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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

춘추(유승호)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춘추(유승호)가 수나라에서 돌아오면서, 어머니 천명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품고, 미실과 대적하게 될것이다. 하지만, 미실의 계략으로 당분간 어머니의 죽음을 덕만때문이라고 믿고 있지 않을까 한다. 비담이 미실의 아들로 미실에 대척하였듯이, 이에 춘추는 미실의 편에서 덕만과 대적하는 캐릭이 아닐까 한다.

그래야 드라마를 보는 이들이 안타까워 하지 않겠는가? 드라마상 춘추는 결국에는 미실에게 아버지 용수와 어머니 천명이 죽임을 당한다. 천명은 춘추에게 미실이 아버지의 원수라고 가르치지 않았을까? 그런데 미실의 계략에 넘어간다는 설정은 무언가 핀트가 어긋나는듯하다. 그만큼 제작팀은 미실의 계략이 뛰어나다는 반증을 나타내려는 것이 아닐까한다. 

어찌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춘추의 아버지를 용수라고 한다.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하는 선덕여왕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보다는 진위 논란에 싸여 있는 화랑세기의 기록을 토대로 드라마의 골격을 만들어 가고 있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은 화랑세기의 인물만을 차용하고는 있지만, 관련 기록을 철저히 무시를 한다.

예를 들어 춘추의 아버지인 용수를 화랑세기와는다르게 춘추가 태어나는 603년에 이미 미실의 계략에 의해서 죽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또한, 춘추의 어머니인 천명을 용춘의 절대적인 충복이며, 장인인 대남보를 미생의 아들로 만들어, 천명을 죽게 만들어 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천명은 춘추가 왕이 되는 654년에도 천수를 누리며, 자신의 아들이 신라의 왕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2009/08/13 - [역사이야기] - 사기.유사.세기 비교해보니 천명 천수를 누렸다? 관심이 있는 분은 보시길 권한다. 간략이 요약하면 죽은 아버지는 문흥대왕에 추봉하고, 어머니는 문정태후로 했다는 춘추의 즉위년 4월기사를 근거로 한것이다.

元年 夏四月 追封王爲文興大王 爲文貞太后 추봉왕고위문흥대왕 모위문정태후

천명(박예진)

고(考)와 부(父), 비(妣)와 모(母)의 차이

고(考)는 죽은아버지를 말한다. 그런데 모(母)는 생존한 어머니를 뜻한다. 만약, 춘추가 즉위시에 천명이 죽었다면, 즉위년 춘추는  모(母)대신에 비(妣), 죽은 어머니 비(妣)를 써야 한다.



괴물이 되어 버린 용수와 용춘

그렇다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춘추의 아버지로 기록된, 용수.용춘을 동일인으로 기록하고 있을까? 아니면 다른 이로 기록하고 있을까? 겉보기로는 용수.용춘을 동일인으로 기록하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통설은 용수(용춘) 또는 용춘(용수)로 기록하고 있고, 이들을 동일인으로 취급하고 있다. 하지만, 좀더 신경을 쓰고 본다면, 용수와 용춘은 별도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용수와 용춘의 기록들을 다 뽑아 보자. 그럼 확실히 이들이 동일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622년 진평 44년(622) 봄 정월에 왕이 몸소 황룡사에 거둥하였다. 2월에 이찬 용수(龍樹)를 내성 사신(內省私臣)으로 삼았다. - 삼국사기 진평왕 44년

629년 51년(629) 가을 8월에 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였다. - 삼국사기 진평왕 51년

635년 선덕 4년 10월에 이찬 수품(水品)과 용수(龍樹) <또는 용춘(龍春)이라고도 하였다.>를 보내 주·현을 두루 돌며 위문하였다.- 삼국사기 선덕왕 4년

정관(貞觀) 17년 계묘(癸卯; 643) 3월 16일에 자장 돌아와 탑을 세워야한다고 선덕왕에 보고, 이후 이간(伊干) 용춘(龍春; 혹은 용수龍樹)이 그 역사를 주관하는데 거느리고 일한 소장(小匠)들은 200 명이나 되었다. - 삼국유사 황룡사 9층 목탑

654년 3월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또는 용수(龍樹)라고도 하였다.>의 아들이다. - 삼국사기 29대 춘추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 삼국유사 29대 춘추

654년 태종 원년(654) 여름 4월에 왕의 죽은 아버지를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추봉(追封)하고 어머니를 문정태후(文貞太后)로 삼았다 - 삼국사기 춘추 1년 4월

삼국사기는 춘추의 아비로 용춘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고, 삼국유사는 용수를 춘추의 아비라고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로다르게 말을 하니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용수와 용춘을 철저히 분리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용수를 별도로 한번 언급하고 있고, 용춘을 한번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 이들은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통설이 용춘(용수) 또는 용수(용춘)으로 이들을 같은 동일인으로 취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용춘(金龍春)
생몰년 미상. 신라시대 왕족. 일명 용수(龍樹). 진지왕의 아들이며 태종무열왕의 아버지. 어머니는 지도부인(知道夫人) 박씨이고, 부인은 진평왕의 딸인 천명부인(天明夫人) 김씨이다.
아버지 진지왕의 신분은 성골이나, 왕위에 재위한 지 4년 만인 579년에 폐위당하였으며, 용춘의 아들인 김춘추의 신분은 진골로 되어 있다.

통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는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기사로 공주시절에 엮어준것이 아니고, 선덕왕이 덕만공주 시절에 문희와 춘추의 매파가 되었다고 증명하였다. 또한, 모란꽃과 모란씨가 언제 들어온지 아무도 몰라서 하지 않은 이야기를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을 토대로 2009/07/23 -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증명하였다.

위의 용수와 용춘의 기록들을 직위와 이름과 시간순으로 도표를 만들어 보았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기록된 용수, 용춘


용수가 등장한 때는 삼국사기에 622년 이찬으로 내성사신이 되었다는 기록이다. 용춘은 삼국사기에 629년 8월 고구려 낭비성을 공격할때 파진찬(4급) 대장군으로 참전하는 기록이다. 삼국사기는 용수와 용춘을 별개의 인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635년 1월 주.군을 순시하는 자가 용수인지 용춘인지를 알 수 없다고 하고 있으며, 용춘이 춘추의 아비인것 같은데 용수라고 하는 기록도 있다는 것을 남겨 두었다.

용수는 이찬(2등)급이고 용춘은 629년에 파진찬(4등)위에 해당한다고 기록한 것이다. 용수와 용춘이 동일 인물이라면 2 등위 이찬이 7년 6개월 후에 4등위 파진찬이 되었다는 뜻인데 이는 국무총리가 장군이 되어서 전장에 참여하는 꼴이 된다. 또는 장군이 계급이 강등되어 일개 사병으로 참전하는 꼴이다. 이순신 처럼 백의종군을 할려면 충분히 그만한 기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용수는 이찬으로 꾸준히 내치에 해당하는 업무를 하고 있고, 용춘은 국방쪽에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들이 서로 다른 사람임을 알수가 있다. 요즘으로 치면 용수는 펜때를 굴리며 살아가고,  용춘은 용수의 시다바리를 하면서 지냈던 것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용수와 용춘을 철저히 분리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기존 통설은 서로 다른 자를 하나의 인물로 만들어 괴물을 만들어 버린것이다. 트랜스 포머 합체인간이 된것이다.

만약,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704년경 김대문이 저작한 것이 아니라면, 박창화는 현재 괴물이된 키메라 용수.춘을 만든 이들보다 역사적 안목과 역량이 몇수는 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춘추의 아버지는 누구?

어찌 되었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겉보기로 보면 용수와 용춘이 동일인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용수와 용춘의
기록을 하나하나 살펴본다면, 이들은 철저히 다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단지, 춘추의 아버지가 용수인가? 용춘인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화랑세기에는 용수의 나이와 용춘의 생몰년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춘추의 아버지는 용춘의 형인 용수이며, 용수가 죽고나서 형수인 천명을 아내로 맞이하고, 춘추를 자식으로 만든다.

생부는 용수이지만, 어머니 천명이 작은 아버지 용춘에 시집을 가서, 자동으로 춘추는 법적으로 용춘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화랑세기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서 춘추의 아버지를 용수라고 하는 것도 당연하고, 용춘이라고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한다.

예전에도 마찬가지 이지만, 양자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만약, 장자가 일찍죽어서 후손을 보지 못했거나, 아들을 두지 않았다면, sbs 가문의 시리즈 중 찬란한유산 이전에 인기리에 방영되고, 잔잔한 감동을 준 가문의영광이 있었다. 신구가 출연한 종가집의 비밀은 신구가 정상적인 가문의 손이 아니고, 대려온 자식의 아들로 종통을 잇는 것이였다.
또는 인척중에서 양자를 들여서 가문의 종통을 잇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었다. 

<씨받이>와 <씨내리>는 가문의 명맥을 잇고자 하는 당시의 절박한 심정에서 나온 불가피한 선택이였다. 물론, 현재의 관점으로 본다면 한심한 작태에 지나지 않지만, 당시의 기준으로는 양자를 들여서라도 가문을 잇고자 하는 강박관념이 있지 않았을까한다.  현재도 많이 희석되었지만, 제사밥을 얻어 먹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수 없이 많은 여아들이 빛을 보지도 못하고 태어나기 전에 지워져 버리는 일이 있었다. 유교적인 조선시대와는 다르다는 분들이 계신다. 신라시대에도 조상에 대한 제사는 끔찍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을신궁자체가 조상신을 섬기는 행위이다. 성골과 진골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이들이 가족과 가문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집 가문은 뼈대있는 가문이라는 말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신라의 골품에서 파생된것이다. 유교적 전통보다는 신라의 전통을 계승하고 조선시대에 유교와 믹스된것 뿐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  아버지에게는 삼형제가 있었는데, 가장 큰 아버지는 딸을 하나만, 낳고 일찍 돌아 가셨다. 두번째 큰아버지는 외아들을 두었다. 그런데, 막내인 아버지는 아들이 둘이 있었다. 그래서 막내인 아버지는 큰아들을 자신의 큰형님의 양자로 입적시키고, 족보도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큰아버지가 죽고 한참후에 막내인 아버지는 장가를 가서 아들 둘을 낳았다. 그러니 입양된 큰아버지의 아들은 생물학적으로는 도저히 큰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없다. 기록이 제일 큰아버지의 기록만 남았다면, 입양된 큰아버지의 아들은 생물학적으로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아들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이 불신되는 이유도 초기기록이 불분명한 이유도 있지만, 법통을 이은 아들과 생물학적인 부자관계 혼동해서 읽다보면 그런 불신하는 경우가 많다. 생물학적 아버지만을 찾다보면 역사의 기록을 불신할 수 밖에 없어져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이산>을 봐서 알겠지만, 정조(이서진)의 아버지는 사도태자라고 한다. 하지만, 정조가 왕이 되기전까지는 생부는 사도일지 모르지만, 종통과 법통은 사도의 형에게 있었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면서, 자신의 생부도 사도이고, 종통과 법통도 사도에게 있다고 천명한다.

하지만, 춘추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물론, 기록을 남겼지만, 후대에 까지 전달이 안되었을 수 있고, 정확히 천명이 누구와 관계를 하여 춘추를 낳았는지 당대부터 설왕설래 하였을 수도 있다.

신화나 설화를 보더라도, 어머니는 알아도 아버지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몽의 아버지는 해모수라고 하지만, 알길이 없다. 단지 주몽의 어머니는 유화부인임을 알 수 있다. 예수의 아버지가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확실한 것은 어머니인 마리아이다.

그러니 춘추의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춘추의 어머니는 천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를 화랑세기는 춘추의 생부는 용수이고, 양부가 용춘이다. 용춘이 양부가 된 이유는 진평왕이 용춘으로 하여금 천명을 아내로 삼아서 왕위를 잇게 하기 위해서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빠져 나갈 구멍을 하나 만들어 놓았다. 낮엔 용수의 처인 천명이 밤에는 용춘의 처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슬쩍 흘리고 있다. 이쯤되면 천명도 춘추의 아버지가 용수인지 용춘인지 알 수가 없다. 당시에는 유전자감식법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에서도 발가락이 닮은것과, 왼손잡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자식이 아닐까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자에서도 알수 있지만, 춘추는 용수보다는 용춘의 친자일 가능성이 높다.

