), 양(梁)나라 보통(普通)6년(525)에 처음으로 군주(軍主)를 두어 상주(上州)로 삼았다. 진흥왕 18년(557)에 주를 폐지하였다.신문왕 7년, 당나라 수공(垂拱)3년(687)에 다시 [주를] 설치하고 성을 쌓았는데 둘레가 1,109보였다. 경덕왕 16년(757)에 이름을 상주(尙州)로 고쳤다. - 삼국사기 지리

상주는 557년 진흥왕 18년에 폐지되었다가 757년인 경덕왕 16년에 비로서 상주(尙州)가 되는 것이다.

설령 상주당이 있었다고 하자. 세종이 상주당 성주인 주진에게 군사를 동원할 밀서를 보내는데 주진은 받아 볼 수 있을까? 상주당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주진>은 편지를 받아 볼 수 없다.

9년(548) 봄 2월에 고구려가 예인(穢人)과 함께 백제 독산성(獨山城)을 공격하였으므로 백제에서 구원을 청하였다. 왕은 장군 주령(朱玲)을 보내 굳센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치게 하였는데, 죽이거나 사로잡은 사람이 매우 많았다.
- 삼국사기 진흥왕 9년 봄 2월

왜 주령을 보고서 주진과 같이 이야야기 하냐고 반문을 한다면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도록 하자.

26년(548) 봄 정월에 고구려 왕 평성(平成)[양원왕]이 예(濊)와 모의하여 한강 북쪽[漢北]의 독산성(獨山城)을 공격하였다. 왕은 사신을 신라에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다. 신라 왕은 장군 주진(朱珍)에게 명령하여 갑옷 입은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떠나게 하였다. 주진이 밤낮으로 길을 가서 독산성 아래에 이르러 고구려 군사와 한 번 싸워 크게 격파하였다. - 삼국사기 백제 성왕 26년

<주진>은 <주령>이다. 단지 령<玲>와 진<珍>의 오탈자이다. 백제와 고구려의 기록은 <주진>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단지 신라만 <주령>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주령, 또는 주진이라고 하는 것이다.

주진은 548년 갑주병 3천을 움직일 수 있는 장군이다. 김유신(595년생)이 열전이 아닌 처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기록이 있다. 629년 <낭비성>전투때이다. 이때 유신은 35살에 <부장군>으로 참전한다. 신성한 유신이 부장으로 35살이였다면 장군인 주진은 548년 몇살이였을까? 장군과 부장의 차이가 나니 유신보다는 나이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신과 비슷한 나이에 장군이 되었을 것이라고 가정하자.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의 시제는 여러 정황상 614년경일 수 밖에 없다. 이때 주진의 나이는 100세가 넘는다는 뜻이다. 신라는 이때 이미 타임머신을 개발했다는 것을 드라마 선덕여왕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아니면 영화 <시월애>처럼 과거와 현재를 관통해서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우편함>이 있었던지 말이다.

이처럼 드라마 선덕여왕은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너무나도 많다.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해주었니 <괜찮아> 라고 아직까지 말을 할 수 있을까?

지금도 드라마니 괞찬아. 만약, 신라 땅이라고 했으면 재미가 없었을 것이고, 사극을 보지 않았을 것이고, 역사에 관심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고,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는 작가의 고도의 전략에 따른 일부러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가?

일부러 독도가 일본땅인데 이사부가 일본으로 부터 빼앗았다는 설정이 현재로 보았을때 더 극적이지 않는가? 그래야 일본놈 니들이 힘이 없어서 빼앗기고 이제와서 그런 소리하면 안된다거나 지금의 일본과 당시의 왜는 서로 다른 민족이고, 본토 왜와 울릉도 왜는 다른 왜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는 작가의 상상력이나 인기를 위해서거나 역사에 무관심한 시청자를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하려는 고도의 술책이 아니다. 재미를 위해서 였다면 정말 대책이 서지 않는다. 재미를 위해서 <역사를 왜곡>한 것이니 말이다. 성폭행범에게 성폭행을 해주고, 관심이 없는 여론을 환기시키고, 성폭행의 위험성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으니, 국민들이 성폭행범에게 고마워해야 할 판인가? 단지 작가의 역사에 대한 <몰이해>이고 <무지>일 뿐이다. 다른 어떠한 해석이 가능한가?

편하게 볼 수 있는 사극을 만들면 안되나? "아하 그렇구나"나 "아하 그럴수도 있겠네", 또는 "몰랐던 역사적인 사실을 알려주어서 좋았다"라고 보는게 사극이다. 가장 좋은 사극은 글쓴이 같은 이가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사극이다.

선덕여왕작가는 "백성(시청자)은 진실을 버거워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스스로 극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알고 모르고 이용한것이다.  자기희생(?)으로 몸소 실천해 희생자가 된것이다. 한마디로 결과도 없는 결과지상주의에 빠진 현재의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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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나나 2009.10.16 0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낚시같은 제목에 이것저것 딴지거는 내용들 뿐이네요..

    설정자체가 픽션인데 이게 안맞다 저게 안맞다 딴지걸면서 이건 꼭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우기는거와

    같다니...속함성이 신라꺼라고 우기는거랑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우기는 거랑은 완전 천지차이아닙니까?

    그러면서 대놓고 작가들 까대는 말투며 리플에 공격성 대꾸며...어이가 없네요...

    선덕여왕에서 이러이러한 점은 역사적 사실에 맞지않으니 좀더 신경써줬으면 좋겠다...라는 글쓴이의

    의도는 알겠지만 같은 말이라도 아다르고 어다르다고 표현에 좀더 신경을 쓰셨다면 이렇게 눈쌀이

    찌푸려지지는 않았을텐데 아쉽네요.. 대체 선덕여왕보면서 저게 정말 역사적 사실인양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런지 그것도 의문이구요..

    선덕여왕에서 많은걸 느끼는 사람들도 많은데 작가들수준이 딱 그수준이라고 까대는 글쓴이의 수준도

    딱 그수준인거같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16 0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픽션도 합리적이여야 한다는 말이지용.

      공격적인 댓글은 그 수준보다 조금 높게 돌려주는 겁니당. 양해하셈.. 님처럼

      님의 말도 아다르고 어다르다고 하시는데 수준좀 높여주셈..

      님은 많은 부분을 이미 받아 들였을 걸용.. 아니시라면 지금 처럼 댓글 절대로 못달아용.. ㅋㅋ

  3. 세이지 2009.10.16 0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저런 역사적 고증은 이제 알겠는데요
    선덕여왕에서 어느 부분에서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한것인지...?

    그리고 댓글다시는 태도가 아주 훌륭하시군요

  4. 보노보노 2009.10.16 0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선, 이런 글이 탑에 올라온 것에 놀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글쓴이의 역사적 지식이 정확한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또, 언급한 드라마의 역사 왜곡이 심할 지라도 이런 식의 글쓰기는 안됩니다. 이런 글쓰기는 말도 안되는 거죠. 위의 댓글들이 바로 왜 이렇게 글을 쓰면 안되는지에 대한 좋은 보기입니다. 단순하게 역사왜곡이 심각한 문제임을 지적했으면 많은 분들이 공감하면서 호의적 반응을 보였을 겁니다. 그러나,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을 무리하게 갖다 붙이므로서 오히려 반감을 사고 역풍을 맞게 되는 거죠. 한마디로 선정주의의 반작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적하신 부분들은 물론, 고쳐야 할 부분임에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fiction의 자유도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려고 손가락에 똥을 뭍혀서 찍을 필요는 없는거죠.

    • BlogIcon 갓쉰동 2009.10.16 0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군요.. 원작자는 아무렇게나 극을 만들어도 되고,,그것을 지적하면 안되는 군요.. 유별나셈.. 님은..

      사실이 아닌것을 무리하게 갖다 붙힌게 없거든요.. 제목부터 잘 읽는 습관을 기르셈.. 이미 비유법임을 암시하고 있으니닌까용.. 왜 그렇다는 거냐?라는 내용이 있을 뿐입니당..

      픽션의 자유는 장려해야되용.. 하지만, 기본 팩트는 무시하면 안되지요.. 아막성,속함성, 울릉도의 예를 드렸는데도 모르겠다면 님의 탓이지 제탓은 아닙니다.. ^___^

  5. 인간적으로 낚시는 하지 말자 2009.10.16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식으로 조회수 올리고 분란 일으키는 블로거 아름다워 보이지 않아요. 님께서는 '(제목은) 낚시스런데 내용은 낚시가 아니지요..' 라는 댓글을 다셨지만, 그게 바로 낚시라고 하는 거죠 - _-a 내용과 관련없는 제목, 내용을 과장한 제목, 쓸데없이 자극적인 제목 등등. 아무튼 낚인 한 사람으로서 유쾌하지 않네요.

  6. lsk5444 2009.10.17 1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 도서가 된 것은 언제? 제대로 역사 공부나 하고 글을 쓰시오....우산국은 울릉도만 말하는 것...

  7. BlogIcon 버드나무그늘 2009.10.24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은 잘 담고 있지만, 블로그 포스트의 제목이 조금 자극적이면서 시의적절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목에 낚여서 방문자가 많이 늘기는 하겠지만요.

  8. 미생 2009.11.10 2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글은 항상 잘 보고있습니다~ㅋ

    드라마는 단지 드라마다.....라고
    그냥 좋게 생각하는게 어떨까요??물론 작가의 지난친 왜곡도 문제가 있지만
    이로써 역사 공부를 하게 만드는 고마움(?)도 있잖아요~ㅋ
    그럼 수고하세용~

    • BlogIcon 갓쉰동 2009.11.11 0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작가는 역사를 왜곡한적이 없어요.. ㅋㅋ

      드라마로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사극은 고사하고.. 개콘이 되었던, 일반 시대극이 되었던. 현대극이 되었던..퓨전 사극이 되었던, SF던 환타지던 장르에 상관없이 가장 갖춰야할 극중 개연성과 합리성과 리얼리티가 없다는 이야기 였습니당..

  9. 아쿠아 2009.11.10 2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길어서 다 읽기 귀찮네요.. 마음 상하셨다면 ㅈㅅ
    일단 이 생각뿐이네요
    댓글 넘겨보다 일본에 수출한다고 하는데
    그럼 일본놈들이 작가한테 수출하는 대신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말하라 이렇게 조건 달았을수도..있고
    미쳤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전 그렇게 느낍니다 ㅋㅋㅋ

  10.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1.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mature.php 2012.07.21 2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형에서 부메랑을 맞은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어찌 될지는 뚜껑을 열어보고 시리즈가 중간정도 되어야 개정룰이 어떻게 적용될지 판가름 날 것이다.

