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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글쓴이는 그 동안 다음 아래와 같은 선덕여왕의 공주시절에 있었던 기록을 하나 하나 추척해 들어 갔으며,
선덕왕의 <지기3사>중 첫번째 '사건인 모란씨 서되'는 진평왕의 노년인 627년 진평왕 49년에 있었던 일이라고, 그 동안 아무도 알지 못했던, 모란이 신라에 수입된 년도와 년을 특정하여 기사로 송고하였다.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또한, <지기삼사>에 얽킨 영묘사 옥문지사건과 영묘사의 창건과정을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에서 소상히 이야기 했으며, 영묘사가 만들어 지는 과정에 영묘사에 화재사건이 발생하여, 삼국사기가 선덕왕 3년 635년에 영묘사가 완성되었다는 기사와 <삼국유사>의 3년 635년에 영묘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이중적인 기록이 나온 배경에는 <지귀요탑>과 <혜공의 이적>과도 관련이 있다고 했다. 영묘사가 1차 완성 시기는 선덕왕 3년이며, 이즈음 일어난 화재사건을 <지귀요탑>이 원인되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에서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선덕여왕이 김춘추와 문희를 연결시켜 준것이 아니라, 덕만이 공주시절 김춘추와 문희의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였으며, <김유신의 불쑈>을 한 시기는 김춘추/문희 사이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의 출생일을 근거로 628년 이전에 벌어진 사건임도 증명하였다.

그럼 이들 사건들을 연표로 작성해 보자.
 
627년 11월 모란씨가 당나라로 부터 들어왔다.
628년 이전 김춘추와 문희를 엮어주어었다.
628~635년 사이 지귀심화(지귀요탑)에 의해 영묘사에 화재가 발생하여 혜공이 영묘사 사찰 일부를 보호하고, 진화되었다. 


 모란씨 사건과 <지귀심화> 사건들을 살펴 보면, 나이가 어리지 않으면 도저히 일어 날 수 없는 상황이 전개 된다. 대표적으로 <지귀심화>같은 경우 젊은 남자 지귀가 일반적으로 그동안 알고 있는 선덕왕 원년 632년에 45살 이상이 된 여자를 보고, <상사병>에 걸려 마음에 불이 일어나 자연발화(SHC) 상태로 까지 발전할 수 있는가 이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더 나아가 삼국유사에 의하면 영묘사에 화재가 발생한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는 635년 영묘사가 완성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삼국사기를 따른다면 영묘사 화재사건은 635년 이후에 발생한 사건이 된다. 이때 덕만의 나이는 635년 선덕왕 4년으로 48세를 넘어야만 한다. 이는 더더욱 지귀의 화재사건이 성립될 수 없다. 물론, 요즘처럼 나이가 많지만, 젊음을 유지하는 연예인들이 있다. 이들을 보면 팔팔한 청춘에 불을 댕길만한 미모를 지니기도 했다.

불세출의 잉그리트 버그만이나, 엘리자베스테일러 등은 나이가 일정하게 먹고 나서도 황홀할 정도의 미모를 자랑했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경우 나이를 먹고, 젊은날의 모습을 깡그리 없애 버렸지만 말이다. 이처럼 나이를 먹고 미모를 유지한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어기는 것이다. 요즘처럼 성형기술이 뛰어나 성형을 하거나 보톡스를 맞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래도 달리는 세월을 잡을 수 없는게 자연의 섭리이다.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지껏 덕만이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고, 인정하는 이유는 다음 3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삼국사기의 선덕왕 원년 즉위할때의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다.
둘째는 신하들이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셋째는 동생이라고 추측되는 천명이 춘추를  603년에 낳았다.

핵심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라는 것이다. 만약, 천명이 덕만의 동생이 아니고, 언니라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할머니(姑) 덕만이 아닌, 시어미(姑) 정도의 나이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증거를 잡는 과정이 지귀, 모란씨, 영묘사 건축중에 벌어진 화재 사건이다.

또하나는 천명이 덕만의 언니인지 동생인지 상관없이 왕위를 잇지 못한 이유중에 천명이 진평왕의 정비인 마야부인의 소생이 아니라면 어찌될까? 

  의심스런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다름이 아니라 김춘추가 왕이 될때 그의 가계 내력을 기록한 것이다.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사기 신라 춘추왕 원년
.
김춘추의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이라고 했다.

 

진평 계보도

우리는 덕만이 진평왕과 마야부인(복승의딸) 사이에 태어났고, 장녀라는 기록을 읽었다. 춘추의 기록을 살피고 우리는 감각적으로, 또는 단순히 천명과 덕만은 형제이겠거니 한다. 그러나 같은 어머니(동복)을 두었을까? 하는 의심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진평왕은 아들이 없다. 그러니 여러 부인들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설령 아들이 있다고 해도 후비를 여럿 두는 것은 왕실의 기본 상식에 속한다. 진평 또한 손씨인 승만을 후비로 두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천명이나 덕만을 마야부인의 소생으로 알고 있을까? 더불어 삼국유사에 나온 선화공주 또한 마야의 소생으로 만들었을까? 이 함정에서 벗어난다면, 어찌 될까?


진평은 천명의 어머니를 통해서 천명을 낳고, 마야부인을 통해서 덕만을 낳았다. 진평은 적통을 이을 후손을 보기 위해서 여러 부인들을 두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장 일반적인 왕실의 살아가는 방법이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정식 왕후의 소생이 적통을 잇는다. 그리고 그 왕후와의 사이에 난 자식에게 대권이 넘어간다. 왕후가 아닌 후비사이에 태어난 왕자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왕후 사이에 태어난 적통왕자들이 없을 경우에 왕위계승권이 주어진다.

그러니 천명과 덕만은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열려 있다. 오히려 이복자매간일 가능성이 더 많다. 또한, 천명이 덕만보다 손위언니에 해당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기록 어디를 봐도 천명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단지,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 으로만 나온다. 

 
진평왕(眞平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백정(白淨)이고 진흥왕의 태자 동륜(銅輪)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만호부인(萬呼夫人)으로 갈문왕 입종(立宗)의 딸이다. 왕비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으로 갈문왕 복승(福勝)의 딸이다. 왕은 태어날 때부터 기이한 용모였고 신체가 장대하고 뜻이 깊고 굳세었으며, 지혜가 밝아 사리에 통달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진평왕

만약, 마야 또한, 왕후가 아닌 여러 후비 중의 일인 부인일 경우를 설정할 수 있으나, 마야의 아버지는 복승갈문왕이라고 했다.

<갈문왕>은 왕의 형제나, 왕후의 아버지나 미추나 지증이나 진흥이나 진평이나 춘추 같이 왕의 아들(왕자)로 태어나지 않고 왕이 되었을 때 자신의 아버지를 갈문왕으로 봉한다.

그러니 마야는 정식왕후에 등극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정식 왕후의 후생인 덕만은 장녀일까? 아닐까? 삼국사기나 일반적인 왕실의 왕위계승과 순위를 정할때 장녀는 공식(정식) 왕후사이에 태어난 사람을 일컸는 경우가 많다. 천명의 어미는 정식왕후 였지만 후에 일찍 죽고 복승의 딸인 마야가 정식왕후가 되었다면, 왕위 승계서열은 현재의 왕후소생이 된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진평왕에게는 정비인 마야부인과 후비인 손씨 승만부인이 있었다. 승만 손씨에는 후사가 없었다고 하니, 천명은 승만의 소생은 아닐것이고, 또 다른 후비의 소생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진평이 죽은 후에 천명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용수.용춘이 생존하고 있었다. 충분히 선대의 선례에 따라서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용수.용춘은 왕위계승권에 없었다. 그러니 천명이 정비인 마야의 후손이 아님이 증명된다.

신라사회는 대체적으로 사위가 왕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덕만의 경우는 사위가 왕이 되지 않았다. 이는 덕만에게는 남편이 없었거나, 싱글인 상태였거나, 당시 남편이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덕만은 632년 왕위를 이은 634년에 비로서 '음갈문왕'과 결혼을 한다.

글쓴이는 합리적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사실을 바탕으로 천명과 덕만은 배다른 이복 자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춘추의 어미 천명을 기준으로 동복 자매라는 증거가 없는한 덕만의 나이를 추론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왕실의 상식에 벗어 난다.

이제 덕만이 진평의 뒤를 이어 왕위를 승계할때 나이는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덕만의 기록들을 지기삼사 중 첫번째인 <모란씨>와 <춘추, 문희 중매>, <지귀요탑>,<영묘사화재> 사건 등을 종합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나이 많은 여왕일 하등의 이유가 없어진다. 

<성조황고>의 <황고>를 들어서 덕만이 나이가 많지 않았을까 한다면? 현재의 기준으로 한다면 "맞습니다"라고 해줄만 하다. 하지만, 신라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덕만은 충분히 <황고>소리를 듣고도 남을 나이에 왕위를 계승했다.

우리는 자신보다 나이가 조금 어린 사람에게 농담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내가 만약, 첫사랑에 실패만 하지 않았어도 너만한 아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당시 신라 사회는 첫사랑에 실패할때 결혼하고,20대에는 나이에 자식을 한둘과 30대에는 손자.손녀를 두는게 상식에 속할때이니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초경이 지나면 성인이 되어 "결혼을 시켜야 겠다"하고, 불알에 털나면 "장가가도 되겠네"하는 상식을 지니고 있는 시대와 30대가 넘어도 결혼은 무슨 소리하며,  오히려 노처녀.노총각이라고 놀리면, 시대에 덜떨어진 사람 취급 받는 세대와는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 세대만으로도 10대후반에 결혼하고, 20대 초반.중반에 결혼하면, 만혼이며 노처녀 소리를 들었다. 우리 어머니도 26살 늙은 아버지와  20살에 결혼하셨다. 

이번에도 글이 늘어지고 길어졌다. 이번 편으로 덕만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늙은 할매로 권력을 잡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결정타가 한 두편이 더 남아 있다.

다음편 예고는 삼국유사 왕력편에 기록된 덕만의 남편인 '음'갈문왕에 관한 포스팅을 할 것이다.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우리가 알고 있는 덕만의 나이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을 할 것이다.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와는 다르게 미실의 충복 칠숙과 석품이 왕위계승전에 뛰어든 이유를 설명할 것이다. 사실 미실이 죽은 606년에서 미실의 추종자로 설정된 칠숙이 반란을 일으키는 631년과는 너무나 떨어져 있지 않는가? 또하나는 칠숙과 석품의 반란을 진압한 세력이 진평왕으로 나오지만 실제는 덕만이 진압의 중추였을지 모른다는 것을 이야기하려 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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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한가닥 2009.07.25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상에서는 쌍둥이 자매로 나오던데 ..드라마는 약간의 비현실도 존재하니까 ...^^"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비현실성..

      일부러 화랑세기는 인용하지 않았음..

      화랑세기 읽으면 읽을수록 대단한 책 같아요..ㅋㅋ

      천명이 언니다.. 나이차이는나오지 않았지만..

      박창화가 지었다면 대단한 천재같아요..

  2.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5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인 관점...
    보면 볼수록 흥미진진합니다 ㅎㅎㅎ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제가 봐도 흥미진진 하긴합니다..

      IT세상이 된후.. 더 쉽게 연구를할수 있어요..

      검색이 되니..

      예전에는 어떻게 연구를 했을까 생각하니..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심이 우러나와요..

      그래서 단편적인 것도 있겠고 오류가 있을 확율이 있겠지만..

  3. 2009.07.25 1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심전심이 맞을것 같음..

      그래서 베스트 선정은 전적으로 다음측에서 해야 한다고 봐요.. 열린편집자 제도 폐지하고..

      이시간에 올리면 조회수가 안나와요.. 몇번 실험을 해봤지만, 이시간에 다음 편집자가 저랑 코드가 맞지 않는 모양입니다.. ㅠ.ㅠ.

      대부분 아침에 올린글이 저녁이나 되어서 베스트 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ㅠ.ㅠ.

      벌써 3건정도..

      저녁타임에 저랑 코드가 맞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음..

      3교대라면.. 어쩌면.. 잘봐준 분이 베스트관리자 일수도..

    •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5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는 말씀 같아요...
      와인이야기...
      오전 10시에서 12사이 올리면
      냉큼 베스트 오르는데,
      그 이외시간 올리면 잘 안오르다
      다음날 보면 올라가 잇더군요 ㅎㅎㅎ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 다음 편집자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신세가 되었는지.. 난감..

      알아서 기어야 하낭..

      그래서 제가.. 개정된 미디어업 통과를 반대합니다..