읽어 볼만 하셨습니까? 그렇다면 다음글도 물론 추천도 하고 가실거죠?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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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초록누리 2009.08.20 1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고 오늘도 또 머리 뒤죽박죽 됩니다. 대남보가 장인이었어요? 저런 천인공노할 드라마???
    다행이에요. 이렇게라도 사실과 드라마를 구별하고 있으니까요.^^

  3. 갓쉰동님팬^^ 2009.08.20 1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대단하시네요^^ 덕분에 신라사에 대해 많이 알수 있네요^^ 그냥 드는 생각이지만 일본에 우리의 역사서들이 많이 있다는게 아쉽군요^^ 그래도 님같은 분들 덕분에 인터넷을 통해 고대사의 많은 정보들이 알려지게 되서 정말 감사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20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 봐주시기 ㄳ 합니다.

      글쎄요.. 고대사 책이 일본에 있기는 할텐데 우리나 님이 원하는 책은 없을 것 같아요..

      그것보다도 아직 국내 도서관에 있는 고서나 정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직도 목록조차 만들어 지지 않은게 많다고 하더라구요..

      머 다 돈이 들어가는 일이지만..

  4. 상록수 2009.08.20 1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계속 써 주세요....흥이 안난다니 그러지 마셔요.
    댓글은 안달아도 재미있게 잘 읽고 있는데.............
    감사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20 16: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조회수가 1만이 넘어도 추천수가 100도 넘지 않는다는 말은 9,900명은 별루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ㅋㅋ 농담이구요..

      사실 조회수 만이 넘으면 추천수는 수백은 되야 정상이예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말은 이런글은 그만 썼으면 하는 사람이 많다는 다른 말이거든요..

      그래서 힘이 안나요.. 초대하지 않는 손님같고, 원하지 않는 글을 쓰는 것도 고역이거든요.. 아무리 제가 좋아서 쓰는 글이지만,,

      글의 퀄리티를 보장할 수 가 없지요. 아무래도 신경을 덜쓰게 될테닌까요..

      암튼 그렇다는 말이지요..

  5. BlogIcon 주작 2009.08.20 1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보고 추천하고 갑니다. ^^/

  6. 우비천사 2009.08.20 1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감..했고요~사실 조회 와 추천은 별개라고 생각했었거든요....걍,,조회만 하고 항상 마음속으로만 고마움을 표시하고 또 다른것 들을 조회하고져 했었으니까요...ㅎㅎ..지송 !! 그런데 님은 논문을 적어놓으신것처럼 넘 상세하게 해주셨네요..좀 모리 가 아프긴 했지만요..ㅋㅋ

  7. BlogIcon 덕만공주 2009.09.22 1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일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댓글이 없어서 글 쓸 마음이 없어진다니
    추천이나 댓글을 달지 않는 이유가 글이 재미없어서가 아닌
    습관이라고 생각ㅎ바니다
    글이 재미 없다면 다음 메인에 올 이유가 없겟죠
    재미잇는 신라 역사 많이 써주세요

  8. 김나영 2009.10.23 1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dhotsjdfkm;jf

  9. BlogIcon 김성환 2012.01.03 05: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10. BlogIcon 인형 2012.01.07 0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웃는 낯에 침 뱉으랴

  11. BlogIcon 페넬로페 2012.04.03 17: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12. BlogIcon 아멜리아 2012.04.05 2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채식주의자입니다.

  13. BlogIcon 에블린 2012.05.08 1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4.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5. BlogIcon visit website 2012.07.14 14: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징이라기 보다는 광개토대왕의 상징이었지요. 중국에서는 장수들의 깃

  16. BlogIcon Gennie 2012.09.29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사기 곳곳엔 우물에서 용이 하늘로 올랐다는 기사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우물과 용과 북두는 하나의 상징처럼 느

  17.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for emergency 2012.11.01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8.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does it work 2012.11.06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 놀라운 것입니다. 수많은 새로운 브랜드 이름은 다른 가전 제품과 함께

  19.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징이라기 보다는 광개토대왕의 상징이었지요. 중국에서는 장수들의 깃

  20. BlogIcon best wireless dog fence 2012.12.22 1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이 중요한 주제에 도움이 필요 남녀를 지원하는 당신의 관대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21. BlogIcon water pouches india 2013.01.02 15: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니는 문정태후로 했다는 춘추의 즉위년 4월기사를 근거로 한것이다.

춘추(유승호)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춘추(유승호)가 수나라에서 돌아오면서, 어머니 천명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품고, 미실과 대적하게 될것이다. 하지만, 미실의 계략으로 당분간 어머니의 죽음을 덕만때문이라고 믿고 있지 않을까 한다. 비담이 미실의 아들로 미실에 대척하였듯이, 이에 춘추는 미실의 편에서 덕만과 대적하는 캐릭이 아닐까 한다.

그래야 드라마를 보는 이들이 안타까워 하지 않겠는가? 드라마상 춘추는 결국에는 미실에게 아버지 용수와 어머니 천명이 죽임을 당한다. 천명은 춘추에게 미실이 아버지의 원수라고 가르치지 않았을까? 그런데 미실의 계략에 넘어간다는 설정은 무언가 핀트가 어긋나는듯하다. 그만큼 제작팀은 미실의 계략이 뛰어나다는 반증을 나타내려는 것이 아닐까한다. 

어찌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춘추의 아버지를 용수라고 한다.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하는 선덕여왕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보다는 진위 논란에 싸여 있는 화랑세기의 기록을 토대로 드라마의 골격을 만들어 가고 있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은 화랑세기의 인물만을 차용하고는 있지만, 관련 기록을 철저히 무시를 한다.

예를 들어 춘추의 아버지인 용수를 화랑세기와는다르게 춘추가 태어나는 603년에 이미 미실의 계략에 의해서 죽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또한, 춘추의 어머니인 천명을 용춘의 절대적인 충복이며, 장인인 대남보를 미생의 아들로 만들어, 천명을 죽게 만들어 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천명은 춘추가 왕이 되는 654년에도 천수를 누리며, 자신의 아들이 신라의 왕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2009/08/13 - [역사이야기] - 사기.유사.세기 비교해보니 천명 천수를 누렸다? 관심이 있는 분은 보시길 권한다. 간략이 요약하면 죽은 아버지는 문흥대왕에 추봉하고, 어머니는 문정태후로 했다는 춘추의 즉위년 4월기사를 근거로 한것이다.

元年 夏四月 追封王爲文興大王 爲文貞太后 추봉왕고위문흥대왕 모위문정태후

천명(박예진)

고(考)와 부(父), 비(妣)와 모(母)의 차이

고(考)는 죽은아버지를 말한다. 그런데 모(母)는 생존한 어머니를 뜻한다. 만약, 춘추가 즉위시에 천명이 죽었다면, 즉위년 춘추는  모(母)대신에 비(妣), 죽은 어머니 비(妣)를 써야 한다.



괴물이 되어 버린 용수와 용춘

그렇다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춘추의 아버지로 기록된, 용수.용춘을 동일인으로 기록하고 있을까? 아니면 다른 이로 기록하고 있을까? 겉보기로는 용수.용춘을 동일인으로 기록하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통설은 용수(용춘) 또는 용춘(용수)로 기록하고 있고, 이들을 동일인으로 취급하고 있다. 하지만, 좀더 신경을 쓰고 본다면, 용수와 용춘은 별도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용수와 용춘의 기록들을 다 뽑아 보자. 그럼 확실히 이들이 동일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622년 진평 44년(622) 봄 정월에 왕이 몸소 황룡사에 거둥하였다. 2월에 이찬 용수(龍樹)를 내성 사신(內省私臣)으로 삼았다. - 삼국사기 진평왕 44년

629년 51년(629) 가을 8월에 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였다. - 삼국사기 진평왕 51년

635년 선덕 4년 10월에 이찬 수품(水品)과 용수(龍樹) <또는 용춘(龍春)이라고도 하였다.>를 보내 주·현을 두루 돌며 위문하였다.- 삼국사기 선덕왕 4년

정관(貞觀) 17년 계묘(癸卯; 643) 3월 16일에 자장 돌아와 탑을 세워야한다고 선덕왕에 보고, 이후 이간(伊干) 용춘(龍春; 혹은 용수龍樹)이 그 역사를 주관하는데 거느리고 일한 소장(小匠)들은 200 명이나 되었다. - 삼국유사 황룡사 9층 목탑

654년 3월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또는 용수(龍樹)라고도 하였다.>의 아들이다. - 삼국사기 29대 춘추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 삼국유사 29대 춘추

654년 태종 원년(654) 여름 4월에 왕의 죽은 아버지를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추봉(追封)하고 어머니를 문정태후(文貞太后)로 삼았다 - 삼국사기 춘추 1년 4월

삼국사기는 춘추의 아비로 용춘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고, 삼국유사는 용수를 춘추의 아비라고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로다르게 말을 하니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용수와 용춘을 철저히 분리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용수를 별도로 한번 언급하고 있고, 용춘을 한번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 이들은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통설이 용춘(용수) 또는 용수(용춘)으로 이들을 같은 동일인으로 취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용춘(金龍春)
생몰년 미상. 신라시대 왕족. 일명 용수(龍樹). 진지왕의 아들이며 태종무열왕의 아버지. 어머니는 지도부인(知道夫人) 박씨이고, 부인은 진평왕의 딸인 천명부인(天明夫人) 김씨이다.
아버지 진지왕의 신분은 성골이나, 왕위에 재위한 지 4년 만인 579년에 폐위당하였으며, 용춘의 아들인 김춘추의 신분은 진골로 되어 있다.

통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는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기사로 공주시절에 엮어준것이 아니고, 선덕왕이 덕만공주 시절에 문희와 춘추의 매파가 되었다고 증명하였다. 또한, 모란꽃과 모란씨가 언제 들어온지 아무도 몰라서 하지 않은 이야기를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을 토대로 2009/07/23 -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증명하였다.

위의 용수와 용춘의 기록들을 직위와 이름과 시간순으로 도표를 만들어 보았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기록된 용수, 용춘


용수가 등장한 때는 삼국사기에 622년 이찬으로 내성사신이 되었다는 기록이다. 용춘은 삼국사기에 629년 8월 고구려 낭비성을 공격할때 파진찬(4급) 대장군으로 참전하는 기록이다. 삼국사기는 용수와 용춘을 별개의 인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635년 1월 주.군을 순시하는 자가 용수인지 용춘인지를 알 수 없다고 하고 있으며, 용춘이 춘추의 아비인것 같은데 용수라고 하는 기록도 있다는 것을 남겨 두었다.

용수는 이찬(2등)급이고 용춘은 629년에 파진찬(4등)위에 해당한다고 기록한 것이다. 용수와 용춘이 동일 인물이라면 2 등위 이찬이 7년 6개월 후에 4등위 파진찬이 되었다는 뜻인데 이는 국무총리가 장군이 되어서 전장에 참여하는 꼴이 된다. 또는 장군이 계급이 강등되어 일개 사병으로 참전하는 꼴이다. 이순신 처럼 백의종군을 할려면 충분히 그만한 기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용수는 이찬으로 꾸준히 내치에 해당하는 업무를 하고 있고, 용춘은 국방쪽에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들이 서로 다른 사람임을 알수가 있다. 요즘으로 치면 용수는 펜때를 굴리며 살아가고,  용춘은 용수의 시다바리를 하면서 지냈던 것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용수와 용춘을 철저히 분리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기존 통설은 서로 다른 자를 하나의 인물로 만들어 괴물을 만들어 버린것이다. 트랜스 포머 합체인간이 된것이다.

만약,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704년경 김대문이 저작한 것이 아니라면, 박창화는 현재 괴물이된 키메라 용수.춘을 만든 이들보다 역사적 안목과 역량이 몇수는 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춘추의 아버지는 누구?

어찌 되었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겉보기로 보면 용수와 용춘이 동일인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용수와 용춘의
기록을 하나하나 살펴본다면, 이들은 철저히 다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단지, 춘추의 아버지가 용수인가? 용춘인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화랑세기에는 용수의 나이와 용춘의 생몰년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춘추의 아버지는 용춘의 형인 용수이며, 용수가 죽고나서 형수인 천명을 아내로 맞이하고, 춘추를 자식으로 만든다.

생부는 용수이지만, 어머니 천명이 작은 아버지 용춘에 시집을 가서, 자동으로 춘추는 법적으로 용춘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화랑세기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서 춘추의 아버지를 용수라고 하는 것도 당연하고, 용춘이라고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한다.

예전에도 마찬가지 이지만, 양자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만약, 장자가 일찍죽어서 후손을 보지 못했거나, 아들을 두지 않았다면, sbs 가문의 시리즈 중 찬란한유산 이전에 인기리에 방영되고, 잔잔한 감동을 준 가문의영광이 있었다. 신구가 출연한 종가집의 비밀은 신구가 정상적인 가문의 손이 아니고, 대려온 자식의 아들로 종통을 잇는 것이였다.
또는 인척중에서 양자를 들여서 가문의 종통을 잇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었다. 

