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드라마 선덕여왕이 일식과 월식에 집착하는 이유?

미실은 월천에게 "일식이 있겠습니까?" 묻는다. 하지만 월천은 "세주께 괜한 말을 했다"고 한다. 이는 일식을 맞출 수 없다는 말이고, 덕만이 일식을 맞춘다는 뜻이기도 하다. 덕만이 사막에서 얻은 책력이 월천에 넘어가고 정확히 일식을 맞추는 것을 예비 된것 같다.

mbc 드라마 사극 선덕여왕 26회에서 덕만(이요원)은 미실(고현정)이 신라를 차지한 방법 그대로, 신라를 차지할것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월천이 필요하다. 월천은 천문학자이자, 법사이자, 의사이다.


2009년 8월초에 70년만에 개기일식이 있었다.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일식은 있었을까? 물론, 일식도 없었고, 월식도 없었다. 당시의 일식이 있던 시기를 뽑아 본다면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19년(572)에 사신을 북제(北齊)에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초하루 경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39년(592) 가을 7월 임신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국사기 본기 - 원성왕 3년(787) 봄 2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몸소 신궁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였다. 여름 5월에 금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가을 7월에 누리가 곡식을 해쳤다. 8월 초하루 신사에 일식이 있었다.

진평왕 시기(579~632년)에 일식은 없었다.

왜? 드라마 선덕여왕은 일식과 월식에 집착을 할까? 이유는 <첨성대>를 선덕여왕이 만들었다는 기록때문이다. 하지만, 첨성대를 한번이라도 본사람이라면, 첨성대가 하늘을 관찰하는데 상당히 불편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첨성대는 하늘을 관찰하는게 아닌, 하늘을 비추는 거울이며, 하늘과 통하는 연결 통로로 첨성대가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우물에서 비친 하늘을 본자라면, 첨성대의 용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어찌 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대명력은 월식을 예측하기 쉽고, 위나라의 정광력은 대명력에 비해서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일식을 예측하는데는 정광력이 좋다고 이야기를 한다.

덕만, 유신을 꼬시다
 

비둘기낭 동굴밖 폭포

덕만은 유신에 말한다. "내가 가려고 하는일은 패도이니까?"

패도에서 사람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죽는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유신에 대한 마음만 가지려고하니 유신과 같이 함께하지 못한다고 한다. 함께하면 유신을 장기판의 말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유신과 같이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림으로 보는 덕만의 숨은 장소인 비둘기낭의 동굴과 비경을 보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2012년이 지나면 저 비경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관련 기사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08/12 - [역사이야기] - 천명의 마지막 촬영지, 비둘기낭 동굴 수몰위기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덕만과 소화

덕만과 알천, 비담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월천 일행은 월야의 수중에 넘어가고, 소화는 월천을 지키던 화랑들에 의해서 등에 활을 맞고 쓰러진다. 이후 덕만의 일행이 사라진 월천을 뒤로 하고 화덕사에 도착한다. 여전히 소화(서영희)와 덕만의 만남은 아직 먼것 같다. 소화는 또 다시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에 의해서 살아날 것이다. 칠숙과 더불어 터미네이터 반열에 오른 소화가 되시겠다.  

천명과 덕만의 언니 선화? 천화?

진평은 덕만을 공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마야는 낳자 마자 죽은 3 아들과 쌍둥이 중 천명을 잃어버렸는데, 이제 하나 남은 덕만을 잃어 버리려 하냐고 진평에게 반문하면서 더이상 자식을 잃을 수 없으니 덕만을 지키겠다고 천명한다.

그런데 정말 진평과 마야 사이에는 천명과 덕만 쌍둥이 밖에 없었을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마야가 진평의 즉위년에 황후가 되었다면, 천명은 마야의 소생이 될 가능성이 없다. 그러니 마야가 천명과 덕만의 모후가 될려면 마야는 진평이 성인이 된후 얻은 비가 되어야 한다. 이에 관한 기사는 다음을 참조하길 바란다. 

2009/08/17 - [역사이야기] - 여성만 알 수 있는 선덕여왕의 비밀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천명과 덕만 말고도 이들 위로 언니의 존재가 나온다. 삼국유사에 나온 선화라고 생각한다면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 되시겠다. 화랑세기에서는 진평과 마야 사이에는 3명의 자매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첫째가 천화이고, 둘째가 천명이고, 셋째가 이들보다 나이 차이가 많은 덕만이다.
처음에 용수공은 천화공주(天花公主)를 아내로 맞았는데, 천명공주를 아내로 맞게 되자 천화공주를 (용춘)공에게 주었다. 아들을 낳았는데 일찍 죽었다. 선덕공주(善德公主)를 모시게 되자 제(帝)가 천화공주를 백룡공(白龍公)에게 내려주었다. 선덕공주가 즉위하자 (용춘)공을 지아비로 삼았는데, 공은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물러날 것을 청하였다.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603년)


선덕여왕에서는 천명이 용수의 첫번째 부인으로 나오지만, 천명보다 먼저 천화가 용수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천화는 진평왕의 명령에 의해서 백룡에게 시집을 간다. 처음 왕위를 천명이 뛰어난 자질을 보여서 용수로 하여금 천명과 함께 신라을 이끌도록 하였다. 이에 용수의 부인이였던 천화는 용춘에 시집을 가고, 용춘이 선덕을 모시자 진평이 천화를 백룡에게 시집을 가게 했다고 한다. 천화는 용수-> 용춘 -> 백룡에게 시집을 가지만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고 타의(진평)의 명령에 따라 시집을 가고 있다.

백룡은 삼국사기 본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에 보면, 629년 낭비성 전투에 참전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건복 46년 기축(진평왕 51년: 629) 가을 8월에 왕이 이찬(伊湌) 임말리(任末里), 파진찬(波珍湌) 용춘(龍春).·백룡(白龍), 소판(蘇判) 대인(大因)·서현(舒玄) 등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공격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 629년

백룡의 지위가 용춘과 같은 파진찬(4등위)이다. 삼국사기에 용춘은 대장군으로 나온다. 그러니 백룡도 대장군의 직위에 있었지 않을까 한다.

신라판 서동요, 법흥과 보과

삼국유사에는 천화대신에 선화가 진평의 3번째 딸로 등장한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선화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단지, 화랑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 원화 <남모>를 법흥왕과 백제 보과의 사이에서 난 여식으로 등장한다.
준정이 남모를 시기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만들어 정부인 위화랑을 1세 풍월주로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2세 풍월주가 미실과 미생의 아버지인 미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보과는 법흥왕이 국공(왕자가 아님) 시절에 백제에 왔다가 눈이 맞어, 백제를 버리고 신라로 법흥(원종)을 만나러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고 남모와 4세 풍월주 모랑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버리는 처자들이 많이 보인다. 신라의 여인들은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는 왕후의 자리도 버리고, 사랑하는 지아비를 따른다.

이와 관련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2009/07/09 - [역사이야기] - 화랑세기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도 있다. 를 참조하기 바란다.


영국의 에드워드 왕은 영국의 법에 의해서 과부와 결혼은 용납하지 않자, 왕의 지위를 버리고, 미국의 과부인 심슨부인과 결혼을 하여 왕위를 버린 세기의 결혼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신라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 난다. 시간이 허락하고 성원이 있다면 '사랑을 위해서 자신의 지위를 버린 여인들'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임술년 천명과 덕만이 쌍생으로 태어났다? 

 세종과 하종의 계락으로 "임술년에 황후가 쌍생을 낳았다가 하나의 쌍생을 버렸으니, 마야황후를 폐하라는 벽서(방)가 붙는다.

설화랑은 하종과 세종이 벽서를 붙힌 범인임을 미실의 눈을 보고 알아 차렸다고 이야기를 하며 세주의 통찰력은 진흥대제의 통찰력을 뛰어 넘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궁예의 관심법이 되겠다. "옴마니 반메음"

덕만과 천명이 임술년생이라고 하지만, 당시의 임술년은 덕만과 천명이 태어날 수 없다. 임술년은 진흥왕시기와 진평왕시기에 딱 2번 나온다. 

 542년 진흥왕 3년, 602년 진평왕 24년이다. 

이와 관련된 기사는 다음과 같다. 관심이 있는 분은 아래 기사를 참조 하시길 바란다.