  12. BlogIcon Gerardo 2012.08.18 2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르고 울릉도와 독도를 복속시켰다고 드라마를 설정한다면 어찌될까? 한국드라마

  13. BlogIcon tony 2012.11.19 2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고 하는데
    그럼 일본놈들이 작가한테 수출하는 대신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말하라 이렇게 조건 달았을수도..있고 <a title="tony" href="https://www.google.com/">tony</a>

  14. BlogIcon tank emergency 2012.11.26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밴쿠버 올림픽이 끝나고 오서코치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지만 올림픽을 앞둔 1개월전인 2010년 1월말 4대륙 대회 기간중 김연아는 발목부상 중이였다. 발목부상중인 김연아가 빙상연맹과 ISU와 전주시측의 참여 압력에 굴복하여 부상를 치료 못하고 대회에 참여하였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15. BlogIcon ultimate storage shed 2012.12.04 2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만약, 신라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지 않았다면 어찌될까? 또는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켰다는 기록을 없었다면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미 잘 알려진 일이고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에 반하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

  16. BlogIcon ultimate storage shed 2012.12.04 2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만약, 신라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지 않았다면 어찌될까? 또는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켰다는 기록을 없었다면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미 잘 알려진 일이고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에 반하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

  17. BlogIcon cuff link blanks 2013.01.16 0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 작가는 매국노나 친일파라고 불리우기에 하등 지장이 없을 것이다. 지하에서 이사부가 울던 말던, 드라마는 작

  18. BlogIcon Saffron Diet 2013.01.22 0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면 가잠성은 백제의 성일 것이다.

  19. BlogIcon wynajem samochodów wroclaw 2013.01.23 0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울릉도와 독도는 신라의 이사부가 복속시켰다. 하지만, 왜가 이사부를 무찌르고 울릉도와 독도를 복속시켰다고

  20. BlogIcon movie legends 2013.01.26 06: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상력을 존중해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울릉도와 독도는

  21. BlogIcon Fernando Bernardino 2013.01.28 0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지 않았다면 어찌될까? 또는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켰다는 기록을 없었다면 울릉도와

독도는 삼국시대 신라 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므로 해서 부속도서인 독도까지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울릉도 원주민의 생각과는 다르게 어찌되었던 신라의 땅이 되고, 신라가 고려에 복속이 됨으로서 울릉도와 독도 또한 고려의 영토가 되었다.  이런 전차로 조선을 이어 대한민국이 될때 까지 울릉도와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이다. 그래서 일본이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땅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신라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지 않았다면 어찌될까? 또는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켰다는 기록을 없었다면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미 잘 알려진 일이고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에 반하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이미 잘알려진'이란 단서가 붙는다. 만약, 많은 사람이 독도에 대한 논란이 없어서 독도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른다면 어찌될까?


그리고 어떤 역사 드라마가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기록을 했다면, 많은 사람들이 공분을 할까? 무슨 소리냐? 독도가 일본땅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한발 더나아가 울릉도와 독도가 당시에 왜의 고유한 영토였다. 이사부는 왜군을 무찌르고 신라에 편입시켰다.라는 설정을 하였다면 어찌될까?

아무리 드라마나 역사드라마라고 할지라도 작가는 매국노나 친일파라고 불리우기에 하등 지장이 없을 것이다. 지하에서 이사부가 울던 말던, 드라마는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인데 이를 용인해야 한다. 재미를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것 아닌가? 재미가 있어야 드라마를 보고,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될거라고 수순히 말할 사람이 몇명이 될것인이며, 이에 동조할 사람이 몇명이나 될것인가?


그렇다면 좀더 발전을 시켜보도록 하자. 울릉도와 독도는 신라의 이사부가 복속시켰다. 하지만, 왜가 이사부를 무찌르고 울릉도와 독도를 복속시켰다고 드라마를 설정한다면 어찌될까? 한국드라마니 괞찮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일본 드라마니 괜찮아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역사왜곡이라고 이야기를 할까? 드라마를 통해서 군국주의를 확산하는 고도의 전략이라고 할까?

하지만, 글쓴이는 충분히 작가의 상상력을 존중해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울릉도와 독도는 스스로 국가를 형성하고 있다가, 신라에 복속되고 난 후에 한국의 고유의 영토로 편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그렇게 만든다면 "짜식들 배가 아파도 한참을 아프구나" 했을 것이다.

이제 선덕여왕이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주장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최고의 전투신으로 아막성과 속함성 전투를 들것이다. 그후에 전투신이 없어서 아쉽기는 하다. 더이상 전투신이 없는 이유는 제작비의 압박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덕만(이요원)과 유신(엄태웅), 알천(이승효)과 10화랑이 화랑답게 만든 전투가 아막성 전투였다.

지금까지 드라마로 본 전투신중에서 최고라고 할 정도로 전투에 참여하는 군인들의 전투에 참여하여 두려움에 떠는 심리적인 묘사와 전투장면이 압권이였다. 관련기사 2009/06/2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화랑 신화창조의 성지 아막성, 광개토태왕의 #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아막성과 속함성을 백제의 것이다. 미실(고현정)은 백제의 아막성과 속함성을 빼앗기 위한 전략과 김서현을 진평왕으로 부터 멀어지게 하거나 최대 죽일계책을 만든다.

하지만, 아막성과 속함성은 빼앗는데는 성공했지만, 서현을 몰락시키려던 계략은 실패하고 오히려 서현이 아막성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서라벌로 입성하여 진골에 다시 편입하게 된다.


하지만, 아막성과 속함성은 백제의 땅이 아니고, 신라의 땅이였다. 백제 무왕은 신라의 아막성을 빼앗기 위해서 대군을 출동시킨다. 하지만, 아막성에서 이들을 무찌르고 잘 방어를 한다. 속함성도 신라의 성이였다. 아막성과 속함성은 백제의 성이 아니였다는 뜻이다.

여러분이 독도는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므로 부속도서인 독도도 한국의 땅이 된것은 잘 알고 있지만, 아막성과 속함성은 누구의 땅인지도 몰랐을 뿐만 아니고, 이들 성이 백제의 성이였겠거니 했을 것이다.

24년(602) 가을 8월에 백제가 아막성(阿莫城)을 공격해 왔으므로 왕이 장수와 사졸로 하여금 맞서 싸우게 하여 크게 쳐부수었으나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이 전사하였다. - 삼국사기 진평왕 24년 602년
25년(624) 겨울 10월에 신라의 속함성(速含城), 앵잠성(櫻岑城), 기잠성(岐岑城), 봉잠성(烽岑城), 기현성(旗懸城), 용책성(冗柵城) 등 여섯 성을 공격하여 빼앗았다. - 삼국사기 백제 무왕 25년

속함성이 백제에 귀속된 때는 624년이다. 그전에는 신라의 땅이라는 소리다. 이제 아막성과 속함성은 신라의  땅이란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또하나의 사례가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온다.

한가위전에 김춘추는 설원랑의 집으로 찾아가 보량에게 비단과 귀걸이를 선물한다. 그런데 이때 춘추는 설원랑의 집으로 뇌물을 받치려온 자가 누군지 보량에게 물어본다.

이때 보량은 춘추에게 몇번을 설명했는데 춘추씨는 까마귀 고기나 꿩고기를 쳐 잡수셨는지 알아 먹지 못한다고 구박을 하면서, 저놈은 가잠성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현재 북한산주의 도독으로 있는 놈이라고 말한다. 

가잠성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면 가잠성은 백제의 성일 것이다. 또는 백제가 신라의 가잠성을 침입했지만, 한산주 도독이 된 자가 백제를 무찔렀을 것이다.

33년(611) 겨울 10월에 백제 군사가 가잠성(椵岑城)을 포위하여 100일이나 지속되었다. 현령(縣令) 찬덕(讚德)이 굳게 지켰으나 힘이 다하여 죽고 성은 함락되었다. - 삼국사기 진평왕 33년 611년

하지만 가잠성은 신라의 성이였는데 백제가 침입하였지만 대패를 하고  가잠성을 백제에 빼앗기고 만다. 이런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승진할려면 어찌해야 할까?

춘추가 보량을 보쌈해서 납치혼을 하자, 추후 춘추가 왕이 되었을때 설원랑 가문이 왕의 외척이 되어 세종자신보다 더한 권력을 가지게 되거나, 세종 자신이 왕이 되는데 걸림돌이 춘추나 설원랑이 될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설원랑을 제거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상주>당의 성주인 <주진>에게 밀서를 보내고 자신에 동조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당시 상주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 상주라는 지명이 있는데 상주가 없다고 이야기를 하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상주당은 존재할 수 없다. 이는 조선시대에 제주로 죄인을 유배보내는 것처럼, 신라에서 제주로 죄인을 유배보낸다는 설정이랑 별반 다르지 않다.

"상주(尙州)는, 첨해왕 때에 사벌국(沙伐國)을 빼앗아 주(州)로 삼은 것이었다.법흥왕 11년(524), 양(梁)나라 보통(普通)6년(525)에 처음으로 군주(軍主)를 두어 상주(上州)로 삼았다. 진흥왕 18년(557)에 주를 폐지하였다.신문왕 7년, 당나라 수공(垂拱)3년(687)에 다시 [주를] 설치하고 성을 쌓았는데 둘레가 1,109보였다. 경덕왕 16년(757)에 이름을 상주(尙州)로 고쳤다. - 삼국사기 지리

상주는 557년 진흥왕 18년에 폐지되었다가 757년인 경덕왕 16년에 비로서 상주(尙州)가 되는 것이다.

설령 상주당이 있었다고 하자. 세종이 상주당 성주인 주진에게 군사를 동원할 밀서를 보내는데 주진은 받아 볼 수 있을까? 상주당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주진>은 편지를 받아 볼 수 없다.

9년(548) 봄 2월에 고구려가 예인(穢人)과 함께 백제 독산성(獨山城)을 공격하였으므로 백제에서 구원을 청하였다. 왕은 장군 주령(朱玲)을 보내 굳센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치게 하였는데, 죽이거나 사로잡은 사람이 매우 많았다.
- 삼국사기 진흥왕 9년 봄 2월

왜 주령을 보고서 주진과 같이 이야야기 하냐고 반문을 한다면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도록 하자.

26년(548) 봄 정월에 고구려 왕 평성(平成)[양원왕]이 예(濊)와 모의하여 한강 북쪽[漢北]의 독산성(獨山城)을 공격하였다. 왕은 사신을 신라에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다. 신라 왕은 장군 주진(朱珍)에게 명령하여 갑옷 입은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떠나게 하였다. 주진이 밤낮으로 길을 가서 독산성 아래에 이르러 고구려 군사와 한 번 싸워 크게 격파하였다. - 삼국사기 백제 성왕 26년

<주진>은 <주령>이다. 단지 령<玲>와 진<珍>의 오탈자이다. 백제와 고구려의 기록은 <주진>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단지 신라만 <주령>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주령, 또는 주진이라고 하는 것이다.