      저 같은 경우도 밥과 연관이 없는데도 눈치를 살살보는 것 같은데..

      밥이 걸려있는 기자들은 어떻겠어요.. 현재도 충분히 많이 눈치를 보고 있는데.. 광고주를..

  4. 2009.07.25 1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BlogIcon 아르테미스 2009.07.25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그냥 재밌게 보고 있어요~ㅎㅎ

    갓쉰동님~ 뵐수록 대단한데요~
    어찌 이 어려운 내용들을 ^^;;

    즐겁게 주말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맞고요..

      드라마는 드라마.. 그안에 숨은 1인치를 찾는것도 즐겁지요..

      칭찬에 몸둘바를.. (.. ) ( ..) ( '');;

  6. 역사맨 2009.07.28 0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이복동생일 가능성도 있군여
    제가 천명공주를 백과사전에 검색했었는데
    이렇게 나오더군여
    (신라 진평왕과 마야왕후 김씨의 딸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그녀가 차녀라고 하고 《화랑세기》에는 그녀가 장녀라고 하여 어느 쪽이 맞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선덕여왕과 친자매간임은 분명하다. 그녀 역시 진평왕의 왕위를 계승할 권리가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자매인 덕만이 총명했던 탓에 왕위를 양보해야만 했다)

    그리고 또 여기에서는
    <화랑세기>의 13세(世) 용춘공 기사에서는 선덕공주(덕만공주) 위에 천명공주가 있었다고 알려주고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적자가 없는 진평왕이 처음에는 금륜왕(진지왕)의 아들인 용수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그를 천명공주와 결혼시켰지만, 나중에는 선덕공주가 왕위를 이를 만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판단되자 천명공주에게 지위를 양보하도록 권유했다고 한다.
    출처 : 오마이뉴스

    위에 두글을 봤을때 화랑세기에 천명공주와 용수에게도
    계승권이 있었다는거 아닌가여?
    그렇다면 이복자매일 가능성도 줄어들게 되고?

  7. BlogIcon concessionaria fiat 2012.04.26 0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난 그냥이 게시물에 여기 당신이 가진 위대한 정보에 대한 큰 엄지손가락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더 빨리 귀하의 블로그에 돌아올 것이다.

  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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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글쓴이는 그 동안 다음 아래와 같은 선덕여왕의 공주시절에 있었던 기록을 하나 하나 추척해 들어 갔으며,
선덕왕의 <지기3사>중 첫번째 '사건인 모란씨 서되'는 진평왕의 노년인 627년 진평왕 49년에 있었던 일이라고, 그 동안 아무도 알지 못했던, 모란이 신라에 수입된 년도와 년을 특정하여 기사로 송고하였다.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또한, <지기삼사>에 얽킨 영묘사 옥문지사건과 영묘사의 창건과정을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에서 소상히 이야기 했으며, 영묘사가 만들어 지는 과정에 영묘사에 화재사건이 발생하여, 삼국사기가 선덕왕 3년 635년에 영묘사가 완성되었다는 기사와 <삼국유사>의 3년 635년에 영묘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이중적인 기록이 나온 배경에는 <지귀요탑>과 <혜공의 이적>과도 관련이 있다고 했다. 영묘사가 1차 완성 시기는 선덕왕 3년이며, 이즈음 일어난 화재사건을 <지귀요탑>이 원인되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에서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선덕여왕이 김춘추와 문희를 연결시켜 준것이 아니라, 덕만이 공주시절 김춘추와 문희의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였으며, <김유신의 불쑈>을 한 시기는 김춘추/문희 사이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의 출생일을 근거로 628년 이전에 벌어진 사건임도 증명하였다.

그럼 이들 사건들을 연표로 작성해 보자.
 
627년 11월 모란씨가 당나라로 부터 들어왔다.
628년 이전 김춘추와 문희를 엮어주어었다.
628~635년 사이 지귀심화(지귀요탑)에 의해 영묘사에 화재가 발생하여 혜공이 영묘사 사찰 일부를 보호하고, 진화되었다. 


 모란씨 사건과 <지귀심화> 사건들을 살펴 보면, 나이가 어리지 않으면 도저히 일어 날 수 없는 상황이 전개 된다. 대표적으로 <지귀심화>같은 경우 젊은 남자 지귀가 일반적으로 그동안 알고 있는 선덕왕 원년 632년에 45살 이상이 된 여자를 보고, <상사병>에 걸려 마음에 불이 일어나 자연발화(SHC) 상태로 까지 발전할 수 있는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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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삼국유사에 의하면 영묘사에 화재가 발생한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는 635년 영묘사가 완성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삼국사기를 따른다면 영묘사 화재사건은 635년 이후에 발생한 사건이 된다. 이때 덕만의 나이는 635년 선덕왕 4년으로 48세를 넘어야만 한다. 이는 더더욱 지귀의 화재사건이 성립될 수 없다. 물론, 요즘처럼 나이가 많지만, 젊음을 유지하는 연예인들이 있다. 이들을 보면 팔팔한 청춘에 불을 댕길만한 미모를 지니기도 했다.

불세출의 잉그리트 버그만이나, 엘리자베스테일러 등은 나이가 일정하게 먹고 나서도 황홀할 정도의 미모를 자랑했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경우 나이를 먹고, 젊은날의 모습을 깡그리 없애 버렸지만 말이다. 이처럼 나이를 먹고 미모를 유지한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어기는 것이다. 요즘처럼 성형기술이 뛰어나 성형을 하거나 보톡스를 맞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래도 달리는 세월을 잡을 수 없는게 자연의 섭리이다.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지껏 덕만이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고, 인정하는 이유는 다음 3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삼국사기의 선덕왕 원년 즉위할때의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다.
둘째는 신하들이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셋째는 동생이라고 추측되는 천명이 춘추를  603년에 낳았다.

핵심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라는 것이다. 만약, 천명이 덕만의 동생이 아니고, 언니라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할머니(姑) 덕만이 아닌, 시어미(姑) 정도의 나이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증거를 잡는 과정이 지귀, 모란씨, 영묘사 건축중에 벌어진 화재 사건이다.

또하나는 천명이 덕만의 언니인지 동생인지 상관없이 왕위를 잇지 못한 이유중에 천명이 진평왕의 정비인 마야부인의 소생이 아니라면 어찌될까? 

  의심스런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다름이 아니라 김춘추가 왕이 될때 그의 가계 내력을 기록한 것이다.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사기 신라 춘추왕 원년
.
김춘추의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이라고 했다.

 

진평 계보도

우리는 덕만이 진평왕과 마야부인(복승의딸) 사이에 태어났고, 장녀라는 기록을 읽었다. 춘추의 기록을 살피고 우리는 감각적으로, 또는 단순히 천명과 덕만은 형제이겠거니 한다. 그러나 같은 어머니(동복)을 두었을까? 하는 의심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진평왕은 아들이 없다. 그러니 여러 부인들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설령 아들이 있다고 해도 후비를 여럿 두는 것은 왕실의 기본 상식에 속한다. 진평 또한 손씨인 승만을 후비로 두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천명이나 덕만을 마야부인의 소생으로 알고 있을까? 더불어 삼국유사에 나온 선화공주 또한 마야의 소생으로 만들었을까? 이 함정에서 벗어난다면, 어찌 될까?


진평은 천명의 어머니를 통해서 천명을 낳고, 마야부인을 통해서 덕만을 낳았다. 진평은 적통을 이을 후손을 보기 위해서 여러 부인들을 두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장 일반적인 왕실의 살아가는 방법이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정식 왕후의 소생이 적통을 잇는다. 그리고 그 왕후와의 사이에 난 자식에게 대권이 넘어간다. 왕후가 아닌 후비사이에 태어난 왕자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왕후 사이에 태어난 적통왕자들이 없을 경우에 왕위계승권이 주어진다.

그러니 천명과 덕만은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열려 있다. 오히려 이복자매간일 가능성이 더 많다. 또한, 천명이 덕만보다 손위언니에 해당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기록 어디를 봐도 천명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단지,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 으로만 나온다. 

 
진평왕(眞平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백정(白淨)이고 진흥왕의 태자 동륜(銅輪)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만호부인(萬呼夫人)으로 갈문왕 입종(立宗)의 딸이다. 왕비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으로 갈문왕 복승(福勝)의 딸이다. 왕은 태어날 때부터 기이한 용모였고 신체가 장대하고 뜻이 깊고 굳세었으며, 지혜가 밝아 사리에 통달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진평왕

만약, 마야 또한, 왕후가 아닌 여러 후비 중의 일인 부인일 경우를 설정할 수 있으나, 마야의 아버지는 복승갈문왕이라고 했다.

<갈문왕>은 왕의 형제나, 왕후의 아버지나 미추나 지증이나 진흥이나 진평이나 춘추 같이 왕의 아들(왕자)로 태어나지 않고 왕이 되었을 때 자신의 아버지를 갈문왕으로 봉한다.

그러니 마야는 정식왕후에 등극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정식 왕후의 후생인 덕만은 장녀일까? 아닐까? 삼국사기나 일반적인 왕실의 왕위계승과 순위를 정할때 장녀는 공식(정식) 왕후사이에 태어난 사람을 일컸는 경우가 많다. 천명의 어미는 정식왕후 였지만 후에 일찍 죽고 복승의 딸인 마야가 정식왕후가 되었다면, 왕위 승계서열은 현재의 왕후소생이 된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진평왕에게는 정비인 마야부인과 후비인 손씨 승만부인이 있었다. 승만 손씨에는 후사가 없었다고 하니, 천명은 승만의 소생은 아닐것이고, 또 다른 후비의 소생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진평이 죽은 후에 천명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용수.용춘이 생존하고 있었다. 충분히 선대의 선례에 따라서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용수.용춘은 왕위계승권에 없었다. 그러니 천명이 정비인 마야의 후손이 아님이 증명된다.

신라사회는 대체적으로 사위가 왕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덕만의 경우는 사위가 왕이 되지 않았다. 이는 덕만에게는 남편이 없었거나, 싱글인 상태였거나, 당시 남편이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덕만은 632년 왕위를 이은 634년에 비로서 '음갈문왕'과 결혼을 한다.

글쓴이는 합리적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사실을 바탕으로 천명과 덕만은 배다른 이복 자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춘추의 어미 천명을 기준으로 동복 자매라는 증거가 없는한 덕만의 나이를 추론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왕실의 상식에 벗어 난다.

이제 덕만이 진평의 뒤를 이어 왕위를 승계할때 나이는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덕만의 기록들을 지기삼사 중 첫번째인 <모란씨>와 <춘추, 문희 중매>, <지귀요탑>,<영묘사화재> 사건 등을 종합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나이 많은 여왕일 하등의 이유가 없어진다. 

<성조황고>의 <황고>를 들어서 덕만이 나이가 많지 않았을까 한다면? 현재의 기준으로 한다면 "맞습니다"라고 해줄만 하다. 하지만, 신라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덕만은 충분히 <황고>소리를 듣고도 남을 나이에 왕위를 계승했다.

우리는 자신보다 나이가 조금 어린 사람에게 농담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내가 만약, 첫사랑에 실패만 하지 않았어도 너만한 아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당시 신라 사회는 첫사랑에 실패할때 결혼하고,20대에는 나이에 자식을 한둘과 30대에는 손자.손녀를 두는게 상식에 속할때이니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초경이 지나면 성인이 되어 "결혼을 시켜야 겠다"하고, 불알에 털나면 "장가가도 되겠네"하는 상식을 지니고 있는 시대와 30대가 넘어도 결혼은 무슨 소리하며,  오히려 노처녀.노총각이라고 놀리면, 시대에 덜떨어진 사람 취급 받는 세대와는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 세대만으로도 10대후반에 결혼하고, 20대 초반.중반에 결혼하면, 만혼이며 노처녀 소리를 들었다. 우리 어머니도 26살 늙은 아버지와  20살에 결혼하셨다. 

이번에도 글이 늘어지고 길어졌다. 이번 편으로 덕만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늙은 할매로 권력을 잡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결정타가 한 두편이 더 남아 있다.

다음편 예고는 삼국유사 왕력편에 기록된 덕만의 남편인 '음'갈문왕에 관한 포스팅을 할 것이다.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우리가 알고 있는 덕만의 나이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을 할 것이다.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와는 다르게 미실의 충복 칠숙과 석품이 왕위계승전에 뛰어든 이유를 설명할 것이다. 사실 미실이 죽은 606년에서 미실의 추종자로 설정된 칠숙이 반란을 일으키는 631년과는 너무나 떨어져 있지 않는가? 또하나는 칠숙과 석품의 반란을 진압한 세력이 진평왕으로 나오지만 실제는 덕만이 진압의 중추였을지 모른다는 것을 이야기하려 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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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한가닥 2009.07.25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상에서는 쌍둥이 자매로 나오던데 ..드라마는 약간의 비현실도 존재하니까 ...^^"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비현실성..