<씨받이>와 <씨내리>는 가문의 명맥을 잇고자 하는 당시의 절박한 심정에서 나온 불가피한 선택이였다. 물론, 현재의 관점으로 본다면 한심한 작태에 지나지 않지만, 당시의 기준으로는 양자를 들여서라도 가문을 잇고자 하는 강박관념이 있지 않았을까한다.  현재도 많이 희석되었지만, 제사밥을 얻어 먹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수 없이 많은 여아들이 빛을 보지도 못하고 태어나기 전에 지워져 버리는 일이 있었다. 유교적인 조선시대와는 다르다는 분들이 계신다. 신라시대에도 조상에 대한 제사는 끔찍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을신궁자체가 조상신을 섬기는 행위이다. 성골과 진골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이들이 가족과 가문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집 가문은 뼈대있는 가문이라는 말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신라의 골품에서 파생된것이다. 유교적 전통보다는 신라의 전통을 계승하고 조선시대에 유교와 믹스된것 뿐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  아버지에게는 삼형제가 있었는데, 가장 큰 아버지는 딸을 하나만, 낳고 일찍 돌아 가셨다. 두번째 큰아버지는 외아들을 두었다. 그런데, 막내인 아버지는 아들이 둘이 있었다. 그래서 막내인 아버지는 큰아들을 자신의 큰형님의 양자로 입적시키고, 족보도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큰아버지가 죽고 한참후에 막내인 아버지는 장가를 가서 아들 둘을 낳았다. 그러니 입양된 큰아버지의 아들은 생물학적으로는 도저히 큰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없다. 기록이 제일 큰아버지의 기록만 남았다면, 입양된 큰아버지의 아들은 생물학적으로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아들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이 불신되는 이유도 초기기록이 불분명한 이유도 있지만, 법통을 이은 아들과 생물학적인 부자관계 혼동해서 읽다보면 그런 불신하는 경우가 많다. 생물학적 아버지만을 찾다보면 역사의 기록을 불신할 수 밖에 없어져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이산>을 봐서 알겠지만, 정조(이서진)의 아버지는 사도태자라고 한다. 하지만, 정조가 왕이 되기전까지는 생부는 사도일지 모르지만, 종통과 법통은 사도의 형에게 있었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면서, 자신의 생부도 사도이고, 종통과 법통도 사도에게 있다고 천명한다.

하지만, 춘추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물론, 기록을 남겼지만, 후대에 까지 전달이 안되었을 수 있고, 정확히 천명이 누구와 관계를 하여 춘추를 낳았는지 당대부터 설왕설래 하였을 수도 있다.

신화나 설화를 보더라도, 어머니는 알아도 아버지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몽의 아버지는 해모수라고 하지만, 알길이 없다. 단지 주몽의 어머니는 유화부인임을 알 수 있다. 예수의 아버지가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확실한 것은 어머니인 마리아이다.

그러니 춘추의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춘추의 어머니는 천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를 화랑세기는 춘추의 생부는 용수이고, 양부가 용춘이다. 용춘이 양부가 된 이유는 진평왕이 용춘으로 하여금 천명을 아내로 삼아서 왕위를 잇게 하기 위해서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빠져 나갈 구멍을 하나 만들어 놓았다. 낮엔 용수의 처인 천명이 밤에는 용춘의 처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슬쩍 흘리고 있다. 이쯤되면 천명도 춘추의 아버지가 용수인지 용춘인지 알 수가 없다. 당시에는 유전자감식법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에서도 발가락이 닮은것과, 왼손잡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자식이 아닐까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자에서도 알수 있지만, 춘추는 용수보다는 용춘의 친자일 가능성이 높다.

읽어 볼만 하셨습니까? 그렇다면 다음글도 물론 추천도 하고 가실거죠?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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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초록누리 2009.08.20 1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고 오늘도 또 머리 뒤죽박죽 됩니다. 대남보가 장인이었어요? 저런 천인공노할 드라마???
    다행이에요. 이렇게라도 사실과 드라마를 구별하고 있으니까요.^^

  3. 갓쉰동님팬^^ 2009.08.20 1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대단하시네요^^ 덕분에 신라사에 대해 많이 알수 있네요^^ 그냥 드는 생각이지만 일본에 우리의 역사서들이 많이 있다는게 아쉽군요^^ 그래도 님같은 분들 덕분에 인터넷을 통해 고대사의 많은 정보들이 알려지게 되서 정말 감사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20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 봐주시기 ㄳ 합니다.

      글쎄요.. 고대사 책이 일본에 있기는 할텐데 우리나 님이 원하는 책은 없을 것 같아요..

      그것보다도 아직 국내 도서관에 있는 고서나 정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직도 목록조차 만들어 지지 않은게 많다고 하더라구요..

      머 다 돈이 들어가는 일이지만..

  4. 상록수 2009.08.20 1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계속 써 주세요....흥이 안난다니 그러지 마셔요.
    댓글은 안달아도 재미있게 잘 읽고 있는데.............
    감사합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20 16: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조회수가 1만이 넘어도 추천수가 100도 넘지 않는다는 말은 9,900명은 별루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ㅋㅋ 농담이구요..

      사실 조회수 만이 넘으면 추천수는 수백은 되야 정상이예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말은 이런글은 그만 썼으면 하는 사람이 많다는 다른 말이거든요..

      그래서 힘이 안나요.. 초대하지 않는 손님같고, 원하지 않는 글을 쓰는 것도 고역이거든요.. 아무리 제가 좋아서 쓰는 글이지만,,

      글의 퀄리티를 보장할 수 가 없지요. 아무래도 신경을 덜쓰게 될테닌까요..

      암튼 그렇다는 말이지요..

  5. BlogIcon 주작 2009.08.20 1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보고 추천하고 갑니다. ^^/

  6. 우비천사 2009.08.20 1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감..했고요~사실 조회 와 추천은 별개라고 생각했었거든요....걍,,조회만 하고 항상 마음속으로만 고마움을 표시하고 또 다른것 들을 조회하고져 했었으니까요...ㅎㅎ..지송 !! 그런데 님은 논문을 적어놓으신것처럼 넘 상세하게 해주셨네요..좀 모리 가 아프긴 했지만요..ㅋㅋ

  7. BlogIcon 덕만공주 2009.09.22 1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일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댓글이 없어서 글 쓸 마음이 없어진다니
    추천이나 댓글을 달지 않는 이유가 글이 재미없어서가 아닌
    습관이라고 생각ㅎ바니다
    글이 재미 없다면 다음 메인에 올 이유가 없겟죠
    재미잇는 신라 역사 많이 써주세요

  8. 김나영 2009.10.23 1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dhotsjdfkm;jf

  9. BlogIcon 김성환 2012.01.03 05: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10. BlogIcon 인형 2012.01.07 0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웃는 낯에 침 뱉으랴

  11. BlogIcon 페넬로페 2012.04.03 17: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12. BlogIcon 아멜리아 2012.04.05 2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채식주의자입니다.

  13. BlogIcon 에블린 2012.05.08 1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4.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5. BlogIcon visit website 2012.07.14 14: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징이라기 보다는 광개토대왕의 상징이었지요. 중국에서는 장수들의 깃

  16. BlogIcon Gennie 2012.09.29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사기 곳곳엔 우물에서 용이 하늘로 올랐다는 기사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우물과 용과 북두는 하나의 상징처럼 느

  17.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for emergency 2012.11.01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8.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does it work 2012.11.06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 놀라운 것입니다. 수많은 새로운 브랜드 이름은 다른 가전 제품과 함께

  19.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징이라기 보다는 광개토대왕의 상징이었지요. 중국에서는 장수들의 깃

  20. BlogIcon best wireless dog fence 2012.12.22 1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이 중요한 주제에 도움이 필요 남녀를 지원하는 당신의 관대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21. BlogIcon water pouches india 2013.01.02 15: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니는 문정태후로 했다는 춘추의 즉위년 4월기사를 근거로 한것이다.

신라사회를 재현을 목표로 만들어진, mbc 명품 사극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천명을 당나라가 서기전, 수나라 시기인 618년 이전에 죽은 것으로 설정하였다. 그렇다면, 실제 기록에는 천명은 언제 죽었을까? 결론을 말하면 언제 죽었는지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공히 기록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들 기록들을 토대로 언제까지 살아있었는 지는 유추해 볼 수 있다.  일단, 현존 화랑세기의 기록을 토대로 천명이 언제까지 살아있었는지를 추적하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서 천명이 언제까지 생존해 있었는지를 추적해 볼 생각이다. 이전 시리즈 글을 본사람이라면 천명이 언제까지 살아 있었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화랑세기에 기록된 천명의 수명

화랑세기의 13세 풍월주 용춘 (596~603)의 기록에 의하면 용춘이 한때 덕만의 남편으로 생활했던 632년 까지도 천명은 생존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용춘이 70세로 죽었다는 647년 선덕왕 말년까지도 천명은 생존해 있었다. 그럼 이를 따라가 보자.

선덕은 이에 정사를 을제에게 맡기고 공에게 물러나 살기를 허락하였다. 공은 이에 천명공주를 처로 삼고 태종을 아들로 삼았다. - 화랑세기 용춘

선덕여왕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선덕여왕 원년

선덕이 정사를 을제에 맡기는 때는 632년 즉위 초년이다. 이때 비로서 용춘은 천명을 공식적인 처로 삼고, 30살인 춘추(603년생) 를 아들로 삼았다.

공은 만년에 거문고와 바둑을 즐겼다. 천명(天明)·호명(昊明) 양궁과 더불어 산궁(山宮)에서 술상을 차려놓고 바둑을 두고 거문고를 탔다. 태종은 효성을 극진히 하여 안락하게 모셨다. 태화(太和) 원년(647) 8월 세상을 떠나(薨)니 수가 70살이었다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용춘은 647년 8월 70살에 세상을 떠났지만, 말년인 647년 8월까지도 천명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화랑세기는 여기서 기록이 사라진다. 하지만 천명은 용춘이 70살로 죽은 이후에도 죽었다는 기록이 없다. 천명은 아마도 춘추가 즉위하던 그 순간까지도 살아 있었던 것으로 추측 된다. 그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전하는 천명의 기록을 살펴 보도록 하자.

삼국사기.삼국유사가 전하는 천명은 언제 죽었나?

그럼 천명은 정말 덕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은 것일까?

삼국사기의 김춘추가 654년 3월 왕위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은 4월에 자신의 죽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명예왕과 태후직을 올린다.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또는 용수(龍樹)라고도 하였다.>의 아들이다.<당서(唐書)에는 진덕의 동생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은 진평왕의 딸이고, 왕비 문명부인(文明夫人)은 각찬(角湌) 서현의 딸이다.
- 삼국사기  654년 신라 29대 춘추 출자설명

원년(654) 여름 4월에 왕의 죽은 아버지를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추봉(追封)하고 어머니를 문정태후(文貞太后)로 삼았다.  - 삼국사기 29대 춘추 654년 여름 4월

어떤가? 603년 생인 춘추가 654년 52살에 왕위에 올랐을때, 아버지 이찬 용춘(용수)는 이미 죽어 있어서 추봉한 것이고, 어머니 천명은 아들인 춘추가 왕이 되었기 때문에 문정태후가 된것이다. 이때 천명의 나이는 대략 65~68세 정도로 추측된다.  당시의 기준으로 하면 천수를 다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천명도 "추봉"이란 용수(용춘)의 기록을 근거로 죽지 않았는가? 하는 분이 계신다. 하지만 만만의 꽁떡이 되시겠다. 위의 즉위초년 기사의 원문을 살펴보면, 천명은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을 살아 생전에 보았음이 확실하다. 

일단 잡설로 김부식은 "
당서의 진덕왕의 동생이란 기사는 잘못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진덕왕의 동생이 맞다. 일단, 국반은 용춘과는 사촌간이다. 그러니 진덕과 춘추는 육촌간이 된다. 당서의 기록에는 진덕이 춘추보다 나이가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진덕은 603년 이전 생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건 논외로 치고, 다음 기회에 이와 관련된 포스팅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천명이 춘추가 왕위에 오를때 이미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따라가 보자. 일단 한자 원문을 보기로 하자.

元年 夏四月 追封王考爲文興大王 母爲文貞太后 추봉왕고위문흥대왕 모위문정태후

고(考)와 부(父), 비(妣)와 모(母)의 차이

고(考)는 죽은아버지를 말한다. 그런데 모(母)는 생존한 어머니를 뜻한다. 만약, 죽었다면 모(母)대신에 비(妣), 죽은 어머니 비(妣)를 써야 한다.