주진은 548년 갑주병 3천을 움직일 수 있는 장군이다. 김유신(595년생)이 열전이 아닌 처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기록이 있다. 629년 <낭비성>전투때이다. 이때 유신은 35살에 <부장군>으로 참전한다. 신성한 유신이 부장으로 35살이였다면 장군인 주진은 548년 몇살이였을까? 장군과 부장의 차이가 나니 유신보다는 나이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신과 비슷한 나이에 장군이 되었을 것이라고 가정하자.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의 시제는 여러 정황상 614년경일 수 밖에 없다. 이때 주진의 나이는 100세가 넘는다는 뜻이다. 신라는 이때 이미 타임머신을 개발했다는 것을 드라마 선덕여왕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아니면 영화 <시월애>처럼 과거와 현재를 관통해서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우편함>이 있었던지 말이다.

이처럼 드라마 선덕여왕은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너무나도 많다.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해주었니 <괜찮아> 라고 아직까지 말을 할 수 있을까?

지금도 드라마니 괞찬아. 만약, 신라 땅이라고 했으면 재미가 없었을 것이고, 사극을 보지 않았을 것이고, 역사에 관심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고,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는 작가의 고도의 전략에 따른 일부러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가?

일부러 독도가 일본땅인데 이사부가 일본으로 부터 빼앗았다는 설정이 현재로 보았을때 더 극적이지 않는가? 그래야 일본놈 니들이 힘이 없어서 빼앗기고 이제와서 그런 소리하면 안된다거나 지금의 일본과 당시의 왜는 서로 다른 민족이고, 본토 왜와 울릉도 왜는 다른 왜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는 작가의 상상력이나 인기를 위해서거나 역사에 무관심한 시청자를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하려는 고도의 술책이 아니다. 재미를 위해서 였다면 정말 대책이 서지 않는다. 재미를 위해서 <역사를 왜곡>한 것이니 말이다. 성폭행범에게 성폭행을 해주고, 관심이 없는 여론을 환기시키고, 성폭행의 위험성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으니, 국민들이 성폭행범에게 고마워해야 할 판인가? 단지 작가의 역사에 대한 <몰이해>이고 <무지>일 뿐이다. 다른 어떠한 해석이 가능한가?

편하게 볼 수 있는 사극을 만들면 안되나? "아하 그렇구나"나 "아하 그럴수도 있겠네", 또는 "몰랐던 역사적인 사실을 알려주어서 좋았다"라고 보는게 사극이다. 가장 좋은 사극은 글쓴이 같은 이가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사극이다.

선덕여왕작가는 "백성(시청자)은 진실을 버거워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스스로 극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알고 모르고 이용한것이다.  자기희생(?)으로 몸소 실천해 희생자가 된것이다. 한마디로 결과도 없는 결과지상주의에 빠진 현재의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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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나나 2009.10.16 0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낚시같은 제목에 이것저것 딴지거는 내용들 뿐이네요..

    설정자체가 픽션인데 이게 안맞다 저게 안맞다 딴지걸면서 이건 꼭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우기는거와

    같다니...속함성이 신라꺼라고 우기는거랑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우기는 거랑은 완전 천지차이아닙니까?

    그러면서 대놓고 작가들 까대는 말투며 리플에 공격성 대꾸며...어이가 없네요...

    선덕여왕에서 이러이러한 점은 역사적 사실에 맞지않으니 좀더 신경써줬으면 좋겠다...라는 글쓴이의

    의도는 알겠지만 같은 말이라도 아다르고 어다르다고 표현에 좀더 신경을 쓰셨다면 이렇게 눈쌀이

    찌푸려지지는 않았을텐데 아쉽네요.. 대체 선덕여왕보면서 저게 정말 역사적 사실인양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런지 그것도 의문이구요..

    선덕여왕에서 많은걸 느끼는 사람들도 많은데 작가들수준이 딱 그수준이라고 까대는 글쓴이의 수준도

    딱 그수준인거같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16 0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픽션도 합리적이여야 한다는 말이지용.

      공격적인 댓글은 그 수준보다 조금 높게 돌려주는 겁니당. 양해하셈.. 님처럼

      님의 말도 아다르고 어다르다고 하시는데 수준좀 높여주셈..

      님은 많은 부분을 이미 받아 들였을 걸용.. 아니시라면 지금 처럼 댓글 절대로 못달아용.. ㅋㅋ

  3. 세이지 2009.10.16 0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저런 역사적 고증은 이제 알겠는데요
    선덕여왕에서 어느 부분에서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한것인지...?

    그리고 댓글다시는 태도가 아주 훌륭하시군요

  4. 보노보노 2009.10.16 0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선, 이런 글이 탑에 올라온 것에 놀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글쓴이의 역사적 지식이 정확한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또, 언급한 드라마의 역사 왜곡이 심할 지라도 이런 식의 글쓰기는 안됩니다. 이런 글쓰기는 말도 안되는 거죠. 위의 댓글들이 바로 왜 이렇게 글을 쓰면 안되는지에 대한 좋은 보기입니다. 단순하게 역사왜곡이 심각한 문제임을 지적했으면 많은 분들이 공감하면서 호의적 반응을 보였을 겁니다. 그러나,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을 무리하게 갖다 붙이므로서 오히려 반감을 사고 역풍을 맞게 되는 거죠. 한마디로 선정주의의 반작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적하신 부분들은 물론, 고쳐야 할 부분임에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fiction의 자유도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려고 손가락에 똥을 뭍혀서 찍을 필요는 없는거죠.

    • BlogIcon 갓쉰동 2009.10.16 0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군요.. 원작자는 아무렇게나 극을 만들어도 되고,,그것을 지적하면 안되는 군요.. 유별나셈.. 님은..

      사실이 아닌것을 무리하게 갖다 붙힌게 없거든요.. 제목부터 잘 읽는 습관을 기르셈.. 이미 비유법임을 암시하고 있으니닌까용.. 왜 그렇다는 거냐?라는 내용이 있을 뿐입니당..

      픽션의 자유는 장려해야되용.. 하지만, 기본 팩트는 무시하면 안되지요.. 아막성,속함성, 울릉도의 예를 드렸는데도 모르겠다면 님의 탓이지 제탓은 아닙니다.. ^___^

  5. 인간적으로 낚시는 하지 말자 2009.10.16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식으로 조회수 올리고 분란 일으키는 블로거 아름다워 보이지 않아요. 님께서는 '(제목은) 낚시스런데 내용은 낚시가 아니지요..' 라는 댓글을 다셨지만, 그게 바로 낚시라고 하는 거죠 - _-a 내용과 관련없는 제목, 내용을 과장한 제목, 쓸데없이 자극적인 제목 등등. 아무튼 낚인 한 사람으로서 유쾌하지 않네요.

  6. lsk5444 2009.10.17 1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 도서가 된 것은 언제? 제대로 역사 공부나 하고 글을 쓰시오....우산국은 울릉도만 말하는 것...

  7. BlogIcon 버드나무그늘 2009.10.24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은 잘 담고 있지만, 블로그 포스트의 제목이 조금 자극적이면서 시의적절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목에 낚여서 방문자가 많이 늘기는 하겠지만요.

  8. 미생 2009.11.10 2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글은 항상 잘 보고있습니다~ㅋ

    드라마는 단지 드라마다.....라고
    그냥 좋게 생각하는게 어떨까요??물론 작가의 지난친 왜곡도 문제가 있지만
    이로써 역사 공부를 하게 만드는 고마움(?)도 있잖아요~ㅋ
    그럼 수고하세용~

    • BlogIcon 갓쉰동 2009.11.11 0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작가는 역사를 왜곡한적이 없어요.. ㅋㅋ

      드라마로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사극은 고사하고.. 개콘이 되었던, 일반 시대극이 되었던. 현대극이 되었던..퓨전 사극이 되었던, SF던 환타지던 장르에 상관없이 가장 갖춰야할 극중 개연성과 합리성과 리얼리티가 없다는 이야기 였습니당..

  9. 아쿠아 2009.11.10 2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길어서 다 읽기 귀찮네요.. 마음 상하셨다면 ㅈㅅ
    일단 이 생각뿐이네요
    댓글 넘겨보다 일본에 수출한다고 하는데
    그럼 일본놈들이 작가한테 수출하는 대신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말하라 이렇게 조건 달았을수도..있고
    미쳤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전 그렇게 느낍니다 ㅋㅋㅋ

  10.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1.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mature.php 2012.07.21 2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형에서 부메랑을 맞은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어찌 될지는 뚜껑을 열어보고 시리즈가 중간정도 되어야 개정룰이 어떻게 적용될지 판가름 날 것이다.

  12. BlogIcon Gerardo 2012.08.18 2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르고 울릉도와 독도를 복속시켰다고 드라마를 설정한다면 어찌될까? 한국드라마

  13. BlogIcon tony 2012.11.19 2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고 하는데
    그럼 일본놈들이 작가한테 수출하는 대신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말하라 이렇게 조건 달았을수도..있고 <a title="tony" href="https://www.google.com/">tony</a>

  14. BlogIcon tank emergency 2012.11.26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밴쿠버 올림픽이 끝나고 오서코치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지만 올림픽을 앞둔 1개월전인 2010년 1월말 4대륙 대회 기간중 김연아는 발목부상 중이였다. 발목부상중인 김연아가 빙상연맹과 ISU와 전주시측의 참여 압력에 굴복하여 부상를 치료 못하고 대회에 참여하였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15. BlogIcon ultimate storage shed 2012.12.04 2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만약, 신라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지 않았다면 어찌될까? 또는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켰다는 기록을 없었다면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미 잘 알려진 일이고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에 반하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

  16. BlogIcon ultimate storage shed 2012.12.04 2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만약, 신라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지 않았다면 어찌될까? 또는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켰다는 기록을 없었다면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미 잘 알려진 일이고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에 반하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

  17. BlogIcon cuff link blanks 2013.01.16 0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 작가는 매국노나 친일파라고 불리우기에 하등 지장이 없을 것이다. 지하에서 이사부가 울던 말던, 드라마는 작

  18. BlogIcon Saffron Diet 2013.01.22 0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면 가잠성은 백제의 성일 것이다.

  19. BlogIcon wynajem samochodów wroclaw 2013.01.23 0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울릉도와 독도는 신라의 이사부가 복속시켰다. 하지만, 왜가 이사부를 무찌르고 울릉도와 독도를 복속시켰다고

  20. BlogIcon movie legends 2013.01.26 06: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상력을 존중해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울릉도와 독도는

  21. BlogIcon Fernando Bernardino 2013.01.28 0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지 않았다면 어찌될까? 또는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켰다는 기록을 없었다면 울릉도와

드라마 선덕여왕 36회에서는 크게 몇가지 이야기를 동시 다발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티아라의 큐리(이지현)이 드라마 선덕여왕의 김유신(엄태웅)의 첫번째 부인인 영모 배역에 낙점이 되었군요.