천명과 덕만이 542년 임술년은 절대로 될 수가 없다. 이유는 천명과 덕만의 아비인 진평왕이 태어나기도 전이고, 진평왕의 할아버지인 진흥(심맥종)의 나이가 8살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602년 임술년이 될 수 있는가? 천명과 용수 사이에 낳았다는 춘추가 603년에 태어 난다. 그러니 천명은 2살때 춘추를 낳은 것이다. 기네스에 오른 기록이 5살이다. 그것도 자식이 아닌 쌍둥이 동생으로 의심하고 있다, 어머니가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쌍둥이중 하나가 어머니 뱃속에서 크지를 못하고 다른 쌍둥이의 몸속에서 기생(?)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대가야 복야세력 월야의 비밀

월야(주상욱)

그런데 복야회의 수장 월야는 대가야의 마지막왕인 월광태자의 적손이라고 한다. 월천의 이름도 '<월> 돌림자를 쓰는 것으로 봐서, 월천은 대가야의 왕족 출신인 것 같다.

8세 풍월주 문노는 대가야의 피를 이어 받았다, 또한, 문노가 풍월주에 오르게 된 이유도 가야파의 지원이 있었기 가능했다.

 복야회의 근거지는 삽량주에 있다고 한다. 유신은 자신의 가문에 주어진 압량주을 가야유민에게 주고, 복야회의 복속과 동맹을 바란다. 이유는 가야파를 등에 지고 덕만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함이다.


비담은 복야회의 포스트 말단 연락책을 잡는다, 그런데 포스트는 죽음으로 비밀을 지키려한다. 하지만 포스트의 품에서 암어(암호)가 적힌 편지를 발견한다. 하지만 비담은 술술 암어 내용을 이야기한다. 복야회의 암어(암호)를 아는 이유는 비담의 스승인 문노(비조/문화)의 외가가 대가야 출신이기 때문이다.

월광태자는 이뇌/비조부(호조/선혜후)의 누이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월광과 문노는 사촌간이 된다. 월광의 아들로 나온 월야는 문노의 조카가 되는 것이다. 

양화는 호조/선혜후의 딸이다. 이뇌와 양화의 딸은 월화공주이다. 월화공주는 진흥에 시집를 가서 천주를 낳는다. 천주는 지도태후(용수.용춘의 어머니)와 결혼하여 586년 17세 풍월주 염장을 낳는다. 이 염장이 덕만을 도와 칠숙의 난을 평정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문노는 561년 이사부와 사다함이 대가야를 정벌할때  문노 자신의 외가를 치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하여 참전을 하지 않았다. 이에 신라인들은 신의가 있다고 하여, 문노를 더욱 존경하였다고 전한다.


어찌되었던 복야회의 대빵의 이름이 월야인 이유가 월화->월광->월야,월천 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월천대사는 월광태자와 형제지간이 되는 건가?

단석산 김유신 바위와 유신의 도박

단석산 김유신바위

유신은 덕만으로 부터 너(유신)를 버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나열한다. 한마디로 나를 따르라는 덕만의 협박이다.


유신은 덕만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가야파를 지키고, 가문의 안위를 만을 생각할 것인가를 고심하면서, 열심히 바위를 치고 있다. 유신이 어릴때부터 바위치기를 한다 이유는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보검을 얻고,  칼로 바위가르기를 보여주기 위한 과정이였다. 그래서 언제나 바위가 갈라질까? 관심있게 지켜봤다. 치고 또치고도 갈라지지 않던 바위가 드디어 갈라졌다. 드디어 김유신 열전과 에 바위가 갈라지는 기적이 선덕여왕 26회에 이뤄진것이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에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이때 김유신의 나이가 17세인 것으로 나온다. 그러니

(c) 정진만 단석산 김유신 바위

595년생인 유신이 17세가 되는 해는 611년이 된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은 시간개념과 공간개념을 상실하고 있기때문에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김유신 바위는 단석산 정상에 있다. 산행을 하거나, 선덕여왕 촬영지 관광코스로 정해보는 것은 어떠할까?  


유신은 서현에게 가문과 가야세력의 모든것을 걸고, 도박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때 복야회 일원은 유신과 서현을 죽이려 한다. 이에 유신은 복야회 일원을 굴복시키고, 복야회의 수장을 만나려고  산채로 들어간다.

서현이 602년 아막성 전쟁에서 참전하여, 설원랑의 계락으로 위기에 처하고 , 부상을 입었을 때, 구원을 받은것은 하늘의 보살핌이 아니라 복야회 장군인 설지의 입을 통해서 복야회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유신은 가야의 유민이 12만이라고 한다. 도대체 어디서 나온 근거인지는 알 수 없다. 선덕여왕의 작가는 생각없이 말을 뱃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선덕여왕의 작가진만 알 수 있지 않을까?

유신은 덕만일행을 포위하고 있는 복야회에게 "내가 선택한 나의 왕이시다. 그러니 복야회 또한, 덕만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한다. 이로서 덕만은 미실과 대적할 수 있는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진부한 운명론

성골남진의 나머지 계시가 밝혀지고 있다. 미실이 무너지고, 덕만이 일어선다는 것이다. 곧 덕만이 왕이 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운명이 정해졌다는 인간의 운명론이 되시겠다. 덕만이 노력을 하던 하지 않던, 왕이 되는 운명인데, 왜 저 멀리 사막까지가게 만들었을까? 그것도 운명인가? 미실에 대적하는 것도 운명이고? 한마디로 '타고난 팔자가 있다'가 있다는 말인데, 소설이 너무 진부하지 않는가?


춘추(유승호)의 아버지에 대한 비밀을 알고 싶으세요? 그럼 이 기사를 일독 해보시길 
2009/08/20 - [역사이야기] - 괴물이 되어버린 춘추(유승호)의 아버지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여우비 2009.08.19 1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굳굳굳 지루하게 읽을 수도 있는 글을

    재밌게 쓰신것 같아요~!

    그냥 봤으면 역사 잘못 알뻔했네요 ...-_-;;;

    너무너무 잘 읽다가 가요~

  3. 능소화 2009.08.19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신라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4. 날아라 2009.08.19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일고 가니다. 앞으로도 계속 부탁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속 할려면 추천이 많아야 하는데.. 너무 추천을 하지 않는군요..

      추천이 없다는 말은 이런글은 쓰지 말라는 뜻이거든요.. ㅋㅋ

  5. BlogIcon haRu™ 2009.08.19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마지막에 운명론에 대한 비판... 아주 좋았습니다.
    제가 주로 사극을 안보는 이유와 같습니다. 특히 사극은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고는 주인공을 개고생 시키죠.
    뭐 이런식으로 재미가 없어질려고 할때 비담의 투입은 정말 극적이였죠. 지금 것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본 적없는 매력적인(그러나 일본 만화등에서는 많이 본...ㅡ,.ㅡㅋ)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다. 운명이런것 없이도 잘 만들텐뎅.. 뭔 원죄론을 받아 들여서 그런가. 너무 난무함...

  6. elly 2009.08.19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문노와 월광은 사촌지간이 아닙니다.
    촌수로 따지자면 조금 더 올라갑니다. :-)
    월광태자의 자손은 아무리 자료를 찾아봐도 자료가 없어요.
    대신 해인사를 처음 창건한 이 중 하나가 월광의 후손이라고 적혀있어서,
    그의 후손이 있다고 짐작만 할 따름입니다.
    월야라는 인물은 소설(혹은 극)을 위해 만든 가공의 인물입니다.
    대신 월광의 누이동생인 월화의 후손인 천주는 화랑세기에 나오는걸 보니 있었던 인물인것 같구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월광의 어미니가 비조부의 누이이고,
      문노의 아버지는 비조부/문화 잖아요.. 그러니 이들은 사촌간이 되지요..

      그냥 드라마가 월광의 적자라고 해서리.. 그렇다면 문노의 조카다 하는거지요.. ㅋ ㅋ 이왕 엮을라면 확실히 엮어라 머 이런 비판이였음..

      저는 월야보다는 천주/월화의 아들인 염장을 월야역으로 했다면 더 잼있지 않았을 까해요.. 머 언젠가는 염장도 덕만의 수중에 떨어지겠지만요..