      일부러 화랑세기는 인용하지 않았음..

      화랑세기 읽으면 읽을수록 대단한 책 같아요..ㅋㅋ

      천명이 언니다.. 나이차이는나오지 않았지만..

      박창화가 지었다면 대단한 천재같아요..

  2.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5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인 관점...
    보면 볼수록 흥미진진합니다 ㅎㅎㅎ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제가 봐도 흥미진진 하긴합니다..

      IT세상이 된후.. 더 쉽게 연구를할수 있어요..

      검색이 되니..

      예전에는 어떻게 연구를 했을까 생각하니..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심이 우러나와요..

      그래서 단편적인 것도 있겠고 오류가 있을 확율이 있겠지만..

  3. 2009.07.25 1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심전심이 맞을것 같음..

      그래서 베스트 선정은 전적으로 다음측에서 해야 한다고 봐요.. 열린편집자 제도 폐지하고..

      이시간에 올리면 조회수가 안나와요.. 몇번 실험을 해봤지만, 이시간에 다음 편집자가 저랑 코드가 맞지 않는 모양입니다.. ㅠ.ㅠ.

      대부분 아침에 올린글이 저녁이나 되어서 베스트 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ㅠ.ㅠ.

      벌써 3건정도..

      저녁타임에 저랑 코드가 맞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음..

      3교대라면.. 어쩌면.. 잘봐준 분이 베스트관리자 일수도..

    •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5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는 말씀 같아요...
      와인이야기...
      오전 10시에서 12사이 올리면
      냉큼 베스트 오르는데,
      그 이외시간 올리면 잘 안오르다
      다음날 보면 올라가 잇더군요 ㅎㅎㅎ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 다음 편집자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신세가 되었는지.. 난감..

      알아서 기어야 하낭..

      그래서 제가.. 개정된 미디어업 통과를 반대합니다..

      저 같은 경우도 밥과 연관이 없는데도 눈치를 살살보는 것 같은데..

      밥이 걸려있는 기자들은 어떻겠어요.. 현재도 충분히 많이 눈치를 보고 있는데.. 광고주를..

  4. 2009.07.25 1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BlogIcon 아르테미스 2009.07.25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그냥 재밌게 보고 있어요~ㅎㅎ

    갓쉰동님~ 뵐수록 대단한데요~
    어찌 이 어려운 내용들을 ^^;;

    즐겁게 주말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맞고요..

      드라마는 드라마.. 그안에 숨은 1인치를 찾는것도 즐겁지요..

      칭찬에 몸둘바를.. (.. ) ( ..) ( '');;

  6. 역사맨 2009.07.28 0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이복동생일 가능성도 있군여
    제가 천명공주를 백과사전에 검색했었는데
    이렇게 나오더군여
    (신라 진평왕과 마야왕후 김씨의 딸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그녀가 차녀라고 하고 《화랑세기》에는 그녀가 장녀라고 하여 어느 쪽이 맞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선덕여왕과 친자매간임은 분명하다. 그녀 역시 진평왕의 왕위를 계승할 권리가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자매인 덕만이 총명했던 탓에 왕위를 양보해야만 했다)

    그리고 또 여기에서는
    <화랑세기>의 13세(世) 용춘공 기사에서는 선덕공주(덕만공주) 위에 천명공주가 있었다고 알려주고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적자가 없는 진평왕이 처음에는 금륜왕(진지왕)의 아들인 용수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그를 천명공주와 결혼시켰지만, 나중에는 선덕공주가 왕위를 이를 만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판단되자 천명공주에게 지위를 양보하도록 권유했다고 한다.
    출처 : 오마이뉴스

    위에 두글을 봤을때 화랑세기에 천명공주와 용수에게도
    계승권이 있었다는거 아닌가여?
    그렇다면 이복자매일 가능성도 줄어들게 되고?

  7. BlogIcon concessionaria fiat 2012.04.26 0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난 그냥이 게시물에 여기 당신이 가진 위대한 정보에 대한 큰 엄지손가락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더 빨리 귀하의 블로그에 돌아올 것이다.

  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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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백제와 신라의 결혼동맹(?)은 4번에 걸처 있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자세한 사항은 이전에 포스팅한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에는 나오지 않는 백제와 신라 결혼, 서동과 선화공주 그리고

를 참조하길 바랍니다. 여기서는 법흥(원종)과 보과공주의 사랑인데, 보과공주는 과연 백제의 어느왕의 자식인가에 대해서 논의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니 동성왕녀은 아닐것이라는 암시를 했었습니다.

첫번째 법흥(원종과 보과공주)

첫 결혼의 첫테이프를 끊은 사람은 법흥(원종)과 동성왕녀 보과공주, 일단 보과공주라고만 하자. 
(3세) 모랑(毛郞)은 남모의 아우이다. 이에 앞서 법흥대왕이 국공(國公)으로 백제에 들어가 보과공주(宝果公主)와 더불어 사통을 하였다. 후에 보과가 도망을 하여 입궁하여 남모와 모랑을 낳았다. -화랑세기 3대 풍월주 모랑


참고 : [역사이야기] - 화랑세기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도 있다. 

에서 동성왕의 공주인 보과로 설정하여 포스팅을 하였다. 하지만 다시 화랑세기와 삼국사기 등을 살펴보니 동성왕이 아닐 가능성이 많았다.
법흥(원종)이 국공으로 백제에 들어간 시기는 언제일까? 아버지인 지증왕이 왕이 되기 전일것이다. 왕자 신분이였다면 왕자를 표기했을 것이나 화랑세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비처(소지왕:479~500) 시기 나 그 이전 자비왕시기 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국공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약 간 맛보기로 보여주고 추후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일단, 법흥왕이 국공이였을때를 찾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국공이라 함은 왕자시절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법흥(원종)의 아버지 지증(지대로)왕이 왕이 되기전 시기로 가야 합니다. 지증왕 이전은 자비왕와 소지(비처)왕 시기를 말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흥(원종)이 백제에 국공으로 들어간 시기는 비처왕(479~500년) 이니 아무리 늦게 잡아도 500년 이전시기가 됩니다.

500년 왕은 체격이 매우 컸고 담력이 남보다 뛰어났다. 전왕(前王)이 아들없이 죽었으므로 왕위를 이어 받았다. 당시 나이는 64세였다. -삼국사기 지증왕


문제는 500년 지증(지대로)가 왕이 되었을때 적지않은 나이인 64세에 왕위에 오릅니다. 법흥(원종)에 보과가 한눈에 반할 정도가 될려면 원종이 어린나이가 되는 것은 상식에 속할 겁니다. 또한, 보과 또한 어린나이 15세전후가 될겁니다.

지대로의 장자인 원종은 지증이 갈문왕시기이 어릴쩍인 15~20세 전후에 낳은 아들이 되야 함으로 지증(437년생)+(15~20)전후 생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흥은 442~446년생이 됩니다. 장성한 법흥(원종)이 20대의 나이일때는 461~466년 사이가 됩니다. 늦어도 470년전후 시기에 해당합니다.

470년 전후 백제의 왕은 누구일까요?

455년 개로왕(蓋鹵王)<혹은 근개루(近蓋婁)라고도 하였다.>은 이름이 경사(慶司)이고 비유왕(毗有王)의 맏아들이다. 비유왕이 재위 29년에 죽자 왕위를 이었다. - 삼국사기

백제의 왕은 475년 고구려 장수왕에 한성을 내주고 죽은 개로왕(455~475년) 시기에 해당합니다. 

475년 7월에 고구려 왕 거련(巨連)[장수왕]이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공격하였다. 백제 왕 경(慶)[개로왕]이 아들 문주(文周)를 보내 도움을 요청하였으므로 왕이 군사를 내어 구원하였으나, 구원병이 이르기도 전에 백제는 이미 함락되고 경(慶)[개로왕] 역시 살해당하였다. -삼국사기 자비왕


위의 계보도는 삼국사기를 기준으로 하고 있으나 곤지의 계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삼국유사는 개로왕의 아우로 나오며, 일본서기도 개로왕의 아우로 나온다. 또한, 무령왕의 출자에 관해서는 삼국사기는 동성왕(모대)의 2자로 나오지만, 일본서기나 삼국유사를 기준으로 한다면, 개로왕의 아들이 됨을 알 수 있다.  


백제의 보과공주는 개로왕의 왕녀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보과공주는 개로왕이 죽은 후 웅진(공주)로 천도한 문주왕과는 남매간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백제가 위기에 처했을때 문주는 신라로 파견되어 구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때 도움을 준 사람이 법흥(원종)에 시집간 보과공주일것으로 추측됩니다.

문제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보과/법흥 사이에 태어난 3세 풍월주 모랑이 548년 진흥왕 9년에 풍월주에 오르고 555년 비사벌에 여행을 하다 병을 얻어 사망했다. 모랑의 손위 누이가 되는 남모는 진흥왕 원년 540년이전 원화의 지위에 있었는데  그렇다면 법흥(원종)이 국공일때는 늦어도 500년 전후에  태어났어야 한다. 540년에 남모의 나이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 이른다. 법흥/보도 사이의 태어나 진흥왕의 어미가 되는 지소태후와는 이복자매가 됨을 알 수 있다. 지소태후가 삼산공의 딸인 준정보다 자매인 남모를 원화로 밀어 세운 이유는 피의 끌림이지 않을가 한다. 또한가지 남모(법흥/보가)가 지소(법흥/보도)태후보다는 손위 언니뻘일 가능성이 높다.


화랑이전 원화제도가 있을때에는 나이어린 소녀가 아닌 농익은 성인 여성을 원화로 세웠을 개연성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창작한 위서가 된다.

글쓴이는 백제의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때 신라가 백제를 구원한 극적인 이유를 법흥왕과 보과의 사랑에서 찾고자 했었다. 하지만, 이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보과공주가 사랑을 찾아 신라로 넘어온 시기는 500년 전후시기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번째 결혼 동성왕과 이찬 비지녀
백제 동성왕 15년(493) 봄 3월에 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니 신라 왕은 이찬(伊) 비지(比智)의 딸을 시집보냈다. - 삼국사기



법흥/보과의 사랑을 첫번째로 설정하고 2번째 동성왕/이찬비지녀로 하였지만, 동성/이찬비지녀가 첫번째가 되고 법흥/보과가 백제/신라의 2번째 결혼임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동성왕은 이찬비지의 딸을 후비로 맞기도 하지만, 자신의 딸이 법흥(원종)과 사랑의 도피를 하는 것을 지켜 봐야 했을 것이다. 

또한가지는 법흥(원종)과 입종은 지증왕(지대로)가 40대가 다되어서 얻은 아들이라고 추측된다. 그렇지 않다면, 보과는 적지 않은 나이의 법흥(원종)을 사랑한 것이다.

어찌되었던 고구려에 위기를 느낀 백제와 신라는 결혼을 매개로 신라와 동맹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동성왕과 신라 이찬비지의 딸이되고, 동성왕의 딸 보과와 법흥이며, 성왕의 딸이 진흥왕의 소비가 되며, 서동(무왕)과 진평왕의 딸에 이르게 된다.

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진흥왕(입종/지소)을 천수를 누린 노인으로 설정하였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540년 진흥왕(眞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삼맥종(彡麥宗)이다.<혹은 심맥부(深麥夫)라고도 썼다.> 그때 나이는 일곱 살이었다. 법흥왕의 동생 갈문왕(葛文王) 입종(立宗)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로 법흥왕의 딸이고, 왕비는 박씨 사도부인(思道夫人)이다. 왕이 어렸으므로 왕태후(王太后)가 섭정하였다. - 삼국사기 진흥원년


진흥왕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7세에 큰아버지 법흥왕을 대신에 왕위를 잇는다. 진흥왕의 제위기간은 540~576년이니 37년간 왕위에 있었다. 진흥왕은 534년생이고, 551년 진흥왕 12년 연호를 개국으로 바꾸고, 지소태후의 그늘에서 벗어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576년에 죽을때 나이는 43세가 된다. 한참 팔팔한 나이때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텍스트인 화랑세기에 의하면 지소태후와 태종(이사부)의 아들이며 미실의 남편인 세종은 진흥의 막내동생 뻘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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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balloons 2011.12.19 0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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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아름다운 날 놀라게하는 군, 중단하지 마십시오

  4. BlogIcon 박기동 2012.01.07 0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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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BlogIcon 루시 2012.05.11 0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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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BlogIcon Milf Pussy 2012.07.21 2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 그 시대를 가보지 않는다며 말이다. 그래서 작가는 직접본 것 같은 시청자가 그 시대를 여행하는 느낌

  10. BlogIcon Daphne 2012.08.09 2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식인가에 대해서 논의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

  11. BlogIcon Green Pest Control - Next Gen 2012.09.05 0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잔 테크니컬 평창홍보관에서 김연아를 보려고 아무리 많이 몰려오고 김연아와 사진을 찍으려고 하던 상관이 없다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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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깅은 할 훌륭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식을 많이 열 수 있습니다.

