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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드라마 선덕여왕이 일식과 월식에 집착하는 이유?

미실은 월천에게 "일식이 있겠습니까?" 묻는다. 하지만 월천은 "세주께 괜한 말을 했다"고 한다. 이는 일식을 맞출 수 없다는 말이고, 덕만이 일식을 맞춘다는 뜻이기도 하다. 덕만이 사막에서 얻은 책력이 월천에 넘어가고 정확히 일식을 맞추는 것을 예비 된것 같다.

mbc 드라마 사극 선덕여왕 26회에서 덕만(이요원)은 미실(고현정)이 신라를 차지한 방법 그대로, 신라를 차지할것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월천이 필요하다. 월천은 천문학자이자, 법사이자, 의사이다.


2009년 8월초에 70년만에 개기일식이 있었다.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일식은 있었을까? 물론, 일식도 없었고, 월식도 없었다. 당시의 일식이 있던 시기를 뽑아 본다면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19년(572)에 사신을 북제(北齊)에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초하루 경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39년(592) 가을 7월 임신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국사기 본기 - 원성왕 3년(787) 봄 2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몸소 신궁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였다. 여름 5월에 금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가을 7월에 누리가 곡식을 해쳤다. 8월 초하루 신사에 일식이 있었다.

진평왕 시기(579~632년)에 일식은 없었다.

왜? 드라마 선덕여왕은 일식과 월식에 집착을 할까? 이유는 <첨성대>를 선덕여왕이 만들었다는 기록때문이다. 하지만, 첨성대를 한번이라도 본사람이라면, 첨성대가 하늘을 관찰하는데 상당히 불편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첨성대는 하늘을 관찰하는게 아닌, 하늘을 비추는 거울이며, 하늘과 통하는 연결 통로로 첨성대가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우물에서 비친 하늘을 본자라면, 첨성대의 용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어찌 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대명력은 월식을 예측하기 쉽고, 위나라의 정광력은 대명력에 비해서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일식을 예측하는데는 정광력이 좋다고 이야기를 한다.

덕만, 유신을 꼬시다
 

비둘기낭 동굴밖 폭포

덕만은 유신에 말한다. "내가 가려고 하는일은 패도이니까?"

패도에서 사람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죽는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유신에 대한 마음만 가지려고하니 유신과 같이 함께하지 못한다고 한다. 함께하면 유신을 장기판의 말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유신과 같이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림으로 보는 덕만의 숨은 장소인 비둘기낭의 동굴과 비경을 보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2012년이 지나면 저 비경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관련 기사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08/12 - [역사이야기] - 천명의 마지막 촬영지, 비둘기낭 동굴 수몰위기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덕만과 소화

덕만과 알천, 비담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월천 일행은 월야의 수중에 넘어가고, 소화는 월천을 지키던 화랑들에 의해서 등에 활을 맞고 쓰러진다. 이후 덕만의 일행이 사라진 월천을 뒤로 하고 화덕사에 도착한다. 여전히 소화(서영희)와 덕만의 만남은 아직 먼것 같다. 소화는 또 다시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에 의해서 살아날 것이다. 칠숙과 더불어 터미네이터 반열에 오른 소화가 되시겠다.  

천명과 덕만의 언니 선화? 천화?

진평은 덕만을 공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마야는 낳자 마자 죽은 3 아들과 쌍둥이 중 천명을 잃어버렸는데, 이제 하나 남은 덕만을 잃어 버리려 하냐고 진평에게 반문하면서 더이상 자식을 잃을 수 없으니 덕만을 지키겠다고 천명한다.

그런데 정말 진평과 마야 사이에는 천명과 덕만 쌍둥이 밖에 없었을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마야가 진평의 즉위년에 황후가 되었다면, 천명은 마야의 소생이 될 가능성이 없다. 그러니 마야가 천명과 덕만의 모후가 될려면 마야는 진평이 성인이 된후 얻은 비가 되어야 한다. 이에 관한 기사는 다음을 참조하길 바란다. 

2009/08/17 - [역사이야기] - 여성만 알 수 있는 선덕여왕의 비밀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천명과 덕만 말고도 이들 위로 언니의 존재가 나온다. 삼국유사에 나온 선화라고 생각한다면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 되시겠다. 화랑세기에서는 진평과 마야 사이에는 3명의 자매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첫째가 천화이고, 둘째가 천명이고, 셋째가 이들보다 나이 차이가 많은 덕만이다.
처음에 용수공은 천화공주(天花公主)를 아내로 맞았는데, 천명공주를 아내로 맞게 되자 천화공주를 (용춘)공에게 주었다. 아들을 낳았는데 일찍 죽었다. 선덕공주(善德公主)를 모시게 되자 제(帝)가 천화공주를 백룡공(白龍公)에게 내려주었다. 선덕공주가 즉위하자 (용춘)공을 지아비로 삼았는데, 공은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물러날 것을 청하였다.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603년)


선덕여왕에서는 천명이 용수의 첫번째 부인으로 나오지만, 천명보다 먼저 천화가 용수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천화는 진평왕의 명령에 의해서 백룡에게 시집을 간다. 처음 왕위를 천명이 뛰어난 자질을 보여서 용수로 하여금 천명과 함께 신라을 이끌도록 하였다. 이에 용수의 부인이였던 천화는 용춘에 시집을 가고, 용춘이 선덕을 모시자 진평이 천화를 백룡에게 시집을 가게 했다고 한다. 천화는 용수-> 용춘 -> 백룡에게 시집을 가지만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고 타의(진평)의 명령에 따라 시집을 가고 있다.

백룡은 삼국사기 본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에 보면, 629년 낭비성 전투에 참전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건복 46년 기축(진평왕 51년: 629) 가을 8월에 왕이 이찬(伊湌) 임말리(任末里), 파진찬(波珍湌) 용춘(龍春).·백룡(白龍), 소판(蘇判) 대인(大因)·서현(舒玄) 등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공격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 629년

백룡의 지위가 용춘과 같은 파진찬(4등위)이다. 삼국사기에 용춘은 대장군으로 나온다. 그러니 백룡도 대장군의 직위에 있었지 않을까 한다.

신라판 서동요, 법흥과 보과

삼국유사에는 천화대신에 선화가 진평의 3번째 딸로 등장한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선화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단지, 화랑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 원화 <남모>를 법흥왕과 백제 보과의 사이에서 난 여식으로 등장한다.
준정이 남모를 시기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만들어 정부인 위화랑을 1세 풍월주로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2세 풍월주가 미실과 미생의 아버지인 미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보과는 법흥왕이 국공(왕자가 아님) 시절에 백제에 왔다가 눈이 맞어, 백제를 버리고 신라로 법흥(원종)을 만나러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고 남모와 4세 풍월주 모랑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버리는 처자들이 많이 보인다. 신라의 여인들은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는 왕후의 자리도 버리고, 사랑하는 지아비를 따른다.

이와 관련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2009/07/09 - [역사이야기] - 화랑세기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도 있다. 를 참조하기 바란다.


영국의 에드워드 왕은 영국의 법에 의해서 과부와 결혼은 용납하지 않자, 왕의 지위를 버리고, 미국의 과부인 심슨부인과 결혼을 하여 왕위를 버린 세기의 결혼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신라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 난다. 시간이 허락하고 성원이 있다면 '사랑을 위해서 자신의 지위를 버린 여인들'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임술년 천명과 덕만이 쌍생으로 태어났다? 

 세종과 하종의 계락으로 "임술년에 황후가 쌍생을 낳았다가 하나의 쌍생을 버렸으니, 마야황후를 폐하라는 벽서(방)가 붙는다.

설화랑은 하종과 세종이 벽서를 붙힌 범인임을 미실의 눈을 보고 알아 차렸다고 이야기를 하며 세주의 통찰력은 진흥대제의 통찰력을 뛰어 넘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궁예의 관심법이 되겠다. "옴마니 반메음"

덕만과 천명이 임술년생이라고 하지만, 당시의 임술년은 덕만과 천명이 태어날 수 없다. 임술년은 진흥왕시기와 진평왕시기에 딱 2번 나온다. 

 542년 진흥왕 3년, 602년 진평왕 24년이다. 