      서현보다 더 비중이 있는 인물이 천주인뎅.. 기록도 별로 없으니 맘껏 작가의 상상력도 발휘할수 있구요..

      선덕여왕 원작 작가가 너무 공부를 안한 티가 나요.. ㅋㅋ

      인물설정을 할때 자료조사가 기본중에 기본인뎅..

    • BlogIcon elly 2009.08.19 2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ㅋㅋ
      전 문노의 모계, 월광의 부계로 계산을 하다보니
      엄청난 촌수가 나오더라구요. 이제 생각해보니
      이종사촌-외사촌격이 되네요. :-)

      전 우연히 당첨되서 선덕여왕 소설까지 다 읽었는데
      원작가가 공부 안한티가 정말로 많이 나더군요.
      인물 설정 조차도 대충 빌려온게 너무 많이 보여요.
      (선덕여왕이 처녀로 죽었다는 사실까지 포함해서..;;)

    • BlogIcon 갓쉰동 2009.08.20 0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처녀로 죽이는 군요.. 처녀에 대한 환상이라도 있나봅니당..

  7. 흐흐흐 2009.08.25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에 사소한 실수가 보이네요. 별거 아니지만 문맥상 약간의 혼동이 올 수 있어서...
    월야의 사진 옆 글 '가야파를 등지고'가 '가야파를 등에지고'죠???
    맞나요?

    • BlogIcon 이반의꿈 2009.08.25 1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도 읽힐수 있군요.. 저는 등지고를 등에지고로 생각하고 썼는뎅.. 바꿀까 말까 고민했었음. 지적을 하시니 바꿔야 겠네요.. ㅋㅋ

  8. BlogIcon 조용형 2012.01.01 0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팹, 훌륭한 문서입니다

  9. BlogIcon 원숭이 2012.01.07 0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10. BlogIcon 엘리 2012.04.04 0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어디로 데려가십니까?

  11. BlogIcon 헤일리 2012.04.06 0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2. BlogIcon 모건 2012.05.08 2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심 없습니다.

  13. BlogIcon 알렉 산드라 2012.05.11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먹었습니다.

  14.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5.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6. BlogIcon Pussy Porn 2012.07.14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17.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8.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for camping 2012.11.01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9.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indoors 2012.11.06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

  20. BlogIcon petsafe wireless dog fence 2012.12.22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이 중요한 주제에 도움이 필요 남녀를 지원하는 당신의 관대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21. BlogIcon 24 stove top 2013.01.02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일식은 있었을까? 물론, 일식도 없었고, 월식도 없었다. 당시의 일식이 있던 시기를 뽑아 본다면 다음과 같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일식과 월식에 집착하는 이유?

미실은 월천에게 "일식이 있겠습니까?" 묻는다. 하지만 월천은 "세주께 괜한 말을 했다"고 한다. 이는 일식을 맞출 수 없다는 말이고, 덕만이 일식을 맞춘다는 뜻이기도 하다. 덕만이 사막에서 얻은 책력이 월천에 넘어가고 정확히 일식을 맞추는 것을 예비 된것 같다.

mbc 드라마 사극 선덕여왕 26회에서 덕만(이요원)은 미실(고현정)이 신라를 차지한 방법 그대로, 신라를 차지할것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월천이 필요하다. 월천은 천문학자이자, 법사이자, 의사이다.


2009년 8월초에 70년만에 개기일식이 있었다.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일식은 있었을까? 물론, 일식도 없었고, 월식도 없었다. 당시의 일식이 있던 시기를 뽑아 본다면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19년(572)에 사신을 북제(北齊)에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초하루 경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39년(592) 가을 7월 임신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국사기 본기 - 원성왕 3년(787) 봄 2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몸소 신궁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였다. 여름 5월에 금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가을 7월에 누리가 곡식을 해쳤다. 8월 초하루 신사에 일식이 있었다.

진평왕 시기(579~632년)에 일식은 없었다.

왜? 드라마 선덕여왕은 일식과 월식에 집착을 할까? 이유는 <첨성대>를 선덕여왕이 만들었다는 기록때문이다. 하지만, 첨성대를 한번이라도 본사람이라면, 첨성대가 하늘을 관찰하는데 상당히 불편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첨성대는 하늘을 관찰하는게 아닌, 하늘을 비추는 거울이며, 하늘과 통하는 연결 통로로 첨성대가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우물에서 비친 하늘을 본자라면, 첨성대의 용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어찌 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대명력은 월식을 예측하기 쉽고, 위나라의 정광력은 대명력에 비해서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일식을 예측하는데는 정광력이 좋다고 이야기를 한다.

덕만, 유신을 꼬시다
 

비둘기낭 동굴밖 폭포

덕만은 유신에 말한다. "내가 가려고 하는일은 패도이니까?"

패도에서 사람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죽는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유신에 대한 마음만 가지려고하니 유신과 같이 함께하지 못한다고 한다. 함께하면 유신을 장기판의 말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유신과 같이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림으로 보는 덕만의 숨은 장소인 비둘기낭의 동굴과 비경을 보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2012년이 지나면 저 비경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관련 기사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08/12 - [역사이야기] - 천명의 마지막 촬영지, 비둘기낭 동굴 수몰위기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덕만과 소화

덕만과 알천, 비담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월천 일행은 월야의 수중에 넘어가고, 소화는 월천을 지키던 화랑들에 의해서 등에 활을 맞고 쓰러진다. 이후 덕만의 일행이 사라진 월천을 뒤로 하고 화덕사에 도착한다. 여전히 소화(서영희)와 덕만의 만남은 아직 먼것 같다. 소화는 또 다시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에 의해서 살아날 것이다. 칠숙과 더불어 터미네이터 반열에 오른 소화가 되시겠다.  

천명과 덕만의 언니 선화? 천화?

진평은 덕만을 공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마야는 낳자 마자 죽은 3 아들과 쌍둥이 중 천명을 잃어버렸는데, 이제 하나 남은 덕만을 잃어 버리려 하냐고 진평에게 반문하면서 더이상 자식을 잃을 수 없으니 덕만을 지키겠다고 천명한다.

그런데 정말 진평과 마야 사이에는 천명과 덕만 쌍둥이 밖에 없었을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마야가 진평의 즉위년에 황후가 되었다면, 천명은 마야의 소생이 될 가능성이 없다. 그러니 마야가 천명과 덕만의 모후가 될려면 마야는 진평이 성인이 된후 얻은 비가 되어야 한다. 이에 관한 기사는 다음을 참조하길 바란다. 

2009/08/17 - [역사이야기] - 여성만 알 수 있는 선덕여왕의 비밀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천명과 덕만 말고도 이들 위로 언니의 존재가 나온다. 삼국유사에 나온 선화라고 생각한다면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 되시겠다. 화랑세기에서는 진평과 마야 사이에는 3명의 자매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첫째가 천화이고, 둘째가 천명이고, 셋째가 이들보다 나이 차이가 많은 덕만이다.
처음에 용수공은 천화공주(天花公主)를 아내로 맞았는데, 천명공주를 아내로 맞게 되자 천화공주를 (용춘)공에게 주었다. 아들을 낳았는데 일찍 죽었다. 선덕공주(善德公主)를 모시게 되자 제(帝)가 천화공주를 백룡공(白龍公)에게 내려주었다. 선덕공주가 즉위하자 (용춘)공을 지아비로 삼았는데, 공은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물러날 것을 청하였다.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603년)


선덕여왕에서는 천명이 용수의 첫번째 부인으로 나오지만, 천명보다 먼저 천화가 용수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천화는 진평왕의 명령에 의해서 백룡에게 시집을 간다. 처음 왕위를 천명이 뛰어난 자질을 보여서 용수로 하여금 천명과 함께 신라을 이끌도록 하였다. 이에 용수의 부인이였던 천화는 용춘에 시집을 가고, 용춘이 선덕을 모시자 진평이 천화를 백룡에게 시집을 가게 했다고 한다. 천화는 용수-> 용춘 -> 백룡에게 시집을 가지만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고 타의(진평)의 명령에 따라 시집을 가고 있다.