첫째. 춘추의 세상 속이기

춘추는 미생이 하자는 대로 모든 것을 다한다. 미생은 춘추를 데리고 유곽에서 나아가 춘추의 여자 보는 눈을 실험한다. 신라판 미인 선발대회이다. 이는 춘추 한 개인을 위한 미인대회이다. 미생은 보종을 통해서 춘추가 보량(박은빈)을 좋아하다는 이야기를 미실에 전한다. 이에 우리의 찌질남 하종은 왜 자신의 딸들에게도 아름다운 미인들이 많은데 왜? 하필 보량이냐고 푸념을 한다. 하지만, 춘추는 도박장에서 비담을 만나서 눈인사를 하는 과정에 이미 미생의 술수를 다 알고 있다고 시청자에게 알려준다.

여기서 하종의 찌질거림은 미실의 속내가 있다는 암시와도 같다. 영모(큐리:이지현)와 유신을 짝으로 만들어 주려는 고도의 술책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종의 입을 통해서 <영모>가 미인임을 암시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영모(이지현)>와 <보라>, <보량>이 얼마나 어여쁜 신인(?) 연기자가 출연하는지 보는것도 재미가 있지 않을까? 여성시청자를 위해서 10화랑, 알천(이승효), 비담(김남길), 김춘추(유승호)를 비밀 병기로 발탁했다면, 남성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해줄 뉴페이스도 필요할 때이지 않을까 한다.

미실은 미생이 춘추는 <보량(박은빈)> 타입이라고 말을 보종의 보고를 받는다. 미실은  "미생이 그렇다면 그런것이다"라고 말을 한다. 미생은 카사노바도 울고갈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실은 미생의 여자를 보는 눈은 정확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춘추의 여자보는 눈을 탓하는 것이다. 이는 시청자에게 조금의 함정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다. 춘추는 미생의 눈을 속이고, 미실의 눈도 속일 정도로 심계가 깊다는 뜻을 내비치는 것이다.

보량은 보종과 양명공주 사이에 태어난다. 양명은 진평과 보명사이에 태어난다.


보량(보종/양명)은 할머니 미실처럼 바람끼가 농후하다. 또한, 진평왕의 후비로 왕자 <보로>을 낳는다. 하지만, 보로는 승만후의 방해와 보량의 바람끼가 합해져 보로는 왕이되지 못한다. 실제로 미실이 신라 왕실을 접수하려 했다면 자신의 증손인 보로(진평/보량)를 통해서 했을 것이다.


물론, 춘추는 보종의 딸과 결혼을 한다. 하지만 <보량>이 아닌 <보라(보종/양명)>와 결혼을 한다.  보라는 춘추와 결혼하여 고타소를 낳는다, 고타소는 남편과 함께 642년 대야주에서 백제군에 의해서 죽는다. 김유신과 다르게 춘추가 백제를 삶킬 궁리를 한것은 자신의 여식의 복수심에 의해서다. 김유신은 이런 춘추를 꼬드겨 <삼한일통>의 대업을 이루고저 한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춘추는 왜? 왜(일본)에 갔을까?" 라는 주제로 송고할 예정이다.

둘째. 유신으로 인한 비담과 문노의 갈등

문노는 자신이 꿈꾸고자 한 꿈을 이뤄줄 사람은 유신으로 낙점을 한다. 그리고, 왕은 덕만이 되어야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운명론에 사로 잡힌다. 그래서 비담이 아닌 <삼한비기>를 유신에 넘겨주려고 한다. 이에 비담은 낙담을 하고, 문노와 헤어질 결심을  굳힌다.


셋째. 유신과 덕만의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

유신은 덕만에게 왕으로서 가야할 길을 가도록 한다. 또한, 그게 덕만이 하고자한 꿈을 이루는 길이라고 한다.

넷째. 유신의 미실에 대한 투항

미실은 유신에게 가야의 복야회를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뜻에 따를 것인가를 종용한다. 
덕만도 유신에게 자신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설지를 선택할 것인가?를 물어본다.

하지만 우리의 에너자이저,
유신은 덕만에게 복야회의 단 한명도 희생시킬수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적국의 1만의 병사나 백성을 희생하더라도 내 백성은 하나라도 다치게 해서는 안되는게 군주의 도리"라고 한다.

이는 요즘의 세태를 정확히 비판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국민 하나가 다친다면, 백배 천배 보복을 감행한다. 자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짓이라도 하는게 국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은 어떠하냐?라는 반문이다. 각자 알아서 판단하시길 바란다.


어찌되었던, 유신은 마음은 덕만에 두고 몸은 미실에 무릎이라도 꿇는다. 이는 한나라 한신의 고사를 생각하면 쉬이 이해할 수 있다. 지금 비록 힘이 미약하지만, 때가 되면 일어서겠다는 생각이다.

미실은 유신을 얻기 위해서 풍월주 비재에 승리한 유신을 또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한다. 복야회의 일원이고, 신라내이 가야인들을 반란를 획책했다는 누명을 씌워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다. 이는 단순히 풍월주를 자신의 아들인 보종에 양보하도록 압박하려는 수단은 아니다. 유신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는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덕만과 유신의 사랑은? 신분의 제약일까? 아니면 나이차이일까?


덕만은 유신이 미실에 끌려갈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알고, 자신의 속내을 유신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유신은 공주는 공주의 길을 가야한다고 한다. 또한, 소화도 덕만에게 "어짜피 마음으로 밖에 못하세요"라며 공주로서의 삶이 있으니 감내하고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이야기를 한다.


소화의 단순한 발언속에는 이런 이야기가 함축하고 있다. 유신은 진골이고, 덕만 공주는 <성골>이니 <이루워 질수 없는 사랑>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성골은 무치인데, 진골이면 어떻고, 성골이면 어떠한가? 소화가 나이를 들어서 유신과 이루워질 수 없는 사랑이며, 바라만 봐도 좋은 사랑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미실을 찾아간 유신은 자신의 몸은 가질 수 있으나 마음을 가질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며, 유신은 "이제 세주 미실의 품으로 들어가겠다"한다. 그런데 미실은 "내가 조금만 젊었어도 너를 직접 내품에 안을텐데"라는 말을 한다. 이는 유신에 향한 말이 아니다. 유신 뒤를 쫓아온 덕만을 자극하기 위한 말이다. 이에 덕만은 사랑하는 유신이 자신의 곁을 떠나는데 여인으로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내가 가질수 없는 사랑은 남이 가져서도 않된다는 한마디로 질투이다.

또한, 미실의  "내가 젊었어도 직접 유신을 품에 안겠다"라는 말은 시청자를 향해서 하는 말이다. 나 미실은 "이런 여자야" 남자를 많이 다뤄본 여자야 그러니 알아서 해.. 라는 뜻이다.

어린 유신을 두고 두여인의 연기가 불꽃을 튀고 있다.

덕만 공주의 왕으로 가는 길과 유신이 가고자한 신하의 길은 넘을수 없는 멀고도 먼 사랑 같이 보인다. 그저 단순히 덕만이 유신을 사랑하는데 무슨 걸림돌이 있겠는가? 반문할 수도 있다. "신분의 벽이 무섭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들 덕만과 유신의 사랑이 신분의 격차 때문에 이뤄질수 없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덕만은 임술년생이다. 임술년은 602년이다. 595년 생인 유신이 덕만보다는 나이가 7살은 많다. 풍월주 비재가 있던 612년에는 덕만은 11살이 된다.

하지만, 드라마상에서는 곧죽어도 덕만이 천명과 같이 580년대 중반의 사람이다. 그러니 덕만이 유신보다는 10여살은 나이가 많은 설정이다. 그런데 드라마를 파고들면 천명과 덕만은 579년에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더한 것은..버려진 덕만이 소화의 손에 의해서 문노를 찾아간다. 이때 문노는 비담과 덕만의 사주를 살핀다. 비담과 덕만의 첫만남을 연출했던 장면이 있다. 이때, 비담은 건복원년(586년)생이라고 말을 하고, 어린 비담과 방금 태어난 덕만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덕만은 587~8년이 생이 된다.

요즘은 능력있는 여자들이 나이어린 남자를 애인이나 남편으로 삼는게 트랜드화 되었다. 물론, 예전에도 꼬마신랑은 있었다. 그러니 신세대의 복고풍 바람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한다. 

이처럼 드라마 <선덕여왕>은 덕만과 천명의 출생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럴때 "천명과 덕만이 언제 태어났다는 말이냐?"라고 반문해주는게 정상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을 보는 사람들중 드라마 스토리가 탄탄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들이 말한 드라마의 스토리의 탄탄함은 주인공이던 주변인들이던 SF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 같다. 선덕여왕을 보면서 많은 사람으로 부터 비판받는 엄태웅을 비롯해서 배우들의 연기에는 흡족하지만, 원작의 부실함에는 어찌 저런 기초도 안된 허접한 황당소설이 다 있을까 혀를 찬다.

어찌되었던, 오래전 미실은 아막성. 속함성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서현과 유신을 가야파로 부터 떼어 놓을 계락으로 <사다함의 매화>를 이용한다. 정확히는 사다함의 매화는 책력이 아니고 월천대사이다. 미실은 월천대사를 이용하여, 월식을 예측하고, <인력구(人力口)>의 파자로 가야(伽倻)파의 맹주인 서현을 미실 자신측으로 돌려 세우고, 하종의 딸인 영모와 결혼시켜려는 계략을 꾸몄다. 하지만, 천명의 죽음으로 실패하고 만다. 그러부터 몇년이 지난 풍월주 비재 후  실패한 영모와의 혼사를 다시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다.

영모(큐리)와 보량, 보라는 누구?


위의 가계도를 보시면 알겠지만, 미실이나 유신이나 설원랑이나 화랑의 시초인 1번째 풍월주 위화랑의 후손들이다.  또한, 설원랑의 후손중에는 원효와 설총도 보인다. 드라마에서는 찌질이 하종이 설원랑을 무시하듯 나오지만, 설원랑은 미모(설원랑/준모)를 하종에 시집보낸다.

그러니 설원랑은 하종의 장인이 된다. 사사로이 장인에게 <선덕여왕> 드라마처럼 막대한다면, 후레자식 취급 받을 것이다. 신라는 괜찮다고? 아무리 개족보처럼 막나가는 듯 보이지만, 신라도 사람사는 세상이다. 왕도 장인에게는 함부로 못한다.

어찌되었던, 미실은 왜 영모를 유신에게 시집을 가도록 강요를 하는 것일까? 단순히 정치적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까? 아니면 정말로 <영모>가 유신의 짝이라고 생각해서 일까?


삼국사기에 의하면 유신의 부인은 춘추의 딸이며, 자신의 누이의 문희(서현/만명)의 딸인 지조(춘추/문희)와 655년에 결혼을 한다. 그리고 유명한 원술을 낳는다. 그렇다면, 유신의 첫번째 부인은 지조일까?