이와 관련된 기사는 다음과 같다. 관심이 있는 분은 아래 기사를 참조 하시길 바란다.

천명과 덕만이 542년 임술년은 절대로 될 수가 없다. 이유는 천명과 덕만의 아비인 진평왕이 태어나기도 전이고, 진평왕의 할아버지인 진흥(심맥종)의 나이가 8살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602년 임술년이 될 수 있는가? 천명과 용수 사이에 낳았다는 춘추가 603년에 태어 난다. 그러니 천명은 2살때 춘추를 낳은 것이다. 기네스에 오른 기록이 5살이다. 그것도 자식이 아닌 쌍둥이 동생으로 의심하고 있다, 어머니가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쌍둥이중 하나가 어머니 뱃속에서 크지를 못하고 다른 쌍둥이의 몸속에서 기생(?)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대가야 복야세력 월야의 비밀

월야(주상욱)

그런데 복야회의 수장 월야는 대가야의 마지막왕인 월광태자의 적손이라고 한다. 월천의 이름도 '<월> 돌림자를 쓰는 것으로 봐서, 월천은 대가야의 왕족 출신인 것 같다.

8세 풍월주 문노는 대가야의 피를 이어 받았다, 또한, 문노가 풍월주에 오르게 된 이유도 가야파의 지원이 있었기 가능했다.

 복야회의 근거지는 삽량주에 있다고 한다. 유신은 자신의 가문에 주어진 압량주을 가야유민에게 주고, 복야회의 복속과 동맹을 바란다. 이유는 가야파를 등에 지고 덕만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함이다.


비담은 복야회의 포스트 말단 연락책을 잡는다, 그런데 포스트는 죽음으로 비밀을 지키려한다. 하지만 포스트의 품에서 암어(암호)가 적힌 편지를 발견한다. 하지만 비담은 술술 암어 내용을 이야기한다. 복야회의 암어(암호)를 아는 이유는 비담의 스승인 문노(비조/문화)의 외가가 대가야 출신이기 때문이다.

월광태자는 이뇌/비조부(호조/선혜후)의 누이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월광과 문노는 사촌간이 된다. 월광의 아들로 나온 월야는 문노의 조카가 되는 것이다. 

양화는 호조/선혜후의 딸이다. 이뇌와 양화의 딸은 월화공주이다. 월화공주는 진흥에 시집를 가서 천주를 낳는다. 천주는 지도태후(용수.용춘의 어머니)와 결혼하여 586년 17세 풍월주 염장을 낳는다. 이 염장이 덕만을 도와 칠숙의 난을 평정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문노는 561년 이사부와 사다함이 대가야를 정벌할때  문노 자신의 외가를 치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하여 참전을 하지 않았다. 이에 신라인들은 신의가 있다고 하여, 문노를 더욱 존경하였다고 전한다.


어찌되었던 복야회의 대빵의 이름이 월야인 이유가 월화->월광->월야,월천 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월천대사는 월광태자와 형제지간이 되는 건가?

단석산 김유신 바위와 유신의 도박

단석산 김유신바위

유신은 덕만으로 부터 너(유신)를 버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나열한다. 한마디로 나를 따르라는 덕만의 협박이다.


유신은 덕만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가야파를 지키고, 가문의 안위를 만을 생각할 것인가를 고심하면서, 열심히 바위를 치고 있다. 유신이 어릴때부터 바위치기를 한다 이유는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보검을 얻고,  칼로 바위가르기를 보여주기 위한 과정이였다. 그래서 언제나 바위가 갈라질까? 관심있게 지켜봤다. 치고 또치고도 갈라지지 않던 바위가 드디어 갈라졌다. 드디어 김유신 열전과 에 바위가 갈라지는 기적이 선덕여왕 26회에 이뤄진것이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에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이때 김유신의 나이가 17세인 것으로 나온다. 그러니

(c) 정진만 단석산 김유신 바위

595년생인 유신이 17세가 되는 해는 611년이 된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은 시간개념과 공간개념을 상실하고 있기때문에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김유신 바위는 단석산 정상에 있다. 산행을 하거나, 선덕여왕 촬영지 관광코스로 정해보는 것은 어떠할까?  


유신은 서현에게 가문과 가야세력의 모든것을 걸고, 도박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때 복야회 일원은 유신과 서현을 죽이려 한다. 이에 유신은 복야회 일원을 굴복시키고, 복야회의 수장을 만나려고  산채로 들어간다.

서현이 602년 아막성 전쟁에서 참전하여, 설원랑의 계락으로 위기에 처하고 , 부상을 입었을 때, 구원을 받은것은 하늘의 보살핌이 아니라 복야회 장군인 설지의 입을 통해서 복야회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유신은 가야의 유민이 12만이라고 한다. 도대체 어디서 나온 근거인지는 알 수 없다. 선덕여왕의 작가는 생각없이 말을 뱃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선덕여왕의 작가진만 알 수 있지 않을까?

유신은 덕만일행을 포위하고 있는 복야회에게 "내가 선택한 나의 왕이시다. 그러니 복야회 또한, 덕만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한다. 이로서 덕만은 미실과 대적할 수 있는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진부한 운명론

성골남진의 나머지 계시가 밝혀지고 있다. 미실이 무너지고, 덕만이 일어선다는 것이다. 곧 덕만이 왕이 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운명이 정해졌다는 인간의 운명론이 되시겠다. 덕만이 노력을 하던 하지 않던, 왕이 되는 운명인데, 왜 저 멀리 사막까지가게 만들었을까? 그것도 운명인가? 미실에 대적하는 것도 운명이고? 한마디로 '타고난 팔자가 있다'가 있다는 말인데, 소설이 너무 진부하지 않는가?


춘추(유승호)의 아버지에 대한 비밀을 알고 싶으세요? 그럼 이 기사를 일독 해보시길 
2009/08/20 - [역사이야기] - 괴물이 되어버린 춘추(유승호)의 아버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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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우비 2009.08.19 1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굳굳굳 지루하게 읽을 수도 있는 글을

    재밌게 쓰신것 같아요~!

    그냥 봤으면 역사 잘못 알뻔했네요 ...-_-;;;

    너무너무 잘 읽다가 가요~

  3. 능소화 2009.08.19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신라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4. 날아라 2009.08.19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일고 가니다. 앞으로도 계속 부탁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속 할려면 추천이 많아야 하는데.. 너무 추천을 하지 않는군요..

      추천이 없다는 말은 이런글은 쓰지 말라는 뜻이거든요.. ㅋㅋ

  5. BlogIcon haRu™ 2009.08.19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마지막에 운명론에 대한 비판... 아주 좋았습니다.
    제가 주로 사극을 안보는 이유와 같습니다. 특히 사극은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고는 주인공을 개고생 시키죠.
    뭐 이런식으로 재미가 없어질려고 할때 비담의 투입은 정말 극적이였죠. 지금 것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본 적없는 매력적인(그러나 일본 만화등에서는 많이 본...ㅡ,.ㅡㅋ)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다. 운명이런것 없이도 잘 만들텐뎅.. 뭔 원죄론을 받아 들여서 그런가. 너무 난무함...

  6. elly 2009.08.19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문노와 월광은 사촌지간이 아닙니다.
    촌수로 따지자면 조금 더 올라갑니다. :-)
    월광태자의 자손은 아무리 자료를 찾아봐도 자료가 없어요.
    대신 해인사를 처음 창건한 이 중 하나가 월광의 후손이라고 적혀있어서,
    그의 후손이 있다고 짐작만 할 따름입니다.
    월야라는 인물은 소설(혹은 극)을 위해 만든 가공의 인물입니다.
    대신 월광의 누이동생인 월화의 후손인 천주는 화랑세기에 나오는걸 보니 있었던 인물인것 같구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월광의 어미니가 비조부의 누이이고,
      문노의 아버지는 비조부/문화 잖아요.. 그러니 이들은 사촌간이 되지요..

      그냥 드라마가 월광의 적자라고 해서리.. 그렇다면 문노의 조카다 하는거지요.. ㅋ ㅋ 이왕 엮을라면 확실히 엮어라 머 이런 비판이였음..