백룡은 삼국사기 본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에 보면, 629년 낭비성 전투에 참전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건복 46년 기축(진평왕 51년: 629) 가을 8월에 왕이 이찬(伊湌) 임말리(任末里), 파진찬(波珍湌) 용춘(龍春).·백룡(白龍), 소판(蘇判) 대인(大因)·서현(舒玄) 등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공격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 629년

백룡의 지위가 용춘과 같은 파진찬(4등위)이다. 삼국사기에 용춘은 대장군으로 나온다. 그러니 백룡도 대장군의 직위에 있었지 않을까 한다.

신라판 서동요, 법흥과 보과

삼국유사에는 천화대신에 선화가 진평의 3번째 딸로 등장한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선화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단지, 화랑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 원화 <남모>를 법흥왕과 백제 보과의 사이에서 난 여식으로 등장한다.
준정이 남모를 시기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만들어 정부인 위화랑을 1세 풍월주로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2세 풍월주가 미실과 미생의 아버지인 미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보과는 법흥왕이 국공(왕자가 아님) 시절에 백제에 왔다가 눈이 맞어, 백제를 버리고 신라로 법흥(원종)을 만나러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고 남모와 4세 풍월주 모랑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버리는 처자들이 많이 보인다. 신라의 여인들은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는 왕후의 자리도 버리고, 사랑하는 지아비를 따른다.

이와 관련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2009/07/09 - [역사이야기] - 화랑세기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도 있다. 를 참조하기 바란다.


영국의 에드워드 왕은 영국의 법에 의해서 과부와 결혼은 용납하지 않자, 왕의 지위를 버리고, 미국의 과부인 심슨부인과 결혼을 하여 왕위를 버린 세기의 결혼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신라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 난다. 시간이 허락하고 성원이 있다면 '사랑을 위해서 자신의 지위를 버린 여인들'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임술년 천명과 덕만이 쌍생으로 태어났다? 

 세종과 하종의 계락으로 "임술년에 황후가 쌍생을 낳았다가 하나의 쌍생을 버렸으니, 마야황후를 폐하라는 벽서(방)가 붙는다.

설화랑은 하종과 세종이 벽서를 붙힌 범인임을 미실의 눈을 보고 알아 차렸다고 이야기를 하며 세주의 통찰력은 진흥대제의 통찰력을 뛰어 넘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궁예의 관심법이 되겠다. "옴마니 반메음"

덕만과 천명이 임술년생이라고 하지만, 당시의 임술년은 덕만과 천명이 태어날 수 없다. 임술년은 진흥왕시기와 진평왕시기에 딱 2번 나온다. 

 542년 진흥왕 3년, 602년 진평왕 24년이다. 

이와 관련된 기사는 다음과 같다. 관심이 있는 분은 아래 기사를 참조 하시길 바란다.

천명과 덕만이 542년 임술년은 절대로 될 수가 없다. 이유는 천명과 덕만의 아비인 진평왕이 태어나기도 전이고, 진평왕의 할아버지인 진흥(심맥종)의 나이가 8살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602년 임술년이 될 수 있는가? 천명과 용수 사이에 낳았다는 춘추가 603년에 태어 난다. 그러니 천명은 2살때 춘추를 낳은 것이다. 기네스에 오른 기록이 5살이다. 그것도 자식이 아닌 쌍둥이 동생으로 의심하고 있다, 어머니가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쌍둥이중 하나가 어머니 뱃속에서 크지를 못하고 다른 쌍둥이의 몸속에서 기생(?)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대가야 복야세력 월야의 비밀

월야(주상욱)

그런데 복야회의 수장 월야는 대가야의 마지막왕인 월광태자의 적손이라고 한다. 월천의 이름도 '<월> 돌림자를 쓰는 것으로 봐서, 월천은 대가야의 왕족 출신인 것 같다.

8세 풍월주 문노는 대가야의 피를 이어 받았다, 또한, 문노가 풍월주에 오르게 된 이유도 가야파의 지원이 있었기 가능했다.

 복야회의 근거지는 삽량주에 있다고 한다. 유신은 자신의 가문에 주어진 압량주을 가야유민에게 주고, 복야회의 복속과 동맹을 바란다. 이유는 가야파를 등에 지고 덕만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함이다.


비담은 복야회의 포스트 말단 연락책을 잡는다, 그런데 포스트는 죽음으로 비밀을 지키려한다. 하지만 포스트의 품에서 암어(암호)가 적힌 편지를 발견한다. 하지만 비담은 술술 암어 내용을 이야기한다. 복야회의 암어(암호)를 아는 이유는 비담의 스승인 문노(비조/문화)의 외가가 대가야 출신이기 때문이다.

월광태자는 이뇌/비조부(호조/선혜후)의 누이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월광과 문노는 사촌간이 된다. 월광의 아들로 나온 월야는 문노의 조카가 되는 것이다. 

양화는 호조/선혜후의 딸이다. 이뇌와 양화의 딸은 월화공주이다. 월화공주는 진흥에 시집를 가서 천주를 낳는다. 천주는 지도태후(용수.용춘의 어머니)와 결혼하여 586년 17세 풍월주 염장을 낳는다. 이 염장이 덕만을 도와 칠숙의 난을 평정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문노는 561년 이사부와 사다함이 대가야를 정벌할때  문노 자신의 외가를 치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하여 참전을 하지 않았다. 이에 신라인들은 신의가 있다고 하여, 문노를 더욱 존경하였다고 전한다.


어찌되었던 복야회의 대빵의 이름이 월야인 이유가 월화->월광->월야,월천 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월천대사는 월광태자와 형제지간이 되는 건가?

단석산 김유신 바위와 유신의 도박

단석산 김유신바위

유신은 덕만으로 부터 너(유신)를 버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나열한다. 한마디로 나를 따르라는 덕만의 협박이다.


유신은 덕만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가야파를 지키고, 가문의 안위를 만을 생각할 것인가를 고심하면서, 열심히 바위를 치고 있다. 유신이 어릴때부터 바위치기를 한다 이유는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보검을 얻고,  칼로 바위가르기를 보여주기 위한 과정이였다. 그래서 언제나 바위가 갈라질까? 관심있게 지켜봤다. 치고 또치고도 갈라지지 않던 바위가 드디어 갈라졌다. 드디어 김유신 열전과 에 바위가 갈라지는 기적이 선덕여왕 26회에 이뤄진것이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에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이때 김유신의 나이가 17세인 것으로 나온다. 그러니

(c) 정진만 단석산 김유신 바위

595년생인 유신이 17세가 되는 해는 611년이 된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은 시간개념과 공간개념을 상실하고 있기때문에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김유신 바위는 단석산 정상에 있다. 산행을 하거나, 선덕여왕 촬영지 관광코스로 정해보는 것은 어떠할까?  


유신은 서현에게 가문과 가야세력의 모든것을 걸고, 도박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때 복야회 일원은 유신과 서현을 죽이려 한다. 이에 유신은 복야회 일원을 굴복시키고, 복야회의 수장을 만나려고  산채로 들어간다.

서현이 602년 아막성 전쟁에서 참전하여, 설원랑의 계락으로 위기에 처하고 , 부상을 입었을 때, 구원을 받은것은 하늘의 보살핌이 아니라 복야회 장군인 설지의 입을 통해서 복야회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유신은 가야의 유민이 12만이라고 한다. 도대체 어디서 나온 근거인지는 알 수 없다. 선덕여왕의 작가는 생각없이 말을 뱃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선덕여왕의 작가진만 알 수 있지 않을까?

유신은 덕만일행을 포위하고 있는 복야회에게 "내가 선택한 나의 왕이시다. 그러니 복야회 또한, 덕만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한다. 이로서 덕만은 미실과 대적할 수 있는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진부한 운명론

성골남진의 나머지 계시가 밝혀지고 있다. 미실이 무너지고, 덕만이 일어선다는 것이다. 곧 덕만이 왕이 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운명이 정해졌다는 인간의 운명론이 되시겠다. 덕만이 노력을 하던 하지 않던, 왕이 되는 운명인데, 왜 저 멀리 사막까지가게 만들었을까? 그것도 운명인가? 미실에 대적하는 것도 운명이고? 한마디로 '타고난 팔자가 있다'가 있다는 말인데, 소설이 너무 진부하지 않는가?


춘추(유승호)의 아버지에 대한 비밀을 알고 싶으세요? 그럼 이 기사를 일독 해보시길 
2009/08/20 - [역사이야기] - 괴물이 되어버린 춘추(유승호)의 아버지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여우비 2009.08.19 1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굳굳굳 지루하게 읽을 수도 있는 글을

    재밌게 쓰신것 같아요~!