  14. BlogIcon montreal escorts 2012.10.02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업 세계는 노동의 권리에보다 많은 관심을 지불해야합니다. 그들은 종종 가야 후 더 얻을.

  15. BlogIcon Polo lacoste 2012.10.24 2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는 법흥(원종)과 보과공주의 사랑인데, 보과공주는 과연 백제의 어느왕의 자식인가에 대해서 논의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니 동성왕녀은 아닐것이라는 암시를 했었습니다.

  16. BlogIcon portable fence for dogs when camping 2012.11.14 1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도 걸릴 및 비즈니스 거래는 모든 비용을 커버하는 데 필요한 몇 생각입니다. 정직하고 현실적이어야합니다. 당신은 더 나은 표현한 이상을 계산합니다.

  17. BlogIcon multi function tool bosch 2012.11.20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18. BlogIcon solar powered radio with cell phone charger 2012.12.19 1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이전 원화제도가 있을때에는 나이어린 소녀가 아닌 농익은 성인 여성을 원화로 세웠을 개연성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창작한 위서가 된다.

  19. BlogIcon invisible fence installation instructions 2012.12.27 17: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다면 법흥(원종)이 백제에 국공으로 들어간 시기는 비처왕(479~500년) 이니 아무리 늦게 잡아도 500년 이전시기가 됩니다.

  20. BlogIcon storing food in mylar bags 2013.01.05 2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니 동성왕녀은 아닐것이라는 암시를 했었습니다.

백제와 신라의 결혼동맹(?)은 4번에 걸처 있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자세한 사항은 이전에 포스팅한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에는 나오지 않는 백제와 신라 결혼, 서동과 선화공주 그리고

를 참조하길 바랍니다. 여기서는 법흥(원종)과 보과공주의 사랑인데, 보과공주는 과연 백제의 어느왕의 자식인가에 대해서 논의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니 동성왕녀은 아닐것이라는 암시를 했었습니다.

첫번째 법흥(원종과 보과공주)

첫 결혼의 첫테이프를 끊은 사람은 법흥(원종)과 동성왕녀 보과공주, 일단 보과공주라고만 하자. 
(3세) 모랑(毛郞)은 남모의 아우이다. 이에 앞서 법흥대왕이 국공(國公)으로 백제에 들어가 보과공주(宝果公主)와 더불어 사통을 하였다. 후에 보과가 도망을 하여 입궁하여 남모와 모랑을 낳았다. -화랑세기 3대 풍월주 모랑


참고 : [역사이야기] - 화랑세기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도 있다. 

에서 동성왕의 공주인 보과로 설정하여 포스팅을 하였다. 하지만 다시 화랑세기와 삼국사기 등을 살펴보니 동성왕이 아닐 가능성이 많았다.
법흥(원종)이 국공으로 백제에 들어간 시기는 언제일까? 아버지인 지증왕이 왕이 되기 전일것이다. 왕자 신분이였다면 왕자를 표기했을 것이나 화랑세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비처(소지왕:479~500) 시기 나 그 이전 자비왕시기 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국공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약 간 맛보기로 보여주고 추후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일단, 법흥왕이 국공이였을때를 찾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국공이라 함은 왕자시절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법흥(원종)의 아버지 지증(지대로)왕이 왕이 되기전 시기로 가야 합니다. 지증왕 이전은 자비왕와 소지(비처)왕 시기를 말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흥(원종)이 백제에 국공으로 들어간 시기는 비처왕(479~500년) 이니 아무리 늦게 잡아도 500년 이전시기가 됩니다.

500년 왕은 체격이 매우 컸고 담력이 남보다 뛰어났다. 전왕(前王)이 아들없이 죽었으므로 왕위를 이어 받았다. 당시 나이는 64세였다. -삼국사기 지증왕


문제는 500년 지증(지대로)가 왕이 되었을때 적지않은 나이인 64세에 왕위에 오릅니다. 법흥(원종)에 보과가 한눈에 반할 정도가 될려면 원종이 어린나이가 되는 것은 상식에 속할 겁니다. 또한, 보과 또한 어린나이 15세전후가 될겁니다.

지대로의 장자인 원종은 지증이 갈문왕시기이 어릴쩍인 15~20세 전후에 낳은 아들이 되야 함으로 지증(437년생)+(15~20)전후 생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흥은 442~446년생이 됩니다. 장성한 법흥(원종)이 20대의 나이일때는 461~466년 사이가 됩니다. 늦어도 470년전후 시기에 해당합니다.

470년 전후 백제의 왕은 누구일까요?

455년 개로왕(蓋鹵王)<혹은 근개루(近蓋婁)라고도 하였다.>은 이름이 경사(慶司)이고 비유왕(毗有王)의 맏아들이다. 비유왕이 재위 29년에 죽자 왕위를 이었다. - 삼국사기

백제의 왕은 475년 고구려 장수왕에 한성을 내주고 죽은 개로왕(455~475년) 시기에 해당합니다. 

475년 7월에 고구려 왕 거련(巨連)[장수왕]이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공격하였다. 백제 왕 경(慶)[개로왕]이 아들 문주(文周)를 보내 도움을 요청하였으므로 왕이 군사를 내어 구원하였으나, 구원병이 이르기도 전에 백제는 이미 함락되고 경(慶)[개로왕] 역시 살해당하였다. -삼국사기 자비왕


위의 계보도는 삼국사기를 기준으로 하고 있으나 곤지의 계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삼국유사는 개로왕의 아우로 나오며, 일본서기도 개로왕의 아우로 나온다. 또한, 무령왕의 출자에 관해서는 삼국사기는 동성왕(모대)의 2자로 나오지만, 일본서기나 삼국유사를 기준으로 한다면, 개로왕의 아들이 됨을 알 수 있다.  


백제의 보과공주는 개로왕의 왕녀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보과공주는 개로왕이 죽은 후 웅진(공주)로 천도한 문주왕과는 남매간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백제가 위기에 처했을때 문주는 신라로 파견되어 구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때 도움을 준 사람이 법흥(원종)에 시집간 보과공주일것으로 추측됩니다.

문제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보과/법흥 사이에 태어난 3세 풍월주 모랑이 548년 진흥왕 9년에 풍월주에 오르고 555년 비사벌에 여행을 하다 병을 얻어 사망했다. 모랑의 손위 누이가 되는 남모는 진흥왕 원년 540년이전 원화의 지위에 있었는데  그렇다면 법흥(원종)이 국공일때는 늦어도 500년 전후에  태어났어야 한다. 540년에 남모의 나이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 이른다. 법흥/보도 사이의 태어나 진흥왕의 어미가 되는 지소태후와는 이복자매가 됨을 알 수 있다. 지소태후가 삼산공의 딸인 준정보다 자매인 남모를 원화로 밀어 세운 이유는 피의 끌림이지 않을가 한다. 또한가지 남모(법흥/보가)가 지소(법흥/보도)태후보다는 손위 언니뻘일 가능성이 높다.


화랑이전 원화제도가 있을때에는 나이어린 소녀가 아닌 농익은 성인 여성을 원화로 세웠을 개연성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창작한 위서가 된다.

글쓴이는 백제의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때 신라가 백제를 구원한 극적인 이유를 법흥왕과 보과의 사랑에서 찾고자 했었다. 하지만, 이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보과공주가 사랑을 찾아 신라로 넘어온 시기는 500년 전후시기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번째 결혼 동성왕과 이찬 비지녀
백제 동성왕 15년(493) 봄 3월에 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니 신라 왕은 이찬(伊) 비지(比智)의 딸을 시집보냈다. - 삼국사기



법흥/보과의 사랑을 첫번째로 설정하고 2번째 동성왕/이찬비지녀로 하였지만, 동성/이찬비지녀가 첫번째가 되고 법흥/보과가 백제/신라의 2번째 결혼임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동성왕은 이찬비지의 딸을 후비로 맞기도 하지만, 자신의 딸이 법흥(원종)과 사랑의 도피를 하는 것을 지켜 봐야 했을 것이다. 

또한가지는 법흥(원종)과 입종은 지증왕(지대로)가 40대가 다되어서 얻은 아들이라고 추측된다. 그렇지 않다면, 보과는 적지 않은 나이의 법흥(원종)을 사랑한 것이다.

어찌되었던 고구려에 위기를 느낀 백제와 신라는 결혼을 매개로 신라와 동맹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동성왕과 신라 이찬비지의 딸이되고, 동성왕의 딸 보과와 법흥이며, 성왕의 딸이 진흥왕의 소비가 되며, 서동(무왕)과 진평왕의 딸에 이르게 된다.

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진흥왕(입종/지소)을 천수를 누린 노인으로 설정하였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540년 진흥왕(眞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삼맥종(彡麥宗)이다.<혹은 심맥부(深麥夫)라고도 썼다.> 그때 나이는 일곱 살이었다. 법흥왕의 동생 갈문왕(葛文王) 입종(立宗)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로 법흥왕의 딸이고, 왕비는 박씨 사도부인(思道夫人)이다. 왕이 어렸으므로 왕태후(王太后)가 섭정하였다. - 삼국사기 진흥원년


진흥왕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7세에 큰아버지 법흥왕을 대신에 왕위를 잇는다. 진흥왕의 제위기간은 540~576년이니 37년간 왕위에 있었다. 진흥왕은 534년생이고, 551년 진흥왕 12년 연호를 개국으로 바꾸고, 지소태후의 그늘에서 벗어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576년에 죽을때 나이는 43세가 된다. 한참 팔팔한 나이때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텍스트인 화랑세기에 의하면 지소태후와 태종(이사부)의 아들이며 미실의 남편인 세종은 진흥의 막내동생 뻘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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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balloons 2011.12.19 0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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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BlogIcon 박기동 2012.01.07 0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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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BlogIcon 릴리안 2012.04.03 2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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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BlogIcon Makayla 2012.05.08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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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BlogIcon 루시 2012.05.11 0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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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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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법흥(원종)과 보과공주의 사랑인데, 보과공주는 과연 백제의 어느왕의 자식인가에 대해서 논의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니 동성왕녀은 아닐것이라는 암시를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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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18. BlogIcon solar powered radio with cell phone charger 2012.12.19 1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이전 원화제도가 있을때에는 나이어린 소녀가 아닌 농익은 성인 여성을 원화로 세웠을 개연성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창작한 위서가 된다.

  19. BlogIcon invisible fence installation instructions 2012.12.27 17: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다면 법흥(원종)이 백제에 국공으로 들어간 시기는 비처왕(479~500년) 이니 아무리 늦게 잡아도 500년 이전시기가 됩니다.

  20. BlogIcon storing food in mylar bags 2013.01.05 2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니 동성왕녀은 아닐것이라는 암시를 했었습니다.

성골이 진골이고 진골이 성골이다.

글쓴이는 [[역사이야기] - 사극으로 배우는 역사, 성골은 없다.] 에서 성골은 없고, 진골이 곧 성골이며, 왕족이라고 주장했다. 위글에 이어서 글을 이어 가고자 한다. 

일명 <성골>,<진골> 있었다고 생각 하는 진평왕때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삼국사기> <설계두>열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설계두(薛頭)<어느 책에는 [설(薛)을] 살(薩)자로 썼다.>도 신라 귀족 가문의 자손이었다. 일찍이 친구 네 사람과 함께 모여 술을 마시면서 각자 자기의 뜻을 말하였는데 계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신라에서 사람을 등용하는 데 골품을 따지기 때문에 진실로 그 족속이 아니면, 비록 큰 재주와 뛰어난 공이 있어도 그 한계를 넘을 수가 없다. 나는 원컨대 서쪽 중국[中華國]으로 가서 세상에서 보기 드문 지략을 드날려 특별한 공을 세워 스스로의 힘으로 영광스런 관직에 올라 의관을 차려 입고 칼을 차고서 천자의 측근에 출입하면 만족하겠다.” - 삼국사기 열전 설계두 

최고위 귀족층인 6부 호진공 <설>씨 가문인 <설계두> 조차도 계급적 차별을 느끼고 당나라에 망명하고 있다. 이처럼 신라의 신분제도의 한계를 느끼게 하고 있다.  당시 계급적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설계두 조차도 <귀족>과 <골품>을 구별하기는 하지만 <성골>, <진골>을 말하고 있지 않고 있다.