      저는 월야보다는 천주/월화의 아들인 염장을 월야역으로 했다면 더 잼있지 않았을 까해요.. 머 언젠가는 염장도 덕만의 수중에 떨어지겠지만요..

      서현보다 더 비중이 있는 인물이 천주인뎅.. 기록도 별로 없으니 맘껏 작가의 상상력도 발휘할수 있구요..

      선덕여왕 원작 작가가 너무 공부를 안한 티가 나요.. ㅋㅋ

      인물설정을 할때 자료조사가 기본중에 기본인뎅..

    • BlogIcon elly 2009.08.19 2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ㅋㅋ
      전 문노의 모계, 월광의 부계로 계산을 하다보니
      엄청난 촌수가 나오더라구요. 이제 생각해보니
      이종사촌-외사촌격이 되네요. :-)

      전 우연히 당첨되서 선덕여왕 소설까지 다 읽었는데
      원작가가 공부 안한티가 정말로 많이 나더군요.
      인물 설정 조차도 대충 빌려온게 너무 많이 보여요.
      (선덕여왕이 처녀로 죽었다는 사실까지 포함해서..;;)

    • BlogIcon 갓쉰동 2009.08.20 0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처녀로 죽이는 군요.. 처녀에 대한 환상이라도 있나봅니당..

  7. 흐흐흐 2009.08.25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에 사소한 실수가 보이네요. 별거 아니지만 문맥상 약간의 혼동이 올 수 있어서...
    월야의 사진 옆 글 '가야파를 등지고'가 '가야파를 등에지고'죠???
    맞나요?

    • BlogIcon 이반의꿈 2009.08.25 1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도 읽힐수 있군요.. 저는 등지고를 등에지고로 생각하고 썼는뎅.. 바꿀까 말까 고민했었음. 지적을 하시니 바꿔야 겠네요.. ㅋㅋ

  8. BlogIcon 조용형 2012.01.01 0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팹, 훌륭한 문서입니다

  9. BlogIcon 원숭이 2012.01.07 0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10. BlogIcon 엘리 2012.04.04 0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어디로 데려가십니까?

  11. BlogIcon 헤일리 2012.04.06 0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2. BlogIcon 모건 2012.05.08 2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심 없습니다.

  13. BlogIcon 알렉 산드라 2012.05.11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먹었습니다.

  14.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5.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6. BlogIcon Pussy Porn 2012.07.14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17.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8.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for camping 2012.11.01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9.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indoors 2012.11.06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

  20. BlogIcon petsafe wireless dog fence 2012.12.22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이 중요한 주제에 도움이 필요 남녀를 지원하는 당신의 관대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21. BlogIcon 24 stove top 2013.01.02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일식은 있었을까? 물론, 일식도 없었고, 월식도 없었다. 당시의 일식이 있던 시기를 뽑아 본다면 다음과 같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일식과 월식에 집착하는 이유?

미실은 월천에게 "일식이 있겠습니까?" 묻는다. 하지만 월천은 "세주께 괜한 말을 했다"고 한다. 이는 일식을 맞출 수 없다는 말이고, 덕만이 일식을 맞춘다는 뜻이기도 하다. 덕만이 사막에서 얻은 책력이 월천에 넘어가고 정확히 일식을 맞추는 것을 예비 된것 같다.

mbc 드라마 사극 선덕여왕 26회에서 덕만(이요원)은 미실(고현정)이 신라를 차지한 방법 그대로, 신라를 차지할것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월천이 필요하다. 월천은 천문학자이자, 법사이자, 의사이다.


2009년 8월초에 70년만에 개기일식이 있었다.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일식은 있었을까? 물론, 일식도 없었고, 월식도 없었다. 당시의 일식이 있던 시기를 뽑아 본다면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19년(572)에 사신을 북제(北齊)에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초하루 경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39년(592) 가을 7월 임신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국사기 본기 - 원성왕 3년(787) 봄 2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몸소 신궁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였다. 여름 5월에 금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가을 7월에 누리가 곡식을 해쳤다. 8월 초하루 신사에 일식이 있었다.

진평왕 시기(579~632년)에 일식은 없었다.

왜? 드라마 선덕여왕은 일식과 월식에 집착을 할까? 이유는 <첨성대>를 선덕여왕이 만들었다는 기록때문이다. 하지만, 첨성대를 한번이라도 본사람이라면, 첨성대가 하늘을 관찰하는데 상당히 불편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첨성대는 하늘을 관찰하는게 아닌, 하늘을 비추는 거울이며, 하늘과 통하는 연결 통로로 첨성대가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우물에서 비친 하늘을 본자라면, 첨성대의 용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어찌 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대명력은 월식을 예측하기 쉽고, 위나라의 정광력은 대명력에 비해서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일식을 예측하는데는 정광력이 좋다고 이야기를 한다.

덕만, 유신을 꼬시다
 

비둘기낭 동굴밖 폭포

덕만은 유신에 말한다. "내가 가려고 하는일은 패도이니까?"

패도에서 사람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죽는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유신에 대한 마음만 가지려고하니 유신과 같이 함께하지 못한다고 한다. 함께하면 유신을 장기판의 말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유신과 같이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림으로 보는 덕만의 숨은 장소인 비둘기낭의 동굴과 비경을 보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2012년이 지나면 저 비경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관련 기사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9/08/12 - [역사이야기] - 천명의 마지막 촬영지, 비둘기낭 동굴 수몰위기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덕만과 소화

덕만과 알천, 비담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월천 일행은 월야의 수중에 넘어가고, 소화는 월천을 지키던 화랑들에 의해서 등에 활을 맞고 쓰러진다. 이후 덕만의 일행이 사라진 월천을 뒤로 하고 화덕사에 도착한다. 여전히 소화(서영희)와 덕만의 만남은 아직 먼것 같다. 소화는 또 다시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에 의해서 살아날 것이다. 칠숙과 더불어 터미네이터 반열에 오른 소화가 되시겠다.  

천명과 덕만의 언니 선화? 천화?

진평은 덕만을 공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마야는 낳자 마자 죽은 3 아들과 쌍둥이 중 천명을 잃어버렸는데, 이제 하나 남은 덕만을 잃어 버리려 하냐고 진평에게 반문하면서 더이상 자식을 잃을 수 없으니 덕만을 지키겠다고 천명한다.

그런데 정말 진평과 마야 사이에는 천명과 덕만 쌍둥이 밖에 없었을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마야가 진평의 즉위년에 황후가 되었다면, 천명은 마야의 소생이 될 가능성이 없다. 그러니 마야가 천명과 덕만의 모후가 될려면 마야는 진평이 성인이 된후 얻은 비가 되어야 한다. 이에 관한 기사는 다음을 참조하길 바란다. 

2009/08/17 - [역사이야기] - 여성만 알 수 있는 선덕여왕의 비밀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천명과 덕만 말고도 이들 위로 언니의 존재가 나온다. 삼국유사에 나온 선화라고 생각한다면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 되시겠다. 화랑세기에서는 진평과 마야 사이에는 3명의 자매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첫째가 천화이고, 둘째가 천명이고, 셋째가 이들보다 나이 차이가 많은 덕만이다.
처음에 용수공은 천화공주(天花公主)를 아내로 맞았는데, 천명공주를 아내로 맞게 되자 천화공주를 (용춘)공에게 주었다. 아들을 낳았는데 일찍 죽었다. 선덕공주(善德公主)를 모시게 되자 제(帝)가 천화공주를 백룡공(白龍公)에게 내려주었다. 선덕공주가 즉위하자 (용춘)공을 지아비로 삼았는데, 공은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물러날 것을 청하였다.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603년)


선덕여왕에서는 천명이 용수의 첫번째 부인으로 나오지만, 천명보다 먼저 천화가 용수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천화는 진평왕의 명령에 의해서 백룡에게 시집을 간다. 처음 왕위를 천명이 뛰어난 자질을 보여서 용수로 하여금 천명과 함께 신라을 이끌도록 하였다. 이에 용수의 부인이였던 천화는 용춘에 시집을 가고, 용춘이 선덕을 모시자 진평이 천화를 백룡에게 시집을 가게 했다고 한다. 천화는 용수-> 용춘 -> 백룡에게 시집을 가지만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고 타의(진평)의 명령에 따라 시집을 가고 있다.