여기서 유신의 나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신은 595년생이다. 지조와 결혼하는 때 61세 회갑이 된다. 춘추가 유신에게 단순히 회갑선물로 자신의 딸인 지조공주를 유신에게 주었을까? 또는 유신은 655년에 결혼한 때가 첫번째 결혼일까?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유신을 너무 모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유신의 첫사랑(?)인 천관녀를 잊지 못해서, 전쟁광으로 전장을 누빈것으로 생각한다면, 신라사회와 유신을 너무나 모른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천관녀가 영모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쓴이는 영모에서 천관녀의 냄새를 맡은 적이 많다.

어찌되었던, 삼국사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원술(유신/지조)말고도 몇명의 유신의 자식들이 등장한다. 물론, 지조와 결혼하기 전이다. 그러니 "유신은 지조와 첫번째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하지만, 통설은, 유신이 655년 첫번째 결혼하는 상대가 자신의 조카인 지조가 되고, 원술이 유신의 장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필사본 화랑세기는, "유신이 지조랑 첫번째 결혼했다고?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또한, 유신은 18세가 되던 즈음에 11세 풍월주 하종의 딸인 영모와 결혼한다.
유신의 자식들 중 <광>자 돌림를 사용하는 자식들은 <영모>의 소생이라고 말을 한다.  여기서도 현존하는 화랑세기 유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던, 또는, 단순히 지조의 자식이라고 생각한 <광>돌림 자식은 <영모>의 소생이고, <원>자 돌림은 <지조>의 소생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 그래서 현존하는 화랑세기를 무시할 수 없다. 또다른, 일단은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위작이라고 말을 하지만, 위작을 주장하는 사람들 조차도 <필사본> 화랑세기의 정교함에는 두손 두발을 다 들어 버렸다. 

현존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역사>소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박창화는 1930년대에 이미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던, 김유신의 첫번째 부인과 그들의 후손을 정확히 구분해서 소설을 쓰고 있다. 지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는 빈틈을 찾아보기 힘들정도의 <역사소설>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은 곳곳에 치명적인 오류가 보인다. 지금까지 36회를 진행하는 동안, 발견된 오류만 100여개는 넘을 것이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오류 리스트를 작성할 것이다.

진정한 승리자는 미실? 서현? 설원랑?

위의 계보도를 보면 보종의 첫번째 부인이 현강이다. 현강은 문노와 윤중(거칠부/?)의 자식이다. 그러니 보종의 장인이 문노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은 두번에 걸쳐 영모와의 혼사를 성사시키려 노력한다. 만약, 미실이 유신을 자신의 집안사람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면 미실은 신라를 접수 할 수 있을까? 사실 드라마 선덕여왕은 <덕만>을 주인공으로 신라의 왕이 되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미실 집안이 어떻게 신라의 왕가를 접수해 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듯 하다.

하지만,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영모를 유신에 소개 시켜준 측은 미실이 아니다. 이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9/22 - [역사이야기] -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하는 미실의 비밀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당연히, 가시기 전에 추천하는 것을 잊지 마시라. 시청률이 배우에게 연기하는 힘이 되지만, 글쓴이에게는 추천이 힘이 된다.)

실제로, 덕만은 왕이 되어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후사를 잇지 못했다. 그러니 절반의 성공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실은 자신의 후손들이 부터 신라를 접수하는데 성공 한다. 사실은 부계로 따진다면 보종, 하종의 승리이고, 보종 아버지인 설원랑의 인간승리이다.


하지만, 진정한 승리자는 김서현 가문이다. 김서현의 딸인 문희는 춘추와 결혼해서 문무를 낳고, 춘추/문희의 후손들이 대대로 신라의 왕이 된다. 물론, 가끔 삐딱선을 타는 왕이 나오기는 하지만 말이다.

 
배우에겐 시청율이, 글쓴이에게는 추천이 힘이 됩니다. 비로그인 추천가능 숫자크릭 ^__^;;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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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나가던 객 2009.09.23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선덕여왕 닥본사 중인데 갓쉰동님 글 넘 잼있게 보고갑니다. 선덕여왕보다 더 잼있네요~.^^

  3. 바씨 2009.09.23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잘봤습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계보도로 정확하게 파악하게 되어어요.
    좋은 하루 되세요.~

  4. 신버미 2009.09.23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었습니다.
    아 그리고 유신과 결혼하는 춘추의 딸의 이름은 지소입니다.
    그리고 보량궁주가 바람기 때문에 보로전군이 왕이 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승만부인이 보량이 아들을 낳자 질투하여 사가로 물러나 살다 양도와 결혼합니다.
    바람기가 많은 진평왕 후궁은 태양공주(진평왕 고모 ㅡㅡ;;)
    진평왕의 아들인 태원과 호원을 낳았지만 태양공주의 바람기 때문에 진평왕의 자식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호원의 후손인 진공과 신공이 반란(흠돌의 난)에 가담하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김서현의 딸인 문명왕후가 문무왕을 낳아서 유신파의 승리였지만 나중에 흠돌의 난으로
    유신의 가야파계열이 몰락하는 계기를 갖고 옵니다.
    참고로 흠돌은 유신과 문명왕후의 조카입니다.
    신라 왕계는 진지왕계인 무열계가 왕비계열은 진골정통이 승리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3 1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량은 바람기도 있었지요. 태양도 마찬가지 이지만, 다분히 승만이 보량과 태양을 축출하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지만요..
      지조라고 합니다..지소라고도 하공.. 대부분 지조부인이라고 표현하지요.. 지소태후(진흥모후)와 헛갈리지 않도록..

    • BlogIcon 갓쉰동 2009.09.23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른 글도 봐주실레요..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뎅.. 역사카테고리의 글입니다... ^___^

      님이 지적하신 글에 많이 공감을 하는 글들을 발견하시게 될겁니당..

  5. 어이없음 2009.09.23 1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삽질을 하시지요~

  6. BlogIcon 보안세상 2009.09.23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을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바쁘다 보니까 보지 못하고 있네요

    맨날 다음 뷰에올라온 포스팅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랠 뿐 ㅠ

  7. 상록수 2009.09.23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족보를 볼 때마다 머리 아프지만...ㅋㅋ
    갓쉰동님 글은 언제나 흥미진진 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8. 2009.09.23 1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3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들켜버렸다. 글을 블로그 에디터에서 바로 그냥 막씁니당.. ㅠ.ㅠ.
      대화를 하듯 쓰다보니 그런 면이 있다고 봅니당..

      습관화 되어서 고치기가 힘드네용.. 한마디로 채팅하듯 글을 쓰거든요..

      충분히 지적가능한 내용이지요.. ^____^

  9. ahnkbae 2009.09.23 16: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휴~~뭘 머리 아프게 그런 걸 따지면서 보나요? 재미없게스리~~어차피 드라마 각본은 역사적으로 딱 맞지 않는 부분인데....드라마는 단지 드라마로써 즐기면서 보자구요....

  10. 노재운 2009.09.23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의 구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많이 유익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11. BlogIcon skagns 2009.09.23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언제봐도 복잡한 가계도입니다. ㅋㅋㅋ

  12. BlogIcon 감자꿈 2009.09.23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 님 덕분에 역사 공부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늘 감사드려요. *^^*

  13. 2009.09.23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4. 갓쉰동님 광팬 2009.09.23 2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 말씀대로 진정한 승자는 김서현의 가문이네요. 그나저나 선덕여왕 요즘 재미가 떨어져 간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히려 덕만이 공주가 되기 전이 재미나고 다음주가 궁금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띄엄띄엄 봅니다. 흡입력 부족한 덕만공주를 보면 배우가 잘못인지 극본이 잘못인지 헷갈리지만(제가 보기엔 둘 다...) 들마 보면 점점 삼천포로 빠지는 기분이 들어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24 0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고려의 최종승자는 신라계이듯이..

      저는 잼있던뎅.. 재미 없어 하는 분들이 좀 늘어나긴 하나봐용.. 늘어진다공.. ㅋㅋ

    • nightbird 2009.09.24 0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요원이 너무 흡입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참 매가리없이 한다는 느낌...
      주인공 매력이 없으니 조연들로 버티는 형세랄까.
      늘 아쉬운 부분이지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24 0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점차 중심을 잡아가고 있는것 같던데용.. 선덕여왕은 덕만의 성장드라마잖아요.. 그러니 성장하는 과정으로 봅니당.. 유신동.. 미실같은 경우는 이미 성장이 끝나고 쇠퇴기 정도..

  15. 누리 2009.09.24 0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재밌게 공부를 하고 갑니다~^^
    선덕여왕을 보면서 가끔 이해되지가 않는 것들이 있는데...
    갓쉰동님 덕분에 알게돼네요~ㅎㅎ
    갓쉰동님의 노고에 감동(?)하여 추천을 꾹 누르고 갑니다~

  16. joomin11 2009.09.24 0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내용은 사학을 전공하거나 역사에 관심이 많으면 알수 있는 내용입니다.드라마 내용에대한 이해도를위한 글은 좋지만 물론 필사본 화랑세기가 정교한 면이 없지않아있지요. 그러나 단순히 김유신 가문의 이야기만 가지고는 진위를 논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부 기존의 기록들을 뛰어넘는 내용이 있지만 그에 반해 화랑들에 대한 일부 기록에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적절히 조합한 듯한 내용도 많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문제는 박창화씨가 고대사가 펌훼되던 일제시기에 지어졌다는 점과 일부 내용에서 근대적 어투가 발견되는 점등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학과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요즘 서울대를 비롯한 일부 학계에 뉴라이트를 비롯한 이단학계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님같은 분들이 지식을 얻는 대부분의 내용들은 신뢰못하는 사학자들의 연구자료랍니다. 그리고 역사를 전공한 자와 재야고수간의 기본적인 지식의 깊이는 차이가 없지만 심층적인 부분에서는 원전을 더 많이 접하고 역사만을 연구한 사학자들을 무시할수는 없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언제 기회가 되신다면 성균관대 동아시아 학술원이나 고대 동북아 문제연구소에 방문해 주시지요.
    님과같은 재야 고수들과의 역사를 위한 토른을 한번 하고싶어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
    이번내용은 내용의 질면에서 충분히 연구하고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서 ㅊㅊ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4 0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사학을 전공하거나 역사에 관심이 많으면 알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신뢰하지 않는다고 무시한다고 생각하지 마셈..

      그러니 신뢰하지 못하는 사학자들이 연구자료이기 때문에 무시했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제가 아마도 화랑세기에 대한 언급은 제글 수십군데에 하고 있을 겁니다.. 물론, 님처럼 화랑세기 너무 정교해서 의심스럽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전대(704년즈음)기록이 후대의 기록을 믹스한듯한 모양은 선후관계가 뒤바뀌었다고 보거든요..