설계두는 <골품>때문에 신라에서 상위 등급으로 오르는 것이 한계가 있음을 뼈속깊이 느끼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고, 영호징 또한 골품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설계두는  무덕(武德) 4년 신사(진평왕43년: 621)에 몰래 바다 배를 따라 당나라에 들어갔다.  

646년 당나라 태종(이세민)이 고구려를 칠때 안시성 앞 주필산 전투에서 고구려 군에 당군이 밀리는 상황에서도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죽었다. 이를 기화로 당군이 고구려군에 역전을 하고 고구려의 15만 대군이 몰살을 당하고 항복에 이르게 한 인물이다. 그래서 당태종이 기뻐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이르길 집을 짓거나 옷을 입거나, 말을 타거나, 관직에 등용되거나 하는 모든것에 신분적인 제약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구분은 <4두품이하 평민>, <5두품>, <6두품>, <진골> 로 만 구분하고 있다.

<성골>이전 시기라고 믿고 있던 1대 <박혁거세>로 부터 28대 <진덕왕>시기 까지도 <왕자>나 <태자>도 관직에 나아가 전쟁을 수행하고 내정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성골>과 <진골>을 구분할때.

신라 왕의 근친혼을 들어 <성골>은 왕족과 왕족간의 혼인 또는 왕과 왕의 형제와 결혼을 해야 성골을 유지하고 그렇지 않다면 김서현처럼 진골출신과 결혼을 하면 <진골>로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구분법은 바로 <진평왕>을 보면 참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진평왕과 김춘추의 부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지증 -> 입종-> 진흥  -> 동륜 -> 진평

지증 - >입종 ->진흥 -> 금륜(진지왕)-> 용수 -> 춘추


진평/춘추 지증왕의 손자인 진흥왕계열이고 진평왕이나 춘추나 아버지는 왕위를 잇지 못했다. 둘다 왕의 <손자>로 왕위를 계승했음을 알 수 있다. 진흥왕 또한, 지증왕의 손자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로써 부계 때문에 <성골>,<진골>을 나누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랑세기의 절묘함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화랑세기는 왕위계승을 여자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물론, 이또한, 김미추왕 이후에 적용되지 김미추 이전의 왕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화랑세기에도 성골/진골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진골만 드러날 뿐이다. 화랑세기를 읽으면 읽을 수록 빠져드는 이유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비껴가지 않고 절묘하게 이를 조화시킨다는데 있다. 오히려, 화랑세기가 의심스런 대목이 이런 절묘함이다.

화랑세기가 있고 400~500년 후 나타난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서로 보완하고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다른 이설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삼국사기, 삼국유사 보다 400년 이전 화랑세기가 후대의 사서를 넘나들면서도 이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금 이상하지 않는가?  화랑세기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보고 작성된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성골과 진골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이 들고 나온  가설이

<성골>인 <김춘추>가 <진골>인 금관가야 구형왕의 후손인 <김서현>의 자식 <문희>를 맞이하여 <성골>에서 <진골>로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적자가 아닌 첩의 자식이나 노비의 후손이라면 모르지만 본인이 <성골>인데 단지 <부인>이 진골이기 때문에 <성골>에서 <진골>로 떨어지는 것이라면 <설계두>가 당나라로 떠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어미>에 의해서 자식의 신분이 정해 정해지기는 한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김씨계 첫왕인 13대 미추왕은 신라에 의해서 패망한 소문국의 공주와 결혼한 구도의 후손이다. 그런데도 미추는 성골이 된다. 김씨계의 선조인 김알지도 성골출신은 아니였고, 석탈해도 성골출신은 아니였다. 그렇다면 이들 석씨왕들은 성골일까? 진골일까?  

<부인>을 맞이함에 따라서 본인의 신분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성스런 성골일 수 없는 것이다. 신분제약이 심한 조선에서 조차도 왕가의 씨는 <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무수리>에서 난 <영조>가 그러했고, <철종>또한 그러했다. 일반 귀족이던 양반이던 자신의 대에는 계급적 차별이 없고 단지 후손에게 신분상의 제약이 있을 뿐이다. 본인이 <왕가>와 결혼하면 <왕가>로 편입되지 그 밑으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또한 그 후손 또한 왕가의 후손일 뿐이다. 이를 맞이하는 부인에 의해서 올라갈수는 있지만 내려가는 예가 없는 것이다. 어미 신분에 따라서 신분이 결정되는 것은 후손들의 문제일 뿐이다. 화랑세기는 왕족에서 남여 구분없이 결혼상대자는 높은 지위쪽으로 레벨상승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물론, 또다른 가설을 내세우는 경우는 26대 진지왕의 폐위를어 진지왕의 후손들은 진골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 또한, 말이 되지 않는 경우가 18대 실성왕은 고구려를 등에 업은 눌지로 대변되는 '국인'에 의해서 폐위되었다. 그러나 실성왕의 딸과 결혼한 19대 눌지왕은 성골일까? 진골일까? 그의 후손으로 왕이 된, 20대 자비와 21대 소지왕은 성골일까? 진골일까?

설령 <성골>, <진골>을 구분할 수 있다면 김춘추는 <성골>이고, 그의 아들들인 <문무:법민>,<인문> 등과 그의 자손 부터 <진골>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김춘추>부터 <진골>이다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왕족>과 결혼하면 <왕족>이 되는 수는 있지만 반대로 <진골>이 <성골>부인을 맞이하면 <성골>이 된다는 이야기 인가? 이에 대한 답을 내 놓는 사람은 없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진골/성골은 단지 시대를 구분하는 말이상 이하도 아니다. 진골이 성골이고 성골이 진골인 것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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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미케미케 2009.07.10 1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지럽네요.. 그렇다면 애초에 성골과 진골이란 단어의 사용은 왜 이루어진 것인가요?
    통일신라이후에 진골이란 소린가요? 예전에 국사선생님마다 설명이 달라서... 정말로 이건 논쟁거리가 될것같네요 누구하나 확실한게 없으니 ㅎㅎ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선덕여왕 고증포스트가 많은것 같은데 구독도하고가야겠어요.
    저도 선덕여왕 포스팅은 자주하고 있거든요 ^^ 그럼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BlogIcon 갓쉰동 2009.07.10 1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첫번째 링크를 따라 가보심이.. 성골은 없다..

      국사 선생님마다 설명이 다르기 때문에 성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게 저의 핵심 주장입니다.
      제가 이를 증명하고 있는 거지요.. ^___^

      미케님의 글 자주 뵌것 같군요.. ^___^ 앞으로 자주 뵙겠습니다.

  2. BlogIcon thezle 2009.07.10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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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댓글입니다

  4. BlogIcon balloons 2011.12.19 0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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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BlogIcon 천사 2012.01.03 1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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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BlogIcon 가브리엘라 2012.04.03 2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은 오해였습니다.

  10. BlogIcon 알렉 산드라 2012.04.05 2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먹었습니다.

  11. BlogIcon 제비꽃 2012.05.08 2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죄송합니다.

  12. BlogIcon 테일러 2012.05.11 0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살 여유가 없습니다.

  13.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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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역사이야기] - 사극으로 배우는 역사, 성골은 없다.] 에서 성골은 없고, 진골이 곧 성골이며, 왕족이라고 주장했다. 위글에 이어서 글을 이어 가고자 한다. 

일명 <성골>,<진골> 있었다고 생각 하는 진평왕때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삼국사기> <설계두>열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설계두(薛頭)<어느 책에는 [설(薛)을] 살(薩)자로 썼다.>도 신라 귀족 가문의 자손이었다. 일찍이 친구 네 사람과 함께 모여 술을 마시면서 각자 자기의 뜻을 말하였는데 계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신라에서 사람을 등용하는 데 골품을 따지기 때문에 진실로 그 족속이 아니면, 비록 큰 재주와 뛰어난 공이 있어도 그 한계를 넘을 수가 없다. 나는 원컨대 서쪽 중국[中華國]으로 가서 세상에서 보기 드문 지략을 드날려 특별한 공을 세워 스스로의 힘으로 영광스런 관직에 올라 의관을 차려 입고 칼을 차고서 천자의 측근에 출입하면 만족하겠다.” - 삼국사기 열전 설계두 

최고위 귀족층인 6부 호진공 <설>씨 가문인 <설계두> 조차도 계급적 차별을 느끼고 당나라에 망명하고 있다. 이처럼 신라의 신분제도의 한계를 느끼게 하고 있다.  당시 계급적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설계두 조차도 <귀족>과 <골품>을 구별하기는 하지만 <성골>, <진골>을 말하고 있지 않고 있다.

설계두는 <골품>때문에 신라에서 상위 등급으로 오르는 것이 한계가 있음을 뼈속깊이 느끼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고, 영호징 또한 골품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설계두는  무덕(武德) 4년 신사(진평왕43년: 621)에 몰래 바다 배를 따라 당나라에 들어갔다.  

646년 당나라 태종(이세민)이 고구려를 칠때 안시성 앞 주필산 전투에서 고구려 군에 당군이 밀리는 상황에서도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죽었다. 이를 기화로 당군이 고구려군에 역전을 하고 고구려의 15만 대군이 몰살을 당하고 항복에 이르게 한 인물이다. 그래서 당태종이 기뻐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이르길 집을 짓거나 옷을 입거나, 말을 타거나, 관직에 등용되거나 하는 모든것에 신분적인 제약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구분은 <4두품이하 평민>, <5두품>, <6두품>, <진골> 로 만 구분하고 있다.

<성골>이전 시기라고 믿고 있던 1대 <박혁거세>로 부터 28대 <진덕왕>시기 까지도 <왕자>나 <태자>도 관직에 나아가 전쟁을 수행하고 내정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성골>과 <진골>을 구분할때.

신라 왕의 근친혼을 들어 <성골>은 왕족과 왕족간의 혼인 또는 왕과 왕의 형제와 결혼을 해야 성골을 유지하고 그렇지 않다면 김서현처럼 진골출신과 결혼을 하면 <진골>로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구분법은 바로 <진평왕>을 보면 참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진평왕과 김춘추의 부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지증 -> 입종-> 진흥  -> 동륜 -> 진평

지증 - >입종 ->진흥 -> 금륜(진지왕)-> 용수 -> 춘추


진평/춘추 지증왕의 손자인 진흥왕계열이고 진평왕이나 춘추나 아버지는 왕위를 잇지 못했다. 둘다 왕의 <손자>로 왕위를 계승했음을 알 수 있다. 진흥왕 또한, 지증왕의 손자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로써 부계 때문에 <성골>,<진골>을 나누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랑세기의 절묘함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화랑세기는 왕위계승을 여자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물론, 이또한, 김미추왕 이후에 적용되지 김미추 이전의 왕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화랑세기에도 성골/진골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진골만 드러날 뿐이다. 화랑세기를 읽으면 읽을 수록 빠져드는 이유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비껴가지 않고 절묘하게 이를 조화시킨다는데 있다. 오히려, 화랑세기가 의심스런 대목이 이런 절묘함이다.