백룡은 삼국사기 본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에 보면, 629년 낭비성 전투에 참전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건복 46년 기축(진평왕 51년: 629) 가을 8월에 왕이 이찬(伊湌) 임말리(任末里), 파진찬(波珍湌) 용춘(龍春).·백룡(白龍), 소판(蘇判) 대인(大因)·서현(舒玄) 등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공격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 629년

백룡의 지위가 용춘과 같은 파진찬(4등위)이다. 삼국사기에 용춘은 대장군으로 나온다. 그러니 백룡도 대장군의 직위에 있었지 않을까 한다.

신라판 서동요, 법흥과 보과

삼국유사에는 천화대신에 선화가 진평의 3번째 딸로 등장한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선화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단지, 화랑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 원화 <남모>를 법흥왕과 백제 보과의 사이에서 난 여식으로 등장한다.
준정이 남모를 시기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만들어 정부인 위화랑을 1세 풍월주로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2세 풍월주가 미실과 미생의 아버지인 미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보과는 법흥왕이 국공(왕자가 아님) 시절에 백제에 왔다가 눈이 맞어, 백제를 버리고 신라로 법흥(원종)을 만나러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고 남모와 4세 풍월주 모랑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버리는 처자들이 많이 보인다. 신라의 여인들은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는 왕후의 자리도 버리고, 사랑하는 지아비를 따른다.

이와 관련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2009/07/09 - [역사이야기] - 화랑세기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도 있다. 를 참조하기 바란다.


영국의 에드워드 왕은 영국의 법에 의해서 과부와 결혼은 용납하지 않자, 왕의 지위를 버리고, 미국의 과부인 심슨부인과 결혼을 하여 왕위를 버린 세기의 결혼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신라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 난다. 시간이 허락하고 성원이 있다면 '사랑을 위해서 자신의 지위를 버린 여인들'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임술년 천명과 덕만이 쌍생으로 태어났다? 

 세종과 하종의 계락으로 "임술년에 황후가 쌍생을 낳았다가 하나의 쌍생을 버렸으니, 마야황후를 폐하라는 벽서(방)가 붙는다.

설화랑은 하종과 세종이 벽서를 붙힌 범인임을 미실의 눈을 보고 알아 차렸다고 이야기를 하며 세주의 통찰력은 진흥대제의 통찰력을 뛰어 넘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궁예의 관심법이 되겠다. "옴마니 반메음"

덕만과 천명이 임술년생이라고 하지만, 당시의 임술년은 덕만과 천명이 태어날 수 없다. 임술년은 진흥왕시기와 진평왕시기에 딱 2번 나온다. 

 542년 진흥왕 3년, 602년 진평왕 24년이다. 

이와 관련된 기사는 다음과 같다. 관심이 있는 분은 아래 기사를 참조 하시길 바란다.

천명과 덕만이 542년 임술년은 절대로 될 수가 없다. 이유는 천명과 덕만의 아비인 진평왕이 태어나기도 전이고, 진평왕의 할아버지인 진흥(심맥종)의 나이가 8살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602년 임술년이 될 수 있는가? 천명과 용수 사이에 낳았다는 춘추가 603년에 태어 난다. 그러니 천명은 2살때 춘추를 낳은 것이다. 기네스에 오른 기록이 5살이다. 그것도 자식이 아닌 쌍둥이 동생으로 의심하고 있다, 어머니가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쌍둥이중 하나가 어머니 뱃속에서 크지를 못하고 다른 쌍둥이의 몸속에서 기생(?)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대가야 복야세력 월야의 비밀

월야(주상욱)

그런데 복야회의 수장 월야는 대가야의 마지막왕인 월광태자의 적손이라고 한다. 월천의 이름도 '<월> 돌림자를 쓰는 것으로 봐서, 월천은 대가야의 왕족 출신인 것 같다.

8세 풍월주 문노는 대가야의 피를 이어 받았다, 또한, 문노가 풍월주에 오르게 된 이유도 가야파의 지원이 있었기 가능했다.

 복야회의 근거지는 삽량주에 있다고 한다. 유신은 자신의 가문에 주어진 압량주을 가야유민에게 주고, 복야회의 복속과 동맹을 바란다. 이유는 가야파를 등에 지고 덕만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함이다.


비담은 복야회의 포스트 말단 연락책을 잡는다, 그런데 포스트는 죽음으로 비밀을 지키려한다. 하지만 포스트의 품에서 암어(암호)가 적힌 편지를 발견한다. 하지만 비담은 술술 암어 내용을 이야기한다. 복야회의 암어(암호)를 아는 이유는 비담의 스승인 문노(비조/문화)의 외가가 대가야 출신이기 때문이다.

월광태자는 이뇌/비조부(호조/선혜후)의 누이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월광과 문노는 사촌간이 된다. 월광의 아들로 나온 월야는 문노의 조카가 되는 것이다. 

양화는 호조/선혜후의 딸이다. 이뇌와 양화의 딸은 월화공주이다. 월화공주는 진흥에 시집를 가서 천주를 낳는다. 천주는 지도태후(용수.용춘의 어머니)와 결혼하여 586년 17세 풍월주 염장을 낳는다. 이 염장이 덕만을 도와 칠숙의 난을 평정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문노는 561년 이사부와 사다함이 대가야를 정벌할때  문노 자신의 외가를 치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하여 참전을 하지 않았다. 이에 신라인들은 신의가 있다고 하여, 문노를 더욱 존경하였다고 전한다.


어찌되었던 복야회의 대빵의 이름이 월야인 이유가 월화->월광->월야,월천 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월천대사는 월광태자와 형제지간이 되는 건가?

단석산 김유신 바위와 유신의 도박

단석산 김유신바위

유신은 덕만으로 부터 너(유신)를 버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나열한다. 한마디로 나를 따르라는 덕만의 협박이다.


유신은 덕만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가야파를 지키고, 가문의 안위를 만을 생각할 것인가를 고심하면서, 열심히 바위를 치고 있다. 유신이 어릴때부터 바위치기를 한다 이유는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보검을 얻고,  칼로 바위가르기를 보여주기 위한 과정이였다. 그래서 언제나 바위가 갈라질까? 관심있게 지켜봤다. 치고 또치고도 갈라지지 않던 바위가 드디어 갈라졌다. 드디어 김유신 열전과 에 바위가 갈라지는 기적이 선덕여왕 26회에 이뤄진것이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에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이때 김유신의 나이가 17세인 것으로 나온다. 그러니

(c) 정진만 단석산 김유신 바위

595년생인 유신이 17세가 되는 해는 611년이 된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은 시간개념과 공간개념을 상실하고 있기때문에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김유신 바위는 단석산 정상에 있다. 산행을 하거나, 선덕여왕 촬영지 관광코스로 정해보는 것은 어떠할까?  


유신은 서현에게 가문과 가야세력의 모든것을 걸고, 도박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때 복야회 일원은 유신과 서현을 죽이려 한다. 이에 유신은 복야회 일원을 굴복시키고, 복야회의 수장을 만나려고  산채로 들어간다.

서현이 602년 아막성 전쟁에서 참전하여, 설원랑의 계락으로 위기에 처하고 , 부상을 입었을 때, 구원을 받은것은 하늘의 보살핌이 아니라 복야회 장군인 설지의 입을 통해서 복야회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유신은 가야의 유민이 12만이라고 한다. 도대체 어디서 나온 근거인지는 알 수 없다. 선덕여왕의 작가는 생각없이 말을 뱃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선덕여왕의 작가진만 알 수 있지 않을까?

유신은 덕만일행을 포위하고 있는 복야회에게 "내가 선택한 나의 왕이시다. 그러니 복야회 또한, 덕만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한다. 이로서 덕만은 미실과 대적할 수 있는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진부한 운명론

성골남진의 나머지 계시가 밝혀지고 있다. 미실이 무너지고, 덕만이 일어선다는 것이다. 곧 덕만이 왕이 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운명이 정해졌다는 인간의 운명론이 되시겠다. 덕만이 노력을 하던 하지 않던, 왕이 되는 운명인데, 왜 저 멀리 사막까지가게 만들었을까? 그것도 운명인가? 미실에 대적하는 것도 운명이고? 한마디로 '타고난 팔자가 있다'가 있다는 말인데, 소설이 너무 진부하지 않는가?