물론,  제사를 지내는 지방에 표현하는 것이니, 당시에 죽은 아버지는 (考)로 쓰고, 죽은 어머니를 모(母)로 썼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원문 해석상에 '<추봉왕고>위<문흥대왕>' 이고 ,'<모>위<문정태후>'이다. <추봉왕고>와 <모>는 서로 대응하고 <문흥대왕>와 <문정태후>은 서로 대응한다. 그러니 추봉된 죽은 아버지(용수.용춘)는 문흥대왕으로, 어머니(천명)는 문정태후로 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자세히 읽어 보면 <죽은 추봉왕>이다. 이미 한번 왕으로 추봉 되었음을 짐작해 한다. 그래서 삼국유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대왕으로 추봉되기 전에 무슨왕으로 추봉된것일까?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유사 29대 춘추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이찬 용수.용춘의 아들 이라고 했다. 그런데 삼국유사는 '용수(용춘) 각간'으로 추봉된 문흥대왕의 아들이라고 하고 있다. 물론, <용수각간으로 추봉된>으로 끊어 읽느냐 아니면 <용수(용춘)각간으로>, 추봉된 문흥대왕에 따라서 해석상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는 각간의 밑인 <이찬>이고, 삼국 유사는 <각간>으로 나온다. 그러니 <이찬>에서 <각간>으로 추봉되었다고 볼수 있다.

문제는 문흥대왕으로 추봉하기 전에 이미 한번<추봉왕><고><위><문흥대왕>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죽은아버지(고) <추봉왕>을 <문흥대왕>으로 했다.

신라는 왕의 아랫단계인 <갈문왕>이란 제도(?)를 두고 있었다. 그러니 최소한 갈문왕이나 문흥대왕이 아닌 용수대왕이나 용춘대왕이지 않았을까? 그건 이름이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 진다. 용춘이 이름이였다면 용수갈문왕이였을 것이고, 용수가 이름이였다면 용춘갈문왕이였을 것이다. 단지 용수갈문왕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건 용수.용춘이 동일인물일때의 가정이다. 동일인물이 아니라면? 다른 이름이지 않았을까? 어떤 대왕이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삼국사기에의하면 문흥대왕 이전에 이미 <추봉왕>이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죽고나서 용춘이 <갈문왕>으로 추봉되었다고 한다. 화랑세기는 용수와 용춘을 서로 다른 사람으로 기술하고 있다. 용수가 먼저 죽고, '용춘은 647년 8월 선덕(덕만)왕이 죽은 같은 달에 70살로 죽었다'고 한다.  
화랑세기에는 용춘이 629년 낭비성 전투의 공적으로 각간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각간->갈문왕->문흥대왕이 된다. 이래서 화랑세기를 함부로 위서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할수가 없다.

그런데 용수는 살아생전에 이미 이찬에 있었다. 그러니 각간->갈문왕->문흥대왕으로 추봉 되었음직하다.

이대목이 용수와 용춘이 한사람이냐? 서로 다른 사람이냐를 가르는 갈림길이다. 이에 관해서는 별도로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 <추봉왕>처럼 하나로 묶을것인지, <추봉>,<왕>으로 추봉과 왕을 끊어서 해석할 것인지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

결론  고비. 부모의 차이를 안다면

고(考)와 부(父), 비(妣)와 모(母)의 차이를 안다면 춘추가 왕위에 오른 654년 이전 천명이 죽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춘추가 왕이 되었을 때 아비인 용춘(용수)는 죽었고(考), 어미인 천명은 살아 있었다(母)는 사실이 중요하다.
춘추의 어머니인 천명은 춘추가 왕이 되는 영광을 살아 생전에 봤다는 데는 별다른 하자가 없다. 하지만 천명이 언제 죽었는지는 모른다.  585~588년 생으로 추측하는 천명은, 654년 67~70세 에도 생존하고 있으니 당시 신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천수를 누리고, 만수를 누렸다고 할 수 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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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가브리엘라 2012.05.11 1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아침입니다.

  3.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4.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5. BlogIcon Pussy Porn 2012.07.14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되시겠다. 위의 즉위초년 기사의 원문을 살펴보면, 천명은 아들이

  6. BlogIcon Green Pest Control - Next Gen 2012.09.05 0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잔 테크니컬 평창홍보관에서 김연아를 보려고 아무리 많이 몰려오고 김연아와 사진을 찍으려고 하던 상관이 없다는 말이

  7. BlogIcon Green Pest Control - Next Gen 2012.09.05 0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잔 테크니컬 평창홍보관에서 김연아를 보려고 아무리 많이 몰려오고 김연아와 사진을 찍으려고 하던 상관이 없다는 말이

  8. BlogIcon Brazzers membership 2012.09.08 0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메시지 또는 다른 이름을 올려 놓을 수 있도록 명함은 일반적으로 각 장에 인쇄됩니다. 즉, 사용자의 이름에 대한 몇 가지를 사용하여 미니 브로셔에 대해 다른 시트를 사용합니다.

  9. BlogIcon Prom Wedding Dresses 2012.09.11 1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유 주셔서 감사합니다

  10. BlogIcon london escorts 2012.09.19 1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술은 어떤 방식으로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는이 물건으로 우리의 의존을 제한해야합니다.

  11. BlogIcon montreal escorts 2012.10.02 1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보가된다는 것은 느낌 좋은 것입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과 비교 될만큼 할 수 있다는 보여줍니다.

  12.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종의 관행적인 형태이니 이해하다고 하더라도 타 선수의 점수를 깍는 방법으로 진행되고, 완벽하다고

  13. BlogIcon Polo lacoste 2012.10.24 2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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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들도 그사람처럼 하던가 남들 다해놓은것만 빨아놓을려고 와이게 어디서온근성이야~

  15. BlogIcon peanut flour allergy 2012.11.21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 관행적인 형태이니 이해하다고 하더라도 타 선수의 점수를 깍는 방법으로 진행되고,

  16.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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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BlogIcon food storage buckets home depot 2012.12.19 2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라리 성폭행한 성폭력범을 사랑한다는 말을 믿고 싶을 정도이다. 매맞는 아내가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얼척없기는 마찬가지 이지만 말이다

  18. BlogIcon survival food kits canada 2013.01.05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홍석의 입장에서 보면 복수를 하였으니 여한이 없다고 할수도 있다. 더불어 강동윤의 죄악을 투표로 심판한 국민들이 현실과는 다르지만, 권선징악에 해피앤딩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19. BlogIcon access blocked websites with a VPN 2013.01.24 0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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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사회를 재현을 목표로 만들어진, mbc 명품 사극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천명을 당나라가 서기전, 수나라 시기인 618년 이전에 죽은 것으로 설정하였다. 그렇다면, 실제 기록에는 천명은 언제 죽었을까? 결론을 말하면 언제 죽었는지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공히 기록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들 기록들을 토대로 언제까지 살아있었는 지는 유추해 볼 수 있다.  일단, 현존 화랑세기의 기록을 토대로 천명이 언제까지 살아있었는지를 추적하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서 천명이 언제까지 생존해 있었는지를 추적해 볼 생각이다. 이전 시리즈 글을 본사람이라면 천명이 언제까지 살아 있었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화랑세기에 기록된 천명의 수명

화랑세기의 13세 풍월주 용춘 (596~603)의 기록에 의하면 용춘이 한때 덕만의 남편으로 생활했던 632년 까지도 천명은 생존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용춘이 70세로 죽었다는 647년 선덕왕 말년까지도 천명은 생존해 있었다. 그럼 이를 따라가 보자.

선덕은 이에 정사를 을제에게 맡기고 공에게 물러나 살기를 허락하였다. 공은 이에 천명공주를 처로 삼고 태종을 아들로 삼았다. - 화랑세기 용춘

선덕여왕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선덕여왕 원년

선덕이 정사를 을제에 맡기는 때는 632년 즉위 초년이다. 이때 비로서 용춘은 천명을 공식적인 처로 삼고, 30살인 춘추(603년생) 를 아들로 삼았다.

공은 만년에 거문고와 바둑을 즐겼다. 천명(天明)·호명(昊明) 양궁과 더불어 산궁(山宮)에서 술상을 차려놓고 바둑을 두고 거문고를 탔다. 태종은 효성을 극진히 하여 안락하게 모셨다. 태화(太和) 원년(647) 8월 세상을 떠나(薨)니 수가 70살이었다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용춘은 647년 8월 70살에 세상을 떠났지만, 말년인 647년 8월까지도 천명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화랑세기는 여기서 기록이 사라진다. 하지만 천명은 용춘이 70살로 죽은 이후에도 죽었다는 기록이 없다. 천명은 아마도 춘추가 즉위하던 그 순간까지도 살아 있었던 것으로 추측 된다. 그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전하는 천명의 기록을 살펴 보도록 하자.

삼국사기.삼국유사가 전하는 천명은 언제 죽었나?

그럼 천명은 정말 덕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은 것일까?

삼국사기의 김춘추가 654년 3월 왕위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은 4월에 자신의 죽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명예왕과 태후직을 올린다.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또는 용수(龍樹)라고도 하였다.>의 아들이다.<당서(唐書)에는 진덕의 동생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은 진평왕의 딸이고, 왕비 문명부인(文明夫人)은 각찬(角湌) 서현의 딸이다.
- 삼국사기  654년 신라 29대 춘추 출자설명

원년(654) 여름 4월에 왕의 죽은 아버지를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추봉(追封)하고 어머니를 문정태후(文貞太后)로 삼았다.  - 삼국사기 29대 춘추 654년 여름 4월

어떤가? 603년 생인 춘추가 654년 52살에 왕위에 올랐을때, 아버지 이찬 용춘(용수)는 이미 죽어 있어서 추봉한 것이고, 어머니 천명은 아들인 춘추가 왕이 되었기 때문에 문정태후가 된것이다. 이때 천명의 나이는 대략 65~68세 정도로 추측된다.  당시의 기준으로 하면 천수를 다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천명도 "추봉"이란 용수(용춘)의 기록을 근거로 죽지 않았는가? 하는 분이 계신다. 하지만 만만의 꽁떡이 되시겠다. 위의 즉위초년 기사의 원문을 살펴보면, 천명은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을 살아 생전에 보았음이 확실하다. 

일단 잡설로 김부식은 "
당서의 진덕왕의 동생이란 기사는 잘못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진덕왕의 동생이 맞다. 일단, 국반은 용춘과는 사촌간이다. 그러니 진덕과 춘추는 육촌간이 된다. 당서의 기록에는 진덕이 춘추보다 나이가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진덕은 603년 이전 생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건 논외로 치고, 다음 기회에 이와 관련된 포스팅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천명이 춘추가 왕위에 오를때 이미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따라가 보자. 일단 한자 원문을 보기로 하자.

元年 夏四月 追封王考爲文興大王 母爲文貞太后 추봉왕고위문흥대왕 모위문정태후

고(考)와 부(父), 비(妣)와 모(母)의 차이

고(考)는 죽은아버지를 말한다. 그런데 모(母)는 생존한 어머니를 뜻한다. 만약, 죽었다면 모(母)대신에 비(妣), 죽은 어머니 비(妣)를 써야 한다.

물론,  제사를 지내는 지방에 표현하는 것이니, 당시에 죽은 아버지는 (考)로 쓰고, 죽은 어머니를 모(母)로 썼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원문 해석상에 '<추봉왕고>위<문흥대왕>' 이고 ,'<모>위<문정태후>'이다. <추봉왕고>와 <모>는 서로 대응하고 <문흥대왕>와 <문정태후>은 서로 대응한다. 그러니 추봉된 죽은 아버지(용수.용춘)는 문흥대왕으로, 어머니(천명)는 문정태후로 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자세히 읽어 보면 <죽은 추봉왕>이다. 이미 한번 왕으로 추봉 되었음을 짐작해 한다. 그래서 삼국유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대왕으로 추봉되기 전에 무슨왕으로 추봉된것일까?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유사 29대 춘추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이찬 용수.용춘의 아들 이라고 했다. 그런데 삼국유사는 '용수(용춘) 각간'으로 추봉된 문흥대왕의 아들이라고 하고 있다. 물론, <용수각간으로 추봉된>으로 끊어 읽느냐 아니면 <용수(용춘)각간으로>, 추봉된 문흥대왕에 따라서 해석상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는 각간의 밑인 <이찬>이고, 삼국 유사는 <각간>으로 나온다. 그러니 <이찬>에서 <각간>으로 추봉되었다고 볼수 있다.

문제는 문흥대왕으로 추봉하기 전에 이미 한번<추봉왕><고><위><문흥대왕>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죽은아버지(고) <추봉왕>을 <문흥대왕>으로 했다.