      드라마 원작자에 향한 비판은 자신의 사료로 인정한 <화랑세기>조차도 비틀어 버린점입니다.

      퓨전환타지 사극이라고 말을 하면 그건 정말 원작자를 무시하는 발언 같은데요.. 스스로 신라를 알려주겠다는 사람들 보고, 니들은 극이나 만들어 돈이나 벌어라 한다면.. 욕이지요..

      저는 상대가 주장하는 바에 맞추어 비판할 따름입니다.. 제가 화랑세기를 인용한것도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인용하고 있기때문에 화랑세기를 인용해서 사료비판을 하는 거지요.. 만약,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았다면, 선덕여왕에 관한 글에서 저는 화랑세기 인용을 한 줄도 안했을 겁니다.

      학문이 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거지요.. 믿어주어야 하지요? 믿느나면 그냥 수용하면 될텐데 말이지요.. 전공자 믿음이 안가요.. 기존에 내 놓은 연구자료들을 보면.. 이렇게 말하면 모든 연구자를 폄훼하는 것 처럼 보이시겠지만, 이는 오독입니다. 잘못된 사항을 지적하면 전체를 지적한 것 처럼 보이겠지만, 잘못된 부분만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확대해석을 금물입니다...

      님의 신뢰못하는 사학자들의 연구자료라는 말씀에.. 좀 그랫거든요.. 신뢰를 하지 않으니 인용이나 언급도 말라는 뜻처럼 말입니다.

      암튼 이번 내용은 질적으로 연구해볼 대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허접글인데요..
      언제나 기회가 되겠지요.. 재야고수는 넘치고 넘치지요.. 저같은게 무슨 재야고수축에나 끼겠씁니까? 정말 그렇다면 재야고수들 다 죽어야 할겁니당. ㅋㅋ..그저 관심정도 밖에 없습니당..

  17. joomin11 2009.09.24 0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선덕여왕의 경우 태왕사신기 보다는 약간 덜한 퓨전사극정도라고 생각하고 보면 괜찮을 듯 합니다.
    사실 화랑세기가 진위가 가려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인용했다는 것 자체가 사기죠.

  18. joomin11 2009.09.24 0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살 역사드라마의 절반 정도는 재미를 위해 역사를 장난감삼아 갖고노는 것에 불과하죠. 약간 덜한 천추태후부터 봐주기힘든 자명고 선덕여왕까지 사실 저도 배우만아니면 선덕여왕 보지않습니다.
    그리고 님의 글들 중 대부분의 글에는 공감을 표합니다. 그러나 가끔 자만하시는 부분이 있으시더군요.
    대한민국에 역사를 제대로아는 사람은 1%도 되지않는다 등의 내용의 글들 말입니다.
    물론 님이 역사전공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역사에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하시고 비판하시는 자세는 좋지만 사실 님처럼 블로그에 대놓고 지식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역사적 안목이 뛰어나고 지식이 풍부하신 분들도 많고 나아가 역사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답니다. 앞으로는 글쓰실때 조금 겸손하셨으면 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4 0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주민님..역사로 밥을 빌어먹는 사람도 많은 것은 알고 있어요.. 전공도 작가 영역이 있는 겁니당..
      1%도 되지 않는다고 하면,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가요? 꼭 역사를 50%이상 알필요도 없어용.. 바쁜뎅.. 1%도 모르는게 정상입니다.. 그래야 역사로 밥을 빌어먹는 직종도 생기지 않겠어요? 남들 다아느네 그런 직업을 선택한다는건 문제가 심각하지요.. 다른 직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저의 지식을 들어냈다고 보지 않습니다. 밑에 글에도 언급했지만,.. 충분히 겸손하다고 생각하는데 님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봅니당.

      님 제글 몇개나 봤는지 궁금해요.. 정말로...

  19. rrrr 2009.09.28 1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분 나쁘네요. 덕만은 왕이 되어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후사를 잇지 못했다. 그러니 절반의 성공에도 미치지 못한다.

    라뇨? 선덕여왕 무시합니까?

    • BlogIcon 갓쉰동 2009.09.28 1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 기분이 나쁘셈.. 사실을 말함 기분이 나쁨니까.. 미완성을 미완성이라고 하지,, 그럼 성공했다고 할까요?

  20. 별별별별 2009.10.07 2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읽고 있는 박순교님이 지으신 김춘추 외교의 승부사 이 책에는 고타소가 문희의 딸로 나와있습니다.옛날에 불에 기울고 무너질 뻔한 아이' 라는 뜻으로 고타소(古陀炤) 이렇게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08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만약, 문희는 고타소의 어미가 될수 없지용.. 연령대가 잘 맞지 않음..
      문희와 춘추는 627년에 만나서 이즘에 법민을 낳고, 629년에 인문을 낳습니당.. 고타소는 그렇다면 630년생이후가 되어야 한다는 뜻인뎅..

      그렇게 되면 고타소는 644년에 15살이됩니당.. 물론, 고타소가 품석에게 이때 갈수도 있지만, 문제는 품석의 직위가 성주급인뎅 3~4등위에 해당합니다. 이정도 될려면 적어도 40대가 되어야 합니당. 물론, 유신의 사례가 있으니 꼭 안된다고 생각할수는 없겠지만요..

  21.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드라마 선덕여왕 36회에서는 크게 몇가지 이야기를 동시 다발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티아라의 큐리(이지현)이 드라마 선덕여왕의 김유신(엄태웅)의 첫번째 부인인 영모 배역에 낙점이 되었군요.

첫째. 춘추의 세상 속이기

춘추는 미생이 하자는 대로 모든 것을 다한다. 미생은 춘추를 데리고 유곽에서 나아가 춘추의 여자 보는 눈을 실험한다. 신라판 미인 선발대회이다. 이는 춘추 한 개인을 위한 미인대회이다. 미생은 보종을 통해서 춘추가 보량(박은빈)을 좋아하다는 이야기를 미실에 전한다. 이에 우리의 찌질남 하종은 왜 자신의 딸들에게도 아름다운 미인들이 많은데 왜? 하필 보량이냐고 푸념을 한다. 하지만, 춘추는 도박장에서 비담을 만나서 눈인사를 하는 과정에 이미 미생의 술수를 다 알고 있다고 시청자에게 알려준다.

여기서 하종의 찌질거림은 미실의 속내가 있다는 암시와도 같다. 영모(큐리:이지현)와 유신을 짝으로 만들어 주려는 고도의 술책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종의 입을 통해서 <영모>가 미인임을 암시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영모(이지현)>와 <보라>, <보량>이 얼마나 어여쁜 신인(?) 연기자가 출연하는지 보는것도 재미가 있지 않을까? 여성시청자를 위해서 10화랑, 알천(이승효), 비담(김남길), 김춘추(유승호)를 비밀 병기로 발탁했다면, 남성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해줄 뉴페이스도 필요할 때이지 않을까 한다.

미실은 미생이 춘추는 <보량(박은빈)> 타입이라고 말을 보종의 보고를 받는다. 미실은  "미생이 그렇다면 그런것이다"라고 말을 한다. 미생은 카사노바도 울고갈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실은 미생의 여자를 보는 눈은 정확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춘추의 여자보는 눈을 탓하는 것이다. 이는 시청자에게 조금의 함정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다. 춘추는 미생의 눈을 속이고, 미실의 눈도 속일 정도로 심계가 깊다는 뜻을 내비치는 것이다.

보량은 보종과 양명공주 사이에 태어난다. 양명은 진평과 보명사이에 태어난다.


보량(보종/양명)은 할머니 미실처럼 바람끼가 농후하다. 또한, 진평왕의 후비로 왕자 <보로>을 낳는다. 하지만, 보로는 승만후의 방해와 보량의 바람끼가 합해져 보로는 왕이되지 못한다. 실제로 미실이 신라 왕실을 접수하려 했다면 자신의 증손인 보로(진평/보량)를 통해서 했을 것이다.


물론, 춘추는 보종의 딸과 결혼을 한다. 하지만 <보량>이 아닌 <보라(보종/양명)>와 결혼을 한다.  보라는 춘추와 결혼하여 고타소를 낳는다, 고타소는 남편과 함께 642년 대야주에서 백제군에 의해서 죽는다. 김유신과 다르게 춘추가 백제를 삶킬 궁리를 한것은 자신의 여식의 복수심에 의해서다. 김유신은 이런 춘추를 꼬드겨 <삼한일통>의 대업을 이루고저 한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춘추는 왜? 왜(일본)에 갔을까?" 라는 주제로 송고할 예정이다.

둘째. 유신으로 인한 비담과 문노의 갈등

문노는 자신이 꿈꾸고자 한 꿈을 이뤄줄 사람은 유신으로 낙점을 한다. 그리고, 왕은 덕만이 되어야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운명론에 사로 잡힌다. 그래서 비담이 아닌 <삼한비기>를 유신에 넘겨주려고 한다. 이에 비담은 낙담을 하고, 문노와 헤어질 결심을  굳힌다.


셋째. 유신과 덕만의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

유신은 덕만에게 왕으로서 가야할 길을 가도록 한다. 또한, 그게 덕만이 하고자한 꿈을 이루는 길이라고 한다.

넷째. 유신의 미실에 대한 투항

미실은 유신에게 가야의 복야회를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뜻에 따를 것인가를 종용한다. 
덕만도 유신에게 자신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설지를 선택할 것인가?를 물어본다.

하지만 우리의 에너자이저,
유신은 덕만에게 복야회의 단 한명도 희생시킬수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적국의 1만의 병사나 백성을 희생하더라도 내 백성은 하나라도 다치게 해서는 안되는게 군주의 도리"라고 한다.

이는 요즘의 세태를 정확히 비판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국민 하나가 다친다면, 백배 천배 보복을 감행한다. 자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짓이라도 하는게 국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은 어떠하냐?라는 반문이다. 각자 알아서 판단하시길 바란다.


어찌되었던, 유신은 마음은 덕만에 두고 몸은 미실에 무릎이라도 꿇는다. 이는 한나라 한신의 고사를 생각하면 쉬이 이해할 수 있다. 지금 비록 힘이 미약하지만, 때가 되면 일어서겠다는 생각이다.

미실은 유신을 얻기 위해서 풍월주 비재에 승리한 유신을 또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한다. 복야회의 일원이고, 신라내이 가야인들을 반란를 획책했다는 누명을 씌워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다. 이는 단순히 풍월주를 자신의 아들인 보종에 양보하도록 압박하려는 수단은 아니다. 유신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는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덕만과 유신의 사랑은? 신분의 제약일까? 아니면 나이차이일까?


덕만은 유신이 미실에 끌려갈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알고, 자신의 속내을 유신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유신은 공주는 공주의 길을 가야한다고 한다. 또한, 소화도 덕만에게 "어짜피 마음으로 밖에 못하세요"라며 공주로서의 삶이 있으니 감내하고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이야기를 한다.