춘추(유승호)의 아버지에 대한 비밀을 알고 싶으세요? 그럼 이 기사를 일독 해보시길 
2009/08/20 - [역사이야기] - 괴물이 되어버린 춘추(유승호)의 아버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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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우비 2009.08.19 1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굳굳굳 지루하게 읽을 수도 있는 글을

    재밌게 쓰신것 같아요~!

    그냥 봤으면 역사 잘못 알뻔했네요 ...-_-;;;

    너무너무 잘 읽다가 가요~

  3. 능소화 2009.08.19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신라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4. 날아라 2009.08.19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일고 가니다. 앞으로도 계속 부탁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속 할려면 추천이 많아야 하는데.. 너무 추천을 하지 않는군요..

      추천이 없다는 말은 이런글은 쓰지 말라는 뜻이거든요.. ㅋㅋ

  5. BlogIcon haRu™ 2009.08.19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마지막에 운명론에 대한 비판... 아주 좋았습니다.
    제가 주로 사극을 안보는 이유와 같습니다. 특히 사극은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고는 주인공을 개고생 시키죠.
    뭐 이런식으로 재미가 없어질려고 할때 비담의 투입은 정말 극적이였죠. 지금 것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본 적없는 매력적인(그러나 일본 만화등에서는 많이 본...ㅡ,.ㅡㅋ)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다. 운명이런것 없이도 잘 만들텐뎅.. 뭔 원죄론을 받아 들여서 그런가. 너무 난무함...

  6. elly 2009.08.19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문노와 월광은 사촌지간이 아닙니다.
    촌수로 따지자면 조금 더 올라갑니다. :-)
    월광태자의 자손은 아무리 자료를 찾아봐도 자료가 없어요.
    대신 해인사를 처음 창건한 이 중 하나가 월광의 후손이라고 적혀있어서,
    그의 후손이 있다고 짐작만 할 따름입니다.
    월야라는 인물은 소설(혹은 극)을 위해 만든 가공의 인물입니다.
    대신 월광의 누이동생인 월화의 후손인 천주는 화랑세기에 나오는걸 보니 있었던 인물인것 같구요.

    • BlogIcon 갓쉰동 2009.08.19 2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월광의 어미니가 비조부의 누이이고,
      문노의 아버지는 비조부/문화 잖아요.. 그러니 이들은 사촌간이 되지요..

      그냥 드라마가 월광의 적자라고 해서리.. 그렇다면 문노의 조카다 하는거지요.. ㅋ ㅋ 이왕 엮을라면 확실히 엮어라 머 이런 비판이였음..

      저는 월야보다는 천주/월화의 아들인 염장을 월야역으로 했다면 더 잼있지 않았을 까해요.. 머 언젠가는 염장도 덕만의 수중에 떨어지겠지만요..

      서현보다 더 비중이 있는 인물이 천주인뎅.. 기록도 별로 없으니 맘껏 작가의 상상력도 발휘할수 있구요..

      선덕여왕 원작 작가가 너무 공부를 안한 티가 나요.. ㅋㅋ

      인물설정을 할때 자료조사가 기본중에 기본인뎅..

    • BlogIcon elly 2009.08.19 2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ㅋㅋ
      전 문노의 모계, 월광의 부계로 계산을 하다보니
      엄청난 촌수가 나오더라구요. 이제 생각해보니
      이종사촌-외사촌격이 되네요. :-)

      전 우연히 당첨되서 선덕여왕 소설까지 다 읽었는데
      원작가가 공부 안한티가 정말로 많이 나더군요.
      인물 설정 조차도 대충 빌려온게 너무 많이 보여요.
      (선덕여왕이 처녀로 죽었다는 사실까지 포함해서..;;)

    • BlogIcon 갓쉰동 2009.08.20 0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처녀로 죽이는 군요.. 처녀에 대한 환상이라도 있나봅니당..

  7. 흐흐흐 2009.08.25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에 사소한 실수가 보이네요. 별거 아니지만 문맥상 약간의 혼동이 올 수 있어서...
    월야의 사진 옆 글 '가야파를 등지고'가 '가야파를 등에지고'죠???
    맞나요?

    • BlogIcon 이반의꿈 2009.08.25 1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도 읽힐수 있군요.. 저는 등지고를 등에지고로 생각하고 썼는뎅.. 바꿀까 말까 고민했었음. 지적을 하시니 바꿔야 겠네요.. ㅋㅋ

  8. BlogIcon 조용형 2012.01.01 0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팹, 훌륭한 문서입니다

  9. BlogIcon 원숭이 2012.01.07 0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10. BlogIcon 엘리 2012.04.04 0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어디로 데려가십니까?

  11. BlogIcon 헤일리 2012.04.06 0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2. BlogIcon 모건 2012.05.08 2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심 없습니다.

  13. BlogIcon 알렉 산드라 2012.05.11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먹었습니다.

  14.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5.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6. BlogIcon Pussy Porn 2012.07.14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서 남모를 죽이자. 지소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17.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8.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for camping 2012.11.01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9.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indoors 2012.11.06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

  20. BlogIcon petsafe wireless dog fence 2012.12.22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이 중요한 주제에 도움이 필요 남녀를 지원하는 당신의 관대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21. BlogIcon 24 stove top 2013.01.02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일식은 있었을까? 물론, 일식도 없었고, 월식도 없었다. 당시의 일식이 있던 시기를 뽑아 본다면 다음과 같다.

'선덕여왕' 설원랑(전노민)은 '찬유' 백성희(김미숙)

한때 부드러운 이미지로 특히 아줌마들의 선망이고, 로망이였던 전노민이 mbc 사극 <선덕여왕>에서 설원랑(전노민)으로 악역을 자처하고 나섰다. 부드러우면서 차갑고, 치밀하고, 전략적인 악인이다.

여배우 김미숙이 <찬란한 유산>에서 따스한듯 하면서도 차갑고, 치밀하면서도 차분한 백성희 역으로 호평을 받았다면 전노민도 김미숙과 같은 부드러우면서 차갑고, 냉철한 악역을 보여주고 있다. <선덕여왕>에서 설원랑(전노민)은 미실(고현정)의 충복이며, 정부로 나온다. 또한, 미실이 하는 일이라면 쌈심지를 켜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기록이 말한 설원랑은 누구?

하지만 역사의 기록에는 설원랑이 음악에 조예가 깊은 듯 하게 나온다. 음악에 조예가 깊다고 해도 악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삼국사기> 악지 피리(삼죽)로 만든 <사내기물악>을 만들었다.
 

날현인(捺絃引)은 진평왕 때의 사람인 담수(淡水)가 지은 것이고, 사내기물악(思內奇物樂)은 원랑도(原郞徒)가 지은 것이었다 - 삼국사기 악지 삼죽(피리)


삼국유사에는 남모와 준정이 원화로 있다가 준정이 남모를 투기하여 술을 먹인 후 산개울에서 돌로 처 죽여 버린다. 이에 진흥왕이 원화를 없애고, 이름을 화랑으로 고치고, 화랑의 국선으로 설원랑을 세웠다고 한다. 
진흥왕 원년(540)에 진흥(심맥종)은 7살 어린 코흘리개 였다. 그러니 진흥왕이 한일이 아니라 어미인 지소태후가 한일 임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는 시집안간 처녀로 원화를 삼았다고 하지만, 화랑세기에는 원화의 대장 남모(법흥/보과)는 2세 풍월주인 남모와 결혼을 한 상태였고, 준정(삼산/?) 영실과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삼국유사와 화랑세기는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풍월주, 화랑, 원화, 국선에 대해서도 조금씩 차이가 난다.