신라는 왕의 아랫단계인 <갈문왕>이란 제도(?)를 두고 있었다. 그러니 최소한 갈문왕이나 문흥대왕이 아닌 용수대왕이나 용춘대왕이지 않았을까? 그건 이름이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 진다. 용춘이 이름이였다면 용수갈문왕이였을 것이고, 용수가 이름이였다면 용춘갈문왕이였을 것이다. 단지 용수갈문왕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건 용수.용춘이 동일인물일때의 가정이다. 동일인물이 아니라면? 다른 이름이지 않았을까? 어떤 대왕이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삼국사기에의하면 문흥대왕 이전에 이미 <추봉왕>이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죽고나서 용춘이 <갈문왕>으로 추봉되었다고 한다. 화랑세기는 용수와 용춘을 서로 다른 사람으로 기술하고 있다. 용수가 먼저 죽고, '용춘은 647년 8월 선덕(덕만)왕이 죽은 같은 달에 70살로 죽었다'고 한다.  
화랑세기에는 용춘이 629년 낭비성 전투의 공적으로 각간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각간->갈문왕->문흥대왕이 된다. 이래서 화랑세기를 함부로 위서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할수가 없다.

그런데 용수는 살아생전에 이미 이찬에 있었다. 그러니 각간->갈문왕->문흥대왕으로 추봉 되었음직하다.

이대목이 용수와 용춘이 한사람이냐? 서로 다른 사람이냐를 가르는 갈림길이다. 이에 관해서는 별도로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 <추봉왕>처럼 하나로 묶을것인지, <추봉>,<왕>으로 추봉과 왕을 끊어서 해석할 것인지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

결론  고비. 부모의 차이를 안다면

고(考)와 부(父), 비(妣)와 모(母)의 차이를 안다면 춘추가 왕위에 오른 654년 이전 천명이 죽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춘추가 왕이 되었을 때 아비인 용춘(용수)는 죽었고(考), 어미인 천명은 살아 있었다(母)는 사실이 중요하다.
춘추의 어머니인 천명은 춘추가 왕이 되는 영광을 살아 생전에 봤다는 데는 별다른 하자가 없다. 하지만 천명이 언제 죽었는지는 모른다.  585~588년 생으로 추측하는 천명은, 654년 67~70세 에도 생존하고 있으니 당시 신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천수를 누리고, 만수를 누렸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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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가브리엘라 2012.05.11 1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아침입니다.

  3.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4.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5. BlogIcon Pussy Porn 2012.07.14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되시겠다. 위의 즉위초년 기사의 원문을 살펴보면, 천명은 아들이

  6. BlogIcon Green Pest Control - Next Gen 2012.09.05 0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잔 테크니컬 평창홍보관에서 김연아를 보려고 아무리 많이 몰려오고 김연아와 사진을 찍으려고 하던 상관이 없다는 말이

  7. BlogIcon Green Pest Control - Next Gen 2012.09.05 0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잔 테크니컬 평창홍보관에서 김연아를 보려고 아무리 많이 몰려오고 김연아와 사진을 찍으려고 하던 상관이 없다는 말이

  8. BlogIcon Brazzers membership 2012.09.08 0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메시지 또는 다른 이름을 올려 놓을 수 있도록 명함은 일반적으로 각 장에 인쇄됩니다. 즉, 사용자의 이름에 대한 몇 가지를 사용하여 미니 브로셔에 대해 다른 시트를 사용합니다.

  9. BlogIcon Prom Wedding Dresses 2012.09.11 1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유 주셔서 감사합니다

  10. BlogIcon london escorts 2012.09.19 1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술은 어떤 방식으로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는이 물건으로 우리의 의존을 제한해야합니다.

  11. BlogIcon montreal escorts 2012.10.02 1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보가된다는 것은 느낌 좋은 것입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과 비교 될만큼 할 수 있다는 보여줍니다.

  12.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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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BlogIcon Polo lacoste 2012.10.24 2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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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BlogIcon how to install electric dog fence 2012.11.14 1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니들도 그사람처럼 하던가 남들 다해놓은것만 빨아놓을려고 와이게 어디서온근성이야~

  15. BlogIcon peanut flour allergy 2012.11.21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 관행적인 형태이니 이해하다고 하더라도 타 선수의 점수를 깍는 방법으로 진행되고,

  16.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이름을 올려 놓을 수 있도록 명함은 일반적으로 각 장에 인쇄됩니다. 즉, 사용자의 이름에 대한 몇 가지를 사용하여 미니 브로셔에 대해 다른 시트를 사용합니다.

  17. BlogIcon food storage buckets home depot 2012.12.19 2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라리 성폭행한 성폭력범을 사랑한다는 말을 믿고 싶을 정도이다. 매맞는 아내가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얼척없기는 마찬가지 이지만 말이다

  18. BlogIcon survival food kits canada 2013.01.05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홍석의 입장에서 보면 복수를 하였으니 여한이 없다고 할수도 있다. 더불어 강동윤의 죄악을 투표로 심판한 국민들이 현실과는 다르지만, 권선징악에 해피앤딩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19. BlogIcon access blocked websites with a VPN 2013.01.24 0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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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BlogIcon miami beach condo 2013.02.17 1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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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만을 위해서 희생한 천명(박예진)

미실의 신녀는 쌍둥이에 의해서 미실이 위험에 처한다는 예언을 한다. 그러니 쌍둥이인 덕만을 죽여 없애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미실은 자신의 힘으로 난관을 헤쳐나갈것이지 덕만을 죽이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나 신녀는 미실 모르게 미생에게 덕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사주를 한다. 이에 대남보는 둑화살을 준비하여, 보종의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인다. 예고편으로 천명이 죽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끝낸다.

선덕여왕을 본방사수를 하지만, 잠깐 잊었던 장면이 있다. 미실은 자신의 막내 아들인 보종을 여래사로 보내 문노를 암살하도록 지시를 한다. 하지만, 용춘은 자신의 수하인 임종 시켜 문노와 천명을 보호하도록 지시를 내린다. 추적하는 과정에서 임종의 화살을 맞고 보종은 드러눕고, 보종은 덕만에 의해서 구해지게 된다.

보종과 함께 또는 따로 움직이는 사람이 대남보이다. 설원랑의 아들이 보종이고, 세종의 아들이 하종이라면, 미생의 아들은 대남보 인것이다.  그런데 과연 대남보는 미생의 백명중의 한 아들일까?

대남보 미생의 아들? 사실은 용춘의 그림자 무사

글쓴이는 이전 [역사이야기] - '덕만' 출생비밀, 화랑세기 삼국사기.유사 비교해 보니  글에서 여래사 사건에서 임종이 보종을 위험에 빠트렸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 차렸다. 대남보의 이야기가 나오길래 의당 대남보가 보종을 격살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대남보가 보종에 화살을 날렸다고 생각한 것일까?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대남보는 미생의 아들이 절대로 아니다. 대남보는 용춘의 충직한 가신이고, 용춘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고, 자신의 전가산을 용춘을 지키는데 사용을 한다. 용춘이 길을 가더라도 용춘 모르게 따르는 음병(닌자 같은 종류의 무사)이 100여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들을 움직이는데 용춘으로 부터 한푼의 지원을 받지 않고, 부자였던, 자신의 가산을 탕진해서 대남보의 자식들이 삼으로 새끼를 꼬면서 연명해 갔다. 요즘같으면 인형에 눈을 다는 일을 하면서 연명하지 않았을까?

당시에도 매관매직이 성행하였지만, 대남보는 티를 내지 않고 용춘을 도왔던 것이다. 오죽하면 동네꼬마들도 대남보의 일을 노래로서 풍자를 했겠는가? 이에 용춘의 귀에 들어가서 대남보가 자신을 위해서 움직인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처를 바쳐 부자가 되고, 일곱 아들 모두 말을 탄다네.
딸을 바쳐 가난해지고, 세 아들 모두 베옷을 입었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은 용춘의 가신으로 내세워도 할말이 없을 텐데 용춘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미생의 아들로 분하게 하고, 천명을 죽이는 역할을 주었다.

화랑세기가 말한 대남보

.그 때 대남보(大男甫)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용감하고 일을 잘 처리하였으며 급인지풍(急人之風))이 있어 무리들이 모두 우러러 보았다. ..중략..   

남보는 원래 부유하였는데 그 재물을 모두 기울여 공이 사용하도록 하였으며, 결사대 백 명을 모아서 공을 호위하였으나, 공은 알지 못하였다. 공이 하루는 종자(從者)들과 더불어 미복으로 거리를 지나는데, 어린아이들이 노래(唱)하여 부르기를 처를 바쳐 부자가 되고 일곱 아들 모두 말을 탄다네 딸을 바쳐 가난해지고 세 아들 모두 베옷을 입었네 하였다. 공이 물었으나, 종자들이 말하지 않았다. 남보의 집에 이르자, 그 처와 세 아들이 삼을 쌓아 놓고 손으로 껍질을 벗기고 있다가 (용춘)공을 보자 그 것을 숨겼다. 공은 이에 종자들이 바른대로 말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였다.

종자들이 복종하여 말하기를 “당두(唐斗)의 일곱 아들은 모두 영달하였는데 남보(男甫)의 세 아들은 모두 천한 까닭에 거리에 이 노래(謠)가 있습니다” 하였다.

공이 오랫동안 슬퍼하다가 “이는 나의 잘못이다” 하였다. 이에 그 장자인 학열(郝熱)을 승부(乘府)에 천거하여 오지(烏知)를 주었고, 다시 그 두 동생을 …에 부탁하며 말하기를, “남보는 나를 위하다가 가난하여졌다. 나는 장차 위를 물려줄 것이다. 그대는 그…”라고 하였다. 호림공이 (풍월주의) 지위에 오르자, 모두 등용하여 낭두(郎頭)로 삼았다. 남보는 그 아들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도록 타일렀다. 세 아들은 모두 충절을 숭상하였다. 건복(建福) 20년(603) 공과 비보랑이 제(帝)를 좇아 한수(漢水)의 전쟁에 나갔다. 남보에게 공으로 대나마를 주었으나 받지 않았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203년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은 시제가 언제인지 알수가 없이 뒤죽박죽이다. 어찌 되었던, 덕만과 천명이 태어나고 20년이 지났다는 것만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605~608년 정도이지 않을까?. 화랑세기 어디를 보더라도 용춘의 충복인 대남보가 미생랑의 아들이란 언급이 없다.

또한, 603년 이전에 대남보에게는 3명의 다 자란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대남보의 아들이 낭두가 될려면 문노가 만들어 놓은화랑의 체계하에서는 최소한 24살이 넘어야 한다. 14세 풍월주인 호림은 603~612년까지 장기 집권을 한다. 드라마에서는 호림이 호재로 나오며. 602년 아막성 전투에서 호재가 풍월주로 참전하는 것으로 나온다.

603년 최소 40대 중반인 대남보

578년생 용춘, 603년 26살 용춘














그러니 대남보는 578년생인 용춘보다도 나이가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용춘보다 나이가 어린 화랑으로 설정을 했다. 더 나아가 천명을 죽이는 최대의 악역을 맡겨 버렸다.  난 도대체 원작 선덕여왕의 작가가 화랑세기를 읽어 봤는지 조차도 궁금할 때가 있다.

선덕(덕만)보다 오래 천수를 누린 천명

어찌 되었거나 대남보가 미생의 아들이라고 치자. 그리고 천명을 죽였다고 치자. 그런데 미안하게도 화랑세기의 13세 풍월주 (596~603)까지 생존했을 뿐만 아니고, 용춘이 한때 덕만의 남편으로 생활했던 632년 까지도 천명은 생존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용춘이 70세로 죽었다는 647년 선덕왕 말년까지도 천명은 생존해 있었다.

선덕공주(善德公主)가 점점 자라자 용봉의 자태와 태양의 위용이 왕위를 이을 만 하였다. 그 때는 마야황후가 이미 죽었(崩)고, 왕위를 이을 아들이 달리 없었다. 그러므로 대왕은 (용춘)공을 마음에 두고 (천명)공주에게 그 지위를 양보하도록 권하였다. (천명)공주는 효심으로 순종하였다. 이에 지위를 양보하고 출궁(出宮)을 하였다.

629년 바로 직전 승만후의 아들이 죽고, 용춘이 지방으로 나가 있다가, 629년 고구려 낭비성 전쟁에 참여하기 바로 전의 일이다. 그러니 629년 까지 천명은 출궁하여 용춘과 짝짝궁하면서 잘 지내고 있을 때이다.

선덕은 이에 정사를 을제에게 맡기고 공에게 물러나 살기를 허락하였다. 공은 이에 천명공주를 처로 삼고 태종을 아들로 삼았다. - 화랑세기 용춘

선덕여왕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선덕여왕 원년

선덕이 정사를 을제에 맡기는 때는 632년 즉위초년이다. 이때 비로서 용춘은 천명을 공식적인 처로 삼고, 30살인 춘추(603년생) 를 아들로 삼았다고 하고 있다.