소화의 단순한 발언속에는 이런 이야기가 함축하고 있다. 유신은 진골이고, 덕만 공주는 <성골>이니 <이루워 질수 없는 사랑>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성골은 무치인데, 진골이면 어떻고, 성골이면 어떠한가? 소화가 나이를 들어서 유신과 이루워질 수 없는 사랑이며, 바라만 봐도 좋은 사랑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미실을 찾아간 유신은 자신의 몸은 가질 수 있으나 마음을 가질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며, 유신은 "이제 세주 미실의 품으로 들어가겠다"한다. 그런데 미실은 "내가 조금만 젊었어도 너를 직접 내품에 안을텐데"라는 말을 한다. 이는 유신에 향한 말이 아니다. 유신 뒤를 쫓아온 덕만을 자극하기 위한 말이다. 이에 덕만은 사랑하는 유신이 자신의 곁을 떠나는데 여인으로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내가 가질수 없는 사랑은 남이 가져서도 않된다는 한마디로 질투이다.

또한, 미실의  "내가 젊었어도 직접 유신을 품에 안겠다"라는 말은 시청자를 향해서 하는 말이다. 나 미실은 "이런 여자야" 남자를 많이 다뤄본 여자야 그러니 알아서 해.. 라는 뜻이다.

어린 유신을 두고 두여인의 연기가 불꽃을 튀고 있다.

덕만 공주의 왕으로 가는 길과 유신이 가고자한 신하의 길은 넘을수 없는 멀고도 먼 사랑 같이 보인다. 그저 단순히 덕만이 유신을 사랑하는데 무슨 걸림돌이 있겠는가? 반문할 수도 있다. "신분의 벽이 무섭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들 덕만과 유신의 사랑이 신분의 격차 때문에 이뤄질수 없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덕만은 임술년생이다. 임술년은 602년이다. 595년 생인 유신이 덕만보다는 나이가 7살은 많다. 풍월주 비재가 있던 612년에는 덕만은 11살이 된다.

하지만, 드라마상에서는 곧죽어도 덕만이 천명과 같이 580년대 중반의 사람이다. 그러니 덕만이 유신보다는 10여살은 나이가 많은 설정이다. 그런데 드라마를 파고들면 천명과 덕만은 579년에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더한 것은..버려진 덕만이 소화의 손에 의해서 문노를 찾아간다. 이때 문노는 비담과 덕만의 사주를 살핀다. 비담과 덕만의 첫만남을 연출했던 장면이 있다. 이때, 비담은 건복원년(586년)생이라고 말을 하고, 어린 비담과 방금 태어난 덕만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덕만은 587~8년이 생이 된다.

요즘은 능력있는 여자들이 나이어린 남자를 애인이나 남편으로 삼는게 트랜드화 되었다. 물론, 예전에도 꼬마신랑은 있었다. 그러니 신세대의 복고풍 바람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한다. 

이처럼 드라마 <선덕여왕>은 덕만과 천명의 출생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럴때 "천명과 덕만이 언제 태어났다는 말이냐?"라고 반문해주는게 정상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을 보는 사람들중 드라마 스토리가 탄탄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들이 말한 드라마의 스토리의 탄탄함은 주인공이던 주변인들이던 SF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 같다. 선덕여왕을 보면서 많은 사람으로 부터 비판받는 엄태웅을 비롯해서 배우들의 연기에는 흡족하지만, 원작의 부실함에는 어찌 저런 기초도 안된 허접한 황당소설이 다 있을까 혀를 찬다.

어찌되었던, 오래전 미실은 아막성. 속함성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서현과 유신을 가야파로 부터 떼어 놓을 계락으로 <사다함의 매화>를 이용한다. 정확히는 사다함의 매화는 책력이 아니고 월천대사이다. 미실은 월천대사를 이용하여, 월식을 예측하고, <인력구(人力口)>의 파자로 가야(伽倻)파의 맹주인 서현을 미실 자신측으로 돌려 세우고, 하종의 딸인 영모와 결혼시켜려는 계략을 꾸몄다. 하지만, 천명의 죽음으로 실패하고 만다. 그러부터 몇년이 지난 풍월주 비재 후  실패한 영모와의 혼사를 다시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다.

영모(큐리)와 보량, 보라는 누구?


위의 가계도를 보시면 알겠지만, 미실이나 유신이나 설원랑이나 화랑의 시초인 1번째 풍월주 위화랑의 후손들이다.  또한, 설원랑의 후손중에는 원효와 설총도 보인다. 드라마에서는 찌질이 하종이 설원랑을 무시하듯 나오지만, 설원랑은 미모(설원랑/준모)를 하종에 시집보낸다.

그러니 설원랑은 하종의 장인이 된다. 사사로이 장인에게 <선덕여왕> 드라마처럼 막대한다면, 후레자식 취급 받을 것이다. 신라는 괜찮다고? 아무리 개족보처럼 막나가는 듯 보이지만, 신라도 사람사는 세상이다. 왕도 장인에게는 함부로 못한다.

어찌되었던, 미실은 왜 영모를 유신에게 시집을 가도록 강요를 하는 것일까? 단순히 정치적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까? 아니면 정말로 <영모>가 유신의 짝이라고 생각해서 일까?


삼국사기에 의하면 유신의 부인은 춘추의 딸이며, 자신의 누이의 문희(서현/만명)의 딸인 지조(춘추/문희)와 655년에 결혼을 한다. 그리고 유명한 원술을 낳는다. 그렇다면, 유신의 첫번째 부인은 지조일까?

여기서 유신의 나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신은 595년생이다. 지조와 결혼하는 때 61세 회갑이 된다. 춘추가 유신에게 단순히 회갑선물로 자신의 딸인 지조공주를 유신에게 주었을까? 또는 유신은 655년에 결혼한 때가 첫번째 결혼일까?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유신을 너무 모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유신의 첫사랑(?)인 천관녀를 잊지 못해서, 전쟁광으로 전장을 누빈것으로 생각한다면, 신라사회와 유신을 너무나 모른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천관녀가 영모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쓴이는 영모에서 천관녀의 냄새를 맡은 적이 많다.

어찌되었던, 삼국사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원술(유신/지조)말고도 몇명의 유신의 자식들이 등장한다. 물론, 지조와 결혼하기 전이다. 그러니 "유신은 지조와 첫번째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하지만, 통설은, 유신이 655년 첫번째 결혼하는 상대가 자신의 조카인 지조가 되고, 원술이 유신의 장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필사본 화랑세기는, "유신이 지조랑 첫번째 결혼했다고?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또한, 유신은 18세가 되던 즈음에 11세 풍월주 하종의 딸인 영모와 결혼한다.
유신의 자식들 중 <광>자 돌림를 사용하는 자식들은 <영모>의 소생이라고 말을 한다.  여기서도 현존하는 화랑세기 유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던, 또는, 단순히 지조의 자식이라고 생각한 <광>돌림 자식은 <영모>의 소생이고, <원>자 돌림은 <지조>의 소생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 그래서 현존하는 화랑세기를 무시할 수 없다. 또다른, 일단은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위작이라고 말을 하지만, 위작을 주장하는 사람들 조차도 <필사본> 화랑세기의 정교함에는 두손 두발을 다 들어 버렸다. 

현존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역사>소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박창화는 1930년대에 이미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던, 김유신의 첫번째 부인과 그들의 후손을 정확히 구분해서 소설을 쓰고 있다. 지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는 빈틈을 찾아보기 힘들정도의 <역사소설>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은 곳곳에 치명적인 오류가 보인다. 지금까지 36회를 진행하는 동안, 발견된 오류만 100여개는 넘을 것이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오류 리스트를 작성할 것이다.

진정한 승리자는 미실? 서현? 설원랑?

위의 계보도를 보면 보종의 첫번째 부인이 현강이다. 현강은 문노와 윤중(거칠부/?)의 자식이다. 그러니 보종의 장인이 문노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은 두번에 걸쳐 영모와의 혼사를 성사시키려 노력한다. 만약, 미실이 유신을 자신의 집안사람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면 미실은 신라를 접수 할 수 있을까? 사실 드라마 선덕여왕은 <덕만>을 주인공으로 신라의 왕이 되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미실 집안이 어떻게 신라의 왕가를 접수해 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듯 하다.

하지만,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영모를 유신에 소개 시켜준 측은 미실이 아니다. 이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9/22 - [역사이야기] -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하는 미실의 비밀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당연히, 가시기 전에 추천하는 것을 잊지 마시라. 시청률이 배우에게 연기하는 힘이 되지만, 글쓴이에게는 추천이 힘이 된다.)

실제로, 덕만은 왕이 되어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후사를 잇지 못했다. 그러니 절반의 성공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실은 자신의 후손들이 부터 신라를 접수하는데 성공 한다. 사실은 부계로 따진다면 보종, 하종의 승리이고, 보종 아버지인 설원랑의 인간승리이다.


하지만, 진정한 승리자는 김서현 가문이다. 김서현의 딸인 문희는 춘추와 결혼해서 문무를 낳고, 춘추/문희의 후손들이 대대로 신라의 왕이 된다. 물론, 가끔 삐딱선을 타는 왕이 나오기는 하지만 말이다.

 
배우에겐 시청율이, 글쓴이에게는 추천이 힘이 됩니다. 비로그인 추천가능 숫자크릭 ^__^;;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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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나가던 객 2009.09.23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선덕여왕 닥본사 중인데 갓쉰동님 글 넘 잼있게 보고갑니다. 선덕여왕보다 더 잼있네요~.^^

  3. 바씨 2009.09.23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잘봤습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계보도로 정확하게 파악하게 되어어요.
    좋은 하루 되세요.~

  4. 신버미 2009.09.23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었습니다.
    아 그리고 유신과 결혼하는 춘추의 딸의 이름은 지소입니다.
    그리고 보량궁주가 바람기 때문에 보로전군이 왕이 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승만부인이 보량이 아들을 낳자 질투하여 사가로 물러나 살다 양도와 결혼합니다.
    바람기가 많은 진평왕 후궁은 태양공주(진평왕 고모 ㅡㅡ;;)
    진평왕의 아들인 태원과 호원을 낳았지만 태양공주의 바람기 때문에 진평왕의 자식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호원의 후손인 진공과 신공이 반란(흠돌의 난)에 가담하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김서현의 딸인 문명왕후가 문무왕을 낳아서 유신파의 승리였지만 나중에 흠돌의 난으로
    유신의 가야파계열이 몰락하는 계기를 갖고 옵니다.
    참고로 흠돌은 유신과 문명왕후의 조카입니다.
    신라 왕계는 진지왕계인 무열계가 왕비계열은 진골정통이 승리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3 1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량은 바람기도 있었지요. 태양도 마찬가지 이지만, 다분히 승만이 보량과 태양을 축출하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지만요..
      지조라고 합니다..지소라고도 하공.. 대부분 지조부인이라고 표현하지요.. 지소태후(진흥모후)와 헛갈리지 않도록..