    그냥 봤으면 역사 잘못 알뻔했네요 ...-_-;;;

    너무너무 잘 읽다가 가요~

  3. 능소화 2009.08.19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신라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4. 날아라 2009.08.19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일고 가니다. 앞으로도 계속 부탁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속 할려면 추천이 많아야 하는데.. 너무 추천을 하지 않는군요..

      추천이 없다는 말은 이런글은 쓰지 말라는 뜻이거든요.. ㅋㅋ

  5. BlogIcon haRu™ 2009.08.19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마지막에 운명론에 대한 비판... 아주 좋았습니다.
    제가 주로 사극을 안보는 이유와 같습니다. 특히 사극은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고는 주인공을 개고생 시키죠.
    뭐 이런식으로 재미가 없어질려고 할때 비담의 투입은 정말 극적이였죠. 지금 것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본 적없는 매력적인(그러나 일본 만화등에서는 많이 본...ㅡ,.ㅡㅋ)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다. 운명이런것 없이도 잘 만들텐뎅.. 뭔 원죄론을 받아 들여서 그런가. 너무 난무함...

  6. elly 2009.08.19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문노와 월광은 사촌지간이 아닙니다.
    촌수로 따지자면 조금 더 올라갑니다. :-)
    월광태자의 자손은 아무리 자료를 찾아봐도 자료가 없어요.
    대신 해인사를 처음 창건한 이 중 하나가 월광의 후손이라고 적혀있어서,
    그의 후손이 있다고 짐작만 할 따름입니다.
    월야라는 인물은 소설(혹은 극)을 위해 만든 가공의 인물입니다.
    대신 월광의 누이동생인 월화의 후손인 천주는 화랑세기에 나오는걸 보니 있었던 인물인것 같구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월광의 어미니가 비조부의 누이이고,
      문노의 아버지는 비조부/문화 잖아요.. 그러니 이들은 사촌간이 되지요..

      그냥 드라마가 월광의 적자라고 해서리.. 그렇다면 문노의 조카다 하는거지요.. ㅋ ㅋ 이왕 엮을라면 확실히 엮어라 머 이런 비판이였음..

      저는 월야보다는 천주/월화의 아들인 염장을 월야역으로 했다면 더 잼있지 않았을 까해요.. 머 언젠가는 염장도 덕만의 수중에 떨어지겠지만요..

      서현보다 더 비중이 있는 인물이 천주인뎅.. 기록도 별로 없으니 맘껏 작가의 상상력도 발휘할수 있구요..

      선덕여왕 원작 작가가 너무 공부를 안한 티가 나요.. ㅋㅋ

      인물설정을 할때 자료조사가 기본중에 기본인뎅..

    • BlogIcon elly 2009.08.19 2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ㅋㅋ
      전 문노의 모계, 월광의 부계로 계산을 하다보니
      엄청난 촌수가 나오더라구요. 이제 생각해보니
      이종사촌-외사촌격이 되네요. :-)

      전 우연히 당첨되서 선덕여왕 소설까지 다 읽었는데
      원작가가 공부 안한티가 정말로 많이 나더군요.
      인물 설정 조차도 대충 빌려온게 너무 많이 보여요.
      (선덕여왕이 처녀로 죽었다는 사실까지 포함해서..;;)

    • BlogIcon 갓쉰동 2009.08.20 0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처녀로 죽이는 군요.. 처녀에 대한 환상이라도 있나봅니당..

  7. 흐흐흐 2009.08.25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에 사소한 실수가 보이네요. 별거 아니지만 문맥상 약간의 혼동이 올 수 있어서...
    월야의 사진 옆 글 '가야파를 등지고'가 '가야파를 등에지고'죠???
    맞나요?

    • BlogIcon 이반의꿈 2009.08.25 1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도 읽힐수 있군요.. 저는 등지고를 등에지고로 생각하고 썼는뎅.. 바꿀까 말까 고민했었음. 지적을 하시니 바꿔야 겠네요.. ㅋㅋ

  8. BlogIcon 조용형 2012.01.01 0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팹, 훌륭한 문서입니다

  9. BlogIcon 원숭이 2012.01.07 0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10. BlogIcon 엘리 2012.04.04 0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어디로 데려가십니까?

  11. BlogIcon 헤일리 2012.04.06 0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2. BlogIcon 모건 2012.05.08 2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심 없습니다.

  13. BlogIcon 알렉 산드라 2012.05.11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먹었습니다.

  14.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5.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6. BlogIcon Pussy Porn 2012.07.14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17.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8.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for camping 2012.11.01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9.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indoors 2012.11.06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

  20. BlogIcon petsafe wireless dog fence 2012.12.22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이 중요한 주제에 도움이 필요 남녀를 지원하는 당신의 관대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21. BlogIcon 24 stove top 2013.01.02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일식은 있었을까? 물론, 일식도 없었고, 월식도 없었다. 당시의 일식이 있던 시기를 뽑아 본다면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읽다보면 수많은 의문들이 생긴다. 그중에서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된 덕만(선덕)에 대한 의문도 수없이 많이 있다. 왜 진평왕은 덕만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을까?  덕만은 몇살때 왕위에 오른것일까? 덕만의 형제들은 누가 있을까? 덕만은 천명과 어머니가 같은 마야부인의 소생인가? 덕만은 진평의 첫번째 딸인가? 이런 의문들을 풀다 보면 정말 덕만은 남자형제들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에 이르게 된다.  


위같은 의문들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어느정도 해소를 할 수 있었다.  덕만의 기록을 추척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덕만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50대에 가까운 나이에 왕위에 절대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또한, 덕만은 천명보다 나이가 절대로 많을 수 없었다. 그러니 천명의 나이 어린 동생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천명은 덕만과 같은 마야의 소생이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다음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첫째, 덕만은 진평왕과 정비 마야의 장녀다.
둘째, 천명이 나이는 많지만, 정비인 마야의 소생은 아니다.

셋째, 천명과 덕만은 이복자매간이다.

넷째, 천명은 정비인 마야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덕만보다 왕위승계에서 후순위다.
다섯째, 마야의 후손으로는 덕만 말고도 또다른 자매(들)이 있다.  

여섯째, 덕만은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했다.
일곱째, 덕만은 왕위를 오를때, 현재 80년생이며 한국나이 30살인 이요원보다도 어렸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의 아역역할을 한 남지현은 2009년 현재 15세이다.덕만은 실제로 632년에 15~18세 정도에 늦어도 20세 전후에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진평왕에게는 정말 남자 자식들(왕자)인 성골남자들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들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물론 덕만이 언니인 천명을 물리치고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역사이야기] - 조선 세종, 신라 덕만, 천명의 기록 비교해 보니  마야의 소생인 적장녀인 덕만이 적장녀가 아닌 언니 천명을 이기고 왕위를 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화랑세기가 언급한 것처럼 천명과 덕만이 마야의 소생이고, 천명이 나이가 많은 언니인데, 천명이 진평의 의도를 알고, 효심으로 덕만에게 순순히 물려 주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자 형제가 있었다면 어찌되었을까? 이도 덕만이 진평과 마야의 적장녀라면 일부 해결은 된다. 왕비의 소생이 아닌 후비들의 소생들이 왕위에 도전하는 행위는 반역에 해당한다.

하지만, 피터지는 왕위쟁탈전의 골육상잔이 벌어지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송고하였다.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칠숙의 반란도 적통을 이를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왕위쟁탈전의 일환이 아닐까? 

 이런 의문을 단숨에 해결해준 책이 현존하는 <화랑세기>이다. 화랑세기에는 진평왕에게는 4명의 아들들이 있었다. 그중 손씨 승만 왕후를 통해서 난 자식은 의문스런 죽음을 당하고, 승만왕후는 자신의 아들이 죽은 배후에 용수.용춘 형제가 있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용수.용춘형제는 지방을 순회하며 외유를 했어야 했다고 한다. 또다른 3명의 자식들은 덕만과 왕위 다툼에 밀려서 왕위를 이을 수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화랑세기는 또한 천명과 덕만은 마야의 소생이고, 덕만이 천명의 동생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덕만이 왕위에 오를 수 있게  된것도 천명이 아버지 진평이 덕만를 후계로 인정하자 효심이 지극한 천명이 순순히 물러 났다고 한다.