공은 만년에 거문고와 바둑을 즐겼다. 천명(天明)·호명(昊明) 양궁과 더불어 산궁(山宮)에서 술상을 차려놓고 바둑을 두고 거문고를 탔다. 태종은 효성을 극진히 하여 안락하게 모셨다. 태화(太和) 원년(647) 8월 세상을 떠나(薨)니 수가 70살이었다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용춘은 647년 8월 70살에 세상을 떠났지만, 말년인 647년 8월까지도 천명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천명은 아마도 춘추가 즉위하던 그 순간까도 살아 있었던 것으로 추측 된다. 그런데 용춘의 아재비(삼촌)같던 대남보를 미생의 아들로 만드는 것도 모자라서 천수를 누리고, 647년 죽은 덕만(선덕)보다 더 오래산 천명을 610년도 안된 시점에 대남보의 손을 빌어서 죽여버리는 심보는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사라진 문노는 어디에?

8세 풍월주 국선 문노(정호빈)

태양을 삼켜라(태삼), 백실장(정호빈)



드라마 초기에는 어디선가 무슨일이 생기면 나타나던 문노가 어느 순간부터, 어디선가 무슨일이 생기면, 홀연히 사라지는 문노로 탈바꿈을 하였다. 겁장이 국선 문노(정호빈)는 어디로 숨은 것일까?






필요할때 마다 사라진 선덕여왕의 국선 문노(정호빈)은 태양을 삼켜라(태삼)의 백실장으로 분하여 열심히 비서일을 하고있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어디선가 무슨일이 생기면, 나타나 활약을 하고 있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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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갓쉰동 2009.08.11 2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追封王考 더 정확한 해석은 이런 겁니다.. 용춘(수)는 갈문왕에 추봉된적이 있어요.. 그러니, 추봉된 용춘(수)갈문왕 아버지를 문흥대왕으로 하고, 어머니를 문정태후로 하였다. 추봉을 할때, 이름대신 추봉명을 쓰는게 상례 입니다.. 그래서 용춘이 이름이고 추봉명이 용수일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성립하구요..

    그래서 용춘, 용수가 같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거 너무 많은 것을 공개 해버리는 군요..

  3. BlogIcon 보편적인블로거 2009.08.11 2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덕분에 많은 사실을 알고 가게 되네요^^

  4. 2009.08.12 04: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 자체가 선덕여왕과 동시대 인이 아니라는 말을 드라마 시작 전 읽었었는데요. (미실의 전성기는 한참 전으로 선덕여왕은 손녀뻘이었다고 들었어요.) 다만 미실의 삶이 주인공감임에도 미실이 주인공이면 대중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인물이라 인기가 없으니 선덕여왕을 미실과 동시대로 끌어들이고 인물들의 나이가 역사와는 다르게 구성되었다구요. 역사 왜곡이지만 역사를 사실대로 하기에는 밋밋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의견이었지요. 개인적으로는 신라 역사에 무지하여 이 드라마가 얼마나 기존의 사서에 충실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12 0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동시대 인이 아니라는 것만을 알아도 많이 하는 거지요.. 많은 사람들은 동시대 인물이라고 생각할 겁니당. ㅋㅋ

      화랑세기에 나온 기록 대로 하면 더 잼있어용.. ㅋㅋ

  5. ㅋㅋ 2009.08.12 06: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통해 천명공주에 대해서 알았으면 그걸로 됐고,

    역사 공부를 통해 제대로된 지식을 알게 되면 그걸로 됐다.

  6. 김순원 2009.08.19 0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부분 촬영지: 경기 포천 비둘기낭정보화마을
    블로그 http://blog.daum.net/happymogaha/11807733

  7. 써니 2010.06.20 04: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노 그아저씨...
    꽃남에도 정실장으로 나오던데...

  8. BlogIcon 박기동 2012.01.01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한다

  9. BlogIcon 김용대 2012.01.07 0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10. BlogIcon 스칼렛 2012.05.09 0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1. BlogIcon 조슬린 2012.05.11 0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12.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3.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4. BlogIcon Pussy Porn 2012.07.14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보의 일을 노래로서 풍자를 했겠는가? 이에 용춘의 귀에 들어가서 대남보가

  15.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6. BlogIcon pilot crackers maine 2012.11.01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7. BlogIcon portable dog fences outdoors 2012.11.05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18. BlogIcon portable dog fencing 2012.12.20 17: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 화랑세기에는 중요한 여인중에 하나이다. 역사물을 다루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라면, 사랑, 야망,

  19. BlogIcon food supplies canada 2012.12.31 1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에 대남보는 둑화살을 준비하여, 보종의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인다. 예고편으로 천명이 죽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끝낸다.


덕만을 위해서 희생한 천명(박예진)

미실의 신녀는 쌍둥이에 의해서 미실이 위험에 처한다는 예언을 한다. 그러니 쌍둥이인 덕만을 죽여 없애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미실은 자신의 힘으로 난관을 헤쳐나갈것이지 덕만을 죽이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나 신녀는 미실 모르게 미생에게 덕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사주를 한다. 이에 대남보는 둑화살을 준비하여, 보종의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인다. 예고편으로 천명이 죽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끝낸다.

선덕여왕을 본방사수를 하지만, 잠깐 잊었던 장면이 있다. 미실은 자신의 막내 아들인 보종을 여래사로 보내 문노를 암살하도록 지시를 한다. 하지만, 용춘은 자신의 수하인 임종 시켜 문노와 천명을 보호하도록 지시를 내린다. 추적하는 과정에서 임종의 화살을 맞고 보종은 드러눕고, 보종은 덕만에 의해서 구해지게 된다.

보종과 함께 또는 따로 움직이는 사람이 대남보이다. 설원랑의 아들이 보종이고, 세종의 아들이 하종이라면, 미생의 아들은 대남보 인것이다.  그런데 과연 대남보는 미생의 백명중의 한 아들일까?

대남보 미생의 아들? 사실은 용춘의 그림자 무사

글쓴이는 이전 [역사이야기] - '덕만' 출생비밀, 화랑세기 삼국사기.유사 비교해 보니  글에서 여래사 사건에서 임종이 보종을 위험에 빠트렸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 차렸다. 대남보의 이야기가 나오길래 의당 대남보가 보종을 격살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대남보가 보종에 화살을 날렸다고 생각한 것일까?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대남보는 미생의 아들이 절대로 아니다. 대남보는 용춘의 충직한 가신이고, 용춘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고, 자신의 전가산을 용춘을 지키는데 사용을 한다. 용춘이 길을 가더라도 용춘 모르게 따르는 음병(닌자 같은 종류의 무사)이 100여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들을 움직이는데 용춘으로 부터 한푼의 지원을 받지 않고, 부자였던, 자신의 가산을 탕진해서 대남보의 자식들이 삼으로 새끼를 꼬면서 연명해 갔다. 요즘같으면 인형에 눈을 다는 일을 하면서 연명하지 않았을까?

당시에도 매관매직이 성행하였지만, 대남보는 티를 내지 않고 용춘을 도왔던 것이다. 오죽하면 동네꼬마들도 대남보의 일을 노래로서 풍자를 했겠는가? 이에 용춘의 귀에 들어가서 대남보가 자신을 위해서 움직인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처를 바쳐 부자가 되고, 일곱 아들 모두 말을 탄다네.
딸을 바쳐 가난해지고, 세 아들 모두 베옷을 입었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은 용춘의 가신으로 내세워도 할말이 없을 텐데 용춘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미생의 아들로 분하게 하고, 천명을 죽이는 역할을 주었다.

화랑세기가 말한 대남보

.그 때 대남보(大男甫)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용감하고 일을 잘 처리하였으며 급인지풍(急人之風))이 있어 무리들이 모두 우러러 보았다. ..중략..   

남보는 원래 부유하였는데 그 재물을 모두 기울여 공이 사용하도록 하였으며, 결사대 백 명을 모아서 공을 호위하였으나, 공은 알지 못하였다. 공이 하루는 종자(從者)들과 더불어 미복으로 거리를 지나는데, 어린아이들이 노래(唱)하여 부르기를 처를 바쳐 부자가 되고 일곱 아들 모두 말을 탄다네 딸을 바쳐 가난해지고 세 아들 모두 베옷을 입었네 하였다. 공이 물었으나, 종자들이 말하지 않았다. 남보의 집에 이르자, 그 처와 세 아들이 삼을 쌓아 놓고 손으로 껍질을 벗기고 있다가 (용춘)공을 보자 그 것을 숨겼다. 공은 이에 종자들이 바른대로 말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였다.

종자들이 복종하여 말하기를 “당두(唐斗)의 일곱 아들은 모두 영달하였는데 남보(男甫)의 세 아들은 모두 천한 까닭에 거리에 이 노래(謠)가 있습니다” 하였다.

공이 오랫동안 슬퍼하다가 “이는 나의 잘못이다” 하였다. 이에 그 장자인 학열(郝熱)을 승부(乘府)에 천거하여 오지(烏知)를 주었고, 다시 그 두 동생을 …에 부탁하며 말하기를, “남보는 나를 위하다가 가난하여졌다. 나는 장차 위를 물려줄 것이다. 그대는 그…”라고 하였다. 호림공이 (풍월주의) 지위에 오르자, 모두 등용하여 낭두(郎頭)로 삼았다. 남보는 그 아들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도록 타일렀다. 세 아들은 모두 충절을 숭상하였다. 건복(建福) 20년(603) 공과 비보랑이 제(帝)를 좇아 한수(漢水)의 전쟁에 나갔다. 남보에게 공으로 대나마를 주었으나 받지 않았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203년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은 시제가 언제인지 알수가 없이 뒤죽박죽이다. 어찌 되었던, 덕만과 천명이 태어나고 20년이 지났다는 것만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605~608년 정도이지 않을까?. 화랑세기 어디를 보더라도 용춘의 충복인 대남보가 미생랑의 아들이란 언급이 없다.

또한, 603년 이전에 대남보에게는 3명의 다 자란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대남보의 아들이 낭두가 될려면 문노가 만들어 놓은화랑의 체계하에서는 최소한 24살이 넘어야 한다. 14세 풍월주인 호림은 603~612년까지 장기 집권을 한다. 드라마에서는 호림이 호재로 나오며. 602년 아막성 전투에서 호재가 풍월주로 참전하는 것으로 나온다.

603년 최소 40대 중반인 대남보

578년생 용춘, 603년 26살 용춘














그러니 대남보는 578년생인 용춘보다도 나이가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용춘보다 나이가 어린 화랑으로 설정을 했다. 더 나아가 천명을 죽이는 최대의 악역을 맡겨 버렸다.  난 도대체 원작 선덕여왕의 작가가 화랑세기를 읽어 봤는지 조차도 궁금할 때가 있다.

선덕(덕만)보다 오래 천수를 누린 천명

어찌 되었거나 대남보가 미생의 아들이라고 치자. 그리고 천명을 죽였다고 치자. 그런데 미안하게도 화랑세기의 13세 풍월주 (596~603)까지 생존했을 뿐만 아니고, 용춘이 한때 덕만의 남편으로 생활했던 632년 까지도 천명은 생존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용춘이 70세로 죽었다는 647년 선덕왕 말년까지도 천명은 생존해 있었다.

선덕공주(善德公主)가 점점 자라자 용봉의 자태와 태양의 위용이 왕위를 이을 만 하였다. 그 때는 마야황후가 이미 죽었(崩)고, 왕위를 이을 아들이 달리 없었다. 그러므로 대왕은 (용춘)공을 마음에 두고 (천명)공주에게 그 지위를 양보하도록 권하였다. (천명)공주는 효심으로 순종하였다. 이에 지위를 양보하고 출궁(出宮)을 하였다.

629년 바로 직전 승만후의 아들이 죽고, 용춘이 지방으로 나가 있다가, 629년 고구려 낭비성 전쟁에 참여하기 바로 전의 일이다. 그러니 629년 까지 천명은 출궁하여 용춘과 짝짝궁하면서 잘 지내고 있을 때이다.

선덕은 이에 정사를 을제에게 맡기고 공에게 물러나 살기를 허락하였다. 공은 이에 천명공주를 처로 삼고 태종을 아들로 삼았다. - 화랑세기 용춘

선덕여왕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선덕여왕 원년

선덕이 정사를 을제에 맡기는 때는 632년 즉위초년이다. 이때 비로서 용춘은 천명을 공식적인 처로 삼고, 30살인 춘추(603년생) 를 아들로 삼았다고 하고 있다.