여러 해가 되자 왕은 또 나라를 일으키려면 반드시 풍월도(風月道)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시 영을 내려 양가(良家)의 남자 중에 덕행(德行)이 있는 자를 뽑아 이름을 고쳐 화랑(花娘(郞))이라 하고, 비로서 설원랑(薛原郞)을 받들어 국선(國仙)을 삼으니, 이것이 화랑(花郞) 국선(國仙)의 시초이다.  그런 때문에 명주(溟洲)에 비(碑)를 세우고, 이로부터 사람들로 하여금 악한 것을 고쳐 착한 일을 하게 하고 웃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에게 유산하게 하니 오상(五常)·육예(六藝)와 삼사(三師)·육정(六正)이 왕의 시애에 널리 행해졌다
(<국사國史>에 보면, 진지왕眞智王 대건大建 8년 경庚(병丙)신申에 처음으로 화랑花郞을 받들었다 했으나 이것은 사전史傳의 잘못일 것이다). - 삼국유사 미륵선화(彌勒仙花)·미시랑(未尸郎)·진자사(眞慈師)

삼국유사에 의하면 국선으로 설원랑의 세우고 명주(강릉)에 비를 세웠다고 하니, 만약, 강릉에서 이 비를 찾는다면, 확실히 <화랑세기>진위 논쟁이 종지부를 찍을 지 모른다. 강릉 한송정 근처가 화랑들이 옛부터 놀던 터라고 하니, 그곳에 사시는 분이나, 강릉쪽으로 휴가를 가는 분들은 찾아보는 것도 잼있지 않을까?

화랑세기가 말하는 7세 풍월주 설원랑

8세 풍월주가 되는 문노는 무를 숭상하고 전쟁에 나아가 전공을 세우는 것을 명예로 생각하지만, 7세 풍월주 설원랑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기록한 것 처럼, 산으로 들로 유람을 즐기고, 선도에 심취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화랑세기는 설원랑의 화랑들을 운상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한, 문노와 설원랑은 서로 대립적 이나 미실에 대해서 만큼은 문노나 설원랑이나  충성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많은 차이가 보인다.

어찌되었던 <화랑세기>에 의하면, 구리지의 양자였던, 설성이 사다함의 어미인 금진과 관계를 하여 설원랑을 낳았다. 설원랑(설성/금진)은 사다함 보다 3살이 어렸다. 사다함이 546년 생이니  설화랑은 549년 생이 된다. 설화랑과 사다함은 동복형제가 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572년 진평의 아버지인 동륜태자(진흥/사도)가 미실의 공작으로 보명궁에서 개에게 물려 죽고, 미실의 원화가 폐지 되었다. 

미실의 남편인 세종(이사부/지소)은 6대 풍월주에 다시 오르지만, 미실이 자신도 원화에서 떨어졌는데, 세종이 다시 풍월주에 오르는 것을 옳지 못하다고 하여 이내 그만 두고, 풍월주의 지위를 설원랑에 양보한다.

그러니 572년 즈음해서 설원랑이 풍월주에 올랐다고 보여진다. 이로써 572년 '설화랑이 국선이 되었다'는 삼국유사 기록과 화랑세기의 기록이 일치를 보는 것이다. 


설원랑은 "아버지인 설성의 지위가 한미하다"는 이유로 화랑들을 통솔할 수가 없었다. 이에 미실은 설원랑에게 3세 풍월주인 모랑(법흥/보과)의 미망인 준화에게 장가를 들도록 하였다.  준화는 위화랑과 준실 사이에 난 4세 풍월주 이화랑(위화랑/준실)의 누나이다.

3세 풍월주 모랑은 법흥과 백제공주인 보과 사이에서 난 사람이고, 모랑의 누나가 첫번째 원화였던 남모(법흥/보과)였다. 남모가 준정에 죽고 나서 1차 원화가 폐지되었다. 

이해 540년 화랑이 만들어 졌는데 이때 위화랑이 1세 풍월주에 오르고, 2세 풍월주에 미실과 미생의 아버지인 미진이 오른다.


미실이 설원랑에게 준화를 천거한 이유는 준화가 3세 풍월주 모랑의 아내이자 화랑의 화주였기 때문이며, 준화의 아버지인 1세 위화랑과 동생인 4세 이화랑의 권위를 업고 가기 위해서 였다. 또한, 모랑의 재산을 상속받은 유일한 상속자 였으니, 법흥왕의 자식으로 얼마나 재산이 많았겠는가? 준화와 결혼하는 순간, 모랑의 재산은 설원랑에 귀속된다.

위에서 언급을 했지만 설원랑은 549년생이다. 모랑은 555년  비사벌을 여행하다 죽었다. 이해에 지소태후는 만호(이화랑/지소)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평(동륜/만호)의 어머니이자, 만명(숙흘종/만호)의 어머니인 만호(이화랑/지소)는 555(6)년 생이다. 이것도 재미있는 기사거리가 될것이다. 만호는 어릴적에 3명의 자식을 두었다. 그리고 미망인으로 숙흘종과 금륜(진지)과 관계를 가졌다.

어찌되었던 준화는 20살에 과부가 되어 18년 동안 재가를 하지 않고, 독수공방 긴긴밤을 딸인 준모와 함께 지냈다. 준화는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다가, 572년 38살에 미실의 중매로 영계 설원랑과 결혼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설원랑이 7세 풍월주에 오른때는 555년으로 부터 18년이 지난 572년이 된다. 이때 설원랑(549년생)은 24살이 되고, 준화(536년생)는 38살이 된다. 설원랑의 어머니는  금진(위화랑/오도)이고, 준화(위화랑/준실)는 금진과 이복자매가 된다. 그러니 준화는 사사로이는 설원랑의 이모가 된다.

둘의 나이 차이는 14살차이가 난다. 나이 어린 신랑을 둔 준화는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고, 설화랑은 준화에 주눅이 들어 생활하지 않았을까? 


제비나 여자 연예인의 롤모델 설원랑

어찌되었던 나이 많은 재벌 명문귀족의 미망인과 결혼해서 인생역전 지위가 급상승하는 것이다.

설원랑은 요즘 재벌가에 시집가는게 로망인 여자 연예인이나, 재벌 츠자나 재산많은 미망인을 꼬셔서 인생역전을 노리는 제비들이나 총각들의 인생의 롤모델이 되는 산 증인이다. 

모랑(법흥/보과)의 재산을 상속받은 미망인 준화는 설원랑에 날개를 달아준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자신의 어머니인 금진(위화랑/오도)의 이복자매인 준화(위화랑/준실)와 결혼을 하고, 풍월주로써 화랑을 제어할 수 있었다. 물론, 준화의 전남편인 모랑(법흥/보과)의 유무형의 재산을 물려 받았으니 살아가는데도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신라를 세운 6부귀족인 고야촌장 호진의 후손인 설원랑도 어미인 금진(위화랑/오도)의 권능으로도 왕족과 귀족출신들이 많은 화랑들을 어찌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설원랑은 모랑(법흥/보과)의 미망인 준화(위화랑/준실)와 결혼을 하고, 미실과 관계를 하면서 신라시대에 입지전적인 인물이 된다.  

 


 손녀사위 유신, 원효와 설총의 직계조상 설원랑

설원랑과 준화 사이에는 설웅,잉피, 정금을 낳는다. 잉피는 담날을 낳고, 담날이 원효대사를 낳는다. 원효는 요석공주와 관계를 하여 설총을 낳는다.


하지만, 설원랑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준화의 딸인 준모(모랑/준화)와 관계를 하여 미모를 낳는다.  미모가 11세 풍월주 하종(세종/미실)과 결혼하여 영모를 낳고, 영모(하종/미보)가 18세인 유신(595년생)과 612년 결혼을 하고, 유신은 15세 풍월주에 오르고, 영모는 화랑의 화주가 된다. 
 
579년 나이가 어린 진평왕과 관계에 실패한 미실이 설원랑과 관계를 하여, 드라마에서는 설원랑과 함께 미실의 충실한 충복인 악역으로 나오지만, 진성공자 16세 풍월주인 보종(579~580)을 낳는다. 좀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사실은 유신과 보종 너무나 친한 사이 글을 참조 하길 바란다.