어찌되었던 그동안 상식일거라고 생각한 진평왕은 왕자가 없었다. 어쩔 수 없어서 유일한 성골 출신 여성인 '덕만이 왕위에 올랐다'가 아니고 화랑세기에 의하면 수 많은 남자 형제 3명을 물리치고 당당히 신라의 대권을 차지하여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되지 않았는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서만 보아도,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데 수 많은 난관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진평왕 말년 631년 이찬 칠숙의 난을 물리치고, 언니라고 생각되는 천명도 물리치고, [역사이야기] - 이요원보다 남지현 나이때 왕위에 오른 덕만 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성조황고:聖祖皇姑>란 성스런 조상을 둔 황제의 딸 : 아들이 있어서 장가를 보낼 나이정도에 있는 것으로 해석해도 30세전후 라는 뜻이 되지만,진평왕의 뒤를 잇기에 핏줄에 하자가 없는 정통성 있는 진평왕의 다 큰(성숙한) 자식 정도이다.<황고>의 황과 대응하여 황제(진평)의 결혼해서 어른 노릇할 정도의 나이인 성인여식이란 뜻이다.

왕족들과 귀족집단의 항복을 받아 <성조황고>라는 충성서약문을 쓰게 만들고  왕위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덕만은 이들 말고도 자신의 남자형제를 물리치고 대권을 장악했다고 화랑세기는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김대문은 화랑세기를 쓰게된 동기와 화랑 폐쇄된 결정적인 이유를 화랑출신의 27세 풍월주 흠돌과 26세 풍월주 진공과 흥원의 반란사건을 들고 있다. 또한, 흠돌과 흥원의 반란을 물린 친 주역도 화랑의 풍월주 출신인 김대문의 아버지 28세 풍월주 오기라고 하고 있다.
 
처음 631년 칠숙이 반란을 일으킬때 이를 진압한 것도 염장을 비롯한 화랑출신들이고, 647년 비담의 반란을 제압한 것도 화랑 출신인 유신이라고 이야기한다.

681년 흠돌과 같이 반란에 주동적으로 가담한 흥원이 진평왕의 손자라고 손들고 나선 것이다. 632년 대권경쟁에서 덕만에 밀리고, 647년 승만에게 빼앗기고, 681년 절치부심 흠돌과 진공과 함께 흥원이 '정통성회복'을 기치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흥원은 진평왕/태양공주(진흥/사도) 사이에 난 홍원의 자식이다. 그러니 덕만이 왕위를 계승할때  홍원이 생존하고 있었을 것이다. 진평왕이 고모인 태양공주와 결혼을 했다는 것은 최소한 홍원이 덕만보다는 나이가 많았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진평/태양 사이에는 홍원만이 아니고 홍원의 형인 태원도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만 태원의 소생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당대의 화랑세기에서 조차도 태원의 후손에 대한 기록이 사라지는 것이다. 또한, 태원과 홍원을 비롯한 흥원까지 누구와 결혼했는지 알 수 없다.

기록이 사라질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특별한 하자가 없이 조용히 여생을 보냈거나, 아니면 역모에 역류되었을 때 이다. 태원, 홍원의 결혼상대자와 흥원의 아내에 대한 기록이 사라진 이유는 김대문 가문이나, 춘추가문이나, 김유신 가문과 연관이 없다면 모계를 기록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

태원의 기록이 사라지는 이유는 흥원이 반란을 일으키는 681년 이전 631년 이찬 칠숙의 반란사건이나, 647년 비담의 반란 사건이나, 김춘추가 654년 알천을 물리치고, 왕위를 이을 때 연관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화랑세기를 집필한 김대문은 오기/운명(선품/보룡)의 아들이고, 자의는 (선품/보룡)의 딸이다. 자의와 오기는 이종사촌겸 고종사촌간이다. 선품(구륜/보화)은 21세 풍월주이다. 보화는 진평과 미실사이에 태어났다. 어찌되었던 김대문에게 자의는 이모가 된다. 자의가 법민(문무)의 처이니 654년 춘추가 왕위에 오를때, 태원, 홍원의 처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았을 때  정상적으로 오르지 않았다고 해도 이를 바로 기록했다고 볼 수는 없다.


결론적으로 화랑세기에 의하면 덕만이 왕위에 오를때 태원,홍원(진평/태양) 형제와 보로(진평/보량:박은빈), 승만아들(진평/승만)등 남자형제들을 물리쳤다는 것이다. 덕만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처럼 성골남자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등에 떠밀리 듯 쉬이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글은 덕만이 왕이 되는 과정의 시리즈 글입니다.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아르테미스♡ 2009.08.07 0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하~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힙합댄스 부~탁~ 해용 ^^

  2. BlogIcon 카르페디엠^^* 2009.08.07 0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으로 드라마 전개가 너무 기되됩니다.^^

  3. BlogIcon White Rain 2009.08.07 0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진진한데요? 사실 당사자에겐 너무나 살얼음판 걷는 듯 위태롭겠지만 말이죠.
    그나저나 전 진덕여왕도 참 의문이에요
    선덕여왕은 왜 사촌 동생인 진덕여왕에게 왕위를?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덕만이 634년 결혼한 상대자가 작은 아버지중 한명인 국반이라고 생각합니다..
      덕만 승만.. 덕만의 양딸이 되는 거지요.. 공식적으론 덕만의 자식이 되구요.. 왕의 딸이니 어렵지 않게 올랐지 않을까요?

      이와 관련된 포스트를 참고 하시길.. 어린나이에 왜 왕이 되었는가 시리즈 이니까요.. ^__^

  4. 임현철 2009.08.07 0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부 잘하고 갑니다.

  5. BlogIcon 아이러니♡ 2009.08.07 0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재미있게 읽고 가요!
    앞으로 이 역사대로 드라마가 전개된다면 흥미진진할 것 같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지 자못 궁금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글은 선덕여왕의 제작자에 드리는 글이 아닌 원작에 드리는 글이고, 원작이 부실하니 계속 이상한 설정이 나올겁니다.

      앞으로 화랑세기를 인용해서 작품을 만들 소설가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거지요..

  6. BlogIcon 맥주 콜~ 2009.08.07 0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이네요. 추천 누르고 갑니다~

  7. BlogIcon hera 2009.08.07 0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너무 잘 봤습니다. 요즘 선덕여왕에 확 꽂혀서요 ㅎㅎ

  8. BlogIcon 초록누리 2009.08.07 1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또 새로운 사실을... 공부 너무 열심히 했더니 머리아파요. 선덕여왕, 덕만아 나 좀 살리도~ ㅎㅎ

  9. BlogIcon labyrint 2009.08.07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제 소설을 추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갓순동님은 화랑세기를 어디서 읽으셨나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근데... 저는 화랑세기를 못 믿겠어요... ㅋㅋ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10. 87 2009.08.07 1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좋은정보 감사해요
    [ 가애스타일 ] 차비 나눠주기






    ////////


    안녕하세요 좋은정보 감사해요
    [ 가애스타일 ] 차비 나눠주기






    //

  11.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7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즈음은 갓쉰동님 블로그오면..
    뿌듯 ㅎㅎㅎ
    운동하고 나중에 공부하리다 ㅎㅎㅎ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12. 진돌이네 2009.08.07 1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갓쉰동님의해박한 지식에 감탄할뿐이에요^^더불어 역사가 참 흥미로와지네요.

  13. 니에 2009.08.07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세기에 기초해서 선덕여왕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해석을 하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1가지 지적하고 넘어갈 것은 김대문이 썼다고 전해지는 '화랑세기'에 대해서 입니다.
    화랑세기는 현재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서적입니다.
    화랑세기에 나오는 내용들을 인정할 것이냐, 그렇지 않을 것이냐 문제로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가 나오게 된 것은 첫번째로 발견된 경위입니다. 실전되었다고 전해지던 화랑세기는 1970년대쯤(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잊어버린^^;)개인의 저택에서 발견됩니다. 그리고 발견된 화랑세기는 진짜를 일본에서 보고 필사한 것이라는 말이 적혀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없기에 먼저 의심을 품게됩니다. 두번째로는 화랑세기에 적힌 언어문제입니다. 신라시대에 쓰여진 것이고, 그것을 그대로 필사한 것이라면 그 언어는 향찰로 표기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신라시대에 쓰이지 않았던 말이 쓰여있고 후대의 말 까지 쓰여있다는 점에서 의심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주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이 화랑세기에 나온 몇 가지 기록이 발견된 유적이나 유물과 같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전히 많은 문제를 지닌 책입니다.