공은 만년에 거문고와 바둑을 즐겼다. 천명(天明)·호명(昊明) 양궁과 더불어 산궁(山宮)에서 술상을 차려놓고 바둑을 두고 거문고를 탔다. 태종은 효성을 극진히 하여 안락하게 모셨다. 태화(太和) 원년(647) 8월 세상을 떠나(薨)니 수가 70살이었다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용춘은 647년 8월 70살에 세상을 떠났지만, 말년인 647년 8월까지도 천명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천명은 아마도 춘추가 즉위하던 그 순간까도 살아 있었던 것으로 추측 된다. 그런데 용춘의 아재비(삼촌)같던 대남보를 미생의 아들로 만드는 것도 모자라서 천수를 누리고, 647년 죽은 덕만(선덕)보다 더 오래산 천명을 610년도 안된 시점에 대남보의 손을 빌어서 죽여버리는 심보는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사라진 문노는 어디에?

8세 풍월주 국선 문노(정호빈)

태양을 삼켜라(태삼), 백실장(정호빈)



드라마 초기에는 어디선가 무슨일이 생기면 나타나던 문노가 어느 순간부터, 어디선가 무슨일이 생기면, 홀연히 사라지는 문노로 탈바꿈을 하였다. 겁장이 국선 문노(정호빈)는 어디로 숨은 것일까?






필요할때 마다 사라진 선덕여왕의 국선 문노(정호빈)은 태양을 삼켜라(태삼)의 백실장으로 분하여 열심히 비서일을 하고있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어디선가 무슨일이 생기면, 나타나 활약을 하고 있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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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갓쉰동 2009.08.11 2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追封王考 더 정확한 해석은 이런 겁니다.. 용춘(수)는 갈문왕에 추봉된적이 있어요.. 그러니, 추봉된 용춘(수)갈문왕 아버지를 문흥대왕으로 하고, 어머니를 문정태후로 하였다. 추봉을 할때, 이름대신 추봉명을 쓰는게 상례 입니다.. 그래서 용춘이 이름이고 추봉명이 용수일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성립하구요..

    그래서 용춘, 용수가 같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거 너무 많은 것을 공개 해버리는 군요..

  3. BlogIcon 보편적인블로거 2009.08.11 2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덕분에 많은 사실을 알고 가게 되네요^^

  4. 2009.08.12 04: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 자체가 선덕여왕과 동시대 인이 아니라는 말을 드라마 시작 전 읽었었는데요. (미실의 전성기는 한참 전으로 선덕여왕은 손녀뻘이었다고 들었어요.) 다만 미실의 삶이 주인공감임에도 미실이 주인공이면 대중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인물이라 인기가 없으니 선덕여왕을 미실과 동시대로 끌어들이고 인물들의 나이가 역사와는 다르게 구성되었다구요. 역사 왜곡이지만 역사를 사실대로 하기에는 밋밋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의견이었지요. 개인적으로는 신라 역사에 무지하여 이 드라마가 얼마나 기존의 사서에 충실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 BlogIcon 갓쉰동 2009.08.12 0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동시대 인이 아니라는 것만을 알아도 많이 하는 거지요.. 많은 사람들은 동시대 인물이라고 생각할 겁니당. ㅋㅋ

      화랑세기에 나온 기록 대로 하면 더 잼있어용.. ㅋㅋ

  5. ㅋㅋ 2009.08.12 06: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통해 천명공주에 대해서 알았으면 그걸로 됐고,

    역사 공부를 통해 제대로된 지식을 알게 되면 그걸로 됐다.

  6. 김순원 2009.08.19 0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부분 촬영지: 경기 포천 비둘기낭정보화마을
    블로그 http://blog.daum.net/happymogaha/11807733

  7. 써니 2010.06.20 04: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노 그아저씨...
    꽃남에도 정실장으로 나오던데...

  8. BlogIcon 박기동 2012.01.01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한다

  9. BlogIcon 김용대 2012.01.07 0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10. BlogIcon 스칼렛 2012.05.09 0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1. BlogIcon 조슬린 2012.05.11 0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12.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3.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4. BlogIcon Pussy Porn 2012.07.14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보의 일을 노래로서 풍자를 했겠는가? 이에 용춘의 귀에 들어가서 대남보가

  15.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도록

  16. BlogIcon pilot crackers maine 2012.11.01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7. BlogIcon portable dog fences outdoors 2012.11.05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을 죽여한다고 한다. 이에 미생은 자신의 아들인 대남보(류상욱)에게 덕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18. BlogIcon portable dog fencing 2012.12.20 17: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 화랑세기에는 중요한 여인중에 하나이다. 역사물을 다루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라면, 사랑, 야망,

  19. BlogIcon food supplies canada 2012.12.31 1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에 대남보는 둑화살을 준비하여, 보종의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인다. 예고편으로 천명이 죽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끝낸다.

백제와 신라의 결혼동맹(?)은 4번에 걸처 있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자세한 사항은 이전에 포스팅한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에는 나오지 않는 백제와 신라 결혼, 서동과 선화공주 그리고

를 참조하길 바랍니다. 여기서는 법흥(원종)과 보과공주의 사랑인데, 보과공주는 과연 백제의 어느왕의 자식인가에 대해서 논의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니 동성왕녀은 아닐것이라는 암시를 했었습니다.

첫번째 법흥(원종과 보과공주)

첫 결혼의 첫테이프를 끊은 사람은 법흥(원종)과 동성왕녀 보과공주, 일단 보과공주라고만 하자. 
(3세) 모랑(毛郞)은 남모의 아우이다. 이에 앞서 법흥대왕이 국공(國公)으로 백제에 들어가 보과공주(宝果公主)와 더불어 사통을 하였다. 후에 보과가 도망을 하여 입궁하여 남모와 모랑을 낳았다. -화랑세기 3대 풍월주 모랑


참고 : [역사이야기] - 화랑세기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도 있다. 

에서 동성왕의 공주인 보과로 설정하여 포스팅을 하였다. 하지만 다시 화랑세기와 삼국사기 등을 살펴보니 동성왕이 아닐 가능성이 많았다.
법흥(원종)이 국공으로 백제에 들어간 시기는 언제일까? 아버지인 지증왕이 왕이 되기 전일것이다. 왕자 신분이였다면 왕자를 표기했을 것이나 화랑세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비처(소지왕:479~500) 시기 나 그 이전 자비왕시기 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국공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약 간 맛보기로 보여주고 추후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일단, 법흥왕이 국공이였을때를 찾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국공이라 함은 왕자시절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법흥(원종)의 아버지 지증(지대로)왕이 왕이 되기전 시기로 가야 합니다. 지증왕 이전은 자비왕와 소지(비처)왕 시기를 말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흥(원종)이 백제에 국공으로 들어간 시기는 비처왕(479~500년) 이니 아무리 늦게 잡아도 500년 이전시기가 됩니다.

500년 왕은 체격이 매우 컸고 담력이 남보다 뛰어났다. 전왕(前王)이 아들없이 죽었으므로 왕위를 이어 받았다. 당시 나이는 64세였다. -삼국사기 지증왕


문제는 500년 지증(지대로)가 왕이 되었을때 적지않은 나이인 64세에 왕위에 오릅니다. 법흥(원종)에 보과가 한눈에 반할 정도가 될려면 원종이 어린나이가 되는 것은 상식에 속할 겁니다. 또한, 보과 또한 어린나이 15세전후가 될겁니다.

지대로의 장자인 원종은 지증이 갈문왕시기이 어릴쩍인 15~20세 전후에 낳은 아들이 되야 함으로 지증(437년생)+(15~20)전후 생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흥은 442~446년생이 됩니다. 장성한 법흥(원종)이 20대의 나이일때는 461~466년 사이가 됩니다. 늦어도 470년전후 시기에 해당합니다.

470년 전후 백제의 왕은 누구일까요?

455년 개로왕(蓋鹵王)<혹은 근개루(近蓋婁)라고도 하였다.>은 이름이 경사(慶司)이고 비유왕(毗有王)의 맏아들이다. 비유왕이 재위 29년에 죽자 왕위를 이었다. - 삼국사기

백제의 왕은 475년 고구려 장수왕에 한성을 내주고 죽은 개로왕(455~475년) 시기에 해당합니다. 

475년 7월에 고구려 왕 거련(巨連)[장수왕]이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공격하였다. 백제 왕 경(慶)[개로왕]이 아들 문주(文周)를 보내 도움을 요청하였으므로 왕이 군사를 내어 구원하였으나, 구원병이 이르기도 전에 백제는 이미 함락되고 경(慶)[개로왕] 역시 살해당하였다. -삼국사기 자비왕


위의 계보도는 삼국사기를 기준으로 하고 있으나 곤지의 계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삼국유사는 개로왕의 아우로 나오며, 일본서기도 개로왕의 아우로 나온다. 또한, 무령왕의 출자에 관해서는 삼국사기는 동성왕(모대)의 2자로 나오지만, 일본서기나 삼국유사를 기준으로 한다면, 개로왕의 아들이 됨을 알 수 있다.  


백제의 보과공주는 개로왕의 왕녀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보과공주는 개로왕이 죽은 후 웅진(공주)로 천도한 문주왕과는 남매간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백제가 위기에 처했을때 문주는 신라로 파견되어 구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때 도움을 준 사람이 법흥(원종)에 시집간 보과공주일것으로 추측됩니다.

문제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보과/법흥 사이에 태어난 3세 풍월주 모랑이 548년 진흥왕 9년에 풍월주에 오르고 555년 비사벌에 여행을 하다 병을 얻어 사망했다. 모랑의 손위 누이가 되는 남모는 진흥왕 원년 540년이전 원화의 지위에 있었는데  그렇다면 법흥(원종)이 국공일때는 늦어도 500년 전후에  태어났어야 한다. 540년에 남모의 나이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 이른다. 법흥/보도 사이의 태어나 진흥왕의 어미가 되는 지소태후와는 이복자매가 됨을 알 수 있다. 지소태후가 삼산공의 딸인 준정보다 자매인 남모를 원화로 밀어 세운 이유는 피의 끌림이지 않을가 한다. 또한가지 남모(법흥/보가)가 지소(법흥/보도)태후보다는 손위 언니뻘일 가능성이 높다.


화랑이전 원화제도가 있을때에는 나이어린 소녀가 아닌 농익은 성인 여성을 원화로 세웠을 개연성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창작한 위서가 된다.

글쓴이는 백제의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때 신라가 백제를 구원한 극적인 이유를 법흥왕과 보과의 사랑에서 찾고자 했었다. 하지만, 이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보과공주가 사랑을 찾아 신라로 넘어온 시기는 500년 전후시기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번째 결혼 동성왕과 이찬 비지녀
백제 동성왕 15년(493) 봄 3월에 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니 신라 왕은 이찬(伊) 비지(比智)의 딸을 시집보냈다. - 삼국사기



법흥/보과의 사랑을 첫번째로 설정하고 2번째 동성왕/이찬비지녀로 하였지만, 동성/이찬비지녀가 첫번째가 되고 법흥/보과가 백제/신라의 2번째 결혼임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동성왕은 이찬비지의 딸을 후비로 맞기도 하지만, 자신의 딸이 법흥(원종)과 사랑의 도피를 하는 것을 지켜 봐야 했을 것이다. 

또한가지는 법흥(원종)과 입종은 지증왕(지대로)가 40대가 다되어서 얻은 아들이라고 추측된다. 그렇지 않다면, 보과는 적지 않은 나이의 법흥(원종)을 사랑한 것이다.

어찌되었던 고구려에 위기를 느낀 백제와 신라는 결혼을 매개로 신라와 동맹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동성왕과 신라 이찬비지의 딸이되고, 동성왕의 딸 보과와 법흥이며, 성왕의 딸이 진흥왕의 소비가 되며, 서동(무왕)과 진평왕의 딸에 이르게 된다.

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진흥왕(입종/지소)을 천수를 누린 노인으로 설정하였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540년 진흥왕(眞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삼맥종(彡麥宗)이다.<혹은 심맥부(深麥夫)라고도 썼다.> 그때 나이는 일곱 살이었다. 법흥왕의 동생 갈문왕(葛文王) 입종(立宗)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로 법흥왕의 딸이고, 왕비는 박씨 사도부인(思道夫人)이다. 왕이 어렸으므로 왕태후(王太后)가 섭정하였다. - 삼국사기 진흥원년


진흥왕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7세에 큰아버지 법흥왕을 대신에 왕위를 잇는다. 진흥왕의 제위기간은 540~576년이니 37년간 왕위에 있었다. 진흥왕은 534년생이고, 551년 진흥왕 12년 연호를 개국으로 바꾸고, 지소태후의 그늘에서 벗어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576년에 죽을때 나이는 43세가 된다. 한참 팔팔한 나이때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텍스트인 화랑세기에 의하면 지소태후와 태종(이사부)의 아들이며 미실의 남편인 세종은 진흥의 막내동생 뻘로 나온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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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balloons 2011.12.19 0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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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BlogIcon 박기동 2012.01.07 0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5. BlogIcon 릴리안 2012.04.03 2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유대인 음식만 먹습니다.