    • BlogIcon 갓쉰동 2009.09.23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른 글도 봐주실레요..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뎅.. 역사카테고리의 글입니다... ^___^

      님이 지적하신 글에 많이 공감을 하는 글들을 발견하시게 될겁니당..

  5. 어이없음 2009.09.23 1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삽질을 하시지요~

  6. BlogIcon 보안세상 2009.09.23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을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바쁘다 보니까 보지 못하고 있네요

    맨날 다음 뷰에올라온 포스팅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랠 뿐 ㅠ

  7. 상록수 2009.09.23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족보를 볼 때마다 머리 아프지만...ㅋㅋ
    갓쉰동님 글은 언제나 흥미진진 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8. 2009.09.23 1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3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들켜버렸다. 글을 블로그 에디터에서 바로 그냥 막씁니당.. ㅠ.ㅠ.
      대화를 하듯 쓰다보니 그런 면이 있다고 봅니당..

      습관화 되어서 고치기가 힘드네용.. 한마디로 채팅하듯 글을 쓰거든요..

      충분히 지적가능한 내용이지요.. ^____^

  9. ahnkbae 2009.09.23 16: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휴~~뭘 머리 아프게 그런 걸 따지면서 보나요? 재미없게스리~~어차피 드라마 각본은 역사적으로 딱 맞지 않는 부분인데....드라마는 단지 드라마로써 즐기면서 보자구요....

  10. 노재운 2009.09.23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의 구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많이 유익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11. BlogIcon skagns 2009.09.23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언제봐도 복잡한 가계도입니다. ㅋㅋㅋ

  12. BlogIcon 감자꿈 2009.09.23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 님 덕분에 역사 공부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늘 감사드려요. *^^*

  13. 2009.09.23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4. 갓쉰동님 광팬 2009.09.23 2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 말씀대로 진정한 승자는 김서현의 가문이네요. 그나저나 선덕여왕 요즘 재미가 떨어져 간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히려 덕만이 공주가 되기 전이 재미나고 다음주가 궁금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띄엄띄엄 봅니다. 흡입력 부족한 덕만공주를 보면 배우가 잘못인지 극본이 잘못인지 헷갈리지만(제가 보기엔 둘 다...) 들마 보면 점점 삼천포로 빠지는 기분이 들어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24 0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고려의 최종승자는 신라계이듯이..

      저는 잼있던뎅.. 재미 없어 하는 분들이 좀 늘어나긴 하나봐용.. 늘어진다공.. ㅋㅋ

    • nightbird 2009.09.24 0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요원이 너무 흡입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참 매가리없이 한다는 느낌...
      주인공 매력이 없으니 조연들로 버티는 형세랄까.
      늘 아쉬운 부분이지요...

    • BlogIcon 갓쉰동 2009.09.24 0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점차 중심을 잡아가고 있는것 같던데용.. 선덕여왕은 덕만의 성장드라마잖아요.. 그러니 성장하는 과정으로 봅니당.. 유신동.. 미실같은 경우는 이미 성장이 끝나고 쇠퇴기 정도..

  15. 누리 2009.09.24 0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재밌게 공부를 하고 갑니다~^^
    선덕여왕을 보면서 가끔 이해되지가 않는 것들이 있는데...
    갓쉰동님 덕분에 알게돼네요~ㅎㅎ
    갓쉰동님의 노고에 감동(?)하여 추천을 꾹 누르고 갑니다~

  16. joomin11 2009.09.24 0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내용은 사학을 전공하거나 역사에 관심이 많으면 알수 있는 내용입니다.드라마 내용에대한 이해도를위한 글은 좋지만 물론 필사본 화랑세기가 정교한 면이 없지않아있지요. 그러나 단순히 김유신 가문의 이야기만 가지고는 진위를 논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부 기존의 기록들을 뛰어넘는 내용이 있지만 그에 반해 화랑들에 대한 일부 기록에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적절히 조합한 듯한 내용도 많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문제는 박창화씨가 고대사가 펌훼되던 일제시기에 지어졌다는 점과 일부 내용에서 근대적 어투가 발견되는 점등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학과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요즘 서울대를 비롯한 일부 학계에 뉴라이트를 비롯한 이단학계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님같은 분들이 지식을 얻는 대부분의 내용들은 신뢰못하는 사학자들의 연구자료랍니다. 그리고 역사를 전공한 자와 재야고수간의 기본적인 지식의 깊이는 차이가 없지만 심층적인 부분에서는 원전을 더 많이 접하고 역사만을 연구한 사학자들을 무시할수는 없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언제 기회가 되신다면 성균관대 동아시아 학술원이나 고대 동북아 문제연구소에 방문해 주시지요.
    님과같은 재야 고수들과의 역사를 위한 토른을 한번 하고싶어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
    이번내용은 내용의 질면에서 충분히 연구하고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서 ㅊㅊ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4 0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사학을 전공하거나 역사에 관심이 많으면 알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신뢰하지 않는다고 무시한다고 생각하지 마셈..

      그러니 신뢰하지 못하는 사학자들이 연구자료이기 때문에 무시했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제가 아마도 화랑세기에 대한 언급은 제글 수십군데에 하고 있을 겁니다.. 물론, 님처럼 화랑세기 너무 정교해서 의심스럽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전대(704년즈음)기록이 후대의 기록을 믹스한듯한 모양은 선후관계가 뒤바뀌었다고 보거든요..

      드라마 원작자에 향한 비판은 자신의 사료로 인정한 <화랑세기>조차도 비틀어 버린점입니다.

      퓨전환타지 사극이라고 말을 하면 그건 정말 원작자를 무시하는 발언 같은데요.. 스스로 신라를 알려주겠다는 사람들 보고, 니들은 극이나 만들어 돈이나 벌어라 한다면.. 욕이지요..

      저는 상대가 주장하는 바에 맞추어 비판할 따름입니다.. 제가 화랑세기를 인용한것도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인용하고 있기때문에 화랑세기를 인용해서 사료비판을 하는 거지요.. 만약,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았다면, 선덕여왕에 관한 글에서 저는 화랑세기 인용을 한 줄도 안했을 겁니다.

      학문이 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거지요.. 믿어주어야 하지요? 믿느나면 그냥 수용하면 될텐데 말이지요.. 전공자 믿음이 안가요.. 기존에 내 놓은 연구자료들을 보면.. 이렇게 말하면 모든 연구자를 폄훼하는 것 처럼 보이시겠지만, 이는 오독입니다. 잘못된 사항을 지적하면 전체를 지적한 것 처럼 보이겠지만, 잘못된 부분만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확대해석을 금물입니다...

      님의 신뢰못하는 사학자들의 연구자료라는 말씀에.. 좀 그랫거든요.. 신뢰를 하지 않으니 인용이나 언급도 말라는 뜻처럼 말입니다.

      암튼 이번 내용은 질적으로 연구해볼 대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허접글인데요..
      언제나 기회가 되겠지요.. 재야고수는 넘치고 넘치지요.. 저같은게 무슨 재야고수축에나 끼겠씁니까? 정말 그렇다면 재야고수들 다 죽어야 할겁니당. ㅋㅋ..그저 관심정도 밖에 없습니당..

  17. joomin11 2009.09.24 0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선덕여왕의 경우 태왕사신기 보다는 약간 덜한 퓨전사극정도라고 생각하고 보면 괜찮을 듯 합니다.
    사실 화랑세기가 진위가 가려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인용했다는 것 자체가 사기죠.

  18. joomin11 2009.09.24 0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살 역사드라마의 절반 정도는 재미를 위해 역사를 장난감삼아 갖고노는 것에 불과하죠. 약간 덜한 천추태후부터 봐주기힘든 자명고 선덕여왕까지 사실 저도 배우만아니면 선덕여왕 보지않습니다.
    그리고 님의 글들 중 대부분의 글에는 공감을 표합니다. 그러나 가끔 자만하시는 부분이 있으시더군요.
    대한민국에 역사를 제대로아는 사람은 1%도 되지않는다 등의 내용의 글들 말입니다.
    물론 님이 역사전공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역사에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하시고 비판하시는 자세는 좋지만 사실 님처럼 블로그에 대놓고 지식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역사적 안목이 뛰어나고 지식이 풍부하신 분들도 많고 나아가 역사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답니다. 앞으로는 글쓰실때 조금 겸손하셨으면 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9.24 0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주민님..역사로 밥을 빌어먹는 사람도 많은 것은 알고 있어요.. 전공도 작가 영역이 있는 겁니당..
      1%도 되지 않는다고 하면,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가요? 꼭 역사를 50%이상 알필요도 없어용.. 바쁜뎅.. 1%도 모르는게 정상입니다.. 그래야 역사로 밥을 빌어먹는 직종도 생기지 않겠어요? 남들 다아느네 그런 직업을 선택한다는건 문제가 심각하지요.. 다른 직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저의 지식을 들어냈다고 보지 않습니다. 밑에 글에도 언급했지만,.. 충분히 겸손하다고 생각하는데 님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봅니당.

      님 제글 몇개나 봤는지 궁금해요.. 정말로...

  19. rrrr 2009.09.28 1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분 나쁘네요. 덕만은 왕이 되어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후사를 잇지 못했다. 그러니 절반의 성공에도 미치지 못한다.

    라뇨? 선덕여왕 무시합니까?

    • BlogIcon 갓쉰동 2009.09.28 1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 기분이 나쁘셈.. 사실을 말함 기분이 나쁨니까.. 미완성을 미완성이라고 하지,, 그럼 성공했다고 할까요?

  20. 별별별별 2009.10.07 2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읽고 있는 박순교님이 지으신 김춘추 외교의 승부사 이 책에는 고타소가 문희의 딸로 나와있습니다.옛날에 불에 기울고 무너질 뻔한 아이' 라는 뜻으로 고타소(古陀炤) 이렇게요.

    • BlogIcon 갓쉰동 2009.10.08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만약, 문희는 고타소의 어미가 될수 없지용.. 연령대가 잘 맞지 않음..
      문희와 춘추는 627년에 만나서 이즘에 법민을 낳고, 629년에 인문을 낳습니당.. 고타소는 그렇다면 630년생이후가 되어야 한다는 뜻인뎅..

      그렇게 되면 고타소는 644년에 15살이됩니당.. 물론, 고타소가 품석에게 이때 갈수도 있지만, 문제는 품석의 직위가 성주급인뎅 3~4등위에 해당합니다. 이정도 될려면 적어도 40대가 되어야 합니당. 물론, 유신의 사례가 있으니 꼭 안된다고 생각할수는 없겠지만요..

  21.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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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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