화랑세기가 있고 400~500년 후 나타난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서로 보완하고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다른 이설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삼국사기, 삼국유사 보다 400년 이전 화랑세기가 후대의 사서를 넘나들면서도 이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금 이상하지 않는가?  화랑세기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보고 작성된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성골과 진골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이 들고 나온  가설이

<성골>인 <김춘추>가 <진골>인 금관가야 구형왕의 후손인 <김서현>의 자식 <문희>를 맞이하여 <성골>에서 <진골>로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적자가 아닌 첩의 자식이나 노비의 후손이라면 모르지만 본인이 <성골>인데 단지 <부인>이 진골이기 때문에 <성골>에서 <진골>로 떨어지는 것이라면 <설계두>가 당나라로 떠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어미>에 의해서 자식의 신분이 정해 정해지기는 한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김씨계 첫왕인 13대 미추왕은 신라에 의해서 패망한 소문국의 공주와 결혼한 구도의 후손이다. 그런데도 미추는 성골이 된다. 김씨계의 선조인 김알지도 성골출신은 아니였고, 석탈해도 성골출신은 아니였다. 그렇다면 이들 석씨왕들은 성골일까? 진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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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또다른 가설을 내세우는 경우는 26대 진지왕의 폐위를어 진지왕의 후손들은 진골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 또한, 말이 되지 않는 경우가 18대 실성왕은 고구려를 등에 업은 눌지로 대변되는 '국인'에 의해서 폐위되었다. 그러나 실성왕의 딸과 결혼한 19대 눌지왕은 성골일까? 진골일까? 그의 후손으로 왕이 된, 20대 자비와 21대 소지왕은 성골일까? 진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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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진골/성골은 단지 시대를 구분하는 말이상 이하도 아니다. 진골이 성골이고 성골이 진골인 것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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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미케미케 2009.07.10 1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지럽네요.. 그렇다면 애초에 성골과 진골이란 단어의 사용은 왜 이루어진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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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사 선생님마다 설명이 다르기 때문에 성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게 저의 핵심 주장입니다.
      제가 이를 증명하고 있는 거지요..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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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thezle 2009.07.10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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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9.07.10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BlogIcon balloons 2011.12.19 0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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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BlogIcon 천사 2012.01.03 1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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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BlogIcon 고명진 2012.01.07 04: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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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BlogIcon 제비꽃 2012.05.08 2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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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BlogIcon 테일러 2012.05.11 0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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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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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4: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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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삼국사기의 기록과 삼국유사의 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삼국사기 본기 신라법흥왕 15년 기사>>

 

15년(528) 불교를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일찍이 눌지왕 때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고구려로부터 일선군(一善郡)에 왔는데, 그 고을 사람 모례(毛禮)가 자기 집 안에 굴을 파고 방을 만들어 있게 하였다. 그때 양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와 의복과 향을 보내주었다. 임금과 신하들이 그 향의 이름과 쓸 바를 몰랐으므로 사람을 보내 향을 가지고 다니며 두루 묻게 하였다. 묵호자가 이를 보고 그 이름을 대면서 말하였다. 이것을 사르면 향기가 나는데, 신성(神聖)에게 정성을 도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신성스러운 것으로는 삼보(三寶)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첫째는 불타(佛陀)요, 둘째는 달마(達摩)이고, 셋째는 승가(僧伽)입니다. 만약 이것을 사르면서 소원을 빌면 반드시 영험(靈驗)이 있을 것입니다. 그 무렵 왕의 딸이 병이 심하였으므로 왕은 묵호자로 하여금 향을 사르고 소원을 말하게 하였더니, 왕의 딸 병이 곧 나았다. 왕이 매우 기뻐하여 음식과 선물을 많이 주었다. 묵호자가 [궁궐에서] 나와 모례를 찾아보고 얻은 물건들을 그에게 주면서 “나는 지금 갈 곳이 있어 작별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하고는 잠시 후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비처왕(毗處王) 때에 이르러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시중드는 이 세 사람과 함께 모례의 집에 또 왔다. 모습이 묵호자와 비슷하였는데 몇 년을 그곳에서 살다가 병(病)도 없이 죽었다. 시중들던 세 사람은 머물러 살면서 경(經)과 율(律)을 강독하였는데 신봉자가 가끔 있었다.

 

이때 와서 왕 또한 불교를 일으키고자 하였으나 뭇 신하들이 믿지 않고 이런 저런 불평을 많이 하였으므로 왕이 난처하였다. 왕의 가까운 신하 이차돈(異次頓) <혹은 처도(處道)라고도 하였다.>이 아뢰었다. “바라건대 하찮은 신(臣)을 목 베어 뭇 사람들의 논의를 진정시키십시오.” 왕이 말하였다. “본래 도(道)를 일으키고자 함인데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자 [이차돈이] 대답하였다. “만약 도가 행해질 수 있다면 신은 비록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이에 왕이 여러 신하들을 불러 의견을 물으니 모두 말하였다. “지금 중들을 보니 깍은 머리에 이상한 옷을 입었고, 말하는 논리가 기이하고 괴상하여 일상적인 도(道)가 아닙니다. 지금 만약 이를 그대로 놓아두면 후회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신 등은 비록 무거운 벌을 받더라도 감히 명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차돈 혼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금 뭇 신하들의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비상(非常)한 사람이 있은 후에야 비상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듣건대 불교가 심오하다고 하니,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뭇 사람들의 말이 견고하여 이를 깨뜨릴 수가 없는데, 유독 너만 다른 말을 하니 양 쪽을 모두 따를 수는 없다.” 드디어 이차돈을 관리에게 넘겨 목을 베게 하니, 이차돈이 죽음에 임하여 말하였다. 나는 불법(佛法)을 위하여 형(刑)을 당하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만약 신령스러움이 있다면 나의 죽음에 반드시 이상한 일이 있을 것이다. 목을 베자 잘린 곳에서 피가 솟구쳤는데 그 색이 우유빛처럼 희었다. 뭇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다시는 불교를 헐뜯지 않았다.<이는 김대문(金大問)의 계림잡전(鷄林雜傳) 기록에 의거하여 쓴 것인데, 한나마(韓奈麻) 김용행(金用行)이 지은 아도화상비(我道和尙碑)의 기록과는 자못 다르다.>

 

<<삼국유사  원종,염촉(이차돈)>>

 

<신라본기(新羅本紀)>에 보면 법흥대왕(法興大王)이 즉위한 14년(527)에 신하 이차돈(異次頓)이 불법(佛法)을 위해서 자기 몸을 죽이니 곧 소량(蕭梁) 보통(普通) 8년 정미(丁未; 527)에 서천축(西天竺)의 달마대사(達磨大師)가 금릉(金陵)에 온 해다.  이 해에 낭지법사(朗智法師)도 또한 영취산(靈鷲山)에 살면서 법장(法場)을 열었으니 불교의 흥하고 쇠하는 것도 반드시 원근(遠近)에서 한 시기에 서로 감응한다는 것을 이 일로 해서 알 수가 있다 

 

원화(元和) 연간(806~820)에 남간사(南澗寺)의 중 일념(一念)이 촉향분례불결사문(髑香墳禮佛結社文)을 지었는데, 이 사실이 자세히 실려 있으니 그 대략은 이러하다.  예전에 법흥대왕이 자극전(紫極殿)에서 왕위에 올랐을 때에 동쪽 지역을 살펴보고 말했다.  “예전에 한(漢)나라 명제(明帝)가 꿈에 감응되어 불법이 동쪽으로 흘러들어왔다.  내가 왕위에 오른 뒤로 백성들을 위해 복을 닦고 죄를 없앨 곳을 마련하려 한다.”  이에 조신들(향전鄕傳에서는 공목알공工目謁恭 등이라 했다.)은 왕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오직 나라를 다스리는 대의(大義)만을 지켜 절을 세우겠다는 신령스러운 생각에 따르지 않자 대왕은 탄식했다.  “아아!  나는 덕이 없는 사람으로 왕업(王業)을 이어받아 위로는 음양(陰陽)의 조화(造化)가 모자라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즐겨하는 일이 없어서 정사를 닦는 여가에 불교에 마음을 두었으니 그 누가 나의 일을 함께 할 것인가.”  이때 소신(小臣)이 있었는데 성(姓)은 박(朴)이요, 자(子)는 염촉(猒髑; 혹은 이차異次라 하고 또는 이처伊處라고도 하니 방음方音이 다르기 때문이며, 한어漢語로 번역하여 염猒이라 한다.  촉髑·돈頓·도道·도覩·독獨 등은 모두 글쓰는 사람의 편의에 따른 것으로, 곧 조사助辭이다.  이제 위 글자는 번역하고 아래 글자는 번역하지 않았기 때문에  염촉猒髑이라 하고, 또는 염도猒覩 등으로 쓴 것이다)인데, 그의 아버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조부(祖父)는 아진(阿珍) 종(宗)으로 습보(習寶) 갈문왕(葛文王)의 아들이다(신라의 관작官爵은 도합 17등급等級인데 그 넷째를 파진손波珍飡, 또는 아진손阿珍飡이라고도 한다.  종宗은 그 이름이며, 습보習寶도 역시 이름이다.  신라 사람은 추봉追封한 왕을 모두 갈문왕葛文王이라고 했으니 그 까닭은 사신史臣도 역시 자세히 모른다고 했다.

 

김용행金用行이 지은 아도비阿道碑를 상고해 보면, 사인舍人은 그때 나이 26세였고, 아버지는 길승吉升, 조부는 공한功漢, 증조曾祖는 걸해대왕乞解大王이라 했다 그는 죽백(竹栢)과 같은 바탕에 수경(水鏡)과 같은 뜻을 품었으며, 적선(積善)한 집의 증손(曾孫)으로서 궁내(宮內)의 조아(爪牙)가 되기를 바랐고, 성조(聖朝)의 충신으로서 하청(河淸)에 등시(登侍)할 것을 기대했다. 

 

그때 나이 22세로서 사인(舍人; 신라 관작官爵에 대사大舍·소사小舍 등이 있으니 대개 하사下士의 등급이다)의 직책에 있었는데, 왕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그 심정(心情)을 눈치채고 아뢰었다.  “신이 듣자오니 옛 사람은 천한 사람에게도 계교를 물었다 하오니 신은 큰 죄를 무릅쓰고 아룁니다”하니 사인은 말 한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신하로서의 큰 절개이옵고 임금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백성의 곧은 의리입니다.  거짓으로 말씀을 전했다고 해서 신의 목을 베시면 만민이 굴복하여 감히 왕의 말씀을 어기지 못할 것입니다.”  왕이 말했다.  “살을 베어 저울로 달아서 장차 새 한 마리를 살리려했고 피를 뿌려 목숨을 끊어서 일곱 마리 짐승을 스스로 불쌍히 여겼다.  나의 뜻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인데 어찌 죄 없는 사람을 죽이겠느냐.  너는 비록 공덕을 남기려 하지만 죽음을 피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  사인이 말한다.  “일체(一切)를 버리기 어려운 것은 신명(神命)에 지나지 않으며, 소신이 저녁에 죽어서 불교가 아침에 행해진다면 불일(佛日)은 다시 성행하고 성주(聖主)께서는 길이 편안하실 것입니다.”  왕은 말한다.  “난새와 봉새의 새끼는 어려도 하늘을 뚫을 듯한 마음이 있고 홍곡(鴻鵠)의 새끼는 나면서부터 물결을 깨칠 기세를 품었다 하니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가위 대사(大士)의 행동이라 할 수 있겠다.”  이에 대왕은 일부러 위의(威儀)를 정제하고 동서쪽에는 풍도(風刀)를, 남북 쪽에는 상장(霜仗)을 벌여 놓고 여러 신하를 불러 물었다.  “경(卿)들은 내가 절을 지으려 하는데 일부러 이를 지체시키지 않았느냐.

 

”(향전鄕傳에서는 염촉猒髑이 거짓 왕명王命으로 신하들에게 절을 세우라는 뜻을 전하니 여러 신하들이 와서 간諫하자 왕王은 이것을 염촉猒髑에게 책임지워 노하고 왕명王命을 거짓 전했다 하여 형刑에 처했다고 했다) 

 

이에 여러 신하들이 벌벌 떨고 두려워하여 황망스레 맹세하고 손으로 동쪽과 서쪽을 가리키니 왕은 사인을 불러 꾸짖었다.  사인은 얼굴빛이 변하여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대왕이 크게 노하여 이를 베어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니 유사(有司)는 그를 묶어 관아(官衙)로 데리고 갔다.  사인은 맹세를 했다.  옥리(獄吏)가 그의 목을 베자, 흰 젖이 한 길이나 솟아올랐으며(향전鄕傳에는 이렇게 말했다.  사인舍人이 맹세하기를, “대성법왕大聖法王께서 불교를 일으키려 하시므로 내가 신명身命을 돌아보지 않고 세상 인연을 버리니 하늘에서는 상서를 내려 두루 백성들에게 보여 주십시오”했다.  이에 그의 머리는 날아가 금강산金剛山 마루에 떨어졌다고 한다), 하늘은 사방이 어두워 저녁의 빛을 감추고 땅이 진동하고 비가 뚝뚝 떨어졌다.  임금은 슬퍼하여 눈물이 곤룡포(袞龍袍)를 적시고 재상들은 근심하여 진땀이 선면(蟬冕)에까지 흘렀다.  감천(甘泉)이 갑자기 말라서 물고기와 자라가 다투어 뛰고 곧은 나무가 저절로 부러져서 원숭이들이 떼지어 울었다.  춘궁(春宮)에서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놀던 동무들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서로 돌아보고 월정(月庭)에서 소매를 마주하던 친구들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이별을 애석해 하여 관(棺)을 쳐다보고 우는 소리는 마치 부모를 잃은 것과 같았다.  그들은 모두 말했다.  “개자추(介子推)가 다리의 살을 벤 일도 염촉(猒髑)의 고절(苦節)에 비할 수 없으며, 홍연(弘演)이 배를 가른 일도 어찌 그의 장열(壯烈)함에 비할 수 있으랴.  이것은 곧 대왕의 신력(信力)을 붙들어서 아도(阿道)의 본심을 성취시킨 것이니 참으로 성자(聖者)로다.”  드디어 북산(北山) 서쪽 고개(곧 금강산金剛山이다.  전傳에는, 머리가 날아가서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그곳에 장사지냈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것을 말하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인가)에 장사지냈다.  나인(內人)들은 이를 슬퍼하여 좋은 땅을 가려서 절을 세우고 이름을 자추사(刺楸寺)라고 했다.  이로부터 집집마다 부처를 받들면 반드시 대대로 영화를 얻게 되고, 사람마다 불도(佛道)를 행하면 이내 불교의 이익을 얻게 되었다 ... 생략...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이차돈에 관한  출전을  김대문이 지은 <계림잡전>을 인용하고 있고 <아도화상비>와 다르고 계림잡전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출전을

 

<삼국사기>의 기록인 <계림잡전>

남간사(南澗寺)의 중 일념(一念)이 촉향분례불결사문(髑香墳禮佛結社文)

<향전>

김용행金用行이 지은 아도비阿道碑

<승전>

 

등은 인용하고 있다.