  6. BlogIcon Makayla 2012.05.08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어디로 데려가십니까?

  7. BlogIcon 루시 2012.05.11 0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지내십니까?

  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9. BlogIcon Milf Pussy 2012.07.21 2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 그 시대를 가보지 않는다며 말이다. 그래서 작가는 직접본 것 같은 시청자가 그 시대를 여행하는 느낌

  10. BlogIcon Daphne 2012.08.09 2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식인가에 대해서 논의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

  11. BlogIcon Green Pest Control - Next Gen 2012.09.05 0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잔 테크니컬 평창홍보관에서 김연아를 보려고 아무리 많이 몰려오고 김연아와 사진을 찍으려고 하던 상관이 없다는 말이

  12. BlogIcon Brazzers membership 2012.09.08 05: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점은 정말 포장 진흥의 잠재력을 활용 몇 산업 중 하나입니다. 거의 그들 모두는 구매자에게 특별한 혜택이 포함 된 팜플렛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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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 세계는 노동의 권리에보다 많은 관심을 지불해야합니다. 그들은 종종 가야 후 더 얻을.

  15. BlogIcon Polo lacoste 2012.10.24 2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는 법흥(원종)과 보과공주의 사랑인데, 보과공주는 과연 백제의 어느왕의 자식인가에 대해서 논의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니 동성왕녀은 아닐것이라는 암시를 했었습니다.

  16. BlogIcon portable fence for dogs when camping 2012.11.14 1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도 걸릴 및 비즈니스 거래는 모든 비용을 커버하는 데 필요한 몇 생각입니다. 정직하고 현실적이어야합니다. 당신은 더 나은 표현한 이상을 계산합니다.

  17. BlogIcon multi function tool bosch 2012.11.20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18. BlogIcon solar powered radio with cell phone charger 2012.12.19 1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이전 원화제도가 있을때에는 나이어린 소녀가 아닌 농익은 성인 여성을 원화로 세웠을 개연성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창작한 위서가 된다.

  19. BlogIcon invisible fence installation instructions 2012.12.27 17: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다면 법흥(원종)이 백제에 국공으로 들어간 시기는 비처왕(479~500년) 이니 아무리 늦게 잡아도 500년 이전시기가 됩니다.

  20. BlogIcon storing food in mylar bags 2013.01.05 2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니 동성왕녀은 아닐것이라는 암시를 했었습니다.

백제와 신라의 결혼동맹(?)은 4번에 걸처 있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자세한 사항은 이전에 포스팅한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에는 나오지 않는 백제와 신라 결혼, 서동과 선화공주 그리고

를 참조하길 바랍니다. 여기서는 법흥(원종)과 보과공주의 사랑인데, 보과공주는 과연 백제의 어느왕의 자식인가에 대해서 논의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니 동성왕녀은 아닐것이라는 암시를 했었습니다.

첫번째 법흥(원종과 보과공주)

첫 결혼의 첫테이프를 끊은 사람은 법흥(원종)과 동성왕녀 보과공주, 일단 보과공주라고만 하자. 
(3세) 모랑(毛郞)은 남모의 아우이다. 이에 앞서 법흥대왕이 국공(國公)으로 백제에 들어가 보과공주(宝果公主)와 더불어 사통을 하였다. 후에 보과가 도망을 하여 입궁하여 남모와 모랑을 낳았다. -화랑세기 3대 풍월주 모랑


참고 : [역사이야기] - 화랑세기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도 있다. 

에서 동성왕의 공주인 보과로 설정하여 포스팅을 하였다. 하지만 다시 화랑세기와 삼국사기 등을 살펴보니 동성왕이 아닐 가능성이 많았다.
법흥(원종)이 국공으로 백제에 들어간 시기는 언제일까? 아버지인 지증왕이 왕이 되기 전일것이다. 왕자 신분이였다면 왕자를 표기했을 것이나 화랑세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비처(소지왕:479~500) 시기 나 그 이전 자비왕시기 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국공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약 간 맛보기로 보여주고 추후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일단, 법흥왕이 국공이였을때를 찾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국공이라 함은 왕자시절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법흥(원종)의 아버지 지증(지대로)왕이 왕이 되기전 시기로 가야 합니다. 지증왕 이전은 자비왕와 소지(비처)왕 시기를 말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흥(원종)이 백제에 국공으로 들어간 시기는 비처왕(479~500년) 이니 아무리 늦게 잡아도 500년 이전시기가 됩니다.

500년 왕은 체격이 매우 컸고 담력이 남보다 뛰어났다. 전왕(前王)이 아들없이 죽었으므로 왕위를 이어 받았다. 당시 나이는 64세였다. -삼국사기 지증왕


문제는 500년 지증(지대로)가 왕이 되었을때 적지않은 나이인 64세에 왕위에 오릅니다. 법흥(원종)에 보과가 한눈에 반할 정도가 될려면 원종이 어린나이가 되는 것은 상식에 속할 겁니다. 또한, 보과 또한 어린나이 15세전후가 될겁니다.

지대로의 장자인 원종은 지증이 갈문왕시기이 어릴쩍인 15~20세 전후에 낳은 아들이 되야 함으로 지증(437년생)+(15~20)전후 생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흥은 442~446년생이 됩니다. 장성한 법흥(원종)이 20대의 나이일때는 461~466년 사이가 됩니다. 늦어도 470년전후 시기에 해당합니다.

470년 전후 백제의 왕은 누구일까요?

455년 개로왕(蓋鹵王)<혹은 근개루(近蓋婁)라고도 하였다.>은 이름이 경사(慶司)이고 비유왕(毗有王)의 맏아들이다. 비유왕이 재위 29년에 죽자 왕위를 이었다. - 삼국사기

백제의 왕은 475년 고구려 장수왕에 한성을 내주고 죽은 개로왕(455~475년) 시기에 해당합니다. 

475년 7월에 고구려 왕 거련(巨連)[장수왕]이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공격하였다. 백제 왕 경(慶)[개로왕]이 아들 문주(文周)를 보내 도움을 요청하였으므로 왕이 군사를 내어 구원하였으나, 구원병이 이르기도 전에 백제는 이미 함락되고 경(慶)[개로왕] 역시 살해당하였다. -삼국사기 자비왕


위의 계보도는 삼국사기를 기준으로 하고 있으나 곤지의 계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삼국유사는 개로왕의 아우로 나오며, 일본서기도 개로왕의 아우로 나온다. 또한, 무령왕의 출자에 관해서는 삼국사기는 동성왕(모대)의 2자로 나오지만, 일본서기나 삼국유사를 기준으로 한다면, 개로왕의 아들이 됨을 알 수 있다.  


백제의 보과공주는 개로왕의 왕녀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보과공주는 개로왕이 죽은 후 웅진(공주)로 천도한 문주왕과는 남매간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백제가 위기에 처했을때 문주는 신라로 파견되어 구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때 도움을 준 사람이 법흥(원종)에 시집간 보과공주일것으로 추측됩니다.

문제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보과/법흥 사이에 태어난 3세 풍월주 모랑이 548년 진흥왕 9년에 풍월주에 오르고 555년 비사벌에 여행을 하다 병을 얻어 사망했다. 모랑의 손위 누이가 되는 남모는 진흥왕 원년 540년이전 원화의 지위에 있었는데  그렇다면 법흥(원종)이 국공일때는 늦어도 500년 전후에  태어났어야 한다. 540년에 남모의 나이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 이른다. 법흥/보도 사이의 태어나 진흥왕의 어미가 되는 지소태후와는 이복자매가 됨을 알 수 있다. 지소태후가 삼산공의 딸인 준정보다 자매인 남모를 원화로 밀어 세운 이유는 피의 끌림이지 않을가 한다. 또한가지 남모(법흥/보가)가 지소(법흥/보도)태후보다는 손위 언니뻘일 가능성이 높다.


화랑이전 원화제도가 있을때에는 나이어린 소녀가 아닌 농익은 성인 여성을 원화로 세웠을 개연성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창작한 위서가 된다.

글쓴이는 백제의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때 신라가 백제를 구원한 극적인 이유를 법흥왕과 보과의 사랑에서 찾고자 했었다. 하지만, 이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보과공주가 사랑을 찾아 신라로 넘어온 시기는 500년 전후시기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번째 결혼 동성왕과 이찬 비지녀
백제 동성왕 15년(493) 봄 3월에 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니 신라 왕은 이찬(伊) 비지(比智)의 딸을 시집보냈다. - 삼국사기



법흥/보과의 사랑을 첫번째로 설정하고 2번째 동성왕/이찬비지녀로 하였지만, 동성/이찬비지녀가 첫번째가 되고 법흥/보과가 백제/신라의 2번째 결혼임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동성왕은 이찬비지의 딸을 후비로 맞기도 하지만, 자신의 딸이 법흥(원종)과 사랑의 도피를 하는 것을 지켜 봐야 했을 것이다. 

또한가지는 법흥(원종)과 입종은 지증왕(지대로)가 40대가 다되어서 얻은 아들이라고 추측된다. 그렇지 않다면, 보과는 적지 않은 나이의 법흥(원종)을 사랑한 것이다.

어찌되었던 고구려에 위기를 느낀 백제와 신라는 결혼을 매개로 신라와 동맹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동성왕과 신라 이찬비지의 딸이되고, 동성왕의 딸 보과와 법흥이며, 성왕의 딸이 진흥왕의 소비가 되며, 서동(무왕)과 진평왕의 딸에 이르게 된다.

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진흥왕(입종/지소)을 천수를 누린 노인으로 설정하였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540년 진흥왕(眞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삼맥종(彡麥宗)이다.<혹은 심맥부(深麥夫)라고도 썼다.> 그때 나이는 일곱 살이었다. 법흥왕의 동생 갈문왕(葛文王) 입종(立宗)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로 법흥왕의 딸이고, 왕비는 박씨 사도부인(思道夫人)이다. 왕이 어렸으므로 왕태후(王太后)가 섭정하였다. - 삼국사기 진흥원년


진흥왕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7세에 큰아버지 법흥왕을 대신에 왕위를 잇는다. 진흥왕의 제위기간은 540~576년이니 37년간 왕위에 있었다. 진흥왕은 534년생이고, 551년 진흥왕 12년 연호를 개국으로 바꾸고, 지소태후의 그늘에서 벗어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576년에 죽을때 나이는 43세가 된다. 한참 팔팔한 나이때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텍스트인 화랑세기에 의하면 지소태후와 태종(이사부)의 아들이며 미실의 남편인 세종은 진흥의 막내동생 뻘로 나온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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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balloons 2011.12.19 0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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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BlogIcon 박기동 2012.01.07 0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5. BlogIcon 릴리안 2012.04.03 2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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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BlogIcon Makayla 2012.05.08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어디로 데려가십니까?

  7. BlogIcon 루시 2012.05.11 0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지내십니까?

  8.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9. BlogIcon Milf Pussy 2012.07.21 2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 그 시대를 가보지 않는다며 말이다. 그래서 작가는 직접본 것 같은 시청자가 그 시대를 여행하는 느낌

  10. BlogIcon Daphne 2012.08.09 2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식인가에 대해서 논의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

  11. BlogIcon Green Pest Control - Next Gen 2012.09.05 0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잔 테크니컬 평창홍보관에서 김연아를 보려고 아무리 많이 몰려오고 김연아와 사진을 찍으려고 하던 상관이 없다는 말이

  12. BlogIcon Brazzers membership 2012.09.08 05: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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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 세계는 노동의 권리에보다 많은 관심을 지불해야합니다. 그들은 종종 가야 후 더 얻을.

  15. BlogIcon Polo lacoste 2012.10.24 2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는 법흥(원종)과 보과공주의 사랑인데, 보과공주는 과연 백제의 어느왕의 자식인가에 대해서 논의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니 동성왕녀은 아닐것이라는 암시를 했었습니다.

  16. BlogIcon portable fence for dogs when camping 2012.11.14 1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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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BlogIcon multi function tool bosch 2012.11.20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18. BlogIcon solar powered radio with cell phone charger 2012.12.19 1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이전 원화제도가 있을때에는 나이어린 소녀가 아닌 농익은 성인 여성을 원화로 세웠을 개연성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창작한 위서가 된다.

  19. BlogIcon invisible fence installation instructions 2012.12.27 17: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다면 법흥(원종)이 백제에 국공으로 들어간 시기는 비처왕(479~500년) 이니 아무리 늦게 잡아도 500년 이전시기가 됩니다.

  20. BlogIcon storing food in mylar bags 2013.01.05 2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니 동성왕녀은 아닐것이라는 암시를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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