    화랑세기를 너무 믿지도 그러나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인 것이죠.
    새로운 역사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화랑세기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정말 그 화랑세기의 기록이 전부 사실인지는 조금 더 연구해야 알게 될 것이지만 말이죠.^^;;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15:32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은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고 있기때문에 그에 맞추어 선덕여왕을 비판하는 겁니당..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만으로 덕만에 남자 형제가 있거나, 성골이라고 믿는 남자들이 넘치고 있다는것도 증명했지요..

      다른 역사이야기 카테고리 글도 읽어 보는 센스를..

      물론, 화랑세기는.. 영감을 주는 획기적인 작품입니다..

  14. 흠... 2009.08.07 1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치만 선덕이 실제 왕위에 올랐을때 나이는 적어도 50을 넘어서 물려받았다고 알고 있는데요

    필자께서는 화랑세기 라는 책과 내용을 토대로 쓰신것이니 다를수도 있겠지요

    화랑세기라...새롭네요 ^^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1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읽어도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는데요.. 다른 시리즈 포스트 글도 읽어보는 센스를.. ^____^

      저는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고 덕만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고 증명했습니다만,,

  15. 2009.08.07 14: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6. BlogIcon labyrint 2009.08.07 1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고 감사드립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쓸 떼 좀 더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좋았을텐데요... ㅋㅋ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깔금하게 정리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김부식이..
      그런데 자료가 없었다고 하네요.

      충고는 아닌뎅.. ㅠ.ㅠ. 화랑세기는 소설소재로 무궁무진한데 제가 글재주가 없어요.. ㅠ.ㅠ. 님같은 분이 잘 쓸수 있게 터전을 만들어 드린다고 생각하면 좋을것 같아요..ㅋㅋ

  17. BlogIcon gadgeteer 2009.08.07 2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글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특효약인가봅니다. 글 잘읽고 갑니다^^

  18. BlogIcon 건강하요 2011.03.31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희 망 /정 보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내 병은 내가 고친다

  19. BlogIcon 건강하요 2011.03.31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희 망 /정 보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내 병은 내가 고친다

  20.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읽다보면 수많은 의문들이 생긴다. 그중에서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된 덕만(선덕)에 대한 의문도 수없이 많이 있다. 왜 진평왕은 덕만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을까?  덕만은 몇살때 왕위에 오른것일까? 덕만의 형제들은 누가 있을까? 덕만은 천명과 어머니가 같은 마야부인의 소생인가? 덕만은 진평의 첫번째 딸인가? 이런 의문들을 풀다 보면 정말 덕만은 남자형제들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에 이르게 된다.  


위같은 의문들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어느정도 해소를 할 수 있었다.  덕만의 기록을 추척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덕만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50대에 가까운 나이에 왕위에 절대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또한, 덕만은 천명보다 나이가 절대로 많을 수 없었다. 그러니 천명의 나이 어린 동생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천명은 덕만과 같은 마야의 소생이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다음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첫째, 덕만은 진평왕과 정비 마야의 장녀다.
둘째, 천명이 나이는 많지만, 정비인 마야의 소생은 아니다.

셋째, 천명과 덕만은 이복자매간이다.

넷째, 천명은 정비인 마야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덕만보다 왕위승계에서 후순위다.
다섯째, 마야의 후손으로는 덕만 말고도 또다른 자매(들)이 있다.  

여섯째, 덕만은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했다.
일곱째, 덕만은 왕위를 오를때, 현재 80년생이며 한국나이 30살인 이요원보다도 어렸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의 아역역할을 한 남지현은 2009년 현재 15세이다.덕만은 실제로 632년에 15~18세 정도에 늦어도 20세 전후에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진평왕에게는 정말 남자 자식들(왕자)인 성골남자들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들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물론 덕만이 언니인 천명을 물리치고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역사이야기] - 조선 세종, 신라 덕만, 천명의 기록 비교해 보니  마야의 소생인 적장녀인 덕만이 적장녀가 아닌 언니 천명을 이기고 왕위를 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화랑세기가 언급한 것처럼 천명과 덕만이 마야의 소생이고, 천명이 나이가 많은 언니인데, 천명이 진평의 의도를 알고, 효심으로 덕만에게 순순히 물려 주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자 형제가 있었다면 어찌되었을까? 이도 덕만이 진평과 마야의 적장녀라면 일부 해결은 된다. 왕비의 소생이 아닌 후비들의 소생들이 왕위에 도전하는 행위는 반역에 해당한다.

하지만, 피터지는 왕위쟁탈전의 골육상잔이 벌어지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송고하였다.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칠숙의 반란도 적통을 이를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왕위쟁탈전의 일환이 아닐까? 

 이런 의문을 단숨에 해결해준 책이 현존하는 <화랑세기>이다. 화랑세기에는 진평왕에게는 4명의 아들들이 있었다. 그중 손씨 승만 왕후를 통해서 난 자식은 의문스런 죽음을 당하고, 승만왕후는 자신의 아들이 죽은 배후에 용수.용춘 형제가 있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용수.용춘형제는 지방을 순회하며 외유를 했어야 했다고 한다. 또다른 3명의 자식들은 덕만과 왕위 다툼에 밀려서 왕위를 이을 수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화랑세기는 또한 천명과 덕만은 마야의 소생이고, 덕만이 천명의 동생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덕만이 왕위에 오를 수 있게  된것도 천명이 아버지 진평이 덕만를 후계로 인정하자 효심이 지극한 천명이 순순히 물러 났다고 한다.

어찌되었던 그동안 상식일거라고 생각한 진평왕은 왕자가 없었다. 어쩔 수 없어서 유일한 성골 출신 여성인 '덕만이 왕위에 올랐다'가 아니고 화랑세기에 의하면 수 많은 남자 형제 3명을 물리치고 당당히 신라의 대권을 차지하여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되지 않았는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서만 보아도,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데 수 많은 난관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진평왕 말년 631년 이찬 칠숙의 난을 물리치고, 언니라고 생각되는 천명도 물리치고, [역사이야기] - 이요원보다 남지현 나이때 왕위에 오른 덕만 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성조황고:聖祖皇姑>란 성스런 조상을 둔 황제의 딸 : 아들이 있어서 장가를 보낼 나이정도에 있는 것으로 해석해도 30세전후 라는 뜻이 되지만,진평왕의 뒤를 잇기에 핏줄에 하자가 없는 정통성 있는 진평왕의 다 큰(성숙한) 자식 정도이다.<황고>의 황과 대응하여 황제(진평)의 결혼해서 어른 노릇할 정도의 나이인 성인여식이란 뜻이다.

왕족들과 귀족집단의 항복을 받아 <성조황고>라는 충성서약문을 쓰게 만들고  왕위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덕만은 이들 말고도 자신의 남자형제를 물리치고 대권을 장악했다고 화랑세기는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김대문은 화랑세기를 쓰게된 동기와 화랑 폐쇄된 결정적인 이유를 화랑출신의 27세 풍월주 흠돌과 26세 풍월주 진공과 흥원의 반란사건을 들고 있다. 또한, 흠돌과 흥원의 반란을 물린 친 주역도 화랑의 풍월주 출신인 김대문의 아버지 28세 풍월주 오기라고 하고 있다.
 
처음 631년 칠숙이 반란을 일으킬때 이를 진압한 것도 염장을 비롯한 화랑출신들이고, 647년 비담의 반란을 제압한 것도 화랑 출신인 유신이라고 이야기한다.

681년 흠돌과 같이 반란에 주동적으로 가담한 흥원이 진평왕의 손자라고 손들고 나선 것이다. 632년 대권경쟁에서 덕만에 밀리고, 647년 승만에게 빼앗기고, 681년 절치부심 흠돌과 진공과 함께 흥원이 '정통성회복'을 기치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흥원은 진평왕/태양공주(진흥/사도) 사이에 난 홍원의 자식이다. 그러니 덕만이 왕위를 계승할때  홍원이 생존하고 있었을 것이다. 진평왕이 고모인 태양공주와 결혼을 했다는 것은 최소한 홍원이 덕만보다는 나이가 많았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진평/태양 사이에는 홍원만이 아니고 홍원의 형인 태원도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만 태원의 소생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당대의 화랑세기에서 조차도 태원의 후손에 대한 기록이 사라지는 것이다. 또한, 태원과 홍원을 비롯한 흥원까지 누구와 결혼했는지 알 수 없다.