이름 이차돈, 이처, 염촉, 염도 등이고

나이는 22세와 26세의 2가지 설이 있는데 일연은 <22세>설을 따르고 있으며,

세계는 <아도비>과 일념의 <촉향분례불결사문>의 것을 모두 기록하고 있다. 

이차돈의 성이 “<박>씨이고 <염촉>이 자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기록을 추적하다 보면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다.

 

조부(祖父)는 아진(阿珍) 종(宗)으로 습보(習寶) 갈문왕(葛文王)의 아들이다(신라의 관작官爵은 도합 17등급等級인데 그 넷째를 파진손波珍飡, 또는 아진손阿珍飡이라고도 한다.  종宗은 그 이름이며, 습보習寶도 역시 이름이다.

 

김용행金用行이 지은 아도비阿道碑를 상고해 보면, 사인舍人은 그때 나이 26세였고, 아버지는 길승吉升, 조부는 공한功漢, 증조曾祖는 걸해대왕乞解大王이라 했다

 

일념 <촉향분례불결사문>

이차돈 -> ? -> 아진종 -> 습보갈문왕

 

김용행 아도비 :

 

이차돈->길승->공한->걸해대왕

 

향어를 쓴 최치원은 제왕연대력을 쓸 때 거서한, 차차웅, 이사금 등을 버리고 썼다고 김부식은 이야기하고 있고, 김대문 또한 향어를 버리고 한(漢)어 식으로 바꾼 경우가 많다.  <아도비>와 <촉향분례>을 공히 따르면 아진종=공한이고 습보가 걸해대왕 임을 알 수 있다. 아버지는 아도비의 길승일 가능성이 많다. 

걸해대왕은 삼국사기에는 어떠한 기록도 없고 갈문왕으로 추봉된 습보일 것이다.

 

습보의 가계는 지증왕의 아버지로 소지왕이 아들이 없음으로 지증왕(500~514)이 대신 왕위에 오르는데 이에 습보를 갈문왕에 봉했을 것이고, 그 이후 걸해대왕이라고 했을 것이다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성(姓)은 김씨이고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이다. <지도로(智度路) 혹은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하였다.> 나물왕의 증손으로 습보갈문왕(習寶葛文王)의 아들이고 소지왕(炤知王)의 재종 동생이다. 어머니는 김씨 조생부인(鳥生夫人)으로 눌지왕의 딸이다. 왕비는 박씨 연제부인(延帝夫人)으로 이찬 등흔(登欣)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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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왕(法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원종(原宗)이다. <책부원귀(冊府元龜)에는, 성은 모(募)이고 이름은 진(秦)이라 하였다.> 지증왕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연제부인(延帝夫人)이고 왕비는 박씨 보도부인(保刀夫人)이다

지증의 가계를 보면  아버지 습보는 내물왕의 손이라 하였으니.

 


이차돈의 세계는

 

내물왕 -> 기보(?) -> 습보(걸해) ->아진종(공한) -> 길승 -> 이차돈(염촉) 의 순서가 된다.

 

법흥왕의 계보는

내물왕 -> 기보(?) -> 습보(걸해) -> 지증왕 -> 법흥왕 -> 입종갈문왕 -> 진흥왕이 된다.

 

이차돈과 법흥왕는 아주 가까운 인척관계가 된다. 법흥왕으로 보면 조카가 되고, 이차돈으로는 법흥왕이 6촌 당숙이 되는 것이다.

 

이사부(태종)의 가계는

아진종 -> 이사부(태종) 이니 이차돈과 이사부는 3촌 관계가 된다.

그러므로 이차돈은 ‘박씨‘가 될 수 없고 ’김씨‘이다. 


어떤 이는 이차돈과 이사부는 ‘이씨’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mbc 월.화 대하 사극 <선덕여왕>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미실과 세종과 하종이 등장한다. 미실은 이사부의 며느리가 되는 것이고, 세종은 그의 아들이다. 지소(법흥/보도)는 작은아버지 입종사이에 진흥을 낳고, 아버지 뻘인 이사부(태종)사이에 6대 풍월주인 세종을 낳았다. 드라마에서는 하종과 김유신이 적대적인 관계로 나오나 실제는 11대 풍월주 하종의 딸인 영모가 김유신에 시집을 가 김유신은 하종의 사위가 된다. 김유신은 세종과 미실의 손녀사위가 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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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balloons 2011.12.19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 나는 당신의 포스트를 읽었다. 모두 좋은 기사 및 진짜로 그것이라고 관심을 끄는. 나의 책갈피에를 제외하고 그것을 지키십시오. 몫을 위한 좋은 포스트 그리고 감사

  2. BlogIcon 고명진 2012.01.01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일을 나의 친구를 계속, 이거 정말 끝내 준다

  3. BlogIcon 고명진 2012.01.07 0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4. BlogIcon 정부 2012.04.04 0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혼자 내버려 두십시오.

  5. BlogIcon 마야 2012.04.05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살 여유가 없습니다.

  6. BlogIcon 엘리스 2012.05.08 1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죄송합니다.

  7. BlogIcon 카일리 2012.05.10 2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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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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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2012.11.06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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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도비>와 <촉향분례>을 공히 따르면 아진종=공한이고 습보가 걸해대왕 임을 알 수 있다. 아버지는 아도비의 길승일 가능성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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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삼국사기의 기록과 삼국유사의 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삼국사기 본기 신라법흥왕 15년 기사>>

 

15년(528) 불교를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일찍이 눌지왕 때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고구려로부터 일선군(一善郡)에 왔는데, 그 고을 사람 모례(毛禮)가 자기 집 안에 굴을 파고 방을 만들어 있게 하였다. 그때 양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와 의복과 향을 보내주었다. 임금과 신하들이 그 향의 이름과 쓸 바를 몰랐으므로 사람을 보내 향을 가지고 다니며 두루 묻게 하였다. 묵호자가 이를 보고 그 이름을 대면서 말하였다. 이것을 사르면 향기가 나는데, 신성(神聖)에게 정성을 도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신성스러운 것으로는 삼보(三寶)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첫째는 불타(佛陀)요, 둘째는 달마(達摩)이고, 셋째는 승가(僧伽)입니다. 만약 이것을 사르면서 소원을 빌면 반드시 영험(靈驗)이 있을 것입니다. 그 무렵 왕의 딸이 병이 심하였으므로 왕은 묵호자로 하여금 향을 사르고 소원을 말하게 하였더니, 왕의 딸 병이 곧 나았다. 왕이 매우 기뻐하여 음식과 선물을 많이 주었다. 묵호자가 [궁궐에서] 나와 모례를 찾아보고 얻은 물건들을 그에게 주면서 “나는 지금 갈 곳이 있어 작별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하고는 잠시 후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비처왕(毗處王) 때에 이르러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시중드는 이 세 사람과 함께 모례의 집에 또 왔다. 모습이 묵호자와 비슷하였는데 몇 년을 그곳에서 살다가 병(病)도 없이 죽었다. 시중들던 세 사람은 머물러 살면서 경(經)과 율(律)을 강독하였는데 신봉자가 가끔 있었다.

 

이때 와서 왕 또한 불교를 일으키고자 하였으나 뭇 신하들이 믿지 않고 이런 저런 불평을 많이 하였으므로 왕이 난처하였다. 왕의 가까운 신하 이차돈(異次頓) <혹은 처도(處道)라고도 하였다.>이 아뢰었다. “바라건대 하찮은 신(臣)을 목 베어 뭇 사람들의 논의를 진정시키십시오.” 왕이 말하였다. “본래 도(道)를 일으키고자 함인데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자 [이차돈이] 대답하였다. “만약 도가 행해질 수 있다면 신은 비록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이에 왕이 여러 신하들을 불러 의견을 물으니 모두 말하였다. “지금 중들을 보니 깍은 머리에 이상한 옷을 입었고, 말하는 논리가 기이하고 괴상하여 일상적인 도(道)가 아닙니다. 지금 만약 이를 그대로 놓아두면 후회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신 등은 비록 무거운 벌을 받더라도 감히 명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차돈 혼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금 뭇 신하들의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비상(非常)한 사람이 있은 후에야 비상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듣건대 불교가 심오하다고 하니,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뭇 사람들의 말이 견고하여 이를 깨뜨릴 수가 없는데, 유독 너만 다른 말을 하니 양 쪽을 모두 따를 수는 없다.” 드디어 이차돈을 관리에게 넘겨 목을 베게 하니, 이차돈이 죽음에 임하여 말하였다. 나는 불법(佛法)을 위하여 형(刑)을 당하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만약 신령스러움이 있다면 나의 죽음에 반드시 이상한 일이 있을 것이다. 목을 베자 잘린 곳에서 피가 솟구쳤는데 그 색이 우유빛처럼 희었다. 뭇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다시는 불교를 헐뜯지 않았다.<이는 김대문(金大問)의 계림잡전(鷄林雜傳) 기록에 의거하여 쓴 것인데, 한나마(韓奈麻) 김용행(金用行)이 지은 아도화상비(我道和尙碑)의 기록과는 자못 다르다.>

 

<<삼국유사  원종,염촉(이차돈)>>

 

<신라본기(新羅本紀)>에 보면 법흥대왕(法興大王)이 즉위한 14년(527)에 신하 이차돈(異次頓)이 불법(佛法)을 위해서 자기 몸을 죽이니 곧 소량(蕭梁) 보통(普通) 8년 정미(丁未; 527)에 서천축(西天竺)의 달마대사(達磨大師)가 금릉(金陵)에 온 해다.  이 해에 낭지법사(朗智法師)도 또한 영취산(靈鷲山)에 살면서 법장(法場)을 열었으니 불교의 흥하고 쇠하는 것도 반드시 원근(遠近)에서 한 시기에 서로 감응한다는 것을 이 일로 해서 알 수가 있다 

 

원화(元和) 연간(806~820)에 남간사(南澗寺)의 중 일념(一念)이 촉향분례불결사문(髑香墳禮佛結社文)을 지었는데, 이 사실이 자세히 실려 있으니 그 대략은 이러하다.  예전에 법흥대왕이 자극전(紫極殿)에서 왕위에 올랐을 때에 동쪽 지역을 살펴보고 말했다.  “예전에 한(漢)나라 명제(明帝)가 꿈에 감응되어 불법이 동쪽으로 흘러들어왔다.  내가 왕위에 오른 뒤로 백성들을 위해 복을 닦고 죄를 없앨 곳을 마련하려 한다.”  이에 조신들(향전鄕傳에서는 공목알공工目謁恭 등이라 했다.)은 왕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오직 나라를 다스리는 대의(大義)만을 지켜 절을 세우겠다는 신령스러운 생각에 따르지 않자 대왕은 탄식했다.  “아아!  나는 덕이 없는 사람으로 왕업(王業)을 이어받아 위로는 음양(陰陽)의 조화(造化)가 모자라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즐겨하는 일이 없어서 정사를 닦는 여가에 불교에 마음을 두었으니 그 누가 나의 일을 함께 할 것인가.”  이때 소신(小臣)이 있었는데 성(姓)은 박(朴)이요, 자(子)는 염촉(猒髑; 혹은 이차異次라 하고 또는 이처伊處라고도 하니 방음方音이 다르기 때문이며, 한어漢語로 번역하여 염猒이라 한다.  촉髑·돈頓·도道·도覩·독獨 등은 모두 글쓰는 사람의 편의에 따른 것으로, 곧 조사助辭이다.  이제 위 글자는 번역하고 아래 글자는 번역하지 않았기 때문에  염촉猒髑이라 하고, 또는 염도猒覩 등으로 쓴 것이다)인데, 그의 아버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조부(祖父)는 아진(阿珍) 종(宗)으로 습보(習寶) 갈문왕(葛文王)의 아들이다(신라의 관작官爵은 도합 17등급等級인데 그 넷째를 파진손波珍飡, 또는 아진손阿珍飡이라고도 한다.  종宗은 그 이름이며, 습보習寶도 역시 이름이다.  신라 사람은 추봉追封한 왕을 모두 갈문왕葛文王이라고 했으니 그 까닭은 사신史臣도 역시 자세히 모른다고 했다.