신라 계급 골품에 한계를 느낀 귀족 설계두

신라의 골품에 치를 떠는 인물이 있다. 이도 설원랑과 같은 6부귀족이며 같은 설씨이다.
설원랑보다 후대에 설계두가 있었는데 설계두는 신라의 신분사회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명예를 얻고, 직위를 얻는데 한계가 있다 느끼고 당나라로 이민을 간다. 그리고 대고구려 전쟁에 참여하고, 645년 주필산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다. 이에 당나라가 고구려에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 후대의 바다의 왕자 장보고를 보는 것 같지 않는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도 설계두가 참여한 주필산 전투에 관한 일화가 있다. 수나라 사신단이 황칠을 찾는 장면이 나온다. 황칠은 명광개(황금갑옷)을 만드는 재료이다. 주필산 전투에 참여한 고구려와 당나라는 황금갑옷을 입고 전투에 참여했다. 이에 관심이 있는 분은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신라에서 백제 특산물 황칠을 찾는 수나라 기사를 읽어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설계두에 관한 글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포스팅 할 예정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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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White Rain 2009.08.08 0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원랑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알게 되다니...
    그나저나 설원랑 후손이 원효대사라니...
    좋은 정보와 재미 얻고 갑니다.

  2. BlogIcon 아이러니♡ 2009.08.08 0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비들의 산증인.. 상당히 웃기네요 ㅋㅋ
    설원랑을 이렇게 자세하게 옮겨주실줄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3. BlogIcon labyrint 2009.08.08 0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군요.
    근데, 조금은 복잡하네요... ㅋㅋ

    설원랑이 그 유명한 원효대사의 조상이라니... 몰랐네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4. BlogIcon labyrint 2009.08.08 0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리고 제 소설에 관심을 가져 주시고 충고까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참고하겠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5. 2009.08.08 1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BlogIcon 초록누리 2009.08.08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설원랑 이야기네요. 원효대사가 손자라니!!! 이 무궁한 이야기보따리를 책으로 발간하시는 게 어떠할런지요? 선덕여왕이 보다 헷갈리면 여기와서 인물정리하고 가느라 들락날락 바쁩니다.

  7.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8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원랑....
    나중에 다시 공부하겠습니다.
    어젠 고교 동창이랑
    오랫만에 와인에 푹빠져 아직
    비몽사몽입니다.

    그나저나
    방학도 없나요?
    지금껏 공부한 거 시험치자고 하니
    시험도 없고...
    그래도 방학은 ㅋ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8. 감사합니다 2009.08.08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볼 때 마다 설원랑 캐릭터 매력있다고 생각했는데 님 덕분에 좋은 정보 얻고 가네요
    감사합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8.09 1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설원랑 캐릭이 잼있어요. .정말.. 눈빛연기도 죽이공..낮은 톤에서 나오는 악역이 더 무섭긴 하지요.. 내공이 보임.. 고현정과 같이..

  9. BlogIcon concessionaria fiat 2012.04.26 05: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난 그냥이 게시물에 여기 당신이 가진 위대한 정보에 대한 큰 엄지손가락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더 빨리 귀하의 블로그에 돌아올 것이다.

  10.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선덕여왕' 설원랑(전노민)은 '찬유' 백성희(김미숙)

한때 부드러운 이미지로 특히 아줌마들의 선망이고, 로망이였던 전노민이 mbc 사극 <선덕여왕>에서 설원랑(전노민)으로 악역을 자처하고 나섰다. 부드러우면서 차갑고, 치밀하고, 전략적인 악인이다.

여배우 김미숙이 <찬란한 유산>에서 따스한듯 하면서도 차갑고, 치밀하면서도 차분한 백성희 역으로 호평을 받았다면 전노민도 김미숙과 같은 부드러우면서 차갑고, 냉철한 악역을 보여주고 있다. <선덕여왕>에서 설원랑(전노민)은 미실(고현정)의 충복이며, 정부로 나온다. 또한, 미실이 하는 일이라면 쌈심지를 켜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기록이 말한 설원랑은 누구?

하지만 역사의 기록에는 설원랑이 음악에 조예가 깊은 듯 하게 나온다. 음악에 조예가 깊다고 해도 악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삼국사기> 악지 피리(삼죽)로 만든 <사내기물악>을 만들었다.
 

날현인(捺絃引)은 진평왕 때의 사람인 담수(淡水)가 지은 것이고, 사내기물악(思內奇物樂)은 원랑도(原郞徒)가 지은 것이었다 - 삼국사기 악지 삼죽(피리)


삼국유사에는 남모와 준정이 원화로 있다가 준정이 남모를 투기하여 술을 먹인 후 산개울에서 돌로 처 죽여 버린다. 이에 진흥왕이 원화를 없애고, 이름을 화랑으로 고치고, 화랑의 국선으로 설원랑을 세웠다고 한다. 
진흥왕 원년(540)에 진흥(심맥종)은 7살 어린 코흘리개 였다. 그러니 진흥왕이 한일이 아니라 어미인 지소태후가 한일 임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는 시집안간 처녀로 원화를 삼았다고 하지만, 화랑세기에는 원화의 대장 남모(법흥/보과)는 2세 풍월주인 남모와 결혼을 한 상태였고, 준정(삼산/?) 영실과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삼국유사와 화랑세기는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풍월주, 화랑, 원화, 국선에 대해서도 조금씩 차이가 난다.


여러 해가 되자 왕은 또 나라를 일으키려면 반드시 풍월도(風月道)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시 영을 내려 양가(良家)의 남자 중에 덕행(德行)이 있는 자를 뽑아 이름을 고쳐 화랑(花娘(郞))이라 하고, 비로서 설원랑(薛原郞)을 받들어 국선(國仙)을 삼으니, 이것이 화랑(花郞) 국선(國仙)의 시초이다.  그런 때문에 명주(溟洲)에 비(碑)를 세우고, 이로부터 사람들로 하여금 악한 것을 고쳐 착한 일을 하게 하고 웃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에게 유산하게 하니 오상(五常)·육예(六藝)와 삼사(三師)·육정(六正)이 왕의 시애에 널리 행해졌다
(<국사國史>에 보면, 진지왕眞智王 대건大建 8년 경庚(병丙)신申에 처음으로 화랑花郞을 받들었다 했으나 이것은 사전史傳의 잘못일 것이다). - 삼국유사 미륵선화(彌勒仙花)·미시랑(未尸郎)·진자사(眞慈師)

삼국유사에 의하면 국선으로 설원랑의 세우고 명주(강릉)에 비를 세웠다고 하니, 만약, 강릉에서 이 비를 찾는다면, 확실히 <화랑세기>진위 논쟁이 종지부를 찍을 지 모른다. 강릉 한송정 근처가 화랑들이 옛부터 놀던 터라고 하니, 그곳에 사시는 분이나, 강릉쪽으로 휴가를 가는 분들은 찾아보는 것도 잼있지 않을까?

화랑세기가 말하는 7세 풍월주 설원랑

8세 풍월주가 되는 문노는 무를 숭상하고 전쟁에 나아가 전공을 세우는 것을 명예로 생각하지만, 7세 풍월주 설원랑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기록한 것 처럼, 산으로 들로 유람을 즐기고, 선도에 심취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화랑세기는 설원랑의 화랑들을 운상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한, 문노와 설원랑은 서로 대립적 이나 미실에 대해서 만큼은 문노나 설원랑이나  충성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많은 차이가 보인다.

어찌되었던 <화랑세기>에 의하면, 구리지의 양자였던, 설성이 사다함의 어미인 금진과 관계를 하여 설원랑을 낳았다. 설원랑(설성/금진)은 사다함 보다 3살이 어렸다. 사다함이 546년 생이니  설화랑은 549년 생이 된다. 설화랑과 사다함은 동복형제가 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572년 진평의 아버지인 동륜태자(진흥/사도)가 미실의 공작으로 보명궁에서 개에게 물려 죽고, 미실의 원화가 폐지 되었다. 

미실의 남편인 세종(이사부/지소)은 6대 풍월주에 다시 오르지만, 미실이 자신도 원화에서 떨어졌는데, 세종이 다시 풍월주에 오르는 것을 옳지 못하다고 하여 이내 그만 두고, 풍월주의 지위를 설원랑에 양보한다.

그러니 572년 즈음해서 설원랑이 풍월주에 올랐다고 보여진다. 이로써 572년 '설화랑이 국선이 되었다'는 삼국유사 기록과 화랑세기의 기록이 일치를 보는 것이다. 