기록이 사라질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특별한 하자가 없이 조용히 여생을 보냈거나, 아니면 역모에 역류되었을 때 이다. 태원, 홍원의 결혼상대자와 흥원의 아내에 대한 기록이 사라진 이유는 김대문 가문이나, 춘추가문이나, 김유신 가문과 연관이 없다면 모계를 기록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

태원의 기록이 사라지는 이유는 흥원이 반란을 일으키는 681년 이전 631년 이찬 칠숙의 반란사건이나, 647년 비담의 반란 사건이나, 김춘추가 654년 알천을 물리치고, 왕위를 이을 때 연관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화랑세기를 집필한 김대문은 오기/운명(선품/보룡)의 아들이고, 자의는 (선품/보룡)의 딸이다. 자의와 오기는 이종사촌겸 고종사촌간이다. 선품(구륜/보화)은 21세 풍월주이다. 보화는 진평과 미실사이에 태어났다. 어찌되었던 김대문에게 자의는 이모가 된다. 자의가 법민(문무)의 처이니 654년 춘추가 왕위에 오를때, 태원, 홍원의 처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았을 때  정상적으로 오르지 않았다고 해도 이를 바로 기록했다고 볼 수는 없다.


결론적으로 화랑세기에 의하면 덕만이 왕위에 오를때 태원,홍원(진평/태양) 형제와 보로(진평/보량:박은빈), 승만아들(진평/승만)등 남자형제들을 물리쳤다는 것이다. 덕만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처럼 성골남자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등에 떠밀리 듯 쉬이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글은 덕만이 왕이 되는 과정의 시리즈 글입니다.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아르테미스♡ 2009.08.07 0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하~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힙합댄스 부~탁~ 해용 ^^

  2. BlogIcon 카르페디엠^^* 2009.08.07 0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으로 드라마 전개가 너무 기되됩니다.^^

  3. BlogIcon White Rain 2009.08.07 0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진진한데요? 사실 당사자에겐 너무나 살얼음판 걷는 듯 위태롭겠지만 말이죠.
    그나저나 전 진덕여왕도 참 의문이에요
    선덕여왕은 왜 사촌 동생인 진덕여왕에게 왕위를?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덕만이 634년 결혼한 상대자가 작은 아버지중 한명인 국반이라고 생각합니다..
      덕만 승만.. 덕만의 양딸이 되는 거지요.. 공식적으론 덕만의 자식이 되구요.. 왕의 딸이니 어렵지 않게 올랐지 않을까요?

      이와 관련된 포스트를 참고 하시길.. 어린나이에 왜 왕이 되었는가 시리즈 이니까요.. ^__^

  4. 임현철 2009.08.07 0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부 잘하고 갑니다.

  5. BlogIcon 아이러니♡ 2009.08.07 0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재미있게 읽고 가요!
    앞으로 이 역사대로 드라마가 전개된다면 흥미진진할 것 같네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지 자못 궁금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글은 선덕여왕의 제작자에 드리는 글이 아닌 원작에 드리는 글이고, 원작이 부실하니 계속 이상한 설정이 나올겁니다.

      앞으로 화랑세기를 인용해서 작품을 만들 소설가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거지요..

  6. BlogIcon 맥주 콜~ 2009.08.07 0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이네요. 추천 누르고 갑니다~

  7. BlogIcon hera 2009.08.07 0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너무 잘 봤습니다. 요즘 선덕여왕에 확 꽂혀서요 ㅎㅎ

  8. BlogIcon 초록누리 2009.08.07 1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또 새로운 사실을... 공부 너무 열심히 했더니 머리아파요. 선덕여왕, 덕만아 나 좀 살리도~ ㅎㅎ

  9. BlogIcon labyrint 2009.08.07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제 소설을 추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갓순동님은 화랑세기를 어디서 읽으셨나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근데... 저는 화랑세기를 못 믿겠어요... ㅋㅋ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10. 87 2009.08.07 1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좋은정보 감사해요
    [ 가애스타일 ] 차비 나눠주기






    ////////


    안녕하세요 좋은정보 감사해요
    [ 가애스타일 ] 차비 나눠주기






    //

  11.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7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즈음은 갓쉰동님 블로그오면..
    뿌듯 ㅎㅎㅎ
    운동하고 나중에 공부하리다 ㅎㅎㅎ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12. 진돌이네 2009.08.07 1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갓쉰동님의해박한 지식에 감탄할뿐이에요^^더불어 역사가 참 흥미로와지네요.

  13. 니에 2009.08.07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세기에 기초해서 선덕여왕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해석을 하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1가지 지적하고 넘어갈 것은 김대문이 썼다고 전해지는 '화랑세기'에 대해서 입니다.
    화랑세기는 현재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서적입니다.
    화랑세기에 나오는 내용들을 인정할 것이냐, 그렇지 않을 것이냐 문제로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가 나오게 된 것은 첫번째로 발견된 경위입니다. 실전되었다고 전해지던 화랑세기는 1970년대쯤(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잊어버린^^;)개인의 저택에서 발견됩니다. 그리고 발견된 화랑세기는 진짜를 일본에서 보고 필사한 것이라는 말이 적혀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없기에 먼저 의심을 품게됩니다. 두번째로는 화랑세기에 적힌 언어문제입니다. 신라시대에 쓰여진 것이고, 그것을 그대로 필사한 것이라면 그 언어는 향찰로 표기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신라시대에 쓰이지 않았던 말이 쓰여있고 후대의 말 까지 쓰여있다는 점에서 의심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주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이 화랑세기에 나온 몇 가지 기록이 발견된 유적이나 유물과 같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전히 많은 문제를 지닌 책입니다.

    화랑세기를 너무 믿지도 그러나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인 것이죠.
    새로운 역사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화랑세기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정말 그 화랑세기의 기록이 전부 사실인지는 조금 더 연구해야 알게 될 것이지만 말이죠.^^;;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15:32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은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고 있기때문에 그에 맞추어 선덕여왕을 비판하는 겁니당..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만으로 덕만에 남자 형제가 있거나, 성골이라고 믿는 남자들이 넘치고 있다는것도 증명했지요..

      다른 역사이야기 카테고리 글도 읽어 보는 센스를..

      물론, 화랑세기는.. 영감을 주는 획기적인 작품입니다..

  14. 흠... 2009.08.07 1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치만 선덕이 실제 왕위에 올랐을때 나이는 적어도 50을 넘어서 물려받았다고 알고 있는데요

    필자께서는 화랑세기 라는 책과 내용을 토대로 쓰신것이니 다를수도 있겠지요

    화랑세기라...새롭네요 ^^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1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읽어도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는데요.. 다른 시리즈 포스트 글도 읽어보는 센스를.. ^____^

      저는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고 덕만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고 증명했습니다만,,

  15. 2009.08.07 14: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6. BlogIcon labyrint 2009.08.07 1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고 감사드립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쓸 떼 좀 더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좋았을텐데요... ㅋㅋ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07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깔금하게 정리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김부식이..
      그런데 자료가 없었다고 하네요.

      충고는 아닌뎅.. ㅠ.ㅠ. 화랑세기는 소설소재로 무궁무진한데 제가 글재주가 없어요.. ㅠ.ㅠ. 님같은 분이 잘 쓸수 있게 터전을 만들어 드린다고 생각하면 좋을것 같아요..ㅋㅋ

  17. BlogIcon gadgeteer 2009.08.07 2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글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특효약인가봅니다. 글 잘읽고 갑니다^^

  18. BlogIcon 건강하요 2011.03.31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희 망 /정 보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내 병은 내가 고친다

  19. BlogIcon 건강하요 2011.03.31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희 망 /정 보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내 병은 내가 고친다

  20.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이전버튼 1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
갓쉰동
12-09 15:36
Yesterday9
Today7
Total978,202

글 보관함

최근에 올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