 

김용행金用行이 지은 아도비阿道碑를 상고해 보면, 사인舍人은 그때 나이 26세였고, 아버지는 길승吉升, 조부는 공한功漢, 증조曾祖는 걸해대왕乞解大王이라 했다 그는 죽백(竹栢)과 같은 바탕에 수경(水鏡)과 같은 뜻을 품었으며, 적선(積善)한 집의 증손(曾孫)으로서 궁내(宮內)의 조아(爪牙)가 되기를 바랐고, 성조(聖朝)의 충신으로서 하청(河淸)에 등시(登侍)할 것을 기대했다. 

 

그때 나이 22세로서 사인(舍人; 신라 관작官爵에 대사大舍·소사小舍 등이 있으니 대개 하사下士의 등급이다)의 직책에 있었는데, 왕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그 심정(心情)을 눈치채고 아뢰었다.  “신이 듣자오니 옛 사람은 천한 사람에게도 계교를 물었다 하오니 신은 큰 죄를 무릅쓰고 아룁니다”하니 사인은 말 한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신하로서의 큰 절개이옵고 임금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백성의 곧은 의리입니다.  거짓으로 말씀을 전했다고 해서 신의 목을 베시면 만민이 굴복하여 감히 왕의 말씀을 어기지 못할 것입니다.”  왕이 말했다.  “살을 베어 저울로 달아서 장차 새 한 마리를 살리려했고 피를 뿌려 목숨을 끊어서 일곱 마리 짐승을 스스로 불쌍히 여겼다.  나의 뜻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인데 어찌 죄 없는 사람을 죽이겠느냐.  너는 비록 공덕을 남기려 하지만 죽음을 피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  사인이 말한다.  “일체(一切)를 버리기 어려운 것은 신명(神命)에 지나지 않으며, 소신이 저녁에 죽어서 불교가 아침에 행해진다면 불일(佛日)은 다시 성행하고 성주(聖主)께서는 길이 편안하실 것입니다.”  왕은 말한다.  “난새와 봉새의 새끼는 어려도 하늘을 뚫을 듯한 마음이 있고 홍곡(鴻鵠)의 새끼는 나면서부터 물결을 깨칠 기세를 품었다 하니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가위 대사(大士)의 행동이라 할 수 있겠다.”  이에 대왕은 일부러 위의(威儀)를 정제하고 동서쪽에는 풍도(風刀)를, 남북 쪽에는 상장(霜仗)을 벌여 놓고 여러 신하를 불러 물었다.  “경(卿)들은 내가 절을 지으려 하는데 일부러 이를 지체시키지 않았느냐.

 

”(향전鄕傳에서는 염촉猒髑이 거짓 왕명王命으로 신하들에게 절을 세우라는 뜻을 전하니 여러 신하들이 와서 간諫하자 왕王은 이것을 염촉猒髑에게 책임지워 노하고 왕명王命을 거짓 전했다 하여 형刑에 처했다고 했다) 

 

이에 여러 신하들이 벌벌 떨고 두려워하여 황망스레 맹세하고 손으로 동쪽과 서쪽을 가리키니 왕은 사인을 불러 꾸짖었다.  사인은 얼굴빛이 변하여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대왕이 크게 노하여 이를 베어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니 유사(有司)는 그를 묶어 관아(官衙)로 데리고 갔다.  사인은 맹세를 했다.  옥리(獄吏)가 그의 목을 베자, 흰 젖이 한 길이나 솟아올랐으며(향전鄕傳에는 이렇게 말했다.  사인舍人이 맹세하기를, “대성법왕大聖法王께서 불교를 일으키려 하시므로 내가 신명身命을 돌아보지 않고 세상 인연을 버리니 하늘에서는 상서를 내려 두루 백성들에게 보여 주십시오”했다.  이에 그의 머리는 날아가 금강산金剛山 마루에 떨어졌다고 한다), 하늘은 사방이 어두워 저녁의 빛을 감추고 땅이 진동하고 비가 뚝뚝 떨어졌다.  임금은 슬퍼하여 눈물이 곤룡포(袞龍袍)를 적시고 재상들은 근심하여 진땀이 선면(蟬冕)에까지 흘렀다.  감천(甘泉)이 갑자기 말라서 물고기와 자라가 다투어 뛰고 곧은 나무가 저절로 부러져서 원숭이들이 떼지어 울었다.  춘궁(春宮)에서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놀던 동무들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서로 돌아보고 월정(月庭)에서 소매를 마주하던 친구들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이별을 애석해 하여 관(棺)을 쳐다보고 우는 소리는 마치 부모를 잃은 것과 같았다.  그들은 모두 말했다.  “개자추(介子推)가 다리의 살을 벤 일도 염촉(猒髑)의 고절(苦節)에 비할 수 없으며, 홍연(弘演)이 배를 가른 일도 어찌 그의 장열(壯烈)함에 비할 수 있으랴.  이것은 곧 대왕의 신력(信力)을 붙들어서 아도(阿道)의 본심을 성취시킨 것이니 참으로 성자(聖者)로다.”  드디어 북산(北山) 서쪽 고개(곧 금강산金剛山이다.  전傳에는, 머리가 날아가서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그곳에 장사지냈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것을 말하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인가)에 장사지냈다.  나인(內人)들은 이를 슬퍼하여 좋은 땅을 가려서 절을 세우고 이름을 자추사(刺楸寺)라고 했다.  이로부터 집집마다 부처를 받들면 반드시 대대로 영화를 얻게 되고, 사람마다 불도(佛道)를 행하면 이내 불교의 이익을 얻게 되었다 ... 생략...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이차돈에 관한  출전을  김대문이 지은 <계림잡전>을 인용하고 있고 <아도화상비>와 다르고 계림잡전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출전을

 

<삼국사기>의 기록인 <계림잡전>

남간사(南澗寺)의 중 일념(一念)이 촉향분례불결사문(髑香墳禮佛結社文)

<향전>

김용행金用行이 지은 아도비阿道碑

<승전>

 

등은 인용하고 있다.

이름 이차돈, 이처, 염촉, 염도 등이고

나이는 22세와 26세의 2가지 설이 있는데 일연은 <22세>설을 따르고 있으며,

세계는 <아도비>과 일념의 <촉향분례불결사문>의 것을 모두 기록하고 있다. 

이차돈의 성이 “<박>씨이고 <염촉>이 자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기록을 추적하다 보면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다.

 

조부(祖父)는 아진(阿珍) 종(宗)으로 습보(習寶) 갈문왕(葛文王)의 아들이다(신라의 관작官爵은 도합 17등급等級인데 그 넷째를 파진손波珍飡, 또는 아진손阿珍飡이라고도 한다.  종宗은 그 이름이며, 습보習寶도 역시 이름이다.

 

김용행金用行이 지은 아도비阿道碑를 상고해 보면, 사인舍人은 그때 나이 26세였고, 아버지는 길승吉升, 조부는 공한功漢, 증조曾祖는 걸해대왕乞解大王이라 했다

 

일념 <촉향분례불결사문>

이차돈 -> ? -> 아진종 -> 습보갈문왕

 

김용행 아도비 :

 

이차돈->길승->공한->걸해대왕

 

향어를 쓴 최치원은 제왕연대력을 쓸 때 거서한, 차차웅, 이사금 등을 버리고 썼다고 김부식은 이야기하고 있고, 김대문 또한 향어를 버리고 한(漢)어 식으로 바꾼 경우가 많다.  <아도비>와 <촉향분례>을 공히 따르면 아진종=공한이고 습보가 걸해대왕 임을 알 수 있다. 아버지는 아도비의 길승일 가능성이 많다. 

걸해대왕은 삼국사기에는 어떠한 기록도 없고 갈문왕으로 추봉된 습보일 것이다.

 

습보의 가계는 지증왕의 아버지로 소지왕이 아들이 없음으로 지증왕(500~514)이 대신 왕위에 오르는데 이에 습보를 갈문왕에 봉했을 것이고, 그 이후 걸해대왕이라고 했을 것이다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성(姓)은 김씨이고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이다. <지도로(智度路) 혹은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하였다.> 나물왕의 증손으로 습보갈문왕(習寶葛文王)의 아들이고 소지왕(炤知王)의 재종 동생이다. 어머니는 김씨 조생부인(鳥生夫人)으로 눌지왕의 딸이다. 왕비는 박씨 연제부인(延帝夫人)으로 이찬 등흔(登欣)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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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왕(法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원종(原宗)이다. <책부원귀(冊府元龜)에는, 성은 모(募)이고 이름은 진(秦)이라 하였다.> 지증왕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연제부인(延帝夫人)이고 왕비는 박씨 보도부인(保刀夫人)이다

지증의 가계를 보면  아버지 습보는 내물왕의 손이라 하였으니.

 


이차돈의 세계는

 

내물왕 -> 기보(?) -> 습보(걸해) ->아진종(공한) -> 길승 -> 이차돈(염촉) 의 순서가 된다.

 

법흥왕의 계보는

내물왕 -> 기보(?) -> 습보(걸해) -> 지증왕 -> 법흥왕 -> 입종갈문왕 -> 진흥왕이 된다.

 

이차돈과 법흥왕는 아주 가까운 인척관계가 된다. 법흥왕으로 보면 조카가 되고, 이차돈으로는 법흥왕이 6촌 당숙이 되는 것이다.

 

이사부(태종)의 가계는

아진종 -> 이사부(태종) 이니 이차돈과 이사부는 3촌 관계가 된다.

그러므로 이차돈은 ‘박씨‘가 될 수 없고 ’김씨‘이다. 


어떤 이는 이차돈과 이사부는 ‘이씨’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mbc 월.화 대하 사극 <선덕여왕>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미실과 세종과 하종이 등장한다. 미실은 이사부의 며느리가 되는 것이고, 세종은 그의 아들이다. 지소(법흥/보도)는 작은아버지 입종사이에 진흥을 낳고, 아버지 뻘인 이사부(태종)사이에 6대 풍월주인 세종을 낳았다. 드라마에서는 하종과 김유신이 적대적인 관계로 나오나 실제는 11대 풍월주 하종의 딸인 영모가 김유신에 시집을 가 김유신은 하종의 사위가 된다. 김유신은 세종과 미실의 손녀사위가 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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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balloons 2011.12.19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 나는 당신의 포스트를 읽었다. 모두 좋은 기사 및 진짜로 그것이라고 관심을 끄는. 나의 책갈피에를 제외하고 그것을 지키십시오. 몫을 위한 좋은 포스트 그리고 감사

  2. BlogIcon 고명진 2012.01.01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일을 나의 친구를 계속, 이거 정말 끝내 준다

  3. BlogIcon 고명진 2012.01.07 0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4. BlogIcon 정부 2012.04.04 0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혼자 내버려 두십시오.

  5. BlogIcon 마야 2012.04.05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살 여유가 없습니다.

  6. BlogIcon 엘리스 2012.05.08 1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죄송합니다.

  7. BlogIcon 카일리 2012.05.10 2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크 아웃하고 싶습니다.

  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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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for sale 2012.11.01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1.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2012.11.06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있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를 인용하고 아도비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지만

  12. BlogIcon volcano stove costco 2012.12.10 2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도비>와 <촉향분례>을 공히 따르면 아진종=공한이고 습보가 걸해대왕 임을 알 수 있다. 아버지는 아도비의 길승일 가능성이 많다.

  13. BlogIcon wireless dog fence for small dogs 2012.12.22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이 중요한 주제에 도움이 필요 남녀를 지원하는 당신의 관대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14. BlogIcon can you freeze cooked scrambled eggs 2013.01.01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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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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