설원랑은 "아버지인 설성의 지위가 한미하다"는 이유로 화랑들을 통솔할 수가 없었다. 이에 미실은 설원랑에게 3세 풍월주인 모랑(법흥/보과)의 미망인 준화에게 장가를 들도록 하였다.  준화는 위화랑과 준실 사이에 난 4세 풍월주 이화랑(위화랑/준실)의 누나이다.

3세 풍월주 모랑은 법흥과 백제공주인 보과 사이에서 난 사람이고, 모랑의 누나가 첫번째 원화였던 남모(법흥/보과)였다. 남모가 준정에 죽고 나서 1차 원화가 폐지되었다. 

이해 540년 화랑이 만들어 졌는데 이때 위화랑이 1세 풍월주에 오르고, 2세 풍월주에 미실과 미생의 아버지인 미진이 오른다.


미실이 설원랑에게 준화를 천거한 이유는 준화가 3세 풍월주 모랑의 아내이자 화랑의 화주였기 때문이며, 준화의 아버지인 1세 위화랑과 동생인 4세 이화랑의 권위를 업고 가기 위해서 였다. 또한, 모랑의 재산을 상속받은 유일한 상속자 였으니, 법흥왕의 자식으로 얼마나 재산이 많았겠는가? 준화와 결혼하는 순간, 모랑의 재산은 설원랑에 귀속된다.

위에서 언급을 했지만 설원랑은 549년생이다. 모랑은 555년  비사벌을 여행하다 죽었다. 이해에 지소태후는 만호(이화랑/지소)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평(동륜/만호)의 어머니이자, 만명(숙흘종/만호)의 어머니인 만호(이화랑/지소)는 555(6)년 생이다. 이것도 재미있는 기사거리가 될것이다. 만호는 어릴적에 3명의 자식을 두었다. 그리고 미망인으로 숙흘종과 금륜(진지)과 관계를 가졌다.

어찌되었던 준화는 20살에 과부가 되어 18년 동안 재가를 하지 않고, 독수공방 긴긴밤을 딸인 준모와 함께 지냈다. 준화는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다가, 572년 38살에 미실의 중매로 영계 설원랑과 결혼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설원랑이 7세 풍월주에 오른때는 555년으로 부터 18년이 지난 572년이 된다. 이때 설원랑(549년생)은 24살이 되고, 준화(536년생)는 38살이 된다. 설원랑의 어머니는  금진(위화랑/오도)이고, 준화(위화랑/준실)는 금진과 이복자매가 된다. 그러니 준화는 사사로이는 설원랑의 이모가 된다.

둘의 나이 차이는 14살차이가 난다. 나이 어린 신랑을 둔 준화는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고, 설화랑은 준화에 주눅이 들어 생활하지 않았을까? 


제비나 여자 연예인의 롤모델 설원랑

어찌되었던 나이 많은 재벌 명문귀족의 미망인과 결혼해서 인생역전 지위가 급상승하는 것이다.

설원랑은 요즘 재벌가에 시집가는게 로망인 여자 연예인이나, 재벌 츠자나 재산많은 미망인을 꼬셔서 인생역전을 노리는 제비들이나 총각들의 인생의 롤모델이 되는 산 증인이다. 

모랑(법흥/보과)의 재산을 상속받은 미망인 준화는 설원랑에 날개를 달아준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자신의 어머니인 금진(위화랑/오도)의 이복자매인 준화(위화랑/준실)와 결혼을 하고, 풍월주로써 화랑을 제어할 수 있었다. 물론, 준화의 전남편인 모랑(법흥/보과)의 유무형의 재산을 물려 받았으니 살아가는데도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신라를 세운 6부귀족인 고야촌장 호진의 후손인 설원랑도 어미인 금진(위화랑/오도)의 권능으로도 왕족과 귀족출신들이 많은 화랑들을 어찌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설원랑은 모랑(법흥/보과)의 미망인 준화(위화랑/준실)와 결혼을 하고, 미실과 관계를 하면서 신라시대에 입지전적인 인물이 된다.  

 


 손녀사위 유신, 원효와 설총의 직계조상 설원랑

설원랑과 준화 사이에는 설웅,잉피, 정금을 낳는다. 잉피는 담날을 낳고, 담날이 원효대사를 낳는다. 원효는 요석공주와 관계를 하여 설총을 낳는다.


하지만, 설원랑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준화의 딸인 준모(모랑/준화)와 관계를 하여 미모를 낳는다.  미모가 11세 풍월주 하종(세종/미실)과 결혼하여 영모를 낳고, 영모(하종/미보)가 18세인 유신(595년생)과 612년 결혼을 하고, 유신은 15세 풍월주에 오르고, 영모는 화랑의 화주가 된다. 
 
579년 나이가 어린 진평왕과 관계에 실패한 미실이 설원랑과 관계를 하여, 드라마에서는 설원랑과 함께 미실의 충실한 충복인 악역으로 나오지만, 진성공자 16세 풍월주인 보종(579~580)을 낳는다. 좀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사실은 유신과 보종 너무나 친한 사이 글을 참조 하길 바란다.

신라 계급 골품에 한계를 느낀 귀족 설계두

신라의 골품에 치를 떠는 인물이 있다. 이도 설원랑과 같은 6부귀족이며 같은 설씨이다.
설원랑보다 후대에 설계두가 있었는데 설계두는 신라의 신분사회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명예를 얻고, 직위를 얻는데 한계가 있다 느끼고 당나라로 이민을 간다. 그리고 대고구려 전쟁에 참여하고, 645년 주필산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다. 이에 당나라가 고구려에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 후대의 바다의 왕자 장보고를 보는 것 같지 않는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도 설계두가 참여한 주필산 전투에 관한 일화가 있다. 수나라 사신단이 황칠을 찾는 장면이 나온다. 황칠은 명광개(황금갑옷)을 만드는 재료이다. 주필산 전투에 참여한 고구려와 당나라는 황금갑옷을 입고 전투에 참여했다. 이에 관심이 있는 분은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신라에서 백제 특산물 황칠을 찾는 수나라 기사를 읽어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설계두에 관한 글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포스팅 할 예정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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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White Rain 2009.08.08 0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원랑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알게 되다니...
    그나저나 설원랑 후손이 원효대사라니...
    좋은 정보와 재미 얻고 갑니다.

  2. BlogIcon 아이러니♡ 2009.08.08 0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비들의 산증인.. 상당히 웃기네요 ㅋㅋ
    설원랑을 이렇게 자세하게 옮겨주실줄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3. BlogIcon labyrint 2009.08.08 0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군요.
    근데, 조금은 복잡하네요... ㅋㅋ

    설원랑이 그 유명한 원효대사의 조상이라니... 몰랐네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4. BlogIcon labyrint 2009.08.08 0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리고 제 소설에 관심을 가져 주시고 충고까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참고하겠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5. 2009.08.08 1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BlogIcon 초록누리 2009.08.08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설원랑 이야기네요. 원효대사가 손자라니!!! 이 무궁한 이야기보따리를 책으로 발간하시는 게 어떠할런지요? 선덕여왕이 보다 헷갈리면 여기와서 인물정리하고 가느라 들락날락 바쁩니다.

  7.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8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원랑....
    나중에 다시 공부하겠습니다.
    어젠 고교 동창이랑
    오랫만에 와인에 푹빠져 아직
    비몽사몽입니다.

    그나저나
    방학도 없나요?
    지금껏 공부한 거 시험치자고 하니
    시험도 없고...
    그래도 방학은 ㅋ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8. 감사합니다 2009.08.08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볼 때 마다 설원랑 캐릭터 매력있다고 생각했는데 님 덕분에 좋은 정보 얻고 가네요
    감사합니다 ^^

    • BlogIcon 갓쉰동 2009.08.09 1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설원랑 캐릭이 잼있어요. .정말.. 눈빛연기도 죽이공..낮은 톤에서 나오는 악역이 더 무섭긴 하지요.. 내공이 보임.. 고현정과 같이..

  9. BlogIcon concessionaria fiat 2012.04.26 05: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난 그냥이 게시물에 여기 당신이 가진 위대한 정보에 대한 큰 엄지손가락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더 빨리 귀하의 블로그에 돌아올 것이다.

  